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다카하시 신지님의 카나자와 강연회 「마음의 원점・마음과 육체와 경제」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다카하시 신지님의 카나자와 강연회 「마음의 원점・마음과 육체와 경제」

어둠의골짜기 2011. 6. 4. 16:30

金沢講演会「心の原点・心と肉体と経済」

                                  (月刊「ひかり」誌2001年1月号より)
카나자와 강연회 「마음의 원점・마음과 육체와 경제」(월간「빛」잡지 2001년 1월호에서) 

                                                                                   by  高橋 信次(다카하시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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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度私は10歳の時に、何回も死んだり生きたりしました。最初の一、二回は殆ど無意識のまま分かりませんでしたが、3回、4回となると、肉体から自分のもう一人の自分が抜け出している姿を体験しました。それが一年近くも続きますと、勿論医学の面では、この問題は解決出来ずまま、このもう一人の自分とは一体何であるか。その結果、この問題を解決するためには、宗教的な面では当然子供ですから分かりません。自然界というものを通し、極微の世界、この極微の最も小さい世界は一体どうなっているだろう。極大の世界はどのように構成されているだろう。動物や植物や鉱物というもののお互いの相互関係はどうなっているだろう。こういう自然科学を通して追究してまいりましたが、もう一人の自分というものが理解出来なかったのです。
정확히 저는 10살 때에, 몇 번이나 죽거나 살거나 했었습니다.  처음 한 번, 두 번은 대부분 무의식의 상태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만, 세 번 , 네 번이 되자, 육체에서 저 자신의 또 한 사람이 제가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을 체험했습니다.  그것이 1년 가까이에 계속되었고, 물론 의학적으로는,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로, 이 또 한 사람의 자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 결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면으로는 당연히 아이었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대자연이라는 것을 통해서, 극미의 세계, 이 극미(極微)의 가장 작은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극대의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의 상호관계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자연과학을 통해서 추궁하게 됩니다만, 또 한 사람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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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更に医学の面を通し、人間の肉体細胞というものの構成や、或いは脳細胞というものがどのような作用を成しているのか、このようなものを追究してまいりました。しかしそれでも、肉体から抜け出したもう一人の自分というものが理解出来なかったのであります。
더욱이 의학적인 방면을 통해서, 인간의 육체세포라고 하는 것의 구성이나, 혹은 뇌세포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작용을 이루는 것일까, 이러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육체에서 빠져나온 또 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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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この地上界に、何の目的で生まれてきたのか。そしてやがて死んでゆく。人間自身の生まれて来た目的と使命というものすら、分からずまま、暗中模索の中に、人生というものに対する追究をしてまいりました。
우리들은, 이 지상계에, 무슨 목적으로 태어난 것일까?  그리고 이윽고 죽어간다.  인간 자신의 태어나온 목적과 사명이라고 하는 것조차, 알 수 없는 채로, 암중모색 중에, 인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추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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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こで、世の中では、心を、或いは精神を正せといっております。我々は苦しみや悲しみを通して解決が出来ないと神様に頼ります。仏様に頼ります。神様や仏様というものは一体どのようなものか。しかし私達は永い歴史の中に祭られているところの神社や仏閣、こういう所に神がい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仏がい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或いは仏壇に、或いはお墓に先祖がおられ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あらゆる角度から私は追究してきました。
그런데, 세상에서는, 마음을, 혹은 정신을 올바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괴로움이나 슬픔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으면 하느님(신령님)에게 부탁합니다.  부처님에게 부탁합니다.  하느님(신령님)이나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그러나 저희들은 영원한 역사 속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 있는 곳의 신사(일본에서 왕실의 조상이나 고유의 신앙 대상인 신 또는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나 불각(불당), 이러한 곳에 신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일까, 부처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일까, 혹은 불단(부처를 모셔 놓은 단)에, 혹은 산소에 선조(조상)가 계시는 것은 아닌 것일까, 모든 각도에서 저는 추구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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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の結果、昭和43年の7月、家の中に大きな現象が起こってまいりました。それも日本人であるべき我々に、全く関係のない外国の言葉で次々と現象が出てきたのです。
그 결과, 소화 43년(1973년)의 7월, 집안에 큰 현상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그것도 일본인인 우리들에게, 전연 관계가 없는 외국 말로 차례차례로 현상이 나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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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私は科学者です。割り切れないものは否定します。コンピューターを作っておりますが、現代のコンピューターも、回路が一つ違っても計算はしてくれません。人生においてもまた同じことがあるはずだ。私はこうして一足す二は三にならなければ信じられない人間だったのです。そして神様を、仏様を、さらに、自分の肉体から抜け出した自分自身というものの存在。心とは一体何か、初めて分かったのです。しかも心には、形があ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昔から心は丸くといってます。三角や四角では困る。心は丸くといっています。じゃ、その心とは一体どういうものか。一番大事なのは、我々はあくまでも、今持っているところの皆さんの肉体というものは、約60兆からなる細胞集団によって、肉体先祖を通して受け継がれ、今持っているものですが、これはあくまでも人生航路を渡っていくための舟にしかすぎない。何故ならば、我々は肉体が絶対だと錯覚を起こした時に、一切の、物に執着をもち、地位や名誉、こういうものが人生の絶対かの如くに私達は錯覚を起こしておりました。
저는 과학자입니다.  분석해서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부정합니다.  컴퓨터를 만들고 있습니다만, 현대의 컴퓨터도, 회로가 하나라도 달라져도 계산은 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1+2=3이 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신령님)을, 부처님을, 나아가, 자신의 육체에서 빠져나온 저 자신이라고 하는 것의 존재.  마음이란 도대체 뭘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게다가 마음에는, 형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 부터 마음은 둥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삼각이나 사각으로는 곤란하며, 마음은 둥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지금 가지고 있는 곳의 여러분의 육체라고 하는 것은, 약 60조로 이루는 세포집단에 의해서, 육체선조를 통해서 계속 이어받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생항로를 건너가기 위한 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육체가 절대라고 착각을 일으켰을 때에, 모든, 물질에 집착을 가지고, 지위나 명예, 이러한 것이 인생의 절대인 것처럼 저희들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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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しかし、我々の心は、次元が違うのだということなのです。今皆さんの住んでいる所のこの地上界は、物質界であって、いつまでもこの現象の世界に存在するものは無常なものであり、自分のものだと思っていたところで、一つとして自分のものは存在していないのです。今皆さんの人生航路の乗り舟である己の肉体ですら、皆さんは、自分のものではないというのです。もし皆さんが、自分の肉体が自分のものであるならば、皆さんはいつまでも若さを保つことが出来るはずです。しかし、この若さも保つことが出来ず、私達はやがて年を老い、好むと好まざるに拘らずこの地上界を、去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やはり肉体も無常なものであり自分のものではないという事実は、明白なはずです。
그렇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주거하고 있는 장소인 이 지상계는, 물질계이며, 언제까지나 이 현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무상(無常)한 것이며,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본들, 하나라고 해도 자신의 것은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항로의 승선하고 있는 배인 자기의 육체마저, 여러분은, 자기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육체가 자기 것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언제라도 젊음을 유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젊음도 유지할 수가 없고, 저희들은 이윽고 늙어서, 좋은 게 좋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지상계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국 육체라고 하는 것은 무상한 것이며 자신의 것은 없다고 하는 사실은, 명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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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しかし私達が、あの世という世界の存在を、もし否定するならば、皆さん眠っている時のことを考えてみましょう。人生航路の乗り舟であるところのその肉体の船頭さんが、降りた時には、皆さんの耳の穴も開いております。鼻の穴も開いております。しかし私達は耳元で自分の悪口を言われても怒ることすら知らないはずです。どんな匂いがあってもそれを感知することも出来ないはずです。こうなりますと、眠っている時の我々の心、魂というものの価値はどのようになっているでしょう。
하지만 저희들이, 저 세상이라고 하는 세계의 존재를, 만약 부정한다면, 여러분 잠자고 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봅시다.  인생항로의 승선하고 있는 곳인 그 육체의 선장님이, 내렸을 때에는, 여러분의 귓구멍도 열려 있습니다.  콧구멍도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귓전으로 자신에 대한 악담을 다른 사람이 말하더라도 화를 내는 것조차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향긋한 향내가 있어도 그것을 감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다면, 잠자고 있을 때의 우리들의 마음, 영혼(魂)이라고 하는 것의 가치는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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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しかし肉体の脳細胞の神経繊維のそれぞれはちゃんと波動を、振動を起こしております。
그러나 육체의 뇌세포의 신경조직의 저마다는 분명하게 파동을, 진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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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うなるとやはり、永遠のものというものは一体何でしょう。皆さんの肉体を支配しているところの船頭さん、即ち皆さんの魂なのです。そんな馬鹿なことがあるか、魂など存在する訳がない。もし、皆さんがそのように思うならば、皆さんの脳細胞はあくまでも、物事を受信し、送信する一つの、コンピューター室に過ぎ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
이렇게 되면 역시, 영원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곳의 선장님, 즉 여러분의 영혼(魂)인 것입니다.  저런 바보 같은 것이 있을까,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할 리가 없다.  만약, 여러분이 그와 같이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뇌세포는 어디까지나, 사물을 수신하고, 통신하는 하나의, 컴퓨터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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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或る医学者達は、ものを考えるのは前頭葉だと言いました。それならば、皆さんが心の中で、嬉しかったり、悲しかったりしている時に、込み上げてくるものは頭の中から込み上げてくるでしょうか。皆さんの心の中の感情の領域が、込み上げてくるはずです。我々の脳細胞は、ものをキャッチし受信するただの、セクションにしかすぎない事実が、あらゆる今後の医学界においても実証されていくでしょう。もっと大事な、肉体の船頭さんである皆さんの魂、その中心にある心というものこそ、不変的なものだということなのです。
어떤 의학자들은, 사물을 생각하는 것은 전두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하고 있을 때에, 복받쳐 오르는 것은 머리 속에서 복받쳐 오르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마음 속의 감정의 영역이, 복받쳐 오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뇌세포는, 사물을 포착(catch)하고 수신하는 것, 분할된 구분·구획(section)에 지나지 않은 사실이, 모든 차후에 의학계에 있어서도 실증되어 가겠지요.  더욱 더 중요한, 육체의 선장님인 여러분의 영혼(魂), 그 중심에 있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불변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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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こで、物理学を通して、次元の変わった世界、これを考えてみましょう。
그러면, 물리학을 통해서, 차원의 바뀐 세계, 이것을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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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今、特殊相対性理論によっては、皆さんが日常生活の中でエネルギー、エネルギー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ますが、エネルギーというものは、目で見た人は誰もいないのです。何故ならば、仕事を成し得る能力だからです。このエネルギーというものは次元が違うのです。次元が違います。
지금, 특수상대성 원리에 의해서는, 여러분이 일상생활 속에서 에너지, 에너지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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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このエネルギーというものは物質の質量に対して、いま、質量をMとします、この質量に対して、光の積の平方であるというように言っております。即ち、エネルギーはイコールMC2である。物質の質量に対して、光の速度の積である。
우리들은, 이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물질의 질량에 대해서, 지금, 질량을 M이라고 합니다.  이 질량에 대해서, 빛의 곱의 평방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에너지는 같다 E=MC2이다.  물질의 질량에 대해서, 빛의 광속의 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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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例えば水素の一グラムを完全なエネルギーに変えたとしたならば、これは3×10の10乗の括弧の平方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こういうエネルギーになりますと約746ワット、一馬力のモーターを3,800年間も回すことが出来ます。これが、エネルギーなのです。仕事を成し得る能力なのです。これは次元が違います。
예를 들면 수소의 1그램을 완전한 에너지로 바뀌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3×10의 10승의 괄호의 평방이라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에너지가 되면 약 746와트, 1마력의 모터를 3,800년 동안이나 돌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에너지인 것입니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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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いまこの物質の次元というのは、皆さんの住んでいる世界、三次元の世界なのです。X軸とY軸とZ軸という三次元の世界は物質の世界なのです。何故ならば物質というものを物理的に定義づけますと、質量と体積を有するもの、これが物質だと言っております。そうなりますと、相対性理論を通しても物質の世界というものは、必ず質量があるんだ。そして光の速度というのは、一秒間に、地球の周りを七回り半すると言っております。正確な数字で申しますと、299,774キロメートル、このスピードです。ところが仏教におきましては、仏教では、これを色の世界といっております。そして我々の次元の違った世界を心の世界と言っております。色心不二と言っております。色心は不二である。或いはまた、色即是空とも言っております。あるいは空即是色とも言っております。こういう一つの仏教の教えの中にも、色心は不二だということは、このように同じだという事を説いております。
지금 이 물질의 차원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주거하고 있는 세계, 3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X축과 Y축과 Z축이라고 하는 3차원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라고 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정의하면, 질량과 체적을 가지는 것, 이것이 물질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도 물질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물질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빛의 속도라고 하는 것은, 1초 동안에, 지구의 주위를 7회 반을 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로 말씀드리면, 299,774Km, 이 speed(속도)입니다.  그런데 불교에 있어서는, 불교에서는, 이것을 색계(색의 세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색심불이(色心不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색심(色心)은 둘이 아니(不二)다.  혹은 또, 색즉시공(色即是空)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혹은 공즉시색(空即是色)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불교의 가르침 속에도, 색심(色心)은 둘이 아니다(不二)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같다고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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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いま、皆さんの目に見えるところの世界というものは、七色の虹の世界しか、皆さんはこの五官でとらえ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七色の虹といいますと、周波数で計算しますと、約4千オングストロームから7千オングストロームの間です。この周波数の世界しか皆さんはこの目で見えないのです。しかも、虹の七色の両極端にあるところの赤色、赤色から更に赤外線から電波に至っております。この電波も赤外線も皆さんはこの目では見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更にまた極端であるところの紫外線、x線、γ線、こういう熱線も見ることは出来ない。しかし存在しているのです。
지금,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곳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일곱 가지 빛깔의 무지개의 세계밖에, 여러분은 이 오관으로 파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일곱 가지 빛깔의 무지개라고 말하면, 주파수로 계산하면, 약 4천 옹그스트롬에서 7천 옹그스트롬의 간격입니다.  이 주파수의 세계밖에 여러분은 이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무지개의 일곱 빛깔의 양극단에 있는 곳의 붉은색, 붉은색에서 더욱 적외선에서 전파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전파도 적외선도 여러분은 이 눈으로는 볼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또 극단인 곳의 적외선, x선, γ선(감마선)、이런 열선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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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人間のこの目で見える世界というものは、ほんの小さい世界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いけません。しかし仏教では、目でとらえる全ての世界というものは、色彩をもっております。色彩を持っているために、この一切の万象を色と言ったのです。色心は不二だという心というのは、皆さんの肉体と心は同じ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更にまた、色即是空という空の世界というものも、この色という世界も同じ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唯、こちらは次元が高次元なのです。
우리들은, 인간의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작은 세계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눈으로 파악하는 모든 세계라고 하는 것은,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색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만상(우주의 사물과 현상)을 색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색심(色心)은 둘이 아니다(不二)라고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와 마음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또,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는 공(空)의 세계라고 하는 것도, 이 색(色)이라고 하는 세계도 같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이쪽은 차원이 높은 차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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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ちらの世界ははっきりと三次元以下の世界だと言えるでしょう。
이쪽의 세계는 분명히 3차원 이하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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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次元の世界というのは、皆さんが毎日見ているテレビジョン、あのスクリーンはX軸とY軸の平面の世界です。その平面の世界、そのスクリーンは三次元から投映された世界です。その投映されているところの世界の二次元に対して、如何にその投映されているところのヒロインが可哀想であっても、皆さんは声を掛けても通じないはずです。しからば、三次元の世界というものはどう説くでしょう。
2차원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매일 보고 있는 텔레비젼, 저 스크린은 X측과 Y축의 평면의 세계입니다.  그 평면의 세계, 그 스크린을 3차원으로부터 투영된 세계입니다. 그 투영되고 있는 곳의 세계의 2차원에 대해서, 아무리 그 투영되고 있는 곳이 여주인공이 불쌍하게 생각할지라도, 여러분은 말을 걸어도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3차원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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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三次元は四次元以降の世界の投映されているものであり、そこに次元の存在があるのです。この三次元の世界というのは非常に、振動が粗悪な、物質的な不安定な世界なのです。振動の非常に不安定な世界なのです。そのためにプランク常数の振動数というものの積は熱粒子のエネルギーです。そういたしますと、hνというプランク常数と振動の世界というこの自然界における諸現象は一切振動からなりたっております。皆さんの心から生ずるところのものまたこれ振動です。皆さんの脳細胞の中に起こるところの脳波の波もやはり同じ振動です。ただ次元が違うだけなのです。こうして考えていきますと、色即是空の世界をもっと分かり易く考えてみましょう。
우리들은, 3차원은 4차원 이후의 세계가 투영되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 차원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3차원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매우, 진동이 조악한, 물질적인 불안정한 세계인 것입니다.  진동의 매우, 불안정한 세계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플랑크상수의 진동수라고 하는 것의 곱은 열입자(熱粒子)의 에너지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hν[빛을 E=hν(h는 플랑크상수, ν는 빛의 진동수)]라고 하는 플랑크상수(Planck constant)와 진동의 세계라고 하는 이 자연계에 있는 여러 현상은 모두 진동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 또한 이 진동입니다.   여러분의 뇌세포 속에 일어나는 곳의 뇌파의 흐름도 역시 같은 진동입니다.  단지 차원이 다를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가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세계를 훨씬 알기 쉽게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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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いま、私達は固体、液体、気体という三つの変化をする自然の現象を知っているでしょう。この三つの変化をする氷について考えてみましょう。
지금, 우리들은 고체, 액체, 기체라고 하는 세 가지의 변화를 하는 자연의 현상을 알고 있겠지요이 세가지의 변화를 하는 얼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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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氷というものは、表面に出るのは約10パーセントです。殆どが水の中に入っているのが90パーセントです。よく氷山の一角と言っているでしょう。この氷というものは、分子式で書きますとH2Oです。この水もH2Oです。こうして我々は、水の密度と氷の密度の差によってそれのパーセントを見ますと10パーセント位しか表面に出ていない。しかも今日は、東京方面は雨がいっぱい降ってきています。それも空から降ってきています。空はこうして、まったく水の分子がお互いに分散している状態です。分散されている状態という事は、ここではじめて熱粒子であるところの、振動数というものの作用によって膨張をしてくれば、分子の間に入る熱粒子が膨らんでくるから蒸発します。逆に収縮をしてまいりますから、今度は水に変わったり、或いは氷に変わります。収縮の度合いが完全に振動数の状態が、小さくなればなるほど、粒子の変化もまた同じように変わってまいります。
얼음이라고 하는 것은, 표면에 나오는 것은 약 10%입니다.  대부분이 물속에 잠겨 있는 것이 90%입니다.  자주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이 얼음이라고 하는 것은, 분자식으로 쓰면 H2O입니다.  이 물도 H2O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물의 밀도와 얼음의 밀도의 차이에 의해서 그것의 퍼센트를

보면 10%정도 밖에 표면에 나오지 있지 않다.  게다가 오늘은, 도쿄방면은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늘에서 내려 오고 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해서, 많은 물의 분자가 서로 분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분산되고 있는 상태라고 하는 사실은,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열입자(熱粒子)인 곳의, 진동수라고 하는 것의 작용에 의해서 팽창을 해 주면, 분자의 사이에 들어가는 열입자가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증발합니다.  반대로 수축을 해 가기 때문에, 이번은 물로 바뀌거나 혹은 얼음으로 바뀝니다 . 수축의 정도가 완전하게 진동수의 상태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입자의 변화도 또 똑같이 바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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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うなりまして、宇宙に存在しているところの、空のあの水もまた高度千メートル上がる毎に6、5度ずつ降下していきますから、やがて蒸発したところの我々の目に見えない水蒸気も、お互いに熱粒子の収縮にあって雨になり雪になり、そしてまた地表に或いはまた雨となり降ってまいります。こうなりますと、氷のH2Oも、水のH2Oも、分散されているところのH2Oも、一つとして変わらないのです。
이렇게 되어서,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곳의, 하늘의 저 물도 또 고도 1,000m 오를 때마다 6, 5도씩 하강해 가기 때문에, 이윽고 증발한 곳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증기도, 서로가 열입자의 수축으로 해서 비가 되거나 눈이 되거나, 그리고 또 지표에 혹은 또 비가 되어 내려옵니다. 이렇게 되면, 얼음의 H2O, 물의 H2O도, 분산되고 있는 곳의 H2O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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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ということは、仏教ではこの世界を色だと言っております。ですから空は見えない世界であっても、また見える世界であっても、色即是空であり空即是色です。水蒸気のH2Oは氷のH2Oと同じであり、氷のH2Oは水のH2Oとなんら変わら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唯これが、分散と集中だけなのです。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불교에서는 이 세계를 색(色)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해도, 또 보이는 세계라고 해도, 색즉시공(色即是空)이며 공즉시색(空即是色)입니다.  수증기의 H2O와 얼음의 H2O가 같고, 얼음의 H2O는 물의 H2O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이, 분산과 집중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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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さてここで我々は次元の違った世界のことを考えて、あの世なんてそんな馬鹿なことがあるもんか、というならば、この自然界に存在するあらゆる諸現象は、全て輪廻転生を続けております。
그럼 여기에서 우리들은 차원의 다른 세계의 것을 생각하고, 저 세상이란 그렇게 바보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라고 한다면, 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여러 현상은, 완전히 윤회전생(輪廻転生)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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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輪廻転生を続けていないものは何もないのです。ただ見えなくなったから存在しないということはナンセンスです。我々は見えない世界の方が遥かに多いという事実は、あらゆる科学的な世界においても、はっきりとしているのです。
윤회전생을 계속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단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 훨씬 더 많다고 하는 사실은, 모든 과학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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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代私達が、物理学を通しても、もう既に現代の素粒子理論は壁にぶつかり、それ以上進むことが出来ない段階です。我々はややもすると科学的、科学的というものの考え方に立ちがちであるけれども、科学なんていうものはまだメッキより薄いものなのです。見えない世界の方が遥かに多い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いけません。

현대의 우리들이, 물리학을 통해서도, 이미 벌써 현대의 소립자 이론은 벽에 부딪쳐서, 그 이상 진행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과학적, 과학적이라고 하는 자체의 사고방식에 번갈아 드나들고 있지만,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금 입히기보다 엷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훨씬 더 많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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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うして次元の違った世界、一体神とは一体何でしょうか。或いは仏とは一体何なんでしょうか。
이렇게 해서 차원의 다른 세계, 도대체 신(神)이란 무엇일까? 혹은 부처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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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分からずままに、永い歴史の中に体験されて来ているものを絶対視して、それを拝むようになりました。しかし人間が物質だけを追い求めて得たものは一体何なんでしょう。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오랜 역사 속에 체험되어 오고 있는 것을 절대시하고, 그것을 두손 모아 비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물질만을 추구해서 얻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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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私は飛行機に乗ってこの金沢へ来ました。空港は非常にきれいで空気が美味しいです。東京を出てきた時には丁度鋳物工場のような臭いがします。それだけ空気が汚れておるのです。昔の東京、特に私のビルの裏側は隅田川です。今から25年前の隅田川は白魚が取れました。水がきれいでした。ドジョウもいました。残念なことに今は全く変わり果ててしまいました。その自然の公害を作り出したのは、人間が物に溺れ、物だけを考えた時にあのような現象を作り出したはずです。しかもスモッグです。美しい空を東京で見ることは出来ません。天気だからといって外で遊べば、化学スモッグによって、硫化物やこの間は硫酸が降ってまいりました。目を開けていることが出来ないのです。それは一体どうしてでしょう。昔は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ビルの屋上に上がって深呼吸しようとしても、ちょっと待とうと考えてしまいます。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이 카나자와(金沢=石川県中部の市=이사가와현 중부의 도시로 금박이 유명)에 왔습니다. 공항은 매우 깨끗하고 공기가 아주 좋습니다. 도쿄(東京=동경)를 나올 때에는 꼭 주물 공장과 같이 냄새가 납니다.  그만큼 공기가 오염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도쿄, 특히 저의 빌딩의 뒤편은 스미다강입니다.  지금부터 25년 전의 스미다강(隅田川=우전강)은 뱅어가 잡혔습니다. 물이 깨끗했습니다.  미꾸라지도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 지금은 완전히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자연의 공해를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의 물질에 빠지고, 물질만을 생각했을 때에 저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게다가 스모그입니다.  아름다운 하늘을 도쿄에서 볼 수가 없습니다.  날씨가 좋은데 라고 해서 밖에서 놀면, 화학 스모그에 의해서, 유화물이나 지난 번은 황산이 내려왔습니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요? 예전에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빌딩의 옥상에 올라가서 심호흡을 하려고 해도, 잠시 기다리자 라고 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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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の場所なら思い切って深呼吸出来ます。これは現実に体験している人でないと分からないのです。自然というものを人間が物を追いかけて、追究してその欲望を満たそうとして、公害を作り出したのです。公害はこうして人間の、心を失った、物だけに溺れた結果なのです。
이 장소라면 생각을 접고 심호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이 물질을 추구하고, 추구해서 그 욕망을 채우고자 해서, 공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공해는 이렇게 해서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린, 물질만으로 빠진 결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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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混乱と闘争も同じことが言えます。我々はこうして物の考え方を、心という偉大なる価値観を知ったならば、やはりその上の文明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今は人間性を失って、自分の都合さえよければいいという、欲望のままの社会が展開されている事実を皆さんは知っているでしょう。
혼란과 투쟁도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해서 물질에 관한 사고방식을, 마음이라고 하는 위대한 가치관을 알았다면, 역시 그 위의 문명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사정(형편)만 좋으면 좋다고 하는, 욕망 그대로의 사회가 전개되고 있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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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闘争と破壊、一方の思想のごときに至っては、物が全てだ、お金が全てだ、こういうものによって常に労使の争いは続いております。遂に日本の国自身が経済的混乱を来たしておるではありませんか。これも人間性の価値観を失ってしまったところにあるのです。人間は闘争と破壊の中にあ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闘争と破壊は、人間以下の動物が、万物の霊長に進化する過程の一つの修業なのです。
투쟁과 파괴, 한편의 사상과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물질이 전부다, 돈이 전부다, 이런 것에 의해서 항상 노사의 다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침내 일본국 자신이 경제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도 인간성의 가치관을 잃어버린 바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투쟁과 파괴 속에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투쟁과 파괴는, 인간 이하의 동물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하나의 수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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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れを我々は神の子として偉大なる人間としての価値観を忘れて、動物以下に成り下がっている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と思います。
그것을 우리들은 신의 자녀로서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을 잊어버리고, 동물 이하로 전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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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さて神とは一体何か。
그럼 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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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決して祭られているものは神ではないのです。この大自然界をごらんなさい。太陽は、一秒間に9.3×1022キロカロリーという莫大なエネルギーです。一秒間に二百万トンからの石炭を燃焼しただけのものを地球にタダで毎秒与えております。
우리들은 결코 신으로 받들어 보시고  있는 것은 신이 아닌 것입니다.  이 대자연계를 살펴보십시오.  태양은, 1초 동안에 9.3×1022킬로칼로리라고 하는 막대한 에너지입니다.  1초 동안에 2,000,000만톤의 석탄을 연소한 만큼의 것을 지구를 위해서 매초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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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ところが今から二年前あの中近東をごらんなさい。あの石油問題、地球といっても地球はお天道様(おてんとうさま)を壊して地球を作ったなら、33万個も出来るのです。一部分のあのサウジアラビア周辺の石油問題だけでも、世界中の経済が混乱し、値上がりして、経済的な不調和な現象を造り出しています。しかし、お天道様は、それだけのエネルギーをタダで与えて、無所得です。一銭のお金も取りません。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저 중근동을 살펴보십시오.  저 석유 문제, 지구라고 할지라도 지구는 태양(天道様)을 파괴하고 지구를 만든다면, 33만개나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일부분의 저 사우디아라비아 주변의 석유 문제만으로도, 온 세상의 경제가 혼란하고, 가격이 오르고, 경제적인 부조화스러운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양(天道様), 그 만큼의 에너지를 공짜로 주고, 무소득입니다. 땡전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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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皆さんがお父さんやお母さんから無所得のままに育てられたように、25歳まで一人の人間が両親によって育てられて一人前になるまで、お母さんとお父さんに毎月一万円、一人五千円ずつの給料を払って25歳までとしたら約一億二千万かかります。高等学校三食昼寝付きまでつけたら、これは二億五千万からのお金になります。
여러분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무소득인채로 키워주신 것처럼, 25세까지 한 명의 인간이 부모님에 의해서 키워져서 제 몫을 하게 될 때까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매월 1만엔, 한 명 5천 엔씩의 급료를 지불해서 25세까지로 하면 약 1억 2천만이 소용됩니다.  고등학교 세끼 주야를 합하면, 이것은 2억 5천만 정도의 비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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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お父さん、お母さんはそれだけのお金でも無所得に子供を育てているのです。神様の心は太陽と同じです。自然の心、自然の姿そのものが神の心なのです。神なのです。
아버지, 어머니는 그만큼의 비용이 들지만 무소득으로 자식을 키우시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마음은 태왕과 같습니다.  자연의 마음, 자연의 모습 그 자체가 신(神)의 마음인 것입니다.  신(神)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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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の住んでいるこの地球上そのものが神なのです。皆さん自身が、こうやって生存できるのも安定した太陽の熱、光のエネルギー或いは動物や植物や鉱物、この自然の相互関係の中に、人間がいま生きていると言えるのです。
우리들의 살고 있는 이 지구상 그 자체가 신(神)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렇게 해서 생존할 수 있는 것도 안전한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 혹은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 이 자연의 상호관계 속에, 인간이 지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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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もしこれが太陽が、少しでも熱を強くしたらどうなりますか。南極、北極の氷は解けて地球は水浸しになります。逆に地球の地磁気がどんどん狂ったらどうなりますか。赤道がどんどん変わってゆきます。皆さんの体はそれを受け付けないでしょう。生かされているという自然そのものが神の心であるのです。しかし我々は神様ってそんなもんではないと、いろいろ拝んで、或いはこの中にも神様が何人もいます。そういう人達が本当の神かということです。とんでもないです、おかみさんは一杯いるけども、本当の神様など一人もいません。ここで我々が考えなければいけないのは、色々こうして、神様というのは、人間の体を通して出てくる稲荷大明神だの、八大竜王だの、何とか菩薩だの、或いは光明如来だの、妙法如来だの、いろいろな事を言って出て来ますが、皆さんはそんなものを信じてはいけません。
만약 이것이 태양이, 조금이라도 열을 강하게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남극, 북극의 얼음은 녹아서 지구는 물에 잠기게 됩니다.  반대로 지구의 지자기(地磁氣)가 잇따라 미쳐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적도가 잇따라 바뀌어 갑니다.  여러분의 몸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되살려지고 있다고 하는 자연 그 자체가 신(神)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신령님)이 그러한 것이 아니면, 여러 가지 두손 모아 빌고,  혹은 이 중에도 하느님(신령님)이 몇 사람이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진실로 신일까 하는 것입니다.  터무니없습니다.  하느님(신령님)은 많이 있지만, 진실한 하느님(신령님) 같은 것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렇게 해서, 하느님(신령님)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몸을 통해서 나오는 이나리대명신(稲荷大明神)이다, 팔대용왕(八大竜王)이다, 무엇이든지 보살(菩薩)이다, 혹은 광명여래(光明如来)다, 묘법여래(妙法如来), 여러 가지 것을 말하고 나옵니다만, 여러분은 그런 것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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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様は無所得です、お金など一銭も取らないのです、そして威張りません。これが神の心であり神なのです。しかし、人間の心の中から出てきて新興宗教の教祖達は、自分の立場が少しでも良くなってみたり、自己保存という欲望のままに動いてくると、宗教の責任者達は財を築いて、自分の栄耀栄華を計っています。お天道様は計っていますか、我々はそんなものを信じてはいけません。
하느님(신령님)은 무소득입니다.  돈 따위는 땡전 한 푼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뽐내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神)의 마음이며 신(神)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서 나와서 신흥종교의 교주들은, 자신의 입장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게 보이거나, 자기 보존이라고 하는 욕망 그대로 움직여지면, 종교의 책임자들은 재산을 축척하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계산하고 있습니까
? 우리들은 그런 것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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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皆さん自身の内なる心、皆さんは神の子として己に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心があるでしょう。皆さんが自分に嘘のつけない心こそ、神の子の証なのです。しかし、自分さえ良ければいいんだ、というものの考え方の面に立っている心は、偽りの我なのです。こうして我という中には、皆さんの心の中には、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心と、偽りの我というものが出来ているのです。
여러분 자신의 속에 있는 마음, 여러분은 신의 자녀로서 자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아(선한 자기 자신)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신의 자녀의 증거인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만 좋다면 좋은 것이다, 라고 하는 자체의 사고방식의 면에 입각하고 있는 마음은, 거짓의 자기(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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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の偽りの我というものは、皆さんがこの地上界に生まれてきて、そして育った環境、教育、思想、習慣の中に、自ら作り出したものなのです。人間は生まれながらにして皆美しい、丸い豊かな神の心だったのです。それが段々と自分自身の心に歪みを作り、曇りを作り、苦しみは皆さん自身の偽りの我が作っているのです。この偽りの我を支配することが大事なのです。これを支配出来た人こそ幸せな人達なのです。善我なる嘘のつけない心のままに生活をしたならば、人間は誰も救われるのです。しかし救われないのは、自分の家柄だの、地位だの、名誉だの、或いは自分の子の為といって財産を残し、その財産によって残された子供が争いと闘争を繰り返している。これが本当でしょうか、そうじゃないのです。如何なる財産家であろうとも、大統領であろうとも、ただの人間として、その人々はその環境の中で己の魂を磨くために人間は出て来ているのです。
이 거짓된 자기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 지상계에 태어나서, 그리고 성장한 환경, 교육, 사상, 습관 속에, 스스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는 모두 아름답고, 둥글고 풍요로운 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이 차례로 자기 자신의 마음에 비뚤어짐을 만들어, 구름(흐림)을 만들어, 괴로움은 여러분 자신의 거짓의 자기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거짓의 자기를 지배하는 일이 중대사합니다. 이것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선한 자기인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 그대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가문이다, 지위다, 명예다, 혹은 자기 자신의 자녀를 위한다고 하면서 재산을 남기고, 그 재산에 의해서 남겨진 자식이 싸움과 투쟁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이 정말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어떠한 재산가라 할지라도,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단지 인간으로서, 그 사람들은 그 환경 속에서 자기의 영혼(魂)을 연마하기 위해서 인간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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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貧乏人だからといって、人間はちっとも卑下することはないのです。神は全て平等です。太陽が全て平等に熱光のエネルギーを与えているように、人間の作り出した経済や物質や地位や名誉によって、人間の価値が変わらない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す。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해서, 인간은 조금도 비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神)은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태양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과 빛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만들어  낸 경제나 물질이나 지위나 명예에 의해서, 인간의 가치가 변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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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例え貧乏に生まれても、永遠の転生を通し、皆さんの心の中には、あらゆる体験が、ビデオテープレコーダと同じように、永遠の生命として、皆さんの心に全部記録されているのです。唯その記憶が、皆さんはこの地球上という環境に出てしまうと、僅か表面に出ている10パーセントの意識なるが故に、分からなくなっているだけなのです。
비록 가난하게 태어나더라도, 영원한 전생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온갖 체험이,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으로서, 여러분의 마음에 전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 기록이, 여러분은 이 지구상이라고 하는 환경에 나오게 되면, 불과 표면에 나와 있는 10%의 의식이 되는 까닭으로, 알 수 없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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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れを仏教の言葉では、皆さんがよく知っている般若心経です。あの般若心経というのを、摩詞般若波羅蜜多心経となっております。中国の漢字で書かれているけれどもあれは当て字です。本来中国の古代語はマーハーパニャーパラミタストラーというのです。マーハーパニャというのは偉大なる智慧ということです。パラというのは到達するということです。ミターというのは皆さんの心の中にあるということです。という事は皆さんの心の中には、永い転生輪廻の体験されたるところの偉大な智慧が皆さんは誰も持っているのです。これを仏智というのです。
이것을 불교의 말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반야심경입(般若心経)입니다.  저 반야심경이라고 하는 것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詞般若波羅蜜多心経) 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한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저것은 정식표기법이 아닌 잘못된 한자(=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서 어떤 말을 표기하는 한자)입니다.  본래 중국의 고대어는 마하 파냐 파라미타스트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하 파냐라고 하는 것은 위대한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파라라고 하는 것은 도달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타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전생윤회(転生輪廻)의 체험된 곳의 위대한 지혜를 여러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지(佛智=부처의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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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しかし、我々は永い歴史の中に、何時のまにか南無妙法蓮華経を拝めば救われるとか、南無阿弥陀仏を唱えれば救われるとか、このように変わってしまいました。果たして南無阿弥陀仏だけを唱えて救われた人は、今だかつて誰もいないのです。もしいたとしたら、それは狂信にしか過ぎないのです。
하지만, 우리들은 오랜 역사 속에, 어느 사이엔가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을 두손 모아 빌면 구원받을 수 있다든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弥陀仏)을 외우면 구원받을 수 있다든가, 이와 같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과연 나무아미타불(南無阿弥陀仏)만을 외워서 구원받았던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광신으로 밖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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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無阿弥陀仏というのも、何時のまにか現代のお坊さん達の中には、阿弥陀如来というのは西方浄土だ。しかしそんなのは架空であって、生きているうちにちゃんとする為に、仏様はそのような方便を使って言ったんだと言っております。そうしたらそう言うお坊さんに聞きたいのです。死ぬ時に何のために引導を渡すか。引導を渡すとは一体どういうことですか。それこそ自分に引導を渡した方がいいと思うんです。
나무아미타불이(南無阿弥陀仏)라고 하는 것도, 어느 사이엔가 현대의 스님들 중에는, 아미타여래(阿弥陀如来)라고 하는 것은 서방정토(西方浄土)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가공(架空)이며, 살고 있는 동안에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은 그러한 방편(方便)을 사용해서 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스님에게 들어본 것입니다.  죽을 때에 무엇 때문에 스님이 죽은 사람를 정토(淨土)로 인도하기 위해서 경문을 외우는가?  스님이 죽은 사람를 정토(淨土)로 인도하기 위하여 경문을 외운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정토로 인도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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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まず我々は、肉体が滅びて人生航路の目的と使命というものを果たさずままに、この地上界を去れば皆さん自身の地獄の世界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それは皆さんの心の中に存在しているのです。それは我々自身、永遠の生命としてあの世とこの世を転生輪廻をして、あの世では魂がブラブラしているのではないのです。皆さん自身の肉体とまったく同じ肉体が存在しております。よく皆さんは仏像を見た時に、この仏像の後ろに後光というものが出ております。この後光というのは、如来とか菩薩とか、或いはキリスト教のイエス・キリストのお弟子さん達にも後光というのが出ています。この後光というものは、その人の心のまろやかさ、広さを現わしているのです。
우선 우리들은, 육체가 없어지고 인생항로의 목적과 사명이라고 하는 것을 완수하지 않은 채로, 이 지상계를 떠나면 여러분 자신의 지옥(地獄)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 영원한 생명으로서 저 세상을 전생윤회(転生輪廻)를 하고, 저 세상에서는 영혼(魂)이 배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육체와 꼭 맞는 같은 육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주 여러분은 불상을 봤을 때에, 이 불상의 뒤에 후광(後光)이라고 하는 것이 나옵니다.   이 후광(後光)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如来)라든지 보살이(菩薩)라든지, 혹은 그리스도교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후광(後光)이라고 하는 것이 나옵니다.  이 후광(後光)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둥긂, 넓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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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の心が丸く豊かで、皆さんの心というのは、丁度風船玉のように丸く豊かなものです。その中を更に分解してみますと、上の方には智性という領域があります。そしてまた本能の領域があります。そしてまた感情の領域があります。皆さんの心の中には非常に敏感に作用する想念の世界があります。思うということ、念ずるということ、そして真中から更に下には理性という領域があります。こうして皆さんの心が丸く豊かな時には、智性も本能も理性も感情も想念も、丸く豊かになっております。ところが自分の肉体舟、耳で嫌なことを聞きます。自分に都合の悪いことを聞くと直ぐに感情的になって心の面が歪みを作ります。感情が大きく膨らみます。心は歪みを作るから理性を失います。それ故に、会話を通しても心の中の感情が歪みを作っている時には、理性が正しくブレーキがかからなくなります。その結果、人のいうことも正しく聞けなくなります。或いはまた年頃になっても自分の本能がずっと膨らんで感情が大きく膨らんで、心をよく見るとこのように、ハート型になっております。こういうハート型になってしまいますと、智性の方も利かなく、本能が膨らみ感情が膨らむから理性もブレーキが利かなくなります。
이 마음이 둥글고 풍요하며, 여러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 풍선 구슬처럼 둥글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그 속을 더욱 분해해 보면, 위쪽에는 지성(智性)이라고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본능(本能)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감정(感情)의 영역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매우 민감하게 작용하는 상념(想念)의 세계(世界)가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는 것, 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한 가운데에서 더욱 밑으로는 이성(理性)이라고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둥글고 풍요로울 때에는, 지성도 본능도 이성도 감정도 상념도, 둥글고 풍요롭게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육체배, 귀로 불쾌한 말을 듣습니다.  자신에게 사정이 나쁜 것을 들으면 곧바로 감정적(感貞的)으로 되어 마음의 면이 비뚤어짐을 만듭니다.  감정이 크게 팽창합니다.  마음은 비뚤어짐을 만들기 때문에 이성(理性)을 잃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대화를 통해서도 마음속의 감정이 비뚤어짐을 만들고 있을 때에는, 이성(理性)이 올바르게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의 말하는 것도 올바르게 들리지 않게 됩니다.  혹은 또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본능(本能)이 훨씬 팽창하고 감정(感情)이 크게 팽창하고, 마음을 자세히 보면 이와 같이, 하트♡형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트형이 되어버리게 되면, 지성(智性)의 쪽도 제어가 안 되고, 본능(本能)이 팽창하고 감정(感情)이 팽창하기 때문에 이성(理性)도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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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恋愛などしている時に、本能と感情ばかりが膨らんでしまうから、アバタもエクボになってしまうわけです。こういう状態で皆さんものの判断が正しく出来るでしょうか。心の中の歪みはこうやって出来ている時には、その人達からはきれいなピンク色の光が出ています。この中にもいますけど、そういう人はいま異性の事を考えている証拠なのです。それも異性もいいけれども、不純な異性の考えを持っている人もいるのです。いい歳して。そういう人にはピンク色の光が出ているのですよ。だからなるほどピンクムードなんて言ったのはこういったところから出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ハート型なんて言うのを見まして、心というとたいてい西洋へ行くとハート型に矢印が入っています。確かに恋愛をし、心が調和されていない人の心をパッと見ますとハート型に見えます。それもピンク色の光が頭からパーッと出ていますからこの人は目下恋愛中だと分かるのです。ですから人間の心というのは、常にこうやって変化します。こういう心の状態を仏教では一念三千と言っております。一念三千ということは皆さんの心は刻々変化している。見たり、聞いたり、思ったりすることで刻々変化しています。
연애 같은 것을 하고 있을 때에, 본능과 감정만이 팽창해 버리기 때문에, 상대방의 곰보자국도 꽃봉오리(결정도 장점으로)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여러분 자체의 판단이 올바르게 할 수 있을까요?  마음속의 비뚤어짐은 이렇게 해서 완성될 때에는, 그 사람들에게는 예쁜 핑크빛이 나옵니다.  여기 방청객 중에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사람은 지금 이성(異性)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래도 이성(異性)도 좋지만, 불순한 이성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좋을 때죠.  그러한 사람에게는 핑크색의 빛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면 과연 핑크무드라고 말했던 것은 이러한 경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하트형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라고 하면 대개 서양으로 가면 하트형에 화살표가 들어가 있습니다.  확실히 연애를 하고, 마음이 조화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확 보면 하트형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핑크색의 빛의 머리에서 확하고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목하열애(目下恋愛) 중이라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늘 이렇게 해서 변화합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를 불교에서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것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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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ういう心の状態によって自分の苦しみを作っているわけです。
이러한 마음의 상태에 의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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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思うということ、この思うということがいかに、我々の生活の中に歪みを作ったり喜びを作っているかということがよく分かるのです。
생각한다고 하는 것, 이 생각한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들의 생활 속에 비뚤어짐을 만들거나 기쁨을 만들고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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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の心はやはり、本能も智性も、感情も、想念も、理性も、常に丸く豊か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また嫁と姑の仲で、お嫁さんは姑さんの前ではうるさいから、一応うまいことを言って、対話をしているけど、心の中では、このくそ婆め早く死んでくれなんて、思っているのですね。そういうような人に限って半病人になるのです。最近は、姑さんの方がだいぶ弱くなってきたもんだから、あっちが痛いこっちが痛い、こっちが神経痛だなんて騒ぎ始めているのは、そういう人達の心の歪みが作っ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自分の体の調子を見てどうもこの辺が調子が悪いぞと思ったら、船頭さんの方を修正することが先決です。ノイローゼ、気違い、百パーセントそうです。一念三千の心の中が、こうやって、善の世界と悪の世界。善我と偽我の世界。こういう皆さんの心の世界があります。
우리들의 마음은 역시, 본능도 지성도, 감정도, 상념도, 이성(理性)도, 항상 둥글고 풍요롭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사이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님의 앞에서는 잔소리가 많이 하기 때문에, 일단 달콤한 말을 하고, 대화를 하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 똥할망구 빨리 죽어버려 라고 하는 둥,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 한해서 반 병자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시어머니가 상당히 약해져 왔기때문에, 저기가 아프고 여기가 아프다, 여기가 신경통이라고 불평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의 비뚦어짐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몸의 상태를 보고 아무래도 이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다고 생각하면, 선장인 당사자를 수정하는 것이 선결입니다.  노이로제, 미치광이, 100% 그렇습니다.  일념삼천의 마음속이, 이렇게 해서,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  착한 자기와 거짓된 자기의 세계.  이러한 여러분의 마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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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の心の世界が偽我の世界へ行くと、地獄に通じております。地獄というものはどうして出来たかと申しますと、永い歴史の中に人類が、あらゆる体験をして、正しい道を踏み外した人達、恨み、妬み、そしり、愚痴、怒り、こういう心のままの生活をしている人達は、いつの日か地獄界という世界に自分から心に作り出したスモッグ、このスモッグが神の光を遮ってしまいます。その結果暗い陰が出来ます。その暗い陰が地獄の世界なのです。ですから、地獄極楽は今生きているうちから、もう既にあるのです。みなさんが苦しんでいる世界は地獄の世界なのです。今自分が病気だ、精神的に、肉体的にあらゆる苦しみを持っている人達は、必ずその苦しみの原因を追究することです。
이 마음의 세계가 위아(거짓된 자기)의 세계로 가면, 지옥(地獄)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 만들어진 것인가라고 말씀드리면, 오랜 역사 속에 인류가, 온갖 체험을 하고, 올바른 길을 벗어난 사람들, 원망, 질투, 그리고 푸념, 분노, 이러한 마음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사이엔가 지옥계라고 하는 세계를 스스로 마음으로 만들어 낸 스모그, 이 스모그가 신(神)의 빛을 가로 막아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두운 그늘 나옵니다.  그 어두운 그늘이 지옥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극락은 지금 살고 있는 안에서, 이미 벌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괴로워하고 있는 세계는 지옥의 세계인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질병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온갖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 괴로움의 원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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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の原因というものを追究したならば、その根は必ずあります。病気或いは苦しみの原因というものを、皆さんは自分で追究することです。その原因を追究すると殆どが自分さえ良ければいいという自己保存の心です。
그 원인이라고 하는 것을 추구하게 되면, 그 뿌리는 반드시 있습니다.  질병 혹은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스스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추구하면 대부분이 자신만 좋으면 괜찮다고 하는 자기 보존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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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の自然界の一つを見てご覧なさい。人間一人で存在することは絶対出来ません。あの植物をごらんなさい。植物は、CO2という炭酸ガスを吸収して酸素を出しております。しかもCO2という二酸化炭素は、太陽の光合成によって澱粉や糖分を作り出して、皆さんの血や肉や骨になっております。それから皆さんの排泄物はまた植物のエネルギーとなって、根の中から或いは葉から吸収して、彼らはまた成長しているのです。動物も植物もお互いに相互関係なのです。
이 자연계의 하나를 보고 살펴보십시오.  인간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저 식물을 살펴 보세요.  식물은, CO2라고 하는 탄산가스(Gas)를 흡수해서 산소를 뿜어냅니다.  게다가 CO2라고 하는 이산화탄소는, 태양의 광합성에 의해서 전분이나 당분을 만들어 내고, 여러분의 피나 살이나 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배설물은 또 식물의 에너지가 되고, 뿌리의 속으로 혹은 잎으로 흡수하고, 그들은 또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도 식물도 서로 상호관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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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また水がなかったらどうなりますか、植物は生存出来ないでしょうし、我々も生きてはいけないのです。こう見ると動物も植物も鉱物もお互いに、助け助けられつつ、相互関係の中に安定しているのです。皆さんが今酸素の量というならば、一本の直径が80センチメートル、高さ20メートルの松一本から排出されるところの酸素の量は、皆さんの呼吸する量なのです。もし植物がなくなってしまったら、皆さんは生きていけないのです。こうして自然界のルールというものはお互いに持ちつ持たれつで、俺さえよければいいんだというものは一つもないのです。そうなるとやはり、自然を通しても自分さえ良ければいいというものの考え方は、間違っているということに気がつきます。
또 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식물은 생존할 수가 없겠지요.  우리들도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서로가, 상부상조해가면서, 상호관계 속에 안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산소의 양(量)이라고 한다면, 한 그루의 직경 80cm, 높이 20미터 소나무 한 그루에서 배출하고 있는 곳의 산소의 양(量)은, 여러분의 호흡하는 량(量)인 것입니다.  만약 식물이 없어져 버리면, 여러분은 살아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연계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나만 좋으면 좋은 것이다 하고 하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연을 통해서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고 하는 그런 사고방식은, 잘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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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お金とか物の奴隷になっております。如何にお金や物の奴隷になったところで皆さんは、これでいいということはないんです。人間はやはり足ることを知らなくてはいけません。この足ることを忘れ去れば、我々は苦しみです。足ることを知らない人ほど、欲深き人間です。如何に財を貯めたところで自分だけの財は無常なものです。必ず苦しみや悲しみがついてくるものです。こうして我々の心の中というものを考えてみますと、一番大事なのは、豊かな心、豊かな精神を作ることです。自分の心が豊かであれば、自然と心の中も和み、生活そのものも調和されてくるものです。その為にはまず、人の言うことを正しく聞くことです。自然界のものはバランスを崩してはいません。
우리들은, 돈이라든지 물질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나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고 해서 여러분은, 이것으로 괜찮다고 하는 아닌 것입니다.  인간은 역시 만족함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만족함을 잊어버리고 죽으면, 우리들은 괴롭습니다.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욕심이 깊은 인간입니다.  아무리 재산을 저축했어도 자기만의 재산은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틀림없이 괴로움이나 슬픔이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마음속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풍요로운 마음, 풍요로운 정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풍요로우면, 자연스럽게 마음속도 조화하고, 생활 그 자체도 조화되어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의 말하는 것을 올바르게 듣는 것입니다.  자연계라는 것은 균형(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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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てのものが、大調和をしているのです。大調和をしているならば、やはり偏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そのためには、まず正しく聞くことが大事です。
모든 만물이, 대조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조화를 하고 있으면, 역시 치우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올바르게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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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偏らないということを一つ、みなさんの生活を通して考えたならば、仏壇や或いは神社に水をあげたり、また塩をあげるでしょう。こういうものは一体どういう意味ですか。この塩というものを化学方程式で書くとNaClというものになります。塩化ナトリウムです。この塩化ナトリウムも元を正せばNaOHという水酸化ナトリウム。片方はHClという塩酸です。こういう両極端の塩基性のものと酸性のものがお互いにくっつき合いますと最も安定した塩になります。水酸基や水素は逆に熱を加えるから蒸発してしまいます。塩というのは清めるといいます。清めるということは、やはり調和ということです。ですから塩を蒔けということはその環境を調和するということです。調和するとは形ではなく心も調和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치우침이 없다고 하는 것을 한 가지, 여러분의 생활을 통해서 생각해 본다면, 불단(부처를 모셔 놓은 단)이나 혹은 신사(일본에서 왕실의 조상이나 고유의 신앙 대상인 신 또는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에 물을 올리거나, 또 소금을 올리겠지요.  이런 것은 도대체 어떠한 의미입니까?  이 소금이라고 하는 것을 화학방정식으로 쓰면 NaCI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염화나트륨입니다.  이 염화나트륨도 근원을 바로잡으면 NaOH라고 하는 수산화나트륨.  다른 한쪽은 HCl라고 하는 염산입니다.  이런 양극단의 알칼리성(염기성) 자체와 산성 자체가 서로 서로 들러붙으면 가장 안정된 소금이 됩니다.  수산기(히드록시기)나 수소는 반대로 열을 더하기 때문에 증발해 버립니다.  소금이라고 하는 것은 깨끗하게 한다(부정을 씻는다)고 합니다.  깨끗하게 한다(부정을 씻는다)라고 하는 것은, 역시 조화(調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금을 뿌리라고 말하는 것은 그 환경을 조화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조화한다라고 하는 것은 형태만이 아니라 마음도 조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염기성[塩基性] :알칼리와 같이 염기(塩基)를 나타내는 성질(性質). 붉은 리트머스 종이를 푸르게 변화(變化)시키고 산(酸)과 중화(中和)하여 염을 만드는 것. 알칼리성

 

※수산기[水酸基] : 무기(無機) 화합물(化合物)에서는 수산화물(水酸化物)에 유기(有機) 화합물(化合物)에서는 알코올과 석탄산(石炭酸) 등(等)에 있는 'OH'원자단(原子團)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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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私の東京の側には浅草の観音様という有名なものがあります。善男善女がお参りに行っています。そういうところにお参りに行っているから、さぞやみんなきれいかな。ちょうど私達も人の心の中が、皆分かるものですから、神様の代わりになってたまにあそこに行って聞いていることがあるのです。そうすると、田舎の方からバスガイドに連れられてきて、皆様ここは浅草の観音様です。観音様は隅田川から救い上げられてこういう風に祭られています。有り難い観音様ですと教えています。
제가 도쿄의 근처에는 아사쿠사(浅草,성관음종의 총본산)의 관음보살이라고 하는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선남선녀가 참배하러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곳에 참배하려 가고 있기 때문에, 역시 모두가 예쁜게 아닌가?  마침 저희들도 사람의 마음속을,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신령님)의 대리가 되어 이따금 거기에 가서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자, 시골에서 버스 안내원에게 이끌려 와서, 여러분 여기는 아사쿠사의 관음보살입니다.  관음보살은 스미다강에서 구해 올려져 이런 식으로 신으로 받들어 보시고 있습니다.  고마운 관음보살입니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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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ういう人達は、早速ガマ口からお金を出して拝んでいます。たいてい田舎から来ている人達の多くは、拝む目的は何もなく、皆やっているからといってやっているだけですよね。余程東京の人は図々しいと見えまして、若い人達なんか今日の松戸の競輪は3─6にしたらいいか、4─3がいいか、第2レースがいいか、観音様、私に霊感を与えてくれなんて、ま、ひどい人になりますと何処何処のパチンコ屋の36番が昨日出たから今日も出ますようにと拝んでいる人もいます。
그런 사람들은, 재빨리 두꺼비 구멍으로 돈을 넣고 두손 모아 빌고 있습니다.  대부분 시골에서 오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두손 모아 비는 목적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 하고 있으니까 하고 있을 뿐이군요.  상당히 도쿄 사람은 뻔뻔하게 보이고, 젊은 사람들인가는 오늘의 마츠도의 경륜(자전거 시합)은 3 ─ 6으로 하면 좋은지, 4 ─ 3이 좋은지, 제2 레이스가 좋은지, 관음보살님, 저에게 영감을 주시면 하면서, 뭐, 잔인한 사람이 되면 어디 어디의 파칭코가게의 36번이 어제 나왔기 때문에 오늘도 나오도록 해 주십시요라고 두손 모아 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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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受験の時期になりますと、殆ど学生、子供達、高校生クラス、中学生になりますと拝んでいるのが自分の志望校の名前をあげましてね、神様、観音様、是非ひとつ、私は今度は東大を受けますから是非受かりますようにお願いします。まあそういうように拝んでいるのが多いですね。観音様、さしあたり東大を受けると言ったらお前の足元を明るくしろというでしょう。灯台下暗しというから、こういうことで、皆んなこの神様にお願いすればいいということですね。もう、それで偶然に当たってくれれば運がいいのです。もし、当たったとしたらその人は最大の努力をした行為をしたからです。そういうことを忘れて、我々はそういう一つの信仰というものが絶対だと思っている。 
수험의 시기가 되게 되면, 대부분의 학생, 아이들, 고교생급우, 중학생에 이르게 되면 빌고 있는 것이 자신의 희망하는 학교의 이름을 대겠지요. 하느님(신령님), 관음보살님, 옭고 그름을 불문하고, 저는 이번에는 동경대에 접수하고자 하니 무조건 붙게 해 달라고 기원합니다.  그런 식으로 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관음보살님, 당장은 동경대에 붙는다라고 말한다면 너의 발밑을 밝게 하라고 말하겠지요.  등잔 밑에 어둡다고 하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 모두 이 하느님(신령님)에게 소원을 빌면 좋다고 하는 것이군요.  머지않아, 그래서 우연히 적중해 준다면 운이 좋습니다.  만약, 합격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최대의 노력을 한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들은 그렇게 하나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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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他力信仰という間違いはそういう所から出てくるわけです。ですから皆さんが神様というのは大抵、山に登って滝に打たれ、そして霊感が湧いてきて、滝に打たれている最中に、我こそは不動明王なりなんて言われるともうその方は、あー神様はついにお成りになったと、そのうちに人の事を二、三当たるうちに新興宗教が出来上がっちゃって、神の使いだとか、或いはお前は創造主だとか言われると、自分のやっている行動をみて創造主であるかをよく判断すればいいのです。創造主であったならば、全ての力を持っております。全ての現象を出す事もできます。
타력신앙이라고 하는 잘못은 그러한 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느님(신령님)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산에 올라가서 폭포를 맞으며, 그리고 영감이 솟아나오고, 폭포를 한창 맞고 있는 동안에, 나야말로 부동명왕(不動明王)이니라 하고 말을 하면 이미 그 사람은, 아~ 하느님(신령님)은 마침내 강림하셨다라고, 가까운 시일 안에 남의 일을 두 번, 세 번 적중하는 동안에 신흥종교가 완성되어 버리고, 신(神)의 사자(使者)다라든지, 혹은 너는 창조주라고 하든지 말을 하면, 자신의 하고 있는 행동을 보고 창조주인지를 잘 판단하면 좋은 것입니다. 창조주였다면,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현상을 나타내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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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ういう力もないままに、そんなものを皆さんは信じてはいけません。そして殆どの拝み屋、そういう神様は、病気だ、貧乏だというと、お前の家の先祖がたたっているから、浮かばれないからこのようにして供養しろと言う。一体供養ってなんだろう。そんなものを信じてはいけません。
그러한 힘도 없는데도, 그런 것을 여러분은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을 모시는 집은, 그런 하느님(신령님)은, 질병이다, 가난하다고 말하면, 너의 집의 선조가 화근이 되고 있으니까, 성불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해서 공양하라고 말한다. 도대체 공양이란 무엇일까요? 그런 것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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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或いはまた貧乏などしていると、お前は前生において悪いことをしたから、今貧乏しているのだ。冗談じゃありません。あの世は、日本の一万円札持っとっても通じないのです。いわんやアメリカのドル持っていってもドルにもならないのです。お金などというものは関係ないのです。
혹은 또 가난하고 있으면, 너는 전생에 있어서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지금 가난한 것이다.  농담이 아닙니다.  저 세상은, 일본의 1만엔 짜리 지폐를 가지고 있어도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미국 달러를 가지고 있어도 달러임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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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間が永い歴史の中にこういう流通経済としてこういうものを作れば便利だということで作ったのです。冥土の沙汰も金次第というのはお坊さんが勝手にそのようなものを作ったのです。お金なんか一銭もなくたってあの世へ帰れます。無賃乗車出来るのです。この世を去る時にお金などいらない、ただ葬式の金ぐらいはしょうがないですけどね。でも本来は、そういうようなものではないのです。
我々は死んだらすぐにお墓におったり、お寺におるなんて思ったらとんでもないことです。
인간이 오랜 역사 속에 이러한 유통경제로서 이러한 것을 만들면 편리하다고 하는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저승의 재판도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하는 것은 스님이 제멋대로 그러한 것을 만든 것입니다.  돈이라든지 땡전 한 푼도 없어도 저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무임승차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돈 따위는 필요 없다. 단지 장례식의 비용 정도는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렇지만 본래는, 그러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들은 죽자마자 무덤에 있다거나, 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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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皆さんそれが証拠には、宗教の指導者、あるいは神主さんお坊さん達が、本当に心に生活に調和がない、家庭が混乱しているのはどういう訳か知っていますか。そういうのは家庭の中が、心の根本が分からずに、この地上界を去った亡者たちがそこに生活をしているからです。彼らは、そのような人達が、また心の中が、道を自分自身が分からない為に生活が乱れる。乱れるから今度その人の心を混乱させる。家庭が乱れるというと、今度はそんな家庭には不調和な子供が生まれてくるのです。
여러분 그것이 증거로는, 종교의 지도자, 혹은 신주님 스님들이, 정말로 마음에 생활에 조화가 없고, 가정이 혼란하고 있는 것은 어떤 까닭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러한 것은 가정의 안이, 마음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이 지상계를 떠난 망자들이 거기에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사람들이, 또 마음속이, 길을 자기 자신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생활이 어지럽습니다.  어지럽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혼란시킵니다.  가정이 어지럽다고 하면, 이번에는 그러한 가정에는 부조화한 자식이 태어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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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ういうことは全て霊的な現象なのです。不調和な現象が起こっているということは、我々に対して反省のチャンスを与えているのです。どうして、何故その原因は、これを追究せずままに我々は盲目に過ごしてしまう訳です。それ故に我々は信仰というものは、非常にやはり、正しいという規準を悟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그러한 것은 전부 영적인 현상입니다.  부조화한 현상이 일으키고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 대해서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왜 그 원인은, 이것을 추구하지 않은 채로 우리들은 장님으로 세월을 보내버리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역시, 올바르다고 하는 규준을 깨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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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塩というものは清まるということから中道ということを教えています。
소금이라고 하는 것은 깨끗하게 한다(부정을 씻는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도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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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或いはまた、お水を上げます。水の分子式をみるとH2Oといいます。これも両極端の水素と酸素です。これが水素二つと酸素一つでくっつくと今度は、可燃性の物が、そのものを消し止める力をもちます。中道ということですね。偏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中和ということ、調和ということです。こういう調和ということで塩をあげたり、水をあげたりするんです。それをいつのまにかそれが形になったわけです。例えば、皆さんがお寺へ行くと多宝塔ってありますね。五重の塔、三重の塔。多宝塔、これも実は、皆さんの心の中に多宝塔があるんです。ストパーともいいます。皆さんの心の中には、永い何億何兆万年も転生輪廻をしてきたところの、体験された偉大な智慧が、皆さんの心の中には全部記録されております。そういう記録された多宝塔が皆さんの心には誰もあるものを、いつの日か分からなくなるから、ああいう形になって現れてしまったのです。
혹은 또, 물(옥수)을 올립니다.  물의 분자식을 보면 H2O라고 합니다.  이것도 양극단의 수소와 탄소입니다.  이것이 수소 2개와 산소 1개로 들려 붙으면 이번에는, 가연성의 물질이, 그 물건을 진화하는 힘을 가집니다.  중도라고 하는 것이지요.  치우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화라고 하는 것, 조화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화라고 하는 것에서 소금을 올리거나, 물을 올리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느 사이엔가 그것이 형태로 되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절에 가면 다보탑이 있지요.  5중의 탑, 3중의 탑, 다보탑, 이것도 사실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다보탑이 있는 것입니다.  스토바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몇억 몇조 만년이나 전생윤회를 해 왔던 곳의, 체험된 위대한 지혜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전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기록된 다보탑이 여러분의 마음에는 누구나 있는 것을, 어느 사이엔가 이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저런 형태가 되어 나타나 버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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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こうして、人間は偏らないという、正しく聞くというのもやはり偏らない、自分を善意なる第三者の立場において聞けば、どんな悪いことを言われたって別に他人様が言われているんだと、その原因はどこにあるか第三者の立場で聞けばいいんです。
우리들은 이렇게 해서, 인간은 치우치지 않는다고 하는, 올바르게 듣는다고 하는 것도 역시 치우치지 않는, 자신을 선의인 제 3자의 입장에서 들으면, 어떤 나쁜 말을 들어도 별로 타인이 말해지고 있다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 3자의 입장에서 들으면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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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の次はこの目です。この目というものもやはり正しく見なければいけない。偏らない中道という、この目で物を見るときにおいて、我々はこの目で色々と苦しみを作ります。例えば、東京あたりは電車に乗っていますと、いい歳をした人が奇麗な女性が乗ってくると、心をフラフラさせてきれいだと思っている内はいいけれども、裸にして見ているんです。もうこうなったら駄目です。まあ、金沢の人間はそういう人はいないと思います。こうして心で見るというのも、そういう意味で目で見るということは毒を食べる要素があるんです。だから、これもやはり正しく見なければいけません。
그 다음은 이 눈입니다.  이 눈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올바르게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치우지지 않는 중도라고 하는, 이 눈으로 사물을 볼 때에, 우리들은 이 눈으로 여러 가지 괴로움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도쿄 근처에는 전차를 타고 있으면, 나이를 먹은 만큼 먹은 사람이 고옵고 예쁜 여성이 탑승하면, 마음을 벌렁벌렁해져서 우와 이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괜찮지만, 나신을 상상하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말짱 꽝입니다.  자아, 카네자와(金沢)의 인간은 그러한 사람은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마음으로 본다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라고 하는 것은 독을 먹는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역시 올바르게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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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の次に語ることです。毎日喋るということは、相手に意志を通ずることです。人の悪口を言ったり、或いは自分を誇張したり、自分のこの言葉というものは正しく語らなければいけません。聞いたり、見たり、語ったりすること、こういうことも正しい中道という道を通して皆さんは生活してみてください。
그 다음에 말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말한다고 하는 것은, 상대에게 의사를 통하는 것입니다.  남의 악담을 말하거나, 혹은 자신을 뽐내거나, 자신의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듣거나, 보거나, 말하거나 하는 것, 이런 것도 올바른 중도라고 하는 길을 통해서 여러분은 생활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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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最も大事なことは皆さんの思うことです。思うということは何処の国にも法律がないのです。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도 법률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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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代、国の法律、こういう法律は、人間の行動というものを制約し、社会の秩序を保つために法律があります。これはあくまでも人間の行動の法律です。しかし、人間の心の中で思うということも、やはり正しい法則が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いけません。ノイローゼの殆どがその道を知らないからです。
현대, 나라의 법률, 이런 법률은, 인간의 행동이라고 하는 것을 제약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법률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행동의 법률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마음속으로 생각한다고 하는 것도, 역시 올바른 법칙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노이로제의 대부분이 그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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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飛行場からここまで高速道路がきれいなのが出来ておりますね。それにも必ず、道には法則があります。この道路交通法という法則を通して守らなければ駄目です。行なわなければやはり法則なんて作ったって無駄です。この行なったときに初めて我々は、調和ということがあるわけです。では調和というものは一体何かというと光です。神は光なりといいます。即ち人生航路においては、生から死までの道があります。その道を歩むためには法則が必要です。この法則を度外視して我々は生活をしたときに自分で苦しみを作るのです。それ故に我々はこの法則を正しく知ることです。
비행장에서 여기까지 고속도로가 깨끗하게 되어 있군요. 거기에도 반드시, 도로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이 도로교통법이라고 하는 법칙을 통해서 지키지 않으면 허사입니다.  행하지 않으면 역시 법칙이라고 만들었어도 허사입니다.  이것을 행했을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조화라고 하는 것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면 조화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면 빛입니다신(神)은 빛이라 라고 합니다.  즉 인생항로에 있어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법칙이 필요합니다.  이 법칙을 도외시하고 우리들은 생활 했을 때에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법칙을 올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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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の法則とは一体何か。
그 법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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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難かしい哲学用語の中にあるのではないのです。皆さんは般若心経の中に、観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舎利子というお経があります。あんなのを聞いて皆さん分かりますか。いわんや法華経を一生懸命やっている人達が爾時世尊従三昧安詳而起告舎利弗なんて何を言っているか日本語に直訳したらどういうことになると思いますか。
어려운 철학 용어 속에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야심경 속에,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사리자(観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舎利子)라고 하는 경(經)이 있습니다.  저런 것을 듣고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법화경(法華経)을 죽어라하고 열심히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시세존종삼매안상이기고사리불(爾時世尊従三昧安詳而起告舎利弗)이라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일본어로 직역하면 어떠한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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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爾時世尊、その時にお釈迦様は禅定三昧に入っておった、おもむろに立ち上がって舎利弗に告げました。
미시세존, 그 때에 석가모니부처님은 선정삼매에 들어갔다, 서서히 일어서서 사리불에게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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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正法というものは、難至難解、難しくて入りにくいんだよ。こうやって言っているんです。これを毎朝毎日仏壇や仏様の仏像の前に行って、皆さんお経を唱え、爾時世尊従三昧安詳而起告舎利弗と言ったら、おそらくお釈迦様だったらこの馬鹿野郎めと、これはわしの説いたものだと、お前はそれを実行したらどうだって皆さん言わないでしょうか。では、南無阿弥陀仏は一体どうですか、これは元を正すと南が無いと書いてある。これは南はあるんです。名古屋へ行くとソーダナーモと言います。ソーダナーモとは調和ということですよ。そうですねということです。それが仏教用語、真宗王国ですからね。門徒もの知らずなんていう位ですから。これナーモといいますね。
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난지난해(難至難解), 어려워서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매일 아침 매일 불단(부처님을 모셔 놓은 단)이나 부처님의 불상 앞에 가서, 여러분 경문을 외우고, 미시세존종삼매이기고사리불(爾時世尊従三昧安詳而起告舎利弗)이라고 말한다면, 아마 석가모니부처님이라면 어리석은 놈이군, 이것은 내가 말한 것이다 라고, 너는 그것을 실행하면 어떠한가라고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나무아미타불은 도대체 어떻습니까?  이것은 근본을 바로잡으면 남쪽이 없다고 써 있다.  이것은 남쪽은 있습니다.  나고야에 가면 소다나모라고 말합니다.  소다나모란 조화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 용어,  진종왕국(정토종의 분파, 가마쿠라 시대에 신란이 개종함)이니까요.  그 종문의 신도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이것 나모라고 말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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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真宗王国 ..제가 올린 것입니다.  참고 하세요.
浄土宗の開祖である法然(ほうねん)の弟子の親鸞(しんらん)を開祖とする浄土教の一派。浄土三部経を所依の経典とするが、特に無量寿経により阿弥陀仏の本願の信心を重視し、称名念仏は仏恩報謝の行であるとするのを宗旨とする。真宗。門徒宗。一向宗。
정토종의 개조인 법연의 제자 신란을 개조로 하는 정토종의 일파. 정토삼부경을 교리의 근거인 경전이라고 하지만, 특히 무량수경에에서아미타불의 본원의 신심을 중시하고, 자칭 념불은 부처님에 대한 은혜를 갚고 감사함이라고 행한다고 하는 것을 종지로 한다.  진종. 문도종, 일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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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無阿弥陀仏のこのナーモダーボというのは、インドの古代語です。
나무아미타불의 이 나모와 다보(타불)라고 하는 것은, 인도의 고대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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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のアミーというのはギリシャの言葉です。今から約五千年くらい前にエジプトという国にファラオがいます。このファラオ(王様)はアモンといわれ、このアモンと言われるファラオは、人間は自然に帰れと言って、人間の心はあの太陽のように丸く豊かで、そして暖かい人間にならなければいけないと言って道を説きました。そのアモンが説いたものが、更にアモンはエジプトで約千二、三百年経つうちにアーメンになります。それからこれがギリシャに渡りましてアミーになり、ギリシャから今度はインドにバラモンとして渡ってアミになり、アミシュバラーという名前になります。
아미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Graecia)의 언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정도 전에 이집트라고 하는 나라에 파라오가 있습니다.  이 파라오(임금님)은 아몬이라고 일컫으며, 이 아몬이라고 일컫는 파라오는,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고 말하며, 인간의 마음은 저 태양처럼 둥글고 풍요로우며, 그리고 따사로운(훈훈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길을 설명했습니다.  그 아몬이 설명한 것이, 다시 아몬은 이집트에서 약 1,200~300년 지나는 동안에 아멘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그리스로 건너 가서 아미가 되고, 그리스에서 이번에는 인도에 바라문(婆羅門)으로 건너가서 아미가 되어, 아미슈바라 라고 하는 이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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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ところがゴーダマブッタの当時に、このアミというのがバラモン教の仏教の一番元ですね。その頃のバラモンというのは非常に他力化され、しかも階級制度の厳しい世界で、バラモン種というのは、聖職者として神様に仕える人々だったのです。そのために日本でいう士農工商と同じような厳しいカースト制度を作りました。彼らは神の名のもとに、多くの大衆を犠牲にして、バラモンはその上にアグラをかいていました。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はそういう一つの矛盾に対して、お天道様は一つではないか、皆同じに当たっているではないか、人間は全て平等だということを説いていきます。
그런데 고다마 붓타의 당시에, 이 아미라고 하는 것이 바라문교의 불교의 가장 근원이지요.  그 무렵의 바라문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타력화되고, 게다가 계급제도의 엄격한 세계이며, 바라문종이라고 하는 것은, 성직자로서 하느님(신령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 말하는 사농공상과 같은 엄격한 카스트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많은 대중을 희생으로 해서, 바라문은 그 위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고다마 싯타르다는 그러한 하나의 모순에 대해서, 태양은 하나가 아닌가, 모두 똑같이 비쳐 주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하는 것을 설명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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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ういう時に、バラモンに伝わってきたところの神様にアミーというのがいたのです。これはアモンという光の天使が国を経ていくごとに名前が変わったのです。そしてゴーダマ仏陀釈迦牟尼仏がマガダ国というところで、説法をしております。
그러한 때에, 바라문에게 전해져왔던 하느님(신령님)에게 아미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몬이라고 하는 빛의 천사가 나라를 거쳐 갈 때마다 이름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다마 불타 석가모니 부처(ゴーダマ仏陀釈迦牟尼仏)가 마가다국이라고 하는 곳에서,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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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の当時に、ラジャグリハバーストというところの王様の奥さん、皇后陛下です。これがイダケダといわれる方でたまたま息子に幽閉されていました。その時に息子に、私の一生のお願いだが、ブッタを呼んで是非説法を聞きたい、何も要らないと言った時、ブッタはその要請によって、イダケダといわれるコーサラ夫人に神理を説くのです。あなたは今このような厳しい囲いの中において生活をしているが、決して、自分の息子を恨んではいけません。恨みを以て恨みに報じ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は忍辱することです。どんな辱しめを受けても自分の心の中に毒を食べてはいけません。やがてあなたは、弥陀浄土に行くのです。西方浄土というところにあなたの帰る場所があるのです。当時インドから、エジプト方面からイスラエル方面は西です。あの西の上の方の天国に弥陀浄土というのがあるんですよ。ですからあなたの心は常に道をよく正し、仏法という法則をよく知って、これを毎日の生活に行なって、弥陀浄土の光明の世界に帰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と説いたのです。
그 당시에, 라자구리하 바스트라고 하는 곳의 임금님의 부인, 황후폐하입니다.  이것이 이다케다라고 불리는 분으로 또다시 자식에게 유폐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자식에게, 내 일생의 소원인데, 붓타를 불러서 옮고 그름에 관한 설법을 듣고 싶다, 그 이외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을 때, 붓타는 그 요청에 의해서, 이다케다라고 일컬는 코사라 부인에게 신리를 설법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러한 엄한 환경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절대로, 자신의 자식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원망을 해서 원망으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인욕(忍辱)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모욕을 받아도 자신의 마음속에 독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머지않아 당신은, 아미정토로 가는 것입니다. 서방정토라고 하는 곳으로 당신의 돌아갈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인도에서, 이집트 방면에서 이스라엘 방면은 서쪽입니다.  저 서쪽 위의 방향의 천국에 아미정토(弥陀浄土)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은 항상 길을 잘 바로 잡고, 불법이라고 하는 법칙을 잘 알고, 이것을 매일의 생활에 행하고, 아미정토의 광명의 세계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다카하시 신지님의 말씀 중에, 극락은, 바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바로 위의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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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うしたら日本へきたら、この意味ということは、南無は帰依する。陀仏は悟った方です。阿弥陀という悟った方に帰依するということですよ。それを皆さんが、仏壇の前かお寺へ行って、南無阿弥陀仏、南無阿弥陀仏。これを日本語に直したら、どういうことになりますか。阿弥陀様に帰依します。阿弥陀様に帰依します。阿弥陀如来の仏像の前に言ったら馬鹿野郎め、帰依するなら実行してくれというはずです。それを2時間も3時間も拝んどって、たまたまインドの言葉とギリシャの言葉がミックスされているから言葉の意味が分からないから丁度いいのです。これが現代語で翻訳されちゃったら、これは拝むのじゃないと皆さん分かりませんか。
그렇다면 일본으로 오면, 이 의미라고 하는 것은, 나무는 귀의한다.  타불은 깨달은 분입니다.  아미타라고 하는 깨달은 분에게 귀의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여러분이, 불단(부처님을 모셔 놓은 단)의 앞인지 절에 가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것을 일본어로 고치면, 어떠한 것이 됩니까? 아미타부처님에게 귀의합니다.  아미타부처님에게 귀합니다.  아미타여래의 불상 앞에 말하면 어리석은 놈, 귀의한다면 실행해 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을 2시간이나 3시간이나 두손 모아 빌고, 마침 인도의 말과 그리스의 말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어로 번역되어 버리면, 이것은 합장 배례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여러분 모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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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阿弥陀様の法に帰依するということはやはり、道に帰依するということです。帰依するということは行なうことです。道路交通法も行なわなければ事故が続出します。
아미타부처님의 법에 귀의한다라고 하는 것은 역시, 가르침(道)에 귀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귀의한다고 하는 것은 행한다는 것입니다.  도로교통법도 행하지 않으면 사고가 속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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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やはり我々は思うことと行なうことの在り方を、正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して我々は自然の中に生かされているのです。それ故に、あの太陽は莫大なエネルギーを無所得のままに与えていることは、何を教えているかということです。我々はその自然に感謝せよと教えているのです。しかし自然界は全て輪廻しています。感謝だけでいいでしょうか、感謝は行為をしない限り感謝の意義がないのです。即ち報恩という行為は、感謝の行為が必要です。報恩のその恩に報いるということです。
역시 우리들은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의 본연의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자연 속에 되살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 태양은 막대한 에너지를 무소득인 그대로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자연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계는 윤회하고 있습니다.  감사만으로 좋을까요? 감사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감사의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즉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는, 감사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보은의 그 은혜에 보답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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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ところが現代はどうでしょうか。報恩という行為がなければ感謝などいくらしても駄目です。食事をする時に、一生懸命手を合わせて、何を考えているか知らんけれども、そうしてご飯を残したり、食物を残したり、どういうことになるんですか。あのお米一粒でも彼らは人間の血や骨になるために自らの命を布施しているのです。供養しているのです。それに対して報いることは、やはり無駄にしない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それを唯、形だけで手を合わせたところでちっとも悦びません。鶏も豚も牛も自然界にある人間の血や骨になるもの一切は、我々のために自分の命を投げ出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ならば、無駄にしない、感謝して食べるということです。それは形で手を合わせるだけではありません。心と行ないの中に調和が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です。こうして我々は、報恩と行為は輪廻しないかぎり、駄目だということです。
그런데 현대는 어떠한가요?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가 없으면 감사 등을 아무리해도 헛일입니다.  식사를 할 때에, 열심히 합장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밥을 남기거나, 음식을 남기거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 쌀 한 알이라고 해도 그들은 인간의 피나 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의 생명을 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보답하는 것은, 역시 낭비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을 오로지, 형식적으로 합장을 해본들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닭도 돼지도 소도 자연계에 있는 인간의 피나 뼈가 되는 것의 모든 것은, 우리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놓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면, 낭비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형식적으로 합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마음과 행동 속에 조화가 없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보은과 행위는 윤회하지 않은 한, 허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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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代社会においては、その恩に報いるということ、親は無所得のままに子供を育てた。それに対して、親孝行するということは人としての当然の道なのです。その道を忘れて、親は憲法によって育てるのは当然だと、冗談ではないです、憲法なんて人間が作ったものです。自然は人間など作れません。自然の姿は神の心の現れなのです。この自然の法則は人間によって変え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これを、仏教では諸法無我といっております。諸法という宇宙の諸々の神理法則は、人間の我によって変えることが出来ないもの、不変的なもので、諸法というものは人間の我、偽我が入らない。こういうものが本当の道です。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그 은혜에 보답한다고 하는 것, 부모는 무소득인 그대로 자식을 키웠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효도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을 잊어버리고, 부모는 헌법에 의해서 양육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농담이 아닙니다.  헌법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 등은 만들지 않습니다.  자연의 모습은 신의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 자연의 법칙은 인간에 의해서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 법(諸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여러 여럿의 신리법칙은, 인간의 자아에서 바꿀 수가 없는 것, 불변적인 것으로, 여러 법(諸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인 자기(我), 위아(僞我=거짓된 자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진실한 가르침(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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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ところが最近の仏教は難しい言葉を知って、それを説明する。こういうのが仏教だ。東大の印哲の教授が、私のところに、おまえのような電気屋は、般若心経なんかを書くのはとんでもないことだ、幸いにして売れないからいいけどなんて言って、残念なことにベストセラーになっています。ですからその先生にお手紙を出しました。お手紙有り難うございました。インドのお釈迦様は東大の何期の卒業でしょうか。イエス・キリストはどこの大学出たか一つ教えてくれと手紙を出しました。手紙は来ません。イエス・キリストはかつては左官屋の息子だって聞いているけど、私が電気屋で何でこんなことを言って悪いのか。こう言って手紙を出したのです。あなたが本当ならあなた自身悟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だ。悟っていないってことはどういう訳ですか。その位の印哲を出たような人なら大衆をなぜ救えないのですか。自分の頭だけでものを考え、知識だけで考えて智慧のない人間です。
그런데 최근의 불교는 어려운 말을 알고, 그것을 설명한다.  이러한 것이 불교다.  동경대의 인도 철학의 교수가, 제가 있는 곳으로 와서, 당신과 같은 전기업자는, 반야심경인가를 쓰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다행히 팔리지 않기 때문에 좋지만이라고 말하고, 유감스럽게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 고맙습니다.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동경대의 몇 기의 졸업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대학 출신인지 한번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일찍이 미장공의 자식이라고 듣고 있지만, 제가 전기업자로 왜 이런 것을 말하면 잘못인가, 이런 말로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당신이 진실하다면 당신 자신이 깨닫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깨달음이 없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그 정도의 인도철학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사람이라면 대중을 왜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까.  자신의 머리만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지식만으로 생각하고 지혜가 없는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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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間の知識というものは、行ないという知識をとって行為する。行ないがなかったならば、智慧には変わらないのです。智慧というものは、心の中から出てくるパニャーパラミタです。このパニャーというものは、皆さんの心の中にあるところの智慧です。その智慧というものは、行ないがない限り、得た知識を実践しない限り、智慧には変わらんのです。それをただ知識だけで行ないもなく、だったらとっくに東大の印哲、京大の印哲を出た先生達がなんで学問もある日本人の心も救えないのですか。なんだったら、インドヘ行って無学文盲の人達に説いてみたらどうですか。パニャーパラミタ言ったって分かりませんよ。ガンジーですら困っているんだから。ですから人間の心という価値観を知らないで行ないもしないで、そういうことで、知識だけを知っている人間、こういう人間はちっとも偉いとは言えません。人間自身の本当の道は、こういう諸法無我なる大自然の不変的な神理を通して人間が得たその知識を行なうことが大事です。その時に初めて行即光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인간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행한다고 하는 지식을 가지고 행위한다.  행함이 없다면, 지혜로는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지혜라(智慧)고 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나오는 파냐 파라미타입니다.  이 파냐 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곳의 지혜입니다.  그 지혜라고 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한, 얻은 지식을 실천하지 않는 한, 지혜로는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단지 지식만으로 행함도 없고, 그렇다면 훨씬 전에 동경대의 인도철학, 경성대의 인도철학을 나온 선생들이 왜 학문도 있는 일본인의 마음도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까.  뭐냐 하면, 인도로 가서 배우지 못한 까막눈(무학문맹)의 사람들에게 설명해 보면 어떻습니까?  파냐 파라미타라고 말했어도 이해하지 못하지요.  간디(Gandh)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가치관을 알지 못하고 행동도 하지 않고, 그런 것으로, 지식만을 알고 있는 인간, 이러한 인간은 전혀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 자신의 진실한 길은, 이러한 제법무아인 대자연의 불변적인 신리를 통해서 인간이 얻은 그 지식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행함이 곧 빛 (行卽光=행즉광)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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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は即ち光になる。心の中のスモッグを除くからです。
행위는 즉 빛이 된다.  마음속의 스모그를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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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こで皆さん自身が、自分の心の中に思ったこと行なったことが、もし、恨みや妬みやそしりや怒りや愚痴、情欲、こういう足ることを忘れさった欲望。こういうものが皆さんの心にスモッグとなっているために神の光を自分で遮っ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本当に、諸法無我なる神理を知って生活をしている人達は奇麗に頭の上から後光が出ています。しかし毛が無くて光っているのは駄目です。これは後光ではありません。心の中が丸く豊かで平和で、そして人の言うことを感情を高ぶることなく、正しく理解し、善意なる第三者の立場に立ってものを聞き、そしてものを見、ものを語り、ものを思い、そして自分が毎日の生活の中を一生懸命に与えられた環境の中で、不平不満、愚痴を言うことなく正しく仕事をし、そして自分の一日をよく振り返ってみて、あ、こういう事は間違っている。こういう事はもっと行なっていこう、こうして自分を反省出来る人間になることです。反省をするためには反省の規準が大事です。その規準が八正道という偏らない中道の道です。
그래서 여러분 자신이, 자신의 마음속에 생각한 것과 행학 것이, 만약, 원망(원한)이나 질투(시샘)나 비방(비난)이나 분노(성냄)이나 어리석음(푸념), 정욕(색정), 이러한 만족함을 잊어버린 욕망, 이러한 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스모그로 되고 있기 때문에 신의 빛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제법무아인 신리를 알고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고옵고 깨끗하게 머리의 위에서 후광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하는 것을 감정을 고조하는 일 없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선의인 제 3자의 입장에 서서 말을 듣고, 그리고 현상을 보고, 말을 하고, 현상을 생각하고, 그리고 자신이 매일의 생활 속을 열심히 제공해 주는 환경의 속에서, 불평불만, 푸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올바르게 일을 하고, 그리고 자신의 하루를 잘 되돌아보고, 아~, 이러한 것을 잘못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좀더 행해보자, 이렇게 해서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반성의 규준(올바른 기준)이 중요합니다.  그 규준이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의 가르침(道=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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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して皆さんの心が反省によって心の中のスモッグを除き、丸い心になった時、動かないあの池にお月様がまん丸く映っているように、皆さんの肉体の呼吸を調和させて、丸い豊かな心で反省し心のスモッグを除いて、瞑想をした時に、初めて皆さんの内なる神と対話す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반성에 의해서 마음속에 스모그를 제거하고, 둥근 마음이 되었을 때, 움직이지 않는 저 연못에 달님이 환하게 둥글게 비추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육체의 호흡을 조화시키고, 둥글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반성하고 마음의 스모그를 제거하고, 명상을 했을 때에, 비로소 여러분의 안에 있는 신과 대화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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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ういう生活をしている人が本当の信心深い人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いけないのです。他力本願によって人間は絶対に救われない事実は、世界の全人類をみても分かるでしょう。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진실한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타력본원(他力本願)에 의해서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사실은, 세계의 모든 인류를 봐도 알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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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間は行なうことです。正しい法則、不変的な諸法無我なる人間自身の我の入らない、神の心の姿のままの自然を、己の心の物差しとして生活をすることが、本当の人間としての信心深い人だということなのです。それを我々は知らないで、滝に打たれて霊感がほしい。一生懸命に打たれている間に声が聞こえてきた、そのうちに人のことが分かる、病気も治した。それ生き神様とこうくるのです。そういう生き神様に限って、強欲でそして回りの者はその機嫌取り、これが現代宗教です。法蓮華経も同じです。南無妙法蓮華経を拝めば人間は救われると言っているが、本当に救われている人は一人もいない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いけません。法蓮華経の法は宇宙の神理です。ゴーダマ釈迦牟尼仏が多くの衆生を前にして、諸々の衆生よ、あのどぶ沼の中のハスはきれいに調和されているではないか、そなた達は一体どうだ、そなた達の体を見よ、そなた達の体は目を見れば目糞、鼻糞、耳糞、汗大小便、あのどぶ沼より汚いではないか。しかしそなた達の心は、宇宙の神理を知って生活をしたならば、あの蓮の花と同じように調和された安らぎの境地になるのだ。
인간은 행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법칙, 불변적인 제법무아(諸法無我)인 인간 자신의 자기가 들어가지 않은, 신의 마음의 모습 그대로의 자연을, 자기의 마음의 척도로 해서 생활을 하는 것이, 진실한 인간으로서의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들은 알지 않고, 폭포를 맞으면서 영감을 바란다.  열심히 맞고 있는 동안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안에 사람의 일을 이해할 수 있다, 병도 치료했다.  그런 살아 있는 하느님(신령님)이라고 이렇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살아있는 하느님(신령님)에 한해서, 탐욕으로 그리고 주위의 사람은 그 기분 취하며, 이것이 현대 종교입니다.  법연화경(法蓮華経)도 같습니다.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을 두손 모아 빌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진실로 구원받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법연화경(法蓮華経)의 법(法)은 우주(宇宙)의 신리(神理=신의 섭리, 신의 의지)입니다.  고타마 석가모니부처(ゴーダマ釈迦牟尼仏)가 많은 중생들 앞에서, 여러 여럿의 중생이여, 저 시궁창인 늪 속의 연꽃은 예쁘고 깨끗하게 조화되어 있지 않은가? 너희들은 도대체 어떠한가? 너희들의 몸을 보라, 너희들의 몸은 문을 보면 눈꼽, 코딱지, 귓밥, 땀 대소변, 저 시궁창 늪보다 더럽지 않은가? 그러나 너희들의 마음은, 우주의 신리를 알고 생활을 하게 된다면, 저 연꽃과 같은 조화된 평온함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신리(神理)는 사전에 없습니다. 제가 올린 앞의 글들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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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うやって説かれたものがいつの間にか、南無妙法蓮華経、日蓮さんのように南無をつければもっといいではないかなんて。そして人間が本当に必要なら、生まれてきた時、法蓮華経と生まれてくればいいのです。そうやって生まれてきた人は一人もいないんです。或いは曼荼羅が、絶対必要ならば、何故生まれた時に神は与えてよこさなかったのでしょう。ぶら下げてきたものは皆んな違うはずです。神は必要なものだけ人間に与えてあるのです。
이렇게 해서 설명한 것이 어느 사이엔가, 나무묘법연화경, 니찌렌(일련)과 같이 나무를 붙이면 좀 더 좋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인간이 정말로 필요하면, 태어났을 때, 법연화경과 태어나면 좋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혹은 만다라가(曼荼羅)가, 절대로 필요하다면, 태어났을 때에 신(神)은 주고 내보내지 않았을까요?  손에 들고 온 것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신(神)은 필요한 것만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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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そんな題目を拝む前に、自分自身の毎日の生活の中で、恨みや妬みやそしりや怒りや愚痴、或いは足ることを忘れさった欲望、こういうものを正して生活をし、その人達こそ本当に正しい信仰深い人です。それが道なのです。我々は、本当に神の子としての偉大なる価値を忘れているのです。
우리들은 그런 제목을 두손 모아 빌기 전에, 자기 자신의 매일이 생활 속에서, 원망이나 질투나 분노나 푸념, 혹은 만족함을 잊어버린 욕망, 이러한 것을 바로잡고 생활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실로 올바른 신심이 깊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르침(道=길)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진실로 신의 자녀로서의 위대(偉大)한 가치(價値)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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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苦しければ遂に他力の道に走り出す。他力ではないのです。心のスモッグを晴らせば黙っていても太陽の光りと同じように、光明に全て調和を与えるものです。人間は自分自身の心の歪みを治すことです。
 そのストレスを治さない限り、我々はそのような調和は生まれて来ないといえましょう。
괴로우면 결국 타력의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타력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의 스모그를 맑게 개이면 침묵하고 있어도 태양의 빛과 같이, 광명으로 모두 조화를 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비뚤어짐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 스트레스를 치료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그러한 조화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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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代の思想を一つみてもそうです。マルクス主義も同じでしょう。マルクス主義の根本も物と経済というもの、この物の価値判断分配によって決まってるのです。ですから彼らの中でも同じ同志でも、闘争と争いを起こしているでしょう。
현대의 사상을 하나 보아도 그렇습니다.  마르크스주의도 마찬가지죠.  마르크스주의의 근본도 물질과 경제라고 하는 것, 이 물질의 가치판단 분배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서도 같은 동지이며, 투쟁과 다툼을 일으키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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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最近は、おかしな宗教と一緒に組んで共産党がやってみたり、賛成だ、反対だ。資本主義は一体どうでしょう。ケインズの資本主義経済理論も、戦後の日本の経済はあれで支えられてきたと思ったら、公害が出たとたんに、あの資本主義経済理論も覆えりつつあるではないですか。諸法無我は変わらないのです。宇宙の神理は変わらないのです。お金とか物の価値判断の上に立って、人間が奴隷になってはいけないのです。資本主義も社会主義のものの考え方も全てが人間性の価値観を忘れて物の奴隷になっているために闘争と破壊が尽きないのです。

최근에는, 이상한 종교와 함께 짜고 공산당을 해 보거나 찬성이다, 반대다.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떻습니까?  케인즈의 자본주의 경제 이론도, 전후의 일본의 경제는 저것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생각했다면, 공해가 생기자마자, 그 자본주의 경제 이론도 번복하고 있지 아닙니까?  제법무아(諸法無我)는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우주의 신리는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라든지 물질의 가치판단 위에 서서, 인간이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적 사고방식도 전부가 인간성의 가치관을 잊어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투쟁과 파괴가 끊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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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々は、生まれてくる時にお金を持ってきた人は誰もいないのです。死んで持って帰る人も誰もいないのです。こう考えたならば、我々は生きている内にそれを多くの人々に、有意義に使えてこそ本当の金の価値があるのではないのでしょうか。そんなことはない、お金さえあれば人間は幸せになるんだと皆さんが思うならば、あの青森県の六ヶ所村という貧乏な村がありました。それが工業誘致によって、坪五百円か六百円のが五千円、一万円になったら、お百姓さんに入った金が一億だ、五千万だという金が入った。ところがその前までは、東京、京浜方面にぜんぶ出稼ぎに行った父ちゃん連中が、まとまった金が入ったから仕事をしなくなった。その内に外に今度は違う女をつくる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その結果家庭の中を皆破壊してしまった。これはどういう訳でしょう。
우리들은, 태어나올 때에 돈을 가지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살고 있는 동안에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뜻있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돈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 것이 아니며, 돈만 있으면 인간은 행복하게 된다고 여러분이 생각한다면, 저 그 아오모리현(青森県)의 롯카쇼무라라고 하는 가난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공업유치에 의해서, 평당 500엔인가 600백인 것이 5,000엔, 1만 엔이 된다면, 백성들에게 들어간 돈이 1억이다, 5,000만이라고 하는 돈이 들었다.  그런데 그 전까지는, 도쿄, 케힌 방면으로 전부 객지로 돈벌이하러 간 아버지 무리가, 상당한 돈이 들어왔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안에 밖에서 이번에는 다른 여자를 만들게 되어 버렸다.  그 결과 가정 안을 모두 파괴해 버렸다. 이것은 어떠한 까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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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私の住んでいる大森というところも海苔の補償がはいりました。その当時に、莫大な金が入ったから、パーと使い込んだ連中は皆スッテンテンになっちゃっております。家族もバラバラになっております。真面目な人達はマンションを作ったり、アパートを作って、堅実にやって家庭の中を調和している人達は皆幸せになっております。お金が人間を不幸にしているのです。金というものも無常なものです。金はなくてはならんし、あまり有りすぎても欲望を尽きることなく苦しみを持って行きます。
제가 살고 있는 오오모리라고 곳도 해태(海苔)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막대한 돈이 들어왔기 때문에, 확하고 다 써버린 무리는 모두 빈털터리가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가족도 흩어져 버리고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들은 멘션(중 고급형의 고급아파트)를 만들거나, 아파트를 만들고, 착실하게 해서 가정 안을 조화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되고 있습니다.  돈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도 무상한 것입니다.  돈은 없어서는 안 되고,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도 욕망을 다하는 일 없이 괴로움을 가지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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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間の本当の幸せというものは、まず健全なる精神をつくることです。豊かな心をつくることです。健全なる肉体をつくることです。そして、人間は永い歴史の中につくり出したところの現代社会に生きるために、経済の調和というこの三つの柱がない限り、人間は幸せになれないのです。そのために、我々はまず、物の奴隷から己の心を解放して、心こそ不変的な価値のある、永遠の生命だということを知ってほしいのです。
인간의 진실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건전한 정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마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건전한 육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오랜 역사 속에 만들어낸 현대사회에 살기 때문에, 경제의 조화라고 하는 이 3가지의 기둥이 없는 한, 인간은 행복하게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우선, 물질의 노예에서 자기의 마음을 해방하고, 마음이야말로 불변적인 가치가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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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そして、皆さんが、もし疑問を持つならば、この中からも永遠の生命として、あらゆる転生輪廻をしてきたところの事実を、皆さんは自らして理解出来る人も出てくるのです。日本語しか知らないのに、自分の生まれた過去の言葉が皆さんの口から自由に出てきたらどうしますか。ゴーダマシッタルダー釈迦牟尼仏の当時に、皆さん五羅漢とか五百羅漢という話を聞いたことがあるでしょう。羅漢とは、アラハンとはどういう人達でしょう。彼らの心の中の窓が開かれて、そうして自分はかつてこういう事を何年頃に学び、こうして何歳でこの地上界を去って、こういう転生を続けて、今日本に生ま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皆さん自分の口から語り出したらどうしますか。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만약 의문을 가지게 되면, 이 중에서도 영원한 생명으로서, 온갖 전생윤회를 해왔던 곳의 실재를, 여러분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나오는 것입니다.  일본어밖에 알지 못하는데, 자신의 태어난 과거의 말을 여러분의 입에서 자유롭게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다다 싯타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당시에, 여러분 5나한(五羅漢) 이라든지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겠지요.  나한이란, 아라한이란 어떠한 사람들일까요?  그들의 마음속의 창이 열리어, 그렇게 해서 자신은 일찍이 이러한 것을 몇 년 쯤에 배우고, 이렇게 해서 몇 살에 이 지상계를 떠나고, 이러한 전생을 계속하고, 지금 일본에 태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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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まあ、この中にも神様が出るという人は何人もいます。憑依されている人もいます。そういうような人達も本当に自分にいるのが神か仏か皆さんの前ではっきりと見せてあげましょう。ですから一番大事なのは、正しい毎日の生活をしている人達が本当の信心深い人だといえましょう。そして又転生輪廻の永遠の生命を、自分の口を通して語り出してきます。そして何年頃私はこういう生活をしてきた。その時の国の言葉で語り始めます。皆さんも同じなのです。皆さんも永遠の生命として今、日本人として皆さんが自分で望んであの世で、お父さんになってください、お母さんになってください。そうい

う縁生を結んで今、日本人として肉体を持っているのです。こういうことが全部分かっていくような人をアラハンというのです。ですからアラハンというのは、イエス・キリストの時代にも、過去世のことを思い出して語っている事実が聖書の使徒行伝第二章の中にあります。そうして人間は皆今だけ在るのではないのです。皆さんも永遠の生命として、いま自分の与えられた環境は皆さんの魂の心の修業の場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現象は省略させて頂きました)
자아, 이 중에도 하느님(신령님)이 나온다고 하는 사람은 몇 사람도 있습니다.  빙의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도 진실로 자신에게 있는 것이 신(神)인지 부처인지 여러분 앞에서 확실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매일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실로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리고 또 전생윤회의 영원한 생명을, 자신의 입을 통해서 말하기 시작해 옵니다.  그리고 몇 년 경에 저는 이러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 당시의 나라의 말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영원한 생명으로서 지금, 일본인으로서 여러분이 스스로 희망해서 저 세상에서,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요,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  이러한 연생을 계속해서 지금, 일본인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전부 알 수 있는 사람을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과거세의 것을 생각해 내어 말하고 있는 성서의 사도행전 제2장 속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모두 지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도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으로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環境)은 여러분의 영혼(魂)의 마음(心)의 수업(修業)의 장소(場)이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현상은 생략시켜져 받았습니다.)  ←이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아래 주소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현상에 대한 글은, 생략되었다고 하네요. 

 


 

 ^^ 좀 길지요. 죄송합니다. 24페이지 분량입니다. ^^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려진 원문과 함께 한 글 모두 제 번역입니다.  복사해 가시어도 됩니다. 환영입니다. 다 가져가도 되십니다.^^

라고 제가,  2010년 3월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다시 읽어 보니, 번역상의 오류와 실수들이 있어서, 바로 잡습니다.  2011년 6월 4일 토요일.

 

그리고, 잘 읽지 않으시는 것 같아, 색깔을 넣고, 한글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원문출처 : http://houwomanabukai.org/tes3.htm, 「高橋信次先生の法を学ぶ会」「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법을 배우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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