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お釈迦様の説法(부처님의 설법)-人間釈迦 No1~4(인간석가 No1~4권)에서.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お釈迦様の説法(부처님의 설법)-人間釈迦 No1~4(인간석가 No1~4권)에서. 

어둠의골짜기 2011. 9. 17. 09:00

                



  お釈迦様の説法 부처님의 설법


【 八正道 】

【 팔정도 】

 

   正見-正しく見る 

   정견-올바르게 본다
 正思-正しく思う  

   정사-올바르게 생각한다
 正語-正しく語る   

   정어-올바르게 말한다
 正業-正しく仕事をなす   

   정업-올바르게 일을 한다
 正命-正しく生活する 
・・・(自分を正した生活をし、業(カルマ)の修正を図って行く) 정명-올바르게 생활한다  ・・・(자신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생활을 하고, 업(카르마)의 수정을 그려 간다)
 正進-正しく道に精進する ・・・(人間関係の調和)
   정진-올바르게 길(도리)에 정진한다 ・・・(인간관계의 조화)
 正念-正しく念じる   

   정념-올바르게 염원한다
 正定-正しく反省をする    

   정정-올바르게 반성을 한다

(1.正見・正思・正語 ・・・ という順序になっているのは、この順序が想念を具象化する順序であるからである。
 2.正しくとは、神の心を基準とするということである。・・・・・・ 園頭先生解説)

(1.정견・정사・정어 ・・・ 라고 하는 순서로 되어 있는 것은, 이 순서가 상념을 구상화하는 순서이기 때문이다。
 2.올바름이란, 신의 마음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는 것이다。・・・・・・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 해설)

  ★상념[想念]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1.八正道とお釈迦様の反省

1.팔정도와 부처님의 반성


多くの場合、肉体の眼を通して得た自らの体験と知識は、我欲を土台にした偏見になっている。そのために、人間社会は、諸々の矛盾と撞着をつくり、自然が教える中道の心から離れているのだ。真実が不明のなっている。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った。国と国との争いについても、そんのモトをただせば欲望である。自国の利益だ。自国の利益が失われる。あるいは、より大きくするために他国を侵略する。そうして、勝ったり、負けたりの繰り返しである。勝ち負けの輪廻は、その渦中から抜け出さないかぎり、永遠に続くだろう。すなわち、苦しみの輪廻は、その苦しみの中に想いが止まるかぎり、果てしなく続いていくものである。
대부분의 경우, 육체의 눈을 통해서 얻은 자신의 체험과 지식은, 아욕(我欲)을 토대로 한 편견으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인간사회는, 다양한 모순과 당착을 만들고, 자연이 가르치는 중도의 마음에서 떠나 있는 것이다.  진실이 불명하게 되어 있다. 알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나라와 나라와의 다툼에 대해서도, 그 근원을 밝힌다면 욕망이다.  자국의 이익이다.  자국의 이익을 잃어버린다.  혹은 크게 하기 위해서 타국을 침략한다.  그렇게 해서, 승리하거나, 패하거나의 반복이다.  승패의 윤회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즉, 괴로움의 윤회는, 그 괴로움 속에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한없이 계속되어 가는 것이다.

 

★아욕 [我欲·我慾]   《일본어사전》 ①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中道にそった調和を、人が志さないあいだは、真の幸福を摑むことはできない。
중도에 맞는 조화를, 사람이 지향하지 않는 동안은, 진정한 행복을 잡을 수가 없다.



まず人は、正しく見る目を養うこと。我欲を去った調和ある見解を持つよう努めることであろう。それには、己という立場があっては、正しさを求めることはできまい。正しさの尺度は、男女の別、老若の別、地位、名誉の別、こうした立場を捨て去って、一個の人間として、大自然の己として、そしてその心の目で、ものを見る、相手を見る、現象を眺めることである。
먼저 사람은, 올바르게 보는 눈을 키우는 것.  아욕(我欲)을 버린 조화 있는 견해를 갖도록 힘쓰는 일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라고 하는 입장이 있어서는, 올바름을 찾을 수 없다.  올바름의 척도는, 남녀의 차이, 노약의 차이, 지위, 명예의 차이, 이러한 입장을 제거하고, 일개의 사회인으로서, 대자연의 자기 자신으로서, 그리고 그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며, 상대방을 보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調和の基本は、まず何はさておき見ることの正しい評価にあるといえよう。現われた現象の背後には必ずその現象を映し出す原因が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だ。また、自分に直接関係のある諸問題が派生したときは、まず自分自身の心の姿を見ることが大事だ。肉体の眼を通して外界の動きを正しく見るためには、その眼の奥にある心眼がキレイに磨かれていないと肉眼に映った諸現象もゆがんでしまうからである。各人の心は鏡である。その想念という鏡をたえず掃除しておくことだ。掃除は反省を通して磨かれてゆくであろう。
조화의 기준은, 우선 다른 일은 다 제쳐 놓고 보는 것의 올바른 평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타난 형상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 현상을 극명하게 드려내는 원인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 자신에게 직접 관계가 있는 여러 문제가 파생했을 때, 우선 자기 자신의 마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의 눈을 통해서 외계의 움직임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그 눈 속에 있는 심안(마음의 눈)이 아름답게 닦여 있지 않으면 육안에 비친 여러 현상도 비뚤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각자의 마음은 거울이다.  그 상념(想念)이라고 하는 거울을 언제나 소제해 두는 것이다.  소제(청소)는 반성을 통해서 닦이여 갈 것이다.

 

★상념[想念]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正見」につづいて、「思う」ことについても中道の尺度は必要だろう。
「정견」에 이어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중도의 척도는 필요할 것이다.


思うことも、自己中心になると人との衝突はさけられまい。思うことは具象化するからである。親愛の心を持って人に接すれば、人もまたそれに応えてくれるだろうし、食べ物も、食器も、家も、着物も、テーブルも、橋も、馬車も、すべて「思う」ことから出発し発明化している。それゆえ、思うことが自己本位に流れると、人と人との調和を崩し、争いの種をまくことになろう。
생각하는 것도, 자기중심이 되면 사람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구상화하기 때문이다.  친애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응대(상대)하면, 남도 또한 그것에 보답해 줄 것이고, 음식물도, 식기도, 집도, 옷도, 테이블도, 다리도, 마차도, 모두「생각한다」것에서 출발해서 발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이 자기본위로 흐르면, 사람과 사람과의 조화를 무너뜨리고, 다툼의 씨를 뿌리게 될 것이다. (다툼의 원인을 만들게 될 것이다). 

 

 

「言葉」にしてもそうだ。
「말」 도 역시 그렇다


ヒョウタンから駒が・・・・・という個人の経験的な教訓は、一面の真実を語っている。相手を見下す言葉、野卑な言葉を使っていると、いつしかその言葉に自分の心までが犯され、相手の心を刺激し、争いの原因をつくる。言葉は言魂であり、生きた波動である。謙虚な言葉、いつくしむ言葉、優しい言葉、勇気ある言葉、思いやりの言葉など、正しく語ることの重要性は、人間が社会生活を営むかぎり、絶対に欠くことのできない要件の一つである。
조롱박에서 망아지가 나온다・・・・・라고 하는 개인의 경험적인 교훈은, 일면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상대를 깔보는 말, 야비한 말을 사용하고 있으면, 언젠가 그 말에 자신의 마음까지 모욕을 당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자극하고, 다툼의 원인을 만든다.  말은 영혼이 깃든 말이며, 살아 있는 파동이다.  겸허한 말, 사랑하는 말(소중히 하는 말), 아름다운 말, 용기 있는 말, (남의 심정·입장을) 생각하는 말(남을 헤아리는 말)  등, 올바르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의 하나이다.

 

★×瓢×簞ひょうたんから×駒こまが·出でる 조롱박에서 망아지가 나오다.
①뜻밖의 일이 사실로서 실현됨의 비유.
②이치상 절대로 있을 수 없음의 비유.
③농담으로 한 것이 뜻밖에 사실로 나타나다. 농담이 진담이 되다.

 

 

ゴーダマは、明と暗の心について、一気にここまで追求してきた。そして正道に入る三つの尺度を発見し、正道の尺度は、これだけだろうかと思った。気持ちをリラックスし、さらに考えをめぐらしてみた。考えると、スーッと浮かんできた。以上三つのほかに「仕事」「生活」「正進」「念」「定」の五つがうかび上ってくる。
고다마는, 밝음과 어두운 마음에 대해서, 단숨에 여기까지 추구해 왔다.  그리고 정도에 들어가는 3가지의 척도를 발견하고, 정도의 척도는, 이것뿐일까라고 생각했다.  긴장을 풀고(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더욱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생각을 하니, 척하고 떠올랐다.  이상 3가지 외에 「일」「생활」「정진」「염원」「선정」의 다섯 가지가 떠오른다.

 

 

まず「正業」に考えを進めてみた。「仕事」は、自らの生活を助けると同時に、人々の生活にうるおいをもたらすものである。健康で、快活に仕事が出来るのは、自然の恵みと、人々の協力の賜であろう。正しく仕事をするには、まず感謝の心が大事であろう。そうして、その感謝の心は、報恩という布施の行為となって実を結ぶものであろう。地上の調和は、この「仕事」に対する心構えによって大分ちがってこよう。感謝と報恩を軸として、勇気と努力、それに智慧が三位一体となって働くときに、この地上はよりいっそうの豊かさをましてこよう。
먼저「정업」에 생각을 몰두해 보았다.  「일」은, 자신의 생활을 돕는 동시에, 사람들의 생활에 물질적인 보탬을 가져오는 것이다.  건강하며, 쾌활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혜택과, 사람들의 협력 덕분일 것이다.  올바르게 일을 하는 데에는,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감사하는 마음은, 보은이라고 하는 보시의 행위로 되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지상의 조화는, 이「일」에 대한 마음가짐에 따라서 대부분 달라져 올 것입니다.  감사와 보은을 축으로 해서, 용기와 노력, 그것에 지혜가 삼위일체가 되어 작용할 때, 이 지상은 보다 더욱 풍성함이 더해져 올 것입니다.


 

正しい生活」とは、人生の目的と意義を知った生活であろう。人間の生活は、大自然が調和されているように、調和にあるはずだ。助け合い、補い合い、笑いのある生活でなければなるまい。それにはまず己自身の調和をつくってゆく。自分の長所を伸ばし、短所を修正してゆくものだ。自分が円満になれば周囲もまるくなるはずである。自己をみつめる厳しい態度をはずして、正しい生活はあり得ないものだ。
「올바른 생활」이란、인생의 목적과 의의(가치)를 아는 생활일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은, 대자연이 조화되어 있는 것처럼, 조화에 있는 것이다.  서로 돕고, 서로 모자란 것을 보충해 주고, 웃음이 있는 생활이 없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의 조화를 만들어 간다.  자신의 장점을 늘리고, 단점을 수정해 가는 것이다.  자신이 원만하게 되면 주위도 원만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직시하는 데 엄격한 태도를 제쳐놓고, 올바른 생활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道に精進」とは、親子、兄弟、友人、隣人における人間としての在り方であろう。人間は大自然と人との関係を通して、はじめて自分自身の大きな自覚に到達できるものである。大自然もない、自分以外の人間も存在しないなどと考えるのは愚かなことだ。同時に、自分以外のあらゆる存在は、自己を認識するための材料であり、魂の向上に不可欠なものであろう。親子、友人、隣人の関係を通じて、自己の魂を正しく磨いてゆける現象界は、天が人間に与えてくれた慈悲でなければならない。
「도(도리)에 정진함」이란, 부모와 자식, 형제, 친구, 이웃에 있어서의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일 것입니다.  인간은 대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큰 자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대자연도 없고, 자기 이외의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동시에, 자기 이외의 모든 존재는, 자기를 인식하기 위한 재료이며, 영혼의 향상에 불가결한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친구, 이웃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영혼을 올바르게 닦아 갈 수 있는 현상계는, 하늘이 인간에게 제공해 준 자비가 없으면 안 됩니다.

 

道への精進は、人間の特権であり、神の慈悲である。動物にはみられぬ偉大な要素を持った者が人間であるからだ。
도(도리)에의 정진은, 인간의 특권이며, 신의 자비이다.  동물에게는 볼 수 없는 위대한 요소를 가진 사람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正念」、念は願いである。念のない人生、念のない生活はあり得ない。人は今日より明日を思うから生き甲斐が生まれるのであり、明日のない人生は死を意味しよう。今日に生きるものは強者だが、人間は、死の瞬間まで希望を託して生活していくものだ。その希望が自己本位に傾くと人との調和が崩れ、自分自身も立ってはいられない。念のあり方も調和という中道に適った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し、「正しき念」は無制限に発展する欲望をコントロールし、足ることを知った、人生の目的を自覚した願いでなくてはなるまい。
「정념」、염원은 소망입니다.  소망이 없는 인생, 소망이 없는 생활을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삶의 보람이 생기는 것이며, 내일이 없는 인생은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오늘에 사는 것은 강한 사람이지만, 인간은, 죽음의 순간까지 희망을 걸고 생활해 가는 것이다.  그 희망이 자기본위로 치우치면 사람과의 조화가 무너지고, 자기자신도 서 있을 수 없다.  염원의 본연의 모습도 조화라고 하는 중도에 맞는 것이 아니면 안 되고,「올바른 염원」은 무제한으로 발전하는 욕망을 컨트롤(제어)하고, 만족할 줄 아는, 인생의 목적을 자각한 소망이 아니면 안 됩니다.

 

 

こで念と祈りについて考えてみよう。
여기에서 염원가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念も祈りも、ともにエネルギーの働きから生まれる。
염원도 기도도, 다같이 에너지의 작용에서 생긴다.

 

ものを考える、思うことが出来るのは、人間の五体の中に、そうした創造能力を生み出すエネルギーの働きがあるから可能なのである。睡眠中は、こうした能力は働かない。これは、エネルギーの休息であり、同時に、エネルギーの補給のために、人間は、睡眠中に、次元の異なる世界に旅立つからである。
사물을 객관적·지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적·의지적·주관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은, 인간의 오체 속에, 그러한 창조능력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에너지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수면 중에는, 이러한 능력은 작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에너지의 휴식이며, 동시에,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인간은, 수면 중에, 차원의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魂というと、否定するものもあろう。しかし、魂のない人間は一人もいないのだ。魂とは個性を持った意識をいうのである。睡眠は、魂と肉体との分離であり、このため、グッスリ眠ると鼻をつままれても、地震が起きても、わからないのである。眼がさめるとは、魂が肉体に入ることである。考える、思うことは、肉体がするのではなく、魂を形成しているエネルギーの働きがあるから、可能になってくるのである。
영혼이라고 하면,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없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영혼이란 개성을 가진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수면은, 영혼과 육체와의 분리이며, 이 때문에, 푹 잠들면 코를 손가락으로 잡아도, 지진이 일어나도, 모르는 것입니다.  잠에서 깸이란, 영혼이 육체로 들어오는 것이다.  객관적·지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적·의지적·주관적으로 생각함이란, 육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형성하고 있는 에너지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어 오는 것이다.


念も祈りも、個性を持った魂の働きによって行われる。念は、人間の目的意識を表した働きである。誰々と結婚したい、出世したい、事業をひろげたい、老後の生活を安定させたい、子供が素直に育って欲しい、というように。
염원도 기도도, 개성을 가진 영혼의 작용에 의해서 행해진다.  염원은, 인간의 목적의식을 나타낸 작용이다.  누구누구하고 결혼하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사업(가게)을 확장하고 싶다, 노후의 생활을 안정하게 하고 싶다, 자식이 솔직하게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것처럼.

 

人間である以上、こうした目的意識を持たぬ者は一人もいない。目的意識があるから、文明や文化が育ち、社会生活がエンジョイされてくる。
인간인 이상, 이러한 목적의식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에, 문명이나 문화가 자라고, 사회생활이 즐겁게 되어 온다.

 

ところが人間は、肉体を持つと、肉体にまつわる想念に支配されてくる。自己本位になってくる。これは俺のものだ、人に構っていると生きてゆけないというように。争いのモトは、こうした自己本位の想念、つまり、そうした目的意識を持った念の働きが作用する為に起こってくる。
그런데 인간은, 육체를 가지면, 육체에 달라붙는 상념(想念)에 지배되어 온다.  자기본위로 되어 온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 것처럼.  타툼의 원인은, 이러한 자기본

위의 상념(想念), 즉, 그러한 목적의식을 가진 염원이 작용(기능)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상념[想念]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そこで人間の目的は、調和にあるのだし、調和とは、喜びをわかち合うことなのだから、人間の目的意識も、ここに焦点を合わす必要があるのである。
그래서 인간의 목적은, 조화에 있는 것이고, 조화란, 기쁨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것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목적의식도, 여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正念は、こうした調和という尺度を通してなされるものであるし、正念の次元は、それゆえ、非常に高いものになってくる。
정념은, 이러한 조화라고 하는 척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정념의 차원은, 그러므로, 상당히 높은 것이 되어 온다.

 

 

仕事について考えると、仕事そのものは、社会に、従業員に、家庭にたいして、その生活を保障し、うるおいをもたらすものだ。仕事に忠実であることは、正念のあり方に適ってくる。このことは、主義や、主張や、社会制度に関係がない。社会主義であろうと、資本主義であろうと、仕事に忠実に打ち込んでいく態度は、そうした制度とは本来無関係であるからである。問題は、それによって生み出された利益、収入をどのように使っていくかによって、それぞれの念のあり方がど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か、ちがってくる。つまり欲望を満たす自己本位のためだったか、それとも、その利益を家庭に、従業員に、社会に還元する為だったか。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 일 그 자체는, 사회에, 종업원에, 가정에 대해서, 그 생활을 보장하고, 보탬(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다.  일에 충실함이란, 정념의 본연의 모습에 꼭 맞게 된다.  이 일은, 주의나, 주장이나, 사회제도에 관계가 없다.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일에 충실하게 몰두해 가는 태도는, 그러한 제도와는 본래 관계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 낸 이익, 수입을 어떻게 사용해 가는가에 따라서, 저마다의 염원(소망)의 본연의 모습이 어떠한 것이었는가가, 달라지게 된다.  즉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기본위를 위함이었는가, 아니면, 그 이익을 가정에, 종업원에, 사회에 환원하기 위함이었는가?

 

足ることを知った念の在り方は、人間は自己本位に流れやすいので、正念を生かす一つの尺度として、必要なことなのである。
만족할 줄 아는 염원의 본연의 모습은, 인간은 자기본위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정념을 소생시키는 하나의 척도로서, 필요한 것인 것이다.

 

正念の在り方、生かし方は、こうした足ることを知った考え方を踏み台にして、昇華してゆくものである。
정념의 본연의 모습, 소생시키는 방법은, 이러한 만족할 줄 아는 사고방식을 발판으로 해서, 승화해 가는 것이다.

 

 

つぎに祈りについて考えてみると、祈りは感謝の心を表し、その心で生活行為をしていく思念である。
다음에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기도는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그 마음으로 생활행위를 해 가는 사념(思念)이다.

 

★사념[思念] ①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
★상념[想念] 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人間は、一寸先闇の中で生活している。明日がわからない。いつ災難がふりかかり、あるいは喜びごとがあるかも知れない。隣の人が今、どのように生活しているかもわからない。そうした中で、健康で、楽しく、明るく生活できることにたいして感謝する気持ちが湧き上がってきたときに、私たちは祈られずにはいられない気持ちになるものだ。しかし通常は、願い事に終わっている。神社仏閣にいって、こうして欲しい、ああして欲しいと手を合わせる。
인간은, 인생의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내일을 알 수 없다. 언제 재난이 닥치고, 혹은 기쁜 일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웃 사람이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밝게 생활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왔을 때에, 우리들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은, 소원으로 끝나고 있다.  신사불각에 가서, 이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며 합장한다.

 

 

正しき生活行為、つまり調和に向かって努めているときには、その願いごと、祈りはたいてい叶えられる。正しき「祈り」は、次元のちがったあの世の天使の心を動かし、その願いを叶えてくれるからだ。この意味から「祈り」は天子との対話であるといえる。奇跡は、こうした「祈り」によって起こるものである。
올바른 생활행위, 즉 조화를 향해서 힘쓰고 있을 때에는, 그 소원, 기도는 대부분 이루어진다.  올바른  「기도」는, 차원이 다른 저 세상의 천사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소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의미에서 「기도」는 천자(天子)와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기적은, 이러한  「기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人間生活にとって、「祈り」のない生活は考えられないし、独裁者が自分以外の人間のこうした思念を押さえようとしてもおさえることはできない。
인간 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고, 독재자가 자기 이외의 인간의 이러한 사념(思念)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는 없다.

 

★사념[思念] ①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

 

ただこれまでの「祈り」は、我欲のそれに使われ、祈っておればタナボタ式に、なんでも叶えられると思われている。念仏を唱えればうまいことがある。祈っておれば救われるという風に考えられてきた。そんなものではないのである。
지금까의  「기도」는, 아욕(我欲)의 그것으로 사용하며, 기도하고 있으면 굴러들어온 호박(뜻하지 않은 행운식)으로,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염불을 외우면 좋은 일이 있다.  기도하고 있으면 구제된다고 생하는 식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한 것이 아닌 것이다.

 

★아욕 [我欲·我慾]   《일본어사전》 ①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こうみてくると念は、目的意識であり、創造活動の源泉であり、祈りは、生かされている感謝と報恩の心、進んでは神との対話であるわけである。そうしてそのどちらも、エネルギーという力の波動によって為されている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と思う。
이렇게 보게 되면 염원은, 목적의식이며, 창조활동의 원천이며, 기도는, 소생시키고 있는 감사와 보은의 마음, 나아가서는 신과의 대화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양쪽 다, 에너지라고 하는 힘의 파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에 명백해졌다고 생각한다.

 

 

さて、「正定」についてゴーダマは考えるのであった。正定の根本は反省であろう。反省は光明世界に住するかけ橋であろう。ねたみ、怒り、そしり、そして諸々の執着から離れるには、反省をおいてほかにはない。反省を積むことによって、心と肉体の調和が生まれ、進んでは己の心と大宇宙の心との合一がはかられよう。反省をせずして、心を空にするとマーラー(魔王)、ヤクシャー(夜叉)アスラー(阿修羅)、ナガー(竜・蛇)に支配され、自分の心を悪魔たちに売り渡してしまうことになる。
그런 다음,「정정」에 대해서 고다마는 생각한 것이었다. 정정의 근본은 반성일 것이다.  반성은 광명세계에 사는 가교(잔교 : 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일 것이다.  질투, 분노, 비방, 그리고 여러 가지 집착에서 떠나는 데에는, 반성밖에 없다.  반성을 거듭하는 것에 의해서, 마음과 육체의 조화가 생겨나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마음과 대우주의 마음과 합일을 도모할 수 있다.  반성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마음을 공하게 하면) 마라(魔羅,Mara, 마왕), 야크샤(夜叉, 남자 야차→Yaksa. 여자 야차→ Yaksni(야크시니)), 아수라(阿修羅,Asura), 나가(Nāga, 룡・뱀)에게 지배되어, 자신의 마음을 악마(惡魔)들에게 팔아 넘겨 버리게 된다.


 

正定は反省という止観の行為でなければなるまい。
정법은 반성이라고 하는 지관의 행위가 없으면 안 된다.

 

ゴーダマは三十六年間の人生を、以上の八つの規範に照らして、洗い出してみようと決意するのだった。
고마다는 36년 동안 인생을, 이상의 여덞개의 규범에 비추어, 철저히 조사하여 숨겨진 것이나 빠뜨린 것을 밝혀 내어 보려고 결의하는 것이었다.

 

すなわち、八正道という仏法(正法)に照らして、自分の過去をふりかえることにしたのであった。
즉, 팔정도라고 하는 불법(정법)에 비추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ゴーダマは、過ぎし日をふりかえってみると、自分が歩いてきたその想念と行為は、自己保存のエゴしか見当たらないことを知ったのであった。そうして、心の遍歴について、中道という仏法(正法)の照明を当てていくと、至るところ、黒雲が渦をまき、正法に適う行為のすくなさに唖然とするのであった。父や義母に対する態度、部下との競争意識、動物愛護にしてもそのほとんどが独りよがりであったり、自己主張の現われであった。これまで六年間の山中での修行にしても、一日でも早く悟りたいという自己の欲望が先に立ち、外見にとらわれたみせかけの修行であった。悟りへの重要な課程は、心の内面に対する反省であり、正法という大自然の摂理に照らしてみて、ものの見方、考え方、とらえ方、そして、それにもとずく行動が、果たして正しいものであるかどうかを、内省することがキメ手になるのであった。そうして、正しくないめんが浮彫されたならば、二度と再び、同じことをくりかえさないように、想念と行為のうえで現わしていくことであった。
고다마는,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신이 걸어 왔던 그 상념(想念)과 행위는, 자기보존의 이기심밖에 발견되지 않았던 것을 안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편력에 대해서, 중도라고 하는 불법(정법)의 조명을 비추어 밝게 해 가자, 도처에, 어두운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정법에 맞는 행위가 조금밖에 없는 것에 크게 놀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6년 동안 산속에서의 수행도 역시,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싶다고 하는 자기의 욕망이 앞서서, 외견에 사로잡힌 겉치레의 수행이었다.  깨달음으로의 중요한 과정은, 마음의 내면에 대한 반성이며, 정법이라고 하는 자연의 섭리에 비추어 보고, 사물에 대한 견해, 사고방식, 파악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행동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어떤지를, 내성(반성)하는 것이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올바르게 내면이 부각되었다면, 두번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상념(想念)과 행위의 위에서 나타내어 가는 것이었다.

 

★상념[想念] 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ゴーダマは過去をふりかえり、反省することによって、心の曇りを、一つ一つ払いのけていった。
고다마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반성하는 것에 의해서, 마음의 흐림을, 낱낱이 제거해 갔다.

 

 

三十六年間の過去をふりかえり、その想念と行為について、黒白をつけてゆくことは、大変なことであった。黒白をつけるには、中道を根本として第三者の立場で自分を眺めなければならない。身びいきがあっては意味を持たない。これでは反省にならないからだ。それだけに、反省が厳正なものであればあるほど、愚かな自分が浮彫されてくる。人に話すこともできない。
36년 동안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며, 그 상념(想念)과 행위에 대해서, 흑백을 가려 가는 것은, 몹시 힘이 드는 일이었다.  흑백을 가리는 데에는, 중도를 근본으로서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와 관계 있는 사람을 편들어서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는 반성이 안 되기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반성이 엄정한 것이면 것일수록, 어리석운 자신이 부각되어 온다.  남에게 말할 수도 없다.

 

★상념[想念]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反省して悪いと自認したとしても、その事実を消すことはできない。要はその事実を、これからの人生の課程において、改めてゆく以外にないのである。また、過去のその善悪について、それに執着を持つと、これからの行動が束縛されてくる。本来の自由性がそこなわれてしまう。とくに悪の行為について、
반성하며 나쁘다고 자인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없앨 수는 없다. 요는 그 사실을, 앞으로의 인생의 과정에 있어서, 고쳐 가는 이외에 없는 것이다.  또, 과거의 그 선악에 대해서, 그것에 집착을 가지면, 앞으로의 행동이 속박당하게 된다.  본래의 자유성을 해치게 되어 버린다.  특히 나쁜 행위에 대해서,

 

「悪かった・・・・・・」
「잘못했다・・・・・・」

 

と認めたまではいいが、それにとらわれると暗い想念をつくりだしてしまう。この点も中道の心が大事である。過去の全体験は、魂の修行の一過程であるからである。反省の功徳は反省後の中道の実践にかかっている。功徳は心身の調和という姿で現れてくる。
라고 인정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것에 사로잡히면(얽매이면) 어두운 상념(想念)을 만들어 내어 버린다.  이 점도 중도의 마음이 중요하다.  과거의 모든 체험은, 영혼의 수행의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성의 공덕은 반성 후 중도의 실천에 달려 있다.  공덕은 심신의 조화라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상념[想念]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ゴーダマは三十六年の過去を反省し、開眼する。そうして開眼後の実践によって、開眼の領域とその内容を、いっそう充実したものにしてゆくのである。
고다마는 36년 동안의 과거를 반성하고, 눈을 뜬다.  그리고 눈을 뜬 후의 실천에 의해서, 눈을 뜬 영역과 그 내용을, 더욱 충실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1.人間釈迦 No-1 P111~ 인간석가  제1권 페이지 110~ 

 



★마왕[魔王] 《국어/한자사전》
①마귀의 우두머리. ②천마(天魔)의 왕. 정법(正法)을 해치고 중생이 불도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귀신이다.
①마귀(魔鬼)의 우두머리 ②착한 일을 방해(妨害)하는 귀신(鬼神)
★마라[魔羅]  《국어/한자사전》
①[명사] [불교] 같은 말: 악마
①(범; 장애(障礙) 교란(攪亂)의 뜻) 수도(修道)를 방해(장애)하며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간악(奸惡)한 귀신(鬼神), 또는 사물(事物)②(본디 중들이 쓰던 은어)음경(陰莖)
★★악마[惡魔]

①불도(佛道)를 방해(妨害)하는 악신(惡神) ②악ㆍ불의ㆍ암흑을 의인화(擬人化)한 것. 사람을 악으로 유혹(誘惑)하고 멸망(滅亡)시키는 것. 유대교ㆍ크리스트교에서는 신의 적대자임 ③남을 못살게 구는 아주 흉악(凶惡)한 사람이나 악령(惡靈)
★★★마귀[魔鬼]

①요사(妖邪)스럽고 못된 잡귀의 통틀어 일컬음 ②하나님과 대립(對立) 존재(存在)하여 여러 악귀(惡鬼)를 거느리고 사람을 유혹(誘惑)하여 죄(罪)를 저지르게도 하고 병에 걸리게도 하는, 죄악(罪惡)의 원천(源泉)으로서의 인격적(人格的) 실재(人格的實在) 아담과 이브에게 원죄(原罪)를 짓게 한 주체(主體)로 알려져 있으며, 헤브루 시대(時代)부터 사탄(Satan)으로 불리어 옴. 악마(惡魔) ③삼구(三仇)의 하나

★야차(夜叉) 《한자사전》
①두억시니 ②형모(形貌)가 추괴(醜怪)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고, 상해를 입힌다는 잔인(殘忍)ㆍ혹독(酷毒)한 귀신(鬼神). 번뇌(煩惱)의 상징(象徵) ③염마졸(閻魔卒)

★아수라[阿修羅] 《한자/국어사전》
①팔부중의 하나.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귀신(鬼神). 악귀의 세계(世界)에서 싸우기를 좋아함
①팔부중의 하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나가[Nāga, 竜・蛇] 《일본어 위키백과사전》
ナーガ (नाग, Nāga) は、インド神話に起源を持つ、蛇の精霊あるいは蛇神のことである。頭頂に5匹の蛇を飾る人間で、下半身は蛇(インドコブラ)という姿をしている。
나가(Nāga, 룡・뱀)은, 인도신화에 기원을 가지며, 뱀의 정령 혹은 사신(뱀신)이다.  머리꼭대기에 다섯 마리의 뱀을 장식한 인간이며, 하반신은 뱀(인도 코브라)라고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2.お釈迦様の説法  その1  五人の最初の弟子への説法

2.부처님의 설법 그 첫번 째 5인의 최초의 제자에게의 설법


 

そなたたちは片寄りすぎた生活を続けている。ミガダヤの樹木の姿を見るがよい。幹が太ければ、その根も広く張っているはず。枝は幹から出、小枝は枝を足場に、緑の葉を繁茂させる。美しい花を咲かせる樹木もあろう。もしも、枝が幹より太く、幹より根が小さければどのようになるか。葉が小枝より重ければ小枝は折れてしまう。根と幹、幹と枝、枝と小枝が調和されているから、大木は風雨にさらされても安定している。根を張った幹と枝葉は、中道の心を教えている。人の心もこれと同じだ。心という幹を忘れ、法という根を失って、五官という枝葉の煩悩にふり回されるから、正しい人生を送ることが出来ない。
너희들은 너무 치우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미가다야의 수목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줄기가 크면, 그 뿌리도 넓게 뻗어 있을 것이다.  가지는 줄기에서 나오고, 작은 가지는 가지를 발판으로, 푸른 잎을 우거지게 한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수목도 있을 것이다.  만약, 가지가 줄기보다 크고, 줄기보다 뿌리가 작으면 어떻게 될까?  잎이 작은 가지보다 무거우면 작은 가지는 끊어져 버린다.  뿌리와 줄기, 줄기와 가지, 가지와 작은 가지가 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큰 나무는 비바람을 맞아도 안전하고 있다.  뿌리를 뻗은 줄기와 지엽(가지와 잎)은, 중도의 마음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이것과 똑같다.  마음이라고 하는 줄기를 잊어버리고, 법이라고 하는 뿌리를 잃고, 오관이라고 하는 번뇌에 농락당하기 때문에, 올바른 인생을 보낼 수가 없다.

 

私も幼い頃から、中道をはずれた人生を過ごしてきた。権力をカサに、何不自由なく優雅な生活をつづけた。だが、欲望が満たされても、心は安まらなかった。否むしろ、満ち足りた生活がつづくほど、疑問が広がった。場内のクシャトリアと場外の貧しいシュドラー(奴隷)の生活は、あまりにもかけ離れている。同じ人間でありながら、なぜ不平等な階級制度があるのだろう。太陽の光は、階級を越えて、あまねく照らしている。人の世だけが不平等である。なぜだろう。私は、生母の顔を知らない。義母に育てられ、何不自由なく育っても、生みの親でないことを知ってから、生母への追憶は、消えることがなかった。他国との戦い、そして破壊、罪もない者の死。いつ殺されるか知れぬ不安の日々。四季に応じた館はあっても、心の安住はなかった。人間の悟りは、このような環境の中からは得られるものではなかった。カピラを出た六年間は、衣食住に気を使う必要がなく、敵を意識することもない安穏の生活だった。しかし煩悩を滅する厳しい肉体行は、かえって肉体にまつわる執着をつくり出し、正道を悟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カピラの低落な生活も、厳しい肉体行も、ともに正道を自覚することのない修行方法であることを悟ったのだ。
나도 어린 시절부터, 중도를 떠난 인생을 보내어 왔다.  권력에 힘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우아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욕망이 충족되어도,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만족한 생활을 계속할 수록, 의문이 커져갔다.  장내의 크샤트리아(왕족과 무사계급)와 장외의 가난한 수드라(노예)의 생활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똑같은 인간이면서도, 왜 불평등한 계급제도가 있는 것일까?  태양의 빛은, 계급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비추고 있다.  인간 세계만이 불평등하다.  왜일까? 나는, 생모의 얼굴을 모른다.  의모(의붓어머니)에게 양육되어,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도, 낳아 준 어머니가 없는 것을 알고부터, 생모에 대한 추억은, 느낄 수가 없었다.  타국과의 전쟁, 그리고 파괴, 죄도 없는 사람의 죽음.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들.  계절에 도답한 집은 있어도, 마음의 안주는 없었다.  인간의 깨달음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얻을 수 없었다.  카필라를 나온 6년 동안은, 의식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적을 의식하는 일도 없는 안은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번뇌를 없애는 엄격한 육체수행은, 도리어 육체에 휘감기는 집착을 만들어 내고, 정도를 깨달을 수가 없었다.  카필라의 저락(하락)한 생활도, 엄격한 육체수행도, 다같이 정도를 자각하는 것이 없는 수행방법인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コスターニアよ、そなたはカピラ・バーストで芸妓の奏でる弦の音を聞いたことがあろう。あの弦の糸を強く締めたらどうなるか、また、弱いとどんな音色になるか知っているか。
코스타니야여, 그대는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迦毘羅衛)에서 예기가 연주하는 현의 소리를 듣은 적이 있을 것이다.  저 현의 실은 강하게 조이면 어떻게 되는지, 또, 약하면 어떠한 음색이 되는지 알고 있느냐?

 

 

ハ、ハイ ・・・ 強く締めれば切れてしまいます。弱くては調和された音色がでません。
네,네 ・・・ 강하게 조이면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약하면 조화된 음색이 나오지 않습니다.

 

その通りだ。ではどうすれば良いのだ、それを説明しなさい。
바로 그렇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것을 설명해 보라.

 

はい、弦の糸は中程に締めてこそ調和された音色が出ます。
네, 현의 실은 중간 정도로 조여야만 비로소 조화된 음색이 나옵니다.

 

その通りだ。人生も同じだ、弦の糸のように、強ければ切れてしまうものだ。厳しい肉体行は、かえって煩悩をつくり出し、一つ間違えば肉体舟はおろか、心は執着の権化に変わってしまう。肉体は人生の乗り舟にしか過ぎない。その船頭さんである心こそ永遠に変わることのない本当の自分自身であるということを忘れ、肉体舟の五官だけに翻弄されて、本当の自分を忘れていたのだ。丸い心の自分を忘れると、うらみ、ねたみ、そしり、怒り、欲望の渦の中に入り、本当の自分自身を見つけ出すことが出来ない。しかしそれがわかれば、苦しみは自分の心と行為がつくり出していたと気づくのだ。生まれたことによって病気をし、老いて、死んでゆく。人生は苦しみといってもいい。人間がこの苦しみから解脱するには、心と行いについて、その両極の生活から離れ、中道の生活を修めることが最も大事なのだ。心を忘れた厳しい肉体行によって煩悩を捨て去ることは、非常にむずかしい。肉体舟の五官は、客観的にあらゆる諸現象をとらえるが、判断は自らの心がする。通常はその判断が、諸現象にとらわれる。このために、思うこと、行うことが、心を忘れた諸現象となって生み出されてゆく。自分に都合が悪ければ、他人に平気で嘘をつく。表面をつくろい、自己保存に明け暮れてしまう。自分の心は自分に忠実だ。自分の心に自分は嘘がつけない。この事実は何人も否定できないし、人間が善なる神の子の証しでもあるのだ。生まれた時は人間は丸い豊かな心だったが、生まれた環境、思想、習慣を経るにしたがい、丸い心に歪みをつくり出してしまう。その結果、心の曇りが光明の安らぎを失い、苦しみをつくり出す。私は安らぎの道を求めて出家し、そなたたちとウルヴェラの森で、厳しい修行を六年もやった。疑問と模索の中にさまよったが、解脱できなかった。少女の布施してくれた一件から、そなたたちは、ゴーダマは堕落した、修行を捨てたと思って、常日頃の不満を爆発させてウルヴェラを去ってしまった。ネランジャラ河を下って行く後姿を私は見送ったが、麻の実やごまの種をとっていたのでは肉体が滅んでしまう。肉体が亡んで何の修行があろう。私は、あの時、決意したのだ。体をつくり、自分をふり返ってみようと。そなたたちと別れた私は、死を覚悟し、ピパラの大木の根元で、三十六年余の自分を反省した。中道という尺度を基準に。その結果は、生と死の執着から離れることができたのだ。そうして、生老病死というものは、一切の苦しみであり、これから解脱するには、心と行いにどのような物差しを持って生活すればよいかということがわかったのだ。
바로 그렇다. 인생도 똑같다.  현의 실처럼, 강하면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엄격한 육체수행은, 도리어 번뇌를 만들어 내고, 자칫하면 육체수행은 고사하고, 마음은 집착의 권화(화신)으로 변해 버린다.  육체는 인생의 승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 선장인 마음이야말로 영원히 변하는 일이 없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육체배의 오관만에 농락당하며, 진정한 자신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둥근 마음(원만한 마음)의 자신을 잊어버리면, 원망, 질투, 비방, 분노, 욕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면, 괴로움은 자기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내고 있었다고 알아차리는(깨닫는) 것이다. 태어난 것에 의해서 병들고, 늙고, 죽어 간다.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말해도 좋다.  인간이 이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데에는, 마음과 행위에 대해서, 그 양극의 생활에서 떠나, 중도의 생활을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잊은 엄격한 육체수행에 의해서 번뇌를 떨쳐 버리는 일은, 매우 어렵다.  육체배의 오관은, 객관적으로 모든 여러 현상을 파악하지만, 판단은 자신의 마음이 한다.  통상은 그 판단이, 여러 현상에 사로잡힌다. 이 때문에, 감정적·의지적·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이, 마음을 잊어버린 여러 현상이 되어 새롭게 만들어 내어 간다.  자기 자신에게 형편이 나쁘면, 타인에게 예사로 거짓말을 한다.  겉을 꾸미고(얼버무리고), 자기보존에 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세월을 보내 버린다.  자기의 마음은 자기에게 충실하다.  자기의 마음에 자신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이 사실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고, 인간이 선한 신의 자녀의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태어날 때는 인간은 둥둘고 풍성한 마음이었지만, 태어난 환경, 사상, 습성을 거침에 따라, 둥근 마음(원만한 마음)에 비뚤어짐을 만들어 내어 버린다.  그 결과, 마음의 흐림이 광명의 편안함을 잃어버리며,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나는 평안의 길을 찾아 출가하고, 그대들과 우루베라 숲에서, 엄격한 수행을 6년이나 했다.  의문과 모색 속에 정처없이 돌아다녔지만, 해탈할 수 없었다.  소녀가 보시해 준 한 사건때문에, 그대들은, 고다마는 타락했다.  수행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평소의 불만을 폭발시켜 우루베라를 떠나 버렸다.  네란자라 강을 내려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삼(麻)의 씨앗이나 참께의 씨앗을 갖고 있어서는 육체가 죽어 없어져 버린다. 육체가 죽고 무슨 수행이 있을까?" 나는, 저 당시에, 결의한 것이다.  몸을 만들고, 자신을 돌이켜보겠다고. 그대들과 이별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피팔라(pippala,보리수)의 큰 나무의 뿌리에서, 36년 여의 내 자신을 반성했다.  중도라고 하는 척도를 기준으로, 그 결과는, 삶과 죽음의 집착에서 떠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괴로움이며, 이것에서 해탈하는 데에는, 마음과 행위에 어떠한 척도를 가지고 생활하면 좋은가라고 하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サロモンたちよ、心を落ち着けて、私の法を聴くがよい。
사로몬(수행자)들이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법을 들는 것이 좋다.

 

そなたたちは、天国において、自らが両親を選び、肉体舟の縁を結んでこの世に生まれた。生まれた環境も、みんな自らの意思がそれを決めた。だが、この世の生活になれるにしたがって、両親にたいする感謝の心を忘れ、報恩の心をないがしろにしていく。不平不満の人生を送るというのが大半の人生である。ところが、人生における冨、地位、名誉というものは、この世限りで永遠のものではない。それをまず腹に収めることだ。生まれたときが裸なら、死ぬときも裸である。ところがこうした真実を忘れ、貧しい家に生まれると、心まで貧しくなり、反対に、裕福な家庭に生まれると、感謝の心を忘れ、堕落していく。ある者は、それぞれの環境の中から欲望の虜となり、足ることを忘れて、苦しみをつくって行く。哀れというより、人間とは、なんと愚かしきものよ。
그대들은, 천국에서, 자신이 양친을 선택하고, 육체배의 인연을 맺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태어난 환경도, 모두 자신의 의사(意思)가 그것을 결정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서, 양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보은의 마음을 소홀히 해 간다.  불평불만의 인생을 보낸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인생이다.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의 부, 지위, 명예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뿐이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우선 비밀 등을 마음속에 감추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가 벌거숭이라면, 죽을 때도 벌거숭이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실을 잊어버리고, 가나한 집에 태어나면, 마음까지 가난하게 되며, 반대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면,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타락해 간다.  어떤 사람은,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만족할 줄을 잊어버리고, 괴로움을 만들어 간다.  가엾다고 하기 보다는, 인간이란,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은 것인가?

 

サロモンたちよ、そなたたちは、まずこうした事実に、目覚めなくてはならない。そうして、この苦しみから解脱しなければならない。自らの心を、自らがしばりつけてしまう。その繋縛(けいばく)を解くには、正しい心の物差しを持って、毎日の生活を送ること以外にないのだ。よこしまな考え、行いを捨てることだ。ミガダヤの自然を見るがよい。山川草木の自然は調和している。生かされるままに生きているではないか。小鳥や動物たちの生活は、一見弱肉強食のように見ているが、よく見ると、彼らは、自分を生かしながら、他を生かしている。虎やハイエナは、腹が満たされれば、他を襲うことはしない。草食動物がふえれば、草木が枯れてしまう。といって草食動物がいないと、草木は育ちにくい。彼らは、自然の条理にしたがって、自然を生かし、自らも生きている。自然は、相互に依存し合いながら、全体を調和させている。動物たちの弱肉強食の姿をとらえて、人間に当てはめようとすると無理が出る。彼らは、そうした姿を通して、全体を生かしているものであるからだ。人間は、たがいに助け合い、自然をも含めて、より高い調和をめざすものである。ところが、欲望の渦中に自らを置き、争うために生きている。虎同士で殺し合いをするだろうか。よくよく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私の法は、大自然の万生万物が、相互に関係し合い、そうして、全体を安定させているように、まず、自己保存、自我我欲の心と行いを捨て、人類は皆兄弟だという心境になることである。そうして、社会人類に奉仕することだ。苦と思わず、実践することだ。苦と思える自分があっては、実践は覚束(おぼつか)ない。そこで苦と思えない自分をつくることが先決であり、自己の確立が大事な要件になってくる。その要件を満たすには、八つの条理を、生活の基礎におき、物差しにして、自分自身の心と行いを整えることだ。
사로몬(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우선 이러한 사실에,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이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동여매어 버린다. 그 속박을 푸는 데에는, 올바른 마음의 척도를 가지고, 매일의 생활을 보내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부정(不正)한 생각, 행위를 버리는 것이다.  미가다야의 자연을 보는 것이 좋다.  산천초목의 자연은 조화하고 있다.  소생된 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작은새나 동물들의 생활은, 얼핏보면 약육강식처럼 보이고 있지만, 잘 보면, 그들은, 자신을 되살리면서, 남을 소생시키고 있다.  호랑이나 하이에나는, 배가 부르면, 남을 습격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초식 동물이 늘어나면, 초목이 말라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초식동물이 없으면, 초목은 자라기 어렵다.  그들은, 자연의 조리에 따라서, 자연을 소생시키고, 그들도 살고 있다.  자연은, 상호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체를 조화시키고 있다.  동물들의 약육강식의 모습에 사로잡혀, 인간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무리가 나온다.  그들은,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전체를 되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 함께 서로 돕고, 자연을 또한 포함해서, 보다 높은 조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을 두고, 싸움을 위해서 살고 있다.  호랑이끼리 서로를 죽이는 짓을 할까요?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법은, 대자연의 만생만물이, 상호가 서로 관계하며, 그렇게 해서, 전체를 안정시키고 있는 것처럼, 우선, 자기보존, 자아아욕(自我我欲)의 마음과 행위를 버리고, 인류는 모두 형제이다 라고 하는 심경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괴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실천하는 것이다.  괴롭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어서는, 실천은 의심스럽다.  그래서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 선결이며, 자기의 확립이 중요한 요건이 되어진다.  그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여덞개의 조리를, 생활의 기초로 두고, 척도로 해서, 자기 자신의마음과 행위를 가다듬는 것이다.

 

★아욕 [我欲·我慾]   《일본어사전》 ①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正しく見ること
 正しく語ること
正しくとは、片寄りのない中道をいう。相手のいうこと、そして自分の見方、見解に偏見がないかどうか。人間はえてして、自己中心となり、他人を傷つけ、自分の心にも傷をつけてしまう。不利なことであっても、常に第三者の立場に立って、正しい判断と、正しい言葉を忘れてはならない。
올바르게 보는 것
올바르게 말하는 것
올바름이란, 치우침이 없는 중도를 말한다.  상대방의 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견해, 견해에 편견이 없는가 어떤가? 인간은 곧잘, 자기중심이 되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며, 자신의 마음에도 상처를 입혀 버린다.  불리한 일이 있어도, 늘 제삼자의 입장에 서서, 올바른 판단과, 올바른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正しく思うこと
 正しく念ずること
五官を通して私達の心の中に生ずる現象、つまり思う、考えることについても、偏らせてはいけない。思うことは「もの」をつくり出す原動力であり、創造の源であるからだ。心の中で不調和なことを思い、そうして念じて行くと、やがてその不調和を人々に及ぼし、自分にかえってくる。自己の利益だけを思ったり、相手の不幸を決して念ずるようなことがあってはならない。常に円満な、中道の心を持ち、怒り、そしり、ねたみ、うらみ、ぐちることなく、足ることを知った心の状態を心掛ければ、心は光明に満たされ、安らぎの境地に至ることができる。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
올바르게 염원하는 것
오관을 통해서 우리들은 마음속에 생기는 현상, 즉 감정적·의지적·주관적으로 생각과, 객관적·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  생각함이란「사물(만물)」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며, 창조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부조화한 것을 생각하며, 그렇게 해서 염원해 가면, 이윽고 그 부조화를 사람들에게 미치고,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거나, 상대방의 불행을 반드시 염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원만한, 중도의 마음을 가지고, 화를 내고, 비방하며, 질투하며, 원망하며, 투덜대는(바가지를 긁음, 푸념,넋두리함) 일이 없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의 상태를 명심하면, 마음은 광명으로 가득 채워지며, 편안한 경지에 이를 수가 있다.

 

 正しく仕事をすること
自ら選び、与えられたその職業は、それはそのまま天職であり、その仕事を通して、人生を学習してゆく。仕事、職業は、人生経験を豊かにする新しい学習の場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職業は、人々が生きて行く上の相互依存の大事な場であり、したがって、健康で働けることに感謝しなければならない。感謝は報恩となって実を結ぶ。百姓たちが野良に出て精を出し、収穫を得ることによって家計が保たれる。報恩とは余ったものを人々に布施することだ。困っている人々を見て、みぬふりをし、自己保存に耽る心は、自らが苦しみの種を蒔いていることになる。仕事といっても、他に害を及ぼす仕事は正しいとはいえまい。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
스스로 선택하고, 주어진 그 직업은, 그것은 그대로 천직이며, 그 일을 통해서, 인생을 학습해 간다.  일, 직업은, 인생경험을 풍성하게 하는 새로운 학습의 장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직업은, 사람들이 살아 가는 데에 상호 의존하는 중요한 장이며, 따라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사는 보은이 되어 열매를 맺는다.  백성들이 들(논밭)에 나가서 들일을 열심히 하고, 수확을 얻는 것에 의해서 가계가 유지된다.  보은이란 남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도, 못 본 체 하고, 자기보존에 탐닉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괴로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일이라고 말해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올바르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正しく生きること 
 正しく道に精進すること
 正しく定に入ること
片寄りのない人生を歩いているか、いないか。人としての道を外していないかどうか。瞑想という反省を通して、心の曇りを晴らした生活が大事なのである。私は、三十六年間の人生において、思ったこと、行ったことの一つ一つを反省し、心の曇りをとり除き、一切の執着から離れることが出来た。安らぎの境地は、こうして得られた。そなたたちも今から、今までの人生体験の善悪を反省し、八正道にそむいた想念行為があったならば、心から神に詫び、同じ間違いを犯さないようにすることだ。反省は、盲目の人生航路を修行する人間に与えられている神の偉大な慈悲なのだ。動物たちに反省の能力のないことをみてもわかるだろう。
올바르게 사는 것
올바르게 도(도리)에 정진하는 것
올바르게 선정에 들어가는 것
치우침이 없는 인생을 걷고 있는가, 걷고 있지 않은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나고 있는가 어떤가? 명상이라고 하는 반성을 통해서, 마음의 흐림을 맑게 개게 한 생활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36년동의 인생에 있어서의, 생각한 것, 행한 것의 하나하나를 반성하고, 마음의 흐림을 제거하고, 일체의 집착에서 떠날 수가 있었다.  평온함의 경지는,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었다.  그대들도 앞으로, 지금까지의 인생체험의 선악을 반성하고, 팔정도를 어긴 상념행위(想念行為)가 있었다고 하면,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하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반성은, 맹목의 인생항로를 수행하는 인간에게 주어져 잇는 신의 위대한 자비인 것이다.  동물들에게 반성의 능력이 없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人間は誰もメクラだ。過失を犯しやすい。他人の心がわかれば、調和への道も開かれよう。しかし、ほとんどの人は、自己保存の心に束縛されて、他人も、自分も見失ってしまう。不調和はそこから生まれ、苦しみ、悲しみの原因をつくってしまうことを悟るがよかろう。心の正しい基準を知って、良くその原因を追究し、反省することが大事なのだ。過失は素直に認めて修正し、同じ過失を犯さないような生活が、自らの心を豊かにし、苦しみの人生から脱皮することが出来るのだ。心を正すには、即座に実践することが大事であって、明日があるという考えを捨てることだ。
인간은 누구나 장님이다.  과실을 범하기 쉽다.  타인의 마음을 알면, 조화로의 길도 열릴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보존의 마음에 속박되어, 타인도, 자신도 보고 있던 것을 놓쳐 버린다.  부조하는 거기에서 태어나며, 괴로움, 슬픔의 원인을 만들어 버리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음의 올바른 기준을 알고, 잘 그 원인을 추구하고, 반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과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정하고, 똑같은 과실을 범하지 않는 생활이, 스스로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괴로움의 인생에서 탈피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는, 즉석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며, 내일이 있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人生は無常であり、死はいつ襲ってくるかわからない。今日のことは今日のうちになし、常に心の整理をして、一日生きられたことに感謝することがもっとも大事だ。一日一生は心と行いが充実した毎日で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인생은 무상하며, 죽음은 언제 슴격해 올지 모른다.  오늘의 일은 오늘 동안에 하고, 늘 마음의 정리를 하고, 하루 동안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일일생은 마음과 행위가 충실한 매일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禅定は、自らの心と行為の一切を、正道によってよく反省し、心の中の曇りを除くことである。心に曇りがあれば、光明への安らぎの心をみずからが閉ざしていることになるからだ。曇った心は不調和な暗い世界に通じ、その状態で禅譲すると、心はマラー、キンナラ、マゴラガ、アスラーのような地獄霊に支配され、心の自由を失ってしまう。
선정은, 자신의 마음과 행위의 일체를, 정도에 따라서 잘 반성하고, 마음속의 흐림을 없애는 것이다.  마음에 흐림이 있으면, 광명으로의 편안한 마음을 스스로 막아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흐린 마음은 부조화한 어두운 세계로 통하고, 그 상태에서 선양(禪讓)하면, 마음을 마라(魔羅. Mara, 마왕), 긴나라(緊那羅, 범 kimnara, 음악의 신), 마후라가(摩喉羅迦, Mahoraga, 음악의 신), 아수라(阿修羅, Asura, 싸움의 신)와 같은 지옥령(地獄靈)에게 지배되어, 마음의 자유를 잃어 버린다.

 

心の中にこだわりをつくってはならない。こだわりは、やがて、正しい自分の心と行いの自覚から遠ざかり、一生を棒にふってしまうことになる。
마음속에 구애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거리낌은, 이윽고, 올바른 자신의 마음과 행위의 자각에서 멀어지고, 일생을 날려 버리게 된다.(일생을 노력 ·고생해온 것을 헛되게 해 버린다)

 

執着から離れ、常に心が安らぎに満たされておれば、禅定の心はそのまま実在の世界に住し、三昧の喜びにひたることが出来るものである。今日から八つの正道を、心の物差しとして、精進するがよかろう。
집착에서 떠나, 늘 마음이 편안하게 충족되어 있으면, 선정의 마음은 그대로 실재의 세계에 살고, 삼매의 기쁨에 잠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여덞개의 정도(正道)를, 마음의 척도로 해서, 정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구애[拘礙]됨  《국어/일본어사전》
①거리끼거나 얽매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중도에서 정체(停滯)되거나 하다. 《예스러운 말》

 

★마왕[魔王] 《국어/한자사전》
①마귀의 우두머리. ②천마(天魔)의 왕. 정법(正法)을 해치고 중생이 불도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귀신이다.
①마귀(魔鬼)의 우두머리 ②착한 일을 방해(妨害)하는 귀신(鬼神)
★마라[魔羅]  《국어/한자사전》
①[명사] [불교] 같은 말: 악마
①(범; 장애(障礙) 교란(攪亂)의 뜻) 수도(修道)를 방해(장애)하며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간악(奸惡)한 귀신(鬼神), 또는 사물(事物)②(본디 중들이 쓰던 은어)음경(陰莖)
★★악마[惡魔] ①불도(佛道)를 방해(妨害)하는 악신(惡神) ②악ㆍ불의ㆍ암흑을 의인화(擬人化)한 것. 사람을 악으로 유혹(誘惑)하고 멸망(滅亡)시키는 것. 유대교ㆍ크리스트교에서는 신의 적대자임 ③남을 못살게 구는 아주 흉악(凶惡)한 사람이나 악령(惡靈)
★★★마귀[魔鬼] ①요사(妖邪)스럽고 못된 잡귀의 통틀어 일컬음 ②하나님과 대립(對立) 존재(存在)하여 여러 악귀(惡鬼)를 거느리고 사람을 유혹(誘惑)하여 죄(罪)를 저지르게도 하고 병에 걸리게도 하는, 죄악(罪惡)의 원천(源泉)으로서의 인격적(人格的) 실재(人格的實在) 아담과 이브에게 원죄(原罪)를 짓게 한 주체(主體)로 알려져 있으며, 헤브루 시대(時代)부터 사탄(Satan)으로 불리어 옴. 악마(惡魔) ③삼구(三仇)의 하나
 
★긴나라[緊那羅]  《국어/한자사전》
[명사] [불교] 팔부중의 하나.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신으로,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 또는 말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이 일정하지 않다.

★마후라가[摩睺羅迦]  《국어/일본어 위키백과사전》
①[불교] 팔부중(八部衆)의 하나.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뱀과 같은 신이다.
①摩睺羅伽(まこらか、まごらが、Skt:Mahoragaの音写、漢訳:大蛇・大腹行など)、サンスクリット語名の「マホーラガ」は「マハー」+「ウラガ」で「偉大なる蛇」を意味する。
마후라가는, 대사(大蛇, 큰 뱀. 매우 큰 뱀. 구렁이. 이무기)는, 산스크리트어(범어)의 이름인「마호라가」는「마하(摩訶)」+「후라가」이며 「위대한 뱀을 의미한다.

★아수라[阿修羅] 《한자/국어사전》
①팔부중의 하나.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귀신(鬼神). 악귀의 세계(世界)에서 싸우기를 좋아함
①팔부중의 하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아수라도[阿修羅道] 《한자/국어사전》
①같은말 : 아수라계[阿修羅界]
①[불교] 삼선도의 하나. 항상 싸움이 그치지 않는 세계로, 교만심과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
②육도(六道)의 하나. 교만(驕慢)심과 시기심(猜忌心)이 많은 사람이 죽은 뒤에 가서 싸움만 하는, 아수라(阿修羅)가 사는 세계(世界)

★★아수라왕[阿修羅王]
①[불교] 아수라도의 우두머리. 정법(正法)을 없애기 위하여 늘 제석천과 싸운다.

★★아수라녀[阿修羅女]
①[불교] 여자 아수라. 키가 크며 해변이나 큰 바다 밑에서 산다고 한다.

★★★팔부중[八部衆]  《일본어 위키백과사전》★★★  지옥령(地獄靈)임.
불법(佛法)을 지키는 여덟 신장(神將). 곧, 천(天, deva),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喉羅迦).
이 내용의 상세한 해설은, 각종 사전상에, 정법과 위배되는 내용들이 상당한 까닭에 해설된 사정상의 내용은 적지 않겠습니다.

 

 

3.人間釈迦 No-2 P036~ 인간석가  제2권 페이지 036~ 

 


 

 

3.お釈迦様の説法  その2  留守中の弟子達へ
3.부처님의 설법 그 두번 째 부재중의 제자들에게

 

 

サロモン達よ、私は近々ウルヴェラに行く。しばらく皆と別れるが、その間に、バラモン種のサロモン、サマナー達が、そなた達にむずかしい議論を持ちかけて来ても、決して論争に巻き込まれてはならない。
사로몬(수행자)들이여, 나는 머지않아 우루베라로 간다.  잠시 모두와 헤어지지만, 그 동안에, 바라문종의 사로몬, 사마나들이, 그대들에게 어려운 의논을 들고 와도, 결코 논쟁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相手の感情を高ぶらせれば、そなた達もまた心の中に歪みをつくり出し、相手を屈服させようと思うだろう。それはかえって自らが苦しみの原因をつくることになる。絶対にこちらから論争をしかけてはならない。
상대방의 감정을 고조시키면, 그대들도 또한 마음속에 비뚤어짐을 만들어 내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자기 자신의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게 된다.  절대로 이쪽에서 논쟁을 걸어서는 안 된다.

 

どんなことを相手が言おうと忍辱の心を忘れないことだ。しかしその忍辱によって、心の中にわだかまりをつくっては、なおいけない。わだかまりは、心の中に怒りの炎を燃やし、苦しみの原因をつくるからだ。見ても、聞いても、心の中に毒の種を蒔かぬことだ。必要なことだけを心に止め、自らの修行に役立たせることである。
어떤 일을 상대가 말하여도 인욕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욕에 의해서, 마음속에 응어리(わだかまり:꺼림한 감정)을 만들어서는, 역시 좋지 않다.  마음속에 맺힌 꺼림한 느낌 특히 불신·불만·의혹 등의 감정(わだかまり)은, 마음속에 분노의 불꽃을 태우고,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봐도, 들어도, 마음속에 독의 씨앗을 심지 않는 일이다.  필요한 것만을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의 수행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大木は決して風に逆らうことはないだろう。自然のままに生きているから、倒れることがないのだ。中道の心は、大木に似て、自然に逆らわないことだ。自然が与えた、あるがままの心で、感謝と報恩の行為を為していくことだ。
큰 나무는 결코 바람을 거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연 그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쓰러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중도의 마음은, 큰 나무와 닮아서,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것이다.  자연이 준,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감사와 보은의 행위를 행해 가는 것이다.


中道を根本として、お互いの欠点を優しく教え、互いに仕事を扶け合う。仕事を手伝うごとに、お返しを求めてはならない。期待や報奨を求めることは我欲の温床をつくっていく。といって、手助けしてもらった者は、感謝の心を忘れず、感謝の心を具体的に示すことが報恩というものだ。太陽や自然は、私達の生存に、無報酬でつくしてくれる。私達の感謝と報恩の行為は、多くの衆生のために尽くすことである。衆生の先達として、その苦しみ悲しみから開放することが、私達サロモンに与えられた役目である。
중도를 근본으로 해서, 서로가 결점을 상냥하게 가르치고, 서로 일을 서로 돕는다.  남의 일을 도와주는 일로, 보답을 바래서는 안 된다.  기대나 보장을 바라는 것은 아욕(我欲)의 온상을 만들어 간다.  그렇다고 해서, 도움을 받은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보은이라고 하는 것이다.  태양이나 자연은, 우리들의 생존에, 무보수로 헌신적으로 힘써 준다.  우리들의 감사와 보은의 행위는, 많은 중생을 위해서 진력(盡力)하는 것이다.  중생의 선배(지도자)로서, 그 괴로움과 슬픔부터 개방하는 것이, 우리들 사로몬에게 주어진 임무(역할.소임)이다. 

 

★아욕 [我欲·我慾]   《일본어사전》 ①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私は、これよりウルヴェラにおもむくが、留守中はしっかりと修行し、より心を浄化し、自分をつくって欲しい。
나는, 여기에서 우루베라로 향하여 가지만, 부재중에는 착실히 수행하고, 보다 마음을 정화하고, 자신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 人間釈迦 No-2 P036~ 인간석가  제2권 페이지 036~ 

 

 


 

4.お釈迦様の説法  その3  弟子達への説法-火は燃ゆる
4.부처님의 설법 그 세번 째3 제자들에게의 설법-불은 탄다


諸々のサロモンたちよ---。
そなた達の眼は燃えている。
燃えている眼で物を正しく見ようとしても見ることはできない。
欲望に心が移り、足ることを忘れた心があるかぎり、正しきものの判断は出来ないし、安らぎの境地も得られない。
여러 사람의 사로몬(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의 눈은 불타고 있다.
불타고 있는 눈으로 사물을 잘 보려고 해도 볼 수는 없다.
욕망에 마음이 변하여, 만족할 줄을 잊어버린 마음이 있는 한, 올바르게 사물의 판단은 할 수 없고, 편안함의 경지도 얻을 수 없다.

 

 

そなた達の耳は燃えている。
燃えている耳で、正しくものを聞くことが出来るであろうか、それは出来ない。
ひとりよがりの増長慢がそうした耳をつくり出し、他人の言うことが聞こえないのである。
心の高ぶりを捨てねば、心の平和は得られぬであろう。
그대들의 귀은 불타고 있다.
불타고 있는 귀로, 올바른 것을 듣는 것이 가능할 것일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독선의 증장만(오만)이 그러한 귀를 만들어 내고, 타인의 말하는 것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흥분(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마음의 평화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そなた達の口は燃えている。
口角泡を飛ばし、感情をむき出しにして、相手の心を忘れて論争をする。論争は感情を刺激し、対立を生み闘争に発展する。
何処に慈悲の心があるのか。語る言葉に慈悲があれば、相手の心を燃やすことはないであろう。
言葉によって、相手に意思が正しく伝わってこそ、燃えている言葉も静まるというものである。
그대들의 입은 불타고 있다.
입에 거품을 물고, 감정을 드러내며, 상대방의 마음을 잊고 논쟁을 한다.  논쟁은 감정을 자극하고, 대립을 낳고 투쟁으로 발전한다.
말에 의해서, 상대에게 의사가 올바르게 전해져야만 비로소, 불타고 있는 말도 가라앉는다고 하는 것이다.

 

味覚が燃えれば、美食に耽り、強欲の心が燃えてこよう。
その火が燃え、とどまることを知らねば、欲望の渦の中に身を沈めることになろう。
미각이 불타면, 미식에 빠지고, 강한 욕망의 마음이 불타 올 것이다.
그 불이 불타고, 멈출 줄을 모르면,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몸을 빠뜨리게 될 것이다.

 

 

臭いも亦同じだ。
心の中を燃やす元凶にもなろう。
体の感触に心が燃えると、情欲のとりことなり、自らの本性を失ってしまうだろう。
냄새(악취)도 또한 마찬가지다.
마음속을 불태우는((비유적으로) 어떤 의욕·감정을 고조시키는) 원흉도 될 것이다.
몸의 감촉에 마음이 불타면, 정욕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본성을 잃어 버릴 것이다.

 

 

このように五官は心を燃えさせ、心はますます五官にふり回されて行く。
苦しみはこうして、つくり出されていくものだ。
이와 같이 오관은 마음을 불타게 하고, 마음은 점점 더 오관에 농락당해 간다.
괴로움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 내어 가는 것이다.

 

 

火を拝んで、来世の幸福を望んでも、正しい心を失えば、苦しみから解脱することは出来ない。
불을 합장 배례하고, 내세의 행복을 바래도, 올바른 마음을 잃어버리면,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없다.

 

生老病死は、他力の苦行では決して解放されることはないのだ。常に不安と不信が同居し、疑問があっても明らかにできず、永い習慣に心まで柔軟さを失ってゆくものだ。
생로병사는, 타력의 고행으로는 결코 해방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늘 불안과 불신이 동거하고, 의문이 있어도 밝혀낼 수 없고, 오랜 습성에 마음까지 유연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燃える心を静めるためには、心と行いによる八つの正しい道を生かすことである。生活の物差しとすることである。そうして、燃えてる原因を除くことが大事なのだ。原因を除かぬかぎり、また残り火によって、燃え出すであろう。心は常に、丸く、大きく、豊かでなければならない。
불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마음과 행위에 의한 여덞개의 올바른 도리(道)를 되살리는 것이다.  생활의 척도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불타고 있는 원인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원인을 없애지 않는 한, 또한 잔불에 의해서, 불타기 시작할 것이다.  마음은 늘, 둥글고(원만하고), 크고, 여유가 없으면 안 된다.

 

燃えれば、煙も出るだろうし、その煙は心を蔽い、神の慈悲の光をさえぎってしまうだろう。正しい八つの道を尺度として、反省の中から、その残り火さえも根絶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その時に、人の心は慈悲の光に埋まり、苦しみから解脱し、光明という世界がひらけてくる。五官にとらわれた肉の身のはかなさ、無意味さ、人間のなんたるかを知り、安らぎの心を悟るのだ。
불타면, 연기도 나올 것이고, 그 연기는 마음을 가리고, 신의 자비의 빛을 보이지 않게 가려 버릴 것이다.  올바른 여덟개의 도리(道)를 척도로 해서, 반성하는 중에서, 그 잔불마저 근절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의 마음은 자비의 빛으로 온통 뒤덮히고, 괴로움에서 해탈하고, 광명이라고 하는 세계가 열려 온다.  오관에 사로잡힌 육신의 무상함, 무의미함, 인간의 무엇인지를 알고, 편안한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光明の世界を、実在界という。その実在界は、やがてそなたたちの帰るべき安住の地なのだ。本当の世界なのだ。肉体は無常であり、人生行路の乗り舟にしかすぎぬ。今、そなた達の持っている肉体と同居している実在界への乗り舟は、眼に見えぬが厳として存在しているのだ。
과염의 세계를, 실재계(천상계)라고 한다.  그 실재계는, 이윽고 그대들의 돌아가야 할 안주의 땅인 것이다.  진짜의 세계인 것이다. 육체는 무상하며, 인생항로를 위한 승선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그대들의 가지고 있는 육체와 동거하고 있는 실재계로의 승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見えない世界に帰る心と舟は、今、そなた達と共にあるのだ。実在の世界と、現象の世界とを永遠に輪廻して、今、そなた達は私の説法を耳にしていることを知るべきである。そなた達の肉体舟はその環境に適応されて、縁により約束されて現れて来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るがよかろう。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돌아가는 마음과 배는,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실재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와를 영원히 윤회하며, 지금,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듣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대들의 육체배는 그 환경에 적응되어, 인연에 의해 속박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ウルヴェラの森からラジャグリハに来るためには、道を歩いてくる者、馬の背にまたがって来る者、象に乗って来る者、さまざまであったろう。乗り物は馬でも象でも、ラジャグリハに来た当人自身は変わらない筈である。
우루베라 숲에서 라쟈구리하로 오기 위해서는, 길을 걸어서 오는 사람, 말을 타고 오는 사람, 코끼리를 타고 오는 사람, 가지가색일 것이다.  탈것(교통수단)은 말이라 해도 코끼리리라 해도, 라자구리하(raajagRha、王舎城)에 온 당사자 자신은 변함 없을 것이다.

 

人生におけるそなた達の肉体も、馬や象の乗り物なのだ。人生航路に適応した乗り舟なのだ。その乗り舟に執着を持ってはならない。生老病死の悩み苦しみは、そうした乗り舟に執着を持つためにおこるのである。正しい八つの道こそ、生老病死から解脱する道なのである。
인생에 있어서 그대들의 육체도, 말이나 코끼리의 교통수단인 것이다.  인생항로에 적응한 탈것인 것이다.  그 타는 배에 집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생로병사의 정신적인 괴로움과 육체적·경제적 괴로움은, 그러한 승선한 배에 집착을 갖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올바른 여덟개의 도리(道)야말로, 생로병사에서 해탈하는 길인 것이다.

 

 

 何十年も信じて来た信仰をすべて捨て去り、私の弟子となったカシャパー兄弟は立派である。勇気あるサロモンだ。
몇 십년이나 믿어 온 신앙을 모두 버리고, 나의 제자가 된 카샷파형제는 훌륭하다.  용기 있는 사로몬이다.

 

 

自分の欠点を、勇気と智恵と努力によって修正した者こそ、燃える心の炎を消しとめたサロモンといえよう。
자신의 결점을, 용기와 지혜와 노력에 의해 수정한 사람이야말로, 불타는 마음의 불꽃을 잡은 사로몬(수행자)이라고 할 수 있다.

 

旧来の陋習を破り、正道に励む者に神は惜しみなく光を与えてくれるだろう。

구래의 누습을 타파하고, 정도에 힘쓰는 자에게 신은 아낌없이 빛을 제공해 줄 것이다.

 


 

 

★삼가섭[三迦葉] 《국어사전》[불교]
우루빈라가섭(uruvela kassapa,優樓頻螺迦葉), 나제가섭((nadi kassapa, 那提迦葉), 가야가섭(gayaa kassapa, 伽耶迦葉)의 삼 형제. 본래 외도(外道)의 무리였으나, 성도(成道)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고 그 제자가 되었다.
※참고로, 삼가섭 형제들은, 배화교(拜火敎)의 지도자였으며, 불의 신을 숭배하던 고대 인도의 강대국이었던, 기원전 6세기경의 마가다국의 국왕인 빔비사라(Bimbisāra)도 존경하던 인물. 이 세 형제의 이야기는, 원설 반야심경에 있습니다.

 

 

★人間釈迦 No-2 P100~ 인간석가  제2권 페이지 100~ 

 


 

5.お釈迦様の説法  その4  ビンビサラ王への説法
5.부처님의 설법  그 네번 째 빔비사라(頻婆娑羅)왕에게의 설법

 


ラージャンよ、私達の肉体は人生行路の乗り舟であり、心という船頭さんがあってこそ、自分の存在を知るものです。もし船頭さんである心がないとしたならば、思い煩うことも、苦楽の経験すらありません。その心があるために、いろいろな思いが生じ、欲望が生まれて来るものです。また肉体の五官を通して、生まれた環境、教育、思想、習慣の中で、丸い豊かな心に歪みをつくり、苦しみの因縁をつくり出してしまうものです。肉体というものは本来、苦楽の人生を渡るための船であり、それをあやつる各人の心こそ、永遠不滅の自分であり、五官でとらえられる一切の諸現象は心を豊かにするための媒体にすぎないのです。にも拘らず、その現象に振り回されて、本当の自分を失って苦の因をつくり出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良き縁により良き原因をつくり、良き果を得る道を実践することが安らぎの心を得る道だといえましょう。そのためには、苦しみの因を断ち生と死を解脱する以外にありません。
라쟌(왕)이여, 우리들의 육체는 인생항로를 하기 위해 탄 배이며, 마음이라고 하는 선장이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아는 것입니다,  만약 선장인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걱정(근심)하는 것도, 고락의 경험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생기고, 욕망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 육체의 오관을 통해서, 태어난 환경, 교육, 사상, 습성 속에서, 둥글고 풍성한 마음(원만하고 여유가 있는 마음)에 비뚤어짐을 만들고, 괴로움의 인연을 만들어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육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고락의 인생을 건너기 위한 배이며, 그것을 젓는(조종하는) 각자의 마음이야말로, 영원불멸한 자기 자신이며, 오관에 사로잡히는 일체의 여러 현상은 마음을 풍족하게 하기 위한 매체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상에 농랑당해,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리고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좋은 인연보다 좋은 원인을 만들고, 좋은 결과를 얻은 길을 실천하는 것이 편안한 마음을 얻는 길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끊고 삶과 죽음을 해탈하는 이외에는 없습니다. 


 

解脱の道は、まずもって、相手の言われることを正しく聴くことです。自己を中心としていては正しく聴くことが出来ません。相手の言葉で怒りの心が生じたり、へつらい、うらみ、ねたみ、そしりの心が出たりすることは、自己中心の心で聴いているために起こるのであり、苦しみの因となるでしょう。
해달의 길은,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말하는 것을 올바르게 듣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는 올바르게 들을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의 말로 화를 내는 마음이 생기거나, 아첨, 원망, 질투, 비방하는 마음이 나오거나 하는 것은, 자기중심의 마음으로 듣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괴로움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次に、正しく語ることです。言葉によって他人を傷つけますと、その傷ついた心が自分にかえって来ます。また、自分の言葉によって誤解の因をつくると、自分自身の心に苦しみをつくることになります。言葉は正しく、相手の心に調和を与えるように心掛けることが大事です。
다음으로, 올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말에 의해서 타인을 상처입히면, 그 상처를 입는 마음이 자신에 되돌아옵니다.  또, 자신의 말에 의해서 오해의 원인을 만들면, 자기 자신의 마음에 괴로움을 만들게 됩니다.  말은 올바르게, 상대의 마음에 조화를 주도록 유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心を外に向ければ欲望をつくり、苦しみの原因となり、心を内に向ければ正しくものが見られ、苦しみをつくりません。解脱はこうした正しき心の物差しによって得られて行くものであり、人の世の調和が築かれてゆきます。
마음을 밖으로 돌리면 욕망을 만들고, 괴로움의 원인이 되어, 마음을 안으로 돌리면 올바른 것을 볼 수 있고, 괴로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해탈은 이러한 올바른 마음의 척도에 의해서 얻어 가는 것이며, 인간 세계의 조화가 구축되어 갑니다.

 


★人間釈迦 No-2 P139~ 인간석가  제2권 페이지 139~ 

 

 


 

6.お釈迦様の説法  その5  縁生の弟子達
6.부처님의 설법 그 다섯 번째5 연생의 제자들


人は誰しも転生輪廻の体験をつみ、永遠の生命だということを知るがよかろう。実在の意識界と物質的現象界を転生し、今、人々はここに在る。心を失った現象界の中で、人々は自ら選んだその環境で自らの魂の新しい体験を学んでいる。人は皆盲目の人生を送りながらも、その体験を通して、豊かな心と調和された社会をつくる内在された目的を持って毎日をすごしているが、ブッタは、その内在された目的をひき出すべく、盲目の衆生に光明を与えるために生まれて来たのだ。
사람은 누구나 전생윤회의 체험을 쌓는, 영원한 생명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재의 의식계와 물질적 현상계를 전생(転生)하고, 지금, 사람들은 여기에 있다.  마음을 잃어버린 현상계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 그 환경에서 자신의 영혼의 새로운 체험을 배우고 있다.  사람은 모두 맹목의 인생을 보내면서도, 그 체험을 통해서, 풍족한 마음(여유 있는 마음)과 조화된 사회를 만드는 내재된 목적을 가지고 매일을 보내고 있지만, 붓타(佛陀)는, 그 내재된 목적을 끌어내기(꺼내기) 위해서, 맹목의 중생에게 광명을 주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サロモン達よ、そなた達は、小さな気持ちで、早くから弟子入りした者もあるであろう。しかし転生の過程において既に広く大きく、豊かな心を持っているサロモン達も生まれているのだ。過去世を通して、ブッタの縁にふれ、道を学び、今世では他の弟子達より遅れて、ブッタの下にたどりつく者もあろう。しかし今世のそうした早い遅いによって、その人達の魂の大きさを推し量ることは出来ないのだ。
사로몬(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작은 마음으로, 일찍부터 제자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환생) 과정에서 이미 넓고 크고, 풍족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로몬들도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세를 통해서, 붓타의 인연에 닿아서, 도리를 배우고, 금세에서는 다른 제자들보다 늦게, 붓타의 아래로 여러 가지 곡절 끝에 겨우 도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세의 그러한 빠르고 늦음에 따라서, 그 사람들의 영혼의 크기를 추량할 수는 없는 것이다.

 

 

ウパテッサ コリータの両人は、ブッタの前世において、肉体を持った時、すでにボサッターとしての悟りを得た弟子達である。
우파뎃사(Saariputta,Zaariputra,Sariputra,舎利弗, 사리불), 코리타(MahaaMoggallaana,摩訶目犍連, 마하목건련),  두 사람은, 붓타의 전세에 있어서, 육체를 가졌을 때, 이미 보삿타(보살:菩薩)로서의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이다.

 

サロモン達よ、今世において、早くからブッタの縁にふれた者は、法を心と行いの物差しとして日々の修行に精進したならば、その事実を自ら悟ることが出来るのだ。そなた達は心の内に、過去の転生の体験を記憶し、偉大なる智慧の宝庫を持っている。
사로몬(수행자)들이여, 금세에서, 일찍부터 붓타의 인연에 닿은 사람은, 법을 마음과 행위의 척도로서 매일매일 수행에 정진했다면,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마음속에, 과거의 전생(환생)의 체험을 기억하고, 위대한 지혜의 보고를 가지고 있다.

 

 

その扉は誰が開くか。ほかならぬそなた達自身だ。宝庫の扉は法の実践によって開くことが出来る。
그 문을 누가 여는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대들 자신이다.  보고의 문은 법의 실천에 의해서 열 수가 있다.

 

そなた達の心の王国の主人公は他人ではなく、そなた達自身である。
그대들의 마음의 왕국의 주인공은 타인이 아니라, 그대들 자신이다.

 

マーハー・パニャー・パラー・ミター(偉大なる内在された智慧に到達する)の境地になるには、一切の執着を断って、調和された安らぎの境地、彼岸に到達することを目標としなくてはならない。
마하・파니야(파냐)・파라・미타(摩訶波羅蜜多,위대한 내재된 지혜에 도달한다)의 경지가 되는 데에는, 일체의 집착을 끊고, 조화된 편안의 경지, 피안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サロモン達よ。
사로몬(수행자)들이여,

 

ブッタの弟子として、今世だけの縁生をもって、先輩、後輩の不平不満をいだいてはならない。不平や不満は、自己の欲望が満たされないために起こるのである。欲望は心に歪みをつくり、人々に毒を与え、自らをして苦悩の種をまくことになる。ブッタの弟子は、このような小さな心を持ってはならない。今世において、弟子として縁生に早くめぐり合えた者達は、後輩に対してより謙虚な心と行為を持って当たり、自己の確立を図らなければならない。
붓타의 제자로서, 금세만의 연생(緣生)을 가지고, 선배, 후배의 불평불만을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된다.  불평이나 불만은, 자기의 욕망을 총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욕망은 마음에 비뚤어짐을 만들며, 사람들에게 독을 주며, 자신으로 하여금 고뇌의 씨를 뿌리게된다.  붓타의 제자는, 이러한 작은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금세에서, 제자로서 연생(緣生)에 일찍 상봉한 사람들은, 후배에 대해서 보다 겸허한 마음과 행위를 가짐이 마땅하며, 자기의 확립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諸々のサロモン達よ。
여러 사람의 사로몬(수행자)들이여.

 

 

ブッタは過去六仏の転生を通して、その法灯を、諸々の衆生の心に灯し、救済して来た。そなた達は、ブッタの過去六仏の何れかの縁によって、現世の弟子となったのだ。ウパテッサ、コリータは、ブッタの過去六仏の縁生をことごとく体験した。今世ではあらゆる師を求めて迷い、仏の法を求めてようやく現在のブッタの縁にたどりついたのだ。そのため、ウパテッサからも、コリータからも、五体から出ている光明は、恰もヒマラヤの山頂から転がって来た雪の塊のように、大きな後光となって満たされている。そなた達も、法をよりどころとして生活するならば、自ら、その光明を見ることが出来るだろう。
붓타는 과거육불의 전생(환생)을 통해서, 그 법등을, 여러 사람의 중생의 마음에 켜고, 구제해 왔다.  그대들은, 붓타의 과거육불의 누군가의 인연에 의해서, 현세의 제자가 된 것이다.  우파뎃사, 코리다는, 붓타의 과거육불의 연생(緣生)을 죄다 체험했다.  금세에서는 온갖 스승을 찾아 방황하며, 부처의 법을 구하며 차츰 현재의 붓타의 인연에 여러 가지 곡절 끝에 겨우 도달한 것이다.  그 때문에, 우파뎃사도, 코리타도, 오체에서 나오고 있는 광명은, 마치 히말라야(Himalaya)의 산정에서 굴어온 눈덩이처럼, 큰 후광이 되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대들도, 법을 근거(의지처)로 해서 생활하게 되면, 스스로, 그 광명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ブッタがここまで語ると、アサジが立ち上がって、
ブッター、私がウパテッサと初めてお会いした時の体験ですが、その時は頭の周囲に丸い黄金色の淡い光を見ましたが、今のそれは、実に大きく、体全体を包んでいます。前と今では、どうしてその光明の大きさに相違があるのでしょうか。
붓타가 여기까지 말하자, 아사지(Assaji,阿説示)가 일어서서,
붓타, 제가 우파뎃사와 처음 만났을 때의 체험입니다만, 그 때는 머리의 주위에 둥근 황금색의 연한 빛을 보았습니다만, 지금 그것은, 실로 크게, 몸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전과 지금에는, 어째서 그 광명의 크기에 차이(相違)가 있는 것인가요?


 

ブッタはアサジの顔を見つめ微笑した。
붓타는 아사지(Assaji,阿説示)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했다.

 

 

アサジよ、その通りだ。
雨季の時節はマガダの空は雲に覆われ、太陽が見えないだろう。また、雨季が去っても度々雲に蔽われて太陽の光がさえぎられることもあろう。
아사지(Assaji,阿説示)여, 그대로이다.
우기(雨季)의 시절은 마가다의 하늘은 구름에 덮혀, 태양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 우기가 지나도 몇몇의 구름이 덮히여 태양 빛이 가려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ブッタの法をよりどころとして、思うこと、行うことを正し、執着から離れれば、心の曇りは除かれ、反省、禅定の中身によって、光明が異なってくるものだ。太陽の光は総て平等であり、雲の上は光で満ちている。神仏の光もすべて平等である。人びとの心の調和度によって、その人びとの後光に相違が出てくるといえよう。
붓타의 법을 근거로 해서, 정서적으로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을 바로잡고, 집착에서 떠나면, 마음의 흐림은 제거되어, 반성, 선정의 내용(알맹이)에 의해서, 광명이 달라져 오는 것이다.  태양 빛은 모두에게 평등하며, 구름 위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신불의 빛도 모두에게 평등하다.  사람들의 마음의 조화의 정도(調和度)에 의해서, 그 사람들의 후광에 차이(相違)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ウパテッサ、コリータは既にブッタの法に触れて修行に精進しているため、心の曇りが除かれているのだ。やがて、アラハンとなり、更に、修行を積みボサッターの境地に達するであろう。
우파뎃사(Saariputta,Zaariputra,Sariputra,舎利弗), 코리타(MahaaMoggallaana,摩訶目犍連)는 이미 붓타(仏陀)의 법에 닿아서 수행에 정진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흐림이 제거되어 있는 것이다.  이윽고, 아라한(阿羅漢,梵:arhant)이 되어, 더욱, 수행을 쌓고 보삿타(菩薩, 보살)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人間釈迦 No-2 P217~ 인간석가  제2권 페이지 217~ 

 


 

 

7.お釈迦様の説法  その6  精舎内の説法
7.부처님의 설법  그 여섯 번째 정사 내에서의 설법


法を頼りとした遊行によって、調和された生活を送るサロモンたちに接し、わたしは本当に生きがいを感じる。ますます、正道に励んで欲しい。だが、この中には、旧来の厳しい肉体行を捨てがたく、法を頭だけで理解し、心の実体を忘れ、真の安らぎを得ることなく、心に、重荷を持ったまま、苦悩している者もいる。わたしの説く法は、人の道である。その法を、そなたたちの思うこと行うことの中に実践したときに、心の曇りは晴れ、仏の慈悲による光明が真の安らぎとなり、心の世界を調和させてゆく。
법을 의지한 유행(중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함)에 의해서, 조화된 생활을 보내는 사로몬(수행자)들에게 대접하고, 나는 정말로 사는 보람을 느낀다.  이 중에는, 구래의 엄격한 육체수행을 버리기 어렵고, 법을 머리만으로 이해하고, 마음의 실체를 잊어버리고, 진정한 평안을 얻는 일 없이,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 체로, 고뇌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내가 설명하는 법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人道)이다.  그대들의 생각하고 행하는 가운데에 실천했을 때에, 마음의 흐림은 맑게 개고, 부처의 자비에 의한 광명이 참으로 편안하게 되어, 마음의 세계를 조화시켜 간다.

 

 

そなたたちのアートマン(自我)の中には、善なる我と、偽りの我が存在している。一切の苦悩は偽りの我によってつくり出されている。この偽りの我は、一見、自己の欲望を満たしてくれるかのように見えるが、じつは、大きな執着の荷物となって、苦悩をつくっているのである。苦悩の原因、苦悩の根を除かないかぎり、人生の苦悩からのがれることはできない。
그대들의 아트만(범 ātman)(自我,자아) 속에는, 선한 나와, 거짓된 내가 존재하고 있다.  일체의 고뇌는 거짓된 나에 의해서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거짓된 나는, 얼핏보면,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큰 집착의 짐을 지고, 고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뇌의 원인, 고뇌의 뿌리를 없애지 않는 한, 인생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트만[범 ātman]   《일본어사전》
①<哲〉 아트만. (고대 인도의 철학에서) 개인. 자아(自我). 영혼.

 

 

そのためには、自己保存の欲望をつくり出している偽りの我を支配し、自分に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仏性に目覚めることである。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보존의 욕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짓된 나를 지배하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아(착한 나)인 불성에 눈뜨는 것이다.

 

 

サロモンたちよ。雨に打たれている草木を見よ。まっすぐにのびている竹をよく見ることだ。彼らは自然の風雨によく耐えて、その中で立派に成長している。それは自然にさからわないからである。同時に、草木は、しっかりとした根を地中深く張っているので、どんな風雨にも耐えられるのだ。そればかりか、彼らは、互いに譲り合い、助け合って生きている。この事実を、しっかりと見ることである。
사로몬(수행자)들이여, 비를 맞고 있는 초목을 보라.  곧게 뻗쳐 있는 대나무를 자세히 볼 일이다.  그들은 자연의 비바람에 잘 참고 견디며, 그 가운데에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초목은, 튼튼한 뿌리를 땅속 깊이 뻗고 있기 때문에, 어떤 비바람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서로 양보하며, 서로 도우며 살고 있다.  이 사실을, 똑똑히 볼 일이다.

 

 

そなたたちも、法を悟って生活したならば、五官煩悩にふりまわされず、いかなる諸現象も正しく理解し、心の中に苦悩の毒をつくり出すことはないであろう。不調和ないかなる物を見ようと、聞こうとも、法に照らして思念すれば、心を動かすことも、不調和な行動に流されることもなくなるであろう。
그대들도, 법을 깨닫고 생활한다면, 오관 번뇌에 농락당하지 않고, 어떠한 여러 현상도 올바르게 이해하고, 마음속에 고뇌의 독을 만들어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조화한 어떠한 사물을 봐도, 들어도, 법에 비추어서 사념(思念)하면, 마음을 흔드는 일도, 부조화한 행동으로 흐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사념[思念]①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

 

 

不退転の心は、法の実践によってつくり出されてゆくことを知るがよかろう。
불퇴전의 마음은, 법의 실천에 의새서 만들어 내어 가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そのためには、生活の基準は、五官ではなく、心に中心をおくことである。すべてのものは、心が根本であり、不調和な中道から外れた心の状態で物を言ったり、生活を続けてゆくと、常に苦しみと同居し、苦悩という荷物を肩からおろすことができない。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의 기준은, 오관이 아니라, 마음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모든 것(만물)은, 마음이 근본이며, 부조화한 중도에서 벗어난 마음의 상태로 사물을 말하거나, 생활을 계속해 가면, 늘 괴로움과 동거하고, 고뇌라고 하는 짐을 어깨에서 내릴 수가 없다.

 

そのような人生は、坂道を重い荷物を背負って上るようなものである。
그러한 인생은, 비탈길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しかし、中道の心がわかり、善我の心でものを思い、生活をしてゆくと、心の中は安らぎ、その喜びは自分と一体となり、自分の影が自分から離れないように、光と一体となり、光明の生活となる。
하지만, 중도의 마음을 알고, 선아(착한 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생활을 해 가면, 마음속은 편안하고, 그 기쁨은 자신과 일체(한몸)가 되며,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듯이, 빛과 일체(한몸)이 되어, 광명의 생활이 된다.

 

 

また、そなたたちは、他人から暴力をふるわれたり、ののしられたり、うらまれたりすると、その言動にとらわれ、心はイライラし、怒りをいだいてしまうが、これでは怒りから、いつまでも解放されることはない。
또, 그대들은, 타인에게서 폭력을 당하거나, 큰소리로 비난을 받거나, 원망을 사거나하는, 그 언동에 사로잡혀, 마음은 초조하고, 화를 품어 버리지만, 그러면 화를 내며, 언제까지나 해방될 수는 없다.

 

許すことも慈悲であり、怒りから解放される仏の光である。怒りの原因をよく知って、心の中に怒りの毒を食べてはならない。怒りは怒りによって報いるものではない。そうしたところで、心の中の怒りは決して消えるものではない。
용서하는 것도 자비이며, 노여움에서 해방되는 부처의 빛이다.  분노의 원인을 잘 알고, 마음속에 분노의 독을 먹어서는 안 된다.  분노는 분노에 의해서 보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 보았자, 마음속의 분노는 해결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外は、今、しきりと雨が降っている。もし、この家の屋根のふき方が悪かったとしたら、雨漏りがして、家の用をなさないことになる。 それと同じように、法をよく修めないと、心にむさぼりが生じてきて、堕落の道におちて行くことになる。
밖에는, 지금, 빈번히 비가 내리고 있다.  만약, 이 집이 지붕이 물막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면, 빗물이 새어, 집의 구실을 못하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법을 잘 익히지 않으면, 마음에 탐욕이 생겨나서, 타락의 길로 떨어져 가게 된다.

 

智慧ある者は、煩悩の炎に心を燃やすことなく、法を柱に生きてゆくだろう。勇気と努力、そして智慧によって、心の中の偽りの我を支配し、善我なる己に嘘のつけない正しい心を持って生活したならば、やがて、輝かしい悟りの境地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るであろう。
지혜 있는 사람은, 번뇌의 불꽃에 마음을 불태우는 일 없이, 법을 기둥으로 살아 갈 것이다.  용기와 노력, 그리고 지혜에 의해서, 마음속의 거짓된 나를 지배하고, 선아(착한 나)인 자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이윽고, 빛나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이다.

 

 

人間は足ることを知ったとき、偉大なる財宝を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よう。
인간은 만족할 줄을 알았을 때, 위대한 재보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偉大なる財宝とは、そなたたちが転生の過程において体験した人生の智慧であり、安らぎの泉である。その扉を開くことである。一切の迷妄が、その扉を開くことによって、明らかにされる。
위대한 재보란, 그대들이 전생(환생)의 과정에서 체험한 인생의 지혜이며, 평안의 원천(泉)이다.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일체의 미망(迷妄)이, 그 문을 여는 것에 의해서, 밝혀지게 된다.

 

人はそのとき、ゆるぎない永遠の生命を悟り、眼前に映る現象、物質は無常であり、その無常の姿は、永遠の生命を運んでくれる綾なす糸のようなものだと悟ることができよう。
사람은 그 때, 확고부동한 영원한 생명을 깨닫고, 눈앞에 비치는 현상, 물질은 무상하며, 그 무상한 모습은, 영원한 생명을 날라 주는 비단같은 실과 같은 것이다 라고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欲望にほんろうされる生活を厭(いと)い、正しき道を歩もうとする者は、やがては、智慧ある財宝の扉を開き、悟りの境地に至ることであろう。
욕망에 농락당하는 생활을 싫어하고, 올바른 길을 걸으려고 하는 사람은, 머지 않아서는, 지혜 있는 재보의 문을 열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이다.

 

弓を作る者は、同時にまっすぐな矢をこしらえる。弓と矢はこうしてはじめて、その力を発揮するが、そなたたちの生活も、心をまっすぐに正してこそ、はじめて、確立することができる。
활을 만드는 사람은, 동시에 똑바른 화살을 만든다. 활과 화살은 이렇게 해서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하지만, 그대들의 생활도, 마음을 똑바르게 바로잡아야만, 비로소, 확립할 수가 있다.

 

だが、人の心は常に欲望を満たそうとする。調和の心を維持することは非常にむずかしいものである。しかし、むずかしいからといって、怒りや、むさぼりに心を許したならば、心はいつまでも安らぎを得ることはできない。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은 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조화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말하며, 노력이나, 탐욕에 마음을 허락한다면, 마음은 언제까지나 평안을 얻을 수가 없다.

 

美辞麗句をならべ、実行の伴わない者は、色あせた香りのない花に似ている。蜜のない色あせた花には、蝶も、蜜蜂も、寄りつかぬであろう。花はいきいきと咲いてこそ、蝶も蜜蜂も寄ってきて、ともに生き長らえることができる。実行こそが、その人を生かし、その周囲を明るく栄えさせるものである
미사어구를 나열하며, 실행의 따르지 않는 사람은, 빛이 바랜 향기 없는 꽃과 흡사하다.  꿀이 없는 빛깔이 바랜 꽃에는, 나비도, 꿀벌도,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꽃은 화사하게 피어야만 비로소, 나비도 꿀벌도 접근하고, 다 같이 살아 남을 수가 있다.  실행이야말로, 그 사람을 소생시키고, 그 주위를 밝게 꽃을 피게 하는 것이다.

 

 

そなたたちは、己の美しい丸い心を輝かせることによって、人びとに法の灯を与えることである。
그대들은, 자기의 아름다운 둥근 마음(원만한 마음)을 빛나게 만드는 것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법의 등불을 주는 것이다.

 

 

ウパラー(蓮の華)やヤンダン、タガラーバシキツのような花は美しく香りもゆたかあるが、法の香りはもっと素晴らしく、気高く、崇高なものである。そうした香りを発散させる自分をつくって欲しい。
우발라(Uppalavannā, 優鉢羅華)(연화=연꽃)나 얀단(??), 타가라바시키츠(??)와 같은 꽃은 아름다운 향기도 풍부하지만, 법의 향기는 더욱 향기롭고, 품격이 높고, 숭고한 것이다.  그러한 향기를 발산키시는 자신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꽃이름은,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법화경에 나오는 표현인가 보네요.

 

遊行中に寝苦しい夜を迎えた体験者もあることであろう。眠れぬ夜は長く感じるものだ。また、それと同じように、彼岸に渡り切っていない人びとにとっては、その毎日は、険しい山道を登るように苦しく感じられるものである。正しい法を知らない者は、盲目の人生を歩いているので、苦悩と迷いを長く感ずるものなのである。
유행(중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함) 중에 더위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을 맞이했던 체험자도 있을 것이다.  잠들 수 없는 밤은 길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그것과 마찬가지로, 피안(건너편 강변)으로 다 건너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나날은, 험한 산길을 오르듯이 괴롭게 느껴질 것이다.  올바른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맹목의 인생을 걷고 있기 때문에, 고뇌와 미혹(迷惑)을 길게 느끼는 것인 것이다.

 

★미망[迷妄]  《국어/한자사전》①사리(事理)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미혹[迷惑]  《국어/일본어사전》
①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②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
①판단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②어찌할 바를 모르다. ③갈팡질팡하다

 

 

遊行の道を歩む者は、自分より優れた者か、あるいは同等の者たちと行くがよかろう。なぜならば、悪友とともにあると、そなたたちの心まで荒らされ、不調和な道を歩むことになりやすいからである。悪友は、猛獣よりも恐ろしい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野にいる猛獣はそなたたちの肉体を滅ぼしてしまうかもしれないが、しかし、心まで滅ぼすことはできない。だが、悪友は、その大事な心まで毒してしまう。注意すべきは悪友であり、悪友にこそ正しく接しなければならない。
유행의 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든지, 혹은 동등한 사람들과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쁜 친구와 함께 있으면, 그대들의 마음까지 어지럽게(황폐하게) 되어, 부조화한 길을 걷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친구는, 맹수보다도 무서운 것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들에 있는 맹수는 그대들의 육체를 멸망시켜 버릴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마음까지 멸망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쁜 친구는, 그 소중한 마음까지 해(해악·재앙)을 가져오게 해 버립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나쁜 친구이며, 나쁜 친구야말로 올바르게 사귀지 않으면 안 된다.

 

どんなにかわいい我が子であっても、最愛の妻であっても、そしてまた、恵まれた財産を持っていようとも、足ることを忘れ、欲望のままにその身が流されると、苦しみはつきることはない。
아무리 사랑스러운(귀여운) 내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가장 사랑하는 아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또한, 풍족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만족함을 잊어버리고, 욕망에 따라 그 몸을 맡겨 버리면, 괴로움은 끝나는 일은 없다.

 

 

この肉体は、自分のものであって自分のものではない。時が経てば、この地上に置いてゆくしかないのである。いわんや、かわいい子どもも、最愛の妻も、ともに自分の所有物ではなく、財産もまた自分のものではない。
이 육체는, 자기 자신의 것이긴 해도 자기의 것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 이 지상에 두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물며, 사랑스러운 자식도, 가장 사랑하는 아내도, 다같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며, 재산도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다.

 

すべて、これらは転生の過程において、縁によって生じたものであって、それぞれの縁生には、それぞれの使命と目的がある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모두, 이들은 전생(환생)의 과정에 있어서, 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이며, 저마다의 연생에는, 저마다의 생명과 목적이 있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永遠の所有物とは、そなたたちの生命であり、心である。これ以外に何一つとして、所有物はない。
영원한 소유물이란, 그대들의 생명이며, 마음이다.  이 이외에 무엇 하나라고 해도, 소유물은 없다.

 

 

自分のかわいい子どもとはいっても、成長するにしたがって、親の考えと異なってくる。当然である。子どもは子どもの個性を持っており、魂は親と異なるからである。しかし、両親は、子供を育てるためには、あたかも、太陽のように無償の慈愛によって育てて行くだろう。子どもは、生み育ててくれた偉大な両親の慈悲と愛に感謝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こにまた、人の道というものがあるわけであり、それは、生きて行く者の務めというべきであろう。
자신이 사랑스러운 자식이라고는 말해도, 성장함에 따라서, 부모의 생각과 달라진다.  당연하다.  아이는 아이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영혼은 부모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친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치, 태양처럼 무상의 자비에 의해서 키워 갈 것이다.  자식은, 낳고 길러준 위대한 양친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 또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이며, 그것은, 살아 가는 사람의 의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感謝の心は報恩の行為となって実を結ぶ。孝養は、子どもとしての当然の行為であり、それが失われると、人の世は瓦解するしかないであろう。
감사하는 마음은 보은의 행위가 되어 열매를 맺는다.  효양은,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행위이며, 그것을 잃어버리면, 인간 세계는 와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社会の中に自分を置いている以上は、より良い社会の調和に奉仕してこそ、法が実践されたことになり、仏国土の道が開かれてゆくことになる。社会は自己の欲望を満たすための場ではないことを、悟ら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사회의 속에 자신을 두고 있는 이상은, 보다 좋은 사회의 조화에 봉사해야만 비로소, 법이 실천되게 되며, 불국토의 길이 열리어 가게 된다. 사회는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이 아닌 것임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万生万物は相互の助け合いによって調和が保たれ、それによって平和と安らぎが生まれてくる。
만생만물은 상호가 서로 돕는 것에 의해서 조화가 보전되며, 그것에 의해서 평화와 평안이 탄생되게 된다.

 

 

智慧ある者は、知識の限界をよく知っている。愚かな者ほど、知識に酔い、自分を高く見せようとする。
지혜 있는 사람은, 지식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지식에 취해서, 자신을 우월하게 보이려고 한다.

 

 

バラモンの修行者の中には、ヴェーダやウパニシャードの聖典に通じ、知識は豊かであるが、実践がないので、知識の枠から一歩も外に出ることができず、聖典をもて遊ぶ者が多い。哀れというほかはない。
바라문의 수행자 중에는, 베다(범 Veda)나 우파니샤드(범 Upanisad) 의 성전에 정통하고, 지식은 풍부하지만, 실천이 없기 때문에, 지식의 틀에서 한걸음도 밖으로 나올 수가 없고, 성전으로 놀아나는 사람이 많다.  가엾다고 할 수밖에 없다.

 

★베다산스크리트어)Veda]  《국어사전》
[명사] [종교] 인도 바라문교 사상의 근본 성전이며 가장 오래된 경전.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1100년에 이루어졌으며, 인도의 종교·철학·문학의 근원을 이루는 것으로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 아타르바베다의 네 가지가 있다.
★우파니샤드[(산스크리트어)Upanisad]  《국어사전》
[명사] [종교]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져 힌두교의 철학 사상을 나타내는 일군의 성전. 인도의 철학과 종교 사상의 원천을 이루며 사람·신·우주의 이치를 밝힌 것으로, 우주적 실체인 브라만과 인간 내면의 자아인 아트만의 궁극적 일치를 주장한다.

 

 

真の智慧は、心の中から湧き出ずるパニャー・パラミタ(内在された偉大なる智慧)の境地から生まれてくる。それは、人から借り物のような知識からは、決して生じてはこない。法の実践によって得た安らぎ、感謝、調和の心から湧きでるものである。そなたたちは、知識におぼれてはいけない。知識の枠をいくら広げたからといって、心が豊かになるものではない。むしろ、その反対に、迷いと、不安と、混乱を増すだけである。知識は智慧から生じた現象であって、智慧そのものではないのだ。
진짜 지혜는,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파니야(파냐)・파라미타(波羅蜜多, 내재된 위대한 지혜)의 경지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남에게서 빌여온 물건과 같은 지식에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법의 실천에 의해서 얻은 평안, 감사, 조화가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그대들은, 지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식의 틀을 아무리 넓혔기 때문이라고 해도, 마음이 풍족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미혹(迷惑)과, 불안과, 혼란을 더할뿐이다.  지식은 지혜에서 생겨난 현상이며, 지혜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미망[迷妄]  《국어/한자사전》①사리(事理)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미혹[迷惑]  《국어/일본어사전》
①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②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
①판단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②어찌할 바를 모르다. ③갈팡질팡하다

 

 

 

智慧の湧現は法の実践にある。心の中につくり出された不調和な曇りを除かない限り、無明はいつになっても晴れることはないであろう。
지혜의 용현은 법의 실천에 있다.  마음속에 만들어 낸 부조화한 흐림을 없애지 않는 한, 무명(무지)은 언제까지나 걷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曇りを除くには、法の物差しにより思念と行為をふりかえり、その間違いを修正することが最も大事である。つまり、反省である。そうして、心の中に曇りをつくらないように、常に正道を歩まなくてはならない。
흐림을 없애는 데에는, 법의 척도의 의해 사념(思念)과 행위를 돌이켜 보고, 그 잘못을 수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반성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속에 흐림을 만들지 않도록, 늘 정도(正道)를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사념[思念]①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

 

 

正道を歩むとは、煩悩の偽我を支配することである。そなたたちの心の中に本来ある、己に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心で修行することが、正道を歩む修行者といえよう。
정도(正道)를 걸음이란, 번뇌의 위아(거짓된 자기)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마음속에 본래 있는, 자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아(착한 자기)인 마음으로 수행하는 거이, 정도(正道)를 걷는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다.

 

 

心を外に向けると、遊興な生活におちこむことになる。そこには千仭の谷が待ち構え、苦悩しか与えないだろう。
마음을 밖으로 돌리면, 유흥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거기에는 밑바닥이 없는 좁은 골짜기(bottomless ravine)가 벼르고 기다리며, 고뇌밖에 주지 않을 것이다.

 

悪業は、即座に報いとなって現れることはないが、しかし、山中で焚火をたいた後の灰にかくれた火種のように、風によって、いつ山野を焼きつくしてしまうかしれないものだ。
악업은, 즉석에서 응보가 되어 나타나는 일은 없지만, 하지만, 산속에서 불(焚火)을 지핀 후의 재가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 불씨처럼, 바람에 의해서, 언제 산야를 불태워 버릴지 모르는 것이다.

 

また、愚かな者たちは、常に地位や名誉の欲望に苦しみ、物質、財宝、情欲への執着心のため、自らを苦しめている。サロモンは名聞に耳を傾けてはなるまい。利他の行為を忘れることなく、自己保存の欲望を捨て、常に安らぎの生活の中に住すべきである。
또, 어리석은 사람들은, 늘 지위나 명예의 욕망에 괴로워하며, 물질, 재보, 정욕으로의 집착심 때문에, 자신을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사로몬은 명문(명성과 평판)에 귀를 귀울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타의 행위를 잊어버리지 말고, 자기보존의 욕망을 버리고, 늘 편안한 생활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法の水を飲んだものものたちは、心が洗われているから、物にこだわることがなく、平和で安らいでいよう。
법의 물을 마신 사람 사람들은, 마음이 맑아져 있기 때문에, 사물에 구애되는 일이 없고, 평화로우며 편안할 것이다.

 

 

グリドラクターの岩場を見よ。
그리도락구타(霊鷲山, 영취산)의 암벽을 보라.

 

 

あの岩場はどんな風にもゆらぐことはないであろう。自然の中に安住しているので、物に動かされることがないからだ。
저 암벽은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연 속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사물에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修行者もこれと同じように、そしりや怒り、あるいはほめられても心を動かしてはならないのだ。一方に心が揺れると、もう一方にも心が働いてくるからである。
수행자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비난을 받거나 꾸지람을 듣거나, 혹은 칭찬받아도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쪽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또 한쪽에도 마음이 움직이기 되기 때문이다.

 

 

いかなる言動にたいしても、正しく見、正しく思い、正しく語り、正しく仕事を為し、正しく生活し、正しく道に精進し、正しく念じ、そうして、常に反省を怠ることなく、心を丸く豊かに保ち、禅定を楽しまなくてはならない。楽に溺れる欲望を捨て、いかなる苦難にあっても、その原因を究明し、原因の根をのぞき、心の中に法灯を燃やしつづけなければなるまい。しかし、そうした中にあっても、悟りの彼岸に到達する者は少なく、無常な物質世界に執着し、さまようことのなんと多いことか。そなたたちは転生の過程で学んだ偉大な智慧によって、すべての欲望に足ることを悟り、人と争うことなく、あの大空のように、清く澄んだ、広い心でいなければならない。生死の輪廻からは、足ることを知った心によって解脱できよう。
어떠한 언동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듣고, 올바르게 말하고, 올바르게 일을 하고, 올바르게 생활하고, 올바르게 도리에 정진하고, 올바르게 염원하고, 그렇게 해서, 늘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고, 마음을 둥글고 풍요롭게 보전하며, 선정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  즐길 거리에 빠지는 욕망을 버리고,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그 원인을 구명하고, 원인의 뿌리(근원)를 없애고, 마음속에 법등을 계속해서 태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 있어도, 깨달음의 피안에 도달하는 사람은 적고, 무상한 물질세계에 집착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대들은 전생(환생)의 과정에서 배운 위대한 지혜의 의해서, 모든 욕망에 만족함을 깨닫고, 남과 다투지 말고, 저 너른 하늘처럼, 맑고 맑은, 넓은 마음으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사의 윤회에서는, 만족할 줄을 아는 마음에 의해서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修行者よ、百万巻の書物より、安らぎの一言の方がすぐれている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真の救いは言葉ではない。知識でもない。慈悲心にあるからである。また、心の中の偽我に打ち克つことは、戦場で百万の敵に勝つより、すぐれた勝利者であることを銘記すべきである。なぜなら、大きな堤も蟻の一穴によって崩壊するであろうし、心の苦悩は、心をいやすことによってしか得られないからだ。
수행자여, 백만권의 책보다, 편안한 한 마디의 말을 하는 것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구제(구원)은 말이 아니다.  지식도 아니다.  자비심에 있기 때문이다.  또, 마음속에 위아(거짓된 자기)를 극복하는 것은, 전쟁터에서 백만의 적을 이기는 것 보다, 훌륭한 승리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큰 제방도 개미구멍 하나로 붕괴하는 것이고, 마음의 고뇌는, 마음을 가시게(치료하는) 하는 것에 의해서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智慧ある者は、まずこの世の業火から急いで逃げ出さなくてはならない。この世は、怒りと愚痴に満ち、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が渦をまいているからだ。そなたたちの心がこの業火に見舞われ、火の粉を浴びると、迷いと苦しみをうけよう。
지혜 있는 사람은, 먼저 이 세상의 업화(業火)에서 급히 달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은, 분노와 우치(어리석고 못남, 푸념)으로 가득 차며,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소용돌이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마음이 이 업화(業火)에 엄습을 받아, 불똥(불티)을 뒤집어쓰면, 미혹(迷惑)과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미망[迷妄]  《국어/한자사전》①사리(事理)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미혹[迷惑]  《국어/일본어사전》
①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②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
①판단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②어찌할 바를 모르다. ③갈팡질팡하다


善なる心こそ、そなたたちの主である。その主は永遠にして不滅の自己だ。その自己を失わぬためにも業火から離れることだ。
착한 마음이야말로, 그대들의 주인(당사자)이다.  그 주인(당사자)은 영원한 불멸의 자기 자신이다.  그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업화(業火)에서 떠날 일이다.

 

★업화 [業火]  《일본어사전》
①악업의 업보로서 받는 지옥의 불.
②몸을 멸망케 하는 악업(惡業)의 작용을 불에 비유한 말.

 

 

安らぎと調和は真に自己を愛する者によって得られよう。自己の喜びは他にも転化しよう。つまり、自己を愛するものは、他を愛することもできるのだ。まず、自分自身を修めなくてはならない。法を依りどころとして、自己を確立することだ。業火の見舞われても、その火を消し去るだけの自分をつくることが先決なのだ。遊行に出て、法の種を蒔いても、心の開拓がおろそかになっていては、あたかも粗悪な大地に種を蒔くのに似て、収穫は実り少ないものとなろう。
평안과 조화는 실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기쁨을 남에게도 변환해 주어야 할 것이다.  즉,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을 근거(의지처)로 삼고, 자기를 확립하는 일이다.  업화(業火)에 엄습을 받더라도, 그 불을 흔적 없이 지울만한 자신을 만드는 것이 선결인 것이다.  유행에 나가서, 법의 씨앗을 심어도, 마음의 개척이 소홀하게 되어 있어서는, 마치 조악한 대지에 씨를 뿌리는 것과 닮아서, 수확은 결실이 적은 것이 될 것이다.  

 

 智慧、努力、勇気---。
 지혜, 노력, 용기---。

 

これこそが自己を確立し、人びとを迷いの淵から彼岸に至らせる唯一のあり方なのだ。
이것이야말로 자기를 확립하고, 사람들을 미망의 늪에서 피안으로 도달케 하는 유일한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人をアテにしてはならない。
남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人のせいにしてはならない。
남을 탓해서는 안 된다.

 

善・悪いずれの結果が現われようとも、その一切は自らの心と行い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あり、他人のせいではないことを悟ら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선・악의 어느 쪽의 결과가 나타날지라도, 그 일체는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언 낸 것이며, 타인의 탓이 아닌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そなたたちの修行の目的は、自らに克つことであり、他人に勝つことではない。
그대들의 수행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며,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人間釈迦 No-3 P183~ 인간석가  제3권 페이지 183~ 

 


 

8.お釈迦様の説法  その7  ブッタの辻説法
8.부처님의 설법 그 일곱 번째 붓타의  가두설법

  

諸々の衆生よ。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旅人を見よ、旅人は先人のつくられた道を歩んで目的地にゆく。もし先人のつくられた道がなく、山野は草木に蔽われ、道なき道を歩んで目的地に行くとしたら、その苦難はひとしお深いものがあろう。しかし、先人の自らの智慧によって、暗中でも火をかざすことができ、橋がつくられ、歩くのに困らないよう道がつくられた。 人生航路の旅もこれに似て、先人の教えがその苦難をさけさせ、心素直になれば、より豊かな明るい一生を終えることができよう。しかし、それにもかかわらず、人びとの一生は暗闇の中に旅するようなもので、煩悩の中で苦しみ、あえぐことが多い。
나그네를 보라.  나그네는 선인(옛사람) 만든 길을 걸으며 목적지로 간다.  만약 옛사람의 만든 길이 없고, 산야는 초목으로 무성하고, 길이 없는 길을 걸으며 목적지로 간다고 하면, 그 고난은 더욱 깊을 것이다.  하지만, 옛사람의 자신의 지혜에 의해서, 어둠 속에서도 불을 비출 수가 있고, 다리를 만들고, 걷는데에 곤란을 겪지 않도록 길을 만들었다.   인생항로의 여행도 이것과 닮아서, 옛사람의 가르침이 그 고난을 막아주고, 마음이 솔직하게 되면, 보다 풍요로운 밝은 인생을 끝낼 수가 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일생은 어둠 속에 여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뇌 속에서 괴로워하며, 허덕이는 일이 많다.

 

なぜ、先人の光を素直にうけ取らないのだろう。
왜, 옛사람의 빛을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なぜ安らぎのある人生を送ろうとしないのだろう。
왜 편안한 인생을 보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人びとは煩悩にほんろうされ、欲望に心を売り渡してしまうからである。さらには、先人の教えが後世に素直に伝わらず、後世の人びとがその教えを曲げてしまうので、ますます光明を失い、方向が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う。知と意というものは、もともと欲望によって働くもので、心が不在になるとあらゆる方向へ走り出すものなのである。
사람들은 번뇌에 농락당하며, 욕망에 마음을 팔아 넘겨 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옛사람의 가르침이 후세로 솔직하게 전해지지 않고, 후세의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왜곡해 버린 것으로써, 점점 더 광명을 잃어버리고, 방향이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지(知, 세속적인 지혜)와 의(意, 마음, 생각, 의지)라고 하는 것은, 본래 욕망에 의해서 작용하는 것으로써, 마음이 부재하게 되면 온갖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인 것이다.
 
動物の中でも知が働くものに猿がいる。猿は小ざかしい知が働くので、これを捕らえるには、その知を利用すればよい。
동물 중에도 지(知.지혜)를 활용하는 것에 원숭이가 있다.  원숭이는 간교한 지혜가 작용하기 때문에, 이것을 잡는데에는, 이 지혜를 이용하면 좋다.

 

丸いツボの一端に紐を結び木の根元にくくりつけ、ツボの中に果物を入れておく。猿はそのツボの中をのぞき、果物を見ると、それを欲しさにツボの中に手を差し入れる。そうして果物を摑む。ツボの入口は狭く小さく、手がやっと入る程なので、果物をつかみ出そうとすると果物をにぎった手が狭いツボの出口にさえぎられ、抜くことができない。猿は果物を離せば、やすやすとツボから手を抜くことができるが、果物欲しさに、それができない。
둥근 항아리 한쪽 끝에 끈을 매고 나무의 밑동에 동여매고, 항아리 속에 과일을 넣어 둔다.  원숭이는 그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고, 과일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어 항아리 속에 손을 넣는다.  그렇게 해서 과일을 잡는다.  항아리의 입구는 좁디 좁아서,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이기 때문에, 과일을 꺼내려 하면 과일을 쥔 손이 좁은 항아리의 출구에 막히게 되어, 빼낼 수가 없다.  원숭이는 과일을 놓게 되면, 손쉽게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가 있지만, 과일이 탐나서, 그것을 할 수 없다.

 

こうして猿は欲望に負けて捕らえられてしまうが、人間の苦しみもこれと同じように、欲望から離れれば、身の破滅を招かずに済むのである。果物は山野にいくらでも生(な)っていよう。しかし、小ざかしい知が働き、欲望に心が働かされるので、このようになってしまう。
이렇게 해서, 원숭이는 욕망에 져서 붙잡혀 버리는데, 인간의 괴로움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욕망에서 떠나면, 몸의 파멸을 초래하지 않고 해결되는 것이다.  과일은 산야에 얼마든지 열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교한 지혜가 작용하여, 욕망에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 버린다.

 

智慧ある者は、物にとらわれることの愚を悟り、主人である己の心の善我の声をきき、正しく生きるであろう。
지혜 있는 사람은, 사물에 사로잡히는 일의 어리석움을 깨닫고, 주인인 자기의 마음의 선아(착한 자기)의 음성을 듣고, 올바르게 살아야 할 것이다.

 

 

衆生よ---。
중생이여---。

 

 

肉体舟の五官に触れる一切の物は無常なものであり、善我なる己の心のままに生き、多くの人びとに奉仕することだ。その心が行動に移されたとき、人は皆、仏の子となり、調和に満ちた平等の社会が築かれてゆくであろう。
육체배의 오관에 닿는 일체의 사물은 무상한 것이며, 선아(착한 자기)인 자기의 마음에 따라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행동으로 옮겼을 때, 사람은 모두, 부처의 자녀가 되어, 조화로 가득 찬 평등한 사회가 구축되어 갈 것이다.

 

大自然は私たちに差別なく、生活の条件を平等に与えている。平等でないのは、人びとの心が欲望にほんろうされ、さまざまな垣根や階級をつくっているからである。
대자연은 우리들에게 차별없이, 생활의 조건을 평등하게 주고 있다.  평등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욕망에 농락당해서, 다양한 울타리나 계급을 만들어 있기 때문이다.

 


★人間釈迦 No-3 P218~ 인간석가  제3권 페이지 218~ 

 


 

9.お釈迦様の説法  その8  今という時に自己を正せ
9.부처님의 설법  그 여덟 번째8 지금이라고 하는 시간에 자기의 잘못된 것을 고쳐라


サロモンたちよ。そなたたちの修行場は、ベル・ベェナーだけにあるのではない。もしそうだとしたならば、すでにベル・ベェナーへの執着にとらわ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そなたたちの行く所、すべてそなたたちの修行場だと心得なければならない。今いるベッサリーの都も、そなたたちの、今という貴重な時間が与えられている修行場だということだ。
사로몬(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의 수행장은, 벨루・베나(죽림정사)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미 벨루・베나(죽림정사)의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가는 곳, 전부가 그대들의 수생장이라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있는 베살리의 도시는, 그대들의, 지금이라고 하는 귀중한 시간이 주어져 있는 수행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今という時に、自己を正せ。今という時に自己を正さなければ、先にゆけばゆくほど更に大きなお荷物となって、常に苦悩と同居することになろう。場所によってそなたたちの心が定まらないとしたならば、やがて日は暮れ、一寸先は闇の人生が待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지금이라고 하는 시간에, 자기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라.  지금이라고 하는 시간에 자기를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큰 짐이 되어, 늘 고뇌와 동거하게 될 것이다.  장소에 의해서 그대들의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윽고 날은 저물고, 한 치 앞은 어두운(인생의 앞일은 예측할 수 없는 어둠)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場所や時間に関係なく、今に生きることが大事だ、ということだ。
장소나 시간에 관계 없이, 지금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하는 것이다.

 

明日があるという心を捨てよ。明日があると思うところに、気のゆるみが生じ、放逸な心で今日を過ごす。このような者たちこそ、愚かな人生を送ってしまうことになる。
내일이 있다고 하는 마음을 버려라.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방심(마음이 헤이함)이 생기고, 방일한 마음로 오늘을 보낸다.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어리석은 인생을 보내 버리게 된다.

 

そなたたちサロモンは、そのような小さな心であってはならぬ。この大自然すべてが、そなたたちの住家である。そうしたブッタの心の中に住することだ。
그대들 사로몬(수행자)들은, 그러한 작은 마음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대자연 전부가, 그대들의 가택이다.  그러한 붓타의 마음속에 사는 것이다.

 


★人間釈迦 No-3 P227~ 인간석가  제3권 페이지 227~ 

 


 

10.お釈迦様の説法  その9  コーサラ国での初めての説法
10.부처님의 설법 그 아홉 번째 코살라国(Kosalaa國)에서의 최초의 설법

 


諸々の衆生よ。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この大自然の恵みに感謝せよ。
天は雨を降らせ、地を洗い、母なる大地は植物に栄養を与え、美しく自然を飾っている。
この恵まれた大自然の中で衆生は生きているのだ。この大自然の恵みのよって、私たちは生かされているのだ。そしてこの大自然は、何の差別なく、すべてに平等であろう。
이 대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라.
하늘은 비를 내리게 하며, 땅을 씻으며, 어머니인 대지는 식물에게 영양을 주고, 아름답게 자연을 장식하고 있다.
이 풍족한 대자연 속에서 중생은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대자연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들은 소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자연은, 무엇 하나 차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다.

 

真実のバラモンは、すべてに平等な、普遍的な法を知っているであろう。その法の中には、バラモンもなく、クシャトリヤもなく、ヴェシャーもなく、シュドラーもないのだ。
진실한 사로몬(수행자)은, 모두에게 평등한, 보편적인 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법 중에는, 바라문(승려계급)도 없고, 크샤트리야(왕족과 무사계급)도 없고, 베샤(서민계급)도 없고, 슈드라(노예계급)도 없는 것이다.

 

ただ、平等な人間だけが存在しているのだ。差別は、職業、地位などによって人間が勝手につくり出しているのだ。仏の教えは、人間の知によって、意によって、変えることの出来ない全人類救済の道だといえよう。
오로지, 평등한 인간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차별은, 직업, 지위 등에 의해서 인간이 제멋대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은, 인간의 지혜(知)에 의해서, 뜻(意)에 의해서, 바꿀 수 없는 전인류 구제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人は祭のよって救われるのではない。
사람은 신이나, 부처, 또는 조상을 제사지냄. 또는 그 의식에 의해서 구제되는 것이 아니다.

 

心の中にこそ偉大なる神の慈悲が存在し、心の外には神はない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
마음속에야말로 위대한 신의 자비가 존재하고, 마음밖에는 신은 없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諸々の衆生よ。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そなたたちの心こそ、永遠の自分自身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
그대들의 마음이야말로, 영원한 자기 자신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その心は、この大自然のすべてが相互関係の大調和の中にあるように、すべてに平等であり、片寄らない中道だということである。
그 마음은, 이 대자연의 모든 것이 상호관계의 대조화 속에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평등하며, 치우침이 없는 중도라고 하는 것이다.

 

たとえ貧しい生活をしていても、やはり人間であり、富める生活をしていても、また同じ人間である。
비록 가나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역시 인간이며,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역시 똑같은 인간이다.

 

 

生活に貧しきものたちは、いかに貧しかろうとも、心まで貧しくしてはならない。
생활에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가난하다고 할지라도, 마음까지 가난해서는 안 된다.

 

貧しいがゆえに、他人の物を盗み取ったり、他人に嘘をついて利を得ようとしてはならない。
가난하므로, 타인의 물건을 훔쳐내거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며 이익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貧しき生活をしていても、お互いに相助け、相和して、一切に足ることを知って明るい生活をしている人びとこそ、真実に心の富める人びとというのだ。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어도, 서로 상조하고, 조화하고, 일체에 만족할 줄 알고 밝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실로 마음의 풍족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富める生活をしていても、他人の存在を認めることなく、偽我のままに自己保存の生活をし、貧しい人々に布施の心もなく、足ることを忘れ去っている人びとこそ、本当の心の貧しい人間だといえよう。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 없고, 위아(거짓된 자기)대로 자기보존의 생활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마음도 없고, 만족함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실로 마음의 가난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諸々の衆生よ。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心以外の一切の諸現象は無常である。たとえ何を所有しようとも、それは永遠の所有物とはならないのだ。金銀財宝、すべてが無常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この世を去るときには、一切の物を置いて帰らなくてはならない。この無常な物にとらわれて、自らの心を狂わせ苦しんでいるのだ。一切の苦悩は、私たちが生活の中でつくり出しているといえよう。人は盲目なるがゆえに、物におぼれ、情欲に心を失い、自ら苦しみの渦の中であえいでいるのだ。
마음 이외의 일체의 여러 현상은 무상하다.  설령 무엇을 소유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소유물로는 안 되는 것이다. 금은재보, 모든 것이 무상하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일체의 물건을 두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무상한 물건에 사로잡혀, 자기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고뇌는,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맹목(장님)이므로, 사물에 빠지고(물건에 탐닉하고), 정욕에 마음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괴로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しかし自ら蒔いた苦しみの種は、自ら刈り取らなくてはならないのだ。そなたたち一人一人の心の世界は、自分が支配者であり、偉大なるラージャン(王)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その責任は重大だといえよう。それゆえに、自らの心の世界に蒔いた種は、他人が刈り取ることは出来ないのだ。
하지만 자기가 뿌린(심은) 괴로움의 씨앗은, 자기 자신이 거두어(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세계는, 자신이 지배자이며, 위대한 라쟌(왕)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책임은 중대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마음의 세계로 뿌린(심은) 씨앗은, 타인이 거둘 수는 없는 것이다.

 

原因、結果、すべて己自身の責任だということだ。
원인, 결과, 모두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諸々の衆生よ。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毎日の生活を通して、心の中に苦悩の種を蒔くことを止めよ。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마음속에 고뇌의 씨를 뿌리는 것을 멈춰라.

 

苦悩の種とは、むさぼりの種、怒りの種、そしりの種、ねたみの種、そねみの種、増上慢の種、虚栄の種、足ることを忘れ去った欲望の種、情欲のみにとらわれている不安な種、嫉妬と独占の種。
고뇌의 씨란, 탐욕의 씨, 분노의 씨, 비방의 씨, 질투의 씨, 시기심의 씨, 증상만의 씨, 허영의 씨, 만족함을 완전히 잊어버린 욕망의 씨, 정욕의 몸에 사로잡혀 있는 불안한 씨, 질투와 독점의 씨.

 

諸々の衆生よ。この種は、やがて心の中をおおい、神の光明をさえぎってしまう。一切の苦悩の種だということを知るがよかろう。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이 씨는, 이윽고 마음속을 덮고, 신의 빛을 가려 버린다.  일체의 고뇌의 씨앗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今までに蒔き散らしてしまった苦悩の種は、今の苦しみとなって心の中に繁茂している。
지금까지 훝뿌려 버렸던 고뇌의 씨앗은, 지금 괴로움이 되어 마음속에 우거져 있다.

 

苦悩から解脱するにはその根を除く以外にない。刈り取るだけでは、また新しい芽が生えて、ふたたび苦悩にあえぐことになろう。その根を断つ以外に、苦悩から逃れることは出来ないのだ。
고뇌에서 해탈하는 데에는 그 뿌리를 제거하는 이외에는 없다.  거두는(제거하는) 것 만으로는, 또 새로운 싹이 자라서, 다시 고뇌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그 뿌리를 끊는 이외에, 고뇌에서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苦悩の根を除くには実践しかない。正道にそった生活しかないのだ。実践したときに、その実践に従って、安らぎという光明の種が、広い心の世界を満たしてくれるのだ。
고뇌의 뿌리(근원)를 제거하는 데에는 실천밖에 없다.  정도에 맞는 생활밖에 없는 것이다.  실천했을 때에, 그 실천에 따라서, 평안이라고 하는 광명의 씨가, 넓은 마음의 세계를 가득 채워 줄 것이다.

 

 


 

★증상만 [増上慢]     《일본어/국어/한자사전》
① 〈佛〉 증상만.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고 생각하여 자만함.
② [형용동사] (변하여) 실력이나 능력이 없으면서 있는 듯이 자만함.
③잘난 체함.
④ [불교] 사만(四慢)의 하나.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을 이른다.
⑤최상(最上)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여, 제가 잘난 체하는 거만(倨慢) 곧 자신(自身)을 가치(價値) 이상(以上)으로 생각함.

 


★人間釈迦 No-3 P236~ 인간석가  제3권 페이지 236~ 

 


 

11.お釈迦様の説法  その10  パセナティー王への説法
11.부처님의 설법  그 열번 째   파세나티왕(Pasenadi,波斯匿王,바사닉왕)에게의 설법

 

 

マーハー・ラージャンよ。
마하・라쟌(위대한 왕)이여.

 

悟りは年齢によ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正しい心と行いの積み重ねによって得られるものです。それゆえに、どんなに小さな国の王子であっても、その人を馬鹿にし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やがて成長して、マーハー・ラージャンになるかも知れませんから。同じように、たとえ小さなシャミーだからといって、馬鹿にし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なぜなら、このシャミーがよく法を悟り、やがて心と行いが法に適ったときは、迷える衆生を救うアポロキティー・シュバラー(観自在菩薩)になるかも知れないからです。
깨달음은 연령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마음과 행위의 거듭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나라의 왕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업신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윽고 성장해서, 마하・라쟌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니까요.  마찬가지로, 비록 나이가 어린 사미(沙彌)라고 할지라도, 업신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미(沙彌)가 잘 법을 깨닫고, 이윽고 마음과 행위가 법에 들어맞았을 때는, 미망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아포로키티・슈바라(관자재보살)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また、小さな火を馬鹿にしてはいけません。その小さな火も大火となれば、この大都市も、この美しい大自然の草木をも焼きつくす力を持っているからです。
또, 작은 불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작은 불도 큰불이 되면, 이 대도시도, 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초목도 몽땅 태워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シャミーも、やがてサロモンとなり、心を清浄にしてよく道を守れば、誰でも無上の悟りを得ることが出来るものです。悟りをひらき、神理を知り得たならば、苦悩にあえぐ人々を救済するでしょう。
사미(沙彌)도, 이윽고 사로몬(수행자)이 되어, 마음을 정화해서 잘 도리(道)를 지키면, 누구나 무상(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열고, 신리를 지득(이해하여 자기 것으로 만듦)하게 되면, 고뇌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제할 것입니다.

 

 

法といい、道というものは、己に足ることを知り、怒り、そしり、恨み、愚痴の心を返上し、その恐ろしさを悟り、心の中にある重荷を捨て去ることです。
법이라고 하며, 도리(道)라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만족할 줄 알고, 분노, 비방, 원망, 우치(어리석고 못남, 푸념)의 마음을 반환하고, 그 무서움을 깨닫고,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짐을 미련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一方、正法を説くものを誹謗したり、迫害すれば、その罪は、容易に消す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なんとなれば、神の心はもとより、己の中にある神性、仏性を冒瀆し、汚すことになるからです。
한편, 정법을 설교하는 것을 비방하거나, 박해하면, 그 죄는, 용이하게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의 마음은 원래, 자기의 마음에 있는 신성, 불성을 모독하고, 더렵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성[神性] 《국어/한자/일본어사전》
신의 성격(性格) 또는, 속성(屬性). 마음. 정신(精神)
★불성[佛性]《국어/한자/일본어사전》
①모든 중생(衆生)이 본디 가지고 있는 부처로 될 성질(性質) ②진리(眞理)를 깨달은 부처의 본성(本性)

 

 

「ブッタよ、国の指導者としての心構えや行いについて教えて欲しい。」
「붓타여,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마음가짐이나 행위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マーハー・ラージャンよ。
마하・라쟌(위대한 왕)이여.

 

あなたの愛する子どものように、衆生を愛することです。分け隔てなく、すべての人びとに対して、平等の心を忘れ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당신의 사랑하는 자식처럼, 중생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権力や武力によっては、人民の行動を一時は押さえることはできても、心の自由までしばることはできない。しかし正しい心の法にそった指導をしていけば、衆生はよろこんでそれに従い、国を平和に治め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そのためには、たとえ小さな子どもであっても大事にせねばならない。やがてその子どもたちが正しく成長し、悪の心を支配して、正しい中道の道を歩むことになるからです。衆生の犠牲の上に、自らの幸福を築くことは、やがて自らを亡ぼすことになります。苦役にあえいでいる人びとには、愛の手をさしのべる。悩める者には、その悩みを除き、病める者には、苦悩を取り除くよう慈愛の心をもって接することです。
권력이나 무력에 의해서는, 인민의 행동을 잠시는 누룰 수는 있어도, 마음의 자유까지 속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마음의 법에 들어맞는 지도를 하고 있으면, 중생은 기꺼이 그것에 따르며,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윽고 그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나쁜 마음을 지배해서, 올바른 중도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희생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은 것은, 이윽고 신세를 망치게 됩니다.  고역(고달픈 육체 노동)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손길을 뻗친다.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괴로움을 없애고, 병든 사람에게는, 고뇌를 없애주려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응대(상대)하는 것입니다.

 

たとえ王なりといえども、その地位を特別なものと考えず、また、側近の者たちの間違った言葉に迷わされてはなりません。
설령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 지위를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또, 측근의 사람들의 잘못된 말에 현혹(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煩悩の苦しみから遠ざかり、人間としての道を歩み、悟りの境地に到達するように努力することが大事でしょう。そのためには、自らの心の在り方から正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火が激しく燃えている所には、生き物は住まないでしょう。情欲の炎が燃える所に、正しい道は存在しません。怒りによって心が燃えていると、正しい理性が働かないばかりか、人の忠告が忠告として聞こえず、かえって火に油を注ぐような結果になってしまう。情欲に支配されると、ものの筋道が分からなくなり、身や国を滅ぼすことになる。
번뇌의 괴로움에서 멀어지고, 인간으로서의 길을 걷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의 본연의 모습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불이 맹렬하게 타고 있는 장소에는, 살아 있는 생명체(특히 동물)는 서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욕의 불꽃이 불타고 있는 장소에, 올바른 도리(道)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노로 마음이 불타고 있으면, 올바른 이성이 작용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남의 충고가 충고로서 들리지 않고, 도리어 불에 기름을 부운 것과 같은 결과가 되어 버린다.  정욕에 지배당하면, 사물의 조리(도리)을 알 수 없게 되어, 몸이나 나라를 망치게 된다.

 

また知識だけが先に立ち、行いが伴わないものは、絵に描いたマンゴーのようなもので、その味は、永遠に分からないでしょう。知識は、行いによってのみ智慧に変わるもので、種は肥沃な土の中でこそ、芽を出し、成長するものです。
또 지식만이 앞서고, 행위가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림에 그려진 망고와 같은 것이며, 그 맛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지식은, 행위에 의해서만 지혜로 바뀌는 것이며, 씨앗은 비옥한 땅 속에서야말로, 싹이 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人が多くの険路を越えて旅するように、生きる道を歩むにも、たゆまざる精進が必要です。道を歩む過程に苦楽はつきものですが、しかし、本当は、正しい道を踏みはずしたときにしか、苦悩というものは生まれないものです。苦悩を生み出す原因は、他人ではなく自分自身にあります。このことに大抵の人は気付かない。 他人に転嫁した方が気が楽ですからね。だが、苦しんでいるのは、ほかならぬ 知る必要があるでしょう。
사람이 많은 험로를 넘고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길을 걷는 데에도, 꾸준한 정진이 필요합니다.  길을 걷는 과정에 고락은 따르는 것입니다만, 하지만, 사실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행위를 했을 때밖에, 고뇌라고 하는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고뇌를 낳는 원인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일에 대부분의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타인에게 전가하는 편이 속 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육체적·경제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본인)이라고 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苦悩を除くためには、苦悩の根を除かない限り、また芽が出て来るでしょう。この苦悩を除くためには、智慧と勇気と努力が必要です。
고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고뇌의 근원(뿌리)를 없애지 않는 한, 또 싹이 나올 것입니다.  이 고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今迄の人生においてつくり出した苦悩の根を除き、今後の人生に苦の種を蒔かぬことが、人生を、平和と安らぎの生活に導くものです。この精舎の建物も、固い土の上にしっかりとした土台が組まれ、その上を太い柱が屋根を支えています。ですから風雨に耐え、そこに住む人びとも安心して安住できるわけです。
지금까지의 인생에 있어서 만들어 낸 고뇌의 근원(뿌리)를 없애고, 앞으로의 인생에 괴로움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 것이, 인생을, 평화와 편안한 생활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 정사(精舍)의 건물도, 단단하고 튼튼한 땅 위에 튼튼한 토대가 짜여져, 그 위를 큰 기둥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바람에 견디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心の安住にも、正しい法の柱が必要になります。
마음의 안주에도, 올바른 법의 기둥이 필요하게 됩니다.

 

法の柱とは、自己中心の心を改め、他人があって自分があり、大自然の中でたがいに生かされ、生きているように、相互の調和が柱になります。そのためには、他人の言葉を正しく聞き、いやしくも、自己の感情でそれを受け取り、曲解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また、どんなことをいわれても、怒りの心、そしりの心、恨みの心、愚痴の心、情欲の心、虚栄の心、増上慢の心などをつくらないことです。つくったときは心の中に毒を飲んだことになり、また新たな苦悩の種を蒔い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思っても、語っても、同じ結果になります。正しく語るということは、このような不調和な心では不可能でしょう。言葉は相手に意思を伝えるものであって、不調和な言葉は、自分の心の毒を飲むばかりではなく、他人に対して、毒を飲ませることになるものです。特に気をつけなく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법의 기둥이란, 자기중심의 마음을 고치고, 타인이 있고서야 자신이 있고, 대자연 속에서 서로 소생되어지며, 살고 있는 것처럼, 상호의 조화가 기둥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말을 올바르게 듣고, 적어도, 자기의 감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말을 듣더라도, 화를 내는 마음, 비방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우치하는 마음(어리석고 못남, 푸념하는 마음), 정욕의 마음, 허영의 마음, 증상만의 마음 등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만들었을 때는 마음속에 독을 먹은 것이 되며, 또 새로운 고뇌의 씨를 뿌리게 됩니다.  생각해도, 말해도, 똑같은 결과가 됩니다.  올바르게 말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부조화한 마음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말은 상대에 의사(뜻)을 전하는 것이며, 부조화한 말은, 자기의 마음의 독을 먹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 독을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조심(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マーハー・ラージャンよ。
마하・라쟌(위대한 왕)이여.

 

 

心の中で思うことが正しくない場合は、心の中に苦悩の原因をつくり出すものであり、行為したと同じ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慈愛の心は、光明の世界に住することになり、その行為は、より大調和への近道だといえましょう。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 경우는, 마음속에 고뇌의 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행위로 한 것과 똑같은 것이 된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자비의 마음은, 광명의 세계에 살게 되며, 그 행위는, 보다 대조화로의 지름길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心の中には、己自身に嘘のつけない善我なる心と、自己を中心とした不調和な偽我なる心が存在しています。一切の苦悩は偽我がつくりだすものです。
마음속에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선아(착한 자기)인 마음과, 자기를 중심으로 한 부조화한 위아(거짓된 자기)인 마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고뇌는 위아(거짓된 자기)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善我なる心は、親が、わが子を愛し、育てるように、慈愛に富んだ行為となって現れます。それは、あたかも太陽のように、報いを求めることなく、万生万物をはぐくみ、大調和の根元をなしている神仏の心であり、行為に通じているわけです。
선아(착한 자기)인 마음은, 어버이가, 내 자식을 사랑하고, 양육하듯이, 자애가 풍부한(많은) 행위가 되어 나타납니다.  그것은, 마치 태양처럼, 보답을 바라는 일 없이, 만생만물을 어미새가 새끼를 품어 기르고(소중히 기르고), 대조화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신불의 마음이며, 행위로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他人に、自分をよく見せようとする虚栄心は、心を毒すだけの、自己満足の無常なものといえるでしょう。このような心を持つことはまことに愚かしい、心の貧しい行為といえましょう。
타인에게, 자신을 잘 보이려고 하는 허영심은, 마음을 해칠 뿐, 자기만족의 무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마음의 가난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心の中で思うことの自由は、いかなるマーハー・ラージャンといえども、これを支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しかし慈愛に富んだ善政をしくならば、衆生の心に素直さをよみがえらせ、真の平和を築く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しかしその反対に、欲望をもって、衆生を調和させようとしても、それは不可能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것의 자유는, 어떠한 마하・라쟌(위대한 왕)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애가 풍부한(많은) 선정을 하게 되면, 중생의 마음에 솔직함을 소생시키게 되어, 참된 평화를 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욕망을 가지고, 중생을 조화시키려고 할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思う、考える心は、善悪いずれにも自由なために、真実な慈愛は、衆生の心の中に、感謝の心が生じ、報恩の行為となって現れて来るものだからです。
감정적·의지적·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객관적·지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선악 어느쪽에도 자유롭기 때문에, 진실한 자애는, 중생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보은하는 행위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マーハー・ラージャンよ。
마하・라쟌(위대한 왕)이여.

 

人が真実に気付いたときには、その罪はなかば許されるものです。
사람이 진실하게 깨달았을 때에는, 그 죄는 거의 용서받는 것입니다.

人は盲目なるがゆえに、その愚かさに気がつかないだけです。間違いであったと知ったならば、二度とその愚を繰返さないことです。そういう人びとこそ、真に勇気ある者といえましょう。
사람은 맹목이므로, 그 어리석움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잘못하고 있었다고 알았다면, 두번 다시 그 어리석움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マーハー・ラージャンよ。
마하・라쟌(위대한 왕)이여.

 

心の中で念ずることは、善悪いずれにも通ずるものであり、衆生の幸福を念ずることは、衆生の心に、安らぎを与えるものです。正しく念ずることが大事だといえましょう。他力ではなく、自力なる慈愛の心で念ずることは、光明となって、人民の心に安らぎとなり、現れてくるでしょう。
마음속에서 염원하는 것은, 선악 어느쪽에도 통하는 것이며, 중생의 행복을 염원하는 것은, 중생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염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력이 아닌, 자력인 자애의 마음으로 염원하는 것은, 광명이 되어, 인민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어, 나타나올 것입니다.

 

正しく念じたならば、実践することが、指導者として大事なことだといえましょう。
올바르게 염원했다면, 실천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중요한 일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仕事についても、正しく仕事をすることが、大事になってきます。
일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어집니다.

 

毎日の仕事も、修行の大切な過程であり、偽りもなく、愚痴もなく、怒りもなく、生きてゆくための手段である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健康なるがゆえに、正しく仕事をすることが可能であり、仕事のできる環境に感謝することが大事なことだといえましょう。
매일의 일(업무)도, 수행의 중요한 과정이며, 거짓말도 없고, 우치(어리석고 못남, 푸념)도 없고, 분노도 없이, 살아 가기 위한 수단인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건강하므로,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真実の感謝は、行為となるものであり、行為のない感謝は、真の感謝とはいえないものです。
진실한 감사는, 행위가 되는 것이며, 행위가 없는 감사는, 참된 감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衆生のために奉仕する行為こそ、マーハー・ラージャンにとっては、第一の義の道であります。
중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행위야말로, 마하・라쟌(위대한 왕)에게 있어서는, 제일 옳은 길입니다.

 

人は、進むばかりがよいとはいえない。今まで歩いてきた道をふり返ってみることも必要なこと。間違った道を歩んでいるかどうかをふり返ってみなくては目的も不明になります。それには、これまでの思念と行為を正しく反省してみることです。正しい法は、人の知や意によって変えることのできない大自然の姿が示しています。その正しい法とは、中道であり、片寄りのない、調和の心が基準であり、それは善我なる心であり、また善意なる第三者の心ともいえるでしょう。その心で、自分の行ったこと、思ったことを、一つ一つ正してみることであり、そうした間違いの原因を除き、自分の心をより豊かにするために反省するわけです。こうして、想いと行いを正し、心の中に何の執着もなく、光明に満たされた時に、禅定に入るならば、心と肉体は、調和によって光明の世界に住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
사람은, 전진하는 것만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돌이켜보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지 어떤지를 돌이켜보지 않고서는 목적도 불명하게 됩니다.  그것에는, 지금까지의 사념(思念)과 행위를 올바르게 반성해 보는 것입니다.  올바른 법은, 사람의 지혜(知)와 뜻(意)에 의해서 바꿀 수가 없는 대자연의 모습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올바른 모습이란, 중도(中道)이며, 치우침이 없는, 조화의 마음이 기준이며, 그것은 선아(찬한 자기)인 마음이며, 또 선아인 제삼자의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자신의 행한 것, 생각한 것, 낱낱히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보는 것이며, 그러한 잘못의 원인을 없애고, 자신의 마음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과 행위를 바로잡고, 마음속에 어떤 집착도 없고, 광명으로 충만되었을 때에, 선정에 들게 되면, 마음과 육체는, 조화에 의해서 광명의 세게에 살 수가 있게 됩니다.

 

★사념[思念]①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


瞑想による禅定は、神々との対話であるといえましょう。
명상에 의한 선정은, 거룩한 신과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おごりや怒り、ねたみやそしりのままで、心の中の歪みを除くことなく禅定に入れば、その心に相応した世界に住することになり、魔界に住む者に己の心を支配されてしまう。これは、非常に危険であるといえましょう。
교만함(방자함)이나 분노, 질투나 비방한 상태로, 마음속에 비뚤어짐을 없애는 일 없이 선정에 들면, 그 마음에 상응한 세계에 살게 되머, 마계(魔界)에 사는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지배당해 버린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正しい心による以外に、光明の世界に住することは不可能だということです。私の説く八つの正しい道を、心と行いの物差しとして生活する人びとこそ、真の修行者といえましょう。一切の苦悩から解脱するには、この道の実践以外にないでしょう。
올바른 마음에 의한 이외에, 광명의 세계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설법하는 여덟개의 올바른 도리(가르침)은, 마음과 행위의 척도로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체의 고뇌에서 해탈하는 데에는, 이 도리(가르침)의 실천 이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マーハー・ラージャンよ。
마하・라쟌(위대한 왕)이여.

 

この世の中には、洞窟の暗がりの中から、太陽の光がサンサンと輝く明るい世界に出て来る人もあり、また、わざわざこの明るい太陽の下から、暗い洞窟の中に入る人もありましょう。
이 세상 가운데에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태양 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밝은 세계로 나오는 사람도 있고, 또, 일부러 이 밝은 태양 아래에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人生航路は暗中模索であり、一寸先も分からぬ暗闇といえましょう。しかし、その心の中に法の灯火を点し、光明に満たされた世界に入って、無常な物から執着を断ち、自らの心を救い、迷える暗闇の世界で苦しんでいる衆生を救う者もおりましょう。
인생항로는 암중모색이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법의 법등을 점하고, 광명으로 충만된 세계로 들어가서, 무상한 사물로부터 집착을 끊고, 자신의 마음을 구제하며, 길을 잃고 헤매는 어둠의 세계에서 육체적·경제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この肉体ですら、自分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もし自分の持ち物であるならば、いつまでも若く、永遠に自分のものとして持っていられるはずです。この肉体も、いつの日か死という現実に見舞われ、みにくい姿と変わり果て、腐敗し、燃やされて、灰となり、大地に帰ってしまうものです。どんなマーハー・ラージャンであっても、貧しいシュドラーであっても、」人の力によってこの現実を変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無常なものだからです。
이 육체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한다면, 언제까지나 젊고,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서 가지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육체도, 언젠가 죽음이라고 하는 현실에 달갑지 않은 것이 찾아와서, 보기 흉한 모습으로 몰라보게 변해 버리고, 부패하고, 불태워져서, 재가 되어, 대지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어떠한 마하・라쟌이라고 해도, 가난한 슈드라(노예)라고 해도」사람의 힘에 의해서 이 현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무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幸福を心の外に求めると苦しみになります。金銀財宝、地位、名誉、情欲、すべて無常なものであり、これらによって本当の幸福は得られないものです。満たされれば、また次の欲望が生まれ、悪の循環は尽きることがないでしょう。
행복을 마음밖에서 찾으면 괴롭게 됩니다.  금은재보, 지위, 명예, 정욕, 모두 무상한 것이며, 이것들에 의해서 정말 행복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충족되면, 또 차차 욕망이 태어나고, 악의 순환은 끝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心はこの大自然のように無限に広がっています。欲望の心が外に向けば、足ることを忘れてしまうのです。しかし心の内に幸福を求める場合は、真の満足が得られるはずです。すでに足ることを知っているために、執着から離れているからです。法を一切の物差しとして生活した時は、他の一切の何物にも心を動かされることがなくなり、本当の安らぎが得られ、悟りの境涯に入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마음은 이 대자연처럼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욕망의 마음이 밖으로 향하면, 만족할 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행복을 찾는 경우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만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집착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법은 일체의 마음의 척도로서 생활했을 때는, 다른 일체의 어떤 것에도 마음을 흔들리게(움직이게) 되는 일이 없게 되어,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고, 깨달음의 경애로 들어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その時にこそ、真の仏国土が造り出されていきます。
그 때야말로, 진정한 불국토가 만들어 내어져 갑니다.

 

 


 

 

★증상만 [増上慢]     《일본어/국어/한자사전》
① 〈佛〉 증상만.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고 생각하여 자만함.
② [형용동사] (변하여) 실력이나 능력이 없으면서 있는 듯이 자만함.
③잘난 체함.
④ [불교] 사만(四慢)의 하나.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을 이른다.
⑤최상(最上)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여, 제가 잘난 체하는 거만(倨慢) 곧 자신(自身)을 가치(價値) 이상(以上)으로 생각함.

 

★言葉ことばは生き物いきものだ 말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人間釈迦 No-3 P250~ 인간석가  제3권 페이지 250~ 

 

 


 

12.お釈迦様の説法  その11
        
シラバスティの町での初めての説法

12.부처님의 설법   그 열한번 째        

                    시라바스티(Sravasti, 舎衛城, 사위성)
의 읍내에서의 최초의 설법

 


 

諸々の衆生よ、この灯火に集まってくる虫を見よ。その短い命にもかかわらず、光を求めて精いっぱいに生きている。火に近づけば体を焼かれる恐ろしさを知ることもなく、多くの虫は死んでいくではないか。日中は、鳥や他の小動物の餌となり、自らの身を他の生き物の食べ物として、供養している。あるものは土の肥料と化し、植物の栄養となり、奉仕している。動物もまた自らの排泄物を大地にまき、植物の肥料となし、植物は動物に食糧としてその実や葉を提供している。そうして、おのおのが互いに他を生かし、生かされ、血や肉や骨となって助け合っている。すべてのものはたがいに関係し合い、調和し合って生きている。単独で生きているものは一つとして存在しないことに気付くだろう。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이 등불에 모여드는 벌레(곤충)를 보라.  그 짧은 생명에도 불구하고, 빛을 찾아서 있는 힘을 다해서 살고 있다.  불에 접근하면 몸을 불태우는 무서움을 아는 일도 없이, 많은 벌레(곤충)는 죽어 가는 것이 아닌가?  낮 동안은, 새나 다른 작은 동물의 먹이가 되고, 자신의 몸을 다른 동물의 음식물로서, 공양하고 있다.  어떤 것은 땅의 비료로 변하고, 식물의 영양이 되어, 봉사하고 있다.  동물도 또한 자신의 배설물을 대지에 뿌리고, 식물의 비료가 되고, 식물은 동물에게 식량으로서의 그 열매나 잎을 공양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각자가 서로 남을 소생시키며, 되살리며, 피나 살이나 뼈가 되어 서로 돕고 있다.  모든 것(만물)은 서로 서로 관계하며, 서로 조화하며 살고 있다.  단독으로 살고 있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しかし衆生よ、多くの人は、この自然のルールを忘れ、自分だけの存在を主張し、譲り合い、助け合うことを忘れている。
하지만 중생이여, 많은 사람은, 이 자연의 규칙을 잊어버리고, 자기만의 존재를 주장하고, 서로 양보하며, 서로 돕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大自然を見よ。この自然界は、生きていく人に正しい道を教えている。調和ということを教えている。もし、この地上に雨が降らなかったならば、どうなるであろう。草木は枯れて動物は食物を失い、人間もまた生きてはいけないのだ。雨は大地を洗い、浄め、肥料を土の中で溶かし、植物の成長を助けている。山から流れた水は渓流となり、大河となり、大地にうるおいを与えながら、やがて、大海に流れ合流する。どんなに汚れた水であっても、大海に流れ込むと浄まり、太陽の熱によって蒸発し、再び、雨となって地上をうるおしてくれる。その輪廻の仕組みは、永遠に変わることなくつづいている。
대자연을 보라.  이 대자연은, 살아 가는 사람에게 올바른 길(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조화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만약, 이 지상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초목은 말라버리고 동물은 음식물을 잃어버리고, 인간도 역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비는 대지를 씻고, 정화하고, 비료를 땅속에서 녹이고, 식물의 성장을 돕고 있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계류가 되어, 대하가 되어, 대지에 습기를 주면서, 이윽고, 대해(큰 바다)로 흘러가 합류한다.  아무리 더렵혀진 물이라고 할지라도, 대해로 흘러 들어가면 정화되어, 태양의 열에 의해서 증발하고, 다시, 비가 되어 지상을 눅눅하게 해 준다.  그 윤회의 구조는, 영원히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諸々の衆生よ、自らの存在を直視せよ。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라.

 

すべての力を持ち、地上の楽園をつくる能力を与えられている人間が、自分のことのみしか考えず、争いや嫉妬に狂い、自らを滅ぼしているが、これでいいかどうか。
모든 힘을 가지고, 지상의 낙원을 만드는 능력을 제공받고 있는 인간이, 자신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고, 다툼이나 질투에 미쳐서, 자신을 망치고 있지만, 이래서는 좋은가 어떤가?

 

自然は相互に調和し合っているのに、人間だけが単独で生きようとしている。種姓によって人間を差別している。自分たちの種姓の繁栄だけを願い、他は滅びてもよいものかどうか。
자연은 상호가 서로 조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단독으로 살려고 하고 있다.  혈통(가문・집안)에 따라서 인간을 차별하고 있다.  자기들의 혈통(가문・집안)의 번영만을 바라며, 남은 망해도 좋은가 어떤가?

 

権力や暴力によって、弱気者を犠牲にしたり、嘘をついたり、盗みを働いたり、怒ったり、愚痴をいったり、他人を誹謗したり、恨んだり、ねたんだり、そねんだり、情欲に溺れたり、足ることを忘れたり、欲望の虜になったりしているが、これでよいのかどうか。
권력이나 폭력에 의해서, 마음이 약한 사람을 희생으로 삼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푸념을 하거나, 타인을 비방하거나, 원망하거나, 질투하거나, 시기하거나, 정욕에 빠지거나, 만족함을 잊어버리거나, 욕망의 노예가 되거나 하고 있지만, 이러면 좋은가 어떤가?

 

 

このような諸現象によって、人は自らに苦悩の種を蒔き、あえいでいる。蒔いた種を刈り取る者は、ほかならぬ自分自身である。
이러한 여러 현상에 의해서, 사람은 스스로 고뇌의 씨을 뿌리고, 허덕이고 있다.  뿌린 씨앗을 거두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衆生よ。そなたたちの肉体は、自分のもののようだが、自分のものではない。もし、肉体が自分のものであるならば、自分の思うとおりに動いてくれてもいいはずである。しかし、自分の思うようには動いてくれない。
중생이여.  그대들의 육체는, 자기의 것인 것 같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다.  만약, 육체가 자기 것이라고 한다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주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는 움직여 주지 않는다.

 

病気をしたくなくても病気をし、年をとりたくなくても肉体は間違いなく老化していくではないか。どんなに栄養をとっても、長寿の薬を口にしても、死は間違いなく訪れてくる。いかに財産をつくっても、死と共にそれを持ち去ることはできない。地位があっても、名誉が与えられても、死という現実の前には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
병들고 싶지 않아도 병들고, 나이를 먹고 싶지 안하도 육체는 틀림없이 노화해 가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영양을 취해도, 장수의 약을 먹어도, 죽음은 틀림없이 찾아온다.  아무리 재산을 만들어도, 죽음과 함께 그것을 들고 가버릴 수 없다.  지위가 있어도, 명예가 주여져도, 죽음이라고 하는 현실 앞에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愛する妻や子どもたちとも、死は、残酷にも引き裂くいてしまう。
사랑하는 아내나 자식들이라고 하더라도, 죽음은, 잔혹하게도 억지로 사이를 때어놓아 버린다. 

 

 

大自然は無常なのだ。
대자연은 무상한 것이다.

 

一體の物は、無常という掟からのがれ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
일체의 사물은, 무상하다고 하는 규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しかし、諸々の衆生よ、恐れてはならない。
하지만, 여러 사람의 중생이여,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そなたたちの肉体を支配している心は、永遠にして、不滅なのだ。個性を持った魂は、永遠に生き通しであり、死を知らない。自然界の無常という掟から、何一つ束縛をうけていないのだ。そればかりか、魂である心の中には、過去、現在の転生における偉大な宝物が存在し、いつでも役に立とうとその時を待っている。現世において体験した人生経験よりも、はるかに莫大な、そして、より豊かなパラミタが内蔵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그대들의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마음은, 영원하며, 불멸한 것이다.  개성을 가진 영혼은, 영원히 계속해서 살고 있고, 죽음을 모른다.  자연계의 무상이라고 하는 규칙에서, 무엇 하나 속박을 받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혼인 마음속에는, 과거, 현재의 전생(환생)에 있어서의 위대한 보물이 존재하고, 언제나 도움이 되려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  현세에서 체험한 인생경험보다도, 월등히 막대한, 그리고, 보다 풍족한 파라미타(波羅蜜多)가 내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今、与えられている生活環境は、人それぞれがその魂をより豊かに、より広く学習するために与えられた場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それゆえ、今の立場に固執したり、おごったり、卑下したりしてはならないのだ。貧しき者も、富める者も、その魂のよりよき修行のために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くてはならない。
지금, 주어져 있는 생활 환경은, 사람 저마다가 그 영혼을 보다 풍요롭게, 보다 넓게 학습하기 위해서 주어진 장소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입장에 고집하거나, 재능·지위·권세등을 뽐내며 남을 얕보거나, 비하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그 영혼을 보다 잘 수행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人類は皆兄弟であり平等だということは、このことをいっている。
인류는 모두 형제이며 평등하다 라고 하는 것은, 이 것을 말하고 있다.

 

また、貧富の差が価値の基準でもない。人間の心の大きさ、豊かさによって決まるものである。
또, 빈부의 차가 가치의 기준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의 위대함, 풍부함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다.

富める者は貧しき者をいたわり、与えよ。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주어라.
貧しき者は人生の価値を知り、心を大きく持て。
가난한 사람은 인생의 가치를 알고, 마음을 크게 가져라.
相互の理解の中で、正しく仕事をなすことによって、大自然の大調和に調和されていくのだ。
상호의 이해 속에서,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에 의해서, 대자연의 대조화에 조화되어 가는 것이다.


 

智慧をしぼり、慈愛の心を根本にして、たがいに奉仕の精神がよみがえってくれば、報恩と感謝のきずなはより一層強まり、明るい、豊かな社会がひらかれていくだろう。
지혜를 짜내고, 자애의 마음을 근본으로 해서, 서로 봉사하는 마음이 되살아나오면, 보은과 감사의 유대는 보다 한 층 강하게 되며, 밝은, 풍족한 사회가 열려 갈 것이다.

 

 

衆生よ。
중생이여.

 

 

短い、限りある人生である。その短い人生に、醜い争いや、独占の欲望に自らの心を毒してはならない。
짧은, 한계가 있는 인생이다.  그 짧은 인생에, 추악한 싸움이나, 독점의 욕망에 자신의 마음을 해쳐서는 안 된다.

 

法とともに、永遠の歩みをつづけることだ。
법과 함께, 영원한 걸음을 이어가는 것이다.

 

そなたたちの心の中に、神仏の慈愛が厳として存在しているのだ。その慈愛の偉大さを、自らの生活の中に生かさなければならない。パラミタは、そうした善意なる生活に生きた時に、その扉は開き、生前の自分を知ることによって、よりよく現世を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
그대들의 마음속에, 신불의 자애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애의 위대함을, 자신의 생활 속에 소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파라미타(波羅蜜多)는, 이러한 선의인 생활로 살았을 때에, 그 문은 열리고, 생전의 자신을 아는 것에 의해서, 보다 좋은 현세를 살 수가 있게 된다.

 

 

アラハンの境地とは、そうした心境と生活であり、誰も彼も、法にそった生活をするならば、その域に達することができるものである。
아라한(阿羅漢)의 경지란, 그러한 심경과 생활이며, 누구나 다, 법에 들어맞는 생활을 한다면, 그 지역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이다.


 

★人間釈迦 No-4 P11~ 인간석가  제4권 페이지 11~ 

 


 

13.お釈迦様の説法  その12  女の道について
13.부처님의 설법   그 열두 번째  여자의 길에 대해서

 

 

ある時、彼女はブッタに直接指導を受けた。

어느 때, 그녀는 붓타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다.


「ブッタ、私のような女が尊いお方の前に出てご指導をお受けするのは失礼とは思いますが、女の道というものを教えていただければ仕合わせです。」
「붓타, 저와 같은 여자가 존귀한 분 앞에 나와서 지도를 받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만,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ペシャキャよ、そなたは女でありながら、多くの使用人に慈悲の心で接している。お互い心が通じ合い、むさぼることなく、愚痴もなく、正しく仕事をしているようだ。働く使用人の生活を守り、あの太陽のような心で、皆平等に仕事をしているので商売も繁盛しているはずだ。

「페샤캬여. 그대는 여자이면서도, 많은 사용인(남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에게 자비의 마음으로 응대하고 있다.  서로가 마음이 서로 통하고,  한없이 욕심부리는 일 없고, 우치(어리석고 못남, 푸념)도 없고, 올바르게 일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노동하는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의 생활을 지키고, 저 태양과 같은 마음으로, 모두에게 평등하게 일을 하고 있으며 장사도 번성하고 있을 것이다.

 

多くの女性の中には、何事にもすぐ腹を立て、気まぐれで足ることを知らない欲深き者であっても、苦しい人びとに対しては施すことを知っている者もある。また一方で、心が丸く豊かで、怒ることもなく常に心を正し、一切に足ることを知ってはいるが、苦しい人びとに慈悲の心を与えない者もある。そうかと思うと、心が豊かで広い心を持ち、心の中に怒りもなく、欲望に足ることを悟り、そうして、他人の幸福を喜び、苦しい人びとには自らの慈悲をもって奉仕している者もある。
많은 여성 중에는, 무슨 일이나 금방 화를 내며, 변덕을 부리며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깊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궁색한(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베풀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또 한편으로, 마음이 둥글고 풍부하며, 화를 내는 일도 없이 늘 마음을 바로잡고, 일체에 만족할 줄을 알고는 있지만, 궁색한(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생각하면, 마음이 풍부하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속에 노여움도 없고, 욕망에 만족함을 깨닫고, 그렇게 해서, 타인의 행복을 기뻐하며, 궁색한(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자비를 가지고 봉사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この三者の型のうち、正法に適った生き方はどれかといえば、最後の女性がそれに当たるだろう。
이 세 사람의 유형 속에, 정법에 들어맞는 생활방식은 어느 쪽인가 하면, 최후의 여성이 그것에 해당할 것이다.

 

 

法を心の糧として生活している女性は、よく自らの偽我を支配し、一切の執着から離れ、安らぎの心の中に住んでいる女性である。
법을 마음의 양식으로 생활하고 있는 여성은, 잘 자신의 위아(거짓된 자기)를 지배하고, 일체의 집착에서 떠나, 편안한 마음속에 살고 있는 여성이다.

 

 

男女は平等であっても、その働きは剛と柔であり、両者の調和が大事な要件となろう。
남녀는 평등하다고 할지라도, 그 작용은 굳건함과 부드럽고 온순함이 있고, 양자의 조화가 중요한 요건이 될 것이다.

 

女は家庭にあって光明を満たす大事な役割を果たさなくてはなるまい。男女は肉体的には平等とはいえないが、心は平等である。真実は、男女の性別に関係なく、均等に与えてあるからだ。
여자는 가정에서 광명을 가득 채우는 중요한 임무(소임)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남녀는 육체적으로는 평등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은 평등하다.  진실은, 남녀의 성별에 관계없이, 균등하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女性が他家に嫁していけば、やがて子どもが生まれよう。妻は家にあって子どもを守り育ててゆく。
여성이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가면, 이윽고 자식이 태어날 것이다.  아내는 집에서 자식을 지키고 키워 간다.

 

良い子を育てるには、夫婦の対話と信頼がいちばんである。たがいに相助け、相譲り心の豊かな健康な子どもを育て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うした家庭が多くなればなるほど、地上の調和は促進されよう。
좋은 자식을 키우는 데에는, 부부의 대화와 신뢰가 상책(제일)이다.  서로가 서로 돕고, 서로 양보하는 마음의 풍부한 건강한 자식을 길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가정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지상의 조화는 촉진될 것이다.

 

 

嫁にゆけば夫の両親がいて、孝養をつくさなければならないが、この間にあって、いかなる理由がそこにあろうとも、自らの心の中に怒りや愚痴の種を蒔くことなく、忍辱の二字を忘れず、明るく、豊かな生活を忘れないことが大事だ。
시집을 가면 남편의 양친이 있고, 효양(효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이 동안에 있어서, 어떠한 이유가 거기에 있더라고, 자기의 마음속에 분노나 우치(어리석고 못남, 푸념)의 씨를 뿌리는 일 없고, 인욕의 두 글자를 잊어버리지 않고, 발게, 풍족한 생활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心の中の苦悩は、自らがつくり出す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だろう。言葉や行動を通して、自分の都合が悪いからといって、怒りや、ねたみ、恨みの心があると、その種が心の中で発芽し、ぐるぐるとその渦中に自分をおとし入れてしまうことになる。調和を忘れた家庭は、ついには争いとなり、破壊へとつながって行く。よれゆえ、家庭に対立があってはならない。夫の仕事をよく理解し、それを助け、そうして自らも教養を高めるようにするのが女の道といえよう。
마음속에 고뇌는, 자기가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처지(형편)이 나쁘다고 해서, 노여움이나, 질투, 원망이 마음이 있으면, 그 씨가 마음속에 발아하고, 빙글빙글 그 소용돌이 속에 자신을 빠뜨려 버리게 된다.  조화를 잊어버린 가정은, 마침내는 싸움이 되어, 파괴로 이어져 간다.  가정에 대립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남편의 일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돕고, 그렇게 해서 자신도 교양을 향상시키도록 여성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家庭に対しても、召使に対しても、親切な心と行いが大事である。家の外で得た夫の収入は、自分のために使うのではなく、緊急の場合に備えて貯えることも必要であろう。決して、自分の欲望のために使ってはならない。
가정에 대해서도, 남의 집 살이하는 머슴·하인·하녀 등에 대해서도, 친절한 마음과 행위가 중요하다.  집밖에서 얻은 남편의 수입은,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긴급한 경우를 대비해서 저축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절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夫婦は家庭という、いわば社会の中の協同生活者であって、また、偶然によって一緒になったものではない。転生輪廻の過程における深い縁生の絆によって結ばれたものである。
부부는 가정이라고 하는, 말하자면 사회 속의 협동생활을 하는 사람이며, 또, 우연에 의해서 부부가 된 것이 아니다.  전생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깊은 연생(緣生)의 인연(絆)에 의해서 맺어진 것이다.

 

夫婦は一つの家に住みながら、社会全体に調和をもたらしていくものだ。それだけに、夫婦は、相和し、心から愛し、愛される関係を持続しなければならない。また、そうした縁生のつながりで結ばれている、といえるのだ。夫婦の縁生をよりよく前進させるには、法を正しく理解し、行うことだ。それによって、ますますより価値の高い調和へと導かれてゆくものだ。
부부는 하나의 가정에 살면서, 사회전체에 조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부부는, 서로 화합하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를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러한 연생(緣生)의 연결로 맺어지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부의 연생(緣生)을 보다 잘 전진시키는 데에는, 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점점 더 보다 가치가 높은 조화로 인도되어 가는 것이다.

 

 

女は、顔が美しいとすぐうぬぼれる。本当の美しさは正しい心を持って生活している女性である。美しいがゆえに、女は増上慢となり、他人を見くだし、優越感に浸る。このような女性が男を誘惑しても、正しい法を学んでいる者たちは、その誘惑に乗ることはないだろう。誘惑に心を乱す男性は愚かな男性しかいない。
여자는, 얼굴이 아름다우면 금방 자만한다(스스로 잘난 체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여성이다.  아름다움으로, 여자는 증상만하게 되어, 타인을 깔보고, 우월감에 빠진다.  이러한 여성이 남자를 유혹해도, 올바른 법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그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혹에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남성은 어리석은 남성밖에 없다.

 

増上慢や愚かさに支配された男女は心ない情欲のとりことなり、身を修めることなく、不幸な一生を終えることになろう。
증상만이나 어리석움에 지배된 남자는 철없는(분별이 없는) 정욕의 노예가 되어, 몸을 닦는 일 없이, 불행한 일생을 끝내게 될 것이다.

 

心ない女性は、自分をより美しく見せようと躍起になり、虚栄心が心の中を占領し、それを満たすために苦労をする。こうした女性は男の玩具になり易く、常に悩み、苦しみから抜けることはできない。
철없는(분별이 없는) 여성은, 자신을 보다 아름답게 보이려고 기를 쓰며, 허영심이 마음속을 점령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생을 한다.  이러한 여성은 남자의 노리개(玩具)가 되기 쉽고, 늘 정신적으로 괴롭고, 육체적·경제적인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ともあれ、女性は、幼少から子どもの時代にかけて、両親から保護されるという立場からその自由を妨げられ、成人して他家に嫁げば夫から自由を妨げられ、老いては子どもに自由を奪われる。
어쨓든, 여성은, 나이가 어린 시절부터 어린 아이의 시절에 걸쳐서, 양친에게서 보호받는다고 하는 입장에서 그 자유를 저지당하고, 성인이 되어 다른 집에 시집가면 남편에게 자유를 저지당하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자유를 빼앗긴다.

 

女にはこの三つのさわりがあるといえよう。
여자에게는 이 세가지의 방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また、女性は、男とちがって、誕生してもあまり喜ばれない。まず婚姻で両親に心配をかける一方で、常に心は他人をおそれる。他家に嫁げば出産の苦しみが待ち、夫をおそれて生活をする。このため、自在の境涯はなかなか得られないばかりか、心は常に不安定である。」
또, 여성은, 남자와 달리, 탄생해서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먼저 혼인해서 양친에게 시달리는 한편, 늘 마음은 타인을 무서워한다.  다른 집에 시집가면 출산의 괴로움을 가지고, 남편을 무서워하며 생활을 한다.  이 때문에, 자재의 경애는 좀처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은 늘 불안정하다 。」

 

ペシャキャは、女性についてのひと通りの説法をきくと、それまで気付かなかった自分の性(さが)にハッとする思いだった。
페샤카는, 여성에 관해서의 한차례 설법을 듣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천성에 깜짝 놀라움을 느꼈다.

 

 


 

★증상만 [増上慢]     《일본어/국어/한자사전》
① 〈佛〉 증상만.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고 생각하여 자만함.
② [형용동사] (변하여) 실력이나 능력이 없으면서 있는 듯이 자만함.
③잘난 체함.
④ [불교] 사만(四慢)의 하나.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을 이른다.
⑤최상(最上)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여, 제가 잘난 체하는 거만(倨慢) 곧 자신(自身)을 가치(價値) 이상(以上)으로 생각함.
⑥거만, 오만, 자만, 방자함, 만심, 업신여김, 모멸, 깔봄.

 


★人間釈迦 No-4 P35~ 인간석가  제4권 페이지 35~ 

 


 

14.お釈迦様の説法  その13  魂の先祖について
14.부처님의 설법  그 열세 번째   영혼의 조상에 대하여

 


父上---。
私の申し上げる先祖は、魂の先祖です。魂の先祖は、自分の心の中に存在し、永遠の生命であります。
私たちの心の中には、過去世からの体験した人生の宝物が存在しています。父上にも、それがあります。その人生の宝物を智慧といい、智慧をひらけば、地上の諸相がわかり、不安や迷い、煩悩に心をわずらわせることがなくなります。
아버님---。
제가 말씀 드리는 조상은, 영혼의 조상입니다.  영혼의 조상은, 자기 마음속에 존재하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과거세에서의 체험한 인생의 보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에게도, 그것이 있습니다.  그 인생의 보물을 지혜라고 하며, 지혜를 열게 되면, 지상의 제상을 알 수 있고, 불안과 미혹(迷惑), 번뇌에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없어집니다.

 

ところが、その智慧の泉を、自らの愚行によって閉ざしているのが現状です。
그런데, 그 지혜의 샘(원천)을, 자신의 우행(어리석은 행동)에 의해서 문을 닫아 버리고 있는 것이 현상입니다.

 

愚行とは、恨み、妬み、そしり、怒り、愚痴、そして、もっとも心を迷わす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これによって、智慧の門を閉ざしているのです。
우행(어리석은 행동)이란, 원망, 질투, 비방, 분노, 우치(어리석고 못남, 푸념),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마음을 헷갈리게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이것에 의해서, 지혜의 문을 닫아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智慧の門が開けば、人間は不死の永遠の生命であり、転生輪廻の実相が理解できるのです。
지혜의 문이 열리면, 인간은 불사의 영원한 생명이며, 전생윤회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つまり、生老病死の苦悩が解明できます。
즉, 생로병사의 고뇌를 해명할 수 있습니다.
 
私は、その苦悩の原因である煩悩を除く道を説いています。肉体先祖は、人生航路の舟の提供者であり、魂の先祖ではありません。肉体先祖は、転生の過程において結ばれた深い縁生の絆であって、この先祖に対しては、美しく豊かな心と、健康な体をつくることが、いちばんの供養となるでしょう。
저는, 그 고뇌의 원인인 번뇌를 없애는 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조상은, 인생항로를 위한 배의 제공자이며, 영혼의 조상이 아닙니다.  육체조상은, 전생(환생)의 과정에서 맺어진 깊은 연생(緣生)의 끊기 어려운 인연(絆)이며, 이 조상에 대해서는, 아름답고 풍족한 마음과,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최상의 공양이 될 것입니다.

 

人は肉眼で見える狭い世界のみを信じていますが、心の眼で見れば、深遠な世界を一望の下に見渡すことができます。一望の下に見渡せば、人間がつくり出した地位、名誉、財産といったものは無常なものであり、永遠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
사람은 육안으로 보이는 좁은 세계만을 믿고 있습니다만, 마음의 눈으로 보면, 심원한 세계를 한눈에 시원스레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한눈에 시원스레 바라보게 되면, 인간이 만들어 낸 지위, 명예, 재산이라고 했던 것은 무상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父王の子どもであるこの私は、今は見たとおり、その日暮らしの一修行者でございます。他人が私と父王を比較すれば、乞食坊主と王様としか見えません。外見は、たしかにそうであっても、私は父上の子であることに変わりません。このように外見では真実はわかりません。
부왕의 자식인 저는, 지금은 보시는 것처럼, 하루 벌어 하루 꾸려 가는 생활을 하는 하나의 수행자입니다.  타인이 저와 부왕을 비교하면, 거지승과 임금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외견은, 확실히 그렇다고 해도, 저는 부왕의 아들임에는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외견으로는 실상은 알 수 없습니다.

 

苦悩にあえぐ人びとは、その原因を除かずして、結果だけに翻弄されるから迷うわけです。智慧ある者は、その原因を除くために、法にもとづいた生活をします。
고뇌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없애지 않고, 결과만에 농락당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헤매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원인을 없애기 위해, 법에 바탕을 둔 생활을 합니다.

 

法とは、あの太陽のように、空気のように、人の貴賎に関係なく、平等に与えられている慈悲の光です。おごりやへつらう心がなくなり、法にそって生活し、物の真実の理解を深めて行くときに、私たちの心に安らぎが生じ、真実の幸福にひたることができるわけです。人の幸せは、そこにしか方法がないと私は悟りました。
법이란, 저 태양처럼, 공기처럼, 사람의 귀천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제공하고 있는 자비의 빛입니다.  교만함(방자함)이나 아첨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법에 따라 생활하고, 사물의 진실한 이해를 깊게 해 갈 때에, 우리들의 마음에 평안이 생기고, 진실한 행복에 잠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거기에 밖에 방법이 없다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人間釈迦 No-4 P131~ 인간석가  제4권 페이지 131~ 

 


 

15.お釈迦様の説法  その14
        カピラでの初めての説法ー解脱への道

15.부처님의 설법   그 열네 번째
        카필라에서의 최초의 설법ー해탈로의 길

 

 

シャキャ・プトラーの友よ。
샤카・푸트라(석가족)의 친구여.

 

多くの衆生は、盲目の人生を送っている。場内の友は、なに不自由なく優雅な生活を送っているが、一歩城外に出ると、生活に疲れた賎民たちの群れがいる。同じ太陽の下で生活しながら、カースト制度によって社会悪をつくり出している。
많은 중생은, 맹목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장내의 친구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우아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한걸을 성밖으로 나가면, 생활에 지친 천민들의 무리가 있다.  똑같은 태양 밑에서 생활하면서, 카스트제도(사성제의 계급제도)에 의해서 사회악(社會惡)을 만들어 내고 있다.
 
人は、生まれによってその価値が定まるのではない。また、聖者は、慈悲の心と行いで、いかに多くの人に生きる喜びを与えたかということで定まるものである。
사람은, 출생에 의해서 그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또, 성자(聖者)는, 자비의 마음과 행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기쁨을 주었는가 하는 것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人間の欲望にはかぎりがない。その限りない欲望に、自らを苦しめている。自分を解放するには、欲望の奴隷から抜け出すことである。欲望から抜け出すには、自分の利益だけを追求せず、自らを省みて、貧しい人びとの生活を思いやることから始まる。
인간의 욕망에는 한(끝)이 없다.  그 끝없는 욕망에,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자신을 해방하는 데에는, 욕망의 노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욕망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돌이켜보고(반성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염려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人が敵味方に分かれて、争いに走るのは、自己の利益のみにとらわれるからである。自分にベンベンとしていると、いつ寝首をかかれるかしれない。毒殺からもまぬがれたいという思いにかられ、夜もろくろく安眠できない。
사람이 적과 아군을 나누어, 싸움에 내달리는 것은, 자기의 이익만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헛되이 시간(나날)을 보내고 있으면, 언제 참수를 당할지도 모른다.  독살에도 면하고 싶다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밤에도 제대로 편안히 잘 수 없다.

 

私は出家してから、まったくこの問題から開放されてしまった。家もなければ、国すらない。あたかも、空を飛ぶ鳥のように、何処へ行くにも自由な身だ。それゆえ、この大自然、全ヨジャーナーが我が住家といえる。
는 출가하고 나서, 완전히 이 문제에서 해방되어 버렸다.  집도 없으면, 나라조차 없다,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어디를 가든 자유로운 몸이다.  그러므로, 이 대장연, 전 요자나(전 세계)가 내 거처(住家)라고 말할 수 있다.

 

武力によって他を支配しても、いつの日かまた武力によって支配されよう。それは片寄った思い、片寄った物質偏重の生活態度が因をつくり、果となってめぐってくるからである。侵された者は、復讐の念に燃えよう。その念によって、侵し、侵され、因果をつくるのだ。力によって、肉体の行動を支配しても、人間の心まで支配することはできない。
무력에 의해서 남을 지배해도, 언젠가 또 무력에 의해서 지배당할 것이다.  그것은 치우친 생각, 치우친 물질편중의 생활태도가 원인을 만들고, 결과가 되어 순환해 오기 때문이다.   침략당한 사람은, 복수의 마음에 불탈 것이다.  그 마음에 의해서, 침략하고, 침략당하고, 인과를 만드는 것이다.  힘에 의해서, 육체의 행동을 지배해도, 인간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物は無常であり、武力は自らを滅ぼす。しかし、心の価値、不変の神理を理解するならば、いかなる大国の王たちといえども、争いと破壊のむなしさを悟ることができよう。
사물은 무상하며, 무력은 자신을 망친다.  하지만, 마음의 가치, 불변의 신리를 이해하게 되면, 어떠한 대국의 왕들이라 하더라도, 싸움과 파괴의 공허함(헛됨)을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シャキャ・プトラーの友よ。
샤카・푸트라(석가족)의 친구여.

 

人間は、闘争と破壊の歴史をくりかえすために生まれてきたのではない。より豊かな心と、調和された社会をつくるために生まれてきたのである。それが同胞相争い、自己の権益を守るために一生を終わってしまう。いったいどこに人生の目的と意義があるのであろう。愚かというほかはない。
인간은, 투쟁과 파괴의 역사를 되풀이하기 위해서 태어나온 것이 아니다.  보다 풍족한 마음, 조화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태어나온 것이다.  그것이 동포상쟁, 자기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일생을 끝마져 버린다.  도대체 어디에 인생의 목적과 의의(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어리석다고 할 수 밖에 없다.

 

旧来の信仰では、自ら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 インドラの神でもなく、ヴァーユ、ヤマ、アルカ、アグニー、ヴェルナ、チャンドラ、マトラーの神々でもない。いわんや、ヤクシ、ヤクシャー、キンナラ、マゴラーでもないのだ。
구래의 신앙으로는, 자신을 구제할 수 없다.  인드라(Indra, 雷霆神, 뇌정신(천둥신))의 신도 아니고, 바유(Vayu, 風神, 바람의 신), 야마(Yama, 閻魔, 염라대왕), 아루카(アルカ, ?), 아그니(agni, 火神, 불의 신), 바루나(婆樓那, Varuna, 사법(司法)의 신),  찬드라(Chandra, 힌두교의 달의 신), 마트라(マトラー, ??)의 신들도 아니다.  하물며, 야크시(여자 야차 → Yaksni(야크시니)), 야크샤(夜叉, 남자 야차→(Yaksa)), 긴나라(緊那羅: kimnara, 음악의 신), 마후라가(摩睺羅伽, Mahoraga, 음악의 신)도 아닌 것이다.

 

自分を救う者は、自分以外にない。
자기 자신을 구제하는 사람은, 자기 이외에 없다.

 

思うこと、行なうことが、タルマー(法)に適った生活以外に道はない。なぜなら、人それぞれの心の中に、アートマン(我)というものがあろう。この我に、目覚めることなのだ。我なる自分は、天地創造のすべてを知っている。我以外に他に頼る必要のない自分。正しき自己こそ頼るべきすべてである。偽りも憎しみもなく、赤子のような安らぎの自己、天真爛漫な素直な心。これこそ、アートマンの姿である。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이, 달마(법)에 꼭 맞는 생활 이외에는 길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 저마다의 마음속에, 아트만(범 ātman)(자아)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 자아에, 눈뜨는 것인 것이다.   자아인 자신은, 천지창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 이외에 남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는 자기 자신.  올바른 자기야말로 의존해야 할 전부이다.  거짓도 증오도 없고, 갓난아기와 같은 편안한 자기, 천진난만한 솔직한 마음.  이것이야말로, 아트만의 모습이다.

 

★아트만[범 ātman]   《일본어사전》
哲〉 아트만. (고대 인도의 철학에서) 개인. 자아(自我). 영혼.

 

 

しかるに人は、生まれた環境、教育、思想、習慣におぼれ、自己保存の偽我に蔽われ、自らして苦悩をつくり出して行く。
그런데도 사람은, 태어난 환경, 교육, 사상, 습성에 빠져, 자기보존의 위아(거짓된 자기)에 막혀서, 스스로 고뇌를 만들어 내어 간다. 

 

この娑婆世界を苦界ともいう。自らがつくり出した苦しみの世界だからである。苦界のままで人生を送れば、死後の人生もまた苦界である。苦界とは地獄である。あの世、この世の転生は、生命ある者に課せられた天命であるが、輪廻の解脱こそ、悟りの条件である。悟れば、輪廻の絆から離れ、時と場所を超えて、今ある自己の生命の偉大さに気付き、永遠の自己を見出すことができよう。
이 사바세계를 고계(육체적·경제적·정신적으로 괴로운 세계)이라고도 한다.  자기가 만들어 낸 괴로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고계(苦界)인 상태로 인생을 보내면, 사후의 인생도 역시 고계(苦界, 괴로운 세계)이다.  저 세상, 이 세상의 전생(환생)은, 생명 있는 자에게 할당된(부과된) 천명이지만, 윤회의 해탈이야말로, 깨달음의 조건이다.  깨달으면, 윤회의 유대(絆)에서 떨어져, 때와 장소를 초월해서, 지금 있는 자기의 생명의 위대함을 깨닫고, 영원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예전에 올린, 잘못된 신앙편에 보면, 저승 중에서 지옥에 아귀계와 같은 곳이 나옵니다.  그곳에서는, 죽었다 살아나고 죽었다 살아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몸이 다른 인간에게 잡아먹히고 죽었다 다시 살아납니다. 를 참고하시면, 위 문장이 이해될 것입니다.  마귀할멈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 곳을 참조하세요.

 

 

地獄といい、極楽といえども、神がつくられたものではない。人びとの想念と行為が生み出したものだ。
지옥이라고 해도, 극락이라고 할지라도, 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상념(想念)과 행위가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상념[想念] 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恐れてはならない。自らを卑下してはならない。希望を持って謙虚に、与えられた環境を十全に生きようと努力する者に、神仏の慈悲が惜しみなく与えられるであろう。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자기를 비하해서는 안 된다.  희망을 가지고 겸허하게, 주어진 환경을 충분히 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신불의 자비가 아낌없이 주어질 것이다.

 

シャキャ・プトラーの友よ。目覚めよ。そして、立て。
샤카・푸트라(석가족)의 친구여.  눈을 떠라, 그리고, 일어서라.

 

この意義ある人生を、記念すべき日々の生活に変えよ。
이 의의(가치) 있는 인생을, 기념해야 할 나날의 생활로 바꿔라.

 

 


 

★인드라[Indra] 《국어사전》
인도의 베다 신화에 나오는 비와 천둥의 신. 하늘의 제왕으로 몸은 모두 갈색이고, 팔은 네 개이며, 두 개의 창을 들고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불교에서는 제석천 또는 십이천의 하나로 동방의 수호신이다.

★바유[Vāyu] 《국어사전》
[문학] 베다(Veda) 신화에 나오는 바람의 신. 푸루샤의 입김으로 태어나, 천둥과 벼락의 신 인드라의 수레에 함께 타고 하늘을 달린다고 한다.

アルカ (arka) ??
★아그니[Agni]
[명사] [문학] 인도의 베다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암흑을 물리치고 부정을 태워 없애며, 가정 및 사자(死者)를 수호하는 신이다. 불교에서는 호세 팔천(護世八天)의 하나이다.
★바루나[(산스크리트어)Varuna]
고대 인도의 베다 신화에 나오는 신. 천공(天空)의 신이라고는 하나 자연현상과의 관계보다는 인륜과 우주의 질서를 관장하는 신으로서 인격화되었다. 전지전능한 우주의 옹호자로 추앙되었으나 후에 밤의 신, 물의 신으로 전락하였다.

★찬드라[Chandra]  힌두교의 달의 신.

夜叉には男と女があり、男はヤクシャ(Yaksa)、女はヤクシーもしくはヤクシニー(Yaksni)と呼ばれる。古代インドの悪鬼神の類を指すが、仏法に帰依して護法善神となったもの。空中を飛行する。
야차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고, 남자는 야크샤(Yaksa), 여자는 야크시라고 하는 야크시니(Yaksni)라고 부른다.   고대 인도의 악귀신의 종류를 가리키지만, 불법에 귀의해서 호법선신이 되었다고 함.  공중을 비행한다.

①두억시니 ②형모(形貌)가 추괴(醜怪)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고, 상해를 입힌다는 잔인(殘忍)ㆍ혹독(酷毒)한 귀신(鬼神). 번뇌(煩惱)의 상징(象徵) ③염마졸(閻魔卒)
★緊那羅(Kimnara、きんなら)긴나라,
音楽神であり、また半身半獣の人非人ともいう。人にも畜生にも鳥にも充当しない。仏教では乾闥婆と同様に帝釈天の眷属とされ、美しい声で歌うという。

음악신이며, 또한 반신반수의 사람도 아닌 사람이라고도 한다.  사람도 축생에도 새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건달바와 마찬가지로 제석천의 권속으로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한다.


★摩睺羅伽(Mahoraga、まこらが)마후라가, 마호라가
緊那羅とともに帝釈天の眷属の音楽神ともいう。または廟神ともいわれる。身体は人間であるが首は蛇である。龍種に属す。大蛇(ニシキヘビとも)を神格化したもの。

긴나라와 함께 제석천의 권속의 음악신이라고도 한다.  또한 묘신이라고도 불리운다.  신체는 인간이지만 머리는 뱀이다.  룡의 종족에 속한다.  대사(대사, 큰 뱀, 매우 큰 뱀, 구렁이, 이무기)를 신격화한 것.

 

 

★人間釈迦 No-4 P135~ 인간석가  제4권 페이지 135~ 

 


 

 

16.お釈迦様の説法  その15 
      アナン ・ アニルダ ・ キンピラ ・ ウパリ への言葉

16.부처님의 설법 그 열다섯 번째 

                아난(阿難) ・아니룻다(阿那律)・긴필라(金毘羅)・우파리(優波離)에게의 말씀

 

 

アナン---。
正道で一番大事なことは、感情に心を動かされないということだ。感情のない人間、それは人間とはいえないが、表面的な好き嫌いの感情にとらわれ、それに翻弄されると心に曇りをつくり、心がすさんでくる。憎悪、怒り、しっと、増上慢・・・・・・。
아난(阿難)이여---。
정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에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감정의 없는 인간, 그것은 인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표면적인 좋고 싫음의 감정에 사로잡혀, 그것에 농락당하면 마음에 흐림을 만들어, 마음이 거칠어지게 된다.  증오, 분노, 질투, 증상만・・・・・・。

 

みな感情がなせるわざだ。こうしたときは安心はえられない。公平にものをみることができない。自分を苦しめ、人をも悲しませる。
모두 감정이 초래한 결과다.  이렇게 했을 때는 안심은 얻을 수 없다.  공평하게 사물을 볼 수가 없다.  자신을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히고, 남을 또한 슬프게 한다.

 

 

心の調和はいかに自己の心を落着かせ、心の安らぎを保つかということだ。それには自己の感情のぶれをなくすことしかない。
마음의 조화는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자기의 감정의 흔들림을 없애는 것밖에 없다.

 

波立ち多き感情の修正は、そのよってきた原因を知り、それにふりまわされぬことが基本だが、しかしそれを知ってもなお振りまわされるのが人の常だ。それを人の業ともいう。そこで人を見ないことが大事だ。意見が合わず、怒りが燃えるということは、相手をみるからだ。相手が怒りに燃えたときは、それにさからわず、熱がさめるまで受け流してしまう。ひと息ついたときに事の道理を話すようにすれば、心の揺れは少なくなろう。
여파가 많은 감정의 수정은, 그 원인이 되는 원인을 알고, 그것에 농락당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지만, 하지만 그것을 알아도 여전히 농락당하는 것이 사람의 상례이다.   그것을 사람의 업(業)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의견이 맞지 않고, 노발대발한다고 하는 것은, 상대를 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노발대발할 때는, 그것에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열이 식을 때까지 순순히 받아 넘겨 버린다.  한숨 돌렸을 때에 일의 도리를 말하게 하면, 마음의 흔들림은 적어질 것이다.

 

苦しみの原因は、ものに対する執着である。執着を離れ、冷静になってくると、事の道理がよく見えてくるものだ。神理の実相は、そうした心を保っていると、次第に明らかになってくる。
괴로움의 원인은, 사물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을 떠나서, 냉정하게 되어오면, 일의 도리가 잘 보여오는 것이다.  신리의 실상은, 그러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으면, 차제로 뚜렷하게 되어 온다.

 

 

アニルダ---。
そなたは不動の心をつくれ。あれこれ思いわずらうな。なにごとによらず、気を散らすと、ものは成就しない。物事の成就は一心集中にある。一念の心は万事に通ずる。
아니룻다(阿那律)여---。
그대는 부동의 마음을 만들라.  이것저것 궁리하지 말아라.  무슨 일이든지 간에, 산만해지면, 사물을 성취하지 못한다.  매사의 성취는 마음을 한 마음으로 집중하는데 있다.  일념의 마음은 만사에 통한다.

 

そなたは山に登った経験があろう。山の頂きに立つと、視界がひらけ、下界はひと眼で見おろせる。その頂上はどの登山口からも登れよう。登り口はいくつもあるが、頂上は一つなのだ。どの道を選ぼうと、一念の努力は、やがて頂上に達し、頂上に立てば、どの道も同じであり、ものの真実をつかむことができる。一芸に秀でた者が、他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のはそのためなのだ。頂上にてば、なにもかも見渡せる。
그대는 산에 올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산의 정상에 서면, 시계가 넓어져, 하계는 한눈에 들어온다.  그 정상은 어느 등산로 입구에서도 오를 수 있다.  산길의 초입은 어디든지 있지만, 정상은 하나인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면, 일념의 노력은, 이윽고 정상에 도착하고, 정상에 서면, 어느 길도 마찬가지며, 사물의 진실을 파악할 수가 있다.  한 가지 기예에 뛰어난 사람이, 남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이다.   정상에 서면, 무엇이든 다 보인다.

 

 

キンピラ---。
そなたは、心を大きく持て。そう心を堅く閉じてはならない。誤ちは誰にもあるもの。その誤ちをどう修正し他山の石とするかが問題だ。人はたいてい自己を誤魔化して生きようとする。しかし、自己は誤魔化せない。誤魔化せば誤魔化した分だけ苦しまねばならない。
긴필라(金毘羅)여---。
그대는, 마음을 크게 가져라.  그러한 마음을 굳게 닫아서는 안 된다.  잘못은 누구나 있는 것이다.   그 잘못을 어떻게 수정하고 타산지석으로 삼는가가 문제이다.  사람은 대개 자기를 속이며 살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속이지 못한다.  속이면 속인 분량만큼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自己を正し、自己に忠実に生きることが正道である。自己に忠実に生きようとすると、人の心はえてして小さくなるものだ。忠実ということに心がとらわれるからだ。忠実に生きながら心がそれにとらわれないようにするには、中天に輝くあの太陽のように、胸に丸く大きな心を描き、その心を自己の心とすることだ。すると次第に心が大きくなり、些事にこだわらず、しかも些事をないがしろにしなくなってくる。
자기 자신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려고 하면, 사람의 마음은 자칫하면 작아지는 것이다.  충실하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충실하게 살면서도 마음이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중천에 빛나는 저 태양처럼, 가슴에 둥글고 큰 마음을 그리며, 그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 차츰 마음이 커져, 하찮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게다가 대수롭지 않게 보이게 된다.
 

 

正法は中道の道だ。人としての道を外さず、それでいて道におもねることのない道なのだ。万物を生かす道なのだ。
정법은 중도의 길(도리)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침에 아첨(아부)하는 일의 없는 도리인 것이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길인 것이다.
 

 

人間は、肉体を持つと同時に、心を持って生きている。肉体と心は、そのどちらかに片寄っても人は苦しむようにできている。この二つは、もともと一つのもので、肉体と心の調和こそ中道の在り方なのだ。肉体が苦しめば心も病む。心が動揺すれば食欲も起こらなくなろう。色心は一つであるが、心を悟り、魂の永遠を知ったときは、無明の原因は肉の身の五官にあって、心が肉体に片寄り過ぎていたことに気付くのである。心のこだわりを一つ一つ取りのぞき、中道の真実を悟るようにしなさい。
인간은, 육체를 가짐과 동시에,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육체와 마음은, 그 어느 쪽에 치우쳐도 사람은 괴롭게 되어 있다.  이 두 가지는, 본래 하나인 것이기 때문에, 육체와 마음의 조화야말로 중도의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육체가 괴로우면 마음도 아프다.   마음이 동요하면 식욕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색심(色心)은 하나이지만, 마음을 깨닫고, 영혼의 영원을 알았을 때는, 무명(무지)의 원인은 육신의 오관에 있고, 마음이 육체에 너무 치우치고 있었던 것을 깨닫는 것이다.  마음의 구애되는 일을 낱낱이 제거하고, 중도의 실천을 깨닫도록 하십시오.

 

 

ウパリ---。
仏法はこの地上に調和を築くものだ。それぞれが己を知り、より豊かな心をつくる。不平や不満があるうちは心に調和は得られないし、安らぎも真実もわからない。
우파리(優波離)여---。
불법은 이 지상에 조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저마가가 자기를 알고, 보다 풍족한 마음을 만든다.  불평이나 불만이 있는 중에는 마음에 조화는 얻을 수 없고, 평안도 진실도 알 수 없다.
 

 

そなたはよく自己をみつめてきた。より広い心をつくるにはどうすればよいか。それがそなたの課題になるだろう。自己に厳しく、人には寛容であることが仏法だが、自己に厳しいと人にも厳しくなるのが人の常だ。なぜそうなるかといえば、他人を意識しての自己統御であるからだ。自己統御は自己を知るためのもの、自己を試すためのものだ。他人のためにするのではない。
그대는 잘 자신을 직시해 왔다.  보다 넓은 마음을 만드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이 그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는 관용한 것이 불법이지만, 자기에 엄격하면 남에게도 엄격해지는 것이 사람의 상례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타인을 의식해서 자기 자신을 통어하기 때문이다.  자기 통어는 자기를 알기 위한 것이며, 자기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ところが、人びととともにあると、他のなかの自己を見出そうとする。そのため自己に厳しい者は他人にも厳しくなる。自己に甘いものは他人に甘いかというと、そうもいかない。やはり厳しくなる。自分に甘い者は自己保存の念が強いので、他人には厳しいのだ。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자기에게 엄격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엄격하게 된다.  자기에게 편리한 것은 타인에게 편리한가 하면, 그렇게도 안 된다.  역시 엄격해진다.  자신에 편리한 것은 자기보존의 념(마음)이 강한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엄격한 것이다.

 

どちらにせよ、自己を見つめるためには他を意識しては正しい自己は発見しにくい。他はあくまで、自己の心を正す材料であって、自己の延長とみてはなるまい。人の心は一つだが、人間はそれぞれが主体性を持って修行するものなので、自己に厳しくても、他人には寛容でなくてはなるまい。この意味、そなたにわかってもらえるかな。
어쨓든, 자기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타인을 의식해서는 올바른 자기를 반견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마음을 바로잡는 재료이며, 자기의 연장으로 봐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은 한 가지이지만, 인간은 저마다가 주체성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인 것이므로, 자기에게 엄격하더라도, 타인에게는 관용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의미를, 그대는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난[阿難]  《일본어위키백과사전》
サンスクリット語でアーナンダ(aananda、आनन्द)。多聞第一(たもん・だいいち)。
釈迦の従弟。阿難陀とも書く。nandaは歓喜(かんぎ)という意味がある。出家して以来、釈迦が死ぬまで25年間、釈迦の付き人をした。第一結集のときアーナンダの記憶に基づいて経が編纂された。120歳まで生きたという。
산스크리스어로 아난다((aananda、आनन्द)。다문제일(多聞第一)。
석가의 제자. 아난타(阿難陀)라고도 쓴다.  난다(nanda)는 환희(歓喜)라고 하는 뜻이 있다.   출가해한 이후, 석가가 죽을 때가지 25년간, 석가의 시중을 들었다.  제1결집 때 아난다의 기억에 기초하여 경이 편찬되었다.  12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아나율[阿那律] 아니룻다 〓 아나율[阿那律] 《일본어위키백과사전》
サンスクリット語でアニルッダ(aniruddha、अनिरुद्ध)。天眼第一(てんげん・だいいち)。
釈迦の従弟。阿難とともに出家した。仏の前で居眠りして叱責をうけ、眠らぬ誓いをたて、視力を失ったがそのためかえって真理を見る眼をえた。
산스크리트어로 아니룻다(aniruddha、अनिरुद्ध)。천안제일(天眼第一)。
석가의 제자. 아난(阿難) 함께 출가했다. 부처님 앞에서 졸다가 꾸지람을 듣고, 잠들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 시력을 잃었지만 대신 진리를 보는 눈을 얻었다.

 

★긴비라. 금비라[金毘羅] 《일본어위키백과사전》
劫賓那(こうひんな、カッピナ)は、釈迦の弟子の一人である。尊称して摩訶劫賓那と呼ばれることも多い。金毘羅(こんぴら、カンピラ)とも。
釈迦弟子中で知星宿第一の弟子といわれる。
겁빈나(劫賓那), 일본어식 발음으로는, 코우빈나, 캇피나는, 석가의 제자의 한 사람이다.  존칭해서 마하겁빈나(摩訶劫賓那)라고 불리우는 일도 많다.  금비라(金毘羅) 일본어식 발음으로는 (こんぴら、カンピラ 곤필라, 간필라) 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Skt)는, :칼피나(Kalpina)、캄필라(Kamphilla)이며, 팔리어(Pl)로는 캎피나(Kapphina)
다른 음사(他の音写)로는, 겁빈녕(劫賓寧), 금비라(金毘羅), 게질(掲質) 등.
★★こんぴら [金×毘羅·金比羅]
[명사]〈佛〉 금비라. 불법의 수호신. 《일본에서는 항해의 안전을 지키는 신으로 신앙됨》

 

★우파리[優波離]  《일본어위키백과사전》
サンスクリット語でウパーリ(upaali、उपालि)。持律第一。
もと理髪師で、階級制度を否定する釈迦により、出家した順序にしたがって、貴族出身の比丘の兄弟子とされた。第一結集においては、彼の記憶に基づいて戒律が編纂された。
산스크리트어로 우파리(upaali、उपालि)。지율제일(지계제일)。
본래 이발사이며, 계급제도를 부정하는 석가에 의해, 출가한 순서에 따라서, 귀족출신의 비구의 형제자가 되었다.  제1결집에서는, 그의 기억에 기초하여 계율이 편찬되었다.


★증상만 [増上慢]     《일본어/국어/한자사전》
① 〈佛〉 증상만.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고 생각하여 자만함.
② [형용동사] (변하여) 실력이나 능력이 없으면서 있는 듯이 자만함.
③잘난 체함.
④ [불교] 사만(四慢)의 하나.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을 이른다.
⑤최상(最上)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여, 제가 잘난 체하는 거만(倨慢) 곧 자신(自身)을 가치(價値) 이상(以上)으로 생각함.



★人間釈迦 No-4 P184~ 인간석가  제4권 페이지 184~ 

 


 

17.お釈迦様の説法  その16  まことの法の実践者

17.부처님의 설법  그 열여섯 번째 진실한 법의 실천자


 
異性問題で心が揺れるようなことがあれば、在家に戻りなさい。ブッタ・サンガーは、自己を開発するすることにある。人びとに法を伝えるためにある。異性問題でサンガーの空気を汚し、目的から離れてはならない。また、修行はどこにあってもできるのであり、出家に執着を持ち心をせまくしてはならないだろう。サンガー人となり、一度は出家しても在家に戻ることを恥と考えてはならない。人にはそれぞれの場があり、サンガー人だからといって悟れるというものではない。
이성문제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일이 있으면, 재가로 돌아가십시오.  붓타・상가는, 자기를 개발하는 하는 것에 있다,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기 위함에 있다.  이성문제로 상가(僧伽)공기를 더럽히고, 목적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또, 수행이란 어디에 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며, 출가에 집착을 가지는 마음을 좁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가(僧伽) 사람이 되어, 한번은 출가해도 재가로 돌아가는 일은 부끄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장소가 있고, 상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ただサンガー人は、心を開く環境のなかで修行するので、在家の人たちよりは恵まれていようが、しかし、多くの人たちの布施によって修行していることを忘れたならば、在家の人たちよりも劣り、心を開く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
오직 상가(승가) 사람은, 마음을 여는 환경 속에서 수행하는 것으로써, 재가의 사람들 보다는 풍요로운 듯 하지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보시에 의해서 수행하고 있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면, 재가의 사람들 보다도 뒤떨어지며, 마음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そなたたちは縁生の絆を通して、ここに集い来たった者たちである。この縁生を粗略にし、五官に翻弄されることがあれば、再び苦しみの縁生を重ねることになろう。いまをおいて、自己を知る機会はないことを悟らなければならない。
그대들은 연생의 인연(絆)을 통해서, 여기에 모여든 사람들이다.  이 연생(緣生)을 조략(소홀)하게 하고, 오관에 농락당하는 일이 있으면, 다시 괴로움의 연생을 거듭하게 된다.  지금을 제외하고는, 자기를 알 기회는 없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法は、正しく行ずる者のなかにある。姿や形、形式のなかにあるものではない。ふだんの心の動き、そして行為が法に適っているかどうかが問題なのである。そなたたちは法の実践者でなければならない。また、それを望み、求めてきた者であろう。それがいつのまにか五官にに迷い、六根に翻弄されるとすれば出家の資格者とはいえまい。
법은, 올바르게 실천하는 사람 속에 있다.  모습이나 생김새, 형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마음의 움직임, 그리고 행위가 법에 들어맞고 있는가 어떤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대들은 법의 실천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것을 바라고, 찾아 온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사이엔가 오관에 미혹(迷惑)되어, 육근에 농락당한다고 하면 출가의 자격자(資格者)라고는 말할 수 없다.

 

感覚が問題として肉体を裂いたとしても、心を正さなければなんにもならない。肉体は心の乗り舟であり、肉体そのものに六根があるのではない。肉体を縁にして、心が肉体にまつわる思いにとらわれるので六根が生まれる。つまり、六根の根は、すでに心にある。心が原因である。だから、心を正さなければ肉体にまつわる思いが再び襲ってくる。
감각이 문제로서 육체를 찢었다고 할지라도, 마음을 바로잡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육체는 마음의 타는 배이며, 육체 그 자체가 육근인 것이 아니다.  육체를 인연으로 해서, 마음이 육체에 휘감기는 생각(집착.미련)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육근이 태어난다.  즉, 육근의 뿌리(근원)는, 이미 마음에 있다.  마음이 원인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육체에 휘감기는 생각(집착. 미련)이 다시 들이닥친다.

 

したがって、この手がいけない、この足が悪いというものではない。そなたたちの五体は両親を縁として神仏よりあたえられたものである。そしてこの五体はこの地上にふさわしい形で適応されている。つまりは調和されている。調和されているから健康で生きられる。健康でないのは心である。本来、健全なのだが、地上の生活になれてくるにしたがって、自我が芽生え、心がいびつになってくる。いびつはやがて六根となり、そなたたちの想念と行為となって現れてくるわけである。
따라서, 이 손이 나쁘고, 이 발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의 오체는 양친을 인연으로 해서 신불로부터 할당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오체는 이 지상에 어울리는(적합한) 모양으로 적응되어 있다.  변함없이 조화되어 있다.  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은 것은 마음이다.  본래, 건전한 것이지만, 지상의 생활에 자리가 잡힘(익숙해짐)에 따라서, 자아가 싹트고, 마음이 비뚤어지게 된다.  비뚤어짐은 이윽고 육근이 되어, 그대들의 상념(想念)과 행위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상념[想念]①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사념[思念]①늘 마음속 깊이 생각함

 

 

正しく見、正しく思い、正しく語り、正しく仕事をなし、正しく生き、正しく道に精進し、正しく念じ、正しく定に入る八正道の実践こそ、私がいう法である。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말하고, 올바르게 일을 하고, 올바르게 살고, 올바르게 길(도리)에 정진하고, 올발게 염원하고, 올바르게 선정에 드는 팔정도의 실천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법(法)이다.

 

八正道の中心は、神仏の光につながっている各人の心である。その光を八正道の歩みによって現わす、これが法の実践である。仏法は他人のためにあるのではない。すべては各人一人一人のためにある。そうして、その喜びを、慈悲を、他に及ぼしていくものだ。かくして、この地上に仏国土が生まれよう。
팔정도의 중심은, 신불의 빛으로 연결되어 있는 각자의 마음이다.  그 빛을 팔정도를 걸음에 의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법의 실천이다.  불법(佛法)은 타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함에 있다.  그렇게 해서,  그 기쁨을, 자비를, 다른 사람에게 보급해 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 지상에 불국토가 탄생할 것이다.

 

仏国土はまず各人の心の中に築かなければならない。
불국토는 먼저 각자의 마음속에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現在のそなたたちの修行は、心に仏国土をつくる。すなわち悟りの境涯に至ることだ。彼岸に至る修行が、今そなたたちの生活であり、目標だ。在家の人たちに劣るような行為があってはならないだろう。もし、サンガーの生活に堪えられず、在家に戻りたい者があれば遠慮なく申し出でよ。いつでもその希望を叶えるであろうし、自己を誤魔化してはならない。
현재의 그대들의 수행(修行)은, 마음에 불국토를 만든다.  즉 깨달음의 경애(境涯)에 도달하는 것이다.  피안에 도달하는 수행이, 지금 그대들의 생활이며, 목표이다.  재가의 사람들에게 뒤떨어지는 것과 같은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상가(僧伽)의 생활에 참을(견딜) 수 없고, 재가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탄없이 요청하여라.  언제든지 그 희망을 충족시킬 것이고, 자기를 속여서는 안 된다. 

 


★人間釈迦 No-4 P245~ 인간석가  제4권 페이지 245 ~ 

 


 

 

18.お釈迦様の偉大なる悟り
18.부처님의 위대한 깨달음


 

「この大宇宙は神によってつくられた。
「이 대우주는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大宇宙が発生する以前の大宇宙は、光明という神の意識だけが、そこにあった。
대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대우주는, 광명이라고 하는 신의 의식만이, 거기에 있었다.

 

神は、その意識の中で意志を持たれた。
신은, 그 의식 속에서 의지를 지니셨다.

 

大宇宙の創造は、神の意志によってはじまった。
대우주의 창조는, 신의 의지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意識の働く宇宙と、物質界の宇宙の二つの世界を創造した。
의식의 작용하는 우주와, 물질계의 우주의 두 개의 세계를 창조했다.

 

意識界の宇宙はその意志をもって物質界の宇宙を動かし、そうしてこの二つの世界は、光と影という相関関係を通して、永遠の調和を目的とすることになった。
의식계의 우주는 그 의지를 가지고 물질계의 우주를 움직이고, 그렇게 해서 이 두 개의 세계는, 빛과 그림자라고 하는 상관관계를 통해서, 영원한 조화를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

 

神の意識は、永遠の調和をめざし、そうして、二つの世界にあって、調和の要である中道という法秩序の中に住まわれることになった。
신의 의식은, 영원한 조화를 목표로 하고, 그렇게 해서, 두 개의 세계에서, 조화의 중요한 부분인 중도라고 하는 법질서 속에 거하시게 되었다.

 

人間は、天地創造とともに、神の意識から別れ、神の意志を受け継ぐ万物の霊長として産声をあげた。
인간은, 천지창조와 함께, 신의 의식에서 떨어져, 신의 의지를 계승하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태어났다.

 

人間の誕生は、意識界という実在の宇宙に、まず姿を現した。
인간의 탄생은, 의식계라고 하는 실재의 우주에,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そうして、神の意志である調和をめざす神の子として、物質界に降り立ったのである。物質界に降り立った最初の人間を、地上の眼でみるならば、大地の一隅に、忽然と物質化されたといえるだろう。
그렇게 해서, 신의 의지인 조화를 목표로 해서 신의 자녀로서, 물질계에 내려선 것이다.  물질계에 내려선 최초의 인간을, 지상의 눈으로 보게 되면, 대지의 한 모퉁이에, 홀연히 물질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人間以外の動物、植物、鉱物も、こうしたプロセスを経て、大地に姿を現した。
인간 이외의 동물, 식물, 광물도, 이러한 공정을 거쳐서, 대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こうして、あらゆる生命物質は、意識界(実在界)と現象界(地上)の間を、輪廻することになった。
이렇게 해서, 온갖 생명물질은, 의식계(실재계)와 현상계(지상)의 사이를, 윤회하게 되었다.

 

地球に生物が住むようになったのは、今から数億年も前である。最初の生物は、太陽の熱・光と、大地と、海水と、空気と、それに意識界と表裏一体の宇宙空間の、相互作用によって、地上に現われた。微生物の誕生である。
지구에 생물이 거주하게 되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수억 년이나 이전이었다.  최초의 생물은, 태양의 열・빛과, 대지와, 해수와, 공기와, 거기에 의식계와 표리일체의 우주공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지상에 나타났다.  미생물의 탄생이다.

 

続いて植物が発生し、動物が姿をみはじめた。
이어서 생물이 발생하고, 동물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やがて爬虫類時代を迎え、一時期、地上は荒寥(こうりょう)とした姿に変貌をとげる。恐竜の時代も下火になった今から二億年前に、人類は、特殊な乗り物に乗って、他の天体から飛来した。
이윽고 파충류시대를 맞이하고, 한 시기 동안, 지상은 황료한 모습으로 면모를 이룬다.  공룡의 시대도 기세가 약해진 지금으로부터 2억년 전에, 인류는, 특수한 교통수단을 타고, 다른 천체에서 날아왔다.

 

当時の移住者は、かなりの数にのぼった。
당시의 이주자는, 상당한 인원수였다.

 

人類は、神の意志にもとずいて、調和という仏国土をつくりはじめた。
인류는, 신의 의지에 바탕을 두고, 조화라고 하는 불국토를 만들기 시작했다.

 

当時の人類は、荒寥たる地上を開墾し、人類が住める環境として神がつくられた大地に、動物、植物の、相互依存のしやすい調和をつくることが目的であった。
당시의 인류는, 황료한 지상을 개간하고,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서 신이 만드신 대지에, 동물, 식물의, 상호 의존하기 쉬운 조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人類は栄えた。動物、植物もすくすくと育った。
인류는 번영했다. 동물, 식물도 쑥쑥 자랐다.

 

人々の年齢は、五百歳、千歳の長命を保った。
사람들의 연령은, 5백년, 천년의 장수를 누렸다.

 

人類の数は増えていった。子孫が子孫を生み、人々の転生輪廻が、地球という場において、回転をはじめたのである。
인류의 수는 증가해 갔다.  자손이 자손을 낳고, 사람들의 전생윤회가, 지구라고 하는 장소에서, 윤회를 시작한 것이다.

 

人々は次元の異なる意識界と自由に交流ができた。
사람들은 차원의 다른 의식계와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었다.

 

文明は高度に発達した。
문명은 고도로 발달했다.

 

人間は自由に空を駆けめぐり、地下にも大都市をつくった。
인간은 자유롭게 하늘을 뛰어다니고, 지하에도 대도시를 만들었다.

 

しかしやがてその文明も終焉を迎える時がやってきた。
하지만 이윽고 그 문명도 임종을 맞이할 때가 도래했다.

 

人々の間に、自我が生まれ、国境がつくられ、争いがはじまったからである。
사람들 사이에, 자아가 생겨나고, 국경이 만들어지고,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人々の不調和、暗い想念の曇りは偉大な神の光をさえぎった。その結果、大地は怒り、黒雲は天を蔽(おお)った。至るところで火山が爆発し、陸は海に、海は陸になった。
사람들의 부조화, 어두운 상념(想念)의 흐림을 위대한 신의 빛을 가렸다.  그 결과, 대지는 분노하고, 먹구름은 하늘을 뒤덮었다.  이르는 곳마다 화산이 폭발하고, 육지는 바다가 되고, 바다는 육지가 되었다.

 

ホンのひと握りの心ある人々を残して、人類は土中に、海中に、消えていった。
진실한 인간 정도로 사려와 분별이 있는 사람들을 남기고, 인류는 땅속으로,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こうして人類は、栄えては滅び、滅びては栄えた。
이렇게 해서 인류는, 번영하면 멸망하고, 멸망하면 번영했다.

 

天変地異は、人類がこの地上に住みつくようになってから、何回となく繰り返されてきたものである。
천재지변은, 인류가 이 지상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고 나서, 몇 번이나 되풀이되어 왔던 것이다.

 

天変地異は、自然現象ではない。人類が住みつくようになってから、この地上で、神が有する創造の権能を、人類が行使し、人類の心と行為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あった。
천재지변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인류가 자리를 잡고 살게 되고 나서, 이 지상에서, 신이 지니고 있는 창조의 기능을, 인류가 사용하고, 인류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人類の地上での目的と使命は、二億年前も現代も変わらない。
인류의 지상에서의 목적과 사명은, 2억년 전이나 현재나 변함이 없다.

 

それは神の意志である調和という仏国土を建設するために人類は存在し、人々の魂はそうした建設を通して、永遠の進化をめざすものであったのである。
그것은 신의 의지인 조화라고 하는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서 인류는 존재하고, 사람들의 영혼은 그러한 건설을 통해서, 영원한 진화를 목표로 한 것이었던 것이다.

 

人間は小宇宙を形成している。小宇宙とは大宇宙の縮図である。大宇宙に展開する無数の星々は、人間の肉体を形作っている光の数(細胞数)とほぼ同数である。太陽系は太陽を中心に九つの星々(惑星)と三万数千個の小惑星郡をしたがえ、太陽の周りを循環している。極小の世界(素粒子)も、中心となる核とその周囲に陰外電子がまわっている。太陽系という宇宙も、極小の世界と同じように、一つの法則のもとに循環し、生かされ、生きている。
인간은 소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소우주란 대우주의 축도(원형을 축소하여 그린 그림)이다.  대우주에 전재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 별들은, 인간의 육체를 무수한 별들은, 인간의 육체를 형성(구성)하고 있는 빛의 수(세포의 숫자)와 거의 동수(同數)이다.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아홉 개의 별들(혹성)과 3만 수천개의 작은 소혹성군을 거느리고, 태양의 주위를 순환하고 있다.   극소의 세계(미립자)도, 중심이 되는 핵과 그 주위에 음외전자가 돌고 있다.  태양계라고 하는 우주도, 극소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규칙 하에 순환하고, 소생되며, 살고 있다.

 

人間の肉体は、そうした極小の光が集まって集団を構成し、体を成している。これらの集団は、脳、心臓、肝臓、膵臓、胃、腸などを形成し、これはそのまま太陽であり、九つの
星々(水星、金星、地球、火星、木星、土星、など)を意味し、さらには、大宇宙に展開する多くの太陽系の、それぞれの個性を持った集団郡と同じようにつくられているのである。
인간의 육체는, 그러한 극소의 빛이 모여 집단을 구성하고, 몸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집단은, 뇌, 심장, 간장, 췌장, 위, 장 등을 형성하고, 이것은 그대로 태양이며, 아홉 개의 별들(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을 의미하고, 며이루고 있다.  심지어, 대우주에 전개하는 많은 태양계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집단군과 마찬가지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人間は肉体のほかに心(意識、あるいは魂)を持っている。その心は、肉体という衣(ころも)衣を通して、物質界、現象界に調和をもたらすことを目的とする反面、大宇宙の心に同通し、それぞれの役割に応じた使命を担っている、生き通しの意識である。
인간은 육체 외에 마음(의식, 혹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은, 육체라고 하는 의복(衣) 옷을 통해서, 물질계, 현상계에 조화를 가져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대우주의 마음에 동통하고, 저마다의 역할에 부응하는 사명을 담당하고 있다.  끝까지(계속해서) 살아 있는 의식이다.

 

肉体は仮の宿にすぎない。物質と非物質の世界は、交互に循環することによって、調和という運動形態を永遠に持続するためにあり、このため、肉体という物質は時が経てば、物質的形態を変えた世界に戻ら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ある。
육체는 잠시 머무르는 곳에 불과하다.  물질과 비물질의 세계는, 번갈아 순환하는 것에 의해서, 조화라고 하는 운동 형태를 영원히 지속하는 목적에 있고, 이 때문에, 육체라고 하는 물질은 시간이 경과하면, 물질적 형태를 바꾼 세계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しかし、人間の意識、心、魂は、物質、非物質に左右されず、永遠に、その姿を変えることはない。
하지만, 인간의 의식, 마음, 영혼은, 물질, 비물질에 좌우되지 않고, 영원히, 그 모습을 바꾸는 일은 없다.

 

このように人間の意識は、神の意識に通じながら、物質という現象界と、非物質の意識界を循環し、個の意識である魂を持って、生き続けているのである。
이와 같이 인간의 의식은, 신의 의식에 통하면서, 물질이라고 하는 현상계와, 비물질의 의식계를 순환하고, 개인의 의식인 영혼을 가지고, 계속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神の子とのしての人間が、現象界において何故に悪をつくり出したか、不幸をどうして生み出したか。
신의 자녀로서의 인간이, 현상계에서 무슨 까닭으로 악을 만들어 냈는가, 불행을 어째서 새롭게 만들어 냈는가?

 

それは肉体の自分が自分であると思うようになり、肉体にまつわる諸々の考え方が、本来、自由自在な心を、肉体の中に閉じこめてしまったためにほかならない。
그것은 육체의 자신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육체에 휘감기는 여러 가지의 많은 사고방식이, 본래, 자유자재한 마음을, 다른 것이 아닌 육체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에 만들어 낸 것이다.

 

全能の神が人間の不幸を予測できないはずはないと誰しも考えよう。不幸を事前に、どうして防げないかと。では人間の親子がしばしばちがった方向にどうして歩んでしまうのだろう。子供は成人すると親の自由にならない。子は子としての人格と主体性を持っているからである。神と人間もこれと同じで、主体性をもつ人間を自由には出来ない。自由に行使できる者は、神の子である人間自身であるからである。
전능한 신이 인간의 불행을 예측할 수 없을 리는 없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불행을 사전에, 왜 막지 않는가 라고.  그럼 인간의 부모와 자식이 자주 잘못된 방향으로 어째서 걸어가 버리는 것일까?  자식은 성인이 되면 부모의 마음대로 안 된다.  자녀는 자녀으로서의 인격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주체성을 가지고 인간을 마음대로는 할 수 없다.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신의 자녀인 인간 자신이기 때문이다.

 

神は調和という中道の中で、厳然と生命の火を燃やしている。人間が、その自由の権能をみだりに使い、中道に反した創造行為をすれば、その分量だけ、反作用が伴うよう仕組んでいるのである。そうすることによって、神と人間の絆が保たれ、調和という永遠の目標に向かうように計画されている。人間の魂が肉体に宿ると五官にふりまわされる。五官とは眼、耳、鼻、舌、身の五つである。この五官に、魂・意識が幻惑される。美しいものを見ると欲しいと思う。気持ちの良い香りには心がひかれる。自分の都合の良い話には、つい乗ってしまう。舌触りのよい物は食べすぎてしまう。苦役より楽な方に身を置きたい。肉体五官はこのように、人の心を動かして行く。
신은 조화라고 하는 중도 속에서, 엄연히 생명의 불을 불태우고 있다.  인간이, 그 자유의 권능을 함부로 사용하며, 중도에 반한 창조행위를 하면, 그 분량만큼, 반작용이 따르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에 의해서, 신과 인간의 유대(絆)가 유지되며, 조화라고 하는 영원한 목표를 향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인간의 영혼이 육체에 머물면 오관에 농락당한다.  오관이란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개이다.  이 오관에, 영혼・의식이 환혹(현혹)된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은 향기에는 마음이 끌린다.  자신의 형편(사정)이 좋은 이야기에는, 그만 넘어가 버린다(감언이설에 넘어가 버린다).  맛이 좋은 것은 과식해 버린다.  고달픈 육체 노동보다 즐거운 쪽에 몸을 두고싶어 한다.  육체 오관은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간다.

 

★환혹[幻惑]  《한자/국어/일본어사전》
사람의 눈을 어리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게 함. 환술(幻術)로 미혹(迷惑)함. 현혹.

 

五官が働かなければ肉体維持はむずかしくなる。さりとて、五官に心を奪われると欲望がつのってくる。欲望の源は五官にふりまわされる心の動きにあったわけである。諸々の欲望、争い、不調和、悪の根源は、五官に心を奪われる六根という煩悩にあった。
오관이 작용하지 않으면 육체유지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오관에 마음을 빼앗기면 욕망이 더욱 심해진다.  욕망의 근원은 오관에 농락당하는 마음의 움직임에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많은 욕망, 다툼, 부조화, 악의 근원은, 오관에 마음을 빼앗기는 육근이라고 하는 번뇌에 있었다.

 

さまざまな不幸は、肉体にまつわるこうした心の動き、カルパー(業)の想念行為によって生み出されていった。
다양한 불행은, 육체에 휘감기는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 카르파(업)의 상념행위에 의해서 창출되고 있었다.

 

業は執着である。執着は五官から生ずる肉体的想念が、魂に根を張ることによって作り出されて行く。地位、名誉、金、情欲、その他さまざまな欲望が、人間の神性仏性を侵して行く。
업은 집착이다.  집착은 오관에서 생기는 육체적 상념이, 영혼에 뿌리를 내리는 것에 의해서 창조되어 간다.  지위, 명에, 돈, 정욕, 그 외 다양한 욕망이. 인간의 신성불성(神性佛性)을 침해해 간다.

 

こうして人間は、その意識を、あの世と現象界であるこの世を循環するたびに、その業を修正して行く者もあるが、大部分の魂は、新たな業をつくって、輪廻している。
이렇게 해서 인간은, 그 의식을, 저 세상과 현상계인 이 세상을 순환할 때마다. 그 업을 수정해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혼은, 새로운 업을 만들며, 윤회하고 있다.

 

このために人類は、地上に仏国土を建設する前に、まず己の業を修正しなければならなくなった。
이 때문에 인류는, 지상에 불국토를 건설하기 전에, 우선 자기의 업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同時にさまざまな執着を生み出して来たがために、神性の自分から次第に遠のいていったのである。
동시에 다양한 집착을 낳아 왔기 때문에, 신성(神性)의 자신으로부터 차츰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しかし、人間の魂から神性仏性を捨て去ることは出来ない。他の動物、植物は、この地上の循環を維持するための媒体物であって、人間は、それらの媒体物を調和していく任を、神から与えられ、まかされているからである。
하지만, 인간의 영혼에서 신성불성(神性佛性)을 미련없이 버릴 수는 없다.  다른 동물, 식물은, 이 지상의 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매체물이며, 인간은, 그들의 매체물을 조화해 가는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고,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その証拠に、己の心に偽りの証を立てることはできない。人にはウソをいえても、自分には、ウソはいえない。文明文化は、人間の社会にのみあって、動物、植物の世界にはない。人間はどこまで行っても人間である。動物、植物もそれぞれの個性にしたがって転生を輪廻し、進化を続けるものである。しかし彼らが人間になることは出来ない。人間も彼らにかわることはない。水が土になることができないのと同じである。
그 증거로, 자기의 마음에 거짓 증언을 할 수 없다.  남에게는 거짓말을 할지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문명 문화는, 인간 사회에만 있고, 동물, 식물의 세계에는 없다.  인간은 어디를 가더라도 인간이다.  동물, 식물도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서 전생(환생)을 윤회하고, 진화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인간도 그들로 바뀌는 일은 없다.  물이 흙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人間が神の子の己を自覚し、業を修正し、本来の神性に戻るためには、神の心に触れなければならない。神性の我に帰るとは、苦界の自分から離れることである。生老病死のとらわれから脱皮することである。
인간이 신의 자녀인 자기를 자각하고, 업을 수정하고, 본래의 신성(神性)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신의 마음에 닿지 않으면 안 된다.  신성(神性)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감이란, 고계(괴육체적·경제적·정신적으로 괴로운 세계)의 자기 자신에게서 떠나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사로잡힘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神の心は中道という調和の大宇宙に流れており、その流れに自分の魂がふれるよう努力を惜しんではならない。
신의 마음은 중도라고 하는 조화의 대우주로 흘러가고 있고, 그 흐름에 자신의 영혼이 닿도록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된다.

 

一日は昼があって夜がある。決して一方に偏することがない。どんなに人類がふえても、空気、水の質量は変わらない。太陽の熱、光についても、その放射する質量を変えることがない。人間社会には男と女が生存する。男女の比は常に一定に保たれている。戦争、災害など人々の心が自己保存、我欲に傾かないかぎり、男女の比は均等に維持される。人間の肉体も、休息と運動という循環から切り離せない。夜も眠らずに仕事を続ければ、肉体的支障が現われ、精神の平衡を失ってくる。
하루는 낮이 있고 밤이 있다.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다.  아무리 인류가 늘어나도, 공기, 물의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태양의 열, 빛에 대해서도, 그 방사하는 질량은 변하는 일이 없다.  인간사회에는 남자와 여자가 존재한다.  남녀의 비율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전쟁, 재해 등 사람들의 마음이 자기보존, 아욕(我欲)으로 쏠리지 않는 한, 남녀의 비율은 균등하게 유지된다.  인간이 육체도, 휴식과 운동이라고 하는 순환에서 갈라 놓지 못한다.  밤에도 잠자지 않고 일을 계속하면, 육체적 지장이 나타나서, 정신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욕 [我欲·我慾]   《일본어사전》 ①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すべての生命、物質は、このように、中道から離れては保たれないようにできている。悲しみや苦しみは、こうした中道から離れた想念行為があるからである。
모든 생명, 물질은, 이와 같이, 중도에서 떠나서는 유지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슬픔이나 괴로움은, 이러한 중도에서 떠난 상념행위(想念行爲)가 있기 때문이다.

 

中道の心は、毎日の生活行為に対して、反省し反省したことを実践することから得られる。実践には努力が伴う。勇気がいる。智慧を働かせれば、業の修正は以外に早まるだろう。
중도의 마음은, 매일의 생활행위에 대해서, 반성하고 반성한 것을 실천하는 것에서 얻을 수 있다.  실천에는 노력이 따른다.  용기가 있다.  지혜를 활용하며, 업(業)의 수정의 속도는 이외로 빨라질 것이다.

 

反省の尺度は、八つの規範がモトである。「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進」「正念」「正定」である。
반성의 척도는, 여덟 개의 규범이 근본(기초)이다.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진」「정념」「정정」이다.

 

人の心は、こうした規範を尺度として、毎日の生活行為の中で、正しく修正されて行く。
사람의 마음은, 이러한 규범을 척도로 해서, 매일의 생활행위 속에서, 올바르게 수정되어 간다.

 

人間の魂は、生き通しの意識である。肉体は時が経てば脱ぎ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中道の心にふれると、こうした摂理(ことわり)が明らかになり、神の意識である永遠の安らぎを保つことができよう。
인간의 영혼은, 끝까지(계속해서) 살아 가는 의식이다.  육체는 시간이 경과하면 벗어서 던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중도의 마음에 닿으면, 이러한 섭리(攝理)가 밝혀지고, 신의 의식인 영원한 평안을 유지할 수가 있다.

 

意識が拡大すると、宇宙をかたどっている太陽をはじめとした星々(惑星郡)が、すべて自己の意識の中で回転し、そうしてその中で呼吸する一切の生物は、我が肉体の一部であることに気付く。
의식이 확대되면, 우주를 상징하고 있는 태양을 비롯한 별들(혹성군)이, 모두 자기의 의식 속에서 회전하고, 그렇게 해서 그 속에서 호흡하는 일체의 생물은, 나의 육체의 일부인 것을 깨닫는다.

 

人は宇宙大の意識を持って生活している。肉体にその意識が小さく固まり、とどまるために、宇宙大の自己を見失ってしまうのだ。小さな人間になっても、神は、人間の生存に必要な環境を与えている。もだえ、迷い、地獄に身を焼く人間に対しても、神は、心棒強く、救いの手を差し伸べている。太陽を与え、水を与え、空気を与え、土地を与え、食べ物を与えている。我が子の行く末を案じぬ親がないのと同じように、神は人間に、無限の慈悲を与えている。
사람은 우주대의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육체에 그 의식이 작게 굳어져서, 머물기 때문에, 우주대의 자기를 보고 있던 것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작은 인간이 되더라도, 신은, 인간의 생명에 필요한 환경을 주고 있다.  괴로움(번민)하고, 미혹되어, 지옥에서 몸을 태우는 인간에 대해서도, 신은, 중심이 되어 강력하게,  인물이 되어 강하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태양을 주고, 물을 주고, 공기를 주고, 토지를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있다.  내 자식이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은 인간에게, 무한한 자비를 주고 있다.

 

人間は、その慈悲に応(こた)えなければならない。応えることによって、人間は神性の己を自覚するのだ。
인간은, 그 자비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답하는 것에 의해서, 인간은 신성(神性)한 자기를 자각하는 것이다.

 

神は平等を宗としている。その証拠に、太陽の熱、光はあまねく万生万物平等に照らし続けている。差別することがない。人間社会に階級が生まれ、貧富が生じ、競争意識に心が翻弄されることは、神の意に反する。能力の別、力の相違、得手不得手は、すべて努力の所産であるが、しかしだからといって、神の子の人間に、上下の差別をつくる理由にはならない。
신은 평등을 으뜸으로 하고 있다.  그 증거로, 태양의 열, 빛은 널리 만생만물에게 평등하게 계속해서 비추고 있다.  차별하는 일이 없다.  인간사회에 계급이 탄생하고, 빈부가 생기고, 경쟁의식에 마음이 농락당하는 것은, 신의 뜻에 반한다.  능력의 차이, 힘의 상위,  어떤 일을 잘하고 잘 못하고는, 모두 노력의 소산이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의 자녀인 인간에게, 상하의 차별을 만들 이유로는 될 수 없다.

 

人にはそれぞれ太陽系の姿と同じように、役割がある。人間の五体にも胴があり、手足があり、頭がある。それぞれがその役割に応じた務めを果たすことによって、太陽系が保たれ、五体が満足に動いて行く。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태양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역할이 있다.  인간의 오체에도 큰창자(몸통, 복부)가 있고, 손과 발이 있고, 저마다가 그 역할에 부응한 임무를 다하는 것에 의해서, 태양계가 유지되며, 오체가 만족하게 움직여진다.

 

中道に接する事は、己を知る、もっとも早道な方法なのである。
중도에 접하는 것은, 자기를 아는, 가장 빠른 길인 방법인 것이다.

 

人類の歴史は、己を知ることよりも、我欲を満たすための歴史であった。闘争と破壊は、そのために繰り返された。己を知り、人間の目的を悟れば、現象界の小さな自分に、心を奪われることがなくなる。
인류의 역사는, 자기를 아는 것 보다도, 아욕(我欲)을 충족시키기 위한 역사였다.  투쟁과 파괴는, 그 때문에 되풀이되었다.  자기을 알고, 인간의 목적을 깨달으면, 현상계의 작은 자기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진다.

 

★아욕 [我欲·我慾]   《일본어사전》 ①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人々は苦界からのがれようと、さまざまな信仰を持っている。肉体を痛め、苦行を積めば救われる、自己が発見できるとしており、また拝めば功徳がある、祈れば安穏の生活ができると信じている。大きな間違いである。苦行は、肉体に心をしばり、祈ればよいとする他力は、人間の神性を失わしめる。いずれも片寄った信仰である。中道の神理は、神に通じたウソのつけない己の心を信じ、八正道という生活行為を為して行くところにある。真の安心は、自己満足や逃避ではない。自分の生死を見られる自分が確立できてこそ、安心というものが得られる。
사람들은 고계(苦界)에서 벗어나려고, 다양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육체를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고, 고행(고통스런 수행)을 쌓으면 구제(구원)을 받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며, 또한 합장 배례하면 공덕이 있고, 빌면 안온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고행(苦行)은, 육체에 마음을 속박하고, 빌면 좋다고 하는 타력은, 인간의 신성(神性)을 잃어버리게 한다.  어느 것이나 다 치우친 신앙이다.  중도의 신리는, 신에게 통한 거짓말 할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믿고,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 생활행위를 행해 가는 데에 있다.  참된 안심은, 자기만족이나 도피가 아니다.  자신의 생사를 볼 수 있는 자신이 확립되어야만 비로소, 안심하다고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人間は神の子である。神は天地を創造された。人間もまた己の天地を調和させ、自己のおかれた環境を調和して行くものである。神から与えられたその肉体を痛めることでも、あなたまかせの他力に自己満足するものでもない。
인간은 신의 자녀이다.  신은 천지를 창조하셨다.  인간도 또한 자기의 천지를 조화시키고,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조화해 가는 것이다.  신에게서 부여받은 그 육체를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도, 당신이 하는 대로 내맡긴 타력에 자기만족을 하는 것도 아니다.

 

世はまさに末法である。
세상은 정말로 말법이다.

 

正法という中道の神理を失い、人類は迷いの中に埋没している。この迷いから人々を救うには、正法という法灯を点じ、大自然の慈悲に、めざめ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
정법이라고 하는 중도의 신리를 잃어버리고, 인류는 미혹(迷惑) 속에 매몰되어 있다.  이 미혹(迷惑)에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에는, 정법이라고 하는 법등을 켜고, 대자연의 자비에,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

 

法は慈悲と愛を喚起する力である。神は無限の慈悲とその力をもって、正法を信ずる者の行く手に、光明の道をひらいてくれよう。
법은 자비와 사랑을 환기하는 힘이다.  신은 무한한 자비와 그 힘을 가지고, 정법을 믿는 사람의 앞길에, 광명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人間釈迦 No-1 P157~ 인간석가  제1권 페이지 157~ 

高橋信次先生著 人間釈迦より  三宝出版より販売中

1.人間釈迦 No-1 P111~
2.人間釈迦 No-1 P238~
3.人間釈迦 No-2 P036~
4.人間釈迦 No-2 P100~
5.人間釈迦 No-2 P139~
6.人間釈迦 No-2 P217~
7.人間釈迦 No-3 P183~
8.人間釈迦 No-3 P218~
9.人間釈迦 No-3 P227~
10.人間釈迦 No-3 P236~
11.人間釈迦 No-3 P250~
12.人間釈迦 No-4 P11~
13.人間釈迦 No-4 P35~
14.人間釈迦 No-4 P131~
15.人間釈迦 No-4 P135~
16.人間釈迦 No-4 P184~
17.人間釈迦 No-4 P245~
18.人間釈迦 No-1 P157~


  - 終了 -  
    - 종료 -

 

2011.07.18 UP

高橋信次先生著 人間釈迦より  三宝出版より販売中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인간석가에서.  (일본) 삼보출판사에서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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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석가는 총 4권으로 구성된 고 다카하시 신지님의 저서입니다.

 


 

※출처 : http://www.shoho2.com/index.html  , 정법(쇼호)

 

※『正法』 高橋信次先生・園頭広周先生が説かれました正法・神理を正しくお伝えいたします。

정법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이 설명하신 정법・신리를 올바르게 전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시는 분이 사이트입니다.  이분은 사이트에서 이름을 밝히고 계시지 않으시며, 프로필에 후쿠오카 현(福岡県)에 살고 계시는, 1950년 생이시고, 회사원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올해로 환갑이 막 지나신 분이시네요.

 

※번역 : 신선한 미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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