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3살 이하의 아이들은 날 보면?? 본문

일기형식

3살 이하의 아이들은 날 보면??

어둠의골짜기 2017. 9. 15. 23:16


『3살 이하의 아이들은, 날 보면 방긋 웃는다』

"나"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도, 사춘기 이후부터인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곤 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3살 이하의 아이들이, 나를 잘 따른다는 것이었다.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결혼한 교회 여신도들의 자녀들은, 교회 안에서, 나랑 놀기를 좋아했다.


한 때, 한 회사를 직원이 약 120명 가량 있던 회사를 몇 년간 다닌 적이 있었다.

회사 동료의 아기 돐잔치날이었는데, 

딸 아이였다.


회사 동료들이 그 아기에게 손을 벌리며 안으려 하거나, 얼굴을 바로 바라보면, 울어버리는 아기였다.

그 아기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옆에 계셨는데, 

유독,

나에게만은, 방긋 미소를 보이며,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벌리는 아기였다.

그래서, 내가 안아주자, 방긋 미소를 짓는다,

울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아기의 부모님과 조부님들은, 

"이야, 이런 일도 다 있네,

"모르는 사람이 보거나 만지면 울어 대는 아이가, 울지도 않네, 

"거참 이상하네, 

라고 했었다. 


목요일날, 2017년 09월 14일 12시 경에, 내 단골 주유소에 주유를 하려 갔었다.

그 집 자판기 커피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향을 품고 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실례합니다. 커피 한 잔만...이라고 하며 말을 붙이는 데,

그 집 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의 따님인 듯한 분과, 여자 아기가 있었다. 바로 눈 앞에,

커피 자판기는, 그 주유소 건물안 사무실 겸 방인 듯한 곳 입구에 있다.

그 때의 상황은, 

아기를 아기 엄마가 손으로 잡고 있었고, 

그 아기의 할머니인 듯한 아주머니가, 아기 옷 뒷쪽을 실로 꿰매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 

갑자기, 아기가 나를 보면 방긋 웃는다, 그리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서, 

나 역시, 아기에게, 안녕!! 아기야~~

하면서, 장난스럽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아기에게 했더니, 

아기가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들어 흔들어 댄다. 


그 순간, 아기 할머니가 말하길, 

"이상하네, 애는 모르는 사람을 보면 울어대는데,

되려, 방긋 웃으며, 인사도 하고, 손도 흔드네, 하신다.


그래서, 커피 한잔을 들고 차에 들어와서, 시동을 걸려 하기 전에, 바로 아기가 옆으로 보이길래, 

고개를 돌리고, 연신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아기도, 따라서, 양손을 들고 나처럼 손을 흔들어 대는 것이다. 

방실방실 웃으면서..


남자 아기이건, 여자 아기이건, 내게 아기들은, 

반갑게 대해준다. 나에게, 


2주 전인가, 충남 서해안 갯벌이 보이는 어느 작은 몇 가구 안 되어 보이는 마을로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그 작은 포구가 있는 마을에, 

식당이 딱 2군데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유모차에 남자 아기와 아기 엄마인듯한 젊은 새댁과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인 듯한 분들과 함께 있었다. 

아마도 그 식당 며느리인 듯 했다.


식사를 하는 중에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기가, 엄마에게, 야!~ 한다.

그래서 난 속으로 웃었다. 

그더다, 

식사를 다 하고, 의자를 빼고 일어나서, 계산을 한 후, 

아기를 바라보는 순간, 

아기가, 

나를 향해 말하길(유모차에 앉은 채로). 

"아빠, 아빠!!" 하면서, 

나에게 양손을 벌린다. 

다들 놀래서 한 마디씩을 한다. 


그래서, 아기에게, 

"아기야, 난 네 아빠가 아니란다, 

"만약, 네가 환생을 믿는다면, 아주 다다다음생 어느쯤엔가, 내가 네 아빠가 되어 주마"

했더니, 

양손을 들고 흔들며, 아주 방실방실 웃는다.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 갯벌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다가, 

목이 말라, 딱 한 군데 있는 가게에서, 물을 살 수도 있지만, 

마침, 빈 병이 있어서, 

그 식당으로 물을 얻어 마시려 들어갔을 때, 

바로, 

그 아기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모으고 인사를 한다"

허허,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식당안의 아기의 엄마, 친할머니 할아버지 및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마디씩을 한다. 

그래서, 나 역시, 아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 식당 시어머니인 듯한 50대 후반으로 보이시는 아주머니께서, 나를 반갑게 대하신다.


단 한 번도, 내 기억이 맞다면, 

적어도 3살 이하의 아기들 중에, 

특히 돐 이전의 아기나, 만 2살이 안 된 아기들은, 

나를 보면,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대며, 심지어는 안아주면, 울지 않는다.


헌데, 

그런데, 그런 아기들이, 사춘기 이전에, 부모님의 말투와 생활방식과 그 삶의 주변 환경과 교육과 

문화와 관습 및 다양한 사상들로 인해서, 

성이(어른)이 된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마음의 상태 즉, 가치관이랄 수 있는 후천적인 성격이 몸에 베어 버리고 만다. 


마태복음 18장 [개역한글:KJV] 대한성서공회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At the same time came the disciples unto Jesus, saying,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And Jesus called a little child unto him, and set him in the midst of them,

And said, Verily I say unto you, Except ye be converted, and become as little children, ye shall 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Whosoever therefore shall humble himself as this little child, the same is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And whoso shall receive one such little child in my name receiveth me.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린아이(A Little Child--대개 4, 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를 이름)를 말하고 계신다. 

내가 말하는 어린 아이들은, 만 2만 미만(3살 이하의 아기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실로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3살 이하의 아기들이, 

저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미래의 어엿한 숙녀가 되실, 훗날 부부의 인연이 이어지면, 엄마가 될 

미래의 멋진 남성의 되실, 아버지가 되실, 누군가의 남편이 되실 분들입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 『가르침의 글』에는 아마도 없는 내용일 듯 합니다.

 http://www.shoho2.com/t2-9hikari.html


아래의 글의 출처입니다. 

1970년 8월호에서 1971년 1월호인 "빛Light'라는 월간지의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ひかり 第2号より  昭和45年9月号 (1970年)

빛 제 2호에서 쇼와 45년 9월호(1970년)


〝 正法 〟と「三つの眞意」  高橋信次

〝 정법 〟과 「3가지의 참뜻」 다카하시 신지(Takahashi Shinji)


 正法とは、どういうものか。

正法とは読んで字のごとく、正しき法、宇宙の法、人間の法、永遠不滅の法、をいいます。 法とは、その中心は心であり、神の理であり、かえることのできない絶対不変の法則とその普遍性をいうのであります。 正法を現実に照らしてみると、次のような、いくつかの事例をあげることができます。

정법이란, 어떠한 것인가?

정법이란 읽고 쓰는 것처럼, 올바른 법, 우주의 법, 인간의 법, 영원불변한 법, 을 말합니다. 

법이란, 그 중심은 마음이며, 신의 이치(神の理: 신리)이며, 변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법칙과 그 보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법을 현실적으로 비춰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一、太陽は、東から昇り、西に没す。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로 진다. 

一、善なる想いは善に還り、悪の想いは悪を呼ぶ。

선한 생각은 선으로 되돌아오고, 나쁜 생각은 악을 부른다. 

(착한 혹은 선량한 마음(생각)은 선함으로 되돌아 옥, 나쁜 마음(생각)은 악을 초래한다)

一、形あるもの、必ず滅する。

형체(형상)이 있는 것은, 반드시 멸망한다.

(이 현상계에 형상(형체=모양)으로 있는 것은, 반드시 사라져 없어진다)


참고로, せいあるものはかならずしあり[生ある者は必ず死あり]

생자필멸,  살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라는 말이 있네요. 


一、 一念(いちねん)の心、岩をも通す。

一、水は、高きより低きに流れる。

一、楽すれば苦あり。苦をいとわねば楽あり。

一、愛は、人の心を育む。

一、心(こころ)は、万物に通ず。 


 正法というものは、いついかなる時代でも かわらぬ神の理、即ち、神理そのものであり、それはまた宇宙の法則、人間の法則であります。


正法を、こんどは側面からとらえると、正法とは、循環の法であります。

東から西に没する太陽。善意には善、悪には悪。楽すれは苦、苦あれば楽、というように、円運動をえがく性質をもっています。 仏教では、これを因縁因果といい、よい結果を求めようとするならば よい原因をつくるよう、毎日の生活に、ウソのない正しき行為にはげみなさい。というわけです。


地球が太陽のまわりをまわっているように、地上の生活、人間の生活も、果てしない循環の法、魂の向上をもたらす転生輪廻を続けています。


 転生輪廻とは、生れては死に、死してあの世にかえり、再び、地上に生れて生活することをいいます。動物、植物、鉱物、宇宙のすべてが、循環の法則にしたがって、生かされています。しかし、大部分の人は、死とは無にかえると思い、生命の永遠性から、眼(め)をそらしてしまいます。悲しい事です。童心にかえって、大自然に心を向けてごらんなさい。そこには水の生命の永遠性、美しく姉をきそう花のいのちの転生輪廻をみることができます。人間だけが、例外ということはありません。 今生はもちろんのこと、来世をよりよく生きようとするならば、努力の二字を忘れずに、正法に沿った生き方こそ大事であります。世間を呪う前に、まず、己自身をふりかえり、自然の生命に帰るようにつとめるべきであります。 正法を、もう一つの面から眺めますと 正法を行ずる者には必ず、喜びや安らぎが与え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 正法とは、自然との調和であり、神との調和ですから、そこには、健康、明朗、安心、円満といったような、精神的、肉体的よろこびが得られます。 現象的には、奇蹟、あるいは自己発見という形となって現われます。正法からみれば、.その奇蹟は奇蹟でもなんでもなく、あたりまえのことが、あたりまえ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ところが、現実的常識的には奇蹟としてうつります。それほど、現実の生活は、正法から離れているわけです。 以上で、おわかりのように、正法とは、正しき法、心、(文証(もんしよう))であり、そうして、その法は循環という円運動、(理証(りしよう))をもって動き、それに乗った生活をする者には現実的喜び、(現証(げんしよう))が与えられる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 


また正法というものは、文証(もんしよう)、理証(りしよう)、現証(げんしよう)の三つが、無理たく揃つてこそ、はじめて正法といえるのです。どこかの団体が、やたらと正法を口にするようですが、正法とは、このような裏付けがなくしては、正法とはいえないのであります。



이렇게 다카하시 신지님의 글을 끝으로 해서, 오늘의 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청주시 안덕벌에서 解覺 신선한 미풍

가을의 초입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