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특집 인연을 초월하는 길- 정법의 목적 여기에 있다 [정법지 1984년]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특집 인연을 초월하는 길- 정법의 목적 여기에 있다 [정법지 1984년]

어둠의골짜기 2011. 3. 10. 20:30

特 集 因縁を越える道-正法の目的はここにある특집

인연을 초월하는 길-정법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神の愛、仏の慈悲、という言葉は、過去も現在も、いろいろな宗教家、道徳家達によって口にされてきた。しかし、それはみな、その愛と慈悲をお(すが)りする対象としてのみ捉えているのであって、真の意味がわかっていたとはいえない。

신의 사랑, 부처의 자비, 라고 하는 말은, 과거나 현재나, 여러 종교가, 도덕가들에 의해 말해져 왔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두, 그  사랑과 자비를 청해서 매달리는 대상으로서만 붙들고 있는 것이며, 참된 의미를 알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法然、親鸞、日蓮みな然りである。호넨(法然), 신란(親鸞), 니찌렌(日蓮) 등이 그러하다.

 人生の目的は、すべての永遠普遍の神理を理解することにある。運命を根本的に左右するのは、われわれがその永遠普遍の神理法則即ち正法を、正しく使うか、間違った方向に使うかにある。人間は完全な自由意志が与えられている。強制されてしたことはなんら霊のプラスにはならないが、幼い魂が向上発達する為には、やがて自分の自由意志によって正しい行為がとれるようになるために、ある期間、強制して正しい行為を行わせる必要がある。即ち「習い性」とならせるためである。それが「しつけ」である。
 永遠普遍の正法こそ、この地球だけでなく大宇宙を貫くものであり、他の天体に人間がいるならば、その人達も準拠しなければならない絶対的な法なのである。

인생의 목적은, 모두 영원하고 보편적인 신리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운명은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우리들이 그 영원하며 보편적인 신리법칙 즉 정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는가,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인간은 완전한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다.  강제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영혼(霊)의 플러스로는 안 되지만, 어린 영혼(魂)을 향상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윽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올바른 행위를 취하게 되기 위해서, 어느 기간, 강제하여 올바른 행위를 행하게 할 필요가 있다. 즉 「습성」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이「예의범절 」이다.
  영원 보편의 정법이야말로, 이 지구뿐만 아니라 대우주를 꿰뚫는 것이며, 다른 천체에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들도 준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법인 것이다.

 

※준거[準拠].  《일본어사전 》어떤 일을 기준이나 근거로 하여 거기에 따름.

 カルマの法則、因縁因果の法則、これは原因結果の法則であり、釈尊は「因縁」といわれた。現在の自分は、過去の輪廻転生の因縁によるものであるから、現在の自分の生まれた環境、立場を呪うことは、自分で自分を呪っていることであり、その怨み心が根本にあったのでは一生その人は幸福になれないのである。だから正法の実践は、まず自分の生まれた環境を、自分自身の責任として受け止め、その環境に心から感謝することから始め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その感謝の方法が、一つは先祖に対する感謝であり、親に対する感謝即ち親孝行である。

카르마의 법칙, 인연인과의 법칙, 이것은 원인결과의 법칙이며, 석존은 「인연」이라고 말씀하셨다.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전생윤회의 인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태어난 환경, 입장을 저주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 것이며, 그 원망하는 마음이 근본에 있었기 때문에 일생 그 사랑은 행복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정법의 실천은, 우선 자신의 태어난 환경을,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그 환경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일에서 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감사의 방법이, 하나는 조상에 대한 감사이며, 부모에 대한 감사 즉 효도(親孝行)이다.


 運命をよくしようと、いくら祈ってもよくならなかったという人は、まず、生まれた環境に感謝していたかを反省することである。していなかったことに気付いたら、まずじっくりと生まれた環境に感謝することである。
それだけでも運命は好転してゆくのである。

운명을 좋게 하려면, 아무리 기도를 할지라도 좋아지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우선, 태어난 환경에 감사하고 있었던가를 반성하는 일이다.  감사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면, 우선 차분하게 태어난 환경에 감사하는 일이다.
그만큼 이라도 운명은 호전하는 것이다.

 生まれた環境、その中には、自分の顔形、性格すべてが含まれる。 

태어난 환경, 그 속에는, 자신의 얼굴 생김새, 성격 전부가 포함된다.

 自己中心、自我がいけないというが、自己中心的な人とは単純思考の人のことである。
世の中の一切のことをすべて自分を中心としてしかものを考えられないのである。世の中には、いろいろな考え方の人があるのに、そういう人があるということが許せないし、理解できないのである。私はこう思うからこうするのだ、という単純な考え方をする人が不幸になるのは、結果として周囲の人々と衝突することになるからである。終戦後、民主主義ということで、自我中心自己中心的考え方のみが教育されたことは日本人にとっては不幸であった。それが校内暴力、非行の原因であり、家庭その他の人間関係の不調和の原因である。

자기 중심, 자아가 나쁘다 라고 하지만,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란 단순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다.
세상의 일체의 것을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밖에 사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다, 라고 하는 단순한 사고방식을 취하는 사람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주변의 사람들과 충돌하게끔 되기 때문이다.  세계 2차 대전 후,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으로, 자아중심 자기중심적 사고방식만을 교육받게 된 것은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불행이었다.  그것이 교내폭력, 비행의 원인이며, 가정 그 이외의 인간관계의 부조화의 원인이다.

 

참고로 ★자아중심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이해를 돕기 위해, 사전을 참조합니다.

 

▷주아[主我]◁  《한자사전》
모든 것을 자기(自己) 중심(中心)으로 자기(自己)의 이해(利害)만을 타산 하는 욕심(慾心) ②자아(自我)를 중심(中心)하여 사고(思考)하며, 경험(經驗)하는 주관적(主觀的)인 자기(自己)를 이르는 말 이기(利己)


 釈尊は「因縁」を説かれたと。、宗教家達は口を揃えていう。しかし、因縁だけを説かれたのではない。「因縁を越える道」も説かれたのである。「因縁の法」もであるが、われわれにとってより大事なのは「因縁を越える道」であって、釈尊滅後の弟子達は、そのことの大事さに気がつかなかった。そのことが充分に伝わらなかった結果、中国から日本へと仏教が渡来しても、日本仏教の中に「因縁を越える道」が説かれていないという結果になってしまった。

석존은 「인연」을 설명하셨다라고.  종교가들은 동시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연만을 설명하셨던 것이 아니다.  「인연을 초월하는 길」도 설명하셧던 것이다.  「인연의 법」도 있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인연을 초월하는 길」이 있고, 석존 멸후 제자들은, 그 일의 중요함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 일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던 결과, 중국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도래해도, 일본 불교 중에 「인연을 초월하는 길」이 설명되고 있지 않다 라고 하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その大事さを復活させて説かれたのが高橋信次先生であったのであるが、高橋信次先生の話を聞いた人もまた、その大事さに気づかない人が多かった。

그 중요성을 부활하시어 설명하신 것이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先生)님 이었던 것이지만,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의 말을 들은 사람도 역시, 그 중요함에 생각이 미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反省」しなければ魂は浄化できないと、高橋先生が力説されたために、反省がすべてであって、反省さえすればそれで信仰は成就すると考える人達が出てきた。その人達は常に、反省が出来ないからなんにも出来ないと、今度は反省に執着してしまった。高橋先生が反省を強調されたのは、反省を通さなければ魂の浄化が出来ないこともあるが、これまでの日本仏教だけでなく、キリスト教も、ただ信ずることだけ、祈ることだけの他力信仰になってしまって、反省の大事さを説いていなかったからであった。

「반성」하지 않으면 영혼(魂)은 정화(浄化)할 수 없다고, 다카하시 선생님이 역설하셨기 때문에, 반성이 전부이며, 반성만 하면 그것으로 신앙은 완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람들은 항상, 반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이번에는 반성(反省)에 집착(執着)해 버렸다.  다카하시 선생님이 반성을 강조(强調)하셨던 것은, 반성을 통하지 않으면 영혼의 정화를 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일본 불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도, 단지 믿는 것만, 기도하는 것만의 타력신앙이 되어 버려서, 반성의 중요함을 설명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反省、反省とオームや九官鳥みたいに、口真似していっている講師という人達は、なにを基準にして反省すべきであるかを知らなかった。高橋先生が強調された反省は慈悲と愛の心を基準としての反省があったのである。慈悲と愛の心が展開すると八正道になる。   반성, 반성이라고  옴(Om)이나 구관조와 같이, 입으로 흉내를 내고 있는 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반성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다카하시 선생님이 강조하셨던 반성은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기준(基準)으로 해서 반성을 했던 것이다.  자비와 사람의 마음을 전재하면 팔정도가 된다.

 このことは「心行」に

   이 일은「심행」에



「現世は生命・物質不二の現象界
 この世界のことなり
 熱 光 環境 いっさいを含めて
 エネルギーの塊にして
 われら生命意識の修行所なり
 神仏より与えられし
 慈悲と愛の環境なることを感謝すべし

 

「현세는 생명・물질 불이(둘이 아님)의 현상계
  이 세계의 일이며
  열 빛 환경  일체를 포함해서
  에너지 덩어리로서
  우리들 생명 의식의 수행소이며
  신불에게서 주어지며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감사해야 한다」

と示されているように、神仏の当体であるわれわれは、慈悲と愛の環境であるこの地球上に、われわれの魂の本質である慈悲と愛を顕現することによって、霊を向上することに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라고 나타내 보여 주시고 있는 것처럼, 신불의 당체(본체)임을 우리들은,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이 지구상에, 우리들의 영혼(魂)의 본진인 자비와 사랑을 현현하는 것에 의해서, 영혼(霊)을 향상하게끔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당체[当体]
1 〈불교〉 본체(本體).
2 있는 그대로의 모습·본성.



 また「祈願文」の「前文」には、一番最初に、

   또 「기원문」의「전문」에는, 맨 처음에,


「私たちは神との約束により
 天上界より両親を縁として
 この地上界に生まれてきました
 慈悲と愛の心を持って
 調和を目的とし
 人びとと互いに手を取り合って
 生きて行くことを誓い合いました」

 

「우리들은 신과의 약속에 따라
 천상계에서 양친을 인연으로 해서
 이 지상계에 태어나왔다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조화를 목적으로 해서
 사람들과 서로 손을 맞잡고
 살아 갈 것을 서로 맹세하였다」


 と示されているように、調和といっても、それが真の調和であるかどうかは、慈悲と愛の心を中心とした調和であるかどうかを考え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る。

라고 나타내 보여 주시고 있는 것처럼, 조화라고 말해도, 그것이 참된 조화인지 어떤지는,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중심으로 한 조화인지 어떤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その人が、病気であり、不幸であるということは、内在されているわれわれの霊の本質である、慈悲と愛の心を、与えられた自分の環境に顕現させ行動化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結果なのであるから、この病気、この不幸を治そうと、心の中に常に病気や不幸を描いて「治したい」と祈ることは、心に描いたものが形になって現れるのであるから、ますます病気や不幸を持続させることになるのであって、だからして、神仏の慈悲と愛の当体である事実を、そのまま素直に認めて、どこに、どこから、その慈悲と愛を表現しようかと考え、考えた通りに慈悲と愛の心を表現すると、病気や不幸は治ることになるのである。그 사람이, 병이 들어,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내재되어 있는 우리들의 영혼의 본질인,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주어진 자신의 환경에 현현시켜 행동화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는 결과인 것이기 때문에. 이 병, 이 불행을 낫게 하려고, 마음속에 항상 병이나 불행을 그리며「낫고 싶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마음에 그린 것이 형상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점점 병이나 불행을 지속시키게 되어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신불의 자비와 사랑의 당체(본체)인 사실을,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어디에, 어디에서, 그 자비와 사랑을 표현할까 라고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면, 병이나 불행은 낫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당체[当体]

1 〈불교〉 본체(本體).
2 있는 그대로의 모습·본성.

 われわれは、神仏の慈悲と愛の当体であって、この地球は、神がつくられた慈悲と愛の環境なのである。人生のすべての出来事が、善であるか、悪であるかを決定するのは自分であ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우리들은, 신불의 자비와 사랑의 당체(본체)이며, 이 지구는, 신이 만드신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것이다.  인생의 모든 사건이, 선한지, 악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인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多くの人は自分に都合がよければ善であり、悪ければ悪であると考える。また、法律にひっかかるような悪いことをしなければそれが善であると考えている人も多い。また、人に迷惑さえかけなければ、自分が腹を立てようがどうしようが、それは自分のことであるから、別に人に悪いことを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から、これで善いのであると考えている人もいる。信仰するのは善いことだといって、なんでもかでも拝んで、どこえでもお詣りに行って、そうして心の中はいつも地獄だという人もいる。自我の願い、自己中心的な人は特に、自分の考え方に合うのだけが善であり、合わないのはみな悪だと考えている。道徳家は形だけの礼儀を重んじて、心のあり方を問題としない傾向がある。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처지가 좋으면 선하고, 나쁘면 악하다고 생각한다.  또, 법률에 걸리는 것과 같은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또, 남을 미혹시키지 못하면, 자신이 자기한테 버럭 화를 내려고 하든가 어떻게 하려는가는, 그것은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특별히 남에게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신앙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며, 이것저것 모두 합장 배례하고, 어디든지 참배하려 가고, 그렇게 해서 마음속은 항상 지옥이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자아의 바램,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특히, 자신의 사고방식에 맞는 것만이 선이며,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덕가는 형식적인 예의를 중요시하고,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문제로 삼지 않는 경향이 있다.

 宗教家は、信仰は、心の根本的なあり方を問題とするのであるから、法律や礼儀に叶っていればそれで「善」であるとはいわないのである。勿論、形も大事ではあるが、心のあり方が問題なのである。

종교가는, 신앙은, 마음의 근본적인 본연의 모습을 문제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이나 예의에 들어맞고 있지 않으면 그것으로「선」하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본연의 모습이 문제인 것이다. 

 昔からのことわざに、「相手が鉄のげんこでくるときは、真綿の心で受けなさい」というのがある。これはまさしく信仰の極致を表現した言葉であり、むつかしくいえば、キリストが、「右の頬を打たれたら、左の頬をもむけよ」とか、「汝を責め憎む者のために祈れ」とかいわれたことに当たる。

옛날의 속담에,「상대방이 철의 주먹으로 올 때는, 풀솜의 마음으로 받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확실히 신앙의 극치를 표현한 말이며,  어렵게 말하면, 그리스도가,「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밀라」든가,「너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라든가 말씀하신 것에 해당한다.


 ある人がこういう話をされた。
 その人の駐車場の中にその人の弟さんの車が一台ある。ところがその弟さんの車がとめてあるところに、いつもよく隣の車がとめてある。だからすぐ車を出せないわけである。そのたびにその弟さんはぷりぷりして、「あいつは、いつもこんな所に車をとめてけしからん、怒鳴り込んでやる」と腹を立てていた。「あんたも、霊の修行のために生まれてきたんだろうがね。そんなことぐらいで腹を立ててはいかんね。それをどう受け取るかはあんたの心ひとつだろうがね。腹を立てないで、〝車をどけてくれ〟といえるようにならんといかんのやない?」

어떤 사람이 이러한 말을 하셨다.
그 사람의 주차장 안에 그 사람의 동생의 차가 한 대 있다.  그런데 그 동생의 차를 세우는 장소에, 항상 자주 이웃의 차가 세워져 있다.  그래서 금방 차를 빼지 않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 동생은 뾰로통하여,「저놈은, 항상 이런 곳에 차를 세워 괘씸하네, 라며 거세게 비난을 하며」공연히 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너도, 영혼의 수행을 위해서 태어난 것인데.  그까짓 일 정도로 공연히 화를 버럭 내지 말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너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겠지만.   공연히 버럭 화를 내지 말고,〝차를 세워 달라〟고 말하게 되면 좋지 않을까? 」

 人が駐車しているすぐ後ろに車をとめるということは、確かにその人が悪い。悪い人を悪いということは確かに許される。その弟さんは善人で間違ったことはしていないのであるから善である。だがそれだけで「善である」とはいえない。腹を立てて怒鳴ってしまったのでは「絶対善」とはいえない。腹を立てるか立てないかを、即ち心の世界を見て、それを善とするか(腹を立てずに)、悪とするか(腹を立てて)を決定するのは、その人自身であるのである。

남이 주차하자마자 뒤로 차를 세운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그 사람이 나쁘다.  나쁜 사람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용서한다.  그 동생은 착하 사람이며 잘못된 것은 하지 않기 때문에 선하다.   하지만 그것 뿐이며「선하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공연히 버럭 화를 내며 괘씸하다고 말해 버린 것은 「절대선(絶対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공연히 버럭 화를 내는가 내지 않은가를, 즉 마음의 세계를 보고, 그것을 좋다고 하는지 (공연히 버럭 화를 내지 않고),  나쁘다고 하는지 (공연히 버럭 화를 냄)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인 것이다.

 間違った判断をして、心に悪をつくってしまった時に反省が必要となるのであるが、人生の経験を善とするか、悪とするか、いい替えれば、慈悲と愛の心を出すか(善)出さないか(悪)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ある。このことはまた、つぎのようにいい替えることができる。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마음에 악을 만들어 버렸을 때에 반성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지만, 인생의 경험을 좋게 하는지, 나쁘게 하는지, 바꾸어 말하면,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내는가 (선(善)) 내지 않는가  (악(惡))이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은 또, 다음과 같이 달리 말할 수 있다.

「人生の目的に叶うことが善であり、人生の目的に叶わないことは悪である」

「인생의 목적에 들어맞는 것이 선이며, 인생의 목적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악이다」


「因縁の法則」は確かに実在する。しかし、その因縁の法則を超える道が、「慈悲と愛を顕現」する道である。

「인연의 법칙」은 확실히 실재한다.  그렇지만, 그 인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길이,「자비와 사랑을 현현」하는 길이다.

 われわれは死んだ時、必ず反省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生きている間にどういうことをしてきたかを全部映画のように見せられて反省するのである。反省しないものには大きな霊的ショックが与えられる。その時、霊はもがき苦しむことになる。その反省を求められている期間を中有(ちゅうう)に迷う」というのである。
 우리들은 죽을 때, 반드시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이 있는 동안에 어떠한 일을 해 왔는지를 전부 영화처럼 보여져서 반성하는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큰 영적 충격이 주어진다.  그 때, 영혼은 괴로워하며 바둥거리게 된다.  그 반성을 요구당하고 있는 기간을「중유(중음)를 헤맨다」라고 하는 것이다.

 

※중유[中有]
〈불교〉1 중유. 사유(四有)의 하나. 사람이 죽은 후 다시 삶을 받을 때까지의 기간. 《49일간이라 함》 =中陰(중음).  

 その反省は、悪かったと気付くことだけが反省ではない。「二度ともうしません」という誓いと、これからどうすればよいか、その時、ではどうすればよかったのであるかが、はっきりと決心されていないと反省したとはいえないのである。その反省によって因縁を超越し、天上界へ行くことができる。

그 반성은, 나빴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반성이 아니다. 「두 번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하고,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때, 그럼 어떻게 하면 좋았던 것인가를, 분명히 결심하지 않으면 반성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반성에 의해서 인연을 초월하고, 천상계로 갈 수가 있다.

 生きている間に犯した罪で、このことはもう一ぺん体験して反省がほんものであるかどうかを確かめたいと思ったものが「(カルマ)」として出てくるのである。生まれつきのその人の性格の中に、そのカルマが含まれてしまうから、生まれつき金に汚い、名誉欲が強い、女に弱い等の醜い性格があることになるのである。

살아 있는 동안에 범한 죄로, 이 일은 다시 한 번 체험하고 반성이 진짜인지 어떤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업(카르마)」로서 나오는 것이다.  타고난 그 사람의 성격 중에, 그 카르마가 포함되어 버리기 때문에, 천성이 돈에 인색하고, 명예욕이 강하고, 여자에게 무르다 등의 추한 성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その生まれつきの性格の中には、また、胎教によって与えられたものもある。胎教によって歪みを与えられたものは、その歪みを与えた親に反省を促す行為として現れてくるのであるが、さらに生まれてから受けたしつけ、教育、習慣と、成長するに従って自分が考えたことによって、現在の自分の性格が出来上がっているのであり、総合された性格の歪みの部分が、修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の信号として、病気、不幸というような形になって現れてくるのである。

그 타고난 성격 중에는, 또, 태교에 의해서 주어진 것도 있다.  태교에 의해서 비뚤어짐을 제공받은 것은, 그 비뚤어짐을 준 부모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행위로서 나타나오는 것이지만, 더욱더 태어나고 나서 받은 예의범절, 교육, 습성과, 성장함에 따라서 자신이 생각한 것에 의해서, 현재의 자신의 성격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며, 종합된 성격의 비뚤어짐의 부분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의 신호로서, 병, 불행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되어 나타나오는 것이다.

 酒を飲みすぎて肝臓を悪くした。脳溢血したというような人達は、身体を悪くした原因を酒だとだけ思っているが、その根底には、魂の修行のために神から与えられた肉体があることに感謝せず、肉体が自分であるから自分が酒を飲もうと飲むまいと誰に遠慮することもないという、神の存在を無視した心があることに気付かなければいけない。

술을 과음해서 간장을 나쁘게 했다.  뇌일혈(뇌출혈)이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사람들은, 신체를 나쁘게 한 원인을 술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근저(밑바탕)에는, 영혼(魂)의 수행을 위해 신에게서 제공받은 육체가 있는 것을 감사하지 않고, 육체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이 술을 마시려고 하고 마시지 않겠다고 누구에게 사양하는 일도 없다고 하는, 신의 존재를 무시한 마음이 있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どうしてそいう病気や不幸になってしまったのか、その原因がわからないという人達は、神が与えられた慈悲と愛の環境であるこの地球上に、神の当体として慈悲と愛を顕現すべく出生したのにその慈悲と愛を顕現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に気付いて、慈悲と愛を顕現してゆけば、一切の因縁を超えて安楽の道を進んで行けるようになるのである。

어째서 그러한 병이나 불행하게 되어 버렸던 것인지, 그 원인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은, 신의 제공하신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이 지구상에, 신의 당체(본체)로서 자비와 사랑을 현현하기 위해서 출생한 것인데 그 자비와 사랑을 현현하고 있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고, 자비와 사랑을 현현해 가면, 일체의 인연을 초월해서 안락의 길을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そのことがわかれば、この人生は、そのまま極楽であることがわかるのである。あの世だけの極楽を求めさせる信仰は、邪教とまではゆかないが、正しい信仰ではないのである。

그 일을 이해하면, 그 인생은, 그대로 극락(極楽)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저 세상만의 극락을 찾게 하는 신앙은, 사교(邪教 heresy [unbelief 불신앙])로 까지는 가지 않지만, 올바른 신앙이 아닌 것이다.

 法然、親鸞はあまりにも死後の極楽往生だけを求めさせすぎた。道元は「心身脱落、脱落心身」「自己を忘するることが仏法をならうことなり」といったが、慈悲と愛の実践を説かず、ひたすらに座禅せよということのみを強調しすぎた。日蓮の説く慈悲と愛は不徹底であり、これら鎌倉時代の宗祖達は、武家政治時代という環境の中で、その環境に適応する限定した教えの説き方しか出来なかった。

호넨(法然)、신란(親鸞)은 너무나도 사후의 극락왕생만을 지나치게 찾게 했다.  도겐(道元)은 「심신탈락, 탈락심신」「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불법(仏法)을 배우는 것이니라」라고 말했지만, 자비와 사랑의 실천을 설명하지 않고, 오로지 좌선(座禅)하라고 하는 것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니찌렌(日蓮)의 설명하는 자비와 사랑은 불철저하며, 이러한 가마쿠라 시대의 종조(교조)들은, 무가정치 시대라고 하는 환경 속에서, 그 환경에 적응하는 한정된 가르침의 설교 방식밖에 할 수 없었다.

 

 

※수정합니다. 죄송합니다. 자비와 사랑은 철저 하며..라고 한 것은, 오역입니다.

자비와 사랑은 불철저하며, 로 정정했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2015년 6월 6일 토요일, 정정합니다.

 

 

※종조[宗祖] 종파의 개조(開祖). 교조(敎祖)

 
如来と如来に常随する菩薩は、正法を正しく説くことができないような時代は絶対に選ばない。正法を正しく説くことができる時代を選んで出生するのである。

여래(如来)와 여래(如来)를 항상 수행(随行)하는 보살(菩薩)은, 정법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시대는 절대로 선택하지 않는다.  정법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가 있는 시대를 선택해서 출생하는 것이다.

 鎌倉時代という時代は、正しく正法が説ける時代ではなかった。局限された教えしか説けなかった時代であったことに注目しなければならない。例えば百姓に対して、「念仏を称えながら鍬をふるえ」はよいとして、武士に対して、「念仏を称えて人を斬れ」というようなことは絶対にいえないのが正法であるから、
正法が説かれるには「時」が大事であるということを考えなければいけない。
 その点からして、終戦前に発生した新興宗教の中には、常に政府の顔色をうかがいながら国策に副って教義をつくった教団もあるし、終戦後、大きく発展したものでも、戦争中に立教した教団があるし、「正法が正しく説かれる時」というその時から判断しても、その宗教団体が正しいかどうかは判断できることになる。

카마쿠라 시대라고 하는 시대는, 올바르게 정법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국한된 가르침밖에 설명하지 못했던 시대였다고 하는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백성에 대해서, 「염불을 칭송하면서 괭이를 휘둘러라」는 좋다고[그렇다] 치고, 무사에 대해서, 「염불을 칭송하면서 사람을 참하라」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은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정법이기 때문에, 정법을 설명할 때에는,「시기(時)」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점에서, 세계 2차 세계 대전 전에 발생한 신흥종교 중에는, 항상 정부의 안색을 살피면서 국책에 따라 교의(교리)를 만들었던 교단도 있고, 세계 2차 대전 후, 크게 발전한 것이라고 해도, 전쟁 중에 입교(立教)한 교단이 있고,「정법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을 때」라고 하는 그 시기(時)에서 판단하더라도, 그 종교단체가 올바른지 어떤지는 판단할 수 없게 된다. 

「自己保存はいけません」と、高橋先生はいわれた。では、どうすればよいのであるか。「自我をなくせよ」「自己保存をなくせよ」というと、ただそうとだけしかいうことのできない指導者がいる。禅宗の坊さんが、自我をなくするとはどういう状態になることであるかもわからず、「無我になれ、無我になれ」といっているのも同じことである。宗教の教義が、スローガンになってしまった時、その宗教は生命力、人を救う力を失ったといってよい。

「자기보존은 안 됩니다」라고, 다카하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자아를 없애라」「자기보존을 없애라」라고 말하면, 단지 그렇구나 라고 만밖에 말할 수 없는 지도자가 있다.  선종(禅宗)의 스님이, 자아를 없앤다란 어떻게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가 되라, 무아가 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종교의 교의(교리)가, 슬로건이 되어 버렸을 때, 그 종교는 생명력, 남을 돕는 잃어버렸다고 말해도 좋다.

 

※ 슬로건 [Slogan] 
모토. 슬로건. 어떤 조직의 신조(信條)나 목표로 내거는 말.

 
自己保存をなくするとは、人生の目的を知って、どんな人の立場も理解でき、(完全に理解できない間はそうなろうと努力して)精神的にも肉体的にも変化が起きて、慈悲と愛の心を顕現しようとする姿勢が整ったときである。そうなれば運命の変化が形の上にも現れてくるのである。

자기보존을 없앤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알고, 어떤 사람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고,(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동안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서)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현현하려고 하는 자세가 정리되었을 때이다.  그렇게 되면 운명의 변화가 형태 상으로도 나타나오는 것이다.


 正法の生活とは、因縁の世界に住みながら因縁を超える道を生きることである。

정법의 생활이란, 인연의 세계에 살면서 인연을 초월하는 길을 사는 것이다.

 ある人は、子宮筋腫ぐらいに簡単に考えて入院したら、実際は癌であった大きな癌は四つ切り取ったが、米粒みたいな転移した癌が無数にあって医者はそのまま縫合し、あとは時間の問題だといわれた。そのご主人とその人は、これまでのあり方を徹底して反省された。反省するということは、自己保存を捨てて正法による正しい生き方を決意することである。入院される時、昭和57年2月、インドの霊鷲山上で禅定をしている私の写真を持って行って枕許に張っていられた。反省していられると、その写真の中から私が飛び出してきて、奈良の大仏さんのように大きくなった。それが何べんもあった。そうして、その人は、医者から「もう大丈夫です」といわれて退院された。精神と肉体に革命が起こったのである。

어떤 사람은, 자궁근종 정도로 간단히 생각해서 입원했는데, 실제는 암이었고 큰 암은 십자로 잘라 냈지만, 쌀알과 같은 이전된 암이 무수히 있어서 의사는 그대로 봉합하고, 다음에는 시간의 문제라고 말을 했다.  그 남편과 그 사람은, 지금까지의 본연의 모습을 철저히 반성했다.  반성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보존을 털어내고 정법에 따른 올바른 생활 태도를 결의(결심)하는 것이다.   입원했을 때, 소화 57년 2월, 인도의 영취산상에서 선정을 하고 있는 저의 사진을 갖고 가서 머리맡에 두고 계시었다.  반성하고 있으면, 그 사진 속에서 제가 뛰어나와서, 나라(奈良)의 대불님처럼 커졌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의사에게서 「이제는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듣고 퇴원했다.  정신과 육체에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라현의 대불[奈良の大仏さん]은 , 나라 동대사(奈良東大寺大) 불전(仏殿)의 본존(本尊). 비로자나불(毘盧遮那仏)인 금동좌상(金銅座像)이며, 일본 최대의 높이인 14.7미터이다.

 
このことは何を教えるかというと、反省して、これまでとは違った生き方をしようという決心をすると、その心を縁として天上界から奇跡を起こしてく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
 自分の生き方を変えようとはせずに、霊能力者に頼って奇跡を起こしてもらおうとする人は、自分の魂の向上を怠るものであるから災いである。
 法華経の中に、釈尊が衆生の願いに応じてどこにでも姿を現わされたと書かれているが、霊はどこにでも姿を現す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이 일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반성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 태도를 하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면, 그 마음을 인연으로 해서 천상계(天上界)에서 기적(奇跡)을 일으켜 준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영능력자에게 의지(부탁)해서 기적을 일으켜 달라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魂)의 향상을 게을리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난을 당한다.  

법화경(法華経) 중에, 석존이 중생의 바램에 응해서 어디든지 모습을 드러내신다고 쓰여져 있지만, 영혼은 어디든지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이다.


 法然も親鸞も念仏を称えた。しかし二人の念仏には根本的な違いがある。
 法然の念仏は、罪悪深重の凡夫が、どこまでも阿弥陀如来にお縋りして救ってもらいたいという哀願の念仏であるが、親鸞の念仏はそれと違う。仏の方より廻向されて称える念仏である。仏の方より廻向されてということは、罪悪深重の心、真暗な汚い心は阿弥陀如来の心ではないから、汚い心が「南無阿弥陀仏」(阿弥陀如来と一体である)と称えることはできない。われわれの心の中に既に生きている如来の慈悲の心が、即ち子なる心が、親なる阿弥陀如来を慕って「わたしは親と一体である。わたしは如来の子です。」という念仏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っているのである。同じ念仏といっても、念仏を称える心のあり方についてこのような違いがあるのは、法然は神界の人であり、親鸞は菩薩界の人であるからである。菩薩界といっても下位の段階であるから八正道が説けなかった。

호넨(法然)도 신란(親鸞)도 염불을 칭송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염불에는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

호넨(法然)의 염불은, 죄악심중의 범부가, 어디까지나 아미타불여래(阿弥陀如来)에 매달려서[의지하여] 구원을 얻고 싶다고 하는 애원의 염불이지만, 신란(親鸞)의 염불은 그것과 다르다.  부처님에게서 회향(廻向)되어 칭송하는 염불이다.  부처님에게서 회향되어 라고 하는 것은, 죄악심중의 마음, 아주 캄캄한 더러운 마음은 아미타여래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더러운 마음을 「나무아미타불(南無阿弥陀仏)」 ((아미타여래(阿弥陀如来)와 일체이다))라고 칭송할 수는 없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미 살아 있는 여래의 자비심을, 즉 자녀인 마음을, 부모인 아미타여래(阿弥陀如来)를 그리워하며「나는 부모와 일체이다.  나는 여래의 자녀이다.」라고 염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염불이라고 해도, 염불을 칭송하는 마음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서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은, 호넨(法然)은 신계(神界)의 사람이며, 신란(親鸞)은 보살계(菩薩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살계(菩薩界)라고 해도 하위의 단계이기 때문에 팔정도(八正道)를 설명할 수 없었다.

 

※회향 [回向/廻向] 《일본어사전 》
〈불교〉  1 자기가 쌓은 공덕을 남에게도 돌려, 함께 깨달음을 얻고자 함.  2 염불·독경·보시 등으로 죽은 이의 명복을 빎.

 

※회향[回向/廻向]《국어사전 》
1 얼굴이나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향함.  2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 자신에게 돌림.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의 세 가지, 또는 왕생회향과 환상회향의 두 가지로 나뉜다.


「大行とは、無礙光如来のみ名を称することなり」
 最高最上の行とは、無礙光如来、即ち阿弥陀如来のみ名を称えて念仏することであると、それで終わりであって、日常生活の中にどのように正法を生きるかということは説かれていない。道元も、神界の人であるから、禅定が悟りの道であることを説かれたのは正しかったが座禅から起ち上がって、さて日常生活をどう生きるかまでは説かれなかった。日蓮は菩薩界の人であり、法華経が最勝の経典であることに気付かれたのは正しかったが、しかし法華経の中には、釈尊滅後の大乗仏教の秀才達が、釈尊は説かれなかったのに、恰かも釈尊が説かれたかのように偽って書いた部分があることに気付かず、その部分もみな釈尊が説かれたように信じてしまった。その弊害が現在までも、日蓮系統の宗教団体に現れている

「대행(大行)이란, 무의광여래(無礙光如来)만이 이름을 칭송하는 것이니라 」
  최고 최상의 행이란, 무의광여래(無礙光如来), 즉 아미타여래(阿弥陀如来)만이 이름을 칭송하며 염불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끝이며, 일상생활 속에 어떻게 정법을 살리는가 하는 것은 설명하고 있지 않다.  도겐(道元)도, 신계(神界)의 사람이기 때문에, 선정이 깨달음의 길인 것을 설명하였던 것은 올바랐지만 좌선에서 일어나라, 그럼 일상생활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까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니찌렌(日蓮)은 보살계(菩薩界)의 사람이며, 법화경(法華経)이 최승(最勝)의 경전(経典)인 것에 생각이 미쳤던 것은 올바랐지만, 그렇지만 법화경 속에는, 석존(釈尊) 멸후의 대승불교(大乗仏教)의 수재(秀才)들이, 석존은 설명하시지 않았는데, 마치 석존이 설명하신 것처럼 허위로 기록한 부분이 있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그 부분도 모두 석존이 설명하신 듯이 믿고 말았다.  그 폐해(弊害)가 현재까지도, 일련계통의 종교단체에 나타나고 있다.

 

※대행[大行] 《문화원형 백과사전》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영원에 걸쳐 여러 선행을 행하고 공덕을 쌓는 일로 대승의 실천을 말하고 천태종에서는 사종삼매(四種三昧)를 말하며, 진종에서는 의 이름을 말하고,또 이를 제창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행(大行) 《오픈백과》
4종 삼매(三昧)를 가리킴. 보살이 불과(佛果)를 얻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 동안 갖가지 선행(善行)을 닦아서 대공덕을 쌓는 것.

 高橋先生はお釈迦さまだったのであるから、これまで伝えられてきたお経の中からお釈迦さまの教えを探ろうとするよりも、高橋先生が現代語で話、また書かれたことをそのまま受け取る方が賢明である。

다카하시 선생님은 부처님이었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해져 왔던 경전 안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게 하는 것 보다도, 다카하시 선생님이 현대어로 말하며, 또한 기록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현명하다.

 慈悲と愛の道の実践、人生を善とするか悪とするかを決意するのは自分なのであるから信仰は自力でなければならない。
 思考を停止して盲目的にいくら狂信して他力信仰をしてみても、それによって救われることは絶対にないのである。   

자비와 사랑의 실천, 인생을 좋게 하는가 나쁘게 하는가를 결심하는 것은 자신인 것이기 때문에 신앙은 자력이 아니면 안 된다.
사고를 정지하고 맹목적으로 아무리 광신하고 타력신앙을 해 보아도, 그것에 의해서 구원(도움)을 받을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月刊誌 正法67号 (1984.03月)より

월간지  정법 67호 )1984. 3월) 에서


2011.01.15

2011년. 1월 15일.


※출처 : http://www.shoho2.com/6innenwokoeru.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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