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미풍
부처님의 지니신 세가지 덕(德) 본문
부처님의 지니신 세가지 덕(德)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주사친(主師親)이란 말이었다.
참 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주인이며,
세상의 스승이며,
세상의 아버지란 말이 된다.
그럼 인간의 지진 삼업(三業) 즉 세가지의 업(業)이란 무엇일까?
사전상의 의미를 찾아보니, 신업(身業) 몸으로 지은 업, 구업(口業) 입으로 지은 업, 세번째는 의업(意業) 즉 뜻 즉 생각으로 지은 업이었다.
나는 이 세가지의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사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첫 번째가 생각으로 늘 짓는 이 일(業)을,
주인이며 스승이며 아버지이신, 신불님의 뜻에 비추어,
선과 악을 판별하는 규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헌데, 오늘,
나는 꼭지가 돌아 버리고 말았다.
어떤 회의 모임에 갔다가, 장(長)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첫 만남부터 열받게 하더니,
오늘로 세번째인가 만나는 날이었는데, 또 역시 뚜껑 열리게 하는 말을 한다.
돌아버리고 말았다.
이 사람은, 계(戒) 즉 계율, 규칙 이란 이런 것을 엄하게 적용하는 스타일이었다.
난, 그런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인데,
일전에도 말한 바 있었는데, 또 잊었는지, 자신의 상부에서 그렇게 지시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또 열받게 한다. 그래서, 꼭지가 돌아버렸다.
나는, 계, 라는 종교집단의 계율을 엄하게 하는 행위를 굉장히 싫어한다.
계율 보다는, 가르침이 방편이 아주 중요하다고 난 생각하는 사람이다.
헌데, 가르침이라는 대승(大乘) 즉 큰 가르침이 아닌, 소소한 계율로 각 사람의 타고난 성질 혹은 성격이,
전생환회의 과정에서 차이가 분명히 있건만, 그것을 깡 무시한 발언을 단체의 모임에서, 나를 겨냥해서,
그의 입장에서는,
초심자인지라, 잘 알려 주겠다는 의도였지만,
난, 그런 것에 얽매이는 것은, 싫다.
나의 마음에 동할 때 나는 하는 식이다, 라고 했더니,
그래서는, 안 된다!! 라고, 하며, 규칙이다. 라는 말로, 나를 열받게 하고 만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회관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그 곳에 발을 딛지 않을 작정이다.
불과 내가 그 종교단체에 들어간지, 오늘로 100일이 되는 날인데, 3~40년을 다닌 기존의 신도들 중의,
장(長)이 되는, 그가 나를 또 열받게 했다.
나란 사람은, 어찌 된 게, 가만히 있는 그대로 나두길 바라는 사람이다.
타고난 성격이다.
곧 쉰이 되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건드리지 않았는데, 누가 날 건드리면 돌아버린다.
악마가 되고 마는 특이한 성격이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은, 평소의 부드러운 언사가 아닌, 악마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것을,
몇 달 전에도, 분명히 인지 시켜 놓았었는데, 그 사람은, 잊어 먹었는지, 꼭지 돌게 만든다.
그랬다. 오늘.
그렇지 않아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 내가 제대로 잘 들어갔는지 아닌지, 검색을 통해서,
일일이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읽어보고 하는 입장인데,
한 달여 만에 회관이란 곳엘 갔더니,
결국 열받게 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강요, 하지 마시라고 해도,
계속해서, 강요하길래, 강요하지 마십시오 해도 또 하길래, 쌍욕지거리가 나오고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그랬더니,
모 여신도가, 여기는 부처님 계시는 곳인데, 어쩌구 한다.
그래서, 순간,
부처님이, 언제 자신의 자식들에게 강요했는가? 라고 질문하고 싶었지만,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같아서, 내가 안 오면 그만이다, 라고 말하고, 나와 버렸다.
그랬더니, 가지 말고 들어오라고 한다.
허허,
창가학회에 30여년간 활동하가 탈퇴하여 이쪽으로 온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곳으로,
난 가기 싫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갔다가, 열받아서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속된 말로, *도 모르는 게 까불고 있는? 그런 식이다.
그것이 그들의 입장인지,
나의 입장인지는 견해의 차가 나겠지만,
하여간, 꼭지가 돌아버렸다.
말로만, 당신은 부처입니다, 라고 말하는,
자비는 커녕
사랑의 행위를 어찌 해야할지도 모르는, 마치 자신들이
모든 인간을 구제해 줄 수 있는 큰 어떠한 것을 가지고 있는 양, 하는 행위가 몇 몇 사람은, 얼굴을 마주 하는 것조차도
싫다.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본능과 감정과 지성과 이성과 의지(뜻: 意)이라는 5가지의 서로 작용하는 부분들이 신불과 똑같은
특성이 있는데,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자유의지(自由意志)라고 하는 말로 사용한다. 그것을 그들 중의 그 사람은, 모르는 모양이다.
아래와 같은 뜻이 있다.
(1)[심리] 외적인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은 채 정신적으로 누리는 자유.
(2)[심리] 두 가지 이상의 동기(動機)에 대한 선택과 결정은 자신이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의지.
(3)[철학] 유심론(唯心論)에 근거를 두어, 우주는 정신의 소산이므로 정신이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의지.
(4)[종교] 신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의지.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에게 부여했다고 한다.
(5)[법률] 성년자로서 정신에 이상이나 장애가 없는 한, 선악에 대하여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 상태.
영어로는, Free Will (자유 의지)라고 한다.
속된 말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바로 옆에 있는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의식주(依食住) 중의 가장 우선시 되는, 생명에 영향을 주는, 食 ,식 즉,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어떠한 일이든,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런 가장 근본적인 육의 몸을 가지고 사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지, 무관심인지, 모르겠지만,
최초의 1200년대의 그 분의 깨달음과 가르침의 원래 그렇지는 않았을 터인데, 몇 백년이 흘러 지나면서,
개인의 생각의 가미되어 변질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그랬다.
난, 누가 나에게 강요를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스님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다.
그렇듯이 난 주저없이 떠나는 주의이다. 아주 현실세계에서는 고달픈 골치아픈 성격일지는 모르지만,
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강요한 적이 평생에 거의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권유는 할 때도 많다.
그럴 때는, 상대방의 성격이나 입장이나 말을 잘 들어 보고 난 후에, 그 사람에게 맞게 맞추어서,
수의(隨宜)해서, 말하는 성격이며,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럼, 다툼이 일어날 리가 없다.
헌데, 그 사람은, 안 그랬다. 대화를 할 때마다, 나를 돌게 만든다.
내가 어머님의 유언만 아니었으면, 큰 일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
오늘, 일터에서 돌아올 때, 같이 일하던 나 보다 나이가 최소한 14살에서 20살이 많은 4명이 사람을
내 차에 태우고 같은 방향이라서, 2~30분 걸리는 거리를, 내 차로 집근처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 중에 한 분이 말씀하시길,
성격은, 불같은 데,
운전은, 아주 부드럽게 안전하게 하네, 라고 하신다.
나는, 32살 이후, 모 회사의 사장님과의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그 때 나는, 모 회사에 들어가서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멀쩡한 차를, 2대나 폐차를 시켜버렸다.
그 후, 절대로 접촉사고 조차도 일으키지도 당하지도 않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딱 두 번 접촉 사고를 당했다.
뒤에서 나를 들이 받은 차의 경우와, 강원도 춘천에서,
교차로 신호 대기 중인데, 옆에서 튀어나와 나의 꽁무니를 들어 받았던 어떤 차, 제주도에서,
이 두 건이 사고 외에는, 난 일으킨 적이 없다.
이곳, 육지라는, 낯선 땅에 온지도 올해로 만 7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속도 위반이나 그런 교통 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맞은 적이 없다.
딱 한 건 있는데 그것은, 조치원에서, 밤 10 조금 넘어, 조치원 역전 앞을 보니,
차를 주차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역앞이 아닌 옆쪽으로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많은 차들이,
그래서, 식사를 하려고 모 식당 앞에 세우고 들어갔다 나와 몇 일 있으니,
딱지가 날아왔다.
주차위반?? 참 어이가 없었다.
이것이 나의 교통에 관한 일이다.
나는 이런 성격인데,
그 사람이 날, 돌게 만들었다.
만날 때마다 돌게 만든다.
삼독(三毒)이란 말이 있다. 이 역시 불교 용어인데,
해석하는 사람들이 각 종파마다 조금씩 달랐다.
쉽게 말해서,
첫째가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망이고,
두 번째가, 열받는 일 즉 꼭지가 돌아버리는 일, 웈하고 성질을 부리며 온갖 욕지거리와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행위이며,
세번째가, 멍청하여 어리석은 짓을 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불교 용어에서는, 어려운 말로, 욕심, 성냄, 어리석음, 이란 식으로 나와 있다.
참 어렵게 말한다.
인간은, 욕망이 많다. 욕심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이 말은, 좀 뉘앙스가 좀 그렇다.
인간이 바라는 모든 바는, 바로 욕망이다.
그것을 적당히?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의식주의 모든 면에서, 먹고 입고 살만하면,
남도 도와야 한다는 뜻도 내포된 의미이다. 물론 부처님이 한 말씀이다.
난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두 번째는, 성냄인데, 이게 모든 전쟁의 근원이다. 다른 말로 쉽게 하면 다툼 분쟁 싸움의 원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들 중의 핵심이다.
어느 나라건 법이라는 공통을 위한 법이 있다. 즉 질서이며 조화를 이루기 위한 보편타당성을 가진 법이다.
헌데, 독재를 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돌아버리는 종자도 나오게 된다.
바로 나? 가끔 돌아버린다. 나에게 겨냥하면
헌데, 내가 실로 잘못을 했다고 인정하고 알고 있으면, 나는 만인이 보고 있어도, 사실대로 사과를 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용서를 해 줄 때까지 사과를 한다. 그것이 물질적으로 보상을 원하면 해 준다.
물질적으로 해 줄 수 없을 때, 상대방이 들어 주지 않을 때는, 몸으로라도 때우는 성격이며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헌데, 오늘 돌게 만들어 버렸다.
그 중에는 안 볼 사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친한 몇 사람이 있었는데, 참 희안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들 중 2명은, 나의 불같은 성질머리를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며, 절대로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는
두 명이 사람이다. 그 외는, 나를 잘 모른다.
헌데, 그 장(長)이란 사람은, 첫만남부터 꼭지가 돌게 하더니, 오늘까지 돌게 했다.
인터넷에 이런 말을 써면 안 되지만,
무법시대라면,
아마도 반병신이 되도록 패버렸을 것이다, 내 성격으로 보아. 헌데
그런 세상이 아닌지라, 성질만 있는 대로 부리고 나와 버렸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기에,
아무도 내 편은 없었다. 아무도 나의 말에 동의를 구하는 이가 없었다.
마치 그 장이라는, 장(長)이 말이 곧 법(法)인양, 아무튼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100일이라는 기간 동안, 10년 간 잘 지내오던 내가, 그 짧은 기간에 몇 번이나 꼭지가 돌아버린 것이다.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허허 참.
부처님의 말 중에, 세번째의 독(毒)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미치게 하고, 조화를 깨뜨리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어리석음이다. 한자로 쓸 때, 우치(愚痴)라고 쓰는데,
이 말은, 어리석다 어리석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두개가 들어간다.
어리석고 어리석다 라고 해서, 우치(愚痴)라 하는데,
이 단어는, 한국어에는 없는 말이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말이다.
중국인들은, 이 세가지의 인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독약 중의 우치를, "우둔하고 미련하다" 란 의미로 쓰는 모양이며,
일본인들은, "푸념, 게정, 넋두리, 넋두리하다, 푸념하다, 투덜대다"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의미상 같은 뜻으로,
불평하다, 라는 말로도 일본인들은 사용하는데,
이것을, "어리석음"이란 말로 세 가지의 독, 인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부조화하게 하며, 싸움(다툼)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망,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걍 무시해서 열받게 해서 돌게 만들어 버리는 성냄을 일으키는 무자비하고 사랑없는 말들,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어리석음,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뭐라고 된다고 하는데, 이치도 모르면서, 속뜻도 모르면서, 그저 아는 척 하며, 사람 돌게 만들어 버리는 일들이 일상사에 비일비재하다.
공자란 사람이 기원전에 살 때,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단 모르는 것을 물어서 알려고 하는 않는 것이
실로 부끄러운 것이다, 라고 한 바 있다.
나는, 실로
잘 물어 본다. 헌데 상대방이 모른다? 웃긴다. 그것도 어떤 조직이라는 단체 특히 종교단체에 몇 년이상 혹은 몇 십년을 다닌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아멘, 아멘, 그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케쿄라고만
부르고 있다.
정행(正行)을 하는 것은 좋은 데, 그 속뜻을 알고 하는지 참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학(學)도 아주 중요한데, 이것은, 별로 안 하는 모습들이었다.
집에서는 혼자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존경하고 공경하고 연모하며 받들어 모시는 분이라면, 그 분이 행하신 일들과 생각들과 글들을 통해서,
그 대상이 어떠한 의도로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육하원칙에 의해서, 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현대의 종교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역시나 ...
말 중에 아주 좋은 말이 있었다.
모 불교 종파의 모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형식,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라고 하데요. 하하하.
틀린 말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각 사람의 입장이나 성격이나 성질이나 품성이나 개개인의 차이를 잘 파악해서,
설법을 한다면, 아주 좋지요.
나는, 법화경(法華經) 전체 28품을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이 말이 아주 좋았다.
수의설법(隨宜說法)
아주 적절하게, 아주 적당하게, 더 속뜻을 내가 볼 때 그 각 사람이 품성이나 성격이나 의도나 그 사람의 바라는 대로,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알맞게, 진리인 법을, 말한다, 라고 하는 것을.
진리란,
예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진리요 길이라, 하시었지만,
진리란, 말만을 들으면 뭔 말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각 가정마다, 회사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각 그 주가 되는 입장에서 볼 때, 진리란 말의 뜻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악마에게는, 화를 내라, 싸워라, 때려 뿌셔라, 미워해라, 저주해라, 죽여라, 괴롭혀라, 아프게 해라 등등 상처를 주는 것이, 곧 진리이며 정법이다.
반대로 신불이라고도 말하고, 알라 혹은 여호와, 야훼,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니치렌, 등등의 대우주대신령신불, 즉 창조주의 마음을 아는 그분들이 입장에서 볼 때의
가장 올바른 선(善) 즉 진리(眞理)란 자비와 사랑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편온하게 하는 것이 진리이다.
누구에게나 다.
태양은 일(日)이라고 한다.
달은 월(月)이라 한다. 인류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느 시대건, 태양을 신불이라고 여겼다.
달 또한 신불이라 여겼다.
내가 볼 때,
해와 달, 일월(日月)은, 만물에게 평등하게 차별없이 빛을 골고루 준다. 무상으로, 공짜로, 절대로 돈 따위의 댓가를 달라고 말하지도 않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아는 신불이다. 부처다, 신이다. 하나님이며 하늘님이여 하느님이며 옥황상제이며 제석천이며 범천이며 7대대천사이며 제천선신이며 어느 나라에서 말하건 그들이 믿는 최상의 지고무상한 선신이다.
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그 분이 바로 신불이다. 메시야이며 구세주이다.
마음으로 생각컨데, 이건 뭔가 아닌데?? 라고 생각이 들면,
아무리 돌대가리 바보 멍충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이것은 가짜 신불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말들은 흔히들 한다.
은혜를 입었으니까 댓가로 돈 내라? 하하하 . 기가 막힌 일이다.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부처의 이름을 빙자하여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모세의 이름을 빙자하여
엘호힘(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누구의 이름을 빙자하여, 돈을 강탈한다? 이것은, 아니올씨다 이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살아온 지혜인 지성을 통해서 볼 때도 이것은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세간에 사람들이 말을 들어보면, 살만큼 사신 연세가 60이 넘으신 분들이 말들을 종합적으로 들어보면,
불교건
기독교건 몇 년 혹은 몇 십년을 믿고 신앙하고 있던 분들이, 넌더리가 나서, 쳐다 보지도 않고 안 믿고 안 다닌다고
하시는 분들이 태반이었고,
평생을
기독교나 불교나 혹은 다른 신앙을 아무런 문제 없이 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며 보아 왔다.
한 길을 평생 그것이 종교상의 신앙이건,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로 모든 일을 분석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수성가한 분들의 경우 이들이 신앙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타력이 아닌 자력이었다. 자수성가한 종교의 신에 의지하지 않고 성공한 이들의 평온한 삶을 볼 때,
헌데,
이들은, 말로 글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본래 과거칠불이나 석가나 니치렌이나 예수나 모세가 말하던 그 참된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단, 현시대의 지구상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멋진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처음과 끝이라.
본말구경(本末究竟)이라 이 역시 끝내주는 구마라습의 번역입니다. 처음과 끝이 본래 같다. 캬 멋진 표현입니다.
[불교] 지옥계(地獄界)로부터 불계(佛界)에 이르기까지 일체 구유(一切具有)한 보편성(普遍性). 곧 상(相), 성(性), 체(體), 역(力), 작(炸), 인(因), 연(緣), 과(果), 보(報), 본말 구경(本末究竟)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10가지의 이와 같다, 라고 하는 보편타탕한 평등한,
본래 같다, 라고 나는 해석하고픈..
태양은, 달은, 처름과 끝이 같습니다.
나는 닮고 싶은데,
내가 내린, 나의 의지(意)를 훼방놓을 때, 나는 강한 반발력을 나타내며, 웈하고 진에(瞋恚)를 하고 맙니다.
진에(瞋恚) 한자 그대로 풀면, 눈을 부릎뜨고 온갖 인상을 쓰면서 악마같이 되어 성을 내는 것을 말하는데,
차분하게 공식으로 정해진 사전상의 뜻으로 보면,
"자신의 의사(意思)에 어그러짐에 대하여 성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기 뜻에 어긋나는 것에 대하여 성내는 일을 이른다"라고 합니다.
"성내어 눈을 부릎뜸" 이라고 하는 진(瞋)입니다.
성낼 진(嗔)도 있긴 있지만, 입으로 성내는 것이 아닌, 눈을 부릎뜨고 성내는 것입니다. 무시무시합니다.
아기들이 다 울고 말 것입니다.
아기들이 다 울고 말 것입니다.
눈을 부릎뜨고, 눈(目:목)을 부릎뜨고, 진(眞) 참말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을 내는 것입니다.
온 에너지가 다 불출되고 맙니다.
"瞋恚の炎 불길 같은 분노"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녁의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화를 낼 때,
내 몸안에 흐르는 피(血)가 독약 중의 극독인 독약으로 변하며
그 기운이,
기가 약하거나
몸이 허한 사람이 곁에 있을 때,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기들이 울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기들은 마음의 순전하기 때문에, 인간이 몸에서 일으키는 오라(오로라)을 봐 버립니다.
끝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니치렌(日蓮)님은, 그런 분이 아님을. 절대로 강요 하는 규율이란 미명하에 강제하는 그런 분이 아님을.
만일 강요하는 분이라면,
나는 그분의 가르침을 전한다고 하는 분들이 속한 곳에서 나오고 말겠습니다.
1200년대 당시의 일본은, 사무라이 시대 즉 봉건정치의 시대였기에.
니치렌은 방편의 힘으로, 묘법연화경에, 나무(南無)라는 말을 더하여, 설법을 한 것임을, 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맞게,
수의(隨宜), 이 단어를 단어의 뜻대로 풀이하면, 따르다 뭐에? 마땅함에 따라서...라고 합니다.
설법(說法), 말 그대로 설하다, 말하다 무엇을? 법(法) 즉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를. 어떤? 인간의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그것을 어찌하면 되는지를.
법화경에 분명히 나와 있듯이,
세상의 아버지이며, 항상 이곳에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신불이,
예수님이,
엘호힘(여호와 야훼)
부처님이.
알라님이,
이 세상의 내가 아닌, 천상계에서 이 곳으로 잠깐 나오기 이전의 내가, 성질을 부리지 않던 내가,
꾹 참고 참고 또 참고 속으로도 조금도 눈을 부릎뜨고 성내는 일이 없던 내가,
지금은.
참지 못하고 말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100가지 중에 99가지는 잘 하지만, 딱 한 가지를 못 고치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이도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은,
주는 것 없이 싫다, 이런 사람이 분명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임에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나를 돌게 하는, 그 남자!!
그냥,
보기만 해도 사실 첫 대면부터 기분이 나빴고, 절대로 같은 공간에서 있고 싶지 않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 생에서,
전생에 나랑 굉장히 사이가 안좋았던 그 사람이, 지금 같은 단체에서 신앙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돌아 버립니다. 하하하.
내 모습은, 아주 짧은 스포츠형 머리스타일은 아니고, 빡빡머리의 중간인 머리형태를 늘 유지하며
이마는 아주 넓고 개미가 미끄럼을 타기 좋은 이마를 하고 있으며
눈썹은 아주 찐하고 두텁고
눈모양은 평소에는 눈꼬리가 자연스럽게 내려온 모양이며
코는 뚜렷하며 고등학교 때 상업선생님께서 말한 바를 빌면, 부산 남자 코 모양이며,
입술은 두툼하고 립스틱을 바른 듯이 진하며
귀는 부처님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 전체의 형상은 계란형이며 광대뼈는 튀어나와 있지 않으며
몸매는 날렵하게 생겼으며
호리호리하지만 잔근육이 숨어 있는 형태입니다. 처음 들을 것입니다.
제 블로그를 몇 년간 오셨던 분들께서는,
몸에서는 어깨 근육이 숨어 있지만 발달했다고 예전에 무술을 좀 배울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으며
손모양은 두툼하고 큰 편이며 남자손모양이라고들 어른들이 말씀하십니다.
평소에 피부는 숨어 있지만, 조금
기운을 운기하면 힘줄들이 튀어나오며 근육이 불거지는 몸입니다.
똥배는 없으며 늘 같은 허리 사이즈를 유지합니다.
70전후의 연세가 드신 분들이 나를 보고 말씀하실 때는, 남자분들,
전체적인 내 인상은, 한 성질 하게 생겼네, 술 좋아하게 생겼네, 라고 하시며
여자분들은 내게 말씀하시길, 건들면 터질 인상인데 하십니다. 하하하
헌데 몇 달 같이 가까이 해 보면, 참 다정다감한 남자라고도 하신답니다. 하하하.
참고로, 제일 싫어하는 그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말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 사귀기를 정말로 귀찮아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전화 오는 것도 사실 싫은 사람입니다.
그 상대가 여자가 되었건 남자가 되었건
내 전화번호에 입력된 이름이 아니면 절대로 안 받습니다.
내 전화번호에 있었다가 사라진 이름은, 절대로 만나지 않습니다.
목청이 굉장히 큽니다.
소곤소곤 작게는 말을 못하는 큰목소리입니다. 하하하.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속삭이면, 단 한마디도 못 알아 듣습니다.
영어나 일본어는 대충 뭔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만, 중국어는 당췌 뭔 말인지 못 알아 듣습니다. 바보입니다.
제가 사는 집에 주인집 빼고는 대여섯개의 방이 전부 중국인입니다. 못 알아 듣습니다. 바보입니다.
제가 꼭지가 돌면, 모습이 바뀝니다. 악마입니다.
화가 났을 때 거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 자신조차도 놀랄 정도로 침착한 표정이 악마의 모습입니다.
전혀 내가 아닌 타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성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내 의지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단호하게.
해병대에 있을 때, 주계(군인들이 식사하는 곳)에서,
쫄병 때, 고참이 뭐라해서 안 하겠다고 했더니, 부당한 요구라서, 절대로 안 합니다. 했더니,
그럼 죽이겠답니다.
그래서 죽여라 했지요 제가,
다들 구경하데요 군대니까요 하하하
도마에 내 머리를 대라 하데요. 했지요.
식칼로 내 목을 치겠답니다. 꼭지가 돌아버린 고참 해병
치라고 태연하게 말했지요. 새파란 쫄따구인 제가.
칼이 뒷목이 대어 있데요. 그래도 난 자를 테면 자르라 했지요.
못 자르데요.
군대 시절 1980년 대 말, 완전 꼴통이었습니다. 제가,
해병대 시절에, 장교들이 말하길 내게, 너는 체질이야, 체질, 완전 군발이 체질,
너 제대하지 마라 했었습니다.
전역할 때 신고하려 부대로 들어가니, 제대하지 마라. 했지요.
10여년간 후회했습니다.
제대한 것을, 말뚝 박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해병대에
내 사랑 티코, 올해로 19년 된, 내 애마인 티코에 해병대 마크가 붙어 있습니다.
나란 사람은, 칼이 목에 들어와도 절대로 아닌 것은 아닌 사람입니다.
내 이름에 있듯이, 아버님이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라는 의미로,
이름 자 중에, 바를 정(正)이라는 이름자에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어린 시절 아버님과는 사이가 안 좋았지만, 지키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의문이 드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내가 알아 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한 것은
반드시 알아내고야 마는 끈기가 있는 성격입니다.
한 번 안 한다, NO한 것이거나, 넌 싫다, 두 번 다시 안 본다, 하면 안 보는 사람입니다.
대충 알겠지요. ㅎㅎㅎ
이 블로그를 2008년 부터인가 시작한 사람의 성격을.
일기글과
가르침의 글의 전부입니다.
요즘은, 일본 사이트를 아무리 찾아 보아도, 번역해서 올릴 만한? 글들이 없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복사를 허락하던 싸이트를 가보니, 복사 금지를 해 놓았더랍니다. 하하하.
자신의 글도 아닌,
고인이 되신, 분이 글인데 말이죠. 그 분들이 가족들이 남은, 아직도 그분이 이름으로
인쇄되어, 일본내에서 재판 재판 하면서 찍어내고 있는 책인데
마치 자신의 책인양, 복사금지를 스크랩 금지를 해 놓았더랍니다. 하하하.
제 블로그의 글들은,
절대로 금지가 없습니다.
02분전 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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