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석가의 탄생에서 불교의 변천-다카하시 신지 선생님 강연집 1975년[절판] 본문
釈迦の生誕から仏教の変遷
석가의 탄생에서 불교의 변천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님의 1975년 발간한 강연집 중에서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습니다.---
私は十才の時に原因不明の病気になりまして、夜の八時になるときまって、呼吸困難になり、意識が不明になりました。
一回、二回、三回位は夢中でほとんど解りませんでしたが、四回、五回と回を重ねるに従って、自分自身のむくろ骸を見ているもう一人の自分を発見したのです。
私はこのような体験を幾度か経験しているうちに、科学する心を覚えました。
나는 10세 때에 원인불명의 병이 걸려, 밤 8시가 되면 갑자기, 호흡곤란에 되어, 의식 불명이 되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는 꿈속에서 대부분 풀리지 않았지만, 네 번, 다섯 번이나 회를 거듭함에 따라서, 제 자신의 주검을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체험을 몇 번이나 체험하고 있는 동안에, 과학하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すなわち肉体は自分だと思っていましたが、肉体を離れた自分は苦しみのない自由自在な自分でありましたので、これは一体どうしたわけかと考えたわけです。
そういう体験を通して約半年近くは、ほとんど夜になりますとそのような現象が起こります。医者に見てもらっても原因不明で解りません。
そのために私の頭はお灸と針でゴツゴツ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즉 육체는 육체는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육체를 벗어난 자신은 괴로움이 없는 자유자재인 나 자신인 것으로써, 이것은 도대체 어떠한 까닭일까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해서 약 반년 가까운, 대부분 밤이 되면 그러한 현사이 일어납니다. 의사에게 보여줘도 원인불명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제 머리는 뜸과 침으로 벌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私は鎮守の森にあります権現様に十才の子供ではあったが、毎朝早く、また夜通いまして一心に自分の病気を直してもらいたいと、約六年間続けたのです。
しかしそのような神との対話を求めて、一心に信仰的な行為を致しましたが、神は、一度も私に話しかけてくれた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こうしているうちに肉体の方はどうにか快復しましたが、もう一人の自分は、もう肉体から離れることはなくなりました。
나는 마을의 숲에 있는 수호신에게 10살이 아이였지만, 매일 아침 일찍, 또한 밤에 왕래하며 일심으로 내 병이 치료받고 싶다고, 약 6년 간 계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과의 대화를 구해며, 일심으로 신앙적인 행위를 했지만, 신은, 한 번도 나에게 말을 걸어 준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육체는 그럭저럭 회복했지만, 또 하나의 제 자신은, 또 육체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このような謎が私の人生を大きく変えてしまったのです。かくてもう一人の自分を探し求めるとともに、極微の世界、素粒子の分野を探究することによってこの問題を解決して見ようと考え、物理学を学んだのであります。
이러한 수수께끼가 나의 인생을 크게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또 하나의 자신을 깊이 찾음에 동시에, 극미의 세계, 소립자의 분야를 탐구하는 일에 의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생각하고, 물리학을 배운 것입니다.
物質というものはプロトン(陽子)・ニュープロトン(中性子)とエレクトロン(電子)の構成による一つの原子があります。
水素原子は電子が一つ、ヘリウム原子は電子が二つ、リチウム原子は電子が三つ、こういう極微の世界の構成というものが次第に解るに従って物質とエネルギーというものの実体が解って参ります。
私たちが目にとらえうる物質はすべて仕事をなしうる能力、すなわちエネルギーをもっている。
ガソリンはガソリンとして、石炭は石炭としてのエネルギーというものの存在を私たちは現在科学的にも実証できる段階にあります。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플로톤(양자))・뉴 플로톤(중성자)과 일렉트론(전자)의 구성에 의한 하나의 원자가 있습니다.
수소원자는 전자가 하나, 헬륨원자는 전자가 두개, 리튬원자는 전자가 세개, 이러한 극미의 세계의 구성이라고 하는 것이 다음에 이해 할 수 있음에 따라서 물질과 에너지라고 하는 것의 실체를 알아갑니다.
우리들이 눈에 사로잡히는 물질은 전부 일을 이루는 능력, 즉 에너지를 갖고 있다.
휘발유는 휘발류로서, 석회는 석회로서의 에너지라고 하는 것의 존재를 우리들은 현재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는 단계에 있습니다.
そうなりますと、物質と仕事をなしうる能力、エネルギーの存在は、仏教的に申しますと色心不二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ょう。
肉体(物質)と魂(エネルギー)は共存していますが、魂を見ることが出来ない。しかし不二一体であるということが解りかけてきたのです。
続いて私は極微の世界以外に、この極微の世界の延長されたものが、大宇宙体を作っているということに、その研究の道が開かれてゆきました。
그렇게 되면, 물질과 일을 낳는 능력, 에너지의 존재는, 불교적으로 말씀드리면 색심불이라고 하는 것이 되겠지요.
육체(물질)과 영혼(魂=에너지)는 공존하고 있지만, 영혼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불이일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저는 극미의 세계 이외에, 이 극미의 세계의 연장된 것이, 대우주체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 것에, 그 연구의 길이 열리어 갔습니다.
私たちの住んでいる太陽系は、水星・金星・火星・木星・土星・天王星・海王星・冥王星並びに地球という九惑星以外に、三萬数千個からなるアステロイド小衛星ベルト集団を引き連れており、一秒間に二十キロの早さで銀河系宇宙の中を飛んでいるという事実です。
極微の原子核においても、極大の宇宙においても、その組合せというものは、一つも違っていないということに気づいたのです。
しかしいかに物質的な極微の世界や極大の世界を探究したとしても、しょせんは人間自身の肉体と魂というものまで解らなかったのです。
우리들의 살고 있는 태양계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줄줄이 이어져 지구라하고 하는 혹성 이외에, 3만 수천 개로부터 이루는 아스테로이드 소위성 벨트집단을 거느리고 있고, 1초동안에 20킬로 미터의 속도로 은하계 우주 속을 날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극미의 원자핵에 있어서도, 극대의 우주에 있어서도, 그 조합이라고 하는 것은, 하난도 달라져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물질적인 극미의 세계나 극대의 세계를 연구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라고 하는 것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asteroid(지리지질·천체물리·항공우주) 전문용어대역사전
태양계의 한 구성원으로, 화성과 목성의 궤도 사이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작은 천체들. 소행성 (小行星) 태양계의 한 구성원으로, 화성과 목성의 궤도 사이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작은 천체들
しかし一方において私は事業という経済環境を確立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弱電機器事業の外、いろいろな事業もやっていますが、そういう経済的基盤を背景にして、もう一人の自分を発見しよう、そうしてこのもう一人の自分を発見することによって、神、仏という存在がはっきりと自分自身に納得でさるような現象が起こるであろうとの予測のもとに、あらゆる分野にわたって研究追求して参りました。
하지만 한편에 있어서 저는 사업이라고 하는 경제환경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전자기구사업 외에, 여러 가지의 사업도 하고 있지만, 그러한 경제적 기반을 배경으로 해서, 또 한 사람의 자신을 발견해 보자, 그렇게 해서 이 또 한 사람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의해서, 신, 부처라고 하는 존재가 분명하게 제 자신에게 납득할 수 있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예측과 함께, 온갖 분야에 걸쳐서 연구하고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ところがもう一人の自分を発見する昭和四十三年の七月以前にさまざまな霊的な現象が起きていました。
たとえば、私は十五年も結婚しているけれども子供ができないのはなぜだろうか、という質間をされれば、私が持った一枚の紙にそくざに、生年月日・子供の姿までもズバリと写し出されてくるのであります。あるいはまた自分が予言したことはすべて一致する。
しかし私一人がいかにそのような超能力を持とうとも多くの人々によってそれが客観的に証明されない限り、私は信じません。
그런데 또 한 사람의 자신을 발견하는 소화 `43년 7월 이전에 다양한 영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가령, 저는 15년 간이나 결혼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왜일까, 라고 하는 질문을 받게되면, 제가 가지고 있는 한장의 종이에 즉석에서, 생년월일・아이의 모습까지도 정확하게 그림으로 그리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또한 제가 예언할 것은 모든 것이 일치한다.
하지만 제 한 사람이 아무리 그러한 초능력을 가질지라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저는 믿지 않습니다.
そのような霊的体験を積むに従って、四十三年の七月、たまたま家の中に大きな霊的現象が起きてきたのです。それは全く日本語と異った言葉で現象がでてくるのです。
ドイツ語や英語は学校で習っているから私にはある程度解ります。けれども全く解らない言葉で語られる霊的現象が起こり始めました。
私の義弟は理科系の出身でありますけれども、神仏というものは全然信じていません。
그러한 영적인 체험을 쌓음에 따라서, 43년의 7월, 마침 집안의 큰 영적인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일본어와 다른 언어로 현상이 나온 것입니다.
독일어나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하는 영적현산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의동생(義第)는 의료계의 출신이지만, 신불이라고 하는 것은 전연 믿고 있지 않습니다.
全然信じていない義第に、霊的現象が起こり始めました。ヘブライ語をまじえ外国語訛りの日本語で私の子供の頃からのいろいろな諸現象を彼の口を通して語り私自身の心をすっかり占領してしまいました。
たまたま浅草に八起ビルという貸ビルを私が作っている時に、東京都の交通局との交渉をもっていました。
当然お役人と事業上の問題で打合わせがあります。夜は夜で料理屋に行って打合わせをする。一日の私の生活は本当に目のまわるような状況です。
전연 믿고 있지 않는 의동생(義第에게, 영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헤브라이어를 썩은 외국어사투리의 일본어로 제 아이들의 있는 곳에서 다양한 여러 현상을 그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제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아사쿠사에 팔기필딩이라고 하는 각방을 사무실이나 점포용으로 임대하는 빌딩을 만들고 있을 때에, 동경의 교통국과의 교섭도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담당 공무원과 사업사의 문제로 이러저러한 타협이 있습니다. 밤은 밤대로 요리점에 가서 타협을 한다. 하루의 생활은 정말로 눈이 팽팽 돌 정도인 상황입니다.
ところが、そうした毎日の私の想念と行為にたいして、その霊はことごとく私の後についているように、何もかも知っており、そればかりか、私の心の奥底までほり下げて厳しく指摘してくるのです。私はわずか一週間の間に八キロもやせてしまいました。
三十数年間探究し続けてきたところのあの世、霊的なもう一人の自分というものが、こんな厳しいものであったのか、こんなにもあの世というものは恐ろしいものなのか、私は本当に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いました。
그런데, 그러한 매일의 저의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 그 혼령은 깡그리 제 뒤에 붙어 있는 것처럼, 모조리 알고 있고, 그뿐만이 아니라, 저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엄격하게 지적해 오는 것입니다. 저는 불과 일주일 동안에 8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져버렸습니다.
30 수년간 계속해서 연구해온 저 세상, 영적인 또 한 사람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엄격한 것이었던 것일까, 이렇게도 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것인 것일까, 저는 정말로 알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自分の心を一つ一つ監視され、今やった行為を次々と指摘されていったらどのようになりますか、気の弱い人だったら狂ってしまうでしょう。自己保存の思いは思ってもいけないといわれるのです。
しかも厳しく、それが日本語で喋るならまだしも、外国語訛りの難しい解らない日本語で語るのです。そのうちに、そうした状況の中で私は三日間で悟れといわれたのです。
悟れといっても悟る意味さえ解りません。私は本当に困ってしまった、しかし今さら放り出すわけにはゆかない。
자신의 마음을 일일이 감시되고, 지금 한 행위를 차례차례로 지적되고 있다면 어떻게 됩니까, 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미쳐버리겠지요. 자기보존의 생각은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엄격하게, 그것이 일본어로 지껄이면 그런데로 참을 수 있지만, 외굴어 사투리의 어려운 이해할 수 없는 일본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 3일 동안에 깨달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깨달으라고 말해도 깨달음의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곤란지경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몰아낼 수도 없다.
やめるわけにはゆかない。そこで高野山の奥の院から、上野東叡山寛永寺に、そうして千葉の中山寺奥の院にも行き、ともかくここぞというところへまいりまして、現在起こっている現象を説明してまわったのですが、正しくそれを判断してくれる人はいませんでした。
그만 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야산의 (절·신사의) 본당보다 안쪽에 위치하여 개산 조사(開山祖師) 영상(靈像)이나 신령을 모셔 놓은 곳에서부터, 일본 혼슈[本州] 미에 현[三重縣]에 있는 도시.기이 반도[紀伊半島] 끝의 산간분지에 있는 우에노의 도에이산 관영사에, 그렇게 해서 일본 혼슈[本州]에 있는 현(縣).간토 평야[關東平野]의 태평양 연안 쪽에 있는 지바현의 중산사의 수행하는 곳에도 가서, 하여간에 이번에는 알수 있지라라고 해서 찾아 뵈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 주십사하고 찾아뵌 것입니다만, 올바르게 그것을 판단해 주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私は本当に困惑してしまいました。私をして一週間も苦しめた者は何者だろう。悪魔ではなかろうか。有名な僧侶に会っても何一つ解答が得られない。
三日目の夜、私は一切をあきら諦めた。地位も、名誉も、財産も、そして生命もいらない。
私を苦しめた者は悪魔に違いない。悪魔ならその悪魔を善にかえてやろう。私は生命を投げ出し、悪魔と対決したのです。
저는 정말로 곤혹스러운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로 하여금 일주일간이나 괴롭힌 사람은 누구일까. 악마는 아닐까, 유명한 승려를 만나도 무엇 하나 해답을 얻을 수 없다.
3일째의 밤, 저는 모든것을 체념[단념]했다.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그리고 생명도 필요없다.
저를 괴릅힌 사람은 악마임에 틀림없다. 악마라면 그 악마를 선으로 바꿔 줄 것이다. 저는 목숨을 걸고, 악마와 대결한 것입니다.
「悪魔よ私の前に出てきなさい。悪魔であるならば、あなたたちを善に変えてやろう。それによって、私の生命が欲しいというのであればあげてもよい」
私がこう決意し、思った瞬間に、今まであれほどきびしいことをいっていた霊はガラリとその態度を変え「今晩はお祝いだ、お前自身のたゆに一週間の苦しみを和げよう」とコロッと変わってしまいました。
私はのうさいぼう脳細胞を犯され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と、東京大学の医学部の神経科に行って見て貰いました。
「악마여 내 앞에 모습을 드려내시오. 악마가 있다면, 당신들을 선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내 목숨을 원한다고 하는 것이면 가져도 좋다」
제가 이렇게 결의하고, 생각한 순간에, 여태까지 그토록 엄격하고 가차없는 짓을 해왔던 혼령은 싹 태도를 바꾸고,
「오늘밤은 축하한다, 너 자신의 일주일간의 괴로움을 누그러뜨려라」라고 자연스럽게 바뀌어 버립니다. 저는 뇌세포를 침해당한 것은 아닌 것일까라고, 동경대학의 의학부의 신경과에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異常がないばかりか最も正常だといわれました。こういう体験を通してそれ以後は弟の霊的現象はピシャッと止まってしまいました。
今は全然出ません。九月にはいってから、私の会社に手伝いに来ていた妹に光を与えた瞬間に過去世を思い出してしまいました。
そうしてあらゆる諸現象を見通し、さまざまなも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続いて十月に入り、私の家内がまた同じように解るよう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すべて心の中を見通されてしまいます。
이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그 이후로는 동생의 영적현상은 탁하고 멈추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전연 오지 않습니다. 9월에 접어들어서, 저의 회사에 도와주려 오고 있던 누이에게 빛을 준 순간에 과거세를 생각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온갖 여러 현상을 꿰둟어보고, 다양한 것을 볼 수 있게 되어버렸습니다.
계속해서 10월에 접어들어, 저의 집안에 또한 마찬가지로 일이 슬슬 풀리게 되었습니다. 전부 마음 속을 꿰뚫어 버립니다.
しかし人間というものは、執着を離れてしまえば丸い心になってしまいます。
そのために自分の心というものに対して誰に監視されていても、もう晴れやかな丸い大きい心になっていますから心配ありません。
そのような体験を通して事業をやっていましたから、やがて多くの人々が私の家に出入りするようになってきました。
하지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집착을 벗어버리면 둥근 마음이 되어 버립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에게 감시당하고 있다고 해도, 또 (걱정·근심이 없이) 표정이 환한 둥글고 큰 마음이 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해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저의 집으로 출입하게 되어 왔습니다.
三度の飯より神様の話をしていた方が好きな私のことですから、お客さんであろうが何であろうが、神様の話をしてしまいます。仏教もキリスト教も何も知らない全く我流の話でした。
そのうちにだんだん私自身の心の中にある転生輪廻を繰り返して来た心のテープレコーダーがひもとかれてきました。
세끼 식사 보다 신령님의 말을 걸어 왔던 분을 좋아하는 저의 일이기 때문에, 손님이 있든지 없든지, 신령의 말을 해버립니다.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아무것도 모르는 제 나름의[자기(自己) 생각이나 판단(判斷)대로 하는 방식(方式)]의 이야기였습니다.
人間の生命が不滅であるということもだんだん解るに従って私の家を訪ねてくる人たちも、次々と心の窓が開かれてゆきます。同時に皆さまの肉体舟の船頭さんである皆さま自身の魂がどのような転生輪廻をして来ているか、過去・現在・未来の霊的な諸現象を見る能力を得ていったのです。
そこでそのような心のテープレコーダーをひもといて、仏教がどのような変遷を経てきたかということを皆さまに説明したいと思います。
인간의 생명[목숨]이 불멸[不滅]이라고 하는 것도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됨에 따라서 저의 가정은 방문해 오는 사람들도, 차례로 마음의 창이 열려 갑니다. 동시에 여러분의 육체배의 선장인 여러분 자신의 영혼이 어떠한 전생윤회를 해서 오고 있을까, 과거・ 현재・ 미래의 영적인 여러 현상을 보는 능력을 얻어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의 테이프 레코더를 풀어내고[깊은 오의를 발견 혹은 깨닫고], 불교가 어떠한 변천을 경유해 온 것일까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今から二千五百余年前、インドのカピラというところに、ゴーダマ・シッ夕ルダーといわれる方が生まれます。それより以前約二千年前にクレオ・パローターといわれる道を説く人がエジプトに出ています。
実在界あの世において、この地上界に出る光の天使たちの選考が始まった結果、クレオ・パローターの過去世を持つその天使がカピラという場所を自分自身が選び出生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지금으로 부터 2500여년 전, 인도의 카필라[카비라, 카피라]라고 하는 장소에, 고다마・싯타르다라고 불리우는 분이 태어납니다. 그것보다 이전 2000년 전에 크레오・파로타라고 불리우는 길(道)을 설명하는 사람이 이집트에 나오고 있습니다.
실재계 저 세상에 있어서, 이 지상계에 나오는 빛의 천사들의 선고[選考]를 시작한 결과, 크레오 빠로타의 과거세를 가지는 그 천사가 카필라라고 하는 장소를 자기 자신이 선택해서 출생하게 되었습니다.
インドを選んだ大きな理由は、自分自身を悟るにはもっともつごうがよい場所であり、伝道の環境が整っているからでした。カピラ・ヴァーストという環境は、まずコーサラという大国の属国で、小さい砦のような城市で、共和制体をとっている国であります。
인도(印度)를 선택한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깨닫는 데애는 가장 형편이 좋은 장소이며, 전도(伝道)의 환경이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카필라 바스투(Kapilavastu)라고 하는 환경은, 우선 코살라라고 하는 대국의 속국이며, 작은 바위와 같은 성시[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이며, 공화체제를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そのためにいつ敵から襲われるかわからない。そしてまたシュット・ダーナー王、マヤ妃という両親の間に子供がありません。
母親は同じシャキャ族のコリヤ族というロッシニー河をはさんでデヴァダバ・ヴァーストという城市の娘であります。
このような二組、これはもちろん当時日本の戦国時代と同じように、非常に政略結婚というものがインドでもはやっておりました。
そういう環境をまづ選んで生まれると同時に一週間目にして母親をあの世に引き取ることになっております。
그 때문에 언제 적으로부터 습격당할지 모른다. 그리고 또한 슈도・다나왕[정반왕], 마야왕비라고 하는 양친의 사이에 아이[자식]가 없습니다.
모친은 같은 샤카족의 코리야족이라고 하는 롯츠니강을 끼고 데바다바・바스투라고 하는 성시[구리성(拘利城, 데바다하)의 집정관 선각장자(善覺長者)]의 딸입니다.
이러한 조합, 이것은 물론 당시 일본의 전국시대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정략결혼이라고 하는 것이 인도에서도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우선 선택하고 태어남과 동시에 일주일째로 모친을 저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데바다바 ・바스투라고 하는 성시(城市)의 딸 《한국어 위키백과사전》
마야 부인(摩耶夫人)은 불교의 창시자 싯다르타 고타마의 어머니이다. 마하마야(Mahamaya)를 라고도 한다. 구리성(拘利城, 데바다하)의 집정관 선각장자(善覺長者)의 딸로 태어나 이웃 나라 정반왕(슈도다나)의 왕비가 되었다.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45세에 싯다르타를 잉태하여 당시 인도의 습관에 따라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하여 구리성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의 숲속에서 싯다르타를 낳았다고 한다. 싯다르타의 출산 후 7일 만에 죽었다.
ややもすると私たちは死というものについて非常に恐怖心を抱くものですが、あの世から見れば、決して死は恐ろしいものではないのです。
こういう環境の下において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の義理の母親マハー・パジャパティーにはナンダという子供ができてしまいます。これもあの世で計算してあります。
そうして人生に対する無常を感じる環境というものを選定してくるのです。このように環境は極めて不安定な状態です。
흔히 우리들은 죽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공포심을 품는 것입니다만, 저 세상에서 보면, 결코 죽음을 무서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 하에 있어서 고다마・싯타르다의 의리의 모친 마야・바쟈바티에게는 난다라고 하는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것도 저 세상에도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생에 대한 무상을 느끼는 환경이라고 하는 것을 선정해서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경은 극히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武力もたいしてないし、大きな国が攻めてくればカピラなど一発でやられてしまいます。それから食事にしても毒味をする人がいます。敵のスパイがひそ潜んでいるからです。
このような不安定な場所にあっても人間というものは、慣れてしまえば不思議なもので、そういう環境の中においても育ってゆくものです。
무력도 그다지 없고, 큰 나라가 공격해 오면 카필라 따위는 총포등을 한번 쏨으로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므로 식사에 대해서도 독[毒]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적의 간첩이 잠복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장소에 있어서도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익숙해져 버리면 불가사의한 것으로써, 그러한 환경 속에 있어서도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しかし自分の生活環境の中から人間というものはなぜ生まれ、年をとり、病気をし、死んでゆくのかという疑問が心の中からドンドン涌き出て参ります。
一方またカピラ城の生活は優雅であり、春は春の館、冬は冬の館で、いつも取り巻きには美しい女たちが何人も仕えています。
하지만 자신의 생활환경 속에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왜 태어나서, 나이를 먹고, 병들고, 죽어 가는 것일까라고 하는 의문이 마음 속에서 점점 넘쳐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또한 카필라성[城]의 생활은 우아하며, 봄은 봄의 건물, 여름은 여름의 건물, 언제나 에워싸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몇 명이나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しかし生活が優雅であればあるほどシッタルダーは無常を感じていきます。一歩城を出れば酷しいカースト制度というものによって生活環境は、城の中とは百八十度異っています。
ここでも生活の矛盾につきあたります。同じ人間でありながら、生まれながらにしてこのような差別はなぜあるのだろう。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考え始め、疑問は疑問を生んで自分自身で解決す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ゆきます。
하지만 생활이 우하면 할 수록 싯타르다는 무상을 느껴 갑니다. 한 발자국 성을 나가면 잔혹한 카스트제도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생활환경은, 성 안과는 108도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활의 모순에 부딪칩니다. 같은 인간이면서, 태어남에 따라서 이러한 차별은 왜 있는 것일까. 고다마 싯타르다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며, 의문은 의문을 낳고 자기 자신으로 해결할 수가 없게 되어 갑니다.
しかし父親のシュット・ダーナー王はなんとか自分の跡取りを安心させたいとして、やはり義理の母親の里であるところのデヴァダバ・ヴァーストからヤショダラという娘を嫁に迎えます。
十七才の時です。当時のおうこう王侯きぞく貴族というものは一夫一婦でなく、一夫多妻でありました。とうぜん女同士のあつれき軋轢が生じて参ります。悩みは更に自分自身の作り出したものによってふく膨れあがってゆきます。
하지만 부친인 슈도・다나왕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상속자를 안심시키시려고, 이윽고 의리의 모친의 마을에 있는 장소의 데바다바・바스트에서 야쇼다라라고 하는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17살 때입니다. 당시의 왕후 귀족이라고 하는 것은 일부일처가 아니라, 일부다처였습니다. 당연히 같은 여자끼리의 알력이 생겨옵니다. 고민은 다시 자기 자신의 만들어낸 것에 의해서 부풀어올라 갑니다.
二十九才のおり、シッタルダーは、遂に家を飛び出す決心をしてしまいます。城を飛び出し人間の苦しみというものをどのように解決していけばよいのか、一子ラフラをどうすればよいか。
ラフラ出生の際には父親のシュット・ダーナー王から二人の子なのだから二人で相談して決めよといわれ、ラフラと命名した。
29살이 되어, 싯타르다는, 마침내 집을 뛰쳐나갈 결심을 해 버립니다. 성을 뛰쳐나가서 인간의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독자인 라후라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루라 출생의 때에는 부친인 슈도・다나왕에게서 두 사람의 자식이기때문에 둘이 상담해서 결정하라고 말해서, 라후라라고 명명했다.
もちろんそう命名したのはシッタルダーであります。出家を妨害するという意味で、ラフラとつけた。
ラフラとは障害物ということです。ラとは石、フラとは橋、当時は吊橋が多く、橋の上に石が置いてあっては危なくて渡れない。いつ吊り糸が切れるかわからないからであります。
물론 그렇게 명명한 것은 싯타르다입니다. 출가를 방해한다고 하는 의미로, 라후라라고 붙였다.
라후라는 방해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후라는 다리, 당시는 적교[두 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依支)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가 많고, 다리 위에 돌이 놓여져 있어서 위험해서 건너지 않았다. 언제 매달아 놓은 줄이 끊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このようにして家庭的には不調和な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でありましたが、ある夜、遂に自分自身の生老病死という苦しみの問題を解決するために出家し、その後約六年余り中インドを中心にして修行をするのであります。
이렇게 해서 가정적으로는 부조화한 고다마・싯타르다였지만, 어느 밤, 마침내 자기 자신의 생로병사라고 하는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하고, 그 후 약 6년 정도 중인도를 중심으로 해서 수행을 행한 것입니다.
しかし肉体的な酷しい修行によって悟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三十六才の時、ネランジャラの河のほとりに一人のチュダリヤ・チュダーターという牧場の娘が乳をしぼりながら
「げん弦のね音は強く締めれば切れてしまう、弦の音は弱くては音色が悪い、弦の音は中程にしめて音色が良い」
という民謡をうたっているのを聞いてしまいます。
その歌をきいて人間というものは城の中にいて優雅な生活をしていてもためだ、悟れない。
逆に滝や断食など酷しい肉体修行によっても悟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初めて悟るのでした。
하지만 육체적인 혹독한 수행에 의해서 깨달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36살 때, 네란쟈라의 강의 부근에 홀로 츄다리야・츄다다라고 하는 목장의 딸이 젖을 짜면서
「현의 소리는 강하게 조이면 끊어져 버려, 현의 소리는 약하게 하면 음색이 안좋아, 현의 소리는 중간으로 조여야 음색이 좋아」
라고 하는 민요를 부르고 있는 것을 들어 버립니다.
그 노래를 듣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성안에 있어서 우아한 생활를 하고 있어도 헛일이다, 깨달을 수 없다.
마침내 폭포를 맞으면 수행하는 것이나 단식 따위의 혹독한 육체수행에 의해서도 깨달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비로서 깨달은 것이었다.
その結果、ウルヴェラという村のピパラー(菩提樹)の大木のある丘に上って、己が悟るまではここから一歩も動かぬと堅い決意をします。
いうなれば死を決して中道の物差しをもって、誕生から三十六年間の地上での生活行為の一つ一つを反省し、自分の心というものが常に丸く、大きく、広い心であったか、人を恨み・妬み・誹り自分のことしか考えなかった過去の心を修正していったのです。
그 결과, 우르벨라 라고 하는 마을의 비파라(보리수)의 아름드리 큰 나무(大木)의 있는 언덕에 올라가, 자기가 깨달을 때까지는 여기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굳은 결의를 합니다.
말하자면 죽을 각오를 하고 중도[中道]의 마음의 척도로써, 탄생에서부터 36년 동안의 지상에서의 생활행위를 하나하나를 반성(反省)하고, 자신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둥글고, 크고, 넓은 마음이었는가, 사람을 원망 ・ 질투 ・비난하고 자신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과거의 마음을 수정해 갔던 것입니다.
瞑想をはじめて一週間目です。瞑想していると眼前にある正覚山、そこから昇る明けの明星が自分の足の下に見えてきた。体は宇宙の姿になってしまって自分の肉体は遙か下方に小さく見えています。
自己の中に宇宙があり、宇宙は即ち我であるということを発見するのです。同時に生老病死の原因、苦しみの原因というものはどこにあって、その原因をとり除くには自分自身の心と行ないにあるということを悟っていくのです。
명상을 시작해서 일주일 째입니다. 명상을 하고 있으면 눈앞에 어느 정각산[正覚山], 거기에서 솟아오르는
샛별[금성(金星), 계명성(啓明星)]이 자신의 발 아래에 보여 왔습니다. 몸은 우주의 모습이 되어 버리고 자신의 육체는 아득하게 저 아래로 작게 보입니다.
자기 속에 우주가 있고, 우주는 즉 나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생로병사의 원인,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있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데에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위에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二十一日間、ウルヴェラにおいて自分自身の過去を反省しつつこのような神理を諸々の衆生に話したところで解るものではない、このまま死んでしまをうと決心をした時に、バフラマン(梵天)が出て参ります。
梵天の名はモーゼやクラリオ(イエス・キリストの分身)といわれる光の天使たちです。
21일 동안, 우르벨라에서 자기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이러한 신리[神利]를 여러 여럿의 중생에게 설명해 본들 이해할 수는 없다, 이대로 죽어버리자고 결심했을 때에, 바라몬(범천)이 나타납니다.
범천의 이름은 모세[구약성서의 모세]나 크라리오(예수・그리스도의 분신)이라고 불리우는 빛의 천사들입니다.
「ゴーダマ、その方は今までこのような苦しみの中から今悟りを開くことができた。この苦しみの原因を追求し、この神理を諸々の衆生に教えなくてはならない。お前がたとえ命を絶とうとも、そして地球の、宇宙のどこの隅に逃げようともあの世にこようともお前をそくざに帰してやる。それはお前自身が生まれる前に約束してきたからだ」。
「고다마, 그대는 여태까지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이제 깨달음을 열 수 있었다. 이 괴로움의 원인을 추구하고, 이 신리[神理]를 여러 여럿의 중생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설령 목숨을 끊는다고 해도, 그리고 지구의, 우주의 어느 변두리로 도망친다고 해도 저 세상으로 오려고 해도 너를 그자리로 돌려보내겠다. 그것은 너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약속해서 왔기 때문이다」
梵天からきびしくいわれる前に、ゴーダマの心の中にいろいろと誘惑や悪魔が出てきて、
「ゴーダマよ、そのような神理を説いたところで人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お前はそんなことをやるよりか自分の国に帰って優雅な生活をした方が幸せだ」
といってゴーダマの悟りを邪魔します。こういう諸現象は私にも起こりました。
범천으로부터 엄격하고 가차없이 말하기 전에, 고다다의 마음 속에 여러 가지의 유혹이나 악마가 나와서,
「고다마여, 그러한 신리를 설명해 본들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 너는 어떤 일을 하는 것 보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우아한 생활을 하는 쪽이 행복하다」
라고 말하며 고다마의 깨달음을 방해합니다. 이러한 여러 현상은 저에게도 일어났습니다.
お前は事業家として力をつけていけば月に何十億という金が入ってくる。よけいなことを考えず事業だけしておればよいではないか。
お前はあの世があるなんてうまいことを説いているが、あの世なんか無いよ。そんなことをやめて、もっと優雅な生活をやったらどうだ、と私にささやきます。
そんなとき私は「お前はどこから来ているのだ、お前はあの世の者だろう」といったら「解っちゃ話にならない」
といって帰ってしまいました。インド時代の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の周辺にもこういう問題が起こって参ります。
너는 사업가로서 주력하고 있으면 달에 몇 십억이라고 하는 돈이 들어 온다. 좋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사업에만 전념하면 좋지 않은가?
너는 저 세상이 있는 것이라고 그럴싸한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저 세상이란 없어. 그런 짓을 그만두고, 더욱 우아한 생활을 하면 어떠냐, 라고 저에게 속삭입니다.
그럴 때 저는, 「너는 어디가에서 온 것이다, 너는 저 세상의 사람일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깨달았다면 말도 안 된다」
라고 말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인도 당시의 고다마・싯타르다의 주변에도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さてこのような経過をたどって、ではいったいいかにして人々に説いていけばよいのか、ゴーダマは悩みます。けれども心の窓が開かれてしまいますから、今説かねばならない人々が身近にいることを知ってしまいます。
ことに悟りを開くまで、カピラから苦楽をともにしてきたコースタニヤ、バッテイヤー、マハー・ナーマン、アサジなど五人の人たちがいます。
ネランジャラ河の周辺で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が口にした牛乳の一件でゴーダマ様は修行を捨てた、あのような者と一緒にいてもしようがない、私たちは別のところで修行しようと、去っていった人たちが思い出されます。
그럼 이러한 경험을 더듬어서, 그럼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좋은 것일까, 고다마는 고민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창이 열려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지금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신변에 있는 것을 알아 버립니다.
특히 깨달음을 열기까지, 카필라에서부터 고락을 함께 해 온 코스타니야, 뱟데아, 마하・나만, 아샤지 등 5명이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란자라강의 주변에서 고마다・싯타르다가 마신 우유의 한 사건으로 고다마님은 수행을 버렸다. 저런 사람과 함께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다른 장소에서 수행하자고 해서, 떠나 간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心の目にハッキリとその人たちがイシナパタにある川の流れている小高いところにいることが解ります。
守護霊に聞けばパラナッシーのミガダヤというところにいることがハッキリと解ってしまいます。中インドラジャグリハから西南の方向に向かって約三百キロメートル入ったところにウルヴェラというところがございます。
そこから四百キロメートルはなれているところです。心の中でチャンと判ってしまいますからネランジャラ河をどんどん下っていきます。サラタプトラからさらに西方へ入ってきますとパラナッシーという都があります。
そのはずれに彼らが修行所として定めたイシナパタといって仙人たちがいっぱい修行しているところがあります。
마음의 눈에 분명하게 그 사람들이 이시나바다에 있는 강이 흐르고 있는 조금 높은 장소에 있는 것을 알 수 이씁니다. 수호령에게 들어보면 바라나시의 미가다야라고 하는 장소에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 버립니다. 중인도 라자구리하에서 서남방향으로 향해서 약 300킬로미터 들어간 장소에 우루벨라라고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40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는 장소입니다. 마음 속에서 분명하게 판가름해 버리기 때문에 네란자랴강을 유유히 내려 갑니다. 사라타부트라에서 더욱더 서방으로 들어오면 바라나시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도시를 벗어난 곳에 그들이 수행소로서 결정한 이시나바다라고 하며 선인(仙人)들이 많이 수행하고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ここは現代の仏教と同じように、釈迦の前世クレオ・パロータが説いたバラモンの経典であるヴェーダーやウパニッシャドという神理が存在しているのです。
すでに二千年前、インドにおいてこのような道がハッキリと説かれたのでありますが、時代とともに哲学化されてきたものであります。
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小さい時からそのようなバラモンの先生について神理というものを学んでおります。ある程度のことは解っております。
バラモンはまず十二才頃までは、日本でいえば寺子屋のようなところでヴェーダーという神理を教えられます。
이곳은 현대의 불교와 마찬가지로, 석가의 전생 크레오・파로타가 설명한 바라몬의 경전인 베다나 우바니샤드라고 하는 신리[神理}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2000년 전, 인도에 있어서 이러한 도(道)를 분명하게 설명한 것입니다만, 당시와 같이 철학화되어 온 것입니다.
고다마 싯타르다는 어린 시절로부터 그러한 바라몬의 선생에 대해서 신리라고 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라몬은 우선 12살 무렵까지는, 일본으로 말하면 절에 딸린 서당과 같은 장소에서 베다라고 하는 신리를 가르침을 받습니다.
そうして十二才から二十五、六才・三十才頃までの間に家庭に入ります。さらにまた三十才、四十才を過ぎまして自分の子どもが一定の年になりますと彼らは再び山の中に入り修行をします。
このような人々をサマナーと呼んでいます。続いてサマナーを卒業し遊行の旅にでる人たちをサロモンといっております。
修行者ということです。このようにミガダヤというところにはバラモンを含めてあらゆる宗教家の人たちの修行所として多くの仙人たちが集っております。
その場所を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そくざに解ってしまい彼らに会う前にコースタニヤの心の中を読んでしまいます。
그렇게 해서 12세부터 25, 6세・30세 무렵까지의 동안에 가정에 들어옵니다. 더욱더 또한 30세, 40세를 지나서 자신의 아이가 일정한 연령이 되면 그들은 다시 산속에 들어가서 수행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마나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마나를 졸업하고 유행[중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의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로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행자라[修行者]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가다야라고 하는 장소에는 바로몬을 포함해서 온갖 종교가의 사람들의 수행소[修行所]로서 수많은 선인[仙人]들이 모여들어 옵니다.
그 장소를 고다마・싯타르다는 즉석에서 알아버리고 그들을 만나기 전에 코스타니야의 마음 속을 읽어 버립니다.
「ゴーダマが来た、あの男が来ても、もう既に王子でも師匠でもない。我々には関係がない。たとえ来ても足をすす濯ぐではないぞ、アサジ解ったか」
このようなことをいっていますが、みな、心の中にピンピン響いて参ります。
ゴーダマの姿を見ても見ぬふりして彼らはボソボソ話をしています。四十四、五日もかかってパラナッシーの都を去り、ようやくミガダヤについた朝、彼らはゴーダマが来たということでさっそく予定の行動をしておりますがつつぬ筒抜けです。解ってしまいます。
「고다마가 왔다, 저 남자가 와도, 이미 벌써 왕자도 스승도 아니다. 우리들과는 관계가 없다. 가령 온다고 해도 발을 씻겨 주지 않을 거야, 아샤지 알았지?」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지만, 모두, 마음속에 왱왱 매아리쳐 옵니다.
고다마의 모습을 봐도 못본채 하자고 그들은 평범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4, 5일이나 걸려서 바라나시의 도시를 떠나서, 차츰 미가다야에 다다른 아침, 그들은 고다마가 왔다고 하는 일로 잽싸게 예정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말소리가 훤히 다 들립니다. 알아 버립니다.
だから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それにかまわず彼らに近寄り
「お前たちは今このように修行をしているけれどもそれはむだなことだ、そんなことをしていたら、私がかって肉体的に不調和をきたして死んでしまおうと思ったあの時のように痩せおとろえた姿になってしまう。きびしい肉体行はやめるがよい」。
懇々と話をすると、いちばんかたくなな心を持っていたコースタニヤが以前の師弟の関係の時と同じように足をすす濯ぎ始め「シッタルダー様、あなたは顔色が前とはだいぶ異っております」といってゴーダマの足下にひれ伏してしまいます。
그래서 고마다・싯타르다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너희들은 지금 이렇게 수행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헛일이다. 어떠한 일을 행하려면, 내가 이겨내서 육체적으로 부조화를 초래해서 죽어버리려고 생각한 저 당시처럼 수척해진 모습이 되어 버린다. 혹독한 육체수행을 그만두는 것이 좋다」。
순순히 말을 하자, 가장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코스타니야가 이전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의 때와 마찬가지로 발을 씻어 드리기 시작하며 「싯타르다님, 당신은 혈색이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고마다의 발 아래 부복해 버립니다.
「そのとおり、私は四十数日前に、ウルベラにおいてついに悟りを聞きブッタになることを得た。お前たちの心はすみずみまで解ることができるのだ」
といいます。彼らはブッタの最初の弟子になっていきます。
コースタニヤはカピラ・ヴァーストでクシャトリアといいまして武士階級であり彼はサムライ大将だったのです。他の四人よりは剛直な面が強かった。
「그대로, 나는 40일 몇일 전에, 우르벨라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열어 붓다가 될 수 있었다. 너희들의 마음은 구석구석까지 이해할 수 가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붓타의 최초의 제자가 되어 갑니다.
코스다니야는 카필라 바스트에서 크샤트리야라고 하며 무사계급에 있는 그는 사무라이대장 이었습니다.
다른 4명 보다는 강직한 면이 강했다.
しかしブッタの言葉に素直になり師弟の関係を結んでいくのです。五人はいずれもクシャトリアであり、弓や槍をよくつかい、みな体の丈夫な人たちであり、シュット・ダーナ王(シッタルダーの父親)の命によって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を守るために出ている人たちです。
しかも彼らは六年も出家同様の生活をし、生老病死の問題について、悩んできていますから、ブッタの言葉に真剣にならざるを得なかったのです。
ブッタはいいました。四つの苦しみから解放される道は中道の道しかない。つまり八正道の実践行為の中においてこそお前たちも悟ることができるのだ。
하지만 붓타의 말에 솔직하게 되어 사제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5명은 죄다 크샤트리야이며, 활이나 창을 잘 다르며, 모두 몸의 건강한 사람들이며, 슈도・다나왕(싯타르다의 부친)의 명에 의해서 고마다・싯타르다를 지키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6년이나 출가와 마찬가지인 생활을 하고, 생로병사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오고 있기 때문에, 붓다의 말에 진지하게 범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붓다는 말했습니다. 4가지의 괴로움[四苦]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중도[中道]의 길 밖에 없다. 즉 팔정도의 실천행위 속에서야말로 너희들도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といって教えている間に、コースタニヤがまず自分自身がクレオ・パロータの時代において今、眼の前に立っているゴータマ・シッタルダーの前世においても共に同じ神理を聞いたということが解ってしまいます。
心のテープ・レコーダーの窓が開かれたのです。続いてマハー・ナーマンも心の窓を開いてしまいます。バッテイヤも開いて五人の人たちがついにアラハンという一つの境地に到達してしまったのです。
라고 하며 가르치고 있는 동안에, 코스타니야가 우선 자기 자신이 크레오・파로타의 시대에 있어서 지금, 눈 앞에 서 잇는 고다마・싯타르다의 전생에 있어서도 함께 같은 신리[神理]를 열었다고 하는 것을 알아 버립니다. 마음의 테이프 레코더의 창이 열렸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마하・나만도 마음의 창을 열리어 버립니다. 밧데아도 열리어 5명의 사람들이 마침내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하나의 경지에 도달해 버렸던 것입니다.
現在の私たちのグループの中にもこの神理を聞いて、自ら心の窓を開き、あらゆる諸現象を自分自身が見出す力を持った人たちがだいぶ出ています。昨目も堺の講演におきましてわずか二回しか聞かない学校の先生が心の窓を開いて、中国の時代の言葉を語り始めました。
この中にもいるのです。皆さん自身が心というものを知り己自身が一切の執着をはなれて調和された日々の生活をしている時に、皆さん自身の心のテープ・レコーダーは神の光によっておのずとひもとかれていく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
현재의 저희들의 그룹 속에도 이 신리[神理]를 열고, 스스로 마음의 창을 열고, 온갖 여러 현상을 자기 자신이 꿰뚫어 보는 힘을 지닌 사람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도 지경의 강연에 참석해서 불과 2번 밖에 열지 않은 학교의 선생이 마음이 창을 열고, 중국 시대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중에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자기 자신이 일체의 집착을 벗어나서 조화된 일상의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테이프 레코더는 신[神]의 빛에 의해서 저절로 풀려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インドの当時も心の窓をひらいた人たちは多くの人々に道を説いていきます。六番目の弟子にヤサというのがいます。
パラナッシーの大金持の一人息子で、女性問題で悩みガンガーの河に身投げをしようとする時に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が通りかかります。
「お前は今死のうとしているけれども、そんなに若い身空で死ぬなどもってのほか、自殺は神が与えた大事な生命を粗末に扱うものでもっとも恐ろしい行為である。自殺すれば長い期間あんこく暗黒じごく地獄に堕ち苦しまねばならぬ。心を静め、なぜ死のうとするのか、よく考えてみよ・・・」。
このようなことを懇々と説いた結果、ヤサは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の神理にふれ、やがてアラハンとして立派に立ち直っていきます。
ヤサの周辺の人たちもゴーダマの弟子になっていきます。人間という者は不思儀なもので、自分が育ったところや修行した場所というものは懐しいものです。
인도의 당시도 마음의 창을 열었던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道]를 설명해 갑니다. 6번째의 제자로 야사 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라나시의 대부호의 독자로서, 여성 문제로 고민해서 강가강에 투신을 하려고 할 때에 고다마・싯타르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갑니다.
「너는 지금 죽으려고 하고 있지만, 그렇게 젊은 몸으로 죽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으며, 자살[自殺]은 신이 부여한 중대한 생명을 허술하게 취급하는 것으로써 가장 무서운 행위이다. 자살을 하면 오랜 기간 암흑지옥[暗黒地獄]에 떨어져서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왜 죽으려고 했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라・・・」。
이러한 것을 순순히 설명한 결과, 야사는 고다마・싯타르다의 신리[神理]를 접하고, 머지않아 아라한[阿羅漢]으로서 훌륭하게 재기해 갑니다.
야사의 주변의 사람들도 고다마의 제자가 되어 갑니다.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가사의한 것으로써, 자신이 성장한 장소나 수행한 장소라고 하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ブッタはここにしばらく滞在すると、出家して最初の修行地であるマガダ国のラジャグリハに向かいます。
ここの郊外にラジャグリハの王であるビンビサラという方がおります。年も同じです。
出家して間もなく、ここに立寄るとビンビサラはこういいます。
「あなたも知っていると思うが、今の私はウルベラ・カシャパーといわれる立派な師について道にはげんでいる。よかったらそのカシャパーに紹介してもよいが」
しかしゴーダマは彼に会っても大した結果は得られないと思い、今日まで一度も会っていなかったのです。
しかし今度はそのカシャパーに会い、彼の修行の誤りを指摘し、過去世において神理を説いたことを理解してもらおうと思います。
붓다는 여기에 잠시 체류하면, 출가해서 최초의 수행지인 마가다국의 라쟈구리하로 향해 갑니다.
이곳의 교외에 라쟈구리하의 왕인 빈비사라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나이도 같습니다.
출가해서 짬도 없이, 여기에 들른 빈비사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나는 우루벨라 카사파라고 불리우는 훌륭한 스승에 대해서 도[道]에 힘쓰고 있다. 괜찮다면 그 카샤파에게 소개해도 괜찮은가?」
하지만 고다마는 그를 만나도 대단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카샤파를 만나서, 그의 수행의 잘못을 지적하고, 과거세에 있어서의 신리를 설명했던 일을 이해시켜 주겠다고 생각합니다.
カシャパーはガヤ・ダナというところで修行し、拝火教をやっております。木をいげた井桁にくんで一心に祈りを捧げ火の神を祈っております。その時たまたまお祭りの日だったのです。
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一人でたくはつ托鉢のわん碗をもちながら山を登ってゆきます。泊る場所がないために洞穴の中でねます。
彼らはゴータマ・シッタルダーという人間は知らないけれども、どうもこの野郎は臭い野郎だ。顔を見てもふつうの修行者とはどうもちがう。
当時のインドの行者の人たちは特にウパニッシャウドという学問を習っており、ヘりくつ理屈がうまいのです。
카샤파는 가야・다나라고 하는 장소에서 수행하고, 배화교[拝火教]를 행하고 있습니다. 나무로 정자(井字) 모양으로 짠 우물 난간에서 일심으로 기도를 양손으로 높이 받들어 불의 신을 모시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마침 제사드리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고마다・싯타르다는 홀로 탁발을 하면서 산을 올라 갑니다. 숙박할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동굴 속에서 잡니다.
그들은 고마다・싯타르다라고 하는 인간은 모르지만, 아무리 해도 이 멍청이는 고약한 멍청이다. 얼굴을 봐도 보통의 수행자와는 아무리 해도 틀리다.
당시의 인도의 행자의 사람들은 특히 우바니샤드라고 하는 학문을 익히고 있고, 이치에 닿지도 않는 시시한 소리를 잘하는 것입니다.
そこでこれはバラモンの相当研究した人ではないかとみています。ウルヴェラ・カシャパーはビンビサラ王から聞いていますからなるべく遠ざかろうとします。ところがお祭も終わった次の日、ブッタはウルヴェラ・カシャパーの心の中をみな読んでしまいます。
「カシャパーよあなたの心はこのように燃えている火であってこれでは正しく物を見ることはできない。あなたたちの組織もまた同じように燃えている。宇宙の仏というものは大自然を育て生かしているものであって火のように燃えるものではない。人間の心が燃えていては正しい判断ができないばかりか自然の心を知ることさえできない」
と説きます。彼はブッタの説法にはじめて目がさめ、九百七十人近くの弟子と共に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に帰依してしまいます。
「카사파여 당신의 마음은 이렇게 불타고 있는 불[火]이며 이래서는 올바르게 사물을 볼 수는 없다. 당신들의 조직도 또한 마찬가지로 불타고 있다. 우주의 부처[仏]라고 하는 것은 대자연[大自然]을 키우고 소생시키고 있는 것이며 불처럼 타오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心]이 불타고 있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自然]의 마음을 알 수 조차 없다」
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붓타의 설법에 비로서 눈을 뜨고, 970명 가까운 제자와 함께 고마다 싯타르타에게 귀의[帰依]해 버립니다.
昨日、大阪で心を開いた方は当時のナンディヤ・カシャパーという二番目の弟です。
このナンディヤ・カシャパーとクナンダ・カシャパー、この人たちも帰依しますが、兄貴の姿が見えないので、山賊に殺され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と心配します。
川から流れてきた祭壇を見て、ウルヴェラ・カシャパーは殺されたのだと判断しますが、村の人たちに聞くと修行者といっしょに山を下り、ラジャグリハの方へ行かれると言っていたとききます。
二人は兄貴に会い、事情をきき、兄弟三人とも帰依してしまいます。ビンビサラの親戚のガランダといわれる方はベル・ヴェナーというちょうどラジャグリハの南、約二キロメートルばかり行った山の間に竹の林がありますが、その竹の林に法座を設けた建物を作ります。
これがベル・ヴェナー、日本語で申しますと、ちくりん竹林しょうじゃ精舎といいます。こうしてブッタの教団は次第に大きくなってゆきます。そうして神理のあり方、人の道、人間は心なりというその神理を説いて執着の苦しみから人々を解放していきます。
이 난디야・카샤파 와 쿠난다・카샤파, 이 사람들도 귀의합니다만, 형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써, 산적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닌 것일까라고 걱정합니다.
강에서 흘려온 제단[祭壇]을 보고, 우루벨라・카샤파는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만, 마을 사람들에게 듣고 수행자[修行者]와 함께 산을 내려와, 라자구리하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듣습니다.
두 사람은 형님을 만나고, 사정을 듣고, 형제 3명도 귀의해 버립니다. 빈비사라왕의 친척인 가란다라고 불리우는 분은 벨르베나라고 하는 정확히 라쟈구리하의 남쪽, 약 2킬로미터 쯤 들어간 산간에 죽림[竹林]이 있습니다만, 그 죽림에 법좌[설법(說法)를 거행하는 집회의 좌석(座席)]를 마련한 건물을 만듭니다.
이것이 벨르베나, 일본어로 말씀드리면, 치쿠림쇼우쟈[죽림정사:竹林精舎]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붓타의 교단은 차츰 크게 되어 갑니다. 그렇게 해서 신리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 사람의 길[人道: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인간은 마음이니라 하고 하는 그 신리를 설명하고 집착의 괴로움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해 갑니다.
四十五年間中インドを中心にしてあらゆる国々にブッタの神理が広まっていきます。やがてクシナガラの地において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八十一才、この世を去ろうとする時にブッタの陰のようにしたい身の回りを世話してきた秘書のアーナンダが問います。
「ゴーダマ様、あなたさまがこの世を去ってしまったら、私たちはどのように道を説いたらよいでしょう」
「アーナンダよ、お前はそのようなことをいうのではない、お前たちは四十五年間、わしと共に悟りへの道、ブッタ・ストラーの神理を学んだはずだ。お前の心の中にわしのこの神理が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なさい。私を思えばお前たちの心の中に私はいるのだ。人間というものはいつどのようになるかも知れないが、しかしお前たちは、自分自身の心の偉大さを知るために、道を怠ってはならない」
またブッタは永遠の輪廻転生を説くのです。
「西の方へ太陽が沈めば暗くなってしまうが、また明日になれば同じ太陽が東から出て明るくなるように、わしもまたそのようになろう。やがて後の五百才後においてその道を説く時は、ジャブ・ドーバー(日本)ケントマテイー(都)の国に出るのだ。その時には今このように汚ない足を濯ぐことなく、道も美くしく、道路の周辺には立派な建物ができており、それはルビーやダイヤモンドで作られていることであろう。この時にそのジャブ・ドーバーの都では、既に仏教(ブッタ・ストラー)は形式化され末法の時代になっているであろう」
と多くの弟子たちに教えます。
45년동안 중인도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여러 나라에 붓다의 신리가 넓혀 갑니다. 머지않아 구시나가라 의 땅에서 고마다 싯타르다는 81세,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할 때에 붓다의 그림자처럼 지체[肢体]로 일상의 신변 용품을 챙겨 왔던 비서인 아난다가 묻습니다.
「고다마님,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버리면, 저희들은 어떻게 도[道]를 설명하면 좋을까요.」
「아난다여, 너는 그러한 것을 말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45년 동안, 나와 함께 깨달음으로의 길[道], 붓타 스트라의 신리[神理]를 배운 것이다. 너의 마음속에 나의 이 신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 주세요. 나를 생각하면 너희들의 마음속에 나는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너희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위대함을 알기 때문에, 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또한 붓타는 영원한 윤회전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서쪽으로 태양이 지면 어두워지지만, 또한 내일이 되면 같은 태양이 동쪽에서 나와서 밝아지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머지않아 나중의 500세 뒤에 있어서 그 길[道]을 설명할 때는, 쟈브토바(일본) 켄토마테(도시)의 나라에 나올 것이다. 그 때에는 지금처럼 더러운 발을 씻기는 일이 없고, 길도 아름답고, 도로의 주변에는 훌륭한 건물이 되어 있고, 그것은 루비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 때에 그 쟈브토바의 도시에는, 이미 불교(붓타・스트라)는 형식화되어 말법의 시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라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たまたまなくなるしばらく前に一人の年老いた老人(シュバリダ)が参ります。
この方は今、心の窓を開いて本日ここに来ていますが、当時私たちはマガダ語という言葉をしゃべっていました、この方は当時は百十七才近くの老齢でございます。
自分自身が足もこのようにやせおとろえて、すでに相当な年齢のために杖をついて参ります。
しかし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その時に、この方の前世シュバリダが何を考えているか解ります。
「最後の弟子が来た、アーナンダ、わしのまくらべ枕辺につれてくるがよかろう」
その時、シュバリダはこのように問うてきます。
「ゴーダマ様、本当の神理はどのようなものか、インドには多くの修行者がいて、我こそは本物だ、我こそはブッタといっているけれども、神理というものはどのようなものか教えて欲しい」
シュバリダはあらゆるところの門をたたき、百十七才になるまでその神理を本物であるかないかを探し求めて、死の直前にブッタに会うことができたのです。
その時にゴータマ・シッタルダーは真に人間自身の生老病死の苦しみの原因を断ち、八正道の実践を生活行為の中に生かしているものこそ、真の正道者であるということを説いたのであります。
そのとき彼はついに、自分の考えていることと同じであると悟ったのです。
점점 죽어가는 잠시 전에 한 사람의 나이가 든 노인(슈바리다)가 옵니다.
이 분은 지금, 마음의 창을 열고 오늘 여기에 옵니다만, 당시 저희들은 마가다어라고 하는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이 분은 당시는 117세 가까운 노령[老齢]이십니다.
자기 자신의 발도 이와같이 야위고 수척해져서, 이미 상당한 연령이기 때문에 지팡이를 집고 옵니다.
하지만 고다마・싯타르타는 그 때에, 이 분의 전세[前世:전생] 슈바리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압니다.
「최후의 제자가 왔다, 아난다, 나의 머리맡 가까이 데려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때, 슈바리다는 이와 같이 질문합니다.
「고다마여, 진실한 신리는 어떠한 것인지, 인도에는 수많은 수행자가 있고, 나야밀로는 진짜다, 나야말로는 붓타라고 말하고 있지만, 신리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가르쳐 주십시요」
슈바리다 는 모든 장소의 문을 두드리고, 117세가 되기까지 그 신리를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를 깊이 찾아서, 죽음 직전에 붓타를 만날 수가 있어던 것입니다.
그 때 고마다・싯타르다는 진실로 인간 자신의 생로병사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고, 팔정도의 실천을 생활행위 속에 되살리고 있는 것이야말로, 참된 정도자[正道者]라고 하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 때 그는 마침내, 자신의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ゴーダマ様のニイルヴァナ涅槃に入るところを私は見るに忍びません。一足お先に失礼します」
といって百十七才の老齢をそのままパタンとそこに倒れてこの世を去ってしまいました。
このシュバリダという人は、長い年月バラモンやあらゆる宗教を学んできておりますために、当時本当の悟りへの境地ということは知らなかったそうです。
彼はついに百十七才、最後の土壇場において神理を己自身が知って息をひきとってゆきます。
そのために続いてこの方は中国に、二世紀に生まれて神理を説きました。(I氏が過去を語る)
「・・・・・この大河のはんらん氾濫にあい私は両親にはぐれました。そして出家をし仏の道を探究したのでございます。そして広い中国をすみからすみまでいろいろと旅を致しました。そしてあみだ阿弥陀じょうど浄土、今の言葉でいいますと西方浄土に、人々はこの世を終えた後、善いことをした人はそこに生まれ変わり、悪いことをした人は地獄という光のない世界に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人々はたとえどのように環境が苦しかろうと、どのように辛らかろうと心は常に明るい希望をもって生きてゆかなければということを人々に説いたのでございます。テンシンと当時の名前を申します・・・・・。」
このように人間の生命というものは、あらゆる国々を転生輪廻し続けています。
四十五年間にわたってブッタが説かれた神理は中国に渡りだんだんと仏教というものが儒教の影響をうけて非常に哲学化されてゆきます。インドの当時に説いたその神理は、方便というものを通して説明したのです。
皆さまは南無妙法蓮華経を唱えている。
「고다마님의 니루바나[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저는 볼 수가 없습니다. 한 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117세의 노령을 그대로 꽈당하고 그곳에 쓰려져 이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이 슈바리다라고 하는 사람은, 오랜 세월 바라몬이나 온갖 종교를 배워왔기 때문에, 당시 진실한 깨달음으로의 경지라고 하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117세, 최후의 막판에 있어서 신리를 자기 자신이 알고 숨을 거두어 갑니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이 분은 중국에, 2세기에 태어나서 신리를 설명했습니다. 。(I씨가 과거를 말한다)
「・・・・・이 대하(大河)의 범람으로 인해 저는 양친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출가를 하고 부처의 도[道]를 탐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넓은 중국을 구석구석까지 다양하게 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미타정토[阿弥陀浄土]、지금의 언어로 말하면 서방정토[西方浄土]에, 사람들은 이 세상을 마친 후에, 선한 것을 행한 사람은 그곳에 환생[還生]하며, 악한 짓을 행한 사람은 지옥[地獄]이라고 하는 빛의 없는 세계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비록 어떻게 환경이 괴롭더라도, 아무리 고통러울지라도 마음은 항상 밝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한 것입니다. 텐싱[テンシン]이라고 당시의 이름을 말합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나라들을 계속 윤회하고 있습니다.
45년 동안에 걸쳐서 붓타가 설명한 신리는 중국[中國]으로 건너가 차츰 불교[仏教]라고 하는 것이 유교[儒教]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철확화되어 갑니다. 인도의 당시에 설명한 그 신리는, 방편[方便]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을 소리내어 외우고 있다.
その根本も、最初は天台山においててんだい天台ちぎ智顗が、法蓮華僧伽呪(ほうれんげさんがんじゅ)として説いたのです。
法とは仏の心、仏の意志、神理、蓮華とは汚ない泥沼の中においても美しい蓮の花が咲くように、人間の肉体というものは、目を見れば目糞、鼻からは鼻糞、耳糞、汗、一つとしてきれいなものは出ない。
しかし心というものは宇宙の神理を知って日々の生活をしていたならば、あの美しい蓮の花と同じように、安らぎの境涯を送ることができるのだ、このように説いたのが法華経の根本です。
그 근본도, 최초는 천태산에서 천태지의[天台智顗]가, 법화경승가주[法蓮華僧伽呪]로서 설명한 것입니다.
법[法]이란 부처의 마음, 부처의 의지[意志], 신리[神理], 법화[法華]란 더러운 진창속에 있어서도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듯이, 인간의 육체라고 하는 것은, 눈을 보면 눈꼽, 코에서는 코딱지, 귀지, 땀, 한 가지라고 해서 고운 것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신리를 알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하면, 저 아름다운 연꽃과 마찬가지로, 평온한 경애[境涯: 사람의 처지나 환경]를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 것이 법화경[法華経]의 근본[根本]입니다.
特に天台山においては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の分身、ちん陳という少年が十七才、また同じような運命にさらされます。
いくさ戦に敗れて父親や母親や兄弟たちとバラバラにされ十七才の時に、陳少年は当時のほうらいさん蓬莢山というところにおられたなんがくえし南岳慧思という僧侶の下で修行するようになります。
南岳慧思といわれる僧侶は法華経を学び、それも夜ねむっている時にみろく弥靭ぼさつ菩薩が枕辺にきてその神理を説いていきます。陳少年は後の天台智顗という人です。
約二十年間慧思の下で修行をし、陳少年の兄が天台山というところは非常に見晴しもよいし、おまえは一
つ天台山へ引越して来ないか、といわれ、天台山に入り、仏教の道を説いていきます。
특히 천태산에 있어서는 고다마・싯타르다의 분신, 진[陳]이라고 하는 소년이 17세, 또한 마찬가지인 운명를 맞이 합니다.
전쟁에 패하여 부친이나 모친이나 형제들과 뿔뿔히 흩어져 17세 때에, 진소년은 당시의 호우라이산[蓬莢山: 봉래산]이라고 하는 장소에 계신 난가꾸에시[南岳慧思:남악혜사]라고 하는 승려의 밑에서 수행을 하게 됩니다. 난가꾸에시[남학혜사]라고 불리우는 승려는 법화경을 배우고, 그것도 잠을 못 이룰 때는 미륵보살[弥靭菩薩]이 머리맡에 와서 신리를 설명해 갑니다. 진소년은 후의 천태지의[天台智顗]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약 20년 동안 혜사(慧思)의 밑에서 수행을 하고, 진소년의 형이 천태산이라고 하는 장소에 상당히 전망이 좋고, 너는 하나의 천태산으로 옮겨온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하며, 천태산에 들어와, 불교의 도를 설명해 갑니다.
※蓬莱山[봉래산] 《일본국어사전/일본대백과사전》
中国古代の戦国時代(前5~前3世紀)、燕(えん)、斉(せい)の国の方士(ほうし)(神仙術を行う人)によって説かれた神仙境の一つ。普通、渤海(ぼっかい)湾中にあるといわれる蓬莱山、方丈(ほうじょう)山、 ...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약5~3세기), 연(燕), 제(斉)의 나라의 방사(方士) (신선술을 행하는 사람)에 의해서 설명한 신선경의 하나. 보통, 발해(渤海)만 중에 있다고 불리우는 봉래산, 방장산(方丈山),...
天台智顗は、人の心は一念三千であり、本来誰しも広く大きな心を持っているが、一念の思うこと考えることによって、善にも悪にもつながり、悪を思えば小さくなってしまう。
大きな豊かな心を持つためにはしかん止観によって心の針を正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説きます。
まか摩訶しかん止観はこうして生まれ、そうして人間のあり方ということを次々説いてゆきますが、次第に哲学化され解らなくなって参ります。
천태지의[天台智顗]는, 사람의 마음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며, 본래 누구나 넓고 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일념의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 진지하게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 선에도 악에도 연결되고, 악을 생각하면 작아져 버린다.
큰 풍요로운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지관[止觀=멈추어 봄]에 의해서 마음의 바늘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마하지관[摩訶止観]은 이렇게 해서 태어나서, 이렇게 해서 인간의 올바른 자세[본연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차례차례 설명해 갑니다만, 다음에 철학화되어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옵니다.
その当時天台山の僧侶でありました方がここに二人おられます。
その方にちょっと当時の模様をきいて見ましょう。(NGが、まずチベットの経文の一節を唱え、続いて当時の模様を語る)
「私は高橋武様の過去世であるチコータとは朋友でございます。共にチベットにおいてラマ教を学びましたが、中国の天台山に陳様と申される高僧のおられることを知り、共に入国し法華経を学びました。今私が唱えました経文はチベットにおいて唱えた経文です。それでは法華経に帰依してからの経文を唱えさせていただきます」(経文を唱える)
これが五世紀から六世紀にかけての法華経です。
つづいて八世紀に日本からは比叡山延暦寺を作りました伝教大師最澄が留学され天台山においてその神理を学び日本に持って参ります。
このようにして比叡山延暦寺で説かれたその神理は妙法蓮華経と日本的に変えられてゆきます。
つづいて十三世紀に入って日蓮はさらに南無という言葉をつけ南無妙法蓮華経という形に変わってゆきます。
그 당시 천태산의 승려였던 분이 여기에 두 사람 계십니다.
그분에게 잠시 당시의 모양을 들어 봅시다.
(NG가, 우선 티베트 경문의 한 귀절을 외우고, 계속해서 당시의 모양을 말한다)
「저는 고교무[高橋武]님의 과거생인 치코우다라는 친구입니다. 함께 티베트에서 라마교를 배웠습니다만, 중국의 천태산에 진님[陳様]이라고 말씀하신 승려가 계신 것을 알고, 함께 입국해서 법화경을[華華経]을 배웠습니다. 지금 제가 외운 경문은 티베트에서 외웠던 경문입니다. 그리고는 법화경에 귀의하고 나서의 경문을 외우게 되었습니다.」
(경문을 외운다)
이것이 5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서의 법화경입니다.
계속해서 8세기의 일본에서는 비예산 연력사를 만든 전교대사 최등[伝教大師最澄]이 유학해서 천태산에서 그 신리를 배우고 일본으로 가지고 옵니다.
이렇게 해서 비예산 연력사[叡山延暦寺]에서 설명한 그 신리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이라고 일본적으로 변하여 갑니다.
계속해서 13세기에 접어들어 니찌렌[日蓮:일연]은 더욱더 나무[南無]라고 하는 언어를 붙여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이라고 하는 형태로 변해 갑니다.
こうしてだんだんと他力本願に変わり、お経はあげることに功徳があるという間違った考え方になっていったのです。
私たちはお経の意味も、またインドの時代に説いたその神理というものも人間というものの偉大さ、神の子として仏の子としての偉大なる己自身の心を悟るということ、その中に己自身が神の子として偉大なる仏智をひもとき転生輪廻の永遠の生命を悟って、人間らしい調和された世界を作るというのが本来の仏教の根本的な意味です。
私たちはこのようなことを知った時、皆さまの心の中には神の子として偉大なるあらゆる国々を転生輪廻して来たところの仏智というものが存在しているのです。
その仏智は皆さま自身の潜在されているところの九○パーセントの意識の中にかくされており、それを具現し永遠の生命の中の今の修行に自覚を持たれることが大事なのです。それにはまず人間は足ることを知ることです。
이렇게 해서 점점 타력본원[他力本願]으로 바뀌고, 경문을 외우는 것에 공덕[功德]이 있다고 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경문의 의미도, 또한 인도의 시대에 설명한 그 신리라고 하는 것도 인간이라고 하는 것의 위대함, 신의 자녀로서 부처의 자녀로서의 위대한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고 하는 것, 그 속에 자기 자신이 신의 자녀로서 위대한 불지[仏智:부처의 원만한 지혜]를 풀러내고 전생윤회의 영원한 생명을 깨달아, 인간다운 조화된 세계를 만든다고 하는 것이 본래의 불교의 근본적인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알았을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신의 자녀로서 위대한 온갖 여러 나라를 전생윤회해 온 장소의 불지[仏智:부처의 원만한 지혜]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불지[仏智:부처의 원만한 지혜]는 여러분 자신의 잠해되어 있는 장소의 90%의 의식 안에 숨어 있고, 그것을 구현하고 영원한 생명 속의 지금의 수행에 자각을 갖는 것이 중대사인 것입니다. 그것에는 우선 인간은 만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私たちの現代社会は人間の作り出したるところの物質文明の奴隷に変わっております。お互いに歴史の中に作りあげられた資本主義、社会主義においてもその根本は、物質経済であり、相争いながら文明社会が発達するという不調和な理論を生んでしまいました。
いかに、皆さま自身に財産があろうとも、地位があろうとも、この世を去る時には皆さまは、自分の愛する妻も子供もすべて置い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金ももっていくことはできません。物質文明経済というものはただの生活の知恵であり、魂修行の手段にしかすぎないことを自覚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足ることを知り、与えられた環境の中で正しく仕事をし一心不乱に実践行為しつつ、一日一日の心の中に、恨み、妬み、謗りの心がなかったか、あるいは心の中に思わなかったか、あるいは行動をしなかったか、一つ一つ皆さま自身の心の調和度というものを、布団の上でも好いから静かに反省し、心というものを磨いていってご覧なさい。
우리들의 현대사회는 인간의 만들어 낸 장소의 물질문명의 노예로 변하고 있습니다. 상호간에 역사 속에 만들어 낸 자본주의, 사회주의에 있어서도 그 근본은, 물질경제이며, 서로 싸우면서 문명사회가 발달한다고 하는 부조화한 이론을 낳아 버렸습니다.
아무리, 여러분 자신에게 재산이 있을지라도, 지위가 있을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여러분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도 아이들도 전부 놔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돈도 갖고 갈 수는 없습니다. 물질문명 경제라고 하는 것은 단지 생활의 지혜이며, 영혼의 수행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족함을 알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올바르게 일을 하고 일심불란하게 실천행위를 이어가고, 하루 하루의 마음 속에, 원망, 질투, 비난의 마음이 있었던가, 혹은 마음속에 생각하지 않았던가, 혹은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일일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조화도라고 하는 것을, 침상 위에서도 좋으니까 조용하게 반성하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연마해 가 보십시요.
皆さまの心は怒り、謗り、妬み、自己保存、自分の立場ばかり考えていると、一念三千といって、悪の一念の心は悪の世界に通じ、広い心をますます小さく狭いものにしてゆきます。
私たちは恨めば恨む世界に、あるいは慈悲を与へれば慈悲の世界に通ずることを知るべきです。一念三千の心を常に平和と安らぎの人々に対して慈悲を与え、愛を与える生活をするならば皆さまの心の針は常に光の世界に通じ真の安らぎある皆さま自身をつくりあげていきます。
病気や色々な悩み、苦しみこのような心をもっている時は地獄の世界に通じ、心は不安と動揺をくりかえすことになります。このように一念三千の心を神理にそって常に調和された日々の生活をし、光の世界に常に心の針を向けた行ないをする時に、皆さま自身の心の中には神の光がさんぜん燦然と入ってきます。
太陽の熱・光のエネルギーは地位、名誉、経済、学識全く関係なく総べて平等に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神の光も万生万物にみな平等に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
여러분의 마음은 분노, 비난, 질투, 자기보존,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있으면, 일념삼천이라고 해서, 악의 일념의 마음은 악의 세계로 통하고, 넓은 마음을 점차 작고 협소한 것으로 해 갑니다.
우리들은 원망하면 원망하는 세계로, 혹은 자비를 베풀면 자비의 세계로 통하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마음을 항상 평화와 평온함의 사람들에게 대해서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생활을 해나가면 여러분의 마음의 바늘은 항상 빛의 세계로 통해서 참된 평온함이 있는 여러분 자신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질병이나 다양한 고민(고뇌), 괴로움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 때는 지옥의 세계로 통하고, 마음은 불안과 동요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일념삼천의 마음을 정신에 따라서 항상 조화된 일상생활을 하고, 빛의 세계로 항상 마음의 바늘을 향한 행위를 할 때에,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는 신의 빛이 찬연하게 들어 갑니다.
태양의 열과 빛의 에너지는 지위, 명예, 경제, 학식과는 전연 관계없이 모두 평등하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빛도 만생만물에게 모두 평등하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この神の偉大なる慈悲と愛の光を受けとめないのは、皆さま自身の心の中の恨み、妬み、謗り、自己保存という暗い想念が曇りを作ってしまうからです。
この曇りを皆さま自身は作らないことです。
皆さまはそのことをよく知り常に自分自身を正道の道を通して日々の生活をし夫婦は円満に、調和された日々の生活をすることが人類に課せられた目的であり、使命です。神の体であるこの地球上という場は大宇宙体の中の小さな細胞にしかすぎません。
この細胞こそ大神殿であり大仏殿だということです。皆さん自身の心の中に、偉大なる大仏殿、大神殿が存在しているのです。
このように偉大なる大神殿の下に我々は、先ず人と人との心がお互いに嘘のない生活をしお互いに助け合う日々の生活環境をつくることによって、私たちはこの神の体である地球上も人間の心と心の調和によった平和な仏国土、ユートピアを築きあげてい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이 신의 위대한 자비와 사랑의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의 원망, 질투, 비난, 자기보존이라고 하는 어두운 상념이 구름[흐림]을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구름을 여러분 자신은 만들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잘 알고 항상 자기 자신을 정도[正道]의 길을 통해서 일상생활을 하고 부부는 원망하고, 조화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인류에게 배정된 목적이며, 사명입니다. 신의 몸인 이 지구상이라고 하는 장소는 대우주체의 속에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포야말로 대신전[大神殿]이며 대불전[大仏殿]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 위대한 대불전, 대신전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대신전[大神殿] 아래에 우리들은, 우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서로 돕는 일상생활을 만드는 것에 의해서, 우리들은 이 신의 몸인 지구상과 인간의 마음과 마음의 조화에 의한 평화로운 불국토, 유토피아[이상향]을 구축해 가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そのようなことを皆さまが知り、共に皆さま自身が永遠の生命の中に転生輪廻を繰り返してきたところの皆さま自身の業というものを、修正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皆さまは過去を知りたいというならば、それは皆さまの今考えていることと行なっている今の姿が皆さまの過去、現在を集約した姿と思ってください。
そのようなことを皆さまが知ったならば、我々は今このような縁により、皆さま自身、心の中に偉大なる光の息吹きが、そしてこの地上界に平和な、争いと闘争をなくしたところの万物の霊長、神の子としての真の道を実践してゆか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ことを気づくのです。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함께 여러분 자신이 영원한 생명 속에 전생윤회[転生輪廻]를 되풀이해 온 장소의 여러분 자신의 업[業]이라고 하는 것을, 수정[修正]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과거를 알고 싶다고 하면, 그것은 여러분의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 행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여러분의 과거, 현재를 집약한 모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요.
그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았다면, 우리들은 지금 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여러분 자신, 마음속에 위대한 빛의 생동[활기, 기운, 호흡]을, 그리고 이 지상계에 평화로운, 다툼[투쟁]과 전쟁을 없애는 만물의 영장, 신의 자녀로서의 참된 길을 실천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に真の仏教というものは皆さま自身の心の中に、かっては中国に生き、ある者はまたイスラエルの地において受けたイエス・キリストの神理が、皆さまの意識の中に記録されています。また私たちはこの地上界に生まれてくるには決して地獄から来た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皆さまは丸く大きいひかり輝いた偉大なる神の使徒としてこの地上界に肉体をもっているのです。それも皆さま自身はあの世において自分の両親を自分で選び、そしてしかもあの世において登録されて、皆さまはお父さん、お母さんの精子と卵子と調和された時に、初めてあの世に通信され皆さまの意識が入ってくるのです。三ヶ月位たちますと大低十センチメートル位の大きさになり五体というものが形成されて参ります。
이와 같이 참된 불교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 한때는 중국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또한 이스라엘의 땅에서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리가, 여러분의 의식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이 지상계에 태어나오는 데에는 결코 지옥에서 온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둥글고 큰 빛으로 빛나는 위대한 힌의 사도로서 이 지상계에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분 자신은 저 세상에 있어서 자신의 양친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리고 게다가 저 세상에서 등록되어, 여러분은 아버지, 어머니의 정자[精子]와 난자[卵子]와 조화[調和]되었을 때에, 비로서 저 세상으로 통신[通信]되어 여러분의 의식[意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3개월에 접어들면 대체로 10센치미터 정도의 크기가 되어 오체[몸뚱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되어 옵니다.
その時にあの世から皆さま自身の意識が丸い大きなすべてを悟りきった生命でお母さんの腹の中に入ってくるのです。
そのために三ヵ月目位になりますと、お母さんと子どもの意識が調和されないためにツワリという現象が出て参ります。もしこの中でツワリで困っている人があればそくざに直してあげます。
これは子どもの意識とお母さんの意識が調和されないためなのです。このようにして十月十日たち生まれてくる子どもというものは、親の教育、思想、環境そのものによってだんだんと育っていくうちに、偉大なる智慧、偉大なる神の力を失って人間は苦しみと悲しみを作ってゆくのです。
この地球上の善と悪の作り出された環境の中に皆さまは修行してゆ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その中から皆さまの心の中を自ら紐解き、神理のたいどう胎動に気づいた時に、今、自分自身の現在が大事だ、今の一秒一秒の積み重ねの中に皆さまの偉大なる仏智が、偉大なる神の智慧が、具現してくる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す。
그 때에 저 세상에서 여러분 자신의 의식이 둥글고 큰 전부를 깨달아 온 생명으로 어머니의 뱃속(腹中)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3개월째에 접어들면, 어머니와 아이의 의식이 조회되지 않기 때문에 입덧이라고 하는 현상이 나옵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입덧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즉석에서 고쳐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아이의 의식과 어머니의 의식이 조화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열달 열흘에 태어나오는 아이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교육, 사상, 환경 그 자체에 의해서 점점 성장해 가는 동안에, 위대한 지혜, 위대한 신의 힘을 상실하고 인간은 괴로움과 슬픔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의 선과 악의 만들어 낸 환경 속에 여러분은 수행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 속을 스스로 풀어내고, 신리의 태동을 알아차릴 때에, 지금, 자기 자신의 현재가 소중[중요]하며, 지금 1초1초의 거듭함 속에 여러분의 위대한 불지[仏智:부처의 원만한 지혜]가, 위대한 신의 지혜가, 구현해 온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に私たちは漸く三十数年間、極微の世界から極大の世界を学び、学ばなかった仏教の神理、学ばなかった国の言葉が次々と出てくるのであります。
皆さまも人間として生まれた真の目的と使命というものを果たしてこの世を優等生で卒業していただきたいと思うのであります。たとえ貧乏人に生まれようとも、それは皆さま自身があの世で選択してきたからなのです。
金があり、環境がよければ、生活におぼれ地獄に堕ちてしまうために、そうした環境を選んできたのです。
自ら悟れる環境を選んできたことを知って欲しい。貧乏だからといって決して皆さまは悲観することはないのです。
이와 같이 우리들은 차츰 30수년 동안, 극미의 세계에서 극대의 세계를 배우고, 배우지 않았던 불교의 신리, 배우지 않았던 나라의 언어를 차례차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간으로서 태어난 참된 목적과 사명이라고 하는 것을 완수해서 이 세상을 우등생으로 졸업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설사 가난한 사람에게 태어나도,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저 세상에서 선택해서 온 것입니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해 온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결코 여러분은 비관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皆さま一人一人の心は神の子として偉大なる智慧と偉大なる愛と偉大なる慈悲をも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皆さまは知らなくてはいけません。
それだけに今を大事にお互いに手をとり合い争いと闘争の現代社会を皆さま自身の偉大なる力によって修正し、仏国土ユートピアを作ってゆ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最後に皆さまのご要請があれば私たちは自分一人でもここへ来て皆さまに心の偉大さを、そして皆さま自身の仏性を目覚めさせて行きます。私たちはあらゆる教団からそのような要請をうけており、いつでもどこへでも行きます。
そして人間はみな神の子仏の子だ、人間はみな兄弟だ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説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은 신의 자녀로서 위대한 지혜와 위대한 사랑과 위대한 자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만큼 지금은 소중히 서로 손을 맞잡고 다툼[투쟁, 싸움]과 전쟁의 현대사회를 여러분 자신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 수정하고, 불국토 유토피아[이상향]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요청이 있다면 우리들은 혼자라도 여기에 와서 여러분에게 마음의 위대함을,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불성을 눈뜨게해 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온갖 교단에서 그러한 요청을 받고 있고, 언제나 어디든지 갑니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신의 자녀이며 부처의 자녀이며, 인간은 모두 형제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皆さまの中にもそのような力をもつ人がこの中にだいぶおります。インドの当時は二万余人のアラハンがおりました。
そしてその神理を説きました。我々の今のグループは約百五十数人の人たちが心の窓を開いております。
皆さまも真に自分自身の心に目覚め嘘のない生活と、自分の心に嘘がつけない、嘘のない生活を築いた時に、皆さまの心の窓は開かれてゆきます。
その時に皆さまの心の目は開かれ皆さまの目を通して現象を見ることもできるのです。
あるいはまた語ることもできます。あるいは相手の病気もすべて癒すことも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
それは皆さま自身の行ないと心が神理にそったものでなければその道は開か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
여러분 중에도 그러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 중에 많이 있습니다. 인도의 당시는 2만여명의 아라한[阿羅漢]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리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들의 지금의 그룹은 약 500 수십명의 사람들이 마음의 창을 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진실로 자기 자신의 마음에 눈을 뜨고 거짓의 업는 생활과,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짓 없는 생화를 구축했을 때에, 여러분의 마음의 창은 열리어 갑니다.
그 때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은 열리어 여러분의 눈을 통해서 현상을 보는 일도 가능한 것입니다.
혹은 또한 말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혹은 상대의 질병도 전부 치료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행위와 마음이 신리에 맞는 것이 아니면 그 길은 열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본어가 서툴어서 이 내용을 번역하는데 쉬지도 않고 11시간 걸렸습니다. 문맥이 구분이 없어서, 제 나름대로 손이 가는데로 구분했습니다. 다소 서툰 풀이이지만, 골자를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봅니다-
참으로 중요한 내용입니다. 읽으시고 마음에 평온함이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2010년 4월 30일 21:30 →2011년 4월26일 내용을 다시 수정하였습니다. 스크랩하신 분들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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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uki000004.seesaa.net/article/91167010.html, 高橋信次講演集, 1975年5月 吉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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