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원설・반야심경『原說・般若心經』/ [제1장 원설・반야심경]/ 1972년 11월 高橋信次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원설・반야심경『原說・般若心經』/ [제1장 원설・반야심경]/ 1972년 11월 高橋信次

어둠의골짜기 2011. 5. 30. 21:10

高橋信次 原說・般若心經  內在された叡知の究明

다카하시 신지님의 원설・반야심경 내재된 예지의 구명

これは、單なる解說書ではない。
이것은, 단순한 해설서가 아니다.
誰の內にも秘められている
누구의 속에도 숨겨져 있는
偉大なる佛智に到達する道を
위대한 불지에 도달하는 길을
釋迦の原點な還り、
석가의 원점으로 돌아와서,
說さ示す書である。
설명해 보이는 책이다.


 

高橋信次/原説般若心経
  http://www.sampoh.co.jp/takahashishinji/gensetsuhs.html

사진 출처

이 책의 저자는, 다카하시 신지입니다.

출판사는, 위 사진의 링크에 있는데, 그 출판사에 사전 허가 없이, 블로그에 올려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지만, 말법의 시대에 올바른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체이신, 다카하시 신지님(엘란티)이신 분이 글을

제가 직접 일본어와 한자를 넣고, 나름대로 해석하여 올립니다.

 

일본에 있는 삼보출판사의 사장님께는,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한국에 소개하고 싶지만, 한국내에는 출판이 되지 않은 관계로, 인해, 원문을 보고 올렸습니다.

 


 

原說・般若心經  

付・宗敎と科學
   ・釋迦の誕生とバラモンの時代

원설・반야심경

부록・종교와 과학

      ・석가의 탄생과 바라문의 시대

  


 


心の調和への出發を

마음의 조화로의 출발을
                
                                                                                                    作家 山岡莊八
                                                                       작가 야마오카 소우하치

 

高橋信次氏の宗敎觀人生觀は、私がかねてから主張してきた事と全く一致している。
다카하시 신지씨의 종교관 인생관은, 제가 전부터 주장해 온 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卽ち-、
「大宇宙のエネルギ― (意識)こそ神であり、佛である。大宇宙は神の躰、地球はその細胞の一つ。人々はこれを調和させる使命目的をもって地上に生まれているのだ」

즉,
「대우주의 에너지(의식)이야말로 신이며, 부처이다.  대우주는 신의 몸, 지구는 그 세포의 하나.  사람들은 이것을 조화시킬 사명과 목적을 갖고 지상에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又-、
「信仰とは、神佛を拜むことでもなく、お經を上げることでもない。他人に噓はつけても自分の心に噓はつけぬ。噓をつけない自分の心に忠實なこと、信じること=これが信仰だ」
と。
또한,
「신앙이란, 신불을 합장 배례하는 것도 아니며, 경문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타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것, 믿는 것= 이것이 신앙이다」
라고.

 

この高橋氏が、ごれが般若心經だともいうべき解說書を上梓された。喜んで廣く讀者にお篤めする所以である。
이분인 다카하시씨가, 이것이 응당 반야심경이라고도 해야 할 해설서를 출판하시었다.  기쁘게 널리 독자에게 권장하는 까닭이다.

 


 

 

棋理に叶った本手   
장기에 들어맞는 기량  

                                                                                                  棋理九段升田幸三
                                                                      장기 9단 마스다 코우죠우

 

將棋の陳立―――――今では駒組みというが、序盤から中盤にさしかかるころ、五分の分かれとか、四分六分で先手優勢とかいわれる古來の定跡がある。
바둑이나 장기의 이론를 확실히 해석하는 것―――――오늘날 장기의 포진(布陣)이라고 말하지만, 두기 시작한 초기의 국면부터 중반에 접어들 무렵, 어슷비슷하든가, 4대 6으로 선수 우세라든가 말해지는 고래의 장기의 정해진 수법이 있다.
 
私はその幾つかを、いわゆる定跡以外の手を差して勝負をきめたり、局面を逆轉させたりした。
저는 그 만큼의 수를, 이른바 정해진 수법 이외의 수를 써서 승부를 결정하거나, 국면을 역전시키거나 했습니다.

 

皆は私のこの〃一手〃新手とか妙手とか評したが、後日、棋理に照らしてみると正しかった。
여러분은 저의 이 〃밀어붙이는 한 수〃 새로운 수단·방법이라든가 묘수라든가 평하지만, 후일, 바둑이나 장기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정확했다.

 

だから今は誰も妙手とはいわず、當然の一手となっている。
그래서 지금은 누구나 묘수라고는 말하지 않고, 당연한 밀어붙이는 한 수가 되어 있다.

 

高橋さんの說く〃心は丸く大く豊かに〃も、〃心と行ないの一致〃も〃人生は調和への修行の旅に過しぬ〃も、〃私にいわせれば棋理に叶った本手であり、これが分からぬ世の中の方がめくら千人だ。
다카하시씨가 말하는 〃마음은 둥글고 크고 풍부하게〃도,〃마음과 행위의 일치〃도〃인생은 조화를 위한 수행의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도,〃제가 말을 하자면 바둑이나 장기의 이론에 들어맞는 기량이며, 세상에는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だからこそ一人でも多くの人に本書の一讀をすすめたい。
그때문이야말로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본서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1.ますだ‐こうぞう【升田幸三】
[1918~1991]将棋棋士。広島の生まれ。昭和32年(1957)名人位を獲得、王将・九段と併せて3タイトルを独占。独特の風貌と鋭い棋風により人気を博した。
마스다 코우죠우씨 [1918~1991]장기 기사. 히로시마 출생.  소화 32년(1957) 명인 위치를 획득, 오우쇼우[왕장:王将: (일본 장기에서) 궁(宮). 《장기의 주장인 말. 좌우·전후·네 귀의 팔방으로 한 금씩 움직임. 이것을 빼앗기면 패함》]・9단으로 아우르며 3개의 타이틀을 독점. 독특한 풍모와 예리한 기풍에 의해 인기를 얻었다.

 


 Heart Sutra(心經) 본문에는, 없지만, 올렸습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사진출처로 이동합니다.

 

File:Prajnyaapaaramitaa Hridaya by Ouyang Xun.jpg

 

中文: 歐陽詢(557-641年)書寫《般若波羅蜜多心經》。本帖落款為貞觀九年書寫,而此版本的心經是玄奘於貞觀二十三年翻譯的,所以應該是後人用歐陽詢書寫的字綴集而成。635 A.D.Chinese text of the Heart Sūtra, by scholar and calligrapher Ouyang Xun,

 


 

 

 

はしがき
서문[머리말]


般若心經というお經の內容を、今の字句から理解するのは、現代人には、なかなかむずかしいことです。
반야심경이라고 하는 경문의 내용을, 오늘날의 글자와 글귀로 이해하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좀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なぞそうなってしまったか、それには、いろいろな理由があります。
왜 그렇게 되어 버렸는가, 그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一つには、神社、佛閣、佛壇の前で、神主や行者や僧侶や、一般の人々までが、言葉そのものを讀誦しているからです。
한 가지로는, 일본에서 왕실의 조상이나 고유의 신앙 대상인 신 또는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 불당 부처를 모신 대청, 부처를 모셔 놓은 단의 앞에서, 죽은 사람의 위패나 불도를 닦는 사람이나 승려 등이, 일반의 사람들까지, 말 그 자체를 독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またある人は、寫經といって、毛筆で、寫すことだけに心を奪われたから、といえます。
또 어떤 사람은, 사경한다며, 털붓으로, 베끼는 것 만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 이라고 말할 수 있다.

 

私は、そうしたことから、永い間、お經というものに、非常に疑問を持っていました。
저는 그러한 것에서, 오랜 동안, 불경[佛經]이라고 하는 것에, 상당히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つまり、本當の意味が解らないから、讀誦したり、寫經をしているのだ、と思ったのです。本當は、もっと解りやすいものではないのかと思ったのです。
결국,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독송하거나, 사경을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은, 훨씬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닌 것인가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い歷史を體驗して人々に愛されてきた佛敎は、いつの間にか、日常生活の中でそうした形式的な習性としてしか生きていない、いわば、化石化してしまったのです。
오랜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불교는, 어느 사이엔가, 일상생활 속에서 그러한 형식적인 습성으로밖에 살아 있지 않다, 말하자면, 화석화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本當の意味が解っていないから、讀誦すれば良いとか、寫經すれば良いということにな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독송하면 좋다든가, 사경하면 좋다 라고 하는 것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私は疑問に思うのですが、ゴ―ダマ・プッタ(佛陀)の時代に、果たして今のような哲學化されたむずかしいもので、文盲同樣の當時の衆生を救うことができたのかどうかと。
저는 의문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고타마・붓타(불타)의 시대에, 과연 오늘날과 같은 철학화된 어려운 것으로써,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시대의 중생을 구원하는 일이 가능했을 것인가 라고.

 

日本に傳わってきた佛敎は、中國ですっかり哲學化された、むずかしい漢文の經文です。
일본에 전해져 온 불교는, 중국이며 확실히 철학화된, 어려운 한문의 경문[불교의 경전의 문장]입니다.

 

そんな、佛敎專門の學者や僧侶でも眞に理解できない言葉で、シュドラ― (奴隸)やヴェシャ― (商工階級)やクシャトリヤ(武士階級)の低邊の人々の心を、救い得たのでしょうか。
그런, 불교전문의 학자나 승려라고 해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슈드라(노예)나 베샤(상공계급)이나 크샤트리야(무사계급)의 저변의 사람들의 마음을, 구원을 얻었던 것일까요?

 

私は、どうしても疑問に思うのです。經文というものは、讀誦することによって良く理解をし、日々の生活の物差しとして實踐する、そのことを敎えているものでしょう。
저는, 아무리 해도 의문으로 생각합니다.  경문이라고 하는 것은, 독송하는 것에 의해서 잘 이해를 하고, 나날의 생활의 마음의 척도로서 실천하는, 그 일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つまり讀誦するだけの、他力本願は、佛敎の根本とはいえないはずなのです。.
즉 독송하는 것만의, 타력본원은, 불교의 근본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般若心經は、その意味で、決して繪に書いた餠ではないといえます。たとえ餠だとしても、食べてみなければ味は解らないものです。
반야심경은, 그 의미에서, 결코 그림에 그려진 떡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설사 떡이라고 해도, 먹어 보지 않으면 맛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お經の中に書かれてある內容は、心の指針として實踐する、これが本當の人の道といえ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불경 속에 쓰여져 있는 내용은, 마음의 지침으로서 실천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람의 길(도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小乘佛敎であるとか、大乘佛敎であるとか、あるいは何何宗、何何宗派とか色分けされたものは、佛敎とはいえません。
소승불교라든지, 대승불교라든지, 혹은 어떠어떠한 종교, 어떠어떠한 종파라든지 달리 색칠하여 구분된 것은, 불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では、眞の佛敎とは、ということを考えてみましょう。
그럼, 참된 불교란,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佛敎は、今を去る二千五百年前、中印度を中心として、ゴ-ダマ・プッタの說かれたプッタ・ス― トラ(悟りへの道)それが眞の道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불교는,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2천 5백년 전, 중인도를 중심으로 해서, 고다마 ・붓타(Gotama Buddha)가 설법한 붓타・수트라(Buddha Sutra 깨달음으로 길) 그것이 참된 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中國の佛敎にしても、日本佛敎にしても、バラモン敎やヨギ-・ス― トラ、拜火敎まで混合していると考えられますし、護摩焚しなどという行事は、本當の佛敎の行なうことではないはずです。
중국의 불교라고 해도, 일본불교라고 해도, 바라문교나 요기・수트라, 배화교까지 혼합하고 있다고 여겨지며, 부동명왕(不動明王)·애염명왕(愛染明王) 등을 본존으로 하여, 그 앞에 단을 쌓고 화로를 마련하여, 호마목(護摩木)을 태우며 재앙과 악업을 없애 줄 것을 기도하는 밀교 의식을 거행한다고 하는 행사는, 진정한 불교가 행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特にナラジュルナ(龍樹)2~3世紀は、ゴ-ダマ・プッタの說かれた四十五年間の敎えを分類して、自分で理解できなかった問題は捨てて、後世に傳えたものです。
특히 나라쥬나루(용수) 2~3세기는, 고마다・붓타가 설법한 45년간의 가르침을 분류해서, 자기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는 버리고, 후세에 전한 것입니다.

 

この邊に、誤りの原因があったといえましょう。
이 경우에, 잘못의 원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每日の生活から離れた佛敎は、正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つまり、お經の讀誦に意味があるのではなく、それを良く理解して生活の中に生かす。そうでないとプッタの敎えはないとことになるでしょう。
매일의 생활에서 벗어난 불교는,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결국, 불경의 독송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되살린다.  그렇지 않은 붓타의 가르침은 아니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他力本願の讀誦だけで、プッタの悟りに到達した人が果たしているでしょうか。
타력본원의 독송만으로, 붓타의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私は、宗敎には、全く無關係の人生を步んできましたが、人間としての道を求めて、すでに三十五年の歲月を過ごしてきており、その間、自然科學や物理學を通して人生の道を知り、またそれを生活の中に生かしてきています。
저는, 종교에는, 완전히 관계가 없는 인생을 걸어왔습니다만, 인간으로서의 길을 찾고, 이미 35년간의 세월을 거쳐 오고 있고, 그 동안, 자연과학이나 물리학을 통해서 인생의 길[도리]를 알고, 또한 그것을 생활 속에 되살려 오고 있습니다.

 

その結果、私が發見したのは、般若心經が自然科學と全く變わっていない、〃神理〃である、ということでした。つまり、〃大自然〃こそ、人生におけるわが師である、と知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
그 결과, 제가 발견한 것은, 반야심경이 자연과학과 전혀 다르지 않은, 〃신리〃이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대자연〃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저의 스승이다, 라고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專門の學者や僧侶が、哲學的な知惠だけで行ないを離れて解說したものと、心と行ないを實踐した心の中から湧き出したものが書いた解說書と、そのどちらが眞實であるかは、讀者の皆さんの判斷にお任せしたい、と思いますが、おそらく、誰でもが、私の解說した內容を良く理解して生活の中に生かしたならば、必ず、般若心經の偉大な〃佛智〃を得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そう私は信じます。
전문가인 학자나 승려가, 철학적인 지혜(知惠)만으로 행위를 떠나서 해설한 것과, 마음과 행위를 실천한 마음속에서 용출한 것을 적은 해설서와, 그 어느 쪽이 진실한지를,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고 생각합니다만, 잠시, 누구든지, 제가 해설한 내용을 잘 이해해서 생활 속에 되살린다면, 틀림없이, 반야심경의 위대한 〃불지[佛智: 진리를 완전히 깨달은 부처의 지혜]〃를 얻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그렇게 저는 믿습니다.

 

この書を、その意味で讀者の皆さんが、生活の友として役に立てて下さるならば、私にとっては望外の幸せです。
이 책을, 그 의미에서 독자 여러분이, 생활의 벗으로서 도움이 되어 주신다면, 저로서는 기대 이상의 행복입니다.

 

というのは、皆さんは、私と同じ結論に達するであろう、と考えられるからです。

 자세히 말하자면, 여러분은, 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私は、三十五年の求道の經驗を踏まえて、一九六八年から、電氣事業のかたわら、この道をあらゆるところで說いていますが、すでにこの道を求めて訪ねてきている方は、數萬人に及んでいる、そのことが證左であるといえるのです。
저는, 35년의 구도의 경험을 밟고, 1968년부터, 전기사업을 하는 한편, 이 길을 도처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이 길을 찾아서 방문해 오고 있는 분은, 수만 명에 미치고 있다, 그 사실이 증거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そして、これらの人々の中から、般若波羅蜜多、すなわち、〃轉生輪廻〃の過程において、體驗した自らの〃過去世〃を、當時の言葉で語り出している人達も、すでに百人を越えている、という事實もあります。
그리고, 이들의 사람들 중에서, 반야바라밀다, 즉, 〃전생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체험한 스스로의 〃과거세〃를, 당시의 말로 말을 꺼내고 있는 사람들도, 이미 100명을 넘고 있다, 라고 하는 사실도 있습니다.

 

それは、佛敎の華嚴經十地品や、聖書使徒行傳第二章に現われている現象と同じものです。
그것은, 불교의 화엄경십지이나, 성서 사도행전 제2장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같은 것입니다.

 

東京に、東北地方に、關西地方に、さらにはアメリカに、ブラジルに、エジプトに、過去世を語る同樣の現象が輩出している、この事實は、見逃がせないことです。
도쿄에, 동북지방에, 관서지방에, 나아가서는 미국에, 브라질에, 이집트에, 과거세를 말하는 같은 현상이 배출하고 있다, 이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おそらく皆さんは、この事實を知ったとき、いかに現代佛敎の在り方が誤っているか、ということを悟るでしょう。
잠시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현대 불교의 본연의 모습이 잘못되어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을 깨닫을 것입니다.

 

この書は、現代の自然科學を通して、私自身が體驗している〃轉生輪廻〃を說明し、それが同時に般若心經の敎えにあることを示しながら、倂せて、觀自在菩薩になられてゆく、ゴ-ダマ・プッタの出家から成道への過程、正法流布の歷史を、なるべく解りやすく書いてみました。
이 책은, 현대의 자연과학을 통해서, 제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전생윤회〃를 설명하고, 그것이 동시에 반야심경의 가르침에 있는 것을 제시하면서, 아울러, 관자재보살이 완성되어 가는, 고다마・붓타의 출가에서 성도[成道: 깨달아 부처가 되는 일]을 향한 과정, 정법유포의 역사를, 가능한 한 이해하기 쉽게 적어 보았습니다.

 

皆さんが、この書によって、人生の苦しみから解脫できたならば、というのが私のささやかな希望であり、いつわらざる氣持です。
여러분이, 이 책에 의해서, 인생의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다면, 이라고 하는 것이 저의 자그마한 희망이며, 거짓이 없는 심정입니다.

 


一九七二年十二月   高橋信次
1972년 12월     다카하시 신지

 



目次 목차

 

序〃心の調和〃への出發を

머리말〃마음의 조화〃로의 출발을      야마오카 소우하치[山岡莊八]  3페이지

 

棋理に叶った本手
장기에 들어맞는 기량      마스다 코우죠우[升田幸三]  5페이지

 

 

はしがき
서문[머리말]            5

 

第一章 原說・般若心經
제1장 원설・반야심경

 

般若心經(心行)    17
반야심경(심행)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解說     20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해설

(經文解說)

(경문해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29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41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51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55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생불멸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安耳卑舌身意    77
無色聲 香味觸法 無眼界 乃至無意識界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 향미촉법 무안계 내지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83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一切顚倒夢想 究竟涅槃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개애 무괘애고
무유공포 원리일체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99
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故智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羯諦羯諦 波羅羯諦  波羅僧羯諦
菩提薩婆呵 般若心經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지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갈제갈제 바라갈제 바라승갈제
보리살바가 반야심경


 

第二章 宗敎と科學
제2장 종교와 과학

 

心と意識(魂)とはどういうものであるか    105
마음과 의식(영혼)이란 어떠한 것인가?

物質とエネルギ― 106/
물질과 에너지

心は丸いものである109/
마음은 둥근 것이다

佛像の後光―――――心の形110/
불상의 후광 ──마음의 모습

記憶の倉庫ではない頭腦116/
기억의 창고가 아닌 두뇌

宗敎と科學とは別のものではない118
종교와 과학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第三章 釋迦の誕生とバラモンの時代
제3장 석가의 탄생과 바라문의 시대

 

原始佛敎の成立 (般若波羅蜜多への道)   135
원시불교의 성립(반야바라밀다로의 길)


遂に出家の道へ──道ははるかに142/
마침내 출가의 길로──길은 멀고
肉體行を捨てる──新しい在り方への眼覺め158/
육체수행을 버리다──새로운 본연의 모습으로의 눈을 뜸
大悟への道に入る──正しい基準への問い162/
완전한 깨달음으로의 길에 들어서다──올바른 기준으로의 물음
惡靈との鬪い──幼年時代の反省177/
악마와의 싸움── 유년시대의 반성
靑春時代への反省──四季の館は遠く186/
청춘 시대로의 반성──계절의 머물 집은 멀다
實在の世界か──淡い黃金色の心の世界をかい間見る193/
실재의 세계── 연한 황금색의 마음의 세계를 슬쩍 엿보다
自己追求──梵天に化けてきた惡魔210/
자기추구──범천으로 둔갑해 온 악마
遂に悟りを開く──眼下に展さる大パノラマ224/
마침내 깨달음을 열다── 눈아래 펼쳐진 대 파노라마
天上界の人々と語る──調和への二十一日間236/
천상계의 사람들과 말하다──조화로의 21일간
この道を誰に說くか──旅へ248/
이 길[도리]를 누구에 설명할까── 여행
現代人にもその力がある252/
현대인에게도 그 힘이 있다
アラハンへの導き──五人との再會256/
아라한으로의 인도── 다섯 사람과의 재회
ウルヴェラ・カンシャバ-との對決-プッタを食わなかった大蛇259/
우루베라・갓샤파와의 대결-붓타를 잡아먹지 않은 큰 뱀[구렁이]
三つの約束-歸依への法則274/
세 가지의 약속-귀의로의 법칙
プッタ・ス― トラ(悟への敎え)283/
붓타・수트라(Buddha Sutra, 깨달음으로의 가르침)
最後の弟子──百十七歲のシヴリダ-286/
최후의 제자──117세의 시브리다
眞の佛敎とは──八正道の實踐294
참된 불교란──팔정도의 실천

 


★참고로, 올립니다.
心無罣礙 無罣礙故
심무개애 무개애고
※[심무가의, 혹은 심무개의]가 아닌, '개애'로 적습니다.
《한자사전》
그 礙 거리낄 (애), 푸른 돌 (의)
㉠거리끼다
㉡장애가 되다
㉢지장을 주다
㉣방해하다(妨害--)
㉤거치적거리다
㉥거북하다
㉦막다
㉧그치다
㉨해치다
ⓐ푸른 돌 (의)

 

※じゅうおうむげ [―無×礙]  《일본어사전》
 종횡무애. 아무 거리낌없음.  
 縦横無礙(じゅうおうむげ)に駆(か)けめぐる 종횡무애로[아무 거리낌없이] 뛰어다니다.

 

 




第一章  原說・般若心經
제1장 원설・반야심경

 

般若心經の漢子は当て字じである

반야심경의 한자는 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서 어떤 말을 표기하는 한자이다
むずかしい顔をして通ることはない

어려운 얼굴을 해 가지고 통하는 것이 아니다.
要は  その心を學ぶことである

요는 그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眞の心の在り方とは何か

참된 마음의 본연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眞の宗敎とはどういうものか

참된 종교란 어떠한 것인가?
眞の信仰とはどうあるべきなのか

참된 신앙이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そして〃悟りへの道 への方法はいかにしたら良いか
그리고 〃깨달음으로 길로의 방법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心經とは〃心行〃なのである.
심경이란 〃심행〃인 것이다.

 

 


般 若 心 經(心 行)
반야심경(심행)

 

 

般若心經というお經の名は、かなり一般的です。
반야심경이라고 하는 불경의 이름은, 꽤 일반적입니다.

 

しかし、むずかしい漢子が竝び、何だかすべてを否定しているようで、解りにくいものでもあります。
하지만, 어려운 한자가 잇따르며, 무엇인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にも拘わらず、あるお寺の坊さんが、普通の言葉でお經を上げたら、「お坊さん、漢字で書いておるむずかしいお經のほうが、解らなくてもありがたいような氣がする。あれをお願いしますよ」
と、佛前にかしこまって坐っていた職人風の主人が、讀經の方法の指定をしたの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절의 스님이, 보통의 말로 불경을 올리면 어때요 했더니, 「스님, 한자로 쓰여 있는 어려운 불경의 법이, 이해할 수 없어도 고마운 듯한 기분이다.  저것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부처의 앞에 정좌하고 앉아 있는 직인[목수·미장이·이발사 등]풍의 주인이, 독경의 방법을 지정을 한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私はそのとき、永い習性とはおそろしいものだ、と思っていました。漢文調の讀經でなくては感じが出ない。そんなふうに佛敎は變わってしまったのです。
저는 그 때, 오랜 습성이란 무서운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문조의 경문이 아니면 느낌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불교는 변해 버렸던 것입니다.

 

法事や葬式、佛前、佛閣での燈明や線香その他の小道具と同じように、お經もまた儀式の附屬品のようにされてしまっています。
법사[불교의 의식]나 장례식, 부처의 앞, 불당 부처를 모신 대청에서의 신이나 부처를 위해서 켜 놓은 등불이나 선향[線香] 그 외의 소도구와 마찬가지로, 불경도 역시 의식의 부속품처럼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しかし、本当の佛敎とは、そのようなものでしょうか。
하지만, 진실한 불교한, 그러한 것일까요?

 

私はこうした佛敎の在り方に、大きな疑問を持っている一人です。私には、親しい友達にお坊さんが多く、佛敎の專門大學で學ばれた、プロの宗敎家である一人に、
「般若心經を佛樣に供養すると、どんな功德があるんですか」
と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すると、このようなお坊さんでさえ、
「般若心經はありがたいお經ですよ。どの宗派でもこのお經を讀誦していますし、神佛に通ずるお經ですからね、寫經も功德があるようです」
という答えてした。
저는 이러한 불교의 본연의 모습에, 큰 의문을 갖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친한 친구로 스님이 많고, 불교 전문대학에서 공부를 한, 프로의 종교가인 한 사람에게,
「반야심경을 부처님에게 공양하면, 어떤 공덕이 있는 것입니까?」
라고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스님조차,
「반야심경은 고마운 불경이지요. 어느 종파라해도 이 불경을 독송하고 있고, 부처의 앞에 통하는[연결되는] 불경이기 때문이지요, 사경[寫經]도 공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そして般若心經の心は、「無我だ」とつけ加え、「無我とはわれを無にすることで、これが佛敎哲學の根本だ」とも解說するのでした。
그리고 반야심경의 마음은, 「무아다]」라고 덧붙이며, 「무아란 나를 저버리는 것이며, 이것이 불교철학의 근본이다」라고도 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むにする[無にする]
헛되게 하다. 무의미하게 하다. 〔연어〕 저버리다. 헛되게 하다.

※저버리다 : 《국어사전》
 1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의리를 잊거나 어기다..

 

そして「空」とは、「むなしいものだ、無だ、あると思えばない、ないと思えばあるという表現しかできない、不可思議なものである」ともいうのです。
그리고 「공」이란, 「어려운 것이다, 없음이다, 있다고 생각하면 없고, 없다고 생각하면 있다 라고 하는 표현밖에 할 수 없다, 불가사의한 것이다」라고도 말하는 것압니다.

 

おそらく、語っている本人も解ってはいないのでしょう。
잠시, 말하고 있는 본인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지요.

 

それは、佛敎のお經の中身を、いかに學問的な智で悟ろうとしてもできないでしょうし、私はむしろ、心經は、心行であるべきだ、と思うのです。つまり人々は、心經が、心と行ないの在り方を說いていることを忘れ、讀誦することによって理解しようという、無駄なことをしているのです。
그것은, 불교의 불경의 내용을, 아무리 철학적인 지혜로 깨달으려고 해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고, 저는 물론, 심경[心經]은, 심행[心行]이어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요컨데 사람들은, 심경(心經)이, 마음과 행위의 본연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독송하는 것에 의해서 이해하려 한다, 소용0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單なるそうした勤行は、心も伴わず實踐もないから、かえって苦しみとなります。
단순한 그러한 근행은, 마음도 동반하지 않고 실천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괴로움이 됩니다.

 

實踐とは、お經を讀むことではなく、その意味を良く理解して、生活行爲の柱とする。そこにこそ價値があるのです。心と實踐を失った佛敎は、すでに佛敎ではない、といえるでしょう。
실천이란, 불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생활행동의 기둥으로 삼는다.  거기에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실천을 잃어버린 불교는, 이미 불교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지요.

 

しかしあるお坊さんは、
「一所懸命に、每朝每夕、般若心經を讀誦したり、寫經などをすれば、必然的にその意味も解り、心がおだやかになります。ありがたいお經文です」
하지만 어떤 스님은,
「열심히, 매일 아침 매일 저녁, 반야심경을 독송하거나, 사경 등을 하면, 필연적으로 그 의미도 이해되고, 마음이 평온하게 됩니다.  고마운 경문입니다」

 

といいます。それでは、胃けいれんや端息で苦しんでときに使う、痲藥の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か。心經とは、そん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おだやかにならない原因を除くための、心と行ないの在り方を敎えている〃心の物差し〃なのです。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위경련[胃痙攣]이나 단식[端息]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사용하는, 마약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심경[心經]이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편안하게 되지 않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마음과 행위의 본연의 모습을 가르치고 있는 〃마음의 척도〃인 것입니다.

 

さて、それでは私の考える般若心經についての說明をしましょう。
그럼,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는 반야심경에 관해서의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般若心經はまずその題からして、大切な意味を持っています。この意味も理解せずに中味をとやかくいっても始まらないので、その解題から入ることにしましょう。
반야심경은 우선 그 제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의미도 이해시키지 않고 속에 든 내용을 이러쿵저러쿵 말할지라도 시작되지 않기 때문에, 그 대략적인 설명에 들어갑니다.

 

※해제[解題]  《한자/국어사전》
 ① 책의 저자·내용·체재·출판 연월일 따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 ② 문제를 풂.

 

page 15~19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の解題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대략적인 설명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は、古代インド語を中國流に当てはめた、当て字じです。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고대 인도어를 중국어로 적용한, 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서 어떤 말을 표기하는 한자입니다.

 

そこには、ゴ―ダマ・プッタの正しい敎えを歪めてしまった、永い歷史があるということで、インドからチベット、中國と渡って行く間に、その國々の習性や言語などの相違のため、學問的な智だけで判斷して、その敎えの實踐をしないままにむずかしいものを作り出してしまった、ということでしょう。
거기에는, 고다마・붓타의 올바른 가르침을 왜곡해 버린, 오랜 역사가 있다고 하는 것이며, 인도에서 티베트, 중국으로 건너가는 동안에, 그 나라들의 습성이나 언어 등의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학문적인 지혜만으로 판단해서, 그 가르침의 실천을 하지 않는 채로 어려운 것을 만들어 내어 버렸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プッタの敎えは、人間を、人生の苦しみから解脫させる方法を說いたもので、これを、プッタ・ス―トラといっていました。
붓타의 가르침은, 인간을, 인생의 괴로움에서 해탈시키는 방법을 설명한 것인데, 이것을, 붓타・수트라(Buddha Sutra)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悟りへの道〃〃悟りへの敎〃です。
〃깨달음으로의 길〃〃깨달음으로의 가르침〃입니다.

 

つまり、日常生活の一瞬一瞬の中で、かたよらない心と正しい行ないを實踐する。そのときに、私達の心の窓は開かれて過去世を思い出し、現在の每日の生活がいかに大切であるか、それゆえに人生の目的と使命を自覺せざるを得なくなる、そういった悟りへの道の敎えなのです。とすれば、他力信仰の大乘佛敎によって、悟り得るかどうかは、自明の理といえることでしょう。悟り得るはずかないのです。
즉, 일상생활의 한 순간 한 순간 중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마음과 올바른 행위를 실천한다.  그 때에, 우리들의 마음의 창은 열리어 과거세를 생각해 내고, 현재의 매일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말한 깨달음으로의 길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타력신앙의 대승불교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을지 어떤지는, 자명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지요.  깨달음을 얻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私達は、每日の實踐活動の重ねによって、苦しみから離れ、執着を斷ち、心の不調和な自分が作り出した曇り晴らしたときに、偉大な神の慈悲の光によって滿たされ、安らぎの境地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ます。ところが佛敎は、中國に渡ってから學問佛敎に變わってしまい、智と意でゆがめられてしまった、といえるのです。
우리들은, 매일의 실천활동의 거듭에 의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집착을 끊고, 마음의 부조화한 자신이 만들어 낸 흐림[구름]을 개이게 했을 때에, 위대한 신[神]의 자비의 빛에 의해서 가득 채워져, 평안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중국으로 건너나고 나서 학문불교로 변해 버리고, 지혜와 의지로 왜곡되리고 말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情、すなわち心は、學問佛敎の哲學化された內部に埋沒されてしまい、今、人々は、その神理を探し出すのに苦勞しています。つまり佛敎は、日常生活の中に生かされていないのです。
정[情], 즉 마음은, 학문불교의 철학화된 내부로 매몰되어 버린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신리를 찾기 시작하는 것에 수고하고 있습니다.  요컨데 불교는, 일상생활 중에 되살려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お經をあげたり、神社や佛閣にお詣りしたり、先祖をおまつりする、そうした形だけが今の信仰になっていますが、大切なことは、佛敎という敎えによって、正しい生活を行なうことなのです。
불경을 올리거나, 신사나 불각에 참예하거나, 조상을 신으로 받들어 모신다[조상을 제사지낸다], 그러한 형식만이 오늘날의 신앙이 되어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불교라고 하는 가르침에 의해서, 올바른 생활을 실행하는 일인 것입니다.

 

その心と行ないを實行しないで、何で佛敎の本質を悟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그 마음과 행위를 실행하지 않으며, 무엇으로 불교의 본질을 깨달을 수가 있을까요?

 

むずかしい佛敎哲學を、素人に解るはずかないと嘲笑する、プロ宗敎家がもしいるとしたならば、私はこう聞いてみたい。
「インドのゴ―ダマ・シッタルダ―は宗敎家であっただろうか。イスラエルのイエス・ギリストは宗敎家であっただろうか......」と。
어려운 불교철학을, 문외한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조소한다, 프로 전문가가 왜곡하여 나쁘게 말했다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들어보고 싶다.
인도의 고다마・싯타르다는 종교가였던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예수・그리스도는 종교가였던 것일까요?......」라고.


―ダマ・プッタも出家した當時は、バラモン敎のサマナ―やサロモン達から、素人では深達な神の道を知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われたことです。
고다마・붓타도 출가했을 당시는, 바라몬교의 사마나나 사로몬들에게, 비전문로서는 선악의 근본을 깊이 통달하여 죄도 없고 복도 없는 실상(實相)의 이치를 깨달음. 악(善惡)의 근본(根本)에 깊이 통달(通達)하여 선악(善惡)의 실상(實相)을 깨닫는 신의 길을 알 수가 없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심달죄복상[深達罪福相]《한자사전》《국어사전》
선악(善惡)의 근본(根本)에 깊이 통달(通達)하여 선악(善惡)의 실상(實相)을 깨닫는 일 
선악의 근본을 깊이 통달하여 죄도 없고 복도 없는 실상(實相)의 이치를 깨달음

 

しかし、その中にも、マハ―バラモンのババリ―などという人は、自らの愛弟子のビンギャ―を始めとしてマイトレイヤ―(彌勒菩薩)ら十七人を、プッタのもとへ、その〃心〃を學び取らせるため、バラナシ―のカパリ―というところからはるばるグリドラクタ―の地に送った、という事實もあります。
하지만, 그 중에도, 마하―바라몬의 바바리라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애제자인 빈갸를 시작으로 해서 마이트레이야(미륵보살) 등 17명을, 붓타의 밑으로, 그 〃마음〃을 배우고 얻게 하기 위해, 바라나시(baaraaNsii)의 카팔리라고 하는 곳에서 거리나 시간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드라쿠타(Gridhakuta ,霊鷲山 영취산)의 있는 지역으로 보냈다, 고 하는 사실도 있습니다.

 

イエスもユダヤ敎や他の敎徒から迫害を受けたことは、周知の語でしょう。
예수도 유대교나 다른 교도로부터 박해을 받았던 일은, 여러 사람이 두루 아는 이야기이지요.

 

つまり、プロの宗敎家の中にも、生ぬるい宗派にも足りず、自ら道を求めて實踐した人々もいるということです。
결국, 프로의 종교가 중에도, 흐리멍텅한 종파에도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서 실천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私がいいたいのは、プロの宗敎家も、プロ意識を除て、素人の言葉にも耳を傾けることのできるような心の廣い人間になるべきだ、ということです。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프로의 종교가도, 프로의식을 버리고, 문외한의 말에도 귀를 기울릴 수 있는 것과 같은 마음의 넓은 인간이 마땅히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바입니다.

 

ガンガ―の流れが、今も變わることなくベンガル灣にそそいでいるように、神理の〃法〃は、時代の變化によって變わ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강가 강(겐지즈 강)의 흐름이, 오늘날도 변함 없이 벵갈만으로 흘러들고 있는 것처럼, 신리의 〃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かつての、戰亂の時代にはその環境の人々を救うため、生命の不變を敎え、心の平和を與えるため、他力本願という方便を用いて人々を導くこともあったでしょう.しかし、それは一時の方便に過ぎないことです。
옛날에, 전란의 시대에는 그 환경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생명의 불변을 가르치고, 마음의 평화를 주기 위해서, 타력본원이라고 하는 방편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인도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한때의 방편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法〃は、人間の知惠によって變えられるものではない。だから、佛敎を食い物にして、ヴェ―ルをかぶせて他力信仰を敎え、信者を盲目にしてしまった人達も、眞の〃法〃を知ったならば、その罪を自分に返ってくることを思い知らされることでしょう。
〃법〃은, 인간의 지혜(知惠)에 의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를 음식물로 해서, 면사포를 씌워서 타력신앙을 가르치고, 신자를 맹목으로 해 버렸던 사람들도, 참된〃법〃을 알았다면, 그 죄를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つまり、理解できないから、かえってむずかしいものに作り變えてしまった、というのが眞實の姿のようです。
즉,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도리어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바꿔버렸다, 라고 하는 것이 진실한 모습인 모양입니다.

 

私は、般若心經を、現代の自然の法則をもって對照し、それがいかに正しい人生の道標であるかを說明してみます。
저는, 반야심경을, 현대의 자연의 법칙을 가지고 대조해서, 그것이 어떻게 올바른 인생의 도표인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玄奬三藏は、長安の都から遠く南天竺を訪れ、佛敎を求めて、惡戰苦鬪の末、遂に佛法の神髓に觸れ、心と行ないの大調和に達して、あの大般若經の中から、般若心經を集約したのです。
현장삼장(玄奬三藏)은, 장안의 도읍에서 멀리 남천측을 방문하여, 불교를 찾고,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부처의 가르침의 신수[神髓] 를 접하고, 마음과 행위의 대조화에 도달하여, 저 대반야심경 중에서, 반야심경을 집약했던 것입니다.

 

※신수[神髓]
①진수(眞髓) ②온오(蘊奧


本文二百六十六字、題字十文字。それが、精華です。だからそれは、悟りの境地に到達しなかったら、完成されなかったといえましょう。知識と智慧とはちがいものです。生活と心の調和がなかったら、得ることのできない佛智であったといえるのです。
본문 260자, 권두에 제목을 붙인 10문자.  그것이, 정화[精華]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완성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지식과 지혜[智慧]와는 다른 것입니다.

 

しかし後世の人々は、容易な他力本願に道を求めたときから、生活體驗をとおして理解することを怠り、自己を見失ってしまいました。
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은, 용이한 타력본원에 길을 찾았을 때부터, 생활체험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자기를 보는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例を引けば、現在、社會問題になっている公害も人間が作り出したものです。文明といる人間の生活の智惠に、人間自身が溺れたからです。
예를 들면, 현재,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공해도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문명이라고 하는 인간의 생활의 지혜[智惠]에, 인간 자신이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それを修正するのは、やはり自力によるしかありません。心の中に作り出したスモッグも同じことがいえるでしょう。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역시 자력에 의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마음속에 만들어 낸 스모그도 마찬가지인 것임을 말할 수 있지요.

 

自力によってのみ、他力が得られる、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です。
자력에 의해서만, 타력을 얻을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될 것입니다.

 

般若心經も、內容を理解する讀誦であり、理解すろための寫經であるならば良いのです。しかし祈ることによって救われると思うのなら、それはその本旨から遠くへだたってしまう、ということです。
반야심경도, 내용을 이해하는 독송이며, 이해하기 위한 사경이라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비는[기도하는] 것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 본지에서 멀리 멀어지져 버린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內容の意味を知った心と生活、それ以外に本質に到達する道はないのです。
내용의 의미를 안 마음과 생활, 그것 이외에 본질에 도달하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般若心經によって利益を得ようと讀誦することは、發音練習と、自己逃避、自己滿足にしかすぎません。
반야심경에 의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독송하는 일은, 발음연습과, 자기도피,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偉大な般若心經の中にある正しい敎えを、泥沼の中に入れてしまうということは、ダイヤモンドを滿に捨て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か。
위대한 반야심경 속에 있는 올바른 가르침을, 수렁 속에 넣어 버린다고 하는 것은, 다이야몬드를 잔뜩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ゴ―ダマ・プッタの敎えは、偉大な心と行ないの敎えであり、それが經文となっているのです。
고다마・붓타의 가르침은, 위대한 마음과 행위의 가르침이며, 그것이 경문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では一つ一つ、言葉の解說に入りましょう。
그럼 하나하나, 말의 해설에 들어 가겠습니다.


 

摩訶 마하

マカとは、マハ―呼ばれている古代インドの言葉です。
마카란, 마하[mahā] 불리고 있는 고대 인도의 말입니다.

 

意味は、特別とか偉大とか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의미는, 특별하다든가 위대하다든가 라고 하는 것이 되지요.

 

マハ―・パジャパティ―という人がいます。ゴ―ダマ・プッタの義母で、弟子達が尊敬していった、つまりマハ―とは尊稱なのです。
마하 ・파쟈퍄티 (Maha Pajapati. 摩訶・波闍波提)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마다・붓타(Gotama Buddha) 의 의모[의붓어미]이며, 제자들이 존경하고 있었던, 즉 마하란 존칭인 것입니다.

 

父王がこの世を去った後、パジャパティ―は、三百七十六人の女官達とともにプッタに歸依され、多くの比丘尼の面倒を良くみられていたとのことです。
부왕이 이 세상을 떠난 후, 파쟈파티(Pajapati. 波闍波提)는, 376명의 여관들과 함께 붓타에게 귀의하여, 많은 비구니를 잘 보살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サンガ―(僧伽)のサロモン、サマナ―達も、尊稱で呼んでいました。
상가(Sangha. 승가)의 사로몬, 사마나들도, 존칭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そのほか、同時代には、コ―サラ國王を、マハ―・コ―サラと呼び、またプッタの弟子の中でも、マハ―・モンガラナ―、マハ―・ナマ―、マハ―・カシャパ―、マハ―・カッチャナ―、と呼ばれていた例があります。
그 외, 동시대에는, 코살라국왕을, 마하・코살라라고 부르고, 또한 붓타의 제자 중에도, 마하・몽가라나[대목련大目連,목건련目建連 Maudgalyayāna ], 마하・나마[마하남摩訶男, 마하나마摩訶摩男, Mahaa-naaman, Mahanama], 마하・카샤파[가섭迦葉, 대가섭大迦葉, Mahā-ka-śyapa], 마하・캇챠나, 라고 부르고 있었던 예가 있습니다.

 

※마하나마[摩訶男, Mahanama] 《문화원형 백과사전》
 카필라성의 샤카족 왕으로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며, 부처님께 귀의하여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부처님이 태자 신분으로 출가하고, 아난다(阿難陀). 난다(難陀). 라훌라 등과 같은 왕족들이 모두 출가하자...

 

般若 반야

ハンニャと呼んでいますが、般若の面を思い出す人もあるでしょう。しかし、この般若も当て字じです。
한냐[반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반야의 면을 생각해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반야도 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서 어떤 말을 표기하는 한자입니다.

 

正しくは、パニャ―、という言葉です。
올바르게는, 파냐, 라고 하는 말입니다.

 

意味は智慧、心の中から湧き出してくる佛智、ともいえるでしょう。
의미는 지혜, 마음 속에서 용출되어 오는 불지, 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波羅 바라

ハラと讀みますが、これも当て字じです。パラ―という古代インド語で、彼岸といっている人もあるが、〃行く〃とか〃到達する〃という意味です。
하라라고 읽습니다만, 이것도 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서 어떤 말을 표기하는 한자입니다.  파라 라고 하는 고대 인도어이며, 피안이라고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간다〃라든가〃도달한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むしろ、彼岸、すなわちあちらの岸は、後に述べるカ―ティがそれでしょう。カ―ティという古代インドの言葉を中國語に發音すると、ギャ―ティ―となるようです。
오히려, 피안, 즉 언덕, 후에 말하는 카티가 그것이지요.  카티라고 하는 고대 인도의 말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갸티가 되는 모양입니다. 


 

蜜多 밀다

ミタ―も、当て字じであるが、蜜が多いというなかなか中國人らしい言葉です。蜜は、ゴ―ダマ・プッタの時代も、中國の玄奬の時代も貴重品だったからです。
미타도, 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서 어떤 말을 표기하는 한자이지만, 벌꿀[蜜]이 많다고 하는 꽤 중국인다운 말입니다.  벌꿀은, 고마다 붓타의 시대에도, 중국의 현장[玄奬]의 시대에도 귀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意味は、內在とか家の中とかいったものです。
의미는, 내재라든가 집안이라든가 말한 것입니다.

 

つまり、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は、マハ― パニャ― パラ― ミタ― チタ― ス―トラとなるわけで、その意味は、
「內在された、偉大な智慧に到達する、心の敎え」
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요컨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마하 파냐 파라 미타 치타 수트라가 되는 것으로, 그 의미는,
내재된, 위대한 지혜[智慧]에 도달하는, 마음의 가르침
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內在。それをいえば、私達の心には轉生輪廻の過去現在のすべてが記憶されているのですが、心の不調和な行爲によって曇りを作り、自らの神の光りを閉ざしてしまっていることで、過去世で體驗したあらゆる智慧を思い出すことが難しい、ということです。
내재.  그것을 말하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전생윤회의 과거현재의 모든 것이 기억되어 있는 것입니다만, 마음의 부조화한 행위에 의해서 흐림[구름]을 만들고, 스스로 신[神]의 빛을 막아 버리고 있는 것이며, 과거세에서 체험한 모든 지혜[智慧]를 생각해 내기가 어렵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それを思い出すためには、一切の執着を斷って、足ることを知り、八正道の實踐生活によって心の窓が開かれるといえます。
그것을 생각해 내기 위해서는, 일체의 집착을 끊고, 만족함을 알며, 팔정도의 실천생활에 의해서 마음의 창을 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人生における體驗は、わずか百年前後です。しかし內在されている體驗は、無限に近いものなのです。
인생에 있어서 체험은, 불과 백년 전후입니다.  하지만 내재되어 있는 체험은, 무한에 가까운 것인 것입니다.

 

私達が、この智慧を思い出して生活したらば、まず生命の永遠を悟ることができ、どのくらい大きな人生での幸せを得られるか、はかり知れないものがあります。
우리들이, 이 지혜(智慧)를 생각해 내어 생활한다면, 우선 생명의 영원을 깨달을 수가 있고, 어느 정도 큰 인생에서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佛智に到達する心の敎えもまた、同じことがいえるでしょう。パニャ― パラ― ミタ―の境地になるためには、つまり正道を生活の中でしっかり行爲しない限り不可能といえます。
불지에 도달하는 마음의 가르침도 역시,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지요.  파냐 파라 미타의 경지가 되기 위해서는, 즉 정도[正道]를 생활 속에서 확실히 행위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도[正道]  《한자사전》
①올바른 길 ②사람이 행(行)해야 할 바른 길, 정당(正當)한 도리(道理)

 

內在された、その偉大な智慧、すなわち佛智を得る境地になることは、到彼岸とい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내재된, 그 위대한 지혜, 즉 불지를 얻는 경지가 되는 것은, 피안에 도달한다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智慧の寶庫を開かせる、その道こそ、般若心經の根本であるのです。
지혜(智慧)의 보고를 열게하는, 그 길이야말로, 반야심경의 근본인 것입니다.


Page 20~28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如來と呼ばれる上段階光の大指導靈達は、宇宙卽我の境地に到達している。

여래라 불리우는 상단계 빛의 대지도령들은, 우주즉아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從って、全人類はみな兄弟であると悟っており、慈悲と愛の塊りである。

따라서, 모든 인류는 모두 형제이다라고 깨닫고 있고,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이다.
一切の執着から離れ、神の心を衆生に敎え衆生を人生の苦しみから解脫させる使命を持っている。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신의 마음을 중생에게 가르치고 중생을 인생의 괴로움에서 해탈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それは、實在界(四次元以降の世界)と現象界(三次元の地上界)のもっともすぐれた指導者群である。
그것은, 실재계(4차원 이후의 세계)와 현상계(3차원의 지상계)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 무리이다.

 


直譯すると、觀自在菩薩が、深く般若波羅蜜多を行するとき、五蘊はみな空なりと照見して、一切の苦厄を度し給う。
직역하면, 관자재보살이, 깊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은 모두 공[空]이니라 라고 조견하고, 일체의 고난과 재난을 구조된다.

 

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が、これでは理解がゆきとどかないでしょう。
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만, 이래서는 이해가 두루 잘 되지가 않겠지요.

 

觀自在菩薩とは、プッタがインドで法を說いていた時代、バラモン敎のヴェダ―やウパニシャドの經典に出てくる言葉で、「アボロキティ―・シュバラ―」と表現されているものです。簡潔には、シュバラ―とだけ呼ふこともありました。
관자재보살이란, 붓타가 인도에서 법을 설명하고 있던 시대, 바라몬교의 베다우바니샤드의 경전에 나오는 말이며, 「아포로키티・슈바라」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간결하게는, 슈바라로만 부르는 일도 있습니다.

 

菩薩とは、ボサッタ―という言葉ですが、悟りの段階をいうのです。
보살이란, 보삿타라고 하는 말입니다만, 깨달음의 단계 말하는 것입니다.

 

ボサッタ―の段階では、完全に執着から離れているというわけにはいきません。
보삿타의 단계로는, 완전히 집착에서 벗어나고 있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ただし、心の狀態は慈悲に富み、衆生濟度のためには、身を犧牲にしても救濟するという者達で、決してむくいを求めない境地に到達していることです。
단, 마음의 상태는 자비로 풍부하고, 중생구도를 위해서는, 몸을 희생해서라도 구제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며, 결코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足りない部分というのは、自分の身につけるものに對しては飾る心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他人に良くみせた、というような優越感はないが、自分で樂しんでいる程度といえましょう。
부족한 부분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장식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 한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우월감은 없지만, 스스로 즐기고 있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지요.

 

佛像を見ると、觀世音菩薩や彌勒菩薩その他の諸菩薩などは、ネックレスや王冠などを飾っていることでそれが良く解ります。
불상을 보면,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보살 그 외의 여러 보살 등은, 장식용의 목걸이나 왕관 등을 꾸미고 있는 것으로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관세음보살 과 미륵보살에 관한, 내용을 첨부합니다. 이 단, 아래 입니다.

 

しかし、如來と呼ばれている上段階光の大指導靈達は、宇宙卽我の境地に到達していますので、身にまとう衣服などに執着はなく、全人類はみな兄弟だということを悟っている、慈悲と愛の塊りの者達です。
하지만, 여래라 불리고 있는 상단계 빛의 대지도령들은, 우주즉아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에, 몸에 걸치는 의복 등에 집착은 없고, 모든 인류는 모두 형제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있는,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의 사람들입니다.

 

それは、一切の執着から離れ、神の心を衆生に敎え、衆生を人生の苦しみから解脫させる使命を持って活躍されている上段階光の大指導靈です。
그것은,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신의 마음을 중생에게 가르치고, 중생을 인생의 괴로움에서 해탈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활약하시고 있는 상단계 빛의 대지도령입니다.

 

つまり、實在界と現象界の、もっともすぐれた指導靈郡といえましょう。
즉, 실재계와 현상계의, 가장 뛰어난 지도령 무리라고 할 수 있지요.

 

ゴ―ダマ・シッタルダ―、イエス・ギリスト、モ―ゼが、そのアガシャ―系の大指導靈だといえます。
고다마・싯타르다, 예수・그리스도, 모세가, 그 아가샤(Agasha)계의 대지도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このような大指導靈には、あの世もこの世もなく、輪廻の實相を悟っているので、生と死の迷いから解脫しています。
이러한 대지도령에는, 저 세상도 이 세상도 없고, 윤회의 실상을 깨닫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미옥에서 해탈하고 있습니다.

 

その中から、肉體を持って現象界に出ている大指導靈は、自らの生活の中から、人生への疑問を持って遂に悟りを開き、觀自在力を得、實在界に在る大指導靈や光の天使達の協力を得て、心を失った地上界の衆生に神理の種をまき、ユ―トピアへの道を開いて行くことに力を盡くしています。
그 중에서, 육체를 가지고 현상계에 나오고 있는 대지도령은, 스스로의 생활 속에서, 인생에서의 의문을 가지고 마침내 깨달음을 열고, 관자재력을 얻어, 실재계에 있는 대지도령이나 빛의 천사들의 협력을 얻어, 마음을 잃어버린 지상계의 중생에게 신리의 씨앗을 뿌리고, 유토피아로의 길을 열어 가는 것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それは、人間の作り出した、社會的な地位や經濟的富に溺れることのない者達で、一切の束縛から離れて身を挺しているのです。
그것은, 인간의 만들어 낸,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 부에 빠지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며,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몸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ゴ―ダマやイエスが非常に良い例といえます。
고다마나 예수가 상당히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このような意味で、觀自在菩薩が、深く般若波羅蜜多を行じた時、というのは、
「內在された偉大な智慧に到達するための生活行爲を、深く實踐した時」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이러한 의미에서, 관자재보살이, 깊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했을 때, 라고 하는 것은,
「내재된 위대한 지혜에 도달하기 위한 생활행위를, 깊이 실천했을 때」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觀自在菩薩は、過去、現在、未來の諸現象を、自由自在に見聞することのできる悟った方で、慈悲と愛と寬容の持ち、すべての衆生を救濟するために活躍している廣い豊かな心の持ち主です。
관자재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현상을, 자유자재로 견문할 수가 있는 깨달은 분이며, 자비와 사랑과 관용을 가지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활약하고 있는 넗고 풍요로운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私達の多くは、このように、偉大な、悟った人々の心も、他人の心の中もほとんど知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眼でとらえた姿形、耳で聞いた話や噂[수군거림]、そんな範圍でつい人も物も、その評價を決めがちです。
우리들의 대부분은, 이와 같이, 위대한,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도, 타인의 마음속도 거의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눈으로 파악된 모습[형상], 귀로 들은 소리나 수군거림, 그런 범위에서 무심코 사람도 사물도, 그 평가를 결정하기 쉽상입니다.

 

それは、同じ次元で、平面思考で世界を見ているからにほかならないでしょう。
그것은, 같은 차원에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평면 사고로 세계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その次元のことを、少し說明しましょう。
그 차원의 일을, 잠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今、私達の住んでいる世界は、X軸、Y軸、Z軸を結んだ三次元の世界です。
지금, 우리들의 살고 있는 세계는, 엑스축[X軸]、와이축[Y軸]、제트[Z軸]을 묶은 3차원의 세계입니다.

 

つまり宇宙空間をふくめた立體の世界といえましょう。
즉 우주공간을 포함시킨 입체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私達は、この世界に存在する物質的なものは確認できるが、それにも限界があるでしょう。
우리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一次元の世界は低次元ですから三次元の世界から見えるはずです。しかし、次元が異なっているため、意志は通じないものです。
1차원의 세계는 저차원이기 때문에 3차원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차원이 달라져 있기 때문에, 의지[의사]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そして、三次元以降、四次元の世界も、三次元の五官で確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그리고, 3차원 이후, 4차원의 세계도, 3차원의 오관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しかし正道を心の糧として、每日の生活をしている者達の中には、四次元以降、多次元の世界に通じているものもあるということです。
하지만 정도를 마음의 양식으로 해서, 매일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4차원 이후, 다차원의 세계로 통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四次元をとおして、三次元の狀態を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4차원을 통해서, 3차원의 상태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その四次元以降は、意識界といえましょう。
그 4차원 이후는, 의식계라고 할 수 있지요.

 

一次元から二次元、二次元から三次元へと連續されているように、四次元以降の意識界も連續體です。つまり、私達の肉體に共存している意識は、そのゆえに、高次元と連續されているものだといえましょう。
1차원에서 2차원, 2차원에서 3차원으로도 연속되어 있는 것처럼, 4차원 이후의 의식계도 연속체입니다.  요컨데, 우리들의 육체에 존재하고 있는 의식은, 그런 이유로, 고차원과 연속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意識は從って、高次元になれば、低次元の諸相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他人の心の中も、低次元にあれば解る、ということです。
의식은 따라서, 고차원이 되면, 저차원의 여러 가지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속도, 저차원에 있으면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私達は、三次元で肉體を持っていても、意識の發達が調和されて、高次元になれば、肉體舟から下船した者(死者)達とも通信が可能だし、その活動狀態も解るのです。
우리들은, 3차원에서 육체를 가지고 있어도, 의식의 발달이 조화되어, 고차원이 되면, 육체배에서 하선한 사람(죽은 사람)들과도 통신이 가능하고, 그 활동상태도 아는 것입니다.

 

死は、肉體舟との永遠の別れであって、その魂意識は、三次元以降多次元の世界に適應した肉體(光子體)を持ち、人生體驗の一切を記憶して歸ってしまいます。
죽음은, 육체배와의 영원한 이별이며, 그 혼의식은, 3차원 이후 다차원의 세계에 적응한 육체(광자체)를 가지고, 인생체험의 일체를 기억하고 돌아가 버립니다.

 

生命不滅、の理由が、ここに存在するのです。
생명불멸, 의 이유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さて、物質の三態については、知らない者はありません。
그럼, 물질의 온도와 압력의 변화에 따라 갖는 세 가지 상태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氣體、液體、固滯の三態です。
기체, 액체, 고체의 세 가지 상태입니다.

 

私のいう大宇宙への循環說は、魂は、光子體を持って實在界へ歸るだけで、それはなくなるわけではなく、肉體が滅びても、それは形骸の消滅にしかす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
제가 말하는 대우주로의 순환설은, 영혼은, 광자체를 가지고 실재계로 돌아갈뿐이며, 그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사라져도, 그것은 형해[形骸: 생명·정신 작용이 없는육체]의 소멸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私達の魂は、不滅です。
우리들의 영혼은, 불멸입니다.

 

ただ、實在界においては、心の調和度によって光の量が違い、その量に比例した世界がそれぞれ存在している、といることです。
단, 실재계에 있어서는, 마음의 조화의 정도에 의해서 빛의 량이 다르며, 그 량에 비례한 세계가 저마다 존재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地獄と天上界の存在、それは儼然として在るといえるのです。
지옥과 천상계의 존재, 그것은 엄연히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私利私欲、自我我欲の强い人々の心は、その想念に曇りを生じ、そのために、肉體舟と同體になっている光子體は、神の光をさえぎられ暗い靈圍氣におおわれてしまう、ということなのです。
사리사욕, 자아아욕의 강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 상념에 흐림[구름]을 만들고, 그 때문에, 육체배와 동체가 되어 있는 광자체는, 신의 빛을 차단시켜 어두운 영위기에 빠져 버린다, 라고 하는 것인 것입니다.

 

★영위기[靈圍氣]는, 분위기[雰圍氣]란 식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시가 쉽습니다^^신선한 미풍.

 

そして、こうした人々は、地獄界に墮ちて行きます。そこで、罪業を償うことになるのです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지옥계로 떨어져 갑니다.  거기에서, 죄업을 갚게 되는 것입니다.

 

罪業を償う方法は、神の子として片よりのない中道の心で、反省し、片よった心と行爲の誤りを修正する以外にはありません。
죄업을 갚는 방법은, 신의 자녀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마음으로, 반성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과 행위의 잘못을 수정하는 이외에는 없습니다.

 

私達は、今までの考え方で〃行〃といれば、,すぐにきびしい肉體行を想像するが、,それでは心を失ってしまい、,悟りへの彼岸に到達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えます。.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으로 〃행[行: 수행]〃이라고 하면, 금방 혹독한 육체수행을 상상하지만, 그러면 마음을 잃어 버리고, 깨달음으로의 피안에 도달할 수가 없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インドのプッタも、,兩極端の修行を捨てて、,八正道を心の物差しとして悟りの境地に到達し、アボロキティ―・シュバラ―になったのです.。
인도의 붓타도, 양극단의 수행을 버리고, 팔정도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고, 아포로키티・슈바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륵보살(彌勒菩薩), 성관세음보살(聖觀世音菩薩)은 두 분다 여성이며, 여래(如來)입니다.


 

File:GuanYin of a Thousand Arms and Eyes.jpgミロク、聖観世音の両菩薩も肉体を持って、正法を伝えています。
미륵, 성관세음의 두 사람의 보살도 육체를 가지고, 정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両菩薩の説法は、人々の心に、しみ通るように、やさしく、誰にも分るように話します。末法の世に、人々に光を当てるべく、その使命を担って、この世に生をうけたのですが、それは、宇宙の神理と、その正法を誤りなく伝えられるべく、重大な任務を帯びてきているのです。
 두 사람의 보살의 설법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도록, 쉽고, 누구라도 알기 쉽게 이야기합니다.  말법의 세상에,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기 위해, 그 사명을 맡아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만, 그것은, 우주의 신리와, 그 정법을 실수 없이 전하기 위해, 중대한 임무를 띠고 오고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클릭하면, 고해상도인데요. 남자 모습입니다.

Avalokiteśvara with 1000 arms and 1000 eyes. 12th century Chinese painting, Taipei, Taiwan.

 

 

 両菩薩は、何れも女性です。仏像や仏画のうえでは、女性だか、男性だか、判然としないため、人間が悟りを開くと、中性になるという説明をどこかで聞きましたが、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男性、女性の区別は、この世も、あの世も、かわりません。
  두 사람의 보살은, 죄다 여성입니다. 불상이나 불화에서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깨달음을 열면, 중성(中性)이 된다고 하는 설명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남성, 여성의 구별은,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변함이 없습니다.

 

 

Fichier:Avalokitesvara Gandhara Musée Guimet 2418 1.jpg 

Le bodhisattva Avalokitesvara, Gandhara, 3ème siècle, bronze à forte teneur en étain. Musée Guimet, Paris

 

◀댕기머리를 한 여성의 모습.


 両菩薩は、本来、その上の段階の如来であります。上々段階、光の大指導霊であります。ところが、あの世の如来界には、この二人の女性をのぞいては、すべてが男性であり、このため、二人とも、遠慮され、如来界から菩薩界に降りているのです。そのため、菩薩といわれていますが、 本当は、如来であります。――サテ、いったい、こうしたことが、これまで想像され得たでしそうか。誰しも想像できなかったと思います。だが、現実に、そうしたことがおきているのですから、どうすることも出来ません。ただい得ることは転生リンネの法則を知るならば、疑いなく首(しゅ)肯(こう)できるも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두 사람의 보살은, 그 위의 단계의 여래(如來=부처)입니다.  최상의 단계, 빛의 대지도령(大指導霊)입니다. 그런데, 저 세상의 여래계에는, 이 두 명의 여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며,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사양하여, 여래계에서 보살계로 내려 왔습니다.  그 때문에, 보살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여래입니다.  。――허허, 도대체, 이러한 일을, 지금까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누구든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생 윤회의 법칙을 알게 되면, 의심하지 않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天使の再来(천사의 재래)』▶「釈迦、イエス・キリストの正法とは(석가, 예수·그리스도(Jesus Christ)의 정법이란」 ▶《ミロク、聖観(かん)世音(ぜおん)菩薩(ぼさつ)も現存(げんぞん)(미륵, 성관세음보살(聖観世音菩薩)도 현존)》에서..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の五蘊とは、眼耳鼻舌身から起こる煩惱のことです。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오온이란, 안이비설신에서 일어나는 번뇌인 것입니다.

 

眼は、色彩を持った物質的諸現象を見て判斷する機能ですが、私達の眼で確認できる範圍は非常に狹いものです。
눈은, 색채를 가진 물질적 여러 현상을 보고 판단하는 기능입니다만,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좁은 것입니다.

 

眼で確認することのできない世界のほうがはるかに多い。確認できなくとも、存在することを否定できないでしょう。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계의 쪽이 월등히 많다.  확인할 수 없더라도,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私達の眼に見える範圍は、あの七彩の虹くらいものです。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범위는, 저 일곱 가지 빛깔의 무지개 정도인 것입니다.

 

こまかく見えば、赤色からは、赤外線の熱線レ―ダ―、マイクロウエ―ブ、テレビ、ラジオ波,低周波というように、エネルギ―粒子の振動數は小さくなり、波長は長くなってゆきます。
자세히 보면, 붉은색에서는, 적외선의 열선레이다, 마이크로웨이브[극초단파], 텔레비전, 라디오파[波], 저주파라고 하는 것처럼, 에너지입자의 진동수는 작아지며, 파장[波長]는 길어져 갑니다.

 

※파장[波長] (천체물리)  《전문용어대역사전》
웨이브렝스(wavelength)  기호 λ[람다 lambda], 단위 m[엠]. 파동에서 같은 위상을 가진 서로 이웃한 두 점 사이의 거리로서, 즉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파형에서 마루에서 다음 마루까지의, 또는 골에서 다음 골까지의 거리.

 

 

七彩の虹の紫色からは、紫外線、X線、γ線(gamma)、σ線(sigma)、宇宙線といった放射線のように、エネルギ―粒子の振動數は大きくなり、波長は小さくなってゆきます。
일곱 가지 빛깔의 무지재의 보라색에서는, 자외선, 엑스선(X), 감마선(gamma)、시그마선(sigma), 우주선[宇宙線]이라고 하는 방사선과 같이, 에너지입자의 진동수는 크게 되어, 파장[波長]는 작아져 갑니다.

 

※우주선[宇宙線] (화학공학)  《전문용어대역사전》
<물리학 용어로>  코스믹 레이스(cosmic rays) : 우주공간으로부터 지구를 향하는 고에너지의 입자선 및 전자파와 그것이 지구 대기중에 돌입하여 대기중의 원자와 충돌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고에너지 입자선 및 전자파.


しかし、このように、可視光線をはさんでいる兩極端の周波を、私達は眼で見え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하지만, 이와 같이, 가시광선을 끼고 있는 양극단의 주파[周波: 파동의 한 순환]를, 우리들은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この事實は、醫學の分野でも、生物學の分野でも、物理學の分野でも實證できることでしょう。
이 사실은, 의학 분야에서도, 생물학 분야에서도, 물리학 분야에서도 실증할 수 있는 것이지요.

 

從って私達は、眼で見た一瞬の諸現象をもって、絶對だと信じこんではならないのです。
따라서 우리들은, 눈으로 본 한 순간의 여러 현상을 가지고, 절대[絶對]라고 굳게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それでなくとも、人間は、おのれに都合の良いものを見れば喜ひ、不都合なものを見れば嫌います。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기에게 사정[형편]의 좋은 것을 보면 기뻐하고,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싫어합니다.

 

これは、心すべき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
이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耳はまた、空氣を媒體として、一秒間に約三百三十米の速さで、鼓膜に音波がつたわってくる。そして聽覺神經に働き、意識に通信されてゆきます。
귀는 또한, 공기를 매체로 해서, 1초간에 약 330미터의 속도로, 고막에 음파가 전해진다.  그리고 청각신경에 작용해서, 의식에 통신되어 갑니다.

 

だが、音には高低强弱があり、完全に音波をとらえることは不可能です。
하지만, 소리에는 고저강약이 있고, 완전히 음파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ただ不可能だからといっても、現世は、見ざる、聞かざる、言わざるで通用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다만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현세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하지 않고 통용하는 것은 없습니다.

 

たとえそれが不確實なものであっても、耳をとおしてくる一切のことは、正しく聞くことが大切です。正しく聞くことのできない耳の持主は、他人の一言一句に感情的になり、自分を狂おわせて正しい判斷ができなくなるからです。
비록 그것이 불확실한 것이라 할지라도, 귀를 통해서 오는 일체의 것은, 올바르게 듣는 일이 중요합니다.  올바르게 듣을 수가 없는 귀의 소유자는, 타인의 일언일구에 감정적으로 되어, 자신을 미쳐버리게 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鼻は、嗅覺神經を司ります。
코는, 후각신경을 담당합니다.

 

誰でも、惡臭は、嫌いでしょう。當然のことです。しかし、芳香だからといって、必ずしも良いものばかりとは限りません。
누구든지, 악취는, 싫어하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방향(芳香)이기 때문이라고 해도, 반드시 좋은 것뿐이라고는 한정할 수 없습니다.

 

※방향[芳香]  《한자/국어사전 》 ①꽃다운 향기(香氣), 좋은 냄새

 

 

中には毒をふくんだ匂いもあるからです。
게중에는 독을 품은 향기[냄새]도 있기 때문입니다,

 

自然には自然の匂いがあり、物にはまたそれぞれの匂いがありますから、正しく嗅いで正しい判斷をすることが大事です。
자연에는 자연의 향기가 있고, 물건에는 역시 저마다의 냄새가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냄새를 맡고 올바르게 판단을 하는 일이 중대사입니다,

 

舌は、言語の發音源でもあり、食事のときの味覺で、榮養補給の場所でもあります。
혀는, 언어의 발음원이기도 하며, 식사할 때의 미각이며, 영양보급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そして、わざわいは口から、病いも口からといわれるように、日常生活では、もっとも重要な五官のひとつであるといえます。.
그리고, 재앙은 입에서, 아픔도 입에서부터라고 말하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는, 가장 중요한 오관의 하나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口(くち)は災(わざわい)のもと 입은 화근의 근원

 

 

正しい中道を根本として、語ることが、どれほど大切なことであるかは、言葉が他人に意志を傳える道具として、誰にも深い經驗のあることでしょう。
올바른 중도를 근본으로 해서, 말하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한 일인지는, 말이 타인에게 의지[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누구나 깊은 체험의 있는 것이지요.

 

その一言一句が、相手を怒らせたり悲しませたりするだけに、中道をわきまえて語ることが必要なのです。
그 일언일구가, 상대를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해 버리거나 할 뿐으로, 중도를 알고 말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また、聲には韻があり、言魂とは、その聲の波動が、この現象界以外の意識界につたわってゆくことを意味します。
또, 목소리[聲]는 운율이 있고, 고토다마[言魂 : 고대(古代)에, 말에 깃들여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신비적인 힘]이란, 그 소리[聲]의 파동이, 이 현상계 이외의 의식계로 전해져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寺の鐘の音や僧侶の讀經、これらはいずれも音の波動に乘って、實在界(天上界)へも地獄界へも、またこの現象界にも自在に行くことができます。
절의 종소리나 승려의 독경, 이들은 어느 것이나 다 소리[音]의 파동을 타고, 실재계(천상계)에도 지옥계에도, 또 이 현상계에도 자유자재로 갈 수가 있습니다.
 
この波動に乘って、過去、現在、未來の三世を見とおす力を持ち、悟った者を觀世音菩薩といっています。
이 파동을 타고,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꿰뚫는 힘을 가지고, 깨달은 사람을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心を調和して、肉體から離脫したもう一人の自分がその波動に乘って行くと、たとえば鐘の音の場合には、その鐘をついた人の心に比例した次元の世界に昇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마음을 조화하고, 육체에서 해탈한 또 한 사람의 자신이 그 파동을 타고 가면, 예를 들면 종소리의 경우에는, 그 종을 친 사람의 마음에 비례한 차원의 세계로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そして、身は、肉體的感觸をすくめた、五體五官から構成されています。
그리고, 몸은, 육체적 감촉을 좋아하기 때문에, 육체오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五體とは、子孫保存の本能として、先祖代代にわたって受けつがれてきた、地上界に適應した肉體舟、それです。魂の修行場を目的とした、人生航路の乘り舟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오체란, 자손보존의 본능으로서, 조상대대로 전해져 계승되어 온, 지상계에 적응한 육체배, 그것입니다.  영혼[魂]의 수행장을 목적으로 한, 인생항로의 승선한 배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神の理、つまり神理が失われるに從って、私達は、肉體が絶對だと思いこんでしまうようになり、小さな汚れた歷史を作りつづけてきてしまったのです。
이 신의 이치[도리], 즉 신리를 잃어버림에 따라서, 우리들은, 육체가 절대[절대]다라고 굳게 믿어 버리게 되어, 작은 더러운 역사를 계속 만들어 와 버렸던 것입니다.

 

永遠に變わることのない、肉體舟の船頭である魂、すなわち意識を忘れ、その中心である心をないがしろにしてきたのです。
영원히 변하는 일이 없는, 육체배의 선장인 영혼[魂], 즉 의식[意識]을 잊어버리고, 그 중심인 마음[心]을 소홀히 해 왔던 것입니다.

 

肉體舟の附屬物の眼耳鼻舌身が、絶對のように思いこんでしまってきたということです。
육체배의 부속물인 안이비설신이, 절대인 것처럼 굳게 믿어 버려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もし、肉體舟が絶對であるならば、なぜ死ぬときに、實在界(天上界)へ持って歸れないのでしょうか。                
만약, 육체배가 절대다 라고 한다면, 왜 죽을 때에, 실재계(천상계)로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それは、次元の違いとともに、この地上界の、もっとも粗惡な物質界と、調和された精妙な靈圍氣に包まれた世界との差といえるでしょう。
그것은, 차원의 다름과 동시에, 이 지상계의, 가장 조악한 물질계와, 조화된 정묘한 영위기에 감싸인 세계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요.

 

私達の肉體は、いつか病み、老い、そして死んで行き、大地や空にもどってしまうものです。
우리들의 육체는, 언젠가 병들고, 늙고, 그리고 죽어 가며, 대지나 공중에 되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觀自在菩薩は、そこで、次のように說かれているのです。
「このように、私達の五體五官の煩惱が、心に作用し、正しい基準,片よりのない中道の物差しを忘れ去ってしまったため、一切の苦しみや災難厄難、つまり一切苦厄の、原因になっている。それを見とどけることができるのだよ、舍利子よ」
관자재보살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육체오관의 번뇌가, 마음에 작용하고, 올바른 기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마음의 척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일체의 괴로움이나 재난액난, 즉 일체고액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것을 끝까지 지켜볼 수가 있는 것이다,  사리자여


舍利子という人は、ゴ-ダマ・プッタの右腕ともいわれた、サロモン(修行者)です。

사리자라고 하는 사람은, 고다마붓타의 오른팔이라고 일컬어졌던, 사로몬(수행자)입니다.

 

※재난액난[災難厄難]  《일본어사전》 재난(災難)=액란[厄難] 
※재난[災難]  《한자사전》뜻밖에 일어나는 불행(不幸)한 일
※재난[災難]  《국어사전》뜻밖에 일어난 재앙(災殃)과 고난(苦難)
★고액[苦厄]  《국어/한자사전》고난(苦難)과 재액(災厄). 괴롭고 힘든 일과 재앙(災殃)으로 말미암은 불운
※일체고액[一切苦厄] 《국어사전》  [불교] 모든 고뇌와 재액.


Page 29~40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佛敎は、時代とともに、人間の手によって、むずかしく哲學化されてしまった。
불교는, 시대와 함께, 인간의 손에 의해서, 어렵게 철학화되어 버렸다.
心と行ないを失ってしまった、これは末法の信仰である。
마음과 행위를 잃어버렸다, 이것은 말법의 신앙이다.
他力本願しかり、敎團佛敎しかり、まつり佛敎しかり、寫經しかり、讀誦しかりである。
타력본원이 그렇고, 교단불교가 그렇고, 신이나 부처 또는 조상을 제사지냄 또는 그 의식을 행하는 불교가 그렇고, 사경이 그렇고, 독송이 그것이다.
神佛の喜ぶのはただ、心の美しい人々の正しい行爲なのである。
신불의 기뻐하는 것은 단지, 마음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올바른 행위인 것이다.
人々が、これをなすことが佛敎の本來の姿なのである。
사람들이, 이것을 행하는 일이 불교의 본래의 모습인 것이다.

 


色は空に異ならず、空は色に異らず、色はすなわちこれ空なり、空はすなわちこれ色なりと讀みますが、これは、萬人に知られたあまりにも有名な經文です。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고, 색은 즉 이 공이며, 공은 즉 이 색이니라 라고 읽습니다. 

이것은, 만인에게 알려진 너무나도 유명한 경문입니다.

 

しかし、佛敎では、〃空〃の理論が解れば敎義の全部が解明されたようなもの、といわれるほど、その意味はむずかしいようです。
하지만, 불교에서는, 〃공[空]〃의 이론을 접하면 교의의 전부가 해명된 것과 같은 것, 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 의미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空を、「むなしいものだとか、あると思えばなく、ないと思えばある」と說いている學者がいるようだが、果たして衆生は、こんな說明で理解できるでしょうか。
공은, 「공허한 것이다 라든가, 있다고 생각하면 없고, 없다고 생각하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학자가 있는 모양이지만, 과연 중생은, 이러한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私には理解できません。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おそらく書いている人にも解ってはい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어쩌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色心不二」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天台大師の說かれた、法華經の中にある言葉ですが、この中の〃心〃は、むなしいものでしょうか。
「색심불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천태대사가 설명한, 법화경 중에 있는 말입니다만, 이 속의 〃마음〃은, 공허한 것일까요?

 

そして、この心の在り方を、一念三千と敎えています。
그리고, 이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일념삼천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一念三千とは、私達の心は無限に廣く、自由自在に變化することをいっているのです。
일념삼천이란, 우리들의 마음은 무한으로 넓고, 자유자재로 변화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佛敎を哲學化した人々によって、むずかしく說明されてしまった、といえましょう。私には、彼らが心を失った頭腦プレ―を樂しんでしまったように感じられるからです。
불교를 철학화한 사람들에 의해서, 어렵게 설명되어 버렸다, 라고 할 수 있지요.  저로서는, 그들이 마음을 잃어버린 두뇌플레이를 즐겨 버렸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心と行ないを失ってしまったものは、佛敎ではないでしょう。まして、他力本願の信仰においておやです。
마음과 행위를 잃어버린 것은, 불교가 아닐 것입니다.  하물며, 타력본원의 신앙에 있어서 우두머리입니다.

 

このような佛敎を末法といい、人の心はおろか地獄界に墮ちた人々など、救濟する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
이러한 불교를 말법이라고 하며,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지옥계로 떨어진 사람들 등, 구제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他力本願の張本人達は、形にとらわれていますが、拜む偶像は、飾りけのない質素な、執着を離れている姿を浮きぼりにしてある如來像でしょう。
타력본원의 장본인들은, 형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만, 합장 배례하는 우상은, 꾸밈이 없는 검소한, 집착을 떠나고 있는 모습을 뚜렷이 보이고 있는 여래상이지요.

 

それなのに、勤行とかいう舊來の因習を踏んで、自分の身と外見を飾っているのは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
그런데도, 근행이라든가 하는 구래의 인습을 밟고, 자신의 몸과 겉모습을 꾸미고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요?

 

私は、疑問を持つ一人です。
저는, 의문을 갖는 한 사람입니다.

 

またこちらが本山だ、いやあちらが本山だ。板曼陀羅は本物だ、いや僞物だと爭って、莫大な金を狂信者,盲信者から集め、神の身體の一部である地球という大神殿にあきたらず、不淨の金で小さな建物を山中に作ったり、本堂を作ったりしている不自然な敎團や僧侶もいます。
또한 이쪽이 본산이다, 아니야 저쪽이 본산이다.  판만다라(板曼陀羅)는 진짜다, 아니야 가짜야 라고 싸우며, 막대한 돈을 광신자, 맹신자에게서 모으고, 신의 신체의 일부인 지구라고 하는 대신전에 흡족해하지 않고, 부정한 돈으로 작은 건물을 산속에 만들거나, 본당을 만들거나 하고 있는 부자연한 교단이나 승려도 있습니다.

 

こんな物を作って、神佛が本當に喜ぶでしょうか。
이런 건물을 만들고, 신불이 정말로 기뻐할까요?

 

喜ぶとしたら、それは、地球という三次元の世界に執着を持って、狂信者や盲信者の心をあやつっている惡魔や魔王か動物靈達の仕業である、といっておきましょう。
기뻐한다면, 그것은, 지구라고 하는 3차원의 세계에 집착을 갖고, 광신자나 맹신자의 마음을 조종하고 있는 악마나 마왕이라든가 동물령들의 소행이다, 라고 말해 둡시다.

 

神佛の喜ぶのは、心の美しい人々の正しい行爲なのです。
신불의 기뻐하는 것은, 마음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올바른 행위인 것입니다.

 

もし金があるなら、それを大衆の幸福になるよう放出して、救濟に当てることが、本當の布施であり、菩薩行というべきです。
만약 돈이 있다면, 그것을 대중의 행복하게 되도록 방출하고, 구제에 힘쓰는 것이, 진정한 보시(布施)이며, 보살행(菩薩行)이라고 말해야 될 것입니다.

 

布施をしないと、狂信者や盲信者には罰が当たると脅迫している者もいるが、そんな馬鹿なことは絶對ありません。
보시를 하지 않으면, 광자자나 맹신자에게는 벌을 받는다고 협박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바보 같은 일은 절대 없습니다.

 

太陽の熱や光のエネルギ―は、貧乏人だからとか、金持ちだからとか、地位とか名譽によって、差別しているでしょうか。
태양의 열이나 빛의 에너지는, 가난한 사람이든지, 부자라든지, 지위라든지 명예에 따라서, 차별하고 있을까요?

 

神佛は、人によってえこひいきなど決してしません。
신불은, 사람에 따라서 불공평이라고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もしそんなことをするとしたら、それも、魔王や動物靈達の仕業以外にない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でしょう。
만약 그런 일을 한다고 하면, 그것도, 마왕이나 동물령들의 소행 이외에 없다고 하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될 것이지요.

 

八正道を、生活の柱としている心に曇りのない人々は、神佛の光明によって滿たされているものです。
팔정도를, 생활의 기둥[지주]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 흐림[구름]이 없는 사람들은, 신불의 광명에 의해 가득 채워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罰というものは、自分の心と行ないが中道の生活から逸脫したとき、その暗い想念や行爲が生み出し一念三千の心の針が暗い地獄界に通じて現象化するものなのです。
벌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중도의 생활에서 일탈했을 때, 그 어두운 상념이나 행위가 창출해내고 일념삼천의 마음의 바늘이 어두운 지옥계로 통해서 현상화하는 것인 것입니다.

 

原因はあくまで自分の中に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원인은 어디까지나 자기 안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不調和な恨み、嫉み、怒り、爭い、增上慢、自我我欲、自己保存などの心を持っている人々の心は、地獄界に通じ、心に安らぎはなく、肉體的に不調和になってしまうでしょう。
부조화한 원망, 질투, 분노, 다툼, 증상만[오만], 자아아욕, 자기보존 등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지옥계로 통하고, 마음에 평안은 없고, 육체적으로 부조화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惡へ片よった心と行ないをしているから罰が当たるのです。
악으로 치우친 마음과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입니다.

 

原因と結果の法則、つまり作用と反作用の法則というわけで、このことを考えれば良く解ることでしょう。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 일을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常に慈悲深く、愛に富み、勤勉で、僞りがなく、感謝の心を持って、報恩の行爲を實踐している者達の心は、常に光明に包まれているのです。
항상 자비롭고, 사람으로 넉넉하고, 근면하며, 거짓이 없고, 감사의 마음을 갖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광명에 감싸여 있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な私達の生活の中に、天上界の光の天使はその人々の幸福のために協力をしてくれるのです。
이러한 우리들의 생활 속에, 천상계의 빛의 천사는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협력을 해 주는 것입니다.

 

逆に、心の不調和な人々には、地獄の魔王や動物靈達が、不幸になるために協力します。どちらを選ぶかは当人次第ということです。氣違いやノイロ―ゼになって人々が、今までの人格が變わっ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
반대로, 마음의 부조화한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마왕이나 동물령들이, 불행하게 되도록 협력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그 사람 나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치광이나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이 되어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인격이 바뀌어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これは、ほとんど地獄靈の仕業で、憑かれている不調和な人々の意識を支配してしまうからです。
이것은, 대부분 지옥령의 소행이며, 빙의되어 있는 부조화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これにも、原因と結果の法則が存在していることが解ったら、自分の不調和な心と行ないを修正する以外にはないでしょう。
그것에도,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이해했다면, 자신의 부조화한 마음과 행위를 수정하는 이외에는 없는 것이지요.

 

すべて〃心〃の作用だ、ということです。
전부 〃마음〃의 작용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そして〃色〃とは、私達の眼で確認できる萬生萬物のことをいっているのです。
그리고〃색〃이란,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만생만물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肉體もやはり〃色〃です。
육체도 역시 〃색〃입니다.

 

すなわち肉體舟とその船頭である意識、その中心である心とは、この現象界においては、切り離して考え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즉 육체배와 그 선장인 의식, 그 중심인 마음과는, 이 현상계에 있어서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つまり、肉體舟は心の表現體といることになります。
즉, 육체배는 마음의 표현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そして、太陽を始め、大自然は、神佛の心の表現體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그리고, 태양을 시작으로, 대자연은, 신불의 마음의 표현체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少し科學的に說明してみましょう。
조금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この現象界の太陽は、一秒間に宇宙空間に、9.3 ×10^22 kcl/secの熱エネルギ―を放射して、この地球に對しては、 9.3 ×10^22/2.5×10^3 kcl/sec 約二百萬トンの石灰を一秒每に燃燒しただけの熱エネルギ―を無料で供給しているのです。
이 현상계의 태양은, 1초 동안에 우주공간에, 초당9.3×10의22승의 킬로칼로리의 열에너지를 방사하고, 이 지구에 대해서는, 초당 9.3 ×10의 22승/2.5×10의 3승 킬로칼로리 약 200만톤의 석탄을 매 1초에 연소할 만큼의 열에너지를 무료로 공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この熱エネルギ―によって、水は蒸發して大空に、そして冷却されて陸地に雨を降らせています。
이 열에너지에 의해서, 물은 증발하고 너른 하늘에, 그리고 냉각되어 육지에 비를 내리게 하고 있습니다.

 

このために植物は成長し、綠色の植物は、二酸化炭素CO2を水H2Oとともに吸收し、光合成によって澱粉、蛋白質、脂肪、糖分などを作り、動物の肉體保存のエネルギ―を提供しています。
이 때문에 식물은 성장하고, 녹색의 식물은, 이산화탄소CO2를 물H2O와 함께 흠수하고, 광합성에 의해서 전분, 단백질, 지방, 당분 등을 만들고,  동물의 육체보존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動物の排泄物その他のものを、植物はまた土壤の中から吸收して、相互關係を保っているとういわけです。
동물의 배설물 그 외의 것을, 식물은 또 토양 속에서 흡수하고,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な姿こそ、神佛の慈悲の現われではありませんか。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신불의 자비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もし太陽がなかったら、私達は生存できるでしょうか。
만약 태양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요?

 

植物の呼吸作用によって酸素が出され、また私達の呼吸作用によって、炭酸ガスCO2が出されています。空中で二酸化炭素CO2となってこれを植物は吸收し、動物は酸素O2を吸收しています。
식물의 호흡작용에 의해서 산소가 나오게 되며, 또한 우리들의 호흡작용에 의해서, 탄산가스CO2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공중에서 이산화탄소CO2가 되어 이것을 식물은 흡수하고, 동물은 산소O2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酸素Oが缺乏したら、動物は生きでいわれるでしょうかか。
산소(酸素 O)가 결핍하면, 동물은 살아 있을 수가 있을까요?

 

この相關關係も、神理によるものです。
이 상호관계도, 신불에 의한 것입니다.

 

これを、生活の智惠を作り出した物質文明が、酸素を汚染して、硫化物や窒素化合物を生み出し空間を汚しています。
이것을, 생활의 지혜[智惠]을 만들어 낸 물질문명이, 산소를 오염시키고, 유화물이나 질소화합물을 새롭게 만들어 내서 공간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光化學スモッグは、人體はおろか、植物にまで惡い影響を與え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광화학스모그는, 인체는 물론, 식물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人間が心を失って、足ることを忘れた物質文明が、自らの首をしめる結果を生んでいることが、このことでも良く解るでしょう。
인간이 마을을 잃어버리고, 만족함을 잊어버린 물질문명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이 일로도 잘 알 수 있지요.

 

利益の追及、勞使の鬪爭、報恩感謝の心を失った人間に、どごに神の子としての心があるといえるでしょうか。
이익의 추급, 노사의 투쟁, 보은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어디에 신의 자녀로서의 마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精神公害もまた同樣です。多くの宗敎は、他力信仰で人間の心を、誤った神佛の名のもとに束縛し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정신공해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타력신앙으로 인간의 마음을, 그릇된 신불의 이름 하에 속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敎祖と、その一部分の指導者が甘い汁を吸って、大衆は犧牲になっている。不淨の金で、彼らを養っている、そんな成立の形に本當の宗敎はありません。
교조와, 그 일부분의 지도자가 단물을 빨고, 대중은 희생이 되고 있다.  부정한 돈으로, 그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런 성립의 형태로 진정한 종교는 없습니다.

 

※あまいしるをすう
단물을 빨다. 노력은 하지 않고 이익만을 얻다. 남을 이용해서 이익을 보다.

※うまいしるをすう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단물만을 빨다. 애쓰지 않고 혼자 재미 보다.


その敎えは、阿片よりおそろしい、といえます。神佛の名のもとに、金品を强要するような指導者は、僞善者です。
그 가르침은, 아편보다 무섭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불의 이름 하에, 금품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지도자는, 위선자입니다.

 

布施の言葉、供物によって、神佛の慈悲が左右される、などということは絶對にないの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
보시의 말, 공물에 의해서, 신불의 자비가 좌우된다, 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そして、物質經濟に執着を持って、欲望の奴隸になり下がってもいけないのです。
그리고, 물질경제에 집착을 갖고, 욕망의 노예로 전략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金は、生きているときしか使えないものだし、もし、あまって使い道がないのなら、社會人類のため、そのときこそ相互に布施し合って、貧しい人々や、不具の人々や、老病の人などを救うべきでしょう。
돈은, 살아 있을 때밖에 쓸 수 없는 것이고, 만약, 남아서 사용할 길이 없다면, 사회 인류를 위해, 그 때에야말로 서로가 서로 보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불구의 사람들이나, 늙어서 병이 든 사람 등을 응당 그렇게 도와야 되는 것이지요.

 

あの太陽エネルギ―を、無償の行爲と觀じたとき、私達は、報恩の心を持つべきなのです。
저 태양에너지를, 무상의 행위로 보았을 때, 우리들은, 보은의 마음을 마땅히 가져야 될 것입니다.

 

一人一人が、そうした心を持ち得れば、ユ―トピアは、築かれて行くのです。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유토피아는, 구축되어 가는 것입니다.

 

感謝する心は、報恩という行爲によって輪廻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忘れ去っている人々の何と多いことでしょうか。
감사하는 마음은,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에 의해서 윤회[輪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마나 많을까요?

 

勞使の不調和な鬪爭は、この心の缺如の最たるものといえましょう。
노사의 부조화한 투쟁은, 이 마음의 결여의 으뜸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鬪爭と破壞、これが相互の首をしめてしまうということを、やがて人間は悟るときがくるでしょう。
투쟁과 파괴, 이것이 서로의 목을 졸라 버린다고 하는 것을, 머지않아 인간은 깨달을 때가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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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心の中で想うことと肉體舟の行爲は、互いに調和された相互關係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육체배의 행위는, 서로 조화된 상호관계를
を持って、安定されていなくてはならない。
가지고,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しかし、多くの人々は、正しいということを知りながら、その道を步んでいな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올바르다라고 하는 것을 알면서, 그 길을 걷고 있지 않다.


 

この意味は、

「私達の心の作用によって、肉體的行爲が現われ、肉體的行爲があってまた心に作用するのだ。すなわち、色卽是空、空卽是色と同じ意義を持っているのだよ。シャリ―プトラ―よ、すなわち諸々の比丘、比丘尼達よ」
というこのでしょう。
이 의미는,
우리들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육체적 행위가 나타나고, 육체적 행위가 있어야 또한 마음에 작용하는 것이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샤리부트라(Sariputra)여, 즉 여러 여럿의 비구, 비구니들이여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受想行識とは、心の作用と肉體的行爲であり、五官をとおしてきた感應が、心の中の想念の領域の本能や智性や感情や理性に作用して、意志となり、行動に移って行く、そして體驗されたものは、肉體的行爲や心の想念の働きに作用して智性の進化にもなって行きます。
수상행식이란, 마음의 작용과 육체적 행위이며, 오관을 통해서 온 감응이, 마음속의 상념의 영역인 본능이나 지성이나 감정이나 이성에 작용하고, 의지가 되어, 행동으로 옮겨 간다, 그리고 체험된 것은, 육체적 행위나 마음의 상념의 활동에 의해서 작용하고 지성의 진화로도 되어 갑니다.

 

つまり、心の作用と肉體的行動は、 〃空〃から〃色〃に、〃色〃から〃空〃へという、變化と變わらない働きだといえましょう。
즉, 마음의 작용과 육체적 행동은,  〃공〃에서 〃색〃으로, 〃색〃에서 〃공〃이라 하는, 변화와 변하지 않는 활동(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心で想うことと肉體舟の行爲は、互いに調和された相互關係として、安定されてい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えます。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 육체배의 행위는, 서로 조화된 상호관계로서,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しかし多くの人々の中には、正しい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ても、自分の都合が惡ければ行爲で現わさない者達がいます。
하지만 많은 사람들 중에는, 올바르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어도, 자신의 처지[형편]이 나쁘면 행위로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このような者達は、自己保存、あるいは、自我我欲の暗い心を作り出してしまうでしょう。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보존, 혹은, 자아아욕의 어두운 마음을 만들어 내어 버리고 말지요.

 

心の世界は、次元を超えた〃空〃の世界に通じているから、不調和なんことも、調和されている自愛の心もすべて記錄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마음의 세계는, 차원을 초월한 〃공〃의 세계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부조화한 것도, 조화되어 있는 자애의 마음도 모두 기록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そしてこの善惡の記錄は、やがて自分自身にかえってくるのです。
그리고 이 선악의 기록은, 이윽고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に、作用と反作用の法則と同じです。
이와 같이,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과 같습니다.

〃空〃はからっぽだとか、何にもないとか、否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否定したところで、自分の心は、動かすことのできない絶對の〃空〃の中に存在しているからです。
〃공〃은 텅 빔이라든가, 아무것도 없음이라든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정해 보았자, 자신의 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절대의 〃공〃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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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現代にも、過去世の世界を、靈視できる人がいる。そしてその人

현대에도, 과거세의 세계를, 영시[마음의 눈으로 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人は、かつての、その過去世の言葉を語る。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일찍이, 그 과거세의 말을 말한다.
悟りを開いた光子體が、今の、私達の肉體を離れて實在界との

깨달음을 연 광자체가, 지금의, 우리들의 육체를 벗어나서 실재계와의
往復を可能にしているからである。
왕복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そこは心の世界である。そして、現象界三次元の世界と、四次元

그곳은 마음의 세계이다.  그리고, 현상계 3차원의 세계와, 4차원
以降の世界とは、連續體であるから、あなたも、八正道の實踐に

이후의 세계는, 연속체이기 때문에, 당신도, 팔정도의 실천에 의해서,
よって、その境地に達することは可能なのである。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是諸法とは、「この諸々のあらゆる神理=タルマは」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시제법이란, 「이 여러 여럿의 모든 신리=달마」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空相とは、「神の心の現われである」ということで、これは、空卽是色であるということからみれば、實在界すなわち次元の違っている非物質的な精妙である意識界と、もっとも不安定な固體的な現象界=物質の世界とは、不二一體である、という內容を持っています。
공상[空相]이란,「신의 마음의 표현이다」라고 하는 것이며, 이것은, 공즉시색이라고 하는 것에서 보면, 실재계 즉 차원의 달라져 있는 비물질적인 정묘한 의식계와, 가장 불안정한 고체적인 현상계=물질의 세계와는, 불이일체이다, 라고 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이일체= 둘이 아닌 한 몸.

 

現象界における大自然の移り變わる姿や、自然の法則は、心の世界、實在の世界の表現體です。すなわち、大宇宙體を支配している意識の現われだといえるのです。
この意識は、神の心の現われ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현상계에 있어서 대자연의 변천하는 모습이나, 자연의 법칙은, 마음의 세계, 실재의 세계의 표현체입니다.  즉, 대우주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의 표현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의식은, 신의 마음의 표현이다 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色〃の世界から〃空〃の世界に變わり、〃空〃の世界から〃色〃の世界に變わって行く、すなわち、輪廻して行く姿を〃空相〃ということがいえるでしょう。
〃색〃의 세계에서 〃공〃의 세계로 변하고, 〃공〃의 세계에서 〃색〃의 세계로 변해 간다, 즉, 윤회해 가는 모습을 〃공상[空相]〃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肉體舟と、船頭である魂・意識が不二であるということは、今自分達がものを考え、思うと、その意志によって肉體舟の進路を定めていることを考えても理解できましょう。
육체배와, 선장인 영혼[魂]・의식[意識]이 불이[둘이 아닌]이다 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것을 지적으로 생각하고, 정서적으로 생각하면, 그 의지[의사]에 의해서 육체배의 진로를 결정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肉體舟は、船頭の表現體ということです。
육체배는, 선장의 표현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それゆれに、〃空〃は〃色〃の相を現わてしているし、〃色〃は〃空〃の實相を表現し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그러므로,  〃공〃은 〃색〃의 모습[相]을 표현하고 있고, 〃색〃은 〃공〃의 실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現象界三次元の世界と、四次元以降の世界は次元が異なっているが、連續體です。しかし、三次元の物質を、四次元以降に持ちこむ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
현상계 3차원의 세계와, 4차원 이후의 세계는 차원이 달라져 있지만, 연속체입니다.  하지만, 3차원의 물질을, 4차원 이후로 갖고 들어올 수는 없는 것이지요.

 

つまりこの現象界は、四次元以降の世界から投影されている立體映畵ともいえ、人類は、その人生劇場で演技する、ヒ―ロ―やヒロインということがいえます。
즉 이 현상계는, 4차원 이후의 세계에서 투영되어 있는 입체영화라고도 할 수 있고, 인류는, 그 인생극장에서 연기하는, 히어로[영웅]이나 헤로인[여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言いかえれば、物質はエネルギ―であり、エネルギ―はまた物質である、ということと同樣のこととなります。
바꿔서 말하면, 물질은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또한 물질이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仕事をなし得る能力、つまりエネルギ―を見て物質の特性が解り、物質をとおしてエネルギ―の特性が解るように、エネルギ―粒子の集中と分散、それによって輪廻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 즉 에너지를 보고 물질의 특성을 이해하고, 물질을 통해서 에너지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처럼, 에너지입자의 집중과 분산, 그것에 의해서 윤회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物質の三次元の存在に對して、エネルギ―の次元は、高次元といえます。外力の緣によって、物質はエネルギ―という次元に連續されて行くことになるでしょう。やはり、色卽是空、空卽是色、すなわち〃空相〃ということです。
물질의 3차원의 존재에 대해서, 에너지의 차원은, 고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력의 인연에 의해서, 물질은 에너지라고 하는 차원에 연속되어 가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색즉시공, 공즉시색, 즉 〃공상[空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に、〃空相〃とは、永遠に變わらない實在界の萬生萬物を支配している根本で、宇宙意識の心の姿といえましょう。
이와 같이, 〃공상[空相]〃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재계의 만생만물을 지배하고 있는 근본이며, 우주의식의 마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とは、生まれず、滅せず、垢つかず、淨らかならず、增えず、減らず、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ょう。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란, 태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 않고,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고, 늘어나지 않고, 줄지도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이 되지요.

 

しかし、すべて否定しているから、無になると思ったら大間違いです。
하지만, 전부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헛되이 된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不變だ、ということです。
불변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今から記すスト―リ―は、私達のグル―プの中に、肉體舟から脫け出して、もう一人の自分が、〃空〃に實在界へ、光子體の姿で、實際に行った何人かの人々の物語りです。

지금부터 기록하는 스토리는, 우리들의 그룹 중에, 육체배에서 탈출해서, 또 한 사람이 자신이, 〃공〃에 실재계로, 광자체의 모습으로, 실제로 갔던 몇 사람인가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かつて、プッタが悟りを開いたときと同じように、一切の執着から離れ、八正道を心の物差として一秒一秒の生活の積み重ねをした結果、パニャ―・バラミタ―(內在された智慧に到達する)の境地になり、インドのゴ―ダマ・プッタの時代のことを思い出し、當時のマガタ語を思い出し、たどたどしい日本語に飜譯して、佛敎流布の狀況を語ったこれは、心の窓を開いた現代の數十人の人々の言葉です。
옛날에, 붓타가 깨달음을 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팔정도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1초 1초의 생활의 거듭을 한 결과, 파냐・파라미타(내재된 지혜에 도달한다)의 경지가 되어, 인도의 고타마・붓타의 시대의 일을 생각해 내어, 당시의 마가다어를 생각해 내서, 어설픈 일본어로 번역해서, 불교유포의 상황을 말한 이것은, 마음의 창을 연 현대의 수십 명의 사람들의 말입니다.

 

そして同じように、イスラエルの地でギリスト敎の傳導をした人の古代エジプト語よるものもふくまれています。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땅에서 그리스도교의 전도를 했던 사람의 고대 이집트어에 의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アラハンの境地に到達した者達は、心を調和して、光明に滿たされたド―ム(三次元から四次元以上を結ぶ中道の極地)を上昇して行きます。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마음을 조화하고, 광명으로 가득 채워진 돔(3차원에서 4차원 이상을 연결하는 중도의 극지)을 상승해 갑니다.

 

その速度は非常に速く、耳もとに風を切る音が聞こえるほどです。途中までは、交通事故で亡くなった者が、血を流したまま近くを昇ってきましたが、薄暗い世界に消えて行きます。
그 속도는 매우 빠르고, 귓전으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입니다.  도중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피를 흘리는 채로 가까이를 올라오고 있었지만, 어두컴컴한 세계로 사라져 갑니다.

 

白い着物をきた五十代の婦人も途中の薄暗い世界に消えて行きました。しばらくすると、星空が次第に下になり、眞靑な空が開け、新綠に包まれた美しい自然が展開されて行きます。
하얀 옷을 입은 50대의 부인도 도중의 어두컴컴한 세계로 사라져 갔습니다.   잠시 후,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차례로 드러나며, 새파란 하늘이 열리며, 신록에 감싸인 아름다운 자연이 전개되어 갑니다.

 

それは、現象界地球上の綠とは違って、若葉色の芝生が、スロ―プのきいた丘一面、綢緞を數きつめたようにき生き生きとしています。
그것은, 현상계 지구상의 신록과는 다르고, 어린 잎이 잔디밭이, 비탈진 언덕이 일면에, 주단을 깔아 놓은 듯이 생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芝は、その上を步くと、足を柔らかく包むような何ともいえない感觸です。
잔디는, 그 위를 걷자, 발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촉입니다.

 

樹々も若葉の枝をひろげるように、それは、萬物萬生が慈愛の心で迎え入れる喜びの姿です。
나무들도 새잎의 가지를 넓히는 것처럼, 그것은, 만생만물이 자애의 모습으로 맞아들이는 기쁨의 모습입니다.

 

空からは、太陽の光とは違った安らぎのある光明が、身體にしみとおるように射して、のどかな春日のよんうな、季節です。
하늘에서는, 태양의 빛과는 다른 평안한 광명이, 신체에 스며들듯이 내리쬐고, 화창한 봄날과 같은, 계절입니다.

 

しばらく步いて行くと、南の國々にある寺院のような白い大きな建物が、丘の中腹よりやや上方にどっしりと構えています。
잠깐 걸어 가자, 남쪽 나라들에 있는 사원과 같은 하핳고 큰 건물이, 언덕의 중턱에서 조금 윗쪽에 묵직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そしてその門のそばまで、歷史の本に出てくるような、古代人のインド・スタイルをした血色の良い外人達や、エジプト・スタイルの外人達が迎えに出てくれます。
그리고 그 문 옆까지, 역사책에서 나오는 듯한, 고대인의 인도스타일을 한 혈색이 좋은 외인들이나, 이집트스타일의 외인들이 맞이하려 나와줍니다.

 

日本語で喋っても、意志は充分に、その人々に通じてしまいます。
일본어로 말해도, 뜻은 충분히, 그 사람들에게 통해 버리고 있습니다.

門は自動ドアで、その人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光の量が違っているが、後光の光る量によって開くようになっています。不調和な暗い心の人々は、入れないようにできているらしいのです。
문은 자동문이며,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의 정도에 따라서, 빛이 양이 달라져 있지만, 후광이 빛나는 량에 의해서 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조화한 어두운 마음의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地上界からきた數人の調和された心の人々が、肉體舟から脫け出して、光子體の肉體でそばに立っています。あとからついてきたのでしょう。
지상계에서 온 두서너 사람의 조화된 마음의 사람들이, 육체배에서 탈출하여, 광자체의 육체로 옆에 서 있습니다.  뒤따라 온 것이지요.

 

背廣姿、婦人服の姿など地球上で常に着用しているものと變わってはいないが、顔色といい、態度といい、地上界で肉體舟に乘って生活しているときの者達よりも、何か精妙で、安らぎのある姿でした。
등이 넓은 모습, 부인복의 모습 등 지구상에서 늘 착용하고 있는 것과 변함은 없지만, 안색이 좋고, 태도도 좋은, 지상계에서 육체배를 타고 생활하고 있을 때의 사람들보다도, 뭔가 정묘하며,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中國の坊さんの仕度をしている僧侶の身體からは、この地上界で見る佛像の後光と同じようなものが、頭の周圍をおおっています。
중국 스님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승려의 신체에서는, 이 지상계에서 보는 불상의 후광과 같은 것이, 머리 주위를 덮고 있습니다.

 

そばで迎えてくれた人々は、間違いなく光の天使達であることが解ります。地球からきた者は、地上界での生活がしみこんでいるせいか、光の天使達とくらべれば、洗煉された都會人と、田舍で農耕などをやっているほどの差がありますが、それはやむを得ないことでしょう。
곁에서 맞이해 준 사람들은, 틀림없이 빛의 천사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온 사람은, 지상계에서의 생활이 스며있는 탓인지, 빛의 천사와 비교하면, 세련된 도회지 사람과, 농가에서 농사 등을 하고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것입니다.

 

僧侶の格好をした光の天使が、中國訛りの日本語で、丘の上から、無限のようなスロ―プの下の、世界について說明するのでした。
승려의 모습을 한 빛의 천사가, 중국사투리의 일본어로, 언덕 위에서, 무한한 비탈 아래의, 세계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この場所は、佛敎でいうと、金剛界ともいわれているところで、見えないはるか彼方は、あなた達の住む地上界ですが、そこにも通じています。
「이 장소는, 불교에서 말하면, 금강계(金剛界)라고도 불리우고 있는 곳이며, 보이지 않는 아득한 저쪽은, 당신들의 사는 지상계입니다만, 그곳에도 통하고 있습니다.

 

調和された心の丸い廣さの段階によって、地獄界から金剛界まで、靈圍氣の違った世界が作られています。
조화된 마음의 둥글고 넓은 단계에 의해서, 지옥계(地獄界)부터 금강계까지, 영위기가 다른 세계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あなた達の肉體先祖で、亡くなられた者達の中には、未だに地球上に執着を持っている者もあって、地獄界を作り、同類で生活をし、その世界を展開しています。
당신들의 육체조상이며, 돌아가신 사람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지구상에 집착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지옥계를 만들어, 동류로 생활을 하고, 그 세계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しかし、あなた達は、私達の世界を出るとき今度の世(現象界)へ行ったら、必ず悟り、迷える衆生に安らぎの道を說き、救ってきますと私達と約束をしてしたが、その約束を果たされてまことに嬉しく思います。お會いするのは四、五千年ぶりですね」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들의 세계를 나갈 때 이번의 세계(현상계)로 가면, 반드시 깨닫고, 미혹하는 중생에게 평안의 길을 설명하고, 도와주고 오겠다고 저희들과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을 완수해줘서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재회하는 것은 4, 5천년만이군요

 

それは、淚を流しながらの言葉でした。そのそばに立っていた外人の光の天使達も、なつかしさがこみ上げて、互いに手をとり合って再會を喜ぶのでした。古代エジプト・スタイルの光の天使は、光明燦然とした、二米二、三十糎くらいの大男でした。
그것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옆에 서 있던 외국인의 빛의 천사들도, 그리움이 복받쳐서, 서로가 손을 서로 붙잡고 재회를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스타일의 빛의 천사는, 광명이 찬연한, 2미터 2, 30미센티미터정도의 덩치가 큰 사나이였습니다. 

 

★← 모세(Moses) : 이집트에서 속박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빛의 지도령(즉, 기독교에서 말하면, 대천사)

 

「私達、嬉しい。地球上、人々、心ない。人間みな、神の子、心、私達同じこと。あなた達、みな友達、心と生活、廣い豊かな丸い心あります。地球、心良い人、一杯出ている。心合わせ、正しく生きること、私達樂しみにしています」
「우리들, 기쁘다.  지구상, 사람들, 매정하다.  인간 모두, 신의 자녀, 마음, 우리들과 같은 것.  당신들, 모두 친구들, 마음과 생활, 넓고 풍요로운 둥글고 사려 깊다.  지구, 마음이 착한 사람, 많이 나오고 있다.  합심하여, 올바르게 사는 것, 우리들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心無い] こころない
 1 철없다. 분별이 없다. 心無(こころない)子供(こども)のすることだ 철없는 어린아이가 하는 짓이다.
 2 인정이 없다. 매정하다.
 心無(こころない)仕打(しうち) 매정한 짓
 心無(こころない)言葉(ことば)をあびせる 매정한 말을 퍼붓다.

 

※[心ある] こころある
①분별있는, 사려 깊은, ②동정심 많은 ③멋을 아는.


そう語る言葉は、私達の心の中にもしみじみとしたものを感じさせるのでした。
그렇게 말하는 말은,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절실히 가슴에 와 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佛像で見たような光の天使もいます。
불상에서 본 것 같은 빛의 천사도 있습니다.

 

私達は、初めて、地上界とは全く異なった光明の世界にきたのだ。という實感がわいて、嬉しさで胸のこみ上げてくるものをと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人間は、このような〃空〃の世界、實在の世界から、地球上に轉生輪廻しているのだという實感が、心の中にしみこんでくるのでした。
우리들은, 비로소, 지상계와 전혀 다른 광명의 세계에 온 것이다.  라고 하는 실감이 솟아나고,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공〃의 세계, 실재의 세계에서, 지구상에 전생윤회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실감이,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이었습니다.

 

「私達も、今までの人生で、いろいろと罪を犯してきました。怒り、僞り、恨み、そねみ、欲望、自己保存、情欲、感謝のない生活、物質文明の奴隸に成り下がってしまい、自分の使命を忘れていました。本當にお許し下さい」
というと、みな顔を見合わせて笑いました。
「저희들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여러 가지 죄를 저질러 왔습니다.  분노, 거짓말, 원망, 질투, 욕망, 자기보존, 정욕, 감정이 없는 생활, 물질문명의 노예로 전략해 버리고,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자, 모두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それは、自分の善なる心に詑びることね」
と、エジプトの光の天使も、嬉しそうに笑うのでした。そして、
「그것은, 자신의 선한 마음에 사과하는 것이죠」
라고, 이집트의 빛의 천사도, 기뻐하며 그렇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人間、地球生活。盲目の人生、ぎびしい修行ね。心、忘れる。眼、見えるもの、耳、聞くもの、肌、感じるもの、みな、絶對、正しい見解、忘れてしまう。心、曇る、私達、生活できない。地球、友達、私達、心通じない。私達、悲しい。本當、地球生活、むずかしい。私、地球、生まれる。物のとりこ、悟り、あるか、ないか、解らない、私...」
「인간, 지구생활.  맹목의 인생, 혹독한 수행.  마음, 잊어버린다.  눈, 보이는 것, 귀, 듣는 것, 피부, 느끼는 것, 모두, 절대, 올바른 견해, 잊어버린다.  마음, 흐리다, 우리들, 생활할 수 없다.  지구, 친구들, 마음 통하지 않는다.  우리들, 슬프다.  정말, 지구생활, 어렵다.  나, 지구, 태어난다.  물질[사물]의 포로, 깨달음,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나는...」

 

たどたどしい日本語で、また語るのでしたが、その意味は良くにひびいてくるのでした。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또한 말하는 것이었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마음에 울러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
「〃空〃の世界、この實在の世界から地上界に生まられるといことは、神の身體である地球という小さな細胞を、神の子萬物の靈長である人類の慈悲と愛の心をもって、自らの智慧と勇氣によって、一人一人が片よりおない中道の心を柱とした實踐生活をし、ユ―トピアの完成をするのが使命である」と續け、さらに、「君達は、私達と約束をして地球上に出たならば、必ず悟って、迷える人々に愛の手を差しのべ、救濟すべきである。君達は、地球上で肉體舟を載く人々とかつて約束して、天上界の修養所で待機し、天使達の送別會までやって貰ったのだから──」
그리고,
「〃공〃의 세계, 이 실재의 세계에서 지구상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신의 신체인 지구라고 하는 작은 세포를, 신의 자녀 만물의 영장인 인류가 자비와 사랑을 가지고, 스스로의 지혜와 용기에 의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마음을 기둥[지주]으로 한 실천생활을 하고, 유토피아의 완성을 하는 것이 사명이다」라고 계속해서, 더욱 더, 「너희들은, 우리들과 약속을 하고 지구상으로 나가면, 반드시 깨닫고, 미혹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며, 구제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지구상에서 육체배를 물러준 사람들과 일찍이 약속하고, 천상계의 수양소(修養所)에서 대기하며, 천사들의 송별회까지 해 주었기 때문에──」

 

「天上界で兩親となることを約束した者達が、成長してやがて結ばれ、肉體舟を作り保存するための本能を神から與えられ、精子と卵子の調和によって、肉體舟の種をまくのだ。肉體舟の細胞は、核分裂して五體が形成され、三十日くらいになると、七糎~八糎くらいの胎兒に成長した頃、初めて天上界の修養所から送り出されて母體の胎兒を支配する。母親の意識と、胎兒の肉體を支配する意識が調和しない場合。つわり、といる現象が起こったり、食べ物が變わってしまうのだ」ということも語るのでした。
「천상계에서 양친이 될 것을 약속한 사람들이, 성장하고 이윽고 맺어져, 육체배를 만들고 보존하기 위한 본능을 신으로부터 제공받아, 정자와 난자의 조화에 의해서, 육체배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육체배의 세포는, 핵분열하여 오체가 형성되며, 30일 정도가 되면, 7센티미터~8센티미터 정도의 태아로 성장했을 무렵, 비로서 천상계의 수양소에서 송출되어 모체의 태아를 지배한다.  모친의 의식과, 태아의 육체를 지배하는 의식이 조화하지 않는 경우. 입덧, 이라고 하는 현상이 일어나거나, 음식물이 변해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實在界〃空〃の世界から見れば、八~九十年の短かい年月、地球というもっとも不安定な物質的環境で生活するため、十月十日たって生まれ、空氣に觸れるとともに、一切の過去世のことは潛在されてしまい、母乳を吸う本能だけが芽生えて肉體保存の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る。
「실재계 〃공〃의 세계에서 보면, 8~90년의 짧은 세월, 지구라고 하는 가장 불안정한 물질적 환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열달 열흘이 되어 태어나, 공기에 접함과 동시에, 일체의 과거세의 일은 잠재되어 버리며, 모유를 빠는 본능만이 싹트고 육체보존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生まれて行く場所は、自分自身で選び、實在界の人類はみな兄弟だということ知っているので人種差別はないのだ。
태어나서 가는 장소는, 자기 자신이 선택하며, 실재계의 인류는 모두 형제이다 라고 하는 것 알고 있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없는 것이다.

 

地球上の經濟力にも關係ないし、地位や名譽にも關係なく、多くの光の天使達は、なるべく悟れるような環境を選ぶということだ。
지구상의 경제력에도 관계없고, 지위나 명예에도 관계없이, 많은 빛의 천사들은, 가능한 한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이다.

 

そしてその中で、人生の新しい學習を體驗し、心を豊かに廣い慈愛の滿ち滿ちたおのれを完成するのだ」
그리고 그 안에서, 인생의 새로운 학습을 체험하고, 마음을 풍요롭고 넓은 자비가 충만한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光の天使は、次次と敎えを說きます。
빛의 천사는, 계속해서 가르침을 설명합니다.

 

「生まれた環境、習性、敎育、思想をとおして、次次と自我が芽生え、自己保存が芽生え、自分自身の潛在された意識が表面に出てくる。
「태어난 환경, 습성, 교육, 사상을 통해서, 차례로 자아가 싹트고, 자기보존이 싹트고, 자기 자신의 잠재된 의식이 표면에 나온다.

 

氷の水面に出てくる面積は、約10%くらいで、九0%は潛在しているように、私達の意識も、神の身體の現象界といわれるエネルギ―粒子の集中固定化した物質と、分散されている空間に出てしまうと、大自然の法則にならうのだ。
얼음의 수면에 나오는 면적은, 약 10%정도이며, 90%는 잠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의식도, 신의 신체인 현상계라고 불리는 에너지입자의 집중 고정화된 물질과, 분산되어 있는 공간에 나와 버리면, 대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成長するに從って、過去世で作り出した業(カルマ)という性格が、人生體驗を積むほどに出てくるようだ。
성장함에 따라서, 과거세에서 만들어 낸 업(카르마)라고 하는 성격[性格}이, 인생체험을 쌓는 만큼 나오는 것이다.

 

苦しみをとおして、その原因を追及し、反省して修正すれば、心の曇りは晴れ、安らぎの丸い豊かな心が作り出されて行き、心は光明に滿たされ、やがて人生に對する疑問を次次と追及して心は進化を續けて行くものだ。
괴로움을 통해서, 그 원인을 추급하고, 반성하고 수정하면, 마음의 흐림은 개고[구름은 걷히고], 편안한 둥글고 풍요로운 마음을 만들어 내어 가며, 마음은 광명으로 가득 채워져, 이윽고 인생에 대한 의문을 차례로 추급하여 마음은 진화를 계속해 것이다.

 

學校で學習するのは、より豊かな智性を作り、ものの判斷を豊かにし、誤りのない人生を送るための基本的素養を身につけるためだ。
학교에서 학습하는 것은, 보다 풍요로운 지성을 만들고, 사물의 판단을 풍요롭게 하고, 그릇됨이 없는 인생을 보내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을 익히기 위함이다.

 

きびしい社會生活の體驗をとおっして、さらに今ある環境の中で、心の新しい學習を今も續けているのだ」
혹독한 사회생활의 체험을 통해서, 특히 지금 있는 환경 속에서, 마음의 새로운 학습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そして、自らの心と行ないの缺點を、强く修正して行く者こそ、眞の勝利者だ」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과 행위의 결점을, 강하게 수정해 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이다」

 

「しかし、人間は、肉體的先祖や子孫に執着をもって、神の身體の一部である土地や、財産への執着が絶ちがたく、乘り舟の執着に明け暮れて、遂に〃空〃實在界のやがて歸るべき場所で忘れ、墓や寺院に、また生まれた家や住居に執着を殘して自らの心を束縛して心の中に地獄界を作り出してしまう」
「하지만, 인간은, 육체적 조상이나 자손에게 집착을 가지고, 신의 신체의 일부인 토지나, 재산으로의 집착을 끈기가 어렵고, 승선한 집착으로 같은 일을 되풀이 하며 세월을 보내며, 드디어 〃공〃실재계의 머지않아 돌아가야 할 장소를 잊어버리고, 묘지나 사원에, 또한 태어난 집이나 주거에 집착을 남겨 스스로의 마음을 속박하고 마음속에 지옥계를 만들어 버린다」

 

「いかに財産があるうとも、地位があろうとも、執着を持ってしまうと、心に曇りが生じ、肉體舟と同體になっている光子體の光を失ってしまうため、辿りつく場所は、きびしい地獄界に行くだろう」
「아무리 재산이 있을지라도, 지위가 있을지라도, 집착을 가져 버리면, 마음에 흐림을 낳고, 육체배와 동체가 되어 있는 광자체의 빛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고생 끝에 겨우 당도한 장소는, 혹독한 지옥계로 갈 것이다」

 

「人間は、この現象界を去るときは、人生で體驗した一切のこと、思ったこと行なさたことを持って行く。心の中のその記憶裝置は精妙で、地上界の電算機などの比ではない」
「인간은, 이 현상계를 떠날 대는, 인생에서 체험한 일체의 것, 정서적으로 생각한 것과 행함 것을 가지고 간다.  마음속에 그 기억장치는 정묘하며, 지상계의 컴퓨터[전자 계산기] 등과 비교가 안 된다.」

 

「人生でなした行爲と想念の決裁は、自らの善なる心が裁き、罪を犯した者は、自ら罪を償う場所に行き、その原因がどこにあったかを發見して自覺すろまでそこにとどまるのだ」
「인생에서 행한 행위와 상념의 결재는, 스스로의 선한 마음이 재판하고, 죄를 범한 자는, 스스로 죄를 갚는 장소로 가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발견해서 자각할 때까지 그곳에 머무는 것이다」

 

「物質文明も人間の生活の智慧が作り出したものであり、地位や名譽も作り出したものであり、それらはすべて變わりやすい、神の作り出したものは、安定し變わることがない」
「물질문명도 인간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 낸 것이며, 지위나 명예도 만들어 낸 것이며, 그러한 것은 모두 변하기 쉽고, 신의 만들어 낸 것은, 안정하고 변하는 일이 없다」

 

「ただ、いかに人間らしく、正しい中道の生活をして、廣く豊かな心を作り、人々のために心から盡くしたか、ということがもっとも大事なことだといえよう」
「단, 얼마나 인간답게, 올바른 중도의 생활을 하고, 넓고 풍요로운 마음을 만들고, 사람들을 위해 애를 썼는가, 라고 하는 것이 가장 중대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人間は、いつの日か、兩親から戴いた肉體舟から下船しなくてはならない。あの世に歸る光子體の肉體をもって、光の世界に歸って行くのだ」
「인간은, 어느 날엔가, 양친으로부터 받은 육체배에서 하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광자체의 육체를 가지고, 빛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自らの心と行ないを正さないで、實在の世界を悟ることはできない。智性だけの悟りは繪に書いたボタ餠だ。正道を行なわなくては結果は出ない」
「스스로의 마음과 행위를 바르지 않게 해서, 실재의 세계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성만의 깨달음은 그림에 떡이다.  정도[올바른 도리]를 행하지 않고서는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肉體舟の生と死を見て、生まれたとか死しんだとかいうのは、正しい道理ではないといえよう。それは、肉體舟の船頭が、乘り物をかえただけで、本當の自分自身は、死ぬことも生まれることもなく、汚ないも綺麗もなく、增えも減りもしないのである」
「육체배의 삶과 죽음을 보며, 태어났다든가 죽었다든가 하는 것은, 올바른 신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은, 육체배의 선장이, 교통수단을 바꾼 것 뿐이며, 진정한 자기 자신은, 죽는 일도 태어나는 일도 없고, 더러움도 아름다움도 없고,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이다」

 

「物質的な現象だけを見ているから、そのように感じるだけなのだ。人間は永遠の生命なのだ」
「물질적인 환경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인 것이다.  인간은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あなた達は、眠っているときに、私達、世界、くることある、心調和されたときね。不調和の心、くろことできない」
「여러분은, 잠들어 있을 때에, 우리들, 세계, 오는 일이 있다, 마음 조화되었을 때죠. 부조화한 마음, 올 수가 없다」

 

光の天使が眠っているときには、肉體舟から拔け出して、次元の違った世界に行くことがある、とエジプトの光の天使は、說明するのでした。
빛의 천사가 잠들어 있을 때에는, 육체배에서 빠져 나와서, 차원의 다른 세계로 가는 일이 있다, 라고 이집트의 빛의 천사는,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長い、しかし充實した話を聞いているうちに、地球上から心を調和してきていた者達の何人かは、心の調和が亂れたのか、眠ってしまったのか、すでに姿は見えませんでした。
길게, 하지만 충실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지구상에서 마음을 조화해서 와 있던 사람들의 몇 명인가는, 마음의 조화가 어지러웠는지, 잠들어 버린 것인지, 이미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この地上界の時間で二時間半近く話をして、禪定している原子肉體細胞でききている肉體にもどり、大きな呼吸を吐いて從來の自分に歸るのでした。
이 지상계의 시간으로 2시간 반 가까이 이야기를 하고, 선정하고 있는 원자 육체세포로 되어 있는 육체로 되돌아와서, 큰 호흡을 토하며 종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このような、事實を體驗した人々から、私のところへ電話がかかり、
「昨夜は實在界に行ってきました。そこは非常にすばらしい場所で、光の天使や大指導靈が迎えてくれました」
と、それぞれが、體驗した天上界の情景を話すのでした。
이러한, 사실을 체험한 사람들로부터, 제가 있는 곳으로 전화를 걸어,
「어젯밤은 실재계로 갔다 왔습니다.  그곳은 매우 기막히게 좋은 장소이며, 빛의 천사나 대지도령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라고, 각자가, 체험한 천상계의 정경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この事實を信じる、信じないは、讀者のみなさんにお任せしましょう。
이 사실을 믿고, 안 믿고는, 독자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ただ人間は、こうした事實を否定する前に、プッタの悟りへの道を、自分自身が實踐してみて判斷する、このことが正しい行爲といえましょう。
단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기 전에, 붓타의 깨달음으로 길을, 자기 자신이 실천해 보고 판단하는, 이 일이 올바른 행위라고 할 수 있지요.

 

頭の中だけで判斷するのは、おろかしい者達で、自己保存の强い、自我心の强い人々だといえます。このような人々は、否定のために否定している執着の强い人である、というしかありません。
머리 속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며, 자기보존의 강하고, 자아심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정을 위해 부정하고 있는 집착의 강한 사람이다, 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疑問を持つのは當然のことです。それをどう解くか、そのことのほうが眞實に近づく早道でしょう。その解答は、必ずあなたに正しい神理を敎えてくれるはずです。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풀지, 그 일은 하는 쪽이 진실로 가까운 지름길이지요.  그 해답은, 반드시 당신에게 올바른 신리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page55~69

 



疑問への解答── 地上界になぜ爭い絶えないか
의문에서의 해답── 지상계에 왜 싸움이 끊이지 않는가?

 

平和な實在界があるのに、そこに光の大指導靈や光の天使達がいるのに、なぜ地球上に戰爭や、他人との爭いや、勞使の鬪爭や病氣があるのだろう、と疑問を持つのは當然です。
평화로운 실재계가 있는데, 그곳에 빛의 대지도령이나 빛의 천사가 있는데, 왜 지구상에 전쟁이나, 타인과 싸움이나, 노사의 투쟁이나 질병이 있을 것일까, 라고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これはこういうことてす。
이것은 이러한 일입니다.

 

〃空〃の世界、實在界とこの現象界とは、次元が違っているが、この地上界の人々の心の調和によって、靈圍氣が淸明になれば、通信は可能なのです。しかし、人々の心が不調和のため、この地上界に單食っている動物靈や地獄靈のように執着の强い者達が、特定の人々の心を支配して語ることもあるのです。
〃공〃의 세계, 실재계와 이 현상계와는, 차원이 달라져 있지만, 이 지상계의 사람들의 마음의 조화에 의해서, 영위기가 청명하게 되면, 통신은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부조화하기 때문에, 이 지상계에 홀로 생활하고 있는 동물령이나 지옥령처럼 집착의 강한 사람들이, 특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서 말하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重要なことは、このような人々の心と生活の態度が、怒りっぽいとか、金錢慾が强いとか、情欲に溺れているとか、他をそしるとか、地位や名譽ばかりを追っているとか、形式主義に陷っているとか、不調和になっているので、天上界の者達がなかなか指導できないのです。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의 태도가, 화를 잘 내는 성미라든가, 금전욕이 강하든가, 정욕에 빠지고 있다든가, 남을 비난한다든가, 지위나 명예만을 쫓고 있다든가, 형식주의에 빠져 있다든가, 부조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천상계의 사람들이 좀처럼 지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特に、貧乏人から多額の金品を神の名のもとに請求する僞善者は、正しい心の者達ではありません。龍王だの、菩薩だの、如來だのと名乘ったところで、本物は、心の美しい人々以外に出られないのです。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서 다액의 금품을 신의 이름 하에 청구하는 위선자는, 올바른 마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용왕이라느니, 보살이라느니, 여래라느니 자칭해 본들, 진짜는, 마음의 아름다운 사람 이외에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な地獄靈や動物靈に憑依されている者達は、常に心がいらいらし、今いったこととあとでいったことがちぐはぐで、脅迫めいたことばかりをします。
이러한 지옥령이나 동물령에게 빙의되어 있는 사람들은, 늘 마음이 초조하고, 지금 말한 것과 나중에 말한 것이 뒤죽박죽이며, 협박하는 말만을 할 뿐입니다.

 

先祖が崇っているとか、浮かばれていないとか、不幸の原因を敎える靈媒もいるでしょう。そうしたものにいくらお經を上げて供養したところで、救われることはないで
しょう。地獄に墮ちるような人に、お經の意味など解るははずないからです。
조상이 걸립[乞粒]하고 있다든가, 성불하지 못하고 있다든가, 불행의 원인을 가르치는 영매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것에 아무리 경문을 올리고 공양해 본들, 구원을 받는 일은 없는 것이지요.  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사람에게, 경문의 의미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解らないお經を上げて、悟ることができるなら、地上界の人々の心は、もっと平和になり、爭いなど起こさないはずです。
이해할 수 없는 경문을 올리고, 깨달을 수가 있다면, 지상계의 사람들의 마음은, 훨씬 평화롭게 되며, 싸움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先祖に對する供養は、
「まず先祖からは肉體舟を戴いたのだ/育てて戴いたのであろう/感謝する心を持って報恩の行爲で示すことが大事だろう/それには身體を丈夫にして/心を美しく/家庭が圓滿で/いつも笑い聲の立つ家で/朝起きれば希望に燃えて/晝は自分の仕事に勤勉で/夕は一家團らんの夕食をとり/夜は自由を與えられ」
조상에 대한 공양은,
「우선 조상로부터는 육체배를 물러받은 것이다/길러 주신 것이다/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보은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는 일이 중대사 할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육체를 건강하게 하고/마음을 아름답게/가정이 원만하며/항상 웃음 소리가 서는 집에서/아침에 일어나면 희망에 불타고/낮에는 자신의 일에 근면하며/저녁에는 일가 단란한 저녁 식사를 하고/밤에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こうした人間の一日に、不滿があるはずがないでしょう。このような生活をすることが、先祖に對する最大の供養だといえます。
이러한 인간의 하루에, 불만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생활을 하는 것이, 조상에 대한 최대의 공양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たとえ地獄に墮ちていても、子孫の平和な生活、光明に滿ちた生活をしていれば、地獄靈もその姿を見て、自ら自分の非を悟ることでしょう。
설령 지옥에 떨어져 있어도, 자손의 평화로운 생활, 광명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고 있으면, 지옥령도 그 모습을 보고,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것이다.

 

形式主義によっては、光明の安らぎは與えられないということを悟ら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す。
형식주의에 의해서는, 광명의 평안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地獄に墮ちるということは、他人に原因があるのではなく、自分自身の生活に原因があるということを自覺すべきです。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타인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활에 원인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마땅히 자각해야 합니다.

 

また、病氣や事故や經濟的不調和、友人との不調和や、生まれながらの肉體的不調和にしても、すべて反省の機會は與えられている、そのことを知るべきでしょう。
또한, 질병이나 사고나 경제적 부조화, 친구와의 부조화나, 태어나면서 육체적으로 부조화가 되더라도, 모두 반성의 기회는 주어지고 있다, 그 일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지요.

 

結果を見て、なぜ不調和な現象が起きたものか、その原因を知って反省し、心から神に詑びることが必要です。
결과를 보고, 왜 부조화한 현상이 일어난 것인가, 그 원인을 알고 반성하고,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心の調和されている者達には、直接注意してくれる天使達もいるでしょう。不調和な者には、警告を出してくれることもあるでしょう。
마음의 조화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주의를 주는 천사들도 있는 것이지요.  부조화한 사람에게는, 경고를 보내 주는 일도 있는 것이지요.

 

私達は、日本にだけ生まれているのではないのです。あらゆる國々の體驗をして、轉生輪廻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のです。
우리들은, 일본에만 태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나라들의 체험을 하고, 전생윤회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心の窓が開かれ、意識のテ―プレコ―ダ―のスイッチを入れられた者達は、實在界の光の天使や天使達の協力によって、過去何年、どこの國で生まれどうすごしたか、どんな兩親を持ち、どんな友人を持っていたか、それから死んで、今度はどこの國で生まれた、といった記憶がよみがえり、その生まれた過去世の國の言葉で語り出すものです。(華嚴經十地品)
마음의 차이 열리어, 의식의 테이프 리코더의 스위치를 켠 사람들은, 실재계의 빛의 천사나 천사들의 협력에 의해서, 과거 몇 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떠한 양친을 가지고, 어떠한 친구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나서 죽어서, 이번에는 어느 나라에 태어났다, 라고 하는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 태어난 과거세의 나라의 말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화엄겸십지품)

 

釋迦如來、といって出ている靈媒や敎祖達に、古代インド語やその他のことを質問すれば、二千數百年後につたわってきた偶像にお經など上げ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まして、法華經の題目など上げるはずはなく、あったらそれは僞者です。その時代に、そんな經文はありはしないからです。
석가여래, 라고 하며 나오고 있는 영매나 교조들에게, 고대 인도어나 그 밖의 일을 질문하면, 2천 수백 년 후에 전해 내려온 우상에게 경문을 올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법화경의 제목 등을 올릴 리는 없고, 애석하게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 시대에, 그런 경문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また、觀世音菩薩と名乘る者が、觀音經を讀んだとしたらこれもおかしい。なぜなら、自分が自分の業績をたたえたものを讀むはずがないからです。
또한, 관세음보살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관음경을 읽는다고 한다면 그것도 우습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신의 업적을 기린 것을 읽을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自國語だけしか話さない菩薩や如來など、僞りだ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でしょう。
자국어밖에 말하지 못하는 보살이나 여래 등, 가짜라고 하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つまり、それだけ、人の心は汚され、動物靈や魔王、地獄靈などが僞って出ているのです。
결국, 그만큼, 사람의 마음은 더러워져, 동물령이나 마왕, 지옥령 등이 거짓말하며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メッキはいつかはげるものです。
하지만, 정체가 드러날 뿐인 것입니다.

 

如來や菩薩や不動明王や稻荷大明神や龍神などが、靈媒に出てきて、先祖の供養をしなさいとか先祖が迷っているとかいうはずはないのです。
여래나 보살이나 부동명왕 도하대명신[이나리대명신]이나 용신 등이, 영매로 나오며, 조상의 공양을 하십시오 라고 하든지 조상이 성불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라고 하든지 말할 턱이 없는 것입니다.

 

すべて、地獄靈の仕業です。本物の、慈悲深い如來や菩薩や諸天善神なら、哀れな地獄靈達をも救うことでしょう。
모두, 지옥령의 소행입니다.  진짜로, 자비로운 여래나 보살이나 제천선신(여러 하늘의 선신)이라면, 불쌍한 지옥령들을 또한 도울 것입니다.

 

このように、不生、不滅の生命を持っている私達は、誤った導に入ってはならないのです。正しい神理にもどづいて生活をしていれば、必ず天上界に通じるはずです。
이와 같이, 불생, 불멸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그릇된 길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리에 바탕을 두고 생활을 하고 있으면, 틀림없이 천상계로 통하는 것입니다.

 

如來は、轉生輪廻の道を悟っているから、現象の肉體にとらわれず、自由に實在界、地獄界、地上界を往來し、輪廻を解脫しているのです。
여래는, 전생윤회의 길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현상의 육체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이 실재계, 지옥계, 지상계를 왕래하고, 윤회를 해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生と死の束縛から離れている、そのことは、如來ならば當然、肉體舟は人生航路における魂、意識の乘り舟にしかすぎないことを知っているし、生死はまた〃空〃から〃色〃の世界、あの世とこの世に適應した肉體舟の乘り替えにしかすぎないことを、良く悟っているからです。
삶과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 일은, 여래가 되면 당연, 육체배는 인생항로에 있어서 영혼[魂], 의식의 승선에 지나지 않은 것을 알고 있고, 삶과 죽음은 또한 〃공〃에서 〃색〃의 세계, 저 세상과 이 세상에 적응한 육체배를 갈아 타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을, 잘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私達は、この現象界においては、同じ國にばかり生まれている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このことによって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それは、肉體條件の異なるあらゆる世界の國國に、自分が望んで轉生輪廻している生命であ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
우리들은, 이 현상계에 있어서는, 같은 나라에만 태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이 일에 의해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육체조건의 다른 모든 세계의 나라들에, 자신이 희망해서 전생윤회하고 있는 생명이다, 라고 하는 것인 것입니다.

 

貧しい環境に生まれて魂を磨くこともある。また一國の主として優雅な生活を送ることもあるし、衆生に盡くす立場に立つこともあるでしょう。
가난한 환경에 태어나서 영혼[魂]을 연마하는 일도 있다.  또한 한 나라의 왕으로서 우아한 생활을 보내는 일도 있고, 중생에게 사력을 다하는 입장에 서는 일도 있는 것이지요.

 

そのすべては、自らの人生の體驗をとおして、豊かな神の子としての、廣い心を作るための修行にほかならないのです。そして今も、私達は新しい人生の學習をしているのです。
그 모든 것은, 스스로의 인생의 체험을 통해서, 풍부한 신의 자녀로서의, 다른 것이 아닌 넓은 마음을 만들기 위한 수행에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은 새로운 인생의 학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從って、肉體的先祖が、すべてである、という認識は誤りなのだ、ということが解るでしょう。
따라서, 육체적 조상이, 전부이다, 라고 하는 인식은 잘못인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現代社會人の大きな誤りは、肉體先祖から肉體を戴いているため、それが魂までくれたもの、と思いこんでいるところにあります。
현대사회인의 큰 잘못은, 육체조상에게서 육체를 얻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영혼까지도 주신 것, 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바에 있습니다.

 

しかし、そうでないことはもうお解りでしょう。もし魂まで戴いたものなら、私達は、兩親と全く同じ魂・意識を持ち、同じ考えをするはずですし、斷絶などあり得ないはずなのです。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이제 이해하실 것입니다.  만약 영혼까지 물러준 것이라면, 우리들은, 양친과 완전히 같은 영혼[魂]・의식[意識]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할 것이고, 단절이라고는 있을 턱이 없는 것입니다.

 

しかし現實は、そうなっていません。私達の中に、內在する潛在意識のテ―プ・レコ―ダ―は、轉生輪廻のすべてを記憶しているのであり、誰でもが、心の窓が開かれ偉大な智慧に到達できれば、そのことを悟り得るのです。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안에, 내재하는 잠재의식의 테이프・리코더는, 전생윤회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누구든지, 마음의 창이 열리어 위대한 지혜에 도달하게 되면, 그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私達はつまり、轉生輪廻の旅人、修行者である、というわけです。
우리들은 즉, 전생윤회의 나그네, 수행자이다, 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私達の魂は、生まれることも滅することもない、永遠の生命なのです。ですから、肉體舟自體の垢や塵にまみれることもないし、そのゆえに、增えも減りもしない、不增不減であるというわけです。
우리들의 영혼은, 태어나는 일도 없어지는 일도 없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배 자체의 때나 먼지투성이가 되는 일도 없고, 그러므로,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 부증불감이다 라고 하는 까닭입니다.
 
人の世界の爭いも、各人の心がここに到れば、必ず救い得るものなのです。
인간 세계의 싸움도, 각자의 마음이 여기에 도달하면,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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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無意識界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무의식계


生命には、鑛物のような不動の生命もあれば、植物のように靜態

생명에는, 광물과 같은 부동의 생명도 있다면, 식물과 같은 정태의
の生命もあり、動物のように移動する生命もある。

생명도 있고, 동물과 같이 이동하는 생명도 있다.
しかし、こうした固體的生命というものは、不安定なものである。

하지만, 이러한 고체적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다.
つまり物質界というものは、このように不安定なものなのである。

즉 물질계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불안정한 것인 것이다.
これに比して、〃空〃の世界、實在界は、意識界であるから、非

이것에 비해서, 〃공〃의 세계, 실재계는, 의식계이기 때문에, 매우
常に精妙な心的な世界である。
정묘한 심적인 세계이다.

 


〃空〃の世界、すなわち魂、意識の中心、心の世界は、肉體の五官をとおしてみた現象界とは、全く異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說いているのです。
〃공〃의 세계, 즉 영혼, 의식의 중심, 마음의 세계는, 육체의 오관을 통해서 본 현상계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これゆえに、實在界、空の世界、すなわち心の世界は、色すなわち物質的な萬物もない、想行識を受けることもない。眼によって萬生萬物を見たり、聲を聞くことも、鼻で匂いを嗅ぐことも、舌で味を知ることも、身で感觸を知ることも、肉體的な現象の法もない。眼で見える境界もない」
と否定している經文です。
이런 까닭으로, 실재계, 공의 세계, 즉 마음의 세계는, 색 즉 물질적인 만물도 없고, 상행식을 받는 일도 없다.  눈에 의해서 만생만물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일도, 코로 냄새를 맡는 일도, 혀로 맛을 아는 일도, 몸으로 감촉을 아는 일도, 육체적인 현상의 법도 없다.  눈으로 보이는 환경도 없다」
라고 부정하고 있는 경문입니다.

 

現在、私達の肉體的な舟についている附屬品である、眼耳鼻舌身意の六根は、實在界という次元の異なった世界へ持って行くことはできない。だから、肉體の一切をとおして感知できる現象は否定して、ないという否定の意味です。
현재, 우리들의 육체적인 배에 붙어 있는 부속품이다.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은, 실재계라고 하는 차원이 다른 세계로 가져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육체의 일체를 통해서 감지할 수 있는 현상은 부정하며, 없다고 하는 부정의 의미입니다.

 

これは、〃空〃の世界、實在の世界は、精妙な非物質的な世界である、という說明ともなっているのです。
이것은, 〃공〃의 세계, 실재의 세계는, 정묘한 비물절적인 세계이다, 라고 하는 설명으로도 되어 있는 것입니다.

 

現象界の大自然は、物質であり、鑛物、植物、動物が相互關係を保って共存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前に述べましたが、詳しくは、この地球上には、鑛物のように成長でず、風化して變化している不動的な生命もあれば、植物のように、同じ場所から移動せずに生命を保っている靜態生命もあり、動物のように、生存する場所を自由意志によって變える動的生命もあるということです。
현상계의 대자연은, 물질이며, 광물, 식물, 동물이 상호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전에 설명했지만, 자세하게는, 이 지구상에는, 광물처럼 성장하지 않고, 풍화해서 변화하고 있는 부동적인 생명도 있다면, 식물처럼, 같은 장소에서 이동하지 않고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 정태생명도 있고, 동물처럼, 생존하는 장소를 자유의지에 의해서 바꾸는 동적생명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しかし、これらの不動的生命も靜態生命も動的生命も、それぞれの環境に適應して安定しているかに見えますが、實は不安定な、固體的なものです。なぜなら、私達は、空中にある電波、紫外線、赤外線、X線、γ線、λ線のような熱線や放射線などを、自分の眼で確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
하지만, 이러한 부동적 생명도 정태생명도 동적생명도, 저마다의 환경에 적응해서 안정되어 있는 듯이 보입니다만, 사실은 불안정한, 고체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공중에 있는 전파, 자외선, 적외선, 엑스선[X線]、감마선[γ線], 람다선[λ線]]과 같은 열선이나 방사선 등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大自然の萬物は、ひとときでもその位置を保存することはできないし、今ある形を變えねば生きて行けないからです。
대자연의 만물은, 일시적이라도 그 위치를 보존할 수는 없고, 지금 있는 모습을 바꾸면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物質界というものは、このように、不安定で固體的な世界なのです。〃空〃の世界、實在界は、意識界であるから、非常に精妙で心的な世界です。
물질계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불안정하며 고체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공〃의 세계, 실재계는, 의식계이기 때문에, 매우 정묘하며 심적인 세계입니다.

 

動的、靜態、不動的な各生命も、實はこの非物質的な精妙な生命によって作り出されています。植物は植物としての意識生命によって、次元を越えた大自然が存在し、物質はエネルギ―としての不動的な生命としてあり、動物も意識生命としての存在があるのです。そしてそこは、この現象界のような、物質的光景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동적, 정태, 부동적인 각 생명도, 실은 이 비물질적인 정묘한 생명에 의해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식물은 식물로서의 의식생명에 의해서, 차원을 초월한 대자연이 존재하고, 물질은 에너지로서의 부동적인 생명으로 있고, 동물도 의식생명으로서의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이 현상계와 같은, 물질적 광경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それゆえに、この現象界の諸現象をとおすような、想いや行動の心もありません。
그러므로, 이 현상계의 여러 현상을 통한 듯한, 생각이나 행동의 마음도 없습니다.

 

〃空〃の世界における意識の發達度合いは、この現象界と異なって、九O%の表面意識が出ているため、他の考えはほとんど理解します。つまり、それだけに相互の意志の疏通はないのです。
〃공〃의 세계에 있어서 의식의 발달 정도는, 이 현상계와 달리, 90%의 표면의식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대부분 이해합니다.  즉, 그만큼 서로의 의사의 소통은 없는 것입니다.

 

しかし、この現象界の人々は、五官六根をとおしての判斷によって、行動したり考えたりしているのです。
하지만, 이 현상계의 사람들은, 오관 육근을 통해서의 판단에 의해서, 행동하거나 생각하거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實在界では、この逆で、すべての現象を、心で感知します。自分の思ったことがすぐ他人に通じるし、おのれの不自然な想念も表に出るので、ただちに反省、修正してしまえるのです。
실재계에서는, 이와 반대로, 모든 현상을, 마음으로 감지합니다.  자신의 정서적으로 생각한 것이 즉시 타인에게 통하고, 자신의 부자연한 상념도 드러나는 것이며, 그 즉시 반성, 수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これがここに說く、〃空〃の世界、實在界というところの實體なのです。
이것이 여기에 설명하는, 〃공〃의 세계, 실재계라고 하는 곳의 실체인 것입니다.

 

つまりいえることは、現代社會の不調和な混亂は、人間がこの神の子としての本性を失い、心の偉大な普遍的な王國を忘れ、肉體舟の五官六根のままに生活して、物質經濟の奴隸になり下がっているところにある、ということです。
즉 말할 수 있는 것은, 현대사회의 부조화한 혼란은, 인간이 이 신의 자녀로서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마음의 위대한 보편적인 왕국을 잊어버리고, 육체배의 오관 육근대로 생활하고, 물질경제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바에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足ることを忘れ、欲望の中で、盲目の人生を送っているからです。すべてそれは、肉體が絶對だと思うあまり、知識と肉體的な片よって、心の中のゆとりを失っているからなのです。
만족함을 잊어버리고, 욕망 속에서, 맹목의 인생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그것은, 육체가 절대다라고 생각하는 나머지, 지식과 육체적인 치우침이며, 마음속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偉大な普遍的な魂、その中心である心の存在を、しっかりと確認したならば、こんな混亂は生じないでしょう。魂を失った人々は、互いに人の心が解らなくなり、自分本位に陷って、小さな自分に成り下がっているのです。人類はみな兄弟だということを忘れて、互いに信賴することなく混亂した社會を作り出しているのです。
위대한 보편적인 영혼, 그 중심의 마음의 존재를, 확실히 확인한다면, 이런 혼란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서로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되어, 자기본위에 빠지고, 작은 자신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모두 형제다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서로가 신뢰할 수 없는 혼란한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本來、この地上界の一物たりとも、自分の所有物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
본래, 이 지상계의 한 사물[하나의 물픔]이라고 해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この世を去るときには、すべて置いて歸らなくてはならないのだ、ということを悟ったら執着が生まれてくるわけはないのです。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모두 두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면 집착이 생겨나는 없을 것입니다. .

 

國土とかわが土地とかいうものの所有權は、人間の永い歷史的な環境が作り出したもので、子孫に受けつがれただけです。神の身體の一部を占有しているにすぎないものなのです。
국토라든가 내 토지라든가 하는 것의 소유권은, 인간의 오랜 역사적인 환경이 만들어 낸 것이며, 자손에게 계승할 뿐입니다.  신의 신체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だから、社會人類のために、有意義に使用すべきです。經濟もまた、人間の生活の智慧が作り出したものだ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그래서, 사회인류를 위해, 의미나 가치가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경제도 또한, 인간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不平等な、あらゆる環境を作り出したのは人間、その人々なのです。人生がこの世限り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悟いたならば、この地球上を、人類のために、平等な立場で利用すべきだということが神理なのです。
불평등한, 모든 환경을 만들어 낸 것은 인간, 그 사람들인 것입니다.  인생이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이 지구상을, 인류를 위해, 평등한 입장에서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 거이 신리인 것입니다.

 

※괘[罣] 《한자사전》
㉠걸다㉡걸리다㉢거리끼다 . 
  고루할 의, 영리할 억
※애[礙]거리낄 애, 푸른 돌 의  
㉠거리끼다 ㉡장애가 되다 ㉢지장을 주다 ㉣방해하다(妨害--) ㉤거치적거리다 ㉥거북하다 ㉦막다 ㉧그치다 ㉨해치다 ⓐ푸른 돌 (의)


 

page 77~82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一切顚倒夢想 究竟涅槃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괘애 무괘애고 무유공포
원리일체전도몽상 구경열반

 

公害は、實は、人間の意志と行動によって作り出されたものであ

공해는, 사실은, 인간의 의지와 행위에 의해서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る。一人一の、人の心想念によってできたものである。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람의 마음 상념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다.
從って、私達の、正しい生き方によってそれを消滅させることが

따라서, 우리들의, 올바른 인간으로서의 살아가는 태도에 의해서 그것을
できる。

소멸시킬 수가 있다.
、生活している、私達のこの場は、その豊かで廣い、〃心〃を

지금,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 장소는, 그 풍부하고 넓은, 〃마음〃을
作り出すための〃學習の環境〃なのである。

만들어 내기 위한, 〃학습의 환경〃인 것이다.
そしてそれは、私達自身によって、選擇された〃場〃なのだ。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자신에 의해서, 선택된 〃장소〃인 것이다.

 

 

無無明とは、否定の否定であり、迷いのない世界、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ょう。
무무명이란, 부정의 부정이며, 미혹의 없는 세계, 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ということは、明かるい光明の世界ということです。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밝은 광명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實在界〃空〃の世界は、光明に滿ち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실재계〃공〃의 세계는, 광명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亦無無明盡とは、光明の盡きることもない、ということで、無限の光明に滿ち滿ち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역무무명진이란, 광명의 다하는 일도 없다, 라고 하는 것이며, 무한한 광명으로 충만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地球上の空(そら)は、地球の水が太陽熱や地熱によって蒸發して曇りを作り、太陽の熱や光をさえぎりますが、しかし雲の上は、眞靑な大空で、太陽の光はさんさんとその雲の上にそそいでいるのです。
이 지구상의 하늘은, 지구의 물이 태양열이나 지열에 의해서 증발해서 구름을 만들고, 태양의 열이나 빛을 가립니다만, 하지만 구름 위는, 새파란 너른 하늘이며, 태양의 빛은 눈부시게 그 구름 위에 햇살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地上界では、最近はスモッグという人間の知惠の作り出した公害が問題になっているが、この公害は、人間の意志と行動によって消滅させることはできるものです。
지상계에서는, 최근에는 스모그라고 하는 인간의 지혜[知惠]가 만들어 낸 공해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 공해는, 인간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서 소멸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そして〃空〃の世界は、その場所に住む者達の心の靈圍氣が調和されて精妙になっているため、神の光をさえぎるものがないのです。
그리고 〃공〃의 세계는,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영위기가 조화되어 정묘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신의 빛을 가리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そこでは、光明が滿ち滿じ、光明の盡きることのない無限の力が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거기에는, 광명이 충만하고, 광명의 다하는 일이 없는 무한한 힘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空〃の世界、實在の世界は、老いたり死んだりすることのない世界です。老いるとか死ぬという現象は、地球上の肉體舟の有限の世界に存在するものであるし、そこでは、そうした現象は起こらないのです。
〃공〃의 세계, 실재의 세계는, 늙거나 죽거나 하는 일이 없는 세계입니다.  늙는다든가 죽는다고 하는 현상은, 지구상의 육체배의 유한한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그러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物質的な固體的な環境ではないからです。そこは、精妙の世界であるため不變であり、永遠の世界といえるでしょう。
물질적인 고체적인 환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정묘한 세계이기 때문에 불변이며, 영원한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しかしいつの日か、そこにいる光子體は、この地球や他の天體の環境に適應した肉體舟に乘って、また行くのです。魂の修行と、その環境を、人々の心と心の調和によるユ―トピア建設のためにです。そして、肉體舟はまたその物質界の大自然の中に還元されてしまい、形を變えてしまうのです。
하지만 언젠가, 그곳에 있는 광자체는, 이 지구나 다른 천체의 환경에 적응한 육체배를 타고, 또한 가는 것입니다.  영혼의 수행과, 그 환경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의 조화의 정도에 의한 유토피아 건설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육체배는 또한 그 물질계의 대자연 속에 환원되어 버리고, 형태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空〃の世界は、このように苦しみの原因となる、生老病死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す。
〃공〃의 세계는, 이와 같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物質的な肉體舟に乘ってはいないし、意識の段階が精妙化しているため、苦しみの原因を集めて滅する道も必要としないのです。
물질적인 육체배를 타서는 있지 않고, 의식의 단계가 정묘화되어 있기 때문에, 괴로움의 원인을 모으고 없애는 길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この現象界における皆さんは、肉體舟の先祖代代をとおして保存されているため、その生まれた環境や敎育、思想、習性などによって、ものの考え方が異なっています。そして、五官をとおして、諸現象を感知するので、心の中に曇りを作り、盲目の人生を步み、正しい心の物差しを失ってしまうのです。
이 현상계에 있는 여러분은, 육체배의 조상대대를 통해서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그 태어난 환경이나 교육, 사상, 습성 등에 의해서, 사물의 사고방식이 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관을 통해서, 여러 현상을 감지하는 것이며, 마음속에 흐림[구름]을 만들고, 맹목의 인생을 걷고, 올바른 마음의 척도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その結果、自ら苦しみを作り出して、人生を無意味に送ってしまう者が多いといえます。
그 결과,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내어,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 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その不調和から心の曇りをとり除く、苦集滅道の神理を悟って實踐することが、だから必要となってくるのだ、といえましょう。
그 부조화로부터 마음의 흐림[구름]을 제거하고, 고집멸도의 신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일이, 그래서 필요하게 되어 오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부지역무득 이무소득고.

 

〃空〃すなわち實在の世界においては、あたかも太陽が現象界の萬生萬物に、平等な慈愛の熱光りのエネルギ―をそそいでいながら私達に光熱代を請求しないように、宇宙卽我と自覺しているから、所得を得る必要がありません。
〃공〃즉 실재의 세계에 있어서는, 마치 태양이 현상계의 만생만물에게, 평등한 자애의 열과 빛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광열비를 청구하지 않는 것처럼, 우주즉아라고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을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

 

所得を得るための知惠も必要がありません。
소득을 얻기 위한 지혜[知惠]도 필요가 없습니다.

 

それは、內在されている神の心、慈悲、愛の偉大な智慧の寶庫が開かれているため、現象界〃色〃の世界のように、苦樂の中で、新しい學習によって智慧を豊かにする必要がないのです。
그것은, 내재되어 있는 신의 마음, 자비, 사랑의 위대한 지혜[智慧]의 보고가 열려 있기 때문에, 현상계〃색〃의 세계와 같이, 고락 중에서, 새로운 학습에 의해 지혜[智慧]를 풍부하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實在界に歸っている天使や光の天使達は、すべて心の廣さによって、廣大無邊の大慈悲を持っています。そして、すべての者は兄弟であり、大宇宙はすべておのれであるということを悟っているのです。
실재계로 돌아오고 있는 천사나 빛의 천사들은, 모두 마음의 넓이에 의해서, 넓고 커서 끝이 없는 대자대비[大慈悲]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형제이며, 대우주는 모두 자기 자신이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それゆえに、〃空〃の世界では、相互の理解と信賴が當然なこととして自覺され、實現されているから、完全に調和のユ―トピアの世界です。
그러므로,  〃공〃의 세계에서는, 서로가 이해와 신뢰가 당연한 일로서 자각되어, 실현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조화로운 유토피아의 세계입니다.

 

地上界で生活している者達の意識は、ほとんど九O%が潛在して、過去世で體驗したあらゆる智慧が內在され、わずか1O%の表面意識により新しい學習を體驗し、豊かな心を作り出すために人生修行をしているから、盲目になりがちなのです。
지상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은, 대부분 90%가 잠재하고, 과거세에서 체험한 모든 지혜[智慧]가 내재되어, 불과 10%의 표면의식에 의해 새로운 학습을 체험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인생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맹목이 되기 십상인 것입니다.

 

肉體的な五官六根によって、客觀的にとらえたあらゆる事象に迷わされてしまい、そこに自ら苦しみを作り出してしまうのです。
육체적인 오관 육근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사로잡힌 모든 관찰할 수 있는 형체로 나타나는 사물이나 현상에 현혹당해 버리고, 거기에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しかし實在界では、現象界とは違い、その表面意識は九O%で、過去世のあらゆる人生體驗の智慧の寶庫が開かれています。そのため、人智とは違って、小細工もしないし、他の天使や光の天使の心の中は、相互に解っているから、自己保存や自我我欲の心はないのです。
하지만 실재계에서는, 현상계와는 달리, 그 표면의식은 90%이며, 과거세의 모든 인생체험의 지혜[智慧]의 보고가 열려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의 지혜와는 달리, 잔꾀도 부리지 않고, 다른 천사나 빛의 천사의 마음속은,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보존이나 자아아욕의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現象界のように、おれの國だ、おれの地所だといった心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현상계와 같이, 내 나라다, 내 땅[내가 집을 세울 토지이다]이다 라고 하는 마음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他の天體から見たら小さな地球という枠の中で相爭い、骨肉をけずっているということは、まことにおろかしいことです。
다른 천체에서 보면 작은 지구라고 하는 틀 안에서 서로 싸우고, 혈통이 같은 부모와 자식, 형제들이 싸우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空〃の世界に歸るときには、〃色〃の世界で、これは自分の國だ、自分の土地だと思っていた一切の財産を持って歸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공〃의 세계로 돌아갈 때에는, 〃색〃의 세계에서, 이것은 자신의 나라이다, 자신의 토지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일체의 재산을 가지고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ということは、〃色〃の世界である地球に存在している一切の物は、本來、絶對に、おれの物だというものは存在していないのです。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색〃의 세계에 있는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일체의 사물[물건]은, 본래, 절대로, 내 물건이다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一時、自分自身の物だと思い違いしているだけで、借り物にすぎないのです。
한 때, 자기 자신의 물건이다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을 뿐이며, 빌려온 물건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大事にしていた自分の肉體だと思っていたものでさえ、人生航路の乘り舟として捨てて歸らなくではならないのです。それは、〃色〃の世界のものだからです。
중요하게 여기고 있던 자신의 육체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조차, 인생항로를 위한 승선한 것으로서 버리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색〃의 세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それでも、人間は、執着心から離れ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그런데도, 인간은, 집착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本當の自分を忘れて、物にとらわれているそのとらわれが、一切の苦しみを作り出しているのです。
진정한 자신을 잊어버리고, 물질에 사로잡혀 있는 그 사로잡힘이, 일체의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實在界の天使達は、一切の欲望から離れているために、所得を得ることがないし考えることもありません。
하지만, 실재계의 천사들은, 일체의 욕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소득을 얻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도 없습니다.

 

それどころか、より豊かな廣い心の進化を作り出して、現象界の世界を、調和された環境に完成させるための協力を、常に惜しみなく與えているのです。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보다 풍요로운 넓은 마음의 진화를 만들어 내고, 현상계의 세계를, 조화된 환경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협력을, 항상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この慈悲や愛を、盲目の人類は心の窓を開かないために解ってはいないのです。
이 자비나 사랑을, 맹목의 인류는 마음의 창을 열지 않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人類が幸福になるための協力をしている光の天使達は、決して報酬を求めないため、何の所得もないのです──丁度それは、あの太陽のようにです。
인류가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협력을 하고 있는 빛의 천사들은, 결코 보수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어떤 소득도 없는 것입니다 ──정확이 그것은, 저 태양과 모습입니다.

 

〃空〃の世界、實在の世界の光の天使達は、大宇宙生命の中にとけこんでいる生命ですが、その中で一人一人の個の生命を自覺し、各自が個性を持っているのです。
〃공〃의 세계, 실재의 세계의 빛의 천사들은, 대우주생명 안에 융화되어 있는 생명입니다만, 그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의 생명을 자각하고, 각자가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丁度、大海にそそいでいる水のように、ひとつに集まる水の、實は粒子H2Oの個性のようにです。
정확히, 대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물처럼, 한마음으로 모여드는 물의, 사실은 입자 H2O[물]의 개성의 모습입니다.

 

現象界で、兩親の緣によって戴いた人生航路の肉體舟の船頭、すなわち普遍的な私達の魂も、大宇宙生命の中に、今生きているのです。
현상계에서, 양친의 인연에 의해서 받은 인생항로의 육체배의 선장, 즉 보편적인 우리들의 영혼도, 대우주 생명 안에,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それぞれの個性を持って──。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永遠の轉生輪廻の過程において、〃色〃の世界で、今、その魂は人生修行の途上にあるのです。
영원한 전생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색〃의 세계에서, 지금, 그 영혼은 인생수행의 도상에 있는 것입니다.

 

もっとも不安定な、粗惡な固定的、物質界〃色〃の現象界の肉體舟に乘ってしまうと、生まれた環境や習性や敎育や思想によって、人は盲目の人生を送り、生かされて在る環境に心を向けることを忘れ、大自然の惠みに感謝することもなく、兩親すらもないがしろにして、自我の道を突っ走って行きます。
가장 불안정한, 조악한 고정적, 물질계〃색〃의 현상계의 육체배를 타 버리면, 태어난 환경이나 습성이나 교육이나 사상에 의해서, 사람은 맹목의 인생을 보내며, 소생되고 있는 환경에 마음을 돌리는 것을 잊어버리고, 대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는 일도 없고, 양친조차도 소홀히 하며, 자아의 길을 질주해 갑니다.

 

感謝の心がないから、報恩の行爲も現われてはこないのです。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보은의 행위도 나타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しかし、全人類は、みな神の子として、兄弟であり、その時代の同期生だということを知り、手をとり合って相互の信賴の上に立っていれば、現代社會の人心に混亂はないのです。
하지만, 모든 인류는, 모두 신의 자녀로서, 형제이며, 그 시대의 동기생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손을 서로 붙잡고 상호의 신뢰 위에 서 있으면, 현대사회의 인심에 혼란은 없는 것입니다.

 

親と子、夫と婦、敎師と生徒、勞使間など、誤った自我の思想が、人々の心を惑わしているのだといえましょう。惑わ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は、正道を忘れ去った人々の倣りであり、すべてに足ることを忘れた人間の末路であるといえましょう。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교사와 학생, 노사간 등, 그릇된 자아의 사상[思想]이, 사람들의 마음을 헷갈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지요.  현혹당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정도를 잊어버린 사람들의 모방이며, 모든 것에 만족함을 잊어버린 인간의 말로이다라고 할 수 있지요.

 

それを救うには、執着心を捨てて、欲望の奴隸から自分自身を解放すること、それが先決なのです。
그것을 돕는 데에는, 집착심을 버리고, 욕망의 노예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는 것, 그것이 선결인 것입니다.

 

一人一人が心の偉大さに眼覺め、神の子としての本來の性品を悟ったならば、光明の道はおのずからそこに開けましょう。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위대함에 눈뜨고, 신의 자녀로서의 본래의 성품을 깨닫게 되면, 광명의 길은 저절로 거기에 열리는 것이지요.

 

私達は、〃空〃の世界、實在の世界からきた魂なのです。そして、今は、肉體舟に乘って生きています。なのに、かつて自分が、その環境を、望み選んで現象界へ出た、ということを忘れ去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す。
우리들은, 〃공〃 의 세계, 실재의 세계에서 온 영혼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육체배를 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찍이 자가 자신이, 그 환경을, 희망하고 선택하여 현상계로 나왔다, 라고 하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つまり生まれた環境や、地位や名譽や財産や、貧富の差や學歷の差などといったものはその人の人格を現わすバロメ―タ―ではないのです。
요컨데 태어난 환경이나, 지위나 명예나 재산이나, 빈부의 차이나 학력의 차이라고 말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기준이 아닌 것입니다.

 

今生活しているこの場は、豊かな廣い心を作り出すための、學習の環境なのです。自分の望んだ修行の場なのです。私達はそのことを忘れてはなりません。
지금 생활하고 있는 장소는, 풍요로운 넓은 마음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학습의 환경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희망한 수행의 장소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そして、自らの希望によって、その緣によって、私達が作り出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ならば、その環境の中で、相互の關係を良く理解し、信賴を持って生活することが大切といえます。
그리고, 스스로의 희망에 의해서, 그 인연에 의해서, 우리들의 만들어 내 버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환경 속에서, 상호 관계를 잘 이해하고, 신뢰를 가지고 생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相互に僞りの心と行爲を捨てて、平等な立場の中で、それぞれの生活の部門の擔當を、充分に果たすことが必要だろう、ということです。
서로가 거짓의 마음과 행위를 버리고, 평등한 입장 안에서, 저마다의 생활 부문의 담당을, 충분히 완수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より慈愛に滿ちた人々と心の交流をはかり、貧しい人々に愛の手を差しのべる、といった豊かな心と行ないが、つまりその者達の人格を決定する、といえるのです。
보다 자비로 가득 찬 사람들과 마음의 교류를 도모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라고 하는 풍요로운 마음과 행위가, 즉 그 사람들의 인격을 결정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丸い豊かな心の廣さが、本當の人格者といえる人を作るのです。
둥글고 풍요로운 마음의 넓이가, 진정한 인격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いかに社會的地位があり、學識經驗があり、經濟力豊かでも、自らの欲望に足ることを知らない者達は、貧しい心の持主であり、形にとらわれている憐れな者、としかいいようがありません。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있고, 학식경험이 있고, 경제력이 풍부하더라도, 스스로의 욕망에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이며, 형식에 사로잡혀 있는 불쌍한 사람, 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謙虛な心を失い、他人を見下し、增上慢の心を持っている人は、やがて自らを苦しみの中に沒落させて行く者達なのです。
겸허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타인을 깔보고, 증상만[오만,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윽고 스스로를 괴로움 속에 몰락시켜 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心の中にスモッグを作って暗い心を包み、感情や理性に歪みを作り、偉大な神の光をさえぎってしまうからそうなのです。
마음속에 스모그를 만들어 어두운 마음을 품고, 감정이나 이성에 비뚤어짐을 만들고, 위대한 신의 빛을 가려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心は、地獄に通じ、自らの安らぎを放棄した憐れな人達です。
마음은, 지옥에 통하고, 스스로의 평안을 방기(포기)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방기[放棄] 《국어사전》
내버리고 아예 돌아보지 아니함.

※포기[抛棄]  《국어사전》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2 자기의 권리나 자격, 물건 따위를 내던져 버림

 

たとえ財産がなくとも、地位がなくとも生活に足ることを知り、友達に信賴され、心にひっかかりがなく、良く他人の面倒を見、家庭にも相互の信賴を築いた仁は平和で、生活に不滿を持っていません。
비록 재산이 없다고 하더라도, 지위가 없다고 하더라도 생활에 만족함을 알며, 친구들에게 신뢰를 받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충분히 타인을 돌봐 주고, 가정에도 상호 신뢰를 쌓은 사람은 평화로우며, 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このような人々こそ、富める心の人というのです。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풍부한 마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心の中に、恨み、そしり、怒り、自己存在の心がないため、スモッグがないから、光明に包まれています。安らぎの境地に生きている者達は、常に心は光の天使達の世界に通じているため、慈愛に富み僞りがありません。
마음속에, 원망, 비난, 분노, 자기존재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스모그가 없기 때문에, 광명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평안의 경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은 빛의 천사들의 세계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자애로 풍부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所得の高の差によって、心の貧富を定めるべきではないのです。
소득의 높은 차이에 의해서, 마음의 빈부를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朝は健康で、調和される環境を作り出すために智慧を働かし、希望を滿ちて、晝は自らの仕事に精進、努力を怠ることなく、夕は一家團らんの樂しい夕餉をとり、夜は一日の反省と休養の時間が與ええらているのです。
아침은 건강하며, 조화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지혜를 활용하고, 희망이 가득하고, 낮에는 스스로의 일에 정진하고, 노력을 게을리하는 일이 없고, 저녁에는 한 가정의 단란한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고, 밤에는 하루의 반성과 휴양의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人間は、なぜ不滿の心を持つのでしょうか。
인간은, 왜 불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일까요?

 

欲望への執着心を捨て、惡心にとらわれない道によって、足ることを悟り、心の貧しい人々には正しい片よりのない正道を物差しとして導き、心の革命を起こしてその心と行爲を正したとき、人間から不滿の心は消え去ることでしょう。
욕망으로의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악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는 길에 의해서, 만족함을 깨닫고, 마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치우침이 없는 정도[正道]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이끌고, 마음의 혁명을 일으켜서 그 마음과 행위를 올바르게 했을 때, 인간에게서 불만의 마음은 사라지는 것이지요.

 

不滿は、しかし常に人々の心の中に影のようにつきまとっているものです。正法、正道の、光明の道を步んだとき、その影は、人間の心の中から消え失せてしまうことでしょう。
불만은, 하지만 늘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정법, 정도의, 광명의 길을 걸을 때, 그 그림자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소실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般若波羅蜜多によって、菩提薩埵になったのは、こうした、實在界の光明によるもので、その意味は、「正しく見、正しく思い、正しく語り、正しく仕事をし、正しく生活をし、正しく道に精進をし、正しく念じ、正しく定に入る八正道の生活をし、片よりのない中道の物差しで心と行ないを反省し、その曇りをとり除くことにより神佛の光明に滿たされれば、實在界の光の天使達が、正しい人生の道を敎え導くようになり、心の窓が開かれると、はっきりと空・實在界の光の天使達の姿を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語もできるようになって行く。
반야바라밀다에 의해서, 보리살타가 된 것은, 이러한, 실재계의 광명에 의한 것이며, 그 의미는,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말하고, 올바르게 일을 하고, 올바르게 생활을 하고, 올바르게 길에 정진을 하고, 올바르게 염원하고, 올바르게 선정에 들어가는 팔정도의 생활을 하고,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마음의 척도로 마음과 행위를 반성하고, 그 흐림을 제거하는 것에 의해서 신불의 광명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면, 실재계의 빛의 천사들이, 올바른 인생의 길을 가르치고 인도하게 되며, 마음의 창이 열리면, 분명하게 공・실재계의 빛의 천사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게 되어, 말도 할 수 있게 되어 간다.

 

そして、人々の心に人生の意義と價値を敎え、迷える衆生を救濟して無償の道を步んで行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また、心の中に潛在している過去世の體驗、偉大な智慧がよみがえり、悟りの境地に到達して悟られた方は」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ょう。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가르치고,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하고 무상의 길을 걸어 갈 수가 있게 된다. 또한,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과거세의 체험, 위대한 지혜[智慧]가 되살아나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해서 깨달은 사람은」이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とは、

심무개애 무개애고 무유공포란,

 

「心にはひっかかりがない。ひっかかりがないから、恐怖心もないのある」
「마음에는 거리낌이 없다.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공포심도 없는 것이다」

 

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が、ひっかかりがないということは、つまり、心に苦しみの原因を作らないことだ、といえましょう。
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만, 거리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즉, 마음에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지요.

 

心の窓を開く、ということは、何のこだわりもなく、豊かに、丸い心を持ち、おそれるところもなく生きるということでしょう。
마음의 창을 연다, 라고 하는 것은, 어떤 구애되는 일도 없고, 풍부하고, 둥근 마음을 가지고, 무서워하는 바도 없이 산다고 하는 것이지요.

 


遠離一切顚倒夢想 究竟涅槃とは、
원리일체전도몽상 구경열반이란,

 

「一切の、夢のような顚倒した考え方を、遠くに離して、つまるところは最終的な悟りに入る」
「일체의, 꿈과 같은 전도된 사고방식을, 멀리 떠나서, 결국은 최종적인 깨달음에 들어간다」

 

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が、私達が五官でとらえたものと違って、心の世界、心の眼でとらえた、一切の執着を離れた世界ですから、これは精妙で平和な安らぎのある光景を說明しています。
라고 하는 의미가 됩니다만, 우리들이 오관에 사로잡힌 것과 다르고, 마음의 세계, 마음의 눈에 사로잡힌, 일체의 집착을 떠난 세계이기 때문에, 이것은 정묘하며 평화로운 평안의 있는 광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これは、全く心の曇りがないため、光明が盡きることのない世界になっています。
이것은, 전혀 마음의 흐림이 없기 때문에, 광명이 다하는 일도 없는 세계로 되어 있습니다.

 

良く佛像や佛畵を見ると、後光の出ているのを見かけますが、これは、生きている人々にも出ているものです。この後光は、淡い金色をしています。心と行ないが正法にかなった人の心の調和度に比例した光で、その光に包まれた人は、安らぎの心を持ち、一切の執着心から離れていることを證明しています。
자세히 불상이나 불화를 보면, 후광이 나오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만, 이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후광은, 연한 황금색을 띠고 있습니다.  마음과 행위가 정법에 따른 마음의 조화의 정도에 비례한 빛이며, 그 빛에 감싸인 사람은,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일체의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しかし、怒り、恨み、嫉み、そしりの心や、增上慢な心つまり天狗になってしまうと、心に曇りが生じ、その光は消えてしまいます。
하지만, 분노, 원망, 질투, 비난의 마음이나, 증상만(오만,자만)한 마음 즉 천구[天狗]가 되어 버리면, 마음에 흐림이 생기고, 그 빛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천구[天狗] 《일본어사전》
①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깊은 산에 살며 신통력이 있다는, 얼굴이 붉고 코가 큰 상상의 괴물.
②우쭐대고 뽐냄. 자기 자랑을 함. 또는 그런 사람.

 

地球上における不自然なスモッグは、不調和な曇りで太陽の光をさえぎるが、私達の心も同じことです。
지구상에 있어서의 부자연한 스모그는, 부조화한 구름이며 태양의 빛을 가로막는데, 우리들의 마음도 같은 것입니다.

 

人生の目的や使命を知ることはむずかしいものです。しかし、このことを知った人は、生きる喜びを知り、感謝し、報恩の行爲を實踐します。そこには、自己保存も自我我欲もなく、不自然な鬪爭も破壞もないのです。
인생의 목적이나 사명을 아는 일은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사람은, 살아가는 기쁨을 알며, 감사하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합니다.  거기에는, 자기보존도 자아아욕도 없고, 부자연한 투쟁도 파괴도 없는 것입니다.

 

このため、心は安らぎ、常に平和な生活を送っています。
이 때문에, 마음은 평안하고, 늘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苦樂の原因は、五官と心が作り出しているというとを知って欲しいと思います。
고락의 원인은, 오관과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一日一日の生活を反省しているとき、外界が眞暗であっても、私達は、冥想中に、眼の前が淡い金色の光におおわれていることを知るのです。
하루 하루의 생활을 반성하고 있을 때, 외계가 어두컴컴하더라도, 우리들은, 명상 중에, 눈 앞이 연한 황금색의 빛으로 덮여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これが、光明の世界です。
이것이, 광명의 세계입니다.

 

光明の世界は、次元を越えた世界で私達は、心を調和することによって實在界の光明の世界と意識が同調して、あの世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광명의 세계는, 차원을 초월한 세계이며 우리들은, 마음을 조화하는 것에 의해서 실재계의 광명과 의식이 동조하고, 저 세상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そして、その世界も、その人々の心の調和度に比例したそれぞれの世界が存在します。
그리고, 그 세계도, 그 사람들의 마음의 조화의 정도에 비례한 저마다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つまり、不調和な人生を送った人々には暗黑の地獄界が展開されているといったふりに、實在界には、はっきりとした心の段階があるのです。
즉, 부조화한 인생을 보낸 사람들은 암흑의 지옥계가 전개되어 있다고 말한 식으로, 실재의 세계에는, 명백한 마음의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現象界を去った私達を、神佛がその調和度に應して天上界へ送ったり、地獄界に墮としたり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
하지만, 현상계를 떠난 우리들은, 신불이 그 조화의 정도에 응해서 천상계로 보내거나, 지옥계로 떨어뜨리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この世で、どんな生活をしたか──その自分自身の想念と行爲の總決散が、自らにふさわしい靈圍氣に導く、ということです。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가 ── 그 자기 자신의 상념과 행위의 총결산이,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영위기로 인도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光明の世界は、しかし今のような經濟奴隸に成り下がった人達にはとうてい體驗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っていいと思ます。
이 광명의 세계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계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체험할 수가 없다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導體に電流をとおすとき、その導體に抵抗が多いと、電氣のエネルギ―は、熱エネルギ―に變わってしまいます。特に、ニクルム線のような導體は、熱エネルギ―に變わりやすいのです。
도체에 전류를 통하게 할 때, 그 도체에 저항이 많으면, 전기에너지는, 열에너지로 변해 버리고 맙니다.  특히, 니크롬선과 같은 도체는, 열에너지로 변하기 쉬운 것입니다.

 

これは、河川における水の流れと同じといえましょう。
이것은, 하천에 있어서의 물의 흐름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電流も、銅や銀や金の場合は、抵抗が少なくひっかかりがありません。それは、電流が率直に流れるからです。
전류도, 동이나 은이나 금의 경우는, 저항이 적고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류가 솔직하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私達の心も、そのように、不調和な抵抗を作り出してしまうと、苦しみや悲しみを作り出してしまうといえます。
우리들의 마음도, 그와 같이, 부조화한 저항을 만들어 내어 버리면, 괴로움이나 슬픔을 만들어 내어 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導體の抵抗が熱エネルギ―に變わり、導體が熔け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熔けてしまうと電燈は消えて暗闇になってしまいます。
도체의 저항이 열에너지로 변하고, 도체가 녹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녹아 버리면 전등은 꺼지고 암흑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人間は、暗闇になってしまうと、一寸先も見えないし、どんな危險物があるからも解らず、そのために恐怖心さえ生まれてきます。
인간은, 암흑이 되어 버리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어떤 위험물이 있다고 해도 알 수 없고, 그 때문에 공포심마저 생겨납니다.

 

導體が電流を流しても安全であれば、ひっかかりがないため、暗闇による恐怖にさらされることもないでしょう。
도체가 전류를 흘려도 안전하면,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어둠에 의한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도 없는 것이지요.

 

つまりこれは、心の原理と同じものなのです。
즉 이것은, 마음의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悟った者達は從って、心が調和されているため、心にひっかかりがなく、一切の恐怖心もないから、光明のある、執着のない終局の悟りの世界を得ている、といえるのです。
깨달은 사람들은 따라서, 마음이 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일체의 공포심도 없기 때문에, 광명의 있는, 집착이 없는 종국의 깨달음의 세계를 얻고 있다, 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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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故智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羯諦羯諦 波羅羯諦 
波羅僧羯諦 菩提薩婆呵
般若心經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지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갈제갈제 바라갈제
바라승갈제 보리살바가(살파하)(사바하)
반야심경

 

 

過去・現在・未來という三世を、あなたはどう生きるか。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삼세를, 당신은 어떻게 사는가?
轉生輪廻を、どう生きねばならないか。

전생윤회를, 어떻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가?
智慧の寶庫は、どうやったら開かれるか。

지혜의 보고는, 어떻게 하면 열릴까?
そして、光明ある彼岸に到達するには、どうすべきか。
그리고, 광명인 피안에 도달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過去、現在、未來という三世における、悟った方は、轉生輪廻の過程で體驗した人生の價値ある智慧の寶庫の扉を開かれた方々です。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삼세에 있어서, 깨달은 분은,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체험한 인생의 가치 있는 지혜의 보고의 문을 연 분들입니다.

 

つまりそのために、阿縟縟多三藐三菩提(ア―ヌクタラ―・サンミャク・サンボデ―)という最高の悟りを得たというわけです。
즉 그렇기 때문에, 아뇩다라샴막보리(아메쿠타라・삼먁쿠・삼보디)라고 하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까닭입니다.

 

★あのくたらさんみゃくさんぼだい(anuttarā samyaksambodhih) :산스크리어 발음과 일본어사전상의 발음 추가합니다.  2015년 11월 24일 22시 44분.

 

最高の悟りを得たから、內在される佛智を知ることができた、ともいえます。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내재되는 지혜를 알 수 있었다,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是大神呪とは、これこそ大宇宙を支配している大神靈の神理であり、是大明呪である。すなわち、これこそ大神靈より與えられている大光明の神理であり、是無上呪であり、つまりこれ以上の神理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시대신주란, 이것이야말로 대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대신령의 신리이며, 시대명주이다.  즉, 이것이야말로 신령으로부터 주어지지고 있는 대신명의 신리이며, 시무상주이며, 즉 이이상의 신리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是無等等呪であり、すなわちこれと比較するに等しい神理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시무등등주이며, 즉 이것과 비교되는 동등한 신리는 없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とは、良く一切の苦しみを、人生の生老病死を原因として生ずる苦しみを除き、眞實であって、僞りではない。
제능일체고 진실불허란, 자세히 일체의 괴로움을, 인생의 생로병사를 원인으로 해서 생기는 괴로움을 제거하고,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それゆえに、般若波羅蜜多の神理を說き、實踐したのちに、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신리를 설명하고, 실천한 후에,

 

  

羯諦 羯諦 波羅羯諦  波羅僧羯諦 菩提薩婆呵 
갈제갈제 바라갈제 바라승갈제 보리살바가(살파하)(사바하)

 

悟りの彼岸に到達しよう、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하자, 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カ―ティ、カ―ティ、パラ―カ―ティ、パラ―サンカ―ティ、ボデ―スバハ―と讀みますが、カ―ティとは彼岸という言葉で、パラ―は、到達するとか、行く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
카티, 카디, 바라가티, 바라상가티, 보디스바하라고 읽습니다만, 가티란 피안이라고 하는 말이며, 바라는, 도달한다 라든가, 간다라고 하는 의미게 됩니다.

 

サンと(僧)は比丘、比丘尼すなわちサロモン・サマナ―ということです。ボデ―とは悟りをいい、スバハ―は成就するとか、一切成り立つという言葉です。これを今日ふりに譯しますと、
「彼の岸、彼の岸、彼の岸に行こう。比丘、比丘尼達も、悟りの彼岸に到達して、一切を成就しよう」
という意味になりましょう。
상이(僧)란 비구, 비구니 즉 사로몬・사마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디란 깨달음을 말하며, 스바하는 성취한다든가, 일체 성립한다 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식으로 해석하면,
「저 언덕, 저 언덕, 저 언덕으로 가자, 비구, 비구니들여,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해서, 일체를 성취하자」

 

サンと(僧)は, 에 추가했습니다 (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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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부록편인, 제2장 종교와 과학 편입니다.
※본 원설반야심경의 원본의 저자는,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입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삼보출판주식회사에서, 발간한 책입니다.
※한국에는, 출판된 적이 없는 책입니다.

※번역 본인, 신선한 미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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