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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말고..시비하지 말라..욕심이라..져라..古松스님

어둠의골짜기 2009. 11. 13. 00:09

서두르지 말고 시비하지 말라/고송스님<팔공산 파계사 조실>

  • 글쓴이: 디제이   08.02.04 01:39  출처 : 아름다운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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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말고 시비하지 말라/고송스님<팔공산 파계사 조실>

 

스스로 알아서 해라
공부는 자기가 해야지
누구도 대신할수 없어

참선 별것 아니야
번뇌망상 내려놓고
자기마음 쉬는 것

◇세수 아흔여섯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고송 스님. 일체의 시비 분별로부터 벗어난 참 인간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무엇이 도(道)인가’ 하는 조주 스님의 물음에 대한 ‘평상심이 곧 도’라는 남전 스님의 답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떠나서 달리 구해야 할 도는 없다’는 뜻으로 새길 수는 있겠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함부로 입에 올리기에는 아득히 높은 경지인 것도 사실이다.

 

일상 그대로가 도(道)에 계합(契合)하는 도리를, 범부의 세치 혀에 쉽게 올릴 수는 없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매력적이다. 갑남을녀들의 일상도 절대 경지의 체현일 수 있다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이보다 더 큰 긍정은 달리 듣고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비루한 삶까지 도(道)일 수는 없다.

 

여기에 바로 일상의 삶이 버거운 중생의 고뇌가 있다. 어떤 삶이 ‘도’가 되는 삶일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만나면, 이런 경지를 일러 ‘도가 되는 삶이구나’ 하는 것 정도는 안다. 참으로 좋은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시인이나 화가가 아니더라도 소나기에 씻긴 저녁 하늘을 물들인 노을의 장엄에 감동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송(古松) 스님을 뵙는 순간,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이 떠올랐다. 감히 스님의 삶을 ‘평범의 외양을 한 비범’이라 표현해 본다. 평범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으면 비범해 보이고, 비범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으면 평범해 보인다는 말이 있다. 도의 궁극은 특별함에 있지 않다는 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다.

 

인사 여쭙고 나서 삼배를 올리려 하니 한 번 이상은 말라고 하신다. 아상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는 한, 삼천배도 공연한 짓이라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이런 스님 앞에서 무슨 번다한 소리를 늘어놓을 것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미리 준비해 간 질문 따위는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 겨우 “스님, 요즘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하고 말문을 연다. 참으로 뻔한, 하나마나 한 소리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번쩍 귀를 열어 주신다.

 

“그냥 이렇게 지내지 어떻게 지내. 그런데 지금이 몇시더라? 응, 그래 1시 반. 바로 그거야. 억천만겁이 지나도 이 순간밖에 없어. 별 시간이 없어.” 성동격서(聲東擊西). 하루가 억천만겁으로 늘어났다가 ‘이 순간’이라는 한 점으로 모인다. 그렇다.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은 ‘이 순간’이라는 형태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시간에 묶여있다.

 

스님께는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미 죽은 지 오래 됐어. 90이 넘었으니 이제는 내다 버릴 때가 됐지. 90년이 찰나야. 억천겁의 시간이라 해도 넘치는 법이 없고, 만생(萬生)이 당생(當生)이라.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몸 늙은 것뿐이지. 그때 본 것 지금 보고, 듣는 것 똑 같고. 목숨이 별 것 아니야. 호흡지간에 있어. 들이쉬고 내쉬는 가운데 있지. 찰나라. 인생이란 이렇게 여가가 없어.”선기(禪氣) 그윽한 말씀이어서 사설 붙이기가 주저되지만, 순간 순간에 전생애를 걸라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하고, 세상과 인생의 본질을 보고 나면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한다.

 

1920년 팔공산 파계사로 출가하셔서 법랍만으로 80년을 넘긴 세월 동안 오로지 수행으로 일관한 스님의 삶은 그 자체로 근·현대 한국불교의 산 역사다. 1930년부터는 15년 동안 금강산 마하연, 유점사, 신계사를 거쳐 묘향산 보현사에서 당대의 우뚝한 선승들과 함께 정진하셨다. 비록 중도에 깨어지기는 했으나 망월사 30년 결사에도 동참하셨고, 이후로도 오대산 상원사를 비롯한 여러 수도처에서 흔들림 없는 수행의 길을 걸으셨다. 현재의 법명인 고송(古松)은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께서 주신 것이다.

 

경전도 보지 않고 좌선도 않으면서
묵묵히 마주하는 이것은 어떤 종(宗)인고.
바람 없는 곳에 바람 흘러넘치니
푸른 묏부리에 천년 고송(古松) 빼어나누나.
不讀金文不坐禪
無言相對是何宗
非風流處風流足
碧峰千年秀古松


이런 스님의 이력에서 특별히 기억해 둘 점은 한 번도 종단의 높은 자리에 나가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초월을 지향해야 할 종교계마저도 세속적으로 퇴행하는 현 추세에 비춰볼 때는 더욱 빛나는 대목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성인도 시속(時俗)을 거스러지 못한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그러나 스님께서는 이점에 대해서도 지극히 담담하시다. “망하면 나 혼자 망하지 남까지 망칠 수는 없지.”


단순한 겸손의 언사라고 보기에는 서릿발 같은 수행자의 기상이 느껴지는 말씀이다. 좀더 들어보자. “그런 자리에 있으면 시비에 휘말리게 돼. 중 돼서 그럴 수는 없지. 서산 스님 같은 분은 정승 자리도 3일만에 박차고 나왔어.”혹자는 이런 말을 듣고 스님에 대해서 다가서기 힘들 정도의 엄격함을 지닌 분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엄격함은 맞지만, 다가서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천부당만부당한 오해다. 오히려 스님의 진면모는 조금의 권위 의식도 찾아보기 힘든 진솔함과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는 친근함이다.

 

상좌들도 하나같이 너무나 인간적인 분임을 강조한다. 이때의 ‘인간적’이라는 의미는 오욕락에 솔직히 반응하는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훌쩍 뛰어넘은 순일무잡한 인간이라는 말이겠다. 이러한 스님의 성품은 제자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제자에게도 ‘이래라 저래라’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으신다. ‘스스로 알아서 해라. 자기 공부는 자기가 해야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간단한 말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은 ‘닮고 싶은 모범’이다.

 

언젠가 우연히 낙산사에서 스님을 뵌 한 학인은, 곁에서 보기만해도 진한 감동을 주는 분이라고 했다. 사연인즉, 합장 인사를 하며 스쳐가는 한 수좌를 불러 세우더니, 어디서 공부하느냐, 공부는 잘 되느냐는 등 진지한 관심을 보이시면서 이런저런 말씀으로 공부의 정도를 점검하시고 열심히하라는 당부와 격려를 잊지 않으시더라는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스님의 인간적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신도들을 대할 때도 그런 모습은 변함이 없으시다. 운동 삼아 도량을 거닐다가도 뭔가 물어오는 이가 있으면 노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즉석에서 상대에 맞는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런 스님을 뵙고 어찌 하루하루의 삶을 여법히 꾸려가는 길에 대해서 여쭈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이 될 것 같아서 ‘건강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고 에둘러 여쭈어 보았다. “시비를 하지 말아야 해. 의견 대립이 있거나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이 생겼을 때, 항상 양보하고 먼저 져야 돼. 누구에게든 어떤 일에든 이유는 다 있어. 그런데 이유를 댄다는 건 결국 이겨야겠다는 뜻이거든.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이유를 대는 순간 끊어버려야 돼. 져 주란 말이지. 그런데 이게 어려워. 욕심 때문이거든. 욕심 부리면 오래 못살아. 철모르는 애들도 제 것 안 빼앗기려고들 싸우잖아. 욕심은 그렇게 뿌리가 깊어.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고통도 없어. 그것만 쉬어도 생사가 끊어지는 거라.”시비하지 말라.

 

스님이 들려 주시는 안심법(安心法)의 요체다. 시비분별에 대한 스님의 경계는 아주 엄격하다. 다음은 상좌인 성화 스님(구미 남화사 주지)에게서 들은 얘기다. “스님께서 건강하게 수를 누리시는 건 일체의 가식도 없으신 소박함과 어떤 일에든 시비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매사에 서두시는 법이 없어요. 40년 가까이 곁에서 배우면서 조급히 행동하시거나 바쁘다는 말씀하시는 걸 본 일이 없어요. 그리고 누구를 섣불리 평가하거나 차별을 두고 대하지 않으십니다.

 

오래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출가를 하겠다고 파계사로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짜 고약하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스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스님, 아무개는 정말 마음씨가 고약한 사람 같습니다’ 하고 말이지요. 그러자 금방 불호령이 떨어지대요. ‘이놈아, 네 마음도 모르는 놈이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좋다 나쁘다고 말하느냐’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혼이 난 적이 있는데 오래 전의 일이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굳이 제자 스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도 스님의 수행력은 주위 사람들을 감응시키는 바가 컸다. 굳이 말로 여쭈고 들을 것도 없이. 그렇지만 일상적으로 뵐 형편도 못되고 보니 또 여쭈지 않을 수 없다. “스님, 어떻게 닦아나가는 것이 불자된 도리일지요?”


“그런 건 나한테 물을 것도 없어. 말해도 듣지도 않고. 지금은 다들 도인이고 선지식이야. 머리만 깎았다 하면 도인 노릇이야. 제물에 도인 다 돼 버렸어. 지금 세상이 그렇게 변했어. 요즘 중된 이들은 묻는 법이 없어. 걸핏하면 절 세운다고 화주하러 다니고. 옛날에는 화주도 함부로 못했어. 도력도 없이 어떻게 함부로 남 복짓게 한다고 설쳐. 이런 세상에는 묵변(默辯)으로밖에 대처할 수가 없어. 말로 해서는 안돼. 먼저 알고 묻는데 무슨 말을 해. 듣고도 다 제 깜냥대로 해석을 해. 너무 발달한 시대야. 부끄러운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지. 부처님 당시에도 외도들은 있었어. 그래서 물었지. 부처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래서 말씀하셨잖아. 침묵으로 대하라고. 지금이 그런 시대야. ‘천언만당불여일묵(千言萬當不如一默)’이라 했어. 천 번 말해서 만 번이 옳더라도 한 마디도 안한 것만 못하다는 말이야. 그래서 불법에 의한 교화의 주는 적묵(寂默)이어야 한다는 거야.”침묵으로 말하기. 이 시대의 병폐에 딱 맞는 역설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참선의 실제에 대한 가르침을 청해 보았다. 역시 어려웠다. 너무 단순 명쾌해서. 지극한 도는 평범하다는 말은 들어서 알겠는데, 그 평범 속에 깃든 궁극은 아직 아득히 멀고 깊기만 하다. “참선은 아무나 못해. 벽만 보고 앉았으면 뭐해. 온갖 번뇌 망상 다 피우면서. 하지만 별 것도 아니야. 쉬는 거라. 지금 자기의 마음을 쉬는 거라. 간단해 번뇌 망상을 다 내려 놓는 거야. 식업양신(息業養神)이야

*고송 스님은

최고령 명예원로의원
망월사 30년 결사 동참


1906년 10월 경북 영천에서 나신 스님은 1920년에 팔공산 파계사에서 상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하셨다. 이어서 1923년에 용성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25세가 되던 1930년부터는 15년 동안 금강산 일대에서 수행하셨고 망월사 30년 결사에도 동참하셨다.

 

1954년부터는 팔공산 파계사에 주석하신다. 현존 최고령의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기도 한 스님의 이력에는, 지금은 전설처럼 들려오는 수행자들의 치열한 삶과 한국 근·현대 불교사의 영욕이 아로새겨져 있다. 망월사 결사시, 장판 한 장에 두 명씩 앉고, 저녁을 먹지 않는 하루 두끼 중 아침은 죽, 점심만 밥을 먹는 가운데서도 정진을 느슨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것이나, 일제 강점기 때 불교 잡지를 만들던 만해 스님을 돕던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껏 스님은 한번도 종단의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으셨고 어떤 분란에도 휘말리지 않으셨다. 참으로 귀한, 한국 불교의 보배같은 삶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스님은 파계사의 조실로 계시면서 만나는 인연마다 공부길의 핵심을 짚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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