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스스로를 존중하면 사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본문
2014년 10월 18일 새벽 2시 33분이 막 지나고 있는 토요일 새벽입니다.
저는, 힌디 영화를 좋아해서, kbs1 tv에서 어제 금요일 밤에 방송한 영화를 보았습니다.
온 가족이 영어로 말하는 가족 속에, 아내는 딸에게, 심지어는 남편에게 무시를 당하던 그녀.
그녀가 스스로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는데, 참 아름다운 내용이었습니다.
10월 초순부터 지금 중순까지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일상이 소소한 일들에 있어서,
좋고 싫음은 이 일기에 거론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내가 혹 말로, 상대방을ㅡ, 누군가를-, 상처를 주지 않았나? 하고 뒤돌아보는 밤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심하는 말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가? 입니다.
나를 진정, 나, 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결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런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을 그냥 흘러보내고마는 인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역시,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어디에 있건, 늘 불평과 불만을 품고 있으며, 모든 것이 충족되어도, 늘 불행이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달리던 차를 갑자기 멈추면, 딱 하고 그 자리에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앞으로 진행해가려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앞으로 밀려 갑니다.
우리들의 생각 즉 상념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나쁜 상념을 매일매일 품고 있으면, 그것이 언젠가, 어느 날엔가, 폭발하게 됩니다.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게 됩니다.
수요일날에,
청주예술대학교 근처에 낙엽 청소를 하다가, 대학생들 졸업 작품전을 한다는, 내용이 포스터 중에,
제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청주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졸업작품을 알리는 포스터.
하얀 바탕에 왼손등과 왼손바닥이 그려진,
그리고 그 중간에,
본래의 모습
참,
나,
라는 글자가 새겨진,
이 포스터를 보고, 저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5년동안 이 동네, 안덕벌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좋은 포스터였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가하면, 참나, 즉 진아는, 우주의 근본원리이며, 개체로서의 고유한 영혼을 말하는 것이기에...힌디, 즉 힌드교의 경전에서 말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인, 우주와 일체인 우주즉아를 말하는 내용이기에...
그리고 왼손등과 왼손바닥을 보는 순간, 예수님이 말씀하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참된 선행, 을 말하고 있기에.
부처의 가르침과 예수님이 가르침을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기에...
참 흐뭇했습니다.
참나의 반대는 위아(僞我), 즉 거짓된 나, 거짓 나, 를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 거짓말을 자기 자신에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우리들 모든 인간은, 신불의 자녀란 증거이며,
그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그 양심이 바로 참 나, 진아(眞我)이기에..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불교를 알건 모르건,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인 자비를 품고, 그 자비를 행동으로 옮겨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바로 사랑의 실천이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건 모르건,
누구나가 다,
이 참 나,를 영원토록 마음속 깊은 선한 양심속에 간직한 우리들 인간이기에...
참으로 흐믓했습니다.
단, 현대의 배금주의가 만연한, 물질만능의 시대에.
참 나, 라는 이 순수한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기뻤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아니지만,
예수님이 가르침을 존중하고 행합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행합니다.
행하는 과정에 잠깐 방심하면, 제 마음속의 위아가 튀어나와, 나를 가두어 버리기도 하지만,
금방, 양심의 저에게 말합니다. 괴롭다고..그럼, 아, 내가 잘못을 했구나 하고 반성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부조화했던 마음의 조화를 이르게 됩니다. 그 증거가 바로 편안함입니다.
어떠한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평온함이 찾아옵니다.
그 평온함은, 바로 진아(眞我, 아트만[atman])입니다.
공(空)이라하여, 반야심경속에 나타난,
현장삼장법사가 압축한 글에서, 공을, 허무하다, 없다, 공이다, 라고 해석해버린 결과,
인생은 허무하다,
덧없다, 라고 하며, 허무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공(空)이라고 하면, 쉽게 말해서, 하늘도 공이고, 공기도 공이며, 빛도 공이며,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현상의 물질들도 모두 공인데, 어렵게 생각합니다.
빛은 눈에 안 보입니다.
하늘에 공기도 역시 눈에 안보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합니다. 물질로서
소리도 역시 들립니다. 역시 눈에 안 보이고 만져볼 수 없지만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空)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色)은 바로 물질, 현상화된 물질이며, 우리 인간 세상에서 만져볼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을 이승에 한해서 설명할 때, 색(色)이라 한 것이고,
공(空)은 엄연히 말하면, 천상계 즉 저 차원이 다른 극락천국인 실재계(實在界)를 공(空)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저 세상에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고로, 이 현상계의 물질, 즉 현상화되어 손으로 만져볼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사물도 색인 동시에 공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역시 색이며 곧 공입니다. 공이며 곧 색입니다.
물은 고체로 액체로 기체로 형상만 바꿀 뿐 순수한 물 자체이 고유한 의식인 H2O는 변합이 없습니다.
우리들 인간들의 의식 즉 영혼도 변함이 없습니다.
육체란 옷을 입고 피부색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는 이 지구상에 여러나라에 환생할뿐입니다.
그 환생한 그 자신은, 바로 고유한 개체로서의 아트만, 즉 진아입니다.
내가 일전에, 심한 중증빙의로 고통을 받으며, 어떻게 하면 이 현대의학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이 빙의, 즉 귀신들림을 고칠까 생각하던 중에, 심한 고통 중에, 죽으려고 생각했을 때,
고통 중에 생각하길.
아, 지금 이 고통은, 육체의 고통처럼 느껴지지만 실재로는 마음의 고통이다,
이 육체가 없어져도 이 영혼속에 있는 내 마음은, 저 세상으로 도망을 쳐도, 역시 여전히 아플게 뻔하다,
그럼 답은 하나이다.
바로 내 마음속으로 생각한 상념들과 그 상념들을, 행동으로 옮긴 내 행위에 문제가 있고 답이 있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병이 만8년만에 완치되어, 지금은 평온합니다.
이젠 어떠한 악령이 몸에 와도,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알기에.
아, 마음의 병든 이들이구나, 참으로 딱하고 불쌍한 분들이 잠시 오셨구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묻습니다.
지금은,
그들에게, 눈에 안 보이고, 귀로 들을 수 없지만, 파장을 통해서, 제 의식에 다가와 있는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보는 물질 즉 사물도, 파장을 통해서, 눈으로 보는 것이며,
귀로 들리는 소리도 역시, 파장으로 변하여 귀의 달팽이관을 통해 들어온 후, 소리라는 각 나라의 언어를 배운 그 나라의 언어로 들리게 되는 것처럼,
귀가 고장이 나면,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눈이 고장이 나면,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성대가 고장이 나면,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존경하는, 미국에 태어났던, 아기로 태어났을 때는, 정상이었다가, 아픈 후에,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된, 암흑지옥같은 곳에서,
헌신적인 교사였던 엄마의 노력으로,
전세계의 장애인을 위한 빛의 천사가 되어준, 헬렌 켈러님을 존경합니다.
지금 그녀는, 하늘나라인 차원이 다른 극락천국인 천상계인 실재계에 편안히 살고 계십니다.
다음생에 태어나려면 1000년은 있어야 할 테지만.
우리들 모두도,
이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려고, 천상계에서 빛의 천사(보살)로 살다가, 이 세상에, 1천년만에 태어난
아주 귀한 존재들입니다.
자기 이외에 남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하며, 하찮게 여겨도 안 되는 아주 소중한 분들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떠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어도,
행복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됩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옹달샘의 물처럼.
나에게, 어떤 분이 말하곤 합니다.
재주들이 아깝다고, 그것을 활용하여 돈을 벌 수 있을텐데, 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안 하고 있습니다.
재주는, 재주일 뿐. 그저 조금 알고 있을 뿐인 것인데,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
그것은, 나중에 일입니다.
나는, 60까지만 살다 가겠다고 늘 생각하기에.
만약, 60세 생일이 지나고도 살아 있다면, 육체를 입고서,
그 때는,
이 생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며 살다 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들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계획을 합니다.
내일은 무엇무엇을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구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자신만의 꿈이며 생각일뿐입니다.
바로 지금 이순간, 바로 이 순간을, 열심히 하는 게 아주 중요하며 소중하다고 저는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내일은, 없습니다.
바로 오늘만이 있습니다.
내일 뭐 해야지 합니다.
하지만, 늘 오늘입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다치거나 죽기도 하는 현실세계입니다.
그들도 모두, 계획을 하며 꿈을 꾸며, 내일은, 한달 후에는, 1년 후에는 하면서 계획을 하며 삽니다.
내일, 아니 모래, 아니 한 달 후에, 사과해야지,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고백해야지,
나중에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나중에 나중에 합니다.
나중이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만이 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임을 모르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입니다. 인생, 바로 사람의 살아가는 일입니다.
아주 캄캄한 어둠속을 손전등도 없이 손으로 더듬어가는 삶이 연속입니다.
그런 캄캄한 어둠속을 더듬어 갈 때, 홀로 가는 것보다는, 둘이, 아니 셋이 함께 이렇게 여럿이 가는
게 안전합니다.
바로 지금, 같이 간다면 좋습니다.
너 먼저 가, 나는 나중에 따라 갈께, 라고 하고 난 후, 불의한 사고로 그를 혹은 그녀를 이 세상에서
영영 못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안부를 전할 가족이 단 한 사람도 없기에, 안부를 물을 수도 없지만,
가족이 있는 분들은,
바로 지금,
상처를 주었던 일이 있으면, 바로 지금 그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연고라도 발라 주어야 할 순간입니다.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은, 상처는, 방치하면, 큰일입니다.
바로 지금,
바로 지금,
참 나를, 이용하여,
바로 말하는 순간이기를 바라는 밤입니다.
저는, 아무도 없기에,
일상생활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 혹 상처를 주었던 일이 없나를 뒤돌아보고,
또한,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그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혼자 생각으로라도 안좋게 생각한 게 있나 없나를
살핀 후, 혹 있다면, 바로 마음속으로 그 상대방에게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신불에게 사죄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잘 자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이란 오늘에 눈을 뜨고 육체를 일으키면, 아, 지구별이구나,
오늘도 육체를 움직여 일상을 시작해야지, 하고는 무엇인가를 합니다.
일을 합니다.
제 방을 봅니다.
내가 당장 내일이라는 바로 오늘 지금 이순간에,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도, 즉 죽어도,
아쉬울 게 없는 조촐한 방안입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다 없어져 흙으로 돌아갈 물건들입니다.
신불의 품으로 형상만 변하여 돌아갈 색즉시공 공즉시색인 신의 의사로,
이 지구별에서, 수행을 하기 위해 마련해준 현상화된 물질일 뿐입니다.
...
님은, 지금 당신 자신을 사랑하시나요?
아니라면,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 라고 생각해 볼 순간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도 써 본 사람이 쓸 줄 안다, 라는 말처럼,
좋은 경험도 해보고,
나쁜 경험도 해본 사람이,
더 쉽게 말하면
매도 맞아도 본 사람이,
맞는 사람이 아픔을 안다고 하듯이,
그렇다고,
일부러 나쁜 경험을 해 보라는 말이 아니지만,
인생을 살면서,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나쁜 경험들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좋은 경험들을 반복하며
우리들은 그 과정속에서 이겨내고 혹은 용서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삽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을 합니다.
조절을 합니다.
모든 일은, 선택을 어떻게 하고, 마음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한 것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가 해결해야하는 게 우리들 각자 고유한 영원불멸인 개체로서의 자신들이 몫입니다.
남이 대신 죽어주지 않고,
남이 대신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말해도,
그 아픔이 어떠한 아픔인지를, 실로 100% 이해하지 못합니다.
위로라도 해 주지만,
그 고통을 그 아픔을, 평온함으로 바꾸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어떻게, 반성을 하면 됩니다.
늘 반성을 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이 말을 더 쉽게 말하면, 늘 감사하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며 살면,
감사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반성입니다.
혹 웈하고 화를 내고, 웈하고 누군가를 미워했을지라도, 밤이 지나 새벽이 오기 전에,
잘잘못을 스스로 생각해내어, 잘못이 있으면 자신에게, 신불에게 사죄하고,
그 상대방에게 사죄를 하면 됩니다.
물질적인 피해를 입혔으면, 물질로 갚고
정신적인 피해를 주었으면, 말로 사과를 하면 됩니다. 그 정신적인 피해를 당한 이가,
그 피해를 물질적인 것으로 계산해서 갚으라고 하면, 그렇게 갚으면 됩니다.
이 세상이건 저 세상이건, 어느 것 하나, 정지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1초도 쉬지 않고, 돌고 돌고 있습니다.
회전하고 있습니다.
멈춤은, 없습니다. 매초매초마다 순환하고 있습니다. 순환의 연속입니다.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단 1초도, 그 1초보다 작은 시간도 멈춤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순간입니다.
다 힘듭니다.
그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느끼며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배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남에게 나는 얼마나 배려를 하며 살고 있나를 생각해 보는 순간이 많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배운 것은, 모두 다른 이들이 찾아낸 것을, 내가 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복습한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속담에 천냥 빚도 한 마디 말로 갚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말은, 곱고 부드럽게 하면 좋습니다.
나는 얼마나 언행일치를 하는 삶을 살고 있나 뒤돌아보는 밤입니다.
마음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 잃어버린 참나를 되찾는 길은,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그 소리대로 행하다보면,
만물의 대자연의 주는, 고마움을 저절로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님이 제가 말씀해주신 귀한 말,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겨라...."
내가 아플 때, 그 분이 사당에서 제게 해 주신 말씀.
오늘의 일기는 여기까지.
'일기형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drah(제석천)과 Asura(아수라)의 딸에 관한 짧은 이야기 (0) | 2014.11.03 |
---|---|
죽음은, 끝이 아닌 일상사이다, 단 잘 죽어야 하며... (0) | 2014.11.01 |
"지나번에는 미안합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0) | 2014.10.02 |
자살자의 지옥은 암흑세계이다. 한국의 자살자는 37분마다 1명씩 자살한다? (0) | 2014.09.23 |
人間釈迦と如来壽量品 (0) | 201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