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부처님의 최후의 여행[부처님의 입멸]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부처님의 최후의 여행[부처님의 입멸]

어둠의골짜기 2016. 9. 15. 12:24

2011년 02월 28일에 올린 글을, 현재 날짜인 2016년 09월 15일 수요일로 변경합니다.  

正法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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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橋信次先生・園頭広周先生が説かれました正法・神理を正しくお伝えいたします

다카하시신지선생님・소노가시라히로치가선생님이 설명하신 설법・신리를 올바르게 전하고 싶습니다.

 

2011年2月現在、インターネット上には数多くの高橋信次先生、園頭広周先生のサイトが見受けられます。
この 【 お釈迦さまのみ跡したいて-お釈迦さま最後の旅 】 を参考に、間違いのない正しい判断をされることを願います。

2011년 2월 현재, 인터넷상에는 수 많은 다카하시신지선생님, 소노가시라히로치가선생님의 사이트가 눈에 띄입니다.

이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부처님의 최후의 여행]을 참고로, 틀림이 없는 올바른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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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釈迦さまのみ跡したいて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お釈迦さま最後の旅

      부처님 최후의 여행

 


 



1.舎利佛との別れ 사리불과의 이별


大目蓮が亡くなったその翌年、舎利佛は自分の死期が近づいていることを知ってお釈迦さまにお願いを申し出た。

대목련이 사망한 그 다음 해, 사리불은 자신의 죽을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거을 알고 부처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仏陀さま、もう、私もいよいよ死ぬ時がまいりました。郷里にはまだ母が元気でおります。その母の下に帰って死にたいと思います。お教えを頂きましたご恩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ここでお別れするのは忍び難いことではありますが、最後の親孝行をさせて頂きたいと思います。過去六仏として出られました時にも、その度に弟子させて頂き、その縁で、今生でもまた弟子とさせて頂きました。未来世において仏陀が出生されます時は、また私も共に出生させて頂いて弟子として下さいませ」

 「부처님, 벌써, 저도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고향마을에는 아직 어머님이 잘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 밑으로 돌아가서 죽고싶습니다.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여기에서 이별을 고하는 것은 견디기 어렵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효행을 해 드리고 싶은 생각입니다. 과거 육불로서 찾아왔을 때에도, 그때마다 제자로 삼아 주시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재차 제자로 삼아 주시었습니다.  미래세에서 불타가 출생하실 때는, 역시 저도 함께 출생하게 하시어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

舎利佛はお釈迦さまより九つ年上であった。永年、右腕と頼んで頼りにしてきた弟子が、自分の死期を悟ってラジャグリハの街を去ってゆくその後ろ姿を見ることは、如何に悟ったとはいえつらいことであった。

사리불은 부처님보다 아홉살 연상이었다.  오랜 세월, 오른팔로 믿고 맡기어 의지해 온 제가자, 자신의 죽을 시기를 깨닫고 라자구리야의 거리를 떠나가는 그 뒷 모습을 보는 것은, 어떻게 깨달았다고 배알한 이후의 일이었다.

その頃すでにお釈迦さまは体が弱っていられた。「わしは背中が痛い。舎利仏に代わって説法してもらいなさい」と言われることも度々であった。その舎利仏が郷里の母の下へ帰った。「そうだ。わしも死ぬ時は、あの懐かしい生まれ故郷のカピラに帰って死のう」と思われるのであった。

그 무렵 이미 부처님은 몸이 약해져 계시었다.  「나는 등이 아프다.  사리불에게 대신해서 설법을 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신 적도 몇번이나 있었다.  그런 사리불이 고향마을의 어머님 슬하로 돌아갔다.  「그렇다.  나도 죽을 때는, 저 그리운 태어난 고향인 카필라로 돌아가서 죽자」라고 생각하신 것이었다.

舎利佛の死が知らされた。チュンダが「これがその骨でございます」と差し出した黒い灰を手にされて悲しまれた。それから急にまた弱られた。ガンガーのほとりの小さな村で言われた。

사리불의 죽음이 알려졌다.  춘다가 이것이 그 유골입니다. 라고 내밀며 검은 재를 손에 쥐고 슬퍼했다.  그리고 나서 급히 역시 쇠약해졌다.  강가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말했다.

 

「比丘達よ、舎利佛と大目蓮が死んでから、この集会は、私にはまるで空虚になったような気がする。比丘達よ。あの二人が生きていた時は楽しかった。あの二人が生きていた頃の楽しい思い出がなかったとしたら、今夜のこの満月の集まりもまったく空虚である。

「비구들이여, 사리불과 대목련이 죽고나서, 이 집회는 나에게는 마치 공허하게 된 듯한 기분이다.  비구들이여, 저 두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는 즐거웠다.  저 두 사람이 살아 있던 무렵의 즐거운 추억이 없었다고 한다면, 오늘밤 이 만월의 모임도 참으로 공허하다.

比丘達よ。私に舎利佛と大目蓮があったように、過去世において等正覚を得られた方にも、あの二人のような弟子があったに違いない。私が未来世において、生まれて等正覚者となる時は、またあの二人と同じような弟子が必ずあるであろう。(等正覚/とうしょうがく:仏の悟りを得た者の尊称。)

비구들이여, 나에게 사리불과 대목련이 있었듯이, 과거세에서 등정각을 이뤗던 사람에게도, 저 두 사람과 같은 제자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내가 미래세에서, 태어나서 등정각자가 될 때는, 역시 저 두 사람과 같은 제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등정각/부처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존칭)

舎利佛と大目蓮は死んだ。しかし、世の中に移り変わらないものは一つもない。移り変わるものに移り変わるなと言っても、無理である。だから、比丘達よ。

사리불과 대목련은 죽었다.  그러나, 세상에 변천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변하여 달라지는 것에 변천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무리이다. 그러하니, 비구들이여.


自分を()りどころとなして、他の人を依りどころとせず、法を依りどころと為して、他のものを依りどころとせずしてゆくがよい。

자신을 의지하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는 바 없이, 법을 의지처로 삼고,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음이 좋다.

比丘達よ何時までも、また、わが亡き後においても、自分を依りどころとして、他の人を依りどころとせず、法を依りどころとして、他のものを依りどころとせずしてゆくものが、この道をゆかんとするものの中で、わが最高の比丘である」

비구들이여 언제까지나, 또한, 내가 죽은 후일지라도,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다른 사람을 의지처로 삼지 않고, 법을 의지처로 해서,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는 것이, 이 길을 간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 내가 최고의 비구이다」

この言葉からでも、釈尊門下の双璧といわれてきた舎利仏と大目蓮の二人だけは、お釈迦さまの真意を正しく理解していた希有の弟子であったことが推察されます。舎利仏と大目蓮の二人が、弟子であったという思い出が、この高弟子二人の死を悼むお釈迦さまを勇気づけて、このような説法になったのであります。

이 말을 하고 나서도, 석존문하의 쌍벽이라고 말을 들어 온 사리불과 대목련 두 사람만은, 부처님의 진의를 올바르게 이해해 왔던 희유의 제자였던 것이 추찰[짐작]되었다.  사리불과 대목련 두 사람이, 제자였다고 하는 회상이,  이 고제자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부처님을 용기를 북돋으어, 이러한 설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一旦、ラジャグリハ(現:ラジギール)に帰られ、永年伝道の中心としてきたラジャグリハの町に、人々に、自然に別れを告げ、五百人の弟子を連れて、懐かしい霊鷲山を振り返り振り返り、北門を出、竹林精舎にも別れを告げ、見送る沢山の人々に一人一人会釈されながら、ナーランダへの道を北上されます。ナーランダからパータリ村(現:パタリプトラ)へ、ここでガンジス川を渡り、コーティ村で一泊、比丘達に説法されこの土地で亡くなった多くの仏教信者達の一人一人の死後の運命について話をされ、さらに一々答えることは煩雑になるので、判断をする基準として法鏡といわれている教えを説かれた。法鏡とは、法を正しく知るための鏡であって、この鏡に照らして見さえすれば、誰でも自分で死後の運命について知ることができるとせられる。
일단, 라자구리아(Rajagrha) (현 : 왕사성[王舍城])로 돌아가서, 오랜 세월 전도 중심으로서 해 왔던 라자구리아의 읍내에서, 사람들에게, 자연히 이별을 고하고, 500면의 제자를 데리고, 정겨운 영취산(霊鷲山 : 고대 인도 마가다국에 수도인 왕사성 북동에 있는 법화경을 설교한 산)을 뒤돌아보고 뒤돌아보며, 북문을 나와서, 죽림정사에도 이별을 고하고, 견송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머리를 살짝 숙이는 가벼운 인사를 하면서, 날란다(Nālandā)에서 파타리(산크리스트어:Pataliputra,팔리어:Pataliputta)마을 (현 : 파다리부트라)로, 이곳에서 겐지스강을 건너, 코티(コーティ)마을에서 일박, 비구들에게 설법하시며 이 토지에서 사망한 많은 불교신자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사후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고, 더욱이 일일이 대답하는 일은 번잡하게 되어서, 판단을 하는 기준으로서「법경(法鏡)」이라고 말하시고 있는 가르침을 설교했다.  법경이란, 법을 올바르게 알기 위한 거울이며, 이 거울에 비추어서 보려고 하면, 누구든지 스스로 사후의 운명에 대해서 알 수가 있다고 하신다.

1.仏陀は、最高の人格者、この上なき、人天の導師であることを信じて疑わないこと。

불타는, 최고의 인격자, 이 이상없고, 인천(人天. 인간계와 천상계)의 도사(導師. 어리석은 중생에게 바른길을 가르쳐서 깨닫는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사람)인 것을 믿고 의심치 않는 것..

2.法は、普遍妥当性のある真理であり、人々を理想に到達させる最上の説教である。と絶対に信じて疑わないこと。

법은, 보편타당성의 있는 진리이며, 사람들은 이상에 도달시키는 최상의 설교이다. 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의심치 않는 것.


3.僧は、正しく修行を積んだ尊敬されるべき聖弟子であり、民衆の信仰を指導する教団であることを絶対に信じて疑わないこと。

스님은, 올바르게 수행을 쌓은 존경받아야 할 성제가(聖弟子. 성스러운 제자)이며, 민중의 신앙을 지도하는 교단인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심치 않는 것.


4.このように三宝を正しく理解し、絶対にこれを尊信した上で、更に、殺さず、盗まず、嘘をつかず、姦淫せず、などの戒律を守り、これを犯すことが絶対にないようになること。

이와 같이 삼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절대적으로 이것을 존경하고 믿는 상태에서, 다시, 살생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간음을 하지 않는다, 등의 계율을 지키고, 이것을 범하는 일이 절대로 없게 되는 것.

この4つが確実に得られた時、初めて絶対不壊の浄信が確立し、第一段の聖者となり、地獄に堕ちることなく、将来、必ず悟りに至るというのである。

이 4가지를 확실히 얻었을 때, 비로서 절대불괴의 깨끗한 믿음이 확립하고, 맨 첫 단계의 성자가 되어, 지옥에 떨어지는 일 없이, 장래, 반드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2.アンババリーの帰依 안바바리의 귀의


更に比丘達に種々の説法をされ、北の方バッチー国の首都ヴェーサーリ郊外のアンババリーの林園に着かれた。

 

더욱 더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설법을 하시고, 북방 밧치국의 수도 베살리[(Veali )=바이살리(Vaishali) 교외의 안바바리의 정원에 도착했다.

ここは遊女アンババリーの所有である。当時のインドの遊女は、王侯貴族や豪商を相手にする権力者で、地位も高く、豪奢(ごうしゃ)(派手で贅沢の意)な住居と多くの使用人を持っていた。

이곳은 유녀(遊女 창녀) 안바바리의 소유이다.  당시 인도의 유녀는, 왕후귀족이나 호상(거상. 대상인)을 상대로 하는 권력자이며, 지위도 높고, 호사((색깔·옷차림·행동 등이 화려하며(야하며) 사치함의 뜻)스러운 주거와 많은 사용인(남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을 가지고 있었다.

中でもアンババリーはその美貌と教養のため、当時インドでは最も有名であった。彼女は説法を聞いて深く信仰に入り、自分の林園を寄贈して比丘尼となった。

그 중에서도 안바바리는 그 미모와 교양 때문에, 당시 인도에서는 가장 유명하였다.  그녀는 설법을 듣고 깊게 신앙에 들어가서, 자신의 정원을 기증해서 비구니가 되었다.

 

 




3.最後の雨安居 최후의 우안거

 

そこから更にヴェールブ村で、お釈迦さまは従者阿難と二人で雨安居に入られた。雨安居というのは雨が集中的に降る三ヶ月間、外で強化説法が出来ないので、一定の所にとどまって外出せず修行することをいうのである。従っていた五百人の比丘達は、それぞれに縁故を求めて諸所で安居した。

그곳에서 더욱 더 베루푸마을에서, 부처님은 수행원인 아난과 둘이서 우안거로 들어갔다.  우안거라고 하는 것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3개월 동안, 밖에서 강화설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정한 장소에 머물며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 온 500명의 비구들은, 각자의 연고를 찾아서 여러 장소에 안거했다.


この安居中にお釈迦さまは、死を思わせるほどの激痛が起こった。弟子の比丘、比丘尼達に、今生の別れの挨拶もしないでこの世を去るのはよくないから、この病苦に堪えて、今少し寿命を延ばしたいと決意された。しばらく危機を脱せられた。カピラに帰って、懐かしい自然を目におさめ、親しい人達に最後の別れをしてからこの世を去りたいという思いもあった。

이 안거 안에서 부처님은,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격통이 일어났다.  제자 비구, 비구니들에게, 금생의 이별의 인사말도 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이 병고를 참아내며, 지금 약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싶다고 결심하셨다.  잠시 위기를 벗어나시었다.  카필라로 돌아가서, 그리운 자연을 눈으로 바라보고, 친한 사람들에게 최후의 일별을 하고 나서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하는 생각도 있었다.

阿難が言った。
「わたくしは仏陀さまが、弟子達に何事も語られずに、この世を去られるとは思っていませんでしたので、いささか心を案じておりました」と。

아난이 말했다.
「저는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마음을 추수리고 있었습니다」라고.


 この時お釈迦さまは、
「それでは比丘達は自分にまだ何を求めているのであるか、自分は何一つ惜しむことなく仏法を説いた。隠しているものは何もない。弟子達にこれ以上語るものは何もない。
 
阿難よ、私はすでに八十の高齢となり、自分の肉体は、あたかも古びた車が、あちこち革紐で縛ってやっと用を足しているように、私の身体もやっと動いている。されば阿難よ、自らを灯とし、自らを依りどころとして、他を依りどころとせず、法を灯とし、法を依りどころとして、他を依りどころとしてはならない」

이 때 부처님은,
「그러면 비구들은 자신에게 또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지, 자신은 무엇 하나 아낌 없이 불법을 설교했다.  숨기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자들에게 이 이상 말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난이여, 나는 이미 80이고령이 되어, 나의 육체는, 마치 낡은 차가, 여기저기 가죽끈으로 묶어서 겨우 볼일을 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신체도 간신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아난이여, 스스로 불을 켜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고, 남을 의지처로 삼지 않고, 법등을 켜고, 법을 의지처로 삼고,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偉大なる聖者の傍にいると、まだ何か教えられることがあるかも知れない、と何かを聞き出そう、何かを知ろうと思って依りかかる気持ちを捨て切れないと見える。阿難はここで「自燈明 法燈明」「自帰依 法帰依」大事であることを聞いていながら臨終の時にまた聞くことになるのである。

위대한 성자 옆에 있으면, 역시 무엇인가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무엇인가를 물어서 알아내려고, 무엇인가를 알려고 생각하며 의지할 마음을 버리지 않으으리고 보인다.  아난은 여기에서, 「자명등 법등명」「자귀의 법귀의」의 중요성을 들으면서 임종의 때에 재차 듣게 되는 것이다.

 


 


4.ヴェーサーリーへ 베잘리를 향해

雨季が終わると、お釈迦さまはヴェーサーリーの街へ托鉢に出られた。病後のことで疲労が多かった。ヴェーサーリーはインドの古代都市の一つでジャイナ教の中心地であった。

우기가 끝나자, 부처님은 베잘리 거리로 탁발을 나가시었다.  병을 앓고 난 후 피로가 많았다. 베잘리는 인도 고대도시의 하나이며 자이나교의 중심지였다.


ジャイナ教の信者達は議論が巧みで、この土地に仏法を広められるのにはなかなか苦労された。正道第五年目の雨安居をこの土地で過ごされたことなど懐かしく思い出され、この町の信者達が建てていてくれた幾つかの(びょう)所を廻られた。
「阿難よ、ヴェーサーリーの町は楽し。ウデーナ廟は楽し、バフプッタ廟は楽し、サーランダダ廟は楽し、チャーパーラ廟は楽し」

자이나교 신자들은 논의가 교묘하며, 이 토지에 불법을 넓히는 데에는 상당히 수고했다.  정도 제5년째의 우안거를 이 토지에서 생활하게 된 일 등 정겨운 추억, 이 읍내의 신자들이 건설해 준 몇 개의 사당을 돌아보았다.
 「아난이여, 베잘리 읍내는 즐겁다.  우데나사당은 즐겁고, 바후붓타사당은 즐겁고, 사란다다사당은 즐겁고, 차바라사당는 즐겁다 」

この世をまもなく去ろうとする人は、誰しもが、この眼で見うる最後の風景を、永遠に忘れることなく目の裏に焼きつけて死のうとするものではなかろうか。

이 세상을 머지않아 떠나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눈에 보이는 최후의 풍경을, 영원히 눈속에 간직하고 죽으려고 하지 않겠느냐?


戦争中、内地から出征してゆく時の私は、「もう二度と、この懐かしい故里の山河を見ることはないであろう」と、遠ざかり行く故里の山河をじっと見たものであった。また、いよいよ突撃にうつる直前、「この目で見得るこれが最後の風景か」と辺りを見渡して、はやる自分の心を鎮めたものであった。

전쟁 중, 본국에서 출정하려 갈 때 저는, 다시 한번, 이 정겨운 고향산천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멀어져 가는 고향마을의 산천을 가만히 봤던 것이었다. 또, 급히 적진으로 돌격하기 직전,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최후의 풍경인가」라고 주변을 둘러보고, 간신히 제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혔던 것이었다.

まだ若い頃、このジャイナ教の中心地に乗り込んで来られて、それまでにインド三千年にわたる因習に堕した土俗信仰をしている人達に初めて仏法を説かれて、帰依する人達が出て来た時のお釈迦さまの喜びはどんなであったであろうか。以来、沢山の信者が増え、法を聴くための廟所が各所に建てられた。

이제는 젊은시절, 이 자이나교 중심지로 차를 타고 찾아와서, 그때까지 인도 3천년에 걸친 인습에 빠진 토속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불법을 설명하고, 귀의하는 사람들이 나왔던 당시의 부처님의 기쁨은 어떠했을까.  그 이후, 많은 신자가 늘어나고, 법을 듣기 위한 사당이 각처에 건설되었다.

お釈迦さまが「楽し」と言われたのは、その廟所や、ヴェーサーリーの町がきれいであるから、それを「楽しい」と言われたのであると思う人があったら、それはお釈迦さまの心を知らない人である。お釈迦さまが「楽し」と言われたのは、仏法を広める為に廟所を寄進した人達の心を、そうして、そこで仏法を聴いて救われてゆく沢山の人達を、更にその人達の縁によって救われてゆく人達の心を喜ばれたのではなかろうか、この地上の一切のものに執着してはならないと教えられたお釈迦さまが、単に建物の美しさだけをめでられる筈はない。

부처님이 즐겁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그 사당이나, 베잘리 읍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을 즐겁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다.  부처님이 즐겁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불법을 넓히기 위해 사당을 시주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해서, 그곳에서 불법을 듣고 구원되어 가는 많은 사람들을, 더욱 더 그 사람들의 인연에 의해 구원되어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뻐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 지상의 일체의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던 부처님이, 단순히 건물의 아름다움만을 즐겼을 리는 없다.

 


 


5.入滅の予言 입멸의 예언

過去、現在、未来の三世を見通す力を持たれたお釈迦さまは、ヴぇーさーりーの町周辺にいた比丘達を重閣講堂に集められた。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꿰뚫어보는 힘으 가지셨던 부처님은, 베잘리 읍내 주변에 있던 비구들을 중각강당[대림정사]에 보이게 하시었다.


「比丘達よ、仏法は、多くの人々の利益安楽のため、世人への憐れみのためだけでなく、天上界の人々をも救う道である。だから、あなた達は、よく仏法を把握し、習得しなければならない。仏法は永遠の法である。仏法は理想達成のための道諦である。諸行は無常である。形あるものは必ず滅しなければならぬ。刻々瞬々、移り変わるものであるからこそ、努力することによって運命も変わってゆくのである。無常なる姿に囚われて「どうせ滅びるものならば」と無常感に囚われて暗い消極的な心になったのでは仏法に反する。

「비구들이여, 불법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안락을 위한, 세상 사람들을 향한 연민뿐만 아니라, 천상계의 사람들을 또한 돕는 길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잘 불법을 파악하고,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법은 영원한 법이다.  불법은 이상달성을 위한 도제[번뇌와 업을 끊고 열반에 도달하는 길을 일컫음]이다.  형체가 있는 것은 반드시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시각각, 이변하는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에 의해서 운명도 바뀌어 가는 것이다.  무상한 모습에 얽매여,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이라고 무상감에 얽매여서 어두운 소극적인 마음이 되었던 것은 불법에 반한다.

永遠に死なない生命こそが、我々の魂なのであるから、その魂をよく磨いて明るい心で理想達成のために努力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야말로, 우리들의 영혼인 것이기 때문에, 그 영혼을 잘 연마하여 밝은 마음으로 이상달성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私の肉体は衰えた。わたくしは三ヵ月後にこの世を去るであろう」と告げられた。

나의 육체는 쇠약해졌다.  나는 3개월 후에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라고 예고하시었다. 
 
お釈迦さまはこの最後の旅で、阿難に
「六神通力を持ったものは、もし望むならば、一劫の永い間でも寿命を延ばすことができる」と述べられたが、ぼんやりしていた阿難は、「いつまでも生きていて、世の人々をお救い下さい」と、お願いすることをしなかった。これは阿難が悪魔に支配されていたからだと伝えられている。

부처님은 이 최후의 여행에서, 아난에게,
 「육신통력을 가진 사람은, 만일 바란다면, 일겁의 오랫동안이라도 수명을 연장할 수가 있다」라고 말하고 계셨지만, 우두커니 서 있던 아난은, 「영원히 살아 계시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드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난이 악마에게 지배당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해지 있다.


※겁[劫]   《한자사전》
 [불교] 어떤 시간의 단위로도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 하늘과 땅이 한 번 개벽한 때에서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동안이라는 뜻이다.

阿難はこのことの重大さに気づき、改めてお釈迦さまに懇願をしたが、お釈迦さまは、その懇願を成すべきであることを、ラジャグリハでも、ヴェーサーリーでも、度々お前に暗示したけれども、お前はそれに気がつかず、懇願することをしなかった。それはお前の手落ちである。と言われたと伝えられている。

아난은 이 일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다시 부처님에게 간원[간청]했지만, 부처님은, 그 간절히 원함을 이루어야 할 것을, 라자그리아에서도, 베잘리에서도, 몇 번이나 너에게 암시했지만, 너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청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의 부주의[실수]이다 라고 말씀하시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お釈迦さまはという方は、自分の方から「こうしなさい、あゝしなさい」という言い方はされない方であった。本人が気づくまで、いつまでも待っていられた方であった。自分から進んで聞く、進んでするという自発性を尊ばれた方で、言われてするのはそれだけ減点であるといっていられたのであるから、この阿難の話も、阿難の心づかい、心の働かせ方の足りなかったことが伝えられたのではなかろうか。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은, 자신의 입장에서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라고 하는 말투를 하시지 않는 분이었다.  본인이 느낄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계셨던 분이었다.  자발적으로 나아가서 듣고, 나아간다고 하는 자발성을 존중하시었던 분이며,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감점이라고 말하고 계시었던 것이기 때문에, 이 아난의 말도, 아난의 마음씀씀이, 마음을 활용하는 방식이 부족했던 일이 전해졌던 것은 아닐까.

 

 


 

5.ヴェーサーリーを出発 베잘리를 출발

「阿難よ、このヴェーサーリーの町もこれが最後であろう」といわれて、お釈迦さまはバンダ村に向かわれた。ハツテイ村、アンバ村、ジャンブ村と、途中で最後の別れを心の中で告げながら説法をされてボーガー城に入られた。

「아난이여, 이 베잘리 읍내도 이것이 최후이겠지 라고 말씀하시며, 부처님은 밧다마을로 향하시었다.  핫테이마을, 안바마을, 잠부마을과, 도중에서 최후의 이벌을 마음속으로 알리시면서 설법을 하시며 보가성으로 들어가시었다.

 

 


 


6.四大教法 4대교법

ボーガー城のアーナンダ廟では、比丘達のために四大説法を説かれた。これはお釈迦さまが、自分が入滅した後、どういうことが起こるか、それを予見されて、死後の混乱と、仏法が歪曲否定されることのないようにとの配慮から、なされたのである。

보가성의 아난다사당에서는, 비구들을 위해 4대설법을 말씀하시었다.  이것은 부처님이, 자신의 입멸한 후,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을 예견하시어, 사후의 혼란과, 불법이 왜곡부정되는 일이 없도록 하시려는 배려때문에, 하시었던 것이다.

1.ある比丘が、「
自分はこのことを直接、お釈迦さまから聞いたのであるから、これこそ正しい仏法であり、   師の教えである」と立証するものが出てくるであろう。そういう者の言葉をそのまま信用してはならない。   その説を、教と律とに照らしてみて、それが、正しい経と律に合致しないのであるならば、それは仏説では   ない。合致していればまさしく仏説である。

어떤 비구가, 「자신은 이 일을 직접,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불법이며, 스승의 가르침이다」라고 입증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말을 그대로 신용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을, 가르침과 계율에 비춰 보고, 그것이, 올바른 경전과 계율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  합치하고 있으면 틀림없이 불법이다.

2.ある比丘が、「
自分は多くの博学の長老及びその長老のいる教団からこの教えを聞いたのであるから、まさしく仏説であると見なさるべきである」と主張したとしても、これをこのまま肯定したり否定したりしてはならない。第一のように経と律に照らして正しく判断すべきである。

어떤 비구가, 「자신은 많은 박학의 장로 및 그 장로가 있는 교단에서 이 가르침을 들은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불법이라고 보셔야 마땅할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고 해도, 이것을 이대로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제1과 같이 경전과 계율에 비추어서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3.ある比丘が、「
自分は多くの長老からこの教えを聞いたのであるから、まさしく仏説である」と主張したとしても、これをそのまま肯定したり否定したりしてはならない。第一の場合のように、経と律とに照らして正し  く判断すべきである。

어떤 비구가, 「자신은 많은 장로로부터 이 가르침을 들은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불법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해도, 이것을 그대로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제1의 경우와 같이, 경전과 계율에 비추어서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4.ある比丘が、「
自分はある一人の博学な長老から、この教えを聞いたのであるから、これはまさしく仏説であ」と主張したとしても、これをそのまま信じてはならない。経と律に照らしてみて判断すべきである。
어떤 비구가, 「자신은 어떤 사람의 박학한 장로로부터, 이 가르침을 들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확실한 불법이다 」라고 주장했다고 해도, 이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경전과 계율에 비추어서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お釈迦さま在世中は、経と律はまだ文章としてまとめられてはなかった。第一の結集が行われたのは、お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て九十日目であるから、お釈迦さまは、自分が入滅した後に、自分が説いたことが経と律にまとめられることを予見していられたと見るべきである。

부처님은 재세중에는, 경전과 계율은 문장으로서 일괄정리하시지 않았다.  맨 처음의 결집이 거행되었던 것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90일째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자신이 입멸한 후에, 자신이 설교한 것이 경전과 계율로 통합될 것을 예견하고 계시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人間は威光暗示にかかり易い、威光暗示というのは、一応、一般社会から何かの点ですぐれた人、立派だと思われている人、不思議な霊能力でも持っている人があると、その人がこう言われたというと、無批判、無条件に、盲目的に、それを信じてしまうことを「威光暗示にかかる」という。

인간은 감히 범하기 어려운 위엄과 권위에 암시가 걸리기 쉽다,  감히 범하기 어려운 위엄과 암시[위광암시]라고 하는 것은, 일단, 일반사회에서 무엇인가의 점에서 뛰어난 사람, 훌륭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사람, 불가사의한 영능력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면, 무비판, 무조건으로, 맹목적으로, 그것을 믿어버리는 일을 「위광암시에 걸린다」라고 말한다.

お釈迦さまは、無知であること、盲目的であること、即ち、知るべき法を知らないことが一切の罪の、迷いの根源であることを説かれたのである。だから、

부처님은, 무지한 것, 맹목적인 것, 즉, 응당 그렇게 알아야 할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일체의 죄의, 미혹의 근원인 것을 설법하신 것이다.  그래서,


「自分はこのことを、お釈迦さまから直接聞いたのです」という人があっても、それをそのまま盲目的に信じてはいけない、と厳しく注意されたのである。

「자신은 이 일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그대로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라고 엄하게 주의시겼던 것이다.

この点からも、盲目的な他力信仰ではいけないのだということを、私達は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お釈迦さまは他力信仰は説かれなかったのである。

이 점에서도, 맹목적인 타력신앙은 바람지스럽지 않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모르면 안 된다.  부처님은 타력신앙은 설교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7.鍛冶屋チュンダの供養  대장장이 츈다(純陀)의 공양

ボーガー城を去られ、パーバー城に行き、鍛冶屋のチュンダの所有するマンゴー林に住せられた。インドはどこでも、町や部落の周辺に必ず林がある。一本の木陰に100人、200人は楽に座ることができる。乾季には毛布一枚あればどこでも寝れる。お釈迦さまは弟子達に、伝道に出た時は、信者の家に迷惑をかけてはならぬ。必ず林に寝るようにと注意していられた。まして大人数となると、そんな大人数を休ませる広い家などめったにない。だからこの時も、林に休まれて、食事はチュンダが供養したのである。

보가성을 떠나서, 파바성으로 가서, 대장장이 춘다가 소유하는 망고림에 머무르게 되었다.  인도는 어디든지, 읍내나 부락 주변에 반드시 숲이 있다.  한 그루의 나무그늘에 100명, 200명은 쉽게 앉을 수가 있다.  건계[乾季 마른 철 ↔ 雨季(우계= 우기)]에는 모포 한 장만 있으면 어디서나 잠을 잘 수가 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를 나갔을 때는, 신자의 집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숲에서 잠을 자도록 주의를 주시고 계시었다.  하물며 인원수가 많아지면, 그런 많은 사람을 쉴만한 넓은 집 등은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 당시에도, 숲에서 쉬며, 식사는 츈다가 공양했던 것이다.

お釈迦さまは茸が好きであった。生まれ故郷のカピラには色々な茸が沢山採れた。人間は誰しもが、小さい時に食べ慣れた物が好きになる。カピラに近いこの辺りも茸が沢山採れた。

부처님은 버섯을 좋아했다.  태어난 고향인 카필라에는 여러 가지 버섯이 많이 채취했다.  인간은 누구든지, 어린 시절에 습관이 된 먹거리를 좋아하게 된다.  카필라 주변에 이 주변에도 버섯이 많이 캘 수 있다.

多くの仏典が、茸に中毒されたと、書いているが、それは正しくない。茸が好きであった為に、油炒めの茸を沢山食べられた。。老齢であり、また身体が弱っていられた為に、消化不良を起こして激しい腹痛と下痢が始まったのが真相である。中毒であるならば、食べられてすぐ異常が腹痛が始まるはずであるが、お釈迦さまは、食事の供養を受けられた後でチュンダに説法をしていられる。

대부분의 불전이, 버섯에 중독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버섯을 좋아했기 때문에, 음식을 기름에 볶은 버섯을 많이 먹게 되었다.  노령이며, 또한 신체가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소화불량을 일으켜서 격심한 고통과 설사가 시작되었던 것이 실상이다.  중독이라면, 먹고 있는 도중에 금방 이상한 복통이 시작될 것이지만, 부처님은, 식사 공양을 받고 나신 후에 츈다에게 설법을 하고 계신다.

それはチュンダは、すでにお釈迦さまが入滅の予定をされたことを知っていた。それで、お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た後、真の宗教の指導者にはどんな人を選んだらいいか、その判定の基準を知りたいと質問したのである。
그것은 츈다는, 이미 부처님의 입멸의 예정을 하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참된 종교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면 좋은지, 그 판정의 기준을 알고 싶다고 질문했던 것이다.

お釈迦さまは、世間には四種のシャモンがあると説かれた。

부처님은, 세간에는 4가지 종류의 사문(沙門)이 있다고 설교하시었다.

1.勝道のシャモン  승도의 사문[성문, 연각, 보살 등 뛰어난 도법(道法)을 얻은 사문(沙門)]

  自ら正しい修行をし、見惑修惑のあらゆる煩悩を断じて最高の聖者、真の人類の指導者となった者である。   

      스스로 올바른 수행을 하고, 견혹수혹[108번뇌]의 온갖 번뇌를 끊고 최고의 성자, 참된 인류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다.

 

※見惑은 세상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 일어나는 번뇌이고 修惑은 모든 사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여 일어나는 번뇌이다.
《다음 신지식》
http://k.daum.net/qna/view.html?qid=0FsME

2.説道のシャモン    설도(도리를 설명하는) 사문

 

 

  仏教の正しい世界観、人生観を把握理解しよく人々を教え導く力を持ち、よく人を納得させ得る者である。
     불교의 올바른 세계관, 인생관을 파악이해하고 잘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힘을 갖고, 잘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3.活道のシャモン   활도(살아있는 도리를 행하는) 사문

  仏教の正しい教えに親しんで、生活の中によく教えを生かす者である。

     불교의 올바른 가르침에 친숙하고, 생활속에 잘 가르침을 되살리는 사람이다.

 

4.汚道のシャモン   계(戒)를 범하고도 부끄러움이 없어 성도(聖道)와 승단(僧團)을 욕되게 하는 사문.

  外形はまじめに殊勝に振舞っているが、心は邪悪虚偽に満ち、在家から供養を(むさぼ)ったりして、
  仏法を汚す者である。

     겉모습은 성실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마음은 사악허위로 가득 차고, 재가에서 공양을 탐하거나(한없이 욕심부리거리나) 하며,
     불법을 더럽히는 사람이다.

この説法によって、チュンダは心が定まった。

이 설법에 의해서, 츈다는 마음이 정해졌다.

先の「四大教法」によって、正しい法を選ぶ基準が示され、今、「正しい指導者を選ぶ基準」が示された。

앞의「4대교법」에 의해서, 올바른 법을 선택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지금,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제시하시었다.


この基準は、現在も通用するはずである。指導者として選ぶ最低の基準は、「その宗教指導者の言う事と、日常生活とが
一致していなかったら、その人の言うことを信じ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이 기준은, 현재도 통용하는 것이다.  지도자로서 선택하는 최저의 기준은, 「그 종교지도자가 말하는 것과, 일상생활이지만,
일치하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이다.

 

※사문[沙門] 《브리태니커》
불교에서 출가하여 수도에 전념하는 사람.팔리어 'samaṇa'에서 유래하는 음사어로서 '노력하는 사람', '도인'을 의미한다. 비구(比丘)와 같은 뜻으로 쓴다. 《한자사전》에서는, 출가한 중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다.

 

純陀(じゅんだ、ちゅんだ、ちゅんだか、サンスクリット:चुन्द Cunda、タイ語: จุนทะ cunthá)、漢訳では准陀・淳陀・周那と音写、妙義と訳す。
순다(슌다, 츈다, 츈다가, 산스크릿트어:चुन्द Cunda、타이국: จุนทะ cunthá), 한역으로는 준타・순타・주나라고 음사, 묘의라고 번역한다.
★아래의 출처에서도, 부처님은, 식중독이라고 적혀있네요. 내용이 길어서, 생략합니다.
http://wkp.fresheye.com/wikipedia/%E7%B4%94%E9%99%80

 


 


8.クシナガラへ  쿠시나가라를 향해

死期を悟った人の最後は静かである。カピラへ帰って入滅したいという思いは、老いなお衰えた肉体を支えて、次の町クシナガラへと向かわせた。激しい痛みと下痢が始まった。お釈迦さまは路傍の一樹の下に、上衣を四つ折にして座られた。この状態ではとてもカピラまでたどり着くことはできまい。痛む下腹を押さえてカピラの空を仰がれた。

죽을 시기를 깨달은 사람의 최후는 조용하다.  카필라로 돌아가서 일멸하겠다 라고 하는 생각은, 늙고 역시 쇠약해진 육체를 지탱하며, 다음 읍내인 쿠시나가라(Kushinagar)로 향하시었다.  격심한 통증과 설사가 시작되었다. 부처님은 도로변의 나무 아래에서, 상의를 네겹으로 접고 앉으셨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카필라까지 길을 따라가서 도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아랫배를 누르며 카필라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阿難よ。水を持ってきてくれ、水が飲みたい」
近くの小さい川は、今しがた商人の500位の車が通ったばかりで、水は濁っていた。

「아난이여. 물을 가져 와 주게, 물을 마시고 싶다」
근처의 작은 내는, 지금 막 상인 500명 정도의 차가 왕래할 뿐 아니라, 물은 흐려져 있었다.

「今、あの川は、車が通ったばかりで濁っております。少し行きますとカクッター河があります。そこは水が清く澄み、冷たいですから、そこまで行って頂いてそこで水を飲んだり、足を冷やしたりなさっては如何でしょうか」
と、2、3回申し上げたが、お釈迦さまは、今すぐ飲みたいといわれた。仕方なしに阿難が鉢を持って小川に行ってみると、不思議にも水は澄んでいた。阿難はびっくりして、これはお釈迦さまの神通力によるものと、その奇跡を申し上げた。

「지금, 저 강은, 차가 왕래했을 뿐 아니라 혼탁해져 있습니다.  조금 더 가시면 카쿳타강이 있습니다.  그곳은 물이 탁한 것이 맑고, 시원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서 물을 마시거나, 발을 시원하게 적시면 어떻겠습니까? 」
라고,

2. 3번 여쭈었지만, 부처님은, 지금 즉시 물을 마시고 싶으시다고 하시었다.  어쩔 도리가 없이 아난이 탁발을 가지고 실개천에 가보니, 불가사의하게도 물은 탁함이 없이 맑아져 있었다.  아난은 깜짝 놀라서, 이것은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한 것이라고, 그 기적을 말씀 드렸다.

水を飲んで渇きを癒し静かに禅定をしていられると、そこを通った隊商のプックラというマツラー人が、お釈迦さまの所へやって来た。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고 조용히 선정을 하고 계시자, 그곳을 지나가던 대상인 붓쿠라 라고 하는 마츠라사람이, 부처님의 계신 곳으로 왔다.


禅定について質問をした。

「真に統一した禅定に入るとすぐ傍を500の車輌が通っても、また頭上で激しい落雷があっても、それに自分の心が掻き乱されることはなく、肉体の耳はその音を聞いても、心は定に入って静かに統一している」と説かれた。

선정에 대해서 질물을 했다.
「정말로 통일된 선정에 들어가면 금방 옆을 500의 차량이 지나가도, 또한 머리위로 격렬한 낙뢰가 있어도, 그것에 자신의 마음이 소란스럽게 되는 일이 없고, 육체의 귀는 그 소리를 듣더라도, 마음은 선정에 들어가서 조용히 통일되고 있다 」라고 설명하시었다.


禅定三昧に入ると無我の境に入って周囲のことは何もわからなくなるということは間違いである。大抵の人は禅定三昧の境地と、恍惚の境地を混同している。何もわからなくなって恍惚となることは危険であって禅定は無我になることではない。

선정삼매에 들어가면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서 주위의 일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개의 사람은 선정삼매의 경지와, 활홀의 경지를 혼동하고 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 활홀하게 디는 것은 위험하며 선정은 무아가 되는 것이 아니다.


プックサは、アーラーラ、カーマーラの在家の弟子であったが、お釈迦さまに帰依して金色の絹の衣を差し上げた。その衣を、お釈迦さまに掛けたら、掛けた衣の黄金の色が失われるほど、お釈迦さまの身体が黄金色に輝いた。
「お釈迦さま、この黄金色をした絹の衣をお掛けしましたら、衣の光揮が失われるほど、身体が輝きました」と申し上げると、「阿難よ、まさにその通りだ。如来の皮膚の色は二つの場合に輝くのである。一つは、如来が無上正等覚を悟る時、一つは真全涅槃界に入滅する時である。阿難よ、今夜半、クシナガラのマツラー族のウパッツタナのサーラ双樹の下で入滅するであろう。阿難よ、カクッター河の方へ行こう」

붓쿠사는, 아라라, 카마라의 재가 제자였지만, 부처님에게 귀의해서 비단옷을 들어 바치었다.  그 옷을, 부처님이 늘어뜨리면, 늘어뜨린 옷의 황금색이 잃어버릴 정도로, 부처님의 신체가 황금색으로 빛났다. 
 「부처님, 이 황금색을 한 비단옷을 걸치시면, 옷의 광휘가 잃어버릴 정도로, 신체가 빛났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 「아난이여, 확실히 그대로이다.  여래의 피부색은 두 가지의 경우에 빛나는 것이다.  한가지는, 여래가 무상정등각을 깨달을 때, 한가지는 진전열반계로 입멸할 때이다.  아난이여, 오늘 밤, 쿠시나가라의 마츠라족의 우밧츠다나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할 것이다.  아난이여, 카쿳타강 쪽으로 가자」

お釈迦さまは、カクッター河で最後の沐浴をし、水を飲み、河を出てマンゴー林に入られた。お釈迦さまは、舎利佛の実弟であるチュンダカに申された。
「チュンダカよ、上衣を四重にして布いてくれ、私は疲れた、横になりたい」チュンダカがそのようにすると、お釈迦さまは右脇を下にし両足を重ねて休まれた。どこまでも思いやりの深いお釈迦さまは、阿難に語られた。

부처님은, 카쿳타강에서 최후의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고, 강을 나와서 망고림에 들어갔다.  부처님은, 사리불의 실제 동생인 츈다카에게 물으시었다.
「츈다카여, 상의를 네겹으로 해서 싸서 주게, 나는 피곤해서, 옆으로 눞고 싶다」츈다카가 그렇게 하자,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해서 양발을 포개어 쉬시었다.  어디까지나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깊은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阿難よ、鍛冶屋のチュンダは、自分の入滅を聞いて自分が供養した食事が原因でお釈迦さまは亡くなられたのではなかろうか、と後悔し悲しい思いをするかもしれない。私が悟りが開かれた時の最初の食事と、入滅前の最後の食事の二つは、あらゆる供養の中で最上のものである。鍛冶屋のチュンダは、長寿になる業を積み、名声をもたらす業を積み、生天の業を積み、王位に導く業を積んだのである。阿難よ、このことをチュンダに伝えなさい」

「아난이여, 대장장이 츈다[純陀]는, 나의 입멸을 듣고 그가 공양한 식사가 원인으로 부처님은 돌아가실 것이 아닐까, 라고 후회하고 비통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깨달음이 열리었을 때의 최초의 식사와, 입멸 전의 최후의 식사의 두가지는, 온갖 공양 중에서 최상의 것이다.  대장장이 츈다는, 장수에 이루는 업을 쌓고, 명성을 가져오는 업을 쌓고, 생천[복생천]의 업을 쌓고, 왕위를 인도하는 업을 쌓은 것이다.  아난이여, 이 일을 츈다에게 전하시오 」

阿難に命ぜられて、一比丘尼はこのことをチュンダに告げた。苦痛のさ中にあっても信者の心を励まし慰められた。やさしいお心に周りの比丘達は皆感激した。

아난에게 분부하여, 한 비구니는 이 일을 츈다에게 알리었다.  고통 중에 있더라도 신자의 마음을 격려하고 위로하시었다.   아름다운 마음에 주위의 비구들은 모두 감격했다.

 

※복생천[복생천] 《한자사전/국어사전 》
'색계의 사선천의 둘째 하늘'을 가장 좋은 복력으로 태어나는 곳이라 하여 일컫는 말.

 

 


 


9.スパッタの帰依  스팟타의 귀의

お釈迦さまは阿難に、「クシナガラの町に行って、マツラー人たちに、今夜半に仏陀が入滅されるから、仏陀の最後に間に合わなかったと、後悔することのないようにと告げよ」と命ぜられた。

부처님은 아난에게, 「쿠시나가라 읍내로 가서, 마츠라 사람들에게, 오늘밤에 불타가 입멸하시기 때문에, 불타의 최후의 순간에 만나지 못한다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알려라 」명하시었다.

この町の人達は男も女も、「どうしてこんなに早くお釈迦さまは入滅されるのであろうか」と悲歎(ひたん)に暮れた。全員がみなお釈迦さまにお逢いす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阿難は代表者にだけ、別れの挨拶をさせた。サーラ林に集まっていたマツラーの人々は、「もっと永生きして、私達を導いて下さい」と、天に向かって号泣したかったが、そうしたのではお釈迦さまの心を騒がせると、一人一人が悲しみを押さえて、これまで仏法を説いて下さったことを感謝し、安らかに入滅されることを祈っていた。

 

 

이 읍내의 사람들은 남녀 모두, 「어째서 이렇게 급히 부처님은 입멸하시는 것일까」라고 비탄에 잠겼다.  전원이 모두 부처님를 만나 뵐 수는 없기 때문에, 아난은 대표자만, 이별의 인사를 하게 했다.  사라숲에 모여든 마츠라의 사람들은, 「좀 더 영생하시어, 우리들을 인도해 주십시오 」라고, 하늘을 향해서 소리 높여 울지 않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을 떠들썩하게 한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슬픔을 억누르며, 지금까지 불법을 설교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편안하게 입멸되시길 기도하고 있었다.

そこにスパッタという120歳の遊行僧が通りかかった、お釈迦さまが入滅されるのだと聞いた。いつの日か、お釈迦さまの説法を聞きたいとここまで遊行して来たのに、はや入滅されるのか、スパッタは、せめてお釈迦さまの息のあられる間に教えを乞いたいと悲しみにうずくまっている人々の間をかき分け、よろめく身体を杖で支えて前に進み出た。「お釈迦さまにひと目合わせて下さい」スパッタのかすれた声は阿難の耳に届かなかった。さらにスパッタは前に進み出た。「お釈迦さまに、合わせて下さい」

그곳에 스밧타 라고 하는 120세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스님이 지나가다가, 부처님의 입멸하신다는 것을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싶다고 여기까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 수행해 왔는데, 벌써 입멸하시는 것일까, 스팟타는, 그나마 부처님의 기식이 있으신 동안에 가르침을 간절히 받고 싶다고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의 사이를 헤집고, 비툴거리며 신체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부처님을 한번 친견하게 해 주십시오」스팟타의 쉰 목소리는 아난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더욱 더 스팟타는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부처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


ふと、振り返ると、阿難はそこにやっと杖にすがっている老人を見た。「お釈迦さまにあわせてください、今生のお願いです」阿難は、老人を押しとどめた。スパッタもまた、自分の寿命が来ていることを感じていた。今、お釈迦さまにお逢いして置かなければ、来世でお逢いできるとは限らないと思う、と必死であった。

문득, 뒤돌아보자, 아난은 그곳에 가까스로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부처님을 뵈게 해 주십시오, 금생의 소원입니다」아난은, 노인을 제지했다.  스팟타도 역시, 자신의 수명이 다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부처님을 만나 뵈어 두지 않으면, 내세에서 친견할 수 있다고는 한이 없다 라고 생각이 들자, 필사적이었다. 
 

静かに目をつむっていられたおしゃか様の耳に、阿難とスパッタの言い争う声が聞こえて来た。お釈迦さまは阿難を呼ばれた。
「阿難よとめてはならない。私の最後の弟子が来た。私は彼がここに来ることを前から知っていたのである」
阿難は、スパッタに押しとどめた非礼を詫びて、お釈迦さまの枕元に案内した。
「スパッタよ、よくたずねて来てくれた。私は入滅の前に、そなたに法を説くことが出来ることが嬉しい。これも縁である」 

조용히 눈을 감고 계시었던 석가님의 귀에, 아난과 스팟타의 말다툼이 소리가 들려 왔다.  부처님은 아난을 불렸다.
「아난이여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최후의 제자가 왔다.  나는 그가 여기에 올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난은, 스팟타를 제지했던 비례를 용서를 구하고, 부처님의 머리맡으로 안내했다.
「스팟타여, 잘 찾아와 주었다. 나는 입멸의 전에, 그대에게 법을 설명할 수가 있는 일이 기쁘다.  이것도 인연이다」

これまでの仏典によると、四ヶ月の準修行期間を経ることなく、その場で比丘となり、やがて阿羅漢になった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が、一説には、お釈迦さまの法を聞くと、その場でそのまま昇天したともいわれている。そのまま昇天したのが正しいのである。

지금까지 불전에 의하면, 4개월의 준수행기간을 거치지 않고, 그 장소에서 비구가 되어, 이윽고 아라한이 되었다 라고 하고 있지만, 일설에는, 부처님의 법을 들으면, 그 장소에서 그대로 승천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대로 승천한 것이 올바른 것이다.

「阿難よ、頭を北にして休めるようにしてくれ、私は疲れた」阿難が席を改めると、お釈迦さまは右脇を下にし、両足を重ねて、静かに瞑目して横になられた。その時、沙羅双樹(さらそうじゅ)は時ならぬに花を開き、天から曼陀羅華(まんだらげ)栴檀香(せんだんこう)が降り如来の供養のために散り()いた。また天より妙なる音楽の音や賛歌がおこった。お釈迦さまは阿難に対して、
「時ならぬに花が咲いたり、花が降ったり音楽の音が聞こえたとしても、それは如来を供養することにならない。
 出家在家の弟子達が、法を正しく知り、法を正しく行じてこそ、真に如来を敬い、如来を供養することになるのであると告げられた。

「아난이여, 머리를 북으로 해서 쉴 수 있도록 해 주게, 나는 지쳤다」아난이 자리를 고치자,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고, 양발을 포개어, 조용히 명상하며 누우시었다.  그 때, 사라쌍수(沙羅双樹)는 때아닌 꽃을 피우고, 하늘에서 만나라화(曼陀羅華)나 해당향(栴檀香)이 내려와 여래의 공양을 위해 흩날리었다.  또한 하늘에서 신묘한 음악 리나 찬가가 울려퍼졌다.  부처님은 아난에 대해서,
「때아닌 꽃이 피거나, 꽃이 내려오거나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그것은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안 된다.
  출가 재가의 제자들이, 법을 올바르게 알고, 법을 올바르게 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여래를 존경하고,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라고 알리셨다.

阿難はお釈迦さまに聞いた。
「お釈迦さま在世中は、多くの比丘達はお釈迦さまの下に集まっておりましたが、お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ましたら、お互いに集まって敬意を表しあうこともなくなります」と、

아난은 부처님에게 물어 보았다.
「부처님 재세중에는, 많은 비구들은 부처님의 밑에 모여들고 있습니다만, 부처님이 돌아가셔 버리면, 서로 모여서 경의를 표하는 일도 없어지게 됩니다」라고,

「阿難よ、私が死んだら、信心ある者は四ヶ所を見て尊敬すればよい。
一、誕生の地   ルンビニー
二、成道の地   ブッダガヤ
三、初転法輪の地 サルナート
四、入滅の地   クシナガラ

「아난이여, 내가 죽으면, 신심있는 자는 4개의 장소를 보고 존경하면 좋다.

일, 탄생의 땅  룸비니(Lumbini)
이, 성도(깨달음을 얻음)의 땅  붓타가야(부다가야(힌두어: बोधगया))
삼, 초전법륜(최초의 설법지)의 땅  사르나트([녹야원鹿野苑])
사, 입멸의 땅   쿠시나가라(쿠시나가르 Kushinagar)

  

この四つの所に行って、私がどのように法を説いたか、その法を思い出し、話し合って実践に精を出すがよいくれぐれも注意しなければならぬことは、ただこの四ヶ所を巡拝すればいいのだと考えて、心なくして廻ってはならないことである。法はあくまでも心に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이 네개의 장소로 가서, 내가 어떻게 법을 설교했는지, 그 법을 생각해 내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실천에 열심히 힘씀이 좋다.  아무쪼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단지 이 네 군데를 순배하면 좋은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 분별없이 돌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법은 어디까지나 마음에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초전법륜[初轉法輪]《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쾌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의 입장에서 설교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불타가 성도를 한 후 최초로 행한 설법(說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법륜을 전(轉)한다 함은 법을 설파하고 그 실현에 노력한다는 뜻이다.

阿難は、お釈迦さまが在世中に、自分だけが阿羅漢になることが出来ないのかと思うと、我が身が不甲斐なかった。阿羅漢果(あらかんか)を得るためには、まだまだ心の整理をして置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多かった。
아난은, 부처님의 재세중에, 자신만이 아라한(阿羅漢)이 될 수가 없는 것인가라고 생각이 들자, 내 신세가 한심스러웠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기 위해서는, 아직도 마음의 정리를 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많았다.

阿難は出家して間もなく頃、托鉢に出た先で、一人の女性を見染めた。心も狂わんばかりにその女性が愛しかった。たまりかねて阿難は、お釈迦さまに「その女性と一緒になりたい」といって「それは出家の妨げになる」といわれ、あきらめたもののそのことがまだ心のどこか片隅に引っかかっていた。その心を、お釈迦さまが生きていられる間にきれいにしてしまわなければ、お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ては、再びその機会もあるまいと思うと、
「阿難よ、お前はまだそのことに引っかかっていたのか」と言われるのを承知の上で、恥ずかしい思いを振り捨てて聞いた。

아난은 출가해서 얼마 안 되는 무렵, 탁발을 나가서 먼저, 한 명의 여성에게 첫눈에 반했다.  마음도 미쳐버릴 정도로 그 여성을 그리워했다.  참을 수가 없게 되어 아난은, 부처님에게 「그 여성과 함께 있고 싶다」라고 말하며 「그것은 출가의 방해가 된다」라고 말을 하며, 명백하게 밝힌 것인 그 일이 역시 마음의 어딘가에 한구석에 걸려 있었다.  그 마음을, 부처님이 살아계신 동안에 아름답게 해 버리지 않으면, 부처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다시 그 기회도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아난이여, 너는 아직도 그 일을 끌어 않고 있던 것이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있으셔서, 부끄러운 생각을 떨쳐버리며 물었다.

「お釈迦さま、女に対してはどうすべきでしょうか」
「阿難よ、女を見てはならない」
「しかしお釈迦さま、すでに見た時はどうしたらいいでしょうか」
「阿難よ、女と語ってはならない」
「しかしお釈迦さま、それでも、もし話しかけられたら、どのようにすればよいでしょうか」
「その時は阿難よ、心を慎むべきである。
心を動かしてはならぬ

「부처님, 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
「아난이여, 여자를 봐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부처님, 이미 보았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난이여, 여자와 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부처님, 그런데도, 만약 말을 걸게 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그 때는 아난이여, 마음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阿難はこのことがあってから、自分の心を見詰めて心の整理を始めた。阿難が阿羅漢になるのは、お釈迦さまの入滅後九十日の第一回の結集が終わった後である。

아난은 이 일이 있고 나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마음의 정리를 시작했다.  아난이 아라한이 되는 것은, 부처님이 입멸 후 90일의 제1회의 결집이 끝난 후이다.


阿難は自分のこともであるが、従者として色々聞いて置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もあった。それはお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た後の葬法、遺骸の処分、供養の方法等であった。

아난은 자신의 일도 있지만, 수행원으로서 여러 가지 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었다.  그것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의 시신을 장사지내는 방법, 유해의 처분, 공양의 방법 등이었다.

「遺骸は、どのようにいたしましょうか」
「阿難よ、お前達は、私の遺骸の供養については心を煩わすな。それは在家の者にまかせなさい」

「유해는, 어떻게 할까요? 」
「아난이여, 너희들은, 나의 유해의 공양에 대해서는 마음을 괴롭히지 말라.  그것은 재가의 사람에게 맡겨라」

阿難は、いよいよ、心を決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ても、やはり心細かった。今までは偉大なる師の傍にいて、何があっても師に寄りすがっていればそれで済んで来た。しかし、亡くなられると、もう頼ることも出来なくなると思うと、やはり何か頼りになるものが欲しい気がしてきた。

아난은,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도, 역시 마음이 안 놓였다.  지금까지는 위대한 스승의 곁에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스승에게 의지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돌아가시면, 다시 의지할 수도 없게 된다고 생각이 들자, 역시 무엇인가 의지하게 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ましたら、私は何を頼りにしたらよいでしょうか」
「そのことについては、これまでも度々説いてきた。
外にあるものを頼りにしてはならぬ。自分の心を依りどころとし、法を依りどころとし、自分の心を灯とし、法を灯とすべきである

「부처님이 돌아가셔 버리면, 저는 무엇을 의지하면 좋을까요? 」
「그 일에 대해서는, 여태까지나 몇 번이나 설명해 왔다.  밖에 있는 것은 의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고, 자신의 마음을 등불로 삼고, 법을 불을 켜야 할 것이다

いよいよ最後の時が近づいてきた。お釈迦さまは、そこに集まっていた比丘達に言われた。
「あなた達は仏教について、なにか聞いて置くことはないか、もしあるならば遠慮なく質問するがよい。このことを聞いておけばよかったが、畏れ多くて尋ね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というような後悔がないようにしなさい」
と言われたが、まはや(じゃく)として誰も問う者はなかった。
「もし、畏れ多くて直接に質問することが出来ないという人は、友人に代わって問うてもらうがよい」
と言われても、一同は黙っていた。
 色々お聞きしたいことはあったとしても、お釈迦さまの最後のお心を、お騒がせしてはならないと思う心のほうが強くて、恐らく誰も言い出せなかったのではあるまいか。阿難は悲しみに堪えられず、(かんぬき)に取りすがって慟哭した。阿難は、二十余年間も従者としてお傍にいながら、まだ阿羅漢果を得ることができず、お別れしなければならないわが身が不甲斐なかった。その阿難の心を察してお釈迦さまは阿難を呼ばれた。
「阿難よ、悲しんではならない。泣いてはならない。かねがね私は説いてきたではないか。愛すべき者といえども、ついには生き別れ、死に別れ、別々となる。形あるものは必ず滅する。滅しないということは真理ではない。阿難よ、お前は二心(にしん)なき慈愛の心を持ってよく私に仕えてくれた。阿難よ、お前は良くやってくれた。精進努力するがよい」と、阿難に感謝し、礼を述べられて慰められた。

점점 최후의 시기가 가까워져 왔다.  부처님은, 그곳에 보인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여러분은 불교에 대해서, 무엇인가 들어 둔 것은 없는지, 만약 있다고 하면 사양하지 말고 질문하는 것이 좋다.  이 일을 들어 두면 좋겠지만, 황송해서 물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후회가 없도록 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셨지만, 쥐죽은 듯이 조용하며 아무도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황송해서 직접 질문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친구를 대신해서 질문해도 좋다」
라고 말씀하시어도, 일동은 침묵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듣고 싶은 것은 있었다고 해도, 부처님의 최후의 마음을, 떠들썩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입장이 강해서, 감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난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문의 빗장을 매달리며 통곡했다.  아난은, 20여년 동안이나 곂에 있으면서, 또한 아라한과(阿羅漢果)을 얻을 수가 없고,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신세가 한심스러웠다.  그 아난의 마음을 살피고 부처님은 아난을 불렀다.
「아난이여, 슬퍼해서는 안 된다.  울어서는 안 된다.  진작부터 나는 설명해 왔진 않은가.  사랑해야할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생이별하고, 죽음으로 이별하고, 가지각색이 된다.  형체가 있는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아난이여, 너는 딴마음이 없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잘 나에게 시중을 들어 주었다.  아난이여, 너는 잘 해 주었다.  정진노력하는 것이 좋다」라고, 아난에게 감사하고, 사례를 말씀하시며 격려하시었다. 

 

※スパッタ 스팟타 란 분의 인도식 이름은 모르겠네요.  일본야후백과나 위키페디아 및 한국내 백과사전을 검색해도 못 찾겠네요. 죄송합니다.

 

 


 


10.入滅  입멸

比丘達よ、私はお前達に告げる。現象は移ろい易い、片時として一定の相をとどめることはない。移ろい易い現象に心をとどめることなく、心を法によって統制してわがままに、心を放逸にしないようにしこの世に生まれた目的を果たしてゆきなさい」
このように最後の訓戒をされた。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알린다.  현상은 변해 가기 쉽고, 잠시도 일정한 상[相 모습]을 멈추는 일은 없다.  변해 가기 쉬운 현상에 마음을 멈추는 일 없이, 마음을 법에 의해서 통제해서 마음대로, 마음을 방일하지 않도록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완수해 가십시오」
 이와 같이 최후의 훈계를 하시었다.

「仏陀」「ブッダ」という本当の意味は
「宇宙創造の神と一体となり、その神の意志を誤ることなく伝える力を持たれた方」と言う事である。
 このような力を持たれた仏陀と、共にこの世に生を受けて、しかも直接、法を受けることが出来るという機縁は全くあることが難しいほどの有り難い縁なのである。

「불타」「붓다」라고 하는 진실한 의미는
「우주창조의 신과 일체가 되어, 그 신의 의지를 그릇되는 일 없이 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을 가지신 불타와,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게다가 직접, 법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하는 기연[부처의 가르침을 받을 인연]은 아주 있을 수가 어려울 정도의 고마운 인연인 것이다.

頭を低く垂れて最後の訓戒を聞いていた比丘達は、そのことを深く感謝し、教えに背くまいと固く心に誓うのであった。  

고개를 낮게 숙이고 최후의 훈계를 듣고 있던 비구들은, 그 일을 깊이 감사하고, 가르침에 등을 돌리지 않으리라고 굳게 마음에 맹세하는 것이었다.    
 

舎利佛、大目蓮が亡くなった後、後事を託そうと思っていられた迦葉はその時、マガタの南方を遊行していたが、お釈迦さまの入滅が近いことを感じ、五百の比丘を連れて北上しつつあった。しかしお釈迦さまの肉体は迦葉の到着を待つまでには耐えられなかった。

사리불, 대목련이 돌아간 후, 후사를 부탁하려고 생각하고 계시었던 가섭은 그 때, 마가다 남방을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고 있었지만, 부처님의 입멸이 가까운 것을 느끼고, 500명의 비구를 데리고 북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육체는 가섭의 도착을 기다리기까지는 견딜 수가 없었다.


もはや意識は肉体を去るべき時が来た。お釈迦さまは横になられたまま禅定に入られた。初禅から第二禅へ、第二禅から第三禅へ第三禅から第四禅へ、そうして最高の滅尽定へ、滅尽定の境地が「宇宙即我」である。 

이제는 의식은 육체를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부처님은 누우신 채로 선정에 들어가시었다.  초선에서 제2의 선으로, 제2의 선에서 제3 선으로 제3에서 제4의 선으로, 그렇게 해서 최고의 멸진정으로, 멸진정(滅尽定)의 경지가「우주즉아」이다.

 

※.めつじん‐じょう[:ヂャウ]【滅尽定】-日本国語大辞典 멸진정- 일본국어 대사전
〔名〕仏語。感覚、意識のはたらきをすっかり止めてしまう禅定。*顕戒論〔820〕上「小乗入滅尽定、則形猶枯木、無運用之能」*今昔〔1120頃か〕四・二九「此は出家の羅漢の滅尽定に入れる也」*

 감각, 의식이 활동을 완전히 멈추어 버리는 선정. ..........참고만 하세요.  사전상의 의미와 글의 의미는 다릅니다만,

禅定に入って呼吸を統一し五官の感覚を去ると、禅定している肉体を見下ろしている自分がある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る。肉体は現象、仮の相であって見下ろしている意識それこそが本当の自分、本当の霊であることをはっきり自覚すると、その意識、霊はぐんぐん高く上り大きくなり、やがて宇宙いっぱいにひろがる。太陽の、星も、地球も、全てのものが自分の中にある。自分が宇宙の中心にあってしかもなお、地球の上に座って禅定している自分の肉体を見ることができる。そこまでゆくと、人間は皆同じ神の生命の兄弟であり、森羅万象、この世のもの一切はみな、神の生命によって生かされていることが、観念としてではなく、実感としてわかってくるその荘厳さは体験したものでないとわからない

선정에 들어가서 호흡을 통일하고 오관의 감각을 떠나면, 선정하고 있는 육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육체는 현상, 거짓의 상(相 모습)이며 내려다보고 있는 의식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자신, 진정한 영혼(霊)인 것을 확실히 자각하면, 그 의식, 영혼(霊)은 점점 높이 올라가고 크게 되어, 이윽고 우주 가득히 넗혀간다.  태양의, 별도, 지구도, 모든 것이 자신의 안에 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으로 있고 게다가 역시, 지구 위에 앉아서 선정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를 볼 수가 있다.  거기까지 가면, 인간은 모두 똑같은 신의 형제이며, 삼라만상, 이 세상 자체의 일체는 모두, 신의 생명에 의해서 소생되어지고 있는 것이,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실감으로서 알게 되어 그 장엄함은 체험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알 수 없다.

 

이 부분의 좀 내용상 납득이 안됩니다만, 그래로 풀었습니다.

阿難は、お釈迦さまが微動だもされず、呼吸もあるかなしかで静かなので、もはや入滅されたのではないかと、阿那律に聞いた。天眼第一の阿那律はまだ入滅されたのではない、減尽定、宇宙即我に入られたのであると答えた。やがてお釈迦さまは減尽定、宇宙即我の境地から再び肉体に意識を戻され、改めて、悟りの環境を提供してくれたインドの天地自然に、自分の肉体を提供してくださった両親に、また養育して下さった養母に、ひとたびは妻とし子としたけれども、出家し悟りを開いてからは妻として子として遇することはなく、ただ法の弟子としてのみ遇したかつての妻や子に、また集い来たった縁生の弟子達に感謝され、これから全世界の人類が仏法によって救われてゆくことを祈念され、如来として仏陀として出生し、使命を果たして天上界へ帰ることが出来ることを喜びながら再び禅定に入られ、第四禅へ進まれ、そこからいよいよ入滅された。

아직도 아라한이 되어 있지 않은 아난은, 부처님이 미동도 하지 않고, 호흡도 있는지 없는지 조용한 것인데, 이제는 입멸하신 것은 아닌가라고, 아나진에게 들어보았다. 천안 제1의 아나률은 아직 입멸하신 것이 아닌, 멸진정, 우주즉아에 들어간 것이라 고 대답했다.  이윽고 부처님은 멸진정, 우주즉아의 경지에서 다시 육체로 의식을 되돌리고, 다시, 깨달음의 경지를 제공해 준 인도의 천지자연에게, 자신의 육체를 제공해 주신 양친에게, 또한 양육해 주신 양모에게, 한 번은 아내로서 아들이었지만, 출가해서 깨달음을 열고 나서는 아내로서 아들로서 대접한 일은 없고, 이제는 법의 제자로서만 대접한 예전의 아내나 아들에게, 또한 모여든 연생의 제자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제부터 전세계의 인류가 불법에 의해서 구원되어 가는 것을 기념하시며, 여래로서 불타로서 출생하고, 사명을 완수해서 천상계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을 기뻐하면서 다시 선정에 들어가시어, 제4선으로 나아가며, 거기에서 정말로 입멸하시었다.

入滅と共に、大地は振動し、天鼓は鳴り阿那律や阿難をはじめ比丘達は口々に、お釈迦さまを讃え、入滅を惜しむ詩偈を唱えた。悟っている者は、この世の定めであると思って悲しみに堪えていたが、あるものは嘆き悲しんだので阿那律はそれらの人々に改めて、諸行が無常でであることを説き明かした。

입멸과 함께, 대지는 진동하고, 천고[천둥]을 울려퍼지며 아나률이나 아난을 시작해서 비구들은 저마다, 부처님을 찬양하고, 입멸을 아쉬워하는 게를 읊었다.  깨닫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슬픔을 참아내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한탄하며 슬퍼하고 있는 것인데 아나진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시, 제행이 무상함을 분명히 설명했다.

 

※시게[詩偈] 혹은 게[偈] 《일본어 사전/일본국어 대사전 》
〈佛〉 게. 가타(伽陀). 운문체(韻文體)의 경문(經文)의 하나. 부처의 덕(德)과 가르침을 칭송하는 시.

 

※.あなりつ【阿那律】 아나리츠[아나률] 《일본국어대사전》
〔補説〕 (梵) Aniruddha釈迦十大弟子の一人。釈迦の従弟で、天眼第一といわれた。
〔보충설명〕 (범어) Aniruddha(아니룻다) 석가 10대 제자의 한 사람.  석가의 사촌동생이며, 천안제일 이라고 불리운다.
또한, 아니룻다의 친 형의 이름은 마하 나만(兄・摩訶男[마하남])이다.  아나리츠는 일본식 발음이다.


※ 아난[阿難]은 아난다[阿難陀, Ananda]라고도 부르며, 높여 부르는 말은 아난존자[阿難尊者]이다. 

 

또한, 인도에서 활동한 석가모니의 사촌이자 주요제자 중 한 사람.줄여서 '아난[阿難] '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사랑하는 제자'이며 헌신적인 동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난다는 석가모니가 설법을 시작한 지 2번째 해에 승가에 들어왔고, 25년째부터는 석가모니를 계속 곁에서 모셨다. 율장(律藏 Vinäya Piṭaka) 계통의 경전들에 따르면, 여성의 출가를 그다지 허락하려 하지 않던 석가모니를 설득하여 여성 출가의 길을 연 것도 아난다였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죽었을 때 그의 친근한 제자 가운데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던 이는 아난다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제1결집(BC 544경/480)이 행해지기 바로 전에 깨달음에 이르렀고, 그 결집에서 '경장'(經藏 Sutta Piṭaka)을 암송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 아난다는 초기 불교 경전의 여러 장면에서 석가모니와 대담자로 등장하며, 몇몇 장면에서는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고 직접 대답해주는 일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장로게(長老偈) Theragāthā〉에는 그가 지었다고 하는 일련의 시들이 실려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12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출처《브리니테커 백과사전》


 

 


 


11.遺骸の供養  유해의 공양

阿那律と阿難は、その夜は法話を持って過ごしたが、明け方になると阿那律は阿難に命じてマツラー族の人々にお釈迦さまの入滅を伝えさせた。マツラー族の人々は花輪や香や楽器を集め、五百重ねの布を持って周囲に幕を張り、一週間が過ぎ、遺骸を荼毘にするために、マツラー族が問う載冠式をやる天冠寺に移し、転輪王の葬法に従って棺を幾重にも囲み、あらゆる香木をもって薪とした。荼毘にしようとしたが遺骸は燃えなかった。

아나률과 아난은, 그 밤은 법화를 갖고 보냈지만, 새벽녘이 되자 아나률은 아난에게 명하여 마츠라족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입멸을 전하게 했다.  마츠라족 사람들은 화륜이나 향이나 악기를 모으고, 거듭거듭 쌓아 올린 포목을 가지고 주위에 막을 치고, 일주일이 지나서, 유해를 다비[화장]하기 위해서, 마츠라족이 말하는 재관식을 행하는 천관사(天冠寺)로 옮기고, 전륜왕의 장법에 따라서 관을 거듭거듭 에워싸고, 온갖 향목을 가지고 장작을 쌓았다.  다비를 하려고 했지만 유해는 불에 타지 않았다. 
 

 


 


12.ラマバルの塚  라마바루의 무덤(荼毘塚)

遺骸を荼毘にした天冠寺の跡は、涅槃堂の門を出て南へ1km程行くと、今はレンガを積み上げた大きな塚となっている。日本で火葬する所はどこでも陰湿な所ばかりであるが、クシナガラの林を出たこの辺りは北インドの青々とした空が果てしなく広がり非常に明るい所であった。ブーゲンビリアの花が真っ盛りで、その色の赤さは日本では見られない程鮮やかであった。かつてはこの上を土と草が覆って、木が生えていたそうであるが、今はことごとく除かれてレンガの塔だけになっている。この塚の両側に小さな川があって牛が遊んでいた。私はこの塚の周りを巡りながら、お釈迦さまの荼毘に馳せ参じた人々の心を思いやった。そうして、この塚のレンガを、一枚一枚積み上げていった昔の人々の心を思いやった。親の死も悲しが、子どもの死も悲しい、確かに愛し合って来た家族のものの死は悲しい。しかし、それにもまして、魂の師と仰ぐ人の死は悲しい、諸行は無常である、生まれた者は必ず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死する者に執着してはならないと教えられただけにその死は悲しい。しかし、北インドのこの辺りの天地の明るさは、人々の悲しみを許さない程底抜けに明るい。私は今度の仏蹟巡拝に一緒に来れなかった妻のために、レンガとレンガの小さな隙間に生えていた小さな名も知らぬ草花を手折ってノートにはさんだ。

유해를 다비를 한 천관사의 발자취는, 열반당의 문을 나와서 남쪽으로 1km정도 가면, 지금은 벽돌을 쌓아 올린 큰 무덤으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화장하는 장소는 어디든지 음습한 장소 뿐이지만, 쿠시나가라의숲을 나온 이 근처는 북인도의 청명한 하늘이 끝없이 넓고 상당히 밝은 장소였다.  부겐빌레아[라 Bougainvillea] 꽃의 만발하고, 그 색이 붉음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선명했다.  옛날에는 이 위를 흙과 풀이 덮이고, 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모조리 베어버리고 벽돌탑뿐으로 되어 있다.  이 무덤의 양측에 작은 내가 있고 소가 뛰놀고 있었다. 나는 이 무덤 주위를 둘러 보면서, 부처님의 다비에 급히 달려갔던 사람들이 마음을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이 무덤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렸던 옛날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했다.  부모의 죽음도 슬프지만, 아들도 죽음도 역시 슬프고, 확실히 서로 사랑해 온 가족의 사람의 죽음은 슬프다.  그렇지만,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영혼의 스승으로 공경하는 사람의 죽음은 슬프다. 제행은 무상이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은 사람에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죽음은 슬프다.  그렇지만, 북인도 이 근천의 천지의 밝음은, 사람들의 슬픔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밝다.  나는 이번의 불교유적순배에 함께 오지 못한 아내를 위해서, 벽돌과 벽돌의 작은 틈새에 피어 있는 작은 이름도 모르는 화초를 꺽고 노트에 끼었다.

迦葉は一行と共にパーグー城からクシナガラへの道を急いだ。先方から一人の遊行僧が来た。手に花を持っている聞いてみると、お釈迦さまが入滅されて既に一週間になり、この花はお供えしたものを分けてもらって来たのであると。迦葉の一行は、ようやく天冠寺に到着し、遺骸に対して礼をなし礼拝すると、初めて火が燃え上がった。

가섭은 일행과 함께 파구성에서 쿠시나가라로 길을 서드렀다.  앞 쪽에서 한 사람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스님이 왔다.  손에 꽃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들어 보니, 부처님이 입멸하신지 이미 일주일이 지나고, 이 꽃은 공양한 것을 나눠 주려 온 것이라고.  가섭 일행은, 차츰 천관사에 도착하고, 유해에 대해서 예를 드리고 예배를 하자, 비로소 불이 타 올랐다.

 

※마하가섭 [염화미소, 대가섭, 염화시중, 가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하가섭(摩訶迦葉, 산스크리트어: Mahākāśyapa)은 싯다르타 고타마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이다. 가섭, 대가섭(大迦葉) 또는 의역하여 대음광이라고도 부른다.

 

인도의 왕사성 마하바드라의 거부였던 브라만 니그루다칼파의 아들로서 태어났다. 비팔라 나무 밑에서 탄생하였으므로 비팔라야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 청결한 인물로서 불타의 신임을 받아 문하생 중에서 상위를 차지하였다. 싯다르타가 입멸한 후 비탄과 동요하는 제자들을 통솔하여 교단의 분열을 막았으며 제1회 불전 결집을 지휘하였다. 영취산(靈鷲山)에서 싯다르타가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고사(故事)가 전해진다. 선종에서는 가섭을 부법장 제1조로 높이 받들고 있다.

 

※마하가섭(摩訶迦葉]   《한자사전》
불타의 10대 제자(弟子) 중(中)의 한 사람. 부호의 아들로 바라문(婆羅門)의 수행(修行)을 하였는 데, 뒤에 불(佛)에 귀의(歸依)하여 소욕지족(小欲知足)의 두타행(頭陀行) 제 1의 성자로서 크게 중요시(重要視)되었음. 대가섭

 


 


13.仏舎利の分配  부처님 사리의 분배

教えお釈迦さまの入滅を聞いて諸方の国王や有力者達がクシナガラに集まって、仏舎利を求めたが、マツラー族の人々は、ここで入滅をされたのであるから他国へは譲るわけにはいかないと拒絶したので争いが起こり、血の雨が降りそうになった。その時、ドーナーというバラモンが仲裁に立ち、お釈迦さまは忍辱を説かれたではないか、遺骨の分配のことで争うことは、平素のお釈迦さまのに背くことである、と説いて生前の信奉者に等分に分ける方がよいということになり、八分されることになった。

부처님의 입멸을 듣고 여러 방면의 왕국이나 유력자들이 쿠시나가라에 모여들어, 부처님의 사리를 찾았지만, 마츠라족 사람들은, 여기에서 입멸하신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는 물려줄 수는 없다고 거절한 것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서, 피비가 내리게 되었다.  그 때, 도나 라고 하는 바라몬이 중재에 나서서, 부처님은 인욕을 설법하신 것이 아닌가, 유골의 분배의 일로 다투는 일은, 평소 부처님의 가르침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며 생전의 신봉자에게 동등하게 나누는 방법이 좋지 않은가 하여, 팔분하게 되었다.


一、クシナガラのマツラー族
二、マガタ国のアジヤセ王
三、ヴェーサーリーのリッチャヴイ族
四、カピラの釈迦族
五、アツラカッパのブリ族
六、ラーマガーマのコーリヤ族
七、ヴエーダデーヅのバラモン
八、パーグーのマツラー族

일, 쿠시나가라의 마츠라족
이, 마가다국의 아쟈세왕(아함세[阿闍世]왕)
삼, 베잘리의 릿차비족
사, 카필라의 석가족
오, 아츠라캇바의 부리족
육, 라마가다의 고리야족
칠, 베다테이드의 바라몬
팔, 바구의 마츠라족

それぞれ持ち帰って仏舎利塔を建てて供養した。仲裁者のドーナーバラモンも舎利が納められた瓶をもらった。分配が終わってからやって来たモーリヤ族は、仕方なしに灰をもらって帰り、灰塔を建てた。
在家の信者のために、合計十の塔が建てられた。出家した弟子達は、お釈迦さまが説かれた法と律を結集した。

저마다 가지고 돌아가서 사리탑을 세워서 공양했다.  중재자인 도나바라몬도 사리가 담긴 병을 받았다.  분배가 끝나고 나서 찾아온 모리야족은, 달리 방법이 없어서 재를 담아서 돌아가서, 회탑을 세웠다. 
재가의 신자들을 위해서, 합계 10의 탑이 세워졌다.  출가한 제자들은, 부처님이 설법하신 법과 계율을 결집했다.

お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て二百年後、アショカ王は深く仏教に帰依し、全インドに仏教を広めるために伝道師を派遣し、八カ所の仏舎利塔を開いて、更に細分し全インド八万四千の仏舎利塔を建てて祭られたと言われている。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200년 후, 아쇼카왕은 깊이 불교에 귀의하고, 전 인도에 불교를 넓히기 위해 전도사를 파견하고, 8개소의 불사리탑을 열고, 다시 세분하고 전 인도 8만 4천의 불사리탑을 세워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1898年、フランスの考古学者ペ;ツペはカピラに近いピプラーヴァーで、一個の完全な蝋石(ろうせき)の壺を発見した。その壺の表面には、お釈迦さまの遺骨を納めるということが銘記してあった。

1898년, 프랑스의 고고학자로;츠베는 카필라로 피푸라버에서, 한개의 완전한 납석의 항아리를 발견했다.  그 항아리의 표면에는, 부처님의 유골을 수습한다 라고 하는 것이 명기되어 있었다.

 


 

 


14.クシナガラの月  쿠시나가라의 달은, 생략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유적답사를 가서, 정법지를 쓰신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의 감회를 적은 글이네요.



クシナガラに着いたこの夜は丁度満月であった。ロッジのインド料理の夕食の後、私は一人で涅槃堂へ行った。まだうすら寒かった3月の日本から来た身には、足元を飛び交うホタルが珍しかった。さらさらとなる菩提樹や、沙羅双樹の葉ずれの音は、お釈迦さまの入滅を悲しむすすり泣きのようにも思えた。

 遠くの畑で仕事をしての帰りであろうか、牛車に子供を乗せて家路を急ぐ人たちもあった。

 涅槃堂の真後ろから上ってくる月は、蒼く冴えて、あんなきれいな月を見たのは初めてであった。その清々しい月の光の中に立ってる自分が、そのまま仏像になってしまうのではないかと思うほど、私は月光の中にたたずんでお釈迦さまのお心を心として生きたいと願った。

 お釈迦さまの心になることは出来なくてもそうありたいと願う自分の心が自分で愛おしく感ぜられて、私は精進を誓うのであった。



月刊誌 正法5号 (1979.01月)
月刊誌 正法6号 (1979.02月)
月刊誌 正法7号 (1979.03月) より
월간지  정법7호 (1979년 1월호)

월간지  정법6호 (1979년 2월호)

 

 

월간지  정법7호 (1979년 3월호)에서

 

 


 

 

15.最後の弟子-百十七歳のシヴリダ  최후의 제자 117세의 시부리다

プッタの説く法は、自然の姿をとおして、人間の在り方を、当時の衆生に説き明かして行きました。

붓타가 설명하는 법은, 자연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자세)을, 당시의 중생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가셨습니다.

プッタの教えは、八正道を心の物差しとして、調和された安らぎの道につけと常に説き、転生輪ねの法を肉体的に示し、万象万物は相互の関係にあって安定しているのだから、感謝の心を持ち、報恩の行為を実践することが大切である、と教えるのでした。報恩の行為としては、自分の環境に応じて奉仕と布施の実践活動をする。社会人類のために果たすべき人の道、を教えるのでした。

붓타의 가르침은, 팔정도를 마음의 척도로 삼고, 조화된 평안의 길에 도달하라고 항상 설명하고, 전생윤회의 법을 육체적으로 나타내 보이시고, 만생만물은 상호관계에 있고 안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다.  보은의 행위로서는, 자기 자신의 환경에 응해서 봉사와 보시의 실천생활을 한다.  사회인류를 위해 완수해야 할 사람의 도리, 를 가르치신 것이었다.

そして、その四十五年間の道は、慈悲と愛の塊のようにすごしたもので、常に、
「人類はみな兄弟だ。貧乏人も金持ちも、地位の差に関係なく、みなプッタの子であり、生まれた環境は、自らが選んだものであり、その環境をとおして悟り衆生を済度するための目的を持って生まれてきたのである。」
 と、原因と結果の法則を説き、悟りへの道を示したのでした。

그리고, 그 45년 간의 길은, 자비와 사람의 덩어리와 같이 보내신 것인데, 항상,
「인류는 모두 형제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지위의 차에 관계없이, 모두 붓타의 자녀이며, 태어난 환경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며, 그 환경을 통해서 깨달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
라고,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설명하고, 깨달음을 향한 길을 제시한 것이었다.
 
八十一歳のとき、クシナガラの地で多くの比丘、比丘尼に見守られながら、プッタが最後の説教をしたときのことです。年老いた一人のサロモンが、入り口のところで、、ゴーダマ・プッタに紹介してくれと、問答をしているのを、横になって休んでいて聞き、秘書役のアナンダに命令しました。
「私の最後の弟子がきた。ここへとおしなさい」
 そのサロモン、シヴリダは、すでに百歳をはるかに越し、あらゆる修行をしてきたバラモン種でしたが、今世のうちに、本当のプッタに合いたいと思い、瘠せおとろえた身を杖に託して、ようやくクシナガラの地に辿りついたのでした。今まで、探し求めては会った師も多かったのでですが、会ってみると、そのほとんどが自称プッタであり、もしゴーダマ。プッタも偽りのプッタであったならば、この場を黙って去ろうと決心しながらシヴリダはたずねてきたのでした。

81세의 당시, 쿠시나가라의 당에서 많은 비구, 비구니를 지켜 보면서, 붓타가 최후의 설교를 했을 당시의 일입니다.  연노하신 한 명의 사로몬이, 입구에서, 고다마붓타에게 소개해 달라고, 문답을 하고 있는 것을, 누어서 쉬고 있으면서 듣고, 비서격인 아난다(阿難陀, Ananda)에게 명령했습니다.
「나의 최후의 제자가 왔다. 여기로 데려 오시오」
  그 사로몬, 시부리다는, 이미 100세를 월등히 넘기고, 온갖 수행을 해 왔던 바라몬종이었지만, 금세의 동안에, 진실한 붓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여위고 쇠약해진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차츰 쿠시나가라 땅에 길을 물어 가며 고생 끝에 겨우 당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찾고 찾아서는 만난 스승도 많았던 것이지만, 만나 보면, 그 대부분이 자칭 붓타이며, 만약 고다마.  붓타도 거짓인 붓타였다면, 이 장소를 조용히 떠나겠다고 결심하면서 시부리다는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しかし、この心を、プッタはすでに知っていました。アナンダは、ブッタがニイルヴァーナ(涅槃)に入るときが迫っているので、遠慮して貰いたいと思っていましたが、プッタのお声がかりでは仕方がないと諦め、ブッタの前に、その老人の手を引いて案内するのでした。シヴリダは、プッタの枕辺に座すと、
「私は、今年で、百十七歳になるバラモンのサロモン、シヴリダと申します。私は、最高の悟りを得られた方を探し求めてあらゆる地を歩きました。その中には、プッタと名乗る人々もいましたが、私には納得できませんでした。本当の、サロモンとはどういう人をいうのでしょうか、教えて戴きたいのです」

그렇지만, 이 마음을, 붓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난다(阿難陀, Ananda)는 붓타가 니르바나(열반)에 들어가실 때가 입박해 있는데, 원려해서 말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붓타의 목소리가 들여와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체념하고, 붓타의 앞으로, 그 노인의 손을 이끌고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부리다는, 붓타의 머리맡에 앉자, 「저는, 지금까지, 117세가 되는 바라몬의 사로몬, 시부리다라고 합니다. 저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해 주실 분을 찾고 찾아서 모든 땅을 걸었습니다.  그 중에는, 붓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진실한, 사로몬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両手を差し出し、土の上に頭をつけて、そう語るのでした。言葉は、老齢のためか、とぎれとぎれでした。 

양손을 내밀고, 땅 위에 머리를 붙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노령한 때문인지, 여러 차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고 있었다.


プッタはそれに力強く、こういいました。
「シヴリダよ、良くきてくれた。世の中には、自らプッタと称しながら、その心と行いには矛盾の多い者達がいる本当のサロモンとは、生老病死の苦しみから解脱するため、自ら片よりのない心を持ち、中道の物差しを持って歩んだ者をいう。中道の物差しとは、八正道をいうのである。この正道を、毎日の生活の中で実践してこそ、心のわだかまりがなくなり、一切の恐怖心から除かれて、安らぎの人生を送れるようになるのだ。苦しみは自らの悪い心と行いによって原因を作り出しているものだ。そのため、人は執着から離れ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正しく生きることができないのだ。八正道の道を行じている者、それが本当のサロモンというものだ

붓타는 그것에 힘을 실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부리다여, 잘 와주었다. 세상에는, 스스로 붓타라고 칭하면서, 그 마음과 행위에는 모순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진실한 사로몬이란, 생로병사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 스스로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중도의 마음의 척도를 가지고 걷는 사람을 말한다.   중도의 마음의 척도란, 팔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올바른 도리를, 매일의 생활속에서 실천해야만 비로소, 마음속에 맺힌 꺼림한 느낌(=특히 불신·불만·의혹 등의 감정)이 없어지고, 일체의 공포심를 제거할 수 있게 되어, 평안한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괴로움은 스스로의 나쁜 마음과 행위에 의해서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 올바르게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팔정도의 도리를 행하고 있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사로몬이라고 하는 것이다

常と変わらない声音と言葉で、プッタは、シヴリダに道を説くのでした。シヴリダは大粒の泪を流し、心を打たれ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お言葉が、私の心の中にしみ渡り、嬉しさが心から湧き出てまいり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感激に言葉にならない有様で礼をいうのでした。プッタはシヴリダが、心から理解したことを賞めるのでした。シヴリダは、
「ゴーダマ・プッタ、私を弟子にして下さい。プッタのニイルヴァーナ(涅槃)に入られるのを見てはおられません。私は、一足先に往き、プッタのお帰りになるのをお待ちしたいのです。お許し下さいますか」
 と頭を上げ、プッタに希望を述べるのでした。見守っている弟子達も、シヴリダの心を察し、美しく悟ったその姿を見て、すすり泣くのでした。それは、静かな森に、しみ入るようなすすり泣きの声でした。プッタは、
「シヴリダよ、望みのとおりにするのが良かろう」と暖かい慈愛の言葉をかけるのでし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と身体を起こして、シヴリダは、プッタのそばにいた諸々の弟子達にも挨拶をしました。
「サロモン・サマナー、アラハン・シヴラーの先輩のみな様、私はプッタの弟子になりました。先輩をさしおいて失礼ですが、プッタよりお先に、ニイルヴァーナに入らせて戴きます。
 私は、一切の執着から離れて、心が安らかになりました。みな様の活躍を心から祈ります。ではプッタ、お先に失礼いたします」

항상 변함없는 음성으로 말하며, 붓타는, 시부리다에게 도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시부리다는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감사합니다. 말씀이, 저의 마음속에 온통 스며들며, 기쁨이 진심으로 솟아나옵니다・・・・・・・・・감사・・・・・・합니다・・・・・・」
  감격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예를 표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붓타는 시부리다가, 진심으로 이해한 것을 칭찬한 것이었습니다.  시부리다는,
「고다마・붓타,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붓타의 니루바나(열반)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지 않겠습니다.  저는, 한발 앞서 가서, 붓타가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라고 고개를 들며, 붓타에게 희망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도, 시부리다의 마음을 살피고, 아름답게 깨달은 그 모습을 보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조용한 숲에, 스며드는 듯한 흐느낌의 소리였다.  붓타는,
「시부리다여, 바램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온화한 자비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신체를 일으키고, 시부리다는, 붓타의 곁에 있던 많은 제자들에게 인사말를 건냈습니다.
「사로몬・사마나, 아라한・시부라의 선배 여러분, 저는 붓타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선배를 놔두고 실례합니다만, 붓타 보다 먼저, 니루바나에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서, 마음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활약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럼 붓타,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それは、最後の、生命の灯がゆれるのにも似た言葉でした。終わると同時に、シヴリダは、あたかも枯木が朽ちて倒れるように、プッタのそばで大往生をしたのでした。すでにその頃、シャリー・プトラーも、マハー・モンガラナーも、プルナ・ヤニ・プトラーも、この世の人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그것은, 최후의, 생명의 불꽃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끝남게 동시에, 시부리다는, 마치 고목이 썩어 넘어지듯이, 붓타의 옆에서 대왕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 무렵, 샤리・부트라(사리불 舍利弗 Śāriputra):도, 마하・몽가라나(목건련 目建連 Maudgalyayāna)도, 부르나・야니・부트라(富樓那 Pūrna)도,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プッタはそれを見ると、静かに眼を閉じながら、四十五年の正道の流布の道をふり返り、苦しい呼吸の中で、笑顔さえ見せて思い出に耽るのでした。

붓타는 그것을 보자, 조용히 눈을 감으시면서, 45년의 정도의 유포의 길를 되돌아보녀, 괴로운 호흡속에서, 미소마저 보이며 추억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そのとき、アナンダは、問いました。
「プッタ・・・・・・プッタ・・・・・・プッタがニイルヴァーナに入られたのち、私達はどのようにしたら良いでしょうか。それからご遺骸の処置は・・・・・・」
 しばらくしてから、プッタは答えました。
「アナンダよ、私の説いた法は、お前達の心の中に永遠に残るだろう。この法を、迷える衆生の心にしっかりと教え、救済しなくてはならない。
 それは、比丘、比丘尼の道であろう。
 私の肉体は亡びても、心は常にお前達のそばにいるのだ。
 今、太陽は沈んでいるが、明日になればまた東から昇るであろう。私の姿が見えなくなっても、決して悲しいことではないのだ。
 淋しいときには、私の生まれたルビニを思い出すが良かろう。最初に悟りを開いたウルヴェラの地を思い出すのも良いだろう。
 またパラナシーのミガダヤは、私が最初の説法をしたところだが、その地を思い出すのも良いだろう。
 そのほか、各地のヴェナー(精舎)やグリドラクターもお前達の心の中に残っているだろう。
 生在る者は、必ず滅するのだ。このことを悲しがってはならないのだ。
 私の遺骸は、ウパシカ、ウパサカ(在家)の衆生が処置するであろう。
 お前達は、正道を諸々の衆生に説き、その苦しみから解脱させることが大切だ。そのことが、私に対しての報恩ともなるのだ。 

그 때, 아난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붓타・・・・・・붓타・・・・・・ 니르바나에 들어가신 후에,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리고 나서 유골의 처치는・・・・・・」
    잠시 후에, 붓타는 대답했습니다.
「아난이여, 내가 설명한 법은, 너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 법을, 방황하는 중생의 마음에 확실히 가르치고,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비구, 비구니의 길인 것이다.
   내 육체는 죽을지라도, 마음은 항상 너희들의 곁에 있을 것이다.
   지금, 태양은 저물고 있지만, 내일이 되면 또한 동에서 떠오를 것이다.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결코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쓸쓸할 때에는, 내가 태어난 룸비니를 상기하면 좋을 것이다.  최초의 깨달음을 연 우르베라의 땅을 생각해 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바라나시(波羅奈)의 미가다야<사르나트([녹야원鹿野苑])> 는, 내가 최초의 설법을 했던 곳인데, 그 땅을 생각해 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밖에, 각지의 베나(정사)나 구리드라쿠타도 너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사람은,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다.  이 일을 슬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의 유해는, 우파시카, 우파사카(재가)의 중생이 처치할 것이다.
    너희들은, 정도를 많은 중생에게 설명하고, 그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 일이, 나에 대한 보은도 되는 것이다.

アヌプリヤの森が、天変地異におそわれたとき、岩山は割れ、大雨が降りそそぎ、割れた岩山は谷川と変わってしまった。小さな動物達は、逃げ場を失って、右往左往の大騒ぎとなった。そのとき、一匹の逃げ遅れた年老いた大象は、その谷をみつめていた。周囲の、逃げ場を失った小さな動物達の姿を見たとき、その老いた大象は、余生いくばくもないことを知り、自らその巨体を岩山の割れ目に入り、小動物達を広い彼の岸に渡してやって死んだ。  

아누프리야 숲이,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바위산은 쪼개지고, 큰 비가 쏟아져서, 쪼개진 바위산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물로 변해 버렸다.  작은 동물들은, 도망갈 곳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하며 큰 소란을 피웠다.  그 때, 한 마리의 도망치는 것이 더딘 연로한 큰 코키리는, 그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의, 도피처를 잃어버린 작은 동물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늙은 큰 코끼리는, 남은 생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스스로 그 큰 몸을 바위산의 갈라진 틈새로 들어가서, 작은 동물들을 넓은 저 언덕으로 건너게 해 주고 죽었다.

お前達も、迷ってはならない。私をその年老いた大象のように踏み台として、多くの迷える衆生を、勇気と智慧と努力を持って、迷いの岸から、悟りの彼岸へ導かなくてはいけない。
やがて私の法は、マンデヤ、デイシヤ(中国)に渡り、ジャブ・ドウバーのケントマティにつたわって行くだろう。私は、そのときには多くの弟子達と共にまた生まれ変わって、この道を説こう」

너희들도, 방황해서는 안 된다.  나를 그 연로한 큰 코끼리처럼 발판으로 삼아, 많은 방황하는 중생을, 용기와 지혜와 노력을 가지고,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머지 않아 나의 법은, 만데샤, 테이샤야(중국)으로 건너가서, 쟈부・도우바켄트마티((도회지 都會地 .사람이 많이 살고 상공업이 발달한 번잡한 지역의 동방의 나라)로 건너 갈 것이다. 나는, 그 때에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역시 환생하여, 이 도리를 설명할 것이다」


※사람이 많이 살고 상공업이 발달한 번잡한 지역인 동방의 나라 [ジャブ・ドウバーのケントマティ]
調和への道のり →宗教の変遷と神理への道 →2.太古から紀元前後へ 의 내용의 끝부분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やがて、釈迦釈迦の教えは北伝(大乗)、南伝(上座部)とわかれ、天台智顗により中国において中興、東方へと伝わり末法の時代、釈迦が予言したジャブドーバー(東方の国)のケントマティ(都会)において、天上界での計画に即して、その教えは再来した。[41] 高橋信次 편의 내용에서 ...
조화로의 길 →종교의 변천과 신리로의 길 →태고에서 기원전후로
... 이윽고, 석가의 가르침은 북전(대승), 남전(상좌부)라 나뉘어져, 천태지의에 의해서 중국에서 중흥하여, 동방으로 전해지며 말법의 시대, 석가가 예언한 쟈부도바(동방의 나라)의 겐토마티(도회)에서, 천상계에서의 계획으로 즉시, 그 가르침은 재현했다.

※출처:http://ja.wikipedia.org/wiki/%E9%AB%98%E6%A9%8B%E4%BF%A1%E6%AC%A1_(%E5%AE%97%E6%95%99%E5%AE%B6)

 

The teachings of Siddhartha came to be divided into the Northern Tradition (Mahayana) and Southern Tradition (Theravada), and after Tendai Zhi-yi restored Buddhist teachings in China, it was introduced to the Eastern part of China in the Age of Mappou, there was a second coming of the teachings of Siddhartha, in line with the plan from the world above, in the city of Kentmati in Javadova (a country in the East) as Siddhartha had prophesized.[13]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Shinji_Takahashi


そばにいたマイトレイヤーは、プッタの背に手をやりながら、マンチュリヤー尊者、カチャナー尊者ウパリ尊者、スブティー尊者に、未来の再会を約して帰って行ったのでした。   

옆에 있던 마이트레이어는, 붓타의 등에 손을 대면서, 만츄리야존자, 카챠나존자, 스부티존자( 須菩提 Subhūti)에게, 미래의 재회를 약속하고 돌아갔던 것이었다.

アニルッタは、プッタの禅定の様子を心の眼で見ていましたが、プッタが遂に九禅定に入り、ニイルヴァーナされたことを知ると、そのことを周囲の比丘、比丘尼達に告げました。比丘達は、それを聞くと、いっせいに悲しみの泪に暮れました。その悲しみの声は、森の静けさを破り、四辺に満ちて行くのでした。

 

 

아니룻타(아나율 阿那律 Aniruddha)는, 붓타의 선정의 상태를 마음의 눈을로 보고 있었는데, 붓타가 특히 9선정에 들어가서, 니르바나되신 것을 알자, 그 일을 주위의 비구, 비구니들에게 알렸다.  비구들은, 그것을 듣자, 일제히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슬픔의 소리는, 숲의 정적을 깨고, 사방에 가득 차 가는 것이었습니다. 

そのことは、早馬により、ヴェサリーで説法していたマハー・カシャパーや、ヴェル・ヴェナー(竹林精舎)や、ジェーダー・ヴェナー(祇園精舎)、マハー・ヴェナー(大林精舎)に次々につたえられて行きました。

이 일은, 급사에 의해서, 베잘리에서 설법을 하고 있던 마하・카샤파(摩訶迦葉 Kāśyapa)나, 베르・베나(죽림정사)나, 제다・베나(기원정사), 마하・베나(대림정사)로 점차 전해져 갔습니다.

マーハー・カシャパーが弟子達とともにクシナガラの地に到達したのは、一週間後でした。
その地で荼毘にふし、その灰は、在家の人々によって処理されました。

마하카샤파가 제자들과 함께 쿠시나가라의 땅에 도달한 것은, 일주일 후였습니다.
그 땅에서 다비를 하고, 그 재는, 재가의 사람들에 의해서 처리되었다.

その後、マーハ・カシャパーが中心となり、アナンダは法を、ウパリは戒律を中心として担当、プッタの滅後九十日目に、ヴェル・ヴェナーの裏の洞穴の中で、第一回目の集会が行われました。
その中の指導者達は、マハー・カシャパー、ウパリー、スブティー、マーハー・カチャナー、アサジ、マンチュリヤー、マイトレイヤー、アヌルター、アナーダ・テイシャー、ウパシバなどで、集まった比丘、比丘尼達は総数四百七十六人の人々でした。

그 후, 마하카샤바가 중심이 되어, 아난다는 법을, 우바리는 계율을 중심으로 해서 담당하고, 붓타의 멸후 90일째에, 베르베나의 안쪽 동굴 속에서, 제1회째의 집회가 거행되었다.
  그 중의 지도자들은, 마하・카샤파(마하가섭 摩訶迦葉 Kāśyapa), 우파리(優波離 Upāli), 스브티(수보리 須菩提 Subhūti), 마하카챠나(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Kātyāyana), 아사지, 만츄리야, 마이트레이어(미륵 彌勒), 아누룻타(아나율 阿那律 Aniruddha), 아나다・테이샤, 우파시바 등이며, 모여든 비구, 비구니들은 총 476명이 사람들이었다.

 

★ 위의 인물들의 이름을 사전을 찾아서, 제가 첨가한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그런데, 찾지 못한 인도식 이름은 못 올렸습니다.



一部の比丘は、すでに小乗仏教への道に入り、分裂のきざしはすでに現れていました。しかし、こうしてそれぞれの弟子達は、プッターの四十五年間説いたプッタ・スートラを暗記して、その指導を、問題はあったがアナンダが行ったのでした。

일부의 비구는, 이미 소승불교로의 길로 들어가고, 분열의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저마다의 제자들은, 붓타의 45년동안 설명한 붓타스트라를 암기하고, 그 지도를, 문제는 있었지만 아난다(阿難陀).가 행한 것이었다.

このアナンダも、遂にアラハンの境地になり、結集の一員に決定されていたのです。
指導者は、各地方にそれぞれが散り、ジャブ・ドーバーで会いましょうという合言葉を残して、道を説いて行ったのでした。

이 아난다(阿難陀 Ānanda)도, 특히 아라한의 경지가 되어, 결집의 일원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도자는, 각지방에 저마다가 흩어져서, 쟈부・도우바(동방의 나라)에서 만나자고 서로 말을 남기고, 도리를 설명하려 갓던 것이었습니다.


高橋信次先生 著  「 原説般若心経 」より

다카히시 신지 선생님 저서 「원설반야심경」에서


※열반[ 니르바나 涅槃]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열반(涅槃, 산스크리트어: निर्वाण 니르바나 , 팔리어: निब्बान 니바나, 베트남어: Niết bàn, 중국어: 涅槃, 관화 병음: nièpán, 광동어: nihppùhn, 일본어: 涅槃 네한[*])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촛불이 흔들림을 멈출 때처럼) 바람 등이 "불기를 멈추다" 혹은 (열정 등이) "사라지다"라는 뜻의 단어 니르바나를 음역한 말이다. 명망있는 승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열반[涅槃]《시사상식사전》
‘등불이 꺼진다.’는 뜻으로 육체적인 욕망의 불을 끄고, 영원한 깨달음의 상태로 들어가는 성도(成道)나 해탈(解脫)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보통 번뇌를 없애고 고용해진 평정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해탈하여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지칭한다. 열반의 경지는 불교 수행의 최고 목표이며 궁극적인 도달점이다.

 

※열반[涅槃]《한자사전》
 불도(佛道)를 완전(完全)하게 이루어 일체(一切)의 번뇌(煩惱)를 해탈(解脫)한 최고(最高)의 경지(境地). 니르바나

 

★ 고유명사인 일본식 발음으로의 존자들의 이름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사전상에 찾기가 쉽지 않으네요. 죄송합니다.


お釈迦さまは、「私に握拳はない」といわれました。
高橋信次先生は、
「インドの時45年かけて説いたものを今度は7年で説いてしまった」
「園頭さん、僕は、話さ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みんな話をした。今日はなんの話をしましょうかね」
「私は皆さんに、〝信じろ〟といったことはないですよ。なぜ、どうして、と疑問を持てといっています。
 疑問を追及してゆくと最後は神理に到達するからです。」
とおっしゃった。

부처님은, 「나에게 움켜진 손은 없다」라고 말씀하시었다.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
「인도의 당시 45년에 걸쳐서 설명한 것을 이번에는 7년에 설명해 버렸다」
「노소가시라씨, 나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모두 말을 했다.  오늘은 무슨 말을 해 버릴까요」
「나는 여러분에게, 〝믿어라〟라고 말한 적은 없지요.  왜, 어째서, 라고 의문을 가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문을 추급해 가면 최후에는 신리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
라고 말씀하시었다.


高橋信次先生の著書、心の発見3部作(神理篇・科学篇・現証篇)・心の原点・人間釈迦 等、一連の著書を
しっかりと読み、誤りのない人生を送られることを祈ります。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마음의 발견 3부작(신리편과학편현증편)마음의 원점인간석가 등, 일련의 저서를
확실히 읽고, 잘못의 없는 인생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2011.02.20   園頭先生12周忌に寄せて

2011년 2월 20일 소노가시라 선생님의 12주념 기일에 부쳐서.


 

 

석가모니의 제자들 중 가장 유명한 10사람.《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원래 문헌을 통해서는 10대제자로 밝혀져 있는 인물은 일정하지 않다. 원시경전, 특히 〈증지부 增支部〉에서는 10대제자라고 한정하지 않고 비구나 비구니 또는 남녀 재가신자의 이름을 수십 명 열거하여 '□□제일'이라는 식의 표현으로 뛰어난 특성을 지닌 자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유마경 維摩經〉의 제자품에서 언급된 인물들이 10대제자로 고정관념화되어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사리불(舍利弗 Śāriputra):경전에서 흔히 부처의 설법 상대로서 '사리자'(舍利子)로 호칭되며 별명은 지혜제일이다. 갖가지 지식에 해박하고 통찰력도 빼어나서 제자들 가운데 으뜸으로 간주된다.

 

목건련(目建連 Maudgalyayāna):'목련'이라고도 불리며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대목건련이라 불린다. 신통력이 뛰어났다 하여 얻은 별명이 신족(神足) 제일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신통한 눈으로 보고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양을 드려 구출했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가섭(迦葉 Kāśyapa):대가섭·마하가섭이라 불러 다른 인물과 구분한다. 욕심이 적고 족한 줄을 알아 항상 규율을 엄격히 지켰다 하여 행법(行法) 제일 또는 두타(頭陀) 제일이라 했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라는 일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며 첫번째 결집(結集)을 주도했다. 불립문자의 전통을 세운 선종에서는 조사의 계보를 인도로부터 따질 때 그를 초대 조사로 간주한다.

 

수보리(須菩提 Subhūti):공(空)의 뜻을 가장 잘 이해했다 하여 해공(解空)제일이라 했다. 대승불교의 반야경에서는 항상 그가 공의 지혜인 반야바라밀을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부루나(富樓那 Pūrna):교화하는 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하여 설법제일이라 했다.

 

가전연(迦旃延 Kātyāyana):마하가전연이라고도 불린다. 교의에 대해 논하는 데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하여 논의제일이라 했다.

 

아나율(阿那律 Aniruddha):심원한 통찰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여 천안(天眼)제일이라 했다. ⑧ 우바리(優波離 Upāli):이발사라는 비천한 신분 출신이며, 교단의 규율에 정통하고 계율을 지키는 데 엄격했다 하여 지율(持律)제일이라 했다. 첫번째 결집에서 계율에 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하여 후대의 율장을 성립시켰다.

 

라훌라(羅睺羅 Rāhula):석가모니의 아들로서 출가의 장애가 되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교단 최초의 사미라고 하며,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은밀히 잘 실행했다 하여 밀행(密行) 제일이라 했다.

 

아난(阿難 Ānanda):석가모니의 사촌 형제이며 '아난다'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가 입멸할 때까지 25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시중 들고 가장 많은 말씀을 직접 들었으므로 다문(多聞)제일이라 했다. 첫번째 결집에서 석가모니가 직접 설한 가르침을 모두 암송해냄으로써 후대의 경장(經藏)을 성립시켰다. 《출처: 브리태니커》

     

 

※석가모니[釋迦牟尼]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석가모니는 불교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따라서 다음의 이름으로 대칭되기도 한다. (로마자 표기는 산스크리트어 표기)

 

여래(如來, Tathāgata): 참 됨을 몸소 갖추고 있는 분.
아라한(阿羅漢, Arhat): 세상에서 공량과 우러름을 사고 있는 분.
정각자(正覺者, Sambuddha): 올바로 깨달음을 얻은 분. 길게는 무상정등각자 (無上正等覺者 Anuttara Samyaksambuddha) 혹은 정등각자(Samyaksambuddha)로 일컬어짐.
명행족(明行足, Vidyācarana Sampanna): 하는 일에 허물이 없는 분.
선서(善逝, Sugata): 뛰어나게 참됨에 다다른 분.
세간해(世間解, Locavit):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분.
무상사(無上士, Anuttara puruşa):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분.
조어장부(調御丈夫, Puruşadamya sārathin): 사람을 다루고 바르게 이끌어 가는 분.
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şayānām): 신들과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분.
세존(世尊, Bhagavat): 세상에서 가장 높이 받들어지는 분.
팔만대장경기록에 보면, 제자들은 석가모니를 "세존이시여", "고담(고타마의 한역)이시여", "여래께서" 등으로 부르고 있다.


 

 


※출처 : http://shoho2.com/7miatositai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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