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원설 반야심경『原說・般若心經』/「제3장 석가의 탄생과 바라문의 시대」1972년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원설 반야심경『原說・般若心經』/「제3장 석가의 탄생과 바라문의 시대」1972년

어둠의골짜기 2011. 7. 28. 07:00

高橋信次 原說・般若心經  內在された叡知の究明

다카하시 신지님의 원설・반야심경 내재된 예지의 구명

これは、單なる解說書ではない。
이것은, 단순한 해설서가 아니다.
誰の內にも秘められている
누구의 속에도 숨겨져 있는
偉大なる佛智に到達する道を
위대한 불지에 도달하는 길을
釋迦の原點な還り、
석가의 원점으로 돌아와서,
說さ示す書である。
설명해 보이는 책이다.


 

高橋信次/原説般若心経


  http://www.sampoh.co.jp/takahashishinji/gensetsuhs.html

사진 출처

이 책의 저자는, 다카하시 신지입니다.

출판사는, 위 사진의 링크에 있는데, 그 출판사에 사전 허가 없이, 블로그에 올려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지만, 말법의 시대에 올바른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체이신, 다카하시 신지님(엘란티)이신 분이 글을

제가 직접 일본어와 한자를 넣고, 나름대로 해석하여 올립니다.

 

일본에 있는 삼보출판사의 사장님께는,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한국에 소개하고 싶지만, 한국내에는 출판이 되지 않은 관계로, 인해, 원문을 보고 올렸습니다.

 

 


 

 


第三章 釋迦の誕生とバラモンの時代
제3장 석가의 탄생과 바라문의 시대

 

 

原始佛敎の成立 (般若波羅蜜多への道)   135
원시불교의 성립       (반야바라밀다로의 길)
遂に出家の道へ──道ははるかに142/
마침내 출가의 길로──길은 멀고
肉體行を捨てる──新しい在り方への眼覺め158/
육체수행을 버리다──새로운 본연의 모습으로의 눈을 뜸
大悟への道に入る──正しい基準への問い162/
완전한 깨달음으로의 길에 들어서다──올바른 기준으로의 물음
惡靈との鬪い──幼年時代の反省177/
악마와의 싸움──유년시대의 반성
靑春時代への反省──四季の館は遠く186/
청춘시대로의 반성──계절의 머물 집은 멀다
實在の世界か──淡い黃金色の心の世界をかい間見る193/
실재의 세계──연한 황금색의 마음의 세계를 슬쩍 엿보다
自己追求──梵天に化けてきた惡魔210/
자기추구──범천으로 둔갑해 온 악마
遂に悟りを開く──眼下に展さる大パノラマ224/
마침내 깨달음을 열다──아래 펼쳐진 대 파노라마
天上界の人々と語る──調和への二十一日間236/
천상계의 사람들과 말하다──조화로의 21일간
この道を誰に說くか──旅へ248/
이 길[도리]를 누구에 설명할까?──여행
現代人にもその力がある252/
현대인에게도 그 힘이 있다
アラハンへの導き──五人との再會256/
아라한으로의 인도──다섯 사람과의 재회
ウルヴェラ・カンシャパ─との對決──プッタを食わなかった大蛇259/
우루벨라・카샷파와의 대결──붓타를 잡아먹지 않은 큰 뱀[구렁이]
三つの約束──歸依への法則274/
세 가지의 약속──귀의로의 법칙
プッタ・ス―トラ(悟への敎え)283/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가르침)

最後の弟子──百十七歲のシヴリダ-286/
최후의 제자──117세의 시브리다
眞の佛敎とは──八正道の實踐294
참된 불교란──팔정도의 실천

 

 


 

 

この章は、ゴ―ダマ・プッタ(釋迦)の、苦惱と反省と修行と、大悟へ到る繪卷物語である。
이 장은, 고다마・붓타(석가)의, 고뇌와 반성과 수행과,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두루마리로 된 일본의 그림 이야기이다.

古代中印度・バラモンの時代における、眞のプッタ誕生に到る魂の遍歷である。
고대 중인도・바라문 시대에 있어서의, 참된 붓타 탄생에 이르는 영혼의 편력이다.

おのれの過去からの脫出、惡魔との鬪い、他宗門との質疑、そして光明の世界へ──。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탈출, 악마와의 싸움, 다른 종문과의 질의, 그리고 광명의 세계로 ──。

衆生濟度の歷史と、宗敎に對する敎えとが、この魂の旅人の心の中にある。
중생구도의 역사와, 종교에 대한 가르침 등, 이 영혼의 나그네의 마음속에 있다.

 

 


 

 

★본문의 그림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原始佛敎の成立 (般若波羅蜜多への道)   
원시불교의 성립 (반야바라밀다로의 길)

 

今をさる二五四五年以前の頃のインドは、中印度地方を中心として、戰亂の時代でした。
오늘을 지난 2천 5백 년 이전 무렵의 인도는, 중인도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전란의 시대였습니다.

 

榮えていた諸國は、互いにしのぎを削り合っていましたが、同時に當時の社會は、きびしいカスト―制度という、人種差別の封建時代でもあったのです。
영화로웠던 제국은, 서로 서로가 맹렬히 싸우고 있었지만, 동시에 당시의 사회는, 혹독한 카스트제도라고 하는, 인종차별의 봉건시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バラモン、クシャトリヤ(武士階級)、ヴェシャ―(商工業階級)、シュドラ―(奴隸階級)という四段階に區分された階級が、人種差別を作り、貧富の差を作っていて、たとえば同じバラモン種の中でも、大バラモン種と一般バラモン種では、雲泥の差が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
바라문, 크샤트리야(Kshatriya, 무사계급), 베샤(Vaisya, 상공업계급), 슈드라(Sudra, 노예계급)이라고 하는 4단계로 구분된 계급이, 인종차별을 만들어, 빈부의 차이를 만들고 있고, 예를 들면 같은 바라문종(種) 안에서도, 대 바라문종(種)과 일반 바라문종(種)에서는, 운니지차(雲泥之差)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雲泥の差[운니지차]=천양지차[天壤之差]  《일본어/국어사전》
운니[雲泥]→구름과 진흙, 대단한 차이. 구름과 진흙의 차이라는 뜻으로, 서로 간의 차이가 매우 심함을 이르는 말.

 

バラモン種は、神の使いとして社會的地位を策いたが、自分達の環境を、神の名のもとに安全にしていたという事實は否定できません。
바라문종(婆羅門種)은, 신의 사자로서 사회적 지위를 쌓았지만, 자신들의 환경을, 신의 이름 하에 안전하게 여기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ヴェダ―やウパニシャドというバラモン敎典の歷史は、當時でも一七00~一八00年近くのそれを持っていたので、肉體的子孫の家系襲名は、日本における寺や檀家と似た形でした。また、神社と氏子といった關係でもあったので、バラモン種の權力は、大衆を足場とした大きな勢力となっていました。
베다(Veda)나 우파니샤드(Upanishad)라고 하는 바라문 교전(敎典)의 역사는, 당시라고 해도 1700~1800년 가까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써, 육체적 자손의 가계의 습명(선대의 예명을 계승함)은, 일본에 있어서의 절이나 단가(檀家=일정한 절에 소속하면서 그 절에 장례식 등 불사(佛事) 일체를 맡기고 시주에 의하여 그 절의 재정을 돕는 집. 또는 그런 신도)와 같은 형태였다.  또한, 신사(神社=일본에서 왕실의 조상이나 고유의 신앙 대상인 신 또는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이나 우지꼬(氏子=조상신인 씨족신의 후손)이라고 하는 관계로도 있었던 것으로써, 바라문종의 권력은, 대중을 발판으로 한 큰 권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산스크리트어)Veda]《국어사전》
 [종교] 인도 바라문교 사상의 근본 성전이며 가장 오래된 경전.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1100년에 이루어졌으며, 인도의 종교·철학·문학의 근원을 이루는 것으로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 아타르바베다의 네 가지가 있다.

 

※우파니샤드[(산스크리트어)Upanishad]  《국어사전》
[명사] [종교]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져 힌두교의 철학 사상을 나타내는 일군의 성전. 인도의 철학과 종교 사상의 원천을 이루며 사람·신·우주의 이치를 밝힌 것으로, 우주적 실체인 브라만과 인간 내면의 자아인 아트만의 궁극적 일치를 주장한다.


智的な學問を學び、心がなくとも、文盲の衆生を神の名のものに支配していたのです。
지적인 학문을 배우고, 마음이 없어도, 문맹(文盲=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름. 또는 그런 사람)의 중생을 신의 이름 하에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衆生も、生まれたときからの生活環境や習性によって、苦しみも、貧富の差も當然のように考えていたのでしょう。バラモン種に對しては尊敬の念を持ち、クシャトリヤ、ヴェシャ―、シュドラ―とともに、生活の中の相互關係によって結ばれていたのです。
중생도, 태어났을 때부터의 생활환경이나 습성에 의해서, 괴로움도, 빈부의 차이도 당연한 듯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바라문종(婆羅門種)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마음((念)을 가지고, 크샤트리야(Kshatriya), 베샤(Vaisya), 슈드라(Sudar)와 함께, 생활 가운데에서의 상호관계에 의해서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バラモンは祭事を司り、弱い人間の心に神の存在を敎え、迷える者を救濟する方法として神の力に縋ることを敎えたものです。
바라문은 제사를 담당하고, 약한 인간의 마음에 신의 존재를 가르치고, 길을 잃은 사람(혹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구제할 방법으로서 신의 힘에 매달릴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無學文盲の衆から見れば、ありがたい敎えに違いはなかったはずだし、神を信じる心は、現代人より率直であったと思われます。
무학문맹(=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지 못함. 또는 그런 사람)의 무리에서 보면, 고마운 가르침임에 틀림은 없었을 것이고, 신을 믿는 마음은, 현대인 보다 솔직했다고 생각 됩니다.

 

そのために、指導者は、このようなバラモン種を特別に保護して、まつり上げてしまい、きびしい階級制度を作り出してしまったのでしょう。
그 때문에, 지도자는, 이러한 바라문종을 특별히 보호하고, 추대해 버리고, 혹독한 계급제도를 만들어 내어 버렸던 것이지요.

 

バラモン種の家においては、生まれて十二歲くらいまでは、日本の寺小屋のような場所で、ヴェダ―などの敎典を基にして祭事の意味や方法を學んだり、一般的敎養を身につけたようです。
바라문종(種)의 집에 있어서는, 태어나서 12세정도 까지는, 일본의 데라코야(寺小屋)과 같은 장소에서, 베다(Veda) 등의 교전(敎典)을 기초로 해서 제사의 의미나 방법을 배우거나, 일반적 교양을 익혔던 모양입니다.  

 

※사소옥[寺小屋]
에도(江戶)시대(1603~1868년)의 서당. 글방.
무로마찌(室町) 시대(1338년~1573년)에, 중이 절에서 서당을 연 것에서 비롯됨.


こうした世襲制度が、いつの間にが、バラモンを一般社會より上位としての環境を作って行ったのですが、十二歲から五十歲ぐらいまでは家庭にはいり、子弟の敎育、家事の體驗をし、やがて子弟を育て上げると、山や森に入って、きびしい肉體修行による梵我一如の狀態になろうとしたのです。
이러한 세습제도가, 어느 사인엔가, 바라문종(種)을 일반사회보다 상위로 삼아서 환경을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만, 12세부터 50세 정도까지는 가정에 들어가서, 자제의 교육, 가사의 체험을 하고, 이윽고 자제를 양육하고 길러내면, 산이나 숲에 들어가, 혹독한 육체수행에 의한 범아일여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その修行者を、サマナ―と呼びました。夫婦で、このような修行に出る者も多かったといいます。
그 수행자를, 사마나라고 불렸습니다.  부부가, 이러한 수행에 나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ただその中でも、現代の日本佛敎が多宗派に分かれているように、多くの派閥のようなものがあり、その修行方法は指導者によって違っており、非常に多岐にわたっ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
단 그 중에서도, 현대의 일본 불교가 많은 종파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많은 파벌과 같은 것이 있고, 그 수행방법은 지도자에 따라서 차이가 있고, 상당히 여러 갈래로 갈려 복잡 다단했다고 하는 점입니다.

 

ヴェダ―やウパニシャド、マヌ法典など、最初に說かれたものは、正しい人の心の道を敎えたものでしょう。が、やはり心を失ってからの學問的なものは智の悟りとなり、修行者の間に、異說が生じたものと思われます。
베다(Veda)나 우파니샤드(Upanishad), 마누(Manu) 법전 등, 최초에 설명된 것은, 올바른 사람의 마음의 길(道=도리)를 가르쳤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마음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부터의 학문적인 것은 지(智=세속적인 지혜)로 깨닫게 되어, 수행자 간에, 이설(異說=통용되는 것과는 다른 주장이나 의견)을 낳았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누 법전[Manu-smrti] 《브리태니커》
(산스크리트로 '마누의 전승'이라는 뜻)전통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인도의 힌두 법전(다르마 샤스트라).
정식 이름은 마나바 다르마 샤스트라(Mānava-dharmaśābstra)이다


現代佛敎が哲學化されて、あまりにもむずかしく理解できないように、バラモン敎も、ゴ―ダマ・佛陀の時代には解りにくい智的な敎えになっていたようです。
현대 불교가 철학화 되어, 너무나도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바라문교(敎)도, 고다마・불타(佛陀)의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적인 가르침이 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形式的な世襲制度が、片よったバラモン思想を作り出してしまったといえましょう。
형식적인 세습제도가, 한쪽으로 치우친 바라문 사상을 만들어 내어 버리고 말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ともあれ、バラモン種は、六十代になると、森林の中の修行から、遊行期に入り、一般の家庭に食を乞う、サロモンの境地に達するのです。こう見でくると乞食(こつじき)の歷史も面白いものです。このようなサロモン達への布施の習性や、祈りをして貰うことも不自然なことではなく、永い歷史の中で、衆生の生活の一環ともなっていたといえます。
어찌 되었든, 바라문종(種)은, 60대가 되면, 삼림 안의 수행에서부터, 유행기(遊行期=중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기간)로 들어가, 일반의 가정에 걸식을 하는, 사로몬(수행자)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걸식의 역사도 우스운 것입니다.  이러한 사로몬(수행자)들에게 보시의 습성이나, 기도를 해 주는 일도 부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중생의 생활의 일환으로도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信仰の對象も、バフラマン(梵天)、インドラ―(帝釋天)、山の神、水の神、火の神、ヤクシャ―、キンナラ、マゴラ、ナガ―など、多種多樣にあたっていました。日本でいうなら、魔王、夜叉、天狗とか龍、狐、犬のだぐいの信仰といえましょう。
신앙의 대상도, 브라흐만(범천), 인드라(제석천), 산신령(山神), 물의 신(水神), 불을 관장하는 신(火神), 야크샤(夜叉 야차 Yaksa), 긴나라(緊那羅, Kimnara), 마고라( 摩睺羅伽 Mahoraga), 나가(龍 룡 Naga) 등, 다종다양하게 해당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말하면, 마왕, 야차, 천구(天狗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깊은 산에 살며 신통력이 있다는, 얼굴이 붉고 코가 큰 상상의 괴물)라든가 룡(龍), 여우, 개와 같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心を失ってしまった果ての、誤った判斷ともいえます。私達の心の世界は、善惡いずれの方向にも通じやすいし、一人よがりの欲望にも陷りやすい。つまりこうした誤った道にも入りやすいということです。
마음을 잃어버린 결과, 그릇된 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세계는, 선악 어느 쪽의 방향에도 통하기 쉽고, 독선적인 욕망에도 빠지기 쉽다.  즉 이러한 그릇된 길에도 들어가기 쉽다고 하는 것입니다.

 

山中で、不調和である心や生活をそのままで禪定などをしてあると、その人間の心に應じた、不調和な地獄靈達が、耳もどで囁いたり、また心の中に湧いてくる僞りの靈達に支配されて、あたかも自分が神から指命された聖者だと錯覺し、それが組織されて、他力信仰の新興宗敎が數多く生まれてしまう、といったことにもなるのです。
산중에서, 부조화한 마음이나 생활을 그대로 선정 등을 하고 있으면, 그 인간의 마음에 응한, 부조화한 지옥령(地獄靈)들이, 귓전에서 속삭이거나, 또는 마음 속으로 솟아오르는 거짓 영혼들에게 지배되어, 마치 자신이 신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성자(聖子)이다 라고 착각해서, 그것이 조직되어, 타력신앙의 신흥종교가 수다하게 탄생되어 버린다, 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いつの時代でも同じことがいえましょう。
어느 시대에도 같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當時のインドも、イエスの出られたイスラエルの地も、そうした狀況であったといえるし、そうした時代を〃末法の世〃というわけです。
당시의 인도(印度)도, 예수(Jesus)가 태어난 이스라엘의 땅에도, 그러한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고, 그러한 시대를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うした、心を失った權力や地位、經濟力の不均衡が社會を混亂におとし入れ、不調和な宗敎が亂立するときになると、實在界、あの世から、光の大指導靈(如來)が肉體を持って現われ、神理という神の意志を傳えにきます。
이러한, 마음을 잃어버린 권력이나 지위, 경제력의 불균형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부조화한 종교가 난립할 때가 되면, 실재의 세계(實在界), 저 세상에서, 빛의 대지도령(여래)가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 신리(神理)라고 하는 신의 의지(뜻)을 전하려 옵니다.

 

しかし過去世で如來であった人達も、この世に生まれると、その第一步から人生のあらゆる疑問にぶつかります。そして體驗を通し、中道を心と行ないの物差しとしてそれらを解決し、悟りを開き、神理を說き明かして病める衆生を救濟して行くのです。
하지만 과거세에서 여래(如來)였던 사람들도,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 첫걸음부터 인생의 온갖 의문에 부딪칩니다.  그리고 체험을 통해서, 중도(中道)를 마음과 행위의 척도로 해서 그것들을 해결하고, 깨달음을 열어, 신리(神理)를 설명해서 병든 중생을 구제해 가는 것입니다.

 

今までに、轉生輪廻の過程において、光の大指導靈達がこの現象界に出、神の心である〃法〃を傳えましたが、この法も、五百年、千年と經つに從い、人々の智と意によってむずかしく傳えられ、すっかり塵や埃におおわれてしまったものです。
지금까지, 전생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빛의 대지도령들이 이 현상계에 나와, 신의 마음인 〃법(法)〃을 전했지만, 이 법도, 5백년, 천년이 경과함에 따라, 사람들의 지(智=세상적인 지혜)와 의(意: 뜻, 생각, 마음, 의사, 의지 등등)에 의해서 어렵게 전해져서, 완전히 티끌과 먼지에 덮이여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ゴ―ダマ・佛陀も、その使命を持って生まれたのです。
고다마・불타(Gotama Putta, 瞿曇 佛陀)도, 그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その頃、他國からの侵略を防ぐため武士階級がクシャトリヤとしており、バラモン種やヴェシャ―の長者達は、それと相互扶助の關係を持ち、武器や生活必需品を供給したり、情報しゅう集など、密接な間柄でした。
그 무렵,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 무사계급이 크샤트리야(ksatriya)로 하고 있고, 바라문종(婆羅門種)이나 베샤(바이샤)의 장자들은, 그것과 상호협조의 관계를 가지고, 무기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거나, 정보수집 등, 밀접한 사이였습니다.

 

その下に、シュドラ―と呼ばれる奴隸階級があり、彼らは、永遠に前記の指導階級の仲間入りはできないクラスなのでした。
그 밑에, 슈드라(sudra)라 불리는 노예계급이 있고, 그들은, 영원히 앞의 적힌 기록의 지도계급의 대열에 낄 수 없는 계급(class)인 것이었습니다.

 

このような環境下で、ゴ―ダマ・シッタルダ―は、中印度ヒマラヤの麓にあるコ―サラ國の屬國、カピラ・ヴャ―ストの城主スット・ダナ―・ラジャン(淨飯王)の王子として生まれました。
이러한 환경하에서, 고다마 ・싯타르다(Gotama Siddhrtha, 瞿曇 悉達多)는, 중인도 히말라야(Himalaya)의 산기슭에 있는 코살라국(Kosala國)의 속국,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성주(城主) 슛도・다나・라잔(정반왕, Suddhodana)의 왕자로서 태어났습니다.

 

※카필라 성(城)[kapilavastu][迦毘羅衛]  《문화원형백과사전》
kapilavastu(迦毘羅衛)의 역어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한 도시국가이다. 지금의 네팔 타라이(Tarai) 지방이다...

 

※가비라위[迦毘羅衛] 《오픈백과》
카필라바스투의 음역. 고대 중인도의 석가족의 영토로서 수도의 이름인 동시에 그 나라의 이름이기도 함.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가 있었던 곳. 현재 네팔의 타라이(Tarai) 지방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라잔이란, 왕(王)이란 뜻입니다.


母は、隣國のデヴダハ・ヴャ―ストの城主スクラ・プタ―の妹で、マヤと呼ばれていた王女でしたが、ゴ―ダマ・シッタルダ―を産むと、その後の經過が惡く、一週間で他界してしまったのです。
어머니는, 이웃나라인 데바다하・바스투(天臂城, 천비성)의 성주(城主) 스쿠라・푸타(善覚王, 선각왕)의 여동생이며, 마야(Maya 摩耶)라 불리우고 있던 왕녀였지만, 고다마・싯타르다(Gotama Siddhrtha)를 낳고, 그 후의 과정이 좋지 않아, 일주일로 타계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そして、母の妹であるパジャ・パティ―が後添いとしてき、シッタルダ―王子を、わが子のように愛育してくれましたが、やがて義弟のナンダが生まれ、その關係を知しった頃から、シッタルダ―は、自ら孤獨に陷り、苦惱するようになって行ったのでした。
그리고, 어머니의 언니인 파쟈파티(Ppajapati, 波闍波提)가 후처(後妻)로서 와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 왕자를, 내 자식처럼 애육해 주었지만, 이윽고 의붓어머머니(義母)에게 난다(難陀, Nanda)가 태어나, 그 관계를 알았을 무렵부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스스로 고독에 빠져, 고뇌하게 되어 갔던 것이었습니다.

 

また、幼少の頃から、チャンダカの御すタンクワ―という馬の背や、象の背に乘って城外を散步したとき、シュドラ―の哀れな生活を見、城內の優雅な生活と比較し、そこに社會の矛盾を感じ心を痛めたものでした。
또, 어릴 적부터, 찬다카(Chandaka, 車匿)가 말을 모는 당쿠와(백마의 이름)라고 하는 말의 등이나, 코끼리의 등을 타고 성밖을 산보했을 때, 슈드라(sudra)의 불쌍한 생활을 보고, 성안의 우아한 생활과 비교해서, 거기에 사회의 모순을 느끼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なぜ、こんなに不平等な社會なおだ?
왜,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인가?

 

シッタルダ―は、疑問を持ったの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たとえ城內においても、いつ寢首(ねくび)をかかれるか解らない不安定な世の中、小國の悲哀など、視野が展がるとともに、シッタルダ―の人生に對する苦惱と疑問は、深く大きくなって行ったのです。
비록 성안에 있다고 해도, 언제 자고 있는 사이에 습격당하여 목을 베일지 모르는 불안정한 세상, 소국(小國)의 비애 등, 시야가 넓혀짐과 동시에,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인생에 대한 고뇌와 의문운, 깊고 크게 되어 갔던 것입니다.

 

三歲の頃から、バラモン學者から、ヴェダ―やウパニシャド敎典を學んでいた、宗敎的な問題についての智慧が、かえってその苦惱をより深めたといえましょう。
3세 경부터, 바라문 학자로부터, 베다(Veda, 吠陀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경전(經典))이나 우파니샤드(Upanishad) 교전(敎典)을 배우고 있었다, 종교적인 문제에 관해서의 지혜(智慧)가, 오히려 그 고뇌를 보다 깊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武術もクシャトリヤのなすべき道として習っていたが、やがて無情を感じ、シッタルダ―は、一人考え込む日も多くなって行くのでした。
무술도 크샤트리야(ksatriya)가 달성해야 할 길이라고 해서 익히고 있었지만, 이윽고 무정을 느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홀로 생각에 잠기는 날도 많아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十七歲の年でした。父王や母のすすめによって、義母の兄、スクラ・プタ―・ラジャンの娘、ヤショダラを妻に迎え、父王の後繼者としての希望を託されたのだが、そのことも心の救いとはならず、舞姬などとの遊びに鬱を晴らすような努力もむなしく、シッタルダ―は悶々の日を送り、やがて二十九歲の年を迎えるのでした。
17세의 해였습니다.  부왕이나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서, 의붓어머니의 형, 스쿠라・푸타・라잔(善覚王, 선각왕)의 딸, 야쇼다라(Yashodara, 耶輸陀羅, 耶輸多羅)를 아내로 맞아, 부왕의 후계자로서의 희망을 부탁받았던 것이지만, 그 일도 마음의 도움으로는 되지 않고, 무희 등 과의 놀이로 울적함을 달래보는 것과 같은 노력도 헛되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애타는 나날을 보내며, 이윽고 29세의 해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人生とは何か。母はなぜ死んだのか。
인생이란 뭘까?  어머니는 왜 죽은 것일까?

 

せめて母が生きていたならば、義弟との相續問題で心を痛めないものを·········。
하다못해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의붓어머니(義母)와의 상속문제로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을·········。

 

なぜ、同じ人間同士が信じ合うことなく、殺し合いをするのだろうか。
왜, 같은 인간끼리가 서로 믿지 않고, 서로 죽이는 것일까?

 

心に安らぎのない城內の生活。
마음에 평안의 없는 성안의 생활.

 

同じ人間に、なぜきびしい階級制度,貧富の差別があるのか。
같은 인간으로, 왜 혹독한 계급제도, 빈부의 차별이 있는 걸까?

 

神がいるならば、なぜ不平等な社會を作り出しているのか。
신이 있다면, 왜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老年いた人々の哀れな姿。人間の死に對する恐怖。
나이가 든 사람들의 불쌍한 모습.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

 

このような苦しみを逃かれたいと思うシッタルダ―は、出家の機會つかもうと常り考え續けたのでした。
이러한 괴로움을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출가의 기회를 엿보려고 항상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page135~142

 

★본문에 ( ) 넣은, 고유명사의 호칭은,  국어사전/한자사전/문화원형/한국 일본 영어 중국어 위키백과를 참고했습니다.
★영문 표기는, 산스크리스트어(梵語) 및 팔리어입니다. 영어식 표기도 종종 있습니다.
★고유 명사인 이름의 경우, 사전상에 찾을 수 없는 것은, 그냥 발음대로 적었습니다.
★또한, 붓타(불타, 석가, 붓다, 불, 부처)와 같은 의미인데, 기존의 말과 본문의 말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부득히 하게, 고유명사(이름)과 지명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遂に出家の道へ──道ははるかに
마침내 출가의 길로──길은 멀고


しかし、カピラの城主は、シッタルダ―の出家を恐れる王の命により、固く閉ざされ、外出も思うにまかせぬ警戒ぶりとなり、なかなか出城の機會に惠まれませんでした。
하지만, 카필라(Kapila, 迦毘羅)의 성주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출가를 두려워하는 왕의 명령에 의해, 굳게 닫히여, 외출도 생각할 염두도 못 낼 경계태세에 들어가고, 좀처럼 성(城) 밖으로 나갈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ヤショダラと結婚して十二年、そのほうにも、シッタルダ―をいらいらさせることが起こっていました。子供を身ごもった、というのです。子供などが生まれたら一層出家への道は遠くなってしまう。だからヤショダラが、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와 결혼해서 12년, 그런 방법으로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조바심이 나게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임신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식 등이 태어나면 한 층 출가로의 길은 멀어져 버린다.  그래서 야쇼다라가,

「名前をどうしょう」
「이름을 어떻게 할까요?」

 

と相談しても、シッタルダ―は、
라고 상담해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そんなことは父王と相談したら良い」

「그런 것은 부왕과 상담하면 좋지」


荒々しく答えるのでした。子はかすがい、と考えたヤショダラの夢を、無情に打ちくだいたのです。父王が、
우악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은 부부 사이의 꺾쇠(《자식에 대한 정은 꺾쇠처럼 부부 사이를 이어 준다는 뜻》)다, 라고 생각한 야쇼다라의 꿈을, 무정하게 박살낸 것입니다.  부왕이,

 

「自分の子供の名前くらいお前がつけろ」

「자기 자식의 이름 정도는 너가 지어라」


といえば、シッタルダ―は投げやりに、
 라고 말하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ラフラ―とでもつけたら良いだろ」
「라훌라 라고 지으면 좋겠군」

といいます。ラフラ―とは、障害物という意味なのです。ヤショダラは、そんな不甲裵ない夫に、悲しみをこらえ、出家を食いとめようと、常に、心の中で神に念じるのでした。
라고 말합니다.  라훌라(Raahula, 羅睺羅)란, 장해물이라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야쇼다라(Yashodara)는, 그런 무책임한 남편에게, 슬픔을 억제하며, 출가를 막으려고, 항상, 마음속으로 신에게 염원하는 것이었습니다.

 

冬の館、夏の館にいる側女達も、シッタルダ―のいつも沈んでいる心を明かるくさせようと、あらゆる方法で慰めるのでしたが、シッタルダ―の、永い歲月の間の苦惱と目的は、變わ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겨울의 숙소, 여름의 숙소에 있는 측녀(첩)들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늘 침울해 있는 마음을 밝게 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으로 위로하는 것이었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오랜 세월 동안의 고뇌와 목적은, 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ある、月の出た夜更けのこと、遂にシッタルダ―は、城中の者達が寢靜まったのを見とどけると、チャンダカを脅迫して、西門を開かせ、タンクワ―を乘って出城してしまったのです。そして、かねてから計劃していたとおり、ヴェサリ―郊外にあるアヌプリヤの森を目指して驅を進めたのです。
어느, 달의 뜬 삼경의 일로, 마침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성안의 사람들이 깊이 잠든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찬다카(Chandaka, 車匿)를 협박해서, 서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게 하여, 당쿠와를 타고 성(城) 밖으로 나가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대로, 베살리(Vesali, 毗舍離)) 교외에 있는 아누푸리아 숲을 목표로 하여 말을 몰았던 것입니다.
 
明け方。シッタルダ―は、チャンダカに所持品を持たせて歸城させました。チャンダカは、歸城して、このことを王達に告げましたが、責任を追及され、間に立って困り果てたことでした。
새벽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찬다카(Chandaka)에게 소지품을 들게 하여 귀성시켰습니다.  찬다카(Chandaka)는, 성(城)으로 돌아가서, 이 일을 왕들에게 알립니다만, 책임의 추궁을 받아, 중간에 끼어서 몹시 난감해진 것이었습니다.


※馬丁 車匿(梵語:Chandaka、巴語:Channa、しゃのく、チャンダカ、チャンナ、音写:闡鐸迦、闡怒など、訳:楽欲)は、釈迦の弟子。
마부(馬夫) 차닉(범어 : 찬다카, 팔리어 : 찬나, 사노쿠, 찬다카, 찬나, 음사 : 천탁가, 천노 등, 번역 : 약욕)은, 석가의 제자.

★ 이 사람은, 욕을 잘 했다고 하네요.  출처인 위키페디아의 일본어로 길게 설명이 되어 있네요.  재미난 분이네요.  석가의 입멸 후,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네요.
또한, 원설 반야심경의 본문에는, 말 이름이 당쿠와 인데,  위키페디아에는 백마(白馬)  칸다카(カンタカ)라 되어 있네요..
출처는 →http://ja.wikipedia.org/wiki/%E8%BB%8A%E5%8C%BF


シッタルダ―はしかし、信仰への道の第一步から、大きな疑問に突き当たってしまいました。それは、途中の森で、ヴックバ―というサロモンの門を叩き入門したことから始まったのですが、ヨギ―・ス―トラを根本とした肉體的荒行を見て、まずそう感じたの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하지만, 신앙으로의 길의 첫걸음부터, 큰 의문에 부딪쳐 버렸습니다.  그것은, 도중의 숲에서, 붓쿠바(ヴックバ―) 라고 하는 사로몬(수행자)의 문을 두드려 입문한 것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만, 요기・스트라(Yoga Sutras, 유가경[瑜伽経])를 근본으로 한 육체적 황행((괴로움을 참고 하는 모진 수행)을 보고, 우선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ヨーガ・スートラ(瑜伽経、ゆがきょう、とも)はインド哲学の1派であるヨーガ学派の根本経典。
요가스트라(유가경, Yoga Sutras)는 인도 철학의 1파인 요가학파의 근본 경전. Yoga Sutras of Patanjali


その肌をぶどう色に變色させてまでバラのとげの上に寢て修行している弟子。けものから身を守るために燃している火のそばで肌を燃き、どこまで我慢できるかがんばっている者。土中に身體を埋め、首だけ出してその不自由さに耐えている者。逆立ちをどのくらいの長時間できるかがんばっている者。
그 살갗을 포도색으로 변색시키면서까지 가시나무의 가시 위에 누워서 수행하고 있는 제자.  짐승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 불타고 있는 불 옆에서 살을 태우며,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끝까지 견디며 버티고 있는 사람.  흙 속에 신체를 묻고, 머리만 내밀고 그 부자유함을 견디고 있는 사람.  물구나무서기를 어느 정도로 오랜 시간할 수 있는지 끝까지 견디며 버티고 있는 사람.

 

變わった修行僧の中には、かんかん照っている太陽をみつめて忍耐力をつけている者。
보통과 다른 수행승 중에는, 쨍쨍 내리쬐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인내력을 키우고 있는 사람.

 

シッタルダ―は、何でこんなに苦しんでいるのか、と思ったのです。むしろこれでは、自我の溫床ではないか。自分は、これだけのきびしい修行に耐え得るのだ、という意識が彼らの周圍に渦巻いているだけではないか、と思ったのです。シッタルダ―はい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면, 자아의 온상이 아닌가?  당사자들은, 이만큼의 혹독한 수행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의식이 그들의 주위에 소용돌이치고 있을 뿐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말했습니다.

 

「なぜこんなにきびしく肉體を痛めつけるのか」
「왜 이렇게 혹독하게 육체를 심하게 꾸짖는 것인가요?」

 

ヴックバ―は、それにこう答えました。
붓쿠바는, 그것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天上界に生まれて良い生活をしたいからだ」
「천상계에 태어나서 좋은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もし天上界で良い生活をしたいための修行であるならば、次に生まれたとき、またこうしたきびしい肉體荒行をせねばならぬだろう、原因と結果は、輪廻しているではないか」
「만약 천상계에서 좋은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에 수행한다고 하면, 다음에 태어났을 때, 또한 이러한 혹독한 육체 황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는, 윤회하고 있지 않은가요?」

 

とシッタルダ―は、その無意味さを指摘しました。するとヴックバ―は、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 무의미함을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붓쿠다는,

 

「きびしい肉體行が怖くなったか」
と皮肉にいいました。シッタルダ―は、師とする足る人物ではない、と思い、そのまま、アヌプリヤのその修行場を去るのでした。
「혹독한 육체수행이 두려운가?」
라고 비아냥거리며 말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스승으로 삼기에 족한 인물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아누푸리야의 그 수행장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同じ頃、カピラ・ヴャ―ストでは、シッタルダ―の出奔に大驚ぎをしていました。
같은 시기에,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에서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도망쳐 행방을 감춘 것에 크게 놀라고 있었습니다.

 

スット・ダナ―・ラジャン、クシャトリヤの中から、體力、武術のすぐれたコスタニヤ―、マハ―・ナマン、ヴャティヤ―、アサジ―、ウパカを選び、搜索隊を編成して、チャンダカを道案內として出發させたのです。
슛도・다나・라잔(정반왕), 크샤트리야(ksatriya) 중에서, 체력, 무술의 가장 뛰어난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 마하・나만(Mahaa-naaman ,摩訶摩男), 바티야(Bhaddiya, 婆提梨迦), 아사지(Assaji, 阿説示), 우바카(Vāspa, Vappa, 婆敷)를 선택해서, 수색대를 편성하고, 찬다카(Chandaka)를 길 안내로 삼아 출발시켰던 것입니다.

 

一週間後、やっとシッタルダ―の居所を突きとめ、五人のクシャトリヤは、歸城を願いました。しかしシッタルダ―の決心は變わりません、やむを得ず、五人のクシャトリヤは、チャンダカを歸城させてその由を報告させ、自分達は、シッタルダ―の修行の邪魔をしないよう遠くから見守す、そういう方法をとりました。
일주일 후, 간신히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거처를 알아내어, 다섯 명의 크샤트리야(ksatriya)는, 귀성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결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섯 명의 크샤트리야(ksatriya)는, 찬다카(Chandaka)를 귀성시키고 그 이유를 보고하게 하고, 자신들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수행의 방해를 하지 않도록 멀리서 지켜보는, 그러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シッタルダ―は、同じアヌプリヤの別のところで修行していたアララ・カラマというサロモンに弟子入りをしました。その敎えは、先のヴックバ―とは異なり、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같은 아누푸리야의 다른 장소에서 수행하고 있던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라고 하는 사로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가르침은, 먼저 번의 붓쿠바와는 달리,

 

「生老病死の苦しみから解脫する道は禪定である」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길은 선정(禪定)이다」

 

というのですが、三か月の修行の間に、その言行不一致を見破ってしまい、ここも去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만, 삼 개월의 수행 동안에, 그 언행불일치를 간파(看破)해 버린다, 이곳도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その後、何人かの修行者の門を叩きましたが、いずれもアララ・カラマの思想と五十步百步なので、シッタルダ―の苦惱は、解決の糸口すらつかむこともできません。
그 후, 몇 명인가의 수행자의 문을 두드렸지만, 어느 사람이나 모두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의 사상과 오십보백보인 것으로써,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고뇌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もはや、自身で悟る以外に道はない。シッタルダ―はそう決心すると、アヌプリヤの森を出、ヴェサリ―の町を南下、ガンガ―の大河を渡り、パタリガマの町をとおってマガダ國の首都ラジャ・グリハの郊外に步を進めたのでした。
이제는, 자기 자신이 깨닫는 이외에 길은 없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렇게 결심을 하자, 아누푸리야 숲을 나와, 베살리(Vesali)의 읍내를 남하, 강가강(Ganga,갠지즈강)의 대하를 건너서, 파탈리가마(Paataliputra、華子城)의 읍내를 통해서 마가다국(Magádha, 摩揭陀, Magadha kingdom)의 수도(首都)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의 교외로 걸음을 옮겼던 것이었습니다.

 

この町は、いわば修行場として宗敎家のパラダイスでした。そのため、他國からの修行者が多く集まっていました。戰いに敗れてきた者、バラモン種の修行者、世捨人などそれはさまざまでした。
이 읍내는, 말하자면 수행장으로서 종교가의 낙원(Paradise)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타국에서의 수행자가 많이 모여들어 있었습니다.  전쟁에 패해서 온 사람, 바라문종(婆羅門種)의 수행자, 속세를 떠난 사람 등 그것은 다양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ブンダバ・ダナ(ブンダバ山)の洞穴を據点として修行に入り、バラモン種と同じように、ラジャ・グリハの町へ托鉢に行くこともしばしばでした。
싯타르다는, 분다바・다나(분다산)의 동혈(동굴)을 거점으로 삼아 수행에 들어가서, 바라문종과 마찬가지로,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 읍내으로 탁발하려 가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マガダ國は、ビンビサラ―という王が支配していましたが、非常に信仰心の篤い人で、こうした修行者達に布施することを惜しみませんでした。その影響で、他の百姓達も、家の戶口に立つ修行者には必ず布施する、という習性が身についたものとなっていました。
마가다국(Magadha kingdom)은,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라고 하는 왕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만, 매우 신앙심이 돈돈한 사람이며, 이러한 수행자들에게 보시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영향으로, 다른 백성들도, 집의 출입구에 서는 수행자에게는 반드시 보시한다, 라고 하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ビンビサラ―王はまた、修行者の中から選んで、城內のクシャトリヤとし、面倒をみるといったこともしました。シッタルダ―のところへもきました。
빔비사라왕(Bimbisara, 頻婆娑羅)은 또한, 수행자 중에서 선택해서, 성안의 크샤트라야(ksatriya)로 삼아, 돌보아 준다고 하는 일도 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今いうスカウトのようなものでしたが、ラジャ・グリハに伴われて城へ行ったシッタルダ―に、王はこう質問しました。
지금으로 말하는 스카웃트와 같은 것이었지만,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로 따라와서 성으로 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왕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チコラ(貴方)はどちらの國から修行にこられたのか」
「당신은 어느 쪽 나라에서 수행하여 온 것인가?」

 

シッタルダ―は答えました。 
「私は、コ―サラ國の屬國シャキャ・プトラ―(釋迦族)の王子、ゴ―ダマ・シッタルダ―と申し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코살라국의 속국 샤카・푸트라(Sākyaputra, 석가족)의 왕자, 고마다・싯타르다(Gotama Siddhrtha,瞿曇 悉達多) 라고 합니다」

 

「ほう。しかしなぜそのような尊い身分の方が出家されたのか。本当に惜しいことだ。ぜひ私の城にとどまって欲しい。望むものは、何でも用立てよう」
「저런.  하지만 왜 그러한 존귀한 신분의 사람이 출가한 것인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꼭 나의 성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도움이 되어 드리리라」

 

王はそうやさいくいって、クシャトリヤになることを望むのでした。しかしシッタルダ―は、
왕은 그렇게 상냥하게 말하며, 크샤트리야(ksatriya)가 될 것을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싯타르타는,

 

「ポコラ(私)は、一切の欲望を捨てて出家いたしました。ご親切はありがたいのですが、最高の悟りを得て、佛陀になる、そのために修行しておりますので」
「저는, 일체의 욕망을 버리고 출가했습니다.  친절은 고맙습니다만,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불타(佛陀)가 되는, 그 목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므로」

 

と心中を語り、辭退したのでした。ビンビサラ―王は、その堅い決心に、それ以上、無理押しはしませんでした。その代わりに、
라고 심중을 말하고, 사퇴한 것이었습니다.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 왕은, 그 굳은 결심에, 그 이상, 억지로 밀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ガヤ・ダナというところに、ウルヴェラ・カシャパという聖者がいますよ」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라고 하는 곳에,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라고 하는 성자가 있지요」

 

と敎えてくれました。しかしシッタルダ―は、今まで師を求めてきたが、同じ結果になればそれだけ悟りが遲れてしまうだろう、と思い、紹介して上げようという王に、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지금까지 스승을 찾아 왔지만, 같은 결과가 되면 그만큼 깨달음이 늦어져 버릴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소개해 준다고 하는 왕에게,

 

「緣があればお會いできるでしょう」
「인연이 있으면 만나 뵐 수 있겠지요」

 

と挨拶をして歸りかけました。王はそのとき、シッタルダ―の肩を叩いて、
라고 인사말을 하고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왕은 그 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어깨를 두드리며,

 

「シッタルダ―、貴方が最高の悟りを得たときには、ぜひラジャ・グリハでお會いしましょう」
と再會の約束をしたも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 당신이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는, 꼭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에서 만납시다」
라고 재회의 약속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ヴンダバ・ダナ(ブンダバ山)を去ったシッタルダ―は、ラジャグリハの南西、ウルヴェラの森に行き、そこに生活のしやすい場所を求めて、選定の場としました。
분다바・다나(분다산)을 떠난 싯타르다는,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의 남서쪽, 우루벨라(Uruvela) 숲에 가서, 그곳에 생활하기 쉬운 장소를 구해서, 선정의 장소로 삼았습니다.

 

五人のクシャトリヤも、相變わらず寢起きをともにしていました。
다섯 명의 크샤트리야(ksatriya)도, 서로 변함없이 자고 일어남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每日の修行がくり返されます。しかし、シッタルダ―の悟りはまだ開かれません。苦惱との鬪いと焦りさえ、心の中に生じていました。
매일의 수행이 반복입니다.  하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깨달음은 아직 열리지 않습니다.  고뇌와의 싸움과 초조함마저, 마음속에 생기고 있었습니다.

 

──人はなぜ生まれるのか。生まれてくるには何かの目的があるはずだ。目的と使命とは何か。人はなぜ老化し、病氣をするのか。
──사람은 왜 태어나는 걸까? 태어나는 데에는 뭔가 목적이 있을 것이다.  목적과 사명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왜 노화하고, 병이 드는 걸까?

 

若い潑剌とした身體·······しかしいつの日か見る影もない老體となり······そして、死。
젊고 발랄한 신체·······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볼품없는 노인이 되어······그리고, 사망.

 

くり返す轉生輪廻······しかし果たして人間はどうなるのか──。
반복하는 전생윤회······하지만 과연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

 

どのようにすれば悟れるのか、考えれば考えるほど、解明の糸口はもつれ、シッタルダ―の心の中は混亂するのでした。
어떻게 하면 깨닫는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해명의 실마리는 얽히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은 혼란되는 것이었습니다.

 

──生老病死、これこそが一切の苦しみを作り出している。生まれてこなければ、苦しみの原因を作らないものを······。
──생로병사, 이것이야말로 일체의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태어나지 않으면,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을 것을······。

 

苦しみの原因を作らなければ良よのだ。だが、現實に、肉體を持って生きている以上、人生の苦しみ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ない。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으면 좋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는 이상, 인생의 괴로움에서 달아날 수는 없다.

 

人は、生まれた當時は、苦しみを持っていただろうか。持っていなかった。
사람은, 태어날 당시는,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갖고 있지 않았다.

 

母の死······悲しいことだが、何も憶えてはいない。
어머니의 죽음······슬픈 일이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六歲のとき、女官から義母のことを聞き、氣持が動轉してしまった。パジャパティ―が實母でないことを知ってからは、義母に對する甘えを忘れて、見たこともない母を追い求め、自分で苦しみを作っていた。
6세 때, 여관(女官)으로부터 의붓어머니의 일을 듣고, 기분이 변하여 달라져 버렸다.  파자파티(Pajapati)가 친어머니가 아닌 것을 알고부터는, 의붓어머니에 대한 응석도 잊고, 본 적도 없는 어머니를 추구(追求)하며,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고 있었다.

 

※여관[女官] =나인(內人:궁녀] 《한자사전》
궁중(宮中)에서, 임금, 왕비(王妃), 왕세자(王世子)를 가까이 모시어 시중들던 여자(女子)

 

カピラ・ヴャ―ストの地下室で、一人で本当の母に會いたいと泣いたことを思い出す。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지하실에서, 홀로 정말로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던 일을 상기한다.

 

やはり苦しみは、生まれたという原因によって作り出したのだろうか。
결국 괴로움은, 태어났다고 하는 원인에 의해 만들어 낸 것일까?

 

義母だと知ったときから、本当の母に會いたいという欲望を自ら作り出した。そして悲しみの日々を送った事實······これは、母を緣として自分で苦しみを作り出したのだ──。
의붓어머니이다 라고 알았던 때부터, 정말로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 욕망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슬픔의 나날을 보냈던 사실······이것은, 어머니를 인연으로 해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낸 것이다──。

 

シッタルダ―は、過去の人生をふり返って、苦しみの原因を追及してみましたが、解決の道はつかめません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과거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괴로움의 원인을 추급해 보았지만, 해결의 길은 잡을 수 없었습니다.

 

三年がすぎ、四年がすぎ──きびしい肉體修行をとおして、人生の謎を解こうとする、シッタルダ―の日夜の努力が續けられたのです。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며 ──혹독한 육체수행을 통해서,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밤낮(日夜)의 노력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人生には、何かの基準があるはずだ。
──인생에는, 무엇인가 기준이 있을 것이다.

 

その基準は、一体どこにあるのだろうか──。
그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太陽が、いつもピパラ―の木の方向から出るようになって六回目、丸腰のまま、どこでも安心して寢られる、それ以外はカピラ・ヴャ―ストの生活とは雲泥の差のきびしい
生活でした。シッタルダ―に從っているコスタニヤ―達も、昔の面影はすっかりなくなり、サロモン(修行者)になり切ってしまっています。
태양이, 항상 피팔라(Pippala, 菩提樹) 나무 방향에서 떠오르게 되어 6일째, 비무장의 상태로, 어디서든지 안심하고 잘 수 있는, 그 이외에는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생활이란 천양지차(雲泥之差)의 혹독한 생활이었다.  싯타르타를 따르고 있는 코스타니야들도, 그리운 옛모습은 완전히 없어지고, 사로몬(수행자)가 되어 완전히 변모해 버리고 말았다.

 

※ピパラ―の木  《일본어위키백과사전》 석가(釋迦) 편
피팔라 나무(Pippala) 훗날 보리수(菩提樹)라고 불리게 됨.

 

ガヤ・ダナ周邊のサロモン達は、ほとんどがヨギ―を主體とした修行方法で、ヴックバ―仙人の修行と變わっていません。服裝も、鹿の皮を腰に券いている者から、僧衣にタ―バン[turban]をつけている者などまちまちで、全く身なりには關心がありません。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 주변의 사로몬들은, 대부분이 요기(요가)를 주체로 한 육체 수행법이며, 붓쿠바 선인의 수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장도, 사슴 가죽을 허리에 감고 있는 사람부터, 승의에 터번(turban)을 쓰고 있는 사람 등 제각기 다른 복장이며, 전혀 옷차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シッタルダ―は、そうした環境の中で、自然に調和しようとして、瞑想にふけりましたが、雜念は心の中から湧くことをやめず、無念無想の境地に到達することは非常にむずかしく、焦れば、かえってこだわりの心が生まれてくるという狀態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히 조화하고자 해서, 명상에 감겼지만, 잡념은 마음속에서 솟아나오는 일은 멈추지 않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고, 초조하게 굴면, 오히려 구애됨의 마음이 생겨나온다고 하는 상태였습니다.

 

──苦しみは、肉體から出るものだろうか。
──괴로움은, 육체에서 나오는 것일까?

 

眼からか、耳か、舌か、鼻からか、その原因はどこにあるのだろうか······そして、轉生輪廻は今の肉體がくり返しているのだろうか。
눈에서인지, 귀인지, 혀인지, 코에서인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그리고, 전생윤회는 지금의 육체가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いや違う。肉體以外の何者かが存在する。そうだ、この肉體も眠ってしまえば何の苦しみも悲しみもない。問題は、眼覺めているとき、いかに苦しみを解脫するか──。
아니야 그것은 틀리다.  육체 이외의 누군가가 존재한다.  이 육체도 잠들어 버리면 어떤 괴로움도 슬픔도 없다.  문제는, 눈을 뜨고 있을 때, 어떻게 괴로움을 해탈하는가 ──。

 

肉體は、意識によって支配されている。意識が苦しみをとらえて現象化するのだ──。
육체는, 의식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의식이 괴로움을 붙들고 현상화하는 것이다 ──。

 

人生の大きな謎が解け始めてきます。
인생의 큰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해 옵니다.

 

──肉體は父母から戴いた。だが意識に包まれている心は違うのではないだろうか。心から出る考え方の違いは、兩親から与えられたものではない。親の意志に反して出家してしまった自分の姿を見ても、親との相違ははっきりしている。そうだ、肉體は、この現象界の乘り舟なのだ。
── 육체는 부모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의식에 싸여 있는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닐까?  마음에서 나오는 사고방식의 차이는, 양친에게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부모의 의지(뜻)에 반해서 출가해 버린 내 자신의 모습을 보더라도, 부모와의 서로 다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여 뚜렷하고 있다.  그렇다, 육체는, 이 현상계의 타는 배인 것이다.

 

舟はいつの日か朽ちてしまうもの。しかし、船頭さんは舟を下りてしまえば舟が朽ち果てても關係はない。いつの日かまた、新しい肉體舟を得て川を渡ることができるのだ。
배는 어느 사이엔가 썩어 버리는 것.  하지만, 선장은 배를 내려 버리면 배가 완전히 썩어 버려도 관계는 없다.  어느 사이엔가 또한, 새로운 육체 배를 얻어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이다.

 

この船頭こそ、意識であり、その船頭が操る舟が肉體なのだ。意識が肉體を支配し、やがてこれから離れ、また支配をして轉生輪廻を續けている。
이 선장이야말로, 의식이며, 그 선장이 조종하는 배가 육체인 것이다.  의식이 육체를 지배하고, 이윽고 이것에서 떠나, 또한 지배를 하고 전생윤회를 계속하고 있다.

 

つまりこの五體は、意識の表現體にすぎないのだ。五官の、眼をとおして見た現象、耳をとおして聞く聽覺、鼻で感じる嗅覺、舌で味わう味覺、肌で感じる觸覺──。
즉 이 몸뚱이는, 의식의 표현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관의, 눈을 통해서 본 현상, 귀를 통해서 듣는 청각, 코로 느끼는 후각, 혀로 맛보는 미각, 피부로 느끼는 촉각──。

 

シッタルダ―は、そうした五官の經驗をとらえる意識、心がすべてを支配していることに氣がつき、苦しみを作り出していることを遂に發見したのです。そして、その苦しみを克服するのは、心の在り方にある、という偉大な普遍的生命であるおのれを發見したの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러한 오관의 경험을 붙잡는 의식, 마음이 전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에 생각이 미치고,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마침내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은, 마음의 본연의 모습에 있다, 라고 하는 위대한 보편적 생명인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では、その心を、どのような基準で正したら良いのかと、あらゆる角度から考えているうちに、シッタルダ―は眠りに落ちてしまいました。
그럼, 그 마음을, 어떠한 기준으로 바로잡으면 좋은 것인가 라고, 온갖 각도에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暗い靜かな森に、焚火の火が明かるい。夜頃けの空には、星がきらめいています。シッタルダ―は、ピパラ―の木木を背にして、その火に顔を浮かび上がらせ、深い眠りに入っています。コスタニヤ―達五人も、それぞれの姿で、主人の思考には無關心なまま寢入っています。
어두운 고요한 숲에, 모닥불의 불이 환하다.  요즈음의 며칠 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피팔라(Pippala, 菩提樹) 나무들을 등지고, 그 불에 얼굴을 드러나며,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코스타니야들 다섯 명도, 저마다의 모습으로, 주인의 사고(思考)에는 무관심한 상태로 잠들어 있습니다.

 

ときおり、ハイエナの遠吠えが聞こえます。他の山々にも、同じような火々が、明滅して深夜をいろどっています。
가끔, 멀리서 하이에나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른 산들에도, 똑같은 불들이, 명멸하며 심야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シッタルダ―の身體は、永い修行と心勞のため、すっかり瘠せおとろえて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신체는, 오랜 수행과 심로(心勞)로 인해, 완전히 여위고 힘·기세 등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심로[心勞] 《한자/국어/일본어사전》
①애를 써서 마음이 수고롭게 됨. 마음을 병들게 하는 걱정
①마음을 수고스럽게 씀. 또는 그런 수고
①이것저것 걱정을 해서 고민하는 것.
예문) 심로한 나머지 병이 났다.

 

しかし、近頃では、瞑想にふけっているとき、眼の前が金色の光りに包まれることがあったり、胸のあたりからこみ上げてくるようなことも經驗しました。これが悟りなのだろうか、と思うが、焦ると、また苦しみに襲われるのでした。
하지만, 요즈음에는, 명상에 잠겨 있을 때, 눈 앞이 황금색의 빛에 싸이는 일이 있거나, 가슴 부근에서 복받쳐 오르는 듯한 일도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인 것일까, 라고 생각하지만, 초조해지자, 또 괴로움에 습격당하는 것이었습니다.

 

幻影に似たものが心の中にはっきり見えたり、ヤクシャ―)、キンナラ、マゴラが眼の前に立っていることもあります。よく見よう、と思っている瞬間に、その姿も消えてしまうような現象もたびたび體驗しました。
환영과 같은 것이 마음속에 뚜렷이 보이거나, 야크샤(Yaksa, 夜叉 ), 김나라(Kimnara, 緊那羅), 마고라(Mahoraga, 緊那羅, 摩睺羅伽)가 눈앞에 서 있는 일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 그 모습도 꺼져 버리는 듯한 현상도 종종 체험했습니다.

 

※야크샤(夜叉 야차: Yaksa)

고대 인도의 악귀신의 종류를 가리키지만, 불법에 귀의해서 호법선신이 되었다고 하는 공중을 날아다님.

 

※긴나라(緊那羅 김나라 Kimnara)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해하며 춤추는 신으로,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 또는 말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이 일정하지 않음.

※마고라(緊那羅=摩睺羅伽 마호라가 Mahoraga)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뱀이라고 하며 용의 무리에 속하는 악신으로 묘신(廟神)이라고 함.

 

──この幻影は實在のものであるか。バラモンのサロモン達が良く話していたことを聞いたことがあるが、果たしてこの現象は何なのか──。
──이 환영은 실재인 것일까?  바라문의 사로몬(수행자)들이 자주 이야기한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과연 이 현상은 무엇일까 ──。

 

シッタルダ―には解りません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東の空が白み、シッタルダ―は河邊に出ました。ガヤ・ダナとネランジャラ河の上流から下流にかけて霧がかかり、何か天國を散步しているような氣持でした。
동녘 하늘이 밝아오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강변에 나왔습니다.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와 네란쟈라 강(Nairanjana, 尼連禪河)의 상류에서 하류에 걸쳐 안개가 깔려, 왠지 천국을 산보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朝露を含んだ牧草が、シッタルダ―の足を濡らし、大地の感觸が、何ともいえない柔らかみを傳えてきます。
아침 이슬을 머금은 목초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발을 적시고, 대지의 감촉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을 전해 옵니다.

 

──そのとき、はるか河岸の彼方から、
──그 때, 멀리 떨어져 있는 강기슭 저편에서,

 

弦の音は 强すぎれば絲は切れ
弦の音は 弱すぎては音色が惡い
弦の音は 中程に締めて音色が良い
弦の合わせて 踊れよ踊れ
みんな揃って 踊れよ踊れ
현의 소리는 너무 강하면 줄은 끊어져
현의 소리는 너무 약하면 음색이 나빠
현의 소리는 중간 정도로 조여야 음색이 좋아
현의 맞춰서 춤을 추어라 춤을 추어라
모두 모여서 춤을 추어라 춤을 추어라 

 

という美しい、天女のような聲音が、朝霧をとおしてシッタルダ―の心を打ち、ひびいてくろのでした。シッタルダ―は、立ちとまって聲のするほうに耳を傾け、歌の意味をかみしめるのでした。
라고 하는 아름다운, 천녀와 같은 목소리가, 아침 이슬을 통해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감동을 느끼고, 울려 퍼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귀를 기울여, 노래의 의미를 음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천녀[天女]
①직녀성(織女星) ②비천(飛天) ③여신 ④아름답고 상냥한 여자(女子)의 비유(比喩)


──なるほど、弦は强く締めても、弱く締めても確かに音色が惡くなる。絲が切れてしまうこともある。中ほどに締める──。
──정말로, 현은 강하게 조여도, 약하게 조여도 확실히 음색이 나빠진다.  실이 끊어져 버리는 일도 있다.  중간 정도로 조인다──。

 

シッタルダ―に、その歌の眞の意味が、稻妻のように閃き、心の中にひびいてき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그 노래의 진정한 의미가, 번개의 섬광처럼 번뜩이며, 마음속에 울려 퍼져 왔습니다.

 

──カピラ・ヴャ―ストで歌姬や踊り子達から習った弦の音も、確かにそうだ。心に正しい基準を、中ほどにして、片よりのない道が大事なのだ──。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에서 가희나 무용수들에게서 배운 현의 소리도, 확실히 그렇다.  마음에 올바른 기준을, 중간 정도로 해서, 치우침이 없는 길이 중요한 것이다──。

 

遂に深し求めていた心の在り方が、シッタルダ―に、このとき、はっきりと發見されたのでした。
마침내 탐구하고 있던 마음의 본연의 모습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그 때, 확실히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その民謠を歌っている主のほうへ近よって行きました。霧の中に、少女の姿が薄ぼんやりと浮かんで見えてき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 민요를 노래하고 있는 주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안개 속에, 소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서 보여 옵니다.

 

少女は牛乳を絞りながら歌っていましたが、シッタルダ―には氣がつきません。
소녀는 우유를 짜면서 노래하고 있었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良い歌を聞かせて下さってありがどう」
「좋은 노래를 들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シッタルダ―がうしろから聲をかけますと、少女は驚いてふり向きました。そして、シッタルダ―の姿を見ると、呆然となり、急に膝まずいて、上半身を草の上に兩手を前方に伸ばす最高の挨拶をしました。シッタルダ―は、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뒤쪽에서 말을 걸자, 소녀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모습을 보자, 망연하게 되어, 급히 무릎을 꿇고, 상반신을 풀 위에 양손을 전방으로 뻗는 최고의 인사를 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チコラの歌に心打たれました。求めたいたものを得たような嬉しい氣持です。どうぞ、お顔を上げて下さい。ポコラはコ―サラ國のカピラ・ヴャ―ストからきた、ゴ―ダマ・シッタルダ―と申すサロモンです。決して怖い者ではありません」
と自己紹介をしました。少女は、
「그대의 노래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찾고 싶은 것을 얻은 듯한 즐거운 기분입니다.  부디, 고개를 들어 주십시오.  저는 코살라국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에서 온, 고다마・싯타르다(Gotama Siddhrtha, 瞿曇 悉達多)라고 하는 사로몬(수행자)입니다.  결코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소녀는,

 

「サロモンはバフラマン(梵天)のように光明に滿たされています。神々しいお方樣です。私はこの近くのウルヴェラに住む、チュダリヤ・チュダ―タと申します」
といい、始めて頭を上げて、シッタルダ―の顔をまじまじ見るのでした。そして、
「사로몬은 브라흐만(범천)과 같은 광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룩한 모습입니다.  저는 이 근처의 우루벨라(Uruvela)에 사는, 츄다리야・츄다타 라고 합니다」
라고 말하며, 비로소 고개를 들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얼굴을 말끄러미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私の父は、マガダ國のビンビサラ―王に仕えております。どうぞ私の家にもお出かけ下さい。食べ物をお布施しますから」
とやさしく續けました。シッタルダ―の、瘠せた姿を見て、悲しくなったのでしょう。その手の鉢を手にとると、絞りたての牛乳を入れ、こうもいったのでした。
「저의 아버지는, 마가다(Magádha, 摩揭陀) 국(國)의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 왕을 섬기고 있습니다.  부디 저의 집에도 와 주십시오.  음식을 보시할테니까요」
라고 상냥하게 계속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야윈 모습을 보고, 애처롭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손의 탁발을 손에 쥐고, 막 짠 우유를 넣고, 이렇게도 말한 것이었습니다.

 

「どうぞ、ゴ―ダマ樣、この牛乳を供養いたします。お飮み下さい」
「부디, 고다마(Gotama,瞿曇)님. 이 우유를 공양하고 싶습니다.  마시십시오」

 

 page142~158


 



 

※츄다리야・츄다타(チュダリヤ・チュダ―タ)에 대한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スジャータ(サンスクリット語及びパーリ語:Sujāhtā, 正確にはスジャーター)は、釈迦が悟る直前に乳がゆを供養し命を救ったという娘である
일본어 위키백과 사전에, 위의 이름이 아닌, 전혀 다른 인도식 이름인,
스쟈타(산스크릿트어 및 팔리어 : Sujāhtā, 정확하게는 스쟈타아)는, 석가가 깨닫기 직전에 우유를 공양해서 목숨을 구했다 라고 하는 아가씨이다.


또한, 긴 내용이 글이 일본어 위키백과사전 상에는, 본문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각종 문헌상에도, 이름과 누구의 딸인지에 대한, 말이 분분한 내용이었습니다.

 

★본문의 저자인,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이 언급한, 이름과는 아주 다릅니다. 참고하세요. 

 



※라훌라[Rahula][羅喉羅]  《문화원형백과사전》
 부처님의 십대제자로서 남이 보든 말든 묵묵히 실천 수행하는 밀행(密行第一)로 불린다.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출생이 부처님 당신의 출가에 장애가 되었다는 의미로 부처님이 장애 라훌라라 이름지었다. 숫도다나왕을 이을 카필라성의 왕위 계승자 되었으나 부처님이 성도한 뒤 진리라는 보배를 그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었다. 사리풋타(舍利佛)를 시켜 그를 출가시키도록 했다. 이때 그는 어린 최초의 사미가 되었다. 그는 어리기 때문에 계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을 많이 쳤다. 부처님은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발을 씻은 물을 마시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훈계하였다. “한 번 더럽혀진 물은 사람이 먹을 수 없다. 사람도 올바른 지혜와 자신을 닦지 않으면 이 물처럼 버릴 수밖에 없다.” 이후부터 그는 계율을 엄정히 지켰다. 20세에 비구계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철저히 수행하였다. 
 

 

惡性車匿
난폭한 사람은 침묵으로 대하라


아난다는 부처님의 얼굴빛이 오늘처럼 빛나고 화평스러운 것을 일찌기 보지 못했다. 금빛처럼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는 꿇어앉아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을 모신지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오늘처럼 얼굴빛이 빛나고 화평하신 것을 일찌기 보지 못했습니다. 그 뜻을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아난다, 그것은 두 가지 인연으로 그러하다. 두 가지 인연이란 내가 바른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열반에 들 때이다. 내가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려고 해서 안색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아난다는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찌 그렇게 빨리 열반에 드시렵니까? 세상에 빛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춘다(純陀)에게 가서 걱정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하여라. 여래에게 공양한 인연으로 좋은 과보을 받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어라.
너도 잘 알아 두어라. 반드시 여래를 공경하고 교법을 배우고 섬겨야한다."

이 말씀을 듣고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찬다카(車匿) 비구는 성미가 급하고 괴팍하며 욕지거리를 잘하고 말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후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열반하고 난 후에는 찬다카를 위해 대중들이 침묵을 지키고 그를 상대해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은 부끄러움을 느껴 저절로 뉘우치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자리를 깔게 하셨다.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무릎을 굽혀 다리를 포개고 누워 성인의 바른 지혜를 생각하셨다.


- 長阿含 般泥洹經 - 아함경 반니원경
http://cafe.daum.net/hwaeomsa/FFfN/3667?docid=13E36|FFfN|3667|20080903061451&q=%F3%B3%D2%FB

 

 

※빈파사라[頻婆娑羅]  ← ‘빔비사라’의 음역어.《국어/한자사전》
고대(古代) 인도(印度)의 마가다국의 왕. 아사세왕의 부친(父親). 석가(釋迦)의 출가(出家)를 간지(諫止)하였으나 성도(成道) 후(後)에는 자기(自己)도 이에 귀의(歸依)하여, 죽림 정사(竹林精舍)를 세웠음. 뒤에 아들 아사세왕에 의(依)하여 투옥되어 죽었다 함.

 

 


 

肉體行を捨てる──新しい在り方への眼覺め
육체수행을 버리다──새로운 본연의 모습으로의 눈을 뜸


シッタルダ―は、おのれのおとろえた肉體の現實に、遂に決心して肉體行を捨てるのでした。きびしい修行を續けて、肉體が不自由になってしまったら、悟らないうちに死んでしまう、肉體が健全であってこそ、人生があるのだということに氣がついた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자기 자신의 쇠약해진 육체의 현실에, 마침내 결심해서 육체수행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혹독한 수행을 계속해서, 육체가 부자유하게 되어 버린다면,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 죽어 버리고 만다, 육체가 건전해야만 비로소, 인생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쳤던 것입니다.

 

肉體行の苦しみをとおしては悟れない、かえって煩惱が生じ、一層の苦しみの原因を作っている、,ということにです。
육채수행의 괴로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없다, 도리어 번뇌가 생기고, 한 층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고 있다, 라고 하는 일입니다.

 

よし、身體を作ろう、小量のごまや麻の實では體力が消滅してしまう。今までの片よった考え方を修正することだ。とシッタルダ―は思いました。チュダ―タの顔をみつめると、何のためらいもなく。
좋아, 신체를 만들자, 참깨(胡麻)나 삼(麻)의 열매로는 체력이 소멸해 버린다.  여태까지의 치우친 사고방식을 수정하는 것이다.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생각했습니다.  츄다타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

 

「遠慮なく戴きましょう」
「사양 마시고 받으세요」

 

と、牛乳を、その香りとともに飮んだのでした。食欲を制することによって、實はかえって心の執着を作っていた。それにとらわれない心を初めて持ったのです。
라고, 우유를, 그 향기와 함께 마신 것이었습니다.  음식을 억제하는 것에 의해서, 실은 오히려 마음의 집착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비로소 가졌던 것입니다.

 

心の通った供養の牛乳は、身體の隅隅にまでしみ渡り、シッタルダ―の心の中まで洗い淸めてしまった、といえます。
마음의 통한 공양의 우유는, 신체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까지 깨끗하게 씻겨져 버렸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チュダ―タと別れたシッタルダ―は、川に入り、身體の埃とともに、心の埃も洗い淸めると、岸邊に上がりました。そのとき、森から出て川岸にきていたコスタニヤ―、マハ―ナマン、ヴャティヤ―達は、牛乳の件をずっと見ていましたが、シッタルダ―のそばに近よってくると、コスタニヤ―が代表してこういいました。
츄다타와 헤어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강으로 들어가, 신체의 티끌(더러움)과 함께, 마음의 더러움도 깨끗이 씻어내고, 물가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숲에서 나와 강변(河岸)에 와 있던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 마하・나만(Mahaa-naaman ,摩訶摩男), 바티야(Bhaddiya, 婆提梨迦)들은, 우유의 사건을 쭉 보고 있었는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곁으로 다가오자,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가 대표로 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チコラ(貴方)は、修行者の掟を破り、墮落してしまった。牛乳のような不淨なものを飮むとはけがらわしい。苦しみに負けた修行者だ。チコラはすでに王子でもなく、サロモンでもなく、ポコラ(私)の師でもない。ポコラははカピラ・ヴャ―ストには歸らないだろう。チコラと別れて他で修行する。前から、修行のやり方に疑問があったし、別に生活しよと皆で相談していたが、今朝の姿を見てポコラはは呆れかえってしまった。それがチコラの本性だ」
「당신은, 수행자의 규정을 깨고, 타락해 버렸다.  우유와 같은 부정한 것을 마신다는 것은 불결하다.  괴로움에 패한 수행자다.  당신은 이미 왕자도 아니며, 사로몬도 아니며, 나의 스승도 아니다.  나는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과 헤어져서 따로 수행한다.  전부터, 수행을 하는 방식에 의문이 있었고, 별도로 생활하자고 모두와 상담하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의 모습을 보고 당신에게는 기가 막혀 버렸다.  그것이 당신의 본성이다」

 

シッタルダ―が何をいう暇もなく、五人の修行者はネランジャラ河の下流に向かってしまいました。シッタルダ―は、なすすべもなくそれらの姿を呆然と見送るだけ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무엇을 말할 겨를도 없이, 다섯 명의 수행자는 네란쟈라 강(Nairanjana, 尼連禪河)의 하류로 향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들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カピラ・ヴャ―ストを出てから六年間、シッタルダ―を蔭になり日向になり見守ってくれたクシャトリヤ(武士)達──それは、あまりに後味の惡い別れ方でしたが、去る者を引きとめるわけにもいかないことでした。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를 떠나서 6년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음으로 양으로 지켜주었던 크샤트리야(무사)들──그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별의 방식이었지만,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ひとりぼっちになったシッタルダ―はウルヴェラ・ヤナニ―の森に入り、ピパラ―木木を背に、禪定の場所を定めました。
외토리가 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우루벨라・야나니 숲으로 들어가, 피팔라(Pippala, 菩提樹) 나무들을 등지고, 선정의 장소를 정했습니다.

 

木木を背負うのは、後方からくるけものを防ぐことが目的です。前方は焚火を燃しておけば心配ない。けものは火には近よらないものです。坐す前方は、ガヤ・ダナ(ガヤ山) 、そしてネランジャラに通じる。そこは山水の調和のとれた美しい場所でした。
나무들을 등진 것은, 후방에서 오는 것을 막는 일이 목적입니다.  전방은 모닥불을 피우고 있으면 걱정이 없다.  짐승은 불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입니다.  앉아 있는 전방은,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 그리고 네란쟈라(Nairanjana, 尼連禪河))로 통한다.  그곳은 산수의 조화가 된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鹿革の袋に水を入れ、薪木や、マンゴや、木の實を集め、悟るまでこの場を立つまいと强く心に決めたのでした。コスタニヤ―達も去り、一人になって知る人生無常──。
사슴 가죽에 물을 넣고, 땔나무랑, 망고랑, 나무 열매를 채집하고, 깨달을 때까지 장소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강하게 마음에 정한 것이었습니다.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들도 떠나고, 홀로 되어 아는 인생무상──。

 

──生まれるときも、この世を去るときも、人間はひとりぼっち。集まる者達もやがて離散する。美しい自然も同じだ。
── 태어날 때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인간은 단 혼자.  모여드는 사람들도 이윽고 이산한다.  아름다운 자연도 마찬가지다.

 

春になれば、一木一草みな芽生え、花を咲かせ、夏、綠はもえたって山野を包む。そして秋、種子は大地にひそみ、收穫のときとなり、冬、古木らしが吹きすさむと山野の綠は枯れて灰色となる。自然も、このように四季をとおして古いものから新しいものへ、常に輪廻をくり返しているのだ。
봄이 되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두 싹트고, 꽃은 피어나고, 여름, 초목은 싹트기 시작해서 산야를 감싼다.  그리고 가을 씨앗(種子)은 대지로 숨고, 수확의 때가 되어, 겨울, 고목을 바람이 휘몰아치면 산야의 초록은 시들어 잿빛이 된다.  자연도, 이와 같이 춘하추동(四季)을 통해서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항상 윤회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人間の姿も、これと同じように、美しいものもいつの日か、見る影もなくなり無殘に散ってゆく。現われているこの世における現象は、いかに望んでも、ひとときとしてその位置を保存することができないものだ──。
인간의 모습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도 어느 사이엔가, 볼품없이 되어 무참하게 흩어져 간다.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이 세상에 있어서의 현상은, 아무리 원해도, 잠시도 그 위치를 보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すでに、死を決して、大悟への結論を見極めなくてはならないと思い定めていた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미, 죽음을 결심하고, 완전히 깨달음으로의 결론을 끝까지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太陽は、惜しみなく暖かい光りをウルヴェラの森に降りそそいでいる。すべての萬物萬生に、慈愛の光りを平等に与えている。この慈愛の熱。光りが萬生萬物を生存させているのだ。雨は、植物を育て實らせ、大地を洗う。風は花粉や種子を運び、空を淸めている。狂いのない、大自然の攝理である──。
태양은, 아낌없이 따스한 빛을 우루벨라(Uruvela) 숲에 내리쬐고 있다.  모든 만생만물에게, 자애의 빛을 평등하게 주고 있다.  이 자애의 열.  빛이 만생만물을 생존케 하고 있는 것이다.  비는, 식물을 키우고 열매를 맺게 하며, 대지를 씻는다.  바람은 화분이나 씨앗을 나르고, 하늘을 맑게 하고 있다.  오차가 없는, 대자연의 섭리이다 ──。

 

シッタルダ―は、生きている大自然に感謝することが大切だ、と氣がつき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살아 있는 대자연에 감사하는 일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이 미칩니다.

 

──しかし、この大慈愛に感謝するだけで良いのだろうか。植物も、ある者は自らの生命を動物達に供養している。萬物が相互關係を維持して、大自然が存在しているのだ──。

── 하지만, 이 대 자애에 감사하는 것만으로 좋은 것일까?  식물도, 어떤 것은 자신의 생명을 동물들에게 공양하고 있다.  만물이 상호관계를 유지하며, 대자연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報恩という行爲があってこそ、感謝の意味が價値づけられるのだ、ということが解ってきた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가 있어야만 비로소, 감사의 의미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報いてやることだ。報恩をすること、布施をすること、ということを──。
──보답해야 하는 것이다.  보은을 하는 것, 보시를 하는 것, 이라고 하는 것을 ──。

 

大自然の中に生きている自分の行爲を、人類社會に奉仕すること、その行動力こそ人間一人一人にとって最も必要なことである、と悟ったのでした。
대자연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의 행위를, 인류사회에 봉사하는 것, 그 행동하는 힘이야 말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깨달았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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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悟への道に入る──正しい基準への問い
완전한 깨달음으로의 길에 들어서다 ── 올바른 기준으로의 물음


ウルヴェラ・ヤナニ―の森に日が落ちます。賑やがだった小鳥や動物達も、それぞれのねぐらに歸り、夜の靜寂が訪れてきます。
우루베라・야나니 숲에 해가 졌습니다.  떠들썩하던 작은 새나 동물들도, 각자의 둥지로 돌아가고, 밤의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しかし、シッタルダ―には、定まったねぐらも、歸る家も今はありません。
하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는, 정해진 둥지도, 돌아갈 집도 지금은 없습니다.

 

ただ一切の煩わしい問題もなく、大自然の中にとけ込もうと、五尺三寸の身體をとおして反省への禪定に入って行くのでした。
오직 일체의 성가신 문제도 없고, 대자연 속에 녹아 들자, 5척 3촌의 신체를 통해서 반성으로의 선정에 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 1척(尺)은,  30.3센치미터, 그럼 5척은 151.50센치미터이다.
그럼, 1촌(寸)은 한 자(尺)의 10분의 1이므로, 3촌은, 약 10센치미터이므로, 석가모니의 키는, 약 162센치미터네요.

 

すべての苦しみは、永久不變の意識に包まれている心、そこに發生する。そしてそれこそが自分自身の本姓なのだ──。だからこの心に正しい基準を作って、思うことと行動することが大切なのだ──。だが、正しい基準というのは、どういうことだろうか。客觀的な、五官でとらえた諸現象だけが絶對である、そう思うところに誤りが生じ、心の曇りを作り出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そうしたことも悟るのでした。
모든 괴로움은, 영구불변의 의식에 싸여 있는 마음, 거기에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본성인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음에 올바른 기준을 만들고,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 것일까?  객관적인, 오관에 사로잡힌 여러 현상만이 절대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 잘못이 생기고, 마음의 흐림(거리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그러한 것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では、どうすれば良いのか。心の在り方と生活の在り方を正さ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ことだろう──。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음의 본연의 모습과 생활의 본연의 모습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日々の生活や環境をとおして、その中から悟道を探し求め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매일의 생활이나 환경을 통해서, 그 안에서 진리를 깨달음을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自然の溫氣が暑くても寒くても、身體の活動に影響して、不調和になりがらだ。人間の身體のためには、やはり適溫が良い。暑ければ百熱地獄、冷え切っても冷寒地獄である。
── 자연의 온기가 더워도 차가워도, 신체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며, 부조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를 위해서는, 역시 적당한 온도가 좋다.  더우면 백열지옥(百熱地獄), 완전히 차가워져도 냉한지옥(冷寒地獄)이다.

 

食事もまた同じことだ。食べすぎれば腹をつわしてしまうし、足りなくても活力にならない。着物も身體に合ってこそ、活動しやすい。カピラ・ヴャ―ストの生活のとき、鎧を着ることがあったが、このときも、各人の寸法を合わせるため商人は大變苦勞していた。つまり、大切なことは〃中程〃ということである─。
식사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 버리고, 부족하게 되어도 활력이 없어진다.  옷도 신체에 맞아야 비로소, 활동하기 쉽다.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생활 당시, 갑옷을 입은 적이 있었지만, 이 당시도, 각자의 치수를 맞추기 위해 상인은 대단히 수고하고 있었다.  즉, 중요한 것은 〃중간 정도〃라고 하는 것이다 ─。

 

ああ、そうか、とシッタルダ―は思いました。
아아, 그렇구나,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생각했습니다.

 

──城內での優雅な生活と墮落、他人まかせの生き方──。カピラ・ヴャ―ストを出てから今日までの生活も、肉體的煩惱を消滅しようとしてかえって人生の苦から解脫することを妨げた。正しい片よりのない生活、その中道を逸した、心の作用と生活が苦しみを作り出してしまうのだ。しかし、なぜ苦しみによって心の安らぎを失ってしまうのだろうか。
── 성안에서의 우아한 생활과 타락, 타인에게 내맡긴 생활 태도──。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를 나오고 나서 지금까지의 생활도, 육체적 번뇌를 소멸하려고 해도 오히려 인생의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것을 방해한다.  올바른 치우침이 없는 생활, 그 중도(中道)를 벗어난, 마음의 작용과 생활이 괴로움을 만들어 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왜 괴로움에 의해서 마음의 평안을 잃어 버리는 것일까?

 

生まれきたときには、何の苦しみも悲しみも全く記憶にはなかった。その當時のことは、義母や女官達から聞いたこと以外、解ってはいないのである。これは、皆、同じことだ。
태어났을 때에는, 어떤 괴로움도 슬픔도 전혀 기억에는 없었다.  그 당시의 일은, 의붓어머니나 여관들에게서 들은 것 이외, 알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모두, 같은 일이다.

 

「非常に難産でした。當時のしきたりで、實家に歸る途中の、ルビニの公園で生まれたのです。その場所は美しく、小鳥や草や花、大自然が、あなたの誕生を祝ってくれました。
「상당한 난산이었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친정으로 돌아가는 도중의, 룸비니(Lumbinī) 공원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 장소는 아름답고, 작은 새나 풀이나 꽃, 대자연이, 당신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私の姉も、年とってからのお産で、肉體的にも大變だったようです。だからあなたは、丈夫で立派な人間になることが大切なのです。
저의 언니도, 나이가 들고 나서의 출산으로, 육체적으로도 큰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건강하고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姉の苦しみに代わって、あなたは丸々とした可愛い赤ちゃんでした。けれとも、姉がどんなに苦しんだとしても、シッタルダ―に罪はないのです。その證據には、天眞爛漫いつもにこにことして、私達を困らせ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언니의 괴로움을 대신해서, 당신은 오동통한 사랑스러운 아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언니가 아무리 괴로웠다고 해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죄는 없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는, 천진난만하고 항상 싱글벙글해서, 우리들은 곤란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룸비니[Lumbinī] 《국어사전》
[명사] [불교]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으로 중인도 카필라바스투(迦毘羅衛, Kapilavastu)의 성(城) 동쪽에 있던 꽃동산. 지금의 인도와 국경을 이루는 네팔 남부 타라이 지방에 해당한다.


ヤショダラと結婚する頃、義母から聞いた自分の生誕のときのことが思い出される。城內で生まれたクシャトリヤ達の子供のことも良く知っている──。小さい頃は、屈託もなく、心は丸く豊かなはずであった。ア―トマン(自我)が芽生えるに從って、自己主張は强くなり、他人との不調和が多くなってくる──。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와 결혼할 무렵, 의붓어머니로부터 들은 자신의 탄생 당시의 일을 생각하게 된다.  성안에서 태어난 크샤트리야(ksatriya)들의 자식의 일도 잘 알고 있다 ──。
어린 시절은, 근심 걱정도 없고, 마음은 둥글고 풍성할 뿐이었다.  아트만(Atman, 자아)가 싹틈에 따라서, 자기주장은 강하게 되어, 타인과의 부조화가 많아 진다 ──。

 

このようにして、シッタルダ―は、自我我欲が次第に育ち、自己保存の煩惱が、醜い歪みのある心を作り出して曇りを作り、暗い人生を作り出してゆく人間──そのことにも氣がつくのでした。
이렇게 해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자아아욕이 서서히 자라서, 자기보존의 번뇌가, 추악한 비뚤어짐의 있는 마음을 만들어 내어 흐림(구름)을 만들고, 어두운 인생을 만들어 내어 가는 인간 ── 그 일도 생각이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だから、平和な安らぎの生活が手のどかないものになってしまうのだ。空は飛んでいる鳥達には國境がない。自由に飛んでいる。しかし、人間や他の動物達は、自らの領域を作って、互いに鬪爭し、破壞の苦しみを作り出している。ウルヴェラの太陽も、カピラの太陽も一つではないか。
──그래서, 평화로운 평안의 생활이 손의 미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자유로이 날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서로 투쟁하고, 파괴의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루벨라(Uruvela)의 태양도, 카필라(Kapila, 迦毘羅)의 태양도 하나가 아닌가?

 

この一つの太陽が、全ヨジャナ―(全世界)に熱や光を与えている。皆、平等なのだ。
이 하나의 태양이, 전 요자나(전세계)에 열이나 빛을 주고 있다.  모두, 평등한 것이다.

 

なぜ人間は、互いに醜い殺し合いをするのであろうか。やはり自我我欲と、自己保存のみの片よった考え方、片よった行動が原因を作り出しているのだ。
왜 인간은, 서로 추악한 서로 살인을 하는 것일까?  역시 자아아욕과, 자기보존만의 치우친 사고방식, 치우친 행동이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人間も、あの太陽のように、暖かく丸く豊かな、廣大無邊な慈悲で、豊かな心を作り、鬪爭や破壞のない、調和のある社會を作らねばならない──。
인간도, 저 태양과 같이, 따듯하고 둥글고 풍요로운, 광대무변한 자애로, 풍성한 마음을 만들고, 투쟁이나 파괴가 없는, 조화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
 
ウルヴェラの森は、すっぽりと黑いヴェ―ルに包まれて眞っ暗です。時折、强く燃え上がる焚火の炎によって、シッタルダ―の瘠せおとろえた顔が靜寂な森の中に浮き上がります。
우루벨라(Uruvela) 숲은, 폭 검은 베일에 싸여 암흑입니다.  가끔, 강하게 불타오르는 모닥불의 불꽃에 의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야위고 쇠약해진 얼굴이 정적한 숲 속에 떠오릅니다.

 

シッタルダ―は、禪定しながら、正しい心の基準を、なおも考え續け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선정하면서, 올바른 마음의 기준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他人との爭いの原因は何だろうか。片よらない正しい言葉で、相手の心を考えて語ることが大切なのではないか。また、相手の心を無視して聽くことが正しい判斷を生み得るだろうか。ひとりよがりに、一方的にものを見ることが良いはずがない──。
── 타인과의 다툼의 원인은 무엇일까?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말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또한, 상대의 마음을 무시해서 듣는 일이 올바른 판단을 낳을 수 있을까?  독선적으로, 일방적으로 사물을 보는 일이 좋을 리가 없다 ──。

 

見たり聞いたり、語したりするための、日常の基準が、はっきりとシッタルダ―の心の中に刻み込まれて行くのでした。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하기 위한, 일상의 기준이, 뚜렷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의 깊이 아로새겨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正しく語る、正しく見る、正しく聞く、という基準を忘れたときは、自分さえ良ければという心になり、他人を傷つけることになるだろう。そしてそれは、自分にも歸ってくることだ。
── 올바르게 말한다, 올바르게 본다, 올바르게 듣는다, 라고 하는 기준을 잊었을 때는, 자기만 좋으면 이라고 하는 마음이 되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この三つの正しい基準は、自らの心の中で思うことに始まらなくてはならない。心の中で思うことにも、正しい基準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思って語り、思って聞き、思って見るということは、心の中の作用が根本になっているからである。
이 세 가지의 올바른 기준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에도, 올바른 기준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생각해서 말하고, 생각해서 듣고, 생각해서 듣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속의 작용이 근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思うことの基準に片よりが生じても、やはり不調和な苦しみを作り出してしまう。相手をほめたたえる言葉にしても、心の中に不信があればそれは僞りになる。自分で蒔いた不調和な種である限り、刈りとらなくてはならないのは自分自身であろう。他人を傷つけて、自分自身も傷つけることになってしまう──。
생각하는 것의 기준에 치우침이 생겨도, 역시 부조화한 괴로움을 만들어 내 버린다.  상대를 칭송하는 말을 할지라도, 마음속에 불신이 있으면 그것은 거짓이 된다.  자기 자신이 심은 부조화한 씨앗이 있는 한,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타인을 상처 입히고, 자기 자신도 상처를 입는 것이 되어 버린다 ──。

 

シッタルダ―の心の中に描き出されて行く正しい基準は、次々と解明されてゆき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에 그려내어 가는 올바른 기준은, 서서히 해명되어 갑니다.

 

肉體的なきびしい修行によっては、肉體的な限界に挑戰することしかできない、心のむなしさを解決する道に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シッタルダ―はすでに知っていました。
육체적인 혹독한 수행에 의해서는, 육체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마음의 공허함을 해결하는 길에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苦しみという煩惱を作り出しているようなものだ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ました。
괴로움이라고 하는 번뇌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六年間──何を遠回りしてきたのだろう、と無智な自分をかえりみて齒がゆく思うのです。盲目が、人生修行の近道を忘れ、重い荷物を背負ってあえぎあえぎ限りない山道を登るようなものだ、と思ったのです。
6년간 ── 무엇을 먼 길을 돌아왔던 것일까, 라고 무지한 자신을 뒤돌아보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장님이, 인생수행의 지름길을 잊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헐떡헐떡 한이 없는 산길을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目的のない永遠の浪人のように、方向を見失って、山中をさまよい步く愚かなおのれをみつめて、自分が憐れたも思えるのでした。
목적이 없는 영원한 낭인과 같이, 방향을 잃고, 산속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어리석은 내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이 가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六年間探し求めていた師は、自分自身の心と大自然という、最も身近かなところにあったのです。
6년간 탐구하고 있던 스승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대자연이라고 하는, 가장 관계가 깊은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このような心の謎がとけ始めたため、嬉しくて、,大聲を擧げて喜びたいような氣持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러한 마음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즐거워하며, 큰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ゴ―ダマ・プッタにとって、それはまるで、砂漠で飢え凅いていた人間が、オアシスに出會ったような氣持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か。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에게 있어서, 그것은 마치, 사막에서 굶주리고 목말라 있던 인간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たとえ自ら作り出したきびしい人生修行であっても、シッタルダ―の修行は、人生における自分の求めた學習であり、この體驗をとおして、悟りへの道に到達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
비록 스스로 만들어 낸 혹독한 인생수행이었다고 해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수행은, 인생에 있어서의 자신의 찾던 학습이며, 이 체험을 통해서, 깨달음으로의 길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점이었습니다.

 

人間にとって、いかに自らの心を豊かにするか、というのは最も重要なことで、墮落に到る道は近く、善なる調和への道は遠い、ということです。善なる心と行爲を行なって惡を退けるのは、むずかしいことなのです。日常、善の方向に對していかに正しく生きるか、それが大切といえましょう。
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가? 라고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며, 타락에 이르는 길은 가깝고, 선한 조화로의 길은 멀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과 행위를 행해서 악을 퇴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평소에, 선한 방향으로 대하고 어떻게 올바르게 사는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しかしこの現象界においては、心の中の善が、そのまま他に通じないし、問題も多いといえます。人は、反省をおろそかにして、罪を重ねてゆく、というのが、この現象界の現實です。
하지만 이 현상계에 있어서는, 마음속의 선(善)이, 그대로 남에게 통하지 않고, 문제도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반성을 소홀히 해서, 죄를 쌓아 간다, 라고 하는 것이, 이 현상계의 현실입니다.

 

互いに、見えないから、聞こえないから、話さないから、自分の都合で判斷して、片よった方向に進み、苦しみを作り出しているのです。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형편으로 판단하고, 치우친 방향으로 나아가며,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他を不幸にしよう、などといった考え方は、必ず自分にはね返ってくるもの、ということを知らねなりません。
하지만, 남을 불행하게 하겠다, 라고 말한 사고방식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 되돌아 오는 것, 이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自分の都合が惡いという理由で、他を恨いんだり、そしったり、嫉いんだり、怒ったり、してはなりません。つまり片よった心にな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す。
자신이 처지가 나쁘다고 하는 이유로, 남을 원망하거나, 비방하거나, 질투하거나, 화를 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즉 치우친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正しく念じること、これが大切です。
올바르게 염원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正しい法を失った、他の指導者の中には、呪詛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が、他人を不幸にするようなものは、正しい思念とはいえないものです。
올바른 법을 잃어버린, 다른 지도자 중에는, 저주(呪詛)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만, 타인을 불행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올바른 사념(思念)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バラモン敎の中には、ひとりよがりな指導者による、自己保存のための呪詛の修法がありました。しかしこのような呪詛は、相手のほうが慈悲深い心の者の場合、光明に滿たされているから、太陽の光が鏡に反射するように自分自身に歸ってくるのです。
바라문교(婆羅門敎) 중에는, 독선적인 지도자에 의한, 자기보존을 위한 저주의 수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주는, 상대 쪽이 자비로운 마음의 사람의 경우, 광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태양의 빛이 거울에 반사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呪詛は、マ―ラ―(惡魔)の祈りなのです。自分の心を惡魔に賣り渡した者達のやる行爲というしかありませんが、このような人々の心は、常に安らぎがなく、ひとりよがりで、大きな歪みを作り出して持っているものです。
저주는, 마라(악마)의 기도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악마에게 팔아버린 사람들의 행하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평안이 없고, 독선적이며, 큰 비뚤어짐을 만들어 내어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これは、不調和な原因によって、暗い心の苦しみという結果を作り出してしま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しょう。
이것은, 부조화한 원인에 의해서, 어두운 마음의 괴로움이라고 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어 버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他人の幸福を喜び、幸いのために慈愛の手を差し伸べてやることが、神の心ではないでしょか。正しく念じる、ということは、自己中心であってはならないのです。
타인의 행복을 기뻐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자애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이, 신이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르게 염원한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중심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さらに、人間としてこの現象界に生まれたならば、生きるために仕事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です。萬物の靈長である人間は、本能のままに生き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
더욱이, 인간으로서 이 현상계에 태어났다면, 살기 위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본능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人間は考えを實行することのできる、偉大な智慧の持主なのです。自らの生活を豊かにし、社會人類の幸福を作り出すためにも正しい仕事をすることが大切です。それに害毒を流すような仕事は、自らを亡ぼすとともに、善意の人々をも傷つける結果になるからです。
인간은 생각을 실행할 수가 있는, 위대한 지혜(智慧)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인류의 행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도 일을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것에 해독을 끼치는 것과 같은 일은, 스스로를 망침과 함께, 선의의 사람들을 역시 상처를 입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働く環境に感謝し、その心は報恩としての行爲に結ばれなくてはならない。圓滿な心を作るためには欠くことのできないそれぞれの特技を生かした、正しい仕事をすることが大事だといえましょう。
일하는 환경에 감사하고, 그 마음은 보은으로서의 행위로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만한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저마다의 특기를 살린,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また常に自らの心を豊かにするためには、正しく念じ、正しく思い、正しく語り、正しく見て、正しく聞くよう、每日の生活を精進する積み重ねが大切なことです。
또한 늘 자신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염원하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말하고,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보려고 하는, 매일의 생활을 정진함을 거듭함이 중요한 일입니다. 

 

しかし人間は、盲目な人生を送っているため、さまざまに片よった思念や行爲があります。それが心の中に曇りを作り、偉大な神の慈愛の光をさえぎって苦しみを作り出しているのです。
하지만 인간은, 장님인 인생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치우친 사념(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과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속에 흐림을 만들고, 위대한 신(神)의 자애의 빛을 가려서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そこで、正しく定に入るためには、正しい中道のの心物差しで、自らが作り出した不調和な想念や行爲を反省することが大事です。
그래서, 올바르게 선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중도의 마음의 척도로서, 스스로가 만들어 낸 부조화한 상념(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이나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反省によって、犯した誤りと、その原因をとり除いて率直に神に詫びることが必要なのです。反省は、私達に与えられた神からの慈愛といえます。心の曇りをとり除く道は、これ以上に方法はないし、神から与えられた魂の進化への、これだけが機會といえるでしょう。
반성에 의해서, 저지른 잘못(실수)와, 그 원인을 제거하고 솔직하게 신에게 사죄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반성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신(神)으로부터의 자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흐림(거리낌)을 제거하는 길은, 그 이상에 방법은 없고, 신에게서 주어진 영혼(魂)의 진화로의, 그것만큼의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步みをとめて、自らの想念と行爲を見ること、これが必要です。心の曇りは、このときに晴れ、私達の心は神の光によって滿たされて禪定三昧の境地に到達できることになるのです。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보는 것, 이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흐림은, 이 때에 말게 개고, 우리들의 마음은 신의 빛에 의해서 가득 채워져 선정삼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今ようやく、シッタルダ―は、そうした境地に到達し、心の物差しを悟り、自らの想念と行爲をはっきりと訂正する機會を得たのでした。
지금 차차,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고, 마음의 척도를 깨닫고,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확실히 정정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自然もその條理に從って、春夏秋冬が區分されているように、すべての善意にも、一定の基準があるはずだ。その心の基準がないから混亂が起こる──。
── 자연도 그 조리(도리)에 따라, 춘하추동이 구분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선의(善意)에도, 일정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 ──。

 

シッタルダ―は、正しい心の基準を持って、幼少時代のできごとや、その當時の想念、行爲について、ひとつひとつ反省をし、心の曇りをとり除いてゆく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올바른 마음의 기준을 가지고, 유년시대의 사건이나, 그 당시의 상념, 행위에 대해서, 일일이 반성을 하고, 마음의 흐림을 제거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出生の秘密を耳にした、六歲のとき、それは子供心にも全く動轉したものだった。母だと信じていた人が義母だった驚き。それ以來、自分の、義母に對する冷たくなった態度、果たしてあんなことで良かったのだろうか。
── 출생의 비밀을 들었던, 6세의 당시, 그것은 아이의 마음에도 완전히 변하여 달라진 것이었다.  어머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의붓어머니였던 것에 대한 놀람.  그 이후, 자신의, 의붓어머니에 대한 냉정해진 태도, 과연 저런 일로 좋았던 것일까?

 

そして、たとえ何の記憶がないとはいえ、實母は、自分が難産で生まれたため、この世を去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母の死によって、父王も大變悲しんだことだろう。母に對しても父王に對しても、義母に對しても詫びねばならない──。
그리고, 비록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할지라도, 생모는, 자신의 난산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의해서, 부왕도 대단히 슬퍼했을 것이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부왕에게 대해서도, 의붓어머니에 대해서도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シッタルダ―は、心から、兩親、義母に詫び、泪が流れるのをと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憶えていない母を思い出そうとすると、必ず義母の顔が瞼に浮かんでくるの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진심으로, 양친, 의붓어머니에게 사과하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해 내려고 하면, 반드시 의붓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義母に對しての甘えも、反省せざるを得ません。
의붓어머니에 대한 응석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義母の愛。生母のことを知らなかったらおそらく實の母と思い續けていたことだろう。かえって知らなかったほうが、義母も自分も苦しまなかっただろう。意識的に意地を惡く、と思ったわけではない。しかし自然に孤獨になって行った自分の心。あれは、子供の感傷による、獨占欲の裏返しではなかったのか。父王も隨分、心配したことだろう。再婚も、やむを得ないことだったのだ。私は、何と大きな誤りを犯してきたのだろうか。神よ、父王や母や義母に對して犯した罪をお許し下さい·········。
── 의붓어머니의 사랑.  생모의 일을 알지 못했다면 어쩌면 생모라고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알지 못했던 편이, 의붓어머니도 자신도 괴롭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고집을 부린다, 라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자연히 고독하게 되어 갔던 자신의 마음.  저것은, 아이의 감상에 의한, 독점욕의 배신이 아니었을까?  부왕도 거의, 걱정했을 것이다.  재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러 왔던 것일까?  신이여, 부왕이랑 어머니랑 의붓어머니에 대해서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シッタルダ―は、心から神に詫び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진심으로 신(神)에게 사죄하는 것이었습니다.

 

──自分の氣に入らないときは、良くカピラの地下室の中に閉じこもって、鍵をしめて義母を悲しませたものだ。また、マシエル大臣やチャンダカなどにも大分迷惑をかけた。それは王子としての增上慢な行爲であった。父王の權力の傘の下にいたからとおったわがままだった。王子でなかったらどうだったろうか。そんなわがままはとおらなかったことだろう。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자주 카필라(迦毘羅)의 지하실 안에 틀어박혀서, 열쇠로 잠궈서 의붓어머니를 슬프게 했던 것이다.  또한, 마시에르 대신(大臣)이나 찬다카(Chandaka, 車匿) 등에게도 대부분 폐를 끼쳤다.  그것은 왕자로서의 증상만(오만)한 행위였다.  부왕의 권력의 산하(傘下)에 있었기 때문에 통했던 방자함이었다. 
왕자가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러한 버릇없음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チャンダカと城外に出た頃、良く、農夫達が牛を鞭打って農耕している姿を見て、動物達が酷使されているのを悲しんだり、小さな蟲が小鳥に襲われて死しんで行く姿を見て、ものの哀れに泪を流したこともあった。
찬다카(Chandaka, 車匿)와 성밖으로 나왔을 무렵, 자주, 농부들이 소를 가죽으로 때리며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동물들이 혹사당하고 있는 것을 슬퍼하거나, 작은 벌래가 작은 새에게 습격을 받아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렸던 일도 있었다.

 

常に身の回りの諸現象に感傷的な行動が、果たして罪を作っていたことになるだろうか──。
항상 일상의 여러 현상에 감상적인 행동이, 역시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일까 ──。

 

シッタルダ―の反省は、善惡のひとつひとつを、正しい心の基準に照らして、自らを戴いてゆく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반성은, 선악의 하나하나를, 올바른 마음의 기준에 비추어, 스스로를 이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秋の農作を祝うお祭りのときなどは、父王とともに城外を巡遊したものだ。そうしたとき、農民の過重な勞働に喘ぐ悲慘な姿を見て、同じ人間でありながら、なぜこんなに不平等な社會なのだろうか、果たしてこんなことで良いのかと思ったりしたものだ。
── 가을의 농작을 축하하는 축제의 때 등은, 부왕과 함께 성밖을 순유(각지를 여행하고 돌아다님)했던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농민의 과중한 노동으로 괴로워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며, 같은 인간이면서, 왜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인 것일까, 과연 이런 짓을 해놓고 좋은 것일까 라고 생각하거나 했던 것이다.

 

十二、三歲の頃から、自然をとおして、無情な諸現象が眼にとまるようになって行った。鳥やけものが相食む姿を見て、悲しさのあまり泪を流したこともあった。城のクシャトリヤ達が、とらえてきた動物を殺しているときなど、泣きながら、「殺さないでくれ!」と訴えたこともあった。 
12, 3세의 무렵부터, 자연을 통해서, 무정한 여러 현상이 눈에 띄게 되어 갔다.  새나 짐승이 서로 해치고 죽이는 모습을 보고, 슬픈 나머지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었다.  성(城)의 크샤트리야(ksatriya)들이, 잡아 온 동물을 죽이고 있을 때 등, 소리 없이 울면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서, 「죽이지 말아 줘!」라고 호소한 적도 있었다.

 

ジャンブの樹の下で、バフモンの先生であったヴィスヴァ―に敎えられた瞑想にふけり、人生の深刻な問題について考えたこともあった──。
잠부 나무 밑에서, 바라문의 선생이었던 비스바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명상에 잠기며, 인생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 일도 있었다 ──。

 

カピラ・ヴャ―ストでのことが、回想となって心の中に描かれてゆきます。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에서의 일이, 회상이 되어 마음속에 그려 갑니다.

 

──クシャン・ティデ―ヴから習った武道は、氣劍體一致が極意だといった。「心ない劍は名人とはいえない」と敎えられた。「人を殺す劍ではなく、自らを守り、心の惡を斬り捨てる劍とすべきである」とも敎えられたものだ──。
──쿠샨・티데이브로부터 배운 무도(武道)는, 기검체 일치가 극의다 라고 했다.  「마음이 없는 검은 명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라고 가르침 받았다. 「사람을 죽이는 검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베어 버리는 검이 되어야 한다」라고도 가르침 받은 것이다 ──。

 

今、ウルヴェラの森で、初めて、その敎えの正しかったことを知る、シッタルダ―でした。「劍は、自らの心の邪惡を斬り捨てるために用いよ」。そんな言葉が、自然に口をついて出てくるのでした。「劍があるのは、爭うための道具としての價値にあるのではない。人は爭ってはならないのだ」シッタルダ―は「私の劍は〃法〃だ。心と行ないの法だ。法こそ神の心の現われである」と、今は亡きクシャン・ティデ―ヴの敎えに、改めて心から感謝するのでした。
지금, 우루벨라(Uruvela) 숲에서, 비로소, 그 가르침의 옳았다는 것을 아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였습니다. 「검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사악을 베어 버리기 위해서 사용하라」。그러한 말이, 자연히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검이 존재하는 것은, 싸우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나의 검은 〃법(法)〃이다.  마음과 행위의 법이다.  법이야말로 신의 마음의 표현이다」라고, 지금은 돌아가신 쿠샨・티데이브의 가르침에, 다시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鬪爭と破壞は、自らを苦しめるとともに、他人を犧牲にする。武器は、人間の智慧が作り出したもので、神が作ったものではない。武器が、人間にとって必要なものであるならば、生まれながら持ってくるはずだ。毒蛇が毒齒を持っているように·········。人間は、生まれながらの姿こそが、神の法にかなった姿であるはずだ·········。
── 전생과 파괴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동시에, 타인을 희생으로 한다.  무기는, 인간의 지혜(智慧)가 만들어 낸 것이며, 신의 만든 것이 아니다.  무기가, 인간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이라면, 태어나면서 가지고 올 것이다.  독사가 독니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인간은, 타고난 모습이야말로, 신의 법(法)에 꼭 맞는 모습인 것이다·········。

 

シッタルダ―は、こう思います。武力鬪爭によって混亂した社會は誤りである、と。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력투쟁에 의한 혼란한 사회는 잘못이다, 라고.

 

──弱肉强食の世相といるのは、人間以下の動物達が、萬物の靈長に進化する過程の修行にすぎない。
── 약육강식의 세태(世相)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이하의 동물들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수행에 지나지 않는다.

 

大蛇にしても他の肉食動物にしても、自らに足りていれば、決して他を襲うことはしないものだ。もし、强い肉食動物だけが生き殘ったならば、草食動物は絶えてしまうだろう。
큰 뱀(大蛇)이라고 해도 다른 육식동물이라고 해도, 스스로 만족하고 있으면, 결코 다른 동물을 습격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강한 육식동물만이 살아 남게 된다면, 초식동물은 없어져 버릴 것이다.

 

彼らの生活には、きちんとしたル―ル[規則]があるではないか。相互に足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のだ。しかし、萬物の靈長たる人間は一体どうだろうか。
그들의 생활에는, 단정한 룰(규칙)이 있지 않을까?  상호 만족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强者は、自分の領土を增やそうとして、弱い者達から武力や財力によって、奪いとってしまう。
강자는, 자신의 영토를 늘리려고 해서, 약한 사람들에게 무력이나 재력에 의해, 탈취해 버린다.

 

人間はみな平等であり、この大自然はすべて人間の所有物ではないのだ。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이 대자연은 전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것이다.

 

マハ・コ―サラ・ラジャンも、大コ―サラ國を、死の世界に持って歸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金や銀や、瑪瑙、ルビ―、ダイアなどの財寶も、所詮はひとときの欲望を滿たしたにすぎない無情なものではなかったか。この世を去るとき、やはり持って歸れはしないのである。
마하・코살라・라잔(코살라 국왕)도, 대 코살라 국을, 죽음의 세계로 가지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금이나 은이나, 마노(瑪瑙), 루비, 다이아몬드 등의 재보도, 결국은 잠시의 욕망을 가득 채움에 지나지 않은 무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역시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肉親にしてもそうである。たとえ、親子であっても、前世の緣によって、肉體を戴いても、魂は、親子別々のものなのだ。父王が望んでいたことに、自分はこたえてはいない──。父王の意志に反して出家してしまった姿を見れば、肉體舟の先祖と魂の先祖の關係は、おのずから異なっているといえよう。
육친이라고 해도 그렇다. 비록,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도, 전세의 인연에 의해서, 육체를 받아도, 영혼은, 부모 자식의 별개의 것이다.  부왕이 바라고 있던 것에, 자신은 응하지 않았다 ──。부왕의 의지(뜻)에 반해서 출가해 버린 모습을 보면, 육체 배의 선조와 영혼의 선조의 관계는, 자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肉體先祖というものは、神より輿えられている本能によって、この地球上に適した肉體舟を保存させるようにできている。
육체선조라고 하는 것은, 신에게서 주어지고 있는 본능에 의해서, 이 지구상에 적합한 육체 배를 보존하도록 되어 있다.

 

それは、こういうことである。魂の世界からこの地上界に出るためには、人生航路を渡る乘り舟が必要だから、子孫が代々保存されているというわけだ。
그것은, 이러한 것이다.  영혼(魂)의 세계에서 이 지상의 세계에 나오기 위해서는, 인생항로를 건너는 타는 배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손이 대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眼隱しされた現象の世界では、人は、盲目の中で、より豊かな心を求め、廣い慈愛に滿ちたおのれを作るとともに、全ヨジャナ―(全世界)の人々の調和された平和な世界、それを作ることが目的なのである。
눈에 감추어진 현상의 세계에서는, 사람은, 장님 속에서, 보다 풍성한 마음을 찾고, 넓은 자애로 가득 찬 자기 자신을 만듦과 동심에, 전 요자나(전 세계)의 사람들의 조화된 평화로운 세계, 그것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しかし、肉體舟に乘ってしまうと、心の存在が解りにくいために、きびしい人生を體驗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だから、親子であっても意志の違いが起ったり、また、わが子可愛いさから世襲制度を作ったり、きびしい階級制度を生んでしまうようになり、權力や地位や財産や領土へと、その欲望は展がり、遂に鬪爭と混亂を作り出してしまってうるのである──。
하지만, 육체 배를 타 버리면, 마음의 존재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혹독한 인생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의지의 차이가 일어나거나, 또는, 내 자식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세습제도를 만들거나, 혹독한 계급제도를 낳아 버리게 되어, 권력이나 지위나 재산이나 영토로, 그 욕망은 전개하며, 마침내 투쟁과 혼란을 만들어 내어 버리는 것이다 ──。

 

シッタルダ―の心の中に展開されて行く神理は、プッタ・ス―トラ(悟への道)の根幹となって、はっきりと心の中に刻まれて行く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에 전개되어 가는 신리(神理)는,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길)의 근간이 되어, 뚜렷하게 마음속에 새겨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今まで學んできたウパニシャドや、ヴェダ―で解明されていなかった大疑問點が、はっきりと解ってきました。心の正しい見解を持つことによって、疑問の点が解かれ、心の中からこみ上げてくる暖かいものをとめることがでぎませんでした。
지금까지 배어 온 우파니샤드(Upanishad)나, 베다(Veda)로 해명되고 있지 않았던 큰 의문점이, 분명히 이해되어 왔습니다.  마음의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에 의해서, 의문점이 풀리게 되어,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따뜻한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きびしく、極端な肉體行をしていたときには、全く心に觸れなかった諸問題が、もつれた絲がとけるように、系統的に、明解な答えとなって返ってくるのでした。
혹독하게, 극단인 육체수행을 하고 있었을 때에는, 전혀 마음에 알 수 없었던 여러 문제가, 엉클어진 실이 풀리듯이, 계통적으로, 명해(간결하고 분명하게 해석함)한 해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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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靈との鬪い──幼年時代の反省
악마와의 싸움──유년시대의 반성


夜もすっかり更け、ときどきハイエナの遠吠えが無氣味にごだましています。
밤도 완전히 깊어지고, 가끔 멀리서 하이에나가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暗闇の中の樹々が、風に吹かれて時折燃え上がる焚火の火に、明かるく照らして出されます。
어둠 속의 나무들이, 바람에 불리어 가끔 불타오르는 모닥불의 불에, 밝게 비치며 드러납니다.

 

シッタルダ―が、反省にひと区切りつけて瞑想に入ろうとしたとき、焚火のはるか前方に人間の氣配がし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반성에 한번 매듭을 짓고 명상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진 전방에 인간이 기척이 있었습니다.

 

しかしもはや、瞑想中のシッタルダ―は、昨日のシッタルダ―ではありません。一切の執着から離れた自分の心にかえっていました。
하지만 이미, 명상 중인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어제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아닙니다.  일체의 집착에서 떠난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地上の想念から解放されて、大自然の慈悲の心に觸れていたのであった。瞑想が深くなるにつれ、眼の前が黃金色に變わり、何か心が安らでくるのでした。
지상의 상념에서 해방되어, 대자연의 자비의 마음에 닿아 있었던 것이었다.  명상이 깊어짐에 따라, 눈 앞이 황금색으로 변하고, 왠지 마음이 편해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このような現象が、今までもしばしば體驗したことがありましたが、以前はすぐ心亂れてしまい、一定した狀態になったのは、始めてのことです。
이러한 현상이, 지금까지도 종종 체험한 적이 있었지만, 이전에는 곧 심란하게 되어 버리는, 일정한 상태가 된 것은, 처음의 일입니다.

 

黃金色の柔らから慈光──錯覺ではないか、と靜かに眼を開いでみましたが、それはまさしく、黃金色に輝く世界でした。
황금색의 부드러운 자비의 빛 ── 착각이 아닐까, 라고 조용히 눈을 떠 보았지만, 그것은 확실히, 황금색으로 빛나는 세계였습니다.

 

細かな、霧のような粒子をした、柔らかなゴ―ルド・カラ―です。前方にかすかに燃えている焚火の明かりとは全く違うもので、しかも、今までは、眼を開くとそれは消えもとの暗黑にもどっていましたが、今は、眼を開いても瞑想のときも、はっきりと黃金色の世界にいるのでした──。
아주 작은, 안개와 같은 입자를 한, 부드러운 황금색입니다.  전방에 희미하게 불타고 있는 모닥불의 밝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게다가, 지금까지는, 눈을 뜨면 그것은 사라지며 본래의 암흑으로 되돌아가 있었지만, 지금은, 눈을 떠도 명상의 때도, 뚜렷한 황금색의 세계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

 

心の中の不調和な曇りが除かれて行ったのでしょう。
마음속의 부조화한 흐림(거리낌)이 없어져 간 것이겠지요.

 

──心の調和を、より一層進めるには、どうすれば良いのだろうか──。
──마음의 조화를, 보다 한 층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

 

シッタルダ―は、ふとそう思うのでした。しかし、その疑問が生じたとき、明かるくまろやかに周圍を包んでいた黃金色の光は、跡方もなく消え去り、赤々と燃える焚火の火が、闇を照らしているだけ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문득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문이 생겼을 때, 밝고 둥글게 주위를 감싸고 있던 황금색의 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붉게 타는 모닥불의 불이, 어둠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さて、またしても、前と同じ結果になったか──。
──그럼, 또 다시, 전과 같은 결과가 된 것일까? ──。

 

シッタルダ―は淋しく思うのでした。そして、再び瞑想に入ろうとしました。ゆっくりと眼を開じ、心を動かした波紋から離れようとしたのです。そのときです。耳もとに、女性の聲が聞こえでき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쓸쓸하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명상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천천히 눈을 감고, 마음을 움직였던 파문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입니다.  그 때입니다.  귓전으로, 여성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シッタルダ―樣、私でございます。私です·········」
「──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님, 저입니다.  저입니다·········」

 

聞き覺えのある聲です。シッタルダ―は、思わず眼を開きました。すると、焚火の明かりをとおして、前方の暗闇の中に、ヤショダラのような姿が見えるではありませんか。ヤショダラは、シッタルダ―を懷しそうに見ています。透きとおるような薄手の衣が、靜かにゆれて見えます。微笑を浮かべて、ヤショダラは手を差し伸べ、シッタルダ―を迎え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귀에 익은 음성입니다.  싯타르타는, 엉겁결에 눈을 떴습니다.  그러자, 모닥불의 밝기를 통해서, 전방의 어둠 속에,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와 같은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야쇼다라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그리워하는 듯이 보이고 있습니다.  투명한 얄팍한 옷이, 조용하게 흔들리며 보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야쇼다라는 손을 내밀며, 싯타르타를 맞이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この眞夜中に、なぜヤショダラがきたのだろう。どうしてここを知っていたのだろうか──。
──이 한 밤중에, 왜 야쇼다라(Yashodhara)가 온 것일까?  어떻게 해서 이곳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

 

シッタルダ―は、判斷に苦しみ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かつての妻と別れて、もう六年ありになる──。今はカピラの連絡も途絶え、その樣子とて知る由もない。クシャトリヤだった五人とも別れ、その行先すらも知りはしない。ヤショダラが、偶然そのコスタニヤ―達と會ったとしでも、この今の居場所が解るわけがない──。
── 일찍이 아내와 헤어져, 벌써 6년이나 된다 ──。지금은 카필라(Kapila, 迦毘羅)와 연락도 두절되고, 그 얼굴의 모습도 알아 볼 수 없다.  크샤트리야(ksatriya)였던 다섯 명과도 헤어지고, 그 행선지조차도 모른다.  야쇼다라(Yashodhara)가, 우연히 그 코스타니야들과 만났다고 해도, 이 지금 있는 장소를 알 턱이 없다 ──。

 

不思議なことがあるものだ、とシッタルダ―は思いました。夢ではないだろうか、と自分を疑ってみましたが、身の一部をつねっても確かに現實のことでした。良く見ると、ヤショダラの左手にも人が座っています。ゴ―パ―です。そのゴ―パ―も、やはり手を差し出して、しきりにシッタルダ―を手招いています。さらに良く見ると、その周圍には、かつて言葉を交わした踊り子達も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불가사의한 일이 있는 것이다.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생각했습니다.  꿈이 아닐까, 하고 자신을 의심해 보았지만, 몸의 일부를 꼬집어도 확실히 현실의 일이었습니다.  자세히 보자,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의 왼쪽에도 사람이 자리해 있습니다.  첩인 고파(瞿波)입니다.  그 고파(瞿波)도, 역시 손을 내밀며, 거듭거듭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손짓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더욱 자세히 보자, 그 주위에는, 일찍이 말을 나누었던 무용수들도 있는 게 아닙니까?

 

──はて、どうしたことだろうか──。ヤショダラが、死に別れの挨拶にここまできたのだろうか──。
── 헌데, 어떠한 일일까? ──。야쇼다라(Yashodhara)가, 죽어서 이별의 인사를 하려 여기까지 온 것일까? ──。

 

とシッタルダ―は、思案にあぐね、不思議なことがあればあるものだと、いよいよ迷いました。しかし、シッタルダ―は、じっと前方をみつめたまま立とうとはしませんでした。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아도 알 길이 없고, 불가시의한 일이 있다면 있는 것이다 라고, 점점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가만히 전방을 응시한 채로 서 있지 못했습니다.

 

そのうちに、ヤショダラの身體が妖しく動きました。男を求める女の姿です。身體をくねらせ、媚びを賣ろうとする女に變わったのです。
불원간, 야쇼다라(Yashodhara)의 신체가 요염하게 움직였습니다.  남자를 찾는 여자의 모습입니다.  신체를 구불거리며, 아양을 떨려고 하는 여자로 변한 것입니다.

 

──惡魔(マラ―)!──。
──악마(마라)!──。

 

シッタルダ―は、ヤショダラの變身を見た瞬間に、そう思いました。だが、その瞬間、ヤショダラもゴ―パ―も、踊り子達の姿もかき消えるように闇の中に沒してしま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야쇼다라(Yashodhara)의 변신을 본 순간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야쇼다라(Yashodhara)도 고파(瞿波)도, 무용수들의 모습도 흔적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シッタルダ―の周圍は、再び靜寂に包まれました。シッタルダ―が惡魔と思った瞬間に、その身體はバフラマン(梵天)の光におおわれ、女達の姿を消してしまった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주위는, 다시 정적으로 감싸였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악마(惡魔)라고 생각한 순간에, 그 신체는 브라흐만(범천)의 빛에 덮이며, 여자들의 모습을 사라지게 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マラ―·········この得體の知れない怪物、惡魔は、いつ、どこで、どうして生じたのだろう·········。マラ―とは、一体とのようなものなのだろうか。
──마라·········이 체면을 유지함을 모르는 괴물, 악마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마라(악마)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マラ―とは、人間の身體に單食う回蟲のようなものです。回蟲が體內に單食うと、食物はみなそれらの蟲に吸いとられ、人間は次第に衰弱してゆき、やがて死んでしまいます。それと同じように、マラ―に魅せられると、人は正常な心を失い、やたらと鬪爭心がつのってきます。自分の敵對する者は、情け容赦もなくこれを倒さずにはすまなくなってくるのです。
마라(악마)란, 인간의 신체를 먹고 살아가는 회충과 같은 것입니다.  회충이 몸 속에서 생활하면, 식물은 모두 그들의 벌레에게 흡수되어, 인간은 점차 쇠약해져 가며, 이윽고 죽어 버립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라(악마)에게 홀리면, 사람은 정상적인 마음을 잃어버리고, 무턱대고 투쟁심이 심해져 옵니다.  자기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은, 인정 사정도 없이 이것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오는 것입니다.

 

血を見て快感し、人の不幸を喜ぶ。そして、自分の意識にもどったときには、なぜあんなことをしたのだろうか、と思います。しかしそのときにはもう遲いのです。
피를 보고 괘감을 느끼고, 남의 불행을 기뻐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의식으로 되돌아왔을 때에는, 왜 저런 짓을 한 것일까,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이미 늦는 것입니다.

 

普通なら、人の不幸や悲しみを見て喜ぶ者は少ないものです。だが、自分の競走相手とか、いつも頭を押さえつけている人が不幸になると、ざまあみろ、という心を持つ場合はあるでしょう。
보통이라면,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적은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경쟁상대라든가, 늘 억압하고 있는 사람이 불행하게 되면, 꼴 좋다, 라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경우는 있을 것입니다.

 

マラ―は、そういう不平不滿のある人の心の中に常にひそみ、その心に不調和を作り出してゆくのです。
마라(악마)는, 그러한 불평불만의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항상 숨어서, 그 마음에 부조화를 만들어 내어 가는 것입니다.

 

人の不幸を喜ぶ程度が深くなるにつれ、その人の身體はいつか重くなり、肉體的には勿論その環境も不調和になり、その苦しみから拔け出るのは、なかなか困難になります。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정도가 심하게 됨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체는 언젠가 무겁게 되어, 육체적으로는 물론 그 환경도 부조화하게 되어, 그 괴로움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좀처럼 곤란하게 됩니다.

 

そうならないためには、自らの心を正す以外にはないといえます。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는 이외에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マラ―は、この地上界で不調和な人生を送り、死んで地獄に墮ちた者達の世界を支配しています。そして、生きている不調和な心の者達の想念行爲に通じ、この現象界に、そうした人間がいる限り現われてくるのです。
마라(악마)는, 이 지상세계(地上界)에서 부조화한 인생을 보내며,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부조화한 마음의 사람들의 상념 행위를 통해서, 그 현상계에, 그러한 인간이 있는 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人間社會の混亂は、人間の心の不調和な行爲が作り出す暗い雰圍氣や、足ることを忘れ去った欲望に起因しているのです。
인간사회의 혼란은, 인간의 마음의 부조화한 행위가 만들어 내는 어두운 분위기나, 만족함을 완전히 잊어버린 욕망에 기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の心の中にも、情欲の名殘りが頭をもたげ、修行中にもこの煩惱を斷つことに苦慮したこと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에도, 정욕의 자취가 고개를 쳐들고, 수행 중에도 그 번뇌를 끊는 일에 고심한 것이었습니다.

 

煩惱の炎が燃えれば、それがマラ―に通じ、彼らは、シッタルダ―の心を墮落させようと躍起になるのでした。もし正道を悟られれば、マラ―やその輩下は、自らの環境を失ったてしまうからです。
번뇌의 불꽃이 불타면, 그것이 마라(악마)에게 통하고, 그들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을 타락시키려고 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정도(正道)을 깨닫게 되면, 마라(악마)나 그 부하는, 자신의 환경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うじ蟲の場所も、淸潔にして、太陽の光で滿たしてしまうと、彼らは生きることができない。ゴキブリも溫氣の多い暗い場所を好むが、太陽のもとでは生きることがむずかしいものだ。類は友を呼ぶ。惡は惡の仲間が集まり、生活をしている。意識界における、善惡の世界も同じことなのだ。濁ったものは沈み、淸らかな水はその上、と同じ理屈だ──。
── 구더기의 장소도, 청결하게 해서, 태양의 빛으로 가득 차 버리면, 그들은 살 수가 없다.  바퀴벌레도 온기가 많은 어두운 장소를 좋아하지만, 태양 아래에서는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끼리 낄 모인다.  악은 악의 동료가 모여들어, 생활을 하고 있다.  의식계에 있어서는, 선악의 세계도 똑같은 것이다.  물이 흐린 것은 가라앉고, 맑은 물은 그 위, 라고 같은 이치(理致)이다 ──。.

 

シッタルダ―が、眼の前に現われたマラ―の實體をしっかりとつめながら、正しい判斷を下すことができたのも、常日頃、思うこと、行なうことを、片よりのない心の物差しではかり、確かに判斷しながら生活をしていたため、道を誤ることがなかったといえ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눈 앞에 나타난 마라(악마)의 실체를 똑똑히 파악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었던 것도, 평소,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을,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마음의 척도로 재고, 확실히 판단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 수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もし、シッタルダ―が、マラ―の誘惑に負けたならば、おそらく、悟りへの修行は實らず、昔以上に墮落した人生を辿ることになったことでしょう。
만약,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마라(악마)의 유혹에 졌다면, 어쩌면, 깨달음으로의 수행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옛날 이상으로 타락한 인생을 더듬더듬 걸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自分の缺點を、勇氣をもって修正することは、不可能ではないのです。良き判斷をするための智慧を養い、おのれを修正するための日頃の努力を怠らないようにすることです。
자신의 결점을, 용기를 가지고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잘 판단을 하기 위한 지혜를 기르고, 자기 자신을 수정하기 위해 평소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苦しみとなる原因を作らない、このことが大切なのです。墮落への道は、なだらかな坂を下るようなもので、苦勞しなくても落ち得るものです。
괴롭게 되는 원인을 만들지 않는다, 이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타락으로의 길은, 가파르지 않은 비탈을 내려가는 것이며, 염려하지 않아도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墮落の道に一度落ちこんだ者が、その泥沼からはい上がるのは、修行するのよりずっときびしいことなのです。
하지만, 타락의 길에 한번 빠진 사람이, 그 수렁에서 기어오르는 것은, 수행하는 것 보다 훨씬 혹독한 일인 것입니다.

 

精進の道が、きびしく困難であるということは、自らの缺點に甘いからといえましょう。それほどに、おのれに克つということは、大變にむずかしいことなのです。
정진의 길이, 험난하고 곤란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결점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이긴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一旦おのれに克ち、悟りの境地に到達すれば、そこには平溫な、安らぎのある調和された環境が待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悟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
일단 자기 자신을 이기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면, 그곳에는 평온한, 평안의 있는 조화된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シッタルダ―の心の中は、過去になした不調和な想念や行爲をみつけ出し、ひとつひとつ反省し修正して行く中で、意識界に大きな誤りを犯していたことに氣がつくようになるとともに、光明に滿たされて行く過程にも自信を持って行く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은, 과거에 이룬 부조화한 상념이나 행위를 찾아내어, 낱낱이 반성하고 수정해 가는 가운데, 의식계로 큰 잘못을 범하고 있던 것을 알아차리게 됨과 동시에, 광명으로 가득 채워져 가는 과정에도 자신을 가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心の中で自問自答しなら、過ぎ去った誤りを正して行くということは、初めての經驗だし、蓄積した暗い雰圍氣を払いのけるのは、大空の曇りを大風で吹きとばすような晴れやかな思いで、陽の射す心の中は安らぎ、執着から離れて行くのでした。
마음속으로 자문자답하면서, 지나간 잘못을 바로잡아 간다고 하는 것은, 첫 경험이고, 축적된 어두운 분위기를 떨쳐 버리는 것은, 너른 하늘의 구름을 강풍이 불어 날려 버리는 것과 같은 환한 생각이며, 태양의 내리쬐는 마음 속은 편안하고, 집착에서 떠나 가는 것이었습니다.

 

すでに、五人のクシャトリヤという守ってくれる人もいない中で、死を覺悟して最後の仕上げを進めている姿は、他から見ると悲壯でさえありました。しかし、シッタルダ―の中には、全く焦りはなかったのです。
이미, 다섯 명의 크샤트리야(Kshatriya)라고 하는 지켜줄 사람도 없는 가운데,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완성(마무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보면 비장함마저 듭니다. 하지만, 싯다르타(Siddhartha)의 안에는, 전혀 조바심은 없었던 것입니다.

 

それは、死の宣告を受けて迷い續けた者が、諦觀の境地になり、淡々とした心境にいるのと同じでした。一切の執着から離れたときの心というものは、生まれたばかりの美しい心に歸るのです。
그것은, 죽음의 선고를 받고 계속 방황하는 사람이, 체관(사물의 본체를 충분히 깨뚫어 보는 것)의 경지가 되어, 담담한 심경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일체의 집착에서 떠났을 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갓 태어난 아름다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この人生では、自ら作り出した欲望への惡あがきがかえって重荷となり、一生を無意味にすごしてしまう者達が多いのです。
이 인생에서는, 스스로 만들어 낸 욕망으로 이미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 보려고 몸이 달아, 소용없는 일을 이것저것 시도해 봄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このネランジャラの水が大海の中に一切合流してしまうように、死んでしまえば、肉體のすべてが大自然に還元されてしまうのだ。しかし、それぞれの河にはそれぞれの特徵があるが、その水の本質は、變わることはないのだ。
──이 네란쟈라(Nairanjana, 尼連禪河) 강물이 큰 바다 속으로 일체 합류해 버리는 것처럼, 죽어 버리면, 육체의 전부가 대자연으로 환원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강(河)에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지만, 그 물의 본질은, 변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大宇宙生命の中にとけこんでしまっても、シッタルダ―としての個の生命は失われることなく、永遠の輪廻の旅を續けるのだ。
대우주 생명 속에 융화되어 버려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로서의 개체의 생명은 잃어버리는 일 없이, 영원히 윤회의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因緣因果によって、すべての生命は、それぞれの特徵を持って轉生輪廻を體驗して行くのである。そのために、良い因は、良き果てとなって現象化されることだ──。
인연인과의 의해서,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전생윤회를 체험해 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좋은 원인은, 좋은 끝(종말)이 되어 현상화되는 것이다 ──。

 

片よりのない正しい心の物差しが、どれほど心を豊かにすることかと、シッタルダ―は、探し求めてきた偉大な道に、よりやく辿りついた美しさを、感じるのでした。
치우침이 없는 올바른 마음의 척도가, 어느 정도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일까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탐구해 왔던 위대한 길에, 차츰 고생 끝에 겨우 당도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心を無にした禪定が、本当に誤りであるということがはっきりと解ったのでした。
마음을 저버린 선정이, 정말로 잘못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肉體が舟である場合、その船頭である意識、その中心である心が不在であれば、どのようになってしまうであるうか。
── 육체가 배인 경우, 그 선장인 의식, 그 중심인 마음이 부재하면, 어떻게 되어 버리는 것일까?

 

ネランジャラの岸邊の舟に船頭がいなげれば、彼岸につく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心を無にするということは、自らの肉體舟を不調和な者達に明け渡すということになるからである。マラ―の跳梁に任せ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しまうだろう。
네란쟈라(Nairanjana, 尼連禪河) 물가의 배에 선장이 없다면, 그 언덕에 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음을 저버린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육체 배를 부조화한 사람들에게 내어 준다고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마라(악마)의 도량(함부로 날뜀)에 맡긴다고 하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むにする [無にする]
〔연어〕 저버리다. 헛되게 하다. 好意こういを無にむにする 호의를 저버리다.

 

このような者に憑かれれば、もはや人間としての品性を失い、地獄の再現となる。
이러한 사람을 홀리면, 이제는 인간으로서의 품성을 잃어버리고, 지옥의 재현이 된다.

 

心の曇りをとり除いて、光明に包まれているときなら、マラ―の跳梁に任せることはないだろう。
마음의 흐림을 제거해서, 광명으로 싸여져 있을 때라면, 마라(악마)의 도량에 맡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暗闇の山中を、燈火を持たないで走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お先眞っ暗で、前進はできないだろう。どんな障害物が前途にあるか解らないし、夜行性の動物にいつ襲われるか知れない、という危險もある。
어두운 산속을, 등화(등불)을 가지지 않고 달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앞이 아주 캄캄해서, 전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장해물이 앞길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야행성 동물에게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 라고 하는 위험도 있다.

 

心の世界も同じことだといえよう。
마음의 세계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心の燈火が失われれば、それは暗闇の人生である。人は、常に片よりの中道の心と行ないによって、心に光明が与えられるのだ。心は、無にするのではなく、偉大な宇宙生命との大調和が大切だということである──。
마음의 등화(등불)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어두운 인생이다.  사람은, 항상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마음과 행위에 의해서, 마음에 광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마음은,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우주생명과의 대조화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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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春への反省──四季の館は遠く
청춘으로의 반성──계절의 머물 집은 멀다

 

陽はまた昇ります。ウルヴェラの森に朝がきて、シッタルダ―は、明かるいものを感じます。それは、しかし夜明けだけのせいではありません。
태양은 또 떠오릅니다.  우루벨라(Uruvela) 숲에 아침이 되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밝은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하지만 새벽녘만의 조용함이 아닙니다.

 

昨夜の反省によって、幼少時に作り出した不調和な諸問題の原因が、すべて自らの作り出したもの、自己保存と自我我欲が炎いを作ったことが解り、心の曇りも少しずつ晴れたからです。
어젯밤의 반성에 의해서, 어릴 때에 만들어 낸 부조화한 여러 문제의 원인이, 모두 자신의 만들어 낸 것, 자기보존과 자아아욕이 불꽃를 만든 것을 알고, 마음의 흐림도 조금씩 맑게 개었기 때문입니다.

 

それは、悟りへの絲口でもありました。
그것은, 깨달음으로의 실마리이기도 했습니다.

 

禪定中に、甘ずっぱい息を吐き、シッタルダ―の頰に冷たい鼻をよせてくる小鹿とも、すっかり友達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선정 중에, 달콤새콤한 숨을 토하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뺨에 차가운 코를 가까이 대 오는 어린 사슴도, 완전히 친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他の動物達とも親しくなり、小鳥達までが、シッタルダ―の心の中を読みとっているかのように、美しくさえずるのでした。
다른 동물들과도 친근하게 되어, 작은 새들까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을 알아차리고 있는 듯한 듯이, 아름답게 지저귀는 것이었습니다.

 

今までとは、確かに何かが變わってきた。自然も、自分の心の中もだ。とシッタルダ―は思います。その明かるさの中で、シッタルダ―は、昨日の反省から進めて、二十歲にいたる、思春期の頃に思いを馳せるのでした。不調和な問題は、一切とり除かねばならないからです。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뭔가가 달라져 왔다.  자연도, 자신의 마음속도 그렇다.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생각합니다.  그 밞음 속에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어젯밤의 반성에서 나아가, 20세에 도달한다, 사춘기 시절로 생각을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연한 문제는, 일체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曇った鏡には、本当の正しい姿は映らない。永い年月には塵もたまれば、埃もつく。しかし、それを払い退けて磨けば、本当の美しさ、眞實が現われてくる。ただ、人は、塵や埃のために、なかなかそれに氣がつかないだけだ。
──흐린 거울에는, 정말로 올바른 모습은 비치지 않는다.  오랜 년월에는 먼지도 끼면, 때도 낀다.  하지만, 그것은 털어 버리고 닦으면, 정말로 아름다운, 진실이 나타난다.  단, 사람은, 티끌이나 먼지 때문에, 좀처럼 그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할 뿐이다. 

 

人間の心も同じことがいえる。自分の片よった一人よがりの心と行ないが、苦しみや曇りを作り、眞の自分を知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인간의 마음도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잇다.  자신의 치우친 독선의 마음과 행위가, 괴로움이나 흐림을 만들어, 참된 자신을 알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一人よがり=독선(獨善)
자기 혼자서만 좋다고 믿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


人生に無常を感じていたためか、自分には、見るもの聞くことが常に苦しみのもととなり、悲しみを生んでいた──。
인생에 무상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 자신에게는, 보는 것 듣는 것이 항상 괴로움의 근원이 되어, 슬픔을 만들고 있었다 ──。

 

父王は、常に考えこんでいるシッタルダ―の姿を見るにつけ、何とか明かるい生活をさせよう、華やかな生活に眼を向けさせようと、歌姬や舞姬をそばへおくなど、その努力には泪ぐましいものがありました。しかし、シッタルダ―は、ややもすると人生の苦しみから逃れようとして、不調和な低俗な生活をしたり、一時の煩惱を滿足させても、心から樂しむ境地には到底なれないでいました。
부왕은, 항상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모습을 발견하고, 무언인가 밝은 인생을 하게 하려고, 화려한 생활에 눈을 돌리게 하려고, 가희나 무희를 곁에 두는 등, 그 노력에는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자칫하면 인생의 괴로움에서 달아나려고 해서, 부조화한 저속한 생활을 하거나, 잠깐의 번뇌를 만족시키려고 해도, 진심으로 즐거운 경지에는 도저히 안 되고 있었습니다.

 

一時の、本能の滿足、情欲に沈湎して自らを慰めていました。
일시적인, 본능의 만족, 정욕으로 술에 절어서 아주 헤어나지 못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冬の館、夏の館、春の館、秋の館には、それぞれ、ゴ―パ、スバトラ、マノダラ―などの側室が常に控えていて、シッタルダ―に尽くしてくれのでした。
겨울의 저택, 여름의 저택, 봄의 저택, 가을의 저택에는, 저마다, 고파(瞿波), 스바트라, 마노다라(摩奴陀羅) 등의 측실(첩)이 항상 대기하고 있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헌신적으로 힘써 주는 것이었습니다.

 

十七歲の年に、デヴダハ・ヴャ―ストの城主、スクラ・プタ―の娘、ヤショダラ姬を正妻に迎え、城內においては父王を始の義母のパジャパティ―も、結婚すれば大丈夫と 安心していたようでした。
17세의 해에, 데바다하・바스투(천비성 天臂城)의 성주, 스쿠라・푸타(善覺王, 선각왕)의 딸,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 아가씨를 정실로 맞이하여, 성안에 있어서는 부왕을 비로한 의붓어머니인 파자파티(Pajapati)도, 결혼하면 걱정이 없고 안심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ヤショダラは、義母の姪であり、氣立てもやさしい女性でした。父王は、正妻を迎えればもっと王子としての責任を感じるであろう、早く王位も讓りたいと思っていたようです。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는, 의붓어머니의 조카이며, 심지가 고운 여성이었습니다.  부왕은, 정실을 맞이하면 훨씬 왕자로서의 책임을 느낄 것이다, 조속히 왕위도 양위하고 싶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しかし、義母の考えは違っていました。氣むずかしいシッタルダ―より、實子のナンダを後繼者として望んでいたのです。
하지만, 의붓어머니의 생각은 다르고 있었습니다.  신경질적인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보다, 친아들인 난다(Nanda, 難陀)를 후계자로 삼고자 희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父王が四十九歲、母が四十五歲の、年をとってからの子だっただけに、父王は、シッタルダ―を王位につけることに大分焦りを持っていたのです。
부왕이 49세, 어머니가 45세의, 나이가 들어서 낳았기 때문에, 부왕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왕위를 잇는 것에 상당히 조바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その時代のことを思い出すとき、あまりにも不調和だったその想念と行爲の多さに、どれから反省の絲口をばぐして良いのか、混亂す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 시대의 일을 상기할 때, 너무나도 부조화했던 그 상념과 행위의 대부분을, 어느 것부터 반성의 실마리를 잡으면 좋을까? 혼란되는 것이었습니다.

 

外界で見るものに對しては憐れみを持ち、自分の生活においては自我我欲の面が多かった、そのことを考えるからです。特に、正妻や側室に對する行動は、相手の感情を無視したものがあり、自己滿足以外の何物でもなかったからです。
외계에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연민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는 자아아욕의 면이 많았다, 그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실이나 측실(첩)에 대한 행동은, 상대의 감정을 무시한 것이 있고, 자기만족 이외의 무엇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氣を遣う周圍の者達には冷たく、心の中に生じる人生の淋しさ、はかなさを無常に思い、常に他人の心に暗い響を投けかける。自分以外の人々の考える餘裕がなかったとはいえ、あまりにも勝手氣ままな生活行爲に、正しい判斷を欠いていたことを思ったからでした。
걱정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차갑고, 마음속에 생기는 인생의 쓸쓸함, 허무함을 무상하게 생각하고, 항상 타인의 마음에 어두운 영향을 끼친다.  자기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고,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생활 행위로, 올바른 판단을 소홀히 하고 있던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ヤショダラを始めとする側室達の、相互の精神的な葛藤、それもすべて自分が蒔いた種から起こったことであり、シッタルダ―は、その犯した罪を、一人一人に、心から詫び、再び夜の大空の星を仰ぎながら、神に許しを乞うのでした。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를 시작으로 하는 측실(첩)들의, 상호 정신적인 갈등, 그것도 모두 자신이 심은 씨앗에서 일어난 것이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 저지른 죄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다시 밤의 너른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신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動物的な行爲、權力を傘にしてのわがままで人々に与えた大きな心の傷、それを、今さらのように恥じ入るのでした。
동물적인 행위, 권력을 우산으로 해서 제멋대로 사람들에게 끼친 큰 마음의 상처, 그것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매우 부끄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いつの日か、それらの人々に、直接詫びる日もこよう──。
── 언젠가, 그러한 사람들에게, 직접, 사죄할 날도 올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反省の過剩を自らいましめ、次の冥想的反省の境に入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반성의 과잉을 스스로 잡도리하고, 다음 명상적 반성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城を出ようと決心したときも、義母やナンダのことを考えると、複雜な氣持になり、何か割り切れない淋しさがあった。父王の後繼者と定まっていても、義母や義弟が仲良く父王の部屋で話し合あっていると、心の中にわだかまりを作り、捨て鉢な心になってしまった。
──성(城)을 나오리라고 결심했을 때, 의붓어머니나 난다(Nanda, 難陀)의 일을 생각하면, 복잡한 기분이 되어, 뭔가 석연하지 않은 쓸쓸함이 있었다.  부왕의 후계자로 정해져 있다고 해도, 의붓어머니나 의제(아버지나 어머니가 서로 다른 아우)가 사이 좋게 부왕의 방에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마음속에 꺼림직한 감정을 만들어, 자포자기한 마음이 되어 버렸다. 


自分の心や行ないをかえりみないで、義母達の團らんをこわそうとする心······。
자신의 마음이나 행위를 뒤돌아보지 않고, 의붓어머니들의 단란을 깨뜨리려고 하는 마음······。

 

醜い自分の姿······。自己保存の憐れな姿しか心の中に映らないのである。王子としてなすべきにことを怠り、義弟に對する嫉みの心のみが强かった──。
추악한 자신의 모습······。자기보존의 가여운 모습밖에 마음속에 비치지 않는 것이다.  왕자로서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고, 의제(아버지가 어머니가 서로 다른 아우)에 대한 질투의 마음만이 강했다 ──。
 
それを今、正しい心の物差して判斷すれば、いかに愚かしい心の狀態であったことが、とシッタルダ―は反省の中で赤面するのでした。
그것을 지금, 올바른 마음의 척도로서 판단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의 상태였던 것인가,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반성하는 가운데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습니다.

 

父王や義母の愛情を踏みにじって、子供のように駄々をこねてきた自分が恥ずかしい。シッタルダ―は、ウルヴェラの森からは遠い東北東の空の下になるカピラ・ヴャ―ストの方向に向かい、心からその誤りを詫びるのでした。
부왕이나 의붓어머니의 애정을 짓밟으며, 아이처럼 떼를 써 왔던 자신이 부끄럽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우루벨라(Uruvela) 숲에서는 머나먼 동북동의 하늘 아래가 되는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방향으로 향해서, 진심으로 그 잘못을 사죄하는 것이었습니다.

 

──他人の心の中を無視した。增上慢をお許し下さい──。
── 타인의 마음속을 무시했다.  증상만(오만)을 용서해 주십시오──。

 

と天の神に、大きな誤ちへの許しを乞うのでした。そして、想念と行爲との相違の大きな矛盾を悟るのでした。
라고 하늘의 신에게, 큰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념과 행위와의 서로 다름의 큰 모순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不調和な過去の行爲の數々、弱い自分の姿が走馬燈のように、シッタルダ―の腦裡に映ります。
부조화한 과거의 행위의 거듭, 약한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뇌리에 비칩니다.

 

──他人の感情を無視した行爲は許されるものではない。人間はみな平等であり、自己の欲望を滿たすために他人を犧牲に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 타인의 감정을 무시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자기의 욕망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 타인을 희생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特に愛慾は、大きく心に單食っていた。肉體的な五官から入る欲望も、心の中にある本能と感情の在り方を正せば、ただ一時の快樂にすぎないもの、ということに氣がついたものを······。
특히 애욕은, 크게 마음을 좀먹고 있었다.  육체적인 오관에서 들어오는 욕망도, 마음속에 있는 본능과 감정의 본연의 모습을 바로잡으면, 단지 한 때의 쾌락에 지나지 않는 것, 이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을 ······。

 

足ることを忘れて、他のものに心を移す欲望は、かえって苦しみを作り出すことになる。
만족함을 잊고, 다른 것에 마음을 옮기는 욕망은, 도리어 괴로움을 만들어 내게 된다.

 

押えることでなく、關わり合わないことが大切であった······心が燃えていて、正しい判斷ができるとはいえないのだ。理性を失ったそこにあるものは、本能のままの動物的行爲にすぎないものである。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마음이 불타고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성을 잃어버린 거기에 있는 것은, 본능 그대로인 동물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たとえ一時の欲望を滿たしても、殘した苦しみはつきまとい、ひとつ間違えば、憎しみの心を相手に植えつけることになる。
설령 일시적인 욕망을 가득 채웠다 하더라도, 남겨진 괴로움은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자칫 잘못하면, 증오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심어주게 된다.

 

獨占慾、安穩逸樂、自己陶醉、虛僞、苦惱、それらは、心の曇りを作り、大きな歪みの原因となる。
독점욕, 안은일락, 자아도취, 허위, 고뇌, 그것들은, 마음의 흐림을 만들고, 크나큰 비뚤어짐의 원인이 된다.

 

心の中で異性との行爲を想像しても、姦淫になる。想念はものを現象化するからだ。そしてそのことは苦しみをまた作る。
마음속에서 이성과의 행위를 상상해도, 간음이 된다.  상념은 사물을 현상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괴로움을 또한 만든다.

 

人間は、正しい心の基準にのっとり、自己を僞ることのない生活をすること、これが大切だ、ということだ。このくらいなら良いたろう、といった不確定な行爲は愼しま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ある。
인간은, 올바른 마음의 기준에 따라서, 자기를 속이는 일이 없는 생활를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라고 하는 일이다.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다, 라고 말한 불확정한 행위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思慮深くなること。これを失ってはいけないのである──。
사려가 깊어 지는 것.  이것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錆びついた、鐵の錆びをとり除くことによって、地肌はでてくるが、やはりそれはもとの形ではなく、錆ひがついた分だけ、鐵の成分と酸素とが化合して滅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몹시 녹이 쓴, 철의 녹을 제거해 버리는 것의 의해서, 살갗은 밀려 나오지만, 역시 그것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몹시 녹이 쓴 부분을 나눌 뿐, 철의 성분과 산소가 화합해서 없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誤りを犯した暗い想念は、これと同じように、人間の意識の中に殘り、修正することによって訂正はされるが、全部消え去るということはないのです。
잘못을 범한 어두운 상념은, 이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 속에 남고, 수정하는 것에 의해서 정정은 되지만, 전부 사라진다고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人間は、この誤りをとおして、より豊かな心を作り出すための踏み台とし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しょう。
인간은, 이 잘못을 통해서, 보다 풍성한 마음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발판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일인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自ら作り出した心の曇りをとり除き、すっかり正しくなった見解に、自信を深め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스스로 만들어 낸 마음의 흐림을 없애고, 완전히 올바르게 된 견해로, 자신(自信)을 굳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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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在の世界か──淡い黃金色の心の世界をかい間見る
실재의 세계──연한 황금색의 마음의 세계를 슬쩍 엿보다

 

三日目の朝が訪れました。
3일째의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昨夜は、一昨夜より心が落ちついたせいが、ぐっすりと眠れ、シッタルダ―の心身は快適です。
어젯밤은, 그저께 밤보다 마음이 안정된 탓인지, 푹 자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과 몸은 쾌적합니다.

 

小鳥や小鹿達の多くは食物を求えに行ったようです。太陽は、すっかりと顔を出し、ウルヴェラの森には、その慈愛の光がさんさんと降りそそいでいます。
작은 새랑 어린 사슴들의 대부분은 음식물을 구하려 간 모양입니다. 
태양은, 완전히 얼굴을 내밀고, 우루벨라(Uruvela) 숲에는, 그 자애의 햇살이 찬찬히 내리쬐고 있습니다. 

 

マンゴの味が格別においしい。きびしい肉體行の生活のせいか、シッタルダ―の髮の毛は、石灰をまぶしたように白々となっています。胡麻や木の實などを食していたため、營養不良になっているのです。
망고의 맛이 각별히 맛있다.  혹독한 육체수행의 생활 탓인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머리카락은, 석회를 바른 듯이 희읍스름하게 되어 있습니다.  호마랑 나무의 열매 등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영양불량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眼はくぼみ、身體は日燒けして、昔の面影はすっかり消えてしまったが、水面に映っている今の顔は、二日前とは違っていることに氣がつくのでした。
눈은 쑥 들어가고, 신체는 햇볕에 살갗이 그을고, 옛모습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지만, 수면에 비치고 있는 지금의 얼굴은, 이틀 전과는 달라져 있는 것에 생각이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水浴をしてみても、足腰がしっかりしたような感じです。あばら骨は出ているが、血色は良くなったようです。
수욕을 해 보더라도, 하반신이 튼튼해진 듯한 느낌입니다.  갈비뼈는 나와 있지만, 혈색은 좋아진 모양입니다.

 

牛乳やマンゴも、シッタルダ―の血と肉になったのでしょう。植物が、その生命を供養してくれたお蔭です。シッタルダ―は、その植物に對しても感謝するのでした。
우유랑 망고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피와 살이 되었던 것입니다.  식물이, 그 생명을 공양해 준 덕분입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 식물(植物)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たとえ植物でも生命は嚴然として存在しているのですし、それに報いることは、無駄にしないこと、それが報恩といえましょう。
비록 식물이라고 해도 생명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에 보답하는 일은, 헛되이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보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大自然を友として、自由な心で反省を始めていたが、六年あまりも苦樂をととにしたコスタニヤ―達のことを思うと、やはり氣にかか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대자연을 벗 삼아, 자유로운 마음으로 반성을 시작하고 있었지만, 6년 너무나도 고락을 함께 한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들의 일을 생각하자,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彼ら五人はどこに消え、今、どうしているのだろうか。相變わらず、頑固な肉體修行に勵んでいるのであろうか。自分が飮んだ一杯の牛乳から別れ別れになった友達······。
──그들 다섯 명은 어디로 없어지고,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서로 변함없이, 완고한 육체수행에 힘쓰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먹은 한 잔의 우유 때문에 뿔뿔이 헤어지게 된 친구들······。

 

シッタルダ―は、今は食べるものは食べ、休むときには休み、寢るときは寢てい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지금은 먹을 것은 먹고, 쉴 때에는 쉬고, 잘 때는 잠자고 있습니다.

 

──悟るまで死ねないという心も、生臭いものは一切口にしないという心も、さらりと捨ててしまった。そして、生と死の想いを斷じてみると、實に氣樂で、氣分は爽快だった──。シッタルダ―は、とらわれることから離れた人間の心が、これほどゆったりと安らぎのあるものとは、つい、二、三日前まで考えてみてもしませんでした。
── 깨달을 때까지 죽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도, 비린내가 나는 것은 일체 입에 대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도, 말끔히 털어내어 버렸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생각을 끊어 보니, 참으로 홀가분하고, 기분은 상쾌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얽매인 것에서 떠난 인간의 마음의, 이만큼 넉넉하고 편안함이 있는 것이라고는, 바로, 2, 3일 전까지 생각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攝取するものは攝取している、坐禪一筋の肉體行と雲泥の相違です。シッタルダ―は、できればコスタニヤ―達にもこの氣持を語って聞かせたいと思いました。
섭취할 것은 섭취하고 있다, 좌선에만 전념하는 육체수행과 하늘과 땅 차이로 서로 다릅니다.  할 수 있다면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들에게도 이 기분을 말을 해서 들려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いつか、マハ―・ナマンがいった、
언젠가, 마하・나만(Mahaa-naaman, 摩訶摩男)이 말했다,

 

「コ―ダマ樣、肉體を亡くしてまで悟る必要があるなら人間はなぜ生まれてくるのでしょうか。生まれてきたのは間違いではないでしょうか」
「고다마(Gotama, 瞿曇)님, 육체를 죽을 때까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면 인간은 왜 태어나오는 것일까요?  태어나온 것은 잘못이 아닌 것일까요?」

 

この問いに對して、コ―ダマ自身もはっきりと答えられませんでした。それは違うと思いながら、ではどう違うかとなると、明解さを欠いていたのです。しかし今だったら、
이 질문에 대해서, 고다마(Gotama, 瞿曇) 자신도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럼 어떻게 다른지가 되면, 확실하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肉體には肉體の役割があり、その役割をなおざりにしてまでも、なお悟りがあるとするのは、明らかに邪道であり、觀念の遊戱にすぎない。悟りという心の問題は、建康な肉體と健全な心にある。病弱で、意識が不明瞭な者が、どうして神佛の心に接することができようか。
「육체에는 육체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소홀히 하더라도, 역시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사도(邪道, 올바르지 못한 길이나 사악한 도리)이며,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마음의 문제는,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마음에 있다.  병약하며, 의식이 불명료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신불의 마음에 닿을 수가 있느냐?

 

大自然の計らいを見よ、太陽の熱と光は、常に建康ではないか。わめくことも、怒ることもない。神佛の心は、あの太陽のように、健全な心と肉體にあるはずだ。
대자연의 처리(조처)를 보라, 태양의 열과 빛은, 항상 건강하지 않는가?  큰소리로 떠드는 일도, 화를 내는 일도 없다, 신불의 마음은, 저 태양처럼, 건전한 마음과 육체에 있는 것이다. 

 

心を廣く、大きく、開くためにはまず健全な肉體が必要であり、それは欠くことのできない絶對の條件といってもいい。悟りの大きな前提は、精神と肉體の調和にある──」
마음을 넓고, 크게, 열기 위해서는 우선 건전한 육체가 필요하며, 그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절대 조건이라고 말해도 좋다.  깨달음의 큰 전제는, 정신과 육체의 조화에 있다 ──」

 

といえたことでしょう。
라고 말했을 것이다. 

 

マハ―・ナマンは、肉體行に對して疑問を抱きながらも、一口の牛乳で、シッタルダ―から離れ、彼らと行をともにしてしまいました
마하・나만(Mahaa-naaman, 摩訶摩男)은, 육체수행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면서도, 한 모금의 우유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로부터 떠나, 그들과 수행을 함께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シッタルダ―は、今さら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が、中道の心について、彼らともう少し語し合えば良かった、と思う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도 없지만, 중도의 마음에 대해서, 그들과 좀더 이야기하면 좋았을 걸,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ネランジャラ―の川岸の牧草の上で、兩の手を枕にしたシッタルダ―は、大空を眺めながらすぎた日の、きびしかった肉體行を思い出しながら、いろいろと考えるのでした。
네란쟈라(Nairanjana, 尼連禪河) 강변의 목초 위에서, 양 손으로 팔베개를 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너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난 날, 혹독했던 육체수행을 상기하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雲ひとつない大空。あのように澄み切った廣い心になれば、太陽の光がさんさんと自然に降りそそぐように、自分の心の中にも神の光明が降りそそぐだろう──。
── 구름 한 점 없는 너른 하늘.  저와 같이 티없이 넓은 마음이 되면, 태양의 빛이 찬찬히 자연히 내리쬐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속에도 신의 광명이 내리쬘 것이다 ──。

 

心の曇りをとり除く反省こそ、重要であることを、シッタルダ―はしっかりと心に銘記するのでした。
마음의 흐림(거리낌)을 없애는 반성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확실히 마음 속 깊이 새기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草むらの中から、何か足音がします。ふっと右を見ると、いつもの小鹿が口をもぐもぐさせながら近づいてきます。シッタルダ―が知らん顔をしていると、小鹿はそばまできて、同じように草むらに身體を橫たえ、安心し切ったくりっとしたやさしい眼で、シッタルダ―をみつめました。
풀숲 안에서, 뭔가 발소리가 납니다.  문득 오른쪽을 보니, 항상 어린 사슴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다가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아는 채를 하자, 어린 사슴은 곁에까지 와서, 똑같이 풀숲에 신체를 눕히고, 완전히 안심한 상냥한 얼굴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敏感な小鹿が恐れもなく、いつもそばによってくるということは、危害を加えられないことを動物本能で知っているのでしょう。
민감한 어린 사슴이 두려움도 없이, 항상 곁으로 온다고 하는 것은,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을 동물본능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十代のとき、クシャトリヤ達に連れられて狩をした當時のことを思い出し、無殘に動物を殺した仲間達のことを、無慈悲な行爲として、シッタルダ―は小鹿に詫びるのでした。
10대 당시, 크샤트리야(ksatriya)들을 데리고 사냥을 했던 당시의 일을 생각해 내고, 남김없이 동물을 죽인 동료들의 일을, 무자비한 행위로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어린 사슴에게 사과하는 것이었습니다.

 

自然に生かされている動物達にも、彼らには彼らなりの環境の中で、その目的や使命はあるのです。そうして、自然界における體驗をしているのです。
자연에 되살아나고 있는 동물들에게도,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환경 속에서, 그 목적이나 사명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계에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たとえ話は通じなくとも、人間とこのように親しくなる以上、心が通じ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でしょう。こうように、動物達ですら人間と仲良く共存できるのに、なぜ人間は、互いに通じる言葉がありながら、意志が通じないのだろうかと、シッタルダ―は悲しく思うのでした。
비록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인간과 이와 같이 친하게 되는 이상, 마음이 통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물들조차도 인간과 사이 좋게 공존할 수 있는데, 왜 인간은, 서로 통하는 말이 있으면서, 의지(뜻)가 통하지 않는 것일까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슬프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同じシャキャ・プトラ―(釋迦族)であるデヴダハ・ヴャ―ストのコリヤ・プトラ―(コリヤ族)ですら、領土問題となると、互いに反目し、ロシニ―河を挾んでクシャトリヤ達が一觸卽發の狀態になったこともしばしばで、マハ―・コ―サラ・ラジャンの仲裁によって仲なおりをするという、信賴できない社會狀勢だったのです。
같은 샤카・푸트라(석가족)인 데바다하・바스투(天臂城, 천비성)의 코리야・푸트라(拘利族, 구리족)조차, 영토문제가 되면, 서로 반목하고, 로시니강을 끼고 크샤트리야(ksatriya)들이 일촉즉발의 상태가 되었던 일도 여러 차례이며, 마하・코살라・라잔(코살라 국왕)의 중재에 의해서 화해를 한다고 하는, 신뢰할 수 없는 사회 정세였던 것입니다.

 

かりそめにも、シッタルダ―の生母やパジャパティ―の實家です。それですらこのような兄弟喧嘩は珍しくないのでした。
적어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생모나 파자파티(Pajapati)가 태어난 집입니다.  그것 조차 이러한 형제싸움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ハッチ―國やカシ―國のように、文明の發達した、バラモン敎の盛んな國でも、他國の間者達によってかき回され、混亂を引き起こすことがあったのです。
핫치국이나 카시국처럼, 문명의 발달한, 바라문교가 융성한 나라라 할지라도, 타국의 첩자들에 의해서 혼란을 야기시켜,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コ―サラ國の屬國であるカピラ・ヴャ―ストは、コ―サラ國全體、またマガダ國やカシ―國などに比較すれば、それは全く小さいところでした。
코살라국의 속국인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는, 코살라국 전체, 또한 마가다(Magádha, 摩揭陀) 국(國)이나 카시국 등에 비교하면, 그것은 완전히 작은 곳이었습니다.

 

カピラ・ヴャ―ストは、コ―サラ國の首府、シラヴャスティ―からは六十八ヨジャナ―(一ヨジャナ―は、ラジャン<王>の步く一日の距離)、ヴェサリ―の都からは四十九ヨジャナ―、マガダ國のラジャ・グリヤの都からは六十二ヨジャナ―の距離にあって、ヒマラヤの麓に位置していました。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는, 코살라국의 수도, 시라바스티(Sravasti, 舎衛城)로부터는 68요자나(1 요자나는, 라잔(왕)의 걷는 하루의 거리), 베살리의 수도로부터는 49요자나, 마가가국의 라자・그리야(Rajagriha)의 도시로부터는 62요자나의 거리에 있고, 히말라야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太陽が東から出て西に沈み、再び東から出るときの一周期が、一日と定められています。シャキャ・プトラ―の人口は約百萬人くらいで、國の周圍は二十ヨジャナ―ほどの廣さでした。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로 지며, 다시 동에서 뜰 때의 일주기가, 하루로 정해져 있습니다.  샤캬・푸트라(석가족)의 인구는 약 100만명 정도이며, 나라의 주위는 20요자나 정도의 넓이였습니다.

 

父王の兄弟は五人、二男はシュクロ―・ダナ―、三男はドウロ―・ダナ―、四男はアムリト―・ダナ―と呼ばれており、長女をアムリタと呼んでいました。
부왕의 형제는 다섯 명, 둘째 아들은 슈쿠로・다나, 셋째 아들은 도우로・다나, 넷째 아들은은 아무리토・다나라고 불리고 있고, 맏딸(長女)를 아무리타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祖父は、シンハハヌ・ラジャンと呼ばれた人でしたが、シッタルダ―の生まれたときにはすでにこの世の人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조부는, 심하하누・라잔(Simhahanu, 사자협왕, 獅子頰王)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シャキャ族發祥は、大ポ―タラ國のラジャン・イクシュヴャ―クの子孫で、第二王姬の希望によって、二人の子供とともにカピラ・ヴャ―ストを作りましたが、父王を招待したときに、シャキ―、といってほめられたため、その子供達はシャキャという種族名を名乘るようになったようです。 
샤캬족 발상은, 대 보타라국의 라잔(왕)・이크슈바쿠의 자손이며, 제2왕비의 희망에 의해서, 두 명의 자식과 함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를 만들었지만, 부왕을 초대했을 때에, 샤키, 라고 말하며 칭찬받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은 샤캬라고 하는 종족명을 자칭하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シャキャとは、立派とか、良くできたとかいう當時の言葉であったようです。
샤캬란, 훌륭하다든가, 잘 되었다 라든가 하는 당시의 말이었던 모양입니다.

 

このように、シッタルダ―は、父王から肉體先祖のいろいろを傳說として聞いていたため、先祖のことについては良く解っていました。
이와 같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부왕으로부터 육체선조의 여러 가지를 전설로 해서 듣고 있었기 때문에, 선조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スット・ダナ―王の手足となって政治を行なっていた、マシェルもシャキャ・プトラ―でした。外務をやっていたスブティ―は、富豪のヴェシャ―(長者)で、コ―サラ國の出身です。この人の母はシャキャ・プトラ―で、特にスブティ―はカピラ・ヴャ―ストの貿易をとおして他國との接涉を擔當、活躍していたようです。年齡もシッタルダ―の五つ年上ということで、バラモンの敎典には非常に詳しく、忘れられない人です。
숫도・다나왕의 수족이 되어 정치를 행하고 있던, 마셀도 샤갸・푸트라(샤캬족, 석가족)였습니다.  외무를 담당하고 있던 스푸티는, 부호인 베샤(장자)이며, 코살라국 출신입니다.  이 사람의 어머니는 샤캬・푸트라(석가족)이며, 특히 스부티(Subhuuti, 須菩提)는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무역을 통해서 타국과의 교섭을 담당, 활약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연령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5년 연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바라문의 교전(敎典)에는 매우 상세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マシェルが亡くなったあとは、ゴ―セ―が長官として業務を繼ぎましたが、父王の兄弟達も成長し、叔父のシュクロ・ダナ―の子にはナンデイカとバドウリカという兄弟がおり、ドウロ―ダナ―には、ア―ナンダとデ―ヴャダッタという兄弟の子がおりました。三男の叔父にもアニルッタとマハ―ナマという兄弟の子がおり、いずれもシッタルダ―の從兄弟として、子供のときには樂しく遊んだ仲間でした。
마셀이 죽은 후에는, 고세가 장관으로서 업무를 이었지만, 부왕의 형제들도 성장하고, 숙부인 슈쿠로・다나의 아들로는 난데이카와 바도우리카라고 하는 형제가 있고, 도우로・다나에게는, 아난다(Aananda, 阿難陀)와 데바닷타(Devadatta, 提婆達多)라고 하는 형제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셋째 아들의 숙부에게도 아니룻타(Aniruddha, 阿那律)와
마하나마(Mahanama, 摩訶男)라고 하는 형제의 아들이 있고, 어느 사람이나 모두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종형제로서, 어릴 적에는 즐겁게 놀았던 동료였습니다.

 

叔母のアムリタも、テイショヤ―という子がおり、父はカピラのクシャトリヤでした。
숙모인 아무리타도, 티이쇼야라고 하는 아들이 있고, 아버지는 카필라(Kapila, 迦毘羅)의 크샤트리야(무사)였습니다.

 

──從兄弟達も、自分と同じように、人生の苦惱を味おわっているだろうか。おそらく彼らは無關心でいるだろうが、それで良いのだろうか──。
──종형제(사촌 관계인 형과 아우)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고뇌를 맛보고 있을 것인가?  잠시 그들은 무관심하고 있을 것이지만, 그래서 괜찮을 것인가? ──。

 

と大空を眺めながら、心の中で、カピラ・ヴャ―ストのことに思いをめぐらせるのでした。
라고 너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일에 생각을 돌이켜보는 것이었습니다.

 

大樹の蔭もいつか小さくなり、足もとまで直射日光が当たり出しました。シッタルダ―は腰を上けると、ピパラ―の修行場に歸るのでした。
태양의 그늘도 언젠가 작아지고, 발치까지 직사광선이 닿고 있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수행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また、一瞬一瞬の自分の心の動きを、正しい片よりのない判斷で、子供の頃のことを思い出し、不調和なできごとを探し續けるのでした。
그리고 또한, 한 순간 한 순간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올바른 치우침이 없는 판단으로, 어린 시절의 일을 생각해 내고, 부조화한 사건(일어난 일)을 계속 찾는 것이었습니다.

 

──誰一人とて訪れてくる者のない、このウルヴェラの森。友は小鹿と小鳥達だ。だか、彼らは決して自分を欺くようなことはしない。
──누구 한 사람도 찾아 오는 사람이 없는, 이 우루베라(Uruvela) 숲, 친구는 어린 사슴과 작은 새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을 속이려 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彼らは、自らに足ることを知っている。自分に必要な食糧が腹の中を滿たしていれば、それで滿足しているのである。
그들은, 스스로에게 만족함을 알고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식량이 뱃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そして小鳥達は、ピパラ―の枝から枝を渡り飛んで、樂しそうに每日を送っている。その彼らは、全く苦しみを知らないように見える。
그리고 작은 새들은, 피팔라(Pippala)  가지에서 가지를 건너 날면서, 즐겁게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전혀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しかし、人間はどうだろうか。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것일까?

 

おのれの欲望を滿たすためには、同じ人間の生命までも奪うことをする。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인간의 생명까지도 빼앗는 짓을 한다.

 

欲望は、とどまることを知らない。
욕망은, 멈출 줄을 모른다.

 

なぜなのだろうか。
왜 인 것일까?

 

自分が滿たされていても、肉體子孫のためにといって他に勢力を伸ばして行く。
자신이 충족되어도, 육체자손을 위한다고 하며 다른 세력을 늘려 간다.

 

すべてのことを成しとげることができる人間が、なぜ欲望の塊りのような、足ることを忘れ去った萬物の靈長になってしまったのだろうか。
모든 것을 성취(달성)하는 일이 가능한 인간이, 왜 욕망의 덩어리와 같은, 만족함을 완전히 잊어버린 만물의 영장이 되어 버린 것일까?

 

この世を去るときには、何ひとつ持ち歸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知りながら、死の床まで執着から離れることのできない者達が何と多いことだろう──。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무엇 하나 가지고 돌아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알면서, 죽음의 잠자리까지 집착에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

 

社會の混亂はここにある、ということを、シッタルダ―は悟るのでした。
사회의 혼란은 여기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不平等の世界。人間の作り出した不調和な考え方。貧富の差。武力や權力で弱い者達を支配する强者という者達。自分達の榮華のためには大衆を犧牲にしている。
──불평등한 세계.  인간의 만들어 낸 부조화한 사고방식.  빈부의 차. 무력이나 권력으로 약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강자라고 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영화를 위해서는 대중을 희생으로 삼고 있다. 

 

布施の心がないのだ。奉仕の心が失われているのだ。
보시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봉사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象の群れでさえ、その集團は、互いに助け合って生存している。猿もきびしい掟によって、ボスになれば、一族を守るために自らの身を犧牲にすることもする。
코끼리의 무리에서 조차, 그 집단은, 서로가 서로 돕고 생존하고 있다.  원숭이도 혹독한 규칙(법도)에 의해서, 우두머리(boss)가 되면, 일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일도 한다.

 

人間の指導者は、自己保存が强すぎ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인간의 지도자는, 자기보존이 너무 강한 것은 아닌 것일까?

 

むしろ、知惠の活用を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
오히려, 지혜(知惠)의 활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指導者は、大衆のために不平等な環境を作るべきではないし、自ら大衆の範たるべきである。おのれに甘く、他人にのみきびしいような指導者は、もはや大衆の敵であり、僞善者という以外にないだろう──。
지도자는, 대중을 위한 불평등한 환경을 만들어서는 안 되며, 스스로 대중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 자신에게 달콤하고, 타인에게만 혹독하게 하는 지도자는, 이미 대중의 적(敵)이며, 위선자라고 하는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

 

シッタルダ―は、社會の矛盾についても、正しい心の物差しで、混亂の原因を追及して行く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도, 올바른 마음의 척도로, 혼란의 원인을 추급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夕闇はウルヴェラの森を包み、小鳥達もすっかり靜かになり、夜空には、昨日と同じダイヤのような美しい星がきらきらと暗い大地をみつめているようです。
땅거미는 우루벨라(Uruvela) 숲을 감싸고, 작은 새들도 고요해지고, 밤 하늘에는, 어제와 같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반짝 반짝이며 어두운 대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シッタルダ―は、竹の筒を口に当てて、殘り火を焚火を移します。吹くたびに炎は明かるく、ピパラ―の下枝を照らし出してい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죽통의 입구를 열어서, 타다 남은 불을 모닥불을 옮깁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불꽃은 밝아지고, 피팔라(Pippala)의 밑가지를 비추고 있습니다.

 

シッタルダ―は靜かに瞑想に入って行くのでした。瞑想に入ると、外の暗闇と違って、黃金色の丸い太陽は柔らかい光を放ち、シッタルダ―の心の中を照らすのでした。それはまるで眞晝のような明かるさ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조용히 명상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명상에 들어가자, 밖의 어둠과 달리, 황금색의 둥근 태양은 부드러운 빛을 발하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을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낮과 같은 밝음입니다.

 

──これが光明なのかも知れない──。
── 이것이 광명인지도 모른다 ──。

 

身體は安らぎ、心も平和です。現實の光と異なる点は、明かるさにふくらみがあり、小さな粒子のような光がシッタルダ―の身體全體に降るようにそそいでいることでした。
신체는 편안하고, 마음도 평화입니다.  현실의 빛과 다른 점은, 밝기에 풍만함이 있고, 작은 입자와 같은 빛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신체 전체로 내려 오듯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眼を開くと、今までのウルヴェラの森とは違った美しい景觀が眼の前に展開されていました。
눈을 뜨자, 지금까지의 우루벨라(Uruvela) 숲과는 다른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전개되어 있었습니다.

 

──澄み切った紺碧の空。植物は若葉の色でスロ―プのある丘一面を、じゅうたんのように敷きつめている。美しい自然だ。色とりどりの小鳥達も飛んでいる。暗闇のウルヴェラなのに、眼前は光明に包まれて、これは全くこの世の風景とは思われない。これこそ、永遠の實在の世界なのかも知れない──。
── 티없이 맑은 검푸른 하늘.  식물은 어린 잎의 색이며 경사진 언덕의 한 면을, 융단처럼 전면에 빈틈없이 깔려 잇다.  아름다운 자연이다.  융단처럼 올긋볼긋한 작은 새들도 날고 있다.  어두운 우루벨라(Uruvela)인데도 불구하고, 눈앞은 광명으로 싸여져, 이것은 완전히 이 세상의 풍경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실재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

 

シッタルダ―は、この實在の世界の光景をしっかりとみつめました。そして、もっと良く知ろうとして、凝視した瞬間に、それは消えて、またもとの暗闇にもどって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 실재의 세계의 광명을 똑똑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자세히 알려고 해서, 응시한 순간에, 그것은 없어지고, 또한 본래의 어둠으로 되돌아왔습니다.

 

しかし、シッタルダ―の胸は、嬉しさで熱くなっていました。たとえ消えたからといって、それはたしかに、ひととき、眼の当たりにした、體驗した光景のひとこまだったのです。
하지만
,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가슴은, 기쁨으로 뜨거워져 있었습니다.  비록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도, 그것은 틀림없이, 잠깐, 눈앞에 있었던, 체험한 광경의 한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今現われた現象は、次元を異なる實在の世界であり、暗闇の世界が現實の姿、つまり明と暗、それは心の內面の在り方によって異なってくるのだ、という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たからです。
지금 나타난 현상은, 차원을 달리한 실재의 세계이며, 어둠의 세계가 현실의 모습, 즉 밝음과 어둠, 그것은 마음의 내면의 본연의 모습에 의해서 달라져 오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明の實在と、暗の現實は、そのまま心の善惡を象徵しており、その善惡を見極めることが、悟りの本質に迫るものである、と發見するのであった。シッタルダ―は、ふるえるほどの喜びが心の中に湧き出るのでした。
밝음의 실재와, 어둠의 현실은, 그대로 마음의 선악을 상징하고 있고, 그 선악을 주시하는 것이, 깨달음의 본질에 다가서는 것이다, 라고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떨릴 정도의 기쁨이 마음속에 솟아나오는 것이었습니다.

 

──太陽は丸く大きい。その熱と光は、萬生萬物に、平等に与えられている。
── 태양은 둥글고 크다.  그 열과 빛은, 만생만물에게, 평등하게 주어지고 있다.

 

黃金色の心の世界を照らしている太陽も、もともと、人間に慈愛の惠みを惜しみなく与えているのだ。
황금색의 마음의 세계를 비추고 있는 태양도, 원래, 인간에게 자애의 은혜를 아낌없이 주고 있는 것이다.

 

その心の太陽が暗くなってしまう原因は、心の不調和な想念と行爲によって曇りが作り出され、光を妨げているということがはっきりと解る──。
그 마음의 태양이 어두워져 버리는 원인은, 마음의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에 의해서 흐림(거리낌)을 만들어 내게 되어, 빛을 막고 있다고 하는 것이 확실히 판명된다 ──。
 
シッタルダ―は、やはり正しい心の行爲が大切なのだと、ここでも思い知らされるのでした。
싯다르다는, 역시 올바른 마음의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라고, 이 점에서도 그랬었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人間の苦しみ、悲しみは、この曇りが作り出しているのだ。
── 인간의 괴로움, 슬픔은, 이 흐림(거리낌)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湖面に映る月は美しい。
호수의 수면(水面)은 아름답다.

 

しかし、一度波紋が畵かれると、その月影は無殘に崩れて行く。
하지만, 한번 파문이 그려지면, 그 달빛(月影)은 무참히 무너져 간다.

 

人間の心もこれと同じように、湖面に映る美しい月影、正しいものは丸く豊かな詩情をたたえているのだが、波紋という心の亂れが生じると、大自然の惠みを、その美しさを失ってしまうのである。
인간의 마음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호수의 수면(水面)에 비치는 아름다운 달의 모습(月影), 올바른 것은 둥글고 풍요로운 시적인 정취(詩情)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지만, 파문이라고 하는 마음의 혼란이 생기면, 대자연의 은혜를, 그 아름다움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また、母親のそばで無邪氣に戱れる小さな子供は愛くるしいもので、苦しみも悲しみもない。
또한, 모친의 곁에서 무사기(無邪氣)하게 장난치는 어린 아이는 사랑스러운 것이며, 괴로움도 슬픔도 없다.

 

※무사기[無邪氣] 조금도 간사하 기(氣)가 없다. = 사심(邪心), 악의(惡意) ← 《일본어사전》
※사기[邪氣]  《국어사전》 = 악의, 악심
1 요사스럽고 나쁜 기운. 2 사람의 몸에 병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외적 요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 3 남을 해치려는 나쁜 심보.

 

しかし、純眞な子供がときとともに成長し、家庭、敎育、習性、友人との交流などという環境の條件によって、次第に自我が芽生え、純眞な心に陰を忍ばせ、曇りを作ってゆく。
하지만, 순진한 아이가 시간이 흐림과 함께 성장하고, 가정, 교육, 습성, 친구와의 교류 등이라고 하는 환경의 조건에 의해서, 차츰 자아(自我)가 싹트고, 순진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숨기고, 흐림(거리낌)을 만들어 간다.

 

やがて、周圍のさまざまな影響によって、自己という意識が確立され、自己保存の念は、心の中に大きな歪みとなってその人間の人格が形成されて行くが、苦しみの原因は、實はこうした自我の眼覺めから始まるのである。
이윽고, 주위의 가지각색의 영향에 의해서, 자기(自己)라고 하는 의식이 확립되어, 자기보존의 생각(念)은, 마음속에 큰 비뚤어짐이 되어 그 인간의 인격이 형성되어 가지만, 괴로움의 원인은, 실은 이러한 자아(自我)가 눈을 뜨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다.

 

自我の眼覺めは、さまざまな波紋を畵く。そして自己保存の道を辿るのだ。
자아의 자각(싹틈)은,
가지각색의 파문을 그린다.  그리고 자기보존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自分の都合の惡いことには、感情的となり、耳ざわりの惡いことには怒りを打ちつけ、良い話を持ってこられると、腰を浮かしてそれに乘ってしまう。

자신의 형편의 나쁜 것에는, 감정적이 되어, 듣기 싫은 것에는 화를 벌컥 내고, 좋은 말을 계속해 주면,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것에 넘어가 버린다.

 

しかし人は、なぜそうなるかということをみつめようとはしない。
하지만 사람은, 왜 그렇게 될까라고 하는 것을 주시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世の混亂の源は、問題の原因を求めないでこうした自己の都合や現象に左右されてしまうからである。
세상의 혼란의 근원은, 문제의 원인을 찾지 않고 이러한 자기의 형편이나 현상에 좌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大自然の色彩もまた、山川草木の調和によって作り出されていることを知るべきだ。
대자연의 색채도 또한, 산천초목의 조화에 의해서 만들어 내어 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人間社會の鬪爭と利己主義、階級制度を作ったものとしても、バラモン種の優越感には多く矛盾が見られるといえる。
인간사회의 투쟁과 이기주의, 계급제도를 만든 것이지만, 바라문(婆羅門) 종(種)의 우월감에는 많은 모순을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生まれてこなければ、このような苦しみを受けないですむものを」
と考えるが、生まれてきた以上は、何らかの目的と使命があるはずだ。
「태어나오지 않으면, 이러한 괴로움을 받지 않을 것을」
이라고 생각하지만, 태어나온 이상은, 무언가의 목적과 사명이 있을 것이다.

 

その目的とは、一体體何だろうか。
그 목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使命とは何なのだろうか。
사명이란 무엇인 것일까?

 

いかなる者も、いつかは年をとり、病いを得て死んで行く。人間は、死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る。
어떠한 사람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병을 얻어 죽어 간다.  인간은, 죽음에서 달아날 수는 없는 것이다.

 

ラジャンも、シュ―ドラも、裸で生まれ、やがて裸のまま死んで行く。
라잔(왕)도, 슈드라(Sudra, 노예)도, 알몸으로 태어나, 이윽고 알몸인 상태로 죽어 간다.

 

そして死ぬときには、地位も、名譽も、財産もすべてこの地上においてゆかなくてはならない。
그리고 죽을 때에는,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모두 이 지상에 두고 나지 않으면 안 된다.

 

だが、それても欲望の火は消えない。
하지만, 그런데도 욕망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執着する心から離れ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だ。
집착하는 마음에서 떠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五官をとおして、感知できる現象の世界は、無常そのものである。無常と知りながら、欲望に滿ち足りることなく、なお人間は惱みを持ち、欲望に飜弄されている。
오관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는 현상의 세계는, 무상(無常) 그 자체이다.  무상하다고 알면서, 욕망에 만족하는 없이, 여전히 인간은 정신적인 괴로움을 가지고, 욕망에 농락당하고 있다.

 

人生は、所詮、苦しみの連續なのである。
인생은, 어차피, 괴로움의 연속인 것이다.

 

苦しみのない人生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現實との妥協が、逃避が、自己滿足のいずれかであろう。
괴로움이 업는 인생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현실과의 타협이, 도피가, 자기만족의 양자 택일일 것이다.

 

「生まれてくることが間違い······」
「태어나오는 것이 잘못이다······」

 

といわれても、太陽が東から出て西に沒するという輪廻の循環は、人間の魂にとっても例外ではないはずである。
라고 말할지라도,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로 진다고 하는 윤회의 순환은, 인간의 영혼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とすれば、欲望を持ち、苦しみを抱いて、一生を終えれば、その苦しみは、くり返すほかないたろう。
라고 하면, 욕망을 가지고, 괴로움을 안고, 일생을 끝마치면, 그 괴로움은, 되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苦しみのくり返しは、人間にとって最大の不幸だといえよう。少なくともこうして、人間として生まれてきたからには、苦しみを抱いたままで死を迎えることは避けたいものだ。
괴로움의 반복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행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렇게 해서, 인간으로서 태어나왔기 때문에는, 괴로움을 안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すべての人が、その望むところは、死を迎えるまでに、その惱みから解放されることであろう。
모든 사람이, 그 바라는 바는,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그 정신적인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일일 것이다.

 

幸せこそ、解脫なのである。
행복이야말로, 해탈인 것이다.

 

その解脫の道とは何であるのか。萬人に共通する解放への道はどんな道であろうか。
그 해탈의 길이란 무엇인 것일까?  만인에게 공통되는 해방으로의 길은 어떠한 길일까?

 

人間は、眼覺めているときは、あれこれ考え惱む。しかし、一度眠ってしまうと、一切が不明になってしまう。
인간은, 잠에서 깨어나 있을 때는,
이것저것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한번 잠들어 버리면, 일체가 불명하게 되어 버린다.

 

耳や鼻、心臟、胃腸、眼覺めているとみと同じように働いているのに、眠ると、何もかも分からなくなる。
귀나 코, 심장, 위장, 잠에서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활동)하고 있는데, 잠이 들면, 어느 것이나 다 알 수 없게 된다.

 

記憶すら消えてしまうだろう。
기억조차 없어져 버릴 것이다.

 

眼が覺めて、始めて昨日のこと、朝の現實を知り、再びあれこれと想い惱みが始まる。
눈을 뜨고, 비로소 어제의 일, 아침의 현실의 알며, 다시 이리저리로 생각하며 괴로움이 시작된다.

 

その苦しみの原因は、肉體以外の心に問題がある。思うこと、考えることの心の作用が、いろいろな苦しみ、惱みを生み出しているのだ。
그 괴로움의 원인은, 육체 이외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  정서적으로 생각(思)하는 것, 지적으로 생각(考)하는 것의 마음의 작용이, 여러 가지 육체적·경제적인 괴로움(苦しみ), 정신적인 괴로움(惱み)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その惱みは、肉體の眼と、社會生活の體驗と、自ら學んだ知識によって、あるものを美と感じ、あるものを醜と見、善と思い惡と斷じているからといえる──。
그 정신적인 괴로움은, 육체의 눈과, 사회생활의 체험과, 스스로 배운 지식에 의해서, 어떤 것을 아름답게 느끼고, 어떤 것을 추하게 보고, 좋다고 생각하고 나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シッタルダ―は、一日目と同じように、〃心〃の問題についてもう一度考えなおしてみたが、正しい物差しこそ、心を豊かにする根本だということが、はっきりと解った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하루째와 마찬가지로, 〃마음(心)〃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만, 올바른 마음의 척도야말로,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근본이다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しかし、二十代の反省にかかって、はたと壁にぶつかってしまいました。その壁とは、カピラに殘した妻や子、老いた父や多くの釋迦族のことを考えたからです。
하지만, 20대의 반성에 접어들어, 갑자기 벽에 부딛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벽이란, 카필라(迦毘羅)에 남겨진 아내와 아들, 늙은 아버지와 많은 석가족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悟るために出家した、そのことに對する、疑問でした。
깨닫기 위해서 출가한, 그 일에 대한, 의문이었다.

 

自分が現在なしている行爲が、自己の魂を、正しく磨く道から外れているように思えたからでした。少なくとも現在のシッタルダ―は、妻子をおいて城を逃げ出し、獨りこうして禪定三昧に浸っているのです。
자신의 현재 하고 있는 행위가, 자기의 영혼을, 올바르게 닦는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어도 현재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처자를 두고 성(城)을 도망쳐서, 홀로 이렇게 선정삼매에 잠겨(빠져) 있는 것입니다.

 

正道の一つである、精進に照らしてみると、自分の今の行爲が正しいかどうか──疑問が殘るのでした。
정도(正道)의 한 가지인, 정진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지금의 행위가 올바른지 어떤지── 의문이 남는 것이었습니다.

 

──それは、生活からの逃避ということにもなるだろう。本來なら、与えられた環境において正道を實踐して、悟りの境地に到達しなくてはならにいはずだ。
──그것은, 생활로부터의 도피이다 라고 하는 것도 될 것이다.  본래라면, 주어진 환경에서 정도(正道)를 실천하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しかしカピラ・ヴャ―ストのような、あらゆる不調和な環境では、それはおそらく不可能なことだった。
하지만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와 같은, 온갖 부조화한 환경에서는, 그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とり巻きの女達や、王子としての地位、他國との關係······考えれば考えるほど、兩極の道を步まねばならなかっただろう。
에워싼 여자들이나, 왕자로서의 지위, 타국과의 관계······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양극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城主の後繼者としては、義弟のナンダもいれば、從兄のバトウリカや、マハ―ナマ達もいる。ラフラ―が成長すれば、それを繼ぐこともできるだろう。
성주의 후계자로서는, 의제(아버지나 어머니가 서로 다른 아우)인 난다(Nanda, 難陀)도 있다면, 종형(사촌 형)인 바도우리카나, 마하 나마(Mahanama, 摩訶男)들도 있다.  라훌라(Raahula, 羅睺羅)가 성장하면, 그것을 계승할 수도 있을 것이다.

 

ヤショダラには、パジャパティがいる。シッタルダ―王子、自分がいなくとも、丸く治まる要件は備えている。
야쇼다라(Yashodara, 耶輸陀羅)에게는, 파쟈자파티(Pajapati)가 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 왕자, 자신(自身)이 없을지라도, 원만하게 다스려질 요건은 갖춰져 있다.

 

父王も義母も、ナンダに王位を繼承させることだろう。しかし、父の希望を退け、出家するときに生まれたラフラ―をおいて出城したこと、ヤショダラを捨てたことはどうなろのか。
부왕도 의붓어머니(義母)도, 난다(Nanda, 難陀)에게 왕위를, 계승시킬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휘망을 물리치고, 출가할 때에 태어난 라훌라((Raahula, 羅睺羅)를 두고 성(城)을 나온 일,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를 버린 일은 어떻게 되는 걸까?

 

正道では、あくまで、親子、夫婦、兄弟などの調和に神理があるのだ。だが、自分は、家庭を捨てて一人でいる。家庭の調和については、全くの無資格であるというしかない。
정도(正道)에는, 어디까지나,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 등의 조화에 신리(神理)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가정을 버린 한 사람이다.  가정의 조화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격이 없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その無資格者の道を選んだのは、誰でもない、自分自身であった。シッタルダ―の悲痛な顔が眼に浮かぶ──。ラフラ―は、父なし子として苦勞しよう──。
그 자격이 없는 사람의 길을 선택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비통한 얼굴이 눈에 떠오른다 ──。 라훌라(Raahula, 羅睺羅)는, 아버지가 없는 자식으로서 고생할 것이다 ──。

 

ただ救いは、ヤショダラとラフラ―のこと以外は、カピラにとっては、自分の出家がマイナスに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小事を捨てて大事に生きる以外にはない。
오직 희망은,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와 라훌라(Raahula, 羅睺羅)의 일 이외는, 카필라(Kapila, 迦毘羅)에 있어서는, 자신의 출가가 마이너스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작은 일을 버리고 큰일이 사는 이외에는 없다.

 

どう考えても、ナンダ―にカピラをゆずることが、國の安泰につながる、という結論に達するのだ──。
어떻게 생각해도, 난다(Nanda, 難陀)에게 카필라(Kapila, 迦毘羅)를 물려주는 일이, 나라의 안태로 연결된다, 라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不甲輩ない、夫として父として、ヤショダラとラフラ―に心から詫び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보람이 없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야쇼다라(Yashodhara, 耶輸陀羅, 耶輸多羅)와 라훌라(Raahula, 羅睺羅)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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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自己追求──梵天に化けてきた惡魔
 자기추구──범천으로 둔갑해 온 악마


こうして、三日目の反省は終わりました。四日目の反省は、外部の混亂と、それに對するカピラ・ヴャ―ストのクシャトリヤ達の鬪爭、不調和な諸問題についての思い出に向くのでした。
이렇게 해서, 3일째의 반성은 끝났습니다.  4일째의 반성은, 외부의 혼란과, 그것에 대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크샤트리야(ksatriya)들의 투쟁, 부조화한 여러 문제에 관해서의 회상(추억)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五日目、シッタルダ―は、きびしい、自己追求への反省をするのでした。
그리고 5일째,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혹독한, 자기추구로의 반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自ら一点の甘さも許さない心境で、心の中の想念と行爲について、しっかりとみつめ、その缺點を修正して行くのでした。
스스로 한 점의 달콤함도 허락하지 않는 심정으로, 마음속의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 똑똑히 바라보며, 그 결점을 수정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やがて、反省のあとで、心の安らぎが訪れます。
이윽고, 반성한 후에, 마음이 평안이 찾아옵니다.

 

同時に、不動の心が、自然と備わってくるのでした。
동시에, 부동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갖추어져 오는 것이었습니다.

 

太陽が沈んでから禪定を續けるシッタルダ―の姿の周圍は、何度目かの暗闇に包まれ、殘り火ような焚火の火が、光となって照らしているだけです。
태양이 지고 나서 선정을 계속하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 모습의 주위는, 몇 번째인가의 어둠에 싸여, 타다 남은 불과 같은 모닥불이 불이, 빛이 되어 비추고 있을 뿐입니다.

 

夜も更けて、森の中は、靜まりかえります。
밤도 깊어지고, 숲 속은, 정적에 잠깁니다.

 

シッタルダ―が、反省の瞑想を解こうとして、現實の自分にもどり、橫になろうとしたそのとき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반성의 명상을 풀려고 해서, 현실의 자신으로 돌아와서, 누우려고 한 그 때였습니다.

 

突然、生暖かい風いその頰をなで、やがて强い風が吹いてきました。
돌연, 미지근한 바람이 그 뺨을 스치며, 이윽고 강한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あれほど靜かであった周圍が、急にざわめき、ピパラ―の葉は風にあおられ、大氣が生き物のように動き出すのでした。同時に、强い異樣な臭みが鼻をつきます。そして、いつの間にか、シッタルダ―の眼の前に、靑く光るバフラマン(梵天)が立っています。
그토록 고요했던 주위가, 급히 시끄러워지며, 피팔라(Pippala, 菩提樹)  잎은 바람에 흔들리며, 대기가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강한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눈앞에, 파랗게 빛나는 브라흐만(범천)이 서 있습니다.

 

バフラマンはシッタルダ―をみつめ、みつめ返すシッタルダ―にいいました。
브라흐만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바라보며, 거듭 바라보는 싯타르타(Siddhrtha, 悉達多)에게 말했습니다.

 

「カピラの王子、シッタルダ―よ、お前は城に歸りなさい。カピラには、父王もお前の母も、愛する妻子も、多くのクシャトリヤ達も待っている。
「카필라(Kapila, 迦毘羅)의 왕자,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여, 당신은 성(城)으로 돌아가시오.  카필라(Kapila, 迦毘羅)에는, 부왕도 당신의 어머니도, 사랑하는 처자식도, 많은 크샤트리야(ksatriya)들도 기다리고 있다.

 

どんな修行をしても、人間は人間、所詮悟ることはでぎないのだ。地位と權力のある者が偉大な人間なのだ。
어떤 수행을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 어차피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 위대한 인간인 것이다.

 

だから、シュ―ドラを自由に使い、多くの女にかしずかれるといった優雅な生活をすることを、神は許しているのだ。
그래서, 슈드라(Sudra)를 자유로이 사용하고, 많은 여자에게 가까이에서 시중을 받는다는 하는 우아한 생활을 하는 것을, 신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お前がいかに自愛深い心を持っても、我欲の塊りのような人々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
당신이 아무리 자애로운 마음을 가져도, 아욕의 덩어리와 같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는 없을 것이다.

 

骨と皮になって修行しても無駄なことだ。
살이 빠지며 수행할지라도 헛일인 것이다.

 

お前が修行を捨てて、城に歸れば、そこには、やがて全ヨジャナ―(全世界)の王としてすごせる優雅な生活が待っている。
당신이 수행을 버리고, 성(城)으로 돌아가면, 그곳에는, 이윽고 전 요자나(전 세계)의 왕으로서 살 수 있는 우아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神は、それを認めている。お前は、そうした生活をするよう、神からその生を与えられたのを忘れたのか。
신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당신은, 그러한 생활을 하도록, 신에게서 그 생명을 주신 것을 잊어버린 것인가?

 

シッタルダ―、生命が輪廻しているのならば、今の原因は來世の結果となり、王としてこの世を去れば、來世も王としての地位が約束されるの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 생명이 윤회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원인은 내세의 결과가 되어, 왕으로서 이 세상을 떠나면, 내세도 왕으로서의 지위가 약속되는 것이다.

 

今のような苦行をしていれば、來世も悟ることなく、また苦しい修行が待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忘れるのだ。
지금과 같은 고행을 하고 있으면, 내세도 깨달을 수 없고, 또한 괴로운 수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お前は、轉生輪廻を信じているが、そんなことはないのだ。お前の生命も、肉體が亡ぶときは、ともに亡びて終るのだ。
당신은, 전생윤회를 믿고 있지만, 그런 것은 없는 것이다.  당신의 생명도, 육체가 죽어 없어질 때는, 함께 없어져서 끝나는 것이다.

 

生きている間だけが人生だ、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だ。
살아 있는 동안만이 인생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お前は、健氣に道を求め、苦しみから解脫しようと一所懸命に努力しているが、無駄な勞苦はしないことだ。天に向かって唾を吐くようなのものだ。
당신은, 씩씩하게 길을 찾으며, 괴로움에서 해탈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쓸데없는 고생은 할 필요 없는 것이다.  하늘을 향해서 침을 뱉는 것과 같은 것이다.

 

苦しんで生きるのも、樂しんで生活して行くのも一生は一生だ。
육체적·경제적으로 괴로워하며 사는 것도, 즐거워하며 생활해 가는 것도 일생은 일생이다.

 

どうせ、同じ一生なら欲望のままに、優雅な生活を選ぶべきだ。
어차피, 같은 일생이라면 욕망 대로, 우아한 생활을 선택해야 한다.

 

幸い、お前はカピラの王子として、將來、全ヨジャナ―の大王になることが約束されている。お前がこのようなみすぼらしい生活をしているとは淋しいことだ。
다행히, 당신은 카필라(Kapila, 迦毘羅)의 왕자로서, 장래, 전 요자나(전 세계)의 대왕이 되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  당신이 이러한 몰골이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함은 쓸쓸한 일이다.

 

修行をやめて、カピラに歸りなさい。
수행을 그만두고, 카필라(Kapila, 迦毘羅)로 돌아가시오.

 

私は、神としてお前を守ることだろう」
나는, 신으로서 당신을 지킬 것이다」

 

バフラマンは、大きな聲でそう語りました。それは、威嚴に滿ちたものでした。
브라흐만은, 큰 소리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엄연히 모자란 데가 없이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一瞬戶感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한 순간 당황했습니다.

 

輪廻とか、苦行、我欲の塊り、そのいうところは、いろいろ筋がとおっていたからです。
윤회라든가, 고행, 아욕의 덩어리, 그가 말하는 바는, 여러 가지 조리(條理)가 맞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리[條理] = 筋  《국어사전》
[명사]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ヴェダ―やウパニシャドやヨギ―・ス―トラの中に書かれている事柄を、その意圖を、平易に、淡々と語るとことをみると、眼の前にいるこの人は、本当の神なのかも知れない、とシッタルダ―は思うのでした。
베다(Veda)나 우파니샤드(Upani)나 요기・수트라(Yogasūtra)의 중에 적혀 있는 사항을, 그 의도를, 평이하게,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 보자,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정말로 신인지도 모른다,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しかし、解せないのは、異樣な臭みです。それは、けものの體臭を感じさせるのです。それに、ゴ―ルド・カラ―とはかけ離れた、靑光りする光も氣になります。安らぎの光明とは思えない、そうシッタルダ―は思い惑うのでした。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상한 냄새입니다. 그것은, 짐승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황금색(Gold Color)과는 동떨어진, 파랗게 빛나는 빛도 마음에 걸립니다.  편안한 광명이란 생각할 수 없는, 그렇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おもいまどう [思い惑う]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헷갈리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갈피를 못 잡다

 

姿は、壁畵や石像などに見るものと同じような感じです。
모습은, 벽화나 석상 등에 보는 것과 마찬가지인 느낌입니다.

 

後光の光の色が氣になりましたが、シッタルダ―は、勇氣を持って疑問を聞く決心をしました。相手の雙眸をみつめままです。
후광이 빛깔이 마음에 걸렸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용기를 가지고 의문을 들을 결심을 했습니다.  상대의 쌍모(양쪽의 두 눈)을 쳐다보는 상태로 입니다. 

 

「あなたは、どなたですか」
「당신은, 누구입니까?」

 

「私はバフラマン」
「나는 브라흐만」

 

大きな聲がはね返ってきます。
큰 소리가 튀어서 되돌아옵니다.

 

「あなたは、今、生命はこの世限り申されましたが」
「당신은, 지금, 생명은 이 세상에 한하고 계십니까?」

 

「そのとおりだ。あの世があるなら、誰にでも見えるはずだ。見えはすまい」
「그대로이다.  저 세상이 있다면, 누구든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겠지」

 

「太陽を始め、大自然の萬生は、すべて輪廻しているが、なぜ人間だけが輪廻しないのか」
「태양을
시작으로, 대자연의 만생은, 모두 윤회하고 있지만, 왜 인간만이 윤회하지 않는 것인가?」

「肉體は、子々孫々に輪廻しているが、生命の輪廻はないのだ。輪廻しているならば、人間は、その過去世を思い出せるはずだ。お前は過去世を思い出せないだろう。それが何よりの證據ではないか。あの世など存在していない。今の世界以外には、世界は存在していないのだ 」
「육체는, 자손 대대로 윤회하고 있지만, 생명의 윤회는 없는 것이다.  윤회하고 있다면, 인간은, 그 과거세를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과거세를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증거가 아닌가?  저 세상 따위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지금의 세계 이외에는, 세계는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あなたはあの世がないといっているが、あなたこそあの世の人ではないか。あなたはとこからきたのだ」
「당신은 저 세상이 없다고 하고 있지만, 당신이야말로 저 세상의 사람이 아닌가?  당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何をいっているのだ」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이냐?」

 

「あなた自體、どこからきたといっているのだ。この地上界の者なら、この世の肉體を持っているだろう」
「당신 자체, 어디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지상계의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육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そ、それは······」
「그, 그것은······」

 

バフラマンは、返答に窮してしまいました。そのとき、バフラマンの姿は、魔王の姿と二重映しのように、變化していました。
브라흐만은, 대답이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브라흐만의 모습은, 마왕의 모습과 이중으로 비치는 것처럼,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相手の正體を見破いったの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상대의 정체를 간파했던 것입니다.

 

異樣な臭みと、論旨の不一致、相手を威壓するような態度に、神とはおよそ緣もゆかりもない惡魔共通の性格を、見てとったのです。
이상한 냄새와, 논지의 불일치, 상대를 위압하는 듯한 태도에, 신과는 대체로 아무 관계도 없는 악마 공통의 성격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お前は、誰だ。本性を現わしなさい!」
「당신은, 누구냐?  본성을 드러내시오!」

 

シッタルダ―は、嚴とした態度で、そういい放ち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엄한 태도로, 그렇게 딱 잘라 말했습니다.

 

バフラマンと名乘る相手は、シッタルダ―の語氣に押されたのか、居丈高だったその態度も、空氣のもれた風船のように急にしぼみ、すっかり魔性の正體を現わしてしまいました。
브라흐만이라고 자칭하는 상대는, 싯다르다가 말하는 기세에 눌린 것인지, 위압적이었던 그 태도도, 공기가 샌 풍선처럼 급히 오그라들고, 완전히 마성(魔性)의 정체를 드러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この森は、わが家も同然、お前達のくる場所ではない。といっとと出て行け! 俺は、魔王だ、魔王だ! お前など悟れるわけがないわ」
「이 숲은, 내 집이나 다름없다, 너희들의 올 장소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떠나라! 나는, 마왕이다, 마왕이다! 너 따위가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そのとき、シッタルダ―は、大きな光に包まれていました。
그 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큰 빛으로 감싸여 있었습니다.

 

「パアピアス・マラ―、お前もかっては人間界で生活したこともあろう。その人生を、怒りと憎しみとおごりと僞りで送り、人を殺すことも平氣であり、地獄の魔王になり下がったのか。憐れな魔王よ、お前の心の中には、慈悲も愛もないのか」
「파아피아스・마라, 당신도 옛날에는 인간계에서 생활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 인생을, 분노와 증오심과 비난과 교만함(방자함)으로 보내며, 남을 죽이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지옥의 마왕으로 전략한 것인가?  가엾은 마왕이여, 당신의 마음속에는, 자비도 사랑도 없는 것인가? 」

 

と、兩手の掌を魔王に向けると同時に、魔王はおそれおののき、シッタルダ―を包む光によって、口を開いたまま語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しまいました。
라고, 양 손바닥을 마왕에게 향함과 동시에, 마왕은 무서워서 벌벌 떨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감싸는 빛에 의해서, 입을 벌린 채로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パアピアス・マラ―よ、私はもはや、王の地位など望んではない。一切の執着から離れたのだ。マラ―よ、お前は、暗い世界の王者であっても、心の中に安らぎなどないはずだ。
「파아피아스・마라여, 나는 이미, 왕의 지위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일체의 집착에서 떠난 것이다.  마라여, 당신은, 어두운 세계의 왕자일지라도, 마음속에 편안함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部下からはいつも裏切られ、權力の座からいつ追われるかも知れない。
부하에게는 항상 배반을 당하고, 권력의 자리에서 언제 쫓겨날지도 모른다.

 

そんな不安な暗黑の世界に住むより、安らぎの平和な世界をなぜ求めないのか。
그런 불안한 암흑의 세계에 사는 것보다, 평안한 평화로운 세계를 왜 찾지 않는 것인가?

 

お前も神の子ではないか。
당신도 신(神)의 자녀가 아닌가?

 

今までの誤りを改め、犯した罪を心から神に詫びることだ」
지금까지의 잘못을 고치고, 저지른 죄를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シッタルダ―がそうさとすと、魔王は再び居丈高になり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수사를 하자, 마왕은 다시 위압적으로 나왔습니다..

 

「何いっているんだ。俺樣はな、上上の上の魔王樣だ。宇宙で一番偉い王なのだ。お前のような者に、屈服する俺樣と思っているのか。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나는 말이야, 최상의 위의 마왕님이다.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왕인 것이다.  너와 같은 자에게, 굴복할 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느냐? 

 

馬鹿者めが! といっととこのウルヴェラから出て行け!······」
멍청아! 라고 하면서 이 우루베라(Uruvela) 숲에서 나가! ······」

 

シッタルダ―に、すっかり見破られたパアピアス・マラ―は、本性むき出しに食ってかかるのでした。
싯타르다에게, 완전히 간파된 파피야스마라는, 본성을 드려내고 덤벼드는 것이었습니다.

 

「パアピアス・マラ―よ、このウルヴェラに執着を持ってはいけない。お前達の世界は、この地上界ではないはずだ。怒る心は、自らを苦しみに落としこむことになるのだ。
「파아피아스・마라여, 이 우루벨라(Uruvela)에 집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너희들의 세계는, 이 지상계가 아닌 것이다.  성내는 마음은, 스스로를 괴로움에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マラ―よ、お前は自分の心に噓がつけないはずだ。
마라여, 당신은 자기의 마음에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お前も神の子ではないか。
당신도 신의 자녀가 아닌가?

 

たとえマハ―・マラ―(大魔王)であっても、特別に太陽の光が輿えられているわけではないだろう。
비록 마야・마라(대마왕)이라고 해도, 특별하게 태양의 빛을 제공받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權力や暴力で支配しようとしても、人の心を支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
권력이나 폭력으로 지배하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人は魔を恐れる。しかし、だから肉體的な行動に制限ができても、心の中の自由を束縛す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
사람은 악마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래서 육체적인 행동에 제한을 할 수 있어도, 마음속의 자유를 속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お前がいくら威張ったところで、自己滿足にしかすぎないし、心の平和にはほど遠いものだ。心の平和が訪れれば、心の曇りは晴れ、光明に包まれて安らぎの境地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るのだ。
당신이 아무리 뽐내 보았자,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고, 마음의 평화에는 너무 먼 것이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면, 마음의 흐림을 맑게 개어, 광명에 감싸여 평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怒りを捨てなさい。嫉みを捨てなさい。そしることをやめなさい。增上慢な心を捨てなさい。
분노를 버리세요.  질투를 버리세요.  비난하는 것을 그만두세요.  증상만(오만)한 마음을 버리세요.

 

今まで犯した罪の許しを、神に詫びることだ。そのとき、お前は救われるだろう」 
지금까지 저지른 죄의 용서를, 신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그 때, 당신은 구제될 것이다」

 

怒るマラ―に、シッタルダ―は人の道をやさしくさとします。神の光におおわれているシッタルダ―マラ―に、マラ―はつけこむ隙を見出せません。しかもシッタルダ―の光によって、また口を開いても、言葉にはならないのでした。
화를 내는 마라에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人道) 쉽게 가르쳐 인도합니다.  신의 빛에 덮혀 있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마라(악마)는 헛점을 이용할 틈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게다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빛에 의해서, 또한 입을 열어도, 말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魔王の頭腦は、いわばこの世の精神分裂のように、筋道の立たない言葉を吐き、得々としているところに特徵がありました。ああいえばこういう、こういえばああいう、庇理屈の羅列なのです。
마왕의 두뇌는, 이를테면 이 세상의 정신분열처럼, 조리가 서지 않는 말을 토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에 특징이 있었습니다.  저렇게 말하면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말하는, 이치에 닿지 않는 시시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言葉を續け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말을 계속합니다.

 

「パアピアス・マラ―よ。お前は、なぜ明かるい天國を嫌うのか。いつも寒い、いもじい世界で、一人で力いんでいても、お前の心は淋しく不安におののいているではないか。
「파아피아스・마라여, 당신은, 왜 밝은 천국을 싫어하는 것인가?  늘 춥고, 배고픈 세계에서, 혼자서 허세를 부리려 봤자, 당신의 마음은 쓸쓸하고 불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은가?

 

そのような虛勢を捨て、權力に對する執着、形だけの强がりを捨てなさい」
그러한 허세를 버리고, 권력에 대한 집착, 모양뿐인 허세를 부림을 버리세요」

 

しかし、パアピアス・マラ―は、シッタルダ―の慈悲の言葉を聞こうともせず、シッタルダ―の坐しているピパラ―の大木の周圍を、マラ―の子分達によって包圍してきます。
하지만, 파아피아스・마라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자비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싯타르다

(Siddhrtha, 悉達多)가 앉아 있는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의 거목(巨木)의 주위를, 마라의 부화들에 의해서 포위해 옵니다.

 

そしてその包圍網を少しずつ縮めてくるのでした。
그리고 그 포위망을 시나브로 축소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色とりどりの彼らの形相は、見るからに恐ろしく、まるでそれは化物の集まりのようでした。シッタルダ―は、坐したままその彼らに調和の光を与えていました。
올긋볼긋한 그들의 얼굴 모습은, 보려고 하니 무섭고, 마치 그것은 가부키(歌舞伎) 무용에서, 같은 배우가 차례차례로 다른 인물로 재빨리 변장하여 추는 것 같았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앉은 채로 그들에 조화의 빛을 주고 있었습니다.

 

ナマ―を始め子分達は、その光にいつの間か金縛りになって、身動きひとつできないばかりか、封印されたように言葉も発することもできませんでした。
마라를 비롯한 부하들은, 그 빛에 어느 사인엔가 쇠줄로 묶은 듯이 단단히 묶이게 되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봉인된 것처럼 말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

 

彼らにすれば、シッタルダ―が悟りを開けば、人々の意識について迷わしている自分達の配下も見つかり、自分達の居所はおろか、生活の場も失ってしまうということです。
그들에게 그렇다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깨달음을 열면,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마음을 헷갈리게 하고 있는 자신들의 부하도 발각되어, 자신들의 살고 있는 곳은 물론, 생활의 장(場)도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だから、悟りを開こうとしているシッタルダ―の修行をやめさせ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그래서, 깨달음을 열려고 하고 있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수행을 그만두게 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人々の心と行ないが、正道にかなえば、それらの人々は光明に滿たされ、惡心を持つ人も少なくなってしまう。そうなれば、彼ら魔王達は、地上界の人々を支配できなくなるということもあるのです。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가, 정도(正道)에 일치시키면, 그러한 사람들은 광명으로 가득 채워져, 악심을 갖는 사람도 적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마왕들은, 지상의 세계의 사람들을 지배할 수 없게 된다고 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そのため、彼らは、必死に反擊を試みようとしているのでした。
그 때문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반격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パアピアス・マラ―とその子分達よ。私のいうことを率直に聞きなさい。
「파아피아스・마라와 그 부하들이여.  내가 말하는 것을 솔직하게 들으세요.

 

お前達も神の子だ。
당신들도 신의 자녀이다.

 

神の子であるのに、生前のお前達は、怒り、そしり、恨みの念が强く、人を愛したことも愛されたこともない。
신의 자녀인데도 불구하고, 생전의 너희들은, 분노, 비난, 원망(원한)의 생각(念)이 강하고, 남을 사랑한 일도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

 

しかしお前達も、自分の子供を育てたことはあるだろう。神の愛も、慈悲も、それと同じだ。
하지만 너희들도, 자신의 자식을 키웠던 적은 있을 것이다.  신의 사랑도, 자비도, 그것과 똑같다.

 

お前達は、みな鬼のように心が荒んでしまったが、それでも神は、お前達を見離すようなことはしないだろう。
너희들은, 모두 귀신처럼 마음이 황폐되어 버렸지만, 그런데도 신은, 너희들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見離す : 버리고 돌보지 않다. 포기하다.

 

自分に噓のいえない、善なる心に、勇氣を持って復(かえ)るのだ。佛性を思い出すのだ。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한 마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다.  불성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私の与えている光は、天國の光だ。神の慈悲から送られてくる、安らぎの光だ。
내가 주고 있는 빛은, 천국의 빛이다.  신의 자비로부터 보내져 오는, 평안의 빛이다.

 

さあ、執着を捨てて、今までの過ちを詫びて、佛性を現わしなさい」
그럼, 집착을 버리고, 지금까지의 과오(過誤)를 사죄하고, 불성을 드러내세요」

 

※불성[佛性] 《일본어/국어사전》
1 仏(ほとけ)の本性(ほんしょう)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본성.
2 あらゆる人(ひと)が本来(ほんらい)持(も)っている仏(ほとけ)となるべき性質(せいしつ)  모든 사람(중생)이 본디 가지고 있는 부처가 될 성질.

 

そういうと、今までシッタルダ―の周圍をおおっていた暗黑の塊りは、まるで氷が砕けるように、光が点じられて行きました。
그렇게 말하자, 지금까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암흑의 덩어리는, 마치 얼음이 부서지듯이, 빛이 켜져 갔습니다.

 

魔王は、最後までがんばっていましたが、所詮、闇は光に抗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
마왕은, 최후까지 버티며 견디고 있었지만, 어차피, 어둠은 빛에 맞설 수는 없었습니다.

 

マラ―の心の中にも、光は入って行いったのです。彼は兩膝を地につけ、シッタルダ―に向かって手を合わせ、合掌するのでした。
마라의 마음속에도, 빛은 들어 갔던 것입니다. 
그는 양 무릎을 땅에 끓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향해서 손을 모우고, 합장하는 것이었습니다.

 

闇は、明かるくなりました。
어둠은, 밝아졌습니다.

 

明かるくなると同時に、彼らの姿は消え、ガヤ・ダナ―の屋根[지붕]は、大きな像の背にように、星明かりの中に浮いてきました。
밝아짐과 동시에,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가야다나의 지붕은, 큰 코끼리의 등처럼, 별빛이 밝음 속에 떠올랐습니다.

 

マラ―といえども、人の子だったのです。
마라(악마)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慈悲の光を知っていたのです。
자비의 빛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慈悲の光に合うと、彼らは手も足も出ないばかりか、內在する神性,佛性が表われて、今までおおっていた暗黑の想念も払い淨められて行ったのでした。
자비의 빛을 만나자, 그들은 꼼짝달싹 못할 뿐만 아니라, 내재하는 신성, 불성이 드러나서, 지금까지 덮고 있던 암흑의 상념도 깨끗하게 사라져 갔던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にとって、勿論マラ―との對決は初めてのことでした。今まで、聞いたことも喋ったこともないパアピアス・マラ―の言葉が、自然と口をついて出てきたことに、戶惑い感じて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있어서, 물론 마라와의 대결은 처음인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은 적도 말한 적도 없는 파아피아스・마라의 말이, 자연히 입을 통해서 나왔던 것에, 당황한 느낌이었습니다.

 

しかし、彼らが消えためと、今の現象と不動のおのれをかえりみると、現在、多くの神々によって自分が護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自覺するのでした。
하지만, 그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의 현상과 부동의 자신을 뒤돌아보면, 현재, 많은 신들에 의해서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の心は、自信に滿ちてき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은,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져 왔습니다.

 

多くの神々に護られているという自覺によって、おそれる何者もないことを知ると、安らぎと自信というものが、心の低から湧き上がってくるのでした。
많은 신들에게 보호받고 있다고 하는 자각에 의해서, 무서워할 누구도 없다는 것을 알자, 평안과 자신감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의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周圍の暗がりと對照的に、シッタルダ―の身體は黃金色に包まれ、四邊は、眞晝のような明かるさでした。
주위의 어둠과 대조적으로, 싯타르다의 신체는 황금색으로 감싸여, 주변은, 한낮과 같은 밝기였습니다.

 

心から一点の曇りもなくなり、すべての暗い想念が消えたため、神の慈愛の光に滿たされたからです。
진심으로 한 점의 흐림(거리낌)도 없게 되어, 모든 어두운 상념이 사라졌기 때문에, 신의 자애의 빛으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シッタルダ―が、今までに體驗したことのない、それは安らぎの境地であり、自然に、悅びがこみ上げてく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지금까지 체험한 적이 없는, 그것은 평안의 경지이며, 자연스럽게, 기쁨이 치밀어오는 것이었습니다.

 

このような悅び。これが人生の本当の姿なのかも知れません。
이러한 기쁨.  이것이 인생의 진정한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人間がこの地上界に生まれてきたときは、誰もが、丸い豊かな生であったろう。それが、生まれた環境や、敎育や思想、習性によって、自我が芽生え、欲望によって、心の中に歪みを作り、暗い曇りに閉ざされる。自ら神の光をさえぎり、苦しみを作り出してしまうのだ──。
──인간이 이 지상의 세계(地上界)에 태어나왔을 때는, 누구든지, 둥글고 풍요로운 삶일 것이다.  그것이, 태어난 환경이나, 교육이나 사상, 습성에 의해서, 자아(自我)가 싹트고, 욕망에 의해서, 마음속에 비뚤어짐을 만들어, 어두운 구름에 가려진다.  스스로 신의 빛을 가리고, 괴로움을 만들어 내어 버리는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こみ上げてくる悅びに泪を流し、親なる神の眞心に心から感謝す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치밀어 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친숙한 신의 진심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汚れ果てた僧衣は、シッタルダ―の悅びの泪で濡れて行きます。じっと、眼を見開いて星空を眺めていると、音樂の音が聞こえてきます。
더어워진 승의는, 싯타르다의 기쁨의 눈물로 젖어 갑니다.  지그시, 눈을 크게 뜨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음악 소리가 들어 옵니다.

 

それは、莊嚴な、それでいてやさしい旋律でした。バフラマン界の天女達が奏でる音樂でしょう。
그것은, 장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선율이었습니다.  브라흐만계(범천계)의 천녀들이 연주하는 음악이었습니다.

 

その旋律は、あるいは高く、低く、魔王を屈服せしめ餓鬼界に墮ちた人々を救ったシッタルダ―を祝福するかのように、ひびき渡ってくるのでした。
그 선율은, 때로는 높게, 낮게, 마왕을 굴복시키고 아귀계(餓鬼界)에 떨어진 사람들을 구제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축복하듯이, 울려 퍼져 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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遂に悟りを開く──眼下に展さる大パノラマ
마침내 깨달음을 열다──눈밑에 펼쳐진 대 파노라마


七日目の夜がやってきました。
7일째의 밤이 찾아 왔습니다.

 

靜かな夜でありたい、今夜も。そして平和な心でありたい、とシッタルダ―は橫になりましたが、昨夜のことが思い出され、あぶれてくる悅びの泪をとめようもありませんでした。
조용한 밤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밤도.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이고 싶다, 라고 싯다르타는 누웠습니다만, 어젯밤의 일이 생각이 나서, 흘러 넘쳐오는 기쁨의 눈물을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そして、何か眠る時間も惜しいような氣がしてきて、出家の六年間を、もう一度ふり返ってみることにし、瞑想に入りました。
그리고, 뭔가 잠잘 시간도 아까운 듯한 기분이 들고, 출가한 6년간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려 해서, 명상에 들어갔습니다.

 

反省する瞑想のときは、靜まり返ったウルヴェラの森と同じように、時のすぎるのを知りませんでした。
반성하는 명상의 때는, 정적에 잠긴 우루벨라(Uruvela) 숲과 마찬가지로, 시간 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シッタルダ―は、肉體的に疲れることはいけないと思い、しばらく身休を休めることにしました。ぐっすりと、心に何のわだかまりもなく、大自然の中に吸いこまれるように眠りに入り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육체적으로 피곤한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잠시 신체를 쉬게 함을 달리 했습니다.  편안히, 마음에 아무런 거치적거림도 없이, 대자연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이 잠이 들었습니다.

 

小鳥達のさえする聲に、ふと眼を覺まします。すでに、東の空が白んでおりました。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문득 깼습니다.  이미, 동녘 하늘이 밝아져 있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ネランジャラの河岸に出て、身體を洗いつつ七日前のことを思い出し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네란쟈라(Nairanjana, 尼連禪河)의 냇가에 나와서, 신체를 씻으면서 7일 전의 일을

상기했습니다.

 

チュダリヤ・チュダ―タの美しい歌聲に誘われて、六年間の苦行から眼が覺めたことを思い出したのです。そして、正しい心と行ない以外に道はないということが、そのきっかけによって發見され、安らぎの心を持ち得た、とシッタルダ―は、改めて心の中でチュダ―タに禮をいうのでした。
츄다리야・츄다타의
아름다운 노랫 소리에 이끌려, 6년 동안의 고행에서 눈을 뜬 일을 상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마음과 행위 이외에 길은 없다 라고 하는 것을, 그 계기에 의해 발견되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라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다시 마음속으로 츄다타에게 인사(답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幾年も探し求めて、遂に得た道は、あまりにも身近な、自分の正しい心の中にあったということに氣がついたからです。
몇 년이나 탐구해서, 마침내 얻은 길은, 너무나도 가까운, 자신의 올바른 마음속에 있었다 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朝露の牧草を踏めしめる足どりも輕く、シッタルダ―はピパラ―の根元にもどり、大きな深呼吸をして腹に力を入れ、徐々に呼吸を整えながら、更び禪定に入るのでした。
아침이슬의 목초를 밟는 발걸음도 가볍고, 싯타르다는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근원으로 되돌아와, 큰 심호흡을 하고 배에 힘을 주고, 서서히 호흡을 가지런히 하면서, 다시 선정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心が調和されるとともに、大きく丸い黃金色の太陽の光が、シッタルダ―の身體全體を、柔らかく包みます。瞑想の中で、中の眼を開くと、淡い光が、小さな黃金の粒子となって眼の中に飛びこんできます。
마음이 조화됨과 함께, 크고 둥근 황금색 태양의 빛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신체 전체를, 부드럽게 감쌉니다.  명상 속에서, 속 눈을 뜨자, 연한 빛이, 작은 황금 입자가 되어 눈 안으로 뛰어들어옵니다.

 

何か、次第に身體が大きくなってくるような氣がします。
뭔가, 서서히 신체가 크게 되어 오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瞑想をとき、眼をあれると、シッタルダ―は、それまで自分を雨露から守ってくれていたピパラ―の大木よりずっと高くなり、日夜仰いでいたガヤ・ダナ―をも眼下に見下ろすほど巨大になっていました。
명상을 할 때, 눈을 뜨자,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런데도 자신을 비와 이슬로부터 지켜주고 있던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거목(巨木)보다 훨씬 크게 되어, 밤낮 쳐다보고 있던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 역시 눈 아래에 내려다볼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습니다.

 

そして、小さなもう一人の身體が光に包まれて、大きな意識體の自分の膝の上に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그리고, 작은 또 한 사람의 신체가 빛이 감싸여, 큰 의식체의 자신의 무릎 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意識の廣大は、テンポを早めて行きます。
의식의 확대는, 진행의 속도가 빨라져 갑니다.

 

明けの明星が、足下に見えます。
계명성(샛별)이, 발 아래 보입니다.

 

そして、もう一人のシッタルダ―は、小さな粒子のように、はるか下方に坐しています。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작은 입자처럼, 아득한 아래쪽에 앉아 있습니다.

 

全ヨジャナ―三千大千世界が、美しい星とともに、シッタルダ―の眼前にくり展げられているのです。
전 요자나(전 세계) 삼천대천세계가, 아름다운 별과 함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눈앞에 전개(展開)되어 있는 것입니다.

 

それは、何ともいえぬ美しい世界でした。
그것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였습니다.

 

生命の躍動が、手にとるように感じられてきます。
생명의 약동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져 옵니다.

 

あの森も、あの河も、町も、すべてを乘せた地球も、天體の星々も、神の偉大な意志のもとに息づいているのです。
저 숲도, 저 강(河)도, 읍내도, 모든 것을 태운 지구도, 천체(天體)의 별들도, 신(神)의 위대한 의지 하에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それは、まるで、光明に滿ちた大パノラマを見ているようです。
그것은, 마치, 광명으로 가득 채워진 대 파노라마를 보고 있는 듯 합니다.

 

そして、巨(おお)きく廣大されたシッタルダ―の身體、その肌には、生きとし生けるものの鼓動が、じかに感じられてくるのでした。
그리고, 거대하고 광대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신체, 그 피부에는, 살아 있는 만물의 고동(鼓動)이, 바로 감지(感知)되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大パノラマは、そのまま、シッタルダ―の意識の中で動いている世界なのでした。
대 파노라마는, 그대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의속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계인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遂に悟りを開いたの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마침내 깨달음을 연 것입니다.

 

三十六年間の人生航路における、想念と行爲の不調和な曇りが、この瞬間において、光明と化したのです。
36년간의 인생항로에 있어서의, 상념과 행위의 부조화한 흐림(거리낌)이, 이 순간에 있어서, 광명으로 화한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探し求めてきた安らぎの境地に到達し、ようやく苦しみの人生から解脫することができな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탐구해 온 평안의 경지에 도달하고, 차츰 괴로운 인생에서 해탈(解脫)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そして、大宇宙の意識と同體となったのです。
그리고, 대우주의 의식과 동체(한 몸)가 된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初めて、人間の價値を悟った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비로소, 인간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いうまでもなく、人間とは神の子であり、人間と大自然というものが常に一體となって呼吸をし、神の意志とともに、大自然に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인간이란 신(神)의 자녀이며, 인간과 대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일체(一體 : 떨어지지 아니하는 한 몸이나 한 덩어리)가 되어 호흡을 하고, 신의 의지와 함께, 대자연에 존재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自然を離れて人間はなく、人間はその自然を、神の經綸にしたがって調和してゆくものであることを、シッタルダ―は悟ったのです。
자연을 떠나서 인간은 없고, 인간은 그 자연을, 신의 경륜(經綸)에 따라서 조화해 가는 것인 것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깨달은 것입니다.

 

※경륜[經綸]  《국어사전》
[명사] 1 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 또는 그 계획이나 포부.2 천하를 다스림.

 

──地上の喜怒哀樂からは、こうした自覺は生まれてこない、物を物として見ている間は、心の安らぎを求め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
── 지상의 희로애락에서는, 이러한 자각은 생겨나오지 않는다, 만물을 만물로서 보고 있는 동안은,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まず物から離れ、物を生かしている實在を知ることによって、物の價値が認識できるのである。
우선 만물에서 떠나, 만물을 소생시키고 있는 존재를 아는 것에 의해서, 만물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물[物] 《한자사전 ▶ 만물 물》《일본어사전 ▶  [상용] 만물 물》


色心は不二一體である、という認識は、人間の心が物から離れ、物を客觀的に見るようになったとき、初めていい得ることであった。
색심은 불이일체(둘이 아닌 한 몸)이다, 라고 하는 인식은, 인간의 마음이 만물에서 떠나, 만물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色は、眼でとらえることのできる一切の色彩を持った萬物をいい、人間の肉體も色なのである──。
색(色)은, 눈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 일체의 색채를 가진 만물을 말하며, 인간의 육체도 색(色)인 것이다 ──。

 

多くの神々によって護られ、しかもこうした大きな自覺を得た悅びに對して、シッタルダ―の胸は、ただ感謝の念

で一杯になるのでした。
많은 신들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게다가 이러한 큰 자각을 얻은 기쁨에 대해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가슴은, 오로지 감사의 념(念)으로 가슴이 꽉 차는 것이었습니다.

 

感謝が胸にこみ上げてきて、落淚をと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감사가 가슴에 치밀어 올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黃金色の光の粒子が、シッタルダ―の周圍に無數に降りそそがれます。
황금색의 빛이 입자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주위에 무수히 쏟아집니다.

 

坐している地上はその光で輝いています。
앉아 있는 지상은 그 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天の一角からは、天女達の歌聲が聞こえてきます。
하늘의 일각에서는, 천녀들의 노랫소리가 들려 옵니다.

 

それは、シッタルダ―の悟りを祝う悅びの大合唱でした。シッタルダ―は、その大合唱を心で受けとめながら、法悅に浸るのでした。
그것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깨달음을 축하하는 기쁨의 대합창이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 대합창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법열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心の隅に單食っていた部分が、魔王達に通じていたのだ。
──마음의 구석에 생활하고 있던 부분이, 마왕들에게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怒り、ひとりよがり、恨み、我欲、鬪爭、破壞の心が、心の隅にあったのである──。
분노, 독선, 원망, 아욕, 투쟁, 파괴의 마음이, 마음의 구석에 있었던 것이다 ──。

 

아욕[我欲] 《한자사전 ▶ 자기(自己) 혼자만의 욕심(慾心) 《일본어사전 ▶ 自分一人(じぶんひとり)の利益(りえき)ばかり求(もと)める気持(きもち)。자기 혼자의 이익만을 찾는 마음》

 

しかし今は、すべてが光に變わり、宇宙こそわれなりの境地に浸るのでした。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빛으로 변하여, 우주야말로 자기 자신인 경지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瞑想の極地では、時間の經過は分からないものです。ときの流れは、疾風のようにすぎて行きます。ときは、今という瞬間を敎えるのみで、大自然の輪廻は、ひとときの休みもなくすぎて行くのです。
명상의 극지에서는, 시간이 경과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질풍처럼 지나갑니다.  시간(때)은, 지금이라고 하는 순간을 가르칠 뿐이며, 대자연의 윤회(輪廻)는, 점깐의 휴식도 없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感激にふるえながら、瞑想を解くと、宇宙卽我の悟りの狀態から、五尺余の、現實の自分に立ち還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감격으로 떨면서, 명상을 풀자, 우주즉아(우주가 바로 내 자신이다)의 경지의 상태에서, 오 척 여의, 현실의 자신으로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上を見上げると、空には雲ひとつありませんでした。紺碧のその空は、ウルヴェラの森を柔らかく抱擁するように、圓を描いて廣がっています。
위를 쳐다보니,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습니다.  검푸른 하늘에는, 우루벨라(Uruvela) 숲을 부드럽게 포옹하듯이, 원을 그리며 펼쳐져 있습니다.

 

太陽の光線は、ピパラ―の枝葉をとおして、シッタルダ―を映し出しています。
태양의 광선은, 피팔라(Pippala, 菩提樹)  가지와 잎을 통해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비추고 있습니다.

 

その眼前では、シッタルダ―の悟りを喜び合うように、萬物萬生が生き返り、躍動しています。
그 눈앞에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깨달음을 서로 기뻐하듯이, 만생만물이 되살아나고, 약동하고 있습니다.

 

大地も、樹木も、雜草も、蟲達も、ピパラ―の枝に羽根を休める小鳥達も、その生を樂しみ、シッタルダ―を眺めている風情でした。
대지도, 수목도, 잡초도, 벌레들도,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가지에 날개를 쉬게 하는 작은 새들도, 그 삶을 즐기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それに應えるように、慈愛の念を送り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것에 응하듯이, 자애의 념(念)을 보냈습니다.

 

眼覺えてみれば、自分をとり卷く大自然の美しさ、萬生萬物相互の密接な關係、その伏線の精妙さが、今は良く解ります。シッタルダ―は、生きている喜びをかみしめながら、また泪が尽きないのでした。
눈을 뜨고 보면, 자신을 에워싸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만생만물 상호의 밀접한 관계, 그 복선의 정묘함을, 지금은 잘 알 수 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살아 있는 기쁨을 음미하면서, 또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この自分の、今の境地を、人に話して解って貸えるだろうか。
──이 자신의, 지금의 경지를, 남에게 말하면 이해해 줄 것인가?

 

人間とはこういうものだ、と說明して、人は信じてくれるであろうか。
인간이란 이러한 것이다, 라고 설명해도, 남은 믿어 줄 것인가?

 

バラモン敎を始め、外道の亂立、混亂した不調和な心などが、習性から脫皮して、この正道を受け入れてくれるであろうか、衆生は眼覺めてくれるであろうか──。
바라문교를 비롯해, 외도의 난립, 혼란한 부조화한 마음 등이, 습성에서 탈피해서, 이 정도(正道)를 받아들여 줄 것인가, 중생은 각성해 줄 것인가 ──。

 

シッタルダ―は、法悅の境地のなかで、こんな設問を考えるのでした。そして、話しても解っては貸えまい、と思う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법열의 경지 속에서, 이런 설문(문제)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말해 줄지라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しかし、シッタルダ―は、ともかく生老病死から解脫し、轉生輪廻の業からも脫して、永遠の生命を悟ることができたのでした。
하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어쨌든 생로병사에서 해탈하고, 전생윤회의 업(業)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영원한 생명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永遠の生命とは、生老病死のない世界である。肉體の中に、もう一人の自分があって、それが輪廻から解脫する不生不滅の生命なのである。
──영원한 생명이란, 생로병사가 없는 세계이다.  육체 속에, 또 한 사람의 자신(自身)이 있고, 그것이 윤회에서 해탈하는 불생불멸의 생명인 것이다.

 

肉體は、人生航路の苦樂の海を渡るための舟であり、魂意識は、不生不滅、永遠の生命であり、もう一人の自分なのである。
육체는, 인생항로의 고락의 바다를 건너기 위한 배이며, 영혼의식은, 불생불멸, 영원한 생명이며, 또 한 사람이 자신(自身)인 것이다.

 

宇宙大に廣大されたもう一人の自分。その膝の上に小さくなっていた現實の肉體の自分の姿。心の調和された安らぎの境地になると、晨の光に滿たされるから、後光の肉體が廣大されるのである。
우주대로 확대된 또 한 사람이 자신(自身).  그 무릎 위에 작아져 있는 현실의 육체의 자신의 모습.  마음의 조화된 평안의 경지가 되면, 새벽의 빛으로 가득 채워지기 때문에, 후광의 육체가 확대되는 것이다.

 

それは、廣く豊かな丸い心の姿であり、それゆえに、神の子としての本性を悟ることができたのだ。
그것은, 넓고 풍성한 둥근 마음의 모습이며, 그러므로, 신의 자녀로서의 본성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そして、そのもう一人の自分が、大宇宙のひとつとなって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그리고, 그 또
한 사람의 자신(自身)이, 대우주와 하나가 되어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이다.

 

それぞれの個性を持ったそれは、丁度、それぞれの水の粒子が集まって川となり大海となっているように、である。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그것은, 정확히, 저마다의 물의 입자가 모여서 강이 되어 너른 바다가 되고 있는 것처럼, 이다.

 

それはまた、死ぬことも、老いることも、病むこともない。
그것은 또, 죽는 일도, 늙는 일도, 병드는 일도 없다.

 

その自分を、今はっきりと認識したのであった。そして、もう一人の自分に、いつでもなり切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 자신(自身)을, 지금 뚜렷하게 인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자신(自身)으로, 언제든지 완전히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過去、現在、未來にまたがって輪廻して行く業から、離れ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윤회해 가는 업(業)에서, 떠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現在の肉體は、兩親の緣によって得たが、その肉體は人生航路の乘り舟にしかすぎない事實も知り、魂(意識)の表現體にしかすぎない、ということも知った。
현재의 육체는, 양친의 인연에 의해서 얻었지만, 그 육체는 인생항로의 위해 승선(乘船)에 지나지 않는 사실도 알고, 영혼(의식)의 표현체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도 알았다.

 

それは、調和された人々には、見えないだけであるが、現存するものなのだ。
그것은, 조화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 현존하는 하는 것이다.

 

過去世の肉體も、同じことだといえるだろう。
과거세계(過去世)의 육체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しかし、おのれの魂は、過去も現在も變わらなかった。過去も自分であり、今も自分なのである、不生不滅、不增不減の魂の不變性は、永遠に變わることも變えることもできないのだ。
하지만, 자기 자신의 영혼은, 과거도 현재도 변함이 없었다.  과거도 자기 자신이며, 지금도 자기 자신인 것이다, 불생불멸, 부증불감의 영혼의 불변성은, 영원히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것이다.

 

人間自身についても、同じことがいえる。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人間はどこまで行っても人間であり、動物は動物として生き續けている。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동물은 동물로서 계속 살고 있다.

 

生命の態樣は、その態樣に從って進化を續けているのだ。猿が人間になり、人間が猿になることはない。永遠に、猿は猿であり、犬は犬として魂の進化の過程におか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
생명의 생긴 모습이나 형태는, 그 생긴 모습이나 형태에 따라서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원숭이가 인간이 되고, 인간이 원숭이가 될 수는 없다.  영원히, 원숭이는 원숭이이며, 개는 개로서의 영혼의 진화의 과정에 놓여져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萬生萬物は神の意志のもとに、生き續けているのである。
만생만물은 신의 의지 하에, 계속 살고 있는 것이다.

 

一切の苦しみは、自らの心と行ないの作り出したもの。すなわち、自然の掟である中道という神の意志に抗したために起こった苦しみなのである。
일체의 괴로움은,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낸 것.  즉, 자연의 규정(규칙)인 중도(中道)라고 하는 신의 의지에 저항했기 때문에 기인(起因)한 괴로움인 것이다.

 

正しく見る、正しく思う、正しく語る、のその想念と行爲を、自ら放棄したところにそれは起こったのだ。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듣고, 올바르게 말하는, 것 그 상념과 행위를, 스스로 방기(내버리고 아예 돌아보지 아니함)한 결과에 그것은 일어난 것이다.

 

中道の心は、もっとも人間らしく、もっとも自然な生活態度にあるはずなのだ──。
중도의 마음은, 가장 인간답고, 가장 자연스런 생활태도에 있는 것인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このことを悟りましたが、さて、これを人に說くとなると、果たして、この事實を、生命の實相を、何人の人が理解してくれるだろうか、と思う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 것을 깨달았지만, 그럼, 이것을 남에게 설명하게 되면, 과연, 이 사실을, 생명의 실상을, 몇 명의 사람이 이해해 줄 것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ピパラ―の根もとに手を当てて、ゆっくりと立ち上が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의 뿌리 아래에 손을 대고, 천천히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森の中を步き始めます。小鹿達があとからついてきます。シッタルダ―が立ちどまると、小鹿達も步をとめます。
숲 속을 걷기 시작합니다.  어린 사슴들이 뒤에서 따라 옵니다.  싯타라드가 멈추어 서면, 어린 사슴들도 걸음을 멈춥니다.

 

じっと彼らをみつめると、彼らはそばによってきて、首を長くし、シッタルダ―の頰に冷たい鼻を近づけ、甘ずっぱい呼吸を吐いて、話しかけるように親愛の情を示すのでした。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곁으로 다가와서, 고개를 내밀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뺨에 차가운 코를 대며, 달콤새콤한 호흡을 토하며, 말을 거는 것처럼 친애의 정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小鹿達も、何の疑問も抱かず、シッタルダ―の足もとで餌をついばんでいます。
어린 사슴들도, 무슨 의문도 품지 않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발밑에서 먹이를 쪼아먹고 있습니다.

 

小鹿達は、ピパラ―の住人です。
어린 사슴들도,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주민입니다.

 

シッタルダ―とともに寢起きした仲間であり、僞ることを知らない純粹な小動物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와 함께 자고 일어난 동료이며,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순수한 어린 동물들이었습니다.

 

彼らこそ、ウルヴェラの森の先住者であり、シッタルダ―を友人として迎えてくれた仲間でした。今も彼らは、シッタルダ―の肩や頭にとまり、語りかけてくるのでした。
그들이야말로, 우루벨라(Uruvela)  숲의 먼저 거주한 주민이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친구로서 맞이해 준 동료였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어깨나 머리에 앉아, 말을 걸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もつい樂しくなり、聲を出して話をし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도 바로 즐거워하며, 말을 걸며 이야기를 합니다.

 

彼らにも感情があって、シッタルダ―がある者を特別扱いをすると、他の小鳥達の聲帶やそぶりが變わってくるのです。平等に扱うとまたもとにもどるのでした。
그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어떤 것을 특별하게 취급을 하면, 다른 작은 새들의 성대나 거동이나 기색이 바뀌오 오는 것입니다.  평등하게 대접(대우)면 또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まだ短い期間であったが、仲間同士の爭いは、見たことがありません。彼らは、侵さず、侵されず守り、いつも元氣でした。
겨우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료끼리의 다툼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침범하지 않고, 침범당하지 않고 지키며, 늘 건강(활발)했습니다.

 

それに比較して、シッタルダ―は、人間同士の醜い爭いを思うと、人間は小鳥達より劣るとさえ感じました。
그것에 비교해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인간끼리의 추악한 다툼을 생각하면, 인간은 작은 새들보다 못하다고 조차도 느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ネランジャラ河の岸邊に下りて行き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네란쟈라 강(Nairanjana, 尼連禪河)의 물가로 내려 갑니다.

 

ゆっくりと流れる河の動きは、昨日も一昨日も變わってはいません。
천천히 흐르는 강의 움직임은, 어제도 그저께도 변함은 없습니다.

 

腰まで入ると、水の冷たさが肌にしみる感じです。ほとんど眠っていないが、昨夜來の疲れは、微塵も感じてはいませんでした。
허리까지 들어가자, 물의 차가움이 살이 얼어붙듯이 추운 느낌입니다.  거이 잠을 안자고 있지만, 어젯밤의 피곤은, 미진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兩手で水をすくい、頭から顔に流しますが、何ともいえない良い氣分です。
양손으로 물을 떠서, 머리에서 얼굴을 씻지만, 뭐라도 말할 수 없는 좋은 기분입니다.

 

──この河も、ガンガ―に合流して、やがて大海となる。大海の水はやがて雲となり、雨となって地上に降り、再びネランジャラ河の水となる。
──이 강도, 강가(겐지즈)에 합류해서, 이윽고 넓고 큰 바다가 된다.  대해(大海)의 물은 이윽고 구름이 되어, 비가 되어 지상에 내리고, 다시 네란쟈라 강(Nairanjana, 尼連禪河)의 물이 된다.

 

水はこうして輪廻を重ねるが、水の本質は少しも變わってはいない──。
물은 이렇게 해서 윤회를 거듭하지만, 물의 본질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

 

今こうして、シッタルダ―は、この水につかっていると、大自然の大きな計らいの中におのれの在ることをおぼえるのでした。
지금 이렇게 해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 물에 잠겨 있으면, 대자연의 큰 조처(처분) 안에 내 자신이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河の水は、無言で流れています。その流れをさえぎる今のシッタルダ―の姿には、不自然な心を失った人々の流れを、正しい流れにするための機會が与えられているのでした。.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가로막는 지금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모습에는, 부자연한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흐름을, 올바른 흐름으로 하기 위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過去、現在、未來のときの流れは、流水の中にあっては、知ることも悟ることもむずかしいものです。それを悟るには、反省という止觀によって初めて可能なのです。
과거, 현재, 미래의 당시의 흐름은, 흐르는 물 속에 있어서는, 아는 것도 깨닫은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을 깨

닫는 데는, 반성이라고 하는 지관(止觀)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ネランジャラ河の中で、泪のこみ上げてくることをとめることができず、大聲を出して泣き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네란쟈라(Nairanjana, 尼連禪河) 강 속에서, 눈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고, 큰소리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昨夜來の感激が、潮のように襲ってくるのでした。
어젯밤의 감격이, 조수(潮水)처럼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

 

心の中には、何の執着もなく、ひっかかりもなく、雄大な氣持です。
마음속에는, 어떤 집착도 없고, 거리낌도 없고, 웅대한 기분입니다.

 

再び森の中に入り、ゆっくりと身體を休めます。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신체를 쉬게 합니다.

 

やがてまた日沒を迎えたシッタルダ―は、日中に拾い集めてきた薪や枯草で火を起こしました。焚火の煙は、ゆうゆう空に昇ってゆきます。
이윽고 다시 일몰을 맞이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낮 동안 주어 모은 섶나무(뗄나무)나 시들어서 마른 풀로 불을 지폈습니다.  모닥불의 연기는, 유유히 하늘로 올라 갑니다.

 

風もなく、今宵も靜かな夜でした。
바람도 없고, 오늘밤도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マンゴの皮をむきながら、チュダ―タが唄っていた、
싯타르다는, 망고의 껍질을 벗기면서, 츄다타가 부르던 민요를 노래하고 있었다.

 

「弦の音は、中程にしめて音色が良い」
「현의 소리는, 중간 정도로 조여야 음색이 좋아」

 

という民謠を口ずさんでくつろぐのでした。
라고 하는 민요를 읊조리며 근심 걱정을 잊고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夕食は、乞食によって得た果物や米粥のときが多かったのですが、今夜は野生の果物ですごしました。
저녁밥은, 걸식에 의해서 얻은 과일이나 쌀죽의 공양이 많았던 것입니다만, 오늘 밤은 야생의 과일로 생활했습니다.

 

心の調和ついては一抹の不安があったが、心を落ちつけると一瞬のうちに、今朝と同じような心境になるのでした。
마음의 조화에 대해서는 일말의 불안이 있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자 순식간에, 오늘 아침과 마찬가지인 심경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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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上界の人々と語る──調和への二十一日間
천상계의 사람들과 말하다──조화로의 21일간

 

くる日もくる日も、心の調和は不動であり、しかも常にそばで誰かがシッタルダ―の心の中の調和に協力しているように思えるのでした。
다음날도 다음날도, 마음의 조화는 부동이며, 게다가 늘 곁에서 누군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의 조화에 협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二十一日目のことです。
그리고, 21일째의 일입니다.

 

シッタルダ―は、すでに心の調和に自信を得ていましたが、その調和を崩したくない、という力みもありました。そのため、このままの心の狀態でこの世を去ることができれば、これほど幸せなことはない、と考えるのでもあり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제는 마음의 조화에 자신을 얻고 있었습니다만, 그 조화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라고 하는 힘을 씀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이대로의 마음의 상태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이토록 행복한 일은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二十一日目の夜を迎えたシッタルダ―は、今夜から食事をとらず肉體舟のおとろえるのを待とう、と決心しました。
21일째의 밤을 맞이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오늘 밤부터 식사를 하지 않고 육체배가 쇠약해지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そして、瞑想に入いってゆこうとしたときでした。突然、シッタルダ―の前が黃金色に照らされ、その光明の中に、アモンと呼ばれているバフラマンが立っ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그리고, 명상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였습니다.  돌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 앞이 황금색으로 비추이며, 그
광명의 속에, 아몬(Amon)이라고 불리고 있는 브라흐만(범천)이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シッタルダ―より背も高く、體格もがっしりとしています。筋肉質のその體軀は、見るからに逞しく、その身體は、手でつむいだ、絹織物のような衣服を裾までまとい、腰の
あたりを紐で結んでいます。血色の良い顔立ちで、兩腕は肩のつけ根あたりまで素肌、その兩腕に金環のようなものをはめています。
싯다르다보다 키가 크고, 체격도 실팍지고 있습니다.  근육질의 그 체구는, 보니까 억세고(다부지고), 그 신체는, 손으로 짠, 견직물과 같은 의복을 옷을 몸에 걸치고, 허리의 주위를 끈으로 묶어 있습니다.  혈색의 좋은 용모이며, 양팔은 어깻죽지 근처까지 맨살, 그 양팔에 금반지 같은 것을 끼고 있습니다. 

 

見おぼえのあるような感じの人だが、シッタルダ―にははっきりとしません。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의 사람이지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로서는 확실치 않습니다.

 

黃金色に包まれたその姿は、神々しいまでに美しく映ります。
화금색으로 감싸인 그 모습은, 거룩하기까지 아름답게 비칩니다.

 

その兩脇にも二人います。その一人はクラリオ、今一人はモ―ゼといわれる人です。三人は、やさしい眼差しでシッタルダ―を見下ろしているのです。
그 양 옆에도 두 명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크라이오, 지금 한 사람은 모세(Moses)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세 사람은, 샹냥한 눈빛으로 싯타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それはシッタルダ―の心の中を見抜くように、それでいて暖かい慈悲の眼差してした。
그것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을 깨뚫어어보듯이, 그런데도 따뜻한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この三人のバフラマンを眩しそうに見上げ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 세 사람의 브라흐만(범천)을 눈부신듯이 올려다보았습니다.

 

それは、見れば見るほど美しく、自分もこのまま梵天界に昇天して行くのではないか、と錯覺するほどの感じでした。
그것은,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자신도 이대로 범천계로 승천해 가는 것이 아닐까, 라고 착각할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過日の、パアピアス・マラ―の變化したバフラマンは光明の都合いが異なるし、慈愛に滿ちて、それは親しい友人にしばらくぶりに會った感じで、なつかしさがこみ上げ、シッタルダ―は手をとり合って嬉しさで泣きたい氣持でした。
지난날의, 파아피아스・마라가 변화한 브라흐만은 광명의 정도가 다르고, 자애로 충만하고, 그것은 친한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난 느낌이며, 정겨움이 솟아올라,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손을 서로 맞잡고 기뻐서 울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アモンはシッタルダ―にいいました。
아몬(Amon)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말했습니다.

 

「ゴ―ダマよ、人生のきびしい修行に良く耐えた。自らの缺點を良く正して、心の曇りを払い、正道を悟ってくれた。
「고다마(Gotama, 瞿曇)여, 인생의 혹독한 수행에 잘 참고 견뎠다.  자신의 결점을 잘 바로잡고, 마음의 흐림(거리낌)을 버리고, 정도를 깨달아 주었다.

 

神々もこの日のくるのを待ち望んでいたのだ。
신들도 이 날이 오는 것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ゴ―ダマよ、あなたは私達との約束をここまで良く果たしてくれた。しかし、肉體を粗末に扱ってはならない。
고다마(Gotama, 瞿曇)여, 당신은 우리들과의 약속을 여기까지 잘 완수해 주었다.  하지만, 육체를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된다.

 

死ぬことはならないのだ。
죽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もし死んでも、この地上界にもどして、今後の使命を果たさせ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만약 죽더라고, 이 지상계에로 되돌아와서, 금후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全ヨジャナ―の衆生に、この道を說かなくてはならないのだ。
전 요자나(전 세계)의 중생에게, 이 길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法は心の太陽だ、心の太陽を失った人々に、神理の法燈を絶やしてはならないのだ。
법은 마음의 태양이다, 마음의 태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신리의 법등을 끊기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太陽を失った者達の心に、法燈による光明を与え、混亂した苦しみの人生から救濟するための使命を果たさなくてはならない。
태양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에, 법등에 의한 광명을 주고, 혼란한 괴로움의 인생에서 구제(救濟)하기 위한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それは、あなたが私達の世界にいるときに約束したはずだ。
그것은, 당신이 우리들의 세계(世界)에 있을 때에 약속(約束)한 것이다.

 

私達の世界は、あなたの生まれる前の世界であり、またいずれ歸らなくてはならない未來の世界なのだ。
우리들의 세계는, 당신의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이며, 또한 어느 사람이나 모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미래의 세계인 것이다.

 

あなたは、この使命を果たさない限り、未來の世界には歸れないだろう。
당신은, 이 사명을 완수하지 않는 한, 미래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私は、あなたの友,アモンと申します」
저는, 당신의 친구, 아몬(Amon)이라고 합니다」

 

アモンは、きびしい言葉の中にも、友が末法の時代に、肉體を持って遂に悟りの境地に到達し、法燈の光明が受け繼がれることを喜び、シッタルダ―の人生における使命を傳え、自覺を促すのでした。
아몬(Amon)은, 엄한 말 중에도, 친구가 말법의 시대에, 육체를 가지고 마침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고, 법등의 광명이 계승되는 것을 기뻐하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인생에 있어서의 사명을 전하고, 자각을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の心の中は、あまりにも重大な使命であることを知って、身のひきしまる思いがす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은, 너무나도 중대한 사명인 것을 알고, 몸이 긴장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正坐のまま、身體と頭を地面につけ、手を前方の土の上にさし出す形でバフラマンの言葉を拜聽していたが、暖かい慈愛の光明に包まれて、とめどなく泪が流れ、今まで考えていた淺はかな心を反省するのでした。クラリオはい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정좌한 채로, 신체와 머리를 지면에 대고, 손을 전방의 흙 위로 내미는 모습으로 브라흐만의 말을 배청하고 있었지만, 따뜻한 자애의 광명에 감싸여,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어리석은 마음을 반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리오는 말했습니다.

 

「ゴ―ダマ、遠慮しないで頭を上げなさい。三十六年間,直接語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が、語ができて本当に懷しい、今日のあなたは一段と光明に滿たされている。
「고다마(Gotama, 瞿曇), 염려하지 말고 고개를 드세요.  36년동안, 직접 말할 수가 없었지만,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정말로 반간다, 오늘의 당신은 일단 광명으로 충만되어 있다.

 

私どもは、今日までのあなたを見守ってきました。今からが、大事な仕事なのです。
우리들은, 지금까지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가, 중대사(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しかし、良く精進して一切の苦しみから解脫され、私も·········この感激を·········何と、表現したら良いか、可愛い私達の子供達がはるか地の果てで·········めぐり合った氣持です···」
하지만, 잘 정진해서 일체의 괴로움에서 해탈되어, 저도·········이 감격을·········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사랑스러운 우리들의 자식들이 아득한 땅끝에서·········상봉한 기분입니다···」

 

あとは言葉がつまって、法悅にむせぶのでした。
나중에는 말문이 막혀, 법열로 흐느끼는 것이었습니다.

 

あの世、實在の世界から、陰になり日向になりしてシッタルダ―を指導してきたバフラマン達の心境は、言葉にならないほどだったのでしょう。
저 세상, 실재의 세계에서, 음으로양으로 싯타르다를 지도해 온 브라흐만들의 심경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また、一人步きするシッタルダ―の未來を見とおし、そのきびしい將來も解るため親が子の旅立ちを思う心に似て、淋しい氣持に襲われたのかも知れません。
또, 홀로 걸어가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미래를 꿰뚫어보고, 그 혹독한 장래도 알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의 길을 떠남을 생각하는 심정과 닮고, 쓸쓸한 기분이 엄습해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シッタルダ―が、面を上げてバフラマン達の顔をみつめると、クラリオもオアモンもモ―ゼも、眼頭を押えて、シッタルダ―の將來を祝福す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얼굴을 들고 브라흐만들의 얼굴을 쳐다보자, 클라리오(Clario)도 아몬(Amon)도 모세(Moses)도, 눈언저리를 누르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장래를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果たしてこのような現象や片よりのない正法を、衆生は聞いてくれるだろうか、と不安になり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과연 이러한 현상이나 치우침이 없는 정법(正法)을, 중생은 들어 줄 것일까, 라고 불안하게 됩니다.

 

※안두2 眼頭  품사 : 명사  《국어사전》
[북한어]
눈의 머리라는 뜻으로, 눈언저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문> 안두에 맺힌 뜨거운 눈물
예문> 안두가 뜨거워지다.


バフラマン達の要請であっても、でき得れば死にたいという氣持が强く、今のような平和な心を持ち續けるには、死を選ぶことが一番だ、と思うのでした。その瞬間、アモンはシッタルダ―に告げるのでした。
브라흐만들의 요청이 있다고 해도, 할 수만 있다면 죽고 싶다고 하는 심정이 강하고, 오늘과 같은 평화로운 마음을 계속 갖는 데는, 죽음을 선택하는 쪽이 상책(제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아몬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あなたは死を選ぼうとしているが、それは自己から逃避である。
「당신은 죽음을 선택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기(自己)로부터 도피이다.

 

あなたは、自分の心から逃げ出すことはできないのだ。あなたの肉體が亡んでも、心の姿は變わらない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당신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의 육체가 죽더라도, 마음의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될 것이다.

 

肉體の滅亡が、心の安らぎに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だ。
육체의 멸망이, 마음의 평안으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일이다.

 

あなたは片よりのない正道を心の柱として、智慧と勇氣と努力で、衆生は苦しみの世界から解放すべきです」
당신은 치우침이 없는 정도(正道)를 마음의 기둥으로 삼아, 지혜와 용기와 노력하며, 중생은 괴로움의 세계로부터 해방시켜야 될 것이다.

 

シッタルダ―の心の誤りを、そう指摘す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의 잘못을, 그렇게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はっと氣がつきました。自己を捨てて大衆の中で生きよう、迷える衆生、光明を失った衆生に法燈の慈悲の光を与えようと決心して、バフラマン達に覺悟のほどをい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대중 속에서 살자, 방황하는 중생, 광명을 잃어버린 중생에게 법등의 자비의 빛을 주리라고 결심하고, 브르흐만들에게 각오의 정도를 말했습니다.

 

「いかなる前途の苦しみも乘り越えて、私の使命を果たします」
「어떠한 앞길의 괴로움도 뛰어넘어, 저의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アモンもいいました。
아몬(Amon)도 말했습니다.

 

「ゴ―ダマ、あなたが體驗した道を廳いた者達は、眞の理(ことわり)を見て人生の迷いから解脫し、心は滿ち足り、安らぎの境地に到達するだろう。
「고다마(Gotama, 瞿曇), 당신이 체험한 길을 들은 사람들은, 참된 도리(道理)를 보고 인생의 미혹에서 해탈하고, 마음은 만족하며, 평안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そして、惡の道から離れて、わがままな心を制し、迷いの道から遠ざかり、內在された心の中で體驗した偉大な智慧が湧き出し、調和された生活を行なうようになるだろう。
그리고, 나쁜 길에서 벗어나, 방자한(제멋대로 구는) 마음을 억누루고, 미혹의 길에서 멀어지고, 내재된 마음속으로 체험한 위대한 지혜(智慧)가 솟아나오고, 조화된 생활을 행하게 될 것이다.

 

內在された智慧とは、各人の轉生輪廻の科程で體驗された一切の記憶が貯藏されている寶庫のことだ。
내재된 지혜란, 각자의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체험한 일체의 기억의 저장되어 있는 보고인 것이다.

 

もしあなたが、この法燈を絶やせば、世は暗黑となって、人々の心は惡摩に支配され、亡びてしまうだろう」
만약 당신이, 이 법등을 끊어지게 하면, 세상은 암흑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은 악마(惡魔)에게 지배되어, 멸망해 버릴 것이다」

 

シッタルダ―は、またい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또 말했습니다.

 

「眼のある者は、法の偉大さを見て悟り、耳ある者は、法の偉大さを聞き、また人々の心に語り傳えられて行くでしょう。不死の神理を、衆生のために傳えて行きます」
「눈이 있는 사람은, 법의 위대함을 보고 깨달고, 귀 있는 사람은, 법의 위대함을 듣고, 또한 사람들에게 전해서 알려 갈 것입니다.  불사(不死)의 신리(神理)를, 중생을 위해 전하려 가겠습니다」

 

バフラマン達は頷くと、にっこりと笑って、シッタルダ―の眼でとらえることのできない世界へ旅立って行くのでした。
브라흐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긋 웃으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눈으로 파악할 수가 없는 세계로 길을 떠나 가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の心の中には、神々の世界に住むバフラマン達の指導によって、遂に正道流布への不動心が、しっかりと作り出される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속에는, 신들의 세계에 사는 브라흐만들의 지도(指導)에 의해서, 마침내 정도유포(正道流布)로의 부동심이. 확실히 만들어 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世の中には、汚れに梁まらない、智慧の眼を持っている者もいるだろう。
──세상(世間)에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지혜(智慧)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彼らがもし、正道を聞く機會を得れば、必ず悟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그들이 만약, 정도(正道)를 들을 기회를 얻으면, 반드시 깨닫지 않겠는가?

 

自分の體驗した人生の道を敎え、そして自らをより正しくきびしく、他人に寬容な心を持って導いて行こう──。
자신의 체험한 인생의 길(도리)를 가르치고, 그리고 스스로를 보다 확실하고 혹독하게, 타인에게 관용한 마음을 가지고 이끌어 가리라 ──。

 

シッタルダ―は、今後の人生をいろいろと考えました。ふと氣がついたときには、シッタルダ―はただ一人ウルヴェラの靜寂な森の中に坐り、消えかかった焚火のそばに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금후의 인생을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싯타르다는 오직 홀로 우루벨라(Uruvela)의 정적한 숲 속에 앉아, 꺼져버린 모닥불의 곁에 있었습니다.

 

今までの光景が、あまりにも鮮や暖かかったなめ、つい錯覺を起こしてしまいます。
지금끼자의 광경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따스했기 때문에, 그만 착각을 일으켜 버리고 맙니다.

 

夜もすっかりと更けこみ、今後の計劃は、明朝考えようと決め、身體を橫にして休もうとすると、何か身體が輕く動くのでした。
밤도 완전히 깊어지고, 금후의 계획은, 내일 아침 생각하겠다고 결정하고, 신체를 누워서 쉬려고 하자, 뭔가 신체가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しばらくすると、肉體からもう一人の自分が抜け出て、光明に滿ちたド―ムの中を上り、やがて新綠に包まれた美しい芽生の、丘の斜面に出るのでした。
──잠시 후, 육체에서 또 한 사람의 자신이 빠져 나와서, 광명으로 충만된 돔(dome :둥근 천장(지붕)) 속을 올라, 이윽고 신록으로 감싸인 아름다운 잔디가 있는, 언덕의 사면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今までの肉體舟は、ピパラ―の木木の根本で休んでいます。、
지금까지의 육체배는,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거목(巨木)의 근본(초목의 뿌리)에서 쉬고 있습니다.

 

もう一人のシッタルダ―は、大きな集會場のようなところに案內されて、色とりどりの古代の衣裳をまとった諸々のボサッタ―やバフラマン達に迎えられました。
또 한 사람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큰 집회장과 같은 곳으로 안내되어, 올긋볼긋한 고대의 의상을 걸친 여러 여럿의 보삿타(菩薩, 보살)나 브라흐만(梵天, 범천)들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それは、今まで、體驗したこともない世界です。
그것은, 지금까지, 체험한 적도 없는 세계입니다.

 

先にきていたアモンやクラリオ、モ―ゼと呼ばれているバフラマンが、梵天界へ招待したのでした。
앞에 오고 있던 아몬(Amon)이나 클라리오(Clario), 모세(Moses)라고 불리고 있는 브라흐만(범천)이, 범천계에서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몬(Amon)이나 클라리오(Clario), 모세(Moses) 이 세분에 관한 내용은, 이미 가르침의 여러 글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そこは、この世では想像もできない、美しい安らぎのある光明に包まれた世界でした。
그곳은,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평안의 있는 광명으로 감싸인 세계였습니다.

 

シッタルダ―は、野會の會場に連れ出され、天女やボサッタ―達、色とりどりの民族衣裳をつけた上々(かみがみ)の前で、初めて說法をするのでした。シッタルダ―は語り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야회의 회장으로 안내되어, 천녀(天女)나 보삿타(菩薩)들, 올긋볼긋한 민족의상을 입은 여러 신(神)의 앞에서, 처음으로 설법(說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말했습니다.

 

──すべものものは緣によって生じ、緣によって滅びるものだという神理から始まり、人生の苦しみは、自らの心が作り出したもの。それは五官六根を緣として生じ、この
苦しみから解脫するには、八正道の實踐によって救われる。
──모든 것(萬物)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인연에 의해서 없어지는 것이다 라고 하는 신리(神理)에서 시작되어, 인생의 괴로움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  그것은 오관육근을 인연으로 해서 생기고, 이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데에는, 팔정도(八正道)의 실천(實踐)에 의해 구제할 수 있다.

 

そして、一切の執着から離れ、足ることを悟るならば、心は安らぐのだ。
그리고, 일체의 집착에서 떠나, 만족함을 깨달으면, 마음은 편안해지는 것이다.

 

人類はみな兄弟であり、正道の實踐によって、神の心とおのれの心が調和されたとき、正しい光明の道が開かれる──。
인류(人類)는 모두 형제(兄弟)이며, 정도(正道)의 실천(實踐)에 의해서, 신(神)의 마음과 자기 자신(自身)의 마음이 조화되었을 때, 올바른 광명(光明)의 길을 열 수 있다 ──。

 

かなりの時間、バフラマンを始めとして、ボサッタ―達は、シッタルダ―の說く神理に聞き入り、最後の拍手は、大地が割れんばかりの反響を現わしました。シッタルダ―
は、その說法を終えてから、ピパラ―の大樹の下に橫たわっている人生航路の自分の乘り舟に歸ってくるのでした──。
상당한 시간, 브라흐만(梵天)을 시작으로 해서, 보삿타(菩薩)들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설명하는 신리(神理)를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듣고, 최후의 박수는, 대지가 부서질만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 설법(說法)을 끝마치고 나서, 피팔라(Pippala, 菩提樹)의 큰 나무 아래 누워 있는 인생항로의 자신의 승선한 배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
 
シッタルダ―は、また新しいできごとを體驗し、身體を起こして、その不思議な現象をもう一度思い出し、言葉に尽くせない嬉しさを味わう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또 새로운 사건을 체험하고, 신체를 일으켜서, 그 불가사의한 현상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東の空は、白んで、小鳥達も眼を覺ましたのか、頭上の木木のあたりも騷がしくなりました。
동녘의 하늘은, 밝아오고, 작은 새들도 눈을 뜬 것인지, 머리 위의 거목(巨木)의 근처도 소란스러워졌습니다.

 

──しかし、今行ってきた梵天界の美しい天女達の姿は、この地上界では見当のつかない氣品と氣高さをそなえていだ。
하지만, 지금 갔다 온 범천계(梵天界)의 아름다운 천녀(天女)들의 모습은, 이 지상계에서는 본적이 없는 기품과 고결함을 갖추고 있었다.

 

そして、見たこともないような民族衣裳·········。
그리고, 본 적도 없는 듯한 민족의상·········。

 

自然界と調和された動物や小鳥達まで說法を聞いていたのには驚いた。
자연계와 조화된 동물(動物)이나 작은 새들까지 설법(說法)을 듣고 있었던 것에는 놀랐다.

 

この世における友人達とは違って、すべての者達は相互の信賴と僞りのない世界で、それは百年の知己のように思えたものだった──。
이 세상에 있어서의 친구들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은 상호의 신뢰와 거짓의 없는 세계이며, 그것은 백년지기(百年知己)처럼 생각한 것이었다 ──。

 

これが、やがて歸らかぬてはならない未來の國であることを、シッタルダ―は悟ることができたのでした。
이것이, 머지 않아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미래의 나라인 것을, 싯타르다는 깨달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肉體舟から抜け出したもう一人の自分。
육체배에서 빠져 나온 또 한 사람의 자신.

 

やはり肉體は、人生航路の舟であり、もう一人のその自分こそ、永遠の生命だということを、しっかりと自覺し、肉體舟に乘ってしまうと人間は盲目同然となり、人生を步んでしまうということを悟るのでした。
결국 육체는, 인생항로의 배이며, 또 한 사람의 그 자신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다 라고 하느 것을, 확실히 자각하고, 육체배를 타 버리면 인간은 장님과 다름없이 되어, 인생을 걸어가 버린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肉體舟は、兩親という緣によって作られ、この緣は、本能として、神からこの地上界に適した肉體舟を保存するために、受け繼がれているもので、魂(知惠)の〃さや〃のようなものだといえるだろう。
육체배는, 양친이라고 하는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이 인연은, 본능(本能)으로서, 신(神)으로부터 이 지상의 세계(地上界)에 들어맞는 육체배를 보존하기 위해,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써, 영혼(지혜(知惠))의 〃칼집(さや)〃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それゆえに、死というものは、この地上界での舟から降りることであり、常に新しい肉體と現在の肉體は一體と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だ──。
그러므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지상의 세계(地上界)에서의 배에서 내리는 것이며, 항상 새로운 육체와 현재의 육체는 일체(한 몸)이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

 

魂の先祖と肉體の先祖の緣によって、今の自分が在るのだ、ということをシッタルダ―は知るのでした。
영혼의 선조와 육체의 선조의 인연에 의해서,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아는 것이었습니다.

 

解らなかった謎が次々と解かれて行き、過去の思い出が、シッタルダ―の心の謎が解け、前世はどこで生まれ、何歲で死に、というように轉生輪廻の秘密を思い出して行くのでした。
이해할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차츰 풀려 가서, 과거의 추억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마음의 수수께끼가 풀리고, 전세(前世)는 어디에서 태어나, 몇 살에 죽고, 라고 하는 것처럼 전생윤회의 비밀(秘密)을 생각해 내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が幼いときに死んだ母のマヤについても、菩薩界に住んでいることを知り、實在界で、未だ見たこともない母との對面では、母は成人したシッタルダ―を心から祝福してくれたこと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어릴 때에 죽은 어머니 마야(Maya, 摩耶)에 대해서도, 보살계(菩薩界)에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실재의 세계(實在界)에서, 아직 본 적도 없는 어머니와의 대면(對面)에서는, 어머니는 성인인 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そして、肉體舟だけにとらわれている多くの衆生の憐れさを思い、本当に人間はおろかな者だと思うのでした。
그리고, 육체배만에 사로잡혀 있는 많은 중생의 가련함을 생각하고, 정말로 인간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地位や名譽や財産という欲望に眼がくらみ、足ることを忘れ、欲望のとりことなってこの地上界に大きな執着を持って亡くなった者達は、きびしい地獄界に住み、魂のきびしい修行にさらされていること、それを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지위나 명예나 재산이라고 하는 욕망(欲望)에 눈이 멀고, 만족함을 잊어버리고, 욕망의 포로(捕虜)가 되어 이 지상계에 큰 집착(執着)을 가지고 죽은 사람들은, 혹독한 지옥계(地獄界)에서 살며, 영혼(魂)의 혹독한 수행(修行)에 처하게 되어 있는 것, 그것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また、マラ―やアスラ―、キンナラ、ナガラジャ―の存在も知り、いかなる惡魔に對しても、心からの慈悲があれば、絶對に克服できるということも悟りました。 
또, 마라(악마)나 아수라(阿修羅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임), 긴나라(緊那羅 Kimnara :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신으로,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 또는 말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이 일정하지 않음), 나가라자(Nagaraja : 상반신은 사람이며 하반신은 뱀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사왕(蛇王) 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서 지금의 용왕(竜王)이 모습으로 됨)의 존재도 알며, 어떠한 악마에 대해서도, 진심한 자비가 있으면, 절대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このように、シッタルダ―の意識は淨化され、進化していることを、自らしっかりと確認しながら人生の修行を積んで行くのでした。
이와 같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의식은 정화되어, 진화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확실히 확인하면서 인생의 수행을 쌓아 가는 것이었습니다.

 

ウルヴェラでの二十一日間──それは、シッタルダ―の今までの人生を百八十度變え、法の實相を學んだ有意義な日々でした。
우루벨라(Uruvela)에서의 21일 동안 ── 그것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지금까지의 인생을 백팔십도 바뀌고, 법의 실상(實相)을 배운 뜻있는 나날이었습니다.

 

 



★용어는, 여러가지 사전을 참조했습니다★

※ ナーガラージャ(Nāga Raja)뱀의 왕.
古代インドではナーガ(नाग, Nāga)という半身半蛇の形であったが、中国や日本を経て今の竜の形になった。
고대 인도에서는 나가(Naga)라고 하는 반은 사람, 반은 뱀의 모습이었지만,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서 지금의 용의 모습이 되었다.
출처 :http://ja.wikipedia.org/wiki/%E5%85%AB%E5%A4%A7%E7%AB%9C%E7%8E%8B

 

ナーガラージャ(Nāga Raja)はインドにおける蛇神の諸王である。仏教では八大竜王をはじめ様々な竜神として取り入れられた。 難陀(Nanda)、跋難陀(Upananda)、娑伽羅(Sagara)、和修吉(Vaski)、徳叉迦(タクシャカ/Taksaka)、阿那婆達多(Anavatapta)、摩那斯(Manasvin)、優鉢羅(Utpalaka)といった八大竜王は元々ナーガラージャである。
나가라자(Nāga Raja)는 인도에 있어서의 사신(뱀신)의 여러 왕이다.  불교에서는 팔대용왕을 시작하여 다양한 용신(龍神)으로 삼아 도입하였다.  난다(Nanda), 발란다(Uananda),사가라(Sagara), 화수길(Vaski), 덕차가(Taksaka), 아나바달다(Anavatapta), 나나사(Manasvin), 우발라(Utpalaka)라고 하는 팔대용왕은 원래 뱀(蛇 나가)이다.

 

天気を制御する力を持ち、怒ると旱魃に、なだめられると雨を降らす。天候に関して責任感も持っているので、自身の感情を抑えたりもする。チベットでは、樹の枝にも棲むとされている吉兆である。
천기를 제어하는 힘을 가지고, 화가 나면 가뭄을, 잘 잘래면 비를 내리게 한다.  기후에 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도 한다.  티벳에서는, 나뭇가지에도 산다고 여기고 있는 좋은 일이 있을 징조이다.

※출처 : http://ja.wikipedia.org/wiki/%E3%83%8A%E3%83%BC%E3%82%AC%E3%83%A9%E3%83%BC%E3%82%B8%E3%83%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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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道を誰に說くか──旅へ
이 길[도리]를 누구에 설명할까?──여행


さてシッタルダ―は、この道を、誰から說いて行こうかと思案し、いろいろと親しい者達や修行者達を心の中に浮かべてみました。
그럼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 길(도리)를, 누구부터 설명하려 갈까라고 여러모로 생각하고, 여러 가지로 친한 사람들이나 수행자들을 마음속에 떠올려 보았습니다.

 

──すうだ、六年前に、三っ月ばかり入門したヴェサリ―郊外のアララ・カラマ仙を訪れてこの法を說こう。アララ・カラマは學者であり、賢者であり、心の曇りも少ない。しかも三百人近くの弟子達もいる。彼らにまず道を開いてやれるだろう──。
──그렇다, 6년전에, 3개월만 입문했던 베살리교외의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 선인(仙人)을 찾아가서 이 법(法)을 설명하자.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는 학자이며, 현자(賢者)이며, 마음의 흐림(거리낌)도 적다. 
게다가 300명 가까운 제자들도 있다.  그들에게 우선 길을 열어 줄 것이다 ──。

 

アララ・カラマ仙からは、後繼者として望まれたこともあったせいか、何となく氣がひかれたのでした。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 선인(仙人)에게는, 후계자로서 요청(요망)되었던 일도 있던 탓인지, 어쩐지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心を調和しました。すると、アララ・カラマ仙のいるヴェサリ―の町がはっきりと眼の前に映し出されてきま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마음을 조화했습니다.  그러자,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선인(仙人)의 있는 베살리의 읍내가 뚜렷이 눈앞에 투영되어 옵니다.

 

かつて、シッタルダ―が修行したアヌプリヤの森の近くがはっきりと見えます。
일찍이,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수행한 아누푸리야의 숲 근처가 뚜렷이 보입니다.

 

──アララ・カラマ仙は、どこにいるのだろうか。當時百二十歲だったから、今は百二十六歲ということになろう──。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선인(仙人)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당시 120세였기 때문에, 지금은 126세가 될 것이다 ──。

 

そのとき、バフラマンの聲が聞こえてきました。
그 때, 브라흐만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アララ・カラマ仙は、今から一週間前に亡くなり、弟子達もみな他と修行場にちりぢりになっています。たずねても無駄になるでしょう──」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 선인(仙人)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에 돌아가시고, 제자들도 모두 다른 수행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찾아가더라도 소용없게 될 것입니다 ──」

 

そう傳えてきたのは、アモンの聲でした。
그렇게 전해 온 것은, 아몬(Amon)의 음성이었습니다.

 

シッタルダ―は、何か淋しい氣持になり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뭔가 쓸쓸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生ある者は必ず滅し、實在の世界に歸って行く。形ある者は、いつの日か崩れ去って、大自然の中に同化して行くのだ。
──살아 있는 사람은 반드시 없어지고, 실재의 세계로 돌아 간다.  형태가 있는 것은, 어느 사이엔가 완전히 무너지고, 대자연의 속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しかし魂はたとえ肉體が亡びても、新しい肉體を持って實在界に歸って行く。そして、それはその人々との心と行ないとの差によって、歸りつく場所が違ってくるのである──。
하지만 영혼(魂)은 비록 육체가 없어지더라도,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실재계로 돌아 간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들과의 마음과 행위와의 차이에 의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올 장소가 달라져 오는 것이다 ──。

 

シッタルダ―は、この事實を知っていたのです。正しい心の調和度によって、光の量が違ってくろからで、光明の度合いによって、段階があるのです。それは、その人の心の廣き、豊かさによって定まるものなのです。
싯다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올바른 마음의 조화의 정도(調和度)의 따라서, 빛의 양이 달라져 오기 때문이며, 광명의 정도(程度)에 따라서,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넓이, 풍성함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인 것입니다.

 

シッタルダ―は、アララ・カラマ仙との出合いから、ヴェサリ―のアヌプリヤの森や、人情深かったリチャプ族の人々との交際の頃を思い出し、すぎ去った迷いの時代を懷
しく思う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아라라・카라마(Ālāra Kālāma, 阿羅邏迦蘭) 선인(仙人)과의 상봉때문에, 베살리(팔리어 :Vesali, 범어 : Vaishali 바이샬리)의 아누푸리야 숲이나, 인정이 깊었던 리챠푸족(族)의 사람들과의 교제의 시절을 상기하고, 지나간 방황의 시대를 정겹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續いて、コスタニヤ―、ヴャティヤ―、マハ―・ナマン、アサジ―、ウパカの五人のクシャトリヤ達のことを思い出し、この者達に正道に說法をすることに決めることにしました。
계속해서,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 바티야(Bhaddiya, 婆提梨迦), 마하・나만(Mahaa-naaman ,摩訶摩男), 아사지(Assaji, 阿説示), 우바카(Vāspa, Vappa, 婆敷)의 다섯 명의 크샤트리야(ksatriya)들의 일을 상기하고, 이 사람들에게 정도(正道)를 설법(說法)을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彼らは、どこにいるにだろうか。
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五人のクシャトリヤ達は、目的地もいわないで去ってしまったのです。ネランジャラ河に沿っ下ったことは確かです。
다섯 명의 크샤트리야(ksatriya)들은, 목적지도 말하지 않고 떠나 버렸던 것입니다.  네란쟈라 강(Nairanjana, 尼連禪河)을 따라 내려간 것은 확실합니다.

 

シッタルダ―は、瞑想をして、彼らの行く先、修行場を探し求めているうちに、パラナシ―の都が見え始めました。この國は、カシ―と呼ばれ、商工業都市で、他國との貿易が盛んなと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명상을 하며, 그들의 행선지, 수행장을 탐구하고 있는 동안에,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라는, 카시라고 불리며, 상공업 도시이여, 타국과의 무역이 융성하다고 했습니다.

 

特に、カピラ・ヴャ―ストにいた頃、そこの衣類は、ほとんどカシ―産の絹織物で作られていました。シッタルダ―は、輕いタ―バンや衣類が好きだったから、カシ―のことは良く知っていました。
특히,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에 있던 당시, 그곳의 의류는, 대부분 카시산(産)의 견직물로 말들어져 있었습니다.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가벼운 터번(turban, 머리에 감는 수건)이나 의류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카시의 일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出家するときは、パラナシ―の都を候補地のひとつに選んでいたし、子供の頃に行った町でもありました。特にマハ―・バラモン種が多く、宗敎學者の多い都市でもありました。
출가할 때는,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도시를 후보지의 하나로 선택하고 있었고, 어릴 시절에 갔던 읍내도 있었습니다.  특히 마하 바라문종(摩訶婆羅門)의 많고, 종교학자가 많은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この町の郊外に、ミガダヤと呼ばれているところがあるが、ここはイシナパタ(仙人の修行場)ともいわれている土地柄でした。
이 읍내의 교외에, 미가다야라고 불리고 있는 곳이 있지만, 이곳은 이시나파타(선인의 수행장)으로도 말해지고 있는 그 고장의 풍습(기풍)이었습니다.

 

コスタニヤ―達は、シッタルダ―と別れてから、ラジャグリハの町に入り、ナ―ランダを北上して、パタリ・ガマに到達し、パタリ・ガマからガンガ―の河を上流に向かって西へ步を進め、カシ―國に入っておりました。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들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와 헤어지고 나서,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의 읍내로 들어가, 날란다(Nālandā, 那爛陀)를 북상해서, 파탈리・가마(Paataliputra, 華子城)에 도달해서, 파탈리・가마에서 강가(겐지즈)의 강을 상류로 향해서 서쪽으로 걸음을 옮겨, 카시국(國)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さらに、パラナシ―の都に行き、郊外にあるミガダヤに到っていましたが、シッタルダ―には、そのことが解りました。
더욱 더,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도시로 가서, 교외에 있는 미가다야에 이르고 있었습니다만,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에게는, 그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ミガダヤには鹿が多く、景色もすばらしいところで、修行場としては大變惠まれている場所でした。
미가다야에는 산록이 많고, 풍경도 기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며, 수행장으로서는 타고난 장소였습니다.

 

シッタルダ―は、遂に、アポロキティ―・シュバラ―・ボサッタ―(觀自在菩薩)の境地になり、遠く離れている人々の動靜をも見とおす力をそな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した。それは、常に、自由自在に、過去、現在、未來を觀ることができ、人々の心の中を見とおすことができる能力を與えられている人、悟った人ということで、シッタルダ―は、ここに遂に大悟の人となることがでぎたというわけ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마침내, 아포로키티・슈바라・보삿타(관자재보살)의 경지가 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동정을 꿰뚫어보는 힘을 구비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항상, 자유자재로,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가 있고, 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어볼 수가 있는 능력을 제공받고 있는 사람,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며,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여기에 마침내 완전히 깨달은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날란다(Nālandā) 또는나란타(那爛陀)는 인도 비하르 주의 고대 대학이다..날란다는 비하르 주의 파트나(파탈리가마)에서 남동쪽 55마일 거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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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人にもその力がある
현대인에게도 그 힘이 있다


ゴ―ダマ・プッタの、悟りへ到る道を述べてきましたが、このことについて、實證のひとつを擧げておきましょう。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설명해 왔습니다만, 이 일에 대해서, 실증의 한 가지를 들어 보겠습니다.

 

ゴ―ダマ・シッタルダ―、シャキャ・ムニ・プッタのことを語った一人は、東京の大田區に在宅している、一九七二年現在で二十三歲になるKという靑年です。
고다마・싯타르다(Gotama Siddhrtha, 瞿曇 悉達多), 샤캬・무니・붓타(Śākya Muni Putta, 釋迦牟尼佛陀)의 일을 말한 한 사람은, 도쿄(東京)의 오오다구(大田區)에 자기 집에 있는, 1972년 현재로 23세가 되는 K씨라고 하는 청년입니다.

 

この靑年は、正道を實踐して、心の窓が開かれ、
이 청년은, 정도(正道)를 실천해서, 마음의 창이 열려,

 

「自分は、今から二千數百年前、インドのカピラ・ヴャ―ストのクシャトリヤの家系に生まれ、シッタルダ―が出家したのち、父王の命でシッタルダ―王子の護衛として一緖に修行したアサジと呼ばれていたアラハンである──」
「저는, 지금으로부터 2천 수백년 전, 인도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크샤트리야(ksatriya)의 가계(家系)에 태어나,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가 출가한 후, 부왕의 명령으로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 왕자의 호위로서 함께 수행했던 아사지(Assaji, 阿説示)라고 불리고 있던 아라한(阿羅漢)이다 ──」

 

と、當時のことを思い出し、その時代のコ―サラ語(古代インド語)で語ったものですが、それを、日本語になおしてつづったものが、以上の物語りであります。
라고, 당싱의 일을 생각해 내서, 그 시대의 코살라어(고대 인도어)로 말한 것입니다만, 그것을, 일본어로 고쳐서 글로 지었던 것이, 이상의 그 내용입니다.

 

このことは、當時の比丘、比丘尼達が、日本を中心に、他の國々にも、永い轉生輪廻を體驗して、ジャン・ド―ヴャ―(東の國)に肉體を持って現われていることの證據でもあ
りましょう。
이 일은, 당시의 비구, 비구니들이, 일본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들에도, 영원한 전생윤회를 체험하고, 잔도우바(동방의 나라)에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고 있는 것의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すでに、南米やアフリカにも、このような古代インド時代の過去世を思い出した人々がおり、日本の私達のグル―プにも、同じ體驗を持つ人々がすでに百人を越えています。
이제는, 남미나 아프리카에도, 이러한 고대 인도시대의 과거세를 생각해 낸 사람들이 있고, 일본의 우리들의 그룹에도, 같은 체험을 가지는 사람들이 이미 100명을 넘고 있습니다.

 

靑山には、ヤサ―と呼ばれている比丘が、アラハンの境地に到達して、やはり當時の模樣を語っております。
오오야마(靑山)에는, 야사(Yaśas, 耶舍)라고 불리고 있는 비구(比丘)가,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도달해서, 역시 당시의 모양을 말하고 있습니다.

 

心と行ないを、正しい片よりのない生活實踐によって、心の曇りをとり除いた人の心の窓が開けれたということです。
마음과 행위를, 올바른 치우침이 없는 생활실천에 의해서, 마음의 흐림(거리낌)을 제거한 사람들의 마음의 창이 열 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人間は、誰でも轉生輪廻の記憶を持っているのです。それは、潛在された九0%の意識の中にその秘密が隱されています。
인간은, 누구나 전생윤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재된 90%의 의식(意識) 속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なぜ最初から悟れないのか。これは、人生航路の過程において、欲望や執念が、丸い豊かな心に歪みを作り、暗い想念の曇りにおおわれるために思い出すのが困難だという
ことです。
왜 처음부터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 그것은, 인생항로의 과정에 있어서, 욕망이나 집념이, 둥들고 풍성한 마음에 비뚤어짐을 만들어, 어두운 상념(마음에 품고 있는 여러가지 생각)의 흐림(거리낌)에 덮혀 있기 때문에 생각해 내는 것이 곤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な現象は、心の中の埃や塵を払う以外に、悟ることは不可能です。というのは、心に曇りがあっては、神の光に滿たされることがないからです。
이러한 현상은, 마음속의 먼지와 티끌을 떨어 없애는 이외에,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라고 하는 것은, 마음에 흐림(거리낌)이 있어서는, 신의 빛에 충만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過去世を思い出すという事實は、今から二千年前、イエス・キリストの弟子達の間にも現われていたことが聖書の使徒行傳第二章に記錄されています。.
과거의 세계(過去世)를 생각해 낸다라고 하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도 타나나고 있던 것이 성경(聖書)의 사도행전 제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また今から二千五百數十年前、ゴ―ダマの弟子達の中にも、アラハンの境地に到達した比丘、比丘尼達で過去の記錄を思い出した、という事實がはっきりと記錄されています。
또 지금으로부터 2천 5백 수십년 전, 고다마(Gotama, 瞿曇)의 제자들 중에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도달한 비구, 비구니들로 과거의 기록(記錄)을 생각해 내었다, 라고 하는 사실이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スタニパタの華嚴經の十地品に詳しく殘されているのです。
스타니파타의 화엄경의 십지품에 상세히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今、私のグル―プの中にも、美しい心の人には、年齡を問わず、職業を問わず、男女を問わず、潛在された過去世の體驗を語る者達が多い、という事實もあります。
지금, 저의 그룹 중에도, 아름다운 마음의 사람에게는, 연령을 물문하고, 직업을 불문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잠재된 과거의 세계(過去世)의 체험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라고 하는 사실도 있습니다.

 

その中には、中學生、高校生、醫者、辯護士、美容家、サラリ―マン、技術家、新聞記者など、あらゆる階層の人々が過去世の言葉で語ります。
그 중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의사, 변호사, 미용가, 셀러리맨, 기술자, 신문기자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과거세의 말로 말합니다.

 

ある者はインドのコ―サラ語やマガダ語、またある者は中國語などと、人それぞれが、現世では全く習得していないにもかかわらず、轉生輪廻の過程で體驗した國々の言葉で、當時の模樣を語るのです。
어떤 사람은 인도의 고살라어(語)나 마가다어(語), 또 어떤 사람은 중국어 등 이라고, 사람 저마다가, 현세에서는 전혀 습득하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체험한 여러 나라의 말로, 당시의 모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ゴ―ダマ・プッタの悟りへの經過は、さきのKもふくめ、ほとんどこのような人々の言葉をとおして、記述したものです。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의 깨달음으로의 경과는, 앞에서의 K씨도 포함시켜서, 대부분 이러한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기술한 것입니다.

 

信じられない人達は、自ら正道を實踐してみるほかない、ということでしょう。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정도(正道)를 실천(實踐)해 볼 이외에는 없다, 라고 할 것입니다.

 

私も、佛敎など緣遠い者の一人でしたが、過去世で學んだ意識をひもとき、現代の自然科學をとおして般若心經を解說しているのです。
저도, 불교 등 인연이 먼 사람의 한 사람이었지반, 과거세에서 배운 의식의 끈을 풀어내어, 현대의 자연과학을 통해서 반야심경을 해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自然科學の中から解き明かした般若心經が、いかに科學的であるか否かは、諸者の方達に判斷していただくほかありません。ただ、いかに心が大切であるかを知って貸うために、この解說書も成した、ということを理解していただければ、それで良いのです。
자연과학 속에서 해명한 반야심경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아닌지, 독자의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시는 이외에는 없습니다.  단, 얼마나 마음이 중요한지를 알며 도와주기 위해서, 이 해설서도 만들어 내었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この般若心經を知れば、佛敎は科學的な神理である、そして、心と行ないの正しさがすべての根本であり、人生の道標であるということを認めざるを得ないでしょう。
이 반야심경을 알면, 불교는 과학적인 신리(神理)이다,  그리고, 마음과 행위의 올바름이 만물의 근본이며, 인생의 도표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すべては、インドのゴ―ダマ・シッタルダ―、シャキャ・ムニ・プッタの悟りまでの經過を良く熟讀して、自分で體驗してみることです。
모든 것은, 인도의 고다마・싯타르다・샤캬・무니・붓타(Gotama Siddhrtha Śākya Muni Putta, 瞿曇・悉達多・釋迦牟尼・佛陀)의 깨닫기까지의 과정을 잘 숙독해서, 스스로 체험해 볼 일입니다.

 

そして、その條件は、一切の執着から離れて、感情的な想念と行爲をつつしみ、法にかなった生活をすることです。
그리고, 그 조건은, 일체의 집착에서 떠나, 감정적인 상념이나 행위을 조심하고, 법에 들어맞는 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その結果、自ずから信じざるを得なくなっるでしょう。
그 결과, 스르로 믿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法も解らず、實踐もなく、ただ否定するということは、自己保存の念の强いたぐいか、自我の思いが强いか、にほかなりません。
법도 알지 못하고, 실천도 않고, 단지 부정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보존의 념(생각)의 강한 동류인지, 자아의 생각이 강한지, 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입니다. 

 

八正道を、生活の師、心の物差しとしないで、理屈をいっても始まらないことです。
팔정도를, 생활의 스승, 마음의 척도로 삼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해도 시작되지 않는 것입니다.

 

頭だけで、智だけで知っている者達の敎義は、繪に描いたボタ餠にしかすぎないでしょう。味など解るはずがありません。
머리만으로, 지(智 : 세속적인 지혜)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교의는, 그림에 글려진 떡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맛이라고는 알 턱이 없습니다.

 

※교의[敎義] 《국어사전》
1 교육의 근본 취지.2 어떤 종교의 신앙 내용이 진리로서 공인된, 종교상의 가르침


また、理想主義者という者もあるでしょうが、理想の實現のためにも、一人一人の實踐なくしては、完成さ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또, 이상주의자라고 하는 살마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상의 실현을 위대허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하지 않고서는,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對岸の火事も、ただ眺めているだけでは火は消えません。
강 건너의 불도, 단지 바라보고 있을뿐으로는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たいがんのかじ
강 건너의 불. 나에게 관계 없는 일의 비유.

 

人は、生まれてくるときは裸で一人であり、この世を去るときの裸で一人です。
사람은, 태어나올 때는 알몸이며 혼자이며, 이 세상을 떠날 때의 알몸으로 혼자입니다.

 

その、一人ほっちの自分が、正道も實踐しないで、悟りの境地に到達できるでしょうか。
그, 외돌토리의 자신이, 정도(正道)도 실천하지 않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實行のない理想境など、夢のようなものです。
실행의 없는 이상경 등, 꿈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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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ラハンへの導き──五人との再會
아라한으로의 인도──다섯 사람과의 재회


シッタルダ―は、バフラマンの要請によって、ようやくウルヴェラの森を出ると、パラナシ―の郊外にあるミガダヤに行き、コスタニヤ―達に生老病死の苦惱から解脫する法を說くので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브라흐만(梵天, 범천)의 요청에 의해서, 차츰 우루벨라(Uruvela) 숲을 나와서, 파라나시의 교외에 있는 미가다야로 가서,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들에게 생로병사의 고뇌에서 해탈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しかし、五人の修行者達が、最初から率直にいうことを聞くはずがありません。
하지만,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들을 리가 없습니다.

 

シッタルダ―は墮落した、一緖に修行はできない、という、過去の彼らの意志があります。ウルヴェラの森を去ったもの、そのときの彼らの心の在り方です。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타락한, 함께 수행은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과거의 그들의 의지(뜻)가 있습니다.  우루벨라(Uruvela) 숲을 떠난 것, 그 때의 그들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シッタルダ―は、彼らの思っていることなどすべて見とおしているし、考えていることを先に次々といわれてしまえば、彼らの辨解の理由もなくなるだろう、そうシッタルダ―は思い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그들의 생각하고 있는 것 등 전부 꿰뚫어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먼저 차례로 말해 버리면, 그들의 말로 풀어서 밝힐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싯타르다는 생각했습니다.

 

「コスタニヤ―よ、お前は、私と口を利いてはいけない、挨拶をしてはいけない、ひざまずいてはいけないと、四人の修行者にいっているが、そのような心がけではいけないだろう。
「코스타니야여, 너는, 나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인사말을 해서는 안 된다.  무릎끓어서는 안 된다고, 네명의 수행자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마음가짐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私は、プッタになったのだ。アポロキティ―・シュバラ―になったのだ。だから、お前達がどの道をとおってミガダヤにきたかも知ったのだ。
나는, 붓타가 된 것이다. 아포포키티・슈바라(觀自在, 관자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이 어느 길을 통해서 미가다야로 왔는지도 알았던 것이다.

 

お前達は、私が墮落して修行を捨てたと思っでいるが、それは誤りである。
너희들은, 내가 타락해서 수행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きびしい肉體行によって悟ることはできないことが解ったのだ。
혹독한 육체수행에 의해서 깨달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また、カピラのときのように、優雅な生活に浸っている、欲情の渦の中でも悟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
또, 카필라(Kapila, 迦毘羅)의 당시처럼, 우아한 생활에 빠져 있는, 욕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다.

 

煩惱から解脫する道は、兩極端なその方法や考え方を正さなくでは、悟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が解ったのだ。
번뇌에서 해탈하는 길은, 양극단인 그 방법이나 사고방식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お前達も、過去世において、私の語を聞いたことがあるのだ。やがて、私の法を聞いてその事實を思い出すだろう」
너희들도, 과거의 세계(過去世)에서, 나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이다.  이윽고, 나의 법을 듣고 그 사실을 생각해 낼 것이다」

 

五人の修行者は、シッタルダ―の言葉を聞いているうちに、その後光や顔色や言葉に、いつか反撥する心はどこかに消え、ただシッタルダ―の顔を見守るのでした。
다섯 명의 수행자는,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말을 듣고 있는 사이에, 그 후광이나 안색이나 말에, 어느새 반발하는 마음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오로지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얼굴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コスタニヤ―は、プッタの神理に觸れて、遂に、自らの過去世を思い出し、泪を流して法悅にむせび、過去世の言葉で語り出したのでした。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는, 붓타의 신리를 접하고, 마침내, 자신의 과거세를 생각해 내고, 눈물을 흘리며 법열에 흐느끼며, 과거세의 말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生命の輪廻を悟り、プッタの手をしっかりと握り、正法流布への決心を語るのでした。
생명의 윤회를 깨닫고, 붓타의 손을 꽉 잡고, 정법유포에의 결심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續いてアサジが、アラハンの境地になって、心の窓が開かれます。マハ―ナマンも、大粒の泪をこぼし、今世での再會を喜ぶのでした。
이어서 아사지(Assaji, 阿説示)가, 아라한의 경지가 되어, 마음의 창이 열었습니다.  마하나만(Mahaa-naaman, 摩

訶摩男)도, 굵은 눈물 방을을 흘리며, 금세에서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五人の者達は、このようにして、次々とプッタの法に觸れ、安らぎの境地に到達して行くのでした。
다섯 명의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차차 붓타의 법을 접해서, 평안의 경지의 도달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パラナシ―の豪族、ヤサも、戀人とのいきさつから世をはかなみ、自殺しようとしているところをプッタにさとされ、六人目の弟子になり、死を覺悟していただけに良く道を悟り、アラハンの境地に到達しました。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호족, 야사(Yaśas, 耶舍)도, 연인과의 곡절때문에 세상을 비관하여, 자살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붓타에게 가르침을 받아, 여섯번째의 제자가 되어, 죽음을 각오하고 쓸만하게 자세히 도(道)를 깨닫고,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さらに、ヤサの兩親、ウパヤサ、ウパシカも、在家としてプッタに歸依します。
더욱이, 야사(Yaśas, 耶舍)의 양친, 우파야사, 우파시카도, 재가신자로서 붓타에게 귀의합니다.

 

プッタはこのようにして、再びマガダ國に歸り、やがてガヤ・ダナのウルヴェラ・カンシャパ─を導き、弟のクナンダ、ナンティヤ―の兩カンシャパ─も導きました。彼らはみなプッタに歸依したのです。
붓타는 이렇게 해서, 다시 마다가국(國)으로 돌아가서, 이윽고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의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를 이끌고, 동생인 쿠난다(Gayaa-Kassapa, 迦耶・迦葉, 가야・가섭), 난티야(Nadi-Kassapa, 那提・迦葉, 나제・가섭)의 두명의 카샷파(迦葉)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붓타에게 귀의한 것입니다.

 

ときに、ゴ―ダマ・プッタが、三十七歲の年のことでした。
당시에,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가, 37세의 해의 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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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벨라 카샷파와의 대결에 들어가기 앞서, 삼형제의 이름의 유래입니다★
★일본어 위키백과 사전 상의 삼형제의 내력입니다 ★


자세한 것은,
http://ja.wikipedia.org 의 '三迦葉'이라고 검색해 보십시오.

 

장남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
차남 난티야(Gayaa-Kassapa, 迦耶・迦葉)
삼남 쿠난다(Nadi-Kassapa, 那提・迦葉)


①優楼頻螺・迦葉(うるびんら・かしょう、Uruvela-Kassapa、ウルヴェーラ・カッサパ)は、釈迦の弟子の一人。いわゆる三迦葉の長男。
우루빈라 가섭(優楼頻螺・迦葉, Uruvela-Kassapa, 우루벨라-카삿파)는, 석가의 제자의 한 사람.  이른바 삼가섭의 장남.

優楼頻螺(ウルヴィーラ)は、マガダ国の迦耶(ガヤー)城付近、尼連禅河(ナイランジャナー)の左岸にあった村の名。ウルヴェーラ・カッサパはこの地のバラモン出身で、頭に髷を結い、ヴェーダ聖典を読誦し火神を祀る事火外道の師だった。釈迦が成道して最初に五比丘、次に耶舎とその54人の友人、富楼那など教下した後、この地へ赴き、彼を改宗させたといわれる。このときすでに彼は120歳を越えていて500人の弟子もいた。
우루빈라(優楼頻螺, Uruvela)는, 마가다국의 가야(迦耶) 성 부근, 나이렌쟈나(Nairanjana, 尼連禪河, 네란자라)의 왼편 기슭에 있던 마을의 이름. 우루벨라 카삿파는 이 지역의 바라문 출신이며, 머리를 틀어 올리고, 베다성전을 독송하며 불의 신 아구니를 제사지내는 화사외도의 스승이었다.  석가가 성도하고 최초에 다섯 비구(五比丘), 다음에 야사(Yaśas, 耶舍)와 그 의 54명의 친구, 부루나(푸르나・야니・푸트라(PuurNamaitraayaniiputra,富楼那弥多羅尼子) 등 교하한 후에, 이 땅으로 찾아와, 그를 개종시켰다고 한다.  이 때에 이미 그는 120세를 넘기고 있으며 500명의 제자도 있었다.


②那提・迦葉(なだい・かしょう、Nadi-Kassapa、ナディー・カッサパ)は釈迦の弟子の一人。三迦葉の次男。那提(ナディー)は河川と訳すが、マガダ国のガヤー(迦耶)城付近を流れるナイランジャナー河の下流に住んでいたためこの名がある。
나제 가섭(那提・迦葉, Nadi-Kassapa, 나디 카샷파)는 석가의 제자의 한 사람.  삼형제 가섭의 차남.  나제(那提 나디)는 강변이라고 번역하지만, 마가다국의 가야(迦耶) 성(城) 부근을 흐르는 나이란쟈나(Nairanjana, 尼連禪河,)의 하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


③迦耶・迦葉(がや・かしょう、Gayaa-Kassapa、ガヤー・カッサパ)は、釈迦の弟子の一人。三迦葉の三男。迦耶(ガヤー)は象と訳し、彼がマガダ国のガヤー(迦耶、象頭山)の城内に住んでいたためこの名がある。
가야 가섭(迦耶・迦葉, Gayaa-Kassapa, 가야 카샷파)는, 석가의 제자의 한 사람.  삼형제 가섭의 삼남.  가야(迦耶)는 코끼리라고 번역하며, 그가 마가다국의 가야(迦耶, 상두산,象頭山)의 성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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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ヴェラ・カシャパ─との對決──プッタを食わなかった大蛇
우루벨라・카샷파와의 대결──붓타를 잡아먹지 않은 큰 뱀[구렁이]

 

 

シッタルダ―は、悟りを開いてから、ミガダヤで初めての說法をし、五人をアラハンの境地に導きました。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는, 깨달음을 열고 나서, 미가다야에서 최초의 설법을 하고, 다섯 명을 아라한의 경지로 이끌었습니다.

 

さらに、パラナシ―の豪族の子供ヤサを救って、プッタ・ス―トラに歸依させ、そのため、ヤサの兩親ウパヤサ、ウパシカも歸依し、この兩親は在家信仰の第一戶となったのです。
더욱이,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호족의 아들 야사(Yaśas, 耶舍)를 구제하고,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길)에 귀의시키고, 그 때문에, 야사(Yaśas, 耶舍)의 양친 우파야사, 우파시카도 귀의하고, 이 양친은 재가신앙의 제1호가 된 것입니다.

 

※やしゃ【耶舎】
《(梵)Yaśasの音写》古代インドの波羅奈(はらな)国の富豪の息子。家出し、鹿野苑(ろくやおん)で釈迦に会って出家し、五比丘に次ぐ6番目の弟子となった。探しにきた父母も帰依し、最初の在家信者となった。
★야사[耶舍]
《(범어)Yaśas의 음사》고대 인도의 바라나시(波羅奈) 국(国)의 부호(富豪)의 아들.  출가해서, 녹야원(鹿野苑)에서 석가를 만나서 출가하고, 오비구이 다음으로 6번째의 제자가 되었다.  부모님들 역시 귀의해서,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다.

※http://dictionary.goo.ne.jp/leaf/jn2/221785/m0u/%E3%82%84%E3%81%97/

 

プッタが、パラナシ―の都から、再びマガダ國、ラジャグリハの町にもどってきたのは、三十七歲のときでした。
붓타가,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도시에서, 다시 마가다국(國),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의 읍내로 되돌아온 것은, 37세의 때였습니다.

 

パラナシ―の町は、やはり歸依したヤサの友達が、ヴェシャ─の間にプッタ・ス―トラを說き、そのため人々の心は安らぎの境地に導かれて行きました。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읍내는, 역시 귀의한 야사((Yaśas, 耶舍)의 친구들, 베샤(바이샤) 간에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길)를 설명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은 평안의 경지로 인도되어 갔습니다.

 

プッタは、ラジャグリハの町に、道を說く據点を作り、誤まった他力信仰のことを說明し、法(正法)を心の柱としておのれにきびしく、他人には寬容な心を持って自力本願の道を說くのでした。
붓타는, 라쟈구리하(Rajagrha, 王舍城) 읍내에, 도리(道)을 설명할 거점을 만들고, 잘못된 타력신앙의 일을 설명하고, 법(정법)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는 관용(寬容)한 마음을 가지고 자력본원(自力本願)의 길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ラジャグリハのビンビサラ―王から、ガヤ・ダナにウルヴェラ・カシャパ─といわれる聖者がいると聞いていたことを思い出し、この地を訪れることにしました。
그리고, 라쟈구리하(Rajagrha, 王舍城)의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 왕에게,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에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 우루빈라 가섭)라고 불리는 성자(聖者)가 있다고 듣고 있던 일을 생각해 내고, 이 땅을 찾아갔습니다.

 

丁度その頃、ガヤ・ダナは祭りの最中で、村人達やウルヴェラ・カシャパ─の弟子達によって、大變賑やかでした。
정확히 그 무렵,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는 축제의 한가운데이며, 마을 사람들이나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의 제자들에 의해서, 대단히 떠들썩했습니다.

 

プッタは、宿泊の場所を乞いました。
붓타는, 숙박할 장소를 구걸했습니다.

 

しかし、ウルヴェラ・カシャパ─に來訪者が多かったため適當な場所がなく、拜火敎の道具を納めて來る洞穴に案內され、その場所で一泊するのでした。
하지만,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에게 내방자가 많았기 때문에 적당한 장소가 없고, 배화교의 도구를 넣어 두는 동혈(동굴)로 안내되어, 그 장소에서 일박하는 것이었습니다.

 

ウルヴェラ・カシャパ─の弟子達は、この洞穴には大きな蛇が棲んでいることを承知の上で、プッタをそこに宿泊させたのでした。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의 제자들은, 이 동혈에는 큰 뱀이 자리잡고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이며, 붓타를 그곳에 숙박시킨 것이었습니다.

 

大蛇は、大きな首を上げて、プッタの樣子をうがっていましたが、プッタが敵意を持っていないことを知ったのか、洞穴の奧に移動すると、大きな長い身體を五重、六重に卷いて休んでしまいました。
큰 뱀(구렁이)는, 큰 머리를 들고, 붓타의 얼굴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지만, 붓타가 적의(敵意)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알았던 것인지, 동혈의 깊은 곳으로 이동하자, 크고 긴 신체를 오중, 육중으로 말고 휴식을 취해 버립니다. 

 

プッタは、入口に近い土の柔らかな場所を少し堀り、茅を敷いて橫になり、ぐっすりと眠りました。.
붓타는, 입구에 가까운 흙의 부드러운 장소를 조금 파고, 띠(억새풀)을 깔고 누워, 푹 잤습니다. 

 

翌朝、東の空には太陽が昇り、木々の綠の葉は露をふくんで、その陽にダイヤモンドのようにきらめいて光っていました。
이튿날, 동녘의 하늘에는 태양이 뜨고, 나무들의 녹색의 잎은 이슬을 머금고, 그 빛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山の頂きは平らになっていて、千人くらいの人々は充分に收容できる.說法の場所としても良い廣場がありました。
산의 정상은 평평하게 되어 있고, 천명 정도의 사람들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설법의 장소로서도 좋은 광장이 있었습니다.

 

その中央には祭壇が飾られ、火の神を祈る信者達で、その廣場も一杯になっていました。
그 중앙에는 제단이 꾸며져 있고, 불의 신을 기도하는 신자들로, 그 장소도 꽉 차 있었습니다.

 

プッタは洞穴を出てから、ウルヴェラ・カシャパ─の弟子達に賴み、師に面會を申しこみました。
붓타는 동혈을 나아서,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의 제자들에게 의뢰하여, 스승에게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弟子達は、昨夜のサロモンが生きて洞穴から出てきたので、びっくりしてプッタを見るのでした。彼らは、プッタが、てっきりあの大蛇に食べられてしまったものと思って
いたからでした。
제자들은, 어젯밤의 사로로이 살아서 동혈(동굴)에서 나온 것 때문에, 깜짝 놀라서 붓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붓타가, 영락없이 큰 뱀(구렁이)에게 잡혀먹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サロモンよ、あなたは、昨夜大蛇のいる洞穴で休まれましたはずだが、あの大蛇は大分永い間 獲物にありついていないので、私達にも向かってくるおそろしい大蛇なのだ。良く食べられないで生きていたものだ」
「사로몬이여, 당신은, 어젯밤 큰 뱀의 있는 동혈에서 휴식을 취한 것인데, 저 구렁이는 거의 오랫동안 먹이를 얻어먹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들에게도 다가오는 무서운 큰 뱀인 것이다.  용케도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 있던 것이군」

 

口々にそういって、溜息をしながらじっとプッタの顔を眺めるのでした。
저마다(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며, 만시지탄을 하면서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 《국어/한자사전》
때늦은 한탄(恨歎)이라는 뜻으로, 시기(時期)가 늦어 기회(機會)를 놓친 것이 원통(寃痛)해서 탄식(歎息)함을 이르는 말


プッタはいいました。
붓타는 말했습니다.

 

「なあに、私は、別におそろしい者ではない。それに、大蛇は、危害を加えない友達だと思ったからだ。驚くことはないだろう」
「뭐, 나는, 별로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그곳에, 큰 뱀(구렁이)는, 위해를 가하지 않는 친구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놀랄 필요는 없는 것이다」

 

プッタのその言葉を聞いた梯子達は、いやあ、と奇聲を擧げ、その大蛇が、今までも多くのサロモン達を洞穴の外へ出したことのないことを知っていたので、口々に驚きを示しながら去ったのでした。
붓타의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아니야, 라고 기성(기이한 소리)을 토하며, 그 구렁이가, 여태까지도 많은 사라몬들을 동혈의 밖으로 나오게 한 적은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마다(입을 모아) 경악을 나타내면서 떠난 것이었습니다.

 

そして、弟子達は師にそのことを告げ、面會を申しこんでいることをつたえるのでした。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それを聞くと、
그리고, 제자들은 스승에게 이 일을 알리고, 면회를 신청하고 있는 것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는, 그것을 듣자,

 

──これはただのサロモンではあるまい──。
──이것은 단순한 사로몬이 아닐 것이다──。

 

と心の中で思いながら、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こちらにとおしなさい」
「이쪽으로 안내하시오」

 

と弟子達にいうのでした。弟子達は、またプッタのところへきて、その旨をいい、
라고 제자들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또 붓타가 있는 곳으로 와서, 그 뜻을 말하며,

 

「師のことろへ案內いたしましょう」
「스승의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と先に立って道を案內をするのでした。
라고 앞장 서서 길을 안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多くの弟子に圍まれて、プッタのくるのを待ちました。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는, 많은 제자에게 둘러싸여, 붓타가 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有名なウルヴェラ・カシャパ─には、クナンダとナンティヤ―の二人の弟がいましたが、彼らは、兄から敎えを學びとり、すでにそれぞれが獨立して弟子を持ち、ガヤ・ダナの山の中腹と裾に、火の神を守って人々に神の存在を敎えていたのでした。
유명한 우루베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에게는, 쿠난다(Gayaa-Kassapa, 迦耶・迦葉, 가야・가섭)와 난티야Nadi-Kassapa, 那提・迦葉, 나제・가섭)인 두 명의 동생이 있었지만, 그들은, 형에게서 가르침을 배워서 자기 것으로 하고, 이제는 저마다가 독립하여 제자를 가지고,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의 산의 중복과 자락에, 불의 신을 지키며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兄弟ともに、有名でしたが、特に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マガダ國一帶にその名聲を馳せていました。
형제와 함께, 유명했지만, 특히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는, 마가다국(國) 일대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當時のサロモン達は、他宗と敎義の論爭に馴れていたため、おそらくプッタに對しても、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論爭を受けて立つ氣持でいるのだろう、と思っていました。
당시의 사로몬들은, 타종과 교의(敎義)의 논쟁에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잠시 붓타에 대해서도,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는 논쟁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プッタは、ここの對岸のウルヴェラの森で六年間も生活していましたから、拜火敎(今でも中國や日本の佛敎の中に護摩焚として行事化する)を良く知っていたし、ウルヴェラ、カシャパ─とは一度會いたいと思っていました。
붓타는, 이곳의 건너편에 있는 언덕의 우루벨라(Uruvela) 숲에서 6년간이나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화교(지금까지도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 중에 호마분을 하며 행사를 한다)를 잘 알고 있었고, 우루벨라(Uruvela, 優楼頻螺)・카샷파(Kassapa, 迦葉)와는 한번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호마[護摩]  《국어사전》
[명사] [불교] 불을 피우며 그 불 속에 공양물을 던져 넣어 태우는 의식. 불을 하늘의 입이라 생각하여 불에 공양물을 던지면 하늘이 이를 먹고 사람에게 복을 준다는 생각에서 유래하였다. 직접 호마목을 태우는가, 단지 관념만으로 행하는가에 따라 외호마와 내호마로 나눈다.

※호마[護摩] 《한자사전》
(범 homa; 화제의 뜻) 밀교(密敎)에서 화로(火爐)를 놓고 유목(乳木)을 태워 부처에게 비는 일. 지혜(智慧)의 불로 번뇌(煩惱)의 섶을 태워, 진리(眞理)의 성화(聖火)로 마해(魔害)를 불살라 없애는 표지(標識)임. 부동존(不動尊)으로써 본존(本尊)을 삼아, 그 앞에 설단(說壇)하여 행(行)함. 식재(息災)ㆍ증복(增福)ㆍ항복(降服)ㆍ구소(鉤召)ㆍ경애(敬愛)의 다섯 가지가 있음

※ごま [護摩] 《일본어사전》
〈佛〉호마. 부동명왕(不動明王)·애염명왕(愛染明王) 등을 본존으로 하여, 그 앞에 단을 쌓고 화로를 마련하여, 호마목(護摩木)을 태우며 재앙과 악업을 없애 줄 것을 기도하는 밀교 의식.
예문> 護摩ごまをたく 호마의 의식(儀式)을 거행하다.


そしてすでに、ウルヴェラ・カシャパ─の心の中も見えていたので、單身で近づいて行っても危險な行爲はしない、ということを讀みとっていました。そればかりではなく、ウルヴェラ・カシャパ─が何者であるか、その過去世のことまですでに解っていたから安心してそばに行ったのでした。
그리고 이미, 우루베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의 마음속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단신으로 다가가더라도 위험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가 어떤 사람인지, 그 과거세의 일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곁으로 갔던 것이었습니다.

 

それは、このようなときは、常にバフラマンであるアモンが、天上界からプッタに對して通信をしてくれるからでした。
그것은, 이러한 때는, 항상 브라흐만(법천)인 아몬(Amon)이, 천상계에서 붓타에 대해서 통신(通信)을 해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五百人ほどの弟子達とともに、火の燃え方について威力を證明し、人間の身體についている病魔を、火勢によって火の神が追い払っているの
だ、ということも證明していました。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는, 500명 정도의 제자들과 함께, 불을 태우는 방법에 대해서 위력을 증명하고, 인간의 신체에 붙어 있는 병마(病魔)를, 화세에 의해서 불의 신(神)의 쫓아 버리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それは、人間が、天上界からくる惡魔達を追い払うには護摩によって身を淨める以外にはない、ということを信じている行爲でした。
그것은, 인간이, 천상계에서 오는 병마(病魔)들을 쫓아 버리는 데에는 호마(護摩)에 의해서 몸을 정결케하는 이외에는 없다, 라고 하는 것을 믿고 있는 행위였습니다.

 

プッタが入口に立つと、弟子達の視線が戶口にそそがれます。弟子の一人が、プッタをウルヴェラ・カシャパ─のまえに紹介します。
붓타가 입구에 서자, 제자들의 시선이 문지방에 집중합니다.  제자의 한 사람이, 붓타를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의 앞에 소개합니다.

 

「私は、ウルヴェラ・カシャパ─だが、何か用事か。サロモンはどこのバラモンか」
「나는,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인데, 무슨 용건인가? 사로몬은 어디의 사로몬인가?」

 

弟子から聞いた、大蛇と同居して食われなかったサロモンの姿を眼前にして、ウルヴェラのカシャパ─はいくらか興奮しているのか、その顔はやや靑ざめていました。そして、だずねてきたサロモンをいかにして法論で屈服させるか、その秘策を考えていたようです。
제자에게서 들은, 큰 뱀과 동거하고 잡아먹히지 않은 사로몬의 모습을 눈앞에서, 우루벨라의 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는 다소 흥분하고 있는 것인지, 그 얼굴은 조금 창백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찾아 온 사로몬을 어떤 방법으로 해서 법론(法論)으로 굴복시킬까, 그 비책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感情の燃えているのが弟子達にも解ったのでしょう。一人として語る者はなく、ひとときその場には靜寂が流れました。
감정이 불타고 있는 것인지 제자들에게도 설명했을 것이다.  한 사람도 말하는 사람은 없고, 잠깐 그 곳에는 정적이 흘렸습니다.

 

しかしプッタは、何者にもとらわれることもなく平靜な心で、
하지만 붓타는, 어떤 사람에게도 사로잡히지 일 없이 평정한 마음으로,

 

「私は、コ―サラ國のカピラ・ヴャ―ストのクシャトリヤであるゴ―ダマ・シッタルダ―と申す修行者で、六年前から人生に無常を感じ、ウルヴェラ・ヤナニ―の森で師につくことなく人生の修行をしてきました。
「저는, 코살라국(國)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크샤트리야(ksatriya)인 고다마・싯타르다(Gotama Siddhrtha, 瞿曇・悉達多)라고 하는 수행자이며, 6년전부터 인생에 무상(無常)을 느끼고, 우루벨라・야나니의 숲에서 스승을 모시는 일 없이 인생의 수행을 해 왔습니다.

 

六年前に、ビンビサラ―王からあなたの高名をうかがっていたので、ぜひ一度お會いしたいと念願してましたが、お眼にかかれて嬉しいと思います」
6년 전에,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 왕으로부터 당신의 고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꼭 한번 만나뵙고 싶다고 염원하고 있었습니다만, 만나봡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その言葉に顔色を柔らげ、ほほえみさえ浮かべて、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는, 그 말에 안색을 부드럽게 하고, 미소마저 띄우며,

 

「そうであったか。昨夜は泊らせる場所もなかったので、粗末なこころにおやすみさせて申しわけない」
「그랬었는가?  어젯밤은 숙박할 장소도 없었기 때문에, 변변치 못한 곳에 잠을 자게 해서 면목없습니다」

 

と、心にもない僞りごとをいって挨拶するのでした。プッタは、昨夜のことを何も心の中にひっかかりがないため、
라고, 마음에도 없는 거깃말을 하며 인사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붓타는, 어젯밤의 일을 조금도 마음속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昨夜は、ほんとうにありがとう」
「어젯밤은, 정말로 고맙습니다」

 

と輕く會釋し、次の言葉を待つのでした。
라고 가볍게 인사하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는,

 

「あなたは、どんな修行をなされ、どんな神を拜んでいるのか」
「당신은, 어떤 수행을 하시고, 어떤 신을 받들어 모시고 있는 것인가?」

 

と質問をしました。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私は、偶像や自然を祈る對稱とはしておりません。常に心と行ないを正して、執着を良く除いております」
「저는, 우상이나 자연을 비는 대상물(對稱)으로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항상 마음과 행위를 바로잡고, 집착을 자주 버리고 있습니다」

 

カシャパ─は、言葉もなく、へえ─といっただけで、窮してしまいました。なぜなら、拜む對稱がなくて、なぜ神が天からくる惡魔を追い払えるものか、と心の中で思ったからでした。
카샷파(Kassapa, 迦葉)는, 말도 없이, 예~라고 말할 뿐이며, 대답이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두손 모아 합장하는 대칭이 없고, 왜 신이 하늘에서 오는 악마(惡魔)를 쫓아 버리는 것인가,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プッタは、すぐにウルヴェラ・カシャパ─の心を讀んで次のように話しました。
붓타는, 이미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의 마음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あなたは今、祈る對象物が必要なのか、それから先に敎えて戴きたい」
「당신은 지금, 빌 대상물이 필요한 것인지, 그것부터 우선 가르침을 받으세요」

 

この質問には、流石のウルヴェラ・カシャパ─も、心中を讀まれ、顔色まで變えました。
이 질문에는, 흐름돌(流石)인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도, 마음을 독파당해, 안색까지 변했습니다.

 

「人間には住む家、萬物の住む家には大自然があろう。神とても祈るにはくる場所が必要だろう。私は、火を燃やして、火の神でご利益を得ているのだ」
「인간에게는 살 집, 만물의 살 집에는 대자연이 있을 것이다.  신이라고 해도 비는 데에는 올 장소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불을 태워서, 불의 신에게 영검(공덕)을 얻고 있는 것이다」

 

と、やっとここまで言いました。
라고, 겨우 여기끼지 말했습니다.

 

プッタは冷靜に反論します。
붓타는 냉정하게 반론합니다.

 

「神は、人間の力によって作り出されるだろうか。あなたの祭壇も人の手によって作られたものだろうが、神の作り出されたこのガヤ・ダナの森も神の心の現われであろう。
「신은, 인간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당신의 제단도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낸 것일 것이지만, 신의 만들어 낸 이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의 숲도 신의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太陽の熱や光も同じことだ。太陽は決してマンゴを欲しがったり、ルビ―やサンゴも欲しないだろう。
태양의 열이나 빛도 똑같은 것이다.  태양은 결코 망고를 탐내거나, 루비(紅玉)이나 산호(珊瑚)도 탐내지 않을 것이다.

 

もし人間に、必要なものであるならば、生まれたときに祈る對稱物を持ってこなくてはならないはずだ。
만약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태어날 때에 기도할 대상물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そして、死ぬときにも、それらを持って歸ることができるはずだ。あなたはそれを持ち歸ることができようか」
그리고, 죽을 때에도,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까요?」

 

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また言葉に窮して返事ができません。
우루베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는 또 말문이 막혀서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嫌な奴がきたものだ。早くこのサロモンを追い払そう──と考えていました。
──싫은 놈이 온 것이다.  빨리 이 사로몬을 쫗아 버리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プッタは、卽座に、こう追擊します。
붓타는, 즉석으로, 이렇게 추격합니다.

 

「あなたは、今言葉に窮して、私をいかにして追い返そうか、と考えている。それは、あなたが火を燃して祈るのに似た、あなたの心の中の火だ。
당신은, 지금 말문이 막혀서, 나를 어떤 방법으로 쫓아 낼까,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당신이 불을 태워서 비는 것과 흡사한, 당신의 마음속의 불이다.

 

心の中の感情を、そんなに燃やして、果たして正しい判斷ができるだろうか。
마음속의 감정을, 그렇게 불태우고, 과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護摩を燃やせば、灰が殘るだろう。あなたの心の中が燃えれば、あとに苦しみの灰が殘るだろう。物の正しい見解もできないだろう。
호마(護摩)를 태우면, 재가 남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이 불타면, 나중에 괴로움의 재가 남을 것이다.  만물의 올바른 견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それは、自らを苦しみに突き洛とすとともに、正しい人々にも炎のような感情を与えるだろう。そして、苦しみの種を蒔きちらすだろう。そのために、あなたの弟子達の心も、常に炎のように燃えている。
그것은, 자신을 괴로움에 빠뜨림과 동시에, 올바른 사람들에게도 불꽃과 같은 감정을 줄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의 씨앗을 심게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당신의 제자들의 마음도, 항상 불꽃처럼 불타고 있다.

 

怒りの心、そしりの心、嫉みの心、鬪爭の心を、みな燃えている。そうした、形によって燃えている感情を、鎭め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
화를 내는 마음, 비방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 투쟁의 마음을, 모두 불태우고 있다.  그러한, 형상에 의해서 불타고 있는 감정을, 가라앉힐 수는 없을 것이다. 

 

心の魔や病魔、貧乏の餓鬼は、それぞれの心が、正道を悟って生活をすることによって鎭めることができるのだ。
마음의 악마(魔)나 병마(病魔), 가난(貧乏)의 아귀(餓鬼)는, 저마다의 마음이, 정도(正道)을 깨닫고 생활을 하는 것에 의해서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이다.

 

火が魔を払う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火は尊いものに違いはないが、形によって心を鎭めることは、一時の逃避であって、その火の種が心の中にあれば、その炎はまた燃え上がるだろう。
불이 악마(魔)를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불은 귀한 것임에 틀림은 없지만, 형상에 의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일시적인 도피(逃避)이며, 그 불의 씨앗의 마음속에 있으면, 그 불꽃은 또한 불타오를 것이다.

 

炎によって惡魔を支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心の曇りをとり除く、八正道の實踐以外に、道は開かれないだろう。
불꽃에 의해서 악마(惡魔)를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의 흐림(거리낌)을 완전히 제거하고, 팔정도(八正道)의 실천 이외에,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心に曇りがなげれば、神の心に滿たされて本当の安らぎが得られるのだ。
마음에 흐림(거리낌)이 없으면, 신(神)의 마음에 충만되어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そのとき、炎のような感情は鎭まり、靜寂な境地に達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 때, 불꽃과 같은 감정은 진정되어, 정적한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シッタルダ―の說法は、遂にウルヴェラ・カシャパ─の心をとらえます。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의 설법은, 마침내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는,

 

──これは、本物のプッタだ──
──이것은, 진짜 붓타(佛陀)다──

 

と思いました。その言葉の正しさが心にひびいてくるとともに、シッタルダ―を包む、淡い黃金色の光を、その神々しい姿を見てしまったからです。それは、炎の赤い光とは違い、本当の安らぎの光であったのです。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의 올바름이 마음에 울려 퍼져 옴과 동시에, 싯타르다(Siddhrtha, 悉達多)를 감싸는, 연한 황금색의 빛을, 그 거룩한 모습을 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꽃의 붉은 빛과는 틀리고, 진정한 평안의 빛이었던 것입니다.

 

そして、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ゴ―ダマ・プッタの正しい法に觸れ、それを得て、遂に五百人からの弟子達と相談して、プッタ・ス―トラに歸依したのでした。
그리고,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는,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의 올바른 법에 접해서, 그것을 얻어, 마침내 500명이나 되는 제자들과 상담하고,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길)에 귀의한 것이었습니다.

 

長兄のウルヴェラ・カシャパ─一行は、ゴ―ダマ・プッタとともに、一切の祭りの道具を捨てて、山を降り、ラジャグリハの町に出たのでした。
맡형인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 일행은,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와 함께, 일체의 제사를 지내는 도구를 버리고, 산을 내려와,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 읍내로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それから二日目、兄の使用していた祭りの道具が河を流れてくるのを見た次弟のナンティヤ―・カシャパ─は、弟のクナンダに連絡して、兄の道場のある山頂に行ってみてました。
그리고 나서 이틀째, 형의 사용하고 있던 제사를 지내는 도구가 강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본 둘째 동생인 난티야・카샷파(Nadi-Kassapa, 那提・迦葉, 나제・가섭)는, 동생인 쿠난다(Gayaa-Kassapa, 迦耶・迦葉, 가야・가섭)에게 연락해서, 형의 도구가 있는 산정으로 가 보았습니다.

 

──あれだけ立派な兄が、火の神の祭り道具を捨てるはずがない。山賊どもにでも殺されたのではないか──
──저토록 훌륭한 형이, 불의 신의 제사도구를 버릴 리가 없다.  산적들에게라도 살해당한 것은 아닐까?──

 

と、山頂を探してみましたが、勿論、血の跡などあるはずありません。村人達に聞いたところ、ウルヴェラ達一行は、若いサロモンと、ラジャグリハに行くといい殘して山を降りた、といいます。
라고, 산정을 탐색해 보았지만, 물론, 피의 흔적 등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보았더니, 우루벨라(Uruvela)들 일행은, 젊은 사로몬과,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로 간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산을 내려왔다, 라고 말합니다.

 

ナンティヤ―はクナンダに、
난티야(那提・迦葉, 나제・가섭)는 쿠난다(迦耶・迦葉, 가야・가섭)에게,

 

「兄はお前に、ラジャグリハに行くようなことを語したことがあるか」
「형은 너에게,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로 간다고 하는 것을 말한 적이 있나?」

 

「お祭りが終わったので、王樣から招待され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私は何も聞いてはいない。しかし、ラジャグリハに行くときはいつも私達と一緖にだったが、今度は何か急な仕事でもあったではないだろうか」

「축제도 끝났기 때문에, 국왕에게 초대를 받은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어.  하지만,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에 갈 때는 늘 우리들과 함께 였는데, 이번은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クナンダは、次兄の話を考えすぎと思っていたのでしょう。しかし、ナンティヤ―は、あれだけ大事にしていた、生命より大切な祭りの道具を捨てるとは考えられないことだ、とその心配は大變なものがありました。

쿠난다(迦耶・迦葉, 가야・가섭)는, 둘째형의 말을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티야(那提・迦葉, 나제・가섭)는, 저토록 중대사하게 여기고 있던, 생명보다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도구를 버린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라고 그 걱정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兄弟は、數人の弟子達とともに、ラジャグリハの町に樣子を見に行きました。
형제는, 수인의 제자들과 함께,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 읍내로 상황을 살펴 보려 갔습니다.

 

長兄のウルヴェラ・カシャパ─は、ヴンダバ・ダナにいることを他のサロモンから聞き、早速たずねたところ、多くの弟子達とともに健康であることが解り、三人の兄弟は手をとり合あて喜び合うのでした。ナンティヤ―は、
맏형인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는, 운다바・다나(운다산)에 있는 것을 다른 사로몬에게서 듣고, 조속히 찾아갔더니, 많은 제자들과 함께 건강한 것을 알고, 세 명의 형제는 손을 서로 맞잡고 서로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난티야(那提・迦葉, 나제・가섭)는,

 

「兄さんは、どうして大事な祭り道具を捨てて、修行場を放棄したのか敎えて下さい」
「형님은, 어째서 중대사한 제사 도구를 버리고, 수행장을 방기한 것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とウルヴェラ・カシャパ─にいいました。ウルヴェラは、笑顔でこう答えました。
라고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 優楼頻螺・迦葉)에게 말했습니다. 우루벨라(Uruvela, 優楼頻螺)는, 미소하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私は、プッタの弟子になったのだ。いずれお前達にも連絡しようと思っていたのだが、早急だったので遲れてしまった。弟子達と相談の上、全員が下山したのだ。心配を
かけて申しわけない。私の信じていた今までの信仰は間違っていたことが解ったのだ」
「나는, 붓타의 제자가 된 것이다.  어쨓든 너희들에게도 연락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급했기 때문에 늦어버리고 말았다.  제자들과 상담한 이상, 전원이 하산한 것이다.  걱정을 끼쳐서 면목없다.  내가 믿고 있던 지금깢지의 신앙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을 알았던 것이다」

 

信賴し尊敬していた兄が信じる人なら、私達も弟子になりたいと、ナンティヤ―は弟の顔を見て相づちを打つのでした。クナンダは、質問しました。
신뢰하고 존경하고 있던 형이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들도 제자가 되고 싶다고, 난티야(那提・迦葉, 나제・가섭)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맞장구치는 것이었습니다.  난티야(那提・迦葉, 나제・가섭)는, 질문했습니다.

 

「兄さん、プッタはどんなお方ですか。どちらの出身なのですか」
「형님, 붓타는 어떤 분입니까?  어디 출신인 것입니까?」

 

ウルヴェラは、ガヤ・ダナの一部始終を說明し、プッタが本当のアポロキティ―・シュバラ―であることを知った、といいました。
우루벨라(Uruvela, 優楼頻螺)는,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붓타가 진정한 아포로키티・슈바라(觀自在, 관자재)인 것을 알았다, 라고 말했습니다.

 

二人の弟達は、兄の信じていることなら間違いがないはずだということで、プッタに面會することができ、その場でプッタの弟子になり、九百七十人の弟子達もガヤ・ダナの修行場から呼びました。そして、全員プッタに歸依することが許されたのでした。
두 명의 동생들은, 형의 믿고 있는 것이라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며, 붓타에게 면회할 수가 있고, 그 곳에서 붓타의 제자가 되어, 970명의 제자들도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의 수행장으로 불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원 붓타에게 귀의하는 것을 허락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こうして、プッタの弟子達は、五人のアラハンやパラナシ―のヤサの友人とともに、千七百人近くにふくれ上がりました。
이렇게 해서, 부샅의 제자들은, 다섯 명의 아라한(阿羅漢)이나 파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야사((Yaśas, 耶舍)의 친구들과 함께, 1700명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ビンビサラ―王は、尊敬していたウルヴェラのカシャパ─が、プッタの弟子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聞き、使いを、プッタのヴンダバ・ダナ[(ブンダバ山)]にやり招待するのでした。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 왕은, 존경하고 있던 우루벨라(Uruvela, 優楼頻螺)의 카샷파(Kassapa, 迦葉)가, 붓타(佛陀)의 제자가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을 드고, 심부름꾼을, 붓타가 있는 운다바・다나(운다산)으로 보내어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プッタは、六年前の約束が果たせることを喜び、使いのクシャトリヤとともに城に赴くのでした。プッタは、
붓타는, 6년 전의 약소을 완수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며, 심부름꾼인 크샤트리야(ksatriya)와 함께 성(城)으로 향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붓타는,

 

「しばらくでございます。ポコラ、パラ、カラ、ヤレヤレ············(私は悟りの岸にようやく到達する······)。そして、アヌ―クタラ・サンミャク・サンボデ―の境地になりました」
「오래간에 뵙습니다.  포코라, 마라, 카라, 야레에레············(저는 깨달음의 언덕에 차츰 도달한다······).  그리고, 아누쿠타라・샴먁쿠・삼보디(阿縟多羅三藐三菩提,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경지가 되었습니다」

 

とビンビサラ―王に報告しました。王はにこにこと顔をほころばせ、
라고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왕은 생글생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オ―ディヤ―、オ―ディヤ―、おめでとう。プッタが私の國に訪れたことを榮光に思っております。スット・ダナ―王もさぞお喜びのことでしょう。私も妻も、プッタの弟子にして下さい」
「오디야, 오디야, 축하합니다.  붓타가 내 나라에 찾아온 것을 영광(榮光)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숫도・다나왕(정반왕)도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다.  저도 아내도, 붓타의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と、プッタの肩を叩きながら、わがことのように祝うのでした。
라고, 붓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자신의 일처럼 축하하는 것이었습니다.

 

こうして、王樣を始めとして、おもだったクシャトリヤ達も、プッタのタルマ(法)に歸依し、生活を改めて行くのでした。
이렇게 해서, 국왕을 시작으로 해서, 생각했던 크샤트리야(ksatriya)들도, 붓타의 달마(法)에 귀의하고, 생활을 고쳐 가는 것이었습니다.

 

ビンビサラ―王は、從兄のガランダ長老と相談し、修行場として環境の良い場所を探させ、精舍を寄進することにしました。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 왕은, 종형인 가란다(迦蘭陀) 장로와 상담하고, 수행장으로서 환경의 좋은 장소를 탐색게 하고, 정사(精舍)를 시주했습니다.

 

そして、ラジャグリハ・ヴャ―ストの、北の門から北東の山峽のところに、竹林の斜面があり、そこが非常に良いということで、そこに說法の場所やサロモン達の住む設備を作ったのでした。
그리고, 라쟈그리하・바스투(Rajagrha, 王舍城, 라쟈그라하 성)의, 북쪽 문에서 북동의 산협에 있는 곳에, 죽림의 사면이 있고, 그곳이 매우 좋다 라고 하는 일로, 그곳에 설법의 장소나 사로몬들의 주거할 설비를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この精舍は、ヴェル・ヴェナ―(竹林精舍)と呼ばれ、遂にプッタは、靜かに、人々に敎えることのできる場所にめぐり合うことができたのでした。
이 정사는, 벨루・베나(Venuvana, 죽림정사)라고 일컬어지고, 마침내 붓타는, 조용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장소를 우연히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マガダ國を中心として、プッタの神理は、北東の諸國から北西の諸國にかけて、その衆生の心の中に、あまねく廣まって行ったのでした。
마가다국을 중심으로 해서, 붓타의 신리는, 북동의 여러 나라부터 북서의 여러 나라에 걸쳐서, 그 중생의 마음속에, 널리 퍼져 갔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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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つの約束──歸依への法則
세 가지의 약속──귀의로의 법칙
 


クシャトリヤの校外、東北の山の手に、ビンビサラ―・ラジャン(ビンビサラ―王)の命令で、ガランダという富豪が、ガランダ村の竹林の中に、プッタの宿舍と說法の廣場を寄進されました。それは、ヴェル・ヴェナ―(竹林精舍)と呼ばれ、マガダ國における、サンガ―(敎團)の中心になって行きました。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 교외, 북동의 높은 지대의 주택지에, 빔비사라・라잔(Bimbisara, 頻婆娑羅王, 빈비사라왕)이 명령으로, 가란다(迦蘭陀)라고 하는 부호(富豪)가, 가란다 마을의 죽림 안에, 붓타의 숙사(宿舍)와 설법의 광장을 시주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벨루・베나(Venuvana, 죽림정사)라 불리우며, 마가다국(國)에 있어서의, 상가(교단)의 중심에 되어 갔습니다.

 

そして、ラジャグリハ南西の西向にあったガヤ・ダナのカシャパ─の三兄弟を始め、その弟子達とヤサの友人達をふくめ、サンガ―の人々は千七百人近くになり、バラモン達の多くは、各地に分散して、プッタ・ス―トラ(悟りへの道)の法を衆生濟度のために說いて行くのでした。
그리고,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 남서쪽의 서방에 있는 가야・다나(迦耶山 가야산, 象頭山 상두산)의 카샷파 삼형제를 시작으로, 그 형제들과 야사((Yaśas, 耶舍)의 친구들을 포함하여, 상가(교단)의 사람들은 1700명 가까이 되어, 바라문들의 대부분은, 각지로 분산해서,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길)의 법을 중생구제를 위해 설명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また、ラジャグリハのヴェシャ―(商工業者)やシュドラ―(奴隸)階級の男達も、プッタに歸依して行きました。
또,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의 베샤(바이사, 상공업자)나 슈드라(노예)계급의 남자들도, 붓타에게 귀의해 갔습니다.

 

その當時、プッタのサンガ―に弟子入りする條件として、次の三つの約束がありました。
그 당시, 붓타의 상가(교단)에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それは、
一、プッタに歸依するか。
一、タルマ(法)に歸依するか。
一、サンガ―に歸依するか。
であり、この約束が結ばれて、始めて弟子入りを許されたものです。
그것은,
一、붓타(불타)에게 귀의하는가?
一、달마(법)에 귀의하는가?
一、상가(교단)에 귀의하는가?
이며, 이 약속이 맺어지고, 비로소 제자가 됨을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そして、弟子入り前の條件として、一週間山中入って、心の整理をし、その中で心が美しくなった者には後光が出てくるので、その光の量によってプッタ・タルマ・サンガ―に歸依させる、といった道が開かれることになっていました。
그리고, 제자가 되기 전의 조건으로서, 일주일간 산속에 들어가, 마음의 정리를 하고, 그 중에서 마음이 아름답게 된 사람에게는 후광(後光)이 나오는 데, 그 빛의 양(量)에 의해서 붓타・달마・상가에 귀의시킨다, 라고 한 길을 열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歸依する希望者は、心の窓が開かれているため、その心の中から後光まで、調和度を査定されたのです。
귀의하는 희망자는, 마음의 창이 열려 있기 때문에, 그 마음속부터 후광까지, 조화의 정도를 조정하게 한 것입니다.

 

そうした噓のつけない生活によって、サンガ―の心は、日增しに淨化されて行くのでした。
그러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생활에 의해서, 상가(교단)의 마음은, 날마다 정화되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その頃、五アラハンの一人アサジが、ラジャグリハの町を朝早く托鉢していましたが、その威儀の正しい行動に、通りかかった一人のサロモンが感動していました。
그 무렵, 5 아라한의 한 사람인 아사지(Assaji, 阿説示) 가, 라쟈그리하(Rajagrha, 王舍城) 읍내를 아침 일찍 탁발하고 있었는데, 그 위의(威儀)의 올바른 행동에,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사람의 사로몬(수행자)가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위의[威儀]  《국어/한자사전》
①무게가 있어 외경(畏敬)할 만한 거동(擧動). 예법(禮法)에 맞는 몸가짐②'계율(戒律)'의 다른 이름 

 

「ああ、何と安らぎのある、執着から離れて遊行している氣高い姿であろうか。もし、全ヨジャナ―(世界)に眞に自覺を得た人があるならば、このサロモンはその中の一人かも知れない」
「아~, 뭔가 편안함의 있고, 집착에서 떠나 유행(遊行 : 중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하고 있는 고귀한 모습이로구나.  만약, 전 요자나(세계)에 진실로 자각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이 사로몬(수행자)는 그 중의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そしてため息をしながらアサジの姿をみつめていました。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아사지(Assaji, 阿説示)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アサジは、パラナシ―の郊外ミガダヤで生活していた頃とは異なり、身體に若さをとりもどし、血色も他の修行者とは比較になりませんでした。
아사지(Assaji, 阿説示)는,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교외 미가다야에서 생활하고 있던 시절과는 달리, 신체에 젊음을 회복하고, 혈색도 다른 수행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すっかり執着を斷って、每日の生活が充實しているため、心に何のひっかかりもありませんでした。肉體は、このように心の表現體であるため、誰が見ても、安らぎの境地が解るのでした。
완전히 집착을 끊고, 매일의 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어떤 거리낌도 없었습니다.  육체는, 이와 같이 마음의 표현체이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평안의 경지를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アサジを見て驚いていたサロモンは、求め求めていた人だっただけに、アサジのあとをついて步き、話をする機會を願っていました。
아사지(Assaji, 阿説示)를 보고 깜짝 놀라고 있던 사로몬은, 찾고 찾고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사지(Assaji, 阿説示)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말을 걸 기회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アサジはしかし、無用の論爭をしてはならないと、常にプッタに戒められていたから、なるべく遠ざかろうとします。
아사지(Assaji, 阿説示)는 하지만, 쓸데없는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항상 붓타에게 주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멀어지려고 합니다.

 

當時、バラモンのサロモン達の多くは、好んで自分の思想を口角泡を飛ばして論爭するのが常だったからです。
당시, 바라문의 사로몬들의 대부분은, 곧잘 자신의 사상(思想)을 입에 거품을 물고 논쟁하는 것이 예사였기 때문입니다.

 

だがアサジは、八正道を心の柱として生活しているため、どのようなことがあっても、心を迷わす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하지만 아사지(Assaji, 阿説示)는, 팔정도를 마음의 기둥으로 해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마음을 헷갈리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木蔭で、托鉢で貰った粥をすすろうとしたときでした。さきほどからあとについてきたサロモンが、
나무 그늘에서, 탁발해서 얻은 죽을 마시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아까부터 뒤 따라 온 사로몬이,

 

「どうぞ、このござの上に坐して下さい」
「사양 마시고, 이 돗자리 위에 앉으십시오」

 

と、草で編んだ敷物を出し、坐らせようとしたのに、アサジは驚いてしまいました。
라고, 풀로 짠 깔개를 내놓으며, 앉으십시오 라고 하는데, 아사지(Assaji, 阿説示)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顔を見ると、アサジより年輩であり、なぜ見ず知らずの人が私のような者を親切にするのだろうと、不思議に思いました。
얼굴을 보니, 아사지(Assaji, 阿説示)보다 연배이며, 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을 친절하게 하는 것일까 라고, 불가사의하게 생각했습니다.

 

そして、論爭をいどんでくる人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解ったとき、アサジが、
그리고, 논쟁을 걸어 올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 아사지(Assaji, 阿説示)가,

 

「私のような者に、ご親切ありがどう。どうぞ、私は草むらの上で結構です」
「저와 같은 사람에게, 친절하심에 고맙습니다.  부디, 저는 풀숲 위에서도 좋습니다」

 

と斷りましたが、あまりのすすめに、その座に坐りました。
라고 거절했지만, 지나치게 권유해서,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サロモンよ。私はこの町の東北のナ―ランダという村の、ウパティッサというサロモンです。
「사로몬이여, 저는 이 읍내의 동북쪽의 날란다(Nālandā, 那爛陀)라고 하는 마을의, 우파텟사라고 하는 사로몬입니다.

 

私の師は、サンジャヤです。さきほどから、あなたの威儀の正しさを見ており、眞に自覺を得た人と思っていましたが、あなたはこのような平和な姿になるには、とのような師について習われたのですか」
저의 스승은, 산쟈야입니다.  조금 전부터, 당신의 위의(威儀)의 갖춤을 보고 있고, 참으로 자각을 얻은 사람이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당신은 이러한 평화로운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스승을 모시고 배우신 것입니까? 」

 

ウパティッサは、アサジにそういいました。それは、アサジがカピラ・ヴャ―ストのクシャトリヤの頃、城內のシュドラ―達が彼に對して挨拶した最高の禮でした。アサジは、
우파뎃사는, 아사지(Assaji, 阿説示)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아사지(Assaji, 阿説示)가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크샤트리야(ksatriya)의 당시, 성안의 슈드라(Sudra)들이 그에에 대해서 인사한 최고의 예의였습니다.  아사지(Assaji, 阿説示)는,

 

「サロモンよ。私は、カピラ・ヴャ―ストの王子、シャキャ・プトラ―から出られたプッタを師としています。そのタルマすなわちプッタ・ス―トラを心と行ないの物差としているのです。私はそのプッタの弟子でアサジと申します」
「사로몬(수행자)이여, 저는,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왕자, 샤캬・푸트라(샤가족, 釋迦族))에서 나오신 붓타(佛陀)를 스승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달마(법) 즉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 길)을 마음과 행위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붓타의 제자이며 아시지(Assaji, 阿説示)라고 합니다」

 

と、同じ禮を返しながらいいました。
라고, 같은 예의를 표하면서 말했습니다.

 

「サロモン・アサジよ。師はどのような法を說かれているのですか」
「사로몬・아사지(Assaji)여.  스승님은 어떠한 법(法)을 설법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私は、プッタに歸依してまだ新しいため、詳しいことはお話できませんが、師は、緣生ということを說いています。すべてのものは緣によって生じ、緣によって滅し、苦しみも自らの片よった心と行ないの緣によって作り出している。
「저는, 붓타에게 귀해해서 아직 오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스승님은, 연생(緣生)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만물)은 인연에 의해서 생기며, 인연에 의해서 없어지며, 괴로움도 자기 자신의 치우친 마음과 행위의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 내고 있다.

 

八正道を生活修行として實踐したとき、その一切の苦しみは、遠離して消滅する、ということを敎えられ、私も、コ―サラ國のカピラ・ヴャ―ストのクシャトリヤの頃は自我が强く、欲望の泥沼の中に苦しんでいましたが、救われました。
팔정도를 생활 수행으로 삼아 실천했을 때, 그 일체의 괴로움은, 멀리 떠나서 소멸한다, 라고 하는 것을 가르침을 받고, 저도, 코살라국(國)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 카필라 성(城))의 크샤트리야(ksatriya)의 당시는 자아(自我)가 강하고, 욕망의 수렁 속에 괴로움을 겪고 있었습니다만, 구제되었습니다.

 

今は、出世慾も權勢欲も情欲もなく、怒りの心もなく、平穩な日々を送り、心は常に安らいでいます」
지금은, 출세욕도 권력욕도 정욕도 없고, 성내는 마음도 없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며, 마음은 늘 편안합니다」

 

ウパティッサは、その說明を聞き、自分が今までの修行の中で常に解けなかった疑問のうち、苦しみも自分自身の心と行ないという緣によって作られているのだということを解り、心から喜ぶのでした。
우파뎃사는, 그 설명을 듣고, 자신이 지금까지의 수행 속에서 늘 풀리지 않았던 의문 중에, 괴로움도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위라고 하는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何とか、その師に會って道をたずねたい、と思うのでした。
그리고, 어떻게든, 그 스승을 만나서 여쭙고 싶다, 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緣のお話、苦の解脫、それこそ私の求めてきた道です。私は、私の隣村に住んでいるコ―リタと親交がありますが、二人のうち、どちらでも永遠の神理を悟ったら、相互に連絡しよう、という約束をしておりますが、でき得ればどうか一緖に師に紹介して下さい」
「인연의 이야기, 괴로움의 해탈, 그것이야말로 제가 찾아 온 길입니다.  저는, 저의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코리타와 친교가 있습니다만, 두 사람 중에, 어느쪽이라도 영원한 신리(神理)를 깨달으면, 상호 연락하자고, 라고 하는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어떻게 함께 소개해 주십시오」

 

ということで、アサジと約束をし、ある日、コ―リタとともに、ヴェル・ヴェナ―にプッタをたずね、プッタ・ス―トラに歸依するのでした。
라고 하는 것이며, 아시지(Assaji, 阿説示)와 약속을 하고, 어느 날, 코리타와 함께, 벨루・베나에 붓타를 여쭙고, 붓타・스트라에 귀의하는 것이었습니다.

 

プッタは、コスタニヤ―、ウルヴェラ・カシャパ─達の前で
붓타는, 코스타니야(Añña-Kondañña, 阿若・憍陳如), 우루벨라・카샷파(Uruvela-Kassapa、優楼頻螺・迦葉)들의 앞에서,

 

「ウパティッサとコ―リタは、やがて悟り、私の大弟子となるだろう」
「우파텟사와 코리타는, 이윽고 깨달아, 나의 대제자가 될 것이다」

 

と紹介すろのでした。
라고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しかしこのとぎ、他の古い弟子達の間では、新參者がやがて先輩をさしおいて指導者になるということで、不平が起こるのでした。
하지만 이 때, 다른 오래된 제자들 간에는, 신참자가 이윽고 선배를 제쳐놓고 지도자가 된다고 하는 일로, 불평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プッタは、このような問題が起こったために、弟子達を集め、
붓타는, 이와 같은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나아가,

 

「人間は、今世だけで新しに古いということで差別することは、おろかなことだ。
「인간은, 금세만으로 새롭고 오래다 라고 하는 것으로 차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ウパティッサもコ―リタも、ヴェル・ヴェナ―にきたのは始めててあろう。
우파뎃사도 코리타도, 벨루・베나(Venuvana, 죽림정사)에 온 것은 처음일 것이다.

 

しかし前世において、すでに私の弟子として道を說いた者達だ。
하지만 전세(前世)에서, 이미 나의 제자로서 길을 설명한 사람들이다.

 

プッタは、過去世の生命を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붓타는, 과거세의 생명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生命の轉生輪廻の過程において、特に私と同じ道を說いた緣の深い者達だということを知るが良かろう。
생명의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특이 나와 같은 길을 설명한 인연의 깊은 사람들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앎이 좋을 것이다.

 

私の生命も過去六佛から成り、今のこの地に肉體を持って、悟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나의 생명도 과거육불(過去六佛)로 되어, 지금 이 땅에 육체을 가지고, 깨달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諸々の弟子達も過去世において、緣の絲に結ばれ、そして今あるということだ。
여러 여럿의 제자들도 과거세에서,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그리고 지금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に生命の轉生をとおして、緣生に觸れていることを悟らなくてはならにい。
이와 같이 생명의 전생(轉生)을 통해서, 연생(緣生)에 닿고 있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今、この大弟子となる者達も、過去世で良く修行して、廣い豊かな丸い心を作り、その器が大きくなっているのだ。
지금, 이 대제자가 되는 자들도, 과거세에서 잘 수행하고, 넓고 풍성한 둥근 마음을 만들어, 그 그릇이 크게 되어 있는 것이다.

 

それは、この者達の心の調和によって得た光明の大きさが證明するはずだ」
그것은, 이 사람들의 마음의 조화에 의해서 얻은 광명의 크기가 증명할 것이다」

 

と、生命の轉生過去六佛、肉親眷屬卽魂の兄弟について說法されたのです。
라고, 생명의 전생(轉生) 과거(過去) 육불(六佛), 육친권속 즉 영혼(魂)의 형제에 대해서 설법하신 것입니다.

 

そしてさらに、
그리고 더욱이,

 

「深遠にして無上の神理を求める者が、地位や名譽の高低を爭うようなことは、サロモンとしての心がけにふさわしくはないだろう。
「심원하며 최상(무상)의 신리를 구하는 사람이, 지위나 명예의 고저를 다투는 것과 같은 일은, 사로몬으로서의 마음가짐에 걸맞지 않을 것이다.

 

ひたすら、正道に精進努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
한마음으로, 정도(正道)에 정진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とサンガ―のサロモン達をさとし、戒められるのでした。
라고 상가(교단)의 사로몬들을 타이르고(가르쳐 인도하고), 훈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諸々の不調和な惡いことをなすこともなく、諸々の善をなすことだ。
그리고, 온갖 부조화한 악안 일을 행해서는 안 되며, 온갖 선을 행하는 것이다.

 

自らの缺點を修正するために、自らの智慧と勇氣と努力によって完成することが大事であり、その結果、心は淨化して、光明に滿たされるのだ。
자신의 결점을 수정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혜와 용기와 노력에 의해서 완성하는 일이 중대사하며, 그 결과, 마음은 정화되어, 광명으로 충만케 될 것이다.

 

これこそが、過去、現在、未來の、三世のプッタの敎えだということを、心に銘記するが良かろう」
이것야말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의 붓타의 가르침이다 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명기(명심)함이 좋을 것이다」

 

プッタの言葉に、弟子達は、すっかり自らの想念と行爲を反省し、明かるいサンガ―が築かれて行くのでした。そして、大衆の心に調和と安らぎへの神理の種をまくことに  努力して行くのでした。
붓타의 말에, 제자들은, 완전히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반성하고, 밝은 상가(교단)이 구축되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마음에 조화와 평안으로의 신리(神理)를 뿌리는 일에 노력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ウパティッサは、偉大な實母、良妻賢母の名前をシャリ―と呼んでいたので、この名前をとってシャリ―プトラ―と呼ぶことになりました。
우파텟사는, 위대한 실모(친어머니), 양처현모의 이름을 샤리(Sari, 舎利)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름을 들여 샤리푸트라(Sariputra, 舎利弗)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양처현모[良妻賢母] 같은말=현모양처(賢母良妻) 《한자사전》
지아비에게는 좋은 아내이면서 자녀(子女)에게는 현명(賢明)한 어머니를 두고 이르는 말

 

またコ―リタは、モンガラ―ナ―と名前を改め、プッタの神理を悟り、心の窓も開かれた心眼を持ってあらゆる現象を見とおす力がつきました。
또한 코리타는, 몽가라나(Moggallaana, 目犍連)라고 이름을 고치고, 붓타의 신리(神理)를 깨닫고, 마음의 창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온갖 현상을 꿰뚫어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シャリ―プトラ―は、その後、內在された偉大な智慧に到達し、神理の說法はことごとく迷える衆生の心を打ち、多くの弟子達がプッタに歸依する功績をたてます。
샤리푸트라(Sariputra, 舎利弗)는, 그 후, 내재된 위대한 지혜에 도달하고, 신리의 설법은 모조리 방황하는 중생의 마음에 심금을 울리고, 많은 제자들이 붓타에게 귀의하는 공덕을 쌓습니다.

 

かくして、他の弟子達の正法流布もあり、サンガ―の組織は確立され、人々の渴き切った心に安らぎの境地を築き、プッタの敎えも、砂にしみ入ってゆく水のように、マガダ國、コ―サラ國、カシ―國、ヴャチ―國と廣まってゆくのでした。
이렇게 하여, 다른 제자들의 정법유토로 있고, 상가(교단)의 조직은 확립되어, 사람들의 목마른 마음에 평안의 경지를 만들고, 붓타의 가르침도, 모래에 스며들어 가는 물처럼, 마가다국(國), 코살라국(國), 카시국(國), 바치국(國)으로 널리 퍼져가는 것이었습니다.

 

般若心經の中に舍利子として出てくるのは、プッタの右腕ともいうべき弟子、シャリ―プトラ―のことです。弟子の代表者として般若心經の中に記されているが「諸々の比丘、比丘尼達よ」というのは、サンガ―のそれらを指しているといえるでしょう。
반야심경 중에 사리자(舍利子)로서 나오는 것은, 붓타의 오른팔이라고도 해야할 제자, 샤리푸트라(Sariputra, 舎利弗)의 일입니다.  제자의 대표자로서 반야심경 중에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 여럿의 비구, 비구니들이여」라고 하는 것은, 상가(교단)의 그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プッタの頃は、バラモン敎が、すっかり多くの衆生の生活の中に根を下ろしていた關係で、サマナ―・サロモンと修行者の段階でいっていたが、プッタのサンガ―においては、ビクを男性の修行者、ビクニは女性の修行者と呼稱されていました。
붓타의 시절은, 바라문교(婆羅門敎)가, 완전히 많은 중생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관계로, 사마나・사로몬과 수행자의 단계라고 하고 었었지만, 붓타의 상가(교단)에 있어서는, 비구(比丘)를 남성의 수행자, 비구니(比丘尼)를 여성의 수행자로 호칭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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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ッタ・ス―トラ(悟への敎え)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가르침)

 

ゴ―ダマ・プッタの時代、プッタ・ス―トラは、ガンガ―河を挾んで南北に流布されていました。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의 시대, 붓타・스트라(Putta Stra, 瞿曇 佛陀는, 강가(겐지즈)강을 끼고 남북으로 유포되고 있었습니다.

 

そのおもな國は、ガンガ―の北側、ヒマラヤの麓のコ―サラ、ヴャチ―兩國があり、南側にはマガダ、カシ―などの國々がありました。文明も、このガンガ―の支流や本流を周邊にして各町に榮えていたものです。
그 주요국은, 강가 강(겐지즈 강)의 북측, 히말라야의 산기슭의 코살라, 바치 양국이 있고, 남측에는 마가다, 카시 등의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문명도, 이 강가 강(겐지즈 강)의 지류나 본류를 주변으로 해서 각읍에 번영하고 있던 것입니다.


私がやさしく般若心經を解說したように、哲學されたむずかしい言葉では、當時の文盲の衆生の心に神理の種を蒔くことは不可能でした。
제가 쉽게 반야심경을 해설한 것처럼, 철학화된 어려운 말로는, 당시의 문맹한 중생의 마음에 신리의 씨앗을 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必然的に、河岸の使命を持って道を說いたのでしょう。
필연적으로, 강기슭의 사명을 가지고 길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諸々の衆生よ。こちらの岸は人々が多いためにマンゴやリンゴ、ミカンもとり尽くされてひもじい生活をしている者達が多い。
여러 여럿의 중생이여, 이쪽의 언덕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망고(Mango)나 사과(林檎), 감귤(柑橘)도 다 따버려서 배고픈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足ることを忘れてしまった心ない者達によって、衆生は、苦しく迷いの多い人生を送っているのだ。法を忘れ去った鬪爭と破壞の、不調和な社會になっている。
만족함을 잊어버린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중생은, 괴롭고 방황하는 많은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투쟁과 파괴의, 부조화한 사회가 되어 있다.

 

しかし彼の岸は、こちらの岸より、食糧にも惠まれた平和な樂園である。彼の岸は、調和された安らぎの世界なのだ」
하지만 저 기슭(언덕)는, 이쪽의 언덕보다, 식량도 풍족한 평화로운 낙원이다.  저 기슭은, 조화된 편안한 세계인 것이다」
 
と、人生航路のきびしい生活行爲を例にとらえて說明します。
라고, 인생항로의 혹독한 생활행위를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迷いの岸から、法を悟ってきびしい人生航路をわたったときに、一切の欲望や一切の苦しみから解放され、安らぎのある、平和な悟りの彼岸、あの世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るのだ」
「미혹의 기슭(물가)서, 법을 깨닫고 혹독한 인생항로를 건넜을 때에, 일체의 욕망이나 일체의 괴로움에서 해방되어, 편안함이 있는, 평화로운 깨달음이 피안, 저 세상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피안[彼岸] 《한자/국어/일본어사전》
①강의 건너편 기슭 ②사바(娑婆) 세계(世界)의 저 쪽에 있다는 정토(淨土) ③'도피안'의 준말
①사바세계 저쪽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 ②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름. 또는 그런 경지.
①彼岸(피안);悟の境界に至ること(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 ;涅槃の境界(열반의 경계)。 ②向がわの岸(강 건너의 기슭)


プッタは、そういうように、やさしく說かれたものです。
붓타는, 그렇게, 쉽게 설명하신 것이다.

 

プッタは、多くの弟子達にも、悟りの道を說き、またあるときは、泥沼の中に咲く蓮の花などの方便を用いて、人生航路の乘り舟から執着を離すための說法をし、迷える衆生を苦しみから救濟して行くのでした。
붓타는, 많은 제자들에게도, 깨달음의 길을 설명하고, 또한 어떤 때는, 수렁 속에 피는 연꽃 등의 방편을 사용하여, 인생항로의 승선하는 배로부터 집착을 놓기 위한 설법을 하고, 방황하는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제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四十五年間に說かれた道は、永遠の神理でした。
그리고, 45년 동안 설명한 가르침(道)은, 영원한 신리였습니다.

 

しかし佛敎は、いつの間か、他力信仰の誤まった方向に進みました。僧侶は葬式佛敎にうつつを抜かし、學者達は知だけで行ないのない哲學佛敎に凝り、また古い歷史的な信仰による寺院、佛閣は、偶像や增上慢を人々に招來するような現代佛敎に成り下がってしまい、佛敎本來の心は、人々の心の中から消え去ってしまったのです。
하지만 불교는, 어느 사이엔가, 타력신앙의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악화)되었습니다.  승려는 장례식 불교에 열중하여 제정신을 잃고, 학자들은 지식만으로 행함이 없는 철학불교에 열중하고, 또한 오래된 역사적인 신앙에 의한 사원, 불각(불당)은, 우상이나 증상만(오만)을 사람들에게 초해하는 것과 같은 현대불교로 전략해 버리고, 불교 본래의 마음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佛敎の多くは、人々の知識によって生活の道具に變わり、商法に成り下がってしまったのです。
불교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지식에 의해서 생활의 도구로 바뀌고, 장사하는 방법(商法)으로 전략해 버렷던 것입니다.

 

他力信仰の肉體的な遺骸に執着を持たせて、信仰を驅り立ててしまいました。こんなことで、どこに、本当の道があるのでしょうか。
타력신앙의 육체적인 유해에 집착을 갖게 해서, 신앙을 부추기어 그렇게 하도록 해 버렸습니다.  어디에, 진정한 가르침(道)가 있는 것일까요?

 

現代人の多くは、人生航路を手さぐりで生活をしているのです。    
현대인의 대부분은, 인생항로를 암중모색하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これは良いのでしょうか。
이것은 좋은 것일까요?

 

神理には、古いとか新しいとかいう差はないのです。永遠不變のものなのです。
신리에는, 오래 된 것이라든가 새로운 것이라든가 라는 하는 차이는 없는 것입니다.  영원불변한 것인 것입니다.

 

宗敎家も、信仰者も、實踐生活がないため、神理と頭だけでこわ回してかえって理解できなっくなってしまったといえるでしょう。
종교가도, 신앙자도, 실천생활이 없기 때문에, 신리와 머리만으로 필요 이상으로 주물럭거리며 오히려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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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後の弟子──百十七歲のシヴリダ-
최후의 제자──117세의 시브리다

 

プッタの說く法は、自然の姿をとおして、人間の在り方を、當時の衆生に說き明かして行きました。
붓타가 설교하는 법은, 자연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당시의 중생에게 설명해 갔습니다.

 

プッタの敎えは、八正道を心の物差しとして、調和された安らぎの道につけと常に說き、轉生輪廻の法を肉體的に示し、萬生萬物は相互の關係にあって安定しているのだから、感謝の心を持ち、報恩の行爲を實踐することが大切である、と敎えるのでした。
불타의 가르침은, 팔정도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조화된 평안의 실마리를 찾아내려 항상 설교하며, 전생윤회의 법을 육체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만생만물은 상호 관계에 있어서 안정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報恩の行爲としては、自分の環境に應して奉仕と布施の實踐活動をする。社會人類のために果たすべき人の道、を敎えるのでした。
보은의 행위로서는, 자신의 환경에 응해서 봉사와 보시의 실천활동을 한다.  사회인류를 위해서 완수해야 할 사람의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その四十五年間の道は、慈悲と愛の塊りのようにすごしたもので、常に、
그리고, 그의 45년간의 가르침(導)는,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처럼 생활한 것이며, 항상.

 

「人類は兄弟だ。貧乏人も金持ちも、地位の差に關係なく、みなプッタの子であり、生まれた環境は、自らが選んだものであり、その環境をとおして悟り衆生を濟度するための目的を持って生まれてきたのである」
「인류는 형제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지위의 차이에 관계없이, 모두 불타의 자녀이며, 태어난 환경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며, 그 환경을 통해서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온 것이다」

 

と、原因と結果の法則を說き、悟りへの道を示したのでした。
라고,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설교하고, 깨달음으로 길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八十一歲のとき、クシナガラの地で多くの比丘、比丘尼に見守られながら、プッタが最後の說敎をしたときのことです。
81세의 때, 쿠시나라가(Kusinara, 拘尸那揭羅)의 땅에서 많은 비구, 비구니를 지켜보면서, 불타가 최후의 설교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年老いた一人のサロモンが、入口のことろで、ゴ―ダマ・プッタに紹介してくれと、問答をしているのを、橫になって休んでいて聞き、秘書役のアナンダに命令しました。
연로한 한 명의 사로몬이, 입구 쪽에서,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에게 소개해 달라고, 문답을 하고 있는 것을, 누워서 쉬고 있으면서 듣고, 비서의 소임을 맡은 아난타(阿難陀)에게 명령했습니다.

 

「私の最後の弟子がきた。ここへとおしなさい」
「나의 최후의 제자가 왔다.  이곳으로 안내하시오」
 
そのサロモン、シヴリダは、すでに百歲をはるかに越し、あらゆる修行をしてきたバラモン種でしたが、今世のうちに、本当のプッタに會いたいと思い、瘦せおとろんた身を杖に託して、ようやくクシナガラの地に辿りついたのでした。
그 사로몬, 시브리다는, 이미 100세를 훨씬 넘기고, 온갖 수행을 해 온 바라문 종이었지만, 금세 동안에, 진실한 불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여위고 쇠약해진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차츰 쿠시나가라(Kusinara, 拘尸那揭羅)의 땅에 길을 물어가며 겨우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今まで、探し求めては會った師も多かったのですが、會ってみると、そのほとんどが自稱プッタであり、もしゴ―ダマ・プッタも僞りのプッタであったならば、この場を默って去ろうと決心しながらシヴリダはだずねてきたのでした。
지금까지, 탐구해서 만난 스승도 많았던 것입니다만, 만나 보면, 그 대부분이 자칭 불타이며, 만약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도 거짓 불타였다고 한다면, 이 장소를 묵묵히 떠나리라 라고 결심하면서도 시브리다는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しかし、この心を、プッタはすでに知っていました。アナンダは、プッタがニイルヴャ―ナ(涅槃)に入るときが迫っているので、遠慮して貰いたい思っていましたが、プッタのお聲がかりでは仕方がないと締め、プッタの前に、その老人の手を引いて案內するのでした。シヴリダは、プッタの枕邊に坐すと、
하지만, 이 마음은, 불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난타(阿難陀)는, 불타가 니이루바나(열반)에 들어갈 때가 임박하고 있기 때문에, 근심이나 걱정으로 말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불타의 추천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고 체념하고, 불타의 앞에, 그 노인의 손을 잡고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브리다는, 불타의 머리맡에 앉다,

 

「私は、今年で、百十七歲になるバラモンのサロモン、シヴリダと申します。私は、最高の悟りを得られた方を探し求めてあらゆる地を步きました。その中には、プッタと名乘る人々もいましたが、私には納得できませんでした。本当の、サロモンとはどういう人をいうのでしょうか、敎えて載きたいのです」
「저는, 올해로, 117세가 되는 바라문 의 사로몬, 시브리다라고 합니다. 저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신 분은 탐구하며 모든 당을 걸었습니다.  그 중에는, 불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진실한, 사로몬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兩手を差き出し、土の上に頭をつけて、そう語るのでした。言葉は、老齡のためか、どぎれどぎれでした。
양손을 내밀고, 땅 위에 머리를 붙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노령 때문인지, 여러 차례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습니다.

 

プッタはそれに力强く、こういいました。
불타는 그것에 힘차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シヴリダよ、良くきてくれた。世の中には、自らプッタと稱しながら、その心と行ないには矛盾の多い者達がいる。
「시브리다여, 잘 와 주었다.  세상에는, 스스로 불타라고 칭하면서도, 그 마음과 행위에는 모순의 많은 사람들이 있다.

 

本当のサロモンとは、生老病死の苦しみから解脫するため、自ら片よりのない心を持ち、中道の物差しを持って步んだ者をいう。
진실한 사로몬이란,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해탈하기 위해, 스스로 치우침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중도의 마음의 척도를 가지고 걷는 사람을 말한다.

 

中道の物差しとは、八正道をいうのである。
중도의 마음의 척도란, 팔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この正道を、每日の生活の中で實踐してこそ、心のわだかまりがなくなり、一切の恐怖心から除けれて、安らぎの生活を送れるようになるのだ。
이 올바른 길(正道)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실천함이야 말로, 마음의 거리낌이 없어지고, 일체의 공포심에서 제거되어, 평안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苦しみは自らの惡い心と行ないによって原因を作り出しているものだ。そのため、人は執着から離れ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正しく生きることができないのだ。
괴로움은 자신의 악한 마음과 행위에 의해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 올바르게 살 수가 없는 것이다.

 

八正道の道を行じている者、それが本当のサロモンというものだ」
팔정도의 가르침(道)을 행하고 있는 사람, 그것이 진실한 사로몬이라고 하는 것이다」

 

常と變わらない聲音と言葉で、プッタは、シヴリダに道を說くのでした。シヴリダは大粒の泪を流し、心を打たれて、
늘 변함 없는 목소리와 말로, 불타는, 시브리다에게 가르침(道)을 설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부리다는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며, 감격되어,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お言葉が、私の心の中にしみ渡り、嬉しさが心から湧き出てまいり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말씀이, 저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기쁨이 마음속에서 솟아나오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感情に言葉にならない有樣で禮をいうのでした。プッタは、シブリダが、心から理解したことを賞めるのでした。シブリダは、
감격으로 말문이 막인 상태로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타는, 시브리다가, 진심으로 이해한 것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시브리다는,

 

「ゴ―ダマ・プッタ、私を弟子にして下さい。プッタのニイルヴャ―ナ(涅槃)に入られるのを見てはおられません。私は、一足先に往き、プッタのお歸りになるのをお待ちしたいのです。お許し下さいますか」
「고다마・붓타(Gotama Putta, 瞿曇 佛陀),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붓타의 니이루바나(열반, Nirvana)에 드는 것을 보지 않겠습니다.  저는 한발 앞서 가서, 불타가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と頭を上げ、プッタに希望を述べるのでした。見守っている弟子達も、シヴリダの心を察し、美しく悟ったその姿を見て、すすり泣くのでした。それは、靜かな森に、しみ入るようなすすり泣きの聲でした。.プッタは、
라고 고개를 들고, 불타에게 희망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도, 시브리다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름답게 깨달은 그 모습을 보며, 흐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조용한 숲에, 스며드는 흐느끼는 소리였습니다.  불타는,

 

「シヴリダよ、望みのとおりにするのが良かろう」
と暖かい慈愛の言葉をかれるのでした。
「시브리다여,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고 따뜻한 자애의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シヴリダよ、望みのとおりにするのが良かろう」
「시브리다여,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と身體を起こして、シブリダは、プッタのそばにいた諸々の弟子達にも挨拶をしました。
「감사합니다」
라고 신체를 일으키며, 시브리다는, 불타의 곂에 있던 여러 여럿의 제자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サロモン・サマナ―、アラハン・シヴラ―の先輩のみな樣、私はプッタの弟子になりました。先輩をさしおいて失禮ですが、プッタよりお先に、ニイルヴャ―ナに入らせて戴きます。
「사로몬・사마나, 아라한・시브라의 선배 여러분, 저는 불타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선배를 제쳐두고 실례합니다만, 불타보다 먼저, 니이루바나(열반)에 들어가겠습니다.

 

私は、一切の執着から離れて、心が安らかになりました。みな樣の活躍を心から祈ります。
저는, 일체의 집착에서 떠나, 마음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활약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ではプッタ、お先に失禮いたします」
그럼 불타,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それは、最後の、生命の燈がゆれるのにも似た言葉でした。終わると同時に、シヴリダは、あたかも古木が朽ちて倒れるように、プッタのそばで大往生をしたのでした。
그것은, 최후의, 생명의 등불이 흔들리는 것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끝마침과 동시에, 시브리다는, 마치 고목이 썩어 쓰러지듯이, 붓타의 곁에서 대왕생을 한 것이었습니다.

 

すでにその頃、シャリ―・プトラ―も、マハ―・モンガラナ―も、プルナ・ヤニ・プトラ―も、この世の人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이미 그 무렵, 샤리・푸트라(Sariputra, 舎利弗, 사리불)도, 마하・몽가라나(Mahaamoggallaana, 摩訶目犍連, 마하목건련)도, 푸르나・야니・푸트라(PuurNamaitraayaniiputra,富楼那弥多羅尼子, 부루나미타라니자, 부루나)도,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プッタはそれを見ると、靜かに眼を閉じながら、四十五年の正道の流布の道をふり返り、苦しい呼吸の中で、笑顔さえ見せて思い出に耽るのでした。
붓타는 그것을 보자,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45년간의 정도(正道)의 유포의 길을 뒤돌아보며, 괴로운 호흡 중에서, 미소마져 보이며 추억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そのとき、アナンダは、問いました。
그 때, 아난다(阿難陀)는, 질문했습니다.

「プッタ······プッタ······プッタがニイルヴャ―ナに入られたのち、私達はどのようにしたら良いでしょうか。それからご遺骸の處理は······」
「붓타······붓타······붓타가 니이루바나(열반)에 들어가신 후에, 저희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 다음에 유해의 처리는······」

 

しばらくしてから、プッタは答えました。
잠시 후에, 붓타는 대답했습니다.

 

「アナンダよ、私の說いた法は、お前達の心の中に永遠に殘るだろう。この法を、迷える衆生の心にしっかりと敎え、救濟しなくてはならない。
「아난다(阿難陀)여, 내가 설교한 법은, 너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 법을, 방황하는 중생의 마음에 확실히 가르치고,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それは、比丘、比丘尼の道であろう。
그것은, 비구, 비구니의 길(道)일 것이다.

 

私の肉體は亡びても、心は常にお前達のそばにいるのだ。
나의 육체는 없어져도, 마음은 늘 너희들의 곁에 있는 것이다.

 

今、太陽は沈んでいるが、明日になればまた東から昇るであろう。私の姿が見えなくなっても、決して淋しいことではないのだ。
지금, 태양은 지고 있지만, 내일이 되면 또 동쪽에 뜰 것이다.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결코 외로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淋しいときには、私の生まれたルビニを思い出すが良かろう。最初に悟りを開いたウルヴェラの地を思い出すのも良いだろう。
쓸쓸할 때는, 내가 태어난 룸비니(Lumbinī, 藍毘尼)를 상기함이 좋을 것이다.  최초에 깨달음을 연 우루벨라(Uruvela)  숲을 상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またパラナシ―のミガダヤは、私が最初の說法をしたところだが、その地を思い出すも良いだろう。
또 바라나시(BaaraaNsii, 波羅奈国)의 미가다야는, 내가 최초의 설법을 한 곳인데, 그 땅을 상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そのほか、各地のヴェナ―(精舍)やグリドラクタ―もお前達の心の中に殘っているだろう。.
그 밖에, 각지의 베나(정사)나 그리드라쿠타(Gridhakuta, 靈鷲山, 영취산)도 너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生ある者は、必ず滅るるのだ。このことを悲しがってはならないのだ。
살아있는 자는,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다.  이 일을 슬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私の遺骸は、ウパシカ、ウバサカ(在家)の衆生が處置するであろう。
나의 유해는, 우바시카, 우바사카(재가)의 중생이 처치할 것이다.

 

お前達は、正道を諸々の衆生に說き、その苦しみから解脫させることが大切だ。そのことが、私に對しての報恩ともなるのだ。
너희들은, 정도(正道)을 여러 여럿의 중생에게 설교하고, 그 괴로움에서 해탈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 일이, 나에 대해서의 보은도 되는 것이다.

 

アヌプリヤの森が、天災地異におそれわれたとき、岩山は割れ、大雨が降りそそぎ、割れた岩山は谷川と變わってしまった。
아누푸리야 숲이, 천재지변에 무서운 일이 생겼을 때, 바위산은 쪼개지고, 폭우가 세차게 쏟아지고, 갈라진 바위산은 계류로 변해 버렸다.

 

小さな動物達は、逃げ場を失しって、右往左往の大騷ぎとなった。そのとき、一匹の逃げ遲れた年老いた大象は、その谷をみつめていた。
작은 동물들은, 도피처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크게 놀라게 되었다.  그 때, 한 마리의 미쳐 도망치지 못한 연로한 큰 코끼리는, 그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周圍の、逃げ場を失った小動物達の姿を見たとき、その老いた大象は、餘生いくばくもないことを知り、自らその巨體を岩山の割れ目に入り、小動物達を廣い彼の岸に渡してやって死んだ。
주위의, 도피처를 잃은 작은 동물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늙은 큰 코낄리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자신의 그 거체(거구)를 바위산의 틈에 끼워 넣고, 작은 동물을 넓은 저 기슭으로 건네 주고 죽었다.

 

お前達も、迷ってはならない。私をその老いた大象のように踏み台として、多くの迷える衆生を、勇氣と智慧と努力を持って、迷いの岸から、悟りの彼岸へ導かなくてはいけない。
너희들도, 달아나서는 안 된다.  나를 그 늙은 큰 코끼리처럼 발판으로 삼아, 많은 방황하는 중생을, 용기와 지혜와 노력을 가지고,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やがて私の法は、マンデヤ、デイシヤ(中國)に渡り、ジャブ・ドウバ―のケントマティにつたわって行くだろう。
이윽고 나의 법은, 만데야, 데이시야(중국)으로 건너가, 쟈바・도우바(Javadova, 동방의 나라)의 겐토마티(Kentmati, 도회지)로 전해져 갈 것이다.

 

私は、そのときには多くの弟子達と共にまた生まれ變わって、この道を說こう」
나는, 그 때에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또한 환생하여, 이 가르침(道)을 설교할 것이다」

 

そばにいたマイトレイヤ―は、プッタの背に手をやりながら、マンチュリヤ―尊者、カチャナ―尊者、ウパリ尊者、スブティ―尊者に、未來の再會を約して歸って行ったのでした。
곁에 있던 마이트레이야는, 붓타의 등에 손을 대면서, 만추리야존다, 카차나존자((Kaccaana, 迦旃延尊者,가전연존자), 우파리존자(Upaali,優波離尊者), 스부티존자(Subhuuti, 須菩提尊者)에게, 미래의 재회를 약속하며 돌아 갔던 것이었습니다.

 

★우파리란, 분은 카필라성의 이발사였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사촌동생들이 머리를 잘라 준 분입니다. 자신이 왕자들이 머리를 잘라 준이 들통나면, 난처한 일이 생길 것이라  걱정이 되어, 결국은,  귀의하게 됩니다. 이미, 다른 글에 있습니다.

 

★마이트레이야 → 미륵(彌勒)→ 미래불(未來佛)??
 マイトレーヤは、仏教において弥勒菩薩として知られているが、釈迦が法を説いたときに、その助力者の一人となったバラモン出身の実在の女性のことであったとされる。(高橋信次『心の発見 現証篇』135-137頁、高橋信次『心の発見 神理篇』78頁参照)
마이트레이야는, 불교에서 미륵보살로서 알려져 있지만, 석가가 법을 설교했을 때에, 그 조력자의 한 사람이 되었던 바라문(婆羅門) 출신의 실재(實在)의 여성인 것이었다고 하신다. (다카하시 신지 『마음의 발견 현증편』135-137항, 다카하시 신지『마음의 발견 신리편』78항 참조)

▲일본어 위키백과 사전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Takahashi Shinji)편의 주해 참조.


★※ 마음의 발견 현증편의  제3장 악령(惡靈)편의 그 하위의 120페이지~137에 해당하는 신의 가르침 ── 악령과의 대화의 편의 들어있는,136페이지에는,
<중략>...불타는, 81세로, 쿠시나가라의 땅에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들은, 몰 후 90일 째에, 마하 카샷파님을 지도자로삼아, 제1회의 집결을 하고, 불타의 45년 간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분담하여, 어떤 사람은 암기하고, 어떤 사람은 기록한 것입니다.
저도, 그 후 바라나시로 돌아가, 불타가 말한 미래의 일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인데, 그것이 후세에 전해져, 미래불(未來佛)이라고 말하여 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1800년 쯤 전에, 나라쥬나루(용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가 남긴 책은, 특히 기록하고, 미래불이라고 말한 모양입니다.
구전이라고 하는 것도, 2500명의 사람들을 같은 간격으로 두고 전했을 경우, 최초의 사람에게 구전한 것이 2500명 째의 사람에게는 어떻게 전해질까요?
꽤 어려운 것입니다...<중략>
※간단히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アニルッタはプッタの禪定の樣子を心の眼で見ていましたが、プッタが遂に九禪定に入り、ニイルヴャ―ナされたことを知ると、そのことを周圍の比丘、比丘尼達に告げました。
아니룻타(Aniruddha, 阿那律)는 붓타가 선정하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붓타가 마침내 구선정(九禪定)에 들어가서, 니이루바나(열반)하신 것을 알자, 그 일을 주위의 비구, 비구니들에게 알렸습니다.

 

比丘達は、それを聞くと、いっせいに悲しみの泪に暮れました。その悲しみの聲は、森の靜けさを破り、四邊に滿じて行くのでした。
비구들은, 그것을 듣자, 일제히 슬퍼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슬픔의 소리는, 숲의 정적을 깨고, 주변에 가득차 가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そのことは、早馬により、ヴェサリ―で說法していたマハ・カシャパ―や、ヴェル・ヴェナ―(竹林精舍)や、ジェダ・ヴェナ―(祇園精舍)、マハ・ヴェナ―(大林精舍)に次々につたえられてきました。
그리고 그 일은, 빠른 말을 타고, 베살리(Vēsali, 毗舍離)에서 설법하고 있던 마하・카샤파(Maha-Kassapa, 摩訶・迦葉)나, 벨루・베나(Venuvana, 죽림정사)나, 제다・베나(Jetavanā, 기원정사), 마하・베나(대림정사)로 차츰 전해졌습니다.

 

マハ・カシャパ―が弟子達とともに、クシナガラの地に到達したのは、一週間後でした。
마하・카샷파(Maha-Kassapa、摩訶・迦葉)가 제자들과 함께, 쿠시나가라 땅에 도달한 것은, 일주일 후 였습니다.

 

その地で茶毘にふし、その灰は、在家の人々によって處理されました。
그 땅에서 다비(화장하고, 그 재는, 재가의 사람들에 의해 처리되었습니다.

 

その後、マハ・カシャパ―が中心となり、アナンダは法を、ウパリは戒律を中心として擔當、プッタの滅後九日目に、ヴェル・ヴェナ―の裏の洞穴の中で、第一回目の集會が行なわれました。
그 후, 마하・카샷파(Maha-Kassapa, 摩訶・迦葉)가 중심이 되어, 아난다(Aananda, 阿難陀)는 법을, 우파리(Upaali,優波離)는 계율을 중심으로 해서 담당하고, 붓타의 멸후 7일째에, 벨루베나(죽림정사)의 안쪽 동혈(동굴) 속에서, 제1회 집회가 거행되었습니다.

 

その中の指導者達は、マハ・カシャパ―、ウパリ―、スブティ―、マハ・カチャナ―、アサジ、マンチュリヤ―、マイトレイヤ―、アヌルタ―、アナ―ダ、テイシャ―、ウパシパ、などで、集まった比丘、比丘尼達は總四百七十六人の人々でした。
그 중의 지도자들은, 마하・카샷파(Maha-Kassapa, 摩訶・迦葉), 우파리(Upaali,優波離), 스부티(Subhuuti, 須菩提) ,마하・카챠나(Mahaakaccaana, 摩訶迦旃延), 아사지(Assaji, 阿説示), 만추리야, 마이트레이야, 아누루타, 아나다, 데이샤, 우파시파, 등이며, 모인 비구, 비구니들은 총 476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一部分の比丘は、すでに小乘佛敎への道に入り、分裂のきざしはすでに現われていました。
일부분의 비구는, 이미 소승불교(小乘佛敎)로의 길로 들어가, 분열의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しかし、こうしてそれぞれの弟子達は、プッタの四十五年間說いたプッタ・ス―トラを暗記して、その指導を、問題はあったがアナンダが行なったのでした。
하지만, 이렇게 해서 저마다의 제자들은, 붓타가 45년간 설교한 붓타・스트라(깨달음으로의 길)을 암기해서, 그 지도를, 문제는 있었지만 아난다(阿難陀)가 거행한 것이었습니다.

 

このアナンダも、遂にアラハンの境地になり、結集の一員に決定されていたのです。
이 아난다(阿難陀)도, 마침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가 되어, 결집의 일원으로 결정되어 었었던 것입니다.

 

指導者は、各地方にそれぞれが散り、ジャブ・ドウバ―で會いましょうという合言葉を殘して、道を說いて行ったのでした。
지도자는, 각지방으로 저마다가 흩어져, 쟈브토바(Javadova, 도회지)에서 만납시다 라고 하며 서로 말을 남기고, 가르침(道)을 설교해 갔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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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の佛敎とは──八正道の實踐
참된 불교란──팔정도의 실천


こうして佛敎は、その後中國に渡り、哲學化され、むずかしいものに變わってしまいました。
이렇게 해서 불교는,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철학화 되어, 어려운 것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しかも僧侶は、他力本願の大乘佛敎に這入り、他力本願一本やりになって、いつか心が失われて行ったというわけです。
게다가 승려는, 타력본원의 대승불교로 들어가고, 타력본원에 일관하게 되어, 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어 갔다고 하는 연유입니다.

 

本來、僧侶は死んだ人の供養が道ではなかったはずです。生きている人々の迷える心を救濟することが使命であったはずです。
본래, 승려는 죽은 사람의 공양이 길(道)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방황하는 마음을 구제하는 것이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そしてそれには、自分自身の心と行ないから改めて、八正道の實踐をすることが大切なのです。
그리고 그것에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위부터 고치고, 팔정도의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いくら佛典を讀んだことろで、實踐なくして悟れ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經文も同じことです。
아무리 불전을 읽어 보았자, 실천하지 않고서 깨닫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경문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一般では、寫經の功德とか、經文を讀誦とか騷がれて實行している人々も多いようです。しかし、そんなことは、佛敎の道ではない、と知るべきでしょう。
일반에서는, 사경의 공덕이라든가, 경문을 독송한다든가 소란을 피우며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교의 가르침(道)가 아니다, 라고 알아야 할 것입니다.

 

經文の意味が理解して、生活の中に生かさないものは、食堂のウィンドに飾ってあるロウ細工のようなものです。
경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생활 속에 살리지 못하는 것은, 식당의 윈도우에 장식하고 있는 밀랍세공과 같은 것입니다.

 

實踐のない佛敎は、正道ではないといえましょう。宗派の分裂、同じ宗派の中で權力の座を爭って反目しているような宗敎は、邪宗という以外にはありません。佛敎では、鬪爭も破壞も敎えてはないし、そのことを思ってもいけないのです。
실천이 없는 불교는,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파의 분열, 같은 종파 안에서 권력의 자리를 타투며 반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종교는, 사종(邪宗)이라고 하는 의외에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투쟁도 파괴도 가르치지 않고, 이 것을 생각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化石化した宗敎から脫皮すること。そうしないと、自らを地獄に墮としてしまうことを知るべきでしょう。
화석화된 종교에서 탈피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옥에 떨어뜨려 버리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不調和な現象におそわれている宗敎家は、今率直に自分の生活行爲を反省しないと、災いが自分にくるということを悟るべきてす。
부조화한 현상으로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종교가는, 지금 솔직하게 자신의 생활행위를 반성하지 않으면, 재앙이 자신에게 온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家庭內で、,いろいろな不調和な苦しみにおそわれている者達は、その原因を追及しない限り、その苦しみから脫皮はできないでしょう。
가정내에서, 여러 가지 부조화한 괴로움으로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추궁(추적)하지 않는 안, 그 괴로움에서 탈피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心の中に、片よった中道を逸した考えがあっても、その原因は苦しみという結果が出るということです。
마음속에, 치우친 중도를 벗어난 생각이 있어도, 그 원인은 괴로움이라고 하는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信仰に疑問がいる人々は、良くその疑問について追及し、妥協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その疑問が解けるまで、追及することが大事なのです。.
신앙에 의문이 있는 사람들은, 자세히 그 의문에 대해서 추궁(추적)하고,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의문이 풀릴 때까지, 추궁(추적)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ひとつ誤まれば、宗敎は阿片よりおそろしい結果を生むことになるでしょう。理由は、その意識まで腐らせてしまうからです。
자칫 잘못하면, 종교는 아편보다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유는, 그 의식까지 비뚤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自力の基準を良く知って生活をすれば、心の中に曇りは生じないし、ひっかかりもできないでしょう。
자력의 기준을 잘 알고 생활을 하면, 마음속에 흐림(거리낌)은 생기지 않고, 거리낌도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そうすれば、神の光は、私達の心と身體に滿たされ、次元を越えた實在界から、必ず他力の協助が得られるのです。
그렇게 하면, 신의 빛은, 우리들의 마음과 신체에 가득 채워져, 차원을 초월한 실재의 세계에서, 반드시 타력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自己保存や自我我欲の暗い心では、祈れば祈るほど苦しみの泥沼の中にひきこまれます。それば、地獄靈や動物靈に心の中を支配されてしまうからです。
자기보존이나 자아아욕의 어두운 마음으로는, 기도하면 기도할 수록 괴로움의 수렁 속으로 끌려 들어 갑니다.  그것은, 지옥령이나 동물령에게 마음속을 지배당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他人を誹謗すれば、自分に歸ってくるのです。
타인을 비방하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つまりそのような集團は、內部から崩れて行くといえるでしょう。
즉 그러한 집단은, 내부에서 무너져 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調和は、內にも外にも必要な神理だからです。どのような不調和な原因も、不調和な結果になって輪廻してく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ならば、中道以外に調和はない、ということが悟れることでしょう。
조화는, 안에도 밖에도 필요한 신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부조화한 원인도, 부조화한 결과가 되어 윤회(輪廻)해 온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았다면, 중도 이외에 조화는 없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般若心經を解說してみると、もっとも重要な、波羅蜜多、すなわち內在する偉大な智慧に到達するには「どうしたら良いか」ということがわかりません。ここに、大きな問題があるでしょう。
반야심경을 해설해 보면, 가장 중요한, 바라밀라(波羅蜜多), 즉 내재하는 위대한 지혜(智慧)에 도달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하는 것일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佛敎が、心の道であり、心の敎えであるから、觀自在菩薩の境地になるには、どのような道を悟れば到達できるか、全くはっきりしてい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불교가, 마음의 길(道)이며, 마음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관자재보살의 경지가 되는 데에는, 어떠한 도리(道)를 깨달으면 도달할 수 있을까, 전혀 확실치 않은 것은 아닙니까?

 

波羅蜜多を行すれば解るが、その說明はありません。
바라밀다를 행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설명은 없습니다.

 

お經はありがたいものだ、と思いすぎて、重大な問題が忘れられているから、むなしいものに思えるようになるのです。
경문은 고마운 것이다, 라고 지나치게 생각하며, 중대한 문제를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공허한(헛된) 것으로 생각되게 되는 것입니다.

 

學者や僧侶達のいっているように、心の問題を忘れ去ってしまっていれば、それはむなしいものになってしまうはずでしょう。
학자나 승려들의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의 문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면, 그것은 헛된 것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つまり、內在する偉大な智慧に到達する道は、八正道に在る、ということです。
즉, 내재하는 위대한 지혜에 도달하는 길(道)은, 팔정도에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の道を、自分自身で實踐し、體驗したときにそれは解明され、到達できる境地なのだ、とい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이 길(道)을, 자기 자신이 실천하고, 체험했을 때에 그것은 해명되며,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このように、八正道は、片よりのない心の物差しなのです。
이와 같이, 팔정도는, 치우침이 없는 마음의 척도인 것입니다.

 

自己を中心に、社會は回っている、そう考える人は不幸なのです。
자기를 중심으로, 사회는 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酸素(O)と水素(H)は、互いに撚燒、爆發しやすい性質を持っています。
산소(O)와 수소(H)는, 서로 연소하고, 폭발하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もし、空氣の中に、水素や酸素の量が多すぎたら、非常に危險で、生物は安心して住めないでしょう。しかし、それが、他の化合物とともに調和されているから、安定しているのです。
만약, 공기 중에, 수소나 산소의 양이 너무 많으면, 상당히 위험하며, 생물은 안심하고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화합물과 함께 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안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ところが最近は、人間の生活の智慧によって作り出された自動車の排氣カスを始めとして、石油コンビナ―トや他の工場からも媒煙が出、空氣が汚染されています。
그런데 최근은, 인간의 생활의 지혜(智慧)에 의해서 만들어 낸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시작으로 해서, 석유 콤비나트(石油 kombinat)나 다른 공장에서도 매연이 나오고, 공기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석유 콤비나트[石油化學(러시아어)kombinat] 《국어사전》
[경제] 석유 따위를 원료로 한 화학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품의 종류와 생산 수단이 다른 몇 가지 생산 부문과 기업이 기술적으로 결합된 생산 체계....

 

それが、光化學スモッグの原因となっています。
그것이, 광화학스모그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광화학 스모그[光化學smog] 《국어사전》
[화학] 산화성이 강한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안개. 자동차 따위의 배기가스에 포함된 탄화수소나 질소의 산화물이 태양으로부터 강한 자외선을 받아서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생긴다. 눈이나 호흡기에 장애를 일으킨다.


大自然、神の作り出している心の表現體は、生物の生存に調和を與えているのだが、人間の、欲望を滿たそうとする不調和な知惠は、公害という不調和な環境を自ら作り出してしまっています。
대자연, 신의 만들어 내고 있는 마음의 표현체는, 생물의 생존에 조화를 주고 있는 것인데,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는 부조화한 지혜(知惠)는, 공해라고 하는 부조화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버리고 있습니다.

 

つまり欲望のとりこになって、心を失ったとき、人類は自らの行爲によって苦しみを作り出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즉 욕망의 포로가 되어, 마음을 잃어버릴 때, 인류는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괴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これはすべて、ひとりよがりの欲望が、不調和な混亂を作っているので、他人のことを少しでも考えれば、公害など未然に防ぐ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이것은 모두, 독선적인 욕망이, 부조화한 혼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며, 타인의 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공해 등은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독선[獨善] : 자기 혼자서만 좋다고 믿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


自然破壞、觀光事業という名の、金儲け企業の一環によって作り出されている場合が多いといえましょう。
자연파괴, 관광사업이라고 하는 이름의, 돈벌이 기업의 일환에 의해서 만들어 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土地造成などその良い例といえます。
토지조성 등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下手な開發や造成のため、洪水が起き、地すべりが起き、人災をひき起こしているのです。
허술한 개발이나 조성으로 인해, 홍수가 발생하고, 사태(沙汰)가 발생하고, 인재를 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태[沙汰] 《국어/일본어사전》
①산비탈이나 언덕 또는 쌓인 눈 따위가 비바람이나 충격 따위로 무너져 내려앉는 일.
①산허리나 사면을 구성하는 땅의 일부가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이동하는 현상

 

たとえそれが人工的であっても、社會人類全般の幸福を考えて、一時しのぎではない、將來の見とおしを立てた、あらゆる條件を考えた計劃が實行されたならば、決して、公害など生み出すことはないといえるでしょう。.
가령 그것이 인공적이라 할지라도, 사회인류 전반의 행복을 생각하고, 호도지책의 아닌, 장래의 전망(예측)을 세워, 모든 조건을 생각한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결코, 공해와 같은 것은 만들어 내는 일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利益のソロバン勘定が先になるから、問題が起こるのです。
이익의 손익 계산이 앞서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つまり安定、が大切だということですが、酸素と水素が化合すると、最も安定したH2Oという水になります。それは、燃燒物を消火する能力まで備え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즉 안정, 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만, 산소와 수소가 화합하면, 가장 안정된 H2O라고 하는 물이 됩니다.  그것은, 연소물을 소화(消火)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水がなかったならば、生物の生存も許されないでしょう。つまり、水は中道であり、中和されているものといえるでしょう。
물이 없었다고 하면, 생물의 존재도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물은 중도(中道)이며, 중화(中和)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さらにこの水も、鹽基性の水、中性の水、酸性の水に分類され、硬水と柔水にも分かれています。また苛性ソ―ダNaOH、水酸化ナトリウムは、超鹽基性の化合物です。
더욱 이 물도, 염기성의 물, 중성의 물, 산성의 물로 분류되며, 경수와 유수로도 나누어져 있습니다.  또 가성소다 NaOH、수산화나트륨(양잿물)은, 초염기성의 화합물입니다.

 

※염기성[鹽基性] 《국어/일본어사전》
[명사] [화학] 염기가 지니는 기본적 성질. 원래는 산의 작용을 중화하고 산과 작용하여 염과 물만을 만드는 성질을 뜻한다. 수용액의 페하(pH)는 7보다 크고 붉은 리트머스 시험지를 푸른색으로 변화시킨다.

 

私達の日常生活の中で、それは石鹼などの材料になったり、紙を作るときに使用されています。酸性から見れば、反對側になる極端な化合物です。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것은 석감(비누) 등의 재료가 되거나, 종이를 만들 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산성(酸性)에서 보면, 반대측이 되는 극단적인 화합물입니다.

 

鹽酸HClは强酸性で、鐵のような硬い物でも酸化してしまう性質を持っています。
염산 HCl는 강산성이며, 철과 같은 딱딱한 물건일지라도 산화(酸化)해 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鹽素酸カスや爆發物にもなるおそろしい化合物です。
염소산 가스나 폭발물로도 되는 무서운 화합물입니다.

 

※염소산가리[鹽素酸加里]=염소산 가스 《한자사전》
수산화(水酸化)칼륨에 염소(鹽素) 가스를 넣어 만든 무색(無色) 결정(結晶) 물질(物質). 산화력(酸化力)이 세고, 화약(火藥), 의약(醫藥) 따위에 쓰임. 염소산(鹽素酸)칼륨


この兩極端が結びつくと、もっとも安定した鹽化ナトリウムNaCIと呼ばれる化合物になり、この化合物も私達の食生活にはなくてはならない鹽なのです。
이 양극단이 결합하면, 가장 안정된 염화나트륨 NaCI라고 불리는 화합물이 되며, 이 화합물도 우리들의 식생활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鹽)인 것입니다.

 

中道中和の片よりのない鹽なのです。
중도중화(中道中和)의 치우침이 없는 소금(鹽)인 것입니다.

 

緣起をかついで、お淨のときに鹽をまくことがあるでしょう。これは、調和ということが、ふくまれており、不淨なときにまく習性です。むしろ精神的な問題があるでしょう。
미신에 사로잡혀 재수를 따질 때, 정화할 때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조화라고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부정한 때에 뿌리는 습성입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연기[緣起]《한자사전》 ★ 본문의 연기[緣起]와 다른 뜻이지만, 참고하세요★
①사물(事物)의 유래(由來)나 원인(原因) ②길흉(吉凶)의 조짐(兆朕) ③우주(宇宙) 만유(萬有)가 서로 인연(因緣)이 되어 생김 ④절 따위를 짓기까지의 유래(由來)나 부처, 고승들의 영험에 대(對)하여 전(傳)해 내려오는 말  
 
形だけの調和は、心底からの調和にはならないのです。
형식뿐인 조화는, 마음속으로부터의 조화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つまり鹽は、調和へのシンボルだということです。調和とは、片よりのない心と行ないにも必要なことでしょう。片よりは、自己本位に考えたときや、他人の幸せを考えない行爲をしたときに不調和を作り出してしまうものです。
즉 소금은, 조화로의 심벌(상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화(調和)란, 치우침이 없는 마음과 행위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치우침이란, 자기본위로 생각했을 때나, 타인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 행위를 했을 때에 부조화를 만들어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このことは、思想についても、同じことがいえるでしょう。
이 일은, 사상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資本主義もマルクス主義も、思想の根本となっているのは、すべて物質的な經濟です。
자본주의도 마르크스주의도, 사상의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은, 모두 물질적인 경제입니다.

 

どこに心があるでしょうか。
어디에 마음이 있는 것일까요?

 

大調和な根本であるべき人の道に、上部層と下部層の人々が鬪うことによって文明が發達して行くという、マル

クス主義思が、調和の道といえるでしょうか。思想的に相入れぬ兩者、對立は當然のことでしょう。
대조화한 근본이어야 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道)를, 상부층과 하부층의 사람들이 싸우는 것에 의해 문명이 발달해 간다고 하는, 마르크스주의가, 조화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장적으로 서로 걸림이 없이 융합하지 않는 양자, 대립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人生は、文明のためにあるのでしょうか。物質文明の奴隸になるために生まれてきたのでしょうか。物質文明は、人間の心を忘れ去った生活の知惠が優先したとき、,欲望を驅り立てる害毒にもひとしいものといえます。.
인생은, 문명의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요?  물질문명은,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잊어버린 생활의 지혜(知惠)가 우선했을 때, 욕망을 부추기어 그렇게 하도록 하는 해독(손해)과도 다름없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독[害毒]《국어사전》
[명사] 좋고 바른 것을 망치거나 손해를 끼침. 또는 그 손해.

 

人間のための物質文明であって、物質文明のための人間ではないはずです。
인간을 위한 물질문명이며, 물질문명을 위한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消費を目的とする資本主義、團結によって階級鬪爭をくり返しているマルクス主義。しかしいずれにせよ、金力や武力や權力が、人間を支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えましょう。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단결에 의해서 계급투쟁을 되풀이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하지만 결국, 금력이나 무력이나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たとえ支配したとしても、それは生活行動の支配だけだ、といえます。足ることを忘れ去った大衆は、欲望の奴隸に成り下がっているから、その制度の下ではいつか爆發をし、そしてそれをくり返すことでしょう。
설사
지배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생활행동의 지배뿐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족함을 완전히 잊어버린 대중은, 욕망의 노예로 전략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제도 하에서는 항상 폭발을 하고, 그리고 그것을 되풀이하는 것일 것입니다.

 

正しい共産主義というものは、批判や總括のない、獨裁者のない、心ある者達による大衆の平等と信賴の中で築かれて行く、ユ―トピアで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えます。
올바른 공산주의라고 하는 것은, 비판이나 총괄이 없는, 독재자가 없는, 양식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대중의 평등과 신뢰 속에서 구축되어 가는, 유포피아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相互の理解と信賴の心の調和のないところに、ユ―トピアなどは完成されません。
상호의 이해와 신뢰하는 마음의 조화가 없는 곳에, 유토피아와 같은 것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心を失った思想は、自ずから自滅への道を辿ることでしょう。
마음을 잃어버린 사상은, 스스로 자멸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일 것입니다.`

 

物質經濟文明は、人間が生きるために、より良い社會生活が營めるために作り出されたもので、それが爭いの種になるところに問題があるといえるのです。
물질경제문명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보다 좋은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인데, 그것이 싸움의 씨가 되는 바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人間は誰でも神の子であり、人類はみな神の子だということを忘れ、何のために生まれ、どう使命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いうことを、肉體舟に乘って人生航路に船出したときに忘れ去ってしまったのです。
인간은 누구나 신의 자녀이며, 인류는 모두 신의 자녀이다 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무엇 때문에 태어나, 어떤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육체 배를 타고 인생항로에 출범했을 때에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そして、生まれた環境も、實は自分で選んで出てきたものだということを忘れ、經濟的に貧しい環境に出しまうと心まで貧しくなったり、逆に惠まれて生まれると貧しい者などを冷たい眼で見るようになり慈悲の心を失ってしまうのです。
그리고, 태어난 환경도, 실은 자신이 선택해서 나온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환경에 나와버리면 마음까지 가난하게 되며, 반대로 풍족하게 태어나면 가난한 사람 등을 냉정한 눈으로 보게 되어 자비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生まれたときは、私達は裸なのです。
태어날 때에는, 우리들은 알몸인 것입니다.

 

自分が惠まれていたら氣の毒な人々に愛の手を差し伸べて幸せをともに喜ぶ同志になる、これが、まことの報恩の行爲ではないでしょうか。
자신이 풍족하다면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쳐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동지가 되는, 이것이, 진정한 보은의 행위가 아닌 것일까요?

 

貧しく生まれたなら、一所顯命に働いて、自分の力で經濟的に安定した環境を作れば良いのです。そして、足ることを知って、同じような貧しい人々に愛の手を差し伸べてやることが大切でしょう。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하면,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힘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만들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만족함을 알고, 똑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人は、この世を去るとき、すべての物を、持って歸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人間の作り出した經濟や不動産は、すべて自分の物ではありません。いつかは、返さなくてはならないものなのです。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 모든 것(만물)을, 가지고 돌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경제나 부동산은, 전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 것입니다.

 

自分のものは、自分の意識とその中心にある心の體驗した一切の現象以外にないといえましょう。
자신의 것은, 자신의 의식과 그 중심에 있는 마음의 체험한 일체의 현상 이외에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萬生萬物は、ひとつとして人間のものはなく、神からひととき預かっているにすぎないものなのです。
만생만물은, 하나도 인간의 것은 아니며, 신으로부터 잠시 대부(貸付)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대부[貸付]  《국어사전》
1 주로 은행 따위의 금융 기관에서 이자와 기한을 정하고 돈을 꾸어 줌. ‘뀌기’, ‘돈 뀌기’, ‘빌림’으로 순화.
2 돌려 받기로 하고 어떤 물건을 남에게 빌려 주어 사용과 수익을 허락함.

 

その預かりものに執着を持って、苦しむことはおろか者のすることです。人生の目的は、物質文明の中で、いかに豊かな丸い調和された心を完成するか、ということです.それが、人生の修行目的だ、ということを悟るべきでしょう。
그 빌린 것에 집착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일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물질문명 속에서, 얼마나 풍성한 둥근 조화된 마음을 완성하는가, 라고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수행목적이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思想も、片よりのない人類の心から調和された一人一人の幸福を得られる道、それこそがユ―トピアへの近道ということができましょう。片よりは、自己保存、自我我欲への道であり、いつの日か自分のおろかな想念と行爲を反省させられるときがくるであろう、と私は思います。それは、過去世をとおして學んだパニャ―・パラ―・ミタ―、すなわち佛智の眼覺めたときに──。
사상도, 치우침이 없는 인류가 진심으로 조호된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道), 그것이야멀로 유토피아로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치우침은, 자기보존, 자아아욕으로의 길이며,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어리석은 상념과 행위를 반성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과거세를 통해서 배운 파냐・파라・미타(般若波羅蜜多), 즉 불지의 자각했을 때에 ──。

 

心を失って、兩極端な思想が、物質經濟が、絶對だと思ってしまった人々の社會は混亂し、人々はひとりよがりの小さな心を作り出してしまう、といえます。
마을을 잃어버리고, 양극단적인 사상이, 물질경제가, 절대이다 라고 생각해 버린 사람들의 사회는 혼란하고, 사람들은 독선적인 작은 마음을 만들어 내어 버린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そのとき、この地上界を去った執着心の塊りのようなきびしい地獄界に墮ちている先輩達は、同じような心を持って生活している人々の意識を支配して、ますます社會を混亂に招來するでしょう。
그 때, 이 지상계를 떠난 집착심의 덩어리와 같은 혹독한 지옥계에 떨어져 있는 선배들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서, 더욱더 사회를 혼란으로 초래할 것입니다.

 

そしてその不調和な魂は、地上界に地獄を作り、心を失った人々の肉體を支配してノイロ―ゼという現象を作ります。つまり人間は、自分の人格を失ってしまうのです。
그리고 그 부조화한 영혼(魂)은, 지상의 세계에 지옥을 만들어,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육체를 지배해서 노이로제(신경쇠약증)이라고 하는 현상을 만듭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寺院や墓に執着を持っている者達も同じことです。
사원이나 묘지에 집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은 것입니다.

 

この地上界は、人類の修行場であって、地獄靈の棲み家ではありません。それなのに、そのような惡靈が人間に憑依して間違った宗敎を作り、ますます混亂を作り出しているのです。
이 지상의 세계는, 인류의 수행장소이며, 지옥령의 자리잡고 살 집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악령(惡靈)이 인간에게 빙의(憑依)해서 잘못된 종교를 만들고, 더욱더 혼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というのは、この地球こそ、大宇宙、神の身體の小さな細胞であり、大神殿だからです。心こそ、神の子としての、偉大なおのれの天國の支配者だ、ということです。
라고 하는 것은, 이 지구야말로, 대우주, 신의 신체(身體)의 작은 세포이며, 대신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야말로, 신의 자녀로서의, 위대한 자기 자신의 천국(天國)의 지배자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神は、心の世界に存在しているのであって、人造的な形の中にあるものではないし、形によって現わすこともないものなのです。
신(神)은, 마음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인조적인 모양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형상에 의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自力の正しい心と行ないによって、心の曇りが晴れれば、丁度太陽が萬生萬物に平等に慈愛の熱光をそそいでいるように、神の偉大な光明も、心の中に滿たされるのです。
자력의 올바른 마음과 행위에 의해서, 마음의 흐림이 맑게 개면, 정확히 태양이 만생만물에게 평등하게 자애의 열과 빛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신의 위대한 광명도, 마음속에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自力なくして、他力の力を得られない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でしょう。
자력이 없이, 타력이 힘을 얻을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これが、般若心經の、眞の心といえるでしょう。
이것이, 반야심경의 참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正しい心の物差しで每日の生活を正し、一秒一秒の努力の積み重ねによってパニャ―・パラ―・ミタ―になれる、,ということです。
올바른 마음의 척도로서 매일의 생활을 바로잡고, 일초 일초의 노력의 거듭에 의해서 파니야・파라・미타(般若波羅蜜多)가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Page 294~307  

 

<끝>

 

 


 

★아래의 글은 300,301페이지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生きる目的 사는 목적
------------------------------------
人間はこの世を樂園にする。與えられた仕事がある。樂しむために苦勞も伴う。樂しむとは
인간은 이 세상을 낙원으로 한다.  주어진 일이 있다.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는 수고도 따른다.  즐겁게 지냄이란,

 

ホホ、ハハッ― 笑う生活である···{肉體的・精神的・經濟的}
호호, 하하 웃는 생활이다···{육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自信
謙虛
자신(自信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거나 어떤 일이 꼭 그렇게 되리라는 데 대하여 스스로 굳게 믿음. 또는 그런 믿음)
겸허①겸손(謙遜)하게 자기(自己)를 낮춤 ②자기(自己)의 무력(無力)과 죄업(罪業)에 대(對)한 심각(深刻)한 자각(自覺)에서 우러나오 신(神)의 의사(意思)에 어디까지나 순종(順從)하려는 마음

 

心(마음)

反省 반성

中道 중도


努力、 勇氣、智慧、希望、慈、悲愛、感謝
報恩、尊敬、人を許せる心、餘裕ある心

노력, 용기, 지혜, 희망, 자비, 사랑, 감사
보은, 존경,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 여유있는 마음

 


(ソウ病)
(魔王・動物靈憑依)
(조병 : 흥분상태가 번갈아 일어나는 병)
(마왕・동물령 빙의)

 

→自信過剩→輕べつ···偉いいんだ···虛榮心···うそつき
→→增上慢(傲慢)→人を見下する心···他人の言うことをきかない。人を信じない···自己顯示欲にかわる。
→자신감 과잉→경멸(輕蔑)···뛰어나다(훌륭하다)···허영심···거짓말함(거짓말쟁이)
→→증상만(오만)→남을 깔보는 마음···타인의 말하는 것을 듣지 않는다.  남을 믿지 않는다···자기현시욕으로 바뀐다.


※자기현시[自己顯示] 《국어사전》
[심리] 남에게 자기를 나타내 보이는 일. 남에게서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나 자기를 실제 이상으로 나타내려는 강한 욕구에서 비롯한다.

 


(ウツ病)
(地獄靈憑依)
(울병 : 우울증이 번갈아 일어나는 병)
(지옥령 빙의)

 

→卑屈→他人をうらやむ心→嫉妬に變わる。 ねたみ、そしり。
→→劣等感→憎しみ······人を信じない。自分を卑下して內向して行く。
→비굴→타인을 부러워하는 마음→질투로 바뀐다. 질투심, 비방함.
→→열등강→증오심······남을 믿지 않는다.  자신을 비하하고 내향적으로 간다.


※비굴[卑屈] 《국어사전》
①비겁(卑怯)하여 용기(勇氣)가 없고 품성(品性)이 천함 ②줏대가 없고 떳떳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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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省のしかた 

慈悲 愛 感謝 報恩 寬容

반성의 방법
자비 사랑 감사 보은 관용을 늘 마음에 품고,

 

아래에 보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관한 여러가지 방법이 보입니다.

 

過去              現在  未來
  ↓                 ↓      ↓
子供             兩親  自信
  ↓                 ↓      ↓
靑年             兄弟  勇氣
  ↓                 ↓     ↓
中年             子供  努力しているか
  ↓                 ↓      ↓
兩親             友達
 ↓                  ↓
學校友達       隣人
 ↓                  ↓
自分の周圍    會社商店
  交際關係

 

과거              현재          미래
  ↓                 ↓              ↓
어린이           양친          자신감
  ↓                 ↓              ↓
청년              형제          용기
 ↓                  ↓              ↓
중년              어린이      노력하고 있는가?
 ↓                  ↓  
양친              친구
 ↓                  ↓
학교친구        이웃

   ↓                ↓
자신의 주위  회사상점
                  교제관계

 

◎缺點に氣がつけはその修正をせねばならない。
◎凡夫だから仕方ないということは、自分を組末にすることである。
◎惡い心を持てば必ず惡循環するから勇氣を持って努力する。.
◎勇氣、努力、智慧が大事である。
◎先ず現在の自分にスポットをあてる。
◎やすらぎを得る。
◎결점이 생각나면 그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범한 사람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나쁜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악순환하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노력한다.
◎용기, 노력, 지혜가 중대차합니다.
◎우선 현재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평안을 얻는다.

 

中道の心の物次で反省をし、誤りがあったら守護靈に懺悔し二度と同じ過ちを犯さないことが大切。
중도의 마음의 척도로 반성을 하고, 잘못이 있다면 수호령에게 참회하고 두 번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


 

★참고적으로, 현대의학상으로는, 유전성이라 하지만, 다카하시 신지님은, 다르게 봅니다만★

 

※そううつびょう[×躁×鬱病·×躁×欝病] 《일본어사전》
〈醫〉 조울병. 흥분 상태와 우울증이 번갈아 일어나는 유전성 정신병.

 

※조울병[躁鬱病] 《한자사전》
감정(感情) 장애(障礙)를 주된 증상(症狀)으로 하는 유전성인 정신병(精神病)의 하나 상쾌(爽快)하고 흥분(興奮)된 상태(狀態)와 우울(憂鬱)하고 억제(抑制)된 상태(狀態)가 단독으로나 또는 주기적(週期的)으로 반복(反復)됨. 발병 기간(期間)이 계속적(繼續的)인 것이 아닌 것이 그 특징(特徵)임

 

※조병[躁病]《한자사전》
조울병(躁鬱病)의 어느 시기(時期)에 또는 독립적(獨立的)으로 오는 정신(精神) 이상(異狀)의 하나. 발병 중에는 감정(感情) 상쾌(爽快)ㆍ다변(多變)ㆍ다동(多動)하며 침착성(沈着性)이 없음

 

※울병[鬱病] 《한자사전》
조울병(躁鬱病)의 한 형(型). 내인성(內因性)에서 오는 감정(感情)의 우울(憂鬱)과 의욕(意慾)의 억제(抑制)를 주징(主徵)으로 함. 정신적(精神的)으로는 불안(不安)ㆍ염세적 기분이 따르며, 나아가서는 절망감(絶望感)ㆍ자살(自殺) 기도 등(等)을 하게 됨. 멜랑콜리(melancholy)

page 301

 

 

<끝>

 

 


페이지 분량이 좀 많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선한 미풍. 배경음악은 못 넣었습니다.


 

※원설반야심경 제1장 원설반야심경 서문에 있듯이 1972년에 다카시시 신지님이 글입니다.

※본 원설반야심경의 원본의 저자는,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입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삼보출판주식회사에서, 발간한 책입니다.
※한국에는, 출판된 적이 없는 책입니다.

※번역 본인, 신선한 미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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