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실재와 현상-석존의 불교는 실재주의였다 - 월간지 정법 25・26호 (1980.9월 10월)에서 본문
오늘 소개하는 글은, 작년 2012년에 번역하다 중지했던 글입니다.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제 컴퓨터에 번역해 둔 혹은 방치해 둔, 것들 중에서 찾아내어, 마쳤습니다. 왜냐하면, 번역상에,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방치해 놓았던 것입니다.
저는, 글을 번역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경우에, 절대로 제 블로그에 절대로 올리지 않는, 특이한 사람입니다. 부분 부분에 조금 번역상에 아리송한 부분이 있으시다면, 한 번, 두 번 이상 읽어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특히, 오늘 소개하는 글은, 부부들은, 반드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 있는 가정은, 그 외의 분들도, 역시....
위 사진은, 지금까지 이분의 사이트에서 17편의 글을 소개한 분이, 홈페이지의 사진입니다. 다카하시 신지님과 제일 키가 큰 분이 소노가시라 히로치가님이시고, 나머지 4명은, 아마도 제자분들인 듯 합니다.
実 在 と 現 象
실재와 현상
- 釈尊の仏教は実在主義であった -
- 석존의 불교는 실재주의였다 -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의 수제자이신
소노가시라 히로치가(園頭広周) 선생님의 말씀

鹿児島市の中央を甲突川が流れている。この川のほとりで西郷隆盛、大久保利通の明治の元勲や東郷平八郎、大山巌の日露戦争時の大将等が成長された。小学生の頃、この甲突川のほとりを歩きながら、自分もこのような偉人になりたいという夢を抱いたものである。その頃見た甲突川は、小学生で身体が小さかったから広い川だったと思った。大人になった今見るとほんの小さな川である。
가고시마시의 중앙을 고우츠키가와(甲突川:갑돌천)이 흐르고 있다. 이 강 근처에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오보쿠 도시미치(大久保利通)의 메이지(明治)의 원훈(元勲:큰 공훈)이나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오야마 이와오(大山巌)의 일로전쟁(日露戦争) 당시의 대장 등이 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 고우츠키가와(甲突川:갑돌천) 근처를 걸으면서, 내 자신도 이런 위인이 되고 싶다고 하는 꿈을 품었던 것이다. 이 시절에 본 고우츠키가와(甲突川:갑돌천)은, 초등학교으로 신체가 작았기 때문에 넓은 강이었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 보면 정말로 작은 강이다.
★오쿠보 도시미치 (일본 정치가) [大久保利通, Okubo Toshimichi] 브리태니커
일본의 정치가. 264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무너뜨리고 천황정부를 다시 세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무사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1848년 1월 27일 ~ 1934년 5월 30일)는 일본의 해군 제독이다. 그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순수한 군인 생활로 인생을 마감했다.
★오야마 이와오(大山 巌, おおやま いわお 1842년 10월 10일 ~ 1916년 12월 10일) 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 군인이다. 그는 메이지 유신에 참여하였으며, 러일 전쟁에서 일본 육군을 지휘하였다.
甲突川の川幅は今も昔も変わりはないが、自分が大きくなったので小さく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子供の頃、衣替えの季節になると母が、「またこんなに小さくなって昨年買ったばかりなのにもう今年は着れない」とよくいったものである。小学校を卒業する頃までは私は、シャツや洋服などは年が経つとだんだん小さくなるものだと思っていた。シャツや洋服は小さくなるのではなくて、自分の身体が大きくなったから相対的に着れないように小さくなったのであると、現実を現実として正しく知るまでにはそれ相当の時間が必要であった。
고우츠키가와(甲突川:갑돌천)의 강폭은 지금에나 예나 변함은 없지만, 내 자신이 커졌기 때문에 작게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아이 시절, 철에 따라 (여름과 겨울에 맞추어) 옷을 갈아 입는 계절이 되면 어머니가, 「또 이렇게 작아져서 작년에 산 것인데 이제 올해는 입을 수 없구나」라고 자주 말한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나는, 셔츠나 양복 등은 해가 바뀌면 점점 작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셔츠나 양복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신체가 커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을 수 없게 작아진 것이라고, 현실을 현실로서 올바르게 알기 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それと同じように、最初は大きく感じられていたものが、だんだん小さく見えてくるのはそれだけ自分の心が大きく成長したからである。
그것과 마찬가지로, 최초는 크게 느껴지고 있던 것이, 점점 작게 보여오는 것은 그만큼 내 자신의 마음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初対面の時大きく見えていた人が、何回も逢っているうちに小さく見えてくるという人もあれば、最初は小さく見えていた人が逢うたびに大きく見えてくるという人もある。それはその人の身体の大きさを抜きにしてその人の心の大きさがそう感じさせるのである。
초대면 때 크게 보이고 있던 사람이, 몇 번이나 만나고 있는 동안에 작게 보여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면, 최초는 작게 보이고 있던 사람이 만날때마다 크게 보여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신체의 크기를 빼고 그 사람의 마음의 크기가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私が見習士官で入隊している時に、昭和12年7月7日に支那事変が勃発して、直ちに鹿児島の連隊も北支に出動ということになり、留守部隊を編成するために召集があった。その時私の中隊長になった人は、直木三十五著「南国太平記」の主役、益満休之助の直孫で男爵の益満大尉であった。益満休之助という人は西郷さんの許可を得て明治維新を完成するために江戸の博徒を全部官軍側に味方させるために大活躍した人で、益満大尉「わしの爺さんは家の中でも着物の裾をからげて、手のひらで尻をぴしゃぴしゃ叩きながら歩く人であった」など話していられた。日露戦争後、大山元帥は那須に別荘をつくられてそこで暮らされた。子供の頃、大山元帥の家によく遊びに行ったが大山元帥は無口な人で、時に「おい、うまかか」といわれるだけだった。大山元帥という人は身体はそんなに大きい人ではなかったが、逢えば逢う程、大きく見える人であったということを話されたことがあった。
내가 견습사관으로 입대하고 있을 때에, 소화 12년(1937년) 7월 7일에 니자사변이 발발해서, 즉시 가고시마(鹿児島)의 연대(連隊)도 북지(北支:중국의 북부지방)로 출동하게 되어, 류수부대(留守部隊)를 편성하기 위해서 소집이 있었다. 그 때 나의 중대장이 된 사람은, 나오키 산쥬우고 저서 「남북태평기(南国太平記)」의 주역(主役), 마스미츠 규노우스케(益満休之助)의 직손(直孫)이며 남작(男爵)의 마스미츠대위(益満大尉)였다. 마스미츠 규노우스케(益満休之助)라고 하는 사람은 사이고(西郷)씨의 허가를 받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완성하기 위해서 강호(江戶)의 박도(博徒)를 전부 군관측에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대활약을 한 사람이며, 마스미츠대위(益満大尉) 「내 할아버님은 집안에서도 기모노의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철썩철썩 두드리면서 걷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일로전쟁(日露戦争) 후, 오야마 원수(大山元帥)는, 나스(那須)에 별장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셨다. 어린아이 시절, 오야마 원수(大山元帥)의 집에 자주 놀려 갔는데 오야마 원수는 과묵한 사람으로, 때때로, 「어이、잘 지내는가」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오야마 원수라고 하는 사람은 신체는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니었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크게 보이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다.
★북지사변 [北支事變]
1939년 7월 7일 화베이에서 일어난 제이 차 중일 전쟁을 이르는 말..
雰囲気の力というものがどんなものであるかを知るには、名人名優という人達の舞台を見るとよくわかる。下手な人の芝居や踊りは、舞台の空間が大きく広く見えてその人物は小さく見えるが、名人名優という人は体は小さくても、その人の身体が舞台一杯にひろがって見えるから不思議である。
분위기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데에는, 명인 명배우(名人名優)라고 하는 사람들의 무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서툰 사람이 연극이나 무용은, 무대의 공간이 크고 넓게 보이며 그 인물은 작게 보이지만, 각인각우라고 하는 사람은 몸은 작아도, 그 사람의 신체가 무대를 가득 채워 넓게 보이기 때문에 불가사의하다.
★명인 명배우 수정합니다. 각인각우 라고 오타가 있었습니다.
どんな立派なことをいっていても人物が小さく感じられる人もあるが、そう大きな話もしないのに人物が大きく感じられる人がある。
아무리 뛰어난(훌륭한) 것을 말하고 있어도 인물이 작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큰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크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昭和48年5月であった。高橋信次先生と大阪で一緒になった時、「園頭さん、僕は相手の人が僕にどんな嫌な話をしても、その時は自分の心を宇宙大にするから、相手は僕の手のひらに乗ってしまうから、どんなことを言われても腹が立たないね」と言われた事があった。
소화 48년(1973년) 5월이었다.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高橋信次先生)과 오사카(大阪)로 함께 갔을 때, 「소노가시라씨(園頭さん), 나는 상대방의 나에게 어떤 싫은 말을 해도, 그 때는 내 자신의 마음을 우주대(宇宙大)로 하기 때문에, 상대는 나의 손바닥에 놓여 버리니까, 어떤 것을 말해도 화가 나지 않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あなた方は今までいろいろな人を知りいろいろな話を聞いてこられたに違いない。その時に「自分の意識、心を宇宙大に拡大すれば相手は自分の手のひらに乗って小さく見える」と言うような話をした人が一人でもあったであろうか。誰もいい得なかったようなこういう事を言われたというそのことだけでも驚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皆さんがこれと同じような話を聞かれたとするならば、「西遊記」中で孫悟空が、大空一杯暴れ廻って宇宙の果てまで行ったが気がついてみたら、それはお釈迦さまの手のひらの中を暴れていたのであったという話であると思う。
여러분은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을 알고 여러 가지 말을 들어 오셨음에 틀림없다. 그 때에, 「자신의 의식(意識), 마음을 우주대(宇宙大)로 확대하면 상대는 자신의 손바닥에 놓여 작게 보인다」다고 하는 말을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나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던 이러한 것을 들었다고 하는 그 것만으로도 놀라운 것이다. 여러분이 이것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면,「서유기(西遊記)」중에서 손오공(孫悟空)이, 날뛰며 놀아다니며 우주의 끝까지 갔듯이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부처님(お釈迦さま)의 손바닥 안을 날뛰고 있었던 것이었다고 하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その話を私は聞いた時、「さすがに高橋信次先生はすばらしい、意識を宇宙大に拡大すると相手は手のひらに乗るという心境はどんな心境なのであろうか」と感心したものであった。
그 말을 저는 들었을 때, 「과연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高橋信次先生)은 훌륭하며, 의식을 우주대(宇宙大)로 확대하면 상대는 손바닥에 놓여있다고 하는 심경(心境)은 어떤 심경인 것일까?」라고 감탄했던 것이었다.
この3月のインド仏跡巡拝の目的はもっと心を大きくしたいということであった。禅定を続けながらクシナガラへ行った。釈尊の涅槃像の前で「お釈迦さまはいよいよ亡くなられる時に、一体何を思われたのであろうか」と、お釈迦さまと一つ心になりたいと感じていた時にパッとわかってきたのが相手と対決している時に自分の意識を宇宙大に拡大すという方法であった。高橋信次先生にその話を聞いてからそれが自分のものとなるのに私は7年を要した。「求めよさらば開かれん」であって、何事も得られるには時が必要なのである。今すぐ得られないないからといって、むつかしいと思って捨ててしまったり、また、自分にはとても出来ないと自己限定し自己劣等感に陥って求める心を捨ててしまっ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이 3월의 인도 부처님의 발자취 순례의 목적은 더욱 마음을 크게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선정(禅定)을 계속하면서 쿠시나가라로 갔다. 석존(釈尊)의 열반상(涅槃像) 앞에서「부처님(お釈迦さま)는 정말로 돌아가실 때에,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신 것일까?」라고, 부처님(お釈迦さま)과 일심이 되고싶다고 느꼈을 때에 짠하고 알았던 것이 상대와 대결하고 있을 때에 내 자신의 의식을 우주대(宇宙大)로 확대한다고 하는 방법이었다.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高橋信次先生)에게 그 말을 듣고 나서 그것이 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에 나는 7년이 걸렸다.「구하려고 하면 들어라」이며, 무엇이든 얻는 데에는 때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즉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어렵다고 생각하고 포기(단념)해 버리거나, 또는,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자기를 한정하고 자기 열등감에 빠져 구할 마음을 단념(포기)해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肉体は肉体としてそこにそのまま存在しながら意識は肉体の制約を超えて大きくなると、今までわからなかった世界がわかるようになり腹は一切立たなくなってくるのである。宗教の世界では自然に腹が立たなくなってくるのであるが、道徳の世界では意識を大きくしないままで知性で腹を立てることはいけないと思い、理性で腹を立てそうになる自分を抑制して腹を立てないような振りをするということになるから心の中に大きなストレスをつくってしまう。いわゆる道徳的という正義感の強い人達がよく病気をするのは心の中に抵抗(ストレス)をつくってしまうからである。そこが宗教の世界と道徳の世界の違うところである。
육체는 육체로서 그곳에 그대로 존재하면서 의식은 육체의 제약을 뛰어넘어 커지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어 화는 전혀 나지 않게 되어 오는 것이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자연히 화가 나지 않게 되어 오는 것이지만, 도덕(道德)의 세계에서는 의식을 크게 하지 않은채로 지성(知性)으로 화를 내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여, 이성(理性)으로 화를 내게 되는 자신을 억제하고 화를 내지 않는 척 한다고 하게 되기 때문에 마음속에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 버린다. 온갖 도덕적(道德的)이라고 하는 정의감(正義感)의 강한 사람들이 자주 병에 걸리는 것은 마음속에 저항(스트레스)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교의 세계와 도덕의 세계의 다른 점이다.
1.不幸であるという人達は観念的に夢を追っている
1.불행(不幸)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관념적(観念的)으로 꿈을 쫓고 있다.
夢を追っているということは現実を直視していない即ち観念の遊戯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꿈을 쫓고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지 않은 즉 관념(觀念)의 유희(遊戱)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私が高橋信次先生に帰依して暫くして、今は亡くなった母の叔父の所に行った時のことである。
제가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高橋信次先生)에게 귀의(帰依)하고 맹세하고,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숙모가 계신 곳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お前が生まれた時、お前の父は女と一緒に台湾に逃げようとしていた。お前が生まれても居所がわからなくなりみんなで手分けして探した。台湾行きの船に乗ろうとしている所をわしが見つけて連れて帰って来たのだった」という話をしてくれたことがあった。
「네가 태어났을 때, 네 아버지는 여자와 함께 대만(台湾)으로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다. 네가 태어나도 거처를 알지 못하게 되어 모두 분담해서 찾았다. 대만행(台湾行き)의 배를 타려고 하고 있는 것을 내가 찾아내어 데리고 돌아왔던 것이다」라고 하는 말을 해 주셨던 것이다.
もしその時、父がそのまま台湾へ行ってしまっていたら私は一生私生児として終わ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訳である。そうなっていたら私は幹部候補生試験も受けることは出来ず勿論将校になることも出来ず、私の人生は大きく変わっていた訳である。「もし、そうなっていなかったら」とか、「もし、あゝであったら」とか、想像の世界ではいろいろに想像することが出来るが、それは観念的に単に頭の中で描かれた夢にしか過ぎないのであって現実ではない。私の人生の現実は、その瞬間に父が見つかって鹿児島に連れ戻され、父は私を認知して私は私生児ではなくなって庶子となり、そうして軍隊へ行って将校になることが出来たという事実でしかない。もしもという仮定を許さない現実のみがあったのであり、その現実の中で私は魂を磨いてきたのである。
만약 그 때, 아버지가 그대로 대만(台湾)으로 가 버렸다고 한다면 나는 일생 사생아(私生児)로서 끝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면 나는 간부후보생 시험도 받을 수가 없고 물론 장교가 될 수도 없고, 나의 인생은 크게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어 있었다면」이라든가,「만약, 저렇게 되어 있었다면」이라든가, 상상의 세계에서는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가 있지만, 그것은 관념적(観念的)으로 단지 머리 속으로 그려진 꿈에 지나지 않은 것이며 현실이 아니다. 나의 인생의 현실은, 그 순간에 아버지를 찾아내어 가고시마(鹿児島)로 데려와서, 아버지는 나를 인지하고 나는 사생아(私生児)가 되지 않고 서자(庶子)가 되어, 그리하여 군대로 가서 장교가 될 수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밖에 없다. 만약 이라고 하는 가정(仮定)를 허락하지 않는 현실만이 있었던 것이며, 그 현실 속에서 나는 영혼(魂)을 닦아 왔던 것이다.
不幸になっているという人の心の中には、いつも現実の苦しさから逃げ出そうとする逃避の心がある。
불행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늘 현실의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도피(逃避)의 마음이 있다.
2.千石イエスの女たち
2.센고쿠(千石) 예수의 여자들
国分寺に本拠を置いていたイエスの方舟の集団は行方をくらませて2年振りに熱海で捕まった。7月7日RKB毎日08:30「女達はなぜ千石イエスに・・・・・・」という番組で女達の言い分を聞いていた。夫と子供を捨てた女、家を飛び出した女達は皆「ただ仲良くしたかった」とだけ言っていた。
국분사(国分寺)에 본거지(근거지)를 두고 있던 예수의 방주의 집단은 행방을 감추어 2년만에 아타미(熱海)에서 붙잡혔다. 7월 7일 RKB 매일 08:30「여자들은 왜 센고쿠(千石) 예수에게・・・・・・」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여자들의 불만(言い分:주장)을 듣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를 버린 여자, 집을 뛰쳐 나온 여자들은 모두 「단지 사이 좋게 지내지 못했다」다고만 말하고 있었다.
★イエスの方舟事件( - はこぶねじけん)とは、日本で1979年 - 1980年に発生した信仰集団「イエスの方舟」がマスコミによってバッシングされた事件である
예수의 방주사건이란, 일본에서 1979년 - 1980년에 발생한 신앙집단 「예수의 방주」가 매스컴에 의해서 비판(공격)을 받은 사건.
★イエスの方舟とは、主宰者の千石剛賢(せんごく たけよし、1923年7月12日 - 2001年12月11日)が開催していた聖書勉強会が母体となった集団である
예수의 방주란, 주재자인 센고쿠 다케요시(千石剛賢、1923년 7월12일 - 2001년 12월 11일)이 개최하고 있던 성서공부회가 모체가 된 집단이다. <중략>
俵萌子さんは、「私は女の駆け込み寺みたいな仕事をしている。世の中にはどうしても仲良く出来ない夫婦がいる。そういう人達を保護してその後の生活が出来るように最後まで面倒を見ている。あなた達はそこへ逃げ込んで仲良くしたいというだけでこれから先をどうするかと言う事は全く考えていない。独りよがりであなた達の考え方には社会性がない」と言っていた。
다와라 모에코(俵萌子)씨는,「나는 여자가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피신한 비구니 절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도무지 사이 좋게 지낼 수 없는 부부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 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후까지 볼봐주고 있다. 당신들은 도망쳐 들어가서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고만하며 그리고 나서 다음(장래)는 어떻게 할까라고 하는 것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 독선적이며 당신들의 사고방식에는 사회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全くその通りである。
완전히 그대로이다.
親子の関係、夫婦の関係等一切の人間関係をなくして生きようとすれば生きることだけは出来る。実際に全てを捨てて孤独の生活をしている人もあるであろう。そういう人達はただ単に肉体的に一生を喰って生きればいいという考え方をしているのであって、この人生は魂を磨く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忘れている。また今生での結果が来世に輪廻するのであるから今生で解決できずまた今生で作り出した業は、来世でまた体験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から、今生でのいろいろな問題から逃避してみたって永遠に逃避を続ける訳にはゆかないのであることを考えたら、今生だけのことを考えて自分に都合のいい逃避生活を続けることは出来ないということに気がつ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친자 관계, 부부 관계 등 일체의 인간관계를 없애고 살아가려고 하면 살 수만은 있다. 실제로 모든 것을 버리고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단지 육체적으로 일생을 먹고 살아가면 좋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 인생은 영혼(魂)을 닦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잊고 있다. 또한 금생에서의 결과가 내세에 윤회(輪廻)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또한 금생에서 만들어 낸 업(業)은, 내세에서 또한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금생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에서 도피해 봤자 영원히 도피를 계속할 수는 없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금생만의 것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편리한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3.信仰にも逃避してはならない
3.신앙으로도 도피해서는 안 된다.
現実を改善しようとする努力を放棄して、この人生にあきらめをつけて信仰するというのはそれは逃避である。「あきらめさせる」というという信仰は正しい信仰ではない。多くの信仰者の中には、家庭にいろいろな問題を抱えていても、自分の心を変えようともせず、家庭の人間関係を改善しようともせず、心が苦しければ苦しいほど信仰に夢中になって、信仰という場で心を慰めて一時心を解放するという人達がある。そんな信仰は一生続けてみても問題の解決にはならない。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을 방기(포기)하고, 이 인생을 체념(단념)하고 신앙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도피이다. 「체념하게 한다」고 하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많은 신앙자들 중에는,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를 품고 있어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가정의 인간관계를 개선하려고도 하지 않고, 마음의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신앙에 열중하며, 신앙이라고 하는 장소에서 마음을 달래며 잠시 마음을 해방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신앙은 일생 계속해 봐도 문제의 해결은 안 된다.
家が面白くないから、夫婦の間が面白くないからといって、そこを逃げ出してお互いに似たり寄ったりの境遇に同情しあって仲良くしようというのは人生の厳しさから逃れようとする甘えである。千石イエスという人物は、イエスと名乗っていながら聖書のことはなんにも知ら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が、正法を知らない指導者達は、甘えで求めてくるものを純粋な信仰だと思って受け入れて、結果的には完全な人生の逃避者にしてしまうのである。念仏やお題目を唱えさせる宗教もそうであるし、教祖という個人を崇拝させる宗教もそうである。
집이 즐겁지 않아서, 부부 사이가 즐겁지 않다고 해서, 그곳을 달아나서 서로 그렇고 그런 경우에 동정해서 사이가 좋아지려고 하는 것은 인생의 혹독함에서 달아나려고 하는 어리광이다. 센고쿠(千石) 예수라고 하는 인물은, 예수라고 칭하면서 성서의 내용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는 것이지만, 정법(正法)을 모르는 지도자들은, 안이하게 찾아 오는 것을 순수한 신앙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고,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인생의 도피자(逃避者)로 삼아 버리는 것이다. 염불이나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의 일곱자를 외우게 하는 종교도 그렇고, 교조(教祖)라고 하는 개인을 숭배하게 하는 종교도 그렇다.
4.正法は人生をどのように解決するか
4.정법은 인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お釈迦さまが説かれた八正道こそは、人生の全ての問題を解決する道である。正法によって解決できない問題はない。
부처님(お釈迦さま)이 설법하신 팔정도야말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정법에 의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
ある時、次のような手紙が来た。あなたならこれをどのように解決されるであろうか。
어느 날,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왔다. 당신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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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略、先生に思い切って何度となくご相談したかったのですが、書こうとするとすぐ涙が溢れてしまい、なかなか書けませんでしたが、本日思い切ってペンを取りました次第です。
「전략, 선생님에게 과감히 몇 번이나 상담하고 싶었습니다만, 글로 쓰려고 하니 눈물이 넘쳐흘려 버려, 좀처럼 쓸 수가 없었지만, 오늘 과감히 펜을 잡은 사정입니다.
結婚して24年です。気性の激しい、欲望を充たすためには手段を選ばないそんな主人ですが、反面気の小さな情の厚いところに私はひかれたのかも知れません。結婚して子供を育てるのと、酒を飲んで少ししか給料を入れてくれないそのやりくりに精一杯で、子供を捨てるわけには行かないと意地で頑張ってきました。結婚17年目に○○市に出て家を求め(借金で)ホッとしたところに突然主人が「好きな女がいるからその女に子供を生ませる。その子供は私に育てさせてその女はこの家から働きに出させると言い出しました。びっくりしたのです。中三の娘の高校受験を眼前にして、毎晩のように酒飲みに明け暮れ、深夜主人の友人が送ってくれると、私にその友人と俺の前で関係しろというのです。その友人の人を玄関まで送って部屋に帰るとなぜ関係してこなかったかと怒るのです。そのような日が約3年続きました。その後、主人は飲んで帰ってきては私に浮気しろとせめるのです。そうしているうちに娘の家出です。娘が男と夜逃げしたのです。娘の問題でごたごたしている間はおとなしそうにしていたのがまた突然「若さを保つために若い女がほしい家庭は壊さないから」と言い出したのです。いい年をしていて服装容姿と派手さを加え、まるで不良青年なみでございます。
결혼하고 24년입니다. 기질이 과격하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런 남편입니다만, 반면 잔정이 두터운 것에 저는 반했는지도 모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과, 술을 마시고 조금밖에 급료를 주지 않아서 그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이 고작이어서, 아이(자식)을 버릴 수 없다고 오기로 버티어 왔습니다. 결혼 17년째에 ○○시(○○市)로 나와서 집을 구하고(차금으로) 생생한 판에 돌연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에게 아이를 낳게 하겠다. 그 아이는 나에게 키우게 하고 그 여자는 이 집에서 일을 시키겠다고 말을 꺼냅니다. 깜짝놀랐습니다. 중학교 3년생의 딸의 고등학교 수험을 목전에 두고, 매일 밤 늦게까지 음주로 나날을 보내며, 심야에 남편의 친구가 바래다주면, 저에게 그 친구와 내(남편) 앞에서 관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분을 현관까지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오면 왜 관계하고 오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약 3년 연속이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는 저에게 바람을 피우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있는 사이에 딸의 가출합니다. 딸이 남자와 야반 도주를 한 것입니다. 딸 문제로 어수선하고 있는 동안은 얌전하게(조용히, 점잖게) 그렇게 하고 있던 것이 또 갑자기「젊음을 간직하기 위해서 젊은 여자를 원한다. 가정은 깨뜨리지 않을거니까」라고 말을 꺼낸 것입니다. 지긋한 나이임에도 복장과 용모와 자태(服装容姿)로 화려하게 옷을 입고, 마치 불량청년처럼 하고 있습니다.
ある日突然、ある人妻の人が私に泣いて訴えて来られたのです。「お宅の先生(ご主人は学校の先生である)が、わしは家内と別れるから、あなたはご主人と別れて私と一緒になってくれと泣いて頼まれたのです」と。彼女との関係は去年の夏からこの春まで続きました。やれやれと思っていると今度はPTAのご婦人のお宅に入り浸りの日が訪れたのです。そこはご主人もあり子供さんも3人もあるのですが、主人は学校帰りにその家に寄って日が暗くならないと家に帰って来ないのです。私が苦しい余りに信仰を求めていろいろ会合に出ると、「そこで知り合った男といつでも関係してきていいよ」と言うのです。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유부녀가 저에게 울며 호소하려 오셨던 것입니다. 「댁의 선생(남편분은 학교 선생이다)이, 나는 집사람과 헤어질테니까, 당신은 남편과 헤어지고 나와 결혼해 달라고 울며 부탁했던 것입니다」라고. 그녀와의 관계는 작년 여름에서 올해의 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맙소사하고 생각하고 있자 이번에는 PTA의 부인의 댁에 죽칠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점은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3명이나 있는 것이지만, 남편은 학교를 파하고 그 집에 들려서 해가 져서 어두워지지 않으면 집으로 오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괴로운 나머지 신앙을 찾아서 여러 가지 모임에 나가자, 「그곳에서 알게 된 남자와 언제까지나 관계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私は48才になりましたこんな動物みたいな人と暮らすのはもうご免です。いつまでも主人の犠牲になりたくはありません。どこの学校にいても、女の先生と問題を起こさなければPTAのご夫人と関係が出来て、それがばれてその学校にいられなくなるということの繰り返しで、今は教育委員会で学校には置け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教育主事をしております。まだ40台であったら女一人生きてゆく道を探されると思います。50になったらだめだと思いますので分かれるなら今のうちだと思います。私はどうしたらいいでしょうか教えて下さい。
저는 48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동물과 같은 사람과 생활하는 것은 이젠 싫습니다. 언제까지나 남편의 희생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의 학교에 있어도, 여선생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PTA의 부인과 관계를 만들고, 그것이 탄로나서 그 학교에 근무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의 반복이며, 지금은 교육위원회에서 학교에는 둘 수 없다고 하는 일이 되어 교육 주사(教育主事)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40대였다면 여자 혼자 살아가는 길을 찾게되리라고 생각합니다. 50이 되면 가망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라진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쳐 주십시오.
27日 ○ ○ ○ ○ ○
27일 ○ ○ ○ ○ ○
園頭先生へ
申し添えますが、私は結婚2日目、初夜に主人に性病を移され、それが原因で4回手術をしています。病気も一度ではないのです。
소노가시라 선생님에게
덧붙여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결혼 이틀째, 초야에 남편에게 성병이 전염되어, 그것이 원인으로 네 번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병도 한 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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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聞雑誌等の人生問題担当者や婦人運動家達は、人権じゅうりんも甚だしい、女性侮辱である。即刻離婚して自分ひとりで生きていきなさいと言う指導しかしないであろう。こういう人が家を飛び出して千石イエスの下に走ったとしたら、地獄から逃れたみたいでほっと救われた気持ちになるであろう。しかしそれは逃避であって解決にはなっていない。道徳的という人達は心を考えずにうわべの形だけで解決しようとする。
신문 잡지 등의 인생문제 상담자나 부인 운동가들은, 인권유린도 이만저만이 아니며, 여성 모욕이다. 즉각 이혼해서 자기 혼자서 살아가라고 하는 지도(指導)밖에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집을 뛰쳐 나와서 센고쿠예수(千石イエス) 밑으로 달아났다고 하면, 지옥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안심하고 구원받은 기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피(逃避)이며 해결이 되지 않는다. 도덕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겉만의 모습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正法は心の面から解決してゆくのである。人間は何のためにこの世に生まれて来たのかという人生の原点に立って一切を解決して行くのである。逃避した人の心の中には安らぎはない。たとえどんなに自分を正当化する理由があろうとも、「夫を捨てた」「子供を捨てた」という心の暗さ、悔いは最後まで残る筈である。正法の基準は真の心の安らかさである。一見、表面上はどんなに穏やかに見えていても、心の内面に穏やかでない暗さ、悲しさ、さびしさが潜んでいるとしたらそれは本当の正しい解決ではない。
정법은 마음의 면에서 해결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 온 것인가라고 하는 인생의 원점에 서서 일체를 해결해 가는 것이다. 도피한 사람의마음속에는 평안은 없다. 설사 아무리 자신을 정당화할 이유가 있을지라도, 「남편을 버렸다」「자식을 버렸다」라고 하는 마음의 어두움, 후회는 최후까지 남을 것이다. 정법의 기준은 참된 마음의 평안이다. 언뜻 보기에, 표면상은 아무리 온화(평온, 인품이 조용)하게 보여도, 마음의 내면에 평온(온화)하지 않은 어두움, 슬픔, 쓸쓸함이 잠겨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올바른 해결이 아니다.
では一体、正法ではどんな解決方法を取るのであるかそれを書く前にはっきり言って置きたい事がある。
그럼 도대체, 정법에서는 어떤 해결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 그것을 쓰기 전에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일이 있다.
5.想念は正しく使わないと幸福にならぬ
5.상념은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不幸だという人は想念の正しい使い方がわかっていないのである。誰しもが自分は不幸になりたいと思って生活している人は一人もないのに、むしろ、幸福になりたいと思って生活をしているのに、出てきた結果は不幸という結果であってどうしてこうなったのかわからないという人が一杯いる。そういう人達は想念の正しい使い方を知らなかったのである。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상념의 올바른 사용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나는 불행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온 결과는 불행하다고 하는 결과이며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상념의 올바른 사용방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小学校の先生達は、生徒に作文を書かせるとその家族の状況が実によくわかると言っていられる。次の文もその一例であるがこの作文によって考えてみよう。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작문(글짓기)을 쓰게 하면 그 가족 상황을 실로 잘 알 수 있다고 말하고 계시다. 다음의 문장도 그 일례이지만 이 작문으로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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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のけんかはわからない 小学校4年 ○ ○ ○ ○
부부 싸움은 이해할 수 없다 초등학교 4학년 ○ ○ ○ ○
夕食の時、お父さんがたくあんをつまみました。そうしたら、たくあんが三つつながって上ってきました。
저녁밥을 먹을 때, 아버지가 단무지를 집어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단무지가 셋으로 이어져 올라 왔습니다.
「何だってこんなたくあんの切りようをするんだ」
「왜 이렇게 단무지를 자른 거야?」
「だって、あんなへこんだまな板で切れば、つながるの、当たり前ですよ」
「그렇지만, 저런 우그러진 도마로 자르면, 연결되는 게, 당연하죠」
「そんなまな板捨てて、新しいのを買ったらどうだ」
「그런 도마는 버리고, 새것을 사지 그래!」
そうしたらお母さんが、
「だいたいあなた、いくら給料をもらってくると思っていらっしゃるんですか」と言って、喧嘩になりました。お母さんがとうとう泣き出してしまいました。
「今から15年前のあの柳の木の下で、あなたと逢いさえしなければたくあんが三つ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しかられることもなかったのに」
그랬더니 엄마가,
「도대체 당신, 얼마나 급료를 준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라고 하며, 말다툼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마침내 울기 시작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저 버드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만나지 않았다면 단무지가 셋으로 이어져 있다고 하는 일로 꾸중을 들을 일도 없었을 텐데」
そうしたら、お父さんも
「俺もそうだ」と言いました。
柳の木の下とたくあんと、どういうつながりがあるのか僕にはさっぱり分からないが親のケンカほど分からないものはない」
그랬더니, 아빠도
「나도 그래」라고 말했습니다.
버드나무 아래와 단무지가, 어떻게 이어짐이 있는지 나로서는 확실히 모르지만 부부 싸움정도는 모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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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さんはこの作文を見て何を考えられたであろうか。いろいろな角度からの見方があるであろうが私が言いたいのはこのお母さんのものの考え方の中に架空の夢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その愛が、たくあんが三つ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何でもないことを夫婦喧嘩にまで発展させてしまっているという現実である。
여러분은 이 글짓기를 보고 무엇을 생각하신 것인가요? 여러가지 각도에서의 견해가 있을 테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머니 자체의 사고방식 속에 가공의 꿈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단무지가 셋으로 이어져 있다고 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부부 싸움으로까지 발전시켜 버리고 있다고 하는 현실이다.
この夫婦だって、人並みに仲良く幸福に暮らしたい、夫婦仲良くしたいということは常日頃から思っていられたに違いない。それがどしてこういうことになったのか。
이 부부도, 남과 같이 사이 좋게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부부 사이를 좋게 하고 싶다고 하는 일은 평소부터 생각하고 계심에 틀림없다. 그것이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가?
「まな板を新しいのを買え」と言われたら、「じゃあそうしましょう」と素直に言えば喧嘩にならず、子供達に不安な思いをさせることもなかったのである。
「도마를 새로운 것을 사달라」고 말을 들었으면,「그럼 그렇게 합시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싸움이 되지 않고, 아이들에게 불안한 생각을 하게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どうして素直に「そうしましょう」と言えなかったのか、それは夫に対する潜在的な不満があったからである。その潜在的な不満はどこから生まれて来たのか。それはこのお母さんの現実逃避的な夢からである。
어째서 솔직하게「그렇게 합시다」라고 말하지 않았는지, 그것은 남편에 대한 잠재적인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잠재적인 불만은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그것은 이 어머니의 현실 도피적인 꿈에서이다.
「あの柳の木の下で、あなたと逢ったばかりに・・・・・・」という言葉の裏に隠されている心は何であるかというと、「もし、そういうことがなくて、この夫とでない別な人と結婚していたら・・・・・・」という架空の観念的な夢がある。「もし、別な男の人と結婚していたら」という仮定の上に立ってどんなに幸福な状態を想像してみても、それは全くの夢であってその夢が現実となることは全くないし、そんな夢を追っている限り、夫との現実を失敗である、不幸である、と思う思いだけがつのってゆくことになる。
「저 버드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만났을 뿐인데・・・・・・」라고 하는 말속에 숨어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 하면, 「만약, 그런 일이 없고, 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면・・・・・・」이라고 하는 가공의 관념적인 꿈이 있다. 「만약,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면」이라고 하는 가정 상에 서서 아무리 행복한 상태를 상상해 봐도, 그것은 그야말로 꿈이며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일은 전혀 없고, 그런 꿈을 쫓고 있는 한, 남편과의 현실을 실패이며, 불행하다, 고 생각하는 생각만이 점점 심해지게 된다.
6.プラスの想念とマイナスの想念
6.유익한 상념과 불리한 상념
マイナスの想念というのは、思えば思うほど自分を不幸にする想念であり、プラスの想念とは、思うことによって自分が幸福になる想念である。
불리한 상념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상념이며, 유익한 상념이란,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이 행복해지는 상념이다.
心のエネルギーは誰でも同じように与えられている。それを幸福になるプラスの方向に働かせるか、不幸になるようにマイナスの方向に働かせるかを決定するのは自分である。
마음의 에너지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주어져 있다. 그것을 행복하게 되는 유익한 방향으로 움직일지, 불행해지도록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砂漠の砂地にはまり込んだ自動車は、いくらエンジンをかけても車輪は空転するだけで益々深みにはまってゆくだけである。そこから抜け出そうと思っていくらエンジンをかけても無駄なことである。
사막의 모래땅에 빠진 자동차는,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차바퀴는 공전할뿐 점점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생각해서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소용없는 것이다.
我々が心を働かせるならば、少しでも自分の人生がプラスになるように働かせなければ損である。思ってもどうにもならないことを、思えば何とかなるように錯覚して一生懸命に思ってみてもどうにもならないことはどうにもならないのである。ところが現実を直視して勇気を持って現実を改善しようとせず、心の中で逃避して観念的な夢を追う人は心のエネルギーを空転させて現実を益々不幸にしてしまうのである。
우리들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적어도 자신의 인생이 유익하도록 움직이지 않으면 손해이다. 생각해도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을(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뭔가 될 듯이 착각하며 열심히 생각해 보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를 가지고 현실을 개선(改善)하려고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도피해서 관념적인 꿈을 쫓는 사람은 마음의 에너지를 공전시켜 현실을 점점 더 불행하게 해 버리는 것이다.
例えば
예를 들면,
* 女に生まれて損をした、男に生まれればよかった。
* 여자로 태어나서 손해를 봤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 もっと美人(美男子)に生まれればよかった。
* 조금 더 미인(미남)으로 태어나면 좋았을 것을.
* もっと金持ちの家に生まれればよかった。
* 조금 더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 もっと背が高く生まれればよかった。
* 조금 더 키가 크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 もっと頭がよければよかった。
*조금 더 머리가 좋았으면 좋았을 것을.
* もっと別な女(男)の人と結婚すればよかった。
* 조금 더 다른 여자(남자)와 결혼하면 좋았을 것을.
等々考えていくら心のエネルギーを使ってみても現実はどうとも変えることは出来ないし、思えば思うほど不幸だという感情が強くなってゆくだけである。
등등 생각하며 아무리 마음의 에너지를 써 보아도 현실은 아무리 해도 바꿀 수는 없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불행하다고 하는 감정이 강해져 갈 뿐이다.
女の人が「男に生まれればよかった」といくら思ったからといっても女の人が男になることは絶対にできないし、この夫(妻)とでなく別な人と結婚していたらと心の中でいくら考えて架空の幸福な夢を描いてみたって、目の前にいるのは現実に結婚した夫(妻)でしかない。
여자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아무리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여자가 남자가 될 수는 절대로 없고, 이 남편(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이라고 아무리 마음속으로 생각해서 가공의 행복한 꿈을 그려보아도, 눈앞에 있는 것은 현실에 결혼한 남편(아내)밖에 없다.
私がかつて夫婦が不調和であった時がやはり、私は心の中で妻以外の女性を心の中で描いていたのであった。それは現実逃避であることに気づいて、頭がどうであろうと、家柄がどうであろうと、育ちがどうであろうと、そういう現象的なことにとらわれてはならない。愛とは心と心、魂と魂との一体感である。魂だけが実在であるということに気づいて、その実在である魂と、その魂の乗りものとして現象的に現われている現実の妻の全てを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ことに気づいて、心の中の観念的な架空の夢をなくした時に夫婦が調和したのであった。そうした現実の努力の上に魂は磨かれ成長して大きく豊かになってゆくのである。観念的な現実に即した行為を伴わない夢は心のエネルギーの無駄使いであって、その架空の想像の夢がどんなに壮大であっても、その夢によって魂が大きく成長することはないのである。
제가 전에 부부가 부조화했을 때가 역시, 저는 마음속으로 아내 이외의 여성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도피인 것을 깨닫고, 머리가 어떻든, 집안(가문家柄)이 어떻든, 성장과정이 어떻든, 그러한 현상적인 것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사랑이란 마음과 마음, 영혼(魂)과 영혼(魂)의 일체감(一体感)이다. 영혼(魂)만이 실재이다 라는 것을 알아차리고(깨닫고), 그 실재인 영혼(魂)과, 그 영혼(魂)의 탈것으로서 현상적(現象的)으로 나타나 있는 현실의 아내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깨닫고, 마음속의 관념적(観念的)인 가공의 꿈을 꾸지 않았을 때에 부부가 조화(調和)했던 것이었다. 그러한 현실의 노력 위에 영혼(魂)은 닦이며 성장해서 크고 풍요롭게(관대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 관념적인 현실에 입각한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꿈은 마음의 에너지의 쓸데없는 쓰임이며, 그 가공의 상상의 꿈이 아무리 장대(壮大)하다고 해도, 그 꿈에 의해서 영혼(魂)이 크게 성장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大いなる夢を描け」と言っている宗教家があるが、現実とはならない観念的な夢を描かせることは人々の心のエネルギーを浪費させることになる。
「큰 포부를 가져라(大いなる夢を描け)」라고 말하고 있는 종교가(宗教家)가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관념적인 포부(꿈)을 갖게 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에너지를 낭비시키게 된다.
あなたが幸福になるためには、現実逃避の心をなくして現実生活の上に調和を実現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현실도피의 마음을 없애고 현실생활 상에 조화(調和)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7.日本人の心理的特性
7.일본인의 심리적 특성
釈尊は「諸行無常」と「煩悩に執着してはならない」ことを説かれた。形に現われている現象はまさしく無常である。片時として一定の姿をとどめることはない。自分のものだと思っている肉体もやがて朽ち果てて灰となる。日本人はこの「諸行無常」という言葉から「この世ははかないものである」という、悲しい淋しい感情を生み出してしまった。そういう考え方をしてしまったのは般若心経の中にある「色即是空 空即是色」の空を一切は空に帰する、なくなるのであると解釈してしまったことによる。もっとも空を無に帰することであると最初に解釈したのは竜樹菩薩であった。この竜樹菩薩の誤った解釈が日本に伝わってきて日本人の「はかない」という感情を作り出した。桜の花を見て「美しい」と思う人よりも「やがて散りゆくはかなきもの」と感ずる人の方が奥床しく上品な高等な文化人であるというような風潮を作り出した。
석존(釈尊)은「제행무상(諸行無常)」과 「번뇌(煩悩)에 집착(執着)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설법했다. 형태로 나타나 있는 현상(現象)은 확실히 무상(無常)하다. 한시도 일정한 모습(姿 실상)을 유지하는(とどめる) 것은 없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육체도 이윽고 허무하게 죽고(썩어 버리고) 재(灰)가 된다(自分のものだと思っている肉体もやがて朽ち果てて灰となる). 일본인은 이「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하는 말에서「이 세상은 허무한 것이다(この世ははかないものである)」라고 하는, 슬프고 쓸쓸한 감정을 낳아 버렸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해 버린 것은 반야심경(般若心経)의 중에 있는 「색즉시공(色即是空) 공즉시색(空即是色)」의 공(空)을 모든 것은 공(空:빔, 아무것도 없음)으로 돌아간다(一切は空に帰する), 없어지는(なくなる) 것이다 라고 해석(解釈)해 버린 것에 의한다. 더욱이 공(空)을 무(無:없음)으로 돌아가는(帰する) 것이다 라고 최초에 해석한 것은 용수보살(竜樹菩薩)이었다. 이 용수보살(竜樹菩薩)의 잘못된 해석이 일본으로 전래되어 와서 일본인의「허무하다(はかない)」고 하는 감정(感情)을 만들어 내었다. 벗꽃을 보고「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도「머지않아 꽃이 지는 허무한 것(散りゆくはかなきもの)」이라고 느끼는 사람 쪽이 우아하고(奥床しく) 품위가 있는(上品な) 고등한(高等)한 문화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풍조(風潮)를 만들어 내었다.
中国から伝わってきた仏教は無霊魂論、一切は空に帰するというのであったから、日本仏教はこの世限りの生命と見て霊魂は永遠に存在することを認めなかった。
중국에서 전해 온 불교는 무영혼론(無霊魂論)、일체는 공(空:빔, 아무것도 없음)으로 돌아간다(帰する)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 불교는 이 세상에 한정된 생명이라고 보고 영혼(霊魂)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例えば茶道の心得として使われる「一期一会」という言葉がある。
예를들면 다도(茶道)의 심득으로서 사용되는 「일기일회(一期一会)」라고 하는 말이 잇다.
「人生は無常である。今日は主人となり客となって茶の手前を楽しむことが出来ても、この茶会が終わって別れると、明日はどちらかが死ぬとも限らない生命であるこの茶会がお互いにこれっきりの機会であるかも知れない。今生でたった一回きりのこの機会を大事に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思いを持って、主人はお客の後ろ姿が見えなくなるまでこの機会を持つことが出来たことを感謝するというのが「一期一会」の心得であるとされている。
「인생은 무상(無常)하다. 오늘은 주인이 되고 객이 되어 차(茶)의 테마에(手前:다도(茶道)의 예법·법도)를 즐길 수가 있어도, 이 다회(茶会:차를 마시는 모임)이 끝나고 헤어지면, 내일은 어느 누군가가 죽을지라도 한이 없는 생명인 이 다회(茶会:다화회)가 서로 서로에게 이것뿐인 기회일지도 모른다. 금생(今生)에서 단 한 번뿐인 이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주인은 손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을 감사한다고 하는 것이 「일기일회(一期一会)」의 심득이라고 하시고 있다.
ここにも人生のはかなさを泌々と心の奥で味わうという、はかなさを楽しむ心がある。外国人にない日本人だけの心理的な特性である所の悲しさを悲しむ、寂しさを寂しがる、はかなさをはかなむという感情は「諸行無常」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ある。この「諸行無常」はまた「あきらめ」の感情を生み出した。
여기에도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마음속으로 음미한다고 하는, 허무함을 즐기는 마음이 있다. 외국인에게 없는 일본인만의 심리적인 특성인 바인 슬픔을 슬퍼하고, 외로움을 울적해하는(寂しさを寂しがる), 허무함을 비관(悲觀)한고 하는 감정(感情)은「제행무상(諸行無常)」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행무상(諸行無常)」은 또「체념(あきらめ 단념)」의 감정을 낳았다.
「あきらめ」の感情の中にあるものは、人間の運命は既に生まれてくる前に決められているのであって(こういう考え方を宿命論という)、どんなに努力してもどうにもなるものでもない。それはもはや忍従して諦めて従うより外はないという、人生を改善しようという努力を完全に放棄した無気力な姿勢である。このような心を生み出したのが武士による士農工商の封建支配体制であった。こうした「はかなさ」と「あきらめ」の上に生まれて来たのが法然、親鸞上人の念仏信仰であったが念仏信仰がまた「はかなさ」と「あきらめ」を増幅してしまって現在に至っている。景気のいい時には威勢の良かった人が、ひとたび挫折すると、とたんに意気阻喪(そそう)して自殺すというのも「あきらめ」の感情からである。そこには、運命は人間がどんなに努力してもどうにもならないものだという考えがある。もっともこの「あきらめ」の感情は、いつどこで戦いが始まって討死するかも知れないという鎌倉時代以後の武家政治によっても培われた。武士は一歩家を出ると夕方には死骸になって帰るかも知れないという、とにかく毎日毎日が死を予期し覚悟することなしには生きられなかった社会体制もまた「あきらめ」の感情を生み出した。
「체념(あきらめ단념)」의 감정 속에 있는 것은, 인간의 운명(運命)은 이미 태어나오기 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며((이러한 사고방식을 숙명론(宿命論)이라고 한다))、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해도 되는 것도 없다. 그것은 이제는 인종(忍従)하고 체념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인생을 개선(改善)하려고 하는 노력을 완전히 방기(放棄)한 무기력한 자세(姿勢)이다. 이와 같은 마음을 낳은 것이 무사(武士)에 의한 사농공상의 봉건지배 체제였다. 이러한「허무함(はかなさ)」과「체념(あきらめ단념)」의 위에 태어난 것이 호우넹(法然 법연)、신란상인(親鸞上人)의 염불신앙(念仏信仰)이었는데 신앙이 또한「허무함(はかなさ)」과「체념(あきらめ단념)」을 증폭해 버리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에는 위세(威勢)가 좋던 사람이, 일단 좌절(挫折)하면, 그만 의기(意気)가 소침(阻喪)해서 자살(自殺)한다고 하는 것도「허무함(あきらめ)」의 감정때문이다. 거기에는, 운명(運命)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하는 생각이 있다. 더욱이 이「허무함(あきらめ)」의 감정은, 언제 어디서 전쟁이 시작되어 전사(討死)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이후의 무가 정권에 의한 정치(武家政治)에 의해서도 배양되었다. 무사(武士)는 한 발 집을 나서면 저녁에는 사해(死骸:시체)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하는, 어쨓든 매일매일이 죽음을 예기하고 각오하는 일이 없어서는 살 수 없었던 사회체제도 역시「허무함(あきらめ)」의 감정을 낳았다.
しかし、現在はもう封建的な武家政治時代ではない。一つの時代の中で、その時代に適応する為につくり出された信仰や道徳は、時代が変わったら変わることが当然なのであるが、現在の日本人の心情の中には、未だに封建時代につくられた信仰や道徳が流れている。
하지만, 현재는 이미 봉건적인 무가 정권에 의한 정치 시대가 아니다. 한 시대 속에서, 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신앙이나 도덕(道德)은, 시대가 변하면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현재의 일본인의 마음의 심정(心情) 속에는, 아직도 봉건시대에 만들어진 신앙이나 도덕이 흐르고 있다.
親不孝の息子が出来ると、どうしてそうなったのか原因も知ろうともしなければ、何とか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ことはあっても、現実にはこれが運命だと諦めて何もしようとしない親。
불효한 자식이 태어나면(아들이 생기면息子が出来る)면,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원인도 알려고 하지 않으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은 있어도, 현실에는 이것이 운명(運命)이다 라고 체념(단념諦めて)해서 무엇도 하려고 하지 않는 부모(親).
嫁と姑との不調和があると、これも運命だと諦めて、身体は息子夫婦と一緒に暮らしていても、心の世界で逃避して、心の中で自分だけの世界をこしらえて、そこに逃げ込んで孤独を楽しんでいる悲しい年寄り。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부조화가 있으면, 이것도 운명(運命)이다 라고 체념하고, 신체는 자식 부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어도, 마음의 세계로 도피(逃避)해서, 마음속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며, 그곳으로 도망쳐 들어가서 고독을 즐기고 있는 슬픈 노인.
不貞の夫に諦めて忍従している悲しい妻。
부정한 남편에게 체념하며 인종(忍従)하고 있는 슬픈 아내.
★인종[忍從] : "사람이 무엇에 묵묵히 참고 따름"이라는 뜻.
<예문>
그녀는 가혹한 시집살이를 인종(忍從)과 인내로 견뎌 왔다.
나는 인종(忍從)만을 강요하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더이상 견딜 수 없다.
「後生の一大事を願え」という浄土真宗はみ仏の名において苦しみを強制し、現実改善への努力を失わしめてしまった。
「후생(내세)의 중대사를 간절히 바래라」라고 하는 정토진종(浄土真宗)은 견불(見佛 み仏)의 미명하게 괴로움을 강제(強制)하고, 현실 개선으로의 노력을 잃어 버리게 해 버리고 말았다.
★견불 [見佛] み仏 <국어사전>
삼매에 들어 법신, 보신, 응신 등의 불신을 봄, 자기 내부에 본래 갖추어 있는 불성을 보아 진리를 깨닫다
「あきらめ」は信仰の救いとは全く正反対の心情である。東西本願寺の坊さん達が説いていることは一時の気休めであって信仰による救いではない。日本人の心の中に流れている所の武家政治と諸行無常感によってつくり上げられた「はかなさ」「あきらめ」の感情が正しく整理されない間は日本人は正しい信仰を持つことは出来ない。
「허무함(あきらめ)」은 신앙의 구제(救い)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심정(心情)이다. 동서 본원사(東西本願寺)의 스님들이 설법하고 있는 것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힘(잠시의 위안의 말)이며 신앙에 의한 구제(救い)가 아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 무가 정권에 의한 정치(武家政治)와 제행무상감(諸行無常感)에 의해서 만들어 낸(날조한)「허무함(はかなさ)」「체념(あきらめ단념)」의 감정이 올바르게 정리(整理)되지 않는 동안은 일본인은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는 없다.
★東西本願寺(동서 본원사) <일본어 야후>
히가시 본원사(東本願寺)(진종대곡파(真宗大谷派))、니시 본원사(西本願寺)((정토진종 본원사 파(浄土真宗本願寺 派))
これはまた生長の家の信仰では「現実を見ず実相を見よ」という教えにも現れている。私が生長の家の本部講師をしている時、色々な改善意見を出した。現実に改善しなければならない問題が一杯あるのに、「園頭先生、あなたは現象を見るからいけない。実相を見なさい。生長の家は実相を見る教えである」といって現実の間違いを改革し改善しようとすることは悪いことであるという結論になってしまっていた。だから生長の家の中には累積された色々な問題が一杯あるはずである。
이것은 세이쵸우노이에(生長の家, Seicho-no-Ie)의 신앙에서는 「현실을 보지 않는 실상(実相)을 보라」라고 하는 가르침에도 나타나 있다. 제가 세이쵸우노이에(生長の家)의 본부 강사를 하고 있을 때, 여러 가지 개선 의견을 제시했다. 현실에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노가시라(園頭) 선생, 당신은 현상(現象)을 보기 때문에 안 된다. 실상(実相)을 보십시오. 세이쵸우노이에(生長の家)는 실상(実相)을 보는 가르침이다」라고 하며 현실의 잘못을 개혁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것은 나쁜 일(悪いこと)이라고 하는 결론이 되어 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세이쵸우노이에(生長の家)의 안에는 누적(累積)된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있는 것이다.
★현상[現象] 사물이나 어떤 작용이 드러나는 바깥 모양새.
※현상 现象 [xiànxiàng] 현상, 관찰할 수 있는 사물의 현상.
★실상[實相] 실제의 모양이나 상태.
※실상 实相 [shíxiàng] 실상, 실태, 진면모
8.諸行無常だから「ありがたい」
8.제행무상하니까 「고맙습니다」
諸行無常を「はかない」と考えて「あきらめ」ているのは、本当の諸行無常の意味が解っていないからである。諸行無常ということは「因縁所生」「因縁生起」と併せて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結果として現れてくるのは、原因があるからであるというのが因縁の法則である。
제행무상(諸行無常)을 「허무하다(はかない덧없다)」고 생각하여「체념(あきらめ단념)」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의미(意味)을 깨닫고(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행무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소생(因縁所生)」「인연생기(因縁生起)」와 병행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과로서 나타나오는 것은, "원인(原因)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이 인연(因縁)의 법칙(法則)이다.
幸福という結果が現われてくるのは幸福になる心の原因があったからであり、不幸という結果が現われてくるのは不幸になるような心の原因があった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から、幸福である人は、益々幸福になるような心の持ち方をすればいいし、不幸である人は、不幸になるような心の持ち方をやめて、幸福になる心の持ち方をすればよいのである。
행복이라고 하는 결과가 나타나오는 것은 행복하게 되는 마음의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며, 불행이라고 하는 결과가 나타나오는 것은 불행하게 되는 마음의 원인이 있었다고 하는 것인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점점 더 행복하게 되는 마음의 마음가짐을 하면 좋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게 되는 마음의 마음가짐을 멈추고, 행복하게 되는 마음의 마음가짐을 하면 좋은 것이다.
この世界は変化無常であるから楽しいのである。不幸だという人は心の持ち方によって自分の運命を幸福につくりかえることが出来るというのであるから、不幸だという人は何も自分の運命をはかなんで悲しく諦める必要はないのである。「よーし」と心を定めて、幸福になるように自分の運命を変える努力をすればよいのである。
이 세계는 변화하며 무상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마음의 마음가짐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運命)을 새로 만들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슬퍼하고 체념(단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좋아(よーし)」라고 마음을 정하고, 행복하게 되도록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노력을 하면 좋은 것이다.
この世が変化無常でなくて、生まれてきたら、もはや一生背負ってきた運命は変えることは出来ない宿命の世界であったら、努力とか精進とか、ということはもはや何の価値も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これほど味気ない人生はないことになる。世の中の進歩向上ということもないことになる。
이 세상이 변화 무상하지 않고, 태어난다면, 이미 일생 짊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는 숙명(宿命)의 세계라고 한다면, 노력이라든가 정진(精進)이라든가, 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아무런 가치(價値)도 없다고 하게 되어, 이토록 무미(따분)한 인생은 없게 된다. 세상의 진보 향상이라고 하는 것도 없게 된다.
私が信仰を求めてお寺の門を潜った時、坊さんは念仏を唱えながら「この世は無常なものだ、あきらめて念仏を唱えれば救われる」と言われた。私は人一倍向上心が強かったから何時の場合でも現状に満足できなかった。環境も変えることも望んだが自分の人格、人間性を向上しようという努力もした。
제가 신앙을 찾아서 절(お寺)의 문에 숨어들었을 때, 스님은 염불을 외무면서, 「이 세상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단념하고 염불을 외우면 구제(구원)된다」고 말했다. 저는 유별나게 향상심(向上心)이 강했기 때문에 언제의 경우라도 현상태(現状)에 만족할 수 없었다. 환경도 바뀌는 것도 바랬지만 저의 인격, 인간성을 향상하려고 하는 노력도 했다.
諸行無常だからこそ運命は変えられるのである。諸行無常で次々と心の通りに変ってゆく世界であるからこの世は楽しくありがたいのである。
제행무상이기 때문이야말로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제행무상하여 잇달아 마음대로 변해 가는 세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즐겁고 고마운 것이다.
この地球と、この地上界につくられた物質は、人間が魂を磨くための素材としてつくられたのであって、我々は地球というこの環境の上に、心を表現する素材としてつくられた肉体と物質を材料として、如何にして人間は神の子であるという真実を表現してゆくか、その表現の仕方の如何によって魂は大きく成長してゆくのであるから、そこに我々の精進の道があるのである。
이 지구와, 이 지상계에 만들어진 물질은, 인간이 영혼(魂)을 닦기 위한 소재로서 만들어진 것이며, 우리들은 지구라고 하는 이 환경 위에, 마음을 표현하는 소재로서 만들어진 육체와 물질을 재료로 해서, 어떻게 해서 인간은 신의 자녀(神の子)이다라고 하는 진실을 표현해 가는지, 그 표현의 방법이 여하에 따라서 영혼(魂)은 크게 성장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곳에 우리들의 정진(精進)의 길이 있는 것이다.
八正道の中の、正しく語るということも、正しく仕事をする、正しく生活する、正しく精進する、正しく念ずるということも、全て我々の日常生活を正しくせよという教えであって、日常生活から遊離した観念の世界で空想の夢を見よということはどこにも言ってはいられないのである。
팔정도 중의, 올바르게 말한다고 하는 것도, 올바르게 일을 한다, 올바르게 생활한다, 올바르게 정진한다, 올바르게 염원한다고 하는 것도, 전부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올바르게 하라고 하는 가르침이며, 일상생활에서 유리(遊離)한 관념의 세계에서 공상(空想)의 꿈을 꾸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도 말하며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お釈迦さまが説かれたのはこの肉体を持った諸行無常の世界の中で、如何に自分の魂を表現して自分の魂を大きく豊かにしてゆくかという道なのであって現実逃避の教えではないのである。
부처님(お釈迦さま)이 설법한 것은 이 육체를 가진 제행무상(諸行無常)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영혼(魂)을 표현하고 자신의 영혼(魂) 크고 풍요(관대)하게 해 가는가 하는 길(道)인 것이며 현실 도피(現実逃避)의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9.肉体は魂を磨く道具である
9.육체는 영혼(魂)을 닦는 도구이다.
色々な道具にはそれぞれ持ち主がいる。肉体は自分の持ち物であって肉体が自分ではない。真の自分とは肉体を動かしている自分の魂である。日本仏教が「あきらめ」の無常感を説いてきたのはこの肉体を人間だと思う錯覚から生まれて来たものである。
여러 가지 도구에는 저마다의 소유자(持ち主)가 있다. 육체는 자신의 소지품이며 육체가 자신이 아니다. 참된 자기 자신이란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영혼(魂)이다. 일본 불교가 「체념(あきらめ단념)」의 무상감(無常感)을 설법해 온 것은 이 육체를 인간(人間)이다 라고 생각하는 착각(錯覚)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蓮如上人の「あしたには紅顔ありてゆうべには白骨となれる身なり、あわれというもなかなかおろかなり」という白骨のご文章は、もっとも日本人の無常感を端的に現わしている。灰になってお終いになるのは肉体という物質であって人間そのものではない。
렌노상인(蓮如上人:무로마치시대의 정토진종의 스님.1415년 4월 13일 - 1499년 5월14일)의 「내일에는 홍안(紅顔)이며 어젯밤에는 백골이 될 몸이며, 불쌍하다고 해도 상당히 어리석다」라고 하는 백골(白骨)의 이 문장은, 가장 일본인의 무상감(無常感)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재가 되어 죽는 것은 육체라고 하는 물질이며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この人生は、肉体という道具を使って如何にして魂を磨くかという一つの舞台である。一つの舞台での表現が終われば、また次の舞台に登場して魂の表現をするのである。
이 인생은, 육체라고 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어떻게 해서 영혼(魂)을 닦는가 하는 하나의 무대이다. 하나의 무대이기 때문에 표현이 끝나면, 또 다음 무대로 등장해서 영혼(魂)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心の広く大きな人は、舞台全体を自分の魂の表現の場として舞台全体に広く大きく表現するが、心の狭い小さい人は、広い舞台の上の片隅で小さくしか自分を表現しない。
마음의 넓고 큰 사람은, 무대 전체를 자신의 영혼(魂)의 표현의 장으로 해서 무대 전체에 넓고 크게 표현하지만, 마음의 좁은 작은 사람은, 넓은 무대 위의 한구석에서 조금밖에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
その人の性格、ものの考え方は、その人の心の大小の現れである。地球のどこかで悩み苦しむ人があったら、その人の悩み苦しみを自分の悩み苦しみとして感ずることが出来るという人は、全人類と自分とは一体だという大きな愛の心を持っている人であり、隣の人が悩み苦しんでいても何とも思わないという人は狭い心の持ち主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그 사람의 성격, 자체의 사고방식은, 그 사람의 마음의 대소(大小)의 표현이다. 지구의 어딘가에서 번민(悩み苦し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번민(悩み苦しみ)을 자신의 번민(悩み苦しみ)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전인류와 자신과는 일체(한몸)이다 라고 하는 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이웃의 번민하고 있어도 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좁은 마음의 소유자(持ち主)라고 하는 것이다.
心の広い人は、時間の流れに随(したが)って昔から現在へと歴史的なものの見方、考え方をするが、心の狭い人は、歴史的なものの見方、考え方が出来ない。目先のことしか考える力がない。憑依された人も歴史的な見方、考え方が出来ない。初めと、中頃と、終わりと、言う事が違うという教祖は歴史的な見方、考え方の出来ない心の小さな人であるか、または憑依された人である。そういう人の言っていることは、今言っていることがこの次には簡単にどう変わるか分からないから非常に危険である。
마음의 넓은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옛날부터 현재로의 역사적인 자체의 견해, 사고방식을 하지만, 마음의 좁은 사람은, 역사적인 자체의 견해, 사공방식을 할 수 없다. 눈앞의 일밖에 생각하는 힘이 없다. 빙의(憑依)된 사람도 역사적인 견해, 사고방식을 할 수 없다. 처음과, 중간(쯤)과, 끝과, 말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는 교조(敎祖)는 역사적인 견해, 사고방식을 할 수 없는 마음의 작은 사람이든가, 혹은 빙의(憑依)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의 말하고 있는 것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이 다음에는 간단히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危険)하다.
神理は永遠不滅なのであるから、教義がくるくる変わるという宗教ははっきり言ってニセモノである。
신리(神理)는 영원불멸한 것이기 때문에, 교의(教義)가 뱅글뱅글 바뀐다고 하는 종교(宗教)는 분명히 말해서 가짜(ニセモノ)이다.
10.ある教師夫人の手紙
10.어느 교사 부인의 편지
「4.正法は人生をどのように解決するか」の所で「正法は一体これをどう指導するのか」ということである教師夫人の手紙を載せておいた。異常な現象があるとすぐ憑依霊のせいではと考える人達がある。そういう人達はすぐ「憑依霊を取除けばよくなる」と考える。しかし憑依霊だけを取除いてもよくならないのである。憑依霊を取除いてもその人の心が治らない限りまた憑依霊は憑いてしまうからである。憑依霊を取るという方法は根本的な解決にはならないので、憑依霊を呼び込んでしまったその原因である心を治さないと根本的によくなるということにはならないのである。だから私はその心をどうしたら治せるか、心をどうしたらよくする事が出来るかということに指導の重点を置いているのである。しかし、憑依霊を取るという事をする事もある。それはあくまでも一時の方便である。憑依霊のために心身ともに苦しめられている人は、その苦しみのために冷静に正しく物を考える力がない。そういう人にいくら正法の話をしてみても絶対に耳に入らない。そういう場合に憑依霊を一時取除いて、その人を心身ともにラクにさせて、正法を聴く心の余裕を与える場合にすることがある。
「4.정법은 인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의 곳에서「정법은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지도하는가?」라고 하는 일로 교사 부인의 편지를 게재해 두었다. 이상한 현상(現象)이 있자마자 빙의령(憑依霊)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즉시 「빙의령(憑依霊)을 없애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빙의령(憑依霊)만을 제거해도 좋아지지 않는 것이다. 빙의령(憑依霊)을 제거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낫지 않는 한 또 다시 빙의령(憑依霊)은 들려 버리기 때문이다. 빙의령(憑依霊)을 제거한다고 하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로는 안 되기 때문에, 빙의령(憑依霊)을 불러들인 그 원인인 마음(心)을 고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좋아진다고 하는 것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 마음(心)을 어떻게 하면 치료될지, 마음(心)을 어떻게 하면 좋게 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에 지도(指導)의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빙의령(憑依霊)을 제거한다고 하는 것을 하는 일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방편(方便)이다. 빙의령(憑依霊)으로 인해 심신과 함께 시달리고 있는(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그 괴로움 때문에 냉정하게 올바르게 사물을 생각하는 힘이 없다. 그러한 사람에게 아무리 정법(正法)의 이야기(話)를 해 보아도 절대로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한 경우에 빙의령(憑依霊)을 잠시 제거하고, 그 사람을 심신과 함께 편안하게 해서, 정법(正法)을 들을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경우에 하는 일이 있다.
この教師夫人の手紙のように、夫は自分が浮気するだけでなく妻にも浮気を進める。という人に対して霊能に片寄った考え方をする人達はそれは憑依霊のせいであるというであろう。しかし、この問題は憑依霊のせいではない。性に関する心理的なコンプレックスである。
그 교사 부인의 편지처럼, 남편은 자신이 바람을 피울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바람을 필 것을 권한다. 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영능(霊能)에 치우친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은 빙의령(憑依霊) 탓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빙의령(憑依霊)의 탓이 아니다. 성(性)에 관한 심리적인 콤플렉스(열등감)이다.
我々が人を見る場合、過去が立派であったという人はそれはそのまま賛嘆すればよいが、過去に失敗した、罪を犯したという人があったとしたらその人の過去の失敗や罪によって現在のその人を評価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愛とは相手の欠点を暖かく真綿で包んでその傷に触れず、その人の本当の魂を見つめてゆくことである。どんな人もみな神の子である。
우리들이 사람을 보는 경우, 과거가 훌륭했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은 그대로 찬탄하면 좋지만, 과거에 실패한, 죄를 범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그 사람의 과거의 실패나 죄에 의해서 현재의 그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랑(愛)이란 상대의 결점을 따뜻하게 풀솜으로 감싸서 그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그 사람의 진실한 영혼(魂)을 들여다보아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다 신의 자녀(神の子)이다.
過去の失敗によって現在のその人を悪い人だと見てはならないように、自分自身についても過去に失敗したからといって何時までも自分を罪人だと思っ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人の罪を赦すと同時に自分自身の罪も自分で赦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과거의 실패에 의해서 현재의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다 라고 봐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과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자신을 죄인(罪人)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의 죄(罪)을 용서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죄(罪)도 스스로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過去にどうあったかと言う事によってその人を評価することはやめ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人が現在どうあるかということを大事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과거에 어떻게 했든가 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람이 현재 어떻게 있는가 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私はその教師夫人に逢って次のような話をした。
저는 그 교사 부인을 만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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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なたはこんなひどい主人はいないと思っていられるでしょうが、ご主人に浮気をさせているのはあなたなのです。結婚初夜の晩にご主人に性病を移されたあなたの悲しみがどんなものであったか、男の私でも想像できます。そのことでご主人はあなたに大きな負い目を感じてしまわれたし、妻に性病を移したという罪悪感を持ってしまわれた訳です。
「당신은 이런 지독한 남편은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계실 테지만, 남편분에게 바람을 피우게 하고 있는 것은 당신입니다. 결혼 초야의 밤에 남편분에게 성병이 전염된 당신의 슬픔이 어떤 것이었는지, 남자인 저로서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일로 남편분은 당신에 큰 부담(열등감負い目)을 느껴 버렸고, 아내에게 성병을 옮겼다고 하는 죄악감(罪悪感)을 가져 버렸던 것입니다.
あなたはそれ以来、ご主人を拒否してしまわれた。妻に拒否されてしまった男はどこかに掃け口を見つけることになります。金があれば金で女を買うでしょう。金がないとなれば自分達の行為を自分達で正当化する理由をつけてどこかで発散することになります。
당신은 그일 이후, 남편분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아내에게 거부당해 버린 남자는 속에서 넘쳐 흐르는 감정 등을 발산시킬 대상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게 됩니다.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여자(창녀)를 살 것입니다. 돈이 없게 되면 자기들의 행위를 자기들 나름대로 정당화할 이유를 붙여서 어딘가에서 발산하게 됩니다.
悪いと知りつつ自分を正当化しようとすることがどんな辛いものであるか。女に弱みを見せたくない男は虚勢を張るものです。どんなに愛する努力をしても妻がその努力に対して喜びの表現をしてくれない場合、男は、自分には妻を愛する力がない、自分は妻を愛する資格はないと思うのです。愛するが故に別れたくないと思っている夫は、自分の行為が妻を喜ばせることが出来ないならば、妻の喜びのために妻が喜ぶ自分以外の男性を妻に提供しよう、そういう機会をつくってやろうと思うのです。酔ったご主人を送って来られたその友人と関係せよと迫られたということは実はご主人があなたを心から愛していられるその愛の傾倒した表現なのです。普通の人は表面だけを見て心の奥にどういう心が働いているかを知りません。
나쁘다고 알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이 어떠한 괴로운 것인지를. 여자에게 나약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남자는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할 노력을 해도 아내가 그 노력에 대해서 기쁜 표현을 해 주지 않을 경우, 남자는, 자신으로서는 아내를 사랑할 힘이 없다, 자신은 아내를 사랑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편은, 자신의 행위가 아내를 기쁘게 할 수가 없다면, 아내의 기쁨을 위해서 아내가 기뻐하는 자기 이외의 남성을 제공하려고,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남편분을 데리고 온 그 친구와 관계하라고 강요했다고 하는 것은 실은 남편분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시는 그 사랑의 온 힘을 기울인 표현인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은 표면만을 보고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떠한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夫が自分の代わりに妻を満足させてくれる男を選ぶという場合、その男は自分の分身として自分でも好感を持つことが出来る男性を選ぶのです。
남편이 자신을 대신해서 아내를 만족시켜 줄 남자를 택한다고 하는 경우, 그 남자는 자신의 분신으로서 자신도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남성을 고르는 것입니다.
自分の血も肉体も汚されたという悲しみと怒りとがあなたの心の中にはあるでしょう。
자신의 피도 육체도 더럽다고 하는 슬픔과 분노가 당신의 마음속에는 있을 것입니다.
実は夫を赦さないあなたの心があなたの家庭を暗くし、娘が男の人と家出したというその原因も実はあなた自身がつくってしまったのです。四回も手術して自分の身体はずたずたになってしまったと思っていられるでしょう。
실은 남편을 용서하지 않는 당신의 마음이 당신의 가정을 어둡게 하고, 딸이 남자와 가출했다고 하는 그 원인도 실은 당신 자신이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네 번이나 수술해서 자신의 신체는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고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しかし二人も立派な子供さんが生まれていられるということは、既にその病気は治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
하지만 두 사람도 훌륭한 자제분이 태어나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 병은 치료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요?
我々はこの肉体を使い、この地球という環境で魂を偉大に成長させるために生まれて来たのです。死んだ時に一番最初にあの世の入口で聞かれることは、「あなたは、どれだけ人を愛してきましたか」と言う事なのです。愛の行為こそが私達の魂を偉大に成長させるのです。この肉体は、愛の行為を実践することによって魂を成長させるための道具なのです。肉体をどんなに清潔に保ったとしても、心が暗かったら地獄行きです。この肉体がどんなに性病菌によってずたずたに汚されて灰になったとしても、自分をご主人の前に完全に投げ出されることによってご主人の心が満たされ、ご主人のそういう行為がなくなり、ご主人の心が安らかに満たされたとしたら、その方が人生の勝利です。あなたが自分の全てをご主人の前に投げ出されれば、そこから家庭の中に明るさが甦り、娘さんの問題も全部解決します」
우리들은 이 육체를 사용하여, 이 지구라고 하는 환경에서 영혼(魂)을 위대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태어나온 것입니다. 죽을 떼에 가장 최초에 저 세상의 입구에서 질문을 받는 것은,「당신은, 얼마만큼 남을 사랑해 왔습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야말로 우리들의 영혼(魂)을 위해하게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사랑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에 의해서 영혼(魂)을 성장시키기 위한 도구(道具)인 것입니다. 육체를 아무리 청결하게 유지했다고 해도, 마음이 어둡다면 지옥행(地獄行き)입니다. 이 육체가 아무리 성병균(性病菌)에 의해서 갈기갈기 더럽혀져 재가 되었다고 해도, 자신을 남편분 앞에 완전히 내던지는 것에 의해서 남편분이 마음이 뿌듯해져서, 남편분의 그러한 행위가 없어지고, 남편분의 마음이 편안으로 충족되었다고 한다면, 그 편이 인생의 승리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남편분 앞에 내던지면, 거기에서 가정 속에 밞음이 되살아나며, 따님의 문제도 전부 해결됩니다.」
「しかし、先生、私の身体はもう主人を受け入れ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身体が固くな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す」
「그렇지만, 선생님, 제 신체는 이제는 남편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신체가 굳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それはあなたの夫を赦さない心の固さが肉体の固さとなっているので、赦す心になれば肉体は柔らかくなります。我々は魂を磨くためにお互いに相手を選んで生まれてくるのです。肉体はどこでどういう方法で朽ちて灰になってもいいのです。魂が救われて魂が生まれてくる時よりもひと廻り大きく成長してゆけばそれで人生の目的を達したことになるのです。」
「그것은 당신의 남편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의 어려움(固さ)이 육체의 딱딱함(固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마음이 되면 육체는 부드러워집니다. 우리들은 영혼(魂)을 닦기 위해서 서로 상대를 선택해서 태어나오는 것입니다. 육체는 어디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썩어 재가 되어도 좋은 것입니다. 영혼(魂)이 구제되어 영혼(魂)이 태어나올 때 보다도 그릇이 한층 더 크게 성장해 가게 되면(魂が救われて魂が生まれてくるよりもひと廻り大きく成長してゆけば) 그것으로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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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けばこれだけのことになるが、色々やり取りがあって私達は三時間位話をした。最初は、悪いのは主人です。私は悪くないのですといって、とてもそんなことは出来ないと言っていられたその夫人も、この諸行無常の世界は、神の子の実在である魂をどのように表現するかというその場所であることを知られ、愛とは、相手のためにどこまで自分を投げ出せるかという事であるということがよくわかり、
「では、言われた通りやってみます」と明るい顔で帰って行かれた。
글로 쓰면 이정도의 것이 되지만, 여러 가지 주고받기가 있어서 우리들은 3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최초는, 나쁜 것은 남편입니다. 자기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해서, 도저히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계셨던 남편도, 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계는, 신의 자녀(神の子)의 실재인 영혼(魂)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그 장소인 것을 알게 되어,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서 어디까지나 자신을 내던지는가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잘 이해하게 되어,
「그럼, 말씀해주신 대로 해 보겠습니다」라고 밝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셨다.
新聞などの人生相談担当者は、心の表面だけを見て常識的な解決しかしない。そういう人達がこのような問題を扱ったとしたら、「すぐ別れなさい」としか言わないであろう。常識的な解決をしても、魂が成長しなければその指導は失敗である。
신문 등의 인생 상담자는, 마음의 표면만을 복 상식적인 해결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면, 「즉시 헤어지십시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식적인 해결을 해도, 영혼(魂)이 성장하지 않으면 그 지도(指導)는 실패이다.
11.三界は画師の如し
11.삼계(三界)는 화가와 같다
画家がどういう画を描くかは画家の心の中にある。同じ風景を描いても、画く画家の心によって一つ一つ画の味わいが違ってくる。
화가가 어떠한 그림을 그릴지는 화가의 마음속에 있다. 똑같은 풍경을 그려도, 그리는 화가의 마음에 의해서 하나 하나의 그림의 맛이 달라진다.
この大宇宙は神が創造された。神が創造された地球というキャンバスの上に、肉体という絵筆を持って、どういう人生を描き出すかは、一人一人の心による。どういう人生が現れてきても、それは全て自分自身の責任であって人の責任ではない。自分の運命を人のせいにしている間は運命はよくならない。全て自分の責任だということが分かって努力する時、運命は変わってゆくのである。変えられない運命は一つもない。他力信仰は自分の運命を他に頼って良くしようとするのであるから正しい信仰ではない。信仰は自分でしなければならない。自分が力を出した時、自分の魂が向上し、魂が向上した結果として良い運命が現れてくるのである。
이 대우주는 신(神)이 창조하셨다. 신(神)이 창조하신 지구(地球)라고 하는 캔버스(canvas) 위에, 육체라고 하는 그림붓(絵筆)을 가지고, 어떠한 인생을 그려낼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의한다. 어떠한 인생이 나타나도, 그것은 전부 자기 자신의 책임(責任)이며 남의 책임이 아니다. 자신의 운명(運命)을 남의 탓으로 삼고 있는 동안은 운명(運命)은 나아지지 않는다. 전부 자신의 책임(責任)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노력할 때, 운명(運命)은 바뀌어 가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운명(運命)은 하나도 없다. 타력신앙(他力信仰)은 자신의 운명을 다른 것에 의지해서 좋게 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신앙(信仰)이 아니다. 신앙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가 힘을 내었을 때, 자기의 영혼(魂)이 향상하고, 영혼(魂)이 향상한 결과로 좋은 운명(運命)이 나타나는 것이다.
一ヵ月目に来た手紙には次のように書いてあった。
1개월째에 온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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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教えを頂いてから一ヶ月余り、あれから全ての物の見方考え方がすっかり変わり、今まで事ある毎に抱いていた疑問も、次々と解かれて行くのが不思議です。今、私の周りの物全てが甦って来るような息吹を感じます。抜けるように青く澄んだ大空を眺めていると、先生との出逢いがこんなにも偉大で私にとってかけがえのない大事なものであったことかと日増しに感じております。
「가르침을 받고 나서 1개월 남짓, 그 후 모든 사물의 견해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어, 지금까지 일이 있을 때마다 품고 있던 의문(疑問)도, 잇달아 풀려가는 것이 불가사의합니다. 지금, 제 주변의 세상의 일의 전부(物全て)가 되살아나는 것과 같은 숨결을 느낍니다. 시원하게 트인 푸르고 맑은 넓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선생님과의 만남(出逢い)이 이렇게도 위대하며 제게 있어서 다시 없는 소중한 것이었던 것이라고 하루하루 느끼고 있습니다.
夫婦の道に教科書というものがあったらと永い間自問自答してきましたが、高橋信次先生がお示しになった”正法”という立派な教科書があったことが身に沁みてはっきりと分かりましたこの私の喜びをご想像下さい。
부부의 길(道)에 교과서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랫 동안 자문자답해 왔을 테지만,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이 제시한 ”정법(正法)”이라고 하는 훌륭한 교과서가 있었던 것이 뼈에 사무쳐서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던 이 저의 기쁨을 상상해 주십시오.
振り返るとこの一ヶ月、私自身、生活のペースがすっかり変わってしまいました。変えようとして変えたのではないのです。ごく自然に・・・・・・。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본 1개월, 저 자신, 생활의 페이스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바꾸려고 바꾼 것이 아닙니다. 아주 저절로 ・・・・・・。
主人に対して嫌悪感を抱いていたのは事実です。いつも身体が苦痛なので診察に行くと「全然異常なし」とのこと、でも腰が抜けるように痛かったのです。二十年余り続いていた痛さがウソのように消えてしまいました。奇跡といえば奇跡かも知れません。肉の身に囚われないということを感じ取っていたせいでしょうか」
남편에 대해서 혐오감을 품고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늘 신체가 고통이었기 때문에 진찰을 받으려 가면 「전혀 이상이 없어요(全然異常なし)」라고 해도, 허리가 빠질듯이 아팠었습니다. 20여년 남짓 이어져 왔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적이라고 하면 기적인지도 모릅니다. 육신(肉の身)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감지한 탓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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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全に夫婦の間は調和し、家出していた娘さんも「お母さん、私が悪かった、許して」と帰って来られて、夫となり妻となり、親となり子となって良かったと今は光明の幸せな生活をしていられるのである。
완전히 부부 사이는 조화(調和)하고, 가출해 있던 따님도 「엄마, 내가 나빴어, 용서해줘」라며 집으로 돌아오고, 남편이 되어 아내가 되어, 부모가 되어 자식이 되어 좋았다고 지금은 광명의 행복한 생활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我々の人生の目的は、どんな環境をも魂の栄養として、何事にも動じない安らかな心を持つことである。現実に逃避することも、心の中で夢をつくって観念的に逃避することも、その心を裏返しにすれば、真正面から現実の問題に取組む勇気を持たない、弱い自分、卑怯な自分を自分で認めている事になる。自分の潜在意識の中で自分の弱さを認めていたのではいつまで経っても強くなれない。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은, 어떤 환경을 영혼(魂)의 영양으로 해서, 무슨 일을 당하여도 동요하지 않는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현실에 도피하는 일도, 마음속으로 꿈을 만들어 관념적으로 도피하는 일도, 그 마음을 뒤집게 하면, 바로 정면으로 현실의 문제와 싸울 용기를 갖지 않은, 나약한 자신, 비겁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있던 것으로는 아무리 시간이 가도 강해지지 않는다.
我々の背後には神の大いなる生命力がある。謙虚な明るい心を持つ時、神の大生命力は我々の心を通して神自身の力がそこに現れる。いづれにしても神が実在するということを素直に信ずることが信仰の入門であり、またそれが全てでありあなたが神を信ずる心の如何によって現象は左右されるのである。
우리들의 배후에는 신(神)의 위대한 생명력(生命力)이 있다. 겸허한 밝은 마음을 가질 때, 신(神)의 대생명력(大生命力)을 우리들의 마음을 통해서 신(神) 자신의 힘이 그곳에 나타난다. 그러나저러나 신(神)이 실존(実在)한다고 하는 것을 솔직하게 믿는 것이 신앙(信仰)의 입문(入門)이며, 또한 그것이 전부이며 당신이 신(神)을 믿는 마음의 여하에 따라서 현상(現象)은 좌우되는 것이다.
★[現象] 사물이나 어떤 작용이 드러나는 바깥 모양새.
★현상 现象 [xiànxiàng] 현상, 관찰할 수 있는 사물의 현상
- 終わり -
- 끝 -
月刊誌 正法25・26号 (1980.9.10月) より
월간지 정법 25・26호 (1980.9월 10월)에서
2012.08.06 UP
kurosawasannoteinenkinenbini!
아래의 출처에서 18편의 글을 소개했습니다. 지금까지 ☞.
※출처 : http://www.shoho2.com/s2-10jituzaitogensyou.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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