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심행(心行)의 원문과 서문(序文)/심행의 큰 뜻/심행 개설/다카하시 신지/ 본문
言霊(ことだま)=言魂 《일본어 사전》
고대(古代)에, 말에 깃들여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신비적인 힘.
言霊ことだまの幸さきわう国くに 영력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나라.
言霊(ことだま)《일본어 Wikipedia》
言霊(ことだま)とは、日本において言葉に宿ると信じられた霊的な力のこと。言魂とも 書く。清音の言霊(ことたま)は、森羅万象がそれ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とされる五十 音のコトタマの法則のこと。その法則についての学問を言霊学という。
언령(고토다마)
언령(고토다마)란, 일본에 있어서 말에 깃들여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영적인 힘을 말함. 언혼(고토다마)이라고도 쓴다. 청음의 언령(고토타마)는, 삼라만상이 그것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다고 하는 50음이ㅡ 코토타마의 법칙. 이 법칙에 관한 학문을 언령학이라고 한다.
高橋信次『心行の言葉』다카하시 신지님의 『심행의 말」의 심행(全文) |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제가 올린, 2011년 3월 13일에도 있습니다.
지금 올리는 내용에서. 서문에, 한 문장이 더 첨가 되어 있습니다. 색깔로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심행의 내용에도 앞부분이 위의 글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있습니다.
기존에 올린 내용과 지금의 글을 비교해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올리는 내용에는 心行(しんぎょう) 괄호안에 있는 것은, 일본식 발음표시입니다.
실제, 심행의 원본 책에는, 이런 식으로 발음들이 다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올렸습니다.
心 行
심 행
心行(しんぎょう)は 宇宙(うちゅう)の神理(しんり)
人間(にんげん)の心(こころ)を 言霊(ことだま)によって表現(ひょうげん)したものである
それゆえ心行(しんぎょう)は 拝(おが)むものでも 暗記(あんき)するものでもなく
これを理解(りかい)し 行(おこな)うものである
正法(しょうほう)は実践(じっせん)のなかにこそ
生命(せいめい)が宿(やど)ることを知(し)れ
심행은 우주의 신리
인간의 마음을 말(言霊)에 의해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심행은 두손 모아 비는 것도 암기하는 것도 아니며
이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정법은 실천 가운데에서야말로
생명이 깃드는 것임을 알라
われいま見聞(けんもん)し 正法(しょうほう)に帰依(きえ)することを得(え)たり
広大(こうだい)なる宇宙体(うちゅうたい)は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の根元(こんげん)にして
万生万物相互(ばんしょうばんぶつそうご)の作用(さよう)により 転生輪廻(てんしょうりんね)の法(ほう)に従(したが)う
大宇宙大自然界(だいうちゅうだいしぜんかい)に意識(いしき)あり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정법에 귀의하는 것을 얻었나니
광대한 우주의 몸은 만생만물의 근원으로서
만생만물 상호의 작용에 의해 전생윤회의 법에 따른
대우주 대자연계에 의식이며
意識(いしき)は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を支配(しはい)し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をして調和(ちょうわ)の姿(すがた)を示(しめ)さん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は広大無辺(こうだいむへん)な大慈悲(だいじひ)なり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は意識(いしき)の当体(とうたい)にして 意識(いしき)の中心(ちゅうしん)は心(こころ)なり
의식은 대우주의 몸을 지배하고 만생만물을 위해 조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생만물은 광대무변한 대자비이며
대우주의 몸은 의식의 본체로서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며
心(こころ)は慈悲(じひ)と愛(あい)の塊(かたまり)にして 当体(とうたい)・意識(いしき)は不二(ふじ)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この大意識(だいいしき)こそ 大宇宙大神霊(だいうちゅうだいしんれい)・仏(ほとけ)なるべし
神仏(しんぶつ)なるがゆえに 当体(とうたい)は大神体(だいしんたい)なり
마음은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로서 본체・의식은 둘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큰 의식이야말로 대우주 대신령・부처님인 것이 당연하다.
신불이므로 본체는 큰 신(神)의 몸이니라.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における太陽系(たいようけい)は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の 小(ちい)さな諸器官(しょきかん)のひとつにすぎず
地球(ちきゅう)は 小(ちい)さな細胞体(さいぼうたい)なることを知(し)るべし
当体(とうたい)の細胞(さいぼう)なるがゆえに 細胞(さいぼう)に意識(いしき)あり
かくのごとく 万物(ばんぶつ)すべて生命(せいめい)にして エネルギーの塊(かたまり)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이 현상계에 있어서의 태양계는 대우주의 몸의 작은 여러 기관의 하나에 불과하며
지구는 작은 세포체인 것을 알아야 한다.
본체의 세포이므로 세포에 의식이 있으며
요러하듯이 만물 모든 생명으로서 에너지의 덩어리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は大神体(だいしんたい)なるがゆえに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地球(ちきゅう)も神体(しんたい)なり
神体(しんたい)なるがゆえに 大神殿(だいしんでん)なるべし
大神殿(だいしんでん)は 万生(ばんしょう) 魂(たましい)の修行所(しゅぎょうじょ)なり
대우주의 몸은 큰 신(神)의 몸이므로 이 현상계의 지구도 신(神)의 몸이며
신(神)의 몸이므로 큰 신(神)의 집이 됨이 당연하다.
큰 신(神)의 집은 모든 생명, 영혼(魂)의 수행장이니라.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 みなここに集(あつ)まれり
諸霊(しょれい)の輪廻(りんね)は 三世(さんぜ)の流転(るてん)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で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磨(みが)き
神意(しんい)に添(そ)った仏国土(ぶつこくど)・ユートピアを建設(けんせつ)せんがためなり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은 모두 여기에 모이며
여러 영혼(靈)의 윤회는 삼세의 유전
이 현상계에서 자기의 영혼(魂)을 연마하고
신(神)의 뜻에 따른 불국토・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이니라.
さらに 宇宙体万生(うちゅうたいばんしょう)が 神意(しんい)にかなう 調和(ちょうわ)のとれた世界(せかい)を建設(けんせつ)せんがため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修行(しゅぎょう)せ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더욱 더 우주의 몸인 모든 생명이 신(神)의 뜻에 맞는 조화를 이룬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기의 영혼(魂)을 수행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過去世(かこせ) 現世(げんせ) 来世(らいせ)の三世(さんぜ)は 生命流転(せいめいるてん)の過程(かてい)にして
永久(とわ)に不変(ふへん)なることを知(しる)るべし
과거세[전생](過去世), 이 세상(現世), 사후의 세계(來世)의 삼세는 생명유전의 과정으로서
영구히 불변한 것을 알아야 한다.
過去世(かこせ)は 己(おのれ)が修行(しゅぎょう)せし前世(ぜんせ)
すなわち 過(す)ぎ去(さ)りし実在界(じつざいかい)と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世界(せかい)なり
과거세는 자기가 수행하고 전생(前世)
즉 지나가 버리고, 실재계와 현상계의 세계이며
現世(げんせ)は生命(せいめい)・物質(ぶっしつ)不二(ふじ)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 この世界(せかい)のことなり
熱(ねつ) 光(ひかり) 環境(かんきょう) いっさいを含(ふく)めて エネルギーの塊(かたま)りにして
われら生命意識(せいめいいしき)の修行所(しゅぎょうじょ)なり
현세(이 세상)는 생명・물질이 둘이 아닌 현상계, 이 세계인 것이며
빛・열・환경 전부를 포함하고 에너지의 덩어리로서
우리들의 생명 의식의 수행소이니라.
神仏(しんぶつ)より与(あた)えられし 慈悲(じひ)と愛(あい)の環境(かんきょう)なることを感謝(かんしゃ)すべし
来世(らいせ)は次元(じげん)の異(こと)なる世界(せかい)にして 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肉体(にくたい)を去(さ)りし諸霊(しょれい)の世界(せかい)なり
意識(いしき)の調和度(ちょうわど)により 段階(だんかい)あり
신불(神佛)에 의해 주어지고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것을 감사해야 하며
사후의 세계는 차원의 다른 세계로서 현상계의 육체를 버리고 여러 영혼(諸霊)의 세계이니라.
의식의 조화도에 의해 단계가 있고
この段階(だんかい)は 神仏(しんぶつ)の心(こころ)と己(おのれ)の心(こころ)の調和度(ちょうわど)による 光(ひかり)の量(りょう)の区域(くいき)なり
神仏(しんぶつ)と表裏一体(ひょうりいったい)の諸霊(しょれい)は 光明(こうみょう)に満(み)ち
実在(じつざい)の世界(せかい)にあって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を善導(ぜんどう)する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なり
이 단계는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도에 의해 빛의 량의 구역이며
신불과 표리일체의 모든 영혼(諸霊)은, 광명에 충만하고
실재의 세계에 있고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을 선도하는 빛의 천사이니라.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 すなわち 諸如来(しょにょらい) 諸菩薩(しょぼさつ)のことなり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は 神仏(しんぶつ)よりいっさいの権限(けんげん)を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に委(ゆだ)ねしところなり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は慈悲(じひ)と愛(あい)の塊(かたま)りにして あの世(よ) この世(よ)の諸霊(しょれい)を導(みちび)かん
빛의 천사 즉 여러 여래, 여러 보살인 것이니라.
이 현상계는 신불에 의해 모든 권한을 빛의 천사에게 위임한 곳이며
빛의 천사는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로서 저 세상, 이 세상 여러 영혼(諸霊)을 인도한다.
さらに 諸天善神(しょてんぜんじん)あり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を いっさいの魔(ま)より守(まも)り 正(ただ)しき衆生(しゅじょう)を擁護(ようご)せん
더욱 더 여러 하늘의 선한 신(제천선신)이며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을 모든 마귀(악마)에게서 지키고 올바른 중생을 응원한다.
肉体(にくたい)を有(ゆう)する現世(げんせ)の天使(てんし)は 諸々(もろもろ)の衆生(しゅじょう)に正法神理(しょうほうしんり)を説(と)き 調和(ちょうわ)の光明(こうみょう)へ導(みちび)かん
육체를 소유한 현세(이 세상)의 천사는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에게 정법신리를 설명하고 조화의 광명으로 인도한다.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におけるわれらは
過去世(かこせ)において 己(おのれ)が望(のぞ)み 両親(りょうしん)より与(あた)えられし 肉体(にくたい)という舟(ふね)に乗(の)り
人生航路(じんせいこうろ)の海原(うなばら)へ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魂(たましい)を磨(みが)き
神意(しんい)の仏国土(ぶつこくど)を造(つく)らんがため 生(う)まれ出(いで)た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肉体(にくたい)の支配者(しはいしゃ)は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なり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の中心(ちゅうしん)は心(こころ)なり
이 현상계에 있어서 우리들은
과거세에서 자기의 희망, 양친에 의해 주어지고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항로의 넓은 바다로 자기의 의식・영혼(魂)을 연마하고
신(神)의 뜻인 불국토를 구축하기 위해서 태어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육체의 지배자는 자기의 의식이며 자기의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니라.
心(こころ)は実在(じつざい)の世界(せかい)に通(つう)じ 己(おのれ)の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が 常(つね)に善導(ぜんどう)せることを忘(わす)れるべからず
善導(ぜんどう)せるがために 己(おのれ)の心(こころ)は 己自身(おのれじしん)に忠実(ちゅうじつ)なることを知(し)るべし
마음은 실재의 세계로 통하고 자기의 수호・지도령이 늘 선도해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도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しかるに 諸々(もろもろ)の衆生(しゅじょう)は 己(おのれ)の肉体(にくたい)に 意識(いしき)・心(こころ)が支配(しはい)され
己(おのれ)が前世(ぜんせ)の約束(やくそく)を忘(わす)れ 自己保存(じこほぞん) 自我我欲(じががよく)に明(あ)け暮(く)れて
己(おのれ)の心(こころ)の魔(ま)に支配(しはい)され 神意(しんい)に反(はん)し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を過(す)ぎ行(ゆ)かん
また 生老病死(しょうろうびょうし)の苦(くる)しみを受(う)け 己(おのれ)の本性(ほんしょう)も忘(わす)れ去(さ)るものなり
그런데도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은 자기의 육체에 의식・마음이 지배되어
자기가 전생(前世)의 약속를 잊어버리고 자기보존, 자아아욕에 세월을 보내며
자기의 마음의 마귀(악마)에게 지배되어 신(神)의 뜻을 배반하고 이 현상계를 지나쳐 간다.
또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받고, 자기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이니라.
その原因(げんいん)は煩悩(ぼんのう)なり
煩悩(ぼんのう)は 眼(げん)・耳(にい)・鼻(び)・舌(ぜつ)・身(しん)・意(い)の六根(ろっこん)が根元(こんげん)なり
六根(ろっこん)の調和(ちょうわ)は 常(つね)に中道(ちゅうどう)を根本(こんぽん)として 己(おのれ)の正(ただ)しい心(こころ)に問(と)うことなり
그 원인은 번뇌이며
번뇌는 눈・귀・코・혀・몸・의식의 육근이 근원이며
육근의 조화는 늘 중도를 근본으로서 자기의 올바른 마음에 묻는 것이니라.
己(おのれ)の正(ただ)しい心(こころ)に問(と)うことは反省(はんせい)にして
反省(はんせい)の心(こころ)は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が浄化(じょうか)され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자기의 올바른 마음에 묻는 것은 반성으로서
반성의 마음은 자기의 영혼(魂)이 정화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己自身(おのれじしん)は孤独(こどく)に非(あら)ず
意識(いしき)のなかに己(おのれ)に関連(かんれん)せし 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の存在(そんざい)を知(し)るべし
자기 자신은 고독하지 않으며
의식 속에 자기에게 연결되어 있는 수호・지도령의 존재를 알야할 것이다.
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に感謝(かんしゃ)し さらに反省(はんせい)は
己(おのれ)の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の 導(みちび)きを受(う)けることを知(し)るべし
六根(ろっこん)あるがゆえに 己(おのれ)が悟(さと)れば 菩提(ぼだい)と化(か)すことを悟(さと)るべし
수호 지도령에게 감사하고, 더욱 더 반성은
자기의 수호・지도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육근이므로, 자기가 깨달으면 보리로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神仏(しんぶつ)の大慈悲(だいじひ)に感謝(かんしゃ)し 万生相互(ばんしょうそうご)の調和(ちょうわ)の心(こころ)が 神意(しんい)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신불의 대자비에 감사하고 만생상호의 조화의 마음이 신의 뜻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肉体先祖(にくたいせんぞ)に報恩供養(ほうおんくよう)の心(こころ)を忘(わす)れず 両親(りょうしん)に対(たい)しては 孝養(こうよう)を尽(つく)すべし
心身(しんしん)を調和(ちょうわ)し 常(つね)に健全(けんぜん)な生活(せいかつ)をし 平和(へいわ)な環境(かんきょう)を造(つく)るべし
육체 선조에게 은혜를 갚는 공양의 마음을 잊지 않고, 양친에 대해서는 효도를 다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조화하고, 늘 건전한 생활을 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肉体保存(にくたいほぞん)のエネルギー源(げん)は 万生(ばんしょう)を含(ふく)め 動物(どうぶつ)・植物(しょくぶつ)・鉱物(こうぶつ)なり
このエネルギー源(げん)に感謝(かんしゃ)の心(こころ)を忘(わす)れず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中(なか)において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修行(しゅぎょう)すべし
己(おのれ)の心(こころ)・意識(いしき)のエネルギー源(げん)は
調和(ちょうわ)のとれた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なかに 神仏(しんぶつ)より与(あた)えられ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육체보존의 에너지원은 모든 생명을 포함해서 동물・식물 ・광물이며
이 에너지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기의 영혼(魂)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의식의 에너지원은
조화에 따른 일상의 생활 속에 신불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己(おのれ)の肉体(にくたい)が苦(くる)しめば 心脳乱(こころのうらん)し わが身楽(みらく)なれば 情欲(じょうよく)に愛着(あいちゃく)す
苦楽(くらく)はともに正道成就(しょうどうじょうじゅ)の根本(こんぽん)に非(あら)ず
苦楽(くらく)の両極(りょうきょく)を捨(す)て 中道(ちゅうどう)に入(い)り 自己保存(じこほぞん) 自我我欲(じががよく)の煩悩(ぼんのう)を捨(す)てるべし
자기의 육체가 괴로우면, 마음도 혼란해지고 자기 몸이 즐거우면, 정욕(情欲)에 애착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같이 올바른 길의 목적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이 아니며
괴로움과 즐거움의 양극을 제거하고 중도(中道)에 들어가 자기보존, 자아아욕의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いっさいの諸現象(しょげんしょう)に対(たい)し
正(ただ)しく見(み) 正(ただ)しく思(おも)い 正(ただ)しく語(かた)り 正(ただ)しく仕事(しごと)をなし 正(ただ)しく生(い)き
正(ただ)しく道(みち)に精進(しょうじん)し 正(ただ)しく念(ねん)じ 正(ただ)しく定(じょう)に入(い)るべし
모든 여러 현상에 대해서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일을 하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도에 정진하고 바르게 염원하고 바르게 선정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かくのごとき正法(しょうほう)の生活(せいかつ)のなかにこそ
神仏(しんぶつ)の光明(こうみょう)を得(え) 迷(まよ)いの岸(きし)より 悟(さと)りの彼岸(ひがん)に到達(つうたつ)するものなり
このときに 神仏(しんぶつ)の心(こころ)と己(おのれ)の心(こころ)が調和(ちょうわ)され 心(こころ)に安(やす)らぎを生(しょう)ぜん
心(こころ)は光明(こうみょう)の世界(せかい)に入(い)り 三昧(さんまい)の境涯(きょうがい)に到達(とうたつ)せん
이와 같은 정법의 생활 속에서야 말로
신불의 광명을 얻고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하는 것이 되며
이 때에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되어 마음에 평온함을 만들어낸다.
마음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가고 삼매의 경지(境涯)에 도달한다.
( この諸説(しょせつ)は末法万年(まっぽうまんねん)の神理(しんり)なることを悟(さと)り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師(し)とすべし )
(이 여러 설명은 말법 만년(万年)의 신리인 것을 깨달아 일상의 생활의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高橋信次先生著 心行の言魂より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심행의 말에서
序文
서문
日常生活にとって、もっとも大事なことは五官にもとづく六根に心がふりまわされないことです。五官とは、眼(げん)・耳(にい)・鼻(び)・舌(ぜつ)・身(しん)・意(い)の五つの機能を指します。五つの機能は、肉体保全のためには、なくてはならないものです。問題は、この五官に私たちの意が働き、六根という煩悩が生じて、ねたみや怒り、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が心を支配しますと、自分の心が、まず不安定となり、安心した生活ができなくなります。早い話が、人を見たら泥棒と思えとか、人は人、自分は自分と言う事になりますと、知らぬ間に苦悩の輪廻の渦中におちこむことになります。これではどうみても損です。損得の計算からいっても損のはずです。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오관에 바탕을 두는 육근에 마음이 휘둘림당하지 않는 일입니다. 오관이란,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가지의 기능을 가리킵니다. 다섯가지의 기능은, 육체보전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오관에 우리들의 의지가 작용하고, 육근이라고 하는 번뇌가 생겨, 원망이나 분노, 만족함을 모르는 욕망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우선 불안정하게 되며, 안심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남을 보거든 도둑으로 알아라(남을 경솔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든가, 남은 남이며, 자신은 자신이라고 하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고뇌의 윤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면 어떻게 보더라도 손해입니다. 손실과 이득의 계산으로 말해도 손해일 것입니다.
正法の道は、損得からいっても得の道なのです。なんとなれば安心した道が正法であるからです。煩悩という自分を苦しめる悪の緊縛から離れるので、こんな素晴らしく、明るく、楽しいことはないからです。
정법의 길은, 손실과 이득으로 말해도 이득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안심한 길이 정법이기 때문입니다. 번뇌라고 하는 자신을 괴롭히는 악의 긴박(꼼짝못하게 단단히 묶음)에서 떨어지는 것인데, 이런 기막히게 좋은, 밝은, 즐거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煩悩とは、五官を通して働く自己本位の想念と行為です。あれが欲しい、これはいやだ、という自己中心の肉体的執着、この執着心が強いほど、人の心は不安定になります。ちなみに、生まれたばかりの赤児(あかご)を想起してください。赤児は自然のままに生きています。ひもじくなれば泣きもしますが、満たされればスヤスヤと眠り、あれこれ、恣意を働かせることはありません。嬰児の顔は平和そのものです。かわいいです。だから、嬰児を見ていると、たいていの人は心が和みます。大事に扱います。嬰児は、自己限定の煩悩がないので、安らぎに満ちているからです。
번뇌란, 오관을 통해서 작용하는 자기본위의 상념과 행위입니다. 저것이 갖고 싶다, 이것은 싫다, 라고 하는 자기중심의 육체적 집착, 이 집착심이 강한만큼, 사람의 마음은 불안정하게 됩니다. 덧붙여서 말하면, 이제 겨우 인생의 출발점에 갓 태어난 갓난아기를 상기해 주십시오. 갓난아기는 자연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배고프게 되면 올어댑니다만, 배가 부르면 새근새근 잠자고, 이러쿵저러쿵, 제멋대로 생각하는 일은 없습니다. 젖먹이의 얼굴은 평화 그 자체입니다. 귀엽습니다.그래서, 젖먹이를 보고 있으면, 대개의 사람은 마음이 누그럽니다. 소중하게 다룸니다. 젖먹이는, 자기한정의 번뇌가 없으며, 평안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正法とは、そうした素直な心をいうのであり、自己限定の執着を離れた心を指します。で、それには五官にもとずく、さまざまな欲望から離れること、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をしなくてはなりません。自分の都合のみで心を騒がせては彼岸である心の安らぎには、いつになっても到達できません。足ることの生活は、まず、正法という中道の生活、調和の生活、慈悲の生活、愛の生活であります。まず、己自身の調和の生活から始まり、次いで、人と人との調和にあります。
정법이란, 그러한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며, 자기한정의 집착을 떠난 마을을 가리킵니다. 그것에는 오관에 바탕을 두고, 가지각색의 욕망에서 떨어지는 것, 만족함을 아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형편만으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해서는 피안이 있는 마음의 평안으로는, 어느 때가 되더라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만족함의 생활은, 우선, 정법이라고 하는 중도(中道)의 생활, 조화의 생활, 자비의 생활, 사랑의 생활입니다. 우선, 자기 자신의 조화의 생활에서부터 시작되며, 점차, 사람과 사람과의 조화에 있습니다.
「心行」は、宇宙の生成から草をおこした、いわば〝人間の原典〟であり、安らぎの道を示したものです。「心行」の意義をよく吟味され、生活のうえに、これを生かしてください。そうして、真(まこと)の、あなた自身に立ちかえってください。
「심행」은, 우주의 생성에서 기초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원전《原典=기준(基準)이 되는 본디의 옛 일의 근거(根據) ・내력(來歷)》〃이며, 평안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은, 「심행」의 의의를 잘 음미하시고, 생활 상에, 이것을 살려가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참된, 당신 자신으로 되돌아가십시오.
1975年9月吉日
1975년 9월 좋은 날에. 다카하시 신지(takahashi shinji)
心行の大意
심행의 큰 뜻
人は、どこからきて、どこへゆくのか。人間がこの世に生まれるということは、どんな意味があるのか。死とは何か。宇宙はどうしてできたのか。魂があるとするならその意義を知りたい。心とは何か、神とはいかなるものか。こうした諸問題、つまり、宇宙と人間、人間の存在意義、心の実相を明らかにしたのが「心行」であります。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주는 어떻게 완성된 것일까? 영혼이 있다고 하면 그 의의를 알고 싶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신이란 어떠한 것일까? 이러한 여러 문제, 즉, 우주와 인간, 인간의 존재의의, 마음의 실상을 명백하게 한 것이「심행(心行)」입니다.
それ故「心行」そのものは、通読し、暗記するものではなく、その意味を理解し、日々の生活に、神の子の自分を現すべく、行じてゆくことでなければなんにもなりません。人間の目的は、己自身の調和、地上の調和にあるからであり「心行」の目的も、そこにあるからであります。
그러므로 「심행(心行)」그 자체는, 통독하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고, 매일의 생할에 , 신의 자녀인 자신을 나타내야[드러내야] 하며, 실행해 가지 일이 없으면 말짱 꽝입니다. 인간의 목적은, 자기 자신의 조화, 지상의 조화에 있기 때문이며, 「심행(心行)」의 목적도,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以下、順を追って「心行」の内容を説明してゆきましょう。
이하, 차례대로 「심행(心行)」의 내용을 설명해 가겠습니다.
まず、最初に「心行」という名称について簡単にふれますと、「心行」とは心の教え、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心行の内容は、人間と宇宙の関係を明らかにすると同時に、森羅万象の根源は「心」にある。神仏のエネルギーが万生万物を育み、支えていますので、万物の成り立ち、人間の在り方、つまり「心」と「行ない」を示したものなので、これを「心行」としたわけです。
먼저, 맨 처음에「심행(心行)」이라고 하는 명칭에 대해서 간단히 접해 보면, 「심행(心行)」이란 마음의 가르침,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행의 내용은,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함과 동시에, 삼라만상의 근원(根源)은 「마음(心)」에 있다. 신불의 에너지가 만생만물을 기르고, 지탱[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만물의 성립, 인간의 본연의 모습, 즉, 「마음(心)」과「실행(行ない)」을 제시한 것이며, 이것을 「심행(心行)」이라고 한 사유입니다.
また「心行」とは別な言葉でいえば「信行」でもあります。「心行」の最後の部分に、八正道こそ悟道に通じるとしていますが、八正道は、日々の生活に行じてこそ意義が
あり、悟りを得る最短距離でもあります。したがいまして、「心行」は、ただ理解しただけではなんにもなりません。これを理解すると同時に、行うことにあります。つまり信じて行う、ということです。
또 「심행(心行)」과는 다른 말로 하면, 「신행(信行)」이라고도 합니다. 「심행(心行)」의 맨 마지막 부분에, 팔정도야말로 오도로 통한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팔정도는, 매일의 생활에 실행하는 것에서야말로 의의가 있으며, 깨달음을 얻는 최단거리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심행(心行)」은, 단지 이해한 것만으로는 말짱 꽝입니다. 이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실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즉 믿고 행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心行」とは、それ故に「信行」でもあるわけです。
「심행(心行)」이란, 그러므로「신행(信行)」이라도 하는 이유입니다.
高橋信次先生著 心の原点より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마음의 원점에서
心行概説
심행개설
「心行」とは心と行いということである。
すでに「心行」を読まれて薄々気付かれたとおもうが、人間を含めた大宇宙は常に相互に関係し合って動いている。太陽系一つとっても、太陽を中心に九つの惑星が相互に関係し、太陽系という体を形作っている。地球や火星が一つ欠けても、太陽系の存立ははかれない。地上の生活にしても、動、植、鉱の相互関係がなければ成り立たないのである。
その相互関係は何に起因するか、それは大自然の意識である。秩序整然とした意識の働きがあればこそ、大宇宙も、地上の生活環境も、調和されている。生命の神秘を見る時に、私達はそこに、偉大な大自然の叡智を発見しよう。神の心である。
「심행(心行)」이란 마음과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심행(心行)」을 읽으시고 어렴풋이 알아차렸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을 포함한 대우주는 항상 서로 상호관계하며 움직이고 있다. 태양계 하나라고 해도, 태양을 중심으로 9개의 혹성이 상호관계하고, 태양계라고 하는 몸을 형성하고 있다. 지구나 화성이 하나가 빠져도, 태양계의 존립은 도모할 수 없다. 지상의 생활이라고 해도, 동물, 식물, 광물의 상호관계가 없으면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상호관계는 무엇에 기인할까, 그것은 대자연의 의식이다. 질서정연한 의식의 작용이 있음으로 인해, 대우주도, 지상의 생활환경도, 조화되고 있다. 생명의 신비를 볼 때에, 우리들은 거기에, 위대한 대자연의 예지(叡智)를 발견할 것이다. 신의 마음이다.
※예지[叡智] 《일본어사전》사물의 도리를 통찰하는 뛰어난 지혜= 영지(英智)
※예지[叡智] 《국어사전》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지혜롭고 밝은 마음.
もしも、自然のそうした相互関係が、ただの偶然の連続によって生じたとすれば、地球はとうの昔に滅びていよう。地球誕生にはさまざまな説があろうが、地球という球体ができたのは、今から約33億年も前である。その当時の地球は、いわば火の玉であり、太陽のように燃えさかっていた。生物が住めるようになったのは今から約6億年も前のことである。それまでの地上は、火山の爆発や氷河時代を繰り返した。大宇宙の時の流れからすると、6億年という歳月は一瞬のできごとかも知れない。しかし地球が太陽の周囲を公転しはじめて、すでに数十億年、その軌道は、昔も今も変わらない。偶然にしては、あまりにできすぎていると思うのが当然ではないか。
しかも、極大の大宇宙と極微の素粒子には、核と分子の相互関係がみられるという事実を知るならば、そこに大自然の意思、意識、心というものを感得し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
私はこうした事実を、客観的に、主観的にとらえることができた。
ただ皆様に説明する場合には、主観的では納得されないために右のような説明になってくるのである。
만약, 자연의 그러한 상호관계가, 단지 우연의 연속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한다면, 지구는 오래 전에 멸망했겠지요. 지구 탄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을 것이지만, 지구라고 하는 구체(球体)가 완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3억년 전이다. 그 당시의 지구는, 말하자면 불덩어리(火の玉)이며, 태양과 같이 맹렬하게 불타고 있었다. 생물이 살 수 있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억년이나 전인 것이다. 그때까지의 지구는, 화산의 폭발이나 빙하시대를 반복했다. 대우주의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6억년이라고 하는 세월은 순간적으로 생긴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기 시작하며, 이미 수십억년, 그 궤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연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가, 극대의 대우주와 극미의 미립자에는, 핵과 분자의 상호관계를 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거기에 대자연의 의사, 의식,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느껴서 깨달지 않을 수 없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었다.
단 여러분에게 설명하는 경우에는, 주관적으로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오는 것이다.
大宇宙には心が存在する。そうしてその心は私達の心にも同通している。
客観的にこれを説明すると、太陽の熱・光に強弱がない、空気に増減がない、一日は昼と夜があって、決して一方に偏らない、つまり、大自然の心は、私達に中道という調和ある秩序を教え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る。太陽の熱・光が強くなったり、弱くなったらどうなるだろう。地上の生命は生きてはいけまい。空気が増えたり減ったりしても同じことがいえよう。
私達の生活態度も、食べすぎれば腹をこわし、惰眠をむさぼれば体力に抵抗力を失う。しかし、もっと体に影響を与えるものは心だ。心配事があれば食欲は減退し、睡眠がさまたげられる。。どなったり、腹を立てれば血行が悪くなる。怒りの息が大変な毒性を持っ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人は少なかろう。
대우주에는 마음이 존재한다.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은 우리들의 마음에도 동통(同通)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이것을 설명하면, 태양의 열・빛에 강약이 없다. 공기에 증감이 없다. 하루에는 낮과 밤이 있으며, 절대로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즉, 대자연의 마음은, 우리들에게 중도(中道)라고 하는 조화있는 질서를 가르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된다. 태양의 열・빛이 강하게 되거나, 약하게 되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상의 생명은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공기가 늘어나거나 줄거나 해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지요.
우리들의 생활태도도, 과식을 하면 배탈이 나고, 게으름을 피워 잠만 자면 체력에 저항력을 잃는다. 하지만, 더욱 몸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마음이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식욕은 감퇴하고, 수면이 방해를 받을 수 있다. 등등을 하게 되거나, 화를 내면 혈핵의 순환이 나빠진다. 분노[노여움]의 숨[호흡]이 상당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大自然は調和という中道の心を教えている。
人間の体も、無理はいけないし、怠惰もいけない。心についても、怒ったり、悲しんだりすれば、体に、精神に、悪い影響を与える。肉体も、心も、中道にかなった生活行為、つまり正しい想念と行為が必要なのである。
大自然は、そのことを教えている。同時に、大自然の心にさからえば、その分量だけの苦しみがついてまわることも教えているのだ。
대자연은 조화라고 하는 중도의 마음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몸도, 무리를 해서는 안 되고, 나태도 안 된다. 마음에 대해서도,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하면, 몸에, 정신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육체도, 마음도, 중도에 들어맞는 생활행위, 즉 올바른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가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대자연은, 그 일을 가르치고 있다. 동시에, 대자연의 마음에 역행하면, 그 분량만큼의 괴로움이 따라다니는 것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中道とは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である。欲望にほんろうされない自分自身を確立することだ。生老病死の苦しみは、こうした中道の心を失った自我と、執着した想念、心にあったのである。
人間は大自然の中で生活している。大自然から離れて生活は出来ない。このことは大自然の心と同通しているからなのだ。
중도란 만족함을 안 생활이다. 욕망에 농락당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확립하는 일이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은, 이러한 중도의 마음을 잃어버린 자아(自我)와, 집착한 상념,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心行」とは、足ることを知った心で生活し、報恩という行為を示していくことである。ちゅうどうの精神で、毎日を生活しなさい、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
「心行」は大宇宙の相関関係と、人間の関係、そして、すべてのものが循環され、その循環が、大宇宙の心、中道を軸にして回転し、人間の魂もまたこうした正しい循環の過程の中で育まれ、調和という目標に向かって、転生輪廻を重ねてゆく永遠の生命体であることを、極めて平易に、端的に、文字で表したものである。
「심행(心行)」이란, 만족함을 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보은(報恩)이라고 하는 행위를 나타내어 가는 것이다. 중도(中道)의 정신으로, 매일을 생활하십시오, 라고 하는 것인 것이다.
「심행(心行)」은 대우주의 상호관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모든 것[만물]이 순환되며, 그 순환이, 대우주의 마음, 중도를 축으로 해서 회전하고, 인간의 영혼도 또한 그러한 올바른 순환의 과정 속에서 성장되며, 조화라고 하는 목표를 향해서, 전생윤회를 거듭해 가는 영원한 생명체인 것을, 극히 평이하게, 단적으로,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物事にはすべて柱というものがあるが、「心行」の柱となるものは、
매사에는 전부 기둥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만,「심행(心行)」의 기둥이 되는 것은,
〝大自然という神の心〟
〝永遠の生命体を維持する循環の法〟
〝慈悲と愛〟
〝대자연이라고 하는 신의 마음〟
〝영원한 생명체를 유지하는 순환의 법〟
〝자비와 사랑〟
の三つである。
この三つが「心行」を形作り、私達を生かし続けているものである。
「心行」はそれゆえに、心の教えであり、生活の規範である。
의 세가지이다.
이 세가지가 「심행(心行)」을 형성하고, 우리들은 계속 소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행(心行)」은 그러므로, 마음의 가르침이며, 생활의 규범이다.
したがって、これは暗記するものではない。これを理解し、実践して行くものだ。実践の過程を通して、私達は、大宇宙の中道の心に調和され、真の安らぎが体得できるものである。
따라서, 이것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해하고, 실천해 가는 것이다. 실천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은, 대우주의 중도의 마음에 조화되어, 진정한 평안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ところで言葉というものは波動である。経文の読誦(どくじゅ)もただ読み上げるだけでは意味を持たない。経文の意味を理解し、実践している者が読誦する時は、その言葉の波動はあの世の天上界にまで通じ、人びとを感動せしめていくものである。
言葉は本来、言魂(ことだま)といって、もともと光の粒子からできており、言葉を発する人の心の在り方いかんで、言葉の一つ一つが、光の玉となって、空間に流れ出ていく。光の玉はふつう肉眼ではわからない。霊視のきく人、あるいは四次元の世界からみると、この点は実にはっきりと見える。
그런데 말이라고 하는 것은 파동(波動)이다. 경문의 독송(소리 내어 읽음)도 다만 낭독만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경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독송할 때는, 그 말의 파동(波動)은 저 세상의 천상계로까지 통하며, 사람들을 감동시켜 갈 수 있는 것이다.
말은 본래, 고토다마[言魂: 말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졌던 영적인 힘]이라고 하며, 본래 빛의 입자로 되어 있고, 말은 발하는 사람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 여하로, 말의 하나하나가, 빛덩어리[光の玉]가 되어, 공간으로 흘러나간다. 빛덩어리는 보통 육안으로는 알 수 없다. 영시[霊視: 영혼을 보는 능력(힘)]를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4차원의 세계에서 보면, 이 점은 분명하게 보인다.
人の話に感動する、ないしは笑いや怒りが出る場合は、話す側の心と、これを受け取る人の精神状態によってちがってこよう。しかし、純な心で話す場合は、これを受け取る側に邪心があっても、大抵はその邪心は消えていってしまう。話はスジが通ってわかるが、さっぱり気持ちがそれについていかないというのもあるであろう。こうしたことは、話す側の心の在り方が聞き手に非常に大きな影響を与えているからだ。純な心は光であり、わだかまりがると光が黒い塊となって相手に伝わって行くので、反作用を呼び起こすことになる。
사람의 말[이야기]에 감동하는, 내지는 웃음이나 화가 나는 경우는, 말하는 측의 마음과,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신상태에 따라서 달라져 올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는 경우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측에 사심(邪心)이 있다고 해도, 대체는 그 사심은 없어져 버리고 만다. 이야기는 사리에 맞아서 알 수 있지만, 후련하게 기분이 그것에 대해서 뭔가 석연치 않은 것[いかな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말하는 측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이 듣는 사람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은 빛이며, 마음에 꺼림한 감정이 있으면 빛이 어두운 덩어리가 되어 상대에게 전해져 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작용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ちょっとした寺にいくと釣鐘がある。あの釣鐘の音色も、これを打つ人の心によって、ひびきがちがってくる。ゴーンという鐘の音は誰が打っても同じだろうと思うが、打つ人が常日頃、心の研鑽を怠っていなければ、その鐘の波動はあの世の天上界にまで達し、その人に返ってくるばかりか、その鐘の波動は、人びとの心に伝わり浄化してくれるのである。
대수롭지 않은 절에 가면 조종(釣鐘: 사찰의 종루에 달아 놓은 큰 종)이 있다. 저 조종의 음색도, 이것을 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울림이 달라진다. 궁~이라고 하는 종소리는 누가 치더라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치는 사람이 평소, 마음의 연찬(研鑽)을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면, 그 종의 파동은 저 세상의 천상계로까지 통하고, 그 사람에게 되돌아올뿐만 아니라, 그 종의 파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져 정화시켜 줄 것이다.
経文の読誦、読銃というものも、まったくこれと同じである。正しき心と行為をしている者がすると、その声の波動は金剛界にまで通じ、再びその人にその波動が帰って来て、心の統一、安らぎを一層、助長していくものだ。 「心行」の朗読は、そうした意味では大切なものだし、しないよりされた方が良いと言うことになる。ただ、書かれている意味もわからず、おがめばご利益があるということでは駄目である。般若心経はどこでも読まれている。有り難いお経であり、したがって写経も良し、読誦もまたご利益がると伝えられている。しかしその意味もわからず、行為のないものが、朝晩上げても光は届かない。今日の仏教は、経文をあげたり、写経自体にウエイトがかかり、日頃の想念と行為については問題にしていないところに問題があろう。
경문의 독송, 독총(読銃)이라고 하는 것도, 완전히 이것과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마음과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하면, 그 소리의 파동은 금강계(金剛界)로까지 통하고, 다시 그 사람에게 그 파동이 돌아오는 것이며, 마음의 통일, 평안을 한 층, 조장해 가는 것이다. 「심행(心行)」의 낭독은, 그러한 의미로는 중요한 것이고,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좋다고 하는 것이 된다. 단, 적혀 있는 의미도 알지 못하고, 두손 모아 빌면 이익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는 헛일이다. 반야심경(般若心経)은 어디서든지 읽혀지고 있다. 고마운 경문이며, 따라서 사경(写経)도 좋고, 독송(読誦)도 역시 이익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도 알지 못하고, 행위가 없는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올린다 해도 빛은 닿지 않는다. 오늘날의 불교는, 경문을 올리거나, 사경 자체에 무게를 달며, 평소의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는 문제로 삼고 있지 않는 바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心行」は、そうした意味において、真意をよく理解し、それを現実の生活の上に現わし、そしてその心で朗読されるならば、一の言魂は、二になり、三になって、心の安らぎを増していくであろう。
「심행(心行)」은, 그러한 의미에 있어서, 진의[참뜻]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의 생활 상에 나타내고, 그리고 그 마음으로 낭독하시게 되면, 하나의 말은, 둘이 되어, 셋이 되어, 마음의 평안을 늘려 갈 것이다.
「心行」の意味を理解され、夜寝る時に、床の上で静かに朗読され、その日一日の想念と行為を反省し、過失(あやまち)を正し、中道の心に一日も早く修正されることを望むものである。
「심행(心行)」의 의미를 이해하시고, 밤에 잠을 잘 때에, 침상에서 조용히 낭독하시고, 그 날 하루의 상념가 행위를 반성하고, 과실을 바로잡고, 중도의 마음으로 하루라도 빨리 수정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昭和48年4月8日 (1973年)
소화 48년 4월 8일 (1973년)
2011.03.30 UP☜ 이 날짜는, 이 글을 올리신 아래 소호(정법)2의 주인이 올렸다는 표시입니다.
※출처: http://www.shoho2.com/singyou.html
다른 분도, 제가 올린 다카하시 신지님 글들을, 번역해서 올린 분이 계십니다. 다음블로그에.
차이점은, 그분은, 능숙한 일본어 솜씨로 번역하시었고, 일본어 원문이 없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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