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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봐야할 신앙의 자세

어둠의골짜기 2009. 11. 21. 12:00

   어느 해 4월에는 친구의 안내로 나스[那須]의 종교 단체를 찾았다.

  봄이었지만 나스고지(高地)의 아침은 무척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여린 입들은 싹이 터서 싱그러운 이슬을 머금고 있었고, 산에서는 뻐꾸기 소리도 들렀다.

 

  나는 친구와 함께 한적한 산길을 걸어 산중턱에 있는 교단 본부의 붉은 문을 통과했다.

  얼굴에 닿는 여린 나뭇잎에 햇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마치 신의 빛처럼 느껴졌다. 마음은 편안했다.

  본부에 명함을 전달했더니 안내자가 나와 나를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했다.

  본당에는 용을 섬기는 신의 그림이 모셔져 있었다.

  마침 축제일이어선지 마을에서 많은 신자들이 와 있었다. 나는 거시서도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교단 본부는 시주금에만 관심이 있었다. 교조의 눈빛과 마음에는 돈밖에 없었다.

  각 지방의 지부 책임자들이 시주금을 보고할 때마다 액수의 차이에 따라 교조의 안색의 수시로 달라지고 있었다.
 
"시주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여러분이 시주금을 바치는 것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섭니다.

  적게 바치면 신심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 용신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교조는 시주가 적자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꾸중을 들으면서도 신도들은 되레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자비로운 책망으로 듣고 있었다.

  나는 교조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살아 있는 신은 늘 보시 때문에 흥분한단다."
 

  아름다운 햇살과 맑은 하늘과 빼어난 경치와는 달리 교조의 아귀 같은 행동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 체험이 고작 2박 3일간 친구의 안내로 이루어진 교단 견학이었다.

 

  그런 것이 과연 종교인가? 아침 6시부터 종교 행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내게는

  독경 소리, 합창 소리, 북소리가 이상한 괴물에 홀린 비애의 외침으로 들렸다.

  전당 안에는 등이 희고 배가 분홍빛인 큰 뱀과 검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영적인 시각으로 확실하게 보였다.

  "이곳은 용을 섬기는 곳입니다."
  교조가 뽐내며 말했지만 내 눈에는, 흉칙한 뱀들이 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본전 옆의 사당에는 이나리대명신을 모시고 있었다. 그곳을 보니 흰 여우, 다갈색 여우, 큰 여우, 새끼여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신도들은 모두 그런 동물들의 영적인 기운에 빙의(憑依), 즉 혼이 엉켜붙어 있었다.

  왜 인간이 짐승이 혼령을 섬기는가.
  나는 동물을 신으로 믿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짐승의 혼을 섬기기 때문에 물질과 돈에 집착하여 약육강식의 처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고 헤매는 사람들은 동물과 같은 종류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 판단도 없는 불쌍한 노예가 되어 있었다.

  종교가 없던 내 눈에 비친, 광적이고 맹목적인 사람들을 보자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거기에 창가학회(創價學會)라는 젊은 신도 회원들이 섞여서 신도들을 크게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짐승의 혼에게 기도를 드리는 맹렬한 신도들에게는 젊은 학회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능력이 없었다.

 

나는 그 교단을 견학하고 난 후에, 신령과 하나가 된 부처님의 이치를 깨닫게 된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아야 했다. 하지만 그 교단의 신도들로부터는 아편 같은 공포를 느꼈을 뿐이었다.

 

출처 :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저자 다카하시 신지 옮긴이 김해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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