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느끼는 고통도 나의 것, 기쁨을 느끼는 것도 나의 것 본문

일기형식

느끼는 고통도 나의 것, 기쁨을 느끼는 것도 나의 것

어둠의골짜기 2015. 4. 14. 07:56

지금이라는 날짜는, 날짜라는 이 지구상에서 정한 규칙에 의한 날짜는,

2015년 04월 14일 오전 5시 58분을 막 지나고 있습니다.

 

과거라는 시간으로 돌아가 보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대는, 2010년 7월인가 8월초순경이었습니다.

 

내가 빙의증상이 나타나, 육체적 고통을 동반한 시기는, 바로 2005년 10월달인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간은, 생략하고, 이미 일기장에 많은 기록들이 사실대로 있기에.

 

조금 전, 게임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노트에 적다가,

블로그에 써보자 하고 씁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느 세상에, 어느 곳에 있건

내가 전생에 무엇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기에,

 

과거, 현재와 미래에,

어떤 형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하였건,

지금 있건 없건

내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것을

느끼는 존재는

바로 자신뿐!

 

신불(神佛)도 그 누구도, 나의 번뇌와 보리는,

내가 느끼는 것이기에,

우주 끝으로 달아난다해도, 고통은 나의 것,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 창조한 것,

어떤 것임을 나는 깨닫는다.

 

2010년 7월인가, 8월에, 너무나 큰 고통이 나의 정신을 지배하려 하면서, 나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때,

나는,

그래!! 나를 괴롭히는, 괴롭게 하는 그 무엇이 진정 정체를 알고 싶어서,

제주특별자치도 5.16도로, 제주시 공동묘지를, 찾아 갔다.

그곳에서, 귀신들을 눈으로 보자, 그럼, 볼 수 있으면,

나의 고통을 주는, 그 무엇을 밝혀보자 했었다.

 

헌데, 그 무엇인가는, 눈에 보이기는커녕, 첫째날은 그런대로 고통을 참을만 했는데, 밤에 공동묘지에서 자고 난 후,

그 다음날 대낮에,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그 어떠한 고통보다 더 심한 도저히, 이를 악물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공동묘지 땅바닥을 뒹글다,

큰 나무들이 있길래, 그래, 죽자, 죽어버리자 생각하는 순간, 나무를 향해서 돌진하여, 나무를 붙잡고,

이마를 수십번 연속으로 죽으라고 부딪쳤지만, 죽기는 커녕,

상처 하나 없을뿐만아니라, 더더욱 고통이 강도가 더 심해졌을 때,

 

내가, 나란 의식이, 나란 존재가, 그 고통을 느끼면서, 또 다른 나의 의식이 생각하기를,

내가 자살을 해도,

내가 나를 죽여도,

이 고통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닐까?

과연 그럴까? 라는 생각이

고통 속에서도 생각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가?

당시의 나의 느낌들,

그럼, 지금 이 고통을 당하는, 느끼는 존재는, 바로 나, 나, 나, 타인이 아닌,

신불도 아닌,

부모도 아니고,

조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형제자매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내가 느끼는 이 고통들,

온갖

육체적 고통이라고 느껴지는 이 고통은,

다름 아닌,

육체가 아닌, 그 어떤 생각들을 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 바로 그 것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나의 의식(意識)이 일으키는, 느끼는 것이라고, 머리를 스쳤었다.

 

그 의식이란, 다른 말로 하면 영혼이다, 그 영혼이 고통을 느끼는 것이었다.

왜?

왜?

그것은, 나의 빙의증상이 나타나기 이전,

35~6년 동안, 갓난아기 때, 돐 이후에,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했던 모든 일 중에서,

평소에 화가남을, 무의식란 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아 온 그 악한 상념들이,

정신의 극심한 고갈의 끝에,

나의 정신, 즉 의식이 약해지고, 그와 더불어 육체가 쇠잔해졌을 때,

찾아온 그 방문객, 바로 빙의,

 

그 이전에, 육체가 건전하고, 정신이 밝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 존재들이,

내가 의지와 육체가 약해졌을 때,

나의 의식속으로 그들이 찾아와, 아니, 내가 불러내어,

지옥에 있는 그들을, 내가 불러낸 것이었음을,

훗날 알게 되었다.

 

 

끼리 끼리 모인다는 진리는, 불변이었다.

나의 악한 상념들과 행위들이 불러낸 고통들이었다.

나의 의식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상태가 썩지 않으면, 그 어떠한 고통을 주는, 느끼게 하는, 그 영적 존재들이,

나의 의식은 물론 육체가 들어오지를 못한다.

 

선과 악은 자신이 만든 것,

천국과 지옥도 역시 자신이 만든 것.

그 어떤 절대적인 신불이 만든 것이 아님을, 훗날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깨닫는데,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이 강연집과 책들을 읽으면서,

실재로,

나의 의식을 통해서, 육체로 느껴진다고 했던 고통들은,

다름아닌,

나의

생각들이 불러낸, 만들어 낸, 실제로 존재하는, 괴로운 상태에서, 육체적 멸망이라는 과정을 거친 후,

차원의 다른 저 세상 중에,

자신들이 악한 상념들이 만들어 낸, 처소에 있던, 즉 지옥이란 곳에서, 살고 있던,

그들과 나의 악한 상념들과 행위들이 일치했기에,

내가

천벌을 내렸다고 하는 신불이 아닌,

내가

내가, 불러들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고통의 나날들, 만 8년이란 시간속에서,

지금 정상이 된, 현재 내가 돌이켜볼 때, 아, 그 순간순간들은, 내 기억이란 상념의 대 속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과거의 그 순간은, 고통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나를 지금,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덤덤하다.

바로 내 자신이 해 왔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누구나  다..

 

자신이 한 상념과 행위는, 자신만 안다.

말로 남에게 하지 않는 한, 자신만이 있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상념과 행위를 했던, 죽은,

육체적 사망을 한,

저 차원이 이 세상보다 더 높은 그곳에 사는 그들은 다 안다.

 

빙의로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나닐 때,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을까 하며

돌던

그 날들을 떠올려보면, 꿈을 꾼 것 같은 그런 기분이, 현재 든다.

 

마치 내가 아닌, 남이 어떤 하는 것처럼, 그저 제삼자가 되어 바라볼 뿐이다, 내 자신을.

고로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1976년 6월 25일에, 승천하신 그 분이 말씀처럼,

"과거와 현재는 미래는, 한 점(一點)이다"

라고 말한

그 의미를,

나는 잘 안다. 잘 이해한다.

 

공동묘지에서 죽으려고 했지만,

아, 내가 죽어도,

이 고통은, 그대로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그 것들, 바로 그랬다.

 

현대인들 중에, 어떤 일로 인해, 자살을 한다.

그럼 그 순간을 모면하여,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神)이 만들었다고 하는, 그 구원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고들 있다.

 

천만의 만만의 말씀입니다.

하나의 점입니다.

점(點)은, 1차원입니다.  일직선입니다.

개미들이 1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 위를 나는 벌이나 나비를 볼 때, 신(神)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즐거움은, 바로 일직선입니다.

삼각형이 아닙니다.

사각형도 아닙니다.

일직선입니다.

 

날아납니다. 도망칩니다. 일직선입니다.

우리 인간은, 새처럼 날지도 못합니다.

날아다니는 새들은, 삼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땅이라는 일차원의 점에서.

그 점들의 연속인 2차원,

그 점들의 연속인 2차원인 세계에서, 공간이란 곳을 자유롭게 이동합니다.

 

. 1차원.

.. 2차원

... 3차원입니다.

 

.... 4차원

..... 5차원

......6차원

....... 7차원

........8차원

......... 9차원. 9차원의 세계는, 우리가 말하는 신, 하나님, 하늘님, 메시야, 구세주, 부처, 예수님, 모세님,

이런 분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느끼는 고통은, "."입니다.

".."도 아닌, 바로 하나의 점입니다.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둘이라면, 내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즐거움을,

나의 부모님,

나의 형제자매들

내가 믿어왔던 그 어떤 신불이, 똑같이 느끼고,

바로 내가 생각하자마자, 느끼자마자,

아, 그렇구나 하면서,

같이 기뻐하고 아파하며, 속을 알아줄테지만,

 

우리가 흔히, 병문안 갑니다.

위로를 합니다. 말로,

그렇지만, 그 고통은, 당사자 외에는 모릅니다.

 

어떻게 아프세요?

라고 물어보면,

고통을 느끼는 환자는, 설명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 고통의 실제의 모습은, 제삼자는, 모릅니다.

 

그저, 연구하고, 분석한 자료에 의한, 그런 증상이구나, 라고만 전문가들은, 생각할 게 뻔합니다.

 

똑같은,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은, 바로 압니다.

아, 그 고통, 하면서.

 

헌데, 전혀, 그 경험(experience)이란, 그 것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강연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가,

명강연을, 명연설을, 어떤 주제를 가지고, 육하원칙에 의해서, 설명합니다.

그럼,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말합니다.

 

아................좋은 말이구나. 이 뿐입니다.

아............... 저 사람 아픈가 보네..........이 뿐입니다.

 

바로 어제, 아니,

바로 몇 분 전에, 자신이 생각했던........느꼈던, 경험들을 봅시다.

과거입니다.

전생이 됩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바로 앞의 생, 즉 전생, 쉽습니다.

 

후생, 다음 생, 내생, 바로 앞에 일어나는 그 시공간이 때입니다.

 

앞으로 뭐 하겠다?

앞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일뿐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대부분 모릅니다.

 

바로 몇 초 전의, 나도, 바로 나 자신이고,

바로 몇 초 뒤의, 나도, 바로 나 자신임을.

 

고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하나의 점입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바로 지금입니다.  영어로 하면, Now 입니다.  일본어로 하면, 이마(いま)입니다.

한자로 하면, 금(今)입니다. 중국어로도 지금(今)입니다.

 

어떤 세상으로 도망쳤다고 합시다.

육체를 멸망시키고, 달아납니다.

달아난 그 장소에, 있는, 그 당사자는, 바로 그 자신입니다.

그 곳에서, 그 어떠한 모습으로, 형상으로, 바뀌어도,

예를들어,

현대의 불교에서 말하는,

짐승으로 태어나도, 인간으로 태어나도, 그 무엇으로 바뀌어 태어나도,

자신이 사람이었는지,

날짐승이었는지,

들짐승이었는지,

곤충이었는지,

그 무엇이었는지를, 자신은 모릅니다. 또한 자신만 압니다.

 

허무맹랑한 소설을 쓰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테지만.

사실입니다.

 

내가 빙의로, 귀신들이 자주 접신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의식의 겉인,  즉 육체라는, 이 껍데기로 느낄 때,

현상으로 그 어떤 동작들이 나타날 때,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

똑같이 느끼니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러한 고통들을, 천차만별인 그것을,

경험해 왔기에,

그들의 괴로움의 실상들을, 알기에,

동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도와줄까?

그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그러다,

마음의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다,

그러다, 완전히 내 자신을 찾았습니다.  그 순간, 저 세상의 악령이라고 말하는,

지옥의 주민들이 나의 의식(영혼)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즉, 빙의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 바로 지금은, 그저 오면

어떻게 아냐고요?

 

평소의 나의, 어떤 넘어졌거나, 팔이나 다리나 어느 부분이, 외적 상처로 인해서,

아픈 게 아닌 데,

아프다고 느낄 때는, 바로 물어 봅니다.

 

누가 오셨나요? 라고요.

자 다시 물어봅니다.

저승에 계신 분들 중에, 괴로운 분들이 오셨나요?

그럼, 반응이 오면, 아 오셨구나,

하고는,

바로 제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저는, 안 보입니다. 여러분이.

저는, 못 듣습니다. 여러분의 말하는 소리를.

단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혹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말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가 버리면 할 수 없고,

남아 계시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차분하게 세세히, 상세하게 알려 드립니다.

그럼,

알아듣고는 갑니다.

 

똑같은, 영혼은, 두 번 다시 안 옵니다.

 

제 경험입니다.

 

경험,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나라에, 어떤 장소에, 어떤 환경에, 어떤 직종에, 어떤 분들과

어떤 처지에, 어떤 그 무엇인가에 있건,

그것은,

그 곳에, 있는, 그 분들만이, 그런 경험들을 하고 있는, 해 본 분들만이,

그 것을, 압니다.

 

그것을, 다 아는 이는, 바로 신불(神佛)입니다.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입니다.

그래서 우주즉아, 범아일여 그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이분들이 특징은,

바로, 자비와 사랑 그 자체, 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절대적인 자비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남자의 모든 것을 알며, 여자의 모든 것을 압니다.  그냥 압니다.

왜?

원래 신이었기 때문에, 아닙니다.

 

다 경험했기에 압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관세음보살님,

그녀는,

그녀입니다.  여성입니다. 남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성이 모든 것을 압니다.

 

우리가 말하는 부처님(석가모니), 그 분은, 남성입니다. 여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성의 모든 것을 압니다.

 

예수님은, 남성입니다. 여성이 아닙니다.  여성의 모든 것을 압니다.

모세님, 남성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남성입니다. 다 압니다.

 

놀라운, 그렇지만, 그리 큰 놀라움은 아닌, 사실 중에 하나가,

관세음보살님으로 불리우는,

그녀는,

부처입니다. 원래는,

 

그런데, 보살계로 내려와서, 살고 계십니다.  천상계인 극락천국에서.

왜?

부처들이 사는, 그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세계인, 8차원의 세계는,

남자들 뿐입니다.

그래서,

한 단계 낮은 7차원의 세계인, 보살계로 내려 와서 살고 계십니다.

그곳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천상계인 극락은, 마치 한국의 예로 들면,

가장 높은 빌딩은, 63빌딩이죠?

 

가장 높은 63층을 예롤 들면,

그 곳에 계신 분은, 아래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아래층에서만 일하는 분들은, 못 올라갑니다.

올라갈려면, 올라갈 만한 그 어떠한 경험을 통한,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합기도를 배울 때,

흰 띠, 노랑띠, 청띠, 황색 때, 검정 띠, 이 검정 때는, 초단입니다.

그 다음은 2단, 3단, 4단, 하면서 8단 9단 이런 식으로 올라갑니다.

그럼, 높은 단을 딴 사람은, 그 앞에 모든 것을 다 할 줄 알고, 다 압니다.

 

흰 띠는, 자신보다 높은 단계의 띠를, 띠를 초월한 단을 딴 분들의 세계를, 즉 경험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와 같습니다. 저 세상은,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분야에 있건, 그 고통은, 자신만이 압니다.  기쁨도 자신만이 압니다.

감정이란, 

영혼 즉 의식인 바로 개체인, 그 자신이 느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고 하죠.  그 기분, 감정 변화일뿐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신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아닙니다.

자신입니다.

바로 나, 

 

제 요즘 약 2년간의 일기는, 주로 이런 내용입니다.

귀신들 이야기 없습니다.

악령이니 하는. 그런 이야기 없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꿈에서조차도, 자살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암흑지옥, 이란 곳이 있습니다. 거짓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신이 서 있는지,

누워 있는지,

1초라는 시간을 생각할 틈도 없이, 온몸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암흑속에서,

그 보이지 않는 괴물에게, 잡아 먹히고, 또 살아나고 잡아먹히고 또 살아나고를 반복하게 됩니다.

1초도 쉬지 않고, 굉음이 고막을 때립니다.

자신이 어떠한 모습인지,

자신이 형상이 인간인지, 벌래인지, 새인지, 그 무엇인지도 느낄 새도 없이,

고통이 너무 극심하기에,

비명만 질러 댈 뿐입니다.

 

그 누구도 도와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계인, 이 지구상으로 도망칩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육체를 입은, 부모나 가족이나 형제나 친구가,

그 자살자를, 부르면서, 이름을!!

나쁜 말을 할 경우에,

빙의합니다.

 

무자비합니다.  왜냐, 지옥에서, 이 세상으로 올 수 있는 길은,

이 세상, 즉 이쪽에 있는 누군가가, 불러야만 오게 됩니다.

 

눈에 안 보이는 차원을, 뛰어 넘어 옵니다.

 

저 세상은, 4차원의 세계입니다.  가장 낮은 단계가. 4차원입니다.

이 세상은, 3차원입니다.

자,

높은 층, 가장 높은 층에는, 회장님이 업무를 보는 곳이죠.

위에서 아래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위로 다 보고가 되지요.

 

우리는, 육체라는 이 세상에 적응된 외피를 벗지 않는 한,

차원의 높은, 저 세상으로 못 갑니다.

하지만,

이 세상보다 높은 차원의 영혼들은, 올 수 있습니다.

헌데,

실상 오는 분들은, 악령들뿐입니다. 지옥의 주민들.

 

극락천국이라는, 천국의 분들은, 올 일이 없습니다.

오지도 않습니다.

온다고 해도,

우리들 인간의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눈이 부셔서, 못 봅니다.

바로 눈 앞에 나타났다 해도.

 

단, 마음의 아주 깨끗한 상태일 때는, 볼 수 있습니다.

육체를 지닌, 인간의 마음의 눈으로,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영능력자,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무당이나, 퇴마사, 도사나,

고승이나, 어떤 일반인들 중에서도, 죽은 사람들을,

제 식으로 말하자면, 저 세상의 사람이나 동물을 볼 수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헌데, 다행인 게,

극락천국의 4차원에서 8차원까지에 사는, 인간들 중에,

각 차원의 극락에서,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업무식으로 말하면,

형사들 있습니다.

강력계 형사들 있습니다.

보디가드도 있습니다.

 

그래서, 빛의 모습으로 변하여, 타원형 원반형으로 변하여,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 지구상의 궤도에, 대기권에, 외계의 파편들이 날아올 때,

대기권 밖으로 날려 보냅니다.

그러다,

대기권 안으로 들어온 별똥별이 있을 때는, 순식간에, 여러 사람들이,

빛이 모습으로 변하여,

그 별똥별들을, 소멸시킵니다.

 

그리고, 지옥계의 악령들이, 이 지구상의 인간의 마음속에 빙의하여,

괴롭히는 이들을, 강력계 형사들이 와서,

잡아갑니다.

특히, 동물령들이 많이 자행합니다.

잡아 갑니다.

저 세상으로.

재미나죠?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만, 귀가 솔깃하시면 안 되십니다.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나.

즐거움을 평안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나.

악마로 변하는 사람은, 바로 나.

천사로 변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입니다.

 

악마로 변하는 방법은, 화를 내면 됩니다.  그 순간, 악마가 됩니다.

주변의 공기가 벌겋게 타 오릅니다.

영혼의 순수한 아기들이, 울어 댑니다.

주위의 식물들이 생명력이 약해집니다.

분위기가 나빠집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한, 약한 분들은, 그 파동에 영향을 받아,

신진대사가 나빠지게 됩니다.

 

천사로 변하는 방법은, 남을 동정하는 마음, 헤아리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말투나 표정이나 몸짓이 다정하면, 천사로 변합니다.

겉모습은 보통 사람인데,

그 사람 주변의 공기의 파동이 부드럽게 됩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평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저, 화 잘 냅니다.

잘 안 고쳐집니다.

화를 내고 나면, 꼭 아프게 됩니다.

마치,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마냥, 몇 시간 혹은 몇 분 동안, 아프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의학적으로, 못 고치게 됩니다. 약 안 듣습니다.

방법은,

반성을 하는 것입니다. 신에게 사죄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팔정도를 척도로 하여, 규준으로 하여, 합니다.

그렇게 하면,

순식간에, 아픔이라는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자, 혹 이 글을, 여기까지 열심히, 읽어주신 바로 당신, 뉘신지는 모르지만,

평생 살아오면서,

괜히 기분이 안 좋아서 이유가 어찌 되었든,

화를 낸 적이 없으신가요?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화를 안 내는 사람은,

오직 극락천국으로 돌아간 착한 영혼들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 즉 영혼들은,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프다고 아프다고 느끼고들 계십니다.

남 탓 만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아프게 됩니다.

평온함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들어지 않는 것입니다.

 

..끝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요,

참 착한 분들 많데요.

어떻게 아냐고요?

여러 가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남을 해치지 않고,

좀 여러 가지 면에서, 좀 열악하지만,

자신이 몸을 희생하면서, 돈을 벌고,

그 적은 돈으로,

생활을 하고 계시니까,

 

참 착한 분들입니다.

 

참, 우리 동네 착한 분들 많습니다.

단 한 번도, 이 곳에서 오늘 이 시간까지,

2010년 9월 말에, 이곳에와서 살면서, 2015년 4월 14일, 화요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 동네에서,

폭행이나, 폭력이나, 강도나, 소매치기나, 어떠한 인명을 살상하거나

피해를 주는 그런 일들은,

전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착한 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저 처럼, 월세방 사는 분들 많아요. 제가 사는 동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게들 살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경찰차 싸이렌을 울리면서, 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착한 분들 사시는 동네가 많지요. ^^

 

간혹, 운전 미숙으로, 외지인이, 자동차 혼자 사고 내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4 번인가, 5년 동안 보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워낙 급경사 언덕 지대라서,

다들 안전 운전합니다.

그만큼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많다는 뜻이죠.

 

제가 동네를 딱 보면, 총 24통인가, 25통이 제 동네에 있는데요.

자기 집 앞 주차금지, 혹은 큰 타이어나, 어떤 것으로,

막아 놓은 집은, 거의 못 봤습니다.

 

딱 몇 집 있습니다.

99% 이상이, 자기 집 담벼락이라고, 차 못 세우게,

막는 집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사는 집 바로 대문, 아니 벽, 문만 열고 나가면,

저쪽 집,

아래쪽 집, 사는 분들, 차를 수시로 주차합니다.

그냥 그려러니 합니다.

저도 제 집앞인데도, 어디 다녀오면, 아, 차 세울 데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 몇 백미터 떨어진 빈 공간 있는 골목이란 골목은 다 돌고, 나서,

딱 보이면, 차 세우고 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가서, 차 빼고는, 집 앞이나, 저어쪽 단지 쪽으로 가서,

주차장에 빈 곳이 있으면, 세우고 옵니다.

 

좀 멀어도 운동도 되고요.

오다가,

그냥 가게에 들려서, 괜시리 돈도 약간 쓰기도 하고요.

동네 분들 가게니까, 서로 돕고 사는 것인 셈이 되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헌데, 아, 저기 무심천 건너편 저어쪽 서쪽 동네,

차 한 번 세울려니, 몇 시간을 진짜, 돌고 돌아도, 차 세울 때 없데요.

집 앞 앞 마다, 큰 타이어, 혹은 세면으로 만든, 큰 다 막아놔서,

차 세울 데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유료 주차장 있나 살펴 보니, 없데요.

 

해서, 저어쪽 서쪽 동네론 거의 안 가게 되더라구요.

제가 사는 동네는, 지도상으로 보면, 북동쪽 약 2시 방향쯤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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