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선도에 의한 교육개혁 본문
法は慈悲と愛を喚起する力である。神は無限の慈悲とその力をもって、
正法を信ずるものの行く手に、光明の道をひらいてくれよう。
법은 자비와 사랑을 환기하는 힘이다. 신은 무한의 자비와 그 사랑의 힘을 갖고,
정법을 믿는 사람의 앞길에, 광명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高橋信次先生お導きによる教育改革
댜카하시 신지 선생님이 선도에 의한 교육개혁
Ⅰ 神仏、大自然の次元から
Ⅰ 신불, 대자연의 차원에서
①変地異について
①천재지변에 대해서
(高橋信次先生ご著書 人間釈迦①157頁から抜粋)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인간석가①157항에서 발췌)
この大宇宙は神によってつくられた。
이 대우주는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大宇宙が発生する以前の大宇宙は、光明という神の意識だけが、そこにあった。
대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대우주는, 광명이라고 하는 신의 의식만이, 거기에 있었다.
神は、その意識の中で意思を持たれた。
신은, 그 의식 속에서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大宇宙の創造は、神の意思によってはじまった。
대우주의 창조는, 신의 의사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意識の働く宇宙と、物質界の宇宙の二つの世界を創造した。
의식의 작용하는 우주와, 물질계의 우주 두 가지의 세계를 창조했다.
意識界の宇宙はその意思をもって物質界の宇宙を動かし、そうしてこの二つの世界は、光と影という相関関係を通して、永遠の調和を目的とすることになった。
의식계의 우주는 그 의사를 가지고 물질계의 우주를 움직이고, 그렇게 해서 이 두 가지의 세계는, 빛과 그림자라고 하는 상관관계를 통해서, 영원한 조화를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
神の意識は、永遠の調和をめざし、そうして、二つの世界にあって、調和の要である中道という法秩序の中に住まわれることになった。
신의 의식은, 영원한 조화를 목표로 하고, 그렇게 해서, 두 가지의 세계에 있고, 조화의 요점인 중도라고 하는 법 질서 안에 거하시게 되었다.
人間は、天地創造とともに、神の意識から別れ、神の意思を受け継ぐ万物の霊長として産ぶ声をあげた。
인간은, 천지창조와 함께, 신의 의식에서 떨어져, 신의 의사를 이어받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태어났다(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질렀다).
人間の誕生は、意識界という実在の宇宙に、まず姿を現わした。
인간의 탄생은, 의식계라 하는 실재의 우주에,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そうして、神の意思である調和をめざす神の子として、物質界に降り立ったのである。物質界に降り立った最初の人間を、地上の眼でみるならば、大地の一隅に、忽然と物質化されたといえるだろう。
그렇게 해서, 신의 의사인 조화를 목표로 하는 신의 자녀로서, 물질계에 강립한 것이다. 물질계에 강립한 최초의 인간을, 지상의 눈으로 보게 되면, 대지의 일우에, 홀연히 물질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人間以外の動物、植物、鉱物も、こうしたプロセスを経て、大地に姿を現わした。
인간 이외의 동물, 식물, 광물도, 이러한 공정을 거쳐, 대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こうして、あらゆる生命物質は、実在界(意識界(あの世))と現象界(地上(この世))の間を、輪廻することになった。
이렇게 해서, 온갖 생명 물질은, 실재계(의식계(저 세상))과 현상계(지상(이 세상))의 사이를, 윤회하게 되었다.
地球に生物が住むようになったのは、今から数億年も前である。最初の生物は、太陽の熱・光と、大地と、海水と、空気と、それに意識界と表裏一体の宇宙空間の、相互作用によって、地上に現われた。微生物の誕生である。
지구에 생물이 거주하게 되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수억 년이나 이전이다. 최초의 생물은, 태양의 열・빛과, 해수와, 공기와, 그것에 의식계와 표리일체의 우주공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지상에 나타났다. 미생물의 탄생이다.
続いて植物が発生し、動物が姿をみせはじめた。
이어서 식물이 발생하고, 동물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やがて爬虫類時代を迎え、一時期、地上は荒寥とした姿に変貌をとげる。恐竜の時代も下火になった今から約二億年前に、人類は、特殊な乗り物に乗って、他の天体から飛来した。
이윽고 파충류 시대를 맞이하여, 한 시기 동안, 지상은 황료한 모습으로 변모를 이룬다. 공룡의 시대도 기세가 약해진 지금으로부터 약 2억년 전에, 인류는, 특수한 교통수단에 타서, 다른 천체에서 날아왔다.
当時の移住者は、かなりの数にのぼった。
당시의 이주자는, 상당한 인원수였다.
人類は、神の意志にもとづいて、調和という仏国土をつくりはじめた。
인류는, 신의 의지에 바탕을 두고, 조화라고 하는 불국토를 만들기 시작했다.
当時の人類は、荒蓼たる地上を開墾し、人類が住める環境として神がつくられた大地に、動物、植物の、相互依存のしやすい調和をつくることが目的であった。
당시의 인류는, 황료한 지상을 개간하고, 인류가 주거할 수 있는 환경으로서 신이 만들어 낸 대지에, 동물, 식물의 상호 의존하기 쉬운 조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人類は栄えた。動物、植物も、すくすくと育った。
인류는 번영했다. 동물, 식물도, 쑥쑥 자랐다.
人々の年齢は、五百歳、千歳の長命を保った。
사람들의 연령은, 500살, 1000살의 장수를 누렸다.
人類の数は増えていった。子孫が子孫を生み、人々の転生輪廻が、地球という場において、回転をはじめたのである。
인류의 수는 증가해 갔다. 자손이 자손을 낳고, 사람들의 전생윤회가, 지구라고 하는 장소에서, 윤회를 시작한 것이다.
人々は次元の異なる意識界と自由に交流ができた。
사람들은 차원의 다른 의식계와 자유로이 교류를 할 수 있었다.
文明は高度に発達した。
문명은 고도로 발달했다.
人間は自由に空を駈けめぐり、地下にも大都市をつくった。
인간은 자유로이 하늘을 뛰어다니고, 지하에도 대도시를 만들었다.
しかしやがてその文明も終焉を迎えるときがやって来た。
하지만 이윽고 그 문명도 임종을 맞이할 때가 도래했다.
人々の間に、自我が生まれ、国境がつくられ、争いがはじまったからである。
사람들 사이에, 자아가 태어나고, 국경이 만들어져,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人々の不調和、暗い想念の曇りは偉大な神の光をさえぎった。その結果、大地は怒り、黒雲は天を蔽った。至るところで火山が爆発し、陸は海に、海は陸になった。
사람들의 부조화, 어두운 상념의 구름은 위대한 신의 빛을 가로막았다. 그 결과, 대지는 분노하고, 먹구름은 하늘을 뒤덮었다. 이르는 곳마다 화산이 폭발하고, 육지는 바다가, 바다는 육지가 되었다.
ホンのひと握りの心ある人々を残して、人類は、土中に、海中に、消えていった。
진실한 인간 정도의 사려・분별이 있는 사람들을 남기고, 인류는, 땅속으로,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こうして人類は、栄えては滅び、滅びては栄えた。
이렇게 해서 인류는, 번영하면 멸망하고, 멸망하면 번영했다.
天変地異は、人類がこの地上に住みつくようになってから、何回となく繰り返されてきたものである。
천재지변은, 인류가 이 지상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고 나서, 몇 번이나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天変地異は、自然現象ではない。人類が住みつくようになってから、この地上で、神が有する創造の権能を、人類が行使し、人類の心と行為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あった。
천재지변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인류가 자리를 잡고 살게 되고 나서, 이 지상에서, 신이 지니고 있는 창조의 권능을, 인류가 행사하고, 인류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人類の地上での目的と使命は、二億年前も現代も変らない。
인류의 지상에서의 목적과 사명은, 2억년 전이나 현재나 변하지 않는다.
それは神の意志である調和という仏国土を建設するために人類は存在し、人々の魂はそうした建設を通して、永遠の進化をめざすものであったのである。
그것은 신의 의지인 조화라고 하는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 인류는 존재하고, 사람들의 영혼은 그러한 건설을 통해서, 영원한 진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②台風について
②태풍에 대해서
(高橋信次先生ご著書 心の原点99頁から抜粋)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마음의 원점 99항에서 발췌)
調和とは、神の心であり、慈悲と愛の現われの姿である。
조화란, 신의 마음이며, 자비와 사랑의 표현의 모습이다.
大自然は、そうした大調和の姿を示している。
대자연은, 그러한 대조화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もし、太陽が西から昇り、昼夜が逆になったらどうであろうか。
만약, 태양이 서쪽에서 떠오르고, 남과 밤이 거꾸러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일까?
もし、太陽の熱エネルギーが、強くなったらどうなるであろうか。
만약, 태양의 열 에너지가, 강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 것일까?
南北極の氷はとけて、陸地は水びたしになるだろう。想像もできないような、天変地異に見舞われることであろう。
남북극의 얼음은 녹고, 육지는 물바다가 될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듯한, 천재지변의 재난을 당할 것이다.
そしてもし、太陽がなくなったら?
그리고 만약, 태양이 없어지면?
想像するだけで、心寒くなる破滅の事態が生じるのである。
상상하는 것 만으로, 허전하게 되는 파멸의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
また地球が運動を停止すれば、どうなるか。宇宙空間のどこかに飛んで行ってしまうだろう。
또 지구가 운동을 정지하면, 어떻게 될까? 우주공간의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地上の生活は一日として保てなくなり、この世の終わりである。
지상의 생활은 하루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이 세상은 끝이다.
人間を始めとして、この地上界の一切の生物は、そうした大宇宙の狂いのない大調和によって、存在することができているのである。
인간을 시작으로 해서, 이 지상계의 일체의 생물은, 그러한 대우주가 고장이 없는 대조화에 의해서,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それなのに、人間は、雨が降りすぎると怒り、風が吹いたといっては天を恨み、ひでりだといっては天に縋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화를 내고, 바람이 불었다고 하면 하늘을 원망하고, 가뭄이다라고 하면 하늘에 애원한다[매달린다].
台風も、地上の汚物を洗い流し、空気を美しくする自然の恵みなのである。
태풍도, 지상의 오염을 씻어내고, 공기를 정화하는 자연의 은혜인 것이다.
私達は、そうした大宇宙の摂理に対し、与えられた環境に対し、感謝し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우리들은, 그러한 대우주의 섭리에 대해서,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何一つ、人間にできることはないのだし、台風や雨や風も、大宇宙の調和だと思えば、怒りや恨みや呪いの心は出ないはずである。
무엇 하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고, 태풍이나 비나 바람도, 대우주의 조화라고 생각하면, 분노나 원망이나 저주의 마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太陽の光や熱、地球上の水の輪廻、大地の転生、それらのすべてが動物や植物を育て、明日の生命、明日の生活を約束してくれているものと知れば、大自然のこのはからいに対して不満の出る余地はないのだ。
태양의 빛과 열, 지구상의 물의 윤회, 대지의 타생, 그러한 모든 것이 동물이나 식물을 키우고, 내일의 생명, 내일의 생활을 약속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알면, 대자연의 이 조처[배려]에 대해서 불만이 나올 여지는 없는 것이다.
人はまず、天に感謝し、他の環境についても感謝の心を持つべきである。
사람은 우선, 하늘에 감사하고, 다른 환경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될 것이다.
今、自分はここにいる、というたしかな存在感。
지금, 자신은 여기에 있다, 라고 하는 것에 대한 존재감.
この現象界に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は、誰の責任でもなく、自分自身が求めてきたその結果として、在るのである。
이 현상계에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청해서 온 그 결과로서, 있는 것이다.
③眼について
③눈에 대해서
(高橋信次先生ご著書 心の発見・科学篇140頁から抜粋)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마음의 발견・과학편 140항에서 발췌)
私達は、物質を見ることはできてもエネルギーを見ることはできない。そのように、大宇宙体の一部分は見ることができても宇宙体の意識を見ることはできない。また自分の肉体を見ることはできても、肉体を支配している意識を見ることは心の調和されている人々以外不可能である。
우리들은, 물질을 볼 수가 있어도 에너지를 볼 수는 없다. 그와 같이, 대우주체의 일부분은 볼 수가 있어도 우주체의 의식을 볼 수는 없다. 또한 자신의 육체를 볼 수는 있어도,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을 보는 것은 마음의 조화되어 있는 사람들 의외에는 불가능하다.
私達の眼で見ることのできる世界は、せいぜい七彩の虹の両極端である赤色と紫色の範囲だけだ。
0.00007から、0.00004センチの範囲の色を見ることができても、赤外線も紫外線も見ることはできない。もちろん、x線、γ線、極超短波、短波、長波も目視することは不可能だ。しかし、見えないから存在しないということは別の意味でできない。
우리들의 눈으로 보는 것이 가능한 세계는, 가능한 한 일곱 가지 빛깔의 무지개의 양극단인 붉은빛과 보랏빛의 범위뿐이다.
0.00007에서, 0.00004 센티의 범위의 색깔을 볼 수가 있어도, 적외선이나 자외선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x線(엑스선)、γ線(감마선), 극초단파, 단파, 장파도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의미로 할 수 없다.
このように肉眼で見ることのできるものはほんの一部分である。意識の世界は、次元の異なっている世界の存在であるから、神理を悟っている人々の、調和された想念と行為の心の眼でしかそこを見ることはできない。つまりほとんどの人々には不可能だということだ。
이와 같이 육안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은 참으로 일부분이다. 의식의 세계는, 차원의 달라져 있는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신리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의, 조화된 상념과 행위의 마음의 눈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しかし、だとしても意識の世界、あの世の存在を、誰も否定することは無理である。「見えないから信じない」といわれる人々の判断は、非科学的である。なぜなら、私達は物を考えたり、悩んだり想像したりする。そして、そのことにより、肉体も疲れる。そこには、見えないものの消費があるからである。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식의 세계, 저 세상의 존재를, 누구나 부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판단은, 비과학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사물을 생각하거나, 고민하거나 상상하거나 한다. 그리고, 그 일에 의해서, 육체도 피곤해진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것의 소비가 있기 때문이다.
また、疲労は肉体労働によっても起こる。それは、仕事をなし得る能力であるエネルギーを消費したからではないだろうか。
또, 피로는 육체노동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것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인 에너지를 소비했기 때문이 아닌 것일까요?
苦悩も想像も、すべては肉体の支配者である、意識の働きに他ならないのである。物理的に計れない意識の仕事によっても疲労する、ということは、その実在をここでも否定不可能にするということになろう。
고뇌도 상상도, 모든 것은 육체의 지배자인,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의식의 작용이다. 물리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의식의 일에 의해서도 피로하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실재를 여기에서도 부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다.
④水による意識の解説図について
④물에 의한 의식의 해설도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147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147항에서)
“色即是空″は、あの世とこの世との関係を説かれたものである。
“색즉시공″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これを現代流になおし、物理的な分野から探求すると、物質はエネルギー粒子の集中されたものであり、エネルギーと共存している不二一体のものといえる。
이것을 현대식으로 고치고, 물리적인 분야에서 탐구하면, 물질은 에너지 입자가 집중된 것이며, 에너지와 공존하고 있는 불이일체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多くの人々は“空″を「からっぽ」あるいは「ない」と説明する。また、あると思えばない、ないと思えばある、不可思議なものと教えている者もいて、無味無臭ともいっている。しかしこれは正しい神理ではない。なぜなら、そんな説明では意味が解せないからである。
많은 사람들은“공(空)″을 「텅 빔」혹은「없다」라고 설명한다. 또, 있다고 생각하면 없다, 없다고 생각하면 있다,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무미무취라고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신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설명으로는 의미를 풀 수 없기 때문이다.
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釈迦牟尼仏は“縁生″ということを説いている。“縁″によって現象が起こる、と説いている。「袖すり合うも他生の縁」ともいう。この“縁″が慈悲であり、愛でもあり、すべての仕組みの原因になっているのである。
고다마・싯타르다 석가모니불은, “연생(縁生)″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인연(縁)″에 의해서 현상이 일어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낯선 사람끼리 한 나무 그늘에 비를 피하고, 또 같은 냇물을 마시는 것도 다 전생의 인연에 의한 것임」라고도 한다. 이 “인연(縁)″이 자비이며, 사랑이라고도 하며, 모든 사물의 구조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今、水について考えてみる。
지금, 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この水Η2Οは、気体(蒸気)になったり、液体(水)から固体(氷)というように、三つの相に変化する。この変化は、温度の高低によって生じる熱粒子の伸縮度と、Η2Οの粒子の相互関係によって起きる現象である。
이 물 H2O는, 기체(수증기)가 되거나, 액체(물)에서 고체(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세 가지의 상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온도의 고저에 의해서 생기는 열 입자의 신축의 정도와, H2O의 입자의 상호관계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つまり、熱作用という“縁″によって、水は固体、液体、気体の三つに変化するというわけである。図式にしてみよう。
熱の仕事量 E=hυ
h=プランク常数 6.624×10-27
υ=振動数
즉, 열 작용이라고 하는“인연(縁)″에 의해서, 물은 고체, 액체, 기체의 세가지로 변화한다고 하는 것이다. 도식으로 나타내 봅시다.
열의 작업량 E=hυ
h=블랑크 상수 6.624×10-27
υ=진동수
熱エネルギーという“縁″によって、Η2Οのエネルギー粒子の集中度が三つの相にこうして変化することが理解できる。
열 에너지라고 하는 “인연(縁)″에 의해서, H2O의 에너지 입장의 집중도가 세 가지의 상으로 이렇게 해서 변화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気体は、Η2Οエネルギー粒子の相互間が、熱エネルギー粒子の膨張によって空間に分散される姿で、目で見ることはできない。目で見ることのできない“空″に離散している気体(蒸気)も、熱エネルギー粒子の縮み、すなわち温度の降下によって再び液体(水)や固体(氷)に変わる。
기체는, H2O 에너지 입자의 상호간이, 열에너지 입자의 팽창에 의해서 공간에 분산되는 모습이며,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공(空)″에 분산하고 있는 기체(수증기)도, 열 에너지 입자의 수축, 즉 온도의 하강에 의해서 다시 액체(물)이나 고체(얼음)로 변한다.
すなわち“空″の世界から“熱の縁″によって“色″つまり物質になる。また逆に、“色″すなわち物質から“空″にも変化する。
즉 “공(空)″의 세계에서 “열의 인연″에 의해서“색(色)″ 즉 물질이 된다. 또 반대로, “색(色)″ 즉 물질에서“공(空)″으로도 변화한다.
このように、色即是空、空即是色は、自然の法則であり、神理なのである。
이와 같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자연의 법칙이며, 신리인 것이다.
しかしたとえ、気体、液体、固体という三つの相に変化しても、水の本性Η2Οには変わりはない。このとき私達は、Η2Οは、「不生、不滅、不増、不減」の冷厳な事実を示している、そのことを悟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하지만 예를 들어, 기체, 액체, 고체라고 하는 세 가지의 상으로 변화하더라도, 물의 본성 H2O에는 변화는 없다. 이 때 우리들은, H2O는, 「불생. 불멸, 부증, 불감」의 냉엄한 사실을 나타나고 있는, 이 일은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⑤愛とは
⑤사랑이란
(心の原点301頁から)
(마음의 원점 301항에서)
ところで、人の世は能力の別、好みの別、体力の別、知識の別、節度の別、生まれた環境の別があり、喜怒哀楽にも、相違が出ているのはなぜだろうか。
그런데, 인간 세계는 능력의 차이, 기호의 차이, 체력의 차이, 지식의 차이, 절도의 차이, 태어난 환경의 차이가 있고, 희로애락에도, 상위가 나오고 있는 것은 왜인 것일까요?
働く者とその義務を怠る者、行動する者と傍観する者、学ぶ者と享楽に耽る者、今日に生きる者と明日を楽しむ者、健康な者と病弱な者、自分にきびしい者と人を責める者、愛情深い者と薄い者、和合を旨とする者と争いの種を蒔く者、謙虚な者と自分を高く見せようとする者、責任を果たす者と依頼心の強い者、足ることを知る者と欲深き者……。
일하는 사람과 그 의무를 게을리 하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과 방관하는 사람, 배우는 사람과 향락에 빠지는 사람, 오늘에 사는 사람과 내일을 즐기는 사람, 건강한 사람과 병약한 사람,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과 남을 나무라는[비난하는] 사람, 애정이 깊은 사람과 옅은 사람, 화합을 으뜸으로 하는 사람과 싸움의 씨앗을 심는 사람, 겸허한 사람과 자신을 높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 책임을 다하는 사람과 의뢰심의 강한 사람, 만족함을 하는 사람과 욕심이 깊은 사람……。
こうした相違が、平等であるべき人間に不平等を造り出している。
이러한 상위가, 평등해야 할 인간에게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しかし、神は、決して人間を不平等には扱ってはいない。
하지만, 신은, 결코 인간을 불평등하게는 취급하지는 않는다.
自らの心に思うことと行うことの調和度がその人をつくり、正しい者達の心には、光明が射し、安らぎに包まれるのである。
스스로의 마음에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의 조화도가 그 사람을 만들고, 올바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광명이 방출하고, 평안에 감싸이는 것이다.
ちょうど、青天の太陽の光が、万物万生の成育のエネルギーと変わるように、人間の心のエネルギーもさまざまのものを育てる。暗い心は、あたかもモヤシのように暗いむしろのなかで、光をさえぎって育つものを育てるのだ。
정확히, 푸른 하늘의 태양의 빛이, 만생만물의 성육의 에너지로 바뀌듯이, 인간의 마음의 에너지도 다양한 것을 기른다. 어두운 마음은, 마치 콩·밀 등 곡물을 그늘에서 발아시킨 식품과 같이 어두운 거적 속에서, 빛을 차단하고 자라는 것을 기르는 것이다.
それでも神は、平等に、慈愛の光をそそいでいる。
그래도 신은, 평등하게, 자애의 빛을 뿌리고 있다.
それを、受けるか受けないかは、その人の心と行いによるだろう。
그것을, 받을 수 있는지 받을 수 없는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행위에 의할 것이다.
愛とは、寛容である。
사랑이란, 관용이다.
包容力である。許すことである。
포용력이다. 용서하는 것이다.
もし、この地上に愛がなければ、人の世は、水のない砂漠を行く旅人のように、飢渇に泣き、他をかえりみるいとますらないであろう。
만약, 이 지상에 사랑이 없다면, 인간 세상은, 물의 없는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와 같이, 기갈로 울며, 남을 돌이켜볼 겨를 조차도 없을 것이다.
愛は助け合い、補い合い、かばい合い、許し合う、そのなかに生きている。
사랑은 서로 돕고, 서로 보충해 주고, 서로 감싸주고, 서로 용서하는, 그 속에 살고 있다.
愛は、神の光なのである。
사랑은, 신의 빛인 것이다.
地上の灯なのである。
지상의 등불인 것이다.
暗闇にさまよう人々の心にうるおいをもたらし、生き甲斐を与えてゆくものである。
암흑에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에 정감(情感)을 가져오고, 사는 보람을 제공해 가는 것이다.
愛とはまさに、灯台の灯ともいえよう。
사랑이란 바로, 등대의 등불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しかし、愛に溺れてはならない。
하지만,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愛は、峻厳だ。
사랑은, 준엄하다.
愛は、自分に打ち克つ者、向上を目ざす者に与えられるからだ。
사랑은,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暗闇の世界は、自らの進路さえ迷わせる。
암흑의 세계는, 스스로의 진로마저 길을 잃게 한다.
前途に何が立ちはだかっているか解らないし、いつ足を踏みはずすかも知れない。
앞길에 무엇이 가로막혀 있는지 알 수 없고, 무심코 발을 헛디딜지도 모른다.
焦燥感に襲われることだってあるだろう。
초조감에 엄습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この暗闇の世界を支配している、ならず者の群れ、脅迫、強盗、迫害、暴行、詐欺……などは、そのまま恐怖の世界であり、すべて満足することのない、欲望の尽きることのない苦しみの世界である。
이 암흑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불량배의 무리, 협박, 강도, 박해, 폭행, 사기……등은, 그대로 공포의 세계이며, 모조리 만족함이 없는, 욕망의 다하는 일의 없는 괴로움의 세계이다.
それは、光明を失った人々の、悪想念が造り出したものである。
그것은, 광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나쁜 상념이 만들어 낸 것이다.
闘争と破壊、暴力、武力がまかりとおる世界といえよう。
투쟁과 파괴, 폭력, 무력이 활개치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지요.
慈悲深く、愛をほどこせる者は、自ら安らぎの心をつくり、人々の心に光明を与え、悪魔を支配する正しい道、神の道を行く者だ。
자비심이 강하고[자비롭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평안의 마음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에 광명을 주고, 악마를 지배하는 올바른 길, 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悪魔に勝る道は、慈愛の心と行い以外にないであろう。
악마에게 이기는 길은, 자애의 마음과 행위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悪魔は、己の心のなかにもひそんでいる。
악마는, 자기의 마음 속에도 숨어 있다.
正道を悟って勇気と努力の実践に、偉大なる智慧が加わり、自らの欠点を修正したとき、心の悪魔は亡びるであろう。己に打ち克つことのできる者こそ、真の勇者といえるのである。
정도를 깨닫고 용기와 노력의 실천으로, 위대한 지혜가 더해져, 스스로의 결점을 수정했을 때, 마음의 악마는 없어질 것이다. 자기를 극복할 수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⑥心とは(一)
⑥마음이란 (첫 번째)
(心の発見・神理篇12頁から)
(마음의 발견・신리편 12항에서)
心とは、意識が肉体を支配し、その意志にもとづいて肉体舟は操作されるという事実を、誰も否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この意識の中心を“心″と呼ぶ。
마음이란, 의식이 육체를 지배하고, 그 의식에 바탕을 두고 육체배는 조작된다고 하는 사실을, 누구든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의식의 중심을 “마음″이라고 부른다.
物質エネルギーの次元よりさらに高い意識の次元に存在して、物質エネルギーの塊である大宇宙体の支配者、神仏の意識の世界に通じているのが、神仏の子である私達の“心″なのである。
물질 에너지의 차원보다 더욱 높은 의식의 차원에 존재하고, 물질 에너지의 덩어리인 대우주체의 지배자, 신불의 의식의 세계에 통하고 있는 것이, 신불의 자녀인 우리들의 “마음″인 것이다.
心は、想念意志の発信所である。この意志によって、物理的な肉体行為は現われる。
悲しいとき、嬉しいとき、胸にこみ上げてくるものこそ心の実体である。
마음은, 상념 의지의 발신소이다. 이 의지에 의해서, 물리적인 육체 행위는 나타난다.
슬퍼할 때, 기뻐할 때,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실체이다.
肉体的労働によって疲労する現象は、肉体エネルギーの消費によるものであるが、心的なエネルギーも精神的な苦悩によって消費され、肉体的な病的原因にまでつながって行く。
육체적 노동에 의해서 피로하는 현상, 육체 에너지의 소비에 의한 것이지만, 심적인 에너지도 정신적인 고뇌에 의해서 소비되어, 육체적인 병적 원인으로까지 연결되어 간다.
心的疲労はその苦悩を調和することによって回復するが、根本的解決がなされない限り、いつか苦しみは持病のように芽生えてくる。
심적 피로는 그 고뇌를 조화하는 것에 의해서 회복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언젠가 괴로움은 지병과 같이 싹트게 된다.
そうした苦しみの原因は、大宇宙の支配者である神仏の意志に反することから人間自身が作り出して行くものなのである。
그러한 괴로움의 원인은, 대우주의 지배자인 신불의 의지에 반하는 것에서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내어 가는 것인 것이다.
神仏の意志こそ神理であり、人間の心の中には、誰も過去世で学んだ記憶が記録されている。それは自分自身に対して絶対に嘘をつけない事実である。他人に嘘をいうのは、自己保存、自我我欲を通す場合のみであるのだ。
신불의 의지야말로 신리이며,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과거세에서 배운 기억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기보존, 자아아욕[자기 욕심]대로 하는 경우뿐인 것이다.
私達の心には、常に善と悪が同居しており、利己的な己の中の悪に打ち克つ生活が、私達の人生における修行の一つといえるのである。
우리들의 마음에는, 항상 선과 악이 동거하고 있고, 이기적인 자기 안의 악을 극복하는 생활이,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수행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私達の心は、本能、感情、智性、理性という区域に分かれ、その想念によって意志という働きの区域に連絡されている。またその内部には、次元の異なっているあの世とこの現象界を転生輪廻し続けてきた、過去の想念、本能、感情、智性、理性、意志の先天的善悪の業もまた受けつがれて在る。さらに、この現象界で作り出した、己の後天的業も自身の心の姿として同居しているのである。
우리들의 마음은, 본능, 감정, 지성, 이성이라고 하는 구역으로 나누어지고, 그 상념에 의해서 의지라고 하는 작용의 구역에 연결되어 있다. 또 그 내부에는, 차원의 달라져 있는 저 세상과 이 현상계를 전생윤회하고 계속해 왔다. 과거의 상념, 본능, 감정, 지성, 이성, 의지의 선천적 선악의 업도 또한 잇따라 받고 존재한다. 더욱더, 이 현상에서 만들어 내었다. 자기의 후천적 업도 자신의 마음의 모습으로서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この“心″が、神理に適した生活をすることによって、自分自身の平和な安らぎにつながって行く。球体のように、そうした心の中の区域が調和された状態の人を、円満な人格者といい、そうした人の意志は常に柔軟である。
이 “마음″이, 신리에 들어맞는 생활을 하는 것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평화로운 평안으로 이어져 간다. 구체[구형의 물체]의 같이, 그러한 마음속의 구역이 조화된 상태의 사람을, 원만한 인격자라고 말한다, 그러한 사람의 의지는 항상 유연하다.
心はだから無限大に広い人もいるし、特定の思想などによって自ら心の枠を作っている、小さな心の人もいる。物質経済の奴隷と化してしまっている心の持ち主もいれば、逆に足ることを悟って、物質文明を支配している心の人もいる。
마음은 그러니까 무한대로 넓은 사람도 있고, 특정한 사상 등에 의해서 스스로 마음의 틀을 만들고 있다. 작은 마음의 사람도 있다. 물질경제의 노예로 화해 버리고 있는 마음의 소유자도 있다면, 반대로 만족함을 깨닫고, 물질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마음의 사람도 있다.
キリスト教の神理も、釈迦の神理も、永い歴史の経過の中で、過去の弟子達や学者、現在の関係者の智性、感情、意志など、誤った“心″によって歪曲され、宗派の乱立を見るような結果になっているという現象も従って出てくるのである。
그리스도교의 신리도, 석가의 신리도, 영원한 역사의 과정 속에서, 과거의 제자들이나 학자, 현재의 관계자의 지성, 감정, 의지 등, 그릇된“마음″에 의해서 왜곡되어, 종파의 난립를 보이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있다고 하는 현상도 따라서 나오는 것이다.
神理を失ってしまった宗教は、もはや人の心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
신리를 잃어버린 종교는,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구원할 수는 없다.
神理は一つであり、今も昔も変わることがないことを悟るべきである。
신리는 하나이며,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この現象界は、肉体舟に乗っての修行場であるため、善と悪とが混り合っているが、次元の異なった意識の世界は、善と悪の区域が分離していて、個々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段階が定まっている。そうしたきびしい場へ、私達の心は、現世における調和度がそのまま通じてしまうのである。すなわち、人生航路の苦楽は、私達の心が作り出しているもの、と悟らなくてはならない理由がここにあるのだ。
이 현상계는, 육체배를 타고 있는 수행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지만, 차원의 다른 의식의 세계는, 선과 악의 구역이 분리하고 있고, 개개의 마음의 조화의 정도에 의해서 단계가 정해져 있다. 그러한 엄격한 장소로, 우리들의 마음은, 현세에 있어서 조화의 정도가 그대로 통해 버리는 것이다. 즉, 인생항로의 고락은, 우리들의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 이라고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本能がむき出しになれば、感情と作用して、理性と智性で歪んでしまう。
본능을 드러내게 되면, 감정과 작용해서, 이성과 지성으로 비뚤어져 버린다.
感情だけが強すぎても心の調和はくずれる。
감정만이 너무 강해도 마음의 조화는 무너진다.
自己保存の感情や、うぬぼれの高い智性、自己保存の本能は心の曇りを作り、神仏の安らぎの光を受け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理性の作用による、反省という想念と行為が、心の曇りをとり去るであろう。心の調和を計ることのできるものこそ、イエス・キリストの教えに適う者であり、釈迦の八正道すなわち中道の精神に通じる者なのだ。
자기보존의 감정이나, 자만심의 높은 지성, 자기보존의 본능은 마음의 구름을 만들고, 신불의 평안의 빛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성의 작용에 의한, 반성을 하는 상념과 행위가, 마음의 구름을 제거할 것이다. 마음의 조화를 도모할 수가 있는 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들어맞는 사람이며, 석가의 팔정도 즉 중도의 정신에 통하는 사람인 것이다.
万物に対する感謝の念、それが報恩という行為によって実現されたときに、人類同士の心からの調和が成り立つ、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
만물에 대한 감사의 생각, 그것이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에 의해서 실현되었을 때에, 인류동지가 진심인 조화가 성립된다, 라고 하는 것이다.
⑦心とは(二)
⑦마음이란(그 두번 째)
(心の発見・科学篇40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40항에서)
私達の心は、また例をとれば、丁度電子が核の廻りを飛んでいるように、惑星が太陽を中心に自転公転しているように、すべて中心があって、この中心と外部が調和されている。前にも述べたように、私達の意識の中心が心で、体全体が意識(魂)であり心はそのすべての中心である。
우리들의 마음은, 또한 예를 들면, 정확히 전자가 핵의 주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혹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공전하고 있는 것처럼, 모두 중심이 있고, 이 중심과 외부가 조화되고 있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우리들의 의식의 중심이 마음이며, 몸 전체가 의식(영혼)이며 마음은 그 모든 것의 중심이다.
心は、丁度柔軟な渦状球のような感じで、感情、理性、本能、智性というものから構成されており、心の中心は無限大の宇宙生命に通じているとともに、私達の意識に無限の想念を作動している。
마음은, 정확히 유연한 소용돌이와 같은 모양의 구체와 같은 느낌이며, 감정, 이성, 본능, 지성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구성되어 있고, 마음의 중심은 무한대의 우주생명에 통하고 있음과 동시에, 우리들의 의식에 무한의 상념을 작용하고 있다.
人生の航路における諸現象に対して、判断する理性、喜怒哀楽を表現する感情、神仏より与えられている本能、人生経験と智性、これらが互いに調和を保ちながら私達の人格を形成している。
인생의 항로에 있어서 모든 현상에 대해서, 판단하는 이성,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감정, 신불에게서 주어지고 있는 본능, 인생경험과 지성, 이들이 서로 조화를 유지하면서 우리들의 인격을 형성하고 있다.
だが、調和されているはずの心の中から、感情だけが表面に出てふくらんだなら、情緒不安定、自己保存的となり、心の安らぎが得られない。相手から欠点を指摘されたりすると、すぐ頭にくる人々が多い。“自尊心を傷つけられた″といって感情的になり、忠告者の欠点を逆に探して自分を正当化しようとする。
하지만, 조화되어 있어야 할 마음속에서, 감정만이 표면에 불거져 나오면, 정서불안정, 자기보존적이 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상대로부터 결점을 지적당하거나 하면, 금방 화가 나는[흥분하는] 사람이 많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라고 말하며 감정적이 되어, 충고하는 사람의 결점을 반대로 찾아내어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このような人々は、自己保存の強い性格で、不調和な感情的な言動によって、相手の心に傷をつけてしまう。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보존이 강한 성격이며, 부조화한 감정적인 언동에 의해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 버린다.
しかし、自ら造った不調和な言葉や行為は、自分自身に帰ってくることを悟らねばならない。なぜなら、慈悲と愛によって忠告した心の美しい人に対して、自己保存のため不調和な感情的な想念行為をすれば、相手の心は神仏の光によって覆われているから逆反射され、かえって自分の心に強い作用を起こし、さらに不調和な暗い想念に覆われるからである。“人を呪わば穴二つ″である。
하지만, 스스로 만든 부조화한 말이나 행위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비와 사랑에 의해서 충고한 마음의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서, 자기보존을 위해 부조화한 감정적인 상념행위를 하면, 상대의 마음은 신불의 빛에 의해서 감싸여 있기 때문에 역 반사되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와서 자신의 마음에 강하게 작용을 일으키고, 더욱더 부조화한 어두운 상념에 뒤덮이기 때문이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둘[남을 해치면 나도 그 응보를 받음]″이다.
⑧一般の宗教指導者について
⑧일반의 종교지도자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87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87항에서)
私達の意識(魂)は、次元の異なる意識の世界から修行に出ているもので、この現象界においては、そこに存続している肉体舟に乗らなければ、人生での使命と目的を果たすことができない仕組みになっている。
우리들의 의식(영혼)은, 차원의 다른 의식의 세계에서 수행하려 나오고 있는 것이며, 이 현상계에 있어서는, 거기에 존속하고 있는 육체배를 타지 않으면, 인생에서의 사명과 목적을 완수할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神体の一部であるこの地球上に、人類の心と心の調和を計り、万象万物に、平等の慈悲と愛が与えられる。闘争と破壊のない社会を築く使命と、過去世において造り出してきた自分の業を修正して、より高次元の世界へ進化する目的をもって、自分を磨くために生まれてきたのが私達なのである。
신의 몸의 일부인 이 지구상에, 인류의 마음과 마음의 조화를 꾀하고, 만상만물에, 평등한 자비와 사랑이 주어지고 있다. 투쟁과 파괴가 없는 사회를 구축하는 사명과, 과거세에서 만들어 내어 온 자신의 업을 수정하고, 보다 고차원의 세계로 진화하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서 태어나온 것이 우리들인 것이다.
従来の宗教指導者の多くは、眼に見える肉体的現象に、信仰の対象を求めてきた。その結果、肉体先祖がすべてのように考え、魂までも肉体先祖から戴いたものであるかのような錯覚を犯してきた。そのため信仰は、先祖に対して立派な戒名を上げ、立派な墓地に埋葬し、経文を供養すれば、成仏がなされるというように変化してしまい、そうした行為によって子孫も救われると思う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
종래의 종교 지도자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육체적 현상에, 신앙의 대상을 요구해 왔다. 그 결과, 육체 선조가 무든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영혼까지도 육체 선조로부터 물러 받은 것인 것처럼 착각을 범해 왔다. 그 때문에 신앙은, 선조에 대해서 훌륭한 계명을 붙이고, 훌륭한 묘지에 매장하고, 경문을 공양하면, 성불을 하신다고 하는 듯이 변화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행위에 의해서 자손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つまり葬式仏教、儀式による先祖供養に陥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一宗一派の教祖と称するような人々もそんなふうに教え、その教義をまた信仰している信者の何と多いことか。
즉 장례식 불교, 의식에 의한 선조공양에 빠졌다고 하는 점이다. 일종 일파의 교조라 칭하는 것과 같은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그 교의를 또한 신앙하고 있는 신자가 얼마나 많은 것일까?
⑨宗教的行事の誤りについて
⑨종교적 행사의 잘못됨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49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49항에서)
形式的な空念仏で人間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正法に従って、日々の生活の中で心を中心とした実生活の努力をする、これ以外にないことを私達は悟らなくてはならない。
형식적인 공염불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법에 따라서,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마음을 중심으로 한 실생활의 노력을 한다. 그것 이외에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この記述に不信があるならば、祈るだけで、“棚からぼた餅″は落ちてこないということを考えねばなるまい。神理的生活以外に、人間本来の目的は果たせないからである。
이 기술에 불신이 있다면, 기도만으로, “선반 위에 떨어진 떡″은 떨어져 오지 않는다고 하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신리적 생활 이외에, 인간 본래의 목적은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永い歴史的な宗教的行事が、必ずしも神理ではない。この世を去った人々に経文を供養して、本当に成仏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のかどうか。形式的な行事についても、良く反省すべきであろう。
영원한 역사적인 종교적 행위가, 반드시 신리가 아니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경문을 공양하고, 정말로 성불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어떨까? 형식적인 행사에 대해서도, 잘 반성해야 할 것이다.
経文を上げる祈りのみが信仰ではない。心を失った勤行などは生活から遠ざけることによって、安らぎを得ることができるのだ。
경문을 올리는 기도만이 신앙이 아니다. 마음을 잃어버린 근행[불전에서의 독경(讀經)이나 회향(回向) 등을 하는 일] 등은 생활에서 멀리하는 것에 의해서,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神理に適った人生を送った人々は、この世を去っても光の世界に住み、不調和な心を持って常に不安のある人々は、地獄界で自分の本性を悟るまで暗い生活を体験することになっている。
신리에 들어맞는 인생을 보낸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도 빛의 세계에 거주하고, 부조화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불안한 사람들은, 지옥계에서 자신의 본성을 깨달을 때까지 어두운 생활을 체험하게 되어 있다.
⑩人間らしい生活について
⑩인간다운 생활에 대해서
(心の発見・神理篇151頁から)
(마음의 발견・신리편 151항에서)
欲望を満たすための信仰は、祈れば祈るほど心が不調和となり、不幸な人生を送るようになることを知らねばならない。
욕망을 가득 채우기 위한 신앙은, 기도하면 기도할 수록 마음이 부조화하게 되어, 불행한 인생을 보내게 되는 점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祀った当時は一心に祈り、祈る心で仕事にも精を出すから、商売は繁盛、金もできる。しかし金と暇ができると、祀ったものには無関心になり、形式的なお勤め信仰になって行く。繁盛したことへの感謝の心も忘れてしまう。
제사 지낼 당시는[신으로 받들어 모실 당시는]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에도 열심히 힘쓰기 때문에, 장사는 번영하고, 돈도 번다. 하지만 돈과 여가가 생기면, 제사 지내는 것에는[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에는] 무관심하게 되어, 형식적인 근행 신앙이 되어 간다. 번영하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어버리고 만다.
浪費をはじめる。欲望の満足ばかりを考える。いつかそうした心の魔に克てなくなり、心は暗い想念に覆われ、安らぎもなくなり、家庭生活を破壊し、動物霊に支配されて没落への一途をたどるようになる。不幸を自ら選んで行くのである。
낭비를 시작한다. 욕망의 만족만을 생각한다. 언젠가 그러한 마음의 악마에게 지게 되어, 마음은 어두운 상념에 뒤덮이고, 평안도 없어지고, 가정생활을 파괴하고, 동물의 혼령에게 지배되어 몰락으로의 일로를 걷게 된다. 행복을 스스로 선택해 가는 것이다.
「さわらぬ神に崇りなし」という諺は、神理である。
「건드리지[상관하지] 않으면 화를 입지 않는다」라고 하는 속담은, 신리이다.
神仏にさわらず、頼らず、神理に即した生活を、自らの努力によって築き上げることが、神仏の心に通じることなのだ。
신불을 건드리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신리에 가까운 생활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구축해 가는 것이, 신불의 마음에 통하는 것인 것이다.
人間らしい生活への最善の努力こそ、私達の心に平和な安らぎを与え、神仏の慈悲が約束されることである。
인간다운 생활로의 최선의 노력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음에 평화로운 평안을 주고, 신불의 자비가 약속되는 것이다.
⑪正しい祈りとは
⑪올바른 기도란
(心の発見・神理篇222頁から)
(마음의 발견・신리편 222항에서)
では、祈る対象物は何であるか。それは己の心の中の守護、指導霊、魂の兄弟、肉体先祖、両親、つまりは自分が生存できる万象万物、環境であり、感謝の心である。その己の心と神仏の心との中に安らぎの人生が見いだせる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祈る心とは神仏の心と自分の心の対話であり、神仏に対する感謝の心であるのだ。
그럼, 기도하는 대상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의 마음속의 수호, 지도령, 영혼의 형제, 육체선조, 양친, 결국은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만상만물, 환경이며, 감사의 마음이다. 그 자기의 마음과 신불의 마음 속에 편안한 인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이란 신불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의 대화이며, 신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인 것이다.
形式的な参詣ではなく、自分の心を偽らずに生活している者は神仏の光によって覆われる。だから不調和なものに憑依されることはなくなるのである。
형식적인 참예(参詣) 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신불의 빛에 의해서 덮인다. 그래서 부조화한 것에 빙의(憑依)되는 일은 없어지는 것이다.
虚偽の生活、体力の限界を越えた生活をしていると不調和な霊に憑依されて、原因不明と称する不調和な現象に見舞われることが多い。しかし、自己反省によって己の中の原因を追及すれば、不明な原因を発見することはできるのである。
허위의 생활, 체력의 한계를 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부조화한 혼령(霊)에게 빙의(憑依)되어, 원인불명이라고 칭하는 부조화한 현상을 당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자기반성에 의해서 자기 안의 원인을 추급하면, 불명한 원인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不調和な想像や恐怖心は捨てなければいけない。なぜなら、恐怖心は、想念が作り出して現象化する能力によるからである。たとえば怨霊の主人公を演じても、演技者の心が調和されていれば、守護霊や指導霊に保護されているため怨霊に意識を支配されることは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부조화한 상상이나 공포심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공포심은, 상념이 만들어 내어 현상화하는 능력에 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혼령의 주인공을 연기하더라도, 연기자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으면, 수호령이나 지도령에게 보호되어 있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혼령에게 의식을 지배당하는 일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心の眼を持たない人々が、ただ祀ってあるものを祈るということは、そういう意味で危険なことといえる。祀られてあるものにしても、動物霊に支配されて祀られてあるものの名を騙って出てくる場合がある。
마음의 눈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단지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을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는 것이라 해도, 동물의 혼령에게 지배되어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는 것의 이름을 속여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私達の多くは人間以下の動物霊に手を合わせて祈っている人々が多い。この事実を知ったならば、むやみに不自然なものを拝むべきではないといえる。人間の形成した偶像ではなく、永久不滅の己の魂なる心の世界を信じることである。慈悲深い心の世界の神仏こそ、私達の父であり母なのである。
우리들 대부분은 인간 이외의 동물의 혼령에게 합장을 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함부로 부자연스런 것을 합장 배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형성한 우상이 아니라, 영구불멸의 자기의 영혼(魂)인 마음의 세계를 믿는 것이다. 자비로운[자비심이 강한] 마음의 세계의 신불이야말로, 우리들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인 것이다.
⑫欠点の修正方法について
⑫결점의 수정 방법에 대해서
(心の発見・現証篇267頁から抜粋)
(마음의 발견・현증편 267항에서 발췌)
苦しみの原因は、人間自ら造り出しているのだ。
괴로움의 원인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その苦しみの原因である心の曇りを払わないで、なぜ神の慈愛の光りを受けられるだろうか。
그 괴로움의 원인인 마음의 구름을 떨어 없애지 않고, 어떻게 신의 자비의 빛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私達は目覚めなくてはならない。
우리들은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
自らの欠点は、正しい中道の心の物差しを、自らの心のなかにしっかりと刻み込んだとき、はっきりと悟れるだろう。
스스로의 결점은, 올바른 중도의 마음의 척도를, 스스로의 마음속에 깊이 단단히 아로새겼을 때,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丸い豊かな広い心に、歪みを造ったのも、狭い心を造ったのも、他の人ではない。自分自身であるということが解かったなら、欠点に対して、きびしく修正することが大事なのである。
둥글고 풍요로운 넓은 마음에, 비뚤어짐을 만든 것도, 좁은 마음을 만든 것도, 타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한다면, 결점에 대해서, 엄격하게 수정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極端な考えや行いは、必ず苦しみを造り出すものだ。
극단적인 사고나 행위는, 반드시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人間が思うことも、行うことも、同じ結果が現われてくるものであるから、しっかりと自分自身をみつめ、間違いを犯さないように努力すること、それがきびしい修行なのである。
인간이 생각하는 것도, 행하는 것도, 똑같은 결과가 드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단단히 자기 자신을 주시하고,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엄격한 수행인 것이다.
そして、間違いを犯してしまったなら、なぜ犯したのかを良く反省してみることである。
그리고, 잘못을 범해 버렸다면, 왜 범한 것인지를 잘 반성해 보는 일이다.
その結果は、ほとんどが、自己保存、自我我欲に帰するものだ。
그 결과는, 대부분이, 자기보존, 자아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ある者達が極端な考えや行為に走っている、誤っていることを知っても、人前だと、正しい中道の判断をしても心のなかに秘めて自分の立場を守ろうとする。このような人々も自己保存だ。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인 사고나 행위에 달리고 있다. 잘못하고 있는 것을 알아도, 남이 앞이다 라고, 올바른 중도의 판단을 하더라도 마음속에 숨기며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도 자기보존이다.
最近では、一部の、極端な思想的な集団によって、大衆がリードされて闘争や破壊活動をしている。
최근에는, 일부의, 극단적인 사상적인 집단에 의해서, 대중이 선도(先導)되어 투쟁이나 파괴 활동을 하고 있다.
このような場合でも、正しい中道の物差しで判断したなら、彼らの間違いを堂々と批判して、彼らの煽動に乗らないことだ。
이러한 경우에도, 올바른 중도의 마음의 척도로서 판단하면, 그들의 잘못을 당당히 비판하고, 그들의 선동에 편승하지 않을 것이다.
極端な思想家達は、必ず同志間の相互信頼ができないものだ。
극단적인 사상가들은, 반드시 동지간의 상호 신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彼らは、表面だけは同志、と自称する。しかし実は、内なる敵によって自らを亡ぼしてしまうものである。
그들은, 표면만은 동지, 라고 자칭한다. 하지만 실은, 마음 속에 있는 적에 의해서 스스로를 망하게 해 버리는 것이다.
中道には、闘争も破壊もない。
중도에는, 투쟁도 파괴도 없다.
だが、極端な思想家達は、感情的な心の歪みを造り、自我我欲に走る。調和など望めないものだ。
하지만, 극단적인 사상가들은, 감정적인 마음의 비뚤어짐을 만들고, 자아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에 질주한다. 조화 따위는 바라지 않는 것이다.
このような人々とは、感情をまじえないで正しく語ること、正しく聞く、正しく見ることがもっとも大切だといえよう。
이러한 사람들은,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올바르게 말하는 것, 올바르게 듣는 것, 올바르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感情が大きくふくらみ、歪みができれば、理性を失う。従って、正しい判断はもはや不可能である。
감정이 크게 부풀고, 비뚤어짐을 만들면, 이성을 잃는다. 따라서, 올바른 판단은 이제는 불가능하다.
このような人々は、必ず相手を誹謗し、怒りを爆発させて、自ら心のなかに苦しみを造り出して行く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
이러한 사람들은, 반드시 상대를 비방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며, 스스로 마음 속에 괴로움을 만들어 내어 간다고 하는 점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彼らは、一時悪の華を咲かせても、自ら蒔いた種の不調和な実は刈りとらなくてはならない結果になるということだ。
그들은, 한 때 악의 꽃을 피게 하더라도, 스스로 뿌린 씨앗의 부조화한 열매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결과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心ある人々からの信頼を失って、やがて哀れな人間になってしまうだろう。
양심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이윽고 애처러운 인간이 되어 버릴 것이다.
それゆえに、自らの欠点を素直に発見し、それを認め、誰はばかることなく、修正できる人々こそ真の勇者といえるだろう。
그러므로, 스스로의 결점을 솔직하게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남이 약점을 지적하는 일 없이,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Ⅱ 地球的次元から
Ⅱ 지구적 차원에서
①思想とは(一)
①사상이란 (그 첫 번째)
(心の原点175頁から)
(마음의 원점 175항에서)
現代社会の思想を大別すると、資本主義と社会主義に分かれてくるといえよう。
현대사회의 사상을 크게 나누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누게 된다고 할 수 있지요.
しかし、いずれの主義も、心を失っている。
하지만, 어느 쪽의 주의도,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다.
それは、思想の根本が、物質経済になっているからである。
그것은, 사상의 근본이, 물질 경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人類は自ら造り出した物質文明によって、より豊かな環境を造り出そうとした。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 낸 물질 문명에 의해서, 보다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ところが結果は、偉大な心の尊厳を忘れ去り、形式的宗教に心のよりどころを求めたため、生活のなかに習慣のなかにそれが根を下ろしてしまった。
그런데 결과는, 위대한 마음의 존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형식적 종교에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기 때문에, 생활 속에 습성 속에 그것이 뿌리를 내려 버리고 말았다.
それは、自力を忘れて、他力本願の自己陶酔に陥った結果といえ、それが人々の心を支配したからである。
그것은, 자력을 잊어버리고, 타력 본원의 자기도취에 빠진 결과라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財産や経済力が幸福を得るためのもの、という人生観に変わってしまったとき、人間は、自らの心の偉大さを置き忘れてしまったといえるのだ。
재산이나 경제력이 행복을 얻기 위한 것, 이라고 하는 인생관으로 바뀌어 버렸을 때, 인간은, 스스로의 마음의 위대함을 어디에 두었는지 둔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そして、自ら、足ることを忘れ、欲望の海に押し流され、身も心も泥沼 のなかであえいで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그리고, 스스로, 만족함을 잊어버리고, 욕망의 바다에 휩쓸리고, 몸도 마음도 수렁 속에 빠져서 허덕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それは、人類が、自ら造り出した“業″である。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낸 “업(業)″이다.
この地球は、ムー大陸、アトランティス大陸の陥没など、幾度かの天変地異を体験してきた。人間は、肉体を持って生まれてしまうと、この世だけだと思い込み、自我我欲の一生を送ってしまう。天変地異は、そうした人類に対する、その時代時代の人々への神の警告であったのである。
이 지구는, 뮤 대륙, 아틀란티스 대륙의 함몰 등, 몇 번인가의 천재지변을 체험해 왔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 버리면, 이 세상뿐이다 라고 굳게 믿고, 자아 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의 일생을 보내 버린다. 천재지변은, 그러한 인류에 대한, 그 시대 시대의 사람들을 향한 신의 경고였던 것이다.
②思想とは(二)
②사상이란(그 두번 째)
(人間釈迦②159頁から抜粋)
(인간석가② 159항에서 발췌)
思想、宗教、政治というものには、人はとかく、心をゆさぶられ、自分を失う。
사상, 종교, 정치라고 하는 것에는, 사람은 어쨌든, 마음을 흔들리어, 자신을 잃어버린다.
思想は心を毒し、宗教は偏狭者をつくり、政治に熱中すると目的と手段が不明になり、人びとを不幸にしてしまう。
사상은 마음을 해치고, 종교는 편협한 사람을 만들고, 정치에 집중하면 목적과 수단이 불명하게 되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해 버린다.
ことに思想は、宗教、政治を動かすエネルギーとなり、これに心が奪われると正邪の区別すらつかなくなり、諸々の執着をつくり出すことになる。
특히 사상은, 종교, 정치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어,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옳고 그름의 구별조차 할 수 없게 되어, 여러 가지 많은 집착을 만들어 내게 된다.
思想というものは、一つの物の考え方を指すのであり、その考え方は因習、伝統、民族の体質、その時々の学問などが相互に組み合わされて生まれ、そうしてその時代を動かしてゆく。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한 가지의 사물의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러한 사고방식은 인습, 전통, 민족의 체질, 그때그때의 학문 등이 서로 조합되어 탄생하고, 그렇게 해서 그 시대를 움직여 간다.
このため人類の歴史は、いわば人類の思想史と言ってよく、思想史をみれば人類の歴史がどのように動いてきたかが判別出来よう。
그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말하자면 인류의 사상의 역사라고 말해도 좋고, 사상의 역사를 보면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판단할 수 있지요.
宗教や政治はこうした思想を土台として強く動き、その考え方が一致しないと、理想と現実が遊離してしまい、争いの原因をつくっていく。
종교나 정치는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해서 강하게 움직이고, 그러한 사고방식이 일치하지 않으면, 사상과 현실이 유리되어[동떨어져] 버린다. 싸움의 원인을 만들어 간다.
マホメットという人は右に剣を持ち、左手に平和を求めた。平和のための戦争があり得るかどうか。その考え方の根底にその時々の時代を背景とした人々の恣意が含まれるために、理想と現実に、ひらきが出てきてしまうのだ。
마호메트라고 하는 사람은 오른손에 검을 가지고, 원손에 평화를 요구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떨까? 그 사고방식의 밑바탕에 그때그때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자의[제멋대로 생각함]가 포함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에, 열린 정도·상태가 나와 버리는 것이다.
思想家、宗教家、信仰者が、えてして偏狭になるのも、ものの考え方に恣意が含まれ、神理から離れてしまうからだ。
사상가, 종교가, 신앙하는 사람이, 곧잘 편협하게 되는 것도, 사물의 사고방식에 자의[제멋대로 생각함]가 포함되어, 신리에서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正法は大自然が身をもって教える生活の在り方である。争いなどというものは露ほどもないのである。
정법은 대자연이 몸소 가르치고 있는 생활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이다. 싸움 따위라고 하는 것은 추호도[티끌만큼도] 없는 것이다.
信仰者がたがいに口論し、ついには暴力になるのは、信仰者それ自体に神理が身についていないからである。
신앙하는 사람이 서로 구론하고, 마침내는 폭력이 되는 것은, 신앙하는 사람 그 자체에 신리가 몸에 배어 있지 않기[완전히 제 것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Ⅲ 一国家の次元から
Ⅲ 한 국가의 차원에서
①国家の想念とは
①국가의 상념이란
(心の発見・科学篇26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26항에서)
自己保存、自我我欲が強い人々の集まりは、一つの国家の霊域も暗い想念で覆ってしまう。国の乱れは、国民一人一人の心の乱れによって起こる。指導者にその責任を転嫁するまえに、一人一人の国民の心が目覚めることが最も重要なことである。
자기보존, 자아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들의 모임은, 한 국가의 영역[영적 구역]도 어두운 상념으로 덮이어 버린다. 나라의 혼란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혼란에 의해서 일어난다. 지도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의 마음이 눈을 뜨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物質の奴隷から自分自身心を解放して、人生に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の中に、本当の平和、本当の人生があることを、私達は悟らなくてはならない。
물질의 노예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해방하고, 인생에 만족함을 안 생활 속에, 진정한 평화, 참된 인생이 있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心の尊厳を悟り、潜在意識のひもを解き、智の学問を心に吸収し、生活行為の中に生かして自分をより磨き、社会人類のための精神的、物質的、実践的活動をする中に本当の菩薩心は芽生えて行くのである。菩薩心には勇気がともなうものだ。
마음의 존엄을 깨닫고, 잠재의식의 끈을 풀고, 지혜의 학문을 마음에 흡수하고, 생활행위 가운데에 되살리어 자신을 보다 연마하고, 사회 인류를 위한 정신적, 물질적, 실천적 활동을 하는 중에 진정한 보살심은 싹터 갈 것이다. 보살심에는 용기가 동반하는 것이다.
潜在意識の無限大な宝庫は、自分自身の生活努力による自らの力と、守護、指導霊の力によって開かれて行く。心の王国の支配者は、自分自身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잠재의식의 무한대한 보고는, 자기 자신의 생활 노력에 의한 스스로의 힘과, 수호, 지도령의 힘에 의해서 열려 간다. 마음의 왕국의 지배자는, 자기 자신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しかし一部の知識階級を除いて、多くの学者と称する人々は、過去の古い文献や改造された智と意の産物を後生大事にして、自分自身の正しい心の中を見ようともしないで溺れている。
하지만 일부의 지식 계급을 제하고, 많은 학자라 일컫는 사람들은, 과거의 오래 된 문헌이나 개조된 지혜와 의지의 산물을 후생에 중요시하고, 자기 자신의 올바른 마음 속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열중하고 있다.
自然科学の分野においては、文献は役に立つが、宗教的な学問の多くは人々の智や意が優先されて、心を失う場合が多い。教祖の生年月日が違うとか、家柄がどうだったとか、くだらないことに頭を使っている。本当の心の在り方こそ必要であるのだ。こちらが本山の正統派であちらは分院などと、自分の宗派内での本家争いはもはや仏法でもなければ神理ともいえない。こうした形式主義は、すでに心を失っている末法の姿でしかない。
자연과학의 분야에 있어서는, 문헌은 도움이 되지만, 종교적인 학문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지혜나 의지가 우선시되어,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교조의 생년월일이 다르든가, 가문이 어떠했다든가, 쓸데없는 일에 두뇌를 쓰고 있다. 진실한 마음의 본연의 모습이야말로 필요한 것이다. 이쪽이 본산의 정통파이며 저쪽은 분원이라는 둥, 자신의 종파 내에서의 본가 싸움은 이제는 불교라도 신리라고도 할 수 없다. 이러한 형식주의는, 이미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는 말법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大切なのは形式ではなく、「心の在り方と行為」なのである。宗教が神理を忘れて、形式主義に堕し、生きている人々にその生命の目的と使命を説き明かすこともできなくなったことは、過去の遺物、化石になり終わった宗教というしかないことである。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본연의 모습과 행위」인 것이다. 종교가 신리를 잊어버리고, 형식주의에 빠지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 생명의 목적과 사명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도 없게 된 것은, 과거의 유물, 화석이 되어 끝나버린 종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その原因は、永い歴史の経過の中にある。正法がときの権力者によって変えられたり、政策の道具に化したりという歴史が、その改ざんを物語っている。もちろんそのことは、肉体を持って人生の修行をしている私達にも責任がある。自分の心の世界を探求しないで、物質欲にとり憑かれ、欲望のままに生きようとしている点を反省しなくてはならない。
그 원인은, 영원한 역사의 경과 속에 있다. 정법이 당시의 권력자에 의해서 바뀌게 되거나, 정책의 도구로 화하거나 하는 역사가, 그 개찬[공문서·증서 등의 글자·글귀를 고의로 고침]를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일은, 육체를 가지고 인생의 수행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자신의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지 않고, 물질욕에 사로잡혀, 욕망 대로 살려고 하고 있는 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②創価学会について
②창가학회에 대하여
(心の発見・神理篇32頁から)
(마음의 발견・신리편 32항에서)
多くの信者達は私の家にも折伏にきた。仏教哲学と称し、むずかしい哲学的用語を駆使してである。しかし私は、題目闘争の勤行、経文を曼陀羅という対象に向かって祈ることが信仰であるということに対して、神理の矛盾を持っていた。
대부분의 신자들은 저의 집에도 절복[상대편을 꺾어 자기에게 따르게 함]하려 왔다.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저는, 제목투쟁의 근행, 경문을 만다라라고 하는 대상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신리의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仏罰が当たると教育されている彼らは、常に恐怖と同居して生活している。そうした姿を見たとき、私は、人間とはいかに哀れで愚かしいものであるかを痛感した。何も信仰していない私達に心の不安がないのに、特定な者を信仰している人々が安らぎの生活をしていないのである。
지벌을 입는다[천벌이 내린다]라고 교육을 받고 있는 그들은, 항상 공포와 동거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인간이란 얼마나 애처롭고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통감했다. 아무것도 신앙하고 있지 않는 우리들에게 마음의 불안이 없는데, 특정한 사람을 신앙하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狂信的、戦闘的な信者の指導者の中には、家庭を破壊してまで曼陀羅信仰に生活を捧げている者がいる。釈迦の仏教は、もはや人間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と指導者達が教え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にじ爾時せそん世尊じゅう従さんまい三昧あんじょう安詳にき而起ごう告しゃり舎利ほつ弗」と経文を上げて勤行しているのである。
광신적, 전투적인 신자의 지도자 중에는, 가정을 파괴하면서까지 만다라 신앙에 생활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다. 석가의 불교는, 이제는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다, 라고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시세존(爾時世尊) 종삼매(從三昧) 안상이기(安詳而起) 고사리불(告舎利弗) [그 때 부처님께서 조용히 삼매에서 일어나시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시었다]」리고 경문을 올리며 근행하고 있는 것이다.
※ 「미시세존(爾時世尊) 종삼매(從三昧) 안상이기(安詳而起) 고사리불(告舎利弗) 」은 법화경(法華經) 제2 방편품(第2 方便品)에 나오는 말입니다.
世尊とは、誰のことか。日蓮のことであろうか。そうだとしたらなぜ“舎利仏″が出てくるのか。日蓮が経文の中にある世尊であるなら、せめてその弟子である六老僧の名前が出てきてしかるべきである。正しく世尊とは、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釈迦牟尼仏のことであり、その弟子シャリプトラーに対して仏法の神理を説いているその人、である。日蓮は仏弟子であって、世尊ではない。仏法伝道の使命を持って日本に生まれた“光の天使″である。
세존이란, 누구인 것일까? 니치렌(日蓮)인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왜 “사리불(舎利仏)″이 나오는 것일까? 니치렌(日蓮)이 경문 속에 있는 세존이라면, 하다못해 그 제자인 육노승의 이름이 나야야 마땅하다. 올바른 세존이란, 고다마 싯타르다. 석가모니불인 것이며, 그 제자 사리부트라에 대해서 불법(仏法)의 신리를 설명하고 있는 그 사람, 이다. 니치렌(日蓮)은 불자이며, 세존이 아니다. 불법(仏法)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일본에 태어난 “빛의 천사″이다.
智や意で学んだものは、仏法精神の悟りではない。
지혜나 의지로 배운 것은, 불법(仏法) 정신의 깨달음이 아니다.
それは神理でもあり得ない。まして、題目闘争とは仏弟子のとる行為ではなく、自己宗派保存のエゴイズム以外の何物でもない。仏性を忘却した狂信者としかいえないのである。
그것은 신리(神理)라고 해도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제목투쟁이란 불제자가 취할 행위가 아니라, 자기 종파 보존의 이기주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불성(仏性)을 망각한 광신자로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불성[仏性] 《일본어 사전》
①인정 많고 자비로운 성질. ②모든 중생이 가지고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
多くの信者の心は、阿修羅界に通じているため、心の安らぎなどないであろう。あるとしたならば、集団による自己陶酔以外ではない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悟りとは、そのようなものではないのだ。
대부분의 신자의 마음은, 아수라계(阿修羅界)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평안이라고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있다고 한다면, 집단에 의한 자기도취 이외에는 없는 것을 응당 그렇게 알아야 한다. 깨달음이란, 그러한 것이 아닌 것이다.
その結果、指導者は、自ら蒔いた種を自らがやがて刈りとらねばならないことを、思い知らされるであろう。
그 결과, 지도자는, 스스로 뿌린 씨앗을 스스로 이윽고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그랬었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釈迦の仏法は力を失い、天台の法華経も、現代社会では人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といいながら、彼らはその経文だけを拝借している。矛盾もはなはだしいことを反省すべきであろう。
「석가의 불법(仏法)은 힘을 잃어버리고, 천태의 법화경도, 현사 사회에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은 그 경문만을 삼가 빌려 쓰고 있다.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을 응당 그렇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哲学化された仏法から、己を知ることは非常にむずかしい。地湧の菩薩は、強引な折伏によって仏法を説くことはしない。なぜなら、闘争と破壊の想念行為は菩薩の心ではないからである。
철학화된 불법(仏法)에서, 자기를 아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지용(地湧)의 보살(菩薩)은, 강제적으로 절복[상대편을 꺾어 자기에게 따르게 함]에 의해서 불법을 설명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투쟁과 파괴의 상념행위는 보살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じゆのぼさつ【地涌の菩薩】지용의 보살
〔補説〕 法華経(涌出品)釈迦が本門の教えを説いたとき地中から出現した菩薩。過去に釈迦の教化を受け、窮極の真実を実現する菩薩とされ、日蓮宗で重視される。本化(ほんげ)の菩薩。
법화경(용출품) 석가가 본문의 가르침을 설명할 때 땅속에서 출현한 보살. 과거에 석가의 교화를 받고, 궁극의 진실을 실현하는 보살로 삼고, 니치렌종에서 중요시한다. 본화 보살.
③資本主義、人類はみな兄弟について
③자본주의, 인류는 모두 형제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58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58항에서)
物質経済至上主義による高度成長は、公害を生み、農工業における農薬、洗剤、石炭、石油、ガソリン、鉱業、食品に至るまで、人生航路の肉体船を破滅させるような生活環境を造り出している。これはすべて目先の利益を追求したための智の産物であり、心を失った物質文明の歪みである。
물질경제 지상주의에 의한 고도 성장은, 공해를 낳고, 농공업에 있어서 농약, 세제, 석회, 석유, 가솔린, 광업, 식품에 이르기까지, 인생항로의 육체배를 파괴시키는 것과 같은 생활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이미 눈앞의 이익을 추구한 원인인 지혜의 산물이며, 마음을 잃어버린 물질 문명의 비뚤어짐이다.
人類の智は、こうして自分自身の修行場をも破壊するような結果を招いて行く。
인류의 지혜는,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의 수행하는 장소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불러온다.
農薬、二酸化炭素、四塩化鉛、硫化物、その他の公害によって、多くの犠牲が出るのを見てから対策を考えるようでは、神理の悟りにはほど遠い。ここまで物質文明の奴隷と化した人類の姿は、哀れといわざるを得ない。
농약, 이산화탄소, 사염화연, 유화물, 그 외의 공해의 의해서, 많은 희생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 대책을 생각하려고 하면, 신리의 깨달음에는 너무 멀다. 여태까지 물질 문명의 노예로 화한 인류의 모습은, 애처롭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資本主義は、経済力によって企業を支配し、心を失って利益追及主義に陥り、労使の不満は階級闘争を生み、社会文明は上部層と下部層の階級闘争の中から発展して行くのだという、弱肉強食、のケニヤの動物的そのものの考え方を、人類の中に造り出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
자본주의는, 경제력에 의해서 기업을 지배하고, 마음을 잃어버리고 이익 추구 주의에 빠지고, 노사의 불만은 계급 투쟁을 낳고, 사회 문명은 상부층과 하부층의 계급 투쟁 속에서 발전해 가는 것이다 라고 하는, 약육강식, 의 케냐(Kenya)의 동물적 그 자체의 사고방식을, 인류의 속에 만들어 내고 말았던 것이다.
経済力で他の企業を乗っとることも可能な、資本主義の考え方は非情としかいえない。企業は衆生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ことを忘れ、ある時代においては、衆生は経済奴隷的な価値判断しかされず、一部の独占資本家のふところを肥やす犠牲者となったこともあった。
경제력으로 주식 매입 등을 통하여 다른 기업을 탈취하는 일도 가능한,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은 비정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기업은 중생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어떤 시대에 있어서는, 중생은 경제 노예적인 가치판단으로밖에 여기지 않고, 일부의 독점 자본가의 사복(私腹)을 채우는 희생자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しかし作用があれば反作用がある。強者に対して弱き者は団結によって対抗し、階級闘争が独占資本や権力者の前に、立ちはだかるようになってきたのである。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강자에 대해서 약한 사람은 단결에 의해서 대항하고, 계급 투쟁이 독점 자본이나 권력자의 앞을, 가로막게 되어 왔던 것이다.
多くの衆生は、その肉体先祖の代々においても、その時代時代の権力者によるきびしい階級制度の中で虐げられてきた。そうした心の闘争の歴史が、いつか、その衆生自らの力によって自由平等の社会を目指し、造り出してきたといえる。
대부분의 중생은, 그 육체 선조가 대대로 있더라도, 그 시대시대의 권력자에 의한 혹독한 계급 제도 속에서 시달려 왔다. 그러한 마음의 투쟁의 역사가, 언젠가, 그 중생 자신의 힘에 의해서 자유 평등의 사회를 목표로 하고, 만들어 내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現代、自由平等であるべき時代においてすら、現実には団結という美名の中で個人の自由は無視され、多くの衆生は、新たに生まれた労働貴族という連中の奴隷に変わりつつあるのだ。物を物と見る唯物論は、心を失った価値判断に立ち、その指導者達は智で造り出した階級闘争を衆生に強制し、あるときは武力、あるときは権力、組織、暴力をバックにして団結を保とうとしている。
현대, 자유 평등이어야 할 시대에서조차도, 현실에는 단결이라 하는 미명 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무시되고, 대부분의 중생은, 새롭게 탄생한 노동귀족이라고 하는 무리의 노예로 변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물질을 물질이라고 보는 유물론은, 마음을 잃어버린 가치 판단에 서서, 그 지도자들은 지혜로 만들어 낸 계급 투쟁을 중생에게 강제하고, 어떤 때는 무력, 어떤 대는 권력, 조직, 폭력을 배경으로 해서 집단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唯物主義の考え方に立っている多くの権力者達は、心を失っているため人間を信頼することができない。だから、
「今日の同志、明日は人民の裏切り者」
の烙印を押して、昨日までの仲間を消してしまうようなこともする。
유물주의의 사고방식에 서 있는 대부분의 권력자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신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의 동지, 내일은 인민의 배신자」
의 낙인을 찍고, 어제까지의 동료를 없애버리는 것과 같은 일도 한다.
物理的な力によって造り出された、物質的な団結は、いかなる思想によって洗脳されても、生活が充足して安楽になると崩れ去る。人間の心は充足すると自由を望み、仏性に目覚めてくるのが、神仏の子として当然の道だということである。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만들어 내버린, 물질적인 단결은, 어떠한 사상에 의해서 세뇌되더라도, 생활의 충족되고 안락하게 되면 무너진다. 인간의 마음은 충족되면 자유를 바라고, 불성(仏性)에 눈을 떠오는 것이지만, 신불의 자녀로서 당연한 길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불성[仏性] 《일본어 사전》
①인정 많고 자비로운 성질. ②모든 중생이 가지고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
物質的な物の考え方に立って、特定な圧力をかけて組織を造った指導者には、常に安らぎはない。権力の座からいつ追われるかも分からないのが現実だからである。
물질적인 온갖 것의 사고방식에 서서, 특정한 압력을 가해서 조직을 만든 지도자에게는, 항상 편안함은 없다. 권력의 자리에서 언제 쫓겨날지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己の身を守るため、部下を信じて、重要な地位を与えても、我欲の強い彼らにいつ裏切られるか分からないのも現実である。
자기의 몸을 지키기 위해, 부하를 믿고, 중요한 지위를 주더라도, 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의 강한 그들에게 언제 배신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このような、安らぎのない不調和な環境も、自らの手で造り出した想念と行為に原因があることを、私達は悟らなくてはならない。
“自分で蒔いた種は、自分で刈りとらね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は、神理であり、償いの法則だからである。
이러한, 평안함이 없는 부조화한 환경도, 스스로 손으로 만들어 낸 상념과 행위에 원인이 있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신리이며, 보상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④国の指導者としての心構え、心の三毒について
④나라의 지도자로서의 마음의 준비, 마음의 세가지 독에 대해서
(人間釈迦③254頁から)
(인간석가③ 254항에서)
国は如何に治めるべきかということについて、釈迦がパセナティー王に話されたものを次に紹介する。
나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석가가 파세나티 왕에게 설교하신 것을 다음에 소개한다.
「マーハー・ラージャンよ。
「마하・라쟌이여[위대한 왕이여].
あなたの愛する子どものように、衆生を愛することです。分け隔てなく、すべての人びとに対して、平等の心を忘れ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당신의 사랑하는 자식처럼, 중생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権力や武力によっては、人民の行動を一時は押さえることはできても、心の自由までしばることはできない。
권력이나 무력에 의해서는, 인민의 행동을 한 때는 휘어잡을 수는 있어도, 마음의 자유까지 속박할 수는 없다.
しかし正しい心の法にそった指導をしていけば、衆生はよろこんでそれに従い、国を平和に治め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하지만 올바른 마음의 법에 들어맞는 지도를 하고 있으면, 중생은 기꺼이 그것을 따르고,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そのためには、たとえ小さな子どもであっても大事にせねばならない。やがてその子どもたちが正しく成長し、悪の心を支配して、正しい中道の道を歩むことになるからです。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머지않아 그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나쁜 마음을 지배하고, 올바른 중도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衆生の犠牲の上に、自らの幸福を築くことは、やがて自らを亡ぼすことになります。
중생의 희생 위에, 스스로의 행복을 쌓는 것은, 이윽고 스스로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苦役にあえいでいる人びとには、愛の手をさしのべる。悩める者には、その悩みを除き、病める者には、苦悩を取り除くよう慈愛の心を持って接することです。
고달픈 육체 노동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손길을 뻗쳐야 한다.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괴로움[고민. 번민. 걱정. 근심]을 덜어주고, 병든 사람에게는, 고뇌를 없앨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만나는 것입니다.
たとえ王なりといえども、その地位を特別なものと考えず、また、側近の者たちの間違った言葉に迷わされてはなりません。
설령 왕이라고 할지라도, 그 지위를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또한, 측근의 사람들의 잘못된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煩悩の苦しみから遠ざかり、人間としての道を歩み、悟りの境地に到達するように努力することが大事でしょう。
번뇌의 괴로움에서 멀리 물러가고, 인간으로서의 길을 걷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そのためには、自らの心の在り方から正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火が激しく燃えさかる所には、生き物は住まないでしょう。情欲の炎が燃える所に、正しい道は存在しません。怒りによって心が燃えていると、正しく理性が働かないばかりか、人の忠告が忠告として聞こえず、かえって火に油を注ぐような結果になってしまう。情欲に支配されると、ものの筋道が分からなくなり、身や国を滅ぼすことになる。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본연의 모습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불이 심하게 활활 타오르는 장소에는, 생물은 거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욕(情欲)의 불길이 타오는 장소에, 올바른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 것에 의해서 마음이 격동하고 있으면, 올바르게 이성이 작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의 충고가 충고로서 들리지 않고, 도리여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맙니다. 정욕(情欲)에 지배당하면, 만물의 사리[조리. 도리]을 알수 없게 되어, 몸이나 나라를 멸망시키게 된다
※정욕[情欲] 《국어사전》
①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欲求). ② 물건을 탐내고 집착하는 마음.
※정욕[情欲] 《일본어사전》 ①색정(色情) ②욕망(欲望)
また知識だけが先に立ち、行ないが伴わないものは、絵に描いたマンゴーのようなもので、その味は、永遠に分からないでしょう。
또 지식만이 앞서고, 행위가 동반하지 않는 것은, 그림에 망고[그림의 떡]과 같은 것이며, 그 맛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망고 [ango] 《일본어사전》 〔참고〕 인도·동남 아시아 원산이며, ‘과일의 왕’이라고 불림.
知識は、行ないによってのみ智慧に変わるもので、種は肥沃な土の中でこそ、芽を出し、成長するものです。
지식은, 행위에 의해서만 지혜로 바뀌는 것이며, 씨앗은 비옥한 땅 속에서 비로소, 싹을 내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人が多くの険路を越えて旅するように、生きる道を歩むにも、たゆまざる精進が必要です。道を歩む過程に苦楽はつきものですが、しかし、本当は、正しい道を踏みはずしたときにしか、苦悩というものは生まれないものです。
사람이 많은 경로를 넘어서 여행하듯이, 삶의 길을 걷음에도, 지칠줄 모르는 정진이 필요합니다. 길을 걷는 과정에 고락은 달라붙는 것입니다만, 하지만, 진실은, 올바른 길을 벗어난 행위를 했을 때 밖에, 고뇌라고 하는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苦悩を生み出す原因は、他人ではなく自分自身にあります。このことに大抵の人は気付かない。他人に転嫁した方が気が楽ですからね。だが、苦しんでいるのは、ほかならぬ当人だということを知る必要があるでしょう。
고뇌를 낳은 원인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있습니다. 이 일에 대개의 사람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전가하는 편이 홀가분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당사자]이라고 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苦悩を除くためには、苦悩の根を除かない限り、また芽が出て来るでしょう。この苦悩を除くためには、智慧と勇気と努力が必要です。
고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고뇌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는 한, 역시 싹이 나올 것입니다. 이 고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今迄の人生においてつくり出した苦悩の根を除き、今後の人生に苦の種を蒔かぬことが、人生を、平和と安らぎの生活に導くものです。
지금까지의 인생에 있어서 만들어 낸 고뇌의 뿌리를 제거하고, 앞으로의 인생에 괴로움의 씨앗을 심지 않는 것이, 인생을, 평화와 평안의 생활로 이끄는 것입니다.
この精舎の建物も、固い土の上にしっかりとした土台が組まれ、その上を太い柱が屋根を支えています。ですから風雨に耐え、そこに住む人びとも安心して安住できるわけです。
이 정사(精舎)의 건물도, 단단한 흙 위에 튼튼한 토대가 조성되어, 그 위를 큰 기둥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바람을 견디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안심하고 안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心の安住にも、正しい法の柱が必要になります。
마음의 안주에도, 올바른 법이 기둥이 필요하게 됩니다.
法の柱とは、自己中心の心を改め、他人があって自分があり、大自然の中でたがい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ように、相互の調和が柱になります。そのためには、他人の言葉を正しく聞き、いやしくも、自己の感情でそれを受け取り、曲解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법의 기둥이란, 자기중심의 마음을 고치고, 타인이 있기에 자기 자신이 있고, 대자연의 속에 다 함께 소생되며, 살고 있듯이, 서로가 조화가 기둥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말을 올바르게 듣고, 적어도, 자기의 감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また、どんなことをいわれても、怒りの心、そしりの心、恨みの心、愚痴の心、情欲の心、虚栄の心、増上慢の心などをつくらないことです。つくったときは心の中に毒を飲んだことになり、また新たな苦悩の種を蒔い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
또, 어떤 것을 말하더라도, 화를 내는 마음, 비난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푸념하는 마음, 정욕의 마음, 허영의 마음, 증장만[오만]의 마음 등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만들었을 때는 마음 속에 독을 마시는 것이 되어, 또한 새로운 고뇌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 됩니다.
思っても、語っても、同じ結果になります。正しく語るということは、このような不調和な心では不可能でしょう。
言葉は相手に意思を伝えるものであって、不調和な言葉は、自分の心に毒を飲むばかりではなく、他人に対して、毒を飲ませることになるものです。特に気をつけなく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정서적으로 생각을 해도, 말을 해도, 똑같은 결과가 됩니다. 올바르게 말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부조화한 마음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말은 상대에에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며, 부조화한 말은, 자신의 마음에 독을 마시게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 독을 먹게 하는 것이 됩니다. 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
Ⅳ 個人の次元から
Ⅳ 개인의 차원에서
1 結婚、受胎
1 결혼, 수태
①結婚、受胎について
①결혼, 수태에 대해서
(高橋信次先生ご著書 心行の解説112頁から抜粋)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심행의 해설 112항에서 발췌)
人間がこの地上に生をうける時は、両親を指名し、自ら選んで、生まれてきます。むやみやたらと、精子と卵子が結合して、偶然に、生命意識が生ず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こにはあの世とこの世における計算が綿密に行なわれ、あの世に実在する魂がこの世に生まれ出るように仕組まれております。
인간이 이 지상에 태어날 때는, 양친을 지명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태어나옵니다. 함부로 하자,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우연히, 생명 의식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저 세상과 이 세상에 있어서 계산이 면밀하게 거행되어, 저 세상에 실재하는 영혼(魂)이 이 세상에 태어나오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ここで親子の関係について、ふれてみましょう。
여기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 접해 봅시다.
親子の関係はどのようにして結ばれるかといいますと、あの世において、あるいは過去世において、非常に親しく交わりを持った魂同士が、あの世で約束をかわし、こんどは私があなたの親に、私は子供に、といって結ばれるものです。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떻게 해서 맺어지는가 하면, 저 세상에 있어서, 혹은 과거세에 있어서, 상당히 친숙하게 교제를 가졌던 영혼의 동지가, 저 세상에서 약속을 주고 받고, 이번에는 제가 당신의 아버지가 되어, 저는 자식이 되어, 라고 하며 맺어지는 것입니다.
このために、親子を選ぶ範囲というものはおのずと限定されてきます。その限定の範囲は、
一、魂意識が非常にあいにかよっている場合。
一、過去世で親子の約束を強く望む。たとえばある人に非常に世話になり、その恩返しをしたいという場合。
一、過去世において親子兄弟、友人同士であった場合。
一、あの世で生活を共にし、親子の約束をする場合。
などであります。
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을 선택하는 범위라고 하는 것은 저절로 한정되게 됩니다. 그 한정의 범위는,
一、영혼의 의식이 상당히 서로 닮은 데가 많은 경우.
一、과거세에서 부모와 자식의 약속을 강하게 바란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상당히 신세를 지고,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하는 경우.
一、과거세에서 부모 자식 형제, 친구끼리였던 경우.
一、저 세상에서 생활을 함께 하고, 부모와 자식의 약속을 하는 경우.
라고 합니다.
そうして、まず、親となる人が先に現世に生まれ、あの世で約束をした魂を待ちます。やがて、さきに生まれた人が成人し、結婚し、精子と卵子が結合した瞬間に、約束を交わした魂が、その胎児の中にはいるわけです。
그렇게 해서, 우선, 부모가 되는 사람이 먼저 현세에 태어나서, 저 세상에서 약속을 한 영혼(魂)을 기다립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순간에, 약속을 주고 받은 영혼(魂)이, 그 태아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ふつう一般に、妊娠したことが受胎といわれていますが、受胎とは、厳格には、その胎児に、魂が宿したことをいいます。
肉体舟は両親からもらってはいますが、魂は全然ちがうということがいえます。
보통 일반적으로, 임신한 것이 수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수태란, 엄격하게는, 그 태아에, 영혼(魂)이 깃든 것을 말합니다.
육체배는 양친으로부터 물러 받고 있습니다만, 영혼(魂)은 전연 다르다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ここで現象界に出ている者にとって大事なことは、己の想念行為は、これから生まれ出る子供の精神と肉体にたいして、非常な影響を与えるということです。昔から、夫婦の交わりには美しい花を見て精神を安定にしてからとか、よい音楽を聴くとか、いろいろいわれ、プラトニックな愛の心が望まれてきましたが、こうしたことはよりよい子供を生み、育てるという意味でも重要なことなのです。
여기에서 현상계에 나와 있는 사람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자기의 상념행위는, 앞으로 태어나올 자식의 정신과 육체에 대해서,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부부의 교합(交合)에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정신을 안정케 하고 나서라든가, 좋은 음악을 듣는다든가, 여러 가지 말하며, 순수하고 정신적인 사랑의 마음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왔는데, 이러한 것은 보다 좋은 자식을 낳고, 기른다고 하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점인 것이다.
現象界に出ている人達の意識が低下しますと、それに類似した魂がひきよせられて、この現象界はますます混乱してきます。現象界が混乱すると、あの世もさわがしくなってきます。
현상계에 나와 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정도가 낮아지면, 그것에 유사한 영혼(魂)이 저절로 가까이 오게 되어, 이 현상계는 점점 더 혼란되어 옵니다. 현상계가 혼란하면, 저 세상도 소란스럽게 되어 옵니다.
現象界の混乱はそのまま地獄の相が出ていることであり、地獄に堕ちてゆく人が多ければ、この世もまたそれに影響をうけるという悪循環をつくるからです。この悪循環を絶つには、現象界に出ている人達が常に善の意識、そうして進んで慈悲と愛の想念行為を日常生活に生かしてゆくことです。
현상계의 혼란은 그대로 지옥의 모습(相)이 나와 있는 것이며, 지옥에 떨어져 가는 사람이 많으면, 이 세상도 역시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악순환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악순환을 끊는 데에는, 현상계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항상 선한 의식, 그렇게 해서 나아가 자비와 사랑의 상념행위를 일상생활에 되살려가는 것입니다.
あの世の地獄は現象界の善の姿を学ぶことによって、浄化されてゆくからです。現象界はあの世の投映といわれますが、この意味は、現象界にある者の意識があの世にただちにコンタクトされ、写し出されてくるからであります。
저 세상의 지옥은 현상계의 선한 모습을 배우는 것에 의해서, 정화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현상계는 저 세상의 투영이라고 말합니다만, 이 의미는, 현상계에 있는 사람의 의식이 저 세상에 즉시 접촉되어, 투영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したがって、要は、現象界の人達の意識の高低がいちばん問題になり重要になって来ます。
따라서, 중요한 점은, 현상계의 사람들의 의식의 고저가 가장 문제가 되어 중요하게 되어 옵니다.
②女性の周期、五体の欠陥、子供の出生について
②여성의 주기, 오체의 결함, 자녀의 출생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227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227항에서)
ところで、女性の周期は、太陽系の太陽、地球、月の自転、公転の輪廻と同様に、月の周期と同じ約28日に排卵日が循環してくる。それは肉体的な体温差によってその現象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卵子の周期性と異なり、精子の場合は自由に調和されて時間の影響を受けない。
그런데, 여성의 주기는, 태양계의 태양, 지구, 달의 자전, 공전의 윤회와 마찬가지로, 달의 주기와 같은 약 28일에 배란일이 순환되어 온다. 그것은 육체적인 체온차에 의해서 그 환경을 확인할 수가 있다. 난자의 주기성과 달리, 정자의 경우는 자유로이 조화되어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子供に縁のない人々もあるが、それも実在界において約束した仕事があるために現われてくる現象であり、やはりその目的に沿ってそれぞれの役割を果たさねばならない。それは自分自身が縁に触れて悟り、実践することであり、ときには過去世において関係の深かった子供を、自分の肉体を通さずに育成するような場合もある。縁生、というべきである。
자식이 인연이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도 실재계에 있어서 약속한 일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오는 현상이며, 역시 그 목적에 따라서 각자의 역할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인연에 닿아서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며, 때로는 과거세에 있어서 관계가 깊었던 자식을, 자신의 육체를 통하지 않고 육성하는 경우도 있다. 연생(縁生), 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1.えん‐しょう【縁生】연생 《일본 국어 대사전》
仏語。1 すべての存在が因縁によって生まれること。因縁生。縁起。2 因縁によって生じた結果。縁已生(えんいしょう)。
불교 용어. 1 모든 존재가 인연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 인연생. 연기(縁起). 2 인연에 의해서 생긴 결과. 연기생(縁已生)
このように、両親の肉体的な調和が整えられる日は実在界において計算されており、精子と卵子の調和によって受胎する。同時に実在界では大人であった生命も、母体に己の肉体舟を確認すると、実在界において、分身や本体、また友人達と送別会を幾度かやり、自分が現象界に出たなら今度こそ多くの人々を救ってこよう、またある者は医者となって哀れな病人を救ってこよう、などとそれぞれの希望を持って別れてくる。そして再び母体に入る。
이와 같이, 양친의 육체적인 조화가 가지런하게 되는 날은 실재계에 있어서 계산되고 있고, 정자와 난자의 조화에 의해서 수태한다. 동시에 실재계에서는 성인이있던 생명도, 모체에 자기의 육체배를 확인하면, 실재계에서, 분신이나 본체, 또 친구들과 송별회를 몇 차례 치루고, 자신이 현상계에 나오게 되면 이번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을 도우리라, 또 어떤 사람은 의사가 되어 가엾은 환자를 도우리라, 이라고 하는 각자의 희망을 가지고 떠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모체로 들어온다.
子供として母体に入ると、実在界での表面意識の90%は潜在意識と変わり、表面意識は10%となってしまう。
아이로서 모체로 들어가면, 실재계에서의 표면의식의 90%는 잠재의식으로 변하고, 표면의식은 10%가 되어 버린다.
3ヵ月頃になると、五体の構成が形ち造られるための各細胞の核分裂は進んで行き、母体からの栄養を吸収して日一日と体が整って行く。
3개월 경이 되면, 오체의 구성을 형성하기 위한 각 세포의 핵분열은 진행해 가며, 모체에서의 영향을 흡수하며 나날이 몸이 정돈되어 간다.
このときに、母親のほうに気持が悪くなったり、吐き気を催したりする人々が出る。この状態の原因は、子供の意識や守護霊と、母体の意識との波動が異なる場合に起きる現象である。特に子供の過去世における食物などの影響が母体におよび、従来その母親の未経験の現象が起こるのもこのような原因による。
이 때에, 모체의 쪽에 기분이 나빠지거나, 구역질이 나거나 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 상태의 원인은, 아이의 의식이나 수호령과, 모체의 의식과의 파동이 다른 경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아이의 과거세에 있어서 음식 등의 영향이 모체에 미쳐, 종래 그 모친의 미경험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원인에 의한다.
また逆に、両親の不調和な因果によって胎児の五体に変化が起きる場合もあり、肉体的先祖の因果によって五体に欠陥ができることもある。胎児は次第に各機能が発達し、やがて十月十日、すなわち9ヵ月と20日の月日を経てこの現象界の空気に触れると同時に、己自身の魂の修行の第一歩が始まる。縁あって両親から戴いた肉体舟を意識(魂)の支配下に納めて、苦楽の人生航路へ出航するのである。
또 반대로, 양친의 부조화한 인과에 의해서 태아의 오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육체적 선조의 인과에 의해서 오체에 결함이 완성되는 일도 있다. 태아는 서서히 각 기관이 발달하고, 이윽고 열달 열흘, 즉 9개월과 20일의 월일을 거쳐서 이 현상계의 공기에 접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영혼(魂)의 수행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인연에 있어서 양친으로부터 물러받은 육체배를 의식(영혼)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고락의 인생항로를 향해 출항하는 것이다.
2 出生
2 출생
①出生、奇形児の出産について
①출생, 기형아의 출산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177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177항에서)
この現象界に生まれてくる人類は、何百年も、また千年、二千年も実在界で修行して、仏性、神性を悟っている人々以外、肉体を持つことはできない。
이 현상계에 태어나오는 인류는, 몇 백년이나, 또는 1천년, 2천년이나 실재계에서 수행하고, 불성, 신성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 이외에, 육체를 가질 수가 없다.
いわんや地獄界の住人がこの現象界に生まれることなど、とてもできない。
하물며 지옥계의 거주민이 이 현상계로 태어난다고 하는 둥, 도저히 불가능하다.
場合によっては奇形児が生まれる場合もある。奇形児が生まれる原因は、肉体的な遺伝や、不調和な薬、あるいは父母の不調和、または怨念のある家族に起きる現象である。
경우에 따라서는 기형아가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기형아가 태어나는 원인은, 육체적인 유전이나, 부조화한 약(薬), 혹은 부모의 부조화, 또는 원념[마음에 깊이 새긴 원한]의 있는 가족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このような現象は、生きている人々に対する警告であり、家族一同は反省して、その原因を追及することが必要である。現象は、原因があったために起こった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原因を見極めて反省し、心の浄化を計る正しい生活によって、心の安らぎは生まれてくるのである。
이러한 현상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며, 가족 일동은 반성하고, 그 원인을 추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상은,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원인은 규명해서 반성하고, 마음의 정화를 꾀하는 올바른 생활에 의해서, 마음의 평안은 탄생되어 오는 것이다.
3 幼児の教育
3 유아의 교육
①幼児への教育について
①유아에의 교육에 대해서
(心の原点196頁から)
(마음의 원점 196항에서)
小さな子供達は、なかなか理性も意志も利かないものだ。
어린 아이들은, 꽤 이성도 의지도 듣지 않는 것이다.
私達の心のなかのそれぞれの領域は、成長するに従って、自分なりに智性を通して悟って行くものである。
우리들의 마음 속의 각자의 영역은, 성장함에 따라서, 나름대로 지성을 통해서 깨달아 가는 것이다.
生まれたばかりの乳児は、母乳やミルクを自然のうちに飲むようになる。
갓 태어난 유아는, 모유나 우유를 자연스럽게 마시게 된다.
これも、前世で食生活をしていたから、教えられなくとも食べるようになるのである。
이것도, 전세에서 식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르쳐 주지 않아도 먹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そして、月日を重ねるに従って、五官が働くようになり、欲望が出てくるのだ。
그리고, 월일을 거듭함에 따라서, 오관이 작용하게 되어, 욕망이 나오는 것이다.
自我の芽生えともいえよう。
자아가 싹튼다고도 말할 수 있지요.
欲望と本能の領域の目覚めだ。しかし、まだ理性が良く働かないから、やたらに自我をとおそうとする。
욕망과 본능의 영역의 눈을 뜬다. 하지만, 아직 이성이 잘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턱대고 자아를 관철하려 든다.
この頃から、良い環境や、両親による、偏りのない中道の教育が必要になってくるのである。
이 무렵부터, 좋은 환경이나, 양친에 의한,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교육이 필요하게 되어 오는 것이다.
人生の体験がないから、智性は五官から受けたものや、教育によって豊かになって行く。
인생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지성은 오관에서 받은 것이랑, 교육에 의해서 풍요롭게 되어 간다.
幼稚園に通う頃には、善悪の判断が少しはつくようになる。そして、友達やその家庭の習慣などを見聞することによって、自らの智性を磨いて行くようになる。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는, 선악의 판단이 조금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그 가정의 습성 등을 견문하는 것에 의해서, 스스로의 지성을 연마해 가게 된다.
親の、子供に対する躾(しつけ)のもっとも重要な時期である。溺愛は良くないし、きびしすぎても子供の心を閉じさせることになる。
부모가, 자식에 대한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익애[맹목적으로 몹시 사랑함]은 좋지 않고, 너무 엄격하게 하여도 아이의 마음을 닫아버리게 된다.
このように、いろいろな現象をとおして、理性の領域が磨かれ、私達の表面に出てくる意識が、次第に上昇して行くのである。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서, 이성의 영역이 연마되어, 우리들의 표면에 나오는 의식이, 서서히 상승해 가는 것이다.
しかし、表面意識は、10%くらいしか出てこない。
하지만, 표면의식은, 10%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ちょうど氷山の一角といわれている水中の氷のように、意識のほとんどは潜在され、90%が内在されているのである。
정확히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물속의 얼음과 같이, 의식의 대부분은 잠재되어, 90%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この10%の表面意識も、五官をとおして、あらゆる現象を、見たり聞いたりするが、なかなか正しい判断ができず、自我が表面に出て自己本位になり、その心のなかに暗い想念を造り出してしまうのである。
이 10%의 표면의식도, 오관을 통해서, 모든 현상을, 보거나 듣거나 하지만, 좀처럼 올바른 판판을 할 수 없고, 자아가 표면에 나와서 자기본위가 되어, 그 마음속에 어두운 상념을 만들어 내어 버리는 것이다.
正しい中道の道は、この10%の表面意識の物差しにもなるのだが、なかなかその道を守れないのだ。
올바른 중도의 길은, 이 10%의 표면의식의 척도에도 되는 것이지만, 좀처럼 그 길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自ら、欠点の修正に、勇気と決断を持つこと、それが大事になるのは、こうした過程による。
스스로, 결점이 수정에, 용기와 결단을 가지는 것, 그것이 중요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 의한다.
私達は、このため、心と行ないを正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우리들은, 이 때문에, 마음과 행위를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4 子供の教育(親の在り方)
4 아이의 교육(부모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
①子供の育て方、正しい学校教育、親の在り方について
①자식을 키우는 방법, 올바른 학교교육, 부모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184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184항에서)
人々は良く自分達にできなかったことを子供に託して、その希望を果たそうとする教育や、虚栄心による子供への束縛を原因として不調和になる場合がある。
사람들은 자주 자기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자식에게 부탁하고, 그 희망을 달성하려고 하는 교육이나, 허영심에 의한 자식에 대한 속박을 원인으로서 부조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
肉体舟は確かに与えたものだろう。しかしそうした場合、その魂まで両親の独占物だと考えていることに誤りが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いけない。
육체배는 확실히 제공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경우, 그 영혼(魂)까지 양친이 독점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잘못이 있다고 하는 점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全くの親子であっても、魂は個の生命であって、自ら相違があるのだ。
완전한 부모와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영혼(魂)은 개인의 생명이며, 스스로 상위가 있는 것이다.
なぜなら、魂も親が与えたものであり、親の分霊だと思うなら、その思考性や行為のすべては同じで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왜냐하면, 영혼도 부모가 제공한 것이며, 부모의 분령(分霊)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 사고성이나 행위의 모든 것은 똑같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残念なことに、親のいうことを利かない子供が多い事実を考えなくてはならないのが現実なのである。
유감스럽게도, 부모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는 자식이 많은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従って親達の、子供の環境や教育についての育成は、溺愛でなく、家柄や自己保存的な考えを捨てた純粋な心
からの愛で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だ。
따라서 부모님들의, 자식의 환경이나 교육에 대해서의 육성은, 익애가 아니라, 가문이나 자기보존적인 사고를 떨어 없앤 수순한 마음에서의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점이다.
子供が子供自身の思った通りの道を歩くと、世間の両親の中には
「あんなに可愛がって育てたのに、親の恩を忘れて、親不幸をしている」などと嘆く者達がいる。しかしこれも親のエゴイズムであろう。報いのみを求める、そんな心だから子供達は自分達の真実の道を求めて去って行くのだ。
자식이 아이 자신의 생각한 대로의 길을 걸으면, 세상의 양친 중에는,
「저렇게 애지중지하며 기웠는데,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불효를 하고 있다」라고 하는 둥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부모의 이기주의일 것이다. 보은만을 요구한다. 그러한 마음때문에 아이들은 자기들의 진실한 길을 찾아서 떠나 가는 것이다.
親子相互の対話の不足を考え、子供の人格を認めてやることも親の愛というものだ。対話のない家庭の中には孤独な子供達が育ってしまう、これが現実だ。
부모와 자식의 서로 대화의 부족을 생각하고, 자식의 인격을 인정해야 하는 것도 부모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화가 없는 가정 중에는 고독한 아이들이 자라 버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だから両親は、子供の魂の乗り船は、互いに約束して与えたのだ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与えた、と思う心があるから、親の尺度ですべてを計り、子供に注意などをする。
그래서 양친은, 자식의 영혼의 타는 배는, 서로 약속하고 제공한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었다,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모의 척도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자식에게 주의 등을 한다.
親の意志に反したことをすれば、きびしく叱り、肉体はおろかその心まで束縛してしまう。
부모의 의지에 반한 것을 하면, 엄격하게 꾸짖고, 육체는 물론 그 마음까지 속박해 버린다.
私達は、こうしたことを良く考えて、子供達を指導することが必要であろう。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잘 생각해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最も自由自在の中で、良く心の在り方を教え人間としての道を教え、感謝と報恩の意味をさとし、両親が実践模範を示した生活環境を造り出すことが先決なのである。
가장 자유자재한 가운데, 자세히 본연의 모습을 가르치고 인간으로서의 길을 가르치고, 감사와 보은의 의미를 가르쳐 인도하고, 양친이 실천범위를 제시한 생활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선결인 것이다.
純真な子供心を、素直に育ててやることが、より良い豊かな心を大きく育てる道、これが本当の愛情というものだ。
순진한 아이의 마음을, 솔직하게 길러 주는 것이, 보다 좋은 풍요로운 마음을 크게 키우는 길, 이것이 진정한 애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きびしく叱ることも、正しい中道の判断によれば、その真実が子供心にひびくことなのである。子供と親の対話、日々の行動が、心の交渉が、愛の心をより豊かに育てて行く。子供の心もそこで広く人々のなかに調和され、自分自身の魂を磨いて行き、円満な人格を作って行くのである。
엄하게 꾸짖는 것도, 올바른 중도의 판단에 의하면, 그 진실이 아이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의 대화, 매일매일의 행동이, 마음의 교섭이, 사람의 마음을 보다 풍요롭게 길러 간다. 아이의 마음도 그래서 넓게 사람들 속에 조화되어, 자기 자신의 영혼(魂)을 연마해 가며, 원만한 인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親が子を放任し、正しい道をその愛情によって示さない生活の中で育てられた子供達は、気の毒といわざるを得ない。
부모가 자녀를 방임하고, 올바른 길을 그 애정에 의해서 제시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길러진 아이들은,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たとえば学校の成績ばかりを気にしている親達の心は、自己慢心にしかすぎないということだ。
예를 들면 학교의 성적만을 신경쓰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은, 자기만심으로밖에 지나지 않느다고 하는 것이다.
心の中の智性の領域だけが発達しても、心にゆとりがなく情緒のない人間は、人生での正しい判断すら決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
마음 속의 지성의 영역만이 발달해도, 마음에 여유가 없고 정서가 없는 인간은, 인생에서의 올바른 판단조차 결정할 수가 없다.
智性は、人生をいかに正しく生きるかという、調和した生活をするための早道であって、自己保存、自我我欲の道具ではない。智策、智に溺れるの愚を犯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지성은, 인생을 어떻게 올바르게 사는가 하는, 조화된 생활을 하기 위한 빠른 길이이며, 자기보존, 자아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의 도구가 아니다. 지략, 지혜에 빠지는 어리석움을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知性と理性、本能と感情、そして想念の領域が調和された、円満な人間に成長することが神理である。
지성과 이성, 본능과 감정, 그리고 상념의 영역이 조화된, 원만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신리이다.
試験、試験の人生は、自己保存的な、かたよった人格を造り出し、人間本然の心を失ってしまう結果にもなってしまう。
시험, 시험의 인생은, 자기보존적인, 치우친 인격을 만들어 내고, 인간 본연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결과에도 되어 버린다.
また本能的な領域だけが発達しても、不調和な人格を造ってしまうものである。
또 본능적인 영역만이 발달해도, 부조화한 인격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いずれにしても心の不調和が、想念に曇りを造り出し、神仏の慈悲と愛の光をさえぎり、ノイローゼの原因を造り出してしまうというわけである。
어차피 마음의 부조화가, 상념에 구름을 만들어 내고, 신불의 자비와 사랑의 빛을 가로막고, 노이로제의 원인을 만들어 내 버린다고 하는 것이다.
その暗い想念意識は、不調和な霊によって憑依され、人生を灰色と化してしまう。不調和な満ち足りぬ心の病いは、神理を悟った生活以外、修正することは不可能である。
그 어두운 상념 의식은, 부조화한 혼령(霊)에 의해서 빙의되어, 인생을 회색으로 화해 버린다. 부조화한 만족함을 모르는 마음의 병은, 신리를 깨달은 생활 이외,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 教養、知性
5 교양, 지성
①教養、正しい学校教育、知性について
①교양, 올바른 학교 교육, 지성에 대해서
(心の発見・科学篇56頁から)
(마음의 발견・과학편 56항에서)
この現象界で学んだ知識は、ややもすると自己保存のための道具になりやすく、またこれに溺れやすいのが人間だ。そうした結果、学歴やペーパーの試験によって、人間の価値が判定されてしまう。
이 현상계에서 배운 지식은, 자칫하면 자기보존을 위한 도구가 되기 쉽고, 또한 이것에 빠지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그러한 결과, 학력이나 종이[연구 논문]의 시험에 의해서, 인간의 가치가 판정되어 버린다.
心が失われていても、試験が通れば社会的地位が与えられ、地位を得た者の中には権力の座について悪徳を積む者がいる。またそうした権力者と組んで利欲に関係する者など、自己保存をして他人のことなどかえりみない人間がいる。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어도, 시험을 통하면 사회적 지위가 주어지고, 지위를 얻은 사람 중에는 권력의 자리에 대해서 악덕을 쌓는 사람이 있다. 또한 그러한 권력자와 한 패가 되어 사리사욕에 관계하는 사람 등, 자기보존을 하고 타인의 일 따위는 돌이켜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しかしそういう人間も、権力の座をひとたび下りてしまうと、陸に上がった魚のように人生の無常を知る。ちやほやしていたとりまきも、いつか遠ざかる。腐敗した肉に集まる蛆のような心を持っている人々も離ればなれになって行き、悪徳業者達は新しい相手を求めて散らばる。
하지만 그러한 인간도, 권력의 자리에서 한 번 내려가 버리면, 뭍에 올라간 물고기와 같이 인생의 무상을 안다. 추어올리고 얼러맞추어 주고 있던 권력자에게 빌붙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도, 언젠가 사라진다. 부패한 몸에 모여드는 구더기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가서, 악덕업자들은 새로운 상대를 찾아서 흝어진다.
人間のつき合いは、このようなものであってはならない。
인간의 교제는, 이러한 것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
このような現象は、社会の指導者が外面的判断で人間の価値を決めてしまったため造られた、心の歪みである。その結果、心の尊厳を無視した知識が、人類を物質文明の奴隷にしている事実を、認識しなくてはならない。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지도자가 외면적 판단으로 인간의 가치를 정해 버렸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마음의 비뚤어짐이다. 그 결과, 마음의 존엄을 무히한 지식이, 인류를 물질 문명의 노예로 삼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物質文明のために人類があるのではなく、人類のために物質文明は存在しているのである。知性は、人類社会の調和と己の心の安らぎを目的として、自分自身の魂をより磨くためのものであり、自由と平等を求める自らの努力によって、一人一人が神仏の子たる自覚に到達するためのものでなくてはならない。
물질 문명을 위해서 인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물질 문명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은, 인류 사회의 조화와 자기의 마음의 평안을 목적으로 해서, 자기 자신의 영혼(魂)을 연마하기 위한 것이며, 자유와 평등을 찾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불의 자녀인 자각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人間には、教養という知識があるが、道を悟らない人にはそれが却って自分自身の抵抗を造り、苦しみの原因ともなっている。
인간에게는, 교양이라고 하는 지식이 있지만, 도리를 깨닫지 못한 인간은 그것이 도리어 자기 자신의 저항을 만들고, 괴로움의 원인으로도 되고 있다.
なぜならそれは、心を中心とした知性ではなく、自己保存、自我我欲を満足するための触媒になっている場合が多いからである。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중심으로 한 지성이 아니라, 자기보존, 자아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만족하기 위한 촉매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常に中道の立場で、自分の想念と行為を反省して、与えられた環境で積極的に実行、努力していたならば、現象界で学んだ知性は、潜在意識の中に記憶されている偉大な智慧の宝庫・仏智と調和され、人生をより良く進歩させて行くことができる。
항상 중도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반성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실행, 노력하고 있었다면, 현상계에서 배운 지성은, 잠재의식 속에 기억되어 있는 위대한 지혜의 보고・불지[부처님의 원만한 지혜]와 조화되어, 인생을 보다 좋게 진보시켜 갈 수가 있다.
こうした生活をすることによって、私達の心の調和がとれる。そのため、魂の兄弟達や守護、指導霊の協力があり、私達の魂はより浄化され、智慧の門戸は開かれて、観自在の力を発揮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行く。
이러한 생활을 하는 것에 의해서, 우리들의 마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 때문에, 영혼의 형제들이나 수호, 지도령의 협력이 있고, 우리들의 영혼은 보다 정화되어, 지혜의 문호는 열리고, 관자재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 간다.
学問的な価値は、このときにより発揮され、職業のいかんにかかわらず、神理の道に通じて行くようになるのである。
학문적인 가치는, 이 때에 의해서 발휘되어, 직업의 여하에 관계없이, 신리의 길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6 感謝
6 감사
①感謝について
①감사에 대해서
(心行の解説212頁から)
(심행의 해설 212항에서)
年が進むにしたがって、ものに感謝する心が失われてきます。すべてが当り前に動いており、感謝や、感動の心は沸いてこなくなります。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비립니다. 모든 것이 당연히 움직이고 있고, 감사나, 감동의 마음은 달아 오르지 않게 됩니다.
しかし、ものに感謝できない心は、もともと、どの辺りから生じてきたのでしょうか。誰しも子供の時代がありました。子供のときは両親から可愛がられます。両親は子供のいうことなら大抵のことはきいてくれます。近頃は過保護となり、親は子供のこととなると夢中になってしまうようです。
하지만, 만물에 감사할 수 없는 마음은, 원래, 어느 부근에서 생겨나온 것일까요? 누구나 아이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당시는 양친에게서 굄을 받습니다. 양친은 아이가 말하는 것이라면 대개의 것을 들어 줍니다. 요즘은 과보호가 되어, 부모는 자식의 일이라면 열중하여 버리는 모양입니다.
両親は大抵のことはいうことをきいてくれる、わがままを通してくれる、ということから、子供の心は成長するにしたがい、次第に、ものに感謝する心を失ってゆきます。学業を終え、社会に出ても、仕事をするから給料をもらうのは当然だ、課長は係長より余計に給料を取っているから、それだけ働くのは当然だ、ということになってゆきます。
양친은 대개의 것은 말하는 것은 들어 준다. 떼쓰는 것을 받아 준다[뜻 대로 해 준다], 라고 하는 것에서, 아이의 마음은 성장함에 따라, 서서히,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 갑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도, 일을 하기 때문에 급료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성과는 계장보다 여분에 급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라고 하는 것이 되어 갑니다.
こうして感謝の心は一向に芽生えてこないわけですが、そのもとをたどると、子供の頃のわがままが、大人になってもつづいているからです。
이렇게 해서 감사의 마음은 완전히 싹터오지 않을 만도 합니다만, 그 근본을 더듬어 올라가면, 어린 시절의 제멋대로[버릇없음]가, 성인이 되어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これでは感謝の心がよみがえってきません。
이것에는 감사의 마음이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この地上界は、お互いに、助けたり、補い合うこと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のですから、感謝の心というものは、人間にとって非常に大事なものになるのです。
이 지상계는, 서로 다같이, 돕거나, 서로 보충해 주는 것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의 마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感謝は謙虚な心をつくり、やがて、愛の心をも育てるものです。
감사는 경허한 마음을 만들고, 이윽고, 사랑의 마음을 기르는 것입니다.
7 最後に
7 마지막으로
① 病気の原因、苦しい悲しい心とは、自分を愛することについて
① 질병의 원인, 괴롭고 슬픈 마음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心行の解説203頁から)
(심행의 해설 203항에서)
心とは、意識の中心であり、意識の中心は自他の差別観のない善なる心です。
마음이란, 의식의 중심이며, 의식의 중심은 자타의 차별관이 없는 선한 마음입니다.
八正道の目的は生老病死の迷いを消滅させ、正法の精神である慈悲の心と愛の行為が自然に行なえるようになることであり、それはまた中道の心の具現にあります。
팔정도의 목적은 생로명사의 미혹을 소멸시키고, 정법의 정신인 자바의 마음과 사랑의 행위가 자연히 실천하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중도의 마음의 구현에 있습니다.
中道の心がなぜ慈悲と愛につながるかというと、中道は、すべてを生かす道だからです。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活かしつづけるものは神の心であり、私たちがこの地上界に生活できるのも、大地が在り、水が在り、空気が在り、そこに太陽の熱、光が常に放射されているからです。
중도의 마음이 왜 자비와 사랑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중도는,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온갖 것을 계속 되살리는 것은 신의 마음이며, 우리를이 이 지상계에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대지가 있고, 물이 있고, 공기가 있고, 거기에 태양의 열, 빛이 항상 방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こうした自然界の生命を育む条件というものは、自然界そのものが常に、右にも左にも片寄らない中道の道を歩んでいるからです。
이러한 자연계의 생명을 소중히 기르는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계 그 자체가 항상,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たとえば、私たちが吸っている空気の総量は常に一定に保たれています。全体に増えたり、減ったりはしません。もし空気が増えたり、減ったりするならば、人間を含めたあらゆる生物はこの地上に生存することができないでしょう。
예를 들면, 우리들의 들이마시고 있는 공기의 총량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전체가 증가하거나, 줄어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만약 공기가 증가하거나, 줄어들어가 한다면, 인간을 포함한 온갖 생명은 이 지상에 생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太陽の熱・光についても、時には強くなったり、弱くなったりすればどうなるでしょう。生物は生きて行けません。草木も太陽の熱、光が強烈に照りつけるならば焼きつくされてしまいます。反対に弱くなれば氷河時代が再来し、これまた生物の生存は許されません。
태양의 열・빛에 대해서도, 때로는 강하게 되거나, 약하게 되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요? 생물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초목도 태양의 열, 빛이 강렬하게 내리쬐게 되면 타서 눌어붙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반대로 약하게 되면 빙하시대가 재래하고, 이것 역시 생물의 생존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このように、自然の条件というものは、常に中道の道を歩み、それによって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生かしつづけているのです。
이와 같이, 자연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중도의 길을 걷고, 그것에 의해서 살아 있는 온갖 것을 계속 되살리는 것입니다.
したがって、中道の道は万生万物を生かす働きであり、それはとりもなおさず慈悲と愛の心の現われ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따라서, 중도의 길은 만생만물을 소생시키는 작용이며, 그것은 바꿔 말하면 자비와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八正道とは、この大自然の中道の精神、慈悲と愛の具現であり、私たちの生活も、大自然の心を自らの心とした生活によって、はじめて、安らぎある調和へと導かれるわけです。
팔정도란, 이 대자연의 중도의 정신, 자비와 사랑의 구현이며, 우리들의 생활도, 대자연의 마음을 스스로의 마음로 한 생활에 의해서, 비로소, 평안이 있는 조화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さて、それでは安らぎある生活とはどういうものをいうのでしょうか。
그럼, 그렇다면 평안이 있는 생활이란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しかし、その前に、安らぎのない生活とはどんな生活を指すのでしょうか。
하지만, 그 전에, 평안이 없는 생활이란 어떤 생활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すでに述べて来たように、それは煩悩という迷いの心、執着の心が強くなると、不安と混乱が巻き起こってきます。
이미 기술해 왔던 것처럼, 그것은 번뇌라고 하는 미혹의 마음, 집착의 마음이 강하게 되면, 불안과 혼란이 갑자기 발생해 옵니다.
迷いや執着というものは、肉体・五官に心がとらわれるから起こってきます。各人の意識がその乗り舟である肉体・五官を通して、ものを見、ものを感じ、ものを思うために、人間は知らぬ間に、肉体保存を根底とした、見方、思い方、行動を起こしてしまいます。しかし、肉体がなければこの地上の生活は営なめません。問題はこれにとらわれるから執着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미혹이나 집착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오관에 마음이 사로잡히기 때문에 발생해 옵니다. 각자의 의식이 그 승선한 육체・오관을 통해서, 온갖 것을 보고, 온갖 것을 느끼고, 온갖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은 모르는 사이에, 육체보존을 근저로 한, 견해, 정서적인 사고방식, 행동을 일으켜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육체가 없으면 이 지상의 생활은 영위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집착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肉体を大事にすることと、肉体に執着を持つこととは、同じではありません。
육체를 소중하게 하는 것과, 육체에 집착을 가지는 것과는, 똑같지 않습니다.
執着とは自己本位、ご都合主義、我欲です。人はどうでも自分さえよければいい、というエゴが執着の想念です。
집착이란 자기보존, 형편주의, 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남은 어떻게 되더라도 자기만 좋으면 좋다, 라고 하는 이기심이 집착의 상념입니다.
肉体を大事にするということは、もともと肉体は両親からいただいたものでありまた両親はその前の両親からいただいて……と、そうして、順次さかのぼってゆくと、私たちの肉体は、もとは神から与えられたものであるからです。
육체를 소중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원래 육체는 양친으로부터 물러받은 것이며 또한 양친은 그 전의 양친으로부터 물러받고……라고, 그렇게 해서, 순차 거슬러 올라가면[원점으로 되돌아가면], 우리들의 육체는, 근본은 신에게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このように、肉体は自分のもののようでも、実は自分のものではないというわけです。借り物である以上は、これを大事に扱うのは当然ではないでしょうか。
이와 같이, 육체는 자기 자체인 듯 해도, 실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러 온 물건인 이상은, 이것을 소중하게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執着というものは、神から与えられたその肉体を自分のものと思い込み、他と自分との差別意識が生んだ悪の想念なのです。
집착이라고 하는 것은, 신에게서 주어진 그 육체를 자신의 것이라고 믿어 버리고, 남과 지신과의 차별 의식이 낳은 악의 상념인 것입니다.
こうした想念に心がゆれてくると、人を憎み、怒り、そねみ、足ることを忘れた欲望にふりまわされ、やがてそれは自閉症、ノイローゼ、精神病にも発展してゆきます。
이러한 상념에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남을 미워하고, 화를 내고, 시기하고, 만족함을 잊어버린 욕망에 휘둘리어, 이윽고 그것은 자폐증, 노이로제, 정신병으로도 발전해 갑니다.
これでは安らぎある生活とはいえません。安らぎある生活とは、ものに執着しない生活なのです。ものへの執着心が少なくなればなるほど、安心の境地にのぼってゆきます。
그렇다면 편안한 생활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습니다. 편안한 생활이란, 온갖 것에 집착하지 않는 생활인 것입니다. 온갖 것에 집착심이 적어지게 되면 될 수록, 안심의 경지로 올라갑니다.
人が困っているのを救ったとします。そのことをどのように感じるでしょうか。
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합시다. 그 일을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反対に、人が困っているのを見て、あざ笑ったとします。おそらく、その人は修羅の心で自分自身さえ分からなくなり、心は安らぎを失っていることでしょう。
반대로, 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비웃었다고 합시다. 필시, 그 사람은 아수라(阿修羅)의 마음이며 자기 자신마저 알 수 없게 되어, 마음은 편안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수라[修羅] 《일본어 사전》
①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②추잡한 싸움이나 끝없는 투쟁, 또는 격렬한 감정 등을 비유하는 말.
愛の行為は人間の本性なのです。それは、執着から離れることによって、ますます大きくなってゆくものです。
사랑의 행위는 인간의 본성인 것입니다. 그것은, 집착에서 떨어지는 것에 의해서, 더욱더 커져 가는 것입니다.
中道の道とは、自分を愛し、他人をも愛することです。自分を愛することは執着ではありません。神性の自分を自覚すると、自分を愛さずにはいられなくなるからです。
중도의 길이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집착이 아닙니다. 신성(神性)의 자신을 자각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성[神性] 《일본어 사전》
① 신의 성격·성질. ②마음. 정신.
人の心は人類の数ほどもあると思うでしょう。しかし、人の心は一つしかありません。映画や芝居を見、小説を読んで、悲しい場面で笑うでしょうか、楽しい場面で泣くでしょうか。ちがいます。人の心は一つに結ばれているからです。
사람의 마음은 인류의 숫자만큼이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하나밖에 없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보고, 소설을 읽고, 슬픈 장편에서 웃을 수 있을까요? 즐거운 장면에서 울 수 있을까요? 터무니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自分を愛するとは、すなわち人を愛することなのです。
자신을 사랑함이란, 즉 남을 사랑하는 것인 것입니다.
他を生かし、自分も生きることなのです。
남을 되살리고, 자신도 사는 것인 것입니다.
心は一つですから、自己愛は、利他愛につながらなければならない性質を持つものなのです。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자기애는, 이타애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성질을 가지는 것인 것입니다.
苦しい、悲しいという心は自己本位の我欲が先に立つのでそうなります。自己本位の我欲は、一方が楽しいときは、一方が悲しいときです。この地上に争いや混乱が絶えないのも、こうした相対的な心が支配するからです。
괴롭다, 슬프다고 하는 마음은 자기본위의 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며 그대로입니다. 자기본위의 아욕[자기 욕심]은, 한 쪽이 기뻐할 때는, 한 쪽이 슬퍼할 때 입니다. 이 지상에 싸움이나 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상대적인 마음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中道とは、相対の考え方、思い方から離れることであり、みんなが楽しい調和された生活ができるような道です。
중도란, 상대가 지적인 사고방식, 정서적인 사고방식에서 떨어지는 것이며, 모두가 즐거워 하는 조화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입니다.
八正道の一つ一つの規範は、大自然が教える法の在り方、中道の生き方を教えるものです。
팔정도의 하나 하나의 규범은, 대자연이 가르치는 법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 중도의 생활방식[생활태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めぐみを与え、悲しみを取り除く慈悲の心で、他を生かし、助け合う愛の行為を行じることが中道の道であり、八正道の目的です。
자비[은혜]를 베풀고, 슬픔을 제거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남을 되살리고, 서로 돕는 사랑의 행위를 행하는 것이 중도의 길이며, 팔정도의 목적입니다.
八正道を毎日の生活に活かしてゆきますと、心のさまざまな動きがわかり、やがて人の心の動きも分かるようになって来ます。
팔정도를 매일의 생활에 되살려 가게 되면, 마음의 다양한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고, 이윽고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도 알 수 있게 되어 옵니다.
これを如心といいます。
이것을 여심이라고 말합니다.
如とは法です。法とは正法です。正法とは、大自然の正しい循環の姿です。
여(如)란 법입니다. 법이란 정법입니다. 정법이란, 대자연의 올바른 순환의 모습입니다.
人を憎めば憎しみが返ってくる。善を思えば善が返ってくる。
남을 미워하면 미워함이 되돌아온다. 선을 생각하면 선이 되돌아온다.
作用と反作用の物理法則は、万生万物すべてに働いています。
작용과 반작용의 물리 법칙은, 만생만물 전부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したがって、正法を行ずるとは、善を思い、善を行う生活です。すなわち、慈悲の心で愛の行為をすることが、正法にそった生き方となるわけです。
따라서, 정법을 행함이란, 선을 생각하고, 선을 행하는 생활이빈다. 즉, 자비의 마음으로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 정법에 들어맞는 생활방식[생활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法は神の心を軸として動いているので、法を理解することは神の心に近づくことであり、それはまた、人びとの心を理解することにつながります。したがって、八正道を行じ、如心の境地に達すると、人の心が手にとるようにわかってしまうようになるわけです。
법은 신의 마음을 축으로 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법을 이해하는 것은 신의 마음에 근접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팔정도를 행하고, 여심의 경지에 도달하면, 사람의 마음을 손바닥을 보듯히 환히 알 수 있게 되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如心に至ると、守護・指導霊、そうして、神の光が放射されてくるので、心は安らぎ、智慧も湧いてくることになります。
여심에 이르면, 수호・지도령, 그 다음에, 신의 빛이 방사되어 오는 것이며, 마음은 편안, 지혜도 솟아나오게 됩니다.
そうすると、物事におびえ、恐怖におののくこともなくなり、正法の恵みというものを、真に会得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
그렇게 하면, 매사에 무서워서 벌벌 떨고, 공포에 무서워서 벌벌 떠는 일도 없어지고, 정법의 자비[은혜]라고 하는 것을, 정말로 터득할 수 있게 됩니다.
八正道には、そのような功徳があるのです。
팔정도에는, 그러한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八正道を日常生活に活かしてゆこうとするとき、努力と勇気が必要となります。それは反面からいえば苦痛かも知れません。
팔정도를 일상 생활에 되살려 가려고 할 때,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른 한편에서 말하자면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正法は自力であり、善なる正しい心で生活してゆこうとするものですから、強い意志が必要になってきます。本来は、そのような強い意志は必要ないのですが、これまで旧来の習慣や思想の中で生活してきたのですから、いわば、その軌道修正のための、強い意志が必要になってくるのです。
정법은 자력이며, 선한 올바른 마음으로 생활해 가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한 의지가 필요하게 되어 옵니다. 본래는, 그러한 강한 의지는 필요없는 것입니다만, 여태까지의 구래의 관습이나 사상 속에서 생활해 온 것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 궤도 수정을 위해서, 강한 의지가 필요하게 되어 오는 것입니다.
真に、安らぎを求め、人びととの調和ある生活を欲するならば、八正道を実践してみることです。
참으로, 평안을 찾고, 사람들과의 조화 있는 생활을 원한다면, 팔정도를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八正道を体得することによって、この世だけではなく、この世の10倍、20倍の長きにわたる、あの世での安らぎある生活が保障されるでしょう。
팔정도를 체득하는 것에 의해서, 이 세상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10배, 20배의 오랜 시간에 걸치는, 저 세상에서의 평안이 있는 생활이 보장될 것입니다.
疑わず、まず実践してみることです。
의심하지 말고, 우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八正道を学ぶことは、すなわち、法を学ぶことです。すべてのよりどころは法にあることを確信することが肝要です。
팔정도를 배우는 것은, 즉,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의지할 곳[よりどころ=근거]은 법에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完)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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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橋信次先生の法を学ぶ会」「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법을 배우는 모임」이란, 홈페이지의 게사판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한국어를 포함한 6개국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단, 한국어로 소개는, 홈페이지 메인화면 뿐이네요. 다음과 같이 한국어로 소개하네요.
당회는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이 설득해 주신 법을 학습 실천하기 위해서 불·법·승의 삼보에 귀의 할 것을 서약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주의 마음대로 땅 끝까지 한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바르게 법을 전하고 영원히 법등을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빛의 모체로서의 사명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홈페이지 주소: http://www.houwomanabukai.org/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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