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인내(忍耐)와 인욕(忍辱)의 차이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인내(忍耐)와 인욕(忍辱)의 차이

어둠의골짜기 2009. 11. 16. 16:01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법

 

   불경에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말이 있다.

   고(苦)는 인생의 온갖 괴로움을 말하고, 집(集)은 그 괴로움의 원인을 말하며,

   멸(滅)은 그 원인을 없앤다는 뜻이고, 도(道)는 그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사물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개인의 입장을 버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보통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 더욱이 이해 관계가

  얽힌 문제가 되면 시비의 판단이 흐려져 이따금 후회스러운 결과를 빚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의 문제가 되면 어느새 자기 보호의 마음이 작용하여 사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관찰, 올바른 판단은 자신을 버리고 이를테면 제3자의 입장, 즉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물을

냉정하게 보는 데에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마음이 내면까지 파고들어가서

지금까지 옳다고 여겼던 일이 전혀 반대인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을 겉모양만 보고 판단을 내리면 낭패를 당하는 수가 많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의 뒤에 숨은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성을 해야 하며

  객관적인 입장의 반성을 통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없애야 한다.

 

  올바르게 보는 힘은 올바른 견해를 낳는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의 어지러운 움직임에

  일일이 마음이 흔들릴리도 없으며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이 지상에서 일어난 일은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인만큼 바르게 보는 실력이 갖추어짐에 따라

  현상의 뒤에 숨은 원인을 찾기가 쉬워진다.

  바른 마음의 눈을 길러 향상되고 정확해지며 마침내는 신의 마음에까지 닿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보자는 것은 사물의 정확한 판단과 견해를 얻는데 있다.

 

  모든 원인은 마음에 있으며 물리적 현상은 마음이 어떻게 결정지었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전부터 갖고 있던 관념을 백지화하고 사물의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

  모든 잘못은 사심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사심을 버리고 항상 선의의 제3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본다.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 이전에 중도를 중심으로 한 올바른 생각이 있어야 한다.

  자기 중심의 생각은 자신을 망친다.

  왜냐하면 모든 현상은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하여 순환의 법칙에 따르고 있으므로

  자기 보호의 상념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가'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 등의 속담 그대로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창조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좋게 하려면

  우선 생각을 늘 올바르게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은 행동의 전제이지만 실은 행동 그 자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으로 간음한 것은 행동으로 간음한 것 이상으로 죄악시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바르게 생각하는 것도

  바르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은 어떤가, 이 문제를 그렇게 결정하면 그에게 어떤 피해가 올 것인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상대방의 행복을 비는 조화를 목적으로 한 생각이 중요하다.

  정도(正道)의 목적은 '마음의 평화'이며 마음이 늘 어둡고 불안하면 아무 일도 안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내와 인욕(忍辱)을 구별해서 생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견디는 인내는 고통, 슬픔, 노여움, 미움 등의 감정을 뱃속에 집어 넣은 것을 의미한다.

  나 혼자만 참으면 집안이 평온할 것이니 참는다는 그 인내는 독이 되고 질병과 불행의 원인이 된다.

 

  인욕 역시 견디고 참는다는 뜻이지만 고통, 슬픔, 노여움, 미움 등을 티끌만큼도

  뱃속에 삼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의 평안과 조화를 신불에게 빌어 주는, 넓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인욕을 일상 생활에 익힘으로써 참고 독을 삼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른 생각을 기르는 데에도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

 하루의 일과를 통해서 내 생각은 옳았던가를 살펴 보고

  잘못이 있었으며 고쳐야 한다. 이런 가운데 중도의 생각을 마음 속에 확립할 수가 있다. 

  생각하는 것은 만물의 시초이다.

  모든 현상은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므로 남을 살리는 사랑의 생각이 바른 생각의 바탕이다.

 

  말은 살아 있는 영혼의 파장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직접적인 매개 방식이다.

  또 한번 입 밖에 나온 말은 상대방의 귀를 통해서 조화든 부조화든 어느 한 가지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지나치게 알랑거리는 말과 불손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자기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은 적어도 안 되며 많아도 좋지 않다.

  상대편의 마음이 되어 대화해야 한다.

 

  흔히 거리에서 운전 기사들이 서로 고함지르며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령 상대방이 고함을 질러도

  이쪽에서는 반항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백번 옳다고 판단해도 반발해서는 안 된다.

  반발은 자기 보호의 표현이자 자기 중심의 생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올바르게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툼은 마음의 조화를 깨는 원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가 화를 내도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선악을 잘 판단하고 그 위에 마음을 조화시켜야 한다.

  화낸 마음의 파장은 결국 화를 낸 사람에게 되돌아가는 것이 순환의 법칙이다.
 

  '말한다'는 것은 나와 상대의 뜻이 서로 교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드러운 말에서 받는 느낌과 거친 말에서 받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느낌이 좋은 부드러운 대화 가운데서 조화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심한 비방이나 험담이나 노여움에도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며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 버려야 한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을 듣게 되었는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런 억울한 말을 들을 만한 원인이 없을 때에는 '불쌍한 사람이다'고, 말한 사람을 동정해 주어야 한다.
  '신불이여, 부디 저분의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그렇게 상대방을 위한 기도를 해 주어야 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보살심(菩薩心)의 표현이며

  바른 말의 핵심이다.

  생각하는 것은 말이 된다. 사랑의 생각은 사랑의 말이 된다. 바른 말이란 사랑의 말이다.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말 이전의 말이 상대에게 전달된다.

 

출처 :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저자 :다카하시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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