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마음의 지침『心の指針』 고락의 원점은 마음에 있다「苦樂の原点は心にある」1973년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마음의 지침『心の指針』 고락의 원점은 마음에 있다「苦樂の原点は心にある」1973년

어둠의골짜기 2016. 5. 23. 03:38



心の指針 마음의 지침

 

苦樂の原点は心にある 고락의 원점은 마음에 있다




 

책 표지 출처 : 

https://www.sampoh.co.jp/books/sishin_new/



苦樂の原因はどこにあるのでしょう······。

고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それは、あなたの〃心〃にある。

그것은, 당신의 〃마음〃에 있다.
〃心〃が現象に振り回されるから、

〃마음〃이 현상에 휘둘림 당하기 때문에,
怒りや憎しみ、

분노나 증오,
哀樂の感情に支配されてしまうのだ。

애락의 감정에 지배되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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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중증 빙의로 인해, 제 병을 고칠 방법을 찾던 당시에, 병중에서 번역하다 보니, 오타 및 누락 부분이 조금 있었음을, 오늘 2016년 5월 4일에 알게 되었습니다.  

날짜별로 나뉘어져 있던 것을, 한데 묶는 과정에서, 오타를 수정하면서, 한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2010년 12월 01일부터, 2011년 1월 22일까지 올렸던 내용이며,  

스크랩 및 복사를 해 가셨던 분들은, 참고해 주기를 바라며, 또한 미안합니다.★★


본 내용은, 제가 직접 책을 보고, 한자를 문서로 만들고, 다시 한자에 일본어를 직접 적어서, 한국식 한자 표기를 한 것입니다. 현재(2016년 5월)는, 빙의에서 해방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빙의가 발견된 것은, 2005년 9월부터 시작해서, 2012년 11월에 자유롭게 된 사람입니다. 

저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분은, 『일기형식』2008년도 일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본 『가르침의 글』은, 제 병을 고치기 위해서, 빙의(憑依)를 고치기 위해서, 방법을 찾기 위해서,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저는 일본어 전문가 아니며, 고등학교 상업과, 특활시간, 일주일에 한 번, 2년간 배운 경험으로, 번역한 것이며,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고통 속에서 번역했던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오타 및 오역, 번역상의 실수가 생길 것을 또한 우려해서, 일본어 원문을, 반드시 올린 것입니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시는 분들이나, 일본 현지인들이 읽었을 때, 정확하게 읽게 하기 위함도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현재 일본에서, 이 책을, 다카하시 신지님의 책을, 출판하고 계시는 삼보출판사 사장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허락 없이, 제 블로그에 상당량의 강연집 및 책들을, 번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덧붙여, 이 분, 책의 저자이신, 신지(信次)님께서 깨달은 그 해 그 달(1968년 11월)에 제가 태어 났습니다. 









はしがき 머리말

 


現代の佛敎、キリスト敎の神理は、ながい歷史的な過程のなかに埋沒してしまったといっでもいいすぎ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時の勸力や、宗敎家たちの知と意によって解釋され、學問、哲學と化し、人びとの心から遊離してしまったからです。本來、佛敎もキリスト敎も、人びとの心から遊離するようなそんなむずか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敎えそのものは、人間の心とは、人間とはこうしたものなのだということを、誰にもわかりやすく說いているものにほかならないからです。知情意の情とはどういうものかといいますと、情とは心です。心があってはじめて、知は智慧となり、意は大我となるのです。その情が不在となり、佛敎もキリスト敎も智と意で勝手に解釋され、自分の都合のいいように書き改められたものですから、いよいよもって、民衆の心から離れていったわけです。
현대의 불교, 그리스도교의 신리(神理)는, 오랜 역사적인 과정 속에 매몰해 버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의 권력이나, 종교가들의 지혜(지식)과 의사에 의해 해석되어, 학문, 철학으로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유리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본래,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사람들의 마음에서 유리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르침 그 자체는, 인간의 마음이란, 인간이란 다름 아닌 이러한 것인 것이라고 하는 것을, 누구든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정의(知情意)의 정(情)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면, 정(情)이란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고서야 비로소, 지(知)는 지혜(智慧)가 되고, 의(意)는 대아(大我)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정(情)이 부재가 되어,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지(智)와 의(意思)로 마음대로 해석되어, 자신의 형편이 좋도록 고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민중의 마음에서 떠나 간 이유입니다.


 

もっとも、それにはそれだけの理由があります。人間は、五官や、六根に左右されるように一面においてできているからです。うまいものを食でたい。いい家に住みたい。偉くなりたい。金を儲けたい、といった自己保存の念が社會生活を營むことによってますます强くなっていったからです。戰爭と破壞――――その原因をだずねれば、みんなこうした欲望にふりまわされたところにあります。そころが、こうした欲望や本能というものは、人間の生活がこの世だけと自ら限定してしまうところに根本的な理由があったといえましょう。手にふれるもの、眼に見えるもの、耳で聽くものなど感覺の世界にしか人間は、これを認識すろことができないために、人は現世に執着を持って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그것만큼의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오관이나, 육근에 좌우되도록 어떤 관점에 있어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위대하게 되고 싶다. 위대해지고 싶다. 돈을 저축하고 싶다, 라고 한 자기보존의 생각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의해서 더욱더 강하게 되어 갔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파괴―― 그 원인을 물으면, 모두 이러한 욕망에 휘둘림을 당한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이나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 이 세상뿐이라고 스스로 한정해 버리는 데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에 접하는 것,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등 감각의 세계에 밖에 인간은, 이것을 인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현세에 집착을 갖게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しかし、人間は死んでも來世に生きつづげけいることを知れば、人びとの人生觀はかわるはずです。すなわち、あの世は嚴然としてあるのであり、あの世こそ本堂の人間の住む世界であり、この世は人間修行の場であり、そうして人間はあの世とこの世の轉生輪廻をくりかえすことによって、魂の淨化、佛性である己の本性に目覺めるものなのです。苦しみ悲しみの原因は、神性佛性の己の自身の「心」から離れた想念行爲の結果であり、その苦しみから解放されるには己の心を直視し、心そのものの實體を認識する必要があります。
그렇지만, 인간은 죽을지라도 다음 세상에 삶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의 인생관은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저 세상은 엄연히 있는 것이며, 저 세상이야말로 정말로 인간의 주거하는 세계이며, 이 세상은 인간수행의 장소이며, 그렇게 해서 인간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전생윤회를 되풀이하는 것에 의해서, 영혼의 정화, 불성(佛性)의 자기의 본성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괴로움 슬픔의 원인은, 신성불성(神性佛性)의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떨어진 상념행위의 결과이며, 그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데에는 자기의 마음을 직시하고,「마음」그 자체의 실체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本書は、そうした意味で「心」とは何か、「正法」とはどういうものか、「人間」とはいかなる存在かを槪念的ではありますが、そのポイントをしぼって書いたものです。本書を手にされた讀者は、本書の眞意をつかみ、調和のとれた生活と、平和な社會を築くための心の糧とされんことを願いってやみません。
본서는, 이러한 의미에서「마음」이란 무엇인가, 「정법」이란 어떠한 것인가,「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를 개념적입니다만, 그 point(요점,핵심)를 짜내어 기록한 것입니다. 본서를 입수한 독자는, 본서의 진의를 파악하고, 조화가 유지된 생활과,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마음의 양식으로 삼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昭和四八年十一月吉日


1973년 11월 좋은 날


 

高橋信次(たか はし しんじ) 다카하시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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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말은, 책 표제 안쪽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소개합니다.



人生を有意義に 인생을 뜻 있게

 
人の一生は短かいようで永い。永いようで短かいものだ。その人生を有意義に生きるには、与えられた現在の職業を最大限に活かす以外にない。本書は私のこうした考え方を裏付けられ、魂の永遠性と人生の意義を、もっとも平易にしかも率直に述べている。

사람의 일생은 짧은 것 같지만 길다. 긴 것 같지만 짧은 것이다.  그 인생을 뜻있게 살아가는 데에는, 주어진 현재의 직업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이외에는 없다.  본서는 저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뒷받침해주며, 영혼의 영원성과 인생의 의의를, 가장 평이하게 게다가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ややもすると人は人生に懐疑的となり、 心を失い、かくれた自分の能力を十分に発揮することなく終る人の多いのにおどろく。本書を読まれ、人生の在り方をもう一度見直して欲しい。
자칫하면 사람은 인생에 회의적이 되며, 마음을 잃는다.  숨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고 끝내는 사람의 많은 것에 놀란다.  본서를 읽고, 인생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를 다시 한 번 재검토해 주셨으먼 합니다. 



――岩井半四郎氏(歌舞伎俳優) 이와이 한시로우씨(카부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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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목차

 


はしがき 머리말



第一章 間違った信仰  
제 1장 잘못된 신앙


 

心と大自然(마음과 대자연)·········9
ある地獄界への旅(어느 지옥계로의 여행)·········20
後光(オ―ラ)と憑依(후광(오로라)과 빙의)·········39
間違った信仰(その一)(잘못된 신앙 사례 1)·········49
間違った信仰(その二)(잘못된 신앙 사례 2)·········58
間違った信仰(その三)(잘못된 신앙 사례 3)·········70
親と子の愛(부모와 자식의 사랑)·········83

 



第二章 八正道と中道 
제 2장 팔정도와 중도

 

八正道――――その意味と解釋(팔정도―――― 그 의미와 해석)·········91
八正道こそ中道の道(팔정도야말로 중도의 길)·········91
正見(正しく見ること)(정견, 올바르게 보는 것)·········96
正思(正しく思うこと)(정사,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99
正語(正しく語ること)(정어, 올바르게 말하는 것)·········102
正業(正しく仕事をすること)(정업,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 ·········104
正命(正しく生活すること)(정명, 올바르게 생활을 하는 것)·········107
正進(正しく道に精進すること)(정진, 올바르게 도에 정진하는 것)·······109··
正念(正しく念ずること)(정념, 올바르게 염원하는 것)·········112
正定(正しく定に入ること)(정정, 올바르게 선정에 들어가는 것)·········114
八正道は行ずろこと(팔정도는 실행하는 것)·········116

 



第三章 人間の精神構造とその機能 
제 3장 인간의 정신구조와 그 기능

 

心の實相(마음의 실상)·········121
旣成觀念を白紙に(기성관념을 백지로)·········121
精神(정신)·········122
90%の潛在意識(90%의 잠재의식)·········125
想念帶(상념대)·········128
10%の表面意識(10%의 표면의식)·········132
自己保存, 黑い想念(자기보존, 검은 상념)·········134
現象界に肉體を持っている上上段界·光の天使(현상계에 육체을 가지고 있는 상상단계·빛의 천사)·········136

 



第四章 神理問答集
제 4장 신리문답집

 

病氣(질병)·········151
十字架(십자가)·········153
死者の靈(죽은 사람의 영혼)·········156
他力本願(타력본원)·········158
本能と欲望(본능과 욕망)·········161
信仰の貧しさ(신앙의 빈곤)·········163
煩惱卽菩提(번뇌즉보리)·········166
死について(죽음에 대하여)·········168
念と執着(생각과 집착)·········171
精神活動(정신활동)·········174
運命と自由(운명과 자유)·········177
業()·········180
易、占い(역, 점)·········183
自殺(자살)·········186
生命の仕組み(생명의 짜임)·········188
他力と自力(타력과 자력)·········191
騙す(속이다)·········193
ウソと方便(거짓말과 방편)·········196

念力と祈り(염력과 기도)·········199
自由とは(자유란)·········201

 




第五章 祈りの意義と祈願文
제 5장 기도의 의의와 기원문

 

天と地のかけ橋(하늘과 땅의 가교《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잔교)·········207
祈願文(기원문)·········210
祈りは行爲(기도는 행위)·········212
諸天善神の加護(제천선신의 가호)·········218
守護·指導靈の祈り(수호·지도령의 기도)·········220
自然への感謝(자연에 대한 감사)·········221
先祖に對する感謝(선조에 대한 감사)·········223
神佛との對話(신불과의 대화)·········224








第一章 間違った信仰  


제 1장 잘못된 신앙



心とは太陽のように、貧しい人にも富める人にも、わけへだてのない公平無私の意識である。
エネルギ―である。ウソいえないの心こそあなた自身である。
마음이란 태양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유한 사람에게도, 차별을 하지 않는 공평무사의 의식이다. 
에너지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당신 자신이다.

 

 




心と大自然
마음과 대자연



裏山の斜面の殘雪も消え、黑土の表面に、フキノトウが顔を出していた。春の匂いがおとかにただよっています。
뒷산의 사면의 잔설도 사라지고, 검은 흙의 표면에 이른 봄에 머위의 뿌리 줄기로부터 나온 어린 꽃줄기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봄의 내음이 조용하고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습니다.

 


昨年の秋、友人からいただいた大きな庭石を入れたとき、堀りかえされたはずのフキの根がまだ殘っていたようてした。傘をいろげたようなフキの葉が、今年も庭の片隅を飾ってくれるかと思うと、その生命力の强さに私はおどろきました。
작년 가을, 친구에게서 받은 큰 정원석을 들여놓았을 때, 해자를 판 연못의 머위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산을 편듯한 머위의 잎이, 올해에도 정원의 한쪽 구석을 장식해 줄까 하고 생각하면, 그 생명력의 강함에 저는 놀랐습니다.


 

數日前まで、霜柱の立っていた庭です。その冷えた土の中で今までじっと辛棒し、耐えて來たのです。不平もいわず、默默と、時の來るのを持ちつづげてきたのです。
수일 전까지, 서릿발이 서 있던 정원입니다.  그 차가운 땅 속에서 지금까지 꾹 참고, 견디어 온 것입니다.  불평도 말하지 않고, 묵묵히, 좋을 때가 올 것을 계속해서 기다려 온 것입니다.

 


私は、まだぬくもりも淺い黑土のなかから、春の陽ざしを求めてゆらめいているフキノトウに心をひかれました。
저는, 아직 온기가 부족한 검은 흙 속에서, 봄의 햇살을 찾아서 흔들거리고 있는 머위의 어린 꽃줄기에 마음이 끌리었습니다.

 


あと一週間もすれば、小さなつはみも綠の葉をひろげるでありましょう。
앞으로 일주일 정도면, 작은 꽃봉오리도 초록의 잎을 넓히고 있을 것입니다.

 


庭石に腰をおろし、大自然の攝理と人生について思索をめぐらしてゆくと、この兩者の間には垣根はなく、自然は人間の生き方を身をもって敎しえていると思われてきます。
정원석 위에 앉아서, 대자연의 섭리와 인생에 대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두루 생각해 보아 가면, 이 양자의 사이에는 울타리는 없고, 자연은 인간의 삶의 방식을 몸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되어 옵니다.

 


一九六八年三月、私は、人間とはいったい何者なのか、そして人間はいったい、何のために生まれ、なぜ仕事をし、苦しみを背負い、老いて死んてゆくのであろうか、という問題について、樣樣な角度から追究していたころのことを思い出していました。
1968년 3월, 저는,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인간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태어나, 왜 일을 하고, 괴로움을 등에 짊어지고, 늙어서 죽어 가는 것일까, 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추구해 갈 무렵의 일을 상기하고 있었습니다. 

 


ふと斜の右に目を向けると、黑土が妙に盛り上がりながら、芝生のある方向に進んで行きます。もぐらの移動でした。都會ではみられぬどかな風景です。
문득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검은 흙이 묘하게 부풀어오르면서, 잔디밭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 갑니다. 두더지의 이동이었습니다.  도회지에서는 볼 수 없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풍경입니다.

 


空にはひばりが鳴き、雀がさえずっています。
하늘에는 종달새가 울고, 참새가 지저귀고 있습니다.

 


澄んだ空氣と、綠と、赤い太陽の下に自分を置くと、いかにも大自然に包まれ、生かされている己を發見し、喧噪の都會では味わえぬ感覺を覺えます。
맑은 공기와, 초록과, 붉은 태양 아래에 자신을 두면, 정말로 대자연에 감싸여, 되살려지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시끄러운 도회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감각을 깨닫습니다.


 

自然のこうした美しい環境というものは、太陽の熱光のエネルギ―によって育まれる。太陽の偉大さに、いまさらながら脫帽せざるを得ません。
자연의 이러한 아름다운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에 의해서 소중히 길러집니다. 태양의 위대함에, 새삼스러운 말 같지만 모자를 벗지 않을 수 없습니다.

 


私たちの肉體舟は、その環境に適應して保存されるようにつくられています。
우리들의 육체배는, 그 환경에 적응해서 보존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寒い冬は、その寒さに耐えられるように、皮膚はちぢみ、體內溫度をントロ―ルし、反對に暑くなれば、皮膚は膨張し、毛穴から汗を出し、放熱作用をつづけています。
추운 겨울은, 그 추위에 견뎌낼 수 있도록, 피부는 오그라들고, 체내 온도를 control(관리,통제)하고, 반대로 덥게 되면, 피부는 팽창하고, 털구멍에서 땀을 내어, 방열작용을 계속해 갑니다.


 

內臟諸器官は常に活動を續け、人體という安定された小宇宙を維持しています。
내장 모든 기관은 항상 활동을 계속하고, 인체라고 하는 안정된 소우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肉體の諸機能を靜かにふりかえりながら、ながめてみると、そこには、〃神秘〃という以外、いいようのない偉大な働きを想像することができます。
육체의 모든 기능을 조용히 뒤돌아보면서, 눈여겨보면, 거기에는, 〃신비〃라고 하는 이외,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작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すなわち、大自然の環境をつくり出している目に見えない力、全能のエネルギ―こそ、神の心の現われでなくて何といえるでしょうか。
즉, 대자연의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힘, 전능의 에너지야말로, 신의 마음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そうして、その心の現われこそ、慈悲であり、愛の姿といえでしょう。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의 표현이야말로, 자비이며, 사랑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ところで、その心について私たちは、これをどこまで理解しているでしょう。おそらく、心とはこうだと、はっきり答えられる人は少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그런데, 그 마음에 대해서 우리들은, 이것을 어디까지나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쩌면, 마음이란 이렇다라고, 확실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것은 아닐까요.

 


あの人は精神狀態が惡いとか、心の廣い人だと簡單にいうけれども、では精神とは、心は、となると說明に窮します。
저 사람은 정신상태가 나쁘다든가, 마음의 넓은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말을 하지만, 그럼 정신이란, 마음은, 그렇게 되면 설명이 막힙니다.

 


萬物が生命と同居している事實は誰も否定出來ません。
만물이 생명과 동거하고 있는 사실은 어떤 사람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物理學では、物質がエネルギ―と同居している事實を證明し、エネルギ―とは仕事を爲し得る能力であるとしています。
물리학에서는, 물질이 에너지와 동거하고 있는 사실을 증명하고, 에너지란 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란 을 할 수 있는 능력" 에서의 오타인, "임"을 ""로 수정합니다. 


 


そうしてその結果、物質はエネルギ―であり、エネルギ―は物質であるとさえいうことが出來るのです。
그렇게 해서 그 결과, 물질은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물질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目に見られるちがいは、物質という集中された次元と、擴散されたエネルギ―の次元の差だけであり、しかも兩者は常に倂存しているということがいえましょう。
눈으로 볼 수 있는 차이(相異)는, 물질이라고 하는 집중된 차원과, 확산된 에너지의 차원의 차이뿐이며, 게다가 양자는 항상 병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また、物質は不變であり、エネルギ―は不滅であるという事實も實證されています。
또, 물질은 불변이며, 에너지는 불멸이라고 하는 사실도 실증되어 있습니다.

 


たとえば、密閉したコップの中にマッチ棒を入れて燃燒させても、全體の重さは變りませんし、マッチ棒はコップ

內の酸素によって燃え、炭素や炭酸ガスに變化しても、全體の重さの變化はおき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
예를 들면, 밀폐된 컵 속에 성냥개비를 넣고 연소시켜도, 전체의 중량은 변하지 않고, 성냥개비는 컵 안의 산소에 의해서 불타고, 탄소나 탄산가스로 변화해도, 전체의 중량은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の肉體も大自然の中で存在している以上、大自然の法則を無視することは出來ないでしょう。
우리들의 육체도 대자연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상, 대자연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生老病死という掟を誰も破ることが出來ない事實を知れば、自明の理といえます。
생로병사라고 하는 규정을 어떤 사람도 파괴할 수가 없는 사실을 알면, 자명(명백)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形あるものはいつの日か崩れ去る。しかし肉體も他の物質と同じように、次元の異なった何者かと同居してい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모양(형태)가 있는 것은 언젠가 무너진다.  하지만 육체도 다른 물질과 마찬가지로, 차원의 다른 누군가(어떤 사람)와 동거하게 될 것입니다.

 


これを、魂、あるいは意識と名づけてみてもいいでしょう。ちょうど、物質がエネルギ―と共存しているようにです。
이것을, 영혼, 혹은 의식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입니다.  정확히, 물질이 에너지와 공존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肉體舟は肉體細胞諸器官の生命活動により安定していますが、舟の責任者は五體を支配する船頭さんである魂·意識の活動によって、生活を營んでいるといえましょう。
육체배는 육체세포 모든 기관의 생명활동에 의해 안정되고 있습니다만, 배의 책임자는 온몸을 지배하는 선장인 영혼·의식의 활동에 의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肉體舟の欠陷は、五體の各諸器官と船頭さんである意識の相互關係がアンバランスになったときに起こるのです。
육체배의 결함은, 온몸의 각 모든 기관과 선장인 의식의 상호관계가 부조화가 되었을 때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の記憶も、旣刊の著書の中でたびたびふれたように、頭腦がそれをするのではなく、魂·意識が記憶しているのです。
우리들의 기억도, 기간(이미 간행된)의 저서 속에서 번번이 접했듯이, 두뇌가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며, 영혼·의식이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つまり、肉體舟と意識·魂という次元の異なった世界のものが不二一體となって、生命活動をしている、といえるでしょう。
즉, 육체배와 영혼·의식이라고 하는 차원의 다른 세계의 것이 불이일체(둘이 아닌 한 몸)가 되어, 생명활동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永遠の生命とは、この世とあの世を超えて、いっさいの記憶を持じながら生き續けている魂·意識の自分であるわけです。
영원한 생명이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초월해서, 일체의 기억을 가지면서 삶을 계속하고 있는 영혼·의식의 자신인 까닭입니다.

 


肉體の生死にとらわれると、死はすべての終りを意味しますが、肉體を離れた自分を認識し、體驗すると、そこには、死のないことに氣づきます。 ただ、生きている間にこのような體驗を持つ者は、ホンの一部にかぎられているため、想像は出來ても、信ずるところまでは、なかなか、いかないようです。
육체의 생사에 얽매이면,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합니다만, 육체를 떠난 자신을 인식하고, 체험하면, 거기에는, 죽음의 없는 것을 깨닫습니다. 단, 살아 있는 동안에 이와 같은 체험을 가지는 사람은, 본디 일부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은 할 수 있어도, 믿을 정도까지는, 꽤, 안 되는 모양입니다.


 

しかし、信じる信じないにかかわらず、人間は、肉體が滅びても死ぬことはないし、死はあの世への誕生といってもいいのです。
그렇지만, 믿고 믿지 않음에 관계없이, 인간은, 육체가 없어져도 죽는 일은 없고, 죽음은 저 세상으로의 탄생이라고 해도 좋은 것입니다.

 


私たちは旅行をするときに、いろいろな乘り物を使います。飛行機で飛んりだり、自動車に乘ったり、電車を利用したりして目的地に着きます。乘り物はそれぞれちがっていますが、乘っている自分自身は少しても變らないのです。
우리들은 여행을 할 때에, 다양한 교통편을 사용합니다.  비행기로 비행하거나, 자동차에 타거나, 전차를 이용하거나 해서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교통편은 저마다 다릅니다만, 타고 있는 자기 자신은 적어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魂の永遠の生命、つまり轉生輪廻もこれと同じで、自分の過去世は中國で、インドで、あるいは日本人として、生れ變って生き續けていますが、自分自身は少しも變っていないのです。.
영혼의 영원한 생명, 즉 전생윤회도 이것과 마찬가지이며, 자신의 과거세는 중국에서, 인도에서, 혹은 인본인으로서, 다시 태어나서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자기 자신은 조금도 변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過去世の記憶をよみがえらす人は非常に少ない。ほとんどの人は現在の生活だけが絶對であると思っています。ましてや未來について語る人は絶無に近い。そのために、無意味な人生を送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す。
과거세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적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재의 생활만이 절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나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전무(조금도 없음)에 가깝다.  그 때문에, 무의미한 인생을 보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過去世の記憶の斷絶は、一つには現世は修行の場であり、もう一つは次元の相違がそれをさせているといえます。過去の記憶がオギャと生れてすぐにわかってしまうならば、この世に生まれた意義は少なくなります。
과거세의 기억의 단절은, 한가지로는 현세는 수행의 장이며, 또 한가지는 차원의 상이가 그것을 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응애하고 태어나서 곧 알아 버린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는 적어지게 됩니다.

 


もう一つは、ある一定の年令に達しても、なおかつそうした記憶が浮かんでこないというのは、自分の心の中に次元差をつくっているためなのです。次元差とは斷絶という壁であり、スモッグです。
또 한가지는, 어느 일정한 연령에 도달해도, 그래도 그러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차원의 차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차원의 차이란 단절이라고 하는 벽이며, 스모그입니다.

 


そのスモッグは、私たちの思うこと、行うことの、片寄った生活行爲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す。
그 스모그는, 우리들의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 치우친 생활행위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私はその事實を知ったのです。
저는 그 사실을 안 것입니다.

 


私は幼い頃から生命の神秘に疑問を持ち、自然科學を通して、精神のあり方について、追究して來ました。追究するたびにさまざな體驗が積まれ、體驗を通して、生命のナゾが明らかになって來たからです。
저는 어린 시절부터 생명의 신비에 의문을 가지고, 자연과학을 통해서, 정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서, 추구해 왔습니다. 추구할 때마다 다양한 체험이 쌓여, 체험을 통해서, 생명의 수수께끼(신비)가 명백하게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これらについては拙著『心の發見』神理篇、科學篇、現証篇、それに『心の原点』を參考にしていただげば、ご理解願えると思います。
이것들에 대해서는 졸저『마음의 발견』신리편, 과학편, 현증편, 그것에『마음의 원점』을 참고해 주시면,이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ともかく私は、こうした體驗の中から、人間は魂という意識を持って生きつづげる永遠の生命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限られたた短かい肉體人生に與えられた己の役割に、全力を擧げてゆきたいと考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어쨌든 저는, 이러한 체험 속에서, 인간은 영혼이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삶을 계속하는 영원한 생명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한정된 짧은 육체인생에 주어진 자기의 역할에, 전력을 다해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魂について、さらに明らかになった点は、魂を動かしているもの心であり、心は意識の中心に存在するということです。
영혼에 대해서, 특히 분명하게 된 점은, 영혼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마음이며, 마음은 의식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が生活の場の中で、さまざまな行爲を指示するものは、意識の中心である心であり、心以外のものは何もないということです。
우리들이 생활하는 장소 속에서, 다양한 행위를 지시하는 것은, 의식의 중심인 마음이며, 마음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もっとも私たちの肉體舟は、植物性神經の働きで心臟や內臟器官が動いており、肉體舟全體の行動は、魂の中心である心が支配しています。したがって、心臟や內臟は心とは關係がないとみる人もいるかも知れませんが、心の動きは內臟器官に大きな影響を與えています。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육체배는, 식물성신경의 작용으로 심장이나 내장기관이 움직이고 있고, 육체배 전체의 행동은, 영혼의 중심인 마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장이나 내장은 마음과는 관계가 없다고 모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마음의 움직임(활동)은 내장기관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植物性神經、つまり自律神經は神から輿えられたエネルギ―を吸收しながら活動していますが、また、心の波動を强く受けて動いています。
식물성신경, 즉 자율신경은 신(神)으로부터 주어진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또, 마음의 파동을 강하게 받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この点については拙著『心の原点』を參考にされるといっそう理解が深まるでしょう。
이 점에 대해서는 졸저『마음의 원점』을 참고로 하시면 더욱 이해가 깊게 될 것입니다.

 


病氣の80は心因性なのです。
질병의 80%는 심인성인 것입니다.

 


怒ったり、悲しんだり、愚痴ったり、こうした自己保存が重なると、肉體にさまさまな障害が現れ、病氣になってゆきます。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푸념을 하거나, 이러한 자기보존이 쌓이면, 육체에 다양한 장해가 나타나고, 병이 되어 갑니다.

 


心が片寄ると、自分だけの問題なら病氣となって現れますが、對外的に影響を與える場合は、事業不振、家庭不和、公害、災害などに發展してゆきます。
마음이 치우치면, 자신만이 문제라면 병이 되어 나타납니다만, 대외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는, 사업부진, 가정불화, 공해, 재해 등으로 발전해 갑니다.


 

物質文明が發達するにしたがって、人間は普遍的な自分自身の心を失い、物質文明の虜(とりこ)になってしまいます。
물질문명이 발달함에 따라서, 인간은 보편적인 자기자신의 마음을 잃고,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物質文明は誰のためにあるのか、文明のためか、人間のためなのが······。
물질문명은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일까, 문명을 위함인가, 인간을 위함인가······。

 


人間はいつのまにか主客を顚倒し、文明に奉仕する人間になり下がっています。愚かというほかありません。.
인간은 어느 사이엔지 주객을 전도하고, 문명에 봉사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なぜこうなるか、理由はほかでもない「足ることを忘れた欲望」の追求にあるからです。
왜 이렇게 될까, 이유는 다름 아니라「만족함을 잃어버린 욕망」의 추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欲望のためには手段を選ばず、すべてに自己中心的な考えが根底にあるので、世の混亂はいつになっても治まらぬというのが、現實でありましょう。
욕망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에 자기중심적인 생각(思考)이 근저에 있는 것이며, 세상의 혼란은 언제라도 진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大自然をみると、私たちの眼前にひらかれている姿は、法のル―ルにしたがって、動物も植物も動物も、互い調和されています。
대자연을 보면,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은, 법의 규칙에 따라서, 동물도 식물도 동물도, 서로 조화되어 있습니다.


 

自然は、正しい環境の法、ル―ルを示し、足ることを知った中道の神理を敎えています。
자연은, 올바른 환경의 법, 규칙을 나타내 보이고, 만족함을 아는 중도(中道)의 신리(神理)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動物は酸素を吸って炭酸ガスを吐き、植物は炭酸ガスを求めて酸素を吐きます。動物は植物を求め、植物は動物の排泄物を營養源にして育ってゆく。兩者の相互共存、これは天の攝理です。
동물은 산소를 흡수해서 탄산가스를 내뿜고, 식물은 탄산가스를 구하고 산소를 내뿜습니다. 동물은 식물을 구하고, 식물은 동물의 배설물을 영양원으로 해서 성장해 간다.  양자의 상호공존, 이것은 하늘의 섭리입니다.

 


肉食動物は草食動物をやたらと殺しません。腹がいっぱいになれば、目の前の獲物も見送ってしまう。彼らは足ることを知り、自然の循環にそって生かされています。したがって、彼らの生活は、人間が踏みこんで荒らさぬかぎり、半永久的に維持されてゆきましょう。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습니다.  배가 부르면, 눈 앞의 사냥감도 눈으로 보기만 하고 손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만족할 줄 알며, 자연의 순환에 맞게 되살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은, 인간의 발을 들여 놓고 엉망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한, 반영구적으로 유지되어 갈 것입니다.


 

人間はこうしたル―ルを忘れ、欲望充足に明け暮れています。
인간은 이러한 규칙을 잊고, 욕망충족에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そのために、大氣は汚染され、河川や大洋までが、工場排水でよごれ、動、植物の生存ばかりか、人間の生存すらおぼつかぬような狀況をつくり出しています。
그 때문에, 대기는 오염되고, 하천이나 대양마저, 공장 배수로 더러워지고, 동, 식물의 생존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조차 불안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これらは等しく、足ることを忘れた利益追求の人間の存り方に問題があり、今や人類は、大きな壁に突き當っている、といえるでしょう。
이들은 다같이, 만족함을 잃어버린 이익추구의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문제가 있고, 오늘날의 인류는, 큰 벽에 부딪히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結果は原因なくしてあり得ないし、現實の現象に對して私たちは、まずその原因を取り除くことからはじめねばなりません。
결과는 원인이 없고서는 있을 수 없고, 현실의 현상에 대해서 우리들은, 우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일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つまり、行爲をつくっている心の在り方を正す必要があるでしょう。
즉, 행위를 만들고 있는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拙著『心の原点』では、諸相の根源はどこにあるか、そうして人間の在り方、生きる目的、苦しみの原因などについて、つまびらかにしたつもりです。本書を一讀されれば、大自然と人間の關係を、ひと目で見渡すことが可能と思います。
졸저『마음의 원점』에서는, 여러가지 양상(모습)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해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 삶의 목적, 괴로움의 원인등에 대해서, 상세히 한 생각입니다.  본서를 한번 읽으면, 대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한 눈에 조망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ともかく私たちは、まず、自分にウソのいえぬ己の心に忠實になることを心がけねばなりません。
어쨌든 우리들은, 우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 마음에 충실하게 되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そうして、自己保存、自我我欲という心の公害を取り除かねばなりません。
그렇게 해서, 자기보존, 자아아욕이라고 하는 마음의 공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心の公害は、他人は取り除いてくれません。 何となれば、自分の肉體舟の支配者は他人でなくて自分だからです。心の王國の支配者は己であるという自覺を持つ必要があるでしょう。
마음의 공해는, 타인은 제거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체배의 지배자는 타인이 아니고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왕국의 지배자는 자기이다 라고 하는 자각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自分を含めて、自分の周圍で起こったさまざまな諸現象の原因は、他人ではなくて自分にあることを悟るべきです。
자신을 포함해서, 자신의 주위에서 발생한 다양한 모든 현상의 원인은, 타인이 아니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今日の社會の混亂と公害問題に人びとが惱むのも、もとはといえば、個人個人の心の公害から端を發していることを知るべきです。
오늘의 사회의 혼란과 공해 문제에 사람들이 괴로워하는(고민하는) 것도, 근본이라고 하면, 개인개인의 마음의 공해에서 발단하고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原因と結果の法則は崩すことは出來ません。しかし、この法則を知って、調和と明るい世界、環境をつくろうとするなら、この法則の偉大さに氣づき、人生の目的は期せずして達成されることでしょう。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법칙을 알고, 조화와 밝은 세계,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면, 이 법칙의 위대함을 깨닫고, 인생의 목적은 예기치 않게 달성될 것입니다.

 


一九六八年七月、心と行いについて、私の心の窓が開かれたとき、私はこうした問題について多くのことを知りました。
1968년 7월, 마음과 행위에 대해서, 저의 마음의 창이 열었을 때,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1968 7월, 을 1978 7월, 로 수정합니다




私たちの心の中につくり出されたさまざまな心の曇りを除いてゆき、平和な人生を送ることが出來たならば、人びとは人生の偉大な價値を自ら悟ることが出來るでしょう。
우리들의 마음 속에 만들어 낸 다양한 마음의 흐림을 제거해서, 평화로운 인생을 보내는 일이 가능하게 되면, 사람들은 인생의 위대한 가치를 스스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담[曇]: 흐리다, 구름이 끼다. 먹구름 모양. 한자를 풀면, 구름 위에 해가 떠 있습니다. 그럼 흐리겟죠.^^

 


庭石に腰をおろし、人生の不安から解放された自分自身を、フキノトウをながめながら、私はしみじみ思うのでした。  
정원석 위에 앉아서, 인생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제 자신을, 이른 봄에 머위의 뿌리 줄기로부터 나온 어린 꽃줄기를 눈여겨보면서, 저는 절실히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page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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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1장 잘못된 신앙」의 두 번 째, 어느 지옥계로의 여행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はしがき》〔目次〕「第一章 間違った信仰」[心と大自然] page 1~19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01 20:33








第一章 間違った信仰  


제 1장 잘못된 신앙

 



ある地獄界への旅

어느 지옥계로의 여행



生きている人間があの世に行くというと、ふつうは常人扱いされないでしょう。人によっては、あいつは頭がおかしいのとちがうか、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살아 있는 인간이 저 세상에 간다고 하면, 보통은 보통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저 녀석은 머리가 이상한 것이 틀림없지, 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私もかつてはそのように思っていました。それも五年ほど前までは···。
저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5년 정도 전이지만···

 


片寄りのない中道の物差しで、自分の心の在り方と行動をしっかり反省し、丸い豊かな心の狀態に己を淨化すると、こういうことが可能になってきます。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척도로서, 자신의 마음의 올바른 자세와 행동을 단단히 반성하고, 둥글고 풍요로운 마음이 상태로 자기를 정화하면, 이러한 것이 가능하게 되어 옵니다.


 

あの世に行けない、つまり心と肉體の分離が出來ないのは、肉體に心と魂が執着を持っているために不可能になっているのです。
저 세상에 갈 수 없다, 즉 마음과 육체의 분리가 되지 않는 것은, 육체에 마음과 영혼이 집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うらみ、ねたみ、そしり、怒り、情欲、足ることを忘れた欲望、思いやりがない、その他もろもろの執着の想念が、こうしたことを不可能にしてしまいます。
원망, 질투, 비방, 분노, 정욕, 만족함을 잊어버린 욕망, 동정(배려)가 없다, 그 외 여러 가지 많은 집착의 상념이, 이러한 것을 불가능하게 해 버리고 맙니다.


 

そこで、こうした執着を善なる己に噓のつけない心でその歪みを修正し、瞑想すると、あの世に自由に往き來することが出來るようになります。
그래서, 이러한 집착을 선한 자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으로 그 비뚤어짐을 수정하고, 명상하면, 저 세상에 자유로이 왕래할 수가 있게 됩니다.

 


また、心が丸く、調和されてくると、自分の周邊が柔らかい黃金色のオ―ラ―(後光)で包まれてきます。
또, 마음이 둥글고, 조화되어 오면, 자신의 주변이 부드러운 황금색 오로라(후광)로 감싸여 옵니다.


 

私が、地獄を見に行くときは、守護靈の不空三藏に、そのことを心の中で依賴します。
제가, 지옥을 보려 갈 때는, 수호령불공삼장에게, 그 일을 마음 속으로 의뢰합니다.


 

しばらく瞑想していると、私の肉體舟に小さな振動が起こり、船頭さんである自分の意識が拔けて行きます.すると、瞑想している肉體舟の前に、すっぽり出しているもう一人の自分がいます。
잠시 명상하고 있으면, 저의 육체 배에 작은 진동이 일어나고, 선장으로 있는 저의 의식이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명상하고 있는 육체 배 앞에, 쑥 나오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제가 있습니다.


 

そのときの氣持は、すっかり落着いており、こだわりも、恐ろしさもなく、心の中は平和です。心の中にスモッグがなく、神の光に滿たされているので、少しの不安も動搖も起きないのです。
그 때의 기분은, 완전히 가라앉아 있고, 구애됨도, 두려움도 없고, 마음 속은 평화입니다.  마음 속에 스모그가 없고, 신의 빛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며, 조금의 불안도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船頭である自分の意識·魂ともう一人の肉體舟には劇場のスポット·ライトを浴びているように神の慈愛の光が與えられています。
선장인 자기 자신의 의식·영혼과 또 한 사람의 육체 배에는 극장의 무대의 일부분만을 집중하여 조명하고 있는 광선을 받고 있는 것처럼 신의 자애의 빛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また、そのスポット ·ライトの光のド―ムは、この世とあの世を結んでいる通路といえます。
또, 그 무대의 일부분만을 집중하여 조명하고 있는 광선의 빛의 돔(둥근 천장)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묶고 있는 통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光のド―ムは、ふつう靈子線ともいわれ、その靈子線は、その人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太くも細くもなります。
빛의 돔(둥근 천장)은, 보통 영자선이라고 불리우며, 그 영자선은,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 굵게도 가늘게도 됩니다.

 


心に歪みがなくなり、調和されてくると、靈子線が明るく、太くなり、黃金色となってきます。
마음에 비뚤어짐이 없어지고, 조화되어 오면, 영자선이 밝게, 굵게 되어, 황금색으로 되어 옵니다.


★오타를 수정했습니다.  "굵게"



 

心の調和度によって、神の光がふりそそがれるので、劇場のスポットライトのような照明が映し出されてくるのです。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 신의 빛이 내리쬐는 것이며, 극장의 무대의 일부분만을 집중하여 조명하고 있는 광선과 같은 조명이 비추어져 오는 것입니다.


 

通常、死といわれるのは、この光のド―ムである靈子線が途中で切斷され、二度と再び肉體舟を支配出來なくなった狀態です。
통상, 죽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빛의 돔(둥근 천장)인 영자선이 도중에서 단절되어, 두 번 다시 육체 배를 지배할 수 없게 된 상태입니다.


 

靈子線の太く、明るさは生前の心の狀態に比例してつくられており、死後の生活の決定は、靈子線が切斷されたときの靈子線の狀態によってもちがってきます。
영자선이 굵고, 밝기(밝은 정도)는 생전의 마음의 상태에 비례해서 만들어져 있고, 사후의 생활의 결정은, 영자선이 단절되었을 때의 영자선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つまり、地獄に墮ちる者、天國に昇天する者、それは靈子線の切斷時の狀況によって大きく左右されるといえましょう。
즉, 지옥에 떨어지는 자(사람)는, 천국으로 승천하는 사람, 그것은 영자선의 단절할 때의 상황에 따라서 크게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 오타인 ""는을, "자(사람)"으로 수정합니다.


 


しかし、あの世の地獄に墮ちたとしても、自分を反省し、神の子としての自覺が芽生えてくれば、その芽生えた心境に比例した調和の世界にのぼって行きます。
하지만, 저 세상의 지옥에 떨어졌다고 해도, 자신을 반성하고, 신의 자녀로서의 자각이 싹터오면, 그 싹터온 심경에 비례한 조화의 세계로 올라갑니다.


 

この地上界の人びとが、イライラの心のままで禪定したり、瞑想にふけることは、戶締りをしないで眠るようなものです。それはもっとも危險この上ない行爲といえましょう。
이 지상세계의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인 채로 선정하거나, 명상에 잠기는 것은, 문단속을 하지 않고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욱 위험하고 위험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없는 행위" 오타를, "위험한 행위"로 수정합니다


 


この地上界には、すでに亡くなって地獄界におり、嚴しい環境に耐えかねて、この世に執着を持っている靈たちが多くいます。彼らは、同じような心の持主に、生きる場を求めています。
이 지상세계에는, 이미 죽어서 지옥에 있고, 엄격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이 세상에 집착을 갖고 있는 혼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똑 같은 마음의 소유자에게, 살아갈 장소를 구하고 있습니다.


 

このため、イライラの心で禪定や瞑想にふけると、類は友を呼ぶ法則にしたがって、こうした地獄靈や動物靈を呼び込むことになります。
이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으로 선정이나 명상에 잠기면, 끼리끼리 모인다는 법칙에 따라서, 이러한 지옥령이나 동물령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ノイロ―ゼ、精神分裂は、こうした別人格の靈たちの憑依によって起こされた現象といえましょう。
노이로제(신경쇠약증), 정신분열은, 이러한 다른 인격의 혼령들이 빙의에 의해서 일으킨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もっとも、ノイロ―ゼや精神病は、禪定したり、瞑想した體驗がない者もいます。ある日突然,そうした狀態

に追い込まれる人もありますが、こういう人たちの場合は、心の中に執着の念が溜め込んで、常にそこから離れることが出來ないでいるためにおころのです。
더욱,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이나 정신병은, 선정하거나, 명상한 체험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러한 상태에 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는, 마음 속에 집착의 생각이 (돈을) 꾸준히 모아서, 항상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三角關係や、事業の失敗、失意、うらみ、ねたみの執着の念が心の中を占め、それから離れられないために、同類の靈を引き寄せ、精神病になってゆきます。
삼각관계나, 사업의 실패, 실의, 원망, 질투의 집착의 생각이 마음 속을 차지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혼령을 끌어당기어, 정신병으로 되어 갑니다.

 


地獄靈の多くは、孤獨で自分の小さな心の枠の中で、苦しみ悲しんでいる人びとの心を支配します。ウツ病、ソウ病はみなこうしたことが原因になっています。
지옥령의 대부분은, 고독하며 자신의 작은 마음의 틀 속에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울병(鬱病)[(억을증抑鬱症)], 조병(躁病)은 모두 이러한 것이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조울병[躁鬱病] : 흥분 상태와 우울증이 번갈아 일어나는 유전성 정신병.
조병[躁病]
환자가 심하게 흔들거나 미친 듯이 주위가 산만한 상태로, 한 문장 또는 하나의 완전한 생각을 끝까지 표현하지 못하는 정신질환.
울병[鬱病=抑鬱症]
기분이 우울하고 피로감과 불안을 느끼는 정신병.
내인성으로 오는 감정의 우울과 의욕의 저하로 자신감 상실, 염세, 비관적 기분이 되는 증상.

 



電車の中などでよく見かけますが、誰もないのに一人で口を動かし、笑ったり、怒ったりしている人がいます。彼らは地獄靈としゃべっているのです。靈視すると、疲らの脇には地獄靈がちゃんといて、いろいろ語っています。
전차 안 등에서 자주 눈에 뜨입니다만,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서 입을 움직이고, 웃거나 화를 내거나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옥령과 지껄이고 있는 것입니다. 영시하면, 그들의 옆구리에는 지옥령이 틀림없이 있고, 여러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精神病になると夜眠ることが出來ません。肉體を支配されてしまうからです。
정신병이 되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육체를 지배당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精神分裂は本人以外の別な靈がその肉體を支配し、しゃべり始めるので、話があちらに飛び、こちらに飛んできます。聞き手は相手の話が急い變わり、それまでのその人でない傾向を帶びてくろので、これはおかしい氣が違ったと見てしまいます。
정신분열은 본인 이외의 다른 혼령이 그 육체를 지배하고, 지껄이기 시작하는 것이며, 이야기가 저쪽으로 날아가고, 이쪽으로 날아 옵니다. 듣는 상대는 상대의 이야기가 급히 변하고, 거기까지의 그 사람이 아닌 경향을 띠어 오는 것을 보며, 이것은 비정상적인 정신이 잘못되었다고 봐 버리고 맙니다.

 


精神病になると大抵は一生を棒に振ってしまいます。氣の毒というほかはありません。しかしその原因はどこにあったかといえば、精神病を誘發する本人の心が、モノに執着するために起こるのであり、それも非常に片寄った形をとるので、どうすることも出來ません。
정신병이 되면 대부분은 일생을 헛되게 해 버리고 맙니다.  불쌍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면, 정신병을 유발하는 본인의 마음이, 물질(사물)에 집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도 상당히 치우친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써, 어찌 할 수도 없습니다.



★"불쌍하고"를, 불쌍하다, 로 수정합니다


 

地獄靈は神の子としての本性を失っているため、生前の名前も、住所も、忘れ去っている場合が多いのです。
지옥령은 신의 자녀로서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생전의 이름도, 주소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地獄に墮ちた人びとは、在世中に神の子としての己自身の心を失い、自我我欲、自己保存に明け暮れた人びとです。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생존시에 신의 자녀로서의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자아아욕, 자기보존으로 세월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これらに憑依された人びとの心も同じです。だからその地上界での生活は、すでに地獄界を現わし、心は常に何かにおびえ、あるいは怒り、不安定そのものなのです。
이들에게 빙의(
憑依)된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지상세계(地上界)에서의 생활은, 이미 지옥계(地獄界)를 나타내고, 마음은 항상 뭔가에 무서워서 벌벌 떨고, 혹은 화를 내고, 불안정 그 자체인 것입니다.

 


救いは、個の生命の自覺以外にありません。自覺は正道の實踐生活の中からひらかれて行くのです。
구원이란, 개인의 생명의 자각 이외에는 없습니다.  자각은 정도(正道)의 실천생활 속에서 열리어 가는 것입니다.

 


地獄靈たちも人間と變わらない肉體を持っています。肉體といっても原子細胞の肉體舟ではなく、光子體といって、光の細胞で出來ています。その光子體は心に曇りをつけたままなので、黑く淀どんでいます。
지옥령들도 인간과 다름없는 육체(
肉體)를 갖고 있습니다. 육체라고 해도 원자세포(原子細胞)의 육체(肉體)가 아니라, 광자체(光子體)라고 하며, 빛(光)의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그 광자체는 마음에 흐림을 만든 그대로인 것으로써, 검고 생기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天使の光子體は、光にあふれていろので、天使が彼らの住む世界に行くと、彼らはまぶしくて、その姿を見ることが出來ません。
천사의 광자체는, 빛으로 흘러 넘치고 있는 것으로써, 천사가 그들의 사는 세계로 가면, 그들은 눈부시어,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地獄界はさまざまな世界をつくっています。
지옥계는 다양한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この地上界で常に斗爭と破壞を目的として人びとの調和を失った者、思想の自由を否定して自己保存に徹した者たちで、心に斗爭心を持ったままでこの地上界を去った場合は、アスラ―(阿修羅)の世界に墮ちてゆきます。
이 지상세계에서 항상 투쟁과 파괴를 목적으로 해서 사람들의 조화를 잃어버린 사람,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고 자기보존에 철저한 사람들이며, 마음에 투쟁심을 가진 채로 이 지상세계를 떠난 경우는,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로 떨어져 갑니다.



★"사기부보존"을, "자기보존"으로 수정합니다.


 

また、題目斗爭とかいって、何萬回お題目をあげれば功德がある、というような間違った信仰をもった人びとも、死後の世界は阿修羅です。
또, 제목투쟁이라든지 말하며, 몇 백 번 제목을 올리면 공덕이 있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사후의 세계는 아수라입니다. 
<또, 제목투쟁이라든지 말하며, 몇 백 번 나무묘법연화경의 제목을 외우면 공덕이 있다 라고 번역해야 할 것 같습니다>

 


※題目を上げる 아래를 참고하세요. 사전에 없네요.
※寺院の須弥壇や家庭の仏壇で南無妙法蓮華経と題目を上げるときに、あるいは、それ以外でも題目を上げながら使用する。また、室内だけでなく、屋外で使用される例も多い。大勢でお題目を唱えながら打ち鳴らすことが多い法具である。日蓮正宗では団扇太鼓は使用せず、寺院で大勢で題目をあげる際に速度を合わせるのに通常の和太鼓を用いるだけである
http://ja.wikipedia.org/wiki/%E5%9B%A3%E6%89%87%E5%A4%AA%E9%BC%93
※日蓮宗で唱える「南無妙法蓮華経」の7字。
http://dic.search.yahoo.co.jp//search?ei=UTF-8&fr=top_ga1_sa&p=%E9%A1%8C%E7%9B%AE


 



阿修羅界は心を休めることが出來ないばかりか、常に,自分以外の者は皆自分の敵であり、爭いにつぐ爭いをくり返しています。地獄とはこんなに恐ろしいところか、と思うほどであります。
아수라계는 마음을 쉴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 이외의 사람은 모두 자신의 적이며, 다툼(싸움)이 잇따르고 다툼(싸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옥이란 이렇게 무서운 곳일까, 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地上界の信仰の中には神罰というのがあって、その信仰に疑問があっても、神罰を恐れるあまり、盲信、狂信の道を步んでしまいます。
지상계의 신앙 중에는 신벌(神罰)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 신앙에 의문이 있어도, 신벌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맹신, 광신이 길을 걸어 버리고 맙니다.

 


常識で考えてみて、神佛が人間に罰を與えるかどうか、まず考えてみる必要があるのです。
상식으로 생각해도, 신불이 인간에게 벌을 주는지 어떤지, 우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神佛というのは人間の親です。神佛の心は太陽の熱·光のように、善人、惡人の差別なく、萬人に惜しみなく與えてくれる慈悲の心しかありません。その神佛が、一寸先も不明な人間に、どうして罰など與えましょう。
신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부모입니다.  신불의 마음은 태양의 열·빛과 같이, 선인, 악인의 차별 없이, 만인에게 아낌없이 제공해 주는 자비의 마음밖에 없습니다. 그 신분이, 한치 앞도 분명하지 않은 인간에게, 어째서 벌 등을 주겠습니까?

 


罰は、人間の心の黑い想念がつくりだすものです。
벌은, 인간의 마음의 검은 상념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子の不幸を喜ぶ親がいないのと同じように、神佛は人間の幸せを常に願っています。
자식이 불행을 기뻐하는 부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불은 인간의 행복을 항상 원하고 있습니다.

 


信仰しないと罰を與える、お金を上げないと怒り出すなど、こういう神を、恐れてはいけません。
신앙하지 않으면 벌을 준다, 돈을 바치지 않으면 화를 낸다 등, 이러한 신을,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罰は,正道に反した僞我の自分がつくることを知り、心と行ないの正道を悟ることが大事です。
벌은, 정도(正道)에 반한 위아(거짓된 자신)의 자신이 만드는 것을 알고, 마음과 행위(실행)의 정도를 깨닫는 것이 중대사입니다.



それが神の心なのです。
그것이 신의 마음인 것입니다.


 

さて、肉體から拔け出したもう一人の私は、明るいド―ムから段段と薄暗い中を下ってゆきました。
그럼, 육체에서 빠져 나온 또 한 사람의 저는, 밝은 돔(둥근 천장)에서 계단으로 어두컴컴한 속을 내려 갔습니다.

 


ちょうど、エレペ―タ―に乘って、何千メ―トルの谷底に降りて行くような氣持です。
정확히, 승강기를 타고, 몇 천 미터의 골짜기 밑바닥에 내려 가는 듯한 기분입니다.

 


着い場所は、陰氣で底冷えがし、大地はジメジメして、まことに感觸が惡い所です。
도착한 장소는, 음기로 추위가 뼈 속까지 스며들 것 같고, 대지는 축축하고, 참으로 감촉이 나쁜 곳입니다. 

 


樹木は薄黑く、綠の葉にも生氣がありません。

수목은 어둑하고, 초록의 잎에도 생기가 없습니다.

 


小さな村の入口に立った私は、ボンヤリと浮かんでいる家の前に行き、中の樣子をのぞいてみました。
작은 마을의 입구에 선 저는,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는 집 앞으로 가서, 안의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家の中から小さなほの暗い光が外に漏れています。燈はランプでした。
집 안에서 작은 어둑어둑한 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등불은 램프였습니다.


 

障子は破れ、氣持の惡いほど陰氣臭い雰圍氣です。
장지(미닫이문)는 찢어지고, 기분이 나쁠 정도로 음산하고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분위기입니다.

 


障子に映る人影からすると、ここに住んでいる住人は一人や二人ではなく、多勢いるようです。
장지(미닫이문)로 비치는 사람의 그림자(人影)라 하면, 여기에 살고 있는 거주자(주민)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인영을, 자세하게 사람의 그림자(人影)로, 정정합니다. 


 

私は思い切って、
「今晩は―、今晩は―」
と,聲をかけてみました。
저는 결심하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すると、明治時代の車夫のような、薄汚れた木綿の紺の仕事着をつけた、頭は角刈りの主人風の男が、建てつけの惡い戶をあけました。
그러자, 명치시대의 차부와 같은, 얕고 더러운 무명의 감색 작업복을 입은, 머리는 상고머리의 주인풍의 남자가, 잘 안 맞는 미닫이 문을 열었습니다.

 



차부(車夫) : 소나 말이 끄는 수레를 부리는 사람



角刈りの男は、見なれぬ私をジロジロにらんでいましたが、あごで會釋し、家の中にはいれと促します。
상고머리의 남자는, 낯선 저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지만, 턱으로 머리를 살짝 숙이며 가볍게 인사하고,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합니다.


 

男はひと言もしゃべりません。
남자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通された部屋は十二疊ほどでした。
안내된 방은 다다미 12칸 정도였습니다.

 


中央に大きな座卓が置かれ、床の間の正面のところに、口が耳元までさけた老婆が座っています。
중앙에 큰 좌탁이 놓여있고, 마루 사이의 정면인 곳에,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노파가 앉아 있습니다.


 

髮は白く、バサバサ眼はランランと異樣に光り、この世では、とうてい見ることの出來ない風態の老婆でした。

머리카락은 하얗고, 부스스하다. 눈은 형형하게 이상한 모양으로 빛나고,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기질과 생김새(風態)의 노파였습니다.

 


〈とんでもないところに來てしまった〉
엉뚱한 데에 와 버렸다

 


案內された私は、そう思いました。
안내된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私は老婆の眼をそらし、座卓のはじに座りました。
저는 노파를 일부러 외면하며, 앉은뱅이 책상의 가장자리에 앉았습니다.



老婆の右隣りのヤクザ風の男三人が、私の顔をジロッとにらみ、その中の一人が、
「オッ、新參者が來たな、これは肉付のいい、うまそうな餌物がとびこんで來たものだ」
「お前たちのような三ン下に、いちばんうまい、尻の肉などやれるもんか。勝手な眞似をしたら承知しないよ」
三十九位になる男を老婆がにらみつけ、そういいました 。
노파의 오른쪽 곁의 야쿠쟈풍의 남자 세 사람이, 저의 얼굴을 흘끔 노려보며, 그 중에 한 사람이,
어, 신참자가 왔군, 이것은 살집이 좋아, 맛있어 보이는 먹이가 뛰어들어 온 것이다
너희들 같은 똘마니에게, 가장 맛있는, 엉덩이 고기 따위를 줄까. 제멋대로 행동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39세 정도 되는 남자를 노파가 매섭게 쏘아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俺たちにも片腕ぐらいくれよ」
「うるさい。私がいいというまでひっこんでろ」
どうやら、ここの連中は私を食べようという算段です。
저희들에게도 한 쪽 팔 정도는 줘요
귀찮다. 내가 좋다고 할 때까지 물러나 있어!
그럭저럭, 여기의 무리는 저를 먹으려고 하는 궁리입니다.

 


老婆は、どこにどう隱し持っていたのか、出刃包丁を皆の目の前に差し出し、座卓の上に思い切りつき差すと、
「さあ、片腕を出しな」
大聲をあけ、私にそう迫るのでした。
노파는, 어디에 어떻게 숨겨 가지고 있었는지, 식칼을 모두의 눈 앞에 내밀고, 앉은뱅이 책상 위에 힘껏 푹 찌르고.
자아, 한쪽 팔을 내밀어!
큰소리를 지르며, 저에게 그렇게 다그치는 것입니다.

 


私は心の動搖を押さえ、はっきりといいました。
「私の體が欲しいのならあげてもいい。 ひもじい思いをしている君たちだ。私の體を食べて生きられるならそれもいいだろう。しかし私を食べる前に、私のいうことを聞いてもらいたい」
「どうせお前は私たちに食べられる運命。いいたいことがあるならいってみな」
저는 마음의 동요를 억누르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제 몸이 탐나면 가져도 좋아요, 시장기를 느끼고 있는 너희들이다. 제 몸을 먹고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저를 먹기 전에, 제가 말하는 것을 들어 주었으면 한다
어차피 너는 우리들에게 먹힐 운명이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해 봐


 

私が默って周圍を見回していると、
「逃げようとしたって無駄なこったあ、さあ、觀念して、とっととしゃべりな」
老婆は髮をふり亂して大きな口をいっばいにあけて、がなりたてました。
「こいつを逃がさないように、,一人は戶口のところで見張れ」
제가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
도망치고 싶어도 헛일이다, 자아, 단념하고, 냉큼 말해!
노파는 머리를 흩날리며 큰 입을 다 벌리고, 고래고래 소리질렀습니다. 
이놈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 사람은 출입구가 있는 곳에서 망을 봐라」 

 


老婆にいわれて、若い一人が土間におりながら、
「俺にもわけ前くれよ」
「何いってんだい。お前から食べようと思いっていたのに。お前はこの男がまぎれこんで來たから助 かったんだ。つべこべいうな。お前のような肉付の惡いやつより、こっちのっ方が脂が乘んていらあ―。お前も逃げたら承知しないよ」
노파에게 말하며, 젊은 한 사람이 토방에 있으면서,
저에게도 몫을 줘요
뭘 말하고 싶어!  너부터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는 이 남자가 잘못 섞여 들어 왔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쫑알거리지 마라. 너 같은 살집이 나쁜 놈보다, 이쪽 놈이 기름기가 올라 맛이 좋은거야! 너도 도망치면 용서하지 않겠다

 


老婆の形相は鬼氣迫るそれであり、映畵や芝居に出くる鬼婆といってもいいが、しかしこれは現實で あり、その恐ろしさたるや想像を超えたものです。
노파의 형상은 귀기가 감도는 그것이며, 영화나 연극에 나오는 마귀할멈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며, 그 무서움이라는 것이 상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老婆を見た瞬間は、ハッとしましたが、彼らのあさましい態度や心の動きを觀察していると、この場の恐ろしさも消えて、むしろ、彼らが哀れにさえなりました。
노파를 본 순간은, 깜짝 놀랐습니다만, 그들의 한심스러운(비참한,딱한) 태도나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으면, 이 장소의 무서움도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이 불쌍히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私は,私の肉體が食べられる前に話をしようと思いましたが、彼らに神理の話をしたところで、聞く耳を持たない者はうけつけません。
저는, 제 육체가 잡아 먹히기 전에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을 했지만, 그들에게 신리의 이야기를 해 본들, 들을 귀를 갖지 않은 사람은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そごで腕でも尻でもいい、食べたいなら食べてもらおう、と思いました。
「あなたたちに、良い話でもしてきかそうと思ったが,話をするのも勿體ない。私の肉體を食べて腹が一パイになったら、ゆっくりと話そう。さあ、食べてくれ」 
그래서 팔이라도 엉덩이라도 좋다, 먹고 싶다면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들에게, 좋은 이야기라도 들려 주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도 과분하다. 제 육체를 먹고 배가 부르면,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자아, 드세요
 


私はこういい、老婆に近寄ってゆくと、老婆はどうしたわけか、座ったまま後ずさりして、私から離れてゆくのです。
저는 이렇게 말하고, 노파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노파는 어떠한 까닭인지, 앉은 채로 뒷걸음질치며, 저에게서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いかつい目をしたヤクザ風の男の前に、私の腕を差し出し、さあどうぞういうと、この男も、後に下がって、びっくりしています。
엄격한 눈을 한 야쿠쟈풍의 남자 앞에, 제 팔을 내밀고, 자아 부디 라고 말하자, 이 남자도, 뒤로 물러나며,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耳元までさけた老婆の口は、もうこのときには普通の人のそれに變っていました。
「あなたたちは腹がすいているのだろう。さあ食べなさい。なぜおどろいているのか。遠慮しないでいいのだ。 腹が一パィになるまで食べたらいい」 
彼らは、私の態度に、あっ氣にとられ、何もいえません。
까지 찢어진 노파의 입은, 이미 이 때에는 보통의 사람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배가 고파 있을 것이다, 자아 드세요. 왜 놀라고 있는 것인지,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배가 부를 때까지 먹으면 좋아요
그들은, 저의 태도에, 앗! 정신이 팔리어,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餓鬼界に墮ちている地獄靈たちには、他人に身を供養しようなどと思う者は、一人もいないのです。.
아귀계에 떨어져 있는 지옥령들에게는, 타인에게 몸을 공양하려고 하는 등이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야귀계에 떨어져 있는 지옥령들에게는을, 아귀계를, 아귀계로 수정합니다. 


 


自分さえよければ、それで滿足な者たちばかりです。
자신만 좋으면, 그것으로 만족한 사람들뿐입니다.

 


この地上にも慈悲のかけらもなく、自己中心の生活をしている者たちが多いのです。
이 지상에도 자비가 손톱만큼도 없이, 자기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많은 것입니다.


 

他人の苦しみをみても、愛を與えぬばかりか、自己滿足の餓鬼界に通じる憐れな人びとです。
타인의 괴로움을 봐도, 사랑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만족의 아귀계로 통하는 불쌍히 여겨야하는 사람들입니다. 

 


しかし彼らにも弱点はあったのです。
하지만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었던 것입니다.

 


それはどんな地獄靈でも、心から慈悲と愛の行爲,、つまり、彼らのために自分の身を供養する、という勇氣には 勝て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
그것은 어떤 지옥령일지라도, 진심으로 자비와 사랑의 행위, 즉,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공양한다, 고 하는 용기에는 이길 수 없다(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今にも飛びかかろうとしていた老婆でさえ、耳元までさけていたあの赤い大きな口が、普通人のそれに變わり、慈悲の心がよみがえり、顔の相までおだやかになってしまっています。
지금에라도 덤벼들려고 하고 있던 노파마저도, 귀밑까지 찢어져 있던 저 붉은 큰 입이, 보통 사람의 그것으로 변하고, 자비의 마음이 되살아나고, 얼굴의 상(相)마저 평온(온화)하게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心の作用が最も敏感に變化する樣子は、この地上界の比ではないことを思い知らされたのでした。
마음의 작용이 가장 민감하게 변화하는 상황은, 이 지상계와 비교도 안 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ヤクザ風の、いわゆる兄ニ―たちも同じでした。
「あなたたちは、なぜこんな嚴しい餓鬼界に墮ちているのか、知っていますか」
私は、彼らのひろんだスキにそう問いかけました。
야쿠자풍의, 소위 형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들은, 왜 이런 엄격한 아귀계로 떨어져 있는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저는, 그들의 풀이 죽은 틈에 그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すると老婆は、正座に座り直し、うす汚い疊に兩手をついてこういいました。
「貴方のようなお方にお會い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しかも體から光を出しておられます。それも、この體を食べよ,、といわれたときに、貴方の體から輝くはかりの光があぶれ出してまいりました。今までは、こいつを食べてやろうとすれば,誰も逃け出し、やっとつかまえて食べてみても腹一杯になりませんでした。貴方樣は、私たちに驚かぬはかりか、やさしい言葉で話されます。 私たちは優しい言葉に一番弱いのです。どうぞ、私たちを許して下さい」
그러자 노파는, 정좌로 바르게 고쳐 앉고, 조금 더러워진 다다미에 양손을 붙이고 이렇게 말랬습니다.
귀하와 같은 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몸에서 빛을 내고 계십니다. 그것도, 이 몸을 드세요, 라고 말했을 때에, 귀하의 몸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빛이 흘러 넘쳐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놈을 먹으려고 하면, 누구든지 도망을 가고, 겨우 붙잡아서 먹어 보아도 배부르지 않았습니다. 귀하께서는, 우리들에게 놀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부드러운 말에 가장 약한 것입니다. 부디, 우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老婆をはじめ、ここの住人たちの心にも、佛性がよみがえって來たのでした。
노파를 시작으로, 여기의 거주자들의 마음에도, 불성이 되살아나왔던 것이었습니다.


 

「皆さん、下を向いていないで顔を上げなさい。永い年月、この嚴しい地獄界で生活していたのも、地上界でその原因をつくり、神の子としての道を外し、人をうらみ、ねたみ、そしり、怒り、噓をつき、盜み、他人に對して慈愛の心もなく、一生を無 駄に過ごしてきたからなのです。
여러분, 아래를 보지 말고 얼굴을 들으세요. 긴 세월, 이 엄격한 지옥계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도, 지상계에서 그 원인을 만들어, 신의 자녀로서의 길을 외면하고, 사람을 원망하고,질투하고, 비방하고, 화를 내고,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하고, 타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도 없이, 일생을 헛되이 보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自分さえよければよいという生活は、人間の正しい生き方ではない。そのために、あなたたちの心の中に、自分の思ったことと行なったことの一つ一つに曇りをつくり、神の光をさえぎってしまったのです。これを機會に、地上での生活を思い出し、ウソのつけない善なる心で、自分の間違ったことを反省しなさい」
자신만 좋으면 좋다고 하는 생활은, 인간의 올바른 삶의 방식(삶의 태도)가 아니다. 그 때문에, 당신들의 마음 속에, 자신의 생각한 것과 실행한 것의 하나하나에 흐림을 만들어, 신의 빛을 가로막아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기회로, 지상에서의 생활을 상기하고,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잘못한 것을 반성하세요.

 


「反省とは....どういうことですか」
반성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反省とは過ぎ去ったことを思い出し、間違っているところを見つけ出し、その間違いの原因がどこにあったか、間違いの根を取り除き、心から神に託びることです。そして二度とその間違いを犯さないような生活をしていくことです」
반성이란 지나간 것을 생각해 내고, 잘못하고 있는 바를 찾아보고, 그 잘못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지, 잘못의 근본을 제거하고,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생활을 해 가는 것입니다

 


「ハイ, わかりました」
네, 알겠습니다


 

「老婆、そなたはここに來る前、とこに住んでいたのか」
노파, 그대는 여기에 오기 전, 어디에 살고 있었나?



私は少し嚴しく老婆に問うてみました。
저는 조금 엄격하게 노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彼女は體を堅しく、上目づかいをしながら、神妙な調子で話し出しました。
그녀는 몸에 힘을 넣어 단단히 하고, 지릅떠보면서, 신기하고 영묘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ハイ、私は吉原というところで客を取っていました。生れは上州の碓氷(うすい)の庄、水のみ百姓の娘で、家が貧しかったために、吉原に賣られたのです。
네, 저는 요시와라(吉原=遊廓)라고 하는 곳에서 창녀로서 손님을 받고 있었습니다.  태생은 지요슈우(上州)의 우수이(碓氷)의 농막(農幕), 미주노미백성(江戸에도 시대의 농민 신분의 하나. 논밭을 소유하지 않은 최하층의 농민. 소작농. 날품팔이 농민)의 딸로,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요시와라(유곽)에 팔려갔던 것입니다.
 


吉原では遊人やお武家樣が每晩のように私の下に參り、それはそれは本堂につらい每日でした。病氣をしても休むことが出來ず、客を取らなければ、ひどい仕打ちを受けます。生きるに希望もなく、親をうらみ、人をうらみ、身のあわれを悲しみました。信じられる人はなく、金のある者、身分の高い者を相手にしか生きられません。他人を構っていては生きられなかったのです。
요시와라(유곽)에서는 유인(遊人, 일정한 직업이 없이 노는 사람, 놀려 다니는 사람)이나 세습적 지배 계급인 장군(将軍)· 다이묘(大名)와 그들의 가신(家臣)님이 매일 밤과 같이 저의 밑으로 들어오고, 정말 정말로 고통스러운 매일이었습니다. 병이 걸려도 쉴 수가 없고, 손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한 처사를 받습니다. 살아갈 희망도 없고, 부모를 원망하고, 남을 원망하고, 신세가 비참함을 슬퍼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돈이 있는 사람, 신분의 높은 사람을 상대로 밖에 살아갈 수 없습니다. 타인을 걱정하고 있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今いる場所は地獄なのでしょうか。どうしてここに來てしまったのか、私にはわかりません。今は自分の力以外では生きられませんから、こうして人を食べて生きて來たのです」
지금 있는 장소는 지옥인 것일까요? 어째서 여기에 와 버린 건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제 자신의 힘 이외로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사람을 먹고 살아 온 것입니다

 


言葉は江戶時代の廓(くるわ)の言葉で、ちよっとわかりにくいところがありましたが、老婆の身の上話をきくと、老婆の氣持が理解できました。その話から察すると、老婆は相當の期間、ここの住人になっていました。.
말은 에도시대의 유곽의 말이며,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노파의 신상 이야기를 들으면, 노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관찰하면, 노파는 상당한 기간, 여기의 거주인(주민)이 되어 있었습니다.

 


「老婆よ,、あなたの名は」
「ハイ、うばざくら、と申します」
「あなたはすでに二百年も地獄にいるのです。早く昔のことを思い出し、一つ一つ、間違った過去の出來ごとを神に託びなさい」
「ヘェ―、もう二百年も過ぎてしまったのですか。私はまだ死しんでいないのですが···」と、びっくりして顔を上げ「私の生まれた上州の家はもうないのでしょうか。母は、父は、兄はどうなったんでしょう」
노파여, 당신의 이름은?
네, 우바자쿠라 라고, 합니다
당신은 벌써 200년이나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빨리 옛날의 일을 생각해 내고, 하나하나, 잘못한 과거의 일어난 일을 신에게 사죄하십시오
네에! 벌써 200년이나 지나버린 것입니까?  저는 아직 죽지 않았는데···」라고, 깜짝 놀라서 얼굴을 들고 「제가 태어난 지요슈우(上州)의 집은 이젠 없는 것일까요? 어머니는, 아버지는, 오빠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老婆はようやく自分の過去を思い浮かべ、故鄕に殘した兩親の顔を思い出そうと必死になっていました。
노파는 차츰 자신의 과거를 마음속에 그려보며, 고향에 남은 부모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고 필사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地獄に墮ちてしまうと、死んだときの心の狀態のままで、時間の觀念がなくなってしまうのでしょう。いうなれば、「時間」が止まってしまうようです。
지옥에 떨어져 버리면, 죽을 당시의 마음의 상태인 채로, 시간의 관념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시간」이 멈춰 버리는 모양입니다.


 

隣り座っていた兄貴らしい男が話り出しました。
「あっしは昭和二年、たしか四十八歲です。高松の海岸でお祭りの日にヤクザの出入りがあって殺され、それ以來、うばざくらの姉御(あねご)に救われ、こうして生活しています。あっしの呼び名は〃眞砂の兄〃(まさごのアニ―)といいます」
곁에 앉아 있던 깡패? 형님(선배)인 것 같은 남자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화 2년(1927년), 정확히 48세입니다. 다카마쯔(高松)의 해안에서 축제일에 야쿠쟈가 출입이 있고 살해되어, 그 뒤로, 우바자쿠라의 누님((폭력 사회 등의) 두목의 아내. 또는 여자 두목))에게 도움을 받아, 이렇게 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호칭은 마사고의 형님이라고 합니다

 


これは四國なまりのヤクザで、その口調は渡世人の仁義の、あのやり方です。
男の隣りは四人ほど神妙に座って、最前からうなだれて聞いています。いずれも人相の惡い男たちで、老婆や眞砂の兄の手下のようでした。
이 남자는 시코쿠(四國)사투리의 야쿠자로, 그 말투는 노름꾼(건달)의 의리의. 저러한 방법(태도)입니다.  
남자 곁에는 4명 정도 신기하고 영묘하게 앉아서, 맨 앞부터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인상이 나쁜 남자들로, 노파나 마사고의 형님의 부하인 것 같았습니다. 


※형님(선배) [兄貴] :  (폭력 사회,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는)선배, 형, 형님




しかし彼らも、ようやく心の中に燈が点じられ、過去の思い出がよみがえって來たようでした。
「眞砂の兄のやら、あなたはもう四十數年もここに住んでいるんですよ。君たちも老婆のように、心をりらいてよく反省し、間違った過去を、心から神に託びることだ」
하지만 그들도 점점 마음 속에 등불이 켜져서 과거의 일들이 되살아나왔던 모양이었습니다. 
마사고의 형인지, 당신은 이미 40 수년이나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너희들도 노파처럼, 마음을 열고 잘 반성하고, 잘못된 과거를,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ハイ、もう四十何年も、うばざくら姉に厄介になっているんですか。あっしたちは、今度どちらにいったらいいんですか。高松の親分のところに歸ればいいんですか。それとも德島の實家に歸えったらいいのでしょうか」
네, 벌써 40 몇 년이나, 우바쟈쿠라 누님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인가요?  다카마쯔의 친분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좋은 것인가요? 아니면 도쿠시마의 제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면 좋은 것일까요?

 


「四十數年前なら、もう親分もいないだろうし、德島に歸えっても仕方がないでしょう。 あなた方の歸るところは、日本ではない。平和な天上界で生活するのです。そのためには心の中につくり出した心の曇りを拂い、神の子としての自覺にめざめるることが必要です」
40 수년이라면, 이미 친분도 없을 것이고, 도쿠시마로 돌아가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돌아갈 곳은, 일본이 아니다. 평화로운 천상계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마음에 만들어 낸 마음의 흐림을 제거하고, 신의 자녀로서의 자각에 눈을 뜨는 것이 필요합니다

 


私は彼らに對し、約三時間近くも說いてから、別れを告けると、
「あなたはどこへ歸るのですか」
と、老婆は私に追いすがるように聞くのでした。
저는 그들에 대해서, 약 3시간 가까이나 설명하고 나서, 작별을 고하자,
당신은 어디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라고, 노파는 저에게 뒤쫓아 매달리듯이 묻는 것이었습니다.

 


「私はまだ地上に住んでいます。東京に歸るのです」
「ヘェ―、東京ってどこですか」
「東京とは昔の江戶です」
「私を連れていって下さいませんか」
老婆は目に淚をため、私にせがむのです。
저는 아직 지상에 살고 있습니다.  도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네에!, 도교란 어디입니까?
도쿄란 옛날의 에도입니다
저를 데리고 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노파는 눈물을 흘리며, 저에게 조르는 것입니다.

 


「それはなりません。私の敎えたように、よく反省しなくては、また今の所に戾されてしまいますよ。あなたたちの歸るところは東京ではなく、天上界という明るい光の世界です。心が美しくなれば、必ず迎えに來ます。天國の天使だちが···」
「それまでダメですか。あなたは神社の神さまですか、佛さまですか」
「いやいや私はまだの人間です」

그것은 안 됩니다.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잘 반성하지 않고서는, 또 지금의 자리로 되돌아와 버리고 말지요.
당신들이 돌아갈 곳은 도쿄가 아니라, 천상계라고 하는 밝은 빛의 세계입니다. 마음이 아름답게 되면, 반드시 맞이하려 옵니다. 천국의 천사들이···
그때까지 불가능합니까? 당신은 신사(神社) 의 카미사마(신(神))이십니까? 호토케사마(부처님)이십니까?
결코 아니오 저는 아직은 인간입니다




※신사[神社]
일본(日本) 황실(皇室)의 조상(祖上)이나 일본인(日本人) 고유(固有)의 신앙(信仰) 대상(對象)인 신 또는 국가(國家)에 공로(功勞)가 큰 사람을 신으로서 모신 사당(祠堂)




このとき、私の守護靈の坊さんが姿を現し、うばさくらたちに話を始めたので、谷底の村から、私の體は飛ぶように上空に舞い上がり、彼らから離れてゆきました。
이 때, 저의 수호령인 스님(불공삼장)이 모습을 드려내고, 우바자쿠라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며, 골짜기 밑바닥의 마을에서, 저의 몸은 날아가듯이 상공으로 춤추듯 너울거리며 날아 올라가며, 그들에게서 떨어져 갔습니다.

 


離れてゆくにしたかって、杉の木の綠が次第に明るさを增し、やがて光明に輝く芝生の平地に私の體がふわりと降り立ったのです。
떨어져감에 따라서, 삼목의 신록의 차례로 밝음을 증가하고, 이윽고 광명으로 빛나는 잔디밭의 평지에 저의 몸이 두둥실 내려서는 것입니다.


★"실록"를, "신록"으로 수정합니다.


 

はるか前方上空をみると、黃金色に包まれた光明の世界がひらけています。今見て來た地獄の餓鬼界の暗闇とは比べものにならない美しさでありました。
아득한 전방 상공을 보면, 황금색으로 감싸인 광명의 세계가 열리어 갑니다.  지금 보고 온 지옥의 아귀계의 어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地獄の世界には、晝間というものがありません。年中暗闇の世界で、ランプのわずかばかりの、ぼんやりとした光しか與えられていないのです。自分以外は皆自分の敵であり、いつ自分が他から襲われ、食べられてしまうわかりません。 しかし彼らは食べられ、苦悶の中にあっても、また五體をうけ、生き返り、お互いに食い合いをして、一日として心の安まるときがないのです。苦悶と食い合いが、彼らの生活でありました。しかし、いくら食べても腹は滿腹することなく、,いつも飢えにおびえています。
지옥의 세계에는, 주간이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일년 내내 어둠의 세계이며, 램프의 얼마 안될 뿐인, 희미한 불빛 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 이외는 모두 자신의 적이며, 언제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잡아 먹혀버릴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잡아 먹혀도, 고민 속에 있어도, 또 온몸을 받고, 다시 태어나서, 서로가 서로 잡아먹음을 하며, 하루라도 마음의 안정될 때가 없는 것입니다.  고민과 서로 잡아먹음이, 그들의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배는 잔뜩 부르는 일이 없고, 언제나 굶주림에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지공"의 세계에는, "지옥"으로 수정합니다.




私は黃金色に包まれた、はるか前方の光明の世界に向って步いて行くうちに、自分の肉體に戾り、禪定を解きました。
저는 황금색으로 감싸인, 아득한 전방의 광명의 세계로 향해서 걸어가는 동안에, 제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와서, 선명을 풀었습니다.

 


自分が拔け出しているときの肉體は、主人のいない脫け穀であり、このため、外部からその肉體に向かって聲をかけらても、しばらく時間をかけないと、正常には戾れません。
저 자신의 빠져 나오고 있을 때의 육체는, 주인의 없는 탈곡(알곡)이며, 이 때문에, 외부에서 그 육체를 향해서 소리를 쳐도, 잠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정상으로는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この場合には、はるか遠くの方から人の聲が聞こえ、自分を呼んていました。
이 경우에는, 아득히 먼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며, 저 자신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私はこのようにして、よく禪定中にインドやエジプトの上空から風景をながめたり、しぶきがかかる海上をものすごいスピ―ドで飛んで行ったりします。
저는 이렇게 해서, 자주 선정 중에 인도나 이집트의 상공에서 풍경을 조망하거나, 물보라가 치는 해상을 매우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거나 합니다.


 

肉體の自分がそのまま經驗しているのと全く同じであり、したがって金のかからない旅行の樂しみを味わうことが出來るといえるでしょう。
육체의 자신이 그대로 경험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돈이 들지 않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天上界などに行く場合は、本堂に禪定三昧の境地を、心ゆくまで味わうことがでます。
천상계 등으로 가는 경우는, 정말로 선정삼매의 경지를, 마음껏 맛 볼 수가 있습니다.

 


これは決して夢物語ではなくて、心と生活を正道に合わせて每日を送るならば、誰でも體驗できるものであり、私の獨占物ではありません。
이것은 결코 꿈 같은 덧없는 이야기가 아니며, 마음과 생활을 정도에 맞춰 매일을 보낸다고 하면, 누구든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며, 저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page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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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1장 잘못된 신앙」의 세  번 째, 후광(오로라)과 빙의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一章 間違った信仰」[ある地獄界への旅] page 1~19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05 10:12








後光(オ―ラ)と憑依

후광(오로라)와 빙의


 


私たちの肉體舟は原子細胞集團によって構成されこの地上界の環境に適應できるように出來ています

우리들의 육체 배는 원자세포집단으로 구성되어, 이 지상계의 환경에 적응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正道を生活の指針として生活している人びとはこの原子體の肉體舟は薄い黃金色の光によって包まれてます

정도를 생활의 지침으로 해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원자체의 육체 배는 얇은 황금색의 빛으로 감싸입니다.

 


正道の生活は神の光に滿たされているのです

정도의 생활은, 신의 빛으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神の光は原子體と次元の異なる光子體ともいうべき靈體に與えられています正道の生活とは心に曇りのない生活であり曇りがないから光が與えられ安らぎの生活が自然に行なえるようになってゆきます

신의 빛은,

원자체와 차원의 다른 광자체라고도 말해야 할 영체(靈體)에 주어져 있습니다.  정도의 생활이란 마음에 흐림이 없는 생활이며, 흐림이 없으므로 빛이 주어지고, 평온함(안정)의 생활이 자연히 행할 수 있도록 되어 갑니다.

 


後光あるいはオ―ラというものは肉體と光子體から發散している光のことです

후광, 혹은 오로라라고 하는 것은, 육체와 광자체로부터 발산하고 있는 빛의 것입니다.

 


その大きさはその人心の廣さに比例しています

그 크기는, 그 사람의 넓이에 비례하고 있습니다.

 


心の大きさは轉生輪廻の過程において體驗された心の廣さと現在肉體舟に乘って生活している人の心と行いによって定まってくろのです

마음의 크기는, 전생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체험된 마음의 넓이와, 현재, 육체 배를 타고 생활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과 행위에 의해서 정해져 오는 것입니다.

 


しかし過去世において偉大なる光の大指導靈であっても現世において正道を物差しとした生活を怠ったらば後光の量と大きさは小さくなってしまいます

하지만, 과거세에 있어서, 위대한 빛의 대지도령이라 해도,

현세에 있어서 정도를 척도로 한 생활을 게을리했다면, 후광의 량과 크기는 작아져 버리고 맙니다.

 


光の中には桃色赤色というように心の狀態によって後光の色がちがってきます

빛 가운데에는, 자색(보라색), 복숭아빛(분홍색), 적색(붉은빛)이라고 하는 것처럼,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후광이 색이 달라져 옵니다.

 


怒りの心は炎に包まれ赤い光が體から發散しています

분노의 마음은 불길에 싸여, 붉은 빛이 몸에서 발산하고 있습니다.


 

愚痴の心は灰色ががった暗い色が出ています

푸념의 마음은, 회색이 합쳐진 어두운 색이 나오고 있습니다.


 

戀愛に心を亂し、理性がかないときはピンク色が發散しています

연애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이성(理性)이 작용하지 않을 때는, 핑크색이 발산하고 있습니다.


 

人を呪い野心や欲望に燃えているときは黑色かねずみ色に變わっています

남을 저주하고, 야심이나 욕망에 불타고 있을 때는, 검정색이든지 쥐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これらは心をスモッグでおおい神の光をさえぎるため心に毒をつくり肉體的にも不調和になる原因を宿すことになります

이들은 마음을 스모그로 덮고, 신의 빛을 가로막기 때문에, 마음에 독을 만들고,

육체적으로도 부조화가 되는 원인을 품게 됩니다.


 

こうしたときは正しい判斷は出來ないものです

이러한 때는, 올바른 판단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一秒一秒の心の動きに後光の色彩とその量が變化するそれは全く大自然の天候と同じように變化してゆくものです

일초일초의 마음의 작용으로, 후광의 색채와 그 량이 변화한다.  그것은 완전히,

대자연의 날씨와 마찬가지로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心の美しい人びとが心を調和しているときや正しい心の敎えを說いているときは過去世のその人の顔と現世の顔が寫眞の二重寫しのようになり光子體からは體全體にわたって光明に滿たされ 後光が放射狀に發散されています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마음을 조화하고 있을 때나, 올바른 마음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을 때는, 과거세의 그 사람의 얼굴과, 현세의 얼굴이 사진의 이중노출(서로 다른 두 개의 화면이 단면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상태)처럼 되어, 광자체에서는 몸 전체로 미치고, 광명으로 가득 채워지고, 후광이 중앙의 한 점에서 사방으로 거미줄이나 바퀴살처럼 뻗어 나간 모양으로 발산되고 있습니다.

 

 

 

※그림 설명 맨 오른쪽은,  영계(靈界),  가운데는 신계(神界),  왼쪽은 보살, 여래계(菩薩, 如來界)

page 41



 

圖の通り後光は次元の異なった世界の段階を反映して發散されていますがそれらの後光はそのまま本人の死後に行く世界をも表しているといえます

그림과 같이, 후광은 차원이 다른 세계의 단계를 반영하고 발산되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후광은, 그대로,

본인의 사후에 가는 세계를 또한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光の量が小さいと上段階に行くことは出來ないということです

빛의 량이 적으면 상단계로 갈 수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これらの後光は人生において自分自身がつくり出した心の調和度によるものであり決して他人のせいではありません

이들의 후광은, 인생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마음의 조화도에 의한 것이며, 결코 타인의 탓은 

아닙니다.


 

人類は皆神の子すべて平等であります心の廣さの段階は,自分自身の責任であるといえましょう怒りそしりねたみ愚痴など不平不滿を抱いていると必ず肉體的にも不調和な現象を現わすが間違った信仰をしている者たちにもその心と同じ性格の地獄靈がその人の光子體に憑依しています

인류는 모두 신의 자녀이며, 전부 평등합니다.  마음의 넓이의 단계는, 자기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노(노여움), 비방(비난), 질투, 푸념 등 불평불만을 품고 있으면, 반드시 육체적으로도 부조화한 현상을 드려내지만, 잘못된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마음과 같은 성격의 지옥령이, 그 사람의 광자체에 빙의하고 있습니다.


 

地獄靈が憑依すると地獄靈の死因となったその病狀が彼憑依者にも現れます

지옥령이 빙의하면, 지옥령의 죽은 원인이 된 그 병의 상태가 그 빙의된 사람에게도 나타납니다.


 

たとえば十人が十人そうなるとは限りませんがおおむねそういう傾向を帶びてきます人によっては地獄靈が結核で死んでも肉體的にいちばん弱いところが病氣という形で現われる場合もあります

예를 들면, 열명이면 열명, 그렇게 된다고는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대체로, 그러한 경향을 띠어 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옥령이 결핵으로 죽더라도, 육체적으로 가장 약한 부위가 질병이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この点を逆にようと彼らはその人の肉體的に最も不調和なところに憑依するといえましょう

이 점을 거꾸로 말하면, 그들은, 그 사람의 육체적으로 가장 부조화한 부위에 빙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憑依する地獄靈のほとんどは嚴しい地獄界の生活に耐えられず地上界に執着を持っている者たちです彼らの大半は死んだのときの年月ぐらいしか記憶がない者や自分の生前の名前も忘れいわゆる心喪失の旅路を續けている者たちなのです

빙의하는 지옥령의 대부분은, 엄격한 지옥계의 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지상계에 집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죽을 당시의 년월 정도 밖에 기억이 없는 사람이나, 자신의 생전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소위, 마음의 상실의 여로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一方憑依するものは地獄靈(人間)とはかぎらず地獄の蛇や狐たちもおります

한편, 빙의하는 것은 반드시 지옥령(인간)만이라고는 할 수 없고, 지옥의 뱀이나 여우들도 있습니다.

 


これらは菩薩や天使たちの姿に變化(へんげ)して見せることがありますが彼らははんの二~三分位しか變化することが出來ないし變化しても彼らの後光の色は靑光りするような不調和な色彩です

이들은 보살이나 천사들의 모습으로 변화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들은,

한 2~3분 정도밖에 변화할 수가 없고, 변화해도,

그들의 후광의 색은 푸른 빛과 같은 부조화한 색채입니다.


 

他力信仰をしている人びとはその姿をよく見ることがあります

타력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잘 볼 수가 있습니다.


 

そのために彼らのそうした變化した姿を見て

神さまだと思い如來だ菩薩だと判斷することは非常に危險なことです

이 때문에, 그들의 그러한 변화한 모습을 보고,

신령님이라고 생각하고, 여래다, 보살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上段階の大指導靈や光の天使たちの出て來る場合は肉體を持つ地上界の人びとの心が調和されていない限りその姿を見せることはないしだいいち盲目な人間をおどろかすようなことは決してしないのです

상단계의 대지도령이나, 하늘의 천사들의 나오는 경우는,

육체를 갖고 있는 지상계의 사람들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지 않는 한, 그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고, 첫째로 맹목적인, 인간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神がかりになって體を上下に動かしたり合掌している手先が蛇行すろうよな場合はすべて動物靈がその人を支配しているのです

신내림이 되어, 몸을 상하로 움직이거나, 합장을 하고 있는 손끝이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 나아가는 경우는, 전부, 동물령이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な人びとはまことに危險極まりなく健康にも日常生活の上においても支障が起きてきます

이와 같은 사람들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고, 건강에도, 일상생활 상에 있어서도, 지장이 일어납니다.

 


またこうした動物靈たちは肉體先祖が浮かばれていないからお祭りをして供養しろとか多額の金品を要求したりします

또 이러한 동물령들은, 육체 선조가 성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고 공양하라든가,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거나 합니다.


 

動物靈が憑依している者は本能的欲求が强くしたがって憑依されている行者は金とか地位とか色欲にほんろうされます

동물령이 빙의하고 있는 사람은, 본능적 욕구가 강하고, 따라서, 빙의되어 있는 행자는, 돈이라든가, 지위라든가, 색욕에 농락당합니다.

 


こうした行者や拜み屋 敎祖と稱する者にだまされてはなりません

이러한 행자나 신을 모시는 집, 교조라 일컫는 사람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天使や上段階の指導靈は、決してお金などは要求しないしあの世に日本圓やドルを持っていっても使い物にならないことを知っています

천사나 상단계의 지도령은, 결코 돈 등은 요구하지 않고, 저 세상에 일본엔화나,

달러를 가지고 있어도 쓸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金とか地位は欲深い人間が欲しいのです

돈이라든가 지위는, 욕심이 많은 인간이 탐내는 것입니다.


 

そしてあの世の魔王,動物靈たちはそうした使い物にならないものを欲しますこれはこうした地獄靈たちは地上界の欲望を持ったままあの世にいるからでありその執着が容易に消えないために地獄に墮ちているわけなのです

그리고, 저 세상의 마왕, 동물령들은,

그러한 쓸 만한 것이 못 되는 것을 탐냅니다.  이것은 이러한 지옥령들은, 지상계의 욕망을 가진 채로,

저 세상에 있기 때문이며, 그 집착이 용이하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地獄界とは自分本位欲望の虜(とりこ)となった執着心がつくり出した世界なのです

지옥계란, 자기본위, 욕망의 포로가 된 집착심이 만들어 낸 세계인 것입니다.

 


心の面からいうとそれは小さな心を意味本來の丸く大きなしふくよかない心を欲望という想念でがんじがらねにしばりつけてしまったかたくなな心を意味します

마음의 면때문이라고 하면, 그것은 작은 마음을 의미하고, 본래의, 둥글고 크고, 풍만하지 않은 마음을 욕망이라고 하는 상념이며, 칭칭 얽어매어 동여매버린, 고집스러운(완고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本來自由な心を我欲でしばれば小さくならざるを得ません

본래 자유로룬 마음을, 아욕으로 붙들어 매면, 작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日本の八白萬(やおよろず)の神神といわれ神のなかには天上界の光の天使や天使もいます

일본의, 팔백만의 신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신 중에는, 천상계의 빛의 천사나 천사도 있습니다.

 


しかしこうした神はゴッドの神ではなく人間の〃上〃(かみ)というべきなのです

하지만 이러한 신(神)은, God[(서양의) 신. 하느님]의 신(神)이 아니라 인간의 〃上(위쪽)〃(신. 하느님. 신령. 특히, 부처에 대한 神道의 神[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것입니다.

 

 

そして彼らにも必ず後光が出ているはずです

그리고 그들에게도, 반드시 후광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의 사진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page 45 <핸드폰으로 찍어서 올렸습니다>

남자 뒤 왼쪽 무서운 얼굴은, 지옥령, 어깨에 올라탄 동물은, 지옥의 여우이며

증상은, 어깨가 뻐근하다..

남자의 허리를 감은 동물은, 지옥의 뱀이며, 허리가 아프다.

다리에 감긴 것은, 지옥의 뱀이며, 증상은 관절이 아프고, 다리가 저리다 입니다.

머리에 감은 동물은, 지옥의 뱀이며, 노이로제(신경쇠약증)으로 머리가 아프다. 란 설명입니다.

 



後光が出ていないとすれば、地獄靈たちが變化(へんげ)して名乘っているのですから注意が肝要です。
動物靈が支配している場合は、座ったまま一~二メ―トルも空中を飛びはねることもあります。
彼らは人を驚かすところに特長があるといえます。したがってそのようなときは、

すべて地獄靈の仕業と見て差し支えありません。

후광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지옥령들이 변화해서 자신이 그 당사자인 것을 자청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동물령이 지배하고 있는 경우는, 앉은 채로 1~2미터나 공중을 날거나 뛰어오르는 일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에 특색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우에는, 전부 지옥령이 소행(짓)이라고 봐도 지장이 없습니다.

 

 

神がかりや不自然な言動をする場合は必ず動物靈が支配しています

신내림이나, 부자연한 언동을 하는 경우는, 반드시 동물령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신들림. 귀신 붙음[빙의(憑依)].= 心しんれいが憑依ひょういする 심령이 씌다. (심령이 빙의하다)

※신내림= 신내린 사람 (神がかり)

 

 

不動明王だの龍王だの稻荷大明神と名乘って出て來る場合も動物靈がほとんどでありまことしやかに振る舞うので特に氣をつけなくてはなりません

부동명왕(不動明王)이라든가, 용왕(龍王)이라든가, 도하대명신(이나리대명신稻荷大明神)이라고 자칭하며 나오는 경우도 동물령(動物靈)이 대부분이며, 아주 그럴싸하게 행동하는 것으로써 특히 주의(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豫言する病氣を治すそれだけで信じてはいけません

예언한다, 병을 치료한다, 그것 만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また罰があたると脅迫するようなことがあればこれもまた地獄靈です

벌을 받는다라고 협박하는 일이 있으면, 그것도 역시 지옥령입니다.

 


いちばん大事なことは神ががっている人間の品性や言動をよく觀察することであり正道を心の物差しとして生活しているかどうかが問題なのです

가장 중대(중요)한 일은, 신내리고 있는 인간의 품성이나 언동을 잘 관찰하는 일이며,

정도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地獄靈が憑依するとおごり怒りそしりねたみ欲望の渦の中にひきすられるため心は常に動搖し不安定です

지옥령이 빙의하면, (재능·지위·권세등을) 뽐내며 남을 얕보고(거만[교만]하게 굴고, 사치하고), 화를 내고, 비방(비난)하고, 질투하고,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질질 끌려다니기 때문에, 마음은 동요하고, 불안정합니다.

 

 

いくら口先でうまいことをいってもその考えること行爲に大きな矛盾がでてきます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을 할지라도, 그 생각하는 것, 행위에 큰 모순이 되어 옵니다.

 


不自然な靈力や脅迫に合うと人はつい盲信狂信になりがちです

부자연한 영력(靈力) 협박을 당하면, 사람은 무심코 맹신, 광신이 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病氣や不幸が癒されたという場合は特にそうなってゆくようです

질병이나 불행이 치유되었다고 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게 되어 가는 모양입니다.


 

正しい判斷が出來ずに拜んだり祈ったりしていると動物靈や地獄靈に憑依されます

올바른 판단이 되지 않고, 절을 하거나, 기도하거나 하고 있으면, 동물령이나 지옥령에게 빙의됩니다.

 


どうして憑依されるかというと汚れた心を持ったままで强い願望を抱くからです

어째서 빙의되는가 하면, 더러워진 마음을 가진 채로 강한 바람(소원)을 품기 때문입니다.


 

家內安定商賣繁盛は誰しも願うところですしかしそうした形を整える前に家庭內の調和なり努力なり工夫が必要でしょう盲信狂信はこうした過程を踏まないて目的のみを追い求めようとしますいうならば不調和の心のままで自己滿足を求めます

가내안정, 장사번성은 누구든지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형태를 정하기 전에, 가정안의 조화되고, 노력하고, 학문이나 기술을 닦는 일이 필요하겠지요.  맹신, 광신은 이러한 과정을 밟지 않고서, 목적만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부조화한 마음 그대로 자기만족을 구합니다.


 

願望の質的內容は何であれ人が何かを願うとそこには必ず念の作用がきますそうしてその念は自分に返ってきます

바람(소망)의 질적 내용은 무엇이며, 사람이 무엇을 바란다면, 거기에 반드시,

생각의 작용이 작용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생각은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惡を思えば惡が善を思えば善が返ってくるように···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이, 악을 생각하면 악이 되돌아 오는 것처럼···

 


また念の作用はこの世だけではなくあの世にも作用してゆきます

또 생각의 작용은, 이 세상뿐만이 아니라, 저 세상에도 작용해 갑니다.

 


不調和な心のままでまちがった願望を抱くとあの世の地獄界にそのまま通じてしまうことになります

부조화한 마음 그대로, 잘못된 바람(소망)을 품으면, 저 세상의 지옥계에 그대로 통해 버리게 됩니다.

 


動物靈や地獄靈はいわばその不調和な波動に乘ってその人の心を支配してくるようになるのです

동물령이나 지옥령은, 말하자면 그 부조화한 파동을 타고,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해 오게 되는 것입니다.


 

病氣を癒してもらうために祈ったり拜んではみたもののますます病氣は惡化してゆきます

질병을 치유받기 위해서 기도하거나, 절한 것 자체가, 더욱더 질병은 악화해 갑니다.

 


敎祖とやり一度は病氣を治してもらった(?)こんどは別な病氣が出てくると信仰が足りないといわれさらに狂信に走ってゆくのです

교조라든지 한 번은 질병을 치료 받았다(?)가, 이번은 다른 질병이 나오면, 신앙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더 한층 광신으로 달려 가는 것입니다.


 

これは皆憑依による現象であり目的のみを求めた不幸なケスといえましょう

이것은 모두, 빙의에 의한 현상이며, 목적만을 구한 불행한 케이스(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age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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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1장 잘못된 신앙」의 세 번 째, 잘못된 신앙 (그 사례 1)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心の指針』「第一章 間違った信仰」[後光()と憑依] page 39~48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09 20:12






間違った信仰  (その一)

잘못된 신앙 (그 사례 1)



見えない世界への憧れ、それを知ろうとして昔から、さまざまな行を求め、あるいは信仰に入って行く者が多いようです。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동경, 그것을 알아내려고 옛날부터, 여러 가지의 수행을 찾고, 혹은 신앙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たとえば、山中に入って嚴しい肉體行をする。神社、佛閣で祝詞(のりと)をあげたり、經文を讀誦(どぐじゆ)したりする···。
예를 들면, 산속에 들어가서 엄격한 육체수행을 한다.  신사((神社)신을 제사 지내는 곳, 또는 그 건물), 불각(불각(佛閣), 불당(佛堂))에서 축사(축복하는 말, 신을 찬양하는 말)를 올리거나, 경문(종교의 경전의 문장)을 독송하거나 한다···。

 


信仰に對する心の동きは、病氣、貧乏、家庭的な惱みなどから他力信仰にはいる者もあれば、靈能力を身につけ、人びとにその力を與えてゆきたいとする者もいましょう。
신앙에 대한 마음의 작용은, 질병, 궁핍(가난), 가정적인 번뇌(괴로움)등에서 타력신앙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으면, 영적 능력을 익히고,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제공해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現代宗敎の多くは、その目的も、人間の欲望を滿たそうとして生まれてきたといってもいいでしょう。
현대종교의 대부분은, 목적도,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탄생되어 왔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つまり、現代宗敎のほとんどは、現象利益という欲望を軸にして動いているからです。
즉, 현대종교의 대부분은, 현상이익이라고 하는 욕망을 축으로 해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行者の末路の多くが哀れをとどめ、あの世の生活はまず十人が十人、地獄で苦役にあえいでいる事實を知るならば、信仰の誤りほど 恐ろしいものはないといえましょう。
수행을 하는 수도자의 말로(末路)의 대부분이 비참함을 남기고, 저 세상의 생활은 우선 10명이면 10명, 지옥에서 고역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신앙의 잘못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最近、私の著書、『心の發見』、『原說·般若心經』などを緣として、自己の靈能力を見せようとする者、三十數年も肉體舟の嚴しい荒行に耐えて來たという行者、神さまがなんでも敎えてくれるという靈媒、憑依靈をお淨めするという人間の創った御靈魂(おみたま)とか稱する物をつけてくる者。
최근, 저의 저서, 『마음의 발견』, 『원설·반야심경』 등을 인연으로 해서, 자기의 영적 능력을 보이려고 하는 사람, 30수년이나 육체 배의 엄격한 괴로움을 참아내며 모진 수행을 해 왔다고 하는 사람, 신령님이 무엇이든지 가르쳐 주신다고 하는 영매, 빙의령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는 인간의 창조한 어영혼御靈魂(おみたま)이라든가 칭하는 물건(무엇인가)을 붙이고 오는 사람.

 


▼<어렵네요>▼
※物をつける 물건(무엇인가)을 붙이다
※物に憑かれる무엇에 홀리다(귀신들리다)



そうかと思うと、信仰をやめると死ぬといわれ、ある敎團から逃げて來た信者、へ理屈をのべる宗敎ゴロ。
그런가 생각하면, 신앙을 그만두면 죽는다고 말을 들어서, 어느 교단에서 도망쳐 온 신자, 
이치에 닿지 않는 시시한 소리를 지껄이는 종교깡패.


 

ともかぐ、いろいろな人が訪れてきます。
어쨌든, 다양한 사람이 방문해 왔습니다.

 


とくに講演會の際は、宗敎マニアのような小天狗、大天狗たちが全國から集まってきます。
특히 강연회 때는, 종교마니아와 같은 작은 지혜의 스님(小天狗), 높은 지혜의 스님(大天狗) 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왔습니다.

 



一九七二年八月栃木縣(とちぎけん)古峯(ふるみね)での硏修會のときです。
1972년 8월 상목현(토찌기켕) 의 고봉(후루미네)의 연수회 당시입니다.


 

九州から參加したN醫師は、長い年月神道を學び、おばらいに行く神社の氏神さまが、N醫師の體を通して出て來るというのです。
규슈(九州)에서 참가한 N의사는, 오랜 세월 신도(神道)를 배우고, 신사에서 액막이 행사에 가는 신사((神社)신을 제사 지내는 곳, 또는 그 건물)의 씨족신님이, N의사의 몸을 통해서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氏神さまが出て來るというわりには肉體は病的で、後光(オ―ラ―)が非常に暗い。
씨족신님이 나온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육체는 병적으로, 후광(오로라)가 상당히 어둡다.

 


私はN醫師の前に行き、心の調和をはかるよう光を送りました。
저는 N의사의 앞으로 가서, 마음의 조화를 도모하기 위해 빛을 보냈습니다.

 


數百人の參加者は、私の動作にかたずをのんで注目していました。
수 백 명의 참가자는, 저의 동작에 마른 침을 삼키며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一~二分位すぎた頃、N醫師の合掌している手が、上下にふるえ出してきました。
1~2분 정도 지났을 무렵, N의사가 합장하고 있는 손이, 상하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N醫師の後には神と稱する地獄靈がはっきり見えます。
N의사의 뒤에는 신이라고 칭하는 지옥령이 분명히 보입니다.

 


私はN醫師の精神統一を休ませて、
「Nさん、あなたは非常に肩が張り、いつも頭痛持ちのようですね。それからときどき、心臟が動悸すろはずです」と質問した。するとN醫師は、
「實は二十數年來、言われた通りの持病がありますが、いつも神さまが守っているからと申されるので安心しているんです」
と、いいます。
저는 N의사의 정신통일을 중단하고,
N씨, 당신은 상당히 어깨가 뻣뻣하고, 항상 두통을 갖고 있군요.  그것 때문에 간혹, 심장이 두근거릴 것입니다」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N의사는,
실은 20 수년을 지나서 지금까지 이르는 동안, 말씀하신 대로 지병이 있습니다만, 항상 신령님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듣고 있어서 안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Nさん、あなたはこの硏修會に來る前の日に、硏修會に參加するのが、何か恐いような感じがしましたね。そして、あなたを守っておられる神さまという方は、行かない方がよいといったでしょう。
N씨, 당신은 이 연수회에 오기 전 날에, 연수회에 참가하는 것이, 뭔가 두려운 듯한 느낌이 들었군요. 그리고, 당신을 지켜주고 계시는 신령이라고 하는 분은, 가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しかしあなたは、 もっと靈感の力をつけたいと思って、强引に來てしまいましたね」
하지만 당신은, 좀더 영감의 기운을 돋구고 싶다고 생각해서, 반대를 무릎쓰고 억지로 와 버리고 말았군요


 

「おずかしいことですが私は醫者です。何とか神の力を借りて、多くの病人を治したいのです。そのために、はるばる九州から參りました。よろしくお願い致します」

어려운 일입니다만, 저는 의사입니다.  무엇이든지 신의 힘을 빌려서,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때문에, 거리나 시간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규슈에서 참가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病める人を救ってやりたい、という慈悲の心があるために、今憑依している氏神を名乘っている地獄靈は、その問題に手も足も出ないのだなあ、と私は思いました。
병든 사람을 돕고 싶다, 라고 하는 자비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 빙의하고 있는 자신이 씨족신이라고 자청하고 있는 지옥령은, 그 문제에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しかしN醫師の體を通して、この地獄靈を出せば、一時、意識を持ってゆかれる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
하지만 N의사의 몸을 통해서, 이 지옥령을 나오게 하면, 잠깐, 의식을 갖고 가버릴 것은 틀림없습니다.

 


その理由は、憑依している地獄靈は、本人の肉體と同體になっている光子體(靈體)に密着しているからです。
그 이유는, 빙의하고 있는 지옥령은, 본인의 육체와 동체가 되어 있는 광자체(영체)에 밀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ちょうど、封筒にはった切手をはがそうとするときに、切手に、封筒の紙が一緖についてはがれてしまうのと同じ理屈なのです。肉體を持っている人の心の調和度に比例した光子量が、地獄靈に持ってゆかれてしまいます。
마치, 봉투에 붙은 우표를 떼어내려고 할 때에, 우표에, 봉투의 종이가 동시에 붙어서 뜯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한 광자량이, 지옥령에게 가지고 가 버리고 맙니다.

 


そのため、呼吸困難をひき起こすことがあります。
때문에, 호흡곤란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 있습니다.


 

正道を、心と行いの物差しにして生活している人びとには、地獄靈は近づくことは出來ません。
정도를, 마음과 행위의 척도로 해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령은 다가올 수는 없습니다.

 


しかし、怒り、そしり、ねたみ、愚癡、欲望など、暗い心の曇りを抱いていると、それと同類の地獄靈が憑いてきます。
하지만, 분노, 비방, 질투, 푸념, 욕망 등, 어두운 마음의 흐림을 품고 있으면, 그것과 같은 부류의 지옥령이 빙의해 옵니다.


 

人類の幸せ、慈悲の心を我がうちに生じせしめたいとして、神社に詣でることは決して惡いことではないが、人間の本性を忘れ、自力と他力の區分が出來ないと、問題が生じてきます。
인류의 행복, 자비의 마음을 내 안에 일으키고 싶다고 해서, 사와 불각(불당)에 참배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자력과 타력의 구분을 할 수 없으면, 문제가 발생해 옵니다.


 

「どうです、氏神さまと話してみましょうか」
어떻습니까, 씨족신과 이야기해 보겠습니까?

 


「今、私は體が汚れていますので、みそぎをやって、心を落ちつけない限り、氏神さまは出て來ません」
지금, 저는 몸이 더러워져 있어서, (죄·부정을 씻기 위해) 냇물·강물로 몸을 씻고, 마음을 안정시키지 않는 한, 씨족신은 나오지 않습니다


 

しかし、氏神は見えているし、その地獄靈はもうイライラしており、早くこの場を切り拔けたい氣持でした。
하지만, 씨족신은 보이고 있고, 그 지옥령은 벌써 안절부절못하고 있고, 빨리 이 장소를 뚫고 나가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Nさん、みそぎとはどういうことですか」
私は、あえてたずねてみました。
N씨, (죄·부정을 씻기 위해) 냇물·강물로 몸을 씻음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저는, 굳이 물어 보았습니다.


 

「塵ほこりにまみれている肉體を水で淨め、口の中を水で淨めてからでないと、氏神さまに申し譯ないからです」
「Nさん、みそぎの本当の意味は、心の中を、丸く大きく豊かにして、心の曇りを拂うことが大事なのです。體は人生航路の乘り舟で、いくら體の垢を落としても、心の垢である罪、汚れを除かなければ淸淨にはならないのではないですか」
Nさんは納得がいかないようでした。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는 육체를 물로 깨끗하게 하고, 입안을 물로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씨족신님에게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N씨, (죄·부정을 씻기 위해) 냇물·강물로 몸을 씻음의 진실한 의미는, 마음 속을, 둥글고 크고 풍요롭게 해서, 마음의 흐림을 털어내는 일이 중대사인 것입니다.  몸은 인생항로의 승선이며, 아무리 몸의 때를 벗겨내도(씻어도), 마음의 때인 죄, 더러움을 제거하지 않으면 청정으로는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N씨는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청정[淸淨]
1 맑고 깨끗함.2 맑고 깨끗하게 함.3 나쁜 짓으로 지은 허물이나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나 깨끗함.

 


★"마음 속을, 둥글고 크고 풍요롭게 해서(心の中を、丸く大きく豊かにして)"에서의,

마음속을, 둥글고 크고 누긋하게(관대하게) 해서, 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私の著書を一度は讀んでいますが、一度ぐらいで理解できる人はマレであります。しかも正法は理解だけでは駄目です。それを實踐してもらわないと、體驗として知ることは出來ません。
저의 저서를 한 번은 읽고 계십니다만, 한 번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법은 이해만으로는 허사입니다. 그것을 실천하고 계시지 않으면, 체험으로서 알 수는 없습니다.


 

この方は、舊來のろう習を破れないでいるのです。
이 분은, 오래 내려온 누습(나쁜 습관)을 타파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私は氏神と稱する靈に、心の中でNさんの肉體を支配するようにいいました。
저는 씨족신이라고 칭하는 혼령에게, 마음 속으로 N씨의 육체를 지배하도록 말했습니다.


 

Nさんは自然に手を合掌させました。すると、その手は上下に運動を始めました。地獄靈が完全に肉體を支配しました。
N씨는 자연히 손을 합장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손은 상하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옥령이 완전히 육체를 지배했습니다.

 


「あなたは誰ですか」
私は地獄靈にききました。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는 지옥령에게 물었습니다.

 


「予は、日向の國...郡...の氏神である。今は、御前にまかりでて、この者が見苦しい態度をお見せし、お許し願いたい」

深深と頭を疊にすりつけ、あいさつをするのでした。
나는, 일향의 나라...군...의 씨족신이다.  지금은, 어전을 물러나서, 이 사람이 볼꼴 사나운 태도를 보여드려서,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깊숙이 고개를 다다미에 비벼대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비대며를, 비벼대며로 수정합니다.


 

「あなたは氏神と名乘っているが、それに間違いないか」
「はい、間違いありません」
당신은 씨족신이라고 자신이 이름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것에 틀림이 없는가?
네, 틀림없습니다


 

地獄靈は昔の武士の姿をしています。
지옥령은 옛날의 무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多くの人とびとが見ているので、本当のことがいえないのです。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진실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かわいそうにも思えましたが、このまま見過してはN醫師やその周圍の人びとを誤魔化し續け、不幸にするだけです。
불쌍하게도 생각되었지만, 이대로 보고도 못 본체 해서는 N의사나 그 주위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본심을 알아차리지 못 하도록, 말을 슬쩍 돌리거나,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그 자리를 얼버무려 넘기고, 불행하게 할 뿐입니다.

 

 

「氏神、そなたは誰の命令でその役目を果たしているのか」
「はいはい恐れいりました」
地獄靈は平身低頭してしまった。
씨족신, 당신은 누구의 명령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
네네, 두려웠습니다
지옥령은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 버렸습니다.


 

「それなら本当のことをいいなさい」
「はい、私は島津公の家臣でございます」
「そうですか、あなたは地獄で迷って靈ですね」
「はい、私は救われたいのでございます。この者には氏神といって、この者がお詣りに來る神社で憑きました。どうかお許し下さい」
「あなたも自分の心に噓をついていることが、苦しかったでしょう。何も見えないこのNさんに憑いているときは、いつも氏神だと僞っていたが、苦しかったのではないですか」
「はい...」
武士はうなだれ、何も語る元氣がえなくなってしまった。
그렇다면 진실한 것을 말하세요
네, 저는 시마즈공의 가신입니다
그렇습니까, 당신은 지옥에서 방황하고 있는 혼령이군요
네, 저는 구원받고 싶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씨족신이라고 말하고, 이 사람이 참배하려 오는 신사(神社)에서 빙의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도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N씨에게 빙의하고 있을 때는, 항상 씨족신이라고 속이고 있었지만, 괴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까?
네...

 


※도진공(島津公)에 대한 설명.
 しまづ‐いえひさ〔‐いへひさ〕【島津家久】
[1576~1638]安土桃山・江戸初期の武将。薩摩藩主。文禄の役・慶長の役に従軍。慶長14年(1609)琉球を平定して薩摩に帰属させた。
여기 기록에 의하면 시마즈공은 에도시대의 무장이네요. ^^
※출처: http://dic.search.yahoo.co.jp/search?ei=UTF-8&p=%E5%B3%B6%E6%B4%A5

 

 


武士はうなだれ,何も語る元氣さえなくなってしまった.
무사는 (실망·슬픔·수치 등으로)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뭐라고 말할 기운조차 없어져 버렸습니다.

 


彼は神社の周邊で戰死した自縛靈(地獄靈ともいう)の一人であり、こうした迷える靈はいたるところにいます。
그는 신사의 주변에서 전사한 자박령(지옥령이라고 한다)의 한 명이며, 이러한 방황하는 혼령은 가는 곳마다 있습니다.



★★자박령(自縛靈)(지옥령(地獄靈)이라고 한다), 같은 다른 말로는, 지박령(地縛靈)이라고도 합니다. 


 


「あなたの名前は...」
「それはご堪弁下さい。武士の情です」
まだこの男には、自己保存の心がありました。
당신의 이름은...
그것은 용서해 주십시오. 무사의 마음입니다

역시 이 남자에게는, 자기보존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번역에, 누락된 부분을 올립니다. 



 

心を裸にすることが出來ないために、自己保存という執着が心に曇りをつくり出しているのです。
마음을 적나라하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보존이라고 하는 집착이 마음에 흐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天上界に歸っている者なら、必ず名乘り出るものですが、地獄靈で惡いことばかりして、人びのに氏神だとウソをついてきた男です。何百數年もの間、地獄界にいて、そこから逃れて地上で自縛靈になっているため、恥ずかしいのでしょう。
천상계로 돌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이 이름을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만, 지옥령으로 나쁜 짓만 해서, 사람들에게 씨족신이라고 거짓말을 해 온 남자입니다.  몇 백 수년 동안이나, 지옥계에 있고, 거기에서 도망쳐서 지상에서 자박령이 되어 있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本來なら、この地獄靈に今までの間違いを反省させて、正道の心の在り方を敎えてやればよいのですが、時間がないのでそれは出來ません。
본래라면, 이 지옥령에게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시켜서, 정도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면 좋은 것입니다만, 시간이 없어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また、このような地獄靈に長時間にわたって支配されていると、Nさんの肉體も苦しいからであります。
또, 이와 같은 지옥령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지배되어 있으면, N씨의 육체도 괴롭기 때문입니다.

 


「あなたは二度とこの人に憑いてはいけません。さあ、この體から外に出なさい」
こういうと、地獄靈は、Nさんの體から出ている、Nさんは意識を失い、後に倒れてしまいました。
당신은 두 번 다시 이 사람에게 빙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이 몸에서 밖으로 나가세요
이렇게 말하면, 지옥령은, N시의 몸에서 나오고 있다, N씨는 의식을 잃고, 뒤로 넘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幸いなことに、Nさんの後方に支えている者たちがいたので、後頭部を强打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Nさんが自分の意識に戾ったのは三十分經ってからで、ようよう自分の力で座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다행한 일로, N시의 후방에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던 것으로, 후두부를 강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N씨가 자신이 의식으로 되돌아 온 것은 30분 경과하고 나서이며, 가까스로 자신의 힘으로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意識が回復してから、私はたずねました。
의식이 회복되고 나서, 저는 물었습니다.


 

「Nさんどうですか、大丈夫ですか」
「はい、體に背負っている重荷をおろしたようで、非常に輕くなりました」
「頭がすっかりして氣持がいいですね」
N씨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네, 몸에 짐을 지고 있는 짐을 부린 것처럼, 상당히 가벼워졌습니다
머리가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으시군요

 


私は氏神のことは何もいいませんでした。
저는 씨족신의 일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ここでいちばん大事なことは、Nさん自身が正道を實踐することであり、神さまに祈ることが信心深いという誤りに氣づいて欲しい、ということです。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N씨 자신이 정도(正道)를 실천하는 일이며, 신령님에게 비는 것이 믿음이 돈독하다고 하는 잘못을 깨닫기를 바란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さわらぬ神にたたりなし 、ということです。
건드리지 않으면 화를 입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硏修會場は靈圍氣(れいいき)が惡く、天狗の多い場所であり、禪定中に大きな體の、大きく長い鼻をした天狗がよく側に來ていましたが、惡いことはしまいませんでした。
수련회장은 영적 분위기가 나쁘고, 천구(
天狗)가 많은 장소이며, 선정 중에 큰 몸의, 크고 긴 코를 한 천구(天拘)가 자주 곁에 와 있었습니다만, 나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彼らの顔は、天狗のお面とそっくりです。
그들의 얼굴은, 천구(天拘)의 얼굴 그대입니다.

 


天狗を靈視した者は多勢いました。
천구(天拘)를 영으로 본 사람은 다세(많은 사람)였습니다.

 



※천구[天狗]
深山に住むという妖怪。山伏姿で、顔が赤くて鼻が高く、背に翼があり、手には羽団扇(はうちわ)・太刀・金剛杖を持つ。神通力があって、自由に飛行するという。鼻の高い大天狗や烏天狗などがある。各地に天狗にまつわる怪異な話が伝承されており、山中で起こる種々の不思議な現象は、しばしば天狗のしわざであるとされる。
各地に天狗に ...
깊은 산에 산다고 하는 요괴. 산야에 기거하며 수행하는 중이며, 얼굴이 빨갛고 코가 크고, 등에 날개가 있고, 손에는 새의 깃으로 만든 부채・큰 칼・금강장을 갖고 있다.  신통력이 있고, 자유로이 비행한다고 한다.  코가 큰 대천구나 비천구 등이 있다.  각 지역에 천구에게 휘감기는 괴이한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고, 산중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불가사의한 현상은, 여러 차례 천구의 소행이라고 한다.


※출처 : http://dic.yahoo.co.jp/dsearch?enc=UTF-8&p=%E5%A4%A9%E7%8B

97&dtype=0&dname=0na&stype=0&pagenum=1&index=15574812849800



page 49~57



2016년 5월 6일 현재, 천구(天拘)는, 극락(천국)과 지옥의 차원의 다른 세계 중에서, 차원의 또 다른

지옥의 일부로서, 지옥과는 떨어진 신선계(神仙계)와 천구계(天拘界)라는, 지옥과 같은 곳이, 있다고,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은, 말씀한 바 있습니다. 

그 내용의 출처는, 어떤 강연, 혹은 어떤 책이었는지, 상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천구(天拘)는,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가공의 존재들, 예를 들면, 머리가 둘, 혹은 셋, 넷, 다섯 등등이나 팔과 다리가 두개 이상 혹은 일곱 여덥 이상씩이나, 공포 영화나 게임 등에 나오는,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현상화되어, 실존의 존재로 창조되어, 그들만이 사는, 지옥의 일부라고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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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違った信仰(その二)

잘못된 신앙 (그 사례 2)


 
人生において、病氣は大きな苦しみの一つです。
인생에 있어서, 질병은 큰 괴로움의 하나입니다.


 

精神的、經濟的にも負擔になるし、ひとつ間違うと、肉體舟の破壞という不運なことにもなってしまいます。
정신적,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고, 자칫 잘못하면, 육체 배의 파괴라고 하는 불운한 경우도 되어 버리고 맙니다.


 

醫者に見捨てられ、どうにもならない人びとが、私の事務所を訪れて來ます。
의사에게 버림받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저의 사무실을 방문해 왔습니다

 


その中で最も多いのはノイロ―ゼであり、それに原因不明の肉體的不調和です。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이며, 그것에 원인불명의 육체적 부조화입니다.

 


一九七二年十二月十二日午前九時半頃のこと、場所は東大阪において、私の講演會が始まる四十分位前のときでした。
1972년 12월 12일 오전 9시 반 무렵의 일, 장소는 히가시오사카(
東大阪)에서, 저의 강연회가 시작되는 40분 정도 전의 시간이었습니다.


 

高山眞理子と名乘る中年の婦人が、私の控室を訪れて來ました。
다카야마 마리코(
高山眞理子)라고 이름을 말하는 중년의 부인이, 저의 대기실을 방문해 왔습니다.

 


醫者から見放され、左半身マヒの氣の毒な方で、主人に先だたれ子供もなく、孤獨な人生を送っているのでした。
의사에게 버림받고, 좌반신 마비의 불쌍한 분이며,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식도 없이, 고독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病狀は一九三十年二月五日、突然腦溢血で倒れ、當時四人の醫師より再起不能と診斷され、病の苦しみとともに將來に生きる望みを失っていました。
병을 앓는 증세는 1930년 2월 5일, 돌연 뇌일혈로 쓰러지고, 당시 4명의 의사에게서 재기불능이라고 진단을 받고, 병의 괴로움과 함께 장래에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뇌일혈[腦溢血]
고혈압(高血壓)이나 뇌동맥(腦動脈) 경화 등(等)으로 인(因)한 뇌조직(腦組織) 안에서의 갑작스런 출혈(出血). 혼수(昏睡) 상태(狀態)에 빠지거나 의식(意識)이 있더라도 반신불수 또는 지각(知覺) 장애(障礙)를 일으킴. 발작(發作) 후(後) 2주일(週日) 이내(以內)에 죽는 수가 많으며, 마비(痲痺)되면 3~6개월에 어느 정도(程度) 회복(回復)됨. 노년층과 비대한 사람에게 많이 생김


※뇌일혈[腦溢血]
[의학] 뇌의 동맥이 터져서 뇌 속에 혈액이 넘쳐 흐르는 상태. 고혈압이 그 주된 원인으로, 출혈이 되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코를 골며 자는 것 같다가 그대로 죽는 수가 많으며, 의식이 회복되더라도 손발이나 얼굴의 마비, 언어 장애와 같은 후유증이 있다.






지옥계의 벌레를 데리고 와서 세포를 잡아먹는 벌레가 바이러스이다』란 제목으로 올린, 제 블로그 『일기형식』2016년 5월 01일에 올렸던 강연 제목 『마음과 육체의 조화』1975년 11월에, 내용을 잠시 올립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食べ物はなるべく少なく食べ活動する。運動する。いつでも腹のへっている状態が一番長生きの秘訣です。日本人は食べすぎます。」

음식(食べ物)은 가능한 한 적게 먹고 활동(活動)한다.  운동(運動)한다.  늘 배(腹)가 고픈 상태(狀態)가 가장 좋은 장수(長生き)의 비결(秘訣)입니다.  일본인(日本人)은 너무 많이 먹습니다(과식합니다).




「人間は不思議ですね。夜になってからたらふく食べる。ですから脳溢血でこの世を去っちゃうのは大抵、夜だよ。食べたあとの結果がでてくるんだよ。」

인간(人間)은 불가사의(不思議)하지요.  밤(夜)이 되어서 배가 터지게 먹는다(식컷 먹는다).  그러므로 뇌일혈(腦溢血:뇌내출혈)로 이 세상을 떠나 버리는 것은 대개, 밤(夜)이지요.  먹은 후의 결과(結果)로 온 것이지요.」




「猿は太陽が沈んだら絶対に物を与えても食べないよ。食べ物というものは、太陽の上っている内に食べるのが最も理想、だから朝と昼に栄養をうんととって夜あっさりと食べたら明日の朝はソー快。」

원숭이(猿)는 태양(太陽)이 지면 절대(絶対)로 음식(物)을 줘도 먹지 않지요.  음식(食べ物)이라고 하는 것은, 태양의 떠 있는 동안에 먹는 것이 가장 이상적(理想)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침(朝)과 낮(晝)에 영양(榮養)을 듬뜩 섭취하고 밤(夜)에는 산뜻하게(담백하게) 먹으면 내일(明日)의 아침(朝)은 상쾌(ソー快)합니다.」






 

その頃、東大阪に、ある敎團があって多くの人を集めていました。彼女は心の平和を求めるために入信したのです。
그 무렵, 히가시오사카(
東大阪)에, 어느 교단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 신앙의 길에 들어간 것입니다.


 

信心を通して二年後には再起不能といわれた體も、日常生活にはことかかぬよりなってゆきました。
믿음을 통해서 2년 후에는 재기불능이라고 말을 들은 몸도, 일상생활에는 어렵게 지내지 않게 되어 갔습니다.

 


しかし發病したときから視神經を侵されており、左半身知覺麻痺で右手はしびれ、その上三叉神經痛という後遺症が殘っていました。
하지만 발병했을 때부터 시신경을 침해 당하고 있고, 좌반신 지각마비로 오른손은 마비되고, 그 상태로 삼차신경통이라고 하는 후유증이 남아 있었습니다.


 

このために右顔面は、終日針でさされるような痛みがあり、ときには眼球が飛び出しような激痛に襲われることもたびたびありました。
이 때문에 오른쪽 얼굴은, 종일 침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고, 때로는 안구가 빠져 나오는 듯한 격심한 통증에 습격 받는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眼と顔面の神經が冒されているため、字を書くとき、物を見るときなど、必ず右眼をつぶらなくては、はっきりと焦点がつかめず、水鼻が口先まで流れてもわからない狀態であったのです。
눈과 얼굴의 신경이 침해 받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사물을 볼 때 등, 반드시 오른쪽 눈을 감지 않고서는, 확실하게 초점을 잡을 수 없고, 콧물이 입 끝까지 흘려내려도 알 수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醫者は長い間の病氣のために、全治はむずかしい、つらければ右側頭部より三叉に向かって藥を注入する以外に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
의사는 오랜 동안의 질병으로 인해, 완치는 어렵고, 고통스럽다면 우측두부에서 삼차로 향해서(삼차로 기미가 보여서) 약을 주입하는 이외에 없다, 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未亡人はこの痛みさえとれたら、どんなに樂になるだろうと常に心の中で思っていました。
미망인은 이 통증만이라도 떨어지면, 얼마나 즐겁게 될 것일까 라고 항상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左半身は熱い湯につけてもわからず、火傷しても感覺がなく、十日程度の火傷もしました。
좌반신은 열탕에 들어가도 모르고, 화상을 입어도 감각이 없고, 10일 정도의 화상도 있었습니다.

 


私の前に座った未亡人の右眼は左眼より下にさがり、永い年月苦しみに耐えて來た氣の毒な姿でした。
제 앞에 앉은 미망인의 오른쪽 눈은 왼쪽 눈보다 쳐져 있고, 오랜 세월 괴로움을 견뎌 온 불쌍한 모습이었습니다.

 


私には、未亡人の背中に憑依している中年の男性が、苦しそうに光子體にすがりついているのがはっきり見えます。
저에게는, 미망인의 등 한가운데에 빙의하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괴로운 듯이 광자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분명히 보입니다.


 

亡き夫でありました。
죽은 남편이었습니다.


 

地獄に墮ちたが、その苦しさから未亡人を賴って來ているのであり、一人殘した妻を心配もしている樣子でありました。
지옥에 떨어졌지만, 그 괴로움 때문에 미망인을 의지하려 와 있는 것이며, 한 명 남은 아내를 근심케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このままでは、病氣はおろか、この主人に連れられて地獄に墮ちて行ってしまいます。
이대로는, 질병은 말할 것도 없이, 이 남편을 따라가서 지옥에 떨어져 가 버리고 맙니다.

 


いわば死神がついているといることです。
이를테면 사신(死神)이 붙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未亡人に對してこの事實を明かすことが果たしてよいことなのだろうかと、一瞬、私はとまどいました。
미망인에 대해서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 것일까 하고, 한 순간, 저는 망설였습니다.

 


しかし、この迷える主人を未亡人から離さなくでは危險この上もないし、彼がなぜ地獄に墮ちたのかを論(きと)さなくてはなりません
하지만, 이 방황하는 남편을 미망인으로부터 떼어놓지 않고서는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고, 그가 왜 지옥에 떨어진 것인지를 매사의 도리에 어긋남과 합당함・선악 등을 따져서 거듭 사소한 결점 등을 들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論
物事の理非・善悪などを論ずること。また、些細(ささい)な欠点などを取り上げて言い立てること。
매사의 도리에 어긋남과 합당함・선악 등을 논하는 일. 거듭 사세한 결점등을 집어들어 말하다
<일본 야후 국어사전 : http://dic.search.yahoo.co.jp//search?ei=UTF-8&fr=top_ga1_sa&p=%E8%AB%96>




そこで、
「高山さん心を落ち着けて下さい」
と、心の調和をはかるようすすめました。
그래서,
다카야마씨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라고, 마음의 조화를 도모하도록 권유했습니다

 


彼女は合掌して瞑想に入ってゆきました。
그녀는 합장하고 명상에 들어 갔습니다.

 


亡き夫は未亡人の體を段段と支配し、顔まで男性のように變わっていきます。
죽은 남편은 미망인의 몸을 차츰 지배하고, 얼굴까지 남성처럼 변해 갑니다.

 


合掌している手がふるえ出し、體がロ―リングを始めました。
합장하고 있는 손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몸이 회전을 시작했습니다.

 


完全に彼女を支配しています。
완전히 그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あなたは名前をいいなしい」
と,支配している亡夫に言葉をかけると,
당신은 이름을 말하세요」
라고, 지배하고 있는 죽은 남편에게 말을 걸자,

 


「眞理子は、わてのよめはんですねん」
間違いなく彼女の夫でした。
마리코는, 나의 아내입니다
틀림없이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あなたは、この方に憑いていてよいと思っているのですか」
「わてが、嫁はんの側におって何が惡いんや、わても病氣でんねん、嫁はんに賴らなくて、誰に看病してもらうんや、體の自由がきかえんのや。自由がきくんようになれば、いつでも離れてやりまっせ」
당신은, 이 분에게 빙의하고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아내 곁에 있어서 뭐가 나쁜가, 나도 병들었는데. 아내에게 의지하지 않고, 누구에게 간호를 받아야 한단 말 인가.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데. 몸을 마음대로 움직여지면, 언제라도 떠나가리다

 


やはり、腦溢血で倒れたまま地獄に行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す。
역시, 뇌일혈로 쓰려진 채로 지옥으로 가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そして、肉體が亡びて八年間經っても、まだ病氣をしているのです。
그리고, 육체가 죽고 8년이 지나도, 아직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それには、それなりの理由があるからです。
그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生前は、暴飮暴食、情欲におぼれ、夫婦としての調和がなむ、怒り、そしり、ねたみ、愛の何たるかも知らず、慈悲の心もなく、ひとりよがりの人生を步んで來ました。
생전은, 폭음폭식, 정욕에 빠져, 부부로서의 조화가 없고, 분노, 비방(비난), 질투, 사랑의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비의 마음도 없고, 독선적인 인생을 걸어 왔습니다.


 

その結果、自業自得の病にたおれたのです。
그 결과, 자업자득의 병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そして、現世で犯した罪のつぐないをしているのでした。
그리고, 현세에서 저지른 죄의 보상(속죄, 죄갚음)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しかし、それにしてもわざわいを彼女にまで及ぼすということは、許さ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하지만,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재앙(불행)을 그녀에게까지 미치게 한다고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허락되는 것이 아닙니다) ※ 좀 이 부분이 아래도 나오지만, 용서받을 수 없다? 가 맞지 않나 싶습니다.)


 

なぜならば、さらに大きな罪をつくり出しているからです。
왜냐하면, 더욱더 큰 죄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ここで問題になるのは、その不調和な原因には彼女の心と行いにも關係があるということです。生前において、亡き主人に對して、主人の生活行爲の不調和な姿を見たり聞いたりすることによって、しっと、そしり、ねたみ、怒りによって心の中に多くの曇りをつくり、毒を食べていたのいうことです。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부조화한 원인에는 그녀의 마음과 행위에도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전에 있어서, 죽은 남편에 대해서, 남편의 생활행위의 부조화한 모습을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것에 의해서, 시샘, 비방(비난), 질투, 화를 냄에 따라서 마음 속에 많은 흐림을 만들고, 독을 먹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類は友を呼ぶ、作用反作用の法則は嚴然として私たちの心と行いに作用して來るという事實、因果應報の法則はさけられ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

끼리끼리 모이며,작용반작용의 법칙은 엄연히 우리들의 마음과 행위에 작용해 온다고 하는 사실,인과응보의 법칙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ご主人、すでにあなたのこの地上界での肉體は滅びたのです。
남편분, 이미 당신의 이 지상계의 육체는 없어진 것입니다.

 


すでに死んでいるのです。
이미 죽어 있는 것입니다.


 

地上界で持っている肉體舟の病氣はもうないのです。
지상계에서 가지고 있는 육체 배의 질병은 이미 없는 것입니다.

 


心が病氣をしているのです」
마음이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わては、この通り肉體を持っておりますがなあㅡ。
現に自由に體が動きまへんがなあㅡ。
わては病氣なんや、この通りや、どうにもなりまへんがなあㅡ。
わてのことなど他人にわかへんがなあㅡ」未亡人の口から出る言葉は、男性のそれでした。
나는, 이대로 육체를 갖고 있는데 ㅡ。
현재 마음대로 몸이 말을 안 듣지만 ㅡ。
나는 병들어 있는데, 이대로, 어쩔 도리가 없고 ㅡ, 
내 사정 등을 남에게 알릴 수가 없습니다 ㅡ」 미망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남성의 그것이었습니다.

 


「私は先ほどから、あなたのことは全部知っているのです。
病氣のことも、生前に何をしたかも ....。
「저는 조금 전부터, 당신의 일은 전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병든 것도, 생전에 무엇을 했던 것 까지도....。

 


私のいうことをきかなくでは、あなたはさらに大きな罪を重ねることになるのです。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 않고서는, 당신은 더욱더 큰 죄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地獄に墮ち、いまだに自分の肉體の自覺もなく病氣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生前に自分だけのことしか考えないで、心から他人に施したことがなかったからです。
지옥에 떨어져, 아직껏 자신의 육체의 자각도 없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하는 것은, 생전에 자신만의 것밖에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타인에게 베푼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自我の欲望のままに生活をし、暴飮暴食、そして妻に對しても暴言をはき、感謝の心もなく、やっかいになった人びとに報いる心もなく、心の中は自分のことばかり....。
자아의 욕망대로 생활을 하고, 폭음폭식,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도 폭언을 일삼고, 감사의 마음도 없고, 신세를 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도 없고, 마음 속은 자신의 일뿐....。

 


腦溢血で意識不明となり、そしてこの世を去ったはずです。
뇌일혈로 의식불명이 되어,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あなたにも良心があるでしょう。
自分の心に噓がつけますか、他人には今まで噓をついて來たが、ここでは噓は通じない。
당신에게도 양심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합니까?, 타인에게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 왔지만, 여기에서는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特に、妻に對して噓がつけますか。
특히, 아내에 대해서 거짓말을 합니까?


 

心を裸にしなさい。そして噓のつけない心で、自分の間違った人生をよくふり返って間違いがわかったら、心から詫びなしい。
마음을 적나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의 잘못된 인생을 잘 되돌아보고 잘못함을 알았다면, 진심으로 사죄하십시오.

 


いっさいの間違いを反省することだ。
일체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다.

 


妻に對して、自分の犯した罪のいっさいを神に詫びなしい。
아내에 대해서, 자신의 저지른 죄의 일체를 신에게 사죄하십시오.

 


しかも、あなたの妻は一生懸命に、法華經の題目をあげて、あなたの成佛を計ったではないか。
게다가, 당신의 아내는 열심히, 법화경의 제목을 바치며, 당신의 성불을 꾀한 것이 아닌가?

 


自分の思ったこと、行なったことの一つ一つを訂正する以外に、あなた自身、その病氣を治すことが出來ない、といことを知りなさい。
자신의 생각한 것, 행한 것의 하나하나를 정정하는 의외에, 당신 자신, 그 질병을 치료할 수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아십시오.


 

あなたがいっさいの執着から離れたときに心の曇りは晴れて、心の安らぎが生まれて來るでしょう。今までのように苦しんでいたいか、それとも救われたいか、よく考えなさい」
と,嚴しく追及しました。
당신이 일체의 집착에서 떨어졌을 때에 마음의 흐림은 개고, 마음의 평안이 태어나올 것입니다. 지금까지와 같이 괴로워하고 싶은지, 아니면 구원을 받고 싶은지, 잘 생각하세요

 


彼女を支配したまま、彼はしばらく反省するのでした。
그녀를 지배한 채로, 그는 잠시 반성하는 것이었습니다.

 


そのあいだ、私は神の光をいただいて、あわれな迷える亡き夫に、心の平和が得られるよう手のひらから光を出し、與えていました。
그 동안, 저는 신의 빛을 받고, 불쌍한 방황하는 죽은 남편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손바닥에서 빛을 내어, 주고 있었습니다.

 


約五分ぐりい後でした。
약 5분 정도 후였습니다.

 


「ああ、暖かい、體のうずきがなくなった。光りが暖かく、わてを包んでいる」と心からうれしそうに叫びました。
아~!. 따뜻하다, 몸이 욱신거림이 없어졌다. 빛이 따스하게, 나를 감싸고 있다」 라고 진심으로 기쁜 듯이 부르짖었습니다.


 

私は彼の周邊が光明にみたされてきまたので、
저는 남편의 주변이 광명으로 가득 채워져 왔던 것으로써,

 


「さあ、あなたはこの人から離れ、天上界に歸りなさい。
そして天上界の修行所で、今、私の敎えたように、なぜ自分が人生において間違いを犯したか、片寄りのない判斷で、第三者の立場になって、自分の幼ないときから今までの想念と行爲の一つ一づを、よく反省しなさい」
자아, 당신은 이 사람으로부터 떠나서, 천상계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천상계의 수행소에서, 지금,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왜 자신이 인생에 있어서 잘못을 저질렀는지, 치우침이 없는 판단으로,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에 대한 하나하나를, 잘 반성하세요


 

といって、私の守護靈に賴んで、天上界の入口まで送ってもらうことにしました。
라고 말하고, 저의 수호령에게 부탁해서, 천상계의 입구까지 보내드리게 했습니다.


 

「ほんまにご迷惑をかけました。どうか許しておくんなはれ」
「では、この人の右側に出なさい、この地上界に執着を持ってはいけません。さあ、出てしまいなさい」
というと、彼女の體から離れてゆきました。
정말로 폐를 끼쳤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럼, 이 사람의 우측으로 나가세요, 이 지상계에 집착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자아, 나와 버리세요
라고 말하자, 그녀의 몸에서 떠나 갔습니다.

 



※이 남자는 오사카 관서지방 분이시네요. 사투리가 관서지방 사투리입니다.
わて(나, 저) 오사카 사투리, ほんまに(정말로, 진짜로) 오사카 간사이(관서)지방 사투리.



 

「高山さん、もう大丈夫です。眼をあけなさい。體の具合はどうですか」
다카야마씨, 이젠 괜찮습니다.  눈을 뜨세요. 몸이 상태는 어떻습니까?


 

「ああ,體は湯上りのよう.........、顔面のいたみもありません。
아~, 몸은 목욕을 마치고 나온 것 처럼........、얼굴이 통증도 없습니다.


 

手も自由になり、左足の感覺もよみがえり、つねれば痛く感じます」
손도 자유롭고, 오른 발이 감각도 되돌아오고, 꼬집으면 아프게 느껴집니다

 


彼女は、感謝のあまり、目に淚をいっばいためて合掌するのでした。
그녀는, 감사한 나머지,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합장하는 것이었습니다.


 

彼女の病氣の原因は、彼女自身の心にあったのです。
그녀의 질병의 원인은, 그녀 자신의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彼女は、亡き夫の靈が離れてから、自分の意識に戾り、體はすっかり癒えて、新しい人生が待っていました。
그녀는, 죽은 남편의 혼령이 떠나가자, 자신의 의식으로 되돌아오고, 몸은 완전히 치유되어,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この現象をまのあたりに見守っていた人びとは奇蹟がおこった事實を、あらためて認識するのでした。
이 현상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난 사실을, 세삼스럽게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片寄りのない正しい心、正しい行ないがいかに大事であるか、まわりの人びとにもあらためて、自覺が生まれるのでした。
그리고, 치우침이 없는 올바른 마음, 올바른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세삼스럽게, 자각이 생겨나온 것이었습니다.




一九七二年 十一月十八日。
1972년 11월 18일.

 

東京の私の事務所に、大垣という靑年が千葉から訪ねて來ました。
도쿄의 제 사무실에. 오오가키(
大垣)이라고 하는 청년이 치바(千葉 : 치바현은 일본의 관동지방의 남동 측, 동경도의 동쪽에 위치한 현)에서 방문해 왔습니다.


 

見ると、彼の背後には若い女性の姿がはっきりと見えます。
보면, 그 사람의 등뒤에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확실히 보입니다.


 

彼は、淺草に住んでいる方からの紹介であり、私の說いている正道については紹介者から聞いている程度で、わかってはいませんでした。
그는, 아사쿠사에 살고 있는 분에서 소개를 받아, 제가 설명하고 있는 정도(正道)에 대해서는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듣고 있는 정도(程度)이며,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そのために、彼の體を支配させて語らせた場合、ひとつ間違うと、たとえ若い女性の靈が離れても、他の地獄靈に支配されるおそれがありました。
그 때문에, 그 사람의 몸을 지배하게 해서 말하게 했을 경우, 자칫 잘못하면, 가령 젊은 여성이 혼령이 떠나갈지라도, 다른 지옥령에게 지배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その理由は、正しい心と行ないの物差しを知っていないからです。
그 이유는, 올바른 마음과 행위의 척도를 알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靑年は、肩や首が神經痛のようにじくじくと十年近くも痛んでいました。
청년은, 어깨랑 머리가 신경통처럼 질금질금 10년 가까이나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私は、憑依している若い女性に質問しました。

저는, 빙의하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질문했습니다.


「あなたはこの靑年と、どのような關係なのですか」
「私は大垣の妻でございます」
「あなたはすでに亡くなっている。ご主人についていてはこの人の肉體は大變です。
もちろん、あなたも苦しいはずだ。すぐにご主人から離れなくではいけません」
「いえ、私はこの人から離れたら行く所がないのでございます」

당신은 이 청년과, 어떠한 관계입니까?

저는 오오가키(大垣)의 아내입니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남편에게 붙어 있어서는 이 사람의 육체는 큰일입니다.

몰론, 당신도 괴로울 것이다.  곧 남편에게서 떠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뇨, 저는 이 사람에게서 떨어지면 갈 데가 없습니다



번역에서 누락된 부분을, 오늘 2016년 5월 06일에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이 청년과, 어떠한 관계입니까?저는 오오가키(大垣)의 아내입니다」"부분입니다.



 

「それはなりません。あなたには歸る所があるのです。
今のような生活をしておれば、あなたはもっと苦しむようになり、大きな罪をつくるのです。
그것은 안 됩니다. 당신은 돌아갈 곳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면, 당신은 더욱더 괴롭게 되어,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寒い地獄界に墮ち、苦しみと淋しさから地上に出、ご主人につきまとっているが、それは許されないのです。
추운 지옥계에 떨어져, 괴로움과 쓸쓸함 때문에 지상으로 나와, 남편을 늘 따라다니고 있지만, 그것은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혹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生前のことを思い出して、一つ一つ、あなたの思ったことと行ったことを反省しなさい。
생전의 일을 생각해 내어, 하나하나, 당신의 생각한 것과 행한 것을 반성하세요.

 


そうすれば明るい世界に出られるのです。
그렇게 하면 밝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暗い心は、あなたの行なっていることが間違っているために曇りをつくり、神の溫かい慈悲の光をさえぎってしまっているからなのです。
어두운 마음은, 당신의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흐림을 만들고, 신의 따스한 자비의 빛을 가로막아 버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地上界への執着を捨てることです。
지상계로 향한 집착을 버리는 일입니다.

 


心を裸にして、いっさいの執着を捨てなしい。
마음을 적나라게 해서, 일체의 집착을 버리세요.

 


うらみ、ねたみ、そしり、怒り、しっとの心を除てなさい」
원망(원한), 질투, 비방(비난), 분노, 질투의 마음을 제거하세요

 


と、語をつづけました。
라고,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そのとき靑年は、
그 때 청년은,


 

「ああ、亡くなった妻です、間違いはありません」
아~!, 죽은 아내입니다.  틀림없습니다

 


と、いうのでした。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亡き妻の體からは、かすかな光が頭の周圍に出てきました。
죽은 아내의 몸에서는, 희미한 빛이 머리 주위에 나왔습니다.

 


反省をしているのです。
반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私は迷える靈に、こんこんと神理を敎え、彼女の行くべき所を說明しました。
저는 방황하는 혼령에게, 매우 간절히 신리(神理)를 가르치고, 그녀가 가야 할 곳을 설명했습니다.



 

彼は、
그는,

 

「私の肩と首の痛みは、どんな醫者でも治りませんでした。
제 어깨와 머리의 통증은, 어떤 의사라 해도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何だか氣のせいか、壓迫されるような痛みがうすれたように思います。
뭐가 뭔지 기분 탓인지, 압박 받는 듯한 통증이 약해진 것처럼 생각합니다.

 


今は再婚して子供までありますが、亡くなった先妻が私の側にいるようなことがあるんですね」
지금은 재혼해서 자식까지 있습니다만, 죽은 전처가 제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요


 

と,不思議そうに語るのでした。
라고, 불가사의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論された亡き妻は、主人の體からはなれ、天上界の修行所に歸ってゆきました。
매사의 도리에 어긋남과 합당함・선악 등 사소한 결점 등을 집어 논의한 죽은 아내는, 남편의 몸에서 떨어져, 천상계의 수행소로 돌아 갔습니다.


 

それから彼の肩の筋肉、すじ、血管神經に、手當を十分位している間に、昔の體に戾り,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의 어깨의 근육, 힘줄, 혈관신경에, 감촉을 10분 정도 하고 있는 동안에, 옛날의 몸으로 되돌아오고,
 


「これが私の丈夫なときの體です。
이것이 제가 건강한 때의 몸입니다.


 

痛みも噓のようになくなりました。あっ、首も自由に曲がります。
통증도 거짓말처럼 없어졌습니다. 아~!, 고개도 자유롭게 굽어집니다.


 

ああうれしい奇蹟 ······」  
아~! 즐거운 기적······

 

といって、彼は聲をあげ、首をかしげながら不思議がっていました。
라고 말하며, 그는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갸웃하면서 불가사의하다고 말했습니다.



 

眼に見えない世界には、私たちの想像も出來ないような諸現象がある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는, 우리들의 상상도 할 수 없는 듯한 모든 현상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 "으로는"으로 수정합니다. 



 

特に、心の作用が肉體舟にまでこのように敏感に作用するということを ······。
특히, 마음의 작용이 육체 배에까지 이와 같이 민감하게 작용한다고 하는 것을 ······。

 


醫は仁術というように、醫師自ら、その心をつくらねばなりません。それには正道の生活を規範として愚者に接するようにしなければ、醫學の進步は望めないのです。
의학은 인술이라고 하듯이, 의사 스스로, 그 마음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에는 정도(正道)의 생활을 규범으로서 어리석은 자에게 대접하듯이 하지 않으면, 의학의 진보는 어림없는 것입니다.

 


私はこうした體驗を通して、醫は仁術である、ということを身をもって痛感しています。 
저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의학은 인술이다, 라고 하는 것을 몸소 통감하고 있습니다.



pgae5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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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違った信仰(その三)

잘못된 신앙(그 사례 3)

 



著書を錄として集まって來る人びとの中には、靈感の第一人者だと自負して來る者も、非常に多い。
저서를 인연으로 해서 모여들어오는 사람들 중에는, 영감의 제 1인자다 라고 자부해서 오는 사람도, 매우 많다.

 


一九七三年三月。
1973년 3월 3일.

 


大阪講演會のときでした。
오사카 강연회 당시였습니다.

 


講演が終わり質問に入ると、前から五列目くらいのところで、元銀行員で神道を二十數年學び、嚴しい肉體行をして來たという、五十代のNさんが質問してきました。
강연이 끝나고 질문에 들어가자, 앞에서 오열쯤 정도인데, 원래 은행원이며 신도(神道)를 20수년 배우고, 엄격한 육체수행을 해 왔다고 하는, 50대의 N씨가 질문해 왔습니다.

 


「私はあらゆる修行をして、八白萬の神神が私を守り、色色なことを耳もとで敎え下さいましたが、先生の著書を讀み始めてからは二方の神だけにしか守られていません。
저는 온갖 수행을 하고, 팔백만의 신들이 저들 지키고, 다양한 것을 귓전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만, 선생의 저서를 읽기 시작하고 부터는 쌍방의 신들만이 지켜주지 않습니다.
 

その理由は、もう私たちは用が濟んだから歸るというんです。
그 이유는, 이미 우리들은 용건을 마쳤기 때문에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今、私を守護して下さっている神さまは何という神でしょう、お敎え願いたいのです···」
지금, 저를 수호해 주시고 있는 신령님은 무엇이라고 하는 신일까요, 가르침 받고 싶습니다···」

 


何千という聽講者はこの質問者の言葉に注目しました。
몇 천이라고 하는 청강자는 이 질문자의 말에 주목했습니다.


 

このNさんは、守護している神と自稱する者の名前 も知っているのですが、私の口を通して聽衆の前でいって欲しかったのでした。
이 N씨는, 수호하고 있는 신이라고 자칭하는 자의 이름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만, 저의 입을 통해서 청중 앞에서 말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初めて會ったNさんですが、はるばる四國から他流試合に來る勇氣は憐れりも思えました。
처음 만난 N씨입니다만, 시간과 거리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시코쿠에서 다른 류파 사람과의 시합에 오는 용기는 불쌍하게도 여겨졌습니다.


 

神さまと自稱する靈たちと仲よくするよりは、生きている人たちと人間らしく交際することが人間として必要なのです。
신령이라고 자칭하는 혼령들과 관계가 좋은 것 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인간답게 교제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見えない相手を、ただ耳もとでささやかれるというだけを賴りに彼らを信ずることは、間違いを犯すもとになります。
보이지 않는 상대를, 단지 귓전에서 속삭인다고 하는 것만을 의지하고 그들을 믿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는 원인이 됩니다.



私は、
「あなたは今、あなたに話しかけている神と自稱している者たちのいうことを全部信じているのですか、
どのような規準で信ずるのですか。
どのような規準で、彼らのいうことが、正しいか正しくないかを決定するのですか。
この地上界で生活をしているあなたの兄弟や親戚、友人との交際に對してあなたは慈愛の心に乏しいのはどういうわけですか」
저는,

당신은 지금,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신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자들의 말하는 것을 전부 믿고 있는 것입니까?
어떠한 규준으로 믿는 것입니까?
어떠한 규준으로, 그들의 말하는 것이,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것입니까?
이 지상계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당신의 형제나 친적, 친구과의 교제에 대해서 당신은 자애의 마음이 모자란 것은 어떠한 까닭입니까?

 


ちょっと嚴しい質問をしてみた。
잠시 엄격하게 질문을 해 보았다.

 



「神さまは間違ったことを敎えません。.
人間のいうことより正しいのだから、神の言葉を守ります。
他の人たちは神のことに理解がないから、仕方が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か」
신령님은 잘못된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말하는 것 보다 올바른 것이기 때문에, 신의 말을 지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의 일에 이해가 없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Nさんはあくまで、Nさんを指導している者を神だと信じているのです。
N씨는 어디까지나, N씨를 지도하고 있는 자를 신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まととに氣の毒というほかはありません。
참으로 불쌍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確かに私たちは誰も神の子であることには間違いありませんが、大宇宙を支配している神が、直接人間に話しかける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す。
확실히 우리들은 누구든지 신의 자녀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만, 대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신이, 직접 인간에게 말을 건다고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地獄靈たちが、神を名乘って出ることはあります。
지옥령들이, 무슨 무슨 신이라고 이름을 말하고  나오는 일은 있습니다.

 


そこで彼らのいうことを、正しく判斷するフィルタ―が必要なのです。
그래서 그들의 말하는 것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여과장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Nさんは盲信していうのでした。
N씨는 맹신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Nさんが信者たちに對して神の聲だといって說明出來ても、第三者に通用しないのです。
N씨가 신자들에게 대해서 신의 소리라고 말하고 설명할 수 있어도, 제삼자에게 통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指導者が信者だちを盲信狂信させるという心の公害は、地上の公害よりおそろしいものです。その責任はいずれ己自身で裁くときがくるでしょう。
지도자가 신자들을 맹신 광신시킨다고 하는 마음의 공해는, 지상의 공해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 책임은 죄다 자기 자신이며 심판할 때가 올 것입니다.


 

講演會の聽衆の中には、まだ正道とはどんなものであるか知らない者だちも多いため、またNさんのためにも、Nさんを指導している神と自稱している靈のためにも、はっきりさせる必要がありました。
강연회의 청중 중에는, 아직 정도(正道)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거듭 N씨를 위해서도,

N씨를 지도하고 있는 신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혼령을 위해서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私はNさんの側まで聽衆の中を割って行き、神と自稱している靈に支配させて、Nさんの口を借りて、對話を試みることにしました。
저는 N씨의 곁에까지 청중 속을 비집고 들어가서, 신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혼령에게 지배하게 해서, N씨의 입을 빌려서, 대화를  시도해 보게 했습니다.


 

合掌しているNさんの手が振動をはじめ、神と名乘る靈が支配し始めました。
「あなたは自分の名前を名乘りなさい」
と私がいったとたんに、Nさんの口を通して、
「我は天照大神なり」
と、名乘り出すのでした。
합장하고 있는 N씨의 손이 진동을 시작하고, 신이라고 자신이 이름을 확실하게 말하는 혼령이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말하십시오
라고 제가 말을 했더니, N씨의 입을 통해서,
나는 아미테라스오오미가미(천조대신)이니라
라고, 자신이 이름을 확실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Nさんの心と行いが調和され、體から後光が出ているような心境でない限り、偉大なる光の大指導靈は、決して人間の肉體を通して語るはずはありません。
N씨의 마음과 행위가 조화되어, 몸에서 후광이 나오고 있는 것과 같은 심경이 아닌 한, 위대한 빛의 대지도령은, 결코 인간의 육체를 통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Nさんの後で、地獄に墮ちた行者が龍を使って語させている姿を、私ははっきりと見ていたのです。
N씨의 뒤에서, 지옥에 떨어진 행자(行者,수행을 하는 수도자)가 룡(龍)을 부려서 말을 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저는 확실히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天照大神と名乘るあなたはなぜ光明にみたされていないのですか、私にはよくわかっているのです。本當のことをいいなさい」
「はい、おそれいりました。讚岐の金比羅でございます」
地獄靈は、天照大神と、今名乘ったばかりなおに、今度はさっそく金比羅だといいます。コロコロと變わってしまうのは、彼らの特徵なのです。
천조대신(
天照大神,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이라고 이름을 확실히 말하는 당신은 왜 광명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까, 저로서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것을 말하십시오

네, 죄송했습니다. 사누키(찬기)의 금비라(金比羅)입니다

지옥령은,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고, 지금 칭할뿐만 아니라 순순히, 이번에는 즉시 금비라(金比羅)라고 말합니다.  확 바뀌어 버리는 것은, 그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あまてらすおおみかみ天照大神·天照大御神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천조대신)

①일본 신화에서 다카마카하라(高天原たかまがはら=여러 신들이 있다는 하늘 나라))의 주신(主神)

②해의 신(태양신)

이자나기노미고토(伊那岐命いざなぎのみこと_의 딸. 일본 황실의 조신(祖神)으로 숭배되고 있음


※사누키[讚岐] ((일본어 사전))

舊國名の一。南海道に屬し、現在の香川県にあたる。讚(さん)州。
옛날 나라 이름의 하나. 남해도에 속하고, 현재의 카가와현에 해당한다. 상슈.


★금비라((こんぴら金毘羅·金比羅 ))

①금비라

②인도의 귀신으로 뱀의 형상을 하고 꼬리에 보석을 지님. 일본에서 항해 안전을 지키는 신으로 받듦


 

金比羅は、いつから地獄に墮ちたのか。
あなたは地獄に墮ちている、ただの行者ではないか。
でたらめをいってはいけません。
本當のことをいいなさい」
「はい、私はこの者の守護靈です」
と、また、コロコロ變ってしまう。
금비라는, 지옥에 떨어진 것인가?
당신은 지옥에 떨어져 있다, 단지 수행을 하는 수도자가 아닌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한 것을 말하시오
네, 저는 이 사람의 수호령입니다
라고, 거듭, 대굴대굴 변해 버린다(확 변해 버린다).


 

「あなたは、誰に賴まれて、この者の守護靈をしているのか」
龍神でございます」
당신은, 누구에게 부탁을 받고, 이 사람의 수호령을 하고 있는가?
룡신입니다


 

「龍神には守護靈の指名權などありません。
その龍神の名前は何というのか」
黑龍でございます」
용신에게는 수호령의 지명권 등이 없습니다.
그 룡신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흑룡입니다

 


「黑龍とはただの地獄の龍ではないか。黑龍こそ、光の天使(蛇や龍たちに正道を敎えている天使で、光の指導靈になる修行の段階)のもとから逃げて、地獄と地上界をうろついている、ナガ―(龍)ではないか」
흑룡이란 단지 지옥의 룡이 아닌가? 흑룡이야말로, 빛의 천사(뱀이나 룡들에게 정도(正道)를 가르치고 있는 천사로, 빛의 지도령이 되는 수행의 단계)의 밑에서 도망쳐서, 지옥과 지상계를 뚜렷한 목적도 없이 헤매고 있는, 나가(Naga)(룡)가 아닌가?

 


この行者はだまってしまいました。
이 수행을 하는 수도자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私はさらに今、あなたの側にいるのが黑龍ではないか。
저는 더욱더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것이 흑룡이 아닌가?

 


と、追及している間、黑龍は大きなボ―ルのような眼玉で私をにらみ 、大きな舌をペロペロと出し、左右の長いひげをなびかせて行者の頭の上にいました。
라고, 추궁하고 있는 사이, 흑룡(
黑龍)은 큰 구슬과 같은 눈동자로 저를 노려보며, 큰 혀를 날름날름 내밀고, 좌우의 긴 수염을 휘날리며 수행을 하는 수행자의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수조자의 머리"를, "수행자의 머리"로, 수정합니다.


 

しかし、彼らは手も足も出ません。
하지만, 그들은 꼼짝달싹 못했습니다.

 


私は彼らに、動物としての心のあり方について說法したところ、Nさんを支配していた地獄靈たちは離れてゆきました。

저는 그들에게, 동물로서의 마음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서 설법을 했더니, N씨를 지배하고 있던 지옥령들은 떠나갔습니다.


Nさんは、
「ああㅡ、こんなに體が輕くなり、頭がすっきりしました」
「やはり、,地獄靈でしたね」
······ ということで、自分自身で納得が出來たのでした。多くの聽衆も不自然な信仰のおそろしさを知ることが出來たのでした。
N씨는,
아ㅡ, 이렇게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상쾌해졌습니다
역시, 지옥령이었군요
······ 라고 말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으로 납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청중도 부자연한 신앙의 무서움을 알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信者は、指導者の生活態度を見ることです。
신자는, 지도자의 생활태도를 보는 것입니다.

 


片寄ったぜいたく、怒り、僞り、そしり、みだらな裝飾などを身につけている者たちは、間違いなく、僞善者だといえるでしょう。
치우친 사치스러움, 분노, 거짓(기만), 비방(비난), 음란한(외설스러운, 난잡한) 장식 등을 입고(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위선자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信者の心に、,公害をまき散らしている張本人たちといえます。
신자의 마음에, 공해를 퍼트리고 있는 장본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彼らは他人を非難したり、僞りの言葉で、他人の心をかきみだし、人間の作った不自然な偶像などを高價にうりつけるのである。
그들은 타인을 비난하거나, 거짓말을 말하고, 타인의 마음을 어지렵히고, 인간의 만든 부자연한 우상 등을 비싼 값으로 강매하는 것이다.


 

そして、信者がとびつくりような、出來ない約束をするでしょう。
그리고, 신자가 달려들 것 같은, 할 수 없는 약속을 할 것이다.


 

病氣や貧乏をすると、信心が足りない、罪があったったのだと、ののしるでしょう。
병들거나 가난하면, 신심(믿음)이 부족하다, 죄가 있었던 것이라고, 큰 소리로 비난할 것입니다(욕설을 퍼 부울 것입니다)

 


このような僞善者を見拔くことです。
이와 같은 위선를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彼らも信心の正道を悟っていない增上慢な輩であり、憐れな述える者たちなどいえるでしょう。
그들도 신심(믿음)의 정도(正道)를 깨닫고 있지 않은 증상만(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을 이름)한 무리이며, 불쌍한 방황하는 사람들 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age 70~76

 

천조대신 :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일본 신화)  [天照大神, Amaterasu Omikami]

 

일본에서 천황의 가계가 유래했다고 하는 천상의 태양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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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神道)의 주요신이다. 그녀는 아버지인 이자나기노미코토[伊弉諾尊] 왼쪽 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자나기노는 그녀에게 보석목걸이를 선사하고 모든 신들의 거주지인 다카마가하라[高天原]를 다스리게 했다. 남동생 중의 하나인 폭풍의 신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는 바다를 통치하라고 보냈는데 바다로 가기 전에 스사노오노는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이들은 굳은 언약의 의식으로서 아이들을 함께 만들었는데,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노가 준 칼을, 스사노오노는 보석목걸이를 씹어서 부수었다. 그런데 스사노오노는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논두렁을 무너뜨리고 아마테라스의 거처를 더럽혔으며, 급기야는 껍질을 벗긴 말을 그녀의 직물 짜는 방으로 내던지는 등 참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성난 아마테라스는 이에 대한 항의로 동굴로 몸을 숨겼으며, 이때부터 세상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다른 800만 명의 신들은 그녀를 다시 꾀어낼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벽을 알리는 닭들을 모으고 동굴 앞의 비쭈기나무(사카키[榊])에 거울과 보석을 매달았다. 여신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天鈿女命]는 옷을 반쯤 벗고 뒤집어놓은 통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모여 있던 신들은 재미있어 하며 떠들썩하게 웃어댔다. 아마테라스는 온 세상이 어둠 속에 잠겨 있는데 신들이 무엇 때문에 재미있어 하는지 궁금해졌으며, 동굴 밖에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신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동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녀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닭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고, 결국 동굴 밖으로 끌려나왔다. 이때 신들은 재빨리 볏짚으로 만든 신성한 밧줄인 시메나와[標繩]를 동굴 입구로 던져 그녀가 다시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아마테라스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신도 사원인 이세 신궁[伊勢神宮]에 모셔놓았다. 그녀는 일본 황실의 3대 보물(거울·곡옥[曲玉]·칼) 중의 하나인 거울로 상징된다.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와 그녀의 남동생인 달의 신 쓰키요미노미코토[月讀命]의 성별은 전세계의 태양과 달에 관한 신화 중 특이한 예외이다

※출처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4a129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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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1장 잘못된 신앙」의 아만(참음, 견딤, 인내, 눈감아 줌, 교만, 아집)의 괴로움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一章 間違った信仰」[間違った信仰(その一,二,三)] page 49~76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14 05:00






我慢の苦しみ  

참고 견딤의 괴로움



 

忍辱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これは、我慢とは、意味がちがいのです。
인욕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만과는, 의미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特に嫁と姑の問題などで互いに相克がある場合、もうしばらく我慢すればと、我慢で過ごす人が多いのです。
특히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 등에서 서로 상극이 있을 경우, 곧 잠깐 참으면 이라고 하며, 눈감아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最近はお嫁さんのほうが强くなって、姑が、わたしは年寄りだから我慢しなくては、といって餘生を送っている場合が多いようです。

최근은 며느리쪽이 강하게 되어, 시어머니가, 나는 늙었으니까 참지(견디지) 않으면, 이라고 말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我慢というとほとんどんの人びとは、あたかも美德のように錯覺しています
아만(참음)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미덕과 같이 착각하고 있습니다.

 


我慢は、特に日本人の惡いくせかも知れません。我慢の裏を返せば、人の手前があるからとか、他人と比較して見劣りする場合とか、自分の力ではどうにもならない場合とか、その他いろいろあるでしょう。
아만(참음)은, 특히 일본인의 나쁜 버릇(습관)인지도 모릅니다.  아만(참음)을 뒤집어 말하자면, 남의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라든지, 타인과 비교해서 남만 못하다고 보는 경우라든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경우라든지, 그 외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こうした想念行爲は、ほとんどが自己保存であり、心の中に詰め込んでしまいます。
이러한 상념행위는, 대부분이 자기보존이며, 마음 속에 가득 채워 넣어 버리고 맙니다.


 

心の中に詰め込んでしまったものがはき出されるときには、うらみの心、怒りという感情、欲望という本能などによって、理性を失い、正しい判斷が出來なくなってしまうものです。
마음 속에 가득 채워 넣어 버린 것을 내뱉게 될 때에는, 원망하는 마음, 분노라고 하는 감정, 욕망이라고 하는 본능 등에 의해서, 이성을 잃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その結果他人を輕んじてしまうとです。我慢の毒は、怒りの毒をつくる。ある者は欲望に足ることを忘れた毒をつくる。また他人や身近な者までに愚痴という毒をつくり出して、結果は、自分が苦しむ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す。
그 결과 타인을 업신여겨 버리는 것입니다.  아만(참음)의 독은, 분노의 독을 만든다.  어떤 사람은 욕망에 만족함을 잊어버린 독을 만든다.  또 타인이나 자기와 관계가 깊은 사람에게까지 푸념(넋두리)이라고 하는 독을 만들어 내고, 결과는, 자신이 괴롭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見通しのつかない我慢は、心の毒の根元となります。
통찰(간파)할 수 없는 아만(참음)은, 마음의 독의 근원이 됩니다.

 


忍辱とは、どんな侮辱を受けても、耐え忍び、心の中に毒をつく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인욕이란, 어떤 모욕을 받을지라도, 참고 견디고, 마음 속에 독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一九七三年二月、神奈川縣橫浜在住の戰爭未亡人のKさんが私の事務所を訪れて來ました。
1973년 2월,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에 거주하는 전쟁미망인 K씨가 제 사무실을 방문해 왔습니다.

 

現在は老舗(しにせ)の女社長であります。
현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노포(老舗:대를 이어온 유명한 가게)의 여사장입니다.

 


※노포[老舗] ((일본어 및 중국어))

대대로 이어 온, 전통·격식·신용이 있는 오래된 점포



 

五十五歲というのに、あらゆる病氣で骨と皮だけのようなKさんでした。
55세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온갖 질병으로 피골이 상접하게 마른 듯한 K씨였습니다.

 


「どんな醫者に見ていただいても、私の體はよくなりません」
過去二十八年、我慢の連續だった私を救い下さい、ということでした。
어떤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도, 제 몸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과거 28년, 인내의 연속이었던 저를 도와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そのとき、私は、
「Kさん、あなたの病氣は、心に毒を食べすぎているからです」 
「いえ、私は體の具合が惡いのです。
그 때, 저는,
K씨, 당신의 질병은, 마음에 독을 지나치게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뇨, 저는 몸의 상태가 나쁜 것입니다.


 

心が惡いとは思っておりません。
마음이 나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主人が戰死した後は、殘された仕事を從業員とともにちゃんとやって參りました。
남편이 전사한 후에는, 남겨진 일을 종업원과 함께 착실하게 해 왔습니다.


 

人さまにもつくして來ましたし、惡いことを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
남에게도 봉사해 왔고, 나쁜 짓을 한 적은 없습니다.


 

それなのに、私の體はいつも不調和なのです。神や佛が本當にあったら、よいことをしたら、體の調子がよくな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그런데도, 저의 몸은 언제나 부조화한 것입니다.  신이나 부처가 진짜로 있다면, 좋은 일을 하면, 몸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あらゆる神さまへもお參りをしており、先祖さまにも亡き失にも每朝供養しています」
온갖 신들에게도 참배를 하고 있고, 선조님들에게도 죽은 남편에게도 매일 아침 공양하고 있습니다

 


と、ちょっと不滿そうに、私の顔をじっとにらむのでした。.
라고, 잠시 불만스럽게, 저의 얼굴을 꼼짝 않고 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Kさんはお姑さんと同居していますね」
K씨는 시어머님과 동거하고 계시군요


 

「はい、今の仕事は、主人の兩親から受けついだものです」
네, 지금 일은, 남편의 양친에게서 물러 받은 것입니다


 

「あなたは、いまだに、うちの嫁、うちの嫁といわれ、大變氣をつかって、我慢、我慢をしており、自分の思っていることもいえないのではありんせんか。
당신은, 아직도, 우리 며느리, 우리 며느리라고 말을 들으며, 매우 신경을 쓰고, 참고, 견디고 있고, 자신의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よい嫁でありたいと思って······。
좋은 며느리로 있고 싶다고 생각하며······。


 

確かに社長ではあるが、一錢のお金までお姑さんが握っており、自由にならないのでしょう。
확실하게 사장으로 있지만, 한 푼이 돈마저 시어머니가 쥐고 있고, 마음대로 안 될 것입니다.

 


一人娘にして、小遣いでさえも、母であるあなたから與えられないようですね。
외동딸에게, 용돈조차도, 엄마인 당신한테서 받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それから、主人の妹さんも、Kさんに對して冷たいようですね。
게다가, 남편의 여동생도, K씨에 대해서 냉정한 모양이군요.


 

娘さんのいいなずけにもだいぶ氣を使っている······」
따님의 약혼자에게도 꽤 신경을 쓰고 있는······


 

Kさんのような人には、意識の中からくずさない限り、信じてはくれないし、かたくなな自己保存から解放することは不可能です。
K씨와 같은 사람에게는, 의식 속에서 무너뜨리지 않는 한, 믿어 주지 않고, 완고한 자기보존으로부터 해방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いわれて見ますと、いつも私は周圍の者に氣をつかっております。
말을 들어보니, 언제나 저는 주위의 사람들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そうでなくでは、私の家は丸くおさまらないのです。
그렇지 않으면, 저의 집은 원만하게 혼란을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嫁の私が我慢しているからよ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며느리인 제가 참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닙니까?


 

嫁のいう立場で、自分が我慢すればよいのだということなのです。
며느리의 입장으로, 자신이 참으면 괜찮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この我慢が、苦しみの原因となり、病氣から解放されないのです。
이 참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것입니다.


 

私はKさんに、
저는 K씨에게,

 

「あなたほど自分の本心と逆な行動をしている僞善者はありませんね。
당신만큼 자신의 본심과 거꾸로 행동하고 있는 위선자는 없군요.


 

あなたはその僞善から、勇氣を持って拔け出すことです。
당신은 그 위선으로부터, 용기를 갖고 살짝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そしてあなたは慈悲魔です。思いやる心はよいが、自分の立場だけを考えて苦しんでいるのです。
그리고 당신은 자비의 마귀(慈悲魔)입니다. 남이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은 좋지만,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慈悲も過ぎれば、魔になるのです。
자비도 지나치면,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자비도 지나치면, 사람이 마음을 현혹시켜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良藥も適量を越せば毒になるでしょう。
좋은 약도 적당량을 넘으면 독이 될 것입니다.

 


五十五歲になっても、お姑さんと、心を割って眞實を語り合うことが出來ないということは、自分だけのことしか考えていないからです。
55세가 되어도, 시어머님과, 마음을 털어놓고 진실을 서로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은, 자신만의 일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その結果、うちの嫁はいつも半病人だと、お姑さんからもいわれるはずです。
그 결과, 우리 며느리는 늘 반환자라고, 시어머님에게서도 말을 들을 것입니다.

 

반병자[半病人] 

ⓐ몹시 지치거나 근심 등으로 하여, 병자처럼 쇠약해진 사람. 반환자, 반병자,

 

 


あなたは自分の目や耳で見たこと聞いたことのうち、自分に都合のわるいことは、みな自分の心の中に詰め込み、そのために心が暗く、胃腸を始め他と器官までいためているのです。
당신은 자신의 눈이나 귀로 본 것 들은 것 가운데, 자신에게 형편이 나쁜 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 속에 가득 채워 넣고, 그 때문에 마음이 어둡고, 위장을 비롯해 다른 장기까지 상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もっと自分に率直になり、思っていることと、行なっていることを裸にして、眞實を心で生活することです。
좀더 자신에게 솔직하게 되고, 생각하고 있는 것, 실행하고 있는 것을 적나라게 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일입니다.

 


片寄らない中道の心で、正しく思い、正しく生活することが大切です。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마음으로,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생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その結果、見たり聞いたりすることを自分の心の中につめ込むことがなくなるでしょう。

그 결과,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것을 자신의 마음 속에 가득 채워 넣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他人からたとえよく思われなくとも、たとえよくいわれなくとも、その原因をよく知り、もし間違っていたなら率直に改めることです。
타인에게서 설사 좋게 생각해 주지 않더라도, 설사 좋게 말해주지 않더라도, 그 원인을 잘 알고, 만약 잘못되어 있다면 솔직하게 고치는 일입니다.

 


もし、どう考えてみても自分が正しいのであったら、相手に原因があるのです。
만약,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상대에게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いうことよって爭いになるならば、相手にならないで、本當に氣の毒な人だ、どうぞ神よこの人が平和な心でありますようにと、祈ってあげる位の寬容さが大事です。
말하는 것에 의해서 다툼이 된다면, 상대를 하지 말고,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부디 신이여 이 사람이 평화로운 마음이 있도록, 이라고 빌어 줄 정도의 관용이 중대사입니다.

 


あなたは今まで心の中で、お姑さんをうらみ、怒り、暗い心で生活をしてきました。
당신은 지금까지 마음 속으로, 시어머님을 원망하고, 화를 내고, 어두운 마음으로 생활을 해 왔습니다.

 


それはいつまでたっても病氣は治りません。
그것은 언제까지고 병은 낫지 않습니다.


 

まず心の曇りを、反省して晴らして下さい。
우선 마음의 흐림을, 반성하고 개게 해 주십시오.
(우선 마음 속의 응어리를 없애고, 반성하여 개운하게 하십시오)
(우선 반성을 하여 평소의 우을증을 풀어 버리십시오)

 


その結果、肉體も調和されてくるでしょう」

그 결과, 육체도 조화되어 올 것입니다




※くもり[曇り]※

흐림. ↔ 晴はれ. 晴はれのち曇りくもり 갠 뒤에 흐림. 
개운하지 않음. 거리낌. 心こころの曇りくもり 마음의 우울함. 언짢음. 우을증. 
 曇りくもりなき身み (허물이 없는) 떳떳한 몸
 

 

 

ということでKさんは、特に嫁に來てから今日までの生活について、一週間もかけて、正しい片寄りのない正道を心の物差しとして反省した結果、すっかり體も樂になり、最近では體重も七キロも增えて、今は着る物がなくては困っているようです。
라고 말한 것으로 K씨는, 특히 시집을 와서부터 지금까지의 생활에 대해서, 일주일이나 걸려서, 올바른 치우침이 없는 정도(正道)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반성한 결과, 완전히 몸도 즐겁게 되어, 최근에는 체중도 7kg이나 늘어나서, 지금은 입을 옷이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愚癡も忘れたようになくなり、元氣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푸념도 잊어버린 듯이 없어지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これが、我慢と忍辱の違い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이것이, 참음과 인욕의 서로 다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pgae 7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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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性 鹿児島 가고시마의 남성분의 아래 출처의 투고한 내용입니다. 중략했습니다.


※자비마[慈悲魔]
情に厚く、慈悲深い心を、俗に「ほとけ心」とたたえる。が仏法では、その人情、慈悲心につけいる魔があることを教えている。 その名を「慈悲魔」首楞厳経(しゅりょうごんきょう)に説かれるこの魔、衆生の心に一分の慈悲心があるのに乗じて、その心に取り入る。あわれみの情をいたずらに募らせ、是非善悪の判断を狂わせる。 
(参考文献:仏法の見方考え方)


정이 두텁고, 자비심이 깊은 마음을, 속담에 「부처와 같은 자비심」이라고 칭송한다.  불법에서는, 그 인정, 자비심에 붙어있는 마귀가 있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 이름을 「慈悲魔」수능엄경에 설명되어 있는 이 마귀, 중생의 마음에 일푼의 자비심이 있는 것에 올라타서, 그 마음에 빌붙는다. 동정(연민)의 마음을 공연히 점점 심해지게 하고, 시비선악의 판단을 혼란케 한다. 
(참고문헌:불법의 견해와 사고방식)※출처 : http://e.z-z.jp/thbbs.cgi/76re/7/






※다음은 「제 1장 잘못된 신앙」의 부모와 자식의 사랑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一章 間違った信仰」[我慢の苦しみ] page 77~82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15 22:00

 



 


親と子の愛

부모와 자식의 사랑



 

親の子の斷絶――。現代社會のゆがみは、家庭生活の中にも現れて來ました。
부모와 자식의 단절――。현대사회의 비뚤어짐은, 가정생활 속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私の事務所を訪れて來る人びとの多くは夫婦の不調和、親子の斷絶による相克(そうこく)に惱まされています。
제 사무실을 방문해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부부의 부조화, 부모와 자식의 단절에 의한 상극으로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特にノイロ―ゼの場合、夫婦の不調和により、子供の敎育に無關心で夫婦げんかんうさを子供に向け、小さい頃から子供の心に傷をつけてしまい、 子供は廣い豊かな心を忘れて內向性になり、十五歲から二十代の間に自閉症になってしまいます。
특히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의 경우, 부부의 부조화에 의해서, 자식의 교육에 무관심으로 부부싸움의 시름을 자식에게 돌리고, 어린 시절부터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 버린다, 자식은 넓고 풍부한 마음(관대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내향성이 되어, 15세부터 20대의 사이에 자폐증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自閉症からウツ病に變わってしまうのも、心の中の、怒りの度合によって異なって來ることがわかります。
자폐증에서 울병(억울증(抑鬱症))으로 변해 버리는 것도, 마음 속의, 분노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져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울병[鬱病] 《한자사전》
조울병(躁鬱病)의 한 형(型). 내인성(內因性)에서 오는 감정(感情)의 우울(憂鬱)과 의욕(意慾)의 억제(抑制)를 주징(主徵)으로 함. 정신적(精神的)으로는 불안(不安)ㆍ염세적 기분이 따르며, 나아가서는 절망감(絶望感)ㆍ자살(自殺) 기도 등(等)을 하게 됨. 멜랑콜리(melancholy) 

※ 울[鬱] ㉠답답하다 ㉡우울하다(憂鬱--) ㉢울적하다(鬱寂--)



 

子供の心が不安定になってから、親が子供の氣嫌をとるようになっても、もはや遲いのです。
자식의 마음이 불안정하게 되고 나서, 부모가 자식의 기분을 달래려고 해도, 이제는 늦은 것입니다.

 

逆に兩親の夢を子供にたくして、勉强、勉强の詰め込み敎育で、情緖不安定になって、自閉症になったり、ウツ病になる子供も非常に多いのです。
반대로 양친의 꿈을 자식에게 걸고, 공부, 공부만을 주입 교육해서, 정서불안정이 되어, 자폐증이 되거나, 울병(억울증)이 되는 자식도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자페증[自閉症] 《한자사전》
 정신(精神) 분열증(分裂症)의 주 증세(症勢)의 하나. 대인 교섭(交涉)을 싫어하며 자기(自己)만의 의식(意識) 속에 들어박혀 사는 병적(病的)인 상태(狀態). 어린아이일 경우(境遇)에는 언어(言語) 장애(障礙)를 일으킴

 

※자페증[自閉症] 《국어사전》
[의학] 1 같은 말: 조기유아자폐증.2 심리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내면세계에 틀어박히는 정신 분열증. 현실 세계는 꿈과 같이 보이며, 대인 교섭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억울증[抑鬱症]=울병[鬱病]
[의학] 기분이 우울하고 피로감과 불안을 느끼는 정신병.



 

いずれも養親のエゴによって、子供の氣持を理解することなく、愛情不足や、愛情過多に、その原因があるのです。
죄다 양친의 이기심에 의해서, 자식의 기분을 이해하는 일도 없고, 애정부족이나, 애정과다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むしろ、心因性ノイロ―ゼとでもいえるでしょう。
오히려, 심인성 노이로제(심인성 신경쇠약증)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인성[心因性] psychogenic《전문용어대역사전》
장애나 질병의 원인이나 그 증세가 심리적 또는 정신적 원인에서 비롯되는 성향이나 특성. 

 

※심인성[心因性] 《국어사전》
 [의학] 어떤 병이나 증세 따위가 정신적·심리적 원인으로 생기는 성질.

 

※심인성[心因性]《한자사전》
어떤 병이나 증세(症勢)가 마음이나 정신(精神) 환경(環境)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특성(特性)



また、心の中の不調和な曇りを、正しい反省によって除くことなく暝想をしている間に、心不在になり、地獄靈に忍び込まれ、被らに支配されてしまう場合もソウウツ病の原因になっています。
또, 마음 속의 부조화한 흐림(거리낌, 응어리)를, 올바른 반성에 의해서 제거하는 일 없이 명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지옥령를 몰래 숨어들게 하여, 그들에게 지배되어 버리는 경우도 조울병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조울병[躁鬱病] manic depressive psychosis 《전문용어대역사전》
우울한 감정상태인 울병(鬱病)과 상쾌한 감정상태인 조병(躁病)이 반복해 나타나고 중간기에는 정상적인 감정을 보이는 것이 주요 증상인 정신장애.

 

※조울병[躁鬱病] 《일본어사전》
躁鬱病;ゆううつ状態と興奮状態が交互にあらわれる精神病。 
조울병. 우울한 상태와 흥분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병.



しかし、ノイロ―ゼの場合、はとんど百パ―セント、地獄の靈たちに支配されているといえます。
하지만,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의 경우, 대부분 백 퍼센트(100%), 지옥의 혼령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彼らのほとんどが兩親をうらみ、他人をうらみ、決して自分のせいだということを認めません。
그들의 대부분이 양친을 원망하고, 타인을 원망하고, 결코 자신의 탓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思っていること行っていることに自身がなく、いうことやることが、コロコロと變ってしまいます。
생각하고 있는 것과 실행하고 있는 것에 자신이 없고, 말하는 것이나 하는 짓이, 대굴대굴 변해(확 변해 ) 버리고 맙니다.

 

しかも夜中になると元氣になり、地獄靈たちに支配されてほとんど眠れ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
게다가 한밤중이 되면 원기 왕성하게 되어, 지옥령들에게 지배당하여 대부분 잠을 잘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地獄靈のいうことを信ずるようになると、兩親や身內の者

友人などのいうことをまったく信じなくなってしまうものです。
지옥령의 말하는 것을 믿게 되면, 양친이나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가까운 사람),  
친구 등의 말하는 것을 전혀 믿지 않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なぜならば、地獄靈たちは、俺は神だとか稻荷大明神だとか、その人の心の中にある神佛に關係ある名前をいって信用され、ほかの人びとのいうことを信じさせないようにしてしまうからです。
왜냐하면, 지옥령들은, 나는 신(神)이다 라든지, 이나리대명신((도하대명신((오곡을 담당하는 음식물의 신(神))이다 라든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신불에 관계있는 이름을 말하고 신용하게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의 말하는 것을 믿지 않도록 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稻荷大明神(いなりだいみょうじん) 도하대명신(이나리다이묘징)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 라고, 올렸었는데, 2016년 05월 06일 간단히 소개합니다.


★이나리 대명신은, 일본에 보면, 각 절 앞에, 여우를, 동상으로 만들어서 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우는, 사실 악령이 아니라, 차원의 7차원인,보살계의 보살님들(자비와 사랑 그 자체인 남자와 여자들)이, 각각의 동물들을, 교육을 시켜, 심부름꾼으로 사용하는데, 그 중에는 룡이나 여우가 대표적인데, 이들이 본능과 감정이 강해서, 이 세상의 시간으로 약 400년 간을, 교육을 시키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이 세상으로 도망쳐 옵니다. 

특히, 이나리 대명신은, 여우를 심부름꾼으로 자주 사용하는데, 그래서 일본에서는, 여우를, 이나리 대명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あそこへ行くなここへ行け」と地獄靈たちにいわれると、その通りの行動をしてしまうために、普通、ノ―マルな人びとが見ていると、常軌をいっした言葉や、行動を、平氣でやるのです。

「저 쪽으로 가지 마라, 이 쪽으로 가라」라고 지옥령들이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동을 해 버리기 때문에, 보통, 정상적인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상궤(바른길)를 벗어난 말이나, 행동을, 예사로 하는 것입니다.

 

さらに進むと、人格すっかり變わってしまいます。
병세가 더욱더 악화하면, 인격이 완전히 변해 버리고 맙니다.

 

肉體舟は變わらないが、それを支配するのは本人でなくて地獄靈だからです。
육체 배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지옥령이기 때문입니다.

 

彼らに支配されてしまうと、體もがたがたになってゆきます。
그들에게 지배당해 버리면, 몸도 부들부들 떨리게 되어 갑니다.

 

しかし人間はいっとき、自分に戾っている時間もあるのです。
하지만 인간은 잠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시간도 있는 것입니다.

 

そのときに、正しい心のあり方を敎え、地獄靈との交涉をしゃ斷するほかにないのです。
그 때에, 올바른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가르치고, 지옥령과의 교섭을 차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地獄靈はいつも憑きっぱなしにはなれないからです。
지옥령은 늘 붙어 있는 채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彼らも苦しいのです。
그들도 괴로운 것입니다.

 

これを救う導は、家庭にいる、殘された者たちが、正道を實踐して家の中を光明に滿たし、心から平和な環境をつくり出す以外にはないでしょう。
이것을 구원하는(도와주는) 길은, 가정에 있는, 남겨진 사람들이, 정도(正道)를 실천하고 집 안을 광명으로 가득 채우고, 진심으로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는 이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精神病の患者の心の中に自己を取り戾すためには、明るい環境が必要だということです。
정신병 환자의 마음 속에 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밝은 환경이 필요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夜眠れない者たちは、心の中のイライラを除くためにも一時安定劑などで肉體舟の休養が必要です。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은, 마음 속의 안절부절(짜증,초조함)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일시 안정제 등으로 육체 배의 휴양이 필요합니다.

 

また、家の建ててある場所が墓跡であったとか、神社佛閣の跡につくられたような場合も、自縛靈によって家庭が混亂される場合が多いといえます。
또, 집의 세워져 있는 장소가 무덤터이었든지, 신사불각(신을 제사지내는 곳,  또는 그런 건물이나 불당)의 터에 만들어진 경우도, 자박령에 의해서 가정이 혼란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混亂される側も、正しい心の持主ではありません。
혼란당하는 측도, 올바른 마음의 소유자가 없습니다.

 

地獄靈たちと同じ心に通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지옥령들과 같은 마음으로 통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ノイロ―ゼをなおすためには、自分自身の自覺以外にないといえましょう。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자각 이외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藥はいっときの安定劑であり、自分を取り戾した片寄りのない想念と行爲によって、自力で暗い地獄界からはい上がることが、最も大事だといえるでしょう。
약은 일시적인 안정제이며, 자신을 회복한 치우침이 없는 상념과 행위에 의해서, 자력으로 어두운 지옥계에서 기어오르는 일이(고난을 극복하고 어느 지위에 오르는 일이), 가장 중대사(큰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地獄靈のいうことは信じてはいけません。
지옥령의 말하는 것은 믿어서는 안 됩니다.

 

彼らは「もしお前が私のことを信じなければ死ぬだろう」と脅迫するでしょう。
그들은「만약 네가 내 일을 믿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협박할 것입니다.

 

そして、いくつかの豫言もすろでしょう。
그리고, 언젠가 예언도 할 것입니다.

 

その豫言が當たるのではないか、と恐れます。
그 예언이 적중할 것이 아닐까, 라고 두려워합니다.

 

こうして人間は彼らを信じていってしまいます。
이렇게 해서 인간은 그들을 믿어가 버리고 맙니다.

 

そうならと地獄靈の思うつぼにはまり、廢人同樣の人生を送る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그렇게 되면 지옥령의 뜻대로 되어, 폐인과 같은 인생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彼らは言葉巧みなために、ついだまされてしまいがちになるのです。
그들은 교묘하게 말을 하기 때문에, 무심코 속아버리는 일이 곧잘 많은 것입니다.

 

たいてい、人間の欲望を滿たすための啓示をいろいろとならべてくるからです。
대부분, 인간의 욕망을 가득 채우기 위한 계시를 여러 가지로 죽 늘어놓아 오기 때문입니다.

 

そして、善なる人びとの團結をくずそうと試みます。
그리고, 착한 사람들의 단결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합니다.

 

しかし、正しい心の物差しで判斷して生活している善なる人びとは、迷わされたり、心に毒を食べ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
하지만, 올바른 마음의 척도로 판단하고 생활하고 있는 착한 사람들은, 방황하게 하거나, 마음에 독을 먹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彼ら地獄靈は增上慢で、私こそ正しいのだと自信ありげに他人に告げます。
그들 지옥령은 오만하며, 나야말로 올바른 것이다 라고 자신이 있는 듯이 타인에게 알립니다.

 

しかし、心の中は矛盾にみちており、虛榮心だけが彼らの心の支えたなっています。
하지만, 마음 속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허영심만이 그들의 마음을 지탱하게 되어 있습니다.

 

彼らこそ、救われたいことを望んでいる惡魔たちなのです。
그들이야말로, 구원받고 싶다는 것을 바라고 있는 악마들인 것입니다.

 

こうして、地獄の惡魔たちから自分を守るためには、每日の生活を、八正道を心の物差しとして正しく判斷し、常に心を調和させた生活を送る以外にない、ということです。
이렇게, 지옥의 악마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의 생활을, 팔정도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항상 마음을 조화시킨 생활을 보내는 이외에는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page 8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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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2장 팔정도와 중도」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一章 間違った信仰」[[親と子の愛] page 83~87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16 21:43







第二章八正道と中道  


제 2장 팔정도와 중도


 

心は一念三千、さまざまに變化する。.
運命は心という想念行爲がつくり...
今の生あなたを生かしている.
善を生かすかどうかはあなた自身にかかっている。

마음은 일념삼천, 다양하게 변화한다.
운명은 마음이라는 상념행위를 만들며...
지금의 삶 당신을 되살리고 있다.
선을 살리는지 어떤지는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내용은 표제지 안쪽인 90페이지의 글입니다.


 

八正道ㅡその意味と解釋
팔정도그 의미와 해석

 


八正道こそ中道の道
팔정도야말로 중도의 길


 

佛敎の言葉の中に、苦集滅道というのがあります。これはどういう、意味かと申しますと、苦とは生老病死を指し、集とは、その原因、滅とはその原因を滅すること、そうしてそれには道を行ずる、つまり中道であり、八正道を行ずる以外にはない、ということをいっています。
불교의 말 중에, 고집멸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의미인지 말씀드리자면, 고(苦)란 생로병사를 가리키고, 집(集)이란, 그 원인, 멸(滅)이란 그 원인을 없애는 것. 그렇게 해서 그것에는 도리(道)를 행한다, 즉 중도이며, 팔정도를 행하는 이외에는 없다, 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集である原因とは何かとえば、日常生活において人を非難したり、ぐちったり、そしったり、あるいは自我我欲におぼれ、人を人とみない我執の虜となること、人間として中道の道を失うことをいいます。
집(集)인 원인이란 무엇인가 하면, 일상생활에 있어서 사람을 비난하거나, 푸념을 늘어놓거나, 비방하거나, 혹은 자아아욕(自我我欲 자기에게 이익의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에 빠져,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아집의 포로가 되는 것, 인간으로서 중도의 길을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地位や名譽が高くなりますと、つい人を見下したり、俺は偉いのだ、といった氣分になります。お金があると、たいていのことは自由になりますから。ぜいたくする。二號、三號さんを圍うようにもなります。
지위나 명예가 높아지게 되면, 무심코 사람을 깔보거나, 나는 위대한 것이다, 라고 한 기분이 됩니다.  돈이 있으면, 대부분의 일은 자유롭게 되게 때문에, 사치를 한다.  둘째, 셋째첩을 두게도 됩니다.


 

その反對に、下積みの生活が續きますと、みんな自分に敵對しているようにみえてきて、あいつが惡、こいつが面白くないといって人を呪(のろ)ったり、自分をいじめたりして、小さな自分をつくりあげてしまいます。
그 반대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면, 모두 자기 자신에게 적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져서, 저 놈이 나쁘다, 이 놈이 언짢다고 말하며 사람을 저주하거나, 자기 자신을 괴롭히거나 하며, 작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 버리고 맙니다.

 


このように、金がありすぎても、なくても、地位が高すぎても、低すぎても、とにかく、人間は、その生活環境が右によっても、左にかたよっても、それに、心まで動かされてしまいからです。
이와 같이,  돈이 너무 많아도, 없어도, 지위가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어쨌든, 인간은, 그 생활 환경이 오른쪽이어도, 왼쪽이어도, 그것에, 마음까지 움직여 버리기 때문입니다. 


 

そこで、何事も腹八分のたとえのように、中道を步むことが大切なのです。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양껏 먹지 말고 8부 정도만 먹으라고 비유하듯이, 중도를 걷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しかし、ここで間違えては困ることは、中道とは地位が高いからよくない、貧乏だから心が貧しい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地位が高いのは、それだけ、その人の努力の結果であり、貧乏といっても、それはその人にたいして、天がある修行を命じている場合もあるのです。ですから,自分の環境が、現在たとえその兩極端におかれたとしても、自分は中道を步いていない、俺はダメだ、というように悲觀する必要はさらさらありません。
하지만, 여기에서 잘못해서는 난처한 일은, 중도란 지위가 높으므로 좋지 않다, 가난하므로 마음이 가난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가 높은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의 노력의 결과이며, 가난하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 하늘이 어떤 수행을 명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 자신이 환경이, 현재 예들 들면 양극단에 놓여져 있다고 해도, 당사자는 중도를 걷고 있지 않고, 나는 쓸모없어, 라고 하듯이 비관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中道を步むということ、その本來の意味は、人間はとかく、眼や耳や鼻、あるいは舌や身、意(自己保存)に左右されがちなので、こういうものに、心を動かされるな、ということをなのです。
중도를 걷는다고 하는 것, 그 본래의 의미는, 인간은 어쨌든, 눈이나 귀나 코, 혹은 혀나 몸, 뜻(자기보존)에 좌우되기가 쉬운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에,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話は前に戾りますが、苦の原因は、そのように、增長慢(傲慢)や自己卑下、自我我欲、愚癡ったり、そしったりして、自分自身の心を縛ってしまうところにあります。こうした狀態が續いつまでも續くと、自分の意識まで腐らせてしまい、それはそのまま地獄界に通じてしまうといることをいっているのです。
이야기는 앞으로 되돌아갑니다만, 괴로움의 원인은, 그처럼, 오만이나 자기비하, 자아아욕, 푸념을 늘어놓거나, 비방하거나 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묶어 버리는 데에 있습니다. ((번역 누락된 부분)) 이러한 상태가 계속 언제까지나 이어지면, 자신의 의식까지 썩어 버리고, 그것은 그 상태로 지옥계(
地獄界)로 통해 버린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八正道 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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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定 正念 正進 正命 正業 正語 正思 正見

정정 정념 정진 정명 정업 정어 정사 정견

 

 

 

 

 

 

中心 ☞ 心 ☜ 中心


己の心を信じ、神佛の心を 

心とする反省の生活の實踐
자기의 마음을 믿고, 신불의 마음을

마음으로 하는 반성의 생활의 실천

八正道は八つの規範に別れていますが、その一つ一つは、すべて己の心に問う、
聞くことが大事です。ですから扇の要を
心としたのです。

팔정도는 여덟 개의 규범으로 별개로 있습니다만, 그 한 가지 한 가지는, 전부 자기의 마음에 묻고,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채의 중요한 부분을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위의 내용은, 원래 page 93에  그림으로 있습니다,

원본 책에, 무단 전제를 금한다 라고 적혀 있어서, 그림을 넣지 않았습니다.

 상상만 하세요. 부채를 편 모양을


 


地獄は、自分を見失った世界です。自己を滅した世界です。なぜかといいますと、人間は本來、神の子、佛の子であり、その住む世界は光輝く、調和された天上界であるからです。その神の子、佛の子が、暗い、陰慘な、火炎地獄や阿修羅界、餓鬼界に墮ちるということは、心の神性、佛性を傷つけ、自己を滅したことになるわけです。
지옥은, 자기 자신을 보고 있던 것을 놓친 세계입니다.  자기를 없앤 세계입니다. 왜냐고 말씀드리면, 인간은 본래,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이며, 그 사는 세계는 빛나게( 명예롭게, 눈에 띄게 훌륭하게 보이는), 조화된 천상계이기 때문입니다그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가, 어두운, 음침하고 참혹한, 화염지옥이나 아수라계, 아귀계로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신(神)의 신성(神性), 불성(佛性)을 손상시키고, 자기를 없애게 된 까닭입니다.

 


地獄界に墮ちますと、その苦しみから、なかなか拔けられず、何十年、何百年という長い間、そこにとどまることが多いのです。
지옥계에 떨어지면, 그 괴로움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고, 몇 십년, 몇 백년이라는 오랫 동안, 거기에 머무르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そこで、これではいけない、人間は、人間らしく、神の子、佛の子として、その神性を保ってゆかなければいけない、そして、神佛の理想とされているこの世の理想社會、つまり、佛國土、ユ―トピアの世界をつくりあげていか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わけなのです。
그런 까닭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인간답게,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로서, 그 신성(神性)을 유지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불성(佛性)의 이상(理想)으로 삼고 있는 이 세상의 이상사회(理想社會), 즉, 불국토, 이상향(Utopia 理想鄕)의 세계를 만들어 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それには、各人が、神の子、佛の子としての自覺、つまり、こうした苦の原因である五官に左右されず、佛敎でいう悟りを得ることが大切であるというのです。
그것에는, 각자가,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로서의 자각(自覺), 즉,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인 오관(五官)에 좌우되지 않고,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そこで、苦集滅のあとに、道という言葉が出てまいります。つまり、苦界からぬけ出し、己自身を救うには、さきほどの中道の道を步むしか、人間に救いがないといっているわけのです。
그런 까닭으로, 고집멸도의 뒤에, 도(道)라고 하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고계(苦界 괴로움이 많은 세상)에서 빠져 나가고,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데에는, 조금 전의 중도의 길을 걷는 수밖에, 인간에게 구원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까닭인 것입니다.

 



それが、かつてインドで說かれた釋迦のいう八正道です。
그것이, 일찍이 인도(印度)에서 설명한 석가(釋迦)가 말하는 팔정도입니다.

 

 

八正道は、人間をして、中道を步ませる規範であります。天國につながるかけ橋です。左にかたよらず、右に曲らぬ中道への道、つまり、神性、佛性への道、正覺への道なのです。
팔정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중도를 걷게 하는 규범입니다.  천국으로 연결되는 가교(假橋 《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잔교(棧橋))입니다.  왼쪽으로 쏠리지 않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중도(中道)로의 길, 즉, 신성(神性), 불성(佛性)으로의 길, 정각(正覺 올바른 깨달음)으로의 길인 것입니다.

 


すなわち、一、正しく見ること,、一、正しく思うこと、,一、正しく語ること,、一、正しく仕事をなすこと、一、正しく生活すること、一、正しく道に精進すること、一、正しく念ずること、一、正しく定に入ること、と八つのです。
즉, 一, 올바르게 보는 것, 一, 올바르게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 一, 올바르게 말하는 것, 一,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 一, 올바르게 생활하는 것, 一, 올바르게 도(道)에 정진하는 것, 一, 올바르게 염원하는 것, 一, 올바르게 선정에 들어가는 것, 라는 여덟 개입니다.


 

この八つの規範の一つが欠けてど、中道の道は步めないし、正覺を得ることも、不可能であると說いています。また、これ以上であってもいけない。たとえば、戒を守れとか、瞑想のみの生活を送れとか、苦行せよ、といったようなのです。
이 여덟 개의 규범의 한 개가 빠지면, 중도의 길은 걸을 수 없고, 정각(正覺 올바른 깨달음)을 깨닫는 일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또, 이것 이상으로 있어도 안 된다예를 들면, 계율을 지키라든지, 명상만의 생활을 보내라든지, 고행(苦行 고통스런 수행)을 하라, 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それは、釋迦自身が、いろいろな經驗を通して得た中道への道は、八正道以外にないと悟ったのであり、八正道こそ、神理につながり、この世に人間が生存するかぎり、その神理は生き續けていくものであるからなのです。
그것은, 석가 자신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중도로의 길은, 팔정도 이외에는 없다고 깨달은 것이며, 팔정도야말로, 신리로 연결되며, 이 세상에 인간이 생존하는 한, 그 신리는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もしも、釋迦の說いた八正道が、一つでも欠けたり、一つでも、二つでも多くあったとすれば、二千五百有餘年にわたる佛敎の歷史は、今日以上に大きな變化が、あるいはその敎えはある地域の人びとのみにとどまっていたかも知れません。
만약, 석가가 설명한 팔정도가, 한 개라도 빠지거나, 한 개라도, 두 개라도 많게 있었다고 하면, 2500유여년에 걸치는 불교의 역사는, 오늘 이상으로 큰 변화가, 혹은 그 가르침은 어느 지역의 사람들만으로 머물러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それでは、その八つの規範、八正道について一つ一つ、解說を試みてみましょう。
그래서는, 그 여덟 개의 규범, 팔정도에 대해서 일일이, 해설을 해 보겠습니다.

 

 

 




正見(正しく見ること)
정견(올바르게 보는 것)


 

ものを正しく見るには、まず、自己の立場を捨て第三者の立場でモノを眺めることです。私たちは普通、他人の間題については比較的正確な判斷が下せます。ところが、 自分の問題となり、利害關係が伴ってくると、是非の判斷がつかなくなり、しばしば悔いが殘るような結果になるようです。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데에는, 우선, 자기의 입장을 버리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자신의 문제가 되어, 이해관계가 동반해 오면, 시비의 판단을 할 수 없게 되고, 자주 후회가 남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는 모양입니다.


 

これは、自分の問題になると、知らぬ間に自己保存が働き、我欲に左右されるからです。
이것은, 그 사람 자신의 문제가 되면, 모르는 사이에 자기보존이 작용하고, 아욕(我欲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正しい判斷、正しい見方は、自分を切り離し、いわば第三者の立場でモノを見ることから始まるのです。
올바른 판단, 올바른 견해는, 자기 자신을 분리해서, 말하자면 제 3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そうしてやがてその見方は、心の內面にまで堀り下げられ、これまで正しいと思ったことが、まったく反對であったことがわかります。
그리고 나서 머지않아 그 견해는, 마음의 내면에까지 깊이 파고들어, 지금까지의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이, 완전히 반대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たとえば、つい百年前、二百年前まで親の仇打ちは正しいものとされました。仇打ちと聞くと、武士も、町人も、百姓も、その仇打ちに加勢したものです。
예를 들면, 바로 백년 전, 이백 년(200년) 전까지 부모의 원수를 갚음은 올바른 것이라고 하시었습니다.  원수를 갚는다고 들으면, 무사도, 마을 사람도, 백성도, 그 원수를 갚음에 가세했던 것입니다.

 


現代では仇打ちは人殺しになり、殺人罪に問われます。百年前より、ものの見方が前進したといえましょう。
현대에서는 원수를 갚음은 사람을 죽이게 되어, 살인죄로 고소당합니다.  백년 전 보다, 사물의 견해가 전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なぜ仇打ちはいけないか。殺人は神の理に反するからです。
왜 원수를 갚으면 안 될까.  살인은 신의 뜻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神の理は地上の調和であり、人びとの目的は、調和の中に生かされているからです。
신의 뜻은 지상의 조화이며, 사람들의 목적은, 조화 속에 되살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殺人の繰り返しは、不調和を助長します。つまり、作用反作用の振り子は、いつまでたっても止まることがないからです。
살인의 반복은, 부조화를 조장합니다.  즉, 작용반작용(作用反作用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같은 크기의 힘)의 진자(振子 흔들이)는, 언제까지고 멈추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자[振子] 《전문용어대역사전》
pendulum (영어) 일정한 주기로 일정한 점의 주위에서 주기적 진동을 계속하는 물체.




今日、個人間のこうした問題は、國が裁いています。ところが國と國の問題になると、調停や、裁くものがないために、戰爭にまで發展してしまいます。
오늘날, 개인간의 이러한 문제는, 나라가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와 나라의 문제가 되면, 조정(중재)나, 심판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전쟁에까지 발전해 버리고 맙니다.


 

第四次中東戰爭は、昔の個人間の仇打ちにも似た怨念戰爭であり、爭いは、怨念が消えるまで半永久的に續くでしょう。
제 4차 중동전쟁은, 옛날의 개인간의 원수를 갚음과도 닮은 마음에 깊이 새긴 원한의 전쟁이며, 싸움은, 마음에 깊이 새긴 원한이 없어질 때 까지 반영구적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戰爭が絶えないということは不幸です。多くの人命が失われ、一家は離散します。
전쟁이 끊임없다고 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많은 인명을 잃게 되고, 한 가족은 헤어져 흩어집니다.


 

なぜこうなるのでしょうか。戰爭や爭いというものは、自分のこと、自國の問題となると、自己保存が働く、自分を守ろう、相手はどうでも自分さえよければ、という考え、見方に傾むいてしまうからです。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요.  전쟁이나 싸움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일, 자국의 문제가 되면, 자기보존이 작용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상대는 어떻게 되어도 자기 자신만 좋으면, 라고 하는 생각이, 견해로 기울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正見の尺度は神の心なのです。その出發點は第三者の立場で、自分を見、相手をながめることです。
정견의 척도는 신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출발점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상대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現象の姿だけをとらえて判斷を下しては、間違いのモトになります。
현상의 모습만을 붙잡고 판단을 내려서는, 그릇됨의 근본이 됩니다.

 


現象の奧にかくされた原因を見きわめ、そうして、その原因を取り除く努力が必要なのです。
현상의 깊숙한 속에 감춰진 원인을 끝까지 지켜보고, 그리고 나서, 그 원인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正しい見方は、やがて正しい見解をつくってゆくでしょう。そうすると、この現れの世界の、めまぐるしい動きに、いちいち私たちの心を振り回されることがなく、心をいつも平靜にしていられるでしょう。
올바른 견해는, 이윽고 올바른 견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이 현상의 세계의, 눈이 팽팽 돌 것 같은 움직임에, 일일이 우리들의 마음을 휘둘리는 일 없이, 마음을 항상 평정에 들어갈 것입니다.

 


この現象界で起こった、あるいは起こりつつある現象は、すべて原因があって結果として現れてくるものですかが、正しい見方が養われてくるにしたかって、現象の奧にかくされた原因をつかむことが容易になるでしょう。
이 현상계에서 일어난, 혹은 일어나는 중에 있는 현상은, 전부 원인이 있고 결과로써 나타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견해가 길러져 옴에 따라서, 현상의 깊숙한 속에 감춰진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용이하게 될 것입니다.

 


正しい見方は、こうした心の眼を養うことによって高められ、やがて、神の心につがなっていくものです。
올바른 견해은, 이러한 마음의 눈을 기르는 것에 의해서 향상되어, 이윽고, 신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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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正思)편에 들어가기 앞서,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생각하다(思う)란 말에는, 정서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상상하다, 여기다, 느끼다, 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생각한다는, (考える)는 지적으로 생각한다는 뜻과 함께, 판단하다, 어떠한 것을 하려고 마음먹다, 곰곰히 생각하다, 헤아리다 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正思(正しく思うこと)
정사(올바르게 생각하는 것)



思うとは、考えることです。見る、聞く、語る、の行爲の中には、正しい中道の神理をもとにした考えがなくてはなりません。自己本位の考え方は身を滅します。すべては相互作用し、循環の法にしたがっているため、自己保存の想念は自分にかえってくるからです。
정서적으로 생각한다란,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 중에는, 올바른 중도의 신리를 근본으로 한 생각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본위의 사고방식은 몸을 망칩니다.  모든 것은 상호작용하고, 순환의 법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자기보존의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은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思う、考えることは、行爲につながりますから不調和な思いは、想念のフィルムに抵抗をつくり、その抵抗は、自分の意識や腦細胞までも狂わせてしまいます。
정서적으로 생각한다, 지적으로 생각한다 란, 행위로 연결되므로 부조화한 생각은, 상념의 필름에 저항을 만들고, 그 저항은, 그 사람 자신의의식이나 뇌세포까지도 미치게 해 버리고 맙니다.

 


私たちは、每日の生活の中で、自分だけよく思われよう、樂をしようと考え、他人のことを考えなかったりしますが、これは自己保存の我欲につながっていることを知るべきです。
우리들은,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자기 자신만 좋게 생각하려 하며, 편하게 살려고 생각하며, 타인의 일을 생각하지 않거나 합니다만, 이것은 자기본위의 아욕(我欲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

 


自己主張も自分にもどるのです。競爭相手をケ落とそうなどという思いは、あの山彦に似て、己にかえってきます。「馬鹿野郞」といえば、山彦もまた「馬鹿野郞」と、自分の聲で歸えってきます。
자기주장도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경쟁상대를 나쁜 상태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따위라는 생각은, 저 메아리와 닮아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바보야」라고 하면, 메아리도 역시「바보야」라고, 그 사람 자신의 목소리로 돌아옵니다.


 

※빠가야로「馬鹿野郞」: 이 말은 상당히 심한 일본인들의 욕설입니다. 참고 하세요.


 

思う、考えることは、創造行爲でもあり、自己の運命をよくしたいと思うなら、まず、正しく思うことをしなげればなりません。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란, 창조행위이기도 하며, 자기의 운명을 좋게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우선, 올바르게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不調和な思いを持てば、黑の想念の抵抗を自らつくり、苦しみを多くするだけです。相手を陷れて不幸にしようと思う心は、自分の落ち込む穴を堀っているようなもの。「策士、策におぼれる」の類であり、「人を呪わば穴二つ」であります。
부조화한 생각을 가지면, 검은 상념의 저항을 스스로 만들고, 괴로움을 많게 할 뿐입니다.  

상대를 나쁜 상태로 몰아넣어 불행하게 하려고 생각하는 마음은, 그 사람 자신의 빠질 구멍을 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책략(策略)을 잘 쓰는 사람은, 제 꽤에 넘어간다」는 류이며, 「남을 저주하면 무덤의 둘(남을 해지면 나도 그 응보를 받음)」입니다. 

 


また情欲の聯想は、心の中で、行爲にづながります。夢とかあの世の生活では、思ったことと、考えたことが、その結果として、ただちに現れます。現象界においても、心の中で思ったことは、形に現れずにはおかないものです。思うことは行爲の前提であるが、實は、行爲その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
또한 정욕의 연상은, 마음 속에서, 행위로 연결됩니다.  꿈이라든가 저 세상의 생활에서는, 정서적으로 생각한 것,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 결과로써, 즉시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현상계에 있어서도, 마음 속에서 생각한 것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상상하는 것은) 행위의 전제이지만, 사실은,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昔から姑と嫁の爭いを聞きます。姑が嫁にきびしいことをいうと、嫁はたび重なる叱言に心から嫌な姑だ、早く死んでしまえばよいと思うようになってきて、そうなると心の黑い想念は現象化され、表面は姑に合わせ、口ではうまいことをいっても、嫁の心にひびくものは、姑に對する憎しみとなり、やがて爆發し、爭いになってきます。
옛날부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다툼을 듣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엄격하고 가차없는 말을 한다고, 며느리는 그때 거듭되는 꾸짖는 말에  마음속으로부터 싫어하는 시어머니다,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오며, 그렇게 되면 마음의 검은 상념은 현상화되어, 표면은 시어머니에게 협력하며, 입으로는 감쪽같이 말을 해도, 며느리의 마음에 울려 퍼지는 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되어, 이윽고 폭발하고, 다툼이 되어 옵니다.

 


子でない、親でないという、お互いのそうした情感が、姑と嫁の關係をいっそう面倒にしています。それというのも、雙方の腹の底で、たがいに、よく思われたい、思う通りに家の中をしてゆきたいという自己保存から拔け切れないために、諸諸の問題を引き起こしてしまうのです
자식이 아니다, 부모가 아니다 라고 하는, 서로의 그러한 감정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한층 더 번거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쌍방의 속마음이며, 서로, 좋게 여겨지고 싶다, 생각하는 대로 집 안을 잘 되게 하고 싶다고 하는 자기보존에서 빠져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문제를 일으켜 버리는 것입니다.


 

正思の重要なことは、正見と同じように、第三者の立場に立って考え、思うことなのです。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의 중요한 점은, 정견과 마찬가지로, 제삼자의 입장에 서서 지적으로 생각하고,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일인 것입니다.

 


相手の立場、相手の幸せを考え、調和を目的とした思いが大事なのです。
상대의 입장, 상대의 행복을 생각하고, 조화를 목적으로 한 생각이 중대사(중요)인 것입니다.

 


誤解や行き過ぎはあらためればいい。話し合あって、理解し合うということが調和の大きに前提なのです。
오해나 도를 넘음(지나침)은 고치면 좋다.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이해한다고 하는 것이 조화에 대한 고마운 전제인 것입니다.

 


話し合あってもうまくゆくが、自分の非がどうしても認められない場合は、相手のために祈ってやる廣い心が必要です。
서로 이야기해도 잘 되지 않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무래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상대를 위해서 빌어 주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正道の目的は心の安らぎであり、心の中が、思いが、いつも不安でジメジメしていてはなんにもなりません。
정도(正道)의 목적은 마음의 평안이며, 마음 속이, 생각이, 늘 불안하며 안절부절 못해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相手に通じなげれば、廣い心で相手を包んでやることです。
상대에게 통하지 않으면,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는 것입니다.

 


もう一つ大事なことは、我慢と忍辱です。この兩者は似いているよう大いにちがいます。我慢とは苦しみ、悲しみを腹の中につめこむことです。自分さえ我慢すれば家の中がまるく收まる、として我慢に我慢を重ねてしまう。我慢は病氣をつくります。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점은, 아만(我慢 참음, 견딤)과 인욕(忍辱 욕됨을 참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음)입니다.  이 양자는 닮은 듯 하지만 매우 다릅니다.  아만(我慢 참음, 견딤)이란 괴로움, 슬픔을 마음속에 가득 채워 넣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 참으면 집 안이 원만하게 수습된다, 그래서 참고 참음을 거듭해 버린다.  

아만(참음)은 병(病氣 병의 기운)을 만듭니다. 

 


忍辱とは、耐え忍ぶことですが、苦しいことを腹につめこまない、話しても相手がわからなげれば、相手の心の安らぎを、調和を神に祈るという、廣く、高い心をいうのです。
인욕(忍辱 욕됨을 참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음)이란, 참고 견디는 일입니다만, 괴로운 일을 마음에 가득 채워 넣지 말고, 이야기해도 상대가 이해할 수 없으면, 상대의 마음의 평안을, 조화를 신에게 빈다고 하는, 넓은, 높은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は忍辱を學び、我慢を捨てることです。
우리들은 인욕을 배우고, 아만(참음, 견딤)을 버리는 것입니다.


 

正思を養うには、これまた反省です。今日一日の考え、思いは正しかったか、正しくなかったかを反省し、過失があれば訂正してゆくことです。
올바른 생각을 기르는 데는, 이 역시 반성입니다.  오늘 하루의 지적인 생각, 정서적인 생각은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았던 지를 반성하고, 과실이 있으면 정정해 가는 것입니다.

 


こうしてやがて、中道に適った正思を、心の中に確立すことが出來ます。
이렇게 해서 이윽고, 중도에 들어맞는 올바른 생각을, 마음 속에 확립할 수가 있습니다.


 

 




正語(正しく語ること)
정어(올바르게 말하는 것)



言葉は言魂といって、相手に傳わります。ですから表面された私たちの言葉は、相手の耳を通して不調和が、調和が、いずれかの現象を生じさせるものです
말은 언혼(言魂((ことだま)고대에 말에 깃들여져 있다고 믿어졌던 영적인 힘))이라고 해서, 상대에게 전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우리들의 말은, 상대의 귀를 통해서 부조화가, 조화가, 어느 것이든지 현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言霊(ことだま)とは、一般的には日本において言葉に宿ると信じられた霊的な力のこと。言魂とも書く。清音の言霊(ことたま)は、森羅万象がそれ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とされる五十音のコトタマの法則のこと。その法則についての学問を言霊学という
언령(고토다마)란, 일반적으로 일본에 있어서 말에 깃든다고 믿어졌던 영적인 힘을 말함. 언혼(言魂)이라고도 쓴다.  맑은 음색의 언령(言霊(ことたま))는, 삼라만상이 그것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다고 하는 50음의 コトタマ(고토타마)의 법칙을 말함.  그 법칙에 관해서의 학문을 언영학(언(言)영(靈)학(學))이라고 한다.

 



言葉とは、光と音の波動を意味します。
말이란, 빛과 소리의 파동을 의미합니다.

 


私たちの心、肉體は光から出來ています。音の波動も、また、光の波として空間に振動して行きます。
우리들의 마음, 육체는 빛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리의 파동도, 역시, 빛의 물결로써 공간에 진동해 갑니다.


 

心からの言葉は、そのまま、光の波動となって傳わってゆきますが、すぎたお世辭(世辭とは~相手に取り入ろうとして言う、心にもない言葉)や、橫暴な語り方は、光の波動に黑い塊りを付着させているため、相手の心を傷つけます。傷つけた結果は、自分にはねかえってくるのです。
마음으로부터의 말은, 그대로, 빛의 파동이 되어 전해져 갑니다만, 지나친 상대에게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 말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제멋대로 굴며 성질이나 행동이 몹시 난폭한 말투는, 빛의 파동에 검은 덩어리를 부착시키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힌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ですから、言葉は、率直な心で、相手の心になって語り合うことが大切です。語調の强い言葉は、相手の心に不調和を與えるだけです。
그렇기 때문에, 말은, 솔직한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이 되어 서로 이야기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조가 강한 말은, 상대의 마음에 부조화를 줄 뿐입니다.

 


賣り言葉に買い言葉で、町中や電車の中で口論している人がよくあります。たがいに、黑い塊りを發散され、それを食で合っている。心に黑い塊りをつくり出し、擴大させています。こうしたことを年中やっていますと、病氣や怪我をします。心がいつも不安定になっているからです。
상대의 난폭한 말에 대응해서, 똑같은 어조로 한 말을 되풀이하며 말하며, 시내나 전차 안에서 말다툼하고 있는 사람이 자주 있습니다.  서로, 검은 덩어리를 발산시키며, 그것을 서로 먹고 있다.  마음에 검은 덩어리를 만들어 내고,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일년 내내 하고 있으면, 질병이나 부상을 입습니다.  마음이 항상 불안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相手が怒鳴っても、決して反撥をしてはいけません。反撥は自己保存であり、反撥する前に、自分を第三者の立場で見、考えてから結論を出しても遲くはないからです。
상대가 고함쳐도, 결코 반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발은 자기보존이며, 반발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제삼자의 입장으로 보고, 지적으로 생각하고(곰곰히 생각하고) 나서 결론을 내어도 늦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怒った心は怒った人の心に歸って行くものであり、これに心を動かしてはなりません。
화를 낸 마음은 화를 낸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것에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第三者の立場に立って反省し、いわれなきものであれば「哀れな人だ」と相手を思いやればよいのです。そして、「神よ、あの人の心に安らぎを與えでください」と祈ることです。
제삼자의 입장에 서서 반성하고, 이유 없이 비난을 받은 것이면불쌍한 사람이다」라고 상대를 생각해 주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신(神)이여, 저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제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言葉は自分と相手の意志の交流です。
말은 자기 자신과 상대의 의지의 교류입니다.

 


それだけに、常に調和ある言葉を心掛け、調和ある對人關係をつく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그만큼, 항상 조화있는 말을 명심하고, 조화있는 대인관계를 만들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言葉は、人によって收け取り方がちがって來ます。お年寄に英語を交えたり、若い人に古い話を持ち出し、長長と語られると戶惑ってしまいます。
말은,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져 옵니다.  노인에게 영어를 섞거나, 젊은이에게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어, 장황하게 
말을 하면 당황해 버리고 맙니다.


 

「人を見て法を說け」なのです。
「사람을 보고 법을 설명하라」인 것입니다.

 



 



正業(正しく仕事をすること)
정업(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



私たちのこの地上での目的は、魂を磨くことと、佛國土ユ―トピアを造ることです。
우리들의 이 지상에서의 목적은, 영혼을 닦는 일과, 불국토Utopia(이상향)를 만드는 일입니다.


 

正業とは、この目的に適ったもの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정업(正業)이란, 이 목적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感謝と奉仕、そして、より大きく、豊かな心と魂をつくる場が仕事のはずです。
감사와 봉사, 그리고, 보다 크게, 풍요로운 마음(관대한 마음)과 영혼을 만드는 바가 일인 것입니다.

 


こう考えますと、正業の在り方はまず心を豊かにすることにあり、仕事は己の魂の經驗の範圍を廣げてゆくことになります。
이렇게 생각하면, 정업의 본연의 모습은 우선 마음을 풍요롭게(관대하게) 하는 것에 있고, 일은 자기의 영혼의 경험의 범위를 넓혀 가게 됩니다.

 


ペテロはイエス·キリストの第一の弟子として後世に名を遺したが、そのペテロは、當時は漁師でありました。學問に緣が薄かったために、傳導には隨分と苦勞しました。そこで今世は學問をみっちりと學び、魂の經驗を廣げてゆこうと、今世は學者の道を志したのです。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의 제자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 베드로는, 당시는 어부였습니다.  학문에 인연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전도(前導)에는 대부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세에는 학문을 철저히 배우고, 영혼의 경험을 넓혀 가는 일과, 금세는 학자의 길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元東大總長の故矢內原忠雄氏が、かつてのペテロであったのです。
원 동경대학교 총장인 고(故) 矢內原 忠雄(야나이하라 타다오)씨가, 옛날의 베드로였던 것입니다.

 


※やないはら?ただお【矢內原忠雄】
[1893~1961]經濟學者。愛媛の生まれ。東大敎授。植民政策を硏究し、昭和12年(1937)戰爭政策を批判して敎授の職を追われ、第二次大戰後復歸。のち、東大總長。無敎會派キリスト敎傳道者として著名 ...
※야나이하라 타다오【矢內原忠雄】
[1893~1961]경제학자.  에이메 태생.  동경대학교 교수. 식민지정책을 연구하고, 소화 12년(1937) 전쟁 정책을 비판하고 교수의 직을 물러나서, 제 2차 대전 후 복귀. 후에, 동경대학교 총장. 무교회파 그리스도교 전도자로서 저명...




こういうと人はそんなバカなと、いうかも知れませんが、同氏が書き遺した「イエス傳」を見れば、當時の經驗がなければ書けないような個所が隨所に見られます。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그런 바보 같으니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만, 그분이 써서 남긴「예수전(傳)」을 보면, 당시의 경험이 없으면 쓸 수 없는 듯한 개소가 여기저기에 볼 수 있습니다.

 


このほか現代の著名人の中には歷史上に名をつらねた人がおり、あの人がこんな仕事を、という例が非常に多い。
이 밖에 현대의 저명인 중에는 역사상에 이름을 내걸었던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이 이런 일을, 이라고 하는 예가 상당히 많다.

 


普通は前世の職業が今世につながっている人もありますが、百八十度ちがった職業を持って今世を送る人も多いのです。
보통은 전세의 직업이 금세로 이어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180도 다른 직업을 갖고 금세를 보내는 사람도 많은 것입니다.

 


このように職業を通して、己の魂の經驗をより豊かにし、廣い心を養うことが正業の第一の目的なのです。
이와 같이 직업을 통해서, 자기의 영혼의 경험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넓은 마음을 기르는 일이 정업의 첫 번째의 목적인 것입니다.

 


第二の在り方は、職業を通して、人びとの調和をはかることです。自分を含め、人びとの生活を守ってゆくことにあります。
두 번째의 본연의 모습은, 직업을 통해서, 사람들의 조화를 도모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과의 생활을 지켜 가는 것에 있습니다.

 


南方の原住民のように、一から十まで自給自足する時代は過ぎました。しかし原住民でさえ、男女の役割が決まっており、男は獲りに、女は子供と食事の用意をするように、やはりそれぞれの分擔があるようです。何もかも一人で生きることは、事實不可能ですし、社會生活という永續性を持った生活は一人では期待できません。それぞれが持ち場を守り、その分を果たすことによって自分も生かされ、他をも生かすことになるのです。
동남 아시아의 원주민처럼, 1에서 10까지 자급자족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원주민조차도, 남녀의 역할이 결정되어 있고,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자식과 식사 준비를 하는 것처럼, 역시 저마다의 분담이 있는 모양입니다.  무엇이든 혼자서 생존하는 일은, 사실 불가능하고, 사회생활이라고 하는 영속성을 갖는 생활은 혼자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가 담당 구역(담당 부서)을 지키고, 그 직분을 다하는 것에 의해서 자기 자신도 살게 되고, 남도 역시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職業に就くということは、自分の生かすばかりか、他の人びとの協同生活に欠かせない役割なのです。
직업에 취직한다고 하는 일은, 자신을 살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협동생활에 빠뜨릴 수 없는(소홀히 할 수 없는) 역할인 것입니다.



私たちの肉體の機能を見ても、心臟は心臟として、胃腸は胃腸の働きを果たすことによって體は維持されます。心臟や胃腸が勝手に動き、持場を放棄すれば、私たちの肉體は一日として保つことは出來ません。
우리들의 육체의 기능을 봐도, 심장은 심장으로서, 위장은 위장의 작용을 다하는 것에 의해서 몸은 유지됩니다.  심장이나 위장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담당 부서(담당 구역)을 방기(포기)하면, 우리들의 육체는 하루도 견딜 수는 없습니다.

 


職業とはこのように、自分を生かし、他をも生かす大事な場です。
직업이란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살리고, 남도 역시 살리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第三の在り方は、奉仕です。
세 번째의 본연의 모습은, 봉사입니다.

 


私たちが健康で働ける環境にあるということは、自分を生かし、さらに他をも生かす原動力となるものです。
우리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고 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살리고, 게다가 남도 역시 살리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職業の第一の目的が魂の經驗の範圍を廣げてゆくことにあれば、健康で働けることは神の偉大な慈悲があるからであり、感謝と報恩の行爲こそ正業の第三の在り方のはずです。
직업의 첫 번째의 목적이 영혼의 경험의 범위를 넓혀 가는 일에 있으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신의 위대한 자비(慈悲)가 있기 때문이며, 감사와 보은의 행위야말로 정업(正業)의 본연의 모습일 것입니다.

 


こうみてまいりますと、職業の在り方、仕事の目的がハッキリしてきたと思います。
이렇게 보고 계시면, 직업의 본연의 모습, 일의 목적이 분명해져 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ところが現實はどうですか。利益のためなら人を押しのけても無理押しする。公害が出ようが、人が苦しもうが、最少の費用で最大の利益を擧げる、それが企業目的になっています。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을 밀어내고라도 억지로 밀고 나갑니다공해가 나오든지, 남이 괴롭든지 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올린다, 그것이 기업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消費は最大の美德とかいって、地球資源の亂獲に狂奔し、將來の人類の生存のことなどあまり考えずに、儲かればよい、自分さえよければよいというのがこれまで企業精神のようでした。 
소비는 최대의 미덕이라든지 말하며, 지구자원의 난획에 광분하고, 장래의 인류의 생존의 일 등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이익을 보면 좋다, 자기 자신만 좋으면 괜찮다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기업정신인 것 같았습니다.

 


さりに勞使の爭い。勞働者も人の子、食えるだけよこせと經營者に迫る。資金と物資はニワトリ·卵の論議のごとく、年年エスカレ―トし、勞働者の生活福祉を目的として組合運動は、ここへ來てようやく反省期に入ろうとしています。
게다가 노사의 다툼(싸움).  노동자도 사람의 자식이며, 먹을 수 있을 만큼 달라고 경영자에게 독촉한다.  자금과 물자는 닭·계란의 논의처럼, 해마다 점차 확대되어, 노동자의 생활복지를 목적으로 해서 조합운동은, 여기에 와서 차츰 반성기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經營者と勞働者の對立は、やがて經濟全體のバランスを失う要因をはらんでいます。
경영자와 노동자의 대립은, 이윽고 경제전체의 balance(균형)을 잃어버리는 요인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企業エゴ、個人エゴが正業からみた場合、いかに人類全體の破壞行爲につながるか、魂の前進にブレ―キをかけているかが、それで明らけになるでしょう。
기업 이기주의, 개인 이기주의가 정업에서 본 경우, 어떻게 인류전체의 파괴행위로 이어지든지, 영혼의 전진에 제동을 걸고 있는지가, 그런 까닭으로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物を主體にしたものの考え方は、必ず破壞につながってゆきます。
물질을 주체로 한 자체의 사고방식은, 반드시 파괴로 연결되어 갑니다.


 

心を中心として物心兩面の考え方こそ、私たち人類の調和の基礎でなれればなりませんし、人類が永遠の平和を望みたいならば、ウソのいえないその心を大事にし、その心をもとにした生活が大事なのです。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물심양면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우리들 인류의 조화의 기초로 되지 않으면 안 되고, 인류가 영원한 평화를 바란다고 하면, 거짓말 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소중히 하고, 그 마음을 근본으로 한 생활이 중대사한 것입니다. 

 

 

 




正命(正しく生活をすること)
정명(올바르게 생활을 하는 것)



正命とは文字通り、正しく生活することです。正しい生活を送るには、まず自身の業(カルマ)の修正、短所を改めることです。
정명(正命)이란 문자 그대로, 올바르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생활을 보내는 데에는, 우선 자신의 업(카르마)의 수정(修正), 단점을 고치는 일입니다.

 


人間は誰しも、長所と短所の兩面を持っています。長所と短所というものは、光と影のようなもので、性格が片寄ったときに、長所が短所になり、短所が長所に變化します。
인간은 누구든지, 장점과 단점의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이라고 하는 것은, 빛과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성격이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에, 장점이 단점이 되어, 단점이 장점으로 변화합니다.

 


信長は非常に氣短かな男だったようです。しかしその短氣が決斷となって現れたときは、神出寄沒の戰術に變化し、戰國の世を生き拔く絶大なエネルギ―になったようです。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매우 걸핏하면 화를 잘내는 남자였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성급함이 결단이 되어 나타났을 때는, 신출기몰한 전술로 변화하고, 전쟁(戰爭)으로 몹시 어지러운 세상을 다양한 괴로움이나 장해를 뛰어넘어, 끗끗하게 살아가는 절대적인 에너지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このたとえばあまり感心しませんが、長所と短所とういものは紙一重であり、それは紙の表と裏のようなものといえるでしょう。
이렇게 예를 들면 그다지 깊이 마음으로 느끼지 못합니다만, 장점과 단점이라고 하는 것은 종이 한 장(근소한 차이)이며, 그것은 종이의 겉과 속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そうした紙一重の性格をどうすれば長所に變えることが出來るか、あるいは長所とは何か、短所とはどういうものか、となりますと、短所は自分の心をさわがし、人の心をも傷つけるものであり、長所は、自他ともに調和をもたらす性格といえるでしょう。
그러한 근소한 차이의 성격을 어떻게 하면 장점으로 바꿀 수가 있을까, 혹은 장점이란 무엇일까, 단점이란 어떠한 것일까, 가 되면, 단점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도 역시 다치게 하는 것이며, 장점은, 자타가 서로 조화를 가져오는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長所を伸ばし、欠点を修正することによって、自身の想念と行爲はもとより、自分の周圍を明るく導く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장점을 늘이고, 결점을 수정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의 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는 물론, 자기 자신의 주위를 밝게 이끌 수가 있을 것입니다.

 


私だちのこの世の目的は、この地上に佛國土・ユ―トピアをつくることです。それには正しい生活を營まねばなりません。正しい生活は、まず自分自身の調和からはじめねばなりません。自身が調和を保たなげれば、自分の周圍も調和に導くことは出來ません。
우리들의 이 세상의 목적은, 이 지상에 불국토・Utopia(이상향)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올바른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올바른 생활은, 우선 자기 자신의 조화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조화를 유지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주위도 조화로 이끌 수는 없습니다.

 


欠点を修正するにはどうするか。それには第三者の立場から、自分の心を、每日の思うこと考えること、行爲を、反省することです。
결점을 수정하는 데에는 어떻게 할까.  그렇게 하려면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매일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 행위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正進(正しく道に正進すること)
정진(올바르게 도에 정진하는 것)



私たちの人生は、いくら長生きしても八十年か九十年、その短かい一生を目先の利益のために過してしまうことは惜しいかぎりです。意識の10%しか働かないとすればそれも仕方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しかしこうした環境だからこそ修行が出來るといえます。何もかもわかったならば、この世に生まれた意義はありません。
우리들의 인생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80년이나 90년, 그 짧은 일생을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 보내 버리는 일은 애석하기 그지 없습니다.  의식의 10%밖에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도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기 때문이야말로 수행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의의는 없습니다.

 


正進の目的は、對人關係と地上の環境を整備し、調和させることです。
정진의 목적은, 대인관계와 지상의 환경을 정비하고,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人は單獨では生きられないし、また生まれてもきません。必ず兩親がおり、そして兄弟姉妹、夫婦、隣人、友人、先輩、後輩というよに、そうした環境の中で生活しています。
사람은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또한 태어나올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부모가 있고, 그리고 형제자매, 부부, 이웃 사람, 친구, 선배, 후배라고 하는 것처럼, 그러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そして、そうした關係の中で、己自身の心が練磨され、尊重し合う心がつくられてゆくのです。
그리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이 연마되어,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最近のように物質オンリ―の風潮が强くなりますと、親子でも心は他人であり、夫婦は享樂の手段としか考えぬ人も出てきます。友人は利益追求の手段であり、自分以外はすべて他人というようになってきます。恐ろしいかぎりです。
최근과 같이 오직 물질에만 열중한 풍조가 강하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라도 마음은 타인이며, 부부는 향락의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나옵니다.  친구는 이익추구의 수단이며, 자신 이외는 전부 타인으로 취급해 버리게 됩니다.  염려스러울 따름입니다.

 


親子といえども魂はちがいますが、しかし、自分を生み、育て、今この世に在るということは、兩親の賜です。もし、その兩親があの世(出生する前に親子の約束を交わす)の約束を果たさず、放蕩したり、あるいは胎兒をおろしたりするようなことがあれば、話は別ですが、そうではなければ、この世に生まれ、魂の修行の機會を與えてくれた兩親を安心させるような自分自身に成長することが、人の道に適った生き方でしょう。
비록 부모와 자식이라 할지라도 영혼은 다릅니다만, 하지만, 자기 자신을 낳고, 기르고,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의 내려주십니다.  만약, 그 부모가 저 세상(출생하기 전에 부모와 자식의 약속을 주고받는다)의 약속을 완수하지 않고, 방탕하거나, 혹은 태아를 죽이거나 하는 것과 같은 일이 있으면, 이야기는 다릅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영혼의 수행의 기회를 제공해 주신 부모를 안심시키는 것과 같은 그 사람 자신으로 성장하는 일이, 사람의 도리에 들어맞는 삶의 방식일 것입니다.


 

夫婦にしても、大抵は前世で夫婦であという場合が多く、そうだとすれば互いに助け合う、愛の環境

をつくることが大事なのです。
부부라고 해도, 대개는 전세에서 부부였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하면 서로가 서로 돕고, 사랑의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兄弟姉妹、友人、隣人にしても、それぞれが助け合い、補い合い、話し合える愛の行爲が出來るよう勵むことが、人の道です。
형제자매, 친구, 이웃 사람에게 대해서도, 저마다가 서로 돕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正進の目的は、人の道、神の道を具現してゆくことです。
정진의 목적은, 사람의 도리, 신의 도리를 구현해 가는 것입니다.

 


第二の目的は、私たちの共同生活が末長く續げられるように、動物、植物、鑛物資源を整備し活用してゆくことです。
두 번째의 목적은, 우리들의 공동생활이 길이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동물, 식물, 광물자원을 정비하고 활용해 가는 것입니다.

 


私たちの生活は、こうした動・植・鑛物の資源を活用しなければ生きでゆけません。
우리들의 생활은, 이러한 동・식・광물의 자원을 활용하지 않으면 생존해 갈 수 없습니다.

 


そのため、こうした資源が循環の法則にそうように、大切に保存しながら、そして、それらを生活の上に活用してゆくことです。
그 때문에, 이러한 자원이 순환의 법칙에 들어맞도록, 소중하게 보존하면서, 그리고, 그들을 생활 상에 활용해 가는 것입니다.


 

神は私たちが平穩に生活できるよう、大地と、資源と、生きる環境とを與えてくれました。これを、半永久的に保存し、活用してゆくためには、私たちは、資源の再生産が常に可能になるよう、それらを大切に扱ってゆかねばなりません。
신은 우리들이 평온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대지와, 자원과, 생존할 환경을 또한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해 가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자원의 재생산이 항상 가능하게 되도록, 그들을 소중하게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つい最近まで、鳥や獸を見ると勝手放題に殺してしまっていました。必要なものなら許されますが、面白半分に動物を殺傷することは、植物資源の枯渴にも影響してきます。
바로 최근까지, 새나 짐승을 보면 제멋대로 굴며 죽여 버리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이라면 허락됩니다만, 장난 삼아 동물을 살상하는 행위는, 동물자원의 고갈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石油や石炭も今日のように使い放題、堀り放題にしてゆきますと、これに代わる動力資源が出來る前に、ガスや電氣はとまり、再び原始時代がやってくるでしょう。
석유나 석탄도 오늘날처럼 쓰고 싶은 대로 사용하고, 채굴하고 싶은 대로 땅을 파게 되면, 이것을 대신할 동력자원이 만들어지기 건에, 가스나 전기는 멈추고, 다시 원시시대가 다가올 것입니다.

 


こうした自然の資源は大切に活用し、科學の進步と步調を合あわせて使ってゆか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す。
이러한 자연의 자원은 소중하게 활용하고, 과학의 진보와 진보를 맞춰서 사용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資源を大切にする、ものを大切にすることも、道に適った生き方なのです。
자원을 아끼는, 물질을 소중하게 다루는 일도, 도리에 들어맞는 인간으로서의 살아가는 태도인 것입니다.

 


私たちは常に反省し、行き過ぎや怠慢にならないよう、自戒してゆ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우리들은 항상 반성하고, 도를 넘거나 태만하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正念(正しく念ずること)

정념(올바르게 염원하는 것)



念とは、思い願う、エネルギ―のことです。
생각(念)이란, 바라는 바를 생각하는, 에너지인 것입니다.

 


あれが欲しい、これが得たい。あの人と結婚したい、こういう仕事をしたい......、というように。
저것이 갖고 싶다, 이것을 얻고 싶다.  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이런 일을 하고 싶다...... 라고 하듯이.

 


つまり、念には常に目的意識が內在されています。
즉, 생각(念)이란 항상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目的のない人生は、漂流した船が大洋にさまよっているようなものです。
목적이 없는 인생은, 표류한 배가 대양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思うこと、こうことは誰しも抱くものであり、そしてそれは自由ですが、足もとをみつめた目的をもつことが大切です。
생각하는 것(상상하는 것), 이런 일은 누구든지 품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자유입니다만, 현실을 직시한 목적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正念の在り方は、調和にあります。就職、結婚、育兒、仕事、諸事全般にわたって、常に己を知り、その目的が、神の心である調和、愛の行爲に適ったものであるかどうかを、正しく見ることです。
정념의 본연의 모습은, 조화에 있습니다. 취직, 결혼, 육아, 일, 여러 가지 일의 전반에 걸쳐서, 항상 자기를 알고, 그 목적이, 신의 마음인 조화, 사람의 행위에 들어맞는 것인지 어떤지를, 올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適ったものであれば、それに向かって努力することです。
들어맞는 것이라면, 그것을 향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念を抱くと、たいていの場合、それに應したものが返ってきます。
생각(念)을 품으면, 대개의 경우, 그것에 응한 것이 되돌아옵니다.

 


念は、物を引き寄せるエネルギ―を持っているからです。
생각(念)은, 물질을 끌어당기는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しかし、不相應な願いや、しっとや、憎しみ、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を抱くと、目的が適う前に反動がやってきます。
하지만, 상응하지 않는 바램이나, 질투나, 미워하는 마음,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품으면, 목적이 들어맞기 전에 반동이 찾아옵니다.


 

念はエネルギ―であり、そのエネルギ―は、必ず自分自身に返ってくるので、正しい目的ならばいいが、そうでないと大變なことになります。
생각(念)은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으로써, 올바른 목적이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나게 됩니다.

 


念は魔術師です。
생각(念)은 마술사입니다.

 


科學が未發達の時代には、祈りや念によって、敵を倒すということが行われました。事實、そうしたことが流行したものです。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기도나 생각(念)에 의해서, 적을 쓰러뜨린다고 하는 일이 행해졌습니다.  사실, 그러한 것이 유행했던 것입니다.

 


念の力で大石を空中に持ち上げ、大木をたおす、風を呼び、雨を降らせるといったような術が行なわれていたようですが、こうしたことは本來、邪道です。しかし、人間の中にたくわえられたエネルギ―は、大きな山を動かすことも可能ですし、それは神が大宇宙を創造されたように、人間もまたそうしたことが出來るように仕組まれています。
생각(念)의 힘으로 큰 돌을 공중에 들어올리고, 큰 나무를 넘어뜨리고,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기술이 행해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이러한 것은 본래, 도리에 어긋나는 부정한 방법입니다.  인간 중에 비축할 수 있었던 에너지는, 큰 산을 옮기는 일도 가능하고, 그것은 신이 대우주를 창조시킨 것처럼, 인간도 역시 그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それほど人間は偉大なのですが、反面、邪の道に念力を使うと地獄に墮ちるしかありません。私たちは常に、念を正しく使うことが大切であり、そうしたときに、守護・指導靈が力を貸し、より偉大な、平和な仕事が成就できるようになるのです。
그렇게 인간은 위대한 것입니다만, 반면, 도리에 어긋나는 부정한 방법으로 염력을 사용하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항상, 생각(念)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이 중요하며, 그렇게 했을 때에, 수호・지도령이 힘을 빌려서, 보다 위대한, 평화로운 일이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正定(正しく定に入ること)
정정(올바르게 선정에 들어가는 것)



正定の在り方は、日常生活における正しい想念で生活が行なえることを意味します。
정정의 본연의 모습은,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올바른 상념으로 생활을 행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つまり、八正道の神理に適った生活行爲なのです。
즉, 팔정도의 신리에 들어맞는 생활행위인 것입니다.

 


それにはまず、八正道の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進、正念について、反省をすることが始まります。
그것에는 우선, 팔정도의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진, 정념에 대해서, 반성을 하는 일이 시작됩니다.

 


今日一日をふりかえり、八正道の正しさに反した想念と行爲がながったかどうか。 あったとしたら、どうに、なぜ......、というように、靜かに反省し、思念と行爲について檢討すろことです。そして、正道に反したことは、神に?(사죄)び、明日からは、二度と再び同じ過失をくりかえさないよう努力することです。
오늘 하루를 뒤돌아보고, 팔정도의 올바름에 반한 마음에 품은 생각과 행위가 없었는지 어떤지.  있었다고 하면, 어떻게, 왜......, 라고 하는 것처럼, 조용히 반성하고, 사념(思念 늘 마음 속에 깊이 생각함)과 행위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도에 반한 것은, 신에게 사죄하고, 내일부터는, 두 번 다시 같은 과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こうして、日常生活が神理に適った生活行爲が出來るように、每日の努力をつみ重ねてゆくことです。
이렇게 해서, 일상생활이 신리에 들어맞는 생활행위가 가능하도록, 매일의 노력을 겹쳐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正定は、反省から始まり、そうして、神の心である調和の心と自分の心が一體になることです。しかもそうした神の心を、日常の生活の中に具現出來るようになることなのです。
정정은, 반성에서 시작되고, 그렇게 해서, 신의 마음인 조화의 마음과 자기 자신의 마음이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신의 마음을, 일상의 생활 속에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つまり、正定の第一步は、禪定という反省的瞑想から始まり、やがて、守護·指導靈との對話となり、菩薩の心である慈悲と愛い行爲が出來るようになることが第一の目的。
즉, 정정의 첫걸음은, 선정이라고 하는 반성적 명상에서 시작되고, 이윽고, 수호·지도령과의 대화가 되어, 보살의 마음인 자비와 사랑의 행위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 첫 번째의 목적.


 

第二の目的は、禪定の心が、そのまま日常生活に生かされてゆくことです。
두 번째의 목적은, 선정의 마음이, 그대로 일상생활에 되살려 가는 것입니다.


 

禪定は、日常生活をより豊かに、自己の心がより大きく、廣く、神理に適った生活が出來るようになるためのものですから、禪定のための禪定、つまり、反省のための反省では、本當の反省に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선정(禪定)은, 일상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자기의 마음이 보다 크고, 넓고, 신리에 들어맞는 생활이 가능하게 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선정을 위한 선정, 즉, 반성을 위한 반성으로는, 진실한 반성으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一日中禪定しているわけにはゆきません。私たちは仕事を持ち、家庭を持ち、そして、社會の一員として生活してゆくのですから、禪定は、一日のうちの一部であり、一日の活動の動力源と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하루 종일 선정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일을 가지고, 가정을 가지고,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활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선정은, 하루 동안의 일부이며, 하루의 활동의 원동력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そうした意味から、正定の在り方は、禪定そのものではなく、反省そのものでもなく、一日の生活行爲が八正道に適った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わけです。
그러한 의미에서, 정정의 올바른 모습은, 선정 그 자체가 아니고, 반성 그 자체도 아니고, 하루의 생활행위가 팔정도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까닭입니다.

 


こうして、私たちは、正定を日常生活のものとすることによって、はじめて,如心(にょしん)という段階に到達します。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정정을 일상생활 자체로 하는 것에 의해서, 비로서, 여심(如心)이라고 하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如心とは、己の心がある程度理解できたことであり、それはまた相手の心をも見通せる能力を備えた狀態をいいます。
여심이란, 자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며, 그것은 또한 상대의 마음을 역시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상태를 말합니다.

 


普通は、人の心とか、性格というものは長いこと交際してみないとわからないものです。あの男とは二十年もつき合ってきたが、あんな男とは知らなかった、という話をしばしば耳にします。
보통은, 사람의 마음이든지, 성격이라고 하는 것은 오랫동안 교제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저 남자와는 20년이나 사귀어 왔지만, 저런 남자인지는 몰랐었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ところが、如心の心を體得すると、未知の相手でも、名前さえわかれば、その人の意識の程度、性格、生活態度がわかってしまうのです。
그런데, 여심의 마음을 체득하면, 미지의 상대일지라도, 이름마저 알면, 그 사람의 의식의 정도, 성격, 생활태도를 알아 버리는 것입니다.



同時にまた、日常生活が安心して送れるようになります。

동시에 또한, 일상생활이 안심하게 보낼 수 있게 됩니다.

 


こういうように、八正道の功德というものは、普通では考えられないようなすばらしいものがあるわけです。
이와 같이, 팔정도의 공덕(功德)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매우 훌륭한 것이 있는 까닭입니다.



 


 



八正道は行ずること
팔정도는 실행하는 것



私たちが現在ここに在るということは、肉體的先祖と兩親のおかげであり、兩親に孝養をつくすことは當然なことです。この世の修行と、あの世の修行を比べると、この世の修行の方が、ずっと樂です。あの世は波動の精妙な世界です。思ったこと、考えたことがすぐさまハネ返ってくる。このため、次元が低いと、なかなか反省できにくく、苦界から脫け出すことがむずかしいのです。ところが、この世は波動が荒いために、思ったことに對する結果が現れるまでに、ある一定の時間が與えられています。從って、結果が出ない間に、これはいけないと反省すれば、そのことにたいする訂正が可能になってくるのです。
우리들이 현재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육체적 선조와 부모의 덕분이며, 부모에게 효양(孝養 효도하고 공양함)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 세상의 수행을 비교하면, 이 세상의 수행하는 쪽이, 훨씬 즐겁습니다.  저 세상은 파동의 정묘한 세계입니다.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즉시 튀어서 되돌아온다.  이 때문에, 차원이 낮으면, 좀처럼 반성하기 어렵고, 괴로움이 많은 세상에서 탈출하는 일이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파동이 거칠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생각한 것에 대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가 나오지 않는 동안에, 이것은 안 된다고 반성하면, 그 일에 대한 정정이 가능하게 되어 오는 것입니다.

 


もっとも反面、その出される結果が遲いために、人によってはイライラすることもありましょうが、波動が荒いだけに修行はしやすいともいえるわけです。
더욱 다른 한편, 그 나오게 되는 결과가 더디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만, 파동이 거친 만큼 수행은 하기 쉽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この世の十年は、あの世の五十年、八十年に匹敵します。それほど、この世の修行は樂であり、しかも、この世の修行の結果が、再びあの世に戾ったときの自分の生活狀況を決定しますから、兩親にたいする感謝、孝養は當然であると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이 세상의 10년은, 저 세상의 50년, 80년에 필적합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수행은 즐거움이며, 게다가, 이 세상의 수행의 결과가, 다시 저 세상으로 되돌아왔을 때의 그 사람 자신의 생활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감사, 효양(孝養 효도하고 공양함)은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各人の魂(意識・心)は、このように兩親から與えられた肉體という舟に乘り、人生航路に船出します。魂そのものは、過去世、あるいは、あの世の生活を體驗してきており、肉體に乘る以前の魂にも個性的傾向があります。これを魂の先天的因果といいます。
각자의 영혼(의식・마음)은, 이와 같이 부모로부터 제공된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항로에 출항합니다.  영혼 그 자체는, 과거세, 혹은, 저 세상의 생활을 경험해 오고 있고, 육체를 타기 이전의 영혼에도 개성적인 경향이 있습니다이것을 영혼의 선천적 인과라고 말합니다.


 

肉體という舟に乘った魂は、當初10%の意識しか目覺めていませんから、この世の目的が判然としません。そのために、これまでの大多數の人びとは、五官に左右され、自我我欲におぼれてしまう場合が多かったのです。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탄 영혼은, 당초 10%의 의식밖에 깨닫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목적이 판연(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관에 좌우되어, 자아아욕(自我我欲 자기에게 이익의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八正道は、こうした各人の10%の意識にたいして、殘りの90%の潛在意識、つまり、各人の過去世、あの世の生活の記錄を思い出させ、人間としての目的をめざめさせます。それは、釋迦の長い苦行の結果であり、八正道を日日行ずることによって、悟りへの道が開ける、と敎えているのです。祈ることでも、お經をあげるでもありません。祈りとは感謝の心であり、感謝の心が湧いてくれば、次にくるものは形の上に現すことです。行ずることです。お經は行ずることを說いています。八正道は行ずることです。
팔정도는, 이러한 각자의 10%의 의식에 대해서, 남은 90%의 잠재의식, 즉, 각자의 과거세, 저 세상의 생활의 기록을 생각해 내게 하고,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깨닫게 합니다.  그것은, 석가의 오랜 고행(苦行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이며, 팔정도를 매일 행하는 것에 의해서, 깨달음으로의 길이 열린다,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설령 기도하더라도, 경전을 올려도 안 됩니다.  기도란 감사의 마음이며, 감사의 마음이 생겨 나오면, 다음에 오는 것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실행하는 것입니다.  경전은 실행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팔정도는 실행하는 것입니다.
 

新約聖書ヤコブの手紙にも「なんじ信仰あり、われ行爲あり、汝の行爲なき信仰を我に示せ、我わが行爲によりて信仰を汝に示さん」と。
신약성서 야고보의 편지에도「그대 신앙이며, 내 행위이며, 너의 행위가 없는 신앙을 나에게 보이라, 내가 행위에 의해서 신앙을 너에게 보이리라」라고.

 


エスも、いくら信仰があっても、祈っても、行爲がなれればなんにもならないといっています。
예수도, 아무리 신앙이 있어도, 기도해도, 행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かくて、八正道を行ずることによって、己の心が神佛の心に調和され、調和された心は、それがそのまま、この世の天國、佛國土を完成させるものであるといっているわけです。
일찍이, 팔정도를 행하는 것에 의해서, 자기의 마음이 신불(神佛 신과 부처)의 마음에 조화되어, 조화된 마음은, 그것이 그대로, 이 세상의 천국(天國), 불국토를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生命の轉生輪廻は自然の法則でありますが、しかし、八正道を行ずろことによって、やがて、輪廻の緊縛(きんばぐ)から遠離(おんり)した、正覺を得ることが出來ます。
생명의 전생윤회는 자연의 법칙입니다만, 하지만, 팔정도를 실행하는 것에 의해서, 이윽고, 윤회(輪廻)의 긴박(緊縛 꼼짝 못하게 단단히 묶음)에서 원리(遠離) 한, 정각(正覺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page 8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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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3장 인간의 정신구조와 그 기능」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二章八正道と中道」[八正道ㅡその意味と解釋] page 89~118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26 12:05




2010년 12월 30일에 올렸던 내용인, 『제 3장 인간의 정신구조와 그 기능 』편의 그림은

제가 당시에 핸드폰으로, 직접 찍어서, 편집하여 올린 그림입니다.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이며,

이 그림이 없으면, 본문의 내용을 설명하기가 아주 난해해서, 제가 올린 것입니다.


또한, 기존에 스크랩이나 복사를 해 가신 분들께 또한 알립니다. 

제2장까지, 수정하며, 한권으로 묶는 과정에서 현재 보니, 오타가 조금 있었고, 번역이 누락된 부분이 있어서, 수정 및 정정하였으며, 

제3장에는, 일본식 한자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한국식 한자로 정정할 것입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분은,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 원문을 저는 중요시하며, 번역상의 잘못된 부분을, 일본어 원문을 보시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을 올렸던 2010년 당시는, 제가 빙의로 인해서 굉장히 괴로운 상태였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병을 고칠 방법을 찾던 글들입니다.


제 블로그에 있는 『가르침의 글』들이나, 『일기형식』은 제 병의 상태와 증상을 적어가면서,

잊지 않고, 제 자신을 돌이켜 볼 그런 계기도 있었던 내용들입니다. 


2016년 현재는,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 되었으며, 빙의 증상은 없고, 늘 삼가 조심하고 있습니다.


제3장의 글은, 18명이 스크랩 및 복사를 해 가신 듯 합니다. 확인하면서, 오타나 혹 번역상의 오류가 있으면, 수정 및 정정을 해 갈 것입니다.


그럼,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재미 없을 것입니다만.









                    第三章 人間の精神構造とその機能



제 3장 인간의 정신구조와 그 기능



 

すべてのものは正しき循環の秩序のも
모든 것은 올바른 순환의 질서 하에
とにある。魂も轉生輪廻の法にしたが
있다.  영혼도 전생윤회의 법에 따라
い永遠に生きつづける不滅の生命だ。
영원히 계속 살아가는 불멸의 생명이다.
この法をはずすと混亂と苦惱を生む。
이 법을 떼어 내면 혼란과 고뇌를 낳는다.

 

 


心 の 實 相
마음의 실재 모양이나 상태

 

 



旣成觀念を白紙に            
기성관념을 백지로


 

人間が神の子、佛の子であるという說明は、これまで、いろいろな人が說いてきました。しかし、その內容は哲學であり、學問であったり、先入の觀念をそのままうけつぐ、といったものであったりして、實(み)のないものがほとんどでありました。
인간을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라고 하는 설명은,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이 설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철학이며, 학문이었거나, 선입관념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라고 했던 것이었거나 해서, 진실의 아닌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そこで、こうした旣成觀念から離れて、釋迦のいう人間、正法とは具體的にどういうものか。また、イエス・キリストの愛の精神とはいったいいかなるものをいうのであろうか。そうして、人間がそれを知ったときに、どう生活の上に行じるべきかを、まったく新らしい視野のもとに論をおこしたのが、次ぎに述べる人間の精神構造の種種相であります。
그래서, 이러한 기성관념에서 벗어나서, 석가가 말하는 인간, 정법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일까.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인간이 그것을 알았을 때에, 어떻게 생활 상에 실행해야 하는지를, 완전히 새로운 시야 하에, 토론(논의)을 일으켰던 것이, 다음에 기술하는 인간의 정신구조의 각가지 양상입니다.

 


それゆえに、旣成の學問、觀念とは內容的に非常に異なっておりますが、一字一句を吟味されれば、そのいわんとするところ、その眞意については、きっと御理解いただけるものと確信いたします。どうぞ、そうした意味で、これを讀まれる方々は、旣成觀念を白紙に戾し、その上で、多角的に檢討していただきたいと願うものです。
그러므로, 기성의 학문, 관념과는 내용적으로 상당히 달라지고 있습니다만, 한 글자 한 구절을 음미하시면, 그 진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부디, 이러한 의미로, 이것을 읽으시는 분들은, 기성관념을 백지로 돌려서, 그 상태에서, 여러모로 검토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림 설명입니다.

 

위에 밑즐 친 부분은 [인간의 정신구조]입니다.


왼쪽 [肉體を持った光の天使 육체를 지닌 빛의 천사]

 --- ― ― ―> <ㅡㅡㅡ

○ (중심)은, [마음(心) · 우주계(宇宙界) 9차원] .

왼쪽에 검은 테두리로 둥글게 된 부분에 뚫인 부분

-------> ( 天使の光で想念帶に窓が開かれる 천사의 빛으로 상념대에 창이 열린다

오른쪽 검은 덩어리(●)부분은, [自己保存자기보존 黑い想念검은 상념], 
원으로 된 테두리의 제일 바깥 부분은, [3차원· 현세 물질계(現世 物質界) · 10% 표면의식] , 
검정 테두리로 된 원형은 [4차원· 유계(幽界)· 상념대(想念帶)], 
그 안쪽은 [5
차원 · 영계(靈界)]
계속해서, 그 안쪽은 [6차원 · 신계(神界)],

5차원과 6차원은 [90%의 잠재의식(潛在意識)]
그 안쪽은 
[7차원 ·  보살계(菩薩界)], 
그 안쪽은 [8차원 · 여래계(如來界)], 그 안 쪽의 중심인 ○곳은 
[9차원 · 마음(心) · 우주계(宇宙界)]
그리고, 검정색 테두리인 상념대의 안쪽의 그림 상의

상단의 세번째 아래 칸에 있는 곳은 [5차원과 6차원을 포함해서 90%의 잠재의식],

 

다시 그림의 표시된 것을 설명하면
상단부터 아래로, 10%의 표면의식이고, 그 아래(검은 테두리)는 상념대, 그 안 쪽은 
90%의 잠재의식.
그리고, 그림 상에 중심(○) 꼬불꾸불하게 진동의 폭이 보이죠???  중심인 마음(心)· 우주계(宇宙界)에서 원의 제일 바깥 쪽인 3차원인 현세 물질계까지의
진동의 폭을, 안쪽은 진동의 폭이 조밀하고, 바깥으로 올 수록 거질게 표시되어 있네요.

 

 

 


精神(정신) 


 

通常精神とは、人の心、人格、あるいは、その人の魂のようにいわれ、漠然としています。ここでいう精神とは、神佛の精、心、魂の三つを包括して精神と呼びます。
통상 정신이란, 사람의 마음, 인격, 혹은, 그 사람의 영혼과 같이 말해져서, 막연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신이란, 신불의 정(精 (精髓 正氣)), 마음, 영혼의 3가지를 포함해서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정[精] 정기[正氣]
①만물(萬物)의 생성(生成)하는 원기(元氣) 

②생명(生命)의 원천(源泉)이 되는 원기(元氣). 정력(精力) 

③정신(精神)과 기력(氣力) 

④사물(事物)의 순수(純粹)한 기운(氣運)



 

そこで神佛の精についてまず說明しますと、それは、神佛そのもの、エネルギーそれ自体、慈悲と愛そのもの、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人間は、誰しも、神佛の精を內藏し、自分自身の心をつくり、魂を形成しています。神佛の精、エネルギーそのものがあればこそ、萬物の靈長として、人間それ自身を成立させているわけです。いうなれば意識の中心点であります。
그래서 신불의 정기(精)에 대해서 우선 설명하면, 그것은, 신불 그 자체, 에너지 그 자체, 자비와 사랑 그 자체, 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신불의 정(精)을 내장하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만들고, 영혼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신불의 정, 에너지 그 자체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 그 자신을 성립시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말하자면 의식의 중심점입니다


 

人間以外の動物、植物、鑛物の場合は、地上世界の調和のための媒體として、生かされています。つまり、エネルギーの補給をうけている。ところが人間は自ら生きている生命體であります。生きている理由、生かされているものとの相違は、一切の事象を認知する能力、大宇宙と己との一體觀、これです。動物その他については、その能力を求めても、求め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인간 이외의 동물, 식물, 광물의 경우는, 지상세계의 조화를 위한 매체로서, 생존되고 있습니다.  

즉, 에너지의 보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살아있는 이유, 생존되고 있는 것과의 상위는, 일체의 사상을 인지하는 능력, 대우주와 자기와의 일체관, 이것입니다.  동물 그 외에 대해서는, 그 기능을 구해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次に、神佛の精を受ける受け場、器が、各人の心です。心は各人の意識の中心をなしています。そうしてこの心こそが、神佛の命をうけて、それぞれの目的、使命を担っているところです。心そのものは、エネルギーの受け場、慈悲と愛の織りなす光體そのものの場であり、私たちが日常生活において、心に問う、心にきく反省の相手は、意識の中心にあるところの、この心です。
다음에, 신불의 정기(精)을 받는 저장소, 그릇이, 각자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각자의 의식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야말로, 신불의 명령을 받아서, 각자의 목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 그 자체는, 에너지의 저장소, 자비와 사랑의 엮여 펼쳐지는 광체 그 자체의 장소이며, 우리들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마음에 묻는다, 마음에 듣는 반성의 상대는, 의식의 중심에 있는 장소의, 그 마음입니다.

 


心は器である以上、大きい、小さい、深淺の差があります。その差というものは、そり人の人格、能力とは關係ありません。人間は神佛の前ではすべて平等、自由が與えられているのですが、心の大小は、その人の役目なり、使命が、それぞれちがうということです。
마음은 그릇인 이상, 크다, 작다,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습니다그 차이라고 하는 것은, 각자의 인격, 기능과는 관계없습니다.  인간은 신불의 앞에서는 전부 평등하고, 자유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마음의 대소는, 그 사람의 역할이나, 사명이, 저마다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人体には、頭、胴、手、足があるように、人間それぞれにも、神佛から命じられた部署があるのです。太陽系にも、太陽が中心にあって九つの惑星、三十二の衛星が運動しています。地球には地球の使命、月には月の役目があり、地球が太陽になったり、月が地球になれないように、自ずと決められているのです。
인체에는, 머리, 등, 손, 발이 있는 것처럼, 인간 각자에게도, 신불로부터 명령 받은 부서가 있는 것입니다.  태양계에도, 태양이 중심에 있어서 9개의 혹성, 32개의 위성이 운동하고 있습니다지구에는 지구의 사명, 달에는 달의 역할이 있고, 지구가 태양이 되거나, 달이 지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저절로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一國の社會でも、政治家、實業家、商人、學者、新聞記者、弁護士、技術者など、それぞれの職業があって、一社會を構成しています。これと同じです。しかし現實は、職業なり立場が、そのまま本人を表現しているとはいえません。今の社會は物質社會で、金のある者、經濟力の强い者が支配階級となっています。人間の價値が金で計算されています。人類に鬪爭が絶えないのも、力は正義とする唯物思想がはびこっているためです。
한 나라의 사회에도, 정치가, 실업가, 상인, 학자, 신문기자, 변호사, 기술자, 등등 저마다의 직업이 있고,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직업 나름대로 입장이, 그대로 본인을 표현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물질사회이며, 돈의 있는 사람, 경제력이 강한 사람이 지배계급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되고 있습니다인류에게 투쟁(鬪爭)이 끊이지 않는 것도, 힘은 정의(正義)라고 하는 유물사상(唯物思想)이 만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戰爭、內亂、天災、社會不安、病氣など、その原因をさぐると、すべて、こうした考え方、行動にあります。各人が、その心に目覺めたならば、太陽が東から西に沒する樣に人体の各機能も、人間社會も、自然にノーマルな狀態に復す事が出來るのです。
전쟁, 내란, 천재지변, 사회불안, 질병 등등, 그 원인을 살펴보면, 전부, 이러한 사고방식, 행동에 있습니다.  각자가, 그 마음에 눈을 뜨게 되면, 태양이 동에서 서로 지는 것처럼, 인체의 각 기능도, 인간 사회도, 자연히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各人の天命、人類の天命というものは、己の心を知ったときに、始めて達成されて行くものです。第三の魂は圖が示すように、心を含めて九〇%の潜在意識、想念帶、一〇%の表面意識の全体をいいます。しかし魂は、心そのもの、あるいは九〇%の潜在意識が、想念帯や表面意識に強く働きかけている場合は、立派な人格、立派な德性となって表面に出、人びとの範となるのですが、心や潜在意識の働きの弱い場合、あるいはその働きのない場合は、いわゆる迷える魂といわれるようになってきます。
각자의 천명, 인류의 천명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알았을 때에, 비로소 달성되어 가는 것입니다제 3의 영혼은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마음을 포함해서 90%의 잠재의식, 상념대, 10%의 표면의식의 전체를 말합니다러나 영혼은, 마음 그 자체, 혹은 90%의 잠재의식이, 상념대나 표면의식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경우는, 훌륭한 인격, 훌륭한 덕성이 되어 표면으로 나오고,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나 잠재의식의 작용의 약한 경우, 혹은, 그 작용의 없는 경우는, 흔히 말하는 방황하는 영혼이라고 말해지게 되어 옵니다. 

 


ですから魂そのものは、必ずしも、心を含めた全體とはいえない場合もあります。
그러므로 영혼 그 자체는, 반드시, 마음을 포함한 전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以上が、人間の精神とその構造の大略です。ところで、精神は前述の通り、エネルギーそのものであり、そのエネルギーの在り方を圖で示すと、波動になります。円の中心は心ですから、中心の波動は細かく、円周に近くなるほど荒くなっていきます。
이상이, 인간의 정신과 그 구조의 대략입니다.  그런데, 정신은 전술대로, 에너지 그 자체이며, 그 에너지의 본연의 모습을 그림에서 보면, 파동(波動)이 됩니다.  원의 중심은 마음이기 때문에, 중심의 파동은 세밀하고, 원둘레에 가까울 수록 거칠어져 갑니다.

 

 


 

九〇%の潜在意識(90%의 잠재의식)


 

この層は、心に通ずる世界です。それは、創造と自由と智慧、慈悲と愛に満ち満ちた、無限の寶庫、場所、泉、空間であります。宗敎的には守護靈・指導靈の住む世界であり、それは各人の等しく內在する心のふるさとでもあります。
 이 층은, 마음에 통하는 세계입니다.  그것은, 창조와 자유와 지혜, 자비와 사랑에 충만하고 충만한, 무한의 보고(寶庫), 장소, 샘(泉), 공간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수호령・지도령의 살고 있는 세계이며, 그것은 각자에게 평등하게 내재하는 마음의 고향이라고도 합니다.


  

各人の潜在意識は、それぞれ心に通じていますが、守護靈そのものは、ある一定の空間、場所を占めているので、その位置は、必ずしも一定ではありません。たとえば、その守護靈の位置が、想念帶に近くなるほど、神界、靈界となり、逆に、心に近づくほど、菩薩、如來の光が出てまいります。これは各人のあの世、この世の修業の度合いによって異なるため、違ってきます。
각자의 잠재의식은, 각자의 마음에 통하고 있습니다만, 수호령 그 자체는, 어떤 일정한 공간, 장소를 점하고 있는 것이며, 그 위치는, 반드시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그 수호령의 위치가, 상념대(想念帶)에 가까워질수록, 신계(神界), 영계(靈界)가 되고, 반대로, 마음에 가까워질수록. 보살(菩薩), 여래(如來)의 빛이 나옵니다이것은 각자의 저 세상, 이 세상의 수업(修業)의 정도(程度)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달라져 옵니다. 




★천상계(실재계)=극락(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계(神界), 영계(靈界), 신계는 4차원의 세계, 영계는 5차원의 세계이며,

★보살(菩薩), 여래(如來). 보살계는 7차원의 세계, 여래계는 8차원의 세계이며, 금강계(金鋼界)라고도 합니다. 

★금강(金鋼)은 찬석(鑽石)=금강석(金鋼石)=다이아몬드(Diamond)입니다. 

★4가지의 차원의 다른 극락(천국)인데요. 이 세계는, 최하의 마음의 상태가, 모든 인류는 형제(자매)이다, 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사는 세계이며,

유계(幽界)는,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국수주의 마음을 가진 분들이 사는 세계이며, 역시 극락이며, 

차원은, 4차원입니다.




  

しかし各人の努力、その一念力は、その守護靈をして、他の上段階にある知人、友人の指導靈の應援を求める事が出來ます。守護靈そのものの力が、かりに弱い場合でも悲觀することはないのです。
그러나 각자의 노력, 그 한결 같은 마음의 힘은, 그 수호령으로 하여금, 다른 상 단계에 있는 지인, 친구의 지도령의 응원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수호령 그 자체의 힘이, 반대로 약한 경우라고 해도 비관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神理・・・・・・悟りは、その人の求める量に正比例するように仕組まれているからです。
신리・・・・・・깨달음은, 그 사람의 구하는 량에 정비례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心に問う、きく、ということは、普通は九〇%の潜在意識、つまり守護靈に聞け―、ということです。潜在意識そのものは、光のエネルギーです。空氣と同じように、無私、無臭です。各人の守護靈は、そうしたエネルギーの世界に住んでいますから、そのエネルギーを、創造、自由、智慧にかえ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光のエネルギーは、万物を育む力を持っており、また万物の根源であり、同時に、この世にあるものは、あの世にもありますから、その人に必要なものは、守護靈が無限に供給し得ることが可能になってきます。
마음에 묻는다, 듣는다, 라고 하는 것은, 보통은 90%의 잠재의식, 즉 수호령에게 듣어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재의식 그 자체는, 빛의 에너지입니다.  공기와 마찬가지로, 공평무사, 무취입니다.  각자의 수호령은, 그러한 에너지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창조, 자유, 지혜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빛의 에너지는, 만물을 키우는 힘을 가지고 있고, 또 만물의 근원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저 세상에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수호령이 무한으로 공급하고 손에 넣는 일이 가능하게 되어 옵니다.

 


天才兒の才能は、九〇%の潜在意識の一部が、その子の大腦に働きかけるためにおきるものです。その子の守護靈があの世で學んだことをダイレクト(直接)で敎えるために、本人が今世で學んだことのない、大學生でも解けないような高等數學を解くことができたりすろのです。しかし、その天才兒が、增長慢となり、俺は偉いというような優越感や、おごる心に支配されますと、守護靈の働きはとまってしまいます。これはなぜかといいますと、たとえば、電氣を自由に流すためには、ゴムやベークライトでは電氣は流れません。銅や、アルミといった導體物質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천재아의 재능은, 90%의 일부가, 그 아이의 대뇌에 작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수호령이 저 세상에서 배운 것을 direct(직접)로 가르치기 때문에, 본인이 금세에서 배운 적이 없는, 대학생일지라도 풀 수 없는 것과 같은 고등수학을 풀어 내는 일이 가능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천재아가, 오만(傲慢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하게 되어 , 나는 위대하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우월감이나, 뽐내며 남을 얕보는 마음에 지배되면, 수호령의 작용은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은 왜냐하면, 예를 들면, 전기(電氣)를 자유롭게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고무나 베이클라이트(石炭酸樹脂)로는 전기는 흐르지 않습니다. 동(銅)이나, 알류미늄이라고 하는 도체물질이 없으면 안 됩니다. 


 

これと同樣に、守護靈は光に包まれ、光の電氣的作用でその者に敎える(通信する)ので、その電流を受け入れる導體物質(大腦)が增長慢という不導體物質のベールに包まれると、光を通さなくなるからです。
이것과 마찬가지로, 수호령은 빛에 싸여, 빛의 전기적 작용으로 그 사람에게 가르치는 (통신한다)  것이며, 그 전류를 받아 들이는 도체물질(대뇌)이 오만(傲慢)이라고 하는 부도체물질의 베일에 감싸여지면, 빛을 통하게 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人間の精神のエネルギーを受ける肉体に、慈悲と愛とは正反対の、人を見下す增長慢や怒りの想念があっては、通じなくなるのは當り前でしょう。天才は一夜にして鈍才に變わるというのも、こうした理由によります。
인간의 정신은, 빛의 에너지로 되어 있고, 동시에 자비와 사랑의 파동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 에너지를 받는 육체에, 자비와 사랑과는 정반대의, 남을 깔보는 오만이나 분노의 상념이 있어서는,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천재는 하룻밤에 둔재로 바뀐다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의합니다.

 

 


 

想念帯 상념대   


 

この層は、生きている人間にとって非常に重要な役割りを果しているところです。
이 층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想念帶そのものも意識の一部であり、エネルギーから成り立っていますが、ここは潜在意識と表面意識がまざり合った世界です。ここには、各人の過去世、前世、あの世での生活の記錄と、現象界、つまり後天的經驗のすべてが記錄されており、これを調べる場合は、この想念帶をみると一目瞭然です。それは、何年何月何日、Aという人は、どこで、なにをしたか。極端にいうなら、その日、一日のその人の全經驗、考えたことまでわかります。
상념대 그 자체도 의식의 일부이며, 에너지로 성립되고 있습니다만, 여기는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이 교차한 세계입니다.  여기에는, 각자의 과거세, 전생, 저 세상에서의 생활의 기록과, 현상계, 즉 후천적 경험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고, 이것을 조사하는 경우는, 이 상념대를 보면 일목요연합니다.  그것은, 몇년 몇월 며칠, A라고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날, 하루의 그 사람의 모든 경험, 생각한 것 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ウソが言えないとは、ここでもいえるわけです。現在肉体を持っている上々段階光の天使·光の天使は、各人の想念帶の記錄を一瞬のうちに、讀みとることができます。各人が昨夜見た夢まで當てます。つまり、人間は二十四時間、經驗と記錄の連續であるからです。年中無休です。エネルギーの休息はあり得ません。それは死です。肉体的に死んでも、エネルギーは不滅ですから、無とはなり得ません。死んでも魂は殘りますから、死人の行く先、考え、行動がわかるのです。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도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현재 육체를 가지고 있는 가장 뛰어난 단계 빛의 천사·빛의 천사는, 각자의 상념대의 기록을 한 순간 안에,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각자가 어제 밤에 꾼 꿈까지 알아맞춥니다.  즉, 인간은 24시간 동안, 경험과 기록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연중무휴입니다.  에너지의 휴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비록 육체적으로 죽을지라도, 에너지는 불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음(無=무)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설사 죽을지라도 영혼은 남아 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행선지, 생각, 행동을 아는 것입니다.  
 

ある人は想念停止をやって悟ったように傳えられますが、人間の意識、原理を知りますと、そんなバカバカしいことは、全くあり得ないことがわかります。
어떤 사람은 상념 정지를 해서 깨달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의식, 원리를 알면, 그런 터무니 없는 일은, 전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想念帶は、過去世の記錄と現世の經驗の記錄集積所でありますから、各人の現象界での運命は、ここで握られ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
상념대는, 과거세의 기록과 현세의 경험의 기록 집적소이기 때문에, 각자의 현상계에서의 운명은, 여기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つまり ・・・・・・決まっているのです。
즉 ・・・・・・결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それは職業的に、經濟的に、名譽的に、地位的に、いろいろな面にわたって決まっています。想念帶が映畵のフィルムとすれば、現象界での各人の生活樣式は、そのフィルムから投映されたスクリーン、字幕であるわけです。
그것은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명예적으로, 지위적으로, 다양한 면에 걸쳐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상념대를 영화의 필름이라고 하면, 현상계에서의 각자의 생활양식은, 그 필름에서 투영된 스크린, 자막인 것입니다.  

 

しかし各人の運命には、上限、下限とがあって、そのあいだを上がったり、下がったりして、一生を送ります。上限とはその人の運命の好調時、下限とは、最低時、一番苦しい時期です。しかも、上限、下限のワクは、各人によって異なっています。そのワクの外には出られません。大抵の人は、下限と中限の間を、いったりきたりして、その一生を終る場合が多いのです。
그러나 각자의 운명에는, 상한, 하한이 있고, 그 사이를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해서, 일생을 보냅니다.  상한이란 그 사람의 운명의 순조로울 때이며, 하한이란, 더없이 나쁠 때, 가장 괴로운 시기입니다.  게다가, 상한, 하한의 틀은, 각자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 테두리의 밖으로는 나갈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한과 중한의 사이를, 가거나 오거나 하며, 그 일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現在肉体を持っている上上段階光の天使の光を受け、神理を理解するようになりますと、下限に落ちることはなく、上限にまで、自分の運命が切り開かれてゆきます。病氣が治った。事業がうまくいった。いい職業につけた、というのも、こうした理由によります。
현재 육체를 가지고 있는 가장 뛰어난 단계 빛의 천사의 빛을 받고, 신리를 이해하게 되면, 하한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고, 상한에까지, 자신의 운명을 개간해 갈 수 있습니다.  질병이 고쳐졌다.  사업이 좋아졌다. 좋은 직업을 얻었다, 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 있습니다.
 


各人の想念帯は、潜在意識と表面意識の間に橫たわり、層をなしていますが、その位置は、各人によって一定ではありません。圖のように、人間の精神構造は、宇宙界から幽界まであります。
각자의 상념대는,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사이에 가로놓이고,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만, 그 위치는, 각자에 따라서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림과 같이, 인간의 정신구조는, 우주계(宇宙界)에서 유계(幽界)까지 입니다. 


 

 そして想念帯の位置は、各人の前世、過去世、あの世、現世での修行、心の調和度によって、決まってくるからです。同じ心の問題の話を聞いても、これを理解できる人と、できない人があります。これは想念帯の位置がちがうからです。心に近い場合はその理解度は早く、逆の場合はおそ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しかし想念帯は本人の努力や心の調和度に應じて、九〇%の潜在意識の力が强まり、向上されてゆきます。いずれにせよ、各人の敎養、德性、ものの見方、考え方、行動というものは、この想念帶に影響されるところがすこぶる大きく、それは、今世での知識、學問をも超えたものです。
그리고 상념대의 위치는, 각자의 전세(전생), 과거세, 저 세상, 현세에서의 수행[修行],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의해서, 결정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같은 마음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이것을 이해[理解]할 수 있는 사람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념대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가까운 경우는 그 이해의 정도는 빠르고, 반대의 경우는 느리다고 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념대는 본인의 노력이나 마음의 조화의 정도에 응해서, 90%의 잠재의식의 힘이 강해져서, 향상되어 갑니다. 결국, 각자의 교양, 덕성, 사물의 관점, 사고방식,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이 상념대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매우 큽니다, 그것은, 금세(이승)에서의 지식, 학문을 초월한 것입니다.

 


理由はなんであれ、ゲバ學生の存在、あるいはその反對に、體系だった學問を學んでいなくとも、大企業の經營者をして、立派にその勤めを果たしている多くの事實をみるとき、各人の想念帶の重要性というのが, よくよく理解出來ます。
이유는 무엇이건, 실력 투쟁을 하는 학생의 존재, 혹은 그 반대로, 체계적인 학문을 배우고 있지 않더라도, 대기업의 경영자로서, 훌륭하게 그 임무를 다하고 있는 많은 사실을 볼 때, 각자의 상념대의 중요성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各人の心理狀態もその大部分は、想念帶の影響をうけています。笑い、悲しみ、怒り、苦しみなど、人によってその感受性は異なります。同じ冗談でも、ある人には笑いであり、ある人には悲しみになったり、怒りになる場合が、しばしば見受けられます。これは、一〇%の表面意識の作用もありますが、それ以上に、想念帯の振幅に本人自身が動かされているためなのです。
각자의 심리상태도 그 대부분은, 상념대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웃음, 슬픔, 분노, 괴로움 등등, 사람에 따라서 그 감수성[感受性]은 다름니다.  비록 같은 농담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웃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슬픔이 되거나, 분노케 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10%의 표면의식의 작용도 있습니다만, 그것 이상으로, 상념대의 진동의 폭에 본인 자신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今日の心理學は、この想念帶の振幅の硏究とい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もっとも、心理学も進み、深層心理から、超心理學までありますが、これらは、さきほどの九〇%の潜在意識の領域に多少入り、豫知、豫言、透視などのさまざまな硏究がなされつつあります。この意味では心理學も相當進んではきましたが、しかし潜在意識の領域は、それを硏究するその人の魂、つまり、想念帶、表面意識を含めた全人格が、相當シッカリしていませんと、その硏究成果は期待できるものとはなりません。この領域は非常に危險度が高いのです。潜在意識層は、次元の異なる世界ですし、あの世の生物(動物靈、魔王)が徘徊していますから、豫知、豫言、透視が、仮りに、一〇〇%當ったとしても、それが本物であるかどうかはわかりません。本物というのは、自分の本當の潜在意識かどうかという意味です。興味本位、當てもの主義、名譽心があって硏究しますと、動物霊や魔王を呼びこみます。真に科學のための科學として、己が空となり、人類のために役立たせることにあるならば、その硏究は、たしかに實を結ぶことになるでしょう。
오늘날의 심리학은, 이 상념대의 진동의 폭의 연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욱, 심리학도 진보하고, 심층심리에서, 초심리학까지 있습니다만, 이것들은, 조금 전의 90%의 잠재의식의 영역에 다소 들어가고, 예지, 예언, 투시 등의 다양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의미에서는 심리학도 상당히 진보해 왔습니다만, 하지만 잠재의식의 영역은, 그것을 연구하는 그 사람의 영혼, 즉, 상념대, 표면의식을 포함한 모든 인격이, 꼭 들어 맞지는 않고, 그 연구성과는 기대할 만한 것은 되지 않습니다.  이 분야는 상당히 위험의 정도가 높은 것입니다.  잠재의식층(潜在意識層)은, 차원의 다른 세계이고, 저 세상의 생물(동물령, 마왕)이 배회하고 있기 때문에, 예지, 예언, 투시가, 일시적으로, 가령, 100% 적중하더라고, 그것이 진짜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진짜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진실한 잠재의식인지 어떤가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흥미본위, 신비주의, 명예심이 있어서 연구하면, 동물령이나 마왕을 불러들입니다.  실로 과학을 위한 과학으로서, 자기를 비우고, 인류를 위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연구는, 확실하게 결실을 맺는 일이 되겠지요.

 


 

 

一〇%の表面意識

(10%의 표면의식)
  


ここは五官の世界です。すなわち、眼、耳、鼻、舌、身、そして、これから判斷の基点となるところの各人の意、小我があります。ここは日日の生活、行動の場です。そうして、ここでの知識、經驗、想いが、想念帶に記錄されてゆくのです。眼でみて美しいと感じ、想い、そして行動に移すとき、私たちは、表面意識の作用をうけています。耳よりな話しに心を動かし、体にふれるものに敏感なのも、表面意識の作用です。
여기는 오관의 세계입니다. 즉,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이것으로 판단의 기점이 되는 장소의 각자의 意(의지), 소아(小我=자기주의,아집에 사로잡힌 좁은 자아)가 있습니다.  여기는 매일의 생활[生活], 행동[行動]의 장소[場]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에서의 지식, 경험, 생각이, 상념대에 기록되어 가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들은, 표면의식의 작용을 받고 있습니다.  듣기 좋은 말에 마음을 움직이고, 몸에 닿은 것에 민감한 것도, 표면의식의 작용입니다.

 


ともかく表面意識は外見に敏感で、形の世界にとらわれます。そうして、人より偉くなりたい。金が欲しい。美しい人を側におきたい。うまいものが食べたい。樂しいことがしたい。見せたい。美しい着物が着たい。といった意の働きが強よく出てきます。
어쨌든 표면의식은 외관(겉모습)에 민감하고, 형상의 세계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해서, 남보다 위대해지고 싶다.  돈을 갖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잘 보이고 싶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싶다.  그러한 의지의 작용이 강하게 나옵니다. 
 


しかし、各人の表面意識の作用は、五官、六根がそのままストレートに表われる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想念帶の意識が、ブレーキをかけたり、促したりするので、その行動は、それぞれ異なってきます。ですから五官、六根の上では、誰しも同じように感じても、考え、行動となると、みんな違ってきます。
그러나, 각자의 표면의식의 작용은, 오관, 육근이 그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고, 상념대의 의식이, 제동을 걸거나, 재촉하기도 하는 것이며, 그 행동은, 각자가 달라져 옵니다.  그러므로, 오관, 육근의 위에서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느낄지라도, 생각, 행동이 되면, 모두 달라져 옵니다. 
 


人間の苦の原因が、すべて、人間の五官、六根にあるというのも、私たちが、この表面意識の作用に、左右されてしまうところにあります。
인간의 괴로움의 원인이, 전부, 인간의 오관, 육근에 있다고 하는 것도, 우리들이, 이 표면의식의 작용에, 좌우되어 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通常大腦の働きは、表面意識と想念帶が、その主役を演じています。大脳そのものは單なる電子計算機であり、その計算機は、表面意識と想念帶が指令しているわけですが、本當は、この二つの意識は、指令室ではなく、指令所は、その奧の潜在意識でなくてはなりません。ところが、想念帶の層は、非常に厚く、堅いために、人はなかなか指令所の指令をうけることが出來ません。同時にこの二つの層は、各人の生活經驗の上に成り立っていますから、各人それぞれ異なり、問題の多いところともいえます。
통상 대뇌의 작용은, 표면의식과 상념대가, 그 주역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대뇌 그 자체는 단순한 전자계산기이며, 그 계산기는, 표면의식과 상념대가 지령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사실은, 이 2가지의 의식은, 지령실이 아니고, 지령소는, 그 깊은 잠재의식에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상념대의 층은, 상당히 두껍고, 견고하기 때문에, 사람은 좀처럼 지령소의 지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동시에 이 2가지의 층은, 각자의 생활 경험 위에 성립되고 있기 때문에, 각자 저마다 다르고, 문제가 많은 장소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いちばん大事なことは、私たちの日常生活は普通六根に賴り、想念帶を含めた表面意識が每日の生活の主力をなしていますから、これから少しでも脫皮するためには、潜在意識の聲を聞こうとする反省が必要です。反省は人間の持つ特權であり、人間再確認の、神が與えた機會であり、慈悲です。ですから、反省こそ、我ら人間の人間たるゆえんであり、精神向上に欠く事の出來ない、一大要素であるといえます。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보통 육근에 의존하며, 상념대를 포함한 표면의식이 매일의 생활의 주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적어도 탈피하기 위해서는, 잠재의식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반성(反省)은 인간의 갖는 특권(特權)이며, 인간 재확인의, 신(神)의 주신 기회이며,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반성이야말로, 우리들 인간의 인간인 까닭이며, 정신향상에 빼놓을 수 없는(소홀히 할 수 없는), 하나의 큰 요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自己保存、黒い想念 

(자기보존, 검은 상념)



 

五官、六根に左右されますと、その人はやがて、病氣や怪我、その他さまざまな障害に見舞われます。なぜかといいますと、人間は本来、神の子、佛の子であり、慈悲と愛、調和を目的として、この世に生をうけたのでありますから、これに反するような想念行爲は、當然それに應じた反作用を伴なうことになるからです。春夏秋冬の循環の法則は、人間の精神生活にも嚴然として、存在しています。善なる行爲は善を生み、悪なる行爲は惡を生みます。
오관, 육근에 좌우되게 되면, 그 사람은 이윽고, 질병이나 재난(사고), 그 밖의 여러 가지의 장해를 당하게 됩니다. 왜냐고 하면, 인간은 본래, 신[神]의 자녀, 부처[佛]의 자녀이며, 자비와 사랑, 조화를 목적으로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것과 같은 상념행위는, 당연히 그것에 응한 반작용을 동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춘하추동의 순환의 법칙은, 인간의 정신생활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선한 행위는 선을 낳고, 악한 행위는 악을 낳습니다. 
 


しかし、この世を見渡すと、惡が榮え、善は日蔭にへいつくばっているようにみえます。憎ままれっこ世にはばかる式に・・・・・・。けれどもこれはちがうのです。
그러나, 이 세상을 죽 훑어보면, 악이 번창하고, 선은 음지로 주저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미움을 받는 자가 도리어 세상에서는 행세를 한다는 식으로 ・・・・・・。그렇지만 이것은 잘못인 것입니다.  

 


形の上ではそう見えても、その人の內面はどうでしょうか。權力は奪うもの式に、やっと手にしたその權力者は、今度は追われる立場となって、身の安全に、夜もろくろくねむれぬ日日を送る。金持は、その金を失うまいとしてキュウキュウとする。憎まれ者は、絶えず針の山に、その身を座しているようで、四六時中、腰をうかして生活しているのです。つらい話です。世にはばかりながら、自ら裁き、苦しんでいる。これが法則の姿です。
형태 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 사람의 내면은 어떨까요.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란 식으로, 잽싸게 손에 넣은 그 권력자는, 이번에는 쫓기는 입장이 되며, 자신의 안전으로, 밤에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일상을 보낸다.  부자(재산가)는, 그 돈을 잃지 않으려고 급급해 한다.  미움을 받는 사람은, (지옥에서, 죄인을 올려 보낸다는) 바늘을 심은 산에, 그 몸을 앉아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일어서려고 엉덩이를 들고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괴로운 이야기입니다.  밖에 나가서는 큰소리 치면서, 스스로 재판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이것이 법칙의 모습입니다. 
 


人は外見ではわかりません。善人にみえて、實は自分の利害だけしか考えぬ者もあるかと思えば、惡人のようだが、無類の善人もいるのです。口先や、姿形では、人の心は分りません。大事なことは、私たちの一生は、この世だけ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各人にはそれぞれ前世があって、この世があり、あの世もあります。そうして再び、この世に出て、あの世にかえる。こうした繰り返えしの中に、各人の一生が連綿として続いているということ。しかも、この世の六十年、八十年は、あの世の生活に比べると、非常に短かいものです。その短かい期間に、善の結果が善にならず、惡の結果が悪ではないというのは、おろかしい判斷なのです。この世で惡を重ねれば、あの世でその悪の淸算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世の惡を、この世で淸算すれぱいいですが、そうでないと、あの世に持込みます。惡の內容によっては、當然地獄に墮ちます。ですから、この世だけの判斷で、惡が榮え、善が亡びるとみたら大きなまちがいです。
사람은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으로 보여도, 사실은 오직 자신의 이해타산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 악인인 것 같지만, 비길데 없이 선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입에 발린 말이나, 용모(형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일생은, 이 세상 뿐만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전생이 있고, 이 세상이 있고, 저 세상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이 세상에 나오고, 저 세상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반복 속에, 각자의 일생이 연면(連綿 길게 이어져 끊이지 않음)히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  게다가, 이 세상의 60년, 80년은, 저 세상의 생활에 비교하면, 상당히 짧은 것입니다.  그 짧은 기간에, 선의 결과가 선이 되지 않고, 악의 결과가 악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을 거듭하면, 저 세상에서 그 악에 관한 청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의 악을, 이 세상에서 청산하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저 세상에 가져옵니다.  악의 내용에 따라서는, 당연히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만의 판단으로, 악이 번창하고, 선이 망한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しかし、こうした事實は、これまであまり明らかにされず、そのために、人びとは、表面意識の五官、六根にとらわれ、生きてるうちが華という考えに陷ってしまうのです。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그다지 밝혀지지 않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표면의식의 오관, 육근(六根)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동안이 꽃(華)이라고 하는 생각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しかも、こうした五官、六根に各人の意識、魂が支配されますと、圖のように、表面意識と想念帶に黑い塊(かたま)りができ、動物靈や魔王、地獄靈がその人に憑依し、難病や事故死、自殺などするようになってゆきます。恐ろしいことです。
게다가, 이러한 오관, 육근에 각자의 의식, 영혼(魂) 지배되면, 그림과 같이, 표면의식과 상념대에 검은 덩어리가 만들어져, 동물령이나 마왕, 지옥령이 그 사람에게 빙의(憑依)하고, 불치병(難病)이나 사고사(事故死), 자살(自殺) 등을 하게 되어 갑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現象界に肉体を持っている上上段階 ・光の天使 
현상계에 육체를 가지고 있는 최상의 단계・빛의 천사


 

人間の地上における目的は、各人の心の調和と、地上の樂園、つまり佛國土、ユートピアの建設にあります。この目的は、人間自身が神佛の子であるからです。神と人間を切り離すこれまでの思想では、こうした目的に異和感が伴ないます。けれども神と人間を切り離したところに、人間の迷信があったのです。人間が神佛である以上、神佛の精神に還え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は人間自身の責任であるからです。
인간의 지상에 있어서의 목적은, 각자의 마음의 조화와, 지상의 낙원, 즉 불국토, 유토피아(이상향)의 건설에 있습니다.  이 목적은, 인간자신이 신불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신과 인간을 떼어 놓은 지금까지의 사상으로는,이러한 목적에 이질감(異和感)이 동반합니다.  그렇지만 신과 인간을 떼어 놓았을 때, 인간의 미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신불인 이상, 신불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인간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神佛である人間が、なぜ動物のようになり下がったか。それは長い地上での生活にふり回わされた結果です。オギァとこの世に出た途端、人間はあの世での生活を忘れます。忘れる理由は、前世、過去世のおさらい、償ない、そうして、あの世での生活の經驗を、どう生かせるかの心の修行があるためです。覺えていては、その修行の目的は、なかば失われます。試驗にカンニングはいけないように・・・。ではなぜこのような仕組みがあるかといえば、それは長い人間の歷史、轉生リンネの過程に重ねた諸諸の罪。キリスト敎でいう所謂人間の原罪。これの淸算のためです。人間の歷史は、今から二億年前にさかのぼります。人類はすべて他の天体から、この地上に降り立ったのです。當時の人びとは調和がとれ、地上は佛國土そのままでした。人びとの年令は、五百才、千才を保ち、年もとらずに、あの世とこの世は、自由に、行ったり來たりしたものです。この當時は、人間には原罪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
신불인 인간이, 왜 동물처럼 되어 전략했는가?  그것은 오랜 지상에서의 생활에 휘둘림을 당한 결입니다. 응애^^하고 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인간은 저 세상에서의 생활을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는 이유는, 전생, 과거세의 복습, 보상(속죄), 그렇게 해서, 저 세상에서의 생활의 경험을, 어떻게 살려가는가의 마음의 수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고 있어서는, 그 수행의 목적은, 반정도 잃어버립니다.  시험을 볼 때에 감독자의 눈을 속이고 하는 부정행위는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럼 왜 이러한 짜임(구성)이 있는가 하면, 그것은 오랜 인간의 역사, 전생윤회의 과정을 거듭한 여러 가지의 죄(罪).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소위 인간의 원죄(原罪).  이것의 청산의 이유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2억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류는 전부 다른 천체에서, 이 지상으로 강림한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조화가 되고, 지상은 불국토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연령은, 500세, 1,000세를 유지하고, 나이도 먹지 않고.   저 세상과 이 세상은, 자유롭게, 왕래했던 것입니다.  이 당시는, 인간에게는 원죄[原罪]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시험을 볼 때에.............안 되는 것처럼...."에, 누락된 번역을 넣었습니다. 죄송합니다.


 


結婚して子が出來ても、その子はあの世の生活を知っていました。ところが子孫が子孫を生むようになり、地上の生活になれた人類は、次第にあの世との交通が途絶え、五官、六根にふり回わ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つまり罪をつくりはじめた。罪をつくれば、當然、その罪のつぐない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결혼해서 자녀가 태어나도, 그 자녀는 저 세상의 생활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손이 자손을 낳게 되어, 지상의 생활을 이룩한 인류는, 차츰 저 세상과의 교류를 절단하고, 오관, 육근에 휘둘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죄를 짓기 시작했다.  죄를 지으면, 당연히, 그 죄를 보상(속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蒔いた種を刈り取ることは、自然の法則だからです。人間自身神佛の子であり、神佛の子ということは、自然の法則にそって、生きるように出來ているからです。
뿌린 씨앗을 거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자신은 신불의 자녀이며, 신불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かくして、人間は、あの世からこの世に、生れ出るときに、あの世の生活、前世、過去世を忘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つまり己れ自身の修行が目的となったのです。修行とは、心の調和、神佛の心に歸える修行です。同時に、二億年前の佛國土、神の國を再びつくること、地上に降り立ったその目的を果たすためでもあるわけのです。この二つの目的、これが人間の使命であり、責任であるわけです。
이리하여, 인간은,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태어나올 때에, 저 세상의 생활, 전생, 과거세를 잊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수행이 목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수행(修行)이란, 마음의 조화, 신불의 마음으로 돌아오는(돌아가는) 수행입니다.  동시에, 2억년 전의 불국토, 신의 나라를 다시 만드는 것, 지상에 강림한 그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이 2가지의 목적, 이것이 인간의 사명이며, 책임인 까닭입니다.

 


人類にこの二つの目的を自覺させ、果たさせるために、光の天使がこの世にあられたのです。それは神佛の命によって・・・・・・。イエス・キリストが天なる父の命によって、愛を說かれたように、光の天使は、宇宙の原理、人間の在り方、慈悲と愛の神理を說くために・・・・・。
인류에게 이 2가지의 목적을 자각시키고(스스로 깨닫게 하고), 완수케 하기 위해서, 빛의 천사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불의 명령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서, 사랑을 설명한 것처럼, 빛의 천사는, 우주의 원리, 인간의 본연의 모습, 자비와 사랑의 신리(神理)를 설명하기 때문에・・・・・・。 
 


釋迦の正法は、宇宙の原理、慈悲と愛であります。人間が小宇宙であることの自覚、小宇宙であればこそ、大宇宙と一體となり、一切の事象を認知できるのです。それは心という一点で結ばれているからです。心を通じて、小宇宙と大宇宙は、通い合えるのです。人びとは神佛の子であり、宇宙は神佛そのものであるからです。
석가의 정법은, 우주의 원리, 자비와 사랑입니다.  인간이 소우주인 것의 자각(自覺 스스로 깨달음), 소우주인 것이야말로, 대우주와 한몸이 되어, 모든 사상(事象)을 인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이라고 하는 하나의 점에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통해서, 소우주와 대우주는,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불의 자녀이며, 우주는 신불 그 자체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現象界における光の天使は、神佛の命によって、各人の心の眼をひらかせる役目を担っています。佛敎が哲學となり、學問となったその誤りを是正し、二千五百四十四年前に説いた釈迦の正法、心の神理を、再び地上によみがえらせるために、その豫言を實行しているのです。
현상계에 있어서의 빛의 천사는, 신불의 명령에 의해서, 각자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목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신불이 철학이 되고, 학문이 된 그 잘못을 시정(是正)하고, 2,545년 전에 설명한 석가의 정법, 마음의 신리를, 다시 지상에 되살리기 위해서, 그 예언을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神佛の命を受け、光の前達者となって、人びとに惜しみなく光を與えています。ところが各人の心は、轉

生輪廻という長い歷史の過程に、諸諸の想念、諸諸の罪を重ねてきました。想念帶というカラの中に、各人の心は埋沒してしまったのです。このために、普通では九〇%の潜在意識は特殊な人でなければ開けないといった有樣となったのです。開けても、動物靈や地獄靈の支配をうけるのがオチです。いわんや守護靈の聲を聞くことはまず不可能であります。そういう狀況に落ちこんでいるのが現代人です。しかし天使は、光の傳達者であり、各人の心、各人の守護靈をひき出し、想念帶、表面意識に働きかける使命を担っているので、天使の話しを一回でも、二回でも、より多く聽聞することによって、想念帶にキレツが生じ、窓がひらかれるのです。各人の表面意識が、天使の話しを聽聞することによって、想念帶の奧にいる守護靈が、その人の想念帶の淨化と表面意識に働きかけるからです。
신불의 명령을 받아, 빛의 전달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빛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의 마음은, 전생윤회라고 하는 오랜 역사의 과정에, 여러 가지의 마음에 품은 생각(想念), 여러 가지의 죄(罪)를 거듭해 왔습니다. 상념대(想念帯)라고 하는 공간 속에, 각자의 마음은 매몰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보통으로는 90%의 잠재의식은 특수한 사람이 아니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한 유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열려도, 동물령(動物霊)이나 지옥령(地獄霊)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하물며 수호령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우선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상황에 빠지고 있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빛의 전달자이며, 각자의 마음, 각자의 수호령(守護霊) 을 끌어내어, 상념대, 표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사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며, 천사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두 번이라도, 보다 많이 귀를 기울여 듣는 것에 의해서, 상념대(想念帯)에 균열이 생겨, 창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표면의식이, 천사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는 것에 의해서, 상념대의 깊은 곳에 있는 수호령(守護霊)이, 그 사람의 상념대의 정화(淨化)와 표면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各人が、天使の話しを聞き、氣分が樂になった、氣持がセイセイした、八正道を行じよう、人びとに傳えよう、という自覺は、すべて守護靈のこうした作用があるからです。それは、天使の心が、宇宙の心を心としており、各人の心を知っているので、各人の心を體する守護靈と自由に、話しが出來るためでもあります。もっとも、ここで間違えては困ることは、各人の想念帶と表面意識は、よいにつけ、惡いにつけ、それは各人自身のものであり、そうした意識をムリかえさせることはできません。
각자가, 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상쾌했다, 팔정도를 행하자, 사람들에게 전해야지, 라고 하는 자각은, 전부 수호령(守護霊)의 이러한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사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을 마음으로 하고 있고, 각자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에 새기는 지키는 수호령(守護霊)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욱, 여기에서 잘못해서는 곤란한 일은, 각자의 상념대와 표면의식은, 좋게 받고, 나쁘게 받는다, 그것은 각자 자신의 것이며, 그러한 의식을 무리하게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各人の意識は、各人の意識であり、その自由、その意思は、神佛が與え、各人が所有するものですから、これは神佛といえども、自由にはならないのです。それだけの特權を、人間各自が持っています。從って、各人の守護靈も、各人の表面意識、想念帶が、これを迎え入れる自覺が出てこない限り、自由にはならないし、裏面意識に顔を出すことさえ出來ないのです。
각자의 의식은, 각자의 의식이며, 그 자유, 그 의사(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는, 신불이 부여하고, 각자가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신불이라고 할지라도, 마음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의 특권을, 인간 각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의 수호령(守護靈)도, 각자의 표면의식, 상념대가,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각이 나오지 않는 한, 마음대로는 안 되고, 표면의식에 얼굴을 내미는 일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また反對に、表面意識や想念帶が、守護靈を迎え入れたいと願っても、その人の環境、意識の調和度、その他、諸諸の事情で出られぬこともあります。從って一概に、靈道が開いた、そのこと自体にたいして評價はできません。靈道が開いたから、あの人は調和されている、いないということはいえないのです。靈道は開いていなくとも、意識の高い人もありますし、逆に靈道は開いてはいるが、低い人も いるのです。
또한 반대로, 표면의식이나 상념대가, 수호령(守護靈)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바래도, 그 사람의 환경, 의식의 조화(調和)의 정도, 그 밖의, 여러 가지의 사정으로 나올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마디로, 영도(靈道)가 열린, 그 일 자체에 대해서 평가는 할 수 없습니다.  영도(靈道 마음의 창)가 열렸기 때문에, 저 사람은 조화(調和)되어 있다, 있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도(靈道 마음의 창)는 열려 있지 않더라도, 의식의 높은 사람도 있고, 반대로 영도는 열려는 있지만, 낮은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靈道そのものは、いろいろな諸事情が加味されて開くものだからです。それは神佛の計らいであり、光の天使の狀況判斷にかかっています。同時にこれを受け入れる各人の意識そのものにも理由はあります。
영도(靈道 마음의 창) 그 자체는, 다양한 여러 사정이 가미되어 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불의 조처(처리)이며, 빛의 천사의 상황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동시에 이것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의식 그 자체에도 이유는 있습니다.
 


いずれにしましても、神理を悟った天使の話しを聽聞することによって、想念帶をおおっていた各人のこれまでの考え方、想念、敎養、德性に變化が起こり、旣成觀念に各種の疑問が湧いてまいります。そうして、そうした疑問は、やがて、回を重ねるにしたがって、だんだん、氷解されてゆきます。しかし疑問そのものは、各人それぞれ異なり、次第に高次元化されてゆく人もあります。疑問の連續、そしてその回答の積み重ねは、やがて、心に通じます。
결국, 신리를 깨달은 천사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는 것에 의해서, 상념대를 덮고 있던 각자의 지금까지의 사고방식, 상념, 교양, 덕성에 변화가 일어나고, 기성관념에 각종의 의문이 솟아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그러한 의문은, 이윽고, 회를 거듭함에 따라서, 점차, 풀려 갑니다.  그러나 의문 그 자체는, 각자 저마다 다르고, 점점 고차원화되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문의 연속, 그렇게 해서 회답의 겹겹이 쌓이는 것은, 이윽고, 마음에 통합니다.  
 


疑問は天使の話しを聽聞することによって生じ、自から行ずることによって、事實と理論の一致という解答で裏づけられてゆくものです。ですから疑問と行動は、たえず表裏一體となっていることが理想であり、悟りへの早道といえます。
의문은 천사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는 것에 의해서 생기고, 스스로 실행하는 것에 의해서, 사실과 이론의 일치라고 하는 해답으로 입증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문과 행동은, 끊임없이 표리일체가 되고 있는 것이 이상(理想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가장 완전한 상태))이며, 깨달음으로 빠른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ここで注意したいことは、疑問の解答が事実となって現われる場合と、そうでない場合があります。それは守護靈がその人の意識を磨くためです。その人に必要な時は直接的に、そうでない時は間接的に、解答を出すからです。たとえば、ある人が天使の神理を聽きます。その神理を聽く時期がその人の人生、これからの一生にとって大事な運命の岐路に立っている場合は、その解答は直線的になります。つまりズバリ、ズバリと当てていきます。そうして、その人をして、神理の神理たるゆえんを敎えてゆきます。間接の場合は、ある程度、その神理もわかり、昔のように、五官や六根に左右されないとみれば、今度は、手をかえ、品をかえ、より高次の疑問を提示し、その解答を、自からの意識で悟るように仕向けるのです。こうした場合は、疑問に對する解答は、容易に解けません。解けてもちがっています。守護靈は、あの世とこの世をみており、各人の生活を四六時中見守っていますから、その人の意識の狀態、魂の所在いかんで、いろいろ指導します。そのヤリ方は各人各様です。一概にはいえません。
여기에서 주의하고 싶은 것은, 의문의 해답이 사실로 되어 나타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호령이 그 사람의 의식을 연마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때는 직접적으로, 그렇지 않을 때는 간접적으로, 해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천사의 신리를 듣습니다.  그 신리를 듣는 시기가 그 사람의 인생, 지금까지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운명의 기로에 서 있는 경우는, 그 해답은 직접적으로 됩니다. 즉 정확히, 정확하게 알아 맞춰 갑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신리의 신리인 까닭을 가르쳐 갑니다.  간접적인 경우는, 어느 정도, 그 신리도 이해할 수 있고, 예전과 같이, 오관이나 육근(六根)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보면, 이번에는,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써서, 보다 고차원의 의문을 제시하고, 그 해답을, 스스로의 의식으로 깨닫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용이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풀리더라도 달라집니다. 수호령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을 보고 있고, 각자의 생활을 하루 종일 지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의식의 상태, 영혼의 상태에 따라서, 여러 가지 지도합니다.  그 행하는 방식은 각자 다양합니다. 일률적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靈道が開いたということは、天使の光が、その人の意識に入ったことであり、同時に、內からの光が外に出たことを意味します。想念帶に窓が開くその典型が靈道です。靈道のことを普通は靈能といいますが、靈能が開くと、いろいろなことがわかってきます。人の心はもちろんのこと、病氣の原因、明日起り得る出來ごと、離れていても天使と話しができ、したがって電話もいりません。天使自身は、觀自在で、居ながらにして、遠く離れた諸諸の事象をキャッチします。ある人のごときは、三時間も、ある映畵館で、映畵を樂しんだこともあります。これは自分の身は家に居ながらにしてなのです。・・・・・・こういう人ばかりですと、映畵館はアゴがひあがってしまいますが、これは守護靈の存在と、その事實をみせるために、やったことで、年がら年中や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영도(마음의 창) 열렸다고 하는 것은, 천사의 빛이, 그 사람의 의식에 들어온 것이며, 동시에, 내부에서 빛이 밖으로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상념대에 창이 열리는 그 전형이 영도(霊道 마음의 창)입니다.  

영도(마음의 창)는 보통은 영능(영적 능력)이라고 말합니다만, 영능(영적 능력)이 열리면, 다양한 것을 알 수 있게 되어 옵니다.  사람의 마음은 물론 일, 질병의 원인, 내일 일어날 수 있는 일, 떨어져 있어도 천사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따라서 전화도 필요 없습니다.  천사 자신은, 관자재이며, 앉은 채로, 멀리 떨어진 여러 여럿의 사상을 포착합니다.  어떤 사람과 같은 경우는, 3시간이나, 어느 영화관에서, 영화를 즐기는 일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몸은 집에 앉은 채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뿐이라면, 영화관은 장사가 안 될 것입니다만, 이것은 수호령의 존재와, 그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며, 일년 내내 할 수는 없습니다.

 


靈能はこうした長所を持っていますが、短所もあります。それは表面意識の作用と想念帶の振動で、本人に欲が生じ、威張ったり、おごる氣持や、金儲けの手段に使いますと、危險なものとなるからです。守護靈は光を體とした、慈悲と愛が身上であり、威張ったり、おごる氣持とは、体質的に合わないからです。潜在意識のところで觸れたように、それは電磁的作用で守護靈はその人の意識に働きかけますから、おごる氣持は守護靈の働く場を失います。つまり守護靈はその人についてゆけず離れます。ところが、想念帶の一部は開いています。守護靈は、その人から離れる際に、その想念帶の開いた個所を塞ぎますが、そのスキに、動物靈や、魔王が入ってくるのです。具体的には、おごる氣持は、こうした動物靈や魔王と同通するのです。從って、その人の意識が、これらを引き込むわけです。類は類をもって集まる。動物靈や魔王に、毒氣を吹きかけられ、守護靈でもこうした場合、手がつけられぬことがしばしばあるのです。ですから、靈能者は、普通の人よりも、釋迦の正法を常に行じてゆくように、心掛けることが大切です。
영능(영적 능력)은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단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표면의식의 작용과 상념대의 진동으로, 본인에게 욕심이 생기고, 뽐내거나, 뽐내며 남을 얕보는 마음이나,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위험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수호령은 빛을 몸으로 한, 자비와 사랑이 장점이며, 뽐내거나, 뽐내며 남을 얕보는 마음과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재의식의 장소에서 감응한 것처럼, 그것은 전자적 작용으로 수호령은 그 사람의 의식에 적극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뽐내며 남을 얕보는 마음은 수호령의 활동하는 장소를 잃습니다.  즉 수호령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떨어집니다그런데, 상념대의 일부는 열려 있습니다수호령은, 그 사람에게서 떨어질 때에, 그 상념대의 열린 부분을 막습니다만, 그 때에, 동물령이나, 마왕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뽐내며 남을 얕보는 마음은, 이러한 동물령이나 마왕과 의식이 통하는 것(同通)입니다따라서, 그 사람의 의식이,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유유상종입니다.  동물령이나 마왕에게, 독기를 내뿜으면, 수호령이라고 해도 이러한 경우,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능력자는, 보통의 사람보다도, 석가의 정법을 항상 실행해 가도록, 명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天使は、その人にとって靈能を開かせた方がよいとみた場合は、開かせます。しかし、その慈悲と愛が相手に通ぜず、それを惡用されては、せっかくの慈悲はなんの役にも立ちません。各人は、それぞれ、主体制をもった神佛の子です。各人には自由と創造が與えられ、その自由と創造、そしてその意思にたいしては、神佛といえども、動かす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천사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영능(영적 능력)을 열리는 쪽이 좋다고 보았을 경우는, 열어줍니다.  하지만, 그 자비와 사랑이 상대에게 통하지 않고, 그것을 악용해서는, 모처럼의 자비는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각자는, 저마다의, 주체성(主体制)을 지닌 신불의 자녀입니다.  각자에게는 자유(自由)와 창조가 주어지고, 그 자유와 창조, 그리고 그 의사(意思)에 대해서는, 신불(神佛)이라고 할지라도, 움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しゅたいせい【主体性】とは。意味や解説、類語。自分の意志・判断で行動しようとする 態度

주체제(主體制)=주체성(主體性)과 같은 뜻으로...자신의 의지 판단으로 행동하려고 하는 태도. 




太陽は地上に無限の光を與えています。しかしそれを受け入れる人間の側が、これに感謝し、これを善用するか、あるいは當然として惡用するかは、各人に任されているのと同じです。この点を各自がしっかりと肝に銘じておきませんと、大變なことになります。これは、靈能者の基本です。同時に正法を行ずる者の態度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태양은 지상에 무한의 빛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측이, 이것에 감사하고, 이것을 선용하는가, 혹은 당연히 여겨 악용하는가는, 각자에게 맡겨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을 각자가 확실하게 가슴 속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이것은 영적 능력자의 기본입니다. 동시에 정법을 실행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면 안 됩니다. 

 


しかし、そうした緊急の動物靈の憑依など、事態にたいして、天使は、二次的、三次的な配慮をしています。長い目でみた場合、そうした過程がその人にとって必要であることがあるのです。それは本人が夢からさめたときに、ハッキリ自覺されます。しかし、その憑依作用が、その家庭を破かいするとみられた場合は、ただちに、動物靈、魔王を取り除きます。そうして、想念帯の窓を閉じてしまいます。
그러나, 그러한 긴급한 동물령의 빙의 등, 사태에 대해서, 천사는, 2차적, 3차적인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았을 경우, 그러한 과정이 그 사람에 있어서 필요한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인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에, 확실히 자각시킵니다.  그러나, 그 빙의작용이, 그 가정을 파괴하려고 시도한 경우는, 즉시, 동물령, 마왕을 제거해 갑니다.  그렇게 해서, 상념대의 창을 닫아버립니다.

 


靈能そのものは、悟りへの一過程にすぎません。悟りとはほど遠いものです。それなのに鬼の首でも取ったように、有頂天になりますと、とんだ間違いをしでかし、天使の慈悲を仇で返えすことになります。よくよく気をつ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ころです。
영능(영적 능력) 그 자체는, 깨달음으로의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깨달음과는 어느 정도 먼 것입니다.  그러한 것으로 귀신의 머리라도 잡은 듯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되면,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고, 천사의 자비를 원수로 갚는 일이 됩니다.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우입니다.
 


ともかく靈能というものには、このような短所があり、長所ばかりではないということも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
어쨌든 영능(영적 능력)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러한 단점이 있고, 장점만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ところで、私たちが天使の光を求めるその動機はなんなのでしょうか。また、天使自身が、みなさんに、な

んのために、光を與えるのか。
그런데, 우리들이 천사의 빛을 구하는 그 동기는 무엇일까요? 또한, 천사 자신이, 여러분에게, 무슨 이유로, 빛을 주는 것일까?
 


私たちの目的は、ひと言でいえば、安心した生活。それは、肉体的にも、精神的にも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ょう。『心行』の中に書かれている心の調和、そして佛國土をつくるということよりも、目先の利害にとらわれるのが常であります。目先の利害と、心の調和、佛國土が一致してこそ・・・・・・、というようです。ですから、まず利害の一致です。事業を持つ者は事業がうまくゆくように、病床にある者はその恢復を、と。それは職業的にも、經濟的にも、健康的にも、恵まれてこそ、正法が信じられるわけです。安心した生活は、こうした現象的な利益につながってこそ得られるものでしょう。
우리들의 목적은, 한 마디로 말하면, 안심한 생활, 그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렇다고 하는 것이 되겠지요. 『심행』의 속에 쓰여져 있는 마음의 조화, 그리고 불국토를 만든다고 하는 것보다도,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히는 것이 흔히 있는 일입니다.  눈앞의 이익과, 마음의 조화, 불국토가 일치해야 말로・・・・・・, 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이익의 일치입니다.  사업을 가진 사람은 사업이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병상에 있는 사람은 그 회복을.  그것은 직업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건강적으로도, 축복받는 것이야말로, 정법을 믿게 되는 이유입니다.  안심한 생활은, 이러한 현상적인 이익으로 연결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ところが、正法というものは、こうした現象的利益と、一致するように出来ているのです。正法とは循環の法則であり、慈悲と愛という幸せを與えてくれるものだからです。循環とは、すべてが、めぐり、めぐってくるということです。心も、肉體も、エネルギーの集合體です。宇宙も空間もエネルギーから出來ています。テレビのチャンネルを回わすと、いろいろな畵面が映ってきます。電波は目にはみえませんが、エネルギーを母體として、空間に生きているからです。人間の想念行爲も、これと同樣に、感謝の想いは感謝として、正しき行爲は、それに應じた報奨として、本人にかえってくるのです。ですから正法そのものは、現象利益にも通ずるということです。
그런데, 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익과, 일치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정법이란 순환의 법칙이며, 자비와 사랑이라고 하는 행복을 제공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환(循環)이란, 모든 것이, 돌고,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도, 육체도, 에너지의 집합체입니다.  

우주도 공간도 에너지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텔레비전의 다이얼을 돌리면, 여러 가지 화면이 비춰집니다.  전파는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만, 에너지를 모체로 해서, 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상념행위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감사의 생각은 감사로서, 올바른 행위는, 그것에 응한 보장(報奨)으로서,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법 그 자체는, 현상이익에도 통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すべてのものは、円運動を畵いて循環しています。円である以上、三六〇度回轉すれば、再びもとの位置に返えってくるのです。太陽はまるく、地球も円形です。他の星々も、すべて円形です。四角や三角はありません。地球は太陽の回わりを、円を畵きながらまわっています。宇宙は、正法そのままの姿で素直に動いているのです。人間の精神構造も、圖に表せば、円になってしまうのです。原子の世界も原子核を中心に、そのまわりを陰外電子が、グルグルと回わっています。こうみてきますと、小は原子から、大は宇宙まで、すべてが、正法に照らして、円運動を畵いているわけです。生命というものは、円運動を起こしながら動いているのです。
모든 것은, 원운동을 그리며 순환하고 있습니다.  원인 이상, 360도 회전하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태양은 둥글고, 지구도 원형입니다.  

다른 별들도, 전부 원형입니다.  

4각이나 3각은 없습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습니다.  우주(宇宙)는, 정법 그대로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구조(精神構造)도, 그림으로 나타내면, 원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원자(原子)의 세계도 원자핵(原子核)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음외전자(陰外電子)가, 빙글 빙글 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작은 원자에서, 큰 우주까지, 모든 것이, 정법에 비추어서, 원운동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원운동을 일으키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人間の生命も、核を中心に、五人の分身が、圓運動を畵きながら生き續けています。その一つが欠けても、生命体として維持されるここはできないのです。ですから、人間の生命が、肉体が、円滑に、円運動を畵いてゆくためには、各人が、正法に照らして、正法に即した生き方が必要になってくるのです。人間は小宇宙であり、各人には、自由と創造、意思が與えられていますから、その想念、行爲は、各人の自由にまかせられています。それだけに、正法に反すれば、病氣や、事業不振、さまざまな惱みを抱くようになるのです。
인간의 생명도, 핵을 중심으로, 5명의 분신(分身)이, 원운동(圓運動)을 그려가면서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한가지가 모자라도, 생명체로서 유지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이, 육체가, 원활하게, 원운동을 그려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정법에 비추어서, 정법에 따른 삶의 방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소우주이며, 각자에게는, 자유와 창조, 의사(意思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가 주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 행위는, 각자의 자유에 맡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정법에 반하면, 질병이나, 사업부진, 다양한 괴로움(고민)을 껴안게 되는 것입니다.

 


正法とは、法であり、法はまた慈悲と愛であります。太陽が正法通り、熱、光を地上に惜しげもなく与えて下さるから、地上での生活が可能なのです。喜びがあるのです。これが慈悲でなくてなんでありましょう。
정법이란, 법이며, 법은 또한 자비와 사랑입니다.  태양이 정법대로, 열, 빛을 지상에 아낌없이 주시고 계시므로, 지상에서의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太陽は無言のうちに、私たちに、その生き方を教えています。
태양은 무언중에, 우리들에게, 그러한 생활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すなわち、正法を理解し、慈悲と愛に生きよ―と。光の天使は、その正法の存在を、盲目となった人人に、明らかにしているのです。現象利益も、正法を理解し、實行するならば、自然と与えられることを敎えています。ですから、現象利益、大いに結構なのです。正法に沿った生き方、つまり、慈悲と愛―そこまでいかなくとも、私共はその一つ一つを、正法に即すような生き方が、行じられるようにしたいものです。
즉, 정법을 이해하고, 자비와 사랑으로 살라―고.  빛의 천사는, 그 정법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盲目) 사람들에게, 뚜렷이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현상이익도, 정법을 이해하고, 실행하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상이익, 대단히 좋은(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정법에 따른 생활 태도, 즉, 자비와 사랑 ―거기까지는 안 될지라도, 우리들은 그 하나 하나를, 정법에 들어맞는 생활 태도를,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page 119~147

 

 


※영도(靈道 마음의 창)를 수정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天才少年キムはギリシャの天才科学者タ-ルスの生れ変わり」          

   천재소년 김은 그리스의 천재과학자 탈루스의 환생                     


 

 天才と言われる人は靈道(心の窓)を開いている人であると高橋信次師は言った。

천재라 불리우는 사람은 영도 (마음의 창)을 열고 있는 사람이라고 다카하시 신지 스승 말했다.

※출처 http://www.shoho.com/newpage111.htm

★참고로, 위 출처는, 현재 없어졌고, www.shoho2.com 으로 도메인이 바뀌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무단 전재를 금한다 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부득이 그림이 없으면, 내용을 이해하시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에 올렸습니다.  기존에 올린 천사의 재래 편에서의 인간의 정신구조와 그 기능편 과는 약간 내용이 다릅니다.



※일본어가 들어가지 않은 내용은, 제가 해석한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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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4장 신리문답(神理問答)」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三章 人間の精神構造とその機能」[心の實相] [旣成觀念を白紙に][九〇%の潜在意識][想念帯][一〇%の表面意識][自己保存、黒い想念][現象界に肉体を持っている上々段階・光の天使] page 119~147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30 11:09









 


第四章 神理問答集
제 4장 신리문답집

 

 

著者 高橋信次 (たかはし しんじ)
저자 고교신차(Takahashi Shinji)

 

 

幼少の頃から靈的體驗を重ねるとともに、電子工學、物理、天文、醫學などを學び、人間の心と肉體の關わりを解き明かした。

어린시절부터 영적 체험을 거듭함과 함께, 전자공학, 물리,천문, 의학 등을 배우고, 인간의 마음과 육체의 관계를 해명했다.

さりに深い探究の結果、魂の轉生輪廻を發見するに至る。以來『心の原點』『人間・釋迦』四部作『原說般若心經』など多數の著書や講演活動を通じて、人間の心の偉大性を說いた。コンピュ―タ―機器の製作事業を營むかたわら、經營者の指導にもあったった。GLAでは社會の調和をめざす多くの人びとが集い、氏の敎を實踐している。
더욱 깊은 탐구의 결과, 영혼의 전생윤회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 이후 『마음의 원점』 『인간・석가』4부작 『원설반야심경』 등 다수의 저서나 강연활동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의 위대성을 설명했다. 컴퓨터기기의 제작사업을 경영하는 한편, 경영자의 지도에도 힘썼다. GLA에서 사회의 조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長野縣生まれ。1976年6月、自らの豫言通りの生涯を終えた。

장야현(나가노현) 태생. 1976년 6월, 스스로의 예언대로 생애를 마쳤다. (September 21, 1927 - June 25, 1976)

Takahashi was born on September 21, 1927 in Sakukougen, Nagano prefecture, to a farm family, as the second eldest son among 10 children.

타카하시는 나가노현 사쿠고원에서 1927년 11월 21일에, 농가에서, 10명의 자녀 중에 둘 째 아들로 태어났다.

※GLA  http://www.gla-kansai.or.jp/  다카하시 신지님의 창설한 곳 주소입니다.

 







病氣  

병・질병(병의 기운)


 

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위 제목의 단어의 설명을 적습니다.


※びょう‐き【病気】

1 生体がその形態や生理・精神機能に障害を起こし、痛や不快感を伴い、健康な日常生活を営めない状態。医療の対象。疾病(しっぺい)。やまい。2 悪い癖や行状。

살아 있는 몸이 그 형태나 생리 정신상태에 장해를 일으키고, 고통이나 불쾌감을 동반하고, 건강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 의료의 대상. 질병. 병. 2 나쁜 버릇이나 행실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 상에는, 病氣는, 병(病)의 기운(氣運)이라고 나옵니다.

또한, 본 제4장 신리 문답집을, 읽다 보시면, 역시 "病氣는, 기운(氣運)의 병(病)의"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質問 질문

 

誰しも健康で元氣に生涯をすごせればこれはどの幸せはないと思います。 だのに病氣(災難を含め)はいつやってくるわかりません。

病氣の原因と病氣から解放されるということは、人間である以上、不可能なのでしょうか。

누구든지 건강하고 원기왕성하게 생애를 보내게 된다면 그것만큼 행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질병(재난을 포함)은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질병의 원인과 질병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인 이상, 불가능한 것입니까?

 


對答 대답

 

病氣の狀態についてまず說明しましょう。病氣は問字通り、氣の病いであり、肉體が病むというよりも實は肉體細胞を司どる、意識が病むものです。胃腸には胃腸の意識があり、心臟には心臟の意識があります。その意識が正常な活動を失い不活潑になるために、その部分が痛んだり病んだりします。もちろん、一カ所が痛めば體全體にも影響し、全體の活動を弱めてゆきます。

질병의 상태에 대해서 우선 설명합시다. 질병은 문자 그대로, 기운의 병(病)이며, 육체가 병든다고 하는 것 보다도 사실은 육체세포를 담당하는, 의식(意識)이 병이 나는 것입니다. 위장(胃腸)에는 위장의 의식(意識)이 있고, 심장(心臟)에는 심장의 의식(意識)이 있습니다. 그 의식(意識)이 정상적인 활동을 잃고 활발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아프거나 병들거나 합니다. 물론, 한곳이 아프면 몸 전체에도 영향을 끼치고, 전체의 활동을 약화시켜 갑니다.


 

人間の意識を大きくわけますと、魂意識と體の各部分を動かしている細胞意識があり、病氣はその兩方が病むものですが、その原因は、表面意識(表面意識の奧にある想念帶意識も含む)にあります。こわいものをみて體がすくむ。怒ったときに心臟がドキドキする。笑ったあとはお腹がすきます。このように表面意識と細胞意識というものは密接な關係を持ち、表面意識に細胞意識が常に左右されています。したがって、先天性の場合をのぞいて、病氣の大部分は表面意識にその原因をみることができます。そして、細胞意識の病む場合は多分に肉體遺傳の場合が多いのです。

인간의 의식을 크게 나누면, 영혼의식(魂意識)과 몸의 각 부분을 움직이고 있는 세포의식(細胞意識)이 있고, 질병은 그 양쪽이 병드는 것입니다만, 그 원인은, 표면의식(표면의식의 깊은 곳에 있는 상념대의식(想念帶意識)도 포함한다)에 있습니다. 무서운 것을 보고 몸이 얼어붙는다.  화를 냈을 때에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웃고 난 뒤에는 배가 고픕니다. 이와 같이 표면의식과 세포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표면의식에 세포의식이 항상 좌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천성의 경우를 빼고, 질병의 대부분은 표면의식(表面意識)에 그 원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포의식의 병드는 경우는 다분히 육체유전(肉體遺傳)의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人間の魂意識(潛在意識層)は神の子でありますから、病氣になるということはありません。すなわち、意識の中心である心は病むことはないのです。ただ魂意識層にある守護靈が人によっては表面意識と足なみをそろえて病むことはありますが、意識の中心である心まで病むことはないのです。

인간의 영혼의식(잠재의식층)((魂意識(潛在意識層))은 신(神)의 자녀이기 때문에, 병에 걸린다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즉, 의식(意識)의 중심(中心)인 마음은 병드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영혼의식층(魂意識層)에 있는 수호령(守護靈) 사람에 따라서는 표면의식(表面意識)과 보조(步調)를 맞추어 병드는 일은 있습니다만의식(意識)의 중심(中心) 마음까지 병드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この意味から、心だけをみるならば病氣は本來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ところが現實に病氣はあります。病氣の原因は前述の通り、怒ったり、そしったり、爭い想い、對立感情にあるのですから、それは想念が原因です。釋迦はこれを人間のカクマといい、イエスは原罪と呼んでいます。こうしたカルマが表面意識を通して想念帶に病巢をつくり、肉體的病氣となって現れてくるのであります。

이 의미에서, 마음만을 보면 질병은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 병은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은 전술한 대로, 화를 내거나, 비방(비난)하거나, 투쟁의 생각, 대립감정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념(想念=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떠올려 생각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석가(釋迦)는 이것을 인간의 카르마(Karma)(업())이라고 하고, 예수(Jesus)는 원죄(原罪)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카르마가 표면의식을 통해서 상념대(想念帶)에 병소(病巢=병원균이 모여 있어 조직에 병적 변화를 일으키는 자리)를 만들고, 육체적으로 질병이 되어 나타나오는 것입니다. 


 

 ※そしる《謗る·×譏る·×誹る》 "비방하다 비난하다 헐뜯다"  의 본래의 깊은 뜻은, 

《헐뜰을 방 謗》구멍으로 험담하여 비방(誹謗)하다 

《나무랄 기 譏》사람의 잘못・실수를 책망하며 비난(非難)하다 

《헐뜰을 비 誹》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서 비난(非難)하다 뜻입니다. 

 



また、假に、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正法通りに生きた人がいるとします。その人は病氣をしないかというとやはりします。後天的には立派でも先天的なカルマが表面に出るからです。この世は過去世のカルマを修正するために出ているのですから、後天的な理由だけ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ただし、この場合、十の先天的カルマは、後天的な善なる行爲によって、五になり、三になり、一になります。つまり惡と善の相殺作用が働きます。この意味で、人は、現世で悟ったとしても、病氣から解放されるということは、まずないのです.まして、人間は神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悟りに限界がないのと同じように、あやまちは人間には、常についてまわるものだからです。

또, 가령,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법 대로 살아 온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병이 걸리지 않는가 하면 역시나입니다.  후천적으로는 훌륭해도 선천적인 카르마(先天的なカルマ)가 표면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과거세(過去世)의 카르마를 수정(修正)하기 위해서 나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후천적인 이유만인 것이 아닙니다.  단, 이 경우, 10의 선천적 카르마는, 후천적인 선한 행위에 의해서, 5가 되고, 3이 되고, 1이 됩니다.  즉 악(惡)과 선(善)의 상쇄작용(相殺作用)이 작용합니다.  이 의미에서, 사람은, 현세에서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질병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일은, 우선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은 신(神)이 될 수는 없습니다.  깨달음에 한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실수)은 인간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病氣の種類は大別すると三通りあります。

질병의 종류는 크게 나누면 셋 정도입니다

 

その一は純然たる肉體的消耗。

その二は憑依現象。

その三は守護靈による作用。

그 첫 번째는, 순연(순수)한 육체적 소모

그 두 번째는, 빙의현상.  

그 세 번째는, 수호령에 의한 작용.


 

一は、精神が先走り肉體がついていけない場合。二は病氣の大半を占め、地獄靈地獄靈の憑依。この場合自己保存が主たる理由であり、反省し、想念行爲が改まらないかぎり、病氣の狀態は變わりません。守護靈による作用は、本人の自覺が先決です。いずれにせよ病氣は、想念行爲にその原因がみられるものです。

첫째는, 정신이 앞찔러 가서 육체가 따라 갈 수 없는 경우.  둘째는 질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지옥령(地獄靈), 동물령(地獄靈)의 빙의(憑依).  이 경우 자기보존(自己保存) 주된 이유(理由)이며, 반성하고, 상념행위를 고치지 않는 한, 질병의 상태(狀態)는 변하지 않습니다.  수호령에 의한 작용은, 본인의 자각(自覺)이 선결(先決)입니다.  결국, 질병(病氣)은, 상념행위(想念行爲)에 그 원인(原因)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page 149~153



★참고 삼아 올립니다.  "지옥령(地獄靈), 동물령(地獄靈)의 빙의(憑依) "는, 제 『일기형식』에, 

2005년 9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병이 낫기 까지에 있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지옥령(地獄靈)=집착에 의해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과,

동물령(地獄靈) 중에는, 믿지 않겠지만, 룡(나가)(龍)들이나 룡 중에는 흑룡, 청룡, 황룡, 적룡 등등이 있었고, 뱀(蛇), 여우(狐), 재미삼아 죽인 혹은 화풀이로 죽인 동물들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쥐(鼠), 지렁이(蚯蚓), 물고기(魚), 지네(百足=蜈蚣), 및 자연령(自然靈)들, 이 자연령은, 바위(巖, 石)이나 나무(靈木)같은 것들에 의해서도 빙의되며, 쉽게 말하면 무속인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신(神)으로 받들어 음식을 올리고 절하는 기도하는 살아있는 나무나 어떤 형상을 띤 바위들이 실재로 의식(영혼)을 가진 존재로 둔갑합니다.  그런 나무들 베거나 혹은 그 나무에 오줌을 싸거나 그런 바위를 깨거나 그곳에서 나쁜 짓을 하거나 하면, 아프게 됩니다. 

잘 안 믿겠지만, 실제 제가 경험한 것입니다.  몇 십년 혹은 몇 백년 혹은 몇 천년 전에 죽은 혼령들이,

아프게도 합니다. 

몇 천년이라고 하면, 천구(天狗)와 같은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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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4장 신리문답(神理問答)」편에 있는, 십자가와 죽은 자의 영혼, 타력본원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四章 神理問答集」[病氣]  page 149~153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31 







▶十字架 십자가◀


 

質問 질문

 


イエス・キリストは海上を步き、また數片のパンで數千の人びとの飢えを滿たした、とありますが、そうした靈能力者が、なぜ捕えられ、十字架にかけられたのですか。また、十字架にかけられ、息絶える前「わが神よ、なんぞ我を見棄て給いし」といわれていますが、その眞意をご說明下さい。
예수 ・그리스도는 바다 위를 걷고, 또 몇 조각의 빵으로 수천의 사람들의 굶주림을 채웠다,고 합니다만, 그러한 영능력자가, 왜 잡혀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까, 또, 십자자게 매달려, 숨이 끊어지기 전「나의 신이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그 진의를 설명해 주십시오.

 



對答 대답

 

海上を步いたイエス・キリストは光子體のイエスであり、肉體のイエスではありません。これをみた弟子たちの眼は、肉眼のそれではなく、心眼(靈視)であったのです。しかし弟子たちは、それが心眼であるか、肉眼か、彼らにはその自覺はまだありませんでした。
바다 위를 걸은 예수 그리스도는 광자체의 예수이며, 육체의 예수가 아닙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의 눈은, 육안의 그것이 아니라, 심안[마음의 눈](靈視)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이 마음의 눈인지, 육체의 눈인지, 그들에게는 그 자각은 아직 없었습니다.

 


※심안[心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마음의 눈. 

 예) 心眼しんがんを開ひらく 심안을 뜨다 혹은 심안을 열다.


 

數片のパンで數千の人の飢えを滿たしたことは事實です。その靈能力者がなぜ捕られたのでしょうか。十字架にかれられることを、イエスは事前にわかっていました。そして、死後の復活まで知っていたのです。實在界から敎えられたからです。十字架の刑の原因は、イエス自身の激しい氣性にありました。魔王を憑けた人びとが多かったために、魔王の怒りを買ったからです。しかし、十字架によって、愛の神理が、よりいっそう人びとの心に芽生え、魔王は、結局イエスに負けたのです。
몇 조각의 빵으로 수천의 사람의 굶주림을 채운 것은 사실입니다그 영능력자가 왜 잡혔던 것일까?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을, 예수는 사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후의 부활까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재계에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십자가형의 원인은, 예수 자신이 격심한 기질(氣性)에 있었습니다.  마왕(魔王)을 의지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마왕의 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의해서, 사랑의 신리가, 보다 더욱 사람들의 마음에 싹트고, 마왕은, 결국 예수에게 진 젓입니다.

 


十字架と復活ㅡこれによって、愛の神理は全世界に傳播し、イエスの神理は二千年を經た今日でも、人びとの胸に刻み込ま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
십자가와 부활 ㅡ 이것에 의해서, 신의 신리는 전세계에 전파되고, 예수의 신리는 2천년을 거친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아로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さて次に、
「わが神よ、わが神よ、なんぞ我を見棄て給いし・・・・・・」
とあります。十字架上のイエスは、息絶える寸前、こう大聲でいったと、マタイ傳では記されています。ところがルカ傳二十三章では、
「父よ、わが靈を御手にゆだぬ」
といっています。いったい、どちらが本當なのでしょう。
그리고 다음에,
「나의 신이여, 나의 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있습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이렇게 크게 소리쳤다고, 마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장에서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님 손에 맡기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느쪽이 진실인 것일까?

 

※마태복음 27장 46절, 누가복음 23장 46절

 



イエスは、事前に、十字架も、復活も知っています。ユダが自分をバリサイ人に賣ること、ペテロが虛言を吐くことも知っていたのです。
예수는, 사전에, 십자가도, 부활도 알고 있습니다.  유다(Judas 가롯유다)가 자신을 바리새인(Pharisee人)에게 파는 것, 베드로가 허언(거짓말)을 할 것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사람의 제자(弟子). 
 베드로(Petrus) 또는 페트루스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곱, 다대오 또는 유다, 시몬, 가롯유다 또는 맛디아. 


※ 12사도 중에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형에 달릴 때, 사람들이 저 사람도 예수의 제자다 하고 말할 때,
세 번이나 거짓말을 합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올립니다. [마가복음 14:66-72]
66절,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67절,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70절,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절,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절,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 예수를 판 가롯유다는, 예수가 돌아가신 후, 목을 매어 자살합니다.

 




新約聖書にしろ、佛經にしろ、いろいろな人の手によって書かれてきました。聖書はイエスの手によっ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とすろと書く人の氣根なり、心の在り方によって大分表現が違ってきますし、間違いもあるでしょう。さらには、これを譯する人の心構えによって變わってきます。
신약성서도, 불경도,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서 쓰여져 왔습니다.  성서는 예수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면 쓰는 사람이 기근(정신력)내지, 마음의 본연의 모습에 따라서 대부분 표현이 달라져 오고, 잘못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바뀌어 옵니다.


 

マタイ傳、ルカ傳、どちらも本當だ、という見方もあって、それなりに統一した解釋を下している人もあるようですが、イエスのこのときの言葉は、
「神よ、人びとを見棄て給うな、その爲す所を知らざればなり」
と、いうことです。
마태복음, 누가복음,  둘 다 진실이다, 라고 하는 견해도 있고, 그런 채로 통일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예수의 이 당시의 말은,
신이여, 사람들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행하는 바를 모르고 있나이다

 


聖書にしろ、佛典にしろ、文字にとらわれると、その眞意を見失ってしまいます。全體の大意をつかむことが大切です。全體の大意で、それが本物か僞物かの判斷がつくようにしたいものです。
성서도, 불전도, 문자에 사로잡히면, 그 진의를 보고 있던 것을 놓쳐 버리고 맙니다.  전체의 대의(대강의 뜻)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체의 대의(대강의 뜻)으로,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의 판단을 내리도록 한 것입니다.


 




▶死者の靈  

죽은 사람의 영혼◀


 
質問 질문

 

昔からよくいわれていることですが、人間は死後四十九日間は、家(や)の棟(むね)を離れない、といわれていますがこれは本當なのでしょうか。
옛날부터 자주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인간은 죽은 뒤 49일 동안은, 집의 마룻대(지붕의 용마루)를 떠나지 않는다, 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진실인 것입니까? 

 


對答 대답

 

四十九日のいわれはどこから來たか。昔から七の數をラッキ―セブンといって、緣起がよいとされています。七の數は完成を意味する、といわれ、そこから七の七倍は四十九で、もっとも緣起がいいということになるようです。法事の說明では、死後四十九日の間に次の生の緣が定まるとされ、七日目每の讀經禮佛は死者をして善處に生まれかわらしめ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のようです。
49일의 이유(까닭)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옛부터 7의 숫자를  Lucky seven(행운의 숫자)라고 말하며, 연기(緣起)가 좋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7의 숫자는 완성을 의미한다, 라고 말해지며, 거기에서 7의 7배는 49이며, 더욱 연기(緣起)가 좋다고 하게 되는 모양입니다법사의 설명으로는, 죽은 뒤 49일 동안에 다음 생의 인연이 정해진다고 하며, 죽은 뒤 이래째 매일 독경염불은 죽은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게 할 수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인 모양입니다.


 

※연기[緣起] 사물(事物)의 유래(由來)나 원인(原因)
[佛]あらゆる事物じぶつの起源きげんや由来ゆらい。 [불교] 모든 사물의 기원이나 이유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문화원형 백과사전 
범어 pratitya-samutpada의 번역이다.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적이거나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과 원인이 없으면 결과(果)도 없다는 설이다....

 

※연기[緣起] 모든 현상이 생기(生起) 소멸 하는 법칙. 이에 따르면 모든 현상은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하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實際はどうかというと、そんなことはないのです。釋迦は反省、中道の正法にめざめて二十一日目に悟り、實在界に招かれて法語をしますが、二十一というのは、あの世の定めであって、死者の靈の場合も、二十一日間は、この地上にいて、自由行動ができる仕組みになっています。
실제는 어떤가 하면, 그런 일은 없는 것입니다.  석가는 반성, 중도의 정법에 눈을 뜨고 21일째에 깨닫고, 실재계에 초대되어 법어(法語 불교의 교의를 설명하는 말을) 합니다만, 21일이라고 하는 것은, 저 세상의 정(결정)하고 있고, 죽은 사람의 영혼(靈)의 경우도, 21일 동안은, 이 세상에 있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구조(構造)로 되어 있습니다.


 

したがって、四十九日の根據の故事來歷はともかく、二十一間は、死者の魂は家の棟にとどま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しかし、どんなに現象界に執着を持った靈でも、その以上はこの地上界に、とどまることはできません。二十一日というのは、地上にとどまる最大限の日數であり、悟った靈なら、一時間も地上にはいません。そのままスㅡットト次元の違った世界に歸えってゆきます。
따라서, 49일이 근거의 고사유래는 어찌 되었든 간에, 21일 동안은, 죽은 사람의 영혼(魂)은 집의 마룻대(지붕의 용머루)에 머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상계에 집착을 갖은 영혼일지라도, 그 이상은 이 지상계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21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상에 머무는 최대한의 일수이며, 깨달은 영혼(靈)이라면, 1시간도 지상에는 없습니다.  그대로 스윽하고 차원의 다른 세계로 돌아갑니다.

 


二十一という數も、七の三倍という風にみますが、しかしこれはあの世の仕組みであって、もしも、こうした仕組みがなされていないと、現象界は大混亂になってしまいます。
21일이라고 하는 숫자도, 7의 세배라고 하는 식으로 봅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저 세상의 구조이며, 만약, 이러한 구조(構造)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 현상계는 대혼란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それはどういうことかというと、悟った靈ならともかく、悟らない靈が生きている人間同樣に、その行動が自由になるとすれば、多くの人に憑依し、地上界は、たちまち惡靈の支配下におかれてしまうからです。葬式後、死者が家に遊びに來るとか、あいさつに來る例は多いのですが死後二十一日間は、そうした自由が許されているからです。しかしその後はそうした自由行動は許されません。
그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깨달은 영혼(靈)이라면 어쨌든, 깨닫지 않은 영혼(靈)이 살아 있는 인간처럼, 그 행동이 자유롭게 된다고 하면, 많은 사람에게 빙의(憑依)하고, 순식간에 악령의 지배하에 놓여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장례식 후, 죽은 사람이 집에 놀려 온다든지, 인사하려 오는 예는 많은 것입니다만 죽은 뒤 21일 동안은, 그러한 자유가 허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러한 자유행동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死者が地上に執着を持ち、二十一日をすぎても地上にいる場合があります。これらは自縛靈として、その土地,場所にいるのです。行動の自由はありません。憑依は、その場所に近づくことによって行なわれます。また、自縛靈は、その場所に常時いる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次元の違うあの世の生活に耐えられず、その苦しみから逃れるために、執着を持った地上に、意識を同通させるために起こる現象です。ですから、靈視でも見えるときと、見えないときがあるはずです。
죽은 사람이 지상에 집착을 갖고, 21일을 넘어서도 지상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박령(自縛靈)으로서, 그 토지, 장소에 있는 것입니다.  행동의 자유는 없습니다.  빙의(憑依)는, 그 장소에 다가서는 것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또, 자박령(自縛靈)은, 그 장소에 상시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차원의 다른 저 세상의 생활을 견딜 수 없고, 그 괴로움에서 달아나기 위해서, 집착(執着)을 가진 지상에, 의식을 한가지로 통하게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自縛靈は、土地や場所だけではなく、物にも通じています。その物を持つと凶事が起こる例は洋の東西を通じてよくあることです。
자박령(自縛靈)은, 토지나 장소뿐만이 아니라, 물건에도 통하고 있습니다.  그 물건을 가지면 흉사(불길한 일)가 발생하는 예는 동서양을 통해서 자주 있는 일입니다.


 

なお悟った靈はどうかというと、悟った靈には行動の自由があります。上段階に行けば行くほど、その行動範圍は廣く、その点は自縛靈と比較になりません。
역시 깨달은 영혼(靈)은 어떤가 하면, 깨달은 영혼(靈)에게는 행동의 자유가 있습니다.  상단계로 가면 갈 수록, 그 행동범위는 넓고, 그 점은 자박령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他力本願 

타력본원(남의 힘을 빌어 일을 이루려 하는 일)◀



質問 질문

 

他力本願の敎は、なぜ正しい道に反するのですか、その誤りを敎えて下さい。
타력본원의 가르침은, 왜 올바른 도리에 반하는 것입니까, 그 잘못을 가르쳐 주십시오.


 

對答 대답

 

まず他力の發生は、人間が十パ―セントの意識で生活しているため、一寸先がわからないとことと、人のカルマというものが、ちょっとや、そっとでは修正しにくいところに原因があります。
우선 타력의 발생은, 인간이 10퍼센트의 의식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한치 앞을 모른다고 하는 것과, 사람의 카르마라고 하는 것이, 여간해서는 수정(修正)하기 어렵다는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祈り(願い)や念佛が、こうした人間の弱さから生まれ、今日の信仰形態が、佛敎、キリスト敎を問わず、他力に變形していったのも、無理はないと思われます。
기도(소망)이나 염불이, 이러한 인간의 약함에서 태어나고, 오늘날의 신앙형태가, 불교, 그리스도교을 불문하고, 타력으로 변형되어 있던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しかし、無理はないといっても、他力では本願(悟り)は絶對に得られません。なぜならば、人間の心の歪みは他力では修正できないし、またそのようには出來ていないからです。
그러나, 무리는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타력으로는 본원(깨달음)은 절대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의 비뚤어짐은 타력으로는 수정할 수가 없고, 또 그렇게는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人間は、神の子なのです。
인간은, 신의 자녀인 것입니다.

 


この事實をまず認識して、自覺を持って下さい。
이 사실을 우선 인식하고, 자각을 가져 주십시오.

 


さてこの大宇宙は、神が創造したものです。神が、その意思と、自らの力で。神は天地創造と同時に、創造した現象物質界に、永遠の調和をめざすことを意思しました。目標のない意思は意思として働かないし、運動のない生命は、生命として生きてこないのです。永遠の調和、生命の轉生輪廻は、そうした意思の下に始まったのです。
그리고 이 대우주는, 신(神)이 창조한 것입니다.  신(神)이, 그 의사(마음 먹은 생각)와, 스스로의 힘으로.  신은 천지창조와 동시에, 창조한 현상물질계에, 영원한 조화를 목표로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목표가 없는 의사는 의사로서 일(활동)하지 않고, 운동이 없는 생명은, 생명으로서 살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영원한 조화, 생명의 전생윤회는, 그러한 의사 아래에 시작된 것입니다.

 

※의사[意思] : 

《한자사전》마음 먹은 생각, 마음.

《국어사전》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

《일본어사전》(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


 

神の意思の繼承者は人間です。さけることは出來ません。同時に、人間に生まれたことに感謝を持つべきです。
신의 의사의 계승자는 인간입니다.  피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를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神の子の人間は、神が果たされた天地創造のその働きを、こんどは人間が果たしてゆくことになったのです。
신의 자녀인 인간은, 신이 완수한 천지창조의 그 일을, 이번에는 인간이 달성해 가게 된 것입니다.

 


人間は、自ら意思し、創造し、自由にその環境を變える能力を持っています。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고, 자유로이 그 환경을 바꾸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こうした意味で、人間は、自力によってのみ、神の子の目的と使命を果たすことができるのです。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자력에 의해서만, 신의 자녀의 목적과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正道は、こうした神の心にもとついた想念と行爲を敎え、調和という大目標に向かうことを示すものです。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은, 이러한 신의 마음에 바탕을 둔 상념(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가지 생각)과 행위를 가르치고, 조화라고 하는 큰 목표를 향하는 것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정도[正道] 《한자사전》 
①올바른 길 ②사람이 행(行)해야 할 바른 길, 정당(正當)한 도리(道理)



他力の誤りは、人間の神性、佛性に目をふさぐことにあります。
타력의 잘못은, 인간의 신성(神性 신의 성격·성질, 마음, 정신), 불성(佛性 부처의 본성)을 단념하는 것에 있습니다.

 

 

もし他力で、安心が得られ、悟れたという人があれば、お目にかかりたい。いつでもお會いします。
만약 타력으로, 안심을 얻을 수 있고, 깨달았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 뵙고 싶습니다.  언제든지 만납시다.

 


日本の他力は、法然、親鸞によって開かれたことになっていますが、佛敎を大衆化し、衆生の中に根を下すには、こうした方法をとるより他に手段がなかったからだと思います。法然は、他力によって神理を悟れたかというと、そうはいかなかったようです。
일본의 타력은, 법연, 친란에 의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만, 불교를 대중화하고, 중생들 가운데에 뿌리를 내리는 데는, 이러한 방법을 취하는 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연은, 타력에 의해서 신리를 깨달았는가 하면, 그렇게는 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他力は、開祖でも悟らないとすれば、大宇宙を動かしている偉大な能力と、その能力を感知出來る自分自身を、もう一度すりかえってみる必要があるでしょう。
타력은, 개조라고 해도 깨달지 못했다고 하면, 대우주를 움짐이고 있는 위대한 능력과, 그 능력을 감지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법연 ほうねん〔ホフネン〕【法然】
[1133~1212]平安末期の浄土宗の僧。美作(みまさか)の人。諱(いみな)は源空。比叡山の黒谷で天台および諸宗を学び、安元元年(1175)称名念仏に専念する立場を確立し浄土宗を開いた。 
[1133~1212]헤이안말기의 정토종의 승려. 미작(미마사카)의 출신. 위는 원공. 비예산의 흑곡에서 천태 및 여러 종파를 배우고, 안원원년(1175)부처의 명호를 외는 염불에 전념하는 입장을 확립하고 정토종을 열었다.

※친란 しんらん【親鸞】
[1173~1262]鎌倉初期の僧。浄土真宗の開祖。日野有範(ひのありのり)の子。比叡山で天台宗などを学び、29歳のとき法然に師事し、他力教に帰した。師の法難に連座して越後に流され、ここで恵信尼と結婚 ...
[1173~1262]가마쿠라 초기의 승려. 정토진종의 개조. 일야유범(히노아리노리)의 아들. 비예산에서 천태종 등을 배우고, 29세 당시 법연을 스승으로 공경하고 가르침을 받고, 타력교로 돌아갔다.  스승의 교단(敎團)·중·교도 등이 권력자 등으로부터 받는 박해에 연좌하여 에찌고(越後 일본의 지명)으로 휩쓸려, 여기에서 에신 니(혜신니)와 결혼....

※비예산[比叡山] 
〈地〉 京都きょうと시 북동부와 滋賀しが현의 경계에 있는 산. 《「延暦寺えんりゃくじ」 「日吉大社ひよしたいしゃ」가 있어 예로부터 신앙의 산으로 알려져 있음》 =比叡ひえい·叡山えいざん·北嶺ほくれい.

 

※개조[開祖]《한자사전》 

무슨 일을 처음으로 시작(始作)하여 그 일파(一派)의 원조(元祖)가 된 사람, 개종조(開宗祖), 개산(開山) 조사(祖師)의 준말 



 

page 14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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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4장 신리문답(神理問答)」편에 있는, 본능과 욕망, 신앙과 가난, 번뇌즉보리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四章 神理問答集」[十字架][死者の靈][他力本願]  page 153 ~160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1.01.01 

 




●本能と欲望 

본능과 욕망

 


質問 질문

 

本能と欲望は同じもののようにも考えれれ、異質のようにも思えます。この二つの本質とその關係、そして違いがあればどう違うのかを說明して下さい。
본능과 욕망은 같은 것 처럼도 생각되고, 성질이 다른 것처럼도 생각됩니다.  이 두 가지의 본질과 그 관계, 그리고 차이가 있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설명해 주십시오.


 


對答 대답


 

まず、本能について考えてみます。本能のなかには食べる食本能と種族保存の姓本能があります。母性本能というものもありますが、食と性の本能はもっとも根源的なものです。この本能は生物が生きてゆくうえに、絶對に欠かすことのできないものです。もしも、この二つの本能が與えられていなかったならば、生物は絶滅しているでしょう。絶滅させないために、神はこの二つの本能を、すべての生物に平等に與えました、それゆえ、本能は生物の生存に必要な、最低の條件であるといえます。 
우선, 본능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본능 중에는 먹는 식본능과 종족보존의 성본능이 있습니다.  모성본능이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만, 식과 성의 본능은 가장 근원적인 것입니다.  이 본능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에 , 절대로 빠뜨리는 것이 불능한 것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의 본능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생물은 절멸(멸종)하고 있을 것입니다.  멸종시키지 않기 위해서, 신은 이 두 가지의 본능을, 모든 생물에게 평등하게 부여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는은 생물의 생존에 필요한, 최저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人間以外は、生物の本能においては、强い制約をうけています。 野放しにしますと、種族內や種族間の調和を亂すおそれが出てくるからです。 人間については、こうした制約がありません。萬物の靈長たるゆえんも、こうしたところにも顔をのぞかせております。なぜ人間については制約をうけないかといいいますと、人間は自らの知性と理性によって本能をコントロ―ルしてゆくようにできているからです。
인간 이외에는, 생물의 본능에 있어서는, 강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방임하면(멋대로 내버려 두면), 종족 안이나 종족간의 조화를 혼란시킬 우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해서는, 이러한 제약이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이유(까닭)도, 이러한 경우에도 얼굴을 슬쩍 내비치고 있습니다.  왜 인간에 대해서는 제약을 받지 않는가 하면, 인간은 스스로 지성과 이성에 의해서 본능을 통제해 가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次に欲望です。欲望には、本能の影響力がもっとも强く現れます。なぜなら本能は生存に必要な最低の條件を求めてゆくものであり、したがって欲望をもっとも强烈に刺激してゆくからです。しかし欲望は、もともと二次的作用として生まれた精神作用であります。本能は生存に欠かせない一次的なものです。欲望の中には、知性からくる知識欲もあり、好き嫌いを表わす感情からは、そねみ、ねたみ、中傷といったものから、本能とのかね合いから、權力、名譽、地位などにたいする欲望などがさまざまに生じてくるでしょう。
다음에 욕망입니다.  욕망에는, 본능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본능은 생존에 필요한 죄저의 조건을 구해 가는 것이며, 따라서 욕망을 가장 강렬하게 자격(자극)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욕망은, 본래 2차적 작용으로서 탄생한 정신작용입니다.  본능은 생존에 빠뜨릴 수 없는 1차적인 것입니다.  욕망 중에는, 지성에서 오는 지식욕도 있고, 좋고 싫음을 나타내는 감정에서는, 시기(猜忌), 질투(嫉妬), 중상(中傷)이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본능과의 균형에서, 권력, 명예, 지위 등에 대한 욕망 등이 가지각색으로 생겨 나올 것입니다.

 


 

こうみてまいりますと、本能と欲望の相違点が非常にはっきりしてくると思います。つまり、欲望が發生する土壤は極めて廣く、本能はその中の一部にすぎないということがいえると思います。したがって、本能と欲望は、もともと異質のものであり、違った次元で考えてゆか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です。
이렇게 보고 계시면, 본능과 욕망의 상위점(서로 다른 점)이 매우 뚜렷해져 온다고 생각합니다.  욕망이 발생하는 토양는 극히 넓고, 본능은 그 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능과 욕망은, 본래 성질의 다른 것이며,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それでは欲望はどんな理由から發生してくるのでしょうか。欲望の根本は、自我、執着です。自分と他人との相對觀、苦しみ悲しみが必ずしも一致しないために、きわめて個人的、孤立的、排他的のなかから生まれます。こういうと、今日の物質文明は欲望が土臺であり、欲望がなければ何事も發展しないと考えられるわけですが、本來こうした欲望がなくとも社會發展するものです。それは人間としての義務、獻身、博愛、協調、連帶感といったものがあれば、文明はより精神的な、より高度な發展を遂げてゆくことでしょう。こういうこともいえるものです。
그렇다면 욕망은 어떤 이유에서 발생해 오는 것일까?  욕망의 근본은, 자아(Ego,이기주의), 집착입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과의 상대관, 괴로움 슬픔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극히 개인적, 고립적, 배타적인 가운데에서 태어납니다.  이렇다고 하면, 오늘날의 물질문명은 욕망이 토대이며, 욕망이 없으면 무슨 일도 발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본래 이러한 욕망이 없더라도 사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 헌신, 박애, 협조, 연대감이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문명은 보다 정신적인, 보다 고도한 발전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例えば、欲望を持った人間の意識社會の中で、かりに、社會福祉を廣く與えたとします。すると人間は勞動や發明發見にたいする意欲を失い、その社會の運營をむずかしいものにしてゆくでしょう。自殺者や性の亂脈が福祉社會の國家に多くみられるというのも、義務とか獻身といった高度の價値觀、意識のめざめがないためにおころようです。ともあれ、現代の意識の狀態において、欲望と發展ということを切り離して考えることは、確かに困難だと思います。そこでまず大事なことは、足ろことを知った生活、助け合う日常を送ることです。節度は調和を生み、調和はより大きな發展をもたらすからです。
예를 들면, 욕망을 가진 인간의 의식사회 중에서, 가령, 사회복지를 넓혀 주었다고 합시다.  그렇게 하면 인간은 노동이나 발명 발견에 대한 의욕을 잃고, 그 사회의 운영을 어렵게 해 갈 것이다.  자살자나 성(性)의 난맥(亂脈 이리저리 흩어져서 질서나 체계가 서지 아니하는 일. 또는 그런 상태)이 사회복지의 국가에 많이 보여지는 것도, 의무와 헌신이라고 하는 고도의 가치관, 의식의 자각(각성)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어찌 되었든, 현대의 의식의 상태에 있어서, 용망과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선 중요한 것은, 만족함을 아는 생활, 서로 돕는 일상을 보내는 일입니다.  절도(節度)는 조화를 낳고, 조화(調和)는 큰 발전(發展)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자아[自我] 《한자사전》자기(自己) 자신(自身)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자아[自我 ,Ego] 《전문용어대역사전》
타인의 희생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egoism (영어) 타인의 희생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信仰と貧しさ

 신앙과 가난


 

質問 질문

 

一般世間をみると、信仰を持たない者が惠まれ、信仰者が不幸で貧しいという現象にぶつかります。何か矛盾を感するのですが、これはどういうわけでしょうか。
일반 세간(세상 사람들)을 보면,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 풍족하고, 신앙자가 불행하며 가난하다고 하는 현상에 부딪힙니다.  무엇인가 모순을 느끼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어떠한 까닭일까요?

 



對答 대답

 

嚴格な意味では信仰を持たない者は一人もおりません。自分を信じているか、金を信じているか、地位や名譽を信じて生きているか、何かを信じているのか人間です。何も信ずることが出來なくなったらば、人は生きてゆくことさえむずかしいでしょう。
엄격한 의미로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자신을 믿고 있든지, 돈을 믿고 있든지, 지위나 명예를 믿고 살고 있든지, 무엇인가를 믿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면, 사람은 살아가는 것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まず神信心のない人たちが比較的惠まれている理由は、その生活態度が自力的だからです。依賴心が少なく、原因と結果について自分なりの見解を持っており、ものの成否は努力の結果とみているからです。それだけに自己中心的であり、念力も人一倍强く働いています。惠まれた環境は、そうした諸條件が生み出したといえるでしょう。
우선 신심심(신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비교적 풍족하고(축복받고) 있는 이유는, 그 생활태도가 자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의뢰심이 적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고 있고, 일의 성패(성공 여부)는 노력의 결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기중심적이며, 염력도 남달리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풍족한(축복받는) 환경은, 그러한 여러 조건이 만들어 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ところで人の幸、不幸は本來主觀的なものです。第三者が見て、經濟的に惠まれているから幸せ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それを維持するために汲汲とした生活であったり、親子の斷絶があったり、形だけの夫婦であるとか、內と外では大違いという場合が多いようです。また金が出來、地位が上がると、こんどは慢心を起こし、情欲に流れたりして、金持三代續かず、のように新たな原因をつくり出してゆきます。
그런데 사람의 행복, 불행은 본래 주관적인 것입니다. 제삼자가 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에 행복할까 하면 그렇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급급한 생활이 있거나, 부모와 자식의 단절이 있거나, 겉으로만 부부이든지, 안과 밖으로는 크게 다르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또 돈이 생기고, 지위가 올라가면, 이번에는 만심(慢心 남을 업신여기며 잘난 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정욕으로 치우치거나 해서(정욕으로 흐르거나 해서), 부자는 삼대를 잊지 못한다고, 하는 것처럼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 내어 갑니다.  

 


努力そのものは正道に適っていますが、報恩感謝のない生活は、やがては身を滅ぼすことになるのです。ですから、自分を信ずることはよいのですが、心のない自力は、幸せのように見えていながら、不幸の原因をつくりつつあるといえるでしょう。
노력 그 자체는 정도(正道 정당한 도리)에 들어맞고 있습니다만, 보은감사가 없는 생활은, 머지 않아서는 몸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믿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만, 마음이 없는 자력은, 행복하게 보이면서도, 불행의 원인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一方、信仰を持ちながら貧しい。というのは、これまで信仰は十のうち十までが他力でした。先祖崇拜と祈りと讀經が生活を豊かにすると考えられ、タナボタ式に幸せをつかむようとしました。信者の態度も、祈れば救われ、病氣も治る、金も入ってくるとして、生活まで犧牲にしてきました。これでは貧しくなるのは當然でしょう。ことに、信仰者のものの考え方は逃避的、自慰的、排他的、獨善的である場合が多く、生活に積極的に立ち向かってゆく傾向が少ないようです。
한편, 신앙을 가지면서 가난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신앙은 열 가운데 열까지 타력이었습니다.  선조숭배나 기도나 독경이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되어, 굴러들어온 호박(뜻밖의 행운)이란 식으로 행복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신앙의 태도도, 기도하면 구원되고, 병을 고친다, 돈도 들어 온다고 해서, 생활까지 희생해 왔습니다.  그러면 가난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특히, 신앙자의 자체의 사고방식은 도피적, 자위적, 배타적, 독선적인 경우가 많고, 생활에 적극적으로 정면으로 맞서 가는 경향이 적은 모양입니다. 

 


他力信仰の弊害は、神と稱する敎祖なり、拜む對象物が、ニセ物であることが多いため、信仰者の生活をま

すます貧しいものにしてゆきます。この世には眼で見えぬ靈の働きがあり、正道に反した信仰の背後には、必ずといってよいほど動物靈が暗躍しているものです。信仰して貧しくなるのは、そのためにといってもよいのです。
타력신앙의 폐해는, 신이라고 칭하는 조교 같은, 합장 배례하는 대상물이, 가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앙자의 생활을 점점 더 가난한 것이 되어 갑니다.  이 세상에는 눈으로볼 수 없는 영혼(靈)이 작용이 있고, 정도(正道 정당한 도리)에 반한 신앙의 배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동물령(動物靈)이 암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해서 가난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해도 좋은 것입니다.


 

そこで生活を豊かにするには、まず正道に適った生活態度が絶對必要であり、誤った信仰なら、しない方がよ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그래서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우선 정도(正道 정당한 도리)에 들어맞는 생활태도가 절대 필요하며, 잘못된 신앙이라면, 하는 않는 편이 좋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いずれにしても、正法(正しい秩序)に適う生活が自分を生かし、安らぎを得る最良の道であるわけです。
결국, 정법(올바른 질서)에 들어맞는 생활이 자기 자신을 되살리고, 편안을 얻는 최량(가장 좋음)의 길인 까닭입니다.

 


 




●煩惱卽菩提 

번뇌즉보리



質問 질문

 


煩惱卽菩提についてはいろいろいわれていますが、その眞の意味がよくわかりません。いったい、これはどういうことをいっているのですか。
번뇌즉보리에 대해서는 각가지 말을 듣고 있습니다만, 그 참된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어떠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對答 대답

 

この言葉は、現象界に出てきている私たちにたいしていわれる言葉です。.
이 말은, 현상계에 나오고 있는 우리들에 대해서 말하는 말합니다.


 

この現象界は、表面意識が十パ―セント、潛在意識が九十パ―セントとなり、五官に賴る生活をしいられています。日常生活の大部分は表面意識が作用していますから、どうしても五官に賴るようになり、そうなれば當然のことながら、自己中心的な考えが支配的になってきます。腕をツネれば痛い。蚊に刺されれかゆい。學校にあがって同じように先生に敎わりながら、友人の成績が良く、自分は惡い。能力の相違、體力の違い、痛い、苦しい、樂しい、という感覺,感情について、友人や兄や姉、第や妹たちとの違いが發見されてきますと、やがてその感覺は、自我を育てる溫床に變わってゆきます。
이 현상계는, 표면의식이 10퍼센트, 잠재의식이 90퍼센트가 되고, 오관에 의존하는 생활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은 표면의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오관에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당연한 것이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지배적으로 되어 옵니다.  팔을 꼬집으면 아프다.  모기에 찔리면(물리면) 가렵다.  학교에서 가서 똑같이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친구의 성적이 좋고, 자기 자신은 나쁘다.  능력이 상위(서로 다름), 체력의 차이, 아프다, 괴롭다, 즐겁다, 라고 하는 감각, 감정에 대해서, 친구나 형이나 언니(누나), 동생이나 여동생들과의 차이가 발견되어 오면, 이윽고 그 감각은, 자아(Ego,이기주의)를 키우는 온상으로 변해 갑니다. 

 


煩惱の溫床というものは、こうした自我のめざめ、對立的な感情が、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自分の心の中につくられてくるのです。また人間は、十パ―セントの表面意識で生活しますから、自分が生まれてから今日までの過去はわかっても、明日おこる運命はわかりません。このために、人間は、長ずるにしたがって、自己中心的となり、煩惱の火はますます燃えさかるように仕組まれてゆきます。
번뇌의 온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자아(自我 Ego)의 자각, 대립적인 감정이, 어느새,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만들어져 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은, 10퍼센트의 표면의식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자신의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과거는 알아도, 내일 일어날 운명은 모릅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성장함에 따라서, 자기 중심적이 되고, 번뇌의 불은 더욱더 활활  타오르도록 만들어져 갑니다.

 


そこで、その人生において、煩惱は當たり前として、これに身をまかせてしまう精神狀態の人は下根の人といいます。煩惱は惡としながらも、現實の環境に、時には負け、勝ったりする人は中根の人.上根の人とは、煩惱を菩提と化してゆく人です。煩惱は惡であると認め、その煩惱を善にかえ、惡を乘り超えてゆく人をいいます。
그래서, 그 인생에 있어서, 번뇌는 바로 눈앞에 닥치고, 이것에 몸을 내맡겨 버리는 정신상태의 사람은 하근(下根)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번뇌는 악(惡)이라고 하면서도, 현실의 환경에, 때로는 지고, 이기거나 하는 사람은 중근(中根)의 사람.  상근(上根)의 사람은, 번뇌를 보리로 화해 가는 사람입니다.  번뇌는 악이라고 인지(認知)하고, 그 번뇌를 선(善)으로 바꾸고, 악(惡)을 초월해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さて、煩惱卽菩提という言葉を、別な言葉におきかえると「善と惡」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何が惡で、何が善であるかは、その想念と行爲が、大宇宙を生かす「慈悲と愛」に適っているかどうかにかかっています。
그럼, 번뇌즉보리라고 하는 말을, 다른 말로 바꿔 놓으면「선과 악」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무엇이 악(惡)이고, 무엇이 선(善)인지는, 그 상념과 행위가, 대우주를 소생키시는「자비와 사랑」에 들어맞고 있는가 어떤가에 달려 있습니다.

 


しかしその前に、この世に惡がなく、善のみであるとしたらどうなるでしょう。惡の心もわからず、善の悅びもつかめないと思います。反對に、惡のみあって善のない世界であるとするなら、人間は、生きてゆくことに失望を感ずるでしょう。惡があり、善に希望が持てるから、人間はこの現象界に生きてゆけると思います。そうして、惡があるので善の心、善の意識の高低についても判斷がついてくるのです。人間の心は、一念三千の譬(たとえ)のように、これを大別すれば明と暗、善と惡といった三層の姿から成っており、その二層を通じて善の心が、より大きく、より次元の高い善に向かう下地がつくられてゆくのです。
그러나 그 전에, 이 세상에 악(惡)이 없고, 선(善)만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악(惡)의 마음도 모르고, 선(善)의 기쁨도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반대로, 악(惡)만 있고 선(善)이 없는 세계라고 하면, 인간은, 살아 가는 것에 실망을 느낄 것입니다.  악(惡)이 있고, 선(善)에 희망을 갖기 때문에, 인간은 이 현상계에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악(惡)이 있는 것이며 선(善)의 마음, 선(善)의 의식의 고저(높고 낮음)에 대해서도 판단이 붙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비유처럼, 이것을 크게 나누면 밝음과 어둠, 선과 악이라고 하는 3층의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2층을 통해서 선(善)이 마음이, 보다 크게, 보다 차원의 높은 선(善)을 향하는 기초가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煩惱と菩提の姿は、人間の心を二分した明と暗の世界を指しており、その意味するところは暗の心をステップとして、より大きな、高い明の心をひらいてゆくことにあります。明の心をひらくことによって、人間の魂は、慈悲と愛に大きく變ぼうをとげてゆきます。すなわち、惡を許し、善をのぼしたところの「絶對なる善」に昇華してゆくのです。それにはまず、己の心を正しくみつ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正しくみつめれば五官に賴る生活と、十パ―セントの意識の想念行爲の、惡の部分が浮かびでてきます。浮かび出た惡の芽はつみ、善である明の心にかえてゆくことこそ、煩惱卽菩提の姿です。 
번뇌와 보리의 모습은, 인간의 마음을 이분한 밝음과 어둠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고, 그 의미하는 바는 어둠의 마음을 step(계단)으로 해서, 보다 큰, 높은 밝음의 마음을 열어 가는 것에 있습니다.  밝음의 마음을 여는 것에 의해서, 인간의 영혼은, 자비와 사랑으로 크게 변모를 이루어 갑니다.  즉, 악(惡)을 용서하고, 선(善)을 올렸더니「절대적인 선(善)」으로 승화(昇華)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우선, 자기의 마음을 올바르게 열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올바르게 바라보면 오관에 의존하는 생활과, 10퍼센트의 의식의 상념행위(想念行爲)의, 악(惡)의 부분이 (의식 속에) 떠올라 옵니다.  떠오른 악(惡)의 싹은 잘라 내고, 선(善)한 밝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야 말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모습(姿)입니다.

 

page 16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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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4장 신리문답(神理問答)」에 있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과 집착 등등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四章 神理問答集」[本能と欲望][信仰と貧しさ][煩惱卽菩提] page 161 ~168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1.01.03







○死について 

죽음에 대해서 

 

 

質問 질문

 

人間の死は自然死が理想でしょうう。病死には原因があるといいますが、では戰爭による戰死、災難などによる不可抗力の死についてもやはり個人的な原因があるのですか。また、こうした人みとのあの世の生活はどうなのですか。
인간의 죽음은 자연사(
自然死)가 이상(理想)일 것입니다.  병사(病死)에는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만, 그럼 전쟁(戰爭)에 의한 전사, 재난 등에 의한 불가항력의 죽음에 대해서도 역시 개인적인 원인이 있는 것입니까? 또, 이러한 사람들과의 저 세상의 활동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對答 대답

 

おっしゃる通り、理想は自然死です。定命(じょうみょう)がてき、眠るがごとく大往生する姿は、第三者がみても氣持がいいものです。事故死、病死という場合は、年齡が若いほど、身內の者、殘された家族の悲しみを誘います。自殺はともかく、事故死、病死の場合は、自分の意識に關係ないと思われますが、しかしその原因は、やはり、自分自身にあります。イエスは十字架にかれられ、そして、殺されました。あのように偉大な光の天使が十字架というはりつけの刑に處せられたことは、普通では理解できません。
말씀하시는 대로, 이상(
理想)은 자연사(自然死)입니다. 定命(하늘이 정한 운명, 전세의 인연으로 정해진 수명)이 되어, 잠들 듯이 대왕생하는 모습은, 제삼자가 봐도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사고사(事故死), 병사(病死)라고 하는 경우는, 연령이 젊을수록, 집안 사람,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자아냅니다자살은 어쟀든, 사고사, 병사의 경우는, 자기 자신의 의식에 관계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원인은, 역시, 그 사람 자신에게 있습니다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그리고, 살해당했습니다.  저와 같이 빛의 위대한 천사가 십자가라고 하는 책형(磔刑 :엣날, 죄인을 기둥이나 판자에 묶고 창으로 찔러 죽이던 형벌)의 형에 처해졌던 것은, 보통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そこで、後後の人たちは、イエスは人類の原罪を背負って十字架の人となったと傳えています。これも理由の一つです。
그래서, 먼 뒷날 사람들은, 예수는 인류의 원죄(原罪)을 짊어지고 십자가의 사람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이유의 한 가지입니다. 


 

ところが二千年前のイエスは、なかなか氣性の激しい人だったのです。しかも物すごい靈眼を持っていましたから、人を見た瞬間、その人の心を見拔きます。魔王の心を持った者のうしろには、魔王がひかえているのが見えるのです。つまり、二重寫しになって人の姿がみえます。
그런데 2.000년 전의 예수는, 꽤 기성(기질)이 격심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게다가 굉장한 영안(靈眼)(죽은 사람의 영혼 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본 순간,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봅니다.  마왕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배후에는, 마왕이 그 사람이 뒤를 따라다니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즉, 이중노출(二重露出 : 서로 다른 두 개의 화면이 단면에 중첩되어 나타나게 상태)이 되어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そうしてイエスは、その魔王に向かって「お前はここから立ち去れ」と一喝します。一喝された相手は、自分に向かっていっていると思い、イエスというやつは怪しからんと憎しみをいただきます。イエスは本人にいっているではなく、憑いている魔王にいっにいっていのですが、本人はそれがわからないため、自分にいわれたものと錯覺します。もともと自分の心が魔王をひきよせているのですから、本人といっても差し支えないのですが、しかし、人間は神の子です。ともかく、心次第で天使になれるのですから、イエスは魔王に向かって叫んでいるのです。
그렇게 해서 예수는, 그 마왕을 향해서 「너는 여기에서 물러가라」라고 일갈합니다.  

일갈을 받은 상대는, 자기를 향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예수라는 녀석은 괘씸하다고 미움을 받습니다예수는 본인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빙의하고 있는 마왕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본인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말한 것이라고 착각합니다본래 그 사람 자신의 마음이 마왕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라고 해도 무방한 것입니다만, 그러나, 인간은 신의 자녀입니다어쨌든, 의향대로(心次第) 천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는 마왕을 향해서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ともかく、こうしたことが重なって、あのような劇的な死を遂げるのです。
어쨌든, 이러한 일이 거듭되어, 저러한 극적인 최후를 마친 것입니다.


 

したがって十字架の原因は、魔王を憑けた人だちの心ない行爲にあったのですが、さらにその原因を求めると、氣性の激しさにあったといえます。
따라서 십자가의 원인은, 마왕을 빙의하게 한 사람들의 철없는(분별이 없는) 행위에 있었던 것입니다만, 한층 더 그 원인을 찾으면, 기성(기질)의 격심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こころしだい 【心次第】心の向くまま。心まかせ。

마음이 향하는 대로, 의향대로, ★일본식 한자인 듯 합니다.



こうみてきますと、病氣、事故死についても、その原因は自分にもあるといえるのです。
이렇게 보게 되면, 질병, 사고사에 대해서도, 그 원인은 그 사람 자신에게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戰爭という個人の意思に關係なくやってくる殺し合いによる死はどうかということですが、これとても同じです。同じように戰場に出ながら、ある者は生き殘り、ある者は戰死します。また部隊が全滅しながら奇蹟的に生き殘ります。これも、個人個人の想念と行爲に、その原因を求め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전쟁이라고 하는 개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찾아오는 서로 죽임에 의한 죽음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전쟁에 나가면, 어떤 사람은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전사합니다.  또 부대가 전멸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습니다.  이것도, 개인개인의 상념과 행위에,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ところで、病死、事故、戰死の場合、その靈は浮かばれるか浮かばれないかということですが、これは個個にみないとわかりません。同じ戰死でも、あの世に戾って修行した方がいいということもありまし、この世での修行がまだ數多く殘っているのに、その想念行爲が死を招く場合は、幽界の下段、地獄に墮ちます。大事なことは、同じように戰死といる結果を招く原因をつくっていても、人によって、あの世の生活の次元が違うということです。若死は惡く、老死をよしとみますが、必ずしもそうとはいい切れないのです。死を招く原因をつくっていても人それぞれの目的なり役目があるので、その役目を果たしているときは若死でも天上界にいきます。死に方だけで、あの世の位置が決められないのは、心の問題と、役目を果たしているかどうか、にかかっているからです。
그런데, 병사, 사고, 전사의 경우, 그 영혼(靈)은 성불하는가 성불하지 못하는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개별적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똑같은 전사라해도, 저 세상으로 되돌아가서 수행하면 좋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이 세상에서 수행이 아직 수다하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념행위가 죽음을 초래한 경우는, 유계(幽界)의 하단, 지옥에 떨어집니다중요한 것은, 죽음을 초래하는 원인을 만들고 있어도 사람 저마다의 목적내지 역할이 있는 것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 때는 젊어서 죽더라라도 천상계(天上界)로 갑니다.  죽음이 방법만으로, 저 세상의 위치가 결정되지 않는 것은, 마음의 문제와, 역할을 완수하고 있는가 어떤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念と執着

 생각과 집착  



質問 질문

 

病氣で苦んでいる主人、あるいは主婦が、もしもその病氣で死んでしまったならば殘された家族は不幸です。そこで、神に念じ、どうぞこの病氣を治して下さいというその心は、いったい執着につながるのか、それとも慈悲の心なのですか。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 혹은 주부, 만약 그 병으로 죽어 버렸다면 남겨진 가족은 불행합니다.  그래서, 신에게 염원(기원)하고, 부디 이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그 마음은, 도대체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자비의 마음인 것입니까?



對答 대답

 

それは立派な慈悲の心です。殘された家族の行く末を考えると、今ここで死なれては困る、子供も小さい、神よ、どうぞ病いに苦しんでいる人を救って下さい、という心が執着であるはずがありません。
이것은 훌륭한 자비의 마음입니다남겨진 가족의 장래를 생각하면, 지금 여기서 죽어서는 곤란하다, 아이(자식)도 어리고, 신이여, 부디 병들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도와 주십시오, 라고 하는 마음이 집착일리가 없습니다.


 

ただこういう場合があります。念じる人の立場です。たとえばある人に金を貸しました。
단 이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염원하는 사람의 입장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습니다.

 


その人が病氣になって、もしも死んだら貸した金をとれない、そこで、金を返してもらいたいがために、その病氣を治してくれと神に念ずる。これは慈悲ではありません。執着です。ですから、念じる人が、どういう心で念じているかによって、慈悲になり、執着にもなるのです。 
그 사람이 병이 걸려, 만약 죽으면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돈을 되돌려 받고 싶은 이유로, 그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원한다이것은 자비(慈悲)가 아닙니다집착(執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원(기원)하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으로 염원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자비(慈悲)가 되고, 집착(執着)도 되는 것입니다.

 


ここで念について考えてみましょう。念のなかには三つの性質が含まれています。 一つは「エネルギ―」として、もう一つは「ねがい」、さらにもう一つは「循環」です。エネルギ―としての念は、ふつう念力といわれるように、念はいわゆる力であり、力はエネルギ―の集中されたものです。人間の精神は、エネルギ―の集まりによってできおり、ものを考える、思う、念ずるの精神活動は、そのエネルギ―の放出された姿をいいます。

여기에서 생각(念)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생각 중에는 세가지의 성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는「에너지」로서, 또 한 가지는「소원」, 더욱더 또 한 가지는「순환」입니다.  에너지로서의 생각(念)은, 보통 염력(念力)이라고 불리우는 것처럼, 생각(念)은 흔히 말하는 힘(力)입니다.  힘은 에너지가 집중된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精神)은, 에너지의 집합(集合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고, 사물을 지적으로 생각한다, 정서적으로 생각한다, 염원한다는 정신활동은, 그 에너지의 방출된 모습을 말합니다

 


ですから、ものを考えたり、心配すれば、內にあるエネルギ―が消費されるのですから疲れを覺えます。

그렇기 때문에, 사물을 지적으로 생각하거나, 걱정을 하면, 안에 있는 에너지가 소비(消費)된 것이므로 피로(疲勞)를 느낍니다. 


 

しかし、エネルギ―そのものはモ―タ―を動かす電氣と同樣に、善惡に觀係ないはずです。問題は「念」としてエネルギ―が放出されるときには「ねがい」という意識活動があるのです。この意識活動が、欲望を主體にしているか、欲望から離れた慈悲、愛から出たものであるかによって、その念は、その人に、あるいは第三者にいろいろな狀況を生み出してゆきます。 すなわち、念には、もう一つの性質があるわけです。それは「循環」の作用です。念は波動であり、波動は山びこと同樣に、發信者に必ず歸ってきます。つまり、惡の念には惡が、善の念には善がハネ返ってくるのです。すなわち念波は、あの世にただちにコンタクトされ、善の念波は天國に、惡は地獄に通じます。 
 그러나, 에너지 그 자체는 모터를 움직이는 전기와 마찬가지로, 선악(善惡)에 관계없는 것입니다.  

문제는「생각(念)」해서 에너지가 방출될 때에는「소원」이라고 하는 의식활동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의식활동(意識活動)이, 욕망을 주체로 하고 있는가, 욕망에서 벗어난 자비, 사랑에서 나온 것인가에 따라서, 그 생각(念)은, 그 사람에게, 혹은 제삼자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어 내어 갑니다.  즉, 생각(念)에는 또 한 가지의 성질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순환」의 작용입니다.  생각(念)은 파동(波動)이며, 파동은 메아리와 마찬가지로, 발신자(發信者) 반드시 돌아갑니다.  즉, 악(惡)의 생각(念)에는 악(惡)이, 선(善)의 생각(念)에는 선(善)이 되돌아오는 것입니다즉 염파(念波 생각의 파동)는, 저 세상에 즉시 접촉되어, 선(善)의 염파는 천국(天國)에, 악(惡)은 지옥(地獄)으로 통합니다.



次に執着です。執着とは「モノにごだわる」ことをいいます、「これは俺のものだ」「俺はこれこれのことをした、・・・・・・だから報恩は當然だ」「俺はあいつより偉い」「俺は有能だ」「死にたくない」 等等。想いが深く重く沈んでいることをいいます。
다음으로 집착입니다.  집착(執着)이란사물에 구애되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그래서 보은(報恩 은혜를 갚음)은 당연하다」「나는 저녀석보다 위대하다」「나는 유능하다」「죽고 싶지 않다」 등등.  생각(想)이 깊게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ふつう人間の意識活動は、念と執着がまざり合って動いています。そうして、一方、比較的念の强い人に世の成功者が多いようです。だがしかし、金持三代續かずというように、やがてその反動がやってくるのです。榮枯盛哀は人の世の姿です。ある年代にきますと、浮世といる言葉が實感として感じられるのも、人の世が念と執着がまざり合い、ぶつかりあい、念の作用である循環の作用のなかで生きているからです。正しい念は中道という慈悲、愛を根底としたものが最上であり、また、人間の姿は本來そうあるべきものなのです。
보통 인간의 의식활동(意識活動)은, 생각(念)과 집착(執着)이 혼합되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편, 비교적 생각(念)이 강한 사람에게 세상의 성공자(成功者)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부자는 삼대를 잇지 못한다고 하는 것처럼, 이윽고 반동(反動)이 찾아오는 것입니다영고성쇠(榮枯盛衰)는 인간 세상의 모습입니다.  어느 연대를 거치면, 부세(浮世 덧없는 인생(세상))라고 하는 말이 실감해서 느껴지는 것도, 세상(인간 세계)이 생각과 집착이 혼합되어, 충돌이 있고, 생각(念)의 작용인 순환(循環)의 작용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생각(念)은 중도(中道)라고 하는 자비(慈悲), 사랑(愛)을 밑바탕으로 하는 것이 최상이며, 또, 인간의 모습은 본래 당연히 그렇게 있어야할 것입니다.


 

※영고성쇠[榮枯盛衰]  영화(榮華)롭고 마르고 성(盛)하고 쇠함이란 뜻으로, 개인(個人)이나 사회(社會)의 번성(盛)하고 쇠퇴함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現象) 



page 16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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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4장 신리문답(神理問答)」에 있는, 정신활동, 운명과 자유 등등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四章 神理問答集」[死について][念と執着] page 163 ~173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1.01.04







◎精神活動 

정신활동

 


質問 질문


人間の精神活動である、精神、心、意識、魂について、その一つ一つの槪念が釋然としません。いったい想念とはどういうものか、心と何をいうのか說明して下さい。
인간의 정신활동인, 정신, 마음, 의식, 영혼에 대해서, 그 하나하나의 개념이 석연치 않습니다.  

도대체 상념이란 어떠한 것인지, 마음과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對答 대답


生命を動かしているものは精神です。精神とは問字通り神の精であり、神のエネルギ―です。人間の生命活動は精神の働きなくして一日として維持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もちろん、肉體は食物からカロリ―を補給しますが、食本能という精神活動がなければ食べることもできないし、だいいち、その要求すらおきません。ですから精神は、人間の五體を支える大事なエネルギ―の母體であり、これなくして生物の生存は不可能だ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생명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정신입니다.  정신이란 문자 그대로 신(神)의 정기(精)입니다.  

신(神)의 에너지입니다.  인간의 생명활동은 정신의 작용하지 않고서 하루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육체는 음식물에서 칼로리를 보급합니다만, 식본능(食本能)이라고 하는 정신활동이 없으면 먹을 수도 없고, 맨 처음, 그 요구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은, 인간의 오체(몸뚱이)를 지탱하는 중대사한 에너지의 모체이며, 이것이 없고서 생물의 존재는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心とは、その、神の精というエネルギ―をうける受け場であり、器であります。器である以上は、人によって大きい、小さいがあります。人類に光明を與えた偉大な人物を稱して、巨星とか、大器とか、生き神とか、生き佛など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ます。これはその人の心の包容力、ないしは大きさを意味し、人は心という器を持っていることをいい表しているのです。心の大小によって、人の役目も決まってきます。それだけに、心は、人間の精神活動の中心に位置し、心こそは、神につながっている基点であり、絆(きすな)でもあります。
마음이란, 그, 신(神)의 정기(精)이라고 하는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접수처이며, 그릇입니다.  그릇인 이상은, 사람에 따라서 크고, 작음이 있습니다.  인류에게 광명을 준 위대한 인물을 칭하여, 거성(巨星 큰 인물・위대한 사람)이라든가, 대기(大器 넓은 기량(器量). 또는, 그러한 인재) 라든가, 살아 있는 신이라든가, 살아 있는 부처 등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포용력(包容力), 내지는 크기를 의미하고, 사람은 마음이라고 하는 그릇을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대소에 의해서, 사람의 역할도 결정되어 옵니다.  그런 만큼, 마음은, 인간의 정신활동의 중심에 위치하고, 마음이야말로, 신(神)에게 연결되고 있는 기점(基点)이며, 끊을 수 없는 정리(情理)・유대・기반(羈絆)이기도 합니다.

 


心から流れてきた神のエネルギ―は、人の意識を形成します。意識というのは主體と客體の判斷の基礎をなす働きです。意識活動がなげれば、自分の存在も、人の存在も認識できません。自分がここにいる、人があそこに立っている、という判斷は、心によってうけられたエネルギ―の波動を媒體として、自我という意識活動が行なわれるからです。
마음에서 흘러나온 신(神)의 에너지는, 사람의 의식(
意識)을 형성합니다의식(意識)이라고 하는 것은 주체와 객체의 판단의 기반을 이루는 작용입니다.  의식활동이 없으면, 자기 자신의 존재도, 사람(남)의 존재도 인식(認識)할 수 없습니다.  사람 자신이 여기에 있다, 사람(남)이 저기에 서 있다, 라고 하는 판단은, 마음에 의해서 받아들인 에너지의 파동(波動)을 매체로 해서, 자아(自我 Ego. 자기.자신)이라고 하는 의식활동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自我] 
<철학> 自我 Ego. 자기.자신
<심리학〉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관념. 예) 自我意識 자아 의식  自我の形成 자아의 형성.

 



生命あるものはすべてこの自我という意識活動の働きと、心の大小によって影響をうけてゆくものです。
생명 있는 것은 전부 이 자아(自我)라고 하는 의식활동의 작용과, 마음의 대소에 따라서 영향을 받아 가는 것입니다.


 

想念というのは、內部からの意識活動と、五官を通して入ってくる善惡美醜などの波動の混合されたエネルギ―活動です。內部と外部との比はどのくらいかといいますと、ふつうは二對八ないしは一對九ぐらいの率になります。つまり、想念は五官によっる影響が非常に大きく、人の意識も想念によって形作られてゆきます。これを別な立場からいいますと、人は環境によって非常に左右されることになります。このため、心の器が大きくとも、それを十分に發揮できずに一生を終えるという人もでてきますし、反對に、器が小さくとも、環境のよさに幸いされ、その器をフルに働かせる人も出てくるわけです。この意味から想念の淨化は意識の淨化につながり、意識の淨化は今世の役目にめざめさせ、果たさせる大きな要素となるわけです。.
상념(想念)이라고 하는 것은, 내부(
內部)로부터의 의식활동(意識活動)과, 오관(눈코귀혀몸)을 통해서 들어오는 선악미추(善惡美醜) 등의 파동의 혼합된 에너지활동입니다.  내부와 외부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보통은 2대 8내지는 1대 9정도의 비율이 됩니다.  즉, 상념은 오관에 의한 영향이 상당히 크고, 사람의 의식도 상념에 의해서 형성(形成)되어 갑니다이것을 다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상당히 좌우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마음의 그릇이 크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발휘(發揮)되지 않고 일생을 끝마친다고 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고, 반대로, 그릇이 작더라도, 환경의 좋은 점을 행운이라 여기고, 그 그릇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 의미에서 상념의 정화는 의식의 정화로 연결되고, 의식의 정화는 금세의 역할에 눈을 뜨게 하고, 완수하게 하는 큰 요소가 되는 이유입니다. 


 

次に魂ですが、魂とは、意識と想念の合成されたその全體をいいます。人の意識は表面十%、潛在九十%の比で構成され、人は大抵表面十%の意識活動で生活しています。したがって人の魂は表面意識と潛在意識を合わせたものですが、狹義には表面意識と想念帶(表面、潛在兩意識の間にある記錄層)をいいます。五官に左右されるのは表面意識のみで生活していうからです。このため迷える魂となるのは、五官に明け暮れた一生を送った人びとです。悟った魂とは潛在意識をりらき、地上に光明を餘えた魂をいいます。己の魂を向上させるには、まず潛在意識につながることであり、それには、まず想念を淨化すること、つまり、五官に左右されない生活を送ることが大切であ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다음으로 영혼(魂)입니다만, 영혼(魂)이란, 의식과 상념의 합성된 그 전체를 말합니다사람의 의식은 표면 10%, 잠재 90%의 비율로 구성되어, 사람은 대부분 10%의 의식활동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영혼(魂)은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을 합친 것입니다만, 협의(狹義)로는 표면의식상념대(想念帶)(표면, 잠재 두쪽 모두의 의식 사이에 있는 기록층)을 말합니다.  오관에 좌우되는 것은 표면의식만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방황하는 영혼(魂)이 되는 것은, 오관(五官)으로 (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세월을 보낸 일생(一生)을 보낸 사람들입니다깨달은 영혼(魂)이란 잠재의식을 열고, 지상에 광명을 준 영혼(魂)을 말합니다자기의 영혼(魂)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우선 잠재의식에 연결되는 일이며, 그것에는, 우선 상념을 정화(淨化)하는 것, 즉, 오관에 좌우되지 않는 생활(生活)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運命と自由 

운명과 자유

 

質問  질문


因緣と因果、運命、人間の自由性について簡單に說明して下さい。
인연과 인과, 운명, 인간의 자유성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對答 대답    


因緣因果は、別な言葉でいえば循環の法のことです。惡を想えば惡、善を想えば善の果が返ってくるわけです。したがって極めて宿命的であり、さけることのできない性質を持っています。
인연인과는, 다른 말로 하면 순환(循環)의 법(法)인 것입니다. 악(惡)을 생각하면 악, 선(善)을 생각하면 선의 과보(果報)가 본래의 장소·상태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따라서 극히 숙명적이며, 피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前世の因緣が今世の因果をつくっているとよくいわれますが、これは當てにはなりません。あの世の生活が前世と今世の間でなされており、前世の因緣を修正して人は生まれてきていますかが、その因緣がそのまま因果とはならないわけです。したがって前世で惡事をしたから今世は、貧乏で苦しむということはありません。ただしこういうことはいえます。前世の因緣は、今世でもその緣にひきすられる要素を持っています。このため、前世と同じことを繰り返してしまうことが間間あるのです。前世は商人であったが、今世は醫者になりたいと考えていた者が、環境やその他の理由で、前世の經驗にひきずられ、再び商人になってしまう。
전세의 인연이 지금의 세상의 인과[응보]를 만들고 있다고 자주 말을 듣습니다만, 이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저 세상의 생활이 전세와 지금의 세상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고, 전세의 인연을 수정하고 사람은 태어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 인연이 그대로 인과[응보]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세(前世)에서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세상에서는, 가난으로 괴롭다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전세의 인연은, 지금의 세상이라고 해도 그 인연에 질질 끌리는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세와 똑같은 일을 반복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전세에서는 상인이었지만, 이번의 세상에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환경(環境)이나 그 외의 이유(理由)로, 전세의 경험(經驗)에 억지로 끌려가서, 다시 상인이 되어 버린다.

 


因緣因果は、前世と今世についてみると、このようにストレ―トに現れるのではなく、今世で作り出した因緣に因果がついてまわると、いうわけです。惡人が榮え、善人が苦しむのはどういうわけかと反問されることと思いますが、外見は榮えても、その人の心の狀態をみると、地獄であることが多いのです。したがって因緣因果は外見では推し計れない場合が小なくありません。
인연인과(因緣因果)는, 전세와 금세에 대해서 보면, 이와 같이 straight으로(단도직입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금세에서 만들어 낸 인연(因緣)에 인과[응보]가 따라다닌다고, 하는 의미(意味)입니다.  

악인(惡人)이 번영하고, 선인(善人 착한 사람・선량한 사람)이 괴로운 것은 어떠한 까닭인가라고 반문(反問)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만, 외견(겉보기)은 번영해도,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보면, 지옥(地獄)인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따사서 인연인과는 외견으로는 추측(推測)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次に運命とは、問字通り命を運ぶことであり、一般的には宿命的なもののように考えられていますがそうではありません。運命は自ら切りひらいてゆくものであり、本來、環境に押し流されるものであってはならないわけです。ただ、人にはそれぞれ今世での果たすべき役割があります。男と女の相違、才能のちがい、器の大小、性格の相違といったものがあり、そうして、そうした要件の下で今世の役目を果たしてゆくわけですから、したがって、その限りでは、個個の運命は決められているといえるかもしれません。
다음으로 운명(運命)이란, 문자 그대로 목숨을 나르는 것이며, 일반적으로는 숙명적(宿命的)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운명은 스스로 일구어 가는 것이며, 본래, 환경에 휩쓸리는 것(사람)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단, 사람에게는 저마다 금세에서의 당연히 완수해야할 역할(役割)이 있습니다.  남과 여의 상위(서로 다름), 재능의 차이, 그릇의 대소, 성격의 상위(서로 다름)이라고 것이 있고, 그렇게 해서, 그러한 조건 밑에서 금세의 임무(任務)를 다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그 한도에서는, 개개인의 운명은 결정(決定)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因緣因果がそのまま宿命的な運命となって現れることは、原理的にはいえるのですが、人は本來、自由に意思し、自由に創造してゆくものですから、宿命的な運命に自分をほんろうされることは、自分を失ったことを意味し、正法からみると、大變なマイナスになります。惡人惡果の運命にたいして、反省し、己の心を正法に戾したときには、その運命に飜弄(ほんろう)されない自分となってゆくでしょう。神の子としての自己の確立は、自己の運命を越えてゆく心の自由自在性を持ったものであり、人間の本質は、そうした自由性によって生かされるものであるからです。 
인연인과(因緣因果)가 그대로 숙명적인 운명이 되어 나타나는 것은, 원리적으로는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만, 사람은 본래, 자유로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생각하고, 자유로이 창조해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숙명적인 운명에 자기 자신을 농락당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고, 정법(올바른 질서)에서 보면, 대사건인 마이너스가 됩니다.  악인악과(惡因惡果 :악업을 쌓으면 반드시 나쁜 과보가 따름)의 운명에 대해서, 반성하고, 자기의 마음을 정법(올바른 질서)으로 돌려보냈을 때에는, 그 운명에 농락당하지 않는 자신이 되어 갈 것입니다.  신의 자녀로서의 자기의 확립(確立)은, 자기의 운명(運命)을 초월해 가는 마음의 자유자재성(自由自在性: 거침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성질)을 갖는 것이며, 인간의 본질(본래의 성질)은, 그러한 자유로운 성질(自由性)에 의해서 소생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イエス・キリストは十字架にかれられました。しかしイエスは復活しました。人間の魂の自由性を證明したのです。十字架という受難の運命はありましたが、その運命を樂樂と乘り超え、魂の自在性と心の自由性を、復活という事實をもって證明したのです。あれがイエスでなく、十字架の苦痛に心をとらわれる人であったらば、あの世でもその苦しみの中に沈んでしまったことでしょう。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했습니다.  인간의 영혼(魂)의 자유로운 성질(自由性)을 증명한 것입니다.  십자가(十字架)라고 하는 수난(受難)의 운명은 있었습니다만, 그 운명을 즐거움으로 타고 넘어(극복하여), 영혼(魂)의 자재성(自在性 속박이나 장애가 없이 마음대로인 성질)을, 부활(復活)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지고 증명한 것입니다.  저것이 예수가 아니고, 십자가의 괴로움에 마음을 사로잡히는 사람이었다면, 저 세상에서도 그 괴로움 속에 잠겨 버릴 것입니다.


 

善因善果を心がけ、そうした心の自由を認識し、宿命的運命に飜弄されず、むしろその運命を切りひらいてゆく自己の確立こそ、正法者の進むべき道であるといえます。
선인선과(善因善果 :선업을 쌓으면 반드시 좋은 과보가 따름)를 명심하고, 그러한 마음의 자유를 인식하고, 숙명적 운명에 농락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 운명을 일구어 가는 자기의 확립이야말로, 정법자(正法者 올바른 질서를 행하는 사람)의 당연히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業(カルマ)  

업(카르마)       

 

質問 질문


人間の業はどうしてつくられ、そして、どういうものを業というのでしょうか、また、業想念について說明して下さい。
인간의 업(業)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리고, 어떠한 것을 업(業)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또, 업상념(業想念)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對答 대답


業を稱してカルマともいっています。カルマとは强い力でグルグルと回り續ける性質をいい、これに足をすくわれると人間はなかなかここから解脫できなくなります。業のとりこになると、その人の人生は灰色になります。
업(業)을 칭하여 카르마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카르마는 강한 힘으로 빙글빙글 계속해서 도는 성질을 말하며, 이것에 약점을 잡히면 좀처럼 여기에서 해탈(解脫)할 수가 없게 됩니다.

 


 

人間の業はどうして生じたかといえば、それは轉生輪廻の過程において生じたものです。最初の人類は、神の意を體していましたからこうした業は身についていませんでした。ところが現世に生まれては死に、生まれては死んでゆくにしたがって、人間は心に黑い想念をつけていったのです。そのために人生は、まずその黑い想念を拂うことが目的となり、その目的を果たすことが佛國土をつくるための大きな前提になってきたのです。
인간의 업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하면, 그것은 전생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발생한 것입니다.  

최초의 인류는, 신의 뜻을 받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업은 몸에 배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세에 태어나서는 죽고, 태어나서는 죽어 감에 따라서, 인간은 마음에 검은 상념을 붙여 갔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인생은, 우선 그 검은 상념을 떨어 없애는 것이 목적이 되어, 그 목적을 완수하는 것이 불국토를 만들기 위한 큰 전제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では黑い想念とはどういうものかといえば、それは執着です。五官六根に左右された自己保存の執着が、それぞれの業つくっていったのです。したがって業とは、人びとの想念と行爲における執着が、それぞれの業であるといえるでしょう。
그럼 검은 상념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면, 그것은 집착입니다.  오관육근에 좌우된 자기보존의 집착이, 저마다의 업을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업이란, 사람들의 상념과 행위에 있는 집착이, 저마다의 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業というと惡が連想されます。ところが業は必ずして惡だけではないのです。善も實は業なのです。敎育者の家庭に想像もつかないような惡が芽生えるのも、善の意識が强く働き、家庭をしばりつけてしまうからです。「ああしてはいけない」「こうしなけらばならない」というように、善への執着も業をつくります。善にとらわれると四角四面な心になってきます。惡にとらわれれば、人から嫌われます。
업이라고 하면 악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업은 반드시 악(惡) 뿐만이 아닌 것입니다. 선(善)도 실은 업(業)인 것입니다교육자의 가정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악이 싹트는 것도, 선의 의식이 강하게 작용해서, 가정을 속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것처럼, 선으로의 집착도 업을 만듭니다.  선에 사로잡히면(얽매이면) 융통성이 없이 딱딱한(매우 고지식한) 마음이 되어 갑니다.  악에 사로잡히면(얽매이면), 남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要するに業とは、五官六根にもとづく執着の想念がつくり出した黑い環境の想念ㅡ觀念,換言すれば、とらわれた心、これを業というのです。
요컨데 업(業)이란, 오관육근(五官六根)에 바탕을 둔 집착(執着)의 상념이 만들어 낸 검은 환경의 상념(想念)ㅡ관념(觀念), 바꾸어 말하면, 얽매인 마음, 이것을 업(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ために、善にしろ、惡にしろ、業をつくってゆきますと、それにひきまわされます。惡いと知りつつ惡を犯してしまう。人の意見が正しいと思っても、その意見にあえてさからい、逆な方向に自分を持っていってしまいます。奇癖、頑固、優柔不斷など、すべて、業の作用であります。
이 때문에, 선도, 악도, 업을 만들어 가게 되면, 그것에 끌려 다닙니다.  악하다(나쁘다)고 알면서 악을 저질려 버린다.  남의 의견이 올바르다고 생각해도, 그 의견에 억지로 반항한다, 거스른 방향으로 자신을 가져가 버리고 맙니다.  기벽(奇癖 보통의 사람에게는 없는 기묘한 버릇), 완고(頑固 어렵지 않는데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고 하지 않는 상태), 우유부단(優柔不斷 어물어물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성이 없음) 등, 모두, 업의 작용입니다.


 

業想念というのは、地上の相對觀念に自分の意識,魂がふりまわされている狀態をいいます。金は絶對であり、生命の次に大事なもの、地位が高ければ尊敬される、働くのはバカバカしい、人生は面白おかしく過ごすほうが得だ ・・・・・・、といったようにです。 
업상념(業想念)이라고 하는 것은, 지상의 상대관념에 자기 자신의 의식(意識), 영혼(魂)이 휘둘리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돈은 절대이며, 생명 다음으로 중대사한 것, 지위가 높아지면 존경을 받는다, 일하는 것은 시시하다(활동하는 것은 몹시 어리석다). 인생은 유쾌하고 즐겁게 보내는 쪽이 이득이다 ・・・・・・, 라고 하는 식입니다.

 


したがって業想念は、やがて業をつくってゆき、來世に生まれてもその業にひきずられる要因を生み出してゆきます。
따라서 업상념(業想念)은, 이윽고 업을 만들어 가서, 내세(來世)에 태어나도 그 업에 억지로 끌러가는 요인을 만들어 내어 갑니다.



 

業にしろ、業想念にしろ、私たちは、大なり小なりその影響をうけながら生活しており、轉生輪廻を續けているというのが現實の姿です。
업도, 상념도, 우리들은, 크고 작은 그 영향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고, 전생윤회를 계속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현실의 모습니다.


 

※전생[轉生] 다른 것으로 다시 태어남. 즉, 환생.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동물은 각기 그 동물로, 식물은 그식물로..입니다.

다른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혹은 다른 동물로, 환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100% 거짓말입니다.




 

そこでこうした業からぬけ出すにはどうすればよいでしょうか。中道にそった想念行爲をすれば、多くのとらわれから離れることができます。とらわれが多れば惱みも多いはずです。惱みが多ければ人生は灰色になってくるでしょう。心に安らぎは出てきません。眞の安らぎは執着心から離れたときに生まれてくるものだからです。いっさいの執着を去った姿を、涅槃寂靜(ねばんしゃくじょう)ともいい、これは、釋迦の解脫の境涯をいうのであります。
그래서 이러한 업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중도에 들어맞는 상념행위를 하면, 대부분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얽매임이 많으면 고민(苦悶)도 많을 것입니다.  고민이 많으면 인생은 잿빛이 되어 올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은 나오지 않습니다.  참된 평안은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에 태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집착을 떠난 모습을,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도 말하며, 이것은 석가(釋迦)의 해탈의 경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열반적정[涅槃寂靜] 《국어사전》
열반의 경지는 고요하고 청정하며 안정(安定)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相對的な業想念にふりまわされず、中道にそう生活に意をそそぎ、安らきのある自分をつくってゆきたいものです。
상대적인 업상념(業想念)에 휘둘리지 않고, 중도(中道)에 들어맞는 생활에 심혈을 기울이여, 평안(平安)이 있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고 싶은 것입니다.


page 17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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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4장 신리문답(神理問答)」에 있는, 점술 점, 자살, 생명의 구성(구조)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四章 神理問答集」[精神活動] [運命と自由] [業(カルマ] page 174~182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1.01.05 








 
◆易,占  

점술(占術), 점(占)


 

質問 질문


易、占いと、正法(正しい秩序、正しい法)との關係を、どのように理解したらいいものか、說明して下さい。
점술(占術), 점(占)과, 정법(올바른 질서, 올바른 법)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 것이지, 설명해 주십시오.

 

※역[易] 주역의 원리에 의해 50개의 점대로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점술 [참고]점(占)은 점쟁이란 뜻도 된다.
※점[占] 팔괘·육효·오행 따위를 살펴 과거를 알아맞히거나, 앞날의 운수·길흉 따위를 미리 판단하는 일.

 


對答 대답


易、占いと、正法とはまったく關係がない、ということをまずお斷りしておきます。易とか占いはどのようにして生まれたか、といえば、その願いは、人間の幸せを求めるためだったと思います。人にはそれぞれ運、不運があり、明日の生命すらわからないのですから、易や占いによって、開運と誤ち少ない人生を送りたい、と願うのは、人情であり、仕方のないことだろうと思います。
점술(占術), 점(占)과, 정법(正法)과는 완전히 관계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을 미리 알려 양해를 구합니니다.  점술(占術)이라든가 점(占)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하면, 그 바램은, 인간의 행복(幸福)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운(
運), 불운(不運)이 있고, 내일의 생명조차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점술(占術)이나 점(占)에 의해서, 개운(開運 운수대통)과 잘못이 적은 인생을 보내고 싶다, 고 바라는 것은, 인정(人情)이며,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しかし、易、占いは、もともと、過去の統計を基礎にして作り上げられたもののようであり、これを見立てる人の條件と、相手によって、その結果が違ってくるようです。そのために、確率七分というような平均價がでてくるようです。もっとも人によっては、外れたことはない、と自信を持たれる方もあるようですが、しかし當たり外れがある自體が、易、占いの限界を示すと同時に、易、占いが現世のみを基本においてものを見立てることにも、その原因があります。
그러나, 점술(占術), 점(占)은, 본래, 과거의 통계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 내어진 것인 모양이며, 이것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의 조건과, 상대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져 오는 모양이니다.  그 때문에, 확률은 7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평균가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더욱 사람에 따라서는, 빗나간 적은 없다, 고 자신을 가지는 분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러나 예상의 적중과 빗나감이 있는 자체가, 점술, 점(占)이 한계를 나타내 보임과 동시에, 점술(占術), 점(占)이 현세만을 기본으로 두고서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습니다.    



 

人が現世に在るのは、前世があるからであり、轉生輪廻の歷史があるわけです。したがって、この事實を知らず、過去世を考慮せずに、現世の運、不運のみを見立てようとするところに無理があるのです。
사람이 현세(現世)에 존재하는 것은, 전세(前世)가 있기 때문이며, 전생윤회(轉生輪廻)의 역사(歷史)가 있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모르고, 과거세(過去世)를 고려(考慮)하지 않고, 현세의 운(運), 불운(不運)만을 보고 판단하려고 하는 데에 무리(無理)가 있는 것입니다.


 


人の一生が、こうした占いや生年月日、姓名判斷などによって決められ、あるいは變えられるとすれば、いったい人は何のために生まれてきたのか判斷に迷います。ことに占いの目的が、人間の幸福を求めることはよいとしても、不幸をさけ、常に安樂のみを追求するとすれば、問題は非常に大きいのです。
사람의 일생(一生)이, 이러한 점(
占い)이나 생년월일, 성명판단 등에 의해서 결정(決定)되고, 혹은 바꿀 수 있다고 하면, 도대체 사람은 무엇 때문에 태어나온 것인지 판단(判斷)에 갈팡질팡한다.  특히 점의 목적이, 인간의 행복(幸福)을 찾는다는 것은 좋다고 해도, 불행(不幸)을 피하고, 항상 안락(安樂)만을 추구한다고 하면, 문제는 상당히 큰 것입니다.


 

正法からみた人生航路は、魂の修行であります。己の魂を磨き、苦樂の執着から遠離(おんり)し、神の子の自覺と、地上に佛國土をつくるためのものです。正法を信ずるならば、こうした易や占いには、迷ってはならないと思います。なぜかといいますと、正法は、易、占いを超えてゆくものであるからです。
정법에서 본 인생항로는, 영혼의 수행(修行)입니다.  자기의 영혼을 닦고, 고락(苦樂)의 집착에서 멀리 떨어지고, 신(神)의 자녀의 자각(自覺)과, 지상에 불국토(佛國土)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정법(正法)을 믿는다면, 이러한 점술(占術)이나 점(占)에는, 미혹(迷惑)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 말씀드리면, 정법(正法)은, 점술(占術), 점(占)을 초월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今月の方位は西南であって、東は鬼門に當たる。今年は厄年だから、靜かにしてよう。星占いからみた生年月日は靑信號だから、やりたいことをしよう」といった具合いに、人が動くとすれば、占いは自己保存をつくり上げ、開運の名の下に、人は多くの執着を心の中にさらに育て上げてゆくことでしょう。
이번 달의 방위는 서남이며, 동(東)은 귀문(鬼門)에 해당한다.  올해는 액년(厄年 운수(運數)가 사나운 해ㆍ재난이 많은 해)이기 때문에, 조용히 지내라. 별점으로 본 생년월일은 청신호이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말한 상태에, 사람이 움직인다고 하면, 점(占)은 자기보존을 만들어 내고, 개운(開運 운수대통)한다는 이름 아래에, 사람은 많은 집착을 마음속에 더욱 육성(育成)해 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올린 내용은, 전 안 믿습니다만, 



※참고하세요. 조금 깁니다. 
※귀문[鬼門]《일본어사전》 꺼리고 피하는 방위. 동북방. 귀방(鬼方 남쪽의 둘째 별자리인 귀성(鬼星)이 있다는 방위), 그 사람이 꺼리는 상대나 장소 또는 사물.

 

※귀문[鬼門]《국어사전》 남쪽의 둘째 별자리인 귀성(鬼星)이 있다는 방위(方位). 점술가들이 귀신이 드나든다 하여 매사에 꺼리는 방위로서, 동북방을 가리킨다.

 

※귀문[鬼門]《한자사전》①방위(方位)의 하나. 동북쪽(東北-). 곧 간(艮) ②음양설(陰陽說)에서 여러 귀신(鬼神)이 출입(出入)하는 곳 ③사람이 길을 떠나거나 집 따위를 고치는 경우(境遇) 싫어하는 방향(方向) ④죽어서 저승으로 들어가는 문.
 
※※귀문금신[鬼門金神]《국어사전》 [민속] 귀문에 있다는 백호신(白虎神). 사람에게 재앙을 내린다고 한다.

 

※액년[厄年] 《한자사전》 운수(運數)가 사나운 해. 음양도(陰陽道)에서 말하는, 운수(運數)가 사나운 해. 남자(男子)는 스물 다섯ㆍ마흔 둘ㆍ예순 한 살, 여자(女子)는 열 아홉ㆍ서른 셋ㆍ서른 일곱 살

 

 ※액년[厄年] 《국어사전》 1 운수가 사나운 해.2 속설에서, 사람의 일생에 재난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는 나이. 남자는 25·42·50세, 여자는 19·33·37세라고 한다.

 

 ※액년[厄年] 《일본어사전》 1 일생 중 재난을 맞기 쉽다고 하는 운수 사나운 나이. 《음양도에서, 남자는 25, 42, 60세, 여자는 19, 33, 49세를 일컬음》 

〔참고〕 특히, 남자의 42세와 여자의 33세는 큰 액년이라 하며, 그 전해를 「전액(前厄) : 액년의 전 해. 또는 그 해의 재액(災厄). 

〔참고〕액년 다음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해. 남자의 41세, 여자의 32세 」또는 「액년의 전해」, 이듬해를 「후액(後厄) :  액년(厄年)의 다음해. 액년(厄年)에 이어 계속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해.  

〔참고〕 남자는 26세와 43세, 여자는 20세와 34세 등」 또는 「액후(厄後) 액년의 이듬해. 《액년에 이어 조심해야 한다고 함》」라고 함.  2 〈俗〉 재난이 많은 해.






人間の一生は平坦ではありません。 山あり、谷ありで、でき得れば難をさけたいという思いは當然です。何も好んで難をうける必要はないからです。しかし、だからといって、開運い執着しますと、今度は不自由な人間ができ上ります。「ああしてはいけない」「こうしてはいけない」では、そのうちに開運のための占いが不運を招く原因をつくってゆくでしょう。
인간의 일생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산이 있고, 계곡이 있으며, 할 수 있다면 난(難 고통, 고민, 어려움, 재난)을 피하고 싶다고 하는 생각은 당연합니다.  세삼스럽게 곧잘 재난(災難)을 당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운(開運 운수대통)을 집착하게 되면, 이번에는 부자유한 인간이 완성됩니다.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그러는 동안에 개운(開運 운수대통)을 위한 점(占)이 불운을 불러오는 원인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人の目的が魂の修行とするなら、生年月日、易、占いで〃惡い〃という結果が出ていても、必要があればあえて決行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もあるわけです。それを恐れては魂の練磨はできません。そして、幸運なときよりも不運のときこそ、そのチャンスのはずだからです。.
사람의 목적이 영혼(魂)의 수행(修行)이라고 하면, 생년월일, 점술(占術), 점(占)에서 〃나쁘다〃라고 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더라도, 필요가 있으면 굳이 결행(決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영혼(魂)의 연마(練磨)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행운일 때보다도 불운할 때야말로, 그 기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正法には現證がつきものです。正法を行じ、反省と正道の生活を送るならば、神はその者を決して見捨て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その不運を、樂樂と乘り超えられるようになるはずでしょう。正法者は勇氣ある人でありたいものです。
정법에는 현증이 으레 따르게 마련입니다.  정법을 실행(行)하고, 반성과 정도(正道)의 생활을 보낸다면, 신(神)은 그 사람을 결코 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불운을, 즐겁게 뛰어넘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법자(正法者 올바른 질서(법)을 행하는 사람)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自殺 자살


質問 질문


昔から生恥(いきはじ)をさらすよりは、死を選ぶことを潔(いさぎよ)しとする考え方がありますが、自殺の惡について說明して下さい。
옛부터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 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떳떳하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만, 자살의 나쁨(惡)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對答 대답


人間の目的は佛國土、ユ―トピアの建設です。あの世からこの世に生まれるときは、百人が百人、こんどこそ自分の業(カルマ)を修正し、この世を調和すると決意して出生します。 
인간의 목적(目的)은 불국토, 유토피아(Utopia 이상향)의 건설입니다.  저 세상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백 명이면 백명 모두다, 이번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업(카르마)를 수정(修正)하고, 이 세상을 조화(調和)하리라고 결의(決意)하고 출생(出生)합니다.


 

ところが地上の大氣に觸れ、この世の環境に染まってゆくうちに、こうした目的を忘れ、自己保存の想念に支配されてゆきます。
그런데 지상의 대기(大氣)에 접하고, 이 세상의 환경(環境)에 물들어 가는 동안에, 이러한 목적(目的)을 잊고, 자기보존의 상념(想念)에 지배(支配)되어 갑니다.

 

※대기[大氣]《전문용어대역사전》 지구의 중력에 의해 지구 표면에 밀착되어 지구와 같이 회전하고 있는 기체의 총칭

 



自殺の心理は、その極点に近いものです。いうなれば自己保存の自意識が過剩なために、自らそうした行爲に追い込んでゆくからです。
자살의 심리(心理)는, 그 막다른 곳에 다다른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보존의 자의식(自意識)이 과잉(過剩)으로 인해, 스스로 그러한 행위로 몰아넣어 가기 때문입니다.


 

自殺は調和という神の目的から、大きく外れた行爲であり、神にたいする冒瀆、反逆であって、人間否定を意味します。てすから惡のうちでも、自殺は最惡の部類にはいります。
자살은 조화(調和)라고 하는 신(神)의 목적(目的)에서, 크게 빗나간 행위(行爲)이며, 신(神)에 대한 모독(冒瀆), 반역(反逆)인 것이며, 인간 부정(人間否定)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惡) 중에서도, 자살은 최악(最惡)의 부류(部類)에 들어갑니다.


 

日本の武士道は、名を惜しみ、死に對しては恬淡(でんたん)、生をあまり重要視していなかったようです。生恥をさらすぐらいなら、潔く死んだ方が價値ある生き方とみられていたようです。しかし武士道とはそもそも何か、名とは何かを追究してゆきますと、自己保存につき當たりそれから越えることが出來ません。死によって自我を生かす、死によって安樂を願う我欲と自意識の過剩が、そうした思想を生み、行爲に走らせたとしかいいようがありせん。思想や主義におぼれ、種族や家の繁榮のみを願う行爲は、人類とか、平和といった視野から眺めますと、狹量のそしりをまぬがれないと思います。
일본의 무사도(武士道)는, 이름을 아끼고, 죽음에 대해서는 염담(恬淡.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욕심이 없어 마음이 편함)하고, 삶을 그다지 중요시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죽어야 할 때 죽지 않고) 살아 있음으로써 받는 치욕을 당할 정도라면, 떳떳하게 죽는 편이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태도라고 보여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무사도(武士道)란 애당초 무엇인가, 이름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해 가게 되면, 자기보존(自己保存)에 부딪쳐 그것으로부터 초월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에 의해서 자아(自我 자기, 자신)를 소생시킨다, 죽음에 의해서 안락을 바라는 아욕(我欲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의식의 과잉이, 그러한 사상을 낳고, 행위로 치달렸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상이나 주의에 빠져, 종족이나 가정의 번영만을 바라는 행위는, 인류라든가, 평화라고 하는 시야에서 바라보면, 협량(狹量 도량이 좁다)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自殺も、さまざまな內容を伴い、各種にわかれています、戰爭という異常事態における自殺(例えば特攻隊)もあれば、客觀的に說明できない自殺もあります。家族の迷惑を考え、ひと思いに生命を絶ってゆく療養生活の長い老人。形はどうあれ、いちばん問題なのは、本人のそのときの想念の在り方にありますが、しかし、客觀的に、私ならこうするという余地の殘されている自殺は、もっとも惡い結果になります。
자살(自殺)도, 가지각색이 내용을 동반한다, 여러 종류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전쟁(戰爭)이라고 하는 이상상태(異常事態)에 있어서 자살(예들 들면 특공대)도 있으면,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살도 있습니다.  가족의 폐(성사심,괴로움)을 생각하고, 과감히 생명을 끊으려 떠나는 요양생활의 오랜 노인. 모양은 어떻게 되었든, 가장 문제인 것은, 본인(本人)의 그 당시의 상념(想念)의 올바른 자세에 있습니다만, 그러나, 객관적으로, 저라면 이렇게 한다고 하는 여지가 남겨져 있는 자살, 가장 나쁜 결과가 됩니다.   



 

自殺者の死後の世界は暗黑地獄です。一寸先もわからない穴倉のようなところに閉じ込められての苦しみの連續です鼓膜が破裂しそうな轟音が鳴り響くところとか,得體の知らぬ生物が意識のなかに入り込んでかきむしります。頭痛や幻想に襲われても、この世では痲醉や疲勞が救いになって眠ることが出來ますが、暗黑地獄ではそれが出來ません。意識だけはハッキリしており、それていて眞暗ですから自分の體がどこにあるのかわかりません。

자살자(自殺者)의 사후(死後)의 세계(世界)는 암흑지옥(暗黑地獄)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움막과 같은 장소에 감금되어져 괴로움의 연속(連續)입니다고막(鼓膜)이 파괴될 것 같은 굉음(轟音)이 울려 퍼지는 장소라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生物)이 의식 속에 깊숙이 들어와서 마구 쥐어뜯습니다 두통(頭痛)이나 환상(幻想)에 엄습당해도, 이 세상에서는 마취(麻醉)나 피로(疲勞)가 도움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만,암흑지옥(暗黑地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의식(意識)만은 뚜렷하고 있고, 그런데도 칠흑 같은 어둠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몸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自殺は光を否定した想念ですから、こうした暗黑界に自ら引き込み、客觀的に說明のできない自殺は、その苦しみが長期にわたります。夢夢、こうした想念に支配されないようにたいものです。
자살은 빛을 부정(否定)한 상념이기 때문에, 이러한 암흑계(暗黑界)에 스스로 끌어들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살은, 그 괴로움이 장기간에 걸칩니다.  결코, 이러한 상념에 지배(支配)당하지 않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生命と仕組 

생명과 구성(구조)


 

質問 질문


人間の生命(魂)は本體一、分身五の六體から成り立っているといいますが、では人間以外の動物、植物、鑛物の場合はどうなっているのですか。また轉生輪廻はどういう順序で行なわれるのですか。
인간의 생명(영혼)은 본체 1. 분신 5의 여섯개의 몸으로 성립하고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럼 인간 이외의 동물, 식물, 광물의 경우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입니까? 전생윤회는 어떠한 순서로 행해지는 것입니까?

 


對答 대답


本體、分身の關係は、何も人間だけに限らず、動、植、鑛物全部についていえるのです。人間を含めた動、植、鑛物の物理的な見分け方をまず說明しますと、動物の場合は、細胞の要素が大きく分けて六つに分類されます。
본체, 분신의 관계는, 조금도 인간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동, 식,광물 전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 식, 광물의 물리적인 분별(구별)하는 방식은 우선 설명하자면, 동물의 경우는, 세포의 요소가 크게 나누어 6가지로 분류됩니다.


 

核、原形質膜、ミトコンドリア、ゴルジ體、中心體、脂肪粒の六つ。この六つの要素がたがい補い合って細胞という組織をつくっています。この細胞の六つの要素が、いうならば、本體一(核)、分身五(原形質膜、ミトコンドリア、ゴルジ體、中心體、脂肪粒)の構成になります。ですから人間以外の動物についても細胞がこのように分かれる場合は、一本體、五分身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핵, 원형질막, 미토콘드리아, 고르지체, 중심체, 지방립의 6가지.  이 6가지의 요소가 서로 서로 보충하고 세포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포의 6가지의 요소가, 말하자면, 본체 1(핵), 분신 5(원형질막, 미토콘드리아, 고르지체, 중심체, 지방립)의 구성으로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이외의 동물에 대해서도 세포가 이와 같이 분열되는 경우는, 1 본체, 5 분신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植物もこの例にそって、核(本體一)があり、そうしてその周圍に原形質膜、液胞、色素體、細胞膜(分身四)の五つから構成されます。ですから植物は動物よりも一つだけ構成要素が少ないことになります。
식물도 이 예에 따라서, 핵(본체 1)이 있고, 그렇게 해서 그 주위에 원형질막, 액포, 색소체, 세포막(분신 4)의 5가지로 구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은 동물보다도 1가지만 구성요소가 적은 것이 됩니다.


 

鑛物の場合は、原子番號に核を加えた數が本體、分身の數になります。たとえば炭素の原子番號は六です。六とは核外電子の數。これに核の一つを加えると七となります。つまり本體一、分身六の關係になります。このようにして、水素は二、金は八十、銀四十八、鹽素十八、亞鉛三十二、鐵二十七、銅三十、が本體、分身數を合わせた數となります。
광물의 경우는, 원자번호(原子番號)에 핵(核)을 더한 숫자가 본체(本體), 분신(分身)의 수(數)가 됩니다. 예를 들면 탄소의 원자번호는 6입니다.  6이란 핵외전자의 숫자.  이것에 핵의 1가지를 더하면 7이 됩니다.  즉 본체 1, 분신 6의 관계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수소는 2, 금은 80, 은 18, 염소 18, 아연 32, 철 27, 동 30, 가 본체, 분신 숫자를 합한 수가 됩니다. 


 

このように、物質の構成は、そのモトである生命の構成にしたがって形作られているわけです。
이와 같이, 물질의 구성은, 그 근본인 생명의 구성에 따라서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形の世界は心の反映であり、このため、本體、分身の關係も、生命の組織をそのまま、形の上に反映し、細胞も、素粒子の世界も同じような姿になって現れるものなのです。
형상의 세계는 마음의 반영이며, 이 때문에, 본체, 분신의 관계도, 생명의 조직을 그대로, 형태 상에 반영하고, 세포도, 소립자의 세계도 똑같은 모습으로 되어 나타나는 것인 것입니다.


 

不思議といえば不思議ですが、生命と物質というものは、そのように出來ています。
불가사의하다면 불가사의입니다.  생명과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色心不二は、物質と生命について探究すると、科學的にも理解されてくるでしょう。太陽系のそれも、太陽(核)と惑星(分身)が相互に作用し合っています。そうしてその體を成しています。一つも欠けたら太陽系は崩壞してしまいます。
색심불이(色心不二), 물질과 생명에 대해서 탐구하면, 과학적으로도 이해되어 올 것인니다.  태양계의 그것도, 태양(핵)혹성(분신)이 서로가 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태양계는 붕괴해 버리고 맙니다.

 


魂の轉生輪廻はそれぞれどういう順序で行なわれるかといえば、原則的には順ぐります。Aが出れば次がBBの次はCというに、A(核)BCDEF(分身)が順次、現象界に出て修行する、というのが原則です。ただし轉生輪廻の過程で修行を積む者と、橫道にそれてしまう者もあって、全體のバランスを崩すことがあるので、そうした場合は、あの世で話し合い、前記の原則にこだわらず短期間に二度、三度と現象界に出て修行することもあります。しかしこういう場合は比較的少なく、大半は順ぐりに現象界に出て修行することになるわけです。 
영혼의 전생윤회는 저마다 어떠한 순서(順序)로 행해지는가 하면, 원칙적으로는 차례차례입니다. 

A가 나오면 다음이 B, B의 다음은 C라는 것처럼, A(핵) BCDEF(분신)순차, 현상계에 나와서 수행(修行)한다, 라고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단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수행(修行)을 쌓은 자와, 횡도(橫道 인간의 올바른 길에서 빗겨난 옳지 못한 길)로 빠져(잘못 들음) 버리는 사람도 있어서, 전체의 균형이 깨지는 일이 있는 것으로써, 이러한 경우는, 저 세상에서 서로 대화하고, 전기(前記)의 원칙에 구애됨이 없이 단기적으로 두 번, 세 번 현상계에 나와서 수행(修行)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비교적 적고, 대부분은 차례차례로 현상계에 나와서 수행(修行)하게 되는 것입니다.


 

page  18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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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4장 신리문답(神理問答)」에 있는,  타력과 자력,속이다, 거짓말과 방법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四章 神理問答集」[易,占い] [自殺] [生命と仕組] page 183~190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1.01.07 






●他力と自力 

타력과 자력


 

質問 질문


人間が心を知るためには、それぞれ流儀があって、昔から他力、自力の行じ方があるようですが、正法を己のものとするための、調和の絶對自力という意味はどういうことなのですか。
인간이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저마다 자기 나름의 방법·방식이 있고, 옛부터 타력(他力), 자력(自力)의 실행 방법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정법(正法  올바른 질서, 올바른 법)을 자기의 것으로 삼기 위한, 조화(調和)의 절대자력(絶對自力)이라고 하는 의미는 어떠한 것입니까?

 

 

對答 대답


まず、他力について述べてみましょう。他力とは、問字通り他の力を借りて心を知ろうとする行法です。法然、親鸞が說いたゆき方です。當時の時代的背景というもの、また、佛敎を大衆に知ってもらうためには、他力的信仰を說かなければ人びとはついてこられませんでした。文盲が九割以上を占めた時代であり、人びとの心は阿修羅に支配されていましたから、その心を正常に戾すためには他力による行法しか方法がなかったようです。
우선, 타력에 관해서 기술해 봅시다.  타력이란, 문자 그대로 다른 힘을 빌려서 마음을 알고자 하는 행법(行法)입니다.  법연(法然 ,호우넹(1133~1212) : 정토종[淨土宗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의 개조[開祖]), 

친란(親鸞, 신란(1173-1262), 진종[眞宗]=정토진종[淨土眞宗]의 개조[開祖])이 설명한 방식입니다.  문맹(文盲)이 9할(九割) 이상(以上)을 차지한 시대(時代)이며, 사람들의 마음은 아수라(阿修羅)에게 지배(支配)당해 있었기 때문, 그 마음을 정상(正常)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타력(他力)에 의한 행법(行法)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행법[行法] 불도의 수행 방법.



 

では、今日この行法でいいかといいますと、他力は文字通り他人まかせですから自分をきびしくみつめることができなくなり、自己陶醉におちいる危險性があるのです。日蓮が南無阿彌陀佛の念佛行は無間地獄に墮ちると批難した理由もそこにあります。自己滿足は、心の魔に支配された姿であり、神佛の子である自覺からおよそかけ離れたものになってしまうからです。
그럼, 오늘날 이 행법(行法)으로 좋은가 하면, 타력은 문자 그대로 타인에게 내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가차없이 주시할 수가 없게 되어, 자기도취(自己陶醉 스스로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일)에 빠질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니치렌(日蓮(1222년-1282년))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염불행(念佛行)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비난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자기만족(自己滿足)은, 마음의 마귀(魔)에게 지배당한 모습이며, 신불(神佛)의 자녀인 자각(自覺)에서 대체적으로 동떨어진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일련(日蓮) (니찌렌), 일련종[日蓮宗] 일본 불교의 13종파의 하나.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니찌렌[日蓮]을 개조(開祖)로 하는 종파. 

미노부산(身延山 신연산)의 구원사(久遠寺)를 총본산으로 하는 종파)

 

※타력염불[他力念佛] [불교] 아미타불의 본원에만 의지하여 해탈하려는 염불.

 


では、自力はどうか、禪宗などにみられる自力、つまり自分の力で悟ろうとするゆき方ですが、このこと自體問題はありません。問題は僧房の中で坐禪を組むこと自體が目的となるおそれがあることであり、坐禪のみでは、人は絶對に悟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釋迦は、六年の苦行を捨てることによって大悟されました。もちろん、大悟の前提としての六年の苦行は、後世の人たちに多くの示唆を與えましたが、これをみて、坐禪は至高とみるのは間違いです。それは正法を理解し、行なって坐禪を組むならいいのですが、そうでない場合は、こちらは、自己慢心という、これまた心の魔に侵されるからです。
그럼, 자력(自力)은 어떤가, 선종(禪宗 =석가(釋迦)의 설교(說敎)를 소의(所衣)로 삼는 '교종(敎宗)'에 대(對)하여, 좌선(坐禪)을 닦는 종지) 등에서 볼 수 있는 자력(自力), 즉 자기 자신의 힘으로 깨달으려고 하는 방식입니다만, 이 일 자체에는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問題) 승방(僧房) 안에서 좌선을 행하는 일 자체가 목적(目的)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이며, 좌선(坐禪)만으로는, 사람은 절대로 깨달는 일은 불가능(不可能)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석가(釋迦)는, 6년의 고행(苦行 득도를 위한 고통스런 수행)을 버리는 것에 의해서 대오(大悟 완전히 깨달음)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완전한 깨달음의 전제로서의 6년의 득도를 위한 고통스런 수행(修行)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많은 시사(示唆)를 주었습니다만, 이것을 보고, 좌선(坐禪)은 지고(至高 최고)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정법(正法)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좌선을 하면 좋은 것입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쪽은, 자기만심(自己慢心 자기의 교만스런 마음)이라고 하는, 이것 또한 마음의 마귀(魔)에게 침범당하기 때문입니다.      


  

日蓮はここでも禪天魔という表現をつかって、僧房での修行をいましめています。自己慢心は己自身を失うばかりか、人をも傷つけ、慈悲と愛という神の心から離れてしまうからです。
니치렌(日蓮(1222년-1282년))은 여기에서도 선천마(禪天魔 : 선종・좌선[禪]은 천마의 소행이라 함)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승방(僧房)에서의 수행(修行)을 훈계(경고)하고 있습니다자기만심(自己慢心 자기의 교만스런 마음)은 자기 자신을 잃을 뿐만 아니라, 남도 역시 상처(傷處)를 입히고, 자비(慈悲와 사랑(愛)이라고 하는 신(神)의 마음에서 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正法とは、こうした枠の中にあるのではなく、日常生活そのものなのです。僧房での修行は、正法を悟る一過程にすぎません。坐禪は日常生活を生かすための方法でしかないからです。
정법(正法)이란, 이러한 틀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 그 자체인 것입니다.  승방(僧房)에서의 수행(修行)은, 정법을 깨닫는 하나의 과정(課程)에 지나지 않습니다.  좌선(坐禪)은 일상생활을 되살리기 위한 방법(方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では、最後に、正法にそった調和の絶對自力とはどういうものか。まず自力と絶對自力を分けた理由をいいますと、自力は自我(自己保存)に執着したものであり、絶對自力は神佛の子としての自覺によったものだからです。神佛の子とは、慈悲と愛だけです。慈悲と愛にもとる心にたいしては、私たちは反省という機會を通してこれを修正し、日常生活の中に、少しでも慈悲と愛の心を生かしてゆこうというものです。
그럼, 최후로, 정법(正法)에 따른 조화(調和)의 절대자력(絶對自力)이란 어떠한 것일까?  우선 자력과 절대자력을 나눈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자력(自力)은 자아(자기보존)에 집착(執着)한 것이며, 절대자력은 신불(神佛)의 자녀로서의 자각(自覺)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불(神佛)의 자녀란, 자비(慈悲)와 사랑(愛)뿐입니다.  자비와 사랑에 어긋나는 마음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반성(反省)이라고 하는 기회를 통해서 이것을 수정(修正)하고, 일상생활 속에, 적어도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되살려 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釋迦の正法が絶對自力を說かれるゆえんのものは、人間の心が宇宙卽我ㅡㅡにつきるからです。人間は萬物の靈長として、みな等しく、宇宙卽我を悟る權能が與えられており、宇宙卽我の心から離れた想念行爲が、今日の自分自身をつくっていますので、それをもとへ戾すには他人ではなく、自分自身がその氣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わけです。そうして、その自分自身が正しく己の心をみるために、反省という機會があり、反省のモノサシが慈悲と愛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す。そうして、日日の生活が、常に中道を保つように、努力するところに悟りがあるのです。なお絶對自力という名稱は、通常の自力と區別するためにつけたものです。
석가(釋迦)의 정법이 절대자력을 설명하는 까닭(근거)인 것은, 인간의 마음이 우주즉아(宇宙卽我)ㅡㅡ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 모두 평등하게, 우주즉아를 깨달을 권능(權能)이 주어져 있고, 우주즉아의 마음에서 벗어난 상념행위(想念行爲)가, 오늘날의 자기 자신을 만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데에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 자신이 그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당사자가 올바르게 자기의 마음을 보기 위해서, 반성(反省)이라고 하는 기회가 있고, 반성의 척도가 자비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매일의 생활이, 항상 중도(中道)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데에 깨달음이 있는 것입니다.  역시 절대자력(絶對自力)이라고 하는 명칭은, 통상의 자력(自力)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것입니다.

 

 




●騙す 

속이다

 

質問 질문


私は現在商賣をしています。正法は慈悲と愛が基本だから、たとえ相手がこちらを騙そうということがわがっても、それを許し、騙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なのですか。
저는 현재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정법은 자비와 사랑이 기본이기 때문에, 가령 상대가 이쪽을 속이려고 하는 것을 알아도, 그것을 용서하고(허용하고), 속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對答 대답


現實の私たちの社會は、資本主義と個人主義の兩立のうえに成り立っています。まず、この現實を認識する必要があるでしょう。そこで商人は、金を儲けることが商賣です。相手がこちらを騙そうということがわかったならば、取引をやめるより方法がないでしょう。相手が騙そうということがわからず大いに儲かると思って取引をして大損をした場合、少なくとも、こちらはそれによって、それ以上の利益があると見て取引をしたのだから、文句のいいようがないはずです。損をしないように、利益が上がるように商賣をするのが商人でしょう。正法は、現實の商賣を損をしてまでも慈悲と愛で行なえとはいっていません。
현실(現實)의 우리들의 사회는, 자본주의(資本主義)와 개인주의(個人主義)의 양립(兩立) 위에 성립(成立)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현실을 인식(認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인(商人)은, 돈을 버는 일이 장사입니다.  상대가 이쪽을 속이려고 하는 것을 알았다면, 거래(去來)를 그만둘 수밖에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상대가 속이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많이 이익을 본다고 생각하고 거래를 해서 큰 손해(損害)를 입은 경우, 적어도, 이쪽은 그것에 의해서, 그 이상의 이익(利益)이 있다고 보고 거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불평(不平)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손해를 보지 않도록, 이익을 올리도록 장사를 하는 것이 상인이겠지요.  정법은, 현실의 장사를 손해(損害)를 보면서까지 자비(慈悲)와 사랑(愛)으로 행(行)하라고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取引 거래

 


大事なことは、あがった利益をどう使うか、どう處置としてゆくかによって、その人の價値が定まってきます。もし正法を信じているならば家族や從業員が安心して生活できるように、そのあがった利益をまず近くで困っている者から救い上げでゆくように使うでしょう。兄弟、隣人、社會に還元してゆくことこそ、正法者の在り方です。
중요한 것은, 매출을 올린 이익(利益)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어떻게 일을 감당하여 처리해 가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價値)가 결정되어 옵니다.  만약 정법(政法)을 믿고 있으면 가족(家族)이나 종업원(從業員)이 안심(安心)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그 매출을 올린 이익(利益)을 우선 근처에서 곤란(困難)을 겪고 있는 사람부터 도와주면서 사용하겠지요.  형제, 이웃, 사회로 환원(還元)해 가는 것이야말로, 정법자(正法者)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입니다.    

 


もし、騙されているとわかっでも、それも慈悲と愛があるから當然であると、腰をすえてかかれるあなたでしたら、それはそれで結構です。少なくとも、騙されることによって、心になんの抵抗も感せず、超然としていられるならば......。しかし、あなたはよくでも、家族の生活、そして商賣そのものが立ちゆかなくなったら、あなたは、どう生活してゆきますか。これは慈悲でも、愛でもなく、無責任ということになりませんか......。
만약, 속아 넘어가고 있다고 알아도, 그것도 자비와 사랑이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한눈을 팔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전념(專念)하고 매달리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것은 그것으로 나무랄 데 없습니다.  적어도, 속아 넘어가는 것에 의해서, 마음에 아무런 저항(抵抗)도 느끼지 않고, 초연(超然)하게 있을 수 있다면......。 그러나, 당신은 좋을지라도, 가족(家族)의 생활(生活), 그리고 장사 그 자체를 꾸려나갈 수가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활해 가겠습니까?  이것은 자비도, 사랑도 아니고, 무책임(無責任)이라고 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초연[超然] 《한자사전》
①범위(範圍) 밖으로 뛰어난 모양(模樣) ②남과 관계(關係) 않는 모양(模樣)

 


少なくこも、こういう狀態で、超然としていられる人は、氣がふれているといわざるを得ません。またそういう形では、心に抵抗が殘るはずです。割り切れないはずです。騙す方も、もともと騙そうと思って取引しているのですから、人を騙すというカルマをつけ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これでは雙方に傷がつきます。
적어도, 이러한 상태에서, 초연(超然)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미쳤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러한 형태로는, 마음에 저항(抵抗)이 남을 것입니다.  시원하게 납득이 안 될 것입니다.  속이는 사람도, 본래 속이려고 하는 생각으로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남을 속인다고 하는 카르마[Karma]를 붙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래서는 쌍방에게 마음의 상처(傷處)를 입습니다.

 

※초연[超然] 《한자사전》
①범위(範圍) 밖으로 뛰어난 모양(模樣) ②남과 관계(關係) 않는 모양(模樣)


 

慈悲、愛の根本は、悲しみをとりのぞき、喜びを分から合う、扶け合う、補い合うということです。それも、自ら助ける心のない人には、手のほどこしようがありません。人を騙そうという惡の心を抱く者は、自らを助ける心のない人です。愛の心は通用しません。カルマをつけるだけなら、こうした盲愛はさけた方がい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せんか......。
자비(慈悲), 사랑의 근본(根本)은, 슬픔을 없애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돕고, 서로 보충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돕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손 쓸 수가 없습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는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은, 스스로를 돕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마음은 통용하지 않습니다카르마(Karma)를 만들 뿐이라면, 이러한 맹목적인 사랑은 피하는 편이 좋다고 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八正道を實踐し、正法が身についてきますと、相手の心がわかってきます。騙そうという人が、かりに、目の前に現れたとします。すると、靜かに、その人から離れます。相手によっては、あえて、騙されることもします。騙されることによって、騙したことの自責の念を感じる人にたいしてです。
팔정도(八正道)를 실천(實踐)하고, 정법이 익숙해져 오면, 상대의 마음이 알 수 있게 됩니다.  속이려고 하는 사람이, 가령, 눈 앞에 나타났다고 합시다.  그럼, 조용히, 그 사람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상대에 따라서는, 굳이, 속아 넘어가는 것도 합니다.  속아 넘어가는 것에 의해서, 속인 것의 자책(自責)의 생각(念)을 느끼는 사람에 대해서 입니다. 

 

 

もう一つ大事なことは、騙される、ということがわからず騙された場合は、これは自分のどこかに欠陷があったのからです。たとえば欲得があった、別の相手に損害を與えていた、人を泣かせたことがあった、というように、何かしらのカルマが自分にある場合は、騙された、という結果を招くことがあります。人間は、カルマのない者は一人もいません。したがって、,誰も責めることはできませんが、正法からいいますと、自分にないものは、決して現象化はし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속아 넘어간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속아 넘어갔을 경우는, 이것은 자기 자신의 어딘가에 결함(缺陷)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해타산(利害打算)이 있었다, 다른 상대에게 손해를 주고 있었다, 남을 소리없이 울게 한 적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처럼, 무엇인가의 카르마(Karma)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는, 속아 넘어갔다, 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있습니다.  인간은, 카르마가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비난(非難)할 수는 없습니다만, 정법(正法)에서 말씀 드리면, 자기 자신에게 없는 것은, 결코 현상화는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해타산[利害打算]이해관계를 이모저모 모두 따져 보는 일.
※비난[非難]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음.

 

 




●ソと方便 

거짓말과 방편


質問 질문

ウソと方便、お世辭の違いについて、說明して下さい。世間ではこの兩者を適當に使いわけ、迷ってしまいます。
거짓말과 방편, 겉치렛말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세간에서는 이 양자를 적당하게 상대에 따라서는 말을 가려 쓰고, 헷갈려 버리고 맙니다.

 

※お世辭 겉발림 말, (비유를 맞추기 위한) 찬사, 아부의 말, 발림말(빈말), 겉발림말, 겉치렛 말, 인사치레 말, 아첨, 남이 듣기 좋은 말, 입에 발린 말, 간살,

 


對答 대답


ウソは自己保存です。自分の都合から出てくるものです。方便とは、一時の手段であり、そうした方がいい、と客觀的にみて判斷されたときに使われます。
거짓말은 자기보존입니다.  자기 자신의 형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방편은, 일시적 수단이며, 그렇게 하는 편이 좋다, 라고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되었을 때에 사용됩니다.


 

ウソも方便と、よくいわれますが、方便を使う場合は、相手の心を察して、相手を生かすときにして欲しいものです。自分の欲得で方便を使っていますと、方便だか、ウソだか區別がつかなくなってきます。
거짓말도 방편이라고, 자주 말을 듣습니다만, 방편을 사용하는 경우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고, 상대를 되살릴 때에 해 주었으면 좋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해타산으로 방편을 사용하고 있으면, 방편인지, 거짓말인지 구별을 할 수 없게 되어 옵니다.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1802년 2월 26일 - 1885년 5월 22일), 프랑스의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도 불린다. 소설 레 미제라블과 노틀담의 꼽추는 그의 최고 작품으로 꼽힌다. 시인으로도 유명했던 위고는, 숙고 (Les Contemplations) 와 세기의 전설 (La Légende des siècles) 이라는 시도 남겼다. 젊은 시절에는 보수주의였다가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으로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적 지식인이 되었으며, 유럽 연합의 설립과 공화주의를 위해 힘을 썼다. 실례로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인 레 미제라블속에는 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한 삶과 사회혁명의식이 담겨있다. 

ジャン‐バルジャン【Jean Valjean】ユゴーの小説「レ‐ミゼラブル」の主人公。

출처 :  Archives Photographiques

설명 : 위고, Nadar (Gaspard-Felix Tournachon)가 찍은 사진

※장 발장[Jean Valjean]
[문학]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장편 소설 의 주인공.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나온 후, 주교(主敎)의 자비심에 감화되어 사랑을 깨닫게 되고 정치가가 되어 선정(善政)을 베푼다.
 





ビクトル・ユ―ゴ―の『ああ無情』という有名な小說があり、その中でこういうくだりがあります。主人公のジャン‐バルジャンは、敎會の牧師の厚意を踏みにじり、敎會の大事な銀の燭臺を盜む。ところが彼のみすぼらしい服裝と燭臺の不釣合から刑事にとがめられ、刑事は牧師のところへ彼を突き出します。彼は捕まると、牧師からもらったものだと刑事にいい張ったからです。牧師は銀の燭臺とジャン‐バルジャンの顔をしばらく見ていましたが、刑事に向かって、はっきりといいました。この品はこの人にあげたものです。盜まれ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と。牧師のこのひと言で自由の身になったジャン‐バルジャンは、生まれてはじめて、人の愛にふれ、眞人間になることを誓ったのです。それまでの彼はならず者で、このため何回となく投獄され、今度も出獄して腹を減らしているところを、牧師に助けられ、食べ物にありついたのでした。ところが腹がいっぱいになると、その牧師の目をかすめ、盜みを働いたのです。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아아, 무정』이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이 있고, 그 중에서 이와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장 발장(Jean Valjean)은, 교회의 목사의 후의(厚意 남에게 두터이 인정을 베푸는 마음)를 저버리고, 교회의 중요한 은 촉대(촛대)를 훔친다.  그런데 그의 몰골의 초라한 복장과 촉대(촛대)의 어울리지 않음에서 형사에게 책망을 당하고, 형사는 목사가 있는 곳으로 그를 연행합니다그는 붙잡히자, 목사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형사에게 우겨댔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은 촛대와 장 발장(Jean Valjean)의 얼굴을 잠깐 보고 있었습니다만, 형사를 향해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 물건은 이 사람에 준 것입니다.  도둑맞은 것이 아닙니다, 라고.  목사의 이 한 마디로 자유의 몸이 된 장 발장(Jean Valjean)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사랑에 심금을 울리고, 참된 인간이 될 것을 맹세한 것입니다.  그때까지의 그는 파락호(불량배)이며, 이 때문에 몇 번이나 투옥되어, 이번에도 출옥해서 배를 주리고 있는 형편을, 목사에게 도움을 받아, 음식을 얻어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부르고 나자, 그 목사의 눈을 속이고, 도둑질 했던 것입니다.


 

もしここで、牧師が事實をそのまま刑事にいっていれば、ジャン‐バルジャンの物語はなかったでしょう。牧師の愛の一事によって、彼は生まれ變わり、その後、多くの人びとを救っていったのです。
만약 여기에서, 목사가 사실을 그대로 형사에게 말하고 있으면, 장 발장(ean Valjean)의 이야기는 없었을 것입니다.  목사의 사랑의 한 가지 일에 의해서, 그는 새 사람이 되어, 그 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갔던 것입니다.


 

このように、方便は、相手を生かすときに、大きな働さをします。
이와 같이, 방편(方便)은, 상대를 되살릴 때에, 큰 작용을 합니다.

 

釋迦の說法には、方便が非常に多いのもこのためといっていいでしょう。
석가의 설법에는, 방편이 상당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법화경을 읽다가 던져버렸다고 일기에 쓴 적이 있습니다. 사실, 방편의 내용들이 상당합니다.

최후에 말한 것이 법화경입니다. 5000명이 퇴장합니다. 

헌데, 방편은 소승이다, (소승, 작은 가르침)

대승의 핵심이다, 라고 말하고 있기에, 던져 버렸습니다. (대승, 큰 가르침) ..^^;;;


 


ですからウソと方便は、本質的にその內容が違いますし、その根本が、自己保存が、相手を生かしたものかによって分かれてくるでしょう。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과 방편은, 본질적으로 그 내용이 틀리고, 그 근본이, 자기보존이, 상대를 되살린 것인가 의해서 갈라져 올 것입니다.


 

次に、お世辭というのはウソに近いもので、これも自己保存からくるものでしょう。お世辭は實質以上に相手を持ち上げます。したがってこの意味からするとお世辭は相手をだまし、自分を僞るものといえるでしょう。しかし、この世はいろいろな魂の集まった集團社會です。お世辭は自己保存だからよくないとはいえ、眞正直に、何でもかんでも、そのまま傳え、愛想がないとすれば、初對面の人だったから戶惑うこともあるでしょう。禮の一つとしてお世辭や愛想は對人關係をスム―ズに運ぶために欠かせないものと思います。要は、限度を守って、節度を保つならば、お世辭の一つや二つあってもいいと思います。
다음에, 겉치렛말이라고 하는 것거짓말에 가까운 것이며, 이것도 자기보존에서 오는 것이지요.  

겉치렛말은 실질 이상으로 상대를 치켜세웁니다.  따라서 이 의미에서 보면 겉치렛말은 상대를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여러 가지 영혼의 모인 집단사회입니다.  겉치렛말은 자기보존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는 말할 수 있고, 진정 곧바로, 그대로 전하고, 붙임성이 없다고 하면(무뚝뚝하다고 하면), 초대면의 사람이었다면 당황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예의의 하나로서 겉치렛말이나 붙임성(상냥함)은 대인관계를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점은, 한도(限度)를 지키고, 절도(節度)를 유지하면, 겉치렛말의 한 가지나 두 가지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正法は中道であり、要は自分を失わないことです。
정법은 중도(中道)이며, 요점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念力と祈り 

염력과 기도


質問 질문


他力信仰の指導者がある本で次のように述べていました。「念力と眞實の祈りとの區別のわからない宗敎者はかなり多いのであります。念力とは、想い、すなわち想念や思念の力であって神とは直接關係のない力なのであり、祈りとは生命(神)を宣り出す方法、つまり、自己の生命の働きを、神の生命として宣言し、眞直ぐに發顯することなのです」と。また、祈りはきかれますか、念力と祈りの違いを敎えて下さい。
타력신앙의 지도자가 어떤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염력(念力)과 진실한 기도(祈禱)와의 구별을 할 수 없는 종교자는 꽤 많은 것입니다.  염력이란, 생각, 즉 상념(想念)과 사념(思念)의 힘이며 신(神)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힘인 것이며, 기도란 생명(生命)(신神)을 선출하는 방법, 즉, 자기의 생명의 작용을, 신(神)의 생명으로서 선언하고, 똑바로 발현하는 일인 것입니다」라고.  또, 기도는 효과가 있습니까, 염력과 기도의 차이를 가르쳐 주십시오.


 

※염력[念力] 
1.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려는 마음. 노력(努力)의 하나. 생각을 바로 하여 사특한 생각을 버리는 힘 
2. 한 가지에 전념하여 그로써 장애를 극복하는 힘. 또는 산란한 마음을 그치고 진실한 마음을 갖게 하는 힘.

3. 초능력의 하나.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물체에 손을 대지 아니하고 그 물체의 위치를 옮기는 힘 따위이다.

※상념[想念]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사념[思念] 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



 

對答 대답


念力も祈りも、ともに想念の働きです。想念は、エネルギ―という電磁的波動に乘って生まれるものです。思う、考える力は、神から與えられたエネルギ―であるからです。さて念力は一口にいって我欲の想念であり、祈りは神の生命の宣言だとしていますが人間の本當の姿を知ると、言葉の持つ意味にとらわれることの無意味さを悟ります。
염력도 기도도, 다 같이 상념(想念)의 작용입니다.  상념은, 에너지라고 하는 전자적 파동을 타고 생겨나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생각한다, 지적으로 생각한다는 힘은, 신(神)으로부터 주어진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염력(念力)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아욕(我欲)의 상념(想念)이며, 기도(祈禱)는 신(神)의 생명(生命)의 선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알면, 말의 가지는 의미(意味)에 얽매이는(사로잡히는) 것의 무의미함을 깨닫습니다.

 

아욕[我欲]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大宇宙は神が創造したものです。光あれといって光をつくり、海をつくり、草木をつくり、人間をつくりました。これは神の一念によるものです。
대우주(大宇宙)는 신(神)의 창조한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말하고 빛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고, 초목을 만들고, 인간(人間)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신의 일념(一念)에 의한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31절을, 참조하세요. 

※일념[一念] 한결같은 마음・생각.



 

人間は神の子です。その證據に、自分にウソはつけません。またこと地上にユ―トピアを創造してゆく力を與えられています。文明文化は人間の一念の産物です。
인간(人間)은 신(神)의 자녀(子女)입니다. 그 증거로,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지상에 유토피아( Utopia 이상향)를 창조해 가는 힘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문명 문화는 인간의 일념(一念)의 산물입니다.

 

 

問題は、その一念に、人間は、我欲を上乘せして生活している、という實態です。だから、念力は我欲のそれだという風にみられてきたわけです。しかし、念力のエネルギ―は、神の子の創造力を意味し、したがって本來は、その念力を「正念」として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です。だから、八正道の一つに「正念」が入っているわけです。
문제는, 그 일념(一念)으로, 인간은, 아욕(我欲)을 덧붙여서 생활하고 있다, 라고 하는 실태입니다.  그래서, 염력(念力)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의 그것이다 라고 말하는 식으로 보여져 왔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염력(念力)의 에너지(Energe)는, 신의 자녀의 창조력(創造力)을 의미하고, 따라서 본래는, 그 염력을 「정념(正念)」으로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팔정도의 한 가지에 「정념(正念)」이 들어 있는 이유입니다.

 


 

ところで、人間はこの地上に生まれると十パ―セントの表面意識で生活するため、一寸先さえわかりません。このため、神の子の自覺を求める姿勢、神への鄕愁、神への感謝が、祈りという形式をとってきたのです。
그런데, 인간은 이 지상에 태어나면 10%의 표면의식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한 치 앞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신(神)의 자녀라는 자각을 찾는 자세(姿勢), 신(神)을 향한 향수(鄕愁), 신에게의 감사(感謝)가, 기도(祈禱)라고 하는 형식을 취해 왔던 것입니다.


 

本當の祈りは「眞心」の發露であり、「反省」であり、そうして、それにもとづく行爲であり、神との對話を意味します。眞心のない祈りは、神に通じません。反省と行爲のない祈りも、神はきいてくれません。祈りが高まると守護・指導靈との對話が可能になります。アラハン(阿羅漢)の境地にまで心が高まると、こうしたことが實際に出來るようになるのです。これまでの考えは、祈れば救われる、拜めば何でもかなえられるといわれてきましたが、そんなことはないのです。
진실한 기도는 「진심(眞心)」의 발로이며, 「반성(反省)」이며, 그렇게 해서, 그것에 바탕을 둔 행위(行爲)이며, 신(神)과의 대화(對話)를 의미한다진심(眞心)이 없는 기도(祈禱)는, 신(神)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반성과 행위가 없는 기도(祈禱)도, 신(神)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기도(祈禱)가 높아지면 수호・지도령과의 대화가 가능하게 됩니다.  아라한(阿羅漢)의 경지까지 마음이 높아지면, 이러한 일이 실제(實際)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태까지의 생각은, 기도(祈禱)하면 구원받는다.  합장 배례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을 들어 왔습니다만, 그런 일은 없는 것입니다


 

まず、人間は、神の子であり、したがって、正念を持って、その調和をはかり、環境を調和してゆくものです。またそうすると、神は、祈らなくても、その人を守ってくれます。本來そういうものです。
우선, 인간(人間)은, 신(神)의 자녀이며, 따라서, 정념(正念)을 갖고, 그 조화(調和)를 도모하고, 환경(環境)을 조화롭게 해 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면, 신(神)은, 기도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지켜 줍니다.  

본래 그런 것입니다.

 


念力は我欲、祈りは神の生命の宣言と、觀念的に片づけられては困ります。また、想念の意味についても、言葉のアヤで解釋されては誤解を招きます。この点を、しっかり心に入れておいて下さい。
염력(念力)은 아욕(我欲), 기도(祈禱)는 신(神)의 생명의 선언(宣言)이라고, 관념적으로 처리해서는 곤란합니다.  또, 상념(想念)의 의미(意味) 대해서도, 말의 표현상의 기교로 해석되어서는 오해(誤解)를 불어옵니다. 이 점을, 확실히 마음에 새겨 두십시오.

 




●自由とは 자유란



質問 질문


自由とは本來どういうことをいいますか、また社會生活と自由の考え方について說明して下さい。
자유는 본래 어떤 것을 말합니까? 또 사회생활과 자유의 사고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對答 대답


一念三千の言葉のように、人の心は三千世界、つまり自由自在、そうして無限の大きと廣さを持っているものです。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말처럼, 인간의 마음은 삼천세계(三千世界), 즉 자유자재(自由自在), 그렇게 해서 무한한 크기와 넓이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あの世の光の天使たちは、そうした自由な心を持っていますから、どこへ行くにも自由に飛び回ることが出來ます。心にとらわれが多いと、こうした自由さは行使出來ず、地獄という世界で苦しむことになります。
저 세상의 빛의 천사(天使)들은,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디로 가려고 해도 자유로이 공중을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가 있습니다. 마음에 얽매임(사로잡힘)이 많으면, 그러한 자유로움을 행사(行使)할 수 없고, 지옥(地獄)이라는 세계에서 괴로워하게 됩니다.


 

自由とは本來、心の自由、あの世の天使たちの自由さであり、それは人間本來の心の姿をいったものです。
자유(自由)는 본래, 마음(心)의 자유, 저 세상의 천사(天使)들의 자유이며, 그것은 인간 본래(本來)의 마음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ところがそうした心の自由を持つ人間が、一度體という衣を着ると、不自由になってきます。心の中で、ああしたい、こうしたいと思っても、體の方がいうことをきかない。
그런데 그러한 마음(心)의 자유(自由)를 가진 인간이, 한 번 육체(肉體)라고 하는 옷을 입으면,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옵니다마음속으로, 저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몸이 제대로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海の上を步いてみたい、早く走りたい、空を飛んてみたい、遠くの人と話をしてみたい、と思っても、それは出來ません。そこで、その要求を滿たすために、人間はいろいろと考え、船を發明し、自動車をつくり、飛行機をとばし、電話を考案してきました。つまり、肉體という不自由さを、こうしたさまざまな乘り物や、機器を發明することによって、少しでも緩和し、自由さを取り戾したいと考え續けてきたわけです。いうなれば、あの世の體驗を、この世で現しつつあるといってもいいでしょう。
바다 위를 걸어보고 싶다, 빨리 달리고 싶다,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 멀리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배를 발명하고,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날리고, 전화를 고안해 왔습니다 즉, 육체(肉體)라고 하는 자유롭지 못함을, 이러한 가지각색의 교통수단이나, 기기(機器)를 발명하는 것에 의해서, 조금이라도 완화(緩和)하고, 자유를 되찾고 싶다고 계속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 세상의 체험(體驗)을, 이 세상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도 좋은 것입니다.


 

しかし肉體という衣を着ると、肉體を通しての自由さは、普通では不可能に近くなってきます。肉體と心が分離出來る人は、心の自由さを知ることが出來ます。俗にいう幽體離脫というもので、心と魂が肉體から離れ、海の上でもどんな山でも、乘り越えて他の天體に遊泳することも可能です。しかし、ふつうはそれは出來ません。同時に、心と肉體が一つのときは、肉體世界(三次元)のル―ルにしたがっているため、それは不可能なのです。
 그러나 육체(肉體)라고 하는 옷을 입으면, 육체를 통한 자유는, 보통으로는 불가능(不可能)에 가깝게 되어 옵니다.  육체와 마음을 분리(分離)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의 자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유체이탈(幽體離脫)이라고 하는 것으로써, 마음(心)과 영혼(魂)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바다 위라도 어떤 산이라해도, 타고 넘어서 다른 천체로 유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마음과 육체가 하나인 때에는, 육체세계(3차원)의 규칙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不可能)한 것입니다.


 

にもかわわらず、人は肉體の自由を求めようとします。思想の自由、言論の自由からはじまって、何もかも自由に結びつけてきます。そうすると、この世の中は混亂してきます。現象界は、萬事は三次元的に出來ていますから、三次元のル―ルを外すと、苦しみが生まれてくるので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육체의 자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사상(思想)의 자유, 언론(言論)의 자유로부터 시작해서, 무엇이든 자유를 결부시켜 옵니다.  그렇게 하면, 이 세상은 혼란해져 옵니다.  현상계(現象界)는, 만사(萬事 여러 가지 온갖 일)는 3차원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3차원의 규칙을 벗어나면, 괴로움이 생겨나오는 것입니다.


 

三次元のル―ルとは中道という片寄りのない生活の基本です。このル―ルが崩れてくると、作用・反作用の法則が大きく振幅し、さまざまな障害が現れてきます。人びとの悲しみ苦しみは、こうしたル―ルを踏み外した生活行爲と、心と肉體の關係を理解していないがためにおこるのです。
3차원의 규칙은 중도(中道)라고 하는 치우침이 없는 생활의 기본(基本)입니다.  이 규칙이 무너지게 되면, 작용・반작용의 법칙(作用・反作用の法則)이 크게 진폭(振幅 진동의 폭)하고, 여러 가지 장해(障害)가 나타나옵니다사람들의 슬픔 괴로움은, 이러한 규칙을 벗어난 생활행위(生活行爲)와, 마음과 육체의 관계를 이해(理解)하고 있지 않음에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心の自由さは四次元以上の世界なのです。したがって、肉體を持つかぎりは、中道という秩序にしたがい、そうして心の自由さ、心の尊嚴さを認め合いながら生きてゆ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마음의 자유(自由)는 4차원 이상의 세계(世界)인 것입니다.  따라서,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은. 중도(中道)라고 하는 질서(秩序)에 따르고, 그렇게 해서 마음의 자유(自由), 마음의 존엄(尊嚴)을 서로 인정(認定)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ここに私たちの心の修行があり、中道という正法の大きな意義があるのです。
여기에 우리들의 수행(修行)이 있고, 중도(中道)라고 하는 정법(正法)의 큰 의의(意義)가 있는 것입니다.

 

page 191~203


★참고 삼아 올립니다. 

心の自由さは四次元以上の世界なのです。(마음의 자유(自由)는 4차원 이상의 세계(世界)인 것입니다)

.지옥계는 4차원 (유계(幽界)의 하단에 자리잡고 있는데, 무의식계(無意識界)→ 연옥(煉獄)→아귀계(餓鬼界)→축생계(畜生界)→암흑지옥(暗黑地獄)→불지옥(방화범)→얼음지옥→피의 연못(血地)(=간음)→아수라계(阿修羅界)→무간지옥(無間地獄)→마왕(魔王)(사탄[Satan]) 

...▶ 4차원 이상의 세계→4차원 유계(幽界)→5차원 영계(靈界)→6차원 신계(神界)→7차원 보살계(菩薩界)→8차원 여래계(如來界)=금강계(金鋼界)→9차원 우주계(宇宙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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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5장 기도의 의의와 기원문」 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四章 神理問答集」[他力と自力] [騙す] [ウソと方便] [念力と祈り][自由とは] page 183~190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1.01.15








第五章 祈禱の意義と祈願文
제5장 기도의 의의와 기원문


 

祈りは人間に與えられた神の慈悲であ
기도는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자비이다.
る。しかし我欲の願いは己の心を汚し、
그러나 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의 바램은 자신의 마음을 더럽히고,
自分を失う。つとめて祈るとき、神は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애써 기도할 때, 신은
惜しみない光を與えてくれよう。
아낌 없는 빛을 제공해 주실 것이다.

 

 



◆天と地のかけ橋
하늘과 땅의 가교((假橋)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  


 

いったい祈りというものは、どのような精神的過程を通って發生したものなのでしょうか。
도대체 기도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정신적 과정을 통해서 발생한 것일까요?



それは、人間が肉體を持ち、あの世、天上界(實在界)から地上に生をうけたときからはじまります。
그것은, 인간이 육체를 갖고, 저 세상, 천상계(실재계)로부터 지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魂のふるさとである天上界では、〃祈り〃は卽行爲で、祈りそのものが行爲になっているので、ことさらに、祈らなくてもいいのです。思うこと、考えることは、それはそのまま祈りの行爲となって、神佛と調和しているからです。ところが、人間は肉體を持つと、こうした全なる心、行爲を忘れ、自我に生きようとする。五官に左右され、六根にその身を、心を、まかせてしまいます。すると、煩惱という迷いに、己自身を埋沒させ、どうになら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
영혼의 고향인 천상계에서는, 〃기도(祈禱)〃는 즉 행위이며, 기도 그 자체가 행위로 되어 있는 것이며, 일부러.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그대로 기도의 행위가 되어, 신불과 조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를 가지면, 이러한 온전한 마음, 행위를 잊어버리고, 자아(自我 가지보존)로 살려고 한다. 오관에 좌우되고, 육근에 그 몸을, 마음을 맡겨버리고 맙니다다.  그러면, 번뇌라고 하는 미혹(迷惑)에, 자기 자신을 매몰시켜, 어쩔 도리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苦しいときの神だのみと、よく人はいいます。これは煩惱にふりまわされた人間が、最後に求めるものは、己自身の魂のふるさとであり、ふるさとこそ、救いの手をさしのべてくれる己自身であるということを、無意識のうちに知っているからになりません。助けを求める自分と、救いの側に立つ自分は、ともに一つですが、救いの側に立っている自分は、『心行』の中に述べている潛在意識層の守護・指導靈であります。本當に、その人が煩惱にふりまわされた自分を反省し、どうぞ助けて下さいと、祈ったときは、潛在意識層の守護・指導靈が助けます。守護・指導靈に力がない場合は、より次元の高い天使が慈悲と愛の手をさしのべてくれます。
괴로울(급할) 때 신 찾기뿐이라고, 자주 사람은 말합니다이것은 번뇌에 휘둘림 당한 인간이, 최후에 찾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의 고향이며, 고향이야말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도움을 청하는 자기 자신과, 도와주는 측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은, 다 같이 한가지입니다만, 도와주는 측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은, 『심행(心行)』안에 서술하고 있는 잠재의식층의 수호・지도령입니다. 진실로, 그 사람이 번뇌에 휘둘림 당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부디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때는, 잠재의식층의 수호・지도령이 도와줍니다.  수호・지도령에게 힘이 없는 경우는, 보다 차원이 높은 천사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뻗쳐 줍니다.

 


このように「祈り」というものは、自分の魂のふるさと思いおこす想念です。同時に、反省という、自分をあらためて見直す立場に立った「祈り」でないと、本當は、あまり意味がないし、救いに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이와 같이 「기도(祈禱)」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魂)의 고향을 생각해 내는 상념(想念)입니다.  동시에, 반성이라고 하는, 자기 자신을 고치고 재검검하는 입장에 선 「기도(祈禱)」가 아니라면, 사실은, 그다지 의미가 없고,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苦しいから助けてくれ、というだけでは、愛の手は、さしのべられません。なぜかといいますと、今の自分の運命は、自分自身がつくり出したものだからです。それは、誰の責任でもありません。自分自身の責任なのです。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도와 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기 자신의 운명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人間は神の子であり、神の子に反した行爲はその分量だけ、償うことが神の子としての攝理です。反省し、ざんげして祈るときは、神佛は慈悲と愛を與えてくれます。
인간은 신의 자녀이며, 신의 자녀에게 반한 행위는 그 분량만큼, 보상하는 것이 신의 자녀로서의 섭리(攝理)입니다.  반성하고, 참회(懺悔)하고 기도할 때는, 신불(神佛)은 자비와 사랑을 제공해 줍니다.

 


誤ちは、人間にはさけられないからです。
잘못(과오)은,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祈りというものは、このように、肉體を持った人間の、神佛を思い起こす想念として發生したものです。
기도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육체를 가진 인간의, 신불을 생각해 내는 상념으로서 발생한 것입니다.

 


聖書の中に、「汝信仰あり、我行爲あり」という言葉が隨所に出てきます。これは、單なる祈りでは意味がない、行爲で示せということです。祈りは、行爲にまで發展させなければ、眞の祈りにまで、高めることは出來ません。
성서(성경) 중에, 「너는 신앙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다」라고 하는 말이 도처에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도로는 의미가 없고, 행위로 나타내 보이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행위로까지 발전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기도로까지, 향상시킬 수는 없습니다.


 

また祈りは、神の子の自分を自覺したその心、その感謝の氣持〃祈り〃となるのです。
또 기도는, 신의 자녀인 자기 자신을 자각한 그 마음, 그 감사의 심정(마음)이 〃기도(祈禱)〃가 되는 것입니다.

 


現在與えられた環境、境遇というものは、神が與えてくれた最良の己自身の魂の修行場であり、ここを通らずして、魂の向上はあり得ないとする自覺、感謝の心が天に向かったときに、祈りとなって、ほとばしるのです。人間は、所詮、神にはなれません。したがって、神佛の加護と人びとの協力なくしては、いっときといえども生きてゆけません。自分の運命を天命として、その使命をこの世で果たすためには、人間は祈らずにはいられないものです。
현재 주어진 환경, 경우라고 하는 것은, 신이 제공해 준 가장 좋은 자기 자신의 영혼(魂)의 수행장이며, 여기를 통하지 않고서, 영혼(魂)이 향상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 자각, 감사의 마음이 하늘로 향했을 때에, 기도가 되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 신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불의 가호(加護)와 사람들의 협력이 없어서는, 잠시라고 할지라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운명을 천명으로서, 그 사명을 이 세상에서 완수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こうみていりますと、〃祈り〃には、段階があり、同じ祈りにしても、各人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かなりの相違があるといえます。
이렇게 보고 있으면, 〃기도(祈禱)〃에는, 단계가 있고, 똑같은 기도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따라서, 상당한 상위(相違 서로 다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しかし、祈りの本質というものは變わりません。
그러나, 기도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その本質とは、祈りは、天と地をつなぐ光のかけ橋であること。したがって神佛との對話であるといこと。
그 본질은, 기도는, 하늘과 땅을 잇는 빛의 가교((假橋)・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인 것.  따라서 신불과의 대화라고 하는 것.

 


人が祈るときは、天と地をつなぐ光のかけ橋がかけ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
인간이 기도할 때는 하늘과 땅을 매어 두는 빛의 가교((假橋)・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를 걸쳐 놓을 수 있게 됩니다.


 

ただしこのかけ橋は、各人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大きくもなり、小さくもなり、太くもなり、細くもなるものなのです。
다만 이  가교(假橋)・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는, 각자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따라서,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고, 굵게도 되고, 가늘게도 되는 것인 것입니다.

 


 



◆祈願文 기원문

 


祈りとは、神佛の心と、己の心の對話である。同時に、感謝の心が、祈りでもある。神理にかなう祈り心で實踐に移るとき、神佛の光は我が心身に燦然とかがやき、安らぎと調和を與えずにはおかない。(前文)
기도란, 신불(神佛)의 마음과, 자기(己)의 마음의 대화(對話)이다.  동시에, 감사(感謝)의 마음이, 기도(祈禱)이기도 하다.  신리(神理)에 들어맞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실천(實踐)으로 옮길 때, 신불(神佛)의 빛은 나의 심신(心身)에 찬연(燦然)히 빛나고, 평안(平安)과 조화(調和)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전문)

 




一、大宇宙大神靈(神)佛よ 
一, 대우주 대신령 (신)불이시여

 

我が心に光をお與え下さい
心に安らぎをお下えさい
心行を己の糧として
日日の生活をします
(己の心に一日の反省をする)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나의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심행을 나의 양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합니다 
(자기의 마음으로 하루의 반성을 한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一、天上界の諸如來 諸菩薩(光の天使)
一, 천상계의 모든 여래 모든 보살(빛의 천사)이시여

 

我が心に光をお與え下さい
心に安らぎをお與え下さい
心行を己の糧として
日日の生活をします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나의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심행을 나의 양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합니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一、天上界の諸天善神
一, 천상계의 제천선신이시여

 

我が心に光をお與え下さい
心に安らぎをお與え下さい
我が心を正し 一切の魔よりお守り下さい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나의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나의 마음을 바로잡고 일체의 악마(魔 마귀)로부터 지켜 주십시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一、我が心の中にまします守護・指導靈よ
一, 나의 마음속에 계시는 수호・지도령이시여

 

我が心を正しくお導き下さい
心に安らぎをお與え下さい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나의 마음을 올바르게 지도해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一、萬生萬物
一, 만생만물이여

 

我が現象界の修行にご協力
心から感謝します
나의 현상계의 수행에 협력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一、先祖代代の諸靈
一, 조상 대대로의 모든 영령이시여

 

我に修行の體をお與え下さいまして
心から感謝します
諸靈の冥福を心から供養致します
(心行の供養)
저에게 수행의 몸을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영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공양합니다 
(심행의 공양)



 



◇祈りは行爲 

기도는 행위


 

祈願文について說明しましょう。
기원문에 대해서 설명해 봅시다.


 

祈願文は、以上のように六章から成っています。このうち、一章から四章までが「心」について、五、六章が、「肉體」について、書いたものです。
기원문은, 이상과 같이 6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 1장에서 4장까지가 「마음(心)」에 대해서, 5, 6장이, 「육체(肉體)」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これゆれ、祈願文では、心と肉體、宇宙と人間の關係を、もっとも短かい言葉で表現し、神佛と、己の魂との一體化、己自身と守護・指導靈の調和をはかる、もっとも身近な想念であり、魂の叫びでもあります。
그러므로, 기원문에서는, 마음과 육체,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가장 짧은 말로 표현하고, 신불과, 자기의 영혼의 일체화, 자기 자신과 수호・지도령의 조화를 도모하고, 가장 자기와 관계가 깊은 상념이며, 영혼(魂)의 부르짖음이기도 합니다.

 


またこれを唱えるとき、人は、各人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調和され、その心を行爲に移すときは、心の調和はいっそう高まってゆきます。まず第一章をあげてみてましょう。
또 이것을 소리내어 읽을(외울) 때, 사람은, 각자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따라서 조화(調和)되어, 그 마음을 행위(行爲)로 옮길 때는, 마음의 조화(調和)는 한층 더 향상되어 갑니다. 우선 제 1장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大宇宙大神靈 佛よ
我が心に光をお與え下さい
心に安らぎをお與え下さい
心行を己の糧として 日日の生活をします
(己の心に一日の反省をする)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대우주 대신령 (신)불이시여
나의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심행을 나의 양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합니다 
(자기의 마음으로 하루의 반성을 한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さて、ここまでの第一章は、大宇宙の全なる大神靈にたいして光と安らぎを求めています。
자, 여기까지의 제 1장은, 대우주의 온전한 대신령에 대해서 빛과 평안을 구하고 있다.

 


大宇宙は、人類發祥の母體であり、大宇宙なくして、我我は存在いたしませんので、發生の母體に、まず光を求めます。
대우주는, 인류발상의 모체이며, 대우주가 없어서는, 우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상의 모체에게, 우선 빛을 구합니다.

 


すると、その光は、各人の心の調和度にしたがって與えられるのです。
그러면, 그 빛은, 각자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心から唱えますと、心に安らきを覺えます。安らぎは、各人の魂、意識に光が傳わってくるためにおこる現象です。
진심으로 소리내어 읽으면(외우면), 마음에 편안을 느낍니다.  평안은, 각자의 영혼, 의식에 빛을 전해져 오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光をいただい魂は、大宇宙の正法の生活こそ、宇宙の法に適うものですから、宇宙の經典、人間の經典である『心行』にもとづいた生活を送りますと、最後の節で宣言するのです。この宣言が、ひじょうに大事なことろです。
빛을 받은 영혼은, 대우주의 정법의 생활이야말로, 우주의 법에 들어맞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경전(經典), 인간의 경전(經典)인 『心行(심행)』에 바탕을 둔 생활을 보내겠다고, 최후의 절에서 선언(宣言)하는 것이다.  선언(宣言)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普通、祈りというと、お願いごとで終わる場合が多いようです。お願いすればなんでも適えられると思いがちです。これは、人間の弱さ、もろさからくる迷いです。神と人間を切り離した迷信からくる自己滿足です。
보통, 기도라고 말하면, 소원(원하는 일. 특히, 신불에게 기원하는 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면 무엇이든지 충족시켜 주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약함,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오는 미망(迷妄)입니다. 신과 인간을 떼어놓는 미신때문에 오는 자기만족입니다.


 

祈りというものは、人間が神の子としての自覺と、それへの感謝の心が湧き上がってくるときにおこる、人間本來の心であり、そうした感謝が湧き上がってくれば、當然、これにもとづいた行爲というものが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です。
기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신의 자녀(神の子)로서의 자각(自覺)과, 그것에 대한 감사(感謝)의 마음이 용솟음쳐 올 때에 일어나는, 인간 본래(本來)의 마음이며, 그러한 감사(感謝)가 용솟음쳐 오면, 당연히, 이것에 바탕을 둔 행위(行爲)라고 하는 것이 없으면 안 될 것입니다.

 


祈りの根本は感謝であり、その感謝の心は行爲となるものでなければ本物とはなりません。
기도의 근본은 감사이며, 그 감사의 마음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면 진짜로는 될 수 없습니다.

 


大宇宙大神靈の光を求める同時に、『心行』を己の糧として日日の生活をします。と唱えるのも、こういう理由からです。
대우주대신령의 빛을 구하는 동시에, 『心行(심행)』을 나(자기)의 양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합니다. 라고 소리내어 읽는(외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입니다.

 


また眞の調和は、己の心を信じ,行なうことにあります。そうして、信じて行なう過程に〃祈り〃というものがあるのです。
또 진정한 조화는, 자기의 마음을 믿고, 실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믿고 실행하는 과정에 〃기도(禱祈)〃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正しいと思っても、間違いを犯するのが人間、善なる行爲と信じても、相手のうけとり方いかんでは、不善の場合があるかも知れません。
올바르다고 생각해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 선(착)한 행위라고 믿어도, 상대방의 받아들이는 방식이 여하로는, 불선(좋지 못한) 경우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人間の想念、行爲というものには、これが絶對正しいと自分では思っても、そうでない場合がひじょうに多いのです。
인간의 상념, 행위라고 하는 것에는, 이것이 절대 올바르다고 그 사람 자신은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そこで、人間は、神佛の偉大な救いを求め、その求めた中から生活するように心がけることが大事であり、救いも、またそこから生まれてくるものです。
그래서, 인간은, 신불의 위대한 도움을 청하며, 그 도움을 청한 가운데에서 생활하도록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며, 도움(구제)도, 또한 거기에서 생겨나오는 것입니다.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위에 있습니다. 

 


祈願文第一章の最後の節は、こう結んでいます。
기원문 제1장의 최후의 절은,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日日のご指導......ということは、陽が東から昇り、西に沒する、春夏秋冬の轉生輪廻、植物の生態、動物たちの生活......こうした姿というものは、われわれ人間にたいして無言のうちに正法の實態、實相というものを敎えています。人はパンのみにて生まるものに非ず、まず自然の姿、人間の存在というものを靜かにふりかえるときに、そこに、大宇宙大自然の計らいというものを人間は知ることが出來るでしょう。

나날의 지도(指導)......라고 하는 것은, 태양에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춘하추동의 전생윤회, 식물의 생태, 동물들의 생활......이러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 인간에 대해서 무언 중에 정법의 실태, 실상(實相)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우선 자연의 모습, 인간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조용히 뒤돌아볼 때에, 거기에, 대우주대자연의 처분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은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自然の日日の敎えにたいして、われわれ人間は心から感謝の氣持が湧き上がり、その心が第一章の最後の節となるのです。
자연의 하루하루의 가르침에 대해서, 우리들 인간은 진심으로 감사의 심정(마음)이 용솟음치고, 그 마음이 제1장의 최후의 절이 되는 것입니다.

 


第二章は、神の命をうけた上上段階、あるいは上段階・光天使に、光を求め感謝することの祈りです。 
제2장은, 신의 명령을 받은 최상의 단계, 혹은 상단계・빛의 천사에게, 빛을 구하며 감사하는 것의 기도입니다.

 


すなわち、二章の祈願文をあげると次のとおります。
즉, 2장의 기원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天上界の諸如來 諸菩薩(光の天使)
我が心に光をお與え下さい
心が安らぎをお與え下さい
心行を己の糧として日日の生活をします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천상계의 모든 여래 모든 보살(빛의 천사)이시여 
나의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시시오 
심행을 나의 양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합니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諸如來、諸菩薩は、あの世とこの世を善導する光の使者です。
모든 여래, 모든 보살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선도하는 빛의 사자입니다.

 


私たち人間にとて、一番身近に感じ、救いの手をさしのべてくれるのが光の天使です。人間が迷いの淵に立たされとき、決斷を迫られたとき、あるいは病床の中にあって、心を新たたし、反省し、祈るときには、これらの天使がその人の魂、意識に光を投げ與え、その人を救ってくれます。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맨 먼저 신변에 느끼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이 빛의 천사입니다.  인간이 미망(迷妄)의 구렁(헤어나기 어려운 괴로운 처지·심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혹은 결단(決斷)을 재촉당할 때, 혹은 병상 중에 있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반성하고, 기도할 때에는, 이들의 천사가 그 사람의 영혼(魂), 의식(意識)에 빛을 투여해서, 그 사람을 구제해(도와) 줍니다.


 

人は誰しも轉生輪廻の過程のなかで、こうした天使と接觸を持っており、したがって救いはどんな人間にも與えられているのです。 
인간은 누구든지 전생윤회의 과정 속에서, 이러한 천사와 접촉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구원(구제, 도움)은 어떤 인간에게도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緣なき衆生救い難し......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が本當は、緣なき衆生というものは、一人もいないのです。この意味は、今世で救われる者と、そうでない來世、再來世でなければ光のかけ橋にのぼれない人もあるので、今世と限定したときにこうした感慨がでてくるわけです。魂の遍歷というものは外見では決してわか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前世、過去世、あの世の生活、とひと言でいえば簡單ですが、實は、過去世とあの世というものは、人間が想像する以上に、複雜であり、魂によっては今世で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場合もあるのです。
인연 없는 중생은 구제하기 어렵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만, 사실은, 인연 없는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금세(이승. 지금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으면 내세(來世  후생. 사후에 가는 다음 세상), 재래세(再來世 다 다음 세상) 아니면 빛의 가교((假橋)・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에 올라갈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써, 현세로 한정했을 때에 이러한 감개(感慨)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영혼의 편력(遍歷)이라고 하는 것은 외견(외관, 겉보기)만으로는 결코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세, 과거세, 저 세상의 생활, 한마디로 말하면 간단합니다만, 사실은, 과거세와 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복잡하며, 영혼에 따러서는 현세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本來人間はみんな神の子、佛の子ですから、反省するときには光の天使の救いをうけるのです。
러나, 본래 인간은 모두 신의 자녀, 부처의 자녀이기 때문에, 반성할 때에는 빛이 천사(天使)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この意味で、第二章を唱えたときは、上上段階・光の大指導靈の光をはじめ、諸如來、諸菩薩の光が傳わってくるのです。
이 의미에서, 제2장은 소리내어 읽었을(외웠을) 때는, 최상의 단계・빛의 대지도령의 빛을 비롯해서, 모든 여래, 모든 보살의 빛이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諸天善神の加護 

제천선신의 가호


 

第三章は、諸天善神の加護を求める祈りです。
제3장은, 제천선신의 가호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天上界の諸天善神
我が心に光をお與え下さい
心に安らぎをお與え下さい
我が心を正し一切の魔よりお守り下さい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천상계의 제천선신이시여 
나의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나의 마음을 바로잡고 모든 악마(魔 마귀)로부터 지켜 주십시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17년 5월 10일 수요일 밤에 수정합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마음의 선한 사람(→올바른 사람心の正しき者)..올바른선한...으로 오역을 했습니다. 



諸天善神とは、人間の魂を惡魔から守るいわば法の番人です。心が正しく、慈悲と愛の心を失わず、調和の生活を送っている人たちにたいして、これらの天使は、いつでもどこにいても守ってくれます。
제천선신(Cherubim)이란, 인간의 영혼(魂)을 악마(惡魔)로부터 지키는 말하자면 법의 수호자입니다마음이 올바르고,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조화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들의 천사(天使)는, 언제든지 어디에 있을지라도 지켜 줍니다.


 

諸天善神にはどのようなものがあるかといいますと、不動明王、摩利支天、八大龍王、大黑天、稻荷大明神などといったものがあります。
제천선신은 어떠한 것(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동명왕(不動明王), 마리지천(摩利支天), 팔대용왕(八大龍王), 대흑천(大黑天), 도하대명신(稻荷大明神 이나리대명신) 등이라고 하는 것(사람)이 있습니다.


 

不動明王ㅡ 心の正しき者を守護する天使。
부동명왕 ㅡ 마음의 선한 사람(→올바른 사람)을 수호하는 천사.


 

摩利支天ㅡ心の正しき者が誤ちを犯さぬように善導してぐださる天使。
마리지천ㅡ 마음이 선한 사람(→올바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선도하여 주시는 천사.


 

八大龍王ㅡ 心の正しき人を守ると同時に、人間以外の一切の生物を統轄管理し、生物相互の生存に必要な措置を講じてゆく天使。
팔대용왕마음이 선한 사람(→올바른 사람)을 지키는 동시에, 인간 이외의 모든 생물을 모두 거느려 다스리고 관리하고, 생물 상호의 생존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가는 천사.

 


大黑天ㅡ 光の天使を側面から應援する。また心の正しき者への經濟援助と社會の圓滑な運營をはかってゆく天使。
대흑천빛의 천사를 측면에서 응원한다.  또 마음이 선한 사람(→올바른 사람)에게 경제원조와 사회의 원활한 운영을 도모하는 천사.


 

稻荷大明神ㅡ 光の天使の命にもとづき、あらゆる情報を收集し、また正しき者を助けてゆく天使。その方法手段は、ある特定の動物靈を導き神理を敎え、その動物靈を手足のように使う。
이나리대명신(도하대명신) 빛의 천사의 명령에 의거하여,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또 선한 사람(→올바른 사람)을 도와 가는 천사.  그 방법수단은, 어떤 특정한 동물령(動物靈)을 이끌어 신리(神理)를 가르치고, 그 동물령을 수족(手足)처럼 사용한다.



このように、諸天善神は、光の天使の活動がしやすいように、その行動を側面から應援してゆくと同時に、心の正しき者の味方となって、あの世における人間の意識界と、現實の地上界の兩面にわたって、働いている天使たちです。
이와 같이, 제천선신은, 빛의 천사(天使)의 활동을 하기 쉽도록, 그 행동을 측면에서 응원해 가는 동시에, 마음이 선한 사람(→올바른 사람)의 편이 되어, 저 세상에 있어서의 인간의 의식계(意識界)와, 현실의 지상세계(地上界)의 양면에 걸쳐서, 일(활동)하고 있는 천사들입니다.

 


諸天善神は、光の天使になるための修行の場であり、役柄です。しかし、如來菩薩をも救う力が與えられています。

제천선신은, 빛의 천사가 되기 위한 수행의 장이며, 역할입니다그러나, 여래(如來), 보살(菩薩)을 돕는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人間は所詮、神佛にはなれません誤ちを犯し、これをさけれぬのも人間であるとすれば、諸天善神の助けをかり、その救いにたいして、感謝し報恩するのは當然でしょう。

인간은 결국, 신불로는 될 수 없습니다.  잘못(과오)을 저지르고, 이것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인간이라고 하면, 제천선신의 도움을 빌어, 그 도움에 대해서 감사하고 보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守護・指導靈の祈り 

수호・지도령의 기도

 


我が心の中にまします守護・指導靈よ
我が心を正しくお導き下さい
心に安らぎをお與え下さい
日日のご指導 心から感謝します
나의 마음속에 계시는 수호・지도령이시여 
나의 마음을 올바르게 지도해 주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나날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第四章の祈りは、私たちの潛在意識に在る私たちの本體あるいは分身にたいしてです。その本體、分身が、守護靈となり、指導靈となって、現象界に出ているその人の一生を見守り、魂の向上のためにあらゆる努力を拂っています。
제4장의 기도는, 우리들의 잠재의식(潛在意識)에 있는 우리들의 본체(本體) 혹은 분신(分身)에 대해서 입니다.  그 본체(本體), 분신(分身)이, 수호령(守護靈)이 되어, 지도령(指導靈)이 되어, 현상계(現象界)에 나와 있는 그 사람의 일생(一生)을 지켜보고, 영혼(魂)의 향상(向上)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ここで、守護靈、指導靈について若干の說明を加えますと、まず守護靈はその人の魂の兄弟(本體一人、分身五人から成る)の一人が、ほとんど專屬的について守っているです。したがって、ある人の五十年の歷史(想念行爲)を調べようとするならば、その人の守護靈からきけばすすわかります。この場合ききだすこちらの、意識が相手方より低いと、それは不可能になります。あの世の意識界では、自分の意識より下位のものは見えても、上位の者をのぞく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
여기서, 수호령(守護靈), 지도령(指導靈)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더하면, 우선 수호령은 그 사람의 영혼(魂)의 형제(본체 1인, 분신 5인으로 구성된다))의 한 사람이, 대부분 전속적(專屬的)으로 붙어서 지키고 있는 영혼(靈)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50년의 역사(상념행위)를 조사하려고 하면, 그 사람의 수호령에게  들으면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모르는 것을 물어서 알아내는 이쪽의, 의식(意識)이 상대방보다 낮으면, 그것은 불가능(不可能)하게 됩니다.  저 세상의 의식계(意識界)에서는, 자신의 의식(意識)보다 하위(下位)의 것은 보여도, 상위(上位)의 사람을 들여다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指導靈は、主として、その人の職業なり、現象界での目的使命にたいして、その方向を誤らせないよう示唆を與えてくれる魂の友人あるいは先輩です。たとえば、醫者として過去世に經驗のない者が今世で醫者となった場合、その人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より高級な指導靈がついて示唆を與えてくれるのです。 
지도령은, 주로, 그 사람의 직업 같은, 현상계에서 목적 사명에 대해서, 그 방향을 잘못되지 않도록 귀띔(암시)를 해 주는 영혼(魂)의 친구 혹은 선배입니다예를 들면, 의사로서 과거세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지금의 세상에서 의사가 된 경우,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따라서, 보다 고급의 지도령이 붙어서 귀띔(암시)를 해 주는 것입니다.

 


また人によっては、守護靈と指導靈を兼ねてその人を守り、指導している者もいます。
또 인간에 따라서는, 수호령과 지도령을 겸해서 그 사람을 지키고, 지도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ともかくこのように、私たち現象界の人間にとって、いちばん身近にいる魂の兄弟たちに、常に感謝し、「祈り」という調和された想念と行爲を怠らないならば、その人の一生は、眞に、安らぎのあるものとなるでしょう。反對に不調和ですと、守護靈はその人を守ることができず、これが長期にわたると不幸う招くことになります。
어쨌든 이와 같이, 우리들 현상계의 인간에게 있어서, 맨 먼저 신변에  있는 영혼의 형제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기도(祈禱)」라고 하는 조화된 상념과 행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일생은, 참으로, 평안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반대로 부조화(不調和)하면, 수호령은 그 사람을 지킬 수가 없고, 이것이 장기간에 걸치면 불행(不幸)을 불러오게 됩니다.

 




◇自然への感謝 

자연에의 감사


 

これまで述べてきました一章から四章までの祈願文の內容は、宇宙の心と人間の心とを結ぶ祈りです。人間は、心と肉體とから構成されていますが、そのもっとも重要なのは、各人の心です。心が率直に、のびやかに、自由自在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先天的、後天的因果によって、その圓滿さを欠き、性格がいびつになっています。それを修正し、もとのまるい心にするために、四章までの祈り、その祈り心にもとづいた實踐行爲によって、人の心は、次第に修正されてくるのです。
여기까지 서술해 온 1장에서 4장까지의 기원문의 내용은, 우주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연결하는 기도입니다.  인간은, 마음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각자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솔직하게, 구김살없이, 자유자재하지 않으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선천적, 후천적 인과에 의해서, 그 원만함이 없고(부족하고), 성격이 비뚤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수정(修正)하고, 원래의 둥근 마음을 먹기 위해서, 4장까지의 기도, 그 기도하는 마음에 바탕을 둔 실천행위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은, 차츰 수정되어 오는 것입니다.

 


いうならば、四章までの祈りは、天と地をつなぐ光のかけ橋です。
말하자면, 4장까지의 기도는, 하늘과 땅을 잇는 빛의 가교((假橋)・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입니다.

 


第五章は、肉體維持に協力される動、植、鑛物にたいする感謝の祈りです。
제5장은, 육체유지에 협력하는 동, 식, 광물에 대한 감사의 기도입니다.

 


萬生萬物
我が現象界の修行にご協力
心から感謝します
만생만물이여 
나의 현상계의 수행에 협력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私たち人間は、五體という肉體を持っています。肉體のない人間、これはあの世の人であります。あの世の人は、光子體という肉體と異なるボディ―を身にまといますが、この世は、原子細胞からできた肉體という舟に乘って人生航路を舟出しています。舟を浮かべる水、燃料、太陽の光が必要です。この地上は、私たちの肉體保全のために、あらゆる素材を無料で與えてくれています。もしも、この地上に、私たちの生存に必要な食で物、水、太陽の光が與えらていないとするならば、私たちはこの世に出ることも、生きてゆくこともできないはずです。科學の進步によって、太陽光線を人工的に創り出すことが、かりにできたとしても、その素材は大自然から求めてこなければなりません。つまり肉體維持に必要な素材は、すべて、大自然から與え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悟ることです。
우리들 인간은, 오체(몸뚱이)라고 하는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육체가 없는 인간, 이것은 저 세상의 사람입니다.  저 세상의 인간은, 광자체(光子體)라고 하는 육체와 다른 Body(신체.몸)를 몸에 걸치고 있습니다만, 이 세상은, 원자세포(原子細胞)로 만들어진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항로를 출항하고 있습니다배를 뜨게 하는 물, 연료, 태양의 빛이 필요합니다.  이 지상은, 우리들의 육체보전을 위한, 온갖 소재를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이 지상에, 우리들의 생존에 필요한 음식물, 물, 태양의 빛이 주어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 나올 수도, 살아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과학의 진보에 의해서, 태양광선(太陽光線)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가령 가능했다고 해도, 그 소재는 대자연에서 구해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육체유지에 필요한 소재는, 전부, 대자연에서 주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萬生萬物にたいして感謝し、萬生萬物をいつくしむ心、これが五章の祈りです。
만생만물에 대해서 감사하고, 만생만물을 소중히하는 마음, 이것이 5장의 기도입니다.

 





◇先祖にたいする感謝 

상에 대한 감사

 


第六章の祈りは、先祖代代にたいする感謝と供養です。
제6장의 기도는, 조상 대대에 대한 감사와 공양입니다.

 


先祖代代の諸靈
我に修行の體をお與えて下さいまして
心から感謝します
諸靈の冥福を心から供養いたします
선조 대대의 모든 영령이시여
나에게 수행의 몸을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영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공양합니다


 
現在、こうして肉體が與えられ、千年に一度、二千年に一度しか出てこれない現象界に在るというのも、もとをただせば先祖の、たゆまざる調和への努力の結果です。
현재, 이렇게 해서 육체가 주어져, 천년(1000)에 한 번, 2천년(2000)에 한 번 밖에 나올 수 없는 현상계(現象界)에 있다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조상의, 지칠 줄 모르는 조화로의 노력의 결과입니다.

 


したがって、先祖にたいして心から感謝するのは人間として當然の義務です。義務とは供養を意味します。供養とは、調和への行爲です。感謝の心は、調和への行爲となって、はじめて循環され、己も、そして先祖も諸靈も神の光をうけ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따라서, 조상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의무란 공양을 의미합니다.  공양이란, 조화로의 행위입니다.  감사의 마음은, 조화로의 행위가 되어, 비로소 순환되어, 자기도, 그리고 조상의 모든 영령도 신의 빛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この世の人が調和されるとあの世も調和されます。あの世の人はあの世の環境に安住しがちであり、向上は容易でありません。これは自分が住んでいる下位の世界は見ることはできでも、上位の世界をのぞく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そこで先祖の諸靈は、ときおり子孫の家庭を見にきます。そして、家庭內が爭いや不調和に滿ちていますと、地獄靈の場合は、その環境が苦しいために、家族に憑依し、苦しみからのがれようとします。家庭內はいっそう不調和になります。家庭が調和されておれば、おかれていている環境、想念に疑問を持ち反省するようになります。高級靈の場合は、家庭が不調和ですとその家庭を守りたくても守りようがありません。反對に自分より調和されておれば、反省の材料を得て、ますますその家庭內が調和されることになり、さらにその調和が隣人に、職場に、社會に發展すれば、あの世の進化もいっそうテンポを早めることになります。先祖の供養とは、感謝の心が祈りとなり、調和の心が行爲となって、はじめて實を結ぶものです。
이 세상의 사람이 조화되면 저 세상도 조화됩니다.  저 세상의 사람은 저 세상의 환경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고, 향상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하위의 세계는 볼 수는 있어도, 상위의 세계를 엿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모든 영령은, 가끔 자손의 가정(家庭)을 보러 옵니다.  그리고, 가정 안이 싸움이나 부조화로 가득 차 있으면, 지옥령(地獄靈)의 경우는, 그 환경이 괴롭기 때문에, 가족(家族)에게 빙의(憑依)하고, 괴로움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합니다.  가정 안은 더욱 부조화하게 됩니다.  가정이 조화되어 있으면, 놓여져 있는 환경, 상념에 의문을 갖고 반성하게 됩니다 고급령(高級靈)의 경우는, 가정이 부조화하면 그 가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용건이 없습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보다 조화되어 있으면, 반성의 재료를 얻어, 점덤 더 그 가정 안이 조화되어지게 되어, 보다 더 그 조화가 이웃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발전하면, 저 세상의 진화도 더욱 그 템포(속도)를 빨리 하게 됩니다 조상의 공양이란, 감사의 마음이 기도가 되어, 조화의 마음이 행위가 되어, 비로소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神佛との對話へ 

신불과의 대화로


 

祈願文に書かれている第一章から六章までの意味は、これで、一應おわかりいただけたと思います。
기원문에 쓰여져 있는 제1장에서 6장까지의 의미는, 이것으로, 일단 이해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一、祈りというものは、感謝であり、行爲であること。
ㅡ, 기도라고 하는 것은, 감사이며, 행위임.

 


一、祈りというものは、天と地をつなくがけ橋であること。
ㅡ, 기도라고 하는 것은,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假橋)・잔교(棧橋)《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임.

 


一、祈りというものは、神佛との對話であること。
ㅡ, 기도라고 하는 것은, 신불과의 대화임.

 


神佛との對話とは、各人の守護靈・指導靈との對話であり、守護靈・指導靈はあの世の天使の導きをうけており、天使は神の意を體していますので、守護靈・指導靈の導きは、そのまま神の導きであるといっていいのです。
신불과의 대화란, 각자의 수호령・지도령과의 대화이며, 수호령・지도령은 저 세상의 빛의 천사(天使)의 인도(引導) 받고 있고, 천사는 신(神)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으로써, 수호령・지도령의 인도(引導)는, 그대로 신(神)의 인도(引導)라고 말해도 좋은 것입니다.

 


ただいい得ることは、各人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その對話の內容と變わってくるということは否めません。そのため、その每日の生活が、正法に適った反省と努力、忍耐と獻身、人間としての義務を果たしてゆくことが望まれます。そうして、こうした生活の積み重ねが、やがて自分自身の品性を高め、神佛との對話にまで向上してゆくのです。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 그 대화의 내용도 바뀌어 온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그 매일의 생활이, 정법에 들어맞는 반성과 노력, 인내와 헌신,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여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러한 이런 생활의 거듭함이, 이윽고 자기 자신의 품성을 높이고, 신불과의 대화로까지 향상되어 가는 것입니다.

 


祈りについて大事なことは、人間はややもすれば、祈ることによって他力的になってゆくということです。祈りが他力にかわったときは、その祈りは祈りとしての意味をなさなくなってきます。もちろん、祈りは、守護・指導靈の力を借りることには違いありません。しかし正法の祈りは、神の子の自覺にもとづいた祈り心で行爲するというのが、祈りの眞意なのです。他力は行爲を棚上げして、神佛の力にすがってゆくものです。人間凡夫という前提で......。この点をまちがえますと、大變なことになります。
기도에 대해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칫하면, 기도에 의해서 타력적으로 되어 간다고 하는 것입이다.  

기도가 타력으로 바뀌었을 때는, 그 기도는 기도로서의 의미를 형성하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물론, 기도(祈禱)는, 수호・지도령의 힘을 빌리는 것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정법(正法)의 기도는, 신(神)의 자녀의 자각(自覺)에 바탕을 둔 기도하는 마음으로 행위(行爲)를 한다고 하는 것이, 기도의 진의(眞意 참뜻)인 것입니다.  타력은 행위를 보류하고, 신불의 힘에 의지해 가는 것입니다.  인간범부(人間凡夫 : 평범(平凡)한 사람. 번뇌(煩惱)에 얽매어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지 못하는 사람 )라고 하는 전제로......。 이 점을 잘못하면, 큰일납니다.

 


色心不二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物と心も、もとに大宇宙から出發し、この心を起点にして、萬生萬物がてきあがっておりますので、人間の場合、心と肉體とを、すこやかに健全に保つためには、中道という神意にそった生活が必要なのです。
색심불이(色心不二)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物)과 마음(心)도, 다 같이 대우주에서 출발하고, 이 마음을 기점으로 해서, 만생만물이 완성되어 있는 것으로써, 인간의 경우, 마음과 육체를, 튼튼하고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도(中道)라고 하는 신의(神意 신의 뜻)에 따른 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私たちの祈り(行爲)も、色心不二という中道の心にまで高めてゆきたいものです。
우리들의 기도(행위)도, 색심불이라고 하는 중도의 마음에까지 높여 가고 싶은 것입니다.

 


page  205~226 


끝(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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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침을 마칩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第五章 祈禱の意義と祈願文」【天と地のかけ橋】【祈願文】 [祈りは行爲] [諸天善神の加護] [守護指導靈の祈り][自然への感謝][先祖にたいする感謝][神佛との對話へ] page 205~226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1.01.22 



2016년 05월 23일 새벽 3시 30분입니다

색을 일부러 넣었습니다.

오타 및 일부 누락되었던 부분을, 재 번역해서 넣었습니다.


마음의 지침을 번역하기 전인, 2009년 여름에 자살을 하려고, 자동차 안에 밧줄을 넣고 다녔었습니다.

엄청나게 고통이 심해서, 

더 이상 어떠한 방법도 이미 번역해서 읽어보았지만, 길을 못찾고 헤매다

이 마음의 지침을, 번역하고 읽다보니, 병이 나아, 평범한 사람이 되었던 책입니다


기존에 올렸던 내용은, 비공개 처리해야 할지, 약간의 고민입니다.

오타 및 번역상의 약간의 누락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본문의 내용중에, 보충할 것이, 있어서, 인간석가 중에서, 위대한 깨달음, 보리수(피탈리나무) 아래서의

깨달음에 관한, 그다지 길지 않은 내용을, 번역 중입니다


청주에서...


참고로, 제천선신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올립니다. (2016년 12월 21일 수요일에)

*** 참고로 2017년 11월 30일에, 올립니다. 아래의 것입니다.



제 블로그의 『가르침의 글』은, 항상 보존될 것입니다. (2017년 11월 30일)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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