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인생의 목적에 맞는 것이 선(善)이며, 인생의 목적에 맞지 않은 것은 악(惡)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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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에 맞는 것이 선(善)이며, 인생의 목적에 맞지 않은 것은 악(惡)이다

어둠의골짜기 2013. 2. 20. 22:20


아래의 내용은 예전에 올린 바 있는 내용의 제목이며, 그 내용들 중에서 일부를 다시 올려 볼까 합니다.


2013년 02월 20일 수요일에 올려 봅니다. 

번역을 할까 말까 생각 중입니다. 

저는, 원본 그대로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니까, 이미 가르침의 글에 번역해서 올린 글이 있으니.


그래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도 있고, 전혀 인연이 없어서, 본 적이 없는 분을 위해, 대강 우리말로 올립니다. 



特 集 因縁を越える道-正法の目的はここにある


특집 


인연을 초월하는 길-정법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중략>


カルマの法則、因縁因果の法則、これは原因結果の法則であり、釈尊は「因縁」といわれた。現在の自分は、過去の輪廻転生の因縁によるものであるから、現在の自分の生まれた環境、立場を呪うことは、自分で自分を呪っていることであり、その怨み心が根本にあったのでは一生その人は幸福になれないのである。だから正法の実践は、まず自分の生まれた環境を、自分自身の責任として受け止め、その環境に心から感謝することから始め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その感謝の方法が、一つは先祖に対する感謝であり、親に対する感謝即ち親孝行である。

카르마의 법칙, 인연인과의 법칙, 이것은 원인결과의 법칙이며, 석존은「인연(因縁)」이라고 하시었다.  현재의 자기 자신은, 과거의 윤회전생의 인연에 의한 것이므로, 현재 자신의 태어난 환경, 입장을 저주함이란, 스스로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 것이며, 그 원망하는 마음이 근본에 있었던 것은 일생 그 사람은 행복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정법의 실천은, 우선 자기가 태어난 환경을,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서 받고, 그 환경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일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감사의 방법이, 한 가지는 선조에 대한 감사이며, 부모에 대한 감사 즉 친효행(효도)이다. 

 運命をよくしようと、いくら祈ってもよくならなかったという人は、まず、生まれた環境に感謝していたかを反省することである。していなかったことに気付いたら、まずじっくりと生まれた環境に感謝することである。
それだけでも運命は好転してゆくのである。

운명을 좋게 하려고, 아무리 기도해도 잘 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우선, 태어난 환경에 감사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일이다.  감사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깨달으면(알아차렸다면), 우선 차분하게 환경에 감사하는 일이다. 

그만큼이라도 운명은 호전되어 가는 것이다. 



 生まれた環境、その中には、自分の顔形、性格すべてが含まれる。

태어난 환경, 그 속에는, 자신의 용모, 성격 전부가 포함된다. 


<중략>


高橋先生が強調された反省は慈悲と愛の心を基準としての反省があったのである。慈悲と愛の心が展開すると八正道になる。

다카하시 선생님이 강조하신 반성은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기준으로 한 반성이었던 것이다.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전개되면 팔정도가 된다.


<중략>


神仏の当体であるわれわれは、慈悲と愛の環境であるこの地球上に、われわれの魂の本質である慈悲と愛を顕現することによって、霊を向上することに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신불의 몸인 우리들은,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이 지구상에, 우리들의 영혼(魂)의 본질인 자비와 사랑을 현현하는 것에 의해서, 영혼(霊)을 향상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중략>


調和といっても、それが真の調和であるかどうかは、慈悲と愛の心を中心とした調和であるかどうかを考え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る。

조화라고 해도, 그것이 조화인지 아닌지는,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중심으로 한 조화인지 아닌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その人が、病気であり、不幸であるということは、内在されているわれわれの霊の本質である、慈悲と愛の心を、与えられた自分の環境に顕現させ行動化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結果なのであるから、この病気、この不幸を治そうと、心の中に常に病気や不幸を描いて「治したい」と祈ることは、心に描いたものが形になって現れるのであるから、ますます病気や不幸を持続させることになるのであって、だからして、神仏の慈悲と愛の当体である事実を、そのまま素直に認めて、どこに、どこから、その慈悲と愛を表現しようかと考え、考えた通りに慈悲と愛の心を表現すると、病気や不幸は治ることになるのである。그 사람이, 병이 걸리고,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내재되어 있는 우리들의 영혼의 본질인,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주어진 자기 자신의 환경에 현현시켜 행동화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는 결과인 것이므로, 이 병, 이 불행을 고치려면(낫게 하려면), 마음속에 항상 병이나 불행을 그리며 「낫고 싶다(治したい)」고 기도하는 것은, 마음에 그린 것이 형태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므로, 점점 병이나 불행을 지속시키게 되는 것이며, 그래서, 신불의 자비와 사랑의 몸인 사실을,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어디에, 어디에서, 그 자비와 사랑을 표현할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면, 병이나 불행은 치료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われわれは、神仏の慈悲と愛の当体であって、この地球は、神がつくられた慈悲と愛の環境なのである。人生のすべての出来事が、善であるか、悪であるかを決定するのは自分であ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우리들은, 신불의 자비와 사랑의 몸이며, 이 지구는, 신이 만든 자비와 사랑의 환경인 것이다.  인생의 모든 사건이, 선인지, 악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人生の目的に叶うことが善であり、人生の目的に叶わないことは悪である」
「인생의 목적에 맞는 것이 선이며, 인생의 목적에 맞지 않는 것은 악이다」


「因縁の法則」は確かに実在する。しかし、その因縁の法則を超える道が、「慈悲と愛を顕現」する道である。

「인연의 법칙」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인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길이, 「자비와 사랑의 현현」하는 길이다.


われわれは死んだ時、必ず反省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生きている間にどういうことをしてきたかを全部映画のように見せられて反省するのである。反省しないものには大きな霊的ショックが与えられる。その時、霊はもがき苦しむことになる。その反省を求められている期間を中有ちゅううに迷う」というのである。

우리들은 죽을 때, 반드시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떠한 일을 해 왔는지를 전부 영화처럼 보여지며 반성하는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큰 영적쇼크가 주어진다. 그 

때, 영혼은 발버둥치며 괴롭게 된다.  그 반성을 요구되어 있는 기간을 「구천을 떠돈다(中有ちゅううに迷う)」라고 하는 것이다. 


★중음에서 죽은 이의 망령이 성불하지 못하고 헤맨다. 라고 직역할 수도 있습니다. 

★49일 동안 삼도천에서 헤맨다, 라고도.

★중유[中有] 중음 ※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영혼이 헤매는 49일간.(불교용어)

★[불교] 사유(四有)의 하나. 사람이 죽은 뒤 다음의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이른다.(국어사전) 이라고도 합니다. 


<중략>


如来と如来に常随する菩薩は、正法を正しく説くことができないような時代は絶対に選ばない。正法を正しく説くことができる時代を選んで出生するのである。

여래와 여래에게 심부름(chángsuí 常随)하는 보살(菩薩)은, 정법을 올바르게 설법할 수 없는 시대는 절대로 택하지 않는다.  정법을 올바르게 설법할 수 있는 시대를 택해서 출생하는 것이다.


<중략>


自己保存をなくするとは、人生の目的を知って、どんな人の立場も理解でき、(完全に理解できない間はそうなろうと努力して)精神的にも肉体的にも変化が起きて、慈悲と愛の心を顕現しようとする姿勢が整ったときである。そうなれば運命の変化が形の上にも現れてくるのである。

자기보존을 없애는 데에는, 인생의 목적을 알고, 어떤 사람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동안은 이해하려고 노력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나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현현하려고 하는 자세가 갖추어졌을 때이다.  그렇게 되면 운명의 변화가 형태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正法の生活とは、因縁の世界に住みながら因縁を超える道を生きることである。

정법의 생활이란, 인연의 세계에 살면서 인연을 초월하는 길을 살아가는 것이다. 


高橋先生はお釈迦さまだったのであるから、これまで伝えられてきたお経の中からお釈迦さまの教えを探ろうとするよりも、高橋先生が現代語で話、また書かれたことをそのまま受け取る方が賢明である。

다카하시 선생님은 석가모니(釈迦さま:釈迦牟尼)였던 것이므로, 지금까지 전래되어 온 불경 속에서 석가모니(釈迦さま:釈迦牟尼)의 가르침을 깊게 하려고 하기 보다도, 다카하시 선생님이 현대어로 이야기하고, 또한 책으로 쓰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현명하다. 



 慈悲と愛の道の実践、人生を善とするか悪とするかを決意するのは自分なのであるから信仰は自力でなければならない。
자비와 사랑의 길의 실천, 인생을 선하지 알지 악하게 할지를 결의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이므로 신앙은 자력이 아니면 안 된다.

 思考を停止して盲目的にいくら狂信して他力信仰をしてみても、それによって救われることは絶対にないのである
。사고를 정지해서 맹목적으로 아무리 맹신해서 타력신앙을 해 보아도, 그것에 의해서 도움을 받을 수는(구원될 수는, 구제될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月刊誌 正法67号 (1984.03月)より
월간지 정법 67호(1984년 03월)에서


2011.01.15 (이름을 밝히지 않으시는, 1950년 생이신 후쿠오카현(福岡県) 살고 계시는 회사원)께서 이 날짜에 올려 주시었다는 의미입니다.

http://www.shoho2.com/s2-6innenwokoeru.html


園頭広周先生 略歴 (そのがしら ひろちか)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鹿児島県出身。가고시마현 춣신.
  1918
220日生まれ、1999220日没:享年81歳 1918.2.20~1999.2.20 :향년 81세
 宗教家。宗教法人GLA西日本本部長を経て、종교가. 종교법인 GLA 서일본 본부장을 거쳐,
 正法会(後、国際正法協会と改称)の創始者。정법회(후에, 국제정법협회로 개칭)의 창시자.



이 분이 바로 정법회를 창시하시었고, 이 분의 바로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1927921日生まれ、1976625日没:享年48) 선생님의 수제자이신, 전생에서의 사리불(舍利佛)이시다.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려고 해서, 올려보았습니다. 문득 문득 책을 읽을 때나, 걸을 때나,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마음속의 수호령이 귀띔을 해 줍니다.  어떻게?

생각으로 번쩍하고 떠 오릅니다.  

짠 하고 나타나서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마음의 눈 즉, 심안이 열리지 않아서, 보고 듣지를 못합니다.

간혹, 특히 지옥에서 온 손님의 경우, 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자세히 알려드렸을 때, 몇 분들이, 고맙다고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시는 모습이, 마음의 눈으로 보일 때가 간혹 있긴 합니다.  


그럴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곤 합니다.


살아 숨쉬고 있는, 즉 육체를 입고 사는 인간은, 쉽게 알려드려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대부분, 자기가 듣고자 하는 말만 듣곤 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의 병이라든가, 외상이 아닌 육체의 병을, 고치려고 애쓰는 분들 중에서도, 지금은, 상담? 하면 좀 그렇지만, 이메일이나 전화상으로 대화를 해 보면, 솔직하게 자기 자신의 상태와 가족분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여러가지 상황들을 전혀 말씀하시지 않기에, 도움을 드리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ㅡ 즉 현상들에 대해서는, 코웃음치는 경향이 많기에 그런 듯 합니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방명록에, 고맙다고 하시면서 짧지만 깊은 고마움을 표하시는 분이 계시었습니다. 또한, 제가 알고 있는 분, 바로 그 분이신 듯한 분이, 그 분이 맞다면, 저보다 20살이나 더 나이가 드신 분이, 안부의 인사를 전해 오시었습니다.  사이버 상에는, 본명이라든가 어느 지역에 사는 누구인지를 밝히시지 않기에 그렇기도 하고, 

사실,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에, 제가 직접 두 눈으로 본 분은, 아마도 3명인 듯 합니다. 


제 블로그에 보면, 님그림자 라고, 닉네임이 있습니다.

한 때, 카페 활동이라면 좀 그렇지만, 자주 모 카페에 글을 간혹 쓸 때, 닉네임인 님그림자를 보고, 제가 여성인줄 알고, 대쉬를 하려고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후는, 일체의 카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간혹 카페에 들어가도, 댓글 정도만 다는 정도입니다. 


여러분,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를 때에, 책을 통해서 배운, 더 쉽게 말해, 무협지 광으로, 약 10년간 만화책 방이란 방을 다 뒤져가며, 무협지를 볼 때, 안 내용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화엄경(華嚴經)》(산스크리트어: महावैपुल्यबुद्धावतंसकसूत्र Mahāvaipulya Buddhāvataṃsaka Sūtra[1], 영어: Avataṃsaka Sūtra) 또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초기 대승불교의 중요한 경전임]라고 하는 말을 본 게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마다 해석이 다 천차만별인 듯 합니다.

어떤 이는,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라고 하기도 하고,

한자 그 자체로 해석하면,

일체 즉 모든 것은, 만상만물은,

오직, 오로지, 

심조 즉 마음이 만든다.


모든 천지만물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라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반야심경이라고 하는 현장삼장법사가, 그 방대한 불교경전을 몇 글자로 짧게 압축한 제목에도 역시,

심경이라고 했듯이, 마음의 경전.  이것을 신지님은, 더 나아가 심행(心行)이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단지, 경전 즉 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내용을 잘 이해하고, 마음으로 안, 깨달은, 이해한, 그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하시었습니다.


태초(In the beginning)에 엘로힘(Elohim)이 천지를 창조 즉, 만들었다(Created)

무엇으로, 마음으로 즉 신불의 뜻(意) 즉, 신의(神意)로.

제 생각입니다만, 

천지만물을, 영적으로 만들고 난 후, 그 이미지를, 현상화 한 것이, 현재의 우리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명을 할 때도,

마음으로 그 심상을 그리고 난 후, 기록으로 남기고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로 모양으로 만들어 내듯이.


....

자비와 사랑.

자비와 사랑.


15분 뒤면, 밤 10시가 됩니다.

제가 또 자! 라고 부르는 분이 있습니다. 

그 또 자, 라는 분이 곧 주무시겠네요.  딱 10시가 되면, 자동으로 잠이 듭니다.

자동입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불이일체(不二一體)라고 합니다.  바로 그런 분입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우리의 현재의 몸은, 피를 흘리는, 육체의 몸이며, 우리가 저세상으로 돌아간 후의 몸은, 영(靈)의 몸으로 되돌아 갑니다.  현재 우리는, 육신의 몸과 령체(靈體)인 바로, 영혼이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돌아가시기 전에, 어디로 고향인 천국으로, 열심히 벌어놓은 것 중에, 여유가 있으시면,

주변의 이웃에게 나누어 주시고, 돌아가실 때, 내 것, 내 것, 아까워, 하시며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하시지 마시고, 다 버리고, 이 세상에 남겨 두고 가시는 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바로 앞의 글에, 아기가 엄마의 자궁안에서 헤엄치며 즐겁게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뛰놀고 있는 것을, 

적었습니다.  가장 편안한 상태,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 가는, 그 육의 옷을 입은 상태에서의, 가장 평온한 상태의 모습으로.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이,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이르지 못하리라...하시었지 않나 봅니다.


자연지리(自然之理)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온의 상태라 봅니다.

자연의 도리와 이치라고 하는 말인데, 

사슴이란 동물은 아주 민감한 동물입니다.

아주 순수한 마음의 조화된 상태가 아니라면, 인간이 곁에 와서 뛰놀지 않습니다.


우리도 사슴이 곁으로 다가와 함께 뛰놀게 하는 마음의 소유자들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

사슴은, 아주 겁이 많거든요.

제가 29살 때,

산 속에서, 한 1년간 산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형님 부부가, 사슴을 길렀습니다.

숫사슴은 아주 사납습니다.  

암사슴은, 아주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 내며, 특히 눈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눈은 본 적이 없습니다.

속눈썹은 얼마나 길고 이쁜지 모릅니다. 


숫사슴은, 아주 사납습니다.  

그런 사슴들에게 칡줄기를 뜯어다 주곤 했습니다.

아주 잘 먹습니다.

잎이 싱싱한 칡을 사슴 우리에 들어가서 주려고 하면, 이들 중에 숫사슴들이 먼저 다가옵니다.

아주 거칠고 거칩니다.

그렇지만, 내가 먹이를 줄 때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나를 본 채 만 채, 그저 칡줄기 중에 잎사귀를 뜯어 먹으려고 고개들을 들이 대곤 합니다.


그 동장 가운데 아주 큰 감나무들이 몇 그루 있었습니다.

땡감이라서 먹기가 곤란한 열매라서, 저희들이 먹지 않고, 저는 그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서,

얌전한 그리고 특히 암사슴들에게 주로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넘이 고약한 성질 사나운 숫사슴들이 다가옵니다. 

자기가 먹으려고 말입니다. 

그래서 손으로 감싸서 숨기면, 허허허

저는 아랑곳 않고, 손안에 든 것만을 먹으려고 혀를 내밉니다. 

그래서 뺏기곤 했습니다.


동물원 담장 안에 갇혀 사는 동물들 참으로 가엾기 그지 없습니다.

너른 자연 그대로의 너른 장소에 울타리만 쳐 놓고, 자주 청소를 해 주면서 저는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꼭 사슴을 보려 가 보십시오. 

그것이 동물원이라고 해도.  특히 암사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아 보십시오.

눈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겁이 많으니, 살기를 내뿜으면 아니 됩니다.

바로 달아납니다.

어디로, 어미에게로, 그리고 겁을 주거나 하면, 숫사슴들이 공격태세를 취하며, 방어를 합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같습니다.

아주 똑같습니다.

어린 사슴들이 있을 때는, 숫사슴들은, 아주 성질이 날카로워집니다.


먹이를 자주 주는, 주인이라면 모를까, 먹이를 준다고 해도, 애정을 가지고 주는 사람에겐,

발길질을 하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발정기가 되면, 숫사슴들은, 아주 사납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게 8~9월인가, 9~10월인가 입니다. 

아주 사납게 숫놈들끼리 암사슴 쟁탈전을 합니다.


이 시기에는, 주인도 조심을 합니다.

그렇지만, 먹이를 주려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면, 달라지더라구요.


닭고기를 몇 해 동안, 안 먹은 적이 있습니다.

닭이 병아리 때 몇 십마리 와서, 어른 닭이 되어 갑니다.

모이를 줍니다.

산 속에서, 울타리도 없습니다.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밤이 되면, 어른 닭들이 몇 마리 없어집니다.

야생동물들이 다가와 물어가곤 합니다.  그 중에 살아남은 어른닭들은, 그 큰 대나무 위로 훼를 치며 날아오르는 넘들이 있곤 했습니다.  대장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먹이를 주려고 꼬꼬꼬 하고 부르면, 일제히 여기 저기 숲에 들어가 먹이를 찾거나,

땅바닥을 파서 들어가 졸고 있던 녀석들도,

일제히 저에게 달려 옵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놀리곤 하는데, 닭들, 바보가 아닙니다.

자기들을 해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더라구요.

내가 땅바닥에 앉아서 모이를 주면, 

무릎 위, 어깨 위, 머리 위에 올라와서 놀곤 했습니다.  

내가 닭의 머리나 날개를 가볍게 쓸어 주면, 꾸벅꾸벅 졸기도 했습니다. 

가끔 산속 농장에 손님이 오시거나, 아니면 백숙이 먹고 싶을 땐, 형님 부부가 닭을 잡곤 했습니다.

그럴 땐 닭들이 난리가 납니다.

다들 달아납니다. 

그래도 몇 마리를 잡혀, 음식으로 화합니다.

그 당시, 저는, 그 닭들은, 먹지 않았습니다.  정이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바른 동식물에 대한 것을 배웠기에,

여러분들이 희생하여, 제 몸이 피와 뼈와 살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고 먹습니다.  그럼 탈이 없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생전에 음식을 가리시지 않았습니다.  육식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술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앙~ 무슨 소리냐구요.

포도주?

술 아닌가요?

신문인가에 보니, 종교인들 중에, 술을 가장 많이 즐기는 분들이, 천주교인들이라 하시데요.

실제로 천주교에 가 보았드랬습니다.

성당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식당에 가 보았습니다.

맥주랑 소주랑 음료수랑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하하 신기했습니다.


사실, 술이란게, 알다시피, 자연에서 나오는 곡물이나 식물의 열매로 담습니다.

과하지 않고 술취해서 정신을 잃지 않으면 좋은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술을 끊은지 오래 되서 안 마십니다만.


10시 20분이 되어 갑니다. 

편안히 주무시고 편안히 일어나십시오. 

혹 주무시다 저 세상으로 가신 분이 계시다면,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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