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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雨期)

어둠의골짜기 2009. 9. 14. 16:14

 우기 ...논핏션 붓다.........중에서...

 

  인도는 인도양으로 튀어나온 역삼각형의 반도를 이루고 있으며 그 땅 넓이가 약 442만 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6억에 이른다.  인도는 반도가 아니라 대륙이다. 북똑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동쪽은 아라칸요마 대밀림 지대, 서쪽은 볼모지 힌두쿠시오하 술라이만산맥이 병풍처럼 큰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지형이나 지질상으로 보면 인도는 남부의 테칸고원, 중부의 힌두스탄고원, 북부의 히말라야산맥 등 셋으로 구분된다. 이 지역은 서로 기후 풍토가 완연히 다르기 때문에 생활 양식이나 언더 등도 여러 갈래이다.

 

  가장 오래된 민족은 스리랑카와 중부 인도의 밀림 지대에 터를 잡고 사는 미개족 푸로도오스트랄로이드이고 남부에ㅔ주로 정착한 드라비다계가 살고 있으며 기원전 2,000년경에는 아리아계가 북서부 지방에 진출하고 있고.  또한 티베트, 버마계,몽골로이드계가 동부에 이주하고 있으며, 그 인종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그로 인해 언어학적으로 인도어는 800종 이상이나 된다.  그러나 오늘날 공인된 언어는 70종이고 그 주요한 것은 15종으로집약되고 있으며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

 

  언어는 대별하여 구라파어(아리아어), 드라비다어, 문다이 등 여러 언어, 티베트어, 미얀마어가 있으며, 그 중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언어는 아리아어와 스리랑카와 데칸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비다어이다.

 

  이렇게 여러 언어가 한 나라 안에 잡다하게 사용되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힘들고분쟁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의 인도는 항상 전란에 휩싸여 싸움이 그칠날이 없었다.

 

  인도 고대사는 아리아인의 펀자브 이주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약 2,000년에서 1.500년 전의 옛날이다.  그 이전에는 이집트, 그리스. 이란 등지에서 이동하여 왔다. 펀자브는 서파키스탄의 북구에 해당하는데 아리아인은 여기서 농경 민족으로 정착하여 다시 인도의 북부, 서부로 이주해 왔다.  아리아인은 자연 현상 속에 신을 인정했고, 그후 바라문교의 근본 경전인 리그<베다>를 만들었으며 인더스, 갠지스강 하류 지대에 진출했다.

 

  바라문교의 근원을 보면 지금부터 약 1만 년 전 아가샤 대왕의 태양을 신으로 받드는 신앙이 지금의 이집트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그후 아몬(예수의 전신)이 나타나서 이것을 계승하였고, 다시 그레오 파로타에 이어졌으며, 그후 아폰론에 전달되어 서퍼키스탄을 경유하여 인도에 정착했다.

 

  '아몬'이란 사람이 이름이다. 그 뜻은 본래 왕, 신, 태양, 우주신을 가리킨다. 그 때문에 아몬은 신을 나타내는 자로 불렸다.  마치 고타마 싯다르타를 붓다, 혹은 풋다로 호칭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붓다란 불(佛)이며 불은 신의 마음을 구현한 사람을 가리킨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고대 인도어로는 나모아미붓다이다.  나모란 나무(南無)라는 뜻으로 이것은 신에 귀의한다. 귀명한다는 뜻이다.  아미는 아미타(阿彌陀)를 말하며 아몬은 지금부터 약 4천 수백여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도를 설교한 위대한 빛의 대지도자라는 뜻이다.

 

  아미다의 어원은 아몬, 아멘, 아미와 같이 그 신앙이 각 지역으로 전파됨에 따라 발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여 인도에 와서는 '아미타'가 되었다.

 

  붓다는 불(佛), 즉 글자 그대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고대 인도어로는 '다보'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직역하면신불에 귀의한다. 귀명한다는 뜻이다.  아미타여래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아몬을 가리키는 말로 아몬은 그후 이스라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태어나게 된다.

 

  아미타 신앙에는 으레 서방정토(西方淨土)가 등장한다.  그곳은 인도에서 보면 서쪽 방향, 즉 아리아인이서에서 동으로 이주하여 인도에 정착하였으므로 아몬신이 원류인 이집트와 이스라엘 방향을 가리킨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 정토는 중동이다.

 

  아미타 신앙은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전래되면서 서방정토의 방향이 상실되었고, 서방 정토란 이 세상에는 없는 땅, 마치 저 세상 천국을 뜻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알고 있어도 좋다.

 

  그와 같은 비유로는 당천축(唐天竺)도 마찬가지다.  불교가 인도에서 전래한 까닭에 불(佛)의 위치는 천축이라는 구름 위의 극락을 가리키게 되었다.  인도로 가는 길에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이 버티고 있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세월이 지나면서 당천축은 구름 위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상상은 발달해 갔다.

 

  이처럼 불교든 바라문교든 그 근원은 하나이며 그 근본 교리는 자연(自然:神)의 의지가 구현(具現:자비 사랑)하는 것에 있었다.  그것이 어느새 형싟화되어 마침내 카스트 제도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즉 리그<베다>가 인도에 정착하게 되니 신관(신관)인 바라문 세력이 권세를 쥐게 되었고 신관,무사,서민, 노예라는 네계급의 엄격한 계급 사회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지금가지의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대한 성자가 나타났을 때는 인간의 마음도 통일되어 조화가 넘치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 빛의 승천하고 나면 차츰 수라장이 되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인류는 이를테면 말법(말법)과 정법(정법)의 되풀이를 거듭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왜 인류사회는 이렇게 구제되지 못하고 혼란한 세상으로 남아 있을까?

  누구나 가지는 의문이다.

 

  그 한 가지 이유로 인류의 카르마(業)를 들수 있다. 가르마란 업(業)이며 사물에 집착하는 상념과 행위에 의한 악순환을 의미한다.  이 가프마가 전생의 과정에서 마땅히 수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는 한 윤회하는 것이므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의 파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원래 가르마라는 것은 연(緣:조건)에 따라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인만큼 나타나지 않는 한 이해도 할 수 없고 수정도 불가능하다.  그 나타나는 현상이 크게 발전하면 말법이 되고 그 만틈 사회도 혼란의 극에 이른다.

 

  더욱이 가르마를 가르마도 인정하지 못한 채로 간과해 버리면 새로운 가르마를 탄생키켜 혼란을 가중시키는일도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말법과 정법의 시대는 역사적으로늘 되풀이 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의 가르마가 그대로 곧바로 나타나는 일은 없다.

 

  만일 그대로 나타난다면 인류는 이미 옛날에 멸망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  인간은 현상계와 실재계를 왕래하는 윤회 속에 살고 있는 존재이며 그런 과정 가운데 다시 이 지상계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만큼 미수정의 부분을 어떻게 슬기롭게 고쳐나가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데 수정이 잘 되는 시대를 정법이라 하고 맹목에 빠지는 시대를 말법이라고 한다.

 

  말법은 이와 같이 마음의 부재 시대를 가리키고 있지만 혼란한 또 한 가지는 인구증가를 들 수 있다.

  1백 년 전과 오늘을 비교해 보면 지구의 인구는 4배나 증가했다. 또 천 년 전과 오늘을 비교해 보면 또한 그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그처럼 향후 50년이나 100년 후의 인구도 증가는 하지만 결코 감소되느 일은 없을 것이다.

 

  싸움의 불씨는 대부분 사상과 생활관의 문제로, 분쟁은 인구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토와 식량은 한저오디어 있는데 인구가 증가하면 그 증가한 분량만큼 식량 증산이 요구된다.  옷과 주거 문제도 늘어나야 한다. 이해가 상반되면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해란 직접적으로는 생활권이며 생활권의 수레바퀴는 사상이고 정치다.  따라서 사상과 정치가 융화하고 해결되지 않는 한 싸움은 그치지 않는다.

 

  정법이 그 문제에 관심이 깊은 이유도 거기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 문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시므로 인간이 마음의 존재를 깨닫게 되면 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묹와 얽혀 인구 문제의 근저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영혼의 관정이 사람마다 다르며

지상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영혼은 지상의 생활 경험이 얕다. 경험이 얕으면 지상 생활에 사로잡히는 집착도 한결 강하다.  지구상에서의 생활 경험이 깊은 인간은 조화의 뜻을 이해하는 것도 빠르지만 경험이 얕은 자는 그 척도조차 분간하기 힘들다.

 

  개인의 일생을 보아도 같다. 유년기와 소년기는 마음의 순진하고 사회의 물정을 잘 모른다. 그 때문에 자기 중심적이 되기 쉽다.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 생활의 전모가 이해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실상도 파악하기가 쉽다.

 

  인간의 영혼도 나이나 지식, 경험은 일단 제쳐놓고도 이성이나 지성이 발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혼의 전생 과정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상 생활의 경험이 얕은 사람과 깊은 사람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 문제나 사회 문제 역시 사회가 조화되었느냐 안 되었느냐와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가 없다.

 

  인구가 증가하고 정치적, 경제적, 혹은 종교적으로 분쟁이 잦아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인간의 영혼 단계에 원인이 있는 것이며 정법과 말법이 시계추처럼 되풀이 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도 이런 데에서 인과 관계를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인구 문제가 막다른 골목길에 부딪칠 때가 올 것이다.  그건 먼 장래의 문제가 아니다.  장래란 인류의 긴 역사를 볼 때 시간적 거리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런 시대가 오면 지구상의 영혼의 급수가 총체적으로 상승하여 이른바 보살계(菩薩界)라는 세계가 새로 생겨날 것이다.  이런 일은 이미 실재계에서 계획된 미래도이며 현상계는 그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보살계란 보살심(보살심)을 가진 자가 저마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서서 인류를 조화로 이끌어가는 세계다.  붓다가 태어났던 2,500여 년 전, 혹은 예수가 사랑을 전파한 2,000년 전, 그리고 오늘날 다시 정법이 전도되고  있는데 정법의 전도는 장차 도래할 지상의 불국토를 향한 이를테면 한기초 작업들인 것이며 금세의 인간은 미래의 지상의 보살계를 위한 첨병으로서의 임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정법과 말법이 반복되는 역사를 보면 인류는 영원한 유량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존재로 오인하고 있다.  또한 자기 모순의 투쟁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사고 방식도 잘못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비록 어린 영혼이라도 해도 그 사실은 알 수 있다.  사람은 단지 육체라는 옷을 입게 되면 육체에 마음이 가려 사물의 시비가 분명하지 않게 될 뿐이다.  육체 생활의 경험을 쌓음으로써 육체의 허망함과 차츰 극명해지고 육체를 지닌 채 마음의 위대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마음과 육체가 보다 선명해질수록 마음과 육체가 조화되는 멋진 체험을 할 수 있게 되고 영혼은 곧 색심불이(色心不二: 色卽異空)의 경지에 도달한다.

 

논픽션 붓다...다카하시 신지의 영적 계시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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