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전재「人間釈迦より」釈迦の悟りとは ? 「인간석가에서」부처님의 깨달음이란? 본문
「人間釈迦より」釈迦の悟りとは ?
「인간석가에서」 석가의 깨달음이란 ?
高橋信次先生著「人問釈迦」第一巻より要約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저서 「인간석가」 제1권에서
★인간석가는 총 4권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이 책은, 한국에 출판된 적이 없습니다.
★김해석님의 번역하시었던, 붓다, 약 800페이지 분량,의 책은 한국에 소개되었지만, 현재 절판이며, 각 도서관에 가면, 아마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 블로그에도, 한글로 번역된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一口の牛乳
한 모금의 우유
(ゴーダマが)カピラを出て以来、六年目の終りが近づこうとしている。
(고다마가)카필라를 나온 이래, 6년째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かつてのたくましかった肉体はどこへやら、まだ三十の半ばだというのに、老人のようにすっかり衰弱し、骨と皮のみになって、死を待つ者の姿がそこにあった。
일찍이 다부졌던 육체는 어디로 가고, 아직 30 중반이라고 한데도, 노인처럼 완전히 쇠약하고, 뼈와 가죽만 남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ゆるやかに流れるネランジャラ河は、衰弱した肉体を清め、すすいでくれた。
腰までつかって水面を覗くと、そこに映った自分の顔は、まるで他人みたいであった。
六年前も今も、心には何の変化もないのに、肉体の方は全然別人だった。
느릿하게 흐르는 네란자라 강은, 쇠약한 육체를 깨끗이 하고, 씻어 주었다.
허리까지 잠겨 수면을 내려다 보자, 거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마치 타인과 같았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육체의 쪽은 전연 딴사람이었다.
しばらく牧草の砂地に腰をおろしていると、女の歌声が風に乗ってきこえてきた。
잠시 목초의 모래땅 위에 앉아 있자, 여자의 노래소리가 바람에 실려서 들려 왔다.
弦の音は、強く締めれば糸は切れ
현의 소리는, 강하게 조이면 실은 끊어져
弦の音は、弱くては音色が悪い
현의 소리는, 약해서는 음색이 안좋아
弦の音は、中ほどに締めて音色がよい
현의 소리는, 중간 정도로 조여야 음색이 좋아
調子合わせて踊ろよ踊れ
박자를 맞춰 춤을 춰라 춤을 춰라
みんな輪になり踊ろよ踊れ
모두 원형을 이루며 춤을 춰라 춤을 춰라.
朝靄をついて流れてくる若く澄んだ女の美声は、ゴータマの心をゆり動かした。
「弦の音は、中ほどに締めれば音色がよい」
아침이슬을 머금고 흘러오는 젊고 맑은 여자의 미성(고운 목소리)은, 고다마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현의 소리는, 중간 정도로 조이면 음색이 좋아」
もう一度、歌の文句を心のなかで反復した。
今迄求めてきた謎が、この歌声によって天啓のように氷解するのだった。
다시 한번, 노래의 문구를 마음속으로 반복했다.
지금까지 찾아 왔던 수수께끼가, 이 노랫소리에 의해서 하늘의 계시처럼 빙해하는 것이었다.
ゴータマは腰を上げると、その歌声の方に近づいた。
고다마는 일어나서, 그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다가갔다.
声の主は、草むらの蔭につないである牛の乳を搾っていた。
乳を搾りながら歌っているのであった。
年の頃は十六、七、身なりこそ粗末だが、面長で気品のある顔立ちであった。
소리의 주인공은, 풀숲의 그늘에 매어 놓고 있는 소의 젖을 짜고 있었다.
우유를 짜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이가 16, 17세 쯤이 되고, 옷차림야말로 변변치 못하지만, 얼굴이 갸름하고 기품이 있는 용모였다.
ゴータマは気づかれないように、ゆっくりと近づき、彼女が歌い終るのを待った。
고다마는 알아차리지 못하게,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가 노래를 끝마치는 것을 기다렸다.
「よい歌を間かせてもらって、ありがとう。」
「좋은 노래를 들려주서, 고마워요」
彼女は一瞬おどろいた風だったが、はずかしそうにうつ向きながら
「搾りたての牛乳です。よかったら一口いかがですか・…」といった。
顔を赤らめながら、ゴータマの鉢にそそいでくれた。
그녀는 한 순간 깜짝 놀랐던 것인지, 부끄러운 듯이 돌아보면서,
「갓 짜낸 우유입니다. 괜찬다면 한 모금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얼굴을 붉히면서, 고다마의 바리때에 부어 주었다.
「よかったら名をきかせて下さい。」
「괜찮다면 이름을 들려주십시오」
「はい、チュダリヤ・チュダータと申します。」
「네. 츄다리야・츄다타라고 합니다」
ゴータマは、チュダータに礼をいうと、五人の修行者達のところに行き、彼女からもらった牛乳を口にした。
고다마는, 츄다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5인의 수행자들의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에서 받은 우유를 먹었다.
これを見ていたコースタニヤが言った。
「ゴータマさま、あなたは修行をやめたのですか、修行者は生臭いものを口にしてはいけないはずです。」
이것을 보고 있던 코스타니야가 말했다.
「고다마님, 당신은 수행을 그만둔 것입니까? 수행자는 비린 것을 먹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ゴータマは五人の顔を眺め、
「このまま肉体行を続けていては、悟らないうちに肉体が滅んでしまう。
私は骨と皮になったこの肉体を作り直そうと決心したのだ。」
ときっぱり言った。
고다마는 5인의 얼굴을 보며,
「이대로 육체수행을 계속하고 있으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육체가 멸망해 버린다.
나는 뼈와 가죽만 남은 이 육체를 다시(고쳐)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五人は何やら相談していたが、代表格のコースタニヤが言い放った。
「ゴータマ、あなたとは今日かぎり別れよう。
今までは弟子としてあなたをお守りしてきたが、もう王子でも師でもない。
あなたの自由にしなさい。」
5인은 무엇인가 상담하고 있었는데, 대표격인 코스타니야가 딱 잘라 말했다.
「고다마, 당신과는 오늘까지로 헤어지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자로서 당신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왕자도 스승도 아니다.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彼らはゴータマから離れると、ゴータマに一顧もせず、ネランジャラ河の岸辺沿いに北に下って行った。
그들은 고다마를 떠나면서, 고다마에게 일고조차 하지 않고(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네란자라 강의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갔다.
心の格闘
마음의 격투
修行はもともと一人である。
悟りも自分が悟るので、友ではない。
ウルヴェラの森に帰って、ビパラの大木を見つけると、悟るまでは、決してここから動くまいと思うのだった。
수행은 원래 혼자이다.
깨달음도 자기가 깨닫는 것이며, 친구가 아니다.
우루베라 숲으로 돌아가서, 피팔라(보리수) 거목을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보이자, 깨달을 때까지는, 절대로 여기에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생각사는 것이었다.
東の方に向って正座し、チュダータの歌っていた民謡を思い出しながら、静かに瞑想するのであった。
瞑想中のゴータマは、昨日までのゴータマではもはやなかった。
一切の執着から離れた自分にかえっていた。
地上の想念から解放され、大自然の心に触れていたのであった。
동쪽을 향해서 정좌하고, 츄다타가 노래하고 있던 민요를 상기하면서, 조용히 명상하는 것이었다.
명상 중의 고다마는, 어제까지의 고다마가 이제는 아니었다.
일체의 집착에서 떠난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상의 상념에서 해방되어, 대자연의 마음에 닿아 있던 것이었다.
ふと瞑想中に心がゆれ動いた。
すると耳元に女の声がきこえてきた。
문득 명상 중에 마음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화했다.
그랬더니 귓전에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シッタルターさま、私でございます。」
「싯타르타님, 접니다.」
思わず、ゴータマは眼を見開いた。
엉겹결에, 고타마는 눈을 크게 떴다.
焚火の明りをすかしてみると、暗闇のなかに、ヤショダラの姿があるではないか。
ヤショダラのいる左の方にも人が立っている。
第二夫人のゴーパであった。
모닥불의 불빛을 비쳐 보자, 밝기를 어둠 속에, 야쇼다라의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야쇼다라가 있는 왼쪽에도 사람이 서 있다.
제2부인인 고파였다.
さらによく見ると、かつて言葉を交わした踊り子達の姿もあるではないか。
ゴータマは、じっと前方をみつめたまま、立とうとはしなかった。
더욱 자세히 보자, 일찍이 말을 섞었던 무용수들의 모습도 있는 것이 아닌가?
고다마는, 가만히 전방을 응시한 채로, 일어서지는 않았다.
そのうちに、ヤショダラの体が動いた。
男を求める女のあやしい姿がそこに映っている。
体をくねらせ、春を売ろうとする女に変っていた。
불원간, 야쇼다라의 몸이 움직였다.
남자를 갈구하는 여자의 괴이한 모습이 거기에 비추고 있다.
몸을 구불구불 비비꼬며, 매춘을 하려고 하는 여자로 변해 있었다.
(悪魔だ)
(악마다)
そう思った瞬間に、女達の姿は消え、ゴータマの体は梵天の光りに覆われていた。
그렇게 생각한 순간에, 여자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고다마의 몸은 범천의 빛으로 덮혀 있었다.
悪魔とは、人間の体に巣をつくる回虫のようなものである。
悪魔に魅入られると、人は正常心を失ない、やたらと闘争心がつのってくる。
そして、自分に敵対するものは情け容赦もなく、これを倒さずには済まなくなってくる。
악마란, 인간의 몸에 둥지를 투는 회충과 같은 것이다.
악마에게 홀리면, 사람은 정상적인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구 투쟁심이 점점 심해진다.
그리고, 자신에게 적대하는 것은 인정 사정 없이, 이것을 쓰러뜨리지 않고는 베기지 못하게 되어 온다.
血をみて快感し、人の不幸に冷然としていられる。
피를 보고 괘감을 느끼고, 남이 불행에 차갑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人の不幸や悲しみを喜ぶ者はない。
だが、自分と競争相手にあるとか、頭を四六時中押さえつけている人が、たまたま何かがあると、
(ざまあみろ)
という心を持たない人は少ないであろう。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기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과 경쟁상대에 있다는가, 머리를 하루 종일(四六時中) 꽉 누르고(억누르고) 있는 사람이, 마침 무엇인가가 있으면,
(꼴 좋다, 그것 보라지)
라고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悪魔はそうした、人の不幸を喜ぶ人の心を支配するのである。
人の不幸を喜ぶ程度が強くなるにしたがって、身体が重くなり、環境が不調和になる。
악마는 그러한,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서, 신체가 무거워지고, 환경이 부조화하게 된다.
人間社会が混乱し、人の心が荒んでくると悪魔となってあの世へ帰った悪魔達が、現象世界の人々の心によって引き寄せられ、一層悪事を働くようになるのである。
인간 사회가 혼란하고, 사람의 마음이 거칠어어지고 황페해지면 악마가 되어 저 세상으로 돌아간 악마들이, 현상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서 끌리여(저절로 가까이 오게 되여)한층 못된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ゴータマは、暗闇の現象を見て、自分の心の隅に、まだそのような想念の残骸があったことに気づき、そうした悪魔の誘惑に負けてはならぬと心を引き締めるのであった。
고다마는, 어둠의 현상을 보고, 자신의 마음의 모퉁이에, 아직 그러한 상념의 잔해가 있었던 것에 생각이 미치고, 그러한 악마의 유혹에 져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긴장시키는(다잡는) 것이었다.
光明への道
광명으로의 길
肉体には肉体の役割がある。
その役割をなおざりにしてまで、なお悟りがあるとするのは明らかに邪道であり、観念の遊戯にすぎない。
悟りという心の問題は、健康な肉体と健全な心にある。
病弱で意識が不明瞭な者にどうして、神仏の心を自覚させることが出来よう。
육체에는 육체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등한히(소홀히)하면서까지, 여전히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사도(邪道)이며,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마음의 문제는,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마음에 있다.
병약하고 의식이 불명료한 사람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신불의 마음을 자각시킬 수가 있을까?
大自然の計らいを見よ。
대자연의 처리(조처)를 보라.
大陽は常に健康ではないか。
わめくことも、怒ることもない。
心をより広く、大きく開くためには、まず健全な肉体が必要であり、欠くことが出来ない。
悟りの大きな前提は精神と肉体の調和にある。
태양은 항상 건강하지 않는가?
큰소리로 떠드는 일도, 화를 내는 일도 없다.
마음을 보다 넓고, 크게 듣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며, 소홀히 할 수 없다.
깨달음의 큰 전제는 정신과 육체의 조화에 있다.
食べるものも食べず、摂るものも摂らず、肉体をどんなに苦しめてみても、心は安らかにならない。
肉体を苦しめる苦行によって悟ることが出来るのなら、過去に苦行をした人たちの中から悟った人が出ていてもよいわけであるが、誰も出ていない。
먹을 것도 먹지 않고, 영양을 섭취할 것도 섭취하지 않고, 육체를 아무리 괴롭혀 보아도, 마음은 평안하지 못하게 된다.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에 의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라면, 과거에 고행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깨달은 사람이 나와 있어도 좋을 것인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
「生まれて来なければ、このような苦しみを受けずにすむものを、」と考えるが、
生れてきた以上は人間には何らかの目的と便命があるはずである。
「태어나지 않으면, 이러한 괴로움을 받지 않고 살 것을,」 이라고 생각하지만,
태어난 이상은 인간에게는 무엇가의 목적과 사명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その目的とはいったい何か。
使命とは何か、いかなる者も、いつかは年をとり、病気をし死んでゆく。
그 목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사명이란 무엇인지, 어떠한 사람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병들어 죽어 간다.
何人も死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ない。
死ぬ時は地位も名誉も、財産も、全てこの地に置い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は皆分かっているのに、それでも欲望の火は消えぬ。
어떤 사람도 죽음에서 달아날 수는 없다.
죽을 때는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전부 이 땅에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욕망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五官を通して知る現象世界は無常である。
오관을 통해서 아는 현상세계는 무상하다.
無常と知りながらも、欲望をつのらせて無常なるものに執着している。
所詮、人生は苦しみの連続なのか、苦しみのない人生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現実との妥協か、逃避か、自己満足ではないのか。
무상하다고 알면서도, 욕망을 점점 더 격화시키며 무상한 것에 집착하고 있다.
어차피(결국),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인 것인가, 괴로움의 없는 인생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현실과의 타협이든가, 도피이든가, 자기만족이 아닌 것일까?,
苦しみのくり返しは、人間にとって最大の不幸である。
少なくとも、こうして人間と生まれたからには、苦しみをいだいて死を迎えることだけは避けたい。
万人が万人、その望むところは、死を迎えるまでに、その悩みから解放されろことであろう。
괴로움의 되풀이(반복)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행이다.
적어도, 이렇게 해서 인간으로 태어난 후에는, 괴로움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만은 피하고 싶다.
만인이면 만인, 그 바라는 바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 고민에서 해방되는 일일 것이다.
幸せこそ解脱である。
행복이야말로 해탈이다.
その解脱の道とは何であるのか。
万人に共通する解放への道はどんな道であろうか。
그 해탈의 길이란 무엇인 것일까?
만인(모든 사람)에게 공통하는 해방으로의 길은 어떤 길인 것일까?
苦しみの原因は心が間題なのだ。
思うこと考えることの心の作用が、諸々の苦しみ悩みを生み出している。
괴로움의 원인은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감정적·의지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마음의 작용이, 여러 가지의 육체적·경제적인 괴로움(고통. 고생. 어려움)과 정신적인 괴로움(고민. 번민. 걱정. 근심)을 낳고 있다.
多くの場含、肉体の眼を通して得た自らの体験と知識は、我欲を土台にした偏見になっている。
そのために、人間社会は諸々の予盾と撞着をつくり、自然が教える中道の心から離れている。
대부분의 경우, 육체의 눈을 통해서 얻은 자신의 체험과 지식은, 아욕(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토대로 한 편견이 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인간사회는 여러 가지의 모순과 당착을 만들고, 자연이 가르쳐 주는 중도의 마음에서 떠나 있다.
勝ち負けの輪廻は、その渦中からぬけ出さないかぎり永遠に続く。
苦しみの輪廻は、その苦しみの中に想いが留まる限り、果てしなく続いてゆく。
승패의 윤회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된다.
괴로움의 윤회는, 그 괴로움 속에 생각이 머무는 한, 영원히 이어져 간다.
中道にそった調和を志さない間は、真の幸せをつかむことはできない。
己れという我の立場に固執していては、正しさを求めることができない。
중도에 들어맞는 조화를 지향하지 않는 동안은, 참된 행복을 잡을 수는 없다. .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나의 입장에 고집하고 있어서는, 올바름을 찾을 수가 없다.
正しさの尺度は、男女、老若、地位、名誉等の別の立場を捨て去って、一個の人間として、大自然の中の己れとして、そしてその心の眼で、ものを見、相手を見、現実を眺めることである。
올바름의 척도는, 남녀, 늙고 젊음, 지위, 명예 등의 다름(차이)의 입장을 미련없이 떨쳐 버리고, 일개(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자연 속에 자기 자신으로서, 그리고 그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상대를 보고, 현실을 직시하는 일인 것이다.
調和の基本は、まず何はさておいて、見ることの正しさにある。
조화의 기본은, 우선 다른 일은 다 제쳐 놓고, 보는 것의 올바름에 있다.
現れた現象の奥には、必ずその現象を映し出す原因があるはずである。
自分に直接関係のある問題が派生した場合は、まず自分自身の心の姿を見ることが大事だ。
나타난 현상의 깊은 곳에는, 반드시 그 현상을 투영하는 원인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직접 관계가 있는 문제가 파생한 경우는, 우선 자기 자신의 마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肉体の眼を通して見る外界の動きを正しく見るためには、その眼の奥にある心眼がきれいに磨かれていないといけない。
육체의 눈을 통해서 보는 외계의 움직임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그 눈의 깊은 곳에 있는 눈이 아름답게(깨끗하게) 닦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
各人の心は鏡である。
その想念という鏡を絶えず掃除しておくことだ。
각자의 마음은 거울이다.
그 상념이라고 하는 거울을 끊임없이 소제(청소)해 두는 일이다.
★상념[想念] 《한자/국어사전》
①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
②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掃除するということは反省するということである。
反省は光明の世界に住するかけ橋である。
청소한다고 하는 것은 반성한다고 하는 것이다.
반성은 광명의 세계에 사는(머무르는) 가교(假橋=棧橋)이다.
★★かけ橋의 뜻의 설명★★
★가교[假橋]
①임시로 놓은 다리. ‘임시 다리’로 순화
★가교[架橋]
①다리를 놓음. 또는 그런 일. ‘다리 놓음’, ‘다리 놓기’로 순화.②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이어 주는 사물이나 사실.
★잔교[棧橋]
①절벽과 절벽 사이에 높이 걸쳐 놓은 다리《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 ②부두에서 선박에 닿을 수 있도록 해 놓은 다리 모양의 구조물. 이것을 통하여 화물을 싣거나 부리고 선객이 오르내린다.
ねたみ、怒り、そしり、そうして諸々の執着から離れるには、反省をおいて他にない。
질투, 분노, 비난, 그리고 여러 가지의 집착에서 떠나는 데에는, 반성을 하는 것 이외는 달리 없다.
反省を重ねることによって心と肉体の調和が生れ、進んでは己れの心と大宇宙の心との合一がはかられる。
반성을 거듭하는 것에 의해서 마음과 육체의 조화가 생기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마음과 대우주의 마음의 합입을 도모할 수 있다.
反省をせずして心を空にすると、魔や憑依霊に支配される。
반성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 악마나 빙의령에게 지배당한다.
人間生活にとって祈りのない生活は考えられない。
正しい調和の生活に向って努めている時の願いごと、祈りは、その人にふさわしいものである限り必ず叶えられる。
인간 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다.
올바른 조화의 생활을 향해서 노력하고(힘쓰고) 있을 때의 기원하는 바인, 기도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걸맞는) 것인 한 반드시 이루어진다.
しかし我慾を満たす事だけに祈ってはならない。
하지만 아욕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
人間の生活は、大自然が調和されているように、助け合い、補い合い、笑いのある明るい生活でなければならない。
인간의 생활은, 대자연이 조화되어 있는 것처럼, 서로 돕고,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웃는 소리가 있는 밝은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それにはまず自分自身の調和をつくってゆくことである。
長所を伸ばし、短所を修正してゆくのだ。
그것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조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수정해 가는 것이다.
道に精進するとは、親子、夫婦、兄弟、友人、隣人の間に調和をつくることである。
도리(도)에 정진함이란, 부모아 자식, 부부, 형제, 친구, 이웃 사람 사이에 조화를 만드는 것이다.
親子、夫婦が争っていて信仰とはナンセンスである。
そんなものは信仰ではない。
부모와 자식, 부부가 싸우고 있는 신앙이란 난넨스이다.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니다.
★난센스[nonsense] 《일본어사전》
[명사][형용동사] 난센스. 무의미함. 바보스러움. 가소로움.
人間は大自然と人との関係を通して、初めて大きな自覚に到達することが出来る。
自分以外の存在は、自己を認識するための材料であり、魂の向上に不可欠なものである。
親子、夫婦、友人、隣人等は、自己の魂を正しく磨いてゆくために、天が人間に与えた慈悲である。
인간은 대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큰 자각에 도달할 수가 있다.
자기 이외의 존재는, 자기를 인식하기 위한 재료이며, 영혼의 향상에 불가결한(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부부, 친구, 이웃 사람 등은, 자기의 영혼을 올바르게 닦아 가기 위한,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자비이다.
言葉は言魂であり生きた波動である。
謙虚な言葉、慈しみの言葉、やさしい言葉、勇気ある言葉、思いやりの言葉等、正しく言葉を使うことの重要性は、人間が社会生活を営む限り、絶対に欠くことのできない要件の一つである。
말은 고토다마(言魂: 말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온 영적인 힘)이며 살아있는 파동이다.
겸허한 말, 자비의 말, 샹냥한(다정한) 말, 용기 있는 말, 남을 헤아리는 말(동정, 배려)의 말 등, 올바른 말을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한, 절대로 등한히(소홀히) 할 수 없는 요건의 하나이다.
★고토다마[言魂] =言霊(ことだま)
言霊(ことだま)とは、日本において言葉に宿ると信じられた霊的な力のこと。言魂とも書く。清音の言霊(ことたま)は、森羅万象がそれ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とされる五十音のコトタマの法則のこと。その法則についての学問を言霊学という。
고토다마(言霊)는, 일본에서 말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영적인 힘. 고토다마(言魂)라고도 쓴다. 청음의 코토다마(言霊)는, 삼라만상이 그것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다고 하는 50음의 코토다마의 법칙. 그 법칙에 관한 학문을 코토다마학(言霊学)이라고 한다.
★http://ja.wikipedia.org/wiki/%E8%A8%80%E9%9C%8A(일본어 위키백과 사전)
悟りへの重要な過程は、心の内面に対する反省であり、ものの見方、考え方、捉え方、そしてそれに基づく行動が、果たして正しいものであるかどうかを、内省することがキメ手になるのである。
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とは、二度と再び、同じことを繰り返さない様にすればよいのである。
깨달음에의 중요한 과정은, 마음의 내면에 대한 반성이며, 사물의 견해, 사고방식, 파악하는 방법, 그리고 그것에 바탕을 두는 행동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어떤지를, 내성(반성)하는 것이 결정적인 근거(증거)가 되는 것이다.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두번 다시, 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면 좋은 것이다.
反省して悪いと自認したとしても、その事実を消すことはできない。
要は改めればよいのである。
반성해서 나빴다고 자인했다고 할지라도, 그 사실을 없앨 수는 없다.
요는 고치면 좋은 것이다.
過去のことに執着を持つと、これからの行動が束縛され、本来の自由性がそこなわれる。
悪かったことを悪かったと認めても、それに囚われると暗い想念を創り出してしまう。
과거의 일에 집착을 가지면, 앞으로의 행동이 속방당해서, 본래의 자유성을 해치게 된다.
나빴던 것을 나빴다고 인정해도, 그것에 사로잡히면(얽매이면) 어두운 상념을 창출해 내어 버린다.
この点も中道の心が大事である。
이 점도 중도의 마음이 중요하다.
過去の経験は、魂の修行の一過程である。
反省の功徳は、反省した後の実践にかかっている。
その実践の功徳は心身の調和という姿で顕われてくる。
과거의 경험은, 영혼의 수행의 하나의 과정이다.
반성의 공덕은, 반성한 후의 실천에 달려 있다.
그 실천의 공덕은 심신의 조화라고 하는 모습으로 드러나온다.
夢幻の世界
환상의 세계
悟りの正しいルールを発見することは、非常に難しいものである。
ウパニシャド・ヴェダーの中から、これを見出すことはできない。
깨달음의 올바른 규칙을 반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우파니샤드・베다 중에서, 이것을 발견할 수 없다.
ゴータマは三歳の時から、ウパニシャドやヴェダーを教えられた。
教えられることは知的に体系づけられていたが、教える学者達の生活は乱れていた。
ヴァフラマンやインドラーの神に祭壇をつくって祈りさえすれば、心はどうしなくても救われると思っている。
고다마는 3세 때부터, 우파니샤드나 베다를 가르침 받았다.
가르침 받은 것은 지적으로 체계적으로 되어 갔지만, 가르치는 학자들의 생활은 난잡해져 있었다.
바흐라만이나 인드라의 신에게 제단을 만들고 기도하게 되면, 마음은 어떻게 하지 않으도 구제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また一般の信者が直接神に祈っても救われない、必ずパラモンの司祭という代理を立てて祈らないと、神さまは救って下さらないという。
또 일반 신자가 직접 신에게 기도해도 구제받을 수 없다, 반드시 바라문의 제사라고 하는 대리를 세워서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은 구제해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
そうして心の奥底に潜む心の原因については、全く手を染めようとはしなかった。
그렇게 해서 마음의 깊은 곳에 내재(잠재)하는 마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쓰려고는 하지 않았다.
アポロキテー・シュパラー(観自在)に至るには、心と行いという実践しか残されていない。
神仏の光を希求するならば、その前にまず心の曇りを払いのけることであった。
아포로키티・슈바라(관자재)에 이르는 데에는, 마음과 행위라고 하는 실천밖에 남아 있지 않다.
신불의 빛을 희구하게 되면, 그 전에 우선 마음의 흐림을 털어 버리는(제거하는) 것이었다.
求道-解脱は疑問から出発する。
구도-해탈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疑問を持たない求道などあり得ない。
疑問は探求心を育て、探究心はやがて解答を得て理解されてくる。
의문을 갖지 않은 구도와 같은 것을 있을 수 없다.
의문은 탐구심을 기르고, 연구심은 이윽고 해답을 얻고 이해되어 온다.
普通は中道という尺度を知らないために、求道の方向を見誤ってしまう場合が非常に多い。
보통은 중도라고 하는 마음의 척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도의 방향을 잘못 보아 버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ㅣ.
しかし八正道という大自然の尺度が発見された以上は、疑問は安易に理解されてゆく。
하지만 팔정도라고 하는 대자연의 척도가 발견된 이상은, 의문은 안이하게 이해되어 간다.
間題は、その中道の尺度を使って、自分自身がどこまで厳格に、公平に、自分の心を見つめる事が出来るかである。
문제는, 그 중도의 척도를 사용해서, 자기 자신이 어디까지 엄격하게, 공평하게, 자신의 마음을 주시할 수가 있는가 이다.
自分の心で、自分の心の影をどこまで洗い出せるかにかかっている。
자기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의 그림자를 어디까지 철저히 조사하여 숨겨진 것이나 빠뜨린 것을 밝혀 내는가에 달려 있다.
心に影が潜む間は、生老病死の執着は断てないのだ。
解脱とは執着から離れた心なのである。
마음에 그림자가 잠재하는 동안은, 생로병사의 집착은 끊지 못하는 것이다.
해탈이란 집착에서 떠난 마음인 것이다.
マラーとの対決
마라(악마)와의 대결
五日間のゴータマの反省は、自己追究への反省であった。
一点の甘えさえ許さなかった。
それだけに、反省前と後では心の安らぎが違っていた。
安らぎとともに不動の心が自然と備ってくるのであった。
5일 동안 고마마의 반성은, 자기 추구로의 반성이었다.
한 점의 응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반성 전과 후에는 마음의 평안이 달라져 있었다.
편안함과 함께 부동의 마음이 자연히 갖추어져 오는 것이었다.
ゴータマは反省の冥想を解こうとした。
고다마는 반성의 명상을 풀려고 했다.
いつの間にか自分の前に、ヴァフラマンが立っていた。
こちらをじっと見ている。
어느 사이엔가 자기 앞에, 바흐라만(범천)이 서 있었다.
이쪽을 가만히 보고 있다.
「カピラの王子、ゴータマよ、お前は城に帰りなさい。
お前がいかに慈悲心を持っても悟っても、我欲の塊りの人々を救うことは出来ないだろう。
「카필라의 왕자, 고다마여, 그대는 성으로 돌아가시오.
네가 아무리 자비심을 가져도 깨달아도, 아욕 덩어리인 사람들을 구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城には王も、お前の妻も、多くの部下達も待っているではないか。
修行を捨てれば、全地球の王として優雅な生活が出来よう。
お前はそうした生活をするよう神から与えられている。
성에는 왕도, 너의 아내도, 많은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수행을 버리면, 전 지구의 왕으로서 우아한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너는 그러한 생활을 하도록 신으로부터 부여되어 있다.
忘れたか、ゴータマ、生命は輪廻しているなら今の原因は来世の結果となり、王としてこの世を去れば、来世も王としてその地位が約束されよう。
今のような苦行をしておれば、来世も苦しい修行が待っている。
お前の生命はこの世限りだ。
お前が修行を休めば、私は必ず協力して全地球の王にしてあげよう。」
잊었는가, 고다마, 생명은 윤회하고 있다면 지금의 원인은 내세의 결과가 되어, 왕으로서 이 세상을 떠나면, 내세도 왕으로서 그 지위가 약속되는 것처럼.
지금과 같은 고행을 하고 있으면, 내세도 괴로운 수행이 기다리고 있다.
너의 생명은 이 세상에 한한다.
네가 수행을 쉬면, 나는 반드시 협력해서 전 지구의 왕으로 삼아 주겠다 。」
言っている事は筋が立っていたが、解せないのは異様な臭いだ。
말하고 있는 것은 조리(條理)가 서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상한 냄새다.
ゴータマは、相手の正体を見破った。
고다마는, 상대의 정체를 간파했다.
「お前は何者だ、本性を現わしなさい-」
「너는 어떤 사람인지, 본성을 드러내시오-」
「魔王とその弟子たちよ。
私の言う事を素直に聞きなさい。
「마왕과 그 제자들이여.
내가 말하는 것을 솔직하게 들으십시오.
お前達も神の子だ。
神の子であるのに、生前のお前達は、怒り、そしり、うらみの念が強く、人を愛したことも、愛されたこともない。
여러분도 신의 자녀이다.
신의 자녀인데도 불구하고, 생전의 여러분은, 화를 내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념(마음)이 강하고, 사람을 사랑한 적도,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
お前違も自分の子供を育てたことがあろう。
子を憎む親はいない。
神の愛、慈悲もそれと同じだ。
여러분도 자기 자식을 기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식을 미워하는 어버이는 있지 않다.
신의 사랑, 자비도 그것과 똑같다.
お前は今では魔王となり、鬼のように心は荒んでしまったが、それでも神はお前達を見離すようなことはしない。
今からでも遅くはない。
自分に嘘のつけぬ善なる心に勇気を持って、仏性を思い出すのだ。
당신은 지금에는 마왕이 되어, 귀신처럼 마음은 거칠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신은 너희들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다.
자기에게 거짓말 할 수 없는 선한 마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불성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私の与えている光は天国の光だ。
神の慈悲から送られてくる安らぎの光だ。
さあ、執着を捨てなさい。
過ちをわび、仏性を現わしなさい。」
내가 주고 있는 빛은 천국의 빛이다.
신의 자비에서 전해져 오는 평안의 빛이다.
그럼, 집착을 버리십시오.
잘못을 사과(사죄)하고, 불성을 드러내십시오。」
闇は光に抗うことはできない。
魔王の心にも光が入っていった。
彼は両膝を地につけ、ゴータマに向って両手を合わせて合掌した。
어둠은 빛에 저항할 수 없다.
마왕의 마음에도 빛이 들어 갔다.
그는 양무릎을 땅에 대고, 고마다를 향해서 양손을 맞잡고 합장했다.
魔王といえども、慈悲の光に合うと、内在する神性仏性が顕われてくる。
마왕이라고 할지라도, 자비의 빛을 만나면, 내재하는 신성 불성이 밖으로 드러나온다.
(降魔の釈尊とはこの事をいうのである)
(항마(악마를 굴복시킴)의 석존이란 이 일을 말하는 것이다)
偉大なる悟り
위대한 깨달음
七日目がやってきた。
再び瞼を閉じ、瞑想に入ろうとして、ふと気がつくと坐している己の体が次第に大きくなっているのであった。
7일 째가 찾아왔다.
다시 눈을 감고, 명사에 들어가려고 해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는 자기 몸이 점차 커져 있는 것이었다.
ゴータマを雨露から守っていたビバラの大木を抜けて、ガヤダナが眼下に見えてくる。
고다마는 비와 이슬에서 지키고 있던 피파라 거목을 빠져 나가, 가야다나가 눈아래 보여 온다.
ゴータマの意識は刻々と拡大していった。
고다마의 의식은 점점 확대되어 갔다.
地上が次第に遠のいてゆく。
意識の拡大はテンポを早めた。
暁の明星が足下に見えた。
もう一人のゴータマは小さな粒のように、はるか下方に坐していた。
ゴータマは宇宙大に広がり、宇宙が自分の意識の中に入って行くのだった。
지상이 점차 멀어져 간다.
의식의 확대는 템포를 빨리한다.
아침 명성(금성 샛별)이 발아래에 보였다.
또 한 사람의 고다마는 작은 입자처럼, 아득한 아래쪽에 앉아 있었다.
고다마는 우주대로 넓혀져, 우주가 자기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遂に、悟りを開いた。
三十六年間に作り出した不調和な心、想念の曇りが、この瞬間において光明と化したのであった。
大宇宙の意識と同体となったのであった。
마침내, 깨달음을 열었다.
36년 동안에 만들어 낸 부조화한 마음, 상념의 흐림이, 이 순간에 있어서 광명으로 화한 것이었다.
대우주의 의식과 동체가 되었던 것이었다.
森羅万象の生い立ち、宇宙と人間、神の存在、人間の在り方、魂の転生輪廻等が一瞬のうちに明らかになるのであった。
삼라만상의 성장과정, 우주와 인간, 신의 존재, 인간의 본연의 모습, 영혼의 전생윤회(환생윤회)가 일순간에 밝혀지는(분명하게 되는) 것이었다.
「この大宇宙は神によってつくられた。
大宇宙が発生する以前の大宇宙は、光明という神の意識だけがそこにあった。
神は、その意識の中で、意志をもたれた。
「이 대우주는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대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대우주는, 광명이라고 하는 신의 의식만이 거기에 있었다.
신은, 그 의식 속에서, 의지를 가지고 계셨다
大宇宙の創造は、神の意志によってはじまった。
意識の働く字宙と、物質界の宇宙の二つの世界を創造した。
意識界の宇宙はその意志をもって物質界の宇宙を動かし、そうしてこの二つの世界は、光と影という相関関係を通して、永遠の調和を目的とすることになった。
대우주의 창조는, 신의 의지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의식의 작용하는 우주와, 물질계의 우주 두개의 세계를 창조했다.
의식계의 우주는 그 의지로써 물질계의 우주를 움직이고, 그렇게 해서 이 두개의 세계는, 빛과 그림자라고 하는 상관관게를 통해서, 영원한 조화를 목적으로 하게 되었다.
人間は天地創造と共に、神の意識から別れ、神の意志を受け継ぐ万物の霊長として産ぶ声をあげた。
人間以外の動物、植物、鉱物も、大地に姿を現わした。
인간은 천지창조와 함께, 신의 의식에서 떨어져, 신의 의지를 계승하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출생했다.
인간 이외의 동물, 식물, 광물도, 대지에 모습을 나타냈다.
人類は、神の意志にもとづいて、調和という仏国土をつくりはじめた。
人々の年齡は五百歳、千歳の長命を保った。
子孫が子孫を生み、人々の転生輪廻がはじまった。
인류는, 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해서, 조화라고 하는 불국토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연령은 5백세, 1천세의 장수를 누렸다.
자손이 자손을 낳고, 사람들의 전생윤회(환생윤회)가 시작되었다.
人々は次元の異なる意識界と自由に交流ができた。
文明は高度に発達した。
人間は自由に空を駈けめぐり、地下に大都市をつくった。
사람들은 차원의 다른 의식계와 자유로이 교류할 수 있었다.
문명은 고도로 발달했다.
인간은 자유로이 하늘을 뛰어다니고, 지하에 대도시를 만들었다.
しかしやがてその文明も終焉を迎える時がやってきた。
人々の間に自我が生れ、国境がつくられ争いがはじまったからである。
人々の不調和、暗い想念の曇りは偉大な神の光をさえぎった。
その結果、大地は怒り、黒雲が天を蔽った。
至るところで火山が爆発し、陸は海に、海は陸になった。
하지만 이윽고 그 문명도 종언(終焉)을 맞이할 때가 도래했다.
사람들 사이에 자아가 생기고, 국경이 만들어지고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부조화, 어두운 상념의 흐림은 위대한 신의 빛을 가렸다.
그 결과, 대지는 분노하고, 암운이 하늘을 덮었다.
天変地異は自然現象ではない。
人類の心と行為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あった。
천재지변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인류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神の意志である調和という仏国土を建設するために人類は存在し、人々の魂はそうした建設を通して、永遠の進化をめざすものであった。
신의 의지인 조화라고 하는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 인류는 존재하고, 사람들의 영혼은 그러한 건설을 통해서, 영원한 진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人間は小宇宙である。
大宇宙に展開する星の数は、人間の肉体を形作っている細胞数とほぼ同数である。
인간은 소우주이다.
대우주에 전개하는 별의 수는, 인간의 육체를 형성하고 있는 세포수와 거의 같은 수이다.
人間は肉体のほかに心(意識、あるいは魂)を持っている。
その心は、肉体という衣を通して、物質界、現象界に調和をもたらすことを目的とする反面、大宇宙の心に同通し、それぞれの役割に応じた使命を担っている生き通しの意識である。
인간은 육체 외에 마음(의식, 혹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은, 육체라고 하는 옷을 통해서, 물질계, 현상계에 조화를 가져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대우주의 마음에 동통(同通)하고, 저마다의 역할에 응한 사명을 담당하고 있는 계속해서 살아가는 의식이다.
肉体は仮りの宿にすぎない。
物質と非物質の世界は、交互に循環することによって調和という運動形態を永遠に持続するためにあり、このため、肉体という物質は時が経てば非物質的な世界に戻らなければならない。
육체는 임시 거처에 불과하다
물질과 비물질의 세계는, 상호 순환하는 것에 의해서 조화라고 하는 운동형태를 영원히 지속하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육체라고 하는 물질은 때가 지나면 비물질적인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人間の意識、心、魂は、物質、非物質に左右されず、永遠に、その姿を変えることがない。
인간의 의식, 마음, 영혼은, 물질, 비물질에 좌우되지 않고, 영원히, 그 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生き通しである。
계속해서 살고 있다.
このように人間の心は、神の心に通じながら、物質界という現象界と、非物質の霊界とを循環し、個の魂、意識をもって、永遠に生き続けてゆくのである。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은, 신의 마음에 통하면서, 물질계라고 하는 현상계와, 비물질의 영계(靈界)를 순환하고, 개인의 영혼, 의식을 가지고, 영원히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神の子としての人間が何故悪をつくり出したか。
どうして不幸になるか。
신의 자녀로서의 인간이 무슨 까닭으로 악을 만들어 냈을까?
어째서 불행하게 되는가?
それは肉体の自分が、自分であると思い、肉体を中心とした自我の考え方が、自由自在な心を、肉体の中に閉じこめて束縛してしまったからにほかならない。
그것은 육체의 자신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육체를 중심으로 한 자아의 사고방식이, 자유자재한 마음을, 다른 것이 아닌 육체 속에 가두고 속박해 버렸기 때문 그런 것이다.
全能の神が人間の不幸を予測できない筈はない、と誰もが考えるであろう。
どうして事前に不幸を防げないかと。
전능한 신이 인간의 불행을 예측할 수 없을 리가 없다, 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어재서 사전에 불행을 막지 않았을까 라고.
それは丁度、人間の親子の関係と同じである。
親の心にそむく子があると同じように、親が子を自由にできないと同じように、子は子としての主体性をもって行動する。
그것은 정확히, 인간의 부모와 자신의 관계와 똑같다.
어버이의 마음에 등을 돌리는 자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버이가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본성을 가지고 행동한다.
人間には自由が与えられている。
その与えられた自由の中で、人間はどうするかを自分で選択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인간에게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 주어진 자유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하는가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神は調和という「中道」の中で厳然と生きている。
人間が中道に反した行為をすれば、その分量だけ、反作用をともなうように法則がつくられている。
신은 조화라고 하는「중도(中道」속에서 엄연히 살아 있다.
인간이 중도에 반한 행위를 하면, 그 분량만큼, 반작용을 동반하도록 규칙이 만들어져 있다.
人間は肉体を持って魂を修行する。
肉体には五官が与えられている。
五官が働かなくなれば、肉体は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영혼을 수행한다.
육체에는 오관이 주어져 있다.
오관이 작용하지 않으면, 육체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さりとて五官に心を奪われると、欲望がつのり煩悩が起ってくる。
그렇지만 오관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면, 욕망이 점점 심해져 고뇌가 발생해 온다.
さまざまの不幸は、このような肉体を中心とした心の働き(業)によって自分がつくるのである。
地位、名誉、金銭、情欲、その他さまざまの欲望が、人間の神性仏性を侵してゆく。
こうして人は、あの世とこの世を循環しながら業を修正して行く者もあるが、大部分の魂は、新たな業をつくってしまう。
다양한 불행은, 이러한 육체를 중심으로 한 마음의 작용(업)에 의해서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지위, 명예, 금전, 정욕(情欲), 그 외 여러 가지 욕망이, 인간의 신성 불성을 침해해 간다.
그렇게 해서 사람은, 저 세상과 이 세사을 순환하면서 업(業)을 수정해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혼은, 새로운 업(業)을 만들어 버린다.
このために人類は、地上に仏国土を建設する前に、まず自分の業を修正しなければならなくなった。
神性仏性の本当の心を、暗い心で覆ってしまった。
그 때문에 인류는, 지상에 불국토를 건설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업(業)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신성 불성의 진정한 마음을, 어두운 마음으로 덮어 버렸다.
動物・植物・鉱物は、人間の魂の修行の場であるこの地球の環境を維持するためのものであって、人間は万物の霊長としてそれらを調和させてゆく任を、神から与えられている。
동물・식물・광물은, 인간의 영혼의 수행의 장소인 이 지구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 것이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그들을 조화시켜 갈 의무를, 신에게서 부여 받고 있다.
動物・植物は、それぞれの個性にしたがって進化を続けるが、動物・植物が人間になることもできなければ、人間が動物・植物になることもできない。
동물・식물은,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서 진화를 계속하지만, 동물・식물이 인간이 될 수도 없다면, 인간이 동물・식물이 될 수도 없다.
人間が本来の神性を回復するためには、神の心に触れなければならない。
神性の我に帰るとは、苦界の自分から離れることである。
生老病死の執着から脱皮することである。
인간이 본래의 신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의 마음에 닿지 않으면 안 된다.
신성의 나로 돌아감이란, 고계(苦界)의 자신에게서 떠나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집착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神の心は中道という調和の中にあり、その流れに自分の魂がふれるように努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
신의 마음은 중도라고 하는 조화 속에 있고, 그 흐름에 자신의 영혼이 닿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一日には昼と夜がある。
하루에는 낮고 밤이 있다.
どんなに人類が増えても空気と水は増えたり、滅ったりしない。
아무리 인류가 증가해도 공기와 물은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하지 않는다.
一定である。
일정하다.
太陽の光と熱も一定で不変である。
태양의 열과 빛도 일정하며 불변하다.
人間の男女の比は一定である。
인간의 남녀의 비율은 일정하다.
戦争・災害など、人々の心が我欲に傾かない限り、男女の比は均等に保たれることになっている。
전쟁・재해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욕(我欲: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에 치우지지 않은 한, 남녀의 비율은 균등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
肉体には肉体の法則があり、夜も眠らずに仕事を続ければ、肉体的に故障が現われ精神の平衡を失ってくる。
육체에는 육체의 법칙이 있고, 밤에도 잠자지 않고 일을 계속하면, 육체적으로 고장이 나타나 정신의 균형을 잃게 된다.
すべての生命は、中道から離れては生きてゆけないようにできている。
中道の心は毎日の生活を反省し、反省したことを実践することから得られる。
모든 생명은, 중도에서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중도의 마음은 매일의 생활을 반성하고, 반성한 것을 실천하는 것에서 얻을 수 있다.
実践には勇気がいる。
努力がいる。
智慧を働かせば、心の修正は早くなる。
실천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를 활용하면, 마음의 수정은 빨라진다.
反省の尺度は八正道である。
「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進」「正念」「正定」である。
반성의 척도는 팔정도이다.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진」「정념」「정정」이다.
人の心は、この八正道を基準として、毎日の生活の中で正しく修正されて行く。
사람의 마음은, 이 팔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매일의 생활 속에서 올바르게 수정해 간다.
人間の魂は生き通しである。
不死である。
인간의 영혼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불사(不死)이다.
肉体は時が経てば捨ててあの世へ帰らなければならない。
中道の心にふれると、こうした理が明らかになり、神の心である永遠の安らぎを保つことができよう。
육체는 때가 지나면 버리고 저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중도의 마음에 닿으면, 이러한 이치(도리)가 분명하게 되어, 신의 마음인 영원한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心が拡大すると、太陽をはじめ星々が、すべて自分の心の中で回転し、その中で呼吸する一切の生物は、わが肉体の一部であることに気づく。
마음이 확대되면, 태양을 비롯한 여러 별들이,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서 윤회하고, 그 속에서 호흡하는 일체의 만물은, 내 육체의 일부인 것에 생각이 미친다.
人は宇宙大の意識を持っている。
肉体に心が執着すると宇宙大の自己を見失なってしまう。
もだえ、迷い、地獄に身を焼く人間に対しても、神は、辛棒強く、救いの手を差し伸べている。
太陽を、水を、空気を、大地を、食べ物を与えている。
사람은 우주대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육체에 마음이 집착하면 우주대의 자기를 보고 있던 것을 놓쳐 버린다.
번민하고, 방황하는, 지옥에 몸을 불태우는 인간에 대해서도, 신은, 인내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태양을, 물을, 공기를, 대지를, 음식물을 주고 있다.
わが子の行く末を案じない親がないのと同じように、神は人間に無限の慈悲を与えている。
자기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은 인간에게 무한한 자비를 주고 있다.
人間は、その慈悲に応えなければならない。
応える事によって、人間は神性の自分を自覚するのだ。
神は平等である。
太陽は万生万物を平等に照らしている。
인간은, 그 자비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답하는 것에 의해서, 인간은 신성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신은 평등하다.
태양은 만생 만물을 평등하게 비추고 있다.
階級が生れ、貧富が生じ、競争意識に心が翻弄されることは、神の心に反する。
能力の別、カの相違、得手不得手はすべて努力の所産である。
계급이 생기고, 빈부가 생기고, 투쟁의식에 마음이 농락당하는 것은, 신의 마음에 반한다.
능력의 차이, 힘의 상위(서로 다름), 어떤 일을 잘하고 잘 하지 못함은 모든 노력이 소산이다.
人類の歴史は、己れを知ることよりも、我欲を満たすための歴史であった。
闘争と破壊はそのためにくり返された。
인류의 역사는, 자기를 아는 것보다도, 아욕(我欲: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한 역사였다.
人々は苦しみから逃れようと、さまざまの信仰をもっている。
肉体を痛め苦行を積めば救われる。
拝めば救われ、祈れば功徳があると信じているが、大きな間違いである。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달아나려고, 여러 가지 신앙을 가지고 있다.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을 쌓으면 구제받을 수 있다.
합장 배례하면 구제되며, 기도하면 공덕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큰 잘못이다.
苦行は、心を肉体に束縛執着させ、祈ればよいとする他力は、心をきれいに安らかにすることを、なおざりにするので神性を失なわしめる。
고행은, 마음을 육체에 속박 집착시키고, 기도하면 좋다고 하는 타력은, 마음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하는 것을, 등한히(소홀히) 하는 것이며 신성을 잃어버리게 한다.
いずれも片寄った信仰である。
어느 것이다 다 치우친 신앙이다.
中道は、神に通じたウソのつけない己れの心を信し、八正道という生活行為をしてゆくところにある。
真の安心は、自己満足や逃避であってはならない。
自分の生死を冷静に客観視することができる自分が確立できてこそ、真の安心は得られる。
중도는, 신에게 통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믿고, 팔정도라고 하는 생활 행위를 해 가는 데에 있다.
참된 안심은, 자기 만족이나 도피여서는 안 된다.
자기의 생사를 냉정히게 객관시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기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안심은 얻을 수 있다.
人間は神の子である。
인간은 신의 자녀이다.
神は天地を創造された。
신은 천지를 창조하시었다.
人間もまた己れの天地を調和させ、自己の置かれた環境を創造して行くものである。
인간도 역시 자기의 천지를 조화시키고, 자기가 처해진 환경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
神から与えられた肉体を痛めてもいけない。
あなたまかせの他力に自己満足していてもいけない。
신에게서 제공 받은 육체를 괴롭혀서도 안 된다.
아미타여래에게 모든 것을 맡김(타력 본원(他力本願))의 타력으로 자기만족하고 있어도 안 된다.
世はまさに末法である。
正法という中道の神理を矢い、人類は迷いの中に沈潜している。
세상은 확실히 말법이다.
정법이라고 하는 중도의 신리를 잃어버리고, 인류는 방황 속에 침잠(沈潛)하고 있다.
この迷いから人々を救うには、正法という法灯を点じ、大自然の慈悲に、目覚め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
이 방황에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에는, 정법이라고 하는 법등을 켜고, 대자연의 자비에, 눈뜨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法は慈悲と愛をよび覚ます力である。
법은 자비와 사랑을 되살아나게 하는 힘이다.
神は無限の慈悲とその力をもって、正法を信ずる者の行く手に、光明の道を開いてくれる。
신은 무한한 자비와 그 힘을 가지고, 정법을 믿는 사람의 앞길에, 광명의 길을 열어 준다.
ゴータマは、はじめて人間の価値を悟った。
고다마는, 비로소 인간의 가치를 깨달았다.
いうまでもなく人間は神の子であり、神の心の下に、人間と大自然は一体となって生きている。
自然を離れて人間はなく、人間はその自然を、神の経倫にしたがって調和してゆくものであることを悟ったのであった。
말할것도없이 인간은 신의 자녀이며, 신의 마음 하에, 인간과 대자연은 한몸이 되어 살고 있다.
자연을 떠나서 인간은 없고, 인간은 그 자연을, 신의 경륜에 따라서 조화해 가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物を、単に、物として見ている間は、心の安らぎを求めることはできない。
物を単に物として見ず、物を物として生かしているその奥にある実在を知ることである。
사물은, 단순히, 사물로서 보고 있는 동안은,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가 없다.
사물을 단순히 사물로서 보지 않고, 사물을 사물로서 소생시키고 있는 그 깊은 곳에 있는 실재를 아는 것이다.
色心不二という認識は、人間の心が物から離れ、物を客観的に見るようになった時に、初めて言い得るのであるった。
색심불이라고 하는 인식은, 인간의 마음이 사물에서 떠나,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宇宙即我の境地に浸っている瞑想の極致には、時間の経過は分らなくなる。
時は、今という瞬間を数えるのみで、大自然の輪廻は、一時の休みもなく過ぎてゆく。
우주즉아의 경지에 잠겨 있는 명상의 극치에는, 시간의 경과는 알 수 없게 된다.
때는, 지금이라고 하는 순간을 가르치는 것뿐이며, 대자연의 윤회는, 잠시의 쉼도 없이 지나 간다.
瞑想から覚められたお釈迦さまの心の中に浮んできたのは、
「いったい、この今の自分の悟りを、人に話しても分かってくれるだろうか。」
ということであった。
명상에서 깨어난 부처님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도대체, 바로 지금 나의 깨달음을, 남에게 말해도 이해해 줄까?」
라고 하는 것이었다.
永遠の生命とは、生老病死のない世界であった。
肉体の自分の中にもう一人の自分がいる。
生れることも死ぬことも、病むことも老いることもない自分がある。
영원한 생명이란, 생로병사가 없는 세계였다.
육체의 자기 자신속에 또 한 사람의 자신이 있다.
태어나는 일도 죽는 일도, 병드는 일도 늙는 일도 없는 자기 자신이 있다.
現在の肉体は両親の縁によって得たが、その肉体は人生航路の乗り舟にしかすぎない。
一切の苦しみは、自らの心と行いがつくり出したもの、即ち、自然の掟である中道という神の心に逆らったがために起る苦しみなのだ。
현재의 육체는 양친의 인연에 의해서 얻었지만, 그 육체는 인생항로의 교통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일체의 괴로움은,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낸 것, 즉, 자연의 규칙인 중도라고 하는 신의 마음을 거스렀기 때문에 일어나는 괴로움인 것이다.
正しく見る、正しく思う、正しく語るという、その想念行為を自ら放棄するところに苦しみは起る。
올바르게 본다, 올바르게 생각한다, 올바르게 말한다 라고 하는, 그 상념행위를 스스로 방기하는 데에 괴로움은 일어난다.
中道の心は、もっとも人間らしく、もっとも自然な生活のしかたである筈である。
중도의 마음은, 가장 인간답고, 가장 자연스런 생활의 수단일 것이다.
ピバラの根に手をあてて、ゆっくりと立ち上られたお釈迦さまは、ネランジャラの河辺におりてゆかれた。
ゆっくりと流れる水の流れは、昨日も一昨日も変らない。
피팔라(보리수)의 뿌리에 손을 대고, 가만히 일어난 부처님은, 네란자라 강변으로 내려 가시었다.
느릿하게 흐르는 물의 흐름은, 어제도 그제께도 변함이 없다.
水は無言で流れてゆく。
両手で水をすくって顔を洗われた。
물은 말없이 흘러 간다.
양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을 씻었다.
お釈迦さまの教えは、決して難しいものではなかったと思う。
なぜなら、あの当時の奴隷階層の人違も沢山出家している。
全くの無字文盲の人達が沢山いた。
むずかしい文字で書かれた一部の人だけしか分からないようなものであったら、神の救いは平等でない、ということになる。
부처님의 가르침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 당시의 노예계층의 사람들도 많이 출가하고 있다.
완전히 아는 것도 없고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려운 문자로 쓰여진 일부의 사람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면, 신의 구제는 평등하지 않다, 라고 하게 된다.
お釈迦さまの禅定瞑想は二十一日間続けられた。
いつでも金剛定に入れる不動の心があった。
부처님의 선정명상은 21일 동안 계속되었다.
언제나 금강(金剛)의 선정에 들어가는 부동의 마음이 있었다.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에 올림(음력 10월 4일)
※출처: http://plaza.rakuten.co.jp/hhokari/1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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