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1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월간지 정법 20,30호)1981년,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1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월간지 정법 20,30호)1981년,

어둠의골짜기 2013. 8. 25. 04:11



아주 오랜 만에, 가르침에 글에 새로운 글을 올립니다.  여러 권의 책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서 미룬 것도 있고, 아주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며, 번역 중, 글자 특히, 고유명사(특히 지명이나 숫자) 상에, 이건 아니다, 라고 해서, 거의 완성 직전에, 번역을 미룬 것도 있습니다.  전 한 글자라도 이상하면, 아에 블로그에 올리지 않습니다.


제가 읽어 보고, 이건, 신지님의 말씀도, 그 분의 수제자이신 전생에 사리불님이, 글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올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기존에 올린 수십권의 내용이 글들이, 가르침의 글에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블로그가 존재하므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2013년 8월 25일 새벽 5시 반.





男の役割と女の役割 - 1 ・・・・・ キリストの言葉から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 - 1 ・・・・・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園頭広周先生(소노가시라 히로치카)선생님

  そのがしら ひろちか(소노가시라 히로치카)선생님 생전의 모습





 心温まる話 

마음의 흐뭇해지는 이야기



昨年11月、筑波の研修会が終わって私はある所に行った。

작년 11월, 쓰쿠바(筑波)의 연수회가 끝나서 나는 어떤 곳으로 갔다.


その時そこのご主人が次のような話をして下さった。

그맘때 가장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そこの家族構成は次の通りである。

그 가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 


父/母/長男-高校1年/長女-小学校6年/次女-小学校4年/三女-小学校2年 ・・・ 合計6人

아버지/어머니/장남-고등학교 1학년/장녀-초등학교 6학년/차녀-초등학교 4학년/막내딸-초등학교 2학년 ・・・ 합계 6명



今頃子供4人はめずらしい方である。

요즘 아이 4명은 좀처럼 보기 힘든 편이다. 


「家内が研修会に行ったその翌日、長男はいつも弁当を持って行くんですが家内がいないので、「お前は明日はパンでも買って食べなさい」と言ったら、あの女の子たちが、「お父さん、それはダメ、私達がお弁当作る」と言うんです。「いや、お兄ちゃんは朝が早いから、お前達は寝ていなさい」と言ったんですが、あの三人が六時に起きてお兄ちゃんの弁当を作って持たしてやったんです。我が子ながら立派なものだと思いました。そうして言うのです。「女は男に、お昼にパンを食べさせるようじゃダメ、朝もチャンとご飯を食べさせてやらなければ」そのお母さんは言われた。「長男は、あの小さな妹達が弁当を作ってくれたことにすっかり感激して、学校で「俺はいい妹達を持って幸せだ。妹達が弁当作ってくれた」と言ったら同級生達が「その弁当を見せろ」とみんな寄って来たと言うのです」と。私が泊まったその日の夕食も、その女の子達が作ってくれたのであった。

「아내(家内)가 연수회에 간 그 다음날, 장남은 도시락을 가지려 갔지만 아내(家内)가 없어서, 「너는 내일은 빵이라도 사서 먹으라」고 말했더니, 저 여자 아이들(딸들이), 「아버지, 그건 싫어요, 저희들이 도시락을 만들거에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냐, 오빠는 아침 일찍이니까, 너희들은 자라」고 말한 것인데요,  저 세 사람(세 자매)이 6시에 일어나서 오빠 도시락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우리 아이지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점심에 빵을 먹이는 식은 좋지 않다, 아침도 제대로 밥을 먹여서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어머니는 말했다.  「장남은, 저 어린 동생들이 도시락을 만들어 준 것에 몹시 감격하여, 학교에서「나는 좋은 여동생들을 가져서 행복해.  여동생들이 도시락을 만들어 주었어」라고 말하자 동급생들이「그 도시락을 보여줘」라며 모두 다가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제가 묵었던 그 날 저녁밥도, 그 여자 아이들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そのお母さんという人は、高校二年生までは、お父さんが早く亡くなられたせいもあって親に反抗期であったのが、私が研修会を開いて「汝の父母に感謝せよ」という話をして以来、すっかり考え方を変えて、結婚してからはずっと「女の正しい生き方とは」ということを追及して来て四人の子の母親である。

그 어머니라고 하는 사람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도 있고 부모에게 반항기였던 것이었지만, 제가 연수회를 열고 「네 부모에게 감사하라」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완전히 사고방식을 바꾸고, 결혼하고 나서 줄곧「여자의 올바른 생활태도란」이라고 하는 것을 추급해 온 4명의 자녀의 어머니.


そのお母さんは言うのである。

그 어머니는 말하는 것이다. 


「今のお母さんたちの考えは間違っていると思うのです。子供が小学校へ行くようになったから暇になったから働きに出ると言っている。子供が小学校、中学校へ行っている時分が一番家庭的な躾や家事、特に女の子は女の役割を教える時期だと思うのです。PTAの役員を今しているんですが、殆んどのお母さんたちが働きに行っていて、働きに出ていないのは私だけです。少しばかりの金を求めて家を出て子供を台なしにする。私は主人の給料はそんなに多くないですが、それでも結構家族六人が幸せにやって行けます。

「지금의 어머니들의 사고방식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간 후에 짬이 났기 때문에 일하려 나간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 있는 때쯤의 가장 가정적인 가정교육(躾:예의범절)이나 가사(家事:집안 일), 특히 여자 아이는 여자의 역할을 가르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PTA (Parent-Teacher Association :학부형회)의 역원을 지금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일하려 가 있고, 일하려 가 있지 않은 것은 저뿐입니다.  약간의 돈을 벌려고 집을 나가서 아이을 망칩니다(子供を台なしにする :자식을 요절냅니다).  저는 남편의 급료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런데도 나무랄 데 없는 가족 6명이 행복하게 지내려 합니다. 


ある時、私の家にPTAの婦人幹部四人が集まったのです。その中に一人、ご主人が一流商社に勤めている人があったんですがその集まりが終わった後、その人から電話があったんです。

어느 때, 제 집에 PTA (Parent-Teacher Association :학부형회)의 부인 간부 4명이 모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바깥양반이 일류상사(一流商社)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모임이 끝난 후,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있었습니다. 


「あなたの家は瞬間湯沸かし器もないし電気炊飯器もないし、あなたのバイタリティーは全く魅力的だわ」と。女というものは、夫を生かし子供を生かして行く事の中に女の幸せはあると思うのです」と。

「당신의 집은 순간 온수기도 없고 전기 밥솥도 없지만, 당신의 바이텔러티(vitality :생기)는 완전히 매력적이예요」라고.  여자라고 하는 사람은, 남편을 살리고 아이(자식)을 살려 가는 일 속에 여자의 행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その人は、夫や四人の子供にかかりきりでいる訳ではない。PTAの役員もすれば勿論正法会で世話もして、人が集まる時には二十人分位の昼飯は電気炊飯器なしでもサッと作って出すし、趣味として絵や刺しゅうなども立派に勉強しているし全く感心する。

그 사람은, 남편이나 4명의 자식에게 꼬박 붙어 있는(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PTA (Parent-Teacher Association :학부형회)의 역원도 하면서 물론 정법회에서 도움도 주고, 사람이 모일 때에는 20인분 정도의 점심밥은 전기 밥솥이 없어도 즉시 만들어 내고, 취미로 그림이나 수를 놓는 일 등도 훌륭하게 공부하고 있으며 완전히 탄복했습니다. 


そのご主人は言われる。

그 바깥양반은 말한다. 


「男が客を連れて帰った時、女に嫌な顔をされることほど癪に障ることはないと思うのですが、

その点うちの家内は感心ですな。何人連れて帰っても、ひとつも嫌な顔をせずもてなしてくれますから、

これはありがたいです」

「남자가 손님을 데리고 귀가했을 때, 여자가 싫은 기색을 하는 것만큼 부화가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점에 있어서 우리 집사람은 기특하지요.  몇 명이나 데리고 귀가해도, 전혀 싫은 기색을 하지 않고 대접해 주니까, 이 점은 고맙습니다」






 心が寒くなる話、恐ろしくなる話

마음이 오싹해지는 이야기, 무서워지는 이야기



結婚してまだ半年にもならないというのにその妻は、朝の食事も作らず寝床の中から「行ってらっしゃい」と言うということである。駅で牛乳瓶を片手にパンの立ち喰いをやったり、ソバをすすったりしている人が相当に多いのは、殆んどがそういう奥さんを持っているのではなかろうか。夫にそんなことをやらせていたのでは、若いうちこそそれでいいかもしれないが夫の体は早くくたびれてしまうのではなかろうか。夫が早くダメになって困るのはその妻なのではなかろうか。

결혼하고 아직 반년도 안 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내는, 아침 식사도 만들지 않고 침상(잠자리) 안에서 「다녀오세요(行ってらっしゃい)」라고 말한다고 하는 일이다.  역에서 우유병을 한쪽 손에 들고 빵을 서서 먹거나, 메밀국수를 후루룩거리며 먹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은, 대부분이 그러한 부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남편에게 그런 짓을 하게 하고 있던 것은, 젊을 때만은 좋을지도 모르지만 남편의 몸은 빨리 지쳐버리는 것이 아닌가요? 남편이 일찍 못쓰게 되어 애를 먹는 것은 그 아내가 아닌가요?


夫のことも考えないエゴの固まりである若い妻たちに、お兄ちゃんに朝の食事をさせてちゃんと弁当を持たせてやった三人の小学生の話を聞かせてやりたい。

남편의 일도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 덩어리인 젊은 아내들에게, 오빠에게 아침 식사를 먹이고 어김없이 도시락을 들려 보내 준 3명(세자매)의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私は今の若い妻たちが吸血鬼に見えたことがあった。

저는 지금의 젊은 아내들이 흡혈귀로 보인 적이 있었다.


ある所へ講演に行った。その時に聞いた話である。その人は長男に嫁をもらった。その奥さんは銀行に十年勤めていた人だそうであるが、新婚旅行から帰って来たその翌日、そのお母さんに「あの人の生命保険はいくら描けてあるんですか」と聞いたのだそうである。生命保険というものは、夫の側が、もし万一ということを考えて妻への愛情として自発的に掛けるのは美しいと思うが、妻の側から要求するのは夫の心を寒くさせるのではなかろうか。気の強い妻から強制的に保険を掛けさせられて「私は生命保険を掛けるために働いているようなものです」とやけ酒を飲んでいる人の話を聞いた事がある。その人の奥さんはそのご主人の身内の人達に「うちのお父ちゃんが死んでも保険が何千万円掛けてあるから、私は生活に困らないからいいですよ」と言っているのだそうである。無神経というのか非常識さにも程がると思うことであった。

어떤 곳으로 강연하려 갔다. 그 때에 들은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장남에게 시집을 갔다.  그 부인은 은행에 10년 근무하고 있던 사람이라는데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 다음날, 그 어머니에게 「저 사람의 생명보험은 얼마나 그리고 있나요?」물었다고 한다.  생명보험이라고 하는 것은, 남편 측이, 만약 만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서 아내에 대한 애정으로서 자발적으로 드는 것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측에서 요구하는 것은 남편의 마음을 오싹해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요? 고집 쎈 아내에게서 강제적으로 보험을 들게 해서 「저는 생명보험금을 불입하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홧김에 술을 들이키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 사람의 부인은 그 바깥양반의 집안 사람들에게 「내 남편(うちのお父ちゃん)이 죽어도 보험이 몇 천만엔 불입하고 있으니까, 나는 생활에 걱정이 없으니까 좋아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무신경(無神経)이라고 하는 것인지 몰상식해도 분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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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っと腹立たしい悲しい思いをしたのはある新聞の「定年前の夫を持った妻の中には夫の退職金を目当てに離婚をして、その退職金を慰謝料としてもらって優雅な暮らしをしようと待ち構えている妻が増えつつある」という記事を読んだ時であった。定年で仕事も辞め、退職金を妻に巻き揚げられた男はその後の人生をどうやって生きて行くのであろうか。

더 화가 나는 슬픈 기분이 든 것은 어느 신문의 「정년전의 남편을 가진 아내 중에는 남편의 퇴직금을 표적(목표)으로 삼고 결혼을 해서, 그 퇴직금을 위자료로 받아서 우아한 생활을 하겠다고 하며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라고 하는 기사를 읽었을 때였다. 정년으로 일자리를 해고당하고, 퇴직금을 아내에게 빼앗긴 남자는 그 후의 인생을 어떻게 해서 살아갈 것인가?


ある人達は「そんな女はごく僅かですよ、気にすることはないですよ」と言うかも知れない。しかし、私は全国を歩いて、そういう妻が増えている事を聞いているのである。ある人も言っておられた。「応接セットを動かして掃除しているうちに、ギックリ腰になって動けなくなってしまった。近所にいる長男の嫁に電話して「ちょっと鍼灸医の所まで連れて行ってくれない」と言ったら、「私はお母さんのために嫁に来たんじゃありません。私は○○さんの嫁に来たんです。私は○○さんを独占したいんです」それを聞いて私は悲しくて悲しくて、嫁が私の家に来た時は、その日の夕方の分にと買って来た野菜や缶詰めも持たせてやったりしていたのに」と嘆いていられた。

어떤 사람들은 「그런 여자는 극히 적지요,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는 전국을 걸어서, 그러한 아내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말하고 계셨다.  「응접세트를 움직이며 청소를 하는 사이에, 갑자기 삐끗하여 생기는 요통(ギックリ腰)이 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근처에 있는 장남의 며느리에게 전화해서「잠깐 침구사(鍼灸医:침과 뜸을 뜨는 의사)가 있는 데까지 데려다 주지 않겠니?」라고 말했더니, 「저는 어머니 때문에 시집 온게 아닙니다.  저는 ○○씨에게 시집 온 거에요.  저는 ○○씨를 독점하고 있거든요」그것을 들은 저는 슬프고 슬퍼서, 며느리가 저의 집에 왔을 때는, 그 날 해질녘무렵에 사 왔던 야채랑 통조림도 들려 보내주거나 했었는데...」라고 하며 탄식(슬퍼)하고 계셨다. 


どうしてこういう若い女達が増えて来たのであろうか。終戦後の民主主義、男女平等という風潮の中で、学校教育でも男の役割と女の役割は教育されず、特に家庭において、親は子供を甘やかすだけで女の役割が躾けられていない結果だ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

어째서 이러한 젊은 여자들이 증가해 온 것일까요? 종전 후의 민주주의, 남녀평등이라고 하는 풍조 속에서, 학교 교육이라고 해도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은 교육시키지 않고, 특히 가정에 있어서, 부모는 아이(자식)이 응석을 받아 줄 뿐이며 여자의 역할이 가정교육(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은 결과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こんな話を聞かされるたびに昔の人が「嫁を貰うなら親を貰え」と言った言葉は真実だと思うことであった。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옛 사람이, 「며느리를 맞아들일 때는 부모를 보라(嫁を貰うなら親を貰え)」고 말한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そういう若い女の人達が増えて来ているのは、その人達が悪いというよりも、その人達は女の役割というものを教えられていないからだと思う。知っていればそういう事はなかったのに知らなかったばかりに不幸になった失敗したということは沢山ある。だからお釈迦さまは、「無明」即ち「知らない」と言うことが苦しみの根源であると説かれたのである。キリストは男と女の役割についてどのように教えていられたかを考えてみたい。

그런 젊은 여자들이 증가해 오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기 보다도, 그 사람들은 여자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침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있으면 그런 일은 없을텐데 알지 못한 것만으로 불행하게 된 실패했다고 하는 일은 많다.  그래서 부처님(お釈迦さま)는,「무명(無明)」즉「모른다(知らない)」라고 말하는 것이 괴로움의 근원(苦しみの根源)이라고 설법한 것이다.  그리스도(Christ)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계신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結婚 離婚

결혼 이혼


マタイ伝 第十九章

마태 복음 제19장


「人を造り給いしもの、元始より之を男と女とに造り、而(しか)して、かかる故に、人は父母を離れ、その妻に合いて、二人のもの一體(いったい)となるべし。されば、はや二人にはあらず一體なり。この故に神の合わせ給いし者は、人これを離すべからず」

「사람을 만드신 것은, 만물의 근원(元始)을 이용하여(より之を)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그리고나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人は父母を離れ)、그 아내와 합쳐져서(その妻に合いて)、두 사람 자체가 한 몸이 될 것이다(二人のもの一體(いったい)となるべし)。그런고로(されば)、본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はや二人にはあらず一體なり)。그러므로 신이 합쳐주신 사람은 (この故に神の合わせ給いし者は)、사람이 그것을 갈라 놓을 수 없다(人これを離すべからず)」


★마태복음 19장 4~6장과 비교해 보세요. 



コリント前書 第七章

고린도전서 제7장


「われ婚姻したる者に命ず、命ずるものは我(キリスト)に非ず主(神)なり、妻は夫と別れるべからず。もし別れる事あらば、嫁がずしているか、又は夫と和らげ。夫もまた妻を去るべからず。女に不信者なる夫ありて偕(とも)にいることを可(よし)とせば、之を去るな。そは不信者なる夫は妻により潔(きよ)くなり、不信者なる妻は夫によりて潔くなりたればなり、然(さ)なくば汝らの子供は潔からず。然れば今は潔きものなり。不信者みずから離れ去らば、その離るるに任せよ。斯(かく)のごとき事あらば、兄弟または姉妹、もはや繋(つな)がるる所なし。神の汝らを召し給へるは平和を得させん為なり。妻よ、汝いかで夫を救い得るや否やを知らん、夫よ、汝いかで妻を救い得るや否やを知らん。唯おのおの主の分ち賜ふところ、神の召し給ふところに循(したが)ひて歩むべし」

「내가 결혼한 사람에게 명하니, 명하는 것은 내(그리스도)가 아니라 주(主)(신(神))이며,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 만약 헤어질 것이면, 시집가지 말고 있든지, 또는 남편과 누그려뜨려라. 남편도 또한 아내와 헤어지지(妻を去る:이혼하지) 말아야 한다. 여자에게 불신하는 마음을 가진 남편이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을 좋다고 하면, 이를 떠나지 말라. 그 사람은 불신하는 마음을 가진 남편은 아내로 인해 깨끗(떳떳)해지며, 불신하는 마음을 가진 아내는 남편으로 인해 떳떳(깨끗)해지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으면 너희 자식 또한 떳떳(깨끗)해지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지금은 맑고 깨끗하다. 불신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이혼하고자 하면(헤어지려고 하면), 그 헤어짐에 맡겨라.  이와 같은 일이 있으면, 형제 또는 자매, 이미 얽매일(이어질, 희망을 걸) 곳이 없다.  신의 너희를 부르심은 평화를 얻게 하기 위함이라. 아내여, 네가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도울 수 있을지 어떨지를 알라, 남편이여, 네가 어떻게 해서든 아내를 도울 수 있을지 어떨지를 알라.  오직 각자의 신(主)의 나누어 주시는 곳, 신의 불러 주시는 곳에 따라서 걸어야 한다 」


キリストは独身であって夫婦生活の経験はない。聖書を読んで思うことは、夫婦生活の経験を持たれなかったキリストが、夫と妻の在り方について実に的確な教えをしていられることである。そうしてその教えられる所は、お釈迦様が説かれたことと全く一致していることである。またそれは、日本の古神道が教えている男女の在り方、夫婦の在り方とも一致している事である。この男女・夫婦の在り方の一致点から見ても神理は一つであるといえるのである。

그리스도는 독신이며 부부 생활의 경험은 없다.  성경을 읽고 생각하는 것은, 부부 생활의 경험을 갖지 못한 그리스도가, 남편과 아내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서 실로 적확(的確:초점을 벗어나지 않고 확실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 가르쳐 주시는 바는, 부처님(お釈迦様)이 설법하신 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그것은, 일본의 고신도(古神道)가 가르치고 있는 남녀의 본연의 모습, 부부의 본연의 모습과도 일치하고 있는 점이다.  이 남녀・부부의 본연의 모습의 일치점에서 봐도 신리(神理)는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キリストの言葉を解説してみよう。

그리스도의 말씀을 해설해 보겠습니다. 



マタイ伝 第十九章

마태복음 제19장


人を造り給いしものとは神のことである。神は元始にこの世界を陽と陰とに分けて造られ、人を男と女とに造られた。その男と女は夫となり妻となり、子を産んで父母となり子は成長して親と離れて結婚をし、二人は一体となる。だからその二人はもはや個々別々の二人ではなく一体である。このように結婚というものは、神のみ心によって結ばれたものなのであるから、自我をむき出しにして離婚をしてはならない。

사람을 만드신 분이란 신(神)이다.  신(神)은 원시(元始: 만물의 근원)에 이 세계를 양(陽)과 음(陰)으로 나누어 만드시고,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 남자와 여자는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며 아이(子:자식)은 성장해서 부모와 헤어져 결혼을 하고, 두 사람은 일체(一体:한몸)이 된다.  그래서그 두 사람은 이제는 각자(個々別々)의 두 사람이 아니며 한몸(一体)이다.  이와 같이 결혼(結婚)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신(神のみ)의 마음에 의해서 정하신 바인 것이기 때문에, 자아(自我)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결혼해서는 안 된다. 


二人は一体となるということは、夫と妻とは心を一つにして生き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夫と妻の心が個々バラバラでいつも争い対立しているような事で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夫が出掛けるのに朝食も準備せず寝床の中から「いってらっしゃい」という妻は、夫の心と一つになっていない利己主義者で自我ばかりが強い女である。

두 사람은 한몸(一体)이 된다고 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는 마음을 하나로해서(心を一つにして:한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며, 남편과 아내의 마음이 각자 제멋대로 늘 싸우며 대립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남편이 나가는데(夫が出掛ける출근하는데도) 아침밥도 준비하지 않고 침상(寝床) 속에서 「다녀오세요(いってらっしゃい)」라고 하는 아내는, 남편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있지 않은 이기주의자(利己主義者)이며 자아(自我)만이 강한 여자이다. 


ともかく夫婦というものは心を一つにして生き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結婚というものは縁によって神が自然に結ばせられるのであるから、人が勝手に離縁させるという様な事はしてはならない。

그것은 그렇다치고 부부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하나로해서(心を一つにして:한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인연(縁)에 의해서 신(神)이 자연히 맺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제멋대로 이혼(離縁:이연)시킨다고 하는 것과 같은 짓은 해서는 안 된다. 


이혼(離縁:이연)의 또 다른 뜻인, 파양(罷養)은, 양자로 입적하여 성립되었던 양친자(養親子) 관계를 끊음,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コリント前書 第七章

고린도전서 제7장


「われ婚姻したる者に命ず、命ずるものはキリストにあらず、神なり」

「내가 결혼한 사람에게 명하니, 명하는 것은 내(그리스도)가 아니라 주(主)(신(神))이니라」 


この言葉の中に私はキリストが神の権威を持ってこれこそが神理であるといっていられるその権威を感ずる。

이 말 속에 저는 그리스도가 신(神)의 권위를 가지며 그야말로 신리(神理)이라고 말하고 계시는 그 권위를 느낀다. 


妻は夫と別れてはならない。解れる位だったら最初から結婚しなければいいのである。結婚というものは、夫と心を一つにして、この人生の目的を果たして行く事を決心してするものなのであるから、一旦、そう決心して結婚したからには妻は別れてはならない。だから必ず夫と調和しなさい。夫もまた勝手に妻を離婚するというようなことをしてはならない。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된다.  헤어질 정도라면(解れる位だったら) 최초부터 결혼하지 않으면 좋은 것이다. 결혼(結婚)이라고 하는 것은, 남편과 마음을 하나로 합쳐서, 이 인생의 목적(目的)을 완수해 갈 것을 결심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결심(決心)해서 결혼했기 때문에 아내는 헤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편(夫)과 조화(調和)하십시오.  남편도 또한 제멋대로 아내(妻)와 이혼(離婚)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妻が信仰を持っていて夫が信仰しない場合は、不信仰の夫は信仰している妻によって救われ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り、また、夫が信仰していて妻が不信仰である場合は、その妻は夫の姿を見て救われ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そのようにして、お互いに相手の姿を見て心の勉強、救いの体験によって魂を成長させ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が、そういう事をせずお互いに反目ばかりしていると子供が色々と問題を起こして子供のことで困らされることになる。だから相手の良きを素直に認めて向上を心掛けるならば必ず救われて幸せになるのである。

아내가 신앙(信仰)을 가지고 있으며 남편이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는, 불신앙(不信仰)의 남편은 신앙하고 있는 아내로 말미암아 구제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또한, 남편(信仰)하고 있으며 아내가 불신앙인 경우는, 그 아내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구제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로 상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의 공부(心の勉強), 구제의 체험(救いの体験)에 의해서 영혼(魂)을 성장시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그러한 것을 하지 않고 서로 반목(反目)만 하고 있으면 자식(子供)이 여러 가지로 문제를 일으키며 자식(子供)의 일로 난처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의 좋음(良き)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향상(向上)을 명심하면   반드시 구제되어 행복해지는 것이다. 


一方は正しい信仰をしているのに、一方は不信仰であるという場合、その不信仰をしている者が自ら進んで魂の勉強をしようとはせずに別れて行こうとする場合は、それは別れたいと言うままに分かれさせた方がよい。

한쪽은 올바른 신앙을 하고 있는데, 한쪽은 불신앙이라고 하는 경우, 그 불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진해서 영혼(魂)의 공부를 하려고는 하지 않고 헤어지겠다고 하는 경우는, 그것은 헤어지고 싶다고 하는 그대로 헤어지는 편이 좋다.


キリストは先に、別れるくらいだったら結婚しない方が良いのだし結婚した以上は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夫婦和解しなさいと教えられたのであるが、信仰していない者が信仰している者の足を引っ張って信仰している者の向上意欲を阻害し、その不信仰者が別れると言い出した場合は、その夫婦は一緒にいる限りお互いの魂を傷つけ合っていささかも人間性の向上にならないのであるから、そういう場合は離婚してもいいと言っていられるのである。

그리스도는 앞서, 헤어질 정도라면 결혼(結婚)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이고 결혼(結婚)한 이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부부가 화해하십시오라고 가르친 것인데, 신앙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신앙(信仰)하고 있는 사람의 발을 잡아당겨 신앙하고 있는 사람의 향상 의욕(向上意欲)을 저해(阻害)하고, 그 불신앙자(不信仰者)가 헤어지자고 말을 꺼낸 경우는, 그 부부(夫婦)는 옆에 있는 한(一緒にいる限り) 서로의 영혼(魂)을 서로 상처를 입히며 조금도 인간성(人間性)의 향상으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는 이혼(離婚)해도 좋다고 말하고 계시는 것이다. 


新婚旅行から帰ってくるとすぐ夫の母に、「あの人はいくら生命保険を掛けているんですか」と言ったその新妻の夫は、結婚してまだそう長くならないのに、「わしは男として色々夢があったが、あいつに足を引っ張られてもうなんにも出来ない」と嘆いているというのである。私はこれを聞いた時、交尾が終わると雄を食い殺す雌のカマキリを連想した。昔は「弱き者よ、汝の名は女なり」と言ったが最近は「汝の名は男なり」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なって来たようである。ともに極端から極端でよろしくない。中道で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る。

신혼 여행(新婚旅行)에서 돌아오자마자 남편의 어머니에게, 「저 사람은 얼마정도 생명보험(生命保険)을 들고 있나요?」라고 말한 그 신부(新妻)의 남편은, 결혼해서 아직 그렇게 오래살지 않았는데,「나는 남자로서 여러 가지 꿈이 있었지만, 저 여자에게 발목을 잡혀서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들었을 때, 교미(交尾)가 끝나면 수컷을 물어뜯어 죽이는(雄を食い殺す) 암 사마귀(雌のカマキリ)을 연상(連想)했다.  옛날에는,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니라 」라고 말했지만 최근은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남자니라(汝の名は男なり)」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온 모양이다. 다 같이 극단(極端)에서 극단(極端)으로는 적당치 않다. 중도(中道)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魂を傷つけ合って結婚以前よりは心を暗くして一生を終わりそうであったら別れて独身でまた縁があったら再婚して、少なくとも結婚する以前よりは心を明るく大きくして一生を終わらないと生きていた甲斐がないのである

영혼(魂)을 서로 상처를 주며 결혼 이전보다는 마음을 어둡게 해서 일생을 그렇게 끝내고 있다면 헤어져서 독신이며 또한 인연이 있으면 재혼해서, 적어도 결혼하기 이전 보다는 마음을 밝고 크게 해서 일생을 끝내지 않으면 살아온 보람이 없는 것이다. 


たとえ夫婦の一方が信仰していないからと言って嘆く必要はないのである。もし不信仰の夫を持っているという人達は、そういう夫と結婚したことを嘆く必要はないのである。あなた方には、あなた方の心遣いと生活行為を通して如何にして夫を信仰の世界へ導くかという大事業が与えられてあるのである。その大事業に挑戦する事によってその妻の魂は向上していくのである。

비록 부부의 한쪽이 신앙하고 있지 않으니까라고 하며 탄식할 필요은 없는 것이다.  만약 불신앙의 남편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남편과 결혼한 것을 탄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마음씀(心遣い:배려)와 생활 행위를 통해서 어떻게든 해서 남편을 신앙의 세계로 이끌까 라고 하는 대사업(大事業)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 대사업에 도전하는 것에 의해서 그 아내의 영혼(魂)은 향상되어 가는 것이다. 


神が人を造られたのは、神は争いを起こすことを欲していられるのではなくして、平和を招来せんことを望んでいられるのであるから、妻である方々よ、あなた方はどうして夫の心を平和にして上げられるのであろうか。また、信仰を持つ夫よ、あなたはどうして自分の妻の心を平和にしてやることが出来るのであろうか。それは唯々、神が定められた男女・夫婦の役割に従って行く以外にないのである。

신(神)이 사람을 만드신 것은, 신(神)은 분쟁(争い:싸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이 아니며, 평화를 초래하는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이므로, 아내인 분들이여, 여러분들은 어떻게 남편의 마음을 평화(平和)롭게 할 수 있을까?  또한, 신앙을 갖고 있는 남편이여, 당신은 어떻게 자신의 아내의 마음을 평화(平和)롭게 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오로지, 신(神)이 정하신 남녀(男女)・부부(夫婦)의 역할(役割)에 따라 갈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なぜ、女は長い髪を誇りとするのであるか

왜, 여자는 긴 머리를 자랑하는 걸까?



女は古代から長い髪の毛を持つことを誇りとしてきた。女は生まれながらにして長い髪の毛を持つものだと自然にそう思って誰も「なぜ女は男よりも長い髪の毛をし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に疑問を持たなかった。

여자는 고대부터 긴 머리카락을 갖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 왔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生まれながら:선천적으로) 긴 머리카락을 갖는 것이다 라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해서 누구나 「왜 여자는 남자보다도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걸까?」라고 하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日本では昔から「丈なす黒髪」とか「ぬば玉の黒髪」といって女は髪の毛を大事にして来た。昔の女性は、「夫に寝乱れた顔を見せてはならない」と、いつも夫より早く起きて寝乱れた髪をつくろい、ほんのりと薄化粧をして夫の起きるのを待ったものである。

일본(日本)에서는 옛부터「키만큼 긴 검은 머리카락(丈なす黒髪)」라든가「범부채 씨앗 같은 검은 머리카락(ぬば玉の黒髪)」이라고 말하며 여자는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겨 왔다.  옛날의 여성은, 「남편에게 잠자리에서 헝클어진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夫に寝乱れた顔を見せてはならない)」라고 하며, 늘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서 잠자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발그스레하게 옅은 화장을 하고 남편의 일어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終戦後、男女平等と言うようになって女はみどりの黒髪をバッサリと切ってしまった。その黒髪と共に切り捨ててはならない大事なものまで切り捨ててしまったようである。その切り捨てた物は何かとこの文の中から読み取って欲しいと思う。

종전(終戦:세계 제2차 대전) 후, 남녀 평등이라고 말하게 되어 여자는 푸른빛 머리카락(みどりの黒髪)을 싹둑 잘라 버렸다.  그 검은 머리카락과 함께 잘라서 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소중)한 것까지 잘라서 버려 버렸던 모양이다.  그 잘라서 버린 것은 무언가 하면 이 문장 속에서 내용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女が男よりも長い髪の毛を持つことについてキリストは次のように言っていられる。

여자가 남자보다도 긴 머리카락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계신다.


女が永い髪の毛を持っていることについて書かれたものは、このキリストの言葉以外には見当たらない。

여자가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쓰신 것은, 이 그리스도의 말 이외에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 



コリント前書 第十一章

고린도전서 제11장


我がキリストにならふ者なる如く、汝ら我にならふ者となれ。汝らは凡(すべ)ての事につきて我を憶え、且つ我が傳えし所をそのまま守るに因(よ)りて、我汝らを誉(ほ)む。されど我汝らが之を知らんことを願ふ。

내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처럼, 너는 나처럼 되어라,  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나를 기억하고, 한편으로 내가 전하는 바를 그대로 지키는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를 칭찬한다. 그렇지만 나는 네가 이것을 알기를 바란다. 


凡ての男の頭(かしら)はキリストなり、女の頭(かしら)は男なり、キリストの頭(かしら)は神なり。全ての男は祈りを為し、予言を為す時、頭に物を被るは其の頭を辱(はずかし)むるなり。全ての女は祈りをなし、予言を為す時、頭に物を被らぬは其の頭を辱むるなり。これ薙髪(ていはつ)と異なる事なし、女もし物を被らずば、髪をも剪(き)るべし。されど髪を剪り或いは薙(そ)ることを女の恥とせば、物を被るべし。男は神の像(かたち)、神の栄光なれば、頭に物を被るべきにあらず、されど女は男の光栄なり。男は女より出でずして、女は男より出で、男は女の為に造られずして、女は男の為に造られたればなり。この故に女は御使(みつか)い達の故によりて頭に権(けん)の徴(しるし)を戴(いただ)くべきなり。されど主に在りては、女は男に由(よ)らざるなく、男は女に由らざるなし。女の男より出でし如く、男は女によりて出づ。而(しか)して万物は皆神より出ずるなり。汝等(なんじら)自ら判断せよ。女の物を被らずして神に祈るは宜(よろ)しき事なのか。汝ら自然に知るにあらずや。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신(神)이니라. 

모든 남자는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할 때, 머리에 물건을 쓰고 하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라. 

모든 여자는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할 때, 머리에 물것을 쓰지 않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것은 삭발(薙髪:머리털을 전부 깍음)과 다를 바 없고, 여자가 만약 물건을 쓰지 않으면, 머리카락을 깎아야 한다(髪をも剪(き)るべし).  

그렇지만 머리카락을 밀거나(髪を剪り) 혹은 깎는(薙る) 것을 여자가 부끄럽게 여기면(수치스럽게 여기면), 물건을 써야 한다.  

남자는 신(神)의 형상(像(かたち)), 신(神)의 영광(榮光)이기 때문에, 머리에 물건을 써서는 안 되며, 그렇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光栄)이니라.  

남자는 여자에게서 나온 게 아니고, 여자는 남자에서 나오며,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만든게 아니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신불(神佛)의 사자들(女は御使(みつか)い達の故によりて)達))이기 때문에 머리에 권능(権(けん))의 증거(徴(しるし):증표)를 머리 위에 얹어야 한다(この故に女は御使(みつか)い達の故によりて頭に権(けん)の徴(しるし)を戴(いただ)くべきなり).   

그렇지만 주(主)(신(神))에게 있어서는, 여자는 남자로 말미암지 않을 수 없고, 남자는 여자로 말미암지 않을 수 없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온 것과 같이, 남자는 여자로 말미암아 나온다.  그래서 만물은 다 신(神)에게서 나오느니라. 너희들은 스스로 판단(判斷)하라.  여자가 그것을 쓰지 않고 신(神)에게 기도함은 적절(적당)한 것인지? 너희들은 자연히 알지 못하겠느냐?


男、もし長き髪の毛あらば恥ずべきことにして、女もし長き髪の毛あらばその光栄なるを。それ女の髪の毛は被り物として賜りたるなり。

남자가, 만약 긴 머리카락을 하고 있으면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며, 여자가 만약 긴 머리카락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영광(光榮)인 것임을.  그 여자의 머리카락은 쓰개(被り物:머리에 쓰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내려 주신 것이니라. 

3~15절



釈迦、キリストといわれる方は、神のみ心を誰よりも一番よく知って、その神の心を全人類に伝える使命を持たれた方であった。

석가(釈迦), 그리스도라고 하는 분은, 신(神)의 마음(神のみ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며, 그 신(神)의 마음을 전인류에게 전하는 사명(使命)을 가지신 분이었다. 


多くの宗教指導者達は誰々はこう言った。あの人はこう言ったといういい方をする。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아무개는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라고 하는 표현을 쓴다. 


しかし釈迦、キリストは、それが神理である。神のみ心であると神の権能を持って言われるのである。それはまごう方なき(間違えようのない・確かな)絶対の神理である。

하지만 석가(釈迦), 그리스도는, 그것이 신리(神理)이다.  신(神)의 마음(神のみ心)과 신(神)의 권능을 가지고 말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착각할게 없는(틀림없는・확실한) 절대의 신리(神理)이다.  


我がキリストとは、イエス自身の内に内在する神であり全知全能である宇宙の創造主である神である。その神の前に私が願うと同じように、私がいうことは神のみ心なのであるからあなた方はまた私に願いなさい。

내가 그리스도란, 예수 자신 속에 내재하는 신(神)이며 전지전능한 우주의 창조주인 신(神)이다.  그 신(神) 앞에 내가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는 것은 신(神)의 마음인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또한 나에게 청하십시오. 


あなた方は、私が知っていることを皆あなた方に伝えたように、そのことを守って実行してゆくならば私はあなた方を祝福する。色々と私が教えたうちで特に次のことは良く知ってもらいたい。

여러분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여러분들에게 전한 것처럼, 그 일을 지키고 실행해 가면 나는 여러분들을 축복한다.  다양하게 내가 가르친 것 중에서 특히 다음의 것을 잘 알아 주었으면 한다. 


男の頭(かしら)の上には救世主があり、女の頭の上には男がある。救世主の上には全知全能の神がある。男は神に祈る時、また予言をする時頭にかむりものを被るということは男の頭であるキリストを辱めることになるのである。だから男は、そのままの心を持ってじかにキリストに、神に祈り且つまた予言をしなければいけない。

남자의 머리((かしら:머리털)) 위에는 구세주(救世主)가 있으며, 여자의 머리 위에는 남자가 있다.  구세주 위에는 전지전능한 신(神)이다.  남자는 신(神)에게 기도할 때, 또한 예언할 때 머리에 쓰개(かむりもの)를 쓴다고 하는 것은 남자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대로 마음을 가지고 직접 그리스도에게, 신(神)에게 기도하며 한편으로는 또한 예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しかし、女は祈りをしたり予言をしたりする時に、頭にかむりものを被らないということは、キリストを汚し、神を汚すことになるのである。それは頭をつるつる坊主に剃ったことと同じことになるのであるから女はかむりものを被らなければならない。もし、かむりものを被るということが出来ないならば髪を剪(き)ってつるつる坊主にするべきである。しかし、髪の毛を剪ってつるつる坊主に男のようにすることは女として恥ずかしいことだと思うのであったならばかむりものを被りなさい。

하지만, 여자는 기도를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할 때에, 머리에 쓰개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더럽히고, 신(神)을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머리를 반들반들하게 중머리로 깎은 것과 같은 것이 되기 때문에 여자는 쓰개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쓰개를 쓴다고 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면 머리를 반들반들한 중머리(坊主)로 깎아야 한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반들반들한 스님(坊主)인 남자처럼 하는 것은 여자로서 부끄러운(창피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쓰개를 쓰십시오. 


男は神の姿に似せてつくられ、神の栄光を現わすためにつくられたのであるから頭にかむりものを被る必要はない。女は男の生命の栄光、尊厳の存在であって、男が女のために造られたことはないが、女は男のために造られたのである。

남자는 신(神)의 모습과 닮게 만들어졌고, 신(神)의 영광을 드러내기(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머리에 쓰개(かむりもの)를 쓸 필요는 없다.  여자는 남자의 생명의 영광(榮光), 존엄(尊嚴)의 존재이며,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キリストが出られたのはユダヤ教が大きな歪を持って説かれていた時代である。ユダヤ教では最初に男を造り、その男の肋骨を一本とって女をつくられたと説いていた。その為にこのような説き方をされたのである。しかしこの人間創造説は、男女の役割について説かれたものであって、男女ともに神の創造であり平等であることは直ぐ次にキリストが、男が女から生まれたということもなければ、女が男から生まれたということもない。女は男から生まれて来たのであるとこれまで永く伝えられてきたが、男もまた女からつくられたのであり、万物は皆神によってつくられたものであると言っていられることでわかる

그리스도가 나온 것은 유대교가 큰 비뚤어짐(歪:왜곡)을 가지고 설교하고 있던 시대이다.  유대교에서는 최초에 남자를 만들고, 그 남자의 늑골을 한개 취해서 여자를 만들었다고 설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런 설교방식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 창조설은, 남녀의 역할에 대해서 설교한 것이며, 남녀 다 같이 신(神)의 창조이며 평등한 것임을 곧 이어서 그리스도가, 남자가 여자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일도 없으며, 여자가 남자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일도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태어나온 것이라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전해져 왔지만, 남자도 또한 여자에게서 만들어진 것이며, 만물은 다 신(神)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キリストが出られた時代は、ユダヤ教が大きく歪められていて、キリストはそれを修正されるために出てこられたのであった。しかしやがてキリストはユダヤ教のラビの策略とローマ法王の命を奉ずる者によって磔刑になられるのである。そういう状勢の中で説かれたのであったから、なるべくユダヤ教徒達の反発を招かないように、かといって間違ったユダヤ教説に追随しないように苦心して説か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だから、「されど主にありては」と前提して説か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だからしてまた、「汝ら自ら判断せよ」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그리스도가 나온 시대는, 유대교가 크게 왜곡되어 있어서, 그리스도는 그것을 수정(修正)하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리스도는 유대교의 랍비(Rabbi)의 책략(策略)과 로마 법왕의 명(命)을 받드는 자에 의해서 책형(磔刑:기둥에 묶어 찔러 죽이는 형벌)을 당하신 것이다.  그러한 정세(状勢) 속에서 설교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되도록 유대교도들의 반발을 초래하지 않도록, 말하며 잘못된 유대교 설교에 추종(追随)하지 않도록 고심(苦心)하며 설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렇지만 주(主)에게 있어서는(されど主にありては)」이라고 전제(前提)하며 설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한,「너희들은 스스로 판단하라(汝ら自ら判断せよ)」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女の頭は男なりということは、妻という者は、神に祈る時に、自分の夫の生命を通し、夫に感謝し、夫を尊敬して祈らないと、その妻の祈りは効かれない。妻が夫を馬鹿にして夫を尻に敷いて祈ってもその祈りが効かれることは絶対にないということであり、それがウソであるかホントであるかは自分の廻りを見渡して見よ、そうすれば自然にそのことが判るであろうと言われるのである。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다 라고 하는 것은, 아내라고 하는 사람은, 신(神)에게 기도할 때에, 자신의 남편의 생명을 통하고, 남편에게 감사하고, 남편을 존경하며 기도하지 않으면, 그 아내의 기도는 효력이 없다.  아내가 남편을 바보취급하며 남편을 깔아 뭉개며(남편을 마음대로 휘두르며:馬鹿にして夫を尻に敷いて) 기도를 해도 기도가 효력이 있다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하는 것이며, 그것이 거짓인지 정말인지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라, 그렇게 하면 자연히 그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女という者は、必ず夫の生命を通して祈ら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であることの象徴として女は長い髪の毛を生まれながらにして自然に尊んで大事にすることになっているのである。だから、男が女みたいに長い髪の毛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男として恥ずべきことであるが、女が長い髪の毛を持っていることは誇りであり光栄とすべきであり、女は髪の毛を切るのを恥とするのである。

여자라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남편의 생명을 통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상징(象徴)으로서 여자는 긴 머리카락을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중히 여기며 소중히 여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처럼 긴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남자로서 부끄러운(창피한) 일이지만, 여자가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랑이며 영광(光榮)으로 알아야 하며, 여자는 머리카락을 짜르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것이다. 


女が夫を無視して何かを為したとしてもそのことの成功に反比例して、そのことの成功では償うことの出来ない不幸を背負い込んでしまっている例は私達の周りに沢山ある。

여자가 남편을 무시(無視)하며 뭔가를 이루었다(했다)고 해도 그 일의 성공에 반비례하며, 그 일의 성공으로는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불행(不幸)을 떠맡고 말았다고 하는 예는 우리들의 주변에 많다. 



子供は親の後ろ姿を見ている。父を無視して何でもやってしまう母を子供は絶対にいい母とは思わないのである。また子供が小さいうちは良いが、その子供が一人前になって来るとその子供は必ずそういう母親に反抗するようになる。

아이(子供:자식)은 부모의 뒷못습을 보고 있다.  아버지를 무시하며 무엇이건 해 버리는 어머니를 아이(子供:자식)은 절대로 좋은 엄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아이(子供:자식)이 어릴 동안은 좋지만, 그 아이(子供:자식)이 제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시작하면(一人前になって来ると:어엿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 그 자식(子供)은 틀림없이 그러한 모친(母親)에게 반항(反抗)하게 된다. 


終戦後、女が短く髪を切るようになって女らしくない女が増え、男が髪を長く伸ばすようになって男らしくない女みたいな男が増えてきた。女らしくない女は、夫や子供をダメにして自分が不幸になっているし、男らしくない女らしい男は女に甘えて女をダメにしている。自分は働かないで年上の女に働かせている女々しい男が増えて来ているがなまじっか男らしく振る舞って優しい男を食べさせている内に、子供まで出来てからその年下の優しい男に捨てられて泣いている年上の女を私は沢山知っている。

종전(終戰:세계 제2차 대전) 후, 여자가 짧게 머리를 깍게 되어 여자답지 않은 여자가 증가하고,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게 되어 남자답지 않은 여자 같은 남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자답지 않은 여자는, 남편이나 아이(子供:자식)을 망쳐놓고 자신이 불행해지고 있고, 남자답지 않은 여자다운 남자는 여자에게 기대며(甘えて:응석을 부리며) 여자를 망치고 있다.  자기는 일하지 않으며 연상의 여자에게 일을 시키고 있는 여자들 같은 남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섣불리 남자답게 행동하며 상냥한 남자(優しい男)를 먹여 살리고 있는 사이에, 자식까지 태어나고 나서 그 연하의 상냥한 남자(優しい男)에게 버림을 받고 울고 있는 연상의 여자를 나는 많이 알고 있다. 


男女平等と言う言葉に騙されて男が男らしさを、女が女らしさを捨ててしまった代償は余りにも大きかった。

남녀평등이라고 하는 말로 속여서 남자가 남자다움을, 여자가 여성스러움을 버려 버린 대상(代償:대가)은 너무나도 커졌다. 


やる気のある能力を持った男が魅力を感ずるのは女らしい優しさを持った女である。まじめな女の人はまた、男らしさのない女々しい男には魅力を感じない筈である。

할 의욕이 있는(やる気のある) 능력을 가진 남자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여성스러운 상냥함(優しさ)을 가진 여자이다.  착실한 여자(성실한 여자:まじめな女の人)는 또한, 남자다움의 없는 여자들 같은 남자에게는 매력(魅力)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夫と別れてもいいと思っている女の人はやる必要はないが、夫と共に生きたいと思っていられる女の人はキリストが教えていられるように、夫の生命を拝み、キリストの生命を拝み、そうして大宇宙大神霊たち神に祈って見られることである。その結果は必ず出て来る筈である。

남편과 헤어져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여자는 할 필요는 없지만, 남편과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여자는 그리스도가 가르치고 계시는 것처럼, 남편의 생명을 마음에서 소망하고(生命を拝み), 그렇게 해서 대우주대신령(大宇宙大神霊たち)들 신(神)에게 기도해 보시는 것이다.  그 결과는 반드시 나올 것이다. 



子供のことで悩んでいるという女の人は、その子供を妊娠した時から現在まで、夫を夫として、親を親として立てなかったことを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そのことに気づいて反省し、すべてに感謝できるようになれば治るべき病気は治るし勉強嫌いな子供は分相応に勉強もするようになるし家庭が明るくなり夫も生き甲斐を感ずるようになって来るのである。

자식(子供)의 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 여자는, 그 자식(子供)을 임신(妊娠)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남편을 남편으로서, 부모를 부모로서 세우지 않았던(立てなかった) 일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나아야 할 병(病氣)은 치료되고 공부하기 싫은 자식(子供)은 조화롭게 공부도 하게 되고 가정(家庭)이 밝아져서 남편도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어 오는 것이다.



研修会の帰りに寄ったその人にとっては、子供が四人あっても、湯沸かし器や炊飯器はなくても、夫がお客を連れて来ても、とにかく何が起ころうと、ひとつも苦にならないばかりか、むしろ一つ一つが人生勉強として楽しみなのである。

연수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식이 4명이고, 온수기나 전기밥솥은 없어도, 남편이 손님을 데려와도, 어쨓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괴롭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하나가 인생공부로서 낙(樂:즐거움)인 것이다. 


釈迦・キリストが説かれた正法は、この人生を楽しみながら生きて行く極意の教えなのである。

석가(釈迦)・그리스도가 설교하신 정법(正法)은, 이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 가는 극의(極意:비결, 비법)의 가르침인 것이다. 


「女の頭は男なり」と言われたキリストの教えが間違いである。男女同権だからそんなバカなことはないと言われる人々は、この神理が事実であるかないか実験してみられるといいと思う。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다(女の頭は男なり)」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잘못이다.  남녀 동권(男女同権:남녀의 권리가 서로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신리(神理)가 사실인지 아닌지 실험해 보신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夫をバカにし、夫の言うことを聞かず、夫を軽蔑して祈って見られるといいのである。どう結果が出て来るか。それに反して、夫に感謝し、夫の心を尊重し、夫の意見に素直になって祈った時にどういう結果が出て来るか正法は日常生活を大事にして行くのであるから事実を以て知ることである。

남편을 바보취급하고(バカにし), 남편의 말하는 것을 듣지 않고, 남편을 경멸(軽蔑)하며 기도해 보신다면 좋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것에 반해서, 남편에게 감사하고, 남편의 마음을 존중(尊重)하고, 남편의 의견에 솔직(素直)해져서 기도했을 때에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정법(正法)은 일상생활을 소중하게 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을 몸소 아는 것이다. 






 聖書と私

성경(聖書)과 나(私)


私が教会の門をくぐったのは十八歳の時であった。

제가 교회의 문을 두드린 것은 18세 때였다.


父の病気によって向学の想いは断念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鹿児島商業を卒業した仲間達はそれぞれ進学し就職して行った。病気の父を抱え、七人の弟妹たちを養ってゆかなければならない責任が小さな肩にのしかかっていた。その責任の重大さは感じていても、同級生達はそれぞれ飛び立って行ったのに、自分だけが鹿児島に残って家を継が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何か自分一人だけが取り残されたような気がして淋しかった。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향학의 꿈(向学の想い: 학문에 마음을 쏟을 꿈)은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고시마 상업 고등학교(鹿児島商業)을 졸업한 동료들은 각자 진학하고 취업해 갔다.  병이 든 아버지를 껴안고, 7명의 제매(弟妹:남동생과 여동생)들을 양육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責任)이 어린 어깨에 덮쳐 눌러 있었다.  그 책임의 무거움은 느끼고 있어도, 동급생들은 각자 떠나 날아갔는데, 나 혼자만 가고시마(鹿児島)에 남아 가업을 잇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웬지 나 혼자만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어 쓸쓸했다. 


潜在的には鹿児島商業三年の時、女をこしらえて家を出た父を旅先で発見して背負い投げで投げつけた親不孝の罪の呵責があり、思秋期ではあるし恋愛、結婚という問題も考えない訳にはゆかなかった。病気の父と七人の弟妹を抱えて私の人生には絶対に失敗は許されないのであった。もし失敗すれば私は父の病気を治してやることが出来ないのは勿論、弟妹達を一人前にしてや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ある。どうして自分だけがこんな運命に生まれついたのであろうか。運命はどうして決めらえるのであろうか。絶対に失敗しない生き方はどうすればいいのであろうか。この心の重荷を軽くする方法はないのであろうか。得意先の大人達に「人間は何のために生きるのか」を聞いてみても誰一人としてはっきり教えてくれる人はなく「まあ生まれて来たから死ぬ訳にはゆかないし、仕方なしに生きているのだ」

잠재적으로는 가고시마 상업 고등학교(鹿児島商業) 3학년 때, 여자 애인을 만들어(女をこしらえて:정부를 두어) 집을 나간 아버지를 여행지에서 발견하고 업어치기로 매어 꽂았던 불효의 죄의 가책(呵責)이 있고, 추수기에 접어들어 연애, 결혼이라고 하는 문제도 곰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이 든 아버지와 7명의 제매(弟妹:남동생과 여동생)을 안고 나의 인생에는 절대로 실패는 용서하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실패하면 아버지의 병을 고쳐드릴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제매(弟妹:남동생과 여동생)을 제몫을 할 수 있게끔 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째서 나 혼자만 이런 운명(運命)으로 태어난 것일까? 운명(運命)은 어떤 식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생활 방식(生き方)은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이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단골 거래처(得意先)의 어른들에게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건가요?」를 들어 봐도 누구 한 사람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고,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없고, 하는 수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そうした人生の悩みを求めて教会へ行ったのであった。

그러한 인생의 고민(悩み:괴로움)을 해결할 길을 찾아서 교회로 갓던 것이었다.


牧師さんは主としてマタイ伝の山上の垂訓「幸いなるかな、心の貧しき者、天国はその人のものなり、幸福なるかな、悲しむ者、その人は慰められん・・・・・・」と「天にいます我らの父よ、願わくば御名の崇められんことを・・・・・・」という主の祈りをせよと教えられ、キリスト教以外の宗教は邪教である。キリストを信じない者は永遠の地獄の火に投ぜられるのであると説かれるのであった。私は次のことに疑問を持った。「キリストだけが、人類の罪を贖うことが出来る救世主であったとしたら、神はなぜ人類がこの地上に誕生したその最初にキリストを降誕せしめなかったのであろうか。長い年月、人類が罪を犯すままに放置して置いて、なぜ今から二千年前にキリストを出して罪を救おうということをされたのであろうか。

목사님은 주로 마태복음의 산상수훈(山上の垂訓)「행복한 자는(幸いなるかな), 마음의 가난한 자(心の貧しき者)이며, 천국은 그의 것이며(天国はその人のものなり), 행복한 자는(幸福なるかな), 슬퍼하는 자이며(悲しむ者), 그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その人は慰められん)・・・・・・」라고, 「하늘에 계시는 우리들의 아버지여(天にいます我らの父よ), 원컨데 아버지의 이름을 우러러 받드는 것을(願わくば御名の崇められんことを)・・・・・・」라고 하는 주의 기도(主の祈り:주기도문)을 하라고 가르쳐 주며,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宗教)는 사교(邪教)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영원히 지옥불(地獄の火)에 던져질 것이라고 설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음의 것에 의문(疑問)을 가졌다.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가 있는 구세주(救世主)였다고 하면, 신(神)은 왜 인류가 이 지상에 탄생한 그 최초에 그리스도를 강탄(降誕:거룩한 사람이 세상에 탄생함)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오랜 세월, 인류가 죄(罪)을 범한 그대로 방치해 놓고, 왜 지금까지 2천년 전에 그리스도를 나오게 해서 죄악(罪)을 구하라(救おう)라고 하는 일을 시켰던 것일까?


キリストが誕生する以前の人類の罪はどうしたら救われるのであろうか。キリスト教が日本に入ってきてから五百年にしか過ぎない。そうすれば我々日本人の祖先の全部はみな地獄だということになる・・・・・・」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이전의 인류의 죄(罪)는 어떻게 하면 구제되는 것일까? 그리스도교가 일본에 들어온지 5백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들 일본인의 조상(祖先)의 전부는 모두 지옥(地獄)에 있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저 역시,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교회에 20년 동안 다닐 때요. ^^



「私が教会に行くことには父はご先祖様に申し訳ないと言って反対した。 するとこの父もキリストによって地獄へ堕とされるのか」「キリストを信ずる者は天国へ救うが、信じない者は永遠のゲヘナの火に投ずるという愛憎のはげしい神を自分は神とするわけに行かぬ」。

「내가 교회에 다니는 일로는 아버지는 조상님들에게 할 말이 없다(ご先祖様に申し訳ない)고 말하며 반대했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도 그리스도에 의해서 지옥(地獄)에 떨어지는 건가?」「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천국에서 구원받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게헤나(영어 Gehenna, 그리스어 γεεννα(게헨나))의 불(火)에 던진다고 하는 애증(愛憎)의 격렬한 신(神)을 나는 신(神)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キリスト教で説く神とキリストの愛が私には納得できなかった。私が求めている神はどんな人でも救う普遍的な愛の神であった。だから私は教会で説くキリスト教に疑問を持ってやめた。

그리스도교에서 설교하는 신(神)과 그리스도의 사랑(愛)이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찾고 있는 신(神)은 어떤 사람이라도 구제되는(도움을 받는 救う)보편적인 사랑의 신(愛の神)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 설교하는 그리스도교에 의문을 가지고 그만뒀다. 


それから間もなく父のすすめで軍隊に行くことになって聖書を読む機会もなくなった。再び聖書を読み始めたのは、昭和二十一年四月に戦地から復員し、廃墟となった鹿児島市の露店で大正十二年印刷の小型の聖書を買った時からであった。今も私はこの古びてすり切れた聖書を大事にしている。

그 후 곧 아버지의 권유로 군대에 가게 되어 성경(聖書)을 읽을 기회도 없어졌다.  다시 성경(聖書)을 읽기 시작한 것은, 쇼와(昭和) 21년(1943년) 4월에 전쟁터에서 복원(復員:전시 체제에서 평상 체제로 돌려져 복무가 해제됨)되어, 폐혀가 된 가고시마 시(鹿児島市)의 노점에서 다이쇼(大正) 12년(1923년)에 인쇄된 소형 성경을 샀을 때부터였다.  지금도 나는 이 낡고 닳아 해어진 성경(聖書)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復員してみたら父母も弟妹も米軍の空襲で全部死んでしまっていた。孤独のさみしさに堪え難くなると私は聖書の中から本当のキリストの愛を見出そうとひたすらに読んだ。読んで行く内に私には現在キリスト教会で説いている教えの中に大きな誤りがあるのがわかってきた。そうして牧師の人達がどんなに聖書を読んでいないかがわかってきた。日本のクリスチャンは本当はキリストの教えを知っていないといえる。

복원(復員)되어 봤더니 부모도 남동생과 여동생도 미군의 공습(空襲)으로 전부 죽어버리고 말고 있었다. 고독한 서글픔에 참기 어렵게 되자 나는 성경(聖書) 속에서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찾아내려고 한결같이 읽었다.  읽어 가는 도중에 나로서는 현재 그리스도교에서 설교하고 있는 가르침 속에 큰 잘못(誤り)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목사(牧師)인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聖書)을 읽고 있지 않은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크리스천(Christian:기독교 신자)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알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家庭生活の経験を持たないキリストが、夫婦の道をはっきりと説いていられることに驚いた。

가정 생활의 경험을 갖지 않은 그리스도가, 부부의 도리(道)를 분명하게 설교하고 계시는 것에 놀랐다.



キリストが説かれたその夫婦の道は東洋の道徳とも一致するのである。夫婦の道だけではない親子の道も一致するのである。

그리스도가 설교하신 그 부부의 도리(道)는 동양의 도덕(道德)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부부의 도리(道)뿐만이 아닌 친자(親子:부모와 자식)의 도리(道)도 일치하는 것이다. 


東洋と西洋と、悉(ことごとく)正反対の立場に立つと思われていたものが、神理の面においては一致するものであることをはっきり知ったのは二十九才の時であった。この考えが間違いなく正しいものであることをはっきりと知ることが出来たのは、昭和四十三年三月、高橋信次先生の教えを受けた時であった。

동양과 서양과, 모조리 정반대의 입장에 선다고 여기고 있던 것이, 신리(神理)의 면에 있어서는 일치(一致)하는 것인 바를 확실히 안 것은 29세 때였다.  이 판단(考え)이 틀림없이 올바른 것인 바를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쇼와(昭和) 43년(1968년) 3월,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을 때였다. 


神道と仏教とキリスト教が同じ神理を説いているのである。

신도(神道)와 불교(佛敎)와 그리스도교(教)가 똑같은 신리(神理)를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나 유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순수한 神道, 즉 古神道 : 일본



男と女の役割」の中で私はそのことをお知らせしようと思うのである。

「남자와 여자의 역할(男と女の役割)」중에서 나는 그 일을 알려주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はっきりいえることは現在キリスト教会で説いているものは真のキリスト教ではな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그리스도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교(敎)가 아니다. 


仏教とキリスト教が一致していることについて、ある有名な仏教学者が書いていられるものがあるが、これはパウロと親鸞聖人の言行が一致点が多いことを書いたもので真の意味において仏教とキリスト教の一致を説いたものとはいい難い。

불교(佛敎)와 그리스도교(Christianity)가 일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느 유명한 불교학자가 저술하고 있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바울(영어 Paul,그리스어 Paulos·라틴어 Paulus·포르투갈어 Paulo)과 신란 성인(親鸞聖人:가마쿠라[鎌倉]시대 초기의 승려, 정토진종[浄土真宗]의 개조)의 언행이 일치점이 많은 것을 쓴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는 불교(佛敎)와 그리스도교(Christianity)의 일치를 설교한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高橋信次先生が、説かれた転生輪廻の話しを聞かれた方には、キリストの弟子であったパウロが後に日本に親鸞聖人として生まれられたの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られるであろう。パウロと親鸞聖人といってもそれは同一人物であったのであるから、説いたことが同一であるのは当然のことである。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이, 설교하신 전생윤회(轉生輪廻)의 이야기를 들으신 분에게는,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바울(Paul)이 후에 일본에 신란 성인(親鸞聖人, 1173년-1263년)으로 태어난 것임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바울(Paul)과 신란 성인(親鸞聖人)이라고 말해도 그것은 동일 인물이었던 것이기 때문에, 설교한 것이 동일(同一)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キリストは「天にいます我らの父よ」と、じかに神に祈ることを教えられたが、パウロは、イエス・キリストという個人のみ名を通さなければ救われないと説いた。これは親鸞聖人が、念仏を唱えるという手段を通して阿弥陀如来に頼まないと救われないといわれたことと同じである。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는 우리들의 아버지여(天にいます我らの父よ)」라고, 직접 신(神)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쳤지만, 바울(Paul)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개인의 이름(個人のみ名)을 통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라고 설교했다.  이것은 신란 성인(親鸞聖人)이, 염불을 외운다(念佛を唱える)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의지하지 않으면(頼まない: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똑같다.


お釈迦さまは夫婦の道をどのように説かれたかはキリストが説かれた夫婦の道が終わってから書くことにする。この文を読んで行かれるうちに仏教とキリスト教は違うということで閉ざされていたあなた方の心は大きく開かれていくであろう。

부처님(お釋迦さま)은 부부의 도리(夫婦の道)를 어떻게 설법하신 것인지는 그리스도가 설교하신 부부의 도리(夫婦の道)이 끝난 후에 쓸 예정이다.  이 문장을 읽어 가는 동안에 불교(佛敎)와 그리스도교(Christianity)는 다르다(틀리다)고 하는 것으로 닫아버리고 있던 여러분들의 마음은 크게 열리어 갈 것입니다. 







 男女は平等ではない

 남녀는 평등하지 않다


女は、夫の生命を拝んで神に祈らないと女の祈りは効かれないのである」と前に書いたことに対して、 男女平等が正しいと主張する人達は正法は男女を差別すると思われたかもしれない。

「여자는, 남편의 생명을 마음에서 소망하고(生命を拝んで) 신(神)에게 기도하지 않으면 여자의 기도는 효력이 없는 것이다」라고 앞에 쓴 것에 대해서, 남녀평등이 올바르다고 주장(主張)하는 사람들은 남녀를 차별(差別)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キリストはどのように教えていられるのかを見てみよう。

그리스도는 어떻게 가르치고 계신지를 봐 봅시다. 


エペソ書 第五章

에베소서 제5장


「詩と賛美と霊の歌とをもって語り合い、また主に向かいて心より且(かつ)うたひ、かつ賛美せよ、

凡(すべ)ての事に就きて常に我ら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りて父なる神に感謝し、キリストを

畏(かしこ)みて互いに服(したが)へ。 妻たる者よ、主に服ふごとく己の夫に服へ。教会のキリストに服ふがごとく、妻も凡てのこと夫に服へ。夫たる者よ、キリストの教会を愛し、之(これ)がために己を捨て給いしごとく、汝らも妻を愛せよ。夫はその妻を己の體(からだ)のごとく愛すべし。妻を愛するは己を愛するなり」

「시(詩)와 찬미(賛美)와 영혼(霊)의 노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또한 주(主)을 향하여 마음으로 또한 노래하고, 또한 찬미(賛美)하라, 모든 일에 임해서 늘 우리들의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인 신(神)에게 감사하고,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며((畏みて:경외(敬畏)하며)) 서로 순종하라(服(したが)へ.서로 순순히 따르라).  아내인 자여, 주(主)를  복종(순종)하듯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妻たる者よ、主に服ふごとく己の夫に服へ).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하라.  남편인 자여,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이것을 위해서 자기를 버리시듯이, 너희들도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은 그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

19~22,24,25, 28절



コロサイ書 第三章

골로새서 제3장


「妻たる者よ、その夫に服へ、これ主にある者のなすべき事なり。

夫たる者よ、その妻を愛せよ、苦(にが)きをもて之をあしらふな」

「아내인 자여, 그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것은 주(主) 안에 있는 사람이 행하여야 할 일이니라. 

남편인 자여, 그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의 괴로움(소태같은 고통을 겪는 것[苦き])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아내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말라 :  모질게 대하지 말라 苦(にが)きをもて之をあしらふな).」


★골로새서 제3장 19절의 번역은, 상당히 난해합니다. 그래서 깊게 파고 들어 보았습니다. 


18~19

Wives, submit yourselves unto your own husbands, as it is fit in the Lord.

<흠정역, 개역한글,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일본어 신공동역,

Husbands, love your wives, and be not bitter against them. <kjv : 킹제임스버전>

夫たちよ, 妻を 愛しなさい. つらく當たってはならない.

Husbands, love your wives and do not be harsh with them.<niv>

Husbands, love your wives and do not be embittered against them.<nsnv>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모든 한글 성경에 나와 있는 번역)


영어에 표기된, 괴롭다, 로 번역된 부분들입니다. 


※bitter[bítər]

견디기 어려운, 모진; 쓰라린, 비통한, (상대방에 대하여) 심한 적의를 가진, 가증스러운,격렬한, 통렬한; 신랄한, 쓴맛; 괴로움, 비통; 쓴 것, 뜻이 있으며.


※つらい[辛い] ① 괴롭다 ② 힘들다 ③ 고통스럽다 의 뜻이며, 

원래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혹독하고 매정한 처사에 관해 말하고, 그것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게 느끼는 뜻도 나타낸다.

※ harsh [haːrʃ]

[사람·벌 등이] 호된, 엄한, 가혹한, 모진, 사나운; [사람·말이] 무자비한, 비정한, 의 뜻이 있으며.

※embittered[imbítərd] : 적의[증오심]를 품은; 까탈스러운.


※참고로 바로 위에 ★ にがき[苦木]★가 있는데요.  

 소태나무(학명;Picrasma quassioides). 소태나뭇과의 낙엽교목. 산지에 자생. 길이 약 6m. 잎은 다수의 쌍으로 이루어진 우상복엽(羽状複葉). 여름에 잎겨드랑이에 황록색의 가는 꽃이 취산꽃차례로 핀다. 가지와 잎은 쓴맛이 나며 수액은 구충제‧건위약(健胃薬)으로 사용. 목재는 세밀하고 섬세하여 기구(器具) ‧세공품용으로 사용.


★<예문>그냥 이렇게 지내다가는 우리의 꿀 같은 행복이 끝내 소태 같은 고통으로 변할 것 같아요.




テトス書 第二章

디도스서 제2장


「若き女に夫を愛し、子を愛し、謹慎(つつしみ)と貞操(みさお)とを守り、家の務めをなし、

仁慈(なさけ)をもち、己が夫に服はんことを教えしめよ。これ神の言葉の汚されざらん為なり」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근신(謹愼)과 정조(貞操)를 지키고, 가정에서의 역할(務め)을 다하고, 인의(仁慈:어질고 의로운 도리,なさけ(인정, 동정))을 가지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라. 이것은 신(神)의 말씀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5절



コリント前書 第七章

고린도전서 제7장


「夫はその分を妻に尽くし、妻もまた夫に然(しか)すべし。妻は己が身を支配する権をもたず、

之(これ)を持つ者は夫なり。斯くの如く夫も己が身を支配する権を有(も)たず、之を有(も)つ者は妻なり」

「남편은 그 의무(본분)를 아내에게 다하고, 아내도 또한 남편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아내는 자기 몸을 지배할 권한을 갖지 못하고, 그 권리를 갖는 자는 남편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도 자기 몸을 지배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고, 이것을 가지는 자는 아내이니라」

 3~4절



神理を求めるお互いの間で話し合われ、語り合われるものは、自然の美と真実とが言葉となって迸(ほとばし)り出た詩と、その自然の神秘さを讃える言葉と、天上界より発する霊の啓示の歌とでなければならない。

신리(神理)를 찾는 것에 서로 간에 상의하고, 의논할 수 있는(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진실이 말이 되어 감격하여 나온 시(詩)와, 그 자연의 신비(神秘)를 찬송하는 말과, 천상계(天上界)에서 발하는 영혼(霊)의 계시(啓示:깨우쳐 보여줌)의 노래가 아니면 안 된다. 


イエス・キリストが説かれたものは父なる神、宇宙の大神のみ心なのであるから、キリストの言葉に服従して実行しなさい。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하신 것은 아버지인 신(父なる神), 우주의 대신(大神)의 마음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에 복종(服從)하고 실행하십시오. 


妻たる者は、人々が主なる神のみ心に素直に従うと同じように自分の夫に素直に従いなさい。

아내인 자는, 사람들이 주(主)인 신(神)의 마음에 솔직하게 따르는(従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남편에게 솔직하게 따르십시오. 


夫たる者は、キリストが多くの人々のために自分を捧げられたと同じようにあなた方も自分の妻を愛しなさい。夫が妻を愛するのは、夫が自分の身体を大事にいたわると同じように妻を愛しなさい。妻を愛するということは実際は夫が自分を愛し大事にすると同様であって同じことなのである。

남편인 자는,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남편의 자신의 신체를 소중히 여기듯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실제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김과 마찬가지며 똑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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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といえども精神異常者でない限り、自分で自分の身体を傷つける者はいない。みな自分の身体を大事にする。妻を愛するということは自分で自分の身体を大事にするのと同じであるということはもっとはっきり言えば、妻を愛するということは自分を愛することであり、夫が自分を愛するというその愛の心と、妻を愛するという心に距(へだた)りがあってはならない。妻もまた自分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남자라고 할지라도 정신이상자(精神異常者)가 아닌 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다치게 하는 사람은 있지 않다.  모두 자기 몸(身體)을 소중히 여긴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자기의 신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좀 더 분명히 말하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사랑의 마음과,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 마음에 거리(距り)가 있어서는 안 된다. 


だからしてコロサイ者の中では、夫たる者は、妻の心を悲しませたり、怒らせたり、不安にしたり、ともかく妻が苦い思いをするようなことは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のである。

그래서 골로새(Colossian) 사람 중에서는, 남편인 자는, 아내의 마음을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어쨌든 아내가 언짢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多くの夫婦の不調和というものが従来は夫が妻を苦しめるというものが多かった。男子中心の武家政治の社会体制は、女に忍従を強いることが多かった。女は男の横暴に堪えることが女の徳とされた。このようなあり方は夫が我が身の如く妻を愛するということにならない。終戦時の民主主義、男女平等が確かに女性の心を開放させたという事実は否定できない。女性の心、立場を無視した男性の横暴は批判されても仕方のないものがあった。「二号、三号持つのは男の甲斐性だ」ということによってどれだけ妻が悲しい思いをさせられてきたか。終戦前は夫が二号を連れて来ても本妻はニコニコして出迎えるのがいい妻だといわれていたが、顔で笑って心で泣いてということも辛かったことであろう。

대부분의 부부의 부조화(夫婦の不調和)라고 하는 것이 종래는 남편이 아내를 괴롭힌다고 하는 것이 많았다.  남자 중심의 무가정치(武家政治)의 사회체제는, 여자에게 인종(忍從:묵묵히 참고 따름)을 강요하는 일이 많았다.  여자는 남자의 횡포(橫暴)를 참는 것이 여자의 미덕으로 여겼다.  이러한 현실(あり方)은 남편이 내 몸처럼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종전(終戰:세계 제2차 대전에서의 일본의 패전) 후의 사회 당시의 민주주의, 남녀평등이 확실히 여성의 마음을 개방시켰다고 하는 사실은 부정(否定)할 수 없다.  여성의 마음, 입장을 무시(無視)한 남성의 횡포(横暴)는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첩(二号)、두번 째 첩(三号)을 가지는 것은 사나이의 패기(男の甲斐性)다」라고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아내가 슬픈 생각을 해 왔는가?  세계 2차 대전 전의 사회(終戰前)는, 남편이 첩(二号)을 데리고 와도 본처(本妻)는 생글생글 웃으며 마중 나가는 것이 좋은 아내(いい妻)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얼굴로는 웃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다고 하는 일도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しかし終戦後の女性解放が行き過ぎて、現在は女が強くなって男が弱くなり、子供まで巻き添えにして大きな社会問題となって来た。右に大きく振れていた振り子が反動的に大きく左へ振れたままであっては中道ではない。現在の男女夫婦のあり方が行き過ぎだからといって戦前の状態に戻していいとは誰も考える人はあるまい。

하지만 세계 2차 대전 후의 여성 해방이 지나가서, 현재는 여자가 강해지고 남자가 약해져서, 자식(子供)까지 말려들게 되어 큰 사회 문제가 되어 왔다.  오른쪽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던 진자(振り子:흔들이)가 반동적으로 크게 왼쪽으로 흔들린 채로 있어서는 중도(中道)가 아니다.  현재의 남녀 부부의 현실(あり方:본연의 모습)이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해도 전전(前戰:세계 2차 대전 전)의 상태로 되돌려서 좋다고는 아무도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ではどうすればいいのか。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それにはコリント前書の言葉を味わうべきである。

이것에는 고린도전서의 말을 음미해야 한다. 


「夫はその分を妻に尽くし、妻もまた夫に然かすべし」

「남편은 그 의무(본분)를 아내에게 다하고, 아내도 또한 남편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戦前は、夫がたとえどんな無理難題を言おうと、妻はただ黙って一切逆らわずにハイハイと素直に従うことが女の美徳とされた。こうした戦前型の女の美徳が正しいものであると説いているある教団では「夫が泥棒するといったら妻も一緒に泥棒すればよい」と教えていた。

세계 2차 대전 전에는, 남편이 설령 어떤 생트집을 잡아도, 아내는 그저 묵묵히 일절 거역(반항)하지 않고 예예, 알았어요(ハイハイ)라고 솔직하게 따르는 것이 여자의 미덕(美德)이라고 여겼다.  그러한 세계 2차 대전 전의 유형의 여자의 미덕이 올바른 것이라고 설교하고 있는 교단에서는 「남편이 도둑질하겠다고 하면 아내도 같이 도둑질을 하면 좋다(夫が泥棒するといったら妻も一緒に泥棒すればよい)」고 가르치고 있었다.


「夫はその分を・・・」と書いてあるがその分をということはどんなことであろうか。

「남편은 그 본분(의무)를・・・」라고 쓰여 있지만 그 본분(分:의무)를 다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夫婦の縁は天上界からこの地上界に生まれて来る時の待機所で結ばれる。夫の魂は今度は地上に出て行ってどういう勉強をしなければならぬかをよく知っている。その魂の勉強をするのに一番ふさわしい人を自分の妻として選ぶのである。夫にとっては、妻のいい所、悪い所の全てが夫の魂を磨く勉強の資料なのである。いい所は愛するが、悪い所は愛さないというのであってはいけないのである。いい所も悪い所も全て含めてそのまま愛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その分をとは、是非善悪、愛憎も全て超えた所の愛を以ってということであり、妻もまた夫をそう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である。

부부의 인연(夫婦の縁)은 천상계(天上界)에서 이 지상계(地上界)에 태어나올 때의 대기소(待機所)에서 인연이 맺어진다.  남편의 영혼(魂)은 이번에는 지상으로 나와서 어떠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 영혼(魂)의 공부를 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사람를 자신의 아내로 선택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있어서는, 아내의 좋은 점(いい所), 나쁜 점(悪い所)의 전부가 남편의 영혼(魂)을 닦는 공부의 재료(資料)인 것이다.  좋은 점은 사랑하지만, 나쁜 점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전부 포함해서 있는 그대로 사랑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본분(分:의무)이란, 시비선악(是非善惡), 애증(愛憎)도 전부 초월한 사랑으로 라고 하는 것이며, 아내도 역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私が不調和であった時、妻のいい所はいいとしても、妻の欠点が鼻持ちならないほど嫌であった。だから、その悪い所を指摘してそこを良くさせようとしていた。そういう気持ちでいる間は上手く行かなかった。

제가 부조화했을 때, 아내의 좋은 점은 좋다고 해도, 아내의 결점이 아니꼽고 빕살맞을 정도로 싫었다.  그래서, 그 나쁜 점을 지적해서 그것을 잘 고치라고 했다.  그러한 기분으로 있는 동안은 잘 되지 않았다. 


所がある時、妻が悪いと言っているのは実は私自身の心の中に妻を裏切っている心があることの、反省であるということに気がついたのであった。

집(所)에 있을 때, 아내가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실은 제 자신의 마음속으로 아내를 배반(배신)하고 있는 마음이 있는 것이며, 반성(反省)하라고 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었다. 


私には妻と結婚する前に初恋の人があった。婚約までしていたのであったが、私はその人を忘れることが出来ないでいた。事毎にその人と妻とを比較していた。

저로서는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첫사랑(初戀)의 사람이 있었다.  약혼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전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사 건건 그 사람(첫사랑의 여자)과 아내를 비교하고 있었다. 


妻を愛せないという原因は実は自分自身の心の中にあることに気づいたあのであった。

아내를 사랑할 수 없다고 하는 원인은 실은 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임을 깨닫고 있던 것이었다.


だから相手を愛せないという人は、その原因は自分自身の心の中にもあるのであることを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그래서 상대를 사랑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그 원인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도 있는 것인 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私が沢山の人をこれまで個人指導した体験では、夫婦の不調和の原因の80%は結婚前に好きな人があってその人のことを忘れられないということにあった。後の20%は、嫁と姑との関係で夫に不信感を持っているとか、金の問題、子供の問題等であった。しかしそれらの問題も夫婦がしっかり愛し合っていさえすれば解決できる問題である。

제가 많은 사람을 지금까지 개인 지도를 했던 경험으로는, 부부의 부조화의 원인의 80%는 결혼 전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과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20%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에서 남편에게 불신감(不信感)을 갖고 있다든가, 돈 문제, 자식 문제 등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도 부부(夫婦)가 상당히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初恋の人の写真やラブレターを、夫に隠してこっそり持っているという人もあった。

첫사랑의 사람의 사진이나 러브 레터(love letter:연애 편지)를, 남편에게 숨기고 몰래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私自身の体験と、私が指導した体験から知ったことは愛情は純粋でなっ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あった。純粋に愛し切った時、人間はその人の為には命を捧げても悔いはないと思うものであるし、純粋に愛する男性は、愛する女に自分の子供を産ませたいと思うし、純粋に愛する女性は、愛する人の子供を生みたいと思うものである。

저 자신의 체험과, 제가 지도했던 체험에서 안 것은 애정(愛情)은 순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다 사랑했을 때, 인간은 그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도 후회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남성은,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자신의 자식(子供)을 낳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子供:자식)을 낳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その分を尽くし・・・とは、全身全霊を持って純粋にということである。

그 본분(分:의무)를 다하고・・・란, 전신 전령(全身全靈:전심 전력)을 품고 순수하게 라고 하는 것이다.


しかし最近はこうした愛の自覚なしに性の享楽遊戯が行われている。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사랑을 자각하지 않고 성(性)의 향락 유희가 이루어지고 있다.


「妻は己が身を支配する権を持たず これを持つものは夫なり」とあるが、妻は自分の身体は自分のものだと思って、夫の心を無視して自分の好き放題に勝手に自分の身体を使ってはならない。妻は自分自身の身体を動かす時、その行為は夫の心に叶うものであるかを考え、夫の心に添う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何かをしようとするときは常に、夫に聞いて夫の心に添う形で行為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である。

「아내는 자기 몸을 지배할 권리를 갖지 못하고 이것을 갖는 사람은 남편이니라」라고 하지만, 아내는 자기의 몸(身體)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마음을 무시(無視)하고 자기 멋대로 제멋대로 자기 몸(身體)을 써서는 안 된다.  아내는 자기 자신의 몸(身體)을 움직일 때, 그 행위(行爲)는 남편의 마음에 맞는(들어맞는)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하고, 남편의 마음에 들도록(心に添う)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하려고 할 때는 항상, 남편에게 들어보고 남편의 마음에 드든(따르는心に添う) 상태로 행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妻が夫の心を無視して働きに出たために、家族が滅茶苦茶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例は沢山ある。夫だけではない、少しばかりの金を欲したばかりに子供をダメにしてしまったという例も多い。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무시(無視)하고 일하려 나갔기 때문에, 가족이 엉망진창(滅茶苦茶)이 되어 버렸다고 하는 예는 많이 있다.  남편뿐만 아니라, 약간의 돈을 탐냈기 때문에 자식(子供)을 망쳐놓아 버리고 말았다고 하는 예도 많다. 



これだけだとキリストの教えは戦前の封建的な婦徳(ふとく・女子の守るべき道徳)と同じだということになる。

이것뿐이라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세계 2차 대전 전의 봉건적인 부덕(婦德・여자가 지켜야 할 도덕[덕성])과 같게 된다. 


しかしキリストはまた次のように言っておられるのである。

하지만 그리스도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계신다. 


「斯くの如く、夫も己が身を支配する権を持たず、之を有(も)つものは妻なり」と、だから夫は何かをしようとする時は、そのことが妻の心に叶うものであるかどうかを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自分がしたいからといって妻の考えを無視し、妻が喜ばないことを夫は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이와 같이, 남편도 자기 몸을 지배할 권리를 갖지 못하고, 이것을 갖는 사람은 아내니라」라고, 그래서 남편은 뭔가를 하려고 할 때는, 그 일을 아내의 마음에 맞는 것인지 어떤지를 곰곰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해서 아내의 의사(考え:생각, 뜻)을 무시(無視)하고, 아내가 기뻐하지 않는(달가워하지 않는喜ばない)  것을 남편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鹿児島は封建制の極端に強い所であったし、私自身軍隊生活が長いこともあって、今まで書いたような聖書の言葉はよく知っていても、実際生活となると妻の心を無視した横暴なことが多かった。そんなことは失敗するといえばなお反動的に意地を張って、今にもの見せてやると強行した。妻が言う通り失敗すそれだけではいけないのである目が覚めたのであった。

가고시마(鹿児島)는 봉건제가 극단적으로 강한 곳이었고, 제 자신이 군대 생활을 오래 한 것도 있고, 지금까지 쓴 것 처럼 성경(聖書)의 말씀은 잘 알고 있어도, 실제 생활이 되자 아내의 마음을 무시(無視)한 횡포(横暴)한 짓을 한 일이 많았다.  그런 것은 실패한다고 하면 여전히 반동적으로 오기(意地;고집)을 부리며, 지금에라도 보여주고 말겠다며 강행했다.  아내가 말한대로 실패하자 「당신이 실패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실패한 거야」라고 여전히 고집(意地:오기)를 부렸다.  결과는 아내가 말하는 대로 전부 실패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적수 공권(裸一貫:맨손)이 되고서 겨우 정신을 차렸던 것이었다. 


妻の心を無視してやることで成功することは一つもない。一時成功するかのように見えたとしても、それは尚一掃手痛い打撃を受けて大きく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いためのものでしかなかった。こうした失敗の反省から夫というものは妻の心を無視し、妻の心を苦しめては何事も成功しないとキリストが言われた神理の正しさを知らされたのであった。嘘だと思う人は妻の反対を押し切ってやってみられるといい。どういう結果が出るか。

아내의 마음을 무시(無視)해서 행한 것으로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  잠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도, 그것은 역시 혹심한 타격을 받고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실패의 반성에서 남편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내의 아내의 마음을 무시(無視)하고, 아내의 마음을 괴롭혀서는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그리스도가 말씀한 신리(神理)의 올바름을 알게 된 것이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かくして夫と妻とは平等にお互いに愛し合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が、妻の役割については、女というものは夫を愛し、子供を愛し、貞操を守り、慎み深く、慈しみをもって家事万端を整え、夫をして家のことは心配させ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ぬ。それが神が定め給うた他女の道だというのである

이리하여 남편과 아내는 평등하게 서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아내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자라고 하는 사람은 남편을 사랑하고, 자식(子供)을 사랑하고, 정조(貞操)를 지키고, 고분고분하고(공손하고 부드럽고, 愼み深く= 공순(恭順)),  사랑(자애:慈しみをもって)으로 가사(家事) 모두를 정돈하고, 남편으로 하여금 집안 일로 걱정을 시키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신(神)이 정해주신 다른 여자의 길(他女の道)이라고 하는 것이다.  



愼み深く= 공순(恭順) <중국어사전>

고분고분하다, 공손하고 온순하다, 공손하다

謙(へ)り(いやま)ひ慈(うつくし)びふ <顕宗紀> 

자신을 낮추어 공경하며 사랑하여 따르다




昔から妻が夫に従うのは女の道として当然だという考え方があった。キリストはそれだけではいけないのである。夫もまた妻の心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教えていられるのである。]

옛부터 아내가 남편을 따르는 것은 여자의 길(道:도리)로서 당연하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었다.  그리스도는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또한 남편도 역시 아내의 마음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不信者なる夫は妻によりて潔くなり、不信者なる妻は夫によりて潔くなりたればなり、然なくば汝らの子供は潔からず」とあるように、お互いが共に向上することをせず争ってばかりいたならば「汝らの子供は潔からず」とあるように、子供が病気をするか死ぬか、また子供が健康で元気であれば非行暴力というようなことで子供のことで苦労することになるというのである。

믿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남편은 아내로 인해 깨끗해지고(떳떳해지고:潔くなり), 믿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아내는 남편으로 인해 깨끗(떳떳)해지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으면 너희 자식(子供) 또한 떳떳(깨끗)해지지 않는다」라고 있듯이, 서로가 함께 향상하는 일을 하지 않고 다투기만(싸움만) 한다면「너희 자식(子供)은 깨끗(떳떳)해지 않는다」라고 있듯이, 자식(子供)이 병이 들든가 죽든가, 또한 자식(子供)이 건강(健康)하고 활력이 넘치면 비행 폭력(非行暴力)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로 자식(子供)의 일로 애을 먹게(고생을 하다:苦労する)게 되는 것이다. 


子供が大きな病気をした時、子供が思いがけず死んだりケガをしたりした時、夫婦が調和していたかどうかを考えて見られるといい。キリストの言葉がまさしく真実であることを知られるであろう。

아이(子供;자식)가 큰 병이 들었을 때, 아이(子供:자식)가 뜻밖에 죽거나 부상을(상처를) 입거나 했을 때, 부부(夫婦)가 조화(調和)하고 있었는지 어떤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신다면 좋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틀림없이 진실한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この世の中に偶然ということは絶対にないのである。そのことが起こる為には必ずそのことの原因があるのである。ただ原因と結果との関係を知らないために偶然といっているだけのことである。

이 세상에 우연(偶然)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絶代)로 없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일의 원인(原因)이 있는 것이다.  그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연(偶然)이라고 말할 뿐인 것이다. 



テモテ前書 第二章

디모데전서 제2장


「神は凡ての人の救われて、真理を悟るに至らんことを欲し給ふ。この故にわれ望む、男は怒(いか)らず争わず、何れの処にても潔き手をあげて祈らんことを。また女は恥を知り、慎みて宜(よろ)しきに合(かな)う衣にて己を飾り、編みたる頭髪(かみのけ)に金と真珠と値貴き衣とを飾とせず、善き業をもて飾りとせんことを。これ神を敬はんと公言する女に適える事なり。女は凡てのこと従順にして静かに道を学ぶべし。われ女の教ふることと男の上に権を執ることを許さず、ただ静かに為すべし。それアダムは前に造られ、エバは後に造られたり。アダムは惑わされず、女は惑わされて罪に陥りたるなり。然れど女もし慎みて信仰と愛と潔とに居らば、子を生むことによりて救はるべし」

「신(神)은 모든 사람의 구제되며, 진리(真理)를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신다.  이러므로 나는 바란다, 남자는 화내지 않고 다투지(싸우지) 않고, 어디에 있든지 깨끗한(떳떳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또한 여자는 부끄러움을 알고(깨닫고:恥を知り),  삼가하고 호감이 가는 맞는 옷으로 자신을 꾸미고, 땋은 머리카락(頭髮)에 금(金)과 진주(眞珠)와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선행(善き業)으로 단장하기를.  이는 신(神)을 공경한다고 공언(公言:professing)하는 여자에게 적합한 일이니라.  여자는 모든 것에 순종(從順:고분고분함, 잘 따름)하면서 조용하게 도리(道)를 배워야 한다.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 위에 권력(權)을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오직 조용히 해야 한다.  이는 아담(アダム:Adam)은 먼저 만들어지고, 에바(エバ:Eva[라틴어]:이브)는 그 후에 만든 것이니라.  아담은 현혹되지 않고, 여자는 현혹되어 죄(罪)에 빠진 것이니라.  그렇지만 여자가 만약 삼가하고 신앙과 사랑과 정결(潔)하게 있으면, 아이를 낳는 것에 의해서 구제(구원받게)되느니라. 」

4,8~15절


「神は凡ての人の救われて、真理を悟るに至らんことを欲し給ふ」とあるようにキリストを信ずる人だけを救えばいいとはいっていられないのであるが、しかしそれには真理を正しく知ら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間違ったことを信じていたのでは救われないのである。

「신(神)은 모든 사람의 구제되고(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신다」라고 있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을 구제하면 좋다고는 말하고 계시지 않는 것이지만, 하지만 그것에는 진리를 올바르게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믿고 있어서는 구제될(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キリストの弟子達がキリストを信ぜよといったのは、当時においてはキリストのみが正しい真理を説いていたからであるが、我々が救われるのは、キリストという人を通して救われるのではなくて、キリストが説かれた神理を信じ実践した時に救われるというのである。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한 것은, 당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만의 올바른 진리를 설교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우리들의 구제될(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구제(구원을 받는)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설교하신 신리(神理)를 믿고 실천했을 때에 구제(구원을 받는다)된다고 하는 것이다. 


それ故に、男は怒ってはならず、争ってもいけない。どこにいようが潔らかな心で神に祈りなさい。

그러므로, 남자는 화를 내서는 안되고, 싸워서도 안 된다.  어디에 있든지 깨끗(떳떳)한 마음으로 신(神)에게 기도하십시오.


しかし、女は女としての分を知ってそれを逸脱せず、慎ましやかな自分に相応(ふさわ)しい衣服を身に着けて、髪の毛を編んで、その髪に金や真珠の高価な飾りをつけたり、またきらびやかな高価な衣服を着て派手に振舞ったりせず、善い行いをすることによってそれを自分の飾りとすればよいのである。

하지만, 여자는 여자로서의 본분(分:의무)를 알고 그것을 일탈하지 않고, 음전한(조신한: 愼ましやかな) 자신에게 어울리는 의복을 몸에 걸치고, 머리카락을 땋고, 그 머리에 금이나 진주의 고가인 장식을 붙이거나, 또한 화려한 고가인 의복을 입고 야단스럽게 행동하거나 하지 않고, 선행을 하는 것으로 그것을 자신의 꾸미면 좋은 것이다.  


それが神を正しく信ずる女のあり方である、というのである。女というものはいつも慎ましやかに従順で、立居振舞も静かにして神理を学ぶべきである。

그것이 신(神)을 올바르게 믿는 여자의 본연의 모습(あり方)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여자라고 하는 사람은 늘 음전(얌전하고 점잖음)하며 순종(順從)하고, 행동거지도 조용하게 하며 신리(神理)를 배워야 한다. 


ここでキリストがまたはっきり言っていられることがある。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또한 확실하게 말하고 계시는 것이 있다.


それは、女が男の上に立って権力を握って男を自分の思うままに支配しようとしたり、また、男の上に立って女が神理を説くというようなことは絶対に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のである。この二つのことを犯すことは「われ、これを許さず」という当非常に強い言葉を以って言っていられることに注目すべきである。

그것은, 여자가 남자의 위에 서서 권력(權力)을 잡고 남자를 자기 생각대로 지배(支配)하려고 하거나, 또한, 남자 위에 서서 여자가 신리(神理)를 설교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절대(絶代)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것을 범하는 것은 「내가, 이것을 허락하지 않는다(われ、これを許さず)」라고 마땅히 대단히 강한 말로 말하고 계시는 것에 주목(注目)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제2장 12절 <영어사전 및 KJV>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일반 성경상의 번역)

But I suffer not a woman to teach, nor to usurp authority over the man, but to be in silence.

하지만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 위에 서서 권한을 침해하는 것을 참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있어야 한다. (나의 번역) 

われ女の教ふることと男の上に権を執ることを許さず、ただ静かに為すべし。<본문의 디모데전서>

내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 위에 권력을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느니, 오로지 조용히 해야 한다. 




キリストのこの言葉に照らして見る時に、女が教祖になっていたり、女が実権を握っている宗教団体は、神の意志に叛いているの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ましてその女達が、きらびやかな服装をして信者の前に表れることなどは全く神を無視した行為であるというのである。

그리스도의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여자가 교조(敎祖)가 되어 있거나, 여자가 실권(實權)을 쥐고 있는 종교 단체는, 신(神)의 의지(意志)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더구나 그 여자들이, 현란한 복장(きらびやかな服裝)을 하고 신자(信者) 앞에 나타나는 것 등은 완전히 신(神)을 무시(無視)한 행위(行爲)라고 하는 것이다. 


日本の宗教界の現状を見る時に、女が実権を握っている教団がいくつかある。男の教祖が亡くなって、その未亡人が、または娘が跡を継いでいる教団もある。そういう所は必ず混乱分裂が起こっている。

일본의 종교계의 현상을 볼 때에, 여자가 실권을 쥐고 있는 교단이 몇 개인가 있다.  남자 교조(敎祖)가 죽고, 그 미망인이, 또는 딸(娘)이 뒤를 잇고 있는 교단도 있다.  그러한 곳은 반드시 혼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女が教祖になって男が組織指導の責任者を持っている教団もあるがその教団も分裂している。こうした実情を見る時に、キリストが説かれたことは真実であると信じない訳にゆかないのである。

여자가 교조(教祖)가 되고 남자가 조직 지도의 책임자를 가지고 있는 교단도 있지만 그 교단도 분열(分裂)하고 있다.  그러한 실정을 볼 때에, 그리스도가 설교하신 것은 진실(眞實)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どうして女が男の上に立って権力を握るということはいけないのであるか。

어째서 여자가 남자 위에 서서 권력을 잡는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인가?


それは、神が人をつくられる時に、神はまずアダム(男)を先につくられ、そののちにエバ(女)をつくられたからであり、アダムは蛇の誘惑に惑わされなかったが、エバは惑わされて罪に陥(お)ちたからであると。

그것은, 신(神)이 사람을 만드실 때에, 신(神)은 먼저 아담(Adam)(남자:男))를 먼저 만드시고, 그 후에 에바(Eva)(여자:女))를 만드셨기 때문이며, 아담(Adam)은 현혹되지 않았지만, 에바(Eva[라틴어], Eve[영어])는 현혹되어 죄(罪)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蛇は地を這うもの、地に密着して生きるものである。だから蛇とは、物質に対する欲望、執着を意味するのである。物質的な欲望や執着を持った女が上に立つと、その欲望執着があるために正しい判断ができず、まして神理を説くというようなことは絶対に出来ないのであるという事である。

뱀(蛇)은 땅을 기는 것, 땅에 밀착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뱀(蛇)이란, 물질(物質)에 대한 욕망(欲望), 집착(執着)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욕망(欲望)이나 집착을 가진 여자가 위에 서면, 그 욕망 집착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判斷)을 할 수 없고, 더구나 신리(神理)를 설교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절대(絶對)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そうして最後にキリストは、女はどうあるべきかを説いていられる。

그리하여 최후에 그리스도는, 여자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를 설교하고 계신다.


女は慎み深くして、心を潔くし、愛深くあり、そうして正しい信仰をして、そうした心で、子供を生み育ててゆくならば女は救われるのであると。即ち女の役割は、家を守り立派な子供を育てることにあるというのである。

여자는 고분고분하고(공손하고 부드럽고, 愼み深く= 공순(恭順))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사랑을 깊이 하고, 그렇게 해서 올바른 신앙(信仰)을 하고, 그러한 마음으로, 자식(子供:아이)을 낳고 길러 가게 되면 여자는 구제되는(구원을 받을 수 있다) 것이다 라고.  즉 여자의 역할(役割)은, 가정을 지키고 훌륭한 자식(子供)을 키우는 것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女が子供を育てることはいらない、女も男と同様に社会の第一線立って活動すべきであるという女があるが、特別の使命と才能を持った女が男に伍(くみ)して活動することはいいが、だからといって世界中の女がみな子供を産むことを放棄して男と同様に働くということになったら、子供は一人も生まれないから世界は破滅することになる。

여자가 자식(子供:아이)를 키우는 것은 필요 없으며, 여자도 남자처럼 사회의 제1선에 서서 활동해야 한다고 하는 여자가 있지만, 특별한 사명(使命)과 재능(才能)을 가진 여자가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활동(活動)하는 일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속의 여자가 다 자식(子供:아이)를 낳는 것을 방기(放棄)하고 남자처럼 일한다고 하게 되면, 아이(子供:자식)은 한 명도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세계(世界)는 파멸(破滅)하게 된다. 


방기[放棄] 어떤 책임과 의무 따위를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국어 및 한자사전> ...[동의어] 포기(抛棄)



男と同様に働くという女よりも、慎ましく家庭を守り、子供を育てることに喜びを感ずる女の人の方がずっと多いのであるから、新聞や婦人雑誌などで、特殊な例外的存在である一部の婦人活動家だけのことを載せないようにすべきである。

남자처럼 일한다고 하는 여자보다도, 음전하게 가정을 지키고, 자식(子供)을 키우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여자 쪽이 훨씬 많은 것이기 때문에, 신문(新聞)이나 부인 잡지(婦人雜誌) 등에서, 특수한 예외적 존재인 일부의 부인 활동가(婦人活動家)만의 일을 싣지 않도록 해야 한다. 


男が現実の社会を改造し建設してゆくこともすばらしいことであるが、女が子供を生み、その子供がやがて成長して社会とどう関わってゆくか、未来社会を理想的に建設する人間をつくり上げることは、男が現実社会に関わる以上にすばらしいことなのである。

남자가 현실 사회를 개조하고 건설해 가는 일도 훌륭한 일이지만, 여자가 아이(子供)을 낳고, 그 아이(子供)가 머지않아 성장해서 사회에 어떻게 관계되어 가는지, 미래 사회를 이상적(理想的)으로 건설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남자가 현실 사회에 관계하는 이상(以上)은 훌륭한 일인 것이다. 


子供が小学校に上がるようになって暇になったからといって、少しばかりの金を目当てに職を求めると、やがてその子供のために泣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も起こって来るであろう。

아이(子供)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서 짬이 났다고 하며, 약간의 돈을 목표로 일자리를 찾아 다닌다면, 머지않아 그 자식(子供)으로 인해 울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では母子家庭はどうすればいいのか。母子家庭では母親が働きに出ない訳にはゆかない。こういう場合にこそ、援護は政府の仕事だといわないで、夫が働いている家庭の主婦達が同じ女性の立場として、その母親を援助してやればよいのである。

그럼 모자 가정(母子家庭)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모자 가정(母子家庭)에서는 모친(母親)이 일하려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야말로, 원호(援護)는 정부의 할 일이라고 말하지 말고, 남편이 일하고 있는 가정(家庭)의 주부들이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 그 모친(母親)을 원조(援助)해 주면 좋은 것이다. 


원호[援護]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도와서 보살핌.<국어사전>



ところが本来愛が深いとされ、またそう思われている女が、同性の弱い人、恵まれない人を見ると、以上に興奮して惨虐性(さんぎゃくせい・むごたらしくいじめること)をむき出しにしてそれらの同性を虐めて、自分よりもすぐれて恵まれて才能があるという女性に対しては全く猫みたいに柔順になって奉仕するという傾向があるように思える場合がある。

그런데 본래 사랑이 깊다고 하시며, 또한 그렇게 여겨지고 있는 여자가, 동성(同性)의 약한 사람, 축복 받지 못한 사람(풍요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으로 흥분하며 참학성((慘虐性 비참(처참, 참혹)하게 괴롭히는(못살게 구는 것,이지메하는 것) 것:むごたらしくいじめるこ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그러한 동성(同性)을 학대(虐待)하며, 자기 자신보다도 뛰어나고 재능(才能)이 있다고 하는 여성(女性)에 대해서는 완전히 고양이(猫)처럼 유순(柔順)해져서 봉사(奉仕)한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참학[慘虐] <국어/한자/일본어/중국어 사전>에 없어서, <영어사전>을 참고.

① cruelty (잔인함, 학대) ② atrocity(잔악 행위, 극악, 잔인성) ③ brutality(잔인성, 무자비, 만행)

いじめ[苛め] <이지메>

① 괴롭히는 것 ② 약한 입장의 사람에게 언어‧폭력‧무시‧따돌림 등의 행위로 정신적‧신체적인 고통을 주는 것 

학대[虐待] ①사람이나 동물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괴롭히고 가혹하게 대함.



弱い人、恵まれない人々をこそ助けてやるべきである。しかしまた反面、女性は、同じ女性から助けられることを望まないようにも見える。同じ同性から助けられることは軽蔑侮辱されていると思うのであろうか。そうした意固地な心が実際は自分を不幸にしているのであるから、そういう心をなくしてもっと素直にすべてに感謝できるようにならないといけないのである。

약한 사람, 축복 받지 못한 사람(풍요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도와 줘야 한다.  하지만 또한 반면에, 여성(女性)은, 같은 여성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같은 동성(同性)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은 경멸(輕蔑)과 모욕(侮辱)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러한 고집스러운 마음(외고집을 부리는 마음:意固地な心)이 실제는 자신을 불행(不幸)하게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없애고 조금 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素直)로 모든 것에 감사(感謝)할 수 있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新年号では「女の頭は男なり、されば女は長き髪の毛を賜りたるなり」ということで、男と女の縦の役割を主として書き、この二月号では「夫は己の身体を愛するが如く妻を愛し、妻もまた然かすべし」という男女平等のあり方を書いた。

신년호에서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니라, 그렇지만 여자는 긴 머리카락을 내려 주신 것이니라(女の頭は男なり、されば女は長き髪の毛を賜りたるなり)」라고 하는 것으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縦の役割)을 주로 쓰고, 이 2월호에서는 「남편은 자기 몸(身體)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夫は己の身体を愛するが如く妻を愛し、妻もまた然かすべし)」고 하는 남녀평등의 본연의 모습(あり方)을 썼다. 


これが正しいかどうかは実践してみればわかるし、また何もわざわざ間違ったことを実践しなくとも、周囲の人を見れば成る程とわかられるであろう。

이것이 올바른지 어떤지는 실천해 보면 알 수 있고, 또한 굳이 일부러 잘못된 것을 실천하지 않더라도, 주위의 사람을 보면 과연 그렇구나라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男は男として女は女としての役割を果たす時に幸福になるのであり、その役割を怠り逸脱する時に不幸になるのである。それが神理なのである。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의 역할을 할 때에 행복(幸福)하게 되는 것이며, 그 역할(役割)을 게을리 하고 일탈할 때에 불행(不幸)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신리(神理)인 것이다. 



- 以上 - 

-  끝  -




 月刊誌 正法29号 (1981.01月)월간지 정법 29호 (1981년, 01월)

 月刊誌 正法30号 (1981.02月) より월간지 정법 30호(1981년. 02월)에서 




2013.07.10 UP  ←


2013.7.13-14 hwan san kensyukai sanka   ← 표시는, 일본 원본 사이트에서 위 글을 올려주신 분이, 표기한 것입니다. 


★불신자(不信者)를, 믿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으로 번역했습니다. 


★기존의 한글로 된 여러 번역본의 성경상의 내용과 상당히, 다른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밑에, 숫자로, 

표시했습니다. 



다음에 번역하여 올릴 예정인 것은,

男の役割と女の役割 - 2 ・・・・・ 釈尊の教えから(석존의 가르침에서)

月刊誌 正法 월간지 정법

    第31号(1981.03月)/第32号(1981.04月)/第33号(1981.05月)/第35号(1981.07月) より 

제32호(1981년 3월)/제32호(1981년 4월)/제33호 (1981년 5월)/제35호 (1981년 7월)에서



 ※출처 : http://www.shoho2.com/s2-11otokonoyakuwar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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