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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행(心行)의 해설(解説) (하) 高橋信次의 강연집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심행(心行)의 해설(解説) (하) 高橋信次의 강연집

어둠의골짜기 2011. 4. 18. 07:32

心行の解説(下) 심행의 해설 (하)

                                                                    by 高橋信次先生(다카하시 신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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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にくたい肉体をゆう有するげんせ現世のてんし天使は、もろもろ諸々のしゅじょう衆生にしょうほうしん正法神り理をと説き、ちょうわ調和のこうみょう光明へみちび導かん。このげんしょうかい現象界に
 おけるわれ我ら等は、かこせ過去世において、おのれ己がのぞ望み、りょうしん両親よりあた与えられしにくたい肉体というふね舟にの乗り、じんせい人世こうろ航路のうなばら海原へ、おのれ己のいしき意識・たましい魂をみが磨き、しんい神意のぶっこくど仏国土をつく造らんがため、うま生れいで出たることをさと悟るべし。」 

これは当然我々が生れて来た目的と使命というものを明記したものです。
「육체를 소유한 현세(이 세상)의 천사는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에게 정법신리를 설명하고 조화의 광명으로 인도한다. 이 현상계에 있어서 우리들은 과거세에서 자기의 희망, 양친에 의해 주어지고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항로의  넓은 바다로 자기의 의식・혼(魂)을 연마하고 신(神)의 뜻인 불국토를 구축하기 위해서 태어나 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우리들이 태어나 온 목적과 사명이라고 하는 것을 명기한 것입니다.

 

「にくたい肉体のしはいしゃ支配者は、おのれ己のいしき意識なり、おのれ己のいしき意識のちゅうしん中心はこころ心なり。こころ心はじつざい実在のせかい世界につう通じ、おのれ己のしゅご守護・しどう指導れい霊が、つね常にぜんどう善導せることをわす忘れるべからず。ぜんどう善導せるがためにおのれ己のこころ心は、おのれ己じしん自身にちゅうじつ忠実なることをし知るべし。」
「육체의 지배자는 자기의 의식이며 자기의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니라. 마음은 실재의 세계로 통하고 자기의 수호・지도령이 늘 선도해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도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皆さま自身は、ややもすると一人で居ると淋しいと思う。然し皆さまの心の中には次元を越えた魂の兄弟たちや、あるいは自分の達成しようとして努力している目的に対して、実在界の光の天使たちが常に皆さまの心の中に働きかけて協力しているという事を知るべきです。決して淋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実在界にいる人たちの方が、盲目で修行して己自身の心の窓を開いたならば、彼等自身がいろいろの力を出す事が出来ます。その時私たちは偉大なる自分の心こそ、総てであるという事をハッキリと解ります。このように善導される我々の心は「おのれ己じしん自身にちゅうじつ忠実なることをし知るべし。」というように、皆さまの心は人には嘘はつけても自分には嘘がつけないように、これこそ神の子たる絶対なる証拠なのです。
여러분 자신은, 흔히, 혼자 있으면 쓸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차원을 초월한 혼의 영제들이나, 혹은 자신의 달성하고자 해서 노력하고 있는 목적에 대해서, 실재계의 빛의 천사들이 항상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작용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쓸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재계에 있는 사람들이, 장님으로 수행하고 자기 자신의 마음의 창을 열었다고 하면, 그들 자신이 여러 가지의 힘을 보태줄 수가 있습니다. 그때 저희들은 위대한 자신의 마음이야말로, 전부인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도되는 우리들의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라고 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은 남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말로 신의 자녀만이 절대적인 증거인 것입니다.

 

やがて皆さまがこの地上界を去る時には、皆さま自身の為した想念と行為、思った事と行った事の一切を、皆さま自身の善なる心が裁くのです。その時は酷しいのです。情状酌量というこの地上界における裁判の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一切は自分の善なる心が酷しく己自身を裁くために酌量の余地はありません。己の善なる心に人は嘘はつけないのです。その嘘のつけない己自身というものを、正直に毎日の生活の中に活かしたならば、この世の中はもっともっと調和されてゆくはずです。
머지않아 여러분이 이 지상계를 떠날 때에는, 여러분 자신의 행한 상념과 행위, 생각한 것과 생한 것의 모든 것을, 여러분 자신의 선한 마음이 재판하는 것입니다.  그 때는 혹독한 것입니다.  정상참작이라고 하는 이 지상계에 있는 재판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선한 마음이 혹독하게 자기 자신을 재판하기 때문에 참작의 여지는 없습니다.  자기의 선한 마음에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정직하게 매일의 생활 속에 살렸다면, 이 세상은 더욱 더 조화되어 갈 것입니다.

 

「しか然るにもろもろ諸々のしゅじょう衆生は、おのれ己のにくたい肉体にいしき意識、こころ心がしはい支配され」
 「그런데도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은, 자기의 육체의식, 마음이 지배되어」

 

 

という意味は皆さま自身の目で見たもの、耳で聞いたもの、それを肉体の舟だけで判断してしまって、肉体の船頭さんである魂、そしてその中心である心に何の相談もしないで、つい私たちは五官でとらえたものを即座に想念に作用し想念に作用したものが、自分に都合が悪いとすぐ感情になって出てしまったり、あるいは自分自身が学んで来た、いろいろな人生体験を通して判断して逃げようとしたり、あるいは逆な言葉で返してしまう。五官でとらえたものは即座に皆さまの想念にはい這入り、この中でじっくりと自分自身の本能や智性や、感情や理性というもので、噛み砕いて皆さま自身がはっきりと判断出来るならば良いのですが、自分に不利益な問題を第三者から聞かされると、我々の耳を通して想念が即座に感情となって、相手をひぼう誹謗するような言葉になって出てくる事になります。そうなってしまうと心の中に噛み砕いて正しく判断する事が出来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
그렇다고 하는 의미는 여러분 자신의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그것을 육체의 배만으로 판단해 버리고, 육체의 선장인 혼, 그리고 그 중심인 마음에 어떤 상담도 하지 않고, 무심코 우리들은 오관에 사로잡힌 것을 즉석에서 상념에 작용하고 상념에 작용한 것이, 자신에게 사정이 안좋았다고 하면(불리해지면)곧바로 감정적으로 되어 버리거나, 혹은 자기 자신이 배워 온, 다양한 인생체험을 통해서 판단해서 도피하려고 하거나, 혹은 말을 바꿔서 뒤집어 버린다.  오관에 사로잡힌 것은 즉석에서 여러분의 상념에 파고 들어가, 그 속에서 차분하게 자기 자신의 본능이나 지성이나, 감정이나 이성이라고 하는 것으로, 잘근잘근 씹어서 여러분 자신이 명백히 판단할 수 있게 되면 좋은 것입니다만, 자신에게 불이익인 문제를 제삼자로부터 듣게 되면, 우리들의 귀를 통해서 상념이 즉석에서 감정적으로 되어, 상대를 비방하는 것과 같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마음 속에 잘근 잘근 씹어서 올바르게 판단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そこで我々はたとえ自分に不利益で誹謗された問題があっても、自分の心の中で第一に、なぜ私はそのような事を云われるのだろうか、相手はなぜ私にそのような事を聞かせるのだろうか?なぜなぜとその問題を追求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それをあく迄も心の中で中道を通して、自分自身を第三者の立場に立ってしっかりと眺めた時に、その原因があるなれば素直に「ああ私が悪かった」今後修正しますからと言えば、心の中に一杯詰め込まないで済むのです。それを私の立場が立たない、あるいは面子が立たないと自分流で心にもない事をやってしまって、更に苦しみを大きくしてしまうのです。
그래서 우리들은 비록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비방받은 문제가 있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첫째로, 왜 나는 그러한 것을 말해지는 것일까, 상대는 왜 나에게 그러한 것을 들려주는 것일까?  왜 왜냐고 그 문제를 추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어디까지나 마음 속으로 중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제삼자의 입장에 서서 확고히 바라보았을 때에, 그 원인이 있다면 솔직하게 「아~! 내가 나빴어 」 앞으로는 수정하겠다고 라고 말하면, 마음 속에 가득 채워 넣지 않으므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의 입장이 서지 않고, 혹은 체면이 서지 않으면 자기방식으로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해 버리고, 더욱 괴로움을 크게 해 버립니다.

 

人間は素直に成らねばなりません。我々は聞いた事、見た事を心の中で感情を入れずにしっかりと正しく判断した時に、人間は皆必ず正しい判断が出来るのです。それを自分の心の中で分解もせずに、一概に判断してしまって、心にヒズミを作ってしまう事は、その人は毒を喰った事になるのです。それは自身の想念が曇を発して神の光を遮え切ってしまうのです。そこで八正道の中において「正しく見、正しく語る」というのは、あくまでも中道という大調和を根底にされた神理を中心に、己自身を判断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おのれ己がぜんせ前世のやくそく約束をわす忘れ、じこ自己ほぞん保存、じが自我がよく我欲にあ明けく暮れて、おのれ己のこころ心のま魔にしはい支配され、しんい神意にはん反しこのげんしょうかい現象界をす過ぎゆ行かん。」            
인간은 솔직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들은 것, 본 것을 마음 속에서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확고히 올바르게 판단했을 때에, 인간은 틀림없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신의 마음 속에서 분해도 하지 않고, 통틀어 판단해 버리고, 마음에 히즈미를 만들어 버리는 일은, 그 사람은 독을 마시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상념이 구름을 발해서 신의 빛을 끊고 가로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정도의 내용에 있어서 「올바르게 본다, 올바르게 말한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중도라고 하는 대조화를 밑바탕으로 하게한 신리를 중심으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자기가 전생(前世)의 약속를 잊어버리고, 자기보존, 자아아욕에 세월을 보내며, 자기의 마음의 마귀(악마)에게 지배되어, 신(神)의 뜻을  배반하고 이 현상계를 지나쳐 간다.」


末法の世の中になりますと心の規準というものがなくなります。では正しい判断をするのにはどのような物差しによって計れば良いか、それは八正道なのです。心を丸くするには八正道以外にはありません。常に正しく見て、自分の心のどこにヒズミが出ているかという事がはっきりと解って来れば、生活の中で間違った事は行われません。少くとも私の話を二回~三回聞いている人たちは、物事に対して即座に理性が働きます。現象が起れば、これは善い事であろうか、悪い事だろうかというブレーキが掛ります。しかし神理を知らない人たちはこのブレーキすら持合せがないのです。皆さまが日々のテレビのドラマを見ても物の見方が変って来たはずです。それが当然なのです。日々の中に我々は心の普遍的なことを知り、常に安らぎと調和という習慣を、己の心の中に作っていった時、皆さまはより調和された光の世界に心は進化してゆくのです。
말법의 세상이 되게 되면 마음의 규준(바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에는 어떠한 척도에 의해서 계획하면 좋을까, 그것은 팔정도인 것입니다.  마음을 둥글게 하는데에는 팔정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항상 올바르게 보고, 자신의 마음의 어디에 비뚤어짐이 나오고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면, 생활 속에서 잘못된 일은 행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저의 이야기를 2번 ~3번 듣고 있는 사람들은, 사물에 대해서 즉석에서 이성(理性)이 작용합니다.  현상이 일어나면, 이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라고 하는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그러나 신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브레이크조차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들은 마음의 보편적인 것을 알고, 항상 평온함과 조화라고 하는 습관을, 자기의 마음 속에 만들어 갔을 때, 여러분은 보다 조화된 빛의 세계로 마음은 진화해 가는 것입니다.


「また又、しょう生ろうびょうし老病死のくる苦しみをう受け、おのれ己のほんしょう本性をわす忘れさ去るものなり」
「또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받고, 자기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이니라.」

 

 

というのも人間は死ぬのが恐い、そして年を取るのも、病気をするのも総て苦しみだ。しかし人間はその苦しみがあるだけに修行が出来る。そしてその苦しみから解脱出来るのです。私はその苦しみを解脱する道を説いているのです。苦しみを解脱する道は、己自身が足る事を知った正道の道を行じて心が浄化されてゆけば、皆さま自身はあの世に帰る自分の道ですら行って見る事が出来るのです。そうなれば現在持っている肉体は、人生航路を渡ってゆくためのただの乗り舟であって、あの世に帰る時には又新しい肉体を持って、あの世へ帰る自分の生活環境を見届けて来る事も出来るのです。そういう事がハッキリと判れば死ぬという事もこわくはありません。恐い原因は執着があるから恐いのです。その執着というものを我々は生活行為の中から、一ツ一ツ取除いていった時に、皆さまはより広い大きい心に進化してゆくのです。そこで生老病死の苦しみの原因は総て自分が作り出している。「そのげんいん原因はぼんのう煩悩なり。」と書いております。
그렇다고 하는 것도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 무섭고, 그리고 나이를 먹는 것도, 병이 드는 것도 전부 괴로움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괴로움이 있는만큼 수행(修行)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괴로움을 해탈하는 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해탈하는 길은, 자기 자신이 만족함을 아는 정도의 길을 행하고 마음이 정화되어 가면, 여러분 자신은 저 세상에 돌아갈 자신의 길이기 때문에 가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자기고 있는 육체는, 인생항로를 건너가기 위한 것으로 단지 승선하고 있고, 저 세상으로 돌아갈 때에는 또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저 세상으로 돌아갈 자신의 생활환경을 살펴 보고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분명하게 판단하면 죽는다고 하는 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무서운 원인은 집착이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그 집착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생활해위 속에서, 하나 하나 제거해 갔을 때에, 여러분은 보다 넓고 큰 마음으로 진화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노병사의 괴로움의 원인은 전부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 원인은 번뇌이니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前述したように煩悩は眼、耳、鼻、舌、身、意の六根が総てである。この六根の調和は常に己の心に問う事であります。すなわち、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번뇌는 눈, 귀, 코, 혀, 몸, 의식의 육근이 모든 것이다.  이 육근의 조화는 항상 자기의 마음에 묻는 것입니다.  즉,

 

「ぼんのう煩悩は、がん眼・に耳・び鼻・ぜつ舌・しん身・い意のろっこん六根がこんげん根元なり、ろっこん六根のちょうわ調和はつね常にちゅうどう中道をこんぽん根本として、おのれ己の
그 원인은 번뇌이며 번뇌는 눈・귀・코・혀・몸・의식의 육근이 근원이며, 육근의 조화는 늘 중도를 근본으로서, 자기의

 

たゞ正しいごころ心にと問うことなり。おのれ己のこころ心にと問うこと事は、はんせい反省にして、はんせい反省のこころ心は、おのれ己のたましい魂がじょうか浄化されるこ
とをさと悟るべし。」
올바른 마음에 묻는 것은 반성으로서 반성의 마음은 자기의 혼(魂)이 정화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皆さま自身が自分の為した想念と行為というものを、しっかりと八正道の物差しで反省した時に、反省によって心の曇を晴らすことが出来るのです。これが禅定です。朝から夕方迄何をして来たか、人を恨まなかったか、自分の都合だけを考えなかったか、主人に対してぞんざいな口をきかなかったか、このように一ツ一ツを正しく反省した時に、皆さまの心の引掛りは無くなって行きます。心の曇がなくなりますから神の光によって覆われます。
여러분 자신이 자신의 행한 상념과 행위라고 하는 것을, 확고히 팔정도의 척도로 해서 반성했을 때에, 반성에 의해서 마음의 구름을 말게 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정(禅定)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해 왔는지, 남을 원망했는지, 자신의 사정만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주인에 대해서말이나 행동이 거칠고 무례한 말을 하지 않았는지, 이와 같이 하나 하나 올바르게 반성했을 때에, 여러분의 마음의 걸림(꺼리낌)은 없어져 갑니다.  마음의 구룸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신의 빛에 의해서 덮혀질 수 있습니다.


我々の心は一念三千、自在に変化をしますが、常に正道という状態に己の心を戻すこと。摩訶止観と言って中国の天台ちぎ智顗というお坊さんが発見をして居ります。止観というのは、己自身の心を止って見る、これは反省ということです。人間はこの地上界に出てしまえば僅か一〇パーセントの表面意識で修行をしているために間違いを犯すのです。しかし過ちを改むるにはばか憚ることなか勿れ、間違いを犯すから修行が出来るのです。一歩下ってその間違いの原因をしっかりと究明して、二度と間違いを犯さないように生活することが大事なのです。私たちは孤独ではないんだ魂の兄弟たちがいるんだ、即ち「おのれ己じしん自身はこどく孤独にあらずいしき意識のなか中におのれ己にかんれん関連せししゅご守護・しどう指導れい霊のそんざい存在をし知るべし。しゅご守護・しどう指導れい霊にかんしゃ感謝しさら更にはんせい反省は、おのれ己のしゅご守護・しどう指導れい霊のみちび導きをう受けることをし知るべし。」
우리들의 마음은 일념삼천(一念三千)、, 자유로이 변화를 합니다만, 항상 정도라고 하는 상태에 자기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   마하지관(摩訶止観)이라고 말하며 중국의 천태지의(天台智顗)라고 하는 스님이 발견을 하고 계십니다.  지관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멈추고 본다,  이것은 반성(反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지상계에 나와 버리면 불과 10%의 표면의식으로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는데에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잘못을 범하기에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발 물러서서 그 잘못의 원인을 뚜렷히 구명하고, 두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토록 생활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고독하지 않은 것이며 혼(魂)의 형제들이 있는 것이며, 즉 「자기 자신은 고독하지 않으며 의식 속에 자기에게 연결되어 있는 수호・지도령의 존재를 알야할 것이다.  수호 지도령에게 감사하고,  더욱 더 반성은 자기의 수호・지도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皆さまにはそれぞれ守護霊がいるんですから、皆さまの心が更に調和されてくれば、守護霊自身が姿を見せる事があります。それは日本人である場合も又外人である場合もありますが、守護霊は必ず皆さまのために協力しているのです。守護霊というのは皆さまの魂の兄弟たち、あるいは又皆さまに関係のある友達がいろいろと協力してくれます。私の守護霊の何人かは、指導霊として人々についている場合があります。また仕事の内容によって守護霊、指導霊は違って参ります。この様に皆さまは守護、指導霊の導きを受けているのです。   
여러분에게는 저마다의 수호령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더욱 조화되어 가면, 수호령 자신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인인 경우도 또 외국인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수호령은 틀림업이 여러분을 위하여 협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호령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혼(魂)의 형제들, 혹은 또 여러분에게 관계가 있는 친구가 여러 가지로 협력해 줍니다.   저의 수호령의 어떤 사람(몇 명)인지는, 수호령으로서 사람들에게 관계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일의 내용에 따라서 수호령, 지도령은 달라져 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수호, 지도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ろっこん六根あるがゆえ故に、おのれ己がさと悟れば、ぼだい菩提とか化すことをさと悟るべし。」と言う事は、我々は煩悩を縁としてその苦しみから解脱す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육근이므로, 자기가 깨달으면 보살로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은 번뇌를 인연으로 해서 그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この菩提というのは、たまたま、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が大きいピパラーという大木を背景として、その場所でもし悟れなければこのまま死んでしまおうと、一切の執着を断ち切って、一週間日についに宇宙即我、色心不二という己自身の神理を悟ります。そのために悟りの意味を菩提樹という木になぞらへて、中国においては菩提と化すと言ったのです。眼耳鼻舌身意という六根より生ずる煩悩が菩提と化すことが出来るのだという事です。ややもするとこのために私たちは間違いを犯す。しかしこの間違いを二度と犯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事です。私が言っているのはこの意味です。
이 보리라고 하는 것은, 원래, 고다마 싯타르다가 큰 비바라 라고 하는 거목을 배경으로 해서, 그 장소에서 깨닫지 못하면 이대로 죽어버리겠다고 다짐하고, 모든 집착을 끊어서, 일주일동안에 마침내 우주즉아, 색심불이라고 하는 자기 자신의 신리를 깨닫습니다.  그 때문에 깨달음의 의미를 보리수라고 하는 나무를 수수께끼(신비)라고 해서, 중국에 있어서는 보리고 변화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눈귀코혀몸의식이라고 하는 육근에서 생기는 번뇌가 보리로 변화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흔히 이 때문에 저희들은 잘못을 범합니다.  그러나 이 잘못을 두번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의미입니다.

 

「しんぶつ神仏のだいじひ大慈悲にかんしゃ感謝し、ばんしょう万生そうご相互のちょうわ調和のこころ心が、しんい神意なることをさと悟るべし。」
「신불의 대자비에 감사하고 만생상호의 조화의 마음이 신의 뜻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神仏の大慈悲に感謝する。所謂太陽の熱・光のエネルギーを無償で神が与えている。その結果が地球上の樹木や草花を咲かせ、又我々の生活環境のためにその物を与えております。このような慈悲と愛に対し、ただ有難う御座居ますでは困ります。ただ感謝だけでは一方通行です。報恩という行為が必要なのです。報恩という行為は、人のため、社会のため、人類のために、経済力のある人は経済を以て、体力のある人は労力を以て、あるいは私の家を使って下さい、米が沢山あるから米を使って下さいと、このように自分の出来得るものを以て気の毒な人たちに愛の手を差しのべる、これが感謝と共になすべき報恩の行為なのです。それを私たちは忘れているのです。
신불의 대자비에 감사한다.  소위 태양의 열・빛의 에너지를 무상으로 신히 주고 있다.  그 결과가 지구상의 수목이나 풀과 꽃을 피게하고, 또 우리들의 생활환경을 위해서 그것을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자비와 살랑에 대해서, 단지 감사합니다만으로는 곤란합니다.  단지 감사만으로는 일방통행입니다.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가 필요한 것입니다.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는, 사람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경제력이 있는 사람은 경제를 사용해서, 체력이 있는 사람은 체력을 사용해서, 혹은 저의 집을 사용해 주십시요, 쌀이 많이 있기때문에 쌀을 사용해 주십시요라고, 이와 같이 자신의 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해서 가엾은(=사정이 딱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어야 합니다. 이것이 감사와 함께 행해야 하는 보은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것을 저희들은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インドの当時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善き友を持てと教えました。善き友というと殆んどの人は、自分の都合の良い時だけ協力してくれる人を善き友だと思って居ります。これを善き友と思ったらとんでもない事です。善き友というのは、お互い苦しい時に助け合い、相手が苦しい時にはそのために協力を惜しまず、心と心とが結びついた、このような人たちが本当の善き友なのです。ややもすると私たちの善き友と言えば一方通行の善き友であります。そのようなものでなく、お互いのために、調和と安らぎのために、又平和な心を作るために、このような環境が必要なのです。
인도의 당시 고다마 싯타르타는 착하고 어진 벗를 가져라 라고 가르쳤습니다.  착하고 어진 벗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사정(형편)이 좋을 때만 협력해 주는 사람을 착하고 어진 벗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착하고 어진 벗라고 생각한다면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착하고 어진 벗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괴로울 때에 서로 돕고, 상대가 괴로울 때에는 그 때문에 협력을 아까워하지 않고, 마음과 마음이 결합된, 이러한 사람들을 진실한 착하고 어진 벗인인 것입니다.  흔히 저희들의 착하고 어진 벗이라고 하면 일방통행인 착하고 어진 벗을 말합니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조화와 평온함을 위해서, 또 평화로운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한 환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にくたい肉体せんぞ先祖にほうおん報恩くよう供養のこころ心をわす忘れず、りょうしん両親にたい対しては、こうよう孝養をつく尽すべし。しんしん心身をちょうわ調和し、つね常にけんぜん健全
 なせいかつ生活をし、へいわ平和なかんきょう環境をつく造るべし。」 
「육체 선조에게 은혜를 갚는 공양의 마음을 잊지 않고, 양친에 대해서는 효도를 다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조화하고, 늘 건전한 생활을 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我々は肉体先祖を通じてこの地上界の環境に舟を頂いた。それに感謝する心は親孝行の行為になってくるのは当然の事です。最近自分の主義主張のために親の言う事も聞かず、自殺をした例がありましたが、このような事は一番の親不孝者です。
우리들은 육체선조를 통해서 이 지상계의 환경에 배를 물러받았습니다.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부모에게 효도의 행위로 이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최근 자신의 주의주장을 위해서 부모가 말하는 것도 듣지 않고, 자살을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만, 그러한 일은 가장 부모에 대한 불효자입니다.

 

我々はそういう事であってはなりません。両親に対し育ててもらった事に、ただ有難とう御座いますではなく、経済的にも、精神的にも又肉体的にも、いろいろな角度から親孝行をしなくてはならないはずです。若し親不孝ばかりしていて、この地上界を去って、今度「お父さんになって下さい」と頼んだ時「あの時大分親不孝をしたからお前なんかの親にはなってやらないよ」と断わられます。そういう事を考えたら余り親不孝をしない方が良いと思います。
우리들은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 대해서 길러주신 일에, 단지 감사합니다만으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또 육체적으로도, 다양한 각도에서 부모에게 효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에게 불효만 하고 있고, 이 지상계를 떠나서, 이 다음에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요.」라고 부탁할 때 「저 당시에 상당히  불효를 했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부모가 되어 주지 않겠소.」라고 거절합니다. 그러한 일을 생각한다면 지나친 불효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にくたい肉体ほぞん保存のエネルギーげん源は、ばんしょう万象をふく含め、どうぶつ動物・しょくぶつ植物・こうぶつ鉱物なり・・・。」          
「육체보존의 에너지원은, 만상을 포함해서, 동물・식물・광물이니라・・・。」          

 

皆さま自身肉体保存が可能なのは、動物、植物、鉱物というエネルギーがあるから出来るのです。そのエネルギーに対して感謝する心を忘れてはならない。その理由は、たとえ米粒一つにしても、彼等は命を投げ出して人類の血や肉や、骨と成る事に彼等自身の修行を持っているのです。それ故に動、植、鉱、というエネルギーに対して感謝することとは、粗末にするなということです。それをあり余っているから、これぐらいはいいだろうと無駄にする。感謝する心があるならば、そのものを粗末にしないようにすることが第一だということです。
여러분 자신의 육체보존이 가능한 것은, 동물, 식물, 광물이라고 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에너지에 대해서 감사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가령 쌀알 하나에 대해서도, 그들은 생명을 바쳐서 인류의 피나 살이나, 뼈가 되는 일에 그들 자신의 수행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물, 식물, 광물, 이라고 하는 에너지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란, 허술하게 하지 말아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남아 돌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낭비한다 .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허술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ひび日々のせいかつ生活のなかにおいて、おのれ己のたましい魂をしゅぎょう修行すべし。おのれ己のこころ心、いしき意識のエネルギーげん源は、ちょうわ調和のとれたひび日々のせいかつ生活のなかに、しんぶつ神仏よりあた与えられることをさと悟るべし。」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기의 혼(魂)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의식의 에너지원(源)은
조화에 따른 일상의 생활 속에 신불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人間には肉体のほかに、意識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すなわち精神であり、心です。心配ごとや、勉強等の精神労働にたいして、そのエネルギーの補給は睡眠によって得られますが、最も大事なことは調和であります。神の心を心とした心、調和の毎日をすごすことが出来れば、その意識は常に健全に保たれ、エネルギーの限りない補給が続きますから、普通の何倍ものエネルギーを消費しても疲れを知りません。エネルギーの源は神仏です。
인간(人間)에게는 육체(肉體)뿐만 아니라, 의식(意識)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정신(精神)이며, 마음(心)입니다.  걱정거리나, 공부 등의 정신노동를 다하고, 그 에너지의 보급은 수면(睡眠)에 의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調和)입니다.  신(神)의 마음을 마음으로 한 마음 , 조화의 매일을 보낼 수 있으면 , 그 의식(意識)은 항상 건전하게 유지되어 에너지의 한없는 보급이 계속 되기 때문에, 보통 몇배의 에너지를 소비해도 피로를 모릅니다.  에너지의 근원(源)은 신불(神佛)입니다.  
 
人間は神仏の子ですから、神仏に眼を向け、調和の心を忘れなければ、神仏の保護をうけるのは当然のことです。ウソのつけない己の心を信じ、ウソのない毎日の生活を続けることによって、神仏の加護をうけ、魂の修行をかさねてゆくべきでしょう。
인간은 신불의 자녀이기 때문에, 신불에 눈을 향하고, 조화의 마음을 잊지 않으면, 신불의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기의 마음을 믿고, 거짓말 하지 않는 매일의 생활을 계속해가는 것에 의해서, 신불의 가호(加護)를 받고, 혼(魂)의 수행(修行)을 거듭해야 가야겠지요.

 

「おのれ己のにくたい肉体がくる苦しめば、こころ心のうらん悩乱し、わがみらく我身楽なれば、じょうよく情欲にあい愛ちゃく着す。くらく苦楽はとも共に、しょうどう正道じょうじゅ成就のこん根ぽん本にあら非ず、くらく苦楽のりょうきょく両極をす捨て、ちゅうどう中道に入り、じこ自己ほぞん保存、じが自我がよく我欲のぼんのう煩悩をす捨てるべし。」
「자기의 육체가 괴로우면, 마음도 혼란해지고, 자기 몸이 즐거우면, 정욕에 애착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같이, 올바른 길의 목적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이 아니며, 괴로움과 즐거움의 양극을 제거하고 중도(中道)에 들어가, 자기보존, 자아아욕의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肉体と精神というものは、通常は不離一体です。それ故に、肉体が痛むということは、肉体に密着している光子体が痛む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肉体と光子体は神経繊維によってつながっております。神経の通らない肉体は、単なる「モノ」にすぎないのです。戦場や交通事故によって、腕や足の神経組織が寸断されたりした場合、その腕なり足は、外傷を受けても、痛くもかゆくもありませんから、やがて腐って役に立た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また、足や腕を切断して義足や義手をはめていながら、その義足や義手の部分がムズかゆいことがあります。これは肉体はなくなっても、光子体の足なり手なりの部分は切断されてい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
육체와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통상은 떨어지지 않는 한 몸(不離一體=불이일체)입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아프다라고 하는 것은, 육체에 밀착하고 있는 광자체(光子体)라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육체와 광자체는 신경조직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경(신경)의 통하지 않는 육체는, 단순한「물건」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전쟁터나 교통사고에 의해서, 팔이나 다리의 신경조직이 토막토막 끊기거나 했을 경우, 그 팔이든지 다리는, 외상을 받아도,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기 때문에, 이윽고 썩어서 도움이 되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또, 발이나 다리를 절단해서 의족이나 의수를 붙이고 있다면, 그 의족이나 의수의 부분이 근질근질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육체는 없어져도, 광자체의 다리이든지 손이라든지의 부분은 절단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人間には、このように光子体という、もう一つのボデーを持った意識体というものがあって、その意識体が肉体を動かしているのであります。このように人間は肉体と精神とを切離して考えることは不可能であります。肉体的な苦痛は精神的苦痛につながってきます。それは肉体の苦痛が光子体の苦痛であるからで、肉体の健康な時は光子体の健康を意味しているのであります。たとえば、ある仕事をなし遂げるために、肉体を酷使して、毎日夜の二時、三時まで仕事に精を出したとしましょう。気持が張りつめている間はあまり疲労は感じないでしょう。しかし肉体には個人差はあっても、その肉体を維持する最低の条件があります。こういうことを続けていると、その人は病気という結果をうみ出してゆきます。肉体には運動と休息というものが必要なのです。もちろん精神も一緒であります。こうした原理・原則を無視して、心が先走って肉体を酷使すれば、弾性の限界をはみ出し病気という結果を招いてしまうのです。
인간에게는, 이렇게 광자체라고 하는, 또 하나의 body(몸)을 지닌 의식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 의식체가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끊어버리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정신적 고통를 동반해 옵니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이 광자체의 고통이기 때문이며, 육체가 건강한 때는 광자체의 건강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육체를 혹사하고, 매일밤  2시, 3시까지 일에 열심히 했다고 합시다.  기분이 팽팽하고 있는 동안은 별로 피로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에는 개인차는 있어도, 그 육체를 유지하는 최저의 조건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속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질병이라고 하는 결과를 출산해 갑니다.  육체에는 운동과 휴식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정신도 함께입니다.  이러한 원리・원칙을 무시하고, 마음이 앞질려서 육체를 혹사하면, 탄성의 한계를 초과해서 질병이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해 버리는 것입니다. 

 

また反対に、肉体保存にばかり、意をそそいで、精神活動をおろそかにしてゆくと、精神の進化はおくれて、肉体も退化してゆくのです。運動もせずに、暖衣飽食をしていると、肉体に抵抗力がなくなり、ちょっとした風邪をひいても、大病を誘発するようなことになります。
또 반대로, 육체보존에만, 관심을 쏟고, 정신활동을 소홀하게 해가면, 정신의 진화(進化)는 늦고, 육체도 퇴화(退化)해 가는 것입니다.  운동도 하지 않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육체에 저항력(抵抗力)이 없어져, 대수롭지 않은 감기에 걸려도, 중병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適度の精神運動と適度の肉体運動は、健全な精神と肉体を保ってゆく上に、必要欠くべからざるものであります。
적당한 정신운동과 적당한 육체운동은, 건전한 정신과 육체를 유지해 가는데에, 필요하며 소홀히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また人は環境によって、物の見方も、性格、心の持ち方もかわってまいります。経済的に非常に苦しかったり、逆に非常にめぐまれた環境の中にあると、人間はどうしても自己を発見するということがむづかしいものであります。金がたくさんあるとつい好き勝手なことをし、反対に貧乏をして明日のパンにも事欠くような状態であると、人のことなど構っておれなくなってしまうのです。
또 사람은 환경에 따라서, 현상에 대한 견해나, 성격, 마음가짐도 변해 갑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괴롭거나, 반대로 매우 여유있는 환경 가운데에 있으면, 인간은 아무래도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돈이 많이 있으면 무심코 제멋대로인 일을 하고, 반대로 가난해서 내일의 빵이라고해도 부족한 처지인 상태로 있으면, 남의 일 따위야 마음을 쓰지 않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ここで中道というものが大事なことになってくるのです。中道とは文字通り真中の道であります。真中とは円であれば円の中心、かなめ要であり、それを知るにはまず自我にもとづいた考え方を改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中道の心は自我を離れた客観的な立場にたたなければ見出すことは出来ないのであります。
中道の心とは私心のないことです。神の尺度です。この神の尺度に立った時に、はじめて正しい判断ができ、精神と肉体、環境の調和というものは生れてくるのです。
여기에서 중도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중도란 문자그대로 한가운데의 길입니다.  한가운데란 원으로 있으면 원의 중심, 요점이며, 그것을 아는데에는 우선 자아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도의 마음은 자아를 벗어난 객관적인 입장에 서지 않으면 찾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도의 마음이란 사심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척도입니다.  이 신의 척도에 입각했을 때에, 비로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정신과 육체, 환경의 조화라고 하는 것은 태어나오는 것입니다.   

 

「いっさい一切のしょげんしょう諸現象にたい対して、ただ正しくみ見、ただ正しくおも思い、ただ正しくかた語り、ただ正しくしごと仕事をなし、ただ正しくい生き、
 ただ正しくみち道にしょうじん精進し、ただ正しくねん念じ、ただ正しくじょう定にい入るべし。
「모든 여러 현상에 대해서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일을 하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도에 정진하고, 바르게 염원하고, 바르게 선정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か斯くのごと如くしょうほう正法のせいかつ生活のなかにこそ、しんぶつ神仏のこうみょう光明をえ得、まよ迷いのきし岸よりさと悟りのひがん彼岸にとうたつ到達するものなり。このときに、しんぶつ神仏のこころ心とおのれ己のこころ心がちょうわ調和されこころ心にやす安らぎをしょう生ぜん、こころ心はこうみょう光明のせかい世界にい入り、さんまい三昧のきょうがい境涯にとう到たつ達せん。」
이와 같은 정법의 생활 속에서야말로, 신불의 광명을 얻고,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하는 것이 되며, 이 때에,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되어 마음에 평온함을 만들어낸다.
마음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가고, 삼매의 경지(境涯)에 도달한다.」

 

中道の道を歩むために、では具体的にどうずればよいのか、それには中道の目的を適える八正道しかないのであります。
중도의 길을 걷기 위해서,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그것에는 중도의 목적에 맞는 팔정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正しく見る、思う、語る、の三つの精神作用は、人間がこの世で生活する上に、もっとも大事な、そして基礎的な部分を占めています。煩悩という迷いが生ずるのは、見たり、聞いたり、話したりすることが多いからおこるのであります。私はまずこの三つを八正道の冒頭にあげ、「正しく見る」とは、心の眼で見よ、「正しく思う」とは、頭で考えず、心で考えよ、「正しく語る」とは、心で考えたことを語るようにせよ、といっているのです。 
올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3가지의 정신작용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데에는, 더욱 더 중요한, 그리고 기초적인 부분을 점하고 있습니다.  번뇌라고 하는 미혹이 생기는 것은,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우선 이 3가지를 팔정도의 머리말에 올리고, 「올바르게 본다」란, 마음의 눈으로 보세요,「올바르게 생각한다」란,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으로 생각하세요,「올바르게 말한다」란,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말하도록 하세요, 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正しく仕事をなす」ということは、与えられたその職務に対して、忠実に、義務と責任を果すことです。

「올바르게 일을 한다」라고 하는 것은, 주어진 그 직무에 대해서, 충실하게, 직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正しく生活する」とは日常の生活のことです。現在の環境、立場、そして生きていられる、そのこと自体に感謝することです。物一つ求めるにも、多くの人々の労苦があり、助けがあり、太陽や水の自然の恵みという保護があるのです。正しく生きるには、まず六根に左右されない自分をつくってゆくことです。それには自分の短所、長所を正しく見つめ、短所を修正し、長所を伸ばしてゆくことです。
올바르게 생활한다」란 일상의 생활인 것입니다.  현재의 환경, 입장, 그리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그것 자체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하나 구하는데에도,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고, 도움이 있고, 태양이나 물의 자연의 은혜라고 하는 보호가 있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는데에는, 우선 육근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자신의 단점, 장점을 올바르게 응시하고, 단점을 수정하고, 장점을 늘려가는 것입니다.

 

 「正しく道に精進する」とは、主として人と人との関係であります。夫婦、親子、兄弟、友人などは、それぞれの因縁あるいは約束の下に結ばれているのですから、我欲にもとづいた自己主張をせずに、愛・調和ということを目標に、毎日の生活を送ることであります。
「올바르게 도(道)에 정진한다」란, 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 친구 등은, 저마다의 인연 혹은 약속 하에 맺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욕에 바탕을 둔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사랑・조화라고 하는 것을 목표로, 매일의 생활을 보내는 것입니다.

 

〃念〃の正しい在り方は、中道に適った調和を目的としたもの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念というものは、たいてい自己の欲望をもととしたものが多いのです。それゆえに、欲望は際限なく発展してゆくものですから、やがては人と人との調和を欠くことになってきます。欲望はこれでよいというキリがありませんから、常に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祈る心を忘れないことが必要なのであります。
“생각(念)”의 올바른 본연의 자세는, 중도에 맞는 조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생각(念)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의 욕망을 뿌리(근거=원인)으로 한 것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만큼, 욕망은 끝없이 발전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머지않아서는 사람과 사람의 조화를 흠짓내는 것이 되어 갑니다.  욕망은 이것으로 좋다고 하는 십자가??가 없기때문에, 항상 만족함을 아는 생활, 기도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最後に「正定」ですが、これは反省です。これまでに述べた七つの規範というものに照らしてみて、今日一日の自分の想念と行為に、行き過ぎた点はなかったか、また気遅れがして善事が出来なかったというようなことはなかったか、このようなことをふりかえって見て、正しくないことがあったら明日からそれを改めるということです。
마지막으로 「정정」입니다만, 이것은 반성(反省)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7가지의 규범이라고 하는 것에 비추어 보고, 오늘 하루의 자신의 상념과 행위에, (멈추지 않고)지나쳐버린 점은 없었는지, 또 기가 죽어서 착한 일을 할 수 없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었는지, 이러한 것을 뒤돌아보고, 올바르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면 내일부터 그것을 고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反省の重要な点は、ただ単に、ああ悪かった、ああよかった、で終ってしまうのではなく、悪かった点は明日からは、それを二度三度繰り返すことなく改めてゆくことであります。反省は行為に移してこそはじめて意義をもつものです。意義とは、精神と肉体がまず健全になり、家庭の調和、職場の調和、そして社会の調和につながってゆくことを意味するのであります。正定の基本はまず反省にあることを肝に銘じて下さい。
반성의 중요한 점은, 단지 단순히, 아~! 나빴어, 아~! 좋았어, 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빴던 점은 내일부터는, 그것을 두번 세번 반복하는 일 없이 고쳐 가는 것입니다.  반성은 행위로 옮겨야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의의(意義)란, 정신과 육체가 우선 건전하게 되고, 가정의 조화, 직장의 조화, 그리고 사회의 조화로 연결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정(正定)의 기본은 우선 반성에 잇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요.

 

このようにして、人間の日常生活も、こうした正しい法というものに乗った生活こそ大事なのです。正法とは、正しい法、万古不滅の神の理、宇宙の法則をいうのであります。
이와 같이해서, 인간의 일상생활도, 이러한 올바른 법(法)이라고 하는 것에 의한 생활이야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정법(正法)이란, 올바른 법(法), 만고불멸의 신(神)의 이치(理), 우주(宇宙)의 법칙(法則)인 것입니다.

 

正しき行為は、正しい結果として、その人の人生、健康環境を整えてくれます。大自然の運行が、これを如実に示しております。狂いのない自然の運行があればこそ、私たち人間は、この地上で生活をしてゆくことが出来るのであります。
올바른 행위는, 올바른 결과로서, 그 사람의 인생, 건강과 환경을 정돈해 줍니다.  대자연의 운행이, 이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착오가 없는 자연의 운행이 있기 때문에, 저희들 인간은, 이 지상에서 생활을 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神仏は存在しております。存在しないと見るのは、心を正しく見ることの出来ない人の言うことなのです。心を素直に、正しく見ることができて、その心で想念と行為を正すように努めるならば、神仏は誰彼の区別なく、その前に現われます。神仏は決して沈黙を守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仏をして沈黙させる原因を人間がっくっているために、沈黙せざるを得ないのであります。
신불(神佛)은 존재하고 계십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마음을 올바르게 볼 수 없는 사람이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솔직하게, 올바르게 볼 수가 있고, 그 마음으로 상념과 행위를 올바르게 하도록 노력하면, 신불은 누구누구의 구별없이, 그 앞에 모습을 보입니다.  신불은 결코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불로 하여금 침묵케 하는 원인을 인간이 만들고 있기 때문에,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さんまい三昧の境涯は、人が心をとり戻した時、すなわち、神仏の心と己の心が調和された時に、心の安らぎという、無限のひびきをもつてつつんでくれるのであります。
삼매의 경지(경애)는, 사람이 마음을 되돌렸을 때, 즉,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되었을 때에, 마음이 평온함이라고 하는, 무한의 울림(메아리)을 가지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正法は誰のためでもなく、それは、皆さま自身のための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よく理解して、日常の生活の中に実践をしていただきたいのであります。
정법은 특정의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일상의 생활 속에 실천을 해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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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yukis0000.blog78.fc2.com/ ,ゆきのひとりごと  2010년 3월 13일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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