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정법과 업 -『高橋信次』 본문

가르침의 글(高橋信次)

정법과 업 -『高橋信次』

어둠의골짜기 2009. 12. 23. 15:21

[正法と業] 정법과 업

 


奈良の大仏、鎌倉の大仏はどうして作られたかというと、大仏の製作者が仏の姿を夢で見るとか、あの世の天使に教えられ、仏の心は宇宙大に広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ああした仏像を手がけるようになったと言える。
나라현의 대불, 가마쿠라의 대불은 어떻게 제작된것인가하면, 대불의 제작자가 부처의 모습을 꿈에 봤다고하든지, 저세상의 천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부처의 마음은 우주에 크게 넓혀져다는 것을 알고, 저러한 불상을 제작하게되었다고 전해진다.


人の心というものが調和されてくると、もう一人の自分、つまり、肉体という原子細胞と一緒に生活している光子体が大きくなっていく。後光(※いわゆるオーラとは異質のもの)というのは、光子体のことであり、この分野が心の調和に比例して拡大されていくのである。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조화되어오면, 또 한사람의 자기자신, 즉, 육체라고하는 원자세포와 함께 생활하고있는 광자체가 커다랗게 되어 간다. 후광(※흔히 말하는 오로라는 이질적인 것)이라는 것은, 광자체의 것이고, 이 분야가 마음의 조화에 비례하고 크게 확대되어 가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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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法(しょうほう)を知って生活している人々の後光は、まず頭の周辺がボーッと明るく出てくる。仏像の多くは頭部の背後に丸く円を描いた姿で作られているが、ああいうようになってくる。
さらに調和が進み、心と生活が正法に適ってくると、後光の範囲は頭部だけではなく、体全体に広がるようになる。
정법(쇼우호우)을 알고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후광은, 우선 머리의 주변이 밝게 드러난다. 불상의 대부분은 두부의 배후에 둥근원을 묘사한 모양으로 제작하고 있는바, 저런식으로 되는 것이다.
나아가 조화가 진행되어, 마음과 생활이 정법에 적합하게되면, 후관의 범위는 두부뿐만아니라, 몸 전체로 넓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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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光の姿はこれで終わり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過去、現在の転生輪廻を知り、その転生の過程の中で神理を知った生活をし、広い心で多くの人々を救ってきた人の後光は、もっと大きくなってくる。
후광의 모습은 이것으로 끝나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과거, 현재의 전생윤회를 알고, 그 전생의 과정의 가운데 신리를 안 생활을 하고, 넓은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왔던 사람의 후광은, 좀 더 커어진다.

 

さらに生命の転生輪廻の事実を知り、生と死を解脱した光の大指導霊の後光は宇宙大の大きさになっている。
나아가 생명의 전생윤회의 사실을 알고, 생과 사를 설명한 빛의 대지도령의 후광은 우주대해의 크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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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の天使、菩薩、如来の後光は、こうした心の広さが光子体に反映し、光子体が拡大されていくわけである。心の広さは、心に曇りがあるかないか、そうして転生輪廻の過程の中で正法神理を実践してきたかどうか、現在の調和度はどうか、こうしたものがミックスされて現われてくるものである。
빛의 천사, 보살, 여래의 후광은, 이러한 마음의 넓이가 광자체에 반영하고, 광자체가 확대되어지고 있다. 마음의 넓이는, 마음에 구름이 있는지 아닌지, 그러한 전생윤회의 과정속에서 정법신리를 실천해왔는지 아닌지, 현재의 조화도는 어떤지, 이러한것이 믹스되어 나타나는것이다.

 

宇宙即我(うちゅうそくわれ)の心の境地になった人を如来(にょらい)と呼んでいる。
如来というのは中国で作られた言葉である。文字通り、来るが如し、ということであり、大自然の神理、人間の心、法というものについて詳(つまび)らかにし、人間の生活の在り方を説き来る人たちをいうのである。
우주는 즉 자기라는 마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여래라고 부르고 있다.
여래라는 것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문자대로(말그대로), 오는것과 같다, 라는 말로 그것이고, 대자연의 신리, 인간의 마음, 법이라고 하는것을 상세히 알고, 인간 생활의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려 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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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た「悟り」という言葉もある。これも中国から来ている。
この語は実にうまく出来ており、りっしんべんは心であり、吾は自分を指す。二つが組み合わさって悟ると読むが、悟りとは我が心を知ることである。
心を本当に理解できると、人間は不生不滅(ふしょうふめつ)、不垢不浄(ふくふじょう)を知り、生死を超えることができてくる。
또한 깨달음이라고하는 단어도 있다. 이것도 중국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은 참으로 잘 만들어진, 심방변은 마음이고, 나[깨달음]는 자신을 가리킨다. 둘이 조합이 잘되어 깨닫다라고 읽는바, 깨달음이라는 내가 마음을 아는 것이다.
마음을 당연히 이해할 수 있으면, 인간은 불생불멸, 불구부정을 알고,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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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て、仏教も正法として説かれた時代は短く、僅か千年ぐらいであったろう。いろいろな言葉に訳されるにしたがって形骸化され、日本に来た時分にはいつの間にやら他力本願になってしまった。
現代宗教家の多くは、貧乏し病気をしていると「あなたの前世は業(カルマ)が深いから貧乏している」「前世で悪いことをしたから病気をする」という説明が返ってくるようだ。
그러면, 불교도 정법으로서 설교된 시대는 짧고, 불과 천년정도이겠지요. 여러가지 말로 번역됨에 따라 내용은 없고 모양뿐인 것이 되고, 일본에 전해진 때에는 어느새 타력본원이 되어지고말았다.
현대종교가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병이들어 있으면 "당신이 전생은 업이 깊으니까 가난한것이다" 전생이 악한일을 한까닭으로 병이든거다" 라고 설명해주는 것같다.

 

そこで私はききたいのだが、生まれるときに金を持ってきたか、死ぬときに地位や財産を持っていけるか、生まれたときも裸なら、死ぬときも裸である。金が有る無しは、人間のこの世における知恵が生み出したもので、前世の業とは関係がないといえよう。
金持ちに生まれる、貧乏人に生まれるというのは、自分があの世で選んでくるのである。業が深い浅いではない。
그래서, 나는 들어보고 싶은바, 태어날 때에 돈을 가지고 왔는가, 죽을때에 지위나 재산을 가지고 가겠는가, 태어났을때도 알몸뚱이고, 죽을 때도 알몸뚱이다. 돈이 있고 없고는, 인간의 이 세상에 있어서의 지혜가 생겨난 것이고, 저 세상의 업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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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世の業は、あの世においてある程度修正しなければこの世に出ることは出来ない。地獄の霊がこの世に(赤ちゃんとして肉体を持って)出ようと思っても、それはできない相談である。悪事や業というものは、まずあの世でみっちりそれを修正し、そうして、その修正した事柄を現世で修正できたかどうか自らが試していくのである。
전생의 업은, 저 세상에서 어느 정도 수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지옥의 영이 이 세상에 (갓난이로해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될 수 없는 상담이다. 나쁜일이나 업이라고하는 것은, 우선 저세상에서 확실하게 그것을 수정하고, 그리고나서, 그 수정한 사항(사정)을 현세에서 수정되었는지 어떤가(아닌지) 스스로가 시험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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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ため、仮に前世で貧乏をして(その貧乏により)心を狭くし、それに負けた場合は再び貧乏の環境を選ぶ場合がある。反対に裕福な家庭に生まれ、わがままや増長慢に陥った者は、もう一度裕福な家庭に育ち、そうならないよう自らの心を磨いていく者もある。
그 때문에, 가령 전생에서 가난하고 (그 가난때문에) 마음을 좁히고, 그것에 패배했을 때는 재차 가난한 환경을 선택하는 경우[때]가 있다. 반대로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제마음대로 자만에 빠진자는, 한번 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연마해가는 자도 있다.

 

これは業というより、業の修正が本当に出来たかどうかを試す意味でそうした環境を選ぶのである.

이것은 업이라기보다는, 업의 수정이 당연히 된것인가 아닌가를 시험하는 의미로 그런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다.

 

また,人間の価値というものも、金持ち、貧乏ということで決められるものでもないのである。金が有る無いの条件は、己の心がそうした条件に振り回されず、調和の心を維持し、進んで自分の心をより広げていく魂修行の一手段に過ぎない。
또한, 인간의 가치라는것도, 부자, 가난이라는것으로 결정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돈이  있고 없고의 조건은, 자기의 마음이 그러한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조화의 마음을 유지하고,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보다 넓혀가는 혼의 수행의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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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気の原因は前世の業というより、今世における我執や無理な体力の消耗がそうさせるもので、後天的なものである。先天的な障害者や子供の病気は両親の不調和から起きると言えよう。

병의 원인은 전세의 업이라고보다, 금세에 있어서의 아집이나 무리한 체력의 소모가 그렇게 만드는것이고, 후천적인 것이다. 선천적인 장해자나 아들의 병은 양친의 부조화로부터 일어난다고 말할수 있지요.

 

意識に記憶された業はあの世で100パーセント修正されるかというと、そういうわけにはいかない。人それぞれのあの世での修正の度合いによって、ある人は60パーセント、ある人は80パーセント、95パーセント修正できた人も出てくる。したがって、修正の度合いによって、この世では過去世、前世の業に強く引かれる者と、そうでない人もあると言える。この意味では前世の業と言えるかも知れない。
의식에 기억된 업은 저 세상에서 100% 수정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람 각자의 나름대로 저 세상에서의 수정의 정도에따라, 어떤 사람은 60%, 어떤 사람은 80%, 95% 수정된 사람도 나오게된다. 따라서, 수정의 정도에 따라, 이 세상에서는 과거세, 전세의 업에 강하게 이끌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는 전세의 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しかし、前世の業がそのまま結果となって出てくれば、人類はもうとうの昔に滅び去っている。何

となれば悪を犯さぬ者は一人もいないからである。
그러나, 전세의 업이 그대로 결과로되어 나온다면, 인류는 맹동의 옛날로 멸망되어 사라지게된다.
왜냐하면, 나쁜짓을 범하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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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て、このように考えてくると経済的に恵まれなくとも、心まで貧しくしてはならないし、恵まれた人は多くの病める人たちに愛の手をさしのべることが大事であると言えよう。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게되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않다해도, 마음까지 가난해질 필요는 없고, 풍족한 사람은 대다수의 병으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今日の人々の心は、足ることを知らぬ欲望に振り回され、自分を失っていると言える。人生の目的を自覚し、大自然が教える中道(ちゅうどう)の心を知るならば、足ることを知った生活、つまりは神の子の自分を自覚するならば、欲望、我執に翻弄される無意味さを悟ることができよう。
오늘날의 사람들의 마음은, 만족할줄 모르는 욕망에 흔들려, 자기자신을 잃고있다고 말할수 있겠지요. 인생의 목적을 자각하고, 대자연이 가르치는 중도의 마음을 안게되면, 만족할 줄 아는 생활, 즉 신의 자녀인 자신을 자각한다면, 욕망, 아집으로 농간되는 무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足ることは我慢ではない、あきらめでもない。神の子の己を自覚した想念と行為を意味するのだ。与えられた環境、仕事に対しては全力を挙げてこれに当たる。それは欲望に燃えてそうするのではなく、調和に役立つために当たるのである。
만족한다는 것은 참는것도 아니고, 체념[단념]하는 것도 아니다. 신의 아들인 자기를 자각한 상념과 행위를 의미하는것이다. 주어진 환경, 일에 대해서는 전력을 다하여 이에 부딪치는 것이다. 그것

은 욕망에 불타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조화에 기여를 하기 위해서 부딪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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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人は利を求めるが、利を求めるなとは正法は決して言っていない。大事なことは求めて得た利益をどう処分するか、自分だけのことに使うか、家族や従業員に分け与えるか、不幸な人たちに愛の手を差し出すか。足ることの知らない人たちは自分が中心であり、人のことなど構わない。

상인은 이익을 추구하지만,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고는 정법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추구하고 얻은 이익을 어떻게 처분하는가, 자기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할것인가, 가족이나 종업원에게 나누어 줄 것인가, 불행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을 것인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다.[신경조차 안쓴다].

 

大気汚染や河川の汚れは企業エゴイズムがそうさせたものであり、経済の歯車はこうした企業エゴを中心に動いてきたので、今日ここから脱皮しようにも身動きできないというのが現状である。自分だけのことを考えれば、やがてその因果は自分にはね返ってくる。
대기오염이나 하천이 오염은 기업에고이즘이 그렇게 시킨것이며, 경제의 톱니바퀴는 이러한 기업에고이즘을 중심으로 움직여왔기때문에, 오늘날, 이로부터 탈피하려고해도 꼼짝도할수 없는 현상이다.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면, 이윽고 그 인과는 자기자신에게 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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足ることの生活環境は、仏国土という相互扶助、愛に満ちた世界なのだ。そうしてそうした世界に住するようになれば、人の心はさらにより広く、大きく進化させることが出来よう。
만족할 줄 아는 생활환경은, 불국토라고하는 상호부조, 사랑에 충만한 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세계에 살게되면, 사람의 마음은 더욱 넓어지고, 크게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仏教の言葉に諸法無我(しょほうむが)というのがある。諸法とは、大宇宙、小宇宙(たとえば人体)を動かし、秩序を保っているところの神理のこと。一切のものはすべて循環という法の下(もと)にある。循環という秩序である。無我とは、これは意思が無いというのではなく、自分勝手の自分ではなく、公平無私な中道ということなのだ。法に欲望や自分があったら法にならない。法とは公平無私な規範であり、万物を生かす秩序である。太陽の熱・光に好き嫌いの感情があったらどうなるだろう。一切の生物は生きてはいけない。
불교의 말로 제법무아라는 것이 있다. 제법이란, 대우주, 소우주(예를들어 인체)를 움직여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신리인 그것. 일체의 사물은 모두 순환이라고 하는 법의 근원에 있다. 순환이라고하는 질서이다. 무아란, 이것은 의사가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의 자기가 아니라, 공평무사한 중도라고하는 것이다.  법에 욕망이나 자기자신이 있다면 법이 아니다. 법이란 공평무사한 규범이며, 만물을 살리는 질서이다. 태양의 열・빛에 좋고 나쁨이 감정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일체의 생물은 살아갈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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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法無我——つまり、森羅万象は中道に沿って生かされ生きているのである。私たちの心も諸法無我に沿って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中道から外れれば、外れた分だけ苦しまねばならない。

제법무아 -----즉, 삼라만상은 중도에 따라서 살아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도 제법무아에 따라서 살아야만 한다. 중도로부터 벗어나면, 벗어난 만큼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 

 

五官六根(が全てだと思いそれに)に頼った生活、あるいは無我というから、自分を無くした生活をすればよいと考えたら大変である。意思のない法、秩序というものはないのである。

法として存在する以上は、必ずその底には意思があり、意思が働いているから秩序正しき法が存在するのである。

오관육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것에)에 의존하는 생활, 혹은 무아라고 하니까, 자기자신을 없애버린 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큰일이다. 의사가 없는 법, 질서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법으로서 존재하는 이상은, 반드시 그 근저[밑바닥에]는 의사가 있고, 의사가 움직이고 있기때문에 질서 바른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その意思は中道という片寄らない神の心、公平にして無私なる心、万物を生かし、己の心を宇宙大に広げた心であるのだ。
그 의사는 중도라고 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신의 마음, 공평하게하여 무사가 되는 마음, 만물을 살리고, 자기의 마음을 우주대해로 널리 펼친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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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の安らぎは、こうした中道に向かった反省と修正した行為によって、自然に培われていくものである。
마음의 평온은, 이러한 중도를 향한 반성과 수정한 행위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배양되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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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この稿は、志賀高原・熊の湯での研修会における講演の要旨である。〔1973年10月の月刊GLAに掲載分〕
  (주) 이 원고는, 시가고원, 쿠모노 유에서 열린 연수회에서 거행된 강연의 요지이다.[1973년 10월 월간 GLA게재분]

 

※출처 : GLA관서. 원문의 저자 : 다카하시 신지.

2009년 12월 23일 겨우 겨우 몇시간 걸려 우리말로 옮겨봤어요. ㅎㅎ 좀 서툴어도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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