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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존엄】【心の尊厳】1976년 3월 모일, 강연장소 불명,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마음의 존엄】【心の尊厳】1976년 3월 모일, 강연장소 불명,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어둠의골짜기 2020. 1. 5. 10:59



【心の尊厳】

【마음의 존엄】


1976-3-○○ 講演場所不明 

1976년 3월 모일, 강연장소 불명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1976년 3월이면, 신지(信次)님께서 48세에 6월 25일, 죽는 날, 불과 몇 달 전의 강연이 됩니다).

(상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 가르침의 글, 목록에 책들 속에 있습니다)

(자신이 48세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草木は春になると花を咲かせ、やがて実を実らせ、秋の収穫期を迎えます。この循環は永遠に不変なものです。

초목은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이윽고 열매를 맺게 하고, 가을의 수확기를 맞이합니다. 이 순환은 영원토록 불변한 것입니다. 


私たち人間も、この地球という環境の中で、人生航路の乗り舟である肉体を両親からいただき、この自然の恵みの中で成長し、やがて年老いて、自らが好むと好まざるとにかかわらず、この地上界を去って行くものなのです。

우리들 인간도, 이 지구라고 하는 환경 속에서, 인생항로를 위한 타는 배(乗り舟)인 육체를 양친으로부터 받고, 이 자연의 은혜 속에서 성장하고, 이윽고 나이를 먹고, 자기가 좋든 싫든 관계없이, 이 지상계를 떠나가는 것입니다. 


しかし、この地球上という場に肉体を持ってしまいますと、生活に結びついてくる物質や経済や名誉といったものがすべてと思い、それを得るところに幸せがあると錯覚を起こしてしまいます。そして、自ら苦しみの多い人生を送って行くのです。

하지만, 이 지구라고 하는 장소(場)에 육체를 가져버리면, 점차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는 물질이나 경제나 명예라고 했던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얻는 바에 행복이 있다고 착각을 일으켜 버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괴로움의 많은 인생을 보내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しかし、本当の私たち自身は、いま心の中で思い、考え、判断している自分自身であり、それは永遠に不滅なのです。そして、肉体を支配しているその心の中に、普遍的な神の心が存在しているのです。

하지만, 참된 자기 자신은, 지금 마음속으로 (주관적인 희망이나 막연한 생각)을 생각하고, (객관적인 생각이나, 사리에 맞는 생각)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 자기자신이며, 그것은 영원토록 불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그 마음속에, 보편적인 신(神)의 마음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私たちには、絶対に自分に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心があります。この善我なる心は、神の心と同通しているのです。その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心こそ、偉大なる神の道に通じている自分自身なのです。

우리들은, 절대로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업는 선아(善我(착한 나)=진아[眞我]라고도 함)인 마음이 있습니다. 이 선아(善我:착한 나)인 마음은, 신(神)의 마음과 동통(同通)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아(善我:착한 나)인 마음이야말로, 위대한 신(神)의 길(道)로 통하고 있는 자기자신인 것입니다. 


ところが、肉体を持ってしまいますと、私たちの意識というものは、わずか 10%しか表面に出ていません。そのために、目や耳を通して五官で得るものが、あたかも絶対のごとく思ってしまいます。

그런데, 육체를 가져 버리면, 우리들의 의식(意識=영혼[靈魂]이라고도 함)라고 하는 것은, 불과 10%밖에 표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눈(目)이나 귀(耳)를 통해서 오관(五官=눈·귀·코·혀·피부)으로 얻는 것이, 마치 절대(絶對)인 것처럼 생각해 버립니다. 



その中からやがて、自己保存の思いが生まれてくるのです。その自己保存の思いが、いつか偽りの我を生み出してしまいます。

그러는 가운데 이윽고, 자기보존의 생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기보존의 생각이, 언젠가 거짓된 나를 새로 만들어 내어 버립니다. 


私たちは皆、短い人生の間により豊かな魂を作り、より調和された地球という環境を作るという大きな使命を持って生まれてきたのです。しかし、生まれた当時の美しい心は、やがてその環境や教育や思想や習慣の中で泥まみれになり、心にスモッグを作り、自ら苦悩という人生を送り、神の光を遮ってしまうのです。

"우리들은 모두(다), 짧은 인생동안에 보다 관대한 영혼(豊かな魂)을 만들고, 보다 조화(調和)된 지구라고 하는 환경을 만든다"라고 하는 큰 사명(使命)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태어났을 당시의 아름다운 마음은, 이윽고 그 환경(環境)이나 교육(敎育)이나 사상(思想)이나 습관(習慣) 속에서 진흙투성이 되어, 마음에 스모그를 만들어, 스스로 고뇌(苦惱)한다고 하는 인생을 보내며, 신(神)의 빛을 가려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私たちの心の中には、偉大なる内在された智恵が存在しています。その内在された智恵は、善我なる心の中に存在しているのです。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내재된 지혜(智惠=智慧)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내재된 지혜(智惠=智慧)는 선아(善我:착한 나)인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その善我なる心を芽生えさせるために、人間として正しい生き方、人生の歩み方というものが説かれたのです。それが、二千数百年前、あの中インドにおいてゴーダマ・シッタルダ釈迦牟尼仏が説いた教えだったのです。

그 선아(善我:착한 나)인 마음을 싹트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생활 태도:생활 방식),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을 설법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2천 수백년 전, 저 중인도(中印度:India)에서 고다마 싯타르다 석가모니불(부처)(Gautama Siddhārtha Shakyamuni Buddha)이 설법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仏教の本質というものは、人間の生まれてきた目的と使命は何か、そしていま人間が何のために苦しんでいるのか、経済的、精神的、肉体的な苦悩から脱皮するためには、どのようにしたらいいのだろうかという、道を説いたものなのです。

불교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태어난 목적과 사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인간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인가,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인 고뇌(苦惱)로부터 탈피(脫皮)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조은 것일까? 라고 하는, 진리(道:사람이 걸어야 할 길)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ところが、その仏教も長い年月を経て日本に伝わってくる間には、中国でさらに難しく哲学化され、いつの間にか、仏教と言えばお経をあげ、お線香や灯明をつけることが信仰のごとく思われるように変わってしまいました。

그런데, 그 불교도 오랜 세월(年月)이 지나서 일본(日本)으로 전해져 오는 동안에는, 중국(中國)에서 더욱 어렵게 철학화(哲學化)되어, 어느 새인가, 불교(佛敎)라고 말하면 독경(讀經)하며, 선향(線香)을 피우거나 등명(燈明:신불(神佛)을 위해서 켜 놓은 등불)을 켜는 것이 신앙(信仰)인 것처럼 여겨지도록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향[線香] <네이버 한자사전>

백단(白檀), 정향(丁香), 침향(沈香), 안식향(安息香) 등(等)을 가루로 만들어 송진(松津) 같은 호료(糊料)로 굳혀 가늘고 긴 선상으로 만든 향.



そもそも仏教には、お線香とか灯明などと言うものは、本来は必要のないものだったのです。ゴーダマ・シッタルダ、釈迦牟尼仏が、あの中インドを中心にして法を説かれていた当時、インドにはお風呂というものがありませんでした。

원래 불교(佛敎)에는, 선향(線香)이라든가 등명(燈明:신불(神佛)에게 올리는 등불)과 같은 것은, 본래는 필요가 없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고다마 싯타르다(Gautama Siddhārtha), 석가모니불(부처)(Shakyamuni Buddha)이, 저 중인도(中印度:India)를 중심으로 해서 법(法)를 설법하시고 있던 당시(當時), 인도(印度:India)에는 목욕탕(お風呂)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いまの日本では、お風呂というものがあって、いつも身をきれいにしておくことができますが、当時は川の中へ入って簡単に水で洗うぐらいでした。まして、多くの修行者たちは、日中歩いて汗だくになって帰って来ます。

지금의 일본(日本)에는, 목욕탕(お風呂)이라고 하는 것이 있으며, 항상 몸(身)을 깨끗하게 해 둘 수 있지만, 당시(當時)는 강(川) 속에 들어가서 간단히 물(水)로 씼는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많은 수행자(修行者)들은, 낮동안(日中)에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땀범벅이 되어서는 돌아옵니다. 


また、山の中に入って禅定する場合にも、毒虫や毒蛇から身を守るために、自分の身体に色々な薬草を塗ります。それらの臭いが鼻をつきます。そのようなことから、当時、ゴーダマ・シッタルダ釈迦牟尼仏の弟子に、プルナ・ヤニプトラーといわれるアラハンの方がおられましたが、このアラハンの方が出家する前に、この臭みを何とか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って、栴檀(せんだん)の香というものを発明したのです。

또한, 산속에 들어가서 선정(禪定)할 경우에도, 독충(毒蟲)이나 독사(毒蛇)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신체(몸)에 여러가지 약초(藥草)를 바릅니다. 그것들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러한 일로 인해서, 당시(當時), 고다마 싯타르다 석가모니불(부처)(Gautama Siddhārtha Shakyamuni Buddha)의 제자(弟子)들 중에,  푸르나 야니푸트라(부르나 미다라니 푸트라(富楼那 弥多羅尼子: 범어:Pūrṇa Maitrāyanī putra))라고 부르는 분이 계셨는데, 이 아라한(阿羅漢:arhat)인 사람이 출가(出家:집을 떠나 승려가 됨)하기 전에, 이 고약한 냄새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해서,  전단(栴檀:향나무)의 향(香)이라는 것을 발명(發明)했던 것입니다.  


それがインドにずっと広がり、体臭を何とか消そうとして試みられたのがお線香なのです。それがいまは、お墓参りにお線香を持ち、仏壇やお寺に置いて来ます。その上、さらに香水までつけている人がいます。私たちは最早旧来の陋習を破る時が来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그것이 인도(印度:India)에 쭉 퍼져서, 체취(體臭)를 어떻게든 없애려고 해서 시도해 보았던 것이 선향(線香)인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오늘날)은, 성묘(お墓参り)하려 갈 때 향(線香)을 들고 가며, 불단(佛壇:부처를 모셔놓은 단)이나 절(お寺)에 놓고 옵니다. 더구나, 심지어 향수(香水)까지 뿌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젠(最早) 구래(舊來)의 누습(陋習)를 깰 때가 와 있는 것이 아닐까요?


灯明も同じことです。夜、説法を聞くときに、真暗闇の中で聞くよりは、顔が見えるようにということで、菜種油や、松の根からとった松根油を灯明として使ったものなのです。 

등명(燈明:등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밤(夜)에, 설법(說法)을 들을 때에, 아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듣는 것 보다는, 얼굴(顔)을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것으로, 유채 기름(菜種油:채종유)이나, 소나무뿌리(松の根)에서 뽑은 송근유(松根油)를 사용해서 등불(燈明)을 켰던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약 2,500여년 전 고대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법할 당시에는, 주로 평민들이나 노예계급들에 주로 설법을 하시었는데,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낮에는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한 배려로, 주로 저녁 식사 후에 설법을 하시었고,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어, 설법하시는 부처님이 얼굴을 볼 수 없기에, 등불(횟불)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위와 같이, 배웠습니다)



それがいつの間にか、電気をつけた上にローソクまで点す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しかし、信心というものは、本来そのようなものではないのです。私たち自身の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心を信ずることです。

그것이 어느새, 전기(電氣:전등)를 켠 상태에서 촛불(蠟燭:납촉:밀랍으로 만든 초)까지 키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신심(信心:신앙심,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각자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아(善我:착한 나)인 마음을 믿는 것입니다. 


もっと具体的に言うならば、常に善意なる第三者の立場に立って、自分の思うこと、行うことをしっかりと見極めることなのです。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항상 선의(善意)인 제삼자(第三者)의 입장(立場)에 서서, 자신의 감정적(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思うこと), 행하는 것을 똑똑히 끝까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선의[善意] <네이버 한자사전>

①선량(善良)한 마음. 착한 마음

②남을 위(爲)해서 좋게 보거나 좋은 면을 보려고 하는 마음



南無阿弥陀仏というのも、インドの言葉が中国語に同化されて日本に伝わって来たものであって、本来の意味は、アミの説かれた法に帰依す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アミというのは、エジプトでアモンと呼ばれたファラオのことで、それがソロモンに行ってアミーに変わり、インドのバラモンに入ってアミとなったものです。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고 하는 것도, 인도(印度:India)말(言葉)이 중국어(中國語)로 동화(同化)되어 일본(日本)으로 전해져 온 것이며, 본래의 의미(意味)는, "아미(アミ,Ami)가 설법한(가르친) 법(法)에 귀의(歸依)한다"는 것입니다. 아미(アミ,Ami)라고 하는 것은, 이집트(Egypt)에서 아몬(Amon)이라고 불렸던 파라오(Pharaoh:솔로몬(기원전 900년경)) 왕조 시대까지의 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태양의 아들"이란 뜻))이며, 그것이 솔로몬(Solomon)으로 가서 아미(アミー, Ammy or Ammee)로 바뀌고, 인도(印度:India)의 바라문(婆羅門:Brāhman)으로 들어가서 아미(アミ,Ami)가 된 것입니다.



そのように、神は遠くにあるのではなく、私たちの内なる心の中に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ならば、その善我なる嘘のつけない自分を大切にし、正しく人生を生きて行くことが道なのです。

그렇게, 신(神)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 있는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선아(善我: 착한 나)인 (자기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신(自身,自己)를 소중히 여기고,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길(道,도리)인 것입니다.


太陽をごらんなさい。1 秒間に 2 百万トンからの石炭を燃焼するほどの莫大なエネルギーを、この地球に無所得で与えています。もし太陽がなかったならば、私たちは生存できるでしょうか。その無所得の姿、行為そのもの、自然界そのものが神の心の現われなのです。

태양(太陽)을 보십시오. 1초 동안에 2백만톤(2,000,000ton)의 석탄(石炭)을 연소(燃燒)할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energy)를, 이 지구에 무소득(無所得)으로 주고 있습니다. 만약 태양(太陽)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무소득(無所得)의 모습(姿),행위(行爲) 그 자체, 자연계(自然界) 그 자체가 신(神)의 마음의 발로(發露: 표현, 神の心の現われ)인 것입니다.


いま地球は、私たち一人一人の美しい心を必要としているのです。なぜならば、この地球というものは、広大な宇宙の中にあって、一つの小さな細胞にすぎません。

지금 지구(地球)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을 필요(必要)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며나, 이 지구(地球)라고 하는 것은, 광대한 우주(宇宙) 속에 있고, 하나의 작은 세포(細胞)일 뿐입니다. 


その細胞を調和させていくためには、万物の霊長である私たち一人一人の心の集約された姿が必要となってくるのです。そのことはつまり、人生の目的である仏国土・ユートピアにもつながって行くのです。

그 세포를 조화(調和)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인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집약(集約)된 모습(姿)이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즉, 인생의 목적인 불국토(佛國土),유토피아(Utopia:이상향[理想鄕])로도 연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人間は長い歴史の中で、国境という複雑なものを作り出しました。それは人間のエゴが作り出したものなのです。

인간은 오랜 역사 속에서, 국경(國境)이라고 하는 복잡한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에고(Ego;  자아(自我),자아의식(自我意識))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本来神の世界は一つであり、地球は一つです。人類はすべて兄弟なのです。同じ太陽の下に人間は皆平等です。

본래 신(神)의 세계는 하나이며, 지구(地球)는 하나입니다. 인류(人類)는 모두 형제자매(兄弟; 동기(同氣))인 것입니다. 같은 태양(太陽) 아래에서 인간(人間)은 다 평등(平等)합니다.


このように私たちは、末法といわれる複雑な現代社会の中で生活をしていますが、たとえどんなところで生活しようと、自分の本質を忘れてはなりません。そして、心の中が常に丸く豊かであるということが人生の大きな目的・使命なのだということを私たちが忘れたとき、苦悩を作り出して行きます。また、その苦悩は心に曇りを作り、歪みを作って行くのです。

"그렇게 우리들은, 말법(末法)이라고 부르는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설령 어떤 곳에서 생활하더라도, 자신의 본질(本質)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이 늘 둥글고 관대함(너그러움)이라고 하는 것이 인생의 큰 목적(目的)과 사명(使命)인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이 잊었을 때, 고뇌(苦惱)를 만들어 내어 갑니다. 또한, 그 고뇌는 마음에 흐림(우울함)(心に曇りを作り)을 만들고, 비뚤어짐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本当の意味の修行というものは、私たちの日常生活の中に存在しています。病気にしても、経済的な苦しみにしても、そのような体験はより豊かな心を作る一つのチャンスでもあるのです。それを通して、その原因と結果を知ることが大切です。その中から、心の中にある偉大なる神の智恵、神の光を涌現することが大事なのです。

참된 의미의 수행(修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행활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병에 걸려도, 경제적인 괴로움을 겪어도, 그러한 체험(體驗)은 보다 관대한[너그러운] 마음(豊かな心)을 만드는 하나의 찬스(Chance:기회[機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마음속에 있는 위대한 신(神)의 지혜(智惠:智慧), 신(神)의 빛을 샘솟게 하는 일이 중요(大事)한 것입니다.


396(이 표시는, 이 pdf 문서파일이, 이 글이 올려져 있던 페이지 표시입니다)



人間は万物の霊長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偉大なる神の智恵を自ら放棄しています。それも体験です。その中から、自分はこれでいいのだろうかと悩み苦しんで壁にぶつかり、やがて自分の間違った心の歪みは修正されて行くものなのです。

인간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신(神)의 지혜(智惠:智慧)를 스스로 방기(放棄;포기:버리고 돌아보지 아니함)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체험(體驗)입니다. 그러한 중에서, 자신(自身)은 이 정도면 괜찮을까? 라고 끙끙대고 걱정하며 벽에 부딪치며, 머지않아 자신의 잘못된 마음의 비뚤어짐은 수정(修正)되어 가는 것입니다.


(차이점을 보기기 바랍니다)

※방기[放棄] <네이버 한자사전>

①버리고 돌아보지 아니함

※포기[抛棄] <네이버 한자사전>

①하던 일을 중도(中途)에 그만두어 버림  ②자기(自己)의 권리(權利)나 자격(資格)을 쓰지 않음



しかし、私たちは皆、偉大なる魂です。それを自覚するためには、自分自身を常に正し、日常生活をより豊かにし、心の中から出てくる愚痴、怒り、妬み、こういうものを自分の心や生活から取り除くことです。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다), 위대한 영혼(魂)입니다. 그것을 자각(自覺)하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항상 바르게 하고, 일상생활을 보다 풍족하게 만들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우치(愚痴:푸념, 게정, 불평,넋두리, 우는소리), 분노(怒り:성냄, 화냄), 시샘(妬み:질투, 시기), 이러한 것을 자기의 마음이나 생활에서 없애는[제거하는] 것입니다. 



愚痴っぽい人というのがいますが、愚痴は自分の欲望が満たされないために出てくるのです。その愚痴は自分自身の心に大きな曇りを作り出し、苦しみを作り出す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푸념이 많은[잘 게정거리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우치(愚痴:푸념, 게정, 불평,넋두리, 우는소리)는 자신의 욕망(欲望)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우치(愚痴:푸념, 게정, 불평,넋두리, 우는소리)는 자기자신의 마음속에 큰 우울함(大きな曇り)을 만들어 내고,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怒りっぽい人の場合は、まずちょっと待てと、この怒りを直接相手にぶっつけたら一体どうなるだろうか、自分が逆の立場に立ったら一体どう思うであろうかと考え、思いやりの心を持って事にあたったならば、怒りの心など出ては来ません。

"화를 잘 내는 사람"의 경우는, 우선 잠시 기다리고, 이 분노를 직접 상대방에게 터트리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내 자신이 (반대로 상대방의) 입장에 선다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라고 곰곰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에 임한다면, 분노하는 마음 따위는 나오지 않습니다.  


〝叱る〟と〝怒る〟というのは別です。叱るということは愛です。相手自身をよくしようとして厳しい言葉を言うことは叱ることです。怒ることは自分中心の思いです。欲望です。

꾸짖는다(야단친다〝叱る〟시카루)와 성낸다(화낸다〝怒る〟오코루) 라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야단친다(꾸짖는다)고 하는 것은 사랑(愛)입니다. 상대방을 좋게 하려고 해서 엄한 말을 하는 것은 "꾸짖는(叱る)" 것입니다. 성낸다(화낸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생각(思い)입니다. 

 

つまりは、思うようにならないから怒るのです。それは許さ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결국은, 자기의 (주관적인,감정적인) 생각처럼 안되니까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허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そのような、怒る心、妬む心、そしる心というような心の思いはすべて、心の中にあるテープレコーダーやビデオテープに記録されていきます。

그러한, 화를 내는 마음(성내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헐뜯는 마음(비방하는 마음)과 같은 마음의 생각은 전부 다, 마음속에 있는 녹음기(tape recorder)나 비디오테이프(videotape :영상 신호를 기록하는 데 쓰이는 자기 테이프. 음향 신호가 동시에 기록될 수 있음:국어사전)에 기록(記錄)되어 갑니다. 


そして、いずれこの地上界を去るときに、私たち自身の善我なる心がそれを裁くようになるのです。それから逃れることは誰一人として出来ない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ですから決して自分の心の中に毒を作らず、飲んだりもしないことです。

그리고, 어쨌든 이 지상계(地上界)를 떠날 때에, 자기자신의 선아(善我:착한 나)인 마음이 그것을 재판(裁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망치는 것은 어느 누구 단 한 사람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의 마음속에 독(毒)을 만들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것입니다. 


悪口を言われても感情的にムキになり、仕返しをしてやろうなどと思わずに、相手が言うなら、その原因、理由をよく知って、許してやることもまた愛だということを知らねばなりません。こうして私たちは常に自分の生活を正して、毎日の生活を豊かにしていくことが大事です。そのようにして、信じると信じざるとに関わらず、普遍的な真理は、人間の心の中に誰も種を播かれているのです。

욕을 먹어도 감정적으로 화를 내며, 복수를 해 줄테야, 라고 하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가 발하면, 그 원인, 이유를 잘 알고, 용서해 주는 것도 또한 사랑(愛)이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항상 자기의 생활을 바로잡고, 매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보편적인 진리(眞理)는, 인간의 마음속에 누구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その種が一つのきっかけによって心の中で花開いていきます。私たちは、まず間違った考えから自らを解放することです。そして、自分自身を信ずることです。嘘のつけない自分を信じ、それに添った生活をすることです。

그 씨앗이 하나의 계기로 인해서 마음속에서 꽃이 피어 갑니다.(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어 가게 됩니다). 우리들은, 우선 잘못된 생각에서 스스로를 해방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를 믿고, 그것에 부합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自己保存、自我我欲の思いは、小さな自分を作ってしまいます。逆に、お互いに助け合い、協力し合い、補い合う愛の行為が私たちの心を限りなく豊かにして行きます。

자기보존, 자아아욕의 주관적(감적적인) 생각은, 작은 자기를 만들어 버립니다. 반대로, 서로가 서로 돕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모자란 것을 채워주는 사랑의 행위가 우리들의 마음을 한없이 관대한 (마음)이 되게 해 갑니다. 


心は、神の世界において、すべて同根であり、全人類は皆兄弟なのです。皮膚の色による差別や国境などといったものは、愚かしいことです。皮膚の色が違うのは、その国々の気候風土に合わせて神が作られたからであって、同じ人間に変わりはないのです。その肉体舟に乗っている魂たちは、すべて兄弟であり、同じなのです。

마음은, 신(神)의 세계에 있어서는, 모두 동근(同根:근본이 동일함)이며, 전인류는 모두 다 형제(兄弟:동기[同氣])인 것입니다. 피부색(皮膚の色)에 따른 차별(差別)이나 국경(國境)과 같은 것을 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은, 그 나라들의 기후풍토(氣候風土)에 맞추어 신(神)이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며, 같은 인간에게 변화는 없는 것입니다. 그 육체배(肉体舟)를 타고 있는 영혼(魂)들은, 모두(다) 형제(兄弟)이며, 동일(同一)한 것입니다. 


そのようなことを知ったとき、私たちは小さな世界から脱皮し、自分をより豊かにしていくことが、私たち自身の生きる道であると知るでしょう。そして、やがて好むと好まざるとにかかわらず、自覚しなければならない時が来ることを知っておいて下さい。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들은 작은 세계에서 탈피해서, 자기의 (마음을) 보다 너그럽게(관대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들 자신의 살아가는 길(道)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좋든 싫든 관계없이, 자각(自覺)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 것임을 알아 두십시오. 



(여기까지입니다).

( 이 내용은, 최근에 2019년 12월달에, 발견한 글입니다)

(일본 사이트 주소는, 메모장에 저장해 두었었는데,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지를 못했습니다)

(pdf 문서 파일로 정리되어 있었으며, 다카하시 신지님의 모든 전 강연을 약 500페이지 분량을 총 망라해서, 자신의 사이트에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 1월 5일, 일요일 청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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