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본문
오늘의 번쩍 생각이 난 말은,
종교적인 생활을 하면서, 무조건적인 순종과 자기 희생에 대한 의문을 갖지도 못하게 하는,
의문을 가지는 순간, 고해를 해야 하는 그런 생활에서,
스스로 수녀(nun)의 맹세를 깨고, 그 맹세란,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던,
파계라고 하면, 파계를 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님이 1959년에 수녀의 역할로 나왔던 영화에서
매일 매일의 대화나 생각등에 대해서, 원장 수녀에게 매일 자기 고백 즉 죄에 대한 고해를 해야 하는 삶을
살면서 종교적인 삶과 현실에서 부딪치는 삶에 있어서,
어떠한 의문를 가지는 순간, 다시 죄를 짓는 것이 되어(종교적인 교리에 의한), 고뇌의 나날을 보내다,ㅡ
파계를 한 내용을 다룬 영화에서...
원장 수녀님은, 그녀가, 아주 모범적이며,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랑스러운 수녀라고 말하며,
파계를 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루크 수녀 역을 했던 그녀가 말하길,
어떠한 일에 의문을 갖지도 못하는 그런 생활은 하지 싫다. 는 것이었다.
나 역시, 기독교인로서 18세부터 42세까지 생활을 해 왔었는데, 그 와중에 무수한 성경에 대한 글들의 의문이 들어서,
여러 교회의 형제와 자매 그리고 목사님들에게 그 의문을, 여쭈어 볼 때 마다,
나는 종교상의 죄인이 되었고,
신앙심이 부족한 형제라는 낙인이 찍혔었고,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에 따른 죄책감을 자주 갖게 하며,
또한 나의 생각들 즉 교회에서 말하는 목사님이 말이나 다른 분들이 말과 행동과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른 행동을 하는,
외식하는 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끼고, 그것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죄인이 되었고,
교회에서 왕따를 당하던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가장 의문이 들었던, "외식하는 자" 이렇게 번역된 성경구절의 뜻은, "위선자"였는데.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역에서는, 외식하는 자여, 라고. 아주 대단한 오역(誤譯)입니다.
공동번역과 새번역과 현대인의 성경과 일본어판 신동공역과 NIV와 NASV와 역시 일본어판 신개역과 구어역(口語譯)에서는,
정확하게, "hypocrite[hípəkrit]
위선자, 가장, 착한 체하는 사람, 히퍼크리트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던 당시에는, 외식하는 자(.......外食 말그대로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고 밖에서 사먹는 것이죠.
또 다른 외식(外飾)은 겉만 보기 좋게 꾸며내는 일,)여, 라고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그 귀절이 나와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누가복음 6장 전체 중에서, 바로 42절입니다.
自分の 目にある 梁は 見ないでいて, どうして 兄弟にむかって, 兄弟よ, あなたの 目にあるちりを 取らせてください, と 言えようか. 僞善者よ, まず 自分の 目から 梁を 取りのけるがよい, そうすれば, はっきり 見えるようになって, 兄弟の 目にあるちりを 取りのけ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Either how canst thou say to thy brother, Brother, let me pull out the mote that is in thine eye, when thou thyself beholdest not the beam that is in thine own eye? Thou hypocrite, cast out firs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pull out the mote that is in thy brother's eye. (KJV)
Either how canst thou say to thy brother, Brother, let me pull out the mote that is in thine eye, when thou thyself beholdest not the beam that is in thine own eye? Thou hypocrite, cast out firs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pull out the mote that is in thy brother's eye. (NSIV)
Either how canst thou say to thy brother, Brother, let me pull out the mote that is in thine eye, when thou thyself beholdest not the beam that is in thine own eye? Thou hypocrite, cast out firs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pull out the mote that is in thy brother's eye. (NIV)
위의 영문에서는, 다들 위선자(hypocrite)여,
그렇지만, 바로 밑에 있는 문제의 성경판을 봅시다.
개역개정과 개정한글판 한국어 성경입니다.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그래서, 저는, 당시 굉장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다들 거의다 외식하는 자여, 라고 말합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목사님이 말은, 곧 주님이 말이다, 라고 하며,
순종해야 한다.
믿어야 한다.
성경말씀대로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라고 말하며,
나를 질타했습니다.
주로 교회에서의 복종 규칙[명령]으로 사용되는 말이, 바로 순종(obedience)[oubíːdi
발음은, "오비이언스"라고 발음하는, 이 말, 순종해라!!!
순종과 자기 희생을 통한 주님으로부터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라고, 말이죠.
절대로, 의문(doubt) 이나 혹은 의문(question)을 가져서는 참된 믿음이 아니며 또한 신앙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의문(doubt, question)라고 하는 것으로 인해서, 새로운 창조가 되었습니다.
다들 알지요?
예를 들어,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데 앉아서, 쪼그려 앉아서 하다보니,
목욕탕용 방석이 나왔지요. 하하하.
젓가락만 해도, 뭘 집어 먹다 보니, 어떻게,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젓가락이 나왔지요.
걸어다니다가, 자전거가 나왔죠. 그러다가 자동차, 하늘에 나는 새를 보고, 비행기를 만들었죠.
어떻게 하면 더 좋을까? 라는 의문?
이건 왜 그럴까? 라는 의문?
나는 왜 병이 들었을까? 라는 의문, 아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하면서,
탐구하고 궁구하면서, 그 원인을 발견하게 되고, 그 원인을 찾았기에, 해결한 방법이 나오게 되었죠.
누구나 다, 말이죠.
헌데, 맹목적인 순종(obedience)를 강요하는 복종 규칙 혹은 복종 명령으로 사용되는, 교회에서의,
참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교회를 다닐 때,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기도교인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이 순종 말 그대로 순순히 따르지 못했던 나는,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나오려 할 때,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정신적인 피해를.
집에 자꾸 찾아오고, 나를 볼 때마다, 손가락질을 하고 말이죠.
난, 이게 아닌데 했죠. 그러다,
결국 내가 알고 지내던 20여년 이상을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완전히 원수, 즉 적처럼 되어 버렸지요.
저를 적그리스도라고 하데요.
교회의 교리 속에서, 각 종파마다 상당히 다릅니다.
똑같은 기독교라고 해도 말이죠.
다 다릅니다.
완전히 종교적으로는, 완전히 불순종하는, 아주 나쁜 놈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회 즉 개인적인 사회생활에서는,
참 나도 참 이해가 안 되지만, 학창시절에 개근상은커녕 어떤 상도 받아본 적이 없는,
제가,
30대 때, 회사에서 상장을, 3가지씩이나 받았지 뭡니까? 웃기는 일입니다.
당시 교회에 다니던 시절이었죠.
정말이지, 제가 믿고 있던 같은 기독교라는 종교 속에서, 뭔가 알아가기 시작하니까,
와 우리 대한민국에 같은 기독교인데도불구하고, 종파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교회, 교회, 교회, 교회, 아주 많았습니다.
다 다르데요.
마치, 각 집안의 성씨가 다르듯이, 같은 시조에서 예를 들면, 경주김씨에서 갈라진 성씨가,
엄청나게 많듯이요. 기독교도 그러하데요.
경주김씨에서 갈라진 파들,
단 한국에서의 성씨 중에,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 외의, 김씨들은,
거의 다 경주김씨의 시조 길알지를, 그 분의 후손들 사이에서, 정치적인 경향이나,
기타 형제간의 왕권다툼이 싫어서, 새로운 고장이나 장소로 가서,
예를 들면, 다들 텔레비젼을 봐서 거의 알 것입니다.
뭐더라, 아, 해상왕 장보고, 나오죠. 거기에 나오던 전라도도 도망간 그 분.
나중에 왕이 됩니다. 몇 년 못 했죠. 그 분의 형님, 이름이 뭐더라, 하여간 그 분의,
전라도 광주로 가서, 광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듯이요. 신라시대입니다.
훗날 더 아프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불교 라고 하면 다 같은 불교인 줄 알았는데, 아주 많았습니다. 종파가, 갈라진. 파가,
양파 쪽파도 아니고,
파벌이 아주 많았습니다.
제가 작년에 그러니까, 2014년도에 우리동네 교회 몇 군데 갔었는데요.
목사님 말씀 듣다보니, 이게 아닙니다 신도들도,
아주, 평소에 개인적으로 동네 사람이니까, 가다 오다 만나서 대화를 할 때는,
그냥 좋은 사람이었고, 다툴 일도 없는, 헌데,
교회 내에서는, 아주 정색을 하며,
목사님이 말에, 아 이건 좀 이상한데, 이건 뭐지, 라고 말했더니,
디지게 혼 났습니다. 교회 신도에게.
그래서, 아, 정말이지,
사람들과 어떤 단체에서, 어울려 살아 볼까 했으나 아니군. 하고
저 이 교회 정식 세례 혹은 침례를 받지 않았으니까,
안 다니겠습니다. 했더니.
며칠이고 낮이나 한 밤중이나 새벽이나 찾아 오는 것입니다. 집으로.
아 정말이지.
이젠 원수 대하듯 길가에서 만나면, 찬바람이 쌩하니 불데요.
우리 나라에도, 교회나 절에 다니다가, 도망쳐 나오듯 나오신 분들 많죠?
학을 떨죠. 하하하.
고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께서 말씀하시길, 민감한 종교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생전에 강의나 직접 저술한 책(책들을 저술할 때는 자동서기가 되어, 즉 수호령과 지도령인
모세와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절로 글이 쓰이도록 도왔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믿으시건 안 믿으시건,
아무튼,
종교를 다니다가, 어떤 종파가 많죠. 다니다가, 아, 이게 뭐지? 하면서 의문을 갖기 시작해서,
목사나 각 종교의 교조(敎祖)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의문을 가지고,
그가 믿던 종교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서 다 배웠기에,
또 다른 종파나 혹은 아에 종교라는 곳을 떠나서, 전혀 다른 장소나 상황에서, 자신의 영혼을
수정해 나가려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잘 되다가 갑자기 쫄딱 망하는 경우도, 다는 아니지만, 더러 사람들 중에는,
그 분야의 사업에서, 이미 경험하고 배울 것은 다 성취했기 때문에, 수호령이 일부러 망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도록 말이죠.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는데,
나중에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가만히 보면, 이 종교 저 종교, 이 직장 저 직장 철새처럼 옮겨다니는 분들,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아, 이게 나랑 안 맞네, 아 여기선 더 이상 배울 게 없네, 하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닙니다. 안착할 최후의 장소를 찾아서. 말이죠.
헌데, 그 집단에 속한 기득권의 사람들이 볼 때는, 건방지게 알면 얼마나 안다고 까불고 있네, 하면서
저 자식은 말야, 아주 교만해, 자만해, 자기가 교주인양 자신들이 추구하는 종교나 사칙에 위반한 그를, 혹은 그녀를 아주 시건방진 놈으로 인식해 버립니다.
제가 경험해봐서 잘 압니다.
참 정말이지, 제 인생에서, 중증 빙의를 경험하며, 고통 속에 살던 만 8년이 세월이 참 보약이었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좀 많이, 이 세상에 한정해서 볼 때, 손해를 많이 입었지만,
정신적인 마음을 위한 공부는 아주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명예나 권력이나 만족할 줄 모르는 지나친 욕망 같은 것은 없게 되었으며
누가 나를 좋게도 말하고, 혹은 나쁘게도 말하고 혹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그렇지요.
그것에 연연해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가 뭔 말을 했다고, 예를 들어, 칭찬을 하면, 아 우쭐해져서 기고만장하던 때는 지났습니다.
아주 철부지죠. 누가 칭찬을 합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우쭐해 합니다. 눈꼴사납지요 하하하.
인간 세상을 보면, 딱 한 분야에 평생을 매진하며 탐구하며 결국 한 분야에 1인자가 된 사람이 있으며,
반면에 다재다능하며 자격증이 몇 십개나 되지만, 딱 꼬집어 자신이, 뭐 내세울 게 없는 사람도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자 볼까요?
한 분야에만 평생을 종사하고 매진해서 성공?을 했다. 헌데 그는 그녀는, 그 것밖에 모릅니다.
그 일밖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 즉 멍청구리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헌데 자신의 하는 그 분야에 대해서는, 박사입니다. 완전한 대가입니다.
세상의 존경을 받습니다.
헌데 다른 이 세상의 아주 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까막눈입니다. 재미나죠?
1 더하기 1은 2다. 라른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어떤 분야에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고생을 해서, 어떤 분야에 성공을 해서, 오너 즉 대표자가 되어, 아주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습니다.
헌데 어떤 사람은 ,
1 더하기 1은 2다, 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공은커녕 참 남들이 볼 때, 저런 저런 하는 모양으로 삽니다.
이렇게 살건 저렇게 살건 사는 건 마찬가지인데, 이왕이면,
자신이 가는 길에, 남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남의 잣대에 휘둘리며 그것이 편하고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기에, 안주하며 사는 이도 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의문이 들어도 그냥 살지 뭐 하면서,
자기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면서 사는 이도 있습니다.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아주 잘 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병이 들어 좀 고생하겠지요.
46. And why call ye me, Lord, Lord, and do not the things which I say?
끝으로,
누가복음 6장 46절이 말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비록 교회는 그만이지만, 그 분이 가르침은, 존경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늘 그랬지요. ~~~하면 ~~~하라. 라고요. 비유법을 많이 썼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더러 주님 주님, 혹은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실행, 실천, 혹은 행하지 않느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아버지, 친아버지, 혹은 어머니 어머니 혹은 선생님 선생님,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막상 이거 해라, 했는데, 안 합니다. 농땡이 칩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이거 해라, 라고 말했는데, 안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엄마가, 잔소리 합니다.
할려고 했어, 나중에, 이것 먼저 하고..자식은 말합니다. 돌아버립니다.
하긴 뭘해.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께서는, 원시불교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왔던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이 생전에 말씀하시길, 현대의 기독교는, 한 마디로, 누구죠? 예수 추종자들을
고발하고 죽게 했던, 바울, 사도 바오로, 가 만든 종교가 바로 현대의 기독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어가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죽고나서, 500년 후에 내가 말한 것들이 변질되리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말법이 되고 만다고,
뭔 말이냐하면,
예를 들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라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고, 전혀 다른 말이 되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가,
이렇게 했다고,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이며,
신약성경은 그리스어 입니다. 저 모릅니다. 히브리어, 모릅니다. 그리스어 모릅니다.
원저자들은, 그래서
그것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신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에서도,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입장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일방적으로 겉으로 들어난 사실만을 보고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할 때,
오해가 생기고,
진실이 왜곡되어 거짓이 되어 버리고, 와전되어 버리고, 맙니다.
마치,
놀이 있죠? 그 뭐였더라,
앞에 종이에 뭔가를 씁니다. 글자를, 단어를,
맨 앞에 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바로 뒷 사람에게 말을 전합니다. 그 단어를,
줄이, 몇 명이냐, 하면, 2500명이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맨 앞에서, 예를 들어, 고등어(Mackerel) 맼커럴, 이라고,
헌데, 2500명에게까지 가는 동안에, 고등어,,,,,,,,,,,,,,뭘로 변하고 말았을까요?
이런 사실을, 이런 것을 알고 있어야, 현재의 내가,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알게 되겠지요.
그 내가, 이 글을 쓰는, 일요일날 2015년 2월 8일 오전 8시 18분에 글을 쓰고 있는 제가 아닌,
바로
당신들 자신이, 내가, 내가, 내가,
말하는 것이 과연 맞는, 그 말인가? 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각자가,
의문을 가지고 확인해야 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doubt, question, why? 라고 의문을 가져야 하겠죠.
내가 왜 이 글을 이 시간에, 쓰고 있는가?
뭔가 말하고자,
그럼 이 글쓴이가 무엇을 전하고자,
시간을 들여서 쓰고 있나?
그것에 대답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다 다르게 답을 하겠지요.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든가, 혹은 채로 걸러내어 받아들이든가, 아에 일절, 일체 받아들이지 않든지,
자기 자신이 소관일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누가 복음 6장 전체인, 1~49절까지 있는데, 다 옮겨 적으려 하다, 포기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표현들이 제각기 달랐기 때문입니다.
전 그냥 영어로 대충 읽어 보았습니다.
일본어쪽이 영어보다는 좀 쉽지만,이해하기가...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독일어판이든 그리스어판이든 일본어판이든,
아무튼 히브리어판으로 읽으시든, 한번 들여다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굉장히 간략하면서도, 아주 배울 바가 아주 많은 값진 예수 그리스도님이 말씀입니다.
저 이 분 굉장히 존경합니다. 개인적으로.
교회는 안 다니지만,
절에는 안 다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도 존경합니다.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뵌 적은 글을 통해서, 존경심이 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 공자(孔子, 콩쯔우) 이 분도 존경합니다. 뵌 적이 없습니다. 기원전 551년에 태어난 분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으시네요.
이 분들, 다 기원전에 태어난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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