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법어집』신앙의 지침・・・올바른 신앙을 위한 101장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 본문
法 語 集 법 어 집
信 仰 の 指 針 ・・・ 正しい信仰のための101章 園頭広周 先生
신앙의 지침・・・올바른 신앙을 위한 101장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
★법어[法語]의 사전적 의미 《한자/일본어사전》
①법언(法言). 정법을 설하는 말이나 불교(佛敎)에 관(關)한 글
②불교(佛敎)의 교리(敎理)로 삼는 부처의 말 (佛教ぶっきょうの教義きょうぎを説といた言葉ことば)
橋信次先生のことば 『正法』 誌 1980年1月17号より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말씀 『정법』지 1980년 1월 17월 호에서
法 법
法とは正しい秩序をいう。
법은 올바른 질서을 말한다.
法とは氵(さんずい)に去ると書く。氵(さんずい)は水だから、法とは水が去るということになる。水は低きに流れ、高きに流れることはない。低きに流れることが自然の理に適い、自然の秩序に、したがっている。水が去ることは、水自体が自然の条理適って生きているので、水の姿は、自然の秩序を表わし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る。
법이란 氵(물: 삼수변)이 흘러간다 라고 쓴다. 氵(삼수변)은 물이기 때문에, 법이란 물이 흘러간다라 하게 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높은 곳으로 흐르는 일은 없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고, 자연의 질서에, 따르고 있다. 물이 흘러가는 것은, 물 자체가 자연의 조리에 맞게 살아 있는 것이므로, 물의 모습은, 자연의 질서를 나타내고 있다, 라고 하게 된다.
漢字は自然のさまざまな形を型どってつくられただけに、事物や事象を実によく表わしているといえよう。
한자는 자연의 갖가지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인 바, 사물(事物)이나 사상(事象:표면에 나타난 현상)을 실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さて水は低きに流れることによって、常に、清らかだ。山水の流れは冷たく清い。自然の条理にしたがい、低きに流れるから清く澄んでいる。もし、この水の流れを止め、一ヶ所にとどめるとすれば、水質は汚れ、飲み水の用にはたたなくなってくる。
그리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므로, 항상, 깨끗하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흐름은 차갑고 깨끗하다. 자연의 조리(사회 통념에서 본 사물의 도리)에 따르며,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맑고 투명하다. 만약, 이 물의 흐름을 멈추고, 한 장소에 머물게 되면, 수질은 더러워지고, 식수로 사용을 할 수 없게 된다.
人の心もこれと同じなのだ。物に執着し、とらわれが多くなると、心は汚れ、ものの用に役立たなくなってくる。ねたみ、ぐち、そしり、いかり、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は執着の表われである。執着があるから心にこだわりができ、苦しみをつくる。
사람의 마음도 이것과 똑같은 것이다. 물질에 집착하고, 얽매임이 많아지면, 마음은 더러워지고,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원망, 푸념, 비난, 노여움(분노), 만족함을 모르는 욕망은 집착의 발로(發露)이다. 집착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구애되는 일이 생기며, 괴로움을 만든다.
法とは、心に執着をもたぬことだ。とらわれをつくらぬことである。ここで注意したいことがある。それは、とらわれについてである。
법이란, 마음에 집착을 품지 않는 것이다. 얽매임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얽매임에 관해서이다.
知識が先行すると、とらわれという意味を曲解し、好き勝手なことをしても、とらわれなければよいというふうに考えることである。ここでいうとらわれとは、物に執着しないことであるが、同時にそれは、法にしたが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ところが人によっては、とらわれなければ、したい放題、やりたい放題にしてよい、というふうに考えてしまう。とんでもないことである。
지식이 선행하면, 얽매임이라고 하는 의미를 곡해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할지라도, 얽매이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얽매임이란,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법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얽매이지 않으면, 멋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다, 라고 하는 식으로 생각해 버린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法とは秩序だ。循環の秩序をいっている。秩序とは調和であり、中道の心であり、慈悲と愛の神の心のよりどころにして維持されている。身勝手なことをすれば相手が迷惑をするだろう。その迷惑の波動は、身勝手な人に蹴ね返ってこよう。本人はとらわれがないといっても、身勝手な波動は発信者に返ってくるのが法の掟である。他力信仰者は、えてしてこういう考えになり勝ちである。
법이란 질서이다. 순환의 질서를 말하고 있다. 질서란 조화이며, 중도의 마음이며, 자비와 사랑의 신의 마음의 지주(支柱)로서 유지되고 있다. 자기 멋대로인 행동을 하면 상대방이 불쾌할 것이다. 그 불쾌함(괴로움)의 파동은, 제멋대로인 사람에게 튕겨져 돌아올 것이다. 본인은 얽매임이 없다고 말할지라도, 제멋대로인 파동은 발신자에게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법의 규칙이다. 타력신앙자는, 곧잘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경향이 많다.
よくよく自戒しなければならない。
매우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正法は自力である。その自力も我欲をもとにした自力ではない。八正道という反省をもとにした自力行であることを胆に銘じてほしい。
정법은 자력이다. 그 자력도 아욕(我欲:자기만의 이익이나 만족을 얻으려는 욕망)을 근본으로 한 자력이 아니다. 팔정도라고 하는 반성을 근본으로 한 자력행인 것을 깊이 명심해 주길 바랍니다.
★한자 사전상의 法에 관한 해설 <회의문자>
물(水)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규칙이 있다는 뜻이 합(合)하여 '법', '규정(規定)'을 뜻함. 水(수☞공평한 수준)와 사람의 正邪(정사)를 분간한다는 신수와 去(거☞악을 제거함)의 합자채, 즉 공평하고 바르게 죄를 조사해 옳지 못한 자를 제거한다는 뜻을 나타냄
★[条理] 《일본어사전》 [명사] 조리. (사회 통념에서 본) 사물의 도리.
※心のよりどころにして"에서의
지주[의지]"よりどころ"의 뜻은,
(사는 보람을 주는 것으로서 종교·애인·가정·연구나, 자기를 향상시키기 위한 장래의 목표 따위)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잘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法語 『正法』 誌 1978年9月創刊号より
법어 『정법』지 1978년 9월 창간호에서
高橋信次先生は信仰の真髄を説かれたのでありますが、本の中にはあちこちに飛び飛びに書かれたりしてあるために、そのことがそれほど大事なことであるかどうかに気づかずに読んでいられる方が多いようであります。それで皆さんにわかり易く解説することにいたします。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 신앙의 진수를 설명하신 것입니다만, 책 속에는 여기저기에 띄엄띄엄 적거나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 아닌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읽고 계시는 분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대신해서 쉽게 해설하는 식으로 설명하겠습니다.
第一章 神に感謝せよ
제1장 신에게 감사하라
私達は宇宙創造の神さまが造られたこの宇宙の中に、神さまの生命に包まれ、その神さまの生命に支えられて神の子として生かされているのであります。物質として現われているものも、それは、物質という形に現われた神の生命であります。森羅万象悉くは神の生命であることをお釈迦さまは、「山川草木国土悉皆成仏、有情非情同時成道」といわれたのであります。
우리들은 우주창조의 하느님(신령님)이 만드신 이 우주 속에, 하느님(신령님)의 생명에 감싸여, 그 하느님(신령님)의 생명으로 유지되어 신의 자녀로서 소생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로서 나타나 있는 것도, 그것은, 물질이라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신의 생명입니다. 삼라만상 전부는 신의 생명임을 부처님은, 「산천초목(山川草木) 국토(國土) 가 다 성불(成佛: 번뇌를 벗어나서 깨달음을 얻음·부처가 됨)한다, 유정(有情: (감정이 없는 목석 등에 대하여) 감정을 가진 일체의 생물 즉 인간·새·짐승·벌레 등))과 비정(非情: 산천(山川)·목석(木石) 등 감정을 가지지 않은 존재)이 동시에 성도(成道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산천초목국토실개성불,유정비정동시성도(山川草木国土悉皆成仏、有情非情同時成道)」
私達が我を捨てて、自分の心の波動を、大宇宙大神霊の波動に合わせて、自分の心を自然のあるがままの姿に還したときに、はじめて心の安らかさが得られ、真理を自ら知ることが出来るのであります。大宇宙大神霊に波動を合わせるということは即ち、神さまに対して心から感謝を捧げることであります。
우리들이 나(我)를 버리고, 자신의 마음의 파동을, 대우주 대신령의 파동에 맞추어, 자신의 마음을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에,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진리를 스스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우주 대신령에 파동을 맞춘다 라고 하는 것은 즉, 하느님(신령님)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私達が我を捨てて우리들이 나를 버리고"에서의 아(我: 아집, 자기주장, 고집, 자기본위의 생각)를 뜻합니다.
第二章 神に感謝せぬ者は光の指導霊の指導を受けられぬ
제2장 신에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빛의 지도령의 지도를 받을 수 없다
高橋信次先生は、「光の大指導霊或は光の指導霊の指導をうけるには、その前に大神霊を拝してから調和をよりよくお願いすべきである」といっていられました。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빛의 대지도령 혹은 빛의 지도령의 지도를 받는 데에는, 그 전에 대신령을 배례하고 나서 조화를 보다 잘 부탁드려야 한다」라고 말하고 계셨습니다.
神に対して感謝することもさせずに、いきなり「あなたの守護霊がこういっています」と指導している人達がありますが、そういう指導はまちがいであります。「守護霊さま、お守り下さい」と、いくら一所懸命に祈ってみても、その人の心の中に、神に感謝する心がなかったら守護霊は聞いてくれないのであります。たとえあなたが、特別に「守護霊さま、お守り下さい」と祈らなくても、あなたが、心から神に感謝していられるならば、指導霊や守護霊は、その心の状態を「よし」とみて、あなたに霊感、直感を与えるのであります。波長は神に合わせ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って、人に合わせるのは、その人と調和することにはなっても、神とは調和しないのであります。
신에 대해서 감사하는 일도 하지 않고, 느닷없이「당신의 수호령이 이렇게 말하고 계십니다」라고 지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러한 지도는 잘못입니다. 「수호령님, 지켜주십시오」라고 , 아무리 열심히 기도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수호령은 들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당신이, 특별히, 「수호령님, 지켜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당신이, 진심으로 신에게 감사하고 계시다면, 지도령이나 수호령은, 그 마음의 상태를「좋아」라고 보고, 당신에게 영감(靈感), 직감(直感)을 주는 것입니다. 파장은 신에게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사람에 맞추는 것은, 그 사람과 조화하게 되어도, 신(神)과는 조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第三章 心の安らぎは神から生まれる
제3장 마음의 평안은 신으로부터 태어난다
正しいことの基準は心に安らぎがあるかないかであります。
올바른 것의 기준은 마음에 평안이 있는가 없는가에 있습니다.
あなたが、いくら人に波長を合わせてみても、真の心の安らぎが得られないのは神に感謝し神に波長を合わせないからであります。心の安らぎは、神の光りがあなたの心にとどいた時に生まれるのでありますから、心の安らぎを得るためには神に波長を合わせ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す。神に波長を合わせるとき、神の心は光となってあなたの心の中にとどくのです。正しい指導者は神に波長を合わせることを説くのです。神に感謝し神に波長を合わせることに信仰の根源、信仰の本質があるのです。
당신이, 아무리 사람에게 파장을 맞추어 보아도,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신에게 감사하고 신에게 파장을 맞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신의 빛이 당신의 마음에 통했을 때에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신에게 파장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에게 파장을 맞출 때, 신의 마음은 빛이 되어 당신의 마음속에 닿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도자는 신에게 파장을 맞추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신에게 감사하고 신에게 파장을 맞추는 바에 신앙의 근원(根源), 신앙의 본질(本質)이 있는 것입니다.
第四章 神に祈ること
제4장 신에게 기도하는 것
暇があったら敬虔な気持ちで謙虚に神に祈りを捧げなさい。心を神にふりむけて祈るとき瞬時にして神の光はあなたの心の光となって、その心の光の中にあなたの身体は包まれてしまいます。オーラーというのは、あなたが、どれだけ神に感謝しているかという心の程度によって現わされてくるところの、神からの光なのです。
여유가 있으면 경건한 마음으로 겸허하게 신에게 기도를 드리십시오. 마음을 신에게 돌리고 기도할 때 순식간에 신의 빛은 당신의 마음의 빛이 되어, 그 마음의 빛 안에 당신의 신체는 감싸여 버리고 맙니다. 오라(Aura: 사람이나 사물이 주위에 발산한다고 하는 신령스러운 기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마음의 정도에 의해서 나타나며, 신으로부터 온 빛인 것입니다.
「神さま、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心から唱えられると瞬間的に心に安らぎを覚えられるでしょう。安らぎは、私達の魂に光が伝ってきたときに起る現象なのです。
「하느님(신령님), 감사합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하면 순간적으로 마음에 평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평안은, 우리들의 영혼에 빛이 전해져 왔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朝起きた時、夜休む時、仕事を始める時、仕事が終った時、或は道を歩るきながら、祈ろうと思えばいつでも祈ることが出来ます。 皆さんは、いつも、神に感謝の祈りをする人となってほしいのであります。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밤에 쉴 때, 일을 시작할 때, 일이 끝났을 때, 혹은 길을 걸으면서, 기도하려고 생각하면 언제나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法語 1978年10月2号
법어 1978년 10월 2호
週のはじめに一章づつよんで、その週の実践目標としてください。目標を持たないところには幸福はありません。
주초에 1장을 읽고, 그 주의 실천 목표로 삼아 주십시오. 목표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행복은 없습니다.
第五章 神は秩序である
제5장 신은 질서이다
秩序ということは、上があり下があり、右があり左があり、すべて物ごとには順序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
질서라고 하는 것은,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고, 오른쪽이 있고 왼쪽이 있고, 모두 매사(세상사)에는 순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あの世が、心の段階によって、如来界、菩薩界、神界、霊界、幽界と分かれているのも秩序です。神に感謝するということは同時に、神の秩序を重んずるということにならないといけないのであります。ですから、祈りにも秩序のある祈りが必要なので、高橋信次先生は、「大自然の波動と生命」の中につぎのように書いていられます。
저 세상이, 마음의 단계에 따라서, 여래계, 보살계, 신계, 영계, 유계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질서입니다. 신에게 감사한다고 하는 것은 동시에, 신의 질서를 존중한다 라고 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도 질서가 있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므로,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대자연의 파동과 생명」책 속에 다음과 같이 쓰고 계십니다.
「これらの如来(上段階光の大指導霊)、菩薩(上段階光の指導霊)は、神に人々の心を伝える現神であり、その前に、大神霊を拝してから、調和をよりよくお願いすべきであります。」
「이러한 여래(상단계 빛의 대지도령), 보살(상단계 빛의 지도령)은, 신에게 사람들의 마음을 전하는 현신이며, 그 전에, 대신령을 배례하고 나서, 조화를 보다 잘 부탁드려야 합니다」
秩序のある祈りの仕方が大事であるから、「祈願文」はその秩序の通りに書かれているのであります。
질서가 있는 기도의 방법이 중요하기 때문에,「기원문」은 그 질서대로 적혀 있는 것입니다.
「기원문」도 찾아서, 첨부하겠습니다.
제 블로그 어딘가의 글 속에 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일본 사이트에 있는 글을,
바로 불러와서, 번역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긴 내용인데, 상세한 설명이 없는, 전문을 올리겠습니다.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님의 말씀하신 글입니다. 아래-----------------
祈 願 文
기원문
祈いのりとは
기도는
神仏しんぶつの心こころと己おのれの心こころとの対話たいわである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과의 대화이다.
同時どうじに 感謝かんしゃの心こころが祈いのりでもある
동시에 감사의 마음이기도 하다.
神理しんりにかなう祈いのり心ごころで
신리에 맞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実践じっせんに移うつるとき
실천으로 옮길 때
神仏しんぶつの光ひかりはわが心身しんしんに燦然さんぜんと輝かがやき
신불의 빛은 내 심신에 찬연히 빛나며(반짝반짝 거리며 빛나며)
安やすらぎと調和ちょうわを与あたえずにはおかない
평안과 조화를 주지 않을 수 없다.
前 文
전문(한 편의 글에서, 앞부분에 해당하는 글)
私わたくしたちは神かみとの約束やくそくにより 天上界てんじょうかいより両親りょうしんを縁えんとして
저는 신과의 약속에 의해서 천상계에서 양친을 인연으로 해서
この地上界ちじょうかいに生うまれてきました
이 지상계에 태어났습니다.
慈悲じひと愛あいの心こころを持もって 調和ちょうわを目的もくてきとし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조화를 목적으로 삼고
人ひとびとと互たがいに手てを取とり合あって
사람들과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生いきて行ゆくことを誓ちかい合あいました
살아 갈 것을 서로 맹세했습니다.
しかるに
그런데도
地上界ちじょうかいに生うまれ出でた私わたくしたちは 天上界てんじょうかいでの神かみとの約束やくそくを忘わすれ
지상계에 태어난 우리들은 천상계에서의 신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周囲しゅういの環境かんきょう 教育きょういく 思想しそう 習慣しゅうかん そして五官ごかんに翻弄ほんろうされ
주위의 환경 교육 사상 관습 그리고 오관(눈,코,귀,입,자기의지)에 농락되어
慈悲じひと愛あいの心こころを見失みうしない 今日こんにちまで過すごしてまいりました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오늘까지 지내버리고(살아버리고) 말았습니다.
いまこうして正法しょうほうにふれ 過あやまち多おおき過去かこをふりかえると
지금 이렇게 정법을 접해서 지난 많은 잘못을 뒤돌아보니
自己保存じこほぞん 足たることを知しらぬ欲望よくぼうの愚おろかさに
자기보존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어리석움에
胸むねがつまる思おもいです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입니다.
神かみとの約束やくそくを思おもい出だし 自分じぶんを正ただす反省はんせいを毎日まいにち行おこない
신과의 약속을 생각해 내서 나를 바로잡는 반성을 매일 행하며
心行しんぎょうを心こころの糧かてとして 己おのれの使命しめいを果はたして行ゆきます
심행을 마믐의 양식으로 해서 내 자신의 사명을 달성해 가겠습니다(갑니다).
願ねがわくば 私わたくしたちの心こころに 神かみの光ひかりをお与あたえください
원컨대 제 마음에 신의 빛을 주십시오.
仏国土ぶっこくど・ユートピアの実現じつげんに お力ちからをおかしください
불국토 유토피아(이상향)의 실현에 힘을 실어 주십시오.
一、大宇宙大神霊だいうちゅうだいしんれい・仏ほとけよ
대우주대신령 신불이시여
わが心こころに光ひかりをお与あたえ下ください
제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心こころに安やすらぎをお与あたえください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心行しんぎょうを己おのれの糧かてとして
심행을 제 양식으로 삼아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をします
매일매일의 생활을 합니다.
日々ひびのご指導しどう 心こころから感謝かんしゃします
매일매일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一、天上界てんじょうかいの諸如来しょにょらい 諸菩薩しょぼさつ(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
천상계의 모든 여래, 모든 보살(빛의 천사)이시어
わが心こころに光ひかりをお与あたええください
제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心こころに安やすらぎをお与あたえください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心行しんぎょうを己おのれの糧かてとして
심행을 제 양식으로 삼아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をします
매일매일의 생활을 합니다.
日々ひびのご指導ごしどう 心こころから感謝かんしゃします
매일매일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一、天上界てんじょうかいの諸天善神しょてんぜんじん
천상계의 제천선신이시여.
わが心こころに光ひかりをお与あたえください
제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心こころに安やすらぎをお与あたえください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わが心こころを正ただし
제 마음을 바로잡고
いっさいの魔まよりお守まもりください
일체의 마(魔)로부터 지켜주십시오.
日々ひびのご指導しどう 心こころから感謝かんしゃします
매일매일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一、わが心こころの中なかにまします 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よ
제 마음속에 계시는 수호령 지도령이시어
わが心こころを正ただしくお導みちびきください
제 마음을 바로잡게 지도해 주십시오.
心こころに安やすらぎをお与あたえください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日々ひびのご指導しどう 心こころから感謝かんしゃします
매일매일의 지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一、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
만생만물이시어
わが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修行しゅぎょうにご協力きょうりょく
저의 현상계의 수행에 협력해 주셔서
心こころから感謝かんしゃします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一、先祖代々せんぞだいだいの諸霊しょれい
조상대대로의 모든 영령이시어
われに修行しゅぎょうの体からだを お与あたえくださいまして
제게 수행의 몸을 제공해 주셔서
心こころから感謝かんしゃします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諸霊しょれいの冥福めいふくを 心こころから供養くよういたします
모든 영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공양드립니다.
출처는, http://www.shoho2.com/t1-1-3kiganbun.html ,입니다.
위 짧은 내용에 대한, 심도깊은 해설이 있는데요, 제 블로그에 여기저기에 있는데,
아래 올린 내용에도 들어 있습니다.
心行しんぎょうを己おのれの糧かてとして
심행을 제 양식으로 삼아
에 대한 도움을 드리고자, 아래 올립니다.
(심행은, 반야심경을 말하는 데요, 제 블로그에 반야심경 전문과 상세한 풀이 내용 또한 있습니다.
제목은 원설반야심경, 그 외 또 있습니다.)
그 안에, 위 내용에 대한 해설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찾아 봐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심행(心行)의 해설(解説) (상)-高僑信次(다카하시 신지)의 강연집/1975/
(병행하여 참고하시길 바라며)
참고로, 이미 제 블로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에 있는,
아래의 글을, 첨부합니다. (2018년 3월 22일 오후 6시 40분에)
내용이 좀 깁니다.
반복되는 글도 있습니다.
『천도문(遷度文) = (인도문(引導文)』과 『심행(心行)』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
인도문(引 導 文)=(천도문:遷度文)
『심행(心行)』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
これは、高橋信次先生が、叔母様が亡くなられた時に引導を渡されたものですが、
創価学会であった為日蓮上人とあります。
その他、○○とある所は適宜(てきぎ)計らい下さい。
一般の方にも出来るように少し変えた所もあります。
이것은,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이, 숙모님이 죽었을 때에, 인도(引導:천도[遷度])를 했던 것인데,
창가학회에 있었기 때문에 니찌렌 상인과 있습니다. ( 이 부분은, 좀 이상합니다만??)
그 밖의, 00와 있는 곳은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일반인에게도 할 수 있도록 약간 바꾼 곳도 있습니다.
※ 본 내용의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밑에 소개된 글의 내용을 보면, 아주 쉽습니다.
제가 평소에 손님이라고 칭하는, 영혼들, 특히 지옥에 계신 분들이 제게 올 때, 혹은 제가 일부로 이름을 불러서 오시게 했을 때나, 사고지역이나 그런 경우에, 혹은 예전에 제 육체 조상님들에게, 할 때, 했던 방법들이,
여기에 나와 있었습니다.
참고로, 본문에도 있지만, 마음이 조화된 상태에서, 화가 안 난 상태에서, 해야만 합니다.
영혼을 불러 들일 때는, 잘못하면, 빙의됩니다.
밤에 잠을 잘까 하다, 그냥 생각이 나서, 자정 좀 넘어서, 지금 새벽 6시 조금 넘었습니다.
출근합니다. 했습니다. 2014년 9월 4일에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
○○さん私です。貴方(あなた)は死んだののです
○○씨 접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私がわかりますか。
저를 알겠습니까?
貴方はこの世での修業は終わったのです。生きている時、私が話した事を思い出して下さい。
당신은 이 세상에서의 수행을 마친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제가 말한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今、貴方は、私達この世の人達の目には見えませんが、貴方はみんなが集まっているのがわかりますね。
지금, 당신은, 저희들 이 세상의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당신은 모두 모여있는 것을 알 수 있지요.
今、貴方の人生の卒業式にみんな集まっているのですよ。
지금, 당신의 인생의 졸업식에 모두 모여있는 것이지요.
貴方は、私達生きている人達と違う光の体です。光子体という体に乗り換えたのです。
당신은, 우리들 살아있는 사람들과 다른 빛의 몸입니다. 광자체라고 하는 몸으로 갈아탄 것입니다.
私の声は良く聞こえるでしょう。今、私が光を入れたから楽になったでしょう。
제 목소리는 잘 들릴 것입니다. 제가 빛은 넣었기 때문에 편안해졌을 것입니다.
これから、私の話すことを良く聞き、忘れずに実行して下さい。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잊지 마시고 실행해 주십시오.
私達人間は、何の為に生まれて来たのでしょう。
우리들 인간은, 무엇 때문에 태어난 것일까요?
それは、あの世もこの世も神様が創られ神様の体なのです。その神様の体を調和させる為に万物の霊長として産声をあげたのです。
그것은, 저 세상도 이 세상도 하느님이 만드신 신의 몸입니다. 그 하느님의 몸을 조화시키기 위해 만물의 영장으로서 태어난 것입니다.
神様の体の中で、争いや戦争をされたのでは、神様は困ってしまいます。
하느님의 몸속에서, 다툼(싸움)이나 전쟁을 한 것으로 인해, 하느님은 난처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だから私達人間は、この神様の意志である調和を目指す神の子として、与えられた仕事をして、悲しみや苦しみに負けず、魂・心を磨き進化させるために生まれて来たのです。
그래서 우리들 인간은, 이 분인 하느님의 의지인 조화를 목표로 하여 신의 자녀로서, 주어진 일을 하고, 슬픔이나 괴로움에 지지않고, 영혼과 마음을 연마하고 진화하게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ですが、私達の目には、今貴方の姿が見えないように大変不自由な目です。また耳も、今、貴方の声が聞こえないように不自由な耳です。
그렇지만, 우리들의 눈으로는, 지금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듯이 매우 불편한 눈(目)입니다. 또한 귀로도, 지금,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불편한 귀입니다.
神様は人間を創った時、あの世の人が見ると盲目と同じように創ったのです。
하느님은 인간을 만들었을 때, 저 세상의 사람이 보면 장님과 마찬가지로 만든 것입니다.
わかりますか。
이해되십니까?
ですから、お釈迦様でも、日蓮上人でも、みんなこの世に出ると盲目同然になり、この地上界を魂・心の修行場として生まれて来たのです。
그러므로, 부처님(석가모니)도, 니찌렌 상인도, 모두 이 세상에 나오면 장님과 다름없이 되어, 이 지상계를 영혼과 마음의 수행장으로 해서 태어났던 것입니다.
この大変難しい世の中で、修行を成し遂げた方が悟ったということです。
이렇게 대단히 어려운 세상에서, 수행을 해 낸 분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大きく悟った方がお釈迦様です。( 高橋信次先生です )
크게 깨달은 분이 부처님입니다(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입니다.)
そして多くの人々を救い、人間の生き方を教えたのです。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돕고(구하고), 인간의 사는 법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それが仏教です。それが正法です。
그것이 불교입니다. 그것이 정법입니다.
私も貴方もみんな盲目のように、人生の荒波の中でどうしても自分が大事で、自分中心になってしまうのです。
저도 당신도 모두 장님처럼,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중요하며, 자기 중심이 되어 버리는 마는 것입니다.
だからある時は怒り、人を恨み、また悪口を言い、また妬(ねた)んだり、愚痴を言ったりするのです。
그래서 어떤 때는 화를 내고, 남을 원망하고, 또한 욕을 하고, 또한 질투를 하거나, 불평(푸념)을 하는 것입니다.
何とかして自分を良くしようと、嫌なことがあると皆のせいに、人のせいにしてしまうのです。
어떻게든 자신을 좋게 하려고, 싫어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의 탓으로, 남의 탓으로 돌려 버리고 맙니다.
あの人が悪い、この人が悪いと、自分だけは正しいというようにして、この人生を終わってしまうのです。
これは本当にみんな大変いけない事なんです。
저 사람이 나쁘다, 이 사람이 나쁘다며, 자기자신만은 올바르다고 하며 하는 식으로 해서, 이 인생을 끝마쳐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모두 아주 좋지 않은 것입니다.
私達人間は万物の霊長として、この地上界で一番偉いのです。
犬や猫とは違うのです。
우리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이 지상계에서 가장 위대합니다.
개나 고양이와는 다릅니다.
だから神様と同じように、この人生を過ごして行かなかったことを、何卒神様赦してあげてください。
그래서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이 인생을 보내고 가지 않았던 것을, 부디 하느님 용서해 주십시오.
今貴方は神の子としての裁きを、自分の善なる心・良心で受けるのです。
지금 당신은 신의 자녀로서의 심판을, 자신의 선한 마음과 양심으로 받는 것입니다.
いいですか。子供の時はどうだったか、お父様、お母様を困らせるようなことはなかったか。
友達に意地悪はしなかったか。
向こうがやったから私もやったんだ、ということは駄目なんです。
괜찮습니까? 어릴 때는 어땠는지, 아버지, 어머니를 난처하게 했던 일은 없었는지?
친구에게 심술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상대편이 그렇게 했으니까 나도 그렇게 했다, 고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私達は神の子です。
우리들은 신의 자녀입니다.
相手のことは一切言ってはなりません。
상대방의 일은 일체 말해서는 안 됩니다.
相手が悪ければ、その人はその悪い分量だけ苦しむでしょう。
その償いは、必ずその人が受けるのです。
だから私達は、人のことは言ってはいけません。
상대가 나쁜 짓을 하면, 그 사람은 그 나쁜 짓을 한 분량만큼 고통받는(시달리는) 것이니까요.
그 보상은, 반드시 그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일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自分の心で悪いと思うことがあったら手を合わせ、
神様に「どうか私をお許しください」と心からお詫びをして下さい。
자기 마음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합장을 하고,
하느님에게,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진심으로 사죄를 해 주십시오.
そして小さい時からのことを思い出して、
青年(娘)の頃はどうだったか、結婚してからは良き夫(妻)であったでしょうか、
良き父(母)であったでしょうか。
그리고 어릴 때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 내고,
청년(아가씨)인 시절에는 어땠는지, 결혼 한 후에는 좋은 남편(아내)이었던지,
좋은 아버지(어머니)였는지를.
貴方は生まれて死ぬまでの一生を生きたのですから、良く考えて人に悪い思いをさせたことを反省して下さい。
당신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살았던 것이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남에게 나쁜 생각을 했던 것을반성해 주십시오.
心からするのです。
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本当に心から、誰々さんにあの時申し訳なかったと反省すれば、あなたは許されるのです。
정말로 진심으로, 누구누구에게 저 때의 일을 미안했습니다. 라고 반성을 하면, 당신은 용서받는 것입니다.
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の○○年間を反省すれば、貴方は光の世界に行けるのです。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년간을 반성하면, 당신은 빛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そこは天国です。極楽です。
그곳은 천국입니다. 극락입니다.
たとえお釈迦さまにお願いしても、日蓮上人にお願いしても天国に行くことは出来ません。
설령 부처님에 부탁을 드려도, 니찌렌 상인에게 부탁을 드려도 천국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私達人間を助けることの出来るのは、自分だけなのです。
自分の善なる心です。それは反省しかないのです。
우리들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자신의 선한 마음입니다. 그것은 반성밖에 없는 것입니다.
自分が作った罪は自分が償うのです。他人がやって、消してや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
자신이 만든 죄는 자신이 갚는 것입니다. 타인이 갚아주고, 없애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分かりますか。○○さん、
알겠습니까? ○○씨,
今まで長い年月、病気の貴方を見て来ました。
私も貴方を助ける事は出来ないのです。
私は貴方が助かる方法を、早く天国に帰れる方法を、教えてやれるだけなのです。
지금까지 오랜 세월, 병이 든 당신을 보려 왔습니다.
저도 당신을 도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빨리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뿐입니다.
これが宇宙の決まりです。天国に行けるのは、貴方自身の反省しかないのです。
이것이 우주의 규칙(질서 決まり)입니다.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의 반성밖에 없는 것입니다.
分かりますか、○○さん。
알겠습니까? ○○씨.
それからいくら苦しくとも、今生きている人達に頼って憑(つ)いてはいけません。
그리고 아무리 괴로워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여 빙의해서는 안 됩니다.
憑けば又罪を作ってしまいます。
又お墓に行くのでもありません。もちろん家に帰ってもいけません。
빙의하면 또한 죄를 짓고 맙니다.
또 무덤으로 가서도 안 됩니다. 물론 집으로 돌아와서도 안 됩니다.
私が貴方に話したように、反省しますと、貴方の守護霊、魂の兄弟が迎えに来てくれます。
又、友達で悟られた方、先祖で悟られた方々が迎えに来てくれます。
제가 당신에게 부탁했듯이, 반성하면, 당신의 수호령, 영혼의 형제가 맞이하려 와 줍니다.
또한, 친구이며 깨달은 분, 조상이며 깨달은 분들이 맞이하려 와 줍니다.
この迎えに来てくれた人達と行くのです。
そこは収容所です。収容所以外は地獄です。
이 맞이하려 와 준 사람들과 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수용소입니다. 수용소 이외는 지옥입니다.
だから、その収容所で反省するのです。
그래서, 그 수용소에서 반성하는 것입니다.
天国は貴方の心次第です。
そこは、光明の世界です。
明るい世界です。わかりますか。
천국은 당신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그곳은, 광명의 세계입니다.
밝은 세계입니다. 알겠습니까?
最後に、私も貴方にお世話になりました。本当に有り難うございました。
悲しみにつけ、苦しみにつけ、喜びにつけ、○○年間大変お世話になりました。
마지막으로, 저도 당신에게 신세가 많았습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슬프거나, 괴롭거나, 기쁘거나, ○○년 동안 대단히 신세가 많았습니다.
お許し下さい。心からお詫び致します。
용서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心から貴方の、ご冥福をお祈り致します。
진심으로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 終わり -
-끝-
心の原点 213ページより
마음의 원점 213페이지에서
亡くなった直後の肉体先祖の前に、感謝の心を捧げて花や食物の供養をする、それは良いことだ。
죽은 직후의 육체조상님 앞에, 감사의 마음을 드리려 꽃이나 음식물을 공양을 한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なぜなら、死亡したばかりの者達の多くは、この地上界での生活の延長を意識している者達が多いからである。
왜냐하면, 갓 죽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지상계에서의 생활의 연장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そのため、食事という問題については、彼らも希望している場合があるからだ。
그 때문에, 식사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도 희망하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しかし、内臓疾患などによって、この世を去るとき、食事もほとんどのどにとおらなかったような者達に、供養しても無駄である。
하지만, 내장질환 등으로 인해서, 이 세상을 떠날 때, 식사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공양해도 소용없습니다.
彼ら自らが、なぜ死な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か、ということが理解できない場合、そのほとんどが地獄界に堕ちてしまう場合が多いからである。
그들 자신이, 왜 죽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그 대부분이 지옥계로 떨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そういう者には、死に対する原因と、人生における行為と心の在り方を、正しいという心の規準で、その誤りを教えてやることが大事なのである。그러한 사람에게는, 죽음에 대한 원인과, 인생에 있어서의 행위와 마음의 바람직한 상태(본연의 자세)를, 올바르다고 하는 마음의 규준으로, 그 잘못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それに、いかにむずかしい経文を唱えても、生前に解らなかった人々が、死んですぐ解るわけはないのだ。
彼らに解りやすい言葉で、一切の執着から離れる方法を教えてやることが先決なのである。
그들에게, 아무리 어려운 경문을 들려줘도, 생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죽자마자 이해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말로,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선결인 것이다.
病気で亡くなった人々に対しては、
병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もはやあなたは病気ではないのだ。今までの肉体は滅びても、新しい肉体の舟を持っているではないか、今のあなたは病気から解放されたのだ。
「이제는 당신은 병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육체는 멸해도, 새로운 배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 당신은 병에서 해방된 것이다.
古い肉体は消失しても、腐敗しても、すでにあなたはこの地上界の者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自覚して、自分自身に嘘のつけない、善なる心で、人生におけるあなたの思ったこと、行ったことを一つ一つ反省して、もし誤りがみつかったならば、心から神にお詫びすることだ。その時、あなたの心の曇りは晴れ、神の光によって満たされ、あなたは救われるのだ」
오래된 육체는 소실되어도, 부패되어도, 이미 당신은 이 지상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자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한 마음으로, 인생에 있어서의 당신의 생각한 것, 행한 것을 일일이 반성하고, 만약 잘못을 찾게 되면,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를 드리는 일이다. 그 때, 당신의 마음의 흐림은 개고(마음의 우울함은 가시고, 당신의 마음은 떳떳해지고), 신의 빛으로 가득차서, 당신은 구제되는 것이다. 」,
と噛んで含めるように教えてやることが大事であるということだ。
라고 잘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 終わり -
-끝 -
正法誌 40号 より ( 1981.12月 )
정법지 40호에서 (1981년 12월호)
不成仏霊を成仏させる正しい方
성불하지 못한 영혼[깨닫지 못한 영혼]을 성불시키는 올바른 방법
たとえその死に方が事故死であろうと、変死であろうと、現在の日本では多くの場合は葬式の時にお坊さんが来て「成仏できる」とお経を上げ、その後も命日にはお経を上げているわけである。それでも成仏できない霊がいるから、いろいろな霊的現象が起ってきているわけである。
설령 그 죽음에 방식이 사고사일지라도, 변사일지라도, 현재의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경우는 장례식 때에 스님이 와서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경문을 들려 주고, 그 후에도 제삿날에는 경문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불하지 못하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영적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護摩供養は生きている人の一時の気休めにはなっても、それでカルマと霊障害が断ち切れられることには絶対にならない。
호마공양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일시적인 위안은 되어도, 그것으로 업(카르마)과 영혼의 장해(靈障害)을 끊을 수는 절대로 없다.
ではどうすればいいのであるか。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それにはまず供養する人が心を調和させてからすることが大事である。
그것에는 우선 공양하는 사람이 마음을 조화시키고 난 후에 하는 것이 중요하다.
1.神が全宇宙の創造主であり、神は智慧そのもの、慈悲そのものであることを信ずること。
신이 전우주의 창조주이며, 신은 지혜 그 자체이며, 자비 그 자체임을 믿는 것.
2.人間は神の子であり、自分の心の中に、神の智慧と慈悲が存在することを自覚すること。
인간은 신의 자녀이며, 자신의 마음속에, 신의 지혜와 자비가 존재하는 것을 자각하는 것.
3.肉体は、霊の修行のための乗りものであって、本当の自分ではないことを自覚すること。
육체는, 영혼의 수행을 위한 탈 것이며, 진실한 자신이 아닌 점을 자각하는 것.
4.この世のものは、霊を修行するための単なる道具であることを知って、この世のものに執着しないこと。
이 세상의 것은, 영혼을 수행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인 점을 알고,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
5.以上のことをよく自覚した上で、心を明るく調和させること。
이상의 것을 잘 자각한 후에, 마음을 밝게 조화시키는 것이다.
調和したいと思っていても、現実には不調和でとても調和する心にはなれないという人もいるであろう。
また、自分は正法で調和したいと思っていても、家族が反対しているという場合もあるであろう。
조화되고 싶다고 생각해도, 현실에서는 부조화되어 도저히 조화되는 마음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은 정법으로 조화되고 싶다고 생각해도, 가족이 반대하고 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現実がまだ不調和であるからといってそれにとらわれる必要はないのである。誰しもが、一足飛びに完全に調和するということは出来ないのであるし、徐々に調和されていくのがこの地上の、現象界の相なのであるから、たとえ現実はまだ不調和であり、家族は反対していても、心の中に調和された状態をアリアリと描いて、自分の心の波長を神に合わせる気持ちで、「先祖供養」を唱えればいいのである。
현실이 아직 부조화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누구나, 단숨에 완전히 조화할 수는 없는 것이고, 서서히 조화되어 가는 것이 이 지상의, 현상계의 상태인 것이기 때문에, 설령 현실은 아직 부조화하고, 가족은 반대하고 있어도, 마음속에 조화된 상태를 뚜렷이 그리며, 자신의 마음의 파장을 신에게 맞추는 기분으로, 「선조공양(先祖供養)」을 하면 좋은 것이다.
先祖供養
선조공양
先祖代々の諸霊よ 私たちに肉体をお与えくださいまし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조상대대로의 모든 영혼이여, 저희들에게 육체를 주시어서 고맙습니다.
私たちは神仏の子としての使命を悟り 正法の生活を実践しております。
저희들은 신불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깨닫고, 정법의 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皆さまの冥福を心からお祈りいたします。
여러분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もし諸霊の中に 暗い世界におられる先祖がございましたら よく私の申し上げる神理をお聴きください。만약 모든 영혼 중에, 어두운 세계에 계시는 조상이 계시다면, 자세히 제가 말씀드리는 신리를 경청해 주십시오.
皆さまは この世の肉体は持っておられませんが 私の話しはおわかりいただけるはずです。
여러분은, 이 세상의 육체는 가지고 계시지 않지만, 제 말은 이해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暗い世界は地獄でございます。
어두운 세계는 지옥입니다.
なぜ地獄で生活しておられるのか おわかりになりますでしょうか。
왜 지옥에서 생활하고 계신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셨습니까?
それは 人間として生活しておられたときに 神仏の子としての使命を果たさなかったからでございます。그것은 인간으로 생활하고 계셨을 때에, 신불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自分のことばかりを考えて 心から人びとに慈悲や愛を与えたでしょうか。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자비나 사랑을 주셨습니까?
人を恨んだり 妬んだり そしったり 怒(いか)ったりしたことをよく思い出されて
남을 원망하거나 질투하거나 비난하거나 화를 내거나 한 것을 잘 생각해 내서
悪かったことを反省してください。
나쁜 짓을 한 것을 반성해 주십시오.
自分でつくった過ちを反省し 神の許しをお願いしてください。
자신이 만든 잘못을 반성하고 신의 용서를 부탁해 주십시오.
心は安らぎ 必ず天上界に行(ゆ)けます。
마음은 편안하고 반드시 천상계로 갈 수 있습니다.
神理の経文を供養いたしますから よく心に受けとめてください。
신리의 경문을 공양해 드리고 있으니까 잘 마음에 받아들여 주십시오.
( 心行を朗読し、最後に )
( 심행을 낭송하고, 마지막으로 )
★ 2017년 4월 24일 현재, 오늘날까지 스크랩이나 메일로 가져가신 분들께 알립니다.
본 블로그 『가르침의 글』2011년 5월 14일에 올린 『심행(心行)』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내용을 올립니다.
心 行
심 행
心行(しんぎょう)は 宇宙(うちゅう)の神理(しんり)
人間(にんげん)の心(こころ)を 言霊(ことだま)によって表現(ひょうげん)したものである
それゆえ心行(しんぎょう)は 拝(おが)むものでも 暗記(あんき)するものでもなく
これを理解(りかい)し 行(おこな)うものである
正法(しょうほう)は実践(じっせん)のなかにこそ
生命(せいめい)が宿(やど)ることを知(し)れ
심행은 우주의 신리
인간의 마음을 말(言霊)에 의해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심행은 두손 모아 비는 것도 암기하는 것도 아니며
이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정법은 실천 가운데에서야말로
생명이 깃드는 것임을 알라
われいま見聞(けんもん)し 正法(しょうほう)に帰依(きえ)することを得(え)たり
広大(こうだい)なる宇宙体(うちゅうたい)は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の根元(こんげん)にして
万生万物相互(ばんしょうばんぶつそうご)の作用(さよう)により 転生輪廻(てんしょうりんね)の法(ほう)に従(したが)う
大宇宙大自然界(だいうちゅうだいしぜんかい)に意識(いしき)あり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정법에 귀의하는 것을 얻었나니
광대한 우주의 몸은 만생만물의 근원으로서
만생만물 상호의 작용에 의해 전생윤회의 법에 따른
대우주 대자연계에 의식이며
意識(いしき)は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を支配(しはい)し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をして調和(ちょうわ)の姿(すがた)を示(しめ)さん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は広大無辺(こうだいむへん)な大慈悲(だいじひ)なり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は意識(いしき)の当体(とうたい)にして 意識(いしき)の中心(ちゅうしん)は心(こころ)なり
의식은 대우주의 몸을 지배하고 만생만물을 위해 조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생만물은 광대무변한 대자비이며
대우주의 몸은 의식의 본체로서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며
心(こころ)は慈悲(じひ)と愛(あい)の塊(かたまり)にして 当体(とうたい)・意識(いしき)は不二(ふじ)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この大意識(だいいしき)こそ 大宇宙大神霊(だいうちゅうだいしんれい)・仏(ほとけ)なるべし
神仏(しんぶつ)なるがゆえに 当体(とうたい)は大神体(だいしんたい)なり
마음은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로서 본체・의식은 둘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큰 의식이야말로 대우주 대신령・부처님인 것이 당연하다.
신불이므로 본체는 큰 신(神)의 몸이니라.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における太陽系(たいようけい)は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の 小(ちい)さな諸器官(しょきかん)のひとつにすぎず
地球(ちきゅう)は 小(ちい)さな細胞体(さいぼうたい)なることを知(し)るべし
当体(とうたい)の細胞(さいぼう)なるがゆえに 細胞(さいぼう)に意識(いしき)あり
かくのごとく 万物(ばんぶつ)すべて生命(せいめい)にして エネルギーの塊(かたまり)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이 현상계에 있어서의 태양계는 대우주의 몸의 작은 여러 기관의 하나에 불과하며
지구는 작은 세포체인 것을 알아야 한다.
본체의 세포이므로 세포에 의식이 있으며
요러하듯이 만물 모든 생명으로서 에너지의 덩어리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は大神体(だいしんたい)なるがゆえに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地球(ちきゅう)も神体(しんたい)なり
神体(しんたい)なるがゆえに 大神殿(だいしんでん)なるべし
大神殿(だいしんでん)は 万生(ばんしょう) 魂(たましい)の修行所(しゅぎょうじょ)なり
대우주의 몸은 큰 신(神)의 몸이므로 이 현상계의 지구도 신(神)의 몸이며
신(神)의 몸이므로 큰 신(神)의 집이 됨이 당연하다.
큰 신(神)의 집은 모든 생명, 영혼(魂)의 수행장이니라.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 みなここに集(あつ)まれり
諸霊(しょれい)の輪廻(りんね)は 三世(さんぜ)の流転(るてん)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で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磨(みが)き
神意(しんい)に添(そ)った仏国土(ぶつこくど)・ユートピアを建設(けんせつ)せんがためなり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은 모두 여기에 모이며
여러 영혼(靈)의 윤회는 삼세의 유전
이 현상계에서 자기의 영혼(魂)을 연마하고
신(神)의 뜻에 따른 불국토・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이니라.
さらに 宇宙体万生(うちゅうたいばんしょう)が 神意(しんい)にかなう 調和(ちょうわ)のとれた世界(せかい)を建設(けんせつ)せんがため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修行(しゅぎょう)せ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더욱 더 우주의 몸인 모든 생명이 신(神)의 뜻에 맞는 조화를 이룬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기의 영혼(魂)을 수행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過去世(かこせ) 現世(げんせ) 来世(らいせ)の三世(さんぜ)は 生命流転(せいめいるてん)の過程(かてい)にして
永久(とわ)に不変(ふへん)なることを知(しる)るべし
과거세[전생](過去世), 이 세상(現世), 사후의 세계(來世)의 삼세는 생명유전의 과정으로서
영구히 불변한 것을 알아야 한다.
過去世(かこせ)は 己(おのれ)が修行(しゅぎょう)せし前世(ぜんせ)
すなわち 過(す)ぎ去(さ)りし実在界(じつざいかい)と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世界(せかい)なり
과거세는 자기가 수행하고 전생(前世)
즉 지나가 버리고, 실재계와 현상계의 세계이며
現世(げんせ)は生命(せいめい)・物質(ぶっしつ)不二(ふじ)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 この世界(せかい)のことなり
熱(ねつ) 光(ひかり) 環境(かんきょう) いっさいを含(ふく)めて エネルギーの塊(かたま)りにして
われら生命意識(せいめいいしき)の修行所(しゅぎょうじょ)なり
현세(이 세상)는 생명・물질이 둘이 아닌 현상계, 이 세계인 것이며
빛・열・환경 전부를 포함하고 에너지의 덩어리로서
우리들의 생명 의식의 수행소이니라.
神仏(しんぶつ)より与(あた)えられし 慈悲(じひ)と愛(あい)の環境(かんきょう)なることを感謝(かんしゃ)すべし
来世(らいせ)は次元(じげん)の異(こと)なる世界(せかい)にして 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肉体(にくたい)を去(さ)りし諸霊(しょれい)の世界(せかい)なり
意識(いしき)の調和度(ちょうわど)により 段階(だんかい)あり
신불(神佛)에 의해 주어지고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것을 감사해야 하며
사후의 세계는 차원의 다른 세계로서 현상계의 육체를 버리고 여러 영혼(諸霊)의 세계이니라.
의식의 조화도에 의해 단계가 있고
この段階(だんかい)は 神仏(しんぶつ)の心(こころ)と己(おのれ)の心(こころ)の調和度(ちょうわど)による 光(ひかり)の量(りょう)の区域(くいき)なり
神仏(しんぶつ)と表裏一体(ひょうりいったい)の諸霊(しょれい)は 光明(こうみょう)に満(み)ち
実在(じつざい)の世界(せかい)にあって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を善導(ぜんどう)する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なり
이 단계는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도에 의해 빛의 량의 구역이며
신불과 표리일체의 모든 영혼(諸霊)은, 광명에 충만하고
실재의 세계에 있고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을 선도하는 빛의 천사이니라.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 すなわち 諸如来(しょにょらい) 諸菩薩(しょぼさつ)のことなり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は 神仏(しんぶつ)よりいっさいの権限(けんげん)を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に委(ゆだ)ねしところなり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は慈悲(じひ)と愛(あい)の塊(かたま)りにして あの世(よ) この世(よ)の諸霊(しょれい)を導(みちび)かん
빛의 천사 즉 여러 여래, 여러 보살인 것이니라.
이 현상계는 신불에 의해 모든 권한을 빛의 천사에게 위임한 곳이며
빛의 천사는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로서 저 세상, 이 세상 여러 영혼(諸霊)을 인도한다.
さらに 諸天善神(しょてんぜんじん)あり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を いっさいの魔(ま)より守(まも)り 正(ただ)しき衆生(しゅじょう)を擁護(ようご)せん
더욱 더 여러 하늘의 선한 신(제천선신)이며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을 모든 마귀(악마)에게서 지키고 올바른 중생을 응원한다.
肉体(にくたい)を有(ゆう)する現世(げんせ)の天使(てんし)は 諸々(もろもろ)の衆生(しゅじょう)に正法神理(しょうほうしんり)を説(と)き 調和(ちょうわ)の光明(こうみょう)へ導(みちび)かん
육체를 소유한 현세(이 세상)의 천사는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에게 정법신리를 설명하고 조화의 광명으로 인도한다.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におけるわれらは
過去世(かこせ)において 己(おのれ)が望(のぞ)み 両親(りょうしん)より与(あた)えられし 肉体(にくたい)という舟(ふね)に乗(の)り
人生航路(じんせいこうろ)の海原(うなばら)へ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魂(たましい)を磨(みが)き
神意(しんい)の仏国土(ぶつこくど)を造(つく)らんがため 生(う)まれ出(いで)た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肉体(にくたい)の支配者(しはいしゃ)は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なり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の中心(ちゅうしん)は心(こころ)なり
이 현상계에 있어서 우리들은
과거세에서 자기의 희망, 양친에 의해 주어지고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항로의 넓은 바다로 자기의 의식・영혼(魂)을 연마하고
신(神)의 뜻인 불국토를 구축하기 위해서 태어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육체의 지배자는 자기의 의식이며 자기의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니라.
心(こころ)は実在(じつざい)の世界(せかい)に通(つう)じ 己(おのれ)の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が 常(つね)に善導(ぜんどう)せることを忘(わす)れるべからず
善導(ぜんどう)せるがために 己(おのれ)の心(こころ)は 己自身(おのれじしん)に忠実(ちゅうじつ)なることを知(し)るべし
마음은 실재의 세계로 통하고 자기의 수호・지도령이 늘 선도해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도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しかるに 諸々(もろもろ)の衆生(しゅじょう)は 己(おのれ)の肉体(にくたい)に 意識(いしき)・心(こころ)が支配(しはい)され
己(おのれ)が前世(ぜんせ)の約束(やくそく)を忘(わす)れ 自己保存(じこほぞん) 自我我欲(じががよく)に明(あ)け暮(く)れて
己(おのれ)の心(こころ)の魔(ま)に支配(しはい)され 神意(しんい)に反(はん)し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を過(す)ぎ行(ゆ)かん
また 生老病死(しょうろうびょうし)の苦(くる)しみを受(う)け 己(おのれ)の本性(ほんしょう)も忘(わす)れ去(さ)るものなり
그런데도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은 자기의 육체에 의식・마음이 지배되어
자기가 전생(前世)의 약속를 잊어버리고 자기보존, 자아아욕에 세월을 보내며
자기의 마음의 마귀(악마)에게 지배되어 신(神)의 뜻을 배반하고 이 현상계를 지나쳐 간다.
또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받고, 자기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이니라.
その原因(げんいん)は煩悩(ぼんのう)なり
煩悩(ぼんのう)は 眼(げん)・耳(にい)・鼻(び)・舌(ぜつ)・身(しん)・意(い)の六根(ろっこん)が根元(こんげん)なり
六根(ろっこん)の調和(ちょうわ)は 常(つね)に中道(ちゅうどう)を根本(こんぽん)として 己(おのれ)の正(ただ)しい心(こころ)に問(と)うことなり
그 원인은 번뇌이며
번뇌는 눈・귀・코・혀・몸・의식의 육근이 근원이며
육근의 조화는 늘 중도를 근본으로서 자기의 올바른 마음에 묻는 것이니라.
己(おのれ)の正(ただ)しい心(こころ)に問(と)うことは反省(はんせい)にして
反省(はんせい)の心(こころ)は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が浄化(じょうか)され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자기의 올바른 마음에 묻는 것은 반성으로서
반성의 마음은 자기의 영혼(魂)이 정화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己自身(おのれじしん)は孤独(こどく)に非(あら)ず
意識(いしき)のなかに己(おのれ)に関連(かんれん)せし 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の存在(そんざい)を知(し)るべし
자기 자신은 고독하지 않으며
의식 속에 자기에게 연결되어 있는 수호・지도령의 존재를 알야할 것이다.
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に感謝(かんしゃ)し さらに反省(はんせい)は
己(おのれ)の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の 導(みちび)きを受(う)けることを知(し)るべし
六根(ろっこん)あるがゆえに 己(おのれ)が悟(さと)れば 菩提(ぼだい)と化(か)すことを悟(さと)るべし
수호 지도령에게 감사하고, 더욱 더 반성은
자기의 수호・지도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육근이므로, 자기가 깨달으면 보리로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神仏(しんぶつ)の大慈悲(だいじひ)に感謝(かんしゃ)し 万生相互(ばんしょうそうご)の調和(ちょうわ)の心(こころ)が 神意(しんい)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신불의 대자비에 감사하고 만생상호의 조화의 마음이 신의 뜻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肉体先祖(にくたいせんぞ)に報恩供養(ほうおんくよう)の心(こころ)を忘(わす)れず 両親(りょうしん)に対(たい)しては 孝養(こうよう)を尽(つく)すべし
心身(しんしん)を調和(ちょうわ)し 常(つね)に健全(けんぜん)な生活(せいかつ)をし 平和(へいわ)な環境(かんきょう)を造(つく)るべし
육체 선조에게 은혜를 갚는 공양의 마음을 잊지 않고, 양친에 대해서는 효도를 다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조화하고, 늘 건전한 생활을 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肉体保存(にくたいほぞん)のエネルギー源(げん)は 万生(ばんしょう)を含(ふく)め 動物(どうぶつ)・植物(しょくぶつ)・鉱物(こうぶつ)なり
このエネルギー源(げん)に感謝(かんしゃ)の心(こころ)を忘(わす)れず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中(なか)において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修行(しゅぎょう)すべし
己(おのれ)の心(こころ)・意識(いしき)のエネルギー源(げん)は
調和(ちょうわ)のとれた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なかに 神仏(しんぶつ)より与(あた)えられ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육체보존의 에너지원은 모든 생명을 포함해서 동물・식물 ・광물이며
이 에너지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기의 영혼(魂)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의식의 에너지원은
조화에 따른 일상의 생활 속에 신불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己(おのれ)の肉体(にくたい)が苦(くる)しめば 心脳乱(こころのうらん)し わが身楽(みらく)なれば 情欲(じょうよく)に愛着(あいちゃく)す
苦楽(くらく)はともに正道成就(しょうどうじょうじゅ)の根本(こんぽん)に非(あら)ず
苦楽(くらく)の両極(りょうきょく)を捨(す)て 中道(ちゅうどう)に入(い)り 自己保存(じこほぞん) 自我我欲(じががよく)の煩悩(ぼんのう)を捨(す)てるべし
자기의 육체가 괴로우면, 마음도 혼란해지고 자기 몸이 즐거우면, 정욕(情欲)에 애착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같이 올바른 길의 목적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이 아니며
괴로움과 즐거움의 양극을 제거하고 중도(中道)에 들어가 자기보존, 자아아욕의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いっさいの諸現象(しょげんしょう)に対(たい)し
正(ただ)しく見(み) 正(ただ)しく思(おも)い 正(ただ)しく語(かた)り 正(ただ)しく仕事(しごと)をなし 正(ただ)しく生(い)き
正(ただ)しく道(みち)に精進(しょうじん)し 正(ただ)しく念(ねん)じ 正(ただ)しく定(じょう)に入(い)るべし
모든 여러 현상에 대해서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일을 하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도에 정진하고 바르게 염원하고 바르게 선정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かくのごとき正法(しょうほう)の生活(せいかつ)のなかにこそ
神仏(しんぶつ)の光明(こうみょう)を得(え) 迷(まよ)いの岸(きし)より 悟(さと)りの彼岸(ひがん)に到達(つうたつ)するものなり
このときに 神仏(しんぶつ)の心(こころ)と己(おのれ)の心(こころ)が調和(ちょうわ)され 心(こころ)に安(やす)らぎを生(しょう)ぜん
心(こころ)は光明(こうみょう)の世界(せかい)に入(い)り 三昧(さんまい)の境涯(きょうがい)に到達(とうたつ)せん
이와 같은 정법의 생활 속에서야 말로
신불의 광명을 얻고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하는 것이 되며
이 때에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되어 마음에 평온함을 만들어낸다.
마음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가고 삼매의 경지(境涯)에 도달한다.
( この諸説(しょせつ)は末法万年(まっぽうまんねん)の神理(しんり)なることを悟(さと)り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師(し)とすべし )
(이 여러 설명은 말법 만년(万年)의 신리인 것을 깨달아 일상의 생활의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大宇宙大神霊・仏よ 迷える霊に光をお与えください。 諸霊に罪をお許し下さい。
대우주대신령, 부처님이시여, 방황하는 영혼에게 빛을 주십시오. 모든 영혼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実在界の光の天使よ 迷える霊に光をお与えください。 安らぎをお与えください。
실재계의 빛의 천사여, 방황하는 영혼에게 빛을 주십시오. 평안을 주십시오.
実在界の諸天善神よ 迷える霊にお救いください。 いっさいの魔よりお守りください。
실재계의 제천천신이여, 방황하는 영혼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일체의 마(魔)로부터 지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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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死したり、事故死した人には、「先祖代々の諸霊よ」という代わりに、生前の名前を呼びます。
「もし諸霊の中に 暗い世界におられる先祖がございましたら」という所は、名前を呼んで、
「○○○○さんの霊よ、あなたが暗い世界にいられたら」といえばよいのです。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은 사람에게는, 「조상대대로의 모든 영혼이여」라고 하는 대신에, 생전의 이름을 부릅니다.
「만약 모든 영혼 중에, 어두운 세계에 계시는 조상이 계시다면」라고 할 때는, 이름을 부르고,
「○○○○씨의 영혼이여, 당신이 어두운 세계에 계시다면」라고 하면 좋습니다.
先祖でもなく、また名前も分からないが、霊的現象が起っている場合は、
「この場所に執着している霊よ、あなたも神の子として肉体を持たれたのでありました」といえばよいのです。
조상(先祖)이 아니며, 또한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영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경우는,
「이 장소에 집착하고 있는 영혼이여, 당신도 신의 자녀로서 육체를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좋습니다.
また、他人の古い家を壊して新しい家を建てるとか、人が住んでいた土地を買った時とかは、
「この土地に関係のある霊よ」といえばよいのです。
또한, 타인의 오래된 집을 부수고 새로운 집을 짓는다든가, 사람이 살고 있던 토지를 샀을 경우라든지는,
「이 토지에 관계가 있는 영혼이여」라고 하면 좋습니다.
- 終わり -
- 끝 -
2014.05.04 UP 이 날짜는, 일본에서, 본 글을 올려주신 60대의 분의 글을 올려주신 날짜입니다.
※출처 : http://www.shoho2.com/t2-9indoubun.html
『심행(心行)의 원문과 서문(序文)/심행의 큰 뜻/심행 개설/다카하시 신지/ 』란 제목으로,
2011년 5월 14일에 올린 글입니다. 재차 올립니다.
言霊(ことだま)=言魂 《일본어 사전》
고대(古代)에, 말에 깃들여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신비적인 힘.
言霊ことだまの幸さきわう国くに 영력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나라.
言霊(ことだま)《일본어 Wikipedia》
言霊(ことだま)とは、日本において言葉に宿ると信じられた霊的な力のこと。言魂とも 書く。清音の言霊(ことたま)は、森羅万象がそれ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とされる五十 音のコトタマの法則のこと。その法則についての学問を言霊学という。
언령(고토다마)
언령(고토다마)란, 일본에 있어서 말에 깃들여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영적인 힘을 말함. 언혼(고토다마)이라고도 쓴다. 청음의 언령(고토타마)는, 삼라만상이 그것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다고 하는 50음이ㅡ 코토타마의 법칙. 이 법칙에 관한 학문을 언령학이라고 한다.
高橋信次『心行の言葉』다카하시 신지님의 『심행의 말」의 심행(全文) |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제가 올린, 2011년 3월 13일에도 있습니다.
지금 올리는 내용에서. 서문에, 한 문장이 더 첨가 되어 있습니다. 색깔로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심행의 내용에도 앞부분이 위의 글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있습니다.
기존에 올린 내용과 지금의 글을 비교해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올리는 내용에는 心行(しんぎょう) 괄호안에 있는 것은, 일본식 발음표시입니다.
실제, 심행의 원본 책에는, 이런 식으로 발음들이 다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올렸습니다.
心 行
심 행
心行(しんぎょう)は 宇宙(うちゅう)の神理(しんり)
人間(にんげん)の心(こころ)を 言霊(ことだま)によって表現(ひょうげん)したものである
それゆえ心行(しんぎょう)は 拝(おが)むものでも 暗記(あんき)するものでもなく
これを理解(りかい)し 行(おこな)うものである
正法(しょうほう)は実践(じっせん)のなかにこそ
生命(せいめい)が宿(やど)ることを知(し)れ
심행은 우주의 신리
인간의 마음을 말(言霊)에 의해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심행은 두손 모아 비는 것도 암기하는 것도 아니며
이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정법은 실천 가운데에서야말로
생명이 깃드는 것임을 알라
われいま見聞(けんもん)し 正法(しょうほう)に帰依(きえ)することを得(え)たり
広大(こうだい)なる宇宙体(うちゅうたい)は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の根元(こんげん)にして
万生万物相互(ばんしょうばんぶつそうご)の作用(さよう)により 転生輪廻(てんしょうりんね)の法(ほう)に従(したが)う
大宇宙大自然界(だいうちゅうだいしぜんかい)に意識(いしき)あり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정법에 귀의하는 것을 얻었나니
광대한 우주의 몸은 만생만물의 근원으로서
만생만물 상호의 작용에 의해 전생윤회의 법에 따른
대우주 대자연계에 의식이며
意識(いしき)は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を支配(しはい)し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をして調和(ちょうわ)の姿(すがた)を示(しめ)さん
万生万物(ばんしょうばんぶつ)は広大無辺(こうだいむへん)な大慈悲(だいじひ)なり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は意識(いしき)の当体(とうたい)にして 意識(いしき)の中心(ちゅうしん)は心(こころ)なり
의식은 대우주의 몸을 지배하고 만생만물을 위해 조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생만물은 광대무변한 대자비이며
대우주의 몸은 의식의 본체로서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며
心(こころ)は慈悲(じひ)と愛(あい)の塊(かたまり)にして 当体(とうたい)・意識(いしき)は不二(ふじ)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この大意識(だいいしき)こそ 大宇宙大神霊(だいうちゅうだいしんれい)・仏(ほとけ)なるべし
神仏(しんぶつ)なるがゆえに 当体(とうたい)は大神体(だいしんたい)なり
마음은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로서 본체・의식은 둘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큰 의식이야말로 대우주 대신령・부처님인 것이 당연하다.
신불이므로 본체는 큰 신(神)의 몸이니라.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における太陽系(たいようけい)は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の 小(ちい)さな諸器官(しょきかん)のひとつにすぎず
地球(ちきゅう)は 小(ちい)さな細胞体(さいぼうたい)なることを知(し)るべし
当体(とうたい)の細胞(さいぼう)なるがゆえに 細胞(さいぼう)に意識(いしき)あり
かくのごとく 万物(ばんぶつ)すべて生命(せいめい)にして エネルギーの塊(かたまり)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이 현상계에 있어서의 태양계는 대우주의 몸의 작은 여러 기관의 하나에 불과하며
지구는 작은 세포체인 것을 알아야 한다.
본체의 세포이므로 세포에 의식이 있으며
요러하듯이 만물 모든 생명으로서 에너지의 덩어리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大宇宙体(だいうちゅうたい)は大神体(だいしんたい)なるがゆえに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地球(ちきゅう)も神体(しんたい)なり
神体(しんたい)なるがゆえに 大神殿(だいしんでん)なるべし
大神殿(だいしんでん)は 万生(ばんしょう) 魂(たましい)の修行所(しゅぎょうじょ)なり
대우주의 몸은 큰 신(神)의 몸이므로 이 현상계의 지구도 신(神)의 몸이며
신(神)의 몸이므로 큰 신(神)의 집이 됨이 당연하다.
큰 신(神)의 집은 모든 생명, 영혼(魂)의 수행장이니라.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 みなここに集(あつ)まれり
諸霊(しょれい)の輪廻(りんね)は 三世(さんぜ)の流転(るてん)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で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磨(みが)き
神意(しんい)に添(そ)った仏国土(ぶつこくど)・ユートピアを建設(けんせつ)せんがためなり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은 모두 여기에 모이며
여러 영혼(靈)의 윤회는 삼세의 유전
이 현상계에서 자기의 영혼(魂)을 연마하고
신(神)의 뜻에 따른 불국토・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이니라.
さらに 宇宙体万生(うちゅうたいばんしょう)が 神意(しんい)にかなう 調和(ちょうわ)のとれた世界(せかい)を建設(けんせつ)せんがため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修行(しゅぎょう)せ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더욱 더 우주의 몸인 모든 생명이 신(神)의 뜻에 맞는 조화를 이룬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기의 영혼(魂)을 수행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過去世(かこせ) 現世(げんせ) 来世(らいせ)の三世(さんぜ)は 生命流転(せいめいるてん)の過程(かてい)にして
永久(とわ)に不変(ふへん)なることを知(しる)るべし
과거세[전생](過去世), 이 세상(現世), 사후의 세계(來世)의 삼세는 생명유전의 과정으로서
영구히 불변한 것을 알아야 한다.
過去世(かこせ)は 己(おのれ)が修行(しゅぎょう)せし前世(ぜんせ)
すなわち 過(す)ぎ去(さ)りし実在界(じつざいかい)と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世界(せかい)なり
과거세는 자기가 수행하고 전생(前世)
즉 지나가 버리고, 실재계와 현상계의 세계이며
現世(げんせ)は生命(せいめい)・物質(ぶっしつ)不二(ふじ)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 この世界(せかい)のことなり
熱(ねつ) 光(ひかり) 環境(かんきょう) いっさいを含(ふく)めて エネルギーの塊(かたま)りにして
われら生命意識(せいめいいしき)の修行所(しゅぎょうじょ)なり
현세(이 세상)는 생명・물질이 둘이 아닌 현상계, 이 세계인 것이며
빛・열・환경 전부를 포함하고 에너지의 덩어리로서
우리들의 생명 의식의 수행소이니라.
神仏(しんぶつ)より与(あた)えられし 慈悲(じひ)と愛(あい)の環境(かんきょう)なることを感謝(かんしゃ)すべし
来世(らいせ)は次元(じげん)の異(こと)なる世界(せかい)にして 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の肉体(にくたい)を去(さ)りし諸霊(しょれい)の世界(せかい)なり
意識(いしき)の調和度(ちょうわど)により 段階(だんかい)あり
신불(神佛)에 의해 주어지고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것을 감사해야 하며
사후의 세계는 차원의 다른 세계로서 현상계의 육체를 버리고 여러 영혼(諸霊)의 세계이니라.
의식의 조화도에 의해 단계가 있고
この段階(だんかい)は 神仏(しんぶつ)の心(こころ)と己(おのれ)の心(こころ)の調和度(ちょうわど)による 光(ひかり)の量(りょう)の区域(くいき)なり
神仏(しんぶつ)と表裏一体(ひょうりいったい)の諸霊(しょれい)は 光明(こうみょう)に満(み)ち
実在(じつざい)の世界(せかい)にあって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を善導(ぜんどう)する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なり
이 단계는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도에 의해 빛의 량의 구역이며
신불과 표리일체의 모든 영혼(諸霊)은, 광명에 충만하고
실재의 세계에 있고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을 선도하는 빛의 천사이니라.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 すなわち 諸如来(しょにょらい) 諸菩薩(しょぼさつ)のことなり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は 神仏(しんぶつ)よりいっさいの権限(けんげん)を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に委(ゆだ)ねしところなり
光(ひかり)の天使(てんし)は慈悲(じひ)と愛(あい)の塊(かたま)りにして あの世(よ) この世(よ)の諸霊(しょれい)を導(みちび)かん
빛의 천사 즉 여러 여래, 여러 보살인 것이니라.
이 현상계는 신불에 의해 모든 권한을 빛의 천사에게 위임한 곳이며
빛의 천사는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로서 저 세상, 이 세상 여러 영혼(諸霊)을 인도한다.
さらに 諸天善神(しょてんぜんじん)あり
諸々(もろもろ)の諸霊(しょれい)を いっさいの魔(ま)より守(まも)り 正(ただ)しき衆生(しゅじょう)を擁護(ようご)せん
더욱 더 여러 하늘의 선한 신(제천선신)이며
여러가지의 많은 여러 영혼(諸靈)을 모든 마귀(악마)에게서 지키고 올바른 중생을 응원한다.
肉体(にくたい)を有(ゆう)する現世(げんせ)の天使(てんし)は 諸々(もろもろ)の衆生(しゅじょう)に正法神理(しょうほうしんり)を説(と)き 調和(ちょうわ)の光明(こうみょう)へ導(みちび)かん
육체를 소유한 현세(이 세상)의 천사는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에게 정법신리를 설명하고 조화의 광명으로 인도한다.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におけるわれらは
過去世(かこせ)において 己(おのれ)が望(のぞ)み 両親(りょうしん)より与(あた)えられし 肉体(にくたい)という舟(ふね)に乗(の)り
人生航路(じんせいこうろ)の海原(うなばら)へ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魂(たましい)を磨(みが)き
神意(しんい)の仏国土(ぶつこくど)を造(つく)らんがため 生(う)まれ出(いで)た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肉体(にくたい)の支配者(しはいしゃ)は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なり 己(おのれ)の意識(いしき)の中心(ちゅうしん)は心(こころ)なり
이 현상계에 있어서 우리들은
과거세에서 자기의 희망, 양친에 의해 주어지고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항로의 넓은 바다로 자기의 의식・영혼(魂)을 연마하고
신(神)의 뜻인 불국토를 구축하기 위해서 태어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육체의 지배자는 자기의 의식이며 자기의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니라.
心(こころ)は実在(じつざい)の世界(せかい)に通(つう)じ 己(おのれ)の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が 常(つね)に善導(ぜんどう)せることを忘(わす)れるべからず
善導(ぜんどう)せるがために 己(おのれ)の心(こころ)は 己自身(おのれじしん)に忠実(ちゅうじつ)なることを知(し)るべし
마음은 실재의 세계로 통하고 자기의 수호・지도령이 늘 선도해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도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しかるに 諸々(もろもろ)の衆生(しゅじょう)は 己(おのれ)の肉体(にくたい)に 意識(いしき)・心(こころ)が支配(しはい)され
己(おのれ)が前世(ぜんせ)の約束(やくそく)を忘(わす)れ 自己保存(じこほぞん) 自我我欲(じががよく)に明(あ)け暮(く)れて
己(おのれ)の心(こころ)の魔(ま)に支配(しはい)され 神意(しんい)に反(はん)し この現象界(げんしょうかい)を過(す)ぎ行(ゆ)かん
また 生老病死(しょうろうびょうし)の苦(くる)しみを受(う)け 己(おのれ)の本性(ほんしょう)も忘(わす)れ去(さ)るものなり
그런데도 여러가지의 많은 중생은 자기의 육체에 의식・마음이 지배되어
자기가 전생(前世)의 약속를 잊어버리고 자기보존, 자아아욕에 세월을 보내며
자기의 마음의 마귀(악마)에게 지배되어 신(神)의 뜻을 배반하고 이 현상계를 지나쳐 간다.
또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받고, 자기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이니라.
その原因(げんいん)は煩悩(ぼんのう)なり
煩悩(ぼんのう)は 眼(げん)・耳(にい)・鼻(び)・舌(ぜつ)・身(しん)・意(い)の六根(ろっこん)が根元(こんげん)なり
六根(ろっこん)の調和(ちょうわ)は 常(つね)に中道(ちゅうどう)を根本(こんぽん)として 己(おのれ)の正(ただ)しい心(こころ)に問(と)うことなり
그 원인은 번뇌이며
번뇌는 눈・귀・코・혀・몸・의식의 육근이 근원이며
육근의 조화는 늘 중도를 근본으로서 자기의 올바른 마음에 묻는 것이니라.
己(おのれ)の正(ただ)しい心(こころ)に問(と)うことは反省(はんせい)にして
反省(はんせい)の心(こころ)は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が浄化(じょうか)され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자기의 올바른 마음에 묻는 것은 반성으로서
반성의 마음은 자기의 영혼(魂)이 정화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己自身(おのれじしん)は孤独(こどく)に非(あら)ず
意識(いしき)のなかに己(おのれ)に関連(かんれん)せし 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の存在(そんざい)を知(し)るべし
자기 자신은 고독하지 않으며
의식 속에 자기에게 연결되어 있는 수호・지도령의 존재를 알야할 것이다.
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に感謝(かんしゃ)し さらに反省(はんせい)は
己(おのれ)の守護(しゅご)・指導霊(しどうれい)の 導(みちび)きを受(う)けることを知(し)るべし
六根(ろっこん)あるがゆえに 己(おのれ)が悟(さと)れば 菩提(ぼだい)と化(か)すことを悟(さと)るべし
수호 지도령에게 감사하고, 더욱 더 반성은
자기의 수호・지도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육근이므로, 자기가 깨달으면 보리로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神仏(しんぶつ)の大慈悲(だいじひ)に感謝(かんしゃ)し 万生相互(ばんしょうそうご)の調和(ちょうわ)の心(こころ)が 神意(しんい)な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신불의 대자비에 감사하고 만생상호의 조화의 마음이 신의 뜻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肉体先祖(にくたいせんぞ)に報恩供養(ほうおんくよう)の心(こころ)を忘(わす)れず 両親(りょうしん)に対(たい)しては 孝養(こうよう)を尽(つく)すべし
心身(しんしん)を調和(ちょうわ)し 常(つね)に健全(けんぜん)な生活(せいかつ)をし 平和(へいわ)な環境(かんきょう)を造(つく)るべし
육체 선조에게 은혜를 갚는 공양의 마음을 잊지 않고, 양친에 대해서는 효도를 다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조화하고, 늘 건전한 생활을 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肉体保存(にくたいほぞん)のエネルギー源(げん)は 万生(ばんしょう)を含(ふく)め 動物(どうぶつ)・植物(しょくぶつ)・鉱物(こうぶつ)なり
このエネルギー源(げん)に感謝(かんしゃ)の心(こころ)を忘(わす)れず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中(なか)において 己(おのれ)の魂(たましい)を修行(しゅぎょう)すべし
己(おのれ)の心(こころ)・意識(いしき)のエネルギー源(げん)は
調和(ちょうわ)のとれた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なかに 神仏(しんぶつ)より与(あた)えられることを悟(さと)るべし
육체보존의 에너지원은 모든 생명을 포함해서 동물・식물 ・광물이며
이 에너지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기의 영혼(魂)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의식의 에너지원은
조화에 따른 일상의 생활 속에 신불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己(おのれ)の肉体(にくたい)が苦(くる)しめば 心脳乱(こころのうらん)し わが身楽(みらく)なれば 情欲(じょうよく)に愛着(あいちゃく)す
苦楽(くらく)はともに正道成就(しょうどうじょうじゅ)の根本(こんぽん)に非(あら)ず
苦楽(くらく)の両極(りょうきょく)を捨(す)て 中道(ちゅうどう)に入(い)り 自己保存(じこほぞん) 自我我欲(じががよく)の煩悩(ぼんのう)を捨(す)てるべし
자기의 육체가 괴로우면, 마음도 혼란해지고 자기 몸이 즐거우면, 정욕(情欲)에 애착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같이 올바른 길의 목적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이 아니며
괴로움과 즐거움의 양극을 제거하고 중도(中道)에 들어가 자기보존, 자아아욕의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いっさいの諸現象(しょげんしょう)に対(たい)し
正(ただ)しく見(み) 正(ただ)しく思(おも)い 正(ただ)しく語(かた)り 正(ただ)しく仕事(しごと)をなし 正(ただ)しく生(い)き
正(ただ)しく道(みち)に精進(しょうじん)し 正(ただ)しく念(ねん)じ 正(ただ)しく定(じょう)に入(い)るべし
모든 여러 현상에 대해서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일을 하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도에 정진하고 바르게 염원하고 바르게 선정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かくのごとき正法(しょうほう)の生活(せいかつ)のなかにこそ
神仏(しんぶつ)の光明(こうみょう)を得(え) 迷(まよ)いの岸(きし)より 悟(さと)りの彼岸(ひがん)に到達(つうたつ)するものなり
このときに 神仏(しんぶつ)の心(こころ)と己(おのれ)の心(こころ)が調和(ちょうわ)され 心(こころ)に安(やす)らぎを生(しょう)ぜん
心(こころ)は光明(こうみょう)の世界(せかい)に入(い)り 三昧(さんまい)の境涯(きょうがい)に到達(とうたつ)せん
이와 같은 정법의 생활 속에서야 말로
신불의 광명을 얻고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도달하는 것이 되며
이 때에 신불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조화되어 마음에 평온함을 만들어낸다.
마음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가고 삼매의 경지(境涯)에 도달한다.
( この諸説(しょせつ)は末法万年(まっぽうまんねん)の神理(しんり)なることを悟(さと)り 日々(ひび)の生活(せいかつ)の師(し)とすべし )
(이 여러 설명은 말법 만년(万年)의 신리인 것을 깨달아 일상의 생활의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高橋信次先生著 心行の言魂より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심행의 말에서
序文
서문
日常生活にとって、もっとも大事なことは五官にもとづく六根に心がふりまわされないことです。五官とは、眼(げん)・耳(にい)・鼻(び)・舌(ぜつ)・身(しん)・意(い)の五つの機能を指します。五つの機能は、肉体保全のためには、なくてはならないものです。問題は、この五官に私たちの意が働き、六根という煩悩が生じて、ねたみや怒り、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が心を支配しますと、自分の心が、まず不安定となり、安心した生活ができなくなります。早い話が、人を見たら泥棒と思えとか、人は人、自分は自分と言う事になりますと、知らぬ間に苦悩の輪廻の渦中におちこむことになります。これではどうみても損です。損得の計算からいっても損のはずです。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오관에 바탕을 두는 육근에 마음이 휘둘림당하지 않는 일입니다. 오관이란,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가지의 기능을 가리킵니다. 다섯가지의 기능은, 육체보전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오관에 우리들의 의지가 작용하고, 육근이라고 하는 번뇌가 생겨, 원망이나 분노, 만족함을 모르는 욕망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우선 불안정하게 되며, 안심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남을 보거든 도둑으로 알아라(남을 경솔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든가, 남은 남이며, 자신은 자신이라고 하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고뇌의 윤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면 어떻게 보더라도 손해입니다. 손실과 이득의 계산으로 말해도 손해일 것입니다.
正法の道は、損得からいっても得の道なのです。なんとなれば安心した道が正法であるからです。煩悩という自分を苦しめる悪の緊縛から離れるので、こんな素晴らしく、明るく、楽しいことはないからです。
정법의 길은, 손실과 이득으로 말해도 이득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안심한 길이 정법이기 때문입니다. 번뇌라고 하는 자신을 괴롭히는 악의 긴박(꼼짝못하게 단단히 묶음)에서 떨어지는 것인데, 이런 기막히게 좋은, 밝은, 즐거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煩悩とは、五官を通して働く自己本位の想念と行為です。あれが欲しい、これはいやだ、という自己中心の肉体的執着、この執着心が強いほど、人の心は不安定になります。ちなみに、生まれたばかりの赤児(あかご)を想起してください。赤児は自然のままに生きています。ひもじくなれば泣きもしますが、満たされればスヤスヤと眠り、あれこれ、恣意を働かせることはありません。嬰児の顔は平和そのものです。かわいいです。だから、嬰児を見ていると、たいていの人は心が和みます。大事に扱います。嬰児は、自己限定の煩悩がないので、安らぎに満ちているからです。
번뇌란, 오관을 통해서 작용하는 자기본위의 상념과 행위입니다. 저것이 갖고 싶다, 이것은 싫다, 라고 하는 자기중심의 육체적 집착, 이 집착심이 강한만큼, 사람의 마음은 불안정하게 됩니다. 덧붙여서 말하면, 이제 겨우 인생의 출발점에 갓 태어난 갓난아기를 상기해 주십시오. 갓난아기는 자연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배고프게 되면 올어댑니다만, 배가 부르면 새근새근 잠자고, 이러쿵저러쿵, 제멋대로 생각하는 일은 없습니다. 젖먹이의 얼굴은 평화 그 자체입니다. 귀엽습니다.그래서, 젖먹이를 보고 있으면, 대개의 사람은 마음이 누그럽니다. 소중하게 다룸니다. 젖먹이는, 자기한정의 번뇌가 없으며, 평안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正法とは、そうした素直な心をいうのであり、自己限定の執着を離れた心を指します。で、それには五官にもとずく、さまざまな欲望から離れること、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をしなくてはなりません。自分の都合のみで心を騒がせては彼岸である心の安らぎには、いつになっても到達できません。足ることの生活は、まず、正法という中道の生活、調和の生活、慈悲の生活、愛の生活であります。まず、己自身の調和の生活から始まり、次いで、人と人との調和にあります。
정법이란, 그러한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며, 자기한정의 집착을 떠난 마을을 가리킵니다. 그것에는 오관에 바탕을 두고, 가지각색의 욕망에서 떨어지는 것, 만족함을 아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형편만으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해서는 피안이 있는 마음의 평안으로는, 어느 때가 되더라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만족함의 생활은, 우선, 정법이라고 하는 중도(中道)의 생활, 조화의 생활, 자비의 생활, 사랑의 생활입니다. 우선, 자기 자신의 조화의 생활에서부터 시작되며, 점차, 사람과 사람과의 조화에 있습니다.
「心行」は、宇宙の生成から草をおこした、いわば〝人間の原典〟であり、安らぎの道を示したものです。「心行」の意義をよく吟味され、生活のうえに、これを生かしてください。そうして、真(まこと)の、あなた自身に立ちかえってください。
「심행」은, 우주의 생성에서 기초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원전《原典=기준(基準)이 되는 본디의 옛 일의 근거(根據) ・내력(來歷)》〃이며, 평안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은, 「심행」의 의의를 잘 음미하시고, 생활 상에, 이것을 살려가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참된, 당신 자신으로 되돌아가십시오.
1975年9月吉日
1975년 9월 좋은 날에. 다카하시 신지(takahashi shinji)
心行の大意
심행의 큰 뜻
人は、どこからきて、どこへゆくのか。人間がこの世に生まれるということは、どんな意味があるのか。死とは何か。宇宙はどうしてできたのか。魂があるとするならその意義を知りたい。心とは何か、神とはいかなるものか。こうした諸問題、つまり、宇宙と人間、人間の存在意義、心の実相を明らかにしたのが「心行」であります。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주는 어떻게 완성된 것일까? 영혼이 있다고 하면 그 의의를 알고 싶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신이란 어떠한 것일까? 이러한 여러 문제, 즉, 우주와 인간, 인간의 존재의의, 마음의 실상을 명백하게 한 것이「심행(心行)」입니다.
それ故「心行」そのものは、通読し、暗記するものではなく、その意味を理解し、日々の生活に、神の子の自分を現すべく、行じてゆくことでなければなんにもなりません。人間の目的は、己自身の調和、地上の調和にあるからであり「心行」の目的も、そこにあるからであります。
그러므로 「심행(心行)」그 자체는, 통독하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고, 매일의 생할에 , 신의 자녀인 자신을 나타내야[드러내야] 하며, 실행해 가지 일이 없으면 말짱 꽝입니다. 인간의 목적은, 자기 자신의 조화, 지상의 조화에 있기 때문이며, 「심행(心行)」의 목적도,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以下、順を追って「心行」の内容を説明してゆきましょう。
이하, 차례대로 「심행(心行)」의 내용을 설명해 가겠습니다.
まず、最初に「心行」という名称について簡単にふれますと、「心行」とは心の教え、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心行の内容は、人間と宇宙の関係を明らかにすると同時に、森羅万象の根源は「心」にある。神仏のエネルギーが万生万物を育み、支えていますので、万物の成り立ち、人間の在り方、つまり「心」と「行ない」を示したものなので、これを「心行」としたわけです。
먼저, 맨 처음에「심행(心行)」이라고 하는 명칭에 대해서 간단히 접해 보면, 「심행(心行)」이란 마음의 가르침,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행의 내용은,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함과 동시에, 삼라만상의 근원(根源)은 「마음(心)」에 있다. 신불의 에너지가 만생만물을 기르고, 지탱[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만물의 성립, 인간의 본연의 모습, 즉, 「마음(心)」과「실행(行ない)」을 제시한 것이며, 이것을 「심행(心行)」이라고 한 사유입니다.
また「心行」とは別な言葉でいえば「信行」でもあります。「心行」の最後の部分に、八正道こそ悟道に通じるとしていますが、八正道は、日々の生活に行じてこそ意義が
あり、悟りを得る最短距離でもあります。したがいまして、「心行」は、ただ理解しただけではなんにもなりません。これを理解すると同時に、行うことにあります。つまり信じて行う、ということです。
또 「심행(心行)」과는 다른 말로 하면, 「신행(信行)」이라고도 합니다. 「심행(心行)」의 맨 마지막 부분에, 팔정도야말로 오도로 통한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팔정도는, 매일의 생활에 실행하는 것에서야말로 의의가 있으며, 깨달음을 얻는 최단거리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심행(心行)」은, 단지 이해한 것만으로는 말짱 꽝입니다. 이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실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즉 믿고 행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心行」とは、それ故に「信行」でもあるわけです。
「심행(心行)」이란, 그러므로「신행(信行)」이라도 하는 이유입니다.
高橋信次先生著 心の原点より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마음의 원점에서
心行概説
심행개설
「心行」とは心と行いということである。
すでに「心行」を読まれて薄々気付かれたとおもうが、人間を含めた大宇宙は常に相互に関係し合って動いている。太陽系一つとっても、太陽を中心に九つの惑星が相互に関係し、太陽系という体を形作っている。地球や火星が一つ欠けても、太陽系の存立ははかれない。地上の生活にしても、動、植、鉱の相互関係がなければ成り立たないのである。
その相互関係は何に起因するか、それは大自然の意識である。秩序整然とした意識の働きがあればこそ、大宇宙も、地上の生活環境も、調和されている。生命の神秘を見る時に、私達はそこに、偉大な大自然の叡智を発見しよう。神の心である。
「심행(心行)」이란 마음과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심행(心行)」을 읽으시고 어렴풋이 알아차렸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을 포함한 대우주는 항상 서로 상호관계하며 움직이고 있다. 태양계 하나라고 해도, 태양을 중심으로 9개의 혹성이 상호관계하고, 태양계라고 하는 몸을 형성하고 있다. 지구나 화성이 하나가 빠져도, 태양계의 존립은 도모할 수 없다. 지상의 생활이라고 해도, 동물, 식물, 광물의 상호관계가 없으면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상호관계는 무엇에 기인할까, 그것은 대자연의 의식이다. 질서정연한 의식의 작용이 있음으로 인해, 대우주도, 지상의 생활환경도, 조화되고 있다. 생명의 신비를 볼 때에, 우리들은 거기에, 위대한 대자연의 예지(叡智)를 발견할 것이다. 신의 마음이다.
※예지[叡智] 《일본어사전》사물의 도리를 통찰하는 뛰어난 지혜= 영지(英智)
※예지[叡智] 《국어사전》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지혜롭고 밝은 마음.
もしも、自然のそうした相互関係が、ただの偶然の連続によって生じたとすれば、地球はとうの昔に滅びていよう。地球誕生にはさまざまな説があろうが、地球という球体ができたのは、今から約33億年も前である。その当時の地球は、いわば火の玉であり、太陽のように燃えさかっていた。生物が住めるようになったのは今から約6億年も前のことである。それまでの地上は、火山の爆発や氷河時代を繰り返した。大宇宙の時の流れからすると、6億年という歳月は一瞬のできごとかも知れない。しかし地球が太陽の周囲を公転しはじめて、すでに数十億年、その軌道は、昔も今も変わらない。偶然にしては、あまりにできすぎていると思うのが当然ではないか。
しかも、極大の大宇宙と極微の素粒子には、核と分子の相互関係がみられるという事実を知るならば、そこに大自然の意思、意識、心というものを感得し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
私はこうした事実を、客観的に、主観的にとらえることができた。
ただ皆様に説明する場合には、主観的では納得されないために右のような説明になってくるのである。
만약, 자연의 그러한 상호관계가, 단지 우연의 연속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한다면, 지구는 오래 전에 멸망했겠지요. 지구 탄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을 것이지만, 지구라고 하는 구체(球体)가 완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3억년 전이다. 그 당시의 지구는, 말하자면 불덩어리(火の玉)이며, 태양과 같이 맹렬하게 불타고 있었다. 생물이 살 수 있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억년이나 전인 것이다. 그때까지의 지구는, 화산의 폭발이나 빙하시대를 반복했다. 대우주의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6억년이라고 하는 세월은 순간적으로 생긴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기 시작하며, 이미 수십억년, 그 궤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연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가, 극대의 대우주와 극미의 미립자에는, 핵과 분자의 상호관계를 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거기에 대자연의 의사, 의식,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느껴서 깨달지 않을 수 없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었다.
단 여러분에게 설명하는 경우에는, 주관적으로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오는 것이다.
大宇宙には心が存在する。そうしてその心は私達の心にも同通している。
客観的にこれを説明すると、太陽の熱・光に強弱がない、空気に増減がない、一日は昼と夜があって、決して一方に偏らない、つまり、大自然の心は、私達に中道という調和ある秩序を教え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る。太陽の熱・光が強くなったり、弱くなったらどうなるだろう。地上の生命は生きてはいけまい。空気が増えたり減ったりしても同じことがいえよう。
私達の生活態度も、食べすぎれば腹をこわし、惰眠をむさぼれば体力に抵抗力を失う。しかし、もっと体に影響を与えるものは心だ。心配事があれば食欲は減退し、睡眠がさまたげられる。。どなったり、腹を立てれば血行が悪くなる。怒りの息が大変な毒性を持っ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人は少なかろう。
대우주에는 마음이 존재한다.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은 우리들의 마음에도 동통(同通)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이것을 설명하면, 태양의 열・빛에 강약이 없다. 공기에 증감이 없다. 하루에는 낮과 밤이 있으며, 절대로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즉, 대자연의 마음은, 우리들에게 중도(中道)라고 하는 조화있는 질서를 가르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된다. 태양의 열・빛이 강하게 되거나, 약하게 되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상의 생명은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공기가 늘어나거나 줄거나 해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지요.
우리들의 생활태도도, 과식을 하면 배탈이 나고, 게으름을 피워 잠만 자면 체력에 저항력을 잃는다. 하지만, 더욱 몸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마음이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식욕은 감퇴하고, 수면이 방해를 받을 수 있다. 등등을 하게 되거나, 화를 내면 혈핵의 순환이 나빠진다. 분노[노여움]의 숨[호흡]이 상당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大自然は調和という中道の心を教えている。
人間の体も、無理はいけないし、怠惰もいけない。心についても、怒ったり、悲しんだりすれば、体に、精神に、悪い影響を与える。肉体も、心も、中道にかなった生活行為、つまり正しい想念と行為が必要なのである。
大自然は、そのことを教えている。同時に、大自然の心にさからえば、その分量だけの苦しみがついてまわることも教えているのだ。
대자연은 조화라고 하는 중도의 마음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몸도, 무리를 해서는 안 되고, 나태도 안 된다. 마음에 대해서도,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하면, 몸에, 정신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육체도, 마음도, 중도에 들어맞는 생활행위, 즉 올바른 상념[마음에 품은 생각]가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대자연은, 그 일을 가르치고 있다. 동시에, 대자연의 마음에 역행하면, 그 분량만큼의 괴로움이 따라다니는 것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中道とは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である。欲望にほんろうされない自分自身を確立することだ。生老病死の苦しみは、こうした中道の心を失った自我と、執着した想念、心にあったのである。
人間は大自然の中で生活している。大自然から離れて生活は出来ない。このことは大自然の心と同通しているからなのだ。
중도란 만족함을 안 생활이다. 욕망에 농락당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확립하는 일이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은, 이러한 중도의 마음을 잃어버린 자아(自我)와, 집착한 상념,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心行」とは、足ることを知った心で生活し、報恩という行為を示していくことである。ちゅうどうの精神で、毎日を生活しなさい、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
「心行」は大宇宙の相関関係と、人間の関係、そして、すべてのものが循環され、その循環が、大宇宙の心、中道を軸にして回転し、人間の魂もまたこうした正しい循環の過程の中で育まれ、調和という目標に向かって、転生輪廻を重ねてゆく永遠の生命体であることを、極めて平易に、端的に、文字で表したものである。
「심행(心行)」이란, 만족함을 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보은(報恩)이라고 하는 행위를 나타내어 가는 것이다. 중도(中道)의 정신으로, 매일을 생활하십시오, 라고 하는 것인 것이다.
「심행(心行)」은 대우주의 상호관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모든 것[만물]이 순환되며, 그 순환이, 대우주의 마음, 중도를 축으로 해서 회전하고, 인간의 영혼도 또한 그러한 올바른 순환의 과정 속에서 성장되며, 조화라고 하는 목표를 향해서, 전생윤회를 거듭해 가는 영원한 생명체인 것을, 극히 평이하게, 단적으로,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物事にはすべて柱というものがあるが、「心行」の柱となるものは、
매사에는 전부 기둥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만,「심행(心行)」의 기둥이 되는 것은,
〝大自然という神の心〟
〝永遠の生命体を維持する循環の法〟
〝慈悲と愛〟
〝대자연이라고 하는 신의 마음〟
〝영원한 생명체를 유지하는 순환의 법〟
〝자비와 사랑〟
の三つである。
この三つが「心行」を形作り、私達を生かし続けているものである。
「心行」はそれゆえに、心の教えであり、生活の規範である。
의 세가지이다.
이 세가지가 「심행(心行)」을 형성하고, 우리들은 계속 소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행(心行)」은 그러므로, 마음의 가르침이며, 생활의 규범이다.
したがって、これは暗記するものではない。これを理解し、実践して行くものだ。実践の過程を通して、私達は、大宇宙の中道の心に調和され、真の安らぎが体得できるものである。
따라서, 이것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해하고, 실천해 가는 것이다. 실천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은, 대우주의 중도의 마음에 조화되어, 진정한 평안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ところで言葉というものは波動である。経文の読誦(どくじゅ)もただ読み上げるだけでは意味を持たない。経文の意味を理解し、実践している者が読誦する時は、その言葉の波動はあの世の天上界にまで通じ、人びとを感動せしめていくものである。
言葉は本来、言魂(ことだま)といって、もともと光の粒子からできており、言葉を発する人の心の在り方いかんで、言葉の一つ一つが、光の玉となって、空間に流れ出ていく。光の玉はふつう肉眼ではわからない。霊視のきく人、あるいは四次元の世界からみると、この点は実にはっきりと見える。
그런데 말이라고 하는 것은 파동(波動)이다. 경문의 독송(소리 내어 읽음)도 다만 낭독만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경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독송할 때는, 그 말의 파동(波動)은 저 세상의 천상계로까지 통하며, 사람들을 감동시켜 갈 수 있는 것이다.
말은 본래, 고토다마[言魂: 말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졌던 영적인 힘]이라고 하며, 본래 빛의 입자로 되어 있고, 말은 발하는 사람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 여하로, 말의 하나하나가, 빛덩어리[光の玉]가 되어, 공간으로 흘러나간다. 빛덩어리는 보통 육안으로는 알 수 없다. 영시[霊視: 영혼을 보는 능력(힘)]를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4차원의 세계에서 보면, 이 점은 분명하게 보인다.
人の話に感動する、ないしは笑いや怒りが出る場合は、話す側の心と、これを受け取る人の精神状態によってちがってこよう。しかし、純な心で話す場合は、これを受け取る側に邪心があっても、大抵はその邪心は消えていってしまう。話はスジが通ってわかるが、さっぱり気持ちがそれについていかないというのもあるであろう。こうしたことは、話す側の心の在り方が聞き手に非常に大きな影響を与えているからだ。純な心は光であり、わだかまりがると光が黒い塊となって相手に伝わって行くので、反作用を呼び起こすことになる。
사람의 말[이야기]에 감동하는, 내지는 웃음이나 화가 나는 경우는, 말하는 측의 마음과,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신상태에 따라서 달라져 올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는 경우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측에 사심(邪心)이 있다고 해도, 대체는 그 사심은 없어져 버리고 만다. 이야기는 사리에 맞아서 알 수 있지만, 후련하게 기분이 그것에 대해서 뭔가 석연치 않은 것[いかな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말하는 측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이 듣는 사람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은 빛이며, 마음에 꺼림한 감정이 있으면 빛이 어두운 덩어리가 되어 상대에게 전해져 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작용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ちょっとした寺にいくと釣鐘がある。あの釣鐘の音色も、これを打つ人の心によって、ひびきがちがってくる。ゴーンという鐘の音は誰が打っても同じだろうと思うが、打つ人が常日頃、心の研鑽を怠っていなければ、その鐘の波動はあの世の天上界にまで達し、その人に返ってくるばかりか、その鐘の波動は、人びとの心に伝わり浄化してくれるのである。
대수롭지 않은 절에 가면 조종(釣鐘: 사찰의 종루에 달아 놓은 큰 종)이 있다. 저 조종의 음색도, 이것을 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울림이 달라진다. 궁~이라고 하는 종소리는 누가 치더라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치는 사람이 평소, 마음의 연찬(研鑽)을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면, 그 종의 파동은 저 세상의 천상계로까지 통하고, 그 사람에게 되돌아올뿐만 아니라, 그 종의 파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져 정화시켜 줄 것이다.
経文の読誦、読銃というものも、まったくこれと同じである。正しき心と行為をしている者がすると、その声の波動は金剛界にまで通じ、再びその人にその波動が帰って来て、心の統一、安らぎを一層、助長していくものだ。 「心行」の朗読は、そうした意味では大切なものだし、しないよりされた方が良いと言うことになる。ただ、書かれている意味もわからず、おがめばご利益があるということでは駄目である。般若心経はどこでも読まれている。有り難いお経であり、したがって写経も良し、読誦もまたご利益がると伝えられている。しかしその意味もわからず、行為のないものが、朝晩上げても光は届かない。今日の仏教は、経文をあげたり、写経自体にウエイトがかかり、日頃の想念と行為については問題にしていないところに問題があろう。
경문의 독송, 독총(読銃)이라고 하는 것도, 완전히 이것과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마음과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하면, 그 소리의 파동은 금강계(金剛界)로까지 통하고, 다시 그 사람에게 그 파동이 돌아오는 것이며, 마음의 통일, 평안을 한 층, 조장해 가는 것이다. 「심행(心行)」의 낭독은, 그러한 의미로는 중요한 것이고,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좋다고 하는 것이 된다. 단, 적혀 있는 의미도 알지 못하고, 두손 모아 빌면 이익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는 헛일이다. 반야심경(般若心経)은 어디서든지 읽혀지고 있다. 고마운 경문이며, 따라서 사경(写経)도 좋고, 독송(読誦)도 역시 이익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도 알지 못하고, 행위가 없는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올린다 해도 빛은 닿지 않는다. 오늘날의 불교는, 경문을 올리거나, 사경 자체에 무게를 달며, 평소의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는 문제로 삼고 있지 않는 바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心行」は、そうした意味において、真意をよく理解し、それを現実の生活の上に現わし、そしてその心で朗読されるならば、一の言魂は、二になり、三になって、心の安らぎを増していくであろう。
「심행(心行)」은, 그러한 의미에 있어서, 진의[참뜻]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의 생활 상에 나타내고, 그리고 그 마음으로 낭독하시게 되면, 하나의 말은, 둘이 되어, 셋이 되어, 마음의 평안을 늘려 갈 것이다.
「心行」の意味を理解され、夜寝る時に、床の上で静かに朗読され、その日一日の想念と行為を反省し、過失(あやまち)を正し、中道の心に一日も早く修正されることを望むものである。
「심행(心行)」의 의미를 이해하시고, 밤에 잠을 잘 때에, 침상에서 조용히 낭독하시고, 그 날 하루의 상념가 행위를 반성하고, 과실을 바로잡고, 중도의 마음으로 하루라도 빨리 수정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昭和48年4月8日 (1973年)
소화 48년 4월 8일 (1973년)
2011.03.30 UP☜ 이 날짜는, 이 글을 올리신 아래 소호(정법)2의 주인이 올렸다는 표시입니다.
※출처: http://www.shoho2.com/singyou.html
다른 분도, 제가 올린 다카하시 신지님 글들을, 번역해서 올린 분이 계십니다. 다음블로그에.
차이점은, 그분은, 능숙한 일본어 솜씨로 번역하시었고, 일본어 원문이 없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2011년 5월 14일에 올린 심행과
2014년 9월 4일에 올렸던 인도문(천도문)을
2017년 4월 25일 밤 자정에,
함께 묶어서 올립니다. 청주시 안덕벌에서...
第六章 正しい宗教指導者とは
제6장 올바른 종교 지도자란?
正しい宗教指導者は必ず「神に調和せよ」「神に波長を合わせよ」と説くのであります。「神を信ぜよ」「神に調和せよ」と説かない宗教は邪教であります。
올바른 종교 지도라는 반드시「신에게 조화하라」「신에게 파장을 맞추어라」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신을 믿어라」「신에게 조화하라」라고 설명하지 않는 종교는 사교(邪敎)입니다.
例えば、日本の仏教々団の中には、その教団の、ご開山上人を一所懸命に信じさせて、大宇宙大神霊のことを少しも教えていない教団があります。これでは正しい宗教、正しい信仰とはいえません。阿弥陀如来とか観世音菩薩を一所懸命に拝んでいても、その心の中に、大自然を創造された大宇宙大神霊に感謝する心がなかったとしたら、それは正しい信仰とはいえないのであります。
예를 들면, 일본의 종교 여러 단체 중에는, 그 교단의, 개산상인(開山上人: 일종 일파를 처음 창건한 스님 즉, 개조(開祖))을 열심히 믿게 해서, 대우주 대신령의 일을 조금도 가르치고 있지 않는 교단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올바른 종교, 올바른 신앙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라든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열심히 합장 배래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대자연을 창조하신 대우주 대신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あの世が、大神霊、如来界、菩薩界、神界、霊界、幽界という秩序あるしくみに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は、お釈迦さまがお説きになって以来、はじめて高橋信次先生が明らかにされたのであります。このことの重大さに気づいていない人が多いのは残念なことであります。
저 세상이, 대신령, 여래계, 보살계, 신계, 영계, 유계라고 하는 질서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설법하신 이후, 처음으로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이 밝혀내셨던 것입니다. 이 일의 중요함에 생각이 미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교[邪敎] 《국어사전/한자사전》
①건전하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종교. 흔히 그 사회의 도덕이나 제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①부정(不淨)하고 요사(妖邪)스러운 종교(宗敎). 사회(社會)에 해악(害惡)을 끼치는 종교(宗敎) ②그 나라의 도덕(道德)이나 사회(社會) 제도(制度)에 어긋나는 종교(宗敎). 사도(邪道). 올바르지 못한 가르침
第七章 自然に感謝せよ
제7장 자연에 감사하라
お釈迦さまは、「なにもかも美しい、生命の躍動が手にとるように感じられてくる。 あの森も、あの河も、町も、地球も、明星も、天体の星にも、神の偉大なる意志の下に、息づいている」と。
부처님은, 「모두 다 아름답고, 생명의 약동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저 숲도, 저 강도, 마을도, 지구도, 계명성(샛별)도, 천체의 별에도, 신의 위대한 의지 하에, 숨쉬고 있다」라고.
この大自然が、神の創造であり、神のからだであることに気づかれ感謝されてから悟りに入られたのであります。 「神さま」と感謝する心の中には、「自然に感謝する」心がないといけません。周囲にはきれいな自然があるのに、その自然の美しさにも気づかずに、夢中で、お百度を踏んでいる人の心の中は、あわれであります。自然を尊ばない心が自然破壊を来しました。
이 대자연이, 신의 창조이며, 신의 몸인 것에 생각이 미쳐 감사드리고 나서 깨달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신령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속에는,「자연에 감사한다」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위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데도, 그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생각이 미치지 않고, 꿈속에서, 소원 성취를 위해 신사(神社)나 절 경내에서, 일정한 거리를 백 번 왕복하며, 그때마다 배례·기원을 되풀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은, 불쌍합니다. 자연을 존경하지 않는 마음이 자연파괴를 초래했습니다.
★おひゃくど [∇御百度]
[명사] 《「お百度参ひゃくどまいり」의 준말》 (소원 성취를 위해) 신사(神社)나 절 경내에서, 일정한 거리를 백 번 왕복하며, 그때마다 배례·기원을 되풀이하는 일.
★おひゃくどをふむ
①「お百度参り」를 하다.
②청탁을 위하여 같은 사람을[장소를] 몇 번이고 찾아가다. 許可きょかを取とるため役所やくしょに御百度を踏おひゃくどをふむ 허가를 얻기 위해 관청을 수없이 찾아가다.
第八章 大地に感謝せよ
제8장 대지에 감사하라
天を仰いで神に感謝する人はあっても、大地にひれ伏して、大地に感謝するという人は少ないようです。
하늘을 우러러 신에게 감사하는 사람은 있어도, 대지에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대지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은 모양입니다.
キリストが、「神よ、神よと呼ぶもの、必ずしも天国に入ることあたわず」といわれたことの中には、神に対する敬虔さ、謙虚さが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ことも教えられたのでありますが、神に対する敬虔さ、謙虚さが欠けては、また正しい指導者とはいえません。
그리스도가, 「신이여, 신이여 부르는 사람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 중에는, 신에 대한 경건한, 겸허함이 없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것도 가르치시었던 것입니다만, 신에 대한 경건함, 겸허함이 없어서는, 또 올바른 지도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大地も神が創造されたのであり、この大地の上にわれわれは生きているのでありますから、この「大地」にも感謝をしないといけません。神に対する敬虔さ、謙虚さは、大地にひれ伏して感謝する心から生まれてくるものであります。日本の多くの宗教指導者は、大地に感謝することを忘れているようです。宗教指導者達が、どこか一ヵ所に集まって、大地にひれ伏して神に感謝するという行事をしたら、日本の宗教界も大きく変るでしょう。
대지도 신이 창조하신 것이며, 이 대지의 위에 우리들은 생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대지」에도 감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에 대한 경건함, 겸허함은, 대지에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감사하는 마음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일본의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는, 대지에 감사하는 일을 잊고 있는 모양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어딘가 한곳에 모여서, 대지에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신에게 감사한다고 하는 행사를 한다면, 일본의 종교계도 크게 바뀔 것입니다.
法語 1978年11月3号
법어 1978년 11월 3호
法語とは真理のことばであります。あなたがこの法語の意味をよく知り、この通りに実践される時、必ずあなたの上に心の安らぎと幸せをもたらす言葉であります。祈りについての高橋信次先生の言葉を解説いたします。
법어란 진리의 말입니다. 당신이 이 법어의 의미를 잘 알고, 이대로 실천하실 때, 반드시 당신에게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가져오는 말입니다. 기도에 관해서의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말을 해설하겠습니다.
第九章 祈りとは
제9장 기도란
祈りは人間が、あの世、天上界(実在界)から地上に肉体を持った時から始まります。
기도는 인간이, 저 세상, 천상계(실재계)에서 지상으로 육체를 가졌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霊のふるさとである天上界では、“祈り”は即行為となっているので、殊更に祈らなくてもよいのです。思うこと、考えることが、そのまま祈りとなって神仏と調和しているからです。ところが、人間は肉体を持つと、天上界で持っていた心を忘れ、五官に左右され六根にその身を、心をまかせて煩悩に己れ自身を埋没させ、自我に生きようとします。
영혼의 고향인 천상계에서는, “기도”는 즉 행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기도하지 않도 좋은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기도가 되어 신불과 조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를 가지면, 천상계에서 갖고 있던 마음을 잊어버리고, 오관에 좌우되어 육근에 그 몸을, 마음을 맡기어 번뇌에 자기 자신을 매몰시켜서, 자아가 생긴다고 합니다.
「苦しい時の神だのみ」というのは、現実の自分がもうどうにもならなくなった時にどこに救いを求めればよいのかというと、それは「天上界」「あの世」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本当の自分が、霊のふるさとである天上界、あの世のことを思い出して祈る行為なのであります。
「괴로울 때의 하느님 찾기」라고 하는 것은, 현실의 자기 자신이 이제는 어찌 할 수도 없게 되었을 때에 어디에 도움을 청하면 좋은 것인가냐 하면, 그것은「천상계」「저 세상」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진정한 자신이, 영혼의 고향인 천상계, 저 세상인 것을 생각해 내서 기도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弟十章 虚心に祈ること
제10장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는 것
自分の慾望からでなくて、そうあることが自分自身の幸せだけでなくて、関係のある周囲のすべての人々の幸せ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ったら、堂々と祈りなさい。
자기 자신의 욕망에서가 아닌,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관계가 있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행복하다 라고 하는 것이라면, 당당하게 기도하십시오.
キリストは、「汝ら神に祈る時、頭に灰をかむり、しかめ顔するな」と祈る時の心のあり方を教えていられます。これは、「私は憐れなる者であります。この憐れなる私に恵みをお与え下さい」というような、泣きつく祈りはしてはならぬ。そういう実現しないということを教えていられるのであります。
그리스도는, 「너희가 신에게 기도할 때, 머리에 재를 뿌리고, 찡그린 얼굴을 하지 말라」라고 기도할 때의 마음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며 계십니다. 그것은,「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불쌍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울며 애원하는 기도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실현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日本人には、信仰深き者は、いつも「わたくしは、あわれなる者であります。罪深き者であります。悲しい者であります。」と、自分をみじめだと思っていないと本当の信仰者ではないと思っている人が沢山ありますが、それはまちがっています。
일본인에게는, 신앙심이 강한 사람은, 늘「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슬픈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비참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진정한 신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그것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人間は霊であり神の子であり、過去の転生輪廻の中ですばらしい体験をして、豊かな内在された智慧を持っているのであります。だから、現実的にはまだ実現してない、いろいろなことが一ぱいあるけれども、実際は内在された豊かな智慧を持つことのすばらしい神の子であるという自覚を持って、それをそのまますなおに認めて祈らないといけないのであります。
인간은 영혼이며 신의 자녀이며, 과거의 전생윤회 중에서 매우 훌륭한 체험을 하고, 풍성한 내재된 지혜(智慧)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여러 가지 일이 가득 차 있지만, 실제는 내재된 풍성한 지혜(智慧)를 가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신의 자녀이라고 하는 자각을 가지고, 그것을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第十一章 祈りが実現する道
제11장 기도가 실현되는 길
これまでの日本の宗教指導者は、祈ったことが実現するとすぐ「神さまが祈りを叶えて下さった」といってきました。それはまちがいであって、天地宇宙を創造された神さまが直接一人一人の祈りを聞いて下さる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あります。天上界は如来界、菩薩界、神界、霊界、幽界という段階があり、一人一人にはその人の守護霊、指導霊があります。その人が煩悩にふりまわされていた自分を反省して懺悔し、虚心に祈った時は、その人の守護霊、指導霊が救ってくれるのです。守護、守護霊に力がない場合には、その守護、指導霊が、より高い次元の光の天使に頼んで救い手をさしのべて下さる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あります。
지금까지의 일본의 종교 지도자는, 기도한 것이 실현되자마자 「하느님(신령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라고 말해 왔다. 그것은 잘못이며, 천지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신령님)이 직접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천상계는 여래계, 보살계, 신계, 영계, 유계라고 하는 단계가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수호령, 지도령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번뇌에 농락당하고 있던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마음을 비우고 기도했을 때는, 그 사람의 수호령, 지도령이 도와 주는 것입니다. 수호, 지도령에게 힘이 없는 경우에는, 그 수호, 지도령이, 보다 높은 차원의 빛의 천사에게 부탁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第十二章 遠隔思念が動く理由
제12장 원격사념(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늘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것)이 작동하는 이유
遠くにいる人のために祈って、その祈りが聞かれたという現象は、祈った人の念が直接先方の人にとどいたのではないのです。この点もこれまでの日本の宗教指導者はまちがっています。これは祈る人の守護、指導霊が、祈られる人の守護、指導霊にその念を伝達するのです。祈る人も心をきれいに安らかにして祈らなければいけませんが、祈られる人も心をきれいにしてその祈りをすなおに受ける心になると、祈りの念を受けた守護、指導霊が、その人の心の内側から囁いて教えてくれるのです。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기도가 들린다고 하는 현상은, 기도한 사람의 생각(念)이 직접 상대편의 사람에게 통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점도 지금까지의 일본의 종교 지도자는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수호, 지도령이, 기도를 받는 사람의 수호, 지도령에게 그 생각(念)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마음을 아름답게 평안하게 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만, 기도를 받는 사람도 마음을 아름답게 해서 그 기도를 솔직하게 받는 마음이 되면, 기도의 생각(念)을 받은 수호, 지도령이, 그 사람의 마음의 내측에서 속삭이며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원격사념(遠隔思念)과 비슷한 말로. 사념전달[思念傳達]이 있네요. 같은 말: 텔레파시.
法語 1978年12月4号
법어 1978년 12월 4호
法語はあなたに悟りの目をひからせる言葉のエッセンスであります。何回でもくりかえして、心に残るまでよんで下さい。一年の終りに反省してみましょう。
법어는 당신에게 깨달음의 눈을 열리게 하는 말의 에센스(Essence :진수(眞髓))입니다.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마음에 남을 때까지 읽어 주십시오. 한 해의 마지막에 반성해 보십시오.
第十三章 反省とは
제13장 반성이란
反省は心をきれいにして、明日へ未来へと新しく前進するためにするのであります。
반성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고, 내일로 미래로의 새롭게 전진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過去をふり返って反省して、感情的な涙を流すことに自己陶酔して、明日へと前進する勇気と希望と、そういう心が持てたことに感謝する心が湧かなかったら、それは正しい反省ではありません。
과거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감정적인 눈물을 흘리는 것에 자아도취해서, 내일로 전진하는 용기과 희망과,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나왔다면, 그것은 올바른 반성이 아닙니다.
反省したがために、かえって心をせまく暗くしている人があります。勿論それはこれまでの、まちがった指導者、講師の罪でもあります。
반성했기 때문에, 도리어 마음을 옹색하게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지도자, 강사의 죄이기도 합니다.
反省は自分が神の子(やがて宇宙即我に到達するところの自分)であることを悟るための前段階としてするのであります。
반성은 자신이 신의 자녀(이윽고 우주즉아에 도달하는 자신)인 것을 깨닫기 위한 전단계로서 하는 것입니다.
弟十四章 反省は智慧でせよ
제14장 반성은 지혜롭게 해라
GLAの反省研修会に参加した人達の多くは、生まれてから現在までを、感情で反省して感傷的な涙を流しました。涙を流す反省は心をせまく小さく暗くします。智慧によって反省して流す涙からは、真我が自覚され、心は広く大きく豊かになり、前途に明るい希望を持ち、喜んで努力する勇気が湧いてきます。
GLA의 반성 연수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태어나서부터의 현재까지를, 감정으로 반성하고 감상적인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반성은 마음을 좁고 작고 어둡게 합니다. 지혜(智慧)에 의해서 반성해서 복받침은, 진아(眞我)가 자작되어, 마음은 넓고 크고 풍성하게 되, 전도에 밝은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노력하는 용기가 솟아나옵니다.
お釈迦さまが説かれた教えは智慧の教えであります。法に照らして自分の在り方を自分で決定してゆく智慧を働かせるとき、そこに神の慈悲を発見するのです。智慧のない慈悲というものは本来ないのです。慈悲という名によって智慧を働かせることをさせない宗教は邪教であります。拝ませること、人を信じさせることは、その人から智慧の働きを奪ってしまうからいけないのです。
부처님이 설명하신 가르침은 지혜(智慧)의 가르침입니다. 법에 비추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해 가는 지혜(智慧)를 활용했을 때, 거기에 신의 자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지혜(智慧)가 없는 자비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이름에 의해서 지혜(智慧)을 활용하는 것을 하게 하지 않는 종교는 사교(邪教)입니다. 합장 배래하게 하는 것, 남을 믿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지혜(智慧)의 작용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에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感傷的な涙を、智慧の涙に変えゆくとき心の中から光りが輝いてきます。
감상적인 눈물을, 지혜의 눈물로 바꿔 갈 때 마음속에서 빛이 반짝입니다.
第十五章 反省と業と運命
제15장 반성과 업과 운명
過去を反省して、同じような失敗を何回もしていたら、それがあなたのいちばん心を決めて修正しなければならないカルマです。カルマは身、口、意の三業によってつくられますが、身、口、意の三業も、元は、一つの心の働きであります。自分の心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ありますから、カルマを変えるのは心のあり方を変える以外にありません。
과거를 반성하고, 똑같은 실패를 몇 번이나 하고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가장 마음을 정해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카르마입니다. 카르마는 몸, 입, 뜻의 세가지 업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만, 몸, 입, 뜻의 세가지 업은, 본래는, 하나의 마음의 작용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카르마를 바꾸는 것은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바꾸는 이외에는 없습니다.
運命はその人のカルマの現れですから、運命を変えようとするには、心の持ち方、あり方を変える以外に変える方法はないのであります。運命を変えようとして、心を変えずにいくら拝んでも祈とうしてもらっても、運命は変りません。拝んでもらったり祈祷してもらうと金がかかりますが、自分で自分の心を変えるには金はいりません。
운명은 그 사람의 카르마가 표현이기 때문에,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데에는, 마음가짐, 본연의 모습을 바꾸는 이외에 바뀔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서, 마음을 바꾸지 않고 아무리 합장 배래해도 기도해 달라고 해도,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합장 배래해 달라고 하거나 기도해 달라고 하면 돈이 듭니다만,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데에는 돈은 필요 없습니다.
もっとも、カルマには善いカルマもありますから、よいカルマはますます伸ばせばよいので変える必要はないわけです。
더욱이, 카르마에는 좋은 카르마도 있기 때문에, 좋은 카르마는 점점 더 늘리면 좋기 때문에 바꿀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第十六章 反省と止観と内観
제16장 반성과 지관과 내관
高橋信次先生は、「反省は止観」である。といっていられました。「止観」というのは「止の禅定」と「観の禅定」の二つの意味があります。「止の禅定」(とどまってみる)これは即ち普通にいわれる反省です。内観道場でやっている「内観」も反省です。これまでのGLAの反省研修会にも、また内観道場にも「観の禅定」の指導がありませんでした。「観の禅定」をしないのでは、高橋信次先生がいわれました本当の「反省」にはなっていないのです。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반성은 지관」이다. 라고 말하고 계셨습니다. 「지관」이라고 하는 것은「멈추는 선정」과 「보는 선정」의 두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멈추는 선정」(멈추어서 본다)이것은 즉 보통으로 말하는 반성입니다. 내관도장에서 행하고 있는 「내관(内観)」도 반성입니다. 지금까지의 GLA의 반성 연수회에도, 또한 내관도장에도 「보는 선정」의 지도가 없었습니다. 「보는 선정」을 하지 않는 것은,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이 말씀하신 진정한「반성」으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止の禅定」即ちいわゆる通俗的な反省だけでは、心を大きく広く豊かに明るくすることは出来ません。
「멈추는 선정」즉 흔히 통상적인 반성만으로는, 마음을 크고 넓고 풍성하게 밝아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大牟田市の「正法有明道場」では、本当の反省禅定の指導をしておりますので、来年は一度は、大牟田での研修を受けて下さい。そうされれば、必ず、あなたは「人生の勇者」になられるでしょう。
오무타 시(大牟田市)의「정법 유명 도장」에서는, 진정한 반성선정의 지도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내년에는 한번은, 오무타(大牟田)에서의 연수를 받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틀림없이, 당신은「인생의 용사(勇士)」이 되실 것입니다.
★지관 [止観] 《일본어사전》
①천태종(天台宗)에서,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바른 지혜로 대상을 비추어 보는 일.
★내관[内観] 《일본어사전》
① 정신을 통일하여 자신을 관찰함.
法語 1979年新年号 5号
법어 1979년 신년호 5호
新しい年の、新しい自覚は、あなたが「神の子」であるということを、しっかり自覚して「天地一切に感謝」して下さることです。
새로운 해의, 새로운 자각은 당신이「신의 자녀」이다 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자각해서「천지 일체에 감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第十七章 神は光りである。
제17장 신은 빛이다.
お釈迦さまの悟りは、「大宇宙の始まりには、光明という神の意識だけがそこにあった」ということを知られたことによってひらかれました。キリストの悟りは、「神、光あれといいたまいければ光ありき、はじめに神、天と地とをつくりたまへり」ということから始まりました。仏教もキリスト教も、どちらも真理は一つであります。
부처님의 깨달음은, 「대우주의 시작에는, 광명이라고 하는 신의 의지만이 그곳에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안 것에 의해서 여시였다. 그리스도의 깨달음은.「신이, 빛이 있으라고 하시매 빛이 있었고, 처음에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드시었다」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양쪽 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神は光であれば、神の子である人間も、もとより光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が罪や悪をつくられたのではないのであります。真理即ち正法を知らない人間が、自分の心の歪みによってつくり出したのが、罪や悪であります。だから本来、神の世界には罪や悪はないのであります。自分は本来、「光りの子」であることをのみ瞑想して下さい。そこから、あなたも「宇宙即我」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られるのです。
신은 빛이라면, 신의 자녀인 인간도, 원래부터 빛이 아니면 안 됩니다. 신이 죄와 벌을 만드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리 즉 정법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자기의 마음의 비뚤어짐에 의해서 만들어 낸 것이, 죄와 벌입니다. 그래서 본래, 신의 세계에는 죄와 벌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본래, 「빛의 자녀」인 것만을 명상해 주십시
第十八章 宇宙即我
제18장 우주즉아
高橋信次先生は、「あなた達も宇宙即我に到達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と教えていられました。お釈迦さまも、人間として到達しなければならない道を説かれたのであります。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여러분도 우주즉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부처님도, 인간으로서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道)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意識が拡大すると、太陽をはじめとして星々(惑星群)が、すべて自己の意識の中で回転し、そうしてその中で呼吸する一切の生物は、わが肉体の一部であることに気付く。
「의식이 확대되면, 태양을 시작으로 해서 여러 별들(혹성군)이, 전부 자기의 의식 속에서 회전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호흡하는 일체의 생물은, 나의 육체의 일부인 것에 생각이 미친다.
人は宇宙大の意識を持って生活している。肉体にその意識が小さく固まり、とどまるために、宇宙大の自己を見失ってしまうのだ」
사람은 우주대의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육체에 그 의식이 작고 견고하며, 멈추기 때문에, 우주대의 자기를 잃어 버리는 것이다」
「偉大なる悟り」より。
「위대한 깨달음」에서.
本来、宇宙即我であるからこそ、人間は、宇宙即我を悟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って、それは、瓦をいくら磨いてもダイヤモンドにならないように、本来、ダイヤモンドであるからこそ磨けば光るのと同じことであります。
본래, 우주즉아(宇宙即我)이기에, 인간은, 우주즉아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은, 기와를 아무리 갈아도 다이아몬드가 되지 않듯이, 본래,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에야말로 닦으면 빛나는 똑같은 것입니다.
第十九章 偽我は自分ではない
제19장 위아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真理を知らない自分、法を知らない自分が偽我であります。日本人は永い間、「罪悪深重の凡夫である。」と自分のことを思ってきました。然し本当の自分とは、「そういうことは本当でない」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真我なる自分が本当の自分であります。
진리를 모르는 자신, 법을 모르는 자신이 위아(僞我)입니다. 일본인은 오랫 동안, 「죄악(罪惡)이 심각(深刻)하고 중대(重大)한 번뇌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이다. 」라고 자신의 일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자신이란,「그러한 것은 진짜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진아(眞我)인 자신이 진정한 자기 자신입니다.
「自己の確立」とは、「真我なる自分」を自覚することであります。偽我なる自分を自分だと思って、この偽我なる自分をよくしようと思っても、それは手にくさいものを握って、くさくないようにしようと手をふり廻わしていることとおなじことであって、くさくないようにしようと思ったら、手に握っているくさいものを捨てればよいのと同じように、偽我なる自分は本当の自分ではなかったと心から放して、真我こそ自分であったと自覚の転換をすることです。
「자기의 확립」이란, 「진아인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일입니다. 위아인 자신을 자기 자신이다 라고 생각하며, 이 위아인 자신을 좋게 하려고 생각해도, 그것은 손에 악취가 나는 것을 쥐고, 구린내가 나지 않게 하려고 손을 휘두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며, 구린내가 나지 않게 하려고 생각한다면, 손에 쥐고 있는 악취가 나는 것을 버리면 괜찮은 것과 마찬가지로, 위아인 자신은 진짜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고 진심으로 잡고 있던 것을 놓고, 진아야말로 내 자신이었다고 자각의 전환을 하는 일입니다.
第二十章 真我こそ自分である
제20장 진아야말로 자기 자신이다
心の大きさ、豊かさ、明るさは、永い輪廻転生によって、どの程度、真我なる自分、宇宙即我なる自分を自覚しているか、その自覚の程度によって決まるのであります。その自覚を深めるには瞑想禅定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NHKの教育テレビ「瞑想の時間」で瞑想は、壁に張ってあるマンダラを半眼にみつめて無念無想になるとか、イメージを描いてそれに心を集中するという説明がありましたが、それはどちらもまちがっています。
마음의 크기, 풍요로움, 밝음은, 오랜 전생윤회에 의해서, 어느 정도, 진아인 자기 자신, 우주즉아인 자신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 자각의 정도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 자각을 깊게하는 데에는 명상선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NHK의 교육 텔레지젼「명상의 시간」에서 명상은, 벽에 붙어 있는 만다라(曼陀羅,曼茶羅)를 눈을 반쯤 뜨고 무념무상이 되든가, 이미지를 그리고 그것에 마음을 집중한다고 하는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둘 다 잘못되어 있습니다.
ヨガの瞑想道場の指導にもまちがいがあるようです。正しい瞑想禅定は、自分が神の子であり、真我であることを、念を集中するのでなくて、そのまますなおに認めることから始めるのです。その人の心の大きさによって心が肉体を離れて、肉体の自分を上の方から客観化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
요가(Yoga 瑜伽)의 명상 도장의 지도에도 잘못이 있는 모양입니다. 올바른 명상선정은, 자신의 신의 자녀이며, 진아인 것을, 생각(念)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위대함에 의해서 육체를 떠나, 육체의 자신을 위쪽에서 갠관화할 수 있게 됩니다.
法語 1979年2月6号
법어 1979년 2월 6호
法語とは真理のことばであります。あなたがこの法語の意味をよく知り、その通りに実践される時、必ずあなたの上に、心のやすらぎと幸せをもたらす言葉であります。
법어란 진리의 말입니다. 당신이 이 법어의 의미를 잘 알고, 그대로 실천할 때, 반드시 당신에게,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가져오는 말입니다.
第二十一章 智慧と愛の調和
제21장 자비와 사랑의 조화
慈悲とは、智慧と愛が統一され調和されたものをいうのであります。愛さえあればよいのであるといって愛だけを強調する宗教家がありますが、それはまちがっております。
자비란, 지혜와 사랑이 통일되어 조화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만 있다면 좋은 것이다 라고 말하며 사랑만을 강조하는 종교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智慧のない愛は人をそこないます。智慧のない愛しかたをされた子供がどんなに非行化してゆくか?
この大宇宙が、秩序整然として一つの体系をもってつくられたのは神の智慧によってであります。人間や動物が吐き出した炭酸ガスを、植物が同化作用によってかわりに酸素を出すという相関々係をつくられたのも神の智慧であります。
지혜가 없는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랑하는 방법을 받은 아이가 어떻게 비행화해 갈까?
이 대우주가,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체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은 신의 지혜에 의해서 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이 토해낸 탄산카스를, 식물이 동화작용에 의해서 바뀌어 산소를 내뿜는다 라고 하는 상관관계를 만들어낸 것도 신의 지혜입니다.
病気や不幸になっている人はあっても智慧が足りなかったのです。私たちの心の中には、過去の輪廻転生で得た智慧が内在されています。今まで「愛」という言葉のみを多く聞かされてきた人たちは、「自分は智慧のある存在である」ということを自分で自分にいい聞かせて下さい。
병이 걸리거나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유난히 지혜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과거의 전생윤회에서 얻은 지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사랑」이라고 하는 말만을 많이 들어왔던 사람들은,「내 자신은 지혜가 있는 존재이다」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자신에게 잘 들려 주십시오.
第二十二章 自分の内に内在していても「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い」のと同じである
제22장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면,「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自覚する」ということは、「自分でそうだと覚る」ということです。「覚」という字は「悟る」ということです。「悟った人」のことを「覚者(ほとけ)」と書く場合があります。
「자각한다」라고 하는 것은,「스스로 그렇다라고 느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각(覚)」이라고 하는 글자는「깨닫다」라고 하는 것입니다.「깨달은 사람」을 「각자(覚者)(부처(佛))」라고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自分がどんなにすばらしいものを持っていても、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に気がつかなければ「ない」のと同じであります。皆さんにはこういう経験があると思います。
자신이 아무리 기막히게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갖고 있다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않으면「없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金がまだある、と思って買物しようと思った。品物を選んでいざ金を払おうと思って財布をひらいたら金がなかった。家に帰って、「たしかにまだ持っていた筈だ」と思ってポケットをあちこち探してみたら、別のポケットにまだ金が入っていたということが。
돈이 아직 있다, 라고 생각하고 물건을 사려고 생각했다. 물품을 고르고 막상 돈을 지불하려고 생각해서 지갑을 열었더니 돈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서,「확실히 아직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주머니를 이곳저곳 찾아 보았더니, 다른 주머니에 아직 돈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 일이.
これは実際は持っていたのです。持っていても、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に気がつかなければなにも買うことができません。それと同じように、人間も、どんなにすばらしい智慧や愛をもっていても、「智慧であり、愛の存在である」ということに気がつかなければ、その智慧、愛を生かして使う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ります。
이것은 실제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아무리 매우 훌륭한 지혜나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지혜로우며, 사랑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않으면, 그 지혜, 사랑을 되살려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人間はすばらしい智慧と愛の綜合された慈悲の霊的存在であるということを自覚しなさいと、お釈迦さまが説法されたのが、法華経の中に説かれてある「繋(けい)宝珠の譬」の話であります。
인간은 매우 훌륭한 지혜와 사랑의 종합된 자비의 영적 존재이다 라고 하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부처님이 설법하신 것이, 법화경 속에 설명되어 있는 「옷 속 구슬의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第二十三章 知ることの大事さ
제23장 아는 것의 중요함
「知識は実践した時に智慧となる」と高橋信次先生はいつもいっていられました。知識は実践した時に智慧となると同時にまた、知識即ち知るということを通して、これまでの永い輪廻転生の中で得た智慧を日常生活の上にひき出してく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ります。
「지식은 실천했을 때에 지혜가 된다」라고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 늘 말하고 계셨습니다. 지식은 실천했을 때에 지혜가 됨과 동시에 또한, 지식 즉 안다고 하는 것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오랜 윤회전생의 중에서 얻은 지혜를 일상생활 상에 꺼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知識を得るということをしなくてもよいとか、また、知識は必要はないといっている指導者がありますが、それはまちがいです。たとえば、自動車の運転にしたって、その運転の方法を知らないと運転でき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ましてこの人生をどのように生きればよいか、それを知ることなしにはよい生き方もできないでしょう。だからお釈迦さまは、まず、「知る」ことをしなさい。知ったら実践しなさい。信仰は「知る」ことが大事だと教えられたのであります。
지식을 얻는다 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찬다라든가, 또한, 지식은 필요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하는데, 그 운전하는 방법을 모르면 운전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이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은지, 그것을 알 수 없으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태도도 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먼저,「아는」것을 하십시오. 알았다면 실천하십시오. 신앙은「아는」것이 중요하다 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弟二十四章「なるほど」というこ
제24장 「(듣던 바와 같이) 과연」이라고 하는 것은
あなた方が何かを知った時、また教えられた時、「あゝ、なるほどそうか」と納得されるものがあるでしょう。その「なるほど」と納得するのが智慧の働きです。心の中に内在されていた智慧と、心の外に現象として現れているものとが内外相応した時に、「なるほど」とか「合点がいった」とか「うん、そうだ、それがほんとだ」とかと思うのです。
여러분은 무언가를 알았을 때, 또 가르침을 받았을 때, 「아, 과연 그렇구나」라고 납득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과연」이라고 납득하는 것이 지혜의 작용입니다.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지혜와, 마음밖에 현상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내외 상응했을 때에, 「과연」이라든가「납득이 가는군」라든가「응, 그렇군, 그것이 맞군」이라든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また、はじめて知ったことを実際にやってみた時にも、「なるほど、こうすればよいのか」と思うでしょう。それは知識が智慧となったのです。
또, 처음 안 것을 실제로 해 보았을 때에도, 「과연, 이렇게 하면 괜찮군」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이 지혜가 된 것입니다.
知識は豊かであった方がよいのです。どんな人の話でも、どんな本でもよんで、悪いところは捨てて、よいところは心の糧にすればよいのです。
지식은 풍부한 쪽이 좋은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의 이야기라 해도, 어떠한 책이라도 읽으며, 나쁜 점을 버리고, 좋은 점을 마음의 양식으로 하면 좋은 것입니다.
知識を得ることを限定するのはまちがっています。「なるほど」と思うことが多いほど人生は幸福になるのです。
지식을 얻는 것을 한정하는 것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과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많을수록 인생은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法語 1979年3月7号
법어 1979년 3월 7호
第二十五章 心の波長を合わす
제25장 마음의 파장을 맞춘다
人間は本来、幸福という環境の中で魂を磨く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あなたにとっての幸せは、あなたが祈っても祈らなくても既に約束されているのです。その幸福になる道は、あなた自身がこの世に生まれる時に、守護霊と約束してきているのです。
인간은 본래, 행복이라고 하는 환경 속에서 영혼을 연마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의 행복은, 당신이 기도해도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행복하게 되는 길은, 당신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수호령과 약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心の内から囁いてくれる守護霊の声に耳を傾けなさい。守護霊の声は肉体の耳に外から聞えてくるのではありません。外から聞えてくるのは動物霊か憑依霊です。また、心の内から聞えてくるといっても、あなたの心が乱れ騒いでいる時に聞えてくるのも正しくはありません。正しい守護霊の声は、あなたが宇宙創造の神に、天地万物一切のものに、すべての人に感謝し、自分が神の子であることを信じて、自分の過去の失敗や、自分の心の暗さにとらわれなくなった時に、心の内から聞えてくるのです。
마음속에서 속삭여 주는 수호령의 음석에 귀를 기울리십시오. 수호령의 음성은 육체의 귀로 밖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것은 동물령(動物靈)이 빙의령(憑依靈)입니다. 또, 마음속에서 들려온다고 할지라도, 당신의 마음이 혼란하고 시끄러워져 있을 때에 들려오는 것도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수호령의 음성은, 당신이 우주창조의 신에게, 천지만물 일체의 것에,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자신이 신의 자녀인 것을 믿고, 자신의 과거의 실패나, 자신의 마음의 어두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을 때에, 마음속에서 들려 오는 것입니다.
心の波長を合わせるというのは、神に、すべてのものに、そうして自分自身に対しても感謝できる心になることであります。静かに落着いた心になった時に、じっと心の内から囁いてくる声に耳を傾けて下さい。最初は小さくて聞きとれないくらいであっても、あなたが聞く習慣をつけられるならば、その声は次第に大きくなってきます。
마음의 파장을 맞춘다고 라고 하는 것은, 신에게, 만물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조욯하게 낙착한 마음이 되었을 때에, 지그시 마음속에서 속삭여 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처음에는 작아서 듣기 어려운 정도라고 해도, 당신이 듣는 습관을 익히게 되면, 그 음성은 점차 크게 되어 옵니다.
その内なる声の囁きを大事にされるならばあなたには人生の失敗はなく、常に幸福であ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그 속에 있는 음성의 속삭임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면 당신에게는 인생의 실패는 없고, 늘 행복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第二十六章 幸福は既に与えられている
제26장 행복은 이미 주어져 있다
オカゲ信心は利己主義の心であります。利己主義の心は神に波長が合いません。オカゲ信心で、一時その人が豊かになったようであっても、その富は必ずその人を不幸にします。
신불의 가호를 바라는 신심(オカゲ信心)은 이기주의의 마음입니다. 이기주의의 마음은 신과 파장이 맞지 않습니다. 신불의 가호를 바라는 신심으로, 잠시 그 사람이 풍요롭게 된 듯 해도, 그 부(富)는 틀림없이 그 사람을 불행하게 합니다.
オカゲを望まない心になって足ることを知り、毎日を感謝の心で過すようになった時、必要なものは必ず与えられるのであります。
신불의 가호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되어 만족함을 알고, 매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은 반드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感謝の心が報恩の心となって、それが心からの奉仕となった時の心の喜びが、あなたにとってもっとも必要な幸福の状態を、あなた自身がつくり出して行くので、既に幸福はあなたの心の中にあるのであって、ないものが外から与えられるのではないのであります。
감사하는 마음이 보은하는 마음이 되어, 그것이 진심의 봉사가 되었을 때의 마음의 기쁨이, 당신에게 있어서도 가장 필요한 행복한 상태를, 당신 자신이 만들어 내어 가는 것이므로, 이미 행복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없는 것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心がモノをつくる」「心が運命をつくる」といわれていますが、自分の心を豊かに明るくした時に環境も自然に整ってくるのであります。オカゲ信心は、自分の欲望の達成のために神さまを利用しようという心があります。それは正しい信仰ではないでしょう。
「마음이 만물을 만든다」「마음이 운명을 만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자신의 마음을 풍성하고 밝게 했을 때에 환경도 자연히 정돈되어 오는 것입니다. 신불의 가호를 바라는 신심은, 자신의 욕망의 달성을 위해서 하느님(신령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닐 것입니다.
第二十七章 分を知る
제27장 분수를 안다
人は生まれてくる時に、こんどはどういう環境の中で、どういう仕事をして、どういう体験をして魂を向上させるかを、守護霊と打合せて生まれてきます。その計画は生まれてきた時は潜在意識の中にかくされていて、現在意識の表面の心ではわからないことになっています。最初からそういうことがわかっていたら苦労せずにすむと思われますが、最初からわかっていたら、入学試験の問題を最初から教えられたことと同じで、本当の勉強になりません。こうするのが本当ではないか、ああするのが本当ではないか、といろいろな試行錯誤をくり返すなかから、本当の自分の生き方、あり方を知って行く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
사람은 태어나올 때에, 이번에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하며, 어떠한 체험을 하며 영혼을 향상시킬까를, 수호령과 미리 상의를 해서 태어나옵니다. 그 계획은 태어났을 때는 잠재의식 속에 숨어버리고 있고, 현재의식의 표면의 마음에서는 알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한 것을 알고 있다면 고생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되지만,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입학시험의 문제를 처음부터 가르침 받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진정한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가 아닌지, 저렇게 하는 것이 진짜가 아닌지, 라고 여러 거지 시험착오를 반복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태도, 본연의 모습을 알아 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あの人は分を知らない」とか、「あの人は分別がある」とかという云い方がされるのは、人にはそれぞれに為さなければならない本分というもの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その為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ものは、生れてくる時に計画し、守護霊に協力を願って生まれてくるのであります。ですから、心に思うことがなんでも実現するのではないのであって、その人が生まれてくる時に計画した、その分の範囲内のことは実現しても、その分でないものは実現しない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あります。だから自分の分を知るということが大事であります。
「저 사람은 분수를 모른다 」라든가, 「저 사람은 분수를 안다」라든가 하는 남이 언행을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저마다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본분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며, 그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태어나올 때에 계획하고, 수호령에게 협력을 바라며 태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태어나올 때에 계획한, 그 몫의 범위 안의 것은 실현되어도, 그 몫이 아닌 것은 실현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분수를 한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第二十八章 足るを知る
제28장 만족할 줄 안다
「分を知る」ということは同時に「足ることを知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今の私達の人生は、宇宙即我に到達するための永い輪廻転生の中の一コマなのであり、ただ一回の人生だけですべてを悟りつくす、経験しつくすという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りますから、今度の人生では自分は何を為し、何を学ぶことが正しいのであるかをよく心の内に聞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분수를 안다」라고 하는 것은 동시에「만족할 줄 안다」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지금 우리들의 인생은, 우주즉아에 도달하기 위한 오랜 윤회전생의 중의 짧은 한 장면이며, 단 한 번의 인생만으로 모든 것을 다 깨닫고, 다 경험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의 인생에서는 자신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배우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잘 마음속에 들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人には欲望があります。平社員でいるよりは社長がいい、と思うでしょう。では、「社長になって実際に会社を経営できるか」と自問自答した時に、自分の心に偽わりなしに「やれる」と云える人もあれば、「さてとなると、とてもできない」と思う人もある筈です。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습니다. 평사원인 것 보다는 사장이 좋다, 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사장이 되어 실제로 회사를 경영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자답했을 때에,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면, 「그렇게 되면, 도무지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金もいまよりはあった方がよいでしょう。しかし、あっても使いこなすことができず、かえって心を墜落させ、また遺産として残したために子供が争うというようなものならむしろない方が幸せです。金は何万円以上持っていれば幸福で、それ以下は不幸だという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金もまた、人間が魂の勉強をして行くために、生活の便宜上つくり出したものの一つなのですから、金のために心を一喜一憂させることは本末転倒なので、足ることを知った安らかな心を知った上で、また金の必要性を知るということが必要であります。「祈ればなんでも叶えられる」と説いている宗教がありますが、足ることを知らない分を超えた祈りは実現しないのであります。祈りも分を知り足ることを知った上で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その祈りが、その人の分に叶うものであったら必ず守護霊をはじめ天上界からの協力があって実現するのであります。
돈도 지금 보다는 있는 편이 좋겠지요. 하지만, 있다고 해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없고, 도리어 마음을 타락시키고, 또한 유산으로서 남았기 때문에 자식이 싸운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행복합니다. 돈은 몇 만엔 이상 갖고 있으면 행복하며, 그 이하는 불행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돈도 역시, 인간이 영혼의 공부를 해 가기 위한, 생활의 편의상 만들어 낸 것의 한가지인 것이기 때문에, 돈 때문에 일희일비(기쁨과 근심이 번갈아 일어남)하게 하는 것은 본래 전도인 것이므로, 만족할 줄 아는 평온한 마음을 안 상태로, 역시 돈의 필요성을 안다고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설켱하고 있는 종교가 있습니다만, 만족할 줄 모르는 분수를 넘은 기도는 실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 안 상태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기도가, 그 사람의 분수에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수호령을 비롯한 천상계에서의 협력이 있고 실현되는 것입니다.
法語 1979年4月8号
법어 1979년 4월 8호
第二十九章 天上界の協力を得るには
제29장 천상계의 협력을 얻는 데에는
私たちが天上界から援助される範囲は、私たちの理解の広さ、悟り、自覚の広さによって規定されます。私たちは神の意識そのものであり、輪廻転生の経験による智慧を持っています。自分が神の意識即ち神の子であることの自覚と輪廻転生の経験による智慧が、私たちの理解、悟りの広さであります。
우리들이 천상계로부터 협조를 받는 범위는, 우리들의 이해의 넓이, 깨달음, 자각의 넓이에 의해서 실현됩니다. 우리들은 신의 의식 그 자체이며, 윤회전생의 경험에 의한 지혜(智慧)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의 의식 즉 신의 자녀인 바를 자각과 윤회전생의 경험에 의한 지혜가, 우리들의 이해, 깨달음의 넓이입니다.
あなたが、いままでより以上に天上界からの援助協力を受けられるためには、新しい知識による新しい経験をされないといけないことになります。新しい経験を進んでする勇気と努力のみがあなたの悟りを広げてゆくのです。いままで知っていること、やってきたことのなかにだけ安住していたのでは少しも前進はなく、自覚も理解も悟りも広がってはゆきません。試行錯誤の課程を通じて理解も自覚も悟りも深まって、天上界からの新しい援助も得られるのですから、失敗を恐れずに前進することです。
당신이, 지금까지 보다 이상으로 천상계로부터의 협조 협력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에 의한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새로운 경험을 진행하려고 하는 용기와 노력만이 당신의 깨달음을 넓혀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 행해 온 것 안에서만 안주하고 있어서는 조금도 전진은 아니며, 자각도 이해도 깨달음도 넓혀갈 수 없습니다.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서 이해도 자각도 깨달음도 깊어지며, 천상계로부터의 새로운 원조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 부분의, 미번역을 오늘 발견하여, 번역했습니다.
실로, 죄송합니다. (2018년 3월 22일, 목요일)
第三十章 自分が自分を助ける。
제30장 스스로 자신을 돕는다.
失敗を恐れない新しい経験によってのみ新しい天上界の協力も得られるのですから結局、自分を助けるものは自分であ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他力信仰をして、自分からは努力しない人が最後には失敗に終るのは、以上のような理由からであります。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새로은 경험에 의해서만 새로운 천상계의 협력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돕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타력신앙을 하며, 자기 자신부터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최후에는 실패로 끝나는 것은, 이상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何人(なんびと)も、私たち自身の代り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自分のことは一切自分の責任ですから、自分のことを自分でしないで、人に代ってやってもらうとする他力信仰では、決して自分が救われないのです。光の大指導霊は、「現代はニセモノの指導者と欠点多き予言者達の時代である」と警告をしています。
어떤 사람도, 우리들 자신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일은 일체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지 앟고, 남을 대신하여 해 달라고 하는 타력신앙으로는, 결코 자신이 구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빛의 지도령은,「현대는 엉터리(가짜) 지도자와 결점이 많은 예언자들의 시대이다」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ニセモノの指導者とは、「人を救えば自分が救われる」とか、「祈れば、無限供給が得られる」と説く人たちであります。人の欲望に神を従わせようとするような教を説く人たちです。彼らは地縛霊と同様に人の心に不安を生じさせます。
엉터리(가짜) 지도자란, 「남을 도우면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구원받을 수 있다)」라든가, 「기도하면, 무한공급을 얻을 수 있다」라고 설명(강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에 신을 따르게 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가르침을 설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박령(地縛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마음에 불안을 낳게 합니다.
第三十一章 欠点多き予言者とは
제31장 결점이 많은 예언자란
欠点の多い予言者は、絶えず危機感、恐怖心を誘って天災地変がくることを予言し、人の心に安らかさを与えず、常に不安をかき立てます。ニセモノの指導者が同時にニセ予言者であるという場合が多いようです。
결점이 많은 예언자는, 끊임없이 위기감, 공포심을 자아내고 천재지변이 올 것을 예언하고, 사람의 마음에 평온을 주지 않고, 늘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엉터리(가짜) 지도자가 동시에 엉터리(가짜) 예언자이다 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正法を知っていられる方々には、人の心に不安を与えることがどんなに大きな罪であるかを知っていられるでしょう。ある宗教では、「日本沈没があるからメシアと呼ばれる特定の人間を信ずる人のみを救って、そうでない人は救わないというようなことを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心が正しく法にかなっている人は助かるでしょうし、また、天災地変で無一物になるという経験によって、物質への執着をなくすることを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人もあるのですし、どんな時でも、どんなことが起っても不動心を持つのが正法です。
정법을 알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사람의 마음에 불안을 주는 일이 얼마나 큰 죄(大罪)인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일본침몰이 있으니까 메시야라 불리는 특정한 인간을 믿는 사람만을 도와주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하게 내버려 두는 일은 없습니다. 마음이 올바르고 법을 따르고 있는 사람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이고(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고), 또, 천재지변으로 빈털터리가 된다고 하는 경험에 의해서,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있는 것이고, 어떤 때라도,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부동심을 가지는 것이 정법(正法)입니다.
三十二章 あの世からの指導は
32장 저 세상으로부터의 지도는
高級な指導霊、また守護霊は、その人の自主性を無視して勝手に強制的に指導するというようなことはしません。「なぜ、天上界はあの人を正しく指導されないのであろうか」ということをよく聞きますが、その人がまちがった暗い考えをしているのを、無理矢理に強制して明るい正しい考え方をするようにはしないのです。高橋信次先生が、「如来、菩薩といえども心を暗くして地獄界へ堕ちるものもある」といっていられたのは、すべて人には心の自由が与えられているからです。
고급한 지도령, 또 수호령은, 그 사람의 자주성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강제적으로 지도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왜, 천상계는 저 사람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않는 것일까?」라고 하는 것을 자주 듭습니다만, 그 사람이 잘못된 어두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억지로 강제해서 밝은 올바른 사고방식을 하게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이, 「여래(如来), 보살(菩薩)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어둡게 해서 지옥계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하고 계셨던 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유가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どんな人も、自分の心の悟り以上には偉大ではあり得ないのですから、自分を偉大にするには、自分で自分を偉大に成長させる以外にはありません。日一日と自分自身を成長させることが、神と調和する実践の方法が「八正道」であります。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마음의 깨달음 이상으로는 위대하게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위대하게 하는 데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대하게 성장시키는 이외에는 없습니다. 나날이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신과 조화하는 실천의 방법이「팔정도(八正道)」입니다.
高級な指導霊、守護霊は、その人を悟らせるように霊感を与えようと努力するのです。
고급한 지도령, 수호령은, 그 사람을 깨닫도록 영감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法語 1979年5月9号
법어 1979년 5월 9호
第三十三章 作用と反作用
제32장 작용과 반작용
物理学に於ける「作用と反作用」の法則は同時に心の法則でもあります。「凡ての作用には、大きさが等しく方向が反対なる反作用が伴う」この「作用と反作用」の法則を、心の面で表現したのが「善因善果」「悪因悪果」という「因縁」の法則であります。科学の法則と心の法則は一つであり、この一つの法則を創造して、心と物質とを同一法則によって活動せしめている大生命力、大エネルギーを宗教的には「神」というのです。法則は人間のほしいままな心によって左右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この人は悪いことをしたが、前に善いことをしたことがあるから今度は少し手加減して悪いことが起らないようにしてやろうというようなことは絶対にないのです。その人の運命は、その人がこの法則を知っているにせよ知らないにせよ厳密にこの法則によってつくられてゆくのであります。
물리학에 있어서의「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동시에 마음의 법칙이기도 합니다.「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동등하게 방향이 반대되는 반작용이 동반한다」 이「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마음의 면으로 표현한 것이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悪因悪果)」라고 하는 「인연(因縁)」의 법칙입니다. 과학의 법칙과 마음의 법칙은 하나이며, 이 하나의 법칙을 창조하고, 마음과 물질을 동일 법칙에 따라서 활동 촉진하고 있는 대생명력, 대에너지를 종교적으로는「신(神)」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법칙은 인간의 제멋대로인 마음에 의해서 좌우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 사람은 나쁜 짓을 했지만, 전에 착한 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은 약간 적당히 사정을 봐주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이 이 법칙을 알고 있든 알지 못하든 엄밀하게 이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第三十四章 法則の管理者は自分である
제34장 법칙의 관리자는 자기 자신이다
人間が神の子であるということは、「作用と反作用」の法則を自由にコントロールできる心の自由を与えられてあるということです。
인간이 신의 자녀이다 라고 하는 것은,「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자유롭게 컨트럴할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제공받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あなたはあなたの今の運命がどうであろうとも、それはあなたが知っていたにせよ知らなかったにせよ、みなあなた自身の心が造り出したものであって誰をも怨む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怨む、憎むということは自分の運命の責任を他に転嫁していることです。自分が下手な絵を画いたのに、あの人が私にこんな下手な絵を書かせたと思って、自分ではなにもしようとしないのが、怨むとか憎むという心なのですから、怨む心、憎む心が自分にある間は運命は絶対によくならないのです。十年間の腎臓病が治られた大牟田の小柳さんは、「憎んでいる人があったらその人を赦しなさい。赦すことによって誰が一番幸せになるかというと、赦すことができたあなた自身である」という話を研修道場で聞かれて、「そうだ赦そう」と思われた瞬間から病気がよくなったのです。これをよまれた方で、もし誰かを憎み怨んでいたとしたら、その人を赦しなさい。そうすれば必ずあなたの運命はよくなります。われわれは、自分自身の運命の主人公なのです。
당신은 당신의 지금 운명이 어떠할지라도,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든 알지 못하든, 모두 당신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며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원망한다, 미워한다 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서투른 그림을 그렀는데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나에게 이런 서투른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데, 원망한다든가 미워한다고 하는 마음인 것이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이 자신에게 있는 동안은 운명은 절대로 좋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10년간 위장병을 치료하시던 오무타(大牟田 :지명)의 고야나기(小柳)씨는,「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용서하는 것에 의해서 누가 가장 행복하게 되는가 하면, 용서할 수가 있었던 당신 자신이다」라고 하는 말을 연수도장에서 듣고서「그렇다 용서하자」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병이 좋아졌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이해하신 분이며, 만약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당신의 운명은 좋아집니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운명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コントロ―ル [control] 컨트롤. ①제어(制御). 조절. 관제(管制).
第三十五章 先祖の因縁ではない
제35장 조상의 인연이 아니다
これまで日本の宗教家は、なかにあると「それは先祖の因縁だから、先祖の供養をよくしなさい」と指導してきました。一方では先祖に感謝しなさいと教えて、一方ではこのように説いてきたために、「自分が不幸なのは先祖の因縁だ」とか、「こんな病気をするのは先祖が悪いのだ」、「貧乏しているのは先祖が陰徳をつまなかったからだ」と、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先祖を憎む心を起させてしまいました。この矛盾にも気づいていないばかりか、法を犯し真理を犯していることにも気づいていません。
지금까지 일본의 종교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으면「그것은 조상의 인연이니까, 조상의 공양을 잘 하십시오」라고 지도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조상에게 감사하십시오 라고 가르치고, 한 편에서는 이와 같이 설명해 왔기 때문에, 「자신이 불행한 것은 조상의 인연이다」라든가,「이런 병이 걸린 것은 조상 탓이다」,「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은 조상이 음덕(陰徳)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부지불신간에 조상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을 범하고 진리를 범하고 있는 것도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先祖の因縁が子孫にくることは絶対にないのです。先祖がしたことは、みな先祖が受取るし、あなたがしたことはあなたが受取るのです。あなたが一所懸命に信仰していて、どうしても自分の運命がよくならないとしたら、心の奥底で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先祖の因縁だ」と先祖を怨んでいる心があるのではないか、反省をしてみて下さい。われわれはみな心の自由が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自分の運命は自分の責任なのですから、あなた自身が努力されるとあなたの運命は確実によくなるのです。
조상의 인연이 자손에게 오는 일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조상이 한 것은, 모두 조상이 수령하고, 당신이 한 것은 당신이 받는 것입니다. 당신이 열심히 신앙해도, 도무지 자신의 운명이 좋아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마음의 밑바닥에서 부지불식간에「조상의 인연이다」라고 조상을 원망하고 있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을 해 보십시오. 우리들은 모두 마음의 자유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책임인 것이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노력하게 되면 당신의 운명은 확실히 좋아지는 것입니다.
先祖の因縁だと思って、自分で自分の心を束縛していたその心の束縛から、あなた自身を解放して、大いなる心の自由を獲得しなさい。
조상의 인연이다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속박하고 있던 그 마음의 속박에서, 당신 자신을 해방하고, 위대한 마음의 자유를 획득하십시오.
第三十六章 光りのみが実在である
제36장 빛만이 실재이다
神は光であり、太陽は光りです。暗いというのは、そこに光りがないという状態であるに過ぎません。悪とは、悪そのものがそこにあるのではないのであって、それは法を知らなかった、法を誤用した結果にしか過ぎないのです。だから、ここにあるこの「悪」をなくしようと思ってはなりません。法を知らず、また知っていても法をまちがって使った結果であるにしか過ぎないのですから、法を知って法を正しく使われると、それは善となって現われて、悪をなくしようと思わなくても悪の状態は自然に消えてしまうのです。神は罰を与えません。罰が当ったようにみえるのは、われわれが「作用と反作用」の法則、「善因善果、悪因悪果」の法則を誤用した結果にしか過ぎません。まちがって使ったら、今度は正しく使えばよいのです。どこがまちがっていたかを知るのが反省です。「知る」「反省する」という働きは智慧の働きなのですから、正しく信仰するには智慧が大事であります。智慧の大事さを説かない宗教は邪教です。
신은 빛이며, 태양은 빛입니다. 어둡다라고 하는 것은, 그곳에 빛이 없다고 하는 상태에 불과합니다. 악이란, 악 그 자체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그것은 법을 알지 못한, 법을 오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이 「악(悪)」을 없애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법을 알지 못하고, 또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법을 잘못되게 사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법을 알고 알고 법을 올바르게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선(善)이 되어 나타나며, 악(惡)을 없애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악(惡)의 상태는 자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신은 벌(罰)을 주지 않습니다.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들이「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悪因悪果)」의 법칙을 오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릇되게 사용했다면, 이번은 올바르게 사용하면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를 아는 것이 반성(反省)입니다. 「안다」「반성한다」라고 하는 작용은 지혜(智慧)의 작용인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게 신앙하는 데에는 지혜(智慧)가 중요합니다. 지혜의 중요서을 설명하지 않는 종교는 사교(邪敎)입니다.
★사교[邪敎] 《국어사전/한자사전》
①건전하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종교. 흔히 그 사회의 도덕이나 제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①부정(不淨)하고 요사(妖邪)스러운 종교(宗敎). 사회(社會)에 해악(害惡)을 끼치는 종교(宗敎) ②그 나라의 도덕(道德)이나 사회(社會) 제도(制度)에 어긋나는 종교(宗敎). 사도(邪道). 올바르지 못한 가르침
法語 1979年6月10号
법어 1979년 6월 10호
第三十七章 神の国と神の義とを求めよ
제37장 신의 나라와 의(義)를 구하라
キリストはそういわれたと聖書に書いてあります。いろいろな教団の指導者は、この言葉を巧みにすり替えて、教団のために奉仕することが、神の国を求めることであると説いています。私が前にいた生長の家でも、「第一義とせよ。第一義とは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ることであって、それは、生長の家教団のために寄付し、会員をふやし月刊誌を一括して百部買って、人に配ることである」といっていました。教団に奉仕することは自己満足にしかすぎません。キリストが教えられた本当の意味は、神の慈悲、愛は宇宙の真理となり宇宙の姿となっている。人間は神の子であることを知って神がつくられた正法を正しく実践することが、神の国と神の義とを求めることであると教えられたのであります。
그리스도는 그렇게 말했다고 성서(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여러 가지 교단의 지도자는, 이 말을 교묘하게 바꿔치기해서, 교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신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강설)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몸담고 있던 세이쵸우노이에(生長の家)에서도,「첫째로 의를 구하라. 첫째로 의(義)란 신의 나라와 신의 의(義)를 구하는 것에 있고, 그것은, 세이쵸우노우에 교단을 위해서 기부하고, 회원을 밤 늦도록 자지 않고 월간지를 일괄해서 100부를 구입해서, 남에게 배부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교단에 봉사하는 것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진정한 의미는, 신의 자비, 사랑은 우주의 진리이며 우주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 인간은 신의 자녀인 것을 알고 신이 만드신 정법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신의 나라와 신의 의(義)를 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一つの教団の枠の中には入りこんで、その教団の制約の下でしか信仰しないという信仰はホンモノではありません。正しい信仰を求めるには、いまあなたがいられる教団の枠から外へ出られることです。
하나의 교단의 틀 안으로는 깊숙히 들어가서, 그 교단의 제약하에서 밖에 신앙하지 않는다고 하는 신앙은 진짜가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을 구하는 데에는, 지금 당신이 계시는 교단의 틀에서 밖으로 나오시는 것입니다.
★의[義] 《국어사전/일본어사전》
①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2 군신(君臣) 사이의 바른 도리.3 같은 말: 도의(道義).
①의로움. 옳은 일. 조리(條理) 인도(人道).
★[生長の家(せいちょうのいえ)] : 神道・仏教・キリスト教等の教えを汲む新宗教
세이쵸우노우에는, 신도・불교・그리스도교 등의 가르침을 보급하는 신종교. ▶출처 :《ja.wikipedia.org/wiki/生長の家》
第三十八章 さらばその余のものは与えられるべし
제38장 그러면 그 나머지 것은 마땅히 주어질 것이다
神の国と神の義とを求めることは教団の方針に従い、教団のために奉仕することであって、そうしたら、あなたの願いは叶えられ、あなたは幸福になるのであると、どこの教団の指導者も説いています。創価学会が大石寺を建てるとき、「いま一万円寄付すれば大石寺が建った時は十万円になって返ってくる」といって、わづか三日間で三百五十五億円集めた話は有名です。創価学会でこれを総供養といっています。大石寺は立派に建ちましたが信者は誰一人として金は返りませんでした。
신의 나라와 신의 의를 구하는 것은 교단의 방침에 따라, 교단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며, 당신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당신은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어느 교단의 지도자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가학회가 대석사(大石寺)를 지을 때, 「지금 1만엔을 기부하면 대석사가 지어졌을 때는 10만이 되어 되돌아 온다」라고 말하며, 불과 사흘동안에 355억 엔을 모은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창가학회에서 이것을 총 공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석사(大石寺)는 훌륭하게 건립되었지만 신자(信者)는 누구 한 사람도 돈은 되돌려받지 못했습니다.
そういう事実がありながら、さらにその後総供養をやって千四百億円集めたといわれます。「出すとお蔭がありますよ」といって、出させる方もですが、出す方も出す方だと思います。これと同じやり方をどこの教団でもやっております。こうした金銭面からいえば日本の多くの教団は、信者が幸福になりたいと願っているその心を巧みに利用した搾取収奪団体だといえます。いづれ近くみなが目ざめて宗教界が大混乱を起す日が来ます。
그러한 사실이 있으면서, 더욱이 그 후 총 공양을 해서 1400억 엔을 모았다고 하는 합니다. 「내놓으면 음덕이 있지요」라고 말하며, 내놓게 하는 쪽도 있지만, 내놓은 쪽도 내놓는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과 똑같은 수법을 어느 교단도 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전면에서 말하면 일본의 대부분의 교단은, 신자가 행복하게 되고 싶다고 소망하고 있는 그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한 착취 수탈 교단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간에 모두가 잠에서 깨어 종교계가 대혼란을 일으키는 날이 옵니다.
キリストがいわれましたのは、正しく正法を実践することを喜びとして生活していれば求めようとしなくとも自然になくてならぬ必要なものは整ってくると教えられたのであります。なにかを求める心を持って正法を実践するのはまちがいです。正しく正法を実践すること、それによって起る心の喜び、心の拡大、心の成長、心の豊かさ、それを喜びとして生活することを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自然に必要なものは与えられるのです。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은, 올바르게 정법을 실천하는 것을 기쁘게 생활하고 있으면 구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것은 정돈되어 온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법을 실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올바르게 정법을 실천하하는 것, 그것에 의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기쁨, 마음의 확대, 마음의 성장, 마음의 풍성함, 그것을 기뻐하며 생활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필요한 것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第三十九章 求めよさらば与えられん
제39장 구하라 그러면 주어질 것이다
このこともまちがって教えられています。欲しいと思うものはなんでも祈り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ます、といって特に生長の家では「無限供給の祈り」といって教えております。「一億円すでに与えられ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祈れば必ず与えられると、全国を説いて廻って人気を集めた有名な講師がありましたが、この祈りによって一億円儲けた人は一人もありませんでした。
이 일도 잘못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주어질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특히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에서는,「무한공양의 기도」라고 말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1억 엔을 바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 반드시 주어지리라고, 전국을 설명하며 순회하며 인기를 모은 유명한 강사가 있었는데, 이 기도에 의해서 1억 엔을 번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天と地とを結ぶ電話』百三十八貢に
『하늘과 땅을 잇는 전화』138항에서
「例へば高級指導霊達は次のように警告する、「得られる筈のないものを与えようと約束し、吾々凡ての者を魅きつける「無より有」を与へんと約束する「指導者」に注意せよ」大指導霊達は、そのような指導者はニセモノの指導者であると警告している、と書いてあります。
「예컨데 고급 지도령들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얻을 수 없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우리들 모든 사람을 홀리는「무에서 유」를 준다고 약속하는「지도자」에게 주의하라」 대지도령들은, 그러한 지도자는 엉터리(가짜) 지도자이다 라고 경고하고 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キリストが求めよといわれたのは、神理を求めよ、切実に神理を知りたいと思えば必ず与えられる。いろいろな人が自分の前に現われて、また実際の自分の体験から、或は自然のたゝずまいの中から、必ず与えられると説かれたのであって、いまの日本の各教団が説いているような、なんでも欲望を叶えられるという意味で説か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
그리스도가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신리(神理)를 구하라, 절실히 신리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주어지리라.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 또 실제로 자신의 체험에서, 혹은 자연적인 그곳의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반드시 주어지리라고 설명하신 것이며, 지금의 일본의 각 교단이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무엇이든지 욕망을 들어주신다고 하는 의미로 설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われわれは、魂を偉大に成長させることを目的として生まれてきているのでありますから、死ぬ時に持って行けないような、地位、名誉、財産を求めて祈りを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ります。
우리들은, 영혼을 위대하게 성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태어나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지위, 명예, 재산을 구하며 기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第四十章 正念と祈り
제40장 정법과 기도
ではどのような祈りが正しいのであるか。
그럼 어떠한 기도가 올바른 것일까?
人生の目的は調和にあるのですから、足ることを知った心で、調和がくるように祈ることは正しいのです。念は願いであり、人は今日よりは明日はよくなりたいと願うからまた生きてゆけるのであります。
인생의 목적은 조화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 조화가 오도록 기도한느 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생각(念,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음)은 소망(바램)이며, 사람은 오늘보다는 내일은 잘 되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에 역시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ものを考える、ものを思うのは、われわれの心の中に一切を生み出す創造エネルギーがあるからであり、その創造エネルギーは宇宙創造のエネルギーが、あなたとなって固体化個性化したものでありますから、われわれは、その祈りが、神の心に叶っているかどうかを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人間は誰しもが正しく生きようと思い、また今日よりは明日はよくなりたいという目的意識を持っています。
세상 만사를 지적으로 생각한다, 세상 만사를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일체를 창출해 내는 창조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며, 그 창조 에너지는 우주창조의 에너지가, 당신이 되어 고체화 개성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기도가, 신의 마음에 들어맞고 있는지 어떤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올바르게 살려고 생각하며, 또 오늘보다는 내일은 잘 되고 싶다고 하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自己本位でないところの、正しい目的にそった調和を求めての努力実践をしながら、その目的にそっての願いごと、祈りは、必ず天上界からの協力があるのですから、このような祈りは堂々としてよいのであります。
자기본위가 아닌, 올바른 목적에 맞는 조화를 구하며 노력 실천을 하면서, 그 목적에 맞게 소망하는 것, 기도는, 반드시 천상계에서의 협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는 당당하고 좋은 것입니다.
九州のある方は、人間は努力すれば信仰などいらないといって、自己本位の努力をしていて何億という仕事をしていられましたが、見事に失敗されました。金廻りのよい時は出入りしていた人達も、金がなくなると来なくなりました。そうしてやっと正法を聞くことになりました。その人はいっていられました。 「わたしは三日間、正法を聞いて心のあり方が大体わかりました。よし最初からやり直しだ、と心に決めて祈ってやるようになりましたら、こんなに調子よくなってよいのかと、びっくりするほど調子がよくなって、人生に自信ができました」と。
큐슈(九州)의 어떤 분은, 인간은 노력하면 신앙 따위는 필요없다고 말하며, 자기본위의 노력을 하고 있고 몇 억이라고 하는 일(업무)를 하고 계셨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자금 회전이 좋을 때는 왕래를 하고 있던 사람들도, 돈이 떨어지자 찾아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정법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말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사흘간, 정법을 듣고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대강 알았습니다. 좋아 처음부터 다시 하자, 라고 마음 먹고 기도 하게 되었더니, 이렇게 형편이 좋아지고 좋은 것이구나 라고, 깜짝 놀랄 정도로 형편이 좋아져서, 인생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라고.
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且祈ることは正しい心のあり方、正しい神、正しい神理を教える正法、即ち歪められてないところの釈迦、キリストの教の原点にかえら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ります。
신의 나라와 신의 의(義)를 구하고, 또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마음의 본연의 모습, 올바른 신, 올바른 신리를 가르치는 정법, 즉 비뚤어지지 않은 석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法語 1979年10月14号
법어 1979년 10월 14호
四十一章 霊能力に片寄ってはいけない
41장 영능력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五月十三日「二十一世紀の宗教と科学」の大講演会が終った後の座談会で、日本PS学会理事の坂元邁先生が、ある有名な物品引寄せの霊能者の話をされた。私がその霊能者を知ったのは昭和三十六年であった。その人は仏像を出したり真珠を出したり、神前に供えた空の瓶の中に酒を出したりする。今でもその人が出した真珠など持っているが、その人がPS学会の科学者達の研究の対象になっているというのである。科学者が研究の対象にするのはよいことであるが、無知な信仰をする人達は、なにか不思議な霊能力を持っている人があると、盲目的にその人を神さまみたいに信じてしまう。多少ものを当てられたりするとなんでもその人に聞こうとして自分で判断するということをしない。それがヌミノーゼ心理である。正常な心理状態ではないのである。霊能力が可能だという知識をもったり、それを事実として認めても、霊能力を信ずる人が直ちに一層すぐれた人間であるということにはならないのであるが、ともするとその霊能力者に親しいとか言葉をかけられたとか握手してもらったとかで、急に人よりもえらくなったように思ってしまう人が多い。
5월 13일「21세기의 종교와 과학」의 대강연회가 끝난 후의 좌담회에서, 일본 PS학호ㅚ 이사(理事)인 시토무(坂元邁, 1926~1984) 선생님이, 어느 유명한 물품을 끌어당기는 영능자의 이야기를 하시었다. 제가 그 영능자를 알았던 것은 소화 36년(1961년)이었다. 그 사람은 불상을 꺼내거나 진주를 꺼내거나 하며, 신전에 바친 빈 병 속에 술을 꺼내거나 한다. 지금까지도 그 사람이 꺼낸 진주 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이 PS학회의 과학자들의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과학자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지한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불가사의한 영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맹목적으로 그 사람을 하느님(신령님)과 같이 믿어 버린다. 다소 무엇을 알아맞춘다고 하면 무엇이든 그 사람에게 들어보려고 해서 스스로 판단한다고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누미노제심리(Numinose心理)이다.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닌 것이다. 영능력이 가능하다고 하는 지식을 가지거나, 그것을 실험해서 확인해도, 영능력을 믿는 사람이 바로 더욱 더 출중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되지는 않지만, 자칫하면 그 영능력자와 사이가 좋다든가 말을 걸게 되었다든가 악수해 달라고 했다든가 해서, 갑자기 남 보다도 위대하게 된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사람이 많다.
その人に近いからといって、なにもその人の人間性が急にりっぱになるわけではないはずである。
그 사람에게 가까에서 말하고, 조금도 그 사람의 인간성이 갑자기 훌륭하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미노제 [(독일어)Numinose] 《국어사전》
[종교] 순수하게 비합리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성스러움을 이르는 말. 독일의 신학자인 오토(Otto, R.)가 사용한 용어이다.
★ヌミノーゼ【Numinose】
人間には、危険を回避しようとする根元的あるいは深層的心理として、不安、恐怖、畏怖という心理作用があり、人間はその危険からなんとしても逃げ出したいと願う。
인간에게는, 위험을 회피하려고 하는 근원적 혹은 심층적 심리로서, 불안, 공포, 두려움, 두려워함이라고 하는 심리작용이 있고, 인간은 그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치고 싶다고 바란다. ...<중략> ....
※출처: http://www.kazuokawasaki.jp/kk/9_designlang2.php?cid=23&del=4 , 내용이 길어서 중략했습니다.
第四十二章 なにを学ぶか
제42장 무엇을 배울까?
私はその霊能力者のところに三回行ってやめた。それはその人が、あてことばかりして法を説かないし、私の目の前で夫婦げんかを始めたからである。霊能力者も同じ人間だから、それは夫婦げんかもするさという人があるかもわからないが、客があって一方では神棚に向って祈りながら、なにもそんな時に夫婦げんかをしなくてもいいのではないのか?。その霊能力者も小さい時から苦労して滝に打たれたりして修行されたということであったが、社会的な良識、教養がないのである。
저는 그 영능력자가 있는 곳으로 세번 가 보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기대하고 있는 일(희망) 뿐만 아니라 법을 설명하지 않고, 내 눈앞에서 부부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능력자들도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은 부부싸움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손님이 있고 집 안에 신위(神位)를 모셔 두고 제사 지내는 선반을 향해서 기도하면서, 조금도 그러한 때에 부부싸움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닐까? 그 영능력자도 어릴 때부터 고생하며 수행을 위해 폭포수를 맞았다고 하는 일이 있었지만, 사회적인 양식(良識), 교양(敎養)이 없는 것이다.
高橋信次先生は、「その人のいっていることと、やっていることがちがっている人のいうことを信じてはならない」と、くり返していっていられた。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은,「그 사람의 말하고 있는 것과, 행하고 있는 것을 달리하고 있는 사람의 말하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되풀이하며 말하고 계셨다.
ふしぎな霊能力が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人たちは、今までよりも広い視野を持ち、そのことにつづいて人生の神秘さについて、永遠に「なぜなぜ」と追求して、その知識は、その人に一層高い道徳をもち来たし、その上に調和ある人生を築くようになって行か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って、その霊能力を単に興味の対象としたり、またその霊能力者を神様みたいにしんじてしまうということは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불가사의한 영능력자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다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그 일에 이어서 인생의 신비함에 대해서, 영원히「왜 왜」라고 추구하며, 그 지식은, 그 사람에게 더욱 더 높은 도덕을 가져오고, 게다가 조화있는 인생을 쌓게 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그 영능력을 단순히 흥미의 대상으로 하거나, 또 그 영능력자를 하느님(신령님)과 같이 믿어 버린다 라고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第四十三章 無 記
제43장 무기(선도 악도 아닌 성질(性質))
「あの世があるのですか」
「저 세상이 있는 것입니까?」
「魂はあるのですか」
「영혼은 있는 것입니까?」
「あの世はどうなっているのですか」
「저 세상은 어떻게 되어 있는 것입니까?」
「神さまはあるのですか」
「하느님(신령님)은 있는 것입니까?」
このような質問を受けられたお釈迦さまはなんにも答えられなかったと、お経の中に残っているが、このことを「無記」というのである。その質問のあとで説かれたのは、
이러한 질문을 받으신 부처님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경문 속에 남아 있지만, 이 일을,「무기(無記)」라고 하는 것이다. 그 질문 다음에 설명하신 것은,
「あなたたちは、神さまがあり、霊があり、あの世があるということがわからなければ、今日一日の生活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はないであろう。われわれにとって大事なことは、今日一日の生活を八正道によって正しくして心を安らかにし、調和ある人生をつくり出して自分の心を大きくすることである。わからないからといって、今日一日の人生をおろそかにしてはならない。今日一日をしっかりと生ききりなさい」ということであった。
「여러분은, 하느님(신령님)이 있고, 영혼이 있고, 저 세상이 있다고 하는 것을 모르면, 오늘 하루의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은, 오늘 하루의 생활을 팔정도에 따라서 올바르게 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조화있는 인생을 만들어 내며 자신의 마음을 크게 하는 일이다. 모르기 때분이라고 말하며, 오늘 하루의 인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루를 확실하게 살아 가십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このことがのちに大乗仏教時代になると、「あの世は空だといわれた」ということになり、現在、日本仏教が「無神論、無霊魂論」の立場をとっている原因なのである。
이 일이 후에 대승불교시대가 되자,「저 세상은 공(空)이다 라고 말하시었다」라고 하게 되어, 현재, 일본 불교가 「무신론(無神論), 무영혼론(無霊魂論)」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원인인 것이다.
お釈迦さまが天上界のことについて説かれたことは「生天論」としてのこっているのであるから、「無記」というところだけをつかまえて直ちに「一切は空である」と無神論、無霊魂論だというのはまちがいであるが、また霊能力だけに片寄り、霊能を得ようとして、毎日毎日の生活をおろそかにすることは尚一層いけないことで、それは、われわれが肉体をもって魂の修行に出てきた人生の目的に反するからである。
부처님이 천상계의 일에 대해서 설명하신 것은「生天論」으로서의 청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무기(無記)」라고 말하신 것만을 붙잡고 즉시「일체는 공(空)이다」라고 무신론(無神論), 무영혼론(無靈魂論)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또 영능력만에 치우쳐, 영능을 얻으려고 해서, 매일매일의 생활을 소홀히하는 것은 오히려 더욱더 안 되는 일이며, 그것은, 우리들이 육체를 가지고 영혼을 수행하려 태어난 인생의 목적에 반하기 때문이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기존의 말과 본문의 내용의 차이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특히, 공의 설명 ★
★무기7[無記] 《국어/한자사전》
① 석가모니가 다른 종교가로부터 받은 질문에 가부(可否)를 답하지 않고 침묵하였음을 이르는 말.
②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닌 것을 이르는 말. 스토아 철학에서, 현인(賢人)의 철학적 생활 태도를 반영한 개념이다.
①선도 악도 아닌 성질(性質). 석가모니(釋迦牟尼)가 다른 종교가(宗敎家)로부터 받은 질문(質問)에 대(對)하여 침묵(沈默)하고 대답(對答)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공[空] 공(불교 철학) [슌야타]브리태니커 불교철학 용어.
일상적인 어감에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 온갖 경험적인 사물이나 사건이 공허하여 덧없음을 뜻하며,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는 모든 술어나 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다...<중략>...
第四十四章 知識より体験が大事である
제44장 지식보다 체험이 중요하다
いろいろたくさん知っていることも大事である。知らなければ実行することすらできない。正
しく信仰する者は広い視野を持たなければいけない。心のせまい人が心を広くしようとするには、まず視野を広くすることから始めた方がよい。心のせまい人とは要するに視野のせまい人である。
여러 가지로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모르면 실행하는 것 조차도 할 수 없다. 올바르게 신앙하는 사람은 넓은 시야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의 좁은 사람이 마음을 넓게 하려고 하는 데에는, 우선 시야를 넓히는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 마음의 좁은 사람은 요컨데 시야가 좁은 사람이다.
いわゆる「もの知り」といわれる、いろんなことを知っている人がある。しかしそういう人で人格的にはどうかと顔をしかめたくなるような人がある。「もの知り」の人の話は時には面白く感心することがあるが、深く人を感動させ、その感動がその人をして実行にまでかり立てるということはない。しかし体験して身体で覚えていられる人の話は、深い感動が、「よし、それなら自分もやろう」という行動にまでかり立てる力を持っている。
이른바「만물 박사(もの知り)」라고 말하는, 이론적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람이 인격적으로는 어떨까라고 얼굴을 찡그리고 싶게 하는 듯한 사람이 있다. 「만물 박사(もの知り)」의 사람의 이야기는 때로는 흥겹고 감탄하는 일이 있지만, 깊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실행으로까지 옮기게 한다고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체험하고 신체로 느끼고 계시는 사람의 이야기는, 깊은 감동이, 「좋아, 그렇다면 나도 해 보자」라고 하는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行動実践によってのみ、心を大きく成長させ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って、知識が心を大きく成長させることはないのである。だから話を聞かれるなら体験した人の話を聞かれるべきである。
행동실천에 의해서만, 마음을 크게 성장시킬 수가 있는 것이며, 지식이 마음을 크게 성장시키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체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法語 1979年11月15号
법어 1979년 11월 15호
第四十五章 泥んこ遊びはさせた方がよい
제45장 흙투성이가 되어 놀게 하는 편이 좋다
幼児は泥んこ遊びや粘土遊びや、にちゃにちゃしたものをもて遊ぶのがすきである。幼児はそのにちゃにちゃした手指の感触の中に、おかあさんの膝に抱かれてお乳を呑みながら一方の手をおかあさんの胸にいれ、空いた方の乳房をまさぐっていたあの時の感触を感じ、その時に抱いた心の安らかさを味わっているのである。するなと叱られても幼児が泥んこ遊びをするのはその心の安らかさを味わっていると同時に、なんでも自分の思う通りにこね廻してつくれる創造の喜びを体験しているのである。服が汚れて洗濯の手間がかかるのをおそれて、子供に泥んこ遊びをさせない母親は、子供の大事な心の成長を妨げているのであり、泥んこ遊びをさせられなかった子供は心の安らかさを体験させられないから情緒不安定になる率が高いのである。落着きのないいつもはしゃいでばかりいる子供は母親によって心の安らかさの体験を奪われた子供なのであって、いくら「静かにしなさい」と叱ってみても治らないのである。これを治す道は、子供をしかと抱きしめて、母親の膝の上で心の安らかさを体験させる以外にないのである。
유아는 흙투성이로 놀거나 찰흙놀이나, 끈적끈적한 것을 가지고 노는 것이 좋다. 유아는 그 끈적끈적한 손가락의 감촉 속에, 엄마의 무릎에 안겨서 젖을 빨면서 한쪽의 손을 엄마의 가슴에 넣고, 빈 쪽의 유방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저 때의 감촉을 느끼고, 그 때에 안긴 마음의 평안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호되게 꾸중을 들어도 유아가 흙투성이 놀이를 하는 것은 그 마음의 편안함을 맛보고 있는 동시에, 무엇이든지 자신의 생각하는 대로 필요 이상으로 주물럭거리며 만드는 창조의 기쁨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옷이 더러워져서 세탁의 품을 들이는 것을 걱정하며, 아이에게 흙투성이 놀이를 시키지 않는 모친은, 아이의 중요한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며, 흙투성이 놀이를 하지 못했던 아이는 마음의 평안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서불안(情緖不安)이 되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결말이 없이 늘 신이나서 떠들기만하고 있는 아이는 모친에 의해서 마음의 편안한 체험을 빼앗긴 아이인 것이며, 아무리 「조용히 하세요」리고 꾸중을 해 보아도 진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치료하는 길은, 아이를 꼭 끌어안고, 모친의 무릎 위에서 마음의 평안을 체험케 하는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第四十六章 ミルクは抱いて飲ませなさい
제46장 우유는 안아서 먹이십시오
ソ連が共産党の闘士を育てるというので、生まれたばかりのあかちゃんを母親の手からひき離し、国家で養育するするということをやったことがある。これは完全に失敗に終りました。抱かれることもなく機械的にミルクをのまされた幼児達がハイハイをはじめるようになると幼児達はお互いに噛みついて血だらけになってしまって、その血の中を這いずり廻って相手を見ては噛みつくということをやり、結局育児を共産党主義的考え方と手段でやるのは失敗だということになり、母親の手にかえ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情緒不安定児、自閉症児は母親の膝に抱かれる時間が少なく、また母親がことばをかけることの少なかった子供達である。うちの子はおとなしくて泣きもしない育て易い子供だということでテレビの前にねかされていた子供が自閉症になり易いのである。いつも耳には入るのはテレビを通して出ている声と音だけで、テレビの方はよくみるが、お母さんの生まの声を聞く機会が少ないのでお母さんから自分の名前を呼ばれても、自分の名前を呼ばれたことに関心がない子供になってしまう。
소련이 공산당의 투사를 키운다고 하는 것으로, 갓 태어난 젖먹이(아기)를 모친의 손에서 억지로 때어놓고, 국가에서 양육한다고 하는 일을 행한 적이 있다. 이것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렸다. 안아주는 일도 없이 기계적으로 우유를 먹게 된 유아들이 기엄기엄을 시작하게 되자 유아들은 서로 깨물며 피투성이가 되어 버려서, 그 피 속을 기어 돌아다니며 상대방을 보고는 깨문다고 하는 짓을 하며, 결국 육아를 공산당주의적 사고방식과 수단으로 행하는 것은 실패다 라고 하게 되어, 모친의 손으로 돌려보내게 되었습니다. 정서불안정 아동(情緒不安定児), 자폐증 아동(自閉症児)은 모친의 무릎에 안기는 시간이 적고, 또한 모친이 말을 거는 일이 적었던 아이들이다. 우는 아이는 얌전하며 울지 않는 아이는 키우기 쉬운 아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텔레비젼 앞에 잠을 재우고 있던 아이가 자폐증이 되기 쉬운 것이다. 늘 귀로는 들어오는 것은 텔레비젼을 통해서 나오고 있는 목소리와 소리뿐이며, 텔레비젼의 쪽은 잘 보지만, 엄마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적기 때문에 엄마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도, 자기의 이름을 부른 것에 관심이 없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赤ちゃんは必ず名前を呼んで声をかけて抱きあげて、しっかり胸に抱いてミルクものませるようにしないといけない。お母さんの膝に抱かれていた時に味わう心の安らかさ、その安らかさが人間を落着きのあるものにするし、その安らかさが実は禅定をする時の心の安らかになるのである。だから禅定をする人は、お母さんの膝に抱かれていた時の自分の姿を想像して心の安らかさを取り戻せばいいのである。
젖먹이(아기)는 반드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며 안아주고, 꼭 가슴에 품고 우유도 먹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마의 무릎에 안겨 있던 시절에 맛보는 마음의 편안함, 그 편안함이 인간을 결말이 있는 목적을 달성하고, 그 편안함이 실은 선정(禪定)을 할 때의 마음의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정을 하는 사람은, 엄마의 무릎에 안겨 있던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마음의 편안함을 되찾으면 좋은 것이다.
第四十七章 幼時に愛し過ぎる弊害
제47장 유년 시절에 지나치게 사랑하는 폐해
かわいい、といってはお母さんは赤ちゃんに頬ずりしたり抱擁したりする。その肌と肌のふれ合いによって相手に対する自己同一化即ち愛の感情が培かわれてゆく。ところが幼児を愛撫する母親の感情の中に、また子供が小学生から中学生となり性微が出てくるその中で、母親が幼児を愛撫する中で性的快感を味わい、また、夫によって満たされない性的欲求不満を、子供を見、世話をする中で満足させたいというような性的感情が入ってくると、その子供は性的に早くめざめ、ませて性に普通の子供以上の関心を持つようになる。性的非行に走る子供達は、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親によってそのようにしむけられたのであり、非行に走る勇気を持たない内向型の子供は、頭の中は性のことで一杯になり、性以外のことは考えられず逆にノイローゼになるのである。甘やかされて育った男の子がノイローゼになるのは、原因は性の葛藤にある。母親は、特に男の子供の性的興奮を誘発するような愛撫のしかたをしてはいけない。
귀엽다(사랑스럽다), 라고 말하며 엄마는 아기에게 뺨을 대거나 포옹하거나 한다. 그 살과 살이 맞닿음에 의해서 상대방에 대한 자기동일화 즉 사람의 감정이 배양되어 간다. 그런데 유아를 애무하는 모친의 감정 속에, 또 아이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어 성징이 나오는 그 가운데에서, 모친이 유아를 애무하는 과정에서 성적 쾌감을 맛보며, 또, 남편에게서 충족되지 않는 성적 욕구불만을, 아이를 보고, 돌보는 가운데 만족시키고 싶다고 하는 것과 같은 성적 쾌감이 들어오면, 그 아이는 성적으로 일찍 눈을 뜨고, 조숙하여 성에 보통의 아이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된다. 성적 비행으로 치달리는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양친에 의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며, 비행으로 치달리는 용기를 갖지 않은 내향형의 아이는, 머리 속은 성(性)의 일로 가득차게 되어, 성(性) 이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반대로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이 되는 것이다. 응석을 받아 주며 성장한 남자 아이가 노이로제가 되는 것은, 원인은 성(性)의 갈등에 있다. 모친은, 특히 남자 아이의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애무만을 해서는 안 된다.
第四十八章 夫婦の調和が大事な理由
제48장 부부의 조화가 중요한 이유
夫に失望し、夫によって愛が満たされないと、母親は男の子供に期待をつなぐようになる。男の子供の成長につれてそこに理想の男性像を子供の上に描くようになり、特に性的特徴がはっきり出てくるようになると性的にほいのする思いを母親がかけるようになる。
남편에게 실망하고, 남편에게서 사랑이 충족되지 않으면, 모친은 남자 아이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남자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서 거기에 이상적인 남성상을 아이에게 그리게 되며, 특히 성적 특징이 분명히 나오게 되면 성적으로 보유하는 생각을 모친이 품게 된다.
念は通ずるのであるから、男の子供はその念をうけて性についての関心を持つようになり、その性的興味を持つようになった発信源が母親にあることを知らない子供は、なんとはなしに無意識のうちに母親を性的対象として心の中で見るようになる。普通は母親を性的対象とみるのはいけないことであるとしてつぎには年上の女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る。最近年上の女と結婚する男子がふえてきたのはこういうところにも原因がある。そうして多くはやはり自分の年令と釣り合った女性を結婚の対象に選ぶようになる。過度に母親に愛された男の子供は母親に心が固着して、母親と肉体関係を持っている場面を想像するようになる。そうすると、きよらかなものとして尊敬すべき母を、みだらな性的対象としてみたいということで罪悪感を感じて苦しむようになる。そうなると外へ出るのがいやになり、人がみな自分の心の秘密を知っているような気がして人の目がこわくなり暗いところにこもり勝ちになる。
생각(念)은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자 아이는 그 생각(念)을 받고 성(性)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머, 그 성적 흥미를 갖게 된 발신원이 모친에게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분명한 이유는 없지만) 어쩐지 무의식 중에 모친을 성적 대상으로서 마음속으로 보게 된다. 보통은 모친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하며 나중에는 연상의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최근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가 늘어난 것은 이러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은 결국 자신의 연령과 어울리는 여성을 결혼의 대상으로 선택하게 된다. 정도에 모친에게 사랑을 받은 아이는 모친에게 마음이 고착되어, 모친과 육체관계를 가지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청순한 사람으로서 존경해야 할 어머니를, 음란한 성적 대상으로 삼고 싶다고 하는 것으로 죄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하게 되어, 사람이 모두 자신의 마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사람의 눈을 무서워하게 되어 어두운 곳에 틀어박히는 그런 일이 많게 된다.
男の子供のノイローゼはこのようなケースでなるのが多いのであるから、それを治すには、まず母親が子供にそういう思いを送らないように、子供のことはさて置いて、夫に心をむけるようにす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남자 아이의 노이로제는 이러한 케이스가 되는 것이 많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선 모친이 아이에게 그렇게 생각을 보내지 않도록, 아이의 일은 잠시 제쳐 놓고, 남편에게 마음을 돌리도독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法語 1979年12月16号
법어 1979년 12월 16호
第四十九章 心の合理化
제49장 마음의 합리화
正見とは偽りなく自分の心を見つめることである。人間の心の中には、自分がまちがったことをしていることを充分に知っていながら、それをまちがいではないと正当化し合理化しようとする心がある。受験期が近づくと病気になるのもそのひとつである。健康で受験してもし不合格になると、「あいつは頭が悪いのだ」といわれるが、病気になると、病気になったから勉強ができなかったと不合格の理由を正当化して、頭が悪いといわれるのを避けることができる。即ち仮病も合理化の一つである。自分が悪いことを知っている者ほど相手に対して攻撃的になり相手を悪くいう。相手を悪くいうことによって、自分がこうするのは当然だと、自分の行為を正当化しようとするのである。他に責任転嫁する心もそうであろう。自分の心を正しく見つめられるようにならないと魂の進歩はない。
정견이란 거짓없이 자신의 마음을 주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잘못된 것을 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잘못이 아니라고 정당화하며 합리화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수험기가 가까워지면 병에 걸리는 것도 그 한가지이다. 건강하게 수험하고 만약 불합격하게 되면,「저녀석은 머리가 나쁜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병에 걸리면, 병에 걸렸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불합격의 이유를 정당화하며, 머리가 나쁘다고 말을 듣는 것을 피할 수가 있다. 즉 꽤병도 합리화의 한가지이다. 자신의 나쁜 짓을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상대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되어 상대를 나쁘게 말한다. 상대를 나쁘게 말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라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마음도 그럴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주시할 수 있도록 되지 않으면 영혼의 진보는 없다.
第五十章 嫉妬は正見を妨げる
제50장 질투는 정견을 방해한다
嫉妬心は相手を引きずりおろして自分が相手よりも優位に立とうとする心である。嫉妬心があるとすべてのことを否定したり圧迫したり軽くあしらったりする。相手を悪くいうことによって自分を偉いのだとみせようとする。なにかを聞いた時に、すぐそれを否定しようとする心が先に起ったら嫉妬心がある証拠であるから、相手がなにかをいったら、相手がそのように考えていることは、その人にとっては正しいことなのであると一ぺん素直に聞いて、その上で自分はどう判断すべきであるかを知性によって確め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る。なんでもかんでも反対してすなおに聞こうとする心がないと正しく見ることができない。相手が不幸になることを喜ぶ心があるとあなた自身が幸福になれない。相手の喜びを自分のことのように喜べるようになることである。
질투심은 상대방을 격하시키고 자신이 상대방 보다도 우위에 서려고 하는 마음이다. 질투심이 있으면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압박하거나 대답도 않고 하찮게 대하거나 한다. 상대방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을 위대한 것이다 라고 보이려고 한다. 무엇인가를 들었을 때에, 즉시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마음이 먼저 일어나면 질투심이 있는 증거이기 때문에, 상대받이 무엇인가를 말하면,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올바른 일인 것이라고 일단 솔직하게 듣고, 그 상태에서 자신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지성에 의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반대하며 솔직하게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없으면 올바르게 볼 수가 없다. 상대방이 불행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당신 자신이 행복하게 되지 않느다. 상대방의 기쁨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第五十一章 都合の悪いことは忘れる
제51장 형편이 나쁜 것은 잊어버린다
地獄耳という人がある。地方によっては勝手耳ともいう。外のことは聞えないくせに自分のことをいわれたり自分が損させられるような話になると、「いま、なにいったか」とつめよってくる。「心ここにあらざれば聞けども聞えず」であって、聞こうという意思がなければなにごとも聞えないのである。自己保存の強い利己主義者ほど自分に都合の悪いことは忘れる。愛情が失われてくるとその人のいうことは心にとめなくなってくる。学校へ行く子供で忘れ物が多いのは、学校へ行きたくない心が働いているのであるから、なぜ学校が面白くないのか担任の先生とよく話合ってみる必要がある。人間は、愛する人のいうことは絶対に忘れない。先生が好きであったら、好きな先生のいわれることは絶対に忘れないものである。過去のいやな思い出は早く忘れようとする心がある。心の底にかくそうとしないで明るみに出して修正することである。
★지고쿠미미(地獄耳)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캇테미미(勝手耳)라고도 한다. 딴일은 듣지 않는 버릇으로 자신의 일을 말하거나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듯한 화제가 되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라고 추궁해 온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들으려고 하는 의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이다. 자기보존의 강한 이기주의자일수록 자신에게 형편이 나쁜 것은 잊어버린다. 애정이 식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마음에 품지 않게 된다. 학교에 가는 아이가 잊어버리는 물건이 많은 것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왜 학교가 재미가 없는지 담임 선생과 잘 서로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하는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선생님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싫어하는 추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하는 마음이 있다. 마음속에 새겨두려고 하지 말고 밝은 곳으로 꺼내서 수정하는 것이다.
★じごくみみ [地獄耳] 《일본어사전》
①한 번 들은 것은 잊지 않음. ②남의 비밀 등을 재빨리 알아내는 귀[사람].
★勝手耳, 自分に都合の良いことだけきこえて、都合が 悪いことちはきこえない耳のことを、勝手耳(かってみみ)と言いますちしています。
캇테미미(勝手耳), 자기에게 형편이 좋은 것만을 들으려고 하며, 형편이 나쁜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귀를, 캇테미미(勝手耳 : 자기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못 들은 체함. 또는 그런 사람)라고 말하곤 합니다.
第五十二章 病気不幸は自己処罰である
제52장 질병 불행은 자기처벌이다
誰も知らないことであっても、自分で自分は悪いことをしたという罪悪感があると、こういう悪いことした人間が幸福になる筈がない。といって幸福になるチャンスが与えられてもそれを拒否して不幸の道を選ぶようになる。また、自分みたいな者は死んだ方がましなのだと思って自殺するまでの勇気もない者は病気を自分でつくる。悪かったことは二度としないようにすれば罪は赦されるのであるから、懺悔反省して心の中から罪悪感をなくすることである。
아무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해도, 스스로 자기 자신은 나쁜 짓을 했다고 하는 죄악감이 있으면, 그러한 나쁜 짓을 한 인간이 행복하게 될 턱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게 될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거부하며 불행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또, 자신과 같은 사람은 죽는 편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생각하며 자살할 용기도 없는 사람은 질병을 스스로 만든다. 나빴던 것은 두번 다시 하지 않으려고 하면 죄를 용서받는 것이기 때문에, 회개 반성해서 마음속에서 죄악감을 없애는 것이다.
また、心の奥底で病気になった方が都合がよいと思っている者も自分で病気をつくる。病気になりたい心を持っている者などいる筈がないと思う人があるかも知れないが実際にあるのである。病気になって同情されたいとか、病気になれば仕事しないですむとか、病気になればラクができるとか、そのような逃避する心を持っていては幸福になれない。
또, 속마음에 병이 걸린 사람이 형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스스로 병을 만든다. 병에 걸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있는 것이다. 병이 걸려 동정을 받고 싶다든가, 병이 걸리게 되면 일하지 않고 산다든가, 병이 걸리면 Raki(술)을 할 수 잇다든가, 그러한 도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행복하게 될 수 없다.
法語 1980年1月17号
법어 1980년 1월 17호
第五十三章 正法は万物を活(い)かす
제53장 정법은 만물을 소생시킨다.
正法は、神が万物を生かす慈悲、愛の表現である。太陽は神の慈悲・愛の表現である。太陽信仰が始まったのは太陽が神の心の表現であり万生万物に平等に光りと熱を与えているからである。それと同じように、正法は万生万物生命を与える神の法である。正法が宗教に生かされる時、その宗教は新たな生命を得て真の生きた宗教となり、正法が政治に生かされた時、万人のための政治となり、正法が経済に生かされる時、足ることを知った貧富の差のない経済となり、正法が教育に生かされる時、それは人間性を開発し真の人間性を満足させるための教育となり、正法が会社で生かされる時、その会社は繁栄し、正法が家庭に生かされる時、家庭は真の調和を得、正法が個人に生かされる時、その人は人として自己を確立して自分の運命の主人公となるであろう。
정법은, 신이 만물을 소생시키는 자비, 사랑의 표현이다. 태양은 신의 자비・사랑의 표현이다. 태양신앙이 시작된 것은 태양이 신의 마음의 표현이며 만생만물에게 평등하게 빛과 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정법은 만생만물 생명을 주는 신의 법이다. 정법이 종교로 소생되어질 때, 그 종교는 새로운 생명을 얻고 참다운 살아있는 종교가 되며, 정법이 정치로 소생되어질 때, 만인을 위한 정치가 되며, 정법이 경제로 소생되어질 때, 만족할 줄 아는 빈부의 차가 없는 경제가 되며, 정법이 교육에 소생되어질 때, 그것은 인간성을 반견하고 진정한 인간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교육이 되며, 정법이 사회에서 소생되어질 때, 그 사회는 번영하고, 정법이 가정에 소생되어질 때, 가정은 진정한 조화를 얻어, 정법이 개인에게 소생되어질 때,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자신의 운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正法によって万生万物は復活するのである。
정법에 의해서 만생만물은 부활하는 것이다.
第五十四章 これからは綜合の時代である。
제54장 앞으로는 종합 시대이다.
物質科学はものを細かく分析することによって発達してきた。細かく部分に分けて分析した結果、人々を生かすつもりの科学が人を殺す原子爆弾をつくり出した。原子爆弾によって沢山の人が殺されてはじめて心ある人々は分析するだけでは人は生かされないことを悟った。人間を部分に分けた唯物医学は、ますます多くの病人をつくり出した。新しくふえる病人に医学は追いつかない。分析があって綜合がなければすべては死である。自動車も細かく部品に分解すれば自動車としての用を偽さないのと同じである。
물질과학은 물건(사물)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 세밀하게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사람들을 소생시킬 작정인 과학이 사람을 죽이는 원자폭탄을 만들어 내었다. 원자폭탄에 의해서 많은 사람이 살해당하자 양식이 있는(분별이 있는) 사람들은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소생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을 부분으로 나눈 유물의학(唯物醫學)은, 점점 더 많은 환자를 만들어 내었다. 새롭게 늘어나는 환자에게 의사는 따라잡지 못한다. 분석이 있고 종합이 없으면 모든 것은 죽음이다. 자동차도 세밀하게 분해하면 자동차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四百年に亙る近代合理主義、科学主義の時代は終った。分析された従来の宗教、哲学、思想だけを信じている者は時代遅れになる。
400년에 이르는 근대합리주의, 과학주의의 시대는 끝났다. 분석된 종래의 종교, 철학, 사상만을 믿고 있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다.
二十一世紀は綜合の時代であるが、八〇年代からは二十一世紀に入るための準備の時代であるといえる。新しい年を迎えて発想の転換が必要である。
21세기는 종합 시대이지만, 80년대부터는 21세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준비의 시대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第五十五章 宗派宗教は本当の宗教ではない
제55장 종파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다.
ある時、ある場所で、その人々の機根に従って説かれた教がすべての人に通用する筈がない。宗派宗教にはそれでよいという人もあるがその反面にそれでは満足できない人が必ずある。新興宗教も同じである。宗派宗教は神仏を礼拝する儀式を持っている。儀式は本当の信仰には必要はない。あなたが今までの信仰に疑問を持たれたとしたらそれはあなたが正しいのである。部分は部分であって全体ではないのと同じように、釈尊やキリストの教の一部分を知ってそれで全体を知ったとするわけにはいかない。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그 사람들의 기근에 따라서 설명되는 가르침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턱이 없다. 종파종교에는 그래서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면에 그래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꼭 있다. 신흥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종파종교는 신불을 예배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의식은 올바른 신앙에는 필요는 없다. 당신이 지금까지의 신앙에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올바른 것이다. 부분은 부분이며 전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석존이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일부분을 알고 그래서 전체를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二十一世紀に向っていちばん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各宗教団体の指導者である。自分が知っただけのことを宗教のすべてだとして信者に強制してはならない。宗教指導者は自分の教団の中の反対意見に耳を傾けるべきである。
21세기로 향해서 가장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이다. 자신의 아는 것 뿐인 것을 종교의 모든 것이다 라고 하며 신자에게 강제해서는 안 된다. 종교지도자는 자신의 교단 안의 반대의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第五十六章 悟りとは
제56장 깨달음이란
悟りとは自分で自分の心を完全にコントロールできることである。人がなにをいっても腹を立てまいと思えば立てずにいることができる。悲しみはそのことだけに囚われると悲しみのままで心を暗くするが、そのことが自分の欠点を気づかせ、ものの考え方の違い、心の狭さ、知識の不足などに気がつくならば悲しみは喜びに変ってくる。悟った人とは心の取直しがすぐできる人であり、禍いを転じて福となすことができる人のことである。心の正しいあり方を説かずに霊能力を誇ってあてごとや病気直しを、こととしている人を悟った人と思ってはならない。現世利益を強調するのは真の宗教ではない。現世利益はその人が悟った結果として副次的に起ってくるのであって、現世利益中心になると魔に支配され易くなる。霊能力に憧れ霊能力を持ちたいという野心も一つの欲望であって釈尊はそういう欲を捨てよといっていられるのである。
깨달음이란 자신의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다. 남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화내지 않을 수가 있다. 슬픔은 그만큼이나 얽매이면 슬픈 상태로 마음을 어둡게 하지만, 그 일이 자신의 결점을 알아채게 하고, 사람의 사고방식의 차이, 마음의 좁음, 지식의 부족 등을 알아차리게 되면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어 온다. 깨달은 사람이란 마음을 원상으로 되돌리는 것을 즉시 할 수 있는 사람이며, 재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거꾸로 이용하여 행운의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마음의 올바른 본연의 모습을 설명하지 않고 영능력을 뽐내며 기대하고 있는 일이나 병고침을, 태연히 하고 있는 사람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세이익을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현세이익은 그 사람이 깨달은 결과로서 부수적으로 일어나오는 것이며, 현세이익 중심이 되면 악마에게 지배당하기 쉽게 된다. 영능력을 동경하며 영능력을 갖고싶다고 하는 야심도 하나의 욕망이며 석존은 그러한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コントロ―ル [control] 컨트롤. ①제어(制御). 조절. 관제(管制).
法語 自己確立への道 1980年2月18号
법어 자기확립으로의 길 1980년 2월18호
第五十七章 流行病
제57장 유행병
流行を追わずにはいられないというのも一つの心の病気である。日本人のほとんどが流行病に罹っている。新聞に癌の死亡率が高いと書かれると、自分も癌になりはしないかと心配し、ノイローゼが流行すると、いかにもそれが新しい文明病みたいに思って、少し心がふさぐとノイローゼではないかと思い、胃が少し痛むと胃潰瘍だと思い、病気であることに優越感を持っている人がある。ファッションやモードの世界は典型的な流行病の世界である。終戦後いち早く流行したのがロングスカートで、つづいてパットを入れたいかり肩、フレヤーコートにショルダーバッグ等、そうしてミニスカートと猫の目のように変ってきた。化粧品も毎年毎年基礎となる色が変る。マージャン熱、ゴルフ熱、ドライブ熱、日本人はなんでもかんでも熱病にしてしまう。
유행을 따르지 않고 속하지않겠다고 하는 것도 하나의 마음의 병(病氣)이다. 일본인의 대부분이 유행병에 걸려 있다. 신문에 암의 사망율이 높다고 써 있으면, 자신도 암이 걸리지는 않을까 라도 걱정하고, 노이로제(신경쇠약증)가 수행하면, 정말로 그것이 새로운 문명병(文明病)인 처럼 생각하며, 조금 마음이 우울해지면 노이로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위가 조금 아프면 위괘양(胃潰瘍)이다 라고 생각하며, 병이 있는 것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패션(fashion : 유행. 특히, 의상 유행. 또는 유행하는 의상. 또는 머리 모양 등)이나 모드(프 mode :(옷 등의) 유행형))의 세계는 전형적인 유행병의 세계이다. 종전 후 일찍이 유행한 것이 롱 스커트(long skirt)이며, 계속해서 뽕(putt : 퍼트)를 넣은 모난 어깨(치켜 오른 어깨), 플레어코트(롱코트)에 어깨에 걸치는 가방(shoulder bag: 솔더 백) 등, 그리고 미니스커스(miniskirt : 깡통치마, 짧은 치마)와 고양이의 눈처럼 변해 왔다. 화장품도 매년 매년 기초가 되는 색이 바뀐다. 마작열(熱), 골프열(熱), 드라이브열(熱), 일본인은 무엇이든지 열병(熱病)이 되어 버린다.
飛降り自殺したと新聞に出ると必ずつづいて飛降り自殺する人がでる。絶えず流行を追っていないと安心できないという人、つねに廻りの人が気になって仕方がないという人は自己の確立ができていないのである。
비행기에서 떨어져 자살했다고 신문에 나오면 반드시 계속해서 비행기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끊임없이 유행을 따르고 있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 늘 주변의 사람이 마음에 걸려 견딜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확립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パット [putt] ①퍼트. (골프에서) 공을 홀에 넣기 위해 살짝 치는 일. 란 의미인데요.
^^ 여성들의 브래지어 속에 넣는 ★브라^^~
★ねこのめ[猫の目] 고양이의 눈. 《사물이 어지럽게 변함의 비유》
第五十八章 流行の最尖端を行く積極型
제58장 유행의 최첨단을 가는 적극형
ファッションは、会社が人の心を操縦して儲けんがために商業デザイナーにつくらせ、それをマスコミを使って宣伝した産物である。いつも流行の最尖端をゆき、自分を他人よりも目立たせようとする人がある。こういう人は、他人の注目や羨望、賞賛を受けることを期待している自己顕示欲の強い人である。自己顕示欲の強い人ははヒステリー型の性格で、いつも芝居がかった大げさな身ぶりや派手な身なりで他人の目をひこうとして、自分に注意をひきつけないではいられない人で、自己本位で、わがままで、見栄坊で、競争心がはげしく、いつも他人が気にかかって他人と自分とが違っていることを強調しようとする。こういう性格は幼児期に母親によってつくられるのである。また幼児期に抑圧された反抗心が爆発してなる場合もある。
패션은, 회사가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며 돈벌이를 위해서 상업 디자이너에게 만들게 하여, 그것을 매스컴((신문·라디오·TV 등을 통한) 대중 전달)을 사용해서 선전한 산물(생산물이다. 언제나 유행의 최첨단을 가며, 자신을 타인보다도 두드러지게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타인의 주목이나 선망(羨望), 칭찬(賞讚)을 받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자기현시욕의 강한 사람이다. 자기현시욕의 강한 사람은 히스테리형(型)의 성격이며, 항상 언행의 연극조인 과장된 몸짓이나 화려한 옷차림으로 타인의 시선을 끌려고 하며, 자신에게 주의를 가까이 끌어당기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이며, 자기본위이며, 제멋대로이며, 겉치레를 좋아하는 사람(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며, 경쟁심이 심하고, 항상 타인이 마음에 걸려서 타인과 자신이 다른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이러한 성격은 유아기(幼兒期)에 모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유아기(幼兒期)에 억압을 받은 반항심이 폭발해서 되는 경우도 있다.
第五十九章 流行のあとを追う消極型
제59장 유행의 뒤를 따르는 소극형
他人のすることなら自分もしたい。自分一人だけ除け者にされたくないといういわば個性のないタイプの人がある。積極型は自我意識が強すぎることが原因であるが、消極型は意志が弱いのが原因である。心が健康に発達している人は、いたずらに流行を追うことはしないで、服飾や趣味などは自分の個性にマッチしたものを自分で選ぶ、自我が強くて実力が伴わなかったり、自分に自信がもてなかったり、劣等感があったりすると、その弱さをカバーするために、他人と違った身なりをしようとする。人よりもかわった服装をすることによって自己主張をしようとするほどの自我の強さのない人は、人と同じような服装をすることによって自分の存在を埋没させようとする。こういう心はどちらも中道ではない。衣服は身体を保護すればそれで足りるものであることを知って流行を追わないという心になることからでも自己の確立ができる。
타인의 하는 것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 자기 혼자만 따돌림을 받고 싶지 않겠다고 하는 말하자면 개성이 없는 타입의 사람이 있다. 적극형(積極型)은 자아의식이 너무 강한 것이 원인이지만, 소극형(消極型)은 의지가 약한 것이 원인이다. 마음이 건강하게 발달하고 있는 사람은, 장난삼아 유행을 따르는 일은 하지 않으면, 옷과 몸차림의 꾸밈새나 취미 등은 자신의 개성에 잘 어울린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 자아가 강한데 실력이 따르지 않거나, 자기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없거나, 열등감이 있거나 하면, 그 약함을 커버(보충)하기 위해서, 타인과 다른 옷차림을 하려고 한다. 남보다도 다른 복장을 하는 것에 의해서 자기주장을 하려고 하는 정도의 자아가 강함이 없는 사람은, 남과 똑같은 복장을 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를 매몰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은 양쪽 다 중도(中道)가 아니다. 의복은 신체를 보호하면 그것으로 족하는 것인 것을 알고 유행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이 되는 것에서도 자기의 확립이 가능하다.
第六十章 偽りの自我を捨てる
제60장 거짓 자아를 버린다
自分の身体や心に自信を持てないものが自分を認めさせようとし、マスコミに登場する流行歌手とか人物にまねすることによって、自分もその人と同じようになったように錯覚する。精神分析学者は、流行の最尖端をゆく心理を、欲求不満や情緒障害からくる攻撃性のあらわれとみる人もある。他人を見下し、他人をうらやましがらせることによって満足を得ようとするからである。流行を追わずにいられないのは精神的未熟者である。こういう心がスター心理であり、スターをあこがれる心理であるが、こうした心が信仰の場で現われた時にメシヤ信仰となり狂信盲信となるのである。信仰は心の成熟を目的とするものであるから、自己を確立するには日常生活において流行を追わず流行にふりまわされず、いつも自分の個性に合った自分の心に安らかさを与える服装をするということからでも始めればよいのである。これが同時に省エネルギー時代の生き方でもある。
자신의 신체나 마음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을 인정 받으려고 해서, 매스컴에 등장하는 유행가수라든가 인물을 흉내내는 것에 의해서, 자신도 그 사람과 똑같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정신분석학자는, 유행의 첨단을 가는 심리을, 욕구불만이나 정서장해에서 오는 공격성의 나타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타인을 깔보고, 타인을 부러워하게 하는 것에 의해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자이다. 이러한 마음이 스타심리이며, 스타를 동경하는 심리이지만, 이러한 마음이 신앙의 장소에서 나타났을 때에 메시야 신앙이 되어 광신맹신이 되는 것이다. 신앙은 마음의 성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확립하는 데에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유행을 따르지 않고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늘 자신의 개성에 맞는 자신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복장을 한다고 하는 것부터라도 시작하면 좋은 것이다. 이것이 동시에 생력화(省力化) 시대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태도이기도 하다.
★생력화[省力化] 《국어/백과사전》
①산업의 기계화·무인화를 촉진시켜 노동력을 줄이는 일
①노동력을 절약하기 위해 산업의 오토메이션화, 무인화(無人化)를 촉진하는 것을 생력화라 하고 이를 위한 투자를 생력투자라 부른다. 최근의 생력기기(省力機器) 시스템으로는 산업용 로봇, 무인창고, 그리
★생력[省力] 《한자/국어사전/일본어사전》
①힘이나 수고를 덞
①힘을 덞. ②기계화 따위로 인하여 노동력을 줄임.
省力しょうりょく;力ちからをはぶくこと;人手ひとでをはぶくこと;省しょうエネルギ―。생력화 省力化しょうりょくか。
①생력(省力); 힘을 줄이는 것, 일손을 줄이는 것; 생 에너지. 생력화(省力化)
法語 自己確立への道 1980年3月19号
법어 자기확립으로의 길 1980년 3월 19호
第六十一章 自己の確立とは
제61장 자기의 확립이란
正しい信仰は自力信仰であって他力信仰ではない。ヨチヨチ歩きを始めた時、親は幼児が歩いてくると、「ここまでおいで」と後退りして、少しでも一人で歩く距離を長くしようとするのであろう。それと同じように、神はわれわれ人間が独り歩きするのを望んでいられる。いつまでも、なにかにつかまらなければ歩けないというのでは正常ではない。それと同じように、自力信仰とは誰にも頼らず自分一人で歩く道であり、それが自己の確立である。幼稚園から小学校、中学校、高校と勉強をしてやがて社会人となって独り立ちして行く。
올바른 신앙은 자력신앙이며 타력신앙이 아니다. 아장아장 걸음을 시작했을 때, 부모는 유아가 걸어오면,「여기까지 오렴」하며 후퇴하며, 적어도 혼자서 걷는 거리를 늘리려고 할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신은 우리들 인간이 혼자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을 바라고 계신다. 언제나, 뭔가에 매달리지 않으면 걷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자력신앙이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걷는 길이며, 그것이 자기의 확립이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이윽고 사회인이 되어 독립해 간다.
学校では先生があり、社会人になるとまたそれぞれに師を持つ。それと同じようにその段階にふさわしい先生が必要である。その先生には、自分ではわからない時に、わからないことがあった時に聞くので、朝から晩までなんでも頼り切って聞くわけではない。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있고, 사회인이 되면 또한 저마다에게 스승이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 단계에 걸맞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그 선생님에게는, 스스로 알 수 없을 때에, 모르는 것이 있을 때에 들어보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이든지 의지하며 물어볼 수는 없다.
第六十二章 他力信仰は甘えである
제62장 타력신앙은 응석받이이다
「この子はわたしがいないと全くだめなんです。自分ひとりではなんにもできないんですから」と、子供が甘えてくるのを喜んでいる母親がいるが、こういう母親が子供をやがてノイローゼにする。育児の秘訣は、子供自身ができることはなるべく早く子供自身にさせて独立心を育てることである。他力信仰をしている人の心には甘えがある。自分の問題を自分で解決せずに、拝んで祈って解決しようとする。自分の心は自分でしかコントロールできないのに、自分の心のあり方まで拝んで祈って決めようとする。腹が立って仕方がないから腹が立ちませんようにと祈っている。甘える子供はまだかわいいところもあるが、身体は大人でも、心は甘えでいっぱいであるのが他力信仰である。その甘えをなくして自分で生きて行く道はきびしい。自力信仰にはきびしさが必要である。しかし、自分ひとりで解決した喜びはたとえようもなく大きい。
「이 아이는 제가 없으면 전혀 안 됩니다.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요」라고, 아기가 응석부리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모친이 있지만, 이러한 모친이 아이를 머지않아 노이로제가 된다. 육아의 비결은. 아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아이 자신이 하게 내버려 두어서 독립심을 키우는 일이다. 타력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응석박이가 있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합장 배래하고 기도하며 해결하려고 한다. 자신의 마음은 자기밖에 컨트롤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까지 합장 배래하고 기도하며 정하려고 한다. 화를 내며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으려고 기도하고 있다. 응석받이 아이는 그런대로 귀여운(사랑스러운) 점도 있지만, 신체는 어른이라도, 마음은 응석받이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타력신앙이다. 그 응석받이를 없애고 스스로 살아 가는 길은 혹독하다. 타력신앙으로는 혹독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기 혼자서 해결한 기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コントロ―ル [control] 컨트롤. ①제어(制御). 조절. 관제(管制).
第六十三章 魂の成長記録
제63장 영혼의 성장기록
学校でも、試験問題を自分で解かずにカンニングしたら落第であると同じように、自分で自分の問題を解決しなかったら魂は成長しない。死んだ時、あの世の入口で提出する魂の通知表には、その人が自分で自分の問題を解決したその成績が記入してあるのであってカンニングした成績は記録されていない。全優だった人は高い次元の霊界へ行くし、その成績によって自分で自分にふさわしい霊界へ行くのである。生きている時に頼るくせのついた他力信仰をした人が死ぬと、あの世へ行っても頼ろうとする心が強いが、あの世では誰も教えてくれない。この世で自分で考えることをしていなかった人は、あの世で永く迷うことになる。憑依してくる霊はこのような迷った霊である。学校の試験で、全くできなかった時のかなしさと、百点をとって帰った時のうれしさを思い出してほしい。あなたにはその問題を解決する力があるからその問題が与えられるのである。
학교에서도, 시험문제를 스스로 풀 수가 없어서 커닝(시험 때의 부정 행위)하면 낙제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혼은 성장하지 못한다. 죽었을 때, 저 세상의 입구에서 제출하는 영혼의 통지표에는,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그 성적이 기입되어 있는 것이 있으며 커닝(시험 때의 부정 행위)한 성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적 평가에서 우(優)를 받은 사람은 높은 차원의 영계(靈界:극락의 5차원의 세계)로 가고, 그 성적에 의해서 스스로 자신에게 걸맞는 영계로 가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에 의지하는 버릇(습관)이 붙은 타력신앙을 한 사람이 죽으면, 저 세상으로 가더라도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지만, 저 세상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스스로 생각한 것을 하고 있지 못한 사람은, 저 세상에서 오랫 동안 방황하게 된다. 빙의(憑依)해서 오는 영혼은 이러한 방황하는 영혼이다. 학교의 시험에서, 전혀 할 수 없었던 때의 슬픔도, 백점을 받아 귀가했을 때의 기쁨을 상기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第六十四章 直観を大事に
제64장 직관을 중요(소중)하게
直観とは、あなたの守護霊があなたの心の内からあなたの心に囁きかける言葉である。自力信仰とは、心の内から守護霊と相談して行く道である。守護霊はその時あなたがどうすればいいかも全部知っている。成功し幸福であったという人達は正しく守護霊の声を聞いていた人であり、失敗し不幸になったという人達は守護霊の囁きを無視して自我の欲望を主にして判断し、また他力信仰は、一時成功するようなことがあったとしても結局は失敗するのである。自分のことをいつでも他人に考えてもらうとするやり方がいつまでも成功する筈がない。強い人間になるには、自分ひとりで静かに考える時間を持つことである。孤独に耐え孤独を愛する人間であった時に、あなたは独でなくなる。心の内から囁きかけてくる守護霊の囁きを聞き、それを通して神の声を聞くこともできるようになる。
직관이란, 당신의 수호령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의 마음에 속삭이는 말이다. 자력신앙이란, 마음속에서 수호령과 상담해 가는 길이다. 수호령은 그 때 당신이 어떻게 하면 좋은지도 전부 알고 있다. 성공해서 행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올바르게 수호령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사람이며, 실패해서 불행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수호령의 속삭임을 무시하고 자아의 욕망을 위주로 해서 판단하고, 또 타력신앙은,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듯한 일이 있었다고 해도 결국은 실패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언제나 타인에게 생각해 달라고 하는 행위 방식이 언제까지나 성공할 턱이 없다. 강한 인간이 되는 데에는, 자기 혼자서 조용하게 생각할 시간을 갖는 일이다. 고독하게 참고 견디어 고독을 사랑하는 인간이었을 때에, 당신은 혼자가 없어진다. 마음속에서 속삭여 오는 수호령의 속삭임을 듣고, 그것을 통해서 신의 음성을 듣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法語 自己確立への道 1980年4月20号
법어 자기확립으로의 길 1980년 4월 20호
第六十五章 人生は積極的に
제65장 인생은 적극적으로
「神、光あれといいたまいければ光ありき」
「하느님(신령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旧約聖書創世記のいちばん初めにある言葉と、釈尊の悟りの、「はじめには神という光明があった」という言葉は同じである。神道では「天照大神」とよんできた。
구약성서 창세기의 가장 처음에 있는 말로, 석존의 깨달음의,「처음에는 신(神)이라고 하는 광명이 있었다」라고 하는 말은 똑같은 것이다. 신도(神道)에서는「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고 읽어 왔다.
神の子であるということは「光の子」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光の子であるということはあなたの霊が光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だから人間は光を喜び、明るさを喜ぶのである。あなたが魂の光を曇らせた時、それを心の苦しみとして感ずる。苦しみは魂の本質ではないから苦しみで心にかげりが生ずると、そのかげりをなくしようとする信号である。積極的な人だけが幸福になるのはそれは光の道であり、消極的な人が不幸になり病気になるのはそれは影の道だからである。 積極的になった時、心は明るくなり、消極的になると心が暗くなる。キリストは、「光のあるうちに光の道を歩め」といわれた。
신의 자녀이다 라고 하는 것은,「빛의 자녀」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빛의 자녀이다 라고 하는 것은 당신의 영혼이 빛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빛을 기뻐하고, 밝음을 기뻐하는 것이다. 당신이 영혼이 빛을 흐리게 했을 때에, 그것을 마음의 괴로움으로서 느낀다. 괴로움은 영혼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괴로움으로 마음에 그늘짐(어두운 그늘)이 생기면, 그 어두운 그늘을 없애려고 하는 신호이다. 적극적인 사람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그것은 빛의 길이며, 소극적인 사람이 불행하게 되어 병이 걸리는 것은 그것은 그늘진 길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이 되었을 때, 마음은 밝아지며, 소극적으로 되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리스도는「빛이 있는 동안에 빛의 길을 걸어라」라고 말씀하시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창세기 1장 3절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라. 그리하면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할 것이다. - 요한복음 12장 35절
第六十六章 どうすれば病気にならないかを知る必要はない
제66장 어떻게 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지를 알 필요는 없다
近代医学や近代心理学が失敗に終わったのは、身体的に、また精神的に病気であり異常者だけを対象にして、こうしたら病気で異常になったということだけを研究してきたからである。
근대의학이나 근대심리학이 실패로 끝난 거은,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병이 있는 정상이 아닌 이상한 사람(異常者)을 대상으로 해서, 이렇게 하였더니 병으로 이상하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만을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人間は肉体的にも精神的にも健康であることを望んでいるのであるから、肉体的にも精神的にも健康である人はなぜ健康であるか知り、その通り実践すればよいのである。
인간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사람은 왜 건강한지를 알며, 그대로 실천하면 좋은 것이다.
どうすれば病気にならないかという消極的な考え方ではいつでも心が重々しく暗い。こうすれば健康であるという積極的な心はいつも明るい。病気にならないようにと、いつも病気を心に描いているのと、こうすれば健康になると、いつも健康を心に描いているのと、どちらが心が明るく楽しいであろうか。
어떻게 하면 병에 걸리지 않을까 라고 하는 소극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언제나 마음이 무겁고 어둡다. 이렇게 하면 건강하다고 하는 적극적인 마음은 언제나 밝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언제나 병을 마음에 그리고 있는 것과, 이렇게 하면 건강하게 된다고, 언제나 건강을 마음에 그리고 있는 것과, 어느 쪽이 마음이 밝고 즐거운 것일까요?
健康は、神が創造された道であり、病気は人間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ある。どちらを目標にするかはあなたの自由である。
건강은, 신이 창조하신 길이며, 병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어느쪽을 목표로 삼을지는 당신의 자유이다.
第六十七章 反抗期はない
제67장 반항기는 없다
終戦後の学校教育、家庭教育を失敗させた原因の一つに「反抗期」という言葉がある。
종전 후의 학교교육, 가정교육을 실패한 원인의 한가지로「반항기」라고 하는 말이 있다.
近代児童心理学は、非行少年や反抗児だけの心理状態を研究の対象にして、健康な少年少女が、どうして健康であるのかを研究の対象にしなかった。非行少年や反抗児に特有の「反抗期」を、学問的真理であると権威づけて、大学教授達がPTAの講演会で話をするので、子供は成長の過程でみな反抗期というのがあると信じ込んで、少し親の気に入らないことをしたり、また、親のいうことを聞かないと、「あ、反抗期だな、丁度そういう年齢だ」と考えて親は子供の前に子供を反抗させまい、すなおにしようと見構えてしまい、子供は反抗期という言葉を教えられて、どの子もこの年頃には親に反抗するものなのであると思って、反抗することを自然の状態であると思うようになった。
근대 아동심리학은, 비행소년이나 반항아만의 심리상태를 연구의 대상으로 해서, 건강한 소년 소녀가, 어째서 건강한 것인지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비행소년이나 반항아에게 특유의「반항기」를, 학문적 진리이라고 권위를 세우며, 대학교수들이 PTA의 강연회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아이는 성장의 과정에서 모두 반항기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굳게 믿어버리고, 조금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거나, 또, 부모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아, 반항기군, 꼭 그렇게 하는 연령이지」라고 생각하며 부모는 아이의 앞에서 아이가 반항할 때 마다, 솔직하게 자세를 취해 버리며, 아이는 반항기라고 하는 말을 가르침 받고, 어느 아이라도 이 연령에는 부모에게 반항하는 사람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항하는 것을 자연적인 상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反抗期」という言葉がつくり出した親子の対立の被害は大きい。
「반항기」라고 하는 말을 만들어 낸 부모와 자식의 대립의 피해는 크다.
第六十八章 更年期障害もない
제68장 갱년기 장해도 없다
私の五人の子供はみな反抗期はなかった。子供が自立心を持つようにいつも心掛けてきたから、子供は自由にのびのびと明るく育った。子供も光の子であるから、常に明るく自由に伸びようとする。それを親が押さえるから反抗するのである。だから反抗するのは、子供が伸びようとする心の現われであるから、それはよいことなのである。
저의 다섯 명의 자식은 모두 반항기는 없었다. 자식이 자립심을 갖게 하려고 늘 마음을 써 왔기 때문에, 자식은 자유롭게 구김살 없이 무럭무럭 밝게 자랐다. 자식도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항상 밝게 자유롭게 성장하려고 한다. 그것을 부모가 억압하기 때문에 반항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항하는 것은, 자식이 성장하려고 하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것은 좋은 일인 것이다.
婦人の人はよく「更年期」だと身体の不調を訴える人が多いが、世の中には更年期はなかった気づかなかったという人も結構多いのである。肉体の生理作用の転換期は確かにある。それは神が肉体を造られた時に与えられた法則即ち生理作用なのであるから、神がつくられたものが苦痛である筈がない。更年期といわれるその年頃に身体が不調になるのは、それまでに潜在意識の中に抑圧されてきた感情があったのであって、抑圧された感情を持たない、心の明るい人には更年期という苦しみはないのである。
부인이 사람은 자주「갱년기」라고 신체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지만, 세상에는 갱년기는 없었고 생각해 보지 았았다고 사람도 더할 나위 없이 많은 것이다. 육체의 생리작용의 전환기는 확실하게 있다. 그것은 신의 육체를 만들었을 때에 부여한 법칙 즉 생리작용인 것이기 때문에, 신이 만드신 것이 고통일 턱이 없다. 갱년기라고 말하는 그 해 무렵에 신체이 상태가 좋지 않게 되는 것은, 거기까지에 잠재의식 속에 압박되어 왔던 감정이 있었던 것이며, 압박을 받은 감정을 갖지 않는, 마음의 밝은 사람에게는 갱년기라고 하는 괴로움은 없는 것이다.
法語 1980年7月23号
법어 1980년 7월 23호
第六十九章 無明とは
제69장 무명이란
お釈迦さまは一切の苦しみの根源は「無明」にあると説かれた無明とは無智のことであり、どんなことに無智であることが無明であるかというと、
부처님은 일체의 괴로움의 원인은「무명」에 있다고 설명하신 무명이란 무지(無智)인 것이며, 어떤 것에 무지한 것이 무명인가 하면,
苦しみとはどんなものであるかを知らない
괴로움이란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
苦しみがどうして起こるかを知らない
괴로움이 어째서 일어나는지를 모른다
苦しみはなく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をしらない
괴로움은 없앨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모른다
苦しみをなくする方法を知らない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모른다
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から、知らないことは知れば無明(迷い)はなくなるのである。知らないことを知ろうともせずに、「迷いをなくして下さい」といくら祈ってみても迷いがなくなる筈がない。
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알면 무명(미혹)은 없어지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미혹을 없애 주시십시오」라고 아무리 기도해 보아도 미혹이 없어질 리가 없다.
正しい信仰は正しく知ることから始まるのであって、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教えようともせずに、ただ「頼れ」とか「祈れ」とかいっている宗教は一時の気休めにしか過ぎないのである。一生祈ってみても知らないことがわかるということは絶対にない。正法会は知るべきことを正しく教えるのである。仏教は「知の宗教」であるのである。
올바른 신앙은 올바르게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배워 익히려고도 하지 않고, 단지 「믿어라(의지하라)」라든가「기도해라」라든가 말하고 있는 종교는 일시적인 안심이나 위안, 또는 그것을 위한 말이나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평생 기도해 보아도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정법회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다. 불교는「지혜의 종교」인 것이다.
★미망3[迷妄]=迷い [まよい]
①같은 말 : 미혹(迷惑)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
①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런 상태.
①(갈피를 잡지 못하여) 헤맴. 또는 그런 상태. 미혹(迷惑) ②성불(成佛)에 방해가 되는, 죽은 사람의 망집(妄執). 미망(迷妄) ③헷갈림. 분간 못함.
第七十章 最初のお経
제70장 최초의 경문
お釈迦さまが亡くなられて九十日目の第一回結集の時には、文字で書かれたお経はなかったのである。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90일 째에 제1회의 결집의 때에는, 문자로 쓰여진 경문은 없었던 것이다.
集まった五百羅漢の仏弟子たちは記憶して覚えていたことを口で唱えたのである。お釈迦さまの存命中は文字で書かれたお経はなかったのであるから、お釈迦さまが「お経を何遍でもあげなさい」と説かれる筈がない。だから法華経中に一回でも余計に読誦すれば功徳があると書かれているのは後世の人が書き加えたものだというのである。後世の人が勝手に付け加えたものを信ずる必要はない。法というものは心に記憶していて日常生活に実践すべきものである。記憶していなければ日常生活の突嗟の間に思い出して実践することはできない。だから神理は、お経として書かれてあるものを記憶して心にとどめて置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単によむものとして心にとどめないから「お経よみのお経知らず」とか「論語よみの論語知らず」という言葉が生まれてくるのである。よい言葉は小さい時から子供に記憶させることである。
모여든 오백나한(五百羅漢)의 불제자들은 기억하고 기억하고 있던 것을 입으로 외었던 것이다. 부처님의 살아 계시는 동안은 문자로 쓰여진 경문은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이「경문을 몇 편이라도 완성하세요」라고 설명하실 리가 없다. 그래서 법화경 중에 한번이라도 여분(餘分)으로 독송(讀誦)하면 공덕이 있다고 쓰여져 있는 것은 후세의 사람이 써넣었던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후세의 사람이 제멋대로 첨가한 것을 믿을 필요는 없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에 기억하고 있고 일상생활에 실천해야 할 것이다.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일상생활의 순간에 생각해 내어 실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신리는, 경문으로서 쓰여져 있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에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단순히 읽는 것으로서 마음에 남지 않기 때문에「경문을 읽으면서 경문을 모른다」라든가「논어를 읽으면서 논어를 모른다」라고 하는 말이 생겨나오는 것이다.
좋은 말은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ろんごよみのろんごしらず
논어를 읽으면서 논어를 모른다. 책에 쓰인 것을 이해할 뿐, 실행이 따르지 않는 이를 조롱하는 말
第七十一章 正法を知ることによる変化
제71장 정법을 아는 것에 의한 변화
お釈迦さまの教を聞いたバラモンの僧は、自分の心が変ったことをつぎのようにいった。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바라문(婆羅門)의 스님은, 자신의 마음이 바뀐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今まで逆さまに見えていたものが真直ぐに見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
지금까지 거꾸로 보이고 있던 것이 똑바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ふしぎも秘密もなく、これが当たり前だということがわかりました。
불가사의도 비밀도 없고, 이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迷った道と正しい道がはっきりわかるようになりました。
깨닫지 못하고 헤맸던 길과 올바른 길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暗闇の部屋の中に燈火をともすと、瞬間にして暗闇がなくなり辺りを明るく照らし出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智慧の光りによって迷いの闇はなくなりました。
어두운 방안에 등불을 켜면, 순간적으로 어둠이 없어지고 주변을 밝게 비추기 시작할 수가 있는 것처럼, 지혜의 빛에 의해서 미혹(미망)의 어둠은 없어졌습니다.
心から迷いがなくなったら心は明るくなる筈である。だから悟りの道、正法の道は明るいのが本当なのであって、日本の現代仏教が暗いのは本当ではないのである。人間も暗さがなくなって明るくなってこないといけない。
진심으로 미혹(미망)이 없어졌다면 마음은 밝아질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의 길, 정법의 길은 밝은 것이 진짜인 것이며, 일본의 현대불교가 어두운 것은 진짜가 아닌 것이다. 인간도 어둠이 없어지고 밝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以上上げた四つの変化がないというのであればそれは今あなたが信じていられるのが正法でないか、正法であ
るのであればそうなる努力をしないかである。
이상 올린 네가지의 변화가 없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지금 당신이 믿고 계시는 것이 정법이 아닌지, 정법인 것이라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第七十二章 比較して見ること
제72장 비교해서 보는 것
すべてのものはみな比較してみた時に、よいかわるいか、長いか短いか、厚いか薄いか、丸いか四角か等々わかるのである。お釈迦さは、お釈迦さまが悟られる以前にあった宗教と比較して正法を説かれたのである。だからその宗教が正しいかどうかは、比較宗教学的な話をしているかどうかを見れば凡そわかるということがいえる。あるバラモン信者がお釈迦さまに、「私は今の信仰をつづけようと思いますが」といった時に、「あなたはそれをつづけられるといいでしょう」といわれたことを多くの仏教学者は、「お釈迦さまは寛容な方でどんな信仰でもよいといわれた」と解釈している人がいるがそれはまちがいであって、その人がそのバラモン信仰をつづけているうちに比較する眼が開けてきて正法の正しさがわかってくるであろう、だからその時までそっとして置く方がよいと思っていわれた言葉である。正法会は比較していうべき時ははっきりというし、いわない方がよい、時を待った方がよいと思う時はいわないのである。
모든 것(만물)은 모두 비교해 보았을 때에, 잘 알 수 있는지, 긴지 짧은지, 두꺼운지 엷은지, 둥근지 사각인지 등등 알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있었던 종교와 비교하며 정법을 설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종교가 올바른지 어떤지는, 비교 종교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보면 대강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어떤 바라문(婆羅門) 신자가 부처님에게,「저는 지금의 신앙을 계속하려고 생각합니다만」이라고 말했을 때에,「당신은 그것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라고 말씀하신 것을 많은 종교학자는, 「부처님은 관용한 분으로 어떤 신앙이라고 좋다고 말씀하셨다」라고 해석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잘못이며, 그 사람이 그 바라문 신앙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비교하는 눈이 열리게 되어 정법의 올바름을 알게 되어 올 것이다, 그래서 그 때까지 가만히 놓아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말씀하신 말이다. 정법회는 비교해서 말해야 할 때는 분명히 말하고, 말하지 않는 편이 좋고, 때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할 때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法語 人を救うために 1980年8月24号
법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1980년 8월 24호
第七十三章 愛深くあること
제73장 사랑이 깊은 것
昭和三十五年頃までは宗教家が「心で病気が治る」という話をすると医者は殆んどが迷信だといいました。ところがアメリカで発達した精神身体医学が日本に輸入されるようになって、現在ではそれを否定する医者はいなくなりました。病気の大部分は心で起るのであるから、心を治せば病気も治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になぜ医者が心の治療をしないのか、 原因は健康保険法にあります。
소화 35년(1960년) 무렵까지는 종교가가「마음으로 병이 낫는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면 의사는 대부분이 미신(迷信)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메리카에서 발달한 정신신체의학(精神身體醫學)이 일본으로 수입되게 되어, 현재로는 그것을 부정하는 의사는 없어졌습니다. 병의 대부분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치료하면 병도 낫는다고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의사가 마음의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원인은 건강보험법(健康保險法)에 있습니다.
アメリカでは精神治療の場合は一時間に○弗という治療費が支払われることになっており、薬や手術で治療する医者よりも、精神治療をする医者の方が社会的地位も上位で尊敬されていますが、日本の場合はその反対で、今の健康保険法では精神治療をしても金にならない。薬や注射をしないと金儲けできないことになっています。
아메리카에서는 정신치료의 경우는 한시간동안 Ο달러라고 하는 치료비가 지불하게 되어 있고, 약이나 수술로 치료하는 의사보다도, 정신치료를 하는 의사의 쪽이 사회적 지위도 상위이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만, 일본의 경우는 그 반대이며, 오늘날의 건강보험법으로는 정신치료를 해도 돈이 안 된다. 약이나 주사를 놓지 않으면 돈을 벌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乱診乱療、一人の診察時間が二、三分でろくに診察もせずに、薬は馬に喰わせるほど持たせるというのは健康保険法が悪いのです。
난진난료(의사가 불필요한 진찰, 치료 등을 하는 것), 한 사람의 진찰 시간이 2~3분이며 제대로 진찰도 하지 않고, 약은 말에게 먹게 할 정도로 가지고 있게 하는 것은 건강보험법이 나쁜 것입니다.
現在の日本の健康保険法は今から一〇〇年前、明治維新直後にドイツから入ってきた「病気は病原菌があってなるのである」という唯物医学を基にしてつくられているので、日本の現在の医療体制、健康保険法を変えるには精神身体医学を基にし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その点日本医師会は時代の進歩にそむいたいちばん古臭い思想を持っているわけです。日本の医者には愛がないといえます。
현재 일본의 건강보험법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명치유신 직후에 독일에서 들어온 「병은 병원균이 있어서 걸리는 것이다」라고 하는 유물의학(唯物醫學)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져 있는 것이며, 일본의 현재의 의료체제, 건강보험법을 바꾸는 데에는 정신신체의학(精神身體醫學)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일본 의사회는 현대의 진보에 등을 돌린 가장 케케묵은(진부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일본의 의사에게는 사랑(愛)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第七十四章 なぜ新興宗教がふえたか
제74장 왜 신흥종교가 늘어나는가?
心で病気が治ると説いたのは新興宗教でした。既成宗教といわれる神道、仏教、キリスト教は、宗教とは魂の救いを説くのであって病気など治すものではない。病気が治るというような現世利益を説くのは邪教であるといっていました。既成宗教が魂を救うのだと高くとまって大衆の病気の悩みを救う力がなく日本の医学会が唯物医学一辺倒になっていて誰も心から起った病気を治す力を持たなかった時に新興宗教が「心で病気を治す」というスローガンを掲げたわけです。実際に心で起った病気なら心が変れば治るのは当然です。
마음으로 병이 낫는다 라고 설명한 것은 신흥종교였습니다. 기성종교에서 말하는 신도(神道), 불교, 그리스도교는, 종교는 영혼의 구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있고 병 등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병이 낫는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현세이익을 설명하는 것은 사교(邪敎)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성종교가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다 라고 잘난 체하며 대중의 병의 고민을 구제할 힘이 없는 일본의 의학회가 유물의학 일변도가 되어 있고 아무도 진심으로 발생한 병을 치료할 힘을 갖고 있지 않았을 때에 신흥종교가「마음으로 병을 치료한다」라고 하는 슬로건을 걸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에 발생한 병이라면 마음이 바뀌면 낫는 것은 당연합니다.
肺病は「ハイ」とすなおな返事をしないからだ。扁桃腺は「へんとう(返答)せん」からだというようなことがいわれ始めました。
패병(하이뵤우)은「하이(네)」라고 솔직한 대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도선(헨토우센)은「헨토우(대답) 센(하지 않는다)」때문이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どこの新興宗教の教団でも「病気が治った」という奇蹟の体験が続出して信者がふえてゆきました。それは当然のことであったので別に奇蹟でもなんでもなかったのです。
어디의 신흥종교의 교단이라도 「병이 낫았다」라고 하는 기적의 체험이 속출하고 신자가 증가해 갔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며 특별히 기적도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교[邪敎] 《국어사전/한자사전》
①건전하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종교. 흔히 그 사회의 도덕이나 제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①부정(不淨)하고 요사(妖邪)스러운 종교(宗敎). 사회(社會)에 해악(害惡)을 끼치는 종교(宗敎) ②그 나라의 도덕(道德)이나 사회(社會) 제도(制度)에 어긋나는 종교(宗敎). 사도(邪道). 올바르지 못한 가르침
第七十五章 病気が治るのは事実である
제75장 병이 낫는 것은 사실이다
創価学会の人達は「マンダラのお蔭だ」「日蓮上人のお蔭だ」といい、立正佼成会の人は「ご本尊のお蔭だ」といい、生長の家は「生長の家大神、住吉大神のお蔭だ」といい、どこかにお詣りしている人達はそこの神さまのお蔭だとそれぞれ一所懸命に信仰しているわけですが、病気が治ったのは神さまのお蔭でもなければマンダラのお蔭でもないのです。
창가학회의 사람들은「만다라(曼茶羅)의 가호(加護)이다」「니찌렌 상인의 가호(加護)이다」라고 말하며, 입정교성회의 사람은「본존(本尊)의 가호(加護)이다」라고 말하며,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는,「세이쵸우노우에 대신(大神), 주길대신(住吉大神, 주길삼신(住吉三神))의 가호(加護)」이라고 말하며, 어딘지 참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하느님(신령님)의 가호(加護)라고 저마다 열심히 신앙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병이 치료된 것은 하느님(신령님)의 가호(加護)도 아니며 만다라(曼茶羅)의 가호(加護)도 아닌 것입니다.
ただそれらのものは心を変えるきっかけになったにすぎないのです。それらをきっかけにして心が変ったから病気が治ったのです。
단 그들은 마음을 바꿀 계기(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을 계기로 해서 마음이 바꿨기 때문에 병이 낫았던 것입니다.
一つの教団に入会してそこで病気が治るとそこの信仰のお蔭だとありがたくなって一心になり、そこの信仰で治ったのが本当の治り方で、他の教団の信仰で治ったのはウソだと多くの人は思っています。しかし、病気が治るのに、ホントの治り方とかウソの治り方というのがあるでしょうか。医者で治ったのがホントの治り方で宗教で治るのはウソの治り方だというのがあるでしょうか。どこでどうして治ろうと、治ったという事実はすなおに認めるべきです。うちの教団で治ったのがホントで、他の教団で治ったのはウソだとかいうような過った差別の心を持ってはならないので、心の病気が治るのは事実だから事実は事実としてすなおに認めることが正しい信仰の一つでもあります。
하나의 교단에 입회해서 그래서 병이 치료되면 그 신앙의 덕분이라고 고마워하게 되어 일심이 되어, 그때 마침 신앙하며 치료된 것이 참다운 치료방법이며, 다른 교단의 신앙으로 치료된 것은 거짓말이라고 많은 사람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이 치료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참다운 치료방법이라든가 거짓된 치료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의사가 병을 고친 것이 참다운 치료방법이며 종교에서 병을 고친 것은 거짓이다 라든가 하는 것과 같은 지나친 차별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며, 마음의 병이 낫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은 사실로서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창가학회[創價學會] 《국어사전》
[종교]일본의 니치렌종(日蓮宗) 신도들에 의하여 조직된 종교 단체. 1930년에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가 창설한 창가 교육 학회를 194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재건한 것으로, 신앙에 의한 생활 혁신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1964년에 일본 최초의 종교 정당인 공명당을 결성하였다.
★만다라[×曼×陀羅·×曼×茶羅:범 mandala] 《일본어사전》
[명사]〈佛〉 만다라.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많은 부처·보살 등을 그린 그림.
★입정교성회[立正佼成会]《일본어/한국어 위키백과 사전》
立正佼成会(りっしょうこうせいかい)は、霊友会から派生した法華系の新宗教である。本部は東京都杉並区和田二丁目にある。
①영우회(霊友会)에서 파생(派生)한 법화계(法華系)의 새로운 종교(新宗教)이다. 본부는 도쿄도(東京都)에 있다.
②입정교성회(立正佼成会)는 일본의 불교계 신흥 종교이다.
일련종에서 파생되었으나, 일련정종, 창가학회 등과는 전혀 다른 계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第七十六章 病気は神が治すのではない自分が治すのである
제76장 질병은 신이 치료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치료하는 것이다
神が治すのであったら、その神を拝んだ人はみな治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が、創価学会でも立正佼成会でも生長の家でもその他の教団でも一所懸命に拝んだが治らなかったという人が沢山おります。
신이 치료하는 것이라면, 그 신을 합장 배례한 사람은 모두 병이 낫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게 됩니다만, 창가학회도 입정교성회도 세이쵸우노우에(생장의 가)도 그 밖의 교단도 열심히 합장 배래했지만 병이 낫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どこの教団でも治った人の体験は華々しく宣伝しますが、治らない人が沢山あることは絶対に発表しません。治った時は「ここの神さまのお蔭だ」といって神さまのお蔭にして「あなたの信仰が自分で治したのです」というようなことは絶対にいいません。その代りに治らなかった人に対してそれこそきびしく吐き捨てるように「あなたの心が悪いのだ」「あなたの信仰が悪いのだ」といいます。本当に人を救う愛があったらそんなに吐き捨てるようにいわないで、さらにもっとやさしくどうすればいいかを教えるのが本当の宗教指導者ではないでしょうか。
어디의 교단이라도 치료된 사람의 체험은 화려하게 선전합니다만, 병이 낫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절대로 발표하지 않습니다. 병이 나았을 때는「여기의 하느님(신령님)의 가호(加護)이다」라고 말하며 신령님 가호(加護)라고 하며「당신의 신앙이 스스로 병을 고친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병이 낫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그야말로 혹독하게 내뱉듯이「당신의 마음이 나쁜 것이다」「당신의 신앙이 나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정말로 사람을 구제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렇게 내뱉듯이 말하지 않으며, 더욱더 상냥하게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종교지도자가 아닐까요?
治った時だけ神さまのせいにして治らないと本人のせいにするのは矛盾ではないでしょうか。神さまのお蔭だといっていて治ったり治らなかったりするのは、そんな神さまは神さまという資格はありません。神さまが病気をつくったのなら神さまに頼めば治して下さるでしょうか。病気は自分の心でつくったので神さまがつくったのではありません。人間を病気にして苦しめるという神さまなどない筈です。
병이 나았을 때만 하느님(신령님) 탓(덕분)으로(이라) 하고 병이 낫지 않으면 본인의 탓이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요? 하느님(신령님)의 가호(加護)라고 말하며 병이 낫거나 낫지 않거나 하는 것은, 그런 하느님(신령님)은 하느님(신령님)이라고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하느님(신령님)이 병을 만든 것이라면 하느님(신령님)에게 의지하면 병을 치료해 주실까요? 병은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만든 것이며 하느님(신령님)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병들게 해서 괴롭힌다고 하는 하느님(신령님)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病気を治すのに神さまを拝む必要はないのです。
병을 치료하는데 하느님(신령님)에게 합장 배래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第七十七章 心が変われば病気も治る
제77장 마음이 바뀌면 병도 낫는다
精神身体医学という学問はアメリカで発達したのです。病気は心で起るのであるから心を変えれば治るということが医学的な研究の結果明らかになってきたのです。アメリカで精神治療を受けて治った人達は、創価学会でも立正佼成会でも成長の家でもなんでもないのです。なんの信仰をしなくても治っているのです。お釈迦さまは中道調和の道、いかにして心を安らかにするか、心を安らかにすれば病気にもならないという正法の道を説かれたのであって、正法とは正しい心のあり方を説くので、○○の神さまを拝みなさいというようなことは説かないのであります。
정신신체의학(精神身體醫學)이라고 하는 학문은 아메리카에서 발달한 것입니다. 병은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면 병이 낫는다 라고 하는 것이 의학적인 연구가 결국 밝혀내어 왔던 것입니다. 아메리카에서 정신치료를 받고 병을 고친 사람들은, 창가학회도 입정교성회도 세이쵸우노우에(생장의 가)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무슨 신앙을 하지 않아도 병을 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도 조화의 길, 어떻게 마음을 편안하게 할까,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병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 정법의 길을 설명하신 것이며, 정법(正法)이란 올바른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며, ○○의 하느님(신령님)을 합장 배래하십시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どこの教団の信仰をしていても治らなかったという人達は心が変らなかったからであって、われわれはどこの教団に所属することもいらないのであります。どこの教団の会員にならなくても、心の正しいあり方を知れば病気になることもないし、またなったとしても自分で自分の心を修正して治すこともできるのであります。
어디의 교단의 신앙을 하고 있어도 병이 낫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들은 어디의 교단에 소속하는 것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어디의 교단의 회원이 되지 않아도, 마음의 올바른 본연의 모습을 알면 병에 걸리는 일도 없고, 또 병이 걸렸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수정(修正)해서 치료하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第七十八章 医者や薬が病気を治すのではない。
제78장 의사나 약이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多くの人は医者や薬が病気を治すと思っています。それは違うのです。人間には病気になった時は自然に病気を治す「自然治癒能力」というものが与えられてあります。医者や薬は自然治癒能力を高める補助的な役割をするだけのことです。このことは医学の教科書の第一頁に書いてあるのです。だからどんな名医でも、病気を治そうとする意欲のない患者、病人になっている方が都合がよいと思っている患者は絶対に治す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生まれつきの持病で治らないとか、若い時からの持病で治らないという人達は自分で治らないと思っているから自分で自然治癒能力を働かさないようにしているからであって、自分の肉体に内圧する自然治癒能力を信じて「必ず治る」という心を奮い起たせれば治ってゆくのであります。
많은 사람은 의사나 약이 병을 치료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병이 걸렸을 때는 자연히 병을 치료하는「자연치료 능력(自然治癒能力)」이라고 하는 것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의사나 약은 자연치료 능력을 높이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인 것입니다. 이 일은 의학의 과학서의 제1항에 적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사라 할지라도, 병을 고치려고 하는 의욕의 없는 환자, 환자가 되어 있는 사람이 형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환자는 절대로 치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의 지병으로 낫지 않는다든지, 젊을 때부터의 지병으로 낫지 않는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병이 낫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연치료 능력(自然治療能力)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며, 자신의 육체에 내압(어떤 물체의 내부에서 밖으로 향해 가해지는 압력)하는 자연치료 능력을 믿고「반드시 병이 낫는다」라고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면 병이 치료되어 가는 것입니다.
これからどうすれば病気が治るかを書いてゆきますのでつづけてよんで下さい。尚これは病気のことだけでなくどうして幸福になるのかということにも通ずるのでありますからよくよんで下さい。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병이 낫는지를 적어 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어 주십시오. 오히려 이것은 병의 일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되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에도 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읽어 주십시오.
法語 人を救うために 1980年9月25号
법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1980년 8월 24호
第七十九章 医者は治さない
제79장 의사는 치료하지 않는다
ほとんどの人は医者が病気を治すと思っています。しかし、医者が病気を治すことはないのです。病気を治すのは神でもなければ医者でもないのです。医者がそういっているのです。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가 병을 치료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일은 없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것은 신도 아니라면 의사도 아닌 것입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西日本新聞に福岡大学医学部第一外科、志村秀彦教授の医療雑感が載っていました。「生命の仕組は精巧で、治る力は医師の力をはるかに超える。医者は患者のそばにいて邪魔者を払いのけ、力づけるだけですむことが多い。やたらに手を加えたり、投薬したりする過保護が、逆に治る力を弱まらせる結果になりかねない。患者の身になって、苦痛、障害を感じ、陰に陽に介抱し、力づけ、患者自身の治る力を存分に発揮させるように心を配るのが医者の本分。生きる喜びを患者に味わってもらうことを願うのが医者の生きがい。」
서 일본신문에 후쿠오카대학(福岡大学) 의학부 제1외과, 시무라 히데히코(志村秀彦) 교수(敎授)의 의학 잡감(잡다한 감상)이 실려 있었습니다. 「생명의 구조는 정묘하며, 병이 낫는 힘은 의사의 힘을 훨씬 초월한다. 의사는 환자의 곁에서 방해꾼을 떨쳐 버리고, 힘을 북돋워 줄 뿐이며 해결되는 일이 많다. 함부로 손을 대거나, 투약하거나 하는 과보호가, 반대로 치료되는 힘을 약하게 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환자의 입장이 되어, 고통, 장해를 느끼고, 음으로 양으로 간호하고, 격려하고, 환자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힘을 충분히 발휘되도록 마음을 마음을 쓰는(배려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다. 살아있는 기쁨을 환자에게 맛보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 의사의 사는 보람이다。」
心が病気をつくるのであれば、健康体の人は病気にならないように心のあり方に気をつければいいし、病気だという人は心を治せば病気は治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사람이 병을 만드는 것이라면, 건강한 몸인 사람은 병이 걸리지 않도록 마음의 본연의 모습에 주의하면 좋고, 병(病氣)라고 하는 사람은 마음을 치료하면 병은 낫게 됩니다.
講談社とマイヘルス社共同発行の「別冊壮快」という雑誌があります。その中で「心で病気を治す事典」副題「心の持ち方ひとつで現われるすばらしい効果」の中の目次だけ並べてみましょう。
코우단샤(講談社, Kodansha Ltd.)와 마이헬스사 공동발행의 「별책장쾌(別冊壮快)」라고 하는 잡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마음으로 병을 치료하는 사전」부제「마음을 가지는 방법 동일하게 나타나는 기막히게 좋은 효과」의 중의 목차만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病気を起こし病気を治す心の不思議」
「병을 일으키고 병을 치료하는 마음의 불가사의」
自治医大教授 宮本 忠雄
자치의과대학(Jichi Medical University) 교수(敎授) 미야모토 타다오(宮本 忠雄)
成人病の大半は心が原因で起る。成人病とは、高血圧症、動脈硬化症、心臓病、胃潰瘍、糖尿病、肝臓病、リウマチ、喘息、痛風、神経痛、ノイローゼ、うつ病、ガン等。
성인병의 대부분은 마음이 원인에서 발생한다. 성인병은, 고혈압증, 동맥경화, 심장병, 위장병, 당뇨병, 간장병, 류머티즘(rheumatism), 천식, 통풍, 신경통, 노이로제(Neurose, 신경쇠약증=신경증)), 울병(鬱病), 암(癌) 등.
ガンだけは例外だという人がいるが最近ではガンの精神療法という言葉が生まれている。たとえガンになっても最後まで希望を捨てず、心を明るくもたせる言葉がいかに大切かである。
암(癌)만은 예외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최근에는 암(癌)이 정신요법이라고 하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면 암(癌)이 걸려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마음을 밝게 가지게 하는 말을 얼마나 중요한가 이다.
「子供も大人も心が原因の病気が激増中」
「아이도 어른도 마음이 원인의 병이 격중하는 중(급격하게 늘거나 불어나고 있는) 중이다」
愛知医大教授 久徳 重盛
애지의과대학(Aichi Medical University) 교수(敎授) 규우토시 시게모리(久徳 重盛)
人間の基礎のできる三才前後に、ひずみのある基礎がつくられることが原因となる。
인간의 기초가 되는 3세 전후에는, (성격이) 비뚤어짐이 있는 기초가 만들어지는 것이 원인이 된다.
★류머티즘[rheumatism] 《국어사전》
[명사] [의학] 뼈, 관절, 근육 따위가 단단하게 굳거나 아프며 운동하기가 곤란한 증상을 보이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한랭(寒冷)·습기(濕氣)·세균 감염 따위가 원인으로, 관절 류머티즘·근육 류머티즘·류머티즘열 따위가 있다.
第八十章 医者も必要である
제80장 의사도 필요하다
確かに病気は心でつくるのであるから、心を治せば病気は治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확실히 병은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치료하면 병은 낫게 됩니다.
この精神身体医学を教義に取り入れたある宗教では、「心を治せば病気は治る」といって医者も薬もいらないと教えました。その結果、たしかに心だけで治った人も沢山ありましたがその半面に、早く医者の手当を受ければ治ったのに、最後まで医者にかかることを拒否したために、最後に病院にかつぎこまれた時はもはや手遅れで死んでしまったという人も沢山でました。
이 정신신체의학(精神身體醫學)을 교의로 도입하고 있는 종교에서는,「마음을 치료하면 병은 낫는다」라고 말하며 의사도 약도 필요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확실히 마음만으로 병을 고친 사람도 많이 있었지만 그 반면에, 빨리 의사의 처치(치료)를 받으면 치료되었을텐데, 마지막까지 의사에게 보이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병원에 메어다 들어놓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뒤여서 죽어 버렸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その宗教では医者にかかる人は信仰が足らないのであるといいますから、信者達はどうしても医者にかからなければならない時でも、なにか悪いことをするみたいに外の信者にわからないようにこっそり行くということを言っていました。
그 종교에서는 의사에게 보이는 사람은 신앙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아무리 해도 의사에게 보이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뭔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이 외부의 신자가 알지 못하도록 남몰래 간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医療公害、薬公害が叫ばれているように医療の行き過ぎ、薬の乱用はいけませんが、正常な医療、薬の使用は必要です。
의료공해, 약공해가 부르짖고 있는 것처럼 의료가 도를 넘고, 약의 남용은 바람직스럽지 않지만, 정상적인 의료, 약의 사용은 필요합니다.
心が病気をつくるということは心の傾向が肉体の生理作用の変化、肉体細胞の歪みとなって現われるということです。心を変えることは短い時間でできても、物質である肉体の組織や細胞が変化するには時間がかかります。ここに心は治っていても肉体の方はまだ治っていないというズレが生じます。また心が治ったといっても一ぺんにパッと心が治るということもなかなかむずかしいことです。明るくなったり暗くなったり一進一退しつつ変ってゆくのが普通です。心の変化と肉体の変化とのズレがあるところに、医療によって治療の障害になっているものを除き、手当をし、また薬によって弱まっている自然治癒能力を掘り越し回復させることが必要であるという場合が生じてきます。このことが前章に書いた志村教授の「医師は患者のそばにいて邪魔者を払いのけ、力づける」という言葉になり「患者自身の治る力を存分に発揮させるように心を配るのが医師の本分」であるという言葉になってくるわけです。ある宗教のように医療を否定することも極端であるということになり、やはり中道が必要だ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마음이 병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경향이 육체의 생리작용의 변화, 육체세포가 비뚤어지게 되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짧은 시간으로 할 수 있어도, 물질인 육체의 세포나 세포가 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여기에 마음은 치료되어 있어도 육체의 쪽은 아직 치료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어긋남이 생깁니다. 또 마음이 치료되었다고 할지라도 일변하여 번쩍 마음이 병이 낫는다고 하는 것도 꽤 어려운 것입니다.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거나 하며 일진일퇴하며 계속 변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마음의 변화와 육체의 변화와의 어긋남이 있는데, 의료에 의해서 치료의 장해가 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처지를 하고, 또 약에 의해서 약해져 있는 자연치료 능력을 끌어내어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일이 앞장에 쓴 시무라(志村) 교수의 「의사는 환자의 곁에서 방해꾼을 떨쳐 버리고, 힘을 북돋워 준다」고 하는 말이며, 「환자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힘을 충분히 발휘되도록 마음을 마음을 쓰는(배려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다」이다 라고 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와 같이 의료를 부정하는 것도 극단(極端)이라고 하게 되며, 역시 중도(中道)가 필요하게 됩니다.
第八十一章 心の治療で薬はいらない
제81장 마음의 치료이며 약은 필요없다
「心と身体両面の健康を追求する心身医学」という東邦大学助教授筒井末春氏の文章を紹介しましょう。
「마음과 신체 양면의 건강을 추구하는 심신의료」라고 하는 동방대학(Toho University) 부교수(副敎授) 츠츠이 스에하루(筒井末春)씨의 문장을 소개하겠습니디.
「病気というのは、細菌感染などによるものを除くと、その人が精神的、肉体的、社会的に生きてきた人生体験の結晶であるともいえるわけです。人間の心が病気に与える影響がここ十数年の間に研究されてきました。現在では、心理的要因でおこる病気の多くは、薬にたよらず治療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と。
「병이라고 하는 것은, 세균감염(細菌感染) 등에 의한 것을 제외하면, 그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살아 온 인생체험(人生体験)의 결정(結晶)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이 병을 주는 영향을 개별적으로 십수년 동안 연구해 왔습니다. 현재로는, 심리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병의 대부분은, 약에 의지하고 않고 치료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라고.
八月号の「法語」につづいてここまで書いたことによって、病気は医者が治すのであるとか、病気は薬で治すのであるというぬき難い医者に対する信仰、薬に対する信仰はみなさんの心から消え去った筈です。これまで多くの人は生命のことをいちばんよく知っているのは医者だと信じてきました。しかし医者は生命のことについてはまだなんにも知ってはいないのです。医者も漸く生命の神秘さに気づいたということです。
8월호의「법어」를 계속해서 여기까지 쓴 것에 의해서, 병은 의사가 치료하는 것이라든지, 병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라고 하는 지워버릴 수 없는 의사에 대한 신앙, 약에 대한 신앙은 여러분의 진심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생명의 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의사이다 라고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생명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의사도 점차 생명의 비밀에 생각이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名古屋市立大学長高木健太郎氏は、
나고야시립대(Nagoya City University)학장 다카기 겐타로우(高木健太郎)씨는,
「これまで多くの人は身体と精神は別個の存在だと考えてきました。身体と精神は互いに影響し合っているのですから健全な身体を得ようとすれば、健全な精神が必要であるのはいうまでもないことです。「心身一如」として健康であってこそ、はじめて本当の健康状態といえましょう。現代の過酷な競争社会ではさまざまのストレスが人々を取りまいており、ストレスが病気を起すことも多いのです。こうした心理的要因で起る現代病に対しては薬を飲むよりも、リラックスしたほうが効果的だといわれています」
「지금까지 많은 사람은 신체와 정신은 별개의 존재다 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신체와 정신은 서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한 신체를 얻으려 하면, 건전한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심신일여(心身一如)」로서 건강함이야 말로, 비로소 진정한 건강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추악한 투쟁사회에서는 가지가색의 스트레스가 사람들을 에워싸고 있고, 스트레스가 병을 일으키는 일도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현대병(現代病)은 약을 먹는 것보다도, 긴장을 푸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心で病気が治るということはもうこれ以上書く必要はないと思います。ではなぜ正法誌でこういうことを取り上げるのかを次に書きましょう。
마음으로 병이 낫는다고 하는 것은 다시 이것 이상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정법지(正法誌)에서 이러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인지를 다음에 쓰겠습니다.
★릴랙스[relax]
릴랙스. 긴장을 풂. 편안히 쉼.
예문>リラックスした気分(きぶん)になる 편안한 기분이 되다.
第八十二章 悟るためには心の自由自在性を知ることが必要である
제82장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의 자유자재성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人間の存在を傷つけ危なくする人間以外のものが存在するという考えは人間の心を小さくします。人間は神の子だと知っても、人間は病原菌にはかなわないとか、また、病気のことだけでなく、悪霊や自縛霊がいて、人間はひょっとするとそれに負けるという恐怖心を持っいることは、それだけ心を小さく暗くしますから、そういう恐怖心や自分を弱いと思う心があったのでは心の底から明るくなることはきません。
인간의 존재를 상처입히고 위태롭게 하는 인간 이외의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생각은 인간의 마음을 작게 합니다. 인간은 신(神)의 자녀이다 라고 알아도, 인간은 병원균(病原菌)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든가, 또, 병 뿐만 아니라, 악령이나 자박령(지박령)이 있고, 인간은 어쩌면(혹시) 그것에 진다고 하는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만큼 마음을 작고 어둡게 하기 때문에, 그러한 공포심이나 자신을 약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마음의 깊은 곳에서 밝아질 수는 없습니다.
人間は神の子であるという自己確立の心の中には、人間はなにものにも犯されることもなく傷つけられることもない絶対的存在であるという自覚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人間は万物の霊長として、この地上に置ける神の代理者として一切を調和させユーピアを建設しなければならない使命を持たされているのでありますから、人間が菌や動物や悪霊などに支配されるという考えを持つこは、人間そのものの尊厳さ、神の子の自覚を否定することになります。
인간은 신의 자녀이다 라고 하는 자기확립의 마음속에는, 인간은 그 어떤 것에도 침해당하는 일도 없고 상처를 입게 되는 일도 없는 절대적 존재이다 라고 하는 자각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이 지상에서 살 수 있는 신의 대리자로서 일체를 조화시켜 유토피아(Utopia)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세균(菌)이나 동물이나 악령 등에 지배된다고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은, 인간 그 자체의 존엄성, 신의 자녀의 자각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正法で心と病気の関係を取り上げるのは、唯単に病気を治すこだけを目的として取り上げるのではないのであって、心を大きく豊かにして悟るためには、なにものにも支配され影響されることのな心の自主性、自由自在さを獲得することが必要であるからであります。
정법에 마음과 병의 관계를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 아닌 것이며, 마음을 크고 풍요롭게 해서 깨닫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에도 지배되어 영향을 받지 않는 마음의 자유성, 자유자재함을 획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正法会以外の宗教団体では、病気が治るともはやそれだけで信仰がりっぱにできているような扱い方をしますが、病気が治ったばかりの人は、それまでまちがっていた心のあり方を正しく治して健康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病気もせず健康であったという人より以上にりっぱになっ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病気が治ってそれで信仰が終りなのではないし、身体が健康になったら、それからさらにますます心をきく豊かにしてやがて宇宙即我の悟りまでに到達してゆ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りますから、その人の病気が治って健康になったということは祝福しますが、病気でもなんでもなかったという人より以上にりっぱな信仰心を持っていたというような、従来の宗教団体がやってきたような扱い方はしないのであります。病気が治ってから先の魂の勉強が大事なのであります。
정법회 이외의 종교단체에서는, 병이 치료되면 역시 그만큼 신앙이 훌륭하게 되어 있는 것처럼 방식을 취합니다만, 병이 치료됬을 뿐인 사람은, 거기까지 잘못되어 있던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올바르게 치료해서 건강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며, 병도 들지 않고 건강하다고 하는 사람 보다 이상으로 훌륭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병이 치료되고 그래서 신앙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신체가 건강하게 되면, 앞으로 더욱더 마음을 쓰고 풍요롭게 해서 이윽고 우주즉아의 깨달음까지로 도달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병이 낫고 건강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축복(祝福)입니다만, 병도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 보다 이상으로 훌륭한 신앙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종래의 종교단체가 행해 왔던 것과 같은 취급하는 방법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병이 낫고나서 먼저 영혼의 공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第八十三章 病気の原因
제83장 병의 원인
病気の原因は次のように分けることができます。
병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가 있습니다.
霊的原因による、動物霊、憑依霊によるもの。
영적 원인에 의한, 동물령, 빙의령에 의한 것.
ストレスなどの心に基因するもの。
스트레스 등의 마음에 기인한 것.
ばい菌によるもの。
미균(세균, 인체에 유해한 세균, 박태리야)에 의한 것.
公害、環境の影響によるもの。
공해,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
肉体の酷使、無理によるもの。
육체의 혹사, 무리에 의한 것.
右のように分けることができますが、動物霊や憑依霊に憑依されるのも憑依霊と波長の合う心を持っているからであり、ストレスを生ずるのも心の問題であります。ばい菌はあってもばい菌に犯されないように智慧を働かせればよいし、公害や環境の影響も、心のあり方と智慧によってうけないですむし、ムリをして身体をこわすということも智慧のないことでありますし、こうして考えてくると、もとは心が原因だ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위와 같이 나눌 수가 있습니다만, 동물령이나 빙의령에 빙의되는 것도 빙의령과 파장(波長)의 맞는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면, 스트레스를 낳은 것도 마음의 문제입니다. 미균(세균)은 있다고 해도 침해당하지 않도록 지혜를 활용하면 좋고, 공해나 환경의 영향도, 마음의 본연의 모습과 지혜에 의해서 받지 않고 살고, 무리를 해서 몸을 망친다고 하는 것도 지혜가 없는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모든 것은 마음에 원인이다 라고 하게 됩니다.
たしかに憑依しているという人は、憑依霊を取り除いても心が変らなければまた憑いてしまいますから、根本的には心を変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霊的原因によるものは医者も診断がむずかしいしまた薬を飲ませてもなかなか治りません。
확실히 빙의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빙의령을 제거해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또 빙의해 버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영적 원인에 의한 것은 의사도 진찰이 어렵고 또한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낫지 않습니다.
心によって病気が治るということが医学界でも常識となった現在では、心を治療する医者が出てきました。もっと日本医師会は、病気は心で治ることを宣伝すべきだと思います。医者が精神治療を確実にやれるようになれば、信仰で病気が治るといって集めていた、いろいろな教団の信者達は医者の指導をうければよいということになるわけですが、現世の日本の医療体系では、精神治療を専門にすると生活できないという仕組になっていますから、ということは医師会だけでなく厚生省の官僚群の考え方も変らない限り、日本では精神治療法は全体的には取り上げられ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極めて良心的な医師の個人的な活動に俟つしか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厚生省が早くこのことに気づいて医療体系を改革すれば、病気治しを目的に信仰に走るという人もなくすることができるから、日本の宗教界を浄化することにもなります。医者が物心両面から病気の治療をするということになれば、宗教は病気治しを口実に信者をまちがった信仰にひき入れるということはなくなります。
마음에 의해서 병이 낫는다고 하는 것이 의학계에서도 상식이 된 현재에서는,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가 나왔습니다. 더욱 일본 의사회는, 병은 마음으로 치료하는 것을 선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정신치료를 확실히 행하게 되면, 신앙으로 병이 낫는다고 말하며 모으고 있는, 여러 가지 교단의 신자들은 의사의 지도를 받으면 좋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만, 현세의 일본의 의료체계에서는, 정신치료를 전문으로 하면 생활할 수 없다고 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의사회뿐만 아니라 후생성의 관료군의 사고방식도 바꾸지 않는 한, 일본에서는 정신치료법은 전체적으로는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게 되며, 극히 양심적인 의사가 개인적인 활동을 해 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의사가 물심양면으로 병의 치료를 한다고 하게 되면, 종교는 병치료를 구실로 신자를 잘못된 신앙으로 끌어들인다고 하는 일은 없어집니다.
このようなことを逆に考えると、日本の病気治しを主目的とした新興宗教を発展させているのは日本医師会の迷妄さであるということがいえます。病気治しの宗教をめざして、宗教が医者の領分を侵すなどといわないで、医者自身がもっと医学の発展に忠実であればいいのです。
이러한 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일본의 병치료를 주목적으로 한 신흥종교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일본 의사회의 미망(迷妄)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병치료의 종교를 목표로 해서, 종교가 의사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말하지 말고, 의사 자신이 더욱 의사의 발전에 충실하면 좋은 것입니다.
日本の経済界は悉く外国の真似をして発展してきたといわれますが、文化の世界でも真似してきました。アメリカでは瞑想による治療を始めているのであるから真似するなら徹底して真似して、日本でも瞑想による治療を始めればいいと思います。
일본의 경제계는 모두 외국의 흉내를 내며 발전해 왔다고 말하지만, 문화의 세계에서도 흉내를 내어 왔습니다. 아메리카에서는 명상에 의한 치료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흉내를 내려면 철저하게 흉내를 내고, 일본에서도 명상에 의한 치료를 시작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法語 人を救うために 1980年10月26号
법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 1980년 8월 24호
第八十四章 一年三六五日をどう生きるか
제84장 1년365일을 어떻게 살까?
かつて「一年三六五日をどう生きるか」というアメリカの医者の書いた本が出版されたことがあります。そのはしがきにこう書いてありました。
일찍이「1년 365일을 어떻게 살까」라고 하는 아메리카의 의사가 쓴 책이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그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あなたが一年三六五日を、黄金の花咲く並木路を口笛を吹きながら、大手をふって歩いた一年であったかどうか、そのうち何日がかなしみになきぬれた日であったか。悲しい気持ちで暮らすよりも、明るい心で暮らす方がよほどたやすいのであります」、と。
「당신이 1년 365일을, 황금의 꽃 피는 가로수 길을 휘바람을 불면서, 활개치며 다녔던 1년인지 어떤지, 그 동안 몇일이 슬퍼서 몹시 울었던 날이었는가? 슬퍼하는 심정으로 지내는 것보다도, 밝은 마음으로 지내는 편이 훨씬 쉬운 것입니다」, 라고.
日本は仏教と武士道の影響により、さらに日本仏教が「人生は苦なり」と説いた結果、しかつめらしい、むつかしい、自分ほど苦労している者はいないというような、必死に苦しみに耐えているような顔をしていないと、まじめなりっぱな人間ではないような考え方をしてきました。一言にしていえば「明るさ」がありませんでした。ほんとうの明るさというのは、必死になって仕事をしている時でも、また、仕事が終ってほっとした時でも、一貫して失わない心の明るさであり、最近の若者達みたいに(若者だけではないようですが)なにか遊んでいるときはたのしいようであっても、それが終るとふつとさびしい、わびしさが心の底に潜んでいるような心はほんとうの明るい心ではありません。
일본은 불교와 무사도의 영향에 의해, 더욱이 일본 불교가「인생은 괴로움이니라」라고 설명한 결과, (딱딱한 표정으로) 짐짓 점잔을 빼는 듯하며, 어렵다, 자기만큼 고생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필사적으로 괴로움을 찹고 견디고 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으면, 성실(착실)하고 훌륭한 인간이 아닌 듯한 사고방식을 해 왔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밝음」이 없었습니다. 참다운 밝음이라고 하는 것은, 필사적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또, 일이 끝나서 한숨 놓을 때도, 일관되게 잃지 않는 마음의 밝음이며, 최근의 청년들처럼(청년뿐만이 아닌 듯 합니다만) 뭔가에 놀고 있을 때는 즐거운 듯 해도, 그것이 끝나면 금새 쓸쓸해하며, 울적함이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듯한 마음은 참다운 밝은 마음이 아닙니다.
起きていても寝ていても、なにをしていても、心から楽しくて仕方がないというような心の明るさ、そういう心の明るさで一年三六五日を暮すならば、それは丁度、黄金の花咲く並木路を、口笛を吹きながら歩くような一年だ、人間はそういう生活ができる。そういう生活をしないから、病気をしたり、家庭に不調和が起ったり、苦労が絶えないのであるというのです。
잠에서 깨어도 잠을 자도, 뭔가를 하고 있어도, 진심으로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밝음, 그러한 마음의 밝음이며 1년 365일을 보내게 되면, 그것은 마치, 황금의 꽃 피는 가로수 길을, 휘바람을 불면서 걷는 것과 같은 1년이다, 인간은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병이 걸리거나, 가정에 부조화가 일어나거나, 고생이 끊임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そういう明るい心を持つには、○○という宗教団体に入らなければできないということはありません。折角、明るい心になるつもりで入信しても、いろいろな規則に縛られて、「あゝしなさい、こうしなさい」と強制されたのではかえって心を暗くするでしょう。心を支配しているのは自分ですから、自分の心を明るくするのに、なになにという教団に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す。
그러한 밝은 마음을 갖는 데에는, ○○라고 하는 종교교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모처럼, 밝은 마음이 될 작정으로 신앙이 길에 들어가도, 여러 가지 규칙에 속박되어,「저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세요」라고 강제를 받는 것은 도리어 마음을 어둡게 할 것입니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을 밝게 하는데, 무엇무엇이라고 하는 교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第八十五章 奇蹟を呼ぶ感謝と調和の心
제85장 기적을 부르는 감사와 조화의 마음
「この大宇宙は調和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私が直感で知り、天からの声を聞いたのは昭和二十六年秋でした。この天の声を聞いてから私の周囲に奇蹟が起り始めました。
「이 대우주는 조화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을 제가 직각으로 알며, 하늘에서의 음성을 들은 것은 소화 26년(1951년) 가을이었습니다. 이 하늘의 음성을 듣고나서 제 주위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私が指導したのは「感謝し調和しなさい」ということだけでした。
제가 지도한 것은「감사하고 조화하십시오」라고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ではどうしたら感謝と調和の心を持つことができるのか」という指導方法は、いろいろ指導する人によって個性があるようですが、私はその指導が上手だったということでしょう。また天上界からの協力もあったと思うのですが自分でもびっくりするほど奇蹟が起りました。その頃は奇蹟だと思っていましたが、高橋信次先生に正法を教えられてみると、それは至極当然のことであって奇蹟でもなんでもないことがわかりました。
「그럼 어떻게 하면 감사와 조화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걸까?」라고 하는 지도방법은, 여러 가지 지도하는 사람에 따라서 개성이 있는 듯 합니다만, 저는 그 지도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천상계에서의 협력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무렵은 기적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에게 정법을 가르침 받아 보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기적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生長の家は「天地一切のものと和解せよ」「天地一切のものに感謝せよ」と説いていますがこれは正しいのです。私は成長の家の地方講師になり本部講師になり、多くの人に感謝と調和の道を説きました。そのことは正しいのです。生長の家だけでなくどこの教団でも感謝と調和ということは説いています。まさか喧嘩しなさい不足をいいなさいという宗教もないでしょう。だから感謝と調和を説いていることは正しいのです。ある宗教に入ってよくなったという人は、そこで説かれている感謝と調和の道を聞いて、その通りの心になったからよくなったので、たまたま、その宗教の話を聞いたことがきっかけになったということだけのことで、その宗教でなくてもよかったわけです。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는, 「천지 일체의 것과 조화하라」「천지 일체의 것에 감사하라」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저는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의 지방강사가 되어 본부강사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사와 조화의 길을 설명했습니다. 그 일은 올바른 것입니다. 세이쵸우노우에뿐만 아니라 어디의 교단에서도 감사와 조화라고 하는 것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마 싸움을 하십시오 불평(불만)을 말하십시오 라고 하는 종교도 없겠지요. 그래서 감사와 조화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 들어가서 잘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그곳에서 설명하고 있는 감사와 조화의 길을 듣도, 그대로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잘 된 것입니다. 가끔, 그 종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계기(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하는 것만의 일로, 그 종교가 없어도 무방한 것입니다.
そういう話を聞いても、どうしても感謝の心も起らなければ調和もできないという人がどこの宗教団体にもおります。そういう人はよくならないのです。私が指導した人でもそう
いう人はよくなっていません。人の心を強制して聞かせることはできません。心というものは、心の内側からその人が開かなければ絶対に開く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自分の心を支配できるのは自分自身でしかありません。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리 해도 감사의 마음도 일어나지 않으면 조화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의 종교단체에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좋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지도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강제하고 듣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내측에서 그 사람이 듣지 않으면 절대로 들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第八十六章 感謝と調和は法として存在する。
제86장 감사와 조화는 법으로서 존재한다.
どこの宗教団体でも感謝と調和が大事であることを説いています。あの教団で説いている感謝と調和はホントだが、この教団のはウソだといえようなことはない筈です。感謝と調和の心を持った人達はみなよくなっています。
어디의 종교단체에서도 조화와 감사가 중요한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단에서 설명하고 있는 감사와 조화는 참되지만, 이 교단의 것은 거짓말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감사와 조화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좋아지고 있습니다.
ところが多くの人達は、自分の教団でよくなったのはホントだが、ほかの教団でよくなったのはウソだという考え方をします。こういう差別する心、疎外する心を持つことはまちがいであります。また、よくなった人が、自分は信仰ができたからよくなったのだと思って、なにもない人を信仰ができていないように、他を低くみる心になったら、またその人は病気になったりするでしょう。信仰する人にはどうしても心のくせのある人が多いようです。しかしそれは宗教指導者の罪である部分も多いのです。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교단에서 좋아진 것은 참되지만, 그밖의 교단에서 좋아진 것은 거짓말이다 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합니다. 그러한 차별하는 마음, 소외(疎外)시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 좋아진 사람이, 자신은 신앙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좋아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신앙이 완성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남을 낮게 보는 마음이 되면, 또 그 사람은 병이 걸리게 될 것입니다. 신앙하는 사람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의 버릇(습관)이 있는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지도자의 죄(罪)인 부분도 많은 것입니다.
病気になってから病気が治って健康になるよりも、はじめから病気にならない方がよいのですし、不幸になって苦しんだ揚句に幸福になるよりも、はじめから幸福である方がよいのです。病気を治したり、不幸な人を幸福にするのが宗教の目的ではありません。健康な人が、ますます魂を磨き心を大きく豊かにして悟ってゆくように導くのが宗教本来の使命です。だから本来の宗教は、健康で幸福であるという人を目標にして説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병이 걸리고 나서 병이 낫아서 건강하게 되기 보다도,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좋은 것이고, 불행하게 되어 괴로워하다가 결국에 행복하게 되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행복한 게 좋은 것입니다. 병을 치료하거나, 불행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이, 점점 더 영혼을 닦는 마음을 크고 풍요롭게 해서 깨달아 가도록 이끄는 것이 종교 본래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본래의 종교는, 건강하며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을 목표로 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宗教が病人や不幸な人を救うのは病気であったり不幸であったりすると、そのことで心は一ぱいになって、とても心を大きく豊かにして悟るというどころではありません。宗教はすべての人を救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ら、病気や不幸であるという人は、まず病気を治し不幸をなくして、いよいよそれから悟りの道に入るスタートラインにつかせようとする慈悲なのであって、病気が治り、不幸がなくなってからの先の方が大事なのです。ところが現在の日本の宗教は、病気を治し不幸をなくすれば、それが宗教の使命であり役割だというような考え方をしていますが、それは宗教本来の使命がわかっていないからです。
종교가 환자나 불행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병이 있거나 불행하거나 하면, 그 일로 마음은 가득 차게 되어, 도무지 마음을 크고 풍요롭게 해서 깨닫는다고 하는 바는 없습니다. 종교는 모든 사람을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병이나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선 병을 치료하고 불행을 없애고, 더욱더 앞으로 깨달음의 길로 들어가는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자비인 것이며, 병이 치료되어, 불행이 없어지고 나서 들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일본의 종교는, 병을 고치고 불행을 없애면, 그것이 종교의 사명이며 역할이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종교 본래의 사명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第八十七章 特定の教団に入る必要はない
제87장 특정 교단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という教団に入らないと感謝と調和の心は持てないということはないでしょう。実践倫理宏正会とか道徳科学という団体があります。この団体は宗教団体ではありませんが、人の生きる道として感謝と調和を説いております。だからそういう心になった人はそこでも病気が治ったというようなことが起っています。だから感謝や調和は、なにも宗教団体だけの専売特許ではありません。
○○라고 하는 교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감사와 조화의 마음을 갖지 못한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실천윤리굉정회라든가 도덕과학이라고 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종교단체가 아닙니다만, 사람의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로서 감사와 조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에 된 사람은 그곳에서도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나 조화는, 조금도 종교단체만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ここで考えてほしいのです。宗教団体や道徳を説く団体に入らなければ感謝や調和の心は持つことはできないのでしょうか。みなさんの周囲には、どこの団体にも所属してはいないが健康で幸福であるという人が必ずある筈です。そうして見た場合、信仰していていつも病気だ不幸だという人もある筈です。それはどうしてでしょうか。信仰がないと幸福にならないというのであったら、信仰していない人はみな不幸だということになり、信仰している人はみな幸福だということ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筈なのですが逆な現象が起っています。
여기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종교단체나 도덕을 설명하는 단체에 들어가지 않으면 감사나 조화의 마음은 갖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여러분의 주위에는, 어디의 단체에도 소속하고 있지 않지만 건강하며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봤을 경우, 신앙하고 있고 늘 병이 걸렸다 불행하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째서일까요? 신앙이 없으면 행복하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라면, 신앙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모두 불행하다고 하게 되며, 신앙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행복하다 라고 말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만 거꾸로 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の宗教でないとよくならない」と、熱心な信者達は宣伝しますが、それなら外国の人達はどうなるのでしょうか。外国にはそういう宗教はなくても外国の人達はどうなるのでしょうか。外国にはそういう宗教はなくても外国の人達は結構たのしく生き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의 종교가 아니라면 좋아지지 않는다」라고, 열심인 신자들은 선전합니다만, 그렇다면 외국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외국에는 그러한 종교는 없어서 외국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외국에는 그러한 종교는 없어도 외국 사람들은 나무랄 데 없이 즐겁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正しい信仰をするには小さな範囲のことだけを考えたのではいけないのです。少なくとも地球全体のことは考えなければいけません。日本人ばかりが人間ではないし、外国人も人間としては変りはない筈です。なんの信仰をもたなくても健康で幸福であるという人は、自然に感謝と調和の生活をしている人達です。どこかの宗教団体に入ったために、その教団のいろいろな規則に縛られて、かえって辛い思いをしているという人は、むしろそういう信仰はやめて、自由自在な心になって天地一切に感謝しすべてと調和することです。
올바른 신앙을 하는 데에는 작은 범위의 일만을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적어도 지구 전체의 일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인만 인간이 아니고, 외국인도 인간으로서는 변함은 없는 것입니다. 무슨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건강하며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자연히 감사와 조화의 생활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딘가의 종교단체에 들었기 때문에, 그 교단의 여러 가지 규칙에 속박되어, 도리어 괴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러한 신앙은 그만두고, 자유자재한 마음이 되어 천지 일체에 감사하고 모든 것에 조화하는 것입니다.
人間は神の子として神が持たれる慈悲と愛の心を持って生まれてきているのでありますから、天地創造の神に感謝し調和の生活をすればそれで人間は健康にも幸福にもなれるのです。そういう点に於て、正法会は、いろいろな宗教団体に入って、かえって心に苦しみをつくって悩んでいる人を、心の底から明るくなるように解放させてあげるという役目をもっているわけです。
인간은 신의 자녀로서 신의 갖고 계신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천지창조의 신에게 감사하고 조화로운 생활을 하면 그것으로 인간은 건강도 행복하게도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정법회는, 여러 가지 종교단체에 들어가서, 도리어 마음에 괴로움을 만들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마음의 깊은 곳에서 밝아지도록 해방시켜 드린다고 하는 임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실천윤리굉정회[実践倫理宏正会] 《일본어 위키백과 사전》
社団法人実践倫理宏正会(しゃだんほうじん じっせんりんりこうせいかい)は、1946年( 昭和21年)5月3日に創立した文部省(現在の文部科学省)認可の社団法人。一般的に は、朝起会(あさおきかい)の名称で知られている。 ...
사단법인 실천윤리굉정회는, 1946년(소화 21년) 5월 3일에 창립한 문부성(현재의 문부과학성) 인간의 사단법인. 일반적으로는, 조기회(朝起会)의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 <중략>
★도덕과학[モラロジー(道徳科学)]
廣池 千九郎(ひろいけ ちくろう、1866年(慶応2年)3月29日 - 1938年(昭和13年)〈昭和13年〉6月4日)は、日本の法学者 、歴史学者、教育者。モラロジー(道徳科学)の提唱者。麗澤大学の創立者。道徳教育・人格教育、樹立した。 ... <중략>
히로이케 치쿠로우(廣池 千九郎, 1986년 3월 29-1938년 6월 4일)은, 일본의 법학자, 역사학자, 교육자. 도덕교육・인격교육을 수립했다。 ... <중략>
第八十八章 医者も宗教団体もいらない世界、エデンの園の再現
제88장 의사도 종교단체도 필요없는 세계, 에덴동산의 재현
感謝と調和の心を持ったら健康になり幸福になるというのは、神がつくられた宇宙の法則なのです。神が一旦人間を苦しめて、そうしてからでないと救わないのであると考えていることは、神を冒讀するものであります。苦しみは人間が勝手につくり出したので神の責任ではありません。ただ神は、法として善因善果、悪因悪果の因縁の法をつくられました。
감사와 조화의 마음을 가진다면 건강하게 되며 행복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신이 만드신 우주의 법칙인 것입니다. 신이 일단 인간을 괴롭히고, 그렇게 한 후가 아니면 구제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인간이 제멋대로 만들어 낸 것이며 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오직 신(神)은, 법으로서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悪因悪果)의 인연(因縁)의 법(法)을 만드셨습니다.
その法則をどのように使うかは人間の自由に委せられたのです。そのことを釈迦もキリストも説かれたのであり、私の師である高橋信次先生が説かれたのもそれだったのであります。明るい心を持てば明るい結果が出てくるし、暗い心を持てば暗い結果がでる。日本人はそれをつぎのように教えてきました。
그 법칙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인간의 자유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석가도 그리스도도 설명하신 것이며, 저의 스스이신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이 설명하신 것도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밝은 마음을 가지면 밝은 결과가 나오고, 어두운 마음을 가지면 어두운 결과가 나온다. 일본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가르쳐왔습니다.
笑う門には福来る
늘 웃음 소리가 넘치고 화기에 찬 집에는 자연히 복이 찾아온다.
泣き面に蜂
우는 얼굴에 벌침. 엎친 데 덮치기. 설상가상.
○○という宗教に入らないと明るい心になれないというようなことはないのです。神の存在とありがたさ、自然の存在とありがたさ、そうして人間はなんのために生きるのかという人生の目的がわかれば、人間はどんな状態の中からでも明るい心になれるのです。
○○라고 하는 종교에 들어가지 않으면 밝은 마음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와 고마움(감사함), 자연의 존재와 고마움, 그렇게 해서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 라고 하는 인생의 목적을 알면,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밝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世界中の人が一人残らずこのことを知って心を明るくし感謝と調和の生活をすれば、病気になる人はいなくなるから医者はいらなくなります。いらなくなるといってもいろいろなことで怪我したりすると応急の手当が必要になりますから、手術できる外科医だけがいればよ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まじめな医者の間では、ほんとうの医者というのは外科医だけだといっている人があります。
온 세계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이 일을 알고 마음을 밝게 하고 감사와 조화의 생활을 하면, 병이 걸리는 사람은 없어지기 때문에 의사는 필요없게 됩니다. 필요없게 된다고 말해도 여러 가지의 일로 다치거나 하면 응급 처치가 필요하게 되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의(外科醫)만 있으면 괜찮다고 하게 됩니다. 성실한 의사 사이에서는, 진정한 의사라고 하는 것은 외과의(外科醫)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いろいろな宗教団体もいら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やがて国境をなくして世界を一つにしようという地球政府設立の運動も起っているのでありますから、土地の国境だけでなく、心の国境も、隣りの人との境界もなくして、一つの心の世界に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思います。政治家も派閥をなくしようといっているのですから、教祖とか各宗教の指導者達も、宗教の垣根をなくしようといい出してももういい頃ではないでしょうか。
여러 가지 종교단체도 필요없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이윽고 국경을 없애고 세계를 하나로 하려고 하는 지구정부설립의 운동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토지의 국경뿐만 아니라, 마음의 국경도, 이웃 사람과의 경계도 없애고, 하나의 마음의 세계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도 파벌을 없애려고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교조(敎祖)라든가 각 종교의 지도자들도, 종교의 울타리를 없애자고 말을 꺼내도 좋은 시기가 아닐까요?
神の世界は一つであり、神の世界に垣根はないのであります。
신의 세계는 하나이며, 신의 세계에 울타리는 없는 것입니다.
★외과의[外科醫] 《국어/한자사전》
외과(外科)의 치료(治療)와 수술(手術)을 전문(專門)으로 하는 의사(醫師)
★내과의[內科醫]
내과 병(病)을 전문(專門)으로 다스리는 의사(醫師)
※한국에는, 자동차 사고나 기타 사고 등으로 외과적 수술을 요하는 전문의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자동차 사고나 건설현장 등등에서 긴급을 요하는 환자가 발생했을 때, 외과 전문의 의사가 있는 병원이 겨우 몇 군데 없기 때문에, 이송 도중에,
죽는다고 하는 일이 많다고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들은 바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法語 人を救うために 1980年11月27号
법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1980년 8월 24호
第八十九章 医療公害
제89장 의료공해
昭和五十五年一年間の製薬会社の薬の生産量は十兆円を越えた。病院へ行くと馬に喰わせるほど沢山薬をくれる。呑みきれない薬はどんどん捨てられている。それはすべて税金を捨てているのである。薬は薬という形になっている金である。薬代はすべて健康保険料で賄われることになっているが、国民の納める健康保険料では足りないから政府が赤字補填をしている。政府は金を持っていない。政府の持っている金はすべて国民の税金である。昔の名医といわれた医者は、ほんの少し薬を使って病気を治した。今はそんな治療をしていたら医者の生活が成り立たないし、第一少ししか薬をくれないところには人が行かないのであるから、今は昔のような名医はいなくなってしまった。今は土手医者が繁昌するのである。
소화 55년(1980년) 일년 동안의 제약회사의 약의 생산량은 10조 엔을 넘었다. 병원에 가면 말에게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약을 준다. 삼킬 수 없는 약은 점점 버려지고 있다. 그것은 전부 돈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약은 약이라고 하는 형태로 되어 있는 돈이다. 약값은 모두 건강보험료에서 대주게 되어 있지만, 국민의 납입하는 건강보험료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자를 보전(補塡)하고 있다. 정부는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일찍이 의사라고 불리던 의사는, 참으로 적은 약을 사용해서 병을 치료했다. 오늘날은 그런 치료를 하고 있으면 의사의 생활이 성립하지 않고, 제일 조금밖에 약을 주지 않는 곳에는 사람이 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은 예전과 같은 명의(名醫)는 없어져 버렸다. 오늘날은 제방에 부딪쳐서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의사(土手医者)가 번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昔は下手な医者のことをヤブ医者といった。ヤブの中に入ると皆目先がわからない。だから病気の見立ての出来ない下手な医者をヤブ医者といった。そのヤブ医者よりも悪い下手な医者を土手医者というのだそうである。
옛날에는 서툰 의사를 돌팔이 의사라고 말했다. 덤불(대술) 속에 들어가면 모두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병의 진달을 할 수 없는 서툰 의사나 돌팔이 의사라고 말했다. 그 돌팔이 의사보다도 나쁘고 서툰 의사를 제방에 부딪쳐서 앞이 전혀 안보이는 의사(土手医者:도데이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ヤブ医者は、ヤブはまだ二・三米でも四・五米でも少しは先が見えるからまだいい。土手医者というのは、土手にぶつかると先は全く見えない。だから土手医者はヤブ医者よ
り悪いというのである。そのわるい土手医者は診断も下手だから診察してもこの病気だとはっきり診断を下すことができない。あの病気かもしれないこの病気かもしれないと考えて、この病気だったらこの薬が、この病気だったらこの薬がと何種類も薬をくれる。今の健康保険法では沢山薬を患者にやらないと金にならないのであるから、名医はいつも貧乏して、下手な土手医者の方が金持ちになるという仕組みになっている。
돌팔이 의사는, 덤불(대숲)은 아직은 2・3미터나 4・5미터라도 조금은 보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다. 제방(둑) 의사(土手医者)라고 하는 것은, 제방(둑)에 부딛쳐서 앞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방(둑) 의사(土手医者)는 돌팔이 의사(ヤブ医者)보다 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그 나쁜 제방(둑) 의사(土手医者)는 진단(診斷)도 서툴기 때문에 진찰(診察)해도 이 병(病氣)이군요 라고 똑똑히 진단을 내릴 수가 없다. 저 병인지도 모르겠고 이 병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혹시 이 병(病氣)이라면 이 약(藥)이, 이 병(病氣)이라면 이 약(藥)이라고 하며 몇가지 종류의 약을 준다. 오늘날의 건강보험료로는 많은 약을 환자에게 주지 않으면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의사는 언제나 가난하며, 제방(둑) 의사(土手医者)인 쪽이 부자가 된다고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政府は一県に一つの医科大学をつくった。やがて医者が氾濫して医者の失業時代がくる。薬代に使われる十兆円を、国民が自覚することによって五兆円に減らして、その五兆円を未来の日本、未来の世界をどうするかという研究費に使ってもいいし、また難民救済や後進国救済に使えばどんなにいいかと思う。医療に対する考え方を転換しなければいけない時にきているのである。
정부는 한 현에 하나의 의과대학을 만들었다. 이윽고 의사가 범람해서 의사의 실업시대가 온다. 약값으로 사용되는 10조 엔을, 국민이 자각함에 따라서 5조 엔으로 줄어들고, 그 5조엔을 미래의 일본, 미래의 세계를 어떻게 할까 라고 연구비로 사용해도 좋고, 또 난민구제나 후진국구제에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한다. 의료에 대한 사고방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 제방에 부딪쳐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의사(도데이샤 :土手医者)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제가 일본 사이트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위 단어는 사전에 없네요. ^^
★편의상 도데이샤(일본어 발음)를. 제방에 부딪쳐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의사..라고 풀었습니다.
”藪医者”と”土手医者”
”돌팔이 의사”와 ”제방 의사”
大昔、病気は悪霊によるものと考えられ、占い師や祈祷師が治すもので ”巫医(ふい)”といい、その中でも田舎の巫医は”野巫医者(やぶいしゃ)”と呼ばれていました。
아득히 먼 옛날, 병은 악령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점쟁이나 기도사가 치료하는 것으로 ”무당 치료사(巫医)”라고 하며, 그 중에서도 시골 의사(돌팔이 의사) ”시골 의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あやしい呪術で治療することから”いい加減な医者”、”下手な医者” といった意味の野巫医者(やぶいしゃ)を藪(やぶ)を当て字として、”藪医者”となった。
불가사의한 주술로 치료하는 것에서 ”일을 엉성하게 하는 의사”, ”서툰 의사”라고 말하는 의미의 시골 의사(돌팔이 의사)를 덤불(대숲)를 취음자(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서 어떤 말을 표기하는 한자)해서, ”돌팔이 의사”가 되었다.
しかし、藪といっても少しは向こうが見えるが、土手は先が見えないので、まったくダメな医者のこと”土手医者”というのだ。
하지만, 덤불(대숲)이라고 말해도 조금은 방향이 보이지만, 제방(둑)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혀 제구실을 못하는 의사를 ”제방(둑) 의사”하고 하는 것이다.
※출처 : http://yaplog.jp/kousei98/archive/741, kousei康生. ^^
第九十章 病院は宗教家との交流を深めよ
제90장 병원은 종교가와의 교류를 깊게하라
東京の永谷さんから新聞の切抜きが送ってきた。「正法」誌創刊号に書いて置いたように、医者で宗教に関心を持つ人が出てきた。
도쿄(東京)의 나가타니(永谷)씨로부터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가 발송되어 왔다. 「정법」지 창간호에 써 놓은 것처럼, 의사가 종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나왔다.
医師 乾 元 66才
의사 이누이 모토(乾 元) 66세
末期ガン患者、死を待つだけになった寝たきり老人専用の病院、わが国初のホスピスが浜松市で、この春着工される。ホスピスは病気を「治す」という従来の病院とは違って、人間を「救う」「助ける」所といわれ、そのスタッフには、医師、パラメデイカルのほか宗教家を配置しているのが特徴。つまり、宗教家は、医者がもはや手の届かぬ病者の魂を救い、旦、その家族をも慰めようというのである。
말기암 환자, 죽음을 기다릴뿐이 되어버린 노환으로 누워 있는 노인 전용의 병원, 우리나라(일본) 최초의 호스피스(hospice)가 하마마츠 시(浜松市)에서, 이 봄에 착공된다. 호스피스(hospice)는 병을「치료한다」고 하는 종래의 병원과는 달리, 인간을「구제한다」「돕는다」장소라고 말하며, 그 진용(陣容)에는, 의사, 파라메디컬(paramedical : 의사를 보조하는 의료종사자) 외에 종교가를 배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 즉, 종교가는, 의사가 이제는 손을 쓸 수가 없는 환자의 영혼을 구제하며, 아침에, 그 가족도 위로하려고 하는 것이다.
さて、ホスピスならずとも、大病院なら、以上のような死を待つばかりの患者の幾人かが必ずいるはずで、死を目前にして心の安らぎを切実に求めていると思う。それなのに、宗教家との交流が余りにも少ないように考える。欧米の多くの病院では専属の牧師がいて、自由に病室に出入りできる。わが国の刑務所にだって、死刑囚のために教誨師がいるではないか。 わが国の病院は患者の身体にばかり目を奪われ、患者の心、家族の気持ちを考えていないように思われてならない。ちなみに、米国の伝統ある病院には立派な礼拝堂があると聞くが、わが国の大学病院では死体安置室さえいかにも殺風景である。
그럼, 호스피스가 되지 않아도, 큰 병원이라면, 이상과 같은 죽음을 기다릴뿐인 환자가 몇 명인가 반드시 있을 것이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평안을 절실하게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와의 교류가 너무나도 적은 듯이 생각된다. 구미의 많은 병원에서는 소속 목사가 있고, 자유롭게 병실에 출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일본)의 형무소라 하여도, 사형수를 위해서 교회사(教誨師 :가르치고 타일러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사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일본)의 병원은 환자의 신체에만 눈을 빼앗겨, 환자의 마음, 가족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지 않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덧붙여서 말하면, 미국의 전통이 있는 병원에는 훌륭한 예배당이 있다고 듣지만, 우리나라(일본)의 대학병원에서는 사체안치실(死體安置室)조차도 정말로 살풍경이다.
さいごに、わが国の病院に、ホスピスのように、宗教家を常置することは時期尚早かも知れないが、宗教家との交流を、もっと深めるべきであると考えている。宗教家との出会いによって、死を待つ多くの人たちに、心の安らぎをと私は願う。死よりも重大なことはないのである。 (宮城県柴田郡)
맨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일본)의 병원에, 호스피스(hospice)와 같이, 종교가를 항상 두는 것은 시기상조인지도 모르지만, 종교가와의 교류를, 더욱 깊게 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종교가와의 만남에 의해서, 죽음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또한 나는 바란다. 죽음보다도 중대한 일은 없는 것이다.
(미야기 현(宮城県) 시바다쿠 군(柴田郡))
私が昭和27年、宗教家として立つことを決心した時思ったことの中の一つに、全国の大病院には必ず、心を指導する宗教家を配置することを法律で決めるようにしたい。ということがあった。外国の病院は宗教家が自由に出入りできるというのであるが、日本の病院は宗教家の出入りを歓迎していない。乾医師のような医師がふえてゆくことを私は望んでいる。
제가 소화 27년(1952년), 종교가로서 서는 것을 결심했을 때 생각한 것 중의 하나로, 전국의 큰 병원에는 반드시, 마음을 지도하는 종교가를 배치하는 것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싶다. 라고 하는 일이 있었다. 외국의 병원은 종교가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만, 일본의 병원은 종교가의 출입을 환영하고 있지 않다. 이누이(乾) 의사(医師)와 같은 의사가 증가해 가는 것을 저는 바라고 있다.
★호스피스 [hospice] 《일본어사전》
[명사] 호스피스. 죽음이 가까워진 환자를 위한 의료 시설. 환자가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신체적 고통을 덜어 주고, 정신적인 원조와 간호를 함.
★파라메디컬[paramedical] 《국어사전》
[명사] [의학] 의학이나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분야. 임상 병리사, 물리 요법사, 약제사 등이 있다.
第九十一章 仏教こそが生死の解決法
제91장 불교야말로 생사의 해결볍
同じ切抜きの中にこの一文があった。投書というものはその人一人の意見ではなく同じような考え方をしている人が外にも沢山あることを示すものである。世の多くの人々が、まさしく正法を求めているのであるということがこの一文からうかがえる。われわれはそういう人達の前にもっと正法の存在を知らしめなければならない。
똑같이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 중에 이 한 문장이 있었다. 투서라고 하는 것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며 똑같은 사고방식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외로 많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틀림없이 정법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이 한 문장에서 짐작을 할 수 있다. 우리들은 그러한 사람들 앞에
더욱 정법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主婦 佐野喜久子 67才
주부 사노 기쿠코(佐野喜久子) 67세
医師として医学の限界を感ずるのは、患者の死にあう時でしょう。死を止めることができない時、また一人死に向う人間をみる時、現代の医者は余りにも無力だと訴えられております。臨終の床に宗教家の力を借りることはできないか?と問題提起している医師がいられる。科学万能の時代から、人間の内面への思考に思い至った今日、必然的に宗教家の必要性に目を向け始めたようです。
의사로서 의학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환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일 것입니다. 죽음을 멈출 수가 없을 때, 또 한 사람이 죽음으로 향하는 인간을 볼 때, 현대의 의사는 너무나도 무력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임종의 침상에 종교가의 힘을 빌릴 수는 없을까? 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과학만능의 시대에서, 인간의 내면으로의 사고로 생각이 이르는 오늘날, 필연적으로 종교가의 필요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確かに仏教は死後のために説かれ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人間の生き方を教え、それによって人生の終結がきまることを教えています。坊さんのお説教や人から与えられたものではなく、自分が宗教を持ち、生活実践の中から感得した生命によって生死の解決をはかる以外にないと思います。
확실히 불교는 사후를 위해서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태도를 가르치고, 그것에 의해서 인생의 종결이 결정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스님의 설교나 남에게서 사람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종교를 가지고, 생활실천하는 중에서 감득한 생명에 의해서 생사의 해결을 도모하는 이외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どんな人でも、生老病死の四苦は免れません。四苦八苦の解決法を教えたのが仏教なのです。故に、正しいもの、力あるもの、そしてより高い教義を求めることが大事です。
어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생노병사의 사고(四苦)는 면할 수 없습니다. 사고팔고(四苦八苦)의 해결법을 가르친 것이 불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것, 힘이 있는 것, 그리고 보다 높은 교의(敎義)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従容として死につく〟とは、自分自身の生き方の結論ではないでしょうか。医学を否定せず、その限界に挑戦できる生命力を得るものそれが宗教であることを訴えたく思います。
(요코하마 시(横浜市) 가와가나 구(神奈川区))
〝침착한 태도로 죽음에 임하다〟란, 자기 자신의 생활 태도가 결론이 아닐까요? 의사를 부정하지 않고, 그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생명력을 얻은 것 그것이 종교인 것을 호소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解説 해설
この法語の中で二つの投書を紹介した。このような内容の投書は、もし十年前であったら完全に没になって新聞に載ることは絶対になかった。新聞記者というものは無神論者、無霊魂論者で唯物論者が多い。新聞が宗教や心の問題を取り上げることは全くなかったといってよい。その新聞がこのような投書をのせ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は、私は唯物論的な考え方による新聞の編集方針が変ったのではなく、新聞も読者が買ってくれないと困るのであるから、一般大衆のものの考え方が変ってきたので商業政策上、こうした投書も取り上げないと新聞が売れなくなるという考え方からのせたものだと思っている。
이 법어 중에서 두가지의 투서를 소개했다. 이러한 내용의 투서는, 만약 10년 전이었다면 완전히 몰수되어 신문에 게재할 수는 절대로 없었다. 신문기자라고 하는 사람은 무신론자(無神論者), 무영혼론자(無靈魂論者)이며 유물론자(唯物論者)가 많다. 신문이 종교나 마음의 문제를 채택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좋다. 그 신문이 이러한 투서를 게재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저는 유론론적 사고방식에 의한 신문의 편집방침이 바뀐 것이 아니라, 신문도 독자가 사 주지 않으면 곤란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대중 자체의 사고방식이 변해 온 것이며 상업정책상, 이러한 투서도 채택하지 않으면 신문이 팔리지 않는다 라고 하는 사고방식때문에 게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そうであればあるだけに、新聞社といえども一般大衆の宗教指向、心指向の傾向は無視できなくなりつつ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そこに私は世の中が音を立てて変りつつあることを感ずるのである。
그렇다고 하면 어느 정도로, 신문사라고 할지라도 일반대중의 종교지향, 마음의 지향의 경향은 무시할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 저는 세상이 소문을 듣고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さて、浜松にできるホスピスは、カトリック教会が建てるのであるから、患者はカトリック信者が主体で、患者が安らかに臨終するように心の指導をする宗教はカトリック教ということになるであろう。人間が死んで行くのに、カトリックの人はこういう臨終をしなさいとか、創価学会、立正佼成会、生長の家等各宗各派によって、その信仰によってそれぞれ死に方が違うというようなことがあるのであろうか。
그럼, 하마마츠(浜松)에 만들어지는 호스피스(hospice)는, 카톨릭교회가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는 카톨릭 신자가 주체이며, 환자가 편안하게 임종하도록 마음의 지도를 하는 종교는 카톨릭교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죽어가는데, 카톨릭 사람은 이러한 임종을 하십시오 라든가, 창가학회, 입정교성회,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 등 각 종교에 따라서, 그 신앙에 따라서 저마다 죽은 방법이 틀리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요?
人間は宗教宗派を担いで生まれてくるのではない。生まれてくる時に、その家々の宗教宗派によって、そこに生まれてくる子供達はそれぞれの宗教宗派にふさわしい生まれ方をするというのであれば死ぬ時も、それぞれ違った死に方をするのだということになるのかも知れないが、生まれてくるのに、私が生まれる家は神道だから神道的な生まれ方をしましょうとか、私の生まれる家は立正佼成会だから立正佼成会式生まれ方をしましょうといって生まれてくるわけではないのであるから、死ぬ時も宗教宗派によって死に方が違う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ある。
だから臨終に際して心が安らかであるようにという指導も一つであっていいので、それぞれの宗教宗派の指導者達が、それぞれ自分の所属の信者に対して、それぞれの宗教宗派によって臨終の時の心得は違うのですというような指導をもしすることがあったとしたらそれはまちがっているとい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인간은 종교종파를 짊어지고 태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올 때에, 그 집들이 종교종파에 따라서, 거기에 태어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종교종파에 걸맞게 태어나는 방법을 취한다고 하는 것이라면 죽을 때도, 저마다 다른 죽는 방법을 택한다고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태어나오는데, 내가 태어나는 집은 신도(神道)이기 때문에 신도적(神道的)인 태어나는 방법을 취하세요 라든가, 내가 태어나는 집은 입정교성회이기 때문에 입정교성회 식으로 태어나는 방법을 취하십시오 라고 하며 태어나올 리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도 종교종파에 따라서 죽는 방법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임종에 때에 마음이 편안하도록 하게 하는 지도(指導)도 한가지 있어서 좋기 때문에, 저마다의 종교종파의 지도자들이, 저마다 자기 소속의 신자에 대해서, 저마다의 종교종파에 따라서 임종할 때의 마음가짐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지도를 만약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宗教とは、なんのために、どのような生き方をするかを教えるものであるから、もっと生と死ということを忠実に見つめて法を説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今の宗教家は生と死をじっと見つめさせる。魂を見つめさせるということはせずに、単に道徳的なこの世の限りの生き方だけを強調している。
종교란, 무엇 때문에(무엇을 위해서), 어떠한 생활 태도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충실하게 바라보고 법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종교가는 삶과 죽음을 가만히 바라보게 한다. 영혼을 바라보게 한다고 하는 것은 하지 않고, 단순히 도덕적인 이 세상에 한한 생활 태도만을 강조하고 있다.
浜松のホスピスの病院はカトリック系であるから問題は起らないのであろうが各大学病院がホスピスのあり方を採用するとした場合、入院している患者は、種々雑多の信仰をしている人があり無神論者もあるのである。そういう人達に臨終の心得を教えるということになった場合、神道の人には神主さんを、浄土真宗の人には浄土真宗の坊さんを、生長の家の人には生長の家の講師をとか、そんな繁雑なことはできないであろう。人間が死んでゆくのはみな一つの方法でしかないのであるから、その最後の臨終の心得を教えることができる一人の人があればそれでよいということになる。
하마마츠(浜松)의 호스피스(hospice) 병원은 카톨릭계이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지만 각 대학병원이 호스피스(hospice)의 본연의 모습을 채용했을 경우, 입원하고 있는 환자는, 종류가 잡다한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무신론자(無神論者)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임종의 마음가짐(心得)을 가르친다고 하게 되었을 경우, 신도(神道)인 사람에게는 신주(神主 : 신사(神社)의 신관(神官). 또는 그 우두머리)님을,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사람에게는 정토진종의 스님을, 세이쵸우오노우에의 사람(生長の家の人)에게는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의 강사라든가, 그런 번잡한 일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죽어가는 것은 모두 하나의 방법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최우희 임종의 마음가짐(心得)을 가르칠 수 있는 한 사람의 사람이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ついでに書いて置くが、アメリカの人間科学研究所では、薬を使わずに瞑想をさせることによってガンや糖尿病を治療するということが既に始められている。この研究所で指導している瞑想はキリスト教的瞑想である。それはキリスト教的というよりもキリスト教的雰囲気の中における瞑想で、瞑想はなにもキリスト教的雰囲気の中だけでしかできないというものではない。
다음에 적어 두지만, 아메리카의 인간과학연구소에서는, 약을 사용하지 않고 명상을 하게 하는 것에 의해서 암(癌)이나 당뇨병을 치료한다고 하는 것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 지도하고 있는 명상은 그리스도교적인 명상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적이라고 하기 보다도 그리스도교적 분위기 속에서 명상하며, 명상은 특별히 그리스도교적 분위기 속에서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瞑想にしたってキリスト教的瞑想とか仏教的瞑想とか、今はわかれているように見えるが、もともと心を神にふり向けて瞑想するという方法は一つしかない。日本にもこれからホスピスがふえ、瞑想を治療に応用する病院がふえてくると、今までのように新興宗教が病気治しを教義にするということはできなくなる。
명상에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명상이든지 불교적 명상이든지, 오늘날은 알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래 마음을 신에게 돌려서 명상한다고 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일본에도 앞으로 호스피스(hospice)가 증가하고, 명상을 치료로 응용하는 병원이 증가하게 되면, 지금까지와 같이 신흥종교가 병치료를 교의로 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丁度この原稿を書いている時、秋田市の女医さんが、心で病気を治すということをしているとNHKがテレビ放送していた。私は日本中の医者が早くこの女医さんのように、堂々と「心で治します」と宣言してくれるようになることを望んでいる。
마침 이 원고를 쓰고 있을 때, 아키다 시(秋田市)의 여자 의사분이, 마음으로 병을 치료한다고 하는 것을 하고 있는 NHK가 텔레비젼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일본 내의 의사가 빨리 이 여자 의사분처럼, 당당하게「마음으로 치료합니다」라고 선언해 주게 될 것을 바라고 있다.
今の新興宗教がやっているような病気治しの面を全部医者がやることになり、夫婦の調和とか親孝行とか、いわゆる感謝という面は道徳的立場で取り上げればいいのであるし、そうなれば宗教で扱う分野は、「心と魂」という面だけになってくる。そうなった場合、今の新興宗教は心と魂の面を充分に指導することはできない。だから私が今の日本の新興宗教の役割りは終ったし既成宗教もまたそれを指導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のである。
오늘날의 신흥종교가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병치료의 면을 전부 의사가 하게 되며, 부부의 조화라든가 효도라든가, 소위 감사라고 하는 면은 도적적 입장으로 받아들이면 좋은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종교에서 취급하는 분야는,「마음과 영혼」이라고 하는 면만이 되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오늘날의 신흥종교는 마음과 영혼을 충분히 지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오늘날의 일본의 신흥종교의 역할은 끝났고 기성종교도 역시 그것을 지도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心と魂の面をよりよく指導できるのは正法しかない。
마음과 영혼의 면을 보다 잘 지도할 수 잇는 것은 정법밖에 없다.
医者がそのような指導をしても、全く医者の手に負えない病気がある。霊的現象即ち憑依によって起る病気はどんな薬をのませてもどんな治療をしても今の医学では治せない。瞑想をさせようとしても自分で自分の心がどうにもならないのであるから瞑想することもできない。憑依してくるのはそこに憑依霊を呼び寄せる雰囲気があるのであるから、患者以外の他の家族が協力してまず憑依霊に同通するような暗い争いの雰囲気をその家族からなくするというこ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의사가 그러한 지도를 해도, 전혀 의사가 감당할 수 없는 병이 있다. 영적 현상 즉 빙의(憑依)에 의해서 일어나는 병은 어떤 약을 먹어도 어떤 치료를 해도 오늘날의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 명상을 하게 해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명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빙의해 오는 것은 거기에 빙의령(憑依靈)을 가까이 불러들이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 이외의 다른 가족이 협력해서 우선 빙의령에게 동통하는 것과 같은 어두운 싸움의 분위기를 그 가족부터 없앤다고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新興宗教は病気治しを教義としているから、病気していた人がその信仰をして治ったということになると、指導者達は「あなたの信仰はすばらしい」とほめる。病気が治ったということは喜ぶべきことではあるが、必要以上にほめたゝえることはやめるべきである。病気になっていて治ったということよりも病気しない方がいいのである。健康で病気しないという人は病気にならないだけの心の強さがあるのであり、病気になった人は病気になるだけの心の弱さがあったということであり、病気が治ったという人は、やっと健康である人と同じ線になってきたというだけであった健康であったという人より以上に立派になったわけではない。
신흥종교는 병치료를 교의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병이 든 사림이 그 신앙을 해서 나았다고 하게 되면, 지도자들은「댱신의 신앙은 매우 훌륭합니다」라고 칭찬한다.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칭찬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병이 걸렸다가 치료되었다고 하는 것 보다도 병들지 않는 게 좋은 것이다. 건강하며 병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병이 걸리지 않을 정도의 강함이 있는 것이며, 병에 걸린 사람은 병이 걸릴 정도의 마음의 약함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며, 병이 나았다고 하는 사람은, 가까스로 건강한 사람과 같은 기준이 되어 왔다고 할 정도였던 건강했다고 하는 사람 보다 이상으로 훌륭하게 된 것이 아니다.
新興宗教団体では、病気が治ってやっと一人前になった人を、健康体の人よりもりっぱな信仰ができているみたいにほめそやしている。から新興宗教団体では病気が治ってやっと一人前になった人のほうが威張って、健康体で病気しないという人の方がなにも人に眼を見晴らせるような体験がないので小さくなっているという現象が起きている。病気が治ったということよりも、病気もせず何ごともなく毎日々々無事で暮らせることがどんなにありがたいことであるかということに気づかないと、なにか変ったことがないと喜べないという心の状態では正しい信仰を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る。
신흥종교댠체에서는, 병이 낫고 겨우 제 몫을 하게 된 사람을, 건강한 몸인 사람보다도 훌륭한 신앙이 완성되어 있는 것처럼 칭찬하고 있다. 때문에 신흥종교단체에서는 병이 낫고 겨우 제 몫을 하게 된 사람 쪽이 뽐매며, 건강한 몸으로 병이 없다고 하는 사람 쪽이 조금도 사람에게 눈을 멀리 넓게 바라보는 것과 같은 체험이 없기 때문에 작아지고 있다고 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것 보다도, 병도 걸리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매일 매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않으면, 뭔가 변한 것이 없으면 기뻐하지 않으면 마음의 상태는 올바른 신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病気をしている人よりも健康である人の方が多いのであるし、その健康である人がどのようにして心を大きく広くゆたかにして魂を向上してゆくかを宗教は本来説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병이 들어 있는 사람 보다도 건강한 사람 쪽이 많은 것이고, 그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마음을 크고 넓고 여유 있게 해서 영혼을 향상해 가는가를 종교는 본래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しかし病気をしている人も救わ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心と病気、心と身体の関係も書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하지만 병이 걸려 있는 사람도 구제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음과 병, 마음과 신체의 관계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法語 人を救うために 1980年12月28号
법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1980년 12월 28호
第九十二章 相手に感謝すること
제92장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것
指導者、また人を指導しようとする人は、自分は正法を知っているが、あの人は知らないのである。だから自分が教えてやるのであるという思い上った気持ちを持ってはならない。そういう心を持ってすると、その指導は必ず失敗するか、または相手の反発を招くことになります。なぜかというと、そういう人の心の中には、自分を善と見て、相手を悪だと見る心があるからです。「お前は悪いからこの話を聞け」といわれると、人間というものは、たとえ自分が悪いということは知っていても「悪い」ときめつけられると遂々反発してしまいます。
지도자, 또한 사람을 지도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은 정법을 알고 있지만, 저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하며 잘난 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마음을 갖으면, 그 지도는 반드시 실패하든가, 또는 상대의 반발을 초래하게 된다. 왜냐고 하면, 그러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착하게 보고, 상대를 나쁘다고 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쁘니까 이 말을 들어라」라고 말하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설사 자신이 나쁘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어도 「나쁘다」라고 (변명 따위를 듣지 않고) 호되게 꾸짖으면 마침내 반발해 버리고 맙니다.
ではなぜ反発するのか。それはその悪いことをした自分(偽我の自分)は本当の自分ではなくて、そういうことをしてはいけないと知っている本当の自分(真我の自分)が本当の自分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おり、その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自分、悪いことをしない自分、いつもよいことをしようと思っている自分、その自分が本当の自分だという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これを真の自分という)から「お前は悪い」といわれると「いや、その点は悪かったが、しかし、本当の自分はすばらしいのだ。本当の自分はそんな悪い自分ではない」といって反発するのです。
그럼 왜 반발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나쁜 짓을 한 자신(위아의 자신)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는 진짜의 자신(진아의 자신)이 진실한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일을 잘 알고 있는 자기 자신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자기 자신, 늘 좋은 행동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 그 자기 자신이 진짜의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이것을 참된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때문에「너는 나쁘다」라고 말을 들으면「아니야, 그 점은 나빴지만, 하지만, 진짜 내 자신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진정한 내 자신은 그런 나쁜 내가 아니다」라고 하며 반발하는 것입니다.
本当の自分は悪いことはしない正しい自分だ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心、その心を「自尊心」といいます。人間はみなこの自尊心」をもっています。どこからこの「自尊心は出てくるかというと、それは「人間は神の子である」という自覚からです。
참다운 자신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올바른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마음, 그 마음을「자존심(自尊心)」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모두 이「자존심(自尊心)」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이 「자존심(自尊心)」이 나오는가 하면, 그것은 「인간은 신의 자녀이다」라고 하는 자각에서 나옵니다.
だから、相手を悪いと見てすると失敗するし反発を招くので、たとえその人が悪いことをした人であっても、ただ一時の出来心であっただけであって、本当はこの人も神の子であると、相手の神の子の実相に感謝しながら指導をし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す。
그래서, 상대방을 나쁘다고 보게 되면 실패하고 반발을 초래하는 것이며, 설령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단지 잠시 우발적으로 일어난 나쁜 생각이었을 뿐이며, 사실은 이 사람도 신의 자녀이다 라고, 상대방의 신의 자녀인 실상(實相: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 감사하면서 지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第九十三章 感銘を与える講演と、そうでない講演
제93장 감명을 주는 강연과, 그렇지 않은 강연
講演が終ると思われる頃からそわそわする人が多く、終ったとたんにサッと立ち上って帰る人の多い講演は、中味のない感銘を与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講演です。「私はよく勉強しているが、あなた達は勉強していない。だから、私が教えてやるのである」というような態度で話をする大学教授達の話は、聞いていて「もっともだ」「いい話だ」と思っても、さて講演が終るとなにも頭の中に残るものがありません。講師の思い上った、人を軽蔑している雰囲気だけが妙に心にひっかかってしまいます。なにも大学教授だけに限らず、宗教の講師でもそういう人があります。
강연이 끝났다고 생각이 들부터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많고, 끝나자마자 휙하고 일어나서 돌아가는 사람이 많은 강연은, 알맹이가 없는 감명을 주지 못한 강연입니다. 「저는 자주 공부하지 있지만, 여러분들은 공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제가 가르쳐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이야기를 하는 대학교수들의 이야기는, 들으며「당연하군」「좋은 말이군」이라고 생각해도, 그럼 강연이 끝나면 아무것도 머리속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강사의 뽐내며, 남을 경멸하고 있는 분위기만이 묘하게 마음에 걸리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특별히 대학교수만에 한하지 않고, 종교의 강사도 그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この講演によって愛を行じさせていただくのである」「みなさんの幸せを心から祈っているのです」「わたしはみなさんの幸せのために奉仕させていただきたいのです」「このような機会を与えて下さいましたことを感謝いたします」というような敬虔な謙虚な心を持っている人の話は人に感銘を与えるから、終ったからといってサッと立って帰るという人はなく、感銘を受けたその心の余韻をひしひしと味わって立ち去り難い思いを与えます。
「이 강연에 의해서 사랑을 실천해 보도록 해 주십시오」「여러분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저는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습니다」「이러한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경건한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에게 감명을 주기 때문에, 끝났다고 해서 휑하니 일어나서 돌아가는 사람은 없고, 감명을 받은 그 마음의 여운을 절절히 맛보고 떠나기 어려운 생각을 줍니다.
押しつけがましい話はいい話だと思っても反発を招きますが「あなたは神の子なのです。その神の子の生命をそのまま表現することがあなたの幸せなのです」という話は喜ばれ感銘を与えます。人に感銘を与える話は、その話を聞きながら、一人一人がみな「あ、この話はわたくし一人のために話をして下さるのである」という感じを持って聞き、聞きながらそれぞれにこれまでの自分の心のあり方を反省してゆくので、講演が終ったとたんに、これまでの人生苦、悩みが一ぺんで解決し、軽い病気ならその場で治るという奇蹟も起ってきます。
강요하는 듯이 들리는 이야기는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도 반발을 초래합니다만「당신은 신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 신의 자녀의 생명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당신의 행복인 것입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기뻐하며 감명을 줍니다.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아, 이 이야기는 나 혼자를 위해서 말을 해 주시는 것이다」라고 하는 느낌을 가지고 듣고, 들으면서 저마다 거기까지의 자신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반성해 가는 것이며, 강연이 끝나자마자, 거기까지의 인생고, 고민이 일변해서 해결되고, 가벼운 병이라면 그 장소에서 낫는다고 하는 기적도 일어납니다.
愛のない説教は、人の心を固くするだけで一人一人の魂も救うことはできません。
사랑이 없는 설교는, 사람의 마음을 완고하게 할 뿐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第九十四章 愛とは、指導者の心のあり方
제94장 사랑이란, 지도자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
「愛するからこそ叱るのである」、「愛するからこそ欠点をいうのである」といういい方が、道理に叶っているように思えるのに、なぜその努力の割に成果が上らないのでしょうか。愛するからこそよくなってもらいたいのであるといって欠点を指摘したがために、かえって、夫婦仲が、人間関係が、特に親しい間の親戚関係などがまずく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例は、みなさんの周囲にいくらでもあると思います。どうしてでしょうか。
「사랑하기에 말로 꾸짖는 것이다」,「사랑하기에 말로 결점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말투가, 도리에 맞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왜 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오르지 않는 것일까요? 사랑하기에 좋아지게 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하며 결점을 지적했기 때문에, 도리어, 부부사이가, 인간관계가, 특히 가까운 사이인 친척관계 등이 거북하게 되어 버렸다고 하는 예는, 여러분의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일까요?
愛とは欠点を見てそれを矯正しようとすることではなく、その人の痛い心の傷にふれることなく、その傷を真綿でやわらかくくるんで、その人の欠点の奥にある人間神の子の本当の相を、じっと愛の心で眺めやり、その人の神の子の実相が、自然に芽生え発想して、その人が自発的にいいことができるように、いたわり育ててやることなのです。
사랑이란 결점을 보고 그것을 교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픈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솜으로 부드럽게 감싸주고, 그 사람의 결점의 깊은 곳에 있는 인간 신의 자녀의 진정한 모습(相)을, 가만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다보며, 그 사람의 신의 자녀인 실상(實相: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 자연히 싹트고 발상(착상)하고,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위로하며 길러 주는 것이다.
愛するからという言葉で、その人がふれてもらいたくない、そっとして置いてもらいたい欠点に錐を刺し込んで、グリグリえぐるような言葉を使い、態度をとっている人がありますが、それは愛という言葉で美化した憎悪の心であります。愛とは人と人の心を一つに結びつける心でありますが、憎悪とは人と人の心をバラバラにして引き裂く心です。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로, 그 사람이 상처를 건드리며,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결점에 송곳을 꽃고, 세게 누르면서 날카롭게 추궁하는 듯한 말을 사용하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는 말로 미화한 증오의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사람의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마음입니다. 증오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분해하고 사이를 갈라놓는 마음입니다.
愛するという言葉で美化された憎悪によって、いかに悲惨な人生がつくられているか。
사랑한다고 하는 말로 미화된 증오에 의해서,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天地宇宙を創造された神は「神はない」という無神論者をも憎悪せず、あたたかく抱擁して生かしていられます。太陽のような愛、時が来るまでじっと待つ愛、真綿のようなやわらかな愛…。
천지우주를 창조하신 신은 「신은 없다」라고 하는 무신론자(無神論者)을 또한 증오하지 않고, 따뜻하게 포옹하며 소생시키고 계십니다. 태양과 같은 사랑, 때가 올
때 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사랑, 솜과 같은 푹신한 사랑…。
真の愛は、すべての人を癒します。
참된 사랑은, 모든 사람을 치유합니다.
第九十五章 人を救うためには
제95장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正法を一人でも多くの人に知ってもらいたい、と思ったのに失敗した。なんの反応もなかったという人があります。なんの反応はなくても、あなたが人のためにしたというその心と行為は、ちゃんと心のテープレコーダーに記録されて天上界へ行く時の心の基準になるのですから失敗ではありません。また、聞いた人も、いつかは心の中に撤かれた正法の種子が発芽する時が来るでしょう。
정법을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게 하고 싶다, 고 생각했는데 실패했다. 어떤 반응도 없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반응은 없어도, 당신이 남을 위해서 했다고 하는 그 마음과 행위는, 분명하게 마음의 테이프리코더에 기록되어 천상계로 갈 때의 마음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패가 아닙니다. 또, 들은 사람도, 언젠가는 마음속에 버려버린 정법의 종자(씨앗)이 발아할 때가 올 것입니다.
しかしまた、お釈迦さまが「縁なき衆生は度し難し」キリストが「豚に真珠を与えるな」といわれたように、どんなに人を救おうと思っても、その人の縁が熱さず、心の準備ができていなければ、折角の好意も徒労と見えることがあるものも事実です。なんでもそうですが、人を救うのにもあせってはならないのです。
하지만 또한, 부처님이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구제)할 길이 없다」 그리스도가「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리 사람을 구제하려고 생각해도, 그 사람이 연연이 뜨겁지 않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모처럼의 호의도 헛수고로 보이는 것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만, 사람을 구제하는 데에도 조급하게 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人生はいろいろな体験を積むことによって魂を向上させる過程です。どんな人でもやがては正法を知ることなしには、魂を向上できない階段に達するのですが、まだ、正法を知って魂を向上させるという段階にまで到達していない人もいっぱいいるわけです。どんないいことでも強制されると、余程心の大きい智慧である人でない限りは反対することが多いようです。
인생은 여러 가지 체험을 쌓는 것에 의해서 영혼을 향상시키는 과정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은 정법을 알지 않고서는, 영혼을 향상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만, 단지, 정법을 알고 영혼을 향상시킨다고 하는 단계에 까지 도달하고 있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좋은 것이라도 강제를 당하면, 어지간히 큰 지혜(智慧)가 있는 사람이 아닌 한은 반대하는 일이 많은 모양입니다.
正法は伝えてゆ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人を救おうと力まなくてもよいのです。
정법을 전달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만, 사람을 구제하려고(도우려고) 힘쓰지 않아도 좋은 것입니다.
第九十六章 積極的肯定的想念と消極的否定的想念
제96장 적극적 긍정적 상념과 소극적 부정적 상념
何事によらず消極的否定的想念をもって暗い方からだけものを考える人は、それによって新しい不調和を生み出し、さらに輪をかけてますます不調和に悪くなってゆきます。自分自身だけでなく他人をも救ってゆけるような積極的肯定的想念は、雰囲気の影響を受けることはありません。
무슨 일이든지 소극적 부정적 상념을 가지고 어두운 쪽으로만 사물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에 의해서 새로운 부조화를 새로 만들어 내고, 더욱더 심해져 점점 더 부조화로 악화되어 갑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또한 구제해 갈 수 있는 듯한 적극적 긍정적 상념은, 분위기의 영향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積極的肯定的想念」とは、秩序ある調和した波動の力。
「적극적 긍정적 상념」이란, 질서 있는 조화된 파동의 힘.
「消極的否定的想念」とは、分裂した混乱した無秩序な破壊的波動の力。
「소극적 부정적 상념」이란, 분열된 혼란한 무질서한 파괴적 파동의 힘.
「作用・反作用」、「動・反動」、「類は類で集まる」という法則によって、積極的、肯定的な明るい心を持つ人は、ますます幸せになり、消極的、否定的な暗い心の持ち主は、ますます不幸になってゆくのです。
「작용・반작용」,「동・반동」,「끼리끼리 모인다」라고 하는 법칙에 의해서, 적극적, 긍정적인 밝은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점점 더 행복하게 되며, 소극적, 부정적인 어두운 마음의 소유자는, 점점 더 불행하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悟りは積極的、肯定的な明るい心の上にあるのであって、消極的、否定的な暗い心を持っていたのでは悟れません。
깨달음은 적극적, 긍정적인 밝은 마음 위에 있는 것이며, 소극적, 부정적인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깨달을 수 없다.
第九十七章 「物質本来なし」 「肉体本来なし」という教義は間違い
제97장 「물질은 본래 없다」 「육체는 본래 없다」라고 하는 교의는 잘못이다
物質や肉体は、やがて消えゆく存在であるから、生長の家では「物質本来なし」、「肉体本来なし」といいます。たしかに非実在、非存在ではありますが、物質は物質として、肉体は肉体として存在意義があるのです。
물질이나 육체는, 이윽고 사라져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에서는, 「물질은 본래 없다」 「육체는 본래 없다」라고 말합니다. 확실히 비실재, 비존재가 있습니다만, 물질은 물질로서, 육체는 육체로서 존재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では誰が物質、肉体をこのようにして存在せしめているのでしょうか。つきつめてゆくならば、やはり「神がつくられた」ということになってきます。本来、人間は霊ですが、霊の修行のために神が地球をつくり肉体をつくれれたのです。 物質、肉体を否定することは、神を否定することになります。神を否定しては宗教は存在しえません。 物質も肉体も、やがて灰になって消えてゆく存在ではありますが、存在している間は大事に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
그럼 누가 물질, 육체를 이렇게 해서 존재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끝까지 파고들어 밝혀 내어 가게 되면(추궁하여 가게 되면), 결국「신이 만드시었다」라고 하는 것이 되어 옵니다. 본래, 인간은 영혼(靈)입니다만, 영혼(靈)의 수행을 위해서 신(神)이 지구를 만들고 육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물질, 육체를 부정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신을 부정해서는 종교는 존해할 수 없습니다. 물질도 육체도, 이윽고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존재입니다만,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肉体は心の状態を現わすバロメーターです。
육체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바로미터(barometer, 기준, 척도)입니다.
明るい心を持てば健康であり、暗い心を持つと病気になります。肉体の神秘さを見ると神の存在がわかるしかけになっています。目に見えるものだけがあるのではないので、目に見えないものも存在しているのです。
밝은 마음을 가지면 건강하며, 어두운 마음을 가지면 병이 걸립니다. 육체의 신비함을 보면 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海の波は1分間に18回寄せては返します。世界中どこの海岸でも同じです。
바다의 파도는 1분 동안에 18회 밀려왔다 밀려갑니다. 온 세계 어디의 해안도 똑같습니다.
18×2=36 36度が人間の基礎体温です。
18×2=36 36도가 인간의 기초 체온입니다.
36×2=72 72は1分間の脈拍数。
36×2=72 72는 1분 동안의 맥박수.
72×2=144 144は人間の平均血圧です。
72×2=144 144는 인간의 평균 혈압입니다. (제 견해: 특히 이 부분은, 현대의학에서는 부정하고 있습니다. 고혈압 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人間は満ち潮の時に生まれてきて、引き潮の時に死んでゆきます。女の人は月の周期に合わせて月経があります。
인간은 만조(밀물) 때에 태어나오며, 썰물(간조) 때에 죽어 갑니다. 여자는 달의 주기에 맞춰서 월경이 있습니다.
人間の肉体は自然と連動してつくられています。誰がこのように自然と連動するようにつくられたのでしょうか。肉体が存在する必要がないのであったら、なぜ神は肉体をつくられたのでしょうか。
인간의 육체는 자연과 연동하여 만들어져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자연과 연동하는 방법으로 만드신 것일까요?
육체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면, 왜 신은 육체를 만드신 것일까요?
生長の家の会員達も正法を知らないと、心は満足できないのです。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의 회원들도 정법을 알지 않으면, 마음은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第九十八章 目に見えないものが存在する
제98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二十世紀の唯物科学を信じてきた人達は、「目に見えるものだけが存在する。目に見えないものは存在しない」といってきました。しかし、ここのきて、「目に見えないものが存在する」ということを、宇宙エネルギー科学者が証明しました。
21세기의 유물과학을 믿어 왔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을, 우주에너지 과학자가 증명했습니다.
1991年8月、ボストンで開かれた「エネルギー変換工学会議」で「宇宙エネルギーとその装置」に関する部門がはじめて設けられ、空気中から電気を取り出す技術が発表されたからです。
1991년 8월, 보스톤에서 열린「에너지 변환 공학회의」에서「우주에너지와 그 장치」에 관한 부문이 처음으로 만들어져, 공기 중에서 전기를 추려 내는 기술이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近い将来、宇宙エネルギー発電器ができて、それをのせると、自動車も飛行機も船も、各家庭の電気設備も、燃料はタダで、しかも無公害で走るし動かすことができます。電力会社も原子力発電もいらなくなってきます。
가까운 장래에, 우주에너지 발전기가 완성되며, 그것을 태우면, 자동차도 비행기고 배도, 각 가정의 전기설비도, 연료는 무료이며, 게다가 무공해로 달리고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전력회사도 원자력발전도 필요하지 않게 되어 옵니다.
福岡には既に宇宙エネルギー発電によってシェーバー(髭剃り器)をつくっている人がいます。
후쿠오카(福岡)에는 이미 우주에너지 발전(發電)에 의해서 세 전기면도기(수염을 깍는 도구)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21世紀は、宇宙エネルギー利用の世紀になってゆくでしょう。
21세기는, 우주에너지 이용의 세기가 되어 갈 것입니다.
第九十九章 人間は霊と肉体との二重構造になっている
제99장 인간은 영혼(靈)과 육체와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私が、宗教家として、これはすばらしいものが発見されたと喜んでいるのは、科学者が霊魂の存在を証明してくれたことです。今までは霊魂は存在するといっても証明のしようがありませんでしたが、これからは誰しもが霊魂の存在を信じてくれることになります。
제가, 종교가로서, 이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기뻐하고 있는 것은, 과학자가 영혼(靈魂)의 존재를 증명해 준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영혼(靈魂)은 존재한다 라고 말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만, 앞으로는 누구든지 영혼(靈魂)의 존재를 믿어 주게 됩니다.
人間は、
인간은,
肉体のエネルギー육체 에너지
> 一体 (色心不二)둘이 아닌 일체(한몸) (색심불이)
霊、心のエネルギー 영혼, 마음의 에너지
となったものであるといいます。
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今まで宗教家がいってきたようなことを、科学者がいい出してきました。霊魂は、意識と記憶を持った一つの生命体であり、霊魂が人間の本体であると。
지금까지 종교가가 말해 왔던 것과 같은 것을, 과학자가 말하기 시작해 왔습니다. 영혼(靈魂)은, 의식과 기억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이며, 영혼(靈魂)이 인간의 본체라고.
人間は死んでも、肉体を抜け出した霊魂はあの世に存在します。そして、その霊魂は輪廻転生するというのです。
인간은 죽어도, 육체를 빠져나온 영혼(靈魂)은 저 세상(저승)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靈魂)은 윤회전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霊魂の話は、今まで宗教的なものと思ってきましたが、これからは日常の常識となってくるのであり、霊魂はないという唯物論者は、これから常識のない人ということになって、社会の落伍者になってゆくでしょう。
영혼(靈魂)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종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일상의 상식이 되어 올 것이며, 영혼(靈魂)은 없다 라고 하는 유물론자(唯物論者)는, 앞으로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게 되어, 사회의 낙오자(落伍者)가 되어 갈 것입니다.
仏教も、今まで残された経典をつぶさに調べて、釈迦の本意を知ろうと、釈迦滅後二千五百年間いろいろな努力精進を重ねてきましたが、もはやそのような努力は必要なくなってきました。
불교도, 지금까지 남겨진 경전을 상세히 조사해서, 석가의 본의(本意)를 알려고, 석가 멸후 2500년 동안 여러 가지 노력 정진을 거듭해 왔지만, 이제는 그러한 노력은 필요없게 되어 왔습니다.
第百章 地球意識、宇宙意識(宇宙即我)、そして神
제100장 지구의식, 우주의식(우주즉아), 그리고 신
大地に草木が叢生して植物、動物、そして人間を生かしているのは、地球もエネルギーを持っている生命体であるからです。即ち地球精神(意識)があるからです。だから人間は地球精神に調和する心を持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地球精神に調和しない心を持った人は、天災地変によって生を中断されることになるのです。自分のことしか考えない、目先のことしか考えない視野のせまい心の持ち主は、地球精神にそぐわないことになります。
천지에 초목이 섭생해서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을 소생시키고 있는 것은, 지구(地球)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生命體)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정신(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정신에 조화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구정신에 조화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천재지변에 의해서 생을 중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눈앞에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시야가 좁은 마음의 소유자는, 지구정신에 걸맞지 않게 됩니다.
この宇宙は、全体がコンピューターに制御されたように厳格な法則、規則によって動いています。これは宇宙には宇宙をこのように動かしている宇宙精神(意識)があるからです。
이 우주는, 전체가 유토피아(Utopia)에 제어된 것처럼 엄격한 법칙,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에는 우주를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우주정신(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その宇宙の創造者、造物主を、宗教的には「神」というのです。
그 우주의 창조자, 조물주를, 종교적으로는「신(神)」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宇宙の仕組みを科学的に考えると、必然的に神の存在を認め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なってきます。
우주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옵니다.
人間が宇宙意識と一体だということを自覚した境地を「宇宙即我」というのです。
인간이 우주의식과 일체(한몸)이라고 하는 것을 자각한 경지를 「우주즉아(宇宙即我)」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宇宙即我」の悟りを得られた方が釈迦でありキリストであったのです。
이 「우주즉아(宇宙即我)」의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석가(釋迦)와 그리스도(Christ)였던 것입니다.
終章 地上天国の実現、二十一世紀の人間像
종장 지상천국의 실현, 21세기의 인간상
今まで過去の宗教家が何千年とかかって説明してもわからなかった真理を、いとも簡単に宇宙エナルギー科学者達が説いてくれるようになってありがたく思います。
지금까지 과거의 종교가가 몇 천년이나 걸쳐서 설명해도 알지 못했던 진리를, 매우 간단히 우주에너지 과학자들이 설명해 주게 되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霊魂はエネルギーであるということがわかってきました。人生の目的は、個々の霊魂のエネルギーを宇宙大生命エネルギーに合一させることで、それが人格の向上であるといい、その人格の向上は他力信仰では得られないというのです。
영혼(靈魂)은 에너지이다 라고 하는 것을 밝혀 왔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개개인의 영혼(靈魂)의 에너지를 우주대생명에너지에 합일시키는 것이며, 그것이 인격의 향상이라고 하며, 그 인격의 향상은 타력신앙으로는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それはそうです。拝んでばかりいて坐ってお経ばかりあげていたのでは、心は少しも向上しません。心を向上させるのは自力でしかないのです。だから、宇宙エネルギー科学者達は、他力信仰の宗教団体は潰れて、あとの残るのは、釈迦、キリストの教えの原点を知った自力信仰団体のみだというのです。こうなると、釈迦、キリストの教えの原点を知って自力信仰を説いているのは、国際正法協会だけ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그것은 그렇습니다. 합장 배례만 하며 앉아서 경문만 올리고 있던 것으로는, 마음은 조금도 향상되지 못합니다. 마음을 향상시키는 것은 자력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에너지 과학자들은, 타력신앙의 종교단체는 무너지며, 앞으로 남은 것은, 석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원점을 아는 자력신앙 단체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석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원점을 알고 자력신앙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국제정법협회뿐이라고 하게 됩니다.
まわりを見ると、苦しみ悩んでいる人達がいっぱいいます。そういう人々に救いの手をさし伸べようとする愛と奉仕の心を持つと、その心が神の波動と調和して、人も救われるが、何よりも自分が救われてゆくのです。
주변을 보면, (육체적·경제적으로) 괴로워하며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손길을 내밀려고 하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이 신(神)의 파동과 조화해서, 남도 구제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구제되어 가는 것입니다.
自分だけ救われればよいと考えている人は、神に波長が合わないのです。
자기만 구제받으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신에게 파장이 맞춰지지 않은 것입니다.
宇宙は調和しているのですから、われわれもすべてについて調和すべきです。
우주는 조화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모든 것에 대해서 조화해야 합니다.
地球精神、宇宙精神を持ち、愛と調和と奉仕の心を持った人が、二十一世紀を建設してゆ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지구정신, 우주정신을 가지고, 사랑과 조화와 봉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21세기를 건설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今のような日本の宗教界の現状が、そのまま二十一世紀へ引き継がれてゆくことは、誰も望んでいないでしょう。
지금과 같은 일본의 종교계의 현상이, 그대로 21세기로 계승되어 가는 것은, 아무도 바라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正法を知った「愛と調和と奉仕」の心を持った人々の力を結集して、二十世紀の迷妄を突き破り、輝かしい二十一世紀を創造してゆきたい。
정법을 아는「사랑과 조화와 봉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힘을 결집해서, 21세기의 미망을 돌파하고, 빛나는 21세기를 창조해 가고 싶다.
同志よ、結集せよ。
동지여, 결집하라.
あとがき
후기
「正法」誌の法語は、1978年9月に始まって1980年12月、2年3ケ月で第九十五章で終わっている。どうして中途半端な第九十五章で終わらせてしまったのかわからないが、第九十六章から終章までを書き進めてゆく間に、最後の六章は宇宙エネルギーが開発されたこの日のために残されていたような気がしてならなくなってきた。
「정법」지의 법어는, 1978년 9월에 시작되어 1980년 12월, 2년 3개월로 제95장으로 끝나고 있다. 어째서 어중간한 제95장으로 끝내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제96장에서 종장까지를 쓰며 진행시켜 가는 동안에, 최후의 6장은 우주에너지가 개발된 이 날을 위해서 남겨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第九十七章に生長の家のことを書いたのは、私自身生長の家の本部講師をいていて、「物質本来なし」、「肉体本来なし」の教義に悩まされてきたので、私と同じような悩みを持っている人を救いたいという心で書いたのである。
제97장에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의 일을 쓴 것은, 저 자신의 세이쵸우노우에(生長の家)의 본부 강사(本部講師)을 하고 있고, 「물질은 본래 없다」、「육체는 본래 없다」의 교의(敎義)에 정신적으로 괴로워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저와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하는 마음으로 쓴 것입니다.
「法語集」を「信仰の指針」としてまとめるにあたって感じたことは、十何年も前に書いたものであるとして捨ててはならない、今も信仰する人々にとっては大事なことが書いてあるということであった。
「법어집」을「신앙의 지침」로서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게 느꼈던 것은, 십 몇 년이나 전에 적어 놓은 것이 있다고 해서 버려서는 안 되며, 지금도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소중(중요)한 것이 쓰여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神理は永遠に古く、また永遠に新しいものであるから、それは当然のことといえるが、これによって人々が「正しい信仰とはなにか」と言う事を知れば、そこから必然的に日本の宗教改革ができると思っている。この本をよんで正しい信仰をしようと思われる方は私とともに力を結集して下さい。
신리는 영원히 오래 되고, 또 영원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에 의해서 사람들이「올바른 신앙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을 알면,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일본의 종교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올바른 신앙을 하려고 생각하시는 분은 저와 같이 힘을 결집해 주십시오.
とにかく正しい真理を知って、楽しい二十一世紀へ生きてゆきたいものです
어쨓든 올바른 신리를 알고, 즐거운 21세기에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平成四年八月
평성 4년 8월(1992년 4월)
園頭広周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2011.07.31 UP ◀ 이 표시는, 본문의 올려주신 일본 정법2 사이트의 주인이 올린 날짜 표시입니다.
★★★이 책은,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이 75세 때 쓰신 책이네요.
★이미 제가 앞서 올린 바가 있지만, 모르는 분들이 있으실 것이라 생각해서 간단히 소개합니다.
園頭広周先生 略歴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 약력
鹿児島県出身。
1918年2月20日生まれ、1999年2月20日没:享年81歳
宗教家。宗教法人GLA西日本本部長を経て、正法会(後、国際正法協会と改称)の創 始者。
가고시마 출신이며, 1918년 2월 20일 출생하고, 1999년 2월 20일 사망. 종교가. 종교법인 GLA 서일본 본부장을 거쳐, 정법회(후, 국제정법협회로 개칭)의 창시자. 그리고 고(故)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선생님의 수제자이십니다.
※출처 : http://www.shoho2.com/index.html , 정법(쇼호)
※『正法』 高橋信次先生・園頭広周先生が説かれました正法・神理を正しくお伝えいたします。
정법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이 설명하신 정법・신리를 올바르게 전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시는 분이 사이트입니다. 이분은 사이트에서 이름을 밝히고 계시지 않으시며, 프로필에 후쿠오카 현(福岡県)에 살고 계시는, 1950년 생이시고, 회사원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올해로 환갑이 막 지나신 분이시네요.
※ 본문의 내용 중에 제24장이 없습니다. 위 출처 상의 본문에도, 제24장이 없네요.
※ 2018년 3월 22일 현재, 다시 확인해 보니, 제24장을, 발견했습니다. 위의 본문에 있습니다.
또한, 일부 내용 번역 누락 분, 재 번역하였으며, 오타 일부를 수정하였습니다.
※번역 : 신선한 미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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