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부처님의 손바닥 쿠치키 타케토(佛の手のひら 朽木上人) 1994년 작품, (1921~2003, 82세)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부처님의 손바닥 쿠치키 타케토(佛の手のひら 朽木上人) 1994년 작품, (1921~2003, 82세)

어둠의골짜기 2015. 12. 30. 11:27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고(故) 쿠치키 타케토(朽木上人)님께서,

1994년 11월에 쓰신 책이며, 71세의 고령에 쓰신,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은, 번역하려 하지 않았으나, 꼭 읽어 보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2015년 11월 1일부터,

작업을 하여, 2015년 12월 29일 오후 7시에 완료했습니다.


일본에서, 이 글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려 속에 글을 올립니다. 


총 299 페이지며, 한글과 일본어를 함께 올린 관계로, 제 방식입니다. 페이지가 더 길어 질 것입니다.







佛の手のひら 朽木上人

부처님의 손바닥




はじめに 

머리말(서문)



世間が好景氣佛の手のひら好景氣といわれる時は、一般大衆は、言葉に乘せられ、大きな錯覺を起こし、自分の環境や境遇、そして經濟的や立場の力量など、考えることさえ失って、ひたすら、物に對しての欲望のみにて、不景氣を迎えるのが通常なのである。

세간이 호경기라고 하는 때는, 일반대중은, 말에 편승하여, 큰 착각을 일으키고, 자신의 환경이나 경우, 그리고 경제적이나 입장의 역량 등은, 이것저것 생각하는 일 마저 잃어버리고, 오로지, 물건(物)에 대한 욕만만으로, 불경기를 맞이하는 것이 통상인 것이다.



實際は、いつの世でも、好景氣の時は、有頂天になるものが多いが、その有頂天の中には、足る心を忘れた欲望がもとで、分不相應な行爲をしていることに氣付くどころか、欲は欲を生み、個人にしても、企業にしても、經濟的破壞を招く、大きな原因を造り出しているのである。

실제는, 어느 때의 세상이라 해도, 호경기일 때는,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有頂天になるもの),그렇게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동안에는, 만족하는 마음을 잊은 욕망이 원인(もと)이, 분수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기는커녕, 욕망(欲)은 욕망(欲)을 낳고, 개인으로서도, 기업으로서도, 경제적 파괴를 초래하는, 큰 원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よく[ 欲 ]  뜻:욕심,욕망,욕구,탐욕,끝없는 욕심, 이란 뜻이 있음.



元來物質の世は、相對性によって生き續けているので、當たり前なのであるが、それすら忘れてしまうのであり、惱み苦しみの元を造りながら、好景氣という錯覺街道の、道程の中に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これこそ、心すべきことはあるまいか。

원래 물질의 세계는, 상대성에 의해서 계속 살아가는(사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그것조차도 잊어버리는 것이며, 고민과 괴로옴(惱み苦しみ)의 원인(元)을 만들면서, 호경기라고 하는 착각가도(錯覺街道)의, 도정(道程)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주의(조심)해야 할 일이 아닌가.



今度の好況の崩壞は、人間の驕り奢った心に對しての、警告のものであろう。しかし、大半のものは、こうした警告を、警告として受け取るものは、少ないものと思う。殘念なことである。

이번 호황의 붕괴는, 인간의 교만하고 사치스런 마음(驕り奢った心)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경고를, 경고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런 일이다.    



守護靈は言う、

「魂である私達は、この物質の世で、肉體をもってしまうと、本來は同一であるべき心が、それぞれに、異なった環境·境遇のために、自己保存、自我我欲に翻弄され、歪みを造り出し、腦み苦しみを造り、これを修正することもなく、肉體をもったことも忘れ、屋上屋を重ね重ねて、この世の終焉を迎えるものが大方である」 

수호령은 말한다,

「영혼인 우리들은, 이 물질의 세상(世)에서,육체를 가져버리면, 본래는 동일(同一)해야 할 마음이, 각자의, 다른 환경이나 경우 때문에, 자기보존, 자아아욕에 농락당해서, 비뚤어짐을 만들어 내고, 고민과 괴로움을 만들어, 이것을 수정하는 일 없이,육체를 가진 것도 잊고서,쓸데없는 일을 거듭하며, 이세상의 임종(終焉)을 맞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



佛は地位·名譽·財産を欲することなく、ひたすらに、人間魂としての生きる理を說き、大衆の幸福であることを、絶えず念じておられたのである。

부처는 지위나 명예 재산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인간 영혼(人間魂)으로서의 사는 이치(理)를 설명하고, 대중의 행복인 것을, 끊임없이 염원(念)하고 계셨던 것이다. 



この佛こそ、我が師である、高橋信次である。

이 부처야말로, 나의 스승인,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이다.



全國の書店には、師の名を使った書籍が、山に積まれている。そうした書籍を讀まれる前に、一度、本當の高橋信次著という書積を、讀んで見られたらと、思うものである。書籍を出されてから、約二十年にもなるが、今だに讀まれる方が多い。

전국의 서점에는, 스승님의 이름을 쓴(사용한) 서적(書籍)이, 산적(山積)하다. 그러한 서적을 읽으시기 전에, 한 번, 찐자 다카하시 신지 저서(高橋信次著)라고 하는 서적을, 읽어 보신다면 어떨까 하고,생각하는 바입니다.  서적이 나온지, 약 20년이나 되지만, 아직도 읽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師の著書は、どなたが讀まれても、すぐに實踐をしたくなるほど、分かりやすく親切に書かれておられる。また、宗敎の眞髓も、專門書などより、より分かりやすく、說かれたものである。

스승님의 서적은, 어느 분이 읽으서도, 금방 실천을 하고 싶게 될 정도로, 알기 쉽게 친절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또한, 종교의 진수(眞髓)도, 전문서 등 보다, 보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하신 것입니다. 



今回の私の書は、師の敎えを基に、少しばかり日日の生活を通した體驗の中から、反省を主に、書き綴ったものであり、是非參考にしていただければ、幸いに思うものである。

이번 저의 책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기초(基)로, 약간의 매일(나날)의 생활을 통한 체험 중에서, 반성을 주로, 글로 엮은 것이며, 아무쪼록 참고해 주셨으면,다행이라고 여기는 바입니다.


一九九三年二月 1993년 3월


朽木丈人(くちき たけと) 쿠치키 타케토






はじめに 머리말(서문)


目次(목차)



第一章 他次元の己 [제1장 타차원의 자기(나)]

一、師の敎え(스승님의 가르침)

二、正しく生きる(올바르게 산다)

三、次次に起きる現象(잇달아 일어나는 현상)

四、本當の自分(진짜 나=진짜 내 자신)

五、人生の目的と使命(인생의 목적과 사명)

六、生かされ生きている(되살아나서 살고 있다)



第二章 神からの貸與物 [제2장 신에게서 빌린 대여물]

一、流れ(흐름)

二、自然と人間(자연과 인간)

三、超極微なる物質界(초극미한 물질계)

四、すばらしき自然(훌륭한 자연)

五、理論と行爲(이론과 행위)

六、自然と人間の係わり(자연과 인간의 관계)

七、神佛と大自然(신불과 대자연)

八、神と佛と人間と(신과 부처와 인간과)

九、あの世とこの世の接點(저 세상(저승)과 이 세상(이승)의 접점)

十、佛の手のひら(부처님의 손바닥)



第三章 反省 [제3장 반성]

一、反省(반성)

二、雜念と反省(잡념과 반성)

三、この世の時間(이 세상(이승)의 시간)

四、戶倉ホテル(토쿠라 Hotel)

五、不安·恐怖の原因(불안과 공포의 원인)

六、不安·恐怖を克服するには(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데에는)

七、小さな天使(작은 천사)



第四章 信仰 [제4장 신앙]

一、 心を失う宗敎(마음을 잃은 종교)

二、 恐るべき狂信·盲信の果て(두려워해야 할 광신(狂信)·맹신(盲信)의 결과)

三、 あやまれる信仰(의심스러운 신앙)

四、 心を迷わす他力(마음을 현혹하는 타력)

五、 佛の敎えに近付こう(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가자)



第五章 神理は日日の生活の中に [제5장 신리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一、プラットホーム(platform)(플랫폼)

二、捨てられる子ら(버림받은 아이들)

三、UFOを見る女性(UFO를 보는 여성)

四、欲から出た信仰(욕망에서 기인한 신앙)

五、怠惰と無責任(태타(아주 게으름)과 무책임)

六、彼岸花(피안화)

七、世の中の縮圖(세상의 축도)



第六章 物の怪の存在 [제6장 귀신(사람을 괴롭히는 사령(死靈)=악령)의 존재]

一、外國から來たお化け(외국에서 온 도깨비)

二、供養(공양)

三、物の怪の存在(귀신(사람을 괴롭히는 사령(死靈)=악령)의 존재)



第七章 心こそ己の王國 [제7장 마음이야말로 자기의 왕국]

一、神佛は賴り縋るものに非ず(불교는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二、心のすき(마음의 빈틈(허점))

三、心の裁き(마음의 재판)

四、生老病死(생로병사)

五、すべては神の創造物(모든 것(만물)은 신의 창조물)

六、佛の敎えは大衆のもの(부처님의 가르침은 대중의 것)



第八章 心の世界より[제8장 마음의 세계에서]

一、師の言葉(스승님의 말씀)

二、守護靈よりの言葉(수호령의 말씀)



あとがき(책의 후기)








第一章 他次元の己

[제1장 타차원의 자기(나)]



師の敎え(스승님의 가르침)



師は說かれた。

스승님은 설명했다.


『宇宙の中には、大自然の法則があり、その法則こそ、神の心であり、その中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が、萬生萬物である。しかもこの法則は、循環という運動をもって、膨脹と收縮、春夏秋冬、晝と夜、因果應報、榮枯盛衰、生者必滅と、人間もまた、生死の輪廻を繰り返している。原素の集中固體化したものが、肉體であり生である。死といるのは、自分と思っていた肉體との離別である。肉體は分散し、もとの原素となり、自然の中に還元されて行く。自然の法則の、循環という軌道を流れて行き、また流れ來るのである。しかもその流れは、諸行無常そのものである』

『우주 안에는, 대자연의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이야말로, 신(神)의 마음이며, 그 안에서 되살아나며, 살고 있는 것이, 만생만물이다. 게다가 이 법칙은, 순환이라고 하는 운동을 가지고, 팽창과 수축, 춘하추동, 낮과 밤, 인과응보, 영고성쇠, 생자필멸과, 인간 역시, 생사의 윤회를 반복하고 있다. 원소의 집중 고체화된 것이, 육체인 삶(生)이다. 죽음(死)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육체와의 이별이다.  육체는 분산하고, 원래(もと=원점(原點))의 원소(原素)과 되어, 자연 속으로 환원되어 간다. 자연의 법칙의, 순환이라고 하는 궤도를 흘러가며, 또한 흘러오는 것이다.  게다가 그 흐름은, 제행무상(諸行無常) 바로 그것이다』



從って、宇宙そのものは、後退ということは皆無(かいむ)である。巷でよく耳にすることで、あの世から佛が物忘れした如く、人間の意識を通し、この世のものに語りかけるということもあるという。また特定の方の名を出し、その方は今、地獄に落ちているとか、出鱈目もよいところである。こうしたものは、いくらもっともらしく語っても、神理を知らないものか、惡靈の仕業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神佛でない神佛が、八白萬の神と稱して、大衆の心を迷わせている。

따라서, 우주 그 자체는, 후퇴라고 하는 것은 전혀 없다(皆無). 항간에서 자주 듣는 일로, 저 세상에서 부처가 건망증이 걸린 것 처럼,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 이 세상 사람에게 말한다고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또한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 사람은 지금, 지옥에 떨어져 있다든가, 허튼 소리를 곧잘 한다. 이러한 것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말해도, 신리(神理)를 모르든가, 악령의 소행(짓)일뿐이며, 말할 필요가 없다.  신불(神佛)이 아닌 신불(神佛)이, 팔백만의 신(神)이라 칭하며, 대중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있다. 


★でたらめ出鱈目 ①허튼 소리②엉터리③터무니없는 짓④아무렇게나 함⑤거짓말



神理は、大自然の循環の法そのものであり、前進のみにて、止ったり後戾りなどは、あり得ないのである。

신리는, 대자연의 순환의 법 그 자체이며, 전진만이며, 멈추거나 후퇴 등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ある時、師と二人きりになった。その時、師はこんなことを言われたことを、昨日か今日のように、耳の奧に、今だに殘っている。

어느 때, 스승님과 단둘뿐이 되었다. 그 때, 스승님은 이런 말을 하신 것을, 어젠가 오늘처럼, 귓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私は、時間が來て、あの世に歸ったら、この地上界の人人には、語りかけることなどしなし、勿論、戾ってなど來ないよ。あなたは、今のうちに、私のものを少しでも、吸收するんですよ」

「나는, 시간이 되서, 저 세상으로 돌아가면, 이 지상계의 사람에게는, 말을 거는 일 따위는 안하고, 물론, 되돌아오는 일 따위도 없지요. 당신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적어도, 흡수하니까요 」



それから、少し間をおいて、

그러고나서, 잠시 후,



「私のお弟子さんと言われる人が、二十人くらいいるけれど、私の說いている法を、本當に分かっている人は、五人とはいないだろうね」

「내 제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20명 정도 있는데, 내가 설명하는 법을, 정말로 알아듣는 사람은, 5명에 불과할 거에요」



これには、私は驚いてしまった。

그것에는, 나는 놀라고 말았다.



「本當ですか。そのことが分かっていて、語をされていたるんですか」

「정말입니까? 그런 일을 알고 계신데,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까?」



「仕方がないよね。たびひたすらに、一人でも分かってほしいと、念じながら、話しているだけだよ」

「어쩔 수 없지요. 그럴 때마다,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고서, 염원하면서 말하고 있을 뿐이지요」



私は次の言葉が出なかった。師は說法されても、何を要求されるでもなければ、それこそ心身共に、供養されたのであった。

나는 다음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승님은 설법하시고도, 무엇을 요구하시는 분도 아니면서,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다 같이, 공양하신 것이었다.



師の敎えは、花の香りのように、方方に散った。しかし、本當の香りを、心で嗅ぐことの出來る人は、何人いるだだろうと思う。

스승님의 가르침은, 꽃향기처럼,사방에 흩어졌다. 하지만, 진짜 향기는, 마음으로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またその時に、次のように言われ、部屋を出て行かれた。

또 그 때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방을 나가셨다.



「朽木さん、自分を知らずして、人をあれこれと、詮索しては駄目ですよ。また、勿論今もそうですが、もっともらしく法を語る人が、多くなると思います。しかしこの中で、心から、その法を行なう人は、少ないと思います。あなたは、人を見て、自分の行ないを正すようにしなさい」

「쿠치키씨, 자기 자신을 모르면서, 남을 이리저리, 탐색(詮索)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지금도 그렇지만, 그럴싸하게 법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진심으로, 그 법을 행하는 사람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남을 보고, 당신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도록 하십시오 」



必然的に、私は頭の下がるのを、どうすることも出來なかった。と同時に、こんな素晴らしい日は、二度とあるまいと思ったものである。

필연적으로, 나는 고개가 숙여지는 것을, 어찌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훌륭한 날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師は、文證・理證・現證の三つの證をもって、萬生萬物の幸福を敎示され、特に萬物の靈長たる人間は、自らその尊嚴性・偉大性、そして生きることの喜びを、日日の生活を通し、身をもって悟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ご自分の總てを犧牲にされ、說かれた方である。

스승님은, 문증과 이증과 현증의 세가지의 증거를 가지고, 만생만물의 행복을 교시(敎示)하시고, 특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몸소 그 존엄성과 위대성, 그리고 삶의 기쁨을,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몸소 깨달아야 한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설명하신 분이다. 







正しく生きる

(올바르게 산다)



師の敎えの中に、物質界この世、非物質界あの世、この兩者は一つであり、人間始め萬物は、すべて、魂と肉體と一體のものである。

스승님의 가르침 중에, 물질계 이 세상, 비물질계 저 세상, 이 양자는 하나이며,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모두, 영혼(魂)과 육체와 한몸(一體)인 것이다.



その割合いからすると、非物質界の世界、魂の世界が90%であり、すべてと思っている、物質の世界、肉體の世界が10%で、100%を構成し、一體となっているのである。

그 비율로 하면, 비물질계의 세계, 영혼(魂)의 세계가 90%이며,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물질의 세계, 육체의 세계가 10%이며, 100%를 구성하고, 한몸(一體)이 되어 있다. 



物の世は、見て、觸って、感じたことではないと、信じられないように出來ているのである。そのために、自分が10%という、小さな器の中で、思うようにならないため、すべて他のせいにしたり、惱んだり、苦しんだり、迷ったりしているのである。

물질의 세계(物の世)는,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믿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이 10%라고 하는,작은 그릇 안에서, 뜻(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남의 탓으로 여기거나,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하고 있는 것이다.



終いには、何のために生まれたのか、自分は何なのか、さっぱり分からないままに、この世を終って行くのである。それでも氣付かない人が多いのである。

끝내는, 뭣 때문에 태어났는지, 자신은 무엇인지,통 알지 못한 채로,이 세상에서 최후를 맞이하여 가는 것이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私が體驗をした中に、こんなことがある。

내가 체험을 했던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一九七三年九月頃であった。

1973년 9월 경이었다.



禪定中に、氣が付いて見ると、禪定している世界とは、全く異なった世界にいることに氣付いた。

선정 중에, 정신을 차려 보니, 선정하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それは、今まで見たこともない國の人人が行き交っている處で、服裝もいろいろである。西洋人も東洋人も、お互いに、それぞれの國の言葉で話をしている。

그것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나라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곳이며, 복장도 가지가지이다. 서양인도 동양인도, 서로, 각자의 나라의 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よし通じるものだな」

「잘 통하는군」



確かに、言葉が通じている。便利この上なしだ。

확실히, 말이 통하고 있다. 최고로 편리하다.



怒りや、意地惡や、狡そうな心の人は、見當たらない。皆にこにこしている。

분노나, 의지악이나, 교활한(간사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찾을 수가 없다. 모두가 생글거리고 있다.



私を迎えてくれたのは、大分昔の、キリスト敎の宣敎師のようである。その方と私は話をしている。それが日本語ではない。話の途切らた時、ふと、足もとを見た。すると遙か下の方に、禪定中の自分の姿が見える。

나를 맞이하려 온 것은, 대부분 옛날, 그리스도교의 선교사인 모양이다. 그 사람과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어가 아니다. 말이 끊겼을 

때, 발밑을 보았다.  그러자 아득한 아래 쪽에, 선중중의 내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歸らなければ」

「돌아가지 않으면」



そう思った途端、相手の宣敎師が、にこりとした。

그렇게 생각하자마자,상대방의 선교사가,



「ではまた」

「그럼 나중에」


どちらからともなく、埃拶をした。瞬間、それこそ猛スピードで、何が何だか分らない中を降りている。

누군가 갑자기, 인사를 했다. 순간, 그야말로 맹스피드로, 뭐가 뭔지 모르는 속을 내려오고 있다.



高い處から、袋の中に飛び込んだような感じがした。禪定中の、この世の肉體である、この世に戾ったのである。錯覺でもない。おかしくなったのでもない。確かにこの世ではなかった。何か、心が輕く、すがすがしく感したものである。

높은 곳에서, 독(袋) 안으로 뛰어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선전 중의, 이 세상의 육체인, 이 세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착각도 아니다. 머리가 이상해진 것도 아니다. 확실히 이 세상이 아니었다. 웬지, 마음이 가볍고, 상쾌하게 느겼던 것이다.



このようなことは、今迄一回や二回ではないのである。

이러한 일은, 지금까지 한 번이나 두 번이 아닌 것이다.



それこそ、この世の肉體五官では、促(とら)えることの出來ない世界、魂としての本當の自分が住む世界なのであり、假りの世とも言うべき、物質のこの世を、包みこんでいる世界なのである。

그야말로, 이 세상의 육체 오관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세계, 영혼(魂)으로서 진짜 내 자신이 사는 세계인 것이며, 덧없는 이 세상(假りの世)이라고도 말해야 할, 물질의 이 세상을, 싸서 안에 쏙 집어넣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しかも、それぞれの人人の世界が、心の段階により異なるが、存在している。この世では促えられないが、各各の心の中に、存在し續け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게다가, 각자의 사람들의 세계가, 마음의 단계에 따라 다르지만, 존재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파악할 수 없지만, 각각의 마음속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あの世は、非物質の世界であり、物質のすべてのものの根元を成す、エネルギー粒子の世界であり、思念の世界でもある。それこそ、この世のように、塵(ちり)もなければ、不必要な物など、何處を見てもない。あの世は、必要としないものは、何一つとして存在しない世界なのである。必要とするものだけ、その姿を現わし、終ったら直ちに、その姿を消してしまうものなのである。この世で金や物がないものでも、やがては、あの世に歸るのであり、何ら心配することはないのである。

저 세상은, 비물질의 세계이며, 물질의 만물(すべてのもの)의 근원(根元)을 이루는, 에너지 입자의 세계이며, 사념(思念)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이 세상처럼, 번거로움塵(ちり)도 없는가 하면, 불필요한 물건 따위도, 어디를 봐도 없다. 저 세상은, 필요로 하지 하지 않은 것은, 무엇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 것이다.  필요로 하는 것만, 그 모습을 드러내고, 끝나면 곧바로, 그 종적을 감추어 버리는 것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돈이나 물건(物)이 없는 사람이라도, 머지않아서는,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어디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この世の物はすべて、"有る"と思っているだけで、錯覺なのである。どんなに、權力や財力を驅使して得たものでも、形あるものは限りがあり、いつかは、その手から離れて行くものである。まして自分が、この世を去る時に、持って行けるのは、皆無である。もし持って行けるものがあるとしたら、その物や事柄に對しての、執着心だけではないだろうか。こうなると、物質の世の儚(はかな)さが、痛切に感じられるものではあるまいか。

이 세상의 것(物)은 전부,"있다(有る)"고 생각하고 있을뿐이며,착각인 것이다.  아무리, 권력이나 재력을 구사해서 얻은 것이라도, 형상(形)이 있는 것은 끝(限り)이 있으며, 언젠가는, 그 손에서 떨어져 가는 것이다. 하물며 자기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만약 갖고 갈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물건(物)이나 사항(일事柄)에 대한, 집착심뿐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 물질의 세계의 덧없음(儚さ)을, 통절(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しかし、現代の世では殊更に、人間を幸福にするものは、權力と金と物であり、自分の利益に關連のない人間など、付き合う必要や暇などはないと、まるで亡者の姿、そのものとなってしまうものである。

하지만, 현대의 세계에서는 특별히(殊更に),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권력과 돈과 물건(物)이며,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없는 인간 따위는, 사귈 필요나 겨를(暇) 따위는 없다고, 마치 망자(亡者)의 모습, 바로 그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思えば、人間の欲望の心くらい、恐ろしいものはないものである。

생각하면, 인간의 욕망의 마음이 어둡고(心くらい), 무서운 것은 없는 것이다.



苦勞の多いものは、早く死に度いとか、もう人間に生まれたくないと、言われるものも現われてくる。魂としての、偉大性、尊さを忘れ去ってしまったことになる。

고생이 많은 사람은, 빨리 죽어버리(死に度い)든지,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もの)도 차츰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혼(魂)으로서의, 위대성, 존엄성을 깨끗이 잊어버린 셈이 된다. 



價値感(かちかん)を、この世の地位・名譽・財産に求めるか、永遠の生命を知り、心にその價値感を求めるか、これは、それぞれの自由である。

가치감(價値感)을, 이 세상의 지위나 명예나 재산에서 찾든가, 영원한 생명을 알고, 마음에 그 가치감(價値感)을 찾든가, 이것은, 각자의 자유다.


★價値感(かちかん) ? 이런 말 없음. 일본의 신조어(젊은 세대들)임.

★헌데, 이 책은 1994년도 나온 것임.



この世の、特に人間の社會は、今や各部門の一部の者達、特に思想家・宗敎家の主なものは、それぞれ惡魔(あくま)に心を支配され、一部のもの達の欲望を滿たすため、大衆の心を利用しているのが、實狀であろう。

이 세상의, 특히 인간 사회는, 지금이나 각 부분의 일부의 사람들, 특히 사상가나 종교가의 중심이 되는 사람(主なもの)은, 각자 악마(惡魔)에게 마음을 지배당하여, 일부의 사람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대중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실상(實狀)이다. 



人間、今こそ、己の心を、惡魔に賣り渡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인간, 지금이야말로, 자기의 마음을, 악마에게 팔아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神の意は、宇宙の大調和である。神の意を繼承(けいしょう)しているのが、人間のである。

신(神)의 뜻(意)은, 우주의 대조화(大調和)이다. 신(神)의 뜻(意)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인간(人間)인 것이다.



人間が、この地球上に、その姿を現わした目的とは、まず物を支配し、萬物の靈長として、この世を調和することにあるのである。

인간이, 이 지구상에, 그 모습을 나타낸 목적이란, 우선 만물(物)을 지배하고,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서, 이 세상을 조화(調和)시키는 것에 있는 것이다. 



神がそのように創造さらたのである。

신(神)이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다.



神の意に適った、生活をしているのだろうか。どのようにしたら、調和できるのであろうか。自己保存・自己本位の生活を、調和していると、思い違いし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また、自分のすべてを、他人に賴(たよ)り縋(すが)る、典型的(てんけいてき)な他力本願的(たりきほんがんてき)、逃避的なことがあるとしたら、これについても、よくよく反省をし、その根元を成す、歪みの修正があって、始めて、正しく生きる道を、發見することができるものである。

신(神)의 뜻(意)에 맞는, 생활을 하고 있는 있는가? 어떻게 하면, 조화(調和)될 수 있는가? 자기보존과 자기본위의 생활을, 조화되어 있다고, 오해(착각思い違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자기 자신의 전부를, 타인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는(賴り縋る), 전형적(典型的)인 타력본원(他力本願:남에게 의지함)적, 도피(逃避)적인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에 관해서도, 철저히(자세히よくよく) 반성(反省)을 하고, 그 근원(根元)을 이루는, 비뚤어짐의 수정(修正)이 있고, 비로소,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道)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次次に起きる現象

(잇달아 일어나는 현상)



あの世のこと、この世での靈的なこと、他人のことで、その方の名も知らないのに、どんな人なのか、會ったこともないのにその人のことが分かったり、他人の病氣の部分が分かったりすることがある。このようなことには關心もなく、自分でも、そうした現象に對して疑問を抱いた、靈的なことには、驚くほど、鈍感な一人であった。

저 세상의 것, 이 세상에서의 영적인 것, 타인의 일로,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르는데, 어떤 사람인지, 만난 적도 없는데 그 사람의 일을 알았다거나, 타인의 병(病氣)의 부분을 알거나 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것에는 관심도 없고, 제 자신도,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고, 영적인 것에는, 놀랄정도로, 둔감한 한 사람이었다. 



「あれ、何かおかしくありませんか」

「저 사람,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または

「この寫眞、少し變ではありませんか」

と言われても、さっぱり感じない。こんな私が、何故こんなことになっているのか、不思議千萬なことなのである。

혹은,

「이 사진, 변한게 아닙니까?」

라고 말해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이런 내가, 왜 이렇게 되고 있는지, 불가사의하기 그지없는 일인 것이다. 



その不思議が、今だに解消しない。 

그 불가사의함이, 아직도 해소가 안 된다.


振り返って見ると、よくもこれだけのことが、と思うくらい、現われては消え、消えては現われ、恐らく、これからも、それこそこの世を去るまで、續けられ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と思っているし、私だけが、このようなことになっているのでもあるまい。ここ迄くると、長所か短所か、どちらかが、頭をもちあげ、それが何であるかを、追求してみたくなるものだ。今もそんな思いがある。

과거를 되돌아보면, 어쩌면 이만큼인 것이, 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나타나서는 사라지고, 사라지고는 다시 나타나서, 아마, 앞으로도, 그야말로 이 세사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만이,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지경까지 되면, 장점인지 단점인지, 어느 쪽인지가, 머리를 쳐들고, 그것이 뭔지를, 추구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다. 



師との緣が分かった年、一九七一年の十月中旬、その日の營業時間も終え、師お會いした時のこと等、思い出しながら、その夜かれこれ十一時頃、床に入った。스승님과의 인연을 맺었던 해(緣が分かった年), 1971년의 10월 중순, 그 날의 영업시간도 끝나서, 스승님을 만났을 때의 일 등, 회상하면서, 그날 밤 대충 11시 경, 잠자리에 들었다.



「お休みなせい」

「안녕히 주무세요」



それまではよかった。それから時間にして、二分か、三分後のことである。私は大聲を上げてしまった。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나서 시간으로 해서, 2분인가, 3분 후의 일이다. 나는 큰소리를 질러 버렸다.



「ああっ!!」

「아악!!」



自分とばかり思っている肉體が、空中分解したのである。

나(自分)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육체가, 공중분해 했던 것이다.



「パチッ!!」

「우지직!!」



悽い音がした。もう駄目だと瞬間思った。やや暫くして、私の兩手は、靜かに、靜かに、肉體の、手から胴、足、一番恐ろしい首から上は、一番あとに觸ってみた。

처량한 소리가 났다. 이젠 소용없다고 순간 생각했다. 이런 한동안, 내 두 손은, 조용히, 조용히, 육체의, 손으로 큰 창자, 발, 가장 무서운 머리에서 위쪽은, 가장 나중에 만져 보았다. 



ちゃんと付いていた。その時の、

무사히 붙어 있었다. 그 때의,


「よかった」

と言う思い、安心感は最高であった。そして一番大切な部分は、最後になったことに對し、ふき出すほど、可笑しかった。執着心が、强いために起こる現象であろう。こう思ったら、自分のことながら、また吹きだしてしまった。

「다행이다」

라고 하는 생각하고, 안심감은 최고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에 간 것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우스웠다. 집착심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일이면서도, 역시 참지 못하고 웃음을 떠뜨려 버렸다.  



ところが、それから二年後の、一九七三年の十二月、今度は朝方、起きようとした時である。身體が橫になったまま、少しずつ、少しずつ、上昇して行く。宙に浮いているのである。部屋の中間で止っている。身體を動かそうと、いろんなことをやってみた。どんなことをしてもその效果なしで、その時も大聲を上げ、身體を滿身の力で、振り動かした。必死である。終いに、どうにでもなれと、思った途端、徐徐に、もとの狀態に戾ったのである。

그런데, 그리고 2년 후의, 1973년 12월, 이번은 아침결에, 일어나려고 했을 때이다. 신체가 누운 채로, 조금씩, 조금씩, 상승해 간다. 공중(허공)에 떠 있는 것이다. 방 중간에 멈춰 있다. 신체를 움직이려고, 갖가지 행동을 해 보았다. 어떤 짓을 해도 그 효과는 없고, 그 때도 큰 소리를 지르며, 신체를 혼신(満身)의 힘으로, 들썩었다. 필사적이다. 끝내,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한 순간, 서서히,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온 것이다. 



とにかく一九七0年から、七一、七二、七三、七四年の前半までは、どうして、どうしてと思うくらい、靈的現象に會ったものである。

어쨓든 1970년부터, 71년, 72년, 73년, 74년의 전반까지는, 왜, 어째서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적 현상을 만났던 것이다.



結局は、物質界この世が、すべてはない、他次元の世界ありと、その力と存在を、知らしめられたようであった。

결국은, 물질계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고, 그 힘과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本當の自分

(진짜 나=진짜 내 자신))



一九九一年十二月中旬、この頃反省を始めると、途中で精神の集中が出來なくなったり、今迄考えてもみなかったことが、心に湧いて來たりで、どうも落ち着かない。そんななかで、

「一體、魂としての、私の實體は、何者なのであろうか」

ふと、そんなことが、腦裏をかすめたのである。

19971년 12월 중순, 이 무렵 반성을 시작하면, 도중에 정신 집중이 되지 않거나, 지금까지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았던 것이, 마음에 솟아나거나 해서, 아무래도 납득이 안된다. 그런 와중에,

「도대체, 영혼으로서의, 내 실체는, 어떤 것일까?」

문득, 그런 것이,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これこそ、三年ばかり前に、禪定を始める度に、同じようなことを、追いかけていたことがあった。その時は、

「そんなこと分かるわけがない、止めておこう」

이것이야말로, 3년 정도 전에, 선정을 하기 시작할 때마다, 같은 일을, 쫓아갔던 것이었다.  그 때는, 

「그런 것은 알 수 없다. 그만 두자」



それで、いつしか忘れていた。

どうして、あの時、そのようなことを思ったのか、自分でも定(さだ)かではない。

ところが、最近になり、反省を始めると、

「私は誰なのであろう」

그래서, 어느새 잊고 있었다.

어째서, 저 때, 그런 식으로 생각한 것인지, 나 자신도 확실치 않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반성을 시작하면,

「난 누굴까?」



いくら打ち消しても、すぐその思いが出てくる。

「また始まったのか」 

「仕樣がないな」

아무리 부정해도, 곧 그 생각이 떠오른다.

「다시 시작하던가」

「방법이 없나?」



心の中での問答である。

そのうちに、魂としての、實體を知ろうと思いながら、途中で、

「止めておこう」

と放りっぱなしで、終っていた三年前のことを,思い出していた。

마음속으로의 문답이다.

그 와중에, 영혼으로서의, 실체를 알려고 하면서, 도중에,

「그만 두자」



そうだ、あの續きをやるために、反省のときに、途中から急に內容が變わったり、集中が出來なくなったり、してい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と、思ったのである。

그렇다, 저런 식으로 계속해 왔기 때문에, 반성할 때에, 도중에서 급히 내용이 바뀌거나, 집중이 안 되거나, 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それからは、もう一人の自分は、誰なのか、それを心にしっかり入れ、反省禪定をするたびに、心の中で言い續けた。

앞으로는, 또 한 사람의 나(自分)는, 누굴까, 그것을 마음에 깊이 똑똑히 새기고, 반성 선정을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계속 말했다.



しかし、そのことも、最初は心を集中し、何とか道をそれまいと、頑張っていたのであるが、同じことばかり度重ねて、約三個月は過ぎ、そのことを忘れて、他のことに內容が變わりそうになって來た。十二月に入ってのこと、いつものように、反省禪定を始めて、約三十分くらい經った頃である。眼前に、中國の僧侶が姿を見せた。

하지만, 그 일도, 처음에는 마음을 집중하고, 어떻게든 길(道)은 그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며, 분발하고 있던 것이지만, 똑같은 짓만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약 3개월은 지나서, 그 일을 잊고, 차츰 다른 것으로 내용이 변하게 되었다. 12월에 접어들어, 여느때처럼,반성 선정을 시작해서, 약 30분 정도 지난을 무렵이다.  눈앞에, 중국 승려가 모습을 보였다.



はっとそれを見て、

「あっ!! もう一人の自分」

と、そんなことを、つぶやいていた。そして、はっとした。

그것을 보고 순간 흠칫해서,

「아!! 또 한 사람의 나(自分)」

라고 하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はっとしてはいけない。しっかり眼を見張ろう」

こちらを見て、何とも、やわらかな、笑い顔をしている。守護靈である。

「もう一人の自分」と、瞬間思ったのであるが、どうも違うようであった。

「흠칫해서는 안 된다. 똑똑히 눈을 부릅떠라」

이쪽을 보며, 정말로, 부드러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수호령이다.

「또 한 사람의 나(自分)」라고, 순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것 같았다. 



肉體舟の己を動かしている、本當の己が、その肉體舟を、見ることは可能である。しかし、肉體舟を動かしている、本當の自分を、その本當の自分が見ることは、不可能かも知れない。

육체배(肉體舟)의 나(己)를 움직이고 있는, 진짜 내(己)가, 그 육체배를, 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육체배를 움직이고 있는, 진짜 나(自分)를,  그 당사자인 내 자신이 보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この世であれば、鏡があるのだから、見ることは出來るのに。

だんだんと一つの枠の中に、入り込で行くのに、氣が付いた。

이 세상이라면, 거울이 있으니까, 볼 수는 있는데.

점점 하나의 틀(거푸집) 속에, 많은 것을 한꺼번에 넣으려 가는, 기분이었다.



「これは少し、迷路に入り過ぎたかな、分からないことは、無理をするのは、止めておこう」

「止めよう」

「그것은 좀, 미로(迷路)에 너무 깊이 들어간 것이랄까, 모르는 일은, 무리를 하는 것은, 그만두자」

「그만두겠다」



結局また

「止めよう」と。

결국 역시

「그만두겠다」라고.



そう思いながら、禪定を解こうとした。その瞬間である。たまに禪定中に見た、白髮・白髭の老僧の姿が、現われたのである。よく見ていると、その姿が、次第に若い壯年僧に變わって來た。

「おやおや, どうしたのだろう」

그렇게 생각하면서, 선정을 풀려고 했다.  그 순간이다. 가끔 선정 중에 본, 흰머리(白髮)에・흰수염(白髭)의 노승(老僧)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자세히 보고 있자, 그 모습이, 점점 젊은 장년승(壯年僧)으로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게 뭔 일이야」



その時、底力のある大きな聲が、聞こえて來たのである。

「あなたが追求している、あなたは、今あなたの前に立っているのが、あなたなのです」

그 때, 저력(底力)이 있는 큰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당신이 추구(追)하고 있는, 당신은,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이, 당신입니다」



私は,

「そんな馬鹿なことがあるものか。それこそ、鏡もないのに、自分の姿など、見れるはずがない」

나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 리 있나, 그야말로, 거울도 없는데, 내 모습 을, 볼 리가 없어」



ところが、この時またもや、大きな聲が聞こえて來た。

그런데, 이 때 또다시, 큰 소리가 들려왔다.



「當り前です。よく氣が付きましたね、實際は、私が、あなたの姿をして、見せているのです」

「そんなことがあるのかな」

「당연합니다. 잘 아시는 군요. 실제는, 제가, 당신의 모슴을 하고,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리 있나?」



「あなたは、必ずと言ってよいくらい、こちらのことに對いし反發をされる。しかし、こちらでは、あなたは一度では、信じないことを承知しております。しかし、この世にいる、わたしを入れて、あなたのグループとしての、私達五名のものは、それぞれ必要に應して、グループの誰の姿にもなれるし、聲にしても、それぞれ聲を出すことぐらいは、可能なのです」

いやはや實に、丁寧な言葉であった。

「당신은,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이쪽 일에 대해서 반발을 하신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당신은 한 번으로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ㅏ 이 세상에 있는, 나를 포함해서(わたしを入れて), 당신의 그룹(group)으로서의, 우리들 5명의 사람(もの)은, 각자의 필요에 응해서, 그룹(group)의 누구의 모습으로 될 수 있고, 목소리라고 해도,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일 정도는, 가능합니다」

거참 실로, 예의 바른 말씨었다.



姿を見せてくれたのは、守護靈で、私の中國時代のすぐ後に、この世に現われ、嚴しい修行をしてあの世に歸られた、グループの一人であった。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수호령이며, 내가 중국시대 바로 다음에, 이 세상에 나타나서, 엄격한 수행(修行)을 하고 저 세상으로 돌아간, 그룹(group)의 한 사람이었다.



言われたことを、反省してみた。以前にも同じようなことを、言われたことを思い出した。それと同時に、現われた私であると言う過去世と、今の自分を比較をしてみなくても、何と隔たりのあること、恥入るばかりである。

말을 들은 것을, 반성해 보았다. 이전에도 같은 것을, 들은 것을 생각해 냈다. 그것과 동시에, 모습을 나타낸 나(私)라고 하는 과거세(過去世)와, 지금의 내 자신(自分)을 비교를 해 보지 않아도, 어쩌면 이렇게 차(隔たり)가 있음에, 몹시 부끄러웠다, 



「一體何をやっているのだろう。これでよいのだろうか」

穴があったら入りたいとは、このことではないのかと、思わざるを得ないものがあった。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것으로 좋은 것일까」

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고는, 이런 경우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とにもかくにも、ありがたいことであった。ある時は、唯唯、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他に言いようがなかった。

아무튼, 고마운 일이었다. 어떤 때는, 오로지, 

「고맙습니다」

달리 말할 수가 없었다.



この日は、何が何だか、分かったようで、分からないようで、分かったような思いで、禪定を終えたものであった。

이 날은, 뭐가 뭔지, 알듯, 모를 듯해서, 모른 것 같아서, 선정을 끝냈던 것이었다.



こうしたことを通してみると、あの世もこの世も、一つの中にあることが、今迄以上に知ることが出來たのは、私にとっては、大收穫であった。

이러한 일을 통해서 보면, 저 세상과 이 세상도, 하나의 속에 있는 것이, 지금까지 이상(以上)으로 알 수가 있었던 것은, 나로서는, 큰 수확(收穫)이었다.







人生の目的と使命

(인생의 목적과 사명)



師の敎えの第一は、

人間が、この世に生(せい)を受けた目的・使命は,

一、佛國土・ユートピアの建設

一、業修正

一、菩薩業

스승님의 가르침의 제일(第一)은, 

인간이, 이 세상에 생을 얻은 목적과 사명은,

첫째, 불국토와 유토피아(이상향)의 건설

첫째, 업(業)을 수정(修正)하는 것.

첫쩨, 보살업(菩薩業)



右の三つである。人間は誰しも、その目的と使命をもって、生まれていたのである。

이상(右=以上) 3가지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しかし人間は、このように、目的・使命を決められているが爲に、意識する、しないに拘わらず、自分で自分を縛りつけたような壓迫感を、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感じるものである。

하지만 인간은, 이와 같이, 목적과 사명을 정해져 있기 때문인데, 의식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동여맨(속박한) 압박감을, 부지불식간에, 느끼는 것이다. 



それは、人間が、宇宙という、超巨大なる器の中に生存する、萬物の一つとして、生かされ、生きていると言うことに、外(ほか)ならないのである。

그것은, 인간이, 우주(宇宙)라고 하는, 초 거대한 그릇 속에 생존하는, 만물의 하나로서, 되살아나, 살고 있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인 것이다.



この宇宙の中に生存している、巨大な天體始め、極微なる細菌に至るまで、勝手な行動は出來ないように、造られているのである。この中で人間だけは、勝手氣儘な行動をし、今や自然を破壞し、人間以外の動物・植物・鑛物を殺戮し、次は自ら亡び行くことも知らず、ひたすら、欲望を滿たすために、傲慢な行動を省みることもなく、續けられ、これからも續けられることであろう。このような傲慢な行動は、絶對に許されるものではない。

이 우주 속에 생존하고 있는, 거대한 천체(天體)를 비롯한, 극미(極微)한 세균(細菌)에 이르기까지, 제멋대로 행동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 속에서 인간만은,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고, 지금이나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 이외의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을 살육하고, 다음은 스스로 멸망해 가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오만한 행동을 뒤돌아보는(반성하는) 일도 없이, 계속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오만한 행동은, 절대로 용서(허락)할 일이 아니다(絶對に許されるものではない). 



しかし人間は、これらを承知してかしないのか、敢えて自然に對し、反抗的行動を續けて行くのである。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것을 알건 모르건, 감히 자연에 대해서, 반항적 행동을 계속해 가는 것이다.



このように自然に對し、率直(素直)さを忘れてしまったのが、萬物の靈長であるべき、人間の姿そのものなのである。

이와 같이 자연에 해서, 솔직함을 잊어버린 것이, 만물의 영장이어야 할, 인간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物質の世で、人間一人一人が造り出す、歪みの根本的なものが、この邊にあると言うことである。

물질의 세계에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비뚤어짐의 근본적인 것이, 이와 같은 사람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다.



釋迦やキリストは、これらのことを、誰が聞いても、理解できるように、說かれておられたのである。

석가나 예수는, 이러한 것을,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신 것이다.



しかるに、多く人人は、物質の世がすべてであり、生まれて、地位・名譽・財産を得るのがその目的であり、死ねば終いであるとし、あの世を無視、ひたすら物に對しての欲望を捨てきれず、翻弄されているのが、今世での人間の哀れな姿である。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의 세계가 전부이며, 태어나서, 지위나 명예나 재산을 얻는 것이 그 목적이며, 죽으면 끝이라고 하며, 저 세상을 무시(無視)하고, 오로지 (소유하는) 것(物)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농락(飜弄)당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세상(今世)에서의 인간의 비참한 모습(哀れな姿)이다. 



この邊から、人間は、佛の敎えから、どんどん遠のいてしまい、佛や天使の敎えは、特定の人のものと、思い込むようになって來たのである。

이와 같은 사람에게서, 인간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속속 멀어져 가 버리고, 부처나 천사의 가르침은, 특정한 사람의 것이라고, 완전히 믿어버리게 되어 왔던 것이다.



少なくとも、人間がこの地球上に住むようになった、何億年の昔から、佛も天使も、またその敎えも、儼然として存在していたのである。

적어도, 인간이 이 지구상에 살게 된, 몇 억년의 옛날부터, 부처나 천사도, 또한 그 가르침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しかし、一般には、物質至上主義となり、欲望が芽生え、それと平衡して、忘れてはならない心の存在を、見失ってしまった狀態のまま、人間の永い歷史が、現代の世を造り出してしまった、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だろう。

하지만, 일반(一般)에는, 물질지상주의가 되어, 욕망이 싹트고, 그것과 평행해서, 잊어서는 안 되는 마음의 존재를, 잃어 버린 상태인 채로, 인간의 오랜 역사가, 현대의 세상을 만들어 버렸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生かされ生きている 

(되살아나서 살고 있다)(소생되어 살고 있다)



地平線の彼方には、我我肉體人間の知らない世界がある。

지평선 저쪽에는, 우리들이 육체 인간의 모르는 세계가 있다.



常に春の季節、花は咲きみだれ、蝶は舞い、美しく着飾った鳥が飛びかう、何とものどかな風景。

언제나(늘) 봄의 계절,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만발하고), 나비는 춤추고, 아름답게 장식한 새가 난무하는,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 



その世界の住人は、皆若若しく、誰一人として、身勝手な、自己保存的な生活をする者は、一人としていない。ユートピアそのものである。

그 세계의 주민(住人)은, 모두 젊디젊고(생기발랄하고), 어느 한 사람도, 제멋대로인, 자기보존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상향(utopia) 그 자체인 것이다.



地平線それは、彼方の世と、此方の世の接點でもある。宇宙に存在する萬生萬物すべてものは、それぞれ果たさねばならない、目的と使命をもって、彼方の世から、地平線を越えて、此方の世にやって來たのである。

지평선 그것은,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의 접점이기도 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만생만물 모든 것은, 각자가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저쪽 세계에서, 지평선을 넘어서, 이쪽 세계로 파견된 것이다. 



その目的・使命というのは、彼方の世、そして此方の世を、より調和させ、ユートピアを造り出すためである。

그 목적과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저쪽 세계, 그리고 이쪽 세계를, 보다 조화(調和)시키고, 유토피아(이상향)을 만들기 위함이다.



しかし此方の世は、それぞれの環境、境遇によって、他人を恨んだり、誹ったり、妬んだり、怒り、終いには、愚痴を言わなければ、おさまらないような、雜音の多い世なのである。こうした世を、一定の時間をもって、いやでも生きなけらばならないのである。

하지만 이쪽 세계는, 각자의 환경, 경우에 의해서, 타인을 원망하거나, (사람이 잘못을 지적해서) 비난하거나(誹ったり), 질투하거나, 화를 내고, 마침내는, 푸념(넋두리)을 안 하면, 조용해지지 않는(가라앉지 않는,수습되지 않는), 잡음이 많은 세계인 것이다. 이런 세계를, 일정한 시간을 가지고, 싫어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この雜音より逃避したくなるのも、此方の世の常であり、逃避の場などあるわけがないのに、事の理を知らない爲、その逃避しようとする心で、惱み苦しみ、迷いを造り、それらを解決することなく、彼方の世に歸る時が來てしまうのである。

이 잡음에서 도피하고 싶어지는 것은, 이쪽 세계의 상사(常 흔히 있는 일이며), 도피의 장(場) 따위는 있을 리가 없는데, 일(事)의 이치(理)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도피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고민(걱정)하며 괴로워하며(惱み苦しみ), 마음의 망설임(迷い미망)을 만들고, 이러한 것을 해결하지 않고, 저쪽 세계로 돌아갈 때가 와 버리는 것이다.



しかし、逃避をしていたことは、此方の世にやって來た目的・使命を、果た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ある。心を淨化しなかったといことになる。

하지만, 도피를 하고 있던 것은, 이쪽 세계로 파견된(보내진) 목적과 사명을, 완수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정화(淨化)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心をより淨化して、時を迎えたものは、喜びの中に地平線を越え、彼方の世の故鄕へ歸り、若さ溢れる本來の己に戾って行けるのである。

마음을 보다 정화(淨化)하고, 때를 맞이한 사람은, 기쁨 속에서 지평선을 넘어, 저쪽 세계의 고향으로 돌아가, 젊음이 넘쳐흐르는(젊음이 넘치는) 본래의 자기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此方の世で、逃避ばかりで心を淨化もせず、地平線を越えたものは、スムーズには、故鄕には歸ることは出來ないのである。

이쪽 세계에서, 도피만으로 마음을 정화도 하지 않고, 지평선을 넘은 사람은, 순조롭게는, 고향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自ら反省をし、果たさなかった事柄を、もう一度初めから、やらねばならないものなのである。これが、思いも及ばないような、長い時間となるのである。この場が地獄なのである。

스스로 반성을 하고, 완수하지 못한 일(事柄 사항)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각이 미치지 않는, 오랜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곳(場)이 지옥인 것이다. 



守護靈が、こんなことを話してくれた。

수호령이, 이런 내용을 말해 주었다.



「彼方の世から、地平線を越えて、此方の世に來たるものは、すべからく、此方の世に出現する約百年前くらい前に、兩親始め、夫婦、子供、兄弟、姉妹、友人、すべてのものは、約束をして、此方の世に送り出されるものである。これを緣生ともいう。何事もすべて、緣によって現われ、緣によって去ってゆくのである」

「저쪽 세계에서, 지평선을 넘어서, 이쪽 세계로 온 사람(것)은, 마땅히, 이쪽 세계에 출현하는 약 100년 정도 전에, 양친을 비롯한, 부부, 어린이, 형제, 자매, 친구, 모든 것은, 약속을 하고, 이쪽 세계로, 내보내지는 것이다. 이것을 연생(緣生)이라고도 한다. 무슨 일이든 전부, 인연(緣)에 의해서 나타나고, 인연(緣)에 의해서、사라져 가는 것이다」



これ正に、寸分の狂いもなく運行されている、神が決められた法則であり、攝理なのである。

이것은 바로, 조금도 착오가 없이 운행(運行)되고 있는, 신(神)이 정하신 법칙이며, 섭리(攝理)인 것이다. 



萬生萬物は、神が創造されたものであり、すべては、神によって生かされ、目的・使命を與えられ、その目的・使命を果たすために、永遠に地平線を行き來している、所謂、轉生輪廻を繰り返しているのである。

만생만물은, 신(神)이 창조하신 것이며, 만물(すべて)은, 신(神)에 의해서 되살아나서, 목적과 사명을 부여 받아, 그 목적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영원히 지평선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이른바(所謂), 전생윤회(轉生輪廻)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このようなことは、信じる信じないは別として、知っておくことは大切であり、無駄にはならないものと思う。  

이러한 것은, 믿고 믿지 않고 와는 별도로, 알아 두는 것은 중요(大切)하며, 헛되지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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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せを得ようとするものは欲を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욕망을

捨て己の全なる心を發見する   버리고 자신의 온전한 마음을 발견하는

ことに努力するでのだ  上人   것에 노력하는 것이다.  타케토








第二章神から貸與物

[제2장 신에게서 빌린 대여물]



流れ(흐름)



太陽と月、そして地球の、相對的な自轉・公轉による引力によって、地球上に、滿潮・干潮という現象が起きる。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의, 상대적인 자전과 공전(自轉・公轉)에 의한 인력(引力)에 의해서, 지구상에, 만조(밀물)와 간조(썰물)(滿潮・干潮)라고 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この滿潮と干潮の間を、取りもつが如く、運動をしているもながある。滿潮・干潮による潮の流れ、そして時間とうる流れである。

이 만조(滿潮)와 간조(干潮)의 때를, 맺어 줌과 같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조와 간조(滿潮・干潮)에 의한 바닷물(潮)의 흐름, 그리고 시간(時間)이라고 하는 흐름이다. 



これこそ、誰が動かしているのか、寸分(すんぶん)の狂(くる)いもない、自然現象である。

이것이야말로, 누가 움직이고 있는지, 조금도 착오가 없는(조금의 어긋남도 없는), 자연현상이다. 



これによって、人間の大方のものは、知る知らないに拘わらず、生と死という、嚴肅な行事に從って、滿潮時の潮に乘り、その姿を現わし、苦樂のドラマを經驗し、時到(ときいた)らば、干潮時に起きる引潮(ひきしお)に乘り、その姿を消して行くのである。

이것에 의해서, 인간 대부분의 사람은, 알고 모름과 상관없이, 삶(生)과 죽음(死)이라고 하는, 엄숙한 행사(行事)에 따라서, 만조 때의 바닷물(潮)을 타고, 그 모습을 나타내고, 고락(苦樂)의 드라마를 경험하고, 때가 이르면(오면), 간조(干潮) 때에 일어나는 썰물(引潮)을 타고, 그 모습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この運動を、萬生萬物すべてのものは、永遠に續けているのである。

이 운동을, 만생만물 모든 것은,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宇宙自然の中は、誰が、どのようにして造り出したのか、人間の關與することの出來ない、關與すべきでない領域が、儼然として存在し續け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우주 자연(宇宙自然) 속을, 누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 낸 것인지, 인간의 관여할 수 없는,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 엄엄히 존재하며 계속되고 있다, 고 하는 것이다.



しかも、秩序整然として、何事も、運行されて行く。

게다가, 질서정연하게, 무슨 일이든, 운행되어 간다. 



これは、素晴らしい、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のである

이것은, 훌륭하다, 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こうした中に、輪廻という、すべてを生かし續けている、大きな運動がある。

이러한 많은 것 중에서 특히, 윤회(輪廻)라고 하는, 만물(すべて)을 계속 소생시키고 있는, 큰 운동(運動)이다. 



人間始め、萬生萬物は、この輪廻という運動の中で、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である。

인간을 비롯한, 만생만물은, 이 윤회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되살아나서, 살고 있는 것이다. 



「そんな、馬鹿なこと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 있나)」



と聞いたものは、言うであろう。

라고 들은 사람은, 말할 것이다.


人間は、この宇宙という、超巨大なものが造られた時に、魂として、萬生萬物と共に、高次元の世界に造り出されたのであり、今迄に、地球以外の天體を調和し、約二億年前に、この地球に、大調和という、目的と使命をもたされ、送りだされたのである。

인간은, 이 우주라고 하는, 초 거대한 것이 만들어진 때에, 영혼(魂)으로서, 만생만물과 함께, 고차원의 세계에서 만들어 진 것이며, 지금까지, 지구 이외의 천체(天體)를 조화(調和)을 이루고, 약 2억년 전에, 이 지구에,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적과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내보내진 것이다.







★중요한 내용인지라, 밝힙니다 ★

今迄に、地球以外の天體を調和し、約二億年前に、この地球に、大調和という、目的と使命をもたされ、送りだされたのである。

이 부분은, 굉장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2003년에 돌아가신, 이 책의 저자께서. 


그래서, 제 블로그에, 『가르침의 글』카테고리에, 새로운 부활과 천사의 재래, 동영상이 함께 올려진 것이 있습니다만.

일본내에서 현재 운영 중인 사이트에서 앞 부부만 복사해 왔습니다.

http://houwomanabukai.org/tes39.htm 


참고로, 다카하시 신지님께서는, 이 강연을 하신 후, 20일 후에 승천하시었습니다. 

간략히, 아주 쉽게 번역을 잠시 하겠습니다.



GLA総合本部

'76 東 北 研 修 会

 [山形県ホテル蔵王]

1976年6月4~6日(S51)1976년 동북연수회[야마카다현 호텔 자오우(蔵王)]


「新復活」새로운 부활

高橋信次先生最後の御講演(6月5日)다카하시 신지 선생님  최후의 강연 (6월 5일)



 非常に美しい自然の緑に包まれた環境の中で、東北の研修会が行われることを、心からお祝い申し上げます。今日の演題は「新復活」。

매우 아름다운 자연의 신록에 감싸인 환경 속에서, 동북 연수회가 열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오늘의 강연은, 새로운 부활.



 ちょうど、現在、東京地方には創世記時代の映画が来ております。しかし人類は、緑に包まれた、しかも神の光に満たされた地球という環境に、今から3億6500有余年前、初めてベータ星という星より、神より与えられた新しい緑に包まれたこの地球上に、人類は最初にしるしたのであります。その当時、ベータ星は調和され、私達は新しい新天地を求めて、最も調和されたこの地球という環境を選んだのであります。

정확히, 현재, 도쿄 지방에서는 창세기 시대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신록에 감싸인, 게다가 신의 빛으로 가득 찬 지구라고 하는 환경에, 지금으로부터 3억 6500만년여년 전에, 최초로 베타별이라고 하는 별에서, 신으로부터 주어진 새로운 신록으로 감싸인 지구상에, 인류는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베타별은 조화되어, 우리들은 새로운 신천지를 찾아서, 가장 조화된 이 지구라고 하는 환경을 선택한 것입니다.



 その当時、最初に反重力・光子宇宙船という、今でいうUFOです。それに乗りまして、最初、地球上の人類は、神の光によって満たされた、神の光によって満たされた天使である所のエルランティー(L-Lanty)このエルランティーという方が中心になりまして、エルランティーは直接、神の光を受けているところの真のメシアであります。

그 당시, 최초에 반동력, 광자우주선이라고 하는, 지금에 말하는 UFO입니다. 그것을 타고, 최초, 지구상의 인류는, 신의 빛으로 충만된, 신의 빛으로 충만한 천사인 엘란티((L-Lanty)) 이 엘란티라고 하는 분이 중심이 되어, 엘란티는 직접, 신의 빛을 받고 있는 참된 메시야입니다.



 そしてエルランティーの光の直系と致しまして、皆様は光は7色に分かれます。7色のプリズムということを想像致しまして、全く同じように神の光はここから7色の光に分かれます。

그리고 엘란티의 빛의 직접 물려받아 이어져 있는 계통으로 하며, 여러분(방청객)은 빛은 7색이라고 알고 계십니다.  7색의 프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하시고, 완전히 똑같이 신의 빛은 이곳에서 7색의 빛으로 나뉩니다.


(((동영상)))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위 사이트에는 없습니다.






 この7色の光の方向を決めている方が、ミカエルという方であります。ミカ(Mika,Michael)といいます。ミカといわれる天使です。神の直系です。神の光の直系です。そしてこのスリットを通し、神は光なり、その光の6人の光の線がこのスリットを通して霊子線が繋っております。この中に夫々のスリットを通して7人の天使がおります。このスリットを通して7人の天使がおります。

이 7색의 빛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분이, 미카엘 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미카((Mika,Michael)이라고 합니다.  미카 라고 하는 천사입니다.  신(神)의 직계(直系: 직접 물려받아 이어져 있는 계통)입니다.  그리고 이 슬립을 통해서, 신은 빛이며, 그 빛의 6명의 빛의 선(線)이 이 슬립을 통해서 영자선(靈子線)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안에 각자(각기)의 슬립을 통해서 7인이 천사가 있습니다.  이 슬립을 통해서 7인이 천사가 있습니다.



★참고로, 처음 듣는 분들이 이 지구상에는 상당히 많을 것인, 이 단어,

영자선(靈子線)이란, 말은, 육체와 영혼(개체로서의 영혼)을 연결하는 선(線), 줄입니다. 이것이 끊어지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를 하게 됩니다.


곧 이세상에서 말하는, 사망(死)을 뜻하는 말입니다. 



★ 분명히, 이 책의 저자이신, 朽木上人(쿠치키 타케토)는 자신의 스승님이라고 하시는, 다카하시 신지님의 말씀과는 틀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분은, 1971년에 다카하시 신지님을 처음 강연을 통해, 만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오류를 범하는 부분이어서, 올린 내용입니다. 

약 2억년 전이, 아니라, 정확하게 3억 6500만년, 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엘란티, 란 이름은,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원문으로, 창세기 1장 1절을 읽으면, 엘로힘(ELOHIM)입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 믿으시던 안 믿으시던 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7인의 천사는, 7대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中略>

★ 본문을, 계속해서, 번역하겠습니다. ★






したがって、たとえこの地球が、存在するしないに拘わらず、魂は永遠に存在をし、高次元と各各の天體、物質的次元を、輪廻して行かねばならないのである。

따라서, 가령 이 지구가, 존재하든 하지 않는 상관없이, 영혼(魂)은 영원히 존재를 하고, 고차원과 각각의 천체(天體), 물질적 차원을, 윤회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これが、生かされ、生きているものの、宿命なのである。

이것이, 되살아나서, 살고 있는 것(사람)(もの)의, 숙명인 것이다.



現在、この地球上に生存している肉體人間は、この大宇宙を支配している意識、神の代行としての兩親によって、肉體を提供され、その肉體を操作し生き續けている、魂なのである。言わば神の子人間なのである。

현재, 이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육체 인간은, 이 대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意識), 신(神)의 대행(代行)으로서의 양친(兩親)에 의해서, 육체를 제공받아, 그 육체를 조작하며 계속 살고 있는, 영혼(魂)인 것이다. 말하자면 신(神)의 자녀(子) 인간(人間)인 것이다.



しかも、肉體は、今世において、神の意に適った生活をするための、表現體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게다가, 육체는, 현재의 세상(今世)에 있어서, 신(神)의 뜻(意)에 적합한 생활을 하기 위한, 표현체(表現體)다 라고, 하는 것이다.



したがって、これは大切に保護をし、使わせていただくことは、勿論のことである。

따라서, 이것은 소중(大切)하게 보호를 하고, 유용하게 쓰는 것은, 물론인 일입니다.



このように、肉體というものは、自分であって自分のも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しかも、この肉體というものは、六十兆という膨大なる數から、成り立っているものであり、今世での、もっとも近い、大切な協力者なのである。

이와같이, 육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이면서도 자기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육체라고 하는 것은, 60조(兆)라고 하는 팽대한 숫자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며, 현재의 세상(今世)에서의, 가장 가까운, 소중한 협력자인 것이다. 



しかし、高次元の魂であっても、この肉體という表現體の、眼耳鼻舌身という、五つの器官を通してしまうと、高次元の自分を忘れ、物質に對して欲が生まれ、苦しみを造り出し、何のために生まれたのかも忘れ、この地上界の、終了の時を迎えてしまうのである。

하지만, 고차원의 영혼(魂)이라고 해도, 이 육체라고 하는 표현체의, 눈, 귀, 코, 입, 몸이라고 하는 5개의 기관(器官)을 통해 버리면, 고차원의 자기 자신(自分)을 잊어 버리고, 물질에 대해서 욕망(欲)이 생겨서, 괴로움을 만들고, 무엇 때문에 태어난 것인지도 잊고서, 이 지상계의, 종료의 때를 맞이해 버리는 것이다.



キリスト敎の舊約聖書にアダムとイブは、人間誕生のことであろう。

기독교(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에 아담과 이브는, 인간탄생의 일(こ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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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추가합니다. 바쁘네요^^ .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의 최후의 강연, 새로운 부활(新復活)과 태양계의 천사들(太陽系の天使達),1976년 6월4~5일.


一九七六年(昭和五十一年)六月四日、五日は岩手県盛岡市での東北研修会では、初日の四日は「新復活」、五日の講演は「太陽系の天使達」だった。


1976년(쇼와51년) 6월 4일, 5일은 이와테현((岩手県:일본 동북지방의 태평양에 면한 현)) 모리오카시((盛岡市: 이와테현(岩手県)의 현청 소재지))에서의 동북 연수회에서는, 첫째날인 4일은, 「새로운 부활(新復活)」、5일의 강연은「태양계의 천사들(太陽系の天使達)」이었다



1976년 6월 4일 「새로운 부활(新復活)」   



【지옥계의 시초(시작)】




地球の創世記は三億六千数百年前に最初の七大天使がこの地上界に生き約六千人の人類がエデンの園をつくり、第二艇団が地上界に着地し生活するようになって立法を犯す人々が出てまいりました。

지구의 창세기는 3억 6천 수백 년 전에 최초의 일곱 대천사가 이 지상계에 살며 약 6천명이 인류가 에덴동산을 만들고, 제2선단이 지상계에 착지하여 생활하게 되어 입법(立法: 법을 제정함)을 어기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その為に、その責任者であるミカエルは規律を破るところの民に対し一部分エルカンターラから移しまして〃そなた達は神の子としての己れ自身を再確認するために、もう一度自分の思念と行為、行っていることと、思っていることを修正していらっしゃい〃と、その場所から多くの人々がその位置をかえました。その人々が後、エデンの園との連絡を絶ち、やがて天上界との連絡をたち、ついに天上の世界に帰ることなく、地獄の世界をつくり出してしまいました。当時は地獄は存在していなかったのです。それがアダムとエバの後物語に変わってしまったのです。

그 때문에, 그 책임자인 미카엘(Michael)은 규율을 깨뜨리는 곳의 국민에 대해서 일부분 엘칸타라(El-Kantara)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서〃그대들은 신(神)의 자녀(子)로서의 자기 자신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사념(思念)과 행위, 행하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수정(修正)해서 오십시오〃라고, 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후에, 에덴동산과의 연락을 끊고, 이윽고 천상계와의 연락을 끊고, 마침내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지옥의 세계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는 지옥(地獄)은 존재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Adam)과 에바(Eva: Eve의 애칭)의 훗날의 이야기(전설)로 변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その為に創世記の映画とはちょっと違いますけれども、私はこの肉体をもって天上の世界に行って、現実にその姿を見て来たのです。

그 때문에 창세기의 영화와는 좀 다르지만, 저는 이 육체를 가지고 천상의 세계로 가서, 현실에 그 모습을 보고 왔던 것입니다. 



님그림자 2013.04.30 21:14  ▶  제 블로그입니다. 

 http://blog.daum.net/5lamp/814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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魂は、この地上が調和されるまで、高次元のあの世と、三次元の物質の世を、神の子として、永遠に生き續けて行くのである。

영혼(魂)은, 이 지구가 조화될 때까지, 고차원의 저 세상과, 3차원의 물질의 세계를, 신(神)의 자녀(子)로서, 영원히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人間、一人一人の今日は、過去の生きて來たすべてを、総合(綜合)したものなのであることを忘れず、今日現在を學び、且つ、その時時において、行爲し、活用し得たものは、明日の自分であり、今は魂としての、神の意である大調和に向かって、心を淨化することの、途中にある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오늘은, 과거의 살아온 모든 것을, 종합한 것인 것임을 잊지 않고, 오늘 현재를 배우고, 한편으로는(동시에), 그때그때에 있어서, 행위하고, 활용해서 얻은 것은, 내일의 자기 자신이며, 지금은 영혼(魂)으로서의, 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를 향해서,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것의, 도중에 있다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このように、人間が、その目的・使命である、調和のある佛國土・ユートピアを造るために,動物・植物・鑛物は生存をし、人間が、その目的・使命を果たすために、その生命を犧牲にしてまで、協力をしてくれてい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のである。

이와 같이, 인간이, 그 목적과 사명인, 조화를 이룬 불국토・유토피아(이상향)을 만들기 위해서, 동물과 식물과 광물은 생존을 하고, 인간이, 그 목적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 생명을 희생을 해서, 협력을 해 주고 있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しかるに、地上界の現況は、殘念ながら、人間の驕りの心・行爲が原因で、動物・植物・鑛物は、急速に激減をし、徐徐に徐徐に、自然のその姿さえ、變貌しつつある。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계의 현황은, 유감스럽지만, 인간의 교만한 마음과 행위가 원이며, 동물과 식물과 광물은, 급속히 격감을 하고, 서서히 서서히, 자연의 그 모습마저도, 변모하는 중이다. 



このように、動物・植物・鑛物が、人間の手によって、その姿を消して行くということは、次に消え失せるのは、人間であることを、誰も、それ迄は考えもしない、考えたくもないこととなるであろう。

이와 같이, 동물과 식물과 광물이, 인간의 손에 의해서, 그 모습이 사라져 간다고 하는 것은, 다음에 사라져 버리는(없어지는) 것은, 인간임을, 아무도, 그것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될 것이다. 



人間の驕りの心は、この大自然は、人間のものであり、人間のためにあると思い込んでいる。この邊に原因があるのである。

인간의 교만한 마음은, 이 대자연은, 인간의 것이며,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어 버리고 있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다. 



人間だけでは、どのようなことをしても、生きられないのである。これらのことを、省みる人間が、どれだけいるのか、寂しい限りである。

인간만으로는, 어떠한 일을 해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되돌아보는(반성하는省みる) 인간이, 어느 만큼 있는지, 울적하기(허전하기) 그지없다(寂しい限りである)



多くの人人は、眼の前に、何ら變わったことが起きないためか、人間だけは、單獨で生きられると、變な安心感をもっ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

많은 사람들은, 눈 앞에, 아무런 변한 것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인지, 인간만은, 단독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이상한 안심감(安心感)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こうした思いは、氣付くと、氣付かずとに拘わらず、日日の生活を通したなかにもあるのであり、それに氣付く餘裕が、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あろう。

이런 생각은, 알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음에도 상관없이, 매일의 생활을 통한 중에도 있는 것이며, 그것을 알아차릴 여유가, 없다고 하는 것일 것이다.



例えば、何か異變を耳にした、その時、日本人であれば、日本だけは、中國人であれば、中國だけは大丈夫。自分の住んでいる處は大丈夫、自分の家だけは大丈夫、私だけは日日平穩無事である、またそうゆり度いと、勝手な願いをするものが多いようだ。

예를 들면, 무언가 이변(異變)을 얼핏 들었다, 그 때, 일본인이면, 일본만은, 중국인이면, 중국만은 괜찮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은 괜찮다, 자기 집만은 괜찮다, 나만은 나날의 평온 무사하다. 또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대로 기원(願)을 한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人間は勝手なものである。さんざん、人間以外のものを、自らの欲望によって、破壞をしておきながら、自分達の番が來ると、恐らく、平穩無事を祈ることであろう。

인간은 제멋대로인 것이다. 실컷, 인간 이외의 것을, 자기의 욕망에 따라서, 파괴를 하고 모르는 체하며, 자기들 차례가 오면, 아마(필시), 평온무사(平穩無事)를 빌 것이다. 



この人間の勝手な思いが、實は曲者というか、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姿なき魔に、跳梁される結果を、招くことになるのである。

이 인간의 제멋대로인 생각이, 실은 교활한 사람(경계해야 할 자 자, 曲者)라고 할지, 부지불식간에, 형체가 없는 악마(魔)에게,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게 게 하는 결과(跳梁される結果)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これらは、すべて個個の人間の心が、造り出すものであ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러한 것은, 전부 개개인의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現實に、この二十數年の時の流れの中で、季節の寒溫が、徐徐に、溫暖化の傾向にある。森林は、觀光の名のもとに開發され、空港や都市、遊園地を造るため、山を崩し、海を埋める。山にあった植物、山に住んでいた動物は、何處かに、その姿を消してしまう。山を崩した後は、人間が住む宅地となる。これが、當然のように行なわれて行く。

현실에, 이 20수년의 때의 흐름 속에서, 계절의 차고 따뜻함(寒溫)이, 서서히, 온난화의 경향에 있다.  삼림은, 관광의 미명 하에 개발되어, 공항이나 도시, 유원지를 만들기 위해,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매립한다. 산에 있던 식물, 산에 살고 있던 동물은, 어딘가로, 그 모습이 사라져 버린다.  산을 무너뜨린 후는, 인간이 사는 주택이 된다. 이것이, 당연하듯이 행해져 간다.



一方では、自然保護を叫びながら、結局は自然を破壞として行くのであろう。

한편으로는, 자연보호를 외치면서, 결국은 자연을 파괴해 갈 것이다. 



また、人間の造り出した乘り物という怪物は、とうとう、東京-大阪間を、二時間三十分で走るようになった。もう少しすると、一時間で走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だ。

또한, 인간의 만들어 낸 탈 것이라고 하는 괴물은, 마침내, 도쿄 -오사카 사이를, 2시간 30분으로 달리게 되었다. 또 잠시 후면, 1시간으로 달리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何故、人間は、時間を短縮するのであろうか。

왜, 인간은, 시간을 단축하는 것일까?



人間は、死に急いでいるのであろうか。何故と思ってしまう。

인간은, 죽음으로 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 왜라고 생각해 버린다.



最近は、文明という流れに、追いついて行けなくなり、ノイローゼになるエリート社員が多い。최근에는, 문명이라고 하는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노이로제에 걸리는 엘리트(Elite) 회사원(社員)이 많다.



人間は、不幸になるために、生存をしているのではない。自ら不幸になっているのである。

인간은 불행하게 되기 위해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불행해 지고 있는 것이다.



幸せになるもとは、すべてそれぞれの、心の中にあるのである。

행복하게 되는 근본(もと)은, 전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人間始め、萬生萬物すべてのもの、この地上界に、その姿を現わし、苦樂を味わい、時が到來し、いずこへか、去って行くのであるが、これだけでは、實に儚(はかな)いものである。儚いとは、人の夢と書く。まさに夢のようなものかも知れない。

인간을 비롯한, 만생만물 모든 것, 이 지상계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고락을 맛보며, 때가 도래하고, 어디로인가, 사라져 가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실로 덧없는 것(儚い)이다. 하카나이(儚 맹)이란, 사람의 꿈이라고 쓴다. 바로 꿈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大方の人間は、この世を去る時が來ても、なかなか去りがたいもので、その思いがつのり、この思いを殘し、去るに去れずにおるものが多いのである。

대부분의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와도, 좀처럼 떠나기 어려운 것이며, 그게 간절해져서, 그 생각을 남겨두고, 떠나라고 하면 떠나려고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佛敎の經文の中にある、有名な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の、最後に、

羯諦羯諦波羅羯諦波羅僧羯諦菩提薩婆訶 

とある。

불교의 경문 중에 있는, 유명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마지막에,

갈체갈체파라갈체파라승갈제보리살파하

라 하는 것이 있다. 



★참고로, 본문의 한자 그 발음 대로 썼습니다. 



これは、「行こう行こう彼の岸へ、彼の岸へ行けるもの、榮えあれ」ということである。

이것은,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저 언덕으로 갈 수 있는 사람, 번영하기 바란다」라고 하는 것이다.



★ 진짜, 이 사람, 정말로, 다카하시 신지님의 제자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스승님은, 저렇게 설명하시지 않았는데. 더 이상, 증거 자료 이 문단 끝에 올립니다.




要するに、この世の己の持ち時間が終わったら、彼の岸、極樂、あの世、この世に生まれて來る以前に住んでいた世、しかも、魂としての自分のグループの住んでいる我が家に歸ろうと、佛が諸諸の衆生に、言われておられる言葉なのである。

요컨대, 이 세상의 자기가 가진 시간이 끝나면, 저 언덕, 극락, 저 세상,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고 있던 세상, 게다가, 영혼(魂)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그룹의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부처가 여러 중생에게, 말하고 계신 말이다. 



實に、ありがたいことである。

실로, 고마운 일이다.



しかし、なかなか、このようには行かぬのが常である。

하지만, 좀처럼, 이렇게는 안 되는 것이 상사다(흔히 있는 일이다).



しかし人生は、これへの精進がすべてあり、この世に生まれた、目的・使命が、それぞれの生活の過程のなかにある、と言うことである。

하지만 인생은, 이곳으로 향한 정진이 전부이며,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과 사명이, 각자의 생활의 과정 속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この目的・使命を心に銘記し、精進せるものは、終わる時に、この世に思いを殘すことはないのである。

이 목적과 사명을 마음에 명기(銘記)하고, 정진하게 하는 것은, 죽을(終わる) 때에, 이 세상에 생각을 남길 것은 없는 것이다. 



實際には、人間は老いれば、いつこの世を去っても、不思議ではない、しかし、本人ともなれば、まだ生きていたいと思うのが、人情である。

실제로는, 인간은 늙으면, 언제 이 세상을 떠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본인이라 치면, 다 살고 싶다고 하는 생각하는 것이, 인정(人情)이다. 



口では言わないが,

「まだ、生きられるかな。死ぬ時は、どんなになるのかな。私の物は、どうなるのかな。あれだけは、人にやりたくない」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더, 살 수 있지 않을까(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죽을 때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내 것(物)은, 저것만큼은,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元氣な時に、

「いつ死んでもよい」

と言われる人でも、なかなか、すべての執着を、捨て切れるものではないのであるまいか。

건강한 때에는,

「언제 죽어도 좋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좀처럼, 모든 집착을, 완전히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아닌가.




生まれる、生きる、死ぬとは、一體何なのであろうか。

태어난다, 산다, 죽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古い言葉に、次のように言葉がある。

「生は寄なり、死は歸なり。己のものは何もなし」

正にこの世もあの世も、この通りである。

옛 말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삶은 의탁이며, 죽음은 돌아감이다. 자기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로 그대로이다.



★生は寄なり死は帰なり[회남자(淮南子) 정신훈(精神訓)] 인간은 천지의 본원에서 태어나 잠시 이 일시적인 세상에 몸을 맡기는 것에 불과한데, 죽음은 이 일시적인 세상을 떠나 원래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神は初めに、萬生萬物を創造された。神はご自分の意である、大調和を達成させるため、神と同じ姿の人類を、萬物の靈長として創造されたのである。

신(神)은 처음에, 만생만물을 창조하셨다.  신(神)은 당신(ご自分)의 뜻인, 대조화(大調和)를 달성케 하기 위해서, 신(神)과 똑같은 모습의 인류를,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 창조하신 것이다.



人類は、萬物すべてのものを驅使し、共存共榮、協力協調をモットーに、永遠に轉生輪廻を繰り返し、神の意である大調和に向かって、前進をしているのである。

인류는, 만물 모든 것을 구사(驅使)하고, 공존공영(共存共榮), 협력(協力)과 협동과 조화(協調)를 신조(motto)로, 영원히 전생윤회를 반복하고, 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을 향하여, 전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これが、今、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

이것이, 지금,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인 것이다.



神は大自然を、人類に、破壞してもよいとは、一言もいっては、おられないのである。人類始め萬生萬物、生き通し生きるものは、すべて神の所有物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신(神)은 대자연을, 인류에게, 파괴해도 좋다고는, 한마디로 말해서는, 안 하고 계신 것이다. 인류를 비롯한 만생만물, 줄곧 살며 살아가는 것은, 전부 신(神)의 소유물(所有物)인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高橋信次 原說・般若心經  內在された叡知の究明


다카하시 신지님의 원설・반야심경 내재된 예지의 구명

1972년 11월 쓴 책.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故智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羯諦羯諦 波羅羯諦  

波羅僧羯諦 菩提薩婆呵 

般若心經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지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갈제갈제 바라갈제 

바라승갈제 보리사바하(살파하)(사바하)

반야심경


 



過去・現在・未來という三世を、あなたはどう生きるか。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삼세를, 당신은 어떻게 사는가?


轉生輪廻を、どう生きねばならないか。

전생윤회를, 어떻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가?


智慧の寶庫は、どうやったら開かれるか。

지혜의 보고는, 어떻게 하면 열릴까?


そして、光明ある彼岸に到達するには、どうすべきか。

그리고, 광명인 피안에 도달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過去、現在、未來という三世における、悟った方は、轉生輪廻の過程で體驗した人生の價値ある智慧の寶庫の扉を開かれた方々です。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삼세에 있어서, 깨달은 분은,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체험한 인생의 가치 있는 지혜의 보고의 문을 연 분들입니다.


 

つまりそのために、阿縟縟多三藐三菩提(ア―ヌクタラ―・サンミャク・サンボデ―)という最高の悟りを得たというわけです。

즉 그렇기 때문에, 아뇩다라샴막보리(아메쿠타라・삼먁쿠・삼보디)라고 하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까닭입니다.


★あのくたらさんみゃくさんぼだい(anuttarā samyaksambodhih)



 

最高の悟りを得たから、內在される佛智を知ることができた、ともいえます。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내재되는 지혜를 알 수 있었다,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是大神呪とは、これこそ大宇宙を支配している大神靈の神理であり、是大明呪である。すなわち、これこそ大神靈より與えられている大光明の神理であり、是無上呪であり、つまりこれ以上の神理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시대신주란, 이것이야말로 대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대신령의 신리이며, 시대명주이다.  즉, 이것이야말로 신령으로부터 주어지지고 있는 대신명의 신리이며, 시무상주이며, 즉 이이상의 신리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是無等等呪であり、すなわちこれと比較するに等しい神理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시무등등주이며, 즉 이것과 비교되는 동등한 신리는 없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とは、良く一切の苦しみを、人生の生老病死を原因として生ずる苦しみを除き、眞實であって、僞りではない。

제능일체고 진실불허란, 자세히 일체의 괴로움을, 인생의 생로병사를 원인으로 해서 생기는 괴로움을 제거하고,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それゆえに、般若波羅蜜多の神理を說き、實踐したのちに、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신리를 설명하고, 실천한 후에,


 

羯諦 羯諦 波羅羯諦  波羅僧羯諦 菩提薩婆呵  

갈제갈제 바라갈제 바라승갈제 보리살파하(사바하)

 


悟りの彼岸に到達しよう、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하자, 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カ―ティ、カ―ティ、パラ―カ―ティ、パラ―サンカ―ティ、ボデ―スバハ―と讀みますが、カ―ティとは彼岸という言葉で、パラ―は、到達するとか、行く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

카티, 카디, 바라가티, 바라상가티, 보디스바하라고 읽습니다만, 가티란 피안이라고 하는 말이며, 바라는, 도달한다 라든가, 간다라고 하는 의미게 됩니다.


 

サンと(僧)は比丘、比丘尼すなわちサロモン・サマナ―ということです。ボデ―とは悟りをいい、スバハ―は成就するとか、一切成り立つという言葉です。これを今日ふりに譯しますと、

「彼の岸、彼の岸、彼の岸に行こう。比丘、比丘尼達も、悟りの彼岸に到達して、一切を成就しよう」

という意味になりましょう。

상(僧)이란 비구, 비구니 즉 사로몬・사마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디란 깨달음을 말하며, 스바하는 성취한다든가, 일체 성립한다 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식으로 해석하면,

저 언덕, 저 언덕, 저 언덕으로 가자, 비구, 비구니들여,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해서, 일체를 성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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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그림자 2011.05.30 21:10 ▶ | 엮인글 보내기 ▶  제 블로그입니다. http://blog.daum.net/5lamp/8141740  






自然と人間

(자연과 인간)



この宇宙の中の、太陽系という星の集團は、太陽を中心に、一定の時間で同じ方向に運動を續けている。この中の地球という天體を緣として、神の意である大調和という目標を擔い、四次元と三次元を輪廻している、我我人類の源(みなもと)である靈團がある。これをアガシャー界靈團という。

이 우주 속의, 태양계라고 하는 별의 집단은,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한 시간으로 같은 방향으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중의 지구라고 하는 천체를 인연(緣)으로 해서, 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표를 어깨에 짊어지고, 4차원과 3차원을 윤회하고 있는,우리들 인류의 근원(源)인 영단(靈團)이 있다. 이것을 Agasha界 영단(靈團)이라고 한다.



★Agasha界靈團, 본문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가샤는, 임마뉴엘(구약성서), 예수 그리스도, 전생은, 아몬(아미)=이집트의 왕, 입니다.

이 내용은 밑에 올리겠습니다.




この地球という天體は、太陽を中心にした太陽系の各天體、そしてこの地球、そして靈としての人類が、より調和された靈團に發展するために、修行の場、大神殿なのである。

이 지구라고 하는 천체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태양계의 각 천체, 그리고 이지구, 그리고 령(靈)으로서의 인류가, 보다 조화된 영단(靈團)으로 발전하기 위해, 수행(修行)의 장(場), 대신전(大神殿)인 것이다.




太陽は東から出て、西に入る。春夏秋冬の四季があり、時期がくれば、植物の花は笑き、實がなり、種となり、地に入り、明年またその美しい花となり、同じリズムを永遠に繰り返している。山には林があり、鳥類・動物がおり、平野には田があり畑があり、鳥や動物が住んでいる。河川があり、風が吹き雨が降り、動物・植物・鑛物は、すべて相互關係をもち、生(せい)という運動をし、それぞれの目標に向かって、永遠に生き續けている。

태양은 동에서 떠서, 서로 진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있고, 때(時期)가 오면, 식물의 꽃은 피고, 열매가 되고, 씨앗이 되고, 땅으로 들어가, 다음 해(明年)에 역시 그 아름다운 꽃이 되어, 같은 리듬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다. 산에는 숲이 있고, 조류(鳥類)와 동물(動物)이 있고, 평야에는 밭이 있고 화전(畑)이 있고, 새나 동물이 살고 있다. 하천이 있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동물과 식물과 광물은, 전부 상호관계를 가지고, 삶(生)이라고 하는 운동을 하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서, 영원히 계속 살고 있다. 



しかし、文明が發展した昨今、人間は大自然を、無視するというより、破壞をしはじめるようになった。

하지만, 문명이 발전한 요즈음(昨今),인간은 대자연을, 무시(無視)한다고 하기 보다, 파괴를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神が與えてくれた、この住みよい、大自然の惠(めぐ)みにあふれる環境を、自から葬り去ろうとしている。

신(神)이 제공해 준, 이 살기 좋은, 대자연의 혜택(惠み)이 흘러 넘치는 환경을, 스스로 매장시키려고 하고 있다. 



その昔、中國の天台智顗という覺者が、人間は、地水火風空と切っても、切れない關係にあることを、大衆に向かって說かれた。このことを、人間は、再認識をせねばならない時が、來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

그 옛날, 중국의 천태지의(天台智顗)라고 하는 깨달은 사람(覺者)이, 인간은, (地水火風空)과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을, 대중에게 향해서 설명했다.  이 일을, 인간은, 재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태지의(538-597)는, 법화경을 완벽하게 깨달았던 분입니다★

★이 분의 영향으로, 법화경을 배우기 위해서, 일본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일본으로 전래된 것입니다. ^^

★ 보통, 각자(覺者)라고 하면, 흔히들, 부처(佛陀, 佛)을 뜻합니다.^^



山の木はどんどん伐採をして行く。林は協同で生存をしているのであが、そんなことはおかまいなし。觀光道路を付ける、別莊を建てる。住宅まで建てる始末である。動物や鳥類、昆蟲は何處に行ったらよいのであろう。河川は塞き止めてしまう、平地の川は、兩岸をコンクリートで固めてしまう。このくらい、このくらいが、氣付いた時に大事にならぬよう、よくよく反省をしてみる必要がある。

산의 나무는 잇달아 채벌을 해 간다. 숲은 협동하며 생존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관광도로를 내고, 별장을 짓는다. 주택까지 짓는 전말(始末)이다. 동물이나 조류(鳥類), 곤충은 어디로 가면 좋은 것일까. 하천은 이 정도로, 하천의 (물줄기 등을) 막아 버린다.  평지의 강은, 양쪽 기슭(兩岸)을 콘크리트로 다져 버린다. 이만큼, 이 정도가, 알아차렸을 때에 큰일이 나지 않을까. 철저히 반성을 해 볼 필요가 있다.




特に日本人は、分不相應な住宅を建てたり、ゴルフ場を次から次へと、住民の反對等には、一切耳を傾けない。實に忙しいことである。人間は、人間のことのみ、しかもそれが、エゴに固まっていることに、氣付かない。

특히 일본인(日本人)은, 분수에 걸맞지 않은(分不相應な) 주택을 짓거나, 골프장을 차례로 잇달아, 주민의 반대 등에는, 일절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참으로 바쁜 일(부산한 일)이다.  인간은, 인간의 일만, 게다가 그것이, Ego(자기중심주의=이기주의)에 몰두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また近頃は、病氣でも、醫者の分からない病氣が多いと聞く。精神的なもの、所謂、文明病というものであろう。また、酸欠でそのような症狀が、起き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

또한 요즘은, 질병(病氣)라도, 의사가 알지 못하는 병(病氣)이 많다고 듣는다. 정신적인 것, 이른바(所謂), 문명병(文明病)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또, 산소결핍(酸欠)으로 그러한 증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人間は、大自然の惠みを忘れ、人間としての目的も忘却し、人生という短かな時間の中で、物質に對して足ることを失い、欲望のみにて、生涯を終えるものが多い。欲望は欲望を生み、多くの公害を生み、神から借り受けたこの地球を、葬り去ろうとしているようなものである。

인간은, 대자연의 혜택(惠み)을 잊고, 인간으로서의 목적도 망각하고, 인생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 속에서, 물질에 대하여 만족함을 잃어버리고, 욕망만으로, 생애를 마치는 사람이 많다.  욕망은 욕망을 낳고, 많은 공해를 낳고, 신(神)으로부터 빌린 이 지구를, 매장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大自然に對して人間は、傲慢になってはならない。思い上がってはならない。もっと人間は自然に對し、謙虛な心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대자연에 대해서 인간은, 오만해져서는 안 된다. 잘난체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인간은 자연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앞에서 얘기한 바 대로, agasha계(界)에 대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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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sha界靈團, 본문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가샤에 대한 설명은,


1976년 6월 


GLA総合本部

'76 東 北 研 修 会

 [山形県ホテル蔵王]

1976年6月4~6日(S51) GLA종합본부. 1976년 동북연수회[야마카다현 호텔 자오우(蔵王)]


「新復活」「새로운 부활」


高橋信次先生最後の御講演(6月5日)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 최후의 강연(6월 5일) 


★ 이 강연을 마친 후, 자신의 예언한 대로, 1976년 6월 25일 사망.




(중략)

更にまた、エルランティーの光の天使の分靈と致しまして、カンターレというのがいます。更にまたアガシャー、モーセ、一方に於いて、ガブリエルの系統にマホメットがいます。

다시 또한, "엘란티"의 빛의 천사의 분령(分靈)이라고 하며, "칸타레"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다시 또, "아가샤", "모세", 한편에서는, "가브리엘"의 계통에 "마호메트(570~632)"가 있습니다.




(중략)

こうして多くの天使達は、天上の世界からこの地上界の動きを觀察し、神の子に戻すために、多くの光の天使達をこの地上界に送りました。(約一萬年前)エルランティー自身は、後、アガシャーという方を、光の分靈です。この方を送ります。更にまたカンターレという方を送ります。後のゴーダマ・ブッタです。ゴーダマ・ブッタ、天上界ではカンターレといっています。お釋迦樣とはいっていません。ゴーダマ・ブッタ。アガシャーは後のインマニエル・イエスキリストです。モーセはモーセです。

이렇게 많은 천사들은, 천상의 세계에서 이 지상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신(神)의 자녀(子)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많은 빛의 천사들을 이 지상계로 보냈습니다.  (약 1만년 전) "엘란티" 자신은, 나중에, "아가샤" 라고 하는 분을, 빛의 분령(分靈)입니다.  이 분을 보냅니다.  다시 또 "칸타레"라고 하는 분을 보냅니다.  나중의 "고마다 붓타"입니다. "고다마 붓타", 천상계에서는 "칸타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お釋迦樣)이라고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마다 붓타". "아가샤" 는 훗날의 "임마뉴엘(Immanuel)"="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는 "모세"입니다.


★임마누엘(Immanuel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의 이름)

★구약성서 이사야서에 나옵니다.



 更にまた、イエスが、ゴーダマ・ブッタが生まれる時には、ガブリエルという方は、これは主として傳達の係りをし、通信關係の責任者です。ゴーダマ・ブッタがインドに生まれる時には、ガブリエルのグループの方が、ゴーダマ・ブッタの生まれることを、ゴーダマの兩親に通信を送ります。アシタバという仙人です。

다시 또, "예수"가, "고다마 붓타"가 태어날 때에는, "가브리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것은 주로 전달(傳達)의 담당하고(맡고), 통신관계의 책임자입니다. "고다마 붓다"가 인도(印度)에 태어날 때에는, "가브리엘"의 그룹의 사람이, "고다마 붓타"가 태어날 것을, "고다마의 양친(兩親)"에게 통신을 보냅니다. "아시타바"라고 하는 선인(仙人)입니다. 



 或はまた、アガシャーであるインマ二エルに対しては、またガブリエルはミカエルの命令によって受胎の告知に出てゆきます。

혹은 또, "아가샤"인 임마누엘(Immanuel)에 대해서는, 또 "가브리엘"은 "미카엘"의 명령에 의해서 수태(受胎)의 고지(告知)를 알리려 나옵니다.


→ 성모 마리아가 된, 마리아에게, 수태 고지를 알린다는 것임 ←




(중략)

多くの予言者達が輩出して、間違った敎えを、再び元に戻そうとしたけれども、どうにもならなくなって、今から約2000年前に、再びアガシャーであるところのインマニエルをこの地上界へ送りました.その時はヤハベとは言いません。エホバといって名稱ったのです。エホバ、神ではありません。神の命を受けた最高責任者です。そしてイエスに人間の愛を說き、間違ったユダヤ敎を修正するために、この地上界へ送り出したのです。

많은 예언자들이 배출되어, 잘못된 가르침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어서, 지금으로부터 "200년"전에, 다시 "아가샤"인 "임마누엘"을 이 지상계로 보냈습니다.  그 때는 "야훼(Yahweh)"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에호바(Jehovah=여호와)라고 칭했던 것입니다. "에호바(Jehovah=여호와)", "(神)이 아닙니다".  신(神)의 명령(命)을 받은 최고책임자(最高責任者)입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인간의 사랑을 설명하고, 잘못된 유대교(Judaism)를 수정(修正)하기 위해서, 이 지상계로 내보내졌던 것입니다. 


★모세(Moses)의 당시에는, "야훼(Yahweh)"라고 칭했습니다. 십계명. 유대교의 창시자입니다. 




(중략)

それが阿彌陀經というのです。この阿彌陀經というのは、西方淨土、インドから西方といいますと、現代のイスラエルからエジプト方面です。このアガシャーの過去世の中には、轉生の過程を通して、アミーと言われる方もおります。そのアミーという名前は、最初はアモンといった、ファラオです。魂の系列です。そのアモンがエジプトにいってアーメンに変わり、ソロモンに行ってアミーに変わり、それからギリシャに渡ってアミーという名前に變わって、インドに行ってダブツが入ってアミダブツになったのです。

그것이 "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것은, "서방정토", 인도에서 서방이라고 하면, 현대의 "이스라엘"에서 "이집트" 방면입니다.  이 "아가샤"의 과거세 중에는, 전생(轉生)의 과정을 통해서, "아미(Ami)"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 "아미(Ami)"라고 하는 이름은, 최초는 "아몬(Amon)"이라 했던, "파라오(Pharaoh =고대 이집트의 왕의 칭호)"입니다.  영혼(魂)의 계열입니다.  그 "아몬(Amon)"이 "이집트"로 가서 "아멘(Amen)"으로 바뀌고, "솔로몬(Solomon)"으로 가서 "아미(Ami)"로 바뀌고, 그후 "그리스(Gresia=Greece)"로 건너가서 "아미(Ami)"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뀌고, "인도(印度)"로 가서 "타불(陀佛)"이 들어가서 아미타불(阿彌陀佛)로 된 것입니다.



http://houwomanabukai.org/tes39.htm

(사이트 이름의 뜻은, 법을 배우는 학회)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위 사이트로 가셔 보시거나, 일본입니다.

★제 블로그 가르침의 글, 에 동영상과 함께 있습니다.







超極微なる物質界

(초극미한 물질계)




宇宙空間に點在をしている、約六十兆からなる天體を始め、萬生萬物すべてのものを、誰が、何時、何處で、何をもとに造りあげたのか、實に精妙に造りあげられている。不思議ときり言いようのないもの、これが三次元物質の世、この世のすべてである。우주공간에 점재를 하고 있는, 약 60조로 구성된 천체를 비롯한, 만생만물 모든 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기초(もと)로 완성한 것인지, 실로 정묘하게 완성되어 있다.  불가사의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 이것이 3차원 물질의 세계, 이 세상의 전체(全體)이다. 



この約六十兆分の一でもある、地球といる天體は、太陽を中心に、九つの惑星、三十二の衛星、三萬數千個から成る太陽系集團の、小さな惑星であり、水の惑星とも言われ、特に太陽の恩惠を蒙り、萬古不變なる自然の法則のもと、人類始め數多くの動物・植物・鑛物を、生かし育み續けている天體なのである。

이 약 60조분의 1이기도 하다. 지구라고 하는 천체는, 태양을 중심으로, 9개의 혹성, 32개의 위성(衛星), 3만 수천 개로 구성되어 있는 태양계 집단의, 작은 혹성이며, 물의 혹성이라고도 하며, 특히 태양의 은혜를 입어, 만고 불변한 자연의 법칙 하(もと)에, 인류를 비롯한, 수 많은 동물과 식물과 광물을, 살리며(되살리며) 계속 양육하고 있는 천체인 것이다.



これらは、人類の計り知り得ない太古の昔から、過去・現在・未來と、輪廻という運動を永遠に續け、物質非物質を含めた、すべてのものの成長を遂げさせて行く、場そのものなのである。

이는(이것들은), 인류가 헤아릴 수 없는 태고의 옛부터,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윤회라고 하는 운동을 영원히 계속하며, 물질비물계를 포함한, 모든 것의 성장을 완성해 가는, 장 바로 그것인 것이다.



こうした不變的なる法則のともに、運動というエネルギーの躍動、一體これは誰かが、どこかで操作をし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しかも、約六十兆という宇宙の天體の數と、人間の肉體細胞の數が約六十兆であったり、地球は、水圈が七十一%、陸地が二十九%であり、人體は、水分が七十一%、蛋白質やカルシウムその他が二十九%から、成り立っているのである。

이러한 불변적인 법칙 하에, 운동이라고 하는 에너지(Energie)의 운동, 도대체 이것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약 60조라고 하는 우주의 천체의 숫자도, 인간의 육체세포의 숫자가 약 60조이거나, 수권(水圈)이 71%, 육지가 29%이며, 인간은, 수분이 71%, 단백질이나 칼슘 그 외가 29%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수권(水圈): [지리] 지구의 표면에서 해양, 호수, 늪, 하천 등 물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



これだけみても、偶然とは言いきれない何者かによって、すべてのものは、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ざるを得ないものがある。

이것만으로 보아도, 우연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서, 모든 것은, 되살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しかし、人類の大半は、物質の世という小さな枠の中を、すべてと思い込んでいるため、五官の感覺では捉え得ない非物質の世の存在など、認めようとはしないだろうし、よしんば、それがどんな世界であるかを說明し、ある程度理解したとしても、每日の生活の中で起きる事柄に、翻弄されているのが現實である。この話を聞けば、惱みや苦しみが解消し、日常生活が、少しでも樂になるとか、樂しく暮らせるとか、現實のことに關し、直接の關係がない限り、それこそ、「關係がないよ」「宗敎か」で、耳も傾けることもなく、片付けられてしまうだろう。なのに人間は、生活する中で起きる、惱み苦しみを、神佛ではない神佛を祀る、宗敎ではない宗敎に、すべてを賴りたがるものである。

하지만, 인류의 대부분은, 물질의 세계라고 하는 작은 테두리(범위) 속을, 전부라고 믿어 버리고 있기 때문에, 오관(五官)의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비물질계의 세계의 존재 따위는, 확인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설사, 그것이 어떤 세계인지를 설명하고,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해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항(事柄 일)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말을 들으면, 고민과 괴로움(惱みや苦しみ)이 해소되고, 일상 생활이, 적어도 즐거워지든가, 즐겁게 지내게 되든가, 현실의 일에 관해서, 직접 관계가 없는 한, 이것이야말로, 「관계가 없지요」「종굔가」라고 하며, 귀도 기울이지 않고, 끝내 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고민과 괴로움(惱みや苦しみ)을, 신불(神佛)이 아닌 신불(神佛)로 우러르며 일정한 장소에 모셔 받들며, 종교가 아닌 종교(宗敎)에, 전부를 의지(의존)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しかし、こうしたことは、己を忘れ去った、姿そのものであり、欲望から起きている現象なのである。人間は、この世限りと思い込んでいるため、政治家・企業家・醫者・敎育家、そして人間の心を救うとされている宗敎家にしても、あらゆる部門において、最高の地位や名譽、權力を得るために、狂奔しているのが、現實であり、これがために生きていると、思い込んでいる人が、大半を占めているのである。しかし、己以外を省みることなく、巨萬の富を得ようとも、最高の勸力・地位の座についたものでも、どんなに頑張っても、百年は生きられないものだ。中には生きながらにして、その座から引き下ろされたり、巨萬の富を積んだものでも、一朝にして沒落をし、末路哀れに亡び去るものも、少なくないものである。하지만, 이러한 것은, 자기를 죄다 잊어버린, 모습 그 자체이며, 욕망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이 마지막이라고 믿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정치가나 기업가나 의사나 종교가,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구원한다고 하고 있는 종교가라 해도, 모든 부문에 있어서, 최고의 지위나 명예, 권력을 얻기 위해, 광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것을 목적으로 살고 있다고, 믿어버리고 있는 사람이, 태반을 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 이외를 보살피는(인정을 베푸는, 省みることなく) 일 없이, 막대한 재산(巨萬の富=거액의 부)을 얻으려고, 최고의 권력이나 지위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인내하고 노력해도(頑張っても), 100년은 살 수 없는 것이다.  그 중에는 살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막대한 재산을 쌓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루 아침에 몰락을 하고, 말로는 초라하게 영락(零落)하는 사람(亡び去るもの)도, 적지 않은 것이다. 



しかし、この世の前後、左右を、よくよく觀察して見ると、どんなことであっても、そのすべては、あっと言う問の出來ごとに過ぎない。いかに權勢を誇ったものでも、この世には限りがあり、その姿がなくなれば、それこそ多くの人人の腦裏からは、忘れ去られてしまうものだ。これほど、儚いことはない。儚いとは人の夢と書く。古人はよく考えたものである。上は政治のボスから、性轉換をする男達まで、いやはや、この世の人間とは、實に滑稽なるもの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

하지만, 이 세상의 전후, 좌우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체(すべて), 앗 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권세(權勢)를 자랑하던 사람이라 해도, 이 세상에는 끝(限り)이 있고, 그 모습이 없어지면,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져 버리는 것이다. 이토록, 덧없는 것(儚いこと)은 없다. 하카나이(儚い)란 사람의 꿈이라고 쓴다. 옛날 사람(古人)은 잘 생각한 것이다. 위로(上)는 정치보스(Boss)로부터, 성전환(性轉換)을 하는 남자들까지, 거 참, 이 세상의 인간이란, 실로 우스꽝스러운 사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바보스러울 맹(儚)이란 글자입니다. 헛되다, 허무하다, 라고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비관적인 단어입니다.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서, 인간은 원래 덧없는 존재이다, 허무한 인생이다, 라고 하는 식으로 말해야, 고상하고 뭔가 아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일본인들이라 합니다.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의 말씀에서.


★ボスせいじ(ボス政治)라는 말이 있습니다. 

① 보스정치, 두목‧부하의 정실관계로 결합한 정치   




あの世、肉眼では捕えることのできない世界、心の世界の話等をしても、興味的に聞くことはあっても、なかなか信じる人は少ないだろうし、たとえ信じても、半信半疑の人が多いのが常である。

저 세상, 육안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세계, 마음의 세계의 말 등을 해도, 흥미적으로 듣는 일은 있어도, 좀처럼 믿는 사람은 적을 것이고, 설령 믿어도, 반신반의인 사람이 많은 것이 흔한 일이다. 



しかし、見えないから無いというのは、正しいことではない。現にこの世の、しかも身近な處で、必要欠くべからざるものに、まず電波、赤外線、紫外線、X線、ガンマー線等、限りがない程のものが、儼然として存在をしているのである。하지만, 안보이니까 없다고 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니다. 실제로(現に)이 세상의, 게다가 관계가 깊은 곳에서, 필요 불가결한 것인데도, 우선 전파(電波), 적외선(赤外線), 자외선(紫外線), X선(뢴트겐선)(X線), 감마선(Gamma線)(ガンマー線) 등, 한(끝)이 없을 정도의 것이, 엄연히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파(電波)①[물리] 주파수 3킬로헤르츠(㎑)부터 106메가헤르츠(㎒)까지의, 적외선 이상의 파장을 가지는 전자기파

★적외선(赤外線)① 스펙트럼에서 가시광선의 적색 바깥쪽에 나타나는 광선으로,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물체에 흡수되어 열에너지로 변하는 특성이 있다 

★자외선(紫外線)① 태양 광선의 스펙트럼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 가시광선의 바깥쪽에 나타나는 전자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 

★X선(X線)=뢴트겐선(線)

①[물리] 전자기파(電磁氣波) 중에서 파장이 0.01~100옹스트롬 범위의 것. 물질을 투과(透過)하는 힘이 강하여 연구나 의료에 많이 이용한다.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Röntgen)이 발견하였다. 

★감마선(Gamma線)①[물리]①방사선의 일종 ②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로, 물질을 투과하는 능력이 매우 강하다 ③의료‧공업, 물성(物性)연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④병원에서 환자들의 암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1감마는 100만분의 1그램.    




しかも、現代の科學は、肉眼では捉(とち)えることの出來ない、超巨大な、五十億年の彼方の世界から、極微は、一兆分の一ミリよりも、小さな世界までの存在を、究明するに至っているのである。

게다가, 현대의 과학은, 육안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초 거대한, 50억년 전의 저쪽의 세계에서, 극미(極微)는, 1조분의 1밀리보다도, 작은 세계까지의 존재를, 구명(究明)하는 데에 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극미(極微) (독일어 Mikro)①100만 분의 1. 기호 μ.  ②ミクロの世界미크로의 세계(현미경하의 미생물 세계).

★구명(究明) ①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이나 원인 따위를 깊이 따지고 연구하여 밝힘. 




恐らく、二十一世紀の後半には、それまで見ることも、聞くことも出來なかった、他次元のことまで、人間の手によって、その硏究は進められ、他次元の片鱗を垣間見ることが、可能となるのではあるまいか。この世は惡も進行する。と同時に、人人の考えにも及ばない、他次元の究明をなし、人類のために盡くす科學者が、現わ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

아마, 21세기의 후반에는, 그때까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다른 차원(他次元)의 것까지, 인간의 손으로, 그 연구는 진행되어, 다른 차원(他次元)의 편린(片鱗)을 엿보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은 악(惡)도 진행(進行)된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생각(考え)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른 차원(他次元)의 구명(究明)을 이루고, 인류를 위해 진력(盡力)하는 과학자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あの世の、ある意識の段階には、科學者集團と稱されるものがあり、各各その使命において、永遠の中で活躍されておられる方方も、多數おれれるのである。このような方方の硏究努力によって、この世の人間は數多くの恩惠を蒙り、生きられることも、知っておくべきではなかろろうか。

저 세상의, 어느 의식(意識)의 단계에는, 과학자 집단이라 칭하는 사람이 있고, 각각 그 사명에 있어서, 영원한 중에서 활약하시고 계시는 분들도, 다수 계시는 것이다.  이러한 분들의 연구노력에 의해서, 이 세상의 인간은 수 많은 은혜를 입으며, 살 수 있는 것도,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ある意識の段階には、科學者集團と稱されるものがあり~この世の人間は數多くの恩惠を蒙り, 는, 천국(天國)=실재계(實在界)=에는,

여러 세계가 있는데, 

지구(地球)는 3차원, 위로 극락천국(極樂天國)에는, 4차원 유계(幽界), 5차원 영계(靈界), 6차원 신계(神界), 7차원 보살계(菩薩界), 8차원 여래계(如來界), 또 그 위로 9차원(宇宙界)가 있는데요.


★★과학자 집단,은 6차원 신계(神界)의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가르침의 글』 제 블로그를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人類始め萬生萬物は、本來、巨大なる宇宙と言う器を包含した、超巨大なる大宇宙という器の中に、永遠という時の中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であり、どんなものでも、それぞれ個として、何らかの目的・使命を持たされているのである。萬物の靈長といわれる人類は、こうした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인류를 비롯한 만생만물은, 본래, 거대한 우주라고 하는 그릇을 포함한, 초거대한 대우주라고 하는 그릇 속에서, 영원이라고 하는 시간 속에서, 되살아나서 살고 있는 것이며, 어떤 사람(것もの)이라고 해도, 저마다의 개체(個)로서, 어떠한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들려 보내지고(이 세상에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류는,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しかも、極大・極微に拘わらず、宇宙そして、その中に住む動物・植物・鑛物すべてのものは、圓を畵いて、それぞれの時間、空間の中で、運動を永遠に繰り返しているのが、實體なのであり、これこそ神の攝理そのものなのである。

게다가, 극대(Maxumum)極大)와 극미(Mikro)(極微)에 상관 없이, 우주 그리고, 그 안에 사는 동물과 식물과 광물 모든 것은, 원(圓)을 그리며, 각자(저마다)의 시간, 공간 속에서, 운동을 영원히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실체(實體)인 것이며, 이야말로 신(神)의 섭리(攝理) 그 자체(もの)인 것이다. 




人間は、あまりにも、小さな小さな、物の世に執着をもち、それがすべてと思い込んでしまっているために、萬物の靈長としての、己の素晴らしさを、見失っているに過ぎないのである。

인간은, 너무나도, 작은 작은, 물질(物)의 세계의 집착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すべて)라고 믿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자신(己)의 훌륭함(晴らしさ)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あのアメリカが、一九七七年に打ち上げた、木星・土星探査機、ボイジャー一號・二號、一九七二年に打ち上げられた、惑星探査機、パイオニア十號・十一號、これらは、その任務を終え、我我人類が住む太陽系以外の、宇宙空間の中に、吸い込まれるように、その姿をかくしたのである。しかし、恐らくこれから、永い時を經て、再びその探査機が姿を現わし、打ち上げられた地球に、戾って來ることであろう。これは、この世的に見ると、それこそ大ロマンである。しかし、これは現實におき得ることなのである。このように、極微である人間から見ると、宇宙とは何と巨大なものであると思うものである。

저 아메리카(미국)이, 19977년에 쏘아 올린, 목성 토성 탐사기(木星・土星探査機), 보이저 1호와 2호기, 1972년에 쏘아 올린, 혹성탐사기(惑星探査機), 파이오니아 10호와 11호, 이것들은, 그 임무를 마치고, 우리들 인류가 사는 태양계 이외의, 우주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마 앞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시 그 탐사기(探査機)가 모습을 드러내서, 쏘아 올려진 지구(地球)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굉장한 로망(낭만)(大Roman)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와 같이, 극미(極微)인 인간에게서 보면, 우주란 어쩌면 이렇게 거대한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이저※ 미국이 1977년에 발사한 무인 행성 탐사기(1호와 2호) 이름. 목성·토성의 선명한 사진을 촬영하였음




しかし、宇宙のすべてが、圓を畵いて運動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無限と言われている宇宙も、實は有限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物質そのものであり、心の世界、非物質の世界の百から見ると、たった十の世界であり、極微なものである。しかも、この中に住む人間などは超極微なものであり、この超極微なものが、日日の生活の中で、恨み、憎しみ、妬み、誹り、怒り、愚痴を言い、欲望から執着を造り、惱み苦しみ、迷いの末に、時という激流に呑まれてその目的・使命を果たすことをしないのが、人間なのである。

하지만, 우주 전체(すべて)가, 원(圓)을 그리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무한(無限)하다고 말하고 있는 우주(宇宙)도, 실은 유한(有限)하다고 하는 것이며, 물질 그 자체(もの)이며, 마음의 세계, 비물질의 세계의 100(百)에서 보면, 겨우 10의 세계이며, 극미(極微)한 것이다. 게다가, 이 속에서 사는 인간 등은 초극미(超極微)한 것이며, 이 초극미(超極微)한 사람(もの)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원망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비난하고, 화내며, 넋두리를 하며(불평을 하며愚痴を言い), 욕망으로 집착을 만들며, 고민하고 괴로워하며(惱み苦しみ), 미망(망상)의 끝(迷いの末)으로, 세월(時)라고 하는 격류(激流)에 휩쓸려 들어가서 그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을 달성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人間)인 것이다. 







すばらしき自然

(훌륭한 자연)




大自然の姿、それは日頃の雜念を、晴らしてくれるものである。

대자연의 모습, 그것은 평소(日頃)의 잡념을, 상쾌하게 해 주는 것이다.



風の音、その風に搖られ、梢(こずえ)の互いにふれあう音 。

바람 소리, 그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가지 끝이 서로 닿는 소리.



時たま聞こえて來る、うぐいすやほととぎすの聲。あまり聞いたことのない、小鳥のさえずり。またしても風の音。しかし、風には形がない。木木は新綠そのもの、見ると葉の裏を見せている木もある。自然は何と素晴らしい。

간간이 들려오는, 휘파람새나 두견새의 소리. 그다지 들은 적이 없는, 작은 새의 지저귐. 또 바람 소리. 하지만, 바람에는 형태(形)가 없다.  나무들은 신록(新綠) 그 자체의, 보면 잎의 안쪽(葉の裏)을 보이는 나무도 있다.  자연은 참으로 훌륭하다.



この山間に住んでおれれる、老夫婦。

「一雨くるかも知れません」

이 산간(山間)에 살고 계시는, 노부부(老夫婦).

「비가 한 차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案の定、ぽつり、ぽつり。ざあっとスコール(squall)が來た。さいわい小量で止んでくれた。

아니나 다를까, 똑, 똑. 솨 하고 소나기(squall)가 왔다.  다행히 소량으로 멈춰 주었다.



ようやく、老夫婦の家に辿(たど)り着いた。綠に腰を下ろし、外を見た。すがすがしいものを感じた。

간신히, 노부부의 집에 당도했다.  풀밭에 앉고, 밖을 봤다. 상쾌한 것을 느꼈다. 



カナカナナと、蜩の音。山の一日も、はや暮れんとしている。

매암 매암 매암, 저녁매미 소리. 산의 하루도, 이미 날이 저물고 있다. 



はっと一息をついた。

하하고 한번 숨을 쉬었다. 



畑のトマト半分靑いのを、一つもぎ取り、口に入れた、何とも言いようのない、味である。ほおばりながら、少年時代のことを思い出した。화전밭의 토마토 반정도 설익은 것을, 뜯어내고 입에 넣었다, 뭐라고 할 수 없는, 맛이다.  집어 먹으면서, 소년 시절의 일을 회상했다. 



翌日は、朝から、雨が降ったり、止んだりであった。霧が山山を包み込み、山獨特の、何とも言いようのない眺めである。草木は、一息入れ、何となく、爽(さわ)やかな顔をしているように感じる。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거나, 그치거나 하고 있었다.  안개가 산들을 덮고, 산의 독특한, 뭐라고 할 수 없는 경치(眺め)다.  초목은, 한 숨 돌림 틈도 없이, 왠지 모르게, 상쾌한 표정(얼굴, 顔)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霧が晴れた。遠くの山山が目に入る。霧は視界を包み、包んではほどき、その繰り返しをしている。何とも言いようのない氣持ち。空氣はこんなにも、美味しいものであったのかと、感じないでは居られない。

안개가 갰다.  먼 곳의 산들이 눈에 띈다. 안개는 시야(視界)를 가리고,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  공기는 이렇게도, 맛있는 것이었는가, 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自然とは、こんなにも、素晴らしく偉大なものであるのかと、心を洗われる思いであった。この邊りの部落は、僅かな家が山間に點在し、住んで居る人は、大方一族の方方のようである。

자연이란, 이렇게도, 훌륭하고 위대한 것인가, 라고 마음을 정화하는(마음이 맑아지는) 기분(思い)이었다.  이 근처의 부락은, 약간의 집이 산간에 점재하고, 살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한 가문 출신(一族) 분들인 모양이다. 



昔は蕎麥が主食であったそうである。仕事は主に林業であるが、今は人手もなく、手入れもならず、杉の木木が、ひしめきあって、林を造り出している。

옛날에는 메밀(蕎麥)이 주식이었던 모양이다.  일은 주로 임업(林業)이지만, 지금은 일꾼(人手)도 없어서, 아무리 해도 손질도 안되고, 삼나무들이, 북적거리고 있고(빽빽이 들어서 있고), 숲을 이루고 있다. 



「どうにもなりませんよ」

「어쩔 수 없지요」



老主人が、ぽつりと、口に出された。

노주인이, 간단히, 말했다. 



あとは、茸とお茶を栽培されて、これが主な收入源になっているとのことである。

나중에는, 버섯(茸) 차(お茶) 재배하게 되었고, 이것이 주 수입원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この部落は、文久年間から、住んでおられると言うことである。一八六一年で、百三十二年前である。その頃の書類を出して來て、見せてくれだ。

이 부락은, 분규우(文久1861년) 연간(年間)부터, 살고 계시다고 하는 것이다. 1861년으로, 130년 전이다. 그 당시의 서류를 꺼내 와서, 보여 주신다.



よくも取っておかれたものである。

잘도 갖고 계셨던 것이다.



人間の歷史というものは、このようなものから、作りあげられているのであろうと思った。いよいよ夕暮れである。

인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사람에게서,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해질녘이다. 



外を見ると、草や木そして木の葉は勿論のこと、畑の野菜も、それぞれが、素晴らしい色彩をつけている。誰がこんな色をと、思った。これこそ自然の成せる業なるのである。

밖을 보니, 풀과 나무 그리고 나뭇잎은 물론이고, 화전 밭의 야채도, 저마다가, 훌륭한 색채를 띠고 있다.  누가 이런 색깔(色)을, 이라고 생각했다.  이야말로 자연의 이루어 내는 일(業)인 것이다.



「ありがたいなあ」

こんな言葉が、何氣なくもれた。

「고맙네요」

이런 말이, 별 생각도 없이 흘러나왔다.



これを當り前に、とってはならない。これこそ、神の成せる業ということである。自然は人類始め、すべてのものを、何一つ言わずに、生かし續けてくれている。

이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신(神)이 이루어 내시는 일(業)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류를 비롯한, 모든 것을,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계속 되살려 주시고 있다. 



こうしたことは、言われてみれば、分かるような氣はするが、普通はなかなか、思ってもみないのが、正直のところではないだろうか。

이런 것은, 말을 들어보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보통은 좀처럼,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 정직한 것이 아닐까?




何氣なく、當然と思っている中には、自然と人間の拘わりあいの中で、それこそ深い意味をもったものが、澤山存在してい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별 생각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그야말로 깊은 의미를 가진 것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page 50~53







理論と行爲

(이론과 행위)



過日、大學出という靑年と、話をした時のことである。

어제, 대학출신이라고 하는 청년과, 이야기를 했을 때의 일이다.



大學といっても、今日では、雨後の竹の子といった具合であるが 。

대학이라고 해도, 오늘날에는, 우후 죽순처럼 자란 상태이지만.



秩序とか節操・規律という、言葉を出した。靑年は怪訝な顔をしている。

질서라든가 절조, 규율이라고 하는, 말을 꺼냈다.  청년은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다. 



「ははあ、この靑年、私の言っていることが分からないな 。

「아하, 이 청년,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구나」



そう直感したので、

그렇게 직감한 후,



「君は、私の言っていることが、分から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か」

「자네는,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닌가? 」



「はい、分かりません」

「예, 모르겠습니다」



恥じる顔一つしない。

부끄러워하는 표정(顔) 하나 없다.

 


「何故、分からないのですか」

「왜, 모르는 겐가? 」



「敎(おそ)わりませんでした」 

「안 배웠습니다」

  


確かにそうかも知れない。しかし、これを聞いたときに、少少ガクンときてしまった。いくら時代の差とは言え、考えさせられてしまった。

확실히 그렇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들었을 때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시대의 차(差)라고 해도,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



最近は、音大を卒業した若者の中に、古賀政男を、知らないものがいたそうである。いくらクラシック(classic)と、演歌の違いとは言え、あまりにも知らなさすぎるのではあるまいか。それだけ、自分に關係しないことは、必要がないという時代なのかも知れない。

최근에는, 음학 대학교(音大)을 졸업한 젊은이들 중에는, 코가마사오(古賀政男:1904~1978, 작곡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클래식(고전음악)과, 엥까(演歌:애조를 띤 가요곡)의 차이(違い)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아는 게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만큼, 자신과 관계가 없는 것은, 필요가 없다고 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助け合い、協力心など、損得で行なわれる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ろううか。

서로 돕고, 협력하는 마음 등, 이해 타산(損得)만을 생각하며 시행되고 있는 것일까?



これ四・五年前に、新聞にのっていた、中國でおきたことである。中學生の娘が、池で溺れた。友達は、救いを求め、近くにいた大人に、  

이 것이 4・5년 전에, 신문에 실려 있던,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중학생 아가씨가, 연못에 빠졌다.  친구들은, 도움을 청하며, 근처에 있던 어른에게,



「今、友達が池で溺れているので、助けて下さい」

「지금, 친구가 연못에 빠졌는데, 도와 주십시오」



二人三人、誰も見向きもしてくれなかった。ようやく話にのってくれる人がいた。だがこの人、

두 사람 세 사람,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겨우 말에 응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いくらくれるのかね」

と中國人らしいことだ。

「얼마나 도와 줄까?」

라고 중국인다운 일이다.



「くれれば、いってやるよ」

「도와주면, 뭘 해 줄 건데요 」



「拂うから、早く來て」

「수고비를 드릴 테니까, 빨리 와서」



「何處で、拂ってくれるのかね」

「어디서, 줄 건데요」



ようやく現場の池に、助っ人と共に到着した時には、もう當人の姿は、池の底であったそうである。

간신히 현장의 연못에, 조력자와 함께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당사자의 모습은, 연못 바닥에 있었던(연못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これを讀んだとき、これは中國のことばかりとは、言えないような氣がした。이것을 읽었을 때, 이것은 중국의 일만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紀元前約二百年頃に、中國に秦という國を建國した、始皇帝という人がいた。その皇帝に仕えた、韓非子という法術家がいた。法律家である。彼がこんなことを言っていた。

기원전 약 200년경에, 중국에 진(秦)이라고 하는 나라를 건국한, 시황제(始皇帝)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황제를 (관리로서) 모시는, 한비자(韓非子)라고 하는 법술가(法術家)가 있었다.  법률가(法律家)이다.  그가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었다. 



「國民が學問をおさめると、理屈をいう者が多くなり、汗水(あせみず)流して働く者がいなくなる。働き手がいなくなれば、國が亡びるより仕方がない」

「국민이 학문을 닦고자 하면, 여러 가지 핑계게만 대는 사람이 많아지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유능한) 일꾼이 없어지면,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의역했습니다>



學問が惡いとか、理屈が惡いのではない。これらはすべて、頭腦プレーでもいうか、理屈になると、行動という、行爲が伴わないことが多い。我我が住んでいる自然の中は、行爲があって何事も成り立つように出來ているものだ。

학문이 나쁘다(뒤떨어진다)든가, 이치가 나쁘다(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두뇌플레이라고 하는지, 억지를 늘어놓든가, 행동이라고 하는, 행위가 동반하지 않은 일이 많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자연 속은, 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만사가 이루어지도록(유지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의역했습니다>



このように、每日の生活の中でも、もっともらしく、過ぎている時間など省みる者がどれだけいるだろうか。

이와 같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도, 그럴듯하게(그럴싸하게), 지나가 버리는 시간 따위를 뒤돌아보는 사람이 얼만큼 있는 것일까?



人のこのなど構(かま)っていたのでは、自分は生きて行けなくなる。大方は、こんなところではないだろうか。

사람의 이 따위로 마음을 쓰지 않았던 것은, 자신은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이런 계제가 아닐까?

 


このように、今住んでいる、この世のことさえ、何が何だか分からないのに、欲望だけは、他人より以上に募(つの)るばかりの人が、多いものである。

이처럼,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조차도, 뭐가 뭔지 모르는데, 욕망만은, 타인보다 이상으로 심해질 뿐인 사람이, 많은 것이다. 



あの世とか、魂とか、心のことなど、遠い遠い處のことのように思いがちである。

저 세상이든가, 영혼이라든가, 마음의 일 따위는, 멀고 먼 곳의 일처럼 곧잘 생각한다.  



そして、自分のすべてを含めた、生活が行き詰まった時に、神や佛を思い出すだけではなかろうか。思い出すことがなくて、人生を終わるより、救われるかも知れない。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함한, 생활이 정돈 상태에 빠졌을 때에, 신(神)이나 부처(佛)을 생각해 낼 뿐이 아닐까?  과거를 회상안 하고, 인생을 끝내는 데에서, 구제될 지도 모른다. 



神佛は、そんなためにあるのではあるまいにと思うと、何とも言いようのない思いがするものである。

신불은, 그런 목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뭐라고도 말할 수 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萬生萬物、特に靈長と言われている人間は、神佛の存在、そして自分は、今も肉體を通し、すべてを學び、心を淨化する過程にある、魂であるくらいは知らなければ、この世は、勝手氣儘な時代が、やって來るのではあるまいか。 

만생만물, 특히 영장(靈長)이라고 하고 있는 인간은, 신불의 존재, 그리고 자기 자신은, 지금도 육체를 통해서, 모든 것을 배우며,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에 있다.  영혼이며 어느 정도는 알지 않으면, 이 세상은, 제멋대로인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닐까?







自然と人間の關わり 

(인간과 자연의 관계)



人間は、人間だけで生きることは出來ない。まして一人だけでは、絶對に生きられない。

인간은, 인간만으로 살 수 없다.  하물며 혼자만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この宇宙という巨大な器、そしてその器の中に存在する、動物・植物・鑛物すべてのものと共に、人間は萬物の靈長として、それらを支配し、神の經綸のもと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である。

이 우주라고 하는 거대한 그릇, 그리고 그 그릇 속에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과 광물 모든 것과 함께,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이들을 지배하고, 신의 경륜 하에, 되살아나 살고 있는 것이다.



しかも、すべてのものと共に、協力、協調、神の意である、大調和という大目標に向かって、宇宙の中の地球を基幹とした、極微なる場の中を、物質の世三次元と、非物質の世四次元以降を、轉生輪廻を繰り返し、永遠の旅を續けているのである。

게다가, 모든 것과 함께, 협력, 협동과 조화(協調), 신의 뜻인,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큰 목표(大目標)를 향해서, 우주 속의 지구를 기간(基幹)으로 한, 극미한 장소 안을, 물질 세계 3차원과, 비물질의 세계 4차원 이후를, 전생윤회를 되풀이 하며, 영원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言われて見れば、分かったような氣もするが、一回二回ではさっぱり分からがない。そんな話と、分かろうとしない。いろんな人がいる。物がすべてと、物の中に埋もれて、物欲のみとなり、自己保存、自我我欲、勝手氣儘な行爲をする。佛の敎えは、何處へやらである。

말을 들어보면, 안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한 번 두 번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이런 말이라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갖가지 사람이 있다.  물건(物)이 전부라고, 물건(物) 속에 묻혀서, 물욕(物欲)만이 되어, 자기보존, 자아아욕, 제멋대로인 행위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디로 인가이다. 



人間社會の文明というものは、元元は協力・協調すべき大自然を、人間のみのより便利な生活おために、破壞し造り出したものである。

인간사회의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는 협력과 협동과 조화(協調)를 해야 할 대자연을, 인간만의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해, 파괴하고 만들어 낸 것이다. 



しかし人間の多くは、そうしたこと迄は考えようともしない。當り前になっているのである。そこには、感謝の心も思いやりの心もない。思念も行爲も勿論ない。そのため分かっていても、文明の名のもとに、破壞のように、破壞を廣げて行く。自然を人間のものと、錯覺を起こしている。

하지만 인간 대부분은, 그러한 것까지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감사하는 마음도 이해심(동정심)도 없다. 사념(思念)도 행위도 물론 없다.  그 때문에 알고 있어도, 문명의 이름 하에, 파괴와 같은, 파괴를 넓혀간다.  자연을 인간의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實際には、大自然の中の極微なる存在の一つが、人間なのではあるまいか。

실제로는, 대자연 중의 극미한 존재의 하나의, 인간인 것이 아닐까?



破壞をし、また破壞をし、次には、人間自らを、破壞する時がやって來るのではあるまいか。

파괴를 하고, 또 파괴를 하고, 다음에는, 인간 자신을, 파괴할 때가 도래할 것이 아니겠는가?



天變地異は、すべてその土地に住む人人の、業想念によって起きていろことを、何人の人が、それを知っているのであろうか。

천변 지이(天變地異)는, 전부 그 토지에 사는 사람들의, 업상념(業想念)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인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천변 지이(天變地異) ①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자연의 변동과 이변. 즉 일식, 유성, 지진, 해일 따위를 이른다.  <국어사전>



もっと人間は、自然のすべてに對し、謙虛な心そして感謝の行爲があって、然るべきではあるまいか。自然に對しての感謝とは、もっと自然を大切にすることでいあると思う。좀 더 인간은, 자연의 전부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 그리고 감사의 행위가 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자연에 대한 감사란, 좀 더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아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人人よ、早く目覺めよと言い度い。そしてそれぞれの環境境遇の中で、より調和された心を造り、佛の國を見いだせる人間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である。 사람들이여, 빨리 눈뜨라고 말할 때다.  그리고 각자의 환경과 경우 속에서, 보다 조화된 마음을 만들어, 부처님의 나라를 발견하는(찾아내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人間は、この自然そのものの根本的なるものに無知なのか、欲望を中心にして、無視をしているかで、自然に對しての諸諸の行爲に對し、顧みることなどあるわけがない。その結果造り出す心の歪み、それによって起きる、惱み、苦しみ、迷い、果ては、救いを神佛に縋るようになるものだ。 

인간은, 이 자연 그 자체의 근본적인 것에 무지하든가, 욕망을 중심으로 해서, 무시를 하고 있는가로, 자연에 대한 여러 가지 행위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일 따위는 있을 턱이 없다.  그 결과 만들어 내는 마음의 비뚤어짐, 그것에 의해서 일어나는, 고민, 괴로움, 미혹(망상), 결국은(끝내는), 도움을 신불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このような心の人を、絶えず狙っている、地獄の住人がいる。それが恰も神佛の如く、特定の者の意識心を操作し、迷っている者の心を、尙更もっともらしく、より迷い中に誘い込むものである。 

이와 같은 마음의 사람을, 끊임없이 노리고(엿보고) 있는, 지옥의 주민(住人: 거주자)가 있다.  그것이 마치 신불처럼, 특정한 사람의 의식・마음을 조작하고, 망설이고(깨닫지 못하고 있는=迷っている) 사람의 마음을, 오히려 더욱 그럴듯하게, 보다 미망 속으로 꾀어 들이는(끌어들이는) 것이다.  




地獄の住人に、意識・心を操作された者は、それこそ自分に、神佛が降臨されたものと大錯覺を起こし、喋り方まで變わってしまうものである。滑稽やら哀れやらの姿を、醸(かも)だすものである。 

지옥의 주민에게, 의식・마음을 조작 당한 사람은, 그야말로 자신에, 신불이 강림하신 것이라고 큰 착각을 일으키고, 수다쟁이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허황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며(滑稽), 불쌍한 모습(哀れやらの姿)을 , 자아내는 것이다.



人間の意識・心に、神佛が降臨するわけがない。人間始め萬生萬物は、すべて神佛の意識・心の中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からである。

인간의 의식・마음에, 신불이 강림할 리가 없다. 인간을 비롯한 만생만물은, 전부 신불의 의식・마음에서, 되살아나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神佛は、賴っても縋っても、手は絶對にかしてはくれないし、どんなに拜んでも、願いを掛けても、聞き入れてはくれないであろう。この宇宙の中に、生き通し生きているすべてのものに、永遠に生きて行くための、すべてを與えられておられるからである。この中に住む、萬物の靈長といわれている人間は、靈長故にか、不平不滿の心を造り、步まねばならない道さえ見失い、互いに相爭いを繰り返している始末である。 신불은, 의존하고 의지해도, 거들어 주지 않고, 아무리 합장 배례해도,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 속에, 계속 살며 살고 있는 모든 것에, 영원히 살아가기 위해서, 전부를 제공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사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있는 인간은, 영장이므로, 불평불만의 마음을 만들고,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마저 잃고, 서로 상쟁을 반복하고 있는 꼴(始末)이다.  



人間はひたすらに、神の體內である宇宙の中に、大調和という、目的使命を付與されていることを、心に銘記し、己の全なる心、眞我の心、神の心を信じ、今現在苦しみ、惱み、迷っている原因であり、欲の元兇でもある、この世で造り出した業を、滅却することに努力すべきである。これは他人事ではない。これ以外、神佛の國を見いだし、心の中に樂土を造る方法は、あり得ないのである。 인간은 오로지, 신(神)의 육체인 우주 속에서,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적과 사명을 부여 받아 있는 것을, 마음에 명기(銘記)하고, 자신의 온전한 마음, 진아(眞我)의 마음을 믿고, 지금 현재 괴로움, 고민, 깨닫지 못하고(망설이고 있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며, 욕망(欲)의 원흉인, 이 세상에서 만들어 낸 업(業)을, 멸각하는 것에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다.  이 이외의, 신불의 나라를 찾아내고(발견하고), 마음속에 낙원(樂土)을 만들 방법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これこそ、山に籠もっても、瀧に打たれても、人里離れた靜かな處で暮らしても、自らの業を改め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神佛の敎えを、人間として修得することは、出來ないものである。まして瀧行などをして得た、神佛と名乘るものがあったとしたら、それはもはや、異質のものと知るべきであろう。 

이것이야말로, 산(山)에 틀어박혀 있어도, 폭포를 맞으며 수행을 해도(瀧に打たれても),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에서 지내도, 자신의 업(業)을 고칠 수 없으면, 불교의 가르침을, 인간으로서 수득(修得)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폭포수행(瀧行) 따위를 해서 얻은, 신불(神佛)이라고 칭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남김없이, 이질적인 것이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この地球上、この世は、その時代、時代に、住む人は變わり、またその住む人人の思念と行爲によって、變化を遂げて行くであろう。しかし、神佛の國としては、何ら一切變わることなく永遠に存在し續け、神佛の子としての人間は、どんな時、場所においても、眞心の中心に、智慧として存在している。慈悲の心、愛の行爲を具現し、あの世とこと世を、轉生輪廻という攝理に從って、神佛の意である、大調和という大目標に向かって、永遠に生き續けることであろう。 

이 지구상, 이 세상은, 그 시대, 시대에, 사는 사람은 바뀌고, 또한 그 사는 사람들의 사념(思念)과 행위에 의해서, 변화를 맞이해 갈 것이다. 하지만, 신불의 나라로서는, 아무런 일체 변함없이 영원히 계속 존재하며, 신불의 자녀(子)로서의 인간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 있어도, 저 세상과 이세상을, 전생윤회라고 하는 섭리에 따라서, 신불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큰 목표(大目標)를 향해서, 영원히 계속 사는 것이다.



地球上も、またこの宇宙そのものも、すべて、神の御翼の中に育まれているのである。 지구상도, 또한 그 우주 그 자체도, 전부, 신(神)의 (어미 새)가 새끼를 그 깃털로 감싸듯이 그 품(中)에서 양육되고 있는 것이다. (신의 날개 속에서 양육되고 있는 것이다)



人間よ、自然に對しても、お互い中においても、謙虛な忘れ去ってはならない。 인간이여, 자연에 대해서도, 서로 안에 있어서도, 겸허함을 죄다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神佛と大自然

(신불과 대자연)




地球上に住む人間始め、生き通し生きる、總てのものは變わり、地球上もまた變わり行く。人間の造り出した文明などは、目まぐるしく變化して行く。しかし人間始めすべてのものの、魂としてその心は、何ら變わることなく、永遠に非物質の世と物質の世の輪廻を、續けて行くであろう。

지구상에 사는 인간을 비롯한, 줄곧 살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변하며, 지상도 역시 변해 간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 등은, 어지럽게 변해 간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영혼(魂)으로서의 마음은, 조금도 변함없이, 영원히 비물질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의 윤회를, 계속해 갈 것이다.



師が殘された敎えを、一つ一つ自分なりに追求すればするほど、神の存在、佛の慈愛のこもった心、その尊さ、人間の偉大性が、ひしひしとして、自分の心に響きわたり、これ迄の人生、これから訪れる、人間が造り出して行く文明というものによって、變化する大自然、それによって起きる試鍊、それを乘り越えなければならない神の子としての己、そうした理を、誰でも知る必要があるのではあるまいか。

스승님이 남기신 가르침은, 일일이 내 나름대로 추구하면 할 수록, 신(神)의 존재, 부처(佛)의 자애(慈愛)가 깃든(담긴) 마음, 그 존엄성, 인간의 위대성이, 사무치게, 제 마음에 울려 퍼져, 지금까지의 인생, 앞으로 찾아올, 인간이 만들어 내 가는 문명이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변화하는 대자연, 그것에 의해서 일어나는 시련,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 그러한 이치(理)를, 누구나 알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先進國にしても、後進國にしても、人間が造り出す文明は、大自然を破壞し、人間は、人間以外の生物を殺戮して行く。これは、人間の物質を中心にした、欲望から起きているもので、終いには、人間同志の、主義、主張、思想の相違から、殺しあいが始まるものである。人間はあまりにも物質文明に、のめり込んでいるので、魂とか心というと、嘲笑(せせら)うものさえ現われる始末である。

선진국이라고 해도, 후진국이라고 해도,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명은, 대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은, 인간 이외의 생물을 살육해 간다. 이것은, 인간의 물질을 중심으로 한, 욕망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는, 인간끼리, 주의(主義), 주장(主張), 사상(思想)의 상위(相違)로 인해, 서로 죽이는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은 너무나도 물질문명에, 빠져 들어 있기 때문에, 영혼(魂)이라든가 마음(心)이라고 하면, 조소(嘲笑)하는 사람마저도 나타나는 전말(始末)이다. 



人間があまりにも、物質至上主義に流され、それぞれが造り出す、小さな小さな欲望に振りまわされ、大自然の周期が、どのようなのか、いつなのかも知らず、ただただ享樂へ享樂へとのめり込んで行く。一度、享樂の味を知ったものは、もとには戾れなくなる。そんなことは、我關せずのものが、殆どではあるまいか。

인간이 너무나도, 물질지상주의에 빠져, 각자가 만들어 내는, 작은 작은 욕망에 농락당하여, 대자연의 주기(周期)가, 어떠한 것인지, 언제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향락으로 향락으로 빠져 들어 간다. 한 번, 향락의 맛을 본 사람은, 원상태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것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 아니겠는가?



人間が、人間以外に與えたすべてのことは、輪廻をして、人間すべてのものの頭上に、何らかの形になって、覆い始めていることに氣付かないのが、現代という時代の姿ではないのかと思う。

인간이, 인간 이외에 부여된 모든 것은, 윤회를 하며, 인간 모든 것의 머리 위에, 어떤 모습이 되어, 뒤덮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현대라고 하는 시대의 모습아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人間よ、目を覺まさねばならない。あまりにも心不在の自分自身のことを、知らなさすぎ、自分の首を、自分で絞めつつある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인간이여,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나도 마음의 부재의 자기 자신의 일을, 너무나도 모르며, 자신의 목(首)을, 스스로 조이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魂である自分、非物質の世の存在、それが物質の世、この宇宙すべての根元をなす、己の世界であ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人間は、これを受け入れることが出來ないため、現代のような、物欲に翻弄された、混沌とした世界を造り出し、これが總てと思い込んで、互いに、民族の利益のみを考え、そのための權力を行使しようとする、力の世界を、造り出しているのである。

영혼(魂)인 자기 자신, 비물질의 세계의 존재, 그것이 물질의 세계, 이 우주 전체의 근원(根元)을 이루는, 자기(己)의 세계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현대와 같은, 물욕(物欲)에 농락당한, 혼돈(混沌)된 세계를 만들어 내어, 이것이 전부라고 믿어버리고, 서로, 민족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그로 인한 권력을 사용하려고 한다. 힘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神とは、萬生萬物を、この宇宙の中に生かし續けている、意識そのものであり、それこそ神の姿は見ることもできないし、聲さえ聞くことは、不可能なことである。何故だろう、それは、我我萬生萬物は、神の體內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からである。

신(神)이란, 만생만물을, 이 우주 속에 계속 되살리고 있는, 의식(意識) 그 자체이며, 그야말로 신(神)의 모습은 볼 수도 없고, 소리조차도 듣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들 만생만물은, 신(神)의 체내(體內)에서 되살아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 



よく神の姿を見たとか、神のお告げを聞いたとか、よく聞くことであるが、絶對にあり得ないことなのである。神は超マクロであり、超ミクロの存在の人間などには、關知出來ないのである。

자주 신(神)의 모습을 봤다든가, 신(神)의 계시(お告げ)를 들었다든가, 자주 듣는 일이지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신(神)은 超Macro(超マクロ)이며, 초Mikro(超ミクロ)의 존재인 인간 따위로는, 알 수 없는(關知出來ない)것이다. 



人間は、非物質の世界の存在、魂とか心とか言うことを信じない。すべて物だけのことを中心にしているため、例えば、舊約聖書のように、人間の心の在り方を敎えであるにも拘わらず、物の中での敎えにしようとしているため、不思議な敎えであり、矛盾したことが出て來るのである。信仰的面からすると、不思議とか、矛盾の心はもってはならないのかも知れない。狂信と盲信である。

인간은, 비물질의 세계의 존재, 영혼(魂)이라든가 마음(心)이라고 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전부 물건(무엇 物)만의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구약성서와 같이, 인간의 마음의 본연의 자세(바람직한 상태 在り方)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건(무엇 物)의 속에서의 가르침으로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사의한 가르침이며, 모순된 것이 나오는 것이다. 신앙적면으로 하면, 불가사의하든가, 모순의 마음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광신(狂信)과 맹신(盲信)이다. 



我我人間の存在を、非物質、心の世界を中心に見た場は、次のようになっていると思うものである。

우리들 인간의 존재를, 비물질, 마음의 세계를 중심으로 본 바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最初に、神はこの宇宙を創造された。しかも宇宙というのは、我我が住んでいる、銀河系のような星雲が、數知れず存在する巨大なものを、數個包含した、超巨大なる宇宙である。

최초에, 신(神)은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  게다가 우주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은하계와 같은 성운(星雲)이,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하는 거대한 것을, 몇 개(數個) 포함한, 초거대한 우주이다.



その物質宇宙を、より調和させるために、それに必要なる萬生萬物を、非物質の中に造り出されたのである。そして、それらのものに緣という、交わるものを與えられた。次に物質的なものを創造された。

그 물질 우주를, 보다 조화시킬 목적으로, 그것에 필요한 만생만물을, 비물질 속에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 인연(緣)이라고 하는, 

사귀는 것을 주어졌다. 다음에 물질적인 것을 창조하셨다.

 


それは恰も、人間でいえば、男女の交わりによって、一つの生命ができるようにである。そして、それらすべてのものには、單體ではなく、人間には六人を一組として、萬生萬物に、それぞれ必要數を一組として、輪廻という定めを造られ、一人一人に調和を果たすために、それを目的・使命として與えられた。しかも、人間には、萬物の靈長として、自由・創造・反省という三つを與えられたのである。それによって人間は、萬生萬物を支配し、神が決められた、大調和という、目的・使命を果たすために、萬生萬物と、共存共榮、協力・協調をして行くように、神が造られたのである。

그것은 마치, 인간으로 말하면, 남녀의 교제(성교 交わり)에 의해서,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에는, 단체(單體)가 아니며, 인간에게는 6명을 한 조로 해서, 만생만물에게, 저마다의 필요한 숫자(數)를 한 조로 해서, 윤회라고 하는 규칙(定め)을 만들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화(調和)를 달성하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목적과 사명으로 해서 주어졌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유와 창조와 반성이라고 하는 세 가지가 부여된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인간은, 만생만물을 지배하고, 신(神)이 정하신, 큰 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적과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만생만물과, 공존공영, 협력・협동조화(協調)를 해 가도록, 신(神)이 만드신 것이다.



この点から見ても、現代の人間は、人間だけの欲望のために、すべてのものを破壞しているのである。恐らく近い將來、このまま進んで行けば、人間が今迄自然に與えて來た事に對しての、反作用が起きることであろう。

이 점에서 봐도, 현대의 인간은, 인간만의 욕망 때문에,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필시 가까운 장래에, 이 상태로 진행해 가면, 인간이 지금까지 자연에 입혀 왔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今、地球上で人間が引き起こしている、政治や經濟その他のものが、もっともらしく動きまわっている事柄は、物質文明と共に、人間自ら、滅びようとしている姿なのかも知れない。

지금, 지구상에서 인간이 야기하고 있는, 정치나 경제 그 외의 것이, 그럴듯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일(사항 事柄)은, 물질문명과 함께, 인간 스스로, 멸망하려고 하고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ここで人間一人一人が、自覺せねばならないことがある。それは、この宇宙の中で、人間だけが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と言うことである。

文明というものの中には、あまりにも不必要なものが、多過ぎるのではあるまいか。여기에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우주 속에서, 인간만이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この宇宙の中に生存する、人間始め、動物・植物・鑛物すべてのものは、神の創造物であり、生命協同體として、永遠に輪廻の中に、生き續けるものである。

이 주우 속에 생존하는, 인간을 비롯한, 동물과 식물과 광물 모든 것은, 신(神)의 창조물이며, 생명 협동체로서, 영원히 윤회 속에서, 계속 사는 것이다.



人間は今、人間の造り出している文明を、より發達させようとしているが、これによって、もっとも大切な、神の創造物を失おうとしている。それこそ、人間の驕(おご)った心の現われ以外、なにものもない。 

인간은 지금, 인간의 만들어 내고 있는, 보다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지만, 이것에 의해서, 가장 중요한, 신(神)의 창조물을 잃으려고 하고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교만한 마음의 표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神と佛と人間と

(신과 부처와 인간과)



神とは、この大宇宙を創造された意識そのものであり、萬生萬物、生き通し生きるすべてのものが、生き續け、子孫保存をなし、古きものより新しきものへ、新しきものより古きものへと、永遠にその運動を續け、大調和という目標と、その目標を達成するために、必要なものを、悉く與えられたものなのである。

신이란, 이 대우주를 창조하신 의식(意識) 그 자체이며, 만생만물, 처음부터 끝까지 살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계속 살며, 자손보존을 이루고, 옛날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새로운 것에서 옛날 것으로, 영원히 그 운동을 계속하며,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표(目標)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주시는 분인(제공해 주시는) 분인 것이다. 



しかも、宇宙の中は、人間では創造することの出來ない、秩序整然たる、時間と波動の流れの中に、生かし續けているのであり、何一つとして要求というものをしていない。

게다가, 우주 안은, 인간으로서는 창조할 수 없는, 질서 정연한, 시간과 파동(波動)의 흐름 속에, 계속 되살리고 있는 것이며, 아무것도 (댓가를) 요구(要求)한다고 하는 것을 하고 있지 않다. 



佛は神の意をたいし、すべてのものに、生きる術と理を說くために、この地上界に、必要に應し、その時時に、その姿を現わし、敎え導かれておられるのである。

부처(佛)는 신(神)의 뜻(意)을 대신해서, 모든 것에게, 살아가는 방법(術=수단)과 이치(理)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지상계(地上界)에, 필요에 응해서, 때때로(가끔), 그 모습을 드러내서, 가르치고 이끄시고 계시는 것이다. 



しかるに人間は、それぞれに、この世の存在の理など思いもよらず、自分中心のものの考え、何事も樂しく、面白おかしく、時を過ごそうとする心の領域が、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廣がり、自分本位的で無責任な、社會を造り出しているのである。怠惰そうものである。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각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치(理) 따위는 미처 생각도 못하고, 자기 중심의 것만을 생각하며, 무슨 일이든 즐겁게, 즐겁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마음의 영역(領域)이, 부지불식간에 넓어지고, 자기본위적(自分本位的)이며 무책임한,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나태(怠惰 게으름) 그 자체이다.



しかしその反面では、怠けてはならない、正直で眞面目な日日の生活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他人のために少しでも盡くさなければならない、淫らな思をを起こしてはならない、明るい心をもたねばならないと、惡魔の心と、佛の心が絶えず、競り合っているのである。

하지만 그 반면(反面)으로는,게을러서는 안 되며, 정직하며 진면목(眞面目)인 매일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타인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봉사(진력)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음란한 생각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밝은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악마(惡魔)의 마음과, 부처(佛)의 마음이 끊임없이, 경합(競合)하고 있는 것이다.


★진면목(眞面目) ①진가 ②진지(眞摯) ③성실 ④본래의 모습 ⑤본래 그대로의 모습 ⑥정직하고 성실함



現代の世相は、前者の自分中心の領域によって占められ、それが當たり前となり、人間の善なる心を、徐徐に徐徐に蝕(むしば)んでいるのである。結果は、人間の勞動意欲の缺如が表面化し、勝手氣儘で、享樂のみに走る人間が多くなる。思うようにならなければ、すべて他人や世相のせいにする。何事も、當然のように、やりっぱなし、後は誰かが片付る。こんな風潮(ふうちょう)は、政治や企業、はては人間の心の迷いを救うとされている、宗敎と名のつく集團などに、顯著にその姿を見せ、救うどころか、ますます迷いの中に引き入れ、あまつさえ、集まった信者に、金品を獻上され、恰かも、それが神佛の爲の如く思わせているのである。

현대의 세태(世相)는, 전자(前者)의 자기중심의 영역에 의해서 점령당해서,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서, 인간의 선한 마음을, 서서히 서서히 좀먹고(해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인간의 노동의욕(勞動意欲)의 결여(缺如)가 표면화되고, 제멋대로, 향락만으로 치우치는 인간이 많아진다. 생각처럼 안 되면, 모든 것은 타인(他人)이나 세태(世相) 탓으로 돌린다. 무슨 일이든, 당연한 듯이, 뒤처리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나중에는 누군가가 처리한다. 이런 풍조(風潮)는, 정치(政治)나 기업(企業), 끝내는 인간의 마음의 망설임(迷い=미망)을 바로잡는다(고친다= 돕는다=救う)고 말하고 있는, 종교라고 하는 이름을 붙인 집단(集團) 따위에게, 현저히 그 모습을 보이며, 돕기는커녕(잘못을 바로잡아 이끌기는 커녕=救うどころか), 더욱더 미망(迷い) 속으로 끌어들이고, 더군다나 모여든 신자(信者)에게, 금품(金品)을 헌상(獻上)하게 하여, 마치, 그것이 신불(神佛)을 위한 것처럼 여겨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迷妄1 [미망]  

①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맴

②또는 그런 상태



 こうしたことは、實際には、こと宗敎のみでなく、政治・思想も同じような動きを見せるに至っている。

이러한 일은, 실제로는, 사실 종교(宗敎)뿐만이 아니라, 정치(政治)・사상(思想)도 똑같은 움직임을 보이기에 이르고 있다. 



正にこれ、末法の世そのものであり、暗澹たるものを思わせられるものである。

바로 이것은, 말법(末法)의 세상(世) 그 자체이며, 암담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な世相を見聞して、人人の不安は心から無くならない。それどころか、不安は恐怖心に變わる始末である。遂には、精神病や精神的による內臟疾患、家庭の不和、企業倒産など、末法を背景に、その類は廣まるばかりである。

이와 같은 세태(世相)을 보고 듣고, 사람들의 불안(不安)은 마음으로부터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지기는커녕, 불안(不安)은 공포심(恐怖心)으로 바뀌는 시말(始末)이다. 결국에는, 정신병(精神病)이나 정신적으로 인한 내장질환(內臟疾患), 가정불화(家庭不和), 기업도산(企業倒産) 등, 말법(末法)을 배경으로, 그런 종류(類)는, 범위가 넓어질뿐이다.



この世は、有形・無形の苦しみが非常に多いものである。こうした中を生きて行くのであるから、怠惰したくもなるものだ。しかし、怠惰は落伍をすることである。落伍をしたくなければ、まずその苦しみの原因を、知ることである。

이 세상은, 유형무형의 괴로움이 매우(대단히) 많은 것이다. 이런 속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태해지고 싶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나태(怠惰)는 낙오(落伍)을 하는 것이다.  낙오(落伍)를 하고 싶지 않으면, 우선 그 괴로움의 원인(原因)을, 아는 것이다. 



人間には誰しも、欲というものがあり、この欲により、心を見失うように出來ているものだ。この欲に負けない心を培(つちか)うことが、佛の敎えなのである。

인간에는 누구나, 욕심(慾)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이 욕심(欲)에 의해서, 마음을 잃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욕심(欲)에 지지 않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부처님(佛)의 가르침인 것이다. 



★よく[欲]  "① 바라다 ② 욕심부리다 ③ 욕심 ④ 끝없는 욕심" 란 뜻으로 일본어에서는 쓰이고 있습니다. 



それには、まず自分の環境・境遇はどんなものなのか、その中で欲によって、どんな業・缺點を造り出しているのか、それによって今まで、どんな人生を送って來ているのか、この業の修正こそ、苦しみを乘り越えることの出來る、唯(ただ)一つの方法であり、人間として今世において、行じなければならない、もっとも大切なことなのであり、これが佛の敎えの入口なのである。

그것에는, 우선 자신의 환경이나 경우는 어떠한 것인지, 그 속에서 욕심(欲)에 의해서, 어떤 업(業)이나 결점(缺點)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그것에 의해서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보내고 있는지, 이 업(業)의 수정(修正)이야말로,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인간으로서 현재의 세상(今世)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며, 이것이 부처님(佛)의 가르침의 입구(入口)인 것이다.



これを行うためには、勇氣と努力と行爲が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積み重ねによって、人間として生まれた目的を、果たすことが出來るのである。幸福な心の安らぎを得ることが、出來るㅡということである。何事も成就するということだ。他人任せな他力では、絶對に幸福にはなれない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이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용기(勇氣)와 노력(努力)과 행위(行爲)가 없으면 안 된다. 그것을 쌓아 올림에 의해서, 인간으로서 태어난 목적(目的)을, 달성(완수)할 수가 있는 것이다. 행복한 맏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성취(成就)한다고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맡기는 타력(他力)으로는, 절대로 행복(幸福)하게는 안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このごろの風潮は、何事も努力による積み重ねなど、と嘲笑するものもいるようである。すべてコンピューターが計算をし、器械が人間の代わりをしてくれると、思っているものもい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正に人間よ何處へ行くである。怠惰もよいところである。苦しみは、苦しみを呼び込むようになる。

요즈음의 풍조(風潮)는, 무슨 일이든 노력(努力)에 의한 쌓아 올림 따위는, 이라고 비웃는(嘲笑)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전부 컴퓨터가 계산을 하고, 기계(器械)가 인간을 대신해 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지금 인간이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正に人間よ何處へ行くである)? 

나태(怠惰)도 좋은 입장(ところ)이다.  괴로움(苦しみ)은, 괴로움을 불러들이게 된다. 



こうした苦しみを、自らの力で解決することなく、宗敎というものに、救いを求め逃げ込んでしまう人が多いものである。現在日本だけでも宗敎という團體が、約二十萬とも三十萬とも言われるくらい、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驚くばかりである。

이러한 괴로움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宗敎)라고 하는 것에, 도움을 청하며 도망쳐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현재 일본(日本)만해도 종교(宗敎)라고 하는 단체가, 약 20만이라고도 30만이라고도 말할 정도로, 있다고 하는 것이며, 놀랄 따름이다. 



★이 책은, 1994년도 나온 책입니다★




人間は絶えず、靈としての自信をもっていないと、自分の持ってない能力、特に靈的な能力を見せ付けられると、神か佛と思い込んでしまう人がいる。

인간은 끊임없이, 영혼(靈)으로서의 자신(自身)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자기 자신(自分)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能力), 특히 영적(靈的)인 능력을 여봐란 듯이 보이면, 신(神)인가 부처(佛)인가해서 믿어 버리고 마는 사람이 있다.



この世には、善惡に拘わらず、靈的な感度の程度はあるが、數えきれないほどの人間が、今この世に住んでいるのである。何故あの世のことになると、眼や耳を傾けるのであろう。この世に生きてい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思う。

이 세상에는, 선악(善惡)에 상관없이, 영적인 감도(感度)의 정도(程度)는 있지만, 수없이 많은 인간이,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왜 저 세상과 이 세상이 일이 되면, 귀나 눈을 기울이는 것일까(이목을 집중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また、人間が神になれる訳など、絶對にあり得ないのである。

또한, 인간이 신(神)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佛は時折折必要に應し、この世に肉體を持たれ、法を說かれることがある。しかしあの世から、我は神たとか、佛だとか天使だと言って、この世のものの意識を通し、語ったとしたら、もはやそれは、正しいものではない。服裝にしても、法說の場を、レーザー線などの照明を使用し、人人の心を迷わすようなことがあったとしたら、それはもはや、思いあがった心を、眼に見えない、何者かに賣り渡してしまった者の姿なのである。

부처(佛)는 이따금 필요에 응해서,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시고, 법(法)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세상에서, 나는 신(神)이다라든가, 부처(佛)다라든가 천사(天使)다라든가 라고 말하며, 이 세상의 사람(もの)의 의식(意識)을 통해서, 말했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복장(服裝)이라고 해도, 법설(法說)의 장소(場)을, 레이져 광선 따위의 조명(照明)을 사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것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우쭐한 마음을,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팔아 넘겨 버린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宇宙の中は、すべて一定の時間をもって、一定の方向に向かって、永遠に前進を續けているのである。後退など絶對にあり得ないのである。

우주 속은, 모두 일정한 시간을 가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며, 영원히 전진(前進)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후퇴(後退)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從って、この世を去った佛が、この世に戾り、他人の意識を通して、語り出したとしたら、それはもはや、惡靈でい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따라서, 이 세상을 떠난 부처(佛), 이 세상으로 되돌아와서, 타인의 의식(意識)을 통해서, 말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악령(惡靈)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師の敎えは、そんなけちな世俗的なことではない。その敎えとは、大自然の法則と、人間の生きるための法則との、大調和であり、大自然と人間の一體化であり、人間の日常生活の在り方は、太陽のように、慈悲の心の顯現と、愛の實踐行爲そのものであった。

스승님의 가르침은, 그런 비열한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 가르침이란, 대자연(大自然)의 법칙(法則)과, 인간의 살아가기 위한 법칙(法則)과, 대조화(大調和)이며, 대자연과 인간의 일체화(一體化)이며, 인간의 일상생활(日常生活)의 본연의 모습(在り方)은, 태양(太陽)처럼, 자비(慈悲)의 마음의 현연(顯現)과, 사랑의 실천행위(實踐行爲) 그 자체인 것이었다.



しかし人間は、神佛の加護を願うばかりで、他の爲に盡くすことをしない。自分の心など省みることも、言葉では言うが、行うものが少ない。當然自らの業の修正など、掛け聲ばかりである。世相が惡靈の思う壺となるのは、當然かも知れない。

하지만 인간은, 신불(神佛)의 가호(加號)를 빌(바랄=기원할)뿐이며, 남을 위해서 봉사(진력)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마음 따위를 뒤돌아보는(반성하는=省みる) 일도, 말로는 하지만, 실천(行う)하는 사람(もの)은 적다.  당연히 자신의 업(業)의 수정(修正) 따위는, 구호(掛け聲)뿐이다.  세태(世相)가 악령(惡靈)의 예상(思う壺)대로 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師の敎えにふれたものでも、理屈だけで、他力的な考えのものが多いようである。

스승님의 가르침을 접한 사람이라고 해도, 핑계(理屈)만 대며, 타력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 考えのもの = "생각해 볼 일" 이란 뜻입니다.

★ 본 문장에서는, "생각하는 사람" 번역했습니다.



たとえ神佛の加護加號があったとしても、理屈だけで、行なうことがないとしたら、いつかは、無常の風に吹かれてしまうだろう。

가령 신불(神佛)의 가호(加護)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핑계만 대며, 실천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언젠가는, 무상(無常)의 바람에 날라가 버릴 것이다. 



今世に生きるとは、生き通し生きている中での今世を、己の怠惰する心に負けず、他を恨まず、憎まず、お互いに勵ましあい、有意義な人生を送ることである。

현재의 세상(今世)에 산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살며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에서 금세(今世)를, 자신의 나태(怠惰=게으름)한 마음에 지지않고, 남을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유의의(有意義)한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今世での生活環境・境遇の中で得た、苦樂を乘り越えた體驗は、永遠に生き續ける中での、己の心の智慧となり、佛智となり、やがて巡りくる世でその智慧を湧現し、神佛の子人間として、神の意である調和ある世を造り、子子孫孫に至るまで、この地球という、神佛が與えてくれた天體を、より大切に、永遠の生活の場と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현재의 세상(今世)에서의 생활환경과 경우(境遇) 속에서 얻은, 고락(苦樂)을 극복한 체험(體驗)은, 영원히 계속 사는 중에서의, 자기의 마음의 지혜(智慧)가 되어, 불지(佛智)가 되어, 이윽고 돌아오는 세상에서 그 지혜(智慧)가 샘솟듯이 솟아나서(湧現), 신불(神佛)의 자녀(子)인 인간으로서, 신(神)의 뜻(意)인 조화(調和)를 이룬 세상을 만들고,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地球)라고 하는, 신불(神佛)이 제공해 주신 천체(天體)를, 보다 소중(大切=중요)하게, 영원한 생활의 장(場)으로서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용현(湧現)은, 중국말입니다.

新人新事不斷涌現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다 







あの世とこの世の接点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접점)



 「私が死んだら、立派な告別式をしてくれ」と、まだこの邊は良い方である。多くのものは、最後の最後まで、金や物に對し、私のものだ、私のものだと、執着を殘して、死んで行くものが多い。また死んでも、死んだと思っていないものも多い。等速度運動(とうそくどうんどう)という言葉があるが、正にその通りである。

「내가 죽으면, 훌륭한 고별식(告別式)을 해 달라」고, 아직 그쯤은(그와 같은 일은) 좋은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최후의 최후(最後)까지, 돈이나 물건(物)에 대해서, 내 것이다, 내 것이다(私のものだ)라고, 집착을 남기고, 죽어 가는 사람이 많다.  또한 죽더라도,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 사람도 많다.  

등속도 운동(等速度運動)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 정말로 그대로이다. 



また、死んだ身內のことを聞きたがる人も、意外に多いものである。

또한, 죽은 몸 안(身內)의 일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은 것이다. 



師の話を拜聽している仲間で、近しくお付き合いをしていた方が、ある時、出張先の工場のトイレで、腦溢血で亡くなられた。後には奧さんと、大學生の息子さん、高校生の娘さんを殘されたのである。師のお弟子さんの一人に、k氏と言われる方がおられた。この方が、亡くなられた方の、親戚の方であった。

스승님의 말을 공손히 듣고(拜聽) 있는 동료(仲間)이며, 친하게 교제를 하고 있던 분이, 어느 때, 출장지(出場先) 공장의 화장실(トイレ)에서, 뇌출혈(腦出血)로 돌아가셨다. 나중에는 부인과, 대학생 자제분, 고등학생의 따님을 남기신 것이다. 그 분이, 돌아가신 분의, 친척 분이었다.



ある日、k氏に呼ばれ、

「私の叔父は、今どのようにしているか、聞いてくれませんか」

「さあ、私にはよく分かりません」

この方、私に會うたびに、しつこく問われるのであったが、私は師より,

「亡くなって日の淺い靈を、呼び出さないようにしなさい」

と言われていたのである。

어느 날, K씨에 초대를 받아, 

「제 숙부님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글쎄,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분, 나를 만날 때마다, 끈덕지게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나는 스승님에게서,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혼령(靈)을, 불러내지 않도록 하십시오」

라고 말하시고 있던 것이다.



それが半年ばかりしたときに、用事があり、k氏のお宅を訪ねることになった。

그것이 반년쯤 지났을 때에, 볼일아 있어서, K씨 댁을 방문하게 하게 되었다. 



用事が一應すみ、ほっと一息ついて、お茶をいただいていた。このお弟子さん、早速に先日のことを、持ち出された。

「この方、しつこい人だな」

と思いながら、話を聞いていた。

「叔父のことを、聞いてみてくれませんか」

볼일을 대충 끝내고, 휴유 하고 한숨 돌리고, 차를 들고 있었다. 이 제자분이,즉시 전번의 일을, 꺼내셨다.

「이 양반, 참 끈질긴 사람이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을 들어 보았다.

「숙부님의 일을, 들어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話をそらそうとするのだが、どうしてもと言われる。仕方なく、亡くなった友人を呼んでみることにした。私は心靜かに、その方に呼びかけ、

「出來たら、私の前に、出て來てください」

果たせるかな、その方が姿を現わした。すかさず(透かさず)私は、

「あなたは、どこが惡かったのですか。今どんな處にいるのですか」

말을 딴 데로 돌리려고 해 보았지만, 싫든 좋든 물어보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돌아가신 친구를 불러보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그 분을 소리쳐 불러서,

「오셨다면, 제 앞에, 나와 주십시오」

역시(생각한 대로), 그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즉시 나는,

「당신은, 어디가 안 좋았던 것입니까? 지금 어떤 곳에 계십니까?」



途端に、この方、私の意識の中に、飛びこんで來られた。そして私の聲帶を使って、語り始めたのである。

그 순간에, 그 분, 제 의식 속으로, 뛰어들어 오셨다. 그리고 내 성대(聲帶)를 이용해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あの日は朝から、氣分がとても惡かった。あの時私は、急に吐き氣と頭痛が始まり、特に後頭部が痛くて、どうにもならなかった。數日間仕事で無理が重なっていたのでしょう。しかし、會社の重要な仕事であったので、何とか工場迄は來た。各部署を見て步いていた時、もしかしたら倒れるのではないのかと、思いながらも、一通りの點檢もすんだ。一應ほっとして、小用を思い、トイレに入り、外に出ようと、その後は、氣付いてみたら、自分の肉體の外にいた。これはいけないと、あわてて肉體に戾ろうとしたが、どうしても戾れない。そのうち會社の人人が、集まって來て大さわぎをしている。それを見て、あっ、私は死んだのではと思った。その時女房と、息子、娘はどうするのだろうと、それだけになってしまった。途端に眞暗な處に落ち込んでしまった。幸い高橋信次先生の敎えを思い出し、すぐ反省をすることができ、死の瞬間に思った家族のことは、すべて執着であることが分かり、今はおかげさまで、明るく暖かい處におります」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아주 나빴다. 그때 나는, 구역질이 나고 두통이 시작되어, 특히 후두부(後頭部)가 아파서, 어찌할 수 없었다. 수일간 일로 무리가 겹쳐져 있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장까지 왔다.  각 부서를 돌아보고 걷고 있었을 때, 어쩌면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충 점검도 끝냈다. 일단 한숨 돌리고, 소변이 보고 싶어서, 화장실로 들어가, 밖으로 나오려고, 그 다음은, 정신을 차려 보았더니, 내가 육체의 밖에 있었다. 이것은 안 된다고, 부랴부랴 육체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돌아가지 못했다. 곧 회사 사람들이, 모여들어 야단 법석을 떨고 있다. 그것을 보며, 아~, 난 죽은 것이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때 집사람(女房)과, 아들(息子), 딸(娘)은 어떻게 하지? 라고, 그뿐이 되어 버렸다. 그 순간 캄캄한 곳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내어, 즉시 반성을 할 수 있어서, 죽음의 순간에 생각했던 가족의 일은, 전부 집착인 것을 깨닫고, 지금은 덕분으로, 밝고 따뜻한 곳에 있습니다」



「より明るい處に歸って下さい」

それだけで、すかさず、私はこの方に、

「私の意識から離れて下さい」

おおげさ(大袈裟)であるが、必死に語り少りかけた。少時間は掛かったが、それ

こそ言葉で言うと、さっと簡單に、この方が離れたのが分かった。  

「보다 밝은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그쯤에서, 즉시, 나는 이 분에게,

「제 의식(意識)에서 떠나 주십시오」

호들갑을 떨었지만, 필사적으로 말을 걸었다. 조금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야말로 말로 하면, 휙 하고 간단히, 이 분이 떠난 것을 알았다.



「叔父の姿、聲そのものでした」

と、こちらのことも考えないのであろう、そのように言われ、

「ご苦勞さまでした」と。

「숙부님의 모습, 목소리 그대로였습니다」

라고, 이쪽 일도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그렇게 말하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한다.



要件を濟ませ、歸路、電車の中で、師が注意されておられたことが思い出され、私のやったことは、頗(すこぶ)る危險なことであることを、分からせていただいた思いであった。

중요한 볼일을 마치고, 귀로(歸路), 전차 안에서, 스승님이 주의를 주신 일을 회상하며, 내가 한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인 것을, 알게 해 주셨다고 생각했다.



私は、こうした體驗を通し、靈の存在、あの世の存在などを、さらに、その確信を深めたのである。

나는, 이런 체험을 통해서, 영혼(靈)의 존재, 저 세상의 존재 등을, 더욱 더, 그 확신을 깊게 한 것이다.



あの世とこの世を輪廻し、今この世物質の世を通過しつつある、これが肉體人間の實相である。當然、決められた時間があり、その時間が到來する。その時に、肉體から光子體に、率直に乘り替えが出來なければならないし、それが出來るためには、この世の生きざまが一番大事なのである。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윤회하고, 지금 이 세상 물질의 세계를 통과하는 중인, 이것이 육체인간의 실상(實相)이다. 당연히, 정해진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이 도래한다.  그 때에, 육체에서 광자체(光子體)로, 솔직하게 갈아탈 수가 없으면 안되고, 갈아탈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삶의 눈뜸(生きざま)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あの世とこの世は、確かに「あ」と「こ」の違いではあるが、次元が異なるため、この世で思っているようには、ならないものだ。

저 세상과 이 세상은, 확실히 「저(あ)」와「이(こ)」의 차이가 있지만, 차원(次元)이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생각하고 있는 식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この世で自ら、俺は神た、佛だと言う人間がいたとしたら、それはすべて、低級な靈が、悟ることが出來ず、この世に執着を殘し、神や佛の名を使って、惡さをしているのである。

이 세상에서 스스로, 나는 신(神)이다, 부처(佛)다, 라고 하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부, 저급(低級)한 영(靈)이, 깨닫지 못하고(悟ることが出來ず), 이 세상에 집착을 남기고, 신(神)이나 부처(佛)의 이름을 쓰며,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この世の人人は、見ることも、聞くもとも出來ないものを、どうしてか信じてしまい、つい振り廻されてしまうのである。

이 세상 사람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을, 어떻게든 믿어 버리고, 그만 농락당하고 마는 것이다.



よく、先祖供養をしなさいと言われ、何十萬円もの金を取られ、びっくりする人がいる。先祖供養と稱し、佛壇や墓に、美味(おい)しいものや酒やビール、はては煙草に火までつけて、供える人もいる。

자주, 선조고양을 하십시오, 라고 말을 듣고서, 몇 십만 엔의 돈을 빼앗기고, 깜짝 놀라는 사람이 있다. 선조공양이라 칭하며, 불단(佛壇)이나 무덤(墓)에, 맛있는 것이나 술(酒)이나 맥주(ビール), 끝내는 담배(煙草)에 불을 붙여서, 올리는 사람도 있다. 



★불단(佛壇): 불상이나 위패를 안치하고 예배하기 위한 단. 



しかし、あの世とこの世は、次元が違うのだから、假にそれらの、お供えものを

見たとしても、どうにもならないのである。考えようでは、かえって氣の毒なことになるのである。

하지만, 저 세상과 이 세상은,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가령 이러한, 공물(お供えもの)을 봤다고 해도, 쓸데없는 것이다. 생각하기로는, 오히려 딱하(불쌍하다)게 여기게 된다. 



これらは、生きている緣者が、先祖供養をしたと言う、滿足感があるだけである。大體先祖供養に、五十萬や六十萬という金錢が、掛かること事態がおかしなことである。しかし世の中には、惡い人が多くいて、迷っている人から、金を騙

(だま)し取る人もいる。これは騙される方が惡いのかも知れない。

이러한 것은, 살아 있는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緣者)"이, 선조고양을 했다고 하는, 만족감이 있을 뿐이다. 도대체 선조공양에, 50만 엔이나 60만 엔이라고 하는 금전(金錢)이, 드는 사태(事態)가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世の中)에는, 악한 사람이 많이 있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迷っている人)에게, 돈을 속여서 빼앗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속는 쪽이 나쁜지도 모른다.



★연자(緣者) ①일가. 집안 사람. 관계가 있는 사람. ※근세(近世)에서는 특히 친척과 구별해서 인척(姻戚 : 혼인 관계를 통하여 맺어진 친척)을 가리킨다. 



またこの世には、習慣といるものがあり、その中での行事は當然であり、習慣に反對をして、調和を欠いてはならない。陋習(ろうしゅう)にならないようにすることが、大切なのである。佛壇や墓の前で、先祖の靈安かれと祈る心は、當然であるが、その心で自ら今世に生きていることの、理(ことわり)を理解し、日日の生活の中で、自らの業の修正をなし、心の淨化をはかることが先決であり、それが廷(ひ)いては、先祖供養とな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또한 이 세상에는, 습관(習慣)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 속에서의 행사(行事)는 당연하여, 습관(習慣)에 반대를 해서, 조화(調和)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 누습(陋習=악습=나쁜 습관)으로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불단(佛壇)이나 무덤(墓) 앞에서, 조상(先祖)의 영혼이 평안(靈安かれ)하시라고 비는 마음은, 당연하지만, 그 마음으로 자신(自ら)이 금세(今世)에 살고 있는 것의, 이치(理)을 이해하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업(業)을 수정(修正)을 이루고, 마음의 정화(淨化)를 도모하는 것이 선결(先決)이며, 그것이 더 나아가서는(그것이 원인이 되어 廷いては), 선조공양(先祖供養)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死とは、今世での決められた時間を、終了することであり、魂としてこの世の使命を果たし、それ迄の最大の協力者であった、自分とばかり思っていた、六十兆という細胞集團との、暫しの別れ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

죽음이란, 금세에서의 정해진 시간(時間)을, 종료하는 일이며, 영혼(魂)으로서 이 세상의 사명을 완수(달성)하고, 그때까지의 최대의 협력자로 있던, 자기(自分)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60조(兆)라고 하는 세포집단(細胞集團)과의, 잠시 동안의 이별(別れ)이라고 하는 것이다.







佛の手のひら 

(부처님의 손바닥)



人間の社會は、權力者や支配者がおり、その勸力や支配力を、より强固(きようこ)にするため、心の安らきなど、何處へやらで、絶えず示威(じい)行動をする。これを取り卷く、各界のもの達は、自分を賣り出すために、互いに鎬(しのぎ)を削(はず)り、陷(へつら)い、實に醜(みにく)い。それまてしまで、と思うようなことを、この小さな地球の中で、もっともらしく行じられ、短かな一生を終わって行く。

인간 사회는, 권력자나 지배자가 있고, 그 권력이나 지배력을, 보다 강고하게 하기 해서, 마음의 평안 따위는, 어딘가로 보내고, 끊임없이 시위 행동을 한다. 이것을 둘러싸고, 각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 서로가 맹렬하게 싸우고, 아첨(아부)하며, 실로 하는 짓이 추잡하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 것은, 이 작은 지구 안에서, 그럴듯하게 행동하며, 짧은 인생을 끝마쳐 간다. 




またこうした、權力者や支配者が、かもし出す事柄により、階級制度が出來、犧牲者が絶えない。これら犧牲者に對し、氣の毒にと、手を差し延べるものも、當然のように現われるものだ。

또한 이러한, 권력자나 지배자가, 조성하는 사항에 의해서, 계급제도가 만들어지고, 희생자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희생자에 대해서, 불쌍하다고, 손을 내미는 사람도, 당연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しかしこうした中に、何何に手を差し延べてやった、こうしてあった、こんなことをしたと、その行爲を心にもつようになる。奉仕活動にしても、一時のみであったり、相手を考えずに、車を運んだり、人間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大なり小なり、思いあがり、自己主張をするようになるものだ。 

하지만 이러한 중에서, 이것저것 손길을 내밀어 준, 이렇게 했다, 이런 일을 했다며, 그 행위를 마음에 담게 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한시적으로 하거나,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차를 운행하거나,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크든 작든(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잘난 체하며(우쭐하며), 자기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一般には、自分の主張ばかり通そうとしたり、自分の幸せばり考え、自分以外のもの、事柄に對しては、一切觀心を示しない人間が多くなり、他の幸せなどは、心から考えてもみない。自分に都合のよい時は、にこにことし、都合の惡い時は、見向きもしない。これが、現代の大方の人間の姿である。もっとも醜(みにく)いものの一つである。人間自分一人の幸せなど、絶對にあり得ないことを知らべきである。

일반에는, 자신의 주장만을 끝까지 계속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자신 이외의 사람, 일(사항)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인간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의 행복 따위는, 진심으로 이것저것 생각도 해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형편이 좋을(편리할) 때는, 싱글벙글하고, 형편(사정)이 나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것이, 현대의 대부분의 인간의 모습이다.  가장 하는 짓이 추잡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자기 혼자만의 행복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この物質界では、單體での生存はあり得ない。當然、人間一人だけでは、生きて行けない。人間だけでも生きられない。これを知ってか知らないでか、人間は、人間としての生存の爲の最大の協力者である。自然そのものを破壞し、人間だけの便利さを、より便利にすることが文明文化と、思い違いをして、物質だけの豊かさを求めて、ひた走っている。それが今やノーブレーキの狀態となっている。

이 물질계에서는, 홑원소 물질(單體)로서의 생존은 있을 수 없다. 단연히, 인간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인간만으로도 살 수 없다. 이것을 알건 모르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위한 최대의 협력자이다. 자연 그 자체를 파괴하고, 인간만의 편리를, 보다 편리하게 하는 것이 문명문화라고, 착각(오해)을 하며, 물질만의 풍부(풍족 豊かさ)만을 찾아서, 냅다 달리고 있다. 그것이 지금이나 브레이크가 없는 상태가 되고 있다. 



人間は、萬物の靈長とか、魂であるとか、勿論心の豊かさなど、無視同然(むしどうぜん)。何のことか分からないものも、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지, 영혼(魂)인지, 물론 마음의 관대함(느긋함)(心の豊かさ) 따위는, 무시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大方のものは、物がすべてあり、人間死んだら、それで終わりであると、思い込んでいる結果なのであろう。

대부분의 사람은, 물건(物)이 전부이며, 인간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결과일 것이다. 



この物質の世に、すべて入り込み、その中で、それぞれの環境・境遇によって、增長慢になったり、卑下をしたりで、慈みの心や、努力する心などは、すっかり失われ、あっという間の人生を、終えて行くものである。

이 물질의 세계에, 모두 들어와서(찾아와서, 여럿이 뒤섞여서), 그 속에서, 갖자의 환경이나 경우에 따라서, 자만(增長慢)하거나, 비하를 하거나 해서, 자비심(慈みの心)이나, 노력하는 마음 따위는, 완전히 잃고, 눈깜짝할 사이의인생을, 끝마쳐 가는 것이다. 



神佛と人間の關係は、誰でも、一人でも二人でも、神の創造物である。神の子である、人間としての己を發見し、不安や恐怖のない、世を造り出さければ、何のために、生まれたのか、何のために、生きているのか、それこそ重い重い荷を背負って、永遠に續く道を、步ま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なることであろう。

신불과 인간의 관계는, 누구나, 혼자라도 둘이라도, 신(神)의 창조물이다.  신(神)의 자녀(子)인, 인간으로서의 자기(己)를 발견하고, 불안이나 공포가 없는, 세상(世)을 만들어 내면, 무엇 때문에(무엇을 위해서), 태어난 것인지, 무어 때문에, 살고 있는지, 그야말로 무겁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영원히 계속해서 길을, 걷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것이다. 



時の中で、心靜かに、人生を振り返ってみると、どんなに格好のよいことをし、自慢をし、他人を足蹴(あしげ)にしたり、また他を恨み、憎しみ、誹しり、自ら卑下をしたり、これらこの世で行ったことは、すべてこの世を去った時に、全なる心に戾り、自分自身の、物質の世に生まれてから、終わったその瞬間までのすべてを、反省、魂として自ら、善惡を決裁しなければならない掟が、儼然として存在してい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짧은 시간에(時の中で),마음을 차분하게(心靜かに), 인생을 뒤돌아보며, 아무리 볼품이 좋은 것을 하고, 자만을 하고, 타인에게 발길질(모진 짓)을 하거나, 또한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비난(헐뜯)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를 하거나, 이러한 이 세상에서 행한 것은, 전부 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 온전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자기 자신의, 물질의 세계에 태어나서부터, 끝난(죽은) 그 순간까지의 모든 것을, 반성, 영혼(魂)으로서 스스로, 선악(善惡)을 결재*決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규정(掟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人間は、萬物の靈長として、萬生萬物を支配し、萬生萬物との共存共榮、協力協調をはかり、神の意である、大調和という目的を果たすために、共に存在し續けているのである。人間は、こうしたことすら知らず、自然に對し、勝手氣儘な行爲を續けているのである。こうした行爲を續けて行けば、それに對しての反作用は、必ず起きることであろうし、また、いつ起きても、何ら不思議ではない狀態にあるのである。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만생만물을 지배하고, 만생만물과의 공존공영, 협력(協力)과 협동조화(協調)를 도모하고(꾀하고), 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적을 달성(완수)하기 위해서, 함께 계속해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것조차도 알지 못하고, 자연에 대해서,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계속해 가면, 그것에 대한 반작용(反作用)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고, 또한 언제 일어나도, 조금도 불가사의한 것이 아닌 상태에 있는 것이다.



佛は說かれた。

부처님은 설명하셨다.



『人間は神の子であり、萬物の靈長であり、心の淨化をはかる修行者でもある。そして、この地球こそは、神の身體でもあり、大神殿でもあり、萬生萬物の心の修行所でもある。よって、人間だけのものではないことを、知ってほしいものである』

『인간은 신(神)의 자녀(子)이며, 만물의 영장(靈長)이며, 마음(心)의 정화(淨化)를 도모하는 수행자(修行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구(地球)야마로, 신(神)의 신체(身體)이며, 대신전(大神殿)이며, 만생만물(萬生萬物)의 마음(心)의 수행소(修行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こうしたことも知らず、物質に對する執着、足る心を忘れた欲望のために、自ら惱み、苦しみ、迷いを造り出してい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러한 것도 모르고, 물질에 대한 집착(執着), 만족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욕망을 위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미혹(망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宇宙に點在している天體は、約六十兆、その中の一つが地球である。宇宙から見れば、六十兆分の一である。こんな小さな地球の中に、五十數億の人間始め萬生萬物が住んでいる。その中の人間一人が、この地球上を、たとえどのように活躍をし、どんなに驅(か)けずり廻ったしても、たいしたことはないのである。

우주에 점재(點在)하고 있는 천체(天體)는, 약 60조(兆)이며, 그 중의 하나가 지구(地球)이다. 우주에서 보면, 60조(兆)분의 1이다.  이런 작은 지구 속에서, 50수억의 인간을 비롯한 만생만물의 살고 있다. 



★50수억명의 인구, 이 책은, 1994년에 발간된 책입니다★

★2015년 현재, 약 7,384,396,235억의 지구 인구입니다★

http://www.worldometers.info/world-population/ ★



それこそ他次元、心の世界から見れば、まるで、佛の手のひらの上の一部分で、左往右往しているだけのことで、それを知らないだけであり、知らないから、地球そして大自然は人間のものと、とんでもない思いに、なっ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心すべきである。

그야말로 다른 차원(他次元), 마음의 세계에서 보면, 마치, 부처님(佛)의 손바닥(手のひら) 위(上)의 한 부분(一部分)이며, 우왕좌앙하고 있을뿐인 것이며, 그것을 모를뿐이며, 모르기 때문에, 지구 그리고 대자연은 인간의 것이라고, 터무니없이(어처구니없이) 생각하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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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反省 

[제3장 반성]



反省 (반성)



高橋信次師は、ただひたすらに、末法と化した現代社會の人人の心に、正法という法燈を燈(とも)し、永遠に生きる道を敎示され、釋迦、イエスの敎えの喜びを、人人の心に蘇(よみが)えらすべく、すべてを投げうって、その敎化一筋に、生きられた方であった。

다카하시 신지 스승님은, 오직 한결같이, 말법(末法)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사람들의 마음에, 정법(正法)이라고 하는 법등(法燈)을 켜고, 영원히 살아가는 길을 교시(敎示)하시고, 석가(釋迦), 예수(Jesus)의 가르침의 기쁨을, 사람들의 마음에 되살아나게 하기 위하여(소생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던져서, 그 교화(敎化)을 위해 일편 단심으로 살았던 분이었다. 



私は、師のご緣は、どのようなものなのか、今だに分からないが、仕事や師の講演旅行に、何回となく、ご一緖させていただいたものである。實はこのような中で、言わず語らず、見たり聞いたり試したりで、門前の小僧ではないが、私なりに僅かではあるが、心というものの實體を、摑(つか)むことが出來たのである。實に幸運ときり、言いようがなかったのである。

저는, 스승님과의 인연(ご緣)은, 어떠한 것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일(仕事)이나 스승님의 강연 여행에, 몇 번이나, 동행해 주시었던 것이다. 실은 이런 가운데에서, 암묵리에(말없는 가운데), 보거나 듣거나 시험하거나 하며, 문 앞(門前)의 심부름꾼(小僧)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약간이기는 하지만, 마음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實體)를, 파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실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こぞう[小僧]① 나이 어린 중 ② 꼬마중 ③ 심부름꾼 ④ 애송이 



前回の『佛の道』の、反省の第一步の項に記述した、物置改造(ものおきかいぞう)の自室のことも、昭和四十七年十一月頃に、

전번(前回)의『부처님의 길(佛の道)』의, 반성의 첫걸음(第一步)의 항에 기술(記述)한, 헛간개조(物置改造)의 내 방(自室)의 일도, 쇼와47년 11월(1972년 11월)에, 



「朽木さんは、自分で裏の物置を改造して、絨毯(じゅうたん)のかわりに、古い毛布を敷き、古い机を置き、机の上には、小物入れが、左側に置いてあり、その前で、こんな格好(かっこう)で、每晩おそく迄、頑張ってますね」

「쿠치키(朽木)씨는, 혼자서 뒤뜰(裏)의 헛간(物置)을 개조(改造)해서, 융단(絨毯) 대신에, 헌 모포(毛布)을 깔고, 헌 책상(机)을 놓고, 책상 위에는, 부속품 상자(小物入れ=작은 용기)가, 좌측에 놓여 있고, 그 앞에서, 이런 모습(格好=모양)으로, 매일 밤 늦게까지, 열심히 하시데요」



これをお聞きしたときは、びっくり仰天(ぎょうてん몹시 놀람)、その頃は、師と話もしたことはなかったのである。

이것을 들었을 때는, 몹시 놀라서, 그 무렵은, 스승님과 말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この方は、夜な夜な人の家を、覗きに來ておられるのではないか」

と、こんなことを思ったものである。勿論一回として來られたことなど、ないのである。

「이 분은, 밤마다 남의 집을, 엿보려 오고 계신 게 아닐까?」

라고, 이런 일을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한 번도 오셨던 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何故他人のことが、分かるのであろうと、不思議でたまらなかったことを、思い出すものである。その後、このようなことは、たびたびであったが、今だに不思議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

왜 남의 일을, 알고 있을까,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일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 후, 이와 같은 일은, 자주 있었지만, 아직도 이상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このような中で、私なりに行(おこな)った、反省を書いてみた。參考にしていただければ、こんな嬉しいことはない。

이런 중에서,내 나름대로 실천했던, 반성을 써 보았다. 참고 삼아 했던 것이지만, 이렇게 기쁜 적은 없다. 



反省は、一回で終わるようなものではない。反省の仕方も一つだけではない。そこには各各の立場での、創意工夫(そういくふう)という、有形無形(ゆうけいむけい)なる、便利この上ないものの存在を、知ることが大切である。

반성은, 한 번으로 끝내는 식은 아니다. 반성의 방법도 하나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각각의 입장으로, 창의적이라고 하는, 유형 무형인, 편리하기 그지없는 것의 존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また、反省をしていると、必ずと言ってよいくらい、雜念という、譯の分からないものが介在するものである。最初のうちは、この雜念によって、反省はたちまち阻(はば)まれてしまう。時には感情がぶれ、イライラとした。短氣であったので、尙更(なおさら)のことであった。この自ら造り出す雜念には、どれだけ惱まされたか知れない。結局は、この雜念と、お友達になる以外に、解決方法なしと思った。これは今もって、そのように實行をしている。最近では、この雜念は、己の心を知るための、神の慈悲と思えるようになった。

또한, 반성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잡념(雜念)이라고 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이 개개(介在)되는 것이다.  최초 동안(처음 동안)은, 이 잡념으로 인해, 반성은 금방 막혀버린다. 때로는 감정이 흔들리고, 초조해졌다. 성질이 급했기 사람이었기 때문에(短氣), 더더욱 더 그랬던 것이었다. 이런 내가 만들어 내는 잡념에는, 얼만큼 시달렸는지 모른다.  결국은, 이 잡념과, 친구가 되는 이외에는, 해결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아직껏, 그렇게 실행(實行)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잡념은, 내 마음(己の心)을 알기 위한, 신(信)의 자비(慈悲)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기(短氣) ①성질이 너그럽지 못하고 조급함 



反省は、今でも同じことが出て來ても、初心忘れずで、二回でも三回でも、終わっていない爲、現われるものとし、實行をしている。業というものは、どこ迄行ったら低いなるのか、分からないものである。分からないから、より頑張(がんば)れるものと思っている。

반성은, 지금까지도 같은 일이 생겨도, 초심을 잃지 않고, 두 번이나 세 번이라도, 끝내지 않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서, 실행을 하고 있다. 업(業)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면 끝나는 것인지(低いなる), 알 수 없는 것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다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反省は、そのやり方によって、いろいろな角度があり、限りがないものである。まず自分の心の中に、こんなことがあるか無いか、書き出してみるのも、一つの方法である。

반성은, 그 하는 방법에 따라서, 다양한 각도가 있고, 끝(限り)이 없는 것이다. 우선 자기 마음속에, 이런 것이 있는지 없는지, 쓰기 시작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一、他人の言動に、絶對に振り廻されてはならない。

일, 타인의 언동에, 절대로 휘둘려서는 안 된다. 


一、もっとも惡いのは、物事を、よく見聞(けんもん)もせずに、他人の說(せつ)に贊成(さんせい)をすることである。

일, 가장 나쁜 것은, 매사(物事)를, 잘 보고 듣지 않고, 타인의 말에 찬성을 하는 것이다.


一、どちらつかずの、優柔不斷(ゆうじゆうふだん)な心は、他人に對しても、己自身にも、いやな思いを殘すものである。

일, 이는 아무 쓸모 없는, 우유부단한 마음은, 타인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게도, 불쾌한 느낌을 남기는 것이다.


一、あと先を考えずに、言わくてもよいことを蝶(しゃべ)ってしまう。

일, 앞뒤(전후 사정)도 생각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말해 버린다. 



これらのことは、ほんの些細(ささい)なことであり、日日の生活の中から書き出せば、それこそ、際限(さいげん)が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이러한 것은, 아주 사소한(하찮은) 일이며, 일상의 생활 속에서 쓰기 시작하면, 이것이야말로, 끝(際限=한도)이 없는 것이 아닐까?



これらのことを、よく省みると、そこには、己自身を知らない、勿論反省もない、己の姿が、ぽつんとあるだけなのである。實に寂しいものとなる。

이러한 것을, 잘 반성하면(뒤돌아보면), 거기에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물론 반성도 아닌, 자기 모습이, 외로이 있을 뿐인 것이다. 실로 쓸쓸한 것이 된다. 



私は前述の通り、もっともよくなかったものに、短氣がある。この短氣を修正するために、異狀(いじょう)なほどの苦しみをした。心では分かっても、實際になると、思うようには行かない。一度にやろうとしたこともあった。出來るわけがない。そこで我慢からやろう、最初から、忍耐(にんたい)や忍辱(にんにく)など、夢であることに氣が付いたのである。ある時などは、感情を靜めるために、机や椅子に、どれだけしがみついたか分からない。今思うと、一人でに笑いが、こみあげてくるものである。

나는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가장 좋지 못한 것으로,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고 조급함(短氣)이 있다. 이 성질이 급함(短氣)을 수정(修正)하기 위해서, 비정상적일 정도의 괴로움을 겪었다. 마음으로는 알았으면서도, 실제가 되면, 생각처럼은 안 된다. 한 번 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될 리가 없다. 참는 것부터 하려고, 처음부터, (그러나) 인내(忍耐)나 인욕(忍辱) 따위는, 꿈인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어떤 때 등은,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책상이나 의자에, 얼마나 달라붙어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서 웃지만, 복받쳐 오르는 것이다.  



反省を始めたのが、昭和四十六年五月頃からで、反省という言葉さえ知らなかった。當然座(とうぜんすわ)ることも、相當な勇氣というか、努力というか、何か遮二無二(しゃにむに)、反省というものに、取り組もうとしていた。これも何故そうなったのか、今だに分からない。

반성을 시작한 것이, 쇼와46년(1971년) 5월경부터이며, 반성이라고 하는 말조차도 몰랐었다. 당연히 앉는 것도(침착해지는 것도), 상당한 용기라든가, 노력이라든가, 무턱대고, 반성이라고 하는 것에, 진지하게 대처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것도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아직도 모른다. 


 

とにかく、座っているのだから、反省の眞似(まね)でもよい、と思うだけで、師の敎えのようには行かなかった。しかし、座っているうちに、反省、反省と、反省をやろうとする氣持が湧(わ)いて來たのである。

어쨌든, 앉아 있는 것이니까, 반성의 흉내라도 좋다, 고 생각할 뿐이며, 스승님의 가르침처럼은 안 되었다. 하지만, 앉아 있는 동안에, 반성, 반성이라고, 반성을 하려고 하는 기분이 솟아나왔던 것이다.



それからは、師の說かれる敎えの中に、反省のことが出て來ないだろうかと、居眼(いねむ)りにの中でも、心では今日は反省に關してのことを、說(と)かれるのではと、そんな拜聽(はいちょう)の仕方に變わって來ていた。實際には、師の講演の中には、必ずといってよいくらい、反省については、說かれておられたのであるが、他の事を考えたり、居眼りをしたりしていたのである。

그후로는, 스승님의 설명하시는 가르침 중에서, 반성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앉아서 졸고 있는 와중에도, 마음으로는 오늘은 반성에 관한 것을, 설명하시는 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배청(拜聽)하는 방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스승님의 강연 중에는,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반성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지만, 다른 일을 생각하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これは、いけない。もっと眞劍にお聞きしょう」

「이것은, 안 된다. 좀더 진지하게 듣자」



そのように思うようになった。幸せこの上なしであった。それからは、居眼りをしなくなった。眞劍(しんけん)になって來たのである。當然反省の敎えは、聞き逃しはしなかった。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 후로는, 앉아서 조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진지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반성의 가르침은, 빠뜨리고 듣지 못한 것은 없었다. 



「そうだ」と、

「그렇다」라고,



一瞬、心に力の入(はい)るのが分かった。それから、前述の如く、反省を始めたのである。

한 순간, 마음에 힘이 드는지 몰랐다.  그리고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반성을 시작했던 것이다. 



實際には、人生五十年を振り返って、己の性格を修正する、言葉では簡單ではあるが、これほど、むずかしいことはなかったと、言うのが本當の氣持であった。

실제로는, 인생 50년을 뒤돌아보며, 내 성격을 수정(修正)하는, 말로는 간단하지만,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기분이었다.



その時の思い付きや、一時の感情だけでは、己の心の修正が出來るはずがない、今でもそのように思っているものである。

그 때의 생각(기분)이나, 한 때의 감정만으로는, 내 마음의 수정(修正)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しかし、話を聞かれた方であっても,

「そんなむずかしいのか」

「何もそんなことまでやらなくても、もっと面白おかしく、同じ一生ではないか」  

「話を聞くだけでも、よいではないか」

そのように思う人が、多いのではあるまいか。

하지만, 말을 들은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굳이 그런 것까지 하지 않아도, 더욱 재미있고 훌륭하고, 똑같은 삶이 아닌가?」  

「말을 듣지 않아도, 좋지 않나?」



しかし、人間の生まれ出た目的の中に、人間一人一人魂として、心の淨化をはからねばならない掟が、儼然として存在している。

하지만, 인간의 태어나온 목적 중에,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魂)으로서, 마음의 정화(淨化)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규칙(掟=법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私は書き出しては、その事柄を心に入れ、反省をし、また書き出す。たとえ同じことが現われても、一切拘わらず、次から次へ進んでいったのである。

나는 요점을 뽑아서 적고는, 그 내용(事柄)을 마음에 담아서(그 사항을 열심히), 반성을 하고, 또 적기 시작했다.  설령 같은 것이 나타나도, 전혀 상관없이, 다음에서 다음으로(차례로 잇달아) 진행해 갔던 것이다. 



ある時、それまでやって來た、反省の內容を、振り廻って見た。その時、氣付いたことは、大方(だいぶ)反省の仕方が、變わって來ていることであった。

어느 날, 그때까지 해 왔던, 반성의 내용을, 뒤돌아보았다. 그 때, 깨달은 것은, 대부분 반성의 방법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まず五歲區切りの反省は、どちらかと大雜把(おおざっぱ)であった。次にやったことは、まず、次のようである。 

우선 다섯 살 때의 매듭(區切り)의 반성은, 대충 어림잡아 보았다. 다음에 했던 것은, 우선, 다음과 같다. 



一、兩親自分。일, 양친과 나.

一、妻と娘と自分。아내와 딸과 나. 

一、兄弟妹と自分。형제자매와 나.

一、親戚と自分。친척과 나.

一、隣り近所の人人と自分。이웃 사람들과 나. 

一、友人と自分。친구와 나.

一、學校の先生と自分。학교의 선생님과 나.

一、職場での自分。직장에서의 나.

一、社長と自分。사장과 나.

一、會社での部下と自分。회사에서의 부하(직원)과 나.

一、得意先と自分。단골손님(단골 거래처)와 나.

一、軍隊生活と自分。군대 생활과 나.

一、助けていただいた中國の方と自分。(연못에 빠진 여학생을) 도와 주셨으면 했던 중국 사람과 나.

一、特定の女性と自分。특정한 여성과 나.



これをまた細分化し、一項目を、この項だけでもよい、これ以上何も出て來なくなる迄と、眞劍に反省をしていった。

이것을 또한 세분화해서, 하나의 항목을, 이 항목만이라고 잘 해서, 이 이상 조금도 안 나올 때까지, 열심히 반성을 하고 있었다.



反省を始めて間もなく、まず氣付いたのは、それはそれは、いやと言うほど、己の虛僞(ぎょぎ)の心、そして日日の生活の中の姿の醜(みにく)さが、手に取るように現われて來た。それに、その時の歪みや醜さは、歪みや醜さ等とは、一切思ってもみなかったのであるから、呆れてしまったし、これはいけないと思わざる得なかった。しかし、この事は、少しばかり、きつい思いをしたことが、忘れられない。반성을 시작해서 머지않아, 먼저 깨달은 것은(알아차린 것은), 참으로(어쩌면), 싫다고 할 정도로, 나의 허위(虛僞)한 마음(=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조작하는 마음)), 그리고 매일의 생활 속의 모습의 보기 흉함(醜さ)이, 손에 잡힐 듯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그 때의 비뚤어짐이나 보기 흉함(醜さ)은, 비뚤어짐이나 보기 흉함(醜さ)하다고는, 일체 생각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았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은, 조금은, 심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しかし、これらにもめげず、頑張ることが出來たのは、私一人の力では、決してない。おそらく、それこそ守護靈の協力であったのであろう。하지만, 이러한 일들에도 끄떡없이, 분발할 수가 있었던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아니다. 아마도, 그야말로 수호령(守護靈)의 협력이 있었던 것일 것이다.



今では、方法を變え、一定の期限を決め、その中で、續きを續行中であり、これは今世で、終わることはないと思ったとき、ふと溜息(ためいき)がもれたこともあった。何と愚かなことと思うとも、しばしばであった。

이제는, 방법을 바꾸고, 일정한 기한을 정해서, 그 속에서, 전후의 연결(續き)을 속행 중이며, 이것은 현재의 세상(今世)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문득 한숨을 쉰 적도 있었다.



今では、自分一人だけであっても、やらなければと、自分の心に言い聞かせている。

이제는, 나 혼자만이라도, 해야 된다고, 내 마음속에 묻고 대답을 얻고 있다.


★이 부분 어려운 말입니다 ^^. (깊은 뜻이 내포된 말입니다)



次には、知っている限りの、それこそ袖ふれあっただけの人でも、少しでも關係のあった人の名を、書き出してみた。このようなことは勿論、一度として思ったこともなく、當然經驗などしたこともなかった。 

다음으로는, 알고 있는 죽은 사람(知っている限りの), 그야말로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던 사람만이라도, 적어도 관계가 있었던 사람의 이름을, 적기 시작해 보았다. 이와 같은 것은 물론,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도 없고, 당연히 경험한 적도 없었다.



次には、思い出す、場所、時間、季節等の面から、それまでは、自分中心にばかり重点をおいたものを、相手の心になったり、それ以外の第三者の心になってみたりを、何回も繰り返して反省をした。

다음으로는,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내서, 장소, 시간, 계절 등의 면에서, 그때까지는, 자기중심으로만 중점을 두고 있던 것을, 상대방의 마음이 되거나, 그 이외의 제삼자의 마음이 되어 본다거나 하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반성을 했다.



ここ迄讀まれた方は、隨分反省とは、むずかしく、面倒くさいものと、思われる方もおられることと思う。これは、思っただけで、行うまで行っていないので起きる、心の動きに過ぎないのである。是非とも、この思いを行爲に踏み出してみて、いただきたいと思うものである。人間とは、何事も行爲の前の思い込みで、實行せずに終わっていることが、非常に多いものである。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반성이란 꽤, 어렵고, 아주 귀찮은(몹시 번거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생각만 했을 뿐이고, 실천까지 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쪼록(무슨 일이 있어도), 이 생각을 행위로 착수해 보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인간이란, 매사에 행위에 앞서 굳게 믿어버리고, 실행하지 않고 끝내고 있는 일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これは、自分のことなので、これほど簡單なことはないのである。

이것은, 나의 일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은 없는 것이다.



ところで、書き出した人人の名の多さには、驚いてしまった。この人人のことは、斷片的(だんべんでき)ではあるが、何處でどのようなことを話したとか、その時の周圍の情景が、鮮明に分かったのである。これも、私の不思議のうちの一つであった。

그런데, 적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름의 많음에는, 놀라고 말았다. 이 사람들의 일은, 단편적으로는 있지만, 어디에서 어떠한 것을 말했든지, 그 때 주변(周圍)의 정경(情景)을, 선명(鮮明)하게 알았던 것이다. 이것도, 나의 이상한 일 중의 하나였다. 



年代は、とびとびではあったが、これらは、多方面から見れる、よき敎材となったのである。

연대(年代)는, 띄엄띄엄으로 있었지만, 이러한 것은, 다방면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교재(敎材)가 되었던 것이다.



それから、自分の工夫の限りのことを、やってみた。同じことが出てくる。これに負けてたまるかと、何回も飽(あ)きずに續けた。よくやっていたと、今は思えるようになった。

그리고 나서, 내가 궁리한 끝에 것을, 해 보았다. 같은 것이 나온다. 이것에 내가 질 수 없지 라고, 몇 번이나 싫증 내지 않고 계속했다. 잘 하고 있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게 되었다.



この繰り返しは實の處、反省そのものの、角度が多方面に及んでいたのであろう。それ迄考えてもみなかったことがあることに、氣付いたのである。

이 되풀이는 진지한 것(實の處), 반성 그 자체의, 각도가 다방면으로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까지 생각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 있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しかし、これでは半端な反省である。大事な日日の中での、實踐、行爲までが、反省なのである。日日この實踐を忘れまいと、それこそ慣(な)れる迄は、少しの間窮屈な思いで、言葉が過ぎるかも知れないが、必死であったことは、忘れられないことの一つである。

하지만, 이것으로는 어중간한 반성이다. 중요한 일상 속에서의, 실천, 행위까지가, 반성인 것이다. 매일 이 실천을 잊지 않겠다고, 그야말로 익숙해질 때까지는, 잠시 동안은 딱딱한 생각이며, 말이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필사적이었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次に細分化した項目は、次のようなことで、參考にしていただければ、幸せである。

다음에 세분화한 항목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참고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一、他人には嚴しい。

일, 타인에게는 엄격하다.


二、自分には寬容になる。

일,내 자신에는 (잘못이나 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게 된다.


三、人の前に出ると必要以上に遠慮(えんりよ)する。 

일, 남 앞에 나가면 필요 이상으로 원려(遠慮)한다.



★遠慮[원려] ① 먼 앞날에 있을 일까지 미리 잘 따져서 생각함



四、人の話を橫取りする。

사, 남의 말을 가로챈다.


五、猜疑心(猜忌心)ぎ强い。

오, 시기심(猜疑心)이 강하다.


六、物事の決心が容易(ようい)につかない。

육, 매사에 결심이 용이하게 서지 않는다.


七、一度決心をしても、他人の話によって、ちょいちょい變わる。

칠, 한 번 결심을 해도, 타인의 말에 의해서, 종종 바뀐다.


八、物事は考えているより卽行動をする。

팔, 일(매사)은 곰곰이 생각하기 보다 즉시 행동을 한다.


九、感情をむきだしにする。

구,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十、理屈が多い。

십, 핑계가 많다. 


十一、熱しやすく、冷めやすい。

십일, 달기 쉽고, 식기 쉽다.


十二、贅澤(ぜいたく)で無駄使(むだづか)いをする

십이, 사치스럽게 (돈을) 낭비한다.


十三、他人に對して、自分の力以上に同情してしまう。

십삼, 타인에 대해서, 자신의 힘 이상으로 동정(同情)해 버린다.


十四、人の前では話ができない。

십사, 남 앞에서는 말을 할 수 없다.


十五、些細なことで氣に病む。

십오, 하찮은(사소한) 일로 부담스러워 한다.


十六、陰氣でふさぎがちになる。

십육, 음울해서 자주 우울해진다.


十七、失敗の大小に拘わらず、すぐがっかりする。

십칠, 실패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쉽게 실망한다. 


十八、空想にふける。

십팔, 공상에 빠진다(공상에 잠긴다).


十九、氣むずかしい。

십구, 까다롭다.


二十、剛情である。

이십, 고집이 세다.


二十一、何事にも不平不滿が多い。

이십일,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다.


二十二、他人を批判する。

이십이, 타인을 비판한다.


二十三、執念深く他人を恨み憎しむ。

이십삼, 집념이 깊고 타인을 원망하고 미워한다. 


二十四、自分本位の强烈な潔癖症。

이십사, 자기본위가 강렬한 결벽증.


二十五、人の眼につく處では、人の後にかくれようとする。

이십오, 남의 눈에 띄는 곳에서는, 남의 뒤에 숨으려고 한다.


二十六、はぼれもなく蝶ってしまう。

이십육, 알아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린다. 



これらを、書き出し、何回も讀み返して、この中で、自分の心の中に、どんなことが、潛(ひそ)んでいるのだろう、もっと何か潛んでいるだろうか、もしこの中の一つでもあるとしたら、それが何時、何處で誰れと、どんな話をしている時に、どのようになったのか。そんなことも、方法の一つであった。

이것들을, 적기 시작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 중에서, 내 마음속에, 어떤 것이, 숨어있는 것일까, 더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말을 하고 있을 때에, 어떻게 되었던가? 그런 것도, 방법의 하나였다.



まず、自分の缺點を知ることである。缺點を知り、その缺點の消滅に、日夜勵むことなのである。言い替えれば、性格を變えることなのである。

우선, 자신의 결점을 아는 것이다. 결점을 알고, 그 결점의 소멸에, 밤낮으로 힘쓰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성격을 바꾸는 일인 것이다.



性格は、そうやたらに、變わるものではないと最初は思っていた。しかし、師の敎えを大事に大事に、反省を進めているうちに、

성격은, 그렇게 마구,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처음에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승님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중요하게, 반성을 진행하고 있는 동안에,



「これは容易(ようい)ではないが、何か一つでも、摑む迄やってやれ、間違ったら、やり直せはよい」

「이것은 용이(容易)하지는 않지만, 뭔가 하나라도, 터득할 때까지 하고 또 해고, 잘못되었다면, 다시 고치면 된다」



この頃は、どうしてなのかは分からなかったが、よく腹式深呼吸(ふくしきしんきゅう)をしては、亂(みだ)れた心を落ちつけたものであった。

요즈음에는, 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종종 복식 심호흡을 하고는,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혔던 것이었다. 



この頃は、とにかく遮二無二(しゃにむに)、自分の業を修正しようと、異狀なくらいの狀態であった。また、そのようにせざるを得ないような、懺悔の心で一杯でもあったのである。そんなことで、心には、やろうという張りが滿溢(みちあふ)れていたことは忘れられないし、ありがたいことであった。

요즈음은, 어쨓든, 열심히, 나의 업(業)을 수정하려고, 보통 때와는 다른 상태 정도의 상태였다. 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참회의 마음으로 가득 차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일로, 마음으로는, 하려고 하는 의욕이 만일(滿溢)해 있었던 것을 잊을 수 없고, 고마운 일이었다. 



最初は、この反省を完全にやろうと、思ったのである。實に思い上がった考えであった。しかし時が經つにつれ、不可能であることが分かって來たと同時に、肩に全身の力が集中していたことに、氣が付いた次第であった。

처음에는, 이 반성을 완전히 하려고도, 생각했던 것이다. 실로 우쭐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차츰 알기 시작함과 동시에, 어깨에 전신의 힘이 집중되어 있었던 것을, 알아차렸던 경과(次第)였다. 



今では小さなことでも、一つ一つ每日の中で、少しの時間でも反省を怠らず、二度と己の業によって、他人に迷惑をかけるような、歪みを造らないように、努力する以外にないと、それと戰いの日日である。これは、恐らく果てることはないと思うものである。

이제는(지금으로서는)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매일 속에서, 적은 시간이라도 반성을 게울리하지 않고, 두 번 다시 나의 업(業)으로 인해,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과 같은, 비뚤어짐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외에는 없다고, 그것과 싸움의 나날이다. 이것은, 아마 끝나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また、ここ迄の積み重ねが、このように思わせてくれたのであろう。そして、ここ迄やれたことは、私にとっては、生涯の中で、全力を出し切った思いで、やった、やった、と思っていたのである。

또한, 지금까지의 쌓아 올림이, 이렇게 티가 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생애 중에서, 전력을 완전히 발휘했다고 생각하며, 했다고,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しかし、その後守護靈が、その姿を見せて言うことは,

하지만, 그 후 수호령이, 그 모습을 보여주며 말하는 것은, 



「汝(あなた)がやって來たことなどは、あの孫悟空(そんごくう)が、世界中を散散(さんざん)暴れまわったと思ったら、何のことはない、お釋迦さまの、手のひらの中であったと、言うことより、小さな小さなことで、たいしたことはない。何ややっているのか」

「당신이 해 왔던 일 따위는, 저 손오공(孫悟空)이, 세계 속을 무척 설치고 다녔다고 생각한다면, 별것 아니다. 부처님(お釋迦さま)의, 손바닥 안에서 설치고 다녔다고, 말할 수밖에, 작디 작은 일이며, 별것 아니다. 무엇을 하고 있던지」



いやはや、これは嚴しいことを言われたものであった。

거참, 이것은 대단한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心靜かにこのことを省みると、守護靈の言うことが當然であり、自分の努力で、ここまでやって來たと思ったことは、とんでもないことであった。

차분하게 이 일을 뒤돌아보면(반성하면), 수호령이 말하는 것이 당연하며, 나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해 왔다고 생각했던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守護靈が、やろうと思った心に對し、協力をしていてくれたのである。そう思った時、守護靈に頭を深深と下げていたのである。

수호령이, 하려고 생각했던 마음에 대해서, 협력을 해 주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수호령에게 정중히 머리를 숙이고 있던 것이다. 



『初心忘れることなかれ』師によくよく主意を受けた言葉である。忘れまいとして、何時(いつ)の間にか、忘れてしまう言葉でもある。また絶えず『初心忘れるべからず』と、言い聞かせている言葉でもある。

『초심(初心)을 잊지 말라』스승님에게서 충분히 주의(主意)를 받던 말이다. 잊지 않으리라고 하며, 어느새, 잊어 버리고 있던 말이기도 하다. 또다시 끊임없이,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시고 있던 말이기도 하다.



このような事は、ある程度、經濟的に餘裕があり、日日恙(つつが)ない環境にあるもの、また、その反對の環境にあるものは、殆ど、反省などは、思いもよらないものである。

이와 같은 일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매일 건강한(무사한) 환경에 있는 사람, 또한, 그 반대의 환경에 있는 사람은, 대체로, 반성 따위는, 미처 생각도 못하기 때문이다. 



佛の敎えにふれ、この敎えを日日の生活の中で、實際に行うことであるにも拘わず、何らかの理屈をつけ、後でやる、明日(あした)からやろう、今やろうと思っていると、言い譯だけで、この世を終わってしまうものが多いものだ。終いには、出家したわけではないのだからと、なってしまうものである。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이 가르침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실제로 실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핑계를 대며, 나중에 하자, 내일부터 할까, 지금 할까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핑계(구실)뿐이며, 이 생(世)을 끝내 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だいたい、佛は、出家をしたものに對し、法を說かれたのではなく、一般の大衆に對し、法を說かれたのである。

본래는(원래), 부처님은, 출가(出家)를 한 사람에, 법을 설명했던 것이 아니라, 일반의 대중(大衆)에 대해서, 법을 설명했던 것이다.



この法は、たとえ多少なりとも行(おこな)っているものでも、少しでも反省を怠惰することにより、いつの間にか、世間竝(せけんな)みというか、當たり前というか、樂な方向に、心は逆戾りをしてしまうものだ。 이 법(法)은, 설령 다소라도(조금이라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반성(反省)을 게을리(怠惰)하는 것으로 인해, 어느 새인가, 남과 같다(평범하다)고 하든가, 당연하다고 하든가, 손 쉬운 방향으로, 마음은 되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この狀態こそ、初心を忘れた時に、起きる狀態なのである。

이 상태야말로, 초심(初心)을 잊었을 때에, 일어나는 상태인 것이다.



當然、反省は、過去を思い出して、悔(くや)むためのものではない。魂として心をより淨化し、魂として、前進するためのものなのである。

당연히, 반성은, 과거를 생각해내서, 후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혼(魂)으로서 마음을 보다 정화(淨化)하고, 영혼(魂)으로서, 전진(前進)하기 위한 것인 것이다.



この地球上に、しっかりと足を踏みしめ、四方八方、見たり、聞いたり、試したり、より心を淨化するための、日日の生活行爲であり、それがまた反省のすべてものあるのだ。

이 지구상에, 확실하게 발걸음을 벋디디고, 사방팔방, 보거나, 듣거나, 시험하거나, 보다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매일의 생활행위이며, 그것이 또한 반성의 전부인 것이다. 






雜念と反省

(잡념과 반성)



人間の心とは、實に面白く出來ているものである。

인간의 마음이란, 실로 흥미롭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反省を始める。靜かな心で、今日はしっかりやろう。少しずつ靜かな心の中に入って行く。ところが、途中で、決まって、雜念という物の怪みたいなものが訪れ、心が騷(さわ)がしくなり、これはいけないと、靜かにしようと思えば思うほど、忙しく現われるものだ。この雜念は、そう簡單には無くならないものである。恐らく、永遠に續くのではあるまいかと、思うくらいである。

반성을 시작한다. 조용한 마음으로, 오늘은 확실히 하리라. 조금씩 조용한 마음속으로 들어 간다.  그런데, 도중에서, 반드시, 잡념이라고 하는 악령(物の怪) 같은 것이 찾아와,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이래서는 글렀는데 라고, 조용하게 하자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바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 잡념은, 그렇게 간단하게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필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心が靜かになったと思っても、それはそれは、隙だらけなのではあるまいか。その隙に雜念が、忍(しの)び奇るものであろう。このようなときは、決まって、自己中心的な反省になっているものである。

마음이 조용했다고 생각해도, 어쩌면, 틈 투성이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 틈에 잡념이,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살며시 다가오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때는, 반드시(늘), 자기중심적인 반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これ迄の反省は、いつしか脫線をしてしまう。

지금까지의 반성은, 어느새 탈선(脫線)을 해 버린다.



「これはいけない、脫線をしている」

「이래선 안 되는데, 탈선을 하고 있다」



そう思っても、容易(ようい)に元の狀態に戾らないものだ。

그렇게 생각해도, 용이(容易)하게 본래(元)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それでなくとも、何か事があれば、自己中心に、物事を考えるものだ。

그렇지 않아도, 뭔 일이 있으면, 자기중심으로, 매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連想するのである。それですめばよいのに、大方は、それに關連して、他の事が思い浮かぶ。それが空想に變化し、被害的(ひがいてき)な妄想(もうそう)になるものだ。決して、よい方向には考えないものだ。これが雜念に輪をかてた、雜念であり、遠慮會釋(えんりょえしゃく)もなく、入り込んで來て、心をかきむしるものだ。

연상(聯想)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은데도, 대부분은, 그것에 관련해서, 다른 것이 떠오른다. 그것이 공상(空想)으로 변화하고, 피해적(被害的)인 망상(妄想)이 되는 것이다.  결코, 좋은 방향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잡념의 수레바퀴를 섞은, 잡념이다. 인정 사정없이, 깊숙이 파고들어 와서, 마음을 쥐어뜯는 것이다. 



反省中に、このようなことがあったとしたら、その時は、反省によって、何らかのものを欲する心があったり、反省から反省への間隔(かんかく)が、不規則(ふきそく)になったような場合が多いので、一應反省を中止し、少しの時をおいて、やり直すことだ。雜念の爲、何が反省か、分からなくなることがあるものだ。この邊で、反省はむずかしいと、止(や)めてしまう人もいる。折角(せっかく)の緣にふれたのにと、なってしまうものだ。

반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때는, 반성에 의해서, 어떤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거나, 반성에서 반성으로의 간극(間隙)이, 불규칙해진 듯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반성을 중지하고, 약간의 시간을 두고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잡념 때문에, 무엇이 반성인지, 알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로, 반성은 어렵다고, 그만 둬 버리는 사람도 있다. 모처럼 인연(緣)이 닿았는데도,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反省は、あくまでも、魂として、この世での己の心の淨化(じょうか)に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반성은, 어디까지나, 영혼(魂)으로서, 이 세상에서 자기의 마음의 정화(淨化)에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心の苦しみ、惱みは、中道という、この世を生きて行くために必要な、心の基礎(きそ)ともいうべき、八正道(はっしょうどう)という、佛の敎えを見失った時に發生する、自己保存、自我我欲の心が、大きな原因を成している。こうした業を、修正するための、反省なのである。反省をするということは、業を制する、また、己自身にあまい心に、打ち克つための、眞我の心を湧現させるための、第一步でもある。

마음의 괴로움, 고민은, 중도(中道)라고 하는, 이 세상을 살아 가기 위해 필요한, 마음의 기초(基礎)라고도 해야 할,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잃어버렸을 때에 발생한다.  자기보존(自己保存), 자아아욕(自我我欲)의 마음이, 큰 원인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업(業)을, 수정(修正)하기 위한, 반성인 것이다. 반성을 한다고 하는 것은, 업(業)을 제거하는, 또한,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극복하기 위한, 진아(眞我:참된 나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인 마음을 생겨나게(湧現) 하기 위한, 첫걸음(第一步)이기도 하다. 


★용현(湧現) ② "중국어"입니다. 

①(사람이나 사물이) 대량으로 나타나다 ②생겨나다 ③배출되다

※新人新事不断涌现  ①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다




絶えず己自身に、挑戰をし、克つことが、出來なければならない。しかし、これが行き過ぎると、中道を越して、增長慢の心が、表面に浮かび出るものである。心というものは、實によく出來ているものである。迷うように、迷うように、むずかしく感じるようにである。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도전을 하고, 이기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이 도를 넘으면, 중도(中道)을 넘어서, 우쭐해서 자만하는 마음이, 표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실로 잘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길을 잃도록(유혹되도록)(迷うように), 헤매도록(깨닫지 못하도록)(迷うように), 어렵게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 



こうしたことは、實にやりがいのあるもので、勇氣が湧(わ)いてくるものである。おかしなもので、簡單(かんたん)なものは、やりがいがでないものである。どちらにしても、人間に反省は付(つ)き物(もの)であり、反省なしで、生きて行けないのではありまいか。

이러한 것은, 실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용기가 솟아나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것은, 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이렇든저렇든), 인간에게 반성은 으레 따르게 마련인 것이며, 반성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自分の心を、一つ一つ見詰めて見ると、苦しみや、惱み、迷い、これらすべて、自ら造り出したものであるが、これこそ、魂としての、心を豊(ゆか)かにするために、出現(しゅつげん)したものであり、雜念とは、追求(ついきゅう)して來きた結果は、幻(まぼろし)の如く過ぎ去った、己の心の執着から、起きたことばかりであった。しかし、これもまた、神佛の慈悲(じひ)の心以外、何ものでも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

자기 마음을, 하나씩(하나하나) 뚫어지게 보고 보면, 괴로움이나, 고민, 미망(망상)(迷い), 이러한 모든 것,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혼(魂)으로서의, 마음을 넓게(느긋하게, 관대하게) 하기 위해서, 출현한 것이며, 잡념이란, 추구(追求)해 온 결과는, 언젠가는 사라지는 덧없는 것(幻)과 같이 끝나버린, 자기의 마음의 집착에서, 일어난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신불(神佛)의 자비(慈悲)의 마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는 것이다. 



人間は、神佛の意を忘れ、勝手な行動を始め、魔(ま)に、それぞれの心が支配されて行くのであろうか。

인간은, 신불(神佛)의 뜻(意)을 잊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시작하여, 악마(魔)에게, 각자의 마음이 지배(支配)당해 가는 것일까?



今こそ、心ある人人よ、神の子、人間として、この世に生まれた、目的·使命を果たすためにも、その第一步でもある反省を實踐(じっせん)し、悔(く)いのない人生を送るべきでは、あるまいかと思うものである。

지금이야말로, 분별 있는 사람들이여, 신(神)의 자녀(子)로서, 인간(人間)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目的)·사명(使命)을 완수하기 위해서도, 그 첫걸음(第一步)이기도 한 반성(反省)을 실천(實踐)하고,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야 할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地球上に、大地震が起きようと、大噴火が起きようと、大洪水で陸地が海になろうとも、心を魔に賣り渡しした馬鹿(ばか)な人間共が爭いを起こし、原爆を使い、地球が變動をしても、何らかの原因で地球が爆發(ばくはつ)をして消滅したとしても、人間始め萬生萬物が、あの世とこの世を、轉生輪廻(てんしょうりんね)を繰り返しているように、必ず新しい地球が、新星として出現するものであり、魂としての人間は、何時か、何處かで、新しい地球を綠として、また、あの世とこの世を、轉生輪廻を繰り返し、神佛の意である、大調和という目的‧使命を果たすために、永遠に生き續けて行くものなのである。大宇宙の中に生き續けている、數數の星そして、萬生萬物は、神の創造物(そうぞうぶつ)であり、こんな素晴らしいものが、どこにあるだおうか。その中の魂人間の一人であることを、喜びとして、萬生萬物と共存共榮(ぎょうぞんきょうえい)、協力協調(きょうりょくきょうちょう)、大調和に向かって、萬物の靈長(れいちょう)として生き續け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造られているのである。

지구상에, 대지진이 일어나려고, 대분화(大噴火)가 일어나려고, 대홍수(大洪水)로 육지가 바다가 될지라도, 마음을 악마(魔)에게 팔아넘기는 어리석은 바보 같은 인간 모두(人間共)가 싸움을 일으키고, 원폭(原爆)을 사용하여, 지구가 변동(變動)을 해도, 어떤 원인(原因)으로 지구가 폭발을 해서 소멸(消滅)한다고 해도, 인간을 비롯한 만생만물이,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전생윤회(轉生輪廻)를 반복하고 있듯이, 반드시 새로운 지구(地球)가, 신성(新星)으로서 출현하는 것이며, 영혼(魂)으로서의 인간은, 언젠가, 어딘가에서, 새로운 지구를 인연(緣)으로 해서, 또다시,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전생윤회를 되풀이하며, 신불(神佛)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을 완수하기 위해서, 영원히 계속 살아가는 존재(もの)인 것이다. 대우주 속에 계속 살고 있는, 수많은 별(星) 그리고, 만생만물은, 신(神)의 창조물(創造物)이며, 이렇게 훌륭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그 중에서의 영혼인간(魂人間)의 한 명인 것임을, 기쁨으로 여기며, 만생만물과 공존공영(共存共榮), 협력(協力) 협동조화(協同調和)(協調), 대조화(大調和)를 향해서,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 계속 살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魂人間として、人生の價値感(かちかん)を、廣大無邊(こうだいむへん)な心の世界に求めるか、儚(はかな)い、幻(まぼろし)でもある、僅かな時間帶の小さな物質の世界に、それを求めるか、これはそれぞれの自由ではあるが、實はこの邊に、人生の明‧暗の、岐路(きろ)があるのではあるまいかと、思われるのである。 

영혼인간(魂人間)으로서, 인생의 가치감(價値感)을, 광대무변한 마음의 세계를 찾든가, 덧없고(儚い), 언젠가는 사라지는 덧없는 것(幻)이기도 한, 얼마 안 되는 시간대(時間帶)의 작은 물질(物質)의 세계에서, 그것을 찾든가, 이것은 각자의 자유(自由)이지만, 실은 이와 같은 사람(この邊)에게, 인생의 명암(明暗)의, 기로(岐路)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덧없는 것 果無, 果敢無, 儚はかな

주요 뜻①덧없다 ②헛되다 ③허무하다 ④부질없다  はかない果敢ない·儚い 






この世の時間 

(이 세상의 시간)



人間すべからく、心を淨化するための、この世であり、日日そのための、反省とその行爲のために生きているのが、本來の姿なのである。

인간은 마땅히(모름지기),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이 세상이며, 매일 그 때문에, 반성과 그 행위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본래의 모습인 것이다.



しかし、このようなことは、認(みと)めようとしないものが、あまりにも多過ぎるものである。心あるものは、反省を、懺悔(ざんげ)を通した行爲をすべきであると思う。

하지만, 이러한 것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너무 많은 것이다. 분별 있는 사람은, 반성을, 참회를 통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每月、多くの人人を集め、私に話の場を提供して下さった、醫者でもあり、病院の經營者でもあった、Yという方がおれらた。一九七三年の三月頃に、初めてお會いしたのであるが、その年の五月二十三日には、病院の會議室を、開放して下さったのである。ありがたいことであった。

매월, 많은 사람들을 소집해서, 나에게 대화(話)의 장(場)을 제공해 주신, 의사(醫者)이기도 하며, 병원 경영자이기도 한, Y라고 하는 분이 계셨다. 1973년 3월 경에, 처음 만났던 것이지만, 그 해 5월 23일에는, 병원 회의실을, 개방해 주셨던 것이다. 고마운 일이었다.



勿論この方は、人を集め、會場を開放するばかりでなく、ご自分からも、私が話す師の話を聞かれ、それまでの、ご自分の步んで來られた道の、あまりにも無軌道であったことに氣が付かれたのである。

물론 이 분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집회장소(會場)을 개방할 뿐만 아니라, 그 분 자신도, 제가 말하는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그때까지의, 그 분 자신이 걸어오신 길(道)의, 너무나도 무궤도(無軌道)였던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正法に對し、いろんな方面から、質問されようになって來られた。よほど亂れておられたのであろう。何とか、反省をし、少しでも心を淨化しようとする心が、お會いする度に、表面に現われるようになった。

정법(正法)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면에서, 차츰 질문하시기 시작했다. 상당히(무척) 동요(혼란)하고 계셨던 것일까?  어떻게든, 반성을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정화(淨化)하려고 하는 마음이, 뵐 때마다,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今どんなことを、やっておられますか」

と、聞いてみた。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라고, 물어 보았다.



「はい、實は今このようなことを、やっていますが、これで良いのでしょうか」

Yさんは、一冊の分厚い手帳を出し、次のような說明をさせれたのである。

「네, 실은 지금 이과 같은 일을, 하과 있습니다만, 이것으로 좋은 것인가요?」

Y씨는, 한 권의 두툼한(두꺼운) 수첩을 꺼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셨던 것이다.



「先生の話をお聞きしてから、何か一つでも、やらないではおられなくなり、このように、自分の缺點を書き出しました。一日の中で、氣が付いた時、その手帳を取り出し、先程起きたこと、また今起きたことを、書き出した項目に、○まる,×ばつを付けるようにしました」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무언가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없어지게 되어, 이렇게, 저의 결점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중에서, 깨달았을 때, 그 수첩을 꺼내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 또한 지금 일어난 일을, 적기 시작한 항목에, ○ 동그라미, × 표를 달고 있습니다」



短時間で、これ迄考えて、實際に行なうということは、余りにも、生活が惠めらた過ぎていた爲に起きた、歪みの大きさに、氣付かれたのであろう。 

짧은 시간에, 이것까지 생각해서, 실제로 행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생활이 축복받은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비뚤어짐의 크기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しかし、普通から見れば、この方の環境であれば、誰でも起こしてしまうようなことばかりのようであるが、この方の場合、余りにも歪みを多く造り過ぎたようである。

하지만, 보통으로 보면, 이 분의 환경이라면, 누구라도 일으켜 버릴 것만 같은 것이지만, 이 분의 경우, 너무나도 비뚤어짐을 너무나 많이 만들었던 모양이다. 



物の豊かさの中に、埋(うず)もれ、もがき、もがきながら、ようやく表面に、浮かび上がったその處が、正法という、佛の說かれた、潔い法の場であったのである。

물질(物)의 풍족함 속에, 묻혀서, 발버둥치며, 안달하면서, 차츰 표면에, 떠올랐던 그 점(處)이, 정법(正法)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설명하신, 깨끗한 법(潔い法)의 장(場)이었던 것이다. 



この方は、緣とは言え、普通であれば、物に埋もれたまま、今世を去ったかも知れないが、魂として、どれだけ救われたのか、計り知れないものがあったに違いない。

이 분은, 인연(緣)이라고는 하지만, 보통이었다면, 물질(物)에 파묻힌 채로, 금세(今世)를 떠났을지도 모르지만(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영혼(魂)으로서,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この方、一九八三年に、肝臟癌のため入院されてしまった。退院されたのが、その年の秋ぐちであった。そんなことで、集會も中止せざるを得えなかった。それからは、この方の家庭の都合もあり、お會いする期會も、少なくなって來た。ただ一日も早い完快を祈るばかりであった。しかし、この方の今世での時間の終わりが、迫っていたのである。

이 분이, 1983년에, 간장암(肝臟癌)으로 인해 입원하시고 말았다. 퇴원하신 것이, 그 해 초가을(秋ぐち)이었다. 그런 일로, 집회(集會)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는, 이 분의 가정의 형편도 있고, 만나 뵐 기회도, 차츰 적어졌다. 단 하루라도 빨리 완쾌를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분의 금세(今世)에서의 시간의 끝(終わり)이, 임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十二月の二十七日に、電話があった。

「如何ですか」

「はい、調子はよいようです。ところで先生、私は、あと三年、生きられるでしょうか。後片付けするには、どうしても三年は生き度いのですが」

12월 27일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했다)

「어떻습니까?」

「네, 컨디션은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앞으로 3년, 더 살수 있겠습니까? 뒷마무리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3년은 살고 싶습니다만」



これには、私も困ってしまった。この方も師の著書を讀んでおられるし、私の話も大分聞かれ、前述のように、ご自分の缺點を修正しようと、少しでも實行されておられたし、ここで慰め的な返事はしてはならない。瞬間、そのように思った。私の口から出た言葉、

이것에는, 나도 곤란해지고 말았다. 이 분도 스승님의 저서(著書)을 읽고 계시고, 내가 하는 말도 대부분 들으셨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분 자신의 결점을 수정(修正)하려고도, 적어도 실행(實行)하고 계셨고, 여기서 위로적인 대답은 해서는 안 된다.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내 입에서 나온 말, 



「あなたは、三年など生きられません。よく聞いて下さい。あなたは、あと約一個月です。身の回りを整理して下さい」 

「당신은, 3년도 살 수 없습니다.  잘 들어 주십시오. 당신은, 앞으로 약 1개월입니다. 신변(身の回り)을 정리해 주십시오」 



こんな後味の惡い、思いをしたことは、これから、二度とあるまいと思ったのは、當然である。

이렇게 뒷맛이 좋지 않은, 생각을 했던 것은,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하다. 



後で家族の方から、お聞きしたとことろによると、私との電話を切った後、一族を集め、

나중에 가족 분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저와의 전화를 끊은 후, 가족 전체(一族)가 모여서,



「僕は、今日先生に、あと一個月の命であると言われた。僕の亡き後は、どのようにしなさい。このようなことは、このように」と。

「나는, 오늘 선생님에게서, 앞으로 1개월의 목숨(命)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하십시오. 이런 것은, 이렇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少しでも多く氣府いたことの、後事を依賴されたとのことであった。

조금이라도 많이 깨달은 일로, 뒷일(後事)를 의뢰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年は越し、一月も過ぎ、二月に入った九日の午前四時頃に、この方が、私の枕もとに、この方の愛用されていた、白いダブルの洋服で現われたのである。私は、眼を覺ましてしまった。この方白(いわ)く、

해를 넘기고, 1월도 지나고, 2월에 들어선 9일 오전 4시경에, 이 분이, 내 머리맡에, 이 분의 애용하시고 있던, 하얀 더블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나는 잠이 깨고 말았다. 이 분이 말씀하시길,



「先生、敎わりました、正法は、一所懸命にやります」 

「선생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정법(正法)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このことを話されて、姿を消されたのである。電話で話をしてから、約四十日目であった。それで眠氣が覺めてしまい、朝を迎えた。果たせるかな、七時頃に、

이것을 말하고, 모습이 사라졌던 것이다. 전화를 하고 나서, 약 40일째였다. 그것으로 졸음이 깨 버리고, 아침을 맞이했다.  역시(생각한 대로), 7시경에,



「午前四時頃、先生が亡くなりました」

 「오전 4시경,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家族の方より電話があった。

가족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この方の場合などは、正法にふれ、魂として救われた、尊い一例であり、この世での生命としての時間が、儼然とあることを、證明されて行かれた、顯著(けんちょ)な例でもある。

이 분의 경우로는, 정법(正法)을 접하고, 영혼(魂)으로서 구원된, 고귀한 한 예(尊い一例)이며, 이 세상에서의 생명으로서의 시간이, 엄연한 것임을, 증명하시고 가신, 현저(顯著)한 일례(例)이기도 하다. 



このように、人間始めすべてのものには、時間があり、この中で、人間として生まれて來た、理(ことわり)も當然ある。ところが、この世物質の世に、その姿を現わした途端に、目的や使命を忘れ、物に、翻弄されて、その時間を終わって行くものが大半である。

이와 같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에는, 시간이 있고, 이 속에서, 인간으로서 살아 온, 이치(理=이유)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 세상 물질의 세계에, 그 모습을 나타난 순간, 목적이나 사명을 잊고, 물질(物)에, 농락당해서, 그 시간을 끝내가는 사람이 태반(大半)이다.

 



またこんな方もおられた。

또한 이런 분도 계셨다.



一九八八の七月に、母親に連れられて來た、十九歲になる靑年がいた。大學生である。部屋に入られた時、これは困った人が來られたと思った。というとは、この方のこの世での時間が、風前の燈なのである。私の一番いやとすることであったのだ。話を聞いてみると、癌の爲、臟器(ぞうき)という臟器に、大なり小なりの、メスを入れていたのである。話の仕樣がなかった。今も、その時の彼の服裝や顔は、しっかりと覺えている。しかし、話の內容は、大半忘れてしまったが、そのものズバリとは、言わなかったが、人間の一生のことに就いて、話したように思う。そして別れるときに、色紙を差しあげたことは覺えている。

1988년 7월에, 모친이 데리고 온, 19세가 되는 청년이 있었다. 대학생이다. 방에 들어왔을 때, 이것은 딱한 사람(困った人)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이 분의 이 세상에의 시간이, 바람 앞의 등불(風前燈火)인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암(癌)으로 인해, 장기(臟器)라는 장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메스를 가하고 있던 것이다(수술을 했던 것이다). 이야기할 별 방법이 없었다. 지금도, 그 때의 그 복장이나 얼굴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말의 내용은, 태반은 잊어 버렸지만, 그 사람에게 딱 잘라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일생의 일에 대해서, 말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헤어질 때에, 색종이를 드렸던 일은 기억하고 있다. 



一枚は、

「己は永遠に生き續ける、魂であると言いきかすべし」

 한 장은,

「나는 영원히 계속해서 사는, 영혼(魂)이라고 타일러야 한다」 



もう一枚は、

「光明」

の二枚であった。彼はこの色紙を、この世を去るまで、枕(まくら)もとに置いていたという。それから、僅か二個月くらいであったろう、十九年間という、普通から見れば、短か時間を終了したのである。

또 한 장은, 

「광명(光明)」

이렇게 두 장이었다. 그는 이 색종이를,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베갯머리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불과 2개월정도였던가, 19년간이라고 하는, 보통으로 보면, 짧은 시간을 종료했던 것이다. 



しかし、彼は彼なりに、一所懸命に若さをふりまき、精一杯の人生であったようである。そう思うと、胸が熱くなるのを覺えるものである。

하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열심히 젊음을 흩뿌리고, 힘 닿은 데까지의(精一杯)인 인생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彼は時間が終わるまで、嫌な顔一つせず、母親に笑顔を見せて、靜かに去っていったということだ、壯絶(そうぜつ)そのものであったろうにと思うものである。

그는 시간이 끝날때까지, 싫은 얼굴 표정 하나 없이, 모친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며, 조용하게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장절(壯絶)하기 짝이 없는 그 자체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この世的に見れば、無情そのものであるが、これも魂としての、定(さだ)めそのものなのであり、人間の力では變えるわけには行かないことなのである。

이 세상적으로 보면, 무정(無情) 그 자체이지만, 이것도 영혼(魂)으로서의, 규정(定め) 그 자체인 것이며,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일인 것이다.



魂としての、この靑年の心を見ると、次のこの世に、その姿を見る時は、恐らく、今世で最後まで慈(いつく)しんでくれた母親であった女性と、再び緣をもって、素晴らしき人生を、送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るようである。

영혼(魂)으로서의, 이 청년의 마음을 보면, 다음의 이 세상에서, 그 모습을 볼 때는, 필시, 금세(今世)에서 최후까지 귀여워해 준 모친(母親)이었던 여성(女性)과, 다시 인연을 맺고, 훌륭한 인생(人生)을, 보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시간이란, 편을 쓰면서, 느껴지는 바는,

아, 이 세상에서 어머니로서 계셔주신 분은,

다음 세상에서, 부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바뀔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서로 아주 다정한 사이였다면.







戶倉ホテル

[도구라카미야마다온센 호텔戸倉上山田温泉ホテル]

(나가노현(長野縣) 치쿠마시(千曲市) 치쿠강(千曲川) 기슭에 있는 온천) 호텔



「朽木さん、先生が長野縣の上田に行かれるので、一緖に行ってくれませんか」 

その時、私は心の中で、

「弄談ではないよ。上田といったら、雪がいっぱいだろうし、行ってられらか」

「쿠치키(朽木)씨, 선생님이 나가노현의 (중부 분지의 중심 시(市)인) 우에다(上田)에 가셨는데, 함께 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 

그 때, 나는 마음속으로,

「농담이 아니군. 우에다(上田)라고 하면, 눈(雪)이 많이 내리고, 갈 수 있으려나」



 一九七四年の一月のことであった。とくもよくも、こんなことを考えたものである。暫く返事もせず、知らん顔をしていたが、どうも氣になって來た。事務所に行って、

「先生は、どうしてますか」

聞いてみた。

1974년 1월의 일이었다. 어쩌면 잘도, 그런 일을 생각했던 것이다. 잠시 대답도 못하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는데(본체만체)하고 있었는데, 마음에 걸렸다. 사무실(事務所)로 가서,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물어)들어 보았다.



「先生は、一時間くらい前に、出掛けられました」

「どこに行かれたのかな」

「上田に行かれました」 

「誰かと一緖に、行かれたのかな」

 「いえ、一人で行かれました」

「しまった」

さあ氣が氣ではない。放っておくわけには行かない。會場には、會社の○君が行っているはずだ。自分で自分に言い譯をしながら、汽車の時刻表を見た始末であった。

「선생님은, 한 시간쯤 전에, 나가셨습니다」

「어디로 가신 것인지?」

「우에다(上田)로 가셨습니다」 

「누구랑 같이, 가셨는지?」

「아니, 혼자 가셨습니다」

「아뿔사」

야아, 기분이 안 좋은데.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집회장소(會場)에는, 회사의 ○군이 가 있을 것이고. 스스로 내 자신에게 변명(핑계를 대면서)을 하면서, 기차 시각표(時刻標)를 본 자초지종(始末)이었다.



途中から雪また雪の、銀世界そのものである。上田に着いた。會場に急いた。控室の師の處に行き、

「先生、すみませんでした」

「いいよ、分かればいいんですよ」

時間は間に合ったし、師の言葉をお聞きして、ほっとしたものである。

도중부터 쌓인 눈의, 은세계 그 자체이다, 우에다(上田)에 도착했다. 집회장소(會場)로 서둘러 갔다. 대기실(控室)의 스승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선생님, 죄송했습니다」

「아니에요, 알면 됐어요」

시간은 늦지 않았고,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한숨 돌렸던 것이다.



講演會が終わった。丁度、上田出身の方が、東京から來ておられたので、師と一緖に、歸っていただくようにお願いをして、

「先生、折角ですので、長野縣の書店を少し廻り、販賣活動をして行きます。つきましては、この方方が、東京まで一緖に歸ってもらいますので」と。

강연회(講演會)가 끝났다. 마침, 우에다(上田) 출신이신 분이, 도쿄(東京)에서 와 계셨기 때문에, 스승님과 함께, 돌아가 주셨으면 어떻겠냐고 부탁을 해서, 

「선생님,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나가노현(長野縣)의 서점을 조금 둘러보고, 판매활동(販賣活動)을 하려 가겠습니다. 거절하지 않으시면, 이 분들이, 도쿄(東京)까지 같이 돌아가 주셨으면 하기 때문에」라고. 



驛のポーンム迄、○君と見送った。

○君と二人になり、今夜は一泊をし、明日、師の書籍の販賣活動をすることにして、宿を探すことになった。地圖を出して見た。戶倉溫泉の近くである。

정거장(驛)의 플램폼까지, ○군과 전송했다. 

○군과 둘이서, 오늘밤은 일박을 하고, 내일, 스승님의 서적 판매활동을 하기로 해고, 숙박할 곳을 찾았다. 지도를 꺼내 보았다.  도구라 온천(戶倉溫泉) 근처이다. 


「○君、上田で泊まっても、戶倉で泊まっても、あまり變わらないだろうから、戶倉に行こうや」

こう言うことになると、いやに思わいないのだから、困ったものだと思いながら、戶倉に着いだ。街は雪がとけ、びしゃびしゃであった。驛から暫く步いて、目についた戶創ホテルの文字に、引かれるように、この小さなホテルに、泊めてもらうことにした。

「○군, 우에다(上田)에서 묵어도, 도구라(戶倉)에서 숙박을 해도, 그다지 달라질게 없을 테니까, 도구라(戶倉)로 갑시다」

이렇게 말하게 되자, 싫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난처하다고 생각하면서, 도구라(戶倉)에 도착했다.  거리는 눈(雪)이 녹아서, 으드득 으드득 소리가 났다. 정거장(驛)에서부터 잠깐 걸어서, 눈에 띈 도구라(戶創) 호텔의 글자(文字)에, 끌리듯이, 이 작은 호텔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女中さんが、着替えを持って來てくれた。

「お客さんは、何の何事をされておられるのですか」

丁度、私の持っていたタオルが、銀行の印(しろし)の入ったタオルであった。女中さんは、これを見て、

「ああ銀行の方ですか」

「まあそんなところです」

여관의 여자 종업원(女中)이, 갈아 입을 옷을 가지고 왔다.

「손님은, 무슨 용무가 있어서 오신 것인가요?」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타월이, 은행의 휘장(印)이 새겨진 타월이었다.  여종업원은, 이것을 보고,

「아아 은행 분이십니까?」

「아니 뭐 그런 것입니다」



その時、○君が師の著書『心の原點』を出して,

「これ、よい本ので、是非讀んで下さい」

そう言って、師の著書を差し出し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表紙をめくっていた女中さんが,

「あら、この方知しっているわ」

「え、ほんとですか」

그 때, ○군이 스승님의 저서(著書)『마음의 원점(心の原點)』을 꺼내서, 

「이거, 좋은 책이므로, 꼭 읽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스승님의 저서(著書)을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표지를 보고 있던 여자 종업원이,

「어머나, 이 분 알고 있어요」

「예, 정말입니까?」



師は長野顯佐久の出身ので、そうしたことで知り合いかど、思ったのであるが、違った。

「この方は、去年ここに、十日ばかり滯在され、何か書き物されておられました。私達みんな、大變お世話になったんですよ」

これには、驚き、且つ、びっくりであった。偶然にしては、あまり出來過ぎでいる。

스승님은 나가노현(長野顯)의 사쿠(佐久) 출신이므로, 그런 일로 서로 아는 사이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아니었다.

「이 분은, 작년(去年)에 여기에서, 10일정도 체재(滯在)하시며, 무엇인가 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저희들 모두, 매우 신세를 졌었어요」

이것에는, 놀라고, 동시에, 깜짝 놀랐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정도가 심하다.



昨日の朝、出掛けに、

「行ってられるか」と。

今思うと、頭に血がのぼる思いがする。あのとんでもない、心の心に對し、師の意議が、私達の處まで來られ、ご自分の原稿を書かれておられたホテル、そして、部屋を見せられたときり、言いようがなかった。

ホテルと言っても、家族的な旅館そのものである。女中さんもびっくり、帳場に行かれ、おかみさんを連れて來られた。

어제 아침에, 나가시며, 

「갈 수 있으려나」라고.

지금 생각하면,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든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되는, 마음의 마음에 대해서, 스승님의 의식(意識)이, 우리들한테까지 오셔서, 스승님께서 친히 원고(原稿)를 쓰시고 계셨던 호텔, 그리고, 방을 보여 주셨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호텔이라고 해도, 가정적인 여관 바로 그것이다. 여종원도 깜짝 놀라서, 카운터(帳場)로 가서, 여주인을 모셔 왔다. 



「高橋先生のお弟子さんですって」

障子を開けると同時に、言葉を發しておられた。よほど驚かれたのであろう。

「高橋先生には、私達本當に、お世話になったんですよ」 

「そうですか、私達も驚きました。何も知らずに、寄せていただいたものですから、本當に、驚きました」

「다카하시(高橋) 선생님의 제자분이라고요」

장지문(障子)을 엶과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상당히 놀라셨을 것이다.

「다카하시(高橋) 선생님에게는, 저희들이 정말로, 신세를 졌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저희들도 놀랐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렸기 때문에,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その夜は、おかみさんそして、先程の女中さんが、話に來られた。その中で話をしながら、足の膝(ひざ)が惡くて、座れない女中さんに、手當てをさせていだいた處、座れるようになって、互いに、びっくりしたりで、師のことを中心に、十二時過ぎまで、話をされて行かれた。

그 날 밤은, 주인 아주머니 그리고, 조금 전의 여종원이, 이야기가 오갔다. 그 속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발의 무릎관절뼈(足の膝)가 안 좋아서, 앉을 수 없는 여종원에게, (스승님께서) 치료를 해 주었더니, 앉을 수 있게 되어, 서로, 깜짝 놀라거나 했다며, 스승님의 일을 중심으로, 12시간이나 지날 때까지, 이야기를 해 갔었다. 




翌朝早く、ホテルを出發した。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했다.



この時の旅ほど、驚いたり、びっくりしたりで、複雜な思いをしたことはない。

이 때의 여행만큼, 놀라거나, 깜짝 놀라거나 해서, 복잡한 생각을 했던 적은 없다.



そして今でも、もう一度、時間があれば、行ってみたい處の一つでもある。

그리고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시간이 있으면, 가 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奇蹟や偶然は、絶對にない。必ず原因があって、結果が生ずるものである』と、師より敎わっている。ある時のことも、すべて原因があったのであり、師は、そのことを、現實の中で、ご敎導下さったのであると、しっかりと心の中に入れている。

『기적(奇蹟)이나 우연(偶然)은, 절대(絶對)로 없다. 반드시 원인이 있고,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라고, 스승님에게 배웠다. 어느 때의 일도, 모두 원인이 있었던 것이며, 스승님은, 그 일을, 현실 속에서, 친히 교도(敎導)해 주셨던 것이라고, 확실히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다.



これも、緣というものなのであろう。

이것도, 인연(緣)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교도(敎導): ①가르쳐서 이끎.



★우에다[ 上田 ]  

長野県 중부 上田 분지의 중심 시. 安土桃山 시대는 真田 씨의 근거지, 후에 松平(まつだいら, 藤原;ふじわら) 씨 5萬石의 城下町. 일찍이 양잠업(養蚕業) ‧제사업(製糸業)의 중심, 지금은 기계공업 등이 이루어진다. 인구 16만 4천 명. 



不義ふぎにして富とみ且かつ貴たっときは浮雲ふうんの如ごとし  

사람의 도에 어긋난 방법으로 얻은 부귀는 뜬구름과 같이 덧없는 것이다 「不義ふぎの富貴ふうきは浮うかべる雲くも」라고도 함 







不安・恐怖の原因 

[불안과 공포의 원인]



人間誰しも、絶えず心に安らぎを求めているものだ。そして、その思いが强ければ强いほど、その反面には、あれをこのようにすればよかった、あの時はこうすればよかった、あれをどのようにしよう、これからどのようになるのだろう、誰誰がこんなことを言っていた、あの人はどんな人なのだろう、子供が惡いことをしないだろうか、勉强はどうなっているだろう、あの仕事をどうしようか、あの時のことをもう一度やってみたい、あんなものが欲しい、あの人より美しくあり度い、あの人に負け度くない、大地震が來たらどうしよう、そのとき子供をどうしよう。

인간은 누구나, 끊임없이 마음에 평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반면에는, 저것을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저 때는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저것을 어떻게 하자, 앞으로 어떻게 될까, 누구누구나 이런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식이 나쁜 짓을 하지 않을까, 공부는 어떻게 돼 있는 것일까, 저 일을 어떻게 하려고 할까, 저 때의 일을 다시 한 번 해 보고 싶다, 저런 것을 갖고 싶다, 저 사람보다 아름다워지고 싶고(아름답게 있고 싶고), 저 사람에게 지고 싶고 않다, 대지진이 온다면 어떻게 할까, 그 때 자식을 어떻게 할까?



とにかく、一秒の間隔もないくらい、想念の中で、增長慢(ぞうちょうまん)になったり、卑下(ひげ)をしたり、淫(みだ)らな思いになったり、終(しま)いには、自分からストーリーをつくり、心の中に幻(まぼろし)を描(えが)き、その主人公になったり、とにかく、明るいことは出て來ない。そうしたものが、いつしか不安となり、恐怖心を造り出す。そして、その遇(ぐ)にもならないようなことが、次から次へと、よくもこんなにと思うほど、心の中を忙しく驅(か)けめぐるものだ。終いには、その思いの虜(とりこ)になってしまうものた。

어쨌든, 일초의 간격도 없을 만큼, 상념(想念) 속에서, 우쭐대며 자만해지거나, 비하(卑下)를 하거나, 음란한 생각을 하거나, 끝내는, 자기 스스로 스토리(이야기)를 만들어, 마음속으로 환상(헛것 幻)을 그리며, 그 주인공이 되거나, 어쨌든, 밝은 곳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것이, 언젠가 불안이 되어, 공포심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아무런 이익도 안 되는 그런 바보(遇(ぐ))같은 일이, 차례로 잇달아, 잘도 이렇게 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속을 어수선하게 뛰어다니는 것이다.  끝내는, 그 생각의 포로(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このように、不安や恐怖の心が、心の安らぎを妨(さまた)げていることを、自分で意識するか、しないかに拘わらず、大半の人は、その心の憂いさから逃れ、少しでも安らいだ心を求めようと、時の餘暇(よか)をみては、山に出掛け、海に出掛け、國內國外の旅行をしたり、音樂を聞いたり、芝居を見たり、映畵を見たり、スポーツをやったり、スポーツを見たり、あらゆるレジャー的(餘暇活動)なものを求めて行くものである。

이과 같이, 불안이나 공포의 마음이, 마음이 평안을 방해하고 있는 것을, 자기 스스로 의식(意識)하든, 하지 않든 상관 없이, 태반의 사람은, 그 마음의 근심을 면하려(피하려), 조금이라도 편안해진 마음을 찾으려고, 때로 틈(餘暇)을 봐서는, 산(山)으로 떠나거나, 바다로 떠나거나, 국내나 국외로 여행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연극(芝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스포츠를 하거나, 온갖 레저적(여가활동)인 것을 찾아 가는 것이다.

  


またこれらの人人を相手に、商賣をする人も出てくる。考えてみると、こんなことで、社會が成り立っ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

또 이러한 사람들은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도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것으로, 사회가 성립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世の中は、一つとして獨立しているものはない。すべて何らかの處なりをもっているものだ。これも、輪廻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こんな處にも、世の中の成り立ちを見ることが出來るものである。

지금 세상(世の中=사회)은, 하나같이 독립되어 있는 것은 없다. 전부 어떤 곳 나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윤회(輪廻)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며, 이런 곳(處)에도, 지금 세상(世の中=사회)의 성립(구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なかには、これを巷(ちまた)の宗敎というものに求めて、それぞれの組織(そしき)に入り込み、その組織の細胞(さいぼう)となり、折角見いだった、逃避(とうひ)の場であったはずの中で、より大きな歪みを、造り出してしまう人も、意外と大勢いるようである。

그 중에는, 이것을 항간(巷)의 종교라고 하는 것을 찾아서, 저마다의 조직에 깊숙이 들어가서, 그 조직의 세포(歲砲)가 되어, 모처럼 보인, 도피(逃避)의 장이었던 것 속에서, 보다 큰 비뚤어짐을, 만들어 내고 마는 사람도, 의외(意外)로 많은 듯 하다. 



終いには、人生でもっとも大切な、家政や職場まで捨て、社會生活を拒否(きょひ)しようとする人までいると聞く。これでは、社會からの落伍者である。社會を捨てて、神や佛を見ようとしたり、救いを求めえようとする。これ事態(じたい)不可能なことではないだろうが、かえって、不安や恐怖が寡(つの)ることであろう。

끝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이나 직장까지 버리고, 사회 생활을 거부(拒否)하려고 하는 사람까지도 있다고 듣는다. 이래서는, 사회에서의 낙오자(落伍者)이다. 사회(社會)를 버리고, 신(神)이나 부처(佛)를 보려고 하거나, 도움을 청하려고 한다.  이 사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도리어, 불안이나 공포가 점점 더해질 것이다. 



では、どのような不安なのか、どのような恐怖なのかと問われると、卽座に答えられない。唯何となく、心の奧底に潛んでいて、次なら次へと、湧き出て來るもの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ことばかりではないだろうか。

그렇다면, 어떠한 불안인지, 어떠한 공포이냐 라고 묻는다면, 즉석(卽座)에서 대답할 수 없다. 다만 왠지 모르게, 마음의 깊은 곳에 숨어(잠재)해 있다가, 차례로 잇달아, 솟아 나오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만이 아니겠는가?



師の敎えのなかに、『物ごとには、どんなことでも、必ず原因があり、結果が生ずるのでる』とある。

스승님의 가르침 중에『매사에는(物ごと)에는, 어떤 일이라도, 반드시 원인이 있고,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この敎えを基(もと)に、これらを追求しているうちに、師の深遠(しんえん)なる敎えのなかにある、今から約二千五百餘年前に、釋尊が、諸諸の衆生に、四十五年間、ミガダヤにおいて五名のクシャトリヤに、法を說かれて、クシナガラで、その一生を終えられる迄、飽くことなく說かれた敎え『生老病死』そのものの中に、人間の苦しみ、惱み、迷いの原因がすべてあるのである。しかも、それらはすべて、それぞれ、自分自身の心の中にある、業(ごう)が造り出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이 가르침을 기초(基)로, 이것들을 추구(追求)하고 있는 동안에, 스승님의 심원(深遠)한 가르침 중에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500여년 전에, 석존(釋尊)이, 여러 중생(衆生)에게, 미가다야에서 5명의 쿠샤트리야에게, 법(法)을 설명하시고, 쿠시나가라에서, 그 일생을 마치실 때까지, 충분하게(飽く) 무사히 설명하신 가르침인 『생로병사(生老病死)』바로 그것 속에, 인간의 괴로움, 고민(惱み), 미혹(迷い=망상)의 원인이 전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모두, 각자,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업(業)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あく(飽く) ① 서일본 특히 큐슈(九州)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사투리로, 뜻이 참 묘합니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큐슈지방 출신입니다. 




この敎えを基礎(きそ)に、まず、己の心をより堀り下げてみた。 

이 가르침을 기초로, 먼저, 내 마음을 보다 깊이 몰두하여 생각해 보았다.

 

★본문에는, 굴 굴(堀)이라서, 밑에 팔 굴(掘)로 번역했습니다.

★ほり‐さ・げる【掘(り)下げる】

1 下へ深く掘る。「井戸を―・げる」2 深く調べたり考えたりする




心の奧の奧で、何やら姿なき幻、物の怪(け)が、深く靜かに、潛んでいるのが分かって來た。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쩐지 모양이 없는 헛것(환영 幻)이, 깊숙이 조용하게, 숨어 있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さらにこれを追求してみると、心の中には善と惡が同居をしていて、絶えず互いに競り合っていて、ややもすると、惡が善を凌駕(りょうが)することが多い。

더욱 더 이것을 추구(追求)해 보면, 마음속에는 선(善)과 악(惡)이 동거(同居)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서로 경합(競合)하고 있으며, 곧잘, 악(惡)이 선(善)을 능가(凌駕)하는 일이 많다. 



これは、師が敎示(きょうし)されておられたことであるにも拘わらず、その狀態で、日日の生活をしていたことが、改めて分かって來たのである。

이것은, 스승님이 교시(敎示)하시고 계셨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로, 나날의 생활을 하고 있던 것을, 새삼스럽게 차츰 알기 시작했던 것이다. 



これは、實際には、言われてみれば分かるのではあるが、日常のななでは、なかなか氣が付かないものである。

이것은, 실제로는, 들어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これでは、安らぎの心など、ほど遠きにあることは勿論である。

이래서는, 평안한 마음 따위는, 좀 멀리 있는 것은 물론이다. 



さらに追求をしてみると、惡は己の生活環境や境遇を無視した、足る心を失った心に、負けてしまった、己自身の心に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しかし、ここ迄は、理屈では分かったような氣はするが、氣だけで、この心の歪みを修正するという、行爲がないのである。

더욱 더 추구(追求)해 보면, 악(惡)은 자신의 생활환경이나 경우를 무시(無視)한, 만족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마음에, 지고 만, 자기 자신의 마음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이치(理屈)로는 안 듯한 기분이지만, 기분(氣)만으로, 이 마음의 비뚤어짐을 수정(修正)한다고 하는, 행위(行爲)가 없는 것이다. 



一般には、卽、日常生活の中での實行となるのであるが、これが簡單なようで、至難(しなん극히 어려운 것)きわまりないと、思ってしまうものである。

일반적으로는, 즉, 일상생활 속에서 실행(實行)이 되는 것이지만, 이것이 간단한 듯 하지만, 극히 어렵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人間には、自分が思ってもいないことや、難(むず)かしいことになると、怠惰の心、他を賴る心、最高に惡い逃避的、他力的な方向に心を持って行こうとする。

인간에게는, 자신이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일이나, 어려운 것이 되면, 나태(怠惰)한 마음, 남을 의지하는 마음, 최고로 나쁜 도피적, 타력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가져 가려고 한다.



こうした心があるうちは、佛の話を、いくら聞いても、現實の歪みは變わることがない。

이러한 마음이 있는 동안에는, 부처님(佛)의 말씀은, 아무리 들어도, 현실의 비뚤어짐은 바꿀 수가 없다. 



佛の敎えは、一時の心の安らぎを得るためとしてしまうものだ。この邊から佛は、自分が困った時に、救ってくれるものとなり、木物金物の佛像を、佛として祀り、拜む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ある。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일시적(一時)인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해 버리는 것이다.  이쯤에서 부처님(佛)은, 자신의 곤란할 때에, 도와 주는 것이라고 되거나, 목제품(木物) 철물(金物)의 불상(佛像)을, 부처(佛)라고 하며 (神)으로 받들어 모시며, 합장 배례하게 되는 것이다. 



人間は勝手なもので、佛は困った時だけで、大方は金や物が大切であり、それによって安らいだと錯覺を起こし、每日每日、ひたすら欲望という物の怪に追われ、神佛の道を大きくはずれ、心に不安と恐怖を、その都度その都度に造り出し、それに飜弄されて、大切なこの世での一生を終わりを、迎えてしまうものである。

인간은 제멋대로인 것이며, 부처(佛)는 곤란할 때이며, 대부분은 돈(金)이나 물건(物=물건)이 소중(大切=중요)하며, 그것에 의해서 편안하다고 착각(錯覺)을 일으키고, 매일매일, 오로지 욕망(欲望)이라고 하는 귀신(物の怪=악령, 사령[死靈])에게 쫓기며, 신불(神佛)의 가르침(道)에 크게 어긋나서,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그때마다 그때마다 만들어 내며, 그것에 농락당하며, 중요(소중)한 이 세상에서의 일생을 마지막(임종)을, 맞이해 버리는 것이다.



日常生活の中で、自分を苦しめ、惱まし、迷わす、歪みの原因は、すべて他に非ず、すべて己の心の中に、潛んでいる業(ごう)そのものであり、その歪みから救いだしてくれるものは、己の善なる心以外に無い、ということである。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며, 골치를 앓으며, 현혹하며(헷갈리게 하며), 비뚤어짐의 원인(原因)은, 전부 남이 아니라, 전부 자기 마음속에, 숨어(잠재)해 있는 업(業) 바로 그것이며, 그 비뚤어짐에서 구출해 주는 것은, 자기의 선(善)한 마음 이외에는 없다, 고 하는 것이다. 



そのすべてを、敎示されたのが、佛である師その方であったのである。

그 모든 것을, 교시(敎示)하신 것이, 부처님(佛)이신 스승님 그 분이었던 것이다. 








不安・恐怖を克服するには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人間誰でも、人間とは、人生とは、と、疑問が湧かないのであろうかと、時にふれ折りにふれては、そんなことを思うのであるが、よく考えてみると、一般には餘分なことなのかも知れない、などとも考えてみたりもしている。

인간은 누구나, 인간은, 인생이란, 이라고 하는, 의문(疑問)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기회가 있을 때면,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는 여분(餘分)인 것인지도 모른다, 등이라고도 생각해 보거나 하고 있다. 



私は子供の頃から、人間はこの世に生まれて來るということは、絶對に、その理があるに違いないと、そんなことを思っていたものであり、その思いが、心の奧のどこかで、火山のマグマのように、煮えたぎっていた。五十歲の三月に、永遠の心の師、高橋信次先生に、巡(めぐ)り合あったものである。

나는 어릴 때부터,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온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그 이유(理=까닭)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며, 그 생각이, 마음속의 어딘가에서, 화산(火山)의 마그마(magma)처럼,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50세의 3월에, 영원한 마음의 스승(師),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을, 해후했던 것이다. 



これが私の人生を、百八十度回轉させ、永遠の己を知る機會となったのである。

이것이 나의 인생을, 180도로 회전(回轉)시키고, 영원한 나를 알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著者)이신, 2003년에 사망하신, 쿠치키 타케토(朽木 上人)님은, 1971년에,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을 만나셨습니다★



この世の大方の人人は、物質がすべてであり、生まれて死んだら終いである、生きているうちに、自分の欲すること、思っていることを果たすのが、目的のように思っている人が、地球上に溢れているのである。困ったもの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このような狀態なのだから、日日の生活の中で、自己保存、自己中心的な生き方をするのは、古今東西を問わず、當然の如く存在するのではなかろうかと、思ってみたりもしている。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物質)이 전부이며, 태어나서 죽으면 끝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이 갖고 싶은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달성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난처(곤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인 것이기 때문에,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자기보존(自己保存),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인 생활방식(生き方)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한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거나 하기도 하고 있다. 



しかし、これでは、欲望が欲望を呼ぶのだから、不安や恐怖の心は、克復するどころか、募るばかりになって行く。

하지만, 이래서는, 욕망이 욕망(欲望)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이나 공포의 마음은, 극복하기는커녕, 심해질 뿐이 되어 간다.



人間それぞれの一生は、苦しむため、惱み、迷うためにあるのではなく、むしろこれら、苦しみ惱み迷いの原因となっている、業の修正のためにあると言っても、過言(かごん)ではあるまいと思うものである。

인간 각자의 일생은, 병이나 정신적인 괴로움이나 고민과 길을 잃고 헤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괴로움과 고민과 방황의 원인이 되고 있는, 업(業)의 수정(修正)을 위해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人生には、不平等などという言葉はない。人生の何であるか、その理(ことわり)を知らないために、出る言葉であろう。

인생에는, 불평등 따위라고 하는 말은 없다. 인생의 무엇인지, 그 이치(理)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人生とは何ぞや、素朴(そばく)でよい、何らかの疑問が湧き、それを追求してみるくらいの、心の餘裕が欲しいものである。

인생이란 무엇인가, 소박(素朴)해서 좋고, 어떠한 의문이 솟아나고, 그것을 추구(追求)해 볼 정도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은 것이다. 



しかし殘念ながら、そんなことは、考えるのも面倒くさいし、そんな暇はないと言われる人が、多いものである。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생각하는 것도 정말 귀찮고, 그럴 틈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そんなことを思ってみても、生活の環境や境遇が、變わるわけでもないしと、諦めてしまうかも知れない。

그런 것을 생각해 봐도, 생활의 환경이나 경우가, 바뀔 리도 없다라고, 체념해 버릴지도 모른다. 

これでは、ただ物の世の、激しい移り變わりの動きに飜弄(ほんろう)され、終いには、多くの執着(しゅうちゃく)を殘し、この世を去る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ある。それぞれが終わって行くのであるが、その時の思い、執着に匹敵(ひつてき)した世界に暫(しばら)く間、潛在を餘儀(よぎ)なくされるのである。

이래서는, 그저 물질(物) 세계의, 격렬한 변천(變遷)의 움직임에 농락당해서, 끝내는, 많은 집착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다(죽는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각자가 끝내 가는 것(죽어가는 것)이지만, 그 때의 생각, 집착에 필적(匹敵)한 세계로 잠깐 동안, 잠재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一九九一年の十一月に、この世を、病氣や怪我(けが)で去った人の處を訪ねた。このような處は三度目である。今回は、あまり驚いたり恐ろしい思いはしなかった。

1991년 11월에, 이 세상을, 병(病氣)나 상처(怪我부상)로 죽은 사람의 있는 곳을 방문했다. 이러한 곳은 3번째이다. 이번에는, 너무나 놀라거나 두려운 생각은 하지 않았다.



邊りは、怪我(けが)で包帶(ほうたい)をした人、松葉杖(まつばづえ)をついている人、寢臺で點滴(てんてき點滴注射)をしている人、その他いろんな姿をした人が、數えきれない程集まっていた。

주위에는, 부상으로 붕대를 한 사람, 쌍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 침대에서 점적 주사(點滴注射)를 하고 있는 사람, 그 밖의 갖가지 모습을 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모여 있었다.

 

★점적 주사[點滴注射] 영양분의 보급이나 수혈 등을 위해 높은 곳에 매달아 둔 관주기(灌注器)에서 액체를 한 방울씩 정맥 안으로 주입하는 방법. =点滴注射. 点滴石をも穿つ (→)「雨垂れ石を穿つ」와 같음. 




この人人を、こちらから見ると、包帶も點滴も、ましてや寢臺などは見ることが出來ない。當たり前の人が、それぞれ變な格好をしているだけである。それが、その人達の心になって、こちらを見る狀態になると、確かに、包帶や點滴や寢臺があるのだから、しっかりして、その場を見ないと、とんでもない錯覺を起こしかねない。  

이 사람들을, 이쪽에서 보면, 붕대도 점적 주사도, 더군다나 침대 등은 볼 수 없다. 보통 사람이, 각자 변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 이쪽을 볼 상태가 되면, 확실히, 붕대나 점적 주사나 침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그 장소를 않고는, 엉뚱한 착각을 일으킬는지 모른다. 



ここで、集(あつ)まった人達に、

「あの世での生活環境、怪我をしたり、病氣になった時の思いはどのようであったか。元氣な時は、どんなことを思い、どんなことをやったか。あの世を終わる瞬間にどんなことを思ったか。どんなことが執着になっているか。何故、歸るべき處に歸れないのか。よくよく反省をして見ければならない」

이곳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저 세상에서의 생활환경, 부상(상처)을 입거나, 병이 걸렸을 때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건강할 때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어떤 일을 했는지. 저 세상을 끝내는 시간에 어떤 것을 생각했는지. 어떤 것이 집착이 되어 있는지. 왜,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지. 잘 반성을 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안에 있는 내용은, 죽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듯 합니다 ★



私は必死である。一人でもよい、自分は今、あの世の生活は終わって、この世魂としての故鄕への途中にいることに氣付けば、その人は故鄕に歸りつくことが出來るからなのである。

나는 필사적이다. 한 사람이라도 좋다, 나는 지금, 저 세상의 생활은 끝나고, 이 세상 영혼(魂)으로서의 고향으로의 도중(途中)에 있는 것을 깨달으면, 그 사람은 고향으로 귀착(歸着)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こちらから見れば、數えきれない人人、あちらから見ると、一人一人が、私の話を聞いている狀態なのであろう。

이쪽에서 보면,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저쪽에서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의 말을 듣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私は一通りの話を通し、最後に、

「皆さんは、よくご自分の姿を見てごらんなさい。どこも怪我などはしていないし、包帶など勿論していない。病氣で寢臺に橫になって點滴をしている人は、何もない處に橫になり、胸を出しているにすぎないのです」

「나는 대략의 말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자세히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봐 주십시오. 어디고 상처(부상) 따위는 하고 있지 않고, 붕대 따위는 물론하고 있지 않다. 병으로 침대에 누워서 점적 주사를 맞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에 눕거나, 가슴을 드러내고 있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そして續けて、

「あなた方は、私の申し上げたことを、心にしっかりと入れ、一時も早く、魂のgroupの待っている故鄕へ、歸りつくことが、今あなた方が、行なわ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なのです」

그리고 계속해서, 

「여러분은, 제가 말씀 드린 것을, 마음에 확실히 새기고, 한시라도 빨리, 영혼의 그룹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귀착하는 것이, 여러분이,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これだけ話をし、私の、この世に歸ろうとした。その時、集まった多くの人人の中から、何とも言いようのない驚き、嬉しさとも取れるどよめきが、私の耳に入って來た。

이정도 말을 하고, 내가, 이 세상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 때,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놀랍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함성이, 내 귀로 들어왔다.




その瞬間は本當に、嬉しかった。その喜びが今でも、私の心の耳に、つい先程のことのように殘っている。嬉しかった。

그 순간은 정말로, 기뻤다.  그 기쁨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의 귀에, 바로 조금 전의 일처럼 남아 있다. 기뻤다.



自分は正常な狀態であることを、發見された方が發した聲が、どよめきとなったことを、すぐ知ることが出來た。

나는 정상인 상태인 것을, 발견한 분이 발한 소리가, 함성이 되었던 것을, 곧 알 수가 있었다. 



このように、この世の肉體は、この世が終われば、健全な靈とな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の世の肉體は、この世での表現體(ひょうげんたい)であり、一番身近な、この世での協力者であり、しかも六十兆という、膨大なる、原子細胞の集合體であり、互いに重大な相互關係をもち、收縮と分散と、永遠の緣生を通し、共に生き續けているものであり、これからも、轉生輪廻という運動を繰り返し、永遠に、神の意である、大調和に向かって、前進をして行く使命をもった、仲間なのである。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육체는, 이 세상이 끝나면, 건전한 영혼(靈)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의 표현체(表現體)이며, 가장 관계가 깊은, 이 세상에서의 협력자이며, 게다가 60조(兆)라고 하는, 팽대한, 원자세포의 집합체이며, 서로 중대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수축과 분산과, 영원한 연생(緣生)을 통해서, 함께 계속 살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전생윤회라고 하는 운동을 되풀이하며, 영원토록, 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을 향해서, 전진을 해 가는 사명을 가진, 동료인 것이다.


★참고로, 다카하시 신지님은, 이 세상의 육체를, 육체주(肉體舟), 바다를 건너는 데 사용하는 배(舟)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단 한번도, "표현체(表現體)"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 분의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표현으로 쓴 듯 합니다.




このように、萬生萬物、この大宇宙の中に住み、生き通し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は、この物質の世は、すべてではなく、ほんの僅かな時間の中で、成さなければならいものがある。そうしたことを忘れているために、この世の何であるかも見失い、この世のすべてに、欲望そして執着をもち、足る心を忘却して、不安や恐怖のままに、この世を去って、その後も、そうした心を解消することが出來ず、永い間苦しみの世で、過ごさねばならなくなるのである。

이와 같이, 만생만물, 이 대우주 속에 사는, 줄곧 살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은(처음부터 끝까지 살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물질의 세계는, 모든 것이 아니며, 아주 약간의 시간 속에서, 이루지(성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무엇인지도 잃어버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욕망 그리고 집착을 가지고, 만족하는 마음을 망각하고, 불안이나 공포인 채로, 이 세상을 떠나서(죽어서), 그 후에도, 그러한 마음을 해소(解消)할 수 없고, 오랫동안(永い間) 괴로움의 세계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오랜 동안 = "長い間"게 사용하는데, "永い間" 이렇게 썼네요. 참 무섭습니다. 오해하기 딱 좋은. "永い" 단어는, 영원한, 이란 뜻이 강한 말인데..

★또한, 막연히,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 " 했는데, 신지(信次)님은, 세분화해서, 지옥에서의 시간을, 보통 200~300년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죄질에 따라, 1000년도 있다고 한 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人人よ、目を覺(さま)しなさい』

『사람들이여, 눈을 뜨십시오』



師は、一人の人でも、心の不安や恐怖を解消するには、どうしたらよいのであろう。それはまず、己の心に克つことが、大事な條件である。己の環境境遇を知り、足る心を忘れてはならない。物事に拘りの心を造ってはならない。己の性格を知り、どんな業をもっているかを知らねばならない。

스승님은, 한 사람의 사람이라도, 마음의 불안이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그것은 먼저, 자기의 마음을 이기는 것이, 중요(大事)한 조건이다. 자기의 환경이나 경우를 알고, 만족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사에 구애되는 마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성격을 알고, 어떠한 업(業)을 갖고 있는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これらはまず、日日の生活の中で、絶えず變化する、すべてのものを見聞きし、その中で搖れ動いて來た、己の心の反省をし、足る心を忘れ去った欲望、それによって起きる執着心、これらの原點ともいう、業の修正に勵む以外、方法はないのである。

이것들을 먼저, 매일의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그 속에서 차츰 흔들리기 시작한, 자기의 마음의 반성을 하고, 만족하는 마음을 죄다 잊어버린 욕망, 그것에 의해서 일어나는 집착심, 이러한 원점(原點)이라고 하는, 업(業)의 수정(修正)에 힘쓰는 이외에, 방법은 없는 것이다.

 


よく反省というと、ただ振り返るだけ、少しの時間の人が多い。ひどい人になると、反省をしても變わらないと言う人が多い。

자주 반성이라고 하면, 그저 과거를 되돌아볼 뿐, 조금의 시간이 사람이 많다. 고약한 사람(나쁜 사람 ひどい人)이 되면, 반성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人間、自分の過去を反省し、人生が變わったという人がいたとしたら、この人は、大きな錯覺を起こしてい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인간, 자기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큰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それこそ、形だけの反省だけなら、猿でもやるのである。

그야말로, 외형만의 반성뿐이라면, 원숭이도 하는 것이다.



反省を心の基礎として、業の修正という、實踐行爲がないとしたら、もはやそこには、理屈そして、屁理屈(へりつく)が、存在するだけである。また屁理屈(へりくつ)が、素晴らしいと罷(まか)り通る時代でもある。

반성을 마음의 기초로 해서, 업(業)의 수정(修正)이라고 하는, 실천 행위가 없다고 한다면, 이미 거기에는, 핑계 그리고, 당치 않은 이유(억지소리)가 있을 뿐이다. 또한 억지 이유(강변)가, 훌륭하다고 통용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人間は何故、苦しみ、惱み、迷うのであろう。あまりにも、日日一秒一秒の中で、眼の前を通り過ぎる、幻というか、殘像を追い、執着を造り、その執着に縋(すが)り付きすぎているからではあるまいか。

인간은 왜,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나날의 일초 일초 속에서, 눈 앞을 지나가는, 환상(幻)이라고 할까, 잔상(殘像)을 쫓으며, 집착을 만들고, 그 집착에 매달려(희망을 걸고)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私の經驗からすると、他次元の世には、今現在、自分の周圍にあるすべてのものは、一切存在していないのである。

나의 경험으로 하면, 다른 차원의 세계에는, 지금 현재, 제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일체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これらすべての物質は、いかに、その財力や權力によって、また自分が、たとえどんなに苦勞をして、手に入れたものでも、それらの物質は、他次元の世界には存在はしないのである。正に幻である。

이러한 모든 물질은, 아무리, 그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서, 또한 자신이, 가령 아무리 노력을 해서, 손에 넣은 것이라 해도, 이러한 물질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틀림없이 환상(幻)이다. 



その幻を、自分の手で掘ろうとして、掘ったのであるから、當然、强烈な執着心を起こすだろうし、そうした同じような考えの者同志の、爭いも起きるのである。

그 환상(幻=헛것)은, 자기 손으로 구멍을 파려고 해서, 판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강렬한 집착심을 일으킬 것이고, 그러한 똑같은 생각(考え)을 하는 사람끼리, 싸움도 일으키는 것이다.


 

結果は、神佛の敎え、そしてその道から、遠く遠く離れて行くばかりなのである。

결과는, 신불(神佛)의 가르침, 그리고 그 길(道)에서, 멀리 멀리 떨어져 갈뿐인 것이다.



物質というものは、たとえ、どんな苦勞をして手に入れたものでも、何一つとして自分のものはないのである。その例は、人間がこの世を去る時には、それ迄自分だと思っていた肉體でさえ、持っては歸れないことは、誰しも承知していることであろう。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설령, 어떤 수고를 해서 손에 넣은 것이라 해도, 무엇 하나라도 자기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예는, 인간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것까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육체마저도, 갖고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この世は、頑張っても、せいぜい百年である。この短かな時の中は、魂としての自分が、幻とも言うべき物質のすべてを、見たり、聞いたり、試したり、多く事柄を學び、業という己の心に巢くう、物の怪を克服し、その體驗によって得た、事の理を持って、次元の塚を越えるのである。

이 세상은, 끝까지 버티어도, 고작 100년이다. 이 짧은 시간 속은, 영혼(魂)으로서의 자기가, 환상(幻=헛것)이라고 말해야 할 물질의 모든 것을, 보거나, 듣거나, 시험하거나, 많은 내용(事柄=일)을 배우며, 업(業)이라고 하는 자기 마음에 둥지를 트는(자리잡는), 악령(物の怪=귀신)을 극복하고, 그 체험에 의해서 얻은, 사물의 이치(事の理)를 가지고, 차원(次元)의 무덤(塚)을 뛰어넘는 것이다.



この大宇宙の中に、生き通し生きるすべてのものは、正に運命協同體なのである。

이 대우주 속에, 처음부터 끝까지(줄곧) 살며 살아가는 모든 것은, 확실히 운명 협동체인 것이다.



師は絶えず說かれていた。

『人間中道の精神での生活が、もっとも大切であり、互いに他を生かし、扶(たす)けあい、補(おぎな)いあう精神をもち、生きることである』

스승님은 끊임없이 설명하셨다.

『인간은 중도(中道)의 정신(精神)으로의 생활이, 가장 중요(大切)하며, 서로 남을 살리고, 서로 도우며, 서로 보충하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人生は、眞面目でなければならない。

인생은, 성실(眞面目)해야 한다. (인생은, 진면목이어야 한다).







小さな天使 

[작은 천사]



乳兒(にゅうじ)が步行器(ほこうき)で遊んでいる。二歲ぐらいあろう、可憐(かれん)そのものである。

유아(乳兒)가 보행기를 타고 놀고 있다. 2살 정도인, 사랑스러움 그 자체이다.


★유아(乳兒) ①생후 1년부터 만 6세까지의 어린아이



何氣なく、職員(しょくいん)の方に、

「あの子達の、兩親はどうなっているのですか、親はいるのですか」

尋ねてみた。丁度(ちょうど)二名の赤ちゃんが、近奇って來た。

태연하게, 직원 분에게,

「저 아이들의, 양친(兩親)은 어떻게 돼 있나요? 부모(親)는 있나요?」

물어 보았다. 마침 2명이 갓난아기가, 다가왔다.



「この子は、母親が亡くなった爲に、預(あず)かっております。こちらの子は、兩親が犯罪者で、服役中のために、預(あず)かっております」

「そうですか」

「이 아이는, 모친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돌보고 있습니다.  이쪽의 아이는, 양친(兩親)이 범죄자(犯罪者)이며, 복역(服役) 중이기 때문에, 돌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二名の赤ちゃんが、私の顔を、手で弄(いじ)り始めた。もう、涎(よだれ)で、くしゃくしゃである。しかし可愛さに變わりはない。

두명이 갓난아기가, 내 얼굴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또, 침을 질질 흘리며 너저분하다. 하지만 사랑스러움에는 변함이 없다. 



兩親が犯罪者であるという赤ちゃんに、顔をいじらせながら、心の中で,

「うわあ、犯罪者の子が」

これは、愚か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ことであった。洗面所に走ったのである。

양친(兩親)이 범죄자라고 하는 갓난아기에게, 얼굴을 주물리면서, 마음속으로,

「우와, 범죄자의 아이가」

이것은, 어리석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면장(洗面所)으로 달려갔다.



ザプザプザプ、音を立てて顔を洗ったのである。この邊に來ても、今の今までの、心の狀態が分からなかったのである。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얼굴을 씻었던 것이다. 이 근처에 와서도, 지금 지금까지의, 마음의 상태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歸路の車の中で、守護靈が、

「今日あなたは、赤ちゃんの施設で、どのような行爲をし、心の狀態はどのようであったか、分かっているのか」

言われて、はっと氣がついた。

귀로(歸路)의 차 안에서, 수호령(守護靈)이, 

「오늘 당신은, 갓난아기의 시설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고, 마음의 상태는 어떠했는지, 알고 있나?」

말을 듣고서, 문득 깨달았다.



これこそ、差別である。

이것이야말로 차별이다. 



もう一度戾って、あの赤ちゃん詫(わ)びて來ようかと、車を運轉しながら、心は搖れに搖れ、大搖れとなり、心からすべてに對し詫(わ)びたのである。 

다시 한 번 되돌아가서, 저 갓난아기에게 사죄를 하고 올까 하고, 차를 운전하면서, 마음은 흔들리고 흔들려, 크게 흔들리게 되어, 진심으로 모든 것에 대해서 사죄했던 것이다.



結局は、そのまま、歸宅をしたのであるが、心の動搖は、おさまらない。夜、反省の時間は、反省どころか、申し譯なかったことで、反省にならなかった。

결국은, 그대로, 귀가(歸宅)을 했던 것이지만, 마음의 동요(動搖)는, 진정되지 않았다. 밤에, 반성의 시간은, 반성은커녕, (변명의 여지가 없고 상대에게 미안하해서) 할 말이 없었던 것으로, 반성은 되지 않았다. 



翌朝、出勤の爲家を出た。步きながら昨日のことばかりで、どうにも、すっきりしない心の狀態であった。

다음날 아침, 출근 때문에 집을 나섰다. 걸으면서 어제의 일만으로, 아무래도, 개운치 않은 마음의 상태였다.



一九七二年の九月十九日であった。思えばあれから二十二年は經っている。しかし、今だに心の中に、消しても消しても、殘っている。忘れられないのである。

1972년 9월 19일이었다. 생각하면 그 후 22년은 경과했다. 하지만, 아직껏 마음속에, 지워도 지워도, 남아 있다. 잊을 수 없는 것이다. 



あの時に、反省をした折に、發見した自分の大きな業である、人を差別する心、潔癖(けっぺき)という、自己保存、自己本位、最(さい)たるものが、今だに何かの、物の影(かげ)に潛(ひそ)んでいるようである。しかし、あのような現象がなかったら、今だに分からなかったであろう。

저 때에, 반성을 했을 때에, 발견한 내 자신의 큰 업(業)인, 남을 차별(差別)하는 마음, 결벽(潔癖)이라고 하는, 자기보존(自己保存), 자기본위(自己本位)가, 도가 지나칠 정도가, 아직껏, 무엇엔가, 무엇인가의 뒤에 숨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저러한 현상이 없었다면, 아직껏 알지 못했을 것이다.



あの時の、二名の赤ちゃんは、私にとっては、正に天使そのものであった。

저 때의, 2명의 갓난아기는, 나에게 있어서는, 틀림없이 천사(天使) 그 자체였다.

  


また、こうした施設では、三歲になると、別の施設に移されることになっている。或(ある)日、小ちゃな天使を、訪れた時のことである。施設の玄關(げんかん)で、保母さん達が、皆(みんな)淚聲で、中には大きな聲で、泣いている保母さんもいる。私がその施設に倒着した時に、同じように次の年兒の施設より、天使達を迎えに來た車が、倒着したところであったのだ。

그리고, 이러한 시설(施設)에는, 3살이 되면, 다른 시절로 옮기게 되어 있다. 어느 날, 작은 천사(天使)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시설의 현관에서, 보모님들이, 모두 울먹이는 소리로, 그 중에는 큰 소리로, 울고 있는 보모(保母)님도 있다. 내가 그 시설에 도착했을 때에, 같은 식으로 다음 해의 아동의 시설에서, 천사들을 맞이하려 온 차(車)가, 막 도착했을 때였던 것이다.



移される天使の中には、臍(へそ)の緖(お)をつけたまま、スリップに包まれ、竹藪に捨てられていた天使や、前述ように、兩親が罪を犯し、服役中のために預けられた天使、母親が亡くなったために、預けられた天使、この二人の天使は、私は顔を、くしゃくしゃにされ、差別を敎えられた天使でもあったので、保母さんと一緖に送らせてもらった。

옮겨지는 천사 중에는, 탯줄을 붙인 채로, 속옷에 싸여서, 대나무숲(竹藪)에 버려져 있던 천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양친(兩親)이 죄를 범해서, 복역(服役) 중이기 때문에 보살핌을 받는 천사, 모친(母親)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보살핌을 받고 있던 천사, 이 2명의 천사는, 나는 얼굴을, 너저분해지게 해서, 차별(差別)을 가르쳐 준 천사(天使)이기도 했던 것이기 때문에, 보모(保母)님과 함께 전송해 주었다.



我が子同樣、いや、それ以上かも知れない保母さん達の、天使に對し示す愛情の姿を見ながら、私も知らず知らず、その渦(うず)の中に入り、いつの間にか、目頭がぬれて來て、どうしようもなかったことが忘れられない。

내 자식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인지도 모르는 보모님들의, 천사에 대해서 보이는 애정(愛情)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부지불식간에,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어느 새인가, 눈시울이 젖어와서, 어찌 할 수도 없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私は、また、小さな天使に、本當の愛情の意義(いぎ)を敎わったのである。

나는, 또한, 작은 천사에게서, 진정한 애정의 의의(意義)을 배웠던 것이다.



愛情(あいじょう)というものは、テレビやラジオや新聞で、報道(ほうどう)されるような、大袈裟(おおげさ)なものでなく、このような、每日、生活をしている中で起きる、些細なことの中にこそ、存在し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

애정(愛情)이라고 하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신문에서, 보도되는 것과 같은, 과장된 된(요란스러운, 호들갑 떠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매일,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 중에서야말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この一地方の施設で、定期的に行なわれている、小さな天使達と、保母さん達の別れは、惠まれない、小さな天使達に對し示す、保母さん達の、最高の愛情の現われであり、愛情の交換(こうかん)でもある。永遠に生き續ける、魂としての心の奧に刻(きざ)み込まれ、何らかの緣により、その刻(きざ)み込まれた事柄(ことがら)は、いつかまたの世に知慧(ちえ)となり、佛智(ぶつち)となり、湧現(ゆげん)され、幸福な人生を、送る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である。 

이 한 지방의 시설에서, 정기적으로 행하고 있는, 작은 천사들과, 보모님들의 이별은, 축복받지 못한, 작은 천사들에 대해서 내보이는, 보모님들의, 최고의 애정의 표현이며, 애정의 교환이기도 하다. 영원히 계속해서 사는, 영혼(魂)으로서의 마음 속 깊이 새겨져서, 어떠한 인연(緣)에 의해서, 그 새겨진 일(事柄)은, 언젠가 또다시 지혜(智慧)가 되어, 불지(佛智)가 되어, 생겨나서(湧現), 행복한 인생을, 보내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용현{湧現}은, 중국어입니다. ① 대량으로 나타나다 ② 생겨나다 ③ 배출되다

※新人新事不断涌现  ①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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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 信 仰 

[제4장 신앙]



心を失う宗敎 

[마음을 잃은 종교]



人間誰しも、何時、何處で、何が起きるか分からない。心の中は絶えず、譯の分からない不安や恐怖が、走馬燈のように、めぐりにめぐっているものである。

인간은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마음속은 끊임없이, 까닭 모를 불안이나 공포가, 주마등(走馬燈)처럼, 에워싸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다. 



これは、心の迷いそのものであり、この迷いの根本をなしている原因は、一體何なのであろうか。よくよく省みるに、これは、この世がすべてであるという、物質至上的な心から起きる欲望や、それに連なる執着心が、大きな原因であることが分かる。

이것은, 마음의 미혹(迷い=망설임) 그 자체이며(바로 그것이며), 이 미혹의 근본(根本)을 이루고 있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 것일까? 차근차근 반성하면(과거의 일을 생각하면), 이것은, 이 세상이 전부이다 라고 하는, 물질지상적인 마음에서 일이나는(기인하는) 욕망이나, 그것에 따르는 집착심(執着心)이, 큰 원인(原因)인 것을 알 수 있다.



しかし迷った人は、自分を見失ってしまい、その迷いの解決方法を、他力的なものに、求めてしまっているのである。それこそ巷(ちまた)でいう、易占い、拜みやで見てもらい、解決しようとする人が、意外と多いようである。そんなときに、少しでも、もっともらしい言葉で誘われると、つい宗敎團體などに、入信をしてしまう例が多い。そして、救われたい氣持から、次第次第に探み入り込んで、拔けたくても拔けられなくなってしまう人が多い。

하지만 미혹된 사람은, 자신을 (보던 것·모습 등을) 놓쳐 버리고, 그 미혹의 해결방법을,타력적(他力的)인 것에서, 찾고 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항간(巷)에서 말하는, 점쟁이(易占い)나, 합장 배례하는 집(拜宮)에서 점을 치며,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 의외(意外)로 많은 것 같다.이런 때에, 조금이라도, 그럴 듯한 말로 권유당하면, 마침내 종교단체 따위에, 입교(入信=신앙이 길에 들어감)을 해 버리는 예(例)가 많다. 그리고, 구원(도움)을 받고 싶다는 기분에서, 차츰차츰 깊숙이 들어가 버려서, 빠져 나오고 싶어도 빠져 나올 수가 없게 되어 버리는 사람이 많다.



また、宗敎が好で、あちらの宗敎、こちらの宗敎と、宗敎を渡り步く人も非常に多い。このような人には、何をやっても、節操というものは無いのかも知れない。他力の權化そのものである。

또한, 종교(宗敎)가 좋아서, 저런 종교, 이런 종교로, 종교를 전전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해도, 절조(節操)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력(他力)의 권화(權化=화신(化身)) 그 자체이다. 


※權化1 [권화]  "[불교]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 라고 하는데,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장을 잘 이해해 보시길 권합니다. 



本來、宗敎というものの根本は、宇宙を示す敎えなのである。

본래, 종교라고 하는 것의 근본(根本)은, 우주를 (모범을) 내보이는 가르침인 것이다. 



それは、宇宙そのものの理を說き、人間としての步むべき道、神の道を說き明かされたものなのである。

그것은, 우주 그 자체의 이치(理)을 설명하고, 인간으로서의 걸어야 할 길(道), 신(神)의 길(道)을 설명하신 것인 것이다.



しかるに、現代の宗敎とは名ばかりで、人間が造りだした、本尊と稱するものを、祠り拜ませる。なかには、自分の寫眞を本尊として祠り拜ませたり、每夜、神や佛からの啓示を受けているとか、終いには、私は大釋迦であると、釋迦の上に大をつけ、釋迦より偉いというのか、言わないのか、そんなことをうそぶく、恐ろしいような、哀れな敎祖が、あちらこちら出て來たり、また、ヨガを中心に、恰(あた)かも釋迦の敎えであるかのように、俗界との交わりを絶ち、信者を集める。信者は敎祖の波動を受け、狂ったように、しかも怪しっに動きまわる。これをもって悟りと思ったり、佛の敎えと思ったり、錯覺もよいことろである。これらは、佛の敎えと何らの關係もないし、人が生きて行くために、必要なことでもないのである。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종교라는 이름만으로, 인간이 만들어 낸, 본존(本尊)이라고 칭하는 것을, 신(神)을 모시는 사당(祠堂)에 합장 배례케 한다(祠り拜ませる). 그 중에는, 자기 사진(寫眞)을 본존(本尊)으로 삼아서 받들어 모시며 합장 배례케 하거나(祠り拜ませたり), 매일 밤, 신(神)이나 부처(佛)로부터 계시(啓示)를 받고 있다고 하든가, 끝내는, 나는 대석가(大釋迦)이다 라고, 석가(釋迦)보다 위쪽(앞)에 가장 높은 자리에 붙이고(釋迦の上に大をつけ), 석가(釋迦)보다 위대하다고 하든가, 여기저기에 나오게 하거나, 또, 요가(瑜伽 yoga)를 중심으로, 마치 석가(釋迦)의 가르침인 것처럼, 속계(俗界)와의 교제를 끊고, 신자(信者)을 모은다.  신자(信者)는 교조(敎祖)의 파동(波動)을 받고, 미친 듯이, 게다가 헤아릴 수 없이 괴이한 행동을 하며 돌아다닌다. 이것을 더욱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하거나, 부처(佛)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거나, 착각(錯覺)도 이만 저만한 정도가 아니다. 이들은, 부처(佛)의 가르침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아닌 것이다. 



★ほこら[ 叢祠,祠 ]  (ホクラ(神庫)의 변한말) 총사. 신을 모시는 작은 사당(祠堂)

호코라(神庫)란 말은, "신사(神社)"라고도 하며, "신(神)의 계신 곳", "신의 보물을 보관하는 창고" 란 뜻도 있습니다. 

★ヨーガyoga 산스크리트 ▶인도의 바라문에서 중요시하는 경전.

①(瑜伽ゆが로 音写おんしゃ) 요가 ②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인도의 종교적 실천방법 ③정신을 통일하고 물질의 속박에서 해탈을 꾀한다 ④이 방법은 신체적 수련을 중요시하며 현재는 건강법의 하나로 행해진다 




世の中には、片方が大釋迦と言えば、片方はイエスと言い、それぞれが組織を造り、それに、それぞれ信者が集まるのだから、驚いてしまう。

지금 이 세상(世の中)에는, (짝지은 것 중의) 한쪽(片方)이 대석가(大釋迦)라고 말하면, (쌍을 이루는 것 중의) 한쪽은 예수(Jesus)라고 말하며, 저마다가 조직(組織)을 만들어, 그것에, 저마다의 신자(信者)가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만다.



天使の名を使う、こんな增長慢的なことがあってよいのであろうか。これらをみると、人間とは何と漫畵的で、しかも、何と忙しい動物なのであろうかと思ってしまう。

천사(天使)의 이름을 쓰며, 이렇게 자만하는 마음이 더욱 심해지는 일이 있고서야 좋은 것일까? 이들을 보면, 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도 우스꽝스럽고(漫畵的), 게다가, 어쩌면 이렇게도 바쁜 동물인 것일까 라고 생각해 버린다.



このようなことはすべて、神佛の敎えからすると、遠く遠く離れたことであり、見方によれば、この世的な利益追求の企業團體と等しいようなものである。

이와 같은 것은 전부, 신불(神佛)의 가르침으로 하면, 훨씬 멀리 떨어진 것이며, 보는 눈에 따르면(견해에 따르면), 이 세상적인 이익 추구(利益追求)의 기업 전체(企業全體)과 다름없는 것이다.  



佛の敎えは、一般社會から隔離することではない。また大衆を集め、服裝や、照明器具や、終いにはレーザー光線まで使って、人人の心迷わせながら、信じことませるものではないと思う。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일반사회에서 격리(隔離)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대중(大衆)을 모으고, 복장(服裝)이나, 조명기구(照明器具)나, 끝내는 레이져광선까지 사용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면서, 굳게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佛の敎えは、本來素朴で、眞面目なものなのである。それこそ人類すべてが、それぞれの環境・境遇を通し、人間本來の目的である、神の意である大調和に向かって、一秒、一秒のリズムの中を、永遠にあの世とこの世を、轉生輪廻を續け、生きることの理(ことわり)を說き明かされたものなのである。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본래 소박(素朴)하고, 진면목(眞面目)인 것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류 전체가, 각자의 환경이나 경우를 통해서, 인간 본래의 목적인, 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을 향해서, 일초, 일초의 리듬 속을, 영원히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전생윤회(轉生輪廻)를 계속하며, 살아가는 것의 이치(理)을 설명하신 것인 것이다. 



決して宗敎專從者(せんじゅしゃ)のための、敎えでもなければ、この世を去ったものに對しての、敎えでもないのである。しかし佛の敎えは、當然あの世の亡者をも、救い得るのであるが、本來は生きているものに對しての、敎えなのである。

결코 종교(宗敎) 전종자(專從者=업무에 전담하는 사람)를 위한, 가르침도 아니려니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 관한, 가르침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당연히 저 세상의 죽은 사람(亡者)도 또한, 도울 수 있는 것이지만, 본래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しかし、この世はその昔から、正しい佛の敎えがあるにも拘わらず、いつの世からか偶像崇拜(ぐうぞうすうはい)が起こり、現在のような、信仰の形態をなす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하지만, 이 세상은 그 옛날부터, 올바른 부처님(佛)의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엔지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일어나고, 현재와 같은, 신앙의 형태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師が今世を去られた後、僅か十二年か十三年の間に、師を誹謗(ひぼう)したり、師の名を無斷で借用するものまで出現する有樣である。

스승님(師)이 금세(今世)을 떠나신 후, 불과 12년인가 13년 사이에, 스승님(師)을 비방(誹謗)하거나, 스승님의 이름을 무단(無斷)으로 차용(借用)하는 사람까지 출현하는 상태(有樣)이다. 



また、それぞれの集團に集まった人人は、その敎えの實體もよく知らず、ひたすら信仰を探めて行く。ところが實際は、それとは裏腹(うらはら)に、排他的(はいたてき)な心を植え付けられ、他の集團を誹(そ)しる。そのうちに、同じ集團の中でも、互いに爭う醜(みにく)さを、露呈(ろてい)しているところもあるようだ。それに氣付き、なかには、その集團を拔け出そうとするものもいる。ししき拔ければ罰が當たることを恐れて、追(つ)いて行くものもいると聞く。

또한, 저마다의 집단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 가르침의 실체(實體)도 잘 알지 못하고, 오로지 신앙을 깊게 해 간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것과는 정반대(裏腹)로, 배타적(排他的)인 마음을 이식시키며, 다른 집단의 잘못을 지적해서 비난한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같은 집단 속에서도, 서로 싸우는 추악함을, 드러내고(露呈) 있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깨닫고(알아차리고), 그 중에는, 그 집단을 빠져 나오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의식(儀式)에서 빠져 나오려 하면 벌(罰)을 받는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쫓아 가는 사람도 있다고 듣는다. 


★참고 '譏'는 사람의 잘못·실수를 책망하여 비난하다, '謗'은 뒷구멍으로 험담하여 비방하다, '誹'는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서 비난하다의 뜻임. 

★ししき[司式]  의식의 진행을 주관함. ※ 대개 교회에서의 의식을 말함. 




人間は、自分より少しでも、能力持に靈力が相手にあると、その理(ことわり)も知らず、

인간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능력이 특히 영적인 힘(靈力)이 상대에 있으면, 그 이유(理)도 알지 못하고,



「何と素晴らしい、何と凄(すご)い靈力なのだろう。もしかしたら如來か菩薩ではないのか」 

「어쩌면 이렇게 훌륭하며, 어쩌면 이렇게 굉장한(무시무시한) 영적인 힘(靈力)인 것일까? 어쩌면 여래(如來)라든가 보살(菩薩)이 아닐까?」 



この邊で、すでに他力という心が、その姿を現わし始めることになる。

이 쯤에서, 이미 타력(他力)이라고 하는 마음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된다.



しかし、こんなことに感心をしてはならない。

하지만, 이런 것에 감탄(感心)을 해서는 안 된다. 



もっと凄い敎祖がいると聞く。

조금 더 굉장한(무시무시한) 교조(敎祖)가 있다고 듣는다.



「われは神であり、お前達に空氣を與えているのは、このわしである 」

「나는 신(神)이며, 너희들에게 공기(空氣)를 주고 있는 것은, 바로 나다」



こんなことを、信者を前にして、平然と口走るそうである。

이런 말을, 신자(信者)을 앞에 두고서, 태연하게 지껄이는 모양이다. 



もし信者が、その言葉を本氣で、ありがたく聞いたり、敎祖が本氣で、自分が神だと思っているとしたら、これはもはや、精神異常者の集團に過ぎない。

만약 신자(信者)가, 그 말을 진짜로(곧이 곧대로), 고맙게 들거나, 교조(敎祖)가 진짜로, 자기가 신(神)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신이상자(精神異常者)의 집단에 불과하다.



この邊になると、ジョーズではないが、惡靈の靈域という大口に、飮み込まれてしまった狀態と、何ら変變わら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이 쯤이 되면, 능숙하지는 않지만, 악령(惡靈)의 영역(靈域)이라고 하는 크게 벌린 입(大口) 속으로, 삼켜버린(흡수되어 버린) 상태와, 조금도 다름 없다고 하는 것이다. 



宗敎團體の中で、よく聞かれる言葉の中に、こんなことがある。

종교집단 중에서, 자주 듣을 수 있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あなたは、選ばれて生まれて來られたのである」

「당신은, 뽑혀서 태어난 것이다」



言われた人は、自分は特別なのかと、思いあがってしまう。しかしそんなことは、絶對にあり得ない。この世は、特定の者の世ではないのである。この世の萬生萬物すべてのものは、選ばれたからこそ、それぞれその姿があるのである。選ばれないものの存在など、あり得ないのである。そして選ばれたということは、それぞれのものが、異なった目的があり、その目的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をもって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り、これは宿命というのである。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사람은, 자신은 특별한 것인가 라고, 우쭐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은, 특정한 사람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이 세상의 만생만물 모든 것은, 뽑협으니까, 각자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뽑히지 않은 것의 존재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뽑혔다고 하는 것은, 저마다의 것이, 다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살고 있다, 고 하는 것이며, 이것은 숙명(宿命=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師は絶えず敎えられた。

스승님은 끊임없이 가르치셨다.


『五官でとらえた、巷の宗敎は、絶對に信じてはならない。惑わされてはならない。それには自分自身の、神佛に通じる、全なる心を信じることだ』と。

『오관(五官)에 마음이 사로잡힌, 항간의 종교는,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에는 자기 자신의, 신불(神佛)에 통하는, 온전한 마음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恐るべき狂信・盲信の果て

[두려워야해야 할 광신 맹신의 결과]




「大阪に素晴らしい、靈能者がおられるのですが、一緖に行ってみてくれませんか」 

「오사카(大阪)에 훌륭한, 영능자(靈能者)가 계십니다만, 함께 가 주시지않겠습니까?」 



もう七十歲は越えておられであろう、老いて益益元氣のよい女性。この方、若い時から宗敎が大好きで、佛敎については、玄人はだし。よくもこれだけのことを、覺えられたものと、しばしばと、その方の顔を見てしまうくらいである。

이미 70세는 넘은 듯 해 보이는, 늙어서도 더욱 원기가 왕성한 고운 여성. 이 분이, 젊을 때부터 종교가 대단히 좋아서, 불교에 대해서는, 전문가 뺨칠 정도로 능숙하다. 



このご婦人の誘いであった。一應この方の話をお聞きした後、

이 귀부인(ご婦人)이 권유였다. 일단 이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본 후, 



「その靈能者の方は、惡いけれど、正しいものではないと思いますので、行かれない方がよいと思います」

「그 영능자(靈能者) 분은, 미안하지만,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これに對して、

이 말에 대해서,



「しかし、この靈能者は、夫婦共に靈能力があがり、カンターレと言われる大天使が、絶えずお告げをされるし、モーセも出て來られるそうです」 

「그렇지만, 이 영능자(靈能者)는, 부부가 다같이 영능력(靈能力)이 있고, 칸타레(Kantare)라고 하는 대천사(大天使)가, 끊임없이 계시를 하시고, 모세(Moses)도 나오시고 계신 모양입니다」 



もうこれには、返事をする氣にもなれなかったが、失禮になるので、

더 이상 이 말에는, 대답을 할 기분도 들지 않았지만, 실례가 되기 때문에,



「そうですか、それは素晴らしいですね」

「그렇습니까? 그것은 훌륭하군요」



それっきり、言いようがなく、いや思いをした。

그것을 마지막으로, 말할 필요가 없고, 귀찮은 느낌이 들었다. 



それから二個月ばかりした時、また、そのご婦人に會った。

그 후 2개월 정도 지났을 때, 또 다시, 그 귀부인을 만났다.



話によると、件(くだん)の天使カンターレの處に、グループで、再三、訪ねていたそうでる。このご婦人は、盲信・狂信で心の扉を開こうとしておられる。

말에 의하면, 전술한 바와 같은 천사(天使) 칸타레라고 하고 있는데, 그룹으로, 재삼, 방문하고 있던 모양이다. 이 귀부인은, 맹신(盲信)・광신(狂信)의 마음의 문(扉)을 열려고 하고 계신다. 



「聞いて下さいまし。天使カンターレ樣は、素晴らしい立派な方でございます。是非會って下さいまし。いつでも、ご一緖します」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천사 칸타레님은, 훌륭하고 훌륭한 분이십니다. 꼭 만나 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라도, 함께 가겠습니다」 



このご婦人、實際は心の隅に、どうも、しっくりと行かない、信じられない何ものかがあったようである。

이 귀부인, 실제로는 마음의 한 구석에, 아무래도, 잘 안 되는, 믿지 않을 수 없는 누구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それからも、何回か誘いがあったので、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권유가 있었기 때문에, 



「行っても仕方がないのに」

「가 보았자 소용이 없는데」 



と思いながらも、このご婦人が、間違った方向に行かれようとしているのに、知らん顔も出來なかったので、ご一緖することにした。それから、二日ばかり經った日である。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귀부인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체도 할 수 없었기에, 함께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이틀 정도 지난 날이다.



これを聞かれたお仲間の三名と、同道することになった。

이것을 들은 동료 3명과, 동행(同道)하게 되었다.



この方方は、宗敎マニアというか、この世のことより、あの世のことを好む人達である。

이 분들은, 종교 열광자(Mania)라고 하는지, 이 세상의 일보다, 저 세상의 일을 좋아하는 분들이다.



この日のことは、すでに知らされていたようである。

이 날의 일은, 이미 알고 계시고 있던 모양이다.



午前九時頃電車に乘り、約二時間ばかり掛かって、ようやく十一時近く、天使の住む家に倒着した。 マンションの十三階である。下を眺めると、眼が廻りそうになる。

오전 9시경에 전차(電車)을 타고, 약 2시간 정도 걸려서, 가까스로 12시 가까이, 천사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맨션(Mansion)의 13층(階)이다. 아래를 바라보니, 눈이 돌 지경이다. 



この時ふと、こんなことを、思ったものである。

이 때 문득, 이런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このご一家は、あまり高い處に住んでおられため、天上界と錯覺をおこし、カンターレになってしまったのかな」 

「이 집안(ご一家)은, 너무나 높은 곳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천상계(天上界)라고 착각을 일으켜서, 칸타레로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瞬間、そんなことを思ったものである。なかなか、廣い間取りの住いである。

순간, 이런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꿰, 넓은 방 배치의 집(住い)이다. 



「ご免下さい、初めまして」 

「실례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よくいらっしゃいました。そうぞ、どうぞ、お待ち致しておりました」 

「잘 오셨습니다.  부디, 아무쪼록,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もう信者の方であろう、何人が集まっておられた。

이미 신자(信者) 분인지, 몇 사람이 모여 계셨다.



カンターレ樣は、まだ四十歲くらいの、ご婦人である。旦那は、お勤めに出られ、お留守とのことである。家には、まだ小學校前の娘さんが、一人おられた。

칸타레님은, 아직 40세 정도의, 귀부인이다. 남편(旦那)은, 근무처로 나가시고, 집에 안 계신 것이다. 집(家)에는, 아직 초등학교 전의 따님(娘さん)이, 한 명 계셨다.



晝食は、大變なご馳走で、恐縮であった。

식사(食事)는, 굉장히 맛있는 음식이며, 몸 둘 바를 몰랐다. 



部屋を見ると、どの部屋も、カンターレやモーセ(Moses)のお告げなのであろう、一寸の隙もないくらい、大きな紙に、こと細かに書き記(しる)し、ちょっと異樣に感じる程、張りつけてある。

방을 보니, 어느 방에도, 칸타레(Kantare)나 모세(Moses)의 계시인 것인지, 한 치의 틈도 없을 정도로, 큰 종이에, 아주 세세하게 기록하고, 좀 이상(異樣)하게 느낄 정도로, 달라붙어 있다. 



そして、何が素晴らしいのか、よく分からないが、集まっておられる信者さん方は、異口同聲(いくどうおん)に、 

그리고, 뭐가 훌륭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모여 계신 신자(信者)님들은, 이구동성으로, 



「素晴らしい、お言葉ですこと」

「아 훌륭하신, 말씀이십니다」 



「素晴らしいですわ」

「아 훌륭하십니다」 



と言われる。仕方がないので、

라고 말하고 있다. 어쩔 수가 없기 때문에,



「素晴らしいですね」 

「아 훌륭하십니다」 



ときり言いようがなかった。

라고 만 해서 말할 수 없었다. 



そのうち、信者さんの熱氣が傳わって來る。その頃になると、素晴らしいどころではなくなって來た。

차차, 신자(信者)님의 열기가 전해져 왔다. 그 지경이 되자, 차츰 훌륭한 상황이 되지 않게 되었다. 



家の中を、行ったり來たりしている、カンターレと稱する者なのであろう、その本性が、見え隱れしている。何氣なく、ふと娘さんを見ると、娘さんの人相がすっかり變わっている。

집안을, 왔다가 갔다리 하고 있는, 칸타레라 칭하는 사람인지, 그 본성(本性)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고 있다. 별 생각도 없이, 문득 따님을 보니, 따님이 인상(人相)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



「ははあ、これだな」

「과연, 이것이로구나」



しかし、これを今言うわけにはいかない。

하지만, 이것을 지금 말할 수 없다. 



「おばちゃん達、早く歸らないかな」 

「이모님들, 빨리 돌아가지 않을까(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それからは、そればかり思っていた。しかし話がもりあがり、中中歸ろうとしない。

그리고는,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고조되고, 쉽사리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それから、ひとしきり、カンターレやモーセ(Moses)の話があり、ありがたく受けたまわったのである。

그리고 나서, 한바탕(한동안), 칸타레나 모세의 말이 있고, 고맙게 받은 것이다. 



もうかれこれ、三時近かった。

이미 이럭저럭, 3시가 가까웠다. 



待ちきりなくなり、

기다릴 수만 없게 되어,



「時間も遲くなりますので、そろそろ失禮をいたしましょう」 

「시간도 늦어졌기 때문에, 이제 슬슬 실례를 하겠습니다」 



一緖に來られた方方を促した。

함께 오신 분들을 재촉했다.



カンターレである、この家の奧さんが、

칸타레인, 이 집의 부인이, 



「今日は歸路、ご苦勞さまでした。いかがで、ございましたでしょうか」 

と埃拶された。

「오늘은 귀로(歸路)하시고, 수고하셨습니다. 잘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と埃拶された。

라고 인사하셨다.



「有意義な一日でございました。本當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これは、貴女始め、お集まりの方方に、老婆心(ろうぱしん)ながら申しあげますが、あまり現在おやりになっていることは、續けれない方が、よろしいかと存じます。ましてや靈的なことは、危險なことなので、あまり、おやりにならない方が、よいと思いますが、如何でしょうか」

「뜻 있는 하루였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것은, 귀부인(貴女)을 비롯한, 여기 모이신 분들에게, 노파심(老婆心)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너무나 현재 하시고 있는 것은, 계속하지 않은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물며, 영적(靈的)인 것은,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하시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瞬間、少しの間、靜かになった。

순간, 잠시 동안, 조용해졌다.



「では、ご馳走にな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失禮いたします」 

「그럼 이만, 후한 대접을 받고, 고마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そそくさと、エレベーターに乘った。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一緖に方かれた方方は、この光景をみて、心の中で、

함께 오신 분들은, 이 광경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何を言われるのか、きっとカンターレ樣の素晴らしさが、分からないのであろう」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분명히 칸타레님의 훌륭하심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と步きながら思われていたようである。

라고 걸으면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案の定、皆さんは、カンターレのもとに、止めることなく、通いつめたのである。信者も大分增えたそうである。

아니나 다를까, 여러분은, 칸타레의 밑에서,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녔던 것이다. 신자(信者)도 대부분 증가한 모양이다.



それ以來、この方方は、私を魔とも思われたのであろう、すっかり敬遠(けいえん)されてしまった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

그 이래, 이 분들은, 나를 악마(魔)라고 여겼던 것인지, 완전히 경원(敬遠)시 해 버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それから約三年ばかりした、夏の盛り、八月の中旬頃に、あのカンターレの處に行った信者の方方の、主になっておられた方より、電話があった。

그 후 약 3년 정도쯤이었다. 한 여름의, 8월 중순 경에, 저 칸타레가 있던 곳에 갔던 신자(信者) 분들의, 주동이 되어 계셨던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永らくご無沙汰いたしております。お元氣でございますか」

「오랫동안 격조했습니다. 건강히 잘 계십니까?」



何を言っておられるのか、人を敬遠しておいて、と思いながら、

무슨 말을 하고 계신지, 사람을 경원(敬遠)하고 있으면서, 라고 생각하면서,



「久し振りでした、どうしましたか」 

「오래간만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助けて下さい、お會いしたいんです」 

「도와 주십시오, 만나 뵙고 싶습니다」 



「ははあ、カンターレのことだな」 

「아하, 칸타레의 일이군요」 



直感的に思った。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ところで、何かあったのですか」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こちらから、尋ねてみた。

이쪽에서, 물어 보았다.



「お父さんが、腰が惡くなって、起きらないのです」

「아버님이, 허리가 나빠져서, 거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と言われる。ご主人の體を、心の面から見でびっくり、大きな動物が憑依(ひょうい)している。

라고 한다. 주인장(ご主人)의 몸을, 마음의 면으로 보니 깜짝 놀라게도, 큰 동물이 빙의(憑依)하고 있다.



その姿は、腰に券きついているとしか、表現が出来來ない。

그 모습은, 허리를 감고 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お宅のご主人は、憑依現象(ひょういげんしょう)なので、醫者では治らないと思います。ところでまだ、カンターレを、信仰しているんですか」 

「댁의 주인장은, 빙의현상(憑依現象)인 것이기 때문에, 의사(醫者)에게는 낫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아직도, 칸타레를, 신앙하고 있습니까?」 



「はい、まだ信仰しております。實はそのことで、敎えていただきたいのですが」

「네, 아직도 신앙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 일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만」



それから、一週間ばかりしてから、約束をした、M驛の六番線ホームで待っていると、ホームの澤山の客の中から、私の姿を見て、大聲を出し、泣きながら近付いて來られた。

그리고 나서,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서, 약속을 했다.  M정거장의 6번선 플랫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플랫홈(platform)의 많은 손님 속에서, 내 모습을 보고, 큰 소리를 내서, 울면서 다가 오셨다.



「先生、會いたかった」 

「선생님, 만나고 싶었습니다」 



その瞬間、私は心の中で、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何だろう、この方、人を今まで散散(さんざん)敬遠をして來られたのに、隨分ご都合主義な方だこと」

「뭐야, 이 양반, 남을 여태까지 산산이 경원(敬遠)하고 있었으면서, 아주 이기주의(都合主義=편리주의자)적인 양반이군」

 


 

ふとそんなことが湧き、人の心の恐ろしい面を、見せられた思いであった。

문득 그런 것이 솟아나서, 사람의 마음의 무서운 면을,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世の中には、こんな人が多いのではあるまいか。

이 세상(世の中)에는, 이런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닐까?



「仕方がないや、相手がどんなことを思う人でも、どんなに、ご都合主義な方でも、その方方が、よい結果を見ることが出來れば良い」 

「어쩔 수 없군, 상대가 어떤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이기주의(ご都合主義)인 사람이라 해도, 이 분들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 



そう思わざるを得なかった。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列車がホームに入って來た。その方も乘って來られた。列車の中で、相談をしたいと言うことである。よほど困っておられたのであろう。

열차가 플랫홈에 들어 왔다.  그 분도 같이 탔다. 열차 속에서,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당히 곤란을 겪고 잇는 것인 모양이다.



列車に乘るや、ほっとする間もなく、話をされ始めた。

열차를 타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そこで、件(くだん)のカンターレの、本性を說明して、卽刻、信仰を止められるよう、お勸めした。

그래서, 전술한 바와 같이 칸타레의, 본성(本性)을 설명하고, 즉각, 신앙을 중지하도록, 권했다.



話によると、信者が集まるたびに、靈的現象が互いにエスカレートし、ありがたくなったり、感激したりで、本當の神か佛か判斷も出來ぬまま、家族をあげて、友人を誘い込み、カンターレ信仰に入信し、なかば盲信・狂信の樣相さえ、見せていたようである。

이야기에 의하면, 신자(信者)가 모일 때마다, 영적 현상이 서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져 가고, 고마워하거나, 감격하거나, 정말로 신(神)인지 부처(佛)인지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가족을 남김없이, 친구를 끌어들이고, 칸타레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하고, 도중에 맹신(盲信)・광신(狂信)의 양상(樣相)까지도, 보이고 있던 모양이다.




最初に、私を誘ったご婦人も、勿論今だに、信者でおられるとのことである。まったく、氣の毒ときり言いようがなかった。

최초에, 나를 권했던 귀부인도, 물론 아직도, 신자(信者)로 계신다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불쌍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そのうち、ご主人や息子さん迄が、靈能を得ることが出來、いよいよ、これは本物とばかり、益益のめり込んでいったようである。

그러고 있는 사이에, 바깥양반(ご主人)과 자제분(息子)까지, 영능(靈能)을 얻을 수 있고, 마침내, 이것은 진짜(本物)라고 할 정도로, 점점 더 빠져들어 갔던 모양이다.



そのうち、カンターレ夫妻について、とんでもないことが分かって來た。この夫婦は、大酒飮みで、每晩のようにおそくまで、二人で、うわばみよろしく飮みほうけ、そこにカンターレ樣が、お成りにということであった。

그 동안에, 칸타레 부부(夫妻)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것을 차츰 알기 시작했다. 이 부부(夫婦)는, 모주꾼(大酒飮=술고래)이며, 매일 밤 늦게까지, 둘이서, 마치 술고래(うわばみ=큰 구렁이)처럼 쭉 들이키며, 거기에서 칸타레님이, 납시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しかも盲信・狂信の、このご夫妻は、一年半ばかり前から、カンターレの生活費として、每月二十五萬円也を、差し出していたとのことであった。

게다가 맹신(盲信)・광신(狂信)의, 이 부부(ご夫妻)는, 1년 반 정도 전까지, 칸타레의 생활비로서, 매월 2십 5만 엔정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信仰とは、いやはや金の掛かるものと思った。これは、このご夫妻が、自分たらは特別であり、そうありたいという欲望があったので、その欲望に、うわばみに、パクッとばかり、かみつかれたのであった。

신앙이란, 거참 돈을 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 부부(ご夫妻)가, 자신도 참 특별하며, 그렇게 있고 싶다고 하는 욕망(欲望)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 욕망에, 큰 구렁이(蟒蛇=술고래)로, 입을 크게 벌리고 먹거나 마실 뿐이며,물고 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まず、ご主人と息子さんの、靈的なことは一切中止すること、カンターレより、思いきって、速やかに手を切ること、罰は絶對に當たらないと。これが出來なければ、ご主人の腰痛は、治らないことを說明した。

먼저, 남편(ご主人=바깥양반)과 자제분(息子)의, 영적인 것은 일체 중지(中止)하는 것, 칸타레보다, 단번에, 신속하게 손을 끊는 것, 벌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고.  이것을 할 수 없으면, 바깥양반(ご主人)의 요통(腰痛)은, 낫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



この時旣に、カンターレは、この方の信仰心の、かげりを、感知していたようである。

이 때 이미, 칸타레는, 이 분의 신앙심(信仰心)이, 어두워짐(바람직하지 않은 징후)을, 감지(感知)하고 있던 모양이다.



この方の家庭を、よく見てみると、神樣、佛樣で忙しいのであろう、家の中は、掃除もろくにないので、とても信仰をしている人とは、思えないものがあった。

이 분의 가정은, 자세히 보고 보면, 하느님(神樣)이, 부처님(佛樣)이 바쁘신 것인지, 집안은, 청소(掃除)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신앙(信仰)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これではカンターレの正體など、見破ることは出來ない。

이래서는 칸타레의 정체(正體) 따위는, 간파할 수는 없다.



しかし、ここ迄分かって來たのでは、月月の二十五萬円也が、普通でも大變なのに、惜しくなって来られたのであろう、當然である。ようやく、目が覺められたのであろう。

하지만, 지금까지 차츰 알게 된 것은, 다달이(月月) 2십 5만 엔정이, 보통이라고 해도 굉장한 것인데도, 아깝지도 않은 것인지 (바치는 것을 보니), 당연(當然)하다. 차츰, 정신을 차릴 것이다. 



信仰も、欲をもって始めると、こんな恐ろしい結果を、招くことになるのである。

신앙도, 욕심(欲)을 가지고 시작하면, 이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そこで、敬遠をしていた私を、思い出されたのである。このように、宗敎を追う人人には、恐らく節操などは、無いのではあるまいか。

그런데, 경원(敬遠)하고 있던 나를, 생각해 낸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를 쫓는 사람들에게는, 아마(필시) 절조(節操) 따위는, 없는 것이 아닐까?



思えば、こうした一連の方方が、氣の毒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

생각하면, 이런 일련의 분들이, 불쌍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後日、聞いたところによると、さすがのカンターレも、發狂されてしまったとのことである。

훗날(後日), 들은 바에 의하면, (예외가 아니고) 역시 칸타레도, 발광(發狂)해 버리고 말았다고 하는 것이다.



相談に來られた方の旦那は、今は、すっかり元氣になられたことは勿論でるが、この方達は、止めでおげばよいと思うのであるが、よほど宗敎が好きなのであろう、次を見付て、今はその敎團で、活躍されておられるそうである。

상담하려 오신 분의 남편(旦那)은, 지금은,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것은 물론이지만, 이 분들은, 그만 두면 좋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상당히 종교가 좋은 것인지, 다음 차례를 찾아내어, 지금은 그 교단(敎團)에서, 활약하고 계신 모양이다. 



唯唯、狂信·盲信をされないように、念ずるものである。





★바로 위 제목의 내용에 관해서, 등장하는 이름들에 대해서, 올립니다. 



GLA総合本部 (GLA 종합 본부)

'76 東 北 研 修 会 (1976년 동북연수회)

[山形県ホテル蔵王][일본 동북 남서부에 있는 야마가타 현 호텔 자오우]


1976年6月4~6日(S51)1976년 6월4~6일(S51)




「新復活」「새로운 부활」




高橋信次先生最後の御講演(6月5日)[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최후의 강연(6월 5일)]


★ 이 강연이 끝난 후, 신지님의 예언하신 대로, 48세의 생을 마치셨는데, 

1976년 6월 25일입니다.

★이미 제 블로그 가르침의 글 카테고리에 있습니다만, 다시 번역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립니다.




 非常に美しい自然の緑に包まれた環境の中で、東北の研修会が行われることを、心からお祝い申し上げます。今日の演題は「新復活」。

상당히 아름다운 자연의 신록에 감싸인 환경 속에서, 동북 연수회가 개최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오늘의 강연 제목은,「새로운 부활(新復活)」입니다.

 


 ちょうど、現在、東京地方には創世記時代の映画が来ております。しかし人類は、緑に包まれた、しかも神の光に満たされた地球という環境に、今から3億6500有余年前、初めてベータ星という星より、神より与えられた新しい緑に包まれたこの地球上に、人類は最初にしるしたのであります。その当時、ベータ星は調和され、私達は新しい新天地を求めて、最も調和されたこの地球という環境を選んだのであります。

마침, 현재, 도쿄 지방에서는 창세기 시대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신록에 감싸인, 게다가 신(神)의 빛으로 가득 찬 지구(地球)라고 하는 환경에, 지금으로부터 3억 6500유여년 전, 최초로 베타별(ベータ星)이라고 하는 별(星)에서, 신(神)으로부터 주어진 새로운 신록에 감싸인 이 지구상에, 인류는 최초로 발자취를 남긴 것입니다. 그 당시, 베타별은 조화(調和)되어, 우리들은 새로운 신천지(新天地)를 찾아서, 가장 조화된 이 지구(地球)라고 하는 환경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その当時、最初に反重力・光子宇宙船という、今でいうUFOです。それに乗りまして、最初、地球上の人類は、神の光によって満たされた、神の光によって満たされた天使である所のエルランティー(L-Lanty)このエルランティーという方が中心になりまして、エルランティーは直接、神の光を受けているところの真のメシアであります。

그 당시, 최초에 반동력 광자 우주선이라고 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UFO입니다. 그것을 타고서, 최초로, 지구상의 인류는, 신(神)의 빛으로 충만된, 신(神)의 빛으로 충만된 천사(天使)인 엘란티(El lanty), 바로 이 분 "엘란티"라고 하는 분이 중심이 되어서, 엘란티는 직접, 신(神)의 빛을 받고 있는 참된 메시야입니다.




※이 내용을 가져 온 사이트에서는, (L-Lanty)라고 쓰여져 있습니다만,

동영상 강연에서는, "El lanty" 라고 칠판에 쓰면서, 강연하고 계십니다.




 そしてエルランティーの光の直系と致しまして、皆様は光は7色に分かれます。7色のプリズムということを想像致しまして、全く同じように神の光はここから7色の光に分かれます。


그리고 엘란티의 빛의 직계(直系)로 하시며, 여러분은 빛은 일곱 색깔로 알고 계십니다. 일곱 색깔의 프리즘이라고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으시고, 완전히 똑같이 신(神)의 빛은 이곳에서 일곱 색깔의 빛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この7色の光の方向を決めている方が、ミカエルという方であります。ミカ(Mika,Michael)といいます。ミカといわれる天使です。神の直系です。神の光の直系です。そしてこのスリットを通し、神は光なり、その光の6人の光の線がこのスリットを通して霊子線が繋っております。この中に夫々のスリットを通して7人の天使がおります。このスリットを通して7人の天使がおります。


이 일곱 색깔의 빛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분이, "미카"라고 하는 분입니다. 미카(Mika,Michael)라고 합니다. "미카"라고 하는 천사입니다.  신(神)의 직계(直系)입니다.  신(神)의 빛의 직계(直系)입니다. 그리고 이 프리즘을 통해서, 신(神)은 빛이며, 그 빛의 6명의 빛의 선(線)이 이 프리즘을 통해서 영자선(靈子線)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속에 각기(각자) 프리즘을 통해서 7명의 천사(天使)가 있습니다. 이 프리즘을 통해서 7명의 천사가 있습니다.



★"영자선(靈子線)"이란 말은, 다카하시 신지님께서, 처음 이 세상에서, 하신 말이며, 뜻은, " 이 세상에 태어난 육체의 인간이 “생명줄”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 합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영혼의 줄"이라고 하면 쉬울까요?  이 줄(선)이 끊어지면, 사망(死亡)입니다.  

그래서, 병상에 누운 채로,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잇고 있다고 해서, 죽은 것은 절대로 아님을 아셔야 할 듯 합니다.  

영국에서는, 안락사(安樂死)를 인정하고 있지만, 살인 그 자체입니다★




 これがガブリ、この方がウリエル、サリエル、パヌエル、それから全部で6人。この七大天使というのが、実は新しい新天地を求めて来た時の最初の光の大天使達です。

이것이( 칠판에 설명하고 있는 상태임) "가브리(Gabriel)", 이 사람이 "우리엘(Uriel)", "사리엘(Sariel)", "파누엘(Panuel)", 그리고 전부 6명입니다. 이 7대천사((archangel)이라고 하는 것이, 실은 새로운 신천지(新天地)를 찾아서 왔을 때의 최초의 빛의 천사들입니다. 




 そしてこの下に、それぞれ何億、何十億という魂の霊子線があります。

그리고 이 밑으로, 각자 몇 억, 몇 십 억이라고 하는 영혼(魂)의 영자선(靈子線)이 있습니다.




 更にまた、エルランティーの光の天使の分霊と致しまして、カンターレというのがいます。更にまたアガシャー、モーセ、一方に於いて、ガブリエルの系統にマホメットがいます。

게다가 또한, "엘란티(El lanty)"의 빛의 천사의 분령(分靈)이라고 하며, "칸타레(kantare)"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또한 "아가샤(Agasha)", "모세(Moses)", 한 편에 있어서, "가브리엘(Gabriel)"

의 계통(系統)에 "마호메트(Mahomet)"가 있습니다.



아, 그래서, 이슬람경전에 성모마리아 탄생에 가브리엘이 등장하는구나.


Gabriel : the archangel who was the messenger of God

① 가브리엘, 유태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신의를 전하는 천사,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수태를 고지했다고 한다 

the Arab prophet who, according to Islam, was the last messenger of Allah (570-632) 




 そして第一艇団がエルランティーを中心にして、ミカエルに、ラファエル、ガブリエル、ウリエル、サリエル、この七大天使が中心にして、現代のエジプト・ナイル渓谷の東部にあるエルカンタラ(L・Qantara)という所に着地いたしました。その場所が一番最初のエデンの園です。約6000人のベータ人が、全部この地球上に降りてまいりました。それぞれ七大天使は、ラファエルを始め、文芸や芸術、政治、経済、或は律法、科学、あらゆる担当をして、総括的にミカエルが中心になってエデンの園を造り上げました。

그리고 제1선단(船團)이 엘란티를 중심으로 해서, "미카엘(Michael)", "라파엘(Raphael)", "가브리엘(Gabriel)", "우리엘(Uriel)", "사리엘(Sariel)", 이 7대천사가 중심으로 해서, 현대의 이집트 나일 계곡의 동부에 있는 "엘칸타레(El Kantare)라고 하는 곳에 착지(着地)했던 것입니다. 그 장소가 가장 최초의 에덴의 동산(the Garden of Eden)입니다. 약 6000명의 베타인(人)이, 전부 이 지구상에 내려 왔습니다. 각자 7대천사는, "라파엘(Raphael)을 비롯해서, 예술(藝術), 정치(政治), 경제(經濟), 혹은 법률(法律), 과학(科學), 모든 것을 담당을 하고, 총괄적으로 미카엘이 중심이 되어 에덴 동산을 완성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エルカンタラ(L・Qantara)という" 를 "El Kantara"로 로 표기했습니다. 

또한, 표기는 좀 다르지만, 스리랑카에, 

The Kantale Dam is a large embankment dam built in Kantale, Sri Lanka, used for irrigation. The measures 14,000 ft (4,267 m) in length, and 50 ft (15 m)


Kantale라고 하는 거대한 댐(dam)의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 각 종파마다, 이름이 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사라엘(사라카엘=셀라피엘) 식으로 좀 다릅니다.



http://houwomanabukai.org/tes39.htm


★이 사이트의 이름은, 법(法)을 배우는 회(會)(( 法を學ぶ會)) 라는 곳입니다. 영어 및 일본어 및 몇 개의 언어로 소개하고 있는 인터넷 일종의 종교입니다




★モーセ[ Moses ]  

①모세 ②히브리인의 지도자 ③기원전 14세기경 이집트에서 태어나 야훼의 가르침을 따라 고통 받는 이스라엘 동포를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 ④시나이 산에서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 중개자가 되어, 율법을 백성에게 주고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다








あやまれる信仰

(의심스러운 신앙)



この世には、この世の自分を忘れたのか、あの世のことを知りたがる人が、非常に多いものだ。自分が住んでいる、この世ことも、ろくろく知らずしてと思うのだが。

이 세상에는, 이 세상의 자신을 잊어버렸는지, 저 세상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상당이 많은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また過去の、現在歷史に殘っている人に、なり度い方も多い。何故なのか、さっぱり分からない、不思議なことの一つである。또한 과거의, 현재 역사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도 많다. 왜 인지, 조금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 중의 하나이다. 



過日、お會いした方に、こんな方がおられた。

지난날에, 만났던 분 중에, 이런 분이 계셨다.



「私は阿彌陀如來ではないかと思うのですが」

「나는 아미타여래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데」



問われても、私に分かるはずがない。

내게 물어봐도, 나로서는 알 턱이 없다.



この方、不動明王を祀り、惱める人人を、神のお告げにより、導いていると、自稱(じしょう)をしておられる。

이 분은, 부동명왕(不動明王)을 모셔 받들며, 고민하는 사람들을, 신(神)의 계시에 의해서, 이끌고 있다고, 자칭을 하고 계신다.



「何故、阿彌陀如來と、言われるのですか」

「왜, 아미타여래라고, 말하고 계십니까?」



と尋ねてみた。라고 물어 보았다.



「實は、私は太陽を、まばたき一つせず、見ていることが出來るし、太陽の中心を見ていると、神の姿が見えて來るのです」

「실은, 나는 태양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보고 있을 수가 있고 해서, 태양의 중심을 보고 있으면, 신(神)의 모습이 차츰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當然、眞面目な顔で、話をされるのである。恐れ入る話である。

당연히, 진면목인 얼굴로, 말을 하시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이다. 



しかし、何で太陽の中心と、阿彌陀如來が、關係あるのだろう、到底(とうてい)返事など出來るわけがなかった。

하지만, 어째서 태양의 중심과, 아미타여래가, 관계 있는 것인지, 도저히 대답 따위는 할 수 없었다.



そのうち、この家の本當の、かみさんが、山桃のジュースを持って來てくれた。眞夏の暑い日であったので、この方が、どれだけ氣分的に、安らいだか分からなかった。この時ほど、一人になってから、山路を步きながら、お腹を抱えるほど、笑ったことはなかった。笑いは健康に良いと聞くが、何だか、お腹がすいたような、氣がしたことを覺えている。

그러고 있는 사이에, 이 집의 정말, 하느님이, 산도(山桃)의 즙(juice)을 가지고 와 주셨다.  한여름의 무더운 날이었기 때문에, 이 분이, 얼마나 기분적으로, 편안한지 알 수 없었다. 이 때만큼, 홀로 되어서, 산길을 걸으면서, 배를 움켜 쥐고, 웃었던 적은 없었다. 웃음은 건강에 좋다고 듣지만, 어쩐지, 배가 고픈 듯한, 기분이 들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また、あまりにも、この世に非ざることを、追い求めておられた方が、ある日のこと、突然訪れて來られた。

또한, 너무나도, 이 세상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계신 분이, 어느 날이 일로, 돌연 찾아 오셨다.



「私も、いよいよ靈道を開くことが出來ました。私はパオロです。これからは、多くの人人に法を說き、救いの手をさし延べるよう、あの世からの示唆(しさ)ございました。このように、當時のイスラエル語で、話が出來るようになりました」

「저도, 확실히 영도(靈道)을 열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바오로(Paulos)입니다.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법(法)을 설명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려고, 저 세상에서 시사(示唆)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당시의 이스라엘 말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사(示唆) ⓐ미리 암시하여 넌지시 알려 줌. 



「何だか知らないが、あなたは、パオロなどとは違いますよ。止めておきなさいよ。もっと眞面(まとも)なことをやりなさいよ」

「뭔지 모르지만, 당신은, 바오로(Paulos)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다르군요. 그만 두시지요. 좀 더 성실(眞面)한 일을 하시지요」


★바오로(Paulos)는 "그리스어"이며, 바울〓"(Paul)" 은 영어입니다. 




「ああ、そうでした。サオロでした。パオロと言うのは、間違って、傳えられているのです」

「아아, 그렇습니다.  사울(Saul)이었습니다.  바오로(Paulos, Paul)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Saul) 은 두 분이 있는데, 한 분은,

"사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며, "[구약성서] 사무엘 상 9"에 나오는 분이며, 또 한 분은, "사도 Paul의 히브리 이름" 이며, "[신약성서] 사도 행전 9:1-30, 22:3." 나오고 있습니다.




「貴男は、私にパオロであることを、證明してもらいたかったのでしょうが、私はこんなことは知らないが、違うと思いますよ」

「귀하(貴男)는, 저에게 바오로(바울)인 것을, 증명해 주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이런 것은 모르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これ以來この方は、私を訪ねては來なくなった。風の便りによると、今は精神病院に、入院されているとのことである。

이 일이 있은 후로 이 분은, 저를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풍설에 의하면, 지금은 정신병원(精神病院)에, 입원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この世には、我は釋迦なりとか、我はイエスなりと、名乘る方方が多いようである。一體どうなっているのか、そんなことには、付き合ってはおられない。

이 세상에는, 나는 석가(釋迦)이니라 라고 하든가, 나는 예수(Jesus)니라 라고, 자칭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지, 그런 것에는, 교제하고 있을 수 없다. 



終いには、「われこそは、エルーランティー(L-Lanty)なり」と稱し、何をされるのか、信者を集める、また、結構信者が集まるのだから、恐れ入る。

끝내는 「나야말로, 엘란티(El lanty)이니라」라고 칭하며, 무엇을 하시는지, 신자(信者)을 모으며, 또한, 그런 대로 신자(信者)가 모이는 것이니까, 어처구니 없다.



なかには、信仰は戰いとるものであると、阿修羅のようなことを、おっしゃる方まで出る始末である。

그 중에는, 신앙은 싸워서(戰い= 투쟁)해서 얻는 것이라고, 아수라(阿修羅)와 같은 행동을, 말씀하시는 분까지 나오는 전말(始末)이다. 



「我を信ぜよ、我を信せよ」一體我の何を信じるのか、まるで小學校の學藝會よろしく、裸の王樣のような格好をする敎祖、それに集まる信者、現代はそんな時代なのであろうか。とにかく、自分の心の弱さから何らかの欲望から、信者になることは、非常に危險なのである。ましてや、譯も分からずに信者になるとしたら、何をか言わんやである。

「나를 믿어라, 나를 믿어라」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지, 마치 초등학교의 학예회(學藝會)처럼,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모습(格好)을 하는 교조(敎祖), 그것에 모이는 신자(信者), 현대는 그런 시대인 것일까? 어쨌든, 자신의 마음의 약함에서 어떠한 욕망(欲望)에서, 신자(信者)가 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危險)한 것이다. 하물며, 영문도 모르고 신자(信者)가 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何故、信仰をする人人は、この世に居ながら、この世のことも良く知らずして、あの世のことを知りたがるのか、不思議でたまらない。この世を去ったら、あの世は、誰でも迎え入れてくれるのに。

왜,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것도 잘 모르면서, 저 세상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지, 몹시 불가사의하다(매우 이상하다). 이 세상을 떠나면, 저 세상은, 누구라도 맞아 주는 것인데 말이다.






心を迷わす他力

(마음을 현혹하는 타력)



神佛とは、尊び敬うものにして、賴るものではない。

신불(神佛)이란,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이며,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文明の發展した現代の世にも、神がかりになったり、佛が乘り移ったり、その佛が、日本語しか喋れなかったり、種種雜多(しゅじゅざった)な天使の名を使って、靈が降りて來たり豫言をしたりで、この世は實に忙しいものである。

문명이 발전(發展)한 현대의 세상에도, 신(神)을 빌러 쓰거나, 부처(佛)가 들렸거나, 그 부처(佛)가, 일본어밖에 지껄여 대지 못하거나, 여러 가지 잡다한 천사(天使)의 이름을 쓰며, 혼령(靈)이 내려 왔다거나 예언을 하거나 하며, 이 세상을 참으로 바쁜 것이다. 



世の中には、頭腦のよい人がいて、神佛の名を使って、もっともらしく、一般の企業と何ら變わりのない組織を造り、集まった人人の心を迷わせ、多大なる財を、淨財として吸いあげている。神佛は、金や物の要求などはしない。神神は、人間の意識には、絶對にコンタクトは出來ない。如來·菩薩·天使にしても、それだけの意識をもった人間は、そうはいないものである。

이 세상(世の中)에는, 두뇌(頭腦)가 좋은 사람이 있고, 신불(神佛)의 이름을 쓰며, 그럴 듯 하게, 일반 기업과 조금도 다름 없는 조직을 만들어,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며, 막대한 재산(財)을, 기부금(淨財)이란 명목으로 빨아먹고 있다. 신불(神佛)은, 돈(金)이나 물건(物)의 요구(要)하는 따위는 하지 않는다. 신불(神佛)은, 인간의 의식(意識)에는, 절대로 접촉은 하지 않는다. 여래(如來)·보살(菩薩)·천사(天使)라고 해도, 그만큼의 의식(意識)을 가진 인간은, 그렇게는 하지 않는 것이다. 



しかし巷には、神や佛を名乘る人、そのなかには、同じ名の神や佛が出現し、その數も何人(なにびと)もいるのだから、いやはやあきれるばかりである。

하지만 항간에는, 신(神)이나 부처(佛)을 칭하는 사람, 그 중에는, 같은 이름의 신(神)이나 부처(佛)가 출현해서, 그 숫자도 어떤 사람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참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もはやそれらは、神でも佛でもない、惡靈の仕業(しわざ)そのものであ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이미 그들은, 신(神)도 부처(佛)도 아닌, 악령(惡靈)의 소행(仕業) 바로 그것인 것을, 알아야 한다. 



人間は、苦しみ腦み迷いが起きた時は、その原因が、いかに自分にあることと分かっていても、神佛が現われ、救いの手を差し延べてくれるものであるという、他力本願的·身勝手なことを考えるものである。

인간은, 괴롭고 고민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생겼을 때는, 그 원인이, 아무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불(神佛)이 나타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이라고 하는, 타력본원적(他力本願的=남에게 의지하는)·제멋대로인 행동(염치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またそのように、自分に都合のよいことを考え、そのように思い込んでしまう人が、非常に多いのである。

또한 그렇게, 자신에게 형편(都合)이 좋은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믿어 버리고 마는 인간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これは本來、大きな間違いである。

이것은 본래, 큰 잘못이다.



神とは、宇宙の中に存在している、動物·植物·鑛物すべてのものを、生かし續けている、意識そのものをいうのである。

신(神)이란, 우주 속에 존재하고 있는, 동물(動物)·식물(植物)·광물(鑛物) 모든 것을, 계속 살리고 있는, 의식(意識) 그 자체인 것이다.



したがって、生かされている、しかも極微な人間の意識になど、乘り移いったり、お告げをするなど、ナンセンスであり、そんなことがあると思うこと事態、おかしなことなのである。それらは、すべて惡靈に支配され、思い上がった狀態の、人の姿そのものである。

따라서, 소생되고 있는, 게다가 극미(極微)한 인간의 의식(意識) 등에, 옮겨 타거나(들리거나), 계시를 하는 따위는, 난센스(터무니없는 것)이며, 그런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태(事態)는, 이상한 일인 것이다. 그들은, 전부 악령(惡靈)에게 지배(支配)당해서, 우쭐해져 있는 상태(狀態)의, 사람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神は、人間を萬物の靈長として、自由と創造と反省の三つを與え、自らの力で、魂として、永遠に生き續け、この宇宙の大調和をはかるという、大使命を授けられたのである。しかも、その目的·使命を達成するために必要なものは、生命協同體として、大自然の中に、萬生萬物共に生かされたのである。신(神)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 자유(自由)와 창조(創造)와 반성(反省)의 세 가지를 주고, 자신의 힘으로, 영혼(魂)으로서, 영원히 계속 살아가는, 이 우주의 큰 조화(調和)을 도모한다고 하는, 큰 사명(使命)을 수여하신 것이다. 게다가, 그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명 협동체로서, 대자연(大自然) 속에, 만생만물이 다같이 살려 두신 것이다.



萬生萬物すべてのものは、どんなものでも、その生きる目的·使命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만생만물 모든 것은, 어떤 것이라 해도, 그 살아가는 목적(目的)·사명(使命)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こうした中で人間は、自由と創造と反省とがあるため、あの世、この世の轉生を繰り返して來たなかで、自我が芽生え、欲を持つようになり、思いもよらなかった業を造り出し、その業が、果たして行かねばならない、目的·使命の、大きな障害となり、いつしか、生かされていることさえ、忘却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이러한 가운데에서 인간은, 자유(自由)와 창조(創造)와 반성(反省)이 있기 때문에, 저 세상, 이 세상의 전생(轉生=환생)을 되풀이 해 온 중에서, 자아(自我)가 싹트고, 욕심(欲)을 갖게 되어, 염두도 못 냈던 업(業)을 만들어 내어, 그 업(業)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목적(目的)·사명(使命)의, 큰 장해(障害)가 되어, 어느새, 살려 두고 있는 것조차도, 망각(忘却)하게 되었던 것이다.



そのため、その業という大きな歪みの修正が、立ちはだか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그로 인해, 그 업(業)이라고 하는 큰 비뚤어짐의 수정(修正)이, 버티고 막아서게 된 것이다.



この理をよく知り、日日の生活の中で、この業の修正を、自ら實踐をする者が、多ければ多いほど、この世は光明に滿たされてくるものである。

이 이치(理)을 잘 알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이 업(業)의 수정(修正)을, 스스로 실천(實踐)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세상은 광명(光明)으로 차츰 가득 차기 시작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に、自ら實踐する自力のものが集り、互いにそれぞれの、智慧を出し、互いの發展のため、協力しあう、これが本當の意味の他力の姿なのである。

이와 같이, 몸소 실천(實踐)하는 자력(自力)의 사람(もの)이 모여, 서로 각자의, 지혜(智慧)를 내어, 서로의 발전(發展)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이것이 참된 의미(意味)의 타력(他力)의 모습인 것이다.



巷で言われる他力とは、一體どんなものなのであろう。

항간에서 말하는 타력(他力)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인 것일까?



自己本位的な欲望から生まれた苦しみ、惱み、迷ったその心の狀態を、何とか解消しようと、こうした事柄の原因を、すべて他のせい、他人のせいにしてしまう。果ては、神·佛に、その解決方法を賴り、終いには、易や占いに賴ろうとする。近頃の易や占いでも、先祖の崇りとばかり、先祖供養を勸めるようである。このように言っておけば、言われた方では、さっぱり譯が分からないままに、供養をするとなる。これらをすべて、他力本願という。こんな都合のよいことを、考えるものが非常に多い。ここ迄くると、他人のことをなど考える餘裕などなくなり、自分さえよければよいとなる。終いには、自分が誰だか、分からなくなってしまうのでは、あるまいかと思うものである。

자기본위적(自己本位的)인 욕망에서 태어난 괴로움, 고민, 길을 잃고 헤매는 그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든 해소(解消)하려고, 이러한 사항(事柄)의 원인을, 모두 남의 탓, 타인의 탓으로 해 버린다. 끝내는, 신(神)·부처(佛)에게, 그 해결방법을 의지하며, 끝내는, 역술(易)이나 점쟁이(占い)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요즘의 역술(易)이나 점쟁이(占い)라고 해도, 조상 숭배로만, 선조공양(先祖供養)을 권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말해 두면, 말을 들은 쪽에서는, 전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공양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전부, 타력본원(他力本願)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형편(都合)이 좋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여기까지 오면, 타인의 일 따위는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어지고, 자기만 좋으면 괜찮다고 하게 된다. 끝내는, 자신이 누구인가, 알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본위 [自己本位] ① 자기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




このような人は、賴った神や佛が、思うようにならないと、賴った神や佛の批判をするものまで、出て來るのだから、恐ろしいものである。

이와 같은 사람은, 의지한 신(神)이나 부처(佛)가, 생각처럼 되지 않으면, 의지한 신(神)이나 부처(佛)을 비판하는 사람까지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人間は他力的に、神佛を信仰すればするほど、姿なきものに、むしばまれてしまうものだ。これらも實は、自らの欲望が、原因であることを、省みる必要があるのではあるまいか。己のピンチを救ってくれるものは、肉體の五官を通した中には、絶對にない。それは己の心以外にない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인간은 타력적(他力的)으로, 신불(神佛)을 신앙하면 할수록, 형체가 없는 것에, 병이나 악습 등이 몸이나 마음을 상하게 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들은 실은, 자신의 욕망이, 원인인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핀치(pinch=위기)를 도와 주는 것은, 육체의 오관(五官)을 통한 중에는, 절대로 없다. 그것은 자기의 마음 이외(以外)에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佛の敎えに近付こう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가자)(부처님의 가르침과 친해지자)




佛の敎えを、むずかしいとする人が、その昔から多い。そのために、專從者ができ、佛の敎えは、そのもの達のものとなって、現在になっている。

부처님(佛)의 가르침을, 어럽다고 하는 사람이, 그 옛날부터 많다. 그 때문에, 전종자(專從者=담당하는 사람)가 생겨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사람들의 것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この邊から、世の中がおかしくなっている。己の眞我なる心に問うて見ると、正しい答えが返ってくる。

이 쯤에서, 이 세상(世の中)이 이상해지고 있다. 자기의 진아(眞我:참된 나=자기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진짜 자기 자신)인 마음에 물어 보면, 바른 답이 돌아 온다. 



佛の敎えは、決してむずかしいことはない、當たり前のことなのである。人間が當たり前の處から、遠く遠く離れてしまった處で、聞くために、むずかしく感じるのである。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인간이 당연한 곳에서, 훨씬 멀리 떨어져 버린 곳에서, 듣기 때문에,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人間が當たり前と思ったり、他に救いを求めている處は、トランプ(trump)のジョーカー(joker)のような姿をした惡魔が、絶えず笛を吹き、多くの人間の心を踊らせ、深い深い渕(淵)に誘い込もうとしている處である。

인간이 예사롭게 생각하거나, 달리 도움을 청하고 있는 곳은, 트럼프(trump)의 조커(joker)와 같은 모습을 한 악마(惡魔)가, 끊임없이 피리를 불며, 많은 인간의 마음을 놀아나게 하며, 깊고 깊은 구렁(渕=淵)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는 곳이다.



それは恰かも、一秒という時が猛スピード(speed)で過ぎ去って行く、過ぎ去ったすべてが、殘像になっているにも拘わらず、その殘像とも思わず、その殘像に欲望をもち、執着を造り、惱み、苦しみの日日を送っている。これまた、當たり前と思い込んでいる。 

그것은 마치, 1초라고 하는 시간이 격렬한 속도로 ) 지나가는, 지나쳐버린 모든 것이, 잔상(殘像)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잔상(殘像)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 잔상(殘像)에 욕망을 가지고, 집착을 만들어, 고민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또한, 당연하게 믿어 버리고 있다. 



しかし、このようなことは、すべて他人事ではなく、己自身の心の內にあることで、天國も地獄も、各各の心が造り出すものであり、これが少しでも分かったとしたら、その分だけ、佛の說かれた法を理解し、欲望や執着から遠離できるものと思うものである。

하지만, 이러한 것은, 전부 남의 일이 아니며,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천국(天國)도 지옥(地獄)도, 각자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며, 이것을 조금이라도 알았다고 한다면, 그 몫만큼, 부처님(佛)의 설명하신 법(法)을 이해하고, 욕망이나 집착어서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見たり聞いたり、學問だけでは、佛の敎えは、理解出來ないものだ。人間としての、日日の生活行爲が大切なのである。

보거나 듣거나, 학문만으로는,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나날의 생활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これはある佛敎學者と言われる方の、家庭で起きたことである。佛の敎えを、若者に敎育する立場の方が、これは一體どうしたことかと、判斷に苦しむようなことである。

이것은 어느 종교학자(佛敎學者)라고 하는 분이,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부처님(佛)의 가르침을, 젊은이에게 교육하는 입장에 있는 분이, 이것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지, 판단하는 데 애 먹은 일이다. 



「お前は、頭の腦を入れ替えてもらえばよいのだ」

「너는, 머리의 뇌를 갈아 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棍棒(こんぼう)を眞っ向から、力一杯振り下ろして來た。咄嗟(とっさ)に、側にあった、瀨戶物の大皿で、頭を庇(おお)った。

곤봉(棍棒)을 정면에서, 있는 힘껏 휘두르며 내려치기 시작했다. 돌차간에, 옆에 있던, 도자기(瀨戶物)로 만든 큰 접시(大皿)로, 머리를 감쌌다. 



★돌차간(咄嗟間) 몹시 짧은 동안★



ガチャン。捧はすごい勢いで、その大皿を割っただけで、事なきを得た。しかし、それで終わったのではなかった。今度は、メンソレータムの甁が飛んで來た。それが、右足の膝に命中した。

쨍그랑. 곤봉(捧)은 무서운 기세로, 그 큰 접시가 깨질뿐으로, 일이 커지지 않고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맨솔로담(Mentholatum) 병이 날아왔다. 그것이, 오른쪽 무릎에 명중했다.



「痛い!!」

「아파!!」



暫くは、立つことが出來なかった。これで終わりかと思ったら、今度はクリームの甁が飛んで來たが、これは事なきを得た。

잠깐 동안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생각하자, 이번에는 크림(cream) 병(甁)이 날아 왔지만, 이것은 일이 커지지 않고 무사히 끝났다.



「一體私は、どのようにしたらよいのでしょうか」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と言われるのは、この家の奧さんである。この方も實は、敎育者なのである。一體世の中はどうなっているのであろう。呆(あき)れるというより、背筋の寒くなるのを覺えるものである。これが、しょっちゅうだと言うことで、ここ迄來ると正氣の沙汰ではな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 집안의 부인이다. 이 분도 사실은, 교육자(敎育者)인 것이다.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기막히다고 하기 보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노상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까지 되면 제정신으로 저지른 짓은 아니다(미친 짓이다). 



家族は、夫婦と一人娘の三人暮しで、普通であれば、調和のある家庭であるべきなのに、四年ばかり前に、娘は、亂暴をはたらく父や、兩親の共稼(ともかせ)ぎ(맞벌이)という環境を批判し、書きおきを殘し、ガス自殺を遂げ、二十三歲の人生に終止符を打たれたのであった。どれだけ惱んだものか、哀れである。

가족은, 부부와 한 명의 딸 이렇게 세 사람이 생활하며, 보통이라면, 조화(調和)로운 가정이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4년 정도 전에, 딸은, 난폭한 짓을 하는 아버지랑, 양친(兩親)의 맞벌이라고 하는 환경을 비판하고, 유서를 남기고, 가스자살을 해서 죽었고, 23세의 인생에 종지부(終止符)을 찍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괴로웠던 것인지, 불쌍하다. 



このように、娘が犧牲となったにも拘わらず、この夫婦は、反省もないのであろう、以前と何の變化もない生活が、續いてい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딸이 희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는, 반성도 않는 것인지, 이전과 아무런 변화도 없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困り果てた奧さんが、訪ねて來られた。

곤경에 빠진 부인이, 찾아 오셨다.



「今後どうして行ったらよいのでしょうか」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요?」



と、再度相談に來られた。

라고, 두 번쩨 상담을 하려 오셨다.



埃拶(あいさつ)をしながら、ふと、この奧さんを見ると、亡くなられた娘さんであろう、側におられるのである。

인사를 하면서, 문득, 이 부인을 보니, 죽은 따님인지, 부인 곁에 계시는 것이다.



「奧さん、近頃お宅で變わったことはありませんか」

「부인, 요즘 집안에 변한 것은 없습니까?」



と、聞いてみた。

라고, 물어 보았다.



「實は、最近、二階の娘の部屋で、誰もいないのに、大きな音がするので行ってみると誰もいない。そのうちに、佛壇の前に誰か、人の姿が見えることが、ちょいちょいある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が、どうも娘のような氣がします」

「사실은, 최근에, 2층의 딸의 방에서, 아무도 없는데도, 큰 소리가 나서 가 보아도 아무도 없고, 게다가, 불단(佛壇) 앞에 누군가,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이따금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데, 아마도 딸 같은 기분이 듭니다」



このように、普通では考えらないようなことが、起きているのである。

이와 같이, 보통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このご夫婦、己の非を反省することもなく、相變わらずの生活を續け、相談に來られて約六個月ばかりしたある日、旦那は、原因不明で、亡くなられたのである。

이 부부(ご夫婦)는, 자신의 잘못(己の非)을 반성하는 일도 없이, 변함없는 생활을 계속하며, 상담하려 오고나서 약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남편(旦那)은, 원인불명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それ以來、佛壇の前の人の姿もなくなり、二階の物音(ものおと)もしなくなったのである。

그 이후, 불단(佛壇) 앞의 사람의 모습도 없어지고, 2층에서 무엇인가 물체가 내는 소리도 없어졌던 것이다.



娘が、父親を連れて行ったのであろう。

딸이, 부친(父親)을 데려 갔던 것이다.



このように、共稼ぎも結構、物質的豊かさも結構、社會的にその道の地位や名譽も結構、しかし、家庭のあたたかさを忘れ、心を失ってしまったのでは、訪れるものは、不調そのものだけとなるのである。

이와 같이, 맞벌이도 나무랄 데 없고, 물질적으로 풍요함도 나무랄 데 없고, 사회적으로도 그 길(道)의 지위나 명예도 나무랄 데 없고, 그렇지만, 가정의 따뜻함을 잊고, 마음을 잃어 버렸던 것은, 찾아온 것은, 상태가 나쁜 바로 그것뿐인 것이다.



世の中には、社會的表面的に、地位や名譽があっても、この家庭のように、佛の敎えう受け入れようにも、受け入れられない、複雜怪異なる家庭もある。

이 세상(世の中)에는, 사회적으로 표면적으로, 지위나 명예가 있어도, 이 가정처럼, 부처님(佛)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듯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복잡 괴이한 가정도 있다.



こんなことだから、佛像を佛として拝んだり、お經は讀誦したり、寫經したりで、心など何のことか分ららない知識人が增え、この世は混亂するばかりとなるのではあるまいか。

이런 것이기 때문에, 불상(佛像)을 부처로 해서 합장 배례하거나, 경문(お經)은 독송(讀誦)하거나, 사경(寫經)하거나 해도, 마음 따위는 무엇인지 모르는 지식인(知識人)이 늘어나며, 이 세상은 혼잡(混亂)할 뿐인 것은 아닐까?



あまりにも、佛の敎えを、日日の生活の中で自ら造り出した、苦しみや惱みの、淸凉劑にしているむきが、多過ぎるように思うものである。

너무나도, 부처님(佛)의 가르침을, 나날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괴로움이나 고민의, 청량제(淸凉劑)로 삼고 있는 경향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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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章 神理は日日の生活の中に 

[제5장 신리는 매일의 생활 속에]



プラットホーム [ platform ] 

(플랫홈(승강장(乘降場)))



「あと、いつ會えるの」

「寂しいだろうが、一個月もしたら、また會えるよ」

「나중에, 언제 만날 수 있어?」

「적적하겠지만, 한 달 뒤면, 다시 만날 수 있어」



「それまで、必ず電話頂載ね」

「うん、忘れずにするよ」

「그때까지, 꼭 전화 해야 해요」

「응, 잊지않고 전화할께」



「あなたが側にいないと、氣が拔けたようになるのよ」

「당신이 곁에 없으면, 맥이 빠진 것처럼 되니까요」



聞くわけではなったが、聞こえてしまった。發車のベルが、二人を引き離すように、鳴り響いている。しっかりと手を握りあっている。その手も、やがて放さねばならなかった。靜かに列車は、ホームを後に、彼と彼女の二人の目から、遠ざかって行く。彼女の頰(ほお)に、一筋の淚が流れ落ちだ。二十七・八歲と思われる、男女の姿であった。

들을 뜻은 없었지만, 소리가 들려와서 듣고 말았다. 발차 벨이,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듯이, 울려 퍼지고 있다. 손을 꽉 잡고 있다. 그 손도, 이윽고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용히 열차는, 승강장을 뒤로 하고, 그와 그녀의 두 사람의 눈에서, 멀어져 간다. 그녀의 뺨으로, 한 줄기 눈물이 흘려내렸다. 스물 일곱~여덟 살로 생각되는, 남녀의 모습이었다. 



また、

「危ないわよ、こちらへいらっしゃい」

또한, 

「위험해요, 이리로 오세요」



少少ヒステリックな聲である。見ると、まだ娘さんと見違えるような、若いお母さんである。

조금 히스테릭한 목소리다(신경질적인 목소리이다). 보니까, 아직 처녀(娘さん)라고 착각(오인)할 정도로, 젊은 엄마(어머니)다. 



「今頃お父さんは、もう歸ってくるだろうと、待っているだろうね」

「지금쯤 아빠는, 벌써 집에 왔을 것이고, 기다리고 있겠네」


このお母さん、心の中では、本當は子供より、早り夫に會いたいと、思いはすでに東京のようだ。

이 엄마는, 마음속으로는, 사실은 자식(子供)보다도, 빨리 남편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 마음은 이미 도쿄(東京)인 모양이다.



急に爆音がした。見上げると、ジェット機が上空を、空港に向かって飛んで行った。 

갑자기 폭음(爆音)이 울렸다. 위로 쳐다보니, 제트기가 상공을, 공항을 향해서 날아 갔다. 



車窓ごしに、孫との別れを惜しんでいる老夫婦の姿、次の列車を待ち一列に竝(なら)ぶ人人、自動販賣機で、ジュースやビールを買う人、ガチャン・ゴトンと、大きな音がする。次の列車の車掌が、白い手袋に鞄(がばん)をもって、ホームに上がって來た。擴聲器が、

차창 너머로, 손자와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일렬(한 줄)로 서 있는 사람들, 자동판매기에서, 쥬스나 맥주를 사는 사람, 쨍그랑 쿵덕하고, 큰 소리가 난다. 다음 열차의 차장이, 하얀 장갑에 가방을 들고, 승강장(form)으로 올라 왔다. 확성기가,  



「次の到着列車は、十二時四十分發ひかり八號東京行きでございます」

「다음 도착 열차는, 12시 40분 발 히카리(빛) 8호 도쿄행(東京行)입니다」



入って來る列車は、すべて滿員である。一體何から、こんなに人が出て來て、何處へ行くのであろうと思う。

들어오는 열차는, 이미 만원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사람이 나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고 생각한다. 



側にビジネスマンであろう、角張った鞄(がばん)、暑いのに背廣姿、ご苦勞さまである。この方の心が傳わってくる。

곁(옆)에 비지니스맨(businessman)인 듯한, 네모진 가방, 더운데 신사복 모습, 고생하고 계시다. 이 분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歸ったら、レポートをどのように書いて提出しょうかな。本當に、このレポートの提出がなければ、よい會社なのにな」

「돌아가면, 리포트(Report)를 어떻게 써서 제출할까나. 정말로, 이 리포트의 제출이 없으면, 좋은 회사인데 말이야」



あれあれ、この人は、レポートが苦手(にがて窒塞)のようだ。顔を見たら四十歲ぐらい、身體の大きな男である。

에계계, 이 사람은, 리포트가 서툰 모양이네. 얼굴 보니 40세 정도, 신체는 큰 남자이다. 



このように、ビジネスマン、響(さと)歸りの子供連れの若いお母さん、バカンスの若いカップル(couple)、中年同志の女性のグループ、老人のカップル、昔の戰友のカップル、それは多種多樣である、よく見ていると、樂しくさえなる。

이와 같이, 비지니스맨, 친정 나들이 길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엄마, 바캉스(Vacances)을 떠나는 젊은 남녀 한 쌍, 중년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인 여성의 그룹, 노인의 그룹, 옛날의 전우(戰友)의 그룹, 그것은 다종다양(多種多樣)하며, 자세히 보고 있으면, 즐거워지게 된다.



※중년[中年] ①청년과 노년 사이의 연령. 보통 40세 전후를 말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これは、新大阪驛の二十六番線ホームで、見聞きするともなく、見聞きした情景である。

이것은,신오오사카 정거장(新大阪驛)의 26번선 승강장(Form)이며, 보고 듣지도 않고, 보고 들은 정경(情景)이다. 



こうした日常生活の中にこそ、實際の神理が存在しているし、その神理の實踐の場が、日日の環境・境遇の中、しかも、一秒一秒の實踐行爲の中にある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

이러한 일상생활 속에서야말로, 실제의 신리(神理)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그 신리(神理)의 실천의 장(場)이, 매일의 환경과 경우 속에, 게다가, 1초 1초의 실천 행위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인 것이다.



人間は、實に忙しいものである。人生の終わりを急ぐせいかも知れない、その理も知らずに。

인간은, 실로 바쁜 것이다.  인생의 최후(終わり)를 서두르는 탓인지도 모르고, 그 이치(理:이유=까닭)도 알지 못하고. 



日日の生活こそ、大切な場であることを、痛切に思うものである。

매일의 생활이야말로, 중요(소중)한 장소(場)인 것임을, 통절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東海道とうかいどう新幹線しんかんせんは東京とうきょう·大阪間おおさかかんを3時間10分で結びます 

도우카이도우(東海道) 신칸센(新幹線)은, 도쿄(東京)·오오사카(大阪)간을 세 시간 10분에 연결(주행)합니다 


★탓 せい(쎄이)라고 읽습니다.

① 悪いことの起こった原因·理由 ② ため ③ せい 

"나쁜 일이 일어난 원인과 이유, 원인과 이유, 탓 "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捨てられる子ち 

(버려지는 아이들=버림받은 아이들)




小さな手、無心で輝きのある美しい眼、赤ちゃんらしい身體の動き、見ているだけで、「この子達が」と、淚がこみあげてしまう。何故こんなに可愛い赤ちゃんを、捨てたり、手放したりするのだろう。

작은 손, 무심하게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눈, 갓난아기다운 신체의 움직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아이들이」라고, 눈물이 북받쳐 버린다. 왜 이런 사랑스러운 갓난아기를, 버리거나, 방치하거나 하는 것일까?



母親が精神病。母親が病身の爲に、育てられない。母親が産後の肥立(ひだち)が惡く、あの世に歸ってしまった爲に、父親は仕事が出來ない。兩親の生活苦。實に氣の毒な子供達である。しかしこの邊まだ、良い方である。

모친이 정신병. 모친이 병든 몸이기 때문에, 키울 수 없다. 모친이 산후 회복이 좋지 않아서, 저 세상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부친은 일을 할 수 없다. 양친이 생활고(生活苦). 참으로 불쌍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직, 좋은 편이다. 



これが、子供が邪魔だからという理由で、簡單に捨てる親、可哀相を通りすぎて、言葉にならない。

이것이, 자식(子供)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유로, 간단히 버리는 부모(親), 불쌍하기 짝이 없어서 그냥 외면하고 지나쳐 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의역했습니다. 



ある夏の出來ごとである。蚊にくわれ、方方が腫れあがり、臍(へそ)の緖(お)さついたままで、下着(したぎ)に包まれて竹藪(たけやぶ대밭대나무숲)に捨てられ、精一杯の大聲で泣き叫んでいた、丁度、側を通った人がいて拾われ、施設にとどけられた赤ちゃん。 

어느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모기에 물리고, 몸 구석 구석이 부어있고, 탯줄을 붙인 채로, 속옷에 싸여 대밭에 버려져, 힘껏 큰 소리로 울부 짖고 있던, 마침,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서 주워서, (관청 등에) 신고해서 시설로 보내어 진 갓난 아기.




また、ある日、赤ちゃんの施設を、訪ねたときのことである。施設の先生が、こんな話をしておれれた。

또, 어느 날, 갓난 아기의 시설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시설의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고 계셨다.



「先日のこと、父親・母親共に、二十五・六歲の方が、可愛い男の子を育ててほしいと、訪ねて來られた。よく聞いてみると、この子がいたのでは邪魔になり、仕事が出來ないので、預かって育ててもらえないかと言うので、驚きました。この男女兩方とも、大學を出たと言っておられたが、こうなると人間、學問など必要ありませんね。常識も何もありません。それから、人間の尊嚴性を話してやりました。勿論、赤ちゃんは預かるわけには行きませんので、赤ちゃんを連れて歸ってもらいました」

「지난 번에 일로, 양친(兩親)・부모(母親)가 함께, 25~6세의 분이, 사랑스러운 남자 아이를 기워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찾아 왔었습니다. 자세히 들어 보니, 이 아이가 있어서는 방해가 되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맡아서 길러주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이 남녀 양쪽 모두, 대학을 나왔다고 말하고 계셨지만, 이렇게 되면 인간, 학문 따위는 필요가 없겠지요. 상식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尊嚴性)을 말해 주었습니다. 물론, 갓난 아기는 맡을 수 없습니다고 말씀드렸더니, 갓난 아기를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一つ一つ、驚くばかりである。

하나하나, 깜짝 놀랄만하다.



また、こんな子もいた。小學校三年の男の子であった。

또한, 이런 아이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남자 아이었다.



「おじちゃん、僕、寂しいんだよ」

「아저씨, 내가, 외롭거든요」



「どうした」

「왜?」



「うん、僕の話、聞いてくれるか」

「응, 내 말, 들어 줄래?」



「いいよ」

「좋아」



「僕六歲の時、淺草の近くの橋のたもとで、捨てられたんだよ」

「내가 6살 때, 아사쿠사(淺草) 근처의 다리 밑에, 버려졌 거든요」



よく聞いてみると、どうも廐橋のことで、季節は秋口のようである。

잘 들어 보니, 아무래도 우마야바시(廐橋=우마야 다리)의 일로, 계절은 초가을인 듯하다. 



]★うまやばし厩橋  ①토쿄 도(東京都) 수미다 강(隅田川)의 다리 ②1929년 준공 ③우마야바시 씨(厩橋氏)가 살던 성이 있었다 ④타이토우(台東) ‧수미다(墨田) 양 구(區)를 연락하는 다리로 코마가타 다리(駒形橋)의 하류에 있다⑤군마 현(群馬県) 마에바시 시(前橋市)의 옛 명칭 




「とうちゃんと一緖に仲見世を通り、橋のたもと迄來たときに、とうちゃんが、お腹すいたろう、ちょっと待ってろよ、パンを買って來るからな」

「아빠(とうちゃん)랑 같이 상점가(仲見世)를 지나서, 다리 옆 (袂)까지 왔을 때에, 아빠(とうちゃん)가, 배가 고프다고, 잠깐 기다리라고, 빵을 사 온다고 해서」


★아사쿠사 공원(淺草公園)

① 浅草에 있었던 공원, 관음당, 仲見世(なかみせ)=((신사[神社]나 절의 경내에 있는 상점가)), 대중적인 오락거리 등을 포함했다, 1951년 폐지됨 



父親は二度とこの子の前に、その姿を見せなかった。

부친은 두 번 다시 이 아이 앞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それから、いくら待っても、とうちゃんは戾って來なかったんだよ。僕はお腹はすくし、暗くはなって來るし、どうしたらよいか分からなくなり、ほんどに寂しかったんだよ。その夜は公園で寢て、次の朝、食べ物屋の店先で、パンを盜んだところで捕まってしまい、ここに送られて來たんだよ」

「그래서, 아무리 기대려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나는 배가 고픈데, 점점 어두워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어, 정말 외로웠거든요. 그 날 밤에는 아사쿠사 공원(公園)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음심점 가게 앞에서, 빵을 훔쳤는 데 잡히고 말아서, 여기로 보내진 것이 거든요」



「お母さんは、どうした」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니?」



「かあちゃんは、小さい時に、とうちゃんと僕をおいて、どっかへ行っちゃったんだよ。僕は、今皆(みんな)樂しくやっているけれど、ほんとうは寂しいよ」

「엄마(かあちゃん)는, 어릴 때에, 아빠와 나를 남겨 두고, 어딘가로 가 버렸거든요. 난, 지금 모두 즐겁게 지내고 있지만, 정말 외로워요」



子供に話しても、分からないだろうが、

아이에게 말을 해 줘도, 알아 들을 수 없겠지만, 



「父ちゃんや、母ちゃんを、恨んではいけないよ。ここの先生方の言うことを、よく聞き、一所懸命勉强をして、立派な大人になるんだよ。おじちゃんは、また來るからね。元氣を來すんだよ」

「아빠랑, 엄마를, 원망해서는 안 되요. 여기에 있는 선생님께서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이에요. 아빠는, 역시 돌아올 테니까요. 기운을 내는 거에요」



きょとんとした顔、もの寂しそうな瞳、何とも言いようのない思いであった。

어리둥절한 얼굴, 왠지 쓸쓸해 보이는 눈동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생각이 들었다.

 


六歲の子供が、一人ぽっちになった瞬間、どんな氣持ちであったろうが、その時の私の心の中は、

여섯 살 아이가, 혼자밖에 없게 된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 때의 내 심정은, 

 


「大人が惡い。今の世は、子供が惡いのではない。子供を責める前に、大人が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大人が惡い」

「어른이 나쁘다. 지금의 세상은, 아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아이를 책임지기 전에, 어른이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른이 나쁘다」



この事が、心の中で、行ったり來たりしていたことが、今でも忘れられない。世相の惡いのは、大人がその原因を造っている。

이 일이, 마음속으로, 왔다가 갔다리하고 있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상(世相=사회의 형편)이 나쁜 것은, 어른이 그 원인을 만들고 있다.



いくら上品な生活をしている家庭であっても、離婚となり、子供が、あちらこちらと、片親に引き取られて行く。これなどは、生活苦で子供を捨てることより、惡いかも知れない。大人の身勝手なことである。そこには、愛情だの責任というものは、すでに見失っているのであろう。

아무리 고상한(품위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가정이라 해도, 이혼을 하고, 자식(아이)가, 여기저기로(이쪽저쪽으로), 한쪽 부모(偏親=편친 슬하)에게 맡겨져 돌보게 되어 간다. 이 따위는, 생활고로 자식을 버리는 것보다, 나쁠지도 모른다. 어른이 제멋대로인 것이다. 거기에는, 애정이라느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놓치고(잃고) 있는 것일 것이다. 



世の中というものは、結婚する人、離婚する人。子供を寶と思い大事にする人。子供を邪魔にして捨ててしまう人。捨てられた子供を拾い、我が子のように育てる人。捨て子を施設にとどける人。捨てられた子供を預かり、我が子のように育てる施設の人。その捨て子のために一生を奉げる人もいる。

지금의 세상(世の中=사회)라고 하는 것은, 결혼하는 사람, 이혼하는 사람. 자식(아이)를 보물로 생각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자식을 방해물로 여겨서 버리고 마는 사람. 버려진 아이를 주워서, 자기 자식처럼 양육하는 시설의 사람. 그 버려진 아이를 위해서 일생을 봉사하는 사람도 있다.



★すてご[ 捨て子, 기자(棄子),기아(棄児) ]  뜻.

①부모 등이 유아를 남몰래 버리는 것②또한 그 버려진 아이




この世は、このように、それぞれの環境や境遇の中で、何らかの相互關係をもって、生き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しかし、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子供を捨てるような無情なことだけは、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이 세상(この世)은, 이와 같이, 각자의 환경이나 경우 속에서, 어떠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버리는 것과 같은 무정한 짓만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しかし、捨てられた子供でも、立派に育ち結婚をし子供をもうけ、幸せに暮らしている子も、勿論いるのである。

하지만, 버려진 아이라 해도, 훌륭하게 양육하여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도, 물론 있는 것이다. 



過日ある施設で、次のような手紙を、見せてもらった。

지난 번 어느 시설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나에게) 보여 주셨다.



この施設より單立った、娘さんの手紙である。娘さんは中學を卒業、ある紡織會社の女工になった。彼女は頑張りやであった。働きながら、會社の經營する高敎に入った。勿論夜學である。四年間の學業を終え、短大まで進んだ。この短大も見事卒業、その後は會社の仕事に精を出し、同じ會社の男性に見込まれて、四年前に結婚をした。今は三歲と一歲の母親になり、幸せ一杯に生きていますと言う手紙であった。彼女は手紙の最後に、

이 시설에서 홀로 선, 아가씨의 편지이다. 아가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방직회사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女工)이 되었다. 그녀는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일하면서, 회사의 경영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물론 야학(夜學)이다.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단과대학(短大)까지 진학했다. 이 단과대학도 훌륭하게(멋지게) 졸업하고, 그 후는 회사의 일에 열중하고, 같은 회사의 남성에게 신임을 받게 되어, 4년 전에 결혼을 했다. 지금은 세 살과 한 살의 (자식을 둔) 모친이 되어, 행복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고 하는 편지였다. 그녀는 편지의 말미에, 



「私は兩親が亡くなった爲、施設に入れられ、皆(みなさん)と同じ環境で育ちました。しかし、兩親のない施設の子としてのコンプレックス、そして、一人ぽっちの寂しさを乘り越えて、一所懸命生きて來ました。勿論、施設の先生方や、會社の方方、また、いろいろと折にふれては、勵まして下さった方方のお陰で、精一杯生きることが出來ました。一所懸命生きていれば、必ず幸せになれるものです。皆頑張って、お姉ちゃんのように、幸せになって頂載」 

「저는 양친이 돌아가셨기 때문에(죽었기 때문에), 시설로 보내져서, 여러분과 같은 환경에서 양육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양친이 없는 시설의 아이로서 컴플랙스, 그리고, 혼자밖에 없는(외톨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물론, 시설의 선생님분들이나, 회사의 여러분, 또한, 여러 가지로 기회 있을 때마다, 격려 해 주신 분들의 덕분으로, 있는 힘껏 살 수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으면, 반드시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누나(お姉ちゃん=언니)처럼, 여러분도 행복해 주셨으면 합니다」 



と、結んである。この手紙を讀ませていただいた時、胸から熱いものがこみあげ、眼からは淚が、ぽとりと落ちるのを、止めることが出來なかった。そして、この娘(こ)は、子供をしっかり育てあげ、良き母親になるに違いない。そんなことを、思ったものである。

라고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이 편지를 읽게 해 주셨을 때,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복받치고, 눈에서는 눈물이, 똑 떨어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아가씨는, 자식을 똑똑히 길러내어, 좋은 양친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일을, 생각했던 것이다.



願わくば、母親である以上は、どんな理由があるにせよ、子供に對しては、子供の爲になるごく當り前の、愛情と責任のある、母親であってほしいものである。

바라건대, 모친인 이상은, 어떠한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자식(아이)에 관해서는, 아이를 위해서가 되면 아주 당연히, 애정과 책임이 있는, 모친이 되어 주었으면 싶다는 것입니다. 







UFOを見る女性 

(UFO를 보는 여성)




「先生、私はUFOを見ることが、最近しばしば起こり、モールス(Morse)信號のような信號を、キャッチ(catch)します。昨日の朝も、今朝も、その信號がありました」

「선생님, 저는 UFO를 보는 일이, 최근에 자주 생겨서, 모스(Morse) 신호와 같은 신호를, 포착(catch)합니다. 어제 아침에도, 오늘 아침에도, 그 신호가 있었습니다」



六十歲近い、ご婦人であり、どこぞの奧さんであろう。見たところでは、正常な方である。

60세 가까운, 부인(婦人)이며, 어딘가의 부인인 듯 합니다. 겉보기로는, 정상인 분이다. 



「UFOの中の人と會って、話をしたことがありますか」

「UFO 안의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까?」



「まだありません」

「아직 없습니다」



「UFOが現われるのは、いつも何時頃ですか」

「UFO가 나타나는 것은, 평소 언제쯤입니까? 」



「朝の五時から、六時の間が、多いのです」

「아침 5시부터, 6시 사이가, 많습니다」



「どんな信號が入るのですか」

「어떤 신호가 들어오는 것입니까?」



「UFOに乘せて、私達の世界に、連れて行きたい。そう言った類の信號です」「UFO에 태워서, 우리들이 사는 세계로, 데려 가고 싶다. 그렇게 말했던 종류의 신호입니다」



まず、眞面目な顔で話しているのだから、聞く方も、しっかりして聞いていないど、一緖にUFOに、乘っけられてしまいそうである。

어쨌든,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쪽도, 빈틈 없이 듣지 않으면, 함께 UFO를, 타 버리고 말 것 같다. 



よく、テレビの深夜放送でやっているのも、たとえその中に、名だたる人がいたとしても、このご婦人のおっしゃることと、大差はないであろう。

곧잘, 텔레비전의 심야 방송에서 하고 있는 것도, 설령 그 중에,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이 부인의 말씀하시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このご婦人と相對していると、ご婦人の心の中を、出たり入ったり、忙しく動き廻っているものがある。

이 부인과 상대하고 있으면, 부인의 마음속을, 들락날락하며, 바쁘게 움직이며 돌고 있는 것이 있다.



ははあ、UFOは、このものの仕業以外にない。 

아하 과연, UFO는, 바로 이것의 소행 이외는 아니다. 



「奧さんは、ご主人は、いらっしゃいますか、何を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か」

「부인은, 바깥양반은, 계십니까? 뭘 하고 계십니까?」



「はい、おります」

「예, 계십니다」



「あなたが、UFOと交信を始めた時は、ご主人は、どう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か」

「당신이, UFO와 교신을 시작했을 때는, 남편 분은, 어찌하고 계십니까?」



「雨戶を開けて、外を見ています」

「덧문을 열고, 밖을 보고 있습니다」



「あとは、何もおっしゃられませんか」

「나중에는,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십니까?」



「"お前、UFOなど來ていないではないか、お前少し、おかしいのと違うか"

しかし、私には、窓の格子の間から、明るくて目がくらむような、そして巨大なUFOが、見えるのです」

「"여보, UFO 따위는 안 오지 않나, 여보 좀, 이상하지 않나? "

하지만, 저로서는, 창의 격자문 틈새로、밝아서 현기증이 나는 듯하고, 그래서 거대한 UFO가, 보입니다」



結構な話である、と共に實に幸せな女性である。結局は、

훌륭한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참으로 행복한 여성이다. 결국은,



「あのUFOは本物ですよね」

「저 UFO는 진짜군」



と言うことであった。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あなたのご主人が、おかしいと、おっしゃるのなら、おかしいのではないですか」

「당신의 남편 분이, 이상하다고, 말씀하신다면, 이상한 것이 아닙니까?」



暇人なのか、狂っているのか、一寸見ただけでは分からない。このような人が、當たり前の顔をして、街を步いているのである。

한가한 사람인지, 미쳐 있는 것인지, 겉보기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이, 당연한 얼굴을 하고서,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다. 



大都市の人口の七十%は、何らかの形の、精神障害者と言われている。

대도시의 인구의 70%는, 어떠한 모습의, 정신장해자라고 하고 있다.



世の中の文明と言うのが、發展すればするほど、その流れについて行けずに、この七十%の仲間入りをしてしまう人が增えるのでは、とあまり思い度くないことである。

이 세상의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 흐름을 따라 가지 않고, 이 70%의 대열에 끼어 버리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欲から出た信仰

(끝없는 욕심에서 나온 신앙)




知人に、五・六年前に、ある新興宗敎の信者になられた方がおられた。過日、久し振りに、この方が訪ねて來られた。知人というだけで、何の關わりのない方なので、

아는 사람(知人)에게, 5~6년 전에, 어떤 신흥종교의 신자(信者)가 되어버린 분이 계셨다. 지난 번, 오래간만에, 이 분이 찾아 오셨다. 아는 사람(知人)이라고 할 뿐이며,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珍しいこともあるものだ」

「이상한 일도 다 있군」



ふと、そんなことを思った。他人の話など、率直に聞かれる方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

문득, 그런 것을 생각했다. 타인이 말 따위는, 솔직하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一體、何の用事なのあろう」

「도대체, 무슨 용무가 있는 걸까?」



と思いながら、座を勸めた。

라고 생각하면서, 자리를 권했다.



「どうぞ、暫くでした。お元氣のようで結構ですね」

「어디,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신 듯 해서 좋습니다」



「いやあ、そんなことありません。實は今日お伺いしたのは、宗敎のことについて、少少敎えていただき度いことが、あるものですから」

「아, 그 정도는 아닙니다. 실은 오늘 찾아뵌 것은, 종교에 대해서, 조금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찾아뵌 것이므로」



「はい、どんなことでしょうか」

「네, 어떤 일이신가요?」



この方、何を聞かれるのだろうと、次の言葉を待った。

이 분이, 무엇을 물어보려고 하는 것인지, 다음 말을 기다렸다.



「今私は、五年ばかり前に、ある宗敎の信者になり、當時から、敎祖より"守護靈を持て"と言われたり、年間の敎團に納める布施を決められたりしました」「지금 저는, 5년쯤 전에, 어느 종교의 신자(信者)가 되어, 당시부터, 교조(敎祖)로부터 "수호령(守護靈)를 가져라"라고 하거나, 연간 교단에 바치는 보시(布施)를 정하라고 하거나 했습니다」



「あなたは、商賣が今より良くなり度いとか、何か目的があって、入信さ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か」

「당신은, 장사가 지금보다 좋아지고 싶다든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신앙 생활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까?」



「はい、確かにそうでした」

「네, 확실히 그랬습니다」



「それで、少しは繁盛しましたか」

「그래서, 조금은 번성했습니까?」



「それが、いくら信仰しても、よくなりません。却って社員が、ストをやったり、息子は仕事もせず、朝から酒を飮み、勝手なことばかりして困っております。これが、どうしてなのか、分かりません。最近は、いやになり、信仰を止(や)めようと思うのですが、止せさせくれません。止めたら罰が當たると、言われます。どうしたら、止められるでしょうか。また守護靈は、どのようにしたら、持てるのでしょうか。敎えて下さい 」

「그것이, 아무리 신앙을 해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직원(社員)이, 파업을 하거나, 자식은 일도 하지 않고, 아침부터 술을 마시며, 제멋로인 짓만 하거나 해서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싫어져서, 신앙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만두게 해 주지 않습니다. 그만두면 천벌(罰)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만 둘 수 있습니까? 또, 수호령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この方の話は、見當違いであり、實に身勝手なことばかりで、ここ迄來ると、常識とか節操などの言葉は、皆無といってよいくらいである。新興宗敎の信者の中には、このような方が、大勢いらっしゃ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이 분이 이야기는, 예상과 다름없이, 참으로 제멋대로인 짓만 하며, 여기까지 오면, 상식이라든가 절조(節操) 따위의 말은,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신흥종교의 신자(信者) 중에는, 이런 분이, 많은 사람이 계시는 것은 아닐까?



この方のように、信者の中には、他の信者よりご利益を得ようと、多額の上納金を納める方が、多いのではなかろうか。中には財産を、すべて上納し、家庭が分裂してしまった方もいると聞く。これらは、すべて己の欲から出たもので、他のせいにするわけには行かぬことである。

이 분처럼, 신자(信者) 중에는, 다른 신자보다 이익과 행복(ご利益)을 얻으려고, 다액의 상납금을 바치는 분이, 많은 것이 아닐까? 그 중에는 재산을, 전부 상납하고, 가정이 분열해 버린 분도 있다고 듣는다. 이들은, 전부 자기의 끝없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남 탓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このような心で信仰をする方は、罰が當たると言われ、これが足かせとなり、神佛を恐れるようになるのは、當然のように思われるものである。

이러한 마음으로 신앙을 하는 분은, 천벌(罰)을 받는다고 말을 듣고, 이것이 족쇄가 되어, 신불(神佛)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しかし人間は、神の子佛の子である。親であるべち神佛が、どうして、子である人間に對し、罰など當てるだろうか。

하지만 인간은, 신(神)의 자녀(子)이다. 부모(親)인 신불(神佛)이, 어찌, 자식(子)인 인간에 대해서, 천벌(罰) 따위를 준단 말인가?



そんなに恐がるのなら、最初から、神信心などしなければよいのにと思う。"さわらぬ神に崇りなし"である。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처음(最初)부터, 신앙심(神信心) 따위는 하지 않았으면 좋은 것인데 라고 생각한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일에 관계하지 않으면 화를 초래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この方のように、神佛に縋(すが)って商賣繁盛しようなど、考えること事態が、正常でない。人間、欲がでると、神佛と思って縋(すが)っているものが、動物靈の、蛇であっても狐であっても、手を合わせるのだから驚きである。

이 분과 같이, 신불(神佛)에게 의지하며(매달리며) 사업이 번창(商賣繁盛)할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을 하는 사태가, 정상이 아니다. 인간, 욕심(欲)이 생기면, 신불(神佛)이라고 생각하며 매달리고 있는 것이, 동물령(動物靈)의, 뱀(蛇)이거나 여우(狐)이거나, 합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놀랍다.



この邊まで來ると、こうした人人が、不思議に思えてらない。

이 지경까지 오게 되면, 이러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罰を當てるような神佛など、何故、信じたのですか。今まで上納金は、いくら納めましたか」

「천벌(罰)을 받아라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신불(神佛) 따위는, 왜, 믿었던 것입니까?  지금까지 상납금은, 얼마나 바치셨습니까?」



「年間二百五十萬です」

「연간 250만 엔입니다」



「そのようなものとは、きっぱりと緣を切りなさい。勇氣を出して拔け出すのは、あなたですよ。そんな何にもならないような、宗敎に二百五十萬も出すのなら、お店の從業員にその分でも、給料を上げてやれば、どれだけの利益を生むかわかりませんよ。お宅の從業員は、あなたが神佛だと思っているものより、どれだけ立派な神佛か知れませんよ」

「그와 같은 것은, 단호하게 인연(緣)을 끊으십시오. 용기를 내서 빠져 나오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되는, 종교에 250만 엔이나 내는 것이라면, 가게(お店)의 종업원에게 그 몫(分)이라도, 봉급(給料)을 올려 주면, 얼만큼의 이익을 낳는지 알 수 없겠지요. 댁(お宅)의 종업원은, 당신이 신불(神佛)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얼마나 훌륭한 신불(神佛)인지 모르겠지요」



「はい」

「네」



「神佛は、すべてに平等であり、慈愛・愛の塊りであることを、しっかり心に入れておきなさい。第一、自分だけよくなり度い、と言うものがあったのではありませんか」

「신불(神佛)은, 만물(すべて)에 평등하며, 자애(慈愛)와 사랑(愛)의 덩어리(塊り)인 것임을, 확실히 마음에 담아 놓으십시오. 최고로(第一), 나만 좋아지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はい」

「네」



「また、守護靈のいない人間などはおりません。世の中には、譯も分からず、言葉巧みに、人を騙す人が大勢いるものです。しかし騙すより、騙される方が、惡いと思います」

「또한, 수호령(守護靈)이 없는 인간 따위는 없습니다. 이 세상(世の中)에는,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속이는 것보다, 속는 쪽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聲はなく、ただ頷(うなず)くだけである。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이다 



佛の敎えとは、神佛の心、大自然の循環の法則、慈悲の心、愛の實踐行爲そのものなのであり、これが釋迦・イエスの敎理の原點をなすものである。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신불(神佛)의 마음, 대자연의 순환(循環)의 법칙, 자비(慈悲)의 마음, 사랑의 실천행위 그 자체인 것이며, 이것이 석가(釋迦)・예수(Jesus)의 교리(敎理)의 원점(原點)을 이루는 것이다.



しかし、こうしたことを、人間として、あまりにも、物欲の渦に券きこまれ、忘れているものや、自らの耳を塞(ふさ)ぐものが、非常に多いのである。この世は作用すれば、反作用という相對性のため、必ず結果が現われ、話に来られた知人のような方が、出てくるものであろう。

하지만, 이러한 것을,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물욕(物欲)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잊고 있는 사람이나, 자신의 귀를 막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이 세상(この世)은 작용(作用)하면, 반작용(反作用)이라고 하는 상대성(相對性) 때문에, 반드시 결과(結果)가 나타나서, 말하려 온 아는 사람(知人)과 같은 분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それから暫くして、あの方はどうされておられるかと、それとなく、友人に聞いてみたが、今だけ拔けきれず、迷いに迷っておられるとのことであった。實に氣の毒な方である。これを聞いた時、世の中には、欲望から、神佛を信じた爲に、心に迷いを造った人は、この方ばかりではあるまいと思った。

그 후 한 동안, 그 분은 어떻게 하시고 계신가 하고, 넌지시, 친구(友人)에게 물어 보았는데, 아직도 빠져 나오지 않고, 미망(迷い)을 깨닫지 못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불쌍한 분이다. 이 일을 들었을 때, 이 세상(世の中)에는, 욕망(欲望)으로, 신불(神佛)을 믿었기 때문에, 마음에 미혹(迷い)을 만든 사람은, 이 분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世間には、見ることも、觸れることも出來ない神佛を追いかけて、あちらの信者、こちらの信者となり、終いには、神でないものを、神と思い込んだり、敎祖を神と思ったり、思わせたり、實に忙しく、二度と來ない大切な日日を、間違った他力信仰の方向に、ひた走りに走り續けている人が、いかに多いかである。

세간(世間)에는, 볼 수도, 만져 볼 수도 없는 신불(神佛)을 쫓아가며, 저런 신자(信者)、이러한 신자(信者)가 되어, 끝내는, 신(神)이 아닌 것을, 신(神)이라고 믿어 버리거나, 교조(敎祖)를 신(神)이라고 생각하거나, 여기게 해 버리거나, 실로 바쁘게,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중요한 나날(日日)을, 잘못된 타력신앙(他力信仰)의 방향으로, 오로지 달리기만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欲望の果てに、身も心も失うようになるが、落ちである。

욕망(欲望)의 말로는, 몸도 마음도 잃게 되는 것이, 고작이다.



神佛は絶えず、己の心の中に、おわします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신불(神佛)은 끊임없이, 자기의 마음속에, 계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怠慢と無責任

(태만과 무책임)



人人は、この世は金や物がすべてある。それが幸福にするものであり、すべてのものに滿たされ、その滿足感に浸り、他人より贅澤に、樂しく面白く暮らすのが、人生であり、目的であると思っているものが多いものだ。またこうした思いが、當たり前であるとの考えが、充滿しているのが、現代の世相なのであろう。사람들은, 이 세상은 돈(金)이나 물건(物)이 전부다. 그것이 행복하게 하는 것이며, 모든 것에 충족되어, 그 만족감에 빠져서, 타인보다 사치스럽게, 즐겁게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인생이며,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각(思い)이, 당연하다고 하는 생각(考え)이, 충만되어 있는 것이, 현대의 세상(世相=사회의 형편)인 것일 것입니다.



その爲か、人人の心には、絶えず競爭心が湧き、富めるもの、貧しきものが生まれ、富めるものは、貧しきものを見下だし、貧しきものは、諦めの心から自分を卑下する。

그 때문인지, 사람들의 마음에는, 끊임없이 경쟁심(競爭心)이 솟아나서,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이 생겨나서, 부자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깔보고(업신여기고), 가난한 사람은, 체념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비하(卑下)한다.



富めるものは、その財力をもって、自分を庇護(ひご)し、貧しきものを支配し、よりその財を蓄えて行く。ところが、これに反撥して、萬人すべて平等と名(な)うった、社會主義思想が出現した。

부유한 사람은, 그 재력을 가지고, 자신을 비호(庇護)하고, 가난한 사람을 지배하고, 보다 더 그 재산을(財)을 축적해 간다. 그런데, 이것에 반발해서, 만인(萬人)은 모두 평등(平等)하다고 하는 유명한, 사회주의사상(社會主義思想)이 출현했다.



そして、この萬人平等という、言葉に惑わされた大衆を土臺に、權力者というものが現われたのである。

그리고, 이 만인평등(萬人平等)이라고 하는, 말에 현혹된 대중을 토대로, 권력자(權力者)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結局は、財を積み重ねる資本主義も、それに反撥して起きた社會主義も、金や物を主體にしたものであり、絶えず民衆が飜弄される結果を、生んでいるのである。

결국은, 재산(財)을 쌓아 올리는 자본주의(資本主義)도, 그것에 반발해서 일어난 사회주의(社會主義)도, 돈(金)이나 물건(物)을 주체로 했던 것이며, 끊임없이 민중(民衆)이 농락당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これは、權力者の欲望によって、すべて起きているものであり、終いには、その權力者同志の爭いとなり、國と國との戰爭に發展し、これによってそれぞれの國民が使われ、終いには、憎惡(ぞうお)の心となる。人は互いに相爭(あいあらそ)うのが、人生の目的と思わされ、身も心も使われてしまうものである。

이것은, 권력자의 욕망(欲望)에 의해서, 전부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끝내는, 그 권력자끼리의 싸움이 되어,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으로 발전(發展)하고, 이것에 의해서 저마다의 국민이 이용당하여, 끝내는, 증오(憎惡)하는 마음이 된다. 사람은 서로 상쟁(相爭)하는 것이, 인생이 목적이라고 여기게 되어, 몸도 마음도 조종당해 버리는 것이다.



地球上は、平和で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なのに、どうしたことか、古今東西を問わず、個人的にも、集團的にも、爭いは絶間なく續いている。この中で、ある時期に、僅かな隙を通し、名だけではあるが、平和というものが、その姿を見せる。

지구상(地球上)은, 평화롭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일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싸움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 중에서, 어느 시기(時期)에, 약간의 틈을 통하여, 이름뿐이지만, 평화(平和)라고 하는 것이, 그 모습을 보인다.



しかし物質の世の中は、仕方がないもので、爭いが少しでも無くなれば、人の心からは、緊張感は失せ、怠惰に流れ、そこには、秩序、規律、節操等、この世に必要缺くべからざるものは、すべて激流に飜弄されて、その姿は、恰かも、蟻(あり)とキリギリスの童話の、キリギリスの如く、その繪券は繰りひろげられて行く。財を有する者も、何もない者と表面は何ら變わらない。ただ自分のものなのか、借りたものなのかの差である。それすら分からなくなり、贅澤三昧(ぜいたくざんまい)、日日を面白おかしく暮らして行く。そこには、賭けごと、淫らな行爲、性病、アルコール中毒、痲藥患者等が蔓延(まんえん)し、止まるところを見失って行く。

하지만 물질(物質)의 이 세상(世の中)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싸움이 조금이라도 없어지면, 사람의 마음에서는, 긴장감(緊張感)은 없어지고, 태만(怠惰)에 빠지고(게을러지기 쉽고), 거기에는, 질서(秩序), 규율(規律), 절조(節操) 등이, 이 세상(世)에 필요 불가결한 것은, 전부 격류(激流)에 농락당해서, 그 모습은, 마치, 개미(蟻)와 베짱이의 동화(童話)의, 베짱이와 같이, 그 그림(繪卷)은 펼쳐져 간다. 재산(財)을 소유한 자(者)도, 아무것도 없는 자(者)와 표면은 어떠한 변화는 없다. 단지 내 것인지, 빌린 것인지의 차이이다. 그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 마음껏 사치스럽게, 나날(日日)을 재미있고 이상하게 살아간다. 거기에는, 노름(도박), 음란한 행위, 성병(性病), 알콜중독, 마약환자(痲藥患者) 등이 만연(蔓延)하고, 그만 둘 기회를 잃어간다. 



自分自身が、どのような環境・境遇なのかも知らないものが多いものだ。

자기 자신이, 어떠한 환경(環境)과 경우(境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人間は完全に、佛の敎えである、中道の精神など、遠い遠い處に、忘れ去って來たのであろう。佛の道を傳えるべき專從者も、同じような心と行爲を率先しているのが、現代の世であり、佛の敎えを忘れ去ってしまった世なのである。己以外のものに對しての、感謝や思いやりなど、微塵(みじん)もなくなっている。

인간은 완전히, 부처님(佛)의 가르침인, 중도(中道)의 정신 따위는, 머나 먼 곳으로, 깨끗이 잊어 왔던 것이다. 부처님(佛)의 길(道)을 전해야 할 전종자(專從者)도, 똑같은 마음과 행위를 솔선(率先)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세상(世)이며, 부처님(佛)의 가르침을 죄다 잊어버리고 만 세상(世)인 것이다. 자기 이외(以外)의 것(もの)에 대한, 감사(感謝)나 동정심(思いやり=이해심) 따위는, 조금도 없어지고 있다.



大人が、こんなことをしているだから、子供達は、アルバイトをして金を稼く。自分が働いた金たからと、勝手に使う。金、金、金という思いのアルバイトである。責任などの言葉すら知らない者が、多くなって行く。

어른(大人)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번다. 자기가 일해서 번 돈이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사용한다. 돈(金), 돈(金), 돈(金)이라고 하는 생각이 아르바이트이다. 책임(責任)이라고 하는 말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져 간다. 



何年か前に、學生が郵便局のアルバイトで、年賀狀を面倒くさいため、高速道路の下に捨ててしまったがあった。先日、用事で街へ出た。陸橋の中段迄來て、驚いてしまった。何處かのパンフレットが、それこそパサッと捨ててある。これを見て、あの年賀狀のことを思い出して、いやな思いが走った。困った、實に困った世の中である。

몇 년 전인가 전에, 학생이 우체국(郵便局)의 아르바이트로, 연하장(年賀狀)이 아주 귀찮기 때문에, 고속도로(高速道路) 아래로 전부 던져버린 일이 있었다.  지난 번에, 용무가 있어서 거리로 나갔다. 육교(陸橋)의 가운데 단(中段)까지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딘가의 팜플렛(pamphlet)이, 그야말로 대량으로 흔날리며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이것을 보며, 저 연하장(年賀狀)의 일을 회상하며, 불쾌한 느낌이 밀려왔다. 곤란한, 실로 곤란한 세상(世の中=사회)이다. 



しかしこれは、子供を責めるだけには、行かないように思った。

하지만 이것은, 아이를 나무랄 뿐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學校では、子供達の進學の際に、擔任の先生が、それぞれの子供の受驗校を決めるので、何故だろうと話を聞いてみると、子供の爲ではなく、擔任の先生の成績に拘わるとのことであった。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진학할 때에, 담임 선생이, 저마다의 아이의 시험을 치를 학교(受驗校)을 결정하기 때문에, 왜 그렇지요 라고 말을 들어보니,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담임 선생의 성적(成績)에 관계된다는 것이었다.



先生は年輩になり、敎頭になる。敎頭にまでなったら、どんなことをしてでも、校長になり度い。校長になるためには、あらゆる手を使う。校長と敎頭では、退職金が違うためと言うことである。校長になり赴任をする。赴任先での第一聲は、

선생(先生)은 같은 나이또래(年輩)가 되고, 교감(敎頭)이 된다. 교감(敎頭)로까지 되면, 어떤 짓을 해서라도, 교장(校長)이 되고 싶다.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사용한다. 교장과 교감(敎頭)에서는, 퇴직금(退職金)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교장이 되어 부임(赴任)을 한다. 부임하는 곳에서의 처음 꺼낸 말은,



「私の在職中には、何事もなく終わるように、餘計なことはしないように」

なのであるというから、恐れ入る。

「내가 재임 중에는, 별일 없이 끝낼 수 있도록, 쓸데 없는 소리(짓)는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어이가 없다.



PTAの會があれば、子供達の會ではなく、大人達の會となり、二次會三次會となるというから、今の學校の在り方に、疑問を持つものである。こうした中で育つ子供達は、身勝手な心を造り、責任などと言う言葉さえ知らない子供達が、非常に多くなるのではあるまいか。

부모와 교사와의 만남(PTA)의 모임이 있으면, 아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어른들의 모임이 되어, 2차 모임 3차 모임이 된다고 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학교의 본연의 모습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성장하는(자라는) 아이들은, 제멋대로인 마음을 만들어, 책임 따위라고 하는 말조차도 모르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家庭では、過保護で育てられた兩親が多いためでもあろう、自分が産んだ子供を、捨ててしまったり、子供に對して過保護であり、金や物さえ與えれば良いと思っている。そのうち、子供の方では、金さえくれれば良い、自分の氣に入ったものを、自分で買うとなる。親の言うことなど、聞く耳をもたなくなる。親は困って、他人に子供の敎育を依賴する。

가정(家庭)에서는, 과보호(過保護)에 의해 자란 양친(兩親)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자기가 낳은 아이는, 버리거나 하며, 아이에 대해서 과보호하며, 돈(金)이나 물건(物)까지 주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아이 쪽에서는, (나에게) 돈만 주면 좋고, 자기가 마음에 두었던 것을, 자기가 알아서 살게 된다. 부모(親)가 말하는 것 따위는, 들을 생각이 없게 된다. 부모(親)는 곤란해서, 타인(他人)에게 자식의 교육을 의뢰한다.



この世は、それに相應した商賣が、また出來るのだから恐れ入る。そこでうまく行かないと、裁判を起こしたり、損害の賠償を要求したりである。

이 세상(この世)은, 그것에 상응(相應)한 장사(商賣)가, 또한 생겨나기 때문에 어이가 없다. 그래서 잘 되어 가지 않으면(잘 안 되면), 재판을 걸거나, 손해 배상을 요구하거나 하기도 한다.



親の權威など、何處へやらである。學校に行っても、先生の言うことなど、聞くものではない。先生は勉强を敎えるのが本筋であり、それ以外は餘分なことと、思っ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先生というのは、人間としての常識ぐらいは、子供に敎え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先生がその常識に、缺け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

부모(親)의 권위(權威) 따위는, 어디로 가버리고. 학교에 가도, 선생이 말하는 것 따위는, 듣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본줄거리(本筋)이며, 그 이외는 여분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상식(常識)정도는, 아이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그 상식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大學生に種種要求、申し入れをされて、おろおろする敎育委員會があったり、何をやっているのであるうかと思う。

대학생에게 종종 요구를 받고, 신청(제의)을 받아서, 허둥거리는 교육 위원회가 있거나,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라고 생각한다.



企業の中では、一般の社員やら、入社して年數の經ちもしない若い社員に、幹部がボイコット(boycott)をくったり、もう秩序など、何處へやらである。

기업 중에는, 일반 사원이며, 입사(入社)해서 연수(年數)도 지나지 않은 젊은 사원에게, 간부(幹部)가 보이콧(boycott)을 당하거나 해서, 이미 질서(秩序) 따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ボイコットboycott  ①보이콧②불매 동맹③단결하여 배척함④참가 거부

① (단체가 일을)일정한 목적의 관철을 위하여 배척하거나 거부하다 ② [사회] (단체가 상품을)조직적으로 사지 않는 운동을 하다



これは大人が、パブル景氣に乘せられ、世の中を甘く通り過ぎ、成すべきことを成さず、いたすらに、面白、おかしく、怠惰にうつつを拔かして來た結果の、姿のである。

이것은 어른(大人)이, 더블 경기(double景氣)에 편승해서, 세상을 안이하게 지나쳐 버리고, 이루어야 할 것을 이루지 않고, 헛되이, 재미있고, 이상하게, 태만(怠惰)에 넋(정신)을 잃어 왔던 결과의, 모습인 것이다.



學問だけ、理屈だけでは、半端人間なのであり、それにプラス怠惰ときたら、何をか言わんやである。

학문만으로, 핑계만으로는, 반편이 인간인 것이며, 그것에 더하여 태만(怠惰)하기까지 하다면, 할 말이 없다(말해 무엇하겠는가). 



それこそ、地球上の人間一人一人が、人間として、生きている理・目的を見失っているために、現代のように混沌とした世が、出現しているのあろう。これ正に、心不在の世なのである。    

그야말로, 지구상의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理)와 목적(目的)을 놓쳐 버리고 있기 때문에, 현대처럼 혼돈(混沌)한 세상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심부재(心不在)의 세상(世)인 것이다.     



★心不在焉[xīn bú zài yān] ①마음이 여기 있지 않다 ②정신을 딴 데 팔다






이 아래의 "피안화"에서는, 이 책의 저자의 스승인, 다카하시 신지님의 하시던 방식과는 좀 다른 식으로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彼岸花

(피안화)




"鍋釜(なべかま)下げて"という言葉は、近頃は耳にしなくなった。遠い昔いことのように、そんな言葉を思い出した。

"냄비와 솥을 들고(鍋釜下げて)"라고 하는 말은, 요즘은 듣지 못했다. 먼 옛날 일처럼, 그런 말을 회상했다. 


"냄비와 솥은 팔아도 마누라는 팔지 말라(鍋釜売っても嚊売るな)"라고 하는 말은, 요즘에는 듣지 못했다. 먼 옛날의 일처럼, 그런 말을 회상했다.  

※뜻이 애매모호해서, 아래의 말도 첨가했습니다. 




東海道本線の列車は、邊りの景色を次から次へと變化させながら、順調に走っている。景色の中に、雨の姿が、ぽつぽつと見えてきた。景色と車內を分けている、窓ガラスにも、雨がしがっみついて、景色が遠く感じるよるになった。

토우카이도 본선(東海道本線) 열차는, 주변의 경치(景色)를 잇달아 변화시키면서, 순조롭게 달리고 있다. 풍경(景色) 속에, 비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경치(景色)도 차안을 나누고 있다. 유리창(窓ガラス)에도, 비가 달라붙어, 풍경(景色)이 멀게 느끼게 되었다. 



★とうかいどうほんせん東海道本線

①토쿄(東京)에서 요코하마(横浜)‧나고야(名古屋)‧쿄도(京都)‧오사카(大阪)를 거쳐 고우베(神戸)에 이르는 JR(Japan Railway)의 중요 간선



「雨ですね」

「비군요」



「そうですわね」

「그러네요」



少しの沈默が續いた。やや暫くしてKという、もう六十を越したと思われる女性が、ぱつぱつと語り始めた。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약간 잠시동안 K라고 하는, 이미 60을 넘었다고 여겨지는 여성(女性)이, 드문드문 말하기 시작했다.



「私のところは、今お父さんと二人で、ささやかに、菓子の製造販賣をして、何不自由なんく、これより少し先の別莊地に、別莊ももたせていただいております」

「제가 있는 곳은, 지금 남편과 둘이서, 자그마한, 과자 제과 판매를 하며, 돈에 쪼들리지 않고, 지금보다 조금 장래의 별장지(別莊地)로, 별장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うらやましい限りである。しかしどことなく、この女性、何か寂しさをもった樣子の方である。

부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여성, 웬지 외로움을 간직한 듯한 분이다. 



「私共が結婚をした時は、それこそ何もなしでした。商賣は、結婚をしてしばらくして、お父さんがそれまで職人をしておりました、和菓子の店から獨立をしました。運がよかったのでしょう、今のお店を借りることが出來、道具は、今迄のお店の古い道具を格安で讓っていただき、和菓子の專門店を開業しました。もう三十年にもなります。私共の商店街は古くから、よく人の來る處で、金ばなれの良い方が、多く住んでおられる處です。年年商いは增え、子供も、娘と息子の二人をもうけ、新しい住まいも出來、順調にやってきました。

「저희들이 결혼을 했을 때는, 그야말로 특별히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장사(商賣)는, 결혼을 하고 좀 지나서, 남편이 그때까지 장인(職人=목수나 미장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고유의 과자(和菓子) 가게(店)에서 독립을 했습니다. 운(運)이 좋았던 것인지, 지금의 가게(お店)를 빌릴 수 있어서, 도구(道具)는, 지금까지 가게(お店)의 헌 도구를 품질에 비해서 아주 싼 가격으로 양도해 주셔서, 일본 고유의 과자(和菓子) 전문점을 개업했습니다. 벌써 30년이나 됩니다. 저희들의 상점가(商店街)는 오래되었기 때문에, 자주 사람의 오는 곳이며, 돈을 벌기에 경험으로 익숙한 좋은 편이지만, 많이 살고 계시는 곳입니다. 해마다 매상고(商い)는 늘어나서, 아이(子供)도, 딸(娘)과 아들(息子) 둘을 두고, 새로운 주거(생활)도 할 수 있어서, 순조롭게 해 왔습니다.



もう必死でした。しかし、何から何まで、うまく行くということは出來ないもので、少し經濟的に餘裕ができ、ほっとした頃より、どこでもあるように、お父さんの浮氣が、始まったのです。最初は、まあまあ、そのうちにおさまるだろうと思って、何も言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六個月が經ち、一年が經ってもおさまりませんでした。

더욱 더 필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잘 되어 간다고 하는 일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한숨 돌릴 무렵부터, 어디에서나 있는 것처럼, 남편의 바람기(浮氣)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처음(最初)에는, 그럭저럭, 그러고 있는 동안에 수습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今思うと、みっともないことで、場所も人のことも考えず、大喧嘩、大立つ回りを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んな事から、私は心の安らぎを求め、行者信仰に走りました」

지금 생각하면, 꼴 사나운 일로, 장소도 사람의 일도 생각하지 않고, 대판으로 싸우며, 울며 고함지르는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에서, 저는 마음의 평안을 찾아서, 행자신앙(行者信仰)을 빠졌습습니다」



氣が付くと、はや、Kが降りられる驛が近付いていた。今思うど、緣ときり言いようがない。そのKが降りられる時に、メモに住所と名前を書き、

생각하니, 벌써, K가 내릴 정거장(驛)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연(緣)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K가 내릴 때에, 메모지에 주소와 이름을 써서,



「是非、訪ねて下さい。話の續きもしたいし、主人も紹介したいと思いますので」

「아무쪼록, 방문해 주십시오.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고, 바깥양반(主人)도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기에」



と言われ、列車から降りられた。Kはよほど話の續きを、したかったのであろう。

라고 말하며, 열차에서 내리셨다. K는 무척 이야기의 계속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それから約二個月は、あっという間に過ぎた。丁度用事があり、この方の街の方に出掛けたので、思い切って足をのばし訪ねてみた。ご夫婦で店におられ、客も何人か來ていて、忙しそうにしておられた。暫く樣子をみて、聲を掛けてみた。少しためらっておられたが、やや間をおいて、

그 후 약 2개월은, 앗 하는 사이세 지나갔다. 마침 용무가 있어서, 이 분의 사는 거리 쪽으로 나가게 되었기 때문에, 굳게 마음을 정하고 내친 걸음에 방문해 보았다. 이 부부가 가게에 계셨고, 손님도 몇 명인가 와 있고, 바쁜 듯이 그렇게 하고 계셨다. 잠시 형편을 보고, 말을 걸어 보았다. 좀 망설이고 있었지만, 잠깐 사이를 두고서, 



「あら、どなたかと思いました。まあまあよく訪ねてくれました。お父さん、先日お話をしました方です」

「어머나, 누구신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럭저럭 잘 찾아오셨습니다. 여보, 지난 번에 말씀을 했던 분입니다」



ご主人も、頷きながら、奧の方から出て來られた。

남편분(ご主人)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방에서 나오셨다.



「何だか、家のものが、いろいろと話を聞いていただいたようで、お恥ずかしいことです」

「웬일인지, 집사람이, 여러가지 말하는 것을 들고 있었는데,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いいえ、とんでもございません。私も樂しい一時でございました」

「아닙니다. 별 말씀 다 하십니다. 저도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



ご主人は、なかなか溫和な、物腰の低い方である。件の奧さんの話からすると、夫婦喧嘩など、想像もつかないような人物である。

남편분(ご主人)은,  상당히 온화(溫和)한, 말씨가 낮은 분이다.  앞서 말한 부인의 말에서 보면, 대판 싸웠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인물이다.



これが、このご夫婦との付き合いの始まりであった。

이것이, 이 부부와의 사귐의 시작이었다.



ご主人が、浮氣を始めたことに對抗して、奧さんは、行者信仰に入信をした。それから狂信盲信が始まったそうである。

남편분(ご主人)이, 바람(浮氣)을 피기 시작했던 것에 대항해서, 부인은, 행자신앙(行者信仰)의 길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광신맹신(狂信盲信)이 시작되었던 모양이다.



瀧行をしたり、堂に籠ったり、そのうち、行の最中に、この世のものでないものが見えたり、何もない處から、聲が聞こえて來たりするようになった。

도를 닦기 위해 폭포수를 맞거나(瀧行), 당집(堂=신불을 모신 건물)에 틀어박혀 있거나, 수행(行)이 한창 인 때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이 보이거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목소리가 차츰 들려오거나 하게 되었다. 


★瀧行:이란 말은 사전에 없음★

★폭포수의 물을 맞으면서, 도를 깨닫는다, 혹은 신통력을 얻기 위해서 하는 육체수행을 뜻하는 말.




「神の出現が、もっとやろう、もっとやろう」

「신(神)의 출현이, 더 하시고, 더 하실 것이다」



その行が、エスカレートして行った。

그 수행(行)이, 단계적으로 확대해 갔다.



「後で振り返ってみると、その時は、お父さんの浮氣が無くなるようにと、始めた信仰であったが、それは、お父さんを恨み、相手の女性を恨むことのためのものでした」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 때는, 남편의 바람기가 없어지게 되리라고,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그것은, 남편을 원망하고, 상대방 여성을 원망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었습니다」



そんなある日、商店街のある店の奧さんが、見兼ねたのであろう、一冊の書籍を持って來られ、

그런 어느 날, 상점가(商店街)의 어떤 가게의 아주머니(奧さん)가, 차마 볼 수 없어서인지, 한권의 서적(書籍)을 가져 오셔서,



「奧さん、そんなことをしていても、仕方がないでしょう。この本は素晴らしい本なので、奧さん讀んでごらんなさい。きっと救われるわよ」

「아주머니(奧さん), 그런 것을 하고 있어도, 소용없어요. 이 책은 훌륭한 책인데요, 아주머니 읽어 보십시오. 반드시 도움이 될 거에요」



そう言われ、置いて行かれた。

그렇게 말하고, 놓고 가셨다.



これが何と、私の生涯の師である、高橋信次先生の著書、『心の原點』であった。これをお聞きした時は、驚きの一言あったのである。この方には師のことを、話していなかった。

이것이 뭐냐면, 내 생애의 스승(師)님이신,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의 저서, 『마음의 원점(心の原點)』이었다. 이 일을 들었을 때는, 한마디로 경악었던 것이다. 이 분에게는 스승님의 일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これ正に、緣のしからしむこと以外、何ものにも非ずと思った。

이것은 정말로, 인연(緣)이 그렇게 만든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これからは、師の話をするようになったのは、勿論である。何回かお會いしているうちに、このご夫婦は、ご主人の浮氣や、奧さんの信仰等以外に、何か心の奧に他人には、言いようのない、何事かの影があることに氣付いていた。

지금부터는, 스승님의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몇 번인가 만남을 거듭하고 있는 사이에, 이 부부는, 남편의 바람기나, 부인의 신앙 등 이외에, 뭔가 마음속에 타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무슨 일인가의 그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その影が、息子さんのことであった。

그 그늘이, 아드님이 일이었다.



息子さんは、結婚をして約十年、男の子一名を儲げ、一見、實に幸せのように見えたが、これが、決してそうではなかった。と言うのは、この方を育てたご兩親は、實に大切に、それこそ何でも買い與え、學校は有名大學、車は上等なものを買い與え、贅澤したい放題で、育てためのである。結果は、子供が中學生になっても、定職もなく、家の商賣を手傳うでもなく、ぶらぶらと、喋れば、本當に分かって喋っているのかいないのか、べらべらと、よく喋る男である。

아드님(息子さん)은, 결혼을 하고 약 10년, 남자 아이 한 명의 자식을 두고, 언뜻 보기에는, 참으로 행복하게 보였지만, 이것이,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이 사람을 기른 양친(ご兩親)은, 정말로 소중하게, 그야말로 무엇이든지 사 주고, 학교는 유명한 대하그, 자동차(車)는 고급품인 것을 사 주고, 사치를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게 하고, 양육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자식이 중학생이 되어도, 직장도 없고, 집의 장사를 돕지도 않고, 빈둥대며, 지껄이면, 정말로 알면서 지껄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시부렁시부렁 대며, 아주 말이 많은 남자이다. 



お嫁(よめ)さんは、よく出來た女性で、舅・姑に實の娘のように盡くし、この時代には珍しい女性であった。

며느님(お嫁さん)은, 인품이 원만한 여성이며, 시부모에게 참한 딸처럼 극진히 대하고, 이 시대에는 보기드는 여성이었다.



Kの今迄の日日の生活の中での、心の狀態が、何か氣の毒に思った。しかし、これはKの人生で、他人がどうこうする譯にも行かない。

K가 지금까지 매일의 생활 속에서의, 마음의 상태가, 웬지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K의 인생이며, 타인이 동행할 수도 없다.



たしかに、働いた途中で歪みが起き、それを乘り越えて來たことは、すばらしいものである、しかし、子育てはどうであったのか。子供に對しての愛情の表現が、物を與えておけば、金を與えれば、それだけで、息子は、子供を儲ける迄に來てしまったのである。

분명히, 일하던 도중에 비뚤어짐이 생겨서, 그것을 극복해 왔던 것은,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육아는 어떻게 했었는가? 아이(子供)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 물건을 주면, 돈을 주면, 그만이며, 아들(息子)은, 자식을(子供)을 낳을 때까지 와 버렸던 것이다.



ある日Kが、

어느 날 K가,



「何故、私の家は、別に金には困らないのち、いろいろと困ったことが起きるのでしょう、住居に何かあるのでしょうか」

「왜, 저의 집(家)은, 별로 돈에는 곤란을 겪고 있지 않은데, 여러 가지로 난처한 일일 생기는 것인지, 주거(住居)에 뭔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お宅の土地は、元(もと)、沼であったようですね」

「댁(お宅)의 토지는, 원래, 늪이었던 모양이군요」



「いや田んぼでした」

「아니 논이었습니다」



「しかし田んぼになる前は、沼だったと思いますが、調べてごらんなさい」

「하지만 논이 되기 전에는, 늪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조사해 보십시오」



次に會ったとき、こんなことを言われた。

다음에 만났을 때, 이런 일을 나에게 말했다.



「先日の話のことですが、家の邊りは、昔やはり沼であったそうです」

「지난 번에 말씀 하신 것입니다만, 집 주변은, 옛날에 예상한 대로 늪이었던 모양입니다」



「そうですか」

「그렇습니까?」



これは、餘計なことを、言ってしまったかな思ったが、これで終わるわけにも行かないので、Kの住居に行き、家の中の六疊(여섯 장)の一室の中央に座ってもらった。

이것은, 쓸데없는 소리를, 해 버린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으로 끝날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K의 주거(住居)로 가서, 집안의 여섯 장(六疊)의 한방의 중앙에 앉았다. 



心の靜かに、沼であった時代に、タイムスリップをして見た。白い衣服、長い黑髮の女性が現われた。聞いてみると、この沼に身を投げた女性であると言う。

마음을 고요하게, 늪이었던 시대로, time slip(시공간이동)을 해 보았다. 하얀 의복, 긴 흑발의 여성이 보였다. 들어보니, 이 늪에 투신자살을 한 여성이라고 한다. 



ふと、後のKを見た。Kは、間違った行にしても、猛烈に修行をしたのであろう、ましてや女性である、靈感が身についている。顔や姿が正常ではない。その白衣黑髮の女性そのものとなっている。その女性に向かって、

문득, 뒤에 있는 K을 보았다. K는, 잘못된 수행(行)이라고 해도, 맹렬하게 수행(修行)을 했던 것인지, 하물며 여성인, 영감(靈感)이 몸에 배어 있다. 얼굴이나 모습이 정상(正常)이 아니다. 그 백의(白衣)의 흑발(黑髮)의 여성(女性) 그 자체가 되어 있다. 그 여성을 향해서, 



「あなたは、今世に生きていたときに、親を恨み、他人を憎しみ、環境に不滿をもち、自分から、沼に身を投げてしまったのでしょう。あなたの今いる處は、じめじめとした暗い處ではありませんか。本來あたなの歸る處は、光明燦然とした處なのです。そこに歸るには、それ迄のことを、懺悔をし、神佛にすべて詫びることです」

「당신은, 금세(今世)에 태어나 있었을 때에, 부모를 원망하고, 타인을 미워하고, 환경에 불만을 품고, 자기 스스로, 늪에 투신 자살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당신의 지금 있는 곳은, 질퍽질퍽한 어두운 곳이 아닙니까? 본래 당신의 돌아갈 곳은, 광명으로 찬연(燦然)한 곳인 것입니다.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의 했던 일을, 참회를 하고, 신불(神佛)에게 전부 사죄하는 일입니다」



★ 조금 이상하네요. 제삼자의 입장의 반성(참회)란, 표현이 없네요^^.



この女性、Kの意識に同通しているようだ。

이 여성이, K의 의식(意識)에 함께 통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로, 빙의는, 육체가 아닌, 의식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말함.



見る見るKの顔は變わり、眼からは、大粒の淚があふれ、自分が育てられた環境が良過ぎて、勝手氣儘(かってきまま)な行爲をして、他人が馬鹿に見えていたが、その氣になっているうちに、人に騙されて、自分から命を斷つような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ことを、詫びていた。

순식간에 K의 모습(顔)은 바뀌고, 눈에는,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자신이 자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고, 타인을 멍청하게 보고 있었는데, 그 일이 마음에 걸려 있는 중에, 남에게 속아서,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게 되었던 것을, 사죄하고 있었다.



「私の間違いでした」

「내가 잘못했습니다」



心靜かに、經文を讀誦した。

마음을 고요하게, 경문을 동속했다.



「さあ經文の波動に乘りなさい」

「그럼 경문의 파동에 타십시오」



★★이거 뭐지? 웬 경문? 뭐야 이거??

★스승이신 다카하시 신지님께서는, 경문 따위는, 읽어 준 적이 없었는데, 

단 한 번도. ??



「うわーっ」

「앗」



Kは前のめりになって、少しの間、身動きしない。私も實際は必死であった。稍稍(やや)して、Kが元に戾った。 

K는 앞으로 쓰러질 듯이 기울어져서, 잠시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실제로는 필사적이었다. 잠시 후, K가 원 상태로 돌아왔다.



「ああ、よかった」

「아, 다행이다」



これが、その時の本音であった。Kは、

이것이, 그 때의 본심(本音)이었다. K는, 



「私の中から、長い眞黑な髮の、白い衣服をつけた若い女性が、上の方へ、上の方へ出て行きました」と。

「내 안에서, 긴 새까만 머리칼을 한, 하얀 의복(衣服)을 걸친 젊은 여성이, 위 쪽으로, 위 쪽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한다.



しかし、Kの家庭は、これでもか、これでもかと、いろいろな問題が、この息子を通し出てくるのであった。

하지만, K의 가정은, 어쨌든, 저쨌든, 다양한 문제가, 이 아들(息子)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었다.



三十も半ば過ぎた息子が、父親の仕事を始めたのである。K夫婦は、夢ではないかと思ったのである。しかし、現實に朝早くから店に出て、餡をこね始めたのである。

30살 중반이 지난 아들(息子)이, 부친(父親)의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K 부부는, 꿈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로 아침 일찍부터 가게에 나와서, 팥소(餡)을 반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これほど、嬉しかったことはない。しかし、まだまだ、騙されないように、二人で顔を見合わせ、主意しあった。

이만큼, 기뻤던 적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속은 것은 아닌가 해서,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며, 주의하고 있었다.



「自分の子供に、こんなことを思って、接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恥ずかしいです」

「내 아이(子供)에게, 이런 일을 생각해서, 만나야 하는 것이었는데, 부끄럽습니다」



それでも、早や三個月が過ぎた。少しずつ、少しずつ怠け癖が、出て來たことに氣付いたのは、約四個月も過ぎた頃であった。夫婦は、

그래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조금씩, 조금씩 게으름을 피우는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을 알아차렸던 것은, 약 4개월이나 지난 무렵이었다. 부부는, 



「やっぱりなのだろうか」

「역시 생각했던 대로인가?」



どちらからとも、言わず語らずではあるが、無言の中に語りあったという。

어느 누구에게도, 말없는 가운데지만, 무언(無言)중에 이야기했다고 한다. 



五個月目に入った、ある日、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어느 날, 



「おやじよ、こんな商賣していても、うだつがあがらないよ、商賣替えしようや」

「아버지(おやじよ), 이런 장사를 해 봤자, 빛을 보지 못해요, 장사를 다른 걸로 바꿔야겠는데」



「何を言うのか。お父さんとお母さんが、お前達を、大學にやり、結婚をさせて來た仕事なのだ。駄目(だめ)だよ」

「뭔 말을 하는 거냐? 아버지랑 어머니가, 너희들을, 대학에 보내고, 결혼을 시켜 준 일인데, 안돼」



「しかし現實に、たいしたこと無いではないか」

「하지만 현실에서, 하고 싶은 것은 없는 게 아닌가요?」


さあ來た。

글쎄, 그렇다고 말한다면. 



何となく、こうなるのではないかとは、思っていたものの、二人はどうしようと、旦那は顔中(얼굴 전체)、くやし淚で一ぱいであったそうである。

왠지 모르게,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우리 부부) 둘이는 어떻게 할까, 하며 남편(旦那)은 얼굴 전체에, 후회하며 눈물이 가득 차 있던 모양이다. 



それから旦那も、まあ仕事をすると言っているのだからと、息子の言う通りにすることになった。

그 후 남편(旦那)도, 아니 뭐 일을 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니까 라고 하며, 아들(息子)이 말하는 대로 하게 되었다.



實はこの邊が、この息子を駄目にして來た原因なのであるが、氣付かないし、氣付いても、ここ迄來てしまっては、どうすることも出來ない。世間には、このようなことで、困っている親が、澤山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

실은 이와 같은 일이, 이 아들(息子)을 망가뜨려 왔던 원인인 것이지만, 알아차라지 못하고(깨닫지 못하고), 깨달아도,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은, 어찌 할 수도 없다. 세간(世間)에는, 이와 같은 일로, 곤란을 겪고 있는 부모(親)가, 많이 있는 것이 아닐까?



さて、この一家は今迄の店を、大改造をして喫茶店を始めたのである。

그래서, 이 온 가족은 지금까지의 가게를, 크게 개조를 해서 다방(喫茶店=찻집)을 시작했던 것이다. 




怠け者の、この息子も、最初はまやまや、カウンター(counter)に入り仕事をしていた。しかしこれも、四個月五個月、六個月頃になると、ふいと店を出て、何處をどう、ふらついて來るのか、開店になっても歸らない日が、續くようになって來た。お嫁さんの口からは愚痴がもれるようになって來たのである。そんなことなのだから、當然、客も入らなくなって來た。

게으름뱅이인, 이 자식(息子)도, 처음(最初)에는 그럭저럭, 카운터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4개월 5개월, 6개월 무렵이 되자, 갑자기 가게를 나와서, 어디를 길(どう)을, 배회하기 시작한 것인지, 가게 문(開店)을 열어도 돌아오지 않는 날이, 차츰 계속되기 시작했다.  며느님(お嫁さん)의 입에서는 차츰 푸념(愚痴)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한 일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손님도 차츰 오지 않게 되었다.



とうとう、お嫁さんの方からも、

드디어, 며느님 쪽에서도, 



「子供を連れて、實家に歸らせて下さい」

「아이를 데리고, 친정(實家)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とK夫婦に話があった。息子の惡いことは、親であるK夫婦も、何にも言いようがなかったそうで、却って氣の毒に思ったそうである。

라고 하는 말을 K부부에게 말이 있었다.  아들(息子)의 나쁘다는 것은, 부모(親)인 K부부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던 듯하며, 오히려 불쌍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もうその時は、三十數年間忙くし働いて、貯えた金は、もう底を突いていたそうである。それでも、息子には何も言えなかったようである。

이미 그 때는, 30 수년간 바쁘게 일하며, 모아둔 돈은, 이미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아들(息子)에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話を聞くのも、あまりにも毒の氣になり、足も遠のいてしまった。

이야기를 듣는 것도, 너무나 안 되어서, 왕래도 뜸해지고 말았다.



それから約二年ばかりしたある日、風の便りに、K夫婦は、子供と女房に捨てられた息子を連れ、住むなれた街を後に、何處れかに越して行かれたそうである。

그 후 약 2년 가량이 지난 어느 날,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희미한 소식에 의하면, K부부는, 자식(子供)과 처(女房)를 버린 아들(息子)을 데리고, 삶에 익숙해진 거리를 뒤로 하고, 어딘가로 가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今の世には、世相だからと言って、片付けてしまうとの出來ない、心不在のために、起きる悲劇が多い。

이 세상에는, 사회의 형편(世相)이기 때문이라고 해서, 정리해 버릴 수 없는, 심부재(心不在)로 인해서, 일어나는 비극(悲劇)이 많다. 



文明というものが發達し、それと同時に、經濟面も豊かになると、人の心は奢ってくるものだ。この邊から、人の心の弛緩(ちかん)が始まるものである。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발달하고, 그것과 동시에, 경제면도 풍요로워지면, 차츰 사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사람의 마음의 이완(弛緩)이 시작되는 것이다.



たまに、Kを思い出すことがある。本當に大事なことを、目の當たりに見せてもらった。ありがたいことであっだ。そしてKと初めて會った、あの列車の中で話したKの姿を、つい數日前のことのように思い出し、あの時は外は雨で、窓ガラスの曇りの間から、眞赤な彼岸花が見えていたことが、忘れられない。

가끔, K를 회상하는 일이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바로 눈앞에 (나에게) 보여 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K와 처음 만난, 저 열차 안에서 이야기를 했던 K의 모습을, 바로 수일 전의 일처럼 생각이 나서, 저 때는 밖에는 비가 내리고, 유리창의 구름 사이로, 새빨간 피안화(彼岸花)가 보이고 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世の中の縮圖

(이 세상의 축도)




「先生、聞いて下さい」

「선생님, 들어 주십시오」



春先の、日當たりのよい綠に、ぺたっと座り込んだ、おばあさんが、聲をかけて來た。誰かに、自分の心境を聞いてもらい度いのであろう。

초봄의, 당연히 경치가 좋은 푸르름에, 풀썩 주저앉았더니,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 왔다. 누군가, 자신의 심경을 들어 주었으면 좋은 듯 한 것이다. 



遊び人の息子と暮らしていたが、結局のところ、追い出され、この施設(しせつ)に入ったとのことであった。

노름꾼(遊び人=건달=난봉꾼)인 아들(息子)과 생활하고 있었는데, 결국에 가서는, 쫒겨나서, 이 시설(施設)에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私は、ここにおることが、一番幸せと思っています」

「저는, 이곳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何と返事をしてよいか分からない。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ところが最近になり、息子が私の年金を取りに來るんですよ」

「그런데 최근에 와서, 아들(息子)이 내 연금을 훔치려 온 것이지요」



「渡さなければよいのに」

「넘겨 주지 않으면 좋은데」



「そうでも行かないんですよ」

「그렇게도 할 수 없지요」



寂しそうな返事が返って來た。何と侘(わび)しいことなのであろう。この息子たるや、五十歲近いとのことで、驚きやら、呆(あき)れるやらで、そのおばさんが、氣の毒でならなかった。しかしこれは、このお年寄(としよ)りが多年に渡り積ねて來た、業によって現われた、結果そのものなのであり、本來であれば、 쓸

쓸쓸한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왠지 어쩌면 이렇게 슬픈 일이 다 있는 것일까? 이 아들은, 50세 가까운 나이인데, 놀랍고, 기막혀서, 그 할아버지가,불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 노인이 다년에 걸쳐서 쌓아 온, 업(業)으로 나타난, 결과 그 자체인 것이며, 원래대로 한다면, 



「おばあちゃん  反省をするんだよ」

「할아버지, 반성을 해야 합니다 」



と、言いたい處であるが、急にはそうは行くまいと思った。これは形を變えて、誰にでもあることである。二度と繰り返さないための、業の修正、これが人生においての、行じなげればならない、もっとも大事なことであり、それには、まず反省が第一步の行であることを、是非知ってほしいものである。

라고, 말하고 싶은 정도이지만, 갑자기는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입장(形)을 바꿔서,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두 번 다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업(業)의 수정(修正),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의,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반성이 첫걸음의 행위인 것임을, 아무쪼록 알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また、これが佛の說かれておられた、敎えそのものであり、決して佛は、特定の者のためや、死者に說法されたのではない。佛は、人間始め、萬生萬物の幸福を願い、そのための心の在り方を、敎示されておられたのである。

또한, 이것이 부처님(佛)이 설명하신, 가르침 그 자체이며, 결코 부처님(佛)은,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나, 죽은 사람에게 설법하신 것이 아니다. 부처님(佛)은, 인간을 비롯한, 만생만물(萬生萬物)의 행복을 바래서, 그 때문에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교시(敎示)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多いの人人は、このお年寄りのように、

많은 사람들은, 이 노인처럼, 



「この年になってしまって」歪みの多かったことを、運命として片付けてしまう例が、多いのではあるまいか。

「이렇게 나이가 들어 버려서」비뚤어짐이 많았던 것을, 운명(運命)으로 치부해 버리는 예가, 많은 것이 아닐까?



諦めの心で、人生を終わろうとしてはならない。人生とは、自分のこの世の終わりまで、己の歪みを造り出した業の修正に、勇氣を出し、頑張らねばならないのである。

체념(諦め)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끝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인생이란, 자신의 이 세상의 끝날 때까지, 자신의 비뚤어짐을 만들어 낸 업(業)의 수정(修正)에, 용기를 내어, 끝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ところが、同じ施設の中でも、

그런데, 같은 시설 안에서도, 



「私は、旦那が生きていた時は、何何組合の理事長をしていたので、生活も贅澤三昧(ぜいたくざんまい)で、幸せであった。ここに居る連中とは、少しばかり違うんだよ」

「나는, 남편(旦那)이 살아 있었을 때는, 이것저것 조합(組合)의 이사장(理事長)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도 마음껏 사치하고, 행복했다. 이곳에 있는 동료(連中)와는, 약간 달랐지요」



食事近くなると、チビリチビリと、晝間から晩酌よろしく、その上、施設の食事が氣きくわなければ、外から鰻重(うなじゅう)をとって、食べている。幾つになっても、他に對しての感謝の心など、何處かに捨ててしまったような、氣の毒な年寄りもいるのである。

식사(食事) 시간이 가까워지면, 홀짝홀짝, 대낮부터 저녁 반주를 적당히, 게다가, 시설(施設)의 식사(食事)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밖에서 찬합의 위 칸에 양념뱀장어 아래 칸에 밥을 담은 요리(鰻重)를 시켜서, 먹고 있다. 몇 살을 먹어도, 다른 것(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 따위는, 어딘가로 버려 버린 듯한, 불쌍한 노인도 있는 것이다.



このような施設を見ていると、何となく世の中の縮圖(しゅくず)を、見せられたように思うものである。

이와 같은 시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세상의 축도(縮圖)을, 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昭和四十八年の十二月に、施設を訪れた時、その日は丁度、日蓮宗の大本山の、大僧正以下四十・五名の僧侶が、年に一度の說法と、お祓(はら)いに來られる日であった。

쇼와 48년 12월에(1973년 12월에)、시설(施設)을 방문했을 때, 그 날은 마침, 니치렌종(日蓮宗)의 대본산(大本山)의, 대승정(大僧正) 이하 45~46명의 승려가, 1년에 한 번의 설법과, 액‧더러움‧죄업 등을 떨쳐내기 위해 신에게 제사지내는 행사(お祓い)에 참여하려 오는 날이었다.



★お祓い , 요즘말로 부정풀이, 푸닥거리(祓除), 액막이 행사 등등 이라고 볼 수도 있는 말이긴 합니다.



施設の院長が、

시설이 원장이, 



「朽木さん、一度參考になるから、見て行きなさいよ」

「쿠치키(朽木)씨, 한 번 참고 삼아서, 보려 가지 않으시겠어요」



聲を掛けて下さった。

말을 걸어 왔다.



「そうさせ下さい」

「그렇게 하십시다」



見たところ十七歲ぐらいの、大僧正の說法は、お伽噺(とぎばなし)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と、かすかに覺えている。私は、どんなことになるのか、興味があったので、お年寄りの中に入って、聞いたり見たりであった。大僧正の說法が終わり、お祓(はら)いとなった。十四・五名の僧侶が、白い襟(えり)立った衣、白い變なとんがり帽子をかぶり、手には拍子木を持ち、集會場に入って來た。お年寄りや私達は、會場の中央に座らされた。大僧正の一聲があった。

보아하니 70세 정도의, 대승정(大僧正)의 설법은, 옛날 이야기(お伽噺=동화) 같은 것이었다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떠한 일이 될는지,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노인들 사이에 끼어서, 듣거나 보거나 했다. 대승정(大僧正)의 설법이 끝나고, 불제(祓除=お祓い)가 시작되었다. 14~15명의 승려가, 하얀 깃을 세운 옷, 하얀 이상한 끝이 뽀족한 모자(가늘고 긴 원추형 모자=とんがり帽子)를 쓰고, 손에는 딱딱이(拍子木)을 들고, 집회장(集會場)으로 들어 왔다. 노인들이랑 우리들은, 회장의 중앙에 앉게 되었다. 대승정(大僧正)의 한마디(一聲)가 있었다.



「南無妙法蓮華經」と。

「남묘호우렌게쿄」라고. 



あとは一齊に、拍子木(ひょうしぎ)と大合唱が始められた。腦天がおかしくなるのではあるまいか、と思わんばかりであった。ありがたいのが通り拔けて、ただ、

나중에는 일제히, 딱딱이(拍子木)와 대합창(大合唱)이 시작되었다. 정수리(腦天)가 이상해지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고마운 것이 빠져 나가고, 단지,



「何じゃこれは」

「뭐야 이거 참」



と、思ったものである。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しかし、立つわけにも行かない、靜かにとは適切ではないが、目を閉じ、拍子木と僧侶の合唱を聞く外なかったのである。

하지만, 일어설 수도 없고, 조용함과는 적절하지 않지만, 눈을 감고, 딱딱이(拍子木)와 승려의 합창을 듣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何にしろ、中央に集まった人と、僧侶の間隔は、着物と衣が、觸れるくらいなのだからひどいものである。

무엇을 하든 말든, 중앙에 모인 사람과, 승려의 간격(間隔)은, 기모노(着物)와 옷(衣)이, 닿을 정도인 것이기 때문에 지독한 것이다. 



目を閉じて暫(しばら)くして、拍子木とお經の中で、瞼(まぶた)の中に、何か見えて來た。勿論そんなことは、思っても見なかった。

눈을 감고 한동안, 딱딱이(拍子木)와 경문(お經) 속에서, 눈꺼풀(瞼) 속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일을,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はて何だろう」

「그런데 뭐지?」



じっと、よく見てみると、梯子(はしご)が見えて來た。梯子の一段一段を目で追って行く。上段には、蓮の華の形をしたものが見える。周圍を大勢の僧侶が、

가만히, 잘 보니까, 사다리(梯子)가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사다리(梯子)의 한 계단 한 계단을 눈으로 쫓아 간다.  상석(上段)에는,연꽃(蓮の華) 모양(形)을 한 것이 보인다.  주위를 많은 승려가,



「南無妙法蓮華、經南無妙法蓮華經」と。

「남묘호우렌게쿄, 남묘호우렌게쿄」라고. 



合唱と拍子木の音で、何にも分からない、考えれらない狀態である。心を靜め、その梯子をよく見ると一人の白衣を來た老人が、登って行くのが見えた。丁髷(ちょんまげ)が見えたので、大分昔のことようである。しかし今現在の場の雰圍氣(ふんいき)と、あまり變わらないと思った、瞬間、いやーな思いがして、目を開けてしまった。ちょんまげ

합창(合唱)과 딱딱이(拍子木)의 소리로, 아무것도 모르겠고, 생각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마음을 조용하게 해서, 그 사다리(梯子)를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의 백의(白衣)을 입은 노인(老人)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에도(江戸)시대의 일본식)) 상투(丁髷)가 보였기 때문에. 상당히 예전의 일(옛날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장소의 분위기(雰圍氣)와, 그다지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떠 버렸다. 

 


周圍を見廻したら、施設のお年寄りは、合掌をして、下を向いたままである。時間にしたら、ほんの十分か、十五分であったろうに、大分長い時間に感じた。また變な見なくてもよいものを、見てしまったので、何か氣になる一時(いっとき)であった。

주위를 둘러 보았더니, 시설(施設)의 노인은, 합장을 하고, 아래를 향한 상태이다. 시간으로 치면, 불과 10분인가, 15분이었던 것인데, 굉장히 긴 시간으로 느꼈다.  또한 이상한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을, 봐 버린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한때였다. 何な氣になる一時(いっとき)であった。



歸りに、玄關前で、件の僧侶達と一緖になった。それぞれ、商賣道具を、車のトランクに入れている。殆(ほとん)どの車のトランクに入っている。

귀가 길에(歸りに), 현관 앞에서, 앞서 말한 승려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각자, 장사 도구(商賣道具)를, 자동차(車)의 트렁크에 넣고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車)의 트렁크에 넣고 있다.



醫者がゴルフをやるのだから、醫者の先の坊主(ぼうず)がゴルフをやっては、いけないとは言えない。しかし施設であっても、大僧正の說法とお祓(はら)いという、神聖な行事のはずなのに、遊び道具ぐらいは、置いて來るべきではないのか。

의사(醫者)가 골프를 치는 것이니까, 의사(醫者)에 앞서 승려(坊主)가 골프를 쳐서는, 안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시설(施設)이라 해도, 대승정(大僧正)의 설법과 불제(祓除=お祓い)라고 하는, 신성(神聖)한 행사였을 터인데, 놀려 갈 도구쯤은, (당연히) 놔 두고 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この坊主達、何と不謹愼(ふきんしん)な者達なのあろう。このような者達が、何で法の專從者なのか、正に末法の世であるわい」

「이 승려(坊主)들, 무언가 신중하지 못한(不謹愼) 자들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런 자들이, 어째서 법(法)의 전종자(專從者)인지, 정말로 말법(末法)의 세상(世)이구먼」



心の中で、そのように思ったら、あまりにも、心不在過ぎて、怒鳴(どな)るより、馬鹿馬鹿しく思えてならなかった。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나도, 마음의 부재(心不在)가 지나쳐서, 호통을 칠 수밖에, 정도를 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第六章 物の怪の存在

[사람을 괴롭히는 사령(악령,귀신)의 존재]



外國から來たお化け

(외국에서 온 도깨비)




「先生、助けて下さい」

「선생님, 도와 주십시오」



三十歲前後の主婦が、十六歲は過ぎたであろう、母親に付き添われ、訪れて來られた。

30세 전후의 주부(主婦)가, 60세는 지난 듯한, 모친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찾아 오셨다. 



見ると、とても正常ではないと、誰が見ても、すぐ判斷できるような形相である。

얼핏 보니까, 도저히 정상(正常)이 아니라고, 누가 봐도, 금방 판단할 수 있는 형상(形相)이다.



「どうしましたか」

「어찌 된 일입니까?」



「はい、何だか、私自身が私でないような氣がするんです」

「네, 뭔가가, 제 자신이 제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듭니다」



その方が前に座っただけでも、こちらまで暗い氣持になりそうである。

그 사람이 앞에 앉았을 뿐인데도, 이쪽까지 어두운 기분이 드는 듯하다.



「あなたは、お子さんは何人いらっしゃいますか」

「당신은, 자제분(お子さん)은 몇 명 두고 계십니까?」



「はい、二人います」

「네, 두 명입니다」



「お元氣なんですか」

「건강은 하십니까?」



「はい、元氣です」

「네, 건강합니다」



「あなたは、普段は闊達(かったつ)で、朗らかでしょう、何故そんなことになったんですか」

「당신은, 평소(普段)는 활달(闊達)하고, 명랑한 듯 한데,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分かりません」

「모르겠습니다」



もっとも分かっていれば、こんなことにはならない。

하기는 알고 있으면, 이렇게는 안 된다.



「いつ頃から、こんなことになったのですか」

「언제쯤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까?」



「約二年前、主人の勤務先の、イラクのバグダードに行って、一年くらいしてから、急になりました」 

「약 2년 전, 남편(主人)의 근무하고 있는 곳(勤務先)인, 이라크(Iraq)의 바그다드(Baghdād)로 가서, 1년 정도 후에, 갑자기 이렇게 되었습니다」 



下を向き、器量よしの顔が、目付きが惡く、目の下にうす墨く、隈(くま)が見える。何だかうす氣味が惡い。

고개를 숙이고 있고, 인물의 고운(器量よし) 얼굴이, 눈초리가 고약하고, 눈언저리가 옅은 검은 빛이고, 그늘(隈)이 보인다.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母親を見ると、困り果てた顔をしている。

모친을 보니까,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다.



「この娘(こ)は、普段は、郎らか過ぎるくらい、朗らかで、人のお世話は好きで、人にはよく好かれていたのに、どうしちゃったのかと心配でなりません。近所の方や友達が、どうしましたかと、聲を掛けて下さるのですが、反應がありません。困りました」

「제 딸(娘)은, 평소에는, 지나칠 정도로 명랑하고, 쾌활하며, 남을 돌보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는 자주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데, 어찌 된 것인지 걱정은 안 됩니다. 이웃집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말을 걸어 주시고 있지만(성원해 주시고 있지만), 반응이 없습니다. 난처했습니다」



「本當に困りましたね」

「정말로 곤란하시군요」



 「はい」  

 「네」 



それから、彼女の心の中を、積み重ねた紙を、一枚一枚、取り除くように、約二年前ぐらいに遡(さかのぼ)って、ひもといてみた。すると、バグダードの古代の遺跡というか、私も現實に見たわけではないので、どう表現したらよいのか困ったが、とにかく有りの儘を、彼女に話してみた。 

그 다음에, 그녀의 마음속을, 포개어 쌓인 종이를, 한 장 한 장, 치우듯이, 약 2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서, 풀어 보았다. 그러자, 바그다드(Baghdād)의 고대(古代)의 유적(遺跡)이라고 하든가, 저도 현실로 가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곤란하지만, 어쨌든 사실 그대로를, 그녀에게 이야기해 보았다. 



「あなたは、イラクの石造りの遺跡を、見學に行きませんでしたか」

「당신은, 이라크(Iraq)의 돌로 만든 유적(遺跡)을, 견학하려 가지 않았습니까?」



ややおいて、

잠시 후,



「そう言われれば、主人が遺跡を見るのが、大變好きなものですので、私も後に追(つ)いて、ちょいちょい一緖に行きました。何故分かるんですか」

「그렇게 말을 들으니, 남편(主人)이 유적을 보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저도 나중에 따라가서, 가끔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안 것입니까?」



實は彼女の心を、前述したように、ひもといていると、この遺跡と、そこに昔の武士なのか、盜賊なのか、その邊はよく分からないが、一人の男の姿が現われれて來たのである。日本のモンペ、日本女性が昔はいていた、ニッカーズボンのようなものをはき、頭には、スカーフのようなものをかぶり、髭をはやし、よく反(そ)りのある、太目(ふとめ)の刀を持っている。

실은 그녀의 마음을,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끈을 풀어보니(속마음을 읽어 보니), 이 유적(遺跡)과, 그곳에 옛날 무사(武士)인지, 도적(盜賊)인지, 그 근방은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의 남자가 차츰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본의 몸빼, 일본 여성이 옛날에는 입고 있던, 닛카 즈봉(길이가 무릎 아래까지 오며 발목을 졸라맨 짧은 바지)와 같은 것을 입고, 머리에는, 스카프(Scarf)와 같은 것을 쓰고, 수염을 기르고, 아주 잘 휘어진, 굵직한 칼을 차고 있다.



★몸빼 

はかま, 일본 옷의 겉에 입는 아래옷) 모양을 하고 발목이 조여 있는 股引(ももひき, 통이 좁은 바지 모양의 의복)와 비슷한 의복. 보온용 또는 작업용. =雪袴, もっぺ, もんぺえ. <季語:겨울>.


★닛카 즈봉

((대충, 골프나 야구 선수들이 입고 있고, 토목 건설 공사 작업복))

ニッカーボッカーズ(英: Knickerbockers)はズボンの一種で、長さが膝下までですそが括られた短ズボン。野球、ゴルフなどのスポーツウェアとして広まり、現在日本では土木・建設工事の作業服として多く見られる。ニッカ(ー)ボッカー(ズ)、ニッカポッカ、ニッカズボン、ニッカー(ズ)とも呼ばれる。




ははあ、この男の仕業だと分かったので、

아하, 이 남자의 짓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お前は、何者なのだ。お前がこの女性に憑依しているために、この女性は、すっかり性格が變わってしまい、周圍の人人が迷惑をしている。何故この邊迄、彼女に追いて來て、どうしようと言うのだ」

「너(お前)는, 누구냐? 네가 이 여성에게 빙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여성은 완전히 성격이 변해 버렸고, 주위의 사람들이 당황해 하고 있다. 왜 이 곳까지, 여성을 따라 와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냐?」



こう言い掛けると、

이렇게 말을 걸자, 



「わしの、大分昔に住んでいた處は、今多くの見たこともない人間が、無斷で入って來て、迷惑をしている。わしは、その頃、あまり惠まれた生活が出來ず、思いを多く殘し、この世に歸って來たのだが、どうも今迄よい住みにくいし、うす暗い處で、どうにもならないので、思い出の多い處に、再び住んで、わしの思いを少しでも、遂げてくれそうな者が來たらと、そう思っていると、人の良さそうな、この女性が來たので、ちょいとばかり、意識をお借りしたわけだ。ところが、この女性に、わしの住んだことのない、とんでもない處に連れて來られ、困っているのだ」

「내가, 대체로 옛날에 살고 있던 곳은, 지금 대부분 본 적도 없는 인간이, 무단(無斷)으로 들어 와서, 폐를 끼치고 있다. 나는, 그 무렵, 그다지 풍요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원한(思い)을 많이 남기고, 이 세상으로 돌아 왔던 것이지만, 도저히 지금까지 잘 살기 힘들고, 옅은 어두운 곳에서,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추억이 많은 곳에서, 다시 살며,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이루어 줄 것 같은 사람이 온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사람의 좋은 그런, 이 여성이 온 것이기 때문에, 잠시, 의식(意識)을 빌어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에게, 내가 산 적이 없는, 엉뚱한 곳으로 나를 데려 와 버려서, 곤란을 겪고 있는 거다」



「お前はこの女性に、何をやってもらい度いというのか。お前はこの女性に憑依していても、お前の殘した思いなど、この女性がやれるわけがないし、かえって苦しくな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にかく、彼女の意識から離れなさい」

「너는 이 여성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너는 이 여성에게 빙의하고 있어도, 너의 남은 생각 따위는, 이 여성이 들어 줄 리가 없고, 도리어 괴롭게 되는 것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든, 그녀의 의식(意識)에서 떠나시오」



そう語りかけた。するとその返事が、おもしろかった。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그 대답이, 흥미로웠다.



「この女性から離れると言うのは、どう言うことなのか。わしは今離れろと言われても、こんな知らない處で、どうすればよいのだ」

「이 여성에게서 떨어진다(떠난다고) 하는 것은, 어떤 말이냐? 나는 지금 떠나려고 해도, 이런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어찌하면 좋은 것이냐?」



言われてみれば、その通りである。彼の意識は、半分あの世で、半分この世にあるのだから、寢起きの惡いようなことを、口走るようになるのであろう。

말을 들어 보니, 그말 그대로이다. 그의 의식(意識)은, 반은 저 세상이고, 반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잠투정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을(막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 나쁜 것과 같은 것을, 생활[기거]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엉겁결에 말하게 되는 것이다.



これを聞いて、笑いたいような、笑ってはいけないような氣がした。彼の時代には飛行機など、あったわけではない。とにかく、何とかなるだろうと、憑依した彼女が、飛行機で、見知らぬ處に來てしまったのだから、彼は當惑したに違いない。當惑をしたその分だけでも、憑依された當の彼女は、理屈ぬきで、何が何だか分からない、暗い心になり、ただ自分であって、自分でない自分に、ただ困惑した氣持が、譯もなく充滿した。心の中は不安のみが慕り、身體を動かすのも億劫で、それらすべての事柄に對し、恐ろしささえ感じているようである。

이 말을 듣고서, 웃고 싶은, 웃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시대(時代)에는 비행기(飛行機) 따위는, 있었을 리가 없다. 어쨌든,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해서, 빙의(憑依)한 여성이, 비행기로, 보고 들은 적도 없는 곳으로 와 버렸던 것이기 때문에, 그는 당혹했음에 틀림없다. 당혹(當惑)을 한 그 부분만큼이라도, 빙의된 상대 여성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이 나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해도(理屈ぬきで) 뭐가 뭔지 모를, 어두운 마음이 되어, 그저 자기 자신이면서도, 자기 자신이 아닌 듯한 자신이 되어, 그저 곤혼(困惑)스러운 기분이, 까닭 없이 충만했다. 마음속은 불안만이 뒤따르고, 몸(身體)을 움직이는 것도 억겁(億劫)이며, 그조차도 모든 것의 사항(事柄)에 대해서,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의역했습니다))



「お前のいる處と、我我がいる處とは、世界が違うのだ。お前はこちらの世に對しての、欲の心、執着の心そのもので、こちらを見ているので、こちらの世にいると思っているだけなのだ。落ち着いて周圍を見ることだ。とにかく勇氣を出して、この女性の意識から離れることだ」

「네가 있는 곳과, 우리들이 있는 곳과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너는 이쪽 세상에 대한, 바라는 마음(欲の心), 집착(執着)하는 마음 그 자체이며,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이며, 이쪽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침착하게 주위를 볼 일이다. 어쨌든 용기를 내서, 이 여성의 의식(意識)에서 떠날 일이다」



「離れても大丈夫であることを、保證してくれるか」

「떠나도 괜찮다는 것을, 보증(保證)해 줄 텐가?」



「今すぐ出なてもよい。あと二・三日のうちには離れなさい。それより遲れれば、遲れるほど苦痛を感じることになる」

「지금 당장 떠나지 않아도 좋다. 앞으로 2~3일 사이에는 떠나시오. 그보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고통(苦痛)을 느끼게 된다」



「威かしではあるまいな」

「협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威かしかどうか、やってみてから言いなさい」

「협박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해 보고나서 말하시오」



この問答が終わって、私は彼女の胸に手當てをしながら、彼女の守護靈に對し、이 문답(問答)이 끝나고, 나는 그녀의 가슴(胸)을 손으로 만지면서(手當て), 그녀의 수호령(守護靈)에 대해서, 



「もっと、しっかりと、彼女を守りなさい」

「좀 더, 확실히, 그녀를 지켜 주십시오」



だまって返事もない。

잠자코 대답도 없다.



私は彼女に對し、後は自分自身に、しっかりと言い聞かせ、現在起きている事柄を乘り越える以外、元の自分に戾る方法はないことを話した。

나는 그녀에 대해서, 나중에는 당사자 자신에게, 확실히 말을 들려주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항(事柄)을 극복하는 이외(以外)에,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올 방법은 없다는 것을 말했다. 



それで、一應歸ってもらった。私の心の中は、彼女が正常に戾られるよう、祈るだけであった。

그것으로, 일단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나의 마음속은, 그녀가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할 뿐이었다.



翌日の晝ごろ、彼女から電話があった。また何か起きたのではと、瞬間思った。다음날 정오무렵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한 뭔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 생각했다.



「先生、昨日は本當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선생님, 어제는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いいえ、何か起きたんですか」

「아닙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はい、あれから、母に、家迄來てもらい、ようやく歸ってまいりました。夜、いつものように寢ることが出來ません。主人は先に休んでしまいました。それを見て、イライラとして來ました。また今夜も寢られないのかと、そんなことを思いながら、パジャマに着替えようと、立ちあがった時、主人が喋(しゃべ)りだしたのです。夢でも見ているのだろうと、思いましたが、とにかく譯の分からないことを喋り、なかなか止めません。それが言葉であるとしたら、どうも日本語ではない。だんだんと怖くなって來ました。しかし、主人が喋っている言葉を、よく聞いて見ると、昨日先生が、私に憑依している人に、話をされている言葉を、一緖であることに氣付き、變な氣持でした。暫くして、主人の寢言も止み、ほっとして、そのまま寢てしまいました。

「네, 그후, 어머니께서, 집까지 데려다 주셔서, 간신히 귀가했습니다. 밤(夜)에, 평소처럼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남편(主人)은 먼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시 오늘 밤도 잠을 잘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파자마(잠옷)을 갈아입으려고, 일어 섰을 때, 남편(主人)이 잠꼬대를 하는 것입니다. 꿈이라도 꾸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이유를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좀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말이라고 한다면, 도저히 일본어가 아니다.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主人)이 떠들어대고 있는 말을, 잘 들어 보니, 어제 선생님이, 저에게 빙의(憑依)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하시고 있는 말을, 똑같은 것(一緖)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잠시 후, 남편(主人)의 잠꼬대도 끝나서, 한숨 돌리고, 그대로 잠들어 벌리고 말았습니다。



今朝目を覺ましたら、頭がすっきりとして、元の自分に戾ったように思いました。不思議でなりません」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깬 후, 머리가 맑아지고, 본래의 저 자신으로 돌아온 것처럼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가시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これはよかったね、バグダードの彼が、あなたから離れたのでしょう。そのままではいけないから、二・三日中に、もう一度來て下さい」

「이 일은 다행이군요. 바그다드(Baghdād)의 그 (남자)가, 당신에게서 떠난 것이지요. 그 상태로는 안 되니까, 2~3일 중에, 다시 한 번 방문해 주십시오」



「はい、お伺いします」

「네, 찾아 뵙겠습니다」



バグダードの彼は、いろいろ聞かされ、自分の間違いに氣付き、

바그다드(Baghdād)의 그는, 여러가지를 (나에게) 들어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今迄で、あなたの意識に入り込んでいたが、間違っていたことが分かったので、今からあなたから離れることにした。すまなかった」

「지금까지, 당신의 의식(意識)에 들어가 있었지만, 잘못하고 있던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당신에게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このような意味のことを、彼女に告げるため、彼女の旦那の意識を使ったのであった。

이와 같은 의미의 일을, 그녀에게 알리기(고하기) 위해서, 그녀의 남편(旦那)의 의식(意識)을 사용했던 것이다.



二日ばかりしたら、彼女が訪ねて來た。彼女に、

이틀 쯤 후에, 그녀가 찾아 왔다. 그녀에게,



「人間というのは、心が大事であり、人が良過ぎて、何でも引受け、オーバーをして心に苦惱を造ったのでは、人の世話どころではなくなる。また自分のことばかりで、他人のことなど、我關せずでもよくない。それには、まず己自身を、環境や境遇を通して、どんな性格を造り上げているのかぐらいは、知っておかねばならない。あなたの場合は、憑依されるには、必ずそれに對する心に歪みがあり、それによって透(す)き間を造り、この世に執着をもっている者に、憑依されてしまうものなのです」무엇때문에, 왜, 어째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중요(大事)하며, 사람이 너무 좋아서, 뭐든지 떠맡아서(引受け), 오버(초과)를 해서 마음에 고뇌(苦惱)을 만든 것에는, 남의 도움(人の世話)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 일뿐이며, 타인의 일 따위라고 해서,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해도 좋지 않습니다. 그것에는, 우선 자기 자신을, 환경(環境)이나 경우(境遇)을 통해서, 어떤 성격(性格)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의 경우는, 빙의(憑依)되는 데에는, 반드시 그것에 대한 마음에 비뚤어짐이 있고, 그것에 의해서 파고들 기회(마음에 방심)를 만들어, 이 세상에 집착을 갖고 있는 자에게, 빙의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歸りに、師の著書、『心の原點』を、買ってもらった。人間というものは、書籍を借りると、返すことばかりで、よく讀むことをしない。提供されたものは、なかなか讀もうとしないものである。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제) 스승님의 저서(著書),『마음의 원점(心の原點)』을, 사서 읽으십시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서적(書籍)을 빌리면, 돌려줄 뿐이며, 잘 읽지를 않는다. 제공된 것은, 좀처럼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その後、彼女は"喉元(のどもと)過ぎれば"ではないが、現れなくなった。友人の話にようと、元氣で飛び廻っているそうで、嬉しいことである。

그 후, 그녀는 "목 구멍도 너무 지나가면 (뜨거움을 잊는다)"는 하지만, 그러한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건강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이며, 기쁜 일이다.



★喉元(のどもと)過(す)ぎれば熱(あつ)さを忘(わす)れる

★のどもとすぎればあつさをわすれる

①목구멍만 지나가면 뜨거움을 잊는다 ②뼈저린 고통도 그때가 지나가면 쉽사리 잊어 버린다 ③어려울 때 남에게 받은 은혜도 형편이 풀리면 그 은혜를 곧잘 잊어 버린다







供養

(공양)




何處かで、姿なき者が狙っている。その狙っている者達の鼓笛隊(こてきたい)の吹く笛の音に、手拍子よろしく踊り出す人間、その數は見る見る增えてくる。これ正にこの世の姿、末法の世そのものである。

어딘가에서, 모습 없는 자가 기회를 노리고(엿보고) 있다.  그 기회를 노리고(엿보고) 있는 자들의 고적대(鼓笛隊)가 부는 피리소리에, 손장단(手拍子)을 적당히 맞춰가며 춤을 추기 시작하는 인간, 그 수는 순식간에 차츰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바로 이 세상의 모습, 말법(末法)의 세계 바로 그것이다.



過日、見知らぬ方より電話があった。

지난 번, 알지 못하는(낯선)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もしもし、ちょっとお尋ねてしたいことがあるのですが」

「여보세요, 잠시 찾아 뵙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あなたは、どなたですか」

「당신은, 누구십니까?」



「はい私は、Sと言いうものです」

「네 저는, S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私は、あなたとは一度もお會いしたことも、電話で話したこともありませんね」

「저는, 당신과는 한 번도 뵌 적도, 전화로 말을 한 적도 없는데요」



「はい」

「네」



「私のことは、どこで聞きましたか」

「저에 대한 일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はい、私は九州から會社の轉勤で、最近埼玉縣に越して來たばかりです。先生のことは、九州のTさんにお聞きしました」

「네, 저는 쿠슈에서 회사의 전근(轉勤)으로, 최근 사이타마 현(埼玉縣=간토우(関東) 지방 서부의 현(縣))으로 조금 전에 넘어왔습니다. 선생님에 관한 것은, 큐슈(九州)에 있는 T씨엑 들었습니다」



★큐슈(九州) = "일본 열도 서남부에 위치한 큰 섬"이며,현재는 후쿠오카(福岡)‧사가(佐賀)‧나가사키(長崎)‧쿠마모토(熊本)‧오오이타(大分)‧미야자키(宮崎) ‧가고시마(鹿兒島) 


▷ 후쿠오카는,이 책의 저자 쿠치키 타케토(朽木 上人)의 고향이며, 

▶가고시마(鹿兒島)는 소노가리라 히로치카(園頭廣周)의 고향. 




實際には、私を紹介された方を、私は、どんな方なのか、あまりよく覺えてはいなかった。しかし折角(せっかく)電話を下さったので、

실제(實際)로는, 저를 소개하신 분을, 저는, 어떤 분인지, 그다지 잘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러 전화를 주신 것이기 때문에,



「どんなご用なのでしょうか」

「어떤 용무가 있는 것입니까?」



この方、何を聞かれるのかと思いながら、まず本題に入った。

이 분이, 무엇을 들어보려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우선 주제(本題)로 들어갔다.



「實は、私共は、佛壇も一緖に持ってまいりました。つい一週間ばかり前に、眞言宗何何寺と、寫眞入りで、”先祖供養・水子供養その他のご相談に應じます”との廣告が、新聞の折り込みに入っておりました。私のところも、丁度眞言宗なものですので、これを見まして、この際、先祖供養をしてもらおうと、妻とも相談の上、夫婦でこの寺を訪ねました」

「실은, 저(저희들)은, 불단(佛壇)도 함께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일주일쯤 전에, 진언종 무엇무엇이라고 하는 절(寺)과, 사진이 그려져 있고, ”선조 공양(先祖供養)・유산(流産)된 아기를 공양하는 것(水子供養) 그 밖의 상담에 응해 드립니다”라고 하는 광고(廣告)가, 신문(新聞)에 끼어 넣어 들어 있었습니다. 저로서도, 마침 진언종(眞言宗)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고서, 이 기회에, 선조공양(先祖供養)을 해 보려고, 아내(妻)와도 의논해서, 부부(夫婦)가 이 절(寺)을 방문했습니다」



この方は、先祖供養は、簡單にしてもらえるものと思っていたという。そして費用など、そんなに掛かるものではないと思っていたとのことである。ところが、供養料が掛かったのである。

이 분은, 선조공양(先祖供養)은, 간단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용 따위는,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양료(供養料)가 걸렸던 것이다.



本堂には、善男善女なのか、迷い人なのか、澤山の人が、寺側の說明を聞くために、集まっていたそうである。

대웅전(本堂)에는, 선남선녀인지, 미망의 길을 헤매는 사람(迷い人)인지, 많은 사람이, 절측(寺側)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 모여 있던 모양이다.



說明が順を追って、先祖供養のところに來た。ひと通りの說明の後、費用の点になった。房(ば)んさんの口から、

설명이 순서를 따라서, 선조공양의 차례가 왔다. 한 번의 설명 후에, 비용(費用)에 관한 특정한 사항에 대한 점(点)이 되었다. 스님의 입에서,



「先祖供養は、普通で六十五萬円也の費用が掛かります」

「선조공양은, 보통 65만엔 정(也)의 비용이 듭니다」



電話の方は、六十五萬円と、その金額を聞いただけで、說明されたことなど、何處かへ飛んでしまったのである。

전화한 분은, 65만 엔이라고, 그 금액을 들은 것 뿐인데, 설명하신 것 따위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早速、故鄕の先輩に電話で相談と、言うことになったとのことである。

즉시, 고향 선배에게 전화로 상담하고, 말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この方のように、少しでも疑問をもたれる方は、良い方である。よく金を支拂って、その他に、斷りきれなくなるようなことを言われて、始めて氣付く人もいるようである。

이 분처럼,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지신 분은, 좋은 편이다. 잘 돈을 지불하고, 그 밖에, 거절할 수 없게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いずれにせよ、人生相談や先祖供養、水子供養の廣告を見て、廣告先に自ら入り込んで、拔けるに拔けられないで困っている人もいるのである。世の中には、"騙(だま)すより騙(だま)される者が惡い"という言葉があるが、その通りである。

어쨌든 간에, 인생상담이나 선조공양, 유산(流産)된 아기를 공양한다(水子供養)는 광고를 보고, 광고에 앞서 자기 스스로 깊숙이 들어가서, 빠져 나오려고 해도 빠져 나올 수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世の中)에는, "속이는 것보다 속는 사람이 나쁘다"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 그대로이다. 



大體、自分の人生を、一枚の廣告によって、より良い方向へと思うこと事態、おかしいことであり、神佛の子として、成すべきこともせず、困った時だけ救ってほしいと、思っても、願っても、救ってくれるものではない。

도대체, 자기의 인생을, 한 장의 광고에 의해서, 보다 좋은 방향으로 라고 생각하는 사태(事態), 이상한 일이며, 신불(神佛)의 자녀(子)로서, 이루어야 할 것도 하지 않고, 곤란할 때만 도움을 받고 싶다고, 생각해도, 소원을 빌어도(願っても), 도와 주는 것이 아니다. 



他人を救ってやるなど、自分から言い出す者が、どんなに"我は神だの、如來だの菩薩だ"のと言っても、それは苦しみ惱み迷っている人人の心を騙そうとする、亡者であることを知らねばならない。

타인을 도와 준다는 따위의, 자기 스스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어떻게"나는 신(神)이다 라든지, 여래(如來)다 라든지 보살(菩薩)이다"라는 등의 말을 해도, 그것은 괴롭고 고민하며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려 하는, 망자(亡者)인 것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迷っている人人よ、人間はすべて己の眞我を通し、神佛が存在をしているのであり、己自身の心を信じられるようにならなければ、いつまでたっても、騙され續け、大切なこの世の一生を、何のために生きているのかさえ、分からずに終わってしまうであろう。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여, 인간은 모두 자기의 진아(眞我)을 통해서, 신불(神佛)이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믿을 수 있게 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속으며, 소중(大切)한 이 세상의 일생을,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하고 끝내 버리는 것이다.



진아(眞我)=남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바로 자기 자신을, 뜻합니다




この世には、金を集めたり、人を集めたり、言葉巧みに、やってのける人が多いのである。

이 세상에는, 돈을 모으거나, 사람을 모으거나,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해치우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とにかく、この世を終わったものは、この世に思いを殘すことは、旣に自縛靈(じばくれい)として、子子孫孫に迷惑をかけることになる。

어쨌든, 이 세상을 끝낸 사람(죽은 사람)은, 이 세상에 원한(思い)을 남기는 것은, 이미 자박령(自縛靈)으로서, 자자손손(子子孫孫)에게 폐(迷惑)을 끼치게 된다. 


이 문장에서 미혹(迷惑)은, "미혹"[①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②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팡하며 헤맴]이란 뜻이 아니며, ["폐"를 끼친다]는 뜻입니다




また、この世のものは、この世にその姿がないものに、思いを寄せてはならない。この世とあの世は、次元が違い、關係はないのである。從ってこの世的な、形のみの供養は一切不用なのである。いくら高價な線香、燈明を上げても、花を上げても、そのもの事態の理を知らなければ、虛榮とか世間體のみとなり、誰のために、何をしたの分からなくなるものだ。

또한, 이 세상의 것은, 이 세상에 그 모습(姿)이 없는 것에, 마음을 기울여서는(마음을 둬서는) 안 된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차원(次元)이 다르고(틀리고), 관계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적인, 형상(形)뿐인 것에 공양(供養)은 일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고가(高價)인 향(線香), 등명(燈明)을 올려도, 꽃을 올려도, 그것의 사태(事態)의 이치(理=이유)를 모르면, 허영(虛榮)이라든가 세상 사람에 대한 체면(世間體)뿐인 것이 되며,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한 것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この世とあの世は關係がない、と言っても、自分の親そして兄弟・姉妹・先祖に對しての、自分が今この世にいることに對しての、感謝を忘れてはなならい、この感謝こそが、最大の供養となるのである。この感謝とは、日日の生活の中で、萬生萬物と共に、協力協調、己の業を修正し、心をより淨化することなのである。 

이 세상과 저 세상은 관계가 없다, 라고 말해도, 자신의 부모(親) 그리고 형제(兄弟)와 자매(姉妹)와 조상(先祖)에 대한, 자신이 지금 이 세상에 있는 것에 대한, 감사(感謝) (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이 감사(感謝)야말로, 최대(最大)의 공양(供養)이 되는 것이다. 이 감사(感謝)란, 매일의 생활 속에서, 만생만물(萬生萬物)과 함께, 협력(協力) 협동조화(協調), 자기 자신(己)의 업(業)을 수정(修正)하고, 마음을 보다 정화(淨化)하는 일인 것이다.







物の怪の存在

((사람을 괴롭히는 사령(악령=귀신)의 존재))




一九七四年二月、師と共に、京都で一泊をした時のことである。一行六・七名であった。夜中の十二時近く、師が私達の部屋に來られ、

1974년 2월, 스승님과 함께, 도쿄(京都)에서 1박을 했을 때의 일이다. 일행은 6~7명 이었다. 한 밤중의 12시 가까이에, 스승님이 저희들의 방으로 오셔서,



「お化けが出て、寢むれないのだが、誰か一緖に、私の部屋で寢てくれませんか」

「도깨비(お化け)가 나와서, 잠잘 수 없는데, 누가 같이, 내 방에서 자 주지 않겠습니까?」



誰一人として、返事をするものがいない。仕方がないわけではないが、

누구 한 사람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하는 수 없지만, 



「私が泊まります」

「제가 자겠습니다」



「すみません!」

「미안합니다!」




師は棟違いの離(はな)れに、寢泊まりされていた。師と一緖に外に出た。

스승님(師)은 지붕면의 처마끝이 같고, 용마루의 높이가 다른 지붕(棟違い)의 외따로 떨어진 집에서, 숙박하고 계셨다.  스승님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これは、いけない」と、身體全體で、甚というか、そう受け取るものがあった。部屋に入った。

「이것은, 안 되는데」라고, 몸 전체로, 심하다고 하는지, 그렇게 받아 들이는 것이 있었다. 방에 들어갔다.



「いよいよこれは、いけない」であった。

「정말로 이것은, 안 되는데」였다.



「私は鼾(いびき)をかきますので、お互いに反對に休みましょう」

「나는 코를 골기 때문에, 서로 반대로 잡시다」



「はい」

「네」



私は、それどころではない。早く布團を、かぶりたい氣持で一杯であった。

나는, 도저히 그럴 상황은 아니다. 빨리 이불(布團)을, 머리 위에 뒤집어 쓰고 싶은 기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幕末(ばくまつ)の勤皇(きんのう)の志士(しし)なのか、佐幕(さばく)の志士(しし)か、はたまた、その前の時代の武士なのか、いずれにせよ、京都の歷史は、千數百年に遡(さかのぼ)る。

에도 막부(江戸幕府)의 말기(幕末=1853년 페리 내항 후)의 조정(천황)을 위해서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 타도를 도모한 높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幕末の勤皇の志士)인지, 에도막부(江戸幕府) 말기에 손노우죠우이(尊王攘夷)‧ 도우바쿠(討幕)에 반대하여 막부(幕府)의 정책을 이해하고 이것을 도왔던 지사인지((佐幕の志士)), 혹은 아니면, 그 전 시대의 무사(武士)인지, 어쨌든 간에, 도쿄(京都)의 역사는, 천 수백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思えば、どれだけの人人が、その時代を恨み、人を恨み、この世を去ったのか、分からないものがあるだろう。

생각하면, 어느쪽의 사람들이, 그 시대를 원망하고, 남을 원망하고, 이 세상을 떠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障子(しょうじ)に、その姿が映しだされている。外の砂利(じゃり)を、氣忙しく踏(ふ)む音、障子(しょうじ)の棧(さん)に、刀(かたな)の鞘(さや칼집)があたる音がする。

미닫이문(障子)에, 그 모습이 비치고 있다. 밖의 자갈(砂利)를, 부산하게 밟는 소리, 미닫이문(障子)의 여관(棧=창고)에, 허리에 차는 큰 칼이 부딪치는소리가 난다. 



"カタ、カタ、カタ"

"철컥 철컥 철컥"



人の聲がする。 

사람의 목소리가 난다. 



「待て!!」

「기다려!!」



もうここ迄來たら、私の心は限界であった。布團をかぶるなと言われても、かぶってしまうであろう。

이미 여기까지라면, 나의 마음은 한계(限界)였다.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 쓰지 말라고 (스승님이 나에게) 말해도, 뒤집어 쓰고 말았던 것이다. 



朝が來て、昨夜何があったのか、噓のようであった。

아침이 되어, 어젯밤 무슨 일 있었나, 거짓말 같았다.



「おはようございます」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おはようございます。昨夜は、寢れましたか」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어젯밤은, 잘 주무셨습니까?」



何と返事をしてよいか、分からなかった。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師は、殆ど寢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とのことであった。この事は、朝、皆さんと顔をあわせた時も、その後も、師も私も、一言も喋らなかった。今でも、何故だったのか分からない。

스승님은,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아침에, 여러분과 얼굴을 대했을 때도, 그 후에도, 스승님도 나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왜 그랬었는지 모른다.




また、一九七四年八月に、初めて山籠(やまごも)りを、七日間の豫定にし、行ったのである。勿論、山の中の一軒家で、反省するなど、初めてである。

또한, 1974년 8월에, 처음으로 산 속에 틀어박혀 수행을 하는 것(山籠)을, 일주일간 예정을 하고, 갔던 것이다. 물론, 산 속의 외딴집에서, 반성하는 따위는, 처음이다. 



知人のK氏の別莊を、お借りしたわけである。丁度長野縣と山梨縣の縣境(けんざかい)である。

지인(知人)인 K씨의 별장(別莊)을, 임대했던 것이다. 마침 (중부 지방 중앙부 내륙에 있는) 나가노 현(長野顯)과 (중부 지방 남동부 내륙의 있는) 야마나시 현(山梨縣)의 현의 경계(縣境)이다. 



K氏の案內で、午後三時頃に倒着した。邊りは、土や草木の匂いで一杯である。山特有の匂いと空氣が、何とも言えないものがあった。

K씨의 안내로, 오후 3시경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흙이나 초목의 냄새(匂い=향기)로 가득 차 있다. 산 특유의 냄새(匂い)와 공기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それ迄は、よかったのであるが、案內のK氏が、まず錠(じょう)を鍵(かぎ)で、ガチャン。中に入れれた。續いて私も入ったのであるが、一步足を踏み入れた時に、異狀を感じとったのである。靈的反應である。居室は二階になっている。六疊くらいの板の間、台所、トイレ、奧は八疊の疊の部屋、その前が机)つくえ)と倚子(いす)を一つおいてあるベランダ、よく見ると、戶袋 (とぶくろ)などは、啄木(きつつき)に突かれて、穴だらけである。

그때까지는, 다행이었지만, 안내하는 K씨가,먼저 자물쇠를 열쇠로, 찰카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나도 들어간 것이지만, 한 걸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 이상함을 느꼈던 것이다. 영적 반응(靈的反應)이다. 방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여섯 다다미(疊)정도의 마루방(板の間), 부엌(台所), 화장실(トイレ)、안쪽은 8 다다미(疊)가 깔린 다다미 방, 그 앞에 책상과 의자를 한 데 모아 둔 베란다, 자세히 보니, 두껍닫이(戶袋=덧문을 넣어두는 곳) 따위는, 딱다구리(啄木)가 파먹었는지, 구멍투성이이다. 



★다다미[ 畳,疊 ]  ①(속에 짚을 넣은) 일본식 돗자리 ② 거적 ③ 깔개 

とぶくろ[ 戸袋 ]  ① 두껍닫이 ※열어둔 덧문을 수납하기 위해 툇마루의 문지방 가장자리에 만들어 놓은 곳.



まず一息入れ、疊の部屋に座った。途端(とたん)に、K氏と私の前を、過(よぎ)るものがあった。

어쨌든 한 숨 돌리고, 다다미 방에 앉았다. 순간, K씨와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K氏が食事の用意を始められた。私はお手傳(てつだい)をする前に、少少の時間をとり、心の中でまず、 

K씨가 식사(食事) 준비(用意)을 시작했다. 나는 도와 주기 전에, 약간의 시간을 내어, 마음속으로 우선, 



「この別莊そして、この週邊(しゅうへん)に住んでいる、地薄靈(じばく)、動物靈よ、本日より七日間の日程にて、當所に於いて、反省・禪定(ぜんじょう)をするので、邪魔をしないでもらいたい」

「이 별장(別莊) 그리고, 이 주변에 살고 있는, 지박령(地薄靈), 동물령(動物靈)이여, 오늘(本日)부터 7일간의 일정으로, 현재의 장소(當所)에서, 반성(反省)・선정(禪定)을 할 것이기 때문에, 방해(邪魔)를 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と語りかけた。それから食事の準備を手傳い、五時頃K氏とご一緖に食事をとり、夕方六時近くK氏は歸って行かれた。

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식사 준비를 돕고, 5시경 K씨와 함께 식사를 차리고, 저녁때 6시쯤에 氏는 집으로 돌아갔다.



夜分は、山獨特(どくとく)の木の葉、土の勾いで、何となく、自然の中に居ることを感じとったものである。九時頃より約一時間の反省、禪定で、十一時頃床に入った。

밤중(夜分)は、산 특유(山獨特)의 나무잎, 땅 냄새로, 왠지, 자연 속에 있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9시경부터 약 1시간 정도의 반성, 선정을 하고,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翌朝七時頃眼を覺ました。屋根(やね)の上を、何ものが步くのか、ポコンポコンと、斜(なな)め前後左右に、步き廻るものがいる。トタン屋根(암석지붕)のため、音も大きく聞こえる。

다음날 아침 7시경에 잠에서 깼다. 지붕(屋根) 위를, 누군가가 걷는지, 뽀드득 뽀드득 거리며, 비스듬히 전후좌우로, 걸어 다니는 것이 있다. 암석지붕(トタン屋根)이기 때문에, 소리도 크게 들린다.



「何だろう、猿(ざる)でもいるのかな」

「뭐지, 원숭이라도 있는 건가?」



一人言(ごと)いながら、外に出て、屋根を見たが、木立ちの間を通し、夏の空が見えるだけで、何も見當たらない。

혼자 중얼거리면서, 밖으로 나가, 지붕을 쳐다보았지만, 나무숲(木立ち) 사이를 통해서, 여름 하늘이 보일뿐이고, 아무것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氣のせいなのかな」

「기분 탓이었나」



また一言である。

또 다시 중얼거렸다.



家の中に入った。暫(しばら)くして、また音がする。もう一度外に出てみた。何の變化もない。廊下のような板張りの處で、師のテープを聞きしたり、反省をしているうちに、夕方になった。夕食を終えた時は、もう薄(うす)ぐらくなっていた。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뒤, 다시 소리가 난다. 다시 한 번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다. 복도(廊下)와 같은 판자로 된 곳에서, 스승님(師)의 테이프를 듣거나, 반성을 하고 있는 사이에, 저녁때가 되었다. 저녁 식사(夕食)을 마쳤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そのうち、何處からともなく、生臭(なまぐさ)い臭(にお)いがして來た。最初はトイレの、臭氣(しゅうき)かと思い、トイレの戶を開けてみた。トイレの臭氣とは違うようである。あまり氣にもとめず、反省、禪定を終え、十時過ぎに床に入った。バタンキューである。疲れがでたのであろう。

그러고 있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난데없이, 피비린내와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最初)에는 화장실의, 악취(臭氣)인가 해서,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화장실의 악취와는 다른 것 같다. 그다지 개의치 않고, 반성, 선정(禪定)을 마치고, 10시가 지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ところが、二時間ばかりで、目が覺めてしまった。先刻からの臭氣が、强烈過ぎたのであろう。時計を見たら、午前十二時を少し過ぎていた。

그런데, 2시간쯤에, 잠에서 깨 버렸다. 아까부터 악취가, 너무나도 강렬하게 났던 것이다. 시계를 봤더니, 오전 12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臭いは、次第に强烈(きょうれつ)になって來た。目頭(めがしら)の痛みはひどく、淚が出て止まらない。臭いで目が痛くなるなど、考えてみたこともなかったのである。

냄새는, 점점 강렬하게 나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몹시 아파서, 눈물이 나서 멈추지 않는다. 냄새로 눈이 아프게 된다는 일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外も同じような臭いかと思い、戶を開けてみた。しかし外は、草、木の葉、土と、ごく山の自然の勾いだけ、邊(あま)りは、シーンと靜まりかえっている。隣室も臭うのではと、戶を開けてみたが、何も臭わない。私がいる部屋だけである。布團を頭からかぷって、寢よう寢ようと思うが、なかなか寢つかれない。そのうち寢てしまったのであろう、氣がついたら、すっかり朝であった。夏の太陽が、燦燦(さんさん)と樹木(じゅもく)の間を通し、照り付けている。

집밖(外)에도 같은 냄새가 날까 생각해서, 문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밖에는, 풀(草), 나뭇잎(木の葉), 흙(土)과, 산언저리(ごく山)의 자연의 향기(勾い)뿐이고, 주위에는, 풍경(scene)처럼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옆방도 냄새가 날까 해서, 문을 열어 보았지만, 아무런 냄새도 없다. 내가 있는 방뿐이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자려고 잠을 자려고 생각하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잠들어 버렸던 것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여름의 태양이, 찬란하게 수목(樹木) 사이를 통해서, 내리쬐고 있다. 



三日目が來た。朝から屋根を步く音が、始まった。そんなことに構っていたのでは、何をしに來たか分からなくなる。外に出ての運動そして食事以外は、師の著書を讀み、反省、禪定と、師のテープの拜聽と、豫定通りに時間は過ぎた。

3일째가 되었다. 아침부터 지붕을 걷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런 일로 마음을 쓰고 있어서는, 무엇을 하려 왔는지 모르게 된다. 밖으로 나가서 운동(運動) 그리고 식사(食事)을 하는 것 이외는, 스승님(師)의 저서(著書)을 읽고, 반성(讀み)하고, 선정(禪定)하며, 스승님(師)의 테이프를 배청(拜聽)하며, 예정대로 시간은 지나갔다.



夕方になり、夜が訪れた。氣が付くと、屋根の音が、夜になっても、止(と)まらない。少少氣にはなるが、この夜も就寢した。

저녁때(夕方)가 되어, 밤이 찾아왔다. 생각이 미쳐서, 지붕의 소리가,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약간 마음에 걸리지만, 이 밤도 취침(就寢)했다.



しかし、夜中に目を覺ましてしまった。というより、起こされたのである。部屋が、强烈な臭いである。と同時に、私の側に、何か分からないが、立っているのである。姿が見えない。そんなこんなで、とうとう起きてしまった。

하지만, 밤중에 잠이 깨고 말았다. 잠이 깼다고 하기 보다, 깨워서 일어났던 것이다. 방(部屋)이, 강렬한 냄새다. 그것과 동시에, 내 옆에, 뭔지 모르지만, 서 있는 것이다. 모습이 안 보인다. 이래저래 해서,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臭いを、出しているものよ、姿を現わしなさい」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여, 모습을 드러내시오」



大きな聲で、問い掛けた。姿は見せないが、臭いは激(はげ)しくなるばかり、目もあいていられない。暫(しばら)くして、

큰 소리로, 묻기 시작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냄새는 심해질 뿐이며, 도저히 참고 볼 수 없다. 잠시 후, 



「よし、來るなら來い」

「좋다, 그렇게 나온다면 그렇게 해라」



肝に銘じ、部屋を廻りはじめたのである。守護靈が、私の意識にコンタクトをして、敢然(かんぜん)として、その物の怪に對し、立ち向かっているのが分かった。部屋の床(とこ)の前に、正座をした。心を靜め、目を輕く閉し、深呼吸を始めた途端(とたん)、この世では臭ぐことの出來ない、お香の薰(かお)りが、私お全身を包み始めた。惡臭(あくしゅう)は、卽座に消え失せてしまった。

골수에 새기고, 방을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호령(守護靈)이, 내 의식(意識)에 콘택트(접촉)을 해서, 엄연하게, 그 귀신(物の怪)에 대해서, 맞서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방 바닥(床) 앞에, 정좌(正座)를 했다. 마음을 조용하게 해서, 눈을 가볍게 감고, 심호흡을 시작하자마자, 이 세상에서는 맡을 수 없는,향내(お香の薰)가, 내 몸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악취(惡臭)는, 즉석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錯覺なのかな」

「착각이 아닌가」



錯覺ではない。確かに。お香の薰りである。少少心が樂になった。次に私の口から、朗朗(ろうろう)とお經が流れだしたのである。

착각이 아니다. 확실히, 향내다. 좀 마음이 즐거워졌다. 다음에 내 입에서, 낭랑하게 경문이 흘러 나왔던 것이다. 


★참고로,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수호령이,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란 점을, 참고 바랍니다.




しかし、敵も、そう簡單には、引き下がらない。お經を唱えながら、部屋中を廻りはじめた。廻っていると、臭いは消え、物の怪の氣配(けはい)は感じない。

하지만, 적(敵)도, 그렇게 간단하게는, 물러나지 않는다. 경문(お經)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방 안을 돌기 시작했다. 돌고 있자, 냄새는 사라지고, 귀신(物の怪)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守護靈(しゅごれい)に、

수호령(守護靈)에게,



「一體、何がどのようになっているのか」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聞いてみた。守護靈曰く。

물어 보았다. 수호령이 말씀하시길.



「魔王(まおう)が、自縛靈(じばくれい)や動物靈、特に大蛇(だいじゃ)を從(したが)えて、汝(あなた)を追(お)い出そうとしている。恐らく姿は、見せないであろう。また見る必要はないと思われる」

「마왕(魔王)이, 자박령(自縛靈)이나 동물령(動物靈), 특히 큰뱀(大蛇=이무기, 큰 구렁이)을 대동하고, 너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다. 필시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볼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고맙습니다」



それを聞いてから、下腹に力を入れた。そして自分に言い聞かせた。

내막을 듣고나서,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깨우쳐 주었다. 



「こんなことに、音(ね)を出してたまるか。最後まで頑張れ」

「이런 일로, 소리를 지를텐가. 마지막까지 힘내라」



そう言いながら、また部屋を廻りだした。部屋の片隅(かたすみ)に洋服箪笥(ようふくだんす)があった。變なもので、この洋服箪笥だけは、とうとう、開けて見ることが出來なかった。開けて何か、飛び出して來るような、氣がしたのである。後で自分の臆病(おくびょう)に、呆(あき)れてしまったのだ。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방을 돌기 시작했다. 방 한구석에 양복 옷장(洋服箪笥)이 있었다. 이상한 일로, 이 양복 옷장만은, 끝내 열어 볼 수 없었다. 열면 뭔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나중에 내 자신이 소심함에(겁이 많음에), 어이가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臆病(おくびょう)の自火(じか)に責(せ)めらる

겁 많은 사람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무서워하며 괴로워하다




このことは最後日、山を降りながら、おかしくて、おかしくて、立ち止まって、腹を捕えて笑ってしまった。

이 일은 마지막날, 산을 내려오면서, 웃기고, 웃켜서, 걸음을 멈추고, 배를 잡고 웃고 말았다.



床(とこ)を敷き、寢ようとする。と强烈(きょうれつ)な臭いである。側に物の怪がいる。肌でよく感じる。どうしても、その姿を見せない。守護靈が言っていたように、見なくても、よかったのではなかろうかと思った。

자리(床)를 깔고, 자려고 한다. 그 정도로 강렬한 냄새다. 옆에 귀신(物の怪)이 있다. 피부(肌=몸)으로 잘 느낀다. 아무리 해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수호령(守護靈)이 말한 것처럼,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とにかく、七泊八日の日程が終わった。

어쨌든, 7박 8일이 일정이 끝났다.



物の怪の、屋根を步の音、强烈な臭いは、最後まで續いてしまったのである。よくこんな處で、反省、禪定をしていたものである、と我ながら感心をした。しかし、この思いは、

귀신(物の怪, 악령)이, 지붕을 걷는 소리, 강렬한 냄새는, 마지막까지 계속되고 말았던 것이다. 용케도 이런 곳에서, 반성, 선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고 내가 생각해도 감탄했다(기특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試され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と言うものが、心の隅にあったので、頑張っていたのかも知れない。

「시험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라고 하는 것이지만, 마음의 한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뻗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歸る日に、持參した、テープ、師の著書、筆記用具、着替え等を、リュッサックに入れ、背負った。これが、とても重く感じたのである。

돌아오는 날에, 지참했던, 테이프, 스승님의 저서, 필기 도구(筆記用具), 갈아입을 옷 등을, 륙색에 넣고, 짊어졌다. 이것이, 아주 무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歸宅をして、早速體重を計ってみた。何と、二キロ減っていたのには驚いた。

귀가(歸宅)을 하고, 즉시 체중을 달아 보았다. 어허, 2킬로나 줄어 있었던 것에 놀랐다. 



翌朝、師にお會いした時に、その時の狀況を說明して、

다음날 아침에, 스승님을 뵈었을 때에, 그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先生、私は試されたのでしょうか」

「선생님, 저는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師は、

스승님(師)은, 



「朽木さん、それは試されたのではなく、本物だよ。魔王や自縛靈、そして大き

な蛇、直徑が約一米から二米はあった」

「쿠치키(朽木)씨, 그것은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진짜(本物)이지요. 마왕(魔王)이나 자박령(自縛靈), 그리고 큰 뱀, 직경(直徑)이 약 1미터에서 1미터는 됩니다」



と、師は手を廣げ、こんなに太かったと、敎えて下さった。そして、

라고, 스승님은 손을 벌리고, 이렇게 굵은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よくそんな處に、一週間もいたものだね。魔王は、あなたを追い出そうとしていたんですよ」

「훌륭하게 그런 곳에서, 일주일 동안 있었던 것이지요. 마왕(魔王)은, 당신을 쫓아내려고 했던 것이지요」



そのように付け加れられた。

그렇게 덧붙였다.



子供の頃、一人でトイレにも行けなかった程の、臆病であった私が、何故にと、思うものである。

어린 시절(子供の頃)에, 혼자서 화장실도 가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았던 내가, 어째서인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後日K氏に、お禮を申しあげた時は、物の怪のことは、話すことが出來なかった。しかし、私の話を聞けれた、K氏に話をされたそうで、それから幾年もしないうちに、別莊を賣却されたそうである。

훗날 K씨에게, 氏に、감사의 말씀을 드렸을 때는, 귀신(物の怪)에 관한 것은,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었던 일을, K씨에게 말을 하신 모양인지, 그후 몇 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별장(別莊)을 매각(賣却)하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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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章 心こそ己の王國

[제7장 마음이야말로 자기의 왕국]



神佛は賴り縋るものに非ず

(불교는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この世の、俗に言う宗敎とは、人間が造り出した、木物・金物の佛と稱するものや、お禮を拜んだり、祀ったり、他力信仰のそれがすべてであろう。なかには、俺は神だとか佛だとかと、言い出すものもいる。それらはもはや、眞面(まとも)なものではない。

이 세상의, 세간에서 말하는 종교란, 인간이 만들어 낸, 목제품(本物)・금속제품(金物)의 부처(佛)라 칭하는 것이나, 예배하며 합장 배례하거나, 신으로 받들어 모시거나 하며, 타력신앙의 그것이 전부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 중에는, 나는 신(神)이다라든가 부처(佛)다라고 하든가 하며, 말하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남김없이 바른 것(眞面)이 아니다. 



佛敎やキリスト敎にしても、いつの間にか哲學となったり、そのための學者が生まれたり、特定の者のための佛敎・キリスト敎に、なってしまっている。

불교(佛敎)나 크리스도교(敎)라고 해도, 어느새인가 철학으로 되어 버리거나 해서, 그것을 목적으로 학자(學者)가 태어나거나 하여, 특정한 사람을 위한 불교(佛敎)・크리스도교(敎)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佛敎などは、專(もっぱら)、この世を去った亡者の爲のもののように、思われている。

불교(佛敎) 등은, 오로지(한결같이), 이 세상을 떠난 망자(亡者)을 위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 



師は、文證・理證・現證の三つの證をもって、それこそ命を投げ出して、本當の神佛の道を說かれ、自らず言された、四十八歲で今世を去られた方であった。

스승님(師)은, 문증(文證)・이증(理證)・현증(現證)의 세가지의 증거를 가지고,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진실(진짜)한 신불(神佛)의 길(道)을 설명하시고, 몸소 말하신 대로, 48세에 이 세상을 떠나신 분이었다. 



その敎えは、

『この世は、魂としての人間の心の修行の場であり、萬生萬物の根元は、四次元以降の心の世界に、存在するものである』

と言う、敎えであって、釋尊の敎えそのものであった。

그 가르침은, 

『이 세상은, 영혼(魂)으로서의 인간의 마음의 수행(修行)의 장소(場)이며, 만생만물의 근원(根元)은, 4차원 이강의 마음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가르침이었으며, 석존(釋尊)의 가르침 바로 그것이었다. 



しかるに、現代の佛敎一つ見ても、その專從者のすべてを見ても、悉(ことごと)く華美に流れ、これを二千五百年の時の流れとして、片付けられ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今こそ地球上の人類は、すべて佛の敎え、神の道に、歸依すべきでは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그런데, 현대의 불교 하나만 보아도, 그 전종자(專從者) 전부를 보아도,모조리 지나치게 화려해지고, 이것을 2천 5백년의 시간의 흐름이라고 해서, 결말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지구상의 인류는, 모두 부처님(佛)의 가르침, 신(神)의 길(道)로, 귀의(歸依)해야 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佛の敎えが他力的となったのは、歷史からすると、龍樹菩薩が、佛の敎えを、解(げ)せないところは省(はぶ)き、むずかしい他力的なものにしたのが、始まりのようである。

부처님(佛)의 가르침이 타력적이로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생략하고, 어려운 타력적인 것으로 삼은 것이, 시초(발단)인 것 같다. 



佛は諸諸の衆生に對し、大學に行かなければ、分からないような、むずかしいことを、また、神佛に賴り縋りさえすれば、皆は救われるなどと、說かれたはずがない。現代の佛敎とは、一體何なのであろうか。この世には七不思議というものがあり、その中の一つなのかも知れない。とても解(げ)すことの出來ないことが多いのが、この世なのかも知れない。

부처님(佛)은 모든 중생에 대해서, 대학교(大學)에 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어려운 것을, 또한, 신불(神佛)에게 의지하고 의존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皆)은 구제(구원)된다고 하는 따위는, 설명하셨을 리가 없다. 현대의 불교란, 도대체 무엇인 것일까? 이 세상에는 7대 불가사리(七不思議)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것이, 이 세상인지도 모른다. 



ますます、佛の敎えは、一般の人人と遠く離れてしまい、唯唯(ただただ)、拜み縋れば救われると。

더욱더, 부처님(佛)의 가르침은, 일반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버리고, 오로지, 합장 배례하고 매달리면 구원된다고. 



神・佛は縋るものと思い込んでしまっている人間とは、何と勝手なものなのであるう。こんなことを思っているので、その隙から心に、何ものかに入り込まれて、人間としての進路を、間違えてしまうものである。

신(神)・부처(佛)는 의존하는(매달리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 버리고 있는 사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 제멋대로인 것일까?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이(틈)에서 마음에, 무엇인가에 깊속이 파고들게 되어, 인간으로서의 진로를, 잘못해 버리는 것이다. 



しかし一般には、自分の生活が、自分の思うようになっている時は、神や佛を思いもしない人が、非常に多いし、神や佛は、困った時に、救ってくれるものと思っている。當然、困ったことの原因など、知ろうなど、微塵(みじん)も思っていない人が多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생활이, 자신의 생각대로 되고 있을 때는, 신(神)이나 부처(佛)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상당히 많고, 신(神)이나 부처(佛)는, 어려울 때(곤란할 때)에, 도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연히, 곤란한 일의 원인 따위는, 알려고 하는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 



人間この世の苦樂・幸不幸すべては、結果であり、必ず原因が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인간이 이 세상의 고락(苦樂)・불행과 행복(幸不幸)의 모든 것은, 결과이며,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神佛は尊ぶものであり、賴り縋るものではない。人間困ったとき、救ってくれるのは、神佛の子である、己自身の全なる心であ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

신불(神佛)은 공경하는 것이며,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어려울 때(곤란한 경우)에, 도와 주는 것은, 신불(神佛)의 자녀(子)인, 자기 자신의 온전한 마음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心のすき

(마음의 빈틈(허점))



最近、非常に多くなっている病氣の中に"自分の中の他人"と言うのがある。

최근에, 상당히 많아지고 있는 병(病氣) 중에"자기 마음속의 타인"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關西地方に、こんな人がいた。

간사이 지방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眼は大きくぎらぎらと、一点を見据え、何にも言わず、一言も喋ろうとはしない。

눈(眼)은 크고 번들번들하고, 한 군데를 계속 보며, 아무말 없이, 한 마디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身長は、一米八十糎はあるだろう。體重は八十キロはありそうである。何となく異樣な感じがする。

신장(身長)은, 1미터 80센치미터는 될 것 같다. 체중(體重)은 80킬로는 되는 모양이다. 어쩐지 이상(異樣)한 느낌이 든다. 



伴(ともな)って來られたのは、父親である。これまた、吹けば飛んでしまいそうな、小柄な方である。よく付いて來たものである。

데리고 오신 분은, 부친(父親)이다. 이 또한, 블면 날아가 버릴 듯한, 몸집이 작은 분이다. 잘 데려 오신 것이다. 



この若者、

「いくつですか」

「二十六歲です」

どう見ても、精神分裂症の樣相を呈している。 

이 청년은, 

「몇 살입니까?」

「스물 여섯살입니다」

보아하니, 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의 양상(樣相)을 띠고 있다. 



親が子供を思う心、それはたとえ、その子供が、どんな狀態であろうとも、

「何とかしてやり度い」

これは、人情である。

부모님(親)이 자식(子供)을 생각한느 마음, 그것은 설며아, 그 자식(子供)이, 어떤 상태(狀態)일지라도, 

「何とかしてやり度い」

「어떻게든 해 주고 싶다」

이것은, 인정(人情)이다. 



しかし、精神的な病氣は、特に育つ環境によって、造り出すことが多いのである。從って、そう簡單には、醫學によっても、どうにもならないのが、現狀なのである。表面は息子で、行動や言葉が息子ではないことが多いのである。そして、これらを通してみると、これは諸現象を、積(つ)み重(かさ)ね、表面に浮きでた結果なのである。當然の如く原因があると、言うことである。

하지만, 정시적인 병(病氣)은, 특히 자라는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 내는 일이 많은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간단하게는, 의학(醫學)으로도,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이, 현상(現狀)인 것이다. 겉보기(表面)에는 자식(息子)이며, 행동(行動)이나 말이 자식(息子)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보면, 이것은 모든 현상(諸現象)을, 겹겹이 쌓아 올려서, 표면(表面)으로 나온 결과인 것이다. 당연히 이와 같이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な点から、この方の家庭を見ると、子供は、この息子さんが一人である。夫婦は、結婚後暫くしてから、仲が惡く、當然いまも、不調和そのもので、息子さんの病氣も、そうした夫婦の日日の生活態度を見ながら、徐徐に、心の中に造り出して來たのである。

이와 같은 점에서, 이 분의 가정을 보면, 자식(子供)은, 이 아드님(息子さん)이 혼자이다. 부부(夫婦)는, 결혼후 잠시 뒤, 사이가 나빠지고, 당연히 지금도, 부조화(不調和) 그 자체이며, 아드님(息子さん)의 병(病氣)도, 그러한 부부의 매일의 생활 태도를 보면서, 서서히, 마음속에 차츰 만들어 내어 왔던 것이다. 



「何とからないものでしょうか」

「어떻게든 안 되겠습니까?」



これは、現實にどうしょうも無い、手の施す術が無いということである。ただ一つ、このような病氣に冒されないように、日日の生活の中で、自ら心を淨化する以外に、術は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이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오직 한가지, 이러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매일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이외(以外)에, 방법(術)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な、精神分裂症の患者を收容している、精神病院の醫者でも、患者を集れば、金にはなるかも知れない。しかし、そうした患者の靈域に負けて、自らも精神病になり、一生を終えてしまう例が、多いのである。

이러한, 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 환자(患者)을 수용(收容)하고 있는, 정신병원(精神病院)의 의사(醫者)라 해도, 환자가 모여들면, 돈(金)로는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환자의 영역(靈域)에 져서, 의사 자신도 정신병(精神病)에 걸려, 일생을 끝내 버리는 예(例)가, 많은 것이다. 



この父親は、勤め先の會社より、退職金を前借(まえが)りまでして、あちらの病院、こちらの宗敎と、散散(さんざん)廻ったが、結局はどうにもならなかったと言われる。

이 부친(父親)은, 근무하고 있는 곳(勤め先)의 회사(會社)에서, 퇴직금을 가불(前借り)해서, 저쪽 병원, 이쪽 종교, 온통 돌아다녔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신다. 



病院でも、宗敎にしても、どうにもならないのが、現實なのである。宗敎では、拜ませたり祀らせたり、終いには、

병원도, 종교(宗敎)로서도 역시,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종교에서는, 합장 배례케 하거나 신을 받들어 보시게 하거나 하며, 끝내는, 



「信心が足りないからだ」

「믿음(信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と、これで片付けてしまう。こんな無責任な、恐ろしいことは、言うわけには行かなのではあるまいか。

라고, 이렇게 처리해 버린다. 이런 무책임한, 무서운 말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このような病氣は、すべて心が造り出すものであり、治療方法は、自らの心の歪(ゆが)みであることを、發見することにあるのである。

이러한 병원은, 전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며, 치료 방법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성격 등의 비뚤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母親の方は、行者信仰の虜(とりこ)となって、ひたすら、子供のために、信仰にのめり込み、それに加えて、その信仰に掛かる費用の捻出に、狂奔(きょうほん)されているとのことである。

모친(母親)인 분은, 행자신앙(行者信仰)의 포로(虜)가 되어, 오로지, 자식(子供)을 위해서, 신앙에 열중하며(빠져 들어), 거기에 더하여, 그 신앙에 걸리는 비용(費用)의 염출(捻出)에, 광분(狂奔)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よく話を聞いてみると、若いうちから、生命保險の外交員をしておられ、收入も大分よく、父親の收入などは、とても問題ではなかったようである。そんなことで、氣儘な生活をしていたようである。

자세히 말을 들어 보면, 젊을 때부터, 생명보험의 외무 사원(外交員)을 하고 계셨고, 수입(收入)도 대체로 좋고, 부친(父親)의 수입(收入) 등으로는, 그다지 문제가 없없던 모양이다. 그런 일로,제멋대로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しかし、七年前に、この息子が發病をした時に、救いのすべてを、信仰に委(ゆだ)ねしまったのである。

하지만, 7년 전에, 이 아들(息子)이 발병(發病)을 했을 때에, 구제(救い)의 모든 것을, 신앙에 맡겨 버렸던 것이다. 



そして、この敎團の本尊である、神に伺いを立てたところ、

「あなたの家は、五代前の先祖から、代代崇っているので、精神病が出ているのだ」

と言うことであったそうである。

그리고, 이 교단(敎團)의 본존(本尊)인, 신(神)에게 여쭈어서 지시를 받았더니,

「당신의 집(家)은, 5대(五代) 전의 조상(先祖)때부터, 대대(代代)로 재앙(앙화)이 있기 때문에, 정신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どのようにしたら、救われるのでしょうか」

當然、このようになって來るのだ。この敎團の神の思う壺であったろう。

「어떻게 하면, 구제되는 것입니까?」

당연히, 이렇게 되어 오는 것이다. 이 교단의 신(神)의 예상대로 된 것일 것이다.



「あなたの一族で、五代前からの先祖の供養をしなければ、息子さんの精神病は、よくならないでしょう」

「당신의 가문 전체(一族)에서, 5대(五代) 전부터의 조상(先祖)의 공양(供養0을 하지 않으면, 아드님(息子さん)의 정신병(精神病)은, 좋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その供養は、どのようにしたら、よろしいのでしょうか」

「그 공양(供養)은, 어떻게 하면, 병세가 좋아지는 것입니까?」



「每月最低三十名の先祖を、一年間は、供養をしなければ、崇りは解消しません」

「매달(每月) 최저 30명의 조상(先祖)을, 1년 동안은, 공양(供養)을 하지 않으면, 재앙(崇り=앙화)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こんなことで、結局は三十名の、供養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ことに、なったのでそうである。しかも一名につき、一萬五千円也の費用が掛かると、言われたそうである。

이런 일로, 결국은 30명의, 공양(供養)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1명에 대하여, 1만 5천 엔정의 비용이 든다고, 말을 들었다고 한다. 



この母親は、よく計算をしたのか、しなかったのか、金策の自信があったのか、頭に血がのぼっていたのか、

이 모친(母親)은, 자세히 계산을 했던 것인지, 하지 못했던 것인지, 돈을 마련할 자신(自信)이 있었던 것인지, 머리에 피가 꺼꾸로 솟았던 것인지(흥분했던 것인지), 



「お願いします」

と言う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恐ろく崇りと言われて、怖ろしくなったのであろう。

필시 재앙(崇り=앙화)라고 말을 들어서, 무서워졌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父親の方は、

「これを聞いた時は、女房が計算違いをしたのではと、思いました。こんな計算は、子供でもしますよね。月に四十五萬円ですよ。考えただけでも、おかしくなりそうです」

부친(父親)께서는,

「이것을 들었을 때는, 아내(女房=처)가 계산을 틀리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계산은, 어린 아이(子供)라도 하는 것인데. 한 달(月)에 45만 엔이지요. 생각만 해도, 환장할 지경입니다」



それから、それでなくても不調和な家庭は、當然のように、空中分解である。母親の方は、それこそ家庭を忘れ、夫も忘れたかのように、金策に、後は、その宗敎に入りびたりと、ますますのめり込んでしまったのである。神でない神の恐ろしさには、言葉もない。世間には、こんな人が多いのではあるまいか。

그 후, 그렇지 않아도 부조화(不調和)한 가정(家庭)은, 당연하듯이, 공중분해이다. 모친(母親)은, 그야말로 가정을 잊고, 남편(夫)도 잊었던 둣이, 돈 마련으로, 나중에는, 그 종교에 붙어살면서,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신(神) 아닌 신(神)의 무섭다고 하는 데에는, 어이가 없다. 세간(。世間)에는, 이런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닐까?



迷える人の心に、食い込む惡靈である。

방황하는(길 잃은) 사람의 마음에, 깊숙이 파고 드는 악령(惡靈)이다. 



家庭の不調和は、この例の如く、知らない處で、知らない惡靈が、その不調和という、靈域に入り込み、その意識を支配しようと、絶えず狙っているのである。

가정의 부조화(不調和)는, 이런 일례처럼,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악령(惡靈)이, 그 부조화(不調和)라고 하는, 영역(靈域)에 깊숙이 파고 들어, 그 의식(意識)을 지배하려고, 끊임없이 노리고(엿보고) 있는 것이다. 



こうした結果は、他人のせいや、世間のせいにするわけには、行かないのである。

이러한 결과는, 타인의 탓이나,  세간(世間)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すべて、魂としての、自分が造り出すものなのである。

모두, 영혼(魂)으로서의,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인 것이다.



精神分裂症になると、一人の意識を、惡靈が三名も四名もで、使用をする狀態となるのである。よほど本人が、しっかりしなければ、本當の自分に戾れなくなるものだ。

정신분열증에 걸리면, 한 사람의 의식(意識)을, 악령(惡靈)이 3명이나 4명이, 사용을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무척 본인(本人)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진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それには、絶えず、自分の心を振り返り、少なくても兩親に對し感謝を忘れず、兩親始め他の人人に對し、恨みや憎みの心が、あっ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그것에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고, 적어도 양친(兩親)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양친(兩親)을 비롯한 사람들에 대해서, 원망이나 증오의 마음이, 있서는 안 된다. 



人間も萬生萬物と共に、輪廻を繰り返している。來世、この地球上に誕生をした時に、再び同じような、人生を送らないためにも、今という時の中で、心がより調和された人間になることが、大切なのである。

인간도 만생만물과 함께, 윤회(輪廻)을 되풀이하고 있다. 내세(來世), 이 지구상에 탄생(誕生)을 했을 때에, 다시 똑같은, 인생을 보내기 않기 위해서도, 지금(今)이라고 하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보다 조화(調和)된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大切)한 것이다. 



また、こうした悲劇を起こすことは、常日頃の家庭の調和された生活が、大切なのであり、佛の敎えとは、このような悲劇が起こらないための、心の敎えそのものなのである。醫學で言う、豫防醫學とも言うのであろう。

또한, 이러한 비극(悲劇)을 일으키는 것은, 평상시의 가정의 조화(調和)된 생활이, 중요(大切)하며, 부처님(佛)의 가르침으로는, 이와 같은 비극(悲劇)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가르침 그 자체인 것이다. 의학(醫學)에서 말하는, 예방의학(豫防醫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心の裁き

(마음의 재판)




師は絶えず論(さと)されておられた。

스승님은 끊임없이 잘 타이르고 계셨다. 



『いつ、どんな時でも、たとえ相手が、どんな人物であっても、爭(あらそ)いの心を起こしてはならない。それには、まず論爭をしてはなあらい』と。

『언제, 어떤 때라도, 설령 상대방이, 어떤 인물이라고 해도, 싸움(다툼=분쟁)의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것에는, 우선 논쟁(論爭)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人間誰しも、論爭になればなるほど、感情は高ぶり、己の心を見失うことになる。これは、己の心の魔の落し穴であり、その魔が仕掛てた罠(わな)なのである。そしてこれが、すべて己の心が、造り出したものであることを、知る者は少ない。

인간은 누구든지, 논쟁(論爭)이 되면 될 수록, 감정(感情)은 높아지고, 자기의 마음을 보는 것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것은, 자기의 마음의 악마(魔)의 함정(모략)이며, 그 악마(魔)가 수를 건 덫(올가미)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 자기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인 것임을, 아는 사람은 적다.



平和な日日を望み、それを目標に、生き續けているにも拘わらず、感情の起伏により、理性というブレーキ(brake)が利(き)かず、罠(わな)にはまり込んでしまう。 

평화로운 매일을 바라며, 그것을 목표로, 계속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기복(起伏)에 의해서, 이성(理性)이라고 하는 브레이크(brake)가 들지 않고, 함정에 빠져 버린다.  



果ては、心に不調和を來たし、後後までいやな思が殘るものである。そして人によっては、恨(うら)みや憎(にく)しみを、造り出してしまう人もいるのである。끝내는, 마음에 부조화(不調和)를 일으키고, 먼 훗날까지 불쾌한 느낌이 남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원망이나 미움(증오)을, 만들어 내어 버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世の中は、平和になると物が豊富になり、どんなものでも、どこからか湧き出るような、錯覺を起こしてしまうのではあるまいか。食べ物は、スーパーに行けば、無制限にあると思っている人も、澤山い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이 세상(世の中)은, 평화롭게 되면 물건(物)이 풍부해져서, 어떤 것이라도, 어디에선가 솟아 나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버리는 것이 아닌가?  먹을 것은, 슈퍼마켓에 가면, 무제한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働くことを嫌うにようになる。現にカードで生活をしている人もいると聞く。

일하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실제로 카드(Card)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듣는다.



こんな時代になると、人間は、勝手氣儘なことを言うようになる。また勝手氣儘な行動をとるようになる。

이러한 시대가 되면, 인간은, 제멋대로인 말을 하게 된다. 또한 제멋대로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現代の世相が、正にそうである。結果はその姿を見なくても、誰でも分かっ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平和、平和に押し潰(つぶ)されてしまうだろう。次には身勝手同志が、意見の相違から、感情の起伏(きふく)を起こし、爭いとなり、地球上の平和はどこへやらであってはならない。部族・民族・國と國との爭いが起こり、互いに殺戮(さつりく)を引き起こすことになるであろうし、今もすでに、その兆候(ちょうこう)を見せている。

현대의 세태(世相)가, 바로 그렇다. 결과는 그 모습을 보지 않아도, 누구든지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평화, 평화를 짓눌러 파괴해 버릴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입장과 편의만을 고려해서 행동하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가, 의견의 상위(相違)때문에, 감정이 기복(起伏)을 일으켜서, 싸움이 되어, 지구상의 평화(平和)는 어딘가로 보내 버려서는 안 된다. 부족(部族)・민족(民族)・나라(國)와 나라(國)와의 싸움이 일어나서, 서로 살육(殺戮)을 일으키게 될 것이고, 지금도 이미, 그 징후(兆候)을 보이고 있다. 



人類の歷史は、古今東西を問わず、好むと好まざるに拘わらず、こうしたことの繰り返しで、現在に至っている。

인류의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원하건 원하지 않건 상관없이, 이러한 일의 되풀이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その時間の流れの中で、權力者が生まれ、それぞれの民族を統率するために、規律や規則を造り、權力者の欲望を滿たすのみの結果を、生んで來たのである。正に、必要惡そのものとなってしまった。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권력자(權力者)가 태어나서, 각자의 민족을 통솔하기 때문에, 규율(規律)이나 규칙(規則)을 만들어, 권력자의 욕망(欲望)을 채우는 것만의 결과를, 낳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필요악(必要惡)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しかし、こうしたなかにも、少しの救いらしきものもあった。

하지만, 이러한 중에서도, 조금 바로잡을(도울) 듯한 것도 있었다.



それは、各集團の爭いを避けるために、一定の不可侵條約、結ぶ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그것은, 각 집단(集團)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일정한 불가침조약(不可侵條約)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やはり人間、心の片隅には、調和という、神の心が、心の深部に存在している證で、絶えず調和を求め、光明を目標に生きようとするものが、あったからに外ならなかったのであろう。

역시 인간은, 마음의 한구석에는, 평화(調和)라고 하는, 신(神)의 마음이, 마음의 심부(深部)에 존재하고 있는 증거(證)이며, 끊임없이 평화를 찾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광명(光明)을 목표로 살려고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しかし人間とは、本當に仕方のないもので、互いに自分の思うように、物事が進行しえいるうちは、僞りにせよ、形だけは、調和そのもののような姿を、見せあうものである。正に表面だけのことである。

하지만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것이며, 서로가 자신의 생각처럼, 매사(物事)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은, 거짓이든, 모양만은, 평화 그 자체인 듯한 모습을,서로가 보이는 체 하는 것이다. 바로 표면(表面)뿐인 것이다. 



この世は當然、相對的、陰陽の世である。表があれば裏がある。表面だけで納まる譯がない。表面では、本當なのかと思うくらい、惡口三昧、あってはならないことが、當然のように、個個の人人の日常生活の中にも、起きているものである。

이 세상(この世)은 당연히, 상대적, 음양(陰陽)의 세계(世)이다. 표면(表面)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정말일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남을 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개개인의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これが、その集團が大きければ、大きい程、思いが通らなければ、勸力や武力により、强者は弱者を押さえ込み、弱者は、今にみろ、いつかはやり返してやれと、調和の心など徐徐に消え失せ、互いの安全のための、協定など何處吹く風で、これこそ何處かへ吹き飛んで、より橫暴な權力者が誕生し、平和であったこの世が、一變してしまう。

이것이, 그 집단(集團)이 커지면, 커질수록, 생각이 통하지 않게 되면, 권력(勸力)이나 무력(武力)에 의해서, 약자(强者)는 약자(弱者)를 억누르고, 약자(弱者)는, 두고 보자, 언젠가는 받은 대로 되돌려 주겠다며, 평화로운 마음 따위는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서로의 안전(安全)을 위한, 협정(協定) 따위는 어디에서 부는 바람(吹く風)이며, 이야말로 어딘가로 단번에 사라져 없어지고(吹き飛ぶ), 보다 횡포(橫暴)한 권력자가 탄생해서, 평화였던 이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侵略をされたり、したり、歷史は繰り返している。これからも繰り返されるのであろうか。何故人間は、兩極端になってしまうのであろう。念と行爲が、善惡に拘わらず、その原因を造り出しているのである。

침략(侵略)을 당하거나, 하거나 하며,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앞으로도 되풀이 될까?  왜 인간은, 양극단(兩極端)으로 되어 버리는 것일까? 생각(念)과 행위(行爲)가, 선악(善惡)에 상관없이, 그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今現在の一秒の中にある、すべての姿は、これも、善惡・苦しみ樂しみの、いずれにせよ、その原因は、永い時流れの中で、自ら造り出した業そのものなのである。

지금 현재 1초(一秒) 속에 있는, 모든 모습은, 이것도, 선악(善惡)・괴로움과 즐거움(苦しみ樂しみ)의, 어쨌든 간에, 그 원인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업(業) 그것인 것이다. 



今の中で運び去られて行く、一秒という時の流れの重要性を、眞劍に學び取らねばなら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지금의 속에서 진척되어 가는, 1초(一秒)라고 하는 시간의 흐름의 중요성(重要性)을, 진지(眞劍)하게 배우지 안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多くの人人は、直接必要性の無いものには、實に無關心のものがある。

많은 사람들은, 직접 필요성의 없는 것에는, 실로 무관심(無關心)한 것이 있다. 



人間とは、物質とは、心とは、これに對する疑問すら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인간(人間)이란, 물질(物質)이란, 마음(心)이란, 이것에 대한 의문조차 없는 것이 아닐까?



そんなことより、人間誰しも、生まれて死んで終わりなのだから、少しでも樂しく、面白くやればよい、とする人が非常に多いようだ。また死んだら終わりと、言う人に限って、死後のことが氣になったり、死ぬ瞬間はどのようになるのであろう、と思っている人が、意外と多いものである。こうした思いは、死にたくないという、欲から起きているのであろうと思う。

그러한 일에서,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어서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즐겁고, 재미있으면 좋다, 라고 하는 사람이 상당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는 사람에 한해서, 사후(死後)의 일이 마음에 걸리거나 해서, 죽는 순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意外)로 많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죽고 싶지 않다고 하는, 욕심(欲)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佛敎の中に、死んだ者のすべては、あの世に閻羅大王(えんまだいおう)というものがいて、死者が生きていた時のすべてを見て、それぞれが犯した罪により、裁きを言い渡していて、なかなか忙しいようである。

불교(佛敎)의 속에, 죽은 자의 모든 것을, 저 세상에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죽은 사람(死者)이 살아 있었을 때의 모든 것을 보고, 각자가 범한 죄에 의해서, 심판(裁き)을 언도하고 있기 때문에, 꽤 바쁘다고 한다. 



それから、それぞれの罪によっているいろの場所に、亡者を送り出している。行く先は、勿論知っての通り、地獄である。

그리고 나서, 저마다의 죄(罪)에 의해서 여러 가지의 장소(場所)에, 망자(亡者)을 보내고 있다. 행선지(行く先-목적지)는, 물론 알고 있는 대로, 지옥(地獄)이다. 



實際は、閻羅大王などの存在など、あるわけがない。しかし地獄は、現實に存在しているものである。

실제로는, 염라대왕(閻羅大王) 따위의 존재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옥(地獄)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閻羅大王は、實は己自身に、もっとも嚴しい、眞我なる心そのものである。この世に生きていた時の、すべてを反省し、魂として自ら決裁し、この世を終えた後の、行く先を決めることが、魂としての、掟(おきて)なのである。

염라대왕(閻羅大王)은, 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하고, 진아(眞我=남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인 마음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この世)에 태어났을 때의, 모든 것을 반성(反省)하고, 영혼(魂)으로 스스로 결재(決裁)하고, 이 세상을 떠난 후의, 행선지(行く先)를 정하는 것이, 영혼(魂)으로서의, 공공의 규칙(掟=규정)인 것이다. 



この世に於いては、特に宗敎的なことにより、大衆の心を、間違った道に誘い込んだ者、また權力・材力によって、大衆の心を束縛し、自らの欲望を滿たした者の罪は、大きいものなのである。

이 세상(この世)에서는, 특히 종교적인 것에 의해서, 대중의 마음을, 잘못된 길로 끌어들인 사람, 또한 권력(權力)이나 재력(財力)으로, 대중의 마음을 속박(束縛)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운 사람의 죄(罪)는, 큰 것인 것이다.



このように、この世でどんなに、大言壯語(たいけんそうご)をしている者であっても、心の中は不調和なものが多いものである。誰でもいずれは、いやだと言っても、この世を去るときが到來するのである。そして前述したように、自ら在世中のすべてを、決裁するのである。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호언 장담(大言壯語)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속은 부조화(不調和)한 사람이 많은 것이다. 누구든지 결국은, 싫다고 말해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도래(到來)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스스로 재세중(在世中)의 모든 것을, 결재(決裁)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に、人生の一連のことを解明されるに從って、今それぞれが、心の中にもっている、他人を恨んだり、憎んだり、誹ったり、心を暗くするものは、すべて忘却の彼方へ、理屈ぬきで捨て去ることである。

이와 같이, 인생의 일련(一連)의 일을 해명(解明)하는 것에 따라서, 지금 각자가, 마음속에 갖고 있는, 타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비방하거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전부 망각(忘却)의 저편으로, 이리저리 구실만 내세우지 말고 주저없이 버리고 거기서 떠나는 일이다. 



そして、大切なことは、どんなことであろうとも、己以外のすべてのものは、己自身の心をより淨化するために、存在しているものであり、心の糧(かて)として、受け止めることが出來れば、これほど幸せなことはないものである。それこそ、感謝の心があるのみである。

그리고, 중요(大切)한 일은, 어떤 것일지라도,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다 정화(淨化)하기 위해서, 존재(存在)하고 있는 것이며, 마음의 양식(糧)로 삼아서, 제대로 대응할 수가 있다면, 이토록 행복(행운)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これが出來て始めて、萬生萬物すべてのものとの、運命協同體の中の、己を發見することが出來るものであろう。

이것이 가능해야 비로소, 만생만물 모든 것과의, 운명협동체(運命協同體)의 속의,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よくこの世を去った者を「佛」と一般には呼んでいるが、「佛」とは、すべてを悟った方をいうのであって、一般の者は、自らの決裁も出來ず、この世に執着を殘しているものが多い。これを亡者といって、お盆などに、迎え火を見て、幻となった家に、戾って來るようになるのである。

훌륭하게(よく) 이 세상(この世)을 떠난 사람을「부처(佛)」라고 일반적으로는 부르고 있지만, 「부처(佛)」란, 모든 것을 깨달은 분을 말하는 것이며, 일반의 사람은, 몸소 결재(決裁)도 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집착을 남기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것을 망자(亡者)라고 하며, 우란분재(お盆=백중날에 하는 불공이나 무당이 하는 굿을 하는 날)에, 무카에비(迎え火=음력 7월 13일 저녁 죽은 이의 넋을 맞기 위해 문전에 피우는 불= 우란분[盂蘭盆]의 첫날 저녁에 선조의 정령을 맞이하기 위해 피우는 불)을 보며, 언젠가는 사라지는 덧없는 집(幻となった家)으로, 되돌아 오게 되는 것이다.



この宇宙の中は、前進のみであり、戾れると言うことは、亡者が錯覺を起こしているに過ぎないのである。

이 우주 속은, 전진(前進)뿐이며, 되돌아온다고 하는 일은, 망자(亡者)가 착각을 일으키고 있음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今世に生きているものは、亡者になど、ならないような生活を、すべてあると思うものである。

현재의 세상(今世)에 살고 있는 것은, 망자(亡者) 따위는, 할 수 없는 생활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生老病死

(생로병사)




人生の縮圖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終着驛が、目前に迫っているにも拘わらず、なお全力で走り續けねばならない。これが多く見られる、人生の終わりを迎えんとしている、姿そのものである。

인생의 축도(縮圖)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종착역(終着驛)이, 눈앞(目前)에 닥쳐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더욱 전력으로 계속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자주 볼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 바로 그것이다. 



そこには、地位も名譽も財産も學問も、何にも見當たらない。

거기에는, 지위(地位)도 명예(名譽)도 재산(財産)도 학문(學問)도, 아무것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眼が見えない、半身不隨、足が利(き)かない、手が利かない、內臟の缺陷のために點滴、車椅子、步行器、步行訓練用の手すり、そこには生への執着以外の何ものも、見ることは出來なかった。

「頑張るんですよ」

「頑張るんですよ」

눈(眼)이 안 보이며, 반신불수(半身不隨)이며、발을 쓰지 못하며, 손을 쓰지 못하며, 내장(內臟)의 결함(缺陷)으로 인해 점적주사(點滴)을 맞으며, 휠체어(車椅子)을 타고, 보행기(步行器)에 의지하여, 보행 훈련용의 난간을 붙잡고, 거기에는 삶에 대한 집착(執着) 이외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힘 내세요」

「분발 하세요」



これしか言いようがない。どうして勵まそうか、その言葉さえなかった。こうした方方には、むずかしい言葉や理屈は必要ない。この狀況を見て、ふと思った。

이것밖에 말할 수가 없다.  어떻게 격려하면 좋은지, 그 말조차도 못했다. 이러한 분들에게는, 어려운 말이나 억지(이론)은 필요없다. 그 상황을 보고, 문득 생가했다.



人間は誰でも、生まれたら死ぬ。その時間が到來した時は、率直にそれに應じられるよう、元氣なうちに、しっかりと心に明記することが大切であると。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그 시간이 도래했을 때는, 솔직하게 그것에 응할 수 있도록 하면 좋고, 건강한 동안에는, 진지하게 마음에 명기(明記)하는 것이 중요(大切)하다. 



誰しも老いれば、老いほど、生への執念は、凄まじいものがあるが、生や死は、大自然の攝理であり、人間だけでなく、萬生萬物、この世に存在しているものすべて、この攝理に從わねばならないのである。この攝理の主こそ、神そのものであるからだ。

누구나 늙으면, 늙을수록, 삶에 대한 집념(執念)은, 무시무시한 사람이 있지만, 삶이나 죽음은, 대자연의 섭리(攝理)이며, 인간뿐만 아니라, 만생만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 전부가, 이 섭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섭리의 주인이야말로, 바로 신(神) 그것인 것이기 때문이다. 



すてべ時が運び來たり、運び去って行く。これが、この世物質の世なのである。諸行無常そのものである。

모든 시기(時)가 되어 진행상황이 오거나, 가거나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 물질의 세계인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바로 그것이다. 



實際は、生まれるとか死と言うことは、一切ないと言っても良いではあるまいか。ただこの世とあの世を、緣と言う、約束事を中心に輪廻を永遠に繰り返しているのである。これこそ、今から約二千五百數十年前に、釋迦が說かれた、萬生萬物の循環の法則、原因と結果、因果の法則そのものである。今世に奇蹟や偶然は、絶對にあり得ないと說かれた、師の敎えがこのことである。

실제(實際)는, 태어난다고 하든가 죽는다고 하는 것은, 일체 없다고 해도 좋은 것이 아닐까? 단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인연(緣)이라고 하는, 약속한 일(約束事=인연)을 중심으로 윤회(輪廻)을 영원히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으로부터 약 2천 5백 수십년 전에, 석가(釋迦)가 설명하신, 만생만물의 순환(循環)의 법칙(法則), 원인(原因)과 결과(結果), 인과(因果)의 법칙(法則)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세상(今世)에 기적(奇蹟)이나 우연(偶然)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하신, 스승님(師)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다. 



近頃は、百歲人生の人が多い。これは珍しいことではない。釋迦の時代は、百二十歲、百三十歲は普通であった。ただ何となく長生きしたのでは、どうにもならない。人生の意識ぐらいは知ってほしいものだ。

요즘은, 100세 인생의 사람이 많다. 이것은 진기한 것이 아니다. 석가(釋迦)의 시대에는, 120세, 130세는 보통이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오래살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생의 의식(意識)만큼은 알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老いて施設に入れる人は幸せである。しかし、その幸せの中で、なお不足を言う人もいれば、每日感謝の心で、施設の者たちの役に立とうとする人もいるのである。

늙어서 시설(施設)로 들어가는 사람은 행운이다. 하지만, 그 행운 중에서,  또한 불평(불만)을 말하는 사람도 있으면,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설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施設に入りたくても入れないで、寂しく誰に看取られることもなく、今世を終わって行く人もいる。人生それぞれ、その步む道が違うことが分かるものだ。

시설(施設)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하고, 외롭게 아무에게도 간호를 받는 일도 없이, 지금의 세상(今世)을 끝내어 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 저마다, 그 걷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이해하는, 아는) 것이다. 



知人に、こんな方がおれれた。

아는 사람(知人)에게, 이런 분이 계셨다.


ご夫妻共に七十歲代、なかなか仲のよいお二人で、四名のお子さんも立派に、平和な家庭環境をもった方ばかりで、實に幸せな日日を送っておられた。

이 부부는 다 같이 70세대(歲代)이며, 꽤 사이가 좋은 두 분이며, 4명의 자제분(お子さん)도 훌륭하게, 평화로운 가정환경을 가긴 분일 뿐만아니라, 실로 행복한 매일을 보내고 계셨다.



ところが、このご夫妻に、異變が起きたのである。そろそろ肌に寒さを感じる十一月中旬に、奧さんが、

그런데, 이 부부에게, 이변(異變)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제 슬슬 피부에 한기를 느끼는 11월 중순에, 부인(奧さん)이, 



「身體の調子が、どうもおかしいのですが」

「몸의 컨디션(상태)이, 어쩐지 이상한데요」



「奧さん、それは早く醫者に、診察をしてもらいなさ」

「여보(奧さん), 그럼 빨리 의사(醫者)에게, 진찰을 받으려 가구려」



その時は、すでに胸部に關連をしている、リンパ線に異狀が起きていたのである。

그 때는, 이미 흉부(胸部)에 관련을 하고 있는, 림프선(lymph線)에 이상(異狀)이 일어나 있던 것이다. 



それから約四個月というものは、入退院を繰り返しておられた。ご主人は、一時として側から難れず、看病をされておられた。

그 후 약 4개월이라고 하는 것은, 입퇴원(入退院)을 되풀하고 계셨다. 남편분(ご主人)은,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간병(看病)을 하시고 계셨다. 



醫者は肺癌との診斷であったそうである。息をつくのが苦しくて、長話も出來ないようになって來た。

의사(醫者)는 폐암(肺癌)이라고 하는 진단(診斷)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숨을 쉬는 것이 괴로워서, 긴 이야기도 차츰 할 수 없게 되었다.



この間ご主人からは、よく電話もあり、ご本人もまたには、電話に出られるのであるが、その息づかいを、耳にしただけでも、こちらも一緖に、息苦しさを覺えるほどであった。

이러는 동안에 남편분(ご主人)으로부터는, 자주 전화도 하며, 남편분도 또 한 편으로는,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고통스러운 듯한) 숨결을,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이쪽도 같이,  숨이 막히는 것을 느낄정도였다. 



その年も暮れ、正月を迎えた。お子さんが一堂に會した。奧さんも、お子さんやお孫さんを見て、嬉しっかっただろうと思った。

그 해도 저물어, 정월을 맞이했따.  자제분(お子さん)이 한 자리(같은 곳)에 모였다.  부인(奧さん)도, 자제분(お子さん)이나 손자(お孫さん)을 보며,  기쁘다고 했다.



三月に入って間もなく、電話をいただいた。ようやく、聲を出している狀態でいる。

「大事にして下さい」

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

3월에 들어서 머지않아, 전화를  해 주셨다.  간신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태이다. 

「몸조심 하십시오」

라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電話をきって、ふと、この方の心に觸れてみた。

전화를 끊고, 문득, 이 분의 마음에 닿아 보았다.



「どきん」と言おうか、「本當かな」と言おうか、何とも言葉にならなかった。こうしたことをもう一度、もう一度、何回やっても、この方の今世の時間が、後、せいぜい、一・二個月なのである。

「가슴이 철렁(どきん)」이라고 할까,  「정말인가(本當かな)」라고 할까, 뭐라고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일을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몇 번을 해도, 이 분의 지금의 세상(今世)의 시간이, 앞으로(後), 고작, 1~2개월인 것이다.



電話だけで、すますわけにも行かなくなった。夜間九時を過していたが、この方の息子さんご夫妻に電話をして、

「大變申し譯ないが、お母さんの處まで、付き合ってくれませんか」

「はい、すぐまいります」

전화만으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밤(夜間) 7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이 분의 아드님 내외분에게 전화를 해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어머님의 계신 곳에서, 함께 해 주지 않겠습니까?」

「네, 곧 가겠습니다」



午後十一時頃になってしまったが、この方に一言、話しておき度いことがあったのである。

「おそくごめんなさい」

오후 10쯤에 되어 버렸지만, 이 분에게 한 마디,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늦은 시간에 실례하겠습니다」



部屋に通された時、これは入院された方がよいと思った。自分では、身體を橫にすることも出來ない狀態である。

「元氣を出しなさい」

방을 사이에 두었을 때, 이것은 입원하신 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기 혼자서는, 몸을 옆으로 누울 수도 없는 상태이다. 

「힘을 내십시오」



話しておき度いことが出て來ない。

말해 두고 싶은 것이 나오지 않는다.



ご主人とも、五分間くらい話をした。一區切りついた時、思い切って、話をした。

「奧さん、貴女は病氣ではないんですよ」

남편분(ご主人)과도, 5분 정도 이야기했다.  일단락을 지었을 때,  결심하고(과감히), 이야기했다.

「부인(奧さん), 당신은 병이 아니에요」



この言葉を聞かれた、この方は、橫にもなれないで今の今までおられたのに、ご自分で起き、座られた。そして、ご主人と私の話を聞いておりれる。約五分くらいは起きておられたが、今度は誰にも借を借りず、橫になられた。これを見られた、ご主人が、

이 말을 들었을 때, 이 분은, 옆으로 누울 수 없어서 지금까지 이 상태로 계셨는데, 자기 힘으로 일어나서, 앉았다. 그리고, 남편(ご主人)과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계신다.  약 5분 정도는 일어나서 앉아 계셨지만, 이번은 누구에도 도움을 빌리지 않고, 누었다.  이것을 본, 남편(ご主人)이, 



「何だ、貴女は一人で、起きたり、寢たり出來るのか」

「뭐야, 당신은 혼자서, 일어나거나, 눕거나 할 수 있는 거야」



と言われたが、ご當人にしてみれば、懸命であったに違いない。

라고 말을 했지만,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필사적이었음에 틀림없다.



「貴女は病氣であないんですよ」

「그녀(貴女)는 병이 아니랍니다」



この一言を直接話したかったし、それがたとえ、その時どのようなことなのか、分からなくてもよいと思っていた。

이렇게 한 마디를 직접 말을 했었고, 그것이 설령, 그 때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しかし人間というものは、心一つでどんなことでも出來るものであると、この時、つくづく思ったものである。病は氣からである。

하지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하나로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 때,  곰곰히 생각했던 것이다. 병(病)은 기운(氣)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병(질병)은, "病氣"라고 씁니다. 즉 "병의 기운"이지요.




翌日、息子さんに

「お母さんを入院させた方が、よいと思いますが」

「はい、母もそのように言っております」

다음날 아침, 아드님(息子さん)에게, 

「어머님을 입원시키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네,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季節も春が訪れ、方方から花見の話も聞くようになった。

계절도 봄이 찾아와서, 방방곳곳에서 하나미(花見=벚꽃을 보고 즐기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四月三日の午前八時頃、ご主人より、

「先程、一人部屋に入り、ようやく整理がついたところです」

と電話があった。

4월 32일 오전 8시쯤에, 남편분(ご主人)에게서,

「조금 전, 혼자 방에 들어가서,  겨우 정리를 막 끝냈습니다」

라고 전화가 왔다. 



私は躊躇(ちゅうちょ)せず、ジャンパーをはおり病院に向かった。あの時の言葉の續きを話す時が來たのである。

나는 주저하지 않고, 私は躊躇(ちゅうちょ)せず、잠바(jumper)를 걸쳐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저 때의 말이 이음을 할 때가 온 것이다. 



病室に入った。お子さんは皆集まられている。娘さんとお嫁さんは、母親の全身を、揉(も)んでおられる。ご本人は、酸素の管を口の前におき、息も絶え絶えである。

병원에 들어갔다. 자제분(お子さん)은 모두 모여있다.  따님(娘さん)과 며느님(お嫁さん)은, 모친(母親)의 전신(全身)을, 주무르고 계신다.  본인(ご本人)은, 산소호흡기의 관(管)을 잎 앞에 두고서, 숨을 할딸거리고 있다. を口の前におき、息も絶え絶えである。



私の顔を見て、ほっとされたようであった。

「奧さん、どうですか」

「先生、お復すいちゃった 」

「頑張りなさい」

내 얼굴을 보고, 한숨 돌린 듯 했다.  

「부인, 어떻습니까?」

「선생님, 배가 아파요(도쿄 사투리)」

「힘내세요」



稍稍(やや)おいて、

「奧さん、奧さんは病氣じゃないよ。この前話したように、病氣じゃないんですよ。先生の言うこと分かりますね。これからどんなになって行くのかも分かりますね。頑張るんですよ。元氣になって、また會いましょうね」

「はい」

잠시 있다가, 

「부인(奧さん), 부인은 병이 아니에요. 이 전에 말한 것처럼, 병이 아닌 것이에요. 선생이 말하는 것을 알겠지요.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힘내는 거에요. 건강해져서, 다시 만나는 거에요」

「네」



このことを話に來たのである。これ以上いたのではと、

「奧さん、先生歸るからね、頑張ってよ」

이 것을 말하게 된 것이다. 이 이상(以上)이었던 것은, 

「여보(奧さん),  선생님이 집으로 돌아가시니까, 힘내요」



手をそうっと、握ってやった。瘦(や)せて骨と皮ばかりである。救いはまだ溫かかったことである。

손을 살짝, 잡아 주었다.  수척해져 피골이 상접하다.  도움은 그래도 훈훈한 것이다. 



五・六步、步いた出口で、振り返った。それに對し、手を振って、にこっと笑顔を見せてくれた。

다섯・여섯 걸음, 걸은 출구(出口)에서, 뒤돌아 보았다.  그것에 대해서, 손을 흔들며, 방긋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さようなら」

「안녕」



である。私も手を振り、笑顔を返した。

안녕이다. 나도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實際は、胸がこみあげ、今にも淚があふれるばかりの思いであった。

실제로는, 가슴이 메어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넘쳐흐를 것 같은 생각이었다.



外でご主人に、

「今日、明日ですよ」

「はい、今、醫者にもそう言われて來ました」

밖에서 남편분(ご主人)에게,

「오늘, 혹은 내일이에요」

「네, 지금, 의사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病院を出て家路についたのであるが、驛迄の間が櫻(さくら)竝木(なみき)で、今が滿開、互いに笑きほこっている。櫻の木の根元には、今夜の夜櫻見物するための、場所取りなのであろう、若い男女が、場所を確保して、寢っころがったり、本を讀んだりしていた。

병원을 나와서 귀로(家路)에 올랐지만, 역까지(驛迄)의 사이가 벚꽃 가로수(櫻竝木)이며,  지금이 만개(滿開)하여, 서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벚나무(櫻の木)의 밑둥치(根元)에는, 오늘밤의 밤 벚꽃놀이(夜櫻)를 구경하기 위해서, 장소를 잡는 것인지, 젊은 남녀가, 장소를 확보해서,  자거나 가로 눈거나 하며, 책을 읽거나 하고 있었다. 



「やれやれ、今この世を去ろうとしている人がいると思えば、夜櫻見物の場所を、晝間から陳取合戰ではないが、出張っている者もいる。一體世の中、どうなっているだろう」

と、人生の果敢無さを、熟(つくづく)感じながら、通り過ぎたものである。

「거 참, 지금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밤 벚꽃놀이 구경하는 장소를,  낮  동안(晝間) 진을 치며 자리를 확보하는 전쟁(合戰)은 아니지만, 출장 나오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이 세상(世の中),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

라고, 인생의 허무함(果敢無さ)을, 절실히 느끼면서, 지나갔던 것이다.



後日聞くところによると、あの日の午後になったら、昏睡狀態になられたそうである。そして翌日の午後四時頃、この世に決別をされたのである。

훗 날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날 오후가 되었더니, 혼수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4시경에, 이 세상을 결별(決別)하신 것이다. 



この方、師の敎え、私の話を熱心に聞かれ、他人を恨むこともなく、誹ることもなく、明るい生活をされた方であった。

이 분은, 스승님의 가르침과, 내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으시고, 타인을 원망하는 일 없이, 비방하는 일도 없이, 밝은 생활을 하신 분이었다. 



この方は、この世の時間を全うされたのである。今はこの方も、心の世界、魂の故鄕に歸って行かれたことは、勿論のことである。

이 분은, 이 세상의 시간을 온전하게 하신 것이다. 지금은 이 분도, 마음의 세계,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신 것은, 물론인 것이다. 



師の敎えの中にある、『生老病死』ということは、文字だけ見れば、生まれて年を取り、病になり死ぬとなるであろうが、これには、一字一字の中に、深い意味が含まれているのである。

스승님의 가르침 중에 있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는 것은, 문자만으로 보면, 태어나서 나이가 들어, 병에 걸려 죽는다고 되어 있지만, 이것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속에,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それは、

"生老"生まれて年輪を重ねて行く。時間が刻刻と過ぎて行く。この中は、魂としての己が、兩親より與えられた、肉體五官を通し、それぞれが與えられた時間帶、喜怒哀樂兩面の、物質の世で、その理を知る知らずに關わらず、この世に生まれた、目的・使命を、果たそうとしている。そして與えられた時間の終末を、迎えるのである。これが老ということであろう。しかし、これはそれぞれが、その目的・使命を、全うした者、全うしなかった者があるのは當然である。

그것은, 

"생로(生老)"태어나서 연륜(年輪)을 거듭해 간다. 시간이 각각 지나간다. 이 속은, 영혼으로서의 자기 자신이, 양친(兩親)에게서 주어진, 육체오관(肉體五官)을 통해서, 저마다 주어진 시간대(時間帶), 희노애락(喜怒哀樂) 양면(兩面)의, 물질의 세계에서, 그 이치(理)를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을, 달성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의 종말(終末)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늙는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각자가, 그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을, 온전하게 한 사람, 온전하게 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病死"兩親より與えられた、肉體との決別をするための準備が病である。これは、どんな名藥であっても、名醫であっても、どうすることも出來ないのである。死が決別となるのである。

"생사(病死)"양친(兩親)에서 주어진, 육체와의 완전히 헤어지기 위한 준비가 병(病)이다.  어떠한 명약(名藥)이 있어도, 명의(名醫)가 있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이 완전히 헤어짐(決別)이 되는 것이다.



今の一秒を大切にしたいものである。

지금의 1초를 소중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この世に、執着を殘し亡者となり、お盆り迎えられ、のこのこ戾って來たり、盆踊りをしていたのでは、救われなくなってしまう。

이 세상에, 집착을 남기고 망자(亡者)가 되어, 오란분재(백중맞이)을 맞이하여, 태연스레 되돌아 오거나,  우란분재의 민속춤(盆踊り)을 추거나 하는 것으로는, 구제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우란분재(盂蘭盆齋)란,  "음력 7월 15일에 행하는 불교 행사의 하나" 이며, "조상의 넋과 부처, 중, 중생에게 공양하여 부모의 한없이 크고 깊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라고 국어사전 상에 나와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今生きている者は、あの世に歸った者を呼んだり、迎えたりするのは、本來からすると間違いである。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은, 저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을 부르거나, 맞이하거나 하는 것은, 본래부터 잘못이다. 



釋迦やイエスは、死者に法を說いたのではない。今生きている者に、その理を說かれたのである。

석가(釋迦)나 예수(Jesus)는, 죽은 자(死者)에게 법(法)을 설명하신 것이 아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에게, 그 이치(理)을 설명하신 것이다. 



この世のすべてに對し、執着を殘さないようにしたいものである。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집착을 남기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すべては神の創造物

(모든 것은 신의 창조물)




地球のどこかで、絶えずこれでもか、これでもかど、民族間や思想や意見の違いから、爭(あらそ)いの火は消えようともしない、いや消そうとしないのであろう。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무엇이든, 이것저것 모두, 민족간(民族間)이나 사상(思想)이나 의견의 차이(違い)때문에, 싸움의 불은 꺼질 줄을 모르고, 아니 끄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犧牲者は、大人といわず、子供といわず、魔の働きときり言いようのない、殺戮が繰り返されている。

희생자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악마(魔)의 작용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살육이 되풀이 되고 있다. 



これらは、權力者という、自らの心を魔に賣り渡し、その魔に支配されてしまった輩が蟠踞(ばんきょ)し、もっともらしい、理屈のもとに、大衆を支配して行く。

이들은, 권력자(權力者)라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악마(魔)에게 팔아 넘기고, 그 악마(魔)에게 지배당해 버린 무리(輩)가 반거(蟠踞)하고, 그럴 듯한, 구실하에, 대중을 지배해 간다. 



★盤踞·蟠踞2 [반거] ((일본어사전/한자사전))

①넓고 굳게 뿌리를 박고 자리잡음(터전을 잡고 세력을 떨침)(뿌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 것)

②어떤 집단이 한 지역을 차지하여 세력을 떨침을 이르는 말




支配された大衆、またそれ以外のものにしても、一人一人の人間としては、これではいけないと思いつつも、いつ果てるともなく續く樣相を、呈して行くものだ。

지배당한 대중(大衆), 또한 그것 이외의 것에 대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계속되는 양상(樣相)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人類の進步發展のためには、欠くべからずの、原子核にしても、權力者によって、人類の滅亡を引き起こす樣相すらある。

인류의 진보와 발전(發展)을 위해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필요 불가결한), 원자핵(原子核)만 해도, 권력자에 의해서, 인류의 멸망을 야기하는 양상(樣相)조차 띠고 있다.



幸いにも、どんでもない野望をもった、權力者が支配する超大國が、經濟的に破綻を來たしたために、現在の處は、その破壞の危機は、お預けとなっている。

다행히도, 터무니없는 욕망을 가진, 권력자가 지배하는 초대국(超大國)이, 경제적으로 파탄(破綻)을 초래했기 때문에, 현재 있는 곳은, 그 파괴의 위기(危機)는, 보류(중지)되어 있다.



このように、人類そしてそれ以外のものも、一瞬にして滅亡させてしまうような、魔にしても、人類の進步發展のため盡くそうとする、善なるものにせよ、すべて人間一人一の心の中に、存在するものなのである。

이와 같이, 인류 그리고 그 이외의 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멸망시켜 버릴 것 같은,  악마(魔)라 하여도,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 진력(봉사)하려고 하는, 선한 사람이든 (아니든),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인 것이다.



神理は、唯一つ、善・光明そのものであり、惡魔は、人間それぞれが、心の中に勝手に造り出したものなのである。

신리(神理)는, 오직 하나, 선(善)・광명(光明) 바로 그것이며, 악마(惡魔)는, 인간 저마다가, 마음속에 제멋대로 만들어 낸 것인 것이다.




神によって造り出された人間それぞれが、人間として生かされている根本的な理を、知る必要がある。それには、神が人間に與えられている、自由・創造・反省のうちの、反省ぐらい、實際に行う氣持がなければならない。しかし、この反省すら、餘分なことであるし、反省をしても、何にもならないだろうと、初めから、拒否をするのが、大方ではないだろうかと思う。

신(神)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 저마다가, 인간으로 소생되어 있는 근본적인 이치(理)를, 알 필요가 있다.  그것에는, 신(神)이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는, 자유(自由)・창조(創造)・반성(反省) 중의, 반성만큼은, 실제로 행할 기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 반성(反省)조차도, 여분(餘分)인 것이고, 반성을 해도, 아무것도 안 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거부(拒否)을 하는 것이, 대부분(大方)이 아닌 것일까 생각한다. 



反省とは、決して出家したものの爲にあるのではない。もっとも近頃は、出家したものにしても、本格的な反省をするものが、どれだけいるか、心寂しくなる思いがするものだ。

반성(反省)이란, 결코 출가(出家)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는 요즘은, 출가한 사람만 해도, 본격적인 반성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쓸쓸한 기분(생각)이 드는 것이다.



神理に觸れたものぐらいは、すべからく反省を怠ることなく、己の心の歪みの修正を、一つでも實行すべきではあるまいか。

신리(神理)를 접한 사람만큼은, 마땅히 반성을 게을리 하는 일 없이, 자기의 마음의 수정(修正)을, 하나라도 실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反省とは、己の心の淨化をはかる第一步であり、永い轉生の過程で經驗をし、積み重ねて來た智慧を、ひもとく第一步でもあり、反省と懺悔とそれに對する行爲は、心に新たな希望と勇氣を造り出す、原動力となるものであると思う。

반성이란, 자기의 마음의 정화(淨化)을 도모하는 첫걸음(第一步)이며, 영원한 전생(轉生)의 과정에서 경험을 하고, 쌓아 온 지혜(智慧)를, 잃어 내는 첫걸음(第一步)이기도 하며, 반성과 참회(懺悔)와 그것에 대한 행위는, 마음에 새로운 희망(希望)과 용기(勇氣)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しかし、物質文明が發達すればするほど、人の心は、自己保存、自我我欲となり、自分のことのみにて、反省そのものに對しては、反省そのものを否定し、他を受け入れようとしない排他的な人が、多くなるものである。

하지만,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 수록, 사람의 마음은, 자기보존(自己保存), 자아아욕(自我我欲)이 되어, 자기의 일만 해도, 반성 그 자체에 대해서는,  반성 그 자체를 부정(否定)하고, 남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 배타적(排他的)인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人間は、一人では絶對に生きられないし、人間だけでも生きて行けないのである。萬生萬物の相互扶助によってのみ、生きられるものであることを、氣付いているようで、氣付いていないものである。

인간은, 혼자(一人)로는 절대로 살아 갈 수 없고, 인간뿐이라고 해도 살아 갈 수 없는 것이다.  만생만물의 상호협조에 의해서만, 생활할 수 있는 것인 것임을, 깨닫고 있는 사람도 있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例えば、數學は一から九までの組み合わせによって、出來ているものである。しかし一から十から百と、その桁(けた)は、千(せん)、萬(まん)、億(おく)、兆(ちょう)、京(けい)、垓(がい)、秭(じょ)、穰(じょう)と、それはそれは、無限の廣がりをもっているものである。この廣がりは、一から九迄の數の仲を取りもつ、ゼロの存在があるからである。

예를 들면, 수학(數學)은 1에서 9까지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1에서 10까지 100과, 그 자릿수(桁)는,  천(千), 만(萬), 억(億), 조(兆), 경(京), 해(垓), 자(秭), 양(穰)이라고,  그것은 참으로, 무한(無限)한 넓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넓이는, 1에서 9까지의 숫자의  사이(仲)를 중재해서, 0(zero)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秭)는, "해(垓)의 1만배의 숫자" 이며, "양(穰)"의 만분의 1의 숫자를 뜻합니다.

일(一,壹), 십(十), 백(百,佰), 천(千), 만(萬),억(億), 조(兆), 경(京), 해(垓), 자(秭),양(穰),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대수(無量大數), 겁(劫), 업(業) 그 밖의 큰 수도, 있습니다. ^^




このように、人にも互いに手を取り合うための、間(ま)があって、始めて人の世の調和を、見ることができるものである。間とは、助けあい、補いあい、許しあう連帶の行爲そのものなのである。

이와 같이, 사람도 서로 서로 손을 잡기 위해서,  마침 좋은 때(間)가 있고, 비로소 사람의 세상의 조화(調和)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사이(間)란, 서로 돕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 용서하는 연대(連帶)의 행위 바로 그것인 것이다. 



自我我欲の强い人は、者に對しての執着も强く、他の人との間を取れない人となろう。これでは、人間でなく、人で終わってしまう結果となるかも知れない。人間として生まれこんな不幸なことはあるまい。

자아아욕(自我我欲)의 강한 사람은, 사람(者=사물)에 대한 집착도 강하고, 다른 사람과의 기회(間)를 잡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래서는, 인간이 아닌, 사람으로 끝나 버리는 결과(結果)가 될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런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이 간(間), 일본어로, 마(ま)[間], 뜻이 많습니다.  

ⓐ(공간적인) 사이, 간격.ⓑ(시간적인) 사이, 동안, 겨를, 짬.ⓒ기회, 계제, (마침 좋은) 때.ⓓ방.ⓔ(그 자리의) 형편.ⓕ(연극·무용 등에서) 대사와 대사, 동작과 동작의 시간적 간격.




"人間とは"と、これを師の敎えを元(もと)に、追求して行くと、この宇宙の中に、人間の創造にも及ばないものが、大自然の中に儼然として、存在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それは人間の手のとどかない處に、人間始め、宇宙の中に點在している六十兆という天體、その他、生き通し生きるものすべては、萬物の靈長と言われている人間であっても、創造のできないものであり、そこには何か無形で、巨大な力が、存在していることに、突き當たってしまう。

"인간(人間)이란"이라고, 이것을 스승님의 가르침을 근본(元)으로, 추구(追求)해 가면, 이 우주 속에, 인간의 창조(創造)에도 못 미치는 것이, 대자연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인간을 비롯한, 우주 속에 점재(點在)하고 있는 60조(六十兆)라고 하는 천체(天體), 그 밖에, 줄곧 살며 살아 가는 것의 모든 것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고 있는 인간일지라도, 창조(創造)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거기에는 뭔가 무형(か無形)으로, 거대한 힘이, 존재하고 있는 것에, 봉착해 버린다. 



このように、すべてを創造された、創造主があるに違いないと、誰でも思うようになることと思う。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創造主)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누구든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この創造主こそ、神であり、創造されたということは、何らかの意圖があるはずである。これが宇宙の大調和、そのももなのである。

이 창조주(創造主)야말로, 신(神)이며,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의도(意圖)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대조화(大調和), 바로 그것인 것이다.



この神の意を說かれるため、文證、理證、現證の三つの證をもたれ、この現象の世に、肉體をもたれた方を、佛というのである。

이 신(神)의 뜻(意)을 설명하기 위해, 문증(文證), 이증(理證), 현증(現證)의 세가지의 증거(證)를 갖추고, 이 현상(現象)의 세계(世)에, 육체를 가지신 분을, 부처(佛)라고 하는 것이다. というのである



★본문의 현증(現證)은, "겉으로 드러나는 병의 증세"란 뜻이 아니며, 다름 아닌,

현증(顯證), 즉 "뚜렷한 현실적인 증거"란 뜻입니다.




神は、初めに萬生萬物を創造されたのである。そして人間を創造され、萬物の靈長として、自由・創造・反省の三つを與えられたのである。人間は、これによって、萬生萬物を支配し、萬生萬物と共存共榮、協力協調、神の意である大調和を達成させるために、あの世とこの世を、萬生萬物と共に、轉生輪廻という、永遠の道を、與えられたのである。生かされ、生きている所以(ゆえん)である。

신(神)은, 처음에 만생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유(自由)・창조(創造)・반성(反省)의 세 가지를 주신 것이다. 인간은, 이것에 의해서, 만생만물을 지배하고, 만생만물과 공존공영(共存共榮), 협력과 협동과 조화(協力協調)、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을 달성하기 위해서, 저 세상과 이 세상(あの世とこの世)을, 만생만물과 다 같이, 전생윤회(轉生輪廻)라고 하는, 영원한 길을, 제공해 주신 것이다.  소생되어, 살고 있는 까닭(所以)이다. 



★협조(協助)는 "힘을 모아 서로 도움" 

★협조(協調)는, "힘을 합하여 서로 조화를 이룸" ="협동(協同)과 조화(調和)"




私達地球人類は、今や國家とか民族とか、部族とは、派閥とか、宗敎の違いとか、そうした馬鹿げたことは、超越をし、神の創造物である、地球始め、大自然に對して、どんな行爲をしているのか、大自然の法則に對して、逆らっ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その結果はどのようになるのかを、よくよく省みる時ではあるまいか。人間は、大自然に對し、何か思い違いをしているのではあるまいか。

우리들 지구인류(地球人類)는, 지금이나 국가(國家)라든가 민족(民族)이라든가, 부족(部族)이라는, 파벌(派閥)이라든가, 종교의 차이라든가, 그러한 어리석은(시시한) 것은, 초월을 해서, 신(神)의 창조물인, 지구를 비롯한, 대자연에 대해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지, 대자연의 법칙에 대해서,  역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는지를, 실수 없이 충분히 반성할 때가 아닌가?  인간은, 대자연에 대해서, 무언가 착각(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何事も、放棄したり、葬ることは簡單である。しかし、一つのものを組み立てることは、時間と、大變な努力と、忍苦を伴うものであ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ろう。

무슨 일이든, 방기(放棄)하거나, 매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하나의 것을 조립해 하나의 것으로 완성하는 것은, 시간과, 상당한 노력과, 인고(忍苦)를 수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佛の敎えは大衆のもの

(부처님의 가르침은 대중의 것)




佛の敎えを、もっとも必要とするのは、一般大衆である。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일반대중이다. 



ところが現代では、佛の敎えも、宗敎という名のもとに、その專從者のものとなり、一般大衆の必要とするのは、この世の終わりほんの僅かな時のみとなってしまっている。

그런데 현대(現代)에는, 부처님의 가르침도, 종교라고 하는 미명하에, 그 전종자(專從者)의 것이 되어, 일반대중의 필요로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인 아주 조금의 시간만이 되어 버리고 있다.



佛の敎えや、法を說く、その道の人人は、何と形式的な行爲に流され、ただ經文を唱え、きらびやかにするだけ、これを見て、信者は何がありがたいのか、ありがたくなるのだから、專從者にしては、これ程ありがたいことはない。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법(法)을 설명하는, 그 길의 사람들은, 왠지 형식적인 행위로 흐르고, 오로지 경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화려하게(현란하게) 할 뿐이며, 이것을 보고, 신자(信者)는 뭐가 고마운지, 고맙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전종자(專從者)로서는, 이만큼 고마운 일은 없다.



書籍を書けば、不親切きわまりない。讀むことは出來るが、譯がさっぱり分からないものがあったり、馬鹿馬鹿しくて讀めないのもある。著者も、分からなくな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くらい、むずかしいものもある。

서적(書籍)을 쓰면,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읽을 수는 있지만, 번역(譯)이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거나, 참으로 어이가 없어서 읽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저자(著者)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것도 있다. 



これが末法なのかも知れない。

이것이 말법(末法)인지도 모른다.



これでは、專從者を通しては、佛の眞意が、大衆に傳わるわけがない。

이래서는, 전종자(專從者)를 통해서는, 부처님(佛)의 진의(眞意)가, 대중에게 전해질 턱이 없다. 



大衆もまた、佛敎とは、死んだもののためにあると思っている。キリスト敎は、敎會で結婚式をするためと、決め込んでしまっている人が多いようだ。從って、日日の生活には、何ら關係はないものと思っている。

대중(大衆)도 역시, 불교(佛敎)란, 죽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基督敎)는, 교회에서 결혼식(結婚式)을 하기 위해서라고, 마음속으로 믿어 버리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따라서, 매일의 생활에는, 아무런 관계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ところが、この日日の生活の中で、惱み苦しむことが起きると、神や佛を賴るようになる。この邊に他力の信仰が、次から次へと流行し、巷は、神や佛と稱するものが現われるのだから不思議である。

그런데, 이 매일 생활하는 중에서, 고민하며 괴로운 일이 생기면, 신(神)이나 부처(佛)를 의지하게 된다.  이와 같은 타력 신앙(他力の信仰)이, 차례로 잇달아 유행하고, 항간(巷)에는, 신(神)이나 부처(佛)라고 칭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사의(不思議)하다. 



苦しみ惱んでいる人は、神や阿彌陀佛に縋(すが)ろうとする。念佛やお經を唱えれば、アーメンと唱えれば、どこからか、救いの手が延びて來るのではと、思う人も多いようである。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신(神)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에게 기대려고(의존하려고) 한다.  염불(念佛)이나 경문(お經)을 소리 내어 읽으면, 아멘(amen)이라고 외치면、어디선가, 구원(도움)이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また、專從者の中には、阿彌陀淨土を彌陀淨土などと、半端なことを、言ったり、書いたりで平氣でいる御仁も、おられるのである。佛や、天使の敎えも、年數が經てば、經つほど、その眞意は失われ、佛の名を半端な呼び方をしたり、祈れば救われるが如く說く專從者も多くなる。信者はその渦に券き込まれ、錯覺の世界へ、錯覺の世界へと、入り込んでしまうものだ。

또한, 전종자(專從者) 중에는, 아미타정토(阿彌陀淨土)를 아미정토(彌陀淨土) 따위라고, 어중간한 말(멍청한 말)을, 하거나, 글로 쓰거나 하며 태연하게 하는 양반(御仁)도, 계시는 것이다.  부처(佛)나, 천사(天使)의 가르침도, 연수(年數)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 진의(眞意)는 잃어버리고, 부처님(佛)의 이름을 어중간한 부르는 방식을 취하거나, 기도하면 구제(구원)되는 것처럼 설명하는 전종자(專從者)도 많아진다. 신자(信者)는 그 와중(渦中)에 말려들어, 착각(錯覺)의 세계로, 착각(錯覺)의 세계(世界)로, 깊숙이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これ正に、末法の姿そのものなのである。

이것은 바로, 말법(末法)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人間は誰しも、神の子として負わされている、宿命というものがある。それは、神の意に適った生活を通し、この地球上に、佛國土・ユートピアを、築(きず)くことにあるのだ。

인간은 누구나, 신(神)의 자녀(子)로서 짊어지고 있는, 숙명(宿命)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신(神)의 뜻(意)에 맞는 생활을 통해서, 이 지구상에, 불국토(佛國土)・이상향(Utopia)을, 이룩하는 것(구축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また、運命というものがある。これは、それぞれその環境・境遇の中で、己自身が造り出すものであり、幸も不幸もすべて、己の心の在り方、行爲によって現象化するものなのである。惡(あ)しき業に負けてはならない。

또한, 운명(運命)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저마다 그 환경(環境)과 경우(境遇) 속에서,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행복(幸)도 불행(不幸)도 전부, 자기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在り方), 행위에 의해서 현상화(現象化)하는 것인 것이다.  나쁜 업(業)에 져서는 안 된다. 



しかし、この世は物質がすべてと、思い込んでいる人が大半である。そこには、欲望という己の惡しき業が、物の怪となって、その姿を現わす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しかし、これに飜弄され、心に大なり小なりの歪を造り出す、その歪みの原因が、己の心にあるにも拘わらず、他人のせいや、他いせいにしてしまう、終いには、その歪みの解決方法を、神佛に賴ろうとする。人間とは正に、ご都合主意の他力信仰を、平氣でやっているのだから恐ろしいものだ。

하지만, 이 세상(この世)은 물질(物質)이 전부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 태반(大半)이다.  거기에는, 욕망(欲望)이라고 하는 자기의 나쁜 업(惡しき業)이, 귀신(物の怪=악령)이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것에 농락당해서, 마음에 크든 작든 비뚤어짐을 만들어 내는, 그 삐뚤어짐의 원인이, 자기의 마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他人) 탓이나, 다른 것을 탓해 버리는, 끝내는, 그 비뚤어짐의 해결방법을, 신불(神佛)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인간이란 정말로, 기회주의(ご都合主意)의 타력신앙을, 태연하게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서운(염려스러운) 것이다.



本來、神佛は賴るものではなく、拜むものでも祀るものでもない。神佛は敬うものであることを、知ってほしいものである。

본래, 신불(神佛)은 기대는 것이 아니며, 합장 배례하는 것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도 아니다.  신불(神佛)은 공경하는 것인 것임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我が心の師、高橋信次先生の著書は、實に簡單明瞭、誰が讀んでも、理解出來、納得の行く書籍である。

나(我)의 마음의 스승(師),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의 저서(著書)는, 실로 간단명료(簡單明瞭)하며,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납득이 가는 서적(書籍)이다. 



是非讀んで、いただきたいものである。

아무쪼록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page 249~283






第八章 心の世界より

[제8장 마음의 세계에서]



師の言葉(스승님의 말씀)



師は、この世を終わられた時に、法を信じ、參集されて來た人人の、守護・指導靈を通し、言葉を殘された。それは次のようにである。

스승님(師)은, 이 세상을 끝마치실 때에, 법(法)을 믿고, 참집(參集)하신 사람들의, 수호령(守護)과 지도령(指導靈)을 통해서, 말씀을 남기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法を心のよりどころとして、おたがい、仲よく正しい道を步みなさい。

『법(法)을 마믐의 의지처로 삼고,  서로, 사이 좋게 올바른 길을 걸으십시오.



そして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心を動かしてはなりません。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동요(動搖)해서는 안 됩니다)



私の敎えは、ただ一つです。

나의 가르침은, 단 하나입니다.



それは宇宙の神理です、法なのです。

그것은 우주(宇宙)의 신리(神理)입니다. 법(法)인 것입니다.



その法を率直な心で、忠實に實踐して行くことです。

그 법(法)을 솔직한 마음으로, 충실히 실천(實踐)해 가는 것입니다.



法燈は絶絶に、絶やしてはなりません』

법등(法燈)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됩니다

(법등(法燈)은 절대로,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ただ、 頭が下がる言葉である。

오로지, 머리가 수그러지는 말씀이다. 







守護靈よりの言魂

(수호령으로부터의 말씀)



一九七八年六月「このことを忘れるべからず、よくよく心に銘記(えいき)し、永遠に生き續ける魂としての、心の基礎とすべし」と、私の守護靈が言魂として傳えて來たことを書き記(しる)し、心ある方方の參考にしていただければ、こんな嬉しいことはない。

1978년 6월 「이 것을 잊지 말 것이며, 실수없이 충분히 마음에 명기(銘記)하고, 영원토록 계속 살고 있는 영혼(魂)으로서의, 마음의 기초(基礎)로 삼아야 한다」라고, 나의 수호령이 아주 온 힘을 다해서(言魂)해서 전해 주신 것을 기록하고, 분별있는 분들의 참고해 주신다면, 이렇게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言魂

고토다마(말씀)



「神の國は、すべて存在していることを信ぜよ。

「(신(神)의 나라는, 모조리 존재하고 있는 것임을 믿어라.



汝(あなた)が進まんとする道は、汝の內なる神が、示さるるものである。

당신이 나아가려고 하는 길은, 당신의 안에 있는 신(神)이, 누누이 확실히 알리는 것이다. 



險(けわ)しき道なれど、神の子靈として成長せんがためなり。

험난한 길이긴 하지만,  신(神) 자녀(子) 영(靈)으로서 성장시키기 위함이다.



また體驗せる、すべてのことは、智慧(ちえ)となり佛智(ぶつち)となり、內在されてゆくものである。

또한 체험하게 하는, 모든 것은, 지혜(智慧)가 되어 불지(佛智)가 되어, 내재되어 가는 것이다.



また、どんなことにせよ、體驗させていただく、事柄に對しては、心から感謝せねばならない。そして、そのための現象界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또한, 어떤 일이든, 체험케 해 주시는, 사항(事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이 있는 현상계(現象界)인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己という小さな心よりいでよ。そして神の心の中に生きよ。

자기(己)라고 하는 작은 마음에 있지 말라. 그리고 신(神)의 마음속에 살아라.



これには、すべての物質より離(はな)れることだ。執着をすべて捨てることだ。そのことに目覺め、前進をはじめよ。そのとき眞の神の子としての、己を見いだす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것에는, 모든 물질에서 떠나는 것이다.  집착(物質)을 전부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눈뜨고, 전진(前進) 시작해라.  그 때 진실한 신(神)의 자녀(子)로서의, 자기(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天使の言葉・文字は、すべて神の言葉・神の文字であり、神の子としての、我がことと思え。

천사(天使)의 말(言葉)과 문자(文字)는, 전부 신(神)의 말씀(言葉)이며 신(神)의 문자(文字)이며, 신(神)의 자녀(子)로서의, 나(我)라고 여겨라.



また、どんな事でも、どんな處でも、そのときが、すべて最(もっと)も良(よ)しとせよ。それは、その瞬間が、すべて、神佛の敎え導き賜う、時・場所であるからだ。

또한, 어떤 일이든, 어떤 곳에서든, 그 때가, 전부 가장 좋은 때라고 여겨라.  그것은, 그 순간(瞬間)이, 전부, 신불(神佛)의 가르치며 인도(引導)해 주시는, 때(時)와 장소(場所)이기 때문이다. 



神は光であり、永遠に、そのお姿は、見ることはできない。しかし、絶えず、神の光に包まれているのである。

신(神)은 빛(光)이며, 영원히, 그 모습(お姿)은,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신(神)의 빛(光)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どんな理由があるにせよ、恨み、妬み、誹り、怒り、愚痴は、絶對にもってはならない。

어떠한 이유(理由)가 있든지, 원망하고, 질투하고, 비방하고, 화를 내며, 불평(愚痴=푸념, 게정, 넋두리)은,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치(愚痴)는, 삼독(三毒)에서 흔히 말하는, "깨닫지 못해서 어쩌구 하는 어리석음"이란 뜻이 아닙니다.




まず、忍辱そして謙虛な心を、忘れてはならない。己の心に、言い譯をし、また慰め逃げようとするものが、ありわしないか、よくよく反省すべし。

우선, 인욕(忍辱) 그리고 겸허(謙虛)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마음에,  핑계(변명)을 하며, 또한 위안을 얻으려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 있지 않은지, 실수없이 충분히  반성해야 한다. 



我我は、すべて靈なり。

우리들은, 전부 영(靈)이니라. 



物質の世は、假りの世であり、すべて物質の運動により起きる、殘像を見ているにすぎない。けだし、その殘像によって、靈として、魂として、何らかのものを、學びとるために、今という時が存在するものなのである。

물질(物質)의 세계(世)는, 가짜(假り)의 세계이며, 전부 물질(物質)의 운동에 의해서 일어나는, 잔상(殘像)을 보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  확실히, 그 잔상(殘像)에 의해서, 영(靈)으로서, 혼(魂)으로서, 어떠한 것을, 배위기 위해서, 지금이라고 하는 시간(時)가 존재(存在)하는 것인 것이다.



物質の世は、そのすべてに對し、執着をもつためにあるのではない。物質の世は、すべて、流れゆく物質の殘像を見て、靈として、より成長するために、永遠に、存在し續けているのである。

물질(物質)의 세계(世)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집착(執着)을 갖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의 세계는, 전부, 흘러 가는 물질의 잔상(殘像)을 보고, 영(靈)으로서, 보다 더 성장(成長)하기 위해서, 영원히,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すばらしき人生、それは、神佛の意に歸依することにあるのである」

훌륭한 인생(人生), 그것은, 신불(神佛)의 뜻(意)에 귀의(歸依)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一日が始まる第一步に、心行と、師の最後の言葉と、守護靈よりの言魂は、必ず己の心に讀み聞かせ、行動を開始している。

하루(一日)가 시작되는 첫걸음(第一步)에, 심행(心行)과, 스승님의 최후의 말씀과, 수호령(守護靈)으로부터의 말씀(言魂)은, 반드시 내 마음에 읽어 들려 주고, 행동(行動)을 개시(開始)하고 있다.



忘れまい、我は、あの世の住人であることを。

잊지 않는다, 나는, 저 세상의 주민(住人)인 것임을.



page 291~293








あとがき 

(후기)



人間、夫婦(ふうふ)であっても、親子にしても、同じ道を步んでいるものは、一人としていないものだ。すべて他人であり、緣(えん)という約束(やくそく)事によって、生まれ、神の意(い)である、大調和という、目的(もくてき)・使命(しめい)を果たすため、神によって、生かされ、生きているものであり、これが、人間としての、理(ことわり)そのものなのである。

인간(人間)은, 부부(夫婦)라고 해도, 친자(親子)라고 해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한 사람도 있지 않은 것이다.   전부 타인(他人)이며, 인연(緣)이라고 하는 약속한 일(約束事=인연)에 의해서, 태어나서, 신(神)의 뜻(意)인, 대조화(大調和)라고 하는,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을 달성하기 위해서, 신(神)에 의해서, 소생되고, 살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이치(理=까닭, 이유) 바로 그것인 것이다.



しかし、人間は、この世に生まれると、自我我欲(じががよく)という、自己保存的(じこほぞんてき)なものを、造り出してしまうため、物質的に惠まれているものは、增長慢(ぞうちょうまん)となり、奢(おご)り驕るっ心を造り、惠まれないものは、自ら卑下の心を造り、それぞれ、その心を通し、歪み心を造り出し、惱みという、重荷(おもに)を背負(せお)うものである。

하지만,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자아아욕(自我我欲)이라고 하는, 자기보존(自己保存的)인 사람을, 만들어 내어 버리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은, 더욱 거들먹거리가 되어, 사치하며 거만하게 구는 마음을 만들어, 풍족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비하(卑下)하는 마음을 만들어, 저마다가, 그 마음을 통해서, 비뚤어진 마음을 만들어 내서, 고민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이다. 



人間は、今現在の結果(けっか)だけを見、自分中心に、物事を促(とら)え、他と比較(ひかく)するために、不平不滿を造り出すものであり、これが歪みの大きな、原因(げんいん)を成しているものなのである。

인간은, 지금 현재의 결과만을 보고, 자기 중심(自分中心)으로, 일체의 사물을 파악하고, 남과 비교를 하기 때문에, 불평불만(不平不滿)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이것이 비뚤어짐의 큰, 원인(原因)을 조성하고 있는 것인 것이다. 



現代世相は、努力もせず、他人より少しでも樂(らく)をし、より多くの物を得(え)ようとするために、自己主張(じこしゅちょう)をするものが多い。しかしこの世は、そうは行かないものだ。

현대의 세태(世相)는, 노력도 하지 않고, 타인보다 조금이라도 즐겁게 생활하고, 보다 많은 물건(物)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주장(自己主張)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세상(この世)은, 그렇게는 안 되는 것이다. 



例えば、スポーツにしても、一般社會のことにしても、專門(せんもん)の敎育を受けたから、世間に出れば、それが直(ただ)ちに、運用(つうよう)すると思いがちである。それこそ錯覺(さっかく)そのものなのであり、彼のロマンにしても、一朝(いつちょう)にして成らづである。

예를 들면, 스포츠(Sport)라고 해도, 일반 사회의 일이라고 해도, 전문 교육(專門敎育)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世間)에 나오면, 그것을 바로, 운용(運用)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그야말로 착각 그 자체인 것이며,  그 사람의 로망(낭만)이라 해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また學問は、物事の基礎(きそ)を敎えるものであり、あくまでも知識(ちしき)であり、理屈(りくつ)そのものであり、これに行爲(こうい)の積み重ねがあって、始めて物事が、成就(じょうじゅ)するものなのである。

또한 학문(學問)은, 일체의 사물(物事)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며, 어디까지나 지식(知識)이며, 사물의 이치(理屈) 바로 그것이며, 이것에 행위(行爲)의 거듭이 있어야, 비로소 매사(物事)가, 성취되는 것인 것이다.



僧侶(そうりょ)や牧師(もくし)の說法(せっぽう)のように、もっともらしく說(と)き、信者は、もっともらしく、ありがたく拜聽(はいちょう)する。その場だけの、ありかたさだけで、それこそ、心が淨化(じょうか)されたような錯覺を、起こしているに過ぎない。こうした人人には、恐らく、大切な行爲など、何處(どこ)へやらではなかろうか。僧侶も牧師も、またそれでよしとし、信者もまた、その說法の內容(ないよう)が、何であるのかなど、關係(かんけい)はなく、その說法を聞くだけのことに、重点をおいているので、その場限りでよいのあろう。まさに淸凉劑(せいりょうざい)そのものである。これをもって、末法(まっぽう)というのであろう。

승려(僧侶)나 목사(牧師)의 설법(說法)처럼, 그럴 듯하게 설명하고, 신자(信者)는, 그럴 듯하게, 고맙게 배청(拜聽)한다. 그 장소(場)에서만, 고마울 뿐이며, 그야말로, 마음이 정화(淨化)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음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필시, 중요한 행위 따위는, 어딘가로 보내 버린 것이 아닐까? 승려(僧侶)도 목사(牧師)도, 또한 그것을 좋다고 하며, 신자(信者)도 역시, 그 설법(說法)의 내용이, 무엇인지 따위는, 관계는 없고, 그 설법을 듣을뿐인 것ㄷ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장소에 한해서 좋을 것이다.  정말로 청량제(淸凉劑)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말법(末法)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佛は絶えず、日日の生活の中で、心を基(もと)にした行爲、そして、その行爲の積み重ねが、最(もっと)も大切であると、說かれておられるのである。しかるに、大方のものは、そうした行爲もなく、行爲も積み重ねもなく、日日の生活の中で、目前(もくぜん)を、數(かぞ)えきれない人や、有形無形(ゆうけいむけい)のものが、通り過ぎている。それをすべて、自己本位、自我我欲の見方をするために、自分に對し利益のあるときは、當然となり、不利益なことが起きれば、すべて他人のせいにする。このように表面だけの、一喜一優を造り出して、飜弄されているのが、常である。この邊から人間本來、通るべき道を間違えてしまい、物の中に埋沒、物に振り廻され、人間としての、大切な目的・使命を果たさず、この世を終わらねばならない、大きな原因を造り出しているのである。

부처님(佛)은 끊임없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마음을 기초(基)로 한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쌓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한 행위도 않고, 행위도 쌓아 올리는 일 없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눈앞(目前)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나, 유형무형(有形無形)의 것(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그것을 전부, 자기본위(自己本位), 자아아욕(自我我欲)의 입장(見方)에서 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이익(利益)이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기며, 불이익(不利益)인 것이 생기면, 전부 타인의 탓으로 삼는다.  이와 같이 표면만의, 일희일우(一喜一優)을 만들어 내며,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흔히 있는 일(常)이다.  이와 같은 인간 본래, 지나가야 할 길을 잘못해 버리는, 물건(物) 속에 매몰되어, 물건(物)에 휘둘리며, 인간으로서의, 중요한 목적과 사명을 완수하지 않고, 이 세상을 끝내서는 안 되는, 큰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しかし、よく省(かえり)みるに、たとえどんな事柄においでも、それはすべて、己の心の淨化(じょうか)をはかるため、間違いやすく、振り廻されやすく、歪(ひず)みが起こりやすく、その中で互いに、何らかのものを、學び取るために、それぞれの周圍の中で、見たり聞いたり試(ため)したりと、行爲していることに、氣付かずにいるということになのである。

하지만, 잘 뒤돌아보면(잘 반성하면), 가령 어떤 사항에 있어서도, 그것은 전부, 자기의 마음의 정화를 도모하기 위한, 잘못하기 쉬운, 휘둘리기 쉬운, 비뚤어짐이 생기기 쉬운, 그 속에서 서로가, 어떠한 것을, 배우기 위해서, 저마다의 주위 속에서, 보거나 듣거나 시험하거나 하며, 행위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大自然は、時の中で、萬生萬物すべてのものに對し、慈悲の手を差し延べたり、反對に大きな、鞭となり勇氣付けてくれる。これが大自然そのものの姿であり、しかも無常そのものなのである。

대자연은, 때(時)의 속에서, 만생만물 모든 것에 대해서, 자비(慈悲)의 손길을 내밀거나, 반대로 큰, 채찍이 되어 용기(勇氣)를 북돋아 준다.  이것이 대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며, 게다가  무상(無常) 바로 그것인 것이다.



こうした中で、すべてのものは、生れた時に、あの世から持って來た時間を全うし、この世のすべとのものに、別れを告げて行くものである。これも法の定めるところであり、これが人の世の常なのである。

이러한 중에서, 모든 것은, 태어났을 때에, 저 세상에서 갖고 온 시간을 온전하게,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이별을 고해 가는 것이다.  이것도 법(法)의 정한 바이며, 이것이 인간 세상의 흔한 일인 것이다. 



人はこの世の中で、中道という掟(おきて)に反し、自我我欲の果て、執着を造り、惱み苦しみの末に、この世を去るものが、非常に多いものだ。

사람은 이 세상 속에서, 중도(中道)라고 하는 규정(掟=규칙)에 반해서, 자아아욕(自我我欲)의 결과, 집착을 만들고, 고민하고 괴로움 끝에,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法は、中道の心そのものであり、中道には、我がない。人間も中道に從って生きれば、幸福という至寶(しほう)を、手にすることが出來るのである。

법(法)은, 중도(中道)의 마음 바로 그것이며, 중도(中道)에는, 내(我)가 없다.  인간도 중도(中道)에 따라서 살면, 행복하다고 하는 지보(至寶)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人間は萬物の靈長として、大自然の中に、すべてのものと共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であり、何事にも、賴らず、怠けず、逃避せず、この世の怒濤(どとう)を、乘り越える過程(かてい)の中での、行爲そのものが、心に潛在(せんざい)され、後後(のちのち)の世に、より素晴(すば)らしき、智慧(ちえ)を生み出して行くものである。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 대자연 속에, 모든 것과 다 같이, 소생되어, 살고 있는 것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기대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도피하지 않고, 이 세상의 노도(怒濤)을, 극복하는 과정(過程) 속에서의, 행위(行爲) 그 자체가, 마음에 잠재(潛在)되어, 다음 생에, 보다 훌륭한, 지혜(智慧)을 낳아 가는 것이다.


しかし、こうした過程(かてい)の中では、後後にどのような結果(けっか)を、生み出して行くのか、誰も知ることは出來ない。何事も、その過程の中を永遠に、步み續け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하지만, 이러한 과정(過程) 속에서, 장래에 어떠한 결과를, 낳아 가는지, 누구도 알 수는 없다. 무슨 일이든, 그 과정 속을 영원히, 계속 걷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高橋信次師の敎え、正法の緣(えん)に、少しでもふれた方方だけでもよい、大自然の法に感謝し、中道の精神(せいしん)、八正道を基(もと)にした、生き方を共にして行けたら、本當に嬉しいことである。これ以上の嬉(よろこ)びはない。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스승님의 가르쳐 주신, 정법(正法)의 인연(緣)에, 조금이라도 닿은 분들만이라도 괜찮고, 대자연의 법에 감사하고, 중도(中道)의 정신(精神), 팔정도(八正道)를 기초(基)로 한, 생활 태도(생활 방식)을 동시에 해 간다면, 정말로 기쁜 일이다.  이 이상의 기쁨은 없다. 

 


page 294~298  完全 飜譯 終了  20151229pm1851


總 299 page 終了







福島縣福島市出身

(후쿠오카 현, 후쿠시마 시, 출신)


昭和四十六年三月 高橋信次師の敎えに歸依、師亡き後、獨自にて、師の說かれた敎えを追求、現在に至る。

쇼와 46년 3월,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스승님의 가르침에 귀의, 스승님이 사망 이후, 독자적으로, 스승님의 설명하신 가르침을 추구하며, 현재(1997년)에 이른다.

現在千葉縣市川市在住。

현재 치바 현 이치카와 시에 거주.


著書に「佛の道」がある。

저서에, 「부처님의 길」이 있다. 


쿠치키 타케토(朽木上人)님은,   2003년에 사망하시었고,  82세 때였다.


★이 책은, 한국에 출판된 적이 없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아무쪼록 일본의 본 책의 출판사인, 빛 출판사(ひかり出版社)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바입니다. 


http://hikarilife2.com/3.html


★ 위 사이트에 가시면, 일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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