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心眼を開く(심안을 열다=마음의 눈을 뜨다) 1974년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1974년 6월 본문
心眼を開く
심안을 열다(마음의 눈을 뜨다)
心眼を開く
심안을 열다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光 빛
法は大自然の心である 人はこの法を持って
思念と行いをせる。
법은 대자연의 마음이며, 사람은 이 법을 가지고, 사념과 행위를 하게 한다.
-高橋信次-
이 말은, 책 표지 안쪽에 있는데요. 워낙 흘림체이지만 바르게 올렸습니다.
이 책은 총 249페이지입니다.
2010년 6월 08일부터 11월 28일까지 나뉘어 올렸던 것을, 2015년 11월 9일에, 한권을 모두 한 면에,
묶어서 올렸습니다.
2017년 4월 현재, 글씨체에 색을 두껍게 칠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계속해서 글자를 입히고, 한자를 넣고, 고유명사를 명확히, 정리하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100% 완성될 때까지는, 그냥 눈으로 봐 주시길 바라며,
스크랩이나 복사는, 당분간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Page를 다시 한 번, 책을 보면서, 점검 중입니다.
기존에 최초에 올렸던, 나뉘었던 것은, 삭제했습니다.
左右 在りし日の高橋信次先生 좌우: (고인의) 생전의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
中央 お亡くなり1周忌に写った光の写真 중앙: 돌아가시고 1주기에 찍힌 빛의 사진
※사진 출처: https://plaza.rakuten.co.jp/hhokari/
▷はしがき◁
[머리말]
私はごれまでさまざまな角度からほんを書いで來ましだ。ごれから書きつづけます。本を書く目的は、社會のよりだくのほうほうにこころの偉大さ、尊嚴さを知っていただき、その心で現實の生活をしてもらいたいからです。
저는 지금까지 가지각색의 책을 써 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계속 쓰겠습니다. 책을 쓰는 목적은, 사회의 보다 많은 분들에게 마음의 위대함, 존엄을 알아 주시고, 그 마음으로 현실의 생활을 해 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苦樂の原点は、私たちの心の在り方にかかっています。あれが欲しい、ごれが欲しい、あいつが憎い、負けてたまるがという心は、肉體の五官から生まれてくるものです。肉體五官に心が動き、心が外にのみ關心が移いってきますと、ものの本質を知ることもなく、爭いや欲望がつのってくろものです。
고락의 원인은, 우리들의 마음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에 달려 있습니다. 저것이 갖고 싶다, 이것이 갖고 싶다, 저 놈이 밉다, 지고 견딜까 하는 마음은, 육체에 오관에서 태어나오는 것입니다. 육체오관에 마음이 작용하고, 마음이 밖으로만 관심이 옮아가면, 사물의 본질을 아는 일도 없고, 다툼이나 욕망이 점점 더해져 오는 것입니다.
現實社會をみて下さい。物質地上の考えが大手を振ってのし步き、高度經濟成長の名の下に、人びとは物の渦の中に卷き込まれていきました。その結果はどうだったでしょう。公害、インフレ、物不足、そして、人びとの心は荒み、エゴと爭いが巷(ちまた)にあふるれ出ることになりました。歷史は繰り返すといいますが、人が物にとらわれ、五官六根に心が片寄り、自分を失って來ますと、殘ろものは苦しみ、悲しみだけとなります。人類の歷史は、五官におぼれた苦樂の歷史といっていいようです。
현실사회를 보십시오. 물질지상의 생각이 활개를 치고 으시대며 활보하고, 고도성장의 미명 하에, 사람들은 물질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갔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지요. 공해, 인플레이션, 물자부족,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거칠어지고, ego[이기심, 자아]과 다툼이 거리에 넘쳐 흐르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합니다만, 사람이 물질에 사로잡히고, 오관육근에 마음이 치우치고, 자신을 잃어 버리면, 남는 것은 괴로움, 슬픔뿐이 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오관에 빠진 고락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人が苦樂の中におぼれるかぎり、人も社會も安らきあるものはなりません。心の不安は心を外に向け、それにとらわれ執着すると起こるのです。安らぎは、心を內に向け、法に適った反省の生活から生まれてきます。この道理は、私だちも人間が大自然という環境の中で生かされ、生きている限り、過去、現在、未來を通して變えることお出來ないものなのです。
사람이 고락 속에 빠지는 한, 사람도 사회도 평안해지는 일이란 없습니다. 마음의 불안은 마음을 밖으로 향하고, 그것에 사로잡혀 집착하면 발생하는 것입니다. 평안은, 마음을 안으로 돌리고, 법에 꼭맞는 반성의 생활에서 태어납니다. 이 도리는, 우리들 인간이 대자연이라고 하는 환경 속에서 소생되고, 생존해서 살아 있는 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私は、自然の掟である法というもの、そして現實の社會に現われているさまざまな矛盾を、いろいろな角度からこれまて述ぺて來ましたが、これからも術べてゆくつもりです。
저는, 자연의 법규[규정]인 법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현실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지금까지 서술해 왔습니다만, 이제부터라도 서술해 갈 작정입니다.
本書は、私の人生で體驗した神理をもとにして綴ったもので、人生に疑問をいだいている方なら、きっと理解されてくるものと確信します。さきに出版した『心の指針』では、自然が敎える正しい法について、もっともとを原理的な事柄を記述して來ました。今回は、現實生活の生き方を中心に、さまざまな諸問題にふれました。これらはずに講演會の際に、皆さんから質問をうけたものです。問答集は出來るだけ多くの事柄を擧げてゆきたいど思いましたが、紙面の都合もあってそれが出來ず、また次の機會に問答集だけのものをまとめたいと考えております。また、第三章のひびきは、任事や講演のちょっとした間隙に浮かんできたものをメモしたのです。
본서는, 저의 인생에서 체험한 신리를 기초로 해서 엮은 것이며, 인생에 의문을 품고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이해되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전에 출판한 『 마음의 지침』에서는, 자연이 가르치는 올바른 법에 대해서, 가장 원리적인 사항을 기술해 왔습니다만, 이번은, 현실생활의 삶의 방식을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여러 가지 문제에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주로 강연했을 때에, 여러분한테서 질문을 받은 것입니다. 문답집은 가능한 한 많은 사항을 열거해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면 사정도 있고 그것을 할 수 없고, 또 다음 기회에 문답집만의 것을 종합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 3장의 울림[메아리]은, 일이나 강연할 떼 그냥 문득 틈틈이 뇌리에 떠오른 것을 메모한 것입니다.
讀者の皆さん、私がここで書いていることは皆さんの生活に安らきを與えるものです。自分の生活を整え、健康で明るい生活を求めたいならば、自然にそった生活をしてぐださい。
독자 여러분, 제가 여기에 쓰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생활에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정돈하고, 건강하며 밝은 생활을 찾고 싶다면, 자연에 따른 생활을 해 주십시오.
なお筆者の考え方に共鳴される人びとが、正しい生活實踐のためGLA(神理の會)という組織をつくっています。關心をお持ちの方は下記にお問合わせください。
덧붙여 말하자면 필자의 사고방식에 공명되는 사람들이, 올바른 생활실천을 위해 GLA(신리의 회)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시는 분은 하기[下記]로 문의해 주십시오.
一九七四年六月吉日 1974년 6월 길일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東京都 台東區 雷門 2-2-68 八起 빌딩 內 GLA總合本部 電話 03-3843-7941 03-3621-4188 ^
page 1~3 ※이 주소와 전화번호는 나중에 확인해 볼 께요. 맞나 틀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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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하세요. 본문의 책과는 별개의 내용입니다만,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GLA(God Light Association)의 약자입니다. 宗教法人GLA総合本部(しゅうきょうほうじんジーエルエーそうごうほんぶ)、God Light Associationは、1969年設立の新宗教団体。創設者は、高橋信次。 高橋信次の長女、高橋佳子。 なお、宗敎法人GLA関西本部は別法人であり、高橋信次を教祖とするが、高橋佳子を指導者とは認めていない。
종교법인 GLA 종합본부, God Light Association는, 1969년 설립한 종교단체. 창설자는,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다카하시 신지의 장녀, 다카하시게이코(高橋佳子). 역시, 종교법인 GLA관서본부는 별개의 법인이며, 다카하시 신지를 조교(敎祖)로 하지만, 다카하시 게이코(高橋佳子)를 지도자(指導者)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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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목차
第一章 般若への道 제 1장 반야로의 길
人生と悟り 인생과 깨달음 11~
般若波羅蜜多への道 반야바라밀다로의 길 18~
魔に負けるな 악마에게 지지말라 24~
殺生 살생 30~
供養 공양 32~
宗敎と科學 종교와 과학 35~
神と罰 신과 벌 37~
轉生輪廻 전생윤회 39~
調和 조화 42~
正法の變遷 정법의 변천 44~
心と肉體 마음과 육체 46~
節度を持て 절도를 지니고 48~
人間らしい 인간답게 51~
一日一生 일일일생 53~
三體理論 삼체이론 55~
現代の歪 현대의 비뚤어짐 57~
波羅蜜多 파라밀다[바라밀다] 60~
他力の誤り타력의 잘못 62~
大乘思想 대승사상 64~
足るを知る 만족함을 알다 66~
神と佛 신과 부처 69~
參禪 참선 71~
謙虛 겸허 73~
布施 보시 78~
心の三毒 마음의 세가지 독 78~
正法の道德 정법과 도덕 80~
轉生の記憶 환생[윤회]의 기억 85~
中道と惡魔 중도와 악마 85~
類は友を呼ぶ 유유상종[類類相從] 87~
正法と業 정법과 업 89~
遇然 우연 96~
勇氣 용기 98~
自分をつくる 자신을 만든다 100~
諸行無常 제행무상 102~
ジャプド―バ 쟈브토바 104~
page 11~106
第二章 問答集
제 2장 문답집
靈魂 영혼 109~
祈りについて 기도에 대하여 111~
慈悲 자비 114~
愛 사랑 116~
正法と己の心 정법과 자기의 마음 118~
靈道 영도 120~
正法と祈禱 정법과 기도 123~
信と行 믿음과 행위 125~
五人の分身 다섯 명의 분신 128~
夢 꿈 131~
敎導と功德 교도와 공덕 133~
恐れるな 무서워말라(두려워말라) 136~
本體、 分身 본체, 분신 139~
平和のため 평화를 위한 141~
催眠術 최면술 144~
宗敎と神秘力 종교와 신비력 146~
死者の供養 죽은 자의 공양 149~
お經 경문[불경(佛經)] 151~
文明 문명 154~
迷い 미혹[迷惑] 156~
靈現象 영현상 159~
毒矢の譬 독화살의 비유 161~
page 109~166
第三章 ひびき 제3장 울림
正直 정직 169
苦惱 고뇌 169
執着 집착 170
死を急ぐ 죽음을 서두르다 170
正法 정법 171
神理 신리 171
行い 행위 172
想念 상념 173
幸福者 행복한 사람 174
慈悲,愛 자비,사랑 174
柔和 유화 176
妥協 타협 176
愛 사랑 177
とらわれ 사로잡힘[포로] 177
自由 자유 178
夢 꿈 179
運命 운명 179
勇氣 용기 180
責めるな 나무라지 말라[비난하지 말라] 181
愛 사랑 182
誘惑 유혹 183
經驗 경험 183
悟り 깨달음 183
實踐 실천 183
勇氣 용기 184
今 지금 184
行い 행위 184
天國と地獄 천국과 지옥 185
一步一步 한 걸음 한 걸음 185
奇跡 기적 185
安心 안심 186
自分との戰い 자신과의 싸움 186
毒 독 187
波動 파동 187
業 업 188
極樂 극락 188
現象利益 현상이익 188
平等 평등 189
愛 사랑 189
さばき 심판[재판] 189
信賴と理解 신뢰와 이해 190
自戒 자계 192
勞力 노력 190
役割 역할 191
全なる心 온전[흠·결점의 없는]한 마음 191
體驗 체험 192
義務と責任 의무와 책임 192
足ること 만족 193
忍辱 인욕 193
謙虛 겸허 193
神の道 신의 길 194
五體 인간의 몸의 전부[전신(全身)] 194
靑空 파란 하늘 195
無我 무아 195
重荷 무거운 짐[부담] 195
前進 전진 196
公平 공평 196
燈臺の燈 등대의 등불 197
意思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 199
苦の種 괴로움의 씨앗 199
惡 악 199
悟り 깨달음 200
先祖供養 선조공양[조상공양] 200
眞·善·美 진·선·미 200
諸行無常 제행무상 201
とらわれ 사로잡힘[노예] 201
眞の勇者 참된 용자(용기가 있는 사람) 202
地位,名譽 지위,명예 202
解脫 해탈 202
轉生輪廻 전생윤회 202
意識 의식 203
感謝 감사 204
自然を生かす 자연을 소생시킨다[되살리다] 205
危機 위기 205
己を知れ 자신을 알라 206
寬容 관용 206
集團 집단 206
才能の人格 재능과 인격 207
貴賤 귀천 207
想念 상념 207
使命 사명 208
一つの悟り 한 가지의 깨달음 209
自由人 자유인 210
無償の行爲 무상의 행위 210
天使 천사 201.
知る者の心 만족하는 자의 마음 211.
眞の人間 참된 인간 211.
現代 현대 211
思想、習慣 사상,습관 212
惡のにがさ 악의 부피가 커짐 212
page 169~ 212
第四章 正法について 제4장 정법에 대해서
[正しい循環 올바른 순환]
ウソのつけない自分の心 거짓말을 못하는 자신의 마음 215~218
佛敎もキリスト敎も心を說く 불교도 그리스도교[기독교]도 마음을 설명한다 218~222
ミロク、聖觀世音菩薩が指導靈として 미륵,관세음보살이 지도령으로서 222~225
光の天使は神佛の使者 빛의 천사는 신불의 사자 225~228
循環の法則は宇宙の神理 순환의 법칙은 우주의 신리 228~232 (이 항의 누락 발견, 20170415)
苦しみの原因は生老病死 괴로움의 원인은 생노병사 232~235
八正道こそ正覺、菩薩への道。팔정도야말로 정각, 보살로의 길 236~239
page 215~239
第五章 用語解說
제 5장 용어해설
循環-순환
信心-신심
信仰-신앙
五官-오관
止觀-지관
念力-염력
彼岸-피안
潛在意識-잠재의식
煩惱-번뇌
因果應報-인과응보
解脫とは-해탈이란
惡-악
動物靈-동물령
憑依-빙의
實在界-실재계
靈道-영도
先祖-선조
意識の同通-의식의 동통
行- 행위
六根-육근
page 241~24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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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찾아 주시어, 정법을 공부하시는 분들께 한 마디 말씀을 올립니다]
※ 간단히 앞으로 소개할 내용의 머리말과 목차를 올렸습니다.
제목들은 기존의 내용에 있는 것들과 제 4장의 경우도 역시, 제가 이미 올렸습니다만, 이 책은 한국에서는 출판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번에 올릴 때는, 속도가 약간 느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일본내의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 실재로 제가 책을 보면서, 풀어 내고 있고, 원문을 어찌 어찌해서 ~ 직접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서, 다시 본 블로그에 편집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아주 복잡합니다.
....시간을 들여서 목차의 한글로 된 바로 위에, 일본어로 된 원문의 책의 글자 그대로 올릴 것입니다.
조금 기다려 주십시요.
▷人生と悟り◁
인생과 깨달음
正法流布のスタート時は、わずか二、三人でした。それがひと月だち、ふた月たつにしたがって、人びとがふれ、普遍的な心について一人一人が發見してゆくようになりました。
정법유포를 시작할 때는 불과 2, 3명이었습니다. 그것이 한달, 두달이 경과함에 따라서, 사람들이 늘어나고, 보편적인 마음에 대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발견해 가게 되었습니다.
人間がこの地上界に出生する以前は、次元の異なった世界に存在し、さらにそれ以前には現在と同じように肉體生命を持っていたという事實は、皆さん自身の心の窓をひらいたときに、それ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인간이 이 지상계에 출생하기 이전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더욱이 그 이전에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육체생명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창을 연 다음에,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このことは物質界をみると非常にはっきりします。一杖の紙には表と裏があります。つまり陰陽二面性を持っており、その陰陽二面性はそのまま調和につながり、一杖の紙を存在せしめているのです。私たちの肉體についても魂という普遍的な生命と同居し、生活しているのです。死は肉體と魂の分離であり、肉體は土となり、魂は次元の異なる世界に歸っていきます。紙は灰になり、土になり、エネルギーとして大氣に戻っていきます。
이 사실은 물질계를 보면 매우 뚜렷합니다. 한 장의 종이에는 겉과 속이 있습니다. 즉 음양 이면성을 지니고 있고, 그 음양 이면성은 그대로 조화로 이어지고, 한 장의 종이를 존재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육체에 대해서도 영혼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생명과 동거하고,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이며, 육체는 흙이 되고, 영혼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 돌아갑니다. 종이는 재가 되고, 흙이 되어, 에너지가 되어 대기로 되돌아갑니다.
佛敎では色心不二ということをいっています。物理學では、質量と光の積は任事をなし得る能力と說明しています。そのいわんとするところはともに同じです。
불교에서는 색심불이[色心不二]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질량과 빛의 곱은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같이 똑같습니다.
私かちの普遍的生な生命は、實在界という四次元以降の世界よりこの地上界に、自分自身が望んで兩親を選び、經濟的に豊かな環境に生まれるのも、不調和な環境を選ぶにしても、それぞれが望んで出てきているのです。出生の目的は、己の魂の向上であり、調和にあります。物質經濟は生きるための一つの手段にすぎません。地位や經濟の多寡によって人格が定まるものではさらさらありません。ところで人間は自分自身の知惠に溺れ、物質經濟の奴隸と化し、爭いと鬪爭を生み出しています。
우리들의 보편적인 생명은, 실재계라고 하는 4차원 이후의 세계에서 이 지상계에, 자기 자신이 바램으로 부모를 선택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 태어나는 것도, 부조화한 환경을 선택하더라도, 저마다가 원해서 나오는 있는 것입니다. 출생의 목적은, 자기의 영혼의 향상이며, 조화에 있습니다. 물질경제는 살아가기(생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지위나 경제의 다과[多寡]에 따라서 인격이 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지혜[知惠]에 빠져, 물질경제의 노예로 되어, 다툼과 투쟁을 낳고 있습니다.
私たちの魂は、この地上界に出生して來るときにはほとんどが、,あらゆる轉生輪廻をくりかえし、,神の子として偉大なるまるく大きい豊かな心を所有していたのです。
우리들의 영혼은, 이 지상계에 출생해서 올 때에는 대부분이, 온갖 전생윤회를 반복하고, 신의 자녀로서, 위대한 둥굴고 큰 풍요로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人間の五體は、母親の胎內で約三カ月目ぐらいでほぼ形成されます。各人の魂は、その時分になると、はじめてその胎兒の中にはいり、人生航路の肉體舟について確認をします。この頃は母親につわりという現象が出ます。つわりは母親の意識と胎亞の意識のズレが原因です。胎兒 への入魂は、各人が自ら望んだものです。かくて十月十日、母親の腹の中で成長し、出産と同時に、各人の魂は、實在界あの世と絶斷します。出産はあの世からみると死です。
인간의 오체[五體=온몸]는, 모친의 태내에서 약 3개월째 정도에 거의 형성됩니다. 각자의 영혼은 그 무렵의 되면, 처음으로 그 태아의 속으로 들어가며, 인생항로의 육체배에 대해서 확인을 합니다. 모친에게 입덧이라고 하는 현상이 나옵니다. 입덧은 모친의 의식과 태아의 의식의 차이가 원인입니다. 태아로의 입혼[入魂]은 각자가 스스로 원한 것이다. 이리하여 열달 열흘, 모친의 뱃속에서 성장하고, 출산과 동시에, 각자의 영혼은, 실재계 저 세상과 단절합니다. 출산은 저 세상에서 보면 죽음입니다.
乳兒は一週間ぐらいまつと、敎えないのに笑顔をみせます。これは實在界にいる魂の兄第や友だちが、乳兒の前途を祝福したり、はなむけの言葉に對する應答なのです。嚴しい物質文明の奴隸の化さぬより、病める諸の衆生を救う目的を果たすために、乳兒の魂は笑顔をみせるのです。
유아[乳兒]는 1주일쯤 지나면, 가르쳐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을 보입니다. 이것은 실재계에 있는 영혼의 형제들이나 친구들이, 유아[乳兒]의 전도(장래)를 축복하거나, 전별(석별)의 말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엄격하고 가차없는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 병든 여러 여럿의 중생을 구하는(구제하는)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유아의 영혼은 웃는 얼굴을 보이는 것입니다.
※乳兒[유아] : 신생아기 이후 직립이 가능할 때까지의 어린아이, 혹은, 생후 1년까지의 소아[生後一年頃までの小児]
※전별 : 길 떠나는 사람에게 선사하는 금품·시가(詩歌) 등.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전별의 말.
私たちが小學校を出て中學に、高校、大學に進み、社會人として單立つときには,社會のため己のためにと、希望をもって出ていくように、出産の場合も、百人が百人,こうした氣慨をもって出てくるのです。ところが成長するにしたがい、自己保存が育っていって自我の虜(とりこ)になってしまり場合が非常に多いのです。
우리들이 초등학교를 나와서 중학교에,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인으로서 자립할 때에는, 사회를 위해 자신을 위함이라고, 희망을 갖고 나오듯이, 출산의 경우도, 백명이면 백명, 이러한 기개[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지니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장함에 따라, 자기보존이 성장해서 자아의 포로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自我心の芽は、肉體舟の五官(眼、耳、鼻、舌、身)によって培われていきます。偉大なる佛智は次第に遠のき、鬪爭と破壞という不調和な環境をつくりだしていきます。人類の歷史は調和の日日より、暗闇の歷史といってもいいのです。
자아심(自我心)의 싹은 육체의 오관(눈, 귀, 코, 혀, 몸)에 따라서 능력이나 심성을 길려 갑니다. 위대한 불지(佛智)는 점점 멀고, 투쟁과 파괴라고 하는 부조화한 환경을 만들어 내어 갑니다. 인류의 역사는 조화의 나날보다, 어둠의 역사라고 말해도 좋은 것입니다.
現代は資本主義と社會主義の二大思想が對立し、神の子としての本性は、いつのまにか、物質文明に集中され、武力は資本力に支配され、勞動者は團結してこれに立ち向かうという爭いの場を生み出しています。爭いの根本は、すぺての規準が物質經濟におかれ、人間信賴という出産時の約束を忘れ去ってしまったからにほかなりません。
현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2대 사상이 대립하고, 신의 자녀으로서의 본성은, 어느 사이엔가, 물질문명에 집중되어, 무력은 자본력에 지배되어, 노동자는 단결해서 이것에 대항한다고 하는 다툼의 장을 낳고 있습니다. 다툼의 근본은, 모든 규준이 물질경제에 중점을 두고, 인간 신뢰라고 하는 출산시의 약속을 잊어버렸기 때문임에 틀림없습니다.
しかしともあれ、私たちの一切の苦しみの根元は、他人でなく自らの肉體の船頭さんであるところの魂、己自身の心なのです。喜怒哀樂を生み出すものは、すべて自分の心です。佛敎やキリスト敎は、このことを敎えてきたのですが、いつのまにか他力本願になってしまい、自分は樂して神に祈れば救われるという間違った方向に進んできてしまったのです。
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들의 일체의 괴로움의 근원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의 육체의 뱃사공으로 있는 곳의 영혼, 자기 자신의 마음인 것입니다. 희노애락을 만들어 내는 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입니다. 불교나 그리스도교(기독교)는, 그 일[것]을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만, 어느 사이엔지 타력본원이 되어 버리고, 자신을 즐기고 신에게 기도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해 와 버렸던 것입니다.
各人の心の中をひもといたときには、あるときは偉大なる王としで多くの人びとを支配し、またあるときには,最もきびしい奴隸的な環境のなかで修行して歸られた人もあります。圓には始めもなければ終りもないように、私たちの生命はあらゆる體驗を積んで、現在地球上という環境のなかで、その本性を悟るべく修行しているのです。
각자의 마음속을 퍼서 읽었을 때에는[마음속의 끈을 풀었을 때에는], 어느 때는 위대한 왕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또한 어느 때에는, 가장 엄격하고 가차없는 노예적인 환경 속에서 수행하고 돌아갔던 사람도 있습니다. 원에는 시작도 없으면 끝도 없는 것처럼, 우리들의 생명은 온갖 체험을 쌓고, 현재 지구상이라고 하는 환경 속에서, 그 본성을 깨닫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ものにはすべて原因と結果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苦しみや悲しみ、病氣にしても、そこには必ず原因があるものです。そこで、その結果を修正するには、まず原因を追及し、その原因を正道に戾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原因をそのままにおいては、結果の好轉は望むべくもないのです。いびつな心が不調和な結果を生み出しているのですから、本來のまるく大きな心にすべく、その原因を、正道という物差しによって一つ一つチェックし、以後そのような原因を作らないように勞力することです。
이치[사물 물질 만물]에는 모두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괴로움이나 슬픔, 병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를 수정하는 데는, 먼저 원인을 추궁하고, 그 원인을 정도[正道]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인을 그대로 두어서는, 결과의 호전은 바랄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 비뚤어진 마음이 부조화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므로, 본래의 둥글고 큰 마음에 통괄하고, 그 원인을, 정도[正道]라고 하는 척도(기준)에 따라서 일일이 확인하고, 이후 그와 같은 원인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今から二千五百有余年前に、正法神理が說かれています。正法神理にそう生活は、中道という物差しで、原因をとりのぞく反省の行爲を怠らぬことである、と。また二千年前にもイエス·キリストが愛を說き、愛に生きるには、まずその罪を懺悔(さんけ)することであるといっています。反省も懺悔も同じです。佛敎では反省を止觀といっており、禪定の基礎も、中道に照らした反省にありました。
지금부터 2500년 남짓 전에, 정법신리가 설교되고 있습니다. 정법신리에 따른 생활은, 중도[中道]라고 하는 척도(기준)이며, 원인을 제거하는 반성의 행위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또한 2천년 전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을 설교하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데는, 먼저 그 죄를 참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성도 참회도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반성을 지관[止觀]이라고 말하고 있고, 선정[禪定]의 기초도, 중도[中道]에 비춘 반성에 있었습니다.
中道に照らした反省とその行爲が生まれてくれば、間違った原因がとりのぞかれたことなのですから、神の光がふりそそがれ、現象生活は自然と整ってくるのです。本來與えられていた慈愛の光を、,自らの力によって心のスモッグを取り去り、再びうけるのです。
중도에 비춘 반성과 그 행위가 생겨 나오면, 잘못된 원인이 제거된 것이기 때문에, 신의 빛이 내리쬐어지고, 현상생활은 자연히 가지런하게 되어 오는 것입니다. 본래 주어져 있던 자애의 빛을, 스스로의 힘에 의해 마음의 스모그를 제거하고, 다시 받는 것입니다.
偶像崇排や祈りによって心の安らきがあると思う人がいるとすれば、それは逃避的なものであったり、自己滿足、自己欺瞞である、とい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他力では決して人は救われるこのはできないのです。
우상숭배나 기도에 의해서 마음의 안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도피적인 것이었거나, 자기만족, 자기기만이다,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타력으로는 결코 사람은 구원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次に大事なことは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です。足ることを知らないがために爭いが絶えないのです。足ることを知れば、自分一人がこの地上界に生きているのではないのですから、感謝の心も生まれてきます。この自然界は、萬生萬物が相互に關係し、依存しながら生活しています。空氣があり、水があり、大自然があればこそ、各人の肉體は保全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し、自然界のこの大慈悲に對して、我我は、無條件に感謝する心が生まれてくるはずです。感謝の心は、行爲によって人びとに盡くすこと、社會に還元することです。感謝は報恩という輪廻によって、はじめてその意義が見出され、實證されてくるものです。世の中には感謝、感謝と言いながら、行爲という勇氣に欠けている場合が多いですが、報恩は、行爲という勇氣なしには實を結ぶことはないのです。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만족할 줄을 안 생활입니다.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투쟁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을 알면, 자신 한 명이 이 지상계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감사(感謝)의 마음도 생겨 나옵니다. 이 자연계는, 만생만물이 서로 관계하고, 의존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기가 있고, 물이 있고, 대자연이 있었기 때문에, 각자의 육체는 보전할 수가 있는 것이고,자연계의 이 대자비에 대해서, 우리들은, 무조건으로 감사(感謝)하는 마음이 생겨 나올 것입니다. 감사(感謝)의 마음은, 행위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감사(感謝)는 보은(報恩)이라고 하는 윤회[輪廻]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 의의[意義]가 발견되어, 실증되어 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감사(感謝), 감사(感謝)라고 말하면서, 행위라고 하는 용기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보은(報恩)은, 행위라고 하는 용기가 없으면 결실을 맺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形あるものは崩れ去っていきます。全て無常です。現在健康であっても、いつの日かその肉體は朽ち果て、やがて我我は實在界、あの世に歸らくなくてはなりません。一切の責任者は自分であって他人ではないのです。自分自身がすべての根本です。それゆえ、人はあの世に歸っても個性を失うことはありません。物理學の法則と同じように、等速度運動をしながらあの世に歸っていきます。病氣で苦しんでこの世を去り、その病氣の原因を追及せずして肉體舟が破壞されあの世に歸ったときには、その病氣の狀態であの世に墮ちていくのです。
형체있는 것은 허물어져 갑니다. 모두 무상합니다. 현재 건강해도, 어느날인가 그 육체는 완전히 썩어 버리고, 이윽고 우리들은 실재계, 저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체의 책임자는 자신이며 타인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저 세상에 돌아가도 개성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물리학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등속도운동을 하면서 저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병으로 괴로워하며 이 세상을 떠나고,그 병의 원인을 추궁하지 않고 육체가 파괴되어 저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그 병의 상태로 저 세상으로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肉體はあくまで人生の乘り舟です。私たちの普遍的な肉體の船頭さんは魂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れば、肉體にまつわる執着は離れていくものです。そのときの私たちは、平和であり、その心に比例した世界に昇んていくのです。
육체는 어디까지나 인생의 승선한 배입니다. 우리들의 보편적인 육체의 뱃사공은 영혼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 육체에 매달리는(달라붙는) 집착은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때의 우리들은, 평화이며, 그 마음에 비례한 세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思うこと、行うことは,神によるところの善なる己の心の裁きにあっているのだといることを知ならくてはなりません。それだけに、每日每日の、一秒一秒の心と行いの在り方が、眞實に適った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신이 계신 곳인 선한 자기의 마음의 심판을 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만큼, 매일매일의, 1초 1초의 마음과 행동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가, 진실로 들어 맞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ゴ―ダマ·シッタルダは,六年の苦行の末、三十六年間の過去を反省します。一週間の反省ののち、一切の苦しみというものは自分自身がつくり出し、苦しみから解放されるには、苦しみの原因をつくらないようにすればよいことを發見していきます。そうしてその後、四十五年間この神理を說き、それは後に中國に渡り、日本に傳わりました。現代は,偶像を拜む他力にかわり、信仰は形骸と化しています。葬式佛敎、觀光佛敎、學問佛敎が今日の佛敎の姿となってしまいました。
고다마 싯타르다(Gautama Siddhartha)는, 6년의 고행 끝에, 36년 동안의 과거를 반성합니다. 1주일의 반성 가운데, 일체의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고,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는 데는,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도록 하면 좋다는 것을 발견해 갑니다. 그렇게 해서 그 후, 45년 동안 이 신리를 설법하고, 그것은 후에 중국으로 건너가고,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현대는, 우상을 숭배하는 타력으로 바뀌고, 신앙은 형해화로 되어 있습니다. 장례식 불교, 관광불교, 학문불교가 오늘의 불교의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형해화[形骸化]: 사람이나 동물, 구조물 따위의 몸과 뼈대나 육체. <질병이나 재화로 인하여 사람의 몸이나 건축물 따위가> ‘앙상한 모습’을 비유한 말. 내용이 없는 뼈대라는 뜻으로, 형식뿐이고 가치나 의의가 없는 것을 이르는 말.
しかし、人間の心というものは、決してそうした形骸化され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一秒一秒の生活、心の在り方が信仰であり、勇氣をもって修正する己自身に、すべてが託されており、悟りの彼岸も、八正道という正道を行じるなかにあることを知らねばならないのです。出産時を思い、悔いのない一生を送られたいと思います。
그렇지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결코 그러한 형해화(形骸化)된 것이 아닙니다. 1초 1초의 생활, 마음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가 신앙이며, 용기를 가지고 수정[修正]하는 자기 자신에게, 모든 것이 맡겨져 있고, 깨달음의 피안도, 팔정도라고 하는 정도[正道]를 실천하는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출산시를 생각하고, 후회가 없는 일생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この稿は昭和四十七年四月九日、八起のビル講演の要旨)
(이 원고는 1972년 4월 9일, 동경 아사쿠사의 GLA종합본부(야오키 빌딩)에서의 강연의 요지)
第1章 般若への道
제1장 반야로의 길.
▷般若波羅蜜多への道◁
반야파라밀다(반야바라밀다 Prajna-Paramita)로의 길
私は十歲の頃から靈的な體驗が起こり、爾來三十二年間、心と物質について追究してきました。その結果、ようやく、問題の核心に觸れ、人の魂が轉生輪廻の過程をふんで、永遠に生き繼けていることを悟りました。心の窓を開いた同志は東京ばかりでなく、關西方面においても同樣な結果となって現われています。
저는 10세 무렵부터 영적인 체험이 일어나서, 그 후 32년 동안 마음과 물질에 대해서 추궁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점차로, 문제의 핵심에 닿고, 사람의 영혼이 전생윤회의 과정을 밟으며, 영원히 삶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창을 연 동지는 도쿄뿐만 아니라, 간사이 방면에서도 같은 결과가 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心の窓といるものが、なぜ開かれるか。轉生輪廻の自覺は、今日の講演である般若波羅蜜多への道であります。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것이, 왜 열릴까? 전생윤회의 자각은, 오늘의 강연인 반야파라밀다(Prajna-Paramita 般若波羅蜜多)로의 길입니다.
般若波羅蜜多とは、本來、今から二天五百有余年前のインド言葉であぴゃにゃぱらみたが、その語源です。中國に渡って當て字となり、般若波羅蜜多となったのです。文字の上からこれを解釋しようとしでも、正しい解釋は出てきません。十人十色の解說が生じるのも無理はないのです。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란, 본래, 지금부터 2500년 남진 전의 인도의 말로 퍄냐 파라미타(Prajna-Paramita)가, 그 어원입니다.
중국으로 건너가 취음자[取音字, 誤字]가 되어, 반야파라밀다가 된 것입니다. 문자상에서 이것을 해석하려고 해도, 올바른 해석은 나오지 않습니다. 10인 10색의 해설이 생겨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입니다.
※ 當て字 =취음자[取音字] 오자[誤字]
1 본래의 뜻이나 철자는 고려하지 아니하고 그 음만 취하는 일.
2 본래 한자어가 아닌 낱말에 그 음만 비슷하게 나는 한자로 적는 일. 예를 들어 ‘생각’을 ‘生覺’으로, ‘각시’를 ‘閣氏’로 적는 것 따위를 이른다.
3 말의 뜻엔 상관(相關) 않고, 음만 비슷하게 나는 한자(漢字)로 적은 일
般若とは偉大なる智慧であります。知識と知慧は別物。波羅とは行くということ、到達するという意味です。蜜多とは、內在された智慧の寶庫を指しているのです。
반야란 위대한 지혜[智慧]입니다. 지식과 지혜[知慧]는 별개의 것. 파라란 간다라고 하는 것, 도달한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밀다란, 내재된 지혜[智慧]의 보고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般若波羅蜜多を得るにはどうすれば良いか。通常は理解に迷います。それというのも、佛敎の長い歷史の中で作り出された學問、哲學という知と意によって、その解釋が塗り替えられてしまったからです。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얻는 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통상은 이해하기에 헤맨다. 그렇다고 하는 것도,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 낸 학문, 철학이라고 하는 지식[知]과 의[意 생각,의지, 의사]에 의해서, 그 해석이 먼저 것과 전혀 다르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般若心經は學文からでは理解できません。なぜかというと、般若心經は、心の在り方と行い方、空の實在の世界と色の現象の世界について說いているからなのです。
반야심경(般若心經 Prajna-Paramita-Sutra)은 학문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야심경(般若心經 Prajna-Paramita-Sutra)은,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와 행동방식, 공(空)의 실재의 세계와 색(色)의 현상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私たちは、まず自分自身が行じ、正しい心の物差しを通して、生活を正してゆくことです。偉大な智慧は、そうした心と行いによって生まれるものであり、般若波羅蜜多の境地は、そうした過程のなかから作り出きれて行くのです。
우리들은, 우선 자기 자신이 실천하고, 올바른 마음의 척도(기준)를 통해서, 생활을 올바르게 해 가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혜는, 그러한 마음과 행위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의 경지(境地)는,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입이다.
ところが般若心經の中には、般若波羅蜜多への道が說かれていません。周知のように、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という言葉か冒頭に出きますが、ごれを捧讀みて觀自在菩薩が深く般若波羅蜜多を行じたときということになると、その意味が、全くわからないものになってきます。
그런데 반야심경(般若心經) 속에는,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로의 길이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관자재보살행심반야파라밀다시(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라고 하는 말이 첫머리에 나옵니다만, 이것을 두손으로 받쳐 들고 읽고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깊은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실행했을 때라고 하는 것이 되면, 그 의미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옵니다.
人生の目的は,般若波羅蜜多であり、それこそ私たちにとって重大な意味を持つもの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인생의 목적은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이며, 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私にとって、佛敎、キリスト敎は全く無關係であり、學んだことがないのです。しかし八正道という大自然を尺度とした心の物差しを通して、日日の生活をして來たときに、自らして心の窓か開かれ、テ―プレコ―ド された自分の轉生輪廻の過程が、ひも解かれてきたのでした。
저에게 있어서, 불교, 그리스도(기독교)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배운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팔정도라고 하는 대자연을 척도로 한 마음의 척도(기준)을 통해서, 매일매일의 생활을 해 왔을 때에, 저절로 마음의 창이 열려, 테이프 레코더된 자신의 전생윤회의 과정이, 끈을 풀 수 있게 되어 온 것이었습니다.
私は最初、なぜ私の家庭や周圍のみに、こうした現象が起こるのであろうかと、疑問に思いました。しかし、,その後、こうした現象の輪が廣かることによって、多くの人びとの心の中にも、魂の永遠不滅を證明する轉生輪廻と、その神理の種が蒔かれていることを知りました。また、學ばないのに偉大な智慧に到達出來るのは、心の窓がひらかれ、過去世を思い出すことによって、過去世に學んだその智慧が現われる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ました。心の窓は、八正道にもとづく實踐によって開かれます。そうした人びとが數多く出て來ています。
저는 맨 처음, 왜 저의 가정이나 주위에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라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 이러한 현상의 바퀴가 넓어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영혼의 영원불멸을 증명하는 전생윤회와, 그 신리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창이 열리어, 과거세를 생각해 내는 것에 의해서, 과거세에 배운 그 지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의 창은, 팔정도에 바탕을 두고 실천함으로 해서 열립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もっと我我のグル―プの中には、キリスト敎,佛敎を學んで來た人もいます。それらの人人の知識と、心の窓をりらいた人人の轉生輪廻の事實が、全く符號していることは、魂の永遠性を證明する好個の資料になっています。
더욱 우리들의 그룹 중에는, 그리스도교(기독교), 불교를 배워 왔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지식과, 마음의 창을 연 사람들의 전생윤회의 사실이, 완벽하게 부호(기호)로 하고 있는 것은, 영혼의 영원성을 증명하는 적당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靈道現象は、聖書の中の使徒行傳第二章と、華嚴經十地品に記錄されており、その記錄がまったく事實であり、現實にも起ごっているのです。「私は、いつどこで生まれ、兄第が何人いて、そこで正法を學んだ。そのときの同志、先輩、友人が現在、ここにいる。誰と誰がその人たちです」と、はっきりと實證されます。そうして、その實證を裏づけるいくつかの參考となる現實的事實も指摘されます。
영도현상(靈道現象)은, 성서 속의 사도행전 제 2장(使徒行傳第二章)과, 화엄경십지품(華嚴經十地品)에 기록되어 있고, 그 기록이 완벽하게 사실이며, 현실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고, 형제가 몇 명이며, 거기에서 정법을 배운 것이다. 그 당시의 동지, 선배, 친구가 현재, 여기에 있다. 아무개와 아무개가 그 사람들입니다」 라고, 확실하게 실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그 실증을 뒷받침하는 몇 개인가의 참고가 되는 현실적 사실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靈道現象は、魂の永遠性を證明する現證の一つです。八正道を學ぶことによって、般若波羅蜜多、つもり內在された偉大な智慧がひもとかれて行きます。
영도현상(靈道現象)은, 영혼의 영원성을 증명하는 현증의 하나입니다. 팔정도를 배우는 것에 의해서,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 즉 내재된 위대한 지혜가 끈이 풀리어 갑니다.
私たちがこの地上界に生まれてくる前は、どこにいたか。次元を超えた、俗にいうあの世といわれる實在界、空の世界から兩親を緣にして生まれて來たのです。生まれてくるときには、生まれてくる環境、自分の將來というものを考えて出てきます。しかし、この世の經濟、地位、名譽というものは、あの世では無關係であり、自分の魂の進化にとって、どの環境が一番適しているかを考えて出てくるわけです。あの世では、人の心は表面に出ているので、お互いに噓をつくことはできません。だいいち、すべてにおいて調和されており、相手の考え、思ふことがわかってしまいます。ところが地上界に出てくると、神の子としての自覺を失い、環境にふり回され、動物以下に下がってしまいます。人類の長い歷史は、こうしたことが原因となって、地獄界をつくって來ました。つもり地獄の心を持った人間があの世に歸り、地獄界をつくっていったのです。この地上界は、そのため、天國と地獄がミックスされた世界となり、その中で自分自身を修行するという狀況をつくり出しているのです。
우리들이 이 지상계에 태어나오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차원을 초월한, 흔히 말하는 저 세상이라고 말해지는 실재계, 공[空]의 세계에서 부모를 인연으로 해서 태어나온 것입니다. 태어나올 때에는, 태어나올 환경, 자신의 장래라고 하는 것을 고려해서 나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경제, 지위, 명예라고 하는 것은, 저 세상에서는 관계가 없으며, 자신의 영혼의 진화로서, 어느 환경이 그중에서 가장 적합하고 있는가를 고려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 세상에서는, 사람의 마음은 표면으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써, 서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첫째로, 모두에게 있어서 조화되어 있고, 상대가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 정서적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이해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지상계에 나오면, 신[神]의 자녀으로서의 자각을 잃어버리고, 환경에 휘둘려, 동물 이하로 전략해 버리고 맙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는, 이러한 것이 원인이 되어, 지옥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즉 지옥의 마음을 지닌 인간이 저 세상으로 돌아가서, 지옥계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지상계는, 그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세계가 되어,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수행한다고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人間の心の針は、三百六十度の無限の方向に向かうように出來ています。自由な心を持っているのです。その自由な心が、うらみ、ねたみ、そしり、いかりというような自己保存、自我我欲、自分されよければいいという想念にとらわれてくると、私たちの心は、もっとも不安定な地獄界に通じてしまいます。同時に、自由な心が自由でなくなってくるのです。地上界の混亂は、こうしたことが原因となって生み出されています。
인간의 마음의 바늘은, 360도의 무한한 방향으로 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유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유로운 마음이, 원망(원한), 질투, 비난(비방), 노여움(분노)라고 하는 것과 같은 자기보존, 자아아욕, 자신만 좋으면 좋다고 하는 상념에 사로잡혀 오면, 우리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정한 지옥계로 통해 버리고 맙니다. 동시에, 자유로운 마음이 자유가 없어져 오는 것입니다. 지상계의 혼란은, 이러한 것이 원인이 되어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物質文明は、人間の生活の知惠が作り出したものです。その生活の知惠に、自分自身が束縛され、物質文明の奴隸になっているのが現實の姿であります。よく考えて下さい。人は生まれてくろときに札束など持ってはきません。死ぬときにも持ってはいけません。この世からあの世に歸るときは、人生において體驗した想念と行爲しか持參出來ないのです。
물질문명은, 인간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생활의 지혜에, 자기 자신이 속박되어,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은 태어나올 때에 돈바발 따위를 갖고 오지 않습니다. 죽을 때에도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돌아갈 때는, 인생에 있어서의 체험한 상념과 행위밖에 지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私だちは、この肉體という舟に乘ると、わずかの10%表面意識で人生を經驗する宿命を負っています。それは、自分の魂を磨くためだからです。地上界は學習の場です。あの世で學んだことを自分で自分をテストする貴重な場所がこの世なのです。神の子が、自ら選んだ環境に對して、どこまで振り回されないで濟んでいけるか、それをテストするのがこの世なのです。こころが、大半の人は煩惱に苦しみ、自分を失っていってしまいます。
우리들은, 이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면, 불과 10%의 표면의식으로 인생을 경험하는 숙명[宿命]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닦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상계는 학습의 장(場)입니다. 저 세상에서 배운 것을 스스로 자신을 시험하는 귀중한 장소가 이 세상인 것입니다. 신[神]의 자녀가,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 대해서, 어디까지 휘둘리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 그것을 시험하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번뇌로 괴로워하며, 자신을 상실해 가 버리고 맙니다.
皆さんはこの會場に來るまで、ある者は新幹線に乘り、ある者は電車に、自動車に乘りついで來られました。乘り物である電車、自動車は變っても、皆さん自身は少しも變らないように、皆さんの魂と肉體舟についても同樣なのです。つまり、あるときには中國に生まれ、あるいはインドに、エジプト に生まれ、そして現在、日本に生まれているのです。そして、より良い自分の心をつくるための學習をしています。
여러분은 이 회장에 오기까지, 어떤 사람은 신간선을 타고, 어떤 사람은 전차를, 자동차를 갈아 타고 오셨습니다. 교통편인 전차, 자동차는 바뀌어도, 여러분 자신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의 영혼과 육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즉, 어느 때에는 중국에 태어나고, 혹은 인도[india]에 , 이집트[Egypt]에 태어나고, 그렇게 해서 현재, 일본에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보다 좋은 자신의 마음을 만들기 위한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こういうことを皆さんが眞劍に考えていったならば、神の子としての自覺も、自然に湧き上がってくると思います。大自然界を眺めると、萬生萬物は、それぞれ相互扶助の下に安定した姿を示しています。人間だけが、萬物の靈長にもかかわらず、その相互關係を破壞しつつあります。自分の首を自分でしばっているのです。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면,신의 자녀서의 자각도, 자연히 솟아올라 온다고 생각합니다. 대자연계를 눈여겨보면, 만생만물은, 저마다 상호부조 하에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인데도 불구하고, 그 상호관계를 계속해서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고 있는 것입니다.
物質文明に飜弄されると、心の中にスモッグが生じ、次元を超えた光の世界からの光が通らなくなります。つもり自我我慾の狹い心は、光の道を閉ざすことになるのです。病氣や事故、不幸の原因というものは、こうした自己保存にある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
물질문명에 농락당하면, 마음속에 스모그가 생겨서, 차원을 초월한 빛의 세계로부터의 빛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즉 자아아욕의 좁은 마음은, 빛의 길을 닫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이나 사고, 불행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자기보존인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般若波羅蜜多への道は、自我我欲の狹い心を、神の子の廣い心に、方向轉換することであります。肉體想念にとらわれない自己を確立し、自然の條理にもづいた八正道を、生活行爲の中に生かすことによって、ひらかれてゆくものです。
반야파라밀다(般若波羅蜜多)로의 길은, 자아아욕의 좁은 마음을, 신의 자녀의 넓은 마음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육체상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기를 확립하고, 자연의 조리[條理]에 바탕을 둔 팔정도를, 생활행위 속에 되살리는 것에 의해서, 열리어 가는 것입니다.
私はそのことを、三十二年の歲月を經て,はじめて,知ったのです。
저는 그 것을, 32년의 세월을 거치고, 비로소, 알았던 것입니다.
(この稿は去る昭和四十八年一月四日、東商ホ―ルでの講演の要旨)
(이 원고는 지난 1973년 1월 4일 동경상공회의소 강당에서의 강연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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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磨に負けるな◁
악마에게 지지 말라
昭和四十三年三月、靈的な現象が私の家に起ってから、はや四年になります。神理の法燈はよりやく全國各地で火の手を擧げできたようです。人間は、神の子としてこの地上界に目的と使命を持って生まれて來たごとは誰の心にも內在されており、不調和な現代社會にもまれながらも、心の琴線に觸れるならば、當然、そうした自覺がよみがえってくるものです。
소화 43년 3월[1968년 3월], 영적인 현상이 저의 집에 일어나고부터, 어느덧 4년이 됩니다. 신리의 법등은 점차로 전국 각지에서 불길을 들고 온 것입니다. 인간은, 신의 자녀로서 이 지상계에 목적과 사명을 갖고 태어나온 것은 누구의 마음에도 내재되어 있고, 부조화한 현대사회에 많은 사람들에 섞여 고생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면, 당연히, 그러한 자각이 되살아나오는 것입니다.
インドの時代ゴ―ダマシッタルダ―が說いた神理は正しく傳えられました。それが、時が經つにしたがって、心を失い、こうであろう、ああであろうと知と意が先走り、學問哲學化されたのです。神社や佛閣の前に行って、一所懸命にお經を上げらば人間は救われるという馬鹿氣たものに變ってしまいました。ことに、中國に渡ってからそうなりました。中國は長い間儒敎が盛んであり、そのために、佛敎が哲學化されたということがいえましょう。
인도의 시대 고다마 싯타르다(Gautama Siddhartha)가 설명한 신리는 올바르게 전해졌습니다.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마음을 잃어버리고, 이랬을 것이다. 저랬을 것이라고 지식과 의지가 주제넘게 앞질러 나아가서, 학문 철학화된 것입니다. 신사(神社 신을 제사지내는 곳,그 건물)]나 불각(부처를 모신 대청, 불당(佛堂))에 가서, 열심히 경문(불경)을 외우면 인간은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는 어리석은 것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특히, 중국으로 건너가고 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오랫동안 유교[儒敎]가 번성하고, 그 때문에, 불교가 철학화되었다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지요.
※신사[神社] : 일본(日本) 황실(皇室)의 조상(祖上)이나 일본인(日本人) 고유(固有)의 신앙(信仰) 대상(對象)인 신 또는 국가(國家)에 공로(功勞)가 큰 사람을 신으로서 모신 사당(祠堂)
※불각[佛閣] : 불당(佛堂), 부처를 모신 대청(大廳)
※유교[儒敎] : 중국(中國) 고대(古代)에 공자(孔子)가 주장(主張)한 인의를 근본(根本)으로 하는 유학(儒學)을 받드는 교. 중국(中國) 사서(四書), 삼경(三經)을 경전(經典)으로 함
佛敎が中國に渡ったのは、二世紀頃であり、そうして五世紀になって廣がりました。天台宗を開いた天台智顗という人は、法華經を南岳慧師のところで學びました。南岳慧師は、每晩夢の中でミロク菩薩から敎えをうけ、法華經を傳されていきます。そうしてその傳授されたものを陣少年、のちの天兌智顗は、佛敎は行いである、行爲のない神理は神理ではないとして、三十七歲のとき、天兌山というところに移り,法華經を說いてゆきます。當時、經文は聲魂(こえだま)を通して、己の心を調和しようとしたものです。つもり韻聲(いんせい)という法を採用したのです。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2세기 무렵이며, 그렇게 해서 5세기가 되어 넓어졌습니다. 천태종을 연 천태지의(天台智顗)라고 하는 사람은, 법화경을 남악혜사(南岳慧師)]한테서 배웠습니다. 남악혜사는, 매일 밤 꿈속에서 미륵보살( (彌勒菩薩, 산스크리트어: मैत्रेय Maitreya, 팔리어: Metteyya),자씨보살(慈氏菩薩)))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법화경을 전수되어 갑니다. 그렇게 해서 그 전수된 것을 진소년(陣少年), 후에 천태지의(天台智顗)는, 불교는 행위[실행]이다. 행위가 없는 신리는 신리[神理]가 아니라고 하며, 37세 때, 천태산이라고 하는 장소로 옮기고, 법화경을 설명해 갑니다. 당시, 경문(經文)은 고에타마(聲魂:목소리의 매력을 표현력이 풍부한 소리)를 통해서, 자기의 마음을 조화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즉 운성(韻聲 : 운율)이라고 하는 법을 채용한 것입니다.
※천태지의[天台智顗] : 지의[智顗]ちぎ、Zhi-yi)(538-597)は、中国の僧侶。天台宗の実質的な開祖であるが、慧文、慧思に次いで第三祖とされている(龍樹を開祖とし慧文を第二、慧思を第三、智顗を第四祖とする場合もある)。尊称 智者大師ともいう。
천태지의 : 지의(538-597)는, 중국의 승려.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인데, 혜문, 혜사에게 다음에 제 3조로 삼고 있다(용수[龍樹]를 개조로 하고 혜문을 제 2, 혜사를 제3, 지의를 제 4조로 하는 경우도 있다) 존칭은 지자대사라고도 한다. ◀ 일본 야후 wikypedia 참조만 하세요.
※남악혜사[南岳慧師] : 慧思(えし, 515年(延昌4年) - 577年(太建9年))は、中国の六朝末の僧。天台智顗の師であり、天台宗の二祖(竜樹を開祖とし第二祖を慧文、慧思を第三祖とする場合もある)とされる。 俗姓は李氏、南豫州(河南省上蔡県)の出身。
남악혜사 : 혜사( (515년(정창 4년) - 577년(태건 9년))은, 중국의 육조말의 승려. 천태지의의 스승이며, 천태종의 2조 (용수[竜樹]를 개조로 하고 제 2조를 혜문, 혜사를 제 3조로 하는 경우도 있다)로 삼고 있다. 세속의 성씨는 이씨, 남예주(하남성 상채현)의 출신.
※운성[韻聲 : 운율] : 이 글자는 사전상에 없네요. 뜻은, 운이라는 글자는, 소리의 울림, 음향, 여운라는 뜻이로 쓰입니다.
※성혼[聲魂] : 이 단어는 한국에 없습니다. 없어요.
고에타마(聲魂:목소리의 매력을 표현력이 풍부한 소리)
古代日本で、言葉に宿っていると信じられていた不思議な力。発した言葉どおりの結果を現す力があるとされた。(출처 : http://dictionary.goo.ne.jp/jn/80579/meaning/m0u/ )
말에 깃들여 있다고 믿어 왔던 불가사의한 힘.
八世紀になると最澄が中國に留學し、天台山で八カ月ばかり學び、比叡山延曆寺に天兌宗を開きました。同年代に空海が一緖に中國に渡りましたが、支那海で台風に會い、纜(ともづな)が切れたため別のところに漂流し、ウ―タイシャンといういわれる五台山で勉强します。二年近くいて密敎を日本に持ってきて高野山でそれを說きました。しかし密敎は佛敎ではありません。佛敎は誰にも理解できる、廣く、明るいものなのです。密敎の源流は瑜伽(ヨガ)であり、己一個の自覺のみを求める小さな悟りにといえましょう。中國から日本に傳わってくる過程を像法時代といい、佛陀の敎えに知と意が加わりました。このためさまざまな敎えが佛敎化され、儒敎以外のものも、みな佛敎にされてしまいました。
8세기가 되면 최징((사이초(最澄) Saichō (767-822): 전교대사))이 중국에 유학하고, 천태산(天台山)에서 8개월 정도 배우고, 비예산연력사[히 에이샨 엔랴쿠 사 比叡山延曆寺]에 천태종을 열었습니다. 동시대에 공해((쿠우카이(空海) Kūkai (774-835) 홍법대사(弘法大師))가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만, 지나해(支那海)에서 태풍을 만나, 밧줄이 끊어졌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표류하고, 오다이샨이라고 불리우는 오태산(五台山)에서 공부했습니다. 2년 가까이 밀교(密敎)를 일본에 가져 와서 고야산(高野山)에서 그것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밀교(密敎)는 불교(佛敎)가 아닙니다. 불교는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크고, 밝은 것인 것입니다. 밀교의 원류(源流)는 유가(瑜伽 :범어 yoga](ヨガ)이며, 자기 한 개인의 자각만을 구하는 작은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져 오는 과정을 상법시대(像法時代)라고 하며, 부처의 가르침에 지식과 의지가 더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각양각색의 가르침이 불교화되어, 유교 이외의 것도, 모두 불교로 삼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最澄](さいちょう)は、平安時代の僧で、日本の天台宗を開く。近江国(滋賀県)滋賀郡古市郷(現在の大津市)に生れ、俗名は三津首広野(みつのおびとひろの)。生年に関しては天平神護2年(766年)説も存在する。諡号 伝教大師(傳敎大師)
최징[사이초]는, 헤이안시대의 승려로, 일본의 천태종을 열다. 근강국[오미쿠미](현재, 자하연) 자하군 고시향 (현재의 대진시)에 태어나, 속세의 이름은 삼진수광야(미트노오비토리로노). 생년에 관해서는 천평신호 2년 (766년) 설도 존재한다. 시호는 전교대사(덴교대사]
※空海(くうかい、宝亀5年(774年) - 承和2年3月21日(835年4月22日))は、平安時代初期の僧。「弘法大師(こうぼうだいし)」の名(諡号〈醍醐天皇、921年贈〉)で著名、日本真言宗の開祖。俗名は佐伯 眞魚(さえき の まお、〈まなとも〉)。日本天台宗の開祖最澄(伝教大師)と共に、日本仏教の大勢が、今日称される奈良仏教から平安仏教へと、転換していく流れの劈頭に位置し、中国大陸より真言密教をもたらした。能書家としても知られ、嵯峨天皇・橘逸勢と共に三筆のひとりに数えられる。
공해(쿠우카이, 호키 5년(774년)-조와2년 3월 21일(835년 4월 22일)은, 헤이안시대 초기의 승려. 「홍법대사(고우보우다이시)의 이름(시호<다이고천황,921년 증>)으로 저명, 일본 진언종의 개조. 속세의 이름은 좌백 진어(사에키노 마오,<마나토키>). 일본 천태종의 개조사이초[최징](전교대사[덴교대사])와 함께, 일본 불교의 대세가, 오늘에 칭하는 나라불교로부터 헤이안불교로, 전환해 가는 흐름의 벽두에 위치하고, 중국대륙에서 진언종을 가져왔다. 서예가로서도 알려지고, 사가천황・하치바나노하야나리와 함께 3필의 홀로 가르침을 받았다.
正法の時代は、實在の世界(あの世)から光の天使が、かつて說いてきたその神理を再び元に戾すために、塵を拂うために來る時代です。いわば末法という時代でもあります。イエス·キリストがそうでした。 モ―ゼの十戒はすでに千年余も經て、モ―ゼの精神は知と意に變り、心の規準を失い、十戒は惡い因習を持ったものに變っていました。イエスはその精神をよみかえらすために地上に出たのですが、反對にその抵抗をうけて、神理を說くことが出來ず、年若くして、この世を去らねばなりませんでした。モ―ゼの十戒は、イエス·キリストが實在界でモ―ゼの協力者として示した敎えだったのです。
정법의 시대는, 실재의 세계(저 세상)에서 빛의 천사가, 일찍이 설명해 온 그 신리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 먼지를 털기 위해서 오는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가 그렇게 했습니다.
모세(Moses)의 십계(십계명 :the Ten Commandments)은 이미 1천년이나 지나서, 모세(Moses)의 정신은 지식과 의지로 바뀌고, 마음의 규준을 잃어버리고, 십계[십계명]는 나쁜 인습을 지닌 것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예수(Jesus)는 그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 지상에 나온 것입니다만, 반대로 그 저항을 받고, 신리를 설명할 수가 없고, 젊어서, 이 세상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모세(Moses)의 십계는,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가 실재계(實在界)에서 모세(Moses)의 협력자로서 제시한 가름침이었던 것입니다.
※모세[[Moses]는 기원전 13세기 경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지도자이자 예언자이며, 본명은 요김이며, '야훼께서 세우신 자"라는 뜻이며,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의 공주가 강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십계명(十誡命)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참고로 삼는 계명으로, 모세 율법의 핵심이다. 모세 율법의 중심은 출애굽기 20장 1절~23장 33절의 계약서나 신명기 1~29장의 신명기 법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핵심은 출애굽기 20장 1~17절과 신명기 5장 6~21절의 십계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잘 알게 되면, 모세 율법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서 구약성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위키대백과 참조.
實在界から來るところの光の天使たちは、あらゆる危險を冒して、かつて自分が說いてきたものの塵を拂いに地上に生まれて來ますが、かえってそれに災いされてしまう場合が多いのです。インドの時代の、ゴ―タマの說いたブッタストラ―(正法)も,また同じことです。今から約四千二百年ほと前に、エジプトで說いたその神理がインドに渡り、バラモンの經典に變っていました。ウバニシャ―ト、ヴェ―ダ―がそれで、やはり哲學、,學問に變っていました。ゴ―ダマシッタルダ―は、そうした古い陋習を破るために使命を持って實在界から地上に生まれたのです。
실재계(實在界)에서 오는 빛의 천사들은,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일찍이 자신이 설명해 온 것의 먼지를 털으려고 지상에 태어나옵니다만, 오히려 그것에 원인이 되어 나쁜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인도의 시대의, 고다마 싯타르다(Gautama Siddhartha)가 설명한 붓타스트라(Buddhasutra)(정법)(正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4천 2백년 쯤 전에, 이집트에서 설명한 그 신리가 인도로 건너가서, 바라몬의 경전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우바니샤드[(Upanishad: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고대 인도의 철학서)), 베타[(Veda: 고어체 산스크리트로 씌어졌으며 이란 지역에서 인도로 들어온 인도유럽어족 사이에서 유행한 성스러운 찬가 또는 시)]가 그것이며, 마찬가지로 철학, 학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고다마 싯타르다(Gautama Siddhartha)는, 그러한 오랜 누습을 타파하기 위한 사명을 갖고 실재계(實在界)에서 지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こうした光の大指導靈は、古い因習が受け繼がれている環境には決して出てきません。なぜならその因習にひきずられ、同じ間違を犯してしまうからです。あくまで第三者の立場に立って、その中から人生に對する疑問を見出し、やがてパラミタ(佛智)にめさめ、衆生を導い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
이러한 빛의 대지도령[大指導靈]은, 오랜 인습을 계속 받아들이고 있는 환경에는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습에 질질 끌리어, 같은 잘못을 범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3자의 입장에 서서, 그 속에서 인생에 대한 의문을 찾아내고, 이윽고 파라미타(Paramita 波羅蜜多)((불지(佛智))에 눈을 뜨고, 중생을 인도해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ゴ―ダマが己を悟る寸前にパピァスマラ―が眼前に現われました。ゴ―ダマの心を攪亂し、迷わすためでした。もしゴ―ダマが悟り、人間は神の子であるといることを知ってしまうと、ゴ―ダマの緣につながる人びとの心を支配できなくなり、爭い、不信、獨占、裏切りなど、彼らはその欲望を滿たされなくなってしまうからです。魔はその後も、ゴ―ダマの敎團內で暗躍を重めます。第子たちの心の中にはいり込こみ、手をかえ、品を變え,ゆさぶり繼けました。
고다마(Gautama)가 자기를 깨닫기 직전에 파피야스 마라[악마]가 눈앞에 모습을 드려냈습니다. 고다마(Gautama) 의 마음을 교란하고, 헷갈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고다마(Gautama)가 깨닫아, 인간은 신의 자녀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아 버리면, 고다마(Gautama)의 인연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가 없게 되어, 투쟁, 불신, 독점, 배반하여 내통함 등, 그들은 그 욕망을 채울 수가 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그 후에도, 고마다(Gautama)의 교단내에서 암약을 거듭합니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 깊숙히 들어가서,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써서, 계속해서 뒤흔들었습니다.
イエスのときもそうでした。十字架はユダの反逆によりましたが、しかしそれ以前から、さまざまな妨害がイエスの身近におこり、常に薄氷を踏む每日であったのです。
예수(Jesus)의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십자가는 유다(Judas)의 반역에 의했습니다만, 그 이전부터, 가지각색의 방해가 예수의 신변에 일어나고, 항상 박빙[살얼음]을 밟는 매일이었던 것입니다.
モ―ゼの場合も、外部からの直接攻擊が終って思うと、こんどは內部から動搖がおこり、神を信ずる人びとの心が攪亂されていきます。
모세(Moses)의 경우도, 외부로부터의 직접 공격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이번은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교란되어 갑니다.
魔界に住むあの世の地獄靈は、いったんその淵に沈むと、人間として地上に生まれてくることができません。そのために、彼らは常に、苦惱といらだち,焦燥と背德の間を呻吟し、スキあらば人間の心に食い入り自己保存の欲望を果たそうと躍起になるのです。
악마의 세계[魔界]에 거주하는[사는] 저 세상의 지옥령[地獄靈]은, 일단 그 구렁에 빠지면, 인간으로서 지상에 태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항상, 고민과 뜻대로 안되어 초조해지고, 초조와 배덕의 사이를 신음하고, 틈만 있으면 인간의 마음에 파고들어 자기 보존의 욕망을 완수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躍起になるのです : 초조해하며 화를 냄. 애가 타서 안달을 함. 욱하면서 열심히 함. 기를 씀
彼らにとって正法は對敵なのです。正法が地上に浸透しては、人の心をあやつり、地上で欲望が果たせない。すなわち、彼らは、地上ての生活の場を失うこどになるのです。
그들에게 있어서 정법은 적을 마주 대하는 것입니다. 정법이 지상에 침투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뒤에서 조종하고, 지상에서 욕망을 완수할 수 없다. 즉, 그들은, 지상에서의 생활의 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人間を含めた物質界は、光と影の兩面を保ちながら維持されています。これは物質界の宿命といってよいでしょう。このため人の心も光と影が透映されるように任組まれ、一念三千の心はどこへでも通じるようにできでいるのです。別ないい方をすれば、人の心は、天使と惡魔の兩方を合わせ持っているというこどです。そのために、天使のような淸い心の持主が、一夜にして惡魔の支配下におかれることだってあります。肉體人間は、その意識の10%しか働いていないため、こうしたことがしばしば起きるのです。
인간을 포함한 물질계는,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유지하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계의 숙명이라고 말해도 좋은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도 빛과 그림자가 투영되도록 짜여져 있고,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마음은 어디든지 통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을 하자면, 사람의 마음은, 천사와 악마의 양면을 합하여 갖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천사 같은 맑은 마음의 지주가, 하룻밤 사이에 악마의 지배하에 놓이는 일도 역시 있습니다. 육체인간은, 그 의식의 10%밖에 작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魔の誘惑はなにげない會話のなかから入りこみます。「大變ですね、そんなに働いて體でもこわしたらどうします。奧さんがかわいそうです」人から言われて、それまで何とも感じていなかったその人は、 「そうかな、働き過ぎかな、家內が不滿をいだたいているかな。。。。」そう考えて、任事をヤ―ブし、ものの見方を變えてゆきます。そうしてそれを契機として、率直な心に影を落としてゆく人も 出てきます。
악마의 유혹은 무심코 대화 속으로 파고듭니다. 「큰일이군요. 그렇게 일해서 몸이라도 상하면 어떻해요. 부인이 가엾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말을 듣고, 그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던 그 사람은, 「그렇구나, 너무(지나치게) 일하는구나, 집사람이 불만을 품고 있구나......」그렇게 생각하고, 직장을 그만두고(일을 놔버리고), 사물의 견해를 바꿔 갑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을 계기로 해서, 솔직한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워 가는 사람도 나와 갑니다.
魔は、自分の心にあります、したかって內から外に。外から內にむかって、常にゆれ動くものです。指導者が誤った方向に動くと、多くの人ひとは迷い苦しみ、魔の支配下におかれてしまいます。
악마는, 자신의 마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향하고, 항상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면, 많은 사람들과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괴롭게 하고, 악마의 지배하게 놓여 버리고 맙니다.
魔に打ち克つにはどうすればよいか。それは中道の心しかないのです。中道の心は大自然が敎えています。太陽の熱、光に强弱はありません。空氣に增減はありません。一日は晝夜の別があって、決して一方に片奇ることがありません。だから、この地上に生命が生かされ、調和という環境が與えられているのです。正法の目的は中道であり、私たちの心も肉體も、片奇らない、中道が必要なのです。それには、まずものの見方から中道にそう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己の立場を捨て、客觀的に見る目を養うことが大事です。置かれた立場を固執し、欲望のままに見るクセを持っていては、魔の支配下におかれてしまいます。
악마를 물리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은 중도(中道)의 마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도의 마음은 대자연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양의 열, 빛에 강약은 없습니다. 공기에 증감은 없습니다. 하루는 주야의 다름이 있고, 결코 한쪽으로 치우지는 일이 없습니다. 때문에, 이 지상에 생명이 되살아나고, 조화라고 하는 환경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법의 목적은 중도[中道]이며, 우리들의 마음도 육체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에는, 우선 사물의 견해에서 중도에 따르듯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의 입장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놓여진 입장을 고집하고, 욕망대로 보는 버릇을 지니고 있어서는, 악마의 지배하에 놓여 버리고 맙니다.
どんな場合でも、自然が敎える正法を尺度としての、正しい見方、判斷、思いを忘れてはなりません。正法とは、大自然が敎える中道の神理であり、一切の尺度はここにあることを銘記すべきです。
어떠한 경우라도, 자연이 가르치는 정법을 척도로 해서, 올바른 견해, 판단,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법이란 대자연이 가르치는 중도의 신리이며, 일체의 척도는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기어 두어야 합니다.
(この稿は去る昭和四十八年一月、忍岡中學敎講堂で講演の要旨) pgae 24~30
(이 원고는 지난 소화 48년 1월[1968년 1월], 동경도 아사쿠사에 있는 인강[忍岡]중학교 강연에서의 강연의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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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殺 生◁
살 생
人間がこの地上に生存するかぎり、 最小限度の殺生は、まねがれないものです。パンを食べてはいけない、魚を獲ってはならないとすれば、人間は餓死するほかはありません。羊の東西を問あず、また昔も今も、神の道に參ずる者、悟りを得ようとする者のなかには、肉食は殺生の最たるものとして、これを忌避する風習がみられます。動物を殺す、動物を食べることは、萬物の靈長である人間のなすぺき行爲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そもそも理由のようです。
인간이 이 지상에 생존하는 한, 최소한도의 살생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빵을 먹어서는 안 된다, 물고기를 어획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인간은 굶어 죽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또한 예나 지금이나, 신의 길에 참예하는 자,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자 중에는, 육식은 살생의 으뜸가는 것으로서, 이것을 기피하는 풍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을 죽인다, 동물을 먹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행해야 할 행위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 첫째의 이유인 모양입니다.
では、食物は生き物ではないのでしょうか。植物なら、いくら食べてもさしつかえないものかどうか。生き物という占では、植物も立派ななのです。植物にもそれぞれの精靈が住んでおり、人間がその氣になりさえすれば、植物の精靈は、人間の言葉で、人間と同じように話もし、喜怒愛樂の感情すらみせるものです。その精神作用は動物以上ですらあります。動物と植物との相違は、見た目が、靜的であるか動的かのちがいだけです。どちらがよいの惡いのという區別は本來なにもありません。
그럼, 식물은 생물[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일까요. 식물이라면, 아무리 먹어도 지장이 없는 것일까 어떨까. 생물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식물도 훌륭한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저마다의 정령[精靈]이 살고 있고,인간이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식물의 정령은, 인간의 언어로,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도 하고, 희노애락의 감정마저 내보이는 것입니다. 그 정신작용은 동물이상으로 까지도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과의 차이는, 남이 눈에 비치는 모양이나 모습이, 정적인가 동적인가의 차이뿐입니다. 어느쪽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이라고 하는 구별은 본래 아무 것도 없습니다.
昔の出家僧は妻帶を認めなかったようです。妻帶は煩惱を刺激するからというのがその理由のようです。さらに、食べ物も制約しました。榮養價の高いもの、動物食はいっさい口にしません。なぜこういうものを口にしながったかといえは、こうしたものは本能を刺激しやすいという生理的理由かあったようです。妻をめとらぬという前提に立てば、その前に、食べ物を制約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でありましょう。
옛날의 출가승은 중이 고기를 먹고 아내를 가짐을 인정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중이 고기를 먹고 아내를 가짐은 번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그 이유인 모양입니다. 더욱 더, 음식물도 제약하였습니다. 영양가가 높은 것, 동물식은 일체 먹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 것을 먹지 않았는가하면, 이러한 것은 본능을 자극하기 쉽다고 하는 생리적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내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전제로 내세우면, 그 전에, 음식물을 제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겠지요.
こうみてくると動物食はいけないとする思想も、その根據をたぐれば、實は、こんなところにあったのではあるまいかと思われます。生物界の殺生というものは、本當は自然の攝理なのです。土の中に住むバクテリア、何百何千という蟲の生態をみるときに、そこにはいかにも悲慘な姿が演じられていますが、そのくりかえしは、自然を維持し、生物間相互の生存を助けているのです。肉食と草食動物の比というものは、常に一定に保たれています。もしも肉食動物が減り、草食動物のみとなれば草木の生存は失われ、草食動物の生存すらおぼつかなくなってきます。 人間は,動物界の生態をみて、人間もかくあるべしと斷定しがちですが、無益な殺生は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人間をのぞく、昆蟲をふくめた動物界の生存競爭は、決して、不必要な殺生をしてはいません。生存に必要なものしか、彼らは獲っていないのです。もしも、必要以上にそれを求めれば、やがては、自分の糊口をふさぐこと彼をらは知っているのです。しかし本當は彼ら自分ではなくて、自然がこれを監視し、コントロ―ルしているのです。
이렇게 보면 동식물은 안 된다고 하는 사상도, 그 근거를 더듬으면, 사실은, 이러한 것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물계의 살생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은 자연의 섭리인 것입니다. 흙속에 사는 박테리아(세균), 몇 백 몇 천이라고 하는 벌래의 생태를 볼 때에, 거기에는 정말로 비참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습니다만, 그 반복은, 자연을 유지하고, 생물간 상호의 생존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육식과 초식동물의 비율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일정하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만약 육식동물이 감소하고, 초식동물만이 되면 초목의 생존은 없어지고, 초식동물의 생존조차도 가망이 없어져 옵니다. 인간은, 동물계의 생태를 보고, 인간도 곧잘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단정합니다만, 무익한 살생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없애고, 곤충을 포함한 동물계의 생존경쟁은, 결코,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는 않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 밖에, 그들은 사냥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필요 이상으로 그것을 구하면, 머지 않아서는, 자신의 생계를 가로막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 자신이 아니며, 자연이 그것을 감시하고, 제어[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私たちが、植物にしろ動物にしろ、それを口にするとき、いちばん大事なことは感謝の心を持つことです。そうするにことによって、彼らの地上での目的も使命も果たせたことになるからです。
우리들이, 설령 식물이라 하더라도 동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먹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感謝)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 의해서, 그들의 지상에서의 목적도 사명도 완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供養◁
공 양
供養というと、昔から佛とか、先祖の靈に物を供えることのように思われているが、本當はこれでは供養にならないのです。供養の意味は「先祖の靈よ安かれ」とする子孫の祈り心で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あります。物を上げ、それで “よし”とする考えほど安易なものはない。私たちがこうしで肉體を持って生きていられること自體、それぞれの先祖が私たちを生み育ててくれたからであり、それにたいする感謝の心は、報恩となって形の上に現われこなけらば意味がありません。供養の眞意はそれゆえに、まず家庭の和合、調和にあるといえるのです。
공양(供養)이라고 하면, 옛날부터 부처라든가, 선조의 혼령에게 제물을 올리는 것처럼 생각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래서는 공양이 안 되는 것입니다. 공양의 의미는 「선조의 혼령이여 평안하세요」라고 하는 자손의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제물을 드리고, 그래서 “좋아 ” 라고 하는 생각만큼 안이한 것은 없다. 우리들이 이렇게 해서 육체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 저마다의 선조가 우리들을 낳고 길러 주셨기 때문이며, 그것에 대한 감사(感謝)의 마음은, 보은(報恩)이 되어 형태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공양의 참 뜻은 그러므로, 우선 가정의 화합, 조화에 있다고 하는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人間の靈魂は、死という肉體機能の停止によって、あの世で生活をはじめます。 世間の人は、肉體が灰となれば人の魂まで無に歸すと思っていますが、それは間違いです。人間の豫知能力、天才兒、靈の存在については、その例は杖擧にいとまがないし,こうした諸現象は人間である以上誰しも備わっています。また知ることも出來ます。魂の永遠不滅と、轉生輪廻というこのも單に人間の願望としてではなく,事實として存在するのです。あの世は三次元ではなく、四次元以上、多次元の世界であり、それだけに、普通はある人には認知できても、ある人には全然わからぬということもあり得ますが、だからといって否定できるものでは決してないのです。 法事で物を供えることは、本來、氣安めにすぎませんが、死ねば無になると思いながらも、物を供えるその心をたしかめた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인간의 영혼은, 죽음이라고 하는 육체기능의 정지에 의해서, 저 세상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세상의 사람은, 육체가 재가 되면 사람의 영혼까지 본래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인간의 예지능력, 천재아, 혼령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 예는 일일이 들 겨를도 없고, 이러한 여러 가지 현상은 인간인 이상 누구든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아는 것도 가능합니다. 저 세상은 3차원이 아니라, 4차원 이상, 다차원의 세계이며, 그런 만큼에, 보통은 어떤 사람에게는 인지할 수 있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전연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라고 말해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법사에게 제물을 올리는 것은, 본래,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죽으면 무[無 : 본래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물을 올리는 그 마음을 확인한 일이 있을까요.
家庭の和合、調和が先祖の最大の供養という意味は、あの世に歸った先祖の靈が、その子孫の家庭をたえず見守っており、もしも先祖の靈が地獄に墮ちて自分を失っていたとしても、子孫の調和ある家庭をながめることにより、己自身の不調和を改め、その靈をして昇天させる原動力となるからであります。子の幸せを思わぬ親はないはすです。しかも、その子が親より立派であり、家庭が圓滿に調和されていれば、親は子に勵まされ、その子に恥ない自分になろうとするのは人情ではないでしょうか。あの世もこの世も、人の心に少しもかわりはないのです。 もちろん、なかには例外がありましょう。地獄界に墮ちれば文字通り苦界にあえぎます。類は類をもって集まるの喩で、その靈は自分と同じ思想、考えを持った人に助けを求め、いわゆる、憑依作用となって人の體、實際には意識に憑いてしまいます。すると憑からたその人は、病氣をしたり、自殺したり、精神病になったりしてしまいます。
가정의 화합, 조화가 선조에 대한 최대의 공양이라고 하는 의미는, 저 세상에 돌아간 선조의 혼령이, 그 자손의 가정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고, 만약 선조의 혼령이 지옥에 떨어져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해도, 자손의 조화있는 가정을 눈여겨보는 것에 의해, 자기 자신의 부조화를 고치고, 그 혼령으로 하여금 승천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자녀가 부모보다 훌륭하며, 가정이 원만하게 조화되어 있으면, 부모는 자식에게 격려하며, 그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는 자신이 되려고 하는 것은 인정이 아닐까요. 저 세상도 이 세상도, 사람의 마음에 적어도 변함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게중에는 예외가 있겠지요. 지옥계로 떨어지면 문자그대로 고계[고계 : 괴로움의 세계]에서 허덕입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비유로, 그 혼령은 자신과 같은 사상, 사고[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흔히 말하는, 빙의작용[憑依作用]이 되어 사람의 몸, 실제로는 의식[意識]에 들리어(씌어, 달라붙어, 기대어,의지하여)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들린(씌인) 그 사람은, 질병이 걸리거나, 자살하거나, 정신병이 되거나 해 버리고 맙니다.
※靈 = 사전상으로는 아주 의미가 다양합니다. 봅시다. 저는 여기서 혼령이라고 적었습니다.
㉠신령(神靈)
㉡혼령(魂靈), 혼백(魂魄), 영혼(靈魂)
㉢귀신(鬼神), 유령(幽靈), 도깨비
㉣정기(精氣), 영기(靈氣)
㉤정신(精神), 감정(感情)
㉥존엄(尊嚴)
㉦하늘, 천제(天帝)
㉧영적인 존재
㉨죽은 사람에 대한 높임말 기타 등등
地上が調和されると、あの世の地獄も調和されます。あの世とこの世は、いわば相關關係にあって、個個別別に獨立して存在するものはありません。先祖の供養というものは、このように、まず個個の家庭が調和されることであり、調和こそ最大の供養ということを知って頂きたいと思います。
지상이 조화되면, 저 세상의 지옥도 조화됩니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은, 말하자면 상관관계에 있고, 각각 따로따로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의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정이 조화되는 것이며, 조화야말로 최대의 공양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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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と科學◁
종교와 과학
宗敎といると、いかにも抹香臭く念佛をあげたり、經文を學ぶことのように思われていますが、そん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宗敎の目的とするところは人間の心を知ることであり、その心がわかれば自然の理も明からとなり、人間としての在り方、安らきが生まれてくるものです。俗に、安心立名ともいわれていますが、この言葉の意味よりも實はもっと深く、廣いものであり、己自身の調和と同時に、地上の調和をはかるものです。したかって、この目的から外れたものは宗敎とはいえません。いたずらに展堂をつくり、信者をふやし、我こそはと反り返るもの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宗敎の本旨から遠く離れたものであります。
종교라고 하면, 자못 불교적인 냄새가 짙은 염불을 하거나, 경문을 배우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면 자연의 이치도 뚜렷해지며,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편온함이 탄생되어 오는 것입니다. 흔히, 안심입명이라고도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이 말의 의미보다도 사실은 좀더 깊고, 넓은 것이며, 자기 자신의 조화와 동시에, 지상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목적에서 벗어난 것은 종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헛되이 전당을 만들고, 신자를 늘리고, 나야말로는 이라고 잘난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종교의 본지에서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一方、學の目的は、自然の解明にあると同時に、地上の調和(生活を豊かにする‥‥‥。)
に役立つためにあります。化學にしろ物理學にしろ、自然の不思議を究明し、人間生活をより豊かにエンジョイするためにあるのです。
한편, 과학의 목적은, 자연의 해명[解明]에 있음과 동시에, 지상의 조화(생활을 풍요롭게 한다‥‥‥。)에 도움이 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설령 화학이라 하더라도, 물리학이라 하더라도, 자연의 불가사의를 구명[究明]하고, 인간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즐기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해명[解明] : 의심(疑心)나는 곳을 잘 설명(說明)하여 분명(分明)히 함
※구명[究明] : 사물의 본질, 원인 따위를 깊이 연구하여 밝힘
宗敎と科學── 。 この兩者は一見異なった世界、次元のちがう分野のように思われますが、その目的を分析解明してゆくと、全く軌を一つにするものであることに氣づきます。宗敎も科學も、この人間社會をより進化され、豊かにするためにあるからです。宗敎は、人間の心を解明(知る)します。科學は、自然の神秘、そのなかから、自然を動かしている、法の存在の發見につとめます。解明します。したがって、そのいきつくところは、ともに同じです。自然を科學すればするほど、その神秘さがわかり、偉大な科學者ほど神の實在を信じろようになります。すなわち自然の解明は、人間の解明につながってくるからです。逆に、人間の解明は、自然の謎を解くカギが與れられます。このように人間と自然といるものは、もともとひとつであり、人間と自然を切り離して考えることはできないのなのです。
종교와 과학── 。 이 양자는 언뜻 보면 다른 세계, 차원의 다른 분야처럼 여겨집니다만, 그 목적을 분석 해명해 가면, 완전히 궤도를 하나로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종교도 과학도, 이 인간사회를 보다 진화시키고, 풍요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해명(알다)합니다. 과학은, 자연의 신비, 그 중에서, 자연을 움직이고 있는, 법(法)의 존재의 발견에 힘씁니다. 해명[解明]합니다. 따라서, 그 마지막 상태에 이르면, 다 같이 똑같습니다. 자연을 과학하면 할 수록,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있고, 위대한 과학자일수록 신의 실재를 믿게 됩니다. 즉 자연의 해명은, 인간의 해명으로 이어져 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인간의 해명은, 자연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주어집니다. 이와 같이 인간과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하나이며,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大自然を大宇宙といい、人間を小宇宙ともいいます。 地上の水圈は71%、陸地は29%であります。 人間の肉體も水分が71%、蛋白質、燐酸カルシュウムなとのが29%です。地球と人體の構調はまったく同じように作られています。また人間が誕生する、あるいは他界するその時間も、女性の生理現象についても、ばらばらではありません。干潮、 滿潮に密接な關係を持っています。このように科學する心は、そのまま宗敎の目的である人間の心、 自然の心につながってゆき、大自然の法である正法につき當ってくるものです。
대자연을 대우주라고 말하며, 인간을 소우주라고도 말합니다. 지상의 표면의 물의 부분은 71%, 육지는 29%입니다. 인간의 육체도 수분이 71%, 단백질, 인산갈슘 등이 29%입니다. 지구와 인체의 구조는 완전히 똑같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탄생한다, 혹은 타계하는 그 시간도, 여성의 생리현상에 대해서도, 제각기 제멋대로가 아닙니다. 간조, 만조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과학하는 마음은, 그대로 종교의 목적인 인간의 마음, 자연의 마음으로 이어져 가며, 대자연의 법인 정법에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ゆえに、正法神理というものは、物理學でも科學の面から推しても解明されてきましょう。もしも旣成の宗敎で自然科學の面から割り切れないものがあるとすれば、その宗敎はとこかにい間違いがあるといるべきでしょう。もっとも、地上の科學はそのものをまだとられてはおりません。しかし正法は今日の物理學の範圍內でも、結構うかがえるものです。
그러므로, 정법신리(正法神理)라고 하는 것은, 물리학에서도 과학의 면으로부터 짐작해도 해명되어 오겠지요. 만약 기성의 종교에서 자연과학의 면으로부터 시원하게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 종교는 어딘가에 잘못이 있다고 해야 되겠지요. 더욱, 지상의 과학은 그 자체[(문제가 되고 있는) 바로 그것]를 아직 파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법은 오늘의 물리학의 범위내에서도, 훌륭하게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神 と 罰◁
신과 벌
人間は神佛の子であります。自ら律し、自ら創造し、自ら、この地上を調和させてゆくものです。大自然が調和されているように、人間もまた調和された存在であります。神佛の子である一つの證明は、己自身にウソがいえないこと、人間の意識は宇宙大の廣がりを持つということ。人間の肉體構造が宇宙と同樣につくられており、星の數と人間の肉體細胞の數についても、やがて、新しい發見がなされるでありましょう。
인간은 신불의 자녀입니다. 자율하고,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이 지상을 조화시켜 가는 사람입니다. 대자연이 조화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도 역시 조화된 존재입니다. 신불의 자녀라는 한 가지의 증명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 인간의 의식은 우주대의 넓이를 지닌다고 하는 것. 인간의 육체구조가 우주와 마찬가지로 만들어져 있고, 별의 숫자와 인간의 육체세포의 숫자에 대에서도, 이윽고,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지요.
※ 自ら律し,자율 : ①스스로 자기(自己)의 방종을 억제(抑制)함 ②실천(實踐) 이성(理性)이 스스로 보편적(普遍的) 도덕법(道德法)을 세워 이에 따르는 일. 이성(理性) 이외(以外)의 외적 권위(權威)나 초자연적(超自然的) 욕망(慾望)에는 구속(拘束)되지 않음
では、そうした存在者の集團である地上社會が、なぜ混亂を招いているかです。神の子ならば、もう少し、ましな社會がつくられてもいいはずではないか。まさにその通りです。神の子の社會が、不善の社會をつくる道理はないのです。だが、ここで大事なことをおろそかにしてはなりません。神の子は、自ら律し、自ら創造してゆくようにつくられているのです。大自然を神が創造したように、人間もまたこの地上を創造してゆくのです。しかも人間は、神の同樣に、自由な意思が與えられ、いうなればその自由な意思で、どう自分が創造しようと、それは神の子に許された權能なのです。人間が肉體を持ち、個個の生活環境をづくってゆくと、本來の神の子の神理から離れた創造行爲に移りやすくなってゆきます。ここに肉體人間の誤ちがあり、不幸の原因が生じてくるのです。相對觀念は、あらゆる惡を生み出し,罪を生み出してゆきます。しかし、天があり、地があり、南女の區別のある相對界であるからこそ、より進化した調和を生み出すことも可能なのです。
그럼, 그러한 존재자의 집단인 지상사회가, 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가 입니다. 신의 자녀라면, 좀더,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져 있어도 괜찮은 것은 아닐까. 바로 그대로입니다. 신의 자녀의 사회가, 선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 도리[道理]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신의 자녀는, 자율하고,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창조해 가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대자연을 신이 창조한 것처럼, 인간도 역시 이 지상을 창조해 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인간은, 신과 똑같이, 자유로운 의사를 부여받고, 말하자면 그 자유로운 의사[意思: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로, 어떻게 자기 자신이 창조하려면, 그것은 신의 자녀에게 허락된 권능[權能]인 것입니다. 인간이 육체를 갖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환경을 만들어 가면, 본래의 신의 자녀가 신리로부터 떨어진 창조행위로 옮기기 쉽게 되어 갑니다. 여기에 육체인간의 잘못[실수]가 있고, 불행의 원인이 생겨나오는 것입니다. 상대관념[相對觀念]은, 온갖 악을 창출[창안]해 내고, 죄를 창출[창안]해 갑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남녀가 구별의 있는 바로 상대계[相對界]이기 때문에, 보다 진화한 조화를 창출[창안]해 내는 일도 가능한 것입니다.
これまで人間史のは、調和されていた期間が短かく、不調和を創造してきた期間の方が長く、罪をいろいろ重ねてきました。神の子のあるまじき罪を、罪を、生み出してきたのです。人間は,自由な意思と、自由な創造力を與えられ、それが神の子としての當然の權能として行事できるために、今日の惡をつくってきたのです。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는, 조화되어 있던 기간이 짧고, 부조화를 창조해 온 기간 쪽이 길고, 죄를 여러 가지 거듭해 왔습니다. 신의 자녀가 있을 수 없는 죄를, 죄를, 창출[창안]해 내어 왔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의사[意思 :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와, 자유로운 창조력을 부여받고, 그것이 신의 자녀로서의 당연한 권능으로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의 악을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人間の本來はこのように神佛の子です。神佛の子であるがゆえに、その罪は己が償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佛が神佛を罰ることはできません。神佛の子は、そのものであるからです。
인간의 본래는 이와 같이 신불(神佛)의 자녀입니다. 신불(神佛)의 자녀인고로, 그 죄는 자기가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불(神佛)이 신불(神佛)을 벌할 수는 없습니다. 신불(神佛)의 자녀는, 그[신불(神佛)]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神を祭り、神をあがめ、手を合わせることを拒めば罰が當るとする考えや思想、掟がもしあるとすれば、それはまったく、人間を知らぬためにおこった、いわばある目的をもった團體維持のための自己保存にしかすぎません。神は人間に罰を與えるどころか、不幸な者ほど思いわずらうのが親の情といるものであり、神佛の心は人間の心と少しもかわりないのです。
── 間違っても、神佛が人間に罰を與えると考えてはなりません。
신을 제사지내고, 신을 숭상하고, 합장하는 것을 거부하면 벌[천벌]을 받는다고 하는 생각[思考]이나 사상[思相], 규정[掟 규칙]이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인간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것, 이를테면 어떤 목적을 가진 단체유지를 위한 자기보존(自己保存)에 불과합니다. 신은 인간에게 벌을 주기는커녕, 불행한 사람일수록 번민하는[괴로워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情]이라고 하는 것이며, 신불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과 적어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 잘못을 하더라도, 신불이 인간에게 벌을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蒔かぬ種は生えぬ、蒔いた種は刈りとることが神理であり、法であり、人間に果せられた天命です。
왕대밭에 왕대 난다, 뿌린 씨앗은 거두는 것이 신리[神理]이며, 법[法]이며, 인간에게 맡겨진 천명[天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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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蒔いた種は刈りとる은, 자기가 만든 나쁜 원인은 제거하는 것이...라고 번역해도 됩니다.
▷轉 生 輪 廻◁
전생윤회
俗に、人間の魂が昇華し佛になると、もはやその魂は二度と再び地上に生を宿すことがないといわれていますが、そういうことはありません。そのような說は、もともとヨガ、バラモンがはしりといってよいでしょう。佛敎ではそのようなことはひと言もいっていません。佛敎の中にもしそのような說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インドから中國に渡った際に、ヨガ、バラモンの思想が佛敎のなかに混入したためと思えばいいでしょう。彼らは、この世にたいする人間の願いと、階級制度をまぜ合わせ、形のみを追い求めた結果、そのような空想をえがいたものでしょう。
흔히, 인간의 영혼이 승화(昇華)해서 부처가 되면, 이제와서는 더이상 그 영혼은 두번 다시 지상에 생명을 지닐 수가 없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이야기는, 원래 요가[ヨガ(요가), (瑜伽) 유가], 바라몬[(バラモン [범 Brāhmaṇa])이 질주(어떤 현상이 시작)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것은 한 마디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불교의 속에 만약 그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갔을 때에, 요가, 바라몬의 사상이 불교 속에 섞여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한 인간의 바램이라면, 계급제도를 혼합하여, 형태만을 추구한 결과, 그와 같은 공상을 그렸던 것이겠지요.
※승화(昇華): 사물(事物)이 한 단계(段階) 고상(高尙)한 영역(領域)으로 높아지는 일
※유가(瑜伽) ヨガ·요가 : 요가 (산스크리트어: योग)는 인도의 정신 수련 방법의 하나다. 힌두교에서는 "요가란 실천 생활 철학에 철저함을 추구하는 것" ...
※바라몬 : バラモン [범 Brāhmaṇa] : 인도 카스트 중 최고 계급인 승려 계급. 사제자(司祭者). =ブラ―マン. 〈宗〉 바라문교(의 승려). 「波羅門」 「婆羅門」 등으로 씀.
人間の魂は、永遠に轉生を輪廻し、その姿はとのまるところを知りません。それはちょうど、太陽の周圍を、地球が自轉公轉しながら三百六十五日と四分の一の周期で、再び同じの軌道を回轉し續けるように、生命の流れ、生命の運動というものは、常に圓を描きながら進保の過程をふんてゆくものなのです。原子の姿も同じです。原子核と陰外電子の兩者から成り立ち、原子核の周圍を陰外電子が猛烈なスピ―ドで回轉しています。陰外電子が原子核の周圍を回轉することによって、原子核の生命、陰外電子の生命が,たがいに相補いながら、生かし續けています。 我人間の五體についても、同樣のことがいえます。心臟という五體にとって必要欠くべからざる器官は、五體全體の生命活動を繼續的に促進するため、晝夜の區別なく働いています。すなわち、その生命活動は、各諸器官が十分にその機能を果たすための、新しい血液を送り込んているのです。送り出された血液は、各所を萬遍なく通って、やがて再び心臟にまい戾り、新しい血液となって各所にってゆきます。心臟を太陽とすれば、送り出された血液は、太陽の熱、光のエネルギ―とみていいでしょう。そのエネルギ―が胃や腸、肝臟、肺臟という或星に生命を與え、その生命活動を助けているのです。同時に、胃腸や肝臟の働きが心臟の働きを促しています。このように、各諸器官は、新しい血液の助けを借りて、それぞれの細胞集團の新陣代謝を行っており、その新陳代謝は、そのまま細胞の轉生輪廻を意味しています。
인간의 영혼은, 연원히 전생[환생]을 윤회하고, 그 모습은 멈출 줄을 모릅니다. 그것은 정확히, 태양의 주위를, 지구가 자전공전하면서 365일과 4분의 1의 주기로, 다시 같은 궤도를 계속 회전하는 것처럼, 생명의 흐름, 생명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원을 그리면서 진보의 과정을 밟아 가는 것인 것입니다.
원자의 모습도 똑같습니다. 원자핵과 음외전자의 양자로부터 성립하고, 원자핵의 주위를 음외전자가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습니다. 음외전자가 원자핵의 주위를 회전하는 것에 의해서 , 원자핵의 생명, 음외전자의 생명이, 서로 서로 메우고 서로 도우면서, 계속 되살리고 있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오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심장이라고 하는 오체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반드시 있어야 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기관은, 오체 전체의 생명활동을 계속적으로 유지촉구하기 위해, 낮과 밤의 구별없이 일[활동]하고 있습니다. 즉, 그 생명기능은, 각 여러 가지 기관이 충분하게 그 기능을 완수하기 위해, 새로운 혈액을 운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운반된 혈액은, 각 장소를 빠짐없이 통해서, 이윽고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오며, 새로운 혈액이 되어 각 장소로 흩어져 갑니다. 심장을 태양이라고 하면, 운반된 혈액은,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 에너지가 위나 장, 간장, 패장이라고 하는 혹성에 생명을 주고, 그 생명활동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위장이나 간장의 작용(기능)이 심장의 작용(기능)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각 여러 기관은, 새로운 혈액의 도움을 빌려서, 저마다의 세포집단의 신진대사를 행하고 있고, 그 신진대사는, 그대로 세포의 전생윤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밑줄친 부분은, 번역상에 누락이 되었던 것임을, 오늘에야 2015년 11월 08일에 알게 되었습니다.
人間の魂についても同樣、この世の生活を終えればあの世で生活をします。 水の生命が、氣體(雲)、液體(水)、固體(雪や氷)と三相に變化するように、人間の魂も、前世、現世、來世の三世の循環をくりかえすものです。 生命というものは、すべてそのように循環という輪廻の過程を通るように任組まれているのです。この任組みから外れるわけにはゆきません。釋迦やイエス·キリスト、あるいは悟りをりらいた多くの天使は、地上にふたたび、その生を宿すことがないといわれているようですが。生命の原則、生命の任組みを理解するならば、そのような考えは改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 세상의 생활을 끝마치면 저 세상에서 생활을 합니다. 물의 생명이. 기체(구름) 액체(물) 고체(눈이나 얼음)라는 세개의 상[相]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전세, 현세, 내세의 삼세의 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그와 같이 순환[循環]이라고 하는 윤회의 과정을 통하도록, 짜여져[구성,계획,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짜임[구조.계획]에서 어긋[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석가나 예수 그리스도, 혹은 깨달음을 연 많은 천사는, 지상에 다시, 그 생명을 지닐 수는 없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생명의 원칙, 생명의 구성[구조, 짜임]을 이해한다면, 그와 같은 생각은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轉生輪廻は、生あるものの命であるからです。
전생윤회는, 생명이 있는 것의 운명[命]이기 때문입니다.
☞※循環 ――――― この世の一切のもの(精神も含め)は、と圓運動を描いています。 地球の自轉公轉、これにもとづく晝夜の別、 四季の移り變わり。 またあらゆる物質も、質量不滅の法則にしたがい、循環を繼けています。人の魂も同じように、轉生を輪廻し繼けています。循環のない物質、精神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このように、循環の法というものを理解すると、人は正しく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が自覺されてきます。
☞※순환 ――――― 이 세상의 일체의 것(정신도 포함함)은, 뱅글뱅글 원운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공전, 이것에 바탕을 둔 낮과 밤의 다름, 사계절의 변화. 또한 온갖 물질도, 질량불멸의 법칙에 따른, 순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전생을 계속 윤회하고 있습니다. 순환이 없는 물질,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순환의 법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면, 사람은 올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자각되어 옵니다. <용어해설 Page 243 『심안을 열다』>
▷調 和◁
조 화
「人類の進步と調和」をかかげたある人の政治目的は、いつの時代にも、新鮮さを失うことはないでしょう。なんとなれば、「進步と調和」は常に古くて新しい、革新とか保守といった思相を越えた、人類の願いがこめられているからです。ここで사が重視すろ点は、人間ということです。その調和も、一つの政治理念、經濟理念を越えたところの調和、人間としてあるべきについてです。そうして、人間としてのあるべき調和が實現すれば、人類の進步は、現在のテンポ以上の速度をもって進むであろうし、世界の平和も期せずして達成されると思うからです。
「인류의 진보와 조화 」를 내걸은 어떤 사람의 정치목적은, 어느 시대에도, 신선함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진보화 조화」는 항상 낡고 새로운, 혁신이라든가 보존이라고 하는 사상을 초월한, 인류의 바램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중시하는 점은, 조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조화도, 하나의 정치이념, 경제이념을 초월한 조화, 인간으로서 응당 그렇게 해야 할[될] 조화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으로서의 응당 그렇게 해야 할[될] 조화를 실현하면, 인류의 진보는, 현재의 템포 이상의 속도를 가지고 나아갈 것이고, 세계의 평화도 예기치 않게 달성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そこて、人間としての調和はそれではどうあるべきか。何に、調和するかであります。まず、人間は大自然の姿に目を向け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大宇宙という空間、その空間に点在する星雲、太陽、地球、そうして、山川草木、空氣、水‥‥‥. こういった自然の環境をぬきにして、人間の存在は考えられません。 大自然のなかに生きている人間。 自然の外には出られぬ人間。こう考えると人間の在り方は、大自然の姿に合わせた生活、心の持ち方が人間としての調和の尺度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すなわち大自然は、一絲亂れぬ法則のもとに、正しく運行きれているのです。太陽の熱、光のエネルギ―にしても、地上の生物が生存するのに必要な環境をもって放射しており、空氣にしろ、水にしろ、いくら使っても減ることもなければ增えるここもありません。佛敎でいう不增不減のです。こうした大自然の姿を靜かに眺めてみますと、そこには神佛の計らい、神佛の智慧、神佛の慈悲、神佛の愛が存在することに氣づきます。すなわち大宇宙は、神佛の胸の中で呼吸し、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조화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가. 무엇[어떤 것, 무슨일], 조화하는가 입니다. 우선, 인간은 대자연의 모습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대우주라고 하는 공간, 그 공간에 점재하는 성운, 태양, 지구, 그리고 산천초목, 공기, 물 ‥‥‥. 이러한 자연 환경을 빼고서, 인간의 존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대자연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대자연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인간.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 대자연의 모습에 맞춘 생활, 마음가짐이 인간으로서의 조화의 척도[기준]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대자연은, 일사불란한 법칙의 밑에, 올바르게 운행하고 잇는 것입니다.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라고 해도, 지상의 생물이 생존하는데에 필요한 온도를 가지고 방사하고 있고, 공기라고 해도, 물이라고 해도, 아무리 사용해도 줄어드는 일도 없다면 늘어나는 일도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증불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대자연의 모습을 조용히 눈여겨 보면, 거기에는 신불의 조처[배려], 신불의 지혜[智慧], 신불의 자비, 신불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대우주는, 신불의 가슴 속에서 호흡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人間は、程度の差こそあれ、眞善美を見分ける能力を持っています。これを要約すれば,己にウソのつけぬ心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れが神佛の心です。神佛の心とは、慈悲と愛の心です。人間が五官や六根(眼、耳、鼻、舌、身、意)にふりまわされてしまうために、本來の神の子の己を失っているにすぎないのです。鬪爭や破壞、血生臭い空氣が地上を覆っている原因についても、人間が神佛の慈悲と愛の心に不調和であるからです。この地上を平和にする、この地上を天國とする、このを樂土とするためには、神佛の子である一人一人の人間が、大自然という神佛の心、慈悲と愛に適う心を、率直に日常生活に現わしてゆく、生じてゆくことにあるのです。したかって、人間の調和とはどういうことであるかといえば、慈悲と愛の心の芽を育てることにあるわけです。 そうして、進步は、調和によって促がれものなのです。なぜなら、調和は、神佛の無限の智慧が供給される光のパイプあるからです。
인간은, 정도의 차이야말로 있지만, 진·선·미를 분별[구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약하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불의 마음입니다. 신불의 마음이란, 자비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인간의 오관이나 육근 (눈, 귀, 코, 혀, 몸, 의지)에 휘둘러 버리기 때문에, 본래의 신의 자녀인 자기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투쟁이나 파괴, 피비린내 나는 공기가 지상을 덮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도, 인간이 신불의 자비와 사랑의 마음에 부조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을 평화롭게 한다, 이 지상을 천국으로 한다, 이 지상을 낙토[樂土 안락하게 살아가는 토지]로 하기 위해서는, 신불의 자녀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대자연이라고 하는 신불의 마음, 자비와 사랑에 들어맞는 마음을, 솔직하게 일상생활에 모습을 드려내어 가며, 실행[실천]해 가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조화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냐고 하면, 자비와 사랑의 마음의 싹을 키우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보는, 조화에 의해서 촉진되는 것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화는, 신불의 무한한 지혜가 공급되는 빛의 관[pipe]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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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法の変遷◁
정법의 변천
今回は、この地上における正法の変遷を、過去一万年までさかのぼってみることにししましょう。
오늘은, 이 지상에 있어서 정법의 변천을, 과거 1만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것입니다.
今から約一万年ほど前、南大西洋にアトランティス大陸というのがあって、文明は非常に栄えていました。信仰の対象は太陽にむけられ、人間の魂は、あの太陽のごとく、光輝くものであり、慈悲と愛の心こそ、人間としてのあるべき姿として、正法が説かれていました。法を説いた者は、アガシャーといいました。 アガシャーを中心として数多くの如来、菩薩が地上に降り、道を説きました。現在、南大西洋には大陸はありません。 アガシャーをのぞく多くの天使たちを、時の為政者が葬ったからです。天使たちを殺戮するほど彼等の心はすさんでいたのです。その心根が大地震を起こし大陸を海にめ沈めたのです。六千年の後、文化はエジプトに移ってきました。そして今から約三千二百年ほど前、モーゼが現われ、人々を救いました。 釈迦がインドに生まれるまでの約七百年間のある一時期は、地上界の意識は地獄と化していました。 略奪、強盗、殺人が幅をきかしていました。 釈迦が生まれる二、三百年前から、光の天使による地上浄化の地ならしが行われ、やがて釈迦が生まれました。 この時も、光の天使が数多く地上に生を得ています。 釈迦は、主として慈悲を説きました。 このためイエスが約五百年の後に、イスラエルに生まれ、愛を説いたのです。 イエスが生まれたときも、その周圍に天使たちが生まれています。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쯤 전, 남대서양에 아틀란티스대륙이라고 하는 것이 있으며, 문명은 상당히 번영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대상은 태양으로 향하게 하며, 인간의 영혼은, 저 태양처럼, 빛나는 것이며,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응당 그렇게 해야 할[될] 모습으로서, 정법을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법을 설교한 사람은, 아가샤라고 했습니다. 아가샤를 중심으로 해서 수많은 여래, 보살이 지상에 내려와, 도리[道]를 설교했습니다. 현재, 남대서양에는 대륙은 없습니다. 아가샤를 제거하고 많은 천사들을, 당시의 위정자[爲政者]가 암매장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살륙할 정도로 그들의 마음은 거칠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심근[心根 심성, 바탕이 되는 마음씨, 마음씨]이 대지진을 일으켜 대륙을 바다로 가라앉힌 것입니다. 6천년 후, 문화는 이집트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3천 2백년 쯤 전, 모세[Moses, 기원전 13세기경 선지자, 예언자, 히브리인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한 선지자]가 등장하여,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석가[釋迦牟尼]가 인도에 태어나기까지의 약 7백년 동안의 어느 시기는, 지상계의 의식[意識]은 지옥계로 변해 있었습니다. 약탈, 강도, 살인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석가가 태어나는 2~300백년 전부터, 빛의 천사에 의한 지상정화의 정지[(整地)][땅을 고름]가 행해지고, 이윽고 석가가 태어났습니다. 이 때도, 빛의 천사가 수다하게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석가는, 주로 자비를 설교했습니다. 이 때문에 약 5백년 후에, 이스라엘에 태어나, 사랑을 설교한 것입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도, 그 주위에 천사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その後、正法は西から東に移りました。すなわち、中國です。 イエスなきあとは、信心信仰は他力にか わっていきました。 地上は鬪爭と破壞をくりかえしていたが、中國では天台智顗が法華經を世に傳え、正法を、中國の地に復活させたのです。ただこのときは、佛敎もむずかしい哲學、學問とかわり、衆生を救うまでには至りませんでした。天台智顗のあと、傳敎が日本に歸化し、日本に佛敎を樹立させました。傳敎の後は、やはり、他力が信仰の中心をなしています。 また、キリスト敎においても、祈りの宗敎にわわってゆきました。
그 후, 정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즉, 중국입니다. 예수 사망 이후는, 신심신앙은 타력으로 변해 갔습니다. 지상은 투쟁과 파괴를 되풀이 하고 있었지만, 중국에는 천태지의가 법화경을 세상에 전하고, 정법을, 중국의 땅에 부활시켰던 것입니다. 단 이 당시는, 불교도 어려운 철학, 학문으로 바뀌고, 중생을 구원하기까지에는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천태지의 후에, 전교[傳敎大師: 사이초(最澄) Saichō (767-822))가 일본으로 귀화(歸化)해서, 일본에 불교를 수립시켰습니다. 전교대사의 후에는, 역시, 타력이 신앙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도, 기도의 종교로 바뀌어 갔습니다.
このようにして正法は現在に至っています。正法は、過去一万年の間、このような変遷をたどり、イエス以降は、他力信仰が人類の生活に密着するよう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しかし、イエスも釈迦も、他力は一度も説いていないのです。また、地上が末法と化すと、ある時期を定めて、神の命をうけた光の天使が地上に生を得、道を説くことになっています。アガシャー、モーゼ、釈迦、イエスの時代をみれば、このことは一目瞭然でありましょう。 また、正法の根を絶やさないためにも、こうした人たちが光をかかげ、人心を正しい方向に持ってゆ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이렇게 해서 정법은 현재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정법은, 과거 1만년 동안, 이와 같은 변천을 거쳐, 예수 이후는, 타력신앙이 인류의 생활에 밀착하는 것으로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도 석가도, 타력은 한 번도 설교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아가샤, 모세, 석가, 예수의 시대를 보면, 이 것은 일목요연할 것입니다. 또한, 정법의 뿌리를 끊지않기 위해서도, 이러한 사람들이 빛을 내걸고, 인심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져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現在は、まさに、その時期に当たっていると言えいえましょう。
――현재는, 특히, 그 시기에 해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天使 --제3장 울림[ひびき]의 내용 중에.
天使は人を見て 人にとらわれない 천사는 사람을 보고 사람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社會を見て 社會に動かされない 사회를 보고 사회에 흔들리지 않는다.
常に神の心に住して その心で每日をすごす 항상 신의 마음에 거주하고 그 마음으로 매일을 지낸다.
▷心 と 肉 體◁
마음과 육체
正法とは、その根本において中道の心をいいます。太陽、地球、空氣、水、人間の肉體も、すべてこれ中道の心にしたがって、その生命を生かし、維持しています。 太陽の熱、光が、あるときは强く、あるときは弱くなったらどうでしょう。太陽そのものも、アンバランスをきたし、太陽をして崩壞にみちびくことになりました。私たちの肉體についても、夜も寢ずに四六時中これを酷使したとしたらどうになりましょう。十日と保持することはてきません。晝は働き、夜は休む。こうした中道の心にしたがって生き、生かされておれば。その肉體は保全され、定命(じょうみょう)がくるまで身陳代謝がさわりなく行われるのであります。
정법이란, 그 근본에 있어서 중도의 마음을 말합니다. 태양, 지구, 공기, 물, 인간의 육체도, 모두 이 중도의 마음에 따라서, 그 생명을 되살리고, 유지[維持]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열, 빛이, 어느 때는 강하게, 어느 때는 약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지요. 태양 그 자체도, 언벨런스[불균형, 부조화]를 초래하고, 태양으로 하여금 붕괴로 안내하게 되겠지요. 우리들의 육체에 관해서도, 밤낮없이 24시간 동안[하루종일] 이것을 혹사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지요. 열흘이나 유지[保持 보지]할 수는 없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쉰다. 이러한 중도의 마음에 따라서 살고, 살리우고 있으면, 그 육체는 보전되어, 정명[定命: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수명]이 올 때까지 신진대사가 지장을 초래하지 않게 행하여지는 것입니다.
※정명[定命] : <불교> 전세의 인연으로 정해진 수명. <국어사전> 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私たちの肉體の機能、地球の機能、太陽の機能というものは、すべてこれ中道ん心にしたがって生き、生かされています。ところが人間は、肉體のほかに、心という精神を保持しています。その不調和のために、中道によって生かせれている肉體の機能を損っている場合が多いのです。これはなにも肉體ばかりではなく、周圍の生活環境にまで不調和を與えてしまいます。
우리들의 육체의 기능, 지구의 기능, 태양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이 중도의 마음에 따라서 살고, 살리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 외에, 마음이라고 하는 정신을 유지[保持 보지]하고 있습니다. 그 부조화 때문에, 중도에 의해서 살리우고 있는 육체의 기능을 망가뜨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고 육체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생활환경까지 부조화를 입혀 버리고 맙니다.
心とは、各人の意識であり、魂であり、想念としての創造行爲であり、そしてそれは、まったく自由な立場で、自由に行使できる精神作用でもあります。この精神作用があるために、人間は、神の子として、大宇宙にまてその心を飛躍擴大させることもできようし、反對に、地上の相對觀の中に埋沒してしまうという危險さえも藏しているのです。
마음이란, 각자[各人]의 의식이며, 영혼이며, 상념으로서의 창조행위이며, 그리고 그것은, 완전하게 자유로운 입장에서,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정신작용이기도 합니다. 이 정신작용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신의 자녀로서, 대우주에까지 그 마음을 비약확대[飛躍擴大]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지상의 상대관(相對觀) 속에 매몰해 버린다고 하는 위험마저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人生は、山あり、谷ありで、想像もできない、いろいろな壁につき當ります。これによってたくましくなる者もあれば、自分の力を出し絶らずに終ってしまう者もあります。强氣も、弱氣も、だいていは、この地上での習慣に身をまかせた場合が多く、人間はなんの目的で生まれてきたかを知らずに、あの世に歸る者があとを絶ちません。長い目でみるならば、そこが人間としての魂磨きといえましょうが。しかし、中道の心がわかり、己の心の在り方、想念の持ち方を、正法にそって生かしてゆくならば、心も、肉體も、よりすこやかに保全されてくるのです。
인생은, 산이며, 계곡이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벽에 부딪칩니다. 이것에 의해서 굳쎄게 되는 사람도 있으면, 자신의 힘을 다 써 보지 못하고 끝나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한 기운도, 약한 기운도, 대개는, 이 지상에서의 습관에 몸을 내맡긴 경우가 많고, 인간은 무슨 목적으로 태어나 온 것인지를 알지 않고,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끊이지 않습니다.[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 긴 안목으로 보게 되면, 거기[그곳]가, 인간으로서의 영혼을 연마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마만, 그러나, 중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기의 마음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 상념을 가지는 방법을, 정법에 따라 되살리어 가면, 마음도, 육체도, 보다 건강히 보전되어 오는 것입니다.
人間の幸、不幸の分かれ目は、肉體という舟を動かしているところの各人の心、想念、魂であります。その魂が、正法にそった中道の心で、ものを見、語り、思うことによって、日常の生活を正しく想念、行爲するならば,心と肉體、己自身と周圍の環境というものは、自然に整えられてくろものなのです。人間の肉體はその心の持ち方によって、いっそう健全になり、健康な肉體は、心をますます明るくしてものです。色心不二とは、正法の神髓をいったものであり、それはまた中道のでもあったのです。
인간의 행복, 불행의 갈림길은, 육체라고 하는 배를 움직이고 있는 곳인 각자의 마음, 상념,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정법에 따른 중도의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 일상의 생활을 올바르게 상념, 행위한다면, 마음과 육체, 자기 자신과 주위의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히 정돈되어 오는 것인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 마음을 가지는 방법에 따라서, 더욱 건전하게 되며, 건강한 육체는, 마음을 더욱 더 밝게 해 가는 것입니다. 색심불이[色心不二: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란, 정법의 진수[神髄]를 말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중도의 마음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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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神髄]=진수[眞髓]
그 길의 오의[奧義 = (어떤 사물(事物)의 현상(現象)이 지니고 있는) 매우 깊은 뜻)]
▷ 節度を持て◁
절도를 가지고
戰後、日本の經濟は鐵鋼、造船、自動車、電化製品などを中心に、異常な發展を遂げてきました。その成長率はたしかに、世界の瞠目(どうもく)に値します。しかし天井知らずの高度成長は、日本の國土をいびつにする勢いであり、産業優先の經濟政策には、人間を海に追い落とす役目を果たしているかのような錯覺すら感じられます。政府も、産業人も、時の流れを忘れ、高度成長に醉っていたかのようでした。ニクソン聲明は晴天の霹靂(へきれき)だったからです。予測されていたとはいえ、株式市場は、その驚きをうつして戰後最大の暴落を演じています。ドル・ショックの名にふさわしい仰天ぶりでありました。
세계 2차 대전 후, 일본의 경제는 철강, 조선, 자동차, 전기제품 등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인 발전을 달성해 왔습니다. 그 성장률은 확실히, 세계가 (놀라거나 괴이(怪異)쩍게 여겨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끄러미 바라볼 만 합니다. 그렇지만, 청정부지의 고도 성장은, 일본의 국토를 일그러지게 하는 기세이며, 산업우선의 경제정책으로는, 인간을 쫓아가서 바다로 떨어뜨리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입니다. 정부도, 산업인도, 시대의 흐름을 잊고, 고도성장에 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닉슨 성명은 청천벽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측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주식시장은, 그 놀람을 반영하여 전후 최대의 폭락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달러 쇼크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겁하는 모습이었습니다.
アメリカの不況の第一は、ベトナム戰爭による膨大な消費に原因があり、日本の好況は、その間隙をぬった利益追求の經濟競爭にありました。当然、その反作用はいつの日にか訪れてくるものでした。ニクソンはまず中共に手をのばし、戰爭終結の希望を託し、次いで、大國のメンツをかなぐり捨てる先般の聲明となり、聲明が出た途端に、我が國の高度成長にブレーキがかかりました。いずれこうなるであろうことはわかっていたところですが、しかし、誰かが荒療治をしなければ、アメリカも、日本も、それこそ本当の大恐慌の洗礼をう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でしょう。
미국 불황이 첫째는, 베트남 전쟁에 의한 막대한 소비에 원인이 있고, 일본의 호황은, 그 사이 틈을 누빈[기회를 엿본] 이익추구의 경제경쟁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반작용은 어느 사이엔가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닉슨은 우선 중화 인민 공화국[中共]에게 손을 뻗치고, 전쟁종결의 희망을 부탁하고, 뒤이어, 대국의 체면을 미련없이 팽개치는 지난 번의 성명[닉슨선언, Nixon⌒Doctrine]이며, 성명이 나오자마자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에 브레이크[제동]가 걸렸습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렇지만, 누군가가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도, 일본도, 그야말로 정말로 대공황의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닉슨 성명, 닉슨 선언, 닉슨 독트린 [Nixon⌒Doctrine]
1970년에 미국 대통령 닉슨이 의회에 보낸 외교 교서에서 밝힌, 아시아 안보에 관한 새로운 외교 전략. 우호국과의 협력, 미국의 중대 이익을 위협하는 국가에 대한 힘에 의한 대처, 평화를 위한 필요 조건으로서의 교섭 의무 따위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なんでもそうですが、出る杭はうたれるのです。出すぎても、引っこんでも反作用はついてまわります。日本の經濟は、これまですさまじいといっていいほどの伸びでありました。明治以後、こんな經驗は初めてでした。しかしそうした成長のかけ声のかげでは、工業公害は都市ばかりではなく、農村や山間部、そして海にまではびこり、自然破壞は、人間生活の安否にまで發展してきたのです。國內の風俗習慣にしても、糸の切れた凧(たこ)のように、あてのない空間をさまよっています。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만,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튀어나와도, 틀어박혀도 반작용은 따라다닙니다. 일본의 경제는, 지금까지 굉장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신장해 있었습니다. 메이지[明治] 이후, 이러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성장의 성원의 그늘에는, 공업공해는 도시뿐만이 아니라, 농촌이나 산간지방, 그리고 바다에까지 만연하여, 자연파괴는, 인간생활의 안부에까지 발전해 온 것입니다. 국내의 풍속 습관이라고 해도, 실이 끊어진 연처럼, 목적[희망]이 없는 공간을 정처없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出る杭は打れる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
①너무 잘나면 남에게 미움받는다. ②주제넘은 짓을 하면 남에게 비난받는다.
いったいその原因はなんでしょう。いうまでもなくそれは人間の自我心であります。執念にも等しい自己保存と、競爭意識が、個人にも集團にも作用しているからにほかなりません。大學の殺人的入試ひとつとりあげても、その事實がはっきりと現われています。今日の高度經濟成長の骨格は、こうした自己保存という自我にもどついた無秩序、無節操な經濟競爭に、その原因がみられるようです。 個人でも集團でも、節度、協調、勇氣、平等、感謝報恩、そして慈悲、愛という心を失うと、家庭でも社會も瓦解します。なぜなら、自然はそうした法則の下に運行しており、人間だけがこの例外ではないからです。人間の社會を、より円滑に、健やかに、豊かに永續的に發展させるためには、節度、强調といった中道の心を尺度とした、助け合う環境をつくることがまず必要でしょう。今度の通貨問題は、こうした교敎訓をはっきりと示したいい例ではないかと思われます。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인간의 자아심[自我心]입니다. 집념과도 다름없는 자기보존[自己保存]과, 경쟁의식[競争意識]이,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대학의 살인적 입시 하나를 집어들어도, 그 사실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고도경제성장의 골격은, 이러한 자기보존이라고 하는 자아[自我]에 바탕을 둔 무질서[無秩序], 무절제[無節操]한 경제경쟁에, 그 원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일지라도, 집단일지라도, 절도[節度], 협조[協調], 용기[勇気], 평등[平等], 감사보은[感謝報恩], 그리고 자비[慈悲], 사랑[愛]이라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가정도 사회도 와해[瓦解]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그러한 법칙 하에 운행[運行]하고 있고, 인간만이 이 예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회를, 보다 원활하게, 건강하게, 풍요롭게 영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절도[節度], 강조[強調]라고 하는 중도[中道]의 마음을 척도로 한, 서로 돕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의 통화문제[通貨問題]는, 이러한 교훈을 분명히 보여준 좋은 사례가 아닌가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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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節度]
<한자사전> 일이나 행동(行動) 등(等)을 똑똑 끊어 맺는 마디.
<국어사전>
1.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2. 조화와 완전을 중시한 그리스 정신이 일반적 준거로 삼은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중용이라고 하였다.
▷人間らしい◁
인간다운
人間はしょせん、 神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なぜかというと、この地上では何人といえども、己の心を鍊磨するという修行の第一目的を外すわけにはゆかないからです。轉生輪廻が永遠に續くように、この地上の修行も、また永遠に續いてゆくものです。これでよい、これで完成したという行き止まりはありません。醫學の進步、科學の發展は、人工心臟や宇宙船をつくり、百年前の人知では想像も及ばないような進展をみせています。しかし醫學の進步は、反面において新しい病氣の發見があり、病氣と醫學は、いわば追いつ追われつで進んでいます。原子力や宇宙船は人類に新たな希望を與えましたが、人類絶滅という不安感をも同時に輿えています。このように科學ひとつとっても、これでよい、これで終りである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す。 同樣にして、人間の魂も、時時刻刻、より以上の完成をめざして進んでいるのです。こういう意味において、人間(肉體)が神佛になる、ということはあり得ないのです。そしで人間は、まず人間らしく、生きてゆことが大事でありましょう。
인간은 어차피,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인가 하면, 이 지상에서는 어떤 사람일지라도, 자기의 마음을 연마한다고 하는 수행의 첫째의 목적을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생윤회가 영원히 이어지는 것처럼, 이 지상의 수행도, 또한 영원히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좋다, 이것으로 완성했다고 하는 마지막은 없습니다. 의학의 진보, 과학의 진보는, 인공심장이나 우선을 만들고, 백년 전의 인간의 지혜[人知]로는 상상도 미치지 않는 것과 같은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학의 진보는, 반면에 있어서 새로운 질병의 발견이 있고, 질병과 의학은, 이를테면 쫓고 쫓기며 진보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이나 우주선은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만, 인류절멸[인류멸종]이라고 하는 불안감으로써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과학 하나를 가지고도, 이것으로 좋다, 이것으로 끝이다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서, 인간의 영혼도, 시시각각, 보다 이상의 완성을 목표로 해서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인간(육체)가 신불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우선 인간답게, 살아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人間らしく生きるとはどういうことかといえば、人間は神の子であり、修行の目的をはっきりと自覺し、その自覺にもこづいて思惟し、行爲すろことであります。 中道の心を忘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反省ばかりしているとかえって心は狹くなります。反省を怠ると自我に流されます。そこで、働くときは働く。體を休めるときには休むことです。ときには家族總出で旅行し、自然と語るのもよいでしょう。芝居見物を樂しいでしょう。音樂を聽くことも情操を高めます。こうした中からでも數限りなく敎えられるものです。 夜遲くまで、任事、任事で追いまくられ、追いまわしていると、やがいで丸く大きな心までいびつにしてしまわぬともかぎりません。また、社會生活から遠ざかり、山にはいって瀧行や禪定三昧にも問題があります。正法神理を實踐している者が、肉的鍛鍊を目的するなら惡くはないでしょう。 しかし心の實態を知らず、正法を實踐すろことを怠っている自我の强い人が、こうした行(ぎょう)をすると、惡靈に憑依されてしまいます。反對に、人間は神樣ではない、やりたいことをした方が得と考えるのも人生の目的を見失ってしまいます。
인간답게 산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인간은 신의 자녀이며, 수행의 목적을 분명히 자각하고, 그 자각에 바탕을 두고 사유[思惟]하고, 행위하는 것입니다. 중도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반성만하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은 좁아집니다. 반성을 게울리하면 자아로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일할 때는 일한다. 몸을 쉴 때에는 쉬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족이 총출동해서 여행하고, 자연과 말하는 것도 좋겠지요. 연극구경을 즐기는 것이지요. 음악을 듣는 것도 정조[정서]를 높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라도 수없이 많은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밤 늦게까지, 일, 일로 몹씨 쫓기고, 쫓아가고 있으면, 머지않아서 둥글고 큰 마음까지 일그러져 버리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사회생활로부터 멀어지고, 산에 들어가서 폭포수행이나 선정삼매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법신리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육체적 단련을 목표로 한다면 나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마음의 실태를 모르고, 정법을 실천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있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 이러한 수행을 하면, 악령에게 빙의되어 버리고 맙니다. 반대로, 인간은 신이 아니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편이 이득[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의 목적을 잃어[놓쳐] 버리고 맙니다.
※정조[情操] : (가치 판단의 기초가 되는) 인간이 지닌 가장 높고 복잡한 감정. 정서
大事なことは、人間がなぜ生まれ、どんな目的で何をなすぺきかをはっきりと自覺し、その目的に沿った想念と行爲をなしてゆくことです。體を休める、音樂を聽く、旅に出る、芝居を觀る、子供たちと語る、そうした時間のない人生は砂漠をゆく旅人に等しく、人間らしいふくらみ、安らぎから遠ざかるものといえます。こうした機會は、人間の目的から少しも離れぬばかりか、むしろその目的を、いっそう叶えさせる原動力となるでしょう。
중요한 것은, 인간이 왜 태어나서,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분명히 자각하고, 그 목적에 따른 상념[想念]과 행위를 해 가는 것입니다. 몸을 쉰다, 음악을 듣는다, 여행을 떠난다, 연극을 관람한다, 아이들과 대화한다, 그러한 시간이 없는 인생은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와 다름없고, 인간다운 탄력성, 평온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는, 인간의 목적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그 목적을, 더욱 충족시겨 주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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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념[想念] : <국어사전>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한자사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一日一生◀
일일일생
肉體と心は、通常は密着して生活しています。 このために肉體は心、魂の乘り舟であるという認識がなかなか得られないのです。
육체와 마음은, 통상은 밀착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육체는 마음, 영혼의 승선하는 배라고 하는 인식을 좀처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先日、私は、肉體上の死に見われました。 大阪から四國におもむき、講演旅行した際のできごとです。 德島の宿で私の魂は、私の肉體から完全に離脫してしまったのです。 心臟がともり、呼吸も停止してしまいました。 行をともにしてきた皆さんはコトの意外さ、重大さにまどい、醫者に診せようか、どうすべきかを迷っていました。旱大S博士と、 Iさんは「守護 指導靈の方はいったいどうしているのか、こうして四國まてきて人びとに正法を說いておられる先生を、こうした事態においこむなんてあまりにも無慈悲,愛もないではないか・・・・・・ 」と、心のなかで思われてました。 肉體を離れた私自身(意識)は、私の肉體のすぐ近くで、こと切れた私の肉體をながめ、一方では皆さんの心のうちが手にとるようにわかってくろのです。 三十五年前、私はこうした體驗をくりかえしやらされています。このときは、肉體の自分と、もう一人の自分の認識を深めるためにやらされました。私はこのとき以來、もう一人の分身とはいったい何者であり、また人間はどうしてそうなっているのかを追い求めてきたのです。その結果は、肉體と魂(もう一人の自分)は本來別別のものであり、肉體は單に魂の乘り舟にしかすぎない、ということがわかったのです。しかし、今回の體驗については前前から警告をうけていました。前月號「人間らしく」と述べておきながら、私は、肉體を酷使してきました。日曜も祭日もなく、睡眠時間は、一日三~四時間足らずです。今回の場合は、講演、現象實驗、個人指導、環境變化といった體力の消耗と、これまでの體力酷使が重なったため、彈性の限界を越えてしまいました。いうなれば私に與えられている體力の限界を越えてしまったために、三十五年前の經驗が再現されたわけです。私は肉體に戾ろうとしたが、それができません。まるで靈子線が切れたような狀態でした。傳道のこと、事業のこと、家庭のことが私の腦裡をかすめていきました。私自身はあるド―ムの中に立っています。ガ―ン、ガ―ンという音の振動が、私の意識體の五體をふるわせています。そうしているうちに、私の肉體にイエス樣がはいり、語われ、そのあと、私は肉體に戾りました。この間、時間にして約一時間位であったでしょうか。
지난번, 저는, 육체상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오사카에서 시코쿠로 가서, 강연여행 했을 때의 사건입니다. 도쿠시마의 숙소에서 저의 영혼은, 저의 육체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렸던 것입니다. 심장이 멈추고, 호흡도 정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행을 함께 해 온 일행들은 일의 뜻밖의, 중대함에 당황하여,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와세다대학의 S박사와, I씨는 「수호 지도령은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시코쿠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정법을 설교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이러한 사태에 빠뜨리다니[몰아넣다니] 너무나도 무자비하고, 사랑도 없단 말인가・・・・・・」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육체를 이탈한 제자신(의식)은, 저의 육체의 바로 근처에서, 숨이 끊어진 제 육체를 응시하며,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마음 속이 손에 잡히는 것처럼 이해되어 오는 것입니다. 35년 전, 저는 이러한 체험을 되풀이하고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 당시는, 육체의 자신과, 또 한 사람의 자신의 인식을 돈독히 하기 위하여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때 이후, 또 한 사람의 자신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이며, 또한 인간은 어째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인지를 추구해 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육체와 영혼( 또 한 사람의 자신)은 본래 따로따로이며, 육체는 단순히 영혼의 승선하는 배로밖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의 체험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경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전월호 「인간답게」에서 서술해 두면서, 저는,육체를 혹사해 왔습니다. 일요일도 제삿날도 없이, 수면시간은, 하루 3~4시간이 채 못됩니다. 이번의 경우는, 강연, 현상실험, 개인지도, 환경변화라고 하는 체력의 소모와, 지금까지의 체력혹사를 거듭해 왔기 때문에, 탄성의 한계를 초월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저에게 주어져 있는 체력의 한계를 초월해 버렸기 때문에, 35년 전의 체험이 재현되었던 셈입니다. 저는 육체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영자선이 끊어진 것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전도의 일, 사업의 일, 가정의 일이 저의 뇌리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자신은 어떤 돔의 안에 서 있습니다. 캉, 캉! 이라고 하는 소리의 진동이, 저의 의식체의 오체를 떨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에, 저의 육체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말하고, 그 다음, 저는 육체로 되돌아왔습니다. 이 사이, 시간으로서 약 1시간 정도였을 것입니다.
※영자선[靈子線] : 육체의 몸과 영혼의 몸을 잇는 연결선. 이 선의 끝어지면, 우리가 말하는 사망입니다.
今回の體驗で得たことは、一日一生の心構えて每日をすごすということでした。同時に、色心不二という中道[中道]の心が、いかに大事であり、精神と肉體の調和は、人間であるかぎり、欠くことのできない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再確認しました。
이번의 체험으로 얻은 것은, 일일일생의 마음가짐으로 매일을 보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색심불이[色心不二]라고 하는 중도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하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는, 인간으로 있는 한, 소홀히할 수 없는 것[빠뜨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三體理論◀
삼체이론
大自然は三つの組み合わせから成っています。地上の成因は氣圈、水圈、岩圈から構成され、原子陽電子、中性子、陰外電子、電氣の性質は陽性、中性、陰性の三つからできており、またあらゆろ生命を生かしている地球も、太陽、月との關連において、地球自身の目的を果たしています。
대자연은 3가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상의 이루어지는 원인은 대기권, 수권[지구 표면에 물이 차지하는 부분], 암석권[암석으로 된 지구의 외각, 또는 지구의 표층]으로 구성되며, 원자는 양전자, 중성자, 음외전자, 전자의 성질은 양성, 중성, 음성의 세가지로 되어 있고, 또한 온갖 생명을 소생시키고 있는 지구도, 태양, 달과의 관련에 있어서, 지구자신의 목적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기권[氣圈] = 대기권 : 지구 둘레를 싸고 있는 대기(大氣)의 층
※수권[水圈]: 1. (해양(海洋)ㆍ하천(河川)ㆍ호수(湖水)ㆍ늪ㆍ지하수(地下水)ㆍ빙하(氷河) 등)지구(地球) 표면(表面) 위의 물에 의(依)해 차지되는 부분(部分). 그 부분(部分)은 지표(地表) 넓이의 70.8%인 데 해수가 수권의 98%를 차지함. 기권(氣圈)과 암석권(巖石圈)의 중간(中間)에 있어 지구(地球) 구성(構成)의 한 요소(要素)가 됨. 수계(水界) 물테.
2. 지표면이나 지표 근처에 있는 물의 불연속층. 물의 순환 /지구의 연평균 물 수지를 ...물의 순환 /물의 순환. 괄호 안의 ...모든 형태의 액체, 동결된 지표수, 토양과 암석에 함유되어 있는 지하수 및 대기 중의 수증기가 포함된다. 현재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는 연구보고에 의하면, 지질시대 동안 수권을 구성하고 있던 각 형태의 구성비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물의 총량은 과거 10억 년 동안 일정함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 예가 바닷물의 실제 양인데, 바닷물은 주요 빙하기 동안 대륙 빙상(氷床)으로 변해 있었다.
※암권[岩圈] =암석권 <지리지질> 암석으로 된 지구의 외각, 또는 지구의 표층. lithosphere (영어) 암석으로 된 지구의 외각, 또는 지구의 표층
※양전자[陽電子] : 전자(電子)와 같은 질량(質量)으로 양전기(陽電氣)를 띤 잔 알갱이. 1932년에 앤더슨이 우주선(宇宙船)을 연구(硏究)하다가 발견(發見)했음. positron (영어). 자체는 안정하지만 전자와 충돌하면 광자를 방출하고 소멸하는, 질량은 전자와 같고 양전하를 가지는 소립자.
※중성자[中性子] :양성자와 더불어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의 한 가지로 1932년에 영국의 채드웍이 발견했다. 질량은 양성자와 거의 같지만 전기를 띠지 않은 중성의 입자로, 물질을 투과하는 힘이 강하다.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 239 등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원자핵 분열이 일어난다. 中性子 : 陽子とともに原子核を構成する素粒子。質量は陽子よりわずかに大で、電荷は零。記号n ニュートロン。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 질량은 양자보다 약간 크고, 전하[ 물체가 띠고 있는 정전기의 양. 같은 부호의 전하 사이에는 미는 힘이, 다른 부호의 전하 사이에는 끄는 힘이 작용한다. 한 점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점전하라고 하며, 이것이 이동하는 현상이 전류]는 제로. 기호는 n[neutron]
※음외전자[陰外電子]=核外電子 1. 원자핵(原子核) 둘레에 배치(配置)된 원소(元素)의 원자(原子) 번호(番號)와 같은 수의 전자(電子)가 배치(配置)되어, 이 전자(電子) 수(數)에 의(依)하여 원자(原子)의 화학적(化學的) 성질(性質)이 정(定)해짐. 原子の構成部分で、原子核のまわりを運動している電子. 원자의 구성부분이며, 원자핵의 회전을 운동하고 있는 전자.
大自然の組み合わせをさらに細かくみてゆくと、物質のモトは光の波動、または粒子になってしまいます。つまりその波動、粒子の集まり具合いによって、それぞれちがった物質をつくっているのです。たとえば炭素の陽子數六個、中性子六個、陰外電子六個。アルミニウムは陽子が十三個、中性子十四個、陰外電子十三個であります。このように性質を異にする粒子の集合の具合によって、鐵をつくり、金という物質をつくっています。見方をかえると粒子の數、つまり、その數の變化がさまざまな物質なり、ひいては地上の春夏秋冬を形作っているといえましょう。拙著『大自然の波動と生命』の現象論は、この原理にもとづいて、1 2 3の基本數を用いて人の運命、性格、職業、家庭問題等にふれています。人間が生命體であると同時に、この地上の適應した肉體を所有するかぎりは、大自然の組み合わせからは出ることはできず、したがって、いわゆる三體制理論を使って第三者を見立てることもある程度可能となってくるわけです。
대자연의 조합을 더욱더 세밀하게 보게 되면, 물질의 근본은 빛의 파동, 또는 입자로 되어 버리고 맙니다. 즉 그 파동, 입자가 모이는 상태에 따라서, 각각 다른 물질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탄소의 양자수 6개, 중성자 6개, 음외전자 6개. 알루미늄은 양자가 13개, 중성자 14개, 음외전자 13개입니다. 이와 같이 성질을 달리하는 입자의 집합의 상태에 따라서, 철을 만들고, 금이라고 하는 물질을 만들고 있습니다. 견해를 바꾸면 입자의 수, 즉, 그 수의 변화가 가지각색의 물질이며, 더 나아가서는 지상의 춘하추동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졸저 『대자연의 파동과 생명』의 현상론은, 이 원리에 바탕을 두고, 1 2 3의 기본수를 사용해서 사람의 운명, 성격, 직업, 가정문제 등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체임과 동시에, 이 지상의 적응한 육체를 소유하는 하고 있는 한은, 대자연의 조합에서는 나올 수는 없고, 따라서, 흔히 말하는 삼체제이론을 사용해서 제삼자를 보고 판단하는 하는 일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어 오는 것입니다.
三體制理論は、大自然の原理にもとづいて展開ふるものですが、大事なことは正法を知らずして、三體制のみに走ることは危險この上もないということです。なぜかというと、人間は世に修行するために生まれてきているのです。同時に、この世を調和させるために、その目的と使命を擔って存在しているものなのです。したかってそれを自覺せずに、三體制の理論のみにふりまわされることは、形作って魂はいらずの類(たぐい)になってしまうからです。三體制を應用して第三者の運命を豫見する、あるいは性格判斷、商賣の良し惡しを見ることはできます。しかし人間としての義務、責任、使命というものを後回しにして、三體制の應用のみに身をまかせるとすれば、これは巷(ちまた)の“占”と少しもかわりません。正法者の行く手は、地上の運命の良し惡しもあるが,實はそれを越えてゆくものなのです。正法は、地上の狹い視野から、大宇宙の己に歸ってゆく法なのです。東西南北は地上の任意の点に立ったときにいえるものですが、大宇宙からみると東も西もないのです。
삼체제이론은, 대자연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전개하는 것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정법을 알지 못하고서, 삼체제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세상에 수행하기 위해서 태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을 조화시키기 위해, 이 목적과 사명을 담당하고 존재하고 있는 것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자각하지 않고, 삼체제의 이론만에 사로잡히는 것은, 형성하여 영혼은 필요없는 종류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삼체제를 응용해서 제삼자의 운면을 예견한다, 혹은 성격판단, 장사[사업]이 잘되고 못됨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의무, 책임, 사명이라고 하는 것을 후회함으로 해서, 삼체제의 응용만으로 몸을 내맡긴다고 하면, 이것은 항간의 “점[占]”으로 조금도 알 수 없습니다. 정법자의 앞길은, 지상의 운명의 좋고 나쁨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을 초월해 가는 것인 것입니다. 정법은, 지상의 좁은 시야에서, 대우주의 자기로 돌아가는 법인 것입니다. 동서남북은 지상의 임의의 점에 섰을 때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만, 대우주에서 보면 동도 서도 없는 것입니다.
正法が身についてくると、三體理論ではわからぬ諸現象の原因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さらに三體理論の應用範圍も廣がってきます。私が三體制を發表した動機は、あくまで現實の諸現象の任組みを知ってもらうために書いたもので現實の應用ではありません。この点を間違えては困るのです。正法を實踐する者は、三體理論を越えることをあらためて知って欲しいものです。
정법이 익숙해져 오면, 삼체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현상의 원인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삼체이론의 응원범위도 넓어 갑니다. 제가 삼체제를 발표한 동기는, 어디까지나 현실의 여러 현상의 짜임을 알려 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며 현상의 응용은 아닙니다. 이 점을 잘못해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정법을 실천하는 사람은, 삼체체론을 초월하는 것을 다시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現代の歪◀
현대의 비뚤어짐
エコノミック·アニマル。現代の經營者は、これに徹しないと淘汰される思いこんでいます。このため、企業を巨大にし、自社の利益のためには手段を選ばないのです。 競爭相手があれば株を買い占め、乘っ取りを策します。それができなければ秘密を盜み、相手を出し拔いゆく。 需要者に新製品として、原價の何十培かで賣りつけ、そして、目先をかえて新製品を次次と賣り出し、消費をあおってゆく。 現代の物質經濟の中身をみると、こうした欲望を中心とした、そちゅして、心不在のコンピュ―タ―人間が續續と生まれ、現代社會を動かしていることを知らざるを得ません。
경제동물[economic animal]. 현대의 경영자는, 이것에 철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을 거대하게 하고,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경쟁상대가 있으면 주식을 매점하고, 탈취[점령]를 획책합니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비밀을 움치고, 상대를 앞질러 간다. 수요자에게는 신제품이라고 하며, 원가의 몇 십배로 강매하며, 그리고, 겉모양을 바꾸어 신제품을 차례로 발매하고, 소비를 부추겨 간다. 현대의 물질경제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욕망을 중심으로 하며, 그렇게 해서 , 마음의 부재의 컴퓨터인간이 속속 탄생하여, 현대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エコノミックアニマル [economic animal]
[명사] 이코노믹 애니멀. 경제 동물. 경제적 이윤의 추구만을 목표로 하여 행동함을 비판하는 말.
ベトナム戰は半年で終ると豪語したアメリカの國防長官は、コンピュ―タ―人間の代表といえるかも知れません。ところが、 戰爭は二年、三年とつづき、アメリカの軍隊が何十萬とベトナムにくりだされなければ收拾がつかなくなってしまいました。 コンピュ―タ―ではじいた計算と、實戰では、大きな狂いが生じてきたのです。しかもこの見通しがアメリカ經濟を大きく搖り動かす導火線になろうとは、頭腦明晰をもって自他ともにゆるしたその代表選手も知る由がなかったのです。
베트남전쟁은 반년으로 끝난다고 호언한 미국의 이전의 국방장관은, 컴퓨터인간의 대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쟁은 2년, 3년 계속되고, 미국의 군대가 몇 십만이나 베트남으로 차례차례 투입하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되게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컴퓨터로 산출한 계산과, 실전에서는 고장이 왔던 것입니다[실전에서는 크나큰 차질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전망이 미국 경제를 크게 흔들리게 하는 도화선이 되리라고는, 두뇌명석을 사용해서 자타가 함께 허가한 그 대표선수도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베트남 [Vietnam]
<地〉 베트남.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있는 사회주의 공화국. 《수도는 하노이(ハノイ)》
コンピュ―タ―という器械は、人間の頭腦から生まれたのです。 人間の頭腦は、 客觀的には、コンピュ―タ―の働きと同じです。つまり、人間の頭腦は、コンピュ―タ―なのです。 コンピュ―タ―はたしかに計算はうまい。知に調和します。しかし、應用問題がでてくると解けないのです。いうなれば、人間の心情を、計算で解こうとしても、解けないのです。 ベトナム戰では敵がわかりません。 ベトナム戰はアメリカの大國意識から出發した戰いです。 戰場におもくく兵士の戰意もわからないばかりか、現地人の心をつかむこともできなかったのです。 戰いは北爆へとエスカレ―トし、泥沼と化していったわけです。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는, 인간의 두뇌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객관적으로는, 컴퓨터의 작동과 같습니다. 즉,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인 것입니다. 컴퓨터는 확실히 계산은 잘한다. 知[지식=지혜(知惠)]에 조화합니다. 하지만, 응용문제가 나오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심정을, 계산으로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적을 모릅니다.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대국의식에서 출발한 싸움[전쟁]입니다. 전쟁터로 나아가는 병사의 전의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지인의 마음을 파악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싸움은 베트남전쟁[北爆]으로 escalate하고[점차 확대되고], 수렁[泥沼]으로 변하여 갔던 셈입니다.
現代の經濟社會が、欲望とコンピュ―タ―という、いわば我欲と知のみに賴っていると、やがて、アメリカがベトナム戰で負った傷跡以上の深傷(ぶかで)を負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事實、個個の企業が次第にゆきづまりをみせています。
현대의 경제사회가, 욕망과 컴퓨터라고 하는, 이를 테면 아욕[자기 욕심]과 知[지식=지혜(知惠)]만에 의존하고 있으면, 이윽고,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짊어진 상처 자국 이상의 중상[深傷, 깊은 상처]을 입게 될 것입니다. 사실, 개개[각자]의 기업이 차츰차츰 정돈 상태에 빠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企業の安定は、勞社の協調と、人間主體の經營に立ち戾ることです。それには、人間の目的と使命の自覺が先決です。間違えては困ることは、企業安定のために人間にかえれというのではなく、企業は人間生活をより豊かにするためにあるということを理解することです。 物質のドレイになると、人間疎外が顯著になってきます。 コンピュ―タ―人間が幅をきかせてきます。これではいけない。まず、人間の心を理解することからはじめ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기업의 안정은, 노사의 협조와, 인간주체의 경영에 입각하여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목적과 사명의 자각이 선결입니다. 잘못해서는 곤란한 것은, 기업안정(企業安定)을 위해서 인간을 바꾼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은 인간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함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질[物質]의 노예[奴隸]가 되면, 인간소외[人間疎外]가 현저[顯著]하게 되어 옵니다. 컴퓨터인간이 위력으로 겁을 줍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선,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波羅蜜多◀
파라밀다(Paramita :바라밀다)
この言葉は般若心經のなかに書かれてあります。 波羅蜜多とは古代インド語のパラミタであり、祥しくはプラ―クリット語であります。その眞意は內在された偉大な智慧に到達す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如來の心を指しています。 二千五百有余年前のインドでは、蜂蜜は貴重品であり、榮養價のもっとも高い食糧として珍重されていました。 人間の偉大な智慧もこれと同じしょうに、蜜がいっぱいつまった價置ある大智識であり、人は誰しも、その偉大な智慧の寶庫を所有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いったものです。もっとも漢字の波羅蜜多はパラミタの音譯ですが、蜜多については、當時の眞意を、そのまま傳えているといめましょう。
이 말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안에 적혀 있습니다. 파라밀다[波羅蜜多]란 고대 인도어의 파라미타(Paramita)이며, 상세히는 프라크드리어(Prakrit語:통속어, 방언)입니다. 그 참뜻[眞意]는, 내재된 위대한 지혜[智慧]에 도달한다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고, 여래[如來=부처]의 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천 5백 유여년 전의 인도에서는, 벌꿀[蜂蜜]은 귀중품이며, 영양가가 가장 높은 식량으로서 진귀하게 여겨 소중히 다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위대한 지혜[智慧]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꿀이 가득찬 가치있는 큰 지식[大智識]이며, 사람은 누구나, 그 위대한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를 소유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더욱 한자의 파라밀다[波羅蜜多]는 파라미타(Paramita)의 음역[音譯]입니다만, 밀다[蜜多]에 관해서는, 당시의 참뜻[眞意]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プラークリット‐ご【プラークリット語】 Prakrit語
일본야후국어사전☞《Prakritは元来、自然な言語の意》中期インド‐アーリア語の総称。雅語であるサンスクリット語に対して、日常の会話語をさす。アショカ王の碑文を最古の資料とする。
프라크리트는 원래, 자연스러운 언어의 뜻 ..중기 인도 아리아어의 총칭. 바르고 우아한 말인 산스크리스트어에 대해서, 일상의 회화어를 가리킨다. 아쇼카왕의 비문을 가장 오래된 자료로 한다.
일본야후백과사전 ☞ 中期インド・アーリア語の別称。サンスクリット語に対蹠(たいせき)される概念で、字義的には「自然な、粗野な、人為の加えられていない」言語、すなわち通俗語、方言を意味している。
중기 인도 아리아어의 별칭. 산스크리트어에 정반대되는 개념이며, 자의적으로는 「자연스러운, 거칠고 세련되지 아니한, 인위가 가미되어 있지 않은 」언어, 즉 통속어, 방언을 의미하고 있다.
※음역[音譯] : 한자를 가지고 외국어의 음을 나타내는 일. ‘Asia’를 ‘亞細亞’, ‘club’을 ‘俱樂部’로 표기하는 것 따위이다.
※밀다[蜜多] : 꿀이 많다 ^^.
さて、人がその大智識、智慧の寶庫をひらくにはどうすればよいか。書物を數多く讀むことか、それとも特別の行が必要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勇氣と努力の積み重ね以外に何もないのです。勇氣とは、神理の前に恐らぬ心です。正法を信じ、 神理が理解されたならば、世俗の習慣にまどわされることなく、進んで行うことです。ある一定の年齡に達すると、世俗の常識がその人を支配し、よいとわかっでいても、その常識が邪魔をして、一步も先にふみ出せないものです。道端に落ちているゴミを、東京中の一人一人が拾えば、都內は一夜にして、淸潔な町になるでしょう。短氣は損氣とわかったならば、自己保存の黑い想念を捨て去ることです。得意先の接待でも、飮酒をさけようとすれば、口實はいくらでもつくることが出來ます。 恥ずかしいとか、常識というものは、大抵の場合、自己保存につながっていることを知るべきです。自己保存が心に動いている間は、勇氣の心情はますます退化してきます。退化は偉大な智慧から遠ざかることです。
그럼, 사람이 그 큰 지식[大智識],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를 여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적을 아주 많이 읽는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수행[行]이 필요할까? 라고 하면 그렇지는 않고, 용기와 노력을 점차 늘려 가는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용기[勇氣]란 신리[神理]의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정법[正法]을 믿고, 신리가 이해되어 온다면, 세속의 습관에 현혹되는 일 없이, 진행해 가는 것입니다. 어느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세속의 상식이 그 사람을 지배[支配]하고, 좋다고 알고 있어도, 그 상식이 방해를 하고, 한 걸음도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도쿄(東京)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우면, 도시 안은 하룻밤 사이에, 청결한 시내가 될 것입니다.
성급하게 굴면 결국 손해를 본다고 알았다면, 자기보존[自己保存]의 어두운 상념[想念]을 미련없이 떨쳐 버리는 것입니다. 단골손님[단골집]의 접대일지라도, 음주를 피하려고 하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습니다. 창피하다든가, 상식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자기보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응당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자기보존이 마음에 움직이고 있는 동안은, 용기(勇氣)의 심정[心情]은 점점 더 퇴화(退化)되어 갑니다. 퇴화[退化]는 위대한 지혜(智慧)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상념[想念]: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次に努力です。果報は寢て待てという言葉があって、これにはいろいろな見方があるようですが、果報は寢ていてはやってきません。文字を書くペンひとつとってみても、人間の努力と工夫によって作り出されたものです。その努力と工夫が、さらによりよき物を生み出し、生活を豊かにしているのです。 地上を走る自動車、 空を飛ぶ航空機、海を渡る船舶。 いずれも、人間の努力と汗の結晶が、より精巧な、より安定な、より便利なものを生みだしています。 努力は、人間の智識から、偉大な智慧につながる導火線といってもよいでしょう。
다음에 노력입니다. 행운은 누워서 기다려라[《행운은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니 느긋하게 기다리라는 뜻》]라고 하는 말이 있으며, 그것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행운은 누워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문자를 기록하는 만년필 하나를 가지고 보더라도, 인간의 노력과 골똘이 궁리함에 의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노력과 궁리[工夫]가, 보다 더 (다른 것과 비교해서) 한층 더 좋은 물건을 창안[창출]해 내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을 달리는 자동자, 하늘을 나는 항공기, 바다를 건너는 선박. 어느 것이나 다, 인간의 노력과 땀의 결정이, 보다 정교한, 보다 안전한, 보다 편리한 것을 창안[창출]해 내고 있습니다. 노력(努力)은, 인간의 지식[知識]으로부터, 위대한 지혜[智慧]로 이어지는 도화선(導火線)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공부[工夫] : 학문(學問)이나 기술(技術)을 닦는 일. 궁리, 고안, 생각을 짜냄. 머리를 짬. 골똘이 궁리함.
このように正法神理に適った勇氣と努力を積み重ねてゆくならば、人はやがて內在された偉大な智慧をひらき、調和ある每日を送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이와 같이 정법신리[正法神理]에 들어맞는 용기와 노력을 점차 늘려 간다면, 사람은 이윽고 내재된 위대한 지혜[智慧]을 열고, 조화있는 매일을 보낼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勇氣と努力と智慧。 この三者は相互に循環されるもので、三位一體の行爲は波羅蜜多の偉大な大智識,智慧の寶庫をひらくカギであることを知って欲しいものです。
용기[勇氣]와 노력[努力]과 지혜[智慧]. 이 삼자는 상호 순환[循環]되는 것이며,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행위는 파라밀라[波羅蜜多]의 위대한 큰 지식[大智識],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를 여는 열쇠인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他力の誤り◀
타력의 잘못
佛敎もキリスト敎も、その他の宗敎も、そのほとんとが他力信仰です。他力信仰は今や全世界をおおっています。 二千五百有余年前の釋迦は今日のこの事態を豫言し、正法は末法と化しているというのは、物質に翻弄された人類の姿はもとより、信仰の在り方が僞善と化し、眞實が不明になってしまうことを知しっていたからです。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그 외의 종교도, 그 대부분이 타력신앙(他力信仰)입니다. 타력신앙은 지금이나 전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2천 5백 유여년 전의 석가[석가모니]는 오늘의 이 사태를 예언하고, 정법은 말법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물질에 농락당한 인류의 모습은 처음부터, 신앙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가 위선으로 변하고, 진실이 확실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명[不明] ①확실(確實)하지 않음 ②사리(事理) 혹은 도리(道理)에 어두움
佛敎はインドよりチベットを通過し、中國に渡り、我が國に傳わりました。傳敎大師が我が國に天台宗を定着させた頃までは、まだ正法は生きていました。ところがその後、佛敎のなかから念佛行が生まれました。法然による、念佛の他力信仰がそれであります。それまでの佛敎は、はんの一部の貴族階級しか、これをうけ入れる下地がありませんでした。中國渡來の經文を理解するには、書に親しむ者でなければ到低近づき得なかったからです。當時の時代的背景を考えると、無學文盲の民衆を救うには、他力の念佛は、人びとの乾いた心に慈雨を與えたことは想像にかたくありません。佛敎を廣める意味では、法然の念佛行は、たしかに意義はあったといえましょう。だがしかし、他力では人間を救うことは當時はできないのです。なぜかというと、人間の業はそれほど安直にはできていないからです。
불교(佛敎)는 인도에서 티벳[Tibet]을 통과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일본]에 전해졌습니다.
전교대사(傳敎大師: 최징(사이초(最澄) Saichō (767-822))가 우리나라[일본]에 천태종을 정착시켰을 무렴까지는, 여태까지 정법[正法]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불교의 안에서부터 염불행(念佛行)이 태어났습니다. 법연[法然:호우넹 Hōnen (1113-1212)]에 의한, 염불[念佛]의 타력신앙[他力信仰]이 바로 그것입니다. 중국도래(中國渡來)의 경문을 이해하는 데에는, 책을 항상 접하여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다가설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배움이 없어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을 구원하는 데에는, 타력의 염불은, 사람들의 매말라 버린 마음에 단비를 주는 일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불교를 넓은 의미로는, 법연의 염불행은, 확실히 의의는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허나 그렇지만, 타력으로는 인간을 구원하는 일은 당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인가 하면, 인간의 업은 그렇게 간편하게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티벳[Tibet] 〈地〉 티베트. 중국 남서부의 자치구. 《구도(區都)는 라사》
〔참고〕「西蔵(서장)」는 차자.
※ほうねん〔ホフネン〕【法然】[1133~1212]平安時代末期から鎌倉時代初期の日本の浄土宗の僧。美作(みまさか)の人。諱(いみな)は源空。比叡山の黒谷で天台および諸宗を学び、安元元年(1175)称名念仏に専念する立場を確立し浄土宗を開いた。勅諡号(ちょくしごう)は円光大師。謚号は、「彗光菩薩」・「華頂尊者」・「通明国師」・「天下上人無極道心者」・「光照大士」である通称「黒谷上人。吉水上人。
호우넹[ホフネン]【법연】[1133~1212]헤이안시대 말기에서 카마쿠라시대 초기의 일본 정토종의 승려. 미마사카[美作 (지금의 岡山 오카야마현의 동북부. =作州사[쿠슈우]의 출신. 휘[諱 =고인의 생전의 이름. 《생전에는 입에 올리기를 꺼렸음》]는 원공[源空 겡쿠우]. 염불에 전념하는 입장을 확립하고 정토종을 개파함. 사후의 황실에서 내린 이름은 원광대사. 혜광보살, 화광존자. 통명국사. 천하상인무극도심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은 흑곡상인, 길수상인. 출처<일본야후 국어사전> <일본 야후:Wikipedia>
~~ 이름도 많으네요. 죽은 후에 명예를 상징하는 이름이 꽤 많으네요. ~~ 참고만 하세요.
他力の狙いは「信」にあります。念佛行はその信を得るたの媒體でありましょう。信が强まれば行爲もそれにつれて動いてゆくものとみられがちですが、信だけでは人間の業をかえ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人間の心をかえるものは「理解ど行爲」なのです。ウソのいえない調和された己の心にしたがって、その每日の生活の理解を深え、行爲を通して、はじめて、は安心の境涯に至るのです。 したがって理解のない信心、行爲のない信仰というものは、內在する過去世において體驗した神の子としての己の心の叫びを、その惡い業によって覆いかくし、ウソの上塗りを重ねてゆくことになります。人前では善を氣取り、一人になってホットするといる善と惡の二面性をますます身につけてゆきます。日蓮は念佛無間地獄といいました。念佛を唱えながら人を平氣で殺め、戰亂さえしておれば、何をしても救われるという誤った考えがはびこったからです。戰亂の世の衆生を救うために、むずかしい佛敎哲學を理解させることは困難であったため、阿彌陀淨土の存在を、念佛によって敎えざるを得なかったのでしょう。
타력[他力]의 노리는 바[목적]은「믿음」에 있습니다. 염불행[念佛行]은 그 믿음을 얻기 위한 매체이겠지요. 믿음이 강하면 행위도 그것에 따라서 움직여 가는 것이라고 보이기 쉽상입니다만, 믿음만으로는 인간의 업을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이해와 행위」인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조화[調和]된 자기의 마음에 의해서, 그 매일의 생활의 이해[理解]를 깊게 하고, 행위[行爲]를 통해서, 처음으로, 사람은 안심[安心]의 경애[境涯=자기 자신이 처하여 있는 환경이나 생애]에 이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해가 없는 신심[信心], 행위가 없는 신앙[信仰]이라고 하는 것은, 내재하는 과거세에서 체험한 신의 자녀로서의 자기의 마음의 외침을, 그 나쁜 업[業]에 의해서 뒤덮혀 감추고, 거짓말의 마무리[덧칠]를 되풀이해 가게 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선[善]한 채하고, 혼자가 되면 새롭다고 하는 선과 악의 이면성을 더욱더 습득하여 갑니다. 일련[日蓮 니찌렌]은 염불무간지옥[念佛無間地獄]이라고 말했습니다. 염불을 외우면서 사람을 태연하게 죽이고, 전쟁(戰爭)으로 인한 난리(亂離)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이 횡행[만연]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난리의 세상의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어려운 불교철학을 이해시키는 것은 곤란했기 때문에, 아미타정토[阿彌陀淨土]의 존재를, 염불에 의해서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경애[境涯]=자기(自己) 자신(自身)이 처하여 있는 환경(環境)과 생애(生涯). 사람이 처지나 환경
※일련[日蓮 니찌렌] :[1222~1282]鎌倉時代の僧。日蓮宗の開祖 安房(あわ)の人. 12歳で清澄寺に入り天台宗などを学び...建長5年(1253)「南無妙法蓮華経」の題目を唱え、法華経の信仰を説いた.
일련[日蓮 니찌렌][1222~1282]마쿠라시대의 승려. 일련종의개조. 아와[安房]=일본의 옛 지명. 현재의 千葉(치바)현 남부. =房州(보우슈우) 출신. 12세에 청등사에 들어가서 천태종 등을 수학, 겐쵸우5년(1253) 「나무묘법연화경」의 제목을 외움, 법화경의 신앙을 설법함. ...여기까지만 쓸께요.
※횡행[橫行]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함.
※만연[蔓延/蔓衍] 1 식물의 줄기가 널리 뻗음. 사방으로 뻗어져 퍼지다. 2 전염병이나 나쁜 현상이 널리 퍼짐.
他力は、業との妥協です。したがって業の是認に結びついてゆきます。戰場に牧師がついてゆく。他宗をたおすための戰爭が二十世紀の今日でもなお續いている。この事實をみても、人間の業の根深さを知らねばなりません。人間は、他力では決して救わ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神の子の己の心を信じた、そして、その心を生かした每日の生活こそ安心への道であることを知って欲しいと思います。
타력은, 업[業]과의 타협입니다. 따라서 업[業]의 시인[是認]으로 연결[결부]되어 갑니다. 전쟁터에 목사가 따라 간다. 다른 종파를 쓰러뜨리기[죽이기] 위한 전쟁이 21세기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사실을 봐도, 인간의 업[業]의 뿌리 깊음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은, 타력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신[神]의 자녀인 자기의 마음을 믿는,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을 되살린 매일의 생활이야말로 안심[安心]으로의 길인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시인[是認] : 어떤 내용이나 사실이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함.
▶大乘思想◀
대승사상
既成、新興を問わず日本における仏教の信仰形態は大乗を軸として動いているようです。大乗のそれは、仏果は人々と、ともにあるのだから、まず人々を救い、衆生とともに理想に至らしめる、としています。自分が救われたいなら、その前に人々を救え、人々を救うことによって自分も救われるという思想のようです。大乗はいわば菩薩行のそれであるかのようのようです。大乗の思想は、竜樹(ナラルージュナ)によって伝わりました。彼は中インドに生を得、後年、彼は彼の好みにしたがって仏教を取捨選択し、あたかもそれが仏教の本道かのようにまとめました。今から約千九百年ほど前のことです。それまでの仏教は、釈迦滅後、第一次、二次の結集が行なわれ、第二次結集の際は、口伝えの仏法が文字に書き遺(のこ)されたのです。第二次結集はアショカ王時代のことです。竜樹の大乗は、このときの仏伝を彼なりにつくりかえ、それが、今日の大乗経典といわれるもとになりました。
기성, 신흥을 불문하고 일본에 있어서의 불교의 신앙 형태는 대승을 축으로 하여 움직이는 있는 모양입니다. 대승의 그것은, 불과[불도 수행(佛道修行)으로 얻은 과보(果報)]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사람들은 구원하고, 중생과 함께 이상세계에 도달하고저 한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을 받고 싶다면, 그 전에 사람들을 구하여라,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도 구원받는다라고 하는 사상인 모양입니다. 대승은 흔히 말하는 보살행[菩薩行] 바로 그것인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대승의 사상은, 용수(나라르-쥬나)에 의하여 전해졌습니다. 그는 중 인도에서 생명을 얻어, 후년, 그는 자기의 기호[취향]에 따라서 불교를 취사 선택하고, 마치 그것이 불교의 본도[本道=바른길, 정도(正道)]인 것과 같이 결론을 지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900년쯤 전의 일입니다. 거기까지의 불교는, 석가모니 사후, 제1차, 제2차의 결집이 거행되었고, 제2차의 결집 때는, 입에서 입으로 말을 전하는 불법[佛法]이 문자로 적혀 남겨졌던 것입니다. 제2차 결집은 아쇼카 왕조 시대의 일입니다. 용수[龍樹]의 대승은, 그 때의 불전을 그 나름대로 바꿔[고쳐] 만들어, 그것이, 오늘의 대승경전[大乘經典]이라고 말해지는 원전[기원 근본 원조 본류]이 되었습니다.
※りゅうじゅ【竜樹】《(梵)Ngrjunaの訳》 2世紀中ごろから3世紀中ごろのインド大乗仏教中観(ちゅうがん)派の祖。南インドのバラモンの出身。一切因縁和合・一切皆空を唱え、大乗経典の注釈書を多数著して宣揚した。
※용수 류쥬[龍樹]《(梵)Ngrjunaの訳》 2세기 중간 무렵에서 3세기 중간 무렵의 인도의 대승불교 중관파의 시조. 남인도의 바라몬 출신. 일체 인연 화합・일체 개공을 부르칮고, 대승경전의 주역서를 다수 저술하고 선양함.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래 쪽에 나옵니다.
さて、正法は大乗思想が本流でしょうか。仏果は人々の救いのうちにあるのでしょうか。仏国土は人々の調和にあります。人々の調和は、個々の調和の集合によって達成されるも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己自身の調和がなければ、仏国土の実現は画餅(がべい)になってしまうでしょう。人類は個人の集まりです。人類の調和は一人一人がめざめることにあります。一人一人が自己を悟り、心の王国をつくりだすことです。病人を治すには、まず自分自身が健康であり、病気に精通して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心についても、己自身の心の王国が確立され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正法の根本は八正道です。八正道は己の心を中道という調和にひき戻す神の規範です。その規範に、無理がなく、心が自然についていける自分自身になったときに、人は初めて、菩薩の行が整ってくるのです。八正道も知らず、心の調和もなし得ない者に、どうして菩薩行がなし得ましょう。不安と混乱を巻き起こすのみです。現に、その仏教は死文と化し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理屈はあっても、光がありません。救いなぞなおのことです。一部の仏教となっており、衆生の迷いは少しも解消されていません。
그럼, 정법은 대승사상이 본류[本流]일까요? 불도수행으로 얻은 과보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가운데에 있는 것일까요? 불국토는 사람들의 조화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조화는, 개개의 조화의 집합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은 아닐까요? 자기 자신의 조화가 안되면, 불국토의 실현은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인류는 개인의 집합입니다. 인류의 조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을 뜨는 것에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를 깨닫고, 마음의 왕국을 만들기 시작하는 일입니다. 병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자신이 건강하여야 하며, 질병이라는 것에 정통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에 관해서도, 자기 자신의 마음의 왕국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정법의 근본은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는 자기의 마음을 중도[中道]라고 하는 조화[調和]로 끌어당겨 본디의 자리로 되돌리는 신의 규범입니다. 그 규범에, 무리가 없이, 마음이 자연스럽게 되어 되살리는 자기자신이 되었을 때에, 사람은 비로소 보살의 행이 가지런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정도도 모르고, 마음의 조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자에게, 어째서 보살행이 성취될 수가 있단 말인가. 불안과 혼란을 휘감아 일으킬 뿐이다. 현대에, 그 불교는 사문(死文)으로 변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치는 있어도, 빛이 없습니다. 구원이란 것은 더군다나 없는 것입니다. 일부의 불교로 되어 있고, 중생의 미혹은 조금도 해소되고 있지 않습니다.
※본류[本流]: 강이나 내의 원줄기, 주된 계통, 으뜸이 되는 계통(系統).
※불과[佛果] : 불도 수행(佛道修行)으로 얻은 과보(果報).
八正道は小乘であって小さな悟りといわれているが、正法には小乘も大乘もないのです。悟りの根本は己自身です。己自身は小宇宙であり、小宇宙が大宇宙にまでひろがってときに、個と全の統一が自覚され、個のなかに全が含まれていることを知るのです。全のなかに迷える一部があるとすれば、それを救い得るものは個の悟りしかないのです。
팔정도는 소승(小乘)이라 하여 작은 깨달음이라고 말해지고 있지만, 정법에는 소승(小乘)도 대승(大乘)도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근본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은 소우주이고, 소우주가 대우주에 넓어졌(확대)을 때에 개인과 전체의 통일이 자각되며, 개인의 안에 전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전체 속에 헤매는 일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얻어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깨달음 밖에 없는 것입니다.
人の心は偉大なものです。地球よりも重く、大きなものです。その偉大な心を自覚するためには、神の規範である八正道を行じるしかありません。
사람의 마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지구보다도 무겁고, 큰 것입니다. 그 위대한 마음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신의 규범인 팔정도를 실천할 수밖에 없습니다.
大乗思想に迷わされてはなません。
대승사상(大乘思想)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足るを知る◁
만족함을 알다
人類が自己保存と慾望の渦の中で右顧左眄するかぎり、不安と混迷の社會生活は永遠に解消しないでしょう。 欲望にはこれでよいとする限界がないからです。 人間の心が宇宙の廣さを持つように欲望も、實はその限度を知らないのです。
인류가 자기보존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위의 상황에만 신경을 쓰고, 결단을 주저하는 한, 불안과 혼미의 사회생활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욕망에는 이것으로 좋다고 하는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우주의 넓이를 갖는 것처럼, 욕망도, 사실은 그 한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不安と混迷の世界から解放されるには、人はとうすればよいか、どう生きたらいいのでしょうか。それには「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を送ることです。人間はいくら力んでも、頑張っても、百歲まで生きることはむずかしいものです。この世の物を全部一人占めしても、あの世に持ち去ることはできません。生まれたときが裸なら、死ぬとときも裸です。そうだとすれば、生きてゆくのに必要なものさえあれば充分ではないでしょうか。
불안과 혼미[混迷]의 세계에서 해방되는 데에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살면 좋은 것일까요. 그것에는 우선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을 보내는 일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기를 쓰고, 끝까지 견디며 노력해도, 100세까지 사는 일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물건을 전부 한 사람이 차지해도, 저 세상에 갖고 갈 수는 없습니다. 태어났을 때가 알몸이라면, 죽을 때도 알몸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足ること」というと、いかにも、 古い、といわれるかも知れません。洋の東西を問わず、かっての小市民の生活は、いわばその分を守らざるを得ないような形で我慢を强いられ、權力におもねなければ生きてはいけませんでした。戰後の我が國は, いわばこうした抑壓された生活の反動として、外國にもみられぬ自由國?が生まれましたが、不安と混迷は、戰前よりも激しいといめましょう。積極的意味での「足ること」を知らないがために、こうした結果が生じたといってもいいのです。
「만족」이라고 하면, 정말로, 고루하다, 라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옛날의 소시민의 생활은, 말하자면 그 분수를 지키지 않을 수가 없는 형태로 참음[견딤, 인내]를 강요당하고, 권력에 아첨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 후의 우리나라[일본]는, 말하자면 이러한 억압[抑壓]된 생활의 반동으로 인해, 외국에서도 볼 수 없는 자유국?이 탄생했습니다만, 불안과 혼미[混迷=혼란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음]는, 전쟁 전보다도 격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극적 의미에서의 「만족함」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생겨났다고 말해도 좋은 것입니다.
※혼미[混迷]=사리에 어두워 분별을 잃음. 2 의식이 몽롱하여 정신 활동이 정지됨. 3. 혼란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음.
私のいう「足ること」とは、正道を知った生活なのです。人生の目的と使命を悟り、中道という大自然の法にそった生活を指しているのです。
제가 말하는「만족」이란, 정도[正道]를 아는 생활인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깨닫고, 중도[中道]라고 하는 대자연의 법에 따른 생활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勞社の對立は、その雙方が「足ること」を知らないために起こる現象です。一方はできるだけ安く、一方は物價騰貴を理由に賃上げを要求します。ことために爭議は年中行事化し、物價をますますひき上げる要因をつくっています。會社という組識は人體と同じであり、人體の健康管理は、運動、休息、無理のない生活にあります。經營者は、利益が上がれば待遇を改善し、社員はそれに報いるためにいっそう努力する。感謝と報恩、そして努力と勇氣は、やがては新たな知惠を生み出し、會社をより安定しと導いてくれましょう。産業の榮枯盛衰は、時代の流れでいたしかだありませんが、勞事雙方が「足ること」を知った協調協力の實の上がっている會社は、轉業も容易に行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노사의 대립은, 그 쌍방이「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한쪽은 가능한 한 값이 싸게, 한쪽은 물가등귀[物價騰貴 = 물가가 오르는 것]를 이유로 임금 인상을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쟁의는 연중 행사화되고, 물가를 점점 더 끌어올리는 요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회사라고 하는 조직[組識]은 인체와 똑같고, 인체의 건강관리는, 운동, 휴식, 그리고 무리가 없는 생활에 있습니다. 경영자는, 이익이 오르면 대우를 개선하고, 사원은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한다. 감사와 보은(報恩), 그리고 노력과 용기는, 얼마 안 있어서는 새로운 지혜를 창출해 내고, 회사를 보다 안정되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산업의 영고성쇠는, 시대의 흐름으로 하는 수 없습니다만,[시대의 흐름으로 부득이합니다만], 노사쌍방이 「만족」을 아는 협조협력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사회는, 전업[轉業]도 용이하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このように「足ろこと」とは、我慢ではありません。抑壓された生活でもありません。伸び伸びとして、人間らしい安心した生活を營むためのものなのです。人類の意識がこうした生活を通して向上され、不安のない生活を送られてくるようになると、人類はさらに高次元の意識社會の在り方をめざして進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이와 같이 「만족」이란, 참음[견딤, 인내]이 아닙니다. 억압된 생활도 아닙니다.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운 상태로서, 인간다운 안심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것인 것입니다. 인류의 의식이 이러한 생활을 통해서 향상되어, 불안이 없는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면, 인류는 더욱더 고차원의 의식사회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를 목표로 해서 전진할 수 가 있게 될 것입니다.
▷ 神 と佛 ◁
신과 부처
神とは大宇宙を支配する大意識のことです。森羅萬象ことごとく、この大意識を離れては存在しません。 太陽も、地球も、人間も、素粒子も、すべてこの大意識の經綸のなかで生かされ、生きています。佛とはそれでは何を意味するかといえば、神の大意識と不離一體の境涯となった悟った人間をいうのです。したかって不離一體という意味において、大悟の心境は神といえるかも知れません。モ―ゼやイエスは、さまざまな奇跡をおこし、人びとを救い、導きました。しかしながら肉體を持った人間は、假に大悟を得たとしても,神にな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なぜかというと、物質界には物質界の法則があって、その法則の枠を越えることはないからです。
신이란 대우주를 지배하는 대의식인 것입니다. 삼라만상 모조리, 이 대의식을 벗어나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양도, 지구도, 인간도, 소립자도, 전부 이 대의식의 경륜 속에서 소생되고[되살려지고], 생존하고 있습니다. 부처란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냐고 하면, 신의 대의식과 불이일체[不離一體]의 경애[境涯=사람의 처지나 환경]가 된 깨달은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이일체라고 하는 의미에 있어서, 큰 깨달음의 마음의 상태는 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세[(Moses) 고대 이스라엘의 지도자·선지자]나 예수[Jesus]는, 다양한 기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구원하고, 이끌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육체를 지닌 인간은, 가령(假令)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고 하면, 물질계에는 물질계의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의 틀을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경애[境涯]= 자기(自己) 자신(自身)이 처하여 있는 환경(環境)과 생애(生涯). 사람이 처하여 있는 환경이나 처지.
※심경[心境]=마음의 상태
※모세[Moses]=기원전 13세기경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민족의 지도자. 예언자. 선지자. 시나이 산에서 십계를 비롯한 신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전통을 확립하였다. 출처 : 국어사전.
※예수[Jesus]= 기독교의 창시자(?B.C.4~?A.D.30).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30세쯤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복음을 전파하다가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의 예언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고 40일 후 승천하였다고 한다. 출처:국어사전.
その枠とは意識の枠です。物質界は人間の意識を含めて、10%の意識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ます。波動の荒い世界です。100%の意識のうち、10%の意識しか働いていません。そのために、四次元以降多次元の世界は、見ることものぞくことも普通はできません。そうした環境のなかで萬物は修行するのです。人間はその心境に應して靈道がひらかれ、10%の意識の枠を、20%なり30%に發展させることもできます。如來の悟りを得ますと、その求めに應して、なんても認識すろことができますが、二十四時間、そうしているわけにはゆきません。それはこちらにはこちらの生活があるし、四六時中、靈道を働かし續けるわけにはゆかないからです。したがって大悟し、神の意識に同通したといっても、萬物を生かし續ける神そのものになることは、肉體があるかぎり、できない相談なのです。佛という名稱はこうした意味で使われているわけです。
그 틀이란 의식의 틀입니다. 물질계는 인간의 의식을 포함해서, 100%의 의식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습니다. 파동의 거친 세계입니다. 100%의 의식 속에, 100%의 의식밖에 작용[활동,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4차원 이후 다차원의 세계는, 보는 것도 엿보는 것도 보통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만물은 수행[修行]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마음의 상태에 응해서 영도[靈道]가 열리고, 10%의 의식의 틀을, 10%내지 30%로 발전시키는 일도 가능합니다. 여래[부처]의 깨달음을 얻으면, 그 요구에 응해서, 무엇이든지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만, 24시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곳에는 이곳의 생활이 있고, 하루종일, 영도를 계속해서 작동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크게 깨닫고, 신의 의식에 함께 통했다고 해도, 만물을 계속 소생시키는 신 그 자체가 되는 일은, 육체가 있는 한, 불가능한 상담인 것입니다. 부처라고 하는 명칭은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까닭입니다.
巷間、いたるところで神人が輩出し、我こそはといって、多く信者をかかえていますが、そん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靈視や靈聽ができ、奇跡をおこしたとしても神ではありません。靈視、靈聽にも段階があります。神理についても同じです。巷間の神人?が說いているその內容が、文證、理證として通用するかどうか、それも問題です。大事なことは文證,理證が裏付けられ、現證があり、さらには敎祖と稱する人の生活行爲がどうであるかです。
항간에, 도처에서 신인[神人]배출되고, "나야말로는" 이라고 말하며, 많은 신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영시나 영청이 가능하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도 신이 아닙니다. 영시, 영청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신리에 대해서도 똑같습니다. 항간의 신인[神人]이 설명하고 있는 그 내용이, 문증, 이증으로써 통용하는지 어떤지, 그것도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증, 이증이 뒷받침되고, 현증이 있고, 나아가서는 교주[敎祖]라고 칭하는 사람의 생활행위가 어떠한가 입니다.
※문증(文證) - 문서, 기록 등의 증거. 문헌상(文獻上)의 증거. ☞석가모니 부처님.
※이증(理證) - 도리나 이치에 모순이 있는가 없는가. 이론적인 증명 ☞ 모세
※현증(現證) - 현실상의 증거. ☞ 예수 그리스도
※세가지의 증명의 내용을, 다카하시신지님 책에서 본 적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교조[敎祖] = 어떤 종교(宗敎)를 처음으로 세운 사람.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교주.
正法は神や聖人をつくるためにあるのではありません。悟るためにあるのです。悟りとは、己の過失なり欠点を修正し、二度と同じことを繰くり返さない想念と行爲を意味します。その悟りの積重ねが、やがて大悟につながり、一切の執着から離れ、煩惱にふりまわれぬ心境に到達できるのです。一つ一つの悟りが、己の調和を確立してゆき、地上の大調和に欠くことのできない核となってゆくのです。
정법은 신이나 성인을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목적에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자기의 과실같은 결점을 수정하고, 두번 다시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지 않는 상념과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 깨달음을 점차 늘려 가는 것이, 이윽고 대오[大悟=큰 깨달음]로 이어지고,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번뇌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한 가지의 깨달음이, 자기의 조화를 확립해 가고, 지상의 조화에 소홀히 할 수 없는 핵심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神、佛とは以上のように意味を持ち、正法の目的は、佛への絶ゆまぬ精進にあるといえるのです。
신, 부처란 이상과 같은 의미를 갖고, 정법의 목적은, 부처로의 끊임없는 전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오[大悟] ☞ ①똑똑히 이해(理解)함 ②크게 깨달음 ③번뇌(煩惱)를 벗고 진리(眞理)를 깨달음 ④크게 통(通)하여 대아(大我)를 깨달음
▷參 禪◁
참 선
參禪によって人は悟れると思われていますが、實際はそれによって悟れる人は絶無です。
참선에 의해서 사람은 깨달을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것에 의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절무(絶無) 합니다(조금도 없습니다).
※절무[絶無]=전무,조금도 없음.
釋迦の悟りは、參禪によって得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參禪を放棄し、反省することによって、悟ったのです。己の想念、行爲を、中道という大自然の尺度にあわせていったから、悟らたのです。釋迦の六年の參禪は、峻烈な肉體行と、雜念を拂い,心を空っぽにする修行でした。ところが、心を空っぽにすると、危險この上もなく、魔に犯されることが多いのです。幸いに釋迦はそうはなりませんでした。また、空っぽになっても、生活に入ると、すぐ雜念にとらわれてきます。釋迦でも、參禪によって悟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のです。參禪は正法から離れているからです。
석가의 깨달음은, 참선에 의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참선을 포기[抛棄]하고, 반성하는 것에 의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의 상념, 행위를 중도[中道]라고 하는 대자연의 척도[尺度]에 맞추어 갔기 때문에, 깨달은 것이다. 석가의 6년 참선은, 매우 준엄하고 격렬(激烈)한 육체수행과,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텅 비우는 수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텅 비우면,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며, 악마(魔)에게 침범당하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다행히 석가는 그렇게는 되지 않았습니다. 또 텅 비우게 되어도, 생활에 들어가면, 곧 잡념에 사로잡혀 옵니다. 석가일지라도, 참선에 의해서 깨달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참선은 정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參禪の風習は古いものです。バラモンがそうだし、ヨガも、これを重視しました。
참선의 풍습은 오랜 것입니다. 바라문[婆羅門]이 그러하고, 요가[범 yoga 瑜伽]도 이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산스크리트로 Yoga는'어울림', '결합'이라는 뜻)인도의 정통 철학 체계(darshan)인 6파 철학(六派哲學)의 하나. 수론파(數論派)의 사상을 배경으로 성립하였으며 《유가경(瑜伽經)》을 성전(聖典)으로 삼았다. 명상에 의하여 초자연적인 힘을 얻는 일, 곧 자재(自在)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역사적으로는 불교와 관계가 깊다.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하여 오는 심신 단련법의 하나.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는 훈련과 명상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을 개발하고 물질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늘날에는 건강 증진, 미용 따위를 목적으로 한다.
※요가 (산스크리트어: योग)는 인도의 정신 수련 방법의 하나다. 힌두교에서는 "요가란 실천 생활 철학에 철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가는 또한 인도의 종교의 믿음과 수행과도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 요가라는 말은 기원전 600년경 《타이티리아-우파니샤드》에서 처음 쓰였으며, 약 5000년 전의 유물로 보이는 시바 신상에서 요가의 자세를 볼 수 있다.
釋迦の第子に普賢(フゲン)というのがいました。その普賢は今では、普賢三昧ともいわれ、いわれる、行者の代表のようにみられています。參禪に重きを置き、戒をつくりました。釋迦滅後、第一次集の際には、彼はこれに參加せず、我流をもって、これこそ佛陀の本流であるとして、人びとを迷わせました。
석가의 제자에 보현(普賢)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보현은 지금으로는, 보현삼매(普賢三昧)라고 불리우고, 불리우는, 불도를 닦는 사람(行者:행자)의 대표처럼 보여지고 있습니다. 참선에 중점을 두고, 계율[戒律]을 만들었습니다. 석가 사망 후, 제1차 모임 당시에는, 그는 여기에 참가하지 않고, 아류[我流=자기류]를 가지고, 이것이야말로 불타(佛陀)의 본류(本流)(불타(佛陀)의 으뜸이 되는 계통[系統]) 라고 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습니다.
禪宗の由來は、ヨガ、バラモンが主流をなしているようですが、普賢の思想も混入されています。五世紀の頃、インドの僧であった達磨(ダルマ)が佛敎やバラモンを學び、これらを基礎として、ひらいたものです。彼はインドから中國に渡ってのち、面壁(めんべき)九年の行を積んでいます。彼自身は菩薩界の人ですが、その求道と意志の强さは拔群でした。その求道の心が光明を呼んだのですが、彼はそれを座禪によって得たものと思い込んだのです。禪宗はこうしてはじまったものです。こうした例は、眞言密敎についてもいえます。眞言密敎も、その基礎はヨガ、バラモンです。正法から逸脫したものです。しかし、弘法大師は菩薩です。晩年、靈的な諸現象が現われ、このため眞言密敎を佛敎の正統のものと誤認してしまうのですが、そうした靈的現象は、大師それ自身の、衆生濟度の、內在意識がそうさせたもので、密敎そのものから生まれたものではなかったのです。
선종[禪宗]의 유래는, 요가(범 yoga 瑜伽), 바라문(Brāhmana 婆羅門)이 중심이 되는 유파[流派]를 이루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보현(普賢)의 사상도 혼입되어 있습니다. 5세기경. 인도(印度=India)의 승려였던 달마((達磨:Dharma:다르마)가 불교나 바라문(Brāhmana 婆羅門)을 배우고, 이것을 기초로 해서,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후, 면벽 9년의 수행을 쌓고 있습니다. 그 자신은 보살계[菩薩界]의 인물입니다만, 그 구도(求道=바른 도리(진리)를 구함)와 의지의 강인함은 발군[拔群]이었습니다. 그 구도(求道)의 마음이 광명(光明)을 부른 것입니다만, 그는 그것을 좌선[座禪]에 의해서 얻은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선종(禪宗)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진언밀교[眞言密敎]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진언밀교(眞言密敎)도, 그 기초는 요가[범 yoga 瑜伽], 바라문[Brāhmana 婆羅門]입니다. 정법으로부터 일탈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홍법대사((弘法大師: 쿠우카이(空海) Kūkai (774-835))는 보살[菩薩]입니다. 만년(晩年)에, 영적인 여러 현상이 나타나고, 이 때문에 진언밀교를 불교의 정통 자체라고 오인(誤認)해버리는 것입니다만, 그러한 영적현상은, 대사(大師) 그 자신(自身)의, 중생제도(衆生濟度)의, 내재의식(內在意識)이 그렇게 한 것이며, 밀교(密敎) 그 자체로부터 탄생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선종[禪宗] : 내적 관찰과 자기 성찰에 의하여 자기 심성의 본원을 참구(參究)할 것을 주창한 불교 종파. 교종(敎宗)에 대립하는 명칭이며 선불교라고도 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내세우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한다. 선종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참구하여 본래 지니고 있는 성품이 부처의 성품임을 깨달을 때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처의 마음을 중생의 마음에 전하므로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하며, 수행법으로 주로 좌선을 택한다.
참선으로 자신의 본성을 구명하여 깨달음의 묘경(妙境)을 터득하고, 부처의 깨달음을 교설(敎說) 외에 이심전심으로 중생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파. 중국 양나라 때 달마 대사가 중국에 전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중엽에 전해져 구산문이 성립되었다.
※보살계[菩薩界]= 신지님 말씀에 의하면, 천상계의 차원 구조에서 7차원의 세계를 가리킴.
☞9차원 우주계, 8차원 여래계, 7차원 보살계, 6차원 신계, 5차원 영계, 4차원 유계가 있고요, 7차원 상단계는 특히 「범천계」, 8차원의 별도의 호칭은「금강계」, 8차원 상단계는 이것을 「태양계」라고 하고, 「태양계」에 대해서는 넓은 의미로 9차원을 포함하여 불려지는 경우도 있다.(단,9차원은, 통상,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장소인「우주계」라고 호칭한다.)
그 외 신선계(생전에 자신을 위해서 도만 닦다 자신만을 위해 깨달아 간 세상이며, 그 세계에서도 지구에서 살 때 처럼, 도만 닦는 분들의 세상) 그리고 천구계(이곳은 상상속의 괴물의 세상) 가 있습니다.
신선계와 천구계는 차원 밖의 차원의 세상입니다..
^^ 제가 올린 천상계의 여러세상편과 천구계 선인계(5차원, 6차원의 안쪽)편을 참조 하세요.
※진언밀교[眞言密敎] : ①해석(解釋)하거나 설명(說明)할 수 없는 경전, 주문, 진언 따위를 이르는 말
②7세기 후반 인도에서 성립한 대승 불교(佛敎)의 한 파. <佛> 대일여래. 진언밀교(眞言密敎)의 본존(本尊) =편조여래(遍照如来)·편조존(遍照尊)
我が國に禪宗が到來し、多くの傑物を出しているようですが、達磨を越えるような人は、一人も出ていません。參禪だけでは、悟う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正法の悟りは、生活を通して、中道の心を體驗として、學んでいくところにあるからです。山陰に身をかくし、俗界を離れれば、誰でも、雜念からは遠離できましょう。しかし溫室花は野外に出せば、ただちにしぼんせしまうように、山陰での修行は、修行の一つではありますが、俗界にあっても、それに染まらぬ心の調和が維持できなければ、悟ったとはいえ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
우리나라[일본]에 선종(禪宗)이 도래하고, 많은 걸물(傑物:뛰어난 사람)을 내놓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달마(達磨:Dharma:다르마)를 초월하는 인물은, 한 사람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참선(參禪)만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법의 깨달음은, 생활을 통해서, 중도[中道]의 마음을 체험으로 해서, 배워가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산그늘에 몸을 숨기고, 속계(俗界)를 벗어나면, 누구든지, 잡념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온실에서 핀 꽃(溫室花:온실화)은 야외(野外)에 내놓으면, 곧 시들어 버리는 것처럼, 산그늘에서의 수행은, 수행의 하나입니다만, 속계(俗界)에 있어도, 그것에 물들지 않는 마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없다면, 깨달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까?
▷謙 虛◁
겸 허
人は、ややもすると自分を過大評價しがちです。それも自分がなんで在り、何をなすべきかを悟っているならまだしも、地位、名譽、知識が人より優れているという理由から、そのような偏見が生まれるとすれば、その人はなかなか悟ることは出來ないでしょう。
사람은 자칫하면 자신을 과대평가過大評價하기 쉽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왜 존재하고,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를 깨닫고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지위(地位), 명예(名譽), 지식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이유(理由)에서, 그와 같은 편견(偏見)이 생겨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좀처럼 깨달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人の一生は、普通五十年、長くて百年です。本當の一生は、そんなに短か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何億、何十億年の年輪を重ね、現在、ここに在るのです。何億、何十億年の過去世は、潛在意識の中に沈み、容易に外には出てきません。
사람의 일생(一生)은, 보통 50년, 길면 100년입니다. 진정한 일생은, 그렇게 짧은 것은 아닙니다. 몇억 몇십억 년의 연륜(年輪)을 거듭해서, 현재(現在),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몇억, 몇십억 년의 과거세(過去世)는, 잠재의식(潛在意識) 속에 가라앉아, 용이(容易)하게 밖으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人はこうした過去世をもって、ここに生きているのですが、そうした長い年輪と、その短かい現象界の一生とは、比べものにならないひらきがあるのです。その短かい一生の過程のなかで得た知識、地位、名譽におぼれるとすれば、これほど淺薄にして、自己を僞るものはありません。今世の一生を点とすれば、過去世の生涯は線に相當します。善と点を比較してみて欲しいです。 ······とすれば今世で得た知識、名譽というものが、いかに賴りないものであり、夢のようなものであるかということを知るでしょう。
사람은 이러한 과거세(過去世)를 가지고, 여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만, 그러한 긴 연륜(年輪)과, 그 짧은 현상계(現象界)의 일생(一生)이란, 비교할 만한 것이 못되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짧은 일생의 과정(過程) 속에서 얻은 지식(知識), 지위(地位), 명예(名譽)에 빠진다고 하면, 이것만큼 천박(淺薄)하고, 자기를 기만(欺瞞)하는 것은 없습니다. 현세(今世)의 일생을 점[点]이라고 하면, 과거세(過去世)의 생애(生涯)는 선[線]에 해당(相當)합니다. 선[線]과 점[点]을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라고 하면, 현세(現世)에서 얻은 지식(知識), 명예(名譽)라고 하는 것이, 틀림없이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꿈과 같은 것일 거라고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正法の智慧は、線のなかに內在されています。その智慧は現象界の知が呼び水となることはあっても、識識そのものから生まれ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点のその一生を、謙虛に、率直に、正直にもとづいた想念と行爲を重めていくうちに、なかば、忽然(こつぜん)と現われてくるものです。
정법(正法)의 지혜[智慧]는 선[線] 속에 내재(內在)되어 있습니다. 그 지혜[智慧]는 현상계(現象界)의 지식(知識)이 실마리가 되는 일은 있어도, 지식(知識) 그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점[点]의 그 일생(一生)을, 겸허(謙虛)하게, 솔직하(率直)게, 정직(正直)에 바탕을 둔 상념[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행위(行爲)를 거듭해 가는 가운데에, 절반은, 홀연(忽然)히 현상(現象)으로 드러나오는 것입니다.
自己を過大に評價し、知識におぼれ、地位に固執した生活を習慣にしてしまっていると、こうした內在された智慧をひもとくカギを、自ら閉ざしていることになるのです。さらにもっと具體的に、率直にいうならば、人の過去世は十人が十人、正道を學び、自分の血肉になっているかというと、必ずしもそうではないのです。正道を學ばないのに、それにもとづく智慧も出しこないのも道理ではありませんか。
자기(自己)를 과대(過大)하게 평가(評價)하고, 지식(知識)에 빠져, 지위(地位)에 고집(固執)한 생활(生活)을 습관(習慣)으로 해 버리고 있으면, 이러한 내재(內在)된 지혜(智慧)를 풀어내는 열쇠를, 스스로 닫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더 구체적(具體的)으로, 솔직(率直)히 말하면, 사람의 과거세(過去世)는 열명(十人)이면 열명(十人), 정도(正道)를 배우고, 자신의 혈육(血肉)이 되고 있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정도(正道)를 배우지 않았는데, 그것에 바탕을 두는 지혜(智慧)도 나오지 않은 것도 도리(道理)가 아니겠습니까?
※정도[正道] : 올바른 도리[道理]
過去世に緣があり、今世もその緣につながったことは、何よりも大事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しかし過去がわからず、實在界も知識の範圍しか知り得ないとすれば、まず現在の自分自身を、正直に、率直に見なおすことが何よりも大切です。 自分の心に、,誰もウソはいえないはずだし、そのウソのいえない自分に立ちかえり、日常生活についでも、謙虛になることが、悟りを早める導因となります。
과거세(過去世)에 인연(緣)이 있고, 현세(今世)도 그 인연(緣)으로 이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大事)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만, 그렇지만 과거(過去)를 모르고, 실재계(實在界)도 지식(知識)의 범위(範圍)밖에 알 수 없다고 하면, 우선 현재(現在)의 자기 자신(自分自身)을, 정직(正直)하게, 솔직(率直)하게 다시 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大切)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어떤 사람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신(自身)으로 되돌아가서, 일상생활(日常生活)에 대해서도, 겸허(謙虛)해지는 일이, 깨달음을 앞당기는 원인(導因:도인)이 됩니다.
※도인[導因] : ある事態を導き出した原因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낸 원인.
己を知るには、まず何はさておき、謙虛な心から始まり、謙虛な心を持ち續けることです。そうしてその謙虛な心の培養は、今を置いて、永遠に,そのチャンスは訪れてこないということも知ってもらいたいものです。
자기(己)를 아는 데에는, 우선 다른 일은 다 제쳐 놓고, 겸허한(謙虛) 마음에서 시작(始作)해서, 겸허(謙虛)한 마음을 지속(持續)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겸허(謙虛)한 마음의 배양(培養)은,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永遠)히, 그 찬스(chance:機會: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알아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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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を置いて 지금을 두고 혹은 지금 거르면,라고 하면, 문맥상 이상해서, 지금 하지 않으면, 이라고 해석했습니다.
▷布 施◁
보 시
布施というと、いかにも抹香臭いひびきを與えますが、布施の意義は、感謝の心を報恩として形に表わしてゆくことです。このため、物を獻ずる、金を上げることもその一つですが、人にはそれぞれ得手、不得手がありましょうし、自分のもっともしやすい方法で人びとに奉仕することが、立派な布施になるのです。
보시(布施)라고 하면, 자못 불교적(佛敎的)인 냄새가 풍기는 여운(餘韻)울 줍니다만, 보시(布施)의 의의(意義)는, 감사(感謝)의 마음을 보은(報恩)으로 해서 형태(形)로 나타내어 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물건을 바치고, 돈을 드리는 것도 그 한가지입니다만, 사람에게는 저마다 가장 잘하는 일, 서투름이 있을 것이고, 자신의 가장 하기 쉬운 방법(方法)으로 사람들에게 봉사(奉仕)하는 일이, 훌륭한 보시(布施)가 되는 것입니다.
正法から布施を拔いたら正法でなくなります。なぜかというと、布施は、正法を信じ、神理を行ずる者の證してあるからです。
정법(正法)에서 보시(布施)를 빼면 정법(正法)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보시(布施)는, 정법(正法)을 믿고, 신리(神理)를 실천(實踐)하는 자(者)의 증거(證)이기 때문입니다.
正法に三つの柱があります。その一つは大宇宙を支配する大意識であり、その二は轉生輪廻であり、三番目は慈悲と愛の心です。布施の行爲は慈悲の現われなのです。
정법(正法)에 3가지의 기둥(柱)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대우주(大宇宙)를 지배(支配)하는 대의식(大意識)이며, 그 두번째는 전생윤회(轉生輪廻)이며, 세번째는 자비(慈悲)와 사랑(愛)의 마음입니다. 보시(布施)의 행위(行爲)는 자비(慈悲)의 발로(發露:표현)인 것입니다.
慈悲は神の心から生まれます。それはちょうど、萬生萬物に熱と光を惜しみなく與え、生きとし生ける者に、エネルギ―を供給し續けている太陽の姿です。正法を行ずる者は、當然このような立場に立って、人びとに接して行くもの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正法を信じながら行爲として布施ができないようでは、その人はまだ本當に正法というものを理解してい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ょう。
자비(慈悲)는 신(神)의 마음에서 탄생(誕生)합니다. 그것은 마치, 만생만물(萬生萬物)에게 열(熱)과 빛(光)을 아낌없이 주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에너지를 계속 공급(供給)하고 있는 태양(太陽)의 모습(姿)입니다. 정법(正法)을 실천(實踐)하는 자(者)는, 당연(當然)히 이러한 입장(立場)에 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법(正法)을 믿으면서 행위(行爲)로서 보시(布施)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 진정(本當)으로 정법(正法)이라는 것을 이해(理解)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私たちは、現實に生かされていす。これを否定する者は何人(なにびと)もいないはずです。米一つ作るにも、自然の環境、自然の惠みと、人びとの協力があってはじめて可能なのです。洋服にしろ、,靴にしろ、そのほか諸諸の生活用品は、すべて自然の條件と人びとの協力の賜です。こうした現實を見るならば、感謝の心が芽生えてくるのは當然なことです。今日の我が國は、物質の洪水といってもよいほど物が豊富に出回っています。金さえ出でば何でも手にはいります。そのため、ややもすれば、物や人びとの陰の協力に對する感謝の心が失われ、なんとはなしに過ごしてしまいます。
우리들은, 현실(現實)에 소생(蘇生)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否定)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쌀 한알을 만드는 데에도, 자연(自然)의 환경(環境), 자연(自然)의 은혜(惠)와, 사람들의 협력(協力)이 있고 비로소 가능(可能)한 것입니다. 양복(洋服)이라 하더라도, 구두(靴)라고 하더라도, 그 밖의 여러 가지 많은 생활용품(生活用品)은, 전부 자연(自然)의 조건(條件)과 사람들의 협력(協力)의 덕분(賜:덕택)입니다. 이러한 현실(現實)을 보면, 감사(感謝)의 마음이 싹트는 것은 당연(當然)한 일입니다. 오늘의 우리나라[일본]는 물질(物質)의 홍수(洪水)라고 해도 좋을 정도(程度)로 물건(物)이 풍부(豊富)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돈만 내면 무엇이든 손에 넣습니다. 그 때문에, 자칫하면, 물건(物)이나 사람들의 음지(陰)에서의 협력(協力)에 대한 감사(感謝)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왠지 모르게 지나쳐 버리고 맙니다.
人間は自分を過信したり、感謝の心が失われてくると、動物以下になりさがってしまいます。どんなにうまいことを百萬言しゃべっても、行爲のない人が行くべきあの世の姿というものは,想像以上の苦界であることを知るべきです。多くの場合、その事實を知る手がかりがつかめないために、人は逃避的になったり、世をうらんだり、憎んたりしてしまいます。よくよく心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인간(人間)은 자신(自身)을 과신(過信)하거나, 감사(感謝)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동물 이하(動物以下)로 전락(轉落)해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달콤한 것을 백만번(百萬番) 말해도, 행위(行爲)가 없는 사람이 응당 그렇게 가야 할 저 세상(世)의 모습(姿)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 이상(想像以上)의 고계(苦界:괴로움의 세계)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境合), 그 사실(事實)을 아는 단서(手)가 잡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도피적(逃避的)이 되거나, 세상(世)을 원망(怨望)하거나, 미워해 버리고 맙니다. 더할 나위 없이 깊이 명심(銘心)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人はまず率直に、今ある生活環境に目を向け、生かされている現實に感謝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사람은 우선 솔직(率直)하게, 지금 있는 생활환경(生活環境)에 눈을 돌려, 소생(蘇生)되어지고 있는 현실(現實)에 감사(感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正法者は、このような現實を率直に認め、感謝の心を報恩として、形に現わして行くものです。慈悲の心は神の心であり、その心は布施となって、無理なく、自然に行えるようになることが大事です。魂の前進、向上は、布施という慈悲の菩薩行を通して、はっきりと約束されましょう。
정법자(正法者)는, 이러한 현실(現實)을 솔직(率直)하게 인정(認)하고, 감사(感謝)의 마음을 보은(報恩)으로 해서, 형태(形)로 나타내어 가는 것입니다. 자비(慈悲)의 마음은 신(神)의 마음이며, 그 마음은 보시(布施)가 되어, 무리(無理)없이, 자연(自然)스럽게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大事)합니다. 영혼(魂)의 전진(前進), 향상(向上)은, 보시(布施)라고 하는 자비(慈悲)의 보살행(菩薩行)을 통해서, 분명(分明)히 약속(約速)될 것입니다.
▷心の三毒◁
마음의 세가지 독
人の精神、肉體をもっとも不安定にする想念は、愚痴、怒り、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の三つといえましょう。いずれも自己保存に深く根ざしているからです。愚痴は神の子を否定し、人間疎外感と孤獨を生み、怒りは破壞を意味し、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は、自己を失わせる最たるものといえましょう。こうした想念を靈視すると、その周圍は、黑、赤、灰色の妖氣がただよい、魔王、地獄靈、動物靈が必ずといってよいほど姿を見せています。いうなれば、あの世の最底の惡靈に、身も心も蹂躪(じゆうりん)されていることを意味するのです。
사람의 정신(精神), 육체(肉體)를 가장 불안정(不安定)하게 하는 상념(想念)은, 푸념(어리석음), 노여움(성냄), 만족(足)할 줄 모르는 욕망(欲望), 의 세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나 다 자기보존(自己保存)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푸념(愚痴)은 신(神)의 자녀(子)를 부정(否定)하고, 인간 소외감(疎外感)과 고독(孤獨)을 낳고, 노여움(忿)은 파괴(破壞)를 의미(意味)하고, 만족(足)할 줄 모르는 욕망(欲望)은, 자기(自己)를 상실(喪失)케하는 으뜸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념(想念)을 영시(靈視:영시:마음의 눈으로 보면), 그 주위(周圍)는 검은색(黑), 빨간색(赤), 회색(灰色)의 요기(妖氣)가 떠돌아다니고, 마왕(魔王), 지옥령(地獄靈), 동물령(動物靈)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程度)로 모습(姿)을 보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저 세상(저승)의 최저(最低)의 악령(惡靈)에게, 몸도 마음도 유린(蹂躪)되어 있는 것을 의미(意味)하는 것입니다.
※삼독[三毒]: <국어사전> 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 따위를 독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푸념[愚痴 어리석음] : 어리석고 못남. 다른 사전에는,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이다.
반면에, 일본어 사전상에는, 푸념. 이 의미는,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음입니다.
精神と密着した私たちの肉體は、思うことがただちに現象となって現われます。笑いは、血液の循環をよくし、胃や腸の活動を活發にさせます。反對に、怒ったり、悲しんだりすれば、心臟の運動や睡眠をさまたける要素をつく出してゆきます。想念の在り方いかんで、肉體的な諸現象がただちに現われてくることは、誰しも一再(いつさい)ならず、經驗しているところではないでしょうか。
정신(精神)과 밀착(密着)한 우리들의 육체(肉體)는, 정서적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思うこと)이 즉시 현상(現象)이 되어 나타납니다. 웃음(笑)은, 혈액(血液)의 순환(循環)을 좋게 하고, 위(胃)나 장(腸)의 활동(活動)을 활발(活發)하게 해 줍니다. 반대(反對)로, 화(忿)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하면, 심장(心臟)의 운동(運動)이나 수면(睡眠)을 방해(防害)하는 요소(要素)를 만들어 내어 갑니다. 상념(想念:마음에 품은 생각)의 올바른 자세(바람직한 상태)의 여하(如何)에 따라, 육체적(肉體的)인 여러 현상(現象)이 즉시 드러나온다는 것은, 누구든지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나, 경험(經驗)하고 있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一方、怒ったり、悲しんだりして、食欲が減退し、睡眠がとれないとすれば、仕事や人間關係の判斷まで狂ってきましょう。つまり、こうした想念は、心の平衡を失わせ、精神まで不安定にしてゆきます。心が不安定になれば、家庭や職場での協調關係がうまくゆかず、こうした狀況が長びけば、やがては任事も行き結まり、病氣や災難を誘發します。
한편, 화(忿)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해서, 식욕(食欲)이 감퇴(減退)하고, 잠을 자지 못하면, 일(仕事)이나 인간관계(人間關係)의 판단(判斷)까지 어긋나 버릴 것입니다. 결국(結局), 이러한 상념(想念)은, 마음의 평형(平衡)을 잃어버리게 하고, 정신(精神)까지 불안정(不安定)하게 해 갑니다. 마음이 불안정(不安定)하게 되면, 가정(家定)이나 직장(職場)에서의 협조관계(協調關係)가 잘 되지 않고, 이러한 상황(狀況)이 오래 가면, 머지 않아서는 일도 벽에 부딪치고, 질병(病氣)이나 재난(災難)을 유발(誘發)합니다.
こういうように、想念は、その人の心と肉體に敏感に反映してきます。いうなれば、想念は、ものをつくっているのです。
이와 같이, 상념(想念)은, 그 사람의 마음과 육체(肉體)에 민감(敏感)하게 반영(反映)해 옵니다. 말하자면, 상념(想念)은, 만물(萬物)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想念は、もともと精神活動の一つです。しかしその精神活動が中道を失うと、眼や耳や口を通して、肉體中心の業想念に支配されてきます。ウソのつけない心と、神から與えられた正常な肉體まで汚してしまうことになり、目的と使命を擔ってきた今世の自分の運命、天命を狂わせ、新たな諸諸の原因(業因)をつくっていくことになります。今世の原因が、今世で淸算(結果)されればよいのですが、淸算されないときは、あの世に持ち越し、來世で、そのおさらい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つまり、もう一度今世と同じような環境の下で修行し、己の魂をテスト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はっきりいうならば、大底は、原因と結果の堂堂めぐりをしてしまいます。二千年の昔も今も、心の面ではあまり進步がないというのも、こうしたところに原因があります。惡循環からなかなか拔け出せないのです。
상념(想念)은, 원래(元來) 정신활동(精神活動)의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그 정신활동(精神活動)이 중도(中道)를 잃으면, 눈(眼)이나 귀(耳)나 입(口)을 통해서, 육체중심(肉體中心)의 업상념(業想念)에 지배(支配)되어 갑니다.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마음과, 신(神)으로부터 주어진 정상적(正常的)인 육체(肉體)까지 더렵혀 버리게 되어,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을 짊어지고 온 현세(今世)의 자신(自身)의 운명(運命), 천명(天命)을 틀어지게 해서, 새로운 여러 가지 많은 원인(原因)((業因 : 업의 원인))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현세(今世)의 원인(原因)이, 현세(今世)에서 청산(淸算)((결과:結果))되면 좋은 것입니다만, 청산(淸算)되지 않을 때는, 저 세상(저승)으로 이월(移越)하고, 내세(來世)에서, 그 복습(復習)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국(結局), 다시 한번 현세(今世)와 똑같은 환경(環境) 밑(下)에서 수행(修行)하고, 자기(己)의 영혼(魂)을 시험(試驗:test)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확실(確實)히 말하면, 대개(大底)는, 원인(原因)과 결과(結果)가 개미 쳇바퀴 돌듯 진전(進前)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2천년(二千年)의 예나 지금이나, 마음의 면(面)에서는 그다지 진보(進步)가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데에 원인(原因)이 있습니다. 악순환(惡循環)으로부터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惡循環の最たるものは何かといえば、愚痴と、怒りと、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です。この三つ稱して、心の三毒といい、業想念のなかでも、もっとも惡い原因をつくります。よくよく心しなけらばなりません。
악순환(惡循環)의 으뜸가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푸념(愚痴:어리석음)과, 노여움[성냄], 만족(足)할 줄 모르는 욕망(欲望)입니다. 이 세가지를 가리켜, 마음의 세가지의 독(三毒:삼독)이라고 하고, 업상념(業想念)중에서도, 가장 나쁜 원인(原因)을 만듭니다. 더할 나위없이 깊이 명심하(銘心)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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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たるもの . 이 해석은, 제일의 것, 혹은 으뜸가는 것.입니다. 혹은 가장 두드러진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으뜸가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
※덧붙여, 저는, 삼독의 세가지의 번뇌를, 특히 우치는, 어리석을 우와, 어리석을 치, 해서, 어리석음의 뜻입니다.
한자 그대로,
그런데, 일본어 사전상에, 푸념이라고 되어 있어서, 함께 넣었습니다.
여기 삼독은, 불교용어입니다. 문장상으로는, 삼독이기에, 어리석음이 분명할 듯 한데, 푸념 역시 같은 의미가 있기에 두가지를 다 써 넣었습니다.
▷正法と道德 ◁
정법과 도덕
古代社會は、社會生活の規範が、宗敎上の信仰と深く結びついていました。自我の意識が薄く、生活そのものが團體的でありましたから、そうして規範に違反する者は少なかったのです。制度が分化し、個人意識が高まってきますど、經濟生活が複雜となり、,個人間の衝突が起こってきます。そこで、共同生活の秩序を保つために,社會生活の準則、いわゆる道德が生まれました。他人に危害を加えたり、他人のものを奪ったりすることは惡いことだ、という人間としての良心、義務の觀念が、宗敎上の信仰から分化し、發生してきました。今日の法律はこうした道德が基礎となり、社會の調和を目的として確立されてきたといましょう。
고대 사회는, 사회생활의 규범이, 종교상의 신앙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자아의 의식이 얉고, 생활 그 자체가 단체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규범를 위반하는 사람은 적었던 것입니다. 제도가 분화하고, 개인 의식이 높아지면, 경제 생활이 복잡하게 되고, 개인간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생활의 규칙, 즉 도덕이 태어났습니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개인의 물건을 빼앗거나 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 라고 하는 인간으로서의 양심, 의무의 관념이, 종교상의 신앙에서 분화하고, 발생해 왔습니다. 오늘의 법률은 이러한 도덕이, 기초가 되어, 사회의 조화를 목적으로 해서 확립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この意味で法律は人びとの意にもとづいた菩薩心の現われであり、なかば强制を伴なうが、道德は、良心にうら打ちされているといめます。
이 의미에서 법률은 사람들의 의지에 바탕을 둔 보살심[菩薩心]의 발로[發露]이며, 절반은 강제를 동반하지만, 도덕은 양심에 호소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正法と道德は、もともと一つのものか、それとも、ちがいがあるのか、というのか今回のテ―タですが、前述の信仰、道德、法律の沿革をみてきますと、ちがいはどこにもない、といえます。他人のものを奪あたり、危害を加えたりすることは、正法にも反するからです。
정법과 도덕은, 본래 하나인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 이번의 주제입니다만, 앞에서 설명한 신앙, 도덕, 법률의 연역을 보면, 차이는 어디에도 없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물건을 빼앗거나, 위해를 가하거나 하는 일은, 정법에도 반하기 때문입니다.
だがしかし------,道德はもともと人間としての義務感、良心が柱になっています。法律が社會的規制を强いるものなら、道德は、良心による制約です。
그렇지만------, 도덕은 원래 인간으로서의 의무감, 양심이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법률이 사회적 규제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도덕은, 양심에 의한 제약입니다.
ところが正法の極地になってくるとどうなるでしょう。
그런데 정법의 극지방[極地]이 되어 오면 어떻게 될까요.
「汝らの欲すろこと、これを人に施せ」
「너희들의 바라는 것, 이것을 남에게 베풀어라」
「汝らの仇を愛し、自らを責むる者のために祈れ」
「너희들의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몹시 나무라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これは、キリストの言葉です。人によって、その解釋の範圍がちがってくるでしょよう。道德といわれる物差しでは、この意味を理解することはむずかしくなってきます。
이것은, 예수의 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 이해의 범위가 달라져 올 것입니다. 도덕이라고 불리우는 척도[기준]으로는, 이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게 되어 옵니다.
イエスも釋迦も、自他の觀念で,慈悲や愛を說いたのではありません。自分の中に大宇宙を發見していたのです。育體の自分と、もう一人の自分を知っていました。もう一人の自分は全なる自分です。他人と自分の區別はそこにはありません。人を憎むことは、天に向ってsibaすろのと同じことになるのです。他人はいないのです。全部自分です。しかし、現われの世界では、他人と自分は別別に存在します。だから、その表現は、相對的ないいまわしになってきます。
예수도 석가도, 자타의 관념에서, 자비나 사랑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에 대우주를 발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육체의 자신과, 또 한 사람의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자신은 온전한 자신입니다. 타인과 자신의 구별은 거기에는 없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하늘을 향해서 침을 뱉는 것과 똑같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상의 세계에서는, 타인과 자신은 따로따로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그 표현은, 상대적인 표현이 되어 옵니다.
「汝らの天の父の全きがごとに、汝らも全かれ」
「너희들의 하늘의 아버지의 온전함과 같이, 너희들도 온전하라」
もうこうなると、正法の何たるか明らかでしょう。
이제 이렇게 되면, 정법의 어떤 것인가 분명해 질 것입니다.
※온전하다 = 흠·결점이 없다.
道德は、こうした自他一體の悟りを基点として培養され、相對的な觀念を軸に、橫に廣がったものといえます。正法と道德は別物ではありませんが、しかし道德は社會生活の規範であるのに對し、正法は、その規範を越えた神の心そのものであるといえましょう。
도덕은, 이러한 자타일체의 깨달음을 기점으로 해서 배양되고, 상대적인 관념을 축으로, 옆으로 퍼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법과 도덕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만, 도덕은 사회생활의 규법인 것에 대해, 정법은, 그 규범을 초월한 신의 마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轉生の記憶
[전생의 기억]
人は誰しも轉生の記憶を持っています。持たぬ人は一人もいません。私たちの心の中には、物事の道理、人生の敎訓、心の在り方、無常の眞意、人生の目的、義務と責任、こうしたものが、智慧として記憶されています。そうして、いつでもこうした智慧が表面に浮かび、人生航路の羅針盤として、その機能を果たそうと、出番を待っています。
사람은 누구든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사물의 도리, 인생의 교훈, 마음의 본연의 자세[바람직한 상태], 무상의 참뜻, 인생의 목적, 의무와 책임, 이러한 것이, 지혜[智慧]로서 기억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언제라도 이러한 지혜가 표면에 떠올라, 인생항로의 나침반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려고, 나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ところが、多くの人ひとは、とうした心の寶を眠らせたまま、五官に振り回され、一生を過ごしてしまいます。あの世に歸って、シマッマ、惜しいことをした、と氣づくのです。しかしこれでは遲いのです。六根に基づいたその一生は、不安と虛無、爭いと自己保存が渦を卷き、調和という神意に反した罪が、數限りなく生み出されていますから、その罪を償っために、暗黑の迷路で長い時間、泣いて暮ら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人によっては、努力と一念力によって、無意識のうちに轉生の記憶をひもとき、人びとの燈臺となって、誤り少ない人生を送る者もいます。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의 보물을 잠재운 채, 오관에 휘둘리어, 일생을 보내 버리고 맙니다. 저 세상으로 돌아가서, 아뿔사, 아깝게 되었다, 라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래서는 늦은 것입니다. 육근에 바탕을 둔 그 일생은, 불안과 허무, 다툼과 자기보존이 소용돌이치고, 조화라고 하는 신의 의사에 반한 죄를, 수없이 창출해 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죄를 보상하기 위해, 암흑의 미로에서 오랜 시간, 울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노력과 일념력에 의해서, 무의식 중에 전생의 기억을 풀어내어, 사람들의 등대가 되어, 잘못이 적은 인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轉生の記憶は、どうすればひもとけるか、それには10%の意識を正し、意識の記錄裝置である想念帶の淨化にあります。想念帶が淨化されると、想念帶の內側に眠っている、90%の潛在意識が目をさまし、想念帶の一角に窓が開き、意識の表面に流れ出てきます。そうすると、今まで氣づかなかった事象や道理、人の心、社會の在り方が明らかになり、人生を有意義に過ごせるようになってきます。こうなると心が自然に休まり、安らぎのある生活が送れるようになってきます。
전생의 기억은, 어떻게 하면 풀어낼 수 있을까, 그것에는 10%의 의식을 바로잡고, 기억의 기록장치인 상념대의 정화에 있습니다. 상념대가 정화되면, 상념대의 내측의 잠자고 있는, 90%의 잠재의식이 잠을 깨어, 상념대의 일각에 창이 열리고, 의식의 표면으로 흘러 나옵니다. 그렇게 하니,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사상이나 도리, 사람의 마음, 사회의 본연의 자세[바람직한 상태, 올바른 자세]가 분명하게 되고, 인생을 뜻있게 보낼 수 있게 되어 옵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자연히 편안해지며, 편온함의 있는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옵니다.
10%の意識は、通常は、五官(眼、耳、鼻、舌、身)に賴っています。つねれば痛いし、美しいものは欲しいと思います。いうなれば肉體中心の生活です。これでは想念帶の淨化はむずかしいのです。なぜなら、この現象界では、心のほかに肉體が存在し、心のない肉體物質はないからです。人間は、心と肉體を合わせ持って生きています。神意に通している心を中心とした肉體生活が必要なのです。
10%의 의식은, 통상은, 오관(눈, 귀, 코, 혀, 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꼬집으면 아프고,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육체중심의 생활입니다. 이래서는 상념대의 정화는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현상계에서는, 마음 이외에 육체가 존재하고, 마음의 없는 육체물질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음과 육체를 겸비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신의 의사(神意:신의 뜻)에 통하고 있는 마음을 중심으로 한 육체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心を生かす生活を送るには、八正道という物差しに照らし、每日の思うこと、考えること、そうしてそれにもとづく生活行爲を反省し、正道に反した想念行爲を改めて行くことです。そうして、肉體中心の執着という荷物をおろしてゆくことです。
마음을 되살리는 생활을 보내는 데에는, 팔정도라고 하는 척도[기준]에 비추어, 매일 정서적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일, 지적으로 생각하는 일, 그렇게 해서 그것에 바탕을 두고 생활행위를 반성하고, 정도에 반한 상념행위를 고쳐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육체 중심의 집착이라고 하는 짐을 내려놓아 가는 것입니다.
執着から解き放たれると、人は生死の境を越えることができ、裸の自分になれます。裸になると潛在意識の奧に眠っている轉生の記憶がドッと流れ出ます。觀自在の能力とは、轉生輪廻の記憶の奧に內在されている、偉大な佛智が、ほとばしり出るものをいうのです。
집착에서 해방되면, 사람은 생사의 경계를 초월할 수가 있고, 적나라한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적나라하게 되면 잠재의식의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전생의 기억이 한꺼번에 흘러 나옵니다. 관자재의 능력이란, 전생윤회의 기억의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위대한 불지[佛智]가, 용솟음쳐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八正道は、心の安らぎを得る唯一の道であり、潛在された智慧こそ、人生の偉大な羅針盤であることを知って欲しいと思います。
팔정도는, 마음의 평안을 얻는 유일한 길이며, 잠재된 지혜야말로, 인생의 위대한 나침반인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Page 80~84
※ 전생의 기억은, 2010년 1월달에 이미 블로그에 올렸습니다만, 이 내용과는 내용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 그래서, 삭제했습니다. 2017년 4월 14일 금요일 현재.
그 글은, GLA관서본부에서, 다카하시 신지님 사후에 올린 글입니다.
문장체가 공손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스크랩해 가시 분은, 죄송하지만, 문장을 수정하였으니,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당시에는, 일본어가 서툰 점이 많았습니다.
[惡]
[악]
惡とは自己保存をいいます。
악이란 자기보존을 말합니다.
人はどうでも自分さえよければよいという想いが、自己保存をつくり出します。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만 좋으면 좋다라고 하는 생각이, 자기보존을 만들어 냅니다.
善はこの反對で、自己保存の我欲から離れ、人びとと和合の生活をめざすものです。
선은 이 반대이며, 자기보존의 아욕에서 벗어나서, 사람들과 화합의 생활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自己保存が强くなると、怒り、ぐち、足ろことを知らぬ欲望,
そねみ、自己滿足、自己嫌惡、怠慢、うらみ、ねたみといった表面的な感情想念に支配され,
家庭や社會の混亂の原因になっています。
자기보존이 강하게 되면, 성냄[노여움, 분노], 어리석고 못남[우치, 푸념],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시기[질투], 자기만족, 자기혐오, 태만, 원한[원망],질투라고 하는 표면적인 감정상념에 지배되어,
가정이나 사회의 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動物靈]
[동물령]
あの世にいる動物たちの靈のことです。
人にヘビ、ギシネなどが人間社會に割り込み,さまざまな靈現象をおこします。
저 세상에 있는 동물들의 혼령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에게 뱀[蛇], 여우 등이 인간사회에 비집고 들어가서, 가지각색의 영현상을 일으킵니다.
[憑依]
[빙의]
人の心が惡に支配され、動物のように、本能、感情のみに支配されてくると、こうした動物靈が近づき,
人の意識を占領し、二重、三重人格をつくっていきます。
また、地獄に墮ちた地獄靈も憑依します。
사람의 마음이 악에 지배되어, 동물과 같이, 본능, 감정만으로 지배되어 오면, 이러한 동물령이 다가와,
사람의 의식을 점령하고, 이중, 삼중 인격자를 만들어 갑니다.
또한, 지옥에 떨어진 지옥령도 빙의합니다.
怒りっぽい、ぐちっぽい、衝動的な性格者,
自閉症、のいろぜなど、分裂氣味の人は大抵、憑依されています。
화를 잘 내는 성미인[걸핏하면 성내는. 노하기 쉬운], 푸념이 많은[게정거리는], 충동적인 성격자,
자폐증, 노이로제 등, 분열기미의 사람은 대부분, 빙의되어 있습니다.
憑依から拔け出すには、心が平靜なときにその苦しみの原因を取り除く努力が必要です。
빙의에서 빠져 나오는 데에는, 마음이 평정한 때에 그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執着にかたまった心をほぐすには、肉體的な運動も效果があります。
집착으로 굳어진 마음을 푸는 데에는, 육체적인 운동도 효과가 있습니다.
[實在界]
[실재계]
あの世のこと。この世は現象界といいます。
저 세상의 바로 그것이며. 이 세상은 현상계라고 말합니다.
現象界は映畵のスクリ―ンであり、映寫機は實在界あの世にあるわけです。
현상계는 영화의 스크린이며, 영사기는 실재계 저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現象界は無常であり、新陳代謝をくりかえす不安定な場ですが,
현상계는 무상하며, 신진대사를 되풀이하는 불안정한 장소입니다만,
實在界は心の世界であるため、必要と想う物は、千年、二千年經っても消えてなくなりませんし、
年もとりません。こういうわけで實在界というのです。
실재계는 마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천년, 2천년이 경과해도 사라져 없어지지 않고,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실재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靈道]
[영도]
一般的には靈能、あるいは靈道と呼んでいるようです。
일반적으로는 영능, 혹은 영도라고 부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靈道とは文字通り靈の道がひらくことで、藝術家などの中に, 割合多くみられ,
天才などは靈道をひらいている人がほとんどです。
영도란 문자그대로 영의 길이 열리는 것이며, 예술가 등의 중에, 비율을 많이 볼 수 있고,
천재 등은 영도가 열려 있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靈道がひらくと透視力とか幽體離脫、人の心を見拔く、物品引き奇せ、物質化現象など,
超自然現象が人に應じて可能になります。
영도가 열리면 투시력이든지 유체이탈,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림, 물품을 끌어당김, 물질화 현상 등,
초자연 현상이 사람에게 응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これらは、その人が行うというより、その人の背後で手助けしている靈がおり,
その靈が、その人の目的意識に合わせて行うわけです。
이런 것은, 그 사람이 행한다고 하는 것 보다, 그 사람의 배후에서 협조하고 있는 혼령[영혼]이 있고,
그 영혼이, 그 사람의 목적의식에 협력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その人が全然それを望まないのに、そうした、超自然現象が起きることもありますが、
そういうことは少ないものです。
なぜかというと、あの世の靈は靈道者の心に合わせて行うからです。
그 사람이 전연 그것을 바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초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일은 적은 것입니다.
왜냐고 하면, 저 세상의 영혼은 영도자(靈道者)의 마음에 협력하여 행하기 때문입니다.
だだし、靈道者が、假に、萬年筆の物質化現象を望んだのにボ―ル―ペンに變化することはあります。
다만, 영도자가, 가령, 만년필의 물질화 현상을 바랜는데 볼펜으로 변하는 일도 있습니다.
また目的に對して時間的なズルがあったり、希望はしないが、恐怖心や、
心のさまざまな動きが現象化することもあります。
또한 목적에 대해서 시간적인 차이가 있거나, 희망은 하지 않지만, 공포심이나,
마음의 움직임이 현상화하는 일도 있습니다.
靈道は過去世でその道に修行した人が大部分ですが、修行しない人が靈道をひらくと、
分裂症に陷り、變人になったりします。
영도는 과거세에서 그 길에 수행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만,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 영도를 열면,
분열증에 빠지고, 성질이나 모습이 여느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거나 합니다.
やたらと瀧に打たれたりして、靈道を求めることは、こういう意味で、非常に危險です。
함부로 폭포를 맞아가며, 영도을 구하는 일은, 이러한 의미로, 상당히 위험합니다.
= 함부로 폭포를 맞아가며 수행한다고 하며, 영도를 구하는 일은, 이러한 의미로, 상당히 위험합니다.
[意識の同通]
[의식의 동통]
意識が通じ合うことをいいます。
의식이 상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たとえば、怒りの想念に支配された人は、あの世の怒りに燃える世界に通じ、
修羅の人は修羅界に、
動物的本能に飜弄された人は畜生界に通じます。
가령, 분노의 상념[마음속에 품은 여러 가지 생각]에 지배된 사람은, 저 세상의 분노에 불타는 세계로 통하고,
아수라의 사람은 수라계로,
동물적 본능에 농락당한 사람은 축생계로 통합니다.
人の心は一念三千であり、思うところに針が動くので,
惡の想念を抱かぬようにしたものです。
사람의 마음은 일념삼천이며, 정서적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바늘이 움직이는 것이며,
악의 상념을 품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입니다^^ 용어 잠시 올렸습니다. ※하세요 ^^-----
이 외의 여러가지 더 있습니다만, 다음에 할께요.
또한, 저세상의 천상계와 지옥계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앞으로 쭈욱 가시면,
이미 소개되어 있습니다.
中道と惡魔
[중도와 악마]
私はさきに惡魔の非道さについてふれました。惡魔に犯されると、人は善なる自分を失い心の自由さを放棄することになります。惡魔は私たちの心の中に、いつでも入りこもうとして、虎視耽耽と狙っています。惡魔に魅入られてはならないのです。惡魔についてもう一度ふれてみましょう。
나는 먼저 악마의 올바른 도리에 어긋남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악마에게 침범당하면, 사람은 착한 자신을 잃고 마음의 자유를 포기하게 됩니다. 악마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언제나 잠입하려고 하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악마에 홀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악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언급해 봅시다.
私たちの身近には、善人の假面をかぷった惡魔がいます。惡魔に憑かれると、他人を見下し、あたかも自分が善人のような錯覺に陷ってしまいます。 正道を口にしながら他を誹謗し、正しく率直な人びととを罪におとし入れようとします。人から注意されると、自分が他を誹謗したことを忘れ、反省することもなく自己弁護してしまう。增長慢の心が常に自分を支配しているため、心は不安定です。善と惡が交錯し、惡いときには動物靈が背後にいて、靈眼、靈聽などの現象をみせ、本人の心をしていかにもそれが本物の映像、聲のように思わせてきます。そのため、本人の心は、もともと增長慢が下地になっているので、正、不正の判斷がしにくくなり、言葉巧みに、不平不滿をあおり、混亂を企てるようになってきます。主觀的、客觀的な善なる自覺を失ってしまうのだから恐ろしいことです。
우리들의 신변에는, 착한 사람인 체하는 가면을 쓴 악마가 있습니다. 악마에게 빙의되면, 타인을 깔보고, 마치 자신이 착한 사람인 듯한 착각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정도를 입에 담으면서 남을 비방하고, 올바르고 솔직한 사람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남으로부터 주의를 받으면, 자신이 남을 비방한 것을 잊어버리고, 반성하는 일도 없이 자기 변호를 해 버린다. 우쭐대며 잘난체하는 마음이 항상 자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불안정합니다. 선과 악의 교착하고, 악할 때에는 동물령이 배후에 있고, 영안[靈眼=죽은 영혼이 보이는 것], 영청[靈廳=죽은 영혼이 말소리가 들리는 것] 등의 현상을 보이고, 본인의 마음으로 하여금 자못 그것이 진짜의 영상, 목소리처럼 생각되어 옵니다. 그 때문에, 본인의 마음은, 원래 우쭐대며 잘난체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릇됨을 판단하기가 어렵게 되고, 교묘한 말로, 불평불만을 부채질하고, 혼란을 꾀하게끔 되어 옵니다. 주관적, 객관적인 선한 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惡魔から自分を守るには、正道のフィルタ―を通することが大事です。正道のフィルタ―は中道の尺度です。自分の置かれている立場をいったん捨てて、自分を客觀的に眺めることです。そうしてそれは何も五官の世界のみでなく、あの世からの誘惑についても同じことがいえるのです。これが出來ないと、何が正しく、何が不正であるか、善と惡のケジメさえ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
악마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데는, 정도(正道)의 필터를 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도의 필터는 중도의 척도입니다. 자신이 놓여져 있는 입장을 일단 버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조금도 오관의 세계만이 아니라, 저 세상으로부터의 유혹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부정인지, 선과 악의 구분조차 알지 못하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惡魔は,もともと執着と欲望の塊りであり、他人はもとより、憑かせている本人の心さえも狂わしていく。血も淚もない非情なものです。しかしこうした惡魔に憑かれるには、憑かれるだけの原因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
악마는, 원래 집착과 욕망의 덩어리이며, 타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빙의되어 있는 본인의 마음조차도 미치게 해간다. 피도 눈물도 없이 비정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악마에게 빙의되는 데는 빙의될 만한 원인이 없으면 안 됩니다.
すなわち、怒り、愚痴、ねたみ、しっと、そしり、足るこのを忘れた欲望という想念行爲、それがその原因です。こうした心は、目や口や耳を通して、外から入ってくる場合もあるし、不平不滿の自らの心がつくり出す場合もあります。善と惡も、自分の心の在り方がつくり出した天國と地獄であり、一念三千の心の方向が、その人自身の意識界をつくっているわけです。
즉, 성냄[노여움, 분노], 푸념[우치, 어리석고 못남], 질투[시샘], 비난[비방], 만족함을 잊어버린 욕망이라고 하는 상념행위. 그것이 그 원인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눈이나 입이나 귀를 통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불평불만의 자기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도 악도, 자신의 마음의 본연의 자세[바람직한 상태]가 만들어 내는 천국과 지옥이며,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마음의 방향이, 그 사람 자신의 의식계[意識界]를 만들고 있는 까닭입니다.
「私は一所懸命、正法流布に活動した」と吹聽したときには、すでに自己保存の自分にかえっています。不平不滿は報いを求えようとしたときから始まります。したがって、惡魔のささやきは誰の心にもきこえ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ぐださい。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進、正念、正定こそ中道のフィルタ―であり、感謝と報恩の行爲をしている者には、惡魔は、近寄ることができないものです。
“나는 열심히 정법유포에 활동했다”라고 말을 퍼뜨렸을 때에는, 이미 자기보존의 자신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불평불만은 보답을 구하려고 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악마의 속삭임은 누구의 마음에도 들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 주십시요.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진, 정념, 정정이야말로 중도의 필터이며, 감사(感謝)와 보은(報恩)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악마는 접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類は友を呼ぶ
유유상종[끼리 끼리 모인다]
これは法則です。現在講演會に集まってきている人びとは、この法則にのって、自然に集まって來たといってもよいでしょう。磁石を砂の中に入れると鐵分のみが吸い寄せられ、鐵分以外のものはついてきません。朋友、不仲、こうした關係はすべて、綾なす緣によって自然に結ばれ、あるいは離れていくものです。
이것은 법칙입니다. 현재 강연회에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은, 이 법칙을 타고, 자연히 모여들어 왔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자석을 모래 속에 넣으면 철분만을 끌어당기고, 철분 이외의 것은 달라붙지 않습니다. 친구, 사이가 나빠짐[不和 불화], 이러한 관계는 전부,아름답게 물들은 인연에 따라서 자연히 맺어지고, 혹은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こうした緣というものは、見えない絲によって操られ、自然に吸い寄せられてきます。本人の心が率直で、己の心に忠實であればあるほど、この法則は强く働きます。地上界は約10%の意識で生活し、このため五官六根にふり回されがちなので、そうした緣が働いても、それに逆らう人も出てきますが、しかし大部分の人は吸い寄せられていくのです。
이러한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실에 의해서 조종되어, 자연히 빨려들어 옵니다. 본인의 마음이 솔직하고, 자기의 마음에 충실하면 할 수록, 그 법칙은 강하게 작용합니다. 지상계는 약 10%의 의식으로 생활하고, 이 때문에 오관육근에 휘둘리는 경향이 많은 것인데, 그러한 인연이 작용해도, 그것을 거스르는 사람도 나옵니다만,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現在私の周圍には、過去世で緣を持った人たちが集まり來たっています。釋迦に緣の深いウパテッサ(舍利佛)、 ラフラ―、 マンチュリア、 アナン、 ヤサ、 アサジ、 アニルッタ、 フルナ、 スブティ、 シュバリダなど、,また、マイトレイ―、 カリナといった人たち。イエス系ではパウロ、 ヨハネ、 その他關係のあった人たちもいます。やがいてモ―ゼ系の緣の深い人たちも名乘りをあけるでしょう。
현재 제 주위에는 과거세에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석가에게 인연이 깊은 우파뎃사(사리불), 라훌라[라후라], 만츄리아, 아난, 야사, 아사지, 아니룻타, 부르나, 스부티, 슈바리다 등. 또한 마이트레이아[미륵보살], 카리나(관세음보살) 라고 하는 사람들. 예수 계통으로는 바오로[Paul(바올=히브리어)], 요하네[(Johannes) 혹은 (Saint John the Apostle) 사도 요한]. 그외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머지 않아서 모제[Moses= 모세] 계통의 인연의 깊은 사람들도 자기 이름을 댈 것이다.
★위의 이름들은, 이미 제 블로그 가르침의 글들에 상세히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ヨハネ (使徒)
요하네(사도)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사도의 한 사람. 세례자 요한과 구별하기 위해서 특히「사도 요하네」라고 부르거나, 제베다이의 아들 요하네, 복음기록자 요하네라고 부르는 일도 있다.
요하네는 형인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아 호수에서 어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쟈렛의 예수를 만나, 그 최초의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 형제 야고보와 함께 특히 지위가 놓은 제자로 삼고, 예수의 변용의 장면이나, 겟세마네에서의 예수 최후의 기도의 장면에서는, 이들 세 사람만이 등장하고 있다.『루가에 의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로부터 최후의 만찬의 준비를 베드로와 요하네 2명이 분부를 받고 있다.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마이트레이어 다른 이름은, 마타레이며, 이 여성은 미륵보살입니다. 바라몬의 바바리란 분의 질녀.
※아사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 중의 한 분입니다. 크샤트리아[무사계급 출신] 카필라성 출신. 석가모니의 부친인 슈도다나왕의 아들을 감시하고, 보호하라고 보낸 다섯 무사 중의 한 명.
※야사 대부호[아버지 우파시카, 어머니 아파사카]의 외동아들 삼대째의 상인가문. 의리가 아주 깊은 사나이. 자신의 약혼한 무녀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보고, 충격으로, 강가에서 자살시도 하려 할 때, 붓다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 귀의한, 제자.
※아난 : 도로 다나의 아들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동생입니다. 아난은 후에 붓다의 비서가 되신 분.
기억력이 뛰어나 붓다의 열반 뒤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란 형태로 붓다의 설법을 후세에 전함.
※아니룻다 : 암리트 다나의 둘째아들, 왕자의 신분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 동생.
※그외의 분들은 잘 모르겠네요 ^^ 출처는 인간석가에 등장합니다.
このように、アガシャ―系グル―プは、時到れば、自然に寄り合ってきます。
이와 같이 아가샤 계통의 그룹은, 시기가 도래하면, 자연히 한곳에 모입니다.
これはなにも日本だけではなく、アメリカ、フィリッピン、フランス、ブラジル、韓國などにも緣の深い人たちが修行しており,機が熟せば吸い寄せられてくるでしょう。
이것은 세삼스럽게 일본뿐만이 아니라, 미국, 필리핀, 프랑스, 브라질, 한국 등에서도 인연의 깊은 사람들이 수행하고 있고, 시기가 무르익으면 빨려들어올 것입니다.
そしてこうした人たちは,正法流布の一翼を擔っており,各地で核としての働きをしてゆくのです。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정법유포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각지에서 핵심[核]으로서 작용해 가는 것입니다.
正法流布は何も日本だけにとどまらない。全世界に及ぼしていくものです。 アメリカをはじめ、ブラジル、 韓國、 フィリッピン、 インド、 ベトナム、 そうして主として西ヨ―ロッパ諸國,中國もやがて、正法を受け入れるときがやってくるでしょう。
정법유포는 세삼스럽게 일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 세계에 미치어 가는 것입니다. 미국을 시작으로, 브라질, 한국, 필리핀, 인도, 베트남, 그렇게 해서 주로 서유럽 여러 나라, 중국도 이윽고, 정법을 받아들일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今後、十數年の間に、正法歸依者は急速に廣まるでしょう。生活の規準を失った人びとの心に、かすかな燈が点じられ、人間とは何が、という疑問が、末法という破局を迎えるにしたがって、りろがってゆくからです。同時に、正法流布の活動も、實在界からの應援を得で、さまざまな奇蹟,現象が現われ、ようやく、人びとの目が私たちに注がれてく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지금부터, 십 수년 동안에, 정법에 귀의하는 사람은 급속히 널리 퍼질 것입니다. 생활의 규준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에, 희미한 불을 밝히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의문이, 말법이라고 하는 파국을 맞이함에 따라, 퍼져가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정법유포의 활동도, 실재계로부터의 응원을 얻고, 여러 가지의 기적, 현상이 나타나고, 차츰, 사람들의 눈이 우리들에게 주목해 오게 될 것입니다.
このようにして、正法流布は時を追って忠實し、さまざまな宗敎は統一されていくでしょう。宗敎は思想であってはなりません。自然が敎える生活の在り方なのです。誤った宗敎はその意味で正法にかえらざるを得なくなります。
이렇게 해서, 정법유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충실하고, 다양한 종교는 통일되어 갈 것입니다. 종교는 사상[思想]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연이 가르치는 생활의 본연의 자세입니다. 잘못된 종교는 그 의미에서 정법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こうして地上は多くの同志によって,末法の世を建て直して行くことでしょう。
이렇게 해서 지상은 많은 동지에 의해서, 말법의 세상을 재건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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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法と業
[정법과 업]
奈良の大佛、鎌倉の大佛はどうして作られたかといと、大佛の製作者が佛の姿を夢で見るとか、あの世の天使に敎えられ、佛の心は宇宙大にひろ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ああした佛像を手がけるようになったといえます。
나라현의 대불(大佛), 가마쿠라의 대불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하면, 대불의 제작자가 부처님의 모습을 꿈에서 봤든지, 저 세상의 천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부처님의 마음은 우주에 넓어져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저러한 불상을 손수 다루게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人の心というものが調和されてくると、もう一人の自分、つまり肉體という原子細胞といっしょうに生活している光子體が大きくなってゆきます。後光というのは、光子體のことであり、この分野が心の調和に比例して擴大されていくのです。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조화되어 오면, 또 한 사람의 자신, 즉 육체라고 하는 원자세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광자체가 커져 갑니다. 후광이라고 하는 것은, 광자체 바로 그것이며, 이 분야가 마음의 조화에 비례해서 확대되어 가는 것입니다.
正法を知って生活している人びとの後光は、まず頭の周邊がポ―ッと明るく出てきます。佛像の多くは頭部の背後に丸く圓を描いた姿で表現されていますが、ちょうどそのようになってきます。さらに調和が進む、心と生活が正法に適ってくると、後光の範圍は頭部だけではなく、體全體に廣がるようになります。
정법을 알고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후광은, 우선 머리의 주변이 확하고 환하게 나옵니다. 불상의 대부분은, 머리 부분의 배후에 둥글게 원을 그린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만, 정확히 그렇게 되어 옵니다. 더욱 더 조화가 진보, 마음과 생활이 정법에 들어맞아 오면, 후광의 범위는 머리 부분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로 퍼지게 됩니다.
後光の姿はこれで終り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過去、現在の轉生輪廻を知り、その轉生の過程の中で神理を知った生活をし、廣い心で多くの人びとを救って來た人の後光は、さらにもっと大きくなってゆきます。
후광의 모습은 이것으로 끝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과거, 현재의 전생의 윤회를 알고, 그 전생의 과정 가운데에서 신리를 안 생활을 하고, 넓은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온 사람의 후광은, 더욱 더 커져 갑니다.
生命の轉生輪廻の事實を知り、生と死を解脫した光の大指導靈の後光は、宇宙大の大きさになっています。
생명의 전생윤회의 사실을 알고, 생과 사를 해탈한 빛의 대지도령의 후광은, 우주대의 크기로 되어 있습니다.
光の天使、菩薩、如來の後光は、こうした心の廣さが光子體に反映し、光子體が擴大されていくわけです。心の廣さは,心に曇りがあるかないか、こうしたものがミックスされて現われてくるものです。
빛의 천사, 보살, 여래의 후광은, 이러한 마음의 넓이가 광자체에 반영하고, 광자체가 확대되어 가는 까닭입니다. 마음의 넓이는, 마음에 흐림이 있는가 없는가. 그러한 것이 혼합되어 나타나오는 것입니다.
宇宙卽我 -----觀自在の境地になった人を如來と呼んでいます。
우주즉아(宇宙卽我) -----관자재의 경지가 된 사람을 여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如來というは中國で作られた言葉です。文字通り、來るが如し、ということであり、大自然の神理、人間の心,法というものについて詳(つまび)らかにし、人間の生活の在り方を說き來たる人たちをいいます。
여래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온다와 같다’ 라고 하는 것이며, 대자연의 신리(神理), 인간의 마음, 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상세하게 하고, 인간의 생활의 본연의 자세를 설명하러 다가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また「悟り」という言葉。これも中國から來ています。
또한 「깨달음[悟])」이라고 하는 말. 이것도 중국에서 유래되고 있습니다.
この語は實にうまく出來ており、 忄(りっしんべん )は心であり、吾は自分を指す。二つが組み合わさって悟ると讀むが、悟りとは、我が心を知る、ということです。
이 말씀은 실로 잘 되어 있고, 忄(심방 변) 마음이며, 오(吾)는 자신을 가리킨다. 두 가지가 조합되어 깨닫는다고 읽지만, 깨달음이란, 자기[그 사람 자신]가 마음을 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心を本當に理解できると、人間は不生不滅、 不咎不淨を知り、生死を越えることが出來るのです。
마음을 진실로 이해할 수 있으면, 인간은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을 알고,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さて佛敎も、正法として說かれた時代は短かく、わずか千年ぐらいであったでしょうか。いろいろな言葉に譯されるにしたがって形骸化され、日本に來た時分には、いつの間にやら他力本願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그럼 불교도, 정법으로서 설명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짧고, 불과 천년 정도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됨에 따라서 빈 껍데기가 되어, 일본에 유래된 무렵에는, 어느 사이엔지 타력본원[他力本願]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형해화[形骸化]: 내용이 없고 모양뿐인 것이 되는 일. 빈껍데기가 되다.
※타력 본원[他力本願]
<일어사전>
[불교] ①아미타불의 서원(誓願)의 힘으로 성불하는 일. ②(변하여) 남에게 의지하여 일을 이루려고 함의 비유.
<국어사전> [불교] 아미타불의 본원, 곧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하려고 세운 발원에 기대어 성불하는 일. 비유적으로 다른 이에 기대어 일을 성취함을 이르기도 한다.
<한자사전> 아미타(阿彌陀) 여래(如來)의 본원(本願), 곧 아미타 여래(如來)가 중생(衆生)을 구(救)하려고 세운 발원(發願)에 의지(依支)하여 성불(成佛)하는 일. 비유적(比喩的)으로, 타인(他人)에 의지(依支)하여 일을 성취(成就)하려는 일
現代宗敎家の多くは、貧乏し病氣をしていると「あなたの前世は業が深いから貧乏をしているのだ」「前世で惡い事をしたから病氣をする-----」という說明が返ってくるようです。
현대종교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병들어 있으면 「당신의 전세[前世]는 업[業]이 깊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전세[前世]에서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병든 것이다-----」라고 하는 설명이 돌아오는 모양입니다.
そこで私はききたいのです。生まれるときに金を持ってきたか。死ぬときに、地位や財産を持っていけるか。生まれるときも裸なら、死ぬときも裸です。金がある無しは、人間のこの世における知惠が生み出したもので、前世のカルマとは關係がないといえましょう。
그래서 저는 듣고 싶은 것입니다. 태어날 때에 돈을 갖고 왔는가. 죽을 때에, 지위나 재산을 갖고 갈 수 있는가. 태어날 때도 벌거숭이면, 죽을 때도 벌거숭이입니다. 돈이 있고 없고는, 인간의 이 세상에 있어서 지혜[知惠]가 만들어낸 것이며, 전세[前世]의 카르마[業=업]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金持ちに生まれる、貧乏人に生まれるというのは、自分があの世で選んでくるのです。カルマが深い、淺いでありません。
부자로 태어난다,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저 세상에서 선택하고 오는 것입니다. 카르마[Karma 業=업]이 깊고, 얕음이 아닙니다.
前世のカルマは、あの世においてある程度修正しなければこの世に出ることはできません。地獄の靈がこの世に出ようと思っても、出來ない相談です。惡事やカルマというものは、まず、あの世でみっちりとそれを修正、そうして、その修正した事柄を、現世で修正出來たかどうかを自らが試してゆくのです。
전세의 카르마[業=업]는, 저 세상에 있어서 어느 정도 수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나올 수는 없습니다. 지옥의 영혼[靈=혼령] 이 이 세상에 나오려고 생각해도, 불가능한 상담입니다. 나쁜 짓이나 카르마[業=업]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저 세상에서 철저히 그것을 수정하고, 그렇게 해서, 그 수정한 사항을, 현세[現世]에서 수정[修正]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자기 자신이 시험해 가는 것입니다.
★出來ない相談です 의 뜻은, 해결될 리가 없는 상담. 응할 수 없는 권유. 들어줄 수 없는 권유, 불가능한 상담. 이란 뜻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고로 우리 인간은, 지옥에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환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해해야 하며,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속지 않습니다. 극락(천국:실재계:천상계)로 돌아간 후에, 다시 환생하게 됩니다.
そのため、假に前世で貧乏をして心を狹くし、それに負けた場合は、再び貧乏の環境を選ぶ場合があります。反對に裕福な家庭で生まれ、わがままや增長慢に陷った者は、もう一度裕福な家庭に育ち、そうならないよう自らの心を磨いて行く者もあります。
그 때문에, 만약 전세에서 가난하고 마음을 좁게 하고, 그것에 패배한 경우는, 다시 가난한 환경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멋대로 굴거나 우쭐대고 뽐내는 마음에 빠졌던 사람은, 또 다시 한번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자신의 마음을 닦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これはカルマというより、カルマの修正が本當に出來たかどうかを試す意味で、そうした環境を選ぶのです。また、人間の價値というものは、金持ち、貧乏ということで決め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金がある、ない、の條件は、己の心がそうした條件にふりまわされず、調和の心を維持し、進んで、自分の心をより廣げていく魂修行の一手段にすきません。
이것은 카르마[業=업]라고 하는 것 보다, 카르마의 수정이 진실로 가능한지 어떤지를 시험하는 의미로, 그러한 환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가치[價値]라고 하는 것은, 부자, 가난이라고 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다, 없다, 의 조건은, 자기의 마음이 그러한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조화의 마음을 유지하고, 진보하며, 자신의 마음을 보다 넓혀 가는 영혼수행의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病氣の原因は前世のカルマというより、今世における我執や、無理な體力の消耗がそうさせるもので、後天的なものです。後天的な不具者や、子供の病氣は、兩親の不調和から起きるといえます。
질병의 원인은 전세의 카르마라고 하는 것 보다, 금생[현세]에 있어서 아집이나, 무리한 체력의 소모가 그렇게 그렇게 만드는 것이며, 후천적인 것입니다. 선천적인 불구자나, 아이의 질병은, 양친[부모]의 부조화로부터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意識に記錄されたカルマは、あの世で100%修正されるかというと、そういうわけにはゆかず、人それぞれのあの世での修正の度合いによって、ある人は60%、ある人は80%、95%修正出來た人も出てきます。したがって、修正の度合いによって、この世では、過去世、前世のカルマに强くひかれる者と、そうでない人とがあるといえます。この意味では前世のカルマといえるかも知れません。
의식에 기록된 카르마[業=업]는, 저 세상에서 100% 수정되는가 하면 그렇게 할 수 없고, 사람 각자의 저 세상에서의 수정하는 정도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60%, 어떤 사람은 80%, 95% 수정 가능한 사람도 나아 옵니다. 따라서, 수정의 정도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과거세, 전세의 카르마[業=업]에 강하게 끌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의미로는 전세의 카르마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Karma 카르마=업. 산스크리트어입니다. 즉 인도말입니다.
しかし、前世のカルマがそのまま果となって出てくるとすれば、人類は、とうの昔に滅び去っています。なんとなれば惡を犯さぬ者は一人もいないからです。
그렇지만, 전세의 카르마[業=업]이 그대로 결과로 되어 나타난다고 하면, 인류는, 오래 전에 멸망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을 범하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さて、このように考えてくると經濟的 に惠まれたくとも、心まで貧くしてはならないし、惠まれた人は多くの病める人びとに愛の手を差しのでることが大事であるといえましょう。
그럼, 이와 같이 생각[考慮=고려]하면 경제적으로 풍족했을 때도, 마음까지 가난해서는 안 되고, 풍족한 사람은 많은 앓는[병든, 고통을 느끼는,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今日の人びとの心は、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にふり回され、自分を失っているといえます。人生の目的を自覺し、大自然が敎える中道の心を知るならば、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つまり、神の子の自分を自覺するならば、欲望、我執に飜弄される無意味さを悟ることが出來るでしょう。
오늘의 사람들의 마음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에 휘둘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자각하고, 대자연이 가르치는 중도의 마음을 알면, 만족함을 깨달은 생활, 즉 신의 자식인 자신을 자각하면, 욕망, 아집에 농락당하는 무의미함을 깨닫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足ることは我慢ではない、あきらめでもありません。神の子の己を自覺した想念と行爲を意味するのです。與えられた環境、任事に對しては、全力を擧げてこれに當ります。それは欲望に燃えてそうするのではなく、調和に役立てるためにそうするのです。
만족하는 것은 인내[我慢=인내, 참음,견딤]가 아니며. 단념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의 자식인 자기를 자각한 상념[마음속에 품은 여러 가지 생각]과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 일에 대해서는, 전력을 다해서 이것에 맞섭니다. 그것은 욕망에 불타서 그렇게 하는 것아 아니라, 조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商人は利を求めますが、利を求めるなとは、正法では決していっていません。大事なことは求めて得た利益をどう處分するか、自分だけのことに使うか、家族や從業員に分け與えるか、不幸な人びとに愛の手をさし出すか、足ることを知らない人たちは、自分が中心であり、人のことなど構いません。大氣汚染や河川のよごれは、企業エゴイズムがそうさせたものであり、經濟の齒車は、こうした企業エゴを中心に動いてきたので、今日では、ここから脫皮しようにも身動き出來ないというのが現狀です。自分だけのことを考えれば、やがてその結果は自分にハネ返ってきます。
상인은 이익을 구합니다만, 이익을 구하지 말라라는, 정법에서는 결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은 구해서 얻은 이익을 어떻게 처분하는가, 자신만의 것으로 사용하는가, 가족이나 종업원에게 나누어 주는가, 불행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중심이며, 남의 일은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대기오염이나 하천의 더러워짐은, 기업 이기주의가 그렇게 만든 것이며, 경제의 톱니바퀴는, 이러한 기업 이기주의를 중심으로 움직여 온 것이며, 오늘날에는, 여기에서 탈피하려고 해도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현상입니다. 자신만의 일을 생각[考慮=고려]하면, 이윽고 그 결과는 자신에게 튀어서 되돌아옵니다.
足ろことを知った生活環境は、佛國土という相互扶助、愛に滿ちた世界なのです。そうして、そうした世界に住するようにならば、人の心はさらにより廣く、大きい進化させることが出來るでしょう。
만족함을 깨달은 생활환경은, 불국토라고 하는 상호부조, 사랑으로 충만한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러한 세계에 살게 되면, 인간의 마음은 더욱 더 넓고, 크게 진화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佛敎の言葉に諸法無我というのがあります。諸法とは、大宇宙、小宇宙を動かし、秩序を保っているところの神理。そして、一切のものはすべて循環という法の下にあります。 循環という秩序です。無我とは,意思がないというのではありません。自分勝手の自分ではなく、公平無事な中道ということなのです。法に欲望や自分があったら法になりません。法とは公平無事な規範であり、萬物を生かす秩序です。太陽の熱、光に好き嫌いの感情があったらどうなるでしょう、一切の生物は生きてはいけません。
불교의 말에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법[諸法]이란, 대우주, 소우주를 움직이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신리[神理], 그리고, 일체의 것은 전부 순환[循環]이라고 하는 법 아래에 있습니다. 순환이라고 하는 질서[秩序]입니다. 무아[無我]란, 의사[意思=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멋대로의 자기 자신이 아니라, 공평무사한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에 욕망이나 자기 자신이 있다면 법이 안 됩니다. 법은 공평무사한 규범이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질서입니다. 태양의 열, 빛에 좋고 싫음의 감정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체의 생물은 살 수 없습니다.
諸法無我----つまり我森羅萬は、象中にそって、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です。私たちの心も、諸法無我にそって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中道から外られば、外れた分量だけ苦しまねばなりません。五官六根のみに賴った生活、あるいは無というから、自分は無くした生活をすればよいと考えたら大變です。意思のない法、秩序というものはないのです。法として存在する以上は、必ずその底には意思があり、意思が働いているから、秩序正しき法が存在するのです。
제법무아----. 즉 삼라만상은, 중도에 따라, 소생되어지고, 생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제법무아에 따라 살아가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중도에서 벗어나면, 벗어난 분량만큼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관육근에만 의존한 생활, 혹는 무[無=없음]이라고 하기 때문에, 자신을 없앤 생활을 하면 좋다고 생각[考慮=고려]하면 큰 일입니다. 의사[意思=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생각]가 없는 법, 질서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법으로서 존재하는 이상은, 반드시 그 밑바닥에는 의사[意思]가 있으며, 의사[意思]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질서 올바른 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その意思は、中道という編寄らない神の心、公平にして無私なる心、萬物を生かし、己の心を宇宙大に廣げた心なのです。
그 의사[意思=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는 중도[中道]라고 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신[神]의 마음. 공평하고 무사한 마음, 만물을 소생시키고, 자기의 마음을 우주대[宇宙大]로 넓힌 마음인 것입니다.
心の安らぎは、こうした中道に向った反省と、修正した行爲によって、自然につちかわれていくものです。
마음의 평온함[평안,편안]은, 이러한 중도(中道)로 향한 반성과, 수정된 행위에 의해서, 자연히 길러지는 것입니다.
遇 然
[우 연]
人には運、不運が常につきまとう、といわれています。道を步いていて事故にあう、元氣でいたいと思っても病氣をする、あれが欲しい、こうもしたいと考えてもそうはなりません。競馬、ギャンプルは、偶然の連續なので、面白さもあり、まるで人生をみているようだと斷言する人もいます。
사람에게는 운[운수], 불운이 항상 붙어다닌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사고를 당한다, 건강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병을 앓는다, 저것이 갖고 싶다, 이렇게도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렇게는 안 됩니다. 경마, 도박은, 우연의 연속이며, 재미도 있고, 마치 인생을 보는 것 같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運だとか、偶然を主張しながらも、これを信ずる人は少ないようです。反對に、すべて必然と斷言する者も皆無に近いようです。人生は余りにも不確定な要素、つまり、認識出來る範圍が非常に小さいので、判斷がつかない、というのが實際でしょう。每度繰り返すように、私たちの意識量(物を認識する働き)は、普通で、その全體の量の約10%しか働きません。人によっては、七、八%くらいでとまっている者もあります。
운이라든지, 우연을 주장하면서도, 이것을 믿는 사람은 적은 모양입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필연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전혀 없음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인생은 너무나도 불확정한 요소, 즉,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작은 것으로써, 판단을 못한다, 고 하는 것이 실제일 것입니다. 매번 되풀이 하듯이, 우리들의 의식량(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은, 보통이며, 그 전체 양의 약 10%밖에 작용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7, 8%정도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さらに重要なことは、人にはそれぞれ過去世という魂の遍歷があります。その遍歷によって記錄された想念と生活行爲があります。そのために、そういう記錄された因緣にひかれその人の氣質をつくり、性格に影響を與え、能力などを形作って行きます。同じ兩親の下で育った兄第姉妹でありながら、樂天家もあれば內向性の者もいます。これらは父母のそのときどきの精神狀態なり、生活環境もあります。實はこうした先天的な魂の遍歷に影響されているのです。もっとも、後天的な生活環境にも人は大きく左右されますが、こうした先天的要素を外しては、偶然、必緣の判斷は下せないのです。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각자 과거세[過去世=과거의 세계]라고 하는 영혼의 편력이 있습니다. 그 편력에 따라서 기록된 상념[마음속에 품은 여러 가지 생각]과 생활행위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러한 기록된 인연에 끌리어 그 사람의 기질을 만들고, 성격에 영향을 주고, 능력 등을 형성해 갑니다. 똑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자매이면서, 낙천가도 있으면 내향성의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부모의 그때그때의 정신상태나, 생활환경도 있습니다. 사실은 이러한 선천적인 영혼의 편력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후천적 생활환경에도 사람은 크게 좌우됩니다만, 이러한 선천적 요소를 제외하면, 우연, 필연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遍歷: 사람이 여려 경험을 하다. 편력.
運命の豫知とか透視というものは、10%の意識量では計れません。それ以上の意識量が働くことによって、計れるのです。運命の豫知が可能だということは、偶然の連續ではなく、物事が必然の方向に動い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ただ普通はそれが不可能なために、憂然とか、運、不運で片付けてしまうのです。
운명의 예지라든지 투시라고 하는 것은, 10%의 의식량(意識量)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것 이상의 의식량이 작용하는 것에 의해서,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운명의 예지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사물이 필연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보통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연이라든지, 운[운수, 재수], 불행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입니다.
現代科學は壁に突き當りながらも發展の途上にあるが、物質科學をもって偶然必緣を測定しようとすると無理が出ます。なんとなれば、人間は物質だけではなく、意識という心を所有し、その心の一部に記錄された過去世の遍歷と、今世の想念と行爲が因果をつくり出しているからです。
현대 과학도 벽에 부딪히면서도 발전의 도상에에 있지만, 물질과학을 사용해서 우연 필연을 측정하려고 하면 무리가 나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은 물질만이 아니라, 의식이라고 하는 마음을 소유하고, 그 마음의 일부에 기록된 과거세의 편력과, 금생[현세]의 상념[마음속에 품은 여러 가지 생각]과 행위가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偶然とか運、不運を口にする前に、まず神の子の自分に立ち歸り、今を正しく生きるよう努めることです。運はそうしたなかからひらけてくるのです。
우연이라든지 운[운수, 재수], 불운을 말하기 전에, 우선 신의 자녀인 자신으로 되돌아가서, 지금을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운은 그러한 가운데에서 트여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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勇 氣
[용 기]
人から八正道は難しい、反省すると自分の醜惡さが浮び出て、我ながら自分に愛想がつきる、しょせん自分は八正道の一つも實行出來ないし、挫折感のみが襲って來る、とよくいわれます。
다른 사람에게서 팔정도는 어렵다, 반성하면 자신의 추악함이 떠오르고,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진다, 결국 자신은 팔정도의 한가지도 실행할 수 없고, 좌절감만이 엄습해 온다, 고 자주 듣습니다.
私も最初はそうでした。人の事より自分を中心にものは考え、行動してきました。しかし私は、自分を捨てることによって苦樂の淵から離らることが出來ました。
저도 최초에는 그러했습니다. 남의 일보다 자신을 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신을 버리는 것에 의해서 고락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難しいとか、挫折感は、性急な心そうさせるのだし、それは自分というものが心の中にドッカと腰をすえているためであり、そうした自分が少しでも無くなってくると、次第に心が輕くなるものです。
어럽다든지, 좌절감은, 성급한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고, 그것은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속에 어딘가 자리잡고 일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자신이 조금이라도 없어져 오면, 서서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僞我の自分を少しでも無くすためには、正道の中身を理解し、實踐してみることです。そうすると、ものの見方、考え方、行動が八正道に適ったそれになってきます。
거짓된 자기본위의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서는, 정도[正道]의 내용을 이해하고, 실천해 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물의 견해, 사고 방식, 행동이 팔정도에 들어맞는 그것이 되어 옵니다.
※위아[僞我] 사전에 뜻이 없네요.
그래서 한자 그대로 “거짓된 나 혹은 가장한 나, 있는 그대로가 아닌, 꾸민 나, 진실하지 않은 거짓된 자신” 이렇게 적어 봅니다.
다만, 아[我]의 뜻은, 나, 자아. 아집[我執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 자기 본위의 생각. 해서...거짓된 자기본위의 생각으로 풀었습니다. ^^
※ 2017년 04월 14일 금요일 현해, 위아(僞我)는, 자기본위, 자기중심, 이란 뜻입니다.
八正道はまず反省から始まるが、反省の任方は客觀的立場から自分をながめ、相手を見ることです。そうして自分の欠点が浮き彫りされるようでなければ默目なのです。自分に愛想がつきて、そこで自分を捨てたときに、神の光が入ってきます。ところがここで、なかなか自分が捨てられません。六根から拔けられないのです。そこで私は勇氣を持って努力しなさいといっているのです。
팔정도는 우선 반성에서 시작되지만, 반성의 방법은 객관적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상대를 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결점이 부각되어지지 않으면 헛일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고, 그래서 자신을 버렸을 때에, 신의 빛이 들어 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처럼 자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육근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さてそこで、勇氣はどうすれば出るのでしょうか。
그러면, 용기는 어떻게 하면 나오는 것일까요.
任事や遊びでもいい、夢中になっているときは疲れを覺えないものです。用が濟んで、ヤレヤレと思ったときに疲らが押し寄せます。
일이나 놀이라도 좋고, 몰두[열중]하고 있을 때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용무가 끝나고, 아이구 라고 생각했을 때에 피로가 몰려옵니다.
よく引き合いに出る語ですが、ふだんは弱い女性が、火事で子供が家に閉じ込められたとき、その女性は我を忘らて火災の中に飛びこみ燒死寸前の我が子供を救ったといいます。夫は家の外でオロオロするはかりで肝心かなめなときに何も出來なかったというのです。
자세히 예[증거]로 들어 이야기합니다만, 평상시에는 약한 여성이, 불로 자식이 집에 갇혔을 때, 그 여성은 화재 속으로 뛰어들어가 불에 타 죽기 직전의 자기 자식을 구했다고 말합니다. 남편은 집 밖에서 허둥댈뿐이고 긴요한 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この話はいろいろな意味を含んていますが、こうした勇氣はどこから生まれたのでしょう。このときのこの女性は、アレコレ考える余裕はありません。ただ、我が子を救おうという一念だけでした。子供を救って自分の爲した行爲に自分でも仰天したというわけですが、眞性の自分に返ったときは誰しもこうした勇氣、行爲が出るものです。勇氣は虛勢や見榮、外見を氣にしているときは出ません。僞我のない裸の自分に立ち返ったときに、自然に湧き出るものです。また勇氣ある行爲は客觀的なもので、,自分では氣づかないものです。
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용기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요. 이 때의 이 여성은,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저, 내 자식을 구해야지라고 하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자식을 구하고 자신의 행한 행위에 스스로도 매우 놀랐다고 하는 것입니다만, 인위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누구든지 이러한 용기,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용기는 허세나 남의 눈, 외견[겉보기]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는 나오지 않습니다. 거짓된 자기본위의 생각이 없는 적나라한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에, 자연히 용솟음쳐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용기있는 행위는 객관적인 것이며,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성[眞性] <한자사전> 인위적(人爲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성질(性質)
<국어사전> 사물이나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성질.
덧붙여 참고삼아, 진성보리[眞性菩提]☞ [불교] 삼보리 가운데 하나. 우주의 본체이며 만유(萬有)의 실상(實相)인 진여(眞如)의 본체를 하나의 불과(佛果)로 간주하여 이르는 말. ^^ 이라 네요.
自分をつくる
[자기 자신을 만든다]
今年は我が國經濟社會にとって、一つの試練の年に當るでしょう。廣げすぎた高度經濟成長も、先が見えてきたといえるでしょう。作用反作用は、その振幅が大きいほと、大きく搖れ動きます。自己保存と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の反作用は、現實の經濟の動きをみるといちばんよく理解できます。
올해는 우리 나라 경제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시련의 해에 해당할 것입니다. 지나치게 확장한 고도경제성장도, 장래가 보여 왔다고 말할 수 있지요. 작용 반작용은, 그 진폭이 클 수록, 크게 요동합니다. 자기 보존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반작용은, 현실의 경제의 작용을 보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正法を理解しようとする人にあっては、まず、自分自身を作るということが大事です。昨年は自分をつくる年でした。しかし今年も自分をつくる年といえます。 ビル一つ建てるにも基礎がしっかりしていないと少しの地震にも倒れてしまいます。何をするのも基礎が大事であり、自分の心が不動のものなれば、どんな事態がおこって來てもハネ返してしまいます。しかし、心が出來ていないと、人の噂や變った話を耳にすると、心がゆらぎ自分を失います。
정법을 이해하려고 하면 사람에 있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만든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년은 자신을 만드는 해였습니다. 그렇지만 올해도 자신을 만드는 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빌딩 하나를 세우는 데에도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작은 지진에도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뭔가를 하는 것도 기초가 중요하며, 자신의 마음의 부동 그 자체가 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해도 극복해버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되어 있지 않으면, 남의 수군거림이나 바뀐 이야기를 얼핏 들으면, 마음이 흔들려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本來の自分自身は神の子の神性の自分である。慈悲と愛の心を持った自分自身です。そうして、神性の自分を確認する物差しが八正道であり、心に法燈をともし、調和の輪を廣げていくのは、神の子の當然の義務であり、責任なのです。
본래의 자기 자신은 신의 자녀인 신성[神性=신의 성격·성질, 마음. 정신]의 자신이다.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지닌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성[神性=신의 성격·성질, 마음. 정신]의 자신을 확인하는 척도[기준]가 팔정도이며, 마음에 법등을 켜고, 조화의 원형을 넗혀 가는 것은, 신의 자녀의 당연한 의무이며, 책임인 것입니다.
私たちがあの世からこの世に出生してくろときは、誰彼の差別なく、今度はこの点を修正し、人びとと手をとり合あて生きて行こうと誓って出てきます。しかし、肉體をまとい、環境や因習になれてくると、出生前の約束を忘れ、五官六根を中心とした自我欲望にほんろうされてしまいます。地上界はもともと不安定な物質界であり、心と物の關係が容易につかめない、心の本質も理解出來にくいので、どうしても物質中心の考え方に傾いてしまいます。しかしこれでは折角の修行の目的が失われます。自分自身を失ってしまいます。
우리들이 저 세상에서 이 세상에 출생하여 올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차별 없이, 이번에는 이 점을 수정하고,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살아가겠다고 맹세하고 나아옵니다. 그렇지만, 육체를 입고, 환경이나 인습에 길들어져 오면, 출생 전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오관 육근을 중심으로 한 자아욕망에 농락당해 버리고 맙니다. 지상계는 원래 불안정한 물질계이며, 마음과 물질의 관계를 용이하게 파악할 수 없고, 마음의 본질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며, 반드시 물질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기울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이래서는 모처럼의 수행의 목적을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고 맙니다.
八正道という心の法燈が存在し、大宇宙は中道の道を步むことによって安定しているのだから、私たちも、八正道の中道を軸に、每日の生活を送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팔정도라고 하는 마음의 법등이 존재하고, 대우주는 중도의 길을 걷는 것에 의해서 안정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팔정도의 중도를 축으로, 매일의 생활을 보내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今年一年、私だちはしっかりと己をつくり、來るべき年には、外に向かって多くの人びとを救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正法を學ぶ者の目標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올해 일 년, 우리들은 착실하게 자기를 만들고, 다가 올 해에는, 외부로 향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정법을 배우는 사람의 목표가 아니면 안 됩니다.
今年は不況下のインフレであり、こうした經濟事情はどうして生じたかを、靜かにながめる、よき機會ともいえます。
올해는 불황하의 인플레이션[inflation 물가상승, 통화 팽창]이며, 이러한 경제사정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조용히 눈여겨보는, 좋은 기회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心の偉大さは、時とともに明らかとなります。今年こそ、自分をつくって欲しいものです。
마음의 위대함은, 때와 함께 분명하게 됩니다. 올해야말로, 자신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Page 98~101
※인플레이션[inflation 인플레이션율, 인플레, 물가상승률, 통화팽창]
인플레이션(inflation)또는 물가상승은 한 국가의 재화와 용역가격등의 전반적인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상태를 말한다. 이는 동시에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과 구매력의 약화현상을 가져온다.... <출처 : 한국어 위키 백과사전>
諸行無常
[제행무상]
この言葉は暗い韻律を秘めている印象を與えているが、とんでもないことです。佛敎にしろ、釋迦という名にしても、我が國の一般民衆の間に知られるようになってから、たかだか百五十年ぐらいの歷史しか經っていないようです。そうした中で、平家物語にこの言葉が引用され、民衆になじまれたために、事實そのようなひびきを與えしてしまったようです。
이 말은 어두운 운률을 감추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불교라고 하더라도, 석가라고 하는 이름이라 해도, 우리 나라의 일반 민중들 사이에 알려지게 된 것은, 기껏해야 150년 정도의 역사밖에 경과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헤이케(平家)의 흥망성쇠를 그린 군담소설에 이 단어가 인용되어, 민중에게 친숙해졌기 때문에, 사실 그러한 영향을 끼쳐 버린 모양입니다.
헤이케모노가타리 Heikemonokatari[平家物語]
[문학]
일본의 가마쿠라(鎌倉) 막부 초기의 전쟁 이야기 책. 헤이케(平家) 일문의 성쇠를 주제로 한 산문 형태의 일대 서사시로 전편에 걸쳐 불교적인 무상관(無常觀)이 일관되게 드러나 있으며, 모두 12권으로 되어 있다.
諸行とは、大宇宙を含てた物質世界の生活行爲を指します。そうしてその生活行爲は,瞬瞬刻刻、變化變滅をくり返しています。常なき狀態です。生ある者は一刻といえども止まることを知らず、恒常に變化し、動いてます。
제행[諸行]이란, 대우주를 포함한 물질세계의 생활행위[生活行爲]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생활행위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함[變化變滅]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영구불변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생명[생물]은 한 순간도 멈출 줄 모르고, 항상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生ある者 = 생. 삶 목숨, 생명, 생물, 살아있는 것.
예로)生者必滅 =生あるものは必かず滅す 생자필멸.
諸行は無常なのです。
제행은 무상한 것입니다.
諸行無常を解釋すると、現象界の姿をそのまま傳えた言葉のように受けとれます。ところがこの言葉には、重大な意味が秘められているのです。それは神の意思です。生命の實態です。形あるものは、生命の實相を通して存在し、絶え間ない變化の過程を通して生き屬けています。變化し、形は變わっても、生命それ自身の意識は永遠に變わることなき生き通しの我であるのです。
제행무상을 해석하면, 현상계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한 말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중대한 의미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의 의사[意思=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생명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입니다. 물질은, 생명의 실상[實相]을 통해서 존재하고,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통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변화하고, 모습[형태]은 바뀌어도, 생명 그 자신의 의식[意識]은 영원히 변하는 일없이 줄곧 생존하는[줄곧 살아있는]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실태[實態] : 있는 그대로의 상태. 또는 실제의 모양(형편)
生者必滅の姿はあっても、魂の永遠性は不動です。諸行は、無常であるからこそ生命は生き永らえるのです。諸行が無常でなく有常であれば、物質世界は滅びるしかありません。有常とは生活行爲の停止を意味します。生死は動であるが、生のみがあって死のない世界は、生命のない停止の世界なのです。あの世とこの世があって魂の輪廻があるから、この世に生死あり、絶え間のない動的な生命の永遠行があるのです。
생자필멸의 모습은 있어도, 영혼의 영원성은 부동[不動]입니다. 제행은, 무상이기 때문에 생명은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행이 무상이 아니라 유상[有常]이라면, 물질세계는 멸망밖에 없습니다. 유상이란 생활행위의 정지[停止]를 의미합니다. 삶과 죽음[生死]는 움직임이지만, 삶만이 있고 죽음이 없는 세계는, 생명이 없는 정지의 세계인 것입니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이 있고 영혼의 윤회[輪廻]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삶과 죽음[生死]가 있고, 끊임없는 동적[動的]인 생명의 영원행[永遠行]이 있는 것입니다.
※부동[不動] : 물건이나 몸이 움직이지 아니함. 생각이나 의지가 흔들리지 아니함.
※유상[有常] : <일어사전> 상=常=영구불변함.
※영원행[永遠行] : 사전에 없는 말인데요. 문맥상 영원히 진행한다..같으네요.
無常は魂の進化を約束するのです。
무상은 영혼의 진화를 약속하는 것이다.
大變難しくなりましたが、私たちは現象の動きに心をとらわれてはなりません。生き通しの自分を失わぬことです。現象界の動きに心が奪われ執着すろと、その執着の分量だけ自分の心を傷つけます。地獄で苦しむ諸靈は、その全部が現象界に心を奪われた人たちのです。現象界は魂修行の場です。魂進化の大切な場所なのです。その無常の場を、有常の場に置き換えようとするから苦しみをつくるのです。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만, 우리들은 현상의 움직임에 마음을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줄곧 생존하는[줄곧 살아있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일입니다. 현상계의 움직임에 마음이 빼앗겨 집착하면, 그 집착의 분량만큼 자신의 마음을 상처 입힙니다.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여러 영혼[靈=혼령]은,그 전부가 현상계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인 것입니다. 현상계는 영혼 수행의 마당[場]입니다. 영혼 진화의 중요한 장소[場所]인 것입니다. 그 무상의 마당[場]을, 유상의 마당으로 바꿔 놓으려고 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만드는 것입니다.
※장[場] = 곳, 장. 마당. 장소. 자리, 장소[場所]= 장소.
私たちの住む世界はめまぐるしく變化しています。自己保存と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の渦といってよいでしょう。しかし私たちはこうした渦を恐れてはなりません。一日一生、無常の眞意を忘れず、不動の心ですごすなら、神は祝福と安らぎを與えてくれるでしょう。恐れず、惑わず、正法を心に打ち樹てることです。
우리들이 사는[거주하는] 세계는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기보존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소용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소용돌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1일 1생[一日一生], 무상[無常]의 참뜻[眞意]을 잊지 않고, 부동의 마음으로 지내면, 신은 축복과 평온함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지 않고, 정법을 마음 속에 심는 것이다.
ジャブド―バ―
[뱌브도바:동방의 나라]
ある方からこんな質問が來たので今回はそれに答えることにしましょう。
어떤 분에게서 질문이 온 것으로써 이번 차례는 그것에 대답하려 합니다.
質問の要旨はゴ―ダ·マブッタは、なぜ日本を再生の地としたか、どうしてアメリカや他國を選ばなかったか、というのです。
질문의 요지는 고다마 붓다(Gautama Buddha)는, 왜 일본을 재생[再生]의 땅으로 했는가. 어째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냐고 하는 것입니다.
※재생[再生] : 사후(死後)에 혼이 다른 육체(肉體) 속에서 다시 생활(生活)을 시작(始作)함. 소생. 되살아남. 회생.
一口でいえば、佛敎------正法が傳えられやすいからありました。
한마디로 말하면, 불교------정법이 전파되기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二千五百有余年前に釋迦は,ジャブド―バ―(東方國)の、ケントマティ―(都會)において、ふたたび正法流布を行うと第子たちに宣言しました。
2500여 남짓 년 전에 석가는, 쟈브도바(동방의 나라)의, 켄토마티(도회지)에서, 다시 정법유포를 행한다고 제자들에게 선언했습니다.
※도회[都會] = 혹은 도회지[都會地]
<국어사전> 사람이 많이 살고 상공업이 발달한 번잡한 지역.
<한자사전> 인구(人口)가 조밀(稠密)하며 상공업(商工業)이 발달(發達)하고 많은 문화적(文化的) 시설(施設)을 갖춘 번화(繁華)한 곳
どうしてこのような宣言になったかといいますと、今日の世界事情がどのように動き、人類の意識がどうかわっていくか、ということが、 ブッタには理解されていたからです。まずこのことが第一点。
어째서 이런 선언이 되었는가 하면, 오늘의 세계사정이 어떻게 움직이고, 인류의 의식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 라고 하는 것이, 붓다에게는 이해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사실이 첫 번째 이유.
第二点は、正法を再興する場合の地理的條件が加味されたのです。世界の交流がはじまったのは、でいぜいここ百年ぐらいの間です。それまではごく一部の要人、 商人を除いては、ほとんど他國との交涉を持つことがありませんでした。また持てなかったのです。正法が流布されていくには、言語や地理的條件が當然考慮されます。佛敎がインドからチブットに、そして中國に傳わり、日本に渡って來たのも、こうした環境的理由があって、必然の過程を通って來たのです。
두 번째 이유는, 정법을 다시 일으키는 경우의 지리적 조건이 가미되었던 것입니다. 세계의 교류가 시작된 것은, 기껏해야 이제 1백년 정도 사이입니다. 거기까지는 극히 일부의 중요(重要)한 자리에 있는 사람[要人], 상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른 나라와의 교섭을 지속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또한 지속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정법이 유포되어 가는 데는, 언어나 지리적 조건이 당연 고려됩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티벳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전파되어, 일본으로 건너온 것도, 이러한 환경적 이유가 있고, 필연의 과정을 통해서 왔던 것입니다.
第三点は、正法を理解するにはそれを受け入れる基礎的土壤が必要です。傳統や風習が異なり、ものの考え方に大きなへだたりがある場合は、正法を突然持ち込んでも、ごれを咀嚼するのにかなりの時間が要ります。しかし日本における佛敎の歷史は古く、そして傳敎大師が法華經を中國から持ち込むことによって、佛敎は定着したのです。その後、佛敎は形を變え、他力にかわりました。形だけとはいえ佛敎が日本人の生活の中にとけこんだことは事實であり、正法の眞意を傳えるのに、理解しやすい條件を生み出しています。一方また、日本人の勤勉さ、進取の氣性、他國の文化を受け入れる柔軟な素質などは、今日の經濟發展なり、科學や文化の進步をみれば釋然としてくるでしょう。
세 번째 이유는, 정법을 이해하는 데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기초적 토양이 필요합니다. 전통이나 풍습이 다르고,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에 큰 차이가 있는 경우는, 정법을 갑자기 갖고 들어와도, 이것을 음미하는데 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에 있어서 불교의 역사는 오래고, 그리고 전교대사[傳敎大師]가 법화경을 중국에서 갖고 들어온 것에 의해서, 불교는 정착했던 것입니다. 그 후, 불교는 모습을 바뀌어, 타력으로 변했습니다. 형태뿐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가 일본인의 생활 속에 녹아들은 것은 사실이며, 정법의 참뜻을 전하는 데, 이해하기 쉬운 조건을 낳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또한, 일본인의 근면함, 진취적 기질,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소질 등은, 오늘의 경제발전이 되고, 과학이나 문화의 진보를 보면, 석연(釋然)하여 올 것입니다.
このように、正法を流布するという前提で、日本という國が選はれ、今日、具體的な活動となっているのです。そうして、ここへくるまでには、現象界の狀況が絶えず見守られ、實在界で計畵されて來たのです。それゆえ、ブッタの公約は、必然の形をとって現在に至っているわけなのです。
이와 같이, 정법을 유포한다고 하는 전제에서,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가 선택되어, 오늘, 구체적인 활동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에 오기까지에는, 현상계의 상황이 끊임없이 지켜보아지져서, 실재계에서 계획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붓다의 공약은, 필연의 형태[모습]를 가지고 현재 이르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第三者からみると、アメリカやヨ―ロッパでも、と思われるでしょうが、右の事情を參酌すればおのずと理解されてくるでしょう。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나 유럽일지라도,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상의 사정을 참작하면 저절로 이해되어 올 것입니다.
正法流布は、こうした計畵性の下に進められてきているのです。
정법유포는, 이러한 계획성 하에서 진행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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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問 答 集
제2장 문 답 집
▶ 魂 ◀
영 혼
問 질문
魂とはどのような性質を持っていますか。心と魂のちがい、-------それともこの兩者は同じものですか。
영혼이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음과 영혼의 차이 -------그렇지 않으면 이 양자는 똑같은 것입니까.
答 대답
魂とは、個性を持った意識です。 エネルギ―の支配者です。人間の意識は、10%の表面意識と90%の潛在意識からできています。魂といわれる部分は本當は、表面意識と潛在意識の全體をいいます。ところが、表面と潛在の意識がわかれているために、全體を現わす魂を持った人は少なくなりました。
영혼이란, 개성을 가진 의식입니다. 에너지의 지배자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10%의 표면의식과 90%의 잠재의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혼이라고 불리우는 부분은 사실은,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의 전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표면과 잠재의 의식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를 나타내는[드러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은 적어졌습니다.
普通、魂といわれる部分は、表面意識と潛在意識の間に橫たわる想念帶と表面意識を指していっています。想念帶は今世の經驗、敎養、德性などを含むと同時にあの世の經驗、過去世の經驗も含まれています。このため同じものを見る、聞くにしても、人それぞれによって、受けとり方がみんなちがっています。これは想念帶の影響があるからです。したがって、人それぞれの魂の大小、在り方がでてきます。魂に個性があるというのも、このためです。
보통, 영혼이라고 불리우는 부분은,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의 사이에 가로놓이는[뻗어 있는] 상념대와 표면의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상념대는 금세의 경험, 교양, 덕성 같은 것을 포함하는 것과 동시에 저 세상의 경험, 과거세의 경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똑같은 것을 보고, 듣는다고 해도, 사람 각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방식이 모두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념대의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 각자의 영혼의 크고 작음, 본연의 자세가 나옵니다. 영혼에 개성이 있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地獄に墮ちた魂を指して、迷える魂といいます。これは今世においてその生活態度が表面意識に强く左右され、潛在意識につながる想念帶の善なる波動(自分の心にウソがいえない)を無視したために起こるのです。僞善、忿り、そねみ、 しっとなど。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가리켜, 방황하는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금세에 있어서 그 생활 태도가 표면의식에 강하게 좌우되어, 잠재의식으로 이어지는 상념대의 선한 파동(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할 수 없는)을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위선, 분노[노여움], 시기, 질투[嫉妬] 등.
※自分の心にウソがいえな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총괄해서, 하나로 합치기 전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라고 했습니다만,
남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이라고 재번역했습니다.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次に心とは、各人の意識の中心です。意識の中心とはたとえば圓全體を意識としますと、圓の眞中の一点、そうして各人の心は、神佛に同通していますから、心はなんでも知っています。ふつうあの人の心は美しい、汚ないとよくいいます。これは想念帶の影響によるところであって、嚴格には、あの人の想念は美しい、汚ない、といった方が適切なのです。しかし、これでは一般的に通用しませんので、想念を心といっています。
다음에 마음이란, 각자의 의식의 중심입니다. 의식의 중심은 예를 들면 원전체를 의식이라고 하면, 원의 한 가운데의 한 점, 그렇게 해서 각자의 마음은, 신불에게 동통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무엇이든지 알고 있습니다. 보통 저 사람의 마음은 아름답다, 더럽다고 자주 말합니다. 이것은 상념대의 영향에 말미암은 경우가 있고, 엄격하게는, 저 사람의 상념은 아름답다, 더럽다, 라고 하는 편이 적절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는 일반적으로 통용하지 않기 때문에, 상념을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しかし心のものは、神佛の心に同通しているのですから、太陽のように、慈悲と愛だけなのです。汚ないとか、美しい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す。ちょうど太陽を中心に、地球を始めとして九惑星が自轉公轉していますが、このときの太陽は、神であり、心であり、地球は私たちの想念の部分に當るといっていいでしょう。
그렇지만 마음 자체는, 신불의 마음에 동통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태양과 같이, 자비와 사랑뿐인 것입니다. 더럽다라든가, 아름답다라는가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시작으로 해서 9혹성이 자전공전하고 있습니다만, 이 때의 태양은, 신이며, 마음이며, 지구는 우리들의 상념의 부분에 해당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さて、魂と心の關係ですが、前述のように心そのものは、神佛そのものですが、魂は、心を中心とした圓全體の意識(表面,想念帶,潛在)ですから、各人の魂にはそれぞれの轉生輪廻の歷史があります。したがって、それぞれの個性を持ち、心の波動をうけながら、向上進步してゆくものです。このように魂と心は、個個獨立したものではないのですが、 ふつうは、表面意識と、表面意識側の想念帶の、惡い部分に左右されてしまうために、心に通じた魂を現わしてゆく人は、ひじょに少ないわけです。
그럼, 영혼과 마음의 관계입니다만,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마음 그 자체는, 신불 그 자체입니다만, 영혼은, 마음을 중심으로 한 원전체의 의식(표면, 상념대, 잠재)이기 때문에, 각자의 영혼에는 저마다의 전생윤회의 역사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마음의 파동을 받으면서, 향상 진보해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혼과 마음은, 각각 독립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만, 보통은, 표면의식과, 표면의식측의 상념대의, 악한 부분에 좌우되어 버리기 때문에, 마음에 통한 영혼을 나타내어 가는 사람은, 상당히 적은 셈입니다.
祈りについて
[기도에 대해서]
問 질문
祈りについて。その必要性はありますか。どのような效果があるのでしょうか。
기도에 대해서. 그 필요성은 있습니까. 어떠한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答 대답
あの世、實在界(天上界)では、祈りという想念はありません。なぜないかといえば,行爲が祈りとなっているからです。いうなれば、現實の生活と理想とが一つにとけ合っているからです。調和されているからです。
저 세상, 실재계(천상계)에서는, 기도라고 하는 상념은 없습니다. 왜 없는가냐고 하면, 행위가 기도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현실의 생활과 이상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ところが、人間が肉體を持ち、地上の生活をする段になりますと、現實と理想のくいちがいが、每日の生活の場において出て參ります。このために、肉體を持った人間は、どうしても、祈らずには、いられぬように出來ております。一つには、地上の人間は10%の意識で生活し、天上界は90%の意識で每日を送るためのちがいといってもいいわけです。一寸先がヤミですから、祈る心がわくのも當然であります。
그런데,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지상의 생활을 하는 단계가 되면,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가, 매일의 생활의 마당에 있어서 드러나옵니다. 이 때문에, 육체를 가진 인간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로는, 지상의 인간은 10%의 의식으로 생활하고, 천상계는 90%의 의식으로 매일을 보내는 원인이 차이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인생의 앞일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마음이 솟아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さて、そこで、その必要性があるのかどうかです。これは大いにあります。
그럼, 그래서, 그 필요성이 있는가 어떤가 입니다. 이것[필요성]은 매우 많습니다.
祈る自分は10%の意識です。祈られる相手は、自分を守り續けでいる守護靈であり、指導靈でもあります。
기도하는 자신은 10%의 의식입니다. 기도의 대상의 되는 상대는, 자신을 계속 지키고 있는 수호령이며, 지도령이기도 합니다.
想えば、想われるで、守護指導靈にたいして、絶えず心を向けていれば、守護指導靈は、守りやすく、指導しやすくなります。守りやすく、指導しやすくなれば、その人の每日の生活は、安心と喜びに滿ちてきます。當然の歸結です。したがいまして、10%の意識で生活する地上の人間にとって、祈りは、欠くことのできない、重要な行爲の一つとなります。
생각하면, 생각할 수 있고, 수호 지도령에 대해서, 끊임없이 마음을 쓰고 있으면, 수호 지도령은, 지키고 쉽고, 지도하기 쉽게 됩니다. 지키고 쉽고, 지도하기 쉽게 되면, 그 사람의 매일의 생활은, 안심과 기쁨으로 충만되어 옵니다. 당연한 귀결입니다. 따라서, 10%의 의식으로 생활하는 지상의 인간에게 있어서, 기도는, 소홀히 할 수 없는[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행위의 하나가 됩니다.
次に、祈りの效果です。これは重要です。
다음에, 기도의 효과입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祈りの本質は、10%の表面意識が、守護指導靈の住む、己の90%の潛在意識に投げかける光のかけ橋です。守護指導靈は、常に10%の意識で修行する現象界の人間にたいして、道を外さぬように見守り、指導していますので、10%の意識が想いを向ければ、いつでも手をかし(光のかけ橋)でくれるのです。
기도의 본질은, 10%의 표면의식이, 수호 지도령이 사는[거주하는], 자기의 90%의 잠재의식에 보내는 빛의 가교(架橋)입니다. 수호 지도령은, 항상 10%의 의식으로 수행하는 현상계의 인간에 대해서,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보고, 지도하고 있기 때문에, 10%의 의식이 생각을 돌리면, 언제나 거들어 도와주는(빛의 가교[架橋]) 것입니다.
★제3장 "울림"에서는, 가교(棧橋)의 뜻으로 풀었습니다★
★架橋 [가교]
①서로 떨어져 있는 두 대상을 이어 주는 사물이나 사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かけはし [ 掛橋,懸橋 ]
1.사다리.
2.험한 벼랑 등에 판자 등을 걸쳐 만든 다리.
예)赤坂に梯カケハシして <三蔵法師伝、永久点>
아카사카(소재지 미상)에 다리를 놓고
3.임시로 걸쳐 놓은 다리.
4.다리를 놓음. 중간 역할을 함.
예)友好の掛橋우호의 가교
★잔교(棧橋)
②계곡을 가로질러 절벽과 절벽 사이에 높이 걸쳐 놓은 다리
★예전에는, 假橋(가교), 즉 임시로 만들어 놓은 다리, 란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오역입니다. 죄송합니다.
ただ、問題は、その祈りが、自己保存のためか、調和のためであるかによって、大きな差が出て來るのです。普通は、誰しも、病氣や家庭不和、事業不振が出てこないと祈る氣持は湧いてこないようです。ですから、最初はそれも任方がありません。しかし、本當の祈りというものは、現實的な幸、不幸ではなく、現在、生かされている、その自體に感謝することであり、その感謝の相いで、日日の生活を行じることが大切です。
단지, 문제는, 그 기도가, 자기보존을 위함인가, 조화를 위함인가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나오는 것입니다. 보통은, 누구든지 질병이나 가정불화, 사업부진이 나오지 않으면 기도하는 기분[마음]은 솟아나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최초에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진실한 기도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인 행복, 불행이 아니라, 현재, 되살려지고 있는, 그 자체에 감사(感謝)하는 것이며, 그 감사(感謝)의 생각으로, 하루하루의 생활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人間は、生かされ、生きてゆくものです。だが、調和の心で生きてゆく、という自覺が出たときは、感謝の氣持が報恩の行爲となってきます。いうなれば、10の意識と90の意識が同通したことを意味します。このときこそ、人は、眞の安らぎを得、環境も、健康も整い、天命のままに生きることになります。
인간은, 되살려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화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라고 하는 자각이 나왔을 때는, 감사(感謝)의 기분[마음]이 보은(報恩)의 행위가 되어 옵니다. 말하자면, 10의 의식과 90의 의식이 동통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야말로, 사람은, 참된 평온함 얻고, 환경도, 건강도 정리되어, 천명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天命に生きるということは、自分が地上に生まれてきた目的、使命がわかり、それに向かって生き續けることをいうのです。
천명으로 산다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지상에 태어나온 목적, 사명을 알고, 그것에 향해서 삶을 지속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の祈りも、ここまで高めたいものです。
우리들이 기도도, 여기까지 향상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Page 109~113
▶慈 悲◀
자 비
問 질문
慈悲について說明して下さい。
자비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요.
答 대답
心を失った人、迷いフチに立たされた人、病にたおれた人びとにたいしても、無限に供給してやまない、いつくしみの心、なさけの心、これを、慈悲といいます。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 미망의 수렁에 처하게 된 사람, 병으로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량 없이 공급하며 그치지 않고, 자애[사랑]의 마음, 인정의 마음. 이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 못, 소, 수렁[フチ 淵]= 헤어나기 어려운 괴로운 처지·심경.
もし、この宇宙に、慈悲の心が失われたとしたら、地上は、とうの昔に亡びていたでしょう。幸いにして、神の慈悲、佛の心があればこそ、我我人類は、過去、何回となく繰り返されてきた天變地異の災害をも、乘りこえてこられたのです。
만약, 이 우주에, 자비의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지상은, 오래 전에 멸망했을 것입이다. 다행히도, 신의 자비, 부처의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들 인류는, 과거,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던 천재지변의 재해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人と人との關係においても、慈悲をもって接するようになれば、現代のような獨りよがりのエゴイズムは、たちまちにして、雲散霧消してしまうでしょう。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비를 가지고 만나게 되면, 현대와 같은 독선적인 이기주의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慈悲の本質は、太陽のように、無限に供給してやまない熱、光のエネルギ―そのものであり、水の生命にみられるような、惜しみない全なる心をいうのです。相手が善人であろうと、惡人であろうと、生命あるものにたいしては、それを生かし續けようとする無私なる心、いつくしみの心、なさけの心です。
자비의 본질은, 저 태양과 같이, 한량 없이 공급하며 그치지 않는 열, 빛의 에너지 그 자체이며, 물의 생명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은, 아낌없는 온전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되살리도록 하는 사리사욕이 없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정(情)의 마음이다.
ここで間違えてはこまることは、慈悲の心とはそのように高く、廣いものであり、慈悲の安賣り、慈悲の要求は、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여기에서 잘못해서는 난처해지는 것은, 자비의 마음이란 그와 같이 높고, 넓은 것이며, 값싼 자비를 베풂(자비를 무턱대고 베풂), 자비의 요구는,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慈悲の安賣りとは、自己の能力の限界を超えて、慈悲の言葉に醉ってしまうことです。安賣りの結果、ふりかえってみたら、苦しくなったのでは、これは慈悲でもなんでもありません。慈悲の名を借りた自己滿足の結果です。
값싼 자비를 베풂(자비를 무턱대고 베품; 자비를 마구 베풂)이란, 자기의 능력의 한계를 초월해서, 자비의 말에 미혹[迷惑]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구 베품(값싼 베품;무턱대고 베품)의 결과, 뒤돌아보면, 괴롭게 되었던 것에는, 이것은 자비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비를 핑게삼은[자비의 이름을 빌린] 자기만족의 결과입니다.
次に、慈悲の要求とは、甘えであります。自分は、これこれのことをしているから、自分は、自分は------といったものがうちにあって、やたらと人に無心したり、人に善意を强要する。こうしたことは互いに、いましめ、注意してゆかねばなりません。
다음으로, 자비의 요구란, 응석부림입니다. 자신은,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자신은----- 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 속에 있고, 함부로 남에게 무심하거나, 남에게 선의(善意)를 강요한다. 이러한 것은 서로가, 훈계하고, 주의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自分(일본말이며, 자기 자신, 나, 나, 자기)란 뜻입니다.
眞の慈悲は、太陽のように、その熱、光を地上に無限に供給してやまないものです。正道の精神が理解され、行爲されてくると、慈悲の心が湧いてくるものです。
진정한 자비는 태양과 같이, 그 열, 빛을 지상에 한량 없이 공급하며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정도[正道]의 정신이 이해되고, 행위로 되어 오면, 자비의 마음이 샘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 愛 ◀
사 랑
問 질문
愛について簡單に敎えてください。
사랑에 대해서 간단히 가르쳐 주십시요.
答 대답
ふつう一般に、愛とは男女の愛、夫婦の愛とみてしまいますが、愛の本質は、愛憎の愛とはちがいます。もちろん、夫婦の愛、男女の愛も、愛の現われといえないことはありません。顚倒夢想の世にあって、男女の愛は、人間生活に、希望と生きがいを與える役割を果たしているからです。
보통 일반적으로, 사랑은 남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으로 봐 버립니다만, 사랑의 본질은, 애증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물론, 부부의 사랑, 남녀의 사랑도, 사랑이 표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몽상의 세계에 있어서, 남녀의 사랑은, 인간생활에, 희망과 사는 보람을 주는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しかし、本當の愛は、神の愛をいうのです。神の愛とは、無私なる心、いつくしみの心、なさけの心、思いやりの心です。
그렇지만, 진정한 사랑은, 신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의 사랑이란, 공평무사한 마음, 사랑[자애]의 마음, 인정의 마음,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聖書マタイ傳第五章で、イエスは、このようにいっています。「幸福なるかな、心の貧しき者。天國はその人のものなり。幸福なるかな,柔和なる者。その人は地を嗣がん。幸福なるかな、平和ならしむる者。その人は神の子と稱へられん------」
성서 마태복음 제5장에서, 예수는,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할 지어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천국은 그 사람의 것이니라. 행복할 지어다, 부드럽고 온화(柔和:유화)한 자여, 그 사람은 땅을 이어받으리라. 행복할 지어다, 평화롭게 하는 자여. 그 사람은 신의 자녀로 불리우리라-----」
※ ▲참고로,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나오는 팔복의 일부분입니다.
3.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5.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9.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children of God.
★제가 교회를 22년 다녔던 사람입니다. 목사가 될려고, 신학대학교 교재로 공부도 했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너의 것이니라, 란 말을, 말라키, 구약성서의 마지막 예언자, 신약과 구약시대 사이의 약 500년 기간 전의 사람이 한 말 중에, 10일조, 라는 말을 인용하여,
성경도 한 번 다 끝까지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식으로, 변질되어 버리게, 해석, 번역해서, 돈을 요구하는 형태로 바뀌게 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돈만 바라는 욕심쟁이구나, 해서, 교회를 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불교신자도 역시 아닙니다.
これはどういうことかというと、心の貧しいとは、おごる心のない者。柔和とは心のおだやかなこと。平和ならしむる者とは、爭いを好まぬことをいっており、こうした心を持った者は神の愛をうけ、天國の住者であるというのです。こうした心は,自我が强くては生まれてきません。無私なる心、なさけの心がなくてはでてこないのであります。
이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마음이 가난함이란, (재능·지위·권세등을) 뽐내며 남을 얕보는 마음이 없는 자. 부드럽고 온화함(柔和:유화)이란 마음이 평온한 것(조용하고 차분한 것). 평화롭게 하는 자란, 다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는 신의 사랑을 받아, 천국의 거주자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자아(自我: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가 강해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공평무사한 마음, 인정(정, 인정;자비, 동정 なさけの心)의 마음이 없어서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ががつよい[我が強い]: "고집이 세다. 아(我)가 강하다,자손심이 세다"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본문에서, 自我が強くては生まれてきません。자아(自我: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가 강해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自我=Ego=자존심, 자부심. 이런 뜻이 있습니다.
慈悲の心も、無私、なさけ、思いやりでありますが、愛もやはり同じなのです。慈悲も愛も、ともに神の光ですから、同じ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자비의 마음도, 공평무사, 인정, 남을 헤아리는 마음입니다만, 사랑도 역시 똑같은 것입니다. 자비도 사랑도, 다같이 신의 빛이기 때문에, 똑같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ただ、愛は、その根本は慈悲と同じですが、働きとしては,「許し」であり,相互扶助です。
단지, 사랑은, 그 근본은 자비와 똑같습니다만, 작용(기능)으로는, 「용서[許し]」이며, 상호부조입니다.
★ゆるし(許し)란 말은, 뜻이 2가지입니다. 허가, 용서 둘입니다.
이 문장에서는, 용서(容恕)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もし、この地上に「許し」という免罪符がないとするなら、人間は、原罪というカルマから、のが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原罪とは、煩惱という神の子の神性を汚す、想念行爲をいうのです。しっと、怒り、僞我、欲望-----。こうした想念は、神性であるべき己の心を毒します。しかし、人間が肉體を持ち、相對界で生活していますと、どうしてもそうした想念にとらわれてしまいます。そこで、地上の人間を敎うために、神は、愛の光を投げ與えてくれているのです。
만약, 이 지상에 「용서」라고 하는 면죄부가 없다고 하면, 인간은, 원죄라고 하는 카르마[業=업]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원죄[原罪]는 번뇌라고 하는 신의 자식의 신의 성품[神性]을 더럽히는, 상념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질투[嫉妬], 분노[노여움], 거짓된 자신[僞我], 욕망 -----. 이러한 상념은, 신의 성품이어야 할 자기의 마음을 해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육체를 갖고, 상대계[相對界]에서 생활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그러한 상념에 사로잡혀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지상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신[神]은, 사랑의 빛을 던져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すなわち,「許し」という光です。
즉, 「용서」라고 하는 빛입니다.★僞我(위아), 굉장히 어려운 단어입니다.
★진아(眞我)의 반대말인데요. 위아(僞我)란 쉽게 말하면, 늘 거짓말만 하는 사람 혹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 2017년 4월 14일 현재, 위아는, 자기본위(自己本位)라고도 합니다)
人間がその原罪を認め、ザンゲし、率直に心で新生しようとするとき、神はその人に愛の手をさしのべ、その罪を許してくれるのです。
인간이 그 원죄를 인정하고, 참회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새로 태어나려고 할 때, 신[神]은 그 사람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어, 그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もうひとつ大事なことは「相互扶助」です。互いに助け合うことがなければ、人は一人として立つことはできません。私たちの生活は、多くの人たちの愛の上に成り立っています。助け合う心は地上における光です。慈悲を、法の縱光とすれば、愛は、この地上界の橫の光であるといえましょう。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상호부조」입니다. 서로가 서로 힘을 합치는 일이 없으면, 사람은 혼자서는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위에 성립하고 있습니다. 서로 힘을 합치는 마음은 지상에 있어서 빛입니다. 자비를, 법의 세로의 빛이라고 하면, 사랑은, 이 지상계의 가로의 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age 114~118
▶ 正法と己の心 ◀
[정법과 자기의 마음]
問 질문
正法は己の心を信じよといいますが、これについて、もう少しわかりやすく說明して下さい。
정법은 자기의 마음을 믿으라고 말합니다만,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십시요.
答 대답
これまでの他力信仰で、そこに敎祖が存在する場合、敎祖の一擧手一投足が、信者にたいする敎えにつながっています。そうして良いにつけ、惡いにつけて、その影響は、絶對的なようです。不信や疑問の余地を與えるいとまがありません。 盲信、狂信は、こうした狀況の中から生まれます。
여태까지의 타력신앙에서, 거기에 교주가 존재하는 경우, 교주의 일거수일투족이, 신자에 대한 가르침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영향은, 절대적인 모양입니다. 불신이나 의문의 여지를 줄 겨를이 없습니다. 맹신, 광신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겨납니다.
ところが、正法については、こういうことはあり得なのです。なぜかといいますと、正法は、自分という存在を拔きにして、存在しないからです。あの人がいる、この人こいるという感覺は、自分という存在があるからこそ、認知できるのです。宇宙という存在も、地球という槪念も、自分が呼吸し、生きているからわかるのです。眼ってしまえば、宇宙の存在、家庭のこと、職場も、すべて、わかりません。眼がさめてはじめて、あらゆる諸現象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
그런데, 정법에 대해서는, 이러한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법은,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빼고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있다라고 하는 감각은,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인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라고 하는 존재도, 지구라고 하는 개념도, 자신이 호훕하고,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잠들어 버리면, 우주의 존재, 가정의 일, 직장도, 전부, 모릅니다. 잠이 깨고서 비로소, 모든 여러 현상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正法の出發点は、それゆえに、自分を發見することから、はじまり、それにつきるのであります。自分のない正法、自分を無視した正法、自分から離れた正法というものは、それは、ないのであります。
정법의 출발점은, 그러므로,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다. 자신이 없는 정법, 자신을 무시한 정법, 자신으로부터 벗어난 정법이라는 것은, 그것은, 없는 것입니다.
さて、そこで、己自身を知る、正法を知るには、どうすればよいか。それは、己の心を信じ、八正道を行い、反省という光の觸媒を通じて得られるものです。
그럼,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알고, 정법을 아는 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은, 자기의 마음을 믿고, 팔정도를 실행하고, 반성이라고 하는 빛의 촉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ところが、人間の心、宇宙、神、正法というものは、くめどもつきぬ深遠さに包まれています。これでよしとする極点は、そうやすやすとは、手に入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
그런데, 인간의 마음, 우주, 신, 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물을 퍼도 끝이 없는 심원[深遠]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것으로 좋다고 하는 극점(절정)은, 그렇게 손쉽게는, 손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このため、ややもすれば、人はその困難さにうち克つことができず、環境に負けてしまいます。負けない自分を支えてくれるものはなにか。それは、やはり自分自身なのです。環境に負けるとは、自分自身に負けることなのです。
이 때문에, 자칫하면, 사람은 괴로움을 이겨 낼 수가 없고, 환경에 져 버리고 맙니다. 지지 않는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환경에 지는 것이란, 자기 자신에게 지는 것입니다.
自分を敎うものは自分しかありません。自分に負けそうになった祈りなさい。祈る心で自分を立たせなさい。己の心、そうして正法はこうした中から理解を深めてゆくものです。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지게 되었다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세우십시오. 자기의 마음, 그렇게 해서 정법은 이러한 가운데에서 이해를 깊게 해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ㅡ, 기도하십시오. 라고 하는 부분은, 신에게 의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법과 기도편에 상세히 나옵니다.
▶靈 道◀
[영 도]
問 질문
普通一般に、見えない世界がみえたり、靈聽などを指して、靈能とか、靈媒とかいっています。過去世を語る靈道とどうちがいのですか。それともある程度、同質のものなのでしょうか。
보통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거나, 영청 같은 것을 가리켜, 영능이라든가, 영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세를 말하는 영도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느 정도, 동질적인 것입니까?
※영시[靈視]: 죽은 귀신들 본다는 말입니다.
※영청[靈聽]: 죽은 귀신들 말소리를 듣는 것.
※영매[靈媒]: 신령이나 혹은 귀신들과 살아 있는 사람의 중매자. 흔히 무당이나 혹은 그런 방면에 그런 것.
귀신들과 대화하고 하는 분들.
※영도[靈道]: 사전에 없네요. 영적 능력을 이르는 길. 그런 뜻이죠. 전 아는데요. 설명하기가. 영의 길.
※영능[靈能]: 신령스러운 능력.
※영력[靈力]: 영적인 힘.
答 대답
まず、靈能、靈媒についてみると、ほとんどの人は前世、過去世で「行」をやっています。それも肉體行です。肉體行の目的は、肉體にまつわる想念にとらわれない自分を確立することにあります。痛い、苦しい、うまいものを欲するとか、そうした相念にとらわれないために、瀧に打たれ、禪を組み、火に腕を入れたり、釘をさしたりして肉體をいじめ、きたえることによって、それに堪える感覺がやしなわれ、肉體細胞意識に、抵抗力がつきます。抵抗力がつけば、大抵の痛み苦しみに、自分の心は左右されない。こうしたときに、表面意識と潛在意識が、同通します。つまり、靈能がおこります。通常の靈力、靈能はこのような過程でおこるわけです。こころが、正法を知らずに肉體行のみに專念しますと、通常にない能力を身につけますから、つい有頂天になり、自分の心がふりまわされてしまいます。すると、魔王や動物靈のまたとない獲物となってしまいます。
우선, 영능, 영매에 대해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전세, 과거세에서 수행(行)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육체수행입니다. 육체수행의 목적은, 육체에 엉겨 붙은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는[얽매이지 않는] 자신을 확립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프다, 괴롭다, 그럴싸한 것을 가지고 싶다든가, 그러한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폭포를 맞고[폭포를 맞으면서 수행하고], 선종의 수행을 행하고[참선하고], 불에 팔을 집어넣거나, 못을 박거나 해서 육체를 학대하고, 단련하는 것에 의해서, 그것을 참아내는 감각이 길러져서, 육체세포의식에, 저항력이 붙습니다. 저항력이 붙으면, 대개의 통증 괴로움에, 자신의 마음은 좌우되지 않는다. 이러한 때에,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이, 동통합니다. 즉, 영능이 생긴다. 통상의 영력, 영능은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법을 모르고 육체수행에만 전념하면, 통상적으로 없는 능력을 익히기 때문에, 무심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되어(유정천이 되어(有頂天)=무의식상태가 되어), 자신의 마음이 휘둘려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마왕이나 동물령의 두번 다시없는 사냥감[먹이]이 되어 버립니다.
☞瀧に打たれ, 폭포를 맞다 즉, 폭포를 맞으면서 수행한다는 의미 같으네요.
★★유정천(有頂天) 뜻이 여럿입니다.
1.유정천(有頂天) 꼭대기에 오른 것처럼 어떤 일에 열중하여 무의식상태가 됨
2.하도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름
5.형태가 있는 세계의 가장 위에 위치한다
★기존에, 2번에 해당하는 글로 번역했습니다.
오늘 현재 2015년 11월 09일에 보니, 1번의 의미로 번역해야 글 내용에 맞다고 여겨집니다.
今世で「行」らしい「行」をしないで、フトした機會で靈力や、靈能を身につけたといわれる人は、大抵、前世で肉體行をやっていますが、その能力を過信し、自分を失うと大變なことになります。行者の末路は哀れといわれるのも、動物靈や魔王に、身も心も明け渡してしまうからです。
현세에서 수행다운 수행을 하지 않고, 우연한 기회에 영력이나, 영능을 익혔다고 말해지는 사람은, 대체로, 전세에서 육체수행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능력을 과신하고, 자신을 잃어버리면 큰 일이 됩니다. 수행자의 말로는 가련하다고 말해지는 것도, 동물령이나 마왕에게, 몸도 마음도 비워 주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正法の根本は、神の子の己自身です。靈能そ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靈能は、神の子の自分にめざめたときに、二次的副作用として起こるものです。靈道の原則はこの一点にあります。したがって靈道は、今世の肉體行の有無には關係ありません。日日の生活の場において、中道の心を失わず、人間らしい、正しい法にそった生活を送るならば自然にひらけます。
정법의 근본은, 신의 자녀인 자기 자신입니다. 영능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영능[靈能]은, 신의 자녀인 자신에 눈을 덨을 때에, 2차적 부수적인 작용으로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도의 원칙은 이 한 점에 있습니다. 따라서 영도는, 현세의 육체수행의 유무에는 관계없습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의 마당에서, 중도의 마음을 잃지 않고, 인간다운, 올바른 법에 따른 생활을 보내면 자연히 열립니다.
パラミタ、あるいは過去世を語る靈道は、反省と調和によってひらきます。しかし、現象的には、偶然あるいは己の意識に關係なくおこる場合もあります。このため、ややもすればその靈道に、正しい理解を持たずにすごすといる場合があろのです。決して偶然とか、自分の意思に關係のない一方通行によってひらい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己の意思に關係ないとはいえ、90%の潛在意識は、それをよく知っているのです。すなわち、90%の潛在意識層にあるその人の守護靈は、十分それを知っていて、意識の中から現出されてくるのです。
파라미타((Paramita), 파(바)라밀다[波羅蜜多]의 음역(音譯)), 혹은 과거세를 말하는 영도[靈道]는, 반성과 조화에 의해 열립니다. 그렇지만, 현상적으로는, 우연 또는 자기의 의사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칫하면 그 영도에, 올바른 이해를 갖지 않고 생활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결코 우연이라든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통행에 의해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의사에 관계 없다고는 말할 수 있고, 90%의 잠재의식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즉, 90%의 잠재의식층에 있는 그 사람의 수호령은, 충분히 알고 있고, 의식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오는 것입니다.
パラミタの靈道には,ある目的があります。それは人類の調和に役立たせるということです。したがってその靈道は、普通一般の靈力、靈能とちがい、自分の潛在意識がひらかれ、過去世の意識がよみがえるという素晴らしいものであり、靈道者は、現在以上の心の調和をめざ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いやしくも、その靈道を、當てものや、己の欲心に求たり、オモチャにするようなことがあれば、その反動は,必ずや己自身にふりかかってくることを銘記すべきです。
파라미타[((Paramita), 파(바)라밀다[波羅蜜多]의 음역(音譯))의 영도[靈道]에는,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조화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영도는, 보통 일반적인 영력[靈力], 영능[靈能]과 다르고, 자신의 잠재의식이 열려, 과거세의 의식이 되살아난다고 하는 매우 훌륭한 것이며, 영도자[靈道者]는, 현재 이상의 마음의 조화를 눈 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적어도, 그 영도를, 알아맞히는 것이나, 자기 욕심을 바라거나,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은 일이 있으면, 그 반동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몸에 닥쳐온다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이 문장에서의 行(행)이라는 글자는, 수행(修行)이란 뜻입니다.
Page 118~122
[正法と祈り]
[정법과 기도]
問
正法は自力であるということは、ほぼ理解がつきました。 しかし祈りは、打力につきもののように思います。したがって他力信仰と祈りについては理解できますが。正法(自力)のなかにも「祈り」があるというのは、どうも合点がゆきません。 この兩者を、どうのように理解すればいいのですか。
질문 : 정법은 자력이라고 하는 것은, 대강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타력에 으레 따르게 마련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따라서 타력신앙과 기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정법(자력) 가운데에서도 「기도」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납득(수긍)이 안 갑니다. 이 양자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 것입니까?
答
まず、「祈り」の意議について考えてみます。祈願文の解說(拙著『心の指針』を參照)にもありますように、祈りとは、あの世では行爲を意味します。 あの世の上段階にもいりますと、慈悲と愛のみなり、「祈り」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なんとなれば行爲がすなわち光となって四方に放ちますから、「祈る」必要がないのです。 もっとも、あの世でも「祈る」必要のある世界はあります。れどもあの世の人の意識がこの世とちがい、90%はひらかれ、潛在意識は10%となりますから、これはいけないと思い、反省し、修正すれば、ただちに、その反省にたいする結果がでて、心の淨化が非常にはやく行われます。ですから同じ祈りにしても、あの世とこの世では、その比重がちがいのです。
대답 : 우선, 「기도」의 의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원문의 해설(졸저 『마음의 지침』을 참조)에도 있는 것과 같이, 기도란, 저 세상에서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저 세상의 상단계에 있게 되면, 자비와 사랑의 마음만이 되며, 기도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위가 즉 빛이 되어 사방으로 방사되기 때문에, 「기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더욱, 저 세상에서도 「기도」 필요가 있는 세계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세상의 사람의 의식은 이 세상과 달리, 90%는 열려 있고, 잠재의식은 10%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안된다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수정하면, 즉시, 그 반성에 대한 결과가 나와서, 마음의 정화가 상당히 빨리 행해집니다. 그러므로 같은 기도라 해도, 저 세상과 이 세상에서는, 그 비중이 다른 것입니다.
この地上の生活は一寸先がヤミです。人間と意識量は、わずかに10%しか通常は働いていないのですから、一時間後、一分後の自分の運命さえわからないのですごしています。それたけに、金に賴るか、人に賴るか、地位に賴るか、天に賴るか、神佛に賴るか、何にかに賴らないと心もとないというのが私たち一般の人間の心でしょう。このため、「祈り」はその賴りない人生の、救いの擔い手として考えられ、他力信仰の中では、重要な位置を占めてきたといえでしょう。
이 세상의 생활은 한치 앞이 어둠(암흑)입니다. 인간의 의식량(意識量)은, 불과 10%밖에 통상은 작용하고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1시간 후, 1분 후의 자신의 운명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돈에 의지할까, 남에게 의지할까, 지위에 의지할까, 하늘에 의지할까, 신불(神佛)에게 의지할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은 것이 우리들 일반의 인간의 마음이겠지요. 이 때문에, 「기도」는 그 의지하지 않는 인생의,(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인생의) , 구제(도움)의 일꾼으로서 생각되며, 타력신앙 속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しかしながら賴る「祈り」で、人は眞に救われるでしょうか。佛壇に手を合わせながら、子供を叱りつける圖は、よくみけるところです。 昔の念佛行のなかには、人を殺しても、念佛をあければ成佛すると勘違いしている人がいたようです。 こういう「祈り」を「祈り」といえるでしょうか。「祈り」とは、賴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그렇기는 하지만 의지하는 「기도」로, 사람은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부처를 모셔놓은 단(佛壇)에 손을 합장하면서, 자식을 몹시 야단치는(꾸짖는) 그림은, 자주 눈에 띄이곤 합니다. 옛날의 염불수행의 가운데에는, 사람을 죽이고도, 염불을 외우면 성불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도」란,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正法の「祈り」は、行爲を意味します。「祈り」の必要性は、賴るためのそれではなく、10%の意識量で生活する想念と行爲に誤ちがないのように、己の心を調和させる、そのために、「祈る」ものないのです。 そうして、そへはまた、感謝の心となるもの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なぜなら、健康で、家庭が圓滿で、每日每日の生活が、調和された姿で送れるということは、大自然をはじめ、守護靈、指導靈、萬生萬物、先祖の諸靈の恩惠にようものであり、したがって、「祈り」は、感謝の心の現われとなるものであるからです。
정법의 「기도」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기도」의 필요성은, 의지하기 위한 그것이 아닌, 10%의 의식량으로 생활하는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에 잘못이 없도록, 자기의 마음을 조화시키는, 그것 때문에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또한, 감사(感謝)의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건강하며, 가정이 원만하며, 매일 매일의 생활이, 조화된 모습으로 보낸다고 말하는 것은, 대자연을 비롯하여, 수호령, 지도령, 만생만물, 선조의 여러 영령들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기도는, 감사(感謝)의 마음의 분명하게 보이게(겉으로 나타나는,발로(發露))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こうみていりますと、「正法の祈り」と「他力の祈り」では、その中身が大分ちがってくるということがおわかりと思います。 他力の信仰は、神と人間を切り離し、人間を凡愚(ぼんぐ)として扱っているのにたいし、正法の信仰は、人間は神の子であり、神と人間は一體であるという前提に立っていることであります。 この地上生活の中で、神の子の己を生かすには、祈り心を通した行爲しかないということです。 イエス樣の言葉に「汝信仰あり、我行爲あり」というのがありますが、これこそ「正法の祈り」であり、誤ちなき行爲こそ、「祈り」の神髓である,といえるわけであります。
이렇게 보면, 「정법의 기도」와「타력의 기도」에서는, 그 내용물(알맹이)이 상당히 달라져 온다고 하는 것을 알리라고 생각합니다. 타력의 신앙은, 신과 인간을 끊어서 갈라 놓고, 인간을 평범하고 어리석게 해서 취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정법의 신앙은, 인간의 신의 자녀이며, 신과 인간은 일체이다라고 하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상생활 속에서, 신의 자녀의 자기를 소생시키는(되살리는)데에는, 기도하는 마음을 통한 행위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너희는 신앙이며, 나는 행위니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법의 기도」이며, (違いなき行爲こそ)로 그러한 행위야말로, 「기도」의 진수(神髓=眞髓)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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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と行]
[믿음과 행위]
問 질문
旣成佛敎は、觀念の中に埋沒し、新興宗敎は、盲信と敎團維持の生活が先行するという傾向が目につきます。 いったい、正法は、信と行をどのように考え、生活にどう生かしてゆくべきものなのですか。
기성종교는, 관념 속에 매몰하고, 신흥종교는, 맹신과 교단유지의 생활이 앞서간다고 하는 경향이 눈에 띕니다. 도대체, 정법은, 믿음과 행위을 어떻게 생각하고, 생활에 어떻게 살려가야 하는 것인 것입니까?
答 대답
信心信仰の本質は、まず信がなければ育ちません。
신심신앙의 본질은, 우선 믿음이 없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私たちの人間關係をみても、すべてが信賴というものを土臺として成り立っています。 親子、夫婦、兄第、友人、職場においても、人と人とが、たがいに相手を信賴し、約束を守り、その約束を果たしているので、こうした社會生活が營まれています。 もしも、そうした約束が履行できず、朝令暮改的に、平氣で人の信賴を裏切るようなことをすれば、その人は、人から信用されなくなり、やがて社會から村八分にされてしまうでましょう。
우리들의 인간관계를 보더라도, 모두가 신뢰라고 하는 것을 토대로 해서 성립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부부, 형제, 친구, 직장에 있어서도, 사람과 사람과이, 서로 상대를 신뢰하고, 약속을 지키고, 그 약속을 완수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이러한 사회생활이 영위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조령모개적으로, 예사로 남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과 같은 짓을 한다면, 그 사람은, 남으로부터 신용되지 않게 되어, 머지않아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겠지요.
※ 머지않아~~따돌림을 받게 된다. =村八分= 동네 따돌림.
마을 법도를 어긴 사람에 대하여 마을 사람 전체가 그 집과 왕래를 끊는 일. 뜻입니다.
信心信仰についても、これと仝く同にです。その心を信ずる。神を信ずる。正法を信ずる。こうした信がなければ、信心信仰の芽を、大きくすることも深くすることもできません。信というものは、人間が生活する上において、絶對に欠くことのできない必要條件です。心の安らぎも、また信から生まれてきます。正法の信心は、文字通り、己の心を信ずることからはじまりますが、行のない信心は、心信とはいえません。 それは、人間は神の子として、自らが創造し、自らの運命をきり開いてゆくものであるからです。 したがいまして、信心はあるが、行がない、というのでは、正法とはいえません。 信と行が、表裏一體を成し、行を通じて、よりいっそうその信を深め、調和ある行にまで高めてゆくというのが、正法者の眞の姿で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 行とは何か. 生活の場における反省と、努力の行爲です。 煩惱を菩提と化してゆくところの、行爲です。
신심신앙(信心信仰)에 대해서도, 한가지로 마찬가지입니다. 그 마음을 믿는다. 신을 믿는다. 정법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신심신앙의 싹을, 크게 할 수도 깊게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생활하는 상에 있어서, 절대로 빼뜨릴 수 없는 필요요건입니다. 마음의 안정(평안)도, 역시 믿음에서 (잉태)생겨나옵니다. 정법의 신앙심(信心), 문자 그대로, 자기의 마음을 믿는 것에서 부터 시작됩니다만, 행위가 없는 신앙심(信心)은, 신앙심(信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신의 자녀로서, 스스로가 창조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간(개척)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심(信心)은 있지만, 행위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은, 정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과 행위가, 표리일체를 이루고, 행위를 통해서, 보다 더욱 그 믿음을 깊게하고, 조화있는 행위로 까지 높여간다고 하는 것이, 정법자의 참된 모습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행위라 무엇일까. 생활의 장에 있어서의 반성과, 노력의 행위입니다. 번뇌를 보리로 바꿔가는 바로 그것이, 행위입니다.
質問の中の、これまでの信仰については、たしかにお說の通りと思います。 佛敎もキリスト敎も、拜む宗敎、祈りの宗敎になっています。 罪惡深重の凡夫である人間は、佛の慈悲にすがる以外にない。 惡いことを思うまいとしても思ってしまいます。 人のことより我が身がいとしい。 そこで、南無阿彌陀佛と唱えることによって、心の平安を得ようとする。 そうして拜むことが行となり、人間的努力、反省は、二の次になってしまいます。旣成宗敎はある意味で、信心の中に埋沒しているといえるでしょう。 一方、新しく生まれた團體はといえば、お說の通り、行が先行しているようです。 その行も、團體を維持する、擴大するということが、本人の救いに結びつき、本人の自覺は後回しにして、家庭や職場を放り出しても、馸げずりまわら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仕組まれています。病氣や災難に合っても、信仰の不足といって片づけられ、信を深めるための探究心が次第に失われてゆくというのが、實態のようです。
질문의 가운데의, 여태까지의 신앙에 대해서는, 확실히 설명한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절하는 종교, 기도의 종교가 되고 있습니다. 죄악의 심히 무거운 평범한 사람인 인간은, 부처의 자비에 의지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나쁜 것을 생각하지 않으리라 라고 해도 생각해 버립니다. 남의 일보다 내 처지가 불쌍하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소리내어 부르는 것에 의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절하는 것이 행위가 되어, 인간적 노력, 반성은, 뒤로 미루게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기성종교는 어떤 의미에서, 신심 속에 매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한편, 새롭게 태어난 단체는 어떤가 하면, 설명한 그대로, 행위가 앞서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행위도, 단체를 유지한다, 확대한다고 하는 것이, 본인의 구원(구제)으로 연결(결합)되고, 본인의 자각은 뒤로 미루고, 가정이나 직장을 내팽개쳐도, 분주하게 돌아다니지 않으면 않 되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질병이나 재난을 맞이해도, 신앙(信仰)의 부족이라고 말하며 처리되며, 믿음을 깊게하기 위한 탐구심이 점점 잃어간다고 하는 것이, 실태인 모양입니다.
※人のことより我が身がいとしい본문 중에, 남의 일보다 내 처지가 불쌍하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달리 해석은, 남의 일보다 내 몸이 사랑스럽다. 로도 해석이 됩니다.
こうみてきますと、信に片寄っても、行に走りすぎても、眞實の人間を形作ることはできません。信と行は、車の兩輪のように不二一體をなして進んでゆくものです。眞の信心は、神の子としての自覺であり、行は、その自覺にもとづいた生活行爲です。 正道に適った反省と努力が行です。それゆえ、正法は、信と行が絶えず一體となり、中道という精神にもとづいた生活行爲が、無理なく、自然に、行えるようになってゆくのが、正法者のあり方であり、また、正法は、そうした世界にのみ生きてくるものです。
이렇게 보게 되면, 믿음에 치우쳐도, 행위에 지나치게 질주해도, 진실한 인간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믿음과 행위는, 차의 양쪽 바퀴와 같이 불이일체를 이루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신심은, 신의 자녀로서의 자각이며, 행위는, 그 자각에 바탕을 둔 생활행위입니다. 정도(正道)에 들어맞는 반성과 노력이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정법은, 믿음과 행위가 끊임없이 일체가 되어, 중도(中道)라고 하는 정신에 바탕을 둔 생활행위가, 무리없이, 자연히, 실행되어 지게 되어 가는 것이, 정법자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이며, 또한, 정법은, 그러한 세계에만 살아 오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의 行(행)이란, 단어는, 수행(修行)이란 뜻이 아니라, 행위(行爲)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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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생소한 말일 것입니다. 5인의 분신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면,
삶에 엄청난 변화가 올 것입니다.
[五人の分身]
[5인의 분신]
問 질문
人間は本體一人と、五人の分身から成り立っているといいますが、なぜ五人も分身が存在するのですか。 全體で、なぜ、六人にできていますか。
인간은 본체 1인과, 5인의 분신으로 성립하고 있습니다만, 왜 5인이나 분신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전체로, 왜, 6인으로 되어 있습니까?
答 대답
生命も物質も、三つのプロセスからできています。
생명도 물질도, 세 가지의 process(공정[工程])으로 되어 있습니다.
地球に生命が宿るのは、太陽、月、そして地球という三位一體の構成からてす。 地球(地上)は、氣圈、水圈、岩圈から成っています。 原子は、陰外電子、中性子、陽電子からできており、電氣は、陽性(+)中性(N)陰性(-)から、細胞は、原形質、細胞質、核の三つから構成されています。
지구에 생명이 머무는 것은, 태양, 달, 그리고 지구라고 하는 삼위일체의 구성 때문입니다. 지구(지상)은, 대기권(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 등으로 구분되는 기체로 이루어진 지구 표면), 지구 표면에 물이 차지하는 부분, 암석으로 된 지구의 외각 또는 지구의 표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는, 음외전자, 중성자, 양전자로 되어 있고, 전기는, 양성(+)중성(N)음성(-)에서, 세포는, 원형질, 세포질, 핵의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物質の成立は、宇宙の大意識をまず出發点として、第二に熱、光、電氣、磁氣、中力のエネルギ―が組み合わさって、物質という第三の現象化が行われています。一度、物質化されたエネルギ―は、ある時間がたつと、分裂という過程を經てエネルギ―に還っていきます。またエネルギ―の物質化はエネルギ―が集中されてできあがります。 つまり、大意識(神)を離れた五つのエネルギ―は、集中、分裂という過程を通して、あるときは物質化され、エネルギ―にどもってゆくという三つのプロセスを踏みながら、循環の法の中で、永遠に、その循環をくりかえていくのです。
물질의 성립은, 우주의 대의식을 먼저 출발점으로 해서, 제2의 열, 빛, 전기, 자기(磁氣), 중력의 에너지가 짜 맞추어, 물질이라고 하는 제3의 현상화가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한 번, 물질화된 에너지는, 어느 시간이 이르면, 분열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에너지로 되돌아갑니다. 또 에너지의 물질화는 에너지가 집중되어 완성됩니다. 즉, 대의식(신=God)을 떠난 다섯 가지의 에너지는, 집중, 분열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어떤 때는 물질화되고, 에너지로 되돌아간다고 하는 세 가지의 공정(工程)을 밟으면서,순환의 법 가운데에서,영원히,그 순환을 되풀이해 가는 것입니다.
生命もこれと同樣に、まず第一に宇宙の大意識から、第二に個としての生命が、あの世實在界に誕生し、第三に現象界に姿を現わす。一度、現象界に出た生命體は、この世とあの世の轉生をくりかえし、この世に生れ出るときは、兩親という媒體(緣)をへて、姿を現わします。つまり、大意識から離れた生命は、あの世、兩親、この世という三つのプロセスを踏みながら循環の法の中で生きるように仕組まれています。
생명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선 첫 번째로 우주의 대의식으로부터, 두 번째로 개체로서의 생명이, 저 세상 실재세계(實在界)에 탄생하고, 세 번째로 현상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 번, 현상계에 나온 생명체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전생(轉生)을 되풀이하고, 이 세상에 출생할 때는, 양친이라고 하는 매체(인연)을 거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즉,대의식으로부터 떠난 생명은, 저 세상, 양친(부모),이 세상이라고 하는 세 가지의 공정을 밟으면서 순환의 법 가운데에서 살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さて問題の人間の生命體である一本體、五分身についてですが、人間の生命體は三つの系列からできています。
一系列、男本體一、男分身五
二系列、女本體一、女分身五
三系列、男本體一、男分身二、女分身三
女本體一、女分身二、男分身三
그럼 문제의 인간의 생명체인 1본체, 5분신에 관해서입니다만,인간의 생명체는 세 가지의 계열로 되어 있습니다.
1계열, 남자 본체 1. 남자 분신 5
2계열, 여자 본체 1, 여자 분신 5
3계열, 남자 본체 1. 남자 분신 2, 여자 분신 3
여자 본체 1, 여자 분신 2, 남자 분신 3
三つの系列においても、生命、物質の仕組みてある前述の構成要素が、人間の生命にも當然あてはまっています。大宇宙は三つの構成からでき上がっていますので、人間だけが例外というわけにはゆきません。
세 가지의 계열에 있어서도, 생명, 물질의 짜임인 앞에서 설명한 구성요소가, 인간의 생명에도 당연히 들어맞고 있습니다. 대우주는 세 가지의 구성으로부터 완성되어 있는 것이며, 인간만이 예외라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次に、本體一と分身五の理由は、この大宇宙が、神の大意識を母體に熱、光、電氣、磁氣、中力という五つのエレメントからできていますので、人間の生命體もこれに合わせて本體一(大意識)分身五(五つのエレメン)の組み合わせになっているのです。 人間を稱して、小宇宙というのも、生命の成立が、このように大宇宙の構成と同じようにできでいるからです。
다음으로, 본체 1과 분신 5의 이유는, 이 대우주가, 신의 대의식을 모체로 열, 빛, 전기, 자기(磁氣), 중력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의 element(요소, 성분)으로 되어 있는 것이며, 인간의 생명체도 이것에 합쳐서 본체 1(本體一)(대의식(大意識)) 분신 5(다섯 가지의 element(요소, 성분)의 조합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一の系列から三の系列を含めて男女の數は同じです。 また男女單體と、混合體の區分は、人類全體の調和を目的としているからです。もしも、一と二の系列、二と三の系列のみとすれば、この地上の男女の均衡は破れる恐れがでてきます。 地上の歷史が證明するように、人間は六根に支配されるようにできています。 戰爭、災害によって男が滅り、女ばかりになったらどうでしょう、一から三までの系列があってはじめて、男女の均衡が保てるように仕組まれているのです。 また三つの系列があるために、人類の目的が調和にあるといえるのです。
1의 계열에서 3의 계열을 포함해서 남녀의 수는 같습니다. 또 남녀 단일의 물체(한 종류만의 원소로 되는 물질=單體)와, 혼합체의 구분은, 인류 전체의 조화를 목적으로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1과 2의 계열, 2와 3의 계열만이라고 한다면, 이 지상의 남녀의 균형은 깨질 우려가 생깁니다. 지상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인간은 육근(六根)에 지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전쟁, 재해로 인해서 남자가 줄어들고, 여자만 남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1에서 3까지의 계열이 있어야 비로소, 남녀의 균형이 유지되게끔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또 세 가지의 계열이 있기 때문에, 인류의 목적이 조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夢]
[꿈]
問 질문
いったい夢は何を意味しているのか。 夢に生活上の重要性はあるのかないのか。 フロイトの「夢の解釋」は有名ですが、夢とは何でしょう。
도대체 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꿈에 생활상의 중요성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은 유명합니다만, 꿈이란 무엇일까요.
答 대답
ふつう夢には主觀的なものと、第三者の介入による夢があります。 主觀的なものは、自己の想念がつくり出したもの。
第三者の介入のものは, 自縛靈, 動物靈などの影響によるものです。
보통 꿈에는 주관적인 것과, 제 3자의 개입에 의한 꿈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것은 자기의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
제3자의 개입의 것은, 자박령, 동물령 등의 영향에 의한 것입니다.
主觀的な夢には、美しい情景をみてくる、天女と語る樂しい夢、偉大な賢者と會って語りあうなど。 反對に、暗く氣持の惡い夢、呪われた世界、ヘビに追いかけられる、あるいは卷きつかれる、その內容はさまざまです。こうした夢には、あの世の階層を實際にみてくるのであり、そうしてそれは同時に、自分自身の、そのときどきの現實の想念の在り方が、そうした階層に通じ、またそのように日頃の想念が、夢という形で現象化されていることを意味します。したがって、こうした夢は、天上界の夢ならともかく、いやな夢、ないしは正法に反した暗い夢の場合は、自分の想念のどこかに誤りがあるのですから、反省し、修正する必要があるでしょう。
주관적인 꿈에는, 아름다운 정경을 보고 온다, 천상계에 산다는 아름다운 여성(天女=선녀)와 이야기하는 즐거운 꿈, 위대한 현자와 만나서 서로 대화하는 등등. 반대로, 어두운 기분이 나쁜 꿈, 저주받은 세계, 뱀에게 쫓기는,. 혹은 포위당하는, 그 내용은 다양합니다. 이러한 꿈에는, 저 세상의 계층을 실제로 보고 오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그것은 동시에, 자기자신의, 그때그때의 현상의 상념의 올바른 자세가, 그러한 계층으로 통하고, 또 그와 같이 평소의 상념이, 꿈이라고 하는 형태로 현상화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꿈은, 천상계의 꿈이라면 어쨌든 간에, 싫은 꿈, 내지는 정법에 어긋난 어두운 꿈의 경우는, 자신의 상념의 어딘가에 잘못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성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夢は大抵、朝方です。これは眠るという行爲が、表面意識の休養の意味し、 エネルギーの補給を行っているのですから、意識の休養中に夢をみるのではなく、エネルギ― の補給を終えた朝方に、守護靈の働きで、夢をみる、夢を憶え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るからです。つまり、補給を終えた表面意識が、 いつでも活動しやすい狀態になったときに、夢という現實的な想念と行爲が 働くわけなのです。
꿈은 대체로, 이른 아침입니다. 이것은 잔다 라고 하는 행위가, 표면의식의 휴양의 의미이며, 에너지의 보급을 행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의 휴양 중에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보급을 마친 이른 아침에, 수호령의 작용으로, 꿈을 꾼, 꿈을 기억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보급을 마친 표면의식이, 언제나 활동하기 쉬운 상태가 되었을 때에, 꿈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상념과 행위가 작용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また夢は、自己の想念と行爲をごまかしなく再現するですから、反省の材料としでは、またとない資料となるわけです。現實生活の私たちの想念は、形に表われないとわかりませんが、夢の場合は、日頃の想念がなんの抵抗もなく現象化されますので、夢の中の行爲は、自己の內在する想念の、僞りのない姿なのです。
또 꿈은, 자기의 상념과 행위를 속임없이(숨김없이) 재현하기 때문에, 반성의 재료로서는, 두 번 다시없는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현실생활의 우리들의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은,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모릅니다만, 꿈의 경우는, 평소의 상념이 어떤 저항도 없이 현상화되는 것이며, 꿈속의 행위는, 자기의 내재하는 마음의 품은 생각이, 거짓 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一方、第三者の介入による夢は、朝方よりも、眞夜中にみる場合が多いのです。眠りが淺く、なんとも寢つかれず、うとうとしながら惡夢をみる。恐ろしさのあまり、目をさましたときは、自分の腕が胸の上におかれ、汗をかいでいる。こうした際は、光の天使、または諸天善神の加護を求めることです。
한편, 제 3자의 개입에 의한 꿈은, 이른 아침보다도, 한밤중에 꾸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잠이 얕고, 아무리 해도 잠을 잘 수가 없고, 꾸벅꾸벅 졸면서 악몽을 꾼다. 두려운 나머지, 눈을 떴을 때(잠을 깼을 때)에는, 자신의 팔이 가슴 위에 올려져 있고,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러한 때에는, 빛의 천사 또는 제천선신의 가호를 구하는 것입니다.
また、こうした惡夢をたびたびみる。夜眠られぬことが續いている場合は、 憑依されていることがありますから、强い自己反省が必要ですし、正しい生活にかえるよう努力されることを望みます。第三者の介入による惡夢についても、自己の想念に無關係ではありませんので、正法にそった生活が絶對に必要です。
또, 이러한 악몽을 자주 꾼다. 밤에 잠들 수 없는 일이 연속인 경우는, 빙의되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강한 자기 반성이 필요하며, 올바른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제3자의 개입에 의한 악몽에 대해서도, 자기의 마음에 품은 생각에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 것이며, 정법에 들어맞는 생활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このほかに, 正夢があります. これは守護靈の働きかけと, 動物靈などが作用している場合とがありますが, 動物靈の場合は, どこかに常識的でなく理解できないものが多いのです。また戱畵化されたもの, 筋道のないもの, 意味のつかめない夢などがありますが, こられは想念に斷層がある,つまり心が不安定なためにおきる夢が多いのです。
이 밖에, 정몽(正夢-맞는 꿈, 사실에 맞는 꿈.들어맞는 꿈)입니다.
이것은 수호령이 작용과, 동물령 등이 작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동물령의 경우는, 어딘지 상식적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것입니다.
또 희화화(실없이 난삼아 그린 그림, 익살맞게 그린 그림)된 것, 조리(사리)가 없는 것,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꿈 등이 있습니다만, 이러한 것들은 마음에 품은 생각이 단층(斷層=갈라져 어긋난 곳)이 있다, 즉 불안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꿈이 많은 것입니다.
いずれにせよ夢は、日頃の想念行爲と密接不可分ですから、夢をみた場合は、その夢について、反省することが大切です。
흔히 꿈은, 평소의 상념행위와 밀접하며 둘로 가를 수 없을 만큼 관계가 깊기 때문에, 꿈을 꾼 경우는, 그 꿈에 대해서, 반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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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導と功德]
[교도(敎導)와 공덕(功德)]
問 질문
人びとを敎え導くと功德がある、と敎えられてきましたが、正法では、その点はどうなのでしょうか。
사람들을 가르쳐서 이끌면 공덕이 있다고, 배워 왔습니다만, 정법에서는, 그 점은 어떠한 것입니까?
答 대답
正法もまさしくその通りです。人びとを敎え導いて、功德がない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す。大いにあります。
정법도 틀림없이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을 가르쳐 이끌어서, 공덕이 없다고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대단히 있습니다.
人の意識はテ―プレコ―ダ― と同じように、二十四時間、そのテ―プが回轉し、その人の想念と行爲を記錄し續けています。肉體的死を迎え、あの世に歸ったときに、そのテ―プレコ―ダ― された中身が、善と惡に分けて、 どちらが多かったかによって、その人の行くべき場所が決まります。善行が多ければ、天國に、惡行が多ければ、地獄に墮ちます。
인간의 의식은 녹음기와 마찬가지로, 24시간, 그 테잎이 회전하고, 그 사람의 상념과 행위를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죽음을 맞이해서, 저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에, 그 녹음된 내용물(알맹이)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어느 쪽이 많은가에 의해서, 그 사람이 응당 그렇게 가야 할 장소가 결정됩니다. 선행이 많으면, 천국으로, 악행이 많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もっともこういうことがいわらています。人生の大半を酒を飮み、家庭や友人を困らせてきた人が、死の寸前において深くザンゲし、ああ惡かった、 人生の目的は酒を飮むためてはなく、人びととともに、助け合い、勵まし合う行爲であった、ということを悟ったならば、その人は地獄に墮ちずに天國に行くということです。
더욱 이런 일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술을 마시고, 가정이나 친구를 곤란케 해 왔던 사람이, 죽기 직전에, 깊이 참회하고, 아아~ 잘못했다, 인생의 목적은 술을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람들과 다같이,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는 행위였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으로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点、間違いではありません。この喩は、悟りの功德の偉大さをいっているわけですが。實際に、死の寸前まで酒におぼれ、人びとに迷惑をかけ通してきた人が、死の寸前で悟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が。そういうことは絶無です。悟りとは、反省し、正しい想念を善行に現わしてゆくものであり、 そうした積み重ねが、やがて大きな悟りにつながって行くものです。ですから、あの世の功德は、この世における善と惡の比率が、問題になってくるわけです。
이 점, 잘못되지 않았습니다(틀림이 없습니다). 이 비유는, 깨달음의 공덕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실제로, 죽음 직전까지 술독에 빠져,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 온 사람이, 죽음 직전에 깨닫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반성하고, 올바른 상념을 선행으로 드러내어 가는 것이며, 그러한 거듭함이, 머지않아 큰 깨달음으로 연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세상의 공덕은, 이 세상에 있어서 선과 악의 비율이, 문제가 되어 오는 이치입니다.
またその功德は、あの世においてだけ現われる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 現世においても、現證として現われてきます。仕事に一心をこめれば、その結果は、その仕事自體に、あるいは仕事を通しての環境の調和に、思わぬ利益を生み出しくでしょう。人びとを敎え導けば、人びとに感謝され、その感謝の想念は、大きな愛念となって、その人の心と生活を、より豊かにしてくれます。
또 그 공덕은, 저 세상에 있어서만 나타나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현세에 있어서도, 현증(현실적 증거)으로 나타납니다. 일에 한마음을 집중시키면, 그 결과는, 그 일 자체에, 혹은 일을 통해서 환경의 조화에, 생각하지 않은 이익을 낼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르쳐 인도하면, 사람들에게 감사(感謝)를 받고, 그 감사(感謝)의 상념은, 큰 애념(愛念)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해줍니다.
このように、人びとを敎え導くことの功德は、非常に大きなものがあります。
이와같이, 사람들은 가르쳐서 이끄는 일의 공덕은, 상당히 큰 것입니다.
ここで問題になるのは、敎え導くときの意志の在り方です。つまり功德をうけるために敎え導く、人からよく思われたい、自己の欲望を滿たすためとすれば、敎導の反作用は明らかです。本來、敎導というものは、廣い心、高い心から行うものです。それは、知識があるなしではなく、滅私の心が伴わないと、本當は生きでこないのです。功德はそうした場合にもっとも大きなものとなります。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르쳐서 이끌 때의 의지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즉 공덕을 받기 위해서 가르쳐서 이끈다. 남들로부터 좋게 생각되어지고 싶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다고 한다면, 가르치고 이긂(敎導)의 반작용은 명백합니다. 본래 가르쳐서 이끎이라고 하는 것은, 넓은 마음, 높은 마음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이 있고 없고가 아닌, 사사로운 욕심이나 정을 버리는 마음이 동반하지 않으면, 사실은 생겨나오지 않습니다. 공덕은 그러한 경우에 가장 큰 것이 됩니다.
大乘の思想は、今は、盲信的狂信者を生み出しています。信仰の態度が他力であり、そしてその根底には、人びとを敎えば自分も敎われるといった考え方があるからです。正法のそれは、まず自己の確立です。確立された後に人びとを導くことです。しかし、正法を信じたならば、その信ずる心にしたがって人びとを敎導することです。そして敎導の過程において、さらに自己の心が磨かれていくものです。敎導の過程で、さらに新たな疑問にぶつかっていきます。疑問は理解につながり、信をより深く、强くしてゆきます。功德は、こうした連續の中から大きく生まれてきますし、正法は、信じ、行うことによって、たしかに生きがいを感じてくるものです。
대승의 사상은, 현재는, 맹신적 광신자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신앙의 태도가 타력이며, 그리고 그 밑바탕(根底)에는, 사람들을 가르치면 자신도 구원받는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법의 그것은, 우선 자기의 확립입니다. 확립된 다음에 사람들을 이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법을 믿는다면, 그 믿는 마음에 따라서 사람들은 가르쳐서 이끄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이끎의 과정에 있어서, 더욱더 자기의 마음이 닦아져 가는 것입니다. 가르쳐 이끄는 과정에서, 더욱더 새로운 의문에 부딪쳐 갑니다. 의문은 이해로 연결되고, 믿음을 보다 깊고, 강해져 갑니다. 공덕은, 이러한 연속 가운데에서 크게 만들어지고, 정법은, 믿고, 행하는 것에 의해서, 확실히 사는 보람을 느끼어 오는 것입니다.
※교도(敎導) 1. 가르쳐서 이끎. 2.지도 교육’으로 순화.(국어사전,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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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恐れるな]
[두려워하지 말라]
問 질문
憑依について、もう少しつっこんでご說明をお願いします。
빙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파고들어 설명해 주십시요.
答 대답
人の意識が、動物靈、魔王、獄靈に憑依されると、ひとりよがり、無口、 多弁、ウソつき、深酒などの現象が顯著になってきます。そして、これが進行すると、病氣や災難、家庭不和、社業の行き結まりにもつながってきます。病氣の約七割は、憑依によるものです。步道を步いていて後から自動車にハヌられる、頭上から鐵材が降ってきて思わぬ怪我をすることなども、同じように、憑依による現象です。
사람의 의식이, 동물령, 마왕, 지옥령에 빙의되면, 독선(자기 혼자서만 좋다고 믿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 과묵함, 말이 많음, 거짓말함(거짓말쟁이), 과음 등의 현상이 현저하게 되어 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행하면, 질병이나 재난, 가정불화, 사업의 막힘으로도 연결되어 옵니다. 질병의 약 7할은, 빙의에 의한 것입니다. 인도(步道)를 걷고 있고 뒤에서 자동차에 치인다. 머리 위에서 철재가 떨어져 생각지도 않게 다치는 것 등도, 마찬가지로, 빙의에 의한 현상입니다.
※보도(步道) : 보행자를 위하여 차도와 구별하여 설치한 도로의 부분
憑依がさらに進行すると、精神分裂になります。氣違いです。こうなると、自分の意識が他界者に完全に占領され、就眠す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ノイロ―ゼのほとんどは憑依によるものです。
빙의가 더욱더 진행하면, 정신분열이 됩니다. 미치광이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의식이 다른 세계의 사람에게 완전히 점령당하여, 잠자리가 들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잠을 잘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의 대부분은 빙의에 의한 것입니다.
人間は心と肉體から成り立っています。憑依とは、あの世の低段階の地獄靈、動物靈が、人の心に憑くことをいいます。
인간은 마음과 육체로 성립되어 있습니다. 빙의란, 저 세상의 낮은 단계의 지옥령, 동물령이, 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것을 말합니다.
なぜ憑くかというと、もともとその本人の、物の見方、考え方が非常に片寄っており、欲望や執着が强いために、これと同じような心を持っている動物靈や地獄靈が、寄ってくるのです。類は友を呼ぶ、ということわざの通りです。
왜 귀신이 들리는가 하면, 원래 그 본인의, 사물에 대한 견해(관점), 사고방식이 상당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욕망이나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이것과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동물령이나 지옥령이, 기생해 오는 것이다. 같은 종류는 친구를 부른다(유유상종), 라고 하는 속담 그대로입니다.
※빙(憑)= 마음의 지주(支柱)로 삼다. 의지하다의 뜻, 다른 뜻은 "귀신에게 들리다" "붙다", 기대다 등등
※기(寄) = 기생(寄生) :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생활함. ‘더부살이’로 순화.[국어사전]
※기(寄) = 일본어 사전, 몸을 맡기다. 의탁하다.
憑依は四六時中續いているかというと、通常は、憑いたり、離れたり、心が片寄った想念に支配されると憑依し、そうでないときは離れます。飮酒すると人が變わるが、素面(しらぶ)のときは眞面目人間というのがよくあります。しかし憑依の時間が長くなるにしたがって、その性格が變わってゆき、 病氣勝ちになってきます。精神病は、その憑依時間が、長時間になるために起こるものです。
빙의는 하루종일 계속해서 있는가 하면, 통상은, 들려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에 품은 생각에 지배당하면 빙의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떨어집니다. 술을 마시면 사람이 변하지만, 술에 취하지 않은 평소의 상태나 태도일 때는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인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곧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빙의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서, 그 성격이 바뀌어 가고, 병에 잘 걸리게 되어 옵니다. 정신병은, 그 빙의시간이, 오랜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病氣勝ち= 병에 잘 걸리는, 툭 하면 병에 잘 거리는, 병이 들기 일쑤, 뻑하면 병든다 등등
欲望が强くなると動物靈が憑く。感情が激しく動くと自縛靈や魔王が憑く。知能におぼれ增長慢になると動物靈、地獄靈が憑く。意志が强すぎ、頑固になってくると自縛靈, 魔王が憑いてきます。しかし、これらは傾向であって、內容によって、憑依も多樣化してきます。
욕망이 강하게 되면 동물령이 빙의한다. 감정이 격하게 움직이면 자박령이나 마왕이 빙의한다. 지능에 빠져 증장만(增長慢 =최상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우쭐대며 잘난채 하는 마음의 상태)이 되면 동물령, 지옥령이 빙의한다. 의지가 강하지 않고, 완고하게 되어 오면 자박령, 마왕이 빙의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경향이며, 내용에 따라서, 빙의도 다양화해 옵니다.
※憑く =여기서는 빙의한다로, 풀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요. ▲위쪽의 ※를 참조하세요.
憑依から己の意識を守るにはどうすればよいか。それには正道に適った想念と行爲が必要です。憑依は、向こうが勝手に寄ってくるのではなく、自分が呼び、分がつくり出しているといえるのです。 アンバランスな精神狀態がつくっているのです。
빙의로부터 자기의 의식을 지키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에는 정도(正道=올바른 길, 올바른 도리)에 들어맞는 상념(想念=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가 필요합니다. 빙의(憑依)는, 상대편이 제멋대로 기대어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르고,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균형한(부조화)한 정신상태가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片寄った想いがあるから、彼らは集まるのです。自分が憑依されていることがわがっても、決して、恐れてはいけません。この世で、いちばん恐ろしいのは、生きでいる人間です。一念三千の心を持つ、己の心です。カメレオンのように常に變化してやまないものが、人の心なのです。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여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빙의되어 있는 것을 알아도, 절대로,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마음을 지닌, 자기의 마음입니다. 카멜레온처럼 항상 변화하고 멈추지 않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일념삼천(一念三千) =사람의 마음속에 삼천의 법계(法界)를 갖출 수 있음을 이르는 말 [한자사전, daum] 말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이 말의 본뜻은,
사람의 마음은 지옥으로도 통하고, 천국으로도 통한다는 뜻입니다.
さらには、盲信、狂信、また、思想や主義にかぶれ、あるいは、獸のような欲望を持った者です。
심지어, 맹신, 광신, 또, 사상이나 주의에 영향을 받아 물들고, 혹은, 짐승과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ですから自分でおかしいと思ったらば、自分の心を、常に、平靜に保つように、八正道に適った生活を送るよう心がけることです。そうすると向うの靈の波動と合わなくなってきますから、憑依現象も自然と解消されてきます。
그러므로,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마음을, 항상, 평정으로 유지하도록, 팔정도에 들어맞는 생활을 보내도록 명심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편의 영혼의 파동과 일치하지 않게 되어 오기 때문에, 빙의현상도 자연히 해소되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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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體, 分身 ]
[본체, 분신]
問
人間の生命(魂)は本體一、分身五の六つから成り立っているとは、ほぼ理解出來たが、では人間以外の動物、植物、鑛物の場合どうなっているのでしょうが。また、轉生輪廻はどういう順序で行われるのですか。
질문
인간의 생명(영혼)은 본체 1, 분신 5의 6개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은, 대강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 인간 이외의 동물, 식물, 광물의 경우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또, 전생윤회는 어떤 순서로 일어나는 것인가요?
答
本體、分身の關係は、何も人間だけに限らず、動、植、鑛全體についていえるのです。人間を含めた動、植、鑛の物理的な見分け方をまず說明しますと、動物の場合は、細胞の要素を大きく分けて六つに分類されます。核、原形質膜、ミトコンドリア、ゴルジ體、中心體、脂肪粒の六つ。この六つの要素が、だがいに補い合って、細胞という組織をつくっています。この細胞の六つの要素が、いうなれば本體(核)一、分身五(原形質膜、ミトコンドリア、 ゴルジ體、中心體、脂肪粒)の構成になります。ですから人間以外の動物についても、細胞がこのように分かれる場合は、一本體五分身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대답
본체, 분신의 관계는, 여하튼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동, 식, 광물 전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 식, 광의 물리적 분류를 먼저 설명하면. 동물의 경우는. 세포의 요소를 크게 나눠서 6개로 분류됩니다. 핵, 원형질막, 미토콘드리아, 골지체, 중심체, 지방립의 6개. 이 6개의 요소가, 서로 보충하여, 세포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포의 6개 요소가, 말하자면 본체(핵) 1, 분신 5(원형질막, 미토콘드리아, 골지체, 중심체, 지방립)의 구성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 이외의 동물에 대해서도, 세포가 이와 같이 나눠진 경우는, 1 본체, 5 분신이고 하는 것이 됩니다.
※원형질막[原形質膜]= 세포막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 진핵 세포 속에 들어 있는 둥근 알갱이 모양의 기관. 에이디피(ADP)와 무기 인산으로부터 에이티피(ATP)를 합성하고, 디엔에이(DNA)와 아르엔에이(RNA)를 함유하고 있어 세포질 유전에 관여한다.
※골지체[Golgi體] : 세포질 속에 있는 낟알이나 그물 모양의 기관. 세포 속에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따위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며, 분비물이나 지방 따위를 만드는 데에도 관여한다. 이탈리아의 골지가 발견하였다.
※중심체[中心體] : 동물 세포나 하등 식물 세포에 있는 소기관. 핵의 분열과 이동에 작용하는 방추체가 결합하는 중심립이 중앙부에 있다.
※지방립[脂肪粒] : 생물체의 조직 안에 있는 지방의 작은 알갱이.
植物もこの例にそって、核(本體一)があり、その周圍に、原形質膜、液胞、色素體、細胞膜(分身四)の五つから構成されます。ですから、植物は動物よりも、一つだけ構成要素が少ないことになります。
식물도 이 예에 따라서, 핵(본체 1)이 있고, 그 주위에, 원형질막, 액포, 색소체, 세포막(분신 4)의 5개로 구성됩니다. 그러므로, 식물은 동물보다도 한 개만 구성요소가 적은 것이 됩니다.
※핵[核]=원자핵
※원형질막[原形質膜]= 세포막
※액포[液胞] : 성숙한 식물 세포에 들어 있는 구조물. 세포 안에 있는 큰 거품 구조로 액포막에 싸여 있고, 안에는 세포액이 차 있으며 여러 가지 당류·색소·유기산 따위가 녹아 있다.
※색소체[色素體] : 식물 세포에 들어 있는 색소를 함유하는 세포 소기관. 핵산을 함유하며 색소 합성이나 자기 증식을 한다. 엽록체, 백색체, 유색체로 나눈다.
※세포막[細胞膜] : 세포질을 둘러싸고 있는 막. 단백질층과 이중 지질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택적 투과나 물질의 운반에 관여한다. 동물 세포의 경우에는 외표면에 접하고, 식물 세포의 경우에는 세포벽에 접한다.
鑛物の場合は、原子番號に核を加えた數が本體と分身の數になります。たとえば炭素の原子番號は六です。六とは陰外電子の數。これに核の一つを加えると七となります。 つまり本體一、分身六の關係となります。このようにして、水素は二、金は八十、銀四十八、鹽素十八、亞鉛三十一、鐵二十七、 銅三十が、本體と分身數を合わせた數となります。
광물의 경우는, 원자번호에 핵을 더한 수가 본체와 분신의 수가 됩니다. 말하자면 탄소의 원자번호는 6입니다. 6이란 음외전자의 갯수, 이것에 핵 한 개를 더하면 7이 됩니다. 즉 본체 1, 분신 6의 관계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수소는 2, 금은 80, 은(銀) 48, 염소 18, 아연 31, 철 27, 동 30이, 본체와 분신수를 합친 수가 됩니다.
このように、物質の構成は、そのモトである生命の構成にしたがって形作られているわけです。
이와 같이, 물질의 구성은, 그 근원인 생명의 구성에 따라서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形の世界は心の反映であり、このため、本體、分身の關係も、生命の組織をそのまま、形の上に反映し、細胞も、素粒子の世界も同じような姿になって現われるものなのです。
형태의 세계는 마음의 반영이며, 이 때문에, 본체, 분신의 관계도, 생명의 조직을 그대로, 형태 상으로 반영하고, 세포도, 소립자의 세계도 똑같은 모습으로 되어 드러나는 것입니다.
不思議といえば不思議ですが、生命と物質というものは、そのように出來ています。
불가사의라고 한다면 불가사의입니만, 생명과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色心不二は、物質と生命について追究する科學的にも理解されてくるでしょう。
색심불이(色心不二)는, 물질과 생명에 대해서 추구하면 과학적으로도 이해되어 올 것입니다.
太陽界のそれも、太陽(核)と或星(分身)が、相互に作用し合っています。 そうして、その體を成しています。 一づでも欠けたら太陽界は分解してしまいます。
태양계의 그것도, 태양(핵)과 혹성(분신)이, 서로 작용해서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몸은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태양계는 분해해 버리고 맙니다.
魂の轉生輪廻は、それではどういう順序で行われるかといえば、原則的には順番です。 Aが出れば次がB、Bの次はC、というように、A(核) BCDEF(分身)が順次、現象界に出て修行する、というのが原則です。ただし轉生輪廻の過程で修行を積む者と、橫道にそれてしまう者もあって、全體のバランスを崩すことがあるので、そうんした場合は、あの世で話し合い、前記の原則こだわらず、Bが短期間に二度、三度、現象界に出て修行することもあります。しかしこういう場合は、比較的少ないのです。大半は、順番に現象界に出て修行すことになるわけです。
영혼의 전생윤회는, 그렇다면 어떠한 순서로 일으러지는가 하면, 원칙적으로는 순번입니다. A가 나오면 다음이 B, B 다음에 C, 라고 하는 식으로, A(핵) BCDEF(분신)이 순차적으로, 현상에 나와 수행한다, 라고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수행을 쌓는 사람과, 옆길로 빗나가 버리는 사람도 있고, 전체의 조화(균형)를 깨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저 세상에서, 서로 이야기하고, 앞서 말한 원칙에 구애되지 않고, B가 단기간에 2번, 3번 현상계에 나와 수행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는, 비교적 적은 것입니다. 대부분은, 순서대로 현상계에 나와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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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和のため]
[평화(平和)를 위하여]
問 질문
想念の在り方は、その人の運命を決めるといわれますが、では、公害などの被害者もそうなのでしょうか。また平和のため、全體の幸福を考えしてその意志を表明する場合、現狀ではデモとか鬪爭しかないと思います。こういうことは神の意に反するのでしょうか。
상념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는,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해지지만, 그럼, 공해 등의 피해저도 그러한 것인가요? 또 평화를 위해, 전체의 행복을 고려하여 그 의지를 표명하는 경우, 현상에서는 데모(시위)라든지 투쟁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은 신의 의사에 반하는 것인가요?
答 대답
原因と結果というものは、正法から切り離すことは出來ません。病氣、災難、社業不振、家庭不和、すべてにわたって原因があるから結果となって現われてきたのです。
원인과 결과라는 것은, 정법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병, 재난, 사업부진, 가정불화, 모두에 걸쳐서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되어 나타나온 것입니다.
公解についても然りです。毒性のものを同じ量を食でても、輕くて濟む人、重態に陷る人、死に至る人、みなちがいます。そのときの健康狀態、食べ合わせによって、具體的には變かってくるでしょう。しかしそれ以前の問題として、日頃の想念と行爲が、そのときの健康狀態、食べ合わせの原因をつくっているといっていいでしょう。
공해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독성이 있는 것을 똑같은 양을 먹어도, 가볍게 낫는 사람, 중태에 빠지는 사람, 죽음에 이르는 사람, 전부 다릅니다. 그 당시의 건강상태, 서로 먹는 것에 따라서, 구체적으로는 변해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전의 문제로서, 평소의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가, 그 당시의 건강상태, 서로 먹은 것의 원인을 만들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原因と結果について、こういう見方をする人がいます。年中愚痴ばかり言っているから口內炎にかかる、尿が落ちつかない痔がおきる。性欲が强い眼が惡くなる、といった類。こういうことはありません。愚痴ばかりいう人でも、痔の惡い人、眼にょよく人、神經衰弱を起こす人もいます。これらは親から受け繼いだ肉體遺傳、あるいは體質によるのであり、相念の在り方と病氣の種類とは必ずしも一致しません。ここを間違えると大變です。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이러한 견해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 년 내내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기만 하고 있으므로 구강염이 걸린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므로 치질이 걸린다. 성욕이 강해서 눈이 나빠진다고 하는 무리. 이러한 경우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기만 하는 사람이라도, 치질이 나쁜 사람, 눈이 좋지 않은 사람, 신경쇠약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육체유전, 혹은 체질에 의한 것이며,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의 올바른 자세와 병의 종류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잘못하면 큰일입니다.
いずれにせよ、公解病も人それぞれの相念----心に直接關係のあることだけは知っておいて下さい。
어차피, 공해병도 사람 저마다의 마음에 품은 생각(상념) - 마음에 직접관계가 있다는 것만은 알아 두십시요.
次に、平和のためにをデモする、幸福を得るために鬪爭をすることですが、的が平和ならば、手段も平和なはずです。目的が平和で、手段が鬪爭になりますと、目的も鬪爭になります。源平の爭い、戰國時代の武將たちの盛衰をみれば、明らかです。彼らは平和を願いながら爭い、平和を維持するために武力を養ってきました。このために隣國の不信を招き、戰いから解放されることがありませんでした。
다음으로, 평화를 위한 데모(시위)를 한다. 행복을 얻기 위한 투쟁을 한다는 것입니다만, 목적이 평화라면 수단도 평화적이어야 합니다. 목적이 평화이고, 수단이 투쟁이 되면, 목적도 투쟁이 됩니다. (일본 역사상 크게 세력을 떨쳤던) 원씨(源氏)와 평씨(平氏)의 싸움[편 가르기 싸움], 전국시대의 무사들의 성쇠를 보면, 명백합니다. 그들은 평화를 원하면서 싸우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력을 길러 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웃나라의 불신을 초래해서, 전쟁에서 해방되는 일이 없었었습니다.
マホメットという人は、一方においけ平和を唱え、一方において武力を行使しました。が、これは自己矛盾もはなはだしいといわねばなりません。
마호메트(Mahomet, (네덜란드) Mahomed, (570경-632)))라는 사람은, 한편에 있어서는,평화를 외치고, 한편에 있어서는 무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기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マホメット((네덜란드) Mahomed, 마호메트) <일본어사전>
이슬람교의 창시자(570경-632). 메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6세에 고아가 되어 조부와 백부 밑에서 자랐으며, 610년 40세 무렵에 하늘의 계시로 이슬람교를 열었음. 주민들의 박해를 받으며 싸워 결국 630년 아라비아 일대를 이 종교에 흡수하는데 성공했음.
モ―ゼ、イエス、釋迦の生き方をみれば、武力というものが何を意味するか、目的が平和ならば手段もまた平和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がわかると思います。
모세, 예수, 석가의 삶의 방식을 보면 ,무력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목적이 평화라면 수단도 역시 평화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全體の幸福のためにデモする、世論を動かすにはこうする方が手っ取り早い、と考えるのも無理はありません。しかし正法は內から外に及ぼして行くものです。といえば、正法の實踐はのうあるべきかはあなたにもおわかりと思います。全體の幸福を願うなら、まず自分自身の心を幸福にさせることです。幸福の何かを知らずして、どうして、人にその幸福をわかち與えるここが出來ましょう。正法はまず己の幸福から出發します。そうして全體の中の一人一人の幸せが目的です。一人一人がかすんだ、全體でないことを知っていただきたい思います。
전체의 행복을 위해 데모(시위)한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그런다는 분이 민첩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법은 안에서 바깥으로 (영향을) 끼쳐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정법의 실천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는 당신에게도 이해되었으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의 행복을 원한다면, 우선 자기 자신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서, 어떻게, 남에게 그 행복을 나눠줄 수가 있겠습니까. 정법은 우선 자기의 행복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렇게 해서, 전체 속의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이 목적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안개가 낀, 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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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催 眠 術]
[최 면 술]
問 질문
催眠術の是非について、簡單でいいですから敎えて下さい。
최면술의 시비에 대해서, 간단히 가르쳐 주십시오.
答 대답
催眠術とは意識を眠らせる術をいうようです。別ないい方をすれば、心を一カ所に集め、喪失の狀態にさせてしまうもののようです。
최면술이란 의식을 잠재우는 기술을 말하는 모양입니다. 다른 표현을 하자면, 마음을 한곳에 모이게 하여, 상실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 모양입니다.
催眠術は、醫學の一部で取り上げられているようですが、その歷史をだどると非常に古く、遠くはヨガから來ているようです。
최면술은, 의학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 역사를 더듬으면 상당히 오래되고, 먼 요가(범어 yoga 瑜伽)로부터 기인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ヨガの發生は、嚴しい自然に人間が耐えていくにはどうすればよいか、また、人間對人間の關係において、どうすれば他より優位な自分になれるか、というところからきたようです。
요가(범어 yoga 瑜伽)의 발생은, 엄한 자연에 인간이 견디어 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까, 또,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남보다 유리한 입장이나 위치를 확보한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온 모양입니다.
ヨガは肉體の鍛鍊を通して、弱い自分をより强い自分につくることにあるようですが、しかし肉體行にはおのずと限界があり、强い自分は、欲望を持った自我の自分に發展する場合が多いのです。肉體の所有者は心であり、 心の鍛鍊(修正)は、まず心を改造しないかぎり、むずかしいのです。
요가(범어 yoga 瑜伽)는 육체의 단련을 통해서, 약한 자신을 보다 강한 자신으로 만드는 것에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렇지만 육체수행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고, 강한 자신은, 욕망을 가진 자아의 자신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육체의 소유자는 마음이며, 마음의 단련(수정)은, 우선 마음을 개조하지 않는 한, 어려운 것입니다.
釋迦の時代も、ヨガの行法は隨分とありました。しかし、釋迦は肉體行の誤りを知って、中道(八正道)の尺度で、己の心を修正していきました。そうしてはじめて、宇宙は自分であるということを悟ったのです。
석가의 시대도, 요가(범어 yoga 瑜伽)의 수행법은 오랫동안이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석가는 육체수행의 잘못을 알고, 중도(팔정도)의 척도로, 자기의 마음을 수정해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우주는 자신이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催眠術者の過去世をみると、たいてい、肉體行をやっています。靈媒の多くが、過去世で肉體的修行に明け暮れた人であるのと似ています。
최면술사의 과거세를 보면, 대개, 육체수행을 행하고 있습니다. 영매의 대부분이, 과거세계에서 육체수행으로 세월을 보낸 사람인 것과 비슷합니다.
催眠術とは、前述のように意識を眠らせること、それを暗示の力、念力でやります。今まて右側を走っていた人を、念力で左側を走らせようというわけです。
최면술이란, 전술한바와 같이 의식을 잠재우는 일, 그것을 암시의 힘, 염력으로 행합니다. 지금까지 우측을 달리고 있던 사람을, 염력으로 좌측을 달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ものにはずべて等速度運動が働いています。かけ足で急にとまるうとすれば、倒れてしますでしょう。催眠術はそうしたことをやろうというわけですから、結果はどうなるか、もうおわかりでしょう。
만물[사물]에는 전부 등속도운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려고 하면, 넘어져 버릴 것입니다. 최면술은 그런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이미 아실 것입니다.
催眠術によって小心が大心になった、ドモリが治った、ノイロ―ゼが解消した、ということですが、ある人は一時治ったかにみえても、かえってノイロ―ゼが惡化したと訴えて來ました。心のスモッグ(我欲)を拂わずに、それを念の力で押しこんでしまうと、反作用が出てきましだ。靈的には、その人の心を他界者が占領します。催眠狀態がひんばんに行われると、他界者が、 その人の意識に、より入りやすい狀態になり、二重人格を形成していきます。つまり性格が變ってゆくのです。テレビなどで、催眠術の物すごい實驗がときおり行われたりしますが、催眠術師の背後では、仙人界のかつての行者が演技をしています。念力は人間に與えられた能力ですが、正しく使わないと、大變危險なものです。正しく使うには正見、正思、正語(八正道)が實踐されて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
최면술에 의해 작은 마음이 큰 마음으로 되었다, 말더듬이가 나았다. 노이로제(신경쇠약증)가 해소되었다고, 라고 하는 것입니다만, 어떤 사람은 일시적으로 치료된 것으로 보여도, 오히려 노이로제(신경쇠약증)가 악화됐다고 호소해 왔습니다. 마음의 스모그(아욕)을 제거하지 않고, 그것을 생각의 힘으로 억지로 밀어 넣으면, 반작용이 나아옵니다. 영적으로는, 그 사람의 마음을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 점령합니다. 최면상태가 빈번히 행하여지면,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의 의식에, 보다 들어가기 쉬운 상태가 되어. 이중인격을 형성해 갑니다. 즉 성격이 변해 가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등에서, 최면술의 매우 무서운 실험이 가끔 행하거나 합니다만, 최면술사의 배후에는, 선인계(仙人界)의 이전(옛날)의 행자가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염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입니다만,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용하는 데는 정견, 정사, 정어(팔정도)가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인계(仙人界)는, 절대로 천국이 아닙니다. 신선계(神仙界)라고도 하며, 제가 그곳에 있었습니다.(전생에)
★천구계(天狗界)도 역시 천국이 아니며, 또 다른 차원의 다른 저 세상입니다.
小心を大心にするには、まず心のスモッグを拂うことからして下さい。 人間は誰しも丸く大きな豊かな心を持っているのですから、あせらず、なまけず、中道という正しい道を步むことが大事です。
작은 마음을 큰 마음으로 하는 데는, 우선 마음의 스모그를 떨어 없애는 것부터 해 주십시요. 인간은 누구라도 둥글고 큰 풍요로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중도라고 하는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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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と神秘力]
[종교와 신비력]
問 질문
宗敎には必ず神通力とか靈能が出て來きます。これらは一般の人によっては、不思議な働きだと思わらますが。宗敎と神秘力との關係について、また, そうした神秘力がなければ絶對に悟れないのものかどうかをおたずねします。また道元禪師は智で悟り、日蓮上人は意て悟り、親鸞上人は情で悟ったと思われますが、いかがでしょうか。
종교에는 반드시 신통력이라든가 영능력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일반인에게는, 불가사의한 작용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종교와 신비력과의 관계에 대해서, 또, 그러한 신비력이 없으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인지 어떤지를 묻습니다. 또 도겐(도원)선사는 지혜(智)로 깨닫고, 니찌렌상인(일련)은 의지(意)로 깨닫고, 신란(親鸞)상인 정(情)으로 깨달았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떠십니까?
答 대답
宗敎と神秘力とは必ずしも結びつきません。神秘力がなくとも、優れた宗敎家はたくさんいるでしょう。 シュバイツァ―博士、あるいはヘレンケラ―という菩薩界の傳道者もいます。かくれた偉人を數えたら大變な數になるでしょう。
종교와 신비력이란 반드시 결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비력이 없을지라도, 우수한 종교가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슈바이쳐 박사, 혹은 헬렌 켈러라고 하는 보살계의 전도자도 있습니다. 숨은 위인을 헤아린다면 상당힌 수가 될 것입니다.
※보살계= 극락의 세계 중의 7차원의 세계입니다. 예를 들면, 관세음보살님이 계신 세계. 동물들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분들이 사는 세계. 자비와 사랑 그 자체인 분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町の宗敎家が神秘力を使っている例はひじょうに多いのですが、大抵は敎祖と稱する人の背後で、ヘビや狐、 魔王、仙人界の靈人が操っている場合が多いのです。占いではありませんが、よく當ります。病氣も一時的に治します。しかし大事なことは、敎祖と稱すろ人の想念行爲がまともであるか、奇行が多いか、感情的......裸の人間をまず見分けることが大事でしょう。ボサタ―以上になると、威張ったり、天狗になったり、おどしたりは絶對しません。普通人と何ら變らず、それでいて神理を行じ、人びとを敎化していきます。
도회지의 종교가가 신비력을 사용하고 있는 사례는 상당히 많습니다만, 대개는 교조라고 칭하는 사람의 배후에서, 뱀이나 여우, 마왕, 선인계의 영인(靈人)이 조종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점술은 아니지만 잘 맞춥니다. 병도 일시적으로 고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교조라고 칭하는 사람의 상념행위가 성실(건실, 착실)한가, 기행이 많은가, 감정적인가.... 적나라한 인간을 우선 알아보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보살 이상이 되면, 거만하게 굴거나, 천구(天狗=상상이상의 괴물과 같은 형상의 세계의 동물)가 되거나, 협박(위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리를 실천하고, 사람들을 교화해 갑니다.
偉大な宗敎家は、普通の生活をしながら、それでいて敎多くの奇蹟や神道力を行使し、多くの人びとを敎えっていきます。不當に金品を要求したり、 せい澤をしたり、罰が當るなどと脅しません。何億圓も使って殿堂をづくることもないでしょう。
위대한 종교가는, 보통의 생활을 하면서, 그런데도 수많은 기적이나 신통력을 사용하고,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갑니다. 부당하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사치를하거나, 벌을 받는다 등으로 위협하지 않습니다. 몇억엔이나 사용하여 전당을 만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三次元の世界からみると神秘力ですが、實在界からみると當り前のことが行使さ れているにすぎません。人間の意識は實在界に通じており、それが認識でぎれば誰でも出來るものです。宗敎というあらたまった槪念で考える必要はないのです。
3차원의 세계에서 보면 신비력입니다만, 실재계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 행사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식은 실재계에 통해 있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으면 누구라도 가능한 것입니다. 종교라고 하는 격식을 차린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悟りに神秘力が必要かという質問は、順序がちがいます。悟ったから神秘力が生まれるのであって、神秘力が悟りを促すものではありません。また悟りには幾層もの段階がありますが、必要なことは過失を修正し、修正したことが自然に行じられるようになることです。この世の一つの目的は、自己のカルマを修正すること、もう一つは佛國土、ユ―トピアを建設することです。無理なく修正出來た一つ一つのことがらについて、その一つづ一について悟ったといえるのです。 一度悟ると何でもわかってしまうと大抵は考えますが、そういう考えはあらためて欲しいものです。まず足元から悟っていきましょう。
깨달음에 신비력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은, 순서가 틀립니다. 깨달았기 때문에 신비력이 생기는 것이며, 신비력이 깨달음을 촉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 깨달음에는 얼마간의 층, 단계가 있습니다만, 필요한 것은 과실(過失)을 수정하고, 수정한 것이 자연히 실천되도록 하는 일입니이다. 이 세상의 한가지의 목적은, 자기의 카르마[업]을 수정하는 것. 또 한가지는 불국토,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무리없이 수정가능한 하나하나 사항에 대해서,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깨달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깨달으면 무엇이든 알아버린다고 대개는 생각합니만, 그러한 생각은 고쳐주웠으면 합니다. 우선 주변부터 깨달아 갑시다( 우선 약점부터 깨달아 갑시다) .
※ 足元 = 발밑, 주변, 기초, 약점 이란 뜻이 있네요.
道元という人は神界の人です。日蓮、親鸞はボサタ―です。質問者は、三人を智情意に結びつけて考えているようですが、そうした詮索よりも、あなた自身, 正法を行じるようにしてすださい。
도겐(도원道元)이라고 하는 사람은 신계(神界)의 사람입니다. 니찌렌(일련日蓮), 신란(親鸞)은 보살입니다. 질문자는, 세 사람을 지(智), 정(情), 의(意)에 결부시켜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러한 세세한 점까지 파고 들기 보다도, 당신 자신, 정법을 실천하도록 해 주십시요.
※신계=극락의 세계 중의 6차원의 세계입니다.
心の問題は頭でいくら學んでも本堂の理解は出來ないものです。八正道は正しいと思ったならば、それを實踐して下さい。實踐すれば心がひらけ、悟り近づくことが出來ます。
마음의 문제는 머리로 아무리 배워도 정마로 이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바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실천해 주십시요. 실천하면 마음이 열려, 깨달음에 가까이 갈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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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者の供養]
[죽은 사람의 공양]
問 질문
一、告別式に、あるいは法事の際に、死後の人が好きだからとして、生前の好きな物を色色供養し供えますが、こうしたことは正しいのでしょうが。
一、고별식(告別式=장례식,송별식), 혹은 법사가 있을 때에, 죽은 후 사람이 좋아한다라 해서, 생전에 좋아한 물건을 여러 가지 공양하고 올립니다만, 이러한 행동은 올바른 것인가요?
一、昔から不幸やお祝いどに緣起をかつぎますが、これは本堂のことでようが。
一、옛날부터 불행이나 축복 따위에 미신에 사로잡혀 재수를 따집니다만, 이것은 사실인 것일까요?
一、忘れない夢と、思い出せない夢について說明して下さい。
一、잊혀지지 않는 꿈과, 생각나지 않는 꿈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요..
答
一、悟った靈は、物を上げられようと、上げれまいと、そのような事に心を動かすことはありません。だいいち、四次元(實在界あの世)と三次元(この世)では、ともとも次元が異なり、あの世の靈は、三次元の供え物を食べることが出來ないし、また、そうした行爲があるなしによって心が動くようでは天上界に行くことも出來ません。
대답.
一. 깨달은 영혼은, 물건을 바치든, 바치지 않든, 그러한 것에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4차원(실재계 저 세상)과 3차원( 이 세상)은, 원래 차원이 다르고, 저 세상의 영혼은, 3차원의 공양물(제물[祭物])을 먹을 수가 없고, 또, 그러한 행위가 있고 없음에 의해서 마음이 움직여서는 천상계로 갈 수도 없습니다.
だだ、あちらに歸った魂といえども人の子、神の子です。地上界の人びとの心が自分に向けられ、生前好きな物を出され「さあ食べて下さい 」といわれれば、その氣持をくまれ感謝することでしょう。一方、地獄界に墮ちた靈はそれではどうかといいますと、この人たちは供え物を食でたくとも食べられません。現象界への執着もつよく、このため、葬儀の歸りに事故が起こったり、法事の後で兄弟ゲンカが始まるなど、いろいろと問題を起こすことがあります。これらは、死者の靈が近親者に働きかけるために起こる現象です。 死者に對する供養は、あとに遺った人たちが中道という調和された生活を送ることなのです。そうすると、こうした作用は生じません。物を上れる、あげないは二の次、三の次です。
다만, 저쪽으로 돌아간 영혼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자녀, 신의 자녀입니다. 지상계의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에게 향해져, 생전에 좋아한 음식을 내놓으며 「자아 드십시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 마음을 받아들여 감사(感謝)할 것입니다. 한편 지옥에 떨어진 영혼은 그러면 어떤가 하면, 이 사람들은 공양물(제물[祭物])을 먹고싶다고 할지라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현상계에의 집착도 강하고, 이 때문에, 장례식이 끝나 돌아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거나, 법사가 가고난 후 형제간이 싸움(말다툼)이 시작되는 등. 여러 가지로 문제를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친근한 사람에게 손쓰기 때문에(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공양은,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중도라고 하는 조화된 생활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러한 작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물건을 바친다, 바치지 않는 것은, 2차, 3차입니다.
★働きかけるために "2010년도 당시에, 작용하기 때문에"라고 번역한 것은 오역이었습니다.
정정합니다. 죄송합니다. "손쓰기 때문에"가 정확한 번역입니다.
一、不幸に對してはおはらいを、お祝いにはあやかりたいと、緣起をつぐ風習がとこにもありますが、これらは慣習に支配された無知な心が、そうさせるのです。惡い事に、人は恐怖心を抱きます。その恐怖心が不幸を招くのです。つまり、惡いことが二度、三度重なる、あるいは良い事は重なって欲しいとして、それを求めるその心が、そうした現象となって現われるのです。 緣の起りは、すべて心がつくり出し、それは通常、想念という、思う念ずる作用から起こってくるわけです。
- 불행에 대해서는 신사(神社)에서 하는 액막이 행사[6월과 12월 그믐에 신사(神社)에서 거행되는 불제(祓除)의 행사(《온 백성의 죄나 부정을 씻기 위한 것》)을, 축복으로는 남들이 닮고 싶어할 만큼 행복해지고 싶다고, 미신에 빠져 재수를 따지는 풍습이 어디에나 있습니다만, 이것들은 관습에 지배당한 무지한 마음이, 그렇게 시키는 것입니다. 나쁜 일에, 사람은 공포심을 품습니다. 그 공포심이 불행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즉, 나쁜 일이 두 번, 세 번 중복된다, 혹은 좋은 일은 중복되고 싶다고 해서, 그것을 구하는 그 마음이, 그러한 현상이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재수(길흉의 조짐; 운수 緣の起り)는, 전부 마음이 새롭게 만들어 내고, 그것은 통상, 상념(想念:마음에 품은 생각)이라고 하는, 매사에 성취 등을 강하게 바라는 (성공을 바라는) 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想念はモノをつくり出すということを、あらためて知って欲しいものです。
마음에 품은 생각은 만물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을, 세삼스럽게 알아 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一、夢については、すでにのべましたが、夢にはいろいろあって、守護靈が意識的にみせる場合と、本人自身があの世を見てくる場合、本人の心の映像が具象化される場合など、さまざまです。忘れ離い夢は守護靈が見せてくれる夢です。天國に行って、美しい花や、きれいな人たちと樂しくすごして來たり、素晴らしい風景をみたりします。忘れる夢は、たいてい自分があの世に行て見てくるため、目がさめると、見て來た狀景が思い出せないことが多いのです。映像の具象化は、テレビや芝居など恐いものを見たときに、それが夢となって現われる。このほか地獄靈や動物靈が本人に憑依し、惡夢をみせる場合があります。夢は、自分の心, 想念の在り方によって變ってくるものです。
- 꿈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습니다만, 꿈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수호령이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경우와, 본인 자신이 저 세상을 보고 오는 경우, 본인의 마음의 영상이 구상화되는 경우 등, 가지각색입니다. 잊기 어려운 꿈은 꿈은 수호령이 보여주는 꿈입니다. 천국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이나, 아름다운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고 오거나,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합니다. 잊어버리는 꿈은, 대개 자신이 저 세상에 가서 보고 오기 때문에, 잠에서 깨면, 보고 온 상황이나 풍경이 생각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영상의 구상화(具象化)는, TV나 연극 등 무서운 것을 봤을 때에, 그것이 꿈이 되어 나타난다. 이밖에 지옥령이나 동물령이 본인에게 빙의해서, 악몽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꿈은, 자신의 마음, 마음에 품은 생각이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에 의해 바뀌어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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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經]
[불경(경문)]
問 질문
一、先祖供養のためお經を上げる慣習がありますが、いったい、これは價値があるものかどうか。また、ソ聯や中共にはお經を上げる慣習がありませんが、このような人たちの供養はどうなるのでしょう。
一, 선조공양을 위해 경문(불경)을 올리는 관습이 있습니다만, 도대체, 이것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떠지, 또, 소련이나 중공에는 경문(불경)을 올리는 관습이 없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의 공양은 어떻게 되나요?
一、科學が發達するにつれて、宗敎と哲學の存在價値が消滅すると思いますが、この点はどうなのですか。
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종교와 철학의 존재가치가 소멸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점은 어떠한 것입니까?
答 대답
一、お經を上げることが供養だと考えるのは間違いです。死んだ人がお經の意味を知っているなら、ああそうだった、自分は考え違いをしていたと氣づくでしょうが、お經のオの字も知らない者には、馬の耳に念佛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ょう。死者の靈にもこの世にいたときに同じように、普通の言語で、人間としての正しい在り方を語って聞かせることなのです。
一, 경문(불경)을 올리는 일이 공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죽은 사람이 경문(불경)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아~그랬었군, 자신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고 깨달을 것입니다만, 경문(불경)의 "ㄱ억"자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라고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에도 이 세상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통의 말로,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모습(바람직한 상태)를 말해서 들려주는 것입니다.
★ 저 역시 이렇게 주로 합니다 ★
★ 아무리 둔해도 30분 이내에 알아듣고는, 가버립니다 ★
お經そのものは、釋迦の說法を說明したもので、それが中國に渡って漢文化され、リズムを持った讀誦に變ってきました。經文の意味を悟り、實踐している者が經文を讀誦する場合は、迷った靈はその讀誦の波動(光の波動)によって、淨化されます。したがって、そういう意味ではお經は供養になるといえますが、しかし、普通はこうはいきませんし。第一それだけの自身のある方は非常に限られてくるわけです。僧職の方で、あの世を知っている人ならば、お經は供養になりますが、それ以外はあまり意味がないといえます。 お經を上げることが供養というならば、ソ聯や中國の人たちはどうなるかということですが、政體はどうあろうと、神を信じ、己の心を正して生活している者は地獄に墮ちることはないのです。お經を上げなくとも、遺った家族の者だちが調和された生活を送っていれば、例え地獄に墮ちた靈でも、それを見て反省の材料とし、悟れる環境に浮かばれることになるのです。
경문(불경) 그 자체는, 석가의 설법을 설명한 것이며, 그것이 중국에 건너가 한문화되어, 리듬(운율)을 가진 소리를 내어 읽거나 외우는 것으로 바꿔 왔습니다. 경문(불경)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경문을 소리를 내어 읽거나 외우는 경우는, 길을 잃은 영혼은 그 소리를 내어 읽거나 외우는 파동(빛의 파동)에 의해서, 정화됩니다. 따라서, 그러한 의미에서는 경문(불경)은 공양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지만, 보통은 그렇게는 되지 않고, 첫째 그 만큼의 자신의 본연의 자세(바람직한 상태)는 상당히 제한되어 오는 까닭입니다. . 승려로서의 직무의 사람이며, 저 세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경문(불경)은 공양이 됩니다만, 그 이외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문(불경)을 올리는 것이 공양이라면, 소련이나 중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일입니다만, 정체(政體:국가의 통치형태)는 어떻든, 신을 믿고, 자기의 마음을 올바르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경문(불경)을 올리지 않아도, 남은 가족의 사람들이 조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으면, 설령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라도, 그것을 보고 반성의 재료로 삼고, 깨달을 수 있는 환경으로죽은 이의 넋도 성불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いずれにしても、死者、先祖の最大の供養とは、地上界の子孫の實生活の調和にしかないことを知るべきです。
결국, 죽은 사람, 선조의 최대의 공양이란, 지상계의 자손의 실생활의 조화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
一、正法は科學です。佛敎も科學です。調和を說く佛敎がどうして非科學なるのでしょう。色卽是空、空卽是色とは、萬生萬物は循環によって成り立ち、これから外れれば心も肉體も苦しむ、中道の心で生活しなさいということをいっているのです。心配事があれば食事がノドを通らないし、怒れば心臟が高鳴るでしょう。中道に反した感情想念が働くと、血液の血行が亂れ、 胃腸の働きも弱る。佛敎はそれを敎えています。これは立派な科學です。あなたは從來の拜む宗敎と、正法と混同され、觀念と、自己滿足の宗敎を宗敎としてみているようです。たしかにそう意味では、存在價値がなくなるでしょう。しかし、正法、佛敎の中身はそんなものではなく、立派な科學なのです。
一, 정법은 과학입니다. 불교도 과학입니다. 조화를 설명하는 불교가 어째서 비과학이 되겠습니까. 색즉시공 , 공즉시색이란, 만생만물은 순환에 의해서 성립되고, 이것에서 벗어나면 마음도 육체도 괴롭다. 중도의 마음으로 생활하십시요 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심거리가 있으면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고 , 화를 내면 심장이 두근거릴 것입니다. 중도에 반한 감정상념이 작용하면, 혈액의 흐름이 어지러워지고, 위장의 활동도 약해진다. 불교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훌륭한 과학입니다. 당신은 종래의 신불에게 참배하는 종교와, 정법과 혼동되어, 관념과, 자기만족의 종교를 종교로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확실히 그 의미로는, 존재가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법, 불교의 알맹이(내용)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과학인 것입니다.
正法と拜み宗敎とを混同しないこと。それに、これからの科學は、正法を中心に發達して行くことでしょう。
정법과 신불에게 참배하는 종교와 혼동하지 않는 것. 앞으로, 이제부터의 과학은, 정법을 중심으로 발달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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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明]
[문 명]
問 질문
一、實在界は、今の現象界より高度の文明を得ったところであり、人類が他の天體より天孫降臨して來た當時は、實在界と常に交涉をもっていたといわれます。ところが私たちの知る範圍の人類の歷史では、長い原始時代を送っています。現在の地球の文明を考えますと、この邊のところがどうも理解できません。
一, 실재계는, 지금의 현상계보다 고도의 문명을 이룬 장소이며, 인류가 다른 천체로부터 천손강림(天孫降臨)하여 왔을 당시는, 실재계와 항상 교섭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아는 범위의 인류의 역사로는, 오랜 원시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의 지구 문명을 생각하면, 이 부근이 요점이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一、人類救濟のためには戰爭、革命、鬪爭もやむを得ないという考えは根强いと思います。先生の理想とする私會はどんな社會ですか。
一, 인류구제를 위해서는 전쟁, 혁명, 투쟁도 어쩔 수 없다라고 하는 생각은 뿌리깊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이상(理想)으로 삼는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
答 대답
一、特殊な乘り物によって降り立った人類はあの世實在界と交信ができ、 文明も高かったことは拙著にある通りです。その人類の子孫の生活が、當時より低く、原始時代も長いというのも、あなたが指摘する通りです。ではなぜそうなったか。この点については、まずこういうことを考えてみて下さい。 例えば鐵骨ビルを作る技師、工場、圖面、そしてこうした方面に働く人とびと、それにビルそのものが突然この地上から姿を消したと假定してみて下さい。おそらく、ビルを建築するには、長い時間と、技師を養成する敎育、發明といったものが必要になってくるでしょう。
一, 특수한 교통수단에 의해 내려온 인류는 저 세상 실재계와 교신이 가능하고, 문명도 높았다는 것은 졸저에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 인류의 자손의 생활이, 당시보다 낮고, 원시시대도 길다고 하는 것도, 당신이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우선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예를 들면 철골빌딩을 만드는 기사, 공장, 도면, 그리고 그러한 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게다가 빌딩 그 자체가 갑자기 이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고 가정해보십시요. 틀림없이, 빌딩을 건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기사를 양성하는 교육, 발명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로 되어 올 것입니다.
人類の歷史は、ノアの方舟的現象が何回となく繰り返され、文明が進んだと思うと崩壞し、進んだ時点で再び天災に見舞われ、文明を支えていた科學者、技師、發明者、それに文明の象徵である建築物や機械類が地上から抹殺されていったのです。生き殘った人とびとの中に、こうした科學者や發明者がいても、工場や資材、硏究室、圖面や資料がなければ、抹殺される以前の文明にかえるには長い時間をかけ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인류의 역사는, 노아의 방주적 현상이 몇 번 되풀이되어, 문명이 진화했다고 생각하면 붕괴하고, 진화한 시점에서 다시 천재지변을 당하여, 문명을 지탱하고 있던 과학자, 기사, 발명가, 게다가 문명의 상징인 건축물이나 기계류가 지상에서 말살되어 갔던 것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이러한 과학자나 발명가가 있어도, 공장이나 재료, 연구실, 도면이나 자료가 없으면, 말살되기 이전의 문명으로 돌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地上文明は常にこうした繰り返しを重ねて來ました。このため、一億年前の文明より、今日の文明が劣っていたり、あるいは文明の方向が違って來ていることは否定出來ないとおもいます。
지상문명은 항상 이러한 반복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1억년 전의 문명보다, 오늘날의 문명이 뒤떨어져 있다고 하거나, 혹은 문명의 방향이 달라져 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一、平和のための戰爭、それはたしかに人類の歷史であったでしょう。戰爭と平和の期間を分けると七對三、あるいはそれ以上の比率になるでしょう。しかし平和のために戰爭によって人類は幸せを得たでしょうか、今もって幸せではありません。戰爭の歷史は、平和のための戰爭が、私だちを幸せにしないことを證明し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一, 평화를 위한 전쟁. 그것은 영락없이 인류의 역사일 것입니다. 전쟁과 평화의 기간을 나누면 7대 3. 또는 그 이상의 비율이 될 것입니다. 그랗지만 평화를 위한 전쟁에 의해 인류는 행복을 얻었을까요, 아직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역사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理想の社會は調和の社會です。心の中に爭い想いを持たない社會です。爭いの想いは自己保存と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から生じます。これを調和させるには人間としての目的と使命をしっかり自覺することが先決です。
이상의 사회는 조화로운 사회입니다. 마음 속에 싸움의 생각을 갖지 않는 사회입니다. 싸움의 생각은 자기보존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부터 생겨납니다. 이것을 조화시키는 데에는 인간으로서의 목적과 사명을 확실히 자각하는 것이 선결입니다.
拙著を熱讀してもらえば人類の調和はどうすれば達成できるかおわかりになると思います。
졸저를 열심히 읽어 주시면 인류의 조화는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는지 아시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まず、あなた自身の心から平和をつくることです。
우선, 당신 자신의 마음부터 평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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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迷い]
[미혹(방황) 갈피를 잡지 못하여 헤매는 일]
問 질문
業(カルマ)は人によって皆ちがい、また、使命や役割も異なると思います。八正道を根底とした生活をすれば、自分の使命がハッキリとわかるでしょうが。心は一念三千ですが、使命を悟れば、迷いに打ち勝てるのかどうが。この邊を說明して下さい。
업(카르마)은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르고, 또, 사명이나 역할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팔정도를 근거로 한 생활을 하면, 자신의 사명이 뚜렷이 알 수 있습니까? 마음은 일념삼천입니다만, 사명을 깨달으면, 미혹을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떤지, 이 부분을 설명해 주십시요.
答 대답
業(カルマ)は執着から生まれます。自己中心のものの考え方が執着を生み、カルマをつくって行くのです。
업(카르마)은 집착으로부터 생겨납니다. 자기중심의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이 집착을 낳고, 카르마(Karma업)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カルマは大きく分けて三通りあります。その一つ目は先天的なもの、二つ目は兩親による肉體的遺傳、三つ目は環境です。
카르마는 크게 나누어서 3 정도입니다. 그 첫 번째는 선천적인 것, 두 번째는 부모에 의한 육체유전, 세 번째는 환경이다.
先天性のカルマは、氣質として現われます、意志の强弱、內向型、外向型、悲觀的、樂觀的というように。こうしたものは先天性のもので修正に手間がかかります。二つ目の肉體遺傳は血液の型、內臟諸器官の强弱、色盲等マ、肉滯遺傳についてはこうしたハンディが、ものの考え方や生活の仕方を變え、執着をつくります。三つ目は敎育や思想、生活環境によってつくられるでしょう。
선천성의 카르마는, 기질로서 나타납니다. 의지의 강약, 내향형, 외향형, 비관적, 낙천적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러한 것은 선천성의 것이며 수정하는데 품[시간]이 듭니다. 두 번째의 육체유전은 혈액형, 내장 모든 기관의 강약, 색맹 등등. 육체유전에 대해서는 이러한 핸디캡이,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이나 생활하는 방법을 바꿔서, 집착을 만듭니다. 세 번째는 교육이나 사상, 생활환경에 의해 만들어 질 것입니다.
カルマというものはこのように片寄った考え方、見方が執着となり、その人の生活を規制し、苦しみに追い込んでゆくものです。
카르마라고 하는 것은 이와같이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방식, 관점[견해]가 집착이 되어, 그 사람의 생활을 규제하고, 괴로움으로 몰아 넣어 가는 것입니다.
八正道はこうしたカルマを超えて、中道の精神を養っていくものです。
팔정도는 이러한 카르마를 뛰어 넣어, 중도의 정신을 길러 가는 것입니다.
次に人の使命は、萬人が萬人、 一人殘らずあるものです。そうしてその使命は現在置かれている環境の中で立派に果たして行けるものです。
다음으로 사람의 사명은, 만인이 만인[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명은 현재 놓여져 있는 환경 속에서 훌륭하게 (의무·역할 등을) 완수해 가는 것입니다.
使命というと、何か特殊な役割のように聞こえますが、本來そういう特別のものではなく、現在與えられている環境を、明るく、正しく、調和された世界をつくって行くのが各人の使命です。主婦には主婦としての役割、ご主人はご主人で外に出て、その周圍を調和して行くのが各人の使命です。
사명이라면, 뭔가 특별한 역할처럼 들립니다만, 본래 그런 특별한 것이 아니고, 현재 주어져 있는 환경을, 밝게, 올바르게, 조화된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각자의 사명입니다. 주부에게는 주부로서의 역할, 남편은 남편으로서 밖에 나가서, 그 주위를 조화해 가는 것이 각자의 사명입니다.
それには八正道の物差して、片寄りのない自分をまずつくり、人びとをして感化して行くことです。
그것에는 팔정도의 척도로써,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자신을 우선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감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次に、悟ったらば迷いはありません。迷う間は、悟ってはいないのです. ただ、方法論については考えの違いは出てくるでしょう。人びとを導く場合など、いくつかの道があるからです。しかし、それでも最終的には一致するものです。意見が分かれて統一出來ないということはありません。
다음으로, 깨달았다면 갈피를 잡지 못하여 헤매는 일은 없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은, 깨닫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생각의 차이는 나아 올 것입니다. 사람들을 인도하는 경우 등, 몇 개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일치하는 것입니다. 의견이 나뉘어져 통일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迷いは僞我の自分があるために起ころものです。もちろん、迷いの內容が夫婦間の問題とか、任事、病氣といったもので見分で解決つかぬことがあれば相談して下さい。人によっては現在の環境から離れた方が良い、という場合もあるし、その環境に堪えようとしてかえってカルマをつくることがあるからです。
미혹[방황, 갈피를 잡지 못하여 헤매는 일]은 거짓된 자아인 자신[당사자]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미혹[방황, 갈피를 잡지 못하여 헤매는 일]의 내용이 부부간의 문제라든가, 일, 질병이라고 하는 것으로 분간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다면 상담해 주십시요. 사람에 따라서는 현재의 환경으로부터 떨어지는 편이 좋다, 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 환경을 참고 견딤으로 인해 도리어 카르마를 만드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要は、心の中にカルマの種を宿さぬことが大事なのです。
요점은, 마음 속에 카르마의 씨앗을 심지 않은 일이 중대사입니다.
カルマというものは、たえず、ぐるぐると輪廻しています。そのため、なかなかそれからぬけられません。ぬけるためには勇氣と努力、そして工夫をもって當って下さい.
카르마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며 윤회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상당히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빠지 나오기 위해서는 용기와 노력, 그리고 골똘이 생각하여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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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 現 象]
[영 현상]
問
雜誌「旅」の一月號の記事に、ある主婦が突然古代語をしゃべり出し、古代文字も書くようになったといいます。今では十八個國語を語り、三十人の弟子ができ、全員がペラペラと會話をするということです。心の窓は正法を理解し、實踐することによって開くと思われますが、この現象をどう理解したらいいのでしょうか。
질문
잡지 「여행」의 1월호의 기사에, 어는 주부가 갑자기 고대어를 말하기 시작하고, 고대문자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에는 18개국어를 말하며, 3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전원이 슬슬 회화를 한다고 하는 일입니다. 마음의 창은 정법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에 의해서 열린다고 생각되어집니다만,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 것일까요?
答 대답
まず一番大事なことは、そうした現象にとらわらず、現象を現わしているその人の私生活、性格、人柄、そうしたことを知る必要があるということです。
우선 가장 중대사한 일은, 그러한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그 사람의 사생활, 성격, 인품(사람됨), 그러한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過去世の言葉を語り、靈道現象が現われたといっても、それが本物かどうか、普通ではわかりません。守護靈や指導靈が背後にいて、そうした現象を現わしているとすれば、その人の日常生活は普通の人と變わらず、それでいて、キチンした生活を送っているはずです。また神理を語り、說得力も持っているでしょう。
과거세상의 말을 구사하고, 영도현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인지 어떤지, 보통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수호령이나 지도령이 배후에 있고, 그러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의 일상생활은 보통의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러면서도, 깔끔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신리(神理)를 말하고, 설득력도 갖고 있을 것입니다.
ところが、自我が强く、欲望は人一倍であり、中傷や人を非難することが平氣であれば、古代語は部分的には本當であっても、背後靈は、龍か他の動物靈とみて差支えありません。こうした靈がその人を支配しているときは、その考えも、行動も一貫性がなく、その場のの場の思いつきになるでしょう。
그런데, 자아가 강하며, 욕망은 남보다 갑절이며, 중상(근거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킴)이나 남을 비난하는 것이 예사라면, 고대어는 부분적으로는 진짜라고 해도, 배후령은, 룡이라든가 다른 동물령이라고 봐도 지장이 없습니다. 이러한 혼령(영혼)이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 그 생각도, 행동도 일관성이 없고, 그때그때의 상황·장소·장면 문득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瀧に他たれ、神社佛閣などで行を積む場合は、こうした危險が常につきまとっているといえます。
폭포를 맞으며(폭포수행을 하며), 신사([신을 제사지내는 곳 또는 그 건물])나 불각([절의 건물, 사원]) 등에서 수행을 쌓는 경우는, 이러한 위험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靈道現象というものは、念力によって開くのと、正しい生活行爲にもとづいて開くのとがあります。勉强,勉强でそれに振り回されていると、ノイロ―ゼや精神病になりますが、こうした現象も靈現象なのです。また人によっては、そうした中で突然靈現象が現われ、神がなりになる場合もあります。こういう場合は大抵、過去世で何らかの行を積んでいることが多く、その人の心の狀態いかんで、守護靈が出るときもあれば、動物靈が語ることもあります。しかし普通は正法を知らずに靈道をひらくのですから、まずほとんどの人が動物靈の支配下におかれ、不自然な言動が多くなり、行者の末路といわれるような結末になるのです。
영도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영력(靈力)에 의해서 열리는 것과, 올바른 생활행위에 입각하여 열리는 것이 있습니다. 공부, 공부만으로 그것에 휘둘려지고 있으면,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이나 정신병이 됩니다만, 이러한 현상도 영도현상인 것입니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그러한 가운데에서 갑자기 영현상이 나타나서, 신이 가령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대개, 과거세에서 이것저것 수행을 쌓고 있는 일이 많고,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며, 수호령이 나올 때도 있으면, 동물령이 말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은 정법을 모르고 영도를 여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대부분의 사람이 동물령의 지배하에 놓여져, 부자연한 언동이 많게 되며, 수행자의 말로라고 말해지는 것과 같은 결말에 되는 것입니다.
モノが當る、病氣を治す、靈力がすごい、というだけでその人を信じてはいけません。大事なことは、私たちは三次元のこの世に多くのことを學ぶために生まれて來ているのですから、まず常識的に判斷し、靈力を持っているその人の言動をよくたしかめることです。もしその人が正道に適う生活を送り、謙虛で、愛に滿ち、人とびとを善導しているならば間違いはないでしょう。しかしこういう人は少ないのです。どうしても肉體中心的な考え、行動になって行きます。
일을 알아맞춘다, 병을 치료한다, 영력이 무시무시하다, 라고 하는 것 만으로 그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중대사한 일은, 우리들은 3차원의 이 세상의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태어나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영력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언동을 잘 확인하는 일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정도에 들어맞는 생활을 보내고, 경허하며, 사랑으로 충만하며, 사람들을 선도하고 있다면 잘못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람은 적은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육체중심적인 생각, 행동으로 되어 갑니다.
こういうことで、これからも、そうした古代語らしきことをしゃべる人が出てくると思いますが、その靈道現象をうのみにせず、それが本物であるかどうか、正法に照らしんて、見る、聞く、考えることです。
이러한 것으로, 전무후무한, 그러한 고대어를 말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영도현상을 뜻도 모르면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이 진짜인지 어떤지, 정도에 비추어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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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毒矢の喩]
[독화살의 비유]
問
阿含經に述べられている、佛陀の "毒矢の喩"について答えて下さい。
阿含經に次の說話が述れられています。
一、宇宙は永遠か、永遠でないか。
一、宇宙は有限か、無限か。
一、靈魂と肉滯は同一か、別か。
一、如來は死後存續するか、しないか。
질문
아함경(阿含經)에 기술되어 있는, 부처의 독화살의 비유에 대해서 대답해 주십시요.
아함경에 다음의 설화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一, 우주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一,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一, 영혼과 육체는 동일한가, 별개인가?
一, 여래는 사후존속하는가, 하지 않는가?
この四つの問題に解答が與えられないことを不滿としたマ―ルンクヤ プッタという弟子は、あるとき、佛陀に迫って、もし返答か與えられない場合は修行をやめ、還俗するとまて言いだしました。
이 네가지의 문제에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을 불만으로 여긴 마룬쿠야 붓타라고 하는 제자는, 어느 때, 부처에게 바싹 다가가서, 만약 회답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는 수행을 그만두고, 환속하겠다고 까지 말을 꺼냅니다.
これに對して、佛陀は次のように比喩で答えました。
「マ―ルンクヤ プッタよ、ここに毒矢に當って男があるとする。友人や親族の者が集まって醫者の治療を受けるよう勸める。しかしその男は毒矢についてのすべてを知らないうちは拔かせまいとする。その矢を射ったのはどんな男で、どんな身分で、どんな種族の者か、皮膚の色はどんなで、どこの者か。毒矢はどんな矢で、何で作られているか、などの問いに對して滿足な答えが與えられないうちは拔かせない。そうすれば、その男は答えが與えられないうちに死んでしまうであろう」
「이것에 대해서, 부처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대답했습니다.
마룬쿠야 붓타여, 여기에 독화살에 맞은 남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친구나 친족의 사람이 모여 의사의 치료를 받도록 권유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독화살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동안은 뽑지 않겠다고 한다. 그 화살을 쏜 것은 어떤 남자이며, 어떤 신분이며, 어떤 종족의 사람인지, 피부의 색은 무엇이며, 어디의 사람인가. 독화살은 어떤 화살이며, 무엇으로 만들여 있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 만족한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 동안은 뽑게 하지 않겠다. 그렇게 하면, 그 남자는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 동안에 죽어 버릴 것이다. 」
この答えに對して、ある佛敎學者は、佛陀はこの問いに答える能力がなかったと推論し、佛陀の根本思想は「人生は苦なり」であり、人はどうしたら解脫出來るか、という点のみに腐心し、社會を無視した。佛陀の思想は無神論であり、唯物論、現實肯定であったというのですから、サテ、この比喩をどう結論つけたらよいのでしょか。
이 대답에 대해서, 어느 불교학자는, 부처는 이 문제에 대답할 능력이 없었다고 추론하고, 부처의 근본사상은 「 인생은 고통이다 」이며,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해탈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점만으로 근심, 걱정으로 마음을 썩히고, 사회를 무시했다. 부처의 사상은 무신론이며, 유물론, 현실긍정이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럼, 이 비유를 어떻게 결론을 붙이면 좋은 것일까요?
※부심[腐心]
[명사] 1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썩음.2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 내느라고 몹시 애씀.
答
人間にとって一番の行福は何でしょうか。 それは心の安らぎのはずです。 宇宙は永遠か、有限かを知って、その人は心の安らきを覺えることが出來るでしょうか、出來ません。頭に知識をいくらつめこんでも、心の安らぎを得ることは出來ないのです。心の安らぎは、時時刻刻、變化してやまない己の心を知り、執着から離れ、その心を自然の法に乘せたときにのみしか得られないからです。
대답
인간에게 있어서 첫째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의 평안함인 것입니다. 우주는 영원한지, 유한한지를 알고, 그 사람은 마음의 평온함을 깨닫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머리에 지식을 아무리 집어 넣어도, 마음의 평온함을 얻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의 평온함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멈추지 않는 자기의 마음을 알고, 집착으로부터 떨어져, 그 마음을 자연의 법에 실었을 때 밖에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解脫とは、千變萬化の心の動ぎと、それにもとづくさまざまな執着から、己の心を離すことの出來た狀態をいうのです。
해탈이란, 천변만화의 마음의 움직임과, 그것에 입각한 가지각색의 집착으로부터, 자기의 마음을 떼어 놓는 것이 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佛陀の比喩は、こうした中身を含みながら、毒矢に例えたのです。毒矢を射った者は誰か、どんな種族か、矢は何でつくられていたかなど、いちいち詮索していたならば、毒矢に當たった者は死んでしまう。今ここでいちばん緊急を要することは、一刻も早く、毒矢を拔き取り、一命をとりとめることです。助けることです。
부처의 비유는,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면서, 독화살에 예를 든 것입니다. 독화살을 쏜 사람은 누군인지, 어떤 종족인지, 화살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등, 일일이 세세한 점가지 파고 들고 있었다면, 독화살에 맞은 그 사람은 죽어 버린다. 지금 여기에서 첫째로 긴급을 요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독화살을 뽑아내어, 잃을 뻔한 목숨을 건지는 일입니다. 구하는[살리는] 일입니다.
宇宙はいつ出來た。如來は死後存續するかなどと詮索しておれば、五十年、 六十年の生涯はまたたく間にすぎてしまう。せっかく、人間として肉體を持ち、この世に生をうけたのでら、その短かい生涯のうちに、もっとも緊急を要する「心の安らぎ」を得ることの喜びを悟って、現世の人びとに、その喜びを分かち與えて行くことの意義をいっているのです。
우주는 언제 만들어졌다, 여래는 사후에 존속할까 등으로 세세한 점까지 파고 들고 있으면, 50년, 60년의 생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모처럼, 인간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생을 받은 것이면, 그 짧은 생애의 동안에, 가장 긴급을 요하는 「마음의 평온함(평안)」을 얻은 일의 기쁨을 깨닫고, 현세의 사람들에게, 그 기쁨을 나누어 줘 가는 것의 의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人の魂は轉生輪廻を重ねますが、單體(本體あるいは分身)の出生は千年、二千年に一度の機會しかありません。そうして、現象界は、またとない學習の場であり、調和を目的として生きている以上は、學習の場を最大限に生かすことの意義を理解すべきでしょう。
사람의 영혼은 전생윤회를 거듭합니다만, 단체(본체 혹은 분신)의 출생은 1000년, 2000년에 한 번의 기회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현상계는, 두 번 다시없는 학습의 장이며, 조화를 목적으로 해서 살고 있는 이상은, 학습의 장을 최대한으로 되살리는 것이 의의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佛敎學者W氏が、佛陀の比喩を稱して答える能力が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が、佛敎が今日、知と意に變わり、大衆から遊離したのも、これら學者の、 佛典などの文字にとらわれた推論が原因しています。佛敎は思想ではない。 自然が敎える生活の在り方なのです。
불교학자 W씨가, 부처의 비유를 가리켜 대답할 능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만, 불교가 오늘, 지식과 의지로 바뀌고, 대중으로부터 동떨어진[遊離=유리]된 것도, 이런 학자의, 불전 등의 문자에 얽매인 추론이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불교는 사상(思想)이 아니다. 자연이 가르치는 생활의 본연의 모습인 것입니다.
「人生は苦なり」であって、佛陀は、解脫するこののみしか說かなかったようにいわれますが、これもちがいます。
「인생은 고통이다」 하며, 부처는, 해탈하는 것만 밖에 설명하지 않은 것처럼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다릅니다.
人生は本來、喜びなのです。その喜ひを喜びでなくしているものは、ほかならぬ自分自身であり、五官六根にほんろうされた自縛のゆえなのです。
인생은 본래, 기쁜 것입니다. 그 기쁨을 기쁨이 아닌것으로 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며, 오관육근에 농락당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옭아 묶은 원인인 것입니다.
解脫とは、人間本來の姿に歸ることであり、そうして、その法悅を、人びとに及ぼすものです。社會を無視して、自分があるはずはありません。人は社會の中にのみ、生きることが出來ます。
해탈이란,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그 법열[法悅]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사회를 무시하고, 자신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만, 살 수가 있습니다.
※법열[法悅]
[명사] 1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 2 설법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쁨. 연관단어 : 법희(法喜)
個人と社會というものは、二つであって一つです。
개인과 사회라고 하는 것은, 두개이며 하나입니다.
己の心を知ることは、社會を知ることです。己の心を知ろうとせず、社會の現象に目を奪われていては、社會も、自分も、知ることは出來ません。なんとなれば、自分の心を知ることは、社會を構成している人びとの心を知ることなのです。
자기의 마음을 아는 것은, 사회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사회의 현상에 눈을 빼앗기고 있어서는, 사회도, 자신도, 알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肉滯は別マでも、人の心は一つなのです。
육체는 따로따로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한가지인 것입니다.
學者W氏は、佛陀は無神論であり、唯物論でらり、現實肯定ということですが、もし、この方が本當にそう佛陀をみているとすれば、氣の毒な方だと思います。
학자 W씨는, 부처는 무신론이며, 유물론이며, 현실긍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만, 만약, 이 분이 정말로 그러한 부처를 보고 있다고 한다면, 딱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佛陀の解脫、觀自在力、奇蹟、神理の言魂(佛陀が說いた法語)などを理解されると、佛と神との、不可分の關係が明らかになってくるでしょう。キリスト敎は神、佛敎は佛とみて、神と佛は別個の存在のようにみるのは、聖書や佛典の文字にとらわれるためです。人の心を理解し、心を通して聖書を讀まれ、佛典をみてくると、神と佛、つまりイエスとプッタの說いている眞意が理解されてきます。
부처의 해탈, 관자재력, 기적, 신리(神理)의 말(부처가 설명한 법어) 등을 이해된다면, 부처와 신과의 불가분의 관계가 분명하게 되어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신, 불교는 부처라고 보고, 신과 부처는 별개의 존재처럼 보는 것은, 성서나 불전(불경)의 문자에 얽매이기(사로잡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을 통해서 성서를 읽으시고, 불전(불경)을 보아 오면, 신과 부처, 즉 예수와 붓타의 설명하고 있는 참 뜻[진의]가 이해되어 옵니다.
神とは宇宙に遍滿するエネルギ―であり、法であり、無限の意思なのです。 その法なり、意思にふれて、神の意を現實に生かし、人びとを導いていく者を如來といい、佛といるのです。
신이란 우주에 널리 그득 차는 에너지이며, 법이며, 무한의 무언가 하고자 하는 생각[意思]인 것입니다. 그 법이 되며, 그 무언가 하고자 하는 생각[의사]에 접하고, 신의 뜻을 현실에 되살리고,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사람을 여래(如來)라고 말하며,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佛陀が唯物論者であるかどうか、この理を理解すれば、こうした解釋は出て來ないはずです。
부처가 유물론자인지 어떤지, 이 이치를 이해하면, 이러한 해석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佛敎は中道を敎えでいるですから、肉滯をもおろそかㄴはしません。しかし、中道の根本は心であり、心は神につながっているのですから、神と佛とは、不離一體を成るものなのです。
불교는 중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를 소홀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도의 근본은 마음이며, 마음은 신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과 부처는, 불이일체(不離一體)를 이루는 것입니다.
※불이일체[不離一體]
일체란, 떨어지지 아니하는 한 몸이나 한 덩어리. [국어사전] ★생소한 말일 것입니다★
解釋の出發点がひとつ間違うと、すべてが違ってきます。頭で理解しようとするから、違ってくるのです。
해석의 출발점이 조금 잘못되면, 전부가 달라져 옵니다.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달라져 오는 것입니다.
現象界が混亂と不信に滿ち、爭い絶えないのも、人の心の何たるかを知らず、心をおろそかにした生活を送るからなのです。
현상계가 혼란과 불신으로 가득차고,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람의 마음의 어떤것인지를 모르고, 마음을 소홀히 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인 것입니다.
宇宙の永遠を知る前に、自分の心を知るできです。自分の心が理解出來れば、宇宙が永遠かどうかも理解されてくるものです。
우주의 영원을 알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당연히 알아야만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면, 우주가 영원한지 어떤지도 이해되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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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3장 울림편입니다. 다카하시 신지님의 8년동안의 강연 중에 문득 문득 떠오른 영감의 기록입니다.
第三章 ひ び き
제 3장 울림
正直
自然は正直である
冬に雪を降らせ 春に花を咲かせる
人の心も正直である
心は己自身の僞りの證を述べることを拒む
自然も人間も 神佛という大心にかたく結ばれているからだ
정직
자연은 정직하다
겨울에 눈을 내리게하고 봄에 꽃을 피게한다
사람의 마음도 정직하다
마음은 자기 자신의 거짓증거를 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자연도 인간도 신불이라고 하는 대심(大心)에 단단하고 튼튼하게 묶여져 있기 때문이다
苦惱
夜空の星 太陽をとりまく惑星集團は一絲不亂れぬ秩序のなかにある
その分を守り 天命のままに從っているがゆえである
人の肉體も同樣である
小宇宙として調和されている
人の世も それぞれが分を守り 天命を知るならば 破壞や苦惱は生じて來ないものだ
고뇌
밤하늘의 별 태양을 에워싸는 혹성집단은 일사불란한 질서 속에 있다
그 분수를 지키고 천명대로 따르고 있는 까닭이다
사람의 육체도 마찬가지이다
소우주로써 조화되어 있다
사람의 세상도 저마다의 분수를 지키고 천명을 안다면 파괴나 고뇌는 생겨나오지 않는 것이다
執着
傲慢 逃避 中傷 嫉み 愚痴 爭い 獨善 排斥 差別 自己顯示 自己滿足 -----
これらは人の心を毒す
なんとなれば その想念行爲は執着に根があるからである
執着の想念は 神佛の心からもっとも遠い距離にある
집착
오만 도피 중상 질투 어리석움 싸움 독선 배척 차별 자기현시 자기만족----
이들은 사람의 마음을 해친다
왜냐하면 그 상념행위는 집착에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집착의 상념은 신불의 마음으로부터 더욱 더 먼 거리에 있다
死を急ぐ
空を飛ぶ鳥は 地上に倉をつくることをしない
地上の動物も その日の生活に滿足している
明日の糧を求めて 相爭うのは人間だけだ
鳥や動物はその日の糧で生き永らえている
人は明日の糧を求めて死を急ぐ
人間よ 眼をひらけ-----
죽지 않아도 될 것을 서둘러 죽으려 하다(죽음을 재촉하다)
하늘을 나는 새는 지상에 집을 짓는 일을 하지 않는다
지상의 동물도 그 날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내일의 양식을 구하고 서로 싸우는 것은 인간뿐이다
새나 동물은 그 날의 양식으로 언제까지나 생존하고 있다
사람은 내일의 양식을 구하며 죽음을 재촉한다
인간이여 눈을 뜨라--------
正法
正法とは 大自然の法則をいう
春夏秋冬の四季 晝夜の別 生者必滅 因果應報
すべて ことこどく 正法に適わぬものはない
自然の姿が變わらぬかぎり 正法も變わらぬ
正法は永遠である
人が永遠の生命を得ようとするならば 正法を學び行じよ
自然は常に 地上の人間に 生きる方法を敎え 慈悲を與えている
정법
정법이란 대자연의 법칙을 말한다
춘하추동의 사계 주야의 다름 생자필멸 인과응보
전부 그렇게 족족 정법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없다
자연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 한 정법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한다면 정법을 배우고 행하라
자연은 항상 지상의 인간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비를 제공하고 있다
神理
眞は僞の反對 僞があるから眞があると人は見る
だが 正法の理は 神の理をいうのである
つまり正法の神理は 自然が敎える敎えなのである
類は友を呼ぶ
心は萬物を生かし 愛はすべてを癒す
水は低きに流れる
心まるければ肉體もまたすこやかなり
己に生きる者は人をも生かす....
正法にもとずく神理は 永遠にして不變である
신리(神理)
참됨은 거짓의 반대 거짓이 있기 때문에 참됨이 있다고 사람은 본다
하지만 정법의 이치는 신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즉 정법의 신리는 자연이 가르치는 가르침인 것이다
류는 류를 부른다(끼리끼리 모인다)
마음은 만물을 되살리고 사랑은 모든 것(병·허기·번민·고통 등)을 낫게 한다
물은 낮은데로 흐른다
마음이 훈훈해지면 육체도 역시 건강해진다
자기를 살리는 자는 남을 또한 살리운다....
정법만을 위한 신리는 영원하며 불변이다
行
行のない正法はないのである
正法は生活のなかに生かされ 生きているからである
自然を見よ-----
自然は 一刻の休みもなく動いている
停止はない
自然は常に動き 常に行じ 行ずるから正法がそのまま生きている
正法は 行じて はじめて生かされてくる
正法は知識ではない
觀念でもない
あくまでも行なのである
正法者は 行じて はじめて自然と一體になる
행위(행동)
행함이 없는 정법은 없는 것이다
정법은 생활 속에 되살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라.....
자연은 일각의 쉼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지는 없다
자연은 항상 움직이고 항상 행하고 행하기 때문에 정법이 그대로 살고 있다
정법은 행함으로 비로서 소생되어 온다
정법은 지식이 아니다
관념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행위인 것이다
정법자는 행하며 비로서 자연과 떨어지지 않는 한 몸이나 덩어리가 된다.
想念
生命あるものはすべて輪廻している
地上の四季がそうだし 萬物はすべて變化變滅をくりかえす
人の想念も輪廻の循環を續けている
惡を想えば惡が 善を想えば善がもどってくる
幸せを求めたいならば まず惡の想念から離れることだ
怒り 憎しみ そねみ しっと 中傷など こうした想念をつみとり 責任 博愛 勇氣
努力 向上など 善の想念をいだくように心がけることである
人の幸 不幸の根本は 每日の想念の在り方にかかっている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
생명이 있는 것은 전부 윤회하고 있다
지상의 계절이 그러하고 만물은 전부 변화변멸을 되풀이한다
사람의 상념도 윤회의 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악을 생각하면 악이 선을 생각하면 선이 되돌아온다
행복을 구하고 싶다면 우선 악의 상념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다
노여움(분노) 미움(증오, 미워하는 마음) 시기(질투, 시새움) 질투(시샘)
중상(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킴) 등 이러한 상념을 커지기 전에 제거하고
책임 박애 용기
노력 향상 등 선의 상념을 껴안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사람의 행복 불행의 근본은 매일의 마음에 품은 생각의 바람직한 상태에 달려 있다
幸福者
多くのモノを持つ者と持たざる者
そのどちらが幸せであろう
持つ者か それとも持たざる者であろうか
もしも多くを持つ者がそれを失うまいとし 持たざる者がそれを欲するとすれば
そのいずれをも不幸であるといわざるを得ない
一日の食糧は數片のパンで十分であるし 居住の空間は數平方米で足りるからである
物の多小に幸 不幸があると考える人は 本堂に不幸である
なぜなら 自分自身を含めて あらゆる物質は
やがては 大地や大氣に還元されてしまうからである
幸せな人とは 失う物のない人をいう
행복한 사람
많은 물질(물건)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
그 어느쪽이 행복한 것일까
가진 자인가 아니면 가지지 않은 사람인 것일까
만약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잃지 않으려 하고 가지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갖고 싶다고 하면
그 어느 쪽 역시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의 식량은 몇 조각의 빵으로 충분하고 주거의 공간은 몇 평의 방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다소로 행복 불행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로 불행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온갖 물질은
머지않아서는 대지나 대기로 환원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이란 잃을 물건(물질)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慈悲 愛
この地上も大宇宙も 神佛の慈悲と愛によって動いている
人間もたま 慈悲と愛の心の所有者である
正法という神佛の法にふれた者は
まずその心を休し その意をくみ 實踐する者でなければならない
慈悲を法にたとえれば 愛は法の實踐である
慈悲を神佛とすれば 愛は人間の行爲を意味する
それゆえ 慈悲は萬生萬物に無限の光を與えるものである
愛は寬容にして 助け合い 補い合い 許す行爲をいう
間違えてならぬことは 慈悲も愛も 自ら助ける者にその光は與えら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
愛を求める者は 愛の行爲を示せ
慈悲の門をくぐろうと欲する者は 法の心をくみとれ
末法の世を救うものは正法であり 慈悲である
慈悲を生かすものは愛である
慈悲を神佛の縱の光とすれば 愛は橫の光である
자비 사랑
이 세상도 대우주도 신불의 자비와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인간도 역시 자비와 사람의 마음의 소유자이다
정법이라고 하는 신불의 법에 접한 사람은
우선 그 마음을 쉬고 그 뜻을 붙잡고 실천하는 자가 아니면 안 된다
자비를 법에 비유하면 사랑은 인간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비는 만생만물에게 무한의 빛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랑은 관용으로서 서로 돕고 부족한 것을 서로 채워주고 용서하는 행위를 말한다
잘못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자비도 사랑도 스스로 돕는 자에게 그 빛은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사랑의 행위를 보여라
자비의 문을 빠져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법의 마음을 헤아여라
말법의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정법이며 자비이다
자비를 소생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자비를 신불의 세로의 빛이라고 하면 사랑은 가로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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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柔和]
怒ってはならぬ 怒りは そこにどんな理由があるにせよ その波動は
やがては己に返り 魂の前進をはばむことになるからである
己に嚴しく 人には寬容の態度を決して忘れてはならぬ
柔和な心は 神の心であり 法の心でもあるのである
[유화(柔和:성질(性質)이 부드럽고 온화(溫和)함)]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분노(노여움)은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다 해도 그 파동은
머지않아서는 자기에게 되돌아오며 영혼의 전진을 가로막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용의 태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성질이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은 신의 마음이며 법의 마음이기도 한 것이다
[妥協]
妥協はぬるま湯につかったような氣分に似てすっきりない
妥協には自我が伴うからだ
しかし妥協によって 一刻の平衡が保たれているのも事實である
たがいに自己主張を通そうとすれば この世は一瞬にして 暗黑となろう
妥協は 破壞を防ぐ一時しのぎの防波堤の役を果たすが 永續性はない
妥協には心からの共感がないからである
[타협]
타협은 미지근한 물에 잠긴 것과 같은 기분과 닮아서 상쾌해지지 않는다
타협에는 자아가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협에 의해서 일각의 평형이 보존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 같이 자기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면 이 세상은 일순간에 암흑이 될 것이다
타협은 파괴를 막고 잠시 어려움을 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방파제의 역할을 다하지만 영속성은 없다
타협에는 마음으로부터의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ぬるまゆにつかる [ぬるま湯につかる]
미지근한 물에 잠기다. 안락한 현상에 만족해함. 《안일에 젖음의 비유》
[愛]
調和は無限の進步と安らぎを與える
調和の根底には愛が동いているからだ
愛には自己主張がない
おごりがない
へつらいがない
喜び悲しみがあったとしても それにとらわれることがない
苦しむ者があれば その苦しみを癒し 悲しむ者には光を當てて生きる希望を與えよう
愛は神の心であり 私心を去った 調和への偉大なかけ橋なのだ
この世に愛が滿つれば 地上に佛國土が誕生しよう
神はそれを望み 幸捧强く見守っている
[사랑]
조화는 무한의 진보와 평온함을 준다
조화의 근저에는 사랑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자기주장이 없다
교만함(방자함)이 없다
아첨(아부)이 없다
기쁨과 슬픔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에 얽매이는 일이 없다
육체적·경제적으로 괴로워하는[고생하는·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그 괴로움(병·허기·번민·고통 등을) 낫게 하고 슬퍼하는 자에게는 빛을 비추어 살아갈 희망을 줍시다
사랑은 신의 마음이며 이기심을 떠난 조화로의 위대한 가교(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인 것이다
이 세상에 사랑이 충만하면 지상에 불국토가 탄생할 것이다
신은 그것을 바라며 행복을 두 손으로 받들어 강하게 지켜보고 있다
★架橋 [가교]
①서로 떨어져 있는 두 대상을 이어 주는 사물이나 사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かけはし [ 掛橋,懸橋 ]
1.사다리.
2.험한 벼랑 등에 판자 등을 걸쳐 만든 다리.
예)赤坂に梯カケハシして <三蔵法師伝、永久点>
아카사카(소재지 미상)에 다리를 놓고
3.임시로 걸쳐 놓은 다리.
4.다리를 놓음. 중간 역할을 함.
예)友好の掛橋우호의 가교
★잔교(棧橋)
②계곡을 가로질러 절벽과 절벽 사이에 높이 걸쳐 놓은 다리
[とらわれ]
執着の心がある間は 人間の苦しみ悲しみは消えることがない
執着とは「もの」にとらわれることである
こだわることである
とらわれの原因は生老病死であり それは五官六根を通してつくられてゆく
執着から離れたいと願うなら まずものを正しく見ることからはじめよ
正しく見るためには自己の立場を離れ 客觀的な目を養え
そうするとしだいに「もの」の實相が明らかとなり とらわれの心から解脫するようになる
[얽매임(사로잡힘). 구애됨]
집착의 마음이 있는 동안은 인간의 육체적·경제적인 괴로움[고생·고통]과 슬픔은 사라지는 일은 없다
집착이란 「물질(사물)」에 얽매이는 것이다
일이 순조롭지 않아 중도에서 정체(停滯)되거가 하는 원인은 생로병사이며 그것은 오관육근을 통해서 만들어져 간다
집착으로부터 떨어지고 싶다고 바란다면 우선 물질(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자기의 입장을 떠나서 객관적인 눈을 길러라
그렇게 하면 차츰 「물질(사물)」의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실상]이 분명하게 되어 얽매임의 마음에서 해탈하게 된다
[自由]
人の心は一念三千といって 無限の自由と 無限のひろがりを持っている
その心がひらくと この世だけでなく あの世の姿も見通せる
さらに 大宇宙の果てにまで旅することもできる
執着の心が消えると 心の自由自在性を身をもって體驗することができようし
人間の實相を はっきりと自覺することができよう
人がその心を獲得する
執着の心がいかに小さく せまく 賴になく そのおろかさを悟ることができよう
眞の自由は 執着の心を捨てたときからはじまる
[자유]
사람의 마음은 일념삼천이라고 하며 무한의 자유와 무한의 폭·면적·범위 등이 넓어짐을 갖고 있다
그 마음이 열리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 세상의 모습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나아가 대우주의 끝까지도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집착의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의 자유자재성은 몸소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여지고
사람이 그 마음을 획득한다
집착의 마음이 어떻게 작고 좁고 의지하지 않는 그 어리석움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참된 자유는 집착의 마음을 제거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夢]
夢をみない人はいないだろう
しかし その夢を正確にとらえる人は少ない
夢は そのときどきの 本人の想念と行爲を
もっとも抵抗なく 僞りなく表現するものであるからだ
夢は心の窓でもある
めざめているときは 周圍の目や 自分の意志によって押さえられているその想念が
夢の中では まるで意志を持たぬ生物のように 自由氣ままに動いてしまう
夢の中で正しく行爲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ときに その人は本物になったのである
その想念と行爲について 悟りを得たといえよう
[꿈]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은 적다
꿈은 그때그때의 본인의 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를
가장 저항없이 거짓없이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은 마음의 창이기도 하다
잠에서 깨어 있을 때는 주위의 눈이나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눌리어져 있는 그 마음에 품은 생각이
꿈 속에서는 마치 의지를 갖지 않은 생물처럼 자유롭게 마음대로 움직여 버린다
꿈 속에서 올바르게 행위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에 그 사람은 진짜가 되었던 것이다
그 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運命]
運命にほんろうされてはならない
正法を行じる者は 運命を超えてゆく自分を確立することができる
運命はもともと自分がつくり出したものだが その運命に執着をいだくと
それに心をしばられ ますます身動きできなくなってくる
運命から自分を切り離すには何が大事かといえば まず他人の目で自分を眺めることだ
すると その運命の道筋 明らかとなり
運命の原因をはっきりと とらえることができよう
客觀的な心が養われ 他人の目で自分がながめられるようになればしめたものである
自己の運命に苦痛を感じないばかりか 他人にたいしても
博愛の心が大きくひらいてくるだろうからである
[운명]
운명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정법을 행하는 사람은 운명을 뛰어넘어 가는 자신을 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운명은 본래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그 운명에 집착을 품으면
그것에 마음을 묶이게 되어 더욱더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어 온다
운명으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는데에는 무엇이 중대사인가 하면 우선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운명이 지나가는 길이 분명하게 되며
운명의 원인을 뚜렷이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객관적인 마음이 길려지고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눈여겨볼 수 있게 되면 잘 된 것인다
자기의 운명에 고통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박애의 마음이 크게 열리어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勇氣]
人が調和ある中道を步もうとすると 因習や周圍の環境 意見の相違などによって
その前進をはばまれることがあろう
しかしそうしたことを恐れては 現狀に甘んずるほかはない
正法を實踐するためには 努力と 勇氣と 知慧が必要なのだ
因習や意見の相違をたやすく乘り切るためには
相手の心を傷つけないように 知慧を使い 勇氣をもって努めることである
目的のために蠻勇をふるっては かえって波紋を投じよう
佛智は 自ら努める者に與えられよう
神は 求める者の心に應じて 道をひらいてくれよう
[용기]
사람이 조화있는 중도를 걷고자 하면 인습이나 주위의 환경 의견의 서로 다름에 의해서
그 전진을 저지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두려워해서는 현상에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정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용기와 삶의 경험으로 쌓은 지혜(知慧)가 필요한 것이다
인습이나 의견의 서로 다름을 손쉽게 곤란을 무릎쓰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삶의 지혜를 사용하여 용기를 갖고 노력하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 만용을 부러서는 도리어 파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불지(진리(眞理)를 완전(完全)히 깨달은 부처의 지혜(智慧))는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신은 구하는 자의 마음에 응해서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불지[佛智] = (진리(眞理)를 완전(完全)히 깨달은 부처의 지혜(智慧)) ☜국어사전
[責めるな]
人を責めてはいけない
人を責める前に まず自分を省みることだ
たいていは 自分の心を 自分で非難していることが多い
自分の周圍に起こった諸現象は 自分に無關係であることは絶無といってもよいからである
しかし なかには光にたいする陰の場合もあるであろう
その場合は 時を持つことだ
緣無き衆生は 時が經たねば 救うことはできないものだ
[(잘못 등을) 비난하지(나무라지, 책망하지,꾸짖지 말라)]
남을 꾸짖어서는 안 된다
남을 꾸짖기 전에 우선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대부분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비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주위에 일어난 여러 현상은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해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빛에 대한 음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인연이 없는 중생은 시간이 경과하면 구제하는(도와 주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면 도와 줄 수 없는 것이다)
[愛]
愛と憎しみとは 諸刃の劍のようにみる者がいるが そんなことはない
憎しみは自己保存であり 憎しみをかくし持った愛は 愛とはいえない
愛に自己辯護はない
愛に立場はない
愛に報償はない
愛に自我はない
愛に甘えはない
愛に苦しみはない
愛に樂しみはない
愛には 神の心しかない
神の心とは調和である
助け合い 補い合い 許し合える その心が愛の心に通じ
その行爲が 神の心につながって行く
[사랑]
사랑과 미움이란 양날의 칼처럼 보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것은 없다
미움은 자기보존이며 미움을 감추고 지닌 사랑은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랑에 자기변호는 없다
사랑에 입장은 없다
사랑에 보상은 없다
사랑에 자아는 없다
사랑에 어리광부림은 없다
사랑에 괴로움은 없다
사랑에 즐거움은 없다
사랑에는 신의 마음밖에 없다
신의 마음이란 조화이다
서로 돕고 서로 보충해주고 서로 용서하는 그 마음이 사랑의 마음으로 통하고
그 행위가 신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간다
[誘惑]
惡魔は人を誘惑することはない
誘惑は 己自身の心のうちにある
[유혹]
악마는 사람을 유혹하는 일은 없다
유혹은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經驗]
人は ややもすると平坦な道を選びたがるものだ
しかし多くのことを知には 多くの困難に當たらないと知ることはできない
[경험]
사람은 흔히 평탄한 길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아는데에는 많은 곤란을 당하지 않으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悟り]
まず己を知ることだ
今の己を知ることのできない者は 永遠に 悟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
[깨달음]
우선 자기를 아는 것이다
지금 자기를 아는 것이 불가능한 자는 영원히 깨닫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實踐]
人は反省することによって前進する
しかし反省の功德は 反省後の中道の實踐にかかっている
實踐のない反省は 觀念の遊戱にすぎない
[실천]
사람은 반성하는 것에 의해서 전진한다
하지만 반성의 공덕은 반성 후의 중도의 실천에 달려 있다
[勇者]
眞に努める者は勇者である
勇氣は知惠から生まれ 智慧(佛智)は怠りなく努めるそのなかから生ず
[용기가 있는 사람]
참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용기는 지혜(知惠)에서 생겨나고 지혜[智慧(자비)]는 게으르지 않고 노력하는 그 속에서 돋아난다
※여기서 지혜(知惠)와 지혜(智慧)가 있습니다. 구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의미가 다릅니다.
[今]
明日を賴むな
人の生命は今を置いてほかにない
[지금]
내일을 믿지 말라
사람의 생명은 지금 밖에 없다
★저의 신조입니다. ^^
[行い]
人を見るには 言葉より行いをみよ
[행동(행위)]
사람을 보는 데에는 말보다 행동을 보라
[天國と地獄]
天國と地獄も 人の心が創り出す
天國の住者は 布施(慈悲)と 他を生かす協助(愛)の行爲のできた者
地獄は 我執に心を奪われた者が集まるところである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도 사람의 마음이 창출한다
천국에 사는 사람은 보시(자비)와 남을 살리는 협조(사랑)의 행위를 이룬 사람
지옥은 아집[我執]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모여드는 장소이다
※아집[我執]
1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
2 자신의 심신 가운데 사물을 주재하는 상주불멸의 실체가 있다고 믿는 집착. 선척적인 것인 구생(俱生)과 후천적인 것인 분별(分別)로 나눈다
[一步一步]
正法は 一日怠たれば一日遠さかる
一年怠たれば一年離れる
僥倖という文字は 正法にはない
[한 걸음 한 걸음]
정법은 하루 게울리하면 하루가 멀어진다
1년을 게울리하면 1년이 떨어진다
요행이라고 하는 문자는 정법에는 없다
[奇蹟]
奇蹟は 自ら助ける者に與えられる
正道に勵む者の報奬として
自覺の機會として
迷いを打ち消す證として
神が與えてくれた慈悲であり 愛である
[기적]
기적은 스스로 돕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정도([正道 올바른 길, 정당한 도리])에 힘쓰는 사람의 보장으로서
자각(自覺)의 기회로서
미혹을 없애는 증거로서
신이 제공해 주신 자비이며 사랑이다
※자각[自覺]
1 현실을 판단하여 자기의 입장이나 능력 따위를 스스로 깨달음.
2 삼각(三覺)의 하나. 스스로 깨달아 증득(證得)하는 각(覺)을 이른다. 부처의 깨달음을 이른다.
3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연관단어 : 자성, 각타, 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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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心]
安心の境涯は誰のためでもない 自分のためである
人をうらみ そねみ づちり 逃避に自分を置くと それだけ正法から離れることになる
自分が愛しい思うなら まず行ずろことだ
今生で行じられない者は來生で 來生で行じられない者は再來生で
いつかは行じなければ 安心という至寶を手にすることはできない
一秒一秒の步みが 彼岸に通ずる重要なかけ橋であり
人も正法も そのように仕組まれてい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안심]
안심의 처지나 환경(境涯)은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을 위함이다
남을 원망(원한, 앙심을 품음) 시기(질투 시새움) 푸념(넋두리, 투덜됨)에 자신을 두면 그만큼 정법에서 떨어지게 된다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 우선 실행하는 것이다
이번 생에서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음 생에서 다음생에서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다음 생에서
언제인가 실앻아지 않으면 안심이라고 하는 지보를 손에 넣을 수는 없다
일초일초의 발걸음이 피안으로 통하는 중요한 가교(잔교(棧橋). 《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이며
사람도 정법도 그렇게 짜여져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自分との戰い]
正法は自分との戰いである
己に克つ ことである
業の自分に負けると その分だけ來世に持ち越し もう一度やり直さなければならない
二つでも三づでもいい
己の業を正し 正道生活の一項を飾るようにしたい
[자신과의 싸움]
정법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극기(克己)하는 것이다
업(業)의 자신에게 지면 그 분량만큼 다음 생으로 이월하고 한 번 더 처음부터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가지라도 세 가지라도 좋다
자기의 업을 바로잡고 정도생활(正道生活)의 한 항목을 장식하고 싶어 한다
[毒]
人の中傷 ねたみ うらみをそのままうけとり 相手を非難すると
中傷 ねたみの毒を食べたことになる
毒は體をこわし 周圍を暗くする
[독]
남의 중상(中傷) 질투(샘, 시새움) 원망(원한)을 그대로 받고 상대를 비난하면
중상(中傷) 질투(샘, 시새움)의 독을 먹은 것이 된다
독은 몸을 망치고 주위를 어둡게 한다
※중상[中傷]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킴. ☜국어사전
사실(事實) 무근의 말로 헐뜯어 남의 명예(名譽)나 위신(威信)ㆍ지위(地位) 등(等)을 손상(損傷)시키는 일 누명 씌우기 헐뜯기 ☜한자사전
[波動]
己に一点のやましさがなく 心の鏡を磨いておくと
人の非難は 發信者のもとに勢いこんで返って行く
人の想念は光と同じように 波動と速さを持ち 必ず發信者に返って行くものであるからだ
[파동]
자기에게 한 점의 양심에 가책을 받음이 없고 마음의 거울을 닦아 두면
남의 비난은 발신자의 근원으로 분발하여 되돌아 간다
사람의 마음에 품은 생각은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과 속도를 가지고 반드시 발신자에게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業]
すべてのものが循環すろように 業もまた循環する
業の循環を斷ら切るには 努力と勇氣が必要であり 知惠を働かせは 效果はもっと速まる
[업]
모든 물질(것)이 순환하는 것처럼 업도 역시 순환한다
업의 순환을 단절하는 데에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며 삶의 지혜를 활용함은 효과는 더욱 빨라진다
[極樂]
あの世の極樂を望むために正法を學ぶのではない
現在の極樂(心の安らぎ)安)を得るために行ずるのである
極樂も地獄も 現在の自分の心のなかにある
[극락]
저 세상의 극락을 바라기 때문에 정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극락(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행(行)하는 것이다
극락도 지옥도 현재의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現象利益]
現象利益を求める信心は 信心ではない
信心とは ウソのいえない神の心を信ずろことだ
正法にめざめてくると 人は 義務と責任の生活になってくる
現象利益は そうした生活の中から 自然に湧いてくるものである
[현상이익]
현상이익을 구하는 믿음(信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신의 마음을 믿는 것이다
정법에 눈을 뜨면 사람은 의무와 책임의 생활이 되어 온다
현상이익은 그러한 생활 속에서 자연히 샘솟아 나오는 것이다
[平等]
守護靈はどんな人にもついており その人の心に應じて指導靈が指導してくれる
自分はダメだ これでいいのだ といってあきらめてはななない
人間は皆平等であり 神は公平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るまい
[평등]
수호령은 어떤 사람에게도 달라붙어 있고 그 사람의 마음에 응해서 지도령은 지도해 주신다
나는 안돼 이것으로 좋은 것이다 라고 말하며 단념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다 평등하며 신은 공평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愛]
山を動かし 海をわかち 川をせきとめる力があっても 愛には抗(あちが)えない
愛は すべてを癒す神の心である
人を救うものは超能力ではなく 愛の力であるからだ
[사랑]
산을 옮기고 바다를 가르고 강(물)을 막는 힘이 있어도 사랑에는 대항할 수 없다
사랑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신의 마음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기 때문이다
[さばき]
思うことは現われる
思うことは創造の出發點である
ぐち 怒り 不信 中傷 我欲...
惡の思いを心の中につくりだしてはいけない
神のさばきは 形よりも 心の姿を見る
[심판(재판)]
생각하는 것은 나타난다
생각하는 것은 창조의 출발점이다
푸념(우치[愚痴]) 분노(노여움, 화풀이) 불신(不信) 중상(中傷) 아욕(我欲)
악의 생각은 마음 속에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신의 심판(심판)은 외관으로 나타나는 모양보다도 마음의 모습을 본다
※우치[愚痴] :〈佛〉 우치. 어리석고 못남. 푸념.
=푸념 :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음. 또는 그런 말.
※중상[中傷] :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킴. ☜국어사전
사실(事實) 무근의 말로 헐뜯어 남의 명예(名譽)나 위신(威信)ㆍ지위(地位) 등(等)을 손상(損傷)시키는 일 누명 씌우기 헐뜯기 ☜한자사전
※아욕[我欲·我×慾] :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信賴と理解]
親子の道は 愛と義務 信賴と理解とによって生かされる
主義主張におぼれ 執着や僞我に流されてくると
家庭は 不信と疑惑を招き 生活の基盤を失うことになる
[신뢰와 이해]
부모와 자식의 길은 사랑과 의무 신뢰와 이해에 의해서 되살려진다
주의주장에 빠져 집착이나 위아(僞我 거짓된 나=자기본위)로 흘려오게 되면
가정은 불신과 의혹을 초래하고 생활의 기반을 잃게 된다
[自戒]
忍耐は ひとつ間違うと執着となり 自信は すぎると增上慢となる
ものには表裏の相がついてまわり 人の心は 惡に染まりやすい
常に 自戒の心を忘れてはならない
[스스로 경계함]
인내는 한번 잘못되면 집착이 되어 자기(自己)의 능력(能力)이나 가치(價値)를 확신(確信)함은 지나치면 자기가 잘난 체하는 거만이 된다(자신은 지나치면 증상만이 된다 :自信は すぎると增上慢となる)
물질(만물, 사물)에는 표리(表裏)의 상(相)[겉과 안의 모양]이 따라다니며(붙어다니며) 사람의 마음은 악에 물들기 쉽다
항상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증상만[增上慢]
1.최상(最上)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여, 제가 잘난 체하는 거만(倨慢) 곧 자신(自身)을 가치(價値) 이상(以上)으로 생각함
1.[불교] 사만(四慢)의 하나.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을 이른다.
※자신[自信]
1.자기(自己)의 능력(能力)이나 가치(價値)를 확신(確信)함
2.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거나 어떤 일이 꼭 그렇게 되리라는 데 대하여 스스로 굳게 믿음
※표리[表裏]= 표면과 이면, 겉과 안
1 물체의 겉과 속 또는 안과 밖을 통틀어 이르는 말.2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을 통틀어 이르는 말.
※상[相]= 모양, 외양
1 관상에서, 얼굴이나 체격의 됨됨이.2 각 종류의 모양과 태도.3 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 표정.
[努力]
人は結果のみに期待し 努力を惜しむ惡いクセを持っている
人生の意義は 結果ではない
努力する過程のなかに價値があり 光がある
[노력]
사람은 결과만을 기대하고 노력을 싫어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의의는 결과가 아니다
노력하는 과정 속에 가치가 있으며 빛이 있다
[役割]
人は皆平等である
平等という意味は 神の前に 人間として平等であるということだ
能力 顔立ち 容姿などの相違は 平等不平等に關係がない
もしこうした点ですべてが同じであったら この世の修行も
それぞれの役割も必要としない
ちがった形でこの世に出てくるので 魂磨きが可能なのだ
[역할]
사람은 모두다 평등하다
평등이라고 하는 의미는 신(神) 앞에 인간으로서 평등하다고 하는 것이다
능력 이목구비 용모와 자태 등의 서로 다름은 평등 불평등에 관계가 없다
만일 이러한 점에서 모든 것이 똑같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수행(修行)도
저마다의 역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른 형상으로 이 세상에 나오는 것으로써 영혼의 연마가 가능한 것이다
[全なる心]
五官に左右されると 自分を見失う
五官を超えた90%の意識 全なる心に 自分の意を合わせ 生活することだ
そうすると色心不二という中道の心を知ることが出來る
全なる心は 第三者の立場に立った公平な見方 考え方 念じ方によって
とらえることができるものだ
[온전(穩全)한 마음]
오관에 좌우되면 자신(自身)을 잃는다
오관을 뛰어넘은 90%의 의식 온전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마음)을 모으고 생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색심불이라고 하는 중도의 마음을 아는 것이 가능하다
온전한 마음은 제 3자의 입장에 선 공평한 견해(관점) 사고방식 항상 마음에 두고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서
붙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體驗]
體驗は尊い
體驗こそ正法を知る大きな手がかりであるからだ
しかし 體驗 體驗といって 體を動かすことだけが彼岸に至る道ではない
考えることも 人の話をきくことも體驗の大事な要素である
何事によらず 一方に片寄ると 實りは少ない
[체험]
체험은 소중하다
체험이야말로 정법을 아는 큰 단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험 체험이라고 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만이 피안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도 남의 말을 듣는 것도 체험의 중대사한 요소이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한 편으로 치우치면 결실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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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務と責任]
欲は 爲我と執着から生まれる
欲がないと人は生きられないと思われている
しかし 人としての義務と責任を自覺し これにもとづいた想念と行爲があれば
自分を生かす 人をも生かして行くものだ
[의무와 책임]
욕심이란 위아(거짓이 자기)와 집착에서 태어난다
욕심이 없다면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
허지만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스스로 깨닫고 이것에 바탕을 둔 마음에 품은 생각(상념)과 행위가 있다면
자신을 살리며 남을 역시 되살리여 가는 것이다
[足ること]
足ることの生活は 人間としての自覺を基礎におげば よりたしかなものとなろう
足ることの限界は 心に抵抗があるかないかによって判斷出來よう
期待や我慢が內にある間は 足ることの限界点を踏み出しているといえる
足ることの中身は それゆれに 人によって皆異なり 千人千樣といえよう
[만족]
만족의 생활은 인간으로서의 스스로 깨달음에 기초에 있다면 보다 확실한 것이 될 것이다
만족의 한계는 마음에 저항이 있는가 없는가에 의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나 아만이 속에 있는 동안은 만족의 한계점을 한걸음 내디디고 있다고 말할 수 있
만족의 내용은 그러므로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르며 천차만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忍辱]
正法は自力であり 己の限界を試すことも必要なことだ
忍耐 たえしのぶことは 自分を向上させる意味で大事なことだし
正法を理解したならば 實踐し その限界点を上げるようにしたいものである
[인욕(욕됨을 참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음)]
정법은 자력이며 자기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인내 참고 견디는 것은 자신을 향상시키는 의미에서 중대한 것이고
정법을 이해한다면 실천하고 그 한계점을 올리려고 하고 싶은 것이다
※인욕[忍辱]
<한자사전> 어떤 모욕(侮辱)이나 박해(迫害)에도 견디어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함.
<국어사전> 1. 욕되는 것을 참음. 2 오바라밀의 하나. 마음을 가라앉혀 온갖 욕됨과 번뇌를 참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는 일을 이른다.
<불교> 욕됨을 참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음.
[謙虛]
一升のマスには一升の水しかはいらないように 人にそれぞれ器というものがある
おごり 高ぶる心ほど自己を見失うものはない
愼しみ 自戒し 謙虛な心こそ 神の心に適うものである
[겸허]
한 되들이 되에는 한 되의 물밖에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사람 저마다의 그릇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재능 지위 권세 등을 뽐매며 남을 얕보며 흥분하는 마음 만큼 자기를 잃는 것은 없다
신중하고 스스로 경계하고 겸허한 마음이야말로 신의 마음에 들어맞는 것이다
[神の道]
惡の道は入りやすく 神の道は毛穴よりも小さく 忍苦を伴う
今の自分がどの道を步いでいるか すぐにもわかることである
神の道を行くか 惡に身をまかすか その選擇は誰でもない 自分自身である
[신의 길]
나쁜 길은 들어가기 쉽고 신의 길은 털구멍보다도 작고 인고[忍苦 괴로움을 참음]를 동반한다
지금 자신이 어느 길을 걷고 있는지 즉시 이해할 것이다
신의 길을 가는지 악에 몸을 맡기는지 그 선택은 아무게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五體]
肩の力を拔くと怒る心がおさまろう
悲しみが襲ってきたら大きく背伸びせよ
判斷のつかぬときは 天を仰ぐことだ
あせりが出たら 暝目し 心を靜のよ
人の心は一念三千 しかし五體(肉體)の動きで 心の針を平常に戾すこともできるのである
[온몸(사람의 머리와 팔다리)]
어깨의 힘을 빼면 성내는 마음이 진정될 것이다.
슬픔이 엄습해 오면 크게 발돋움하세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을 때는 하늘을 처다 보는 것이다
조바심이 나면 눈을 감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세요
사람의 마음은 일념삼천이지만 온몸(육체)의 움직임으로 마음의 바늘을 평상시로 되돌리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靑空]
正法は 神の子の己の心を信ずろことである
我があり 期待があり 望みがあり 執着があり 損得がある間はその心ではない
幼子のような 雲ひとつない無我の靑空こそ 己の心である
[푸른 하늘]
정법은 신의 자녀인 자기의 마음을 믿는 것이다.
내가 있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다림이 있고 희망(소망)이 있고 집착이 있고 손실(損失)과 이득(利得) 있는 동안은 그 마음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구름 한 점 없는 무아의 푸른 하늘이야말로 자기의 마음이다
※기대[期待] <한자사전> 희망(希望)을 가지고 기약(期約)한 것을 기다림
[無我]
無我の心に照らして自分をみる
八正道の正しさは その極点にいくと 無我の心となる
[무아]
무아의 마음에 비춰서 자신을 본다
팔정도의 올바름은 그 극점에 가면 무아의 마음이 된다
★무아(無我), 본문의 윗 부분에 나오는 말에 의하면,
공정한 중도(中道)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내가 없다, 무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重荷]
人の一生は重荷を背負い 坂道を上るものというが そんなことはない
重荷も 坂道も 我がつくり出したもの
我を捨てれば 心は輕く 人生の喜びを覺えよう
[무거운 짐]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비탈길을 오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거운 짐도 비탈길도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나를 버리면 마음은 가볍고 인생의 기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前進]
時は前に進むのみである
人も後退がろことはできない
ならば 貴重なこの人生を有意義にすごすべきではない
[전지(前進:앞으로 나아감)]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사람도 후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귀중한 이 일생을 의미나 가치가 있게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公平]
天は公平にして無私 人もまた平等にして差別なき心の所有者である
だのに人の世は 能力の別 好みの別 體力の別 知識の別 節度の別
喜怒哀樂にも相違がでてくるのはなぜであろうか
働く者と その義務を怠る者
行動する者と 傍觀する者
學ぶ者と 遊樂にふける者
今日に生きる者と 明日をたのむ者
自分に嚴しい者と 人を責める者
愛深い者と 薄い者
和合を旨とする者と 爭いの種を蒔く者
謙虛な者と 自分を高く見めようとする者
責任を果たす者と 依賴心の强い者
足るととを知る者と 欲深き者
こうした相違が 平等であるべき 人間に不平等をもたらしている
しかし 天はけっして不平等には扱っていない
現在のそれぞれの人の姿は
過去 現在を通じて 集約された自分自身をつくりだしているからである
[공평]
하늘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 공평(公平)하고 사사(私事)로움이 없으며 사람도 또한 평등하며 차별없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그런데도 인간 세상은 능력의 다름 취향(趣向)의 다름 체력의 다름 지식의 다름 절도[節度 : 일이나 행동(行動) 등(等)을 똑똑 끊어 맺는 마디]의 다름
희노애락에도 서도 다름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일하는 사람과 그 의무를 게을리하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과 방관하는 사람
배우는 사람과 유락(놀며 즐김)에 빠지는 사람
오늘에 사는 사람과 내일을 의지하는[믿는] 사람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과 남을 꾸짖는[책망하는] 사람
사랑이 깊은 사람과 얉은 사람
화합을 근본적인 취지로 삼는 사람과 싸움[다툼]의 씨를 심는 사람
겸허한 사람과 자신을 높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
책임을 다하는 사람과 의뢰심이 강한 사람
만족함을 하는 사람과 욕심[욕망]이 깊은 사람
이러한 서로 다름이 평등해야 할 인간에게 불평등을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하늘은 결코 불평등에는 조작(操作) 하고 있지 않다
현재의 저마다의 사람의 모습은
과거 현재를 통해서 집약(集約)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燈臺の燈]
愛とは寬容である
包容である
許しである
もしこの地上に愛なくば 人の世は水のない砂漠旅をゆく人に似て
飢渴に泣き 他をかえりみるいとますら生まれてこないであろう
愛は 助け合い 補い合い かばい合い 許し合えるその中に生きている
義務 責任 勇氣 獻身---
こうした行爲は 愛のなかから生まれる
愛は 神の光である
地上の燈である
暗闇にさまよう人びとの心にうるおいをもたらし 生きがいを與えてゆくものである
愛とは まさに燈臺の火のである
だが 愛におぼれてはならない
愛は峻險である
愛は自分にうち克つ者 より向上をめざす者に與えらえれるからだ
燈臺の火は それを求める者に與えられる
燈臺の火は 船を動かすことはできない
[등대의 불빛]
사랑이란 관용(寬容)이다
포용(包容)이다
용서(容恕)이다
만약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인간의 세상은 물이 없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과 닮아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소리없이 울며 타인을 뒤돌아볼 겨를조차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서로 돕고 서로 보충해주며 서로 감싸주며 서로 용서할 수 있는 그 가운데에 살아 있다
의무 책임 용기 헌신....
이러한 행위는 사랑 속에서 탄생한다
사랑은 신의 빛이다
지상의 등불이다
암흑속을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에 마음의 여유(인정미, 정감[情感])을 가져오고 사는 보람을 제공해 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확실히 등대의 불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사랑은 준험(峻險)하다
사랑은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 보다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등대의 불빛은 그것을 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등대의 불빛은 배를 움직일 수는 없다
※관용[寬容] ▼ 출처 <국어사전><한자사전>
1.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또는 그런 용서.
2. 마음이 넓어 남의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容恕)함.
※포용[包容]
1. 도량(度量)이 넓어서, 남의 잘못을 이해(理解)하여 싸덮어 줌. 2.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 ‘감쌈’, ‘덮어 줌’으로 순화.
※용서[容恕]
1.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1.관용(寬容)을 베풀어 벌(罰)하지 않음. 2.꾸짖지 아니함. 3.놓아 줌
※준험[峻險] 산이나 고개 따위가 높고 험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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意思
人は差別なく全員悟ることができる
早いか 遲いかの違いだけである
しかし早く悟れば それだけ自由が早まり 遲れれば苦しみの其間が長くなる
どちらを選ぶか それは各人の意思が決めよう
의사(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 마음)
사람은 차별없이 전원 깨달을 수가 있다
빠른가 느린가의 차이뿐이다
하지만 빨리 깨달으면 그만큼 자유가 빨라지고 늦어지면 괴로움의 기간이 질어진다
어느쪽을 선택할지 그것은 각자의 마음먹은 생각이 결정할 것이다
苦の種
樂は苦をつくり 苦は修行と考えよ
人は誰しも樂を求め 苦から遠さかろうとするか それは間違いだ
苦の種を宿さぬようにしたい
[괴로움의 씨앗]
즐거움은 괴로움을 만들고 괴로움은 수행이라고 생각해라
사람은 누구든지 즐거움을 찾고 괴로움에서 멀어지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괴로움의 씨앗을 간직하지 않고 싶어한다
惡
惡を犯さぬ者は ひとりもいないだろう
惡とは自我(僞我)であり 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であり 自己保存である
[악]
악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악이란 자아(위아)이며 만족함을 모르는 욕망이며 자기보존이다
悟り
表面意識は惡である
潛在意識は善である
これを知った者は悟りの段階に入ったといえよう
[깨달음]
표면의식은 악이다
잠재의식은 선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깨달음의 단계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先祖供養
先祖供養とは 過去世で修行した生命の兄弟たちに劣らぬ自分を磨くことである
それがまた 肉體先祖の供養にもつながる
時の流れにゆだね 今世の目的を忘れれば 天の配劑を自ら汚すことになろう
[선조공양]
선조공양이란 과거세상에서 수행한 생명의 형제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육체선조의 공양으로도 연결된다
그 시대의 풍조·경향·유행에 맡겨 금세의 목적을 잊어버리면 하늘의 배제(여러 종류(種類)의 약제(藥劑)를 배합(配合)함)를 스스로 더럽히는 것이 될 것이다
眞善美
眞善美--------
眞(しん)はまこと
善(ぜん)は行爲
美(び)はその結果である
まことの行爲は 神が人間に與えた祝福のはなむけだ
美とは神の光である
人間は 誰しもこの三つを具有し 生きてゆくものである
[진선미]
진선미-----
진(眞)은 진실
선(善)은 행위
미(美)는 그 결과이다
진실의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의 길 떠나는 사람에게 선사하는 금품·시가(詩歌) 등. 전별(餞別)이다
아름다움이란 신의 빛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가지를 갖추고 있고 살아가는 것이다
※전별[餞別]
<국어사전> <한자사전> 잔치를 베풀어 작별함.
<일본어사전>
※전별[餞別] はなむけ。
※구유[具有] <文〉 구유. (성질·재능·자격 등을) 갖추어 가짐
諸行無常
諸行は無常の中にある
生ある者は滅し 一日は今日しかない
變化變滅の現象界にとらわれず 生き通しの自分を發見する者こそ
安らぎと調和が與えられる
諸行無常の眞意を理解せよ
[제행무상]
제행은 무상 안에 있다
살아있는 자는 없어지고 하루는 오늘밖에 없다
변화고 없어지는 현상세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삶을 통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야말로
평온함과 조화가 주어진다
제행무상의 참뜻을 이해해라
とらわれ
見て見るな 聞いて聞くな 語って語るな
心にとらわれると 心定まらず 自己を見失う
[얽매임(사로잡힘)]
보고 보지 말라 들고 듣지 말라 말하고 말하지 말라
마음에 사로잡히면 마음이 정해지지 않고 자기를 잃는다
眞の勇者
眞の勇者は 過去にとらわらず 未來を望まず 今に生きる者をいう
[참으로 용기가 있는 사람]
참으로 용기가 있는 사람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바라지 않고 오늘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地位 名譽
學識や地位 名譽や優劣の感情に心が搖れる間は
人は 苦界の淵から拔け出すことは出來ない
[지위 명예]
학식이나 지위 명예나 우열의 감정에 마음이 요동치는 동안은
사람은 괴로운 인간 세계의 연못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解脫
解脫とは 怒り そしり 嫉妬 愚痴 中傷 貪慾 その他さまざまな僞我
欲望想念から超えて 因緣生起の原因を見極め 輪廻の制約をうけぬことをいう
[해탈]
해탈이란 분노(노여움) 비난(비방) 질투 우치(어리석고 못남, 푸념. 넔두리.투덜) 중상(中傷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킴) 탐욕 그 외 다양한 위아(僞我:거짓된 자신)
욕망 상념으로부터 초월해서 인연 발생의 원인을 끝까지 지켜보고 윤회의 제약을 받지 않은 것을 말한다
轉生輪廻
人の魂は轉生輪廻という神佛の計らいから 一步も外に出ることはない
なぜかというと 人は神佛の子であり 神佛自身であるからである
神佛は無限の變化をめざし 無限の調和を目的としている
人の轉生は この目的のもとに永遠に續いてゆくものである
人がもし この意に反し 恣意を求め 自我に身をおけば
その人は その分量だけ償いの勞をとらなくではならない
物質もまた輪廻をくりかえしている
集中 分裂という過程を通して そのエネルギ―は永遠の活動をつづけている
その活動の目的は 生命の轉生輪廻を助け あるいは媒體としての役割を果たしている
生命も物質も このようにして 轉生輪廻といる神佛の法の下に
神佛の目的を果たすために 生かされ 生きている
[전생윤회]
사람의 영혼은 전생윤회라고 하는 신불의 조처(배려)로부터 한걸음도 밖으로 나올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신불의 자녀이며 신불자신이기 때문이다
신불은 무한의 변화를 지향하고 무한의 조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람이 만약 이 뜻에 반하여 일정한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생각함을 찾고 자아(ego, 이기심)에 몸을 두면
그 사람은 그 분량만큼 보상(속죄)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도 역시 윤회를 되둘이하고 있다
집중 분열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에너지는 영원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 활동의 목적은 생명의 전생윤회를 돕고 혹은 매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생명도 물질도 그렇게 해서 전생윤회라고 하는 신불의 법 하에
신불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소생되어 생존하고 있다
意識
人が自覺めているときは 肉體が自分と思っている
しかし 眠っているときの自分は 肉體が自分と思ってはいない
肉體の自分は 何もわからず 無自覺であるはずだ
これは意識が 肉體から離れるからである
親も兄弟も 妻も 子供も 友人も 職場も何もわからない
目がさめて はじめて肉體の自分を自覺し 妻や子供のあることを知る
ということは この世のいっさいのモノは 自分という意識がなけらば
この大宇宙も 地上界も 自分の肉體も 認知することができない
それほど 自分の意識というものは偉大であり
己の意識は 宇宙大のひろがりを持っているものだ
この意識こそ 神の心に通じた己の心である
[의식]
사람이 자각하고 있을 때는 육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잠들어 있을 때의 자신은 육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육체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각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의식이 육체로부터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모도 형제도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직장도 아무것도 모른다
잠에서 깨고서야 비로서 육체의 자신을 자각하고 아내나 자식의 있는 것을 안다
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일체의 물질은 자신이라고 하는 의식이 없으면
이 대우주도 지상세계도 자신의 육체도 인지할 수가 없다
그만큼 자신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위대하며
자기의 의식은 우주대의 넓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의식이야말로 신의 마음에 들어맞는 자기의 마음이다
感謝
私たちは裸で生まれたが 裸のままでは生きられまい
衣食住という自然の惠みを得て はじめて生きる希望が湧き生存を可能にしよう
自然の惠みを無馱にしてはならない
物を大事にするとは自然の惠みに感謝する行爲なのである
[감사]
우리들은 벌거숭이로 태어났지만 벌거숭이로는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의식주라고 하는 자연의 은혜를 얻어 비로서 살아가는 희망이 솟아나와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
자연의 은혜를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물질(물건)을 중히 여김이란 자연의 은혜에 감사(感謝)하는 행위인 것이다
自然を生かす
萬事は循環の法にしたがっている
心も 肉體も 自然も
人が欲望に飜弄され 自然を欲望の具にすると 自然は循環のバランスを崩し 死に至る
自然の死は 人間の死につながる
自然を生かす工夫を怠ってはならない
[자연을 소생시키다]
만사는 순환의 법에 따르고 있다
마음도 육체도 자연도
사람이 욕망에 농락당하여 자연을 욕망의 도구로 삼으면 자연은 순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죽음에 이른다
자연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에 연결된다
자연을 소생시키는 궁리를 게울리해서는 안 된다
危機
人類が現狀のままで進むと 衣食住の危機に見舞われよう
それもそう遠いことではない
今こそ人類は自然の環境を整備し 自然と人間の調和を圖ら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にはまず 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をすることだ
[위기]
인류가 현상의 그 상태로 나아가면 의식주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그렇게 장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인류는 자연의 환경을 정비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우선 만족함을 아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己を知れ
神の存在を知りたいと思うなら まず 自分の心を知ることだ
自分の心を知ると そこに神の偉大な英知と 慈悲と 愛の營みを發見することができよう
[자기를 알라]
신의 존재를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면 거기에 신의 위대한 영지(예지[叡智]. 사물의 도리를 통찰하는 뛰어난 지혜)와 자비와 사랑의 경영(経営[행위])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寬容
生活には妥協が伴う
しかし 心まで妥協し 調和を崩すると苦惱が生じてこよう
己に嚴しく 人に寬容こそ正法の生き方といえよう
[관용(마음이 넓어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생활에는 타협이 동반한다
하지만 마음마저 타협하고 조화를 무너뜨리면 고뇌가 생겨나올 것이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용을 베품이야마로 정법의 본연의 모습(바람직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集團
人は單獨では生きられない
これでは一代限りである
人は集團で生活し 助け合って生きてきたからこそ 人類に歷史がある
人は集團の中で生まれ 育ち 成長し 魂が向上される
逃避は神の意志にそむく
[집단]
사람은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여기에는 사람의 일생에 한정이 있다
사람은 집단에서 생활하고 서로 돕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역사가 있다
사람은 집단 속에서 태어나고 길러지고 성장하고 영혼이 향상된다
도피는 신의 의지에 등을 돌림이다
才能と人格
人の才能は 絶ゆまざる努力と 工夫によって育ち 成長する
才能はその人の寶といってもいい
しかし才能が その人のすべてを表わしているとはいえない
才能と人格とを混同し 才能を優先すると 現在のような混亂した社會を招く
神が求めるものは その人の人格である
その人の全人格が 神の心に適っているかどうかが問題なのだ
[재능과 인격]
사람의 재능은 끊임없는 노력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에 의해서 길러지고 성장한다
재능은 그 사람의 보물이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재능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재능과 인격을 혼동하고 재능을 우선한다면 현재와 같은 혼란한 사회를 초래한다
신이 찾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그 사람의 전인격이 신의 마음에 들어맞고 있는가 어떤가가 문제인 것이다
實踐
人の實踐は生まれではなく その人の生活態度にある
[실천]
사람의 실천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태도에 달려있다
想念
すべての出發は 心にある
想念にある
想とは心の上に相(かたち)と書く
念は心の上に今と書く
想念とはそれゆえに 心の中で常(今)に相(かたち)を描くことをいう
發明 發見 善惡 美醜は すべてこうした想念によって生み出され
形となって現われてくるものだ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
모든 것의 출발은 마음에 있다
상념에 있다
생각이란 마음 상에 모습(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의 표정)이라고 쓴다
생각은 마음 상에 지금이라고 쓴다
상념이란 그러므로 마음 속에서 항상(지금)에 모습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발명 발견 선악 미추는 전부 이러한 상념에 의해서 창출해 내며
형상이 되어 모습으로 나타나오는 것이다
使命
太陽系は太陽を中心に 九つの惑星と 三十二の衛星が 整然と步調をそろえ
決して氣ままな行動をとることをしない
これと同じように 人にはそれぞれ器というものがある
人はその器にしたがって 今世での役目を果たしてゆく
人間の五體が 五體として成立するには 各諸器官の有機的な機能が必要である
それぞれが自己主張し 手足が頭を 頭が腕を望むとすれば どうなるであるう
五體はパラパラとなり 人間は一日として生存することができないではないか
[사명]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아홉개의 혹성과 32개의 위성이 정연과 보조를 고루 갖추어
절대로 제멋대로인 행동을 취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저마다 그릇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사람은 그 그릇에 따라서 금세에서의 목적을 다해 간다
인간의 온몸이 온몸으로써 성립하는 데에는 각 여러 기관의 유기적인 기능이 필요하다
저마다가 자기를 주장하고 손과 발이 머리를 머리가 팔을 바란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온몸은 뿔뿔이 흩어져서 인간은 하루라도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닐까
一つの悟り
悟りといと 宇宙卽我の體現のように思われている
事實それにちがいない
しかし 悟りの本來の姿は 自分の一つ一つの心の歪を修正することであり
これへの精進につきるのである
それゆえ その每日の日常生活において 自分が氣付いた欠点を正し
その正した事柄が 無理なく自然に行えるようにすべきである
悟りというものは 自分の欠点を修正し
その修正した事柄が 無理なく行じられたときにいえる言葉なのである
そうして 一つの悟りは 大きな悟りを導くかぎを握っている
正しく見ることが出來れば 正しく思うことも語ることも 自然に整ってくるものである
決して忘れてはならない
身近は 現實の 自分の想念と行爲について 一つでもいい 悟るように心がけよ
[하나의 깨달음]
깨달음이라고 하면 우주즉아(宇宙卽我: 우주가 곧 자신이다)의 형태로서 나타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사실은 그것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깨달음의 본래의 모습은 자신의 하나하나의 마음의 비뚤어짐을 수정하는 것이며
이것으로의 정진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매일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느꼈던 결점을 바로잡고
그 바로잡은 내용이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행해지도록 해야 한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결점을 수정하고
그 수정한 내용이 무리없이 실행할 수 있었을 때에 말할 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깨달음은 큰 깨달음을 인도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올바르게 보는 것이 가능하면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자연히 정연되어오는 것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신변은 현실의 자신의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에 대해서 하나라도 좋다 깨닫도록 노력하라
自由人
風流に身をまかす人 俗界から超然とする者が 自由人のようにいわれるが
眞の自由人とは 社會的な制約の中にあって それにとらわれず
爲すべきことを果たして行く者をいう
[자유인]
풍류에 몸을 맡기는 사람 세속의 일이 벌어지고 세속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초연하다고 하는 사람이 자유인인 것처럼 불리우지만
참된 자유인이란 사회적인 제약 속에 있고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행야해할 것을 완수해 가는 사람을 말한다
無償の行爲
天使(如來)は 人の中にあっても もまれず 汚されず 人びとの意識を高め
神の祝福が與えられるよう 無償の行爲をいとわぬ者である
[무상의 행위]
천사(여래)는 사람 속에 있어도 시달리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의식을 고양시킨다
신의 축복이 주어지도록 무상(無償)의 행위를 싫어하지 않은 사람이다
天使
天使は人を見て 人にとらわれない
社會を見て 社會に動かされない
常に神の心に住して その心で每日をすごす
[천사]
천사는 사람을 보고 사람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사회를 보고 사회에 흔들리지 않는다
항상 신의 마음에 주거하고 그 마음에서 매일을 보낸다
足る者の心
足ることは 自己滿足 小成に安んずる 欲望を押さえることではない
明るく 積極的に 正道の生活を實踐する者をいうのだ
それゆえ 足る者の心は 人生の目的を知り
いやしくも欲望に動搖し 現象にとらわれることはないものである
[만족하는 사람의 마음]
만족함이란 자기만족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여 더 큰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욕망을 누르는 것이 아니다
밝고 적극적으로 정도의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족하는 사람의 마음은 인생의 목적을 알며
적어도 욕망에 동요하고 현상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眞の人間
眞の人間は 常に主體性を持ち 心は豊かで 自由であり それでいて連帶意識を持ち
社會の義務を果たし 人とびとの心を明るく 率直に
そうして その喜びを分かち與えて行く者である
[참된 인간]
참된 인간은 항상 주체성을 가지고 마음은 풍요롭고 자유이며 그런데도 연대의식을 가지고
사회의 의무를 다하고 사람들과의 마음을 밝고 솔직하게
그렇게 해서 그 기쁨을 나눠 줘 가는 사람이다
現代
現代にとって もっとも必要なことは
長い歷史の過程で積み重ねた 人びとの自己保存をくつがえし
自由と連帶の 本來の人間性を回復させる努力を 惜しまないことである
[현대]
현대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쌓아온 사람들의 자기보존을 뒤엎고
자유와 연대의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思想 習慣
思想はその人の行動を束縛し 反省のない生活習慣は 執着心をつくってゆく
思想や習慣のズレは 親子の斷絶を生み 嫁と姑の爭いの種になる
勞使の對立 信義の崩壞もまた然り
地上に調和と進步を願うならば 自己中心の欲望から離れた反省と
それにもとづいた生活行爲を爲して行く以外にない
そして それはまず 自分から行じることが必要だ
[사상 관습]
사상은 그 사람의 행동을 속박하고 반성이 없는 생활습관은 집착심을 만들어 간다
사상이나 습관의 어긋난 정도는 부모와 자식의 단절을 낳고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다툼의 씨앗이 된다
노사의 대립 신의의 붕괴도 역시 그렇다
지상에 조화와 진보를 바란다면 자기중심의 욕망으로부터 떨어진 반성과
그것에 바탕을 둔 생활행위를 행해 가는 이외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우선 자신부터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惡のにがさ
惡は思ってはなるまい
しかし惡を思わぬ者はいないだろう
惡を知らなければ
善のよさも 愛の尊さもつかむことはできない
私たちは惡のにがさを知ることにより より豊かな 愛の心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よう
[악의 부피가 커짐]
악은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악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악을 모른다면
선의 좋은점도 사랑의 소중함도 파악할 수는 없다
우리들은 악의 부피가 커짐을 아는 것에 의해 보다 풍요로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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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 正法について]
[제 4장 정법에 대하여]
●正しい循環 (올바른 순환)●
[ウソのつけない自分の心]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
「おめェ一、信心とか信仰とはどういうものだと思う?」
「자네, 신심이라든가 신앙이란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해?」
「神さまに手を合わせることじゃねェか······」
「신에게 합장하는 것이 아닐까······」
「神社、佛閣などにいってか? 」
「신사(神社:신을 제사지내는 곳 또는 그 건물), 불당(佛堂) 등에 말인가?」
「······まあ、そうだな」
「뭐, 그렇지」
「じゃあ、神社佛閣へ行って、なんでのために手を合わせるのだ 」
「그럼, 신사 불각에 가서, 뭣 때문에 합장하는 건가」
「そりゃあ、家內安全、商賣繁盛を賴むのさ」
「그건, 가내 안정, 장사 번성을 부탁(의존)하는 것이지」
「賴んでご利益あるか? 俺の知人がこの正月に成田山に行って、歸り道、自動車にはねられ、死んだよ」
「의존해서 이익이 있을까? 나의 지인이 이번 정월에 나리타산에 가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에 치어서, 죽었어」
「そりゃ信心が足りないからだ。 信心が厚ければそんなことはねェさ」
「그럼 신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신심이 두터우면 그런 일은 없을꺼야」
「ところがその人は、常一頃、非常に信仰心の厚い人なんだ。 月に一度は必ず參りにいく。 布施もする。人柄だって惡くない。その人が、アッという間に死んだ。これをみて庵は、いったい、この世の中に、神樣とか佛樣はあるんだろうかと思ったね。日本には隨分と、いろいろな敎團や敎えがあるらしいが、サッパリよくならねェしゃねェか。 惡くなる一方だ。 第一、,神樣や佛樣が多すぎる。 佛敎一つとっても何百何千だろう。その何百何千が、我こそはとやっている。おかしいと思わないか?······庵は思んだが、信心とか、信仰というものは、そんなものしゃねェ。神樣、佛樣に手を合わせることじゃねェと思すんだ」
「그런데 그 사람은, 평소, 상당히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야. 한달에 한 번은 반드시 참배하려 가지. 보시(布施)도 하고. 인품도 나쁘지 않아. 그 사람이, 눈깜짝할 사이에 죽었어. 이것을 보고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 신이라든가 부처님은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네. 일본에는 상당히, 여러 가지 교단이나 가르침이 있는 것 같지만, 그다지 깔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빠질 뿐이야. 첫째, 신이나 부처님이 데억지지. 불교 하나만 해도 몇 백 몇 천일거야. 그 몇 백 몇 천이, 나야말로는 이라고 하고 있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만이 생각이지만, 신심이라든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신, 부처님에게 합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じゃあ、どうすりゃいいんだ」
「그럼, 어찌하면 좋은가」
「庵にもよくわからねェが、神樣,佛樣が賴りにならねェとすれば、賴りなるのは、自分しかいねェってことになるなあ······」
「나도 잘 모르지만, 신, 부처님을 의지한다면, 의지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는 것이 되지 않나아······」
「·········」
「·········」
「人にはウソはいえんても、自分にウソはつけねェもの。自分にウソがつけねェってことは、自分の中にも、神樣、佛樣があるってことじゃあねェのかなあ·····。だから、手を合わせるとすれば、ウソのつけない自分に、手を合わせるより仕方がねェと思が、おめェ、どう思う」
「남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자신에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자신 안에도, 신, 부처님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일까아······ 。그러니까, 합장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합장을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데, 자네, 어찌 생각해」
※ 신사[神社] : 일본(日本) 황실(皇室)의 조상(祖上)이나 일본인(日本人) 고유(固有)의 신앙(信仰) 대상(對象)인 신 또는 국가(國家)에 공로(功勞)가 큰 사람을 신으로서 모신 사당(祠堂)
※불각[佛閣] : 불당(佛堂). 부처를 모신 대청(大廳)
この會話は、ある寒い朝の、地下鐵の中での風景であります。二人とも中年の出稼ぎ勞動者らしく、言葉はぞんざいですが、話しの內容は、筋が通っています。 近頃、珍しいと思って紹介しました。
이 회화는, 어느 추운 아침의, 지하철 안에서의 풍경입니다. 두 사람 다 중년의 외지인(外地人) 노동자답게, 말투는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야기의 내용은, 조리가 서 있습니다. 요즘, 드물다고 생각해서 소개했습니다.
この會話にもある通り、家內安全、商賣繁盛のご利益信仰は、今や世上を覆っています。科學萬能といわれながらも、これと倂行して信仰心が流行するのも、人間は一寸先が闇であり、同時に、自己保存の念がますます强くなっているからです。信仰の目的が自己本位,自分さえよければ、という考えに根ざしているからです。
이 회화에도 있는대로, 가내 안정, 장사 번성의 이익신앙은, 지금이나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과학만능이라고 불리우면서도, 이것과 병행해서 신앙심이 유행하는 것도, 인간은 인생의 앞일은 예측할 수 없으며, 동시에, 자기보존의 생각이 더욱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자기본위, 자신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생각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神信心して交通事故に會うのも、こうした、利益追求、自己本位のあやまった心の狀態が原因になっている場合が多いのです。人間は,信仰するしないに拘わらず、各人の運命そのものは、自分がつくり出していることを知らねなりません。運命とは、命を運ぶことであり、命とは、己自身でありますから、己自身が黑い想念に支配された場合は、黑い想念に運命をまかす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す。その成田山に行って死に見舞われるのも、その人の信仰そのものに、どこか間違いがあり、その黑い想念によって、やがて、動物靈の支配下に自分を置いてしまったと考えられます。人間は、肉眼の範圍でしか物を見ることが出來ませんから、動物靈というものが、どういうものかわかりません。しかし、動物靈は、嚴として存在しています。動物靈はもともと自己本位ですから、こういうものが人間に憑くと、その人はやがて、動物本能に左右され、人間としての自覺が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自分に危險を與える者には徹底した憎惡を持ち、敵對意識が常に自分を支配する。ところが、この世は、自分一人で成り立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し、人と人とが和合し、助け合うように出來ているのですから、調和を亂する想念は、やがて、その運命にも影響を與え、惡い想いは惡い結果を招くことになるわけです。
신을 믿고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도, 이러한, 이익추구, 자기본위의 잘못을 저지른 마음의 상태가 원인이 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인간은, 신앙하고 신앙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각자의 운명 그 자체는,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운명이란, 목숨을 옮기는 것이며, 목숨이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어두운 마음에 품은 생각에 지배당한 경우는, 그 어두운 상념에 운명을 맡기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 나리타산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그 사람의 신앙 그 자체에, 어딘가 잘못이 있고, 그 어두운 마음에 품은 생각에 의해서, 머지않아, 동물령의 지배하에 자신을 맡겨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육안의 범위에서 밖에 사물을 볼 수가 없기때문에, 동물령이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릅니다. 하지만, 동물령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동물령은 본래 자기본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인간에게 들리면, 그 사람은 이윽고, 동물본위에 좌우되어,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자신에게 위험을 주는 사람에게는 철저한 증오를 가지고, 적대의식이 항상 자신을 지배한다. 그런데, 이 세상은, 자신 혼자서 성립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사람과 사람과 화합하고, 서로 돕도록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화를 어지럽히는 상념은, 머지않아, 그 운명에도 영향을 끼치며, 나쁜 생각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이치입니다.
───類は類をもって集る。
───동류는 동류로써 모여든다(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인다).
これは神理です。法則です。從って、神社佛閣に行って、各人が利益追求のみを願ったとすると、その想念は、やがてその神社、佛閣を包み、動物靈の住家となり、そこにきた信者が、もしも自己本位で手を合わせれば、そこにいる動物靈を呼びこむことになるのです。
이것은 신리입니다. 법칙입니다. 따라서, 신사불각(신을 제사지내는 곳 또는 그 건물, 법당)에 가서, 각자가 이익추구만을 바란다고 한다면, 그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은, 머지않아 그 신사, 불각을 감싸고, 동물령의 거처(居處)가 되어, 거기에 온 신자(信者)가, 만약 자기본위로 합장을 하면, 거기에 있는 동물령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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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もキリスト敎も心を說く]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마음을 설명한다]
「人にはウソはいえても、自分にはウソがつけなねェ」
という考え方は、眞實そのままであり、人間の姿を、ありのままにみつめた正しい信心であると思います。
「남에게는 거짓말을 말할 수 있어도,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지요」
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진실 그대로이며, 인간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주시한 올바른 신심(어떤 것을 옳다고 굳게 믿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人間、神の子、佛の子といわれる理由も、また、萬物の靈長といわれるゆえんも、ここにあります。
인간,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라고 말해지는 이유도, 또,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우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人間には、心があり、心は神佛に通じています。なればこそ、自分の心にはウソが言えないのです。ですから、信心とは己の心を信ずることです。ウソの言えない己の心を信じ、その心の命ずるままに、日日の生活を送るようにすれば、間違いは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信仰とは、ウソの言えない己の心に問う、聞くの反省の生活です。こういうことが、これまで非常におろそかになっていました。 神社佛閣に行って、手を合わせることが信心、信仰であるとしたり、あるいは、ある集團に所屬することが信仰である、というものではありません。神佛と人間を切り離した考え方に、大きな間違いがあったと思います。人間、神の子、佛の子であり、ウソのつけない心があるとすれば、その心を、しっかりとつかむことが必要ではありませんか。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고, 마음은 신불에게 통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마음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심(어떤 것을 옳다고 굳게 믿는 마음)이란 자기의 마음을 믿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믿고, 그 마음의 명령하는 대로, 나날의 생활을 보내도록 하면, 잘못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의 마음에 묻고, 듣는 반성의 생활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태까지 상당히 소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사불각에 가서, 합장하는 것이 신심(信心), 신앙이라고 하거나, 혹은, 어느 집단에 소속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불과 인간을 떼어 놓은 사고방식에, 큰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이며,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마음을, 단단히 붙잡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釋迦の敎え、イエスの愛は、こうした正しい信心、信仰を求めています。知と意で組み立てられた佛敎や愛の在り方について、その誤ちを訂正する時期が來ているのです。
석가의 가르침, 예수의 사랑은, 이러한 올바른 신심, 신앙을 찾고 있습니다. 지(知惠)와 의(意思)로 조립되어진 불교나 사랑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서, 그 잘못을 정정하는 시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在り方 = 마땅히 그러하여할 할 상태[[자세·태도]. 올바른 자세, 본연의 모습, 바람직한 상태.란 뜻입니다.
どういうことかといいますと、今日では、釋迦の慈悲、イエスの愛は、すっかり哲學化され、お經はあげるもの、信仰は祈るものと變わってしまったために、神理の光が、影をひそめてしまったからなのです。
어떻게 하는 것인가냐고 하면, 오늘날에는, 석가의 자비, 예수의 사랑은, 완전히 철확화되어, 불경(경문)을 올리는 것, 신앙은 기도하는 것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에, 신리의 빛이,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佛敎もキリスト敎も、その根本は、心の敎えであり、人間は心であり、正しい心こそ、信心、信仰の對象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するところにあります。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그 근본은, 마음의 가르침이며, 인간은 마음이며, 올바른 마음이야말로, 신심(信心),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人間は、知情意がそろって、はじめて圓通無碍(えんつうむけ)な人柄となり、神佛の光を、體全體にうけることになりましょう。知とは知惠、情は心、意とは、意思、己です。この三つの中心が、情、心です。情は心の現われであり、それがあまり表面になりますと感情になり、感情は、己を失う結果になりますが、情が心となり、神佛の光を大きくうけるようになりますと、知は智慧(佛智)となり、意は、大我となるとです。それゆえ、情は、知と意の間に入って、兩者を支えています。もしも、情がなく、知だけの人間になりますと、自分を見失うばかりか、人と人との交流が阻害されます。また、意の人間は自我が露骨となり、自ら、その首を締める結果となりましょう。それですから、情、心がいかに大事であるか、心を整えることこそ、信心、信仰の對象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
인간은, 지정의(知情意)가 갖추어지고, 비로소 원통무애한 인품이 되어, 신불의 빛을, 몸 전체에 받게 될 것입니다. 지(知)란 지혜(知惠), 정(情)은 마음, 의(意)란, 의사(意思 마음먹은 생각, 마음), 자기(己)입니다. 이 세가지의 중심이, 정(情), 마음(心)입니다. 정(情)은 마음의 표현이며, 그것이 너무 표면이 되면 감정이 되어, 감정(感情)은, 자기를 상실하는 결과게 됩니다만, 정(情)이 마음이 되어, 신불의 빛을 크게 받아들이게 되면, 지(知)는 지혜(智慧)(佛智,불지)가 되어, 의(意)는, 대아(大我, 좁은 견해나 아집(我執)을 벗어난 자유 자재의 경지 )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정(情)은, 지(知)와 의(意)의 사이에 들어가서, 양자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만약, 정(情)이 없고, 지(知)만이 인간이 되면, 자신을 잃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가 저해됩니다. 또, 의(意)의 인간은 자아(自我.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관념)가 노골화되어, 스스로, 그 목을 졸라매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정(情), 마음(心)이 어떻게 중대사인가,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야말로, 신심(信心), 신앙의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情]=마음, 마음의 움직임<일본어사전>
※정[情]=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국어사전>
※정[情]=정(情)은 ㉠뜻 ㉡마음의 작용 ㉢사랑 ㉣인정 ㉤본성(타고난 성질) ㉥정성(情性) ㉦사정 ㉧실상, 사실, 진상 ㉨이치(理致), 진리 ㉩사정, 형편, 상태 ㉪멋, 정취 ㉫욕망 ㉬진심, 성심, 참마음 ㉭참으로, 진실로 <한자사전>
そこで、いったい釋迦の正法とは、どういうものかといいますと、正法とは心です。心そのもの、人間それ自身であり、宇宙全體でもあります。正法そのものについては後ほど述べますが、その正法は、かつてインドで說いた釋迦の敎えが、そのまま、現代に再現されたといっていいのです。
그래서, 도대체 석가의 정법이란, 어떠한 것인가냐고 하면, 정법(正法)이란 마음입니다. 마음 그 자체, 인간 그 자신이며, 우주 전체이기도 합니다. 정법 그 자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술합니다만, 그 정법은, 일찍이 인도에서 설명한 석가의 가르침이, 그대로, 현대에 재현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といいますのは、萬古不滅の神理は、己の心を開かせ、これまで考えてきた、小さく、みじめな人間感から解放する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そうして、そうした解放感から、一步も二步も先に自分を進めることが出來れば、知情意の三體は、自然と整ってくるのです。
그렇다고 하는 것은, 만고불멸의 신리(神理)는, 자기의 마음을 열고, 여태까지 생각해 온, 작고, 비참한 인간감에서 해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러한 해방감에서,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으면, 지정의(知情意)의 삼체(三體)는, 자연히 조화를 이루어 오는 것입니다.
現在、私たちには、靈能者が百數十人にのぼります。この人たちは、正法の神理にふれ、心を開いた方方です。かつて、イエスがその弟子たちに靈能を開かせ、異言を語らせたのと同じようなことが、現實に、私たちの身の回りで起っています。靈能というと、いかにも、特殊な人間,、特殊な修行を連想させますが、人間は誰しも、そのような能力を持っており、各人の心は、本來、すでに神佛と通じているのですから、當然といえば當然なことです。
현재, 우리들에게는, 영능자가 백 수십인에 오릅니니다. 이 사람들은, 정법의 신리에 접하여, 마음을 여신 분들입니다. 일찍이, 예수가 그 제자들에게 영능을 열리게 하여, 다른 언어를 말하게 한 것과 똑같은 일이, 현실에, 우리들의 일상의 신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능이라고 하면, 매우, 특수한 인간, 특수한 수행을 연상시킵니다만, 인간은 누구든지, 그와 같은 영능을 갖고 있고, 각자의 마음은, 본래, 이미 신불과 통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求めよ、さらば與えられん」
これはイエス樣の言葉ですが、人は求める心に應して結果が出るものです。靈能も、その一つです。私利私欲で求めると動物靈、魔王がその人を支配します。神理にもとずいた靈能は、正しい生活の上に立って開かれてゆくものです。
「구하라, 그러면, 주어질 것이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말입니다만, 사람은 구하는 마음에 응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영능(靈能)도, 그 하나입니다. 사리사욕으로 구하면 동물령, 마왕이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신리에 바탕을 둔 영능은, 올바른 생활상에 서서 열리어 가는 것입니다.
靈能がひらいても心の在り方が重要であり、私利私欲、自己本位になりますと、その人を狂わせます。行者の末路の悲慘され、なによりの證據です。そうした意味で、どんな靈能でも、自戒と自重を欠くことが出來ませんし、神理にもとづいた生活が、どんな場合でも必要になるわけです。
영능이 열리어도 마음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가 중요하며, 사리사욕, 자기본위가 되면, 그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행자의 말로의 비참함을 당하며,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떤 영능이라해도, 스스로 경계함과 자중을 빼뜨릴 수가 없고, 신리에 바탕을 둔 생활이, 어떤 경우라해도 필요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神理に適った靈能が私たちの周圍におこっており、釋迦、イエスの說いた神理が、極めて自然に語られ、人びとの心を溫かく包む現證は、特記すべきことといえます。
신리에 들어맞는 영능이 우리들의 주위에 일어나고 있고, 석가, 예수가 설명한 신리가, 극히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 받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는 현증은, 특기할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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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ミロク,、聖觀世音菩薩が指導靈として······]
[미륵, 성관세음보살이 지도령으로서······]
現在、百數十人にのぼる靈能者は、それぞれ自分の過去世を、當時の言葉で語ります。過去世の言葉とは、自分がかつて、インドや中國で生活していたときの言葉です。人間は轉生輪廻を續けているのですから、千年前、二千年前の言葉を語ったとしても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人間が轉生輪廻を續けているという證明は、佛敎では說かれていても、事實をもって示すことは、私たちをして、はじめてなし得たものと確信しています。現在、洋の東西を問わず、いろいろな宗敎團體が存在しますが、正法を地でゆく宗敎が他にあるでしょうか。まず、二つとないでしょう。
현재, 백 수십명에 오르는 영능자는, 저마다 자신의 과거세를, 당시의 말로 이야기합니다. 과거세의 말이란, 자신이 일찍이, 인도나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때의 말입니다. 인간은 전생윤회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천년 전, 이천년 전의 말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불가사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이 전생윤회를 계속하고 있다고 하는 증명은, 불교에서는 설명되어지고 있다고 해도, 사실로써 제시하는 일은, 우리들로 하여금, 비로소 해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현재,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러 자기의 종교단체가 존재합니다만, 정법을 실재로 옮겨가는 종교가 다른 곳에 있을까요. 우선, 둘도 없을 것입니다.
いつ、どこで、うぶ聲をあけ、出家して、修行し、そうして、弟子たちが何人いて、何を敎えてきたかを、こと細かく話します。敎辭典をひもとくまでもありません。今日辭典は、知と意で書き改められていますから、非常に問題點が多いと思います。さらに、佛敎がチベットから中國に渡り、日本にくるまで、佛敎の歷史が、いつ、どこで、どう變わっていったかを、私自身にも驚くほどに、その記憶がよみがえってきております。
언제, 어디에서, 응애하고 태어나서, 출가하고, 수행하고, 그렇게 해서, 제자들이 몇 명이 있고,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를, 상세하게 이야기합니다. 오늘날의 사전은, 지(知識)과 의(意思)로 고쳐 쓰여져 있기 때문에, 상당히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더욱더, 불교가 티베트에서 중국으로 건너가고, 일본에 오기까지, 불교의 역사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변해 갔는가를, 저 자신으로도 놀랄 정도로, 그 기억이 되살아나오고 있습니다.
私が學んだことといえば電氣工學ぐらいです。今世では、電氣會社を經營し、佛敎は未知の世界だったわけです。その私が、現世で學ばなかった佛敎に自然にひきずられ、こうした科學的學問が、佛敎の裏打ち、證明の材料にすぎなかったとは、皮肉です。神理は、どこから求めても、一つであるということがわかったわけです。そうして、人の過去、現在、未來の三世が、手にとるように理解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제가 배운 것이라고 하면 전기공학정도입니다. 이번 세상에서는, 전기회사를 경영하고, 불교는 미지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그런 제가, 현세에서 배운 적이 없는 불교에 자연히 억지로 끌리어 가서, 이러한 과학적 학문이, 불교의 뒷받침, 증명의 재료에 지나지 않았었다니, 짖궂습니다. 신리는, 어디에서 찾아도, 하나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가, 손에 잡히듯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こうして、私たちは、私をはじめ、百數十人の靈能者が輩出し、過去世の言葉を語ります。その言葉は、中國,、インド、チベット、イスラエル、エジプト、インカ、イギリス、フランス、ドイツ、ロシア、スペインなど、多種多樣です。靈能者の大部分は、これらの言葉を、現世では習ったこともなければ學んだこともないのです。それなのに、自在に出てきます。私自身は各國語がわかり、從って、各靈能者と自由に話し合います。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저를 시작으로, 백 수십명의 영능자가 배출하고, 과거세상의 말을 이야기합니다. 그 말은, 중국, 인도, 티베트, 이스라엘, 이집트, 잉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스페인 등, 다종다양합니다. 영능자의 대부분은, 이러한 말을, 현세에는 익힌 일도 없다면 배운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자재로 나아옵니다. 저 자신은 각 나라의 말을 알며, 따라서, 각 영능자와 자유자재로 서로 이야기합니다.
※다종다양[多種多樣] : 가짓수나 양식, 모양이 여러 가지로 많음.<국어사전>
また、そうした靈能者は、當時の言葉を、自分でも飜譯し、人びとにもわかるように自分の過去を語ります。それは、まことに樂しいものです。ある者は中國の天台山で經文をあげたことがあり、法華經が中國語で出て參ります。本人自身は、經文を習ったことがないのに、一つの間違いもなく出でくるのです。
또, 그러한 영능자는, 당시의 말을, 스스로도 번역하고, 사람들에게도 알도록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의 천태산에서 경문을 올린 적이 있고, 법화경이 중국어로 나아 옵니다. 본인 자신은, 경문을 익힌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잘못됨도 없이 나아 오는 것입니다.
また、ある者は、相手の心がわかり、現在、その人が何を考え、何を思っているか、病氣があるとすれば、その病名まで指摘します。
또, 어떤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알고, 현재, 그 사람이 무엇을 지적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병이 있다고 하면, 그 병명을 지적합니다.
靈視も自由です。靈視のきく人は數十人にのぼります。うまいことを言っても、背後に動物靈が憑いているときは、そのことがウソであることがわかってしまいます。普通の人にはウソは言えても、靈能者には、ウソはつけません。
영시도 자유자재입니다. 영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수십명에 오릅니다. 그럴싸한 것을 말해도, 배후에 동물령이 들리어 있을 때는, 그 것이 거짓말인 것을 알아버리고 맙니다. 보통의 사람에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영능자에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私たちは、こうした靈能者、つまり、釋迦に關係のあった人、イエスの關聯の人、モ―ゼに緣の深い人たちが集まってきています。
우리들은, 이러한 영능자, 즉, 석가에게 관계가 있었던 사람, 예수와 관련인 사람. 모세에게 인연의 깊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고 있습니다.
たとえば、ウパテッサ(舍利佛)、コリ―タ(大目蓮)、アナン(阿難)、ピパリヤ―ナ(マ―ハ―ㆍカシャパ―)、ヤサ、スブティ―、プルナトラヤㆍヤプトラ―、シュバリダ、アサジ、コ―スタニヤなど。
예를들면, 우파테샤(사리불,Saariputta, सारिपुत्त, Zaariputra,Sariputra,舎利弗), 코리―타(대목련,MahaaMoggallaana,महामोग्गळान,摩訶目犍連, 마하목건련). 아난(Aanan, 阿難, aananda、आनन्द, 阿難陀,아난다), 비바리야아나(마하ㆍ캬샤파, 摩訶迦葉, 마하가섭, 마하캇샤파, Mahaakassapa、महाकस्सप, Mahakasyapa), 야사, 수부티(須菩提, 수보리, Subhuuti、सुभूति) , 부루나트라야ㆍ야(니)부트라―(富楼那弥多羅尼子,부루나미다라니자, puurNamaitraayaniiputra、पूर्णमैत्रायनीपुत्र), 슈바리다, 아사지(Assaji, 阿説示), 코스타니야(阿若・憍陳如.아약・교진여,Ajña-Kaundinya,Añña-Kondañña) 등.
また、バウロ、ラフラ―、マンチュリア―(文珠)といった人たちも集まってきています。
또, 파우로(사도바울, Παῦλος 파오로스, Paulos, Paul, Saul), 라후라―((羅睺羅, Rāhula,राहुल, 라훌라,석가모니부처님의 아들), 만츄리아(문수, 文殊菩薩, मञ्जुश्री ,maJjuzrii, 文殊師利))라고 하는 사람들도 모여들어 오고 있습니다.
ミロク菩薩、聖觀世音菩薩も指導靈として活躍しています。
미륵보살, 성관세음보살도 지도령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兩菩薩の說法は、人びとの心にしみ通るように、やさしく、誰にもわかるように話します。末法の世に、人びとに光を當てるべく、その使命を擔ってこの世に生をうけ、それは宇宙の神理、それを誤りなく傳えるべく、重大な任務を帶びています。
양 보살의 설법은, 사람들의 마음에 사무치듯이, 쉽고,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합니다. 말법의 세상에, 사람들에게 빛을 쬐도록, 그 사명을 담당하고 이 세상에 생을 받고, 그것은 우주의 신리, 그것을 착오 없이 전하도록,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兩菩薩は、いずれも女性です。佛像や佛畵のうえでは、女性だか、男性だか、判然としないため、人間が悟り開くと、中性になるという說明をどこかで聞きましたが、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男性、女性の區別は、あの世も、わかりません。
양보살은, 모두가 하나같이 여성입니다. 불상이나 불화의 위에서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판연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깨달음을 열면, 중성이 된다고 하는 설명을 어딘가에서 들었습니다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남성, 여성의 구별은, 저 세상에도, 알 수 없습니다.
いったい、こうしたことが、これまで想像され得たでしょうか。 誰しも想像できなかったと思います。 だが、現實に、そうしたことがおきているのですから、どうすることも出來ません。ただ、言い得ることは、轉生輪廻の法則を知るならば、こうしたことは疑いなく首肯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도대체, 이러한 일이, 지금까지 상상될 수 있었습니까. 누구든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단,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생윤회의 법칙을 안다면, 이러한 일은 의심 없이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Page 222~225
[光の天使は神佛の使者]
[빛의 천사는 신불의 사자]
こうようにして、人間の生命は轉生輪廻を續けており、その事實は、釋迦の正法、つまり、宇宙の神理を理解すること、それに從って生きることによって證明されてきているのです。過去の言葉を語る······。この事實は、他の宗敎にはみられぬ現象であろうと思います。そればかりか、神理にふれることにより、いくたの奇蹟が相次いて起こっています。病氣回復、事業好轉、不和だった家庭內が明るくなったなど、その數は枚擧にいとまがありません。本來こうした現象利益というものは、神理に適った生活を送るならば、一つの隨伴現象として、具體化さぺるものです。
이렇게 해서, 인간의 생명은 전생윤회를 계속하고 있고, 그 사실은, 석가의 정법, 즉, 우주의 신리를 이해하는 것, 그것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에 의해서 증명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말을 이야기한다······ 。이 사실은, 다른 종교에는 볼 수 없는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리에 접하는 것에 의해서, 숱한 기적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병의 회복, 사업호전, 불화였던 가정안이 밝게 되었다는 등, 그 숫자는 일일이 들어서 말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なぜかといいますと、釋迦の正法は、宇宙の法則に適っているからです。人の一念は暗を通すて、その一念が正しく使われれば、その一念力は、正しく、その人に返ってきます。もしも、正しくない一念力を燃せば、同樣にその人に返り、その人の心身、環境を惡くすることになります。正しいか、正しくないかは、ウソのつかない自分の心に問うてみることです。自分の心は中道であり、公平ですから、良い惡いは、すぐ答えが出るはずです。
왜인가 하면, 석가의 정법은, 우주의 법칙에 들어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념은 어둠을 통과시켜서, 그 한결같은 마음이 올바르게 사용되면, 그 한결같은 마음의 힘은, 올바르게, 그 사람에게 되돌아옵니다. 만일, 올바르지 않은 일념력(一念力)을 불태우면, 마찬가지로 그 사람에 되돌아가고, 그 사람의 심신, 환경을 나빠지게 하게 됩니다.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은가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물어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은 중도(中道)이며, 공평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은, 곧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動物靈信仰でも、奇蹟はあるでしょう。彼らにもそれぐらいのことは出來ます。ところが、前にも述でたように、動物靈は、しょせんは動物であり、神理は說けません。へびの獰猛(どうもう)さ、キシネのずるさを想像してみて下さい。へびやキシネに、慈悲とか愛がわかりますか。まことしやかに人間をだましますが、もともと、本能のままに生かされているものですから、こうしたのものが人間に憑くと、いっときは利益を與えても、ある程度時間がたつと本性を現わし、人間を食いものにしていきます。熱心な信者ほど病氣をしたり、家の中がうまくゆかなかったりするのも、そのためです。
동물령 신앙이라고 해도, 기적은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그 정도의 것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전에도 기술한 것 처럼, 동물령은, 결국은 동물이며, 신리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뱀의 영맹(獰猛, 모질고 사나움), 여우의 약싹빠름(교활함)을 상상해 보십시요. 뱀이나 여우에게, 자비라든가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천연덕스럽게 인간을 속입니다만, 본래, 본능대로 살리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인간에게 들리면, 잠시는 이익을 줄지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본성을 드려내고, 인간을 먹을 것으로 해 갑니다. 열심인 신자일수록 병이 들거나, 집안이 잘 되어 가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一般的にいって、敎團の敎祖、熱心な信者の狀態をよく觀察することです。動物靈が憑いている場合は、顔色が惡い、病氣が絶えない、人を非難する、人をおどかす、自己本位、エリ―ト意識が强い、比較の觀念にとらわれる、我が强い、感情的、欲望的、愛がない、計算高い、無理を言う、などです。
일반적으로 말해서, 교단의 교조, 열심인 신자의 상태를 잘 관찰하는 것입니다. 동물령이 들리어 있는 경우는, 안색이 나쁘고, 질병이 끊이지 않고, 남을 비난하고, 남을 위협하며, 자기본위, 엘리트의식이 강하며, 비교의 관념에 사로잡히며, 고집이 쎄며, 감정적, 욕망적, 애정이 없고, 셈평이 빠르며(타산적이며), 억지 말을 하는, 등입니다.
また、敎團によっては動物靈以外に、阿修羅が憑く場合もあります。このときは、戰鬪的、排他的、一本調子、他をかえりみない、などです。
또, 교단에 따라서는 동물령 이외에, 아수라가 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는, 전투적, 배타적, (문장·회화·노래·행동 등이) 변화가 없고 단조로움, 타인을 뒤돌아보지 않는다, 등이다.
いずれも、言うことはふるっています。けれども、日日のその人たちの言葉、行動を觀察すれば、おのずとハッキリ認識されてまいります。
모두가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하루하루의 그 사람들의 말, 행동을 관찰하면, 저절로 뚜렷이 인식되어 갑니다.
また、靈能者といわれる人たちは、いろいろなものを當てたり、豫言をしますが、こういう場合も、動物靈が背後に憑いている場合が多いのです。動物靈は、現象界に非常に執着をもっていますから、神理がアイマイだったり、あるいは全然說げず、占いに熱中している場合など、すべて動物靈の仕業とみて差支えありません。何何の神、何何の命(ミコト)というようなことをしゃべるようなら、これは間違いなく動物靈です。神佛そうものが、人間の體に乘り移ること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神佛は、法そのものであり、慈悲と愛だからです。
또, 영능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것을 알아맞추거나, 예언을 합니다만, 이러한 경우는, 동물령이 배후에 들리여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동물령은, 현상계에 상당히 집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아리송하거나, 혹은 전연 이야기하지 않고, 점치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경우 등, 전부 동물령이 소행(所行)이라고 봐도 지장이 없습니다. 어떠어떠한 것이 신(神), 어떠어떠한 신·천황·귀인 등의 말. (말씀. 분부)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지껄인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동물령입니다. 신불 그 자체가, 인간의 몸에 들리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불은, 법 그 자체이며, 자비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如來、菩薩といわれる方方は、そうした神佛の法を說くために、この地上に、神の使者として生をうけたのですから、光の天使であっても、神佛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この邊のことが、これまで混同されていたようです。動物靈や魔王でも、奇蹟をおこしたり、病氣を治したりますが、これと、神理に適った生活の隨伴現象として起ってくる奇蹟とは、おのずとその內容を異にしており、第一、その永續性、心身の安らぎという点で、まったく、異質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여래, 보살이라고 불리우는 분들은, 그러한 신불의 법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 지상에, 신의 사자로서 생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빛의 천사라고 해도, 신불 그 자체는 아닙니다. 이 부근이이 것이, 지금까지 혼동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동물령이나 마왕이라 해도, 기적을 일으키거나, 질병을 치료하거나 합니다만, 이것과, 신리에 들어맞는 생활의 수반현상으로서 일어나오는 기적과는, 자연히 그 내용을 달리하고 있고, 첫째, 그 영속성, 심신의 안정이라고 하는 점에서, 전혀, 성질이 다르다고 하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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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循環の法則は宇宙の神理]
[순환의 법칙은 우주의 신리]
それではいったい、釋迦の正法神理とはどういうものか、どういう內容を伴なったものかを說明いたしましょう。
그럼 도대체, 석가의 정법신리란 어떠한 것인지, 어떠한 내용을 동반한 것인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正法とは、讀んでも字の如く、正しい法、法則、自然の攝理、かわりない宇宙の循環をいうのです。 かわりない宇宙の循環とは、太陽の周りを自轉公轉する地球のかわりない運動、そうして、その運動の過程において發生する春夏秋冬の循環があるように、人生にも春と秋があります。すなわち、かわりない循環があるわけです。
정법이란, 읽어도 글자 그대로, 올바른 법, 법칙, 자연의 섭리, 변함이 없는 우주의 순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우주의 순환이란, 태양의 주위를 자전공전하는 지구의 변함이 없는 운동, 그렇게 해서, 그 운동의 과정에 있어서 발생하는 춘하추동의 순환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봄과 가을이 있습니다. 즉, 변함이 없는 순환이 있습니다.
こうしたかわりない循環が續けられるということは、その循環を、循環たらしめているところの意思。 エネルギ―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意思、意識、エネルギ―こそ、大宇宙の生命、本體です。
이러한 변함이 없는 순환이 계속되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 순환을, 순환하게 하고 있는 바의 의사(意思). 에너지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 의사(意思), 의식, 에너지야말로, 대우주의 생명, 본체입니다.
これこそが神佛の實體であります。そうして、その意識、エネルギ―は、法則そのものであると同時に、慈悲と愛に滿ち滿ちたものなのです。もしも、この世に、太陽がないとすれば、私たちは生きてはゆけません。太陽の熱、光の放射し續けています。その恩惠によってこそ、萬物は生きてゆかれるのです。 ですから、法則は、そのまま、慈悲と愛である、といえるわけです。
이것이야말로 신불의 실체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의식, 에너지는, 법칙 그 자체임과 동시에,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하거나 넉넉한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태양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태양의 열, 빛의 계속해서 방사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의 의해서야 말로, 만물은 생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자비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人間を稱して、小宇宙といいます。なぜ、小宇宙かといえば、人間そのものは大宇宙とつながっており、大宇宙の縮圖であるからです。
인간을 일컬어, 소우주라고 말합니다. 왜, 소우주인가 하면, 인간 그 자체는 대우주와 연결되어 있고, 대우주의 축도(원형(原形)보다 작게 줄여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まず、人體についてみると、人體は、約60兆からの細胞からなりたっています。そうして、心臟、肝臟などの各諸器官は、それぞれ、特有な細胞集團によって形成されています。したがって、心臟が肝臟になったり、肝臟が心臟になることは出來ないのです。地球は地球であり、火星は火星としての特質をもって、太陽系に依存しているのと同じです。そうして、各諸器官が、よく調和統一されることによって、人間それ自身の生活を可能にし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各諸器官がひとつでも欠けたり、痛んだりすれば、人間の五體は、全體的に、その機能に弱めることになります。
우선, 인체에 대해서 보면, 인체는, 약 60조에서의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심장, 간장등의 각 여러 기관은, 저마다, 특유한 세포집단에 의해서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심장이 간장이 되거나, 간장이 심장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구는 지구이며, 화성은 화성으로서의 특질을 갖고, 태양계에 의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각 여러 기관이, 잘 조화통일되는 것에 의해서, 인간 그 자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여러 기관이 하나라도 빠지거나, 몸이 이상이 있어 아프다고 하면, 인간의 온몸은, 전체적으로, 그 기능을 약하게 하게 됩니다.
しかも、人間の五體は、血液の萬遍ない循環によって保たれています。心臟から出された新しい血液は、體のすみずみまでゆきわたり、各諸器官を動かし、ふたたび、心臟に返ってきます。そうして、また、心臟から排出されてゆきます。
게다가, 인간의 온몸은, 혈액의 빠짐없이 고루 미치지 않는 데가 없이 순환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심장에서 나온 새로운 혈액은, 몸 구석구석까지 빠짐없이 고루 미치고, 각 여러 기관을 옮기고,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렇게 해서, 또, 심장에서 배출되어 갑니다.
※まんべん‐な・い[萬遍ない//万遍無い]
[形][文]まんべんな・し[ク]行き渡らないところがない。すべてに等しく行き渡っている。くまない。
출처:http://dictionary.goo.ne.jp/leaf/jn2/210601/m0u/
太陽の周圍を、九つの惑星が、圓を描きながら、循環の法則にしたがってまわっています。そうしてその法則を續けることによって、各惑星は、惑星としての役目を果たし、太陽系を形成しています。
태양의 주위를, 아홉개의 혹성이, 원을 그리면서, 순환의 법칙에 따라서 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법칙을 계속하는 것에 의해서, 각 혹성은, 혹성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태양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やくめ[役目] : 임무. 직무. 직책. 역할. 구실. 소임. 役目を果たす 임무를 다하다。 任務を果たす;任務を全うする。임무를 다하다.
職分を尽くす;役目を果たす。직분을 다하다. <출처: 일본어사전>
太陽系を人體にみたてると、人體と太陽系は、實によく似ていることがわかります。地球や火星の圓運動が可能なのも、太陽があるからであり、太陽の熱、光がなければ、こうした圓運動、生命の躍動は停止してしまうでしょう。
태양계를 인체로 보고 판단하면, 인체와 태양계는, 참으로 잘 닮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구나 화성의 원운동이 가능한 것도, 태양이 있기 때문이며, 태양의 열, 빛이 없다면, 이러한 원운동, 생명의 약동은 정지해 버릴 것입니다.
人體各部の諸器官が、その機能を果たせるのも、かわりない心臟の働き、血液の循環によってであり、心臟が停止すれば、各諸器官は機能を止めてしまいます。
인체 각 부분의 여러 기관이, 그 기능을 다하게 하는 것도, 변함이 없는 심장의 작용, 혈액의 순환에 의함이며, 심장이 정지하면, 각 여러 기관은 기능을 멈추어 버립니다.
しかし、人間の心そのものは、宇宙の意識につながっているのですから、太陽系よりも大きく、宇宙大に廣がっていることを忘れてはなりません。
하지만, 인간의 심장 그 자체는, 우주의 의식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태양계보다도 크고, 우주대로 넓어지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いずれにしても、太陽系にしろ、人體にしろ、その機能を調和させているものは何かといいますと、それは大宇宙を支配しているところの意識、エネルギ―であり、人間においては、生命エネルギ―なのです。その生命エネルギ―は、大宇宙意識に通じており、人間が、神の子、佛の子といわれる理由も、ここにあるのです。
어차피(결국), 태양계도, 인체도, 그 기능을 조화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대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바의 의식, 에너지이며,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명에너지인 것입니다. 그 생명에너지는, 대우주의식에 통하고 있고, 인간이,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로 불리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その生命エネルギ―、意識の中心が、心であり、ウソのつけない、心です。その心が、人體各部を調和統一させ、五體を維持させていきます。血液の流れも、胃腸の働きも、すべて、人間の意識、生命エネルギ―である心が指令していることを忘れてはなりません。ですから、人間が感情的になったり、怒ったり、悲觀したりしますと、體のどこかに、支障をきたします。胃腸などはとりわけ敏感ですから、その働きを弱めることになります。病は氣からとは、この邊の、人間の心の在り方を傳えたものです。
그 생명에너지, 의식의 중심이, 마음(心)이며,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心)입니다. 그 마음이, 인체 각 부분을 조화통일시키고, 온몸을 유지시켜 갑니다. 혈액의 흐름도, 위장의 작용도, 전부, 인간의 의식, 생명에너지인 마음(心)이 지령하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감정적으로 되거나, 화를 벌컥 내거나, 비관하거나 하면, 몸의 어딘가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위장 등은 유난히 민감하기 때문에, 그 작용을 약하게 하게 됩니다. 질병은 기(氣 마음)에서부터라고 하는 것은, 이 주변이, 인간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 바람직한 상태)을 전한 것입니다.
生命エネルギ―の補給は、夜の睡眠です。肉體的エネルギ―は、動物、植物、鑛物のエネルギ―からとります。
생명에너지의 보급은, 밤의 수면입니다. 육체적에너지는, 동물, 식물, 광물의 에너지에서 취합니다.
このように人間の五體は、正法に適った循環の法則に從って、維持されていることがわかります。 それゆえ、その法則にそった生き方をしていれば、健康は維持され、神佛の惠みも、自然のうちにうけ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祈ればいい、拜めば、何事もうまくゆくといったものではないことがおわかりになったと思います。祈りは、感謝です。感謝の心は行爲になって現われなければ、信仰とはいえません。
이와 같이 인간의 온몸은, 정법에 들어맞는 순환의 법칙에 따라서, 유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그 법칙에 들어맞는 삶의 태토(생활 태도)를 하고 있으면, 건강은 유지되고, 불지(佛智)의 은혜도, 자연의 안에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기도하면 좋고, 신불에게 참배하면(합장 배례하면), 무슨 일이든지 잘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이해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도(祈禱)는, 감사(感謝)입니다. 감사(感謝)의 마음은 행위가 되어 나타나지 않으면, 신앙(信仰)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イエスも言っています。
「汝信仰あり、我行爲あり」と。
예수도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신앙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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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しみの原因は生老病死]
[괴로움의 원인은 생노병사]
ところが、人間には、五官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眼、耳、鼻、舌、身、それに、自己保存をつくり出す意です。知情意の意です。こうした、六根が、いろいろな作用を、人間に及ぼし、心をまどわすものですから、人間の歷史は戰爭をくりかえし、暗く、苦惱の多いものになってきているのです。
그런데, 인간에게는, 오관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눈, 귀, 코, 혀, 몸, 그것에, 자기보존을 만들어 낸 의(意思, 己[자기])입니다. 지정의(知情意)의 의(意思,己)입니다. 이러한, 육근이, 다양한 작용을,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고, 마음을 혼란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전쟁을 되풀이하고, 어두운, 고뇌가 많은 사람이 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五官というものは、六體を保全維持するためには欠くくとが出來ません。目もない、鼻もないとすればどうなるでしょうか。 步行は不自由ですし、鼻がなければ、顔はノッペラ棒になります。 だいいち、呼吸すら出來ません。問題は、これらの五官が、意につながり、勝手な行動をとるから困るのです。眼の作用のみで、美しい人を見て心を動かしたとすれば、その人に妻子があれば、妻子を不幸にし、その美しい人にも、暗い思いをさせることになります。家庭不和、事業不振を招くことにもなるでしょう。
그렇지만, 오관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를 보전유지하기 위해서는 빼뜨릴 수가 없습니다. 눈도 없고, 코도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행은 부자유하고, 코가 없으면, 얼굴은 밋밋하고 넓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호흡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오관이, 의(意思,己)로 이어져, 제멋대로의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곤란한 것입니다. 눈의 작용만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처자(아내와 자식)이 있으면, 처자(妻子)를 불행하게 하고, 그 아름다운 사람에게도,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하게 됩니다. 가정불화, 사업부진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人は愛するとは、こうした眼の作用によ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愛とは、もともと相手を生かすことであり、相手の幸せを願う心です。聖書の山上垂訓を思い出して下さい。
「幸福なるかな、心の貧しき者。天國はその人のものなり。幸福なるかな、悲しむ者。その人は慰えられん。 幸福なるかな、柔和なる者。 その人は地を嗣がん ······ 」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눈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이란, 원래 상대를 소생시키는 것이며,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성서의 산상수훈을 상기해 보십시요.
「행복할지어다, 마음의 가난한 자여. 천국은 그 사람의 것이니라. 행복할지어다, 슬퍼하는 자여. 그 사람은 위로받으리라. 행복할지어다, 유화(온유)한 자여. 그 사람은 땅을 이어받으리라······」
これはどういう意味かといいますと、心の貧しきとは、おごる心のない者。悲しむとは、物質にほんろうされない者。 柔和とは心のおだやかなことなのです。
이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하면, 마음의 가난함이란, (재능·지위·권세등을) 뽐내며 남을 얕보는 마음의 없는 사람. 슬퍼함이란, 물질에 농락당하지 않는 사람. 유화(柔和 온유함. 부드럽고 온화함)란 마음의 평온한 것입니다.
神の愛とは、こうしたもので、眼の作用のみで美しい人に思いをかけるというような欲望とは、本質的にちがいのです。
신의 사랑이란, 이러한 것이며, 눈의 작용만으로 아름다운 사람에게 사모한다(집착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욕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思いをかける ①(이성을) 사모하다. 연모하다. ②희망을 걸다. 집착하다.
このように、五官、六根が、人間をして、心の在り方を失わしめる作用を持っていますが、その根本原因は、人間の生老病死であります。人間はどこからきて、とこゆへくのか、病氣はどうしておきるのか、人間はなぜ、年をとるのかがわからないために、五官に賴る生活に隨ちてしまうのです。
이와 같이, 오관, 육근이, 인간으로 하여금, 마음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 바람직한 상태)을 잃어버리게 하는 작용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 근본 원인은, 인간의 생노병사입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질병은 어째서 발생하는 것이지, 인간은 왜, 나이를 먹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관에 의존하는 생활에 따라 버리는 것입니다.
どうせ人間は死ぬのだから、せいぜい生きている間に、うまいものを食べて、樂しく暮らさなければ損だという考え方が、大方の人びとの心を支配してしまい、本能のまま、五官の作用にひきずられて一生を終るというのが、大半の人生航路ではないでしょうか。
어차피 인간은 죽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한 살아 있는 동안에, 맛있는 것을 먹고, 즐겁게 보내지 않으면 손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버리며, 본능대로, 오관의 작용에 질질 끌리어 죽는다(일생을 끝낸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인생항로가 아닌 것일까요.
ところが、人間の生命には、宇宙の循環の法則が嚴然として適用されており、この世が終れば、あの世で生活する、あの世で生活が一段落すると、この世に再生してきます。そうした繰り返しを續け、やがて、地球上での使命を終え、他の天體に、生命を運んでゆくものです。これは、本人が自覺するしないにかかわらず、循環の法則は、人間の生命にも適用されているからなのです。
그런데, 인간의 생명에는, 우주의 순환의 법칙이 엄연히 적용되어 있고, 이 생이 끝나면(죽으면), 저 세상에서 생활하며, 저 세상에서 생활이 일단 떨어지면, 이 세상에 재생해 옵니다. 이러한 반복을 계속하고, 이윽고, 지구상에서의 사명을 끝내고, 다른 천체로, 생명을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이 자각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순환의 법칙은, 인간의 생명에도 적용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そうだとすれば、人間は、この事實をはっきりと認め、同じところを堂堂めぐりするよりも、少しでも、自由に、創造的に、のびのびと、生きられる自分を見出すべきでしょう。
그렇다고 하면, 인간은, 이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같은 장소를 당당히 순환하는 것 보다도, 적어도, 자유로이, 창조적으로, 구김살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無自覺、無神論者、あるいは欲望のままに生きた者は、あの世にいくと地獄に墮ちます。ガンで死んだ者は、その苦しみを持ったまま、地獄で苦しみます。人をそしったり、怒ったりした者は、火炎地獄で身を燃かれます。動物靈に支配されたものは、自分が動物のような意識となり、生と死の間を、常にさまよい步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무자각, 무신론다, 혹은 욕망대로 살아온 사람은, 저 세상에 가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총맞아 죽은 사람은, 그 괴로움을 가진채로, 지옥에서 괴로워합니다. 남을 비방하거나, 화를 내거나 한 사람은, 화염지옥에서 몸을 불태웁니다. 동물령에게 지배당한 사람은, 자신이 동물과 같은 의식이 되어, 삶과 죽음의 사이를, 항상 정처없이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됩니다.
※ くるしむ [苦しむ] (육체적·경제적으로) 괴로워하다. 고생하다. 고통을 느끼다.
예문>病やまいに苦しくるしむ 병에 시달리다. 重税じゅうぜいに苦しくるしむ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다.
しかし、天國もあります。空氣は新鮮で、まわりの人たちは理解があって、常に助け合うことを誇りにしていますから、實に、樂しいところです。
그렇지만, 천국도 있습니다. 공기는 신선하며, 주위의 사람들은 이해가 있고, 항상 서로 돕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즐거운 장소입니다.
現世は、地獄と天國が入りまじった世界です。けれどもあの世は、地獄は地獄、天國は天國に分けられています。その區分けは各人の光子量、つまり心のあり方 いかんで決まります。あの世はこの世のようなわけにはいきません。 この世はいわば平地です。 あの世はビルの建物と同じです。 一階、二階、三階、四階となり、一階から二階にゆくには、階段を一步一步のぼらなければ上にはゆけません。一階と二階はコンクリ―トの璧でさえぎられ、呼んでも騷いでも聞こえません。しかし、あの世の場合は、下から上をみることは出來ませんが、上から下をのぞくことは可能なのです。このように、區劃が嚴として決められています。
이 세상(이승)은, 지옥과 천국이 뒤썩인 세계입니다. 그렇지만 저 세상은, 지옥은 지옥, 천국은 천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구분은 각자의 광자량(光子量), 즉 마음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 바람직한 상태)이 여하에 따라 결정됩니다. 저 세상은 이 세상과 같은 구분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말하자면 평지입니다. 저 세상은 빌딩의 건물과 같습니다. 1층, 2층, 3층, 4층이 되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데에는, 단계를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지 않으면 위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1층과 2층은 콘크리트벽으로 차단되어, 소리내어 불러도 시끄럽게 떠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세상의 경우는, 아래에서 위를 볼 수가 없습니다만, 위에서 아래를 들여다보는 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획이 엄격하게 결정되어 있습니다.
このようにして、生命の轉生輪廻は、否應もなく天命づけられているのですから、どうしようもありません。
이렇게 해서, 생명의 전생윤회는, 사유 여하를 불문하고 천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人間の生命は、この地上を調和させ、佛國土、ユ―トピアをつくることが目的ですから、それから離れた行動をとれば離れた分量だけ、自分を苦しめる結果となります。これはなぜかといいますと、人間は神の子、佛の子であり、心も肉體も小宇宙をなしているからです。
인간의 생명은, 이 지상을 조화시켜, 불국토,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떨어진 행동을 취하면 떨어진 분량만큼,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것은 왜인가 하면, 인간은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이며, 마음도 육체도 소우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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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正道こそ正覺、菩薩への道]
[팔정도야말로 정각, 보살로의 길]
そこで各人が、その自覺に立って、五官に左右されない自分自身を確立するにはどうすればよい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が、それには、宇宙の神理である釋迦の正法,八正道を、日日の生活に行じることしかありません。(拙著,『心の原點』『心の指針』『人間ㆍ釋迦』を倂讀して下さい)
그래서 각자가, 그 자각에 서서, 오관에 좌우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확립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만, 그것에는, 우주의 신리인 석가의 정법, 팔정도를, 나날의 생활에 실행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졸저.『마음의 원점』『마음의 지침』『인간ㆍ석가』를 병행해서 읽어 주십시오)
★ 마음의 지침은, 제가 번역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마음의 원점은, 없습니다. 인간석가 4권은, 없습니다. 단, 김해석님이 번역하신 800페이지 분량의 인간석가는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
ウソのつけない己の心に問う、聞く、の生活。つまり正しく、見る、思う、語る、任事をする、生活する、道に精進する、念ずる、冥想する、の八つです。冥想は反省です。一日をふりかえって、己の心に問う、聞くことです。そうして、人をそしった原因は何か、怒った理由はどこにあったか、を反省するのです。すると、自分をかばう心があった、自分のみをいたわる心が强かったということになり、自己保存のむなしさがわかってくるはずです。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의 마음에 묻고, 듣는 생활. 즉 올바르게, 보고, 정서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사무(事務)를 맡고, 생활하고, 도에 정진하고, 염원(기원)하고, 명상하는, 여덟 가지입니다. 하루를 되돌아보고, 자기의 마음에 묻고, 듣는 것입니다. 남을 비방한 원인은 무엇인지, 화를 낸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지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두둔하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만을 돌보는 마음이 강했었다고 하게 되어, 자기보존의 공허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八正道については、いるいろな意見があるよです。
팔정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 모양입니다.
たとえば八正道は小乘佛敎で、自分一個の悟りであって、現代には適用しない。現代は人を敎ってこそ、己も救われる。 すなわち、大乘佛敎こそ、本筋だという論理です。
예를들면 팔정도는 소승불교이며, 자신 일개의 깨달음이며, 현대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현대는 남을 구원함이야말로, 자기도 구원받는다. 즉, 대승불교야말로, 본래의 방식(正道)이라고 하는 논리입니다.
しかし、いったい、小乘とか、大乘は、誰が定めたのでしょう。小乘のはしりは、普賢(フゲン)であり、大乘は龍樹(リュ―ジュ)が考えたようです。時代の流れとともに、佛敎の考え方もかわったものです。ところが、正法そのもの、つまり宇宙の神理は、今も昔もかわりません。法が變わるものであったらおかしい。 それは法ではありません。
하지만, 도대체, 소승이라든지, 대승은, 누가 정한 것일까요. 소승의 시초는, 보현(普賢:후겐)이며, 대승은 용수(龍樹:료우쥬)가 고안한 모양입니다. 시대의 흐름의 진전에, 불교의 사고방식도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법 그 자체, 즉 우주의 신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법이 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우스운 일입니다.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そこで、正法の筋道は、さまほどの人體ではありませんが、まず、己自身を神佛の心に調和させることです。己が調和せずして、どうして、人を調和させることが出來ましょう。まず、これが先決です。 そうして、人びとを救うことです。 これを菩薩行といいます。
그래서, 정법의 조리(道理)는, 조금 전의 인체가 아닙니까, 우선, 자기 자신을 신리의 마음에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자기를 조화시키지 않고서, 어떻게, 남을 조화시킬 수가 있을까요. 우선, 그것이 선결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살행(菩薩行)이라고 합니다.
人間の目的が、この地上界に佛國土、ユ―トピアをつくることにあるのですから、自分さえ悟ればよいというものではありません。 人びとにもその福音を傳える、愛の手をさしのべることであります。
인간의 목적이, 이 지상세계를 불국토,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 깨달으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도 그 복음(福音)을 전하고, 사랑의 손길을 뻗치는 것입니다.
それですから八正道には小乘も大乘もないのです。八正道は自分一個の悟りですが、悟りを開けば、進んで、外に出るべきが本筋であり、だいいち、それが人間の佛性でしょう。小乘、大乘にこだわること自體、佛法は末法と化したとい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佛敎がこのようになったのも、もとはといえば、我こそは佛敎の本山なりとする、關係者の自己保存の現われでなくて、何なのでありましょう。
그러므로 팔정도(八正道)에는 소승도 대승도 없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자신 일개의 깨달음입니다만, 깨달음을 열면, 나아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적절한 도리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이 인간의 불성(佛性)이겠지요. 소승, 대승에 구애되는 것 자체, 불법(佛法)은 말법(末法)으로 변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가 이와 같이 되었던 것도, 원래는, 나야말로는 불교의 본산(本山)이니라라고 하는, 관계자의 자기보존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인 것일까요.
※본산[本山] <일본어사전> ⇒본사(本寺)
1 〈佛〉 일종 일파(一宗一派)의 중심이 되어 말사(末寺)를 통할하는 절. 2 (비유적으로) 사물을 통할하는 중심이 되는 것.
現代社會は昏迷の時代です。科學時代といいながら、人間の心は、宙に浮いています。心不在です。それは、物質文明がつくり出した五官のみの生活であるからです。物質文明の知惠は、五官から生まれ、精神文明の智慧は「心」から生まれるものです。五官のみの生活から、私たちは、心をとり戾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현대사회는 혼미의 시대입니다. 과학시대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마음은, 공중에 떠 있습니다(갈 곳이 없습니다). 마음의 부재입니다. 그것은, 물질문명이 만들어 낸 오관만의 생활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문명의 지혜(知惠)는, 오관에서 탄생하여, 정신문명이 지혜(智慧)는「마음」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오관만의 생활로부터, 우리들은, 마음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神理は、今も昔も活きています。脈脈と波打ち、息づいています。なぜなら、人間それ自身、本來、正法そのものであるからです。
신리는, 예나 지금이나 생존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줄기차게 물결치고, 숨을 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그 자신, 본래, 정법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のグル―プは、人間をして、人間らしく生きる道、そうしてその導標は、ふたたび、人類の頭上に打ち立て
るでく生まれたものです。心不在という末法の世に、神の光を照らす燈臺の役を、實在界から命じられたものです。
우리들의 그룹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道), 그렇게 해서 그 도표(導標)는, 재차, 인류의 두상에 굳건히 세우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마음의 부재라고 하는 말법의 세상에, 신의 빛을 비추어서 밝히는 등대의 역할을, 실재세계에서 명을 받은 것입니다.
※도표[導標] : 항로(航路) 표지(標識)의 하나. 항행(航行)이 곤란(困難)한 수로(水路)나 좁은 만구(灣口) 등(等)의 항로(航路)를 가리키는, 주간(晝間)에 유효(有效)한 표지(標識)
文證とは、心、宇宙の根源、原理そのものであり、それを普遍的な論理で論證することをいいます。理證とは、心によって生ずる宇宙の法則を科學的に證明することをいいます。現證とは、心と法が形の上に現われることであり、從って、文と理の現實的證明ということがいえましょう。
문증이란, 마음, 우주의 근원, 원리 그 자체이며, 그것을 보편적인 논리로 논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증이란, 마음에 의해서 돋아나는 우주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증이란, 마음과 법이 형태상에 나타나는 것이며, 따라서, 문(文)과 이(理)의 현실적 증명이라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この三つの證明のないもの、證明のできないものは、正法とはいえないのです。
이 세가지의 증명의 없는 것,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정법(正法)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
私たちは、この三つの證明をすでに行ってきていますが、さらに、より多くの事實を、眞實を、皆さまの前に、いろいろな方法で明らかにしてゆくことでしょう。
우리들은, 이 세가지의 증명을 이미 행해 오고 있습니다만, 더욱더, 보다 많은 사실을, 진실을, 여러분 앞에, 다양한 방법으로 분명하게 해 갈 것입니다.
ひとりでも多くの方方が、釋迦の正法、イエスの愛、己の心を信ずる眞の信心、そして、その心を心とする、努力と、反省と、瞑想の生活にめざめ、神理を體得されることを望んでやみません。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이, 석가의 정법, 예수의 사랑, 자기의 마음을 믿는 참된 신심(信心), 그리고, 그 마음을 마음으로 하는, 노력과, 반성과, 명상의 생활을 깨닫고, 신리를 체득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Page 236~239
★미륵, 성관세음보살의 지도령으로서,
에서, 이름에 대한 추가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2011년 11월 13일 일요일.
또한, 아래의 내용에는,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天使の再来(천사의 재래)』▶「釈迦、イエス・キリストの正法とは(석가, 예수·그리스도(Jesus Christ)의 정법이란」 ▶《ミロク、聖観(かん)世音(ぜおん)菩薩(ぼさつ)も現存(げんぞん)(미륵(彌勒), 성관세음보살(聖観世音菩薩)도 현존)》에서..
[第五章 用語解說]
[제 5장 용어 해설]
▒用語解說▒
循環 ─── この世の一切のもの(精神も含め)は、グルグルと圓運動を描いています。地球の自轉公轉、これにもどづく晝夜の別、四季の移り變わり、またあらゆる物質も、質量不變の法則にしたがい、循環を續けています。 人の魂も同じように、轉生を輪廻し續けています。 循環のない物質、精神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 このように、循環の法というものを理解すると、人は正しく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が自覺されて來ます。
순환 ─── 이 세상의 일체의 것(정신도 포함)은 빙글빙글 원운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공전, 이것에 바탕을 두고 낮과 밤의 다름, 계절의 바뀌고, 또 온갖 만물도, 질량불변의 법칙에 따른, 순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전생(轉生)을 계속해서 윤회하고 있습니다. 순환의 없는 물질,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순환의 법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면, 사람은 올바르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자각되어 옵니다.
信心 ─── 信心とは己の正しい心を信ずることで、ペ―パ―の神や偶像を崇め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人の心の中には、己を守り、指導してくれている守護·指導靈が存在します。 正しく、率直な心になりますと、守護·指導靈が示唆を與え、過失の少ない人生を送れるようになります。
反對に、 自己保存、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に心が搖れて來ますと、本人に指示を與えるこたが出來ず、さまざまな不幸が本人を襲うことになります。
신심 ─── 신심이란 자기의 올바른 마음을 믿는 것이며, 종이의 신(神)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자기를 지키고, 지도해 주고 있는 지도·수호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솔직한 마음이 되면, 수호·지도령이 시사를 주고, 과실이 적은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자기보존,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에 마음이 흔들려 오면, 본인에게 지시를 줄 수가 없고, 다양한 불행이 본인을 습격하게 됩니다.
信仰 ─── 善なる心にしたがって、正しい生活を送ることを信仰といいいます。 ところが現實は偶像崇拜が人びとの心を占め、 マンダラや、お經を讀訟したり、祈ることが信仰だとみられていますが、大變な間違いです。
신앙─── 선한 마음에 따라서, 올바른 생활을 보내는 것을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우상숭배가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만다라(曼茶羅)나, 경문(불경,경서)를 독송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보여지고 있습니다만, 중대한 잘못입니다.
なぜかといいますと、人の心の中には守護·指導靈がいて、その人を守り、指導しており、そうしてその善なる心を信じた自力の生活が可能であるように人間はつくられているからです。 ものを創造する、廣く自由な心を所有できるのは、人間をおいてほかになく、動物、植物には與えられていません。 天國と地獄をつくり出す者は人間であり、動物植物には、その能力はないのです。
왜냐고 하면, 사람의 마음 속에는 수호·지도령이 있고, 그 사람을 지키고, 지도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선한 마음을 믿는 자력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인가는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만물)을 창조하는, 넓고 자유로운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제외하고 그 이외에는 없고, 동물, 식물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이며, 동물식물에게는, 그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この点を理解すると、信仰の在り方が明らかとなり、他力はその善なる心と創造と自由な機能を放치?することになり、人間失格を意味することがおわかりになると思います。
이 점을 이해하면, 신앙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 바람직한 상태)이 븐명하게 되어, 타력은 그 선한 마음과 창조와 자유로운 능력을 방?하는 것이 되며, 인간 실격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佛〉 만다라.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많은 부처·보살 등을 그린 그림. [曼茶羅]
[佛]曼茶羅まんだら。
五官 ─── 五官とは眼·耳·鼻·舌·身の五つ。 これらの機能が人間にはそなわっていますが、これに心が飜弄されると、自分を失って行きます。 五官を通して、 より廣く豊かな心をつくり出しねゆくのが、この世の私たちの生活行爲です。 五官にまどわされず、五官う超えて行くよう心がけにたいものです。
오관 ─── 오관이란 눈·귀·코·혀·몸의 다섯개. 이들의 기능이 인간에게는 갖추어져 있습니다만, 이것에 마음이 농락당하면, 자신을 잃어 갑니다. 오관을 통해서, 보다 넓고 풍요로운 마음을 만들어 내어 가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우리들의 생활행위입니다. 오관에 현혹되지 않고, 오관을 초월하도록 주의하는 것입니다.
止觀 ─── 文字通り、とどまって見るこのです。 正しい止觀は、正法という八正道を尺度に反省することであり、反省と實踐によって、人ははじめて前進することが出來ます。
지관 ─── 문자그대로, 멈추어서 보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관은, 정법이라고 하는 팔정도를 척도로 반성하는 것이며, 반성과 실천에 의해서, 사람은 비로소 전진할 수가 있습니다.
念力 ─── 念はエネルギ―です。 大宇宙は神の意によって創造され、地上の必要物(衣食住など)は、人間の念によってつくれました。 思う、考える、念ずることがなければ、これらのモノを作り出す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 念は單なるエネルギ―ですから、善にも惡にも通用し、循環の法が働いています。 このため、善(博愛)には善が、惡(我欲)には惡がハネ返えって來ます。 念は正しく使ってこそ生きてくるものです。
염력 ─── 생각은 에너지입니다. 대우주는 신의 뜻에 의해서 창조되어, 지상의 필요물(의식주 등)은, 인간의 생각에 의해서 만들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지적으로 생각하는, 염원하는 것이 없으면, 이러한 물질(만물)을 생산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생각은 단순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선에도 악에도 통용하고, 순환의 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박애)에는 선이, 악(아욕)에는 악이 부딪혀서 되돌아옵니다. 생각은 올바르게 사용해야 효력이 살아나오는 것입니다.
彼岸 ─── 悟りの境涯をいいます。 最終の彼岸は釋迦が到達した宇宙卽我です。
피안 ─── 깨달음의 경애(사람의 처지나 환경)을 말합니다. 최종의 피안은 석가가 도달한 우주즉아입니다.
※경애[경애] : 자기(自己) 자신(自身)이 처하여 있는 환경(環境)과 생애(生涯) <한자사전>
※경애[경애} : 사람의 처지나 환경.<일본어사전>
潛在意識 ───人の意識は表面意識と、潛在意識に分かれており、通常は表面意識の10%程度しか働いていません。 90%以上は潛在意識として潛在され、このため、 ものを理解する度合が遲くなります。 潛在意識を開發したことを〃心の窓がひらく〃といい、〃意識の同通〃〃靈道〃 ともいっています。 詳しくは本書姉妹篇の『心の指針』『心の原點』を倂讀して下さい。
잠재의식─── 사람의 의식은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으로 나누어져 있고, 통상은 표면의식의 10% 정도밖에 작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90% 이상은 잠재의식으로서 잠재되어, 이 때문에, 사물을 이해하는 정도가 더디게 됩니다. 잠재의식을 개발한 것을 〃마음의 창이 열린다〃 라고 말하며, 의〃식의 서로 통하는 것〃 〃영도〃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상세히는 본서 자매편의 『마음의 지침』 『마음의 원점』을 병행해서 읽어 주십시요.
煩惱 ─── 煩惱とは執着の想いをいいます。 執着が强くなると周圍に目に入らず、正しい判斷ができなくなります。 心が狹くなり、健康、任事、交友、環境などの關係が行き詰まり、窮地に陷ります。 煩惱は五官へのこだわりによってつくられますので、五官本位の考えを改め、常に反省と正道の生活を送ることです。
번뇌 ─── 번뇌란 집착의 생각을 말합니다. 집착이 강하게 되면 주위가 눈에 띄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이 좁게 되어, 건강, 사무를 맡음, 교우, 환경 등의 관계가 막다른 곳, 궁지에 빠집니다. 번뇌는 오관에의 구애([拘礙] 거리끼거나 얽매임)에 의해서 만들게 되는 것이며, 오관육체의 생각을 고쳐, 항상 반성과 정도(正道)의 생활을 보내는 것입니다.
因果應報 ─── これは宇宙の原理です。 すべてのものは循環するので、善惡の因緣因果は常について回ります。 では救いとか、自由というものはどうなるのか、因果の循環の中では起こりようがないと思われますが、事實その通りなのです。 そこで解脫とか、自由というものは、かつてつくり出した因果の循環から離れることをいいます。 そして進んで、善因善果をつくるべく心掛ることです。
인과응보 ─── 이것은 우주의 원리입니다. 모든 물질(만물)은 순환하는 것이며, 선악의 인연인과는 항상 따라다닙니다. 그럼 구원이라든지, 자유라고 하는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인과의 순환 속에서는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그대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해탈이든가, 자유라고 하는 것은, 일찍이 만들어 낸 인과의 순환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선인선과를 만들어야함을 주의하는 것입니다.
解脫とは、煩惱による執着の想いから離れ、中道による正しい生活をすることです。 とらわれのない自由な心に歸ると、かつてつくった因緣の業(カルマ)によって、假に病氣になったとしても、その苦痛はずっと少なく、苦痛の中に心まで埋沒することはないのです。 人間の救いとは、因緣から心を離すことなのです。
해탈이란, 번뇌에 의한 집착의 생각에서 떨어져, 중도에 의거한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돌아가면(마음으로 돌아오면), 일찍이 만든 인연의 업(카르마)에 의해, 가령 병에 걸렸다고 해도, 그 고통은 훨씬 적고, 고통 중에 마음까지 매몰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이란, 인연으로부터 마음을 떼어 놓은 일인 것입니다.
惡───惡とは自己保存をいいます。 人はどうでも自分さえよければよいという想いが、自己保存をつくり出します。 善はこの反對で、自己保存の我欲から離れ、人びとの和合の生活をめざすものです。 自己保存が强くなると、怒り、ぐち、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そねみ、自己滿足、自己嫌惡、怠惰、うらみ、ねたみといった表面的な感情想念に支配され、家庭や社會の混亂の原因になって來ます。
악 ─── 악이란 자기보존을 말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만 좋으면 괜찮다라고 하는 생각이, 자기보존을 만들어 냅니다. 선은 이와 반대로, 자기보존의 아욕에서 떨어져, 사람들의 화합의 생활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자기보존이 강하게 되면, 분노(노여움), 우치( 어리석고 못남, 푸념),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시기, 자기만족, 자기혐오, 태타(나태,게으름), 원망(원한), 질투심라고 하는 표면적인 감정상념에 지배되어, 가정이나 사회의 혼란의 원인이 되어 옵니다.
動物靈─── あの世にいる動物たちの靈のことです。 主にヘビ、キシネなどが人間社會に割り込み、さまざまな惡現象をおこします。
동물령───저 세상에 있는 동물들의 혼령 그것입니다. 주로 뱀, 여우 등이 인간사회에 끼어 들어, 다양한 나쁜 현상을 일으킵니다.
憑依 ─── 人の心が惡に支配され、動物のように、本能、憾情のみに支配されてくると、こうした動物靈が近づき、人の意識を占領し、二重、三重人格をつくっていきます。 また、地獄に墮ちた地獄靈も憑依します。.怒りっぼい、ぐちっぼい、衝突的な性格者、自閉症、ノイロ―ゼなど、分裂氣味の人は大抵、憑依されています。 憑依から拔け出すには、心が平靜なときにその苦しみの原因を取り除く努力が必要です。 執着にかたまった心をぼすすには、肉體的な運動も效果があります。
빙의 ─── 사람의 마음이 악에 지배되어, 동물처럼, 본능, 감정만으로 지배되어 오면, 이러한 동물령이 다가와서, 사람의 의식을 점령하고, 이중, 삼중 인격을 만들어 갑니다. 또, 지옥에 떨어진 지옥령도 빙의합니다. 화를 잘 내는 성미(걸핏하면 성내는), 푸념이 많은(게정거리는), 충동적인 성격자, 자폐증, 노이로제(신경쇠약증) 등, 분열기미의 사람은 대부분, 빙의되어 있습니다. 빙의에서 빠져 나오는 데에는, 마음이 평정한 때에 그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착으로 굳어진 마음을 푸는 데에는, 육체적인 운동도 효과가 있습니다.
實在界 ─── あの世のこと。 この世は現象界といいます。 現象界は映畵のスクリ―ンであり、映寫機は實在界あの世にあるわけです。 現象界は無常であり、新陳代謝をくりかえす不安定な場ですが、實在界は心の世界であるため、必要と想う物は、千年、二千年經っても消えてなくなりませんし、年も とりません。 こういうわけでは實在界というのです。
실재계 ─── 저 세상의 바로 그것. 이 세상은 현상계라고 말합니다. 현상계는 영화의 스크린(영사막)이며, 영사기는 실재계 저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현상계는 무상하며, 신진대사를 되풀이하는 불안정한 장소입니다만, 실재계는 마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천년, 2천년이 경과해도 사라져 없어지지 않고,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실재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靈道─── 一般的には靈能、ありいは靈道と呼んでいるよです。
靈道とは文字通り靈の道がひらくことで、藝術家などの中に、割合多くみられ、天才などは靈道をひらいている人がほとんどです。 靈道がひらくと透視力とか幽體離脫、人の心を見拔く、物品引き寄せ、物質化現象など、超自然現象が人に應して可能になります。 これらは、その人が行うというより、その人の背後で手助けている靈がおり、その靈が、その人の目的意識に合わせて行うわけです。 その人が全然それを望まないのに、そうした、超自然現象が起きることもありますが、そういうことは少ないものです。
영도─── 일반적으로는 영능, 혹은 영도라고 부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영도란 문자그대로 영의 길이 열리는 것이며, 예술가 등의 중에, 비율을 많이 볼 수 있고, 천재 등은 영도를 열리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영도가 열리면 투시력이든지 유체이탈,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림, 물품을 끌어당김, 물질화 현상 등, 초자연 현상이 사람에게 응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그 사람이 행한다고 하는 것 보다, 그 사람의 배후에서 협조하고 있는 혼령[영혼]이 있고, 그 영혼이, 그 사람의 목적의식에 협력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전연 그것을 바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초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일은 적은 것입니다.
なぜかというと、あの世の靈は靈道者の心に合わせて行うからでです。 ただし、靈道者が、假に、萬年筆の物質化現象を望んだのにボ―ルペンに變化することはあります。 また目的に對して時間的なズレがあったり、希望はしないが、恐怖心や、心のさまざまな動きが現象化することもあります。 靈道は過去世でその道に隨行した人が大部分ですが、修行しない人が靈道をひらくと、分裂症に陷り、變人になったりします。 やたらと瀧に打たれたりして、靈道を求めることは、こういう意味で、非常に危險です。
왜인가 하면, 저 세상의 영혼은 영도자의 마음에 협력하여 행하기 때문입니다. 영도자가, 가령, 만년필의 물질화 현상을 바랜는데 볼펜으로 변하는 일도 있습니다. 또한 목적에 대해서 시간적인 차이가 있거나, 희망은 하지 않지만, 공포심이나, 마음의 다양한 움직임이 현상화하는 일도 있습니다. 영도는 과거세에서 그 길에 수행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만,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 영도를 열면, 분열증에 빠지고, 성질이나 모습이 여느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거나 합니다. 함부로 폭포를 맞아가며, 영도을 구하는 일은, 이러한 의미로 상당히 위험합니다.
先祖─── 先祖には肉體先祖と魂の先祖があり、普通は肉體先祖を指していますが、本堂はこれは間違いです。 魂の先祖こそ、その人の過去世であり、先祖に劣らぬ自分をつくることが、この世に出生した目的です。 大抵、過去世の自分はわかりませんが、現在の自分は、過去世からの集約された自分ですから、現在の長所を伸ばし短所を長所にかえる努力が大事です。そして、博愛の行爲をなすことが肉體先祖への大きな供養のなります。
선조 ─── 선조에는 육체선조와 영혼의 선조가 있고, 보통은 육체선조를 가리키고 있습니답만, 사실은 이것은 잘못입니다. 영혼의 선조야말로, 그 사람의 과거세이며, 선조에게 뒤떨어지 않는 자신을 만드는 일이, 이 세상에 출생한 목적입니다. 대체로, 과거세의 자신은 알 수 없습니다만, 현재의 자신은, 과거세로부터의 집약된 자신이기 때문에, 현재의 장점을 늘리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노력이 중대사입니다. 그리고, 박애의 행위를 달성하는 것이 육체선조에게로의 큰 공양이 됩니다.
意識の同通 ─── 意識が通じ合うことをいいます。 たとえば、怒りの想念に支配された人は、あの世の怒りに燃える世界に通じ、修羅の人は修羅界に、動物的本能に飜弄された人は畜生界に通じます。 人の心は一念三千であり、思うこところに針が動くので、惡の想念を抱かねようにしたいものです.。
의식의 동통 ─── 의식이 상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분노의 상념[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가지 생각]에 지배된 사람은, 저 세상의 분노에 불타는 세계로 통하고, 아수라의 사람은 수라계로, 동물적 본능에 농락당한 사람은 축생계로 통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일념삼천이며, 정서적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바늘이 움직이는 것이며, 악의 상념을 품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行 ─── 行というと、特別の修行とか修養を連想しますが、本來は,生活行爲そのものを行というのです。 行とは、行爲です。 その行爲が正道に適うことが人間の在り方です。
수행───수행이라고 하면, 특별한 수행이라든지, 수양을 연상합니다만, 본래는, 생활행위 그 자체를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행위입니다. 그 행위가 정도에 들어맞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바람직한 상태)입니다.
六根 ─── 五官(眼耳鼻舌身)にふりまわされた心をいいます。 つまり、五官でものを感じ、思う、考える各人の意です。 この意が五官中心に動いてくると、ものの眞實が不明になってくるのです。 煩惱とは、五官を通じておころさまざまな執着であり、執着のままで每日をすごすと心が狹くなり、ものの是非判斷がつかなくなって、爭い原因になっ て來ます。
육근─── 오관(눈귀코혀몸)에 휘둘림을 당한 마음을 말합니다. 오관으로 사물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생각하고, 지적으로 생각하는 각자의 의사입니다. 이 의사가 오관중심으로 움직여 오면, 사물의 진실이 확실하지 않게 되어 오는 것입니다. 번뇌란, 오관을 통해서 일어나는 다양한 집착이며, 매일을 보낸다면 마음이 좁아지며, 사물의 시비를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다툼이 원인이 되어 옵니다.
五官は肉體ですから、各人の意は心の領域なので、この區別ははっきりする必要があります。 人間は心と肉體から出來ており、心は、光子體という、肉體細胞とは別の組織からできています。 光子體で死後の生活をしますので、五官(肉體)にとらわれた光子體は、あの世でどうなるでしょうか。 あの世はこの世とちがっており、思うことがすぐ現われてくる世界ですから、肉體への執着からくる我欲に支配されてきますと、我欲の世界に墮ち、自分中心の爭い世界で苦しむことになります。 ですから、常に五官にほんろうされた心にならないように、つまり六根という煩惱をつくらないようにしたいものです。
오관은 육체이기 때문에, 각자의 의사는 마음의 영역인 것이며, 이 구별은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과 육체로 되어 있고, 마음은, 광자체라고 하는, 육체세포와는 다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광자체로 사후의 생활을 하는 것이며, 오관(육체)에 얽매인 광자체는, 저 세상에서 어떻게 될 것일까. 저 세상은 이 세상과 차이가 있고, 생각하는 것이 곧 모습으로 나타나오는 세계이기 때문에, 육체로의 집착에서 오는 아욕에 지배되어 오면, 아욕의 세계로 떨어져, 자기 중심의 다툼의 세계에서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오관에 농락당한 마음이 되지 않도록, 즉 오관이라고 하는 번뇌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page 241~249
※여기까지가 심안을 열다, 즉 『마음의 눈을 뜨다 』 의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出處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心眼を開く』《第五章 用語解說》」「用語解說」[循環] [信心] [信仰] [五官] [止觀] [念力] [彼岸] [潛在意識] [煩惱] [因果應報] [惡] [動物靈] [憑依] [實在界] [靈道] [先祖] [意識の同通] [行] [六根]
※다음편은,
『마음의 지침』 고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이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미 기존에, 다른 분이 번역한 일본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 글을 소개했습니다.
좀 더 상세하게, 내용을 보기 위해, 현재 제가 지인에게서 잠시 빌린,
마음의 지침, 일본어 원문으로 된, 책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와 한자,일본식 한자를 여기 소개한,
심안을 열다와 같이, 일일이 직접 일본어 및 한자를 만들어, 제가 직접 여태까지 한 것처럼, 풀어서 올릴까 합니다.
즉, 2009년 10월부터 현재 2010년 11월 말까지..다카하시 신지님의 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소, 번역이 미흡하지만, 찾아주시어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感謝)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지금 소개한, 이 책은,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책입니다. 그 이전에 올린, 천사의 재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외...다수 한국에 출간하지 않은, 책들을 여럿 소개했습니다.
이상과 같이,
2015년 11월 09일 오전 08시 10분. 청주시 안덕벌에서
소단위로 올려 놓았던 것을, 한권으로 묶는 과정에서,
잘못된 번역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정정(訂正)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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