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헬렌 켈러는 장해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명의 보살계의 사람이었다.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헬렌 켈러는 장해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명의 보살계의 사람이었다.

어둠의골짜기 2010. 2. 26. 23:32

「ヘレン・ケラーは障害者へ夢と希望をを与える使命の菩薩界の人だった」
헬렌 켈러는 장해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명의 보살계의 사람이었다.


                           * 옮긴이- Wave Master 본명은 모름.(자칭 제자라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보여지거나 만져질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마음 속에서 느껴질 것이다.-------이 글자는 점자로 적혀있다고 하네요. 파일:Hellen Keller circa 1920.jpg---------------------------------

高橋信次師は次のように言った。                 
다카하시 신지 스승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今まで、あの世へ帰ってすぐ、「やるだけやったぞ」という人はいませんね。最近では外人であります。ヘレンケラー、「やるだけやりました」といって天上界へ帰ってきました。それからシュバイツアー、アフリカで治療に従事した。この人達は菩薩界の人達ですからね。こういう人達は使命を持って出られた人です。日本では、例えば総理大臣であっても、「私はやってきました」という人はおりませんね。」、と。これは長野県熊の湯に於ける講演だが、次に『心の対話』・高橋信次著を引用すると、                           
「지금까지, 저 세상으로 돌아가자마자,「할만큼 했어」 라고 하는 사람은 없겠네요.  최근에는 외국인입니다.  헬렌켈러,「 할만큼 했습니다」라고 하고 천상계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슈바이쳐, 아프리카에서 치료에 종사했다.  이 사람들은 보살계의 사람들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은 사명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는, 예를 들면 총리대신이라고 해도,「 저는 하고 왔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은 없겠네요.」, 이라고.  이것은 나가노현 목욕탕에 있어서 강연이지만, 다음에「 마음의 대화」・ 타카하시 신지 저서를 인용하면,     

 

「ヘレン・ケラーという人を知っているでしょう。ヘレン・ケラー女史は物も見えず、聞えず、語れないという三重苦の身体障害者だったのです。彼女は生まれたときは元気のいい男のような女の子でした。なに不自由ない家で生まれたヘレンは、家族の温かい愛情の見守るなかで育ちました。ところが、二歳になる前に急性脳炎にかかり、高熱を起し、何日も意識不明の日が続きました。医者に見放されますが彼女は奇跡的に助かります。ところが、生命は助かったが、眼が見えず、耳も聞えなく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耳が聞えなければ人の話もわかりませんから、口もきけなくなってゆきました。ヘレンの運命は、ここで大きく変ってゆきます。
파일:Helen Keller visit Kfar Uriel.jpg「헬렌 ・켈러라고 하는 사람을 알고 있겠지요.  헬렌・ 켈러 여사는 사물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다고 하는 삼중고의 신체장애자였습니다.  그녀는 태어났을 때는 건강의 좋은 남자와 같은 여자 아이였습니다.  뭐 자유로운 집에서 태어난 헬렌은, 가족의 따사로운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2세가 되기 전에 급성뇌염에 걸려, 고열을 일으켜, 몇일이나 의식불명의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의사에게 버림을 받습니다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런데, 생명은 살아났지만,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으면 사람의 이야기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말도 할 수 없게 되어 갔습니다.  헬렌의 운명은, 여기에서 크게 바뀌어 갔습니다. 

 

Hellen Keller (in the middle) visits the blind village of Kfar Uriel. To her left stands Dr.Hagel the head of the village, to her right her secretary Mrs. Polly Thompson. 01/05/1952

Israeli National Photo Archive.

David Eldan. 

ケラー家は悲しみのどん底に落ちてゆくのですが、両親はなんとかヘレンを助けようといろいろ手をつくし、やがて指で話ができるようになり、続いて相手の唇から話がわかり、ようやくの思いで自分の考えと意思を口で語れるようになってゆきます。こうして、ヘレンはハーバード大学女子部を卒業して文学士の称号を得ると、アメリカ国内の不具者、黒人、貧乏な人たちのために社会事業を起こしてゆきます。彼女は、その社会事業を推進するために、世界各国を講演旅行して歩き、日本にも戦前と戦後を通じて、三回訪れています。
파일:Helen Keller with Anne Sullivan in July 1888.jpg켈러가는 슬픔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갑니다만, 부모님은 어떻게든 헬렌을 도우려고 여러 가지 수단 방법을 다하고, 머지않아 손가락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지화), 계속 되어 상대의 입술로부터 말을 이해하고(구화), 차츰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입으로 말할 수 있게 되어 갑니다.  이렇게 해서, 헬렌은 하바드대학 여자부를 졸업하고 문학박사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고, 미국 국내의 불구자, 흑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사업을 일으켜 갑니다.  그녀는, 그 사회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세게 각국을 강연 여행해 가고, 일본에도 전쟁 전과 전쟁 후를 통해서, 3회 방문하고 있습니다. 

 

私は実在界で彼女に会い聞いてみました。「あなたは、大変苦労しましたね。よくがんばりましたね…」といったら、女史は、「私は目が見えないために、不調和なものを見て心を乱すこともなく、耳が聞えないので不調和なことも聞くことがなかった。だから不調和な言葉を話すことがないので、絶えず神と話を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私は、本当にしあわせでした」と、いいました。心こそすべてであることを、女史は身をもって教えています。」、と。  

 

Photograph of Helen Keller at age 8 with her tutor Anne Sullivan on vacation in Brewster, Cape Cod, Massachusetts  1888년 7월(1888-07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Helen_Keller_with_Anne_Sullivan_in_July_1888.jpg

메사추체주,케이프 코드, 브레스터에서 앤 설리반과 휴가를 보내는 8세의 헬렌 켈러..........ㅎㅎ

 

  
            저는 실재계에서 그녀를 만나 들어보았습니다.Helen Keller1.jpg 

「당신은, 대단히 수고하셨네요.  잘 버티어 견뎌내셨네요…」라고 말하면, 여사는, 「저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조화한 것을 보고 마음을 어지럽힐 것도 없고, 귀가 들리지 않으므로 부조화한 것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조화한 말을 이야기하는 일이 없으므로, 끊임없이 신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행복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이야말로 모두인 것을, 여사는 몸소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ヘレン・アダムス・ケラー〉(一八八〇~一九六八・昭和43年)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년 소화 43년)

 

  ◀1904년의 헬렌 켈러

 출생 :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컴비아

                                        사망 : 1968년 6월 1일 미국 코디니컷 주 이스턴 아캇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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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アメリカ、アラバマ州出身。二歳のころ熱病のため三重苦になるが、気性のはげしい反抗的なヘレンをサリバン女史が根気よく愛情をもって教育し、一九〇四年、ハーバード大学ラドクリフ・カレッジを、サリバン女史に助けられて卒業するが、五カ国語を修得し、それ以後世界の目、耳、口の不自由な人達の救済運動を開始する。世界各地で講演し、日本へも一九三七年より三回立寄った。
  미국, 앨러버마주 출신. 두살 무렵 열병 때문에 삼중고가 되지만, 천성의 격렬한 반항적인 헬렌을 설리반 여사가 끈기로 잘 애정을 가지고 교육해, 1904년, 하버드 대학 라드크리후 · 컬리지를, 설리반 여사가 거둘어 주어 졸업하지만, 5개 국어를 배워서 터득하고, 그 이후 세계의 눈, 귀, 입의 부자유한 사람들의 구제운동을 개시한다.  세계 각지에서 강연하고, 일본으로도 1937년부터 3회 들렸습니다.   

 

 

파일:Helenkellerannesullivan1898.jpg一九三七年(昭和十二年)には、八十日間にわたり日本各地を講演旅行をした。身体障害者に大きな希望をもたらし、福祉事業にもつくしたので、テンプル大学から人道文化博士、グラスゴー大学から法学博士の称号を受け、自伝などの著書が多くある。 使命を持った光の天使ヘレン・ケラーは天上の計画によって自ら三重苦となり、その苦しみと、体験を通して世界中の目、耳、口の不自由な人々に力と勇気を与えるという使命をやりとげ帰天されたわけである。
1937년 (소화 12년)에는, 80일간에 걸쳐 일본 각지를 강연여행을 했다.  신체장해자에게 큰 희망을 가져오고, 복지사업에도 진력해왔으므로, 템플대학에서 인도문학박사, 그래스고우대학에서 법학박사의 칭호를 받고, 자서전 등의 저서가 많이 있다.  사명을 가진 빛의 천사로 헬렌 켈러는 천상의 계획의 의해 스스로 3중고가 되어, 그 괴로움과, 체험을 통해서 세계속의 눈, 귀, 입의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고 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귀천되었던 것이다.

 

Helen Keller and Anne Sullivan in 1898. on the left Helen Keller and on the right Anne Sullivan.

1898인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왼쪽의 헬렌 켈러 그리고 오른쪽의 앤 설리번 이네요. ㅎㅎ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Helenkellerannesullivan189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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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橋信次師は講演の中で、「わたしが道を誤まることがあったら、このようなことでショックを与えてくれ、このようにして教えてくれ、と約束して皆んなこの世に肉体を持つんです。光の天使といえども、この世に肉体を持つと道を誤る人も多いのです」、と語っているが、ヘレン・ケラー女史は立派に使命を果され、サリバン女史もそれに協力をする光の天使であったに違いない。このように光の天使は、地上界に使命と目的を持ち、自ら悟れそうな環境を選んで出てくるのである。
파일:Hellen Keller circa 1920.jpg다카하시 신지 스승님은 강연 중에서,「제가 道(도리=가르침)을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이러한 일로 쇼크를 받아, 이렇게 해서 가르쳐 주어라, 라고 약속하고 모두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는 것입니다.  빛의 천사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면 道(도리=길)을 잘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헬렌 켈러 여사는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하고,
설리반 여사도 그것에 협력을 하는 빛의 천사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Helen Keller sitting holding a magnolia flower, circa 1920

Los Angeles Times photographic archive, UCLA Library

손에 목련을 들고 계시네요.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Hellen_Keller_circa_1920.jpg

 

モーゼが奴隷の子として生まれ、王宮に拾われ社会の矛盾に目覚めてゆくように、また、イエスは左官の子として生まれ人々を救い、釈迦は王子として生まれるも城を出て、疑問と矛盾に目覚め悟っていくのである。地上界に出た光の天使が、この世での使命と目的をやり遂げられるように天上界はその環境を整えるのである。                         
모세가 노예의 아들로서 태어나, 왕국에 습득되어 사회의 모순에 눈을 떠 간 것처럼, 또, 예수는 미장이의 아들로서 태어나 사람들을 구원하고, 석가는 왕자로서 태어나도 성을 나와서, 의문과 모순에 눈을 떠 깨달아 간 것이다.  지상계에 나온 빛의 천사가, 이 세상에서의 사명과 목적을 완수할 수 있도록 천상계는 그 환경을 가지런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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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로.........저 역시 아키다견을 좋아합니다.....털이 보송보송하고 아주 이쁩니다...이불이 필요없습니다. 우와~ 제가 어릴 때 꼬맹이 4~6살 사이에 집에 진도견이 있었습니다.. 암컷이죠. 저랑 잘 놀았습니다.

 

아키타

1937년 7월에 일본아키타 현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1935년에 죽은 유명한 개 하치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일본인에게 아키타 견을 갖고 싶다고 말했으며 한마리를 한 달도 안돼서 받았고 이름은 Kamikaze-go였다. 이 개가 개 홍역으로 죽었을 때 이 개의 형이었던 Kenzan-go가 일본 정부의 공식 선물로서 1938년 7월에 왔다. 헬렌 켈러는 이 두마리의 개를 미국에 아키타 견을 소개하며 미국인들이 이 개들에 대해 신뢰할 수 있도록 했다.

1939년까지 품종기준(breed standard)이 만들어졌고 개 쇼(dog shows)가 열렸지만 이런 행사는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멈추게 되었다. 헬렌 켈러는 아키타 저널을 썼다.

“만약 천사의 털이 있다면 그것은 카미카제의 털이다. 나는 다른 애완동물에게서는 영원히 이렇게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없다는것을 안다. 아키타 견은 모든 것에 있어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개는 온화하고 사교적이고 믿음직하다”

 

그리고 여기 헬렌 켈러도, 아키다견 좋아했네요.  이 아키다 견은, 아주 큽니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곰처럼 큽니다. 사람에게는 절대로 물지 않습니다. 사람이 오히려,ㅡ 너무 커서 무서워하죠. 아주 순딩이입니다. 그 개의 머리통이 ..엄청 큽니다. 앞발이 사람 얼굴만 합니다. 과장이 좀 심했네요.  하여튼, 전 우리나라 개하면, 진돗개하고...다른나라 개 하면, 아키다견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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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하겠습니다...이 글 밑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의 출생배경과 출생환경과 당시 카비라성 안에서의 생활..개인적인 성격과

많은 궁녀들과의 관계 및 여러 아내와의 일, 그리고 왜 사랑..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이유등을 설염하는 글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전설로 전해진 이야기와 다른 내용들도 포함되지만, 하지만, 그 부분은 올릴까 말까 망설여집니다..

왜냐하면, 이 분의 글은,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머리로만, 읽으면, 속된 말로, 어처구니없는 그런 말이 되기 때문에, ..

나중에 잘 생각해보고, 올리겠습니다. 번역은 90%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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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shoho.com/newpage117.htm, 여기 소호는 일본말로 정법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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