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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力信仰の誤りについて -高橋信次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他力信仰の誤りについて -高橋信次

어둠의골짜기 2009. 12. 23. 09:18

他力信仰の誤りについて

타력신앙의 잘못에 대해서

世が末法になると他力の信仰が流行(はや)ってくる。
세상이 말법이 되면 타력신앙이 유행이 온다.
他力とは文字通り他の力を借りる信仰である。
타력이라는 문자는 말그대로  다른 힘을 빌리는 신앙이다.
阿弥陀にすがって、念仏を唱えれば極楽往生間違いなしというわけである。
아미타불에 매달려, 염불을 외게되면 극락왕생은 틀림없다는 라고 말하고있다.

仏教も変われば変わるものである。二千五百有余年前の釈迦は他力の信仰は一つも教えていない。
불교도 변한다면 변하는 것이다. 2500여 년 전의 석가는 타력신앙은 한번도 가르치고 있지 않다).
イエスが教えたキリスト教にしても今日では祈り一辺倒の他力と化している。
예수가 가르친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는 기도일변의 타력으로 변화하고 있다.
人間は神の子であることはプッタが悟った。
인간은 신의 자녀인 것을 붓다가 깨달았다.
神は天地を自らの意思で創られたように、人間神の子もその運命と環境は自らの手によって調和させていかねばならないのである。
신은 천지를 스스로의 의사로 창조했듯이, 인간인 신의 자녀도 그 운명과 환경은 스스로의 손에 의해 조화시켜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プッタは神の子の自力を教え、イエスは神の子の愛の実践行為を説いた。
붓다는 신의 자녀에게 자력을 가르치고, 예수는 신의 자녀에게 사랑의 실천행위를 설명했다.
それが今では念仏や祈りが信仰というわけである。
그것이 지금에는 염불이나 기도가 신앙이라고 말하고 있다.
明日の運命も分からぬ肉体人間の思念と行為を思えば、他力の信仰を一概に責めるわけにもゆかないだろう。
내일의 운명도 스스로 알수 없는 육체인간이 사념과 행위를 생각하면, 타력의 신앙을 무조건 비난할(나무랄 꾸짖을, 책할)수만은 없을 것이다.
しかし、人間は神の子であり、他力の果ては自己満足を助長し、一方では無気力な人間をつくっていく。
그러나, 인간은 신의 자녀이고, 타력의 결과로는 자기만족을 조장하고,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인간을 만들어간다.
宗教が為政者と結び、衆生を苦しめたのも他力の故であり、盲信・狂言のアヘン患者が出るのも他力の害毒といってもいい。二十世紀の今日といえどもまだこの弊害が続き、信仰の名の下に争いが続いている。神は平和を求めている。
종교가 위정자와 결탁하여, 중생을 괴롭힌 것도 타력의 연고이고, 맹신・광신의 아편환자가 나오는것도 타력의 해로운 독이라고 해도 좋다.  21세기인 지금이라 할지라도 또 이 폐해가 계속되며, 신앙의 이름 아래에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신은 평화를 구하고 있다.

 

他人にはウソは言えても己の心にウソの言えぬその心が神の子の証なのである。
타인에게는 거짓은 말해도 자기의 마음에 거짓을 말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신의 자녀인 증명인 것이다.

とすれば、人はその心を大事にし、その心にしたがって、神性仏性の自分を自らの手で 育てることが信仰ではないのか。
그렇다면, 사람은 그 마음이 중요하고, 그 마음에 따라서, 신성 불성의 자신을 스스로의 손으로 키우는 것이 신앙이 아닌가?
つまり、神は我が心に宿っており、ならばその心に忠実であることが神の子の義務であり、責任ではないか。
즉, 신은 나의 마음 속에 묵고 있고, 그렇다면 그 마음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 신의 자녀의 의무이고, 책임이 아닌가?
正法は自力である。神の子の自覚にもとづいた自力である。我欲を果たそうとする自力ではない。
정법은 자력이다. 신의 자녀인 자각에 바탕을 둔 자력이다.  아욕을 채우려고 하는 자력이 아니다.
求め、努め、勇気を持って歩む者に、神は光を与えて下さる。
구하고, 노력하고, 용기를 갖고 걸어가는 자에게, 신은 빛을 부여해 주신다.
神は自ら努める者に安らぎと調和を与え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ろう。
신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평안과 조화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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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LA關西本部(관서본부)*** 원문의 저자 :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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