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橋信次先生講演(다가카시 신지 선생님 강연)
神理正法について (3) 신리정법에 대해서
(月刊誌、前号より) (월간지, 전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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やはり肉体的な五官を通して、視覚神経は中道というあらゆるものや調和された自然の光景を皆様自身の視覚にとらえ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それも、4,000オングストローム~7,000オングストローム(※光の波長などを表す単位で、1オングストロームは100億分の1メートルである)の間しか見えないために、全てのものを調和して見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見えるところの視覚が一つ違えば殺伐としたものになるのです。-
역시 육체적인 오관을 통해서, 시각신경은 중도라는 모든 것이나 조화된 자연의 광경을 여러분 자신의 시각에 붙들리는 것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4,000 옹스트롬~ 7,000옹스트롬 (※빛의 파장등을 표시하는 단위로, 1옹스트롬은 100억분의 1미터이다)의 사이밖에 볼수가 없기때문에, 모두의 것을 조화하여 볼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장소의 시각이 하나라도 틀려버리면 살벌한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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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さん一人ひとりがX線を通して生活しているのならば、美しいも汚いもあっ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骸骨がブラブラ歩いているのですから・・・・・・。こういう生活がいいという人が赤外線を通して物を見たならば、緑色の植物も確認す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X선을 통하여 생활하고 있는 것이라면, 아름다운 것도 더러운 것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해골이 흔들흔들 걷고 있는 것이니까・・・・・・。 이런 생활이 좋다라는 사람이 적외선을 통하여 사물을 보았다고 한다면, 녹색의 식물도 확인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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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いうことは、全く自然界が一変してしまいます。同色一つで、それだったら恐らく皆様は一日も持たないでしょう。脳細胞が狂ってしまいます。やはり、自然界のあらゆる色とりどりのものが調和されてこそ、私たちの生活環境に安らぎがあるのです。
결국은, 모든 자연계가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같은 색 하나로, 그것이라면 틀림없이 여러분은 하루도 버터내지 못하겠지요. 뇌세포가 미쳐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자연계의 모든 가지각색의 것이 조화되어야 비로소, 우리들의 생활환경이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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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ように、眼ひとつとってみてもそのような状態で、臭覚もまた同じです。皆さんは臭いというものを中和しているのです。この臭いも私たちの鼻に欠陥がある場合は、臭いを嗅ぐことは出来ません。この臭いの範囲も中道なのです。
이와 같이, 눈 하나만 예를 들어 봐도 그와 같은 상태이며, 후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악취라는 것을 중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악취도 우리들의 코에 결함이 있는 경우는, 악취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이 악취의 범위도 중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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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もまた同じです。よく、プロレスラーたちが急激なショックを与えられるために、耳が聞こえなくなっ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急激なものは良くありません。音量というものも皆さんの耳の鼓膜の作動と関連し、中道の状態が最も安らぎが得られるのです。小さい声でもやはりダメ、あまりにも大きすぎて耳元でガタガタ言われても、やはり我々は調和されないはずです。その人その人によって耳の音量というものも調和されているはずです。
귀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프로레슬러들이 급격한 충격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귀가 들리지 않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급격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음량이라는 것도 여러분의 귀의 고막의 작동과 관련하며, 중도의 상태가 가장 평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소리라도 역시 안 되고, 너무나도 큰 소리가 들어가서 귓전에서 까닥까닥 들려도, 역시 우리들은 조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 그 사람에 따라서 귀의 음량이라는 것도 조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우리들은 조화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 사람 그 사람에 따라서 귀의 음량이라는 것도 조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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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体一つ見ても、体温というものも本来は36度~36度5分くらいに調和されています。冷たくても温かくても私たちの身体のためには良くないはずです。外気が暑くなれば我々は涼むクーラーや、また寒くなれば暖かさを保つためにいろいろなものを作るでしょう。これもやはり肌に感じるところの中道の温度が決まっているからなのです。15.6度~21.2度の間が最も適温のようです。
신체 하나를 봐도, 체온이라는 것도 본래는 36도~ 36도 5분 정도로 조화되어 있습니다. 지나치게 차도 지나치게 따뜻해도 우리들의 신체를 위해서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외기가 더워지면 우리들은 시원한 클러를 틀고, 또한 추워지면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만들지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피부에 느끼는 중도의 온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15.6도~21.2도의 사이가 가장 최적의 온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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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ように私たちの眼や耳や鼻や口を通して、両極端というものから離れなくてはなりません。
一方において、我々の体温にしても、酸性、塩基性という酸っぱい水が出てくるようなことがあるはずです。胸がやけるという場合もあります。これも酸性度があまり強くなってしまうために不調和を起こした状態です。お酒が好きな人は、飲んだお酒が胃腸の中に入ってからどんどん発酵していった時に身体の状態も変わってしまい、意識や心までも変わってしまいます。それが量を越してしまいますと、ますます私たちの身体の中が酸性化し、最後は胃潰瘍(いかいよう)というような状態になってしまいます。この胃潰瘍というものが肉体細胞も破壊していきます。
이와 같이 우리들의 눈이나 귀나 코나 입을 통하여, 양극단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편에 있어서(다른 한편), 우리들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산성, 염기성이라는 시큼한 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산성도가 너무나 강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부조화를 일으킨 상태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신 술이 위장 속으로 들어가니까 슬슬 발효해 갈 때에 신체의 상태도 변하게 하여, 의식이나 마음까지도 변하게 합니다. 그것이 양을 넘어 버리면, 우선 우리들의 신체 속이 산성화 하여, 최후에는 위궤양이라고 하는 상태로 되어버립니다. 이 위궤양이라는 것이 육체세포도 파괴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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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れをよく分析しますと、炭素と酸素というものが一緒にくっついてCO2(二酸化炭素)というものに変わってしまいます。その結果が身体の不調和をきたしてしまうのです。私たちの体内も中道でなければならないし、両極端を捨てた状態でなければ困るのです。
이것을 잘 분석해 보면, 탄소와 산소라는 것이 함께 들러붙어서 CO2 (이산화타소) 라는 것으로 변해버립니다. 그 결과가 신체의 부조화를 초래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체내도 중도가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양극단을 버린 상태가 아니라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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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結果、食事においても両極端な食生活ということを考え直さなくてはいけないのです。私たちの五官を通して感じえたものもまた同じです。さらにまた、両極端というものを探して考えた時に、私たちの生活環境に特に密接な関係にあるものにナトリウム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
그 결과, 식사에 있어서도 양극단적인 식생활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오관을 통하여 느낀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아가 역시 , 양극단이라는 것을 찾아 고려했을 때에, 우리들의 생활환경에 특이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에 나트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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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にまた、塩素というものもあります。塩素酸カリというものは爆発物です。相当な破壊力を持っているこの塩素、こちらのナトリウムも不安定なものです。爆発します。この二つのものがお互いに寄り合って結びついたNaClというものは塩化ナトリウムと言いまして、これは塩です。塩となると最も調和されたものになるはずです。両極端で、単体で存在している時にはこれもまた不調和なものなのです。しかし、極端なものがお互いに調和された中道の道に結びつくならば、最も安定した一つの塩という中性なものに生まれ変わります。
반대로 역시, 염소(Cl)라는 것도 있습니다. 염소산칼리(염소산칼륨) 라는 것은 폭발물입니다. 상단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이 염소(Cl), 이쪽의 나트륨(Na)도 불안정한 것입니다. 폭발합니다. 이 두개의 것이 서로 한데 모여서 결합된 NaCl라는 것은 염화나트륨이라고 말하며, 이것은 소금입니다. 소금으로 되면 가장 조화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양극단에서, 홀로 존재하고 있을 때에는 이것도 역시 부조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것이 서로 조화된 중도의 길(道)로 결합한다면, 가장 안전한 하나의 소금이라는 중성인 것으로 태어나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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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らにまた、水というものを考えてみましょう。
水というものは、水素と酸素、この二つのものが調和されて完成されていきます。水素はご存知の通り爆発します。水素爆弾という言葉を聞いたことがあるはずです。酸素、これもものすごい起爆剤、火が燃えるには酸素が必要不可欠です。酸素が協力しない限り燃えません。これを酸化すると言います。このような酸化物、極端なもの同士がお互いに結びつくと、初めてそのところに水素が二つと酸素が一つ結びついて中和された水が出来るのです。
나아가 역시, 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어요.
물이라는 것은, 수소와 산소, 이 두개의 것이 조화되어 완성되어 있습니다. 수소는 아시다시피 폭발합니다. 수소폭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산소, 이것도 매우 무서운 기폭제, 불을 태우기 위해서는 산소가 필요불가결입니다. 산소가 협력하지 않는 한 타지 않습니다. 이것을 산화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산화물, 극단적인 것 끼리 서로 결합하면, 비로소 그곳에 수소 두개와 산소 하나가 결합하여 중화된 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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例えば、水素で燃えているものも、酸素によって燃えているものも、水によって消すことが出来るはずです。。水はこのような極端なもの同士がお互いに結びついて、最も安定した中性というものに変わっていきます。
我々はあらゆる物理・化学を通して物事を正しく判断していきますと、全てが中道というものが根底になっているのです。
예를들면, 수소에서 불타고 있는 것도, 산소에 의해서 불타고 있는 것도, 물로 끌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은 이와 같은 극단적인 것 끼리 서로 결합하여, 가장 안정한 중성이라는 것으로 변해갑니다.
우리들은 모든 물리・화학을 통하여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여 가면, 모두가 중도라고 하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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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思想をご覧なさい。資本主義というものを皆さん考えてみてください。資本主義、これに反作用として起こっているところの社会主義、この社会主義の中のマルクス主義、このマルクス主義というものを考えてみるとこれも両極端なのです。
현대사상을 살펴보세요. 자본주의라는 것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자본주의, 이것에 반작용으로서 일어나고 있는 것의 사회주의, 이 사회주의 속의 마르크스주의, 이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도 양극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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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故ならば、中道というものがないのです。人間自身が、この資本主義を作り出すその過程を皆さんは考えたことがありますか。人類がこの地上界へ出てきた当時は完全なる原始共産体制がひかれて、人間の心は調和されておりました。
왜냐하면, 중도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자신이, 이 자본주의를 만들어 내는 그 과정을 여러분은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인류가 이 지상계로 나온 당시는 완전한 원시공산체제가 구축되어서, 인간의 마음은 조화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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やがて、部族というものを保護するために部族間の争いが起こってまいります。そこに豪族が生まれていきます。豪族がだんだん調和から不調和になるにしたがって豪族同士の争いが武将をも生んでいきます。
이윽고, 부족이라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족간의 다툼이 일어납니다. 거기에서 호족이 생겨갑니다. 호족이 점점 조화로부터 부조화로 되어감에 따라 호족간의 다툼이 무장(무예에 뛰어난 장군)을 탄생시킵니다.
(次号に続く)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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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稿は、昭和47年6月11日、関西本部定例講演会での内容をテープより書き起こしたものです。
〈文責=編集部〉
※이 원고는, 소화 47년 6월 11일, 관서본부 정례 강연회에서의 내용을 테이프에서 옮겨 적은 것입니다. (문장이 책임은=편집부)
※소화 47년은, 1972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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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LA關西本部(관서본부) *** 원문의 저자 :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
http://blog.daum.net/5lamp/8141223 /2010년 1월 15일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 에서...
마태복음 5장 13~16(개역개정)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Matthew 5:13~16 [KJV]
Ye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t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o be trodden under foot of men.
Ye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that is set on an hill cannot be hid.
Neither do men light a candle, and put it under a bushel, but on a candlestick; and it giveth light unto all that are in the house.
Let your light so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glorify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2018년 04월 13일 오전 1시 20분입니다. 소금에 대해서, 올려보았습니다.
일기장에.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Takahashi Shinji)님의 소금과 물에 관한 설명과,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님이 소금과 빛에 관한 글을..
소금과 물은, 중도(中道)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합장(合掌) 또한 중도(中道)를.
소금과 빛이 되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 역시, 모든 사람은, 하나님(God)의 자녀이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자비와 사랑을 품고, 상대방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라고
예수님 역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소금(중도)인 상태가 되어, 응애하고 태어난 후 전생의 90%의 기억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버렸기에,
잊어버렸기에, 중도가 되어, 빛이 되어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ㅡ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위의 문장에 보면, 부정풀이를,
お祓いに、水と塩を使うのは、神の道は中道である。
부정풀이(お祓い)에, 물이나 소금을 사용하는 것은, 신(God)의 길(道)은 중도(中道)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속인의 세계에서나 도사(道師)나 혹은 퇴마사(退魔師)분들도, 소금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상가(喪家)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혹 부정(不淨)한 것(풀어서 말씀드리자면-사람이 죽은 장례식장에는, 아귀(굶어죽은 귀신)들이 헤아일 수 없이 몰려와 음식을 먹으려고 함)이, 심신이 피곤하거나 혹은 마음의 상태가 어두운 사람에게, 이 귀신(지옥에 잠시 머물고 있는)이나 귀신들이 의식(영혼)에 달라붙어 집까지 따라오기도 하기에,
상가집에 갔다 돌아올 때, 갈 때와 달리 몸이 이상할 경우,
집앞 대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왕소금을 온 몸에 뿌린 후, 집으로 들어가면,
약한 귀신들은, 물러가기도 하기에 뿌리기도 하며,
장사(商), 즉 가게나 음식점이나 혹은 집에, 재수없는, 이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 소금을 가게 앞이나 대문 앞에 뿌리기도 하는데, 이 역시 중도(中道)를 의미하는 소금의 속뜻에 비추어, 예로부터 민간에서 행해오던 것이 유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소금은, 생선과 같은 것을, 오랫동안 보관하여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며, '젓갈'로 만들어서,
다들 아시는, 한국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김치'에 없어서는 안 될,
영양학적인 것이나, 소금이 인체에 들어와서 작용하는 어려운 분석들은, 제가 문외한이라서 모르지만,
제 일기의 핵심은,
중도(中道)의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없지만,
하루 중에, 적어도, 하루를 끝마치고, 잠을 자기 전이라도,
반성(참회=회개)를 통해서, 마음의 평온(평안)=조화(調和)를 유지할 수 있는 분들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쓰고 있습니다.
반성(회개=참회)는, 수차례 일기에 쓴 바 있지만, 신(God=神)과의 일대일의 대화(對話)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보면,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
항상 깨어 있어라!
항상 감사하라.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가 생각컨데,
감사한다는 것은, 마음이 깨끗해지는 비결이며, 어둠을 물러나게 하는 비결이며,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그 감사로 끝남이 아닌, 그 감사함에 대한 보은(보답)을 하고 있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소금과 빛이 된 상태라고, 저는 생각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진행형인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합니다.
감사로 끝나지 말고, 그 감사함에 대한 보답을,
예를 들면, 가정에서 어린 자녀라면, 잠을 자고 나서, 이불을 갠다거나, 간단한 자기 방 청소, 도 역시,
감사합니다, 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된 경우에는, 직장에서 일을 한다는 그 자체도 역시, 자기 자신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멀리서 크게 보면, 그 일 자체가 역시, 남을 돕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에, 감사함에 대한 보답이 된 셈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불평을 품는다면, 이미 자기복을 이미 그것으로 받은 것이라서, 더 큰 복은, 받기는 어럽게 됩니다.
하늘과 땅은, 이미 우리들을 24시간 지켜보고 있습니다.
남들은, 내가 하는 행동을, 생각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하늘과 땅, 즉 대자연은, 우리들을 늘 보고 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미생물들 역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의 글과 연관이 없을 듯 하지만, 다시 한번 신약성경 마가복음의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9장 전체입니다.
이 글에도,
소금(Salt)로 끝마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1절~50장(개역개정)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불구의 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없음)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없음)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Mark 9:1~50 [KJV]
And he said unto them, Verily I say unto you, That there be some of them that stand here, which shall not taste of death, till they have seen the kingdom of God come with power.
And after six days Jesus taketh with him Peter, and James, and John, and leadeth them up into an high mountain apart by themselves: and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And his raiment became shining, exceeding white as snow; so as no fuller on earth can white them.
And there appeared unto them Elias with Moses: and they were talking with Jesus.
And Peter answered and said to Jesu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and let us make three tabernacles; one for thee, and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as.
For he wist not what to say; for they were sore afraid.
And there was a cloud that overshadowed them: and a voice came out of the cloud,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hear him.
And suddenly, when they had looked round about, they saw no man any more, save Jesus only with themselves.
And as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he charged them that they should tell no man what things they had seen, till the Son of man were risen from the dead.
And they kept that saying with themselves, questioning one with another what the rising from the dead should mean.
And they asked him, saying, Why say the scribes that Elias must first come?
And he answered and told them, Elias verily cometh first, and restoreth all things; and how it is written of the Son of man, that he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set at nought.
But I say unto you, That Elias is indeed come, and they have done unto him whatsoever they listed, as it is written of him.
And when he came to his disciples, he saw a great multitude about them, and the scribes questioning with them.
And straightway all the people, when they beheld him, were greatly amazed, and running to him saluted him.
And he asked the scribes, What question ye with them?
And one of the multitude answered and said, Master, I have brought unto thee my son, which hath a dumb spirit;
And wheresoever he taketh him, he teareth him: and he foameth, and gnasheth with his teeth, and pineth away: and I spake to thy disciples that they should cast him out; and they could not.
He answereth him, and saith, O faithless generation, how long shall I be with you? how long shall I suffer you? bring him unto me.
And they brought him unto him: and when he saw him, straightway the spirit tare him; and he fell on the ground, and wallowed foaming.
And he asked his father, How long is it ago since this came unto him? And he said, Of a child.
And ofttimes it hath cast him into the fire, and into the waters, to destroy him: but if thou canst do any thing, have compassion on us, and help us.
Jesus said unto him, If thou canst believe, all things are possible to him that believeth.
And straightway the father of the child cried out, and said with tears, Lord, I believe; help thou mine unbelief.
When Jesus saw that the people came running together, he rebuked the foul spirit, saying unto him, Thou dumb and deaf spirit, I charge thee, come out of him, and enter no more into him.
And the spirit cried, and rent him sore, and came out of him: and he was as one dead; insomuch that many said, He is dead.
But Jesus took him by the hand, and lifted him up; and he arose.
And when he was come into the house, his disciples asked him privately, Why could not we cast him out?
And he said unto them, This kind can come forth by nothing, but by prayer and fasting.
And they departed thence, and passed through Galilee; and he would not that any man should know it.
For he taught his disciples, and said unto them, The Son of man is delivered into the hands of men, and they shall kill him; and after that he is killed, he shall rise the third day.
But they understood not that saying, and were afraid to ask him.
And he came to Capernaum: and being in the house he asked them, What was it that ye disputed among yourselves by the way?
But they held their peace: for by the way they had disputed among themselves, who should be the greatest.
And he sat down, and called the twelve, and saith unto them, If any man desire to be first, the same shall be last of all, and servant of all.
And he took a child, and set him in the midst of them: and when he had taken him in his arms, he said unto them,
Whosoever shall receive one of such children in my name, receiveth me: and whosoever shall receive me, receiveth not me, but him that sent me.
And John answered him, saying, Master, we saw one casting out devils in thy name, and he followeth not us: and we forbad him, because he followeth not us.
But Jesus said, Forbid him not: for there is no man which shall do a miracle in my name, that can lightly speak evil of me.
For he that is not against us is on our part.
For whosoever shall give you a cup of water to drink in my name, because ye belong to Christ, verily I say unto you, he shall not lose his reward.
And whosoever shall offend one of these little ones that believe in me, it is better for him that a millstone were hanged about his neck, and he were cast into the sea.
And if thy hand offend thee, cut it off: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life maimed, than having two hands to go into hell, into the fire that never shall be quenched:
44.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And if thy foot offend thee, cut it off: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halt into life, than having two feet to be cast into hell, into the fire that never shall be quenched:
46.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And if thine eye offend thee, pluck it out: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with one eye, than having two eyes to be cast into hell fire:
48.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For every one shall be salted with fire, and every sacrifice shall be salted with salt.
Salt is good: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ltness, wherewith will ye season it? Have salt in yourselves, and have peace one with another.
(마가복음의 50절에....)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Salt is good: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ltness, wherewith will ye season it? Have salt in yourselves, and have peace one with another.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혹은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등등 여러 번역에 차이가 있지만...
역시, 소금(Salt), 염화나트륨=NaCl, 네 자신이 소금이 되어라, 그리고 서로 화목하라, 즉 평온하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Jesus)님께서...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셔도,
성경을 읽어 보신 적이 없으셔도,
교회에서 성경을 통해서 설교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하셔도,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께서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편견없이, 신약성경 중의 마가(Mark:영어), 혹은 마르코(Markos:그리스어), 같은 이름인 마커스(Marcus:마르쿠스:이탈리아어), 이 분께서, 예수님이 설교하신 것을, 마가복음 9장에 여러 기사와 함께 쓰신 것입니다.
위 글 본문에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합장(合掌)에 대해서,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님의 글을, 소개하며 오늘의 일기를 끝마칠까 합니다.
벌써, 새벽 2시 43분이 지나고 있어서...
〈手を合わせる合掌の由来〉
〈손을 하나로 모우는 합장의 유래〉
『心行』の一節に、「苦楽の両極を捨て中道に入り、自己保存、自我我欲の煩悩を捨てるべし」、とあるが、神仏に手を合わせる合掌の姿は、右と左の両極端の手を真中で合わせるという中道の姿なのである。
『심행(心行)』의 1절에, 「고락의 양극을 버리고 중도에 들어가, 자기보존, 자아아욕(자기만의 욕심)의 번뇌를 버려야 한다」,가 있는데, 신불에게 손을 하나로 모우는 합장의 모습은, 오르쪽과 왼쪽의 양극단의 손을 한가운데로 합친다고 하는 중도의 모습인 것이다.
高橋師の記述から
다카하시 스승님의 기술에서
「合掌は、右にも左にも偏らない調和を意味し、それは、中道を示しているのである。つまり、合掌とは、自分自身が左右に偏らない生活を、自分で、自分に誓うものである。題目をあげる場合も、合掌をしながらあげるが、題目をいくらあげても、心の安らぎは得られない。心の安らぎは、自らが調和した中道の生活を行なう中から生まれてくる。愚痴や怒りや、足ることを忘れた欲望の両極端の思念と行為からは生まれてこない。にもかかわらず、人々は調和の心とは縁遠い偏った思いや行為をしながら、題目や合掌をしている。これでは、いくら経っても、自分自身の生活は調和されない。」
「합장(合掌)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조화를 의미하고, 그것은, 중도(中道)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생활을, 스스로, 자신에게 맹세하는 것이다. 제목을 올리는 경우(★ (니찌렌종(日蓮宗)에서 외우는)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 나무미요우호렌게교우))★라고 외우는 경우도, 합장을 하면서 올리지만, 제목을 아무리 올려도, 마음의 편안은 얻을 수 없다.
마음의 평안은, 자신이 조화된 중도의 생활을 실천하는 가운데에서 태어난다. 우치(愚痴:푸념)이나 분노나, 만족함을 잊어버린 욕망의 양극단의 사념(思念)과 행위에서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화의 마음과는 인연이 없는 치우친 생각이나 행위를 하면서, 제목이나 합장을 하고 있다.
그러면은, 아무리 시간이 경과해도, 자기 자신의 생활은 조화되지 않는다.」
★제목을 올린다 題目をあげる란 의미는,
<불교> (니치렌종(日蓮宗)에서 외우는)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 나무미요우호렌게교우'의 일곱 글자.이며,다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를 들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런 식으로요. 주여 주여, 하는 등.
http://blog.daum.net/5lamp/8141780 제 블로그에, '소금'을 검색하시면, 내용이 여럿 나옵니다.
몇 일 후면, 4월 초파일이 옵니다.
저는, 절(寺)에 다니지 않습니다만,
양손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데도 역시 좋습니다.
저는 간혹, 굿당이나 무속인들이 기도처나, 산에 오를 때도,
가끔, 아주 가끔, 손을 합장하고는, 동서남북으로 가볍게 묵례를 하고 올라가거나,
인사를 하거나 하기도 합니다.
또한 가끔은, 마음이 깨끗한 느낌이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도,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물을 마실 때도, 가끔은, 합장을 하고 '물'에게 합장 한 상태로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형상이 아닐지라도,
저는, 만물에 영혼(의식)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인사를 하곤 합니다.
어제 그러니까, 2018년 04월 12일 목요일 자정쯔음에, 잠들기 전에,
내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나란, 사람은,
성질이 급해서, 생각을 순식간에 하고서는, 내 자신의 가치관? 혹은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고성을 지르는 아주 고약한, 성질머리를 갖고 있어서,
그것을, 안아 주기 위해서, 어찌하여야 하나? 하면서,
정법 신리(正法神理)를 알게 된지, 어언 올해로 10년이 되었지만,
사람들을 당혹케 하는, 나를 깍아 내리게 하는, 웈 하고 벌컥 큰 목소리를 내며, 화를 내는, 내 자신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다가......
아,
잠에서 깨어나,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만나는 사람들마다와 같이 있을 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해 주자, 라고 반성과 다짐을(자주 바뀌지만) 하고는, 잠을 잔 후,
목요일 아침 9시부터....오후 4시 반까지...
오로지,
내 주장이 아니라, 내 입장이 아니라,
그들이 입장에 서서 보고 듣고 행동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처음 보는 분들이, 나와 몇 시간 함께 하는 동안에,
나를,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좋은 쪽으로 말해 주시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의견 혹은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하는 그대로, 따라, 해 준 결과,
뜻밖에도,
어떤 분은, 저에게 고맙습니다.
어떤 연세가 아주 많으신 할머니는, 착하네, 착해, 라고 하시고,
동네 여러분들 중에 여러분들이, 저에게,
수고했습니다, 라고 진심이 어린 말들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몸은 정말, 고단하기는 했습니다.
사실, 저는, 척추 장애가 있으며, 대형 교통사고 3번이 있었고, 그로 인해 후유증으로 허리가 고통을 호소할 때가 많습니다. 진통제를 달고 살고 있으니까요. ㅎㅎ
게다가, 위장이 80%을 불과 몇 년 전에, 제거하는 대수술을 하였고, 십이지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밥을 새모이 먹듯이 먹어야 하기에,
조금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 허리와 등 전체가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매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목요일이었습니다.
내 입장을 조금 버리고, 혹은 아주 버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을 뿐인데,
나를, 바라보는 그들이, 태도와 입장은,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다 있어! 라는 식으로,
첫인상이, 아주 강렬해서, 어떤 이들은, 내 얼굴을 처음 보면, 살기(殺氣)가 강하다느니, 인상이 강하다느니, 성깔 있겠네, 라고 보거나 말하기도 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저,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해 준 결과,
이런 놀라운 반전이 전개되었다는 사실에,
정말이지,
팔정도 중에, 정견(正見), 그저 봄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 혹은 상대방이 입장에서 서서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결과, 는 기분 좋은, 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대우주대신령신불님이, 마음(의식)은, 자비와 사랑이었으며, 만물을 평온케 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마가복음 9장 50절이
Salt is good: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ltness, wherewith will ye season it? Have salt in yourselves, and have peace one with another.
Have salt in yourselves, and have peace one with another.
네 자신이 소금이 되어라, 그리고 서로 화목하라, 즉 평온하라, 라고
하는 말처럼, 되었습니다...
새벽 3시 10분이 막 지나고 있는, 이 시간에, 제 블로그에 로그인 하시고 들어오신 분이,
두 분(2名)이 계시네요.
나날이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보시는 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